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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바지
2016년 02월 08일 18시 04분  조회:1384  추천:0  작성자: 주정배
손자가 제누나가 입던 바지라고 입지 않겠다고 난리다. 새옷을 사내라고 …. 누나가 얼마 입지도 않은 바지여서 새것과 다름이 없는 바진데도 말이다.
……
                                      1

내가 어릴때는 정말 새 바지라곤 입어 보지를 못하였다. 어쩌다 새 오바(외투) 하나를 입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마도 내가 10 살 때 쯤 어머니는 나에게 새 오바를 만들어 준단다. 너무나 기뻐서 정말 날뛰다 싶이 하였다. 오바감 원단을 가지고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영철이네 집을 갔다. 당시 우리 모태 (연변사투리로 우리동네라는 말)에는 영철이네 집이 아니면 저 길건너 두만이네 집에 가서 옷들을 지어 입었던것 같다. 우리 어릴때는 옷은 대부분 마선집에 가서 지어다 입었다.
 
영철이 엄마가 나의 몸에 치수를 이리저리 잰 다음 집으로 돌아오는 나는 기쁜 심정으로 그 오바가 빨리 완성 되기만을 고대하였다. 그런데 그옷이 그렇게 늦게 될줄이야 …
 
오바를 영철이 엄마에게 맡긴 다음날부터 맨날 학수고대하고 새 오바를 기다리던 난 끝내 참지 못하고 어머니에게 따졌다.
 
“어머니!  내 오바는 언제 나온답니까.”
“오~  그거 ” 어머니의 모호한 대답이였다. 난 그 오바가 그 새 오바가 그렇게 빨리 입어 보고 싶었다. 비록  춥지도 않은 가을이였지만… 그 새오바가 하루 빨리 완성되기를 고대 기다리는 나였다.
 
정말 새옷이라곤 입어 보지도 못한 나에게 겨울 오바가 그것도 새 오바가 만들어 진다는데 …
                                       
                                        2

 
내가 어릴때 나에게는 어쩌다 차려진 바지라곤 형님이 기껏 입다가 해진 바지를 뚝잘라 만든 바지가 아니면 아버지가 입던 바지를 어머니가 어떻게 손으로 깊고 줄이고 하여 만든 바지가 전부였다. 새 바지라고는 입어 본 기억이 한번도 없다.
 
그때는 대부분 단련이란 원단으로 만든 곤색 아니면 검정색 바지였는데 다 만들었는데도 엄마는 나를 입게 못하였다. 그 저 바지가 맞는가를 잠간 입어 보고는 퍼그나 큰데도 명년이면 딱 맞겠다며 그대로 거의 한뼘이나 올려 홀쳐 매놓고는 다시 한번 나를 입혀 보고는 그대로 다시 벗으란다. 그리고는 꼭 무슨 춘절이나 아동절이나 명절부터 시작해 입으라는 것이다. 어쩌면 설명절에 곱게 입히려는 것이었을지는 몰라도 그 리면에는 조금이라도 늦게 입혀서 절약하자는것이 최종목적?이 아니였나 싶기도 하다.
 
그 새 오바도 예외가 아니였다. 오바가 어찌나 큰지 둘째형님이 입으니 딱 맞는것이다. 그래도 어머님은 음 명년에는 딱맞겠다. 하면서 그대로 긴 팔소매를 거의 10센치나 걷어 올려서 홀쳐 주고는 다시 나에게 입혀 본다. 오바라 다른데는 크면 큰대로 널으면 넓은 대로 그대로 입어도 괜찮았다.
 
그리고는 또 그 오바를 벗어서는 설날부터 입으란다. 그보다도 억울한 것은 새오바도 새 오바란 허울뿐이다. 안감은 헌 원단을 뜯어 대여서 겉감만 새것이였지 속안은 볼품이 없었다. 본래 그런 헌  안감도 얻지 못하여 그 오바는 그해 겨울도 다지난 겨울방학에 만들어 진 것이리라 … 아마도 오바를 크게 만든것도 어머니가 한 삼년은 입게 해달고 하였기때문였을것같다 !
그리고 그때는 무럭무럭 자랄때였으니 …
그때는 옷 한견지를 꼭 삼년이상 입어야 한다.
새것으로 한해, 낡은것으로 한해,, 기워서 한해
 
                                       3
 
그땐 정말 지지리도 가난하였다.
 
내가 줄두개를 달었을 때였으니 아마도 소학교 2, 3학년때 일인가 싶다.
 
그해 6;1 절에 연길에는 대 축제가 있었는데 우리는 집체무에 행진검열연습에 매일 오후를 할애 하였다. 그리고 드디여 6:1 절이 바야흐로 다가 오는 그 전날 우리는 모두가 6:1절 행사에 입을 집체복을 입고 오라는것이였다. 마지막으로 복장을 입고 검사해 보려는 것이다.
 
집체복이라야 그당시에는 검정이 아니면 곤색 바지에 흰대복이면 다였다. 나는   어머니에게 미리 준비+다짐을  주었다. 이번에는 꼭 곤색바지와 흰대복을 만들어 6;1전으로 준비하여 내놓으라고 …
 
그런데 야속하게도 어머니는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엉엉 울면서 어머니에 투정을 부렸으나 당시에는 너무나 가난하여 그런 곤색 바지에 소선대 대복은 어디서 나올떼가 없는 우리집이었다. 어머님은 나에게 내일만은 꼭 행사에 빠짐없이 만들어 놓겠으니 근심말라 안심을 주어서 그대로 학교에 가서 나하고 몇몇은 바지는 물론 대복도 입지 못하고 연습하였던 기억이 아직도 눈앞에 생생롭다.
 
다른애들은 몰라도 중대대기를 들고 대렬 선두에 선 내가 헌 바지에 대복도 안 입고 있었으니 얼마나 보기가 싫었을가! 거기에 내옆에는 여자애 둘이나 이 중대기수를 호위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끝날 무렵 내일은 모두 꼭 통일복장을 입고 오라고 반주임선생님은 나에게 신신당부하였다.
 
그리고 이튿날 나의 어머니는 정말 약속을 지켰다. 정말 어머니는 어디서 만들어 왔는지 내가 입어본 바지중 가장 새것인 곤색바지를 나에게 입혔는데 그 바지는 나한테 딱~ 맞았다. 머, 당시는 대충 길이만 맞으면 만사가 오케이였던 시대였으니 …
 
곤색바지에 새하얀 대복을 거기에 넥타이까지 누나는 아침짓고 남은 풍로에서 남은 석탄불을 다리미에 넣고 나의 그 겸열식에 입을 대복과바지, 그리고 넥타이까지 반듯하게 다려 나에게 입혔다. 정말 멋졌다.
 
나는 그 곤색 바지에 새하얀 소선대 대복을 입고  거기에 새빨간 두줄 표식을, 그리고 새빨간 붉은 넥타이도 멋지게 메고는 라라 라~ 학교로 달려 갔다. 그리고 6:1절 행사도 멋지게 끝내였다.
 
검렬을 끝내고 우리는 참았던 소피보러 주석대 뒤로 달려 갔다. 그때는 공원안에 화장실이라곤 기억에 없다. 주석대 뒤 골짜기가 바로 변소였던것이다.
 
나는 바삐 바삐 서둘러 소변을 보려고 앞에 오줌 구멍을 찾았으나 …아뿔싸 급한 나머지 구멍을 찾지 못하겠는거 아니겠는가. 이리저리 손가락을 만져가며 천천히 찾았으나  구멍이 없다. 다시 머리숙여 찾았으나 원래 오줌 구멍이란  없는 바지가 아닌가 …
 
나는 너무도 기막혔다. 소변은 급하지 구멍은 없지 바삐 바삐 허리끈을 풀려고 하였는데 어머나!? 글쎄 그끈이 올 매여진 것이 아닌가 급한 나머지 아무끈이나 잡고 당겼으니 …
 
당시에는 혁띠는 아버지나 띠는 것이고 각띠를 차고 다니는 애들도 있었으나 우리집은 가난하기에 그런 각띠는 형님들 차지고 나에게까지 그런 허리띠가 차려진다는것은 너무나 사치였던 그때 그시절이였다. 나는 그저 노끈으로 허리띠를 대신하여 끈을 매고 있었던 것이다.
 
혼자 급해서 그 올매여진 바지끈을 풀려고 애를 썼으나 허사였다. 어린 나에게는 그것을  풀수 있는 손가락 힘도 두뇌도 역부적이였다.
 
그 끈을 풀려고 무지 애를쓰던 나는 … 종내는 바지가랑이에 뜨거운 액체가 줄줄 흘러 내렸다. 난 그래도 재빨리 한쪽 가랭이를 안쪽으로 잡아 당기고는 그대로 쉬~ 하고 말았다. 얼마나 부끄러웠던지 … 다행이 바지가랑이가 널러서 그렇게 많이 젖지는 않았다. 정말 불행중다행이라 할가 사위를 휘 둘러보니 본사람이 없는것이 아닌가
 
난 남들에게 발각 될가봐 머리를 굴렸다. 나는 중대 기수였으니 중대기를 들고 있었는데 그 기발을 거꾸로 쥐고 노는 것처럼 그것을 휘휘 돌리면서 … 대렬속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나는 어머니를 보자 서러움에 울음이 터졌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따져 물었다. 이 바지, 오줌구멍도 없는 이바지는 어디서 났는가고 …왜 이렇게 만들었는가고 … 울며불며 난리 쳤다. 알고 보니 어머니는 밤새도록 쉬지않고 누나의 바지를 줄여서 내 바지를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본래 누나가 입던 바지였는데 누나에게는 새 바지를 사주기로 하고는  누나가 입던 바지를  뒤집고 줄여서 나에게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여자바지를 남자바지로 고치려거나 그 바지에 오줌 구멍을 내려면 어머니 바느질 손재간으로는 역부족이였던 것이다.
 
어머니 솜씨로는 여자바지에 어떻게 오줌 구멍을 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본래 바지는 그 부분이 제일 손과 일이 많이 가는 부분인데 … 거기에 시간과 재간 부족으로 어머니는 오줌구멍도 없는 바지를 나에게 입혔던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모를것이다. 당시에 여자들의 바지는 앞에 구멍이 없고 옆이 째개져 있었다. 그리고 주머니도  없다.)
 
오줌구멍이 없는 바지때문에 바지에 오줌을 싼 내가 얼마나 서럽게 울었던지 어머니는 아버지가 석탄비를 타면 올해는 꼭 새것을 만들어 준다고 … 형님이나 누나가 입던 바지가 아니라 새것을 만들어 준다고 달래여 나의 울음은 겨우 끊쳤다. 그 사건에 나의 그 서러운 울음이 새 오바 그것도 허울뿐인 새 오바를 만들어 준것이다.
 
오 ~ 그때는 설날을 기다리는게 얼마나 애가 탔는지 우리 그때는 정말 설날이나 무슨 명절이여야 색다른 음식을 먹을 수 있었고 새 옷도 입을수가 있었다.
 
요즘도 난 손자 손녀들이 새 바지를 사서 입어 볼때면 “야! 딱 맞고 정말 멋있다.” 그리고 조금 크면은 “명년에는 딱~ 맞겠다.”  그다음 또 우스개 소리를 한마디 더 한다.
“야 벗어 두었다가 설에 입어라”고. …
 
이번 설에 손자손녀가 옷타발을 하기에 난 그옛날 내가 어릴때 누나 바지를 입었다가 바지에 쉬를 한것이 새삼스레 떠 올라 이렇게 수필(随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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