륙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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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날짜 : 2019/08/19

전체 [ 43 ]

43    좋은시 묶음3 댓글:  조회:1356  추천:0  2019-08-19
카드 키드     박성우     카드가 사준 정장을 입고 카드가 사준 구두를 신은 출근길은 벅차다 어쩌다 카드가 사주는 저녁은 근사하고 카드가 큰맘 먹고 들여준 침대는 푹신하다 카드가 현금서비스 해준 축의금을 들고 다녀오는 직장 동료의 결혼식은 처연하게 찬란하다 입사 삼년차 카드 키드, 야근에 지쳐 귀가하는 밤은 카드가 카드론으로 얻어준 원룸이 있어 아늑하다 카드 키드가 되기 위한 지난날은 아름다웠다 스펙에 내준 대학생활은 교양 없이 품위 있었고 자기소개서 속으로 들어간 스펙은 뻔뻔하게 자랑스러웠다 서류전형에서 번번이 떨어지던 입사시험, 처음으로 면접 통보를 받던 날은 팬파이프 같은 빛이 눈앞으로 쏟아져내리는 것 같았다 카드가 사주는 패스트푸드는 먹을 만하고 카드가 지켜주는 직장생활은 아직 견딜 만하다 정기적금을 해약해 카드에게 이체하고 남은 돈, 지방에 사는 양친께 부쳐드리던 손은 대견하다 월급날 받은 급여는 어김없이 카드에게 옮겨간다 '언제 취직할 거니'를 지나 '언제 결혼할 거니'까지 기적적으로 와 있는 카드 키드, 카드는 희망 복근을 키워보는 건 어떠냐며 헬스클럽을 권유한다   시인은 시적으로 지상에 산다 / 천양희 원고료를 주지 않는 잡지사에 시를 주면서 정신이 밥 먹여 주는 세상을 꿈꾸면서 아직도 빛나는 건 별과 시뿐이라고 생각하면서 제 숟가락으로 제 생을 파먹으면서 발 빠른 세상에서 게으름과 느림을 찬양하면서 냉정한 시에게 순정을 바치면서 운명을 걸면서 아무나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하면서 새소리를 듣다가도 ‘오늘 아침 나는 책을 읽었다’*고 책상을 치면서 시인은 시적으로 지상에 산다 시적인 삶에 대해 쓰고 있는 동안 어느 시인처럼 나도 무지하게 땀이 났다 * 연암 박지원의 글 에서 최영미 시 ㅡ 너에게로 가는 길 누구도 모른다 ​ 그리하여 이 시대 나는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하나 창자를 뒤집어 보여줘야 하나, 나도 너처럼 썩었다고 적당히 시커멓고 적당히 순결하다고 버티어온 세월의 굽이만큼 마디마디 꼬여 있다고 그러나 심장 한귀퉁이는 제법 시퍼렇게 뛰고 있다고 동맥에서 흐르는 피만큼은 세상모르게 깨끗하다고 은근히 힘을 줘서 이야기해야 하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나도 충분히 부끄러워 할 줄 안다고 그때마다 믿어달라고, 네 손을 내 가슴에 얹어줘야 하나 내게 일어난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두 팔과 두 다리는 악마처럼 튼튼하다고 그처럼 여러번 곱씹은 치욕과, 치욕 뒤의 입가심 같은 위로와 자위끝의 허망한 한 모금 니코틴의 깊은 맛을 어떻게 너에게 말해야 하나 양치질할 때마다 곰삭은 가래를 뱉어낸다고 상처가 치통처럼, 코딱지처럼 몸에 붙어 있다고 아예 벗어붙이고 보여줘야 하나 아아 그리하여 이 시대 나는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하나 아직도 새로 시작할 힘이 있는데 성한 두팔로 가끔은 널 안을 수 있는데 너에게로 가는 길을 나는 모른다 ​ -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창비, 1994)   2017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빅풋/석민재   군함처럼 큰 발을 끌고 아버지가 낭떠러지까지 오두막집을 밀고 갔다가 밀고 왔다가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스텝을 맞추며 말기 암, 엄마를 재우고 있다 죽음을 데리고 놀고 있다 죽을까 말까 죽어줄까 말까 엄마는 아빠를 놀리고 있다 아기처럼 엄마처럼 절벽 끝에서 놀고 있다 ​   < 2017 한라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점등 / 오경 가슴에서 플러그를 뺐다 젖이 멈췄다 벽등의 스위치를 켰다 나는 밤이 들킨 것 처럼 호들갑을 떤다 떨다가 아슬아슬하게 걸친 검은 브래지어를 떨어뜨린다 어둠이 활처럼 휘어진다 순간 배고프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허기를 달래려고 더 진한 화장을 하고 더 긴 속눈썹을 붙이고 스타킹을 벗는다 갑작스런 빛이 사방을 삐거덕거리게 한다 아기 유령들이 셔플 댄스를 추다가 천장에서 추락했을지도 모른다 길 잃은 시조새 한 마리 비상하다가 태양의 모서리에 부딪쳐 날개가 부러졌을지도 모른다 나는 문을 나서고 싶지 않았다 아니 불을 켜고 싶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것의 아주 작은 세포를 만지며 느껴 보고 싶었을 뿐 식탁 위엔 주인 없는 고통이 가열하지 않은 채 날것으로 있다 함성에 금이 간 어둠이여 다시는 변명에 목을 걸지 말 것 목숨 걸어야 할 곳이 어디 한 두 곳인가 식탁 아래 한때 눈부셨던 대낮의 그림자가 꽁무니를 빼느라 허둥지둥이다 지금은 어둠을 수습하기 위해 차단이 필요한 순간이다 찰나를 포착한 순발력 매년 일간지 신춘문예로 등단하는 시인이 30명 이상이다. 이 중에서 과연 몇 명이나 살아남아 계속 활동할까. 이러한 질문은 열정적이고 패기 넘치는 응모작들을 접하는 동안 우려보다는 새로운 기대로 바뀌었다.  올해 한라일보 신춘문예의 시 부문 예심을 거친 응모자는 10명이었다. 이를 다시 검토한 결과 김려원의 '애월의 얼룩', 김미경의 '먹돌쌔기', 이도훈의 '중절모', 오경의 '점등' 등 4편이 최종까지 남았다.  이 네 사람의 작품은 비슷한 수준이지만 서로 다른 작품 경향을 보여주었다. 김려원은 언어를 구사하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을뿐더러 어떤 소재도 시적 대상으로 수용해내는 역량이 돋보였다. 그러나 호흡이 다소 산만하고 불안하였다. 김미경의 시는 긴 호흡의 내용도 거침없이 소화해 내는 능력을 높이 살만했지만, 익숙한 자신의 틀에 갇혀 개성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 아쉬웠다. 이도훈의 시는 서툰 듯 낯선 표현이 되레 참신하게 느껴졌다. 특히 전봇대에 지은 새집을 중절모로 비유한 표현은 눈길을 오래 붙잡았다. 그렇지만 응모작 간 격차가 드러난다는 사실이 선택을 망설이게 했다. 반면 오경의 시는 식상하거나 미흡한 표현들이 더러 눈에 띄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들 수준이 대체적으로 고르며 응모자 자신의 목소리를 갖고 있다는데 심사위원들의 견해가 일치했다. 미숙한 점이 노정된다는 것은 그것을 극복해나가야 하는 숙제가 주어진다는 의미이다. 심사위원들은 그 긍정적인 가능성을 인식하고, 논의 끝에 '점등'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당선작 '점등'은 주방의 벽등을 켜는 순간을 개성적으로 묘사하면서 사색한다. 빛이 들어와 어둠이 사라지는 찰나는 거의 동시에 이루어지지만, 이때 존재하는 소재와 상상들을 순발력 있게 포착해 역동적으로 제시하는 대목에서 당선자의 기량을 엿볼 수 있었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또한 상세히 언급하진 못했지만 예심을 거친 모든 분께도 응원을 보낸다. 그들 모두 똑같은 출발점에 다시 서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스며드는 것                       안도현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에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바깥에 갇히다 정용화 우리 집 현관문에는 번호키가 달려있다 세 번, 비밀번호를 잘못 누르면 가차 없이 문이 나를 거부한다 쓰레기를 버리러 나왔다가 지갑도 휴대폰도 없이 제대로 바깥에 갇히고 말았다 안과 밖이 전도되는 순간 열리지 않는 문은 그대로 벽이 된다 계단에 앉아있는 30분 동안 겨울이 왔다 바람은 골목을 넓히려는 듯 세차게 불고 추위를 모르는 비둘기는 연신 모이를 쪼아댄다 내 것이면서 내가 어쩌지 못하는 것이 어디 문뿐이겠는가 낡을 대로 낡아버린 현수막이 바깥에 갇힌 나를 반성도 없이 흔든다 걸터앉은 계단이 제멋대로 흩어지는 길 위의 낙엽이 새들이 자유롭게 풀어놓은 허공이 나를 구속하고 있는 바깥이라니!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나는 지금 바깥이다 프로필 정용화 : 충북 ,동대 대학원 문창과, 대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바깥에 갇히다]외 다수 시 감상 어느 때 외출했다가 당혹할 때가 있다. 손에 아무것도 쥔 것이 없다. 현금도, 카드도, 전화기도, 차 열쇠도, 밀려드는 공포. 나는 여기에 이렇게 있는데, 세상의 밖에 나 홀로 있는 듯한 느낌. 어쩌면 나는 현금, 카드, 전화기, 열쇠로만 존재했던 것은 아닌지? 아니면 애초부터 나는 없었고 다만, 한 여름 땡볕에 울렁거리는 저 그림자가 진짜 ‘나’인지? 분명한 것은 바깥은 안의 반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지금 바깥이라는 것이다. [글/김부회 시인, 평론가]   물소의 뒷굽은 거룩하다 라고 / 정태중 시의 설계는 간혹 시어들이 떠나버리기도 해서 부도난 공사장 같기도 하였는데 공사장으로 신의 선물이랄까 하는 물음들이 녹슨 창으로 푸르게는 올라오기도 하였다 하얀 배꽃들이 지난 시간을 입었던 듯 옷들이 누렇게 먼저 바래고는 있는 듯 신문 기자의 탁본이 바래고는 있는 듯 배들이 어떤 문장들로 하여서 배가 불러오기도 한 점심시간이 지나자 부리나케 삐뽀삐뽀로 기선 잡는 불자동차와 헛배에 힘 잔뜩 부린 부도난 공사장 방귀와 상관도 없이 해는 쨍쨍 내리다가 굵은 빗방울 쏟아져 공사장을 내려치는데 부도난 말들이 튕겨 오르는 것이 풀들을 잡고 있는 눈물 같기만 하였는데 불화 가득 늙은 수소 큰 눈이 어리둥절 휘청이다가 눈물을 흘려주다가 음~매 라고 몇 번을 풀을 토악질하였다  
42    병문안 / 병문안 댓글:  조회:1129  추천:0  2019-08-19
병문안                                    김사이   죽음에 기저귀를 채우고 껌벅껌벅 나는 이순례입니다 내 이름은 이순례입니다 부시게 푸르른 하늘도 스산한 오후의 비도 순간 입맞춤처럼 지나가리니 분노는 늙고 눈물은 낡아서 운다 촛불이 켜져도 슬픔이 마르지 않는 몸뚱이는 가난한 땅에서 쉴 틈 없이 닳고 닳아 덮어쓴 껍데기 속으로 순하게 주무신다 휙 던져져 바람의 먹이로 사라지는 우렁각시 지구의 뚱뚱한 나이만큼 오래된 일상 짐짝처럼 끌려갈 때도 지키지 못한 영혼들 가까스로 살아온 환향녀는 화냥년이 되었다 오래된 일상이 너무 오래되어 나는 죄가 되었다 더는 목구멍으로 삶을 삼킬 수 없는 시간 죽음에 이르러서 되찾은 이름 나는 여자 이순례입니다 -《창작과 비평》2017년 겨울호       /     김종배 당신 얼굴에 쓰여진 난해한 문자 나 지금 토라졌으니 토닥여달란 건지 이젠 정말 끝이니 사라져달란 건지 당신이 쓰고 있는 또 다른 당신 깨진 거울의 파편을 들여다보는 난독증의 사내     사바(娑婆)                                 김사인 이것으로 올해도 작별이구나. 풀들도 주섬주섬 좌판을 거두는 외진 길섶 어린 연둣빛 귀뚜리 하나를(생후 며칠이나!) 늙은 개미가 온 힘을 다해 끌고 간다. 가는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아직 산 놈이면 봐주는 게 어떻겠는가,하자 한사코 죽은 놈이라 우긴다. 놓지 않는다. ㅡ 시집『어린 당나귀 곁에서』 창비, 2015년  쥐   김기택 구멍의 어둠 속에 정적의 숨죽임 뒤에 불안은 두근거리고 있다 사람이나 고양이의 잠을 깨울 가볍고 요란한 소리들은 깡통 속에 양동이 속에 대야 속에 항상 숨어 있다 어둠은 편안하고 안전하지만 굶주림이 있는 곳 몽둥이와 덫이 있는 대낮을 지나 번득이는 눈과 의심 많은 귀를 지나 주린 위장을 끌어당기는 냄새를 향하여 걸음은 공기를 밟듯 나아간다 꾸역꾸역 굶주림 속으로 들어오는 비누 조각 비닐봉지 향기로운 쥐약이 붙어 있는 밥알들 거품을 물고 떨며 죽을 때까지 그칠 줄 모르는 아아 황홀하고 불안한 식욕       의자 / 이정록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
41    좋은시 묶음 2 댓글:  조회:897  추천:0  2019-08-19
도토리 두 알 / 박 노 해 산길에서 주워든 도토리 두 알 한 알은 작고 보잘 것 없는 도토리 한 알은 크고 윤나는 도토리 나는 손바닥의 도토리 두 알을 바라본다 너희도 필사적으로 경쟁했는가 내가 더 크고 더 빛나는 존재라고 땅바닥에 떨어질 때까지 싸웠는가 진정 무엇이 더 중요한가 크고 윤나는 토토리가 되는 것은 청설모나 맷돼지에게나 중요한 일 삶에서 훨씬 더 중요한 건 참나무가 되는 것   상현 (上弦)                                                                       나희덕      차오르는  몸이  무거웠던지    새벽녘  능선  위에  걸터앉아  쉬고  있다      神(신)도  이렇게  들키는  때가  있으니!      때로  그녀도  발에  흙을  묻힌다는  것을    외딴  산모퉁이를  돌며  나는  훔쳐보았던  것인데    어느새  눈치를  챘는지    조금  붉어진  얼굴로  구름  사이  사라졌다가    다시  저만치  가고  있다      그녀가  앉았던  궁둥이  흔적이    저  능선  위에는  아직  남아  있을  것이어서    능선  근처  나무들은  환한  상처를  지녔을  것이다    뜨거운  숯불에  입술을  씻었던  이사야처럼                                 --  시집  [어두워진다는 것]  (2001)     말들의 후광 / 김선태 세상 모든 것들은 서로 관심 속에서 빛이 나는 것인가. 오랜만에 뿌옇게 흐려진 거실 유리창 청소를 하다 문득 닦다, 문지르다, 쓰다듬다 같은 말들이 거느린 후광을 생각한다. 유리창을 닦으면 바깥 풍경이 잘 보이고, 너의 얼룩을 닦아주면 내가 빛나고, 마음을 닦으면 세상 이치가 환해지듯이 책받침도 문지르면 머리칼을 일으켜 세우고, 녹슨 쇠붙이도 문지르면 빛이 나며, 아무리 오랜 기억도 문지르면 생생하게 되살아나듯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 얼굴빛이 밝아지고, 아픈 마음을 쓰다듬으면 환하게 상처가 아물며, 돌멩이라도 쓰다듬으면 마음 열어 반짝반짝 대화를 걸어오듯이 닦다, 문지르다, 쓰다듬다 같은 말들 속에는 탁하고, 추하고, 어두운 기억의 저편을 걸어 나오는 환한 누군가가 있다. 쓸수록 빛이 나는 이 말들은 세상을 다시 한 번 태어나게 하는 아름다운 힘을 갖고 있다. .   모자 모델하우스    김효은   내 머리 위 모자 속으로 놀러오세요 비 바람 눈 구름 따위 재해를 피하거나 그보다 더럽고 거센 인재 따위를 피하러 들어오세요 단지 숨기 장소로도 적합하죠 발걸음과 숨소리가 거슬린다구요 음소거 버튼도 있어요 고요를 원한다면 빨간 버튼을 사운드를 원한다면 노란 버튼을 날아갈 것 같은 불안에 날마다 시달리신다구요 그렇다면 초록 버튼을 누르세요 볼륨과 중량은 원하시는 만큼 눌러드려요 꽃발 딛고 서 있는 종아리가 매력적이라구요 살랑거리는 꼬리와 지느러미가 길고 날씬하고 예쁘다고요 자주 그리워하면 당신도 길게 늘어나요 하늘은 어떻게 보냐고요 일단 땅을 뚫어져라 쳐다봐요 그러다가 심호흡을 깊게 하면 가슴이 천장이 시선이 쩍 하고 어느 순간 아가미처럼 활짝 열리기도 합니다 내가 누구냐고요 나는 당신이 깜빡한 어제의 점심 약속입니다 어느 주말 아침부터 급히 상가에 가느라 못 챙긴 밀린 늦잠입니다 때로 방금이고요 가끔 이따가도 됩니다 챙 넓은 모자를 눌러 쓴 난쟁이입니다 당신이 지워버린 원고지의 빈 칸입니다 당신이 버린 봉제 인형입니다 당신이 휴가 때 버린 유기견입니다 언제든 찾아와 충전기를 꽂고 무기한 쉬어가도 좋을 버스터미널 공용 콘센트입니다 그러나 방전되기 전에 오세요 길고양이 한 마리도 개미 한 마리도 그냥 보내지는 않을게요 단 당신이 살아 있어야만 올 수 있어요 모자를 눌러 쓴 채 온종일 당신이 오기만을 기다려요 묘지를 머리에 이고 다니는 보부상 아니냐고요 내 머리 위 모자 속이 궁금하신가요 비밀 보따리 속에 보물이 잔뜩 들어 있냐구요 물론입니다 이따금 고객들은 검은 공단 소재의 불행이 드리운 챙을 주문하거나 희망의 분홍 레이스만을 고집하기도 합니다만 죽음의 상장만은 팔지 않습니다 내가 누구냐구요 풀옵션 묘지 모델하우스입니다 전방에 근사한 언덕 하나가 보인다고요 목적지 근처입니다 커다란 모자가 보이시나요 그 모자 안으로 들어오세요 혹자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아니냐고 묻기도 하지만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죽음의 모델하우스 모자 모델하우스로 오세요 당신의 두상에 꼭 맞는 예쁘고 멋진 모자를 제작해 드립니다 처음이라 어색하시다구요 그렇다면 머리에 살짝 얹고만 다니시다가 죽음이 임박하거나 자신의 주검이 익숙하게 만져질 때쯤 푹 눌러 쓰시면 됩니다 결제는 일시불은 언제나 불가능하고요 오로지 평생 상환 할부만 가능합니다 천천히 구경하세요 오늘의 메인 모자 콘셉트는 도서관, 도서관입니다 유난히 책 좋아하는 당신, 책으로 근사한 모자를 만들어드립니다 면류관 보다 멋진 도서관 묘지를 씌워드립니다   내 사랑은 신응순 누군가를 사랑하면 일생 섬이 된다 유난히 파도가 많고 유난히 바람이 많은 섬 그래서 가슴에는 평생 등불이 걸려있다  러시아 격언에 '바다에 나가기 전에는 한 번, 전쟁터에 나가기 전에는 두 번, 결혼하기 전에는 세 번 기도한다'고 하였다. 부부생활의 어려움을 아주 잘 새긴 시조로 섬이 된 가슴에 등불 밝히고 서로 비추며 삶을 행복하게 해야할 것이라 하였다. 전병태 시조시인   ―《문장 웹진》 2019.6월호     사랑한다는 것                            안도현 길가에 민들레 한송이 피어나면 꽃잎으로 온 하늘을 다 받치고 살듯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오직 한 사람을 사무치게 사랑한다는 것은 이 세상 전체를 비로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차고 맑은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며 우리가 서로 뜨겁게 사랑한다는 것은 그대는 나의 세상을 나는 그대의 세상을 함께 짊어지고 새벽을 향해 걸어가겠다는 것입니다.   나는 작고 보잘 것 없는 도토리를 멀리 빈 숲으로 힘껏 던져주었다 울지마라, 너는 묻혀서 참나무가 되리니   폭설                                        윤제림   싸락눈으로 속삭여봐야 알아듣지도 못하니까 진눈깨비로 질척여봐야 고샅길도 못 막으니까 저렇게 주먹을 부르쥐고 온몸을 떨며 오는 거다. 국밥에 덤벼봐야 표도 안 나니까 하우스를 덮고, 양조장 트럭을 덮는 거다. 낯모르는 얼굴이나 간지럽혀봐야 대꾸도 없으니까 저렇게 머리채를 흔들며 집집을 때리는 거다. 점, 점......으론 어림도 없으니까 삽시에, 일순에! 떼로 몰려와 그리운 이름 소리쳐 부르는 거다. 어른 아이 모다 눈길에 굴리고 자빠뜨리며 그리운 이의 발목을 잡는 거다. 전화를 끊고 우체국을 파묻는 거다 철길을 끊고 정거장을 파묻는 거다. 다른 세상으론, 비행기 한 대 못 뜨게 하는 거다.   내가 던진 물수제비가 그대에게 건너갈 때                                         권혁웅 ​ 그날 내가 던진 물수제비가 그대에게 건너갈 때 물결이 물결을 불러 그대에게 먼저 가 닿았습니다 입술과 입술이 만나듯 물결과 물결이 만나 한 세상 열어 보일 듯했습니다 연한 세월을 흩어 날리는 파랑의 길을 따라 그대에게 건너갈 때 그대는 흔들렸던가요 그 물결무늬를 가슴에 새겨 두었던가요 내가 던진 물수제비가 그대에게 건너갈 때 강물은 잠시 멈추어 제 몸을 열어 보였습니다 그대 역시 그처럼 열리리라 생각한 걸까요 공연히 들떠서 그대 마음 쪽으로 철벅거렸지만 어째서 수심은 몸으로만 겪는 걸까요 내가 던진 물수제비가 그대에게 건너갈 때 이 삶의 대안이 그대라 생각했던 마음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없는 돌다리를 두들기며 건너던 나의 물수제비, 그대에게 닿지 못하고 쉽게 가라앉았지요 그 위로 세월이 흘렀구요 물결과 물결이 만나듯 우리는 흔들렸을 뿐입니다 ​       둥근 발작                       조말선                                              사과 묘목을 심기 전에 굵은 철사줄과 말뚝으로 분위기를 장악하십시오 흰 사과꽃이 흩날리는 자유와 억압의 이중구조 안에서 신경증적인 열매가 맺힐 것입 니다 곁가지가 뻗으면 반드시 철사줄에 동여매세요 자기 성향이 굳어지기 전에 굴종을 주입하세요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성장억제입니다 원예가의 눈높이 이상은 금물입니다 나를 닮도록 강요하세요 나무에서 인간으로 퇴화시키세요 안된다, 안된다, 안된다 부정하세요 단단한 돌처럼 사과가 주렁주렁 열릴 것입니다 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마 억누르세요 뺨이 벌겋게 달아오를 것입니다 극심한 일교차가 당도를 결정한다면 극심한 감정교차는 빛깔을 결정합니다 폭염에는 모차르트를 우기에는 쇼스타코비치를 권합니다 한 가지 감상이 깊어지지 않도록 경계하세요 나른한 태양, 출중한 달빛, 잎을 들까부는 미풍 양질의 폭식은 품질을 저하시키는 원입니다. 위로 뻗을 때마다 쾅광 말뚝을 박으세요 열매가 풍성할수록 꽁꽁 철사줄에 동여매세요 자유와 억압의 이중구조 안에서 둥근 발작을 유도 하세요   양철  지붕에  대하여                                                                        안도현       양철  지붕이  그렁거린다, 라고  쓰면   그럼  바람이  불어서겠지, 라고   그저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삶이란,   버선처럼  뒤집어  볼수록  실밥이  많은  것     나는  수없이  양철  지붕을  두드리는  빗방울이었으나   실은,  두드렸으나  스며들지  못하고  사라진   빗소리였으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절실한  사랑이  나에게도  있었다     양철지붕을  이해하려면   오래  빗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맨  처음  양철  지붕을  얹을  때   날아가지  않으려고   몸에  가장  많이  못  자국을  두른  양철이   그  놈이  가장  많이  상처  입고  가장  많이  녹슬어  그렁거린다는  것을   너는  눈치  채야  한다     그러니까  사랑한다는  말은  증발하기  쉬우므로   쉽게  꺼내지  말  것   너를  위해  나도  녹슬어  가고  싶다, 라든지   비  온  뒤에  햇볕  쪽으로  먼저  몸을  말리려고  뒤척이지는  않겠다, 라든지   그래,  우리  사이에는  은유가  좀  필요한  것  아니냐?     생각해  봐   한쪽  면이  뜨거워지면   그  뒷면도  함께  뜨거워지는  게  양철  지붕이란다    
40    감자꽃 / 이재무 댓글:  조회:804  추천:0  2019-08-19
감자꽃 / 이재무 차라리 피지나 말걸 감자꽃 꽃 피어 더욱 서러운 여자 자주색 고름 물어뜯으며 눈으로 웃고 마음으론 울고 있구나 향기는, 저 건넛마을 장다리꽃 만나고 온 건달 같은 바람에게 다 앗겨 버리고 아무도 눈길 주지 않는, 비탈 오지에 서서 해 종일 누구를 기다리는가 세상의 모든 꽃들 생산에 저리 분주하고 눈부신 생의 환희를 앓고 있는데 불임의 여자. 내, 길고 긴 여정의 모퉁이에서 때 묻은 발목 잡고 퍼런 젊음이 분하고 억울해서 우는 내 여자, 노을 속 찬란한 비애여 차라리 피지나 말걸, 감자꽃 꽃 피어 더욱 서러운 여자, . .
39    블랑카의 하소 / 김혜천 댓글:  조회:728  추천:0  2019-08-19
블랑카의 하소                        김혜천 저 한국에 온지 몇 년 되었어요 봉숙이 만나 결혼도 했어요 처음 왔을 때 한국은 간식도 너무 무서운 것 같았어요 저 점심 먹고 왓을 때 과장님이 블랑카, 입가심으로 개피사탕 먹을래 했어요 한국사람들 소피국 먹는 건 알았지만 개피까지 사탕으로 먹는 줄 몰랐어요 드라큐라도 아니고 무슨 개피로 입가심을 하냐고 했더니 그럼 눈깔사탕 어때 하였어요 저 너무나 놀라서 그거 누구꺼냐고 하였더니 과장님 씨익 웃으며 내가 사장 꺼 몰래 빼왔어 했어요 저 기절했어요 눈 떠보니 저보고 기력이 약해졌다고 몸보신해야 한다고 자기 집으로 가자고 했어요 저 너무 불안해서 무슨 보신이냐고 했더니 과장님 제 어깨 툭 치면서 가서 우리 마누라 내장탕 먹자고 했어요 저 3일간 못 깨어 났어요 식당 간판 보고 더 놀랬어요 할머니 뼈다귀 해장국~ 저 미칠뻔 하였어요 근데 이거보고 완전 돌아버렸어요 할머니 산채비빔밥!!! 무서운 한국 음식 나빠요
38    트레이싱 페이퍼 / 김윤이 댓글:  조회:798  추천:0  2019-08-19
트레이싱 페이퍼             잘 마른 잎사귀가 바스락거리며  나를 읽네   몇 장 겹쳐도 한 장의 생시같은   서늘한 바람 뒤편   달처럼 떠오른 내가 텅 빈 아가리 벌리네   지루한 긴긴 꿈을 들여다 봐 주지 않아  어둠이 흐느끼는 밤   백태저럼 달무리 지네   일순간 소낙비   가로수 이파리 눈꺼풀이 축축하게  부풀어 오르고   거리마다 지렁이가 흘러넘치네   아아 무서워 무서워   깨진 잠처럼 튀어오른 보도블록   불거져 나온 나무뿌리   갈라진 혓바닥이 배배 꼬이네   비명이 목젖처럼 달라붙어 꿈틀대네   나는 이 길이 맞을까 저 길이 맞을까   손바닥에 침을 퉤퉤 뱉고 싶지만  손금이 보이지 앓는 손   금밟지않기 놀이 하듯 두 다리가 버둥대네   두 동강 난 지렁이 이리저리 기어가고   구름을 찢고 나온 투명한 달  내 그림자는 여태도록 나를 베끼고 있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김윤이 1976 서울 출생. 서울여대 및 명지대 문창과 졸업 200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작품활동 시작. 시힘 동인. 시집, [흑발 소녀의 누드속에는] [ 독한 연애 ] 가 있다 감상. 기름종이는 기름을 먹인 종이. 기름과 종이가 한몸이 된 종이. 그것은 제 자체가 용도가 아니다. 대상을 투영시키거나 비추는 용도다. 화자는 기름 종이가 되어 자기의 내면 위에 몇 겹으로 얹혀져 있다. 기묘하고도 재미있는 이 놀이는 소낙비 내린 거리로 표현되어 자기와 거리가 묘하게 뒤섞여 있다. 묘사와 상상이 뒤섞인 이 상태의 풍경을 묘한 거리로 그려낸다. 내 그림자가 여태도록 나를 베끼고 있다는 것, 이 마지막 행이 시를 중층구조로 만들었다. 소낙비의 순간을 잡아 채 트레이싱 페이퍼로 바꾸는 시인의 역동적 상상이 놀랍다.
37    그 사랑에 대해 쓴다 / 유하 댓글:  조회:682  추천:0  2019-08-19
그 사랑에 대해 쓴다 유하 ​ ​ 아름다운 시를 보면  그걸 닮은 삶 하나 낳고 싶었다  노을을 바라보며  노을빛 열매를 낳는 능금나무처럼  ​ 한 여자의 미소가 나를 스쳤을 때  난 그녀를 닮은 사랑을 낳고 싶었다  점화된 성냥불빛 같았던 시절들, 뒤돌아보면  그 사랑을 손으로 빚고 싶다는 욕망이  얼마나 많은 열정의 몸짓들을 낳았던 걸까  그녀를 기다리던 교정의 꽃들과  꽃의 떨림과 떨림의 기차와  그 기차의 희망,  내가 앉았던 벤치의 햇살과  그 햇살의 짧은 키스  밤이면 그리움으로 날아가던  내 혀 속의 푸른 새  그리고 죽음조차도 놀랍지 않았던 나날들  ​ 그 사랑을 빚고 싶다는 욕망이 나를 떠나자,  내 눈 속에 살던 그 모든 풍경들도 사라졌다  바람이 노을의 시간을 거두어 가면  능금나무 열매의 환한 빛도 꺼지듯   
36    나비는 날개로 운다 / 이근배 댓글:  조회:636  추천:0  2019-08-19
나비는 날개로 운다     이근배      날개가 있다는 것만으로는 이 봄 산과 들을 뒤덮고 있는 저 꽃들을 다 찾아다닐 수는 없다 내 어리석은 더듬이로는 한사코 쏟아내는 질탕한 향기를 다 맡아낼 수도 없는 것 알에서 애벌레로 다시 번데기로 거듭 몸 바꾸기를 하면서 우주의 빛깔을 모두 담아 짜낸 비단날개로 하늘을 휘저으며 아지랑이 더불어 춤을 추는 것이나 나의 발은 허공에 더욱 시리고 달디단 황홀을 빠는 입맞춤은 혀끝에 죽음처럼 쓰다 겨우 봄 한 철도 못 건너고 적멸로 돌아가는 나의 가녀린 목숨 붉은 볼로 서럽게 웃는 저 어리고 아리따운 것들 속에서 어느 것 하나 내 몫으로 챙기지 못하고 헤프게 꽃가루로 날려버린 사랑 나는 춤으로 운다 날개를 바스러트리며 바스러트리며
35    쭈그러진 술 주전자 /김인덕 댓글:  조회:623  추천:0  2019-08-19
쭈그러진 술 주전자   김인덕   먼저는 생업에 뛰여들기도 전에 이유 없이 주인의 망치에 흠씬 뚜들겨 맞았다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홀에 호출되였다가 여기저기 술상 모서리에 맞히고 멋도 모르고 사정없이 땅바닥에 나동그라지고 상처를 훈장처럼 주렁주렁 가슴에 단 쭈그러진 술주전자   밤새도록 낯선 손에 목덜미를 잡히고 다람쥐 챗바퀴 돌듯 술잔을 오가며 귀때로 열물을 토했다   온갖 짓거리에 머리가 욱신거리고 몸마저 노근하다가 짓궂은 나그네의 육담에 잠시 마음이 설레이기도 했다   자정이 되여서야 시렁구석에 납작 엎드려 아무 것도 먹지 못한 빈속을 달래며 잠을 청한다   마침내 새벽이 가도록 잠을 이루지 못한 쭈그러진 술주전자끼리 부둥켜안고 스며드는 한점의 찬바람에 휘파람을 분다   쭈그러진 술주전자는 누구나 가슴에 쓰고 농렬한 소주쯤은 품고 사는 거라고 눈물이 마를 때까지 몸으로, 몸으로 말한다  
34    폭탄 돌리기-신미균- 댓글:  조회:784  추천:0  2019-08-19
폭탄 돌리기                     -신미균- 심지에 불이 붙은 엄마를/ 큰 오빠에게 넘겼습니다 심지는 사방으로 불꽃을 튀기며/ 맹렬하게 타고 있습니다 큰오빠는 바로 작은 오빠에게/ 넘김니다 작은 오빠는 바로 언니에게/ 넘김니다 심지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언니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나에게 넘김니다 내가 다시 큰오빠에게 넘기려하자/ 손사레를 치며 받지 않겠다는 시늉을 합니다 작은 오빠를 쳐다보자 곤란하다는 눈빛을 보냅니다 언니는 쳐다보지도 않고/ 딴청을  부립니다 그 사이 내손에 불이 붙었습니다 깜짝놀라 엉겹결에 들고 있던 폭탄을 공중으로 던져버렸습니다 엄마의 파편이 머리위로 분수처럼 쏟아집니다
33    나의 시론' / 장석주 댓글:  조회:785  추천:0  2019-08-19
나의 시론' / 장석주 건강한 시인, 잘 사는 시인, 당당한 시인보다 어쩐지 가난하고 병약해 보이는 시인들의 시에 더 이끌린다. 나는 박용래나 김종삼, 천상병이나 김관식의 시들이 좋다! * 자연 예찬의 시들이 순수하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자연 예찬의 시들은 정치성을 배제함으로써 교묘한 방식으로 당대 정치를 암묵적으로 승인한다. 자연 예찬의 시는 두드러지게 탈정치적이다. 탈정치적인 태도는 그 자체로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니다. 다만 탈정치적인 게 순수하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을 왜곡하는 일이다. 자연 예찬의 시는 정치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정치에 개입하는 것이다. * 순수시의 표상으로 꼽는 시인이 말년에 1980년 5월 광주 민중 학살의 원흉인 민정당 소속 국회의원으로 나선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 시인의 정체성은 의인(義人)이 아니다. 어쩌면 시인의 정체성은 거지, 바보, 천치, 쪼다, 못난이에게서 더 많이 발견된다. 한심하고 하염없는 이들! 생물학적 이득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시에 자기를 던진 이들! 이들에겐 농경 정착민보다 변방인, 외부자, 밀입국자, 난민, 떠돌이 광대가 더 잘 어울린다  * 페르난두 페소아는 자기에겐 아무 야망도 욕망도 없다고, 그는 자신이 시인이 된 건 야망이 아니라 ‘내가 홀로 있는 방식’이라고 고백한다. 그는 죽는 날 이런 시를 남겼다. “오른손을 들어, 태양계에 인사한다. /하지만 잘 가라고 말하려고 인사한 건 아니었다. /아직 볼 수 있어서 좋다고 손짓했고, 그게 다였다.” * 김혜순 시집 『날개 환상통』(2019)을 읽는다. 김혜순 시는 이 시대 젊은 시인들의 시에서 보이는 낯섦과 그로테스크함의 배후다. 김혜순 시는 ‘시적인 것’에 대한 인습적 이해를 부수고 그 경계를 넓혀왔다. 김혜순 시의 언어는 본질적으로 문법적 단일성에 대한 금지와 위반의 언어다. 김혜순 시의 어떤 구절이 보여주는 정신의 도약과 폭발은 인습적인 사유의 그물로는 포획되지 않는다. 김혜순 시를 읽는 게 불편하다고 말하는 당신은 자기 안에 있는 인습적 사고와 싸우기를 멈춘 사람이다. * 김혜순은 이번 시집에서 자꾸 새장을 탈출한 새로 변신하려고 시도한다. 몸의 증상은 곧 새의 증상이다. 새가 된 기분을 느껴보려는 걸까? “그 새의 신발끈은 풀어져 땅에 끌리고/그 새의 머리끈은 풀어져 측백나무를 칭칭 감고//하지만 나는 나는 것이 좋아/먼 길 떠나는 것이 좋아”. * 김혜순의 시가 다 어려운 것은 아니다. 때로는 이렇게 쉽게 다가오는 구절도 쓴다. “자아(自我)라는 이름의 뚱뚱한 소녀를 생각한다/그녀를 오늘 밤 굶겨 죽여야 한다”.   * 우리 시인 중에도 페르난두 페소아 같이 자기 본명을 감추고 필명이나 이명을 쓴 시인들이 있다. 김정식(金廷湜, 1902~1934)은 ‘김소월’로 더 알려져 있고, 김해경 (金海卿, 1910~1937)은 ‘이상’으로 더 유명하다. 이들에겐 끊임없이 자기 정체성을 부정하려는 무의식의 심리가 숨어 있다. 이들은 자기를 부정함으로써 비로소 자기로 돌아간다. 필명은 이들이 선택한 정신적 망명지라고 할 수 있다. * 언어는 시를 이루는 기초 성분이다. 시는 언어를 매개로 성립하는 예술이다. 언어-도구는 시라는 물고기를 잡기 위한 통발이다. 고기를 잡은 뒤에는 통발은 더 이상 쓸모가 없다. 좋은 시인은 시를 얻은 뒤 그 언어를 벗어나 그 너머로 나아가고자 한다. 하지만 언어를 벗어나는 순간 그 언어에 기대어 숨 쉬던 시도 사라진다. 그런 뜻에서 언어는 시의 숙명이자 한계다. * 시가 없어도 우리는 살아남는다. 시 한 편 읽지 않아도 먹고 사는 일에 지장은 없다. 하지만 시를 모른다면 세상의 불확실성에 머리를 쿵 하고 박는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시와 담 쌓고 지내는 사람이라면 세상이 얼마나 캄캄한 은총 속에 있는지를 깨닫지 못하고, 봄철 벚나무 가지마다 만개한 꽃잎 난분분 떨어져 온통 하얗게 만든 길바닥을 자동차가 짓이기고 지나가도 무감각할 수밖에 없다. * 세사르 바예호(1892~1938)는 “인간은 슬퍼하고 기침하는 존재”라고, “음습한 포유동물, 빗질할 줄 아는 존재”라고 노래한다. 여기에 무슨 말을 더 보탤 것인가! 인간을 규정하는 말을 늘어놓으면 책 한 권으로도 모자랄 테다. 하지만 시인들은 간략하게 말한다. 축약하고 비약하되 할 말은 다하는 것이다. * 배고파 우는 자식들은 어머니가 거두는 거지들이다. 어린 짐승 새끼들은 수시로 어머니에게 먹을 것을 내놓으라고 울며 보챈다. 세사르 바예호는 어린 시절을 어머니를 떠올리며 이렇게 노래한다.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이, 달걀노른자로만/과자를 구워주시던 따스한 제과기, 어머니”라고!   시와 비시(非詩)를 가르는 경계선    현대시에서의 묘사(描寫)란 시적 대상을 중심에 놓고 스케치 하는 것과 같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묘사에는 시적화자(詩的話者/시 속에서 진술하는 사람)가 없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시에서 자기주장이 없는 약점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감정이 드러난 시는 실패한 시지만 자기주장이 없는 시는 죽은 시"라고들 말한다. 시적 화자가 없다는 것은 시에 진술이 없다는 뜻이다. 시의 전개는 진술을 위해 묘사를 하는 것인데, 묘사는 사진과 같은 것이라면 진술은 나의 생각이 담겨있는 것이다.    쓰고 싶은 것을 다 쓰면 산문이지 시가 아니다. 시는 산문처럼 써놓고 감정을 조절하여 써서는 안 될 말을 골라내는 일이다. 즉 무슨 나무인지를 알 수만 있다면 가지를 다 쳐내어도 된다는 뜻이다. 나무의 보이는 부분을 서술하거나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무와 의미망으로 연결하여 진술하는 일이 시쓰기다.    진술에는 자기주장, 즉 자기 철학이 담겨 있어야 한다. 묘사만으로도 시가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많은 평론가는 진술(陳述)이 없는 시는 비시(非詩)라고 한다. 다시 말하자면 묘사는 정물화와 같고, 진술이 들어간 시는 시인의 생각을 곳곳에 숨겨놓은 ‘말로 그린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진술은 우리들의 정서 밑바닥에 잠겨 있는 상투적인 의미 체계에 새로운 충격을 줄 수 있는 깨달음을 동반하는 표현이어야 한다.     신라 헌강왕 이후     절이 산을 업고 있다     갈전 쪽으로 기울거나     진성 쪽으로 기울거나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     물지게 지고 가던 남새미 사람     물이 첨벙거릴 때     산은 첨벙거리지 않는 것이     용하다 여겼을 뿐이다       - 강희근, 전문     시 잘 쓰기로 유명한 강희근 시인(경상대학교 명예교수)의 위 시는 짧은 시 속에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시의 내용으로 봐선 그 절은 신라 헌강왕 때 지어진 절이겠다. 갈전이 나오고 진성이 나오는 것으로 봐서 천년 고찰인 진주 월아산에 자리잡고 있는 청곡사가 분명하다.    이 시에선 묘사부터 예사롭지가 않다. ‘절이 산을 업고 있다’니 절창이다. 청곡사에 몇 번 가본 필자는 진주8경의 하나인 ‘월아산 해돋이’를 보면서 무아지경에 빠지곤 했었는데 그 월아산이 온전히 둘러싸고 있는 아름다운 사찰이다. ‘갈전 쪽으로 기울거나/진성 쪽으로 기울거나/언제 그런 일이/있었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몇 번을 바라본 풍광이었지만 필자는 왜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 이런 것이 시인의 진술이다. 산이 이리저리 기울어질리 만무하지만 시인의 심미안(審美眼)은 양쪽 마을 사람들의 정서에 따라서 갈전 쪽으로, 혹은 진성 쪽으로 기울어진 모습으로 산을 업고 있다는 것이다. 남새미 마을 사람들이 길어먹던 우물, 물지게의 ‘물이 첨벙거릴 때/산이 첨벙거리지 않은 것이/용하다 여겼을 뿐이다’    진성 사람들은 자기네 산이라고 하고 갈전 사람들은 자기네 산이라고 했을, 이해에 따라서 자기네 쪽의 산이라고 우기지만 ‘산은 언제나 그대로다’는 표현인데 직설적이지 않으면서 시적 감동을 불러오는 좋은 시다.    시는 '정서적 언어의 회고 양식'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리처즈(I.A Richards)는 과학적 언어인 객관적, 개념적, 비개인적, 지시적, 논리적 의미보다는 정서적 언어인 주관적, 간접적, 개인적, 함축적, 비약적 의미를 살리는 시를 써야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좋은 시와 나쁜 시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삼기도 했는데, 비논리적이거나 이질적 경험들을 끌어들여 균형과 조화를 이루거나 결합되도록 한 포괄의 시(poetry of inclusion)가 최고급의 시이며 그것이 시의 특징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시론은 테이트의 텐션(tension/긴장감), 브룩스의 역설(paradox/표면적으로는 모순되거나 부조리한 것 같지만 그 표면적인 것 너머에 감춰진 진실을 드러내는 수사법)과 아이러니(irony/반어법이라고도 하는데 시에서는 겉으로 드러난 것과 실제 사실 사이의 괴리, 또는 그런 표현으로 쓰인다)로 발전하였다.   서정적 시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강희근 시인의 시 선집 '그 섬을 주고 싶다'를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묘사와 진술, 통할(포괄하는 시), 텐션, 역설과 아이러니를 공부하기 좋은 교과서가 될 것이다.     - 이어산
32    물소의 뒷굽은 거룩하다 라고 / 정태중 댓글:  조회:783  추천:0  2019-08-19
물소의 뒷굽은 거룩하다 라고 / 정태중 시의 설계는 간혹 시어들이 떠나버리기도 해서 부도난 공사장 같기도 하였는데 공사장으로 신의 선물이랄까 하는 물음들이 녹슨 창으로 푸르게는 올라오기도 하였다 하얀 배꽃들이 지난 시간을 입었던 듯 옷들이 누렇게 먼저 바래고는 있는 듯 신문 기자의 탁본이 바래고는 있는 듯 배들이 어떤 문장들로 하여서 배가 불러오기도 한 점심시간이 지나자 부리나케 삐뽀삐뽀로 기선 잡는 불자동차와 헛배에 힘 잔뜩 부린 부도난 공사장 방귀와 상관도 없이 해는 쨍쨍 내리다가 굵은 빗방울 쏟아져 공사장을 내려치는데 부도난 말들이 튕겨 오르는 것이 풀들을 잡고 있는 눈물 같기만 하였는데 불화 가득 늙은 수소 큰 눈이 어리둥절 휘청이다가 눈물을 흘려주다가 음~매 라고 몇 번을 풀을 토악질하였다
31    뻐꾸기가 운다 ㅡ 이재경 댓글:  조회:747  추천:0  2019-08-19
뻐꾸기가 운다  ㅡ  이재경   비명이다 몸을 벗어나는  울음의 윤곽 몸은 무덤이다   울음은 몸을 벗어나 멀리 날아간다 흙에 속한 몸은 흙으로 스민다 물같이 흐르고 다시 형체를 버리는 바람같이 울음은 그렇게 흐르는 하나의 갈망이다 몸은 하나의 시작점일 것일 것이다 그 울음이 다시 노래가 될 몸으로 그 노래는 건축이 되고 물과 바람도 빛의 노래였더라
30    모텔 / 이재무 댓글:  조회:707  추천:0  2019-08-19
모텔 이재무   사랑을 훔친 쾌락의 밀림을 찾는다 감각의 제국, 상한 짐승끼리 만난 상처의 부위 미친 듯 혀로 핥으며 밑구멍 열어놓은 연탄불처럼 타오르다 하얀 재로 쓰러지는 허무의 불꽃 에로의 폭탄주 파멸의 오르가즘 성내고 보채는 불륜의 악마를 달래기 위해 모텔에 간다 뱀이 되어 엉킨 시련의 몸에서 솟는, 설탕처럼 달콤하고 아교처럼 끈적거리는 땀 성긴 밧줄 되어 나무토막이 된 지 오래인 생을 묶는다 사랑의 정거장, 사랑의 고아원, 사랑의 간이 휴게소, 불안한 영혼의 지명수배자들이 찾는 은밀한 도피처, 삶의 채무로부터의 도망 잠시잠깐 그렇게 황홀한 지옥을 살다가 출구에서 서성거리는 도덕과 순결 챙겨 도시의 익명 속으로 재빠르게 스며든다 공광규 지음 『이야기가 있는 시 창작 수업 』에서
29    시작법(詩作法) / 고영민 댓글:  조회:728  추천:0  2019-08-19
시작법(詩作法) / 고영민 1. 자기의 핵심역량을 찾아라! 누구나 가장 잘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걸 찾으면 됩니다. 남을 따라하면 절대 최선을 다해도 최고가 될 수 없습니다. 내가 가장 잘 하는, 잘 쓸 수 있는 것이 뭔지를 찾아야 합니다. 자기와 맞는 글쓰기를 찾으세요! 거북이와 토끼가 경주를 합니다. 산에서 경주를 하면 백이면 백, 토끼가 이깁니다. 거북이가 이기는 방법은 바다에서 경주를 하는 것입니다. 내가 토끼인지, 거북이인지 먼저 판단을 해야 합니다. 바다로 갈지 산으로 갈지 판단해야 합니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글쓰기를 하세요! 그걸 찾는 것이 우선입니다. 2. 차별화 해라 - 에서 자신의 핵심역량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토끼인지, 거북이인지 먼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하여, 내가 거북이라고 판단을 해서 바다로 갔습니다. 그런데 바다에 갔더니 나 말고도 날고 기는 거북이들이 수두룩 한 것입니다. 그럴때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저 역시 바다에 갔더니, 나와 비슷한 함민복 거북이, 이정록 거북이, 손택수 거북이, 문태준 거북이들이 먼저 장악을 하고 있더군요. 이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바로 차별화입니다. 이들이 갖고 있지 않은 것을 가지고 글쓰기의 승부를 거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차별화의 전략으로 위트, 해악, 쉽게 쓰기, 12남매의 가족사 등을 가지고 승부를 걸었습니다. 이것이 내가 그들과 차별화 될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여러분이 토끼라고 판단을 했다면 토끼가 있는 곳을  한번 가볼까요? 그곳엔 이미 황병승 토끼, 김행숙 토끼, 김민정 토끼, 강정 토끼 등이 이미 토끼 마을을 장악했군요! 당신이 만약 조금 늦게 토끼 마을에 갔다면 어떻게 차별화 시킬 예정입니까?  산토끼 토끼야~ 어디를 가느냐? 깡총깡총 뛰면서 어디를 가느냐? 자~ 당신을 차별화 하시기 바랍니다!! 3. 경험을 써라! 가장 절실한 것을 써라! 줄거리(서사)를 만들어라! (공광규 시인의 시 작법과 동일)에서 한가지를 더 추가하면 '드라마틱'을 만들어라! 좋은 시에는 분명 드라마틱이 있다. 드라마틱을 만들기 위해서는 3미를 창출해야 한다. 3미란 바로 흥미, 의미, 재미이다. 드라마틱은 경험이고, 진실함이고, 줄거리를 갖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속에 독자의 관심을 끌 수 있는 흥미, 그리고 그 안에 의미를 집어넣을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재미를 주는 것이다. 하지만 너무 흥미를 추구하면 소재주의에 빠진다 너무 의미만을 추구하면 잠언에 빠진다. 너무 재미만을 추구하면 꽁트가 된다. 이 상태를 얼마나 적절하게 간을 맞출 수 있는가가 시인의 관건이다. 시를 잘 쓰는 사람은 대체로 간을 잘 맞춘다. 당신이 만약 음식 솜씨가 없고 간을 잘 못 맞춘다면 시쓰기를 일찍 포기하는 것이 좋다^^ 우리 딸이 귓속말로 하는 말 “엄마가 끓인 라면보다 아빠가 끓인 라면이 훨씬 맛있어요!” 결국 시도 간을 맞추는 것이다. 얼마나 면발을 꼬들꼬들하게 할 것인지!, 냄비에 물을 얼마만큼 넣을 것인지! 불의 세기를 얼마만큼으로 조절할 것인지!! 퍼진 글을 내 놓은 것은 퍼진 라면을 독자에에 먹으라고 내놓은 라면가게 주인처럼 무책임한 것이다. 4. 끊임없이 펌프질을 해라 펌프질 해본 분? 펌프질을 안하고 반나절만 그냥 놔두면 펌프속의 물은 다시 땅속으로 잦아든다. 그럴 땐 한바가지 마중물을 붓고 다시 열심히 펌프질을 해야 한다. 처음엔 탁한 물이 나오다가 나중에 차고 맑은 물이 나오기 시작 한다. 시도 마찬가지이다. 펌프질을 안하면 뻔한 내용의 글을 쓰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시상이 떠오르면 계속 파고 들어가야 한다. 일전에 시창작 강의를 한번 한 적이 있다. 5팀으로 나뉘어 학생들을 대상으로 게임을 해보았다. “당신에게 소포가 배달되었습니다. 도장을 찍지 않으면 배달된 소포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도장은 있고 인주가 없네요! 인주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을 3분 동안 최대한 써보시기 바랍니다” 3분 동안 대략 각 팀마다 30개 정도 인주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을 써냈다. 하여, 각 팀마다 처음 생각한 것 5가지를 불러보라고 했다. 대답은 거의 비슷했다. 물감, 피, 흙, 봉숭아꽃, 김치국물....뭐 이런 식이었다. 그럼 제일 끝에 나온 5가지를 불러보라고 했다. 대답이 가관이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대답들이 나왔다. 제가 드리고 싶은 것은 바로 처음 생각한 5가지는 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내가 생각한 것을 남도 똑같이 생각한다는 것이다. 뻔한 시가 된다는 말이다. 결국 시가 되는 것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상상을 초월하는 가장 밑의 것을 끄집어 낼 때 가능한 것이다. 펌프질을 하면 처음엔 흙탕물이 나온다. 하지만 계속 펌프질을 하면 차고 맑은 물이 나온 것과 동일하다. 상투성을 벗는 것이 시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5. 쓰고, 또 쓰고, 또 써라! 그 외에 어떤 방법이 없다. 나는 시인이 되는 게 꿈이 아니었고 소설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시인이 되어 버렸다. 생각지도 않게 시인이 되어버렸을 때 나는 시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청맹과니였다. 어떤 것이 좋은 시인지도 어떤 것이 좋지 않은 시인지도 구분할 줄 모르는 상태였다. 한마디로 나는 공짜로,  눈먼 잉어가 걸린 격으로 시인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너무 무섭고 떨렸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미친 듯이 쓰는 방법 밖에 없었다. 나는 새벽에 일어나 시가 될만한 것이 있을까 일어나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 사연을 소개한다. 지금 여기에 들어와 이 글을 읽는 모든 분은 당시의 나 보다 훨씬 시에 대해서 많이 알고 경험이 있으리라 본다. 그래서 용기를 갖고 자신에게 도전을 해보길 권한다. 누구나 가장 잘 쓸 수 있는 자기 만의 핵심역량을 갖고 있다. 그걸 찾아 쓰고, 또 쓰고 또 쓰길 바란다. 시가 당신에 넙죽 절을 하며 찾아 올 것이다. 자신을 믿어라! 불안해도 믿어라! 6. 대상을 새롭게 의미부여하라. 기존에 부여된 의미를 새로운 눈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다. 나쁜 것을 좋은 쪽으로, 좋은 쪽을 나쁜 쪽으로, 아름다운 것을 추한 것으로, 추한 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숭고한 것을 천박한 것으로, 금기시되는 것을 일상적인 것으로, 일상적인 것을 금기시 하는 것으로..... 이러면서 시가 새롭게 환기될 수 있다.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추한 것을 추하다고 말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한 것으로 의미부여 하라. 그곳에 바로 시가 있다. 7. 시를 쓰는 것은 집을 짓는 것과 같다. 시를 쓰는 것은 집 짓는 것과 같다. 누구나 집을 지을 수 있다. 하물며 개미도 집을 짓고, 까치도 집을 짓고, 벌레도 집을 짓는다. 사람이야 말하여 무엇하겠는가? 당연히 집을 잘 짓는다. 이 말은 누구나 시를 쓸 수 있다는 말이다. 문제는 집을 짓는 순서를 모를 뿐이다.  집을 짓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기둥을 세우는 것이다. 그리고 시에서 기둥은 바로 줄거리이다. 처음부터 고대광실을 지으려고 하지 말고 먼저 기둥부터 세워라. 기둥만 세우면 반은 집을 지은 것이다. 기둥만 세우면 비닐만 올려도 집이 되고, 양철만 올려도 집이 되고, 짚을 얹혀 놓아도 집이 된다. 먼저 기둥을 세워라. 기둥은 줄거리이다. 자기가 접한 대상에 줄거리를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어제 트럭에 소나무 두 그루가 실려 가는 장면을 보았다. 자, 그럼 이걸 가지고 줄거리를 만들어 보자. “뽑혀 실려 가는 나무 두 그루를 보니, 살던 집을 버리고 이사를 가는 가난한 내외 같다. 어디로 옮겨질지 불안하다. 잔 뿌리들은 어린 새끼들 같다. 트럭에는 살던 낡은 가재도구도 있다. 늦은 저녁 옮긴 자리에서 두 소나무는 가재도구를 정리하고 늦은 저녁밥을 짓는다. 두 내외(소나무)가 어둑한 집에서 밥을 먹는다.” 그대로 쓰면 된다.   #시론 시작법(詩作法) / 고영민 8. 시를 쓸 때는 門을 어떻게 낼 것인지 고민해라 시도 집을 지을 때와 같이 문을 어떻게 낼 것인지 고민을 해야 한다. 독자들이 들어갈 수 있는 문을 어떻게 낼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대문을 얼마나 크게 낼 것인지, 쪽문을 몇 개를 달 것인지. 요즘 시는 문이 너무 작다. 하여 독자들이 쉽게 그 집에 들어갈 수 없게 만든다. 집이 아니라 일종의 감옥 같은 시들이 많다. 들어가도 나올 수도 없다. 시가 아니라 미로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너무 문을 많이 내는 것도 문제다. 이런 시는 속이 훤히 들여다보여 너무 적나라하고 필요이상의 바람이 들이쳐 집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든다. 시는 집이라고 했다. 집은 안에서 밖을 내다보는 풍경이다. 그러면서 밖이 안과 적절하게 내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바로 드나들 수 있도록 해야한다. 시에는 안방의 역할을 하는 부분, 대청마루의 역할을 하는 부분, 부엌, 헛간의 역할, 마당의 역할을 하는 부분이 필요하다. 이는 적절하게 시의 문을 닫아놓느냐 열어놓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시를 쓸 때는 문을 어떻게 낼 것인지? 얼마의 크기로 낼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9. 가장 쉬운 시쓰기는 자기 얘기(추억, 기억)를 쓰면 된다. 이 안에 진솔함이 있다. 그리고 자기만의 얘기는 남과 가장 차별화되는 얘기이기도 하다. 멀리서 시를 찾지 말고 자기안에서, 일상에서 찾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10. 대상의 고유한 특성을 잡아라. 한 대상의 고유한 특징을 잡아 의미를 확장시켜 전혀 다른 대상으로 만들어라. 아래 시에서 갈대를 개꼬랑지로, 머루를 유두로 만들 듯. 갈대가 흔들리는 것이 개꼬랑지가 사람을 반겨 흔들리는 것 같고, 머루는 애를 낳은 여자의 유두와 같지 않은가? 분홍빛 처녀의 유두와 달리, 검은 유두엔 일종의 한과 서글픔이 있다. 이처럼 전혀 다른 대상으로 의미를 확장했으면 그걸 가지고 나만의 기억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라. 그러면 원 대상은 굳이 내가 상징을 부여하지 않아도 저절로 상징성을 갖게 된다. 너무 어렵나? 11. 시를 받아낼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시는 쓴다, 가 아니라 받아낸다, 는 말을 많이 한다. 시는 늘 온다. 길을 가다가도 오고, 잠결에도 오고, 밥을 먹을 때도 온다. 하지만 받아낼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시는 오다가도 사라진다. 그렇기에 마음과 손이 하나가 될 수 있도록 항상 준비를 해야 한다. 예를 들면 야구에서 투수가 직구를 던지고 싶은 마음으로 공을 던졌는데, 평소에 연습을 하지 않으면 자꾸만 엉뚱한 방향으로 공이 가는 것과 매한가지이다. 생각과 손이 따로 노는 것이다. 시를 쓰는 경우도 똑같다. 내가 어떤 대상을 보고 쓰려고 했는데도 처음 생각한 것과 달리 이상하게 써지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평소에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볼 컨트롤이 되지 않는다. 계속 공을 던지는 연습을 통해 내가 직구를 던져야지 생각하면 손이 직구를 던질 수 있게, 커브를 던져야지 생각하면 손이 커브를, 슬라이더를 포크볼을 던질 수 있게끔 몸과 마음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좋은 시상이 떠올라도 공이 엉뚱한 곳으로 던져지듯 제대로 써낼 수가 없다. 포수가 새를 발견했다고 치자. 꿩을 잡기 위해서는 항상 총알이 장전이 되어 있어야 한다. 꿩은 어디에서 튀어나올지 모른다. 꿩을 발견하고, 어, 꿩이네! 생각하고 주머니에서 총알을 꺼내 장전하고 방아쇠를 당기려고 하면 그 사이 꿩은 시야에서 사라지게 마련이다. 꿩을 발견하면 바로 겨냥해서 떨어뜨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시적인 상태로 먼저 만들어 놓아야 한다. 12. 시쓰기는 남자가 여자 꼬시는 것, 여자가 남자 꼬시는 것과 같다 글쓰기는 남자가 여자 꼬시는 것, 여자가 남자 꼬시는 것과 같다. 다들 누군가를 좋아하여 꼬시기도 하고 꼬심을 당하기도 했을 것이다. 애인(詩)을 만들려면 먼저 좋아하는 이상형을 찾아야 한다. 이상형은 찾았으면 어떻게 해야할까? 먼저 그리워해야한다. 자기 전에도 떠올려보고, 밥을 먹다가도 빙그레 웃으면 떠올리고 길을 걷다가도 떠올려야 한다. 하지만 그리워만 한다고 애인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그 다음엔 조금씩 접촉을 해야 한다. 그가 나타나는 시간을 알아내고, 어느 길로 가는지를 알아내고, 우연을 가장한 채 만나기도 하고, 밤늦도록 문 앞에서 기다리기도 하고, 일부러 어깨를 부딪치기도 해야 한다. 한번 두 번, 접촉하면서 안면도 서로 트고, 인사도 나눠야 한다. 그 다음은 상대도 나를 좋아할 수 있도록 자신을 예쁘게 단장해라.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 있도록 예쁘게 화장도 하고 옷장을 뒤져 좋은 옷을 골라 입기도 해라. 그러면 상대도 나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할 것이다. 상대가 나에게 관심을 보이면 그 다음엔 조금씩 유혹을 해라. 먹을 것도 갖다 주고, 선물공세도 하고, 당신의 마음을 공개적으로 표현하라. 그다음 적당한 때를 골라 사랑한다고 열렬히 고백하라. 몸도 주고 마음도 줘라. 서로 옷을 벗고 불 끄고 뜨겁게 하나가 되라. 그러면 생명이 탄생한다. 그 생명이 詩다. 세상에 공짜로 얻어지는 아무 것도 없다. 하나 되는 공식이라는 것이 있다. 어떻게 하면 되는가? 하나 되는 공식은 다음과 같다. “관심- 정성-신뢰-사랑- 하나” 즉 관심을 가지면 보이지 않던 것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그 보이는 것에 정성을 드리면 신뢰가 생기고 신뢰가 생기면 서로 사랑하게 되고 서로 사랑하게 되면 하나가 된다. 하나가 되면 생명이 탄생한다. 남녀 관계도 글쓰기도 마찬가지이다. 관심도 갖지 않고 정성도 드리지 않고, 신뢰도 생기지 않은 상태에서, 사랑도 나누지 않은 상태에서 글과 하나가 될 수 없으며 시가 탄생하지 않는다. 글쓰기는 남자가 여자 꼬시는 것, 여자가 남자 꼬시는 것과 같다. 사랑 후에 애가 생기는 것과 같다. 13. 스파링 파트너를 만들어라! 혼자 거울 앞에서 쉐도우 복싱을 하듯 혼자서 시를 쓰면 쉽게 늘지 않는다. 권투선수가 맞으면서 크듯 시 쓰기도 어느 시기까지는 맞아야 큰다. 맞아야 주먹이 보이기 시작한다. 시를 쓰기 위해서는 권투와 마찬가지로 괜찮은 스파링 파트너를 선택해야 한다. 혼자 거울 앞에서 폼 잡고, 자기 폼에 취해 권투를 하다보면 실전에 올라가 몰매를 당하고, KO패를 당하기 십상이다. 자기 폼과 자기 주먹에 대한 객관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스파링파트너가 필요하다. 자기 폼이 개폼인지, 똥폼인지, 아니면 진짜 제대로 된 폼인지 스스로 느끼고 확인해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칭찬도 좋지만 아프게 때려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런 후 어느 정도 자기 폼이 잡히고, 상대의 주먹도 보이고, 실전능력이 쌓이면 그때 정말 고독하게 자기를 상대로, 거울을 보면서, 자기 그림자를 보면서 쉐도우 복싱을 해야 한다. 등단 초, 저 같은 경우엔 같은 해에 신춘문예로 등단한 친구가 있어 매일 1~2편씩의 시를 써서 메일로 주고받곤 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참으로 가혹했다. 아마 그 친구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서로 시를 주고받는 일은 없다. 그냥 지면에 소개되면 어떻더라! 한마디 정도뿐이다. 그와 나는 2년 넘게 서로를 위해 실전과 같은 스파링 파트너의 역할을 했다. 그게 큰 엄청난 도움이 됐다고 말하고 싶다. 14. 링에 올라가라. 계속 경기를 해야 한다. 축구선수나 야구선수가 경기에 나가지 못하면 경기감각이 떨어진다. 아무리 프리미어리그에 있다하더라도 벤치멤버로 있으면 그 선수를 대표로 뽑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계속적으로 경기에 나가 경기감각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운동선수가 한 달을 쉬면 숨을 끌어올리는데 최소 6개월에서 1년이 걸린다고 한다. 시 쓰기도 마찬가지이다. 쉬면 쉴수록 경기감각이 떨어진다. 1시간을 뛰던 선수가 10분을 뛰고 헉헉거리게 된다. 선수는 무조건 경기장에 나가야 한다. 축구선수라면 K리그가 없으면, N리그라도 나가야 하고, N리그가 없으면 동네 조기축구회에 나가서라도 공을 차야 한다. 공을 차고, 뛰고, 몸을 부딪치고, 골을 넣을 때 비로소 그는 축구선수가 되는 것이다. 선수는 그라운드에서 얘기하는 자이다. 마찬가지로 시인도 지면이 어떻든 간에 지속적으로 발표지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지면 속에서 다른 시인들과 함께 놓여 있을 때 자기 시가 어느 수준인지 확연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아! 내 실력이 이 정도구나! 아! 다른 시인들의 실력이 이 정도였구나! 더 분발하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생각 자체가 경기감각이다. 혼자 달리기를 하다가 여럿이 출발선상에서 총소리를 듣고 달릴 때 진짜 자기의 헉헉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가슴이 터질 것 같은 통증을 느끼게 된다. 권투 선수라면 링 밖에서 후두웤을 할 것이 아니라 링 위에 올라가라! 링이 없으면 새끼줄이라도 묶어놓고 권투장갑이 없으면 주먹에 수건이라도 감고 시합을 해라. 축구선수라면 그라운드에 나가 뛰어라! 그라운드가 없으면 애들을 모아놓고 초등학교 운동장에 나가서라도 공을 차라. 시를 쓰는 사람이라면 떨지말고 어디든, 어디든, 자꾸, 자꾸 발표를 해라!  그래야 경기감각이 생긴다. 정 발표할 곳이 없으면 블러그를 만들어 자기 시를 올려라. 그 블러그가 경기장이 된다. 그리고 그곳에 자기 시를 올려놓는 순간 그 시는 객관화되기 시작하며, 나로부터 분리되어 그 시를 객관적인 눈으로 보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자기 시의 문제점들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이는 관객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연극을 하는 것과 관객을 앞에 놓고 연극을 하는 것과 같은 경우다. 자기 시가 관객들 앞에서 당당히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자기 동작을 내는지 볼 수 있을 것이며, 아니면 배우가 부실하여 말문이 자꾸만 막히고, 대사를 까먹고  다리가 후들거려 식은 땀을 흘리는지 스스로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선수는 죽을 때까지 그라운드에 있어야 한다. 그게 선수다! 시쓰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15. 자기를 믿고, 자기를 사랑하라 두서없이 썼는데, 이 글이 마지막이 될 듯합니다. 같잖은 글이지만 나름 조금이나마 제가 갖고 있는 것을 나누고자 마음을 내보았습니다. 자기의 시작법이나 시론, 문학관과 많이 다른 부분도 있으리라 봅니다. 가져갈 부분은 적당히 취하시고, 전혀 가져갈 것이 없다고 보시면 그냥 무시하고 다 버리면 됩니다.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은 자기를 믿고, 자기를 사랑하세요! 시 쓰기는 자기를 정말 사랑하는데서 비롯된다. 먼저 자신을 믿어라!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라. 나는 누구보다 뛰어나다. 감수성이 예민하다. 아직 때를 만나지 않았을 뿐이다. 나에게는 시적인 무한 광맥이 있다. 나는 지금도 잘 쓰지만 앞으로 세상을 놀래킬 멋진 시를 써낼 것이다. 이러한 자기 확신이 필요하다. 세상은 생각하는 대로 된다. 겉마음과 속마음을 일치시켜라. 속에서 “너는 안돼! 너는 안돼!” 이런 소리가 들리면 다시 자신에게 사랑과 믿음을 줘라. 내 몸과 마음이 열려야 그때부터 뭔가가 들어오기 시작한다. 너는 잘 쓸 수 있다고. 너는 멋진 시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해라! 힘들고 좌절감이 올수록, 눈물이 나올수록 자신에게 그렇게 말해라. 그러면 분명 멋진 시를 쓸 수 있다! 고 나는 믿습니다.  “페루 인디언들은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기 전 낚싯대와 대화를 한다. 너는 바다에 나가면 고기를 많이 잡게 될 거야. 이 말을 통해 그 낚싯대는 고기를 잘 잡는 낚싯대가 된다. 남태평양 어느 섬의 원주민들은 나무를 쓰러뜨리기 위해 이런 방법을 쓴다. 그들이 쓰는 무기는 날이 선 톱이 아니라 아우성이다. 모든 주민들이 쓰러뜨릴 나무 주위에 둘러서서 3일 밤낮 나무를 향해 고함을 쳐댄다. 그러면 나무속에 깃들어 있던 혼이 빠져나가면서 나무가 쿵, 하고 쓰러진다.”   다음에 계속..
28    스며드는 것 / 안도현 댓글:  조회:641  추천:0  2019-08-19
스며드는 것                       안도현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에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27    점등 / 오경 댓글:  조회:710  추천:0  2019-08-19
< 2017 한라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점등 / 오경 가슴에서 플러그를 뺐다 젖이 멈췄다 벽등의 스위치를 켰다 나는 밤이 들킨 것 처럼 호들갑을 떤다 떨다가 아슬아슬하게 걸친 검은 브래지어를 떨어뜨린다 어둠이 활처럼 휘어진다 순간 배고프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허기를 달래려고 더 진한 화장을 하고 더 긴 속눈썹을 붙이고 스타킹을 벗는다 갑작스런 빛이 사방을 삐거덕거리게 한다 아기 유령들이 셔플 댄스를 추다가 천장에서 추락했을지도 모른다 길 잃은 시조새 한 마리 비상하다가 태양의 모서리에 부딪쳐 날개가 부러졌을지도 모른다 나는 문을 나서고 싶지 않았다 아니 불을 켜고 싶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것의 아주 작은 세포를 만지며 느껴 보고 싶었을 뿐 식탁 위엔 주인 없는 고통이 가열하지 않은 채 날것으로 있다 함성에 금이 간 어둠이여 다시는 변명에 목을 걸지 말 것 목숨 걸어야 할 곳이 어디 한 두 곳인가 식탁 아래 한때 눈부셨던 대낮의 그림자가 꽁무니를 빼느라 허둥지둥이다 지금은 어둠을 수습하기 위해 차단이 필요한 순간이다 찰나를 포착한 순발력 매년 일간지 신춘문예로 등단하는 시인이 30명 이상이다. 이 중에서 과연 몇 명이나 살아남아 계속 활동할까. 이러한 질문은 열정적이고 패기 넘치는 응모작들을 접하는 동안 우려보다는 새로운 기대로 바뀌었다.  올해 한라일보 신춘문예의 시 부문 예심을 거친 응모자는 10명이었다. 이를 다시 검토한 결과 김려원의 '애월의 얼룩', 김미경의 '먹돌쌔기', 이도훈의 '중절모', 오경의 '점등' 등 4편이 최종까지 남았다.  이 네 사람의 작품은 비슷한 수준이지만 서로 다른 작품 경향을 보여주었다. 김려원은 언어를 구사하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을뿐더러 어떤 소재도 시적 대상으로 수용해내는 역량이 돋보였다. 그러나 호흡이 다소 산만하고 불안하였다. 김미경의 시는 긴 호흡의 내용도 거침없이 소화해 내는 능력을 높이 살만했지만, 익숙한 자신의 틀에 갇혀 개성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 아쉬웠다. 이도훈의 시는 서툰 듯 낯선 표현이 되레 참신하게 느껴졌다. 특히 전봇대에 지은 새집을 중절모로 비유한 표현은 눈길을 오래 붙잡았다. 그렇지만 응모작 간 격차가 드러난다는 사실이 선택을 망설이게 했다. 반면 오경의 시는 식상하거나 미흡한 표현들이 더러 눈에 띄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들 수준이 대체적으로 고르며 응모자 자신의 목소리를 갖고 있다는데 심사위원들의 견해가 일치했다. 미숙한 점이 노정된다는 것은 그것을 극복해나가야 하는 숙제가 주어진다는 의미이다. 심사위원들은 그 긍정적인 가능성을 인식하고, 논의 끝에 '점등'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당선작 '점등'은 주방의 벽등을 켜는 순간을 개성적으로 묘사하면서 사색한다. 빛이 들어와 어둠이 사라지는 찰나는 거의 동시에 이루어지지만, 이때 존재하는 소재와 상상들을 순발력 있게 포착해 역동적으로 제시하는 대목에서 당선자의 기량을 엿볼 수 있었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또한 상세히 언급하진 못했지만 예심을 거친 모든 분께도 응원을 보낸다. 그들 모두 똑같은 출발점에 다시 서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 이시는 나는 이해가 불가다 그래도 어떤 시인들에게는 도움이 될런지 해서 여기 올린다 하오니 도움이 되였음 좋겠다
26    빅풋/석민재 댓글:  조회:762  추천:0  2019-08-19
2017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빅풋/석민재   군함처럼 큰 발을 끌고 아버지가 낭떠러지까지 오두막집을 밀고 갔다가 밀고 왔다가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스텝을 맞추며 말기 암, 엄마를 재우고 있다 죽음을 데리고 놀고 있다 죽을까 말까 죽어줄까 말까 엄마는 아빠를 놀리고 있다 아기처럼 엄마처럼 절벽 끝에서 놀고 있다 ​ 당선 소감     누구나 그렇듯이 쓸모없는 하나님이 제게도 있습니다. 감사와 은총보다는 원망과 타박이 필요할 때 종종 요긴합니다. 그런데 가끔 산타클로스처럼 선물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은 좀 놀랍습니다. 아니 많이 놀랍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줄 선물을 잠깐 혼동하신 게 아니었나 할 정도로. 마치 어린 여자아이가 받은 성인용 브래지어·팬티 선물세트처럼 당선 통보는 신기하고 민망하고 설렜습니다.   고백하건대 저는 시를 잘 모릅니다. 내가 써놓고도 잘 모릅니다. 아무리 봐도 가짜 같아서 어디다 버젓이 내놓을 만한 물건이 못 됩니다. 하지만 가끔 자해공갈단처럼 내 시를 중인환시에 던져놓고 싶었습니다. 온갖 모욕과 모멸을 참담하게 당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기다리고 있던 수모 대신 누군가가 칭찬을 해줄 때는 하나님처럼 난감합니다. 그 칭찬을 긍정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어서 혼란스럽습니다. 지금이 그렇습니다. 그렇게 간절하게 꿈꾸던 농담이지만 비현실적입니다.   무슨 군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앞으로 잘 써야지요. 이렇게 겨우 시를 흉내 내는 데도 얼마나 많은 분들에게 빚졌는데요. 특히 진주의 김언희, 유홍준 선생님, 하동의 김남호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선생님들이 아니었으면 산타클로스는 저를 알아보지도 못했을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말기 암으로 투병 중이신 친정의 어머니와 극진한 간병인이신 아버지께 이 선물을 고스란히 드립니다. 잠시 효도한 것 같아 위안이 됩니다.   끝으로 뽑아 주신 김사인, 황인숙 선생님과 세계일보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제 한 줄의 약력을 쓸 때마다 상기하겠습니다. 이 어색한 소감문은 얼른 끝내고 서둘러 나를 학대하러 가야겠습니다.   석민재 시인    △1975년 경남 하동 출생 △2015년 ‘시와 사상’ 신인상 2017 신춘문예] “해학·역설의 묘미 살려 삶의 애환 잘 갈무리” 신춘문예 (시) 심사평 - 김사인·황인숙   본심에 올라온 작품들은 전반적으로, 좋게 말하면 말과 느낌을 적절히 짜 맞추는 솜씨들이 상당해서 안정감이 있었다. 그런데 한 발 떨어져서 보면 평면적이고, 어딘가 낯익은 형언과 방식에 기대어 있는 느낌이다. 그런 가운데 석민재씨의 응모작 ‘계통’ 외 2편은 단연 돋보였다. 그의 시들은 수월하게 읽히면서 수려한데 그 속에 삶의 애환이 갈무리돼 있다. 또 근년의 젊은 시인들에게서 보암직한 축조방식으로부터도 자유로이, 시를 다루는 방식이 신선하다. 좋은 시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응모한 세 편의 시들이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다. ‘이건 빨강 네가 아무리 우겨도 빨강/파랑 같아도 이건 빨강/노랑 같아도 이건 빨강’으로 시작되는 시 ‘계통’은 빛깔 이미지들과 이응의 음성상징이 공처럼 통통 튀면서 설사 내용을 모르더라도 읽으면서 기분이 좋다. 그의 시 ‘빅풋’을 당선작으로 기쁘게 뽑는다. ‘빅풋’은 무지무지하게 슬픈 상황인데 아버지의 당당함(‘군함처럼 큰 발을 끌고’)과 쾌활(‘왼발 오른 발 왼발 오른발 스텝을 맞추며’), 그리고 엄마의 해학(‘죽을까 말까 죽어줄까 말까’)으로 상황을 뒤집어 보여준다. 상상력의 전복, 역설의 묘미를 깔끔하게 끌어낸 시다.   함인우(‘아스피린’ 외 3편), 의현(‘여유가 있다면’ 외 2편), 김순철(‘복숭아’ 외 2편)의 응모작들도 놓치기 아까운 작품들이었다. 특히 이미지를 첩첩 겹쳐 연결시키는 힘이 여간 아니며 변두리 주변인에 대한 연민과 공감이 뛰어난 함인우의 시들이 그러하다. 약국이라는 작은 공간을 그 이름이 ‘우주’인 것을 빌려 우리네 작은 세상의 삶과 죽음을 우주에 병치시키는 ‘아스피린’이나 피아노와 노파와 파를 음계와 연계시키며 펼치는 ‘버려질 것을, 산다’나 삶의 통증과 페이소스로 자욱하다. 당선자께 커다란 축하를, 세 분께 안타까움을 전한다. ​
25    카드 키드 댓글:  조회:792  추천:0  2019-08-19
카드 키드     박성우     카드가 사준 정장을 입고 카드가 사준 구두를 신은 출근길은 벅차다 어쩌다 카드가 사주는 저녁은 근사하고 카드가 큰맘 먹고 들여준 침대는 푹신하다 카드가 현금서비스 해준 축의금을 들고 다녀오는 직장 동료의 결혼식은 처연하게 찬란하다 입사 삼년차 카드 키드, 야근에 지쳐 귀가하는 밤은 카드가 카드론으로 얻어준 원룸이 있어 아늑하다 카드 키드가 되기 위한 지난날은 아름다웠다 스펙에 내준 대학생활은 교양 없이 품위 있었고 자기소개서 속으로 들어간 스펙은 뻔뻔하게 자랑스러웠다 서류전형에서 번번이 떨어지던 입사시험, 처음으로 면접 통보를 받던 날은 팬파이프 같은 빛이 눈앞으로 쏟아져내리는 것 같았다 카드가 사주는 패스트푸드는 먹을 만하고 카드가 지켜주는 직장생활은 아직 견딜 만하다 정기적금을 해약해 카드에게 이체하고 남은 돈, 지방에 사는 양친께 부쳐드리던 손은 대견하다 월급날 받은 급여는 어김없이 카드에게 옮겨간다 '언제 취직할 거니'를 지나 '언제 결혼할 거니'까지 기적적으로 와 있는 카드 키드, 카드는 희망 복근을 키워보는 건 어떠냐며 헬스클럽을 권유한다  
24    시인은 시적으로 지상에 산다 /천양희 댓글:  조회:710  추천:0  2019-08-19
시인은시적으로 지상에 산다 ㅡ 천양희ㅡ 원고료를 주지 않는 잡지사에 시를 주면서 정신이 밥 먹여 주는 세상을 꿈꾸면서 아직도 빛나는 건 별과 시뿐이라고 생각하면서 제 숟가락으로 제 생을 파먹으면서 발 빠른 세상에서 게으름과 느림을 찬양하면서 냉정한 시에게 순정을 바치면서 운명을 걸면서 아무나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하면서 새소리를 듣다가도 ‘오늘 아침 나는 책을 읽었다’*고 책상을 치면서 시인은 시적으로 지상에 산다 시적인 삶에 대해 쓰고 있는 동안 어느 시인처럼 나도 무지하게 땀이 났다 * 연암 박지원의 글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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