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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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잡문) 인간다운 삶, 비인간적인 죽음 댓글:  조회:4182  추천:0  2018-11-23
                                                           인간다운 삶, 비인간적인 죽음                                                                       최 균 선       인간의 생존문제도 영원한 주제이거니와 동시에 죽음의 문제도 인류를 괴롭히는 정답이 없는 난제이다. 현대과학은 사후에 개인의 령혼이 존재한다는 관념을 단호 하게 부정한다. 인간은 생자필멸(生者必灭)이라는 섭리를 이기지 못한것을 확증한것이다. 하여 유물론자는 령혼의 불멸을 부정하고 거부하지만 종교에서는 죽음의 문제를 사후문제만이 아니라 령혼의 불멸성 여부와 결부시킨다. 신을 가정하지 않는 불교도 생전에나 사후에 령혼이 계속 살아있다고 믿고 그렇게 설파해 왔다.     이른바 전세, 현세, 래세가 어떻든간에 우리는 진실이고 실재인 현재를, 과거에 대한 추리나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삶을 우울하게 만들필요는 없다. 소털같이 많은 나날이라도 현재를 즐기기 위한 오늘은 오직 한번뿐으로서 래일은 오늘과는 또 다른 래일이다. 하루하루는 인생편장에 한구절, 한단락, 한페지이다.     고자(告子)의 “식색성야(食色性也)”는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을 말한것이고 인간이 리성적 사유를 통한 론리적 추론과 목적달성을 위한 합리적인 선택이 가능한 존재로서 합리적인 경제동물이라는것을 말해주며 간단한 석기로부터 최첨단의 기계까지 만들어내고 사용하는것은 인간이 도구적 존재임을 말해주고 국가적 제도와 법률을 제정하고 그것의 약속력에 지배된다는것은을 말해주며 드바쁜 와중에도 여유를 찾아 삶의 재미와 즐거움을 추구하는 본성은 유희적인 고급동물임을 말해준다.     고급지식을 습득하고 사상감정을 표달하며 기술, 예술 등 인간생활의 양식의 총제인 문화를 발전시키는 문화적인 령장동물임을 말해주고 사회를 이루고 더불어 사는것은 정치적, 사회적동물임을 말해주며 사고력과 판단력으로서의 리성을 지니고 자기 자신을 대상화하며 객관적으로 인식할수 있다는것은 사회적동물임을 시사하며 자유의지에 의해 스스로 옳다고 믿고 그것을 행할수 있는 도덕적 주체가 될줄 알고있는것은 륜리적인 만물의 령장임을 실증해주고있다. 이 모두를 충족시킬 때 지극히 인간적인 삶을 산다고 말할수 있다. 하지만 우리네 인생현장은 어떠한가?     이미 기본적인 생활상식으로 된 사실이지만 인간은 진정한 삶의 목표를 돈벌이마당에서 세워놓고 아글타글하는데 스스로 비인간적이고 기계적인 삶을 사는게 아닌가? 비록 로동이 인간의 삶의 기본내용이고 보람이고 희열이라고 하지만 그저 말하고 일하는 동물이 되여진 그러한 삶을 잠시 형태적인 삶이라고 명명하자. 물론 인간본연의 자유적인 삶은 어떤 철학자의 론리대로 영위되지 않는다는것을 주명해 둔다.     그저 생명체로서 무위도식하더라도 얼마나 오래 사느냐에 혼신을 몰입하는것도 지극히 인간적인 추구라고 할수 있으나 반대로 짧은 인생이라도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혼신을 불태우는 인생이야말로 지극히 인간적인 삶이라고 말하고싶다. 생명에 집착해도 나무릴바가 못되지만 제한된 생명선상에서 멀고 아리숭한, 그러나 꼭 도달하고싶은 어떤 목적지를 향해 전심전의로 걸어가는 모습도 지극히 인간적이라 할것이다.     인간적인 삶의 양상에 대해 말하자면 끝이없고 끝이 없는만큼 내 능력으로는 다 서술할수 없으니 핑게 좋게 화제를 돌려 비인간적인 죽음을 말해보자. 5복에 하나인 고종명(考终命)을 하고 세상을 하직하는 자연사야 비일비재하니 새로이 문제시 될것은 없으되 요절이나 객사, 비명횡사같은 죽음은 그 자체가 인류의 비극이요 원초적 비애이다. 하다면 흔히 말하듯 비명이라는 "인간답지 못한 죽음"이란 무엇인가? 이 문제 역시 인류진화사를 통털어 거론해야 할 일이니 현시대 현상에만 착안한다.     자연재해, 전염병, 대량적인 아사(饿死)등등은 객관적이기도 하지만 인재(人災)이기도 하다. 가장 참혹한것은 인간의 략탈성적인 침략전쟁, 인종청소의 목적도 있는 정복전쟁의 참화이다. 본인들로서는 막무가내하기도 하겠지만 결국 비정의적인 온갖 전쟁에 동원되여 처참하게 죽어간 사람들의 죽음은 철두철미 비인간적인 죽음이다.     멀리도 맗고, 많이도 말고 례를 든다면 제2차 세계대전때 일본의 군국주의나 독일파시즘의 리용물이 된 병사 혹은 조선전쟁, 베트남, 이라크침략전, 아프카니스탄 침공전에 죽은 각국 병사의 혈전은 비인간적인 죽음이다. 그러한 죽임을 당한  초민백성들의 자제들로 말하면 억울하고 무용한 죽음이였다. 지하벙커, 지휘소에서 전쟁 을 획책한 악마의 화신들은 그런 참극을 미화하기 위해 참전용사니 해방전사이니 침 발린 미사려구를 쓰지만, 죽음에 태산같은 죽음이 있고 홍모보다 가벼운 죽음이 있다 고 평판하지만 생명의 사멸인 죽음은 죽음이고 주검은 주검인것이다.     먼 과거를 피빛 망각속에 묻어버리더라도 현대살인마들의 피바다극은 참으로 인류의 비애를 절감하게 한다. 뉴욕에서 생긴 소위 “9.11 대테러”를 신호탄으로 지구라는 이 행성의 곳곳이 다시 피물로 절어들고있다. 천하보다 더 귀하다는 목숨들이 존귀한 하늘의 부름이 아니라 인위적인 광란으로 무참히 죽어가고있다.     세기를 넘으면서 그냥 인권타령의 선두자인 미국경찰에게 죽임을 당한 자국민만해도 1000명이나 되는것은 자업자득이라 할세 얼마전 국제법도 무시하고 병원을 폭격하여 국경없는 의료진들과 환자 30명을 죽이고 수많은 사람들을 부상당하게 한것이 밝혀지자 알량하게 “미안해(Sorry!)” 한마디가 다였던게 미국이다. 그렇다면 프랑스의 참사도 “Sorry!” 한마디만 하면 되는 별것도 아니지 않는가?물론 프랑스의 무고한 사람들이 죽은것은 안됐지만 먼저 미국과 프랑스, 영국등 동맹국들이 거짓 명분을 내들고 중동땅에 쳐들어가 수십만의 죄없는 인민들을 죽이면서 인간지옥으로 만들고 피바다를 만드는것은 테러가 아니고 웃기도 남을 인권의 신장이란 말인가?      중동인들의 생명이 침략자, 전쟁광들과 뭣이 다르기에 그토록 처참하게 죽어가야 한단말인가? 세계 각지에서 미국이 수백만을 죽이고 수천만 난민들을 양산한것은 테러가 아니고 수백명을 죽인것이 천추에 용납못할 테러인가? 세상에 시시비비가 없다지만 삶은 소대가리도 웃을 아이러니는, 인권이라는 미명하에 가장 기본적인 삶의 권리마저 폭탄, 포탄으로 짓뭉개버리고있는 자들이 인군타령을 고창하는것이다.     “부시가 우리와 함께 하지 않으면 우리의 적” “악의 축”이라 명명하자 미국과 그 추종자들은 저희네 말을 안듣는 나라들을 전복하고 허수아비정부를 만들기에 혈안이 되였다. 미국은 유고, 아프카니스탄, 우크라이나 등등 수많은 나라들의 수장을 제거 하고 말 잘듣는 허수아비들을 앉혀놓았으며 자기 말을 잘 안듣는 시리아를 전복하기 위해 오래동안 갖은 흉계를 꾸며왔다는것을 세상이 알고있다.     일찍 원주민 인디안인들을 도륙내고 그 땅을 빼았은 미국처럼, 이스라엘은 젖과 꿀이 흐른다는 가나안 땅을 빼앗고 조상대대로 그 땅에서 살아왔던 팔레스니타인들을 노예들보다 더 못하게 대하며 매일같이 학대하고 죽이고 있는 가운데 이들을 동정하며 정신적, 물질적으로 도움을 준 나라가 바로 시리아이다.     무상급식 무상의료 무상주택으로 안정되게 살아가던 시리아를 폭격하고 반군들을 양성하여 “내부혼란” “급변사태”를 조장하여 25만명이나 죽고 1100 만명이 난민이 되였다. 실제로는 훨씬 더많을게다. 결자해지라고 하였는데 이 비참한 난민들을 만들어낸 미국, 영국, 프랑스가 이들을 받지 않기 위해 생떼질을 쓰면서도 그냥 인권타령을 입에 물고있으니 악마의 론리라도 너무 황당하지 않는가?!인간다운 삶을 지향하는데 비인간적인 죽음을 강요하는 원흉들에게 언젠가 하늘이 저주를 퍼부을것이다.                                                   2016년 11월 25일
1    (잡문) 땅, 바다, 하늘 그리고… 댓글:  조회:4209  추천:0  2018-11-23
                                                  땅, 바다, 하늘 그리고…                                                                   최 균 선       하늘과 땅과 바다는 무엇인가? 성경 계시록에 기록된 “하늘”이라함은 선민(選民)장막이다. “땅”이라함은 배도자 또는 육체들의 처소이다. “바다”라함은 짐승이 나 온곳으로서 룡과 짐승의 처소라는것이다. 하나님께 속한 선민 해,달,별의 처소를 하늘이라고 하였다.(창 37:9-10 참고) 비유한 세가지 처소중“하늘”은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 있는 장막이기때문에 이곳을 하늘이라고 한다고 하였다.     저 유명한 빅또르 유고는 일찍 “바다는 넓다. 바다보다 넓은것은 하늘이다. 하늘보다 넓은것은 사람의 흉금이다.”라는 명언을 남기였다. 정체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하면서도 어긋나기도 하는 세상이 올줄 대가는 미처 생각못했을것이다. 이 지구덩어리에서 바다는 확실히 륙지보다 넓다. 사람의 흉금은 바다보다 넓다고 하지만 인류는 이 땅을 벗어나지 못하고있다.     만리벽공은 태양의 웃음으로 넘치고 대지에는 수천만갈래 강하가 감돌아 흐른다. 우리가 딛고선 대지, 우리를 먹고 살게 해주는 땅은 소박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다. 어머니 대지는 억조창생을 낳았고 인류의 가원을 제공해주었으니 말이다. 원시생물로부터 청초에 이르기까지, 우거진 나무로부터 화사한 백화에 이르기까지…     높은 산으로부터 일망무제한 평원에 이르기까지, 푸른 초원과 망망한 사막에 이르기까지 옹근 대지가 금수강산을 펼쳐주었다. 인류는 대지에 속하지만 대지는 인류에게만 속한것이 아니다. 모래바람이 불어친다고 대지를 원망할손가? 토지는 일찍 아름다운 록색옷을 떨쳐입었고 토지는 고즈넉한 안정의 품이였거늘, 누가 어머니 대지의 옷을 갈갈이 찢어발겼고 누가 대지의 안녕을 깨뜨렸던가?     대지ㅡ토지는 종래로 관후하였다. 인간이 끝없이 들볶아댔지만 말없이 받아주는 더없이 대공무사한 존재로서 인류에게 무한정 공헌할뿐이다. 그 누가 땅에 정감이 없다고 단정하며 그 누가 흙에 정기가 없다고 말하는가? 땅을 학대하는것은 기실 인류 자신을 학대하는것과 다름없다. 땅은 인류의 생명의 근원인줄 몰라서가 아니니 인류란 더구나 리기적이고 가능한 동물인것이다.     인간들은 인공위성을 발사하고 왕복선을 띄워 달탐사를 하며 우주에 비행체를 보내다보니 드디어 수많은 쓰레기들이 란분분하게 되였다. 우주시대 초기에는 인공위성 추진후에 궤도상에 남겨지는 잔해들에 대한 생각은 거의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점차로 이들 쓰레기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소련의 스푸트니크 발사이후로 50년 이상이 지난 지금, 처음에는 점진적으로 늘어나던 궤도쓰레기가 점차 급격하게 늘어나 지구궤도를 오염시키고 있다.    최근 미국의 군용탐지기에 의하면 추적된 궤도상의 대형쓰레기로 사상 최고치인 약 15,000개나 되고 연료땅크, 철판조각, 라사못, 볼트 등 3천5백만개나 된다고 한다. 또 그보다 더 작은 파편들도 3,000만개이상 된다하고 또 다른 보도에 의하면 지름이 10cm이상인것들이 만개이상이고 1~10cm의 크기는 20만개가 넘는다고한다.그야말로 거대한 쓰레기장이 아닐수 없다. 여기에 현재활동중인 위성이 1,000개가 있다. 매우 높은 고도에 위치한 쓰레기 잔해들은 수십년이상 궤도상에 머물수가 있어서 앞으로도 점차 쌓여만 갈것이다.     하지만 어느나라도 나서서 이 쓰레기들을 치울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저 이 우주파편들로부터 자국의 인공위성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만 궁리하고 있지 없앨 생각은 안하는것이다. 이제는 지구도 모자라 지구바깥에도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니 과연 인간의 흉금이 하늘보다 더 넓은것인가? 우주를 정복한다는 웅심으로 말하면 하늘보다 더 넓은 사람의 흉금이라 할수 있겠으나 우주를 쓰레기장으로 만들어놓은 인간의 행위는 그리 광채롭지 못하다.     하늘이야말로 얼마나 드넓고 포용력이 무한대한가? 근대공업시대에 들어서부터 인간이 지구촌에서 피워올린 흙먼지며 이런저런 연기를 어디에 다 품어버렸는지 예이제 맑고 푸른하늘에 태양을 띄워놓는다. 그런데 지금 중국만이 아닌 지구촌 곳곳에서 스모그가 대기를 오염시켜 만리 청청한 하늘을 가리웠으니 인간의 넓은 흉금인가?     인간의 흉금은 하늘 버금으로 넓은 바다속에 어족들을 씨를 말리고있다. 그 극성 스러운 “어업생산”은 사람들에게 자업자득의 고배를 마시게 하고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21세기를 해양의 시대, 우주개척의 시대라고 자랑차게 말한다. 세계각국에서 질세라 앞다투어 해양발전계획을 시행하고 있고 포화상태인 지구를 벗어나 우주개발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엄청난 투자를 하고있다. 그러나 인간의 탐욕과 무지는 륙지의 생태환경파괴에도 성차지 않아 해양과 우주에도 욕심을 뻗치여서 마침내 심각한 악영향을 자초하고 고배를 마시게 되였다.    최근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태평양에 떠다니는 거대한 쓰레기섬은 조선반도 전체 면적의 6배가 훨씬 넘는것으로 추정되고 이런 쓰레기섬은 대서양과 인도양에 있는것까지 포함하면 5개나 된다고 한다. 한국바다에 버려져 떠다니는 그물이나 밧줄 등에 선박들이 걸려서 표류하는 사고가 속출하고 있는데 피해 선박이 한해 3백척이 넘는바 한달에 25척이 같은 피해를 본다고 보도하고있다. 해마다 바다에 버려지는 폐그물은 4만 4천톤이라니 오대양에 떠다니는것은 얼마일가?     미국의 사회철학자 에릭 호퍼는 쓰고있다.“자연은 완전하지만 인간은 절대로 그렇지 못하다. 완전한 개미, 완전한 꿀벌은 있지만 인간은 영원히 미완성이다. 미완성의 동물인 동시에 미완성의 인간인것이다. 인간이 다른 생명체와 구별되는 점도 이런 치유할 수 없는 불완전함이다.”(인간의 조건 1)     에릭 호퍼는 다른 생물과 달리 인간은 자연의 실수에서 비롯된 미완성의 피조물이라고 말한다. 인간이 자연의 불변적 법칙에서 탈출하고, 자연의 가장 강력한 적이 될수 있었던것은 바로 자기완성의 과정을 밟아왔기때문이라고 설파한다. 인간의 창조성의 원천도 그 불완전성에 있고 인간은 자신에게 부족한것을 보충하기 위해 창조력 을 발휘한다는것이다. 호퍼는 인간본성을 탐구하면서 인간내면의 비렬함을 드러내는 증거들을 만나게 됐다고 설득력있게 술회한다.     인간의 기원을 생각해 볼 때, 놀라운 일이란 소중한 가치의 근원을 이루는 사악함이 아니라 오히려 지칠줄 모르는 악의와 잔인함을 자선과 사랑, 천국에 이르는 리상으로 바꿔주는 령혼의 연금술이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완전한 인간이 될때까지 인간은 모두 어느정도 악마이며 인간의 모습으로 가장한 야수라는것이다.     인류는 완전한 존재가 되려고, 또 스스로의 의지로 자연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면서 자연과 불공대천의 적이 되였다. 무적의 자연을 정복하기 위해 과학기술을 고도로 발전시켰지만 역설적이게도 인간은 “내부의 자연”과 대치상황에 빠져버렸다. 즉 야성 혹은 인성악과의 싸움이 시작된것이다. 인류의 물질문명의 창조과정에 내재해 있는 고유성으로 인해 인간들은 우주의 중심이며 우주의 지배자로 자처해왔다.     인류에게는 집단적분노, 집단적자부심, 집단적인 득의양양함은 있으나 집단적수치심은 없다. 인간은 누구에게 패할것인가? 누군가 “욕망은 도전이자 시작인데 얼마 나 선을 지키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며 “벼랑끝까지 가면 떨어지지만 욕망을 잘 리용하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말씀은 맞지만 인간의 실천은 별개의 문제이다.                                                                                           2016년 10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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