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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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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39) 고향의 버들 김장혁 댓글:  조회:287  추천:0  2024-04-05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제5장       7. 고향의 버들     엄동설한에  눈 덮인 대지에 차가운 빛가루가 뿌려지고 있다. 윙-윙- 눈보라가 사납게 울부짖으며 눈 덮인 시골개천바닥을 휩쓸며 휘몰아친다.     경인과 어금은 불 붙이에 세간나 이럭저럭 근근득식하면서 살았다. 경인은  베옷바람에 초신 감발하고 윙윙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무릅쓰고 버들방천의 버들을 베러 발기를 끌고 나갔다. 소 버치를 결어 팔아 차좁쌀이라도 사 살림에 보태려는 것이였다.     눈보라가 어찌나 세찬지 날아오는 모래알 같은 눈가루에 얼굴을 맞아대는 듯하였다. 숨이 헉헉 막혀 발기를 끌기 힘들었다. 설상가상 맵짠 한기가 뼈 속까지 스며 들어 아래위이발이 더덕더덕 맞쪼길 지경이었다. 그래도 경인은 용케도 쓸만한 버들을 얻어만 보면 낫질 해 발기에 담았다.     “야, 이 놈새끼, 버드나무를 마구 베?!”    눈보라치는 겨울에 이게 무슨 마른 하늘 생벼락인가?    경인은 낫을 쥔 채 머리를 돌렸다. 소리임자를 보니 말을 타고 군도 찬 일본 사람이었다.    경인은 일본 사람이 뭐라고 하는지 알아듣지 못했다. 그는 머리를 숙이고 발기를 끌고 나가면서 계속 버들을 베였다.     쒹- 쒹-    가죽채찍이 날아와 경인의 잔등을 핥아 쨌다.    옷이 째지며 살갗이 드러났다. 드디여 살캋에 시뻘건 굴 뱀이 죽죽 졌다.    “아니, 왜 이래?”    “빠까 모노(바보 같은 자식)!”    일본 놈이 고래고래 고함치며 채찍을 휘둘렀다.    경인이 날아드는 채찍을 덥석 감아쥐어 홱 챘다.    일본 놈이 말잔등에서 휘청거리며 하마트면 떨어질 번했다.    이때 등뒤에서 말발굽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총을 든 일본 경찰 대여섯이 말 타고 달려왔다.    먼저 온자가 뭐라고 고래고래 고함치자 일본 경찰들은 경인을 붙잡아 묶었다. 그 놈들은 경인을 붙잡아끌고 개 잡은 포수들처럼 우쭐렁거리며 상우남면에 자리잡은 림산파출소로 끌고 갔다.    파출소에는 조선인 통역이 있었다.    통역은 사무상에 거만하게 앉아 있는 일본 사람을 가리키면서 조선말로 말하였다.    “이분은 림산파출소 야마모도소장이네. 당신 정신 있소? 감히 버들방천의 버들을 베다니?”    그제야 경인은 자기가 잡혀온 영문을 조금 알게 되였다.   잠간 후 그는 머리를 번쩍 쳐들었다.    “일본 사람들이 정신있소? 내가 나서 자란 고향에서 버들을 벴는데 무슨 죄 있단 말이오?”    경인의 뒤 말만 통역하자 야마모도 소장이 호통쳤다.    “뭐 어쩌고 어째? 법도 모르는 시골 놈들, 한일합방 후 조선은 일본에 귀속됐어. 조선의 땅과 물에서 자란 모든 게 일본 거란 말이야. 넌 일본 삼림법을 어겼기에 중대 범죄자야.”    경인은 억이 막혀 가슴을 쾅쾅 두드렸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요? 우리가 세세대대로 살아온 고향이 일본 거란 말이요?”    통역은 조용히 말했다.    “이보. 말해보았자 쓸데없소.벌금이나 하구 집에 가게 내 말해줄테니. 작작 떠드오.”   "벌금? 무슨 말이오?"   "감옥살이 대신 돈이나 내란 거요."    경인은 머리를 무겁게 툭 떨어뜨렸다.    (일본 사람들이 들어온 후 처음 듣는 소리야, 제기랄 벌금! 당장 먹을 쌀을 살 돈도 없는데 벌금 하라는 거야? )    경인이 속으로 두덜거리는데 일본 헌병 소대장 나까노라이찌로가 파출소에 들어왔다.     그는 야마모도 소장 곁으로 다가가 거적눈을 내리깔면서 뭐라고 쑹얼거렸다.     야마모도 소장은 경인을 내려다보며 머리를 끄덕이더니 권연 한대를 꺼내 가재수염아래에 꼬나물었다.    나까노라의 거적눈은 실눈으로 한데 붙더니 피어오르는 연기를 꿰뚫고 경인을 여겨보면서 무슨 속궁리를 굴리고 있었다.     이윽고 야마모도 소장은 희죽이 웃으며 씨부렸다.     “자넨 운주동 최구장네 둘째아들이라면서?”    경인은 머리를 들어 야마모도 소장을 쳐다보았다.    야마모도 소장은 가재수염을 슬슬 쓸더니 교활한 웃음을 지었다.    “여기 벌금서에 이름 석 자를 써넣고 돈을 가지고 오게나.”    경인은 번쩍 머리를 쳐들었다.     “아니, 보릿고개를 넘을 쌀을 살 돈도 없는데 무슨 벌금을 내라는 게요?”     야마모도소장은 통역이 번역해주자 책상을 꽝 쳤다.     “제기랄! 최구장 낯을 봐주는 건데도 모르는가? 어째 감옥살이를 하고 싶은가?”     경인은 억울한 대로 그렇게 하겠다고 벌금 서에 자기 이름 석 자를 써넣고 파출소에서 나왔다.     그는 앙알한 마음으로 발기를 끌고 운주동에서 서쪽으로 오리나 떨어져있는 불붙이의 집으로 돌아왔다.      이튿날 어금에게서 기별을 받고 최구장과 경숙이 달려왔다. 그들은 경인의 째진 옷 속에 드러난 잔등의 채찍자리를 보고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자기 고장의 버들을 벴는데 채찍으로 이다지도 때려?”    경숙이 경인의 상처를 보면서 불만을 토로했다.    “계십둥?”   이때 밖에서 성칠이 사냥총을 쥐고 불쑥 들어섰다.    눈보라가 살창문을 투르륵 두드린다.    “사돈어른 오셨구먼. 우리 조카사위가 일본 놈들에게 다쳤다더니 어떻소?”    성칠이 문안하러 오자 경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이유, 목재 일에 바쁜데 찾아 왔습니까?”    경인은 일어나 절을 올렸다. 그러자 성칠은 바삐 마주 앉으면서 답례했다.    “에이, 아픈데 무슨 절까지. 에이고, 어깨랑 다쳤구먼. 다른 덴 상하지 않았소?”    “괜찮습니다.”    어금은 눈물이 글썽해 두 손을 맞잡고 앉아 큰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성칠은 어금을 건너다보면서 당부했다.    "이후에는 일본 놈들의 눈을 피해 버들을 베오.”    경인은 피발이 선 눈을 뚝 부릅뜨고 바깥을 내다보면서 이를 북북 갈았다.    “에이유, 그 놈들의 성화에 어디 살겠습둥? 버치라도 결어서 쌀이나 사자 했더니. 그것마저 안 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삽둥? 전번에 경찰국공지의 삯전도 주지 않은 게 목재 일을 해도 주겠습둥? 살 길이 막막합구마.”     성칠은 여러분들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일본 놈들을 우리 고향에서 몰아내기 전에는 발편잠을 잘 수 없습구마.”    최구장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총칼을 쥔 일본 놈들을 어쩌겠수?”    성칠은 사냥총을 들어 보이면서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도 사냥총 들고 싸워야 합구마. 경인 조카사위는 검을 잘 쓰지 않소?”    그 소리에 모두 놀라 어안이 벙벙해졌다.   최구장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우리 힘으로 언제 그 놈들과 싸워 이기겠소? 500년이나 이 나라를 통치해온 이씨 조선의 관군들도 어쩌지 못하고 나라를 다 빼앗기고 말았는데. 괜히 검을 휘두르다가 괜히 목숨이나 잃겠소.”      최구장은 앉아 김빠진 말만 했다. 성칠은 공자 왈 맹자 왈 밖에 모르는 선비들과 무력을 쓰자는 말이 잘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나도 주저하지 않았던가? 하물며 선비들이야 무슨 담에 총칼을 든 일본 놈들과 싸우겠는가?)     성칠은 장소나 사람을 봐가면서 말해야 되겠다는 것을 느끼고 다른 화제를 꺼냈다.     “사돈어른의 서당 방은 어떻게 돼갑둥?”     최구장은 머리를 홰홰 가로저었다.     “요즘부터 일본 사람들이 조선 글이나 한어를 가르치지 말구 일어를 배워서 가르치라고 해서 난리네.”    주름살이 밭고랑처럼 패이고 흰 수염이 더부룩하게 자란 최구장의 얼굴에는 수심의 그늘이 꽉 끼였다.    성칠은 세파에 모대기면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최구장에게 존경이 갔다.     “최구장은 서당 방을 차려서 우리 후대들의 눈을 틔워주는 게 민족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겝지유.”     “우린 아무리 가난해도 허리띠를 조이고서라도 자식들을 공부시켜야지.”     그쯤 되자 성칠은 후에 경인과 조용히 말해보기로 하고 문안 몇 마디 더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성칠은 사돈들과 인사하고는 집에 나와 성큼성큼 앞장대로 치달아 올랐다.     눈보라가 쌩쌩 나무초리를 스치며 무서운 비명소리를 쳐댔다. 일본 놈들의 세상으로 뒤바뀐 조선의 대지에는 와가의 콧노래가 장송곡을 부른다.     저승사자가 염라전 화로불 옆에서 이빨을 다시며 기지개를 켜더니 하품을 하며 낮잠을 청한다.                        
3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38) 조선의 원시림 김장혁 댓글:  조회:238  추천:0  2024-04-05
                         김장혁 작 울고 웃는 고향 제5장                   6. 조선의 원시림          나무가지들에는 시허연 눈이 더부룩이 쌓여 있다. 박달나무도 탁탁 얼어터질 엄동설한이 다가왔다. 여우도 추워 눈물방울을 똑똑 떨어뜨리면서 발을 동동 구를 맵짠 추위가 덮쳐왔다. 화로불도 품 속으로 기여들 지경으로 매섭게 추웠다.     마을 사람들은 길수가 경찰국청사공지 삯전을 주지 않아 아침을 먹으면 저녁쌀이 없어 근심하면서 하루를 삼추와 같이 어렵게 살았다. 그러나 길수는 집에 일본 경찰국장과 기생 년들까지 불러다가 흔전만전 먹고 마시고 큰 잔치를 벌렸다.     마을 사람들은 뒤에서 모두 욕설을 퍼부었다.     "저 우멍눈을 까마귀 파먹었으면."      "어서 썩어질게지."      길수는 영팔과 수길 등 졸개들을 데리고 마을마다 돌아다니면서 벌목에 나오라고 을러멨다. 그의 말대로라면 통나무를 벌목해 우시장에까지 실어가면 꼭 삯전을 준다고 했다.     성칠은 크게 희망을 걸지 않으면서도 사냥도 하지 못하게 하는 판에 칠백과 덕성, 최동욱 등과 함께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산으로  벌목하러 올라갔다.     요즘 삼림분주소 야마모도 소장은 사냥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했다. 그는 낮에는 삽살개처럼 졸개들을 데리고 산에서 벌목공들을 감시할 뿐만 아니라 누가 사냥을 하나 살피였다. 밤에는 마을로 싸다니면서 어느 집에서 혹시 산짐승을 사냥해 끓여 먹나 집집이 기웃거리면서 가마뚜껑까지 일일이 열어보았다.        스르륵 스르륵 톱질소리에 턱턱 도끼질소리에 조용하던 원시림이 시끌어워졌다.      “넘어간다!”       여기저기서 아름드리나무가 쿵 쿵 넘어갔다.      사기 나서 “넘어간다!”고 소리치는 것이 아니었다. 넘어가는 나무에 사람이 다칠 까봐 소리치는 소리였다.      마을 사람들은 넘어간 통나무를 집짓기에 좋을 만큼 토막 내 소 발기에 실어 산 아래에 끌어내려갔다. 거기서 다시 마차나 소수레에 실어 우시장 경찰서 사무청사 공지에 실어갔다.     산골마을 영월동은 벌목 일에 끌려온 사람들로 붐비었다. 집집마다 다른 마을사람들이 몇몇씩 들었다. 저기 버치 골에는 저목장이 들어앉아 아름드리 통나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겨우내 몇 달 벌목하니 아름드리나무들이 하늘을 가리며 우중충하게 서있던 원시림은 거의 벌거숭이로 돼버렸다. 산도 옷을 홀랑 벗은 까까머리처럼 민둥산으로 보기 싫게 변해갔다.     “제길 할, 나라에서 몇 십 년이고 몇 백 년이고 부동림이라고 법령을 내리더니 결국 섬나라 오랑캐들이 좋은 노릇을 했네그려."      성칠이 볼 부은 소리를 했다.      “쉿-”     칠백이 턱으로 산기슭 쪽을 가리켰다.     야마모도소장이 가죽채찍을 감아쥐고 졸개들과 함께 눈에 푹푹 빠지며 이쪽을 흘끔흘끔 살피면서 다가왔다.     설겅설겅     성칠과 칠백은 마주 앉아 톱질했다.     “요로씨이(좋아)”      야마모도는 원숭이 엉덩이 같은 낯에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깍- 깍-”    야마모도의 멋들어진 모자에 까마귀 똥 꽃이 허옇게 피었다.    성칠이 하늘을 쳐다보니 까마귀 한마리가 날아지나가면서 똥을 내리쏜 것이 틀림없었다.    “바까(바보) 새끼!”    야마모도 소장은 하늘 저 멀리 날아가는 까마귀를 쳐다보면서 욕지거리를 해댔다. 그는 모자를 벗어보고 까마귀 똥을 옆에 선 나무에 대고 문질렀다. 똥이 벗어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넓게 똥칠이 돼버렸다.    “제길 할!”    야마모도 소장은 모자를 홱 팽개치더니 뒤따라 온 졸개의 모자를 벗겨 쓰고 가버렸다.    졸개는 귀를 싸쥐었다가 옆에 선 졸개와 칠백이를 흘끔흘끔 쳐다보다가 칠백의 털모자를 빼앗아 쓰고 가버렸다.    김칠백은 수림 속으로 사라져가는 야마모도와 졸개들을 노려보다가 주먹을 으스러지게 쥐였다.    “개자식들, 아무 때건 도끼로 대갈통 찍어놓지 않는가 봐.”    칠백은 도끼자루에 침을 퉤 뱉어 틀어쥐더니 통나무를 탁탁 내리찍었다. 도끼밥들이 사처로 튕겨 눈 위에 툭툭 떨어졌다.    “일본 사람들은 이젠 기운봉이나 치마봉 수림의 주인행세를 하는구나. 경찰국 청사를 짓는 데 무슨 나무를 이렇게 많이 쓴다니?”    성칠의 말에 칠백은 투덜거렸다.     “내 사촌형 룡천이가 말하던데 철길과 길 닦는데도 쓴다더이.”    칠백의 말꼬리에는 경상도 사투리 줄줄 묻어나왔다.    “개자식들, 우리를 생각해 철도를 놓는 척 해도 자기네 좋은 노릇을 하려는 게 아니고 뭐냐?"    “글쎄 말인기여.”    “가만.”    성칠은  톱질을 하다가 손을 멈추고 칠백에게 물었다.    “네 사촌형은 뭘 하는 사람이냐?”    그러자 칠백은 사위를 둘러보더니 성칠의 귀에 대고 귀속 말을 했다.    “룡천은 경주 큰아버지네 맏아들인기여. 내 죄를 짓고 이 마을로 도망쳐 온 후 소식이 끊어졌댔어. 몇해 전 어느 날 밤중에 나를 찾아오지 않았겠어.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장백산에 다니면서 사냥한다던데 친구들도 꽤 많은 것 같더이.”    “음, 언제 만났으면 좋겠다. 함께 사냥도 하고. 이게 어디 지긋지긋해 일본 사람들의 수하에서 살겠냐?”    “그러지. 이제 형이 오면 만나게나.”    그들은 말을 마치자 톱질을 슬슬 해댔다.    이윽고 아름드리통나무가 흔들거렸다.    성칠과 칠백은 엉거주춤 일어났다.    “넘어간다!”    산악을 뒤흔드는 소리와 함께 아름드리통나무가 다른 나무 가지들을 내리깔며 꽈당 쿵 넘어졌다.   이때 통나무를 살피던 칠백이 소리쳤다.   “아니, 이거 벌레 먹은 통나무 아냐!”    성칠이 여겨보니 톱으로 벤 나무 밑둥 여기저기에 손가락만큼 한 구멍이 숭숭 나 있었다. 손가락으로 구멍을 우비니 톱밥 같은 나무가루가 나왔다. 이윽고 까만 대가리에 누런 색을 띤 손가락만큼 굵은 벌레가 묻어 나왔다.   “아니, 이 흐물흐물한 벌레가 이 큰 아름드리통나무를 파먹었단 말인가?”    성칠이 놀라자 칠백이 성칠의 귀에 대고 쑤군거렸다.    “이런 나무로 경찰국 청사를 어떻게 짓는대? 쾅 무너져뿌려!”    성칠은 피뜩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벌레를 벌레구멍에 되 넣고 나무가루로 잘 막아주었다.    “왜?”    의아한 칠백의 눈길에 성칠은 귀속 말로 "쉬-" 하고 식지를 입에 대고 사위를 살폈다.     “장차 알 도리가 있을 거야.”    그는 도끼로 나무가지를 툭툭 쳤다.     칠백도 알았다는 듯이 벌레구멍난 자리를 피해 도끼질했다.    “그런데 말이야. 벌레가 얼어 죽지 않을까?”    “아니야. 이 벌레는 춘하추동 나무구멍에서 살아온 끈질긴 놈이야. 우리 도끼나 톱에 죽지 않으면 얼마든지 겨울을 살아 나갈 수 있어.”     “오, 그래? 잘 됐어.”     “쉿-”    성칠은 입가에 식지를 댔다.    칠백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들 둘은 무슨 묘책이나 생각해낸 듯이 시름놓고 다른 나무를 찾아가 밑 둥에 대고 톱질만 부지런히 슬슬 했다.    한참 후 칠백이가 이렇게 넌지시 물었다.    “자네가 사냥하러 간 틈을 타서 길수가 은녀를 부엌데기로 들여갔잖아. 그런데 전번에 득호와 짜고 들어 응삼을 몽둥이로 쳐 눕혔다고 해. 득호와 은녀는 한바탕 두들겨 맞고 한평생 종살이를 해야 한다데이.”    “그게 될 말인가?”    성칠은 성나서 씩씩거렸다.    칠백은 톱질을 멈추고 산기슭을 내려다보았다.    소가 엄청나게 큰 통나무를 수레에 싣고 내리막을 받지 못하는지 덕성과 덕팔, 상호, 백룡 등 십여 명 장년들이 통나무를 멜대목도로 메고 산기슭으로 내려갔다. 덕성이 첫소리를 먹이면 모두들 소리를 받으면서 발을 맞춰 힘겹게 내려가고 있었다.      백년 묵은 통나무라    허기영차    썩둑 잘라 죽였어    허기영차    산 것보다 무거워라    허기영차    고향 떠나기 싫은가?    허기영차    가기 싫어 뻗치는가?    허기영차    무겁기도 무겁다    허기영차      고향 땅 떠나가면    허기영차    오랑캐 섬나라서 썩으리라    허기영차    오호 서럽다    허기영차    이제 가면 언제 오냐?    허기영차    얼씨구 서럽다   허기영차   절씨구 서럽구나   허기영차      목도소리를 듣고 성칠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후 — 내쉬었다.    이때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밭을 헤치면서 웬 장년이 다가오더니 칠백에게 인사했다.    “동생, 벌목해?”   칠백은 반가워 그 사내를 와락  끌어안았다.   “히야(형), 범이 자기 흉을 하면 온다더니.”   칠백은 몸을 돌리더니 성칠에게 인사시켰다.   “인사해. 우리 마을 힘장사 성칠 형이야.”   “내캉 한 고향 마을에 살던 사촌형 룡천이야.”    성칠은 룡천과 악수를 나누었다.     “나니까(뭐야)?”    그들이 머리를 돌려보니  헌병 가메다가 영팔과 수길을 꼬리에 달고 다가오고 있었다.    가메다는 별나게 볼때기에 검은 사마귀에 털 한 모숨이 나 있었다. 하여 사람들은 그 놈을 털 한모숨이라고 별명을 지어 불렀다.    칠백은 턱으로 털 한 모숨을 가리키면서 룡천에게 도끼를 쥐어 주었다.    “저 가메다는 대단히 교활한 놈이야. 일하는 척 해.”     칠백의 귀속말 뜻을 알아챈 룡천은 도끼로 나무 가지를 툭툭 치는 시늉을 했다.    가메다는 채찍을 쥐고 거들먹거리면서 세 사람과 통나무를 번갈아보았다.     “야, 이 놈들아, 아까부터 겨우 나무 한대를 벴냐? 엉?”    털 한 모숨은 다짜고짜로 채찍을 휘둘러 성칠의 잔등을 내리쳤다. 날아드는 채찍을 받아 거머쥔 성칠의 눈에는 분노의 불길이 무섭게 이글거렸다.    그때 뒤따라온 영팔이가 발길을 날려 성칠의 아래 배를 걷어찼다. 성칠은 날아드는 발을 받아 쥐어 내동댕이쳤다. 영팔은 바람개비처럼 저쪽에 날려가 눈속에 머리를 보기좋게 처박혔다.    “엉, 이 놈들, 언감 도감께 손을 대?”   수길이 눈깔에 불길이 이글거렸다.    룡천이 도끼를 놓고 두 팔을 벌리고 나서며 말리였다.    “다들 왜 이래? 우리 부지런히 일하면 끝 난 거 아뇨?”     수길은 주먹을 내리우더니 의아한 눈길로 룡천을 쏘아보았다.    “넌 어느 마을에서 온 놈이야?”    “저 뒤쪽 가마골에서 왔소.”    “오, 그래?”    수길은 도끼를 거머쥔 성칠과 칠백의 눈길에 이글거리는 불길을 보고 바삐 그 자리를 떴다.    “부지런히 일하게나.”    영팔은 눈구덩이에서 일어나 눈을 부릅뜨고 성칠에게 주먹을 쳐들고 흔들어 보이면서 꼬리 빳빳해 달아났다.
2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37) 함정 김장혁 댓글:  조회:351  추천:0  2024-04-05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제5장                                                              5. 함정                 길수는 마지못해 절구통 같은 월선의 옆에 들어 누었다. 그러나 그는  옆방에서 풍겨오는 속살 향기, 아양 떠는 소리에 잠 못 이루고 끼무라 국장이 월향을 안고 노는 징글스런 모습을 떠올렸다.      순간 속으로 말하지 못할 무엇이 목구멍까지 울컥 치밀어올랐다. 맛있는 비게덩이를 개한테 빼앗긴 한이랄까, 자기 여동생이 왜놈에게 강간당한 치욕감이랄까, 날강도에 대한 증오심이라고 할까. 착잡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꼭뒤까지 치밀어 올랐다.      미닫이문을 하나 사이 두고 앞방에서 거친 숨소리와 신음소리가 높아갈수록 길수는 속이 비길 데 없었다.      “음, 여보, 냉수를 좀 주오.”     월선은 뭐라고 두덜거리면서 비단이불을 젖히고 일어나 정지로 나갔다.       어둠 속에서는 황소 숨소리가 거칠게 들려왔다.     “아, 아하, 으흐, 아우~”     월향의 신음소리가 집안 어둠속의 정적을 산산 박살냈다.     뒤이어 끼무라의 긴 한숨 소리가 방안을 메웠다. 속살이 째지는 월향의 아픈 신음소리도 잠잠해졌다.      길수는 월선이가 가져다준 냉수를 한 그릇을 꿀꺽꿀꺽 다 마시고나서 바가지를 월선에게 주었다.      이윽고 길수는 배를 끌어안으면서 상을 찡그리었다.      “아이고, 배 아파라. 내 뒷간에 갔다 와야겠소.”      길수가 엄살을 부리면서 털조끼를 껴입고 바깥으로 나가는 것을 알면서도 월선은 말리지 않았다. 그만큼 속으로는 어떻게 더러운 영감에게 보복할까 속궁리를 했다.     길수는 마루에 나가자 뒷간으로 가는 척 하면서 슬슬 뒤로 돌아가다가 슬금슬금 사랑채 쪽으로 다가갔다. 그 안에서는 옥설과 뽕녀, 만금 등 여러 기생 년들이 살 냄새를 풍기면서 자고 있었다.     이때 덜커덕 중대문이 여닫는 소리가 났다. 길수는 사랑채벽에 찰거머리처럼 딱 들어붙어 동정을 살폈다. 풀풀 눈가루가 흩날리는 눈발 속에 은녀가 물동이를 이고 맥없이 중대문안으로 들어왔다. 이때 웬 작은 그림자가 불쑥 나타나더니 은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     “어마나! ”     “히히히, 은녀,  항상 귀여워.”     “이걸 놓으라니까. 물독을 깨겠소.”     은녀가 머리우의 물동이를 붙잡으며 손을 뿌리쳤다.     자그마한 그림자는 놓으려고 하지 않고 호주머니에서 뭔가 꺼내 내밀었다.     “내 말을 들으면 이 돈을 가지고 머슴도 살지 않아도 돼. 내가 주인어른께 말해줄게.”     길수가 찬찬히 여겨보니 눈에 익은 자였다.    (아니, 저 놈, 응삼이, 저 눔두 은녀에게 눈독을 들였어? 내 맛도 보기 전에 은녀한테 치근거려?)    길수는 속에서 뜨거운 무엇이 욱 치밀어 머리꼭대기까지 치밀어 올랐다. 그는 사랑채 벽에 붙어 섰다. 손에 괭이자루가 만지웠다. 그는 괭이자루를 오른손에 단단히 틀어쥐고 왼손으로 벽을 스치면서 슬금슬금 중문가까이로 다가갔다.     이때 가물에 실 돌피 같은 응삼이 은녀에게 치근거리면서 다가왔다. 은녀는 응삼을 한손으로 밀어버리면서 머리 우의 물동이를 한손으로 붙잡고 부엌으로 발뼘발뼘 다가갔다.     응삼이 은녀에게서 조금 떨어져 사랑채 쪽으로 머리를 돌리더니 중대문으로 가려는 순간이다.    길수가가 괭이자루로 응삼의 머리를 힘껏 내리쳤다.     딱!     “억!”      외마디소리와 함께 응삼이 눈 바닥에 썩박나무 넘어가듯이 쓰러졌다.      이윽고 은녀가 물동이를 안고 나오다가 눈 바닥에 쓰러진 응삼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앗!”     은녀는 식지를 깨물면서 못 박힌 듯이 눈 바닥에 서있었다. 그때 문 뒤에 키꺽다리가 까딱하지 않고 붙어 서있었다. 여기저기에서   문을 배시시 열고 검은 그림자들이 머리를 불쑥불쑥 내밀었다. 뒤이어 바깥의 일을 눈치 채지 못하였는지 덜컥덜컥 문을 닫는 소리가 들리었다.     은녀는 제 정신을 가다듬고 물동이를 이고 몸채로 들어갔다. 그는 월선에게 알리려고 하다가 응삼이 치근거리던 것이 생각난 데다 괜히 무슨 때라도 들쓸까봐 될 대로 되라고 그만두었다.     길수는 응삼의 손에서 돈이라던 걸 빼앗아냈다. 번쩍번쩍하는 은전 세잎이었다.     “개자식, 은전으로 은녀를 꼬시려고?”     그는 말이발을 사려 물고 은전을 부서지게 꽉 틀어 쥐였다. 이윽고 그는 홱 돌아서서 주위의 동정을 살피었다. 뒤이어  득호가 든 방 앞에 슬금슬금 다가가 은전을 처마 밑에 쑤셔 넣었다. 잠간 후 우멍 눈으로 사위를 둘러보고 쓰러진 응삼의 곁에 버려진 괭이를 쥐여 괭이자루로 응삼의 머리에서 눈 바닥에 흘러내린 뻘건 피를 문질러 발랐다. 그는 엉거주춤 일어나더니 눈을 빠드득빠드득 밟으면서 득호가 든 방 앞에 괭이를 슬쩍 내려놓고 사랑채 큰 방 앞에 슬슬 다가가 멈춰 섰다. 방안에서는 술에 취한 젊은 일본 기생 년들이 쌔근쌔근 잠들어있었다.     길수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안 돼, 일본 기생들을 다쳤다간 끼무라 국장에게 잘못 보일수도 있어. 아무리 내가 색마라도 상전의 계집을 다칠 순 없어.)     길수는 사랑방안의 분내 나는 기생 년들을 먹지 못하는 것이 아쉬운 듯이 벽을 손으로 만지다가 피뜩 응삼의 사랑채에 눈길을 돌렸다.     “그래, 그 주제에 은녀를 지껄여?. 네놈의 여편네를 데리고 놀아주마.”    춘실은 응삼이 잠자리에서 나간 지 이슥해도 돌아오지 않아 이상해하며  기다렸다.    삐꺼덕    문 여는 소리 났다.    “이제 왔어요?”    “음.”    웬 그림자가 들어오더니 이불 안으로 쑥 들어왔다.    “으, 차가워. 왜 이렇게 얼면서 밖에 있었는가요?”    검은 그림자는 대답 대신 춘실의 몸에 와락 덮쳐들었다. 땀내와 술내가 메스껍게 확 풍겨왔다.    “아야, 찬 몸으로 왜 이리 성급해?”     허나 춘실은 인차 자기 남편보다 더 무거운 억대우라는 걸 알고 이상해했다. 머리를 만져보니 번대머리 아니겠는가.    “아니, 주인어른?!”    “쉿!"”    “양반어른이? 소리지를래!”    길수는 황망히 넉가래손으로 춘실의 입을 틀어막았다.     “소리 질러 봐라. 응삼이 아는 날엔 네년 살아남겠구나. 난 응삼을 우리 집에서 쫓아내면 그만이야."    그 소리에 춘실의 입이 꽁꽁 닫혀버렸다.    길수는 시름놓고 춘실의 속옷을 와락 벗겨버렸다.    "고분고분 말 들어. 길거리에서 굶어죽는 걸 데려다 키워줬으면 은혜를 보답할줄도 알아야지. 안 그래? 더러워질대로 다 더러워진 년한테 누가 열녀비라도 세워줄 거 같아?”    춘실은 팔다리를 바둥거리며 발악하다가 맥을 버리고 구슬픈 눈물을 볼에 주르르 흘렸다. 하신에 불에 단 절구공이 같은 것이 아프게 들어왔다. 뒤이어 쨍 아파나게 들쑤시는 것이었다. 춘실은 두 손으로 길수의 털이 부숭부숭한 몸뚱아리를 마구 올리 떠밀다가 손을 활 놓았다. 아프더니 점차 진짜 사내 맛이 저리게 부딪쳐 왔던 것이다.    “아우, 아, 아~”    어두운 방 안에는 춘실의 신음소리와 감탄소리가 끝이 없었다…    한참 후 길수는 흐느끼면서 섧게 우는 춘실의 손에 은전 몇 닢을 쥐여 주고 어슬렁어슬렁 나갔다. 문을 덜컥 닫자 춘실은 이불을 들쓰고 더 섧게 울었다. 즐거움은 잠시뿐 서러움이 파도처럼 밀려왔던 것이다.    (천하 사내들이란 다 개 같은 물건 짝이구나. 이모부, 길거리 건달들, 한길수. 다 색마야!)    쟁그랑!    춘실은 길수가 준 더러운 은전을 문 쪽에 홱 던졌다.   (내 어디 기생 년인가? 뭐.)   바깥에서는 눈이 펑펑 쏟아졌다. 그때까지 물동이를 안고 정주간에서 안절부절 하지 못하면서 서있던 은녀는 마루에 올라서는 길수를 보았고 사랑방에서 들려오는 춘실의 구슬픈 울음소리도 들었다.    “에헴, 물동이를 안고 서 있냐? 일찍이 들어가 자거라. 참, 일을 시켜도 분수가 있지.”    길수는 생각는 척 했다.   은녀는 물동이에서 흐르는 물방울을 손바닥으로 쓸어버리면서 길수의 지나친 관심에 몸 둘 바를 모르면서 뒷방에 들어가는 길수의 잔등을 바라보았다.   은녀는 물독마다 물이 꼴딱꼴딱 찬 것을 보고 곁방으로 나가려고 했다.    이때 빠금히 열린 미닫이 틈으로 등불 빛과 함께 두런두런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데 갔댔소? 몸이 이리 차오?”    “예. 저녁에 먹은 게 속탈이 뒷간에 가 앉아있었어요.”    “그래? 나도 속이 좋지 않아서 뒷간에 갔는데. 아니, 저.”    “호호호.”   그들 둘은 서로 거짓말을 한 걸 눈치 챘다. 뒷간은 하나인데 둘 다 이제껏 뒷간에 가 앉아 있었다는 것이 어디 말이나 될 소린가?    은녀는 코를 싸쥐고 터져 나올 것 같은 웃음을 참으면서 정주간을 나서려고 했다.   그런데 길수가 제꺽 화제를 바꿨다.    “은녀란 년이 웬 사내와 사통하려다가 들키게 되니 그 사내와 함께 마름을 쳐 눕히지 않겠소. 그 사내가 허리가 구부정한걸 보니 득호 같더라니까.”    “저런, 세상에.”    미닫이 쫙 열리더니 번들 이마와 함지 엉덩이가 정주간에 뛰쳐나왔다.    “고년이 금방 물독을 안고 여기 서있더니 어디로 갔어? 저기 나가는구나.”    “이년 거기 섯거라!”    길수는 독이 어린 우멍 사기눈을 부릅떴다. 그는 말이발을 사려 물고 씽 달려가 은녀의 치렁치렁한 머리채를 틀어쥐고 내동댕이쳤다. 은녀는 단통 마루에 나가 쓰러졌다.    길수는 끼무라를 깨울까 봐 높이 고함치지는 못하고 발길질만 했다. 암범 같은 월선은 은녀의 머리채를 쥐여 휘둘렀다.    “웬 일입둥?”    처량한 비명소리가 울리는데 영팔이 곁방에서 뛰쳐나왔다.    “저기 쓰러진 응삼을 봐라.”    길수는 물매질하고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손가락으로 눈 바닥에 쓰러진 음삼을 가리켰다.    영팔은 달려가 응삼을 끌어안아 일으켰다.    “마름, 마름!”   그제야 제정신이 들었는지 응삼은 맥없이 눈을 떴다.   “깨났어?”    허위적인 길수는 맨발바람으로 응삼에게 다가가 손을 잡아 일으키고 부축해 마루우로 올라왔다.    “분명 은녀가 어떤 사내와 함께 자넬 치는 걸 내 이 눈으로 보았어. 맞지?”     길수는 자기 쳐 넘기고서도 생사람한테 죄를 들씌워 잡아먹을 작정이었다. 참말로 열매는 자기가 먹고 가시로 남을 찌르는 격이었다.     응삼은 피가 낭자한 머리를 만지면서 중얼거리었다.    “글쎄. 이년을 저기 중문어귀에서 보고 몇 마디 말하는 새에 맞았습니다.”    길수는 영팔을 보고 고래고래 호령했다.     "흉수를 사출해! 꼭 발자국을 남겼을 거야.”     영팔은 순사처럼 응삼이 쓰러졌던 자리로부터 난 발자국들을 살펴보았다.    “금방 우리가 밟은 발자국 위에는 싸락눈이 덮일 수 없지. 다만 흉수의 발자국 위에만 싸락눈이 살짝 덮여 있을 거야.”    길수는 마루에서 신을 찾아 신고 내려와 그럴듯하게 인도해갔다.    “여기, 여기!”    길수는 싸락눈이 살짝 덮인 발자국을 가리켰다. 그 발자국을 따라 가면서 보니 몽둥이 같은 것을 질질 끌고 간 자리가 득호의 방문 앞으로 났다. 확실히 방문 앞에 자루에 피가 질벅하게 묻은 괭이가 있지 않겠는가.    “피 묻은 괭이자루! 분명, 득호 녀석이 응삼을 쳐 눕힌 거야!”    길수는 음흉한 눈길로 영팔을 보면서 쑤군거렸다. 영팔은 납작코를 벌름거리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길수는 득호 방문 앞으로 다가가 이영의 지푸라기가 부스러진 것을 손가락질했다.     "이 지푸라기 봐라."    영팔이 처마 밑을 살피다가 처마 밑에 움쭉 들린 틈새를 발견했다.    그는 손을 쑥 들이밀어 더듬더니 고함쳤다.    “이게 뭐냐?!”   영팔은 뭘 쑥 뽑아냈다.    “은전!”    은전이 등불에 백설같이 빛 뿌렸다.    영팔은 더 지체하지 않고 득호네 방문을 열어 재꼈다. 득호는 바깥에서 떠들썩한 영문을 모르고 주섬주섬 옷을 주어 입다가 영팔의 납작 코와 부딪쳤다.    “너 이놈, 마름을 몽둥이로 쳐 눕혔지?!”   영팔이 득호 팔을 붙잡고 을러멨다.   득호는 잠꼬대 같은 소리를 했다.    “난 나무를 패구 곤해서 쓰러져 쿨쿨 잤소. 건데 누구를 몽둥이로 쳐눕혔다구 그러오? 생똥 같은 소리를 좀 작작 하오.”    득호는 몸채 앞에까지 끌려나왔다.   길수는 득호 코 앞에 대고 삿대질했다.   “난 네놈이 응삼을 쳐 눕히는 걸 똑똑히 보았다. 거 괭이하구 은전을 여기 가져오너라.”    영팔이 피 묻은 괭이와 은전을 가져왔다.    “응삼이, 이 은전을 보게나. 이게 자네 게 맞는가?”    응삼은 머리를 싸쥐고 은전을 여겨보더니 머리를 끄덕이면서 득호를 노려보았다.    영팔은 응삼에게서 눈길을 득호에게 돌렸다.    “그래도 승인하지 않겠는가? 물증이 나왔는데. 응삼의 은전 세잎이 어떻게 돼 자네 처마 밑에 감춰졌어? 이 피 묻은 괭이도 네 방 앞에 있지 않았어? 발자국두 분명 네 방 앞으로  났구.”    득호는 억울하여 눈이 풀풀 흩날리는 하늘만 쳐다보면서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웬 날벼락인가? 억울해 죽겠다. 씨, 곤해 잤는데 왜 생똥 같은 죄를 들씌움둥?”    “분명 저 허리구부정한 놈이 몽둥이로 우리 집 마름을 쳐 눕히는 걸 보았다. 은녀, 말해봐. 저 놈과 짜고 들었지?”    은녀는 월선에게 머리채를 틀어 쥐인 채 머리를 쳐들고 말했다.    “난 물을 긷고 돌아오면서 마름을 보았지 득호 오빠는 본적두 없습구마.”    찰싹!    영팔은 은녀의 볼에 한대 안기고 은녀와 득호에게 삿대질하면서 고래고래 고함쳤다.    “어째, 매우 맞아봐야 실토정하겠냐?"   길수는 영팔과 수길의 귀에 번갈아대고 끼무라 국장을 깨울까봐 득호와 은녀를 대문밖에 끌고나가 매우 치라고 귀속 말로 쑤군거리었다.    죄 없는 득호와 은녀는 대문 밖에 끌리어나가 언 눈 바닥에 엎드려 억울한 매를 맞았다. 세상에 이런 무함이 어디 있는가? 죄는 누가 짓고 매는 누가 맞는단 말인가?   매를 맞던 득호는 옆에서 방망이에 볼기짝을 맞는 은녀가 불쌍해 손을 쳐들며 고함쳤다.    “그만! 내 혼자 마름을 쳤소. 은녀하구는 관계없소.”    영팔과 수길은 매를 멈추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래, 진작 죄를 실토정할게지.”     “매나 덜 맞지. 흥!”    영팔과 수길은 개 잡은 포수처럼 우쭐거리면서 득호와 은녀를 끌고 집으로 들어왔다.   하늘에서는 아직도 어둠 속으로 눈을 펑펑 내리쏟아부었다. 어둠은 백설같이 흰 대지를 어둡게 감싸 안으려고 억지를 부렸다.
1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36) 눈물 겨운 머슴살이 김장혁 댓글:  조회:246  추천:0  2024-04-05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제5장                 4. 눈물겨운 머슴살이           푸실푸실 내리는 눈발 속에 토성 안 집 춤판이 어수선하게 끝났다. 콧수염쟁이도 일본 기생년들이 모두 녹작지근해 춤판에서 비틀거리며 물러나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북장고소리가 멎고 대나무피리 소리도 잠을 잤다. 울안에는 광솔불이 활활 타오르며 주정배들의 떠들썩하던 미친 소리 빈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월선은 펑퍼짐한 엉덩이를 비뚤거리며 마루에 나가 앙칼진 목소리로 고래고래 고함쳤다.      “득호! ”     “예꾸마!”    득호가 허리를 구부정하고 마루 앞에 뛰어와 딱 멈춰 섰다.    “넌 무슨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니? 마당을 어떻게 쓸었으면 일본 귀빈이 미끄러져 넘어졌겠느냐? 일본 어른이 래일 일어나지 못하는 날엔 네 목이 날아나지 않는가 봐라.”     "아이쿠!"     득호는 뒤덜미를 긁적거리면서 두덜거렸다.     “아니, 술에 취해 자기절로 미끄러졌구만두.  흥, 하나 밖에 없는 목을 치면 어떻게 합둥?”    월선은 빗자루를 들고 버선발 바람으로 마루에서 뛰여내려와 득호를 마구 때렸다.     “이 놈, 네놈 믿다간 한지에 방아를 걸겠다.”     득호는 머리를 싸쥐고 피했다.     “아니, 가마니를 쪽 깐 마당에서 미끄러져 넘어진 게 누구 탓입둥? 막걸리를 배때 터지게 처먹고 너덜대다가 넘어갔는데두 내 탓입둥?”     월선은 득호를 따라가면서 조겨댔다.     “이 놈아, 이 놈, 전번엔 마차를 운주하에 처박더니. 흥! 이번엔 일본 어른신님을 넘어지게 하잖았나? 엉? 이 놈아, 일본 어르신님이 상하는 날엔 널 놔둘 것 같니? 엉? 엉? ”     월선은 숨이 차 헐떡거리면서 빗자루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빨리 마당을 말끔히 치워라. 눈 내린다.”     월선은 은녀가 부엌에서 부엌녀와 함께 설거지를 하는 것을 알면서도 불러냈다.     “은녀야, 여기 나오나.”     “얘-”     은녀가 앞치마에 손을 닦으면서 달려 나오자 월선은 책망부터 앞섰다.     “‘얘’는 무슨 얘나? 말버릇부터 고치라는데도.”     은녀는 혀를 홀랑 내밀면서 머리를 수깃했다.     “내일 아침 물을 물 독에 꼴딱 길어라. 이 집에 들어온 지 이젠 몇달 되는데 아직도 뭘 시켜야 하겠니? 자기절로 척척 해야지.”     “알았습구마.”    은녀는 두말없이 물동이를 안고 풀풀 흩날리는 눈을 밟으면서 대문 쪽으로 나갔다.    등뒤에서 월선의 귀 째질듯한 고함소리가 이어졌다.    “물독을 깨겠다. 주의해.”     “예.”    (먹을 땐 개 닭 보듯하다가도 저녁도 먹지 못한 은녀를 밤중에 물을 긷게 하다니? 한심한 년이라구야.)   득호는 마당에 깐 멍석을 왈왈 거두면서 속으로 월선을 욕했다. 그는 널린 종이까지 걷어 낸 후 눈을 빠득빠득 밟으면서 마당의 눈을 쓱쓱 쓸었다.    아무리 밤중까지 눈을 쓸고 또 쓸어도 하늘에서 푸실푸실 쏟아져내리는 눈을 어찌는 수가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득호는 빗자루를 쥐어뿌리고 대문 밖으로 나갔다.    (눈이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에 은녀 어떻게 물을 긷겠니?)    득호가 뒤따라 가보니 저쪽 우물가에서 드레박을 잣는 소리가 삐꺼덕 삐꺼덕 들리었다. 뒤이어 드레박의 물을 물동이에 쪽 붓는 소리가 들리고 허연 그림자우에 꺼먼 물동이를 올려놓는 것이 보였다. 득호는 가까이 다가갔다. 그때 은녀가 비칠거리다가 우물가의 얼음에 미끄러져 넘어갈 번했다.    득호는 바삐 은녀를 부축하면서 물동이를 붙잡았다. 그는 은녀의 머리 우에 놓인 물동이를 내리워 안고 앞에서 씨엉씨엉 집 쪽으로 걸어갔다.    “오빠, 괜히 암펌이 보면 욕 먹겠소.”    은녀는 치마폭을 걷어안고 득호를 뒤따라 부랴부랴 대문 안에 들어섰다.    범이 자기 흉을 하면 온다고 몸채에서 나온 월선은 은녀의 물동이를 안고 대문 안에 들어서는 득호와 그 뒤를 따르는 은녀를 보고 앙칼진 목소리로 고함쳤다.    “아니, 득호, 마당을 쓸어라 하였지. 물을 길으라고 하였나? 꼴 보기 좋다. 그래 계집애를 뒤쫓아 다닌다고 바보가 장가갈 것 같냐?”    은녀는 바삐 득호의 손에서 물동이를 빼앗아 이고 부랴부랴 정주간으로 들어갔다.    득호는 뒤따라가면서 월선이쪽에 대고 입을 비쭉거렸다.    “패놓은 장작이 산더미 같은데 또 패라고? 암펌 같은게. 씨, 주둥이만 벌리면 마당을 쓸어라, 장작을 패라, 잔소리 끝이 없네. 이거 못 살겠다.”     월선은 득호의 잔등에 대고 삿대질하면서 고래고래 고함쳤다.     “뭣이 어찌구 어째? 꼽싹 꼽싹 들을 거지, 뭣이 어쩌고 어째? 그래 두지 같은 배에 공밥을 채우겠냐?”     그래도 뭐라고 투덜거리는 득호를 보고 월선은 곁방에 대고 소리쳤다.     “영팔아, 영팔씨!”    영팔이 바지멀춤을 쥐고 달려나와 가달두새를 긁적거렸다.    “왜 그랩둥?”   “초저녁부터 벌써 기생 년을 끼고 자겠나? 저 득호를 호되게 족쳐라!”     영팔은 득호를 노려보다가 월선을 보고 헤벌쭉 웃었다.    “숱한 손님들이 왔는데 방망이찜질까지 할 필요 있습둥? 집이 조용할 때 다시 버릇을 가르쳐주면 어떤가요?”    월선은 살기등등해 고함쳤다.    “너를 곱다고 숱한 돈을 먹여 길렀냐? 저런 놈을 매우 치지 못할가?”     영팔은 시어미 역정에 개 배때기를 차는 격으로 사랑방에 달려가 방망이를 들고 씽 달아나왔다. 그는 다짜고짜로 득호를 땅바닥에 개구리 메치듯 메쳐놓고 사정없이 방망이찜질을 해댔다. 투닥 투닥 방망이로 득호를 패는 소리 과부 집 떵메질 소리 같고 빨래터의 방치 질 소리 같기도 하다. 아니, 방망이로 다듬이돌우의 이불등을 다듬는 소리 같았다.     은녀가 물동이를 팔에 끼고 나오다가 그 광경을 차마 볼수 없어 "앗!" 비명소리를 내며 입술 속에 손가락을 넣고 깨물었다.     “요년, 넌 물을 긷지 않고 뭘 해?”    월선은 득호를 자기 손으로 때리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운지 은녀의 머리채를 틀어쥐고 휘두르면서 살진 손을 날려 귀썀을 챨싹 갈겼다. 머리채를 놓고 또 귀썀을 힘껏 쳤다. 은녀가 주춤하다가 뒤로 살짝 물러섰다. 월선은 지나치게 힘을 쓴 바람에 휘청거리다가 그만 마루에서 반 고패를 돌다가 마루 아래로 뚝 떨어졌다. 언 땅에 엉덩방아를 찧었는데 신짝마저 저 멀리 뿌리어 나가 상통이 가소롭기를 그지없었다.     떠들썩하는 소리에 구경나왔던 일본과 조선 기생 년들이 코를 싸쥐고 웃어댔다.     “바까 새끼, 다렝아 고찌라데 다까꾸 사껜다까?(누가 여기서 고래고래 고함쳐?)”    끼무라가 취해 뻐드려져 있다가 벌떡 일어나 비틀거리면서 마루에 나왔다. 그는 콧수염을 슬슬 매만지면서 사위를 둘러보더니 이상한 빛이 번쩍이는 눈알을 무섭게 부라리면서 꽥 고함쳤다.    한길수는 깜짝 놀라 아래방에서 마루에 뛰쳐 나왔다. 그는 끼무라의 무서운 눈길과 은녀의 머리채를 틀어쥐고 행악질하며 물앉아 있는 월선이를 번갈아보다가 월선에게 다가가 타일렀다.    “여보, 숱한 일본 손님들 앞에서 이게 뭐요? 집안 허물내메. 흥!”    월선은 은녀의 머리채를 더 힘껏 내동댕이치더니 어린애처럼 발버둥질 쳤다.    “년놈들, 잘도 놀아댄다. 이젠 숱한 사람들앞에서 요년의 역성까지 들어? 내 섧어서 어떻게 살아? 어, 헝.”    끼무라는 몸을 부르르 떨더니 추운지 고개를 돌려 들어가면서 대가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한길수는 끼무라를 따라 윗방에 들어가 바깥을 가리키면서 막걸리를 마시는 시늉을 하고 손으로 너무 많이 마셨다고 배를 가리키면서 손시늉을 했다.     그런데 눈치 빠른 끼무라는 자기를 많이 마셨다고 말한다고 피씩 웃었다.     한길수는 다시 마루아래 쓰러진 은녀 앞에 다가가 볼품없이 헝클어진 은녀 머리를 쓸어올려주며 나직이 말했다.     “밤도 깊었는데 이젠 물을 그만 길어라. 좀 있다가 끼무라 발이나 씻어드려라.”     그때까지 옆에 물앉아 발버둥질치며 엉엉 울던 월선은 은녀를 쏘아보면서 을러멨다.    “물 길으러 가지 못하겠냐?”    그런데 한길수의 고함소리 하늘땅을 진감했다.     “발을 씻어줘라!”     은녀는 두 손을 모아 쥐고 입에 대고 어쨌으면 좋을지 몰라 길수와 월선을 번갈아보았다.    길수는 월선을 쏘아보며 고함쳤다.    “옳다, 은녀는 물 길으러 가구. 당신이나 끼무라 발을 씻어주오.”     월선은 억이 막혀 입을 쫙 벌리었다가 천천히 다물더니 길수의 번대 머리에 대고 삿대질했다.    “옳다, 여편네라두 종처럼 팔아서 일본 졸개나 해 처먹어라. 원, 못난 영감이라구야. 쳇!”    길수는 황급히 웃방과 사랑방을 둘러보다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끼 국장님이 알아듣지 못하는 게 다행이다. 에구, 이년을 어쩌겠냐?”     길수는 어린애 달래듯이 월선의 두 손을 잡아 끌어당기며 일으켰다. 월선은 영감을 못이기는 척하면서 아래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월선은 아래방문을 활 열고 머리를 내밀더니 방망이를 쥐고 떡 서있는 영팔에게 고래고래 고함쳤다.     “거기서 뭘해? 득호 그놈을 매우 치지 못하구.”     그제야 영팔은 꿈에서 깨여난듯이 방망이로 득호를 때리는 시늉했다. 월선이가 들어가자 영팔은 방망이를 홱 팽개치고 두덜거렸다.     “밤중까지 이 놈 종노릇을 못해먹겠다.”     영팔이 득호를 놓아주고 기생 뽕녀가 기다리는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그제야 득호는 눈을 털고 일어나 외딴 사랑채로 들어갔다. 은녀는 득호를 측은한 눈길로 바라보다가 물동이를 정주방으로 들여갔다.      그는 사랑채 제일 작은 칸으로 들어가 누더기 이불을 쿡 쓰고 드러누워 흑흑 흐느껴 울었다. 순간 그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립고 멀리 사라진 성칠 오빠가 그리워났고 남동생 상호가 그리워났다. 그럴수록 더욱 슬프게 흑흑 흐느끼면서 울었다.      눈물이 하염없이 입귀에 흘러내렸다가 베개잇을 적셨다. 칠칠야밤에 어두컴컴한 사랑방에서는 은녀의 섧게 우는 소리와 흐느낌소리가 가냘프게 들릴 뿐이었다. 은녀는 울면서 짜개바람이 불어 손가락을 주물렀다.     벙어리 속은 벙어리가 안다고 득호는 은녀 처지에 마음이 미여지는 것 같았다. 그는 은녀를 어떻게 위안하였으면 좋을지 몰라 벽을 하나 사이 두고 서성거리면서 벙어리 냉가슴 앓듯 했다.     이때 은녀가 우는 방문이 벌컥 열리면서 문고락지 다치는 소리 떨꺼덩 들렸다.     “누구요?”      은녀는 황급히 어두운 방에 들어선 검은 그림자에게 물었다.     “영팔이다.”     “한밤중에 무슨 일이요? 나가오.”     “먹을 거 가져왔다.”     “필요 없소. 나가오.”    “이건 주인영감이 보낸 거야. 배 든든하게 먹어라.”    영팔은 구들 목에 뭔가 내려놓고 나가면서 두덜거렸다.     “언 감자 같은 년을 첩으로 들여앉힐 예산인가? 한밤중에 자지도 못하게 나까지 심부름시켜? 흥!”     영팔이 문을 닫는 소리가 들리였다. 뒤이어 눈을 빠드득빠드득 밟는 소리가 멀어져갔다. 은녀는 한숨을 호 내쉬었다.      이윽고 은녀는 누더기 이불속에서 나와 영팔이 가져온 것이 뭔가 기여가 손 더듬질 해보았다. 구수한 냄새와 함께 맞 덮은 그릇이 몇 개 만지었다.      점심부터 먹지 못한 은녀는 숟가락을 쥐고 몇숟가락 퍼먹다가 속으로 먹어서는 빚을 진 것 같아 안 되겠다 싶어서 숟가락을 내리어놓았다.     “은녀야, 여기 나오너라.”     월선이 부르는 소리.     월선은 하루 종일 눈을 감기 전에는 함지 같은 입을 다물지 않았다. 그 심부름을 시키는 앙칼진 소리 온 울안에 우박 치듯 쏟아졌다.       은녀는 간신히 일어나다가 눈앞이 아찔해나면서 불티가 반짝였다. 하긴 수십명의 음식을 마련하느라고 쓴 물을 혼자 추운 겨울에 한 동이 한 동이 길었으니 소 힘이라도 지치지 않을 수 없었다.      은녀는 안간힘을 다해 방바닥 쪽으로 벌벌 기여가 짚신을 찾아 신고 문설주를 잡고 간신히 일어나 비실비실 문 밖으로 나섰다.      밤송이 같은 눈송이가 성미도 급하게 펑펑 쏟아져 내렸다. 울 안에 쓸쓸하게 한 많은 세상을 뒤덮어버릴듯 하얀 눈이 한겹한겹 하얀 이불을 깔리고 있었다.      은녀가 정주간에 들어서니 등불 아래 수건으로 머리를 질끈 동인 월선이가 옆구리에 두손을 지른 월선이 콤파스처럼 두 다리를 쩍 벌리고 서 있었다.     “부른지 언젠데 왜 이제야 나와? 얼른 윗방에 들어가 끼무라 국장님의 발을 씻어드려라.”     “예?”     “얼른, 왜 그리 꾸물거려?”     은녀는 설거지를 하는 부엌여를 힐끔 곁눈질해보았다. 부엌여는 별수 없으니 어서 가라고 머리를 끄덕여보이며 눈짓했다. 은녀는 할 수 없이 풍로에 끓여두었던 물을 함지에 퍼들고 윗방으로 올라갔다.    은녀가 미닫이문을 사르르 열고 윗방 안에 들어서니 끼무라와 월향이 껴안고 코를 드렁드렁 구르고 있었다. 치마 바람에 드러누운 월향의 새하얀 허벅다리가 흘러내린 치마 밑으로 드러났다.     은녀가 물함지를 끼무라의 발치에 내려놓고 조심스레 각반을 풀기 시작했다.      “바까(바보)!”      갑자기 끼무라가 고함치면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는 본능적으로 벽에 기대여 세워놓았던 군도를 쥐였다. 그는 은녀를 가슴츠레한 눈으로 노려보았다. 은녀는 화뜰 놀라 뒤로 물앉으면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끼무라는 세수 대야와 은녀의 수척한 얼굴을 번갈아보더니 군도를 스르르 놓았다.      흉악한 눈길이 차츰 음충스런 눈길로 변하면서 은녀의 탄탄한 몸을 노려보았다. 청춘의 싱싱한 매력을 풍기는  봉긋한 점 가슴, 누더기 치마에 가려진 허벅다리...      "오, 우쯔꾸씨이 무스메(예쁜 처녀구나.)"    끼무라는 싹아 떨어진 이발 새로 금 이발을 드러내며 은녀의 손을 잡으면서 색마의 본성을 드러냈다.    “놓읍소. 발을 씻어 드리겠습구마.”     은녀는 움추린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손을 빼내려고 안간힘을 다 썼다.     “뭘 놓으라?”     이때 길수가 윗방 문을 쭉 열고 들어왔다.     끼무라는 이젠 제법 조선말도 섞어 지껄였다.     “헤헤헤, 발을 씻으라고, 시켰소까.”     끼무라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면서 코 수염 밑에 웃음을 지었으나 눈에는 아직도 아쉬움이 미친 듯이 스치고 있었다.    “난 또, 이년이 혹시 국장님을 해치려나 해서. 에헴, 헴.”    끼무라는 뭐라는지 알아듣지 못하면서도 “요로씨이, 요로씨이.” 하고 연신 헛 대답을 했다.     길수는 은녀에게 머리를 돌리더니 당부했다.    “끼국장님이 곤할 텐데 꾸물거리지 말고 얼른 발을 씻어주고 나가라.”     “얘.”     은녀는 길수 영감이 요때 방에 들어온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바삐 끼무라의 각반을 풀고 양말을 벗긴 후 살진 발을 대야에 넣고 씻어주었다.    끼무라는 눈을 지그시 감고 연신 “요로씨이, 요로씨이.” 하고 감탄했다.    은녀는 발을 다 씻은 후 물 함지를 들고 부엌간으로 나갔다.     그때까지 은녀의 봉긋한 젖가슴이며 펑퍼짐한 엉덩이에 눈 뿌리를 박고 있던 끼무라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이 입을 헤벌리더니 닭알 침을 꿀꺽 삼키면서 입마저 다시였다.    끼무라는 그때까지 옆에 우두커니 서있던 길수를 쳐다보면서 “저건 웬 새애기냐?” 하고 넌지시 물었다.    “예, 우리 집 부엌데기 은녀라는 계집앱죠.”    “오.”    끼무라는 색마의 눈알을 희번뜩거리더니 길수를 게슴츠레 바라보며 헤벌쭉 웃었다.    "내, 당신 사위하면 어떻소?“     "네?"    끼무라의 정신나간 소리에 한길수는 우멍눈이 다 튀여나올 지경이였다.    "무슨 말씀이신지?"     그때 월향이 깨여나면서 도도도 거리었다.     “밤중에 무슨 뉘네 사위한다고 이래요? 호호호. 촌수 개판이구먼. ㅎㅎㅎ. 소 웃다가 꾸러미 터질 일인데요. 국장이란 녀석이 우리 집 머슴여를 욕심내 사위 하겠다잖아? 호호호.”     길수도 월향의 말에 코를 싸쥐고 우멍 눈에 간교한 웃음을 지었다.     길수와 월향을 힐끔힐끔 번갈아보던 끼무라 국장은 취김에 그런 실수를 하고 너무나 창피해 비단요우에 스르르 너부러지더니 자는척했다.     집 안에는 살진 돼지 콧수염쟁이 코고는 소리 드렁드렁 구들 고래를 다 훑어가며 요란했다.     드르릉, 드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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