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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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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사막의 마라토너 김장혁 댓글:  조회:619  추천:0  2023-12-29
                          사막의 마라토너                                     김장혁     나는 사막과도 같은 문학권에서 장장 50년 동안 파란만장한 문학창작의 외나무다리 길에 들어서서 상처도 많이 입었고 곡절도 많이 겪었다. 또 그만큼 한도 많았다. 그래 정녕 가슴에 한이 맺혀야 글을 쓸 수 있는가?     나는 한 맺힌 가슴의 상처를 매만지면서 사막의 모래바람을 무릅쓰고 한편, 또 한편의 글을 쓰면서 외롭게 한걸음, 한걸음 힘겹게 앞으로, 앞으로 걸어나갔다.     원래 나는 일찍 조선 궁정어의를 지낸 고조부와 증조부의 의술을 물려받아 아픈 사람의 병을 치료해주고 죽는 사람을 구하는 착한 의사로 되려는 꿈을 꾸었다. 대학시험을 치기 전까지도 지망을 연변의학원에 썼지만 불행하게도 색망이여서 어린 시절의 의사 꿈을 접고 청년시절의 꿈인 문학을 지향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러나 나는 문학의 사막에서 매냥 마라톤을 해야만 한 숙명적인 리상개변을 후회하지 않는다. 비록 문학이란 사막에 들어서서 별의별 고생을 다 했지만 오히려 민족을 위해, 인류의 정신세계를 개조하고 정신재부를 창조하는 문학창작사업에 한생을 바치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더욱 보람찼다고 생각한다.      나는 고중에 입학한 후 김재권, 김설봉, 김철환, 김진산, 리광평 등 계몽은사님들의 가르침을 받아 점차 기자와 작가로 되려는 푸른 꿈을 꾸게 되였다. 대학에서 문학개론을 공부하면서 김만석교수님의 아동문학강의도 귀동냥해 들은 후부터 나는 곡절도 많았던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고 장편아동소설을 쓰려는 강한 충동을 받았다. 그리하여 나는 대학교 시절에 나는 장편아동소설 "려명전야의 샛별"를 쓴 적이 있다. 그때 허룡구교수와 최문식 교수는 내 습작소설을 읽어보고 잘 다듬으면 성공할 수 있는 소설이라고 힘을 북돋아주었다. 그러나 출판사에서는 1979년도 그때까지 전례없는 장편아동소설을 한 문학애숭이에 의해 출판하긴 이르다고 사형선고를 내렸다. 그러나 나는 그  미발표작 장편아동소설 원고를 버리지 않고 35년 동안이나 보관해두었다가 대하소설 "제 6권과 제 7권에 나눠 삽입하여 끝내 발표하였다.     대학을 졸업한 후부터 외람되게 외나무 다리를 건너 사막에서 작가의 수업을 시작하게 됐다.      나는 문학창작의 길이 어려운 사막에서의 외로운 마라톤인줄은 몰랐다.     나는 풍파도 많고 곡절적인 인생길에 질투와 무함, 상처를 받을 때마다 이를 악물고 상처를 매만지면서 교훈을 섭취하고 아픔을 원동력으로 삼아 한편, 또 한편의 글을 써냈다.     고중시절에 당시 조양공사 당위 선전위원으로 계신 김철환선생님과 방송소 소장으로 계신 리광평선생님 그리고 고중 어문교원 김진산선생님을 모시고 신문과 방송에 두부모만한 글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일로 해 “글을 써서 이름을 날리려는 야심가”라는지, “독서벼슬론”의 류독이 깊은 학생이라는지 별의별 모자를 다 쓰고 억울하게 고중을 졸업할 때까지 질투와 무함에 의해 입단도 하지 못하였다.    1976년에 억울함을 한 가슴 품은 채 귀향한 후 나는 당시 조양공사 문화소 소장으로 계신 김재권선생님을 문학스승으로 모시고 수많은 소설책을 읽고 문학에 어섯눈을 뜨기 시작하였고 민담정리와 소설창작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밭에 나가 일할 때도 김재권선생과 김철환, 김설봉 등 선생님들이 빌려준 누런 소설책을 호주머니에 넣고 가서 가물에 물을 만난 사람처럼 쉼시간이면 웃고 떠드는 농사군들을 피해 물도랑이거나 눈두렁에 숨어 책을 읽었다. 나는 소몰이군으로 산야를 달아다니면서도 책을 가지고 다니면서 가물에 물을 만난 사람처럼 소설책을 읽었다. 일부 무식한 사람들은 나를 두고 빈하중농의 재교육을 잘 받지 않는다는지, 빈농의 아들인데 농촌에 뿌리박고 새 농촌을 건설하려 하지 않는다는지 이러쿵저러쿵 하면서 헐뜯어댔다. 그러건 말건 나는 고된 농사일에 지쳐도 밤이면 독서와 창작을 멈추지 않았다. 대학입시가 회복돼도 입시복습마저 마음놓고 할 수 없어 저수지공지에서 도망쳐 외지 큰누나네 집에 가서 숨어 공부하지 않으면 안됐다.     나는 대학을 졸업한 후 현문화관에 들어가려던 최저한도의 희망마저 물거품이 되여 중학교에 가서 코흘리개들을 마주 했을 때 절망에 빠지고 말았다.     그때 룡정시 문련 주석으로 계신 김재권선생님은 나를 불러놓고 힘을 실어주었다.     “딱 문화관에 들어가야만 문학창작을 할 수 있느냐? 교원사업을 하면서도 얼마든지 문학창작을 할 수 있다.”     그 말씀에 삶의 용기를 얻고 절망에서 간신히 헤쳐나온 나는 그때부터 룡정시 문화관 원로작가들인 김재권, 리태수, 황병락 등 선생님들을 모시고 “보름회”라는 문학단체에 다니면서 문학창작수업을 하였다.그런데 소속 중학교 일부 책임자들은 “교수연구를 하지 않으면서 자기 글만 쓴다.”고 비평하면서 글을 쓰지 못한다고 제한했다. 이는 작가를 꿈꾸는 나의 문학생명을 짓밟는 조폭한 간섭과 더러운 수작이 아니고 뭔가? 비록 생물로서의 목숨은 붙어 있어도 작가로서의 령혼과 생명은 죽고 말것이 아닌가. 문학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없는 세상은 곧 지옥에서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나는 그제야 알것 같았다, 창작자유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아니, 민주와 자유가 없으면 얼마나 암담한가를!     나는 물 한모금도 없고 불볕이 홧홧 달아오는 사막에서 마라톤 달리기를 잠간 멈추고 애어린 문학생명을 살려내려고 무등 모지름을 쓰지 않으면 안됐다. 교편을 잡고 합법적으로 문학창작을 해나기 위해 나는 담임교원 사업에 눈코뜰새 없으면서도 초중과외작문써클 지도교원을 주동적으로 맡고 수많은 학생작문을 지도해 신문과 잡지에 발표하였다. 학생들은 주와 성, 전국급 여러가지 작문콩쿠르에서 우수중학생작문상을 수두룩이 안아왔다. 그때 학생들 속에서 수많은 대학생들이 배출됐으며 그들 속에는 오늘날의 대학교 학원 원장, 교수, 박사, 이름난 가수, 성악교수도 있으며 중국조선족문단의 어마어마한 작가도 있다. 나는 그들의 지명도가 너무 높아서 줄곧 내 입으로 학생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마치 그들의 지명도를 빌어 후광을 보려고 하는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오히려 그들은 언제나 나를 스승이라고 널리 외우고 있다. 인간수양을 제대로 닦은 그들이 장하기만 하다. 당시 나도 수차 교육잡지사와 전주 교육론문발표회에서 우수작문지도교원상과 우수작문지도론문상을 탔으며 학교에서 우수담임교원상도 탔다. 짤막한 소설도 신문과 잡지에 륙속 발표했다. 학교 책임자들과 교원들은 전교 교원성과전시회 때 전시된 나의 수두룩한 작품과 전주 우수교연론문상 그리고 학생들의 작문과 상장들을 둘러보고 나의 작문지도교수사업을 충분히 긍정했다. 나는 그때라고 나는 “교원이 글을 잘 써야 학생작문을 잘 지도할 수 있다.”, “글짓기에서 사로개척의 예술수법” 등 교수론문을 써서 여론조성을 했다. 기실 “교원이 글을 잘 써야 학생작문을 더 잘 지도할 수 있다.”는 것은 어문교원으로서의 간단한 상식이지 그 무슨 철리가 아니다. 더욱이는 대서특필할 론문거리도 아니였다. 그러나 나는 아주 힘들게 따낸 작문지도 성과로 그 간단한 상식적인 도리를 증명하고 내가 과외로 문학창작을 하는 것을 합법화해야만 하였다. 나중에 학교에서는 나를 보고 전주교수연구론문회의에서 우수상을 탄 교수론문을 전교 년말총화회의에서교류하게 하였다.     그후부터 학교와 조선어문교연실에서 더는 나의 과외창작을 막지 않았다. 오히려 후에 부임돼온 주천을 교장과 유재환 교장은 나에게 고중교수와 전교 작문써글 지도교원을 맡기고 나의 문학창작을 지지해주었으며 어문교연실 교원들에게 문학창작활동을 폭넓게 벌릴 것을 호소하였다. 문학창작 연성환경을 마련한 후 나는 다시 용기를 얻고 퇴근한 후 세집에서 밥상을 놓고 곤한 눈을 집어뜯으면서 한편, 또 한편의 글을 써냈다. 그러나 작품은 써놓아도 발표하기는 아주 힘들었다. 중편련정소설 “사랑환상곡"은 지금 다시 읽어봐도 괜찮은 예술작품인 것 같다. 나는 소설원고를 가지고 숱한 잡시사를 찾아다녔고 편집들이 제기한 수개요구대로 16번이나 수개했다. 진짜 그 두툼하고 부동한 내용으로 된 수개원고로 전람회라도 열만 하였다. 하지만 그 중편소설은 국내에서 끝내 발표되지 못했다. 20년이 지난 후 나의 그 소설은 중단편소설수필집 "사랑환상곡"에 수록돼 한국에서 출판돼 한국에서도 제일 큰 서점인 교보문고에서 버젓이 팔렸다. 지금도 컴퓨터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나의 그 소설집 판매광고를 찾아볼 수 있다.    몇십년이 지난 후 결과가 보여주다싶이 작품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소설이 당시 편집들의 눈에 들지 못한 것 밖에 없다. 내 작품이 명작이라고는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한점만은 짚어놓고 지나가고 싶다. 편집은 명작가를 키울 수도 있고 명작을 죽일 수도 있다. 편집은 편집 도덕과 량심을 지켜야 한다. 작자의 문단서렬이나 권세와 면목을 보고 작품을 살생하면 한 작가에게, 아니,  문학사에 죄를 짓게 된다.      그 소설을 국내 편집부에서 퇴고를 맞은 그날 나는 뻐스를 타고 모아산 고개를 넘어 룡정에 돌아오면서 절망에 빠졌다. 필을 꺾으려고까지 했다. 나는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면서 발표되지 못한 그 소설 원고를 한장 한장 찢어 차창 밖으로 날려 보냈다. 이런 일은 기수부지이다. 35년 전 교원시절에 발표하지 못했던 문예평론 “리근전의 소설 ‘고난의 년대’에서 력사반영의 예술특징”은 한글자도 고치지 않았지만 그 잡지사 편집과 주필이 바뀌자 딱 그 잡지에 발표됐다. 그때 편집권세의 문턱이 얼마나 높은가를 실감했으며 편집이라면 문학초보를 살려내기 위해서 어떻게 원고를 처리해야 하겠가하는, 편집의 직업도덕과 좌우명, 원칙도 깨닫게 되였다.     당시 나는 작품 발표가 좌절될 때마나 너무 애나 몇번이고 필을 꺽으려고 했다. 그때마다 김재권 선생님과 리태수 선생님이 계속 창작용기를 북돋아 주군 하였다. 그 덕분에 나는 완강한 의지로 문학창작에 달라붙었다. 지난 세기 80년대 초 교원시절에 나는 당시 "천지"잡지사 부총편 조성희, 료녕성 "새마을"잡지사 주필 전정환, 연변일보사 문예부 주임 리임원과 허봉남선생, "별나라" 편집부 주임 최문섭과 허호범, 허춘희, 리태학 등  편집선생님들, "청년생활"편집부 황기철주필과 김철환 부주필 등 선생님들의 방조하에 단편소설 “의심병 후유증”, “재수령감”, “꿈많은 향화”, 실화"참된 삶", 실화 "백만장자의 길" 등 수두룩한 작품을  “천지”, “연변일보”, “별나라” , "청년생활". "새 마을" 등 잡지와 신문에 발표하였다.     나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훌륭한 문학창작 환경을 마련하려고 무려 15년 동안이나 또 전근마라톤을 해야 했다.  나는 천방백계로 노력해 연길시병원에 안해를 먼저 전근시키고 김철환, 김재권선생님의 방조하에 끝내 모아산 열두 아리랑고개를 넘어 연길에 들어와 청소년 시절의 꿈대로 연변인민방송국 당당한 기자로 되여 맹활약하게 됐다.     1988년부터 1996년까지 연변인민방송국 기자로 활약하는 한편  당시 연변인민출판사 부총편 리성권선생의 방조하에 연변인민출판사 특약편집으로 되여 아리랑에 실화 "중국조선족의학교육의 창시자 정규창교수"를 비롯한 실화 10여편을 문예총서 "아리랑"에 발표했다. 또 조성희 부총편, 장경숙  부총편과 허영순부총편 등의 방조하에 "천지"와 "연변녀성" 등 잡지에 단편소설이나 수필, 실화 같은 문장을 수두룩이 발표하였다. 그중 실화 "한 골과의사의 길"은 "아리랑문학상"을, 실화 "동북아황금삼각주-훈춘"은 "백두컵문학상"을 받았다. 또 리성권선생과 "천지"잡지사 소설편집부 김창석주임의 방조하에 실화 "동북아황금삼각주- 경신"을 천지에 발표하였다. 그후 신심을 가진 나는 연변인민출판사 김철환 주임의 배려하에 장편실화소설 "3.8선에서 싸우던 나날에"를 펴냈고 당시 연변인민출판사 문예부총편 리성권선생의 배려하에 장편실화 "인민의 훌륭한 법관 록도유"를 펴냈다. 나는 지금도 리성권 부총편은 눈보라치는 엄동설한에 사업이 그렇게 다망하면서도 나를 데리고 왕청에 가서 왕청현법원 록도유 취재를 지도해주던 일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는 사비를 털어 려비에 보태라고 200원을 내 손에 쥐워주기까지 하면서 나의 취재를 지지해주었다.  80년대말 당시 200원은 한달로임이나 되는 목돈이였다. 그는 심장병으로 불행하게 입원해사선을 헤매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자마자 문안을 간 나에게 첫마디로 "네 실화를 내준다던게 하마트면 못낼 번했구나. 그 책을 낼 때도 됐다."하고 말했다. 출원한 후 그는 진설홍 선생한테 위탁해 나의 장편실화 "인민의 훌륭한 법관 록도유"를 한문으로 번역해 출판해 연변중급인민법원과 왕청현당위 선전부의 지지하에 연변주 각급 인민법원과 왕청현 각 향진에 도합 6천부나 발행했다.     방송국에 있을 때 나는 또 연변인민출판사 김철환 주임의 방조하에 장편실화소설 "38선에서 싸우던 나날에"를 냈었다. 림금산 부총편은 이 소설을 "료녕조선문보"에 련재되였으며 문예부 석화 주임은 이 소설을 연변인민방송국에서 2년 동안 련속랑독하게 하였다.     9년 후에 리성권 사장과 최일균 사장의 방조하에 나는 연변인민출판사에 전근해 편집사업을 하게 하였다. 그때로부터 22년 동안 나는 본격적으로 문학창작을 하였으며 창작과 본직사업에서 황금기를 맞이하였다. 물론 사업의 수요로 줄곧 그렇게 하고 싶었던 문예편집을 하지 못해 유감스럽지만 나는 종합간행물 "로년세계", "농가" 등 잡지 주필과 광고사업 그리고 신입편집들 양성 등 과중한 사업을 하면서도 여가에도 부지런히 문학작품을 창작해 창작과 사업의 황금기를 맞이했다.     일부 아동문학작가들은 소년아동들을 대상한 종합간행물 편집으로 갓 나선 나를 두고 “성인문학작가이기에 아동문학을 창작할 줄 모른다.”, "출판사에 온지 1년도 안돼 부주필을 시켜? 뭘 안다고?" 하고 헐뜯었다. 하긴  그 로편집은 나를 헐뜯을만도 했다.  한뉘 편집해도 소조장도 못했으니까.     나는 “성인문학작가인 나도 아동문학작품을 창작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본때를 보이려고 아동소설 창작에 몰입하였다. 나는 공원에 가서 잰내비랑 호랑이랑 노는 걸 구경하면서 어떻게 인간세상의 소설감을 동물로 이인화하여 보여줄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령감에 따라 한편 또 한편의 동화를 써냈다.     그러나 동화 "꼬리 긴 토끼"는  한 로편집에 의해 총살당할 줄이야.     알고 보니 그 로편집은 나를 뒤에서 늘 헐뜯고 있었다.      "네놈이 무슨 아동문학을 안다고 한뉘 아동문학을 한 이 전문가 머리 위에 앉아 주임 행세를 해? 주임이면 다냐? 동화는 그래도 내가 전문가지. 네 놈의 작품을 안내주면 네가 아무리 주임인들 어쩔테야?"    그 로편집은 소인배임에 틀림없었다. 그는 배심을 먹고 내가 애나게 쓴 동화를 깔아둔게 뻔했다.        나는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입었다. 그럴수록 나는 상처 자국을 매만지면서 한편 또 한편의 동화를 써나갔다. 또 교원사업을 할 때 관찰해두었던 학생들을 모델로 애들의 눈높이로 한편 또 한편의 아동소설을 창작해냈다. 총살맞았던 동화 "꼬리 긴 토끼"는 20여년이 지나 김선화 주필(현재 연변작가협회 부주석, 아동문학창작위원회 주임)의 손을 거쳐 잡지에 실렸다.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 "꽃동산"잡지사 주필 리영옥녀사와 "은하수"잡지사 주필 김성우 선생의 지극한 방조에 의해 나는 끝내 2002년에 첫 포로 아동문학작품집 “호랑이와 사냥군”을 출판했다. 그 작품집에는 그 편집이 깔아놓았던 동화 "꼬리 긴 토끼"도 번듯하게 실렸다.     지난해에는 단편과학환상아동소설 "조왕돌 모험기"를 한문으로 번역해 한문잡지 《小小说天池》에 발표하였다. 편집부에서는 나의 과학환상아동소설을 한족 어린이들도 아주 즐겨 본다면서 반응이 꽤나 좋다고 하였다.    나는 민족의 사명감과 의무감을 안고 우리 민족에게 자그마한 기념비라도 세워줘야 하겠다는 의욕 밑에 필승의 신념으로 밤중까지 소설창작에 혼신을 불태웠다. 어떤 때에는 새벽부터 도정신해 글을 쓰다나니 시계를 올려다보고 출근 시간이 돼 짝짝 신을 다 신고 단위로 달려가서 편집들의 웃음거리를 만든 적도 있었다. 토요일과 일요일 휴식일이면 하루에 열 몇 시간씩 컴퓨터에 마주 앉아 까딱하지 않고 글을 수개하다나니 엉덩이에 썩 살이 배기고 부스럼과 종기까지 나서 너무 아파 엉덩이를 들고 쪼그리고 앉거나 가슴에 베개를 받치고 엎드려 글을 쓴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또 창작에 너무 열을 올리다나니 눈이 너무 피곤해 피가 지고 고기가 동공에 씌우기 시작해 수술까지 했다. 그래도 나는 어디로 출장 가든지 핸드 컴퓨터거나 필기장과 필을 가지고 다니면서 소설 창작을 멈추지 않았다. 한번은 인천공항에서 글 쓰기에 도정신 하다나니 그만 항공편을 놓칠 번 한 적도 있었다. 한번은 길림신문사에서 수필문학상시상식이 있었는데 나는 시간이 아까워 수상하러도 가지 못했다.  또 한번은 길림신문사 로인수기상 평심위원으로 돼 50여편의 수기를 다 평심했지만 시간이 아까와 시상식에 참가하지 않았다. 이렇게 나는 시간을 짜내  "로년세계" 편집사업을 하면서 소설창작에 몰두하였다. 제일 한심한 것은 그렇게 밤낮 애타게 창작한 파일이 컴퓨터 건판을 하나 잘 못 눌러 50만자나 없어진 사고이다. 그때 나는 컴퓨터기술이 차해 되돌리기를 할줄 몰라 파일을 원래대로 복원하지 못했다. 나는 너무나도 애나고 실망하고 맥이 풀려 한 주일이나 다시 컴퓨터에 마주 앉아 글을 쓰지 못했다.       나도 칠정육욕이 있는 사람이다. 남들처럼 술도 마음껏 마시고 장기도 놀고 싶고 아내와 함께 명승고적을 유람하기도 싶었다. 허나    항상 “놀 걸 다 놀고 언제 글을 쓰냐?”라고 하던 김재권 은사님의 가르치심을 되새기면서 부글부글 끓어번지는 놀고 싶은 야마를 정복하고 기나긴 “글 감방”에 갇혀 글을 쓰고 또 썼다.     리성권 사장과 한국 교문사 리완주 사장님, 김만석 교수님 등의 지극한 배려하에 중국조선족문단에서 첫 3부작 대하과학환상소설 (약 100만자) “야망의 바다”, “욕망의 천지”, “황천의 유령”을 창작해내 각각 연변인민출판사와 한국 교문사에서  출판하였다. 이런 아동소설은 한국 “아동문학세상”과 “서울문학”에도 소개되였고 “네이버”, “다음”, “모이자”, “조글로” 등 인터넷 블로그에도 널리 소개되였으며 15집 련속드라마로 각색돼 연변인민방송국에서 련속 방송되였다. 나는 선후하여 “웰빙아동문학상”, “동심컵 한중아동문학상”, “전국소년아동문학우수상” 등 국내외에서 10여개 아동문학상을 비롯한 30여개 문학상을 받아안았다.    일부 문우들은 내가 아파트 한채는 실히 쓸어넣고 소설책 20여권이나 냈다고 "바보"라고 했다. 경제시대에 아까운 돈을 팔아 보지도 않는 책을 냈다고 비웃는 것이였다. 하긴 한 수필가는 "작가는 돈을 받고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글을 쓸수록 돈이 엄청 들어갔다. 나는 문화사막에 돈을 처넣으면서 책을 하나 또 하나 낸 그런 바보-마라토너작가이다.   나는 진승의 명언으로 나를 바보라는 사람들한테 화답하고 싶다.        "참새가 어찌 고니의 큰 뜻을 알리오?"  나는 이전에 대하소설 (총 7권)을 한국에서 애나게 내서 국내로 반입할 때 겪은 고행을 생각하면 몸서리칠 지경이다. 20여 상자나 되는 책을 한국 우정국에 가져다 부치니 우편료만 해도 200여만원(한화)이나 들었다. 거기에 출판비용까지 하면 진짜 자그마한 집 한채는 들어갔다.    나는 우편료를 하나라도 남으려고 책을 꽉 채워넣은 배낭을 메고 책트렁크를 끌고 귀국의 길에 올랐다. 그런데 신도림역에서 지하철을 갈아타려고 책트렁크를 안고 낑낑거리며 높은 층계를 올라가다가 그만 허리띠가 툭 끊어지는 바람에 괴춤마저 훌 내려가고 말았다. 숱한 사람들 앞에서 참, 창피하기로서니. 그때 한국의 착한 한 녀대생이 책짐을 봐주어서 지하철매대에 가서 허리띠를 사서 띠고서야 간신히 책짐을 메고 끌고 공항까지 나갔다.     그렇게 애나게 책짐을 메고 끌고 지하철을 갈아타고 비행기를 타고 귀국해 가져온 책을 동료들과 문우들한테 나눠주었다. 그러나 어떤 이는 먼지 새뽀얗게 끼도록 한페지도 펼쳐보지 않았다. 그것을 내 눈으로 직접 보았을 때 내 심정인들 어떻겠는가. 참 안타깝다. 또 어떤 이는 책을 드리려고 하니 짐이 된다면서, 서재에 그 책을 둘 공간마저 없다면서 받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로실해서 좋긴한데 난 너무나도 어처구니 없어 가슴이 미여지는 것만 같았다.        그때 그 일들을 생각하면 다신 책을 인쇄해 낼 생각도 나지 않는다. 내가 짧은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온라인시대에 조글로 작가 블로그나 핸드폰 위챗그룹에 올리면 복잡한 심열과정도 필요없고 출판비용도 들 필요없이 국계를 벗어나 숱한 독자들이 직접 소설을 볼 수 있지 않는가. 그런데 왜 하필 돈 팔아 책을 내고 그렇게 책짐을 메고 돌아다니며 고생하면서 수모를 당해야 하겠는가.그러나 나는 그런 간단한 도리도 모르고 시대의 무거운 책짐을 메고 다녔다.     나는 나를 질투하고 무함하고 나의 창작자유를 박탈한 분들한테도 감사를 드리고 싶다. 터덜터덜하고 거친 숫돌을 만나야 칼은 더 날카롭고 서슬푸르게 날이 서는 것이 아니겠는가! 허허허. 그들이 아니였더라면 내가 어찌 창작자유가 얼마나 귀중한가를 알았겠는가! 그들이 아니였더라면 어찌 강한 문학창작의 의지를 련마했겠는가! 그들이 아니였더라면 내가 어찌 물 한 모금도 마시기 힘든 문학사막에서 상처를 매만지면서 아픔을 딛고 한편 또 한편의 문학작품을 창작해낼 수 있었겠는가!    나는 아파트 한채를 쓸어넣고 소설책 20여권 낸 바보, 무거운 책짐을 메고 사막의 외나무다리를 달리는 사막의 바보.     나는 그런 바보가 좋다.  난 사는 날까지 사막의 마로토너로 뛸 거야. 물 한방울 없는 사막의 한방울 단비로 될 거야. 책에 민족의 혼을 불어넣어 사막에 기어이 옹달샘물이 퐁퐁 솟게 할 거야.  진달래 만발하는 오아시스를 눈 앞에 그려보며...
      나는 다년간 리근전의 “고난의 년대”, 리기영의 “두만강”, 천세봉의 "고난의 력사", 라관중의 “삼국연의”, 시내암의 “수호전”,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과 “태백산맥”,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 등 력사소설을 탐독하면서 이런 력사소설에서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을 연구한 후 나의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에서 중국 조선족의 백년력사를 예술적으로 반영하려고 모진 애를 썼다.       광범한 독자들께서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에서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을 료해하시는데 도움을 주고저 몇해 전에 에 실린 나의 이 문예평론을 싣는다. 나는 대학교 졸업론문으로 "리기영의 에서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을 썼기에 이 문예평론에서는 "에서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력사소설창작에서 읽기 구수한 이야기속에서 그 시대 전형환경에서의 개성이 독특한 전형형상을 부각해 자연스레 한시기 력사를 반영해야 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수호전"이나 "삼국연의"는 이야기성과 전형인물 형상성이 어찌나 강한지 읽으면 읽을수록 구수하고 자연스레 그때 당시 력사를 알게 한다. 그렇지 않고 력사소설을 창작한다는것이 깡마른 직설로 력사를 서술하는데 그친다면 그것은 문학성과 예술성을 상실한 "변종된 력사책"에 불과하게 된다. 그런 이른바 "력사소설"을 읽기보다 독자들은 아예 력사책을 읽으면 시간도 남고 력사를 더 전면적으로 알수 있지 않겠는가하는 생각이 든다. 소설창작에서 관건은 력사반영의 예술 수법과 기교에 대한 작가의 끊임없는 연구와 활용이 필요한것이다.                                      김장혁                                              2023. 12. 25.              문예평론             력사소설에서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에 대하여                                                                                        김장혁         중국조선족의 이름난 작가 리근전선생은 장편소설 에서71명의 개성이 독특한 인물형상을 창조하고 독특한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으로 동만을 중심으로 조선북부와 전 동북을 넓은 무대로, 19세기 말엽으로부터 20세기 “8.15”해방에 이르는 반세기란 기나긴 력사시기 조선족인민들의 피눈물 나는 이민사,  중국 공산당의 령도아래 한족 등 형제민족과 어깨겯고 이 땅을 개척하고 일제와 벌린 수많은 피어린 투쟁사를 형상적으로 보여주었다. 때문에 리근전작가의 장편소설 는 중국조선족인민들의 투쟁력사의 기념비적거울로 될수 있는 작품이라고 할수 있다. 리근전작가의 에서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을 깊이 연구하는것은 중국조선족문학사, 나아가서 중국당대문학사에서 리근전작가의 창작과 그 지위를 반석우에 세우며 금후의 장편력사소설창작에 아주 큰 문학적의의와 현실적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리근전작가의 와 프랑스 작가 발자끄의 , 중국 작가 라관중의 , 조선 작가 천세봉의 ,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과 “아리랑”.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 등에서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을 대조해 연구해보기로 하자.       프랑스 작가 발자끄는 무려 96편이나 되는 소설로 이뤄진 “인간희극”에서 주로 부동한 소설에서의 동등한 인물재현의 예술수법으로 프랑스의 나뽈레옹제정시대(1799년)부터 1848년혁명에 이르는 기나긴 력사시기 천태만상의 “인간희비극”을 보여주고있다. 세계 명작가 발자끄는 객곽세계를 호상 전형적련결에서 고찰하며 사회현상을 지배하고있는 기본법칙들을 찾아내 보여주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하여 그는 96편의 소설로 된 “인간희극”에 2천여명이나 되는 전형인물을 부각하여 등장시키고 부동한 소설의 부동한 환경에서 동일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혹은 차요인물로 재현시킴으로써 부동한 환경에서의 인물성격의 진일보 발전을 보여주면서 주제를 심화시켰으며 여러 소설을 하나의 정체—“인간희극”으로 유기적으로 통일시켰다. 하여 부동한 소설에서 보여준 부동한 력사환경은 의연히 프랑스 사회를 떠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면서 프랑스 사회 력사를 련결적으로, 거폭의 형상적화폭으로 보여주었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은 조선반도와 중국, 로씨야(구쏘련),  태평양 미국의 하와이, 지어 싸이판과 괌, 동남아세아, 일본까지 배경으로 해 20세기 초엽으로부터 1945년 광복까지 력사시에 일제의 폭압에 맞서는 우리 민족의 피어린 항일투쟁과 민족의 이민사, 끈질긴 생존과 투쟁을 다룬 민족의 대서사시이다.      조정래 작가는 지삼출, 대근, 송수익, 신세호, 방영근, 남용석, 감골댁, 보름, 수국, 정분, 김창봉, 정재규, 장칠문, 장덕풍, 김봉구, 방태수, 무주대, 임덕구, 주성춘, 손판식, 기생 옥향; 백종두, 주재소장 하야가와, 요시다, 쓰지무라 등 허구된 수많은 전형인물들을 부각하여 반세기나 되는 그 시대 력사화폭을 형상적으로 보여주었다.     또 허구된 인물의 허구된 이야기와 력사적으로 실존한 리승만, 김구, 의병장 임병서, 최익현, 임병찬 등의 진실한 이야기를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으로 이 시기 민족의 력사를 아주 넓은 화폭으로 예술적으로 반영하였다.       일부 력사이야기는 작중 허구된 인물의 대화속에서 예술적으로 삽입해 보여주었다. 례하면 작중의 방영근과 남용석의 대화에서 당시 하와이에서의 반일단체와 이승만의 항일투쟁사를 정면으로 보여주었다.       일부 력사이야기는 사회배경을 소개하는 형식으로 직설적으로 보여주었다. 례하면 조선 서울의 3.1독립운동과 중국 룡정의 3.13반일운동, 의병장 홍범도가 만주에서 항일운동을 하다가 구쏘련에 전이한 과정 등 력사이야기는 작자가 사회배경을 소개하듯이 직설적으로 보여주었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은 광복후로부터 6. 25 전쟁 전후를 배경으로 분단이후 여순반란사건을 시작으로 하여 한국 태백산맥을 따라 남으로 나가면서 지리산구를 근거지로 삼고 남로당(박헌영의 령도하에 있은 남조선 주재 조선로동당의 약칭임.) 유격대의 유격투쟁활동과 한국 계엄사령본부와 경찰대, 토벌대가 지리신지역 남로당유격대를 진압한 과정의 력사이야기를 폭넓게 보여주었다.        이 소설에서 작가 조정래는 “실화소설” 같은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으로 당시  염상진대장, 안창민대장, 하대치 등 유격대 두목과 골간들의 투쟁이야기를 주선으로 소설로서의 진실한 인물화폭을 그리면서 진실한 력사를 반영하는 예술수법을 쓰고있다. 진짜 력사와 예술의 혼연일치를 보여준 걸작이라고 할수 있다.        우선 작가는 실존한 력사인물들을 피도 있고 살도 있는 아주 전형화된 인물로 형상적이고도 생동하게 형상화해 유격대 투쟁과 정부군, 토벌대의 진압의 력사이야기를 반영했다. 작중에는 보성군 유격대 대장 염상진과 보성군당위원장 겸 후임 대장 안창민을 비롯한 하대치, 오판돌, 강동식, 이해룡, 고두만, 손승호, 강동기, 김임일, 이영생 그리고 계엄사령관 심재모, 신임사령관 백남식, 보성경찰서장 남인태, 토벌대장 임만수, 검찰총장 권승렬, 중부경찰서장 윤기병 등 실존한 전형인물들을 아주 성공적으로 부각하였다. “태백산맥”에서도 조정래 작가는 작중 인물의 대화를 통해 력사이야기를 보여주는 예술수법을 적지 않게 썼다. 례하면 작중인물  손승호와 김범우의 대화를 통해 백범 김구가 암살당한 력사사건을 보여주었다.         조정래 작가는 “태밴산맥”에서 허구된 인물의 허구된 에피소드를 양념처럼 많이 삽입해 독자들을 력사이야기를 감염력있께 읽게 흡인하는  예술수법을 보조적으로 썼다. 례하면, 염상구에게 강동기 안해가 장기적으로 강간당해 임신까지 한 에피소드, 허출세에게 외서댁이 강간당한 에피소드, 그외에도 작중 인물의 진한 사랑과 치정  에피소드 등을 들수 있다.          중국 조선족작가 리근전선생의 동일한 하나의 소설인 (상, 하집)에서,  조선의 작가 리기경선생은 "두만강" 에서  발자끄처럼 부동한 소설의 부동한 력사환경에서가 아니라 부동한 력사시기 환경에서 동일한 인물을 재현시키고 인물들을 혈연적, 사회적, 계급적으로  련결시키고 충돌시키면서 인물성격을 발전시키고 력사사건들을 유기적으로 련결시키면서 보여주고있다. 때문에 “인물재현”이라는 측면에서는 발자끄의 력사반영의 예술수법과 류사한 점이 있다. 하지만 “부동한 소설에서”와 “동일한 소설에서”의 부동한 력사시기에서 인물재현이라는데서 발자끄의 과 리근전선생의 는 력사반영의 예술수범이 서로 다르다는것을 알수 있다.      다음, 중국 작가 라관중의 에서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을 대조해 연구해본다 첫째,  라관중의 에서는 력사상의 실재인물들인 조조, 류비, 손권, 제갈량 등을 주인공으로, 주요하게 적벽싸움과 관도싸움 등 력사적전형환경과 력사인물과의 관계속에서 전형성격을 부각하면서 해당시기 력사를 반영하였다. 그러나 리근전선생의 에서는 주요하게 주인공 박천수, 박윤민 등을 비롯한 71명 인물들은 모두 허구된 인물들로서 춘황폭동, 5월폭동 등 력사사건과 천수동민란, 동맥휴학 등 허구된 사건과 허구된 인물관계속에서 부각하면서 해당 시기 력사를 형상적으로 반영하였다. 둘째, 에서 각 력사사건의 발생, 발전, 고조, 해결은 주인공에 의해 제약되고 추동되는 예술수법으로 력사사건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리근전선생의 에서는 력사사건에 력사인물 대신 허구된 작중인물을 바꿔넣거나 차요한 위치에서 참여시키면서 작중인물의 이야기, 회억, 대화속에서 자연스레 력사사건을 반영하였다.      때문에 사건과 인물관계가 력사적인것인가, 허구적인것인가 하는데서 라관중의 와 리근전선생의 는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이 부동하다.         다음, 조선 작가 천세봉의 와 대조해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을 연구해보면 허구된 전형인물형상을 부각하여 력사를 보여준 점에서는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이 류사하지만 일부 부동한 점도 있다. 첫째, 천세봉의 는 순전히 허구적인 사건들인 소작인동맹건립, 보돌공사장폭동, 박진우환갑식, 대검거참안 등을 통해 현재진 일가 5형제, 최선도, 최창국 등 인물형상을 부각하여 당시 력사정형을 반영하였다. 그러나 리근전선생의 에서는 허구된 사건외에도 력사적사건속에서 박천수, 박윤민 등 인물형상을 부각하고 당시 력사정형을 반영하고있다. 이런 예술수법은 리기영의 "두만강에서도 찾아 볼수 있다.      둘째, 천세봉의 에서는 전형적사회력사환경을 작자의 정면서술로 밝히지 않았고 자연환경도 “XX군 송하면 월하리” 등 허구적으로 모호하게 보여주었다. 그러나 리근전선생은 에서 작자의 정면서술로 사회력사환경을 밝히였으며 자연환경도 허구적인 “천수동”뿐만아니라 실재한 륙도구, 국자가 등을 삼고있다는 점에서도 다르다. 리깅영의 두만강에서도 제2대혁명자 "씨동"의 활동 자연환경은 두만강 량안의 조선 중북부와 중국 동만으로 삼고 있다.           총적으로 리기영선생과  리근전선생은 고금동서 명작들의 부동한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에서 정화를  섭취하여 계승하고 발전시켜 독특한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을 창조해냈다.         그럼 리근전선생의 에서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은 구경 어떤것인가? 첫째, 전형환경에서 전형인물을 부각하여 해당 시기 사회력사를 반영한 예술수법이다.         똘쓰또이는 자기 창작은 “인물형상을 부각할뿐만아니라 그 형상을 통해 력사를 보여주기 위한데 있다.”고 하였다. 리근전선생은 동서고금의 력사물명거작들의  력사반영의 예술정화를 섭취하여 “고난의 년대에서 륙도구와 천수동을 동북의 축영으로 형상화하고 그속에서 자기로서의 얼굴과 웃음, 말본새를 가지고 자기 신분에 알맞는 행위를 하는, 개성이 독특한 각이한 인물을 71명이나 형상적으로 부각하였다.  이런 인물들은 당시 전변하는 사회적계층의 어느 한 계층을 각각 대표하는 전형인물로 등장하면서 매개 인물들의 개인적운명의 발전속에 몰락하는 계층과 발전하는 세력간의 계급투쟁, 민족투쟁에 의한 력사적진로를 표시해놓았다. 하여 우리는 력사의 흐름에 따른 륙도구와 천수동의 변화와 그속의 인물성격의 변화를 통해 사회력사 제특성들의 변화를 통해 당시 력사 발전을 찾아볼수 있다.        이제 작중에서 전형인물들의 개성적얼굴들을 찾아보면서 그 전형형상이 당시 력사정형을 어떻게 반영했는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주인공 박천수는 시대적제한성으로 하여 로동계급의 혁명리론으로 무장하지는 못했지만 부지런하고 성실하며 의협심과 결단성이 강하고 봉건통치배들을 반대하는 강의한 개성과 일반화정도가 높은 애국적농민의 전형형상으로 그려졌다. 그리고 순박하며 선량하며 의협심이 강한 한족농민 왕덕후, 말수 적고 심성이 곧은 김성녀, 착하고 어진 김명도, 강직하고 반항심이 강한 최창두를 비롯하여 장서방, 강도룡, 조월래 등 농민들의 형상을 개성적이고도 살아 움직이게 그려 봉건지주와 통치배들의 압박과 착취 밑에서 생활난을 껵다가 각성하여 반항하기 시작하는 당시 조선족과 한족 형제민족농민들의 력사적제특성을 예술적으로 재치있게 반영했다. 그외에도 조장희, 리광국 등 전형형상을 통해 당시 민족주의자들로 무어진 반일단체의 제 력사정형을 보여주었다. 또 비굴하고 탐욕스러우며 잔인하고 횡포무도하며 교활한 친일주구 오영길, 음탕하고 아첨을 일삼는 앞잡이 마상수, 탐욕스럽고 강직하며 량반의 체모를 중히 여기는 상인 최영세를 비롯한 매판자본가 김경필, 김만호, 팽국장과 향악지주 주천림, 김소래 등을 비교적 개성적으로 인물형상화하여 해당 력사시기의 자본가, 지주들이 일제와 봉건통치배들에 아부굴종하고 인민을 잔혹하게 압박착취한 시대적 제 특성을 잘 보여주고있다. 이밖에도 교활하고 잔인한 스즈끼총령사, 특무 고산, 경찰서장 고자끼, 친일주구 김목사도 비교적 성공적으로 형상화해내 그 부류인들의 죄악적력사도 예술적으로 반영했다.      작자는 이상의 늙은세대의 긍정적, 부정적인 인물형상들을 통해 주요하게 19세기말부터 20세기 10년대말의 력사와 그제반특성 및 각 계층 특성들을 반영하였다.      다음, 소설에서 이런 늙은세대에 의해 보여준 미적리상과 인민투쟁력사의 계승자로서 슬기롭고 용감하며 심중하고 강직한 당원 박윤민을 비롯하여 왕주, 김범도, 순희, 윤길, 영심, 귀동이와 큰동이, 당조직 지도자 리진과 안경림 그리고 명화와 기생 김벽선, 향화 등을 개성적으로 부각하면서 그들이 부정인물 오창수, 오창덕 및 일제놈들과의 갈등과 투쟁을 통해 1919년 5.4운동이후로부터 1945년 8.15해방이전 력사시기 당의 령도아래 조한 형제민족 인민들이 단결하여 진행한 반제, 반봉건 투쟁력사를 예술적으로 반영하였다. 그리고 작품 결말에 제3대 인물인 귀섭이 형상을 등장시킴으로써 조선족인민들의 투쟁력사는 계속됨을 암시해주고있다.        이런 3대에 걸친 수많은 인물형상체계의 중심에는 박천수와 박윤민이 련이어 서서 끌고나가고있으며 이들과 기타 인물들의 혈연적, 사회적, 계급적 련결과 갈등속에서 인물성격을 발전시키고 해당 시기 력사를 예술적으로 반영하고있다. 때문에 매개 력사사건은 동떨어진감이 없이 련결되여 독자들로 하여금 형상적이고도 체계적으로 매 시기 력사정형을 리해하게 하였다.       둘째, 작자가 정면서술한 력사환경(력사사건을 포함)에서 작중 인물이 활동하거나 작중 사건의 발전속에 력사사건을 삽입시키는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이다.        이런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으로 장백산봉금령반포와 개간국설치, 한족과 조선족 동북이주력사, 신해혁명, 1911년 룡정 력사환경, 룡정통감부 간도파출소와 일본령사관 설립, 3.13폭동, 20년대 반일단체활동, 1923년 대검거참안, 녕안위만군 탄약탈취 등 력사를 반영하였다.        이런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은 작자 정면서술의 지루함과 무형상성 그리고 작중 인물의 활동으로써 전반 력사환경을 제시하기 어려운 결함을 피면하고 장점을 취해 독자들로 하여금 피와 살이 있는 개성적인물들의 움직임을 여겨보면서 당시 력사정형을 완정하고도 형상적으로 감칠맛이 나게 알수 있도록 하였다.       셋째, 인물의 이야기, 회억, 대화속에서 력사사건을 보여주는 력사반영의 예술수법, 그리고 이런 제 수법과 작자 정면서술을 서로 결합시켜 력사사건을 반영하는 예술수법이다. 이는 작자가 작중에서 제일 많이 쓴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이라고 할수 있다.     이런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으로 제31장에서 윤길과 김성녀의 대화, 제32장에서 순희의 회상속에서 3.13폭동을 보여주었다. 김범도와 왕주, 윤민의 대화와 이야기속에서 경신년대토벌을, 귀동의 이야기에 의병단 및 왕청 배초구습격사건을, 스즈끼와 김벽선의 대화, 리진의 분석과 작자 정면서술로 일제 “만몽침략계획”과 9.18사변을 반영하고있다. 그외에도 선바위 부근에서 12만 5천원 탈취한 사건, 춘황폭동도 이런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으로 보여주었다. 그중에서 스즈끼나 친일주구 오창덕, 오창수와 같은 부정인물들의 대화, 이야기로 9.18사변의 내막이나 일제의 만몽침략야심, 일제의 “문치주의”와 “무단정치”의 본질을 드러내 보여준것은 력사제재 장편소설창작에서 거둔 창신적인 예술성취라고 본다. 이같이 부동한 장절에서 여러 인물의 대화, 회억, 이야기 그리고 작자 정면서술을 서로 결합시켜 력사사건을 반영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딱딱하고 지루한감이 없이 다측면적으로 형상적인 력사교과서를 보는듯한감을 느끼게 한다. 이는 독자들의 다시각적형상을 통해 력사를 알려고 하는 심미적수요에 맞는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이라고 생각한다.       넷째, 력사적인물 대신 작중 허구적인물의 이름을 바꿔놓는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이다. 력사상 약수동토벌참안때 실제 존재한 항일렬사 김순희의 감동적사적을 반영하기 위해 작자는 제55장 “대참안”에서 렬사 “김순희” 대신 작중 윤길의 처 “백봉선”이란 허구된 인물을 바꿔넣고 등장시켰다. 이런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으로 춘황폭동, 5월폭동, 12만 5천원 탈취, 해란강대참안 등 력사를 핍진하게 반영했다. 이런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은 작중인물과 력사적인물, 작중 사건발전과 력사이야기를 유리시키지 않고 통일적인 전일체로 련결해 반영하였다.       다섯째, 인물의 설정과 인물의 신분, 활동경력, 인물이 처한 사회와 자연 환경 등은 모두 인물의 성격을 부각하고 생활론리에 맞으면서도 력사를 반영하기 위한데 복종시킨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이다.       작자는 1911년 룡정력사환경, 춘황폭동, 3.13폭동, 경신년대토벌, 반일단체활동, 의병단활동, 5.30폭동, 12만 5천원 탈취, 항일련군 항전투쟁 등을 반영하기 위해 주인공 박윤민을 두만강변으로부터 륙도구 자선학교, 천수동, 륙도구술공장, 할빈, 봉천, 왕청과 의란 산속, 녕안현, 중쏘변경, 연안 등지로 번개같이 드나들게 하였다. 그리고 신분도 배사공, 교원, 로동자, 지하당원, 의병단 부단장, 항일련군 군관, 지위 서기로 바뀌고있다. 이는 다 생활론리에 맞게 박윤민이란 인물성격을 부각하면서도 력사반영의 수요에 따라 그의 신분도 변화시키면서 중요하거나 차요한 위치에서 력사사건에 참가하거나 참여시키면서 박윤민이란 인물의 대화, 회상, 아야기 등으로 력사를 반영하는 예술수법을 쓴것이다. 이는 동일한 소설의 부동한 력사사건과 환경에 동일한 인물을 재현시키는 재치있는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이다.       이밖에 짙은 지방민족생활색채, 흥미진진한 민담, 민요, 속담 등의 광범하고 적절한 응용과 향토적이고 형상적인 언어 등은 작품의 감염력을 높여 작중 력사반영의 예술수법들의 효과성을 높이는 보조적인 력사반영의 예술수법과 같은 작용을 놀았다. 허나 옥에 티라고나 할가.   하집에서 작중 인물의 회억, 이야기, 대화에 의한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을 지나치게 많이 썼기에 력사반영의 형상성을 약화시켰다고 본다.       필자의 수준제한으로 하여 저명한 중국 조선족작가의 에서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상 거둔 예술성취를 제대로 긍정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을 더욱 깊이 연구한다면 력사제재 장편소설창작에 매우 큰 방조를 주리라고 믿는다.                                                                                                                           2009.1. 22
5    문예평론 심리 갈등과 변화로 인물형상을 부각 김장혁 댓글:  조회:923  추천:0  2023-02-21
      문예평론                 심리 갈등과 변화로          인물형상을 예술적으로 부각한 소설                                        -김만석교수의 중편소설 “멍청이 누나”를 읽고                                                        김장혁                1.들어가는 말       김만석교수는 국내외에 이름있는 아동문학평론가, 아동문학리론가, 교수이다. 그는 수많은 아동문학 평론과 리론저서를 써서 우리 조선족아동문학을 리드해나간 분이다. 그는 평론을 썼을뿐만 아니라 아동문학 모든 쟌르의 견본과도 같은 아동소설, 동화, 우화, 동요동시 등 예술적인 아동문학작품집을 수두룩이 펴냈다. 김만석교수는  저명한 평론가일뿐만 아니라 작가이며 시인이다. 그는 성인소설집 “멍청이 누나”도 펼쳐냈다. 김만석교수의 성인소설을 읽으면서 우리 민족의 각 시기 형상적인 력사를 읽는 감이 들어 감동을 받았다.     특히 그중 대표작-중편소설 “멍청이누나”는 주목할만한 예술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이 소설에서 김만석교수는 소설을 어떻게 창작해야 하는가를 잘 리드해 보여주었다.                                 2. 독특한 예술기량을 보여준 소설        김만석교수의 중편소설 "멍청이 누나"는 정치시대의 인간관계는 적대관게이고 경제시대의 인간관게는 인정관계라는 엄청나고 값진 주제를 설정하고 정선의 형상을 창조한 소설이다.     소설창작의 목적은 인물형상 창조에 있다. 이런 인물은 생활론리에 맞고 인물성격론리에 맞는 슈제트구성을 통하여 인물형상이 부각된다.     김만석교수의 중편소설 "멍청이 누나"의 슈재트 구성은 복잡하고 긴장되고 첨예한 심리갈등으로 이루어졌다.저자는 독특하게 주인공의 심리 갈등과 변화로 정선이란 개성이 독특한 인물형상을  아주 예술적으로 창조해났다. 혈육의 정도, 인정미도, 인간성도 없는 언니 영옥을 치료비를 대줘 구하는가, 구하지 않는가는 문제를 둘러싸고 주인공 정선과 동생 정철의 심리 갈등과 변화로 주인공 “멍청이 누나”, 혈육의 인정 많고 드넓은 관용과 흉금을 가진 주인공 정선이란 인물형상을  독특한 예술창작기법으로 부각해냈다. 이런 점에서 이 소설은 아주 독특한 예술기량을 보여준 소설이라고 본다.      프랑스 대작가 발자끄는 장편소설 “우제니 그랑데”에서 인물의 깍쟁이 성격특징을 잘 보여줄 수 있는 핍진한 환경세부묘사와 작중 그랑데의 옹졸한 이야기들로 아주 성공적으로 옹졸하고 린색하고 탐욕스러운 벼락부자 그랑데란 인물형상을 예술적으로 창조해냈다.      발자끄는 장편소설 “고리오령감”에서도 환경묘사와 인물의 성격특징을 틀어쥐고 옹졸하고 배금주의자 고리오령감의 전형형상을 예술적으로 창조했다.     김만석교수는 중편소설 “멍청이 누나”에서 심리 갈등과 변화로 주인공 정선이란 인물형상을 예술적으로 창조한 독특한 예술기량을 보여주었다. 저자는 아주 많은 편폭으로 인물의 심리 갈등과 변화를 보여주면서 혈육의 정과 인정미도 없고 인간성마저 없는 언니 영옥을 드넓은 흉금과 관용으로 용서하고 치료비를 대줘 구해내는 “멍청이 누나” 정선이란 인물형상을 아주 성공적으로 부각해 혈육의 정과 인간애를 아주 성공적으로 돌출하게 보여주었다.                 3. 심리 갈등과 변화로 인물형상을 부각한 독특한 소설       그럼 김만석교수의 중편소설 "멍청이 누나"를 구체적으로 분석하면서 평론하기로 하자.      중편소설 "멍청이 누나"에서 작자는 혈육의 정도, 인정미도, 인간성도 없는 언니 영옥의 치료비를 대주는가, 대주지 않는가는 문제를 둘러싸고 주인공 정선과 남동생 정철의 심리 갈등과 변화를 파고들어 인물들의 인간성을 깊이 파헤쳤다.그리하여 혈육의 정도 많고 드넓은 관용과 흉금을 가진 주인공 정선이란 형상을 아주 예술적으로, 성공적으로  부각해냈다.     영옥은 그 시대 좌적인 인물, 인간성도 없는 반면인물이다.  문화대혁명이란 극좌적시대 제약성으로 인해 부농가정출신 녀성의 딸로 자란 영옥은 자기 정치적으로 기를 펴고 살지 못했다. 영옥은  사람처럼 기를 펴고 살려고 이름마저 "혁화(혁명의 꽃)라고 고치고 주자파 아버지와 “계선을 똑똑히 나누고”  앞장서 구호를 부르며 투쟁한다. 심지어 입당하기 위해 간암으로 죽어가는 아버지를 아버지 아니라고 하면서 병문안 한번 가지도 않았다.     영옥은 20여년 동안이나 배다른  녀동생 정선과 남동생 정철을 동생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찾아도 보지도 않았으며 거래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기가 당뇨병에 걸려 치료비 없으니 식당을 차려 돈깨나 번 부자라고 정선을 동생이라고 식당에 찾아온다.     주인공 정선은 그런 인간성도 없는 영옥의 치료비를 대주는가, 아버지 대신 복수를 해  모르는 척 하는가는 격렬한 내심갈등을 겪는다. 소설의 슈제트로 말하면 여기서 사건의 발단이라고 볼 수 있다.         ㄱ, 발단단계에서 정선의 심리갈등       처음 24년이나 련계도 없던 언니 영옥(혁화)가 아들과 함께 정선식당에 나타나고 아들을 내세워 전화를 걸었을 때 정선의 첫 심리반응은 경악함과 함께 고통스러워 한다. 정선은 영옥이 문화대혁명 때 17세 셈이 들 나이에 아버지 직장에서 아버지를 주자파라고 투쟁할 때 아버지를 “주자파!” “류망”이라고 욕하던 일을 회상했다.     (어쩌면 이다지도 모진 인간일가? 어떤 때는 형제관계를 칼로 썩뚝 베여버리고 아닌 보살하던 사람이 오늘은 제 아들까지 내세워 아재요 뭐요 하는가?    영옥이야말로 세상에 더없는 밉살스러운 인간으로 안겨왔다. 정말이였다. 영옥이처럼 매정하고 악착하고 몰염치한 인간은 이 세상에 더는 없을 것이다.   ㄴ,발전 첫단계 정선의 심리갈등       정선은 외조카 영철한테서 언니 영옥이 급성당뇨병에 걸려 연변병원 관찰실에 있다는 말을 듣자 불쌍해났다. 모진 심리갈등 끝에 영옥을 친혈육 "언니"로 인정하려는 심리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그래도 아재란다. 아니, 언니란다. 언니? 그래 언니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같은 피줄을 함께 타고난 자매들끼리 하는 말이 아닌가? 그렇다면 혁화는 아버지의 딸이 옳은가? 아버지와 결혼한 그 농촌 녀성이 낳았으니까 아버지의 딸이 옳기는 옳겠지. 그러면 영옥의 몸에도 아버지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말이 된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더니… 기딱찬 현실이다. 그러니 영옥이는 어쨌든 나의 언니, 정철의 누나다… 정선이는 악몽에서 깨여난 듯 화뜰 놀라기까지 했다. 모질고 모진 인연이 정선이를 끄당긴다.     아버지는 이제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달아나고 이제 남은것이란 아버지의 피줄을 이어받은 정철이와 나, 그리고 영옥언니가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니 정선의 꽁꽁 얼었던 가슴은 금시 물에 젖은 솜이 되여 버렸다. 어릴 때 자기의 손을 잡고 다니던 언니의 그 부드러운 손이 따뜻이 느끼여 왔다. 정선이는 저도 모르는 사이 윤기간의 정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ㄷ. 발전 두번째단계 정선의 심리갈등.       정선은 아버지도 아버지로 보지 않고 혈육도 모르는 인정머리도 없던 영옥의 과거를 회상하자 복수심이 재차 끓어번져 복잡하고 굴곡적인 심리갈등을 반복하게 된다.     정선은 1972년 훈춘에 영옥을 찾아가 간암에 걸린 아버지를 모시고 북경에 치료하러 가자고 했다. 그때 영옥은 주자파 아버지가 자식들을 련루시켰다고 욕했하면서 아버지 병문안하러 가지도 않았다.    정선이가 혼자 아버지의 골회함을 안고 북경에서 연길에 왔을 때도 언니 영옥(혁화)은 반쪽 얼굴도 내밀지 않았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정선은 심한 심리갈등을 겪게 된다.      (이래도 그래 혁화는 나의 언니란 말인가? 아니다! 과연 정철의 말은 추호도 틀린데가 없다. 혁화는 그때 벌써 우리를 배반한 인간이다! 그래도 혁화는 제 아들을 시켜 나를 이렇게 찾고있다. 마지막으로 살려 달란다. 나 한테 애걸복걸한다. 왜서? 혁화가 사람이라면 어디 말해 봐, 말해 보란말이야!)        정선은 모진 심리갈등을 겪으면서도 저도 몰래 혈육의 정에 끌려 병원에 가서 언니 영옥(혁화)을 만나본다. 영옥은 홍위병에 들고 결혼하고 입당하기 위해 아버지와 계선을 나누고 주자파라고 앞장서 투쟁하고 때리고 병치료 하러 북경에도 가지 않고 사망해도 장례에도 낯을 내밀지 않았다고 용서를 빈다. 그때 정선은 이런 심리반응을 보였다.     계급투쟁 년대에 제 한목숨 살자고 살판치던 한 인간의 때늦은 후회를 더는 듣고 싶지가 않았다. 정선이는 입술을 짓깨물었다. 어쩐지 오열이 화끈 나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입당? 아버지를 잡아먹은 인간이 그래 만백성을 위해 전심전의로 일할수 있어? 당에서 그래 혁화 같은 인간망종을 받아들여? 최저한도의 인간성마저 깡그리 게세당한 인간! 그래 가지고 혁명은 무슨 뚱딴지 같은 혁명이야!)     정선은 입을 하 벌리고 자기를 멍하니 쳐다보는 혁화를 갈기 갈기 찢어놓고만 싶었다. 이같이 악착한 혁화라는 인간과 인연이 맺어진 것이 한없이 저주로 왔고 또 그런 인간을 언니라고 부르게 된 것이 한없이 원통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         ㄹ. 크라이막스 단계에서 정선의 심리갈등        입원해 생사를 다투는 언니,  자기 과거 잘못을 뉘우치는 언니를 보고 집에 돌아온 정선의 심리갈등은 최고조에 치달아오른다. 정선은 영옥의 과거를 생각하자 격분해한다. 그러나 정선은 끝내 혈육의 정과 드넓은 흉금과 관용으로 언니 영옥의 비인간적인 과거를 용서해주기로 한다.그러나 동생 정철은 영옥을 용서하지 않으면서 정선과 격렬한 갈등을 겪는다. 뒤이어 정선의 모순된 심리갈등도 더욱 격렬해지면서 최고조에 이른다. 소설은 여기서 크라이막스에 이르기 시작한다.   ( 죄를 느끼는 혁화를 내가 리해하지 못하는 것이란 말인가?)      정선은 머리를 마구 가로 저었다. 도무지 저로서도 가늠이 가지 않았다.     (혁화와 나, 나와 혁화, 그 누가 그 누구를 리해하여야 한단 말인가? 아버지가 간암에 걸려 북경으로 함께 가자고 했을 때 혁화는 뭐라고 떠버렸던가? 《제가 죽게 되었으니 이 딸을 찾는다》고 악다구니질을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이번에 제가 죽게 되었으니 동생이라고 오늘 나를 찾아온 것이 아닌가? 가증맞은 인간! 죄를 입어 급살맞을 인간! 죽어 천만번 마땅할 쌍년! 이렇게 욕하여도 혁화는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래, 없고 말고!)     정선이는 미친 사람처럼 악- 소리쳤다 이를 뿌드득 갈았다.     (그런데 지난날 혁화가 그렇게 미웠는데 오늘 혁화를 미워하는 나는 그래 어떤가?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오늘 내가 죽어가는 혁화를 옆에 두고 손벽치며 잘코사니를 부르면 어떻게 될가? 오십보 백보라구…그래 혁화와 내가 무슨 구별이 있단 말인가? 시대가 변하여 오늘은 경제시대에 진입했다. 혁화는 지난 혁명시대의 력사적인 죄인이다. 그렇다면 오늘 경제시대에 나는 현실적인 죄인이 되어야 한단 말인가? 아다. 절대 나는 혁화와 같은 그런 시대적인 죄인으로는 될 수가 없다.    함께 아버지의 피줄을 이어받은 언니다. 언니, 어릴 때 나의 손을 잡고 다니던 언니,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 서로 나눈 피! 그 언니를 용서해주자. 하나 밖에 없는 우리 언니를 용서, 용서, 용서해주자!)      그러나 동생 정철은 아버지도 동생들에 대한 혈육의 정도 없이 논 영옥을 용서해주려고 하지 않고 도리여 정선을 "멍청이 누나"라고 하면서 "바보짓을 작작하라."한다. 여기서 영옥에 대한 정선과 정철의 부동한 심리갈등은 최정점에 이른다.      소설에서는 크라이막스단계에 이른 정선과 동생 정철의 심리갈등도 아주 예술적으로 섬세하게 보여주었다. 정철은 아버지 앓을 때나 림종 때에도 찾아보지도 않은 인정미도 없는 큰누나 영옥(혁화)를 누나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정철은 정선이 앓는 영옥한테 치료비를 대줘 구하자고 하자 처음에는  바보 짓을 하지 말자면서 정선의 말을 듣지도 않고 심리반응을 보인다. 저자는 정철의 언행으로 복수심에 격분한 정철의 내심갈등을 보여주었다.      정철이는 대번에 가파른 언덕을 톺아오르는 황소처럼 씨근 벌떡거렸다. 주먹으로 자기의 손바닥을 땅! 쳤다. 안절부절 못하는 정철이였다.     정철이는 《누나, 다시 혁화이야기를 꺼내면 누난 내 누나 아니요!》하고 최후통첩을 내리고 떠나갔다.      정철은 인정미도 없는 영옥의 밥을 나르며 병시중을 든다고 정선의 손에서 밥곽마저 빼앗아 땅바닥에 마구 주어 메친다.            ㅁ,해결단계에서 정선과 정철의 심리변화       정선은 끝내 마음의 상처ㅡ 언니의 비인간성, 과거의 잘못을 넓은 혁육의 정과 관용으로 용서하고  치료비 4천원을 선대해주어 입원치료받게 해 구한다. 이는 혈육의 정과 인간성을 가진 인도주의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정철은 둘째누나 정선의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등 인정미 넘치는 말에   나중에 영옥이 퇴원하는 날에 택시비도 받지 않고 마지못해 훈춘 머나먼 집까지 실어다주기까지 한다.     소설 제일 마지막에 이렇게 쓰고 있다.       갑자기 기사는 운전대를 주먹으로 빵 치며 소리쳤다.     “혁화, 혁화는 죽었어!”     갑자기 기사는 제동기를 밟으며 차를 급정거 시켰다. 그리고 차창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뒤를 돌아다 본다.     “그렇다면 영옥이는…?”       저자는 여기서 그렇게 강경하던 정철의 심리변화를 암시하면서 독자들에게 예술적인 여운을 남겨주면서 소설을 마무리했다.          소설은 주로 급성당뇨병에 걸린 언니- 영옥을 어떻게 대하는가를 둘러싸고 많은 편폭을 들여 주인공 정선의 내심갈등과 변화를 아주 굴곡적이고도 성공적으로 파고들며 세부묘사해 정선의 인간성을 파헤쳤다. 소설은 복잡한 사건으로 슈제트를 구성하지 않고 정선과 언니 인정의 변화와 갈등을 주선으로 혈육ㅡ언니에 대한 인간적인 사랑  인도주의적인 인간성을 가진 정선의 형상을 성공적으로 부각해냈다.                    4.  맺는 말       총적으로 김만석교수의 중편소설 "멍청이 누나”는 우선, 예술적으로 주렁진 성과를 거둔 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     소설에서는  굴곡적인 심리 갈등과 변화를 주선으로 혈육의 정도 없고 인간성마저 일은  언니를 용서해주는 정선, 혈육에 대한 인정미와 인간성이 깊고 포용성이 있는 정선이란 인물을 예술적으로 전형화된 인물형상으로  부각했다. 이것이 이 소설의 독특한 예술특징이며 이 소설이 거둔 아주 독특한 예술적인 성과라고 본다.     일반적인 생활론리로 말하면, 영옥과 같은 혈육의 정도 모르고 인간성도 없는 언니를 아무리 형제라도 용서하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저자는 주인공 정선을 처음부터 혈육의 인정미도 많은 인물로 고정적으로 내세우지 않고 복잡하고 굴곡적인 심리 갈등과 변화로 인물의  성격변화를 보여주었다. 소설을 다 읽고나면 소설의 제목과는 달리 주인공 정선은 “멍청이 누나”가 아니라 혈육의 정과 인정미도 많고 흉금이 넓으며 인간성을 다분히 가진 참된 인물이라는 것을 볼 수 있다.      저자는 주인공 정선의 드넓은 흉금과 혈육의 정으로 영옥의 과거를 용서하는 것을 통해 계급투쟁시대로부터 개혁객방 시대에 들어선 격변기 시대에 계급성으로부터 점차 인간성으로 돌아서는 조선족들의 인정세태를 아주 굴곡적이고도 형상적으로 보여주었다.      이 점에서 이 소설은 프랑스 작가 유고의 장편소설 "레미제라불"에서 주인공 쟌 발쟝을 창조한 것과 같은 랑만적인 예술성과를 거두었다고 본다.     저자는 소설에서 영옥이란 정형인물도  아주 형상적으로 창조했다. 계급투쟁이 격렬하던 그 시대에는 아버지도 친혈육도 안중에 두지 않고 계급투쟁에 혈안이 돼 미쳐날뛰던 영옥, 자기 전도를 위해선, 자기 살기 위해선 혈육의 정도 인정미도 없이, 인간성마저 잃고 살아온 영옥이다. 영옥의 형상은 "문화대혁명"이란 시대가 낳은 반면인물이다. 영옥은 비극적인 참혹한 계급투쟁시대 산물로서 결코 우연한 인물은 아니다.      소설에서 누나의 설복에 의해 점차 혈육의 정과 인정미가 돌아서기 시작하는 인간성을 회복하기 시작한 정철의 형상도 영옥과의 심리갈등 속에서 아주 성공적으로 창조했다. 정철의 형상에서 저자는 아무리 어떤 원한이 있더라도 인정관계, 인간관계 개선의 가능성을 표현하였다.       다음, 김만석교수의 중편소설 “멍청이 누나”는 내용상으로도  아주 성공한 예술작품이다. 이 소설은 정치풍파를 거친 우리 조선족들이 정치시대에 적대관계로 된 인간관계가 경제시대에 와서 점차 다시 새 인간관계로 회복되는 과정을 실사구시적으로 묘사한 소설이다.      총적으로 중편소설 “멍청이 누나”는 내용과 예술 면에서 주렁진 성과를 거둔   인정세태소설이라고 할 수 있으며 우리 조선족문학사에서 문학적 의의가 있다고 본다. 이렇게 훌륭한 소설이 80년대 창작되자마자 진작 발표됐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얼마나 문단을 진동했을가? 이런 아쉬운 생각도 든다.                                                                                                 2023년 1월 26일             주: 이 문예평론은 2023년 2월 19일 연길에서 열린 “김만석교수 성인소설좌담회”에서 발표했음.
4    장편소설 "졸혼" 창작후기 김장혁 댓글:  조회:755  추천:0  2022-05-18
                 창작담          장편소설 “졸혼” 창작후기                                             김장혁            새로운 혼인풍속도 “졸혼”에 착상 력점을         재직기간에 나는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과 “진달래 소야곡”을 창작해 출판했다. 너무나도 오래동안 글감옥에 갇혀 산 나는 퇴직한 후 건강문제도 있고 하여 잠시 필을 놓고 재충전과 심사숙고의 시간을 가졌다.       퇴직한 후 나는 아들집에 가서 자손들을 거들어주면서도 짬짬이 시간을 내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을 수개해 조글로에 올렸다. 어떤 장절은 재창작하거나 새로 보충 창작했다.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을 창작해 퇴직기념으로 출간했다. 한편  20여편의 중단편 동화와 아동소설를  창작해 “소년아동”잡지나 “아동문학”과 “아동문학세상”, “서울문학” 등 국내외 잡지에 냈고 그 동화소설작품집도 이미 탈고했다.        퇴직한  후 4년 동안 나는 남방에 가서  아들 집에 가서 손자들을 돌보면서 시간을 짜내서  “세계명작베스터”(10권),  “노벨상문학상수상작품” 막언의 장편 "청객구리" , 그리고 량효성(梁晓成)의 “인간세상(人世间)”, 막언의  장편소설 "생사피로",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 등 국내외 명작을 두루 읽었다.       나는 세계명작소설을 읽으면서 그래도 문학의 영원한 주제는 “사랑”이라는 것을 재삼 느꼈다. 아무리 전쟁이거나 력사사건을 다룬 소설이더라도  남녀 사랑을 엮은 대목이 젤 나를 흡인해 상세히 읽게 만드는 매력, 아니, 마력이 있었다. 사랑으로 인해 부동한 사랑관과 가치관을 가진 부동한 성격의 인물들 사이에 벌어진 갈등선, 그리고 련애, 약혼, 결혼, 리혼, 재혼을  굴곡적인 이야기, 그 이야기야 말로 독자들을 끄는 관심사라고 여겼다. 또 그런 굴곡적인 혼인사는   독자들을 흡인하는 무궁무진한 매력이 있다고 재삼 느겼다. 그리하여 나는 애정소설을 쓰려고 했다.       나는 애정소설도 좀 새로운 애정제재를 골라 쓰려고 모색했다. 그리하여 현실 가정생활을 둘러보며 새로운 제재를 고르려고 눈길을 돌렸다. 우리 주위에는 결혼을 해서 얼마 안돼애들 장난하듯 리혼하는 젊은이들을 수두록이 볼 수 있다. 심지어 애를 낳고서도 어제까지 좋아하다가 오늘 “나에게 잘대해주지 않으면 애도 훌 버리고 리혼한다.” 참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중년이나 황혼기에도 애정생활이 원활하지 못해 리혼하는 일이 아주 많다. 가정이 깨지고 애들이 고난을 겪고… 참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한 녀류시인과  담론하다가 머리를 탁 치는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되였다. 그녀는 남편이 술주정뱅이여서 딱 질색나 한국에서 함께 살다가 홀로 도망쳐 중국에 돌아왔다는 것이였다. 그런데 요즘 그 술주정뱅이남편이 돌아와 시끄러워 죽겠다는 것이였다. 나는 “오랜만에 만났으면 부부생활을 즐겨야죠.”라고 넌지시 말을 건넸다. 그녀는 아주 뜻밖의 말을 했다. “우리 50대 중반에 이른 녀성들은 그게 가면 남자가 필요없어요. 그것도 3, 40대면 몰라도. 우리 나이엔 그걸 하면 아프기나 했지 쾌락이란 없어요.”        그녀는 딸애를 봐서 리혼하지 못하고 마지 못해 명색으로 부부간이라고 산다고 햇다. 그녀는 혼자 자기만의 삶을 사는 것이 젤 좋다고 했다.        나는 그녀한테 “저네 또래친구들도 그렇게 생각하는가?”고 물어보았다.        그녀는 자기 친구들은 모두 “혼자 살면서 자기만의 삶을 사는 것이 좋다.”고 여긴다는 것이였다.       “50대 녀성들 그게 가면 남자가 싫어지죠.”       그녀의 말 한마디가 내 뇌리를 탁 쳤다. 시인인 그녀는 말을 헛타이 하는 녀성이 아니였다. 오히려 그녀는 시에 깊은 철리를 감추듯이 말을 해도 오래동안 생각하고 말하는 스타일이였다. 나는 그녀의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거야 말로 중년과 황혼기 애정생활에 걸린 문제야. 50대 중반부터 녀자들은 남편이 싫어 혼자 살고 싶어한다. 그러나 사회 눈치보이고 애들에게 영향이 갈까 봐 리혼은 하지 않고…남편을 싫어하는 50대 안해를 가진 남성들은 젊은 녀자들을 찾아가려고 하고… 그래서 가정은 깨지고… 바로 이거야!”       나는 창작령감이 떠올라 그 녀류시인한테 창작구상을 말했다.       “제처럼 남편 싫지만 마지못해 리혼은 하지 않고 혼자만의 생활을 즐기려는  녀성들 때문에 내 소설 한편 써야겠소.” 그러자 그 녀류시인은 깔깔깔 웃었다. “그런 것도 소설 제재로 되는군요. 써 봐요. 생각해보니 세인들과 우리 중로년녀성들의 관심사로 될 수 있겠군요." 나는 령감이 번개쳤다. " 지금 일본과 한국에서 졸혼 바람이 불고 있소. 제목은 '졸혼', 아떻소?" "제목 참 생신해요. 기발한 소설 기대해요. “          확실히 지금 일본과 한국에서도 결혼생활에 질려서 리혼하지 않고 졸혼해 나홀로만의 생활을 사는 녀성들이 많다.  우리 주변에도 리혼하거나 가짜리혼하거나 리혼하지 않고 한국과 중국에 갈라져 나 홀로만의 삶을 살고 있는 녀성들과 남편이 많다. 물론 도덕성과 자녀들한테 주는 영향을 고려해 성생활이 원활하지 못해도 리혼수속을 하지 않았을뿐이다. 기실 부부간의 사랑 핵심은 결국 성생활에 귀결된다. 물론 성생활은 시간과 비중은  겉으로는 많지 않은 것 같지만 부부생활에서 아주 중요하고 핵심적인 생활이다. 애정생활도 성생활을 떠나 운운할 수 없다. 지금 도덕과 법률, 생존경쟁에 의해  가려지고 색바래지고 날따라 침몰돼가는 성이 우리 부부생활을 비현실적으로 좀 먹어가고 있다. 나는 바로 매장돼가는 포로이더 성의식을  내 소설에서 부활시키고 싶었다.       사실 리혼하지 않은 그들은 리혼이나 다름없이 나홀로만의 인생을 살고 있다. 나는 기실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서 허울뿐인 가정을 유지하면사 뒤로 외간남녀를 찾아가 성생활하면서 호박씨를 까는 것은 더욱 도덕적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암암리에 애인을 두고 사는 바람에 많은 가정이 깨지고 있다. 이는 암암리에 우리 가정과 나아가서 사회를 좀 먹어가는 사회문제로 되고 있다. 작가라면 바로 백성들이 관심하는 애정과 혼인, 가정문제, 나아가서 사회 중대한 문제를 제재로 창작해나가야 한다고 인정한다. 그리하여 나는 새로운 애정생활과 혼인풍속을 내포한 “졸혼”을 쓰게 되였다.                단편으로부터 장편으로 쓰게 된 굴곡적인 창작경과          처음에는 나는 이벤트적인 사건으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창작기법으로 짤막한 단편소설 “졸혼”을 쓰려고 했다. 그런데 워낙 새로운 애정과 혼인풍속풍경선은 너무나도 복잡한 내용을 내포하고 있어 단편으로 펴내기는 아주 그릇이 작은 감이 들었다. 그리하여 중편소설 “졸혼”으로 써냈다.  중편소설 “졸혼”은 지금 장편소설 “졸혼”의 제1장으로부터 제10장까지 해당되는데 약 8만자에 달한다. 나중에 나는 부푸는 희망을 안고 한 잡지사에 투고했다.      그러나 잡지사에서는 대개 이런 답장을 보냈다.       “물론 제재는 새롭지만 편폭이 길고 일부 정상적인 인륜을 건드리는 내용도 있고 문학성이 약한 통속적문학이다. 단편으로 고치면 좋을 듯한 아쉬움도 없지 않아 있다.”       “정상적인 인륜을 건드리는 내용”이란 주인공 문걸이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못하게 되자 일본에서 “미녀로봇”을 사다가 성생활을 대용하는 부분일 것이다. 나의 소설이 통속문학이란 것을 승인한다. 그러나 젤 독특한 새로운 생활풍경선인 부분- “미녀로봇”과의 생활부분 등등을 다 도끼질해 단편으로 만들라는데는 동의할 수 없었다. 한평생 중국 대지에서 잡지 편집을 해온 나는 편집선생님들의 어려운 편집실정도 잘 알고 있다.  이것저것 눈치를 보고 규례를 지켜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문학성잡지라면서 대중들이 좋아할 통속적이고 새롭고 특별한 제재의 소설을 대담히 싣지 못하는 것은 좀 아쉬웠다. 물론 시인편집일 경우 단편도 길게 보일 수는 있다. 문학작품에서 문학성이 첫째인지, 아니면 내용이 우선인지 편집들과 문학관을 쟁론하기도 싫었다. 그리하여 나는 잡지에 못 내면 못냈지 아까운 "졸혼" 제재를 다룬 소설작품을 볼품없이 도끼질해 까풀치기처럼 단편으로 내려고 애를 쓸 필요를 더는 느끼지 않았다.       실망이 간 나는 2년 동안이나 필을 멈추고 소설 "졸혼"을 두고 심사숙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졸혼”이란 이 새로운 애정혼인생활풍속도를 그린 소설작품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조글로와 위챗에 올려 온라인독자들과 반응을 물어보기로 했다. 조글로와 위챗에 올린 후 독자들의 반응은 꽤나 열렬했다.        “’졸혼’ 제목부터 새롭습니다.”, “졸혼, 신선한 생활풍경입니다.”, “녀성들의 마음속 진실을 보여주었습니다.” “남자들의 곤혹을 파헤쳤다.”        어떤 네티즌들은 중편소설 “졸혼” 련재 끝난 것도 모르고 끝나지 않았는가 하여 계속 올리라고 했다. 소설 끝났다고 하자 “끝나지 않은 것 같은데. 참 아쉽네요.”라고 못내 아쉬워했다.        나는 네티즌독자들과 위챗독자들의 열렬한 반응과 아쉬움, 희망과 재촉에 힘입어 대답히 중편소설 “졸혼”을 장편으로 내리 엮어 련재하려고 다시 필을 들었다. 그것이 2년 동안 필을 멈춘 후 다시 든 무거운 필이였다. 필은 무겁게 들었지만 정작 쓰려고 하니 가볍게 달려나가는 것이 내 자신도 이상할 정도였다. 정신쇠살로 얽매인 틀보뚝을 터치우며 "졸혼"의 수많은 굴곡적인 이야기가 폭포로 쏟아지는 순간이였다.  나는 국내 출판에 얽매우지 않고 한국 출판이거나 조글로, 위챗 등 온라인문학작품으로 올릴 것을 념두에 두었다. 그러자 필이 퍽 자유롭게 내리달렸던 것 같다.       사실, 지금은 온라인시대이다. 조글로와 한국 “한민족신문”, 숱한 위챗 그리고 온라인독자들은 나에게 창작의 용기와 힘을 주었다. 나는 쓰는 족족 수개해 조글로 나의 작가 개인블로그와 한국 한민족신문, 위챗에 올려 독자들의 반응을 보았다. 일부 독자들의 따끔한 지적도 받고 수개해 다시 올리기도 했다. 일부 독자들은 그 다음 장절을 기다려보았고 빨리 다음 장절을 올리라고 재촉하기도 했다. 심지어 조선어를 잘 모르는 어떤 조선족독자들은 핸드폰 번역기로 내 소설 "졸혼"을 한어로 번역해 읽었다. 나는 독자들의 구독열에 너무 감동돼 두개 장절을 앞서 써나가면서 수개하는 족족 핸드폰에 올리군 했다. 수많은 온라인독자들의 재촉은 나로 하여금 드팀없이 중편소설 ‘졸혼”을 장편소설 “졸혼”로 내리써내려가도록 재촉하고 힘있게 떠밀어주었다. 국내외 독자들에게 경의를 드리고 싶다.             장편소설 "졸혼"에서는 무엇을 그려냈는가?      문걸은 아스피린을 공복에 먹고 혈변을 세번이나 쏘고 쓰러진다. 옆집 한족아줌마가 구급차를 불러 병원 구급실에 실어간다. 춘희는  휄체어에 문걸을 싣고 달아다니면서 문걸을 구급하는데 나선다. 문걸은 일주일만에 혼미에서 깨나자 상해 아들과 딸집에 갔을 때 손자들을 돌보면서  설거지까지 하면서도 짜증나는 잔소리를 듣고 부부 성생활을 한번도 하지 못하던 일을 회상하게 된다. 설상가상  아들과 딸도 사선에서 헤매는 아버지를 병문안하기에 앞서 유산을 빼앗을내기하면서 유산을 자기한테만 달라고 유서까지 작성해놔라고 한다. 게다가 본댁 영희가 자꾸 리혼하자고 졸라댔다. 문걸은 여기까지 회상하자 삶의 용기를 잃고  자살하려고 손등에 꽂아놓은 링겔주사바늘을 빼버려 류혈사태를 초래한다. 춘희의사는 심지어 자기 피를 문걸한테 수혈해 구해낸다. 문걸은 대장암에까지 걸렸지만 춘희 의사의 수술받고 사선에서 살아난다.     영희와 순정은 50대 중반에 이른 녀성들은 생리가 간 후 성생활이 싫어졌으며 남편도 필요없다고 한다.  문걸은 살아나 퇴원하자 첫번째 일로 영희와 리혼수속을 했다. 문걸은 아까운대로 영희를 놔주면서 졸혼하고 자기만의 삶을 살라고 한다.        문걸은 등산대 녀친 춘희와 의사 춘희가 일인이 아닌가고 의심한다. 한번은 등산하러 갔다가 춘희가 그만 눈구덩이에 빠진다. 그녀를 구하려다가 문걸도 눈구덩이에 빠진다. 눈구덩은 쁠랙홀처럼 찬 물이 흐르고 절벽 같은 얼음벽이  서 있는 협곡이였다. 문걸과 춘희는 아무리 애써도 협곡에서 기여나오지 못한다. 그들은 나중에 가지고 간 배낭을 구덩이 밖에 내던지고 나무가지를 주어다가 불을 피운다. 문걸은 심장병이 도져 사선에서 헤매고 춘희도 협곡에서 살아나가게 될지 모를 곤경에 처한다. 사선을 헤매게 되면서 그들은 서로 사랑한다는 것을 확인한다.      삼림에 화재가 난 것을 보고 구조헬기가  날아와 진화하고 춘희와 문걸을 협곡 구덩이에서 구해낸다. 그러나 문걸은 춘희는 일본에 딸과 남편이 있는 유부남이라는 것을 뒤늦게나마 알게 된다. 문걸의 동서이자 친구 정호는 문걸을 보고 금욕주의 관념을 버리고 오색령롱한 밤생활을 즐기라고 권고한다. 정호는 문걸을 데리고 마사지방에 가서 아가씨를 즐기라고 귀띔한다. 그러나 문걸은 참사랑을 주장하면서 더러운 공중변소에서 빠져나간다.       풍류남아 정호는 암에 걸려 고향으로 돌아오는 영희를 마중하러 공항에 나간다. 그는 영희를 마중해 지하주차장에 들어간 후 릉욕하려고 하다가  안해 순정한테 발각된다. 게다가 코로나와 암에 걸려  사망하기 전에 영희는 정호의 위선적인 허울을 홀랑 벗겨버리고  정호가 30년 동안 자기를 간음한 만행을 유서로 작성해 핸드폰에 남긴다. 순정은 영희 아들 군철은 정호를 똑 떼닮았다고 의심하게 된다. 나중에 순정은 DNA검사를 의뢰해  이제껏 문걸과 영희 아들이라던 군철은 정호와 영희 아들이라는 것을 뒤늦게야 알게 된다. 그리하여 순정은 나중에는 정호와 리혼까지 하게 된다. 그러나 정호의 재물을 빼앗아내기 위해 가짜리혼으로까지만 간다.      정호는 문화국 국장이란 권세를 빌어 불의지재를 긁어모으고 숱한 미녀들을 애인으로 만들어버리고 흥청망청 놀아댄다.     30년전 대학교 무용교원인 정호는 학생모집하러 갔다가 첫눈에 영희와 순정이 마음에 들어 학생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영희와 순정을 모두 사랑해 쩍하면 해물관에 데리고 가서 그녀들이 맛있어하는 소라랑 조개랑 오징어볶음이랑 먹인다. 그는 밤에 선후해 순정과 영희를 불러내 무용강당에서 무용을 배워주는 척하면서 간음한다. 그러나 정호는 무용교원으로부터  문화귀족이 되기 위해 사랑하는 영희를 버리고 시당위 서기 딸인 순정을 선택해 약혼하고 결혼한다. 정호는 문화국 인사과장, 부국장, 국장을 하면서 선후하여 영희, 정희, 나영, 하영 등 숱한 애인을 두고 색다른 녀성들의 매력을 즐긴다. 그는 심지어  애인들로 방미친선문예공연팀을 무어가지고 해외 공연을 하며 밤이면 애인들을  불러내 성자유와 성해방을 맘껏 즐긴다. 그러나 정호가 아무리 위선적으로 놀면서 은페하려고 했지만 정호의  더러운 정체가 드러나고 만다.     순정은  진짜리혼은 하지 않고 가짜리혼하고 졸혼을 선언하고나서 음악술집과 양로원을 차리고 자기 홀로만의 삶을 산다.    리혼당한 후 정호는 굴레를 벗은 들말처럼 나영과 하영을 데리고 색다른 성을 즐긴다. 그러나 최혜영 국장 등 검사들의 추적수사를 받아 불의지래를 긁어모으고 숱한 녀성들과 불정당한 남녀관계를 벌린 죄행이 드러난다. 정호는 수사를 피해 나영을 데리고 야반도주를 하게 된다.   문걸은 춘희와 함께 해외려행을 떠나게 된다. 그는 관광중에 춘희한테는 야마구찌 마끼라는 딸과 남편 야마구찌 다이로교수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소설에서는  결혼, 리혼, 재혼 등 다양하고 굴곡적인 이야기를 엮으면서 졸혼이란 새로운 혼인풍속도를 보여주었으며 부부간에 원활한 성생활은 애정의 핵심이라는 것을 측면으로 그려내려고 시도했다.                                         장편소설 “졸혼”은 어디까지 나가나?          지금 장편소설 “졸혼”을 22장끼지 쓰고 잠시 마무리지었는데 수많은 독자들은 계속 다음이야기를 기다린다는  숱한 위챗 메시지를 보내왔다. 나는 단편소설 “졸혼”을 쓰려고 했는데 중편소설로 됐고 인젠 장편소설 제2권까지 쓰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다.        내가 말하는 “졸혼”은 일본과 한국에서 말하는 사전해석 외에도 리혼과 가짜리혼한 후(“졸혼” 후) 나 홀로만의 생활도 내포한다. 일본이나 한국 다른 법률과 도덕성기준을 가진 조선족은 "가짜리혼"이란 독특한 현상이 존재한다. 때문에 이제 “졸혼”은 한국과 일본과는 달리 "리혼하지 않고 서로 상대방을 간섭하지 않고 나홀로만의 인생을 살아가는데 "그치지 않았다. 그러므로 소설 "졸혼"은 어데까지 나가겠는지 모르겠다.        “졸혼”이란 새 혼인풍속으로 인해 생긴 수많은 굴곡적인 이야기는 22장절에 다 담기는 힘들다고 인정한다. 문걸은 안해와 가짜리혼한 후 춘희박사와 함께 서로 나홀로만의 자유로운 생활을 하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문걸은 춘희에게는 야마구찌 다이로교수 남편과 딸 야마구찌 마끼라는 딸도 있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알게 된다. 그들은 졸혼한 후  어떻게 살가?  군철은 문걸을 계속 아버지로 인정할가? 정호와 순정은 어떻게 최혜영 국장 등 검사들과 경찰들의  수사를 피하겠는지? 정호는 나영을 데리고 야반도주 햇는데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가? 정호는  문걸처럼 가짜리혼하고 홀로 자기만의 자유로운 생활을 누리게 될가? 정호 주변의 황선희, 나영이, 하영이 등 애매한 관계의 녀인들의 운명은?  … 수많은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중에 더욱 랑만에 찬 환상적인 이야기로 독자들에게 놀라움과 함께 매력을 발산하면서 졸혼의 주제가 승화될 것이다...      이 수많은 이야기를 반전에 반전을 더 하는 굴곡적인 이야기로 구상하고 생활이야기의 진실을 예술의 진실로 승화시키는 창작작업은 새로운 각골마라톤일 수도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나는 독자들의  절박한 요구에 따라 독자들이 즐겨 읽는 이야기를 소설로 계속 써내려가려고 한다. 반전에 반전을 더하는 소설, 이벤트와 굴곡적인 이야기로 독자들에게 놀라움과 매력을 줄 것이다.       그러나 독자들의 생각에 이만해 끝내면 딱 좋을  것 같다고 인정하면 이만 마무리져도 상하집으로 된 장편소설로서는 내용이나 수제트구성이나 인물성격부각이나 편폭이나 갖출 것은 다 초보적으로 갖췄다고 본다.       나는 장편소설 “졸혼”에 흠집도 있다고 생각한다. 오래동안 종합간행물 편집사업을 해온 나는 편집선생님들의 지적대로 문학성제고에도 나름대로 모지름을 썼다. 그러나 내 문학창작재간이 이만해서 이 정도로 됐다. 황차 나는 문학창작에서 미사려구를 동반한 장황한 묘사 같은 문학성보다도 내용을 우선시하고 이벤트로 반전에 반전을 더 하는 굴곡적인 슈제트구성과 인물성격 부각에 신경을 더 많이 써왔다. 일부 소설은 한두구절이면 끝날 수수한 제재를 가지고 불필요한 장황한 묘사와 미사려구를 늘여놓으면서 독자들을 끌려고 했는데, 참 마음이 아프다. 아무리 문학이 언어예술이라고 하여도 미사려구나 음풍영월을 늘여놓는 것은 결코 소설의 문학성이나 작가의 사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안일한 정력이 아깝고 간행물 지면이 아깝다.      나는 소설 "졸혼"에서 어디까지나 독자들로 하여금 미적향수를 받게 할 뿐만아니라 독자들에게 뭔가 새로운 애정관, 혼인관, 가정관을 심어주고 그 새로운 관념을 실행하는 새로운 길을 함께 모색하려고 엉뚱한 시도를 했다.       몇해 전에  "김성종 추리소설연구쎄미나"에서 한국 추리소설대가 김성종선생을 만나뵌 적이 있다. 그는 40여편의 추리소설에 대하소설 "려명의 눈동자" 등 백성들이 보기 좋아한 수많은 통속소설을 펼쳐낸 "인민성 통속소설가"이다.  그의 소설은 수많은 독자들의 마음 속에 뿌리를 내렸고 불후의 명작으로 세상에 길이 남았다. 그의 소설책이 어찌나 재밌고 잘 팔기는지 수많은 출판사들에서 돈따발을 가지고 찾아와서 출판할 작품을 창작해달라고 선전으로 예약한다고 한다. 그는 팔순 고개에 오른 고령에도 한주일에 몇편의 단편소설을 쓰고 있다고 했다. 나는 김성종 작가의 창작정신에 감동됐고 탄복했다. 나는 김성종 대작가의 통속소설을 아주 즐겨 읽었고 못내 감탄했다.   나도 황혼기에 김성종 소설가처럼 백성들이 즐겨 보는 통속소설을 얼마간이라도 쓰고 싶다.       김학철선생님 10주기 때 나는 훈춘 밀강향을 감돌아흐르는 두만강변에서 제주를 부어올리면서 맹세한적이 있다.       "김학철선생님의 창작정신을 계승해 우리 민족과 인민을 위해 인민성을 띤 소설을 써내겠다."고       나는 그때 김학철선생님께 맹세한대로 황혼기에  장황한 미사려구에 기댄 문학성보다도 그저 백성들이 재미있게 즐겨 읽는 통속적인 소설을 좀 긁적거리고 있다.        백성들이야 말로 진정한 평론가이고 편집이며 소설가들이다.  문학이 텅 빈 내용으로 장황한 미사려구나 음풍영월이나 늘여놓으면서 인민성을 떠난다면 생명력이 없을 것이다. 오직 인민성을 띤 문학작품만이 세상에 길이길이 빛뿌리라.                                                                  2022. 5. 17.  
3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창작후기 김장혁 댓글:  조회:652  추천:0  2022-01-29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창작 후기         반만년의 핏줄을 이어온 우리 조선민족은 찬란한 력사와 문화가 있다. 우리 조선족은 지난 세기 초 일제의 핍박에 못이겨 정든 고향을 떠나 쪽박 차고 두만강과 압록강을 넘어 중국 동북지역에 들어왔다. 우리 조선족들이 이 땅에 첫 괭이를 박아서부터 해를 지고 나가 달을 지고 돌아오면서 황무지를 개간했고 이 땅을 보호하기 위해 형제민족들과 함께 목숨걸고 피어린 항일투쟁을 하였다. 한반도와 만주에는 홍범도, 김좌진, 안중근 등 항일 장군령들과 항일투사들의 혼이 살아숨쉬고 있다. 우리 조선족들은 당의 현명한 민족정책 아래 이 땅에 두번째 고향을 건설하였으며 연변조선족자치주를 일떠세우고 나라의 주인이 된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    나는 대학시절에 리기영의 장편소설 "두만강"을 읽은 후 지난 세기 초부터 말기까지 아우르는 조선족 백년 력사 한페지를 보여준 장편소설을 써서 조선족 조상들에게 자그마한 기념비라도 세워주고 싶은 강한 충동을 받았다. 파란곡절 끝에 나는 평생 정력을 다해 끝내 350여만자, 총 7권으로 된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을 써냈다.      나의 평생 정력이 깃든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이 대한민국 교문사 이완표 회장님과 편집선생님들의 지성어린 사랑에 의해 세상에 고고성을 올리고 조글로에 련재한 후 국내외에서 반향이 아주 컸다. 선후하여 한국의 네이버, 다음, 중국의 조글로와 모이자에 출간소식과 함께 련재되여 수많은 국내외 네티즌들이 열람하였다. 요즘엔 위챗-온로인세상이라 숱한 애독자들이 나의 소설을 보고 감상이나 따끔한 지적도 해주고 있다. 이는 중국 조선민족에게 자그마한 기념비라도 세우려고 외로운 문학사막에서 마라톤에 나선 나에게는 더 없는 위안과 고무가 아닐 수 없다. 이 대하소설의 창작과 출판을 지지해준 한국 교문사, 국내외 수많은 유지인사들, 그리고 이 대하소설을 열람한 독자, 네티즌들께 충심으로 되는 경의를 드린다. 또 이 대하소설에 흠집이 있다면 드넓은 민족심으로 널리 량해할 것을 바란다.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창작과 출판과정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은 내 평생에 걸쳐 쓴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시골마을에서 태여나 고중을 졸업한 후 소 궁둥이를 치는 목동도 해 보았으며 농사일이란 농사일은 가리지 않고 다 해보았다. 교원, 기자, 택시 업주도 해보았으며 종합간행물 주필과 광고 사업도 해보았다. 물론 자주 일터를 바꾸다나니 항상 모든 것을 령으로부터 시작해야 했기에 힘들었다. 그러나 나는 여러가지 사업을 하면서 문학창작을 위해 우리 민족의 피눈물나는 력사와 사회 생활을 널리 료해하고 체험할 수 있은 기회를 가진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내 한생에 시내 주급 간부의 귀공주로, 국장의 셋째딸로, 부총편의 막내딸로 38명이나 되는 부동한 신분의 처녀들도 수두룩이 만나 련애도 많이 해보았다. 부주장의 귀공주와 결혼했더라면 내 인생이 그렇게 고달프진 않았으리라. 하지만 나는 시내 으리으리한 고위급간부네 고중졸업생처녀한테 장가들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자기 리상의 돛을 부주장이나 국장네 딸의 치마폭에 매달고 싶지 않았다. 나는 자기 지식과 노력으로 문화단위에 들어가 문학창작을 하고 작가의 꿈을 실현하고 싶었다. 자기 노력으로 오늘 정교수급 편심으로 된 것만 해도 나는 만족이다. 아마 여러가지 사회 생활을 풍부히 체험했고 부동한 신분의 수많은 사람들을 료해했기에 사실주의 창작방법으로 대하소설 속의 다양한 성격을 가진 인물들을 비교적 핍진하게 그려낼 수 있지 않았겠는가고 생각한다.      대학시절에 나는 문화대혁명시기(10년동란시기) 중학생들의 비참한 학습과 로동 생활을 보여준 장편소설 "려명의 전야"를 썼다. 허룡구 교수와 최문식 선생은 읽어보고 좋은 정평을 냈다. 룡정에서 교편을 잡을 때 나는 하루 강아지 범 무서운줄 모른다고 단통 “장백산 천지”라는 4권으로 된 대장편소설을 쓰려고 달려들었다. 엉뚱한 창작계획을 들은 김재권 관장과 리태수선생님은 희죽이 웃으면서 “장편부터 써서 성공한 작가도 있다.”고 하면서 나의 “엉뚱한 창작계획”을 지지해주었다. 힘을 얻은 나는 2권까지 50여만자를 썼다가 필을 접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때 두부모만한 단편소설도 발표가망이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대장편을 발표하겠는가고 저울질하다가 결국 자기절로 주저않고 말았던 것이다. 지금 보는 대하소설 "울고 웃은 고향"은 그때 쓴 것이였는데 지금 읽어봐도 젊은 시절에 쓴 대목이 더 형상적이고 환경과 인물 묘샤도 생동하고 재미 있다고 본다. 그때 필을 놓은 것이 자못 후회된다. 당시나 지금도 확실히 일부 편집들은 저자의 문단서렬이나 창작성과를 저울질하면서 작품을 편집하는 페단이 있다. 때문에 단편소설도 몇편 발표하지 못한 초보인 내가 숱한 중견작가들을 놔두고 장편을 발표한다는 것은 실로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웠던 것은 사실이였다.      나는 방송국과 출판사에 전근한 후 창작환경은 좋아졌만 스스로 당시 편집계통의 페단에 위축돼 문단서렬만 따지고 출판가능성을 저울질 하면서 대하소설을 계속 창작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원 창작계획대로 써놓아도 몇백만자에 달하는 대하소설을 국내에서 내자면 엄청 많은 출판자금이 수요됐고 국내에서의 출판여부도 미지수였다. 또 대하소설을 낼만한 넓은 흉금과 부담을 가질만한 책내는 곳도 별로 보이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결국 개혁개방과 한국 출판업계가 나의 대하소설 창작을 고무해주었고 용기를 주었고 대하소설 출판을 성공하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때에도 김재권 선생이 자주 찾아와 대하소설 창작을 독촉했다.        "문단서렬과 출판가능성을 저울질해서야 언제 대작을 써내겠소? 우둔한게 범을 잡는다고 대담히 대작을 계속 쓰오. 문단서렬을 타파하고 우리 문단에 ‘원자탄'을 터뜨리고 '위성'을  쏘아올리지 못하겠소?"      여러 선생님들과 조남기 장군, 그리고 조룡호, 김영만 등 중국 조선족 로지도자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나는 민족의 사명감과 의무감으로 필승의 신념을 안고 또다시 글감옥 적막강산에, 사막에 들어가 필을 들고 마라톤창작을 견지했다.  문학창작이란 실로 뼈를 깎아내는 작업이었다. 나는 항상 손바닥만한 노트를 호주머니에 넣어가지고 다니다가도 령감이 떠오르면 노트에 간단히 적어놓군 하고 집에 돌아와 컴퓨터에 마주 앉아 소설 한대목으로 엮어나갔다. 출장가도 나는 원고지거나 노트북을 가지고 다니면서 소설창작을 멈추지 않았다. 한번은 인청공항에서 도정신해 글을 쓰다다니 항공편을 놓칠번한 적도 있다. 나는 밤중이고 새벽이고 출근시간 전이고 날마다 엉덩이가 배기게 소설창작을 멈추지 않았다. 한번은 소설을 쓰다가 출근시간이 돼 그만 짝짝 신을 신고 단위에 출근해 동료들을 웃긴 적도 있다. 또 한번은 시계를 들여다보면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쓰고 하다나니 시계가 잔줄도 몰라 그만 대학교 동창생네 손자 돌생일잔치가 끝난 뒤에야 달려가는 실수도 했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내 문학창작을 하는 황금시기였다. 토요일과 일요일에 친구나 무슨 행사가 있는 것이 딱 질색이였다. 내 창작시간을 잡아가기 때문이었다. 날마다 종합잡지 편집을 하고나서 퇴근해서도 몇시간씩(토요일과 일요일엔 10여시간씩) 컴퓨터에 맞우 앉아 책 보고 글을 쓰다나니 체중이 90킬로그람으로 올라가도 혈당, 혈압이 올라갔다. 심지어 너무 피곤해 단위 식당에서 동료들 앞에서 밥 먹다가 코피를 한사발씩이나 흘린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눈도 너무 피곤해 피지다 못해 고기가 동공 부근에까지 뒤덮여 눈 수술을 두번이나 했다. 수술칼이 내 눈으로 들어올 때 그 공포도 감내하면서도 필을 멈추지 못했다. 민족과 조상들에게 진 빚을 갚아야 했다. 밤중까지 몰입해 소설을 쓰다가 곤해 잠즐면 꿈에서도 항일투사들과 작중 주인공들이 무시로 나타나 일본 놈들과 싸우지 않겠는가. 심지어 그들이 나와 웃고 떠들며 대화를 나누는 목소리마저 귀에서 들리는듯 하였다. 그러면 와닥닥 깨나선 소설을 구상하고나서 슬그머니 일어나 안해를 깨울세라 컴퓨터를 가지고 주방에 가서 대목을 가지고 건판을 두드리군 하였다. 나는 사명감과 의무감은 나를 장장 20여년 동안 글감방에 갇혀 문학창작에 몰두하게 하였다. 이렇게 간고하게 글감방에서 자아와 싸우면서 나는  끝내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을 창작해냈다. 최초에는 4권으로 된 대장편을 창작하려고 했고 제목도 “백두산 천지”라고 달았었다. 후에 출판사에 온 후 어벌이 커져서 제목을 “울고 웃는 고향”으로 고치고 400여만자 써서 소설을 12권으로 묶어내려고 했다. 그러나 자금도 문제고 너무 덩치 커서 국내는 물론 국외에서도 출판하기 어려운 형편이고 각 력사시기 내용의 균형을 유지해야 했다. 그리하여 현시대 사랑과 련애, 혼인, 가정 제재는 두번째 대하소설 "진달래소야곡"에 넣기로 마음을 고쳐 먹고 300여만자, 7권으로 끝냈다.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의 출판도 진짜 사막에서 마라톤을 하는 계속이라고 할 수 있었다. 우리 민족의 이민사를 다룬 대하소설을 국내에서 출판했으면 얼마나 좋았으랴. 허나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문단에서 대하소설을 낼만큼한 서렬의 작가가 아니었다. 또 이미 나의 저서를 여러권 내준 사랑하는 국내 출판사에, 힘겹게 운영해나가는 국내 출판사에 막대한 경제적부담을 지게 하기도 미안한 일이였다. 이런 저런 원인으로 하여 부득불 이 대하소설을 한국에서 출판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 얼마나 많은, 전도 창창한 작가들이 사막에서 달리다가 우물을 지키는 관문 문지기들의  편견과 시기, 유기로 해 중도에서 사막의 모래바람에 매몰되였던가. 사막에서 누가 물을 주려니 하고 더는 기다릴 수 없었다. 물 한방울 없는 사막에서 마라톤을 하려면 자기 절로 우물을 파야 했다. 샘물을 찾지 못하면 락타처럼 자기 몸의 물이라도 피눈물과 함께 삼키면서라도 계속 앞으로 달려야 했다.    그런데 최초에 처자들은 애나게 택시업을 해서 번 숱한 돈을 밀어넣으면서 저서를 내는 것을 반대했다. 문학의 중요성을 잘 모르는 처자들의 태도에 안타까웠다. 몇몇 녀성문우들과 “그대가 만약 내 안해라고 할 때 돈을 내고 저서를 내는 것을 동의할 수 있겠는가”라고 자문했다. 그러자 녀류 작가, 시인들도 “집 한채를 쓸어넣고 저서를 내는 건 동의할 것 같잖아요. 돈을 내지 않고 신문이나 잡지 그리고 인터넷이나 위쳇에 얼마든지 작품을 낼 수 있는데요. 왜 하필 돈을 내고 작품을 내야 하는가요?”라고 했다. 심지어 일부 친구들은 바보 짓을 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물론 인터넷 시대에 친구들의 말에도 도리가 있었다. 그러나 어찌 사이버문학과 전통문학을 혼돈해 비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고 보면 내 처자를 나무랄 일도 아니였다. 나는 친구들과 처자들의 고마운 충고를 뒤로 하고 그예 가람을 건넜고 그런 "바보"로 달갑게 되였다.     나는 “아파트 한채를 더 장만하기보다 우리 민족의 정신기둥을, 기념비를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우리 민족 후손들에게 정신재부를 남겨주는 것이 더 보람차다”고 생각하였다. 나의 설득을 받은 처자들도 더는 반대하지 않고 오히려 한국 출장에 보태라고 꼬깃꼬깃 치워뒀던 한화를 내놓았다. 그래도 과외로 택시업을 한데다가 연변인민방송국과 연변인민출판사 지도부의 지지와 관심아래 다년간 기자와 주필로 사업하면서 광고사업을 겸해 한 덕분에 출판자금을 넉넉히 마련할 수 있었다. 연변인민방송국과 연변인민출판사 지도부에 삼가 감사를 드린다. 국내 사막을 벗어나 한국 사막 마라톤에 당돌하게 나섰지만 그래도 처자들까지 지지해 출판자금이 넉넉히 있어 마음이 든든했다.     40여년 문학창작을 하면서 나는 애나게 택시업과 광고를 해 번 돈을, 진짜 아빠트 한채를 쓸어넣고 문학작품을 22권이나 써냈다. 진짜 물 한 모금 없는 사막에 물을 통채로 부어넣은 격이다. 그러나 나는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다만 사막에서 힘겹게 마라톤을 하는 조선족마라토너한테 높은 문턱을 지키는 전갈들, 물 한모금도 주지 않고 외면해버린 그랑데들, 송곳이를 사려물고 사막의 우물을 지키는 호랑이들, 흉금이 비좁은 관문 문지기들, 주산알만 딸깍딸깍 튕기며 민족의 정신기둥을 세우는 사업에는 꼬물만치도 관심이 없는 수전노들이 가소롭고 안타깝기만 하다.     나는 이른바 문단서렬이나 출판서렬을 더는 기다릴 수 없었다. 김재권 선생님의 말씀대로 그 문단서렬과 출판서렬을 타파하기 위해 새로 도전하고 싶었다. 김재권 선생님의 기대처럼 문단에 “위성을 쏘아올리고” “원자탄을 꽝 터뜨리고” 싶었다. 우물 안에서 뛰쳐나가 한국 문단으로 진출해 나의 작품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 싶었다. 그 강렬한 욕망이, 지하에서 부글거리는 시뻘건 용암이 사막에서 끝내 폭발하였다. 황홀하고 푸른 문학 꿈을 위해서라면 집 한채겠는가? 혁명선렬들은 민족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 목숨마저 바쳤는데 아낄 것이 그 무엇인가!     그러나 한국 사막에서 도서출판의 마라톤도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웠다.나는 최초에 눈보라를 무릅쓰고 두툼한 원고와 유판을 가지고 한국 파주출판단지에 가서 면목도 모르는 이 출판사 저 출판사를 돌아다니면서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 출판을 주문하였다. 한국의 어떤 출판사 사장은 어이없다는듯이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며 출판을 단마디로 거절했다.     “중국 조선족이민사 소설이 우리 한국과 무슨 관계 있어요? 이리 긴 대하소설을 잘못 냈다가 판매 안되면 우리 출판사 부도나요.”    이전에 내 중단편소설집을 출판한 적이 있는 한 출판사 사장은 꽤나 동정하면서도 의아해했다. “왜 중국 조선족이민사를 좋은 자기 출판사에서 출판하지 않고 한국에서 출판하려고 해요? 돈도 많이 들고 출판될 가능성도 아주 희박한데요.”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당황해났다.      물론 국내 출판사에서 내면 한국에서보다 인맥도 있고 출판환경도 순리여서 쉬울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여지껏 리성권 사장과 김철환 선생 등 지인들의 방조하에 우리 연변인민출판사에서만 해도  국내 조선족문단의 첫 장편과학환상소설로 불리우는 나의 소설 "야망의 바다", 문학작품집 "사랑은 요술쟁이야", 수필집 "리별", 장편실화소설 "38선에서 싸우던 나날에", 장편실화 '인민의 훌륭한 법관 록도유", 장편실화소설 "부르하통하강반 살인악마의 유령" 등 숱한 문학도서를 내주었다. 진짜 문학사막에서 외롭게 달리는 나에게 단비를 뿌려주어 목을 추기고 용기를 얻어 계속 문학작품을 창작하게 여린 등을 밀어주군 하였다. 진짜 한평생 잊지 못할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나는 우리 출판사에 더 손을 내밀어 엄청 부담을 주면서 신세를 지기도 미안한 일이였다. 그리하여 내가 한국 출판시장이란 사막에 와서 마라톤을 힘겹게 하고 있지 않는가! 나는 기어이 이 한국 사막에서 부딪혀 뒹굴고 쓰러지더라도 한국 문단에서 밝은 해가 쨍하고 뜨는 날을, 모래바람이 불지 않는 푸르른 하늘을 보고 싶었다.      출판자유를 부르짖는 한국에서도 90년대까지도 문학작품에 대한 이데올로기심사제도가 엄했다고 한다. 특히 북방사회주의 프로레타리아 사상경향을 가진 국내 유명작가 작품에 대해서도 출판을 견제(통제)했다고 한다. 또 출판한 후에도 재심사를 하고 작가를 호출해 처분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정황이 많이 달라지긴 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일부 출판사 사장들은  그 이데올로기 영향이 있어 "돈을 엄청 내서 빨갱이들을 선전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하하여 그들은 수고스럽게 내 소설을 다 읽어본 후 내 소설작품을 도끼질하려고 들었다. 중국공산당의 령도아래 토지개혁을 하고 사회주의 혁명과 건설을 한 내용을 보여준 5권부터 7권까지 찍어버리고 항일전쟁시기 유격대 항일투쟁과 조선족이민사를 보여준 1권부터 4권까지만 내자고 한 출판사도 있었다. 그래도 대하소설은 된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작가로서 자존심을 지켰다. 못 내면 못냈지 내 작품을 두동강 낼순 없었다.      한국이라는 랭혹한 출판 사막에서 외롭게 달리는 마라토너의 처참한 모습은 눈물겹기만 했다. 혹시 국내에서 마라톤을 계속 했더라면 한국의 모래바람이 매섭게 이는 사막에서 달리기보다 훨씬 나았을 수도 있지 않았을가. 나는 한국과 국내 사막의 갈림길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고달프게 망설이면서 허덕이게 되였다.     바빠맞은 나는 심양에 있는 절친한테 손을 내밀었다. 그 친구는 중앙번역국과 료녕출판사 조문편집실 주임과 "새마을"잡지 주필도 한 빛나는 경력이 있었고 문단에서 소설가로 두각을 내밀고 있었다. 그는 심양시 경제문화교류유한회사를 차리고 한국과 중국 조선족사회에서도 이름난 출판통 엘리트로서 숱한 도서를 한국과 중국에서 출판하였다. 그는 한국에서 인맥을 통해 여러 출판사에 연줄을 달고 한국 작가들한테도 부탁해 사막에서 퐁퐁 솟는 샘물을 찾아내 나한테 주려고 물심량면으로 아낌없는 노력을 다하였다. 일찍 그는 한국 조정래 작가와도 안면이 있었고 그에게서 선물받은 대하소설 "아리랑"도 나보고 참고하라고 부쳐보내주었다. 후에 나의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도 그 친구가 연줄을 달아 료녕민족출판사에서 출판하게 도와주었다. 몇달 후 그 친구한테서 기쁜 소식이 날아왔다. 한국의 한 출판사에서 몇몇 한국의 저명한 작가들을 보고 나의 소설원고를 심열하게 했는데 작품은 좋은 정평이 나왔고 발행까지 점검했는데 만부매출이 가능해 출판 가능성이 많아졌다고 했다. 그때 나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런데 후에 그 한국 모 출판사에서는 중국 조선족이민사를 다룬 대하소설이 한국 독자들을 끌수 있겠는가, 만부 판매되겠는가고 재차 고려하게 되였다. 나의 친구는 만부는 팔릴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랭혹한 한국 도서시장에 우리 조선족이민사를 다룬 대하소설은 발을 붙히기는 힘들었다. 그 한국 출판사 발행일군들의 세밀한 도서시장조사를 거쳐 만부 발행이 불가능하다는 쪽으로 기울어졌다. 한국 출판상들의 머리 속에서 나의 대하소설은 진짜 문학으로가 아니라 상업으로 번져졌다. 비록 소설출판엔 성공하진 못했지만 나는 물심량면으로 내 소설 출판을 진심으로 지원한 친구가 마음 속으로 감사했다. 또 친구를 헛수고시킨 것이 못내 미안했다.     나는 절망에 빠져 한국 출판사막에 홀로 물앉고 말았다.  눈보라는 끝도 보이지 않는 사막의 모래폭풍으로 불어치며 눈과 얼굴, 온몸을 무섭게 때렸다. (그래 한국의 만여개나 되는 출판사 중에 우리 조선족의 눈물겨운 이민사를 낼만한 출판사가 하나도 없단 말인가?  이 넓은 세상에 드넓은 흉금을 가진 선지선각 유지인사가 없단 말인가?!) 사막에서 절망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한국의 민족심과 동포애가 깊고 흉금도 드넓은 유지인사들이 신화처럼 나타나 사랑의 손길을 뻗쳤다. 한국 새천년민주당 전임 당대표 서영훈 어르신님, 한국 이웃사랑협회 이정호 회장님과 한국 경기도교육삼락회 채순목 회장님 등 유지인사들은 이 대하소설출판을 위해 나섰다. 이정호 회장과 당뇨병합병증으로 병환에 계신 채순목 회장님은 몸소 나를 데리고 수원시에 있는 교문사 이완표 회장님 사무실을 찾아가 민족심으로 이 대하소설을 내줄 것을 간청했다. 이완표 회장님은 시간을 짜내 내 대하소설을 몽땅 깐깐히 읽어보고 나서 나의 “하늘을 찌르는 민족애와 불굴의 창작정신에 감동됐다”면서 이 대하소설을 출판하기로 결정하였다. 교문사의 출판속도는 국내에서는 상상조차 어렵게 놀라울 정도로 쾌속적이였다. 편집선생님들은 반년도 완돼 편집과 인쇄까지 끝냈다. 이완표 회장님께서 대하소설이 출판됐다는 기쁜 소식을 듣고 나는 꿈인가, 생시인가, 얼마나 기뻤는지 몰랐다.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의  력사반영 예술수법       나는 우리 조선족의 백년력사를 보여준 장편소설을 쓰려고 리기영의 "두만강", 천세봉의 "고난의 세월", 조경래의 "아리랑"과 "태백산맥", 박경리의 "토지", 리근전의 "고난의 년대", 라관중의 "삼국연의", 시내암의 "수호전" 등 수많은 력사소설을 열독하고 이런 력사소설에서 력사반영의 예술특징을 연구하고 학습하였다. 나는 이 소설을 창작할 때 사회주의 사실주의 창작원칙을 위주로 국내외 작가들의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을 답습해 력사진실과 예술의 진실을 구현하면서 지난 세기부터 본세기 초 격변기에 이르는 조선족의 백년 력사를 보여주려고 시도하였다.            어떤 문학평론가들은 나의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은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상 리기영의 "두만강"과 비습한 감이 난다고 했다. 사실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은 리기영의 "두만강"을 읽으면서 많이 답습했다. 일찍 대학시절에 몇번이고 "두만강"을 읽었고 졸업론문도 "리기영의 '두만강'에서 력사반영의 예술특징'을 썼다. 하문섭교수는 나의 론문을 보고 "일정한 연구 성과가 보인다."고 고무해주었다. 재직기간에는 리근전의 " '고난의 년대'에서 력사반영의 예술특징"이란 론문도 써서 "문화시대"에 발표하였다. 나는 확실히 리기영과 리근전의 소설에서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을 많이 참고해 이 소설 창작을 했다.        나는 우선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에서 전형형상창조수법으로 특정된 지난 세기 초부터 말까지 이르는 기나긴 력사시기 전형환경에서의 주인공 병완, 상순, 덕돌을 비롯해 부동한 력사시기 각계 각층 수많은 전형인물을 창조해 조선족의 백년 력사시기를 보여주려고 시도했다.     전형자연환경도 중국 만주에 국한 시키지 않고 조선반도와 동북을 아울러 배경으 조선 함경북도 명천군 영월동과 중국 동만 영월동을 축도로 설정했다.     조선 북부 명천군 영월동은 우시장이라는 허구된 곳으로 설정하고 당시 일제 철발굽에서 신음하는 조선반도, 그에 반항하는 항일의병들의 의거활동, 핍박에 의해 정든 고향을 떠나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 만주에 들어온 대이주 축도를 보여주려고 시도하였다. 중국 조선족들의 력사에서 조선에서 중국에 이주해 들어오게 된 계기, 력사를 빼놓을 수 없었다.      영월동에 이어 중국 동만의 축도로 함흥촌을 설정했다. 함흥촌은 당시 중국 조선족들이 처한 삶의 자연환경의 축도였다. 함흥촌에서 김병완, 김상순을 비롯한 조선족들이 항일투쟁, 당지 지주들과의 투쟁, 국민당 토비들과의 전투, 토지개혁, 인민공사, 대약진, 반우파투쟁, "문화대혁명", 개혁개방 격변기 등 력사사건을 겪는다.      항일투쟁의 전형자연환경은 민족의 성산 장백산 밀림을 중심으로 한 함흥촌으로, 항미원조 전쟁의 전형환경은 무명고지로 설정했다.      인물이 처한 환경 설정과 활동경력도 력사반영의 수요에 의해 설정해놓았다.      례하면, 항일전쟁과 6.25 한반도 동족상잔전쟁을 보여주기 위해 제1권에서 미리 이남 경주 출신 김용천을 이북 명천군에 와서 항일활동하는 복선을 미리 쳐놓았다.      항일전쟁시기 김용천은 김성칠, 사촌동생 칠백 등을 이끌어 조선반도에서부터 어깨겯고 일제들과 싸웠고 두만강을 건너 장백산 밀림 숙영지에 전이한 후 일본놈들을 눈함정에 유인해 빠지게 하며 매복습격해 첩보를 올린다. 그들은 일본 놈들의 포위를 구사일생으로 뚫고 나오는 피눈물겹고 처절한 항일투쟁사를 엮는다. 그러나 항미원조 전쟁 시기 무명고지에서 전우들인 김용천은 남조선괴뢰군을 이끌고 조선인민군 련대장 김성칠이 이끈 조선인민군과 총칼을 맞대고 결사전을 벌린다. 김용천은 사촌동생 권칠백과 총칼을 맞대고 육박전을 벌리면서 서로 옆구리를 찌른다. 전쟁은 무정했다. 용천은 사촌동생마저 죽이고 만다. 또 뒤이어 무명고지에서 항일전쟁시기 전우 김성칠을 격살한다. 동족상전의 전쟁은 전우와 동생도 살해하게 하였다.     항미원조전쟁시기 남조선특무를 나포하는 전투에서도 주인공 병완은 상순과 함께 대의멸친해 친처남의 손자, 남조선 특무 이병수를 나포한다. 주인공 병완의 대공무사하고 대의멸친하는 형상을 부각하기 위해 제1권에서 벌써 병완의 처남이 아들 이명호(이병수의 아버지)를 데리고 고향 충청도 서천군에서 명천 영월동 병완의 집에 놀러 오는 복선을 쳐놓았었다. 또 후에 항미원조시기 상순이 충청도 서천군 따발령에서의 격전을 보여주기 위해 이병수의 아버지 명호와 상순이 함께 뛰노는 장면을 미리 복선으로 쳐놓았다. 이밖에도 소설에서는 이남출신 중국인민지원군 반장 리흥수와 남조선 괴뢰군 영장 동생이 따발령 격전에서 극적으로 날창을 맞잡고 적대적으로 싸우면서 만나게 되는 장면, 상봉 몇시간도 못돼 동생의 죽음을 맞이한 흥수의 비극도 예술적으로 그려넣었다.     이처럼 인물형상 부각과 력사반영을 하기 위해 모든 인물과 자연환경을 미리 설정하고 복선을 쳐놓기도 했다. 나는 이렇게 전형환경에서의 개성이 독특한 인물들의 갈등과 행동로선을 통해 동족상잔의 참혹한 전쟁을 보여주고 평화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여운으로 남겨주려고 시도했다. 같은 전쟁제재 소설이라도 작가의 창작의도가 다름에 따라  전쟁도 다르게 묘사되기 마련이다. 나는 항미원조전쟁도 단지 치렬한 전투를 렵기적으로 보여주려고 필묵을 들이지 않았고 전투를 통해 동족상잔의 참혹성을 보여주고 평화를 극구 선양하는데 필묵과 예술기교를 아끼지 않았다.     성칠은 수하들이 잡아온 혀가 바로 어머니가 생전에 그렇게 외우던 친정오빠네 손자, 자기 5촌조카 이병수라는 것을 알게 된다. 또 이병수를 통해 무명고지 상대편 괴뢰군부대는 몇년동안 그렇게 찾던 전우 김용천의 련대라는 것도 안다. 용천은 또 무명고지격전에서 확성기로 대화해 진달래가 성칠한테 재가해 애까지 낳았다는 것을 알고 결투를 벌리듯 무명고지를 쳐서 원쑤(사랑라이벌) 성칠을 참살한다. 이 대목을 읽으면 독자들은 전쟁은 항전시기 전우끼리도 서로 참살하게 한 장본인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며 또 전쟁의 참혹성과 분단의 아픔, 평화의 소중함을 깊이 느끼게 될 것이다.              이 대하소설을 창작하면서 주인공 설정에서도 부딪친 난제도 있었다. 대하소설이라면 보통 한 주인공으로 한시기 력사시기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틀이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나는 리기영의 "두만강", 리근전의 "고난의 년대" 등 소설에서 앞세대 주인공을 뒤세대가 이어받았다는 것을 보고 그 답안을 찾아냈다.             리근전의 장편소설 "고난의 년대"에서는 늙은 세대 주인공으로 박천수를 설정하였다. 작자는 이상의 늙은세대 인물형상을 통해 주요하게 19세기말부터 20세기 10년대말의 력사와 그제반특성 및 각 계층 특성들을 반영하였다.     다음, 소설에서 이런 늙은세대에 의해 보여준 미적리상과 인민투쟁력사의 계승자로서 슬기롭고 용감하며 심중하고 강직한 당원 박윤민을 개성적으로 부각하면서 부정인물 오창수, 오창덕 및 일제놈들과의 갈등과 투쟁을 통해 1919년 5.4운동이후로부터 1945년 8.15해방이전 력사시기 당의 령도아래 조한 형제민족 인민들이 단결하여 진행한 반제, 반봉건 투쟁력사를 예술적으로 반영하였다.     작품 결말에 제3세대 인물인 귀섭이 형상을 등장시킴으로써 조선족인민들의 투쟁력사는 계속됨을 암시해주고있다.     이런 3세대에 걸친 수많은 인물형상체계의 중심에는 박천수와 박윤민이 련이어 서서 끌고나가고있으며 이들과 기타 인물들의 혈연적, 사회적, 계급적 련결과 갈등속에서 인물성격을 발전시키고 해당 시기 력사를 예술적으로 반영하고있다. 때문에 매개 력사사건은 동떨어진감이 없이 련결되여 독자들로 하여금 형상적이고도 체계적으로 매 시기 력사정형을 리해하게 하였다.             나는 리기영 작가와 리근전 작가가 3세대  주인공을 설정해 부동한 력사시기글 보여준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을 답습하여  대담히 주인공을 병완으로부터 상순, 나중엔 덕돌이 대를 이이받는 새로운 기법으로 대담히 력사소설을 창작하였다.     작중 주인공 병완은 지난세기 이주민족인 중국 조선족을 대표하는 보통공산당원의 형상이다.     병완은 개성도 독특한 인물이다. 나는 병완을 순박한 농민으로만 부각한 것이 아니다. 소설 제1권을 펼쳐들면 병완은 림꺾정 비슷한 인물로 부각한 것을 볼 수 있다. 목수 출신인 병완은 목수재간이 있을뿐만 아니라 힘도 엄청 세고 이름난 씨름군으로 소문났다. 한길수의 집을 지을 때 넷이 목도를 해 메기 힘들어하는 주추돌을 혼자 둘러메다가 쿵 놓는다. 또 씨름재간도 있어 한길수를 몇번이고 둘러메치고 집에 찾아온 한길성을 창문 밖으로 내동댕이친다.     병완은 힘장수일뿐만 아니라 슬기로운 일면도 있었다. 그는 통나무에 벌레를 집어넣고 땜질해 놓아 벌레가 통나무를 파먹게 해 경찰국 청사와 다리가 몽땅 무너지게 한다.     병완은 강직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끼무라 국장이 그를 얼리도 닥쳐도 일제에 굴종하지 않고 한길수와 판가리 싸움해 눈깔까지 빼놓는다. 나중에 병완은 일제놈들의 핍박에 못이겨 가족을 데리고 쪽박 차고 조선 고향을 떠나 두만강을 건너 함흥촌에 도망쳐 들어온다.     병완은 대공무사한 농촌기층 조선족농민당원의 형상이다. 그는 함흥촌을 거점으로 자손들과 마을 농민들을 조직해 성칠과 용천의 항일유격대에 량곡을 비밀리에 대준다. 토지개혁 때엔 지하당조직에 가입하며 마을 농민들을 령도해 토비숙청, 항미원조를 지원했으며 대약진, 인민공사, 반우파투쟁, 문화대혁명의 시련도 껶으면서 두번째 고향을 건설하는데 이바지한다.     소설 후반기 주인공으로 등장한 상순도 개성이 독특하며 강직하고 대공무사하고 벼슬도 초개같이 여긴 청렴한 농촌 보통당원간부의 형상이다.     그는 최초에 성깔이 사납고 강직했다. 그는 지주 지학사가 눈꼴사납게 놀자 작두로 소궁둥이를 찍어놓는다. 그는 아버지 기준을 괭이로 찍은 지주 지학사한데 굴복하지 않고 16세 어린 나이에 비수를 휘두르면서 지학사을 보필하려는 지주를 위협하며 일제 시기 파출소에 소송해 끝내 승소해 악패지주 지학사에게서 상해배상금 30원을 받아낸다. 당시 30원이면 소 한마리를 샀다고 한다.      그때부터 그는 "사람은 빚을 지고 살아도 시비 지고 못산다."는 것을 인생 좌우명으로 삼고 항상 그 어떤 권세에도 굴종하지 않고 원칙을 견지하고 시비에 지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대약진 시기 공사 허백호 서기가 한헥타르에 5만근 내라고 하자 그 허황한 지시에 맞서 시비를 따지면서 싸운다. 그는  병완과 함께 허백호의 지시대로 딱 한짐 시험지에 둼을 한자 두께로 펴고 그 위에 옥수수를 심어 백근도 내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해낸다. 그리고 대약진시기 "한헥타르에 5만근을 내라."는 상부의 지시는 허황하다는 것을 농사실천으로 증명하고 심갱밀식의 불타당성을 호소한다.     상순은 청소년시절부터 유격대에 들어가 싸운 나어린 항일투사였다.     그는 할아버지 병완과 아버지 기준의 지시대로 장백산 항일유격대에 비밀리에 쌀을 날라가며 항일유격대 대장 성칠(큰아버지) 영향하에 항일구국의 혁명도리를 알게 되며 권술을 배워 마을 청년들을 훈련해 항일투쟁에 투신한다. 그는 장백산 밀림 매복전에서 기관총을 들고 일제 놈들에게 맹사격하면서 영용하게 싸웠다.     상순은 지하당조직 책임자 리계삼과 허영주의 소개로 청년시절에 지하당조직에 입당하며 마을 청년들을 조직해 토지개혁과 토비숙청에서 전공을 세운다.     그는 언제 어디서나 당조직의 사업수요에 복종했으며 벼슬을 초개같이 여긴 대공무사한 공산당원의 형상이다.       그는 삼도만 등지 토비숙청을 할 때도 퇀장이 그를 보고 부련장을 하라고 했지만 능력이 모자란다고 겸손하게 담당하지 않았다. 또 토비숙청이 끝난후 영장으로 제발시켰지만 접수하지 않고 함흥촌에 돌아와 민병련장을 하면서 할아버지 사업을 도와나선다.     상순은 동북군정대학을 졸업하고 당조직의 포치에 따라 영월구 공안국 준비소조 조장으로 돼 영월구 공안국을 세우며 당지 국민당 잔여세력을 숙청하고 항미원조시기에는 남조선특무들과 대만 국민당특무들을 나포하는데 공훈을 세운다. 국내에 잠시 평화가 깃들었지만 항미원조전쟁이 끝나지 않은 형세에서 그는 영월구 공안분국 국장마저 사직하고 결연히 조선전쟁터에 나간다.      그는 이처럼 혁명과 당조직의 수요라면 개인의 벼슬과 안위는 초개처럼 여겼다.      상순은  양키놈들을 본때나게 족치려고 조선에 나왔지만 부대에서 군복공장 공장장으로 임명했을 때 미제 양키놈들과 결사전해보려던 욕망을 참고 조직의 사업수요에 복종한다.     상순은 아주 용감하고 능란한 전투지휘원이였다. 그는 조선 최전선 따발령에서 포위해 쳐들어온 미제 양키놈들과 공병삽으로 용감히 육박전해 두놈이나 죽이며 전우들과 함께 로획한 탱크를 몰고 미제 탱크들 속에서 좌충우돌하면서 용감히 싸워 짓부셔버리며 군복운송임무를 승리적으로 완수한다.      상순은 계속 최전선에서 양키놈들과 맞서 싸우려고 했지만 부대에서 통역이 급히 수요되자 영장마저 그만두고 사단 비서과 과장으로 부임한다.     상순은 효성이 지극한 효자였다. 그는 퇴대한 후 향 파출소 소장이거나 향 합작판매상점 책임자로 부임하라고 했지만 벼슬을 초개같이 여기고 함흥촌에 돌아와 촌당지부 서기로 돼 그의 말대로 "농촌 건설사업도 잘하고 부모에게 조석으로 효성을 하는 효자", 농촌보통당원으로 된다.     상순은 언제나 백성들과 집체를 먼저 생각했고 고생은 앞서 하고 향수는 뒤로 했으며 청렴하고 대공무사하게 처사했다. 그는 마을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 살게 하려고 집에 이영을 제대로 잇지 않아 간장물 같은 비물이 천정과 벽을 타고 줄줄 흐르는 것도 마다하고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두만강변 평두산에 가서 황무지를 일궈 감자와 수수 농사를 짓는다. 또 사원들을 이끌어 부르하통하 물길을 돌려 놓고 모래밭을 논으로 풀며 생산대대에 벽돌공장을 지어 대대사무실과 사원들의 집을 벽돌로 짓고 인삼장을 차리고 병완의 설계에 따라 과수원도 가꾼다. 그는 집체 일을 하면서 제 집 일은 할 새도 없었다. 그는 중풍에 걸려 누워 림종을 다투면서도 로군인, 영장 무휼금을 오보호나 렬사유가족에게 나눠준다.     상순은 한평생 당에 충성한 보통당원이였다. 그는 림종시 기자로 된 외아들 덕돌을 보고 "대를 이어 영원히 중국공산당에 충성하고 당을 따라 나가며" "당과 인민을 위해 글을 많이 쓰라."고 당부한다. 그는 한평생 청렴하고 소박한 당원의 고상한 품격을 지켰다.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제6권과 제7권에서는 개혁개방시기 새 시대 주인공으로 덕돌의 전형형상이 부각되였다. 덕돌의 형상은 농촌환경을 떠나 진수해중학교와 도시 문화소를 배경으로 비교적 개성적으로, 독특한 경력으로 전형화하였다. 덕돌의 형상을 통해 개혁개방 이후 격변기의 시대상을 폭넓게 보여주고 있다. 개핵개방부터 현시대를 보여준 소재를 다 제대로 쓰자니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을 4권 좌우 더 써나가야 할 것 같았다. 그리하여 편폭상 력사시대 균형을 이루기 힘들었다. 이쯤하면 덕돌의 형상을 제대로 부각한 것 같아 개혁개방 후 격변기 현시대 조선족들의 시대상과 희노애락을 보여준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을 따로 쓰기로 하고 소설을 마무리했다.      병완과 상순, 덕돌의 형상을 통해 지난 세기 각 력사시기 우리 중국 수많은 조선족백성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며 아울러 조선족 이민사, 살아온 이야기를 자연히 돌이켜 볼수 있을 것이다. 또 덕돌의 형상을 통해 개혁개방 격변기에 교육과 문화 계통 인테리어들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며,나아가서 개혁개방시기 일련의 조선족들의 삶의 력사를 찾아볼 수 있게 하려고 시도했다.     작중에는 주인공 병완과 상순 외에도 김성칠, 김용천, 김인삼, 김기준, 최구장, 진달래, 최구형, 은녀, 칠백, 최동욱, 정규상 그리고 반면인물들인 끼무라, 친일주구 한길수와 한철주 부자, 똘만, 스즈끼, 또 당내 반면인물들인 리흥수, 황종연, 황승연, 박영발 등 전형환경에서의 부동한 계층 전형인물들을 수많이 창조해 당시 각계 각층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냈으며 부동한 력사시기 부동한 계층의 모습과 력사를 반영했다.      조정래 작가는  대하소설 "아리랑"에서 깡깡 마른 직설적인 력사사건 서술을 피면하고 형상적으로 수많은 전형인물을 부각해 자연히 그 인물에 따른 력사를 보여주었다. 례하면 항전시기 미국 하와이에서의 리승만의 형상을 아주 생동하게 부각해 하와이에서의 리승만과 조선족 유지인사들의 항일투쟁사 형상적으로 보여주었다.      나는 전형인물을 형상적으로 부각하면서 력사사실을 반영한 한국 조정래 작가의 력사반영 예술수법을 답습하여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을 창작하였다.      인물의 갈등도 이데올로기갈등 외에도 사랑 갈등 등 여러가지로 원인으로 설정했다.     특히 전우였던 김용천과 김성칠의 갈등은 단지 남조선군 련대장과 조선인민군 련대장과의 적대관계뿐만이나라 사랑의 라이벌이라는데서 고조에 이르게 했다. 이 소설의 제1권부터 장백산 밀림 오두막에서 진달래는 처음으로 사냥하러 온 성칠을 우연하게 만나게 된다. 성칠은 유부남인데 진달래의 첫사랑으로 됐다. 그런데 성칠은 장백산 밀림 항일유격대 숙영지에서 본처 하옥을 두고 첩을 둘 수 없어, 진달래를 사랑하면서도 사랑할 수 없어 용천한테 중매를 서서 번개식결혼을 하게 한다. 진달래는 용천의 애까지 임신했는데 장백산 밀림 매복전에서 사라진 용천의 생사를 알 수 없게 된다.  진달래는 용천을 기다리다가 용천의 아들 경주를 데리고 성칠을 따라 조선에 나가며 본댁을 잃은 성칠과 재혼해 아들 경수까지 낳게 된다. 용천은 그런 줄도 모르고 그새 진달래를 찾아 조선 팔도를 헤매다가 남조선 괴뢰군에 입대해 련대장까지 된다. 그는 무명고지 격전에서 조선인민군 성칠의 련대에 혀로 잡혀갔던 수하 대대장 이병수를 통해 성칠이 진달래와 재혼한 사실을 알고 판가리싸움을 해 항일전쟁시기 전우, 형제와 같던 성칠을 격살한다.    소설에서 용천과 성칠, 진달래,그리고 하옥, 은녀,  사이 벌어진 삼각련애, 다각련애와 기나긴 세월의 굴곡적인 사랑갈등은 독자들에게 긴 여운을 주면서 소설을 재미나게 읽게 하였다. 더욱이는 자연히 이데올로기 의식이 있을뿐만아니라  피와 살이 있고 사랑도 있는 전형인물, 개성이 독특한 전형인물형상을 부각해  한반도 처참한 동족상잔 전쟁력사를 알게 한 면에서 비교적 성공적인 예술작용을 했다고 생각한다.      작중에서 상순과 첫사랑 지춘실, 그리고 명옥의 사랑갈등도 비교적 예술적으로 상순의 형상을 부각하는데 일정한 예술적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이런 주요인물들의 복잡한 사랑갈등은 독자들이 아주 재미나게 소설을 읽으면서 주인공의 형상에 감복하면서 당시 력사환경도 알게 하는데 일정하게 예술적 매력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작중 인물의 설정과 인물의 신분, 활동경력, 인물이 처한 사회와 자연환경 등은 모두 인물의 성격을 부각하고 생활론리에 맞으면서도 력사를 반영하기 위한데 복종시켰다.       다음, 작중인물들의 대화 속에 력사이야기를 삼입해 력사를 반영하는 예술수법을 썼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은 광복후로부터 6. 25 전쟁 전후를 배경으로 분단이후 여순반란사건을 시작으로 하여 한국 태백산맥을 따라 남으로 나가면서 지리산구를 근거지로 삼고 남로당(박헌영의 령도하에 있은 남조선 주재 조선로동당의 약칭임.) 유격대의 유격투쟁활동과 한국 계엄사령본부와 경찰대, 토벌대가 지리신지역 남로당유격대를 진압한 과정의 력사이야기를 폭넓게 보여주었다.        이 소설에서 작가 조정래는 “실화소설” 같은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으로 당시  염상진대장, 안창민대장, 하대치 등 유격대 두목과 골간들의 투쟁이야기를 주선으로 소설로서의 진실한 인물화폭을 그리면서 진실한 력사를 반영하는 예술수법을 쓰고있다. 진짜 력사와 예술의 혼연일치를 보여준 걸작이라고 할수 있다.      작가는 실존한 력사인물들을 피도 있고 살도 있는 아주 전형화된 인물로 형상적이고도 생동하게 형상화해 유격대 투쟁과 정부군, 토벌대의 진압의 력사이야기를 반영했다. 작중에는 보성군 유격대 대장 염상진과 보성군당위원장 겸 후임 대장 안창민을 비롯한 하대치, 오판돌, 강동식, 이해룡, 고두만, 손승호, 강동기, 김임일, 이영생 그리고 계엄사령관 심재모, 신임사령관 백남식, 보성경찰서장 남인태, 토벌대장 임만수, 검찰총장 권승렬, 중부경찰서장 윤기병 등 실존한 전형인물들을 아주 성공적으로 부각하였다.      “태백산맥”에서 조정래 작가는 인물형상 창조외에 작중 인물의 대화를 통해 력사이야기를 보여주는 예술수법을 적지 않게 썼다. 례하면 작중인물  손승호와 김범우의 대화를 통해 백범 김구가 암살당한 력사사건을 보여주었다.   나는 조정래 작가의 대하소설 "아리랑"과 대하소설 "태백산맥"을 읽은 후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에서 전형인물형상을 창조해 력사를 반영한 외에 허구된 인물의 대화 속에 력사사건을 보여주거나 작자 서술로 된 력사환경을 삽입하는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으로 당시 력사를 보여주려고 시도하였다.      례하면, 작중 허구된 인물 김용천이 눈보라치는 밀림에서 숙영할 때 성칠한테 이야기한 형식을 빌어 리상설이 만국대회에 참가해 조선을 합병한 일제의 만행을 폭로하고 조선을 되돌려달라고 호소하면서 비수로 할복한 력사이야기를 보여주었다.       명동촌 교회당에서 김하규가 김기준 등에게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선바위 부근에서 항일유격대원들이 일제 13만원 탈취한 력사사건을 보여주었다.      김성칠이 함흥촌에 돌아왔다가 유격대 숙영지로 돌아가는 길에 상길과 상순한테  하는 이야기 형식으로 항일의사들인 안중근, 윤봉길 등의 의거를 보여주었다.            나는 인물의 대화 속에 력사이야기를 보여주는 형식을 될 수 있는 한 적게 보여주려고 모지름을 썼다. 대화 속에 력사이야기를 삽입하는 수법을 너무 많이 쓰면 소설의 문학성을 흐리우고 자칫하면 력사소설이 아니라 축소된 력사책을 만들기 쉽기 때문이다.  력사소설은 어디까지나 력사소설의 쟝르특징을 살려야 하며 될수 있는 한  전형환경에서의 전형인물형상을 부각해, 인물형상을 통해 자연히 당시 력사시기를 알게 하여야 한다.               우리 문단의 일부 력사제재소설은 인물의 대화 속에 력사이야기를 너무 많이 삽입하거나 아예 적지 않은 편폭에 력사이야기를 작가가 직설적으로 서술한데서 소설이라기보다 력사책을 읽는 감이 든다. 그렇다면 력사소설을 쓰기보다 력사이야기책을 써내는게 편폭도 절약하고 독자들이 읽기도 간편할 것이 아닌가 싶다.             다음, 프랑스 대작가 발자끄는 90여부나 되는 소설로 된 "인간극장"에서 부동한 소설에 부동한 전형환경에 동일한 인물을 재현시킴으로써 인물형상을 심도있게 부각하고 해당 시기 프랑스 전반 력사를 폭넓게 보여주었다. 이를 참고해 나는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에서 주인공이 직접 력사사건을 참가시켜 사건을 발전시키면서 당시 력사를 펼쳐보였다.       례하면, 상순을 직접 삼도만, 묘령, 천교령, 로흑산 등지 토비숙청전투에 직접 참가하는 예술수법으로 연변의 토비숙청력사를 반영하였다.     나는  당시 삼도만토비숙청에 참가했던 로병사들에게서 삼도만 등지의 토비숙청을 전면적으롤 료해한 외에도 당시 토비들이 둥지를 틀고 있던 삼도만과 평강촌의 지리적 환경을 상세히 알려고 1979년 음력설을 앞두고 백여리 떨어진 심심산골 삼도만에 취재하러 갔댔다. 삼도만공사당위의 협조하에 당시 토비두목 전소흥의 문서(비서)질을 한 토비로인을 마구간에 가서 만나 함께 말먹이를 썰고 말을 먹이면서 당시 토비내부정황과 토비숙청전투정황 등을 상세히 취재했고 토비문서로인과 함께 삼도만 현지를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당시 토비들이 둥지틀었던 지리적위치도  알아보았다. 그리고 삼도만에서 30리나 떨어진 심심산골 평강촌에도 가서 지리적환경과 김지도원이 생매장당한 골안 등지를 일일이 답사하고 마을 사람들한테서 토비숙청전투 정형도 상세히 알아보았다. 그런데 돌아오는 뻐스를 놓히고 말았다. 함박눈이 쏟아지자 원래 오후에 돌아가는 뻐스가 점심전에 삼도만으로 되돌아갔던 것이다. 당시 마을엔 상점도 없었기에 나는 점심도 먹지 못하고 오후에 발목까지 푹푹 빠지니는 시골길을 걸어서 삼도만에 돌아가야 했다. 나는 목이 마르고 배고프면 길가의 눈을 한웅큼씩 쥐여 입에 넣고 녹여 먹으면서 걷고 또 걸어 밤중에야 삼도만으로 비칠거리면서 돌아온 적도 있었다. 그때 그렇게 간고하게 취재했기에 나는 이 소설에서 삼도만토비숙청을 아주 상세히 써낼 수 있었다.        김성칠, 김인삼, 김용천, 진달래, 최구장, 김상순, 한길성, 한철주, 똘만 등 부동한 인물들을 장백산 항일전투, 항미원조전쟁에 직접 참가시키고 력사이야기를 이끌고 나가게 하는 예술수법으로 그 당시 부동한 력사를 반영하려고 시도하였다.        력사소설 창작에서 허구된 인물의 허구된 사건을 창작할 때 전형력사환경의 력사 진실성과 예술의 진실성을 지키려고 나는 조선반도와 동북 항일전쟁과 항미원조전쟁 력사책도 많이 읽고 당시 력사환경을 참고하였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은 조선반도와 중국, 로씨야(구쏘련),  태평양 미국의 하와이, 지어 싸이판과 괌, 동남아세아, 일본까지 배경으로 해 20세기 초엽으로부터 1945년 광복까지 력사시에 일제의 폭압에 맞서는 우리 민족의 피어린 항일투쟁과 민족의 이민사, 끈질긴 생존과 투쟁을 다룬 민족의 대서사시이다.      조정래 작가는 지삼출, 대근, 송수익, 신세호, 방영근, 남용석, 감골댁, 보름, 수국, 정분, 김창봉, 정재규, 장칠문, 장덕풍, 김봉구, 방태수, 무주대, 임덕구, 주성춘, 손판식, 기생 옥향; 백종두, 주재소장 하야가와, 요시다, 쓰지무라 등 허구된 수많은 전형인물들을 부각하여 반세기나 되는 그 시대 력사화폭을 형상적으로 보여주었다.     또 허구된 인물의 허구된 이야기와 력사적으로 실존한 리승만, 김구, 의병장 임병서, 최익현, 임병찬 등의 진실한 이야기를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으로 이 시기 민족의 력사를 아주 넓은 화폭으로 예술적으로 반영하였다.     일부 력사이야기는 작중 허구된 인물의 대화속에서 예술적으로 삽입해 보여주었다. 례하면 작중의 방영근과 남용석의 대화에서 당시 하와이에서의 반일단체와 이승만의 항일투쟁사를 정면으로 보여주었다.      나는 조정래 작가의 력사반영 예술수법을 참고해 허구된 인물의 허구된 이야기와 력사적으로 실존한 인물의 진실한 이야기를 유기적으로 결합해 엮어나가면서 당시 력사를 반영하려고 시도하였다.      례하면 작중 허구된 인물 상순과 력사적으로 실재한 안도현공안국 국장 천용구가 함께 장백산 지구 밀림에 공중낙하한 남조선 특무들과 대만 특무들을 나포하는 이야기를 유기적으로 결합시켜 묘술하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당시 력사사건을 완정하게 보여주었다. 이 대목을 읽으면 어느 것이 력사사실이고 어느 것이 허구된 이야기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유기적으로 완정하게 반영하였다고 생각된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은 광복후로부터 6. 25 전쟁 전후를 배경으로 분단이후 여순반란사건을 시작으로 하여 한국 태백산맥을 따라 남으로 나가면서 지리산구를 근거지로 삼고 남로당(박헌영의 령도하에 있은 남조선 주재 조선로동당의 약칭임.) 유격대의 유격투쟁활동과 한국 계엄사령본부와 경찰대, 토벌대가 지리신지역 남로당유격대를 진압한 과정의 력사이야기를 폭넓게 보여주었다.        이 소설에서 작가 조정래는 “실화소설” 같은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으로 당시  염상진대장, 안창민대장, 하대치 등 유격대 두목과 골간들의 투쟁이야기를 주선으로 소설로서의 진실한 인물화폭을 그리면서 진실한 력사를 반영하는 예술수법을 쓰고있다. 진짜 력사와 예술의 혼연일치를 보여준 걸작이라고 할수 있다.        우선 작가는 실존한 력사인물들을 피도 있고 살도 있는 아주 전형화된 인물로 형상적이고도 생동하게 형상화해 유격대 투쟁과 정부군, 토벌대의 진압의 력사이야기를 반영했다. 작중에는 보성군 유격대 대장 염상진과 보성군당위원장 겸 후임 대장 안창민을 비롯한 하대치, 오판돌, 강동식, 이해룡, 고두만, 손승호, 강동기, 김임일, 이영생 그리고 계엄사령관 심재모, 신임사령관 백남식, 보성경찰서장 남인태, 토벌대장 임만수, 검찰총장 권승렬, 중부경찰서장 윤기병 등 실존한 전형인물들을 아주 성공적으로 부각하였다.      “태백산맥”에서도 조정래 작가는 작중 인물의 대화를 통해 력사이야기를 보여주는 예술수법을 적지 않게 썼다. 례하면 작중인물  손승호와 김범우의 대화를 통해 백범 김구가 암살당한 력사사건을 보여주었다.         조정래 작가는 “태밴산맥”에서 허구된 인물의 허구된 에피소드를 양념처럼 많이 삽입해 독자들을 력사이야기를 감염력있께 읽게 흡인하는  예술수법을 보조적으로 썼다. 례하면, 염상구에게 강동기 안해가 장기적으로 강간당해 임신까지 한 에피소드, 허출세에게 외서댁이 강간당한 에피소드, 그외에도 작중 인물의 진한 사랑과 치정  에피소드 등을 들수 있다.      나는 조정래 작가의 대하소설 "아리랑", "태백산맥", 리기영의 "두만강" 등 장편력사소설을 여러번 통독하고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을 분석하고 학습해 나의 대하력사소설 "울고 웃는 고향"에서 전형인물창조해 력사를 반영하는 예술수법, 인물의 대화 속에 력사사건을 삼입하는 예술수법,  허구된 인물과 실재한 인물의 유기적인 련계 속에 동일한 인물을 부동한 력사사건에 참가시켜 이이끌고 나가게 하는 예술수법, 부동한 인물을 부동한 력사사건에 참여시키는 예술수법 등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으로 중국 조선족 백년력사를 보여주려고 시도하였다.        력사제재소설, 특히 300여만자에 달하는 대하소설에서 백년이나 되는 기나긴 력사를 반영하려면 그에 상응한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을 다양하게 써야 된다. 그러나 나의 수준제한으로 해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상 미흡한 점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후에 소설에서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을 더 연구한다면 력사제재소설을 쓰는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이 남긴 메아리    단숨에 한국에 날아간 나는 이완표 회장님께 기념으로 대하소설책을 드리고나서 채순목 회장님께도 드리려고 했다.그런데 이완표 회장님은 뜻밖에도 비감에 잠긴 채 “채순목 회장님은 전번달에 사망했어요.” 라고 전하였다.채순목 회장님은 사망하기 전에도 이완표 회장님에게 여러번 전화해 나의 대하소설을 꼭 하루속히 내달라고 부탁했다고 하지 않겠는가.     아, 한달만 더 계셔도 채순목 회장님도 이 소설책을 보실 수 있었겠는데. 슬픔과 아쉬움으로 콧마루가 시큼해나고 눈물이 울컥 했다.     나는 한국이라는 출판 사막에서 끝내 "울고 웃는 고향"을 꽃피워냈다. 그 기쁨 이를데 없었다. 나는 트렁크에 갓 출판한 소설책을 메지게 넣어 가지고 수원에서 지하철을 타고 귀로에 올랐다. 신도림지하철 역이던가. 지하철을 갈아타려고 무거운 책짐을 안고 층계를 오르가다가 그만 혁띠가 툭 끊어졌다. 아마 배에다 힘을 너무 준 것 같았다. 괴춤이 내려가 책짐을 어쩌는 수 없어 멍해 서 있을 때였다. 낯도 모를 웬 녀대생이 보기 안타깝던지 다가와 "아저씨, 제가 도와드릴게요." 하고 트렁크 한쪽을 들었다. 나는 괴춤을 쥐고 짐을 들 수 없어 황망히 그 녀대생 보고 짐을 좀 봐달라고 부탁한 후 황급히 지하철에 벌려놓은 매대에 가서 가죽 혁때를 사 띠고 책짐을 다시 안고 층계를 올랐다.     나는 그렇게 애나게 메고 온 나의 두툼한 대하소설책을 가족과 지인들에게 한부한부 선물하였다. 그 성공의 기쁨은 이를데 없었다. 한편 그렇게 애나게 쓰고 출판해 비행기에 실어온 소설책을 드렸는데 보지도 않고 한쪽 구석에 꽂아둔채로 있거나 전근해가면서, 퇴직하면서 챙겨가지도 않는 걸 보았을 때 내 마음은 비길데 없었다. 어쩜 그럴 수 있단 말인가?     이 대하소설을 창작하는데는 수많은 조상들과 스승들의 정성과 숨결이 깃들어있다. 나의 부모와 가시부모를 비롯한 수많은 조선족로인들은 나한테 일제의 철발굽 아래 신음하면서 어렵게 살아온 눈물겨운 가정사를 천하루날의 이야기처럼 들려주었다. 나는 소설을 쓰다가도 해방전 일제 때 창시개명 등 대목에 걸리면 아흔고개를 넘은 고령의 어머니와 묻군 하여 풀어나갔다. 부모들께서는 이 대하소설이 출판되기 몇해 전에 모두 나를 홀로 이 세상에 남겨두고 너무나도 총망히 떠나가셨다. 나는 대하소설 묶음을 부모님의 산소 앞에 놓고 안타까와 꺼이꺼이 대성통곡치면서 말씀드렸다.      “아버님, 어머님, 우리 민족의 조상님들이여, 그대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쓴 저의 대하소설이 끝내 볕을 보게 됐습니다. 몇해만 더 계셔도 이 소설책을 보셨겠는데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김재권, 김설봉, 김철환, 김진산 등 계몽 스승들은 이 대하소설 창작정황을 수시로 알아보고 수많은 가르침과 조언을 주었으며 이 대하소설의 출판을 고대하였다. 그러나 김재권 선생님과 김철환 선생님은 이 대하소설 출판을 보지도 못하고 별세하였다. 참말 안타깝다. 그이들이 계시지 않는 세상은 쓸쓸하기 그지 없다.     당시 룡정시로인협회 부회장 리운학선생과 함께 병문안 갔을 때까지만 해도 김재권선생님은 간신히 일어나서 문선을 짚고 마중하셨다.나는 위문금과 과일을 드리고나서 김재권선생님의 손을 꼭 잡고 이렇게 말씀드렸다.    “할 일도 많은 선생님이신데 하루속히 몹쓸 병을 치료하고 오래오래 앉으십시오. 그래야 이 제자가 쓴 대하소설이 출판되는 것을 보지요.”     그때 김재권선생님은 환한 웃음을 지으시면서 진심어린 가르침을 하셨다.      "장혁이, 우리 민족을 위해 장한 일을 했소. 꼭 성공하오. 대작이 출판된 걸 보겠는지는 모르겠지만 미리 축하하오. 절대 만족하지 말고 계속해 두번째 대하소설을 쓰오. 절대 똥별을 달고 거들먹거리는 문예정객이 되지 마오. 명예욕과 권세욕을 버리고 글 한편을 쓰더라도 민성이란 필명처럼 민족과 백성의 목소리를 대변해 쓰오.”     나의 필명 민성은 원로시인 조룡남과 저명한 실화작가 리성권사장 그리고 김재권 선생이 내가 작가협회에 가입할 때 지어준 필명이다. 그때 그이들은 나를 보고 백성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작가로 되라고 필명을 민성으로 지어주셨다. 그런데 나는 지금 머리 숙여진다. 그이들의 기대에 걸맞는 그렇다할 작품을, 진정 백성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작품을 써내지 못했다.      그렇다. 김재권 선생님은 지위나 명예를 따지지 않은 명작가였다. 10권이나 되는 "황구연전집"을 비롯해 50여권의 저서를 낸 명작가이지만 문단에서의 지위나 정치에 관심이 없었고 항상 보통작가로 겸손하게 처신하면서 문학창작에만 정진하셨다. 진짜 참답고 훌륭한 본보기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어디까지나 작품으로 말한다. 문단에서 니야 내야, 시야 비야, 티각태각 하고  스스로 문단의 제일이노라고 불어대고 스스로 자기 머리끄댕이를 잡아 춰올린다고 위상이 하늘만큼  날아올라갈 순 없다. 작품 몇개 써내지 못하고서도, 저서 한권도 내지 못하고서도 똥별이나 달고 창작보다는 문예정치에 눈이 새빨개지는 얼뜨기 문예정객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내가 출판된 소설책을 한묶음 들고 룡정시 문화관 리광평 관장과 함께 김재권 선생님을 다시 찾아갔을 때 김재권선생님도 리운학선생님도 계시지 않았다.악착스런 암병은 나의 스승님을 무정하게 빼앗아갔다. 나는 눈물을 머금고 소설책을 김재권선생님의 아드님 김문혁씨한테 드리고 눈물을 머금은 채 귀로에 올라야 했다.     (아, 만약 김재권선생님께서 고무해주고 독촉하지 않으셨더라면 내가 대하소설을 끝까지 써냈겠는가? 김재권선생님과  리운학선생님께서 몇달씩만 더 계셔도 8월에 출판된 내 대하소설을 보셨겠는데…)     나는 차를 몰고 모아산고개를 넘어오면서도 눈물을 금할 수 없어 차를 멈추고 한참이나 큰 길 옆에 서서 룡정 쪽을 멍해 바라보면서 가슴을 치며 통곡쳤다.     함박눈이 푸실푸실 내리는 날에 김철환 선생님의 소개로 조양공사 문화소에서 처음 만난 김재권 선생님의 상냥한 얼굴을 지금도 보는 것처럼 삼삼히 떠오른다.     그날 김재권선생님께서 하신 의미 심장한 부탁의 말씀이 아직도 귀전을 때린다.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기오. 젊은이, 장차 우리 민족과 백성을 위해 열심히 글을 쓰는 작가로 되오.”     그때로부터 선생님께서는 늘 자전거를 타고 10대 애숭이를 찾아 집에도 오시고 밭머리까지도 찾아와 내가 쓴 습작품을 펼쳐들고 까근히 가르쳤다. 어떤 때에는 내가 소를 모는 고향의 칼산에까지 찾아와 문학을 가르쳤고 인생을 가르쳤다. 매 한편의 졸작이 볕을 볼 때마다 스승님은 아주 기뻐하면서 제일 먼저 축하해주군 하였다. 인생길에서 곡적을 겪을 때마다 항상 삶의 용기를 북돋아주시고 앞길을 비춰주는 망망대해의 등대, 모래바람이 살벌하게 불어치는 사막의 우물로 되셨던 은사님이 아니신가.     (아, 존경하는 김재권 선생님, 스승님께서 계시지 않는 세상은 너무나도 텅 비고 쓸쓸하기만 합니다…)    수많은 조상들과 지도자들, 은사님들, 지인들, 부모형제들, 친구들의 기대하던 저의 소설이 지금 온라인과 인터넷을 타고 국내외 수많은 독자들한테 문학의 향연을 드리고 민족의 과거와 현재를 돌이켜보게 하고 기나긴 메아리로 여운을 남겨줄 수만 있다면 위안될 것 같다.    나는 세상 사람들이 다 쳐다보는 소소리 높은 희말라야산 쵸몰랑마봉으로 되려고 하지 않는다. 장백의 아들로서 사람들이 볼 수 없는 백두산의 깊고 깊은 협곡에 숨어 살고 싶다.       나는 요란한 니까라과폭포로 되려고 하지 않는다. 금강산의 수풀로 가려진 계곡에서 촐랑촐랑 노래하면서 흐르는 벽계수, 맑디 맑고 이발 시리게 차거운 샘물로 되고 싶다.    나는 기세 사나운 황하로 되려고 하지 않는다. 항상 낮은 곳으로 잔잔히 흘러가는 티없이 맑은 한라산 벽계수로 되고 싶다.    때로는 세인들이 보지도 못하는 지하수로 소리없이 흐르다가도 사람들이 가뭄에 허덕이는 사막에 한줄기 생명수로 퐁퐁 솟아올라 삶의 오아시스를 가꾸고 진달래꽃을 활짝 꽃피우고 싶다.    내 령혼의 영원한 안식처는 문학창작에 있다. 사막에서 문학창작의 마라톤을 힘겹게 하던 나의 외로운 령혼이 둥둥 떠돌아다니며 사막에 감로수가 퐁퐁 솟는 오아시스를 가꾸어가면 백두산의 만병초와 진달래가 방실방실 웃으며 반길 것이다. 아리랑 열두 사막고개를 골고다고개처럼 외롭게 날아넘어간 나의 외로운 령혼을 수려한 금강산의 모란꽃과 한라산의 무궁화도 반겨맞으면서 아리랑을 부르며 나풀나풀 춤을 추리라.                                                  저자 김장혁                                                      2018년 8월 23일                                                         중국 연길에서
문예평론   력사소설에서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에 대하여 김장혁                                                                                                                                      중국조선족의 이름난 작가 리근전선생은 장편소설 에서71명의 개성이 독특한 인물형상을 창조하고 독특한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으로 동만을 중심으로 조선북부와 전 동북을 넓은 무대로, 19세기 말엽으로부터 20세기 “8.15”해방에 이르는 반세기란 기나긴 력사시기 조선족인민들의 피눈물 나는 이민사,  중국 공산당의 령도아래 한족 등 형제민족과 어깨겯고 이 땅을 개척하고 일제와 벌린 수많은 피어린 투쟁사를 형상적으로 보여주었다. 때문에 리근전작가의 장편소설 는 중국조선족인민들의 투쟁력사의 기념비적거울로 될수 있는 작품이라고 할수 있다. 리근전작가의 에서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을 깊이 연구하는것은 중국조선족문학사, 나아가서 중국당대문학사에서 리근전작가의 창작과 그 지위를 반석우에 세우며 금후의 장편력사소설창작에 아주 큰 문학적의의와 현실적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리근전작가의 와 프랑스 작가 발자끄의 , 중국 작가 라관중의 , 조선 작가 천세봉의 ,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과 “아리랑”.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 등에서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을 대조해 연구해보기로 하자.       프랑스 작가 발자끄는 무려 96편이나 되는 소설로 이뤄진 “인간희극”에서 주로 부동한 소설에서의 동등한 인물재현의 예술수법으로 프랑스의 나뽈레옹제정시대(1799년)부터 1848년혁명에 이르는 기나긴 력사시기 천태만상의 “인간희비극”을 보여주고있다. 세계 명작가 발자끄는 객곽세계를 호상 전형적련결에서 고찰하며 사회현상을 지배하고있는 기본법칙들을 찾아내 보여주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하여 그는 96편의 소설로 된 “인간희극”에 2천여명이나 되는 전형인물을 부각하여 등장시키고 부동한 소설의 부동한 환경에서 동일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혹은 차요인물로 재현시킴으로써 부동한 환경에서의 인물성격의 진일보 발전을 보여주면서 주제를 심화시켰으며 여러 소설을 하나의 정체—“인간희극”으로 유기적으로 통일시켰다. 하여 부동한 소설에서 보여준 부동한 력사환경은 의연히 프랑스 사회를 떠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면서 프랑스 사회 력사를 련결적으로, 거폭의 형상적화폭으로 보여주었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은 조선반도와 중국, 로씨야(구쏘련),  태평양 미국의 하와이, 지어 싸이판과 괌, 동남아세아, 일본까지 배경으로 해 20세기 초엽으로부터 1945년 광복까지 력사시에 일제의 폭압에 맞서는 우리 민족의 피어린 항일투쟁과 민족의 이민사, 끈질긴 생존과 투쟁을 다룬 민족의 대서사시이다.      조정래 작가는 지삼출, 대근, 송수익, 신세호, 방영근, 남용석, 감골댁, 보름, 수국, 정분, 김창봉, 정재규, 장칠문, 장덕풍, 김봉구, 방태수, 무주대, 임덕구, 주성춘, 손판식, 기생 옥향; 백종두, 주재소장 하야가와, 요시다, 쓰지무라 등 허구된 수많은 전형인물들을 부각하여 반세기나 되는 그 시대 력사화폭을 형상적으로 보여주었다.     또 허구된 인물의 허구된 이야기와 력사적으로 실존한 리승만, 김구, 의병장 임병서, 최익현, 임병찬 등의 진실한 이야기를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으로 이 시기 민족의 력사를 아주 넓은 화폭으로 예술적으로 반영하였다.       일부 력사이야기는 작중 허구된 인물의 대화속에서 예술적으로 삽입해 보여주었다. 례하면 작중의 방영근과 남용석의 대화에서 당시 하와이에서의 반일단체와 이승만의 항일투쟁사를 정면으로 보여주었다.       일부 력사이야기는 사회배경을 소개하는 형식으로 직설적으로 보여주었다. 례하면 조선 서울의 3.1독립운동과 중국 룡정의 3.13반일운동, 의병장 홍범도가 만주에서 항일운동을 하다가 구쏘련에 전이한 과정 등 력사이야기는 작자가 사회배경을 소개하듯이 직설적으로 보여주었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은 광복후로부터 6. 25 전쟁 전후를 배경으로 분단이후 여순반란사건을 시작으로 하여 한국 태백산맥을 따라 남으로 나가면서 지리산구를 근거지로 삼고 남로당(박헌영의 령도하에 있은 남조선 주재 조선로동당의 약칭임.) 유격대의 유격투쟁활동과 한국 계엄사령본부와 경찰대, 토벌대가 지리신지역 남로당유격대를 진압한 과정의 력사이야기를 폭넓게 보여주었다.        이 소설에서 작가 조정래는 “실화소설” 같은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으로 당시  염상진대장, 안창민대장, 하대치 등 유격대 두목과 골간들의 투쟁이야기를 주선으로 소설로서의 진실한 인물화폭을 그리면서 진실한 력사를 반영하는 예술수법을 쓰고있다. 진짜 력사와 예술의 혼연일치를 보여준 걸작이라고 할수 있다.        우선 작가는 실존한 력사인물들을 피도 있고 살도 있는 아주 전형화된 인물로 형상적이고도 생동하게 형상화해 유격대 투쟁과 정부군, 토벌대의 진압의 력사이야기를 반영했다. 작중에는 보성군 유격대 대장 염상진과 보성군당위원장 겸 후임 대장 안창민을 비롯한 하대치, 오판돌, 강동식, 이해룡, 고두만, 손승호, 강동기, 김임일, 이영생 그리고 계엄사령관 심재모, 신임사령관 백남식, 보성경찰서장 남인태, 토벌대장 임만수, 검찰총장 권승렬, 중부경찰서장 윤기병 등 실존한 전형인물들을 아주 성공적으로 부각하였다. “태백산맥”에서도 조정래 작가는 작중 인물의 대화를 통해 력사이야기를 보여주는 예술수법을 적지 않게 썼다. 례하면 작중인물  손승호와 김범우의 대화를 통해 백범 김구가 암살당한 력사사건을 보여주었다.         조정래 작가는 “태밴산맥”에서 허구된 인물의 허구된 에피소드를 양념처럼 많이 삽입해 독자들을 력사이야기를 감염력있께 읽게 흡인하는  예술수법을 보조적으로 썼다. 례하면, 염상구에게 강동기 안해가 장기적으로 강간당해 임신까지 한 에피소드, 허출세에게 외서댁이 강간당한 에피소드, 그외에도 작중 인물의 진한 사랑과 치정  에피소드 등을 들수 있다.        중국 조선족작가 리근전선생의 동일한 하나의 소설인 (상, 하집)에서,  조선의 작가 리기경선생은 "두만강" 에서  발자끄처럼 부동한 소설의 부동한 력사환경에서가 아니라 부동한 력사시기 환경에서 동일한 인물을 재현시키고 인물들을 혈연적, 사회적, 계급적으로  련결시키고 충돌시키면서 인물성격을 발전시키고 력사사건들을 유기적으로 련결시키면서 보여주고있다. 때문에 “인물재현”이라는 측면에서는 발자끄의 력사반영의 예술수법과 류사한 점이 있다. 하지만 “부동한 소설에서”와 “동일한 소설에서”의 부동한 력사시기에서 인물재현이라는데서 발자끄의 과 리근전선생의 는 력사반영의 예술수범이 서로 다르다는것을 알수 있다.      다음, 중국 작가 라관중의 에서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을 대조해 연구해본다 첫째,  라관중의 에서는 력사상의 실재인물들인 조조, 류비, 손권, 제갈량 등을 주인공으로, 주요하게 적벽싸움과 관도싸움 등 력사적전형환경과 력사인물과의 관계속에서 전형성격을 부각하면서 해당시기 력사를 반영하였다. 그러나 리근전선생의 에서는 주요하게 주인공 박천수, 박윤민 등을 비롯한 71명 인물들은 모두 허구된 인물들로서 춘황폭동, 5월폭동 등 력사사건과 천수동민란, 동맥휴학 등 허구된 사건과 허구된 인물관계속에서 부각하면서 해당 시기 력사를 형상적으로 반영하였다. 둘째, 에서 각 력사사건의 발생, 발전, 고조, 해결은 주인공에 의해 제약되고 추동되는 예술수법으로 력사사건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리근전선생의 에서는 력사사건에 력사인물 대신 허구된 작중인물을 바꿔넣거나 차요한 위치에서 참여시키면서 작중인물의 이야기, 회억, 대화속에서 자연스레 력사사건을 반영하였다.      때문에 사건과 인물관계가 력사적인것인가, 허구적인것인가 하는데서 라관중의 와 리근전선생의 는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이 부동하다.         다음, 조선 작가 천세봉의 와 대조해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을 연구해보면 허구된 전형인물형상을 부각하여 력사를 보여준 점에서는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이 류사하지만 일부 부동한 점도 있다. 첫째, 천세봉의 는 순전히 허구적인 사건들인 소작인동맹건립, 보돌공사장폭동, 박진우환갑식, 대검거참안 등을 통해 현재진 일가 5형제, 최선도, 최창국 등 인물형상을 부각하여 당시 력사정형을 반영하였다. 그러나 리근전선생의 에서는 허구된 사건외에도 력사적사건속에서 박천수, 박윤민 등 인물형상을 부각하고 당시 력사정형을 반영하고있다. 이런 예술수법은 리기영의 "두만강에서도 찾아 볼수 있다.      둘째, 천세봉의 에서는 전형적사회력사환경을 작자의 정면서술로 밝히지 않았고 자연환경도 “XX군 송하면 월하리” 등 허구적으로 모호하게 보여주었다. 그러나 리근전선생은 에서 작자의 정면서술로 사회력사환경을 밝히였으며 자연환경도 허구적인 “천수동”뿐만아니라 실재한 륙도구, 국자가 등을 삼고있다는 점에서도 다르다. 리깅영의 두만강에서도 제2대혁명자 "씨동"의 활동 자연환경은 두만강 량안의 조선 중북부와 중국 동만으로 삼고 있다.           총적으로 리기영선생과  리근전선생은 고금동서 명작들의 부동한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에서 정화를  섭취하여 계승하고 발전시켜 독특한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을 창조해냈다.         그럼 리근전선생의 에서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은 구경 어떤것인가? 첫째, 전형환경에서 전형인물을 부각하여 해당 시기 사회력사를 반영한 예술수법이다.         똘쓰또이는 자기 창작은 “인물형상을 부각할뿐만아니라 그 형상을 통해 력사를 보여주기 위한데 있다.”고 하였다. 리근전선생은 동서고금의 력사물명거작들의  력사반영의 예술정화를 섭취하여 “고난의 년대에서 륙도구와 천수동을 동북의 축영으로 형상화하고 그속에서 자기로서의 얼굴과 웃음, 말본새를 가지고 자기 신분에 알맞는 행위를 하는, 개성이 독특한 각이한 인물을 71명이나 형상적으로 부각하였다.  이런 인물들은 당시 전변하는 사회적계층의 어느 한 계층을 각각 대표하는 전형인물로 등장하면서 매개 인물들의 개인적운명의 발전속에 몰락하는 계층과 발전하는 세력간의 계급투쟁, 민족투쟁에 의한 력사적진로를 표시해놓았다. 하여 우리는 력사의 흐름에 따른 륙도구와 천수동의 변화와 그속의 인물성격의 변화를 통해 사회력사 제특성들의 변화를 통해 당시 력사 발전을 찾아볼수 있다.        이제 작중에서 전형인물들의 개성적얼굴들을 찾아보면서 그 전형형상이 당시 력사정형을 어떻게 반영했는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주인공 박천수는 시대적제한성으로 하여 로동계급의 혁명리론으로 무장하지는 못했지만 부지런하고 성실하며 의협심과 결단성이 강하고 봉건통치배들을 반대하는 강의한 개성과 일반화정도가 높은 애국적농민의 전형형상으로 그려졌다. 그리고 순박하며 선량하며 의협심이 강한 한족농민 왕덕후, 말수 적고 심성이 곧은 김성녀, 착하고 어진 김명도, 강직하고 반항심이 강한 최창두를 비롯하여 장서방, 강도룡, 조월래 등 농민들의 형상을 개성적이고도 살아 움직이게 그려 봉건지주와 통치배들의 압박과 착취 밑에서 생활난을 껵다가 각성하여 반항하기 시작하는 당시 조선족과 한족 형제민족농민들의 력사적제특성을 예술적으로 재치있게 반영했다. 그외에도 조장희, 리광국 등 전형형상을 통해 당시 민족주의자들로 무어진 반일단체의 제 력사정형을 보여주었다. 또 비굴하고 탐욕스러우며 잔인하고 횡포무도하며 교활한 친일주구 오영길, 음탕하고 아첨을 일삼는 앞잡이 마상수, 탐욕스럽고 강직하며 량반의 체모를 중히 여기는 상인 최영세를 비롯한 매판자본가 김경필, 김만호, 팽국장과 향악지주 주천림, 김소래 등을 비교적 개성적으로 인물형상화하여 해당 력사시기의 자본가, 지주들이 일제와 봉건통치배들에 아부굴종하고 인민을 잔혹하게 압박착취한 시대적 제 특성을 잘 보여주고있다. 이밖에도 교활하고 잔인한 스즈끼총령사, 특무 고산, 경찰서장 고자끼, 친일주구 김목사도 비교적 성공적으로 형상화해내 그 부류인들의 죄악적력사도 예술적으로 반영했다.      작자는 이상의 늙은세대의 긍정적, 부정적인 인물형상들을 통해 주요하게 19세기말부터 20세기 10년대말의 력사와 그제반특성 및 각 계층 특성들을 반영하였다.      다음, 소설에서 이런 늙은세대에 의해 보여준 미적리상과 인민투쟁력사의 계승자로서 슬기롭고 용감하며 심중하고 강직한 당원 박윤민을 비롯하여 왕주, 김범도, 순희, 윤길, 영심, 귀동이와 큰동이, 당조직 지도자 리진과 안경림 그리고 명화와 기생 김벽선, 향화 등을 개성적으로 부각하면서 그들이 부정인물 오창수, 오창덕 및 일제놈들과의 갈등과 투쟁을 통해 1919년 5.4운동이후로부터 1945년 8.15해방이전 력사시기 당의 령도아래 조한 형제민족 인민들이 단결하여 진행한 반제, 반봉건 투쟁력사를 예술적으로 반영하였다. 그리고 작품 결말에 제3대 인물인 귀섭이 형상을 등장시킴으로써 조선족인민들의 투쟁력사는 계속됨을 암시해주고있다.        이런 3대에 걸친 수많은 인물형상체계의 중심에는 박천수와 박윤민이 련이어 서서 끌고나가고있으며 이들과 기타 인물들의 혈연적, 사회적, 계급적 련결과 갈등속에서 인물성격을 발전시키고 해당 시기 력사를 예술적으로 반영하고있다. 때문에 매개 력사사건은 동떨어진감이 없이 련결되여 독자들로 하여금 형상적이고도 체계적으로 매 시기 력사정형을 리해하게 하였다.       둘째, 작자가 정면서술한 력사환경(력사사건을 포함)에서 작중 인물이 활동하거나 작중 사건의 발전속에 력사사건을 삽입시키는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이다.        이런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으로 장백산봉금령반포와 개간국설치, 한족과 조선족 동북이주력사, 신해혁명, 1911년 룡정 력사환경, 룡정통감부 간도파출소와 일본령사관 설립, 3.13폭동, 20년대 반일단체활동, 1923년 대검거참안, 녕안위만군 탄약탈취 등 력사를 반영하였다.        이런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은 작자 정면서술의 지루함과 무형상성 그리고 작중 인물의 활동으로써 전반 력사환경을 제시하기 어려운 결함을 피면하고 장점을 취해 독자들로 하여금 피와 살이 있는 개성적인물들의 움직임을 여겨보면서 당시 력사정형을 완정하고도 형상적으로 감칠맛이 나게 알수 있도록 하였다.       셋째, 인물의 이야기, 회억, 대화속에서 력사사건을 보여주는 력사반영의 예술수법, 그리고 이런 제 수법과 작자 정면서술을 서로 결합시켜 력사사건을 반영하는 예술수법이다. 이는 작자가 작중에서 제일 많이 쓴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이라고 할수 있다.     이런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으로 제31장에서 윤길과 김성녀의 대화, 제32장에서 순희의 회상속에서 3.13폭동을 보여주었다. 김범도와 왕주, 윤민의 대화와 이야기속에서 경신년대토벌을, 귀동의 이야기에 의병단 및 왕청 배초구습격사건을, 스즈끼와 김벽선의 대화, 리진의 분석과 작자 정면서술로 일제 “만몽침략계획”과 9.18사변을 반영하고있다. 그외에도 선바위 부근에서 12만 5천원 탈취한 사건, 춘황폭동도 이런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으로 보여주었다. 그중에서 스즈끼나 친일주구 오창덕, 오창수와 같은 부정인물들의 대화, 이야기로 9.18사변의 내막이나 일제의 만몽침략야심, 일제의 “문치주의”와 “무단정치”의 본질을 드러내 보여준것은 력사제재 장편소설창작에서 거둔 창신적인 예술성취라고 본다. 이같이 부동한 장절에서 여러 인물의 대화, 회억, 이야기 그리고 작자 정면서술을 서로 결합시켜 력사사건을 반영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딱딱하고 지루한감이 없이 다측면적으로 형상적인 력사교과서를 보는듯한감을 느끼게 한다. 이는 독자들의 다시각적형상을 통해 력사를 알려고 하는 심미적수요에 맞는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이라고 생각한다.       넷째, 력사적인물 대신 작중 허구적인물의 이름을 바꿔놓는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이다. 력사상 약수동토벌참안때 실제 존재한 항일렬사 김순희의 감동적사적을 반영하기 위해 작자는 제55장 “대참안”에서 렬사 “김순희” 대신 작중 윤길의 처 “백봉선”이란 허구된 인물을 바꿔넣고 등장시켰다. 이런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으로 춘황폭동, 5월폭동, 12만 5천원 탈취, 해란강대참안 등 력사를 핍진하게 반영했다. 이런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은 작중인물과 력사적인물, 작중 사건발전과 력사이야기를 유리시키지 않고 통일적인 전일체로 련결해 반영하였다.       다섯째, 인물의 설정과 인물의 신분, 활동경력, 인물이 처한 사회와 자연 환경 등은 모두 인물의 성격을 부각하고 생활론리에 맞으면서도 력사를 반영하기 위한데 복종시킨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이다.       작자는 1911년 룡정력사환경, 춘황폭동, 3.13폭동, 경신년대토벌, 반일단체활동, 의병단활동, 5.30폭동, 12만 5천원 탈취, 항일련군 항전투쟁 등을 반영하기 위해 주인공 박윤민을 두만강변으로부터 륙도구 자선학교, 천수동, 륙도구술공장, 할빈, 봉천, 왕청과 의란 산속, 녕안현, 중쏘변경, 연안 등지로 번개같이 드나들게 하였다. 그리고 신분도 배사공, 교원, 로동자, 지하당원, 의병단 부단장, 항일련군 군관, 지위 서기로 바뀌고있다. 이는 다 생활론리에 맞게 박윤민이란 인물성격을 부각하면서도 력사반영의 수요에 따라 그의 신분도 변화시키면서 중요하거나 차요한 위치에서 력사사건에 참가하거나 참여시키면서 박윤민이란 인물의 대화, 회상, 아야기 등으로 력사를 반영하는 예술수법을 쓴것이다. 이는 동일한 소설의 부동한 력사사건과 환경에 동일한 인물을 재현시키는 재치있는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이다.       이밖에 짙은 지방민족생활색채, 흥미진진한 민담, 민요, 속담 등의 광범하고 적절한 응용과 향토적이고 형상적인 언어 등은 작품의 감염력을 높여 작중 력사반영의 예술수법들의 효과성을 높이는 보조적인 력사반영의 예술수법과 같은 작용을 놀았다. 허나 옥에 티라고나 할가.  하집에서 작중 인물의 회억, 이야기, 대화에 의한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을 지나치게 많이 썼기에 력사반영의 형상성을 약화시켰다고 본다.       필자의 수준제한으로 하여 저명한 중국 조선족작가의 에서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상 거둔 예술성취를 제대로 긍정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력사반영의 예술수법을 더욱 깊이 연구한다면 력사제재 장편소설창작에 매우 큰 방조를 주리라고 믿는다.
1    문예평론 "과학환상소설 창작기교에 대하여" 댓글:  조회:586  추천:1  2018-07-14
문예평론 과학환상소설 창작의 예술기교에 대하여 김장혁         나는 2000년에 첫 단편과학환상소설 “조왕돌의 모험기”를 세상에 내놓은 후 선후하여 중편과학환상소설 “지구보위전”과 “클론바우 꼬마대통령 모험기”, 2008년에는 중국조선족아동문단의 첫 장편과학환상소설이라고 불리우는 “야망의 바다”를 세상에 내놓았다. 2013년과 2015년에 장편과학환상소설 “욕망의 천지”와 “황천의 유령”을 한국에서 출판하였다. 이런 중단편과학환상소설은 3부작  장편과학환상소설 "야망의 바다", "욕망의 천지", "황천의 유렬"과 련관된 전주곡으로서 3부작 대장편과학환상소설과 함께 기실 5부작, 100만여자에 달하는 대하과학환상소설을 이뤄 조선족아동문단에 신선한 예술의 꽃을 심어주었다.        이런 과학환상소설은 선후하여 한국의 “아동문학세상”과 “서울문학” 등 문학잡지 그리고 한국의 “다음”, “네이버”와 중국의 “조글로”, “모이자” 등 인터넷 블로그에 실려 수많은 네티즌들이 들어와 열람하였다. 장편과학환상소설 “야망의 바다”와 중편과학환상소설 "지구보위전"은 연변인민방송국에서 련속방송드라마 “지구보위전”으로 각색해 련속방송하였다. 또 “동심컵중한아동문학상”과 “옹달샘컵중한아동문학상”, “웰빙아동문학상” 등 문학상도 수두룩이 탔다.       아동문학리론가, 문예평론가 김만석교수의 문예평론 “야망의 과학환상소설”과 문예평론가 김룡운선생의 문예평론 “‘야망의 바다’에는 무엇이 묻혀 있나?”는 과학환상소설 창작의 앞길을 등대마냥 환하게 비추어주었다.       과학환상소설 창작과 그 예술기교에 대한 연구는 아직 미개척지로 남아 있으며 과학환상소설 작품도 몇개 찾아볼 수 없다.      나는 이 문예평론에서 십여년 동안 과학환상소설을 창작해오면서 얻은 과학환상소설 창작의 예술기교에 대한 나의 소감을 피력하여 우리 조선족아동문학작가들이 과학환상소설을 창작하는데 일정한 도움을 주려고 한다.       첫째, 과학환상소설의 소재 선택에 대하여      조문학과 졸업생인 내가 과학환상소설을 썼다고 하면 이상해하고 웃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 내가 열람한 자연과학도서는 나를 명실에 부홥되는 과학환상소설 작가로 만들었다. 나는 과학환상소설을 창작하기 위해 “로년세계” 주필을 하면서 중국의 "과학환상세계" 등 여러 과학환상잡지를 탐독한 외에도 한국, 독일, 미국, 일본 등 국외의 과학환상소설을 널리 섭력했다. 그외에도 의학전문저서를 읽은 외 길림대학 지구응용물리학과를 아들의 지구와 지질학에 관한 도서를 읽었으며 일본 고베대학에서 발전학을 전공한 며느리의 발전석사과정 전문도서를 섭렵했다. 그외에도 수많은 과학 정보와 자료를 수집한 외에  “제우스신화”, “헤라신화” ,"공주 아테나" 등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신화 그리고  인도 신화, 조선 “단군신화”, “주몽전설”, 중국 고대신화 “녀와가 하늘을 깁다.”, “예가 해를 쏘다.”, 일본신화 “황천” 등을 널리 읽고 과학환상소설의 소재를 선택해왔다.       우선 자연현상에서 과학환상을 과장해 과학환상소설의 신비한 소재를 얻으려고 노력했다.        례하면, 과학환상소설 “우박”의 소재는 텔레비죤에서 광동성 모시에서 탁구공만한 우박의 피해를 본 장면을 보고 선제하였다. 그때 나는 억수로 쏟아지는 우박이란 일반적인 자연재해를 과장하면 얼마든지 과학환상소설의 소재로 되지 않겠는가는  령감이 피뜩 떠올랐다. 그리하여 과학환상소설로 창작할 때 우박의 크기를 탁구공만한 우박으로부터 롱구공만큼한 우박으로 나중에는 항아리만큼한 우박으로 과장하였다.       과학환상소설에서 롱구공만한 우박이 떨어지자 유리창문이 깨지고 가로수가 끊어지고 큰길을 달리던 자동차가 박살난다. 나중에 항아리만큼한 우박이 하늘에서 쿵쾅 떨어진다고 과장하자 피해는 더 혹심해졌다. 층집지붕이 무너지고 전선대가 박살나 넘어지고 자동차가 납작하게 옥창이 되였다. 게다가 반팔을 입은 사람들은 혹한에 추워서 우들우들 떨면서 무너진 벽 밑의 가스도관에서 쌕 뿜기는 가스에 라이터로 불을 달아 불을 쪼이다가 가스 폭발로 2차 피해를 입는다. 밤중이 되자 산더미 같은 우박에서 파르스름한 빛이 반짝였다. 코치아의 사람들은 핵방사능오염이 들어 있는 것도 모르고 하늘에서 내려보낸 진주라고 파들여온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진주를 꿰서 목에 걸었다가 목이 썩어떨어지고 그 진주팔목걸이를 팔에 걸었다가 팔이 썩어떨어져나간다. 코치아 국가과학기술수사에 의하면 핵방사능오염물질이 그 우박에 들어있었다. 섬나라 오랑캐들의 짓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또 일반우박을 인공강우라는 과학지식에 근거해 섬나라 버새총리가 방사능오염물질을 걷어넣은 인공우박으로 살짝 고쳐 소설에서 코치아 조왕돌 꼬마대통령과 뱀섬나라 버새 총리간의 갈등설정에 접선해놓았다. 이처럼 자연재해인 우박을 과학환상을 통한 과장수법으로 항아리만큼한 우박이 쏟아지는 것으로 가공해 한편의 과학환상소설을 창작해냈다. 다음, 과학환상소설도 소설의 일종으로서 그 소재는 현실사회에서 찾지만 어디까지나 미래과학을 예언하는 과학환상소설로서의 미래첨과학의 신비성을 띤 소재를 얻어내야 한다. 나는 클론 생물복제기술과 줄기세포 과학기술, 신비한 우주과학의 비밀, 핵기술, 오존 등 첨단과학기술을 통해 이런 첨단과학기술을 예언하는 많은 과학환상소설의 소재를 얻어냈다. 례하면, 클론 생물복제기술에 근거해 “조왕돌의 모험기” 소재를 얻어냈으며 중편과학환상소설 “클론바우꼬마대통령 모험기” 등 신비한 이야기를 다룬 과학환상소설의 소재를 얻었다. 신비한 우주과학의 비밀에 근거해 지구를 충돌하려는 소행성을 제거하는 이야기를 다른 중편과학환상소설 “지구보위전”의 소재를 얻어냈다. 과학환상소설 “마그마발전소”의 소재는 텔레비죤에서 강렬하게 폭발하는 화산, 부글부글 끓어번지는 시뻘건 용암을 보고 환상해 얻어낸 소재이다. 텔레비죤에서 아일랜드에서 땅속에 깊이 도관을 시추해넣고 지열로 발전하는 장면을 보고 화산의 부글부글 끓어번지는 룡암으로 마그마발전소를 세우지 못하겠는가는 엉뚱한 련상과 환상을 하게 됐다. 나는 일본 고베대학에서 전문 수력과 화력 발전을 연구하는 며느리한테 마그마발전소를 세우면 어떤가는 엉뚱한 자문을 하였다. 그러자 며느리는 일본에서는 풍력발전소 뿐만 아니라 바다의 세찬 파도의 충격을 리용해 발전하는 연구도 하고 있는데 아직 마그마발전은 하지 않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지도교수와 물어보니 지진이 많은 일본에서 만약 마그마발전소를 세우면 일대 발전혁명이 아닐 수 없다고 하였다. 이리하여 신심을 얻은 나는 일정한 과학성을 띤 소재라는 것을 확인하고 “마그마발전소”라는 과학환상소설을 쓰게 되였다. 화산구멍에 커다란 가마덮개를 덮어 놓고 강렬하게 폭발하는 화산과 부글부글 끓는 용암으로 발전하는 신비하고 엉뚱한 마그마발전소를 탄생시켰다. 직승비행기로 복제인간 조왕돌부대가 가마덮개 파편 같은 수천개 부속품을 하나하나 가져다 커다란 가마덮개를 만든다. 조왕돌부대 장병들이 살캍이 타들어가자 코끼리 살갗처럼 두터운 클론바우 복제이간들이 날아다니면서 숱한 마그마 덮개 부속품을 맞춰 덮어놓음으로써 마그마발전소는 성공된다. 물론 지금 사람들의 지혜나 기술로는 그렇게 엄청큰 가마덮개를 화산꼭대기에 덮어놓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나는 최근에 중국에서 한 산골짜기에 직경이 몇백메터나 되는 커다란 천리혜안인 우주관측망원경을 만든 것을 보았다. 또 커다란 위성가마 같은 망원경을 보고 멀지 않은 장래에 내가 예언한 화산덮개를 덮어놓은 마그마발전소가 탄생하리라고 굳게 믿는다.     둘째, 과학환상소설의 전형인물 창조. 과학환상소설에서는 환상적인 전형환경에서 환상적인 전형인물을 창조하여야 한다. 물론 과학환상소설에는 정상인 인물형상도 섞여 있다. 아동과학환상소설일 때에는 성인과 아동 인물형상이 섞여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주요인물은 환상적인 전형환경에서 창조된 환상적인 전형인물이여야 한다. 례하면 “기원 5천여년”이라는 과학환상적인 전형환경에서 창조된 환상적인  클론바우형상은 괴상하고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클론바우는 생물학자 맥슨박사와 천문학자 유리박사의 아들로서 기원 2958년 5월 7일에 뉴욕시 부근 바다에서 고래어머니 배속에서 태여났다. 맥슨박사는 자기와 유리박사의 유전자를 분리해 클론인간복제기술로 선후하여 사자와 코끼리, 고래의 유전자와 결합해 여러가지 동물의 우세를 한 몸에 지닌 신화 속의 괴물 같은  환상적인 복제인간 클론바우를 복제해냈다. 클론바우는 태아때 너무 커서 고래 어머니 배에서 태여났다. 클론바우 생김새를 보라. 머리는 사자 어머니를 닮아 사자 대가리 같았는데 머리에는 또 총명한 뇌 둘이나 있었다. 총명한 두 뇌가 번갈아 쉬면서 밤낮없이 공부를 할 수 있어 12살 때 벌써 정치학과 군사학 박사학위를 획득했다. 클론바우의 코는 코끼리 코처럼 길었으며 귀는 파초 같았다. 눈은 천리혜안을 퉁사발눈인데 사자 얼굴에 눈 한쌍이 있는 외에도 뒤더수기와 식지에도 눈이 있었다. 그리하여 한번은 텔레비죤방송국 기자로 위장한 간첩이 뒤에서 비디오촬영기에 장착한 미형미사일로 자기를 쏠 때 뒤더수기와 식지에 박힌 눈으로 인차 발견하고 코끼리 코를 휘둘러 비디오촬영기 미형미사일을 쳐떨어뜨려 한차례 암살을 피할 수 있었다. 또 식지를 옹이구멍만한 구멍에도 찔러넣고 식지의 눈으로 안에서 벌어진 일을 다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이는 정상인이나 정상동물에게서 찾아 볼수 없는 네눈박이 환상적인 괴물로 형상화된 인물이다. 잔등에는 또 학의 어머니를 닮아 커다란 날개 두개나 달려 있어 초음속으로 훨훨 날아다닐 수 있었다. 중편과학환상소설 “괴물 클론바우 꼬마대통령의 모험기”에서 지구의 오존층에 구멍이 뚫려 아메리카 대륙에서 살지 못하게 되자 클론바우는 커다란 날개를 퍼덕여 남극주에로 훨훨 날아간다. 거기에서 펭긴까지 다 잡아 먹고 먹거리가 떨어지자 복제 클론바우3호가 집안에서 불만을 토로한다. 클론바우는 식지를 옹이구멍에 찔러넣어 식지에 박힌 눈으로 들여다보고 제때에 클론바우 3호를 제압한다.” 문예평론가 김룡운선생은 “야망의 바다에는 무엇이 묻혀 있나?”라는 문예평론에서 “클론바우의 출생비밀은 너무나도 신기하고 희한하여 환상이되 환상을 초월한 신화적인 괴물- 인물형상이다.”라고 평가했다. 클론 생물복제기술에 근거해서 나는 괴상한 환상적인 인물형상인 클론바우 몇세대인물형상과 조왕돌복제인간, 뱀과 사람의 유전자로 복제해낸 뱀인, 원숭이인 혹달개, 형상을 창조해냈다. 과학환상소설의 정형인물은 일반 동화에서의 인물과 다르다. 과학환상소설의 전형인물은 일정한 미래과학성과 환상으로 전형화된 전형인물이거나 현실생활에도 존재하는 미래의 정상인의 인물형상이다. 그러나 동화의 인물은 보통 의인화된 인물로서 사람이 아니며 마법에 의해 움직이는 환상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특징에서 과학동화나 일반동화는 과학환상소설과 구별된다.(실례는 략함) 셋째, 과학환상소설의 슈제트 구성. 과학환상소설의 슈제트는 일반 소설의 슈제트의 제요소를 구비하여 완전히 소설성을 체현해야 한다. 과학환상소설의 슈제는 이밖에도 일반소설에 비해 신화처럼 신비하고 괴상하며 파격적이며 환상적으로 전개된다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례를 들면, 장편과학환상소설 “욕망의 천지”에서는 아주 일정한 과학성과 환상성을 띤 신기한 이야기들로 아주 방대한 슈제트를 구성하고 있다. 나명한 아동문학리론가이며 문예평론가이신 김만석교수는 “욕망의 과학환상소설”(김장혁의 장편과학환상소설 “욕망의 천지”를 보고”란 평론에서 “방대한 슈제트구성, 신기한 환상이야기”라는 소제목 아래 다음과 같이 론술하였다. “…이 장편과학환상소설은 코치아와 뱀섬나라지간의 모순충돌을 주선으로 엄청난 환상적인 이야기를 진격적으로 전개시키면서 소설을 창작하여 독자들을 현혹하게 만들고 있다… 1.나까아맨은 남해해전을 빚어내여 고갈돼가는 뱀섬나라 에너지문제를 해결하려다가 조왕돌과 클론바우18세 부대에 의해 실패한다. 2.나까아맨은 코치아의 금별 대통령과 금붕어 총리 오누이지간에 리간을 도발하다가 실패한다. 3.나까아맨은 딸라에 독바이러스를 발라 코치아 반도에 살포해 백성들을 몰살시키려고 들었지만 조왕돌이 연구한 해독약 “K3바이러스”에 의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 4.나까아맨은 수많은 위성에 장치한 핵반사경으로 코치아 대통령부를 비춰 금별 대통령을 암살하려다가 조왕돌에게 발각돼 실패한다. 5.나까아맨은 기원 4000년에 지구종말론을 들고나오고 지구촌 령토평균분배를 시도하면서 코치아와 대국들을 리간질해 대국들을 동원하여 코치아를 치려다가 실패한다. 이렇게 코치아와 뱀섬나라지간의 모순충돌의 결과로 작품은 크라이막스에 치달아오른다. 1.금별 꼬마대통령은 지구에 날아오는 소혜성을 폭파하기 위하여 뱀섬나라 우주비행선과 영용하게 싸우며 나중에 우주비행선에 원자탄을 실은 채 소혜성을 충돌해 폭파시켜 지구를 보위하고 장렬하게 희생된다. 2.지구를 사랑하는 뱀왕의 령도아래 뱀인들이 떨쳐나서 클론바우와 조왕돌 부대와 회합해 나까아맨을 처단한다. 유라시아대륙판과 태평양대륙판의 충돌로 뱀섬나라는 침몰되고 야스구니 신사도 바다물에 떠간다. 나중에 작자는 소설의 결말을 멋지게 마무리하고 있다. 새로운 일대 조왕돌, 보름, 허선영 등은 아무리 생태환경을 복원하여도 인간의 무절제한 욕심을 절제하지 않고선 지구촌의 생태환경을 영원히 보호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새로운 길 탐색에 나선다.” 김만석교수는 장편과학환상소설 “욕망의 천지”를 두고 “이같이 변화무쌍한 이야기는 과학적원리에 의하여 안받침되였기에 일반 이야기와 전혀 다른 과학적이며 환상적인 이야기로 승화되였다.”고 평가하였다. 한국 아동문학학회 회장 나명한 시인이며 평론가인 김완기선생은 “옹달샘중한아동문학상” 심사평에서 “장편과학환상소설 ‘야망의 바다’에 등장한 각종 가상인물의 변화무쌍한 할동모습은 한편의 환상영화를 보는 느낌이 든다. ‘야망의 바다’는 작가의 풍부한 작품구상과 상상력을 보인 과학환상소설이다”고 평가했다. 일반소설은 생활론리에 근거해 사건이 발전된다면 과학환상소설은 과학론리에 토대한 과학환상에 근거해 환상적이고도 파격적으로 사건이 발전된다. 괴물 클론바우 꼬마대통령은 중편과학환상소설 “괴물 클론바우 꼬마대통령 모험기”에서는 “기원 2958년에 태여났다. 그는 어머니 유리박사의 제의를 받아들여 오존층을 핵미사일로 구멍을 뚫었다가 지구 생물이 훼멸되자 살 곳이 없어 우주비행선을 타고 태공에 올라가 랭동관안에 들어간다.”고 서술하였다. 장편과학환상소설 “야망의 바다”에서는 태공을 날아예는 우주비행선 랭동관 안에서 천년 잠을 자던 클론바우와 500년 굳잠을 자던 무빈총사령관이 후세 금별 대통령과 조왕돌 등에 의해 김이 문문 나는 랭동관 안에서 녹아나 깨여나서 걸어나왔다.”고 하였다. 하여 이 과학환상소설의 신비하고 환상적인 감을 더 해준다. 지금 일부 악성불치질환에 걸린 일부 부자환자들은 의료기술로 치료하기 어렵게 되자 자진하여 랭동관 안에 들어가 꽁꽁 언 채 누워 있다. 그들은 후세에 자기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는 의료기술이 발명되였을 때 자기 언 몸을 랭동관에서 꺼내 치료해달라고 유언을 남기였다. 이런 과학정보에 근거해 나는 괴물 클론바우와 금별 대통령이 태공에서 날아다니는 우주비행선 랭동관 안에 들어간 환상적인 장면을 구상해냈던것이다. 례하면, 단편과학환상소설 “조왕돌의 모험기”에서 크론박사가 주사기로 조왕돌의 팔에서 뭔가 빼가지고 지하과학실험실에 들어갔다. 이윽고 크론기술로 복제한 숱한 조왕돌과 똑 같게 생긴 애들이 수태 지하과학실험실에서 나온다.일반소설의 생활론리에 의하면 지하실험실에 들어가 얼마 되지 않아 그렇게 짧은 시간에 숱한 애들이 나올 수 없다. 이는 완전히 과학환상소설에서만이 될 수 있는 과학론리에 의한 파격적이고 환상적인 사건전개라고 할 수 있다. 또 이런 과학환상소설의 인물충돌에는 항상 첨단과학기술이 동반한다. 례하면 클론 인간복제과학, 줄기세포과학, 핵과학기술 등이 동반한다. 그리하여 자연히 핵전쟁으로 인한 핵오염이 지구와 인간을 포함한 생물의 생존에 얼마나 큰 위해를 주는가는 주제도 보여줄 수 있었다. 클론바우 꼬마대통령 모험기에서 오존층에 관한 과학기술에 의해 사건은 상상 밖의 크라이막스와 급격히 해결에 이른다. 작중 전쟁에서 밀리게 된 클론바우 꼬마대통령은 어머니 유리박사의 제안대로 코치아 상공의 오존층을 원자탄으로 폭파해 커다른 구멍을 뚫어놓는다. 오존층이 뚫린 하늘에서 내리쪼이는 자외선을 지구상의 인간들은 멸종의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여기서 독자들은 자연히 오존층이 파괴되면 지구상의 모든 생물이 훼멸될 수 있다는 위험성을 알게 된다.       다음, 과학환상소설의 환경묘사, 사건은 될수록 발전단계마다 환상적이고 신비해야 한다. 장편과학환상소설 “황천의 유령”에서의 핵전쟁으로 인해 백골더미로 되고 유령이 떠도는 하나꼬의 고향마을과 뱀인들의 해변가 화산굴 그리고 해변가 언덕의 환경묘사는 아주 환상적이고 신비하다.        금별대통령이 배를 타고 코치아로부터 섬나라 뱀인들의 화산굴로 돌아오는 장면은 더욱 신화나 전설 속의 장면을 방불케 한다. 금별 대통령이 배를 타고 련체쌍둥이 아들을 데리고 파도가 사나운 바다를 헤치며 건너오다가 해변가에서 풍랑에 휘말려 몽땅 바다에 떨어진다. 때는 엄동설한이라 바다물이 혹독하게 차다. 그때 이상하게도 갑자기 파도가 얼어 얼음산이 돼 앞뒤로 풍랑을 막아주고 뜻밖에도 온천의 뜨거운 물이 솟구쳐 금별 대통령의 부자간을 얼어죽지 않게 보호한다. 금별 대통령 부자가 해변가 절벽에 오르지 못하자 뱀인들이 몸으로 새끼처럼 꼰 뱀인 사닥다리를 절벽에 놓는다. 그리하여 그들은 뱀인들의 터덜터덜한 몸사닥다리를 타고 절벽에 오른다. (원 작품을 읽어보면 환상적이며 신비한 감이 더 날 것이다.) 다음, 과학동화나 과학이야기는 과학환상소설처럼 완정한 슈제트 구성이 필요없을 수도 있으며 사건도 마법에 의한 환상수법으로 꾸며나갈 수 있다. 그러나 과학환상소설은 소설처럼 미래과학성과 환상을 띤 완정한 슈제트구성이 필요하다.         동화는 이야기 한토막이거나  마법에 의한 환상에 의해 해결되는 동화를 구성할 수 있다. 또 동화는 소설처럼 슈제트구성, 전형환경에서의 전형인물창조, 세부묘사 등 제 요소 구비에 대한 요구가 높지 않다.        그러나 과학환상소설은 과학성에 의한 소설의 슈제트 요소가 완전히 귀비돼야 한다. 말하자면 사건의 발생, 발전, 크라이막스, 해결은 완전히 과학성에 의해 구성돼야 한다. 때문에 과학성에 의한 슈제트구성이 완비하지 못하면 과학환상소설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자칫하면 의인화된 과학동화거나 과학이야기로 되고 말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나의 소견에는 과학환상소설은 동화나 과학동화에 비해 창작하기 어렵다고 외람되게 생각한다.   넷째, 과학환상소설의 과학성 우선, 과학환상소설은 우선 소설로서의 제 요소를 구비해야 할뿐만아니라 과학성이 있어야 한다. 과학환상소설의 과학성은 현재과학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미래과학을 환상의 예술수법으로 예언하는 미래과학성이 구비돼야 한다. (실례는 략함) 다섯째, 과학환상소설의 환상에 대하여. 과학환상소설은 과학환상과 그를 예술적으로 보여주는 랑만이 구비돼야 한다. 이것이 과학환상소설이 과학동화나 과학이야기나 일반소설과 다른 특징이다. 사실 과학환상환상소설은 독특한 창작 예술기교가 필요하기에 창작하기 아주 힘든 감이 든다. 환상에는 신화적 환상, 종교적 환상, 유토피아환상, 과학환상 등이 있다. 과학환상소설에서의 환상은 어디까지나 일정한 과학성을 동반해야 한다. 이것은 동화의 마법에 의한 환상과 구별되는 점이다. 례를 들면, 안데르쎈의 동화 “성냥 파는 소녀”에서 소녀는 너무 추워 성냥가치를 그어대 불을 피운다. 그 불은 인차 두 손을 따뜻하게 만든다. 소녀는 난로 앞에 앉아 있는듯한 기분이 든다. 두번째로 성냥개비를 그어대자 커다란 방이 보이고 식탁의 접시에 게사니고기가 수두룩이 놓여 있다. 또 성냥개비를 그어대니 성탄나무가 나타나고 성탄나무의 초불들은 하늘로 날아올라가 별이 되였다. 또 성냥개비를 그어대자 자애로운 할머니가 나타나 소녀를 꼭 끌어안고 하늘로 날아올라갔다고 한다. 이는 동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완전히 소녀의 마법과도 같은 환각에 의한 환상이다. 추위와 기아에 허덕이다가 점점 사망해가는 소녀의 환각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과학환상소설에서의 환상은 동화에서의 환상과는 달리 일정한 과학성이 있는 환상이며 미래과학을 예언하는 랑만적인 환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동화의 환상과 과학환상소설의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과학환상소설에서는 어디까지나 과학론리와 과학예언에 의한 환상이라는 점이 과학동화에서의 환상과 다르다. 과학환상소설을 창작할 때 과학환상 외에 신화와 전설적 환상과 종교적 환상, 유토피아적 환상을 일부 섞어놓음으로써 과학환상소설이라는 예술작품으로 하여금  딱딱하고 단조로움을 피하고 더 다채롭고 신비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과학환상소설은 어디까지나 과학환상을 위주로 해야지 이런 마법적이거나 신화, 종교, 유토피아적인 환상의 비중이 절대 과학론리에 의한 환상 비례를 초과하지 말아야 한다. 총적으로 과학환상소설 창작에서 소재, 수제트, 전형인물창조, 그리고 과학환상소설의 과학성과 환상 등 예술기교는 아직도 개척되지 못한 처녀지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 가련하게 짧고도 짧은 반디불 인생에 과학환상소설 창작기교에 대한 탐구와 과학환상소설 창작은 나 가없는 우주처럼 끝이 보이지 않아 안타깝기만 하다. 씁쓸하고 고독한 골고다의 언덕을 넘어 고독한 과학환상소설 창작의 외길을 걷노라니 어느 덧 예순고개, 환갑의 나이를 먹고보니 인생은 허무하고 일장춘몽이라고 느껴진다. 이젠 나 혼자만 과학환상소설 창작의 외길을 걷지 말고 우리 아동문학작가들이 손에 손잡고 지혜를 모아 끊임없이 과학환상소설의 창작예술기교를 탐구한다면 꼭 우리 조선족아동문단, 나아가서 세계아동문단에도 내놓을만한 더 훌륭하고 신비하고 엉뚱한 과학환상소설을 창작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멀지 않은 장래에 우리 조선족과학환상소설의 화단에는 아주 다양한 과학환상소설의 꽃이 활짝 꽃피리라는 것을 확신한다. 2018년 5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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