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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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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것이 알고싶다] - 세계 최대의 불교학원 댓글:  조회:1428  추천:0  2020-09-10
세계 최대의 불교학원… 사천 신비로운 ‘써다 불교학원’                  (흑룡강신문=하얼빈) ‘써다(色達) 우밍(五明) 불교학원’이라 불리기도 하는 써다 불교학원은 1980년에 창립되었다. 1993년 프랑스 ‘르몽드(Le Monde)’에 의해 ‘세계 최대의 불교학원’이라 불리게 되었다.   써다 우밍 불교학원은 사천(四川)성 간쯔(甘孜) 장족(藏族)자치주 써다현 경내에서 동남쪽으로 약 20km 떨어진 곳의 해발 4,000m 높이에 위치해 있다. 겹겹의 산들로 둘러싸인 골짜기에 자리잡은 이 사찰은 불교학원의 대경당을 중심으로 사방이 모두 산비탈들로 빼곡히 연결되어 있다.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붉은 오두막집이 끊임없이 펼쳐져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계곡 밑과 산등성이에 자리잡고 있는 몇몇 사찰과 불당은 그 건축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장식만큼은 정교하고 휘황찬란하다. 붉은 승포(僧袍)를 몸에 걸친 라마(喇嘛)와 여승이 오가는 모습을 보노라면 생기가 넘치고 상서로운 분위기가 가득함을 느낄 수 있다.   웅대한 산들 사이에 자리잡은 이곳은 가장 순수한 불국(佛國)의 천당이자, 오래된 닝마(寧瑪) 홍교(紅教, 8-9세기에 성행했던 라마교의 한 분파)가 라마불교의 풍부하고 넓은 문화와 세상을 구하는 마음을 전수, 계승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인민망 한국어판                                    
3    30여년 = 조선족민속유물 만여점 댓글:  조회:2358  추천:0  2020-09-10
김인국, 30년 동안 조선족민속유물 만여점 수집 편집/기자: [ 리철수 ] [ 길림신문 ]  [ 2020-09-10 ]    연변천지조선족민속문화연구원 김인국 원장. 연변천지조선족민속문화연구원 김인국 원장이 과거 우리 조상들이 써오던 민속유물에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수집을 시작한지도 어언 30년이 다가온다. 그동안 그가 각고의 노력을 들이면서 한점, 두점 수집한 민속유물은 저그만치 만여점으로서 조선족민속유물 수집대가라고 해도 전혀 과언이 아니다. “이 만여점의 민속유물을 수집하느라 연변의 8개 현, 시는 물론 선색을 따라 길림성의 기타 조선족집거지와 료녕성, 흑룡강성 내몽고자치구에까지 갔다오기도 했습니다. 물론 전부 개인 돈을 팔면서 수집해 왔지요.” 멀리로는 수백년전에 만들어진 조선시대의 동거울로부터 가까이로는 수십년전에 조선족부녀들이 물동이를 머리에 이기 위하여 옥수수껍질로 만든 똬리... 이런 것들을 마주하고 있노라면 저도 모르게 조상들이 돌아와 우리에게 호랑이가 담배 피울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라고 하는 것 같다고 말하는 김인국 원장, 조선족민속유물 수집에 처음에는 그저 애호와 애착으로 시동을 걸었으나 후에는 우리 세대에서 수집해 놓지 않으면 영영 사라져버려 다시는 보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사명감으로 좀처럼 제동을 멈출 수가 없게 되였다고 한다. “매 한점의 민속유물마다에는 과거 조상들의 이주사와 이 땅을 개척하면서 흘린 피와 땀의 력사가 슴배여 있고 또 한 가족의 생활사가 얽히여 있습니다. 민족의 혼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그런 물건들이라고 할 수 있지요.” 김인국 원장은 전시관에 진렬한 물건들을 가리키면서 이렇게 말한다.     몇세대에 거치는 가족이야기가 담겨져 있을 법한 끝이 다 닳고 모지라진 밥주걱.   조선족의 진귀한 민속유물을 대중들에게 널리 소개하고 우리 민족의 우수한 전통문화를 자라나는 후대들에게 알려 민족전통을 이어가는데 힘을 보태기 위하여 2017년 5월 18일 국가박물관일을 맞으며 김인국 원장은 연길시박물관과 합작하여 박물관 내에 조선족민속전시실을 개설했다. 소학교에 다니는 어린 학생들이 가끔 박물관을 찾아와 민속유물들을 신기해서 만져보면서 민족의 력사와 전통을 알아가는 시간을 가질 때 김인국 원장은 고생한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장백산풍경구에서 민속박물관을 세울 때 조선족민속유물이 한점도 없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한겨울에 폭설을 무릅쓰면서 장백산관리위원회를 직접 찾아가 일푼의 대가도 없이 자신이 어렵게 수집한 물품들을 가져다 전시하라고 했다. 지금 장백산풍경구 민속박물관에 전시된 70여점의 조선족민속유물은 전부 김인국 원장이 제공한 물품들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룡정조선족민속박물관에 약상자가 없다는 것을 알고 기억해 두었다가 수집에 나설 때마다 잊지 않고 알아봤다. 이렇게 수소문한 끝에 드디여 선색을 알게 된 그는 박물관에 소식을 알려 문물수집일군들이 내려가서 수집해 들이도록 했다. 현재 룡정조선족민속박물관에 진렬되여 있는 공예가 정교한 약상자는 바로 김인국 원장이 선색을 제공해 구한 물품이다. “현대공업과 과학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오늘 많은 것이 얼마 못가서 도태되고 있지만 우리 조상들이 써오던 민속물품들은 오래될 수록 그 가치가 더 소중해지지요. 앞으로 연변에서 관광업이 발전할수록 이런 물건들은 더욱 빛을 발산할거라고 생각합니다.” 김인국 원장은 30년 동안 조선족민속유물들을 수집하느라 거기에 판 발품은 말할 것도 없고 북경에 있던 집까지 팔아버릴 정도였지만 종래로 후회한 적이 없다면서 자신의 힘으로 조상들이 써내려오던 진귀한 유물들을 얼마라도 지켜낼 수 있다는 것으로 만족한다고 말했다.                   /길림신문 리철수기자
2    인민음악가 - 정률성 친필 원고 할빈으로... 댓글:  조회:2331  추천:0  2020-09-10
정률성 친필 기증식 할빈에서 편집/기자: [ 정현관 ] [ 길림신문 ]  [ 2020-09-10 ]  지난 7일, 정률성 친필 원고 《팔로군행진곡》, 《팔로군군가》 악보 기증식이 할빈에서 있었다. 저명한 인민음악가 정률성의 독녀인 정소제녀사가 이날 기증식에 직접 참석해 부친 정률성의 친필 원고  《팔로군행진곡》, 《팔로군군가》 등 8부의 악보와 모친 정설송 녀사의 서예작품 및 유품을 할빈시조선민족예술관 인민음악가 정률성기념관에 기증했다.     할빈시 손철 시장(우) 정소제에 기증 영예서 발급   기증식에서 정소제는 “지난해 년말에 새로 발견 된 아버지의 친필 원고를 어디에 기증해야 할지 생각이 많았다.고민 끝에 할빈 정률성기념관에 기증하기로 마음 먹었다. 기념관이 성립 당시에 기증을 못해 많은 아쉬움이 남았다. 오늘에 와서야 아버지의 친필 원고를 기증 하게 되면서 나의 오래 소원을 이루게 되였다.”고 기증 원인을 밝혔다. 이어 정소제는 정률성기념관에 대한 할빈시의 다년간의 관심과 보호에 감사를 전했고 정률성기념관이 앞으로 국방교육의 기지 및 국제문화교류의 플랫폼으로 발전하기를 희망하면서 기념관의 향후 발전에 자기의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정소제(우) 할빈시조선민족예술관에‘팔로군행진곡’,‘팔로군군가’ 친필원고 기증   ‘팔로군행진곡’, ‘팔로군군가’ 친필원고 료해에 따르면 지난 2009년 7월, 정률성기념관이 할빈시경비구에 개관 할 당시 정소제는 이미 소장해두었던 부친 정률성의 유품 400여점을 기념관에 기부하면서 기념관의 설립에 적극적인 공헌을 했다. 올해 년초에 인민음악가정률성기념관이 할빈시경비구에서 할빈시조선민족예술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정률성은 1914년 7월7일, 한국 전라남도 광주에서 태여났고 어릴적부터 음악에 남다른 끼를 보였다. 1933년, 중국 남경에서 조선민족혁명당에 가입하면서 항일 활동을 시작했다. 성악 공부를 시작하면서 정률성은 음악이 혁명역할에 주는 영향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게 됐다.     기증식 관련 참석자 단체 사진   정률성은 40여년의 음악생애에서 각종 음악작품 400여수 창작했다. 그중 ‘연안송’과 같은 작품들은 애국청년들의 항일 열정을 불러일으켰고 또 중국혁명에 마멸할 수 없는 기여를 하였다. 특히 항일전쟁 승리 이후 정률성이 창작한 ‘팔로군행진곡’은 ‘중국인민해방군행진곡’으로 명명됐고 이어 1988년 당중앙의 피준에 의해 ‘중국인민해방군군가’로 지정되면서 인민군대의 필승불패의 영원한 상징으로 지금도 억만인민의 심금을 울려주고 있다.     정률성 독녀 정소제   이외 정률성은 해군, 륙군, 공군  삼군 모두를 위해 창작한 바가 있다. 뿐만 아니라 그가 창작한 군악은 항일전쟁, 해방전쟁, 항미원조, 사회주의 건설 등 여러 시대를 넘나들면서 빛나는 한페지를 남겼으며 중국에서 유일하게 여러 시대를 모두 거친 혁명 음악가로 기록되였다. 중국 최고의 3대 음악가로 섭이, 선성해와 나란히《새중국 창건 특수기여 영웅모범인물》에 오른 정률성은 중국현대음악사상 무산계급혁명음악사업의 개척자의 한사람으로,영원한 《인민음악가》로 추앙받고 있다. /길림신문 정현관기자 ====================///   정률성 딸, 아버지 친필원고 정률성기념관에 기증   2020-09-10                  정률성 독녀 정소제, 아버지 친필원고 기증... 할빈시 손철 시장 친히 접견   중국 최고 3대 음악가로 섭이, 선성해와 이름을 나란히 하는 중국 무산계급혁명음악사업의 개척자, 걸출한 음악가 정률성의 친필원고가 할빈시조선족예술관에 입주한 인민음악가 정률성기념관에 기증돼 요즘 태풍으로 인해 침침했던 할빈 날씨에 한가닥 해빛을 비쳐주었다.   지난 7일, 정률성 독녀, 저명한 인민음악가 정소제가 정률성 친필원고 '팔로군행진곡', ‘팔로군군가’등 8부 곡보와 정률성 부인 정설송(丁雪松)의 유품 및 서예작품을 기증하는 기증식이 할빈시인민정부에서 진행됐다.   손철 시장(우)이 정소제녀사에게 기증 영예서를 발급하고 있다.   손철 시장이 정소제녀사와 환담을 나누고 있다.   기증식에 참가한 관계자들이 기념사진을 남겼다.   이날 기증식에 할빈시 시위 부서기, 시장 손철(孙喆)을 비롯한 시위시정부 령도와 할빈시조선민족예술관, 시문화광전관광국, 연예그룹 등 부서 령도 및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기증식에 앞서 손철 시장이 정소제를 친히 접견하고 할빈에 대한 사랑 및 신임, 그리고 정률성기념관이 성립할때 기여한 적극적인 노력과 공헌에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리고나서 할빈시는 계속해서 정률성기념관을 잘 건설하고 국내외 영향력을 넓히는 동시에 할빈시의 특색명함으로 부상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소제도 정률성기념관에 대한 할빈시정부의 관심과 지지에 깊은 감사를 드리고 앞으로도 정률성기념관의 향후 발전을 위해 노력을 다할것이며 정률성기념관이 국방교육의 기지, 국제문화교류의 교두보 역할을 다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팔로군행진곡’, ‘팔로군군가’ 친필원고.   한편 중국인민해방군군가로 시작된 기증식에서 정소제는 할빈시조선민족예술관 박춘희 관장에게 손수 정률성‘팔로군행진곡’과 ‘팔로군군가’친필원고를 넘겼고 손철 시장이 정소제에게 기증 영예서를 발급했다.   기증식에서 정소제는 “정률성기념관이 성립될때 아버지의 친필원고를 찾지 못해 오늘에 와서야 기증할 수 있어 오래된 소원을 이루게 되였다”면서 “얼마전 아버지가 창작한 ‘팔로군행진곡’ 등 곡보 친필원고를 발견하고 격동된 나머지 국가박물관 혹은 국가도서관 아니면 중국인민항일전쟁기념관 그 어디에 기증하면 의미가 더 깊을지 많은 고민도 했지만 결국은 할빈에 있는 정률성기념관에 기증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할빈에 정률성기념관을 세울때 할빈시 관련령도들이 팔보산혁명묘지에 가서 아버지를 추모했고 어머니께서도 기념관을 할빈에 세울것을 동의하셨기에 아버지의 유품은 응당 할빈에 있는 정률성기념관에 기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이번 기증 원인을 밝혔다.   정률성기념관이 지난 2009년 7월 할빈시경비구에 최초로 개관했을때 정소제가 다년간 소장해두었던 아버지의 유품 400여점을 기부해 기념관의 설립에 적극적인 공헌을 했다. 이는 할빈시의 특색문화관광자원으로 활용되 보귀한 정신문화재부로 남았다. 올해 년초 인민음악가정률성기념관이 할빈시경비구로부터 할빈시조선민족예술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정소제(우)가 할빈시조선민족예술관 박춘희 관장에게 ‘팔로군행진곡’, ‘팔로군군가’ 친필원고를 기증하는 장면.   할빈시조선민족예술관 박춘희 관장은 “정률성의 ‘팔로군행진곡’, ‘팔로군군가’ 등 친필원고는 관내 수많은 소장품 가운데서 가장 진귀한 소장품으로 전시될 것이며 우리는 유족의 뜻을 받들어 정률성 유품을 잘 보관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1914년 7월7일, 한국전라남도에서 태여난 정률성은 어릴적부터 음악에 남다른 장끼를 보였고 1933년에 셋째형을 따라 중국남경에서 조선민족혁명당에 가입했으며 항일활동을 하는 동시에 성악을 배우기 시작했고 음악이 가지는 혁명역할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게 됐다.   그는 일생에 400여수 각종 음악작품을 창작했는데 ‘연안송’ 등 우수작품들은 애국청년들의 항일 열정을 불러일으켜 중국형명력사에서 중요한 작용을 하였다. 특히 그가 창작한 오늘도 억만 인민의 심금을 울려주는 ‘팔로군진행곡’은 1988년 등소평에 의해 ‘중국인민해방군진행곡’으로 채택되여 인민군대의 필승불패의 영원한 상징으로 부상됐다.   정률성은 중국 해, 륙, 공 삼군의 모든 병종을 위해 악곡을 창작했고 항일전쟁시기, 해방전쟁시기, 항미원조시기, 사회주의 건설시기 등 여러시기에 모두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훌륭한 작품을 남겨 중국 력사에 빛나는 한페지를 기록했다.   2009년 정률성은 ‘새중국창건특수기여영웅모범인물’에 올라 영원한 ‘인민음악가’로 추앙받고 있다.   /흑룡강신문 리흔 기자  
1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기후문제",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2690  추천:0  2020-09-10
기후변화로 자연재해 점점 더 심각  2020.09.10.  슬퍼요  화나요 좋아요 평가하기 댓글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동영상 뉴스 [앵커]  코로나19 대유행 속에 자연재해까지 겹치면서 올해 전 세계가 유난히 힘든 한 해를 보내고 있는데요.  기후학자들은 기후변화로 인해 앞으로의 상황이 더 심각해질 것이라며 올해가 그리워질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박혜준 PD입니다. [리포터] 햇빛 한줌 들어오지 않는 오렌지 빛 하늘이 재난 영화를 방불케 합니다. 대형 산불로 연기가 시내 깊숙이 들어오면서 하늘을 뒤덮은 겁니다. "지금이 몇시인지 궁금해서 밖에 나와 봤는데 최후의 날 같습니다. 뭔가 끔찍하게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세상의 종말처럼 느껴집니다. 꽤 무섭습니다. 우리가 가난했을 때 한 일이 나를 울게 합니다.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미국 캘리포니아주를 덮친 가뭄과 대형 화재, 54℃가 넘는 데스밸리의 이상 고온, 한국과 일본을 잇따라 강타한 태풍.  코로나19 대유행 속에 전 세계가 연이은 재난을 맞이하고 있는 가운데 기후학자들은 앞으로 이를 뛰어넘는 자연재해가 발생할 거라고 경고합니다. "우리는 10년, 20년, 아마도 50년 후에 '2020년은 말도 안 되는 해였어. 하지만 그때가 그립다'고 말하게 될 겁니다." 기후학자들은 "화석연료의 연소가 기후변화나 재해를 악화시킨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라며 이런 자연재해는 10~20년 전부터 예견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기후변화 변수로 인해 세계 경제라는 발등 위에도 불똥이 떨어졌습니다.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는 기후변화의 물리적 여파가 이미 미국에 영향을 주고 있고 '배출가스 제로' 사회로의 체질 개선도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금융당국의 대응을 촉구했습니다. 연합뉴스TV 박혜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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