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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지》문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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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도라지>>2018년 제6기 목록 댓글:  조회:631  추천:0  2019-07-12
특별초대인 - 김경화 고기 먹는 날 (단편소설) 너는 내가 아니다 (창작후기)   그 작가가 그립다 -남영전편 리여천 사랑으로 가는 길 (문학인생담)   삼인초대석 김영해 왼쪽,오른쪽 (단편소설) 서정순 소루장이(외 1편) (수필) 박춘월 책(외6수) 시   수필마당 장송심 천국에서 들려오는 노크소리 장송심 삶의 저 끝자락엔 장송심 오열하는 락엽   시조명 김룡운 찰나의 섬광(외 5수) (시) 김룡운 모순과 황당성의 미학 (창작담)   11번가 특집 현청화 미생지신 (수필) 조홍매 단오.엄마의 사랑 (수필) 리홍숙 아름다운 동행 (수필) 김  해 규중밀우 (수필) 림현호 공유자전거.이대로도 괜찮은 걸가 (수필) 최  화 관심과 간섭 사이 (수필) 전연희 불편한 이웃 (수필) 리향옥 꽃피는 산골 (수필)   문학동네 엄정자 에서 보여지는 변모된 문학의 양상 (비평)   계렬칼럼 장경률 줄기찬 람용과 처절한 지킴   하이프시 특집 정두민 들국화 (외 1수) (시) 신금화 동그라미(외 2수) (시) 성  윤 물(외 2수) (시) 최길록 우울증(외1수) (시) 강시나 얼음 조각상 (외 2수) (시) 방산옥 련꽃소녀(외 1수) (시) 최룡관 자화상(외 1수) (시) 한설매 빨간 양산 (외 2수) (시) 황희숙 가을 (외 1수) (시) 김향옥 무지개 (외 1수) (시) 목  경 덩이 (외 1수) (시) 방순애 합성(외 2수) (시) 박문희 용우물의 눈 (외 2수) (시)   장편인물평전 김  혁  청년문사 송몽규 소전(련재 6)   장편소설 김옥희 우리들이 사랑한 시간 (련재6) 량춘식 한몽가(련재10)   시인과 시 김문세 겨울
14    <<도라지>>2018년 제5기 목록 댓글:  조회:519  추천:0  2019-07-12
특별초대인 - 류정남 진달래동산을 넘는 사람들 (단편소설) 진달래꽃,아픈 그 이름에 붙이여 (창작후기)   그 작가가 그립다 - 강효근편 허련순 지금은 절필을 선언할 때 (문학인생담)   삼인초대석 김영해 하트를 찍어드릴가요 (단편소설) 서정순 터밭 이야기(외 1편) (수필) 박춘월 꿈이라는 그림(외 8수) (시)   수필마당 김옥화 이제 오는 봄날이면 김옥화 녀인이란 이름으로 김옥화 개벌의 언어   문학동네 리홍매 이 가을,우리 마음에 땀방울이... (수필) 권연이 욕을 버려야 마음이 가벼워진다 (수필) 전한나 하이힐 (수필) 류서연 틈의 매력 (수필) 김순희 나의 고모 (수필) 모동필 한마리 새처럼 (칼럼) 류은종 몽당연필(외 3수) (시)   시조명 김춘희 겨울산 속의 하얀 집이고 싶다(외7수) 시 우상렬 김춘희의 '겨울산 속의 하얀 집'에 살고 싶다 (비평)   계렬칼럼 장경률 종이신문 아니면 전자신문?   길림지구 특집 김충국 좀도적 (벽소설) 김설연 고독의 미학 (수필) 최혜숙 한 우물을 파라 (수필) 김후남 신용 (수필) 김숙자 배움의 즐거움 (시) 리미란 질서의 울타리 (수필) 김형권 외로움(외4수) (시) 리영남 삶은 계란(외 2수) (시)     장편인물평전 김  혁  청년문사 송몽규 소전 (련재5)   장편소설 김옥희  우리들이 사랑한 시간 (련재5) 량춘식  한몽가(련재9)   시인과 시 전경업  내 앞에는 페허가 문학사 회원 3행시 모음  
13    <<도라지>>2018년 제4기 목록 댓글:  조회:649  추천:0  2019-07-12
특별초대인 - 박명선 돌아갈 수 없는 강 (단편소설) 우린 어떻게 하면 좋았을가? (창작후기)   그 작가가 그립다 - 김철편 전춘매 정열에 불타는 시인 (문학인생담)   삼인초대석 김영해 이런 꽃송이들을 보셨습니까? (단편소설) 서정순 그날의 풍경(외 1편) (수필) 박춘월 풍경소리(외 7수) (시)   수필마당 허무궁 괴인시대 허무궁 두통거리 허무궁 스위트 캐러멜   시조명 백성일 멈추고 싶은 시간(외 9수) (시) 김  몽 소박한 수채화,은은한 향기 (비평)   계렬칼럼 장경률 버리고 나니 채워지더라   문학동네 박초란(훈춘) 거울 (단편소설) 오경희 아름다운 걸레 (수필) 김동규 할아버지와 장죽 (수필)   8090특집 현청화 슬픈 거짓말 (단편소설) 리홍숙 아줌마의 로맨스 (단편소설) 리연서 아름다운 페허 (수필) 김명순 새벽 2시반 (수필) 박찬휘 낯익다(외 2수) (시) 김  화 아집을 벗어버리기로 했다(외 2수) (시)   장편인물평전 김  혁  청년문사 송몽규 소전(련재4)   장편소설 김옥희 우리들이 사랑한 시간(련재4) 량춘식 한몽가(련재8)   시인과 시 곽미란   정형외과의사 문학사 회원 3행시 모음  
12    <<도라지>>2018년 제3기 목록 댓글:  조회:522  추천:0  2019-07-12
특별초대인 - 박초란(북경) 서른아홉 (단편소설) 세월은 흘러도 (창작후기)   그 작가가 그립다 - 김용식편 강정숙 한세대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 작가 (문학인생담)   삼인초대석 김영해 선 (단편소설) 서정순 정월 대보름날,둥근달을 바라보며(외 1편) (수필) 박춘월 유리(외7수) (시)   수필마당 안수복 겨울꽃 안수복 도토리를 주으며 안수복 바다를 닮고 싶다   시조명 김인덕 쭈그러진 술주전자(외9수) (시) 김  몽 에서 익어가는 시 (비평)   문학동네 주계화 고슴도치 사랑 (단편소설) 김홍란 락엽향 (수필) 김은자 상처의 치유를 위한 사의(写意)적인 문학서사 (비평)   계렬칼럼 장경률 당신의 인생시계는 몇시입니까   성좌특집 곽미란 둘째 시누이와 무우떡 김재연 신토불이 박영진 청명날의 단상 배영춘 부부의 미적 거리 송련옥 우리 집 비정상회담 변창렬 복수초(외 1수) 김  단 연(외 1수) 성해동 설 련휴(외 1수) 김  연 복수초(외 1수) 리명철 별이 되는 기억 (외 1수) 해  암 거울 (외1수) 김현순 아줌마 (외 1수) 허순금 편지 신명금 밤(외 1수) 신인코너 최미화 고백 (시) 림연옥 행복한 어느 날 (시)   장편인물평전 김  혁  청년문사 송몽규 소전(련재3)   장편소설 김옥희 우리들이 사랑한 시간(련재3) 량춘식 한몽가(련재7)   시인과 시  허동식 별하늘을 바라보면서     문학사 회원 3행시 모음    
11    <<도라지>>2018년 제2기 목록 댓글:  조회:526  추천:0  2019-07-12
특별초대인 - 살춘각 대림동에서  (단편소설) 문학과 감자알 (창작후기)  그 작가가 그립다   -   김양금편 허련순    아직도 즐거운 낚시군  (문학인생담)   삼인초대석 김영해    나 홀로 집에 (단편소설) 서정순    천상에 보내는 편지(외1편) (수필) 박춘월    리력서1(외6수) (시)   수필마당 엄정자   올려다보는 구름,내려다보는 구름 엄정자   단풍이 들 때 내 색갈을 찾아서 엄정자   사라지는 옛집   중국 시단 입말시 특집 춘  수   잊을 수 없는 어느 오후와 어떤 조선족 남자애 후  마    积水潭 군  아    과일이 익지 않아 리  위    달나라에서 돌아오다 마  비    청춘 기  자    몇년 전 어느 밤 포장마차에서 심호파  국제시가랑송회 당  흔   청춘시절의 가게 현원식가  하느님의 기발(외1수) 염영민   녀시인 이  사    꼭두각시 극단(외 1수) 조립굉   어머니의 시재 주  검   귀신을 만나다 홍군식   임신   시조명 김철호 흑백사진(외8수) (시) 권혁률   시와 인간의 바른 삶과의 조망 (비평)   문학동네 정희정   탁란 (단편소설) 황유복   나의 버킷 리스트 (수필) 박송천   마중물 (수필) 김철우   땡볕(외4수) (시) 김진홍   고향의 뜨락(외 3수) (시) 방순애   탈령토화 (비평) 신인코너 배련희   중년의 온도 리정화   봄의 향기   계렬칼럼 장경률    내가 룡정차에 푹 빠진 리유(외 1편)   장편인물평전 김  혁     청년문사 송몽규 소전(련재2)   장편소설 김옥희   우리들이 사랑한 시간 (련재2) 량춘식   한몽가 (련재6)   김파시인 추모글 최삼룡   김파와 나 김  몽    시인이여,프리즘 속에서 영생하라   시인과 시 홍군식   주방     문학사 회원 3행시 모음  
10    [창작후기] 문학과 감자알 - 살춘각 댓글:  조회:473  추천:0  2019-07-12
 살춘각  문학과 감자알     오랜만에 수개라는 걸 해보았다. 글이 채 익지 않아서다. 자투리시간에 쓴 글이고, 또 마음이 조급했었을 것이다. 수개를 거치니까 훨씬 나아졌다.    원래 만 륙천자로 예상했었는데 이만자로 늘어났다. 요상하다. 긴 글을 좋아하는 독자는 없겠는데 말이다. 책 읽기 싫어하는 요즘 시대가 아닌가.   영화 《청년경찰》을 보다가 화가 났다. 두 경찰학교 학생이 대림동에 근거지를 둔 조선족범죄집단, 즉 녀자들을 감금해놓고 란자를 적출해내는 악마의 소굴을 짓부셔 버린다는 내용이다. 특히 내가 주목했던 부분은 영화를 시작해서 57분 25초에 택시운전사가 두 경찰학교 학생들을 대림동에 데려다주면서 하는 얘기다.   “학생들, 이 동네 조선족들만 사는데 칼부림도 많이 나요. 려권 없는 범죄자들도 많아서 경찰들도 잘 안 들어와요. 웬만하면 길거리를 다니지 마세요.” 라는 말도 안되는 대사다.    나는 이 대사만은 열번도 더 돌려 들었다.    그리고 이 소설을 쓰게 된 계기는 또 있었다.    담배를 피우다가 잡힌 사건과 영등포경찰서 앞에서 싸우다 얻어터진 사건이다. 쓰지 않으면 미안할 것 같았다.     창작한다는 것은 고역이다. 인생에 대해 고민해야 하고 현실과 싸워야 한다. 더구나 몸이 한국에 있다 보니 조선족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해야 했다.    글이라는 것은 모름지기 나의 구원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도 구원하지 못하는 글이 무슨 문학이겠는가. 나는 나를 위해서 글을 쓴다고 감히 생각한다.    거창한 문학은 하지 않기로 한다. 혹자는 이 글을 읽고 쓰레기 같은 글을 썼다고 할 수도 있다. 괜찮다. 나도 내가 특별히 잘 썼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깐.    어떤 차원의 작가가 어떤 차원의 글을 쓴다. 글을 보면 그 사람이 알린다. 내 그릇이 요만큼 밖에 안된다는 얘기다.    아들애가 대여섯살 적의 이야기다. 한번은 시골에 있는 할아버지 집으로 갔다가 돌아와서 하는 말이 “아빠, 할아버지 재간이 영 많슴다. 땅만 파면 감자가 나옴다.”    아이의 천진란만한 말에 나는 소리내여 웃었다.    그리고 설명해주었다. 그런 것이 아니라고. 심었으니까 나는 거라고. 심지 않으면 땅을 백번 뚜져도 감자는 나지 않는 거라고.    그렇다.    그래서 내 문학은 한알의 감자알일 수도 있다. 한쪽 귀가 썩은 감자알일 수도 있다.  출처:2018년 제2기  
9    [단편소설] 대림동에서 - 살춘각 댓글:  조회:546  추천:0  2019-07-12
단편소설 / 살춘각 대림동에서    6     “전 한국음식 못 먹겠어요. 아저씬 어때요?”    “나도 입에 안 맞아. 같은 민족이라 음식은 맞을 줄 알았는데…”    “김치는 그래도 먹을 만해요. 그 외엔…”    “오면서 볼라니까 화룡 랭면집도 보이던데?”    “네. 저도 봤어요. 근데 거기까지 가자면 좀 멀죠. 시간이 되겠어요? 오후 수업 전에요? 그리고 식사치곤 너무 비싼 거 아닐가요? 료리 한가지에 적어도 만원은 하겠으니.”    “하긴 그렇네. 돈도 못 버는 주제에. 흐흐.”    “뭐 대충 때우면 되죠. 차차 적응이 되겠죠.”    “랠엔 다른 집 찾아보자. 이 놈 뼈다귀장국엔 뭔 놈의 들깨를 이리 많이 넣었어. 장국이란 게 된장맛은 안 나고 온통 들깨맛만 나잖아.”    “그러니까요. 저 본래 시래기 영 잘 먹는데 들깨 때문에 못 먹겠어요.”    “한국에는 왜 초두부집도 없나 몰라.”    “순대라는 것도 속에 당면밖에 없어요.”    “반찬이라는 건 맨 주물럭주물럭 무침들…”    “찬마다 설탕을 넣는지 다 달아요.”    “티비에서 하도 선지국 선지국 해서 모처럼 먹어봤더니 당최 못 먹어줄 음식이더구만.”    “랭면은 더구나 못 먹어요.”    “짜장면은 그나마 괜찮아. 그렇다고 맨날 짜장면만 먹을 수도 없는 일이고…”    “랠엔 생선 쪽으로 찾아볼까요?”    “오케이.”    여기는 대한민국 서울시 대림동.    영등포경찰서 맞은켠 ‘양평해장국’집에서 나는 태여나서 처음으로 음식타발을 하고 있다.    한국에 온 지 어느새 한달이 넘었다. 나이 반백에 새로운 삶을 살기로 마음 다잡은 터였다. 려행비자를 장기체류비자로 전환시키려면 동포재단에서 지정한 학원의 수료증이나 자격증이 필요했다.    내가 있는 도곡동에서 대림동에 있는 학원으로 오자면 한번 환승해야 한다. 3호선에서 2호선으로, 혹은 7호선으로 갈아탄 다음 대림역에서 내려 10번 출구로 나온다. 300메터가량 직진하여 우성아빠트를 만나 좌회전 하면 대략 담배 한대 탈 시간에 동사무소가 보인다. 그 맞은켠이 문화빌딩이고 거기 2, 3, 4층이 한국동포지원단에서 지정한 종합기술학원이다. 주요품목으로는 제과, 제빵, 료리이다. 비자 변경을 하기 위하여 나는 여기 학원에 등록했다.    그곳에서 나는 한 녀자를 만났다.      5     방문취업기술교육학원 제빵 81기 원생은 나까지 합쳐서 7명이였다. 일년에 4기, 한계도에 한번 꾸려지는데, 한번에 나오는 인원수가 5,000명이라니까 만기가 되여 돌아가는 걸 감안하더라도 그 수가 어마어마하다. 81기까지 운영해온 걸 보면 이 학원이 선 지 꽤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한국엔 이런 학원이 도처에 널려있다.    어쩌다 보니 내가 반장으로 선출되였다. 아마도 7명 중 내가 한국말을 잘한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학원 측으로서는 반장보다도 강사의 말을 옮겨주는 통역이 필요했으리라. 앵무새 같은 전달자가 필요했으리라. 7명 중 5명은 아예 한국말을 들을 줄도 몰랐으니깐. 유일하게 들을 줄 아는 녀자도 발음은 정확하지 않아서 말할 때면 늘 얼굴을 붉혔으니깐. 한마디 더 보태자면, 7명 중 4명이 한족이였다. 강사의 말을 빌면 70몇기는 20여 명 전부 한족이였다고 한다.    F―4비자는 자격증이 필요하지만 H―2는 자격증이 필요 없다고 했다. 그냥 6주간 출석만 꼬박꼬박 하면 수료증을 내준다고 했다. 그러면 남는 건 출입국에 가서 외국인등록증을 신청하는 일 뿐이다.    “하이―”   그녀가 나를 보고 인사했다. 아침 학원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나를 보고서다.    “하이는 무슨 하이. 조선말로 해.”    “잉! 빤장― 내가 발음이 나쁜 거 알고 놀리려고 그러죠?”    “오빠야, 빤장이 아니구! 그리구 한국에 왔으면서 조선말부터 빨리 배워야지. 안 그래?”    “옵빠는 칫! 아저씨인 주제에. 알았어요. 앞으로 조선말 할게요. 웃지만 마요.”    “알았어. 빨리 들어가. 니가 젤 늦었어.”    “네엡.”    그녀는 꽉 찬 20대다. 곧 30대가 될 터. 시집을 갔는지 어쨌는지는 물어보지 않아서 모른다. 머리는 긴 생머리로 풀어놓고 다니기 좋아했다. 웃을 때 드러나는 덧이가 유표했고, 말할 때면 머리를 갸우뚱하는 것도 특징적이다. 못생긴 편이다. 1.50메터가 될가 말가. 통통 타입.    수업은 들을 게 없었다. 다섯날에서 두날은 리론이고 세날은 실기였는데, 리론은 밀가루의 력사, 효모, 라드 등 쓸데없는 말과 음식에 관한 동영상들로 시간들을 채웠다. 그나마 실기는 빵을 만들고 맛보고 하는 시간인지라 그리 지루하지 않았다. 생소한 것을 만지는 재미도 있었다.    “야, 치치할.”    그녀가 치치할에서 왔으므로 나는 그녀를 그렇게 불렀다.    그녀가 툽상스러운 허리를 나하고 180도이였던 것을 180도를 돌려 0도인지 360도인지를 만들었다.    “네, 아저씨.”    “너 오늘부터 나하고 같이 점심 먹자.”    서로 면목을 튼 지 이틀이 되자 내가 먼저 제안했다.    “왜요?”    “왜라니? 같이 먹으면 안되나? 싫어?”    “그런 건 아니구요…”    “그럼 됐어. 오늘은 내가 살게.”    “래일은 제가 사구요?”    그녀가 눈을 장난스레 새그럽게 만들었다.    “응. 내가 부자라면 매일이라도 사주련만 보는 바와 같이 알거지 수준이란다. 그러니까 오늘은 내가 사고 래일은 네가 사고 그러는 게 좋겠지?”    “오늘은 아저씨가 먹고픈 거 먹고 래일은 내가 먹고픈 거 먹고?”    “조선말도 배우고.”    “나쁜 식습관 같은 것도 들켜버리겠네요?”    “식습관 뿐이겠나. 잘하면 정도 들 수 있지.”    “켁. 생각은 딴 데에 가 있었군요.”    “콩 나는 데를 소가 간다고 누가 말했던지 갑자기 생각이 안 나네.”    “하긴 아저씨는 충분히 젊어보여요. 나하고 같이 다녀도 될 만큼.”    “너도 너무 못나지는 않았어. 비록 만두 같게 생기긴 했지만.”    “백날 봐서 고운 꽃도 없다지요.”    “풀도 화분통에 옮기면 화초가 되는 법.”    같이 밥을 먹어도 별 특별한 화제는 없었다.    서로의 신상에 대해서는 안 묻기로 했다.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가 아니겠는가. 더구나 한국에 돈 벌러 온 몸이고 보면 이미 다 안 것이 아니겠는가. 거기 뭐 더 물어보고 할게 있겠는가.    “이따 수업 끝나고 나하고 대림동 돌아볼래요? 나 한국에 온 지 며칠 안돼서 여기 지리에 대해서 하나도 몰라요.”    “좋아. 모르긴 나도 마찬가지야. 난 아직 지하철 타는 것도 잘 몰라.”    하긴 북경에서 한동안 살면서도 나는 뻐스만 리용했지 지하철은 한번도 안 타봤으니까.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이번에 한국에 오면서 비행기도 처음 타봤다. 한국에 오지 않았더라면 아마 평생 비행기를 못 타봤을지도 모른다. 한번은 어떤 녀자와 이 말을 했더니 하하하 하고 웃더니, 녀자만 타느라고 비행기를 놓치셨네요, 하며 배꼽 잡는 것이였다.    “대구탕이 맛이 그닥잖네요?”    “내가 지금 그 말을 하려던 참이야.”    “강사가 한국에 오면 대구탕을 꼭 먹어봐야 한다고 난리를 하더니…”    “그러게. 우리의 입맛이 별난 건가? 아니면 이 집 료리솜씨가 별론가?”    “혹시 대구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지요.”    “활어가 아니고 랭동대구일 수도 있어. 그러면 맛이 당연히 못해질 수도.”    “일리가 있어요.”    “다음엔 활어집 가자.”    중국인 거리(唐人街)는 연길이면 이럴가 싶게 간판이고 사람이고 통채로 연길 어느 모퉁이였다. 여기서는 통용 중국어를 사용했다. 온갖 장사군들과 팔고 사는 사람들과 음식점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량옆에 녀자를 끼고 두 팔을 녀자의 어깨에 올려놓은 채 비틀대는 주정뱅이도 한둘이 아니였다.    “고수풀 어떻게 팔아요?(香菜怎么卖)”    치치할이 고수풀을 보자 두눈을 반짝 빛내며 물었다.    “천원.(一千)”   “건두부는요?(干豆腐呢)”    “2천원.(两千)”   그녀가 잠시 주춤했다.    “너무 비싸요. 중국에선 고수풀 한단에 1원인데 여기선 6원이나 하잖아요.”    “그래도 먹고 싶으면 사야지. 볼라니 다른데선 고수풀 같은 건 팔지 않던데? 한국사람들은 고수풀 먹을 줄 몰라.”    “그러니까요.”    “사실 나도 여기 와서 가장 먹고 싶은 것이 순두부(豆腐脑)인데 그건 어디에도 없다더라구.”    오후 수업이 끝나자 그녀가 시장거리를 돌자고 제의했었다. 나 역시 대림동을 모르기는 그녀와 마찬가지여서 얼른 수락했다.    대림시장거리를 이곳에서는 당인가, 즉 중국인 거리라 불렀는데 별칭 조선족타운이란 뜻이다. 지하철 12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시장 입구이다.    거리의 난전이나 마트에는 거지반 중국물품이였다. 없는 게 없었다. 들리는 건 중국말이요, 눈에 보이는 건 익숙한 것들이였다. 값도 한국보다 훨씬 쌌다.    대림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건, 첫 조선족타운인 가리봉동이 정부의 재개발계획에 들면서 조선족들이 근거지를 대림동으로 옮겼다는 것이 전부다. 그러니까 대림동은 제2조선족타운인 셈이다.    서시장 찰떡이라고 쓴, 돌판 우의 찰떡가게를 지나가는데 이상한 장면이 눈결에 스쳤다.    “무슨 인터뷰하는 모양인데…”    자그마한 식당 앞이였다. TV조선이라고 타이틀을 단 카메라와 마이크가 언뜻 보였고, 기자인 듯한 녀성분과 슈트에 넥타이까지 매고 카메라 앞에 선 남성분이 뭔가 론의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왜요? 잘할 것 같은데요? 신수도 좋구요.”    “아니요. 저 이런 거 처음입니다. 떨려서 말을 제대로 할 수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잘할 수 있을 겁니다. 믿어요. 자, 심호흡 하시구요―”    인터뷰대상자는 가게 사장인 모양이였다. 키는 작달막했는데 40대 초반으로 보였고, 한국인인 것 같았다. 인터뷰내용은 영화《청년경찰》과 련관되여있었다.    “뭘 하고 있는 거죠, 지금 저 사람들이?”    치치할이 물었다.    “《청년경찰》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가게에 어떤 영향은 없는가 그걸 인터뷰하는 것 같은데…?”    내가 대답했다.    “《청년경찰》이 뭐죠?”    “김주환감독이 찍은 영화인데 요즘 대세야. 박서준, 강하늘이 주역으로 나오는, 녀자의 란자를 강제로 추출하여 팔아넘기는 범죄영화야.”    “그런데는요?”    “조선족이 그 범죄를 저지른단 말이지. 그래서 조선족을 범죄자로 내모는 영화를 찍지 말라고, 감독보고 조선족에 사과하라고 조선족단체들이 사처에서 떠들고 일어났기 때문이겠지.”    “난 몰라요. 아저씨가 봤으면 좀 얘기해주세요.”    “사실 영화는 예술이야. 물론 어떤 기정 사실로 영화를 찍을 수는 있어. 그래도 예술은 예술인 거지. 헌데 이 영화는 영화 속에 이상한 대사가 나와. 정확히 57분 25초에 택시운전사가 두 경찰학교 학생들을 대림동에 데려다주면서 하는 얘기가 있지. ‘학생들, 이 동네 조선족들만 사는데 칼부림도 많이 나요. 려권 없는 범죄자들도 많아서 경찰들도 잘 안 들어와요. 웬만하면 길거리를 다니지 마세요’ 라는.”    “아…”    “결국 조선족단체들에서 문제 삼는 건 영화가 아니라 김주환감독의 조선족에 대한 편견 내지는 아니꼬운 시선 때문일 거야. 전반 조선족을 통틀어 범죄집단으로 보는 건 문제가 있다, 이거지.”    “그렇네요… 삐딱한 시선.”    “법무부에 따르면 2016년 대림동의 등록 조선족은 약 15,000명이며, 특히 대림역이 포함된 대림2동은 절반 이상인 8,300명이 거주한다고 한대. 이들 중  10,767명이 방문취업비자를 받아서 거주중이라니 나머지는 불법체류자로 봐야겠지.”    “대부분 돈 벌러 온 성근한 동포들인데요… 휴―”    “그렇지. 그래서 40여개 중국동포 단체 대표들은 박옥선을 집행위원장으로 《청년경찰》에 항의하기 위해 대림2동 주민센터에 《청년경찰》상영금지 촉구 대책위원회를 발족할 예정이래. 지금도 그들은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하고 있어. 지금이 8월 중순이니까 9월이면 결과를 알 수 있을 거야.”    “그 영화를 봐야겠네요.”    “요즘 영화《범죄도시》광고도 요란하잖아. 시월에 개봉한다고. 그것도 조선족범죄에 관한 얘기래. 2004년 서울 가리봉동에서 실재했던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강윤성감독에 마동석, 윤계상이 주연을 맡은… 아마도 같은 조선족비하가 계속될가 우려해서 저렇게 시위를 벌이는 것 같애.”    중국인 거리를 볼만큼 보고 돌아오니 인터뷰는 아직도 진행 중이였다. 뭔가 자꾸 틀리는 모양이였다. 남자가 수줍게 머리를 긁는 걸 봐서 엔지가 여러번 나는 모양이였다.    “가 볼까요? 무슨 말을 하는지…”    “가봤자 짜맞추기야. 뻔할 뻔자 아니겠나.”    “하긴요. 똥을 꼭 맛을 봐야 알겠어요? 호호호.”    나는 영화 《범죄도시》가 개봉되면 봐야 할지 말아야 할지 생각하고 있었다.      4     북한산자락이 끝나는 성북동이다. 4호선을 타고 한성대에 내려, 2인 위안부소녀상을 잔등으로 바라보다, 02번 마을뻐스를 타고 가다 보면 길상사(吉祥寺)라는 역이름이 오른손 편에 나온다. 모른 척 길따라 우측으로 슬쩍 몸을 비틀면 바로 량옆에 화려한 련꽃들도 가득한 길상사 정문이 반긴다.    소녀상은 본시 3인으로 설계되여있었는데, 한국소녀, 중국소녀까지 만들고 1인을 공석으로 남겨놓은 것이 유표하게 눈에 들어왔었다. 단발머리 한국소녀가 우측에, 쌍태머리 중국소녀가 중앙에 앉아있었는데, 중국소녀의 무릎에는 꽃묶음이 설계되여있었다. 남은 1석 좌측은 어느 나라 소녀가 차지할지 궁금증이 많아지게 하는 대목이다. 한성대 학생들의 아이디어일가.    씩― 한번 웃고 나서 ‘삼각산길상사(三角山吉祥寺)라는 현판을 쳐다본 다음, 폰에 사진을 담느라 정신이 없는 치치할을 뒤로 남기며 이리 기웃 저리 기웃 길상사로 들어갔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죠?”    뒤따라 온 그녀가 물었고, 화장실을 모르긴 나도 마찬가지였다.    화장실이 있음직한 곳으로 쭈볏거리며 찾아가보니 정랑이다. 그림을 보니 분명 화장실인데, 남자는 청신사, 녀자는 청신녀로 표시돼있었다. 청신사, 청신녀 뒤에는 해우소라는 설명이 붙어있었다.    해우소(解忧所). 화장실이 맞긴 맞네. 걱정거리를 푸는 곳.    길상사를 어떻게 돌 것인가를 놓고 쟁론하다가 결국 가위, 바위, 보로 정했다. 그녀가 보를 내서 이겼으므로 그녀가 원하는 대로 시계바늘 반대방향으로 방향을 잡았다.    돌탑을 지나고 극락전 법당 안을 한 바퀴 돌고 나오자 릉소화가 툭툭 통꽃을 피우는 돌담길이 나타났다.    “길이 너무 예쁜데요!”    “당연. 꽃이 피여있잖아.”    “절이 이렇게 별장처럼 생긴 것은 처음 봤어요.”    “그러니까.”    “이런 절을 만든 법정스님은 어떤 분이죠?”    “나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속명은 박재철로 1932년 해남에서 태여났대. 고승 효봉문하에 들어갔다가 해인사에서 대교과를 졸업했다나. 70년대 후반에는 송광사 뒤산에 직접 불일암이란 암자를 짓고 살았는데 후날 《무소유》, 《오두막편지》, 《물소리 바람소리》, 《인도기행》… 등 저서를 펴내면서 명성을 날렸지.”    “대단한 분이시네요.”    돌담 옆 송월각(松月阁)을 지나니 진영각(真影阁), 법정스님이 기거하던 곳이 나타났다.    각 왼편에 ‘스님의 유골을 모신 곳’이란 패말이 보이길래 나는 봉분 곁에 쭈그리고 앉은 다음 그녀에게 사진 한장을 부탁했다.    “이 길상사가 예전에 대원각이였는데, 삼청각, 청운각과 더불어 당대 제일의 료정이였대. 즉 술과 음기를 팔던 곳이였지. 그런 곳이 지금 부처님을 모시는 절로 변신했다니 꽤 아이러니한 일이지.”    “기생집이였다구요?”    그녀가 살짝 얼굴을 붉혔다.    “그런 셈이지. 련꽃은 본래 더러운 진흙탕 속에서 피는 법. 안 그런가?”    “비유를 해도…”    청솔모 한마리가 길을 건너오다가 우리가 어쩌지도 않았는데 제 멋에 화뜰 놀라 수백년은 족히 될 느티나무 우로 꼬리를 세우고 달아나고 있었다.    “다람쥐야, 청솔모라고 부르는.”    “아― 저게 그 말로만 듣던 그 청솔모군요.”    “기억력이 나쁘지, 먹이를 숨긴 곳을 찾지 못하는.”    “네에― 그런데 기생집이 절이 됐다는 게 잘 믿어지지가 않아요.”     “그럴테지. 이 대원각을 만든 사람이 김영한이란 녀자인데, 후에 법정스님한테 십년 만에 억지로 기증했대. 당시 가격으로 1000억원 상당했다니 엄청난 거지. 자신이 만지던 2억원은 백석문학상 기금으로 내놓고.”    “스님 처소입니다, 용무 이외의 출입은 삼가해주세요.” 란 패말을 지나니 “지극한 도는 어려움이 없나니 오직 분별하는 것을 꺼릴 뿐이라. 사랑하고 미워하지 않으면 툭 트여 명백하리라.”란 표말이 나왔다.    맑은 물이 흐르고 이름 모를 새들이 우짖는, 아름드리 나무들로 숲을 이룬 이곳에 들어오면 누구나 시인이 안되곤 못배길 것 같았다.    오다 보니 ‘시주 길상화 공덕비’인데까지 왔다.    치치할이 또박또박 내리읽었다.    “공덕주 길상화(吉祥华)보살. 본명 김영한(金荣韩)1916―1999. 김영한은 1916년 민족사의 암흑기에 태여나 16세의 나이로 뜻한바 있어 금하(琴下) 하규일문하에서 진향(真香)이란 이름을 받아 기생으로 입문하였다. 1937년 천재시인 백석으로부터 자야(子夜)라는 아명으로 불리였던 그녀는 1953년 중앙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생전에 《선가 하규일선생 약전》 등의 저술을 남겼다. 1955년 바위 사이 골짜기 맑은 물이 흐르는 성북동 배밭골을 사들여 대원각이란 한식당을 운영하던 그녀는 1987년 법정스님의 《무소유》을 읽고 감명받아, 생애의 가장 아름다운 회향을 생각하고 7천 여 평의 대원각 터와 40여 동의 건물을 절로 만들어주기를 청하였다. 1997년 12월 14일 대원각이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로 창건되는 아름다운 법석에서 김영한은 법정스님으로부터 념주 한벌과 길상화라는 불명을 받았다. 불상화보살이 된 그녀는 “나 죽으면 화장해서 눈이 많이 내리는 날 길상헌 뒤뜰에 뿌려주시오.”라는 유언을 남기고 1999년 11월 14일 육신의 옷을 벗었다. 다비 후 그녀의 유골은 49재를 지내고 첫눈이 온 도량을 순백으로 장엄하던 날 길상헌 뒤쪽 언덕바지에 뿌려졌으며, 무주상보시의 귀한 뜻을 오래도록 기리고자 2001년 11월 21일, 이 자리에 공덕비를 세웠다.”    아래로는 백석(본명 백기행)이 1937년에 쓴 〈나와 나타샤와 힌당나귀〉가 최초의 원문 그대로 적혀있었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날인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이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烧酒)를 마신다   소주(烧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힌당나귀 타고   산곬로 가쟈 츨츨이 우는 깊은    산곬로가 마가리에 살쟈     눈은 푹푹 날이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리 없다   언제 벌써 내속에 고조곤히와 이야기한다   산곬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덜어워 벌이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날이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제서 힌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둘이 정말로 뜨거운 사랑을 했나 봐요? 사연이 있긴 있었네요.”    그녀가 기념비를 어루쓸다 나를 돌아봤다. 눈시울이 약간 붉어져있었다.    “그랬다지. 15살에 팔려 시집을 갔고, 우물가에서 빨래하던 사이에 남편이 우물에 빠져죽는 비운의 녀인이였다지. 고된 시집살이 끝에 기생의 길을 걸었지만 《삼천리》문학에 수필을 발표할 정도로 시와 글, 글씨, 그림에도 조예가 깊었다니 백석이 사랑할만도 했겠지. 인물도 한 인물 했겠지? 그런데 이 백석이 후날 만주로 도망가 같이 살자고 자야에게 제안했는데 그걸 거절한 게 자야의 가장 큰 실책이였대. 다시 영영 보지 못하게 되였으니 말야. 해방이 되였지만 38선이 그어진 거지. 생전에 그녀는 백석의 생일 7.1이면 하루동안 일체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을 정도였다니까 다 알아본 거 아닌가. 후에 기자가 물었더니 자야가 하는 말이 ‘천억이 그 사람의 시 한줄만도 못해, 다시 태여나면 나도 시를 쓸 거야’ 했다는 거야.”    “애틋하면서도 안스럽고 비극적이기도 한 사랑…”    “부러운가?”    “부러울 게 없어서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이 부럽겠어요. 참…”    “난 부러워."   “그래서 예 오자 했나요?”    그랬을 수도 있다. 사실 길상사를 보고 싶은 쪽은 나였으니까. 중국에 있을 땐 길상사에 석산(石蒜)이 피여있다 들었다. 헌데 정작 와보니 그렇지가 않았다.  일본에서는 피안화라 한다던가.    올 때는 혜화문까지 보고 가자 했었다. 그런데 길상사를 나오자 전화가 걸려왔다.    “아이구 참말로. 전화도 빨리 받네. 아우님, 지금 대림으로 올 수 있겠노?”    방정맞다는 것이 이런 것일가.    마형이다. 이 사람이 한국에서 가히 마다발로 불린다. 그래서 내가 붙인 별명이 마당발이다. 한국에 온 지 20년도 더 될 것이다. 서울 어딘가에 빌라도 한채 갖고 있다고 한다.    “빨라도 반시간은 걸릴 것 같은데?”    “그럼 그래이소. 내 자리 잡아놓고 기다릴끼니.”    전화를 끊고 치치할을 바라보니 그새 비가 뿌렸는지 앞머리가 촉촉히 젖어있다.    이상하다. 녀자는 젖었을 때 이쁜 것이. 남자는 젖으면 꼴불견인데.      3     “어서 오이소. 반가운 아우님!”    마형은 오늘로 두번째 만남이다. 한국에 도착한 날 처음 만났다.    “오래 기다렸수? 빨리 오느라고 하긴 했는데.”    “아니, 나도 보신탕집을 찾느라 한참 헤매다 보니 방금 들어와 앉았다네. 한여름에 원기 회복하는데엔 개고기만한 것도 없다지. 안 그런가? 특히 연변사람들은 개고기를 좋아하지.”    안도개장집이다. 건너편에는 훈춘꼬치집도 있다.    “내사 당발형한테서 전화 오는 바람에 어떤 처자와의 데이트도 팽개치고 왔다는 게 아니겠소.”    “아하, 내 그럼 오늘 보상을 톡톡히 해줘야겠구만. 분위기 깨뜨린 죄로 이따 노래방 가서 아가씨나 안아봄세.”    이 사람에 대해 나는 그리 잘 알지 못한다. 위챗그룹에서 대충 안 사이이다. 이 사람이 억울함을 당하는 걸 내가 도와줬었다. 그 일이 감사해서 마당발은 한국에서 직접 전화를 걸어왔었다. 한국에 오면 자기부터 찾아달라고. 있는 힘껏 도와주겠노라고. 좀 뻥인 것 같이 들렸지만 한번 만나보고 이 사람이 사람 사귀기를 좋아하고 호방하며 신용을 중시한다는 것을 알아봤다.     “근데 아우님은 어디 좋은데 가셨댔노?”    “꽃을 보러, 삼각산자락에.”    “아하, 이제 보니 풍류객이로세. 먼 꽃을 보았노? 볼 만한 꽃은 있더뇨?”    “련화, 목백일홍 여러 꽃을 보았는데 릉소가 유난히 남네그려. 아마도 길상사 돌담에서 내 가슴에 떨어져 내렸나 보우. 락화암 삼천궁녀처럼 말이요.”    “그래서 아우님 얼굴이 그렇게 붉어졌구만. 릉소를 껴안고 삼천궁녀가 가슴속에 퍼덕거릴 터이니. 하하하. 자, 그런 의미에서 한잔 쭉 냄세.”    “릉소를 위하여!”    “삼천궁녀를 위하여!”    “그리고 《내 사랑 백석》, 《내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이란 책을 출간한 기생을 위하여!”    “별난 위하여가 다 있구만. 하하하. 위하여!”    그날 마당발형은 나를 끌고 노래방으로 갔다. 무슨 새천년노래방인가 그랬다. 마형도 처음 가 보는 곳이라고 했다.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가보는 노래방이다. 노래방을 언녕 졸업한 나지만 한국에서 조선족들이 어떻게 노는지 궁금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리 와 봐.”    마형이 아가씨들을 옆으로 불렀다. 아래우로 훑어보고 궁둥이를 툭 쳐보더니 둘을 남기고 셋을 내보냈다. 말짱 조선족들이다.    그중에 어리고 살찐 애를 마당발형은 옆에 앉혔다. 그리고는 대놓고 젖을 주물렀다.    “오늘 물이 좋네. 너 오늘밤 날 수청 드는 거다. 알았노?”    그리곤 내 곁에 앉은 아가씨를 향해 으름장을 놓았다.    “잘못 섬기면 내 손에 죽는다, 알았지?”    마당발답게 마형은 말발도 셌고 술도 무진장이였다. 녀자도 잘 다루었다. 그에 반해 나는 묵묵히 술만 마셨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였던가. 아가씨를 끌어안고 춤을 추던 마당발이 찰싹 소리나게 아가씨의 귀뺨을 후려치고 있었다. 마는 얼굴이 벌갰고 아가씨는 잔뜩 얼어있었다.    “뭐야, 이 ××년이! 너 오늘 나한테 죽어봐라.”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단 아가씨가 마당발을 거스르는 말을 한 것만은 사실일 터였다. 그래서 저렇게 불같이 화를 내는 것일 것이다.    밖으로 아가씨를 마구 끌고 나가던 마당발이 내가 따라서자 말렸다.    “아우님은 예서 그냥 즐기시게. 나는 잠간 나가 이 년을 가르치고 옴세. 걱정 말게, 사고를 치진 않을 테니.”    그랬던 것인데 이 마당발이 반시간이 지나도록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나가 봐도 없고 전화를 해봐도 받지를 않는다. 어디를 토낀게 분명했다.    결국 나는 옆의 아가씨한테 량해를 부탁할 수 밖에 없었다.    “미안해요. 이 분이 아무래도 도망 간 것 같은데… 끝내야겠어요.”    아가씨가 엄벙뗑했다.    “팁을 줘야죠! 그 분이 계산을 안하셨어요. 사장님이 대신 해주셔야 해요.”    재수없다! 갑자기 사장님이 됐다.    이게 뭔 꼴인가. 같이 왔던 놈은 계집을 차고 어디론가 빠지고. 가겠으면 계산이나 하고 갈게지. 미친놈!    나는 어이가 없었다. 돈도 못 버는 놈이 노래방이라니. 그것도 팁이라니! 하마처럼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마당발 이 놈은 지금 그 아가씨를 안고 딩굴고 있을가.    갑자기 나는 화가 나고 있었다.    나는 왜 지금 대림동에 와 있는가. 이딴 노래방 계산이나 하고 팁이나 쥐여주려고 예까지 온 게 아니지 않는가.    나에게도 인생이 있고 꿈도 있으며 누구보다 례절 밝은 아들도 있다. 비록 리혼은 했다지만.    한국에 오기 전 나는 리혼을 단행했었다. 내가 마누라에게 빈대 붙어산다고 소문이 무성했다. 마누라가 한국에서 돈을 버니 그럴만도 했다. 하지만 뒤에서 온갖 자질구레한 일을 다 처리해야 하는 나의 고충을 리해해주는 이는 단 한명도 없었다. 타인의 눈엔 나는 그저 놀고 먹는 날라리에 불과했다. 나의 한 친구는 청도에서부터 나를 찾아와선 이렇게 물었다. 넌 마누라가 불쌍하지도 않냐? 왜 불쌍하지 않겠냐, 나도 심장이 있고 감정이 살아있는 사람이다! 그 때 내가 대답한 말이다. 때가 되면 자연 알게 될 것이다. 기다려라. 그리고 나는 때만 기다렸다. 그리고 몇년 뒤 나는 정말 돌싱이 되였고 땡전 한푼 없는 알거지가 되여 한국에 있는 것이다.    나는 세상을 향하여 뭘 보여주고 싶었을가. 나의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을가.    모르겠다. 나는 점점 울분이 끓어올랐다.    어떻게 거기를 나왔고, 어떻게 학원 근처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그 앞에서 나는 한 사내를 만났다. 내가 좀 많이 비틀거렸던 모양이였다는 것은, 내가 그만 그 사내를 부딪혔다는 뜻이다. 사내가 뒤를 돌아보며 뇌까리고 있었다.    “중국새끼가 대낮부터 술 처먹고… 하튼 이곳은 조선족놈들이 문제이라니까.”    “뭐야?”    갑자기 나는 비분이 강개해졌다. 키가 꺽두룩한 놈이였다. 한국인인지는 정체를 알 바 없다.    “중국새끼? 조선족이 왜?? 조선족은 한국에서 술 먹으면 안되냐? 조선족이 너보고 술 사 달라던? 내가 내 돈 내고 술 먹는데 니 놈이 웬 상관이야?!”    “이 새끼가 뒈질려고 환장했나?”    그러잖아도 속이 뜨거운 판에 나는 기어이 참지 못하고 주먹을 뻗어버렸다. 퍽퍽.    사내가 얼굴을 뒤틀더니 손으로 만졌다. 그러더니 싸늘하게 입귀를 찢었다. 취한 주먹이라 세게 들어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너 경찰서로 갈래, 아니면 그냥 맞을래?”    “경찰서…?!”    다시 말하건대 ‘양평해장국’, 그러니까 학원 맞은켠은 동사무소도 있지만 영등포경찰서도 있다. 학원 다니면서 매일 건너다보게 되는 곳이다. 경찰 아저씨와 아재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을 싫도록 보아왔다.    경찰서로 끌려가면 안된다. 끌려가면 나는 적어도 벌금을 해야 될 것이고 범죄기록이 남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칫 강제송출 될 수도 있다. 혹 아니더라도 얼마 후 비자 변경 때 경찰서 범죄기록 때문에 한국체류가 안될 수도 있다. 나는 내가 한국에 온 목적을 생각 아니할 수가 없게 되였다.    그리고 또 하나, 나는 그냥 평범한 조선족이지 영화 《청년경찰》에서 말하는 그런 범죄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내의 주먹이 가차없이 들어왔다. 대번에 피가 터지고 눈앞이 홱 돌아가면서 입과 코에서 피가 사정없이 뿜겨져 나왔다.    두대 주고 여섯대 돌려받았다.    그래, 잘한다. 실컷 쳐라. 참을성이 부족했던 내 잘못이다. 한국에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나는 곱다라니 맞아주었다.    나는 앞으로 허망 고꾸라졌다. ×××! 그리고,   “으윽―!”    발목 인대에 심한 통증이 전해져 오고 있었다. 사내가 쓰러진 내 발목을 힘껏 짓이겨놓았던 것이다…      2     “아니 어쩌다가…?!”    나를 본 치치할은 깜짝 놀라 말을 잇지 못했다. 낮에 같이 길상사를 구경할 적만 해도 펀펀했던 사람이 저녁이 되자 다 깨져서 나타났으니 말이다. 그것도 형편없이.    “층계에서 굴렀어.”    “층계에서요?”    “응. 아마 많이 취했나 봐… 소맥을 마셨더니…”    “아닌 것 같은데요?”    그녀가 의심의 눈초리로 내 얼굴을 훑었다.    “어디서 되게 맞은 것 같은데요? 제대로 말해봐요. 맞은 거 맞죠?”    왜 치치할을 떠올렸는지 모르겠다. 접질러진 발목 때문에 택시를 탔는데 어쩌다 보니 내 입에서 그녀가 사는 구로디지털단지로 가자는 말이 나왔다.    위로를 받고 싶었던 것일가. 갑자기 나는 울고 싶어졌다.    “응. 맞은 게 맞아.”    “설마 노래방에서 아가씨를 건드리다 그런 건 아니죠?”    “내가 그럴 사람으로 보여? 아니야, 절대로!”    “믿어요. 아저씬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걸요. 그런데 너무 심하게 맞았네요. 어떤 개새끼가 아저씨를 이 정도로 팼죠?”    치치할이 내 상처를 어루만지더니 발칵 화를 내고 있었다.    “근데요, 아저씨. 내가 사는 곳이 녀자들만 사는 하숙집이라 아무래도 주인아줌마하고 얘기해야 할 것 같아요. 예서 잠간만 기다려줄래요?”    그러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쳤고, 뭐라고 한참을 설명을 하더니 나를 향해 돌아섰다.    “겨우 허락을 받았어요. 옆사람들한테 방해가 안되게 조용히 있다가 가래요. 이번 한번만 봐준대요. 두번은 없대요.”    “감사한 일이군. 고마워.”    나는 그녀의 어깨를 빌리고는 절뚝절뚝 반지하방으로 들어갔다. 가면서도 그녀는 그냥 개새끼를 련발했다.    방은 작았다. 침대 하나가 방 전체를 다 차지한 것 같았다. 그래도 집이라고 침대발치에 티비도 있었다.    “35만원짜리가 이만하면 크죠 뭐.”    나를 침대에 앉히더니 그녀가 볼에 물을 떠왔다.    “우선 피 묻은 옷부터 벗으세요. 엄청 많이 흘렸네요. 앞으론 술 마시지 마요. 근데 그 개새끼는 왜 술 마신 사람을 이렇게 쳤담. 진짜 미친 새끼가 아닌감? 왜 싸웠는지 아직도 말 안해줄 건가요? 예까지 와서도?”    물은 따뜻했다. 터진 자리가 심하게 부어올라있었다. 래일이면 아마도 보기에 더 흉측해질지도 모른다. 접질러진 발목은 병원에 안 가봐도 될 런지 모르겠다. 나의 느낌으로는 보름정도 지나면 절로 나을 것도 같지만.    “그 개새끼가!”    그녀가 눈을 새동그랗게 떴다. 화를 낼 때면 눈이 동그래지는 모양이였다.    “중국조선족이 뭘 어쨌다고 그런대요? 조선족이 지들보고 밥 달래요, 물 달래요. 두대 친 건 잘했어요! 백번이고 천번이고 잘했어요!”    나의 이야기를 듣고 그녀는 자기 일처럼 흥분했다.    “세배로 돌려받은 건 안됐지만?”    “이 상황에 롱담이 나와요? 차라리 반주검 만들어놓을 거지 그랬어요. 그 개새끼를.”    “풉― 그러면 끌려가는 것두?”    “그걸 아는 분이 그리 행동해요? 이제부턴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마요. 여긴 모국 먼저 엄연한 외국이란 말이예요. 모든 자존심 버리고 머리 숙이고 살아야죠.”    “누가 그런 도리를 모르나. 아는데도 그랬어. 술기운에서였던지 아니면 영화《청년경찰》의 여파 때문이였던지, 암튼 나도 모르게 울분이 솟아올랐던 거야.”    “그럴 수도 있어요. 그게 조선족이라면 공통으로 느끼는 감정이 아니겠어요? 잘못했다는 게 아니예요. 잘했어요.”    “얻어맞은 거 빼고.”    “그쵸. 근데요, 얻어터지고 왜 날 찾아왔죠?”    그녀가 마른 수건으로 내 얼굴의 물기를 닦아내더니 내 입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내가 잠시 얼버무렸다.    “몰라. 나도 모르겠어. 맞고 나서 택시를 타니까 이상하게 치치할 너가 떠오르더라구.”    “위로를 받고 싶었나요?”    “글쎄… 아마도.”    “칫. 그런게 어딧어요.”    그녀가 피 묻은 옷들을 볼에 주어담으며 입귀를 풀럭였다. 하얀 귀밑이 귀여웠다.    “동병상련?”    “동병상련이요?”    내가 말했다.    “나는 한국에 온 조선족들이 다 같은 아픔을 안고 있다고 생각해. 서로 다른 삶을 살았고, 서로 다른 사연으로, 서로 다른 길을 통해서 왔겠지만 모여든 곳은 하나, 한국이란 나라라는 거야. 와서는 또 각각 다른 삶을 살며 각각의 이야기를 꾸며가겠지만은.”    “다리 부러진 노루 한곳에 모였다?”    “다리야 내가 부러졌지 넌 아니잖아. 흐흐.”    “아저씨도 다리 아니고 발목이잖아요. 호호.”    “만남이란 것도 그렇다고 생각해. 오다가다 만난 사람들이 서로 정을 나누고 또 헤여지고… 마치 우리가 학원이 끝나면 각자 제 갈 길을 가야 하듯이. 한국이란 나라에 와서 잠간 부닥쳤을 뿐.”    “스치는 바람이라는 뜻요?”    “서로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고, 개입도 안하는, 이게 한국이라는 거야. 지금 우리가 그렇잖아. 너가 과거에 뭘했고, 시집은 갔는지, 갔으면 애는 있는지, 안 갔으면 왜 안 갔는지 아는 바 전혀 없잖아.”    “그래서 알고 싶어요?”    “아니.”    그녀의 눈가에 물기 비슷한 게 매달리는 걸 바라보며 내가 머리를 저었다.    “누군들 아픔이 없겠으며 누군들 꿈이 없을가.”    “그래요. 다들 그렇게 어디선가 오고, 어디선가 만났다가, 어디론가 가겠죠.”    “길은 사면팔방 어디든 뚫려있지.”    밤이 깊어가고 있다.    핸드폰을 열어 시간을 확인하더니 그녀가 나를 쳐다봤다.    “아저씨 잠자리는 어떻게 하실려구요?”    “괜찮다면 여기서 자고 싶은데? 너가 침대에서 자. 내가 바닥에서 잘게.”    “근데 자리가 영… 바닥이 너무 비좁아서 되겠나요?”    “나 잠버릇이 얌점하거든. 재워만 주기만 하면 돼.”    “그래요, 그럼. 간대루사 무슨 일이 생기겠나요…”    “이빨 빠진 호랑이라네. 아가씨. 흐흐.”    “이빨이 빠졌는지 어쨌는지 물려봤어야 알죠.”    그녀가 자신의 옷들을 둘둘 말아서 베개를 만들어주었다. 이불은 그냥 배꼽이나 가릴 수 있게 코트 하나만 가졌다. 엷은 이불은 그녀가 덮고 옹크렸다.    “잘 자― 치치할.”    “네에. 잘 자요― 아저씨두요.”    인사까지 마쳤지만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연길에서 연태로, 연태에서 청도로, 청도에서 인천으로 오던 과정이 떠올랐다. 여기까지 오기까지 술이면 얼마나 마셨던가.    한숨 비슷한 탄식소리가 들렸다. 치치할도 잠 못 이루기는 나와 마찬가지인가 보다. 그녀에게도 장편 한권 분량의 사연은 있으리라.    “마당발 그 새끼도 개새끼네. 남 혜화문도 못 보게 하구… 아저씨, 랠 전화해서 노래방값이랑 팁준거랑 다 받아내요.”    맑고 푸른 습기 찬 바람이 그녀가 누운 침대로부터 내 입술우에 굴러떨어지고 있었다.    묵은 덤불을 뚫고 민들레 새잎 냄새가 났다.    “아저씨, 거기가 불편하면 여 올라와 자요.”    “엥?”    나는 사뭇 내 귀를 의심했다.    “인생이 얼마라고 그렇게 불편하고 힘들게 살겠나요. 여기도 살려고 온 거 아닌가요?”    나는 그녀가 나하고 말하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기 자신하고 말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 말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이런 걸 가리켜 사람말이라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기신기신 그녀의 곁에 누웠다. 그녀가 살짝 몸을 떨었다.    “갑자기 왜 생각을 고쳐먹었지?”    “동병상련이라면서요?”    헉!    그래.   동병상련이지…   “많이 아파요?”    달빛이 푸르렀다.    그녀가 봉긋이 솟아오른 가슴에 내 얻어터진 얼굴을 깊게깊게 감싸 안아주고 있었다.    “개새끼, 얼마나 세게 때렸으면…”      1     아침해가 밝았다.    그녀는 아침이면 빵과 우유를 먹는 듯했다.    “근데요?”    “응.”    “학원에 가서 우리 집에서 같이 잤다는 말을 하기 없기요.”    “우리 집?”    “아니, 나의 집.”    “둘이 같이 잤나?”    “안 잤죠.”    “그런데 왜 그렇게 말하나?”    “그냥요. 해본 소리요.”    8시 반이 되자 우리는 집을 나섰다. 9시부터 수업이니까 9시 전에 도착해서 손가락 도장을 찍어야 했던 것이다. 컴퓨터에 지문이 입력이 안되면 결석으로 처리되기 때문이다.    “택시 탈까요?”    치치할이 내 발목을 걱정했다. 아침에 되니 어제보다 더 검푸르게 부어올라 있었던 발목이다.    “괜찮아. 걸을 만해. 지하철로 가.”    “역시 우리 아저씨네. 멋있어요!”    그녀가 내 팔을 잡아주었다.    10번 출구에는 에스컬레이터가 있어서 좋았다. 12번 출구에랑은 없었다.    그녀의 부축을 받으며 나는 담배 한대 피웠다.    “월요일이네요.”    “일주일의 시작.”    “또 한주 열심히 살아야겠네요.”    “그래야겠지.”    출구에서 나와서 앞으로 백메터 가량은 채소과일장사군들로 걸어다니기 불편했다. 어깨와 어깨가 자주 부딪쳤다. 그곳을 지나면 그 때부터 큰길이다.    “근데요.”    “응.”    “그 발목, 병원에 안 가봐도 되겠어요?”    “될 것 같은데?”    “경험이 있나 보네요.”    그 때였다. 맞은켠으로부터 어떤 두사람이 나를 향해 손짓하는 게 보인 것은.    “어이, 아저씨. 아저씨!”    한 사람은 손에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카메라를 안 든 사람이 나를 보고 소리쳤다.    “아저씨, 이리 와 봐요.”    나는 어정쩡하니 그 사람을 쳐다봤다. 그 사람이 가로수에 붙은 패쪽을 가리켰다.    “저게 안 보여요? 여기 금연거리예요.”    “앗!”    과연 거기엔 담배를 피우면 과태료 10만원이란 문구가 적혀있었다.    “아저씨가 딛고 선 발밑에도 있잖아요. 금연거리라고 쓴.”    놀라기는 치치할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어제도 그제도 이 거리에서 담배를 피웠었던 것이다. 고백하건대 나는 정말 이 거리가 금연거리라는 걸 몰랐다. 그리고 패쪽도 보지 못했다. 알았더라면 피우지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이 거리에서만큼은.    “신분증 꺼내봐요.”    “없는데요. 제가 려행 중이라…”    “교포인가?”    “그렇습니다.”    “그럼 려권을 꺼내봐요.”    나는 려권을 꺼내려고 가방을 뒤적였다. 그 때 치치할이 나를 뒤로 슬며시 잡아당겼다.    “벌금해야겠네요. 카드를 주세요.”    “카드가 어데 있어요? 우린 지금 려행 중이라구요.”    치치할이 대신 나섰다.    “아저씨, 우리가 처음 한국에 오다보니 몰라 그랬어요. 한번만 봐주세요. 안되겠어요? 네?”    “안됩니다. 벌금해야 합니다. 카메라에 다 찍혔다구요.”    “현금밖에 없는데…”    내가 떨떠름하게 말했고, 단속반아저씨가 받았다.    “현금은 우리가 못 받아요. 우린 그냥 벌금딱지만 뗄 수 있어요. 벌금딱지를 떼주면 아저씬 이삼일 내에 은행에 가서 물면 돼요.”    그러면서 그는 나한테 손을 내밀었다. 려권을 달라는 뜻이다.    려권을 줘도 괜찮을가? 내가 주춤주춤하는데 갑자기 치치할이 나를 확 잡아채더니 옆골목으로 빠졌다.    “뛰여욧!”    나도 반사적으로 따라 뛰였다. 부은 발목이 몹시 아팠지만 그런 거 따윈 이미 구중천이 날아가버렸다.    “게 서요! 아저씨, 게 서요!!”    뒤에서 쫓아오는 듯한 다급한 소리, 그러나 우리는 계속해서 뛰였다.    “아저씨, 처음이니까 봐줍니다? 앞으론 이 거리에서 담배를 피우지 마세요. 좋은 려행 되세요―”    그제사 우리는 멈춰섰다.    살았다!   숨을 헐떡이며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서로를 가리키며 크게 웃었다.    “하하하!”    “호호호!”    갑자기 그녀가 홱 몸을 돌리더니 또 달렸다.    “야, 게 서. 야, 치치할!”    그러면서 나도 그녀 뒤를 겅중겅중 뛰였다.    나는 발목이 아픈 것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출처:2018년 제2기  
8    <<도라지>>2018년 제1기 목록 댓글:  조회:629  추천:0  2019-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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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소   인간의 궁극적 사랑을 응시하는 시적화자의 시선 -도옥시인의 근작시들에 기대여   인간은 태여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사랑을 멈추지 않는다.   인간은 사랑을 위해 살고 사랑을 위해 죽는다.   인간은 사랑의 화신이다.   실로 사랑이 없었더라면 저 기화요초 화사히 웃고 뭇새들이 즐거이 지저귀는 지상락원도 사막과 다름없을 것이다. 사람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우주를 사랑하는 인간의 궁극적인 사랑은 결국 인간 스스로 대한 사랑이 될 것이다. 이것이 인간애, 자연애, 우주애인 것이다.   인간학으로서의 문학은 더구나 이 인간의 사랑을 외면할 수 없으며 특히 문학의 아버지로서의 시는 그러한 사랑이 항상 시줄마다 질름질름 넘쳐나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의 사랑을 대하는 시인의 시선은 아무래도 따스한 것일 수 밖에 없으며 오늘 우리가 만나게 되는 도옥시인의 근작시들은 그 보기가 되기에 손색이 없는 작품들이다.   활발한 창작활동으로 소문난 도옥시인은 시창작에서 늘 과거도전형이고 현재진행형이며 미래탐구형이다. 그의 시는 거대한 스케일로 호방한 시적화자의 흉금을 가감없이 드러내보이며 인류의 사랑을 읊조리고 민족정신을 고양하면서 문학예술성을 업그레이드시키는데서 추호도 린색하지 않고 있다. 시의 가치가 대중들에게 소외당해도 시의 존재리유를 결코 의심하지 않는 그의 시정신은 아무리 높은 점수를 주어도 과하지 않는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제 그의 시들을 한수씩 살펴보기로 하자.   〈고요한 침묵〉은 강조된 제목으로 침묵의 의미를 더욱 견고하게 해준다. 시적화자의 ‘그대’는 ‘없는듯이 구름 뒤켠에 물러서서 나를 지켜주는’ 존재이다. 그러나 그런 존재는 ‘엄마의 메아리’이고, ‘대지의 사랑’이며, ‘우주의 자궁’인 것이다. 장엄한 화폭이고 사유의 비약이 독자들을 전률시킨다. 일변 ‘은혜’와 ‘새파란 생명’과 ‘령혼의 천국’으로 환언되는 ‘그대’는 시인한테 ‘래일의 빛이 태여나게 하는’ ‘령혼의 천국’인 것이다. 시인이 알심들여 고른 시어들로 더욱 무게감이 부여된 시는 ‘그대’의 ‘고요한 침묵’이야말로 ‘나’를 태여나게 하고 존재하게 하고 살아가게 하는 동력이고 차라리 ‘나’의 모든 것이라고 노래하고 있다.   〈침묵의 말〉을 들어보자. 일견 비틀린 제목으로 안겨오는 ‘침묵’의 ‘말’은 침묵이야말로 가장 절제된 언어라는 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시인은 시작부터 ‘가볍게 나풀대지 말자’고 일갈한다. 그것은 “침묵과 언어의 경계 우에 새벽빛처럼 만나는 / 그대”가 ‘나의 별’이기 때문이다. 시적화자의 ‘그대’가 누군지는 굳이 따지지 말자. ‘함부로 입 열지 않는 그대’이기에 그대 앞에서는 ‘대지가 바람의 노래를 들려주’고 ‘강물’도 ‘추락의 리유를 장쾌하게 적는다’. ‘그대’의 높은 뜻은 ‘땅’이 알고 ‘하늘’이 아는 까닭이다. 그리고 ‘생명의 뿌리’들이 있어 ‘그대’의 존재는 ‘침묵의 말’로 환원되는 것이다. 절묘한 시적 발견이요 시적 장치이다. 마침내! ‘그대의 침묵’앞에서 ‘내 심장 말을 하’고 있다. 그것도 ‘회색빛 하늘 무풍의 시대 마지막 노을빛 절벽 우에!’‘회색빛 하늘’은 세상의 어지러움을 의미하고 ‘무풍의 시대’는 그에 대한 무반응의 안타까움을 의미하며 ‘노을빛 절벽’은 그 어두움에 홰불을 치켜드는 시적화자의 심장의 호소를 일컫는다. 하다면 ‘침묵의 말’은 과연 얼마나 큰 호소력을 가지고 있는 것일가. 독자들의 상상에 맡긴다.   〈개울물 편지〉를 읽노라면 시인의 반성 앞에 우리 모두가 반성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자칫 부드러운 시어들로 아기자기한 사연을 떠올리지는 말자. 그만큼 시적화자의 반성은 자못 진지한 까닭이다. ‘누군가’를 ‘힘들게’ 한 일,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 바라보며 / 허허롭게 갈 수 있는 자유를 부러워” 한 일, ‘깊은 숲 골짜기를 내리는 강물에 맨발을 담그며’‘깨달음’을 얻고 ‘부끄러운 자신을 씻어보’낸 일 등 시적화자가 달관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잘 말해주고 있다. 사람들은 걸핏하면 반성을 잘하지만 반성하고는 또 꼭 같은 잘못을 저지르군 한다. 그에 비해 시적화자는 ‘세월의 때 다 벗고’‘아이적 뒤강물에 푸들치는 물고기의 자유’를 누리며 스스로를 ‘개울에 풀어보’고 있다. 시제 ‘개울물 편지’와 대응되는 시구라 하겠다. 그 모든 것이 아무 연고 없이 스스로 이루어진 것일가? 그럴 리 없다. “그대의 령롱한 눈빛은 신보다 아름다운 / 말씀의 메아리로” 내게 다가와 ‘내 삶의 전부를 여울쳐 흘러주었기’ 때문인 것이다. 다시 돌아와 제목을 보자. 왜 하필이면 개울물 편지일가? 그만큼 시적화자는 이제 모든 것을 벗어놓고 반성과 참회를 적고 있지만 그것조차 개울물에 실려 흘러가리라는, 초탈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짧은 시에 이와 같은 깊은 의미를 숨겨둔 시인의 재치가 엿보이는 대목이라 해야겠다.   〈눈물별〉이라는 아름다운 시어를 만나보자. 눈물은 이슬이요 별처럼 빛나는 이슬이라고 뭇시인들은 일찍 읊어왔지만 눈물별이라는 시어는 도옥시인의 창조물임에 틀림없다. 시에서 새로운 시어를 창출하고 그 시어가 사람들에게 아름답게 읽혀질 때 시인은 이미 시를 완성한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시는 몰입 직전에 이미 눈물별이라는 제목으로 시를 완성시키고 있다. 그만큼 시에서 새로운 시어의 창출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인가를 잘 알려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 단시는 굉장한 절제미 속에서 눈 지그시 감은 시인의 높은 정신적 경지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누군가 별이 빛난다고 말하면   너무 슬퍼 바람에 살점 내주는   세월이라고 말하라     누군가 세월이 너무 힘들다면   풍진세상 삶의 무게 다 읽어내노라고   그렇게 힘들다고 말하라     누군가 들꽃에도 감사할 줄 안다면    말하리라 그대 사랑하는 눈물별 있어   세상 모든 것 아름다운 것이라고!                      ―〈눈물별〉 전문     말이 필요 없다. 해석은 오히려 군더더기이다. 그렇다. 이 시에서 독자가 받아안은 바로 그 감정, 그 정서, 그 아름다움이 바로 이 시라고 할 수 있다.   〈외로운 행복〉이라니? 행복도 외로울 수가 있을가? 그럴 리가? 그러나 속단은 금물이다. 특히 도옥시인의 시 앞에서는. ‘당신의 구속이’ 바로 ‘저의 사랑’이라고 하는 여기에, “별이 깊은 밤 빛나는 리유는 / 그대의 그렁한 눈빛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하는 여기에, “달이 지구를 떠나지 않는 리유는 / … / 달맞이꽃 한송이 피여있기 때문”이라고 하는 여기에 ‘외로운 행복’의 모든 의미가 들어있는 것이다. 액면에 드러난 시어들만 보아도 외로움은 흥건하게 넘친다. 그러나 ‘그대’가 있는 한 그런 외로움은 오히려 ‘내’가 견뎌야 하는 행복으로 환원되는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지극히 자연스럽다. 그리고 독자들은 마침내 제목에 수긍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어떤 려행〉을 떠나볼가. 그것은 한마디로 ‘그대’를 향한 ‘그리움’의 ‘려행’에 다름 아니다. 바로 그대를 향한 그리움으로 “그대의 맥박소리 / 우렁찬 내 심장 안에 / 텅 빈 세상”이 열리는 것이고 “찬란한 메아리로 / 어둠의 터널 열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먼 곳에서도 / 빛나는 그대 눈빛”이 있기에 떠나지 않는 려행이지만 그토록 충만된 려행으로 될 수 있는 것이다. 기막힌 려행이다. 그리움으로의 려행은, 또는 그리움을 향한 려행은, 또는 그리움과 함께하는 려행은 언제나 즐길 만한 려행이 아니겠는가. 특히 시적화자는 그것을 통해 세상과 ‘입맞춤’하고 더욱 큰 세상을 향해 ‘생명의 날개를 퍼덕’이고 있다.   〈님의 25시〉에 머물러보자. 이 시에서 ‘25시’는 ‘님’을 향한 시간이 너무 모자라서 하루가 24시간이 아니라 25시간 쯤 되였으면 하는 바람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님’을 그리는 시간이 하루에도 25시간이 된다는 과장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님’으로 아름다운 시간은 하루에도 25시간으로 빛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아무튼 독자가 어떤 의미에서 받아들이면 그렇게 된다고 볼 수 있겠다. 시적화자의 ‘님’에 대한 절절함이 울컥이는 순간이다. 그리고 이 시에서는 ‘바람처럼’이라는 낱말의 8차 반복이 유난히 호소력을 획득하고 있다. 바람처럼 ‘숨결이 날개를 달고’ ‘속삭이고’‘불려가고’‘산소가 되고’‘숨결이 되고’‘태워버리고’ ‘깊고 넓고 푸른 바다에 눕고 싶다’는 표현이 중독성을 가지고 긴 여운을 남겨주는 까닭이다. 영원한 사랑의 절창이 아침해마냥 불끈 솟아오르며 탄생하는 순간이다.   ‘백합녀인’을 만나보자. ‘백합’이 피고지는 사이에 ‘백합’을 사랑하던 소녀는 ‘녀인’으로 되였다. 다양한 색상의 백합은 그 녀인에게 다양한 의미로 다가선다. 마침내 ‘백합이 지는 날 녀인은’ 드디여 ‘백합 속에 들어가 누워’ 백합과 하나로 되여버린다. 그리고! “양지바른 언덕 우에 하얀 봉우리 / 울 엄마 무덤가에 백합이 흐드러지게 피였네”라는 눈물겨운 시구가 독자들의 시 망막에 뛰여들어 눈물샘을 자극한다. 백합은, 그 흔하디 흔한 줄 알았던 백합은 시적화자의 어머니셨구나! 그러고 보니 백합은 “백합보다 아름다운 사람인 줄 / 자기만 모르시고 백합보다 고운 미소로” 사시던 어머니실 줄이야! 아픈 시가 이다지 아름답게 피여날 줄이야! 먹먹해지는 마음을 추스리면 백합에 대한 시인의 뜨거운 사랑이 만질듯 안겨온다. 시인의 시적 완성도가 돋보이는 걸작이라 해야겠다.   이상 도옥시인의 8수의 근작시들에 젖어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앞에서도 말했거니와 도옥시인은 시탐구와 시창작에서 지름길, 건너뛰기 등을 추호도 허락하지 않는 근엄한 탐구정신의 소유자이다. 하기에 그의 시들은 낱말 하나 부호 하나도 례사로운 것이 아니며 그것의 진정한 의미를 깨칠 때 비로소 시인의 탐구정신과 마주하게 되고 그런 장인정신에 감복하게 되는 것이다. 이번 근작시들은 하나같이 사랑을 읊조리고 있으며 인간의 궁극적 사랑을 응시하는 시인의 시선에 따스한 빛이 가득 서려있다. 특히 이번 근작시들은 예전의 시들에 비해 많이 갈앉고 차분하며 득도의 경지마저 보여주고 있다. 시인의 시적 모지름이 얼마나 처절한가를 얼핏 상상하게 되는 리유이다.   오로지 시 탐구와 창작의 길에서 올곧은 선비정신과 장인정신을 앞세운 시인의 독보적 행보가 어떤 그라프를 그릴지 궁금하다. 출처:2018년제1기  
6    [수필] 독이 되는 독서-유려 댓글:  조회:421  추천:0  2019-07-11
유려  독이 되는 독서    독서의 날을 맞아 수많은 독서의 중요성에 대한 글귀들이 오고 간다. 그런 글귀들을 읽다 보니 독서에 대한 별로 좋지 않은 기억 하나가 나를 괴롭힌다. 아이를 금방 낳고 낮과 밤을 지새며 고된 육아의 일상을 보내는 나한테 남편이 넌지지 말을 던져왔다. “여보, 당신 요즘 독서를 너무 안하는 것 같아. 나를 봐, 난 아이가 태여난 반년동안 책을 일곱권이나 읽었어!” 나도 독서를 좋아하지만 남편은 거의 광인이라고 불릴 수 있을 정도로 더 독서를 좋아한다. 하지만 갓난아이를 보느라 밤잠을 못 자며 고생하는 가련한 마누라와 밤낮없이 울어대는 아이를 멀리한 채 책 일곱권이 머리속에 들어가다니! 이런 인정머리 없는 량반을 봤나! 그 섭섭한 감정을 무엇으로 표현할가! 그런데 그래서 부부일가, 참으로 얄미우면서도 이런 남편이 한편으로는 참 잘 리해되기도 하는 게 웃기는 일이다. 동갑내기인 우리는 이런 구석조차 너무나도 서로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나와 남편은 교과서를 비롯하여 책을 읽을 때면 뭔가 맞는 일을 한다는 안전감이 들군 하는 약간 비겁하고 얄미운 모범생 스타일이라고 서로를 비웃고 또 자신을 비웃군 한다. 책을 읽는 것은 무조건 잘하는 일이라는 생각, 엄격한 부모 밑에서 수없이 공부를 강요받아오면서 오직 교과서를 손에 쥐고 있으면 어른들의 잔소리에서부터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몸에 밴 자동적 사고로 인하여 남편은 아마 당당하게 육아에 지친 안해의 모습을 외면하며 책을 일곱권이나 읽어왔을것이다. 참 눈물나는 유치함이다!    독서를 정말로 이렇게 해도 괜찮은 것일가? 독서에 대한 이런 꽁한 내 마음을 부여잡고 나는 꼭 독서의 해독성에 대해 얘기를 해보고 싶다.    책을 좀 본답시고 그 책의 내용을 떠벌이고 다니며 아는 척하는 얄미운 사람들이 있다. 그중에서 제일 얄미운 사람이라면 바로 또 나같은 사람이였을 것이다. 책을 보다가도 “아! 요 글을 내가 쫌만 빨리 봤어도 며칠전 고 자식이 나한테 한 말을 보기 좋게 반박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한번만 더 나한테 그런 말을 해봐!”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그 글귀에 밑줄을 쫙 그으며 별표까지 달아놓는다. 이런 아쉬움과 쾌감이 동반한 느낌이 독서의 즐거움이 되기도 했다. 책에서 얻은 깨달음으로 참으로 누군가를 반박하기를 즐기는 나였었다. 꼭 그 누군가가 사람은 아니여도 그 누군가의 맞갖지 않는 관점을 은근하게 반박해보는 쾌감, 그래서 점점 잘 돌아가는 내 머리라고 자부를 했다. 내가 알고 있는 그 얄팍한 지식들은 마치 벽돌처럼 나를 에워쌓고 누군가 나한테 말을 걸어오면 나는 어느 벽돌부터 그한테 뿌릴가부터 생각하며 든든한 안전감에 매달렸지만 사실 그것은 나를 가두어넣는 길이였던 것을 나는 그 당시에 모르고 있었다. 책이 나한테 지식을 주었지만 그 지식을 떠벌이고 싶은 마음은 이미 내가 이 세상과 소통하는 길을 막아버린 것이였다.     도대체 왜 그렇게 남을 반박하기에 급했고 내 주장을 펴기에 급했던 것일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가난한 류학생 시절, 이국땅에서 우리를 너무나 사랑해주시고 도와주시는 교수님 부부가 계셨다. 그 교수님 부부가 필리핀 봉사를 가신다 하기에 아주 당연하게 “그럼 필리핀에 가서 미국의 선진적인 학문이라도 가르쳐주려 가시는 것입니까?”하고 물었더니 교수님은 아주 너그럽게 웃으시며 “항상 뭔가를 가르치려 하는 태도는 문제가 있지요. 우리는 그곳에 가서 그 사람들이 사는 것, 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그것들을 배우러 갑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 한마디가 나한테 준 파문은 내 삶을 흔들어놓았다. 그 꾸미지 않는 겸손함에 감동되여서도 있지만 더 많이는 항상 아는 척하며 상대방의 형편과 립장과는 상관이 없이 내 주장만 펴기에 급급했던 나의 교만한 마음의 정곡을 찔렀기 때문이였다.    교만함, 그것이 문제였다. 그리고 나의 교만함은 내가 많은 것을 알고 있고 그것이 맞다는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였다. 그것을 주장하고 싶은 마음에 남의 립장이야 어떻든 그것을 급급히 부정해버리고야 마는 이 얄팍한 흉금까지 곁들여 나는 얼마나 얄미운 사람이였던 것일가?    교만함의 핵심에는 ‘확신’이 있었다. 고집이나 아집(我执)을 참으로 닮은 이 ‘확신’,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전부인 듯한 그 확신, 확신은 나의 탐구정신을 녹쓸게 만들었고 또한 내 주위의 사람들에 대해서 책에서 배운 지식으로 쉽게 꼬리표를 붙이고 판단을 내리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 잘 알고 있다는 확신 때문에 나는 얼마나 많은 배움의 기회를 놓치게 되였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깊이 교제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되였는지 모른다.    그 ‘확신’을 내려놓으면서 신영복 선생의 잠언한 구절을 떠올려본다. “북극을 가리키는 지남철은 무엇이 두려운지 항상 바늘끝을 떨고 있다. 여윈 바늘끝이 떨고 있는 한 그 지남철은 자기에게 지워진 사명을 완수하려는 의사를 잊지 않고 있음이 분명하며 바늘끝이 가리키는 방향을 믿어도 좋다. 만일 그 바늘끝이 불안스러워보이는 전률을 멈추고 어느 한쪽에 고정될 때 우리는 그것을 버려야 한다. 이미 지남철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확신이 없는 불안한 떨림, 방향을 잃을가 봐 두려운 그 떨림… 독서를 하고 그 지식으로 주장을 펼 때 그런 떨림이 나한테는 너무나 필요했다. 무엇인가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을 강화하고 그것을 강력하게 주장하기 위한 독서가 아닌, 내 립 장을 더욱 잘 립증해주는 증거를 찾기 위한 독서가 아닌, 어쩌면 내가 지금 알고 살아온 게 틀릴 수도 있지 않을가, 어쩌면 내가 약간은 빗나가며 생각한 것은 아닐가, 어쩌면 내가 리해를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가, 이런 떨리는 마음이 나한테는 제일 필요한 것이였다. 나는 이런 떨림을 조심스러움으로 해석하고 싶다. 그리고 이런 조심스러움은 부드러움과도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그리고 그 부드러움은 인간을 향해 있다.    인간에게서 시작하여 인간한테 가는 학문을 담은 것이 책인데 나는 책에만 매달려 정작 인간 자체는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아둔함을 범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책 하나가 어느 한 사람을 완벽하게 풀어헤칠 수 있을가? 사람이 쓴 책중에는 한권도 없을 것이다. 매 사람마다 한권의 책이라는 그 비유가 눈물나게 맞는 리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의 한마디, 어느 행동, 그가 하는 이야기, 그 한 사람을 주목하여 전체적으로 리해하면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이 세상의 유일한 책 한권이 되여지는 것이다. 그 어느 책보다도 더 풍부하고 아름다운것이 진실한 인간 자체인데 말이다. 사람한테서 그런 아름다움을 보는 안목을 기르지 않고 반대로 책 속의 지식에 파묻혀 이것도 아니네, 저것도 안되네, 너는 참 못났어, 책을 봐, 이렇게 해야 돼, 이러면서 인간의 아름다움보다 인간의 못난 점에만 초점을 맞추어 모든 인간관계를 뒤틀리게 해놓는 작업, 그 배후에는 독서가 있을 수도 있다는 불편한 진실, 나는 이 모든 것을 내 몸으로 겪고 나서야 깨달은 듯하다.    그래서 고대 희랍에는 “사람들이 책에 대한 숭배를 시작할 때 그들의 무지도 시작된다.”라는 약간 리해하기 어려운 속담이 있다. 지식에 대한 추구가 지식 자체로만 끝나면 세상에서 가장 무지한 사람으로 될 수 밖에 없다는 뜻으로 나는 리해하고 있다. 지식에 대한 숭배가 책에 대한 숭배로 이어지고 지성은 날카로워지고 머리는 커가지만 가슴이 빈약해져가고 정작 인간을 향한 따뜻한 가슴은 메말라갈 때 그가 가지고 있는 지식은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이다. 즉 인간을 읽을 줄 모르면 책을 읽는 모든 것이 의미가 없어지고 인간을 제대로 읽을 줄 알 때 책을 비로소 잘 읽을 수 있는 듯하다.     확신을 버리고 인간을 탐구하는 작업을 시작해본다. 사람을 읽는 작업, 사람을 제대로 읽기 위해 책을 읽는 일… 그렇게 나는 독이 되는 독서에서 벗어나고 싶다. 출처:2018년제1기  
5    [수필] 규칙너머-유려 댓글:  조회:396  추천:0  2019-07-11
 유려   규칙너머    사거리에서 빨간 신호등이 켜지는데 부랴부랴 뛰여서 길을 건너는 사람들의 뒤모습을 보며 나는 딸애의 손목을 더욱 꼭 잡고 서 있었다. 드디여 파란 신호등이 켜져서 좌우를 보며 조심스레 건느려고 하는데 차 한대가 쌩하고 코앞으로 지나간다. 엉거주춤 물러섰다. 눈치를 보던 차량들이 우리의 머뭇거림을 보더니 용기를 얻은듯 우리 앞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지나가며 길을 건널 기회를 전혀 주지 않는다.     그 사이 빨간 신호등은 다시 켜지고 “빨간 불 멈춰요, 파란 불 건너요!” 딸애가 유치원에서 배워 온 그 흥얼거리던 동요가 떠오른다. 나는 딸애를 내려다보았다. 코물이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코끝은 빨갛게 얼어있었다. 딸은 원망스러운 눈길로 나를 올려다보며 묻는다.   “엄마, 저 사람들은 왜 빨간 신호등이 켜졌는데도 길을 건너가요?”   “엄마, 파란 불이면 우리가 건널 차례인데 왜 차들이 우리 앞을 막으며 건너가요?”    나는 수없이 교통규칙을 어기며 지나가는 사람들과 그 차들을 바라보며 할 말이 없었다. 이 혼잡함을 다섯살 어린이가 알아들을 수 있게 쉽게 설명해줄 수는 있을가?    딸애가 흥얼거리던 그 동요의 멜로디가 의식의 저켠에서 점점 희미해진다. 내 눈은 불안하게 어디 건널 기회가 없나 좌우를 살기 시작한다. 이미 5, 6분을 딸애와 겨울의 찬바람을 맞으며 길역에 서있으니 마음이 조급해진 것이다.   딸애가 아직 어리다 보니 빨리 뛸 수 없는 게 현실사정이고 약간 고차원적으로는 규칙을 지키고 다른 이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례의 바른 어린이로 키우기 위해서이다.      “엄마 너무 춥고 힘들어요, 빨리 집에 가고 싶어요… 우리도 그냥 건너가요!” 딸애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그래도 빨간 불일 때 건너면 너무나 위험해! 안돼!” 딸애와 있을 때는 교통규칙을 꼭 지키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다른 사람들도 다 건너는데 왜 우린 안돼요?”    “…”    ‘엄마는 사실 다른 사람들이 다 건너니 우리도 그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해! 이까짓 규칙 쯤이야 국정에 따라서 또 상황에 따라서 얼마든지 령활하게 할 수 있는 게 현실이 아니겠니?  하지만 넌 아직 규률성과 령활성의 관계를 리해하기에는 너무 어려. 그냥 안전을 위해서 규칙은 꼭 지키는 게 네가 지금 배워야 하는 거야! 그러기 위해서는 내 딸인 네 앞에 이 엄마는 그 규칙을 잘 지키는 엄마이고 싶단다.’   나의 이 진실한 생각을 딸애한테 알려주면 딸애는 어떻게 받아들일가? 좀 위험하지 않는가? 그리고 참 웃기지 않는가?  그래서 나는 침묵했다.   어른은 어린이의 진실어린 추궁을 이런 식으로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세상의 어지러움을 이런 식으로 밖에 덮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딸애 앞에서 침묵은 더욱 길었다.   그냥 규칙이니 지켜야 된다는 말은 정말로 힘이 없다. 수없이 규칙을 어기고 길을 건너가는 사람들의 뒤모습을 보면서 그 말을 하느라면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그냥 부질없는 헛소리나 하는 격이다. 그래서 나는 그것보다 더 합리한 답을 주고 싶었다.     이 세상은 내가 규칙에 대한 고민을 계속 하도록 또 울지도 못하고 웃지도 못할 에피소드 하나를 또 주었으니…     그날 나는 딸애와 함께 기차역으로 향하는 차를 불러서 탔다. 앱으로 부른 것은 택시가 아닌 개인차(快车)였다. 이런 차는 택시보다 약간 저렴한 편이여서 이걸 평소에도 잘 리용한다. 이제는 무서워서 절대 리용하지 않지만…   그 기사는 아주 애젊은 청년인데 약간 깡패끼가 있는 모습이 웬지 불안해보였다. 짧게 밀은 택시기사의 뒤통수 어딘가에 얻어맞아 터진 듯한 흉터도 보였을 때는 정말 당장에서 내려야겠다 싶었지만 기사가 태도만은 시원시원했다. 나를 누나라고 부르면서 오늘 큰 건을 하게 해줘서 고맙다면서 흐뭇해하는 그의 약간 천진하고 유치하고 또 진실어린 기쁨을 차마 빼앗아갈 수 없었던 것이다.    길이 슬슬 막혀오자 이 젊은 기사는 차츰 짜증이 밀려오는 듯하더니 경적을 빵빵하고 쉬임없이 누르며 앞의 차들을 요리조리 앞지르며 차선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모든 기회를 놓치지 않고 길을 재촉했다.   나는 “우리 기차시간이 넉넉하니 정말 급히 갈 필요가 없어요!”라고 말했지만 이 젊은 기사가 길을 재촉하는 원인은 우리의 기차시간을 배려해서가 결코 아닌 듯했다. 깜빡이도 켜지 않은 채 얄밉게 차 사이를 치고 들어가는 이런 위태로운 운전을 모두가 달갑게 받아줄 리가 없었다. 나이가 듬직한 트럭 운전기사는 이 젊은 기사가 몇번을 차 사이를 들어가고 싶어서 차 몸체를 트럭 가까이에 대면서 눈치를 보냈음에도 굳어진 얼굴로 우리 쪽을 내려다보더니 길을 결코 비켜주지 않는 것이였다.    순간, 이 기사의 입에서 기관총처럼 나오는 욕설은 무엇으로 표현해야 할가! 분위기가 삽시에 험악해진 가운데 딸애는 내 팔에 얼굴을 묻었다. 기사는 그 트럭과 돌진이라도 할 모양으로 트럭한테 차 몸 전체를 밀착시키며 들이댄다. 아예 접촉사고라도 낼 모양으로 트럭기사를 위협하며 기세등등하게 싱갱이를 벌이기 시작했다. 역주로에 우리 차가 들어서는 순간 앞에서 오는 당황한 차들이 일제히 빵빵 경적소리를 내며 정면충돌할 듯한 위험천만한 순간을 아슬아슬하게 피해간다! 나는 삽시에 온몸에 소름이 쫙 끼치고 머리속이 하얗게 되며 심장이 높이 뛰다 못해 정말 목구멍으로 튀여나올 것 같았다.    정말 자신의 목숨을 내걸고 그 분을 풀어야만 되겠다는 말인가? 범죄자도 한순간의 분을 참지 못하고 죄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던가… 그 한순간에 사고도 나는 것이겠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정말로 내 딸을 살리고 나도 살아야겠다는 심정으로 모든 용기를 다하여 나는 그 깡패 기사가 들으라는듯 소리를 질렀다.    “저 트럭 기사 정신 나간 거 아니야? 그거 차 좀 끼면 양보해주면 될 것을 왜 저러는거야? 저 미친 기사 같으니라고!”    “그러게요! 저 빌어먹을 기사 같으니라고…” 깡패기사가 어쩐지 말끝을 흐린다.   “정말로 분통이 터지네요. 우리가 약간 끼면 어때서? 양보 정신이라곤 하나도 없네요!”   “따제, 쑈쑈치!(누님, 화 푸세요) 저런 사람들 꼭 있다니까요!” 기사는 제켠에서 약간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위안한다. 그의 화가 눅잦아드는 것일가?   자신과 함께 화를 내주는 사람이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화는 어느 정도 사그라들기는 한다. 그렇다면 나의 이 시도가 이 깡패 기사한테 약간이라도 먹힌 것일가? 그런데 더 자신감을 얻고 저 트럭한테 달려들면 어떡하지?    “아니,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어떻게 지밖에 몰라? 지가 트럭이면 다야! 트럭에 박으면 우리 차가 뭐 쪼그라들 것 같아? 쪼그라들 것 같냐구?” 나는 쪼그라들 것 같아 하는 말에 힘을 주었다.    “그러게요! 저런 기사는 벼락 맞아야 돼!”   ‘어허! 니 심장에는 정말 랭혈이 흐르는 거니? 어찌 니 눈에는 니 잘못이 그렇게 안 보이는 거니?’   “그러게요! 저 죽을 놈의 트럭 기사, 지가 뭘 잘한 것이 있다고 그래?  세상에 어떻게 저따위 인간이 있어?”   “따제(大姐)! 그리 놀랠 일이 아니에요! 저런 사람 엄청 많아요!”   ‘그래그래. 당신이 그런 식으로 운전하니 맨 저런 사람이겠네―’    “하? 정말요? 오늘 처음 알았네요. 정말 이런 사람들이 많아요? 참! 말도 안돼! 길에서 별사람 다 만나네요! 이런데서 운전을 하는 게 참 쉬운 일이 아니네요! 아저씨, 수고 많아요! 아―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어!”   내 얼굴은 화가 난듯 상기가 되였다. 사실은 두려움에 상기되였을 것이다.    젊은 기사가 백미러로 나의 화난 얼굴을 살피고 있었고 그 사이에 길이 풀리면서 트럭은 다른 옆길로 빠져나갔다. 이 깡패 기사는 그 트럭 뒤에 “퉤!”하며 창밖으로 침까지 뱉었다.    안도의 숨이 쉬여졌고 나는 그제서야 안정을 찾으며 내 딸을 안심시키려는듯 그를 조심스레 내려다보았다. 내 딸애는 울먹이며 내 얼굴을 빤히 올려다보고 있는데 한가닥의 의혹스러움이 스쳐가고 있었다…   우리는 살아서 기차역에 도착했다. 정말로 차에서 내리고 나니 세상이 달라보이는 기분이였다! 하늘은 어쩌면 그렇게 파랗고 바람은 어쩌면 이렇게 시원하고 그 아래서 숨쉴 수 있다는 게 어쩌면 이리도 감사하단 말인가! 나는 모든 규칙과 시비를 무시한 채 내 아이와 내 목숨을 지키기 위해 애를 썼고 그래서 살아남은 것 같았다.    이건 본능일가? 그 당시에는 그래도 살았다는 안도감으로 그 행위에 대한  모든 자괴감이 안식될 것 같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비참한 기분에 시달렸다.   내가 그 트럭 기사한테 심한 말을 퍼붓는 모습을 내 아이가 목격한 것이 심히 마음에 걸렸다. 울먹이며 내 얼굴을 찬찬히 올려다보던 내 아이의 그 표정과 그 한순간의 의혹은 과연 무엇이였을가를 생각하니 마음이 괴로웠다.   규칙은 도대체 어떤 것이여야 하는 걸가? 나는 내 아이한테 말로 그 어떤 표준답안을 제시할 수 없다는 한계를 깨닫는다.    딸이 규칙을 어기고 쉽게 집에 갈 수 있지만 엄마와 그는 함께 추위를 떨며 지켰다는 이 사실을 기억하며 그래서 언젠가 규칙 앞에서 고민을 할 때 이 기억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시 바로 잡길…    하지만 또 그렇게 뻔하게 규칙위반을 하며 역주로를 달리는 깡패 기사와 함께 심한 말들을 퍼부었던 이 엄마의 부끄러운 모습도 내 딸은 분명 또 기억을 할 것이다.    이런 모습도 기억하며 이제 내 아이가 기나긴 인생길을 가다가 혹시나 위급한 순간이 오면 인간의 생명은 그 모든 규칙을 넘어서 소중하고 고귀하다는 것을 알고 그런 생명을 잘 살아내기 위해 몸부림 치고 최선을 다해 그 어떤 순간에도 그의 생명을 꼭 지켜줬으면 좋겠다.    엄마로서의 아이에 대한 간절한 바람이다. 하지만 이것은 내가 내 아이한테 하고 싶은 교육의 전부는 아니다.    내가 지향하는 교육의 종착지는 그 고귀한 생명을 타인을 위해, 사랑이나 자유 혹은 평화와 같은 소중한 가치를 위해 기꺼이 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아이가 알게 하는 것이다. 내 아이가 그런 사람들의 희생을 전심으로 리해하게 되고 진정 그런 삶을 추구하며 그것에 가치를 두었으면 좋겠다.    이러한 약간 거창해보이는 교육을 꿈 꾸며 아이의 성장에 약간이라도 도움이 되게 바르게 살려고 노력을 하지만 정작 교통규칙을 지키는 작은 일에서도 한없이 부족한 나, 나는 이러한 일들을 겪으며 나의 처절한 현실을 새삼스럽게 바라본다.   사회의  많은 지켜지지 않는 규칙과 지키기가 불편한 규칙들 그 사이의 혼잡함과 어쩔 수 없이 끊임없이 도덕수준이 낮아지는 현실과 그 속에서 우왕좌왕하는 나… 내가 걱정스러운 것은… 내 그림자처럼 나한테 붙어 내 작은 숨결의 리듬의 변화까지 느끼며 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내 아이가 이러한 일들을 함께 겪으면서 나한테 느낀 것은 혹시 ‘허위’가 아닐가 하는 것이였다.    나는 내 편리나 유익을 위해 때론 규칙을 뛰여넘고 때론 규칙을 리용하고 때론 규칙을 엄격히 지키고 또 때론 그 규칙을 어기는 자한테 리해심까지 동원하는 놀라운 령활성으로 살아왔다.   과연 괜찮은 사람이 맞는가?    내가 몸담고 있는 사회에서 규칙을 어기며 사회가 혼란스러워지는데 동조하고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는 항상 너무나 먼 일이였고 그 깡패 기사가 나의 그런 긍정과 리해로 인해 이후에 그가 더욱 당당하게 위험천만한 행동을 아무런 자책이 없이 저지를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결코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지어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정말로 괜찮은 사람인가?    나는 내가 괜찮은 사람이길 얼마나 원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내 모든 선행은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는데 쏠렸다. 하지만 나는 진정한 선을 품을 줄 알기나 했던 것일가?    겉으로는 수없이 크고 작은 규칙을 넘나들고, 마음속 깊은 곳으로는 수없이 도덕의 밑선을 헤맬 때 있는 나 자신, 그러면서도 내 딸에게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제발 선한 사람으로 비쳐지길 바라며 꽤 괜찮아보이는 교육목표를 절절한 소원으로 웨치며 나는 그렇게 ‘괜찮은’ 사람이고 싶었다.   내 행동과 내 생각과 나의 꿈 사이의 차이는 이다지도 크단 말인가?    이 모든 차이는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가?    나는 그 누구한테 내 본의 아니게 비춰진 내 못난 모습이 그토록 부끄러웠다.  그 우연찮은 상황에서 툭툭 튀여나오는 내 그 못난 모습을 직시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모든 지식과 례의, 선행으로 바른 행동을 하는 그 모습만 내 모습이고 싶었다. 이 모든 것을 파헤치면 나오는 그 깊이깊이 감추어진 그 진실한 내 모습은 나를 그토록 괴롭혔다.   ‘괜찮은 사람’과 거리가 먼 그 모습, 선과도 아주 거리가 먼 그래서 감추고 싶었던 그 나 자신의 진실한 정체를 바라보는 게 어찌 이리 어려운 일일가?    딸애의 순진한 질문과 빤히 나를 쳐다보는 그 얼굴에 스쳐간 한순간의 의혹스러운 표정에서 느낀 나의 그 괴로움을 다시 한번 대면하며 이 하잘 것 없어보이는 교통규칙너머에 비추어진 내 자신을 눈물겹게 바라본다. 결코 선하지도 괜찮지도 않는 실체들을 대면하여 바라보는 나의 그 젖은 눈길에서 내 삶의 진정한 숙제가 시작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출처:2018년제1기  
4    [단편소설] 작약꽃 - 소야 댓글:  조회:442  추천:0  2019-07-11
 소야    작약꽃   1     금이는 페달에 더욱 힘을 가했다.   이른봄이라 날씨는 아직 쌀쌀한 기운을 걷어들이지 못하고 있다. 달리는 자전거 속도에 바람은 더욱 거세여진다. 세찬 바람을 맞받아 달리는 그녀의 핑크색 옷자락과 뒤로 밀려가는 파란 스카프는 서로 어우러져 빨간 바탕에 파란 무늬가 돋힌 한장의 단풍잎이 허공에 떠있는 듯 싶었다. 내내 앞만 주시하면서 부지런히 두 발을 움직여가는 금이는 가끔 핸들을 잡았던 한쪽 손으로 옆구리를 만져보며 잠이 덜 깬 어린 딸애의 손이 자기 허리를 꽁꽁 감고 있는가를 확인했다. 두툼한 등산복으로 몸을 감싸고 목수건으로 얼굴까지 동이고는 자전거 짐받이에 앉아 몸을 그녀의 뒤잔등에 밀착시킨 딸애의 모습은 마치 늦가을의 비탈밭에 힘겹게 서 있는 외로운 옥수수대에 아스라하게 매달려있는 작은 옥수수이삭과도 흡사했다.   남들이 단잠에서 채 깨지도 않았을 이른아침에 금이는 여섯살 난 딸애를 싣고 작은 시가지중심을 향해 한적한 거리를 꿰질러 부지런히 달리고 있다. 마치 시가지 속 어딘가에 소중한 그 무엇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듯 말이다.   “우리 자은이 자는거야?”   한참을 달리다가 금이는 뒤쪽을 돌아보았다. 짐받이에 앉아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은 딸애는 야무지게 대답해왔다.   “아니.”   “엄마 꽉 잡어.”   “알았어.”   “그렇지. 엄만 자은이가 최고야.”   “나도 엄마 최고!”   이처럼 살벌한 환경에서도 두 모녀는 살갑게 서로를 보듬고 있다.   반시간 실히 달려서야 시가지 도심에 들어섰다. 거리에 행인들이 가담가담 보였고 차량들도 하나 둘 나타났다. 금이는 부풀어나는 인파와 덮쳐오는 차량 사이를 꿰질러 간신히 시병원에 다달았다.    그녀는 얼른 딸애를 안아내리고 자전거를 한쪽에 세워놓은 후 딸애의 얼굴까지 올리감았던 목수건을 풀어주고 두터운 등산복도 벗겼다. 자주색 작은 가방을 어깨에 메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엄마를 쳐다보고 금세 피여나는 분꽃마냥 생긋 웃는 딸애의 모습을 보고서야 그녀는 시름을 놓인듯 “휴―” 한숨을 내쉬였다.   금이는 딸애의 손을 잡고 한쪽 다리를 심하게 절룩거리며 병원에 들어섰다. 짧은 한쪽 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몸이 반나마 그쪽으로 휘뚱휘뚱 기울어져 무척 힘에 부쳐보였지만 백합처럼 하얗고 깨끗한 그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찰찰 흐르고 있었다.   병원 안은 아직도 작은 바늘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마저 들릴듯 고즈넉했다. 안내 카운터에서 당직 간호원이 물 맞은 병아리마냥 끄덕끄덕 졸고 있었다.   그들은 엘리베터를 타고 810호 병실에 들어섰다.   겨릅대같이 여윈 송장 같은 바깥로인이 침대에 조용히 누워있었는데 하얀 이불이 그의 목까지 푹 덮여있었다. 금이가 머리를 살짝 숙여 인사를 드리자 옆에서 한참 핸드폰과 씨름하던 로인의 딸인듯 며느린듯 한 40대의 녀자가 이제야 왔다는 뜻으로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채 못마땅한듯 그녀를 향해 눈살을 꼿꼿이 세웠다.   “애가 깨여나지 못해서요.”   금이는 묻지 않는 일을 조심스럽게 해석했다.   “됐어요. 근데 애를 데리고 오면 어떻게 해요?”   몸집이 실팍한 것만큼 목소리도 남자음성마냥 굵직하였다. 검불 같은 머리를 손으로 대충 쥐여묶는 그의 고구마빵처럼 퉁퉁 부어오른 얼굴은 표정관리가 전혀 없었다.   “그건 걱정말아요. 좀 지나면 유치원에 데려다주시는 분이 올 겁니다.”   그제야 그 녀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널려있던 소지품들을 가방에 와락와락 챙겨넣고 나가더니 다시 들어와서 늙은 중이 념불을 외우듯 주절주절 늘여놓았다.   “8시에 점적주사가 있고 10시에는 휠체어에 모시고 심전도검사를 하세요. 그리고 침대보를 어지럽히지 않도록 자주 검사를 하구요. 수시로 혈압과 열이 정상인가를 체크하세요!”    “알겠습니다.”   그 녀자는 잠든 듯한 로인을 흘끔 건너다보더니 쌩하니 바람을 일구며 나가버렸다.   점적주사시간이 아직도 두시간이나 있다.   금이는 애를 문가의 걸상에 앉혀놓고 그림책을 꺼내서 쥐여주고는 재빨리 간병인 옷을 바꿔입은 후 로인의 침대가로 다가갔다.   살이 다 빠진 누르께한 얼굴에서 금이는 로인의 앞길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보아냈다.   “로인님, 식사를 하셔야지요? 뭘 드실래요?”   로인은 눈도 뜨지 않고 머리만 가로 흔들었다.   “뭐라도 드셔야지요.”   로인은 가타부타 말없이 그냥 눈을 감고 있었다.    금이는 호주머니에서 잔돈을 찾아들고 병원식당으로 내려갔다. 가족의 부탁은 없었지만 그래도 로인한테 뭘 대접시켜야 할 것 같았다. 이른아침이여서 식당 안은 조용하였다. 음식카운터에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여러가지 죽 외 빵이 있었다. 금이는 노란 좁쌀미음 한그릇과 애에게 먹일 빵 두개를 사가지고 올라왔다.    금이가 병실에 들어서자 딸애는 뭐가 겁났던지 쪼르르 달려와 엄마의 옷자락을 잡고 놓지 않았다.   “괜찮아, 할아버지가 아프신 거야. 우리 자은이 착한 애지?”   그제야 자은이는 도로 걸상에 가 앉더니 엄마가 내미는 빵을 받아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어삼켰다.    그녀는 사온 죽그릇을 들고 로인의 침대로 다가갔다.   “로인님!”   로인의 태도는 조금 변함이 없었다.    “한술만 넘기세요. 안 그러면 치료해도 효험 없는 걸 아시죠?”   금이가 직성스럽게 권하자 로인은 할 수 없다는듯 가까스로 눈을 떴다.    금이가 죽그릇을 들고 애원하는듯 서 있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던지 로인은 몸을 일으키려고 애를 썼다.    “괜찮아요. 그냥 누워계셔요.”   금이는 조심스레 로인을 만류하고는 죽을 한술 떠 로인의 입가로 가져갔다. 로인은 간신히 받아물더니 한참 애를 쓰다가 겨우겨우 넘겼다. 금이가 또 한술을 가져갔다. 이렇게 다섯 숟가락을 넘기고 로인은 머리를 가로 저었다.   “알았어요. 참 애쓰셨어요. 그럼 잠간 쉬였다가 또 드세요.”   금이는 죽그릇을 잘 봉하여 상자에 넣어두고 대야에 따뜻한 물을 떠왔다. 몸을 휘우청거리다 보니 그때마다 대야의 물이 철렁거리며 쏟아져내려 한쪽 바지가랭이가 다 젖어버렸다.   “로인님 씻을까요?”   로인이 머리를 끄덕이자 금이는 수건을 적셔서 로인의 얼굴부터 시작하여 몸까지 닦은 후 손과 발도 깨끗이 닦아드렸다. 씻고 나서인지 아니면 미음 몇숟가락 드셔서인지 로인은 정신이 드는듯 감았던 눈을 뜨고 마치 오랜만에 깊은 잠에서 깨여난 사람마냥 주위를 두리번거리였다. 그러다가 말없이 문가에 오도카니 앉아있는 자은이를 바라보더니 다시 금이한테 눈길을 돌렸다.    금이는 비록 다리를 절어 걸음걸이가 심하게 휘청거렸지만 일솜씨만은 야무지고 잽쌌다. 잠간새 병실청소까지 다 마쳤다. 창문을 반쯤 열어 공기도 바꾸고 로인의 침대보에 누기가 가득 차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까지 바꿔 깔고 나니 8시가 거의 되여갔다.   노크소리가 조용히 들려왔다.   “상엽이 할머니가 오셨나 보다.”   금이가 딸애에게 속삭이듯 말하자 딸애가 오똑 일어나 살며시 문을 열었다.   회색코드에 안경을 건 상엽이 할머니가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잊지 않고 오셨네요.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금이는 너무도 고마워서 눈물이 막 쏟아질 것만 같았다.   “감사는 무슨 감사요. 그래 할 만하기는 한 거요?”   환자를 건너다보며 소곤거리는 할머니는 겉모습과는 달리 퍽 온화하고 자상했다.    “그럼요. 그만한 일은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얼굴에 환한 웃음을 띄우고 자신 있게 속삭이는 금이를 보고 할머니는 혀를 끌끌 차시더니 시름을 놓았다는듯 머리를 끄덕였다.   “사실 다리가 불편하다니깐 가족에서 대번에 꺼리더군. 그래서 내가 시켜보지도 않고 나무라다간 후회할 거라구 했지. 허허, 로인이 퇴원하려면 아직도 시간이 걸릴 것 같구먼. 자은이 걱정은 말고 일자리가 생겼을 때 몇푼이라도 벌어두게.”   그리고는 시계를 들여다보더니 자은이를 데리고 부랴부랴 병실을 나갔다.   금이에게는 참 은인 같은 고마운 분이다. 할머니의 손자 상엽이는 자은이와 같은 유치원에 다니고 한 책상에 앉는다.    어느 날 유치원에서 ‘6•1’절을 맞으면서 부모님과 함께 ‘신문꾸리기’시합을 하였다.    활동이 시작되자 다른 어머니들은 모두 애와 척척 합작을 해가는데 상엽이는 할머니 땜에 조급한 나머지 짜증에 투정까지 부렸다.    손자의 성화에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할머니를 본 금이는 말없이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남다른 그림재간을 갖고 있는 그녀에게 유아작품 쯤은 얕은 내를 건늬는 격이였다.   “상엽이라 했지? 자은이 친구 맞지?”   “네.”    울상이 된 상엽이는 작은 눈에 간절함을 가득 담은 채 애원에 찬 눈길로 말똥말똥 그녀를 쳐다보았다.    “우리 짝궁해볼가 잉?”   “네!”    금이가 섬겨주는 크레용으로 색칠해나가는 상엽이는 점점 신이 났다.   상엽이와 자은이의 작품은 명절을 맞는 어린이들의 즐거운 모습을 서로 다른 내용으로 보여주었는데 그들 둘의 작품이 그 시합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애들은 좋아서 손벽을 치며 퐁퐁 뛰였고 상엽이 할머니는 감사한 나머지 눈굽을 찍었다.    상엽이 할머니는 금이와 가까이 지내면서 금이의 가정형편을 알게 된 후로 적잖게 도움의 손길을 보내주었다. 지금 이 간병일도 상엽이 할머니가 소개한 것이였다. 심한 장애자이지만 착하게 열심히 살아가는 그녀를 할머니는 늘 동정해왔다. 불구자 몸에 어린애까지 달리고 보니 취직은 힘들고 경제기초가 없어 개체업도 엄두를 못내는 형편이라 날마다 여기저기 뛰여다니며 막벌이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지만 얼굴에 항상 웃음을 달고 있는 그 모습에 상엽이 할머니도 마음이 녹아들군 하였다.   로인의 점적주사도 끝나고 여러가지 검사도 끝났다. 별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로인은 그냥 움직일 념을 않았다. 금이는 로인 곁에 다가앉았다.   “로인님 제가 책을 읽어드릴까요?”   로인이 머리를 끄덕이며 입가에 알릴락말락 느슨한 미소를 흘리자 금이는 《법률과 생활》잡지를 뒤적이다가 〈황혼의 사랑〉이야기를 내리읽었다. 서로 가족을 잃어 슬픔으로 나날을 보내던 두 로인이 새롭게 만나 뜨거운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였다.   “재미있어요? 또 읽어드릴까요?”   로인은 또 머리를 끄덕였다. 내내 굳어져있던 얼굴이 좀씩 풀리기 시작했다. 자주 눈을 뜨고 금이를 쳐다보기도 하고 병실을 둘러보기도 했다. 그리고는 물도 찾고 미음도 좀씩 더 드시군 하였다.   저녁시간이 이슥해지자 그 남자음성녀자가 병실에 들어섰다. 어디 찜찜한데라도 있기나 한듯 이리저리 살펴보던 그녀자는 흠잡을 데가 없음을 확인하자 말없이 지갑을 열어 50원짜리 지페를 꺼내 금이 앞에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금이는 두 손을 내밀어 조심스레 돈을 받았다.   간병비는 보통 경우에 따라 하루에 80원 100원이지만 금이는 불구자라는 조건으로 정상인들보다 늘 적게 받군 했다. 하지만 금이는 한번도 이런 걸 따진 적이 없었다. 아니 따질 겨를이 없었다. 하루하루 생계가 힘들고 또 거동도 불편한 자기한테 일을 시켜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할 뿐이였다.   상엽이 할머니가 이 시간 쯤이면 밖에서 애를 데리고 기다릴 거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금이는 느직느직 간병인 옷을 벗고 자기 옷을 바꿔입었다. 그리고 갖고왔던 책들도 하나하나 가방에 집어넣었다. 남성음녀자는 금이가 챙기는 책을 흘끔 보더니 또 아니꼬운 눈길을 보냈다. 아마도 책을 보면서 시간을 때웠을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였다.    금이가 문을 나갈 때까지도 그 남성음녀자는 아무 말도 없었다. 금이는 서운한 마음으로 휘적휘적 다리를 움직이며 병실문을 나섰다.   “휴― 래일은 또 무슨 일을 해야지?”   병원을 나서며 금이는 넉두리하듯 중얼거렸다.   석달째 집세가 밀렸고 자은이의 유치원생활비를 낼 시간도 바득바득 다가온다. 자은이가 감기로 앓는 바람에 꽁꽁 모아두었던 집세가 몽땅 날아났었다. 남들이 다 쓰고 사는 아빠트 같은 건 제쳐놓고 애가 먹고 싶어하는 피자라도 마음껏 먹이고 애가 배우고 싶어하는 피아노연주를 배우게 하는 것이 금이의 소망이였다.   머리를 푹 떨구고 아픈 다리를 휘젓는 금이의 걸음은 더욱 느려졌다.   “래일 다시 오라는 말 안했나 보네 쯔쯔…”   자은이를 데리고 밖에서 기다리던 상엽이 할머니가 그녀의 기색을 살펴보더니 근심어린 소리로 말했다.   금이는 “네.” 하고 대답하려다가 인차 표정을 바꾸고 “기다려봐야지요.”하며 웃어보였다.    상엽이 할머니와 갈라져 짙어지는 땅거미를 등지고 그녀는 자은이를 자전거에 앉힌 후 귀로에 올랐다.   “우리 자은이, 오늘 유치원에서 재미있었어?”   “네!”    자은이는 뭐가 신났는지 캐득캐득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 딸 뭐가 이렇게 신났을가?”   “선생님은 내가 노래를 잘 불렀다고 짱이라고 했어요.”   “그럼, 엄마도 우리 자은이가 항상 짱이야!”   “상엽이는 피아노를 잘 쳤다구 선생님이 칭찬했어요. 자은이도 이제 파아노를 배우면 상엽이보다 잘 칠 거야.”   자은이 입에서 요새는 부쩍 피아노소리가 흘러나오는 바람에 금이의 마음은 알싸했다. 그것은 엄두도 못낼 꿈에 불과한 일이지만 금이는 어린 딸애의 그 천진한 마음속에 응어리가 맺히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 이제 엄마가 돈 많이 벌어 우리 자은이한테 피아노도 사주고 피아노 공부도 시킬 거야.”   딸애의 짝짝하는 손벽소리가 하루 일에 지쳐버린 그녀에게 새 힘을 충전해주었다.   이튿날 아침 금이는 애를 유치원에 보내고 부근의 위생저가락 공장에 찾아갔다. 출근시간이 되지 않은 공장 울안은 아직도 조용하였다. 금이는 이전에도 일거리가 없으면 늘 여기를 찾아와 일감을 얻어가군 했다. 저가락 한모씩 좁다란 종이봉투에 밀어넣는 일은 종일 집에 붙박혀서 부지런히 해도 고작 10원벌이였다. 그마저도 공장직원들이 월급 이외의 돈벌이를 하느라고 너도나도 다투어 찾는 바람에 이 일감도 얻기가 쉽지 않았다.    “일감 맡으러 왔나?”   마당을 쓸고 있던 로경리가 웃으며 금이를 맞아주었다. 금이의 가긍한 처지를 잘 알고 있는지라 늘 금이한테 일거리가 있으면 더 많이 주고 먼저 주군 하는 로경리다.    “일감 있어요?”    로경리의 환히 웃는 얼굴을 바라보는 금이의 얼굴에 한가닥 희망이 서렸다.   “있네. 직원들이 오기 전에 얼른 가져가게나.”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금이는 짐받이에 한키 넘게 일감을 싣고 자전거에 올랐다. 페달을 돌리는 금이의 모습은 마치 작은 개미가 큰 먹이를 힘겹게 굴려가는 듯싶었다. 금이가 집에 도착해 일을 막 시작하려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액정에 상엽이 할머니 전화번호가 떴다.   “네. 할머니…”   “자은이 엄마, 금방 그 집에서 전화가 왔는데 오늘도 와서 환자를 봐달라는구만.”   “아, 그러세요? 근데 어쩌죠? 제가 오늘 일감을 맡아왔는데…”   “또 그 몇푼도 안되는 저가락포장을 하려구?”   “그렇긴 한데요. 이걸 오늘 내로 해서 가져가야 합니다.”   “먼저 돈 되는 일하고 나중에 하게나.”   “안돼요. 신용을 지켜야지요.”   “착하기두… 쯔쯔… 내 다시 전화할게 기다려봐.”   금이의 고집을 알고 있는 터라 상엽이 할머니도 더는 강요하지 않았다.    잠시 후에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래일이라도 오라는구만, 허허. 하루새 로인한테 점수를 많이 땄구만. 그 로인이 기어코 자네를 요구한다는구만. 하여튼 자은이 에미 착실함은 알아줘야 한다니깐.”   이튿날부터 금이는 다시 간병일을 시작했다. 금이가 하도 직성으로 로인을 간호한 덕분으로 열흘이 지나니 절로 자리에서 일어나고 얘기도 할 수 있었으며 화장실 출입도 했고 보름 만에 퇴원을 하게 되였다.   퇴원하는 날 그 녀자는 태도가 많이 바뀌였다. 수고했다는 말도 했고 간병비도 80원으로 계산해주었으며 감사하다는 의미로 100원을 더 얹어주었다.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돈을 벌어보기는 처음이였다. 그녀는 더없이 흥분되였다. 그녀는 손에 돈을 꼭 쥐고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을 두드리는 자은이의 예쁜 모습을 눈앞에 그려보며 살풋이 웃었다.     2     이튿날 아침 자은이를 유치원에 바래주며 오늘 피자를 사주마고 약속을 한 금이는 자전거페달을 밟으며 또 저가락공장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은행에 들려 전날에 받은 간병비를 저금하려다가 길가의 전주대에 식모를 찾는 광고가 붙어있는 것을 보았다. 금이는 자전거에서 내려 다가가 그 집 지점을 확인했다.    금이가 부랴부랴 찾아간 곳은 으슥한 골목에 자리잡은 작은 오락방이였다. 방안에서 흘러나오는 딸가닥소리와 진하게 풍기는 매캐한 담배냄새에 머리가 어지러워날 지경이였다. 머뭇거리다가 비스듬히 열린 문을 열고 방안에 들어서니 남녀가 끼리끼리 모여앉아 마작판을 벌이고 있었다. 담배연기가 보얀 속에 마작이 부딪치는 소리가 그녀의 귀를 더욱 어지럽혔다.    방안에 들어서서 어정쩡하니 서 있는 금이를 뚱뚱한 털보남자가 경계의 눈으로 바라보며 다가왔다.    “저기… 밥하는 사람을 구한다기에…”   “그렇다만…”   몸집과 달리 유난히 작은 눈을 가슴츠레 뜨고 애매한 대답을 하면서 금이의 아래우를 신경질적으로 훑어보던 털보의 음흉한 눈길이 그녀의 하얀 얼굴에 와 꽂혔다.    “음식은 물론 뭐든지 다 할 수 있습니다.”   홀린듯 금이의 얼굴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던 털보남자는 알 수 없는 미지근한 웃음을 흘리며 머리를 주억거렸다.   “그럼 하루만 해보라구. 품삯은 20원이야.”   금이는 그 털보남자의 눈길이 찜찜해났지만 몇시간 만 버티면 20원을 벌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냥 흘러버렸다.    금이가 머리를 끄덕이자 털보는 그녀를 데리고 주방으로 들어가 이것저것 할 일들을 렬거하였다.   털보가 나가자 그녀는 얼른 옷을 벗어제끼고 채소부터 다듬기 시작했다. 반찬 두가지에 김치 한가지 그리고 국 한가지, 메뉴는 간단했다.    금이가 땀을 흘리며 부지런히 점심준비를 마치고 나니 아직도 한시간이나 남아있었다. 그 시간을 그냥 보낼 금이가 아니였다. 금이는 주방의 널린 그릇들을 씻고 닦고 하며 정리를 시작하였다. 잠간새 지저분한 주방이 깔끔한 모습으로 바뀌였다.    한참후 털보가 들어오더니 깔끔해진 주방을 둘러보며 머리를 끄덕이였다.   “손부리가 야무지구만. 마작방 바닥두 마저 닦아주구려.”   금이는 털보가 시키는 대로 마작방에 들어가 구석구석의 먼지를 닦아내기 시작했다. 먼지가 보얗게 쌓인 모서리마다 걸레맛을 본 지 꽤 오래된 것 같았다.    금이가 불편한 다리를 질질 끌며 걸레질에 여념이 없는데 어디선가 담배꽁초가 날아와 금이의 머리에 맞혔다가 땅바닥에 떨어졌다. 금이가 바닥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주어들고 머리를 들자 키들거리며 힐끔거리는 일부 사내들의 눈길이 기분 잡치게 금이한테 쏟아졌다.   “사람한테 담배꽁초를 던지면 어떡합니까?”   금이는 몸을 오똑 일으키며 좌중을 둘러보았다.    방안의 모든 시선이 금세 금이한테 쏠렸다.   “어, 이제 보니 얼굴이 꽤나 하사하게 생긴 녀자였구만. 그 얼굴로 이런 청소를 하지 않아두 할 일이 많을 건데.”   “오늘 돈 딴 니가 저 녀자한테 선심을 쓰려무나. 너무 비싸지는 않을 것 같은데. 하하하…”   마작군들은 서로 언거번거 치고 박으며 킬킬댔다.   금이는 갑자기 몽둥이에 머리를 호되게 얻어맞은듯 뗑해났다. 자기가 지금 무슨 소리를 듣고 있는지, 그리고 왜 이곳에 서 있는지 도무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마치 아득한 벌판에서 길 잃은 한마리 어린 양이 자기의 작은  몸뚱이를 어디로 옮겨가야 할지 갈팡질팡 헤매고 있는 듯했다.    “멀쩡하니 뭐하고 있는 거여? 점심차려야지.”   털보가 돼지 멱따는 소리로 웨쳐서야 금이는 정신을 차리고 휘뚱거리며 겨우 주방으로 몸을 피했다.    금이는 밥상을 차려놓고 그들을 피해 주방으로 들어와버렸다.    밖에서 그들의 수군대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저 녀자가 왜 여기에 있지?”   누군가 금이를 알아보는 것 같았다.   “마씨 슈퍼집 외동딸이네. 한때는 귀하디 귀한 공주였잖아.”   “슈퍼에 큰 화재사고가 나는 바람에 인명사고로 부모들이 다 돌아가고 숱한 재산을 잃고 빚에 살던 집까지 날아났다네.”    “그럼 저 녀자가 그때 그 마가네 그림 잘 그려 소문난 외동딸이란 말인가?”   “듣자니 사위놈도 그 일이 있은 후 어디로 튀였다던데.”   “당연한거지. 재산 넘보고 데릴사위로 들어간 놈이 빈털터리 됐는데 뭘 보고 물앉아있겠어?”    “화재는 사위가 저지르고 보험금 챙겨가지고 어디론가 튀였다던데요.”   “귀하디 귀하신 공주님이 인젠 돈이 퍽 필요한가 보네.”    “그때 서너살 되는 딸도 있었다고 들었는데.”   “그렇게 궁금하면 직접 물어보지 그래.”   마작판에서 폭소가 터져나왔다.   금이는 더는 그들이 지껄여대는 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다. 이처럼 인정사정 몰라주는 사람들이 너무나 야속했다. 아무리 세상이 야박하고 무심하다지만 이렇게 남의 아픈 상처에 지독하게 소금을 뿌릴 수가 있단 말인가. 금이는 당장 뛰쳐나가 그들과 시비라도 캐고 싶었지만 그냥 주방구석에 주저앉아 소리없이 눈물만 쏟을 뿐이였다.   3년 전 온 시가지를 들썽한 화재사고에 가산을 탕진하고 혈육까지 잃은 뒤 남편까지 종적을 감추었다. 하지만 금이는 지금껏 이 모든 것을 자기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아픈 기억들을 지우려고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버렸는데 오늘 느닷없이 뒤집힐 줄이야…    마작쪽을 휘젓는 소리가 또다시 귀를 어지럽힌다. 그것은 마작소리가 아니라 금이의 하나밖에 없는 심장을 도려내려는 소리같이 들려왔다.   금이는 머리에 벌둥지가 터진듯 윙윙해났고 갑자기 심한 현기증을 느꼈다. 겨우 설겆이를 마치고 떠날 차비를 서두르는데 털보가 들어오더니 주방문을 닫아버렸다. 털보는 하루 일당으로 말한 대로 20원을 내밀었다. 금이가 말없이 받아 챙겨넣고 막 나가려는데 갑자기 털보가 뒤에서 금이를 껴안았다.    “이대로 가면 섭섭하지, 흐흐흐.”   도무지 분간할 수 없는 이상한 냄새가 역겹게 얼굴에 덮쳐왔다. 뒤이어 우악스런 손이 금이의 가슴를 헤집으려 들었다. 금이가 죽기내기로 몸부림을 치자 털보는 더욱 힘을 주며 금이를 끌어안았다.   “안 놓으면 소리칠래요!”   금이의 그 한마디에 털보는 생각을 바꾸었는지 감았던 손을 스르르 풀었다. 그리고는 호주머니에서 100원짜리 지페를 꺼내보이며 구슬리기 시작하였다.    “돈이 필요하다며? 내가 얼마든지 줄 수 있어.”   품삯은 고작 20원을 쥐여주고도 그 따위 짓엔 100원씩나 내흔드는 징글스런 상판대기를 보니 막 역겨워났다.    금이는 호주머니에 넣었던 20원마저 털보의 얼굴에 홱 뿌려던지고 비칠비칠 마작방을 빠져나왔다.   “미련한 년…”   털보의 욕지거리가 금이의 뒤통수를 아프게 때렸다.   간신히 자전거를 잡았지만 마치 몇년간의 시달림을 받은듯 다리맥이 풀려 자전거에 오를 기운도 없었다. 맥없이 자전거를 밀고 거리를 방황하는 금이의 얼굴에 차가운 바람이 후려친다. 자기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아픈 다리가 감각을 잃은 듯싶었다.    갑자기 자은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 오늘 자은이한테 피자를 사주자고 약속했지.”   딸 생각을 하자 어디서 힘이 솟았는지 금이는 자전거에 올라 페달을 밟았다.    딸애의 배시시 웃는 얼굴과 피자가 엇갈아 떠올랐다.   금이가 피자집에 들려 피자를 예약하고 돈을 치르려고 가방을 뒤지자 돈이 보이지 않았다. 순간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듯싶었다. 금이는 급히 가방을 거꾸로 들고 안의 물건들을 와그르르 쏟아내고 털고 또 털어보았다. 하지만 돈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보름동안 간병일로 번 뼈돈이 어디로 통채로 사라져버렸다. 금이는 피자집 바닥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있었다.    “웬 일이세요? 괜찮으세요?”   피자집 주인이 금이의 얼굴에서 무엇을 읽었는지 다가와서 부축하였다.    “괜찮습니다. 미안합니다.”   금이는 간신히 일어나 자전거를 타고 오던 길로 다시 돌아갔다. 그녀는 길바닥 여기저기에 눈길을 쏟았다. 하지만 금이가 찾는 돈이 보일 리가 없었다. 행여나 요행을 바라면서 그 마작방으로 찾아갔다. 한참 머뭇거리던 금이는 문 앞에서 다시 돌아서고 말았다. 아무런 소득도 없을 게 뻔한 일인데 굳이 이곳에서 또다시 자신을 괴롭혀가며 싱갱이질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다시 자전거를 돌렸다.    갑자기 전신의 맥이 풀리면서 숨이 가빠졌다. 이어 눈앞이 흐릿해나더니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금이는 자전거를 길옆에 세워놓고 쪼크리고 앉아서 쑤시듯 아파나는 가슴을 부여잡았다. 지나가던 행인이 잔등을 두드려주며 물었다.    “병원에 모실까요?”   언제부터였던지 금이는 가끔씩 이상한 아픔에 시달렸다. 이럴 때면 이렇게 한참씩 앉아서 숨을 돌리군 하였다. 금이가 괜찮다고 고집스레 손사래를 저어서야 손님은 별수 없다는듯 자리를 떴다.   숨을 돌리고 나니 자은이의 얼굴이 또다시 떠올랐다. 그녀는 다리에 힘을 주며 다시 일어났다. 자은이가 기다릴 생각을 하니 마음이 급해졌다.    썰렁한 유치원문 앞에 자은이가 오도카니 서 있었다. 홀로 서 있는 딸애를 보자 금이의 다지고 다져졌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녀는 자전거를 버리고 휘청거리며 다가가 딸애의 가냘픈 몸을 끌어안았다.   “우리 자은이 엄마를 오래 기다리고 있었구나. 미안해.”   “조금 추웠어.”   딸애는 울먹거리며 금이의 품에 안겼다.   “가자, 엄마가 집에 가서 맛있는 거 해줄게.”   금이는 딸애를 안아 자건거 뒤에 앉히고 집으로 향했다. 딸애한테 사주지 못한 피자가 눈에 삼삼히 떠오르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힘겹게 밟는 페달에서 찌걱찌걱 소리가 유난히 구슬프게 들려왔다.     3     어느덧 반년이라는 시간이 지긋지긋한 고달픔 속에서 흘러가버렸다.   그 사이의 눈물겨운 삶은 금이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주었고 수많은 사연들은 그녀로 하여금 더욱 강한 마음을 키우게 하였다. 한푼 두푼 힘들게 모여지는 돈액수를 감지하며 금이는 자신이 꾸고 있는 꿈이 아직도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이튿날 금이는 애를 유치원에 보내고 또 저가락공장에 찾아갔다.    로경리가 금이를 보자마자 호주머니에서 일군 찾는 광고를 넘겨주었다.   씌여진 번호에 따라 버튼을 눌러가는 금이의 얼굴에 또 한가닥의 미소가 어렸다.    “가정부를 요구하세요?”   “네. 애도 보고 가정일도 도울 수 있는 분을 찾습니다.”   젊은 녀자의 목소리가 폰에서 흘러나왔다.   “그럼 제가 그쪽으로 갈게요.”   금이가 약속장소에 나타나자 젊은 녀자는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그녀의 아래우를 깐깐히 훑어보았다. 길이가 같지 않은 두 다리는 량쪽으로 심하게 휘였고 그로 인해 핑크색 웃옷깃이 한쪽이 들리고 한쪽이 처져있었는데 그 모습은 그냥 보기만 해도 곁사람이 막 불편해날 지경이였다.   “가정일을 해보았나요?”    걱정에 가득 찬 눈길을 보내는 젊은 녀자는 말투가 퍽 례의스러웠다.   “못해봤지만 할 수 있습니다.”   금이의 말에 반신반의하며 젊은 녀자는 다시 련락드리겠다고 뒤를 달았다.    이런 일을 한두번 겪는 게 아니였다.    “저기요, 저를 못 믿어서 그러시는 것 같은데 오늘 하루만 시켜주세오. 맘에 안 드시면 월급 안 줘도 괜찮습니다.”   “아줌마 몸이 걱정되서 그러는 겁니다.”   솔직함이 엿보이는 젊은 녀자의 말에서 그녀는 고마움이 느껴졌다.    “이래 봐두 일은 잘할 수 있습니다. 간병일도 식모일도 해봤습니다.”   금이의 당찬 말에서였던지 아니면 간절함이 그득한 마음을 읽어서였던지 젊은 녀자는 드디여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머리를 끄덕였다.   젊은 녀자의 집은 한신아빠트구역이였다.   집안은 꽤 널직하였으나 장식은 소박했다. 금이가 들어서자 젊은 녀자는 객실 여기저기에 널려있던 애 놀이감들을 부랴부랴 주어모았다. 그러면서 얼굴에 어색함을 감추지 못하였다.    “애도 보고 가정일도 하려면 퍽 힘들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하루 이틀 만이라도 괜찮습니다.”   서로의 솔직함에 두 녀자는 편안함을 느꼈고 말없는 웃음 속에 진실함이 흘렀다.    “아침 8시에 애를 유치원에 데려가고 저녁 3시반에 데려오면 됩니다. 그 사이 집청소와 빨래들을 하실 수 있겠어요?”   “알겠습니다. 얼마든지요.”   며칠이라도 좋았다. 아니 단 하루라고 좋았다.   이튿날부터 금이는 젊은 녀자의 집의 가정부로 되였다. 금이는 젊은 녀주인한테서 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따뜻함을 느꼈다.    젊은 녀자는 시 실험중학교 어문교원이였다. 그는 금이한테 자기를 주선생이라고 부르면 된다고 했다.    이튿날 아침 금이가 주선생님 집에 들어서니 주선생은 잠옷 바람에 한창 애한테 밥을 먹이고 있었다.    “일찍 오셨네요. 감사합니다.”   금이는 얼른 옷을 벗고 손을 깨끗이 씻은 후 주선생님 대신 애한테 밥을 먹여주었다.   “얼른 출근하세요, 애는 제가 유치원에 데려갈게요.”   “그럼 수고해주세요.”   금이가 애한테 밥을 먹이는 사이에 주선생님은 간단하게 얼굴을 다듬고는 부랴부랴 출근했다.    금이는 애한테 밥을 다 먹이자 세수를 시키고 머리도 곱게 따준 후 유치원에 데려갔다. 집에 돌아오자 금이는 주방청소부터 시작했다. 먼저 식기들을 씻어서 정연하게 얹어놓은 다음 바닥들을 말끔히 닦아놓았다. 주방청소가 끝나자 객실청소를 시작했다. 구석구석에 널려있는 옷가지들을 정리해 옷궤에 넣어주고 탁자 우에 널려있는 책들을 정리했다. 탁자 우에는 컴퓨터와 무슨 자료 같은 것이 어문교과서와 함께 놓여져있었는데 교과서에는 여기저기에 줄을 긋고 깨알같은 글들이 가득 씌여져있었다. 보니 교수준비를 하고 그만 교과서를 잊고 두고 간 것이 분명했다.    아마도 그 교과서를 가져다주어야 할 것 같아서 금이는 얼른 교과서를 자기 가방에 넣고 휘뚱거리며 계단을 내려가서 자전거에 올라탔다. 그런데 얼마 못 가서 “철컥”하는 소리에 내려서 보니 사슬이 벗겨졌던 것이다. 다시 씌워가지고 가려면 늦을 것 같았다. 금이는 자전거를 거리의 한쪽에 세워놓고 택시를 타고 실험중학교로 찾아가면서 주선생한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종시 전화가 걸리지 않았다. 별수없이 금이는 아픈 다리를 휘청거리며 교과서 앞장에 씌여진 이름을 대고 주선생을 찾아 학교에 들어갔다. 금이가 금방 현관문 앞에 이르렀는데 주선생이 쫓기는 사람처럼 황급히 뛰여나오고 있었다. 그녀가 얼른 교과서를 내밀자 주선생은 마치 오랜만에 친정어머니를 만난듯 기쁨에 겨워 어쩔 바를 몰라했다.   “감사해요. 감사해요. 다음 시간에 공개교수를 하는데 그만 깜박하고…”   자기 머리에 가벼운 주먹을 안기는 주선생은 연신 감사하다고 곱씹었다.    “잘 봐요, 빠뜨린 게 없는지.”   “네. 없습니다. 감사해요.”    주선생은 또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하더니 누가 부르기라도 하듯 부랴부랴 교사 안으로 뛰여들어갔다.    금이는 얼른 학교대문을 나왔다. 한신아빠트까지 걷자면 시간이 적잖게 걸리고 힘에 부칠 수도 있지만 금이는 한차례 어려운 겨룸에서 승부한 장군마냥 뿌듯하기만 했다. 걸음마저 휘뚱거리는 보잘 것없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였다는 그 자체가 금이에게는 최고의 기쁨이였다. 남들은 천천히 걸어도 20분이면 쉽게 갈 수 있는 거리지만 금이는 반시간도 넘어 걸어서야 주인집에 도착했다. 힘들게 걸어오느라 온몸은 땀벌창이 되였지만 꿀물을 마신듯 마음은 즐거웠다. 하다만 객실청소에 빨래까지 마치고 나니 어느새 애를 데려올 시간이 되였다.    금이는 옷을 꿰지르고 부랴부랴 계단을 내려 자전거를 타고 유치원으로 달려가 아이를 데려왔다.    애는 엄마 없이 텅 빈 집에 들어서자 칭얼대기 시작하였다.    “엄마는요? 엄마한테 갈래요.”   낯선 사람이라 애는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엄마 곧 올 거니깐 우리 그림을 그리며 기다리는 게 어때?”   금이는 가방에서 얼른 종이와 연필을 꺼내놓고 그림을 그렸다. 병아리, 토끼, 거부기…   “나도 그릴래.”   말없이 보고만 있던 애는 언제 떼질을 부렸냐 싶게 그림에 호기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금이가 여러가지 동물들을 그려주고 텔레비죤에 애들이 좋아하는 《뽀로로》프로를 켜놓았다. 애는 그림에 정신이 팔려 금이의 말을 고분고분 잘도 들었다.    주선생님은 제시간에 퇴근해왔다. 집안을 둘러보던 주선생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 사이 이렇게 많은 일들을 하셨네요. 고마워요.”   주선생님의 웃음을 보자 금이는 시름이 놓였다. 그가 옷을 주어입고 떠날 차비를 하자 주선생님이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많이 힘드실 텐데 식사라두 하고 가셔야지요.”   금이는 밥을 먹은 것보다 배가 더 불러왔다. 이젠 할 일을 끝냈으니 그도 가서 딸을 챙겨야 하였다. 겨우 뿌리치고 나오는데 주선생이 문을 열고 소리쳤다.   “래일도 그 시간에 오실 수 있겠어요?”   “네.”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대답을 보냈다. 같은 일을 해도 대접이 다르다. “래일 또 오세요.” 해도 좋아서 날 것만 같은데 “오실 수 있어요?” 꼬박꼬박 존대말을 붙일 뿐만 아니라 권리까지 자기한테 양보하는 주선생이 마치 천사같이 느껴지면서 자신의 몸값이 갑자기 오르는 듯싶어지고 자신감도 팍팍 생겼다.     4     애를 싣고 페달을 부지런히 밟으며 귀가하는 금이는 여느 때 같으면 지쳐서 쓰러질 듯했건만 오늘은 웬지 명절날 하늘 높이 떠있는 고무풍선마냥 마음도 붕 떠있었다.   “엄마, 오늘 신났어?”   금이의 표정에서 뭔가를 읽었는지 어린 딸도 덩달아 좋아했다.   “그럼.”    “돈 많이 번 거야?”   “돈두 벌구 이쁜 선생도 만났지.”   “우리 선생만큼 이뻤어?”   “그럼 선생들은 다 이쁜 거야, 선생들 엄청 힘드니깐 말 잘들어야 해. 알았지?”   “알았어.”   이튿날 금이는 전날보다 또 더 일찍 도착하였다. 그때까지 주선생은 아침밥도 먹지 못했고 눈까지 팅팅 부은 걸 보니 아마도 밤을 새며 또 무슨 자료를 쓴 것 같았다. 금이는 주선생도 아이를 데리고 홀로 사는 모습이 자기의 처지와 비슷함을 의식하며 마음이 아련히 젖어왔다.    “제가 간단히 아침 차릴게요. 출근 준비하세요.”   “아침 먹을 시간 없어요. 출근해야 해요. 애한테 아침 챙겨주세요.”   주선생님은 부랴부랴 얼굴을 대충 문지르고 웃옷과 가방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다가 다시 들어와 금이한테 물었다.   “깜빡 잊었네요. 한 학교 선생의 부탁인데 청소 도우미 한집 더 해줄 수 있겠어요?”   “할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금이는 주선생의 마음을 감내하며 눈시울이 젖어올랐다.    이런 일은 매일 하는 것이 아니였다. 다행히도 어떤 집은 한주일에 한번 또 어떤 집은 한주일에 두번씩 요구했기에 주선생네의 일을 하면서도 얼마든지 다른 집의 일을 할 수 있었다. 이렇게 주선생의 소개로 한꺼번에 여러 집 일을 장기적으로 맡게 되였다.   며칠후 금이는 종전처럼 주선생네 일을 끝내고 주선생이 소개한 염선생네 집으로 청소하러 갔다. 주선생처럼 애를 데리고 출근한다는 염선생네 집도 주선생네 집과 같은 모습이였다. 여기저기 책들이 널리고 애 옷이 꿍져있었다. 금이는 하나하나 닦고 정리하고 하면서 마지막으로 침실청소를 하게 되였다. 침실벽과 침대 사이에 손이 나들 수 없는 작은 쯤이 있었다. 들여다보니 지저분하게 뭐가 가득 쌓여있었다. 손을 넣을 수 없자 금이는 플라스틱 비자루에 걸레를 감아 밀어놓고 쓰레기를 한쪽으로 밀어냈다. 다시 깨끗한 걸레를 넣어 먼지를 말끔히 닦아낸 후 쓰레기를 버리려고 주어담는 순간 금이의 눈앞이 반짝 빛났다. 다시 눈여겨보니 굵직한 황금목걸이가 쓰레기 속에 섞여있었다. 얼핏 봐도 몇만원은 쉬이 갈 것 같았다. 갑자기 온몸에 긴장이 쫙 배면서 가슴이 마구 방망이질을 해댔다.    2년전 집세가 껑충 뛰여오르는 바람에 시가지 밖 교외로 집을 옮기면서 아버지의 유일한 유품을 어쩔 수 없이 싼 값으로 처리하던 아픈 추억이 머리를 헤집었다. 어쩜 아버지의 목걸이가 다시 돌아온 거 아닐가 하는 착각도 뒤따랐다. 그녀는 목걸이를 두 손에 받쳐들고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손에 꼭 쥐고 가슴에 대여보기도 하고 목에 걸어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 아버지 것이 아니였다. 금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쓰레기를 버리고 목걸이를 깨끗이 닦아 다시 화장대 앞에 고스란히 놓아두었다.   청소를 거의 마쳤는데 전화에서 낯선 녀자의 독촉이 성화같았다.    “아니 왜 아직도 안 옵니까?”   “인차 갑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독촉전화가 몇번째로 걸려오는지 몰랐다. 금이는 염선생네 집청소를 깨끗이 마무리하고 나서 부랴부랴 자전거를 타고 낯선 녀자의 집으로 찾아갔다.    어지러운 골목길을 에돌아 도착한 곳은 작은 단층집이였는데 집에 들어서니 대낮부터 녀자 넷이 자리를 틀고 앉아서 트럼프를 치고 있었다. 그중 주인인 듯한 녀자가 금이를 맞았다. 얼굴은 요염하게 화장을 했고 깊게 패인 블라우스에 허벅다리가 거의 다 드러나있었으며 긴 손톱은 진한 매니큐어에 가리워있었다.   “아줌마 왜 이제야 와요?”   “선약이 있어서요. 미안합니다.”   “돈을 더 주겠다는데 선약은 무슨. 돈을 벌려면 머리가 팽팽 돌아야지요.”   그리고는 천정을 쳐다보며 실성한 사람처럼 소리내여 웃어댔다.   사지가 펀펀한 녀자가 대낮에 집에서 트럼프치기를 하면서 사람을 불러일 으키는 꼴에 눈이 시려났다. 갑자기 힘이 빠지는 듯하였다. 금이가 주방에서 아니꼬운 눈길을 흘리는데 저들끼리 주고받는 소리가 그의 귀속을 파고 들었다.   “아니 왜 저런 녀자를 불러? 바람이 불면 넘어질가 무섭다야.”   트럼프장을 나누던 나이 지긋한 녀자가 눈알을 굴리며 선코를 뗐다.   “언니 몰라서 그래. 소문 못 들었어요? 저래 보여두 일솜씨만은 재다잖아요. 음식도 잘하구요. 그보다두 삯전 따지지 않구 그냥 주는 대로 받는대요.”    주인녀자가 엄청난 빅뉴스를 방송하듯 얄팍한 눈가죽을 판들거리며 신비스레 주어섬겼다.   “그래? 그럼 우리도 불러야 되겠다야, 세월이 참 좋긴 좋다. 우리 녀자들 발바닥에 털이 돋게 생겼구나. 하하하.”   그들이 언거번거 지껄여대는 소리를 들으며 금이는 더는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돈이 필요하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지만 이처럼 파렴치한 삶을 사는 녀자들의 돈을 벌고 싶지 않았고 아까운 정력을 이런 사람들을 위하여 소모할 수가 없었다.    “저기요, 저 갑자기 일이 생겼어요. 오늘 일할 수 없게 됐어요.”   금이가 막 문을 나가려는데 주인녀자가 막아나섰다.   “나, 돈 많아요. 돈 많이 줄게요. 걱정말아요.”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올리뻗쳤다. 돈을 내걸고 하는 인간모욕을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끝내 품삯 더 주겠다며 지꿎게도 구슬리는 주인녀자를 뿌리치고 나와버렸다. 격분한 나머지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어느덧 석달이 되였다. 주선생은 금이를 자은이엄마라고 불렀고 애는 금이를 그림선생님이라고 불렀다. 금이는 날마다 애를 데려오면 금이가 올 시간까지 그림그리기를 가르쳤는데 애는 제법 빨리 배워냈다. 주선생은 처음에 그냥 애하고 장난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어느 날 애가 작은 병아리를 여러가지 모양으로 그린 것을 발견하고 무척 관심이 생겼다.   “윤지, 이거 우리 윤지 그린 거 맞아?”    “응, 내가 그렸어.”    천진한 애는 머루알 같은 눈을 깜박이며 머리를 끄덕였다.   비록 간단한 그림이지만 연필 쥘 줄도 모르던 세돐짜리 애가 오려대는 품이 제법 장난이 아니였다.    이튿날 주선생은 금이를 불렀다.   “자은이 엄마, 그림그리기를 배운적 있어요?”   “네. 어릴 때부터 결혼 전까지 그냥 그림학원에 다니였어요.”   “아, 그러셨구나.”   “바로 윤지 유치원 부근에 친정 부모님 집이 오래동안 비여있는데 애들이 끝나는 시간부터 선생들 퇴근시간까지 윤지 같은 애들을 대상해서 그림그리기를 가르쳐보세요.”   주선생의 말에 금이의 눈이 순간 반짝 빛났다. 하지만 금이는 도로 표정을 바꾸었다.   “감사합니다만 저한테 아직 그럴 능력이 없습니다.”   사실 그림보습반을 꾸린다는 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고 또한 한마디로 결정할 일이 아님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림종이와 연필 같은 건 애들 자체로 해결한다 하더라도 집세와 그림그리기에 필요한 비품준비에 자금이 적잖게 수요될 게 뻔한 일이였다.    “집은 몇년 비여있던 거라 조금만 청소하면 걱정 안해두 되구요. 흑판과 책상 같은 것들은 가능하게 학교에서 얻을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학부형들을 동원해 될수록 자은이 엄마한테 부담을 주지 않게끔 제가 노력해볼게요.”   그때로부터 금이의 일상은 주선생 덕분에 매일 고정된듯 질서 있게 돌아갔다. 아침 6시면 자전거에 애를 태우고 출근길에 오르고 두시간정도 돌아쳐 주선생네 일을 마무리했다. 그다음은 시간이 자라는 대로 이 집 저 집 다니며 청소를 하다가 3시반부터는 선생들이 퇴근하는 시간까지 애들을 봐주며 그림공부를 가르쳤다. 작은 미술학원에 애들도 하나 둘 불어났다. 주선생의 연줄로 주선생네 학교 교원자녀들이 거의다 온 것 같았다.    온종일 팽이처럼 돌아치고 나면 다리가 쑤시듯 아프고 몸은 피곤에 절어들지만 금이는 학원에 온 애들을 위해 그림가르치기를 조금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녀는 날마다 이를 악물고 버텨갔다. 만약 이 정도로 계속 나간다면 자은이한테 피아노도 사줄 것 같았다. 자은이가 피아노 앞에 앉아서 고운 목청을 뽑으며 생긋 웃는 모습을 떠올리고 나면 하냥 마음이 즐겁기만 하였다. 아득히 먼 꿈으로 느껴지던 것이 야금야금 눈앞에 현실로 박두하는 듯한 느낌으로 그녀는 또다시 힘을 얻군 하였다.     5     주선생네 가사일을 한 지 어느덧 1년이 되였다.   자은이는 주선생의 소개로 부근의 소학교에 입학했다.   금이는 하루도 쉬는 날이 없이 일에 전념했고 하루같이 애들의 미술수업을 해주었지만 돈이 생각대로 쉽게 모아지지 않았다. 그래서 금이는 또 두 로인을 목욕시키는 일까지 맡아했다.    늙은이를 목욕시키는 일은 생각보다 엄청 힘들었고 심중을 기해야 하는 일이였다. 거동이 불편한 로인들이다 보니 그녀의 작은 힘으로 로인의 몸을 받쳐주어야 했고 살집이 없는 몸을 문지르는 자체가 무리였다. 처진 피부가 여기저기로 밀려다녀 도무지 때를 밀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안깐힘을 써서 목욕을 시키고 나면 눈앞에 별찌가 날아다녔고 몸이 휘청거려 항상 벽에 몸을 기대고 한참을 정신을 가다듬어야 했다.    하루는 금이가 두 로인을 목욕시키고 잠간 숨을 돌리려는데 청소를 해달라는 전화가 왔다. 금이는 숨도 돌릴새도 없이 부랴부랴 층계를 내려갔다. 갑자기 눈앞이 까매지면서 계단이 빙글빙글 돌아갔다. 금이는 억지로 란간을 잡고 불편한 다리를 끌면서 간신히 한층한층 내려오다가 더는 버티지 못하고 끝내 출입문어구에 쓰러지고 말았다.   금이가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이미 병원응급실에 옮겨진 뒤였다. 병실에서 간호원들이 분주히 오갔고 이따금 환자들의 비명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왔다. 금이의 팔에는 점적주사바늘이 꽂혀있었고 맑은 액체가 방울방울 떨어져 금이의 혈관에 흘러들고 있었다. 금이는 자기가 어떻게 되여 여기로 왔으며 누가 자기를 이곳으로 데려왔는지 아무 것도 알 수 없었다.    이때 금이의 핸드폰이 울렸다.   “자은이 어머니, 어디세요? 유치원에서 애를 데려가지 않았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제가 깜박했네요.”   금이는 절로 손에 꽂혀있는 주사바늘을 빼버리고 얼이 나간 사람마냥 황급히 병실을 뛰쳐나갔다. 간호사들도 어쩔 새 없이 뛰여나가는 금이를 눈이 휘둥그래서 멍하니 바라볼 뿐이였다.   금이가 허겁지겁 유치원으로 달려가 애를 데리고 주선생네 집에 도착하자 주선생도 이어 퇴근해왔다.   금이의 파리해진 얼굴을 보던 주선생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자은이 어머니 어디가 많아 아파보이는데요?”   “아니 괜찮습니다. 급히 오다 보니 숨이 좀 차서 그런 겁니다. 미안합니다. 저녁밥을 지어놓지 못했습니다.”   “그런 건 걱정마세요. 정말 괜찮으세요?”    주선생은 근심어린 눈으로 금이의 파리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네. 정말 괜찮습니다.”    금이가 웃는 얼굴로 머리를 끄덕여 보여서야 주선생이 조금 시름을 놓는 표정이였다.   “그럼 얼른 가보세요. 자은이가 기다리겠어요. 그리고 래일은 주말인데 푹 쉬세요.”   “네. 선생도 휴식 잘하세요.”   저녁에 집으로 돌아온 금이는 마치 자기가 낮에 황당한 꿈을 꾼 것만 같았다. 아찔한 장면들이 영화필림마냥 눈앞에 오갔다. 하지만 그녀는 하루밤 푹 자면 정상으로 돌아올 거라는 생각을 하며 래일 해야 할 일을 머리속으로 더듬어보았다.   밥을 먹고 숙제를 하려던 자은이가 느닷없이 쫑알거렸다.   “엄마, 오늘 선생님이 내가 피아노를 잘 친다고 칭찬해주었어요.”   “그래? 울 자은이 용쿠나. 인젠 선생님 칭찬까지 다 받구.”   “엄마, 근데 피아노 언제 쯤 사주나? 자은이 피아노 갖고 싶은데.”    딸애의 말똥하니 쳐다보는 눈길을 피하며 금이는 무거운 머리를 끄덕이였다.   “이제 봄이 와 꽃이 곱게 피여날 때면 엄마가 자은이한테 피아노 사줄 거야.”   “그럼 꽃이 피기를 기다려야겠네.”   자은이는 신나서 짤깍짤깍 손벽을 쳐댔다.   금이는 이제 봄이 오면 일체를 불구하고 자은이한테 꼭 피아노를 사주리라 결심했다. 그녀는 자기가 자은이의 존재로 삶을 영위해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것은 숙명처럼 자신을 꽁꽁 묶어놓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자은이를 빼고는 자신의 삶의 의미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겼다.     6     층집너머로 아스랗게 바라보이는 멀리 산릉선에 희끗희끗 보이던 눈들도 사라지고 훈훈한 공기가 남쪽으로부터 봄을 몰고 오며 지긋지긋한 겨울을 밀어내고 있었다.   그 사이 주선생네 애와 학원의 애들도 거의 다 학교에 들어갔다. 금이가 꾸리고 있는 미술학습반도 예전과 다름없이 아이들로 북적거렸고 금이 역시 아이들을 가르치느라 바삐 돌아쳤다. 그녀는 하루도 쉬는 날이 없이 미술학습반 외 가사일을 하면서 악착같이 돈을 벌었다.    해빛이 찬연한 어느 휴식날 금이는 자은이를 데리고 악기상점을 찾아갔다. 악기상점 안에는 별의별 악기가 자리가 모자라게 진렬되여있었다. 제일 눈에 띄우는 곳에 사람의 얼굴까지 환이 비치는 반짝반짝 윤이 나는 피아노가 덩그렇게 놓여있었다. 피아노를 보자 금이는 심장이 저도 모르게 거세게 높뜀을 어쩔 수 없었다. 이것을 위해 금이는 이 몇년간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려왔는지 모른다. 지금 이 시각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아, 피아노!”   자은이는 피아노를 보자 달려가 작은 손으로 피아노를 만지작거렸다.   이제 이달 월급까지 받으면 독일제피아노를 살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세차게 설레이면서 가슴이 뿌듯해났다.   “이제 한달 후면 엄마가 자은이한테 이 피아노 사줄 거야.”   “정말?”   금이는 반짝이는 자은이의 눈동자를 내려다보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확에서 소리없이 뜨거운 것이 솟구쳐올라왔지만 딸애는 보지 못했다.   드디여 한달이라는 시간이 지루하게도 흘러갔다.   로임을 타서 모조리 저금통장에 채워넣고 난 금이는 더없이 격동되였다. 몇번이나 저금통장을 들여다보고 또 보았는지 모른다.    “래일 피아노 사러 가야지!”   혼자소리로 중얼거리는 그녀는 생각할수록 꿈만 같았다. 곁에서 쌕쌕거리며 자고 있는 딸애를 내려다보노라니 또 눈굽이 젖어들었다. 하루만 지나면 집에 반짝거리는 피아노가 들어올 것을 생각하니 종시 잠이 오지 않았다. 이리 궁싯 저리 궁싯하던 금이는 드디여 잠에 빠져들기 시작하였다.   얼마나 잤는지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랴부랴 문을 열었는데 뜻밖에도 전혀 생각지 못했던 자은이 아빠가 문밖에 서 있었다. 취기가 어린 얼굴을 험상궂게 일그러뜨리고 금이를 쏘아보는 꼴이 심상치 않았다.    “자은이를 데려가야겠어.”    금이는 와뜰 놀랐다.   “자은이를 데려가다니요? 갑자기 애를 왜 데려간다는 거예요?”   금이가 온 힘을 다하여 자은이 아빠를 문밖으로 밀어냈으나 자은이 아빠는 가냘픈 금이를 확 밀어제끼고 막무가내로 뛰여들어왔다.    “이제 와서 무슨 렴치로 애를 데려 가겠다는 건가요? 안돼요. 절대로!”   “내 새끼를 내가 데려가겠다는데 렴치라니? 애를 고생시키며 자래울 거면 차라리 내가 데려다 잘 먹이고 잘 입히며 자래우는 게 나을 거야.”   “안돼요. 래일 자은이한테 피아노를 사주기로 했어요. 자은이가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기나 하세요?”   “피아노 같은 소리하고 있네. 당신 이 주제에 피아노가 가당한가? 오늘 자은이를 꼭 데려갈 거야.”   자은이 아빠는 죽기내기로 자기한테 달려드는 금이를 억센 손아귀로 밀쳐버리고 단잠에 빠져있는 자은이를 둘쳐업고 밖으로 뛰여나갔다.   “안돼요, 자은아― 자은아―”   금이가 밖으로 부리나케 쫓아나갔지만 자은이와 아빠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허겁지겁 어둠 속을 헤집으며 달리다가 그만 낭떠러지에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으악.”   갑자기 숨을 톺을 수 없이 가슴이 답답해났고 칼로 가슴을 찌르듯 심하게 아파났다. 멀리 자은이가 아빠의 등에 업혀 가고 있는 모습이 다시 나타났지만 그녀는 더는 부를 수가 없었다. 소리가 목구멍에서 나오지 않고 맴돌아치기만 하였다. 극심한 통증 땜에 가슴을 움켜잡으니 더는 숨이 나오지 않았다. 눈앞으로 수많은 불찌가 날아다니다가 갑자기 하나의 불덩이로 되여 그녀의 목구멍을 틀어막아 버렸다. 눈앞이 점점 흐릿해지더니 나중에는 그만 혼절하고 말았다.    그녀는 속으로 간신히 되뇌였다.   ‘자― 은― 아, 피아노 사러 가자했는데 아빠같이 가버리면 어― 떡― 하― 니…’ 출처:2018년 제1기  
3    [시] 빈집1(외 3수) - 전무식 댓글:  조회:393  추천:0  2019-07-11
 전무식     빈집1(외 3수)   연변은 집들끼리   방마다 그리움을 쌓으며   밤이면 어둠 속을 떠돈다   외삼촌은 떠나기로 했다   외할아버지의 고향을 향해   밤새 보짐을 싸   말린 송이버섯을 담고   날이 새기 전에   한국으로 떠났다   기차를 타고   배 타고 바다 건너   동무 둘 하고 돈 벌러 떠났다     빈집2     엄마는 외삼촌의 기별을 기다리다가   일년 만에 찾아나섰다   석달 뒤 엄마는   서울 변두리 골방에서   다 죽어가는 외삼촌을 찾았다   낯선 집들만 완강하게   저들끼리 웅크리고 있는 서울을   엄마는 밤마다 보았단다       빈집3     엄마는 외삼촌한테   집을 구해주려고   화장실도 창문도 없는 쪽방을 얻어   새벽부터 밤까지   병원건물 청소를 하며   돈을 모으면서   고향 가는 길을 물어봐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단다     빈집4     외할아버지는 술에 취하면   흘러간 옛 노래 테이프를 듣는다   그 노래 속에, 취기 속에   고향땅도, 고향집도 있어   행복하게 잠든다   그러나 꿈속에서도   나그네일 게 뻔하다   이른새벽에 깨여나   쓰린 속을 달래려 마신   해장술에 다시 취하니까 출처: 2018년제1기  
2    [시] 고요한 침묵(외7수) - 도옥 댓글:  조회:385  추천:0  2019-07-11
도옥  고요한 침묵(외7수)   그대 고요한 침묵에  나의 심장의 맥박소리 듣습니다 살아온 날보다 많은 봉우리마다  울려오던 엄마의 메아리처럼 그대 숨결 나를 품어준 대지의 무한 은혜처럼 느껴옵니다   고요한 그대의 나무 우에  내 심장을 달아맵니다 진붉게 울려퍼지는 노을빛 살아있음의  률동 파도칩니다 젖 빠는 아기처럼 슴배이는 대지 사랑에 나의 존재의 울먹임을 새파란 생명을 연출합니다 작고 보이지 않는 그대의 우주는 나를 새롭게 태여나게 하는  우주의 자궁입니다 생명의 근원을 묻게 하고  래일의 빛을 태여나게 하는 그대는  내 남은 전체요 령혼의 천국입니다   없는듯이 구름 뒤켠에 물러서서  나를 지켜주는 이여!    침묵의 말   우연이라 마라  또 사랑이라 가볍게 나풀대지 말자 침묵과 언어의 경계 우에  새벽빛처럼 만나는 그대는 나의 별이다   함부로 입 열지 않는 그대 앞에  대지가 바람의 노래를 들려주었다 골짜기를 내려도 말이 없던 강물 천길벼랑을 뛰여내리며  추락의 리유를 장쾌하게 적는다   그대의 깊은 숨결  땅은 알리라 하늘은 기록하리라 마른 하늘에 찬비가 쓴  칠색무지개 노래하리라 생명의 뿌리들이 봄을 길어올리듯 심해의 저 푸른 응어리들  산호의 전설 바다에 적듯이   그대의 침묵의 사랑은 입 다문 내 심장 말을 하리라 회색빛 하늘 무풍의 시대  마지막 노을빛 절벽 우에!   개울물 편지   누군가에게  살아있는 리유로 힘들게 했다면 신에게 미안한 일입니다 봄나물  푸른 잎사귀가 나붓기는 들길 우에서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 바라보며 허허롭게 갈 수 있는  자유를 부러워했습니다   깊은 숲 골짜기를 내리는 강물에  맨발을 담그며 차고 짜릿한 깨달음에 세상에 절어있는  부끄러운 자신을 씻어보냅니다   버려도 못다 버릴 세월의 때 다 벗고 아이적 뒤강물에 푸들치는  물고기의 자유처럼 나의 하루를 개울에 풀어봅니다   눈물별 반짝이는 저 밤하늘에 그대의 령롱한 눈빛은 신보다 아름다운 말씀의 메아리로  내 삶의 전부를 여울쳐 흐릅니다!   눈물별   누군가 별이 빛난다고 말하면 너무 슬퍼 바람에 살점 내주는 세월이라고 말하라   누군가 세월이 너무 힘들다면 풍진세상 삶의 무게 다 읽어내노라고 그렇게 힘들다고 말하라   누군가 들꽃에도 감사할 줄 안다면 말하리라 그대 사랑하는 눈물별 있어 세상 모든 것 아름다운 것이라고!   외로운 행복   더이상 자유를 바라지 않습니다 당신의 구속이 저의 사랑입니다 당신이 버린 저의 자유는 들바람일 뿐   외로움도 그리움으로 차오르는 밤은 당신으로 행복합니다 별이 깊은 밤 빛나는 리유는 그대의 그렁한 눈빛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달이 지구를 떠나지 않는 리유는 울바자 안에 그대를 포기 못한 달맞이꽃 한송이 피여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려행    그리움은 멀어져가며 깊어집니다 흘러가는 구름과 숲과 바람은  해살과 입맞춤합니다   그리움의 시간 생명의 날개를 퍼덕이며 멀리 날아갈수록  더욱 큰 하나임을 깨달게 합니다   그대의 맥박소리 우렁찬 내 심장 안에 텅 빈 세상   그리움으로 가득 찬 찬란한 메아리로 어둠의 터널 열어버리고   먼곳에서도 빛나는 그대 눈빛으로 나의 천지간을 어루만집니다   님의 25시   바람처럼 저의 숨결이 날개를 단다면 님의 창문가에 내려서 미소 짓는 님의 하얀 이에 키스하고 말 것을 바람처럼 제가 속삭일 수 있다면 님이 곱게 키워낸 창가의 고운 호접란 하얀 꽃잎이 되여 그대의 꿈길 환히 밝혀주는 둥근 달로 솟을 것을 바람처럼 저의 몸이 보이지 않은 률동으로 불어갈 수 있다면 아아 지구 우에 미끄러져가는 님의 고운 버선발에 올올이 푸른 하늘빛으로 내려서 깊은 밤 반짝이는 푸른 별빛으로 여울져서 님의 25시를 흠뻑 적시는 세월로 태여날 것을 바람처럼 바람처럼 님의 페부에 산소가 되고 아름다운 숨결이 되고 찬란한 눈빛이 되여 언제나 님의 심장을 울려내는 진동이 될 것을 아아 님의 삶이 될 것을!   바람처럼 지구 우에 인간의 길 우에 몸부림치는 어느 별 슬픈 눈 멀리 그리운 소식 기다리는 유서보다 더 아름답고 절절한 찬란한 슬픔 모두를 활활 태워버릴 것을 바람처럼 태양의 입술에 키스하고 바다의 가슴에 하나로 젖어 영원한 사랑의 노래 천년을 살 것을 오렌지빛 하늘 덮고 천길만길 깊고 넓은 푸른바다에 하나로 눕고 싶어라 바람처럼   백합녀인   백합을 좋아하는 녀인은 백합보다 아름다운 사람인 줄 자기만 모르시고 백합보다 고운 미소로 피워 앉았네 백합이 피는 시절은 소녀가 고향 떠나 시집가던 날 백합이 곱게 피고지고 소녀는 아름다운 백합녀인 되였네 하얀 백합은 녀인의 순결 빨간 백합은 녀인의 정열 노란 백합은 녀인은 사랑 하얀 백합 하얀 녀인 빨간 백합 빨간 녀인 백합녀인 백합백합녀인, 백합백합녀인   백합이 지는 날 녀인은 백합 속에 들어가 누워버렸네 양지바른 언덕 우에 하얀 봉우리 울 엄마 무덤가에 백합이 흐드러지게 피였네  출처: 2018년 제1기
1    [수필] 엄마가 주신 기쁨 - 유려 댓글:  조회:424  추천:0  2019-07-11
유려    엄마가 주신 기쁨       딸애가 무용수업을 하는 동안 나는 다른 엄마들과 함께 투명한 유리문을 통하여 아이가 수업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군 한다. 한시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수 있는 시간이지만 걸음마를 막 시작한 둘째딸과 함께 그 한시간을 기다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참 쉬운 일이 아니다. 안아줄려면 내려와 걸으려 하고 아직 힘이 오르지 않은 그 짤막하고 여린 다리는 쉽게 넘어져서 큰애가 수업하는 동안에도 몇번씩이나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터뜨리군 한다. 큰딸한테 무용수업을 아예 시키지 않을가 하는 마음도 없지 않지만 남편은 녀자아이한테 무용을 통해 연마되는 아름다운 기질이 참 중요하다며 꼭 보내기를 원하는 마음이라 그것을 쉽게 무시할 수 없었다.   내가 좀 참고 고생하면 되지! 학원비를 아끼지 않는 아빠가 있는데 내 몸이 좀 힘든 거야 얼마든지 참을 수 있어. 엄마로서 이만큼도 힘들지 않는 게 어디 있어! 이러면서 아이의 무용수업을 계속 견지하고 있었다.   무용 선생님은 애들이 수업이 끝나고 나면 꼭 제일 먼저 엄마한테 가서 “저를 기다리시느라고 수고하셨습니다!” 하는 인사를 시키고 이렇게 수고하는 엄마들한테 항상 감사한 마음을 품으라고 가르친다. 나한테는 참으로 위로가 되는 순간으로 되군 한다.   오늘도 무용수업을 마치고 선생님은 예전처럼 아이들한테 당부를 한다.      “수업이 끝나면 엄마한테 ‘수고했습니다’하고 예쁘게 인사하세요!”라고  말하는데 무용수업을 함께 하던 청이라는 아이가 높은 목소리로 불쑥 말한다.     “우리 엄마는 수고를 하지 않아요!” 엄마들은 유리창너머로 그 말을 듣고 일제히 웃음기 어린 눈길로 청이의 엄마를 바라보았다.   무용을 배우는 애들이 네댓살 정도가 되는 아이들이라 이런 말을 한다는 자체가 귀엽고 놀랍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또 궁금하기도 했다.   청이는 우리 엄마들의 그런 호기심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우리 엄마는 집에서 밥도 안하고 청소도 안하고 아무 것도 안하거든요!” 그 말에 엄마들은 웃음을 터뜨린다. 청이의 엄마는 금방 다듬은 듯한 이쁜 매니큐어가 유난히 반짝이는 하얀 손으로 입을 가리며 부끄러운듯 웃는다.   “우리 집에서는 우리 외할머니께서 모든 일들을 다 해요!” 청이는 교실 밖의 엄마들의 웃음소리를 들었는지 힘을 얻은듯 더욱 당돌하게 말을 이었다.   그 말에 어떤 엄마들은 웃음을 거두어들이며 청이 엄마를 바라본다.   “아마 외할머니가 시킨 말일거예요!” 청이 엄마는 아이의 이런 거침없는 발언에 당황한 듯했다. 내리까는 쌍꺼풀눈에 정성들여 그린 아이라인이 보였다.   딸애가 수업하는 무용교실에는 사면이 거울이다. 수업이 끝나고 딸애를 데리러 교실에 들어가는 시간은 내 모습을 전체적으로 비춰볼 수 있는 제일 좋은 시간이지만 나에게는 별로 즐거운 시간이 아니다. 둘째아이를 데리고 큰애를 유치원에서 데려와서 무용수업을 할 때 배가 고플가봐 밥이나 간식을 재촉하며 먹이고 빠듯하게 무용수업이 시작하는 시간을 맞추려면 내 외모나 옷에는 결코 신경을 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옷을 이쁘게 입으면 무엇할가? 둘째아이가 과자 부스레기나 코물을 쥐여바르거나 앙탈을 부리며 옷을 잡아당기기 시작하면 이쁘게 차려입은 옷들은 삽시간에 후줄근해진다. 애를 안았다 내려놨다 앉았다 섰다를 수없이 반복하려면 편한 운동화가 제일이고 운동화에 어울리는 옷을 입으려면 선택할 여지가 별로 없는 게 내 현실이다. 이런 내 모습이 비춰지는 거울을 보는 것은 썩 달가운 일이 아닌 것이다.     무심결에 나는 거울로 내 옆에 서 있는 청이 엄마의 모습을 보았다. 참으로 멋져보였다. 환하게 화장한 얼굴과 20대초반을 방불케 하는 옷차림 그리고 하이힐… 그 옆의 회색 그림자와 같이 뿌연 내 모습이란! 난 그냥 아이들의 손을 끌고 교실을 나와버리고 말았다.   정말 이 세상은 팔자 좋은 사람과 팔자가 별로인 사람의 구별이 따로 있는 것일가? 나는 둘째아이가 유치원 갈 때까지 키워놓고 나면 나도 저런 날들이 올 거라고 믿으며 위안을 해보았다. 그래도 마음이 무거운 것은 왜서일가! 다시 한번 내 마음을 들여다보니 내가 정작 부러운 것은 그 아이의 엄마의 옷차림이 결코 아니였다.   청이의 외할머니께서 집일을 도와주신다던 그 말이 귀가에 쟁쟁 울려퍼진다. 외할머니가 집일을 도와주시지 않아도 큰 아이가 과외하는 한시간 동안에만 둘째 아이를 맡길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가!   초중때부터 병원에 들락날락하시며 항상 아프시던 나의 엄마, 나는 그 시절부터 내 유일한 소원이 엄마가 아프지 않는 것이였다. 하지만 내 소원과는 달리 엄마는 한번, 두번, 세번 중풍을 맞으시고 혈관성 치매로 모든 기억과 의식과 감정을 하나하나 잃어가셨다. 그리하여 나는 그 간절한 소원을 점점 접으며 엄마가 늙어가시며 점점 병세가 위중해지고 있고 내가 엄마를 서서히 잃어간다는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첫째 딸을 낳을 때 친정어머니한테서 산후조리를 바라는 것은 정말 생각도 하지 못했고 아이를 낳으러 병원에 입원하는 순간까지 제발 산후조리하는 기간 엄마의 병이 더해지지 않아서 내가 아이를 안고 병원에 달려가는 일이 벌어지지 않기만을 기도하였다. 나의 큰딸의 이름은 기억하시며 자주 불러주셨지만 둘째 딸을 금방 낳고 엄마한테 보여주러 갔을때 엄마는 담담한 표정으로 약간 배가 고프신듯 내가 차려주는 밥상을 기다리고 계셨다.     ‘아이를 키우는 딸의 수고를 덜어주는 건장한 엄마가 계시니 딸도 호강을 하네… 근데 내 이 꼴은 도대체 뭐지?’      거울에서 청이 엄마와 눈을 마주치는 그 순간 내 머리속에 차고 들어온 생각이였다.   “난 엄마가 나한테 뭘 해줄 걸 정말 바라지도 않아! 제발 아프지만 말아줘…” 큰딸을 낳고 나서 엄마한테 힘주어서 했던 말이다.   “제발 아프지 말아…”어린 시절 엄마를 향한 그 순진무구한 사랑으로 오직 엄마가 건강하길 원했던 마음에서 한 말이였다면 내가 내 아이를 낳고 사는 게 버겁다는 느낌으로 내뱉은 “제발 아프지만 말아줘…” 는 제발 나에게 부담을 주지 말라는 뜻으로 바뀌여지는 것은 내 인생의 얼마나 큰 아이러니인가?   나의 엄마에 대한 사랑은 다 어디로 간 것일가? 엄마가 세상과 련결된 정신줄을 점점 풀어가면서 엄마는 점점 부담으로 나한테 다가왔고 두 아이들을 보살펴야 한다는 내 책임감과 엄마를 보살펴야 한다는 책임감은 드디여 갈등을 일으키기 시작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도 나는 엄마를 돌봐드릴 여력이 없었다.   실내에서만 생활하셔서 유난히 희멀건 엄마의 얼굴을 보면 생각나는 것은 항상 이제 내 인생은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뿐이였다.   무겁고 무거웠다. 엄마가…   그런데 오늘 청이의 외할머니에 대해 하던 말을 들으니 그 청이 엄마가 부러워진다. 과장 하나를 보태지 않고 나는 정말로 미친듯이 그의 엄마가 부러웠다. 아직도 엄마의 사랑을 받으며 여유롭게 살고 있는 그 인생의 상태가 너무나 부러웠다. 엄마의 도움도 도움이지만 나는 그 엄마의 딸에 대한 사랑이 부럽고 나는 엄마의 사랑에 너무나도 목이 마르다.   나한테 끊임없이 매달리는 뭔가를 요구하는 애들과 아웅다웅, 남편과 크고 작은 다툼이 일상화되며 정말로 전쟁처럼 치렬한 일상을 살아내다 보면 엄마의 그 넓은 내리사랑이 사무치게 그립다. 모든 것을 품어주고 굳이 내 주장을 펴지 않아도 굳이 옴니암니 따지지 않아도 그냥 한없이 나를 바라봐주며 만족하던 그 사랑이 그립고 그리웁다.   엄마가 아프시기 전까지 나도 엄마의 사랑을 마음껏 받으며 소중하게 컸는데 지금 뿌연 그림자와도 같은 모습으로 사는 내 자신을 보니 한탄이 나간다. 내가 내 아이들한테 모든 것을 몰부어 사랑하듯, 그런 사랑을 한때 받은 소중한 나였는데 왜 지금 이런 존재로 거울에 비친 내 자신을 감히 마주보지 못하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일가?   ‘엄마, 난 왜 이래?  엄마가 그렇게 사랑해줬는데 지금은 내 꼴이 왜 이래? 왜 이 모양이야?’   아이들이 아빠트단지의 놀이터에서 노는 동안 나는 벤취에 앉아서 마음속으로 엉엉 울었다.   애들의 사랑도 좋고, 남편의 사랑도 좋지만 그래도 엄마사랑이 제일 좋았어! 엄마가 한없이 나를 사랑해주던 때가 너무 그리워.   아무리 내 아이들이지만 그들을 사랑하는 게 참으로 쉽지 않고, 아무리 내 가정이지만 집문을 박차고 나가고 싶은 한계를 느낀다고… 엄마는 어떻게 겪어왔냐고 물으면 그 엇갈리고 흐릿해진 기억속에서 나한테 결코 한마디 말씀도 나누어줄 것이 없는 엄마… 그래서 나는 엄마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데, 사랑이 도대체 뭐냐고? 병들면 이렇게 사그러지는 이 사랑은 도대체 뭐냐고?   이 세상 모든 게 한스러워지며 나는 수많은 슬픈 의문이 가져본다. 인간은 정말 머리에 의해 모든 게 지배되는 것일가? 사랑도 대뇌의 화학반응에 불과한 것인가? 이렇게 잔인한 게 현실이란 말인가? 엄마의 그 비여져가는 머리를 생각하니 기가 막혀온다.   십수년이면 적응이 될 때도 되였는데 난 여전히 엄마 사랑을 받고 싶어…   드디여 눈물이 앞을 가리는 것을 주체 못하며 엄마를 향한 그리움을 담아 핸드폰에서 최근에 찍은 엄마 사진을 찾아보았다.   흐릿한 눈빛, 일그러진 엄마의 얼굴에서 젊은 시절의 엄마 얼굴이 비껴간다. 내가 어렸을 때 기억했던 그 고운 엄마 얼굴들이 비껴간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얼굴들… 그림을 그리듯, 사진을 찍듯 그렇게 또렷한 얼굴이 아니지만 내 몸은 감정으로 그것들을 기억하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엄마가 나한테 주셨던 수많은 기쁨들이 생각이 난다.   엄마품에서 느꼈던 모든 아늑함, 엄마만 뒤에 계시면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뛰놀던 그 샘솟던 힘, 엄마가 계시는 집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던 그 반가움, 엄마의 살 냄새, 밥을 차려주시던 엄마의 손길, 길 건널 때 든든하게 잡고 있던 엄마 손, 이 모든 것으로 엄마는 어린 나의 마음에 기쁨을 주신 것이다.   그 어린 나에게 사랑은 지극히 감각적인 것이였다. 그게 사랑이라는 것조차도 알지 못한 채…   그 당시의 많은 엄마들이 그러했듯이 엄마는 사랑한다는 말을 별로 하시지 않으셨고 그냥 나를 데리고 살으셨다. 특별히 아이를 양육한다는 의미를 두고 오늘날처럼 육아서적을 보거나 교육을 받으신 것도 아니고 그냥 엄마는 엄마가 되여 나는 그의 아이가 되여 참 자연스럽게 그렇게 자라왔다. 특별히 행복하다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았지만 불행하다는 단어도 떠오르지 않았고 그냥 나는 엄마를 따랐고 이 세상에 대한 수많은 호기심과 하고 싶은 일들을 엄마한테 물어보고 재잘재잘 말을 주고받으며 자랐다. 엄마는 그냥 나를 잘 보살펴주셨던 것 같다. 아프시기 전까지… 엄마의 나에 대한 모성은 거기까지였을가!   엄마의 사랑은 과연 무엇일가?   내 안에 있는 엄마와 함께 했던 그 기쁨들이 오늘은 내 모든 슬픔들을 어루만져준다.   아무 것도 모르는 내 어린 시절 나는 엄마한테 그렇게 소중했고 엄마는 모든 사랑으로 나한테 많은 기쁨을 주셨지! 그 젊은 시절의 엄마 얼굴은 정녕 크나큰 사랑의 흔적처럼 내 안에 깊이 배여있는 게 아닌가!   나는 엄마가 주셨던 그 기쁨에 대한 갈망으로 내 가정을 이루며 사랑하며 살지 않는가? 비록 그런 기쁨이 사라진 지금과 같은 나날들이 힘들 때도 있지만 내 마음은 항상 그 기쁨을 갈망하지 않는가? 그게 내가 살아가는 원동력이 아니던가?   내가 엄마의 사랑이 이렇게 그리운 것은 엄마가 나한테 주신 기쁨이 하도 컸기 때문일 것이다. 내 안에 있는 모성처럼 엄마의 모성도 엄마가 건강하실 때에는 나에게 그런 기쁨들을 주려고 참으로 많은 애를 쓰셨을 것이다.   엄마의 얼굴은 지금 일그러져있고 오금이 불편한 엄마는 나한테 그 어떤 현실적인 도움을 주시지 못하지만 엄마의 얼굴의 그 체온이 생생하게 느껴지니 내 삶의 기쁨은 또다시 살아난다. 엄마와 함께 했던 그 수많은 지난날들이 내 마음속에서 빛을 뿌리는 듯하다. 현실의 그 어떤 유익이나 보상이 가져다주는 기쁨과는 다른 차원의 기쁨이였다.   나는 한결 맑아진 마음으로 마음껏 뛰여노는 내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아이들의 기쁨이 보인다… 출처: 2018년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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