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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홍철과 함께 하는 아름다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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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춰모지 후르강을 건너다 댓글:  조회:682  추천:0  2016-09-27
소설 춰모지 후르강을 건느다 리홍철   무리대초원의 한복판을 가로질러 흐르는 작은 실개천-후르강 대초원에 걸맞지 않게 종아리를 조금 넘는 깊이에 열둬살 사내애도 쉬이 건너 뛸 수 있을만큼 좁은강, 그 강변 파란잔디를 방석마냥 깔고 뼈속까지 찡한 개울물에 춰모지는 하얀 발을 담갔다. 그리고 그대로 뒤로 벌렁 누워버렸다. 손만뻗치면 잡을듯이 가까이에 떠있는 하얀 구름덩어리와 뻥 뚤린것 같은 파란 하늘, 그러나 춰모지의 마음은 그대로 그냥 답답하기만 했다. 자꾸만 귓전에서 들려 오는 앙쓔의 울음소리가 아프게 가슴을 허빈다. 흐르는 젓샘때문에 흥건히 젖은 앞가슴은 오늘따라 유난히 통증이 심해짐을 느꼈다. 스르르 감기는 춰모지의 눈가로 눈물이 흐른다. 아니 춰모지는 그것을 눈물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피라고 생각했다. 새끼를 잃은 들짐승의 상처에서 흐르는 고통의 피물이라고 생각했다. -앙쓔! 갑작스레 뭔가 생각난듯 벌떡 일어나 앉은 춰모지는 급급히 호주머니를 들추더니 핸드폰을 꺼내들고 부랴부랴 버튼을 눌른다. 그러나 인츰 단념한듯 스르르 핸드폰을 떨어 뜨련다. 5천여미터의 높은 해발때문에 신호가 없었던 것이다. 춰모지는 조심스레 어깨를 쓸었다. 뜨금한 고통이 전신에 절률을 타고 흐르며 아버지의 높이든 말총채짹이 눈에 얼른거렸다. -너 후르강을 한발짝이만이라도 건너봐!내 어디 가만놔두나… 세상에 태여나서 엄마란 말 한마디 불러 못보고 19살 어린 엄마의 품을 떠난 8개월어린 아들이 너무 눈에 밟혔다. 못본지가 이제 겨우 한달 푼한데 춰모지는 몇년이라는 시간이 흐른듯이 생각되었다. 남편이 서녕시내로 돌아간다 했을때 춰모지는 따라갔어야 했다. 만약 따라갔더면 남편과의 이혼이나 아들과의 생리별은 없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 호통 한마디와 남편의 만류로 결국 목장에 발이 묶이게 되었다. -춰모지! 시내에 가면 안돼. 이제 금방 양들이 새끼 낳을 철인데 너 가면 나혼자 어떻게 30여마리나 되는 양새끼들을 보살필 수 있어? -그래 아버지 말이 맞아. 내가 한달에 한번씩 휴가때 올테니. 그때까지 기다려 그리고 양새끼들이 좀 크면 그때 너 데릴러 올게. 일단 내가 먼저 가서 너 취직자리도 찾아볼테니… 그렇게 떠난 남편은 석달 지나도 소식 한장 없더니 어느날엔가 문득 찾아와서 아무런 이유없이 앙쓔를 안고 떠나버렸다. -앙쓔는 내 핏줄이니 내가 데려갈게. 그리고 너 다른 남자 찾아봐… 아버지가 장막을 비운 사이 남편은 찾아왔고, 무엇때문에 떠난다는 이유도 없이 그저 무심히 떠나버렸다. 갑작스레 닥친 일이라 춰모지는 이유조차 묻지 못한채 멍하니 떠나는 남편만 멀거니쳐다보았다.   소똥이나 양똥으로 덥히는 천막답지 않게 화로는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부글부글 끓고 있는 양고기 삶는 냄새가 천막에 차 넘칠 무렵 벌컥 천막이 젖혀 지면서 커쿨진 사내의 모습이 서늘한 한기와 함께 천막안으로 전해졌다. 아버지 라띵어싸이의 뒤를 따라 목장에서 흔히 보아오던 검붉은 얼굴의 사내가 말총채찍을 들고 들어섰다. 어데서 얼핏 본 느낌의 사내였지만 어데서 보았던지 기억이 잘 떠오르지 않았고 또한 그렇게 깊이 생각할 의미가 없다고 춰모지는 생각했다. -어, 이웃 목장집 조카야. 양 한마리 잃어 버려서 혹시 우리 양무리에 섞였나 보러왔던거구… 춰모지가 건네는 쑤유차를 받아들며 건성으로 머리를 끄덕이는 그를 바라보며 춰모지는 이상하게 그의 몸에서 풍기는 냄새에 신경을 세웠다. 목민들의 몸에서 의례 풍기는 야크젖 냄새나, 소똥 양똥 냄새가 아닌 꽃냄새가 나는듯도 하고 휘발유냄새가  나는듯도 했다. 암튼 나와는 다른 냄새라는데서 어짢은 기분이 조금씩 들었다. -서녕시내에서 자동차정비공으로 일하고 있단다. 오랫만에 이웃목장 친척집에 놀러 왔다는구나. 묻지도 않은 설명을 말수 적은 아버지로서는 꽤 길게 늘여놓았다. -한달 월급도 삼천원씩 받는다네…ㅎㅎㅎ 아버지는 자기가 받는 월급도 아닌데 꽤 기분좋게 말했다. 몇십년을 사용했는지 알수 없는 손가락 길이만큼 이나 길고 좁은 칼날이 어스름이 깃들기 시작한 장막안에서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하고 양기름이 번지르한 총각의 입에서 또 다른 세상의 천방야담같은 이야기들이 봇물 터지듯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거 머쟈제라는 곳에 가게되면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이 무리대초원의 두더지를 몽땅 합쳐놓아도 그보단 적을겁니다.  그리고 층집들은 얼마나 높은지 머리를 쳐들고 보느라면 막 어지름증이 날 지경이구요… 아마 30층은 될듯합니다… 30층? 그럼 깡차진 정부청사보다 여섯배도 넘게 높다는 말인가? 사람들이 여기 초원의 두더지보다 더 많다고? 그게 말이나 돼? 여지껏 목장과 깡차현성밖으로 벗어나본적 없는 춰모지로서는 도저히 믿어 지지 않는 말들이였다. 깡차는 한개 현성에 인구가 1만명좌우밖에 안된다는데…그럼 그쪽 사람들은 집안에앉아있는 사람들 없이 전부 밖으로 나와 다닌단 말인가? -KTV라고 들어봤어요? 술도 마시고 노래도 하는 곳인데  전문 장족들을 대상으로한 곳도 있습니다. 가격은 얼마나 비싼지 네댓명 가서 맥주 조금 마시고 과일안주 조금 먹으면 8백에서 천원이 금방 나온다니깐요… 양고기를 뜯기에 분주하던 아버지의 칼은 어느때부터인가 멈춰버리고 그 총각의 번지르한 입술에 초첨이 멈춰져버렸다.. -뭐가 그리 비싸? 밥 한끼에 양두마리 값이군…ㅉㅉㅉ 그렇게 비싼데 먹는 사람 있어? -있다마다요…그곳 복무원들도 모두 장족인데 원래는 여기 목장 처녀들처럼 얼굴이벌겋고 검실검실했는데 하참! 도시물을 몇달 먹더니만 얼굴이 완전 야크젖색갈로 변햇다구요… 그러면서 총각은 흘깃 춰모지를 건너다 본다. 총각의 도시야담은 자정넘어까지 끊기지 않았다. 춰모지는 피곤기를 느끼여 조심스레 장막을 나섰다. 그러나 쉬이 잠들 수가 없었다. 어스름한 촛불속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춰모지 등뒤로 유령같은 검은그림자가 미동없이 함께 한다. 작은 장막- 이젠 이 장막에 입주해 산지도 벌써 3개월째 된다. 6월초 목장에 올라 오자 바람으로 아버지가 지은 춰모지만의 또 다른 공간이며 어쩌면 춰모지의 인생의 전환점으로 될수도 있는 그런 신비한 저택이다. -에익~ 올해에나 뭐하나 걸려 들지…ㅉㅉㅉ… 언제까지 …에익-퉤! 신경질적으로 내뱉는 아버지의 구시렁 소리에 어쩐지 춰모지는 죄지은듯한 느낌이 들었다. 올해까지 아버지는 삼년째 춰모지의 장막을 짓고 있었던 것이다. 춰모지가 목장으로 올라올 때 한동네의 쥬메이, 산지 등 또래 친구들은 서녕시내로 구직하러 간다고 했다. 언제부터인가 목장밖을 벗어나지 않던 초원의 처녀총각들이 초원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후싸이가 야반도주를 감행했고, 그 뒤를 따라 펑모줘마, 화칭추어 모두가 서녕시내로 일자리 찾아 떠나갔다. 그러나 금의환향한듯 가락지에 목걸이에 검정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나타난 그들을 탐탁지 않게 보는 이들이 많았다… -제길, 저건 뭔 꼴이야?  빨갛게 물든 손톱이랑, 치렁치렁하던 머리를 뭉텅 잘라버린 단발머리랑 이 모든게목민들의 눈에는 너무 어설프게 보였던 것이다. 술만 같이 마시고 돈 받는다는 것이그들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고, 어렴풋하게나마 들은 몸팔아 돈 버는 곳이 시내에는 부지기수로 많다고 들어왔던 그들임에야… 아마도 가락지요, 목걸이며 이 모든 것이 몸팔아 산 것들이라 그들은 생각햇던 것이다. -너 시내 가서 잘된 놈 몇이나 봤어? 기껏 야크젖통이나 주무르고 양털이나 깍던 너가 시내가서 무슨일한다고 그래? 까딱 잘못하다간 사람도 버리고 이 애비 얼굴에 똥칠까지 한단 말이야… 다신 시내간다 어쩐다 말 하지 말어… 시내로 가려던 춰모지의 꿈은 이렇게 말살되고 대신 작은 천막에 언젠가 나타날 양 많고 야크 많은 부자 총각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게 되었다… 근데 오늘 서녕시내에서 자동차 수리를 한다는 그 총각이 또 한번 잠자던 그의 도시진출 꿈에 서서히 불을 붙이게 될줄이야… 꿈결에 코끝을 간지럽히는 그 휘발유 냄새와 꽃냄새가 또 한번 그녀의 마음을 활랑이게 만들었다. -시내 가서 일할 생각 없어? 나 머쟈제에 한국분식집 사장님 잘 아는데 지금 복무원 구하고 있었어… 어느새 들어왔는지 꿈결같이 들려오는 소리 먼저 익숙하지 않는 냄새가 금방 풋잠이 든 춰모지의 코긑을 간지럽혔다. 그러나 춰모지는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 미리 준비가 있었던듯이 담담히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휘부연 촛불속에서 용케도 그 소리임자의 눈길을 주시할 수가 있었다… 촛불보다 더 밝은 빛을 보았고 점점 자신을 향해 세차게 타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오랫만에 찾아온 친구 화칭추어한테서 춰모지는 남편에 대해서 약간 듣게 되었다. 화칭추어 역시 목장을 벗어나 도시로 진출한 장족 처녀중 하나였다. 그가 일하는 가게가 바로 장족이 사장인 KTV였다. 화칭추어 말로는 그저 서빙이나 하지 절대 몸파는 곳이 아니라고 했다. 춰모지는 화칭추어를 믿었다. 어렸을 때부터 같이 자란 가장 믿을만한 친구였기 때문이다. 거짓말 한번 해보지 않은 참으로 순진한 친구였다. 그런 화칭추어한테서 춰모지는 남편한테 새로 사귀는 여자가 있다는 것을 듣게 되었으며 앙쓔는 지금 서녕시내에 그 여자가 키우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분명 결훈후 딴 살림을 차린 것이 분명했다. 심한 배신감이 들었다. 분명히 날 데리러 온다고 했지 애만 데리러 온다고 하지 않았으며 내 직장도 구해준다고 했었다. 근데 결혼 몇달만에 새 살림이라니… 물론 결혼 등기도 없으니 말로 리혼이면 리혼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낳은 자식을 남의 손에서 키우고 싶지는 않았다. 시내로 가고 싶다… 앙쓔를 데려오고 싶다… 그런 춰모지를 화칭추어가 극구 말리고 나섰다. -너 시내에 취직간다면 내가 말리지 않아. 하지만 앙쓔를 찾겠다고 시내에 가면 난말릴 거야. 너 다시 시집가야 하잖아? 물론 애가 있다고 누가 널 꺼리는 건 아니지만그래도 애가 없는 것이 있는것 보다 다시 남자 찾긴 더 좋잖아… -너 직장 구하겠다면 내가 알아볼게. 우리 가게 맞은편에 한국분식집에서 복무원 찾는다고 했어… 맞다. 지난번에도 남편은 말했었지. 한국분식집에서 복무원 찾는다고. 정말 가고 싶었다. 시내로 가면 앙쓔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고, 시내에 가서 출근하면 야크젖같은 피부로 변신할 수 있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남편도 다시 돌아 올 지도모른다… 너무나 순진한 생각을 굴리는 춰모지는 화칭추어한테 단단히 부탁해 두었다. 이제시내에 가면 꼭 그 분식집사장과 말해서 복무원으로 일하게 해달라고. 화칭추어가 돌아간 다음부터 춰모지는 매일밤 황홀한 꿈만 꾸었다. 꿈속에서마저 남편과 앙쓔와 함께 그 맛있다는 우육면을 먹는 꿈도 꾸었으며 야크젖색으로 변한 자신의 하얀 얼굴도 보아왔다. 시도때도 없이 멍하니 얼이 빠진듯이 앉아 있는 춰모지의 변화된 심경때문에 아버지의 고함소리는 점점 그 차수가 잦아졌으며 젖 짜는 순번을 어긴 야크들의 음메소리때문에 아버지의 욕설은 매일 뒷통수에 달고 살았다. -화칭추어가 너한테 뭐라고 했어?  또 시내로 가자고 했어?  똑똑히 들어둬 다시한번 시내에 가겠다는 소릴 입밖에 내봐 가만두나봐! 그러면서 아버지는 허공에 쨩! 하고 말채찍을 날렸다. -세상에 수컷이 그놈 한놈뿐이냐? 내가 열번이라도 장막을 더 만들어줄테니 시집못갈 걱정은 하지도 마! 결혼하고 애가 있다는 것이 다시 시집가는데는 허물이 되지 않는다. 하물며 춰모지의 아버지 라띵어싸이도 친아버지인지 정확히 알수 없는 노릇임에야… 그러나 라띵어싸이는 춰모지한테 아버지로서의 위엄을 엄청 부렸다. 그만큼 아버지의 노릇도 착실히 하려고 한다. 어떻게 착실히 하는지 정확히 알수는 없지만 그저 엄청 관심한다는 것은 춰모지 역시 인정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춰모지가 도시에 가서 나쁘게 변할가 걱정스러웠던 것이고, 역시 자기의얼굴에 똥칠할가 두려워 했던 것이다. 그저 순수하게 목장에서 양새끼나 야크새끼나 많이 불리면서 열심히 일하는 춰모지를 아버지는 바랐던 것이다. 조상대대로 전해내려온 본업을 버리고 도시로 떠나는  동네 젊으니들을 그는 언제나눈꼴 사나워했었다. 근데 자신의 딸 역시 그들을 따라 도시로 가겠다고 나서다니… 사실 자동차정비업을 하는 사내한테는 아버지 역시 많이 끌렸던 것은 사실이다. 한달에 3천원 봉급받는다는 소리에 귀가 솔깃해졌던것이다.  한달에 3천원이면 매달 양새끼 15섯마리 정도 불어난다는 말이 되겠으니 말이다. 그런 남자에게 춰모지를 맡겨도 무난하다는 한순간의 짧은 생각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이다. 그것이 후에는 엄청난 후회로 돌아왔지만… 다시는 향수냄새나고 휘발유 냄새나는 남자를 쳐다보지도 않고 쑤유차 한잔 대접 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화칭추어는 이번에 돌아갈 때 한동네에 사는 다른 여자애 둘도 함께 데려갔다고한다. 춰모지는 멍하니 후르강 저편을 바라보았다. 어린 양 한마리가 쉬염쉬염 풀을 뜯으며 이편으로 오고 있었다. 그러다 서슴없이 껑충 강을 건너 뛰어왔다 다시 건너 뛰어간다. 어미인듯한 암양 한마리의 음메 소리에 장난치듯 새끼양은 갈지자로 뛰여간다. 그리고 저쪽 둔덕에서는 흘레를 원하는 숫야크 한마리가 암야크등에 사정없이 올라타고 있다… 문득 엊저녁 아버가 하던 말이 떠 올랐다. -제길 차라리 저 둔덕너머 외눈박이 더지한테 시집이나 보냈을걸. 그러면 양대가리수 2백개 불기나 하지…올해까지 장막 찾는 놈 없으면 차라리 그놈한테라도 시집 보내버려야지… 외눈박이 더지-흉폭하기로 승냥이와 맨손으로 싸워 이긴 사내다. 거칠기가 말이 아니다. 말 먼저 주먹부터 휘드르고 걸핏하면 옆구리에서 날이 시퍼런 은단검을 꺼내 휘두르곤 한다. 평생을 잇발 한번 닦지 않은듯 누런 잇발은 늘 제대로 닫히지 않은 입술 사이를 비집고 나와 있고 거먼때가 꽉 찬 긴 손톱역시 몇달은 깍지 않은듯 했다. 잃어 버린 한쪽 눈도 일년에 한번씩 치루어 지는 소수민족 운동회때 다른 지방 건달들과 시비가 붙어 싸우다 잃어 버린것이다.  소문이 믿을게 못되지만 외눈박이 더지도 원래는 아내가 있었는데 외눈박이한테 맞아서 죽었다는 풍설도 한때는 떠 돌았었다… 아버지는 그런 남자에게 그저 양과 야크가 많다는 이유때문에 주려 하는것 같았다… 느닷없이 정비공 남편의 냄새가 그리워졌다. 꽃냄새와 휘발유냄새가 어디에서 풍겨오기라도 하듯 길게 한번 들숨을 쉬었다.. 또다시 오는 미지근한 통증을 느끼며 마르지 않은 샘마냥 쉬임 없이 흐르는 젖을 닦기 시작했다. 문득 앙쓔의 울음소리가 간간히 들려 오는듯 했으며 앙쓔에게 넘쳐나는 젖을 물리고 자기는 한번도 먹어보지 못한 우육면을 먹고 싶었다. 남편이랑 같이… -여~ 춰모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춰모지는 사색을 멈추고 장막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거기에서는 아버지가 한창 간밤 폭우에 이그러진 춰모지의 작은 장막을 손질 하고 있었고 외눈박이 더지가 그 옆에서 징그러운 누런 이를 들어내고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살랑살랑 불어 오는 미풍속에 더지한테서 풍기던 구역질 나는 냄새가 섞여 있는듯 했다.   춰모지는 큰 결심이라도 내리듯 지긋이 입술을 깨물고 후르강 저편을 바라 보았다…   에필로그   몇달후 서녕시 머쟈제의 한 우육면집, 익숙한 모습의 여자와 그리고 낯선 남자와 낯선 아이가 우육면을 먹고 있다. 여자는 분명 춰모지인데 남자는 자동차 정비공이 아니였으며 춰모지 품에 안겨 젖을 빠는 아이는 앙쓔가 아니였다. 이때 문득 요즘 한창 뜨고 있는 한국가요 곡이 춰모지의 핸드백 속에서 울려 나온다. 서두르지 않고 조용히 핸드폰을 꺼내드는 춰모지의 아롱다롱한 손톱이 유난이 어색하게 보여진다. -네, 아빠… 전화기 저쪽에서 투박한 라띵어싸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칭추어가 돈 가져 왔더구나. 너가 보낸 그 돈으로 양새끼 서른마리 더 사놨어...그리고 너 언제 시간내서 남편이랑 애들 데리고 한번 놀러 내려와. 어린 양으로 한놈잡아줄게… -네… 춰모지는 무표정하게 전화기 버튼을 눌러 꺼버렸다.   그리고는 몇 젓가락 집지 않은 우육면을 그대로 두고 자리를 털며 일어선다…   (송화강 9기 발표)  
2    줘마 댓글:  조회:739  추천:4  2015-09-01
리홍철     안돼… 이대로 잠들면 안돼… 죽을순 없어… 줘마는 가까스로 눈을 떴다. 흠뻑 젖은 머리카락 사이로 사위를 분별할수 없는 어둠이 끝간데 없이 펼쳐져 있고 간간이 번쩍이는 번개빛 사이로 녹색의 빛갈들이 아직도  초원임을 알려주고있다. 얼마동안 걸어왔고, 얼마동안 기여왔는지 가물가물하다. 그저 아직도 자신이 무리 초원에서 헤매고 있다는 것만은 알고 있었다. 불현듯 몽이 생각났다. 비록 앞다리 하나가 승냥이 덫에 치여 잘려나간  사자견이지만 어쩐지 그놈에게라도 기대고 싶었다. 오한에 걸린듯 온몸은 오싹오싹 떨려난다. 말라붙은것 같은 창자는 인젠 꼬르륵 소리도 멈춰버렸다… 마른 야크고기를 뜯고 싶다. 슬쩍 익힌 양고기를 뜯고 싶다. 고소한 짬바를 먹고 싶다. 그리고 한잠 자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며 줘마는 다시 스르르 눈을 감았다. … …   무리대초원- 서녕시내에서 2백킬로를 달려 깡차에 이르고 또다시 산행길로 150킬로를 달리노라면 말그대로 하늘과 맡붙은 것과 같은 해발 5300미터 높이의 무리 대초원에 이른다. 끝간데 없이 펼쳐진 녹색의 잔디들, 구름같이 흐르는 양떼와 지천에서 뛰어다니는 두더지들… 줘마는 12살때 소학교를 중퇴한 후 처음으로 목장에 왔고 그후 매년 5월이면 엄마와 아버지를 따라 여기 무리목장에 온다. 이곳은 그들의 사유목장이다. 사방 몇십킬로가 모두 그들의 목장인 것이다. 여기서 풀이 마르는 9월말까지 지내고 다시 하산을 하게 된다. 이같은 일정들이 매년 반복되고 하루 한번은 소나기가 내리는 이 광활한 대초원에 인젠 슬슬 지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줘마네는 부자다.  천여마리의 양과 백여마리의 야크, 그리고 7필의 말을 소유한 부자다. 매년 하산땐 큰 숫 양과 큰 숫 야크를 모두 처분하면 적어도 몇십만원의 수입을 올린다. 그리고 이듬해 목장으로 와서는 또다시 양과 말의 개체수가 늘어난다.. 아버지가 말했다. 젠장, 풀만 풍족해도 이것들을 팔지 않어.그러면 명년에는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지… 말이 초원이지 5300미터로 해발이 높다나니 풀의 자람새 역시 더디다 . 크게 자라 봤자 기껏 5~6cm미터에 불과하다. 그래서 겨울에는 몽골로부터 수입한 풀을 멱여야 한다. 그 수입풀의 가격이 너무 비싼지라 이 지역 목민들은 거의 대다수가 하산시에는 큰 양과 큰 야크들을 모두 처분한다. 언제부터인가 낯선 사람들이 드문드문 이곳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말탈줄 모르는 사람들이 소리만 요란한 차를 끌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와서는 과일이며 휴지며 밀가루며 등 생필품을 내여놓는다. 그러면 아버지는 그들에게 양고기와 우유차, 짬바를 대접한다.. 알고보니 그들은 외지에서 온 약재 거간군들이였다. 이곳에 동충하초가 많이 난다는 소문을 듣고 동충하초를 채집하러 온 모양이다. 그들은 아버지한테서 장막 하나를 빌렸다. 그리고는 아버지에게 목장에서 약재를  채집하는 비용이라면서 5천원을 내여놓는다.. 아침부터 분주하다. 아버지는 장막옆에 작은 장막 하나 또 세우고 있다. 그리고 장막 위에는 이쁜 빨간 댕기를 걸어놓는다. 너도 인젠 시집 가야지. 여자 나이 열여덟살이면 시집가서 애를 낳기 딱 좋은 나이야. 그렇게 혼자소리로 중얼거리며 일손을 다잡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줘마는 알지 못할 두려움이 스밀스밀 밀려오는 감을 느꼈다. 두려웠다. 발정난 숫놈 야크의 흘레를 바라볼때면 웬지 모르게 두려워졌다. 어쩌면 저 장막에 그놈의 야크가 뛰어들가 두려웠다.. 너 오늘부터 여기서 자. 아버지는 손을 툭툭 털며 만족스레 장막을 둘러보고는 줘마를 보고 말했다. 심장이 쿵쾅 뛴다. 여지껏 남자라고는 아버지밖에 모르고 지내왔다. 티비도 본지가 오래다. 언젠가 중고로 구입한 애플 핸드폰은 여기 목장에서는 시간을 알리는 작용밖에 할수가 없다. 신호가 뜨지 않으니깐. 어슬어슬 어둠이 깃들기 시작하고 먹이를 찾는 승냥이들의 소리가 간간히 들려 온다.  짬바에 마른 야크고기 한점을 뜯다 말고 줘마는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조금만 더 꾸물거렸다가는 또 아버지의 말채찍이 소리를 낼 거 같았다. 우두커니 장막 한복판에 서있다 말고 양가죽 담요위에 쪼크리고 앉았다. 어스레한 촛불이 부옇게 장막 구석구석을 조금씩 비춰준다. 양가죽 담요 하나와 붉은 이불 한채가 전부다. 그리고 뒤쪽으로 길쭉하게 늘어선 줘마의 그림자가 귀신처럼 미동도 않는다. 큰 장막은 그런대로 정부에서 제공한 태양에네르기 덕분에 등불이 밝지만 줘마의 작은 방은 붉은 초 한대가 전부다. 언제 자리에 누웠는지 줘마는 스르르 눈을 감았다. 7살때 처음으로 가본 서녕시내가 어슴푸레 머리속에 떠오른다. 아롱다롱한 이쁜 옷들, 처음으로 보는 높은 건물들, 구경한적도 먹어본적도 없는 수많은 사탕과 과일들…그리고 이곳 남자애들은 모두가 그리도 잘 생겼었다. 하지만 누구도 줘마와 놀려고 안한다. 목장에는 물이 귀한탓에 1년이 다 가도록 목욕을 하지 못한다. 세수도 물 한바가지로 세식구가 대충 얼굴만 문지르면 끝이다. 이런 줘마의 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어떤 잘 생긴 남자애가 말했다. 울고 싶었지만 소리낼수가 없었다. 감히 그 잘 생긴 남자애의 얼굴을 쳐다볼 용기도 없었다. 문뜩 섬뜩한 느낌에 줘마는 눈을 떳다. 하지만 어느새 꺼진 초불때문에 얼굴을 가려 볼수 없는 어떤 육중한 무게에 숨이 꺽 막혔다. 앗! 숫 야크… 두려워하던 숫 야크가 들어온 것이다. 숫 야크는 줘마의 육중한 양털조끼를 스스럼없이 벗겨낸다. 그런데 손길이 예사롭지 않다. 분명 사람의 손길이다. 그리고 여기 목민들의 꺼칠한 손길이 아닌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길이 금방 발육을 시작한 줘마의 가슴을 거칠게 문지른다. 웬지 모르게 거부감이 없다. 반항할수 없는 무기력함이 줘마를 꼼짝 못하게 하였고 잇따라 이상하게도 묘하게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처음이라는 걸 잊은듯 어느덧 줘마는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다. 거대한 남성의 무서운 돌진에 줘마는 흑흑 느끼다 흘레를 원하는 암승냥이의 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줘마의 신음에 사내는 더욱 거칠어진다. 대초원에 불어치는 폭우보다 더 거센 비바람이 작은 장막에서 불어치고 있었다.  탈진한듯 쓰러진 줘마의 몸은 어느덧  땀벌창이 되었다. 아…끝내 시집을 가는가… 풀린 눈길로 멀거니 천장을 쳐다보며 줘마는 새삼스레 자기한테서 냄새가 난다고 하던 그 잘 생긴 서녕의 남자아이를 떠올랐다. 숫 야크한테서는 향기로운 냄새가 난다. 여지껏 한번도 맡아 보지 못한 향기로운 냄새다. 꽃냄새 같기도 하고 우유 냄새 같기도 한 냄새다. 금방이라도 누군지 알것 같았다. 행운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남자라면 목축민 생활을 접고 시내에 가서 살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내가 내주는 팔베개에 살며시 머리를 얹으며 줘마는 행복한 환상에 사로잡히며 깊은 꿈의 나락에 빠져들어가기 시작했다. 줘마 빨리 일어나. 어느새 밝아온 아침햇살이 줘마의 장막틈사이를 비집고 들어 온다. 눈을 뜨며 줘마는 옆자리를 살폈다. 자기에게 꿈을 주었던 그 야크를 찾았다. 그러나 옆자리는 어느새 텅 비여있었다. 썰렁하게 비여버린 자리는 줘마의 꿈을 산산쪼각내고 있었다. 아무렇게나 널려진 휴지조각들이 엊저녁 일들이 꿈이 아님을 말해주었다.. 줘마는 허겁지겁 일어나 장막밖으로 나왔다. 응당 보여야 할 저쪽 멀리 장막이 보이지 않는다.. 아빠,  그 약초재집군들은 어디 갔어요? 오늘 새벽 일찍 갔어. 두다리가 휘청거리며 현기증을 느꼈다. 깨여지는 꿈들이 쪼박난 유리쪼각같이 아프게 줘마의 마음을 찢었다… 꿈을 버려. 넌 평생을 목민으로 살아야 할 명이야. 어제 밤 일을 알고있는듯 아버지가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저 앙지는 일곱번만에 시집을 갔잖어. 순간 줘마는 가슴이 꺽 막혀오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앙지가 결혼하던 날 두돐이 넘은 아들애는 옆에서 아장아장 걸어다니며 놀고 있었다. 그 애는 한번도 친아빠를 본적이 없으며 앙지 역시 친아빠의 이름 한글자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가 아니였다. 아빠를 모르는것이 전통으로 전해내려온것도 이 부족민들의 문화의 일부분으로 고착됐기 때문이였다. 그럼 난 아직도 몇번을 더 겪어야 한단 말인가? 줘마는 자기의 처녀를 앗아간 그 약초거간군의 모습을 잊을수가 없었다. 이름 한글자라도 기억하고 싶었지만 그는 자기 이름을 말한적이 없었다. 그의 목소리마저 어떻던지 기억에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저 꿈인지 생시인지 어슴푸레 들리던 말소리가 그저 가물가물 기억에 남을뿐이다. 젠장 똥 밟았네. 새벽에 비몽사몽간에 사내가 이렇게 내뱉었던 거 같다. 줘마는 그게 꿈인줄로만 알았다. 그러고보니 사내는 나가면서 줘마에게 저주를 퍼붓고 달아난 것이 정말이란 말인가. 줘마의 얼굴에는 여덟살때 말등에서 떨어져 생긴 상처자국이 왼쪽 눈위로부터 눈섭을 가로 질러 사선으로 길게 나있었다. 그 탓에 왼쪽 눈이 오른쪽 눈보다 훨씬 작게 보인다. 그 사내는 아마도 어둠때문에, 그리고 끓어오르는 욕정때문에 그날밤에는 제대로 살펴 보지 못했던것 같다. 아침에 눈을 뜨고 줘마의 얼굴을 보고는 많이 실망했던 것 같다. 사실 줘마는 밉게 생긴 얼굴이 아니다. 그저 눈에 난 상처가 흠이지 어느모로 보나 비바람에 그슬린 초원의 여느 처녀들과 많이 달랐다. 수십갈래로 땋은 가는 머리태는 늘 윤기 흐르고 정결했으며 천성적으로 하얀 피부는 거친 비바람도 변색시키지 못했다. 성한 한쪽눈만 본다면 맑은 청해호를 보는듯한 느낌이 든다. 맞춤하게 도톰한 입술은 종래로 굳게 닫혀지는 법이 없다. 조금 벌려진 입술 사이로 백옥같은 이빨이 늘 빛난다. 하지만 이 모든 아름다움은 눈위에 난 상처때문에 말끔히 가리워져 보이지 않는다. 아물어 붙은 상처 주위는 검게 변색했고 쪼그라 붙은 눈은 외눈박이 암 승냥이를 방불케 한다. 줘마는 그 사나이의 말이 제발 꿈이기만 바라고 바랐다. 그리고 더욱더 그 사내를 기억에 또렷이 새기고 싶었다. 기억에서 지워질가 두려웠다. 줘마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장막앞의 양똥을 정리하며 야크의 젖통을 쥐어 짜며 짬바를 만드는 일로 일정을 기계적으로 되풀이하고 있었지만 한시도 그 사내의 모습을 기억에서 지워본적 없었다.  약초 장사군이니 명년 이맘때면 또다시 올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지루한 대초원의 일상을 그나마 이겨나갈수 있게 한것이였다. 악마의 배속같은 시커먼 어둠이 금방까지만 해도 새파랗던 무리의 하늘을 뒤덮어 버렸다. 변덕 많은 초원의 날씨에 인젠 습관이 된 줘마는 조급한 기색 하나 없이 장막앞에 산더미처럼 무져진 양똥을 풍천으로 덮었다. 그리고 꾸역꾸역 밀려오는 양떼들을 살핀다. 문득 저멀리서부터 말 한팔이 달려오더니 줘마네 장막 앞에 멈춰 섰다. 양 50마리의 털은 사용했음직한 묵직한 옷에 철렁이는 은단검을 찬 웬 낯선 사내가 줘마네 장막으로 들어섰다. 데모데모 쵸데모 아버지와 수인사를 건네고는 어머니가 건네는 쑤유차를 사양도 없이 받아든다. 양 한마리 잃어버렸단다. 그래서 혹시 줘마네 양무리에 끼여있는지 확인차 왔다고 했다. 초원에서 간혹 다른집 양들이 섞일때가 있다. 사내가 아버지와 이말 저말 담소를 나누는 중에도 이상하게 줘마는 그 남자의 섬뜩한 눈길을 느낄수가 있었다. 이상하게 또 숫 야크가 서서히 떠올랐다. 한줄기 소나기를 피해 장막에 머물던 사내는 비가 그치자 장막을 나섰다. 그리고는 날렵하게 말 잔등에 올라타더니 야릇한 웃음을 머금고 줘마의 작은 장막을 흘낏 바라본다. 오후 비가 한줄금 내리고 멈추는가 싶더니 밤  10시가 되자 또다시 소나기가 쏟아 붓는다. 천둥이 치고 하늘을 가르는듯한 번개불빛에 캄캄칠야 초원도 순식간에 대낯처럼 밝아진다… 우비 한장 거치지 않은, 양털 모포를 뒤집어쓴 거쿨진 사내가 큰 장막을 흘깃 바라보더니 자기집 안방처럼 무람없이 작은 장막의 커텐을 들어 제친다. 악! 줘마는 숨이 꺽 막혔다. 약초채집군한테 당할때도 이 정도는 아니였다. 처녀성을 잃으면서 찢어지는듯한 고통도 소리없이 삼켰었다. 그저 도시진출의 꿈이 약초채집군한테 달렸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근데 지금은 너무 아팠다. 심한 거부감을 느꼈다. 양똥더미와 씨름하고 야크의 능글진 젖통과 씨름하면서도 느끼지 못했던 이상한 냄새를 느꼈다. 문득 줘마의 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하던 서녕시내 잘 생긴 꼬마의 말이 다시 생각났다. 그리고 기억에도 생생한 약초채집군의 그 향기로운 냄새가 저도모르게 그리워졌다. 어디에서 솟아났는지 알바 없는 힘이 줘마의 몸에서 솟아오르면서 힘껏 그 사내를 밀쳤다. 비켜! 한창 끓어번지는 열기를 식힐 반출구를 찾던 그 사내는 줘마의 느닷없는 반격에 순간 어정쩡한 모습으로 쭈크려 앉는다. 왜? 뭐 하는 짓이야?? 나가요! 난 당신이 싫어요! 찢어지는듯한 줘마의 고함소리에 사내는 잠시동안 엉거주춤 하는가 싶더니 다시한번 발동을 건다. 거세게 달려드는 사내를 이기지 못하고 줘마는 탈진한듯 바람따라 흔들리는 풍선인형처럼 그저 그 사내가 하는대로 몸을 맡길수밖에 없었다. 반항할 기운조차 없었으며 그 사내의 몸에서 풍기는 이상한 악취에 정신마저 혼미해 졌다. 어둠속에서 줘마의 눈이 이상한 빛으로 번뜩이였다.  줘마네 목축민 부족은 이전부터 전해내려온 이상한 풍속을 갖고 있다. 타민족과 결혼은 금령으로 전해졌으며 혼인적령기란 정해진 나이도 기준이 없다. 아마도 그저 생육할수 있는가 없는가의 여부에 따라 혼인적령기가 결정되는것 같다. 또한 혼인 적령기가 되는 쳐녀들은 줘마처럼 큰 장막 곁에 작은 장막 하나를 곁들여 세운다. 그것은 이 집에 결혼할 처녀가 있으니 남정네를 구한다는 뜻이다. 길가던 나그네가 하루밤 그 작은 장막에서 여자를 점하고 아침 일어나서 만약 마음에 들면 결혼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먼지 털듯 그 자리를 뜨면 그만이다. 그래서 아버지를 모르는 애들이 적지 않았으며 애 낳고 결혼하는 처녀들이 많다. 그것이 이들한테는 수치가 아니였다. 때론 자식의 전도를 위해 줘마 아버지처럼 본 민족이 아닌 다른 부유한 민족이라도 모르쇠를 대며 눈감아주는 부모들도 때론 있었지만 극히 드물다. 앙지나 쥬메는 일곱명, 다섯명의 사내를 거쳤다 하지만 줘마는 인제야 두명의 사내가 거쳐 지나간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직까지도 여유로운것 같았다. 음메~ 음메~ 아버지가 벌써 양 방목을 떠나는가 보다. 양들은 밤새 장막곁을 떠나지 않는다. 동풍이 불면 장막 서켠으로 무리지어 옮겨 가고 서풍이 불면 장막 동쪽으로 무리지어 옮겨온다.  다리 부러진 사자견은 양들이 자리를 옮기던 말든 관계없이 그저 장막 문어구에 대충 지어준 작은 풍천 굴에서 그때까지 코를 곤다. 줘마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밤새 배설한 장막주위의 양똥을 정리해야 한다. 그리고 야크젖을 짜고 쑤유를 만들어야 한다.  번복되는 일상이 양의 울음소리와 같이 시작되는건 인젠 너무나 평범한 일로 되었다. 반쯤 벗겨진 양털조끼를 여미던 줘마는 그제서야 그때까지 곁에 누워 코를 고는 간밤의 그 숫 야크를 발견하였다. 의례 떠났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 사내가 아직도 누워 있었다. 순간 줘마의 가슴은 긴장감으로 세차게 뛰었다. 고산지대의 거친 바람과 따가운 해볕에 그을릴대로 그을린 사내의 얼굴은 서부대초원의 승냥이를 연상시켰다. 인기척에 사내는 거슴츠레 눈을 뜨더니 줘마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그러다 다시 스르르 눈을 감는다. 줘마는 포기하듯 혼자 장막밖을 나선다. 등뒤에서  잠꼬대하는듯한 사내의 음성이 들려 왔다. 젠장.. 네?? 줘마는 장막을 나서다말고 되돌아서 물었다. 알수 없는 사내의 짜증섞인 목소리가 그의 발목을 잡았던 것이다. 너 얼굴에 흉터는 뭐야? 어제밤엔 보지 못했었는데… 젠장 외눈박이였네. 사내는 질끈 눈을 감더니 모로 돌아누워버린다. 새 신발 신고 좋아 날뛰다가 똥밟은 모습이다. 가끔 그녀의 아버지마저 그녀의 상처를 들먹일때가 있다. 젠장, 너 그 상처때문에 시집이나 제대로  가겠는지 모르겠네. 그저 결혼하자면 아무하구나 해. 결혼례단으로 양 10여마리만 받으면 돼. 사내의 찌르는듯한 말과 아버지의 신경질적인 말이 함께 버무러져 줘마의 가슴을 아프게 찔렀다. 줘마는 파르르 몸을 떨었다. 성한 줘마의 눈에서 또 한번 이상한 빛이 번뜩이였다. 언제부터인가 줘마는 말수가 부쩍 적어졌다. 물어보는 말이나 겨우겨우 대답하는 정도다. 양똥을 정리하다 말고 먼 하늘을 응시하는가 하면 밤늦게까지 잠들지 못하고 장막밖에 쪼크리고 앉아 있기가 일수였다. 그러는 그에게 누구 하나 관심을 보여주는 이가 없었다. 어쩌면 줘마가 이 장막에 거주하는 것조차 까먹은듯 보였다. 또한 그런 부모님들에 대해서도 줘마 역시 관심밖이였다. 그저 시키는 일이나 꾸역꾸역 하면 될려만 때론 그 시키는 일도 제대로 할수 없을 정도로 무기력해진 줘마였으니 그저 아버지의 욕설 주기성이 더 짧아진 것뿐이다. 젠장 저 검은 대가리가 또 우리를 뛰어 넘었군 아버지의 고함소리에 줘마는 머리를 돌렸다 . 머리가 검은 양 한마리가 우리문을 열기도 전에 우리를 뛰어넘어 저 멀리로 뛰어 가고 있었다. 근데 이상하게 아버지는 그 양을 뒤쫓지 않는다.  의례 다시 돌아 오리라는것을 아버지는 알고 있었다. 네깐 놈이 뛰면 어데까지 뛸건데. 밤이 어두워 지면 지가 무서워서라도 돌아 오겠지. 검은 머리 양은 우리를 뛰어넘어 탈출한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매번 저렇게 우리에서 탈출하고는 얼마 안되어 다시 돌아오군 한다.  다른 양들은 우리를 뛰어 넘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것 같다. 그저 우리 문만 열리면 천군만마 같이 함께 무리지어 뛰쳐나갈 뿐이였다. 배가 아프다. 탈난 음식을 먹었는지 이 아침만 해도 벌써 세번째다. 줘마는 주섬주섬 일어서더니 아침에 갔던 그 장소에 또 갔다. 초원에는 화장실이 따로 없다. 으슥진 둔덕밑이면 곧 화장실이다. 친환경적인 자연 화장실이 좋았다. 언젠가 서녕에 갔을 때 들린 백화점 화장실은 정말로 뒤를 보기가 난처할 정도로 너무 깨끗했다. 어쩌면 이렇게도 깨끗한 곳에서 뒤를 볼수 있을가가 의심이 갔다. 웅크려 앉은 자세로 줘마는 미동도 없이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곳엔 머리 검은 양이 한가로이 홀로 풀을 뜯고 있었다. 우리를 뛰여넘은 쾌락의 대가를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 줘마는 벌떡 일어섰다. 불현듯 자기가 검은 양보다도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부…불이야…불이야.. 이른 아침 밖으로 나갔던 엄마의 기겁한 소리에 한가로이 쑤유차를 마시던 아버지가 급히 장막을 뛰쳐나왔다. 불길은 줘마의 작은 장막에서 일어났고 장막은 순식간에 재더미가 되어버렸다. 줘….줘마는…줘마야… 엄마의 기겁한 소리에 그제서야 아버지는 엷은 잿무지로 변한 장막을 발끝으로 후비적거려본다. 엄마, 아빠 잘 있어. 나 이 초원이 싫어. 시내로 갈 거야. 저기 멀리서 말등에 앉아 날아갈듯이 질주하는 줘마의 모습이 아스란히 멀어지고 있었다. 줘마는 쉬지 않고 달렸다. 아마도 거의 두시간은 달린 것 같다. 말도 지치고 줘마도 지쳐가기 시작했다. 태여나서 처음으로 이렇게 빨리, 오래동안 말등에 앉아 본 것 같다.  뱃속에서는 연신 꼬르륵 소리가 난다. 급히 나오다보니 뭐하나 챙긴 것 없다. 마른 야크고기와 쑤유덩어리랑 챙겼어야 했는데 떠날 생각만 하다보니 그만 잊어버린 것이다. 후회 막급이였다. 먹을 수 있는 건 단 하나도 없다.  말등에서 내린 줘마는 저려나는 다리를 비비며 힘겹게 걷고 있다. 말 발자국 웅뎅이에 고인 빗물 둬모금을 추기고 축축한 풀밭에 엉뎅이를 내렸다. 아직도 얼마나 더 가야 초원을 벗어날지 막연하다. 말타고 꼬박 두시간을 달렸으니 적어도 40킬로는 달렸을 거 같다. 대략 짐작으로도 아직 거의80킬로 이상은 가야 한단 말이 된다. 그럼 말 타고 또 거의 네시간을 뛰어야 한다. 근데 말이 걱정이다. 지금 두시간을 뛰고 온몸은 흠뻑 땀으로 젖었는데 이제 또 네시간을 더 뛸 수 있을가? 흠뻑 젖은 말머리를 쓰다듬으며 아침부터 풀 한포기 먹지 못했다는 생각에 말 보기가 저으기 미안해 났다. 줘마는 결심했다. 초원이 아무리 넓어도 이곳은 줘마가 평생을 살아가야 할 곳이 아니라는걸 느꼈다. 언젠가 또 하루밤 자고 결혼할 남자가 생겨도 그 남자와 평생을 함께 행복하게 살 자신이 없었다. 자기처럼 평생을 친아버지마저 모르고 살아갈 자식을 낳을가 두려웠다. 십여마리의 양떼를 끌고 신랑이라 찾아올 냄새나는 대서부의 거친 승냥이도 싫었다. 그리고 작은 초막도 두려웠다. 어둠이 깃들기가 두려웠고 낯선 남자들이 두려웠다. 어쩌면 모두가 발정난 숫 야크로 그저 하루밤 쾌락만 즐기려는 나쁜 남자들 같이 생각되었다. 머리 검은 양이 부러웠다. 아무리 우리에 가두어도 아무때건 뛰쳐나가는 그 용기가 부러웠고 순간이라도 자유로이 초원을 달리는 검은 머리 양이 그렇게도 부러울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울타리도 없는 광활한 초원에서 그저 무형의 올가미에 걸려 반항조차도 못하는 자신이 미워났다. 채바퀴 돌듯 같은 일정으로 하루해를 지우는 지겨운 목민 생활이 신물나게 싫었다. 아직도 얼마나 더 많은 남자가 거쳐갈지 모를 정거장 같은 작은 장막이 두려웠다. 온밤을 뒤척이다 이른 새벽 줘마는 아버지의 장막밖에서 지난번 약초채집군들이 두고간 휘발유 통을 찾아들었다. 이 초원에서 나의 모든 흔적을 지울거야. 그리고 울타리도 없는 이 초원을 벗어 날거야. 시내로 가서 미용으로 상처도 지울거야. 그리고 그 약초 채집군을 찾을거야. 줘마의 그닥 이쁘지 않은 모든 추억은 훨훨 타오르는 세찬 불길에 전부다 없어지는 것 처럼 보였다. 말은 잘 눕지 않는다. 잠 잘 때도 서서 잔다. 그저 병들거나 죽을 임박이면 눕는다. 그런 말의 성질을 잘 아는 줘마는 지금 말이 풀도 뜯지  않고 그저 서만 있는 것에도 말의 건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먼 하늘로부터 서서히 밀려오던 시커먼 먹장구름이 악마의 군단같이 순식간에 초원을 덮어버렸다. 후둑후둑 굵은 빛방울들이 점점 세차게 떨어지고 있다. 불현듯 말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줘마를 팽개치고 오던길로 정신없이 뛰어갔다. 의리란 꼬물만치도 없는 놈. 줘마는 말을 탓하지 않았다. 빙그레 웃음을 짓고 멀어져가는 말의 뒷모습을 바라 보며 생각했다. 그래, 초원은 네가 살아야 할 곳이지. 내가 가는 곳을 네가 따라갈수 없지. 초원밖에는 내가 찾아가야 할 사람이 있지만 초원에는 너를 기다리는 너의 종족들이 있으니깐. 검은 대가리도 인젠 제 굴로 도로 찾아갔겠지… 어느덧 말의 모습은 주먹만큼 작아졌다. 단 한번이라도 뒤를 돌아볼줄 알았던 말은 내처 그대로 뛰어간다. 말은 아마도 저렇게 곧추 뛰어 목장 장막까지 가겠지. 거기엔 야크고기랑, 양고기랑 따뜻한 쑤유차랑 있겠지. 그리고 양우리와 타버린 나의 작은 장막도 있겠지. 줘마는 거기까지 생각하고는 흠칫 몸을 떨다가 발걸음을 재촉했다. 쓰러질 때까지 걸어도 비 피할 곳을 찾기가 힘듬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이곳에 우두커니 계속 서 있을수만 없는 노릇이였다. 창대같이 쏟아지는 비는 도무지 멈출줄 모른다. 줘마는 자기가 어떻게 넘어졌는지 모른다. 아니, 가다가 자기절로 드러누운 게 틀림없었다. 줘마는 가까스로 눈을 뜨다 말고 도로 스스르 감았다. 따뜻했다. 평생 처음으로 느껴보는 따뜻한 온기였다. 엄마의 품에 안겼던 기억이 새롭다. 엄마의 손가락에 감긴 짬바를 빨던 기억도 더욱 푸르르게 다가온다. 코끗을 자극하는 서녕시내 꼬마의 향기와 따뜻했던 약초 채집군의 부드러운 애무에 줘마는 가까스로 눈을 떴다. 온통 새하얗다. 혼령같은 하얀 생령들이 갔다왔다 한다. 내가 죽은건가? 죽으면 안되는데. 난 그 약초 채집군을 찾아야 해. 서녕시내에 한번 더 가고 싶단 말이야… 줘마, 정신이 들어? 귀에 익은 목소리다. 엄마의 조급한 목소리가 분명했다. 젠장, 치료비는 얼마 나왔대? 빨리 치료 끝내고 목장에 돌아가야지. 아버지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또렷이 들려온다. 줘마야, 살아줘서 고마워. 실은 약초채집군이 널 살렸어. 그날 약초 채집군도 초원을 빠져나가다가 폭우와 조우했고 그래서 멈춰서서 폭우가 끊기를 기다려서 빠져나가던 중 초원에 쓰러져있는 줘마를 발견하고 깡차진 병원까지 실어왔던 것이다. 약초채집군은?  줘마는 아직도 흐린 동공으로 급급히 주위를 살폈다. 그 사람은 널 병원에 데려오고는 서녕으로 돌아갔어. 엄마가 줘마의 마음을 읽었는지 중얼거렸다. 젠장, 빨리 가서 검은 대가리 찾아야 하는데. 엊저녁 폭우때 검은 대가리가 우리로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야. 어데가 뒤졌는지. 줘마는 다시 스스르르 눈을 감았다.  우리를 뛰쳐나가 돌아오지 않는 검은 머리 양을 생각했고 목장으로 되돌아간 의리 없는 말을 생각했고 서녕시내로 돌아간 약초 채집군을 생각하며 이제 자신이 돌아갈 그 광활하지만 양우리 같이 좁은 목장을 생각했다. 벗을수 없는 올가미를, 뛰여 넘지못할 그 울타리를 줘마는 숙명적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그곳에는 또 서부 승냥이 같은 그날밤 숫 야크가 기다린다고 아버지는 말했다. 송화강 8기
1    창디봉 댓글:  조회:623  추천:2  2015-09-01
창디봉 리홍철 들쑥날쑥한 바위들 사이를 에돌며 지게군들의 헐떡이는 숨소리가 간간히 들려 온다 . 따가운 4천여미터의 창디 산허리에는 더위를 모른는 초병처럼 군데군데 독수리들이 음산하게 대기하고 있다. 둬치차이단은 지게를 지고 헐떡이는 아들의 말을 거절하고는 약간 두려움에 젖은 눈길로 독수리 무리를 바라 보았다. 창디사원 뒷산에 위치한 창디봉은 먼 옛날 화산폭팔이 일어 났는지 기슭에는 들쑹날쑹한 바위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고, 4800미터 창디봉 정상에는 하늘로 통하는 엘리베이터마냥 검스레한 돌산봉우리가 아스란히 높게 치솟아 있었으며 또한 그것과 비교안되게 바위들 사이사이에 수 놓인 이쁜 파란 연녹색 풀들은 어느 화백이 실수로 물감통을 번져 놓은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수리들은 그런 파란 곳은 피하고 바위굽이나  바위위에 웅크리고 앉아 있어 얼핏 보면 바위인지 톡수리인지 분별이 가지 않았다. 웅크려 앉은 독수리들은 통털어 10여마리는 됨즉했다. 털벗이를 하다 만 야크처럼 모가지만 깃털 하나 없이 뻔뻔하나 워낙 매서웠던 눈이 굶주림에 조금은 처진듯 해도 그래도 독기 하나만은 그대로 살아 있었다. 정확히 오후 6시30분, 청장고원의 태양은 아직도 중천에 걸려 떨어질 념을 안하고 뜨거운 열을 정신없이 내리 쏟고 있었다. 등뒤에서는 아카의 념불소리가 끊이지 않고 구슬프게 울려 퍼진다. 곡소리 하나 없이 묵묵히 사내들 속에 섞여 뒤를 따르는 둬제 짠타번은 지금 가는 아버지의 이 길이 이승에서의 마지막 여정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문뜩 아버지가 지게에서 벌떡 뛰어 내리며 –어서 집에 가자- 하고 소리칠것만 같은 확각이 자꾸 들었다. 아버지는 그렇듯 생을 갈망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렇듯 초원에 집착했다. 초원이 전부였고, 양과 야크 무리가 그의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느 목민들도 별반 다름이 없었을것이였지만 유난히도 초원과 양과 야크에 집착했다.   아버지 둬제마마티는  며칠전부터  속이 더부룩하고 소화가 안되는 느낌을 많이 받더니 언제부터인가 구토를 하면서 피까지 섞인 것을 토하기 시작했다. 몇일 지나면 낫겠지 했지만 병세는 점점 더 심해가기 시작했다. 짜시 줘마는 남편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걱정을 내 비쳤다. 그도 그럴것이 아카를 부르면 적어도 양 한두마리는 내줘야 할것이고 양 한두마리면 둬제 마마티 한테는 살점을 여며 주는것과 마찬가지였으니 저으기 눈치가 보였다. 언제인가 양 한마리가 잃어 진적이 있었다. 둬제 마마티는 창대같이 쏟아지는 폭우를 헤치며 양 찾으러 나섰고 이튿날에야 승냥이들이 먹고 버린 양의 머리를 들고 돌아 왔다. 돌아 와서도 믿고 싶지 않은 현실에 자꾸만 가족들한테 확인한다. 왼쪽 뿔 하나가 꺽인걸 보면 잃어버린 양이 분명하거만 둬제마마티는 그것을 부정하는 말 한마디라도 듣고 싶었던것이다. 만약 누가 그때 우리 양이 아니라면 둬제 마마티는 두말없이 다시 양 찾으러 나섰을것이다 이렇듯 양에 대한 집착이 강한 둬제 마마티에게 아카의 념불 이삼일에 양 둬마리 내준다는것이 너무나 아까웠다. 짜시 줘마는 다시한번 남편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물었다. 둬제 마마티는 목구멍으로부터 가래끓는 소리를 내며 쑤유차 한모금 길게 들이 마신다. 그것은 무언의 답복이였다. 애플 핸드폰으로 음악을 듣고 있던 짠타번은 벌떡 일어 섰다. 해발 4천메터 위치한 목장때문에 핸드폰이 있어도 별수 없이 말을 달려야 했다. 목장부터 쥬메이아카가 사는 동네로 가자면 쉬지 않고 달려도 한시간 반은 달려야 한다.  쥬메이아카는 정부에서 제공한 단독주택에 살고 있고, 동네 5~6호 되는 집들은 모두 아카들이 거주하고있다. 아카네 동네인것이다. 주변에서 쥬메이아카의 념불이 효과가 좋다는 소문은 많이 들어 왔고, 또한 짠타번도 쥬메이아카를 몇번 본적이 있다. 50대 가량의 중년이지만 많이 겉늙어 보인다. 진홍색 승복은 늘 정갈했고, 길 갈때나 앉아있을때나 그의 손에서는 념주가 계속 들려 있고 입으론 념불이 끊이지 않는다. 겉은 중이지만 고기도 먹고 돈만 밝히는 중들이 간혹 있지만 쥬메이아카는 진정한 불교도의 본보기인것 같았다. 그래서 그의 념불이 효과가 좋은건가…   짠타번은 쉬지 않고 말을 달려 쥬메이 아카의 집에 도착했다. 쥬메이 아카는 싫은 기색 하나 없이 익숙한 솜씨로 말등에 올라타더니 길을 재촉했다.  목장에 도착했을 때는 어느덧  저녁 8시반을 넘겨 해가 당금 지려는 순간이였다. 쥬메이 아카는 들어서기 바쁘게 념불을 외울 준비를 다그쳤다. 목탁을 꺼내고, 녹음기를 꺼내더니 손발을 깨끗이 씻고 녹음기에서 울려나오는  승려가에 맞춰 념불을 외우기 시작한다. 그의 념불은 정확히 알아 들을수가 없었지만 대략적으로 몸에 붙은 병마여 부처님의 이름으로 명하니 어서 물러가라 는 뜻인것 같았다. 념불은 장장 2시간가량 이어졌고 둬제마마티는 미동도 않고 무릎을 꿇은 상태로 같이 념불을 중얼 거린다. 그가 살아야 양들도 야크도 살수 있고, 가족도 살아 갈수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래서 서슴없이 아까운 양을 내줄 정도로 “대범함도”보였던것 같다. 쥬메이 아카는 이튿날도 념불을 외웠고, 삼일째도 염불을 외웠다. 야크똥 냄새와 양똥 냄새만 진동하던 장막안에 향불냄새가 진동하고 그 냄새에 어느정도 익숙해 졌을 무렵 아카의 념불도 끝이 났다. 그저 부처님의 뜻을 기다릴 수 밖에 더 별다른 방법이 없다는 말이다. 쥬메이 아카는 인자한 모습으로 머리를 숙여 답례하더니 다시 말등에 올랐다.   목장에서는 누가 병이 나면 의사를 찾는것이 아니라 주로 이렇게 아카를 부른다. 아카는 부처와 통할수 있고, 부처의 뜻을 전달하며 그래서 병도 낫게 한다고 생각했다. 병이 낫으면 부처님의 도움이고 병이 낫지 않는것도 부처의 뜻이라 한다. 그것을 철석같이 믿고 있는 목민들이다. 념불이 끝나고 부처의 뜻이 그의 병을 낫게 한다는것에 소망을 걸어야 했다. 다른 아카들에 비해 쥬메이아카는 시주도 적게 받는다. 원해서 주는것이 아니고 주는대로 받는다. 양 한두마리나 돈백원, 때론 가난한 집에 가서 념불을 외울때는 받지 않을때도 있다. 소문에 의하면 황왠에 어떤 목민들은 아카의 념불 한번에 일년 먹을 것만 남기고 나머지 전부를 시주로 바치는 일도 비일비재란다. 그러니 그에 비해 쥬메이 아카는 정말로 진정한 아카인것이 아닌가 ?    이튿날 짠타번은 말등에 양 두마리를 싣고 쥬메이 아카네 집으로 갔다. 짠타번은 병이 낫지 않은것이 자기 탓이라도 되는듯 미안한 기색을 지으며 머리를 수그렸다.   아카의 말이니 믿어야 했다. 아카의 념불때문에 진단도 잘 나오고 병도 완쾌 된다고 했으니 그렇게 될거라 철석같이 믿어야 했다. 야크 열마리 끌어도 끌리지 않을것 같던 둬제 마마티는 끝내 목장을 친구 둬치차이단한테 맡기고 내려왔다. 병원으로 가겠다는  마마티의 결심은 대단한것이였다. 초원에서 평생을 살아오면서 목장을 남한테 맡기기는 처음인것 같았다.  병원에 입원하고 치료 받는것도 모두 야크와 양과 가족을 위해서였다. 만약 그가 잘못된다면 이 모든것도 없어질것이라 생각했던것이였다. 처음으로 큰 병원에 와봤다. 별로 아팠던 기억도 없고 간혹 병이 난다 해도 스스로 치료가 되었고 그래도 낫지 않으면 아카를 부른다. 하얀 가운을 걸치고 청진기를 목에 건 의사가 등골이 섬뜩하게 무서웠다. 마마티의 명이 하얀 가운과 의사의 청진기에 달린것 같이 생각되었다. 의사의 세심한 진찰이 시작되었다. 승냥이도 두려와 하지 않는 마마티답지 않게 말까지 더듬는다. 의사의 얼굴은 금세 굳어 지더니 그보고 침대에 누워 윗옷을 걷어 올리라 했다. 그러자 마마티의 기색이 금세 당황해지기 시작했다. 목장은 물이 귀한탓에 6월부터 가을까지 목장에서 지내는 동안 많은 목민들은 쉽게 모욕할수가 없다.마마티 역시 례외가 아니였다. 때가 덕지덕지한 배를 의사한테 보인다는것이 너무나 수치스럽다 생각했다. 마마티는 더듬더듬 옷을 올렸다. 의사는 그의 배를 지긋이 누르며 증상을 묻는다. 의사 선생은 짜시줘마한테 말했다. 오후 마마티는 위 내시경을 했다. 빈속에 뭔가 이상한 맛의 액체를 마시고 목구멍으로 호스를 위속까지 집어 넣을때 마마티는 너무도 고통스러운 나머지 괜히 병원에 왔다 싶었다. 아카를 불러 차라리 념불이나 이삼일 더 외웠던걸 하고 후회했다. 마마티는 의사를 그닥 믿지 않는다. 아니 마마티만이 아니라 목민 대다수가 의사보다 아카-즉 중들의 념불을 더 믿는다. 의사는 칼이나 쓴 약 같은 인위적인 대체물에 의거 하지만 중들은 인간의 생사를 주관하는 부처님의 대변이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말은 곧 법이며 그들이야 말로 자기들이 믿고 의지 할수 있는 신성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이번 병원 걸음도 쥬메이 아카가 가보라고 하지 않았더라면 오지도 않았을것이 였다. 이튿날 의사는 짜시줘마를 복도로 불러 내왔다. 무거운 침묵을 깨고 의사는 입을 열었다. 짜시줘마의 얼굴은 긴장으로 급작스레 굳어졌다. 짜시줘마는 입술이 바짝 말라드는감을 느꼈다. 이 세상에 하늘처럼 믿는 남편이 잘못된다면 자기도 살수 없을것 같았다. 짜시줘마는 무거운 걸음으로 병실에 들어섰다. 남편한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난감했다. 몸에 칼을 댄다는 자체를 그들은 부정했다. 양무리를 위해 싸우다 승냥이에게 물려 난 상처는 영광이 될수 있지만 인위적으로 몸에 내는 상처를 마마티는 견결히 부정할것이다.  남편앞에서 말 한마디 하기도 두려워 하던 짜시줘마는 난생 처음 목청을 높였다. 그 어떤 힘으로도 마마티의 고집을 꺽을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수술을 하지도 않으면서 계속 병원에 입원해 있을 수도 없었지만 요즘들어 갑작스에 병세 악화로 구토와 토혈이 심하고 복통을 호소하는 형편에서 퇴원할 수 조차 없는 노릇이였다. 근 십여일간 매일 반복으로 맞는 닝게르처럼 의사의 끊이지 않는 설복은 어제부터 끊겼다. 대신 어느날 조용히 짜시줘마를 찾더니 그에게 마지막으로 한마디 했다. 과연 마마티의 복통은 더 심해졌다. 통증으로 인한 쇼크인지 쇼크빈도도 짧아졌다.   이마에 송골송골 내돋은 마마티의 땀을 닦아주는데 의사가 들어 섰다.   잠든 마마티의 맥박을 대충 짚어보는듯 하더니 조용히 한마디 했다. 짜시줘마는 피곤으로 충혈된 눈길로 멍하니 의사를 쳐다본다. 어느새 눈을 뜬 마마티가 힘겹게 겨우 입을 연다. 마마티의 힘겨운 소리에 짜시줘마는 정신을 벌떡 차렸다. 줘마는 퇴원 수속 하려 일어섰다. 뒤따라 나온 의사가 줘마를 잡는다. 줘마는 이윽히 의사를 바라보더니 조용히 한마디 했다. 줘마의 눈에서는 여태 보지 못했던 살벌한 기운이 흘렀다. 목민들은 보통 병원에서 죽으면 화장으로 장례를 치르나 집에서 죽거나 목장에서 죽으면 천장을 지낸다. 또한 그들이 가장 원하는것이 천장이다. 천장은 그들이 신성시 하는 독수리에 의해 천국으로 갈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줘마 역시 남편의 마지막 길은 그들의 전통적인 방식대로 천장으로  천국에 보내고 싶었던 것이다. 줘마의 생각이자 마마티의 생각이였다. 의사는 멍한 표정으로 돌아선 줘마의 등을 바라 본다. 병원에 올때까지만 해도 말등에 앉아 오던 마마티는 축 늘어진대로 마차에 누워 초원에 들어섰다. 오는 내내 잠 들어 있던 마마티는 마차가 초원에 들어서자 서서히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푸른 초원을 쭉 훑어 보는 마마티의 얼굴에는 평온한 웃음이 흐른다.   목장에 돌아온 삼일만에 마마티는 죽었다. 마마티는 죽기전 단 한마디만 했다.   드디여 창디봉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에는 중턱보다 더 많은 독수리 무리가 군데 군데 무리져 있었다. 금방까지만해도 대가리를 움츠려 뜨렸던 독수리들은 이들의 출현에 날개짓을 하며 반기기 시작했다.  어쩌면 날개짓 소리가 인간들의 박수소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 널려 있는 수많은 두개골들은 아마도 이 독수리 무리들이 천국으로 보내고난 행표인것 같다. 잔혹하게 말하면 인간의 장례식 날은 반대로 독수리들한테는  잔치날로 되는것이였다. (휴~~~ 제발 저 독수리들이 마마티만은 천국으로 보내야겠는데…) 둬치차이단은 걱정이 태산같다. 사람이 죽으면 독수리들이 어느 시체나 먹는것이 아니다. 간혹100구 시체중 한구 좌우는 독수리들이 근본 다치지도 않을때가 있다. 독수리가 먹지 않으면 천국으로 갈수가 없다. 그러면 천국으로는 보내야 하고 별수 없이 가장 신망있는 늙은 아카가 시신을 분해해야 한다. 머리를 자르고, 손팔 다리 매 관절마다 자르고, 독수리들이 먹기 좋게 토막토막으로 잘라서 놓는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금방까지만도 다치지 않던 시체를 독수리들은 순식간에  먹어버린다.  멍하니 서있던 둬치차이단은 쥬메이 아카의 부름소리에 정신을 벌떡 차렸다. 그는 부랴부랴 쥬메이 아카의 분부대로 바위가 적은 평지를 골라  긴말뚝 하나를 박기 시작했다. 워낙  바위산이라 박기가 쉽지 않았다. 텅텅 울려대는 망치소리는 더 많은 독수리를 불러 모았다. 둬치차이단은 조심스레 시체를 내리우고 목에 손가락 굵기의 붉은색 나이론 끈을 묶고는 다른 한끝을 역시 금방 박은 말뚝에 꽁꽁 동여매기 시작했다. 그렇게 동여 매야만이 독수리들이 시체를 사처로 끌고 다닐수 없기 때문이였다.  쥬메이 아카의 념불이 시작되었다. 역시 힘든 속세를 떠나 천국으로 가는 마마티를 위한 축복의 념불이였다. 따가운 햇볕속의 반시간 동안 념불에도 누구하나 미동 없다. 곡소리도 없다. 그 많은 독수리떼들도 털 한대 없는 목을 깊숙히 몸속에 파묻고 조용히 념불소리를 듣고 있었다. 념불이 끝나야만 그들의 잔치가 시작되는것이다. 생각보다 단조로운 장례절차는 끝났다. 하산하면서 둬치 차이단은  짠타번한테 조용히 말했다.    그러면서 언제인가는 자기도 이렇게 독수리에 의지해 천국으로 갈거라 생각 하면서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이튿날 새벽 서너시경에 짠타번과 쥬메이 아카 그리고 둬치 차이단은 다시 창디봉에 올랐다. 마마티의 천국행을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창디봉에는 다행히도 마마티의 해골만 남아 있었다. 붉은 나일론 끊에서 분리된 뻥 뚤린 해골은 마마티가 천국으로 가면서 남긴 마지막 흔적이였다. 뼈토막 하나 남기지 않고 깨끗이 먹어버린 현장은 잔혹하기보다 인간이 속세를 벗어나 천국으로 떠난 례식장 같은 숭엄한 기분이 들었다.  쥬메이 아카는 다시 한번 념불을 외우고는 하산하기 시작했다. 하산을 하면서도 념불은 끊기지 않았다. 그는 분명히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것이다. -성의껏 념불을 외웠으니 부처님은 꼭 천국으로 데려갈 것이다…. 묵묵히 뒤를 따르는 둬치 차이단은 슬며시 자기의 배를 눌러 본다. 그 모습은 어쩌면 천국을 노크하며 느끼는 행운스러운 자의  기도처럼 보였다… 짠타번은 신호없는 애플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깊은 한숨을 내쉰다… 그는 분명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것이였다. 휴- 도시로 갈 꿈은 이젠 접어야 하나 보다. 여기 드넓은 무리 대초원에서 영원히 목민의 후손으로 살아야겠지... 창디봉의 기슭에서는 그들이 타고 온 말들이 여유롭게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이 어스레 보여온다. 속세로 돌아온 영물들….. 짠타번은 내일 아침 또다시 방목을 위해 일찍 일어나야 한다…   2015.도라지 4기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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