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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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할머니의 내음 댓글:  조회:947  추천:0  2013-07-18
할머니의 내음   김태현 언젠가 동료들의 강권에 못이겨 “썩장”을 한숟가락 뜬적이 있었다. 그날도 련며칠 이어진 빈번한 술자리때문에 머리가 흐리터분하고 시도 때도없이 올리미는 숙취로 인해 고통을 겪고있는 나에게 해장국을 먹인다고 이끌고 간 곳이 바로 조선족의 전통음식으로 유명한 돌솥밥집이였다. 물론 그 자리에서도 술 한잔 넘기지 못하고 속이 울렁거려 어려움을 겪는데 동료들이 청한 “썩장” 한그릇이 반질반질 까맣게 윤기나는 곱돌장사기에 담겨 들어왔다. 순간 곱돌장사기에서도 보글보글 끓고있는 “썩장”에서 풍기는 말 못할 퀴퀴하고 비위 상하는 냄새에 얼른 장사기를 옆으로 밀어놓았다. 그런데 동료들은 한사코 나의 앞으로 “썩장”이 끓고있는 곱돌장사기를 당겨다놓는것이였다. 그렇다고 싫은것을 억지로 먹을수도 또 남들앞에 도로 밀어놓을수도 없어 그런대로 묵묵히 곱돌장사기의 귀를 타며 보글보글 끓고있는 “썩장”을 멍하니 들여다보는데 옆자리에 앉아있던 동료가 슬그머니 나한테 숟가락을 쥐여주며 얼른 식기전에 뜨거운대로 한술 뜨라면서 극진함을 보였다. 그러나 나는 동료의 성의에 도리머리를 저었다. 지금까지 50여년의 인생에 주욱 장(酱)이란것과는 인연을 끊고 기름맛으로만 살아온 나는 조선족이 즐겨 먹는다는 된장은 물론 여러가지 종류의 장(酱)을 하나도 먹지 않았던것이다.그러니 나의 인생에 “썩장”은 도저히 입에 댈수 없는 금지물처럼 느껴졌었다. 아무리 숙취로 인해 골머리가 아프고 속이 울렁거려도 도저히 “썩장”에 숟가락을 댈수가 없었다.참으로 이럴 때를 일러서 “울며 겨자먹기”라고 하겠다. 나는 두눈을 꾹 감고 숟가락을 “썩장”그릇에 넣었다.그리고는 국물만 조금 떠서 입에 넣었는데 와, 순간적으로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누렇게 익은 콩알이 그대로 뽀얗게 우러난 국물이 그렇게도 시원하게 목을 적셔줄줄이야?! 더우기 수시로 울렁거리면서 올리치밀던 메스꺼움도 한숟가락 국물에 가뭇없이 사라진채 속이 너무나 개운해졌던것이다. 이게 바로 “썩장”의 참맛이란 말인가?! 나는 두번 다시 뜨지 않으려고 마음먹었던 숟가락을 “썩장”그릇에 넣고 뽀얗게 우러나는 국물을 련속 퍼먹었다. 처음에는 맨 국물만 조금씩 떠서 입에 넣었다면 그 다음부터는 곱돌장사기안을 골고루 누비면서 “썩장”에 함께 넣은 명태며 콩나물과 두부와 누렇게 뜬 콩알까지도 엇갈아 떠서는 볼이 미여지게 먹었다. 나는 오늘에야 비로소 장(酱)이라는 아니, 그가운데서도 “썩장”의 참맛을 진정으로 느낀것 같다.내가 어릴 때 겨울이면 늘 “썩장”을 만드시는 할머니의 모습을 본적이 있다.할머니는 해마다 겨울이면 많은 장을 만들어서는 자식들의 집에 골고루 나누어주셨던것이다. 지금도 수건을 머리에 질끈 동이고 가마목에서 분주하게 돌아치는 할머니의 구부정한 모습을 잊을수가 없다.한겨울 두개의 가마가 나란히 걸려있는 부엌의 세동이들이 커다란 가마에 전날 저녁에 물에 불렸던 누런 메주콩을 골고루 앉혀놓고는 이른 아침부터 시작하여 불을 지피는것이였다. 물론 어머니가 도우셨지만 할머니는 어머니가 하는 일손에 마음을 놓을수가 없다며 당신 자신이 손수 하셨다. 그렇게 반나절 내내 어른들의 팔뚝만한 장작으로 콩가마를 끓이면서 수시로 된장을 풀어서는 콩가마에 자주자주 떠얹어주기도 하였다.그때 어머니가 된장은 왜 풀어서 콩가마에 얹느냐고 할머니에게 물었다가 된 꾸중을 받은적이 있었다. “에구, 에미는 메주가마를 끓이는것도 모르냐? 이 메주가마가 끓기 시작하면 넘쳐나는것을 도무지 당하지를 못하니라, 그래서 된장을 풀어 콩가마에 미리 얹어주면 짠 소금물에 가마가 부풀지 않는다는것도 모르냐?! 에구, 언제 다 배우려나? ” 오후 늦은 시간이 되자 할머니는 콩가마를 헤쳤다.할머니의 손끝에서 잘 익은 누런 콩알이 향긋한 냄새를 풍겼다.나는 동생들과 함께 할머니가 떠주는 콩을 바가지채로 구들 한복판에 놓고서 바느실에 꿰가지고 창밖에 내다 얼구어서 먹는다고 부산을 떨었다.그러나 할머니가 만드는 된장과 썩장에 대해서는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할머니는 커다란 질그릇에 골고루 펴놓은 벼짚우에 하얀 보자기를 씌우고는 그우에 가마에서 잘 익은 누런 콩들을 바가지로 소복소복 퍼서는 그 질그릇에 담고는 또 그 우에 마른 벼짚으로 꽁꽁 덮고 또 그 우에 해진 솜이불을 가져다가 귀여운 아기 감싸듯 꽁꽁 여며서는 집안 한구석에 가져다놓는것이였다. 그렇게 할머니의 손끝에서 해마다 “썩장”이 만들어져서는 우리 집의 밥상우에 올랐었다.그러나 나는 왠지 알게 모르게 퀴퀴한 냄새가 풍겨나오는 할머니의 “썩장”을 도무지 먹을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온 겨우내 얼굴에 구슬같은 땀을 쏟으면서도 곱돌장사기에서 보글보글 끓는 “썩장”을 너무나 맛나게 드셨다. 나는 할머니가 아침마다 끓여주는 “썩장”이 죽도록 싫어졌다. 매일같이 집 한구석에 솜이불로 꽁꽁 여민 커다란 질그릇을 헤치고 검누렇게 뜬 콩을 밥주걱으로 휘저을 때면 이상하게도 아이들의 코물 같은것이 질질 일어나며 더러운 냄새를 풍기는것이 마치도 어린 동생이 이불에 칠한 “응가”냄새를 방불케 하여 보기조차 싫었다.더우기 끓인 “썩장”을 밥상우에 올려놓을 때면 마치도 금방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할머니의 퀴퀴한 이부자리냄새가 함께 묻어나는것 같아 좀체로 먹을수가 없었던것이다. 그렇게 “썩장”은 물론이고 콩으로 만든 장(酱)이라는것과 무조건 생리별을 한채 지금까지 벽을 쌓고 살아왔었다. 그런데 오늘 우연한 기회에 다시 40여년전의 기억으로 남는 할머니의 모습과 더불어 아련하게 떠오르는 할머니의 "퀴퀴한 냄새"가 이 한숟가락의 “썩장”과 함께 나의 가슴에 차분하게 안겨오는것을 어쩔수가 없다. 오늘은 그 냄새가 왜 이다지도 살갑게 가슴에 와닿는지 모르겠다. 먹으면 먹을수록 더 먹고 싶은 한그릇의 “썩장”에서 느껴지는 참맛이 바로 내가 50여년의 인생에서 이제야 깨닫고 느낄수 있는 할머니의 진정한 향기가 아니였을가?! 나는 이렇게 2012년 임진년 그 어느달 어느날부터 시작하여 “썩장”을 먹게 되였을뿐만아니라 콩으로 만든 여러가지 종류의 모든 장(酱)을 하나하나 먹어가기 시작하였다. 할머니의 향기!나는 오늘도 아침밥상에 오르는 “썩장”으로부터 할머니의 향기를 차분하게 느낀다.할아버지도 달게 드셨고 또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도 그리고 우리들의 조상들도 달게 드셨을 “썩장”은 바로 우리 조선민족의 고유한 력사가 슴배인 민족유산의 향긋한 산물이 아닌가?!
4    《엄마》 찾는 《아이》 댓글:  조회:1297  추천:4  2013-05-06
김태현 (화룡) 1 그녀는 이른 아침부터 축 처진 엉뎅이를 들썩거리며 빨래감을 꿍쳐들고 화장실로 향했다. 시누렇게 적셔진 빨래들을 내려다보는 그녀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녀는 화장대우에 놓인 비닐장갑을 끼고 기저귀를 두손으로 빡빡 비비며 빨기 시작했다… 그녀는 힘들게 빤 기저귀들을 탁탁 털어서는 빨래대우에 널어놓았다. 그런데 금방 빤 《기저귀》는 갓난애들의 배설물을 흡수하는데 사용하는 기저귀가 아니였다. 아이들의 기저귀보다 곱절이나 큰 기저귀였다. 그녀는 빨래대우에서 이미 촉촉하게 마른 기저귀들을 하나하나 추려서는 한켠에 차곡차곡 쌓아놓았다. 그리고는 벌겋게 부은 손목을 주무르며 주방으로 가더니 싱크대우에 놓인 라면사발을 내려 이미 굵다랗게 퍼져버린 라면을 후룩후룩 소리를 내며 먹기 시작했다. 그녀는 라면 한오리라도 남길세라 국물까지 말끔하게 마시고는 주방을 나와 땀발이 선 얼굴에 흡족한 미소를 머금고 창문가에 놓인 길다란 침대가로 조심스레 걸어갔다. 침대우에는 두눈이 우뭉하게 꺼져들어간 남자가 퀭하니 천정을 쳐다보고있었다. 《여보, 아유! 우리 큰애기 벌써 잠을 깼네.》 녀인은 해맑은 얼굴에 웃음꽃을 담뿍 물고 침대곁에 다가가 목석같은 남자의 축 늘어진 팔을 들어 이불안에 밀어넣으며 생글거렸다. 그러나 목석같은 남자는 아는지 모르는지 시뿌연 두눈을 천정의 한곳에 고정한채 녀인이 하는대로 맡기고있었다. 녀인은 이불을 들치고 기저귀를 바꾼다. 그제야 남자는 표정이 없는 얼굴에 약간 화색이 도는가싶더니 왼손을 가까스로 끄당겨 두번째손가락을 가늘게 떨며 녀인의 손을 다쳤다. 《아, 우리 큰애기 뭔가 할말이 있네. 왜, 벌써 배가 고프나?》 녀인은 마치도 다 큰 애기를 어르듯 침대에 누운 남자를 얼르고는 돌아서서 주방으로 향했다. 2 2005년 3월 9일 아침, 출근하려고 막 층계를 내리려던 허봉남선생은 갑자기 뒤머리에 강한 충격을 받으면서 자기도 모르게 뻣뻣해나는 목을 꺾으며 그대로 집문앞에 쓰러졌다. 갑작스런 뇌출혈이 머리를 강타했던것이다. 김해월녀사는 남편을 바래고 막 돌아서다가 쿵하고 들리는 무거운 소리에 아이고! 기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맨발바람에 밖으로 내달았다. 허봉남선생은 이미 실신상태에 잠겨 전신이 꽛꽛하게 굳어져가고있었다. 그녀는 급기야 사람을 살리라고 고함을 질렀다. 옆집과 아래, 웃집의 이웃들이 급히 달려나와 연변병원에 구급차를 불러주고 쓰러진 허봉남선생을 조심스레 들어서 집안에 눕히였다. 이렇게 되여 김해월녀사의 남편인 허봉남선생은 그날부터 침대에 의지한채 《식물인간》의 세례를 받으며 지금까지 생명의 끈을 간신히 붙잡고있었던것이다. 3 《말도 말아요. 허선생은 일찍 화룡에서 산촌학교의 교원으로부터 현 문공단 창작원, 연변일보사 기자, 편집, 연변인민출판사 부편심 등으로 사업하면서 조선족문학계에 아동문학의 별처럼 떠올랐고 성인문학창작도 하면서 소설도 많이 써왔는데… 그리고 아직도 할 일들이 태산같다고 늘 입버릇처럼 외우셨는데… 이것이 무슨 날벼락입니까》 김해월녀사의 철문처럼 꾹 닫긴 입을 열기란 쉽지 않았다. 애오라지 남편인 허봉남선생 한분만을 믿고 지금까지 그 남편의 뒤바라지와 내조로 한생을 살아오는 김해월녀사, 지금처럼 살기 어려운 세월에 《식물인간》이 된 남편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는 녀성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되랴만 나는 다시 한번 녀사의 얼기설기 엉킨 주름살속에 감추어진 지친 피곤기를 가려볼수가 있었다. 그러나 9년여의 긴 시간속에 말 한마디 할수 없고 다만 안해가 먹여주는 미음에 의지하여 생명을 유지하는 허봉남선생, 선생은 아는지 모르는지 안해의 지쳐버린 얼굴에 눈길을 멈추더니 멀건 눈동자를 움직이지 않는다. 《당신은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겨우 왼손의 손가락을 하나만 움직이지만 지금은 저만 알고있답니다. 그래도 괜찮아요. 이젠 저도 허선생과 대화가 가능하답니다. 이제 하루빨리 허선생이 병환을 털고 일어나면 그때 허선생에게 당신이 누워있을 때 받지 못한 사랑을 듬뿍 달라고 할거예요.》 김해월녀사는 담백한 웃음을 연연하게 날렸다. 《제가 농촌녀자로부터 지금처럼 살게 된것은 모두다 허선생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생각만하면 두려워요. 나무를 패던 도끼를 들고 갈범같이 날뛰는 아버지의 앞에서도 의연히 저를 안해로… 아버지는 당신이 돌아가실 때에야 비로소 허선생을 사위로 인정해주셨어요. 정말 생각만하면 제가 죽는 날까지 허선생의 종으로 살면 뭐라나요? 저는 행복합니다. 당신은 지금 침대에 의식도 없이 불쌍한 이 되여 누워있지만 저는 살면서 남자 아니, 남편의 직책을 오늘에야 진정으로 알게 되였습니다. 지금은 세 자식들이 모두 대학을 나오고 또 외지에 나가 사업하고있지만 우리 가족은 모두 허선생이 꼭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 세 아이의 아빠로 저의 훌륭한 남편으로 다시 사랑을 주기를 확신하고있습니다.》 녀사의 지친 얼굴에 함박꽃 같은 웃음이 남실거렸다. 《큰딸은 연변의학원을 졸업하고 지금은 연변정신병원에서 의사로 사업하고 막내딸은 북경중의학원을 졸업하고 의학박사로 있으며 둘째가 성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외국에 나가있습니다. 애들은 모두 훌륭한 의사가 되여 아빠처럼 병환에 몸져누운 사람들에게 광명을 준다고 다른 전업은 포기하고 지금처럼 의약을 선택하게 된거죠.》 《아니, 선생과 대화를 나누다보니 우리 큰애기 아침식사를 걸렀네요. 잠시만요. 허선생의 아침식사를 드리고 봅시다.》 그녀는 어깨를 축 늘어 뜨린채 주방으로 들어가더니 찹쌀을 가루내여 만든 미숫가루에 사탕가루 한숟가락을 넣고 더운 물을 좀 두고 숟가락으로 살살 휘젓는다. 그렇게 떡반죽처럼 만들고나선 다시 더운 물을 좀 쏟고 골고루 풀어놓은 다음 한술 떠서 맛을 보더니 쟁반에 받쳐들고 탈싹거리며 창가에 놓여있는 침대가로 다가갔다. 《자, 우리 큰애기 아침을 먹어요.》 그녀는 암죽그릇을 한켠에 놓고 무감각인 허봉남선생의 겨드랑이를 껴안아 일으켜 이불과 베개를 기웃이 쌓아놓은데 기대여 앉혔다. 그리고는 쓰러지려는 허봉남선생을 몸으로 받치고 숟가락으로 암죽을 떠서는 허봉남선생의 찌그러진 입안에 조금씩 흘려넣었다. 그러나 허봉남선생의 입안에 들어가는 죽보다 입가로 흐르는 죽이 더 많았다. 그녀는 급히 휴지를 감아쥐고 허봉남선생의 입귀로 밀밀 흐르는 죽을 훔쳤다. 《허, 어이구-》 그녀의 입에서 숨넘어가는 듯한 한숨소리가 곬을 파며 쏟아졌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그녀는 천천히 죽을 떠서 한술, 한술씩 허봉남선생의 입안에 흘려넣었다. 《에- 취!》 순간 사레 들린 허봉남선생의 입안에서 암죽찌꺼기가 분수처럼 터져나왔다. 삽시에 그녀의 머리와 얼굴이며 몸에 지저분한 토설물이 덕지덕지 묻었다. 《에구, 우리 큰애기 또 애먹이네. 그래 천천히… 천천히 먹어요. 네이…?》 그녀는 손에 감아쥐고 있던 휴지로 얼굴과 가슴을 대충 닦아내고는 다시 암죽사발에서 숟가락을 쥐고 선생의 입안에 조금씩 암죽을 흘려넣었다. 《여보, 왜… 왜 아직도 말 잘 듣지를 않수? 우흑… 그래도 저는 당신의 약속을 지켜드릴거야! 아니, 꼭 지켜내고말거야! 그래요! 많이 먹고 건강한 모습으로 빨리 일어나 이 김해김씨가문의 해와 달과 같은 저를 다시 안 볼거유?》 그녀는 밑굽이 드러나는 죽사발을 숟가락으로 말끔히 모아서는 허봉남선생의 입안에 넣어주었다. 《정말이지 사람이 먹지 않고 어떻게 살수가 있겠습니까? 때문에 저는 허선생의 때식만은 절대 거르지 않습니다. 당신이 오래 사셔야 저의 행복도 지속되는것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제가 이렇게 말씀하면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허선생은 영원히 저의 남편이고 우리 집의 가장이고 세대주이며 김해김씨가문의 맏 사위입니다. 아하, 이것 보세요. 허선생이 잠자겠다고 말하고있어요.》 녀사의 환성에 침대곁에 다가가 허봉남선생을 들여다보았지만 그분은 두눈을 꼭 감은채 아무런 감각도 없이 조용히 누워있었다. 나는 빈 식기를 들고 주방으로 향하는 김해월녀사의 휘우듬하게 굽은 왜소한 뒤잔등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4 《긴 병에 효자가 없다》는 말을 자주 듣지만 오직 한 남자만을 사랑하여 《식물인간》이 된 지금까지도 자기 생명의 열과 빛을 아낌없이 쏟아가는 김해월녀사의 원앙같은 사랑앞에서는 저도몰래 머리가 숙여지지 않을수 없었다. 얼마전 친구의 조카사위가 오토바이사고로 아무것도 모른 채 병상을 지키게 되였다. 그때까지는 그 조카사위가 로무로 해외에서 벌어온 돈으로 생활하던 그들이였던지라 돈 근심은 별로 하지 않았다고 들었다. 그러나 친구의 조카는 남편이 《식물인간》으로 될것 같다는 의사의 말을 듣더니 그날 밤으로 간다온다 말도 없이 사라지고말았다. 그리하여 막 대학입시를 앞두고있던 아들애가 학업을 뿌리치고 《식물인간》이 다 된 아버지의 대, 소변을 받아내며 병간호에 나섰다. 곁에서 보다 못해 친척과 친우들이 동원하여 《식물인간》이 된 친구의 조카사위를 경로원전탁소에 맡겼다. 결국 그는 전탁소에서 홀로 짧은 여생을 버티다가 얼마 더 살지 못하고 49세를 일기로 이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글을 적는 이 순간까지도 친구한테는 미안하지만 자식도 가족도 모두 《식물인간》으로 죽어가는 환자앞에 버려지는 세상 인심에 사람들이 부르짖는 사랑도 이처럼 빈약하다는것을 다시 언급할 따름이다. 나는 식기를 놓고 주방을 나서는 김해월녀사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허충남, 허봉남, 허두남 3형제의 아동문학작품선 《자기를 잃어버린 아이》   60이 청춘이라는 지금세월에 66세인 그녀의 얼굴에 깊게 옅게 패인 주름살로 하여 그 나이를 가늠할수가 없었다. 김해월녀사는 남편의 침대 머리맡에서 책 한권을 가볍게 펼쳐들었다. 《우리 큰애기 잠 잘때가 됐지요. 제가 당신이 쓴 소설을 읽어드릴게요.》 나는 얼결에 김해월녀사가 펼치는 책가위를 곁눈질해보았다. 그 책은 비록 지금은 《식물인간》으로 되였지만 한때는 중국조선족문단의 우수한 아동문학작가로 활약하면서 문단을 주름잡던 허봉남선생이 쓴 아동장편소설 《엄마 찾는 아이》였다. … 병동의 창턱에 놓인 꽃병에는 또 새로운 꽃송이들이 꽃히였다. 밖에서는 어제, 그제만 해도 눈이 푸실푸실 내렸는데 어데서 그런 꽃송이들이 와서 꽃히는지 모를 일이다 … 그날 나는 잠에 들었는지 두눈을 꼭 감고 아무런 반응도 없이 누워있는 허봉남선생에게 책을 읽어드리는 김해월녀사의 담담한 목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집문을 나섰다. 5 지금도 《식물인간》으로 병상을 지키는 허봉남선생에게 책을 읽어주고있는 김해월녀사의 담담한 목소리가 은은히 들리는듯하다. 그렇게 9년여의 긴 세월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남편의 곁을 지키면서 한마디 말도 할수 없고 이런저런 의사표달도 하지 못하는 《식물인간》한테 부부의 인연으로 맺은 사랑의 약속을 지켜오는 김해월녀사, 허봉남선생도 꼭 그같이 착하고 무던한 안해의 지극정성속에 잃어버린 건강을 되찾고 다시 사랑하는 안해의 고운 남자로 되여 꿋꿋이 일어섰으면 얼마나 좋을가. 우리의 주변에는 자고나면 여기저기 괴상한 소음과도 같은 《리혼설》이 불길처럼 횡행한다. 부부의 인연을 맺고 결혼등촉 밝혀놓고 축하의 연무속에 백년해로를 기약하고서도 뿔뿔이 흩어져 울고불고 리혼으로 막을 내리는 경우가 수없이 많다. 사랑에 앞서 녀자의 고운 남자로 되여 백년까지 해로를 다졌지만 어설프게 미운 남자가 되는 오늘의 눅거리 사랑설 때문에 마음만 잔뜩 무겁다. 비록 병때문에 《식물적인 인간》으로 되여 나머지 인생을 병상에서 《미운 남자》로 살아가야 하는 허봉남선생이지만 선생이야말로 여생을 안해의 영원한 사랑속에 행복하게 살아가는 《고운 남자》이다. 나의 귀전에는 지금도 김해월녀사의 책읽는 소리를 은은히 들려온다. 허봉남선생이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 안해의 변함없는 사랑에 감복해할 그런 날이 꼭 올것이라고 굳게 믿고싶다. 또 이들의 사랑이야기가 무정한 하느님을 감동시키고 인정과 사랑이 점점 희박해지는 요즘 세상을 감동시키는 아름다운 이야기로 널리 전해지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허봉남: 1945년 3월 13일 조선함경북도 무산군 출생. 연변대학 졸업, 교원, 기자, 편집 력임. 중국작가협회 회원, 연변작가협회 리사. 우화시집 《불에 타죽은 여우(1982년)》, 아동장편소설 《엄마찾는 아이(1996년)》 등 발표. 연변작가협회 1등상, 리영식아동문학상, 등 다수 수상〕
3    날지 못하는 비둘기 댓글:  조회:976  추천:0  2013-03-15
날지 못하는 비둘기 아침에 눈을 뜨니 바깥 창턱에서 하얀 몸체에 머리부분과 날개끝쪽에 회색과 검은색을 가진 비둘기 한마리가 두눈을 대록거리며 뾰죽한 부리로 창문을 쪼아대고 있었다. 너무나 대견하고 신기하기만 했다. 제꺽 일어나 밖으로 나가보았지만 비둘기는 전혀 날아갈념이 없이 창턱에 고즈넉히 앉은채 부리로 목깃털을 쓰르며 제집인양 너무나 한가했다. 조심스레 다가가 손을 내밀었지만 비둘기는 알은체도 않고 가만히 숨 죽인채 얌전하게 앉아있었다. 한번도 보지 못한 날짐승이지만 이처럼 대범하게 사람의 손에도 반항이 없는것은 처음이였다. 하지만 비둘기는 나의 손안에서도 너무나 여유작작했다. 행여나 누군가가 의식적으로 놓아둔것은 아닌지 여기저기 살펴보아도 집주위를 빙 둘러막은 울바자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비둘기의 몸체는 너무나 따스했다. 순간적으로 비둘기의 하얀 몸체를 더듬어보는 마음이 환하게 밝아지는것만 같았다. 그러나 어딘가에서부터 홀로 날아왔을 의문의 꼬리는 시종 제거되지 못했다. 나는 비둘기를 안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종이박스를 찾아 우선 비둘기집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하지만 비둘기는 종이박스안에서도 너무나 태연자약했다. 그처럼 사람의 손길과 여러가지로 된 주위의 시선과 접촉을 많이도 받아본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비둘기를 찾는 주인이 나타나기전까지 비둘기의 대리주인으로 되여야겠다고 생각했다.그렇게 정성스레 종이박스안에 밥도 주고 물까지 곁들여서 주었다. 비둘기는 아무런 체면도 없이 너무나 잘도 쪼아먹었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다리나 어디 날개라도 부러진 병신 비둘기는 아니였다. (그런데 왜서 날려고 하지 않지?! 아니, 날지 못하지…?!) 나는 한동안 어안이 벙벙하여 금방 준 밥알만 맛나게 쪼아먹는 비둘기만 넋놓고 들여다보았다. 역시나 비둘기는 날지 못하는것으로 사육장에서 기르는 식용비둘기였던것이다. 낮은 종이박스를 자기의 주어진 삶의 보금자리로 간주하고 비둘기는 먹이만 정성껏 쪼아먹는다. 물론 뛰쳐나오려면 아무리 식용비둘기라고 하여도 능히 종이박스의 둘레를 벗어날수도 있으련만 비둘기는 도망이라는 개념이 전혀 없는가보다. 오로지 주인이 던져준 먹이만 탐하고 언젠가가 될지도 모를 주인의 포획물로 자신의 살찐 몸뚱이를 바칠 그날만을 숙명으로 알고 사는것만 같았다. 나는 비둘기가 날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서운함을 배제할수가 없었다. 나의 앞에는 그저 날지 못하는 고기덩어리인 식용비둘기 한마리가가 놓여있을뿐이다. 나는 어쩌면 이 비둘기의 임자를 찾지 못할수도 있다. 아니, 이처럼 아무런 위기감도 못 느끼고 연연한 목숨을 주인만을 위해 혹사하는 비둘기의 재롱이 너무나 슬펐다. 이제 주인이 나타나면 비둘기가 어떻게 될지를 예측할수도 없다. 비둘기우리를 뛰쳐나온 식용비둘기를 두고 주인은 배신감을 느끼고 그대로 잡아서 국을 끓이든 구워서 먹든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할것이다. 아니면 시가지로 가서 꼬챙이뀀점에 팔아버리든지… 아니다! 내가 오산한것 같다. 이 비둘기가 혹시 주인이 시가지로 팔려고 나섰다가 흘린것은 아닐가?! 그렇다면 이 비둘기야말로 자기의 목숨을 너무나도 홀가분하게 건진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급급히 비둘기의 주인을 찾으려던 생각을 달리 할수밖에 없었다.왜 냐하면 주인장을 찾는것과 동시에 이 비둘기의 운명이 뒤바뀌게 될것이기 때문이였다. 갑자기 비둘기가 “구구구” 야릇하게 쾌창한 울음소리를 흘렸다. 어쩌면 함께 있던 자기의 동료들을 찾는 부름소리는 아닐가?! 아니면 지극정성으로 자기한테 먹이와 물을 주고 이만큼 키워준 주인을 찾는 애타는 부름소리일가?! 나는 두손을 내밀고 종이박스안에서 비둘기를 꺼내들었다. 백설같이 하얀 털밑에 살이 포동포동 오른 너무나 귀여운 따스한 몸체였다. 나는 비둘기의 머리부터 시작하여 하얀 깃털까지 살살 가볍게 어루쓸어주었다. 그런데 부지중 뾰죽한 아픔이 손끝을 살짝 찔렀다. 비둘기의 날개죽지를 쳐드니… 아하, 원래는 이런 판국이였었다. 누군가가 비둘기 날개의 깃털을 잘라버렸던것이다. 그러니 이 비둘기는 날지를 못할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었던것이다. 나는 비둘기의 아픔을 가슴으로 헤아리기로 했다. 그날부터 종이박스안에는 언제나 맑은 물과 하얀 이밥과 강냉이쌀이 소복하게 쌓여있었다. 이제 비둘기의 하얀 꿈이 실현되는 그날이면 나도 그리고 비둘기도 자연스레 자기를 감금하고 자유를 박탈하던 이 종이박스안에서 하늘로 훨훨 날아오를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오늘도 종이박스안에 하얀 이밥과 강냉이쌀과 물을 넣어주는것을 잊지 않고 있다. 물론 나날이 눈에 띄게 커가는 비둘기가 아니, 비둘기의 날개죽지 깃털을 바라보며 꿈을 잃은 비둘기에게 나만의 아픈 꿈을 조용히 곱다랗게 실어주고 있다. 이제 그 꿈이 현실로 되여 갈 때 비둘기는 정말 하늘로 날아오를수가 있을가?! 비둘기는 아직도 하늘을 날지 못한다. 하지만 비둘기는 알지 못할것이다. 누군가가 아니, 자기에게 먹이와 물을 주고 정성껏 키워주던 주인이 결국 비둘기가 하늘을 날지 못하도록 날개의 깃털을 잘라버렸다는것을!
2    높 이 자 댓글:  조회:1065  추천:1  2013-02-18
[재담] 높 이 자 ○ 김태현 등장인물: 허 (남), 홍(녀) (홍 나와서 관중들을 향해) 홍: 높이자, 다음은 재담을 들으시겠습니다. 높이자! 재담 “높-이-자!” 허: (등장하며) 여보, 홍동무. 홍: 왜 그러세요? 허: 아니? 홍동무 뭘 높여요? 홍: 예, 높여요. 높인다니깐요. 허: 아니, 높이긴 뭘 자꾸 높인단말입니까? 그래 더 높이면 아이구 숨이 차라. 지금 출근하고있는 우리 예술단청사 5층도 오르내리기 힘겨운데, 아이구 생각만 해도 아찔아찔 혈압이 자꾸 오른다구요.(머리를 젓는다.) 홍: 허동무! 허: 아니, 글쎄 사람마다 모두 높은 층집에서 살기를 좋아하니 거참 좋습니다. 좋아요. 이제 10층, 20층, 30층짜리 문화주택이 우리 화룡시내에 우후죽순마냥 쫙 일어나라 그말이지요. 예, 좋습니다. 아주, 아주 좋아요. 홍: 아니, 이 동무가 웬 층집타령이세요? 원… 이렇게두 지식이 단식하구 무식이 풍부하시다구야. 그러기에 동무가 문화수양을 좀 높여야 하겠다 그말입니다. 허: 아니, 내가 문화수양이 낮다? 건 도대체 어떻게 하는 소리요? 자, 보시라구요. 면도도 싹싹, 구두도 반질반질, 양복도 이렇게 주름을 쫙- 세워서, 이거 보시라구요. 에크, 자칫하면 홍동무의 여린 손이 베여지겠군! 홍: 이건 말이얘요. 허동무의 외모에 대한 문화수양이 약간 높아졌다는건데 속을 파보면 아직도 한메터 팔십센치메터되는 허동무의 키만큼 덜 높아졌단 그말입니다. 허: 뭐? 속이요. 그러면 자, 속두 보시오. (양복을 제치고) 내의도 깨끗하구, 더 속을 파보면 하루에 한번씩 온천목욕탕에 가서 손톱눈까지도 사우나한다구요. 홍: 아이구, 이 동무가 제가 말하는건 그런게 아니라 속, 즉 정신, 도덕적인 문화수양을 높여야 한다고 말하는겁니다. 허: 아, 여보! 그거라고 못 높을건 뭐요? 홍: 우선 지금 말씀하고 있는 허동무의 언어의 문화수양을 들수 있지요. 아무리 지방습관이고 한 일터의 동료라고 해서 자기 부인도 아닌 남의 녀자를 보고도 덮어놓고 “여보!”, 그리고 자기 아래사람이라고 해서 그 사람의 인격과 자존심도 몰라주고 마치 무슨 고위급간부가 부하라도 부르듯이 반말, 이를테면 싸래기같은 말을 하는것들말입니다. 허: 아니, 싸래기같은 말이라니요? 우리말에도 싸래기가 있습니까? 홍: 호호호 이 양반 보세요. 그 말은 즉 싸래기같이 절반이란 그 말입니다. 한번 들어보시겠어요? “어이, 홍동무 거기 차 한잔 가져오라구.” 허: (같이 흉내를 낸다) “됐어. 이젠 가란말이야. 저리 가져가라구!” 홍: (흉내내며) “아니, 말 못들었어! 오란말이야. 이리 오라구.” 이런것이 다 간단한것 같지만 사실 함께 사업하는 동료들지간에 대하는 태도가 아니라구요. 허: 허참! 그러구보니 높일게 많군! 홍: 제가 오늘 허동무한테 말씀드리자는건 언어의 문화수양이나 그리고 책임성만을 높이자는게 아니얘요. 물론 그것들도 높여야 하겠지만 그런것보다도 좀 더 높여야 할게 있다구요. 허: 듣고보니 물론 높일게야 많지요. 우리가 사는 문화주택들도 높으면 공기가 시원할게구, 더우기 단층집 굴뚝도 보일러굴뚝처럼 높이면 연기도 잘 빠질게구. 홍: 아이참, 제가 높이자는건 그런게 아니라구요. 허: 그런건 말구라… (생각한다) 그럼 또 뭡니까? 홍: 맞춰보세요. 무얼것 같으세요? 허: 아니, 이젠 완전히 선생님이 학생에게 내주는 수수께끼같은 문제로군요. (팔장을 끼고) 옳아, 어제 공화국창건 60돐을 맞으며 사람마다 정치사상수양을 높이고 문명례절수양을 높일데 대한 동원회의를 했었지요. 홍: 물론 그것도 높여야지요. 그러나 제가 높여야 한다는건 그게 아닙니다. 허: 아니라구요? 옳아! 참 요전번에 텔레비젼에서 볼라니깐 우리 남성들이 녀성들에 비해 사회역할을 높여야 한다구 하더구만, 지금은 남자보다 녀자가 효률을 높일수 있는 시대라면서 남자들이 모든것에 눈을 번쩍 뜨고 머리를 높이 쳐들고 다니라고 했지요. 홍: 물론 그래야지요. 허: 그럼 홍동무는 녀성제일이라는 현시대 단위에서 어떠한 책임을 맡게 되였습니까? 홍: 참, 허동무는 이토록 답답하다구요. 그런 질문을 하는 허동무 자신이 아직 문화수양이 높지 못한게 아닌가요? 어서 대답이나 해보세요. 허: 가만있자. 옳아! 옳아. 사람마다 출근하면 업무수준을 높이는게 가장, 가장 중요합니다. 홍: 얼추 맞췄어요. 그러나 한걸음만 더 가까이… (허, 홍의 곁에 다가선다.) 홍: 아니, 아니얘요. 내 가까이에 오라는게 아니라 한걸음만 더 접근하면 아주 진짜 알맹이를 알아맞히겠다 그말이얘요. 허: 난, 난, 그럼 똑똑히 얘길 하시구려. 그렇게 시롭에 물타먹듯 번잡하게 늘여가지고 다람쥐 채바퀴 돌리듯 뱅글뱅글 돌려서 얘길하니, 그래 방금 업무수준을 높이는것하구 비슷하다 했지요? 그러면 그렇지! 그거야 다시 말해서 그걸, 그걸 높여야 한다는거지요. 홍: 아, 그거야 엎치나 뒤치나 누우나 앉으나 앉으나 서나 같은 소리 아니얘요. 사무일군으로서 사업에서 사업효률을 높여야 하는것은 일반도린데요. 허: 그리고 우리같이 연예계에서 사업하는 작가나 예술일군들은 서정성, 형상성 더 나아가서는… 홍: 당성, 사상성을 안높이구요? 허: 그거야 새삼스럽게 말할것두 없는거 아닙니까? 이를테면 상업류통부문에서 봉사성을 높여야 수익성도 높일수 있는거고 그리고 말하자면 교통운수부문에서도 봉사성을 좀 높여야 합니다. 그래야 도로에서 줄쳐 달리고있는 뻐스마다에 손님들을 꼭꼭 태울수 있지요. 홍동무, 이러고보니 세상만사 모든게 다 높이기만 하면 안될게 없다구요. 홍: 그럼 원가도 높이겠어요? 허: 하, 이러고보니 대구 높이는것도 말썽이군, 어찌보면 아빠트 현대건물에서 오르내리는 승강기마냥 그것도 조종사가 있어야겠군. 홍: 아유, 승강긴 또 무슨 승강기예요? 허: 왜?! 올라갔다, 내려갔다,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니 그말이 그게 승강기와 다를바가 없다 그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높이는데도 꼭 승강기조종사와 같은 조종사가 전문 있어야겠다 그말입니다. 홍: 그러게 제가 뭐랬나요? 허동무는 문화수양 전체를 높여야 한다구요. 지금 허동무처럼 세상만사를 외통수로만 생각해서는 못쓴다 그말입니다. 높일건 높이고 낮출건 낮추고 없앨건 병원에서 수술칼로 맹장염을 쓱- 베여던지듯이 없애구… 허: 하긴 듣고보니 그 말도 맞는다구요. 견문을 넓히고 학식도 넓히고 안목도 넓히고 하지만 이보시라구요. 나팔바지를 입던 80년대에 비해 지금은 이런 바지가랭인 좀 더 좁혀야… 홍: 지금은 높이라는겁니다. 허: 아니, 높이라니? 도대체 어디까지 높였어요? 홍: 일터마다 간소화하니 실제로 업무수준이 높아졌어요. 허: 옳거니, 그래서 정부에서도 기구개혁이라구 찡잰(竟减)을 웨치는거지요. 옳지, 이제보니 바지가랭이를 넓히든지, 좁히든지 이제야 면바로 꼭대기에 도달했구나. 홍: 아니, 꼭대긴 또 무슨 주제를 떠난 꼭대긴가요? 허: 예! 이젠 올라올데로 다 올라왔단 그말입니다. 홍: 어딜요? 허: 하, 이 동무가 참, 일터마다 간소화하구 실제로 업무수준을 높여야 하는데까지 올라왔으니 그것이 꼭대기란 말입니다. 홍: 호호호 그런데 허동문 아직도 못다 올라왔어요. 허: 그러니 아직도 계속하여 간소화하구, 년소화하구 또 사업에서 실적을 쌓을수 있는 유능한 인재만을 찾아야 한단 그말입니까? 홍: (허의 주위를 뱅뱅 돌며) 허동무는 왜서 요렇게 뱅뱅 돌기를 좋아합니까? 허: 뭐?! 내가 뱅뱅 돌아요? 아니 그럼 내가 뭐 팽이란 말입니까? 홍: 그런게 아니라 허동무는 두꺼비 장뼘만한 지식을 가지구 빨래줄처럼 길다랗게 늘여놓는데는 퍽 솜씨가 있는데 가장 결정적으로 높여야 할 문제에 대한 대답을 놓고 그 주위에서 뱅뱅 선자리돌림만 돈다 그말입니다. 허: 그러니까 일터책임제를 실시하구 인원 간소화, 년소화하구 업무수준을 높여야… 홍:맞았어요. 허: 맞았어요? 됐지요? 홍: 아니얘요. 대답이 맞았다는게 아니라 안맞았다는 동무의 대답이 맞았단 그말이얘요. 허: 홍동무, 왜 거 시험관마냥 그러지 말고 어서 이 나그네의 속이 시원히 풀리게 약간 비슷하게라도 말씀 좀 해주구려. 홍: 그럼 허동무의 면목을 보아서 비슷이 말씀해드릴까요? 이건 아주, 아주 중요한 얘긴데… 말하자면 예, 쉽게 말해서 허동무도 돈을 좀 더 많이 벌어야 하겠단 말인데요… 허: 아니, 뭐 돈을 벌어요?! 이 동무가 사람을 어떻게 보구 하는 소리요. 양?! 처음부터 돈을 벌어 자신의 체신을 높여야 한단 그 말을 할려고 여직까지 배속에 까넣고 이다지도 괘씸하게 사람을 골려주는겁니까? 예?! 홍: 아니, 허동무, 절대 성격을 쓰지 마세요. 이처럼 지금 남자들은 쉽사리 흥분한다구요. 그러니 관건적인 문제에서 우리 녀자들에 비해 실제적으로 효률을 높일수 없지요. 제가 말하려는건 지금은 돈이면 무엇이든 다 높일수 있단 그말입니다. 이를테면 업무수준이 어떠하든 돈이면 고급 직함도 능히 살수있고 또 돈이 여차여차하면 호호호 권력까지도… 허: 에이 여보! 홍: 뭐?! 또 여보래요? 허: 아니 그럼 에이 홍동무! 동무는 10여년의 배우생활을 젖혀놓고 언제부터 뒤에서 돈을 벌겠다고 호박씨를 깠소? 엉?! 업무수준을 제고시킬 궁리는 하지 않고 돈벌 궁리만 하다니? 그것도 더 많이 벌 궁리, 에끼 여보! 아니, 저 여보가 아니라 홍동무! 난 이젠 동무하구 얘기두 안하겠소. 동무처럼 정치가 문맹인 사람이 어찌 위대한 배우로 될수 있겠소? 더우기 공화국창건 60돐을 눈앞에 두고 조국을 노래하고 우리 민족을 자랑하는 문예종목들에 대해 더 많이 연구할 대신 치사하게 돈벌이 궁리만 하다니? 홍: 허동무, 허동무가 그처럼 정치를 잘할줄은 미처 몰랐어요. 좋아요! 그러나 제가 말하는건 그런 돈벌이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할수 없는 일을 혼자서는 할수 없는가 하는 그말이얘요. 그러면 그것이 바로 돈벌이기회가 아닐가요? 허: 옳아요. 듣고보니 그렇소. 그게 매우 좋겠소. 여러 사람이 할수 없는 일을 한사람이 할수 있다는것이 얼마나 중요하오? 홍: 됐어요. 다 올라왔어요. 허: 다 올라왔다니? 홍: 그게 바로 제가 요구하는 대답, 돈벌이구멍수의 계획에 대한 전부의 해답입니다. 허: 어, 숨차라. 그럼 좀 쉽시다. 홍동무의 그 문제안이 우리 예술단청사 5층까지 올라가는것보다 더 숨차다구요. 홍: 그러나 어디 쉴 시간이 있어요? 허: 아니, 그럼 또 더 올라가야 한단말입니까? 홍: 네! 그래요. 자꾸자꾸 올라가야지요. 허: 아니, 또 어디로요? 홍: 어딘 어디겠어요. 사람마다의 사업효률에 따라 업무의 요구를 자꾸 높여야 할게 아닙니까? 허: 허참, 그건 언녕 높이지 않았습니까? 정말 그러구보니, 그런데 그럼 얼마쯤 더 올려야 즉 높여야 할까요? 홍: 우선 부지런히 밭을 갈고 씨앗을 뿌려요. 허: 가만있자. 내가 농사군이라고 없는 밭을 부지런히 갈고 씨앗을 뿌립니까? 홍: 호호호 그런 말이 아니얘요. 제가 하는 말은 허동무도 이젠 배우생활에 그만한 경험과 지식을 쌓았으면 창작도 능히 구사할수 있다 그말이얘요. 허: 오라, 그것참, 그러구보니 배우생활20여년에 이젠 창작두 능히 할수 있다 그말입니다. 예? 홍: 그래요. 그러니 사업과 창작을 잘 짜야 합니다. 허: 허허허, 그러면 자연 높아지게 되겠군. 홍: 하지만 남에게 의존하지 말구 제힘으로 일하면 알알이 여문 량곡들이 허동무에게도 고개를 숙일겁니다. 허: 그야 물론이지요. 공화국창건 60돐을 맞는 이때 사람마다 당성, 사상각오를 높이고 정치를 잘하여 사회에 존재하는 부정부패를 물리치고 우리 문예대오를 건실하게 할뿐만아니라 조화사회건설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자신의 문화수양을 높이는게 우선이 아닙니까? 홍: 그러니 이젠 허동무도 잘 아셨지요? 허: 여보! 홍: 또 여보얘요? 허동무! 허: 아니, 미안. 그러니 홍동무, 우리 함께 여러분들에게 인사나 하구 빨리 예술단 창작실로 달려갑시다. 방금 우리들의 재담 “높이자”를 글로 엮어야겠습니다. 홍: 좋아요. 갑시다. 그러나 먼저 관중에게 인사나 하고 갑시다. 자,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이제 다음번에는 허동무의 문예작품의 질이 높아지기를 기원합시다. 여러분 짜이잰(再见). (둘이 인사하고 나가며 막이 내린다.)
1    집짓기 댓글:  조회:974  추천:7  2013-01-30
집짓기 집에 관하여 사전에서는 추위, 더위 따위를 막고 사람이 살기 위해 지은 건물 혹은 동물이 보금자리 치는 곳 (또는 총칼 따위를 끼거나 담아두는것, 바둑에서 완전히 자기 차지가 된 곳) 그리고 가정을 이루고 생활하는 집안 등이라고 표현했다.   집을 짓자면 반드시 집이 들어설만한 공간인 땅부터 골라야 하는데 집터는 대개 지관을 불러 좌향(作向)을 보는데 이때 집 '주인'이 될 대주(大柱)의 운세와 함께 마을의 산세와 지세를 보아 오목하고 양지바른 곳을 선택하여 주위보다 약간 높으면서도 전망이 확 트인 곳이 가장 리상적인 집터라고 했다.   그 땅을 또 평평하게 다지고 집이 앉을 방향을 잡는데 주로 동향, 서향, 남향으로 마을의 지세에 따라 좌향이 정해진다.   집짓기는 추운 겨울철과 장마기인 여름철을 피해 봄이나 가을에 시작하며 집터와 좌향을 보고나면 곧바로 가재목(家材木)을 준비하게 된다.   가재목의 다듬질이 어느 정도 끝날쯤에 택일을 하고 땅을 파는 개토(开土)와 주추를 놓는 정초(定础)로 주추돌이 들어설 자리를 든든하게 다진다. 그리고 립주(立柱) 즉 기둥을 세우고 문간을 대고 사면에 세운 기둥틀을 고정하고 문선을 댄 다음 마루대를 올리는 상량(上樑)으로 매 상량마다 련결대를 고정하고 연목가지를 얹으면 전반 집의 모양이 형성된다. 그 다음 각 부위에 흙을 바르고 문을 달고 벼짚으로 지붕을 얹고나면 집이 완전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이것이 바로 집짓기의 전 과정이다.   하지만 집을 세우는것도 민족마다 그리고 지방마다 서로 다르다.   세월이 좋고 시대가 앞서가는 오늘 모든 건물들이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하여 벼라별 양식으로 새롭게 일어서는것을 쉽게 볼수 있다.   그만큼 물질적으로나 량적으로나 현대인들의 생활수준과 그 추구가 발전하고 발달하였다는것이 오늘의 현실이 아니겠는가?!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가 쓰고 사는 집에 대하여 각별히 신경을 쓰고 남들보다 더 우월하게 장식하자고 노력한다.   나도 한때는 집이라는것에 별다른 생각을 가져본적이 없었다.   대학 졸업후 가정을 이루고 남들의 세방살이를 할 때에는 엉덩이를 들여놓고 안해와 함께 살만한 비좁은 방 한칸만이라도 우리의 이름으로 된다면 만족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것이 실현되기까지는 무려 25년의 세월이 무정하게 흘렀다.   안해의 머리에 가득 덮인 흰 머리카락들이 바로 집 한간을 위하여 분투한 무정세월의 어려움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25년이 지난 오늘, 나에게도 집 한간이 주어졌다.   물론 현대인들이 건설하고 사용하던 벽돌로 지어진 아담한 단층주택이다.   오늘의 시가로 인민페 3만5000원을 주어야 살수 있는 54평방미터의 집이다.   이 집을 위해 나와 안해는 청춘을 고스란히 '집짓기'에 바쳤다. 어떻게 오늘까지 달려왔는지 그 길을 되돌이키기조차 두려워진다.   이젠 자기 이름이 번듯하게 박힌가옥증명서를 들여다보면서 내 집이라고 자랑을 할수도 있으련만 세월이 세월인것만큼 현대인들의 그 끝없는 욕심과 발달하는 과학기술과 생활수준의 엄청난 제고에 또다시 만족을할수 없게 되였다.   비록 내집이라고 엉덩이를 들여놓고 편안하게 누워잘수 있는 공간이 차려졌지만 남들이 버리고 난 집(그 당시 모두가 아파트로 이사가면서 헐값으로 처리되였었다.)이였어도 나에게는 아름찬 만족이였고 무한한 행복이였다.   그러나 안해는 또 새집 한채를 위하여 홀로 한국의 낯선 하늘아래에서 힘들게 달러 벌이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 54평방미터되는 단층주택을 25년의 청춘과 바꾸면서 이루어왔다면 이제 남들처럼 고급스런 아파트에 입주하려면 또 몇번의 25년이 엇바뀔지 생각하기도 두렵다.   안해는 지금의 54평방미터의 집을 위해 시장에서 못해본 일이 없다.   이른 새벽부터 도매시장에 나가 채소를 넘겨받아서는 길가에 채소난전도 벌려보았고 삶은 강냉이도 팔았으며 지어 남의 밭 삯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궂은일 마른일 가리지 않았다.   오늘도 안해는 '아파트'라는 새로운 목표를 위해 낯선 한국땅에서 고달픈 이방인의 삶을 살고 있다.   인천 갈비집에서 힘든 홀을 보면서 하루에 몇십리나 되는 길을 걷는 걸음이지만 자기 집을 장만하는데 쓰는 자기만의 능력이라면서 소담하게 웃는다.   물론 금방 한국땅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같은 한민족이지만 연변말과 다른 한국사람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 눈물도 수없이 흘렸다고 한다.그러나 한국사람들의 멸시와 서러움을 중국조선족이라는 이름으로 한몸에 받으면서도 집이라는 그 목적을 위해서는 꿋꿋하게 버텨낼수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안해는 한국땅에서 3년이라는 긴 세월을 새 '아파트'를 위해서 갈고 닦는다.   언제까지 우리 모두가 '집'을 짓기 위해 이처럼 산지사방에 흩어져서 살아야 할지 그 앞이 캄캄하다.   한 건축로동자는 50년간 집을 지었지만 자기 한몸을 누일수 있는 집을 짓지 못했다고 한다.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수가 없다.   오늘도 '집짓기'에 나선 많은 사람들을 다시 살펴보게 된다.   그 가운데는 한국에서 힘들게 일하는 안해의 초췌한 모습도 놓칠수가 없다.   이제 우리가 새롭게 바라는 '집'은 가축이나 사람이 들어가는 공간만이 아니라 강대한 민족과 홀시할수 없는 매 하나, 하나의 가족과 더불어 나아가서는 든든하고 건실하고 아름답고 풍요로운 집(家), 국가(国家)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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