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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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내음
2013년 07월 18일 14시 26분  조회:947  추천:0  작성자: 김태현
할머니의 내음
 
김태현

언젠가 동료들의 강권에 못이겨 “썩장”을 한숟가락 뜬적이 있었다.

그날도 련며칠 이어진 빈번한 술자리때문에 머리가 흐리터분하고 시도 때도없이 올리미는 숙취로 인해 고통을 겪고있는 나에게 해장국을 먹인다고 이끌고 간 곳이 바로 조선족의 전통음식으로 유명한 돌솥밥집이였다.

물론 그 자리에서도 술 한잔 넘기지 못하고 속이 울렁거려 어려움을 겪는데 동료들이 청한 “썩장” 한그릇이 반질반질 까맣게 윤기나는 곱돌장사기에 담겨 들어왔다.

순간 곱돌장사기에서도 보글보글 끓고있는 “썩장”에서 풍기는 말 못할 퀴퀴하고 비위 상하는 냄새에 얼른 장사기를 옆으로 밀어놓았다. 그런데 동료들은 한사코 나의 앞으로 “썩장”이 끓고있는 곱돌장사기를 당겨다놓는것이였다.

그렇다고 싫은것을 억지로 먹을수도 또 남들앞에 도로 밀어놓을수도 없어 그런대로 묵묵히 곱돌장사기의 귀를 타며 보글보글 끓고있는 “썩장”을 멍하니 들여다보는데 옆자리에 앉아있던 동료가 슬그머니 나한테 숟가락을 쥐여주며 얼른 식기전에 뜨거운대로 한술 뜨라면서 극진함을 보였다. 그러나 나는 동료의 성의에 도리머리를 저었다.

지금까지 50여년의 인생에 주욱 장(酱)이란것과는 인연을 끊고 기름맛으로만 살아온 나는 조선족이 즐겨 먹는다는 된장은 물론 여러가지 종류의 장(酱)을 하나도 먹지 않았던것이다.그러니 나의 인생에 “썩장”은 도저히 입에 댈수 없는 금지물처럼 느껴졌었다. 아무리 숙취로 인해 골머리가 아프고 속이 울렁거려도 도저히 “썩장”에 숟가락을 댈수가 없었다.참으로 이럴 때를 일러서 “울며 겨자먹기”라고 하겠다.

나는 두눈을 꾹 감고 숟가락을 “썩장”그릇에 넣었다.그리고는 국물만 조금 떠서 입에 넣었는데 와, 순간적으로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누렇게 익은 콩알이 그대로 뽀얗게 우러난 국물이 그렇게도 시원하게 목을 적셔줄줄이야?! 더우기 수시로 울렁거리면서 올리치밀던 메스꺼움도 한숟가락 국물에 가뭇없이 사라진채 속이 너무나 개운해졌던것이다.

이게 바로 “썩장”의 참맛이란 말인가?! 나는 두번 다시 뜨지 않으려고 마음먹었던 숟가락을 “썩장”그릇에 넣고 뽀얗게 우러나는 국물을 련속 퍼먹었다.

처음에는 맨 국물만 조금씩 떠서 입에 넣었다면 그 다음부터는 곱돌장사기안을 골고루 누비면서 “썩장”에 함께 넣은 명태며 콩나물과 두부와 누렇게 뜬 콩알까지도 엇갈아 떠서는 볼이 미여지게 먹었다.

나는 오늘에야 비로소 장(酱)이라는 아니, 그가운데서도 “썩장”의 참맛을 진정으로 느낀것 같다.내가 어릴 때 겨울이면 늘 “썩장”을 만드시는 할머니의 모습을 본적이 있다.할머니는 해마다 겨울이면 많은 장을 만들어서는 자식들의 집에 골고루 나누어주셨던것이다.

지금도 수건을 머리에 질끈 동이고 가마목에서 분주하게 돌아치는 할머니의 구부정한 모습을 잊을수가 없다.한겨울 두개의 가마가 나란히 걸려있는 부엌의 세동이들이 커다란 가마에 전날 저녁에 물에 불렸던 누런 메주콩을 골고루 앉혀놓고는 이른 아침부터 시작하여 불을 지피는것이였다. 물론 어머니가 도우셨지만 할머니는 어머니가 하는 일손에 마음을 놓을수가 없다며 당신 자신이 손수 하셨다.

그렇게 반나절 내내 어른들의 팔뚝만한 장작으로 콩가마를 끓이면서 수시로 된장을 풀어서는 콩가마에 자주자주 떠얹어주기도 하였다.그때 어머니가 된장은 왜 풀어서 콩가마에 얹느냐고 할머니에게 물었다가 된 꾸중을 받은적이 있었다.

“에구, 에미는 메주가마를 끓이는것도 모르냐? 이 메주가마가 끓기 시작하면 넘쳐나는것을 도무지 당하지를 못하니라, 그래서 된장을 풀어 콩가마에 미리 얹어주면 짠 소금물에 가마가 부풀지 않는다는것도 모르냐?! 에구, 언제 다 배우려나? ”

오후 늦은 시간이 되자 할머니는 콩가마를 헤쳤다.할머니의 손끝에서 잘 익은 누런 콩알이 향긋한 냄새를 풍겼다.나는 동생들과 함께 할머니가 떠주는 콩을 바가지채로 구들 한복판에 놓고서 바느실에 꿰가지고 창밖에 내다 얼구어서 먹는다고 부산을 떨었다.그러나 할머니가 만드는 된장과 썩장에 대해서는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할머니는 커다란 질그릇에 골고루 펴놓은 벼짚우에 하얀 보자기를 씌우고는 그우에 가마에서 잘 익은 누런 콩들을 바가지로 소복소복 퍼서는 그 질그릇에 담고는 또 그 우에 마른 벼짚으로 꽁꽁 덮고 또 그 우에 해진 솜이불을 가져다가 귀여운 아기 감싸듯 꽁꽁 여며서는 집안 한구석에 가져다놓는것이였다.

그렇게 할머니의 손끝에서 해마다 “썩장”이 만들어져서는 우리 집의 밥상우에 올랐었다.그러나 나는 왠지 알게 모르게 퀴퀴한 냄새가 풍겨나오는 할머니의 “썩장”을 도무지 먹을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온 겨우내 얼굴에 구슬같은 땀을 쏟으면서도 곱돌장사기에서 보글보글 끓는 “썩장”을 너무나 맛나게 드셨다.

나는 할머니가 아침마다 끓여주는 “썩장”이 죽도록 싫어졌다. 매일같이 집 한구석에 솜이불로 꽁꽁 여민 커다란 질그릇을 헤치고 검누렇게 뜬 콩을 밥주걱으로 휘저을 때면 이상하게도 아이들의 코물 같은것이 질질 일어나며 더러운 냄새를 풍기는것이 마치도 어린 동생이 이불에 칠한 “응가”냄새를 방불케 하여 보기조차 싫었다.더우기 끓인 “썩장”을 밥상우에 올려놓을 때면 마치도 금방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할머니의 퀴퀴한 이부자리냄새가 함께 묻어나는것 같아 좀체로 먹을수가 없었던것이다. 그렇게 “썩장”은 물론이고 콩으로 만든 장(酱)이라는것과 무조건 생리별을 한채 지금까지 벽을 쌓고 살아왔었다.

그런데 오늘 우연한 기회에 다시 40여년전의 기억으로 남는 할머니의 모습과 더불어 아련하게 떠오르는 할머니의 "퀴퀴한 냄새"가 이 한숟가락의 “썩장”과 함께 나의 가슴에 차분하게 안겨오는것을 어쩔수가 없다. 오늘은 그 냄새가 왜 이다지도 살갑게 가슴에 와닿는지 모르겠다. 먹으면 먹을수록 더 먹고 싶은 한그릇의 “썩장”에서 느껴지는 참맛이 바로 내가 50여년의 인생에서 이제야 깨닫고 느낄수 있는 할머니의 진정한 향기가 아니였을가?!

나는 이렇게 2012년 임진년 그 어느달 어느날부터 시작하여 “썩장”을 먹게 되였을뿐만아니라 콩으로 만든 여러가지 종류의 모든 장(酱)을 하나하나 먹어가기 시작하였다. 할머니의 향기!나는 오늘도 아침밥상에 오르는 “썩장”으로부터 할머니의 향기를 차분하게 느낀다.할아버지도 달게 드셨고 또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도 그리고 우리들의 조상들도 달게 드셨을 “썩장”은 바로 우리 조선민족의 고유한 력사가 슴배인 민족유산의 향긋한 산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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