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버려진 생명
1954년 7월 5일 맑음
덜커덕 덜커덕… 증기기관차는 힘에 부친 무거운 바곤들을 끌고 숨 가쁘게 록도령 중턱을 오르고 있다. 흑룡강성과 길림성의 경계선을 향해 치달아 오르고 있음에 틀림없다. 다 같은 중국, 다 같은 땅, 다 같은 철길, 다 같은 숲이건만 흑룡강성과 길림성의 갈림길이라는 의미가 나에게 주는 자극은 예이제 없다. 먼 길을 떠났다가 귀향길에 오를 때마다 역전을 헤고 집과의 거리와 시간을 따지게 되는 것에 습관 되어서일까? 록도령은 늘차게만 느껴지고 기차는 굼뱅이처럼 굼뜨기만 하다. 꼬리 하나 남길 것 없고 겨릅대 하나 가져갈 것 없이, 아쉬움도 서러움도 없이, 미련도 애틋함도 없이 허허벌판 북대황을 팽개치고 온 나다. 그런데 한 쪽 허파가 아릴사하고 마음이 찜찜해나는 것은? 칙―칙―폭―폭― 기차는 헐떡거리며 겨우 숨쉬고 있다. 그 맥 빠진 소리와 함께 내 가슴도 갑갑해났다. 방금 전까지 고향과 가까워지고 고향이 당금이라는 조바심과 희열은 아무런 대가도 없이 사라지는 기관차의 연기처럼 날려가고 무엇을 잃었다는 허탈감에 자신의 사지를 각을 뜨고 신경중추를 육장으로 만들고 육체를 칼탕치고 있다. 엊저녁, 서약서에 손도장을 찍던 일이 방불히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가 방금 지난 여름밤은 짧고도 길었다. 기다리는 마음, 보내는 마음, 그 마음을 희롱하고 유린하는 밤의 유령이 방 안 구석구석을 배회하면서 수시로 우리 모자를 노리고 있다. 귀염둥이는 이 방 안에서 어떤 비극이 막을 열지 어떤 곡성이 창호지를 찢을지도 모르고 조용히 소리 없이 자고 있다. 방 안이, 명신촌이, 북대황이, 세계가 숨을 거둔 이 밤, 쉴 새 없이 들려오던 개구리의 울음소리도, 밤이면 찾아오던 부엉이의 울음소리도, 모든 소리가 잠에 취한 숨 막히는 밤이다. 답답한 밤이다. 나는 이 적막에 오장육부가 뒤집히는 것 같다. 적막과 고독은 쌍둥이라지만 고독의 전주곡인 적막이 더 싫다. 더 무섭다. 폭풍 전야, 바로 그것이다. 쌔근쌔근 소리를 내며 잠을 자곤 하던 귀염둥이도 이 저녁만은 숨소리 하나 없이 밤의 장막에 쌓여 자고 있다. 나는 그 것마저 섭섭하고 싫다. 나는 귀염둥이를 흔들기도 하고 살짝 꼬집기도 해보았다. 그래도 귀염둥이는 손발 하나 까딱없이 콧구멍만 팔딱팔딱 한다. 그것도 나는 싫다. 《응아―》하고 울기를 바라는 내 마음이다. 나는 젖통을 만져보았다. 마지막으로 귀염둥이에게 젖꼭지를 물려보고 젖 한 방울 먹여보고 싶은, 버렸다 다시 찾은 마음 때문이다. 열흘 전까지만 해도 팽팽하고 젖이 줄줄 흐르던 젖통은 지금은 후줄근해지고 쥐어짜도 나오질 않는다. 반짝, 젖꼭지에서 젖인지 땀인지 물기가 빛났다. 나는 그 빛 방울을 귀염둥이의 입에 댔다. 하지만 귀염둥이의 입술에는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갈망의 기갈에서 오는 허광이다. 나는 그것도 싫다. 싫기 때문에 더 무섭다. 모든 준비가 되어 있다. 모든 각오가 되어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이별, 그 것이다. 애 옷 견지도 보자기에 꽁꽁 싸놓았고 기저귀도 깨끗하게 빨고 말려서 가방에 차곡차곡 챙겨 넣었고 우유병이며 봉다리 우유도 다 준비해 놓았다. 남은 것은 떠나보내는 것, 남을 주는 절차만 남아있다. 덜커덕. 삐익―. 울바자문 소리와 함께 발자국 소리가 들려온다. 순간, 내 가슴이 방망이질하기 시작한다. 숨이 가빠진다. 방금 전까지의 적막과 고독이 도가니 속에서 용암으로 분출하고 있다. 드디어 올 것이 온 것이다. 주인집 내외분이 비밀리에 찾아준 귀염둥이의 새 아빠 엄마다. 《오래 기다렸지?》 주인아주머니가 조용히 물었다. 그간 나처럼 아기에게 정이 들었던지 주인집 아주머니의 말은 색이 날아 있었고 얼굴도 무표정이다. 주인집 아주버니도 엽초를 말았다 풀었다 하면서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걸 봐선 심신이 불편한 모양이다. 두 사람이 모셔온 아기의 새 아빠 엄마는 50대 중반의 어머니와 아들로 짐작되는 30대 문턱을 넘어설지 말지 한 젊은이다. 《인사를 하오, 애기를 업어갈 모자간이오.》 나는 인사 대신 모자간만 지켜보았다. 내 귀염둥이를 잘 기를 수 있을지 없을지 하는 것을 내 눈저울의 천평 위에 놓고 싶어서였다. 보낸 다음에야 잘 기르겠으면 기르고 못 기르겠으면 못 기르고 내가 알 수도 없는 또 알 바도 아니지만 이 시각만은 귀염둥이의 기둥이 돼주고 뒷힘이 돼주고 싶었다. 만점을 주느냐 빵점을 주느냐 하는 시험관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내 눈금에 올려 놓았다. 50대 중반의 노인의 얼굴은 귀가 딱 들어맞고 음양이 선명한 입체감을 자아내게끔 조립이 잘 되지는 못했지만 하나하나 뜯어놓고 보면 미운 곳이 한 곳도 없는, 양 미간이라든가 하관이라든가 이마라든가 조금도 남부럽지 않을 반듯한 농촌어머니였다. 나들이차림이거나 옷단장을 하지 않은 평소의 옷매무새에서 수더분한 농촌아낙네들의 흙냄새가 다분히 풍겨왔다. 아들은 구척 강골에 눈썹이 진한 호랑이상이다. 눈썹만 빼놓는다면 강 촌장과 비슷한 그런 형의 걸때 센 사나이 같았다. 관상과는 달리 머리를 쳐들고 나를 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오른손 식지를 까래눈을 뜯는 걸 보면 그도 소똥내에 절고 호미자루에 멍이 든 손을 갖고 있는 땅 뚜쟁이가 틀림없다. 《왜 새엄마 될 분은 오시지 않았어요?》 내가 물었다. 《본가에 불상사가 생겨서 급히 가다보니…》 50대 중반의 어머니가 몸둘 바를 몰라 하며 얼버무렸다. 《옥선이, 마음 놓소. 이 집은 마을에서 으뜸가는 모범가정이오.》 《그 뿐인 줄 아오. 살림살이도 알뜰한 집이오.》 주인집 아주머니가 곁을 섰다. 《좋아요. 남의 새끼지만 제 새끼처럼 잘…잘 길러줘요. 흑흑흑.》 나는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저, 서약서라도 써주면 안 될까요? 혹시…》 말없이 머리만 수깃하고 있던 30대 사나이가 말했다. 《좋아요. 흑흑흑.》 나는 김 촌장이 갖다 주는 필기장에 연필꽁다리로 이렇게 썼다.
서약서
오늘 내 자식을 맡기는 바 영원히 찾지도 않고 데려가지도 않을 것이다.
1954년 7월 4일 김옥선
《이 애의 진짜 성은 제비 강(姜), 강씨이고 흑흑흑…이 애의 출생일은 금년 6월 8일이예요. 흑흑흑. 출생일만은 제대로 호구에 올려주세요. 흑흑흑.》 《친자식처럼 기를 테니 근심마시우.》 주인집 아주머니가 달게 자는 귀염둥이를 안아 새 할머니에게 넘겼다. 《얘야―》 나는 모진 소리를 지르면서 새 할머니의 품에서 내 자식을, 내 새끼를 빼앗아 안았다. 그래도 귀염둥이는 멋모르고 빈 입을 쩝쩝 다시며 자고 있다. 《이 녀석아, 눈 떠! 눈 뜨고 엄마 한번 봐! 흑흑흑…》 하지만 밉상스런 귀염둥이는 내 소리를 들은 둥 만 둥 자고만 있다. 몰인정한 귀염둥이, 이 어미의 심정 왜 몰라주나? 말똥말똥한 눈 한 번 더 보고 싶고 향긋한 똥 내음 한 번 더 맡고 싶고 귀맛 돋우는 울음소리 한 번 더 듣고 싶은 이 에미의 마음 이토록 몰라준단 말이냐! 나는 귀염둥이를 때려주고 물어뜯고 찢어놓고 싶었다. 《흑흑흑…》 나는 언제 어느 새 내 품에서 귀염둥이를 뺏아갔는지도 모르고 서럽게 서럽게 울고만 있었다.
덜커덕. 차가 멈춰서는 흔들림에 나는 정신을 차렸다. 기차가 록도역에 당도했던 것이다. 록도역에서 도시락으로 주린 배를 굼때우자 내내 빙점(氷點)이던 내 기분은 비등점으로 번져눕기 시작했다. 하루가 새롭던 북대황의 신물나는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옛날의 허인숙이로 되살아와 고향땅을 밟았기 때문이리라. 고향땅에 들어선 기차는 내리막길이라 칙칙폭폭 하는 절주에 맞춰 신나게 달렸다. 나는 차창을 열었다. 풀내음에 물씬 젖은 습습한 여름바람이 주렸던 내 가슴을 적시면서 나를 취하게 했다. 그 풀내음이 옛날의 허인숙이를 되만들어 주고 있었다. 강 촌장은 내가 오는 줄 모를 거야. 안다면 소수레를 몰고 구정부까지 마중 오련만… 급시에 강 촌장이 그리워졌다. 그래서 기차에 앞서 내 마음은 이미 샘물골로 날아가고 있었다.
이날 일기는 여기에 와서 붓을 멈추었다. 그 후의 허인숙 어머니는? 강 촌장과의 인연은? 그런 관심과 미묘한 로맨스 때문에 눈의 초점은 일기장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팽팽한 가야금줄처럼 내 마음의 탕개도 죄어들었다. 하지만 나는 일기장을 덮고 말았다. 아버지가 근심됐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집을 나선 지 일주일 넘었는데 지금까지 무소식이다. 무고히 도착하셨는지? 밤은 편히 주무시는지? 콩장이나 두부찌개를 반가워하는데 때시걱은 제 때에 자시는지? 기침은 어떠신지? 그들먹이 차오르는 아버지에 대한 근심과 걱정 때문에 글눈이 헛갈리면서 제대로 읽어내려 갈 수 없었다. 황차 오늘은 5월 5일, 단오명절이다. 단오마다 우리는 아버지를 모시고 애들과 함께 천렵을 떠나곤 했었다. 지금은 씨종자가 말라 구경하기조차 힘들지만 몇 해 전만 해도 연집강에는 한 뼘나마 되는 버들치와 모래무치가 우글우글 했었다. 지금도 간직하고 있지만 남들이 고기그물이라는 말도 번져보기 전에 나에게는 내 손수 뜬 고기그물 일곱 채가 있었다. 물론 고무바지도 있었고… 단오날 천렵놀이를 떠나는 때가 우리 집에서는 제일 경사스런 날이다. 나는 고기잡이 공구를 준비하느라 분주했고 아내는 점심 장만에 신경을 곤두세우곤 했다. 아버지는 애들 신발이며 옷 단속을 하느라 기침깇을 새도 없었고… 이렇게 우리들이 집을 나설 때 손자손녀의 손목 잡고 우리 앞에서 걸어가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제일 멋지고 자랑스러웠다. 어느 해 단오였던지 잘 기억되지 않는다. 그 날은 어찌나 고기가 잘 걸리는지 허리가 아파서 제 때에 고기를 뜯어낼 수 없었다. 그물에 걸린 고기를 제 때에 뜯지 못하면 그 고기를 뜯어먹느라고 민물가재들이 달려드는 통에 애를 먹는다. 고기 위에 가재들이 달리고 가재 위에 가재가 달리면서 가재뭉치가 큰 공만큼 되기도 한다. 그물쟁이들에겐 가재가 원수, 그 건 하나도 틀리지 않는 명언이다. 고기만 뜯어먹었으면 좋으련만 집게와 발이 그물에 걸려 그물을 절단 낸다. 가재를 미물이라고 보면 그건 너무나 잘못된 판단이다. 그물에 걸린 어떤 물고기들은 눈알, 내장, 고기점을 몽땅 뜯기고 하얀 뼈만 앙상하게 남는데 골격조립가의 섬세한 손도 가재의 그 재간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내가 그물 칠 차비를 할 때면 아버지는 언제나 애들을 데리고 삭정이부터 줍기 시작한다. 애들이 생선국보다 가재를 더 좋아한다고 불부터 지펴놓고 내가 가재 잡아 올리기를 기다리신다. 연집강에 민물가재가 어찌나 많았던지 고기그물에 뭉쳐 한 덩어리가 된 가재를 몽땅 잡으려고 그물 밑에 소래를 대고 털면 두어 사발씩 떨어지곤 했다. 그러면 애들은 좋다고 박수를 치며 숯불에 가재를 굽는데 맛보다 토색의 색깔을 번지면서 빨갛게 익어가는 가재가 더 군침을 흘리게 한다. 그 날이면 아내의 기분도 거꾸로 흐른다. 평소에는 입술 무겁기가 천근이요 입 여는 걸 보려면 천년이요 하는 아내마저도 내가 뜯어 올리는 물고기를 보고는 입이 함박만 해진다. 그 날은 물고기도 많이 걸렸고 가재도 많이 잡았다. 그런데 우리들이 한창 생선국을 끓여놓고 점심 먹을 채비를 하는데 소나기가 퍼부을 줄이야! 불단오일 줄 알았는데 물단오가 되니 한 해 농사는 그렇다 치고 점심 한 끼 어떻게 먹는단 말인가? 《비를 맞으며 먹는 음식도 멋이란다. 쿨룩쿨룩.》 미처 비올 것을 예상 못하고 비에 대비하지 못했던 우리는 억수로 퍼붓는 비를 맞으며 술잔을 기울였다. 《콜록콜록―경천아, 너는 알겠는지 모르겠지만 밭머리에서 이렇게 비를 맞으며 도시락을 먹은 때가 한 두 번인 줄 아니? 콜록콜록.》 《한 번은 기억됩니다. 아버지. 빗물에 보리밥을 말아자시며 이것도 별맛이구나 하시며 웃으시던 아버지 말입니다.》 《허허허. 그랬던가? 콜록콜록.》 진짜 우리를 그 날 덧국물을 부을 필요 없이 자연스레 빗물로 덧국을 만들면서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 아버지도 그 애들도 없다. 언제나 단오천렵 떠나볼는지? 휑뎅그렁한 집안에서 숨쉬고 있는 두 목숨 ― 아내와 나는 서로가 서로를 간섭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의 일만 하는 두 벙어리―들이 저마다 제 방에서, 제 공간에서, 제 세계에서 살고 있다. 아버지가 계실 때는 살맛나는 집안 같고 모든 것이 빈틈없이 정리되어 있는 집 같던 집이 그릇 하나 자리 뜸 한 것 없지만 아버지가 계시지 않으니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고 삼거풀처럼 헝클어진 것 같아 안절부절 어쩔 수 없다. 취사칸에서 물소리가 나고 그릇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일손이 잡히지 않아 취사칸으로 발길을 돌렸다. 단오라고 아내는 쑥떡이며 송편이며 갖가지 떡들을, 포장지만 떼면 먹게 만든 떡들을 사다가 식탁에 올려놓은 채 볶음채를 만드느라 여념이 없다. 《당신 오늘 뭘 하지?》 《뭘 하겠어요? 학교 나가지.》 《단오 날에도?》 《언제는 단오라고 쉰 적 있어요?》 《전에는 쉬었잖아?》 《청가 맡았지요.》 《오늘 청가 맡으면 안 돼?》 《안 돼요. 교수가 있어요.》 《이런? 제…》 나는 제길 하고 소리치려다 말고 입을 다물어 버렸다. 일문일답식 대화―군말도 없고 여음도 없고 유머도 없는 여위디 여윈 강대 같은 오가는 말에 이미 넌덜머리가 난 나다. 나는 홱―발길을 돌려 서재에 들어섰다. 내가 왜 이토록 제제하지 못하고 죄 없는 아내와 화풀이 하고 스스로 성내는 걸까? 단오 날 아버지가 계시지 않아서? 아니 그것만은 아니었다. 그럼? 옳아, 그 것이었다. 허인숙 어머니의 일기, 그 것이었다. 귀염둥이를 남에게 주었다는 찌뿌둥한 생각, 귀염둥이의 왼쪽 귀밑에 큼직한 기미가 있었다는 찜찜한 생각, 귀염둥이의 생일이 나와 같다는 꺼림직 한 생각, 그 생각에서 해탈되지 못해 성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삼위일치는 여지조차 없는 우연의 일치라고 판단하면서도 자신을 그 우연 속에 밀어 넣고 함께 볶이고 함께 지지게 되는 것은 너무나 이상했다. 이상기후처럼 흐렸다 맑았다 불었다 잦았다 좀체 갈피 잡을 수가 없다. 나는 전화기를 들었다. 《오빠야?》 내가 말하기도 전에 정순이의 터질 듯 영근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대방의 전화기에 나의 전화번호가 먼저 들어갔으니 정순이가 나라고 판정한 모양이다. 《오, 그래. 나야.》 《오빠, 왜 그래?》 《오늘 단오인 거 아나?》 《알고 있어!》 《너 오늘 뭘 하는데?》 《오늘 떡쑥 뜯으러 갈까 했어.》 《식품매장에 쑥떡 천진데 떡쑥 뜯으러 가?》 《그래도 내가 만들어 먹는 쑥떡이 더 맛있더라.》 《그러지 말고 너 나와 함께 어디 다녀오자.》 《어딘데?》 《더 묻지 말고.》 《알았어!》 덜컥, 정순이 전화기 놓는 소리와 함께 오가는 말도 끊겨 버렸다. 활기에 넘친 정순이의 목소리에 전염되어서인지 내 저기압상태도 다소 풀리기 시작했다. 꽁꽁 얼었던 겨울얼음덩이가 봄기운에 눈서기가 되듯 내 등골에 맺혔던 서릿발도 정순이의 말 몇 마디에 스르르 녹고 말았다.
《오빠, 핸들을 어디로 돌려?》 《…》 《응?》 《아니 오빠, 왜 이래? 차는 몰라 하고 갈 곳은 가르쳐 주지 않고…》 《응? 그랬던가?》 그제야 나는 바싹 정신을 차렸다. 앞에 붉은 등이 켜 있고 네거리 입구였다. 《저―거시기 거 있잖아? 산천어 별장…》 《산천어 별장?》 《응, 그래. 산천어 별장 가는 중간에 있잖니? 약수동 노인휴양소.》 《아―니 오빤…오늘 왜 이래? 정신 나간 사람처럼.》 정순이는 나를 말똥말똥 쳐다보며 말했다. 아주 낯선 얼굴을 해보이면서 말이다. 《오늘 이 사람 어찌된 셈판이야? 금시에 팔부가 됐나?》 정순이의 눈은 그렇게 묻고 있었다. 《약수동 노인휴양소에는 왜?》 《청명에 허인숙 어머니의 묘지를 가토도 못해드렸는데 늦었지만 오늘 흙 한 삽 떠놓고 싶어.》 《그럼 진작 그렇다고 말해줘야지 어정쩡해 있으면 낸들 어떻게 해?》 《미―안.》 그제야 나는 히쭉 웃으며 머리를 수깃해 보였다. 《오빠는 익살쟁이야. 호호호.》 정순이의 마음도 개운해진 모양이다. 《오빠, 오빤 방금 무슨 생각을 했지?》 《응―그거 저―아무 것도 아니야.》 《진짜?》 정순이는 브레이크를 급히 밟으며 승용차를 길섶에 세워버렸다. 《내려. 내려서 걸어가! 나 몰라!》 《너 또 집게입이 된 거야?》 《모른다지 않아? 빨리 내려!》 《요 건 쓸개 빼먹고 간 빼먹고 다 빼먹어야 시름 놓는다니까. 허허허.》 《대체 무슨 일인데 나까지 속여야 해?》 《그저 속이 찜찜해서 그래.》 우리의 승용차는 모아산 기슭 국도변에 멈춰 있었고 우리의 실랑이도 그 곳에서 시작되었다. 고속공로는 꼬리 물고 달리는 차량에 밟히고 깔려 갈범 같은 소리를 지르며 진통을 달래고 있었다. 연길과 룡정 사이를 오가는 모든 물량을 한 어깨에 둘러메고 숨 가쁘게 헐떡이고 있다. 단오라 차량이 급증하는 바람에 차도로 비집고 들어서기도 힘들 것 같았다. 들놀이, 공원놀이 떠나는 놀이버스가 늘고 자가용이 급증한 걸 보면 오늘도 모아산 소나무밭 놀이터는 인산인해를 이룰 것 같았다. 벌써 몇 십 대나 되는 관광버스가 모아산 공원 정차장에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정순아, 나 요즘 허인숙 어머니의 일기를 보면서 이상한 생각에 갈마들고 있어.》 나는 내가 본 허인숙 어머니 일기의 내용을 들려주었다. 《이상하지 않아? 귀밑기미도 같고 출생 년월일도 같고…》 《그럼 오빠가 그 사생아라고 생각해?》 내 이야기에 귀를 솔깃하던 정순이는 내게서 눈길을 떼지 않으며 물었다. 나는 차창을 열고 길게 삼켰던 담배연기를 뿜느라 정순이를 보지는 못했지만 지금 정순이의 눈이 내 얼굴에 자국을 남기고 있다는 것을 제6감각으로 알고 있었다. 《어쩐지 자신을 자꾸만 그 쪽으로 끌어가고 있어.》 《의심병.》 《뭐야?》 《지나친 집착과 과로에서 오는 피해망상증.》 《직사포!》 《자, 출발!》 정순이는 발동을 걸면서 소리쳤다. 승용차는 차량들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고속활주로에 들어섰다. 정순이는 액셀을 힘 있게 밟았다. 《오빤 마음이 너무 여린 게 흠이야. 사람이 악할 땐 악하고 착할 땐 착하고 분별이 있어야 하는데 오빠에게는 착한 일면뿐이야.》 《반편?》 《그럼 내가 멍청이 오빠의 고마로 돼도? 엉터리없는 소리. 많은 사람들이 훌륭한 정치가는 훌륭한 정치수완이 있다고 말들 하는데 그 정치수완이란 게 대체 뭐야? 한 마디로 말하면 자르는 것과 포용이지. 자를 것은 자르고 포용할 것은 포용하는 것이 정치이고 그럴 줄 아는 사람이 정치가 아냐? 그런데 오빠는 포용밖엔 몰라. 그래서 일생동안 관직을 얻은 것이 정(正)자는 달아보지 못하고 부(副)자만 달고 다녔지. 안 그래?》 《그것이 전부는 아니야.》 《물론 그 건 나도 알아. 자른다는 것과 포용은 쉽게 말하면 악과 선인데 선을 베풀어 성공한 사람 얼마나 봤어? 지금 기독교에서도 불교에서도 온 종교계가 선, 선하면서 선을 베풀어야 한다고 떠들지만 선은 악의 전패자야. 영원한 전패자가 될지도 모르고…지금 사업에서 성공한 사람 모두가 선을 앞세운 줄 알아? 악을 앞세우고 악이 성공시켜준 거야. 감옥을 제집처럼 나들던 사람, 불량배라고 몰리던 사람, 그런 사람들이 사업에서 성공한 비결이 지식과 정보가 아니라 얼리고 닥치고 사기치고 그런 악덕으로 일어선 거야. 악과 선이 혼돈하는 현실, 선은 없어도 성공할 수 있지만 악이 없으면 성공하지 못한다는 그 비결을 나는 내게서, 어제의 내게서 찾았어. 오빠!》 《너는 현실을 새카맣게 보고 있구나.》 《그럼 오빠는 범람하는 사회의 비리를 어떻게 봐? 비리를 그래 백성들이 만들어낸 거야? 위에서도 만들고 밑에서도 만들고 나도 만들고 있어.》 《너도?》 《그래. 나도 악으로 성공한 사람이니까. 그 때 내가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은 악만 없었다면 난 두 남자의 희생품이 되어 벌써 쓰레기통에 처박혔을 거야. 지금의 난 옛날 오빠가 생각했던 순진하고 정직한 그런 정순이가 아니야. 난 악한 여자야. 악해도 무지무지 악한 그런 여자, 그것이 지금의 나야. 물론 오빠한테는 옛날의 정순이로 돌아왔지만…아니, 한생 옛날의 정순이가 되어줄 거야.》 《알고 있었어.》 《아니 오빤 다는 몰라. 오빠, 이 정순이가 어떤 여자였는지 오늘 다 말해줄까? 그렇다고 날 버리진 않겠지? 북경에서 내가 외국어학원을 졸업하고 한 일본회사에서 일할 때였어. 가정용 전기기구를 만드는 도요다회사의 분사, 분사라지만 대단한 재벌이었어. 장사골이 튼 늙다리였어. 우리는 만나자마자 눈이 맞았어. 두 대상이 눈이 맞는다는 건 서로가 상대방을 탐닉하고 무언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 아니겠어? 늙다리는 나의 젊음과 패기를 탐닉했고 나는 늙다리의 돈을 탐닉했고…결국 나는 내 젊은 육체로 늙다리를 꼬셔 북경에 호텔을 짓는다 빌딩을 짓는다 도요다회사의 상품을 끌어들인다 하면서 일본에 있는 그 늙다리의 자산을 수 없이 중국에 끌어들였어. 그 사이 내 손에 들어온 달러가 얼마나 됐는지 알아? 오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거야. 내 배가 차자 내 손으로 그 늙다리의 회사를 부도내고 그 덕에 빌딩 하나를 먹어버렸어. 생각해봐. 매일 치달아 오르는 북경의 땅값으로 계산하면 그 빌딩 하나만 갖고도 난 일년에 몇 백만 원씩 벌고 있어. 악과 악의 전쟁, 잃는 것도 있고 얻는 것도 있지만 선과 악의 전쟁보다는 몇 갑절 힘들고 치열한 전쟁, 그래도 무언가 남고 얻을 수 있는 전쟁이었어. 한국 기업가와도 나는 선으로 대한 것이 아니라 악으로 대했어. 선은 악의 대명사에 불과했어.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사랑하는 척하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지 오빤 모를 거야. 나는 그런 지겨운 세월 5, 6년을 살아왔어. 내가 이혼소송을 먼저 걸면 빈털터리로 나앉을까봐 전처 자식들을 학대한다 친지관계를 벌인다 하면서 말썽을 부리고 야단을 치고…결국 제 쪽지에 물러나게 했지. 나는 내 생활비와 딸의 몫으로 서울에 있는, 싯가로 수십 억대 가는 금은방 하나를 차지했고. 오빠, 정순이는 이런 여자야. 오빠가 생각할 수도 없는 악착같은 여자야. 이러지 않으면 내가 살아남지 못하는 걸 어쩌겠어? 나는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여야 했어. 내가 더 잘 되기 위해 남을 해쳐야 했어! 알겠어? 오빠, 사람과 사람과의 싸움은 이런 거야. 하지만 오빠는 마음치레만 하면 모든 것이 저절로 굴러들어오는 줄로만 알지. 현실은 너를 외면하고 현실은 너를 그렇게 대하지 않는데 오빠는 그 현실을 태산같이 믿고 현실이 너에게 무언가를 하사할 것l라고 믿고 있지. 냉혹한 현실의 노예, 오빠는 너무나 고루해. 난 오빠의 그 것이 싫어!》 《이제 싫다는 그 말 몇 번 들었지?》 《오빠가 현실을 투시하는 작품을 내놓을 때까지, 귀 아플 때까지 할 거야.》 《사람이 사는 방식이 서로가 틀린다는 걸 너도 모르진 않겠지?》 《하지만 살기 위한 수단은 한 가지뿐이야. 네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고…경쟁 자체가 그 것 아냐? 기업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나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정순이의 말엔 일리가 있었다. 내가 아무리 날뛰는 작가라 해도 정순이의 현대적 사고방식과 창의력, 모험성에는 미칠 바 못되었다. 냉혹한 현실의 노예? 나는 지금까지 현실에 바칠 것만을 생각하며 살아왔었다. 아니 바치면서 살아왔다. 그 것으로 나는 기뻤고 그 것으로 만족했다. 심지어 《문화대혁명》이라는 엄혹한 현실이 나를 철창 속에 밀어 넣었을 때마저 나는 현실을 위해서 내가 못 다 바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했었다. 얻는다는 것에는 전혀 마음 쓰지 않은 나였다. 나는 지금껏 이 것을 나의 귀중한 수장품으로 생각하며 대대로 물려줄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다. 그렇다면 내가 현실을 대했던 것처럼 현실도 나에게 줄 것만을 생각했던가? 나를 죽였다 살렸다한 것도 현실이요, 박대하고 천대했던 것도 현실이었다. 아니 그건 지나친 말이다. 나에 대한 보상으로 부(副)자라도 주었으니까. 불공정한 것이 현실이요, 공정하지 못한 것이 현실이라는 말이 있다. 현실 자체는 누구에게나 다 공정한 혜택을 주지 못한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영악이 성실을 찜쪄 먹는 현실을 두고는 아연해질 수밖에 없다. 정순이와 나는 비암산 고개를 치달아오를 때까지 말 한 마디 없었다. 나는 현실을 탐색하느라 입 놀릴 여유를 갖지 못했고 정순이도 깊이 생각하는 무언가가 있는 듯했다. 《오빠, 난 왜 오빠만 보면 그냥 꼬집고 싶어질까?》 백미러에 나를 피끗 쳐다보는 정순이의 눈이 나타났다. 《사랑하기 때문에.》 《말이 다사해지는 건?》 《믿기 때문에.》 《오빠, 오빠도 그렇게 생각했어? 똑 같은 생각, 완연한 일치! OK!》 정순이는 철부지 애들처럼 엉덩이를 달싹이며 연신 OK를 불러댔다. 《멋져! 멋진 오빠야!》 《걸림돌만 되지 않았으면 족하겠어.》 《오빠, 나 절대 오빠의 가정 파괴하지 않고 재미있게 살 거야. 고마, 알겠어? 고마로 말이야.》 《힘들 걸?》 《그래 힘들어, 오빠를 위해 오빠의 가정을 파괴하지 않는다는 것이 내가 악착같이 돈을 긁어모을 때보다 더 힘들어. 힘들지만 지켜갈 거야.》 《그 소리도 두 번째 듣는데?》 《이번이 마지막!》 언뜻하는 새에 우리는 비암산 고개를 넘었고 지금은 무연한 허래성벌(동성벌)을 끼고 달리고 있다. 해란강물을 다분히 먹은 갈아 번진 논밭들이 거울처럼 안겨왔다. 벌도 시원하고 마음도 후련했다. 두도진을 지날 때였다. 정순이 식품상점 앞에서 차를 세웠다. 《쉬어가려구?》 《노인휴양소로 가면서 단오 날 빈손으로 가나?》 《아유―깜짝이야.》 나는 그 때까지 빈손이라는 것도 잊고 있었다. 노인들 대접도 대접이려니와 허인숙 어머니의 묘소를 소주 한잔 없이 가다니? 이런 얼간이라니? 내가 승용차에서 내렸을 때 정순이는 벌써 주인과 함께 사과상자며 귤상자며 음료수상자며 술상자며 상자 째로 승용차 뒷좌석에 싣고 있었다. 나는 셈을 치르려고 돈지갑을 꺼냈다. 내가 매장 앞에서 주인과 물건값을 계산하는데 다이아몬드반지가 반짝하면서 하얀 여자의 손이 내 돈지갑을 막는 것이었다. 정순의 손이었다. 《여자를 옆에 두고 남자들이 돈지갑에 손을 넣는 건 난 질색이야.》 나는 군말 없이 돈지갑을 되넣고 정순이에게 밀맡겨버렸다. 《너 하나 차고 났더라면 천하를 호령했을 텐데…》 《그래? 그랬더라면 지금쯤 나는 벌써 거지가 되어 길거리에 나앉았을 거야.》 승용차는 어느새 약수동마을을 빠지고 있었다. 녹엽이 짙어져선지 지난 봄 약수동에 들어섰을 때처럼 약수동마을은 갓 겨울을 털고 앉은, 동면을 겪은 부억부억한 얼굴이 아니었다. 잠을 채 깨지 못한, 머리가 더부룩한 얼굴들이 문짝을 비집고 택시를 지켜보던 그런 눈들도 아니었다. 기둥이 비뚤고 게딱지처럼 발발 기는 집들에도 노오란 볏짚지붕이 얹혀 쌀 익어가는 내음을 피웠고 흙에 묻혀 사는 사람들의 독특한 체취를 풍기고 있었다. 폭우가 쏟아지면 폴싹 물앉을 것 같은 강풍이 불면 기둥뿌리까지 뽑혀갈 것 같은 헐망한 집들에도 집 생색을 내느라 울바자까지 가뿐하게 둘러서 있었다. 초봄에 봤을 때만 해도 그래도 살맛나는 약수동이었다. 단오라지만 약수동은 단오 맛을 잃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개울가 버들방천에 그네를 매고 모래사장에 씨름장을 닦았으련만 지금은 그네도 널뛰기도, 씨름판도 사라져버린 지 오래다. 농망기라 그럴 새가 없었던 것이다. 약수동 노인휴양소도 약수동 마을과 진배없었다. 단오라는, 일력이나 달력에 붙은 두 글자뿐 옛 그림자도 찾을 수 없었다. 옛날 같으면 강가 버들숲 속에 척 다리를 토시고 앉아 수염을 쓱 내리쓸며 아들의 씨름을 구경할 할아버지들이나 치마저고리를 곱게 입고 그네줄을 따라다니며 딸이나 며느리의 그네를 응원할 할머니들이 지금 휴양소 뜰 안에서 남새를 가꾸고 있다. 힘자라는 데까지 할 수 있는 데까지 노인 모두가 여력을 바치고 있다. 우리의 승용차가 휴양소 대문을 비집고 들어서자 처음 맞은 여인 역시 앳된 목소리의 임자―휴양소의 딸이요 어머니라 부르던 한영희 소장이다. 《오셨어요? 오실 줄 알았어요. 꼭 오시리라 믿었어요.》 내가 땅에 발을 내려놓기도 전에 영희는 내 손부터 덥석 잡으며 밝게 웃었다. 내가 처음 전화에서 들었던 소리, 허인숙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떠나갈 때에 들었던 그 소리 그대로다. 자신의 말에는 에누리가 없고 자신의 말을 거슬려본 사람 없다는 그런 자신감과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사모님이세요?》 뒤늦게 내린 정순이를 보자 영희가 나를 빠끔 쳐다보며 물었다. 나를 궁지에 몰아넣는 난처한 물음이다. 《동생예요.》 내가 우물거리며 어떻게 대답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을 때 정순이는 손을 내밀며 자기소개를 했다. 《아, 그러세요?》 영희는 스스럼없이 정순이의 손을 잡아주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그 눈길은 문 선생님에게도 여동생이 있었던가요? 하고 묻고 있었다. 의심이 병이라고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내 신상을 꿰질러보고 묻는 차디찬 눈길 같았다. 나를 허인숙 어머니의 친자식으로 알고 있는 노인들이 일손을 털고 우리한테로 몰려들었다. 나는 노인들에게 인사를 올리고 영희를 따라 소장실이자 침실인 그의 사무실에 들어섰다. 현관에도 사무실에도 쑥내가 물씬했다. 싱그러웠다. 콩기름과 참기름에 절었던 몸이 모공을 활짝 열고 쑥대를 감빨아 들이느라 입을 짝짝 벌리고 있었다. 그래서 몸이 거뜬해나는 것일까? 《단오 전 쑥은 보약이라면서 노인들이 떡쑥을 뜯어말리는 통에…》 영희가 미안해했다. 《시내에서는 돈을 주고도 맡을 수 없는 내음이요.》 《쑥 냄새 진짜 싱그러워요.》 쑥내에 취해서 그랬던지 쑥내를 탐내서 그랬던지 정순이도 들숨을 길게 쉬였다가 호―하고 내뿜으며 기분 좋게 말했다. 내 눈길은 나도 모르게 서류 궤짝 위에 놓여있는 큼직한 종이함에 쏠렸다. 두 달 전 내가 이 곳을 떠날 때의 그 모습 그대로 자리지킴을 하고 있었다. 허인숙 어머니가 아들에게 줄 유물로 남기셨다는 영예의 증거물―상장과 깃발이 들어있는 함이었다. 임자를 고대하면서 드팀없이 앉아있는 함. (빨리 친아들을 찾아야겠는데…) 나는 종이함을 보자 내가 해야 할 일을 못 다한 것 같은 책임감과 허인숙 어머니의 소원을 이뤄드리지 못했다는 미안함으로 감히 그 함을 정시할 수 없었다. (미안합니다. 어머니.) 《일기는 다 보셨어요?》 영희의 목소리가 귀전에서 울렸다. 《일기요? 미안하지만 다 보지 못했소. 나로서는 열심히 보느라 했는데 분량이 하도 엄청나서…》 《괜찮아요. 천천히 보세요.》 《저―영희, 삽 한 자루 빌릴 수 없을까?》 《삽이요?》 《청명에 와서 가토도 못해드렸는데 허인숙 어머니의 묘소에 흙 한 삼이라도 올려놓고 싶소.》 《농촌인데 삽이야 없겠어요?》 취사칸 쪽에선 뭔가 지지고 볶으면서 아낙네들이 떠들어대고 있었다. 그 소음은 귀찮게 들리는 잡음이 아니라 이곳에도 목숨들이 붙어있고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삶의 활력소로 안겨왔다. 지난 번 허인숙 어머니가 사망했을 때의 가담가담 들려오던 노인들의 흐느낌소리와는 완연히 다른 음식이요 색채다. 《오늘 단오라고 동네아주머니들이 모여와 점심준비를 하느라 그래요.》 《좋은 일들을 하고 계시는군.》 《명절마다 저렇게 찾아와요. 저―제가 묘소를 안내하지 않아도 되겠지요? 문 선생님이 알고계시니까요.》 《멀지도 않은데 괜찮소. 어서 볼일 보오.》 나는 삽을 받아 쥐며 기꺼이 대답했다. 정순이와 나는 제물을 챙겨들고 공동묘지를 찾아 뒷산 기슭을 향했다. 푸른 숲이 날짐승을 불러들인다는 푸르른 대자연, 청송, 홍송, 낙엽송이 빼곡히 들어선 언덕마을, 문만 열면 들나물, 산나물 뜯을 수 있는 오붓한 동네…이 곳이 골회만 남긴 영혼들이 살고 있는 고향이다. 《오빠, 땅 밑에 누워있는 저분들이 우리를 보면 뭐랄까?》 《미친 년놈들, 이렇게 질책할 거야.》 《아니, 너희들이 부러워. 이럴 거야.》 《왜?》 《이념의 만족 속에서 가치관을 모르고 살아오신 분들, 노력만을 알고 향수를 모르고 한생을 보내신 분들이니까.》 《그렇다고 자신들을 후회하지도 않았을 거야.》 《오빠, 바로 그거야. 그것이 불쌍하고 가련해. 죽으면서도 어째 죽는지 모르고 죽는 그것이…》 《너는 다 알고 죽을 것 같아?》 《조금은 알 것 같아.》 《알아? 알면 얼마나 알 것 같아? 우리가 모르고 있는 것이 얼만데? 모르고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하긴 모르고 죽는 것도 복 중의 복이야. 알려고 하면 끝이 없고 알고 나면 머리만 아프니까. 현실에 대한 도피보다 현실에 대한 무마, 그것이 제일 편안한 길이니까.》 《또 시작하는 거야?》 《아니, 기권!》 우리는 곧바로 허인숙 어머니의 묘소를 찾아갔다. 묘지 앞에서 나는 어정쩡해질 수밖에 없었다. 다른 묘지들은 청명에 가토를 한 흙들이 채 풀리지 않아 흙덩이들이 듬성듬성 보였지만 허인숙 어머니의 묘지는 떡가루를 뿌린 듯 흠잡을 곳 없이 보드라운 흙으로 덮여 있었기 때문이다. 흙 한 삽을 더 떠 얹거나 흙 한줌을 쥐어내도 균형을 잃고 흠집이 생길 것 같이 그렇게 잘 가꾸고 다듬어진 묘지다. 새로 쓴 묘소라 다른 묘지보다 몹시 어설프리라 믿었고 그래서 삽까지 가지고 왔는데 진짜 생각 밖이었다.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이 스치고 지나갔음이 틀림없었다. 단 하나 어설픈 것은 《현비유인 허인숙지묘》라고 통나무를 깎아 나무갓을 씌워 만든 비석 아닌 《비석》이었다. 《왜 비석을 세우지 않았지?》 《내가 어찌 아나? 정부에서 할 탓인데.》 《영웅에게 동상은 만들어주지 못할망정 돌 하나 세워주지 못해?》 정순이는 머리를 살래살래 저었다. 《오빠, 우리 추석에 다시 오자. 내가 비석을 세워드리겠어.》 《생각 잘했구나. 나도 방금 그 생각 했더랬어.》 《오빠와는 언제나 일치!》 우리는 묘전에 백지를 펴놓고 갖고 온 제물을 챙겼다. 간소하다 못해 눈에 차지도 않는 제물을. 그리고는 정성껏 절을 올렸다. 《오빠, 집체호 때의 허인숙 어머니 생각 나? 오빠는 나보다 3년 앞서 나갔으니 더 잘 알거야. 새벽마다 오줌통 지게를 지고 집집마다 돌면서 〈요강 내놓으시오. 요강 내놓으시오〉하던 허인숙 어머니의 목소리가 지금도 들려오는 것 같아.》 《정치는 가혹한 거야. 몇 십 년 혁명에 몸 바쳐 온 영웅들, 하루 새에 단두대에 앉히고 오줌 모으는 똥통꾼으로 만들었으니까.》 나는 지나간 나날의 죄의식과 자책감에 나도 몰래 얼굴이 붉어졌다. 《1970년였어…》 나는 요즈음 파랗게 장식하며 자라는 풀싹들을 살펴보며 감회에 젖어 말했다. 《우리들이 배낭을 메고 샘물골 집체호로 내려갔을 때였어. 40대의 여인이 매일 똥통을 메고 온 마을 변소를 돌면서 똥을 치는 걸 봤어. 남자도 아닌 여자가 말이야. 날 밝기 전이면 〈요강 내놓으시오〉 〈요강 내놓으시오〉하는 그 여인의 목소리가 우리 잠을 깨우고. 처음에 나는 그 여인을 무심히 보았고 그 소리도 무심히 들었어. 그 후 정치대장이 우리 집체호에 와서 샘물골 계급투쟁 정황을 소개해주었을 때에야 그 여인이 바로 전국에 이름 날린 허인숙이라는 걸 알았어. 소학교 때부터 내 우상이 되어주고 방향이 되어주던 어머니가 바로 〈똥통 여인〉이라는 걸 알았을 때 난 어안이 벙벙해지고 말았어. 〈겉은 조용한 것 같지만 우리 샘물골에는 계급투쟁이 치열합니다. 허인숙과 같은 자본주의 길로 나아가는 집권파의 사냥개가 있고 갈보가 있습니다. 그 놈들은 언제든 복벽을 꿈꾸고 있습니다.〉 정치대장의 연설은 이렇게 끝났어. 그래서 내가 고뿔에 걸렸을 때 닭곰탕을 해가지고 온 허인숙 어머니의 닭곰탕 한 방울 마시지 않았고 눈물로 내 곁을 떠나시게 한 거야. 정순아, 너 모를 거야. 림표를 비판하고 공자를 비판할 때 용천공사(지금의 향을 그 때는 공사라 했음)에서는 성세호대한 대비판 운동을 벌였어. 그 때 나는 집체호 호장이었고 입당 대상자였어. 그러니 대비판도 내가 앞장섰지. 투쟁대상은 물론 허인숙 어머니와 용천에 있는 지주 노랑대가리였지. 패쪽을 건 두 사람을 소학교 강당 무대 위에 세워놓고 내가 먼저 대비판을 시작했어. 〈허인숙은 일찍 당내에 기어든 자본주의 길로 나아가는 집권파의 사냥개였습니다. 이 년은 중국의 3세에 희망을 건다는 제국주의의 구미에 맞춰 젊은 세대들을 자기 곁에 끌어들이면서 사탕폭탄을 먹이며 복벽을 꿈꾸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독감에 걸려 앓고 있을 때 닭곰탕을 해가지고 왔던 사실을 살을 붙여가며 폭로했어. 내 말에 장내는 불도가니처럼 끓어올랐고 계급의 의분으로 차 넘쳤어. 〈허인숙은 철두철미 부패한 자본주의 사상에 물젖은 갈보였습니다.〉 나는 마지막 말을 이렇게 맺으며 무대 위에 서있는 허인숙 어머니를 쳐다봤어. 사색(死色)이 되어있었지. 하루 멀다하게 투쟁대회를 벌이다보니 허인숙 어머니가 투쟁 받는 장면을 많이 목격해왔지만 그 때처럼 죽어있는 허인숙 어머니는 처음 봤어. 그 죽은 얼굴에서도 두 줄기의 눈물이 흘러 강한 전등 빛에 반짝하고 불꽃을 튕기면서 내 동공에 반사되었어. 처음 보는 눈물이었어. 구호소리와 환호성 속에서 나는 개잡은 포수처럼 우쭐했지만 그 눈물 꽃을 보는 순간, 내 그만 기가 꺾이고 말았지. 그 어떤 외침도 그 어떤 타격도 그 눈물 꽃을 당할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어. 피보다 진한 눈물이었어. 정순아, 그 일을 두고 나 한생을 후회하면서 살아온 사람이야. 정치대장의 추김에 들어 입당해보겠다고 입당도 못하면서 미친개질한 걸 생각할 때마다 자신을 인간 밖으로 던져버리고 싶을 뿐이야.》 나는 다시 술 한 잔 부어 허인숙 어머니의 묘전에 뿌리고 절을 올렸다. 《죄 많은 이 녀석을 용서해주십시오.》 《오빠도 그럴 때가 다 있었나?》 정순이는 내 거동을 살피면서 물었다. 《있었지. 미쳤을 때.》 《미쳤을 때, 미쳤을 때…》 정순이는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허래성벌을 내려다보았다. 나도 그 곳에 눈을 주었다. 하지만 산에 막혀 벌은 보이지 않고 산 너머 또 산이 보일 뿐이다. 산 너머 또 산이… 우리들이 말없이 앉아 있는데 영희가 숨 가쁘게 우리를 찾아왔다. 《빨리 내려가 점심식사를 합시다. 노인들이 기다리고 계세요.》 《영희, 한 가지 물어도 괜찮겠소?》 《뭔데요? 어서 말씀하세요.》 《이 허인숙 어머니의 묘소에 누군가 왔다가지 않았소?》 《그러지 않아도 식사 후 말씀드리려던 참이었어요. 며칠 전에 강씨라는 노인이 왔다갔어요.》 《강 촌장?》 《우리 휴양소에 찾아와서 허인숙 할머니가 계시던 10호실을 살펴보시고 묘지를 찾아 이렇게 가토까지 깨끗하게 하고 떠나셨어요.》 《어데 계시는지 허인숙 어머니와는 어떤 사이인지 묻지 않았소?》 《왜 묻지 않았겠어요? 아무리 캐물어도 말 한 마디 없이 다시 오겠다는 말 한 마디만 남기고 떠나셨어요.》 《오셨을 때 나한테 전화라도 할 거지?》 《했댔어요. 받는 사람 없었어요.》 《낭패구만 낭패!》 나는 신기루처럼 떠오르던 황홀한 궁전이 순식간에 기둥 뽑히고 기왓장 날아가고 들보가 부러지면서 무너져 내려앉는 듯한 그런 참담한 기분이 들었다. 강 촌장을 만났다면 모두 다 알 것 같고 모두 다 찾아낼 것 같은 그런 흥분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허인숙 어머니의 정인(情人)을 보고 싶다는 호기심 때문이었을까? 강 촌장을 만나지 못한 것은 정말 맹랑한 일이었다. 우리는 휴양소 노인들과 함께 단오를 쇠고 오후 일찍 차머리를 돌렸다. 울퉁불퉁한 시골의 돌밭길은 우리를 못 견디게 들썩거려 놓았지만 정순이도 나도 말이 없었다. 나만 보면 꼬집고 싶다던 정순이마저 앵무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승용차가 국도의 입구에 이르자 정순이는 브레이크를 밟으며 나를 쳐다봤다. 《오빠, 산천어 별장이 멀지 않았는데 산천어 몇 마리 낚아가지고 갈까?》 《글쎄…》 《그래야 우리도 멋지게 단오를 쇠지?》 《글쎄…》 《산천어 사시미에 양주, 생각만 해도 기분난다.》 《좋도록…》 《아니 오빠, 오늘 왜 이래? 혼 나간 사람 같아.》 《응? 오…》 그 때에야 나는 강 촌장이라는 한 노인으로부터 나를 떼어냈다. 그 때까지 나는 그냥 강 촌장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신비하게 나타났다가 감쪽같이 사라진 인물, 그 인물이 나에게는 강한 충격제였고 무서운 자극제였다. 허인숙 어머니가 임신의 진통과 해산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항시 잊지 않고 그리워하던 강 촌장에 대한 그 정감의 여파가 내 흥분조를 건드려서 그랬는지 아니면 고요히 자던 호수에 파문이 일듯 머리 속에 공백으로만 남아있던 빈자리에 강 촌장이라는 이름이 뛰어들며 일으킨 물갈기라서 그랬던지 나는 강 촌장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래? 그럼 어쩌지?》 나는 그제야 히죽 웃으며 정순이를 쳐다봤다. 《이런 때면 오빤 신통히도 바보 같아.》 《네 앞에서만은 언제나 바보가 되고 싶고 애기가 되고 싶어.》 《괴짜, 오빤 괴짜야.》 《방금 산천어를 잡아가지고 단오를 쇠려고 했지? 멋진 생각이야. 자, 산천어 별장으로 출발!》 《오케이!》 정순이는 산천어 별장으로 차머리를 돌렸다. 그리고는 힘 있게 액셀을 밟았다. 도요다 승용차는 물너울이 넘실대는 아동저수지를 옆에 끼고 녹음이 우거진 진둥나무 숲을 헤치며 질풍처럼 달렸다. 오후의 해꼬리를 잡았는데도 산천어 별장에는 승용차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대부분 외제승용차들이었다. 단오라는 이름을 걸고 찾아든 공짜배기들이 아니면 코밑치성을 드리러온 얼렁뚱땅이들일 것이다. 《이거, 기분 잡치는데?》 《오빤 얼굴이 넓으니까 나타나지 말고 앉은 자리에 꼼짝 말고 있어. 오늘은 낚시질 꼴깍 삼키고 산천어 몇 마리 사가지고 가자.》 정순이는 머리 위에 올려 걸었던 선글라스를 내리며 핸드백을 들고 차문을 나섰다. 나는 차창으로 사위를 살폈다. 숲 속에도 사람, 낚시터에도 사람, 산천어 별장은 사람으로 붐비고 있었다. 아직 술상을 차고 앉았는지 별장에서 술 냄새 물씬 풍기는 매듭 없는 소리들이 꼬리를 물고 쏟아져 나왔다. 간드러진 웃음, 허파 빈 너털웃음, 그 웃음소리마저 술 냄새에 절어있었다. 정순이는 별반 지체하지 않고 푸들푸들 뛰는 산천어 세 마리를 비닐주머니에 들고 운전석에 들어섰다. 《남들이 낚은 걸 빼앗아왔어.》 《도적질한 건 아니구?》 《빼앗았건 도적질했건 등호니까 성질은 날강도, 호호호…》 《너는 워낙 하나 차고 났어야 했는데…》 《그랬더라면 오빠를 갖지 못하는 건 어쩌구?》 《허허허…》 《호호호.》 우리는 식었던 마음들을 달구며 귀로에 올랐다. 정순이의 집은 연길시 개발구역에 새로 지은 아파트단지에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정순이 차에 숱하게 앉아 다녔고 그녀와 많은 접촉을 가졌지만 집을 어디다 잡았는지 어떻게 사는지 모르고 있었다. 묻지도 않았고 정순이도 알려주지 않았다. 우리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서로를 아끼고 탐닉하면서도 서로를 집에 끌어들이지 않았다. 《삼단원 삼층 동쪽 집, 차를 차고에 넣고 올 테니까 오빠 먼저 들어가요.》 정순이는 집 열쇠를 나에게 맡기며 말했다. 나는 그 때까지도 비닐주머니 속에서 푸들푸들 뛰는 산천어를 들고 삼층 동쪽 문을 열었다. 내가 상상했던 것처럼 정순이가 살고 있는 집은 궁궐처럼 화려하지 않았다. 면적이 90평방미터 쯤 된다고 해야 할까? 객실과 침실 두 칸, 취사칸, 위생실… 아파트단지를 돌아다니며 내가 흔히 보아오던 그런 보통 살립집이다. 장식도 수수했다. 문틀과 문 모두를 홍송으로 만든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일까?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하나도 없다. 《이 걸 어쩌지? 아침에 오빠가 부르는 바람에 들볶아치다가 그만 집을 치우지 못해서…》 정순이가 뒤따라 들어서며 살짝 보조개를 팠다. 《아니, 괜찮아.》 《오빠, 미안해.》 정순이는 내 왼쪽 볼에 입술을 살짝 댔다 떼며 해쭉했다. 살림기구라든가 가정용 전기기구라든가 집 장식이라든가 그 모든 것을 보아서는 정순이가 자랑하던 그런 갑부 같지 않았다. 침실도 그렇고 객실도 그렇고 눈을 잡아끄는 것이 하나도 없다. 객실에는 심지어 소파마저도 없다. 그러다 내가 놀란 것은 북쪽 칸을 보는 순간이었다. 당초 침실로 쓰게 되어 있는 것 같은데 정순이는 침실이 아니라 사무실로 쓰고 있었다. 큼직한 테이블과 회전의자.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팩스, 노트북, 전화, 복사기… 현대화 작업설비와 통신설비를 갖춘 작업실이다. 《오빠, 집 안이 스산하지?》 《아니, 이 북쪽 칸에서 진짜 너를 보았고 네 얼굴을 봤어!》 《내 지휘부야. 난 없으면서 있는 것처럼 버젓하게 차려놓는 건 질색이야. 필요 이상은 거추장스러우니까.》 나는 정순이의 거처를 살펴보면서 내 아내를 떠올렸다. 정순이 집에 비하면 우리 집은 온갖 잡동사니가 꽉 들어찬 숨 가쁜 박물관이다. 원래 3세대 다섯 식구가 살던 집이라 가장 집물이 많은 탓도 있겠지만 남 다른 것이나 남들에게 있는 것이면 승강내기로 사들이는 아내의 고집스런 취미 때문에 공간을 찾을 수 없다. 식기만 해도 그렇다. 꽃 사발. 꽃 소래, 꽃 종지…실제 사용하고 있는 것은 십분의 일도 안 되건만 눈요기에 그치는 이런 그릇들이 찬장에 넘쳐난다. 그래도 부족한지 계속 사들인다. 아내의 말을 빌면 싱크대나 찬장에서 여자의 알뜰한 솜씨를 읽을 수 있다나? 진짜 곰팡내 나는 여자다. 그 뿐 아니다. 침실이나 객실은 완전한 미술 전시관이다. 내가 그림을 걸어놓는 건 진품 한 두 가지면 된다고 입이 닳도록 말했건만 아내는 어디서 얻어오는지 싸구려그림이나 족자를 가져다 걸어놓는데 마지막엔 내가 손을 들고 나앉았다. 집 안에 들어서면 첫눈에 띄는 것이 그림이나 족자라나? 작은 것과 세세한 것에 눈을 도사리면서 큰 것을 멀리하는 여자, 그 여자가 바로 내 아내다. 《오빠. 이건 모두 일본 영감쟁이와 한국 기업가한테서 배운 거야. 그들은 사업에 필요한 것이라면 돈을 아낄 줄 모르지만 생활에 불필요한 물건엔 눈부터 찡그려.》 《옳은 처사야, 돈 팔고 부담감 가지는 멍청이 짓, 우리는 이 때까지 그런 부담감을 안고 살아온 족속이야. 기업을 시작하기 전에 돈을 대출받아서는 자기의 아파트와 자가용부터 사고 상품이 나오기 전에 그 상품의 성공 여부도 모르면서 축하파티부터 여는, 우리는 그런 것에 물젖은 동방족속이야.》 《오빠 우리의 전투가 또 시작되는 거야?》 《아―니, 투―항!》 《오빠, 사시미 잘한댔지?》 《물론이지. 어부니까.》 나는 겉옷을 훌렁훌렁 벗어 정순이의 침대 위에 팽개치고 행주치마를 걸치며 싱크대에 마주섰다. 그리고는 큼직한 소래에 물을 담고 비닐주머니 속의 산천어를 쏟아놓았다. 산천어가 풀쩍풀쩍 뛰면서 눈 깜짝할 새에 싱크대를 물판으로 만들었다. 나는 꼬리질하면서 계속 물방울을 튕겨 올리는 산천어 한 놈을 꽉 틀어잡고 칼등으로 대가리를 콱 쳤다. 그 놈은 꼬리를 파르르 떨면서 코에 피를 흘리며 죽어갔다. 《아유 깜짝이야. 오빤 너무나 지독해! 잔인해!》 냉장고에서 홍당무며 양파, 부추며 마늘을 꺼내 다듬던 정순이는 내 거동을 지켜보다가 새된 소리를 질렀다. 《아직 너를 따르자면 멀었어!》 《내가 그토록 지독했나?》 《나는 고작 물고기를 죽였지만 너는 사람을 잡았으니까.》 《오빠, 고만해. 지나간 일 생각하면 지금도 입에서 신물 나!》 《좋아, 우리의 3차대전 결속.》 나는 산천어 세 마리를 다 죽여 놓고 고기를 발라내 물고기 등심에 칼끝을 박았다. 그런데 칼이 들지 않았다. 《아니, 이 것도 칼이야? 두부모도 베지 못하겠다. 숫돌 없나?》 《내가 말했잖아? 필요용품은 완전 구비.》 정순이는 싱크대의 왼쪽 서랍을 열더니 숫돌 2개를 내놓았다. 센 숫돌과 보드라운 숫돌이다. 나는 정순이를 다시 쳐다보았다. 사람마다 생활양식과 방식 추구는 서로 달라도 생활의 최저 수요는 같은 모양이다. 의식주의 최저 필수품, 그 것 말이다. 《왜 사람을 그렇게 봐?》 《치마 두른 떨렁방울, 여자라는 티를 속일 수 없지.》 《이게 어디 여자가 할 일이야? 남자가 할 일이지.》 《생활의 적응력은 여자가 더 강한 법이야.》 《오빠에게서 배웠어. 오빠가 첫 원고료를 타가지고 우리들이 술을 마시고 취하던 그날, 오빠가 처음으로 산 물건이 뭐야? 우리 집체호에서 쓸 센 숫돌과 보드라운 숫돌, 잊었어?》 《그랬던가? 허허허.》 정순이는 나물을 씻고 나는 고기살을 바르고…처음으로 남의 간섭도 남의 눈치도 볼 것 없는 집안에서 우리들이 먹을 음식을 우리들이 장만하는 자리…부부간에 만들고 부부간에 갖는 그런 자리가 별 뜻도 없이 너무나 평범한, 너무나 보잘 것 없는 자리로 단단히 되었지만 오늘 정순이와 나란히 선 이 자리는 쓰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자리다. 다듬고 가꾸고 싶은 자리다. 나는 큼직한 꽃 접시에 얼음을 한 번 깐 다음 정순이가 씻어 놓은 상추를 펴고 그 위에 발가우리하게 저민 산천어 고기를 차곡차곡 펴놓았다. 《오빤, 작가가 되기엔 너무 아까워. 요리사가 될 걸 그랬어! 오빠 요리솜씨 일등!》 내 솜씨와 갖춤새를 지켜보던 정순이는 손뼉을 치며 환성을 질렀다. 환성을 들을 만도 했다. 껍질을 바르고 고기를 뜯어내 저미는 시간이 몇 분 걸리지 않았으니까. 《집체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친구들끼리 천렵을 가거나 낚시질 갈 때면 안주감과 점심채비는 내 차례다. 내가 끓인 어탕이 제일 맛있다나? 나도 그렇다. 희한하게 생선국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끓이기를 좋아하고 끓일 공구를 마련하기 좋아한다. 하기에 천렵이나 낚시질 떠날 때면 언제나 나에게 가방 하나가 더 생긴다. 끓여먹을 공구와 양념장, 잡동사니가 들어있는 가방 말이다. 정순이는 남은 산천어 한 마리에 고기를 발라낸 산천어까지 넣고 끓이면서 한국식 해물탕을 만든다면서 야단이다. 내가 맛을 봤다. 뭔가 부족했다. 홍당무, 깻잎, 콩나물…나도 한국에 가서 먹어봤지만 들어가야 할 것은 거진 들어간 것 같았다. 그런데 뭔가 부족했다. 나는 얼른 된장 반 숟가락을 떠 넣었다. 《오빠, 해물탕에 된장 넣어?》 《해물탕이 따로 있다던? 맛나면 해물탕이지. 자, 맛봐!》 나는 국자에 국물을 담아 정순이의 앞에 내밀었다. 《된장냄새 나는 해물탕?》 《어서 맛보라니까.》 정순이가 국물을 맛보았다. 《아유―둘이 먹다 죽어도 모르겠네. 오빠, 그런데 왜 된장냄새가 안 나지?》 《너 우리 민족의 이 된장이 만능 양념이라는 걸 몰랐니? 옛날에도 노벨상이라는 것이 있었다면 분명코 우리의 된장이 노벨상을 탔을 거야. 된장을 조금 넣으면 비린내도 가시고 느끼한 맛도 없애고 입안이 거뿐해져, 너 돼지고기도 맹물에 삶지 말고 된장국에 삶아봐. 고소한 맛과 시원한 맛, 일품이야 일품!》 《오빠는 검식가야. 아는 것도 많고.》 《너를 내놓고는…》 《뭐야?》 정순이는 내 가슴을 다듬이질했다. 《항복. 내가 왜 널 몰라?》 나는 행주치마를 두른 그대로 정순이를 포옹했다. 달콤한 정순이의 입김이 귀방울을 간지럽혔다. 《오빠. 술과 안주는 동반이라면서?》 정순이는 위스키 한 모금에 산천어 사시미 한 점을 입에 넣고 씹으며 말했다. 《누가 그래?》 《안주가 없으면 술을 못 마시고 술이 없으면 안주를 집지 못 한다고…》 《동반, 동반 잘 아네? 그건 술 마실 때 남자가 여자를 두고 한 소리야. 여자 없으면 술맛 간다는 술상의 남녀동반이야.》 《그래서 요즘 남자들은 술상에 앉아도, 노래방에 가도, 들놀이에 가도 놀이방 아가씨를 부른다 애인을 부른다 하며 난리야?》 《또 정치가 시작되는 거 아냐? 이거 술맛 간다.》 《그럼 스톱. 오빠 자―쨍!》 정순이는 위스키 잔을 내 잔에 툭 치며 눈귀부터 웃었다. 위스키 잔에서는 얼음덩이들이 잘가닥잘가닥 소리를 내고 우리의 입술에선 쪽쪽 입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소리가 이어졌다. 내가 언제부터 내 필묵을 아끼지 않는 버릇을 키웠는지 모르겠다. 나는 글깍쟁이라는 별호를 달고 있는 사람이다. 웬만해서는 붓을 들지 않고 붓을 들었다하면 말 한마디 글 한자를 톱으로 켜먹는다. 그것도 자기가 먼저 울고 웃지 않으면서 어찌 독자들을 울고 웃기겠는가 하면서 정서의 흐름을 다듬고 또 다듬는 글벌레다. 이것저것 생각나는 대로 마구잡이 글을 쓰는 잡(雜)가가 아니라 소설 하나만을 틀어쥐고 놓지 않는 단(單)가 글쟁이다. 이렇듯 소중하게 아껴오던 자신의 필묵을 언제부터 망탕 놀렸던가? 작년? 재작년? 아니 몇 달 전부터인 것 같다. 정순이를 만난 그 날부터. 이상했다. 정순이에 대한 글, 정순이와 만났던 이야기의 글은 싫지 않았다. 쓰고 또 쓰고 싶었다. 그래서 정순이만 만나면 내 글은 저절로 길어진다. 독자들이 싫증을 느낀다는 걸 알면서도 붓을 놓고 싶지 않은 걸 어쩌랴? 나는 지금 정순이의 말, 행동, 정서, 심지어 나보고 반말을 쓰는 것마저 아무런 가공도 없이 원시형태 그대로 적는다. 가미하거나 다듬는다면 정순이의 형상에 손상이 갈 것 같기 때문이다. 이것이 지금 나의 진솔한 고백이다. 《오빠, 내가 다른 남편 얻는다면 오빤 울 거지?》 위스키 한 병을 굽내고 다른 병뚜껑을 땄을 때 정순이는 나에게 물었다. 만취는 되지 않았지만 알딸딸한 기운을 넘어 아리송한 몽롱의 입구에 들어섰을 때였다. 《너 오빠를 잘 안다면서 그걸 물어?》 《한 마디만 듣고 싶어서.》 《울 거냐고?》 《그래 맞아. 그 대답이야. 오빠, 말해줘! 울 거라고.》 《속으로 울면서도 겉으로는 웃는 그런 오빠를 너 몰라서 묻냐?》 《그 말 싫어! 듣기 싫어!》 《울 거야. 아니 널 죽일 거야! 첫사랑이 이토록 무서운 줄 난 몰랐어! 너도 죽이고 나도 죽을 거야!》 나는 술 광기를 썼다. 미친놈처럼 소리쳤다. 나머지 위스키를 단숨에 마셔버리고 술잔을 동댕이쳤다. 쨩―소리와 함께 술잔이 구들바닥에서 박살났다. 《오―빠!》 순간 정순이는 내 품에 안기며 어깨를 들먹거렸다. 나는 정순이를 으스러지게 껴안았다. 《오빠, 이게 오빠의 참 모습이야. 집체호 때의 오빠, 그런 오빠로 돌아온 게 고마워 오빠―》 나는 어떻게 침대에 누웠는지 그리고 어떻게 잠들었는지 몰랐다. 옷을 입은 채 술에 골아떨어진 게 분명했다. 누군가 나를 흔드는 바람에 눈을 떴다. 정순이가 나를 흔들고 있었다. 《오빠, 너무 늦겠어. 빨리 일어나.》 나는 흐리멍텅한 눈길로 방안을 살폈다. 내 침실이 아니다. 눈 설고 낯선 침실이다. 불은 죽이고도 제 잠자리를 찾던 내 침실이 아니다. 《이거 어떻게 된 일이지?》 《오빤 많이 취했더랬어. 나도 취하고.》 《오빠, 어서 집으로 돌아가!》 《괜찮아, 오늘 저녁 자고 가겠어!》 《안돼. 오빠! 언니가 기다리고 있잖아?》 《괜찮아.》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자고 싶었다. 정순이의 침대에서, 정순이의 체취가 다분한 이부자리 속에서 하룻밤 푹 자고 싶었다. 《안 된대두. 오빠!》 정순이는 마구잡이로 나를 안아 일으키며 말했다. 《집에서 언니가 기다리잖아. 오늘 단오 아냐?》 《단오면 어떻구 추석이면 어떻구 아버지도 계시지 않은데 괜찮아.》 《오늘 저녁만은 안 돼! 언니를 실망시켜선 절대 안 돼!》 《괜찮다지 않아!》 내가 발끈했다. 《안 돼! 언니가 얼마나 오빠를 사랑하고 있다고? 내가 질투 할 지경으로 말이야. 그런 언니를 실망시키다니? 안 돼! 빨리 일어나!》 앙탈에 가까운 정순이의 들볶음을 견뎌낼 수 없어 나는 일어나 옷매무새를 바로 했다. 나는 가야 했다. 앞으로의 정순이를 위해서, 앞으로의 나를 위해서, 앞으로의 우리를 위해서 나는 꼭 가야 했다. 《오빠, 오빠를 보내고 나면 난 장밤 홀로 울 거야. 오빠는 소설에서 고독이라는 단어를 쉽게 써먹지만 그 고독이 얼마나 무섭고 얼마나 지독한지 오빠는 잘 모를 거야. 고독―그건 죽음의 전주곡, 지옥의 첫 발자국이야. 오늘 저녁 나도 오빠를 돌려보내고 싶지 않아. 언니한테 뺏기고 싶지 않아. 하지만 나는 오빠를 뺏어야 하고 뺏기지 않으면 안 돼. 나도 여자이니까. 어머니니까. 오빠가 결혼한다는 소식 들었을 때처럼 나는 여자이기 때문에 지고 말았고 여자이기 때문에 져야 해! 오빠는 몰랐을 거야. 오빠가 결혼한다는 청첩장을 손에 받아 쥐고 내가 얼마나 울었는지를. 그 때 내가 얼마나 오빠를 저주하고 증오했는지를. 오빠의 첫 남성을 내가 가졌고 내 첫 정조를 오빠에게 바쳤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니었어. 끝내는 언니에게 지고 말았다는 참패감에서 오는 실망과 절망 때문이었어. 그래서 울었어. 그래서 자살하려고 수면제 한 움큼 먹었고. 내가 병원에서 의식을 회복하자 오빠에 대한 보복과 언니에 대한 울분을 품고 분연히 낯선 북경 땅을 밟게 됐어. 알겠어? 오빠, 나는 이렇게 성공한 사람이야. 그 증오와 울분이 나를 성공시킨 거야. 그때 내가 오빠의 아내가 됐더라면 지금쯤 이 정순이도 언니처럼 평범한 가정주부가 되고 말았을 거야. 이건 오빠와 언니에게 감사드려야 할 일이야. 오빠, 내가 왜 연길로 되돌아왔고 연길에 온 지 얼마 되지만 오빠를 찾지 않았는지 알아? 솔직한 말을 한다면 보복을 하기 위해서 복수를 하기 위해서였어. 그래서 짬짬이 오빠를 노렸고 오빠의 일거일동을 살폈어. 아니 놀라지 마. 정순이의 솔직한 고백이야. 내가 오빠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을 때 난 우연한 기회에 오빠의 근작 장편소설 〈고독이 머물고 간 자리〉를 봤어. 그 소설에서 나는 내 원형을 봤고 오빠에 대한 원심을 잃었어. 고독이 머물고 간 자리, 우리 두 사람 모두가 첫사랑의 등나무넝쿨에 엉켜 있으며 고독이 머물고 간 자리에서 배회하고 있다는 걸 알았어. 복수? 그건 사랑이었어. 사랑하기 때문에 복수하려 한 거고. 내가 처음으로 연길에 와서 오빠를 만나던 기억 나? 난 보복이냐 사랑이냐를 놓고 며칠 밤 붐비던 끝에 오빠를 꼬셔냈고 오빠를 골탕 먹이려 들었어. 오빠와 언니를 이혼시키고 다시 오빠와 내가 결혼하고 그런 다음 오빠를 내동이치고…그런데 그날, 오빠 앞에서 나는 참패하고 말았어. 고독이 머물고 간 자리를 잊지 못하고 있는 오빠, 변함없는 오빠를 봤을 때 난 오빠의 가슴에 칼을 박을 수 없었어. 아니 내가 오히려 휘말려들고 말았어. 영원히 오빠를 행복하게 해드리고 오빠를 성공시켜드리고 싶었어. 오빠, 정순이 나쁜 년이지? 악착한 년이지? 내 이런 앙심도 모르고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사랑해주고 아껴주는 오빠에게 감사해. 오빠의 그런 마음이 이 정순이를 구해줬고 여자로 만들어줬는지 모르겠어. 오빠, 빨리 떠나. 언니가 기다리고 있어. 내가 지녔던 고독을 언니에게 전가시켜선 안 돼. 알겠어? 오빠! 여자들의 마음 저울에 올리기 힘들다지만 여린 게 여자들이야. 언니가 기다리고 있어. 오늘 나를 기쁘게 했던 것처럼 언니에게도 단오 명절의 기쁨을 갖다 줘.》 《정순아, 고맙다.》 《오빠, 나처럼 나눠가지는 사랑도 있어?》 《나눠가지는 사랑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주는 사람은 나눠주지 못해. 내 동공 속에 네가 들어있듯이.》 나는 정순이의 말에서 경악과 환희를 느끼면서 정순이를 품안에 넣었다. 《오빠, 정순이를 욕하지 않겠지?》 《욕하지. 죽도록…》 나는 정순이를 다시 한 번 으스러지게 껴안았다가 풀어주었다. 그리고는 문을 나섰다. 신원아파트 단지는 저녁이 하품을 하기 전까지는 가로등과 집집마다 쏟아져 나오는 전등 빛으로 대낮처럼 밝아있었다. 오늘은 불단오가 돼서 더위를 일찍 불러들였는지 부르하통하강 둑 산책로엔 치마 바람의 여인들이 애들 손목을 잡고 저녁 산보를 하고 있다. 보기만 해도 여유가 있는 저녁이다. 빨래질하는 여인들의 물방치소리가 유난히 귀맛 좋게 들려온다. 근년엔 드물게 듣는 소리다. 세탁기가 좋다면서도 세탁기로는 묵은 때를 다 씻지 못한다면서 저렇게 빨래감을 갖고나와 강가에서 빨래질하는 우리의 여인들이다. 방치질하고 헹구는 그 모습이 강물에 비낀 전등 빛에 어른거린다. 나는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감옥 같은 집이다. 아버지가 떠나신 후 나는 내 집을 감옥같이 생각해왔다. 집이니 집인가 했고 집이니 찾아들었다. 안식처라는 이미지는 벌써 상실해버린 집, 그 집에 몸을 담그기가 진짜 싫었다. 싫지만 찾아야 했고 들어가야 했다. 가장이라는 세대주라는 의무감이 귀찮게 나를 떠밀고 있기 때문이다. 집안은 환하게 웃으며 나를 맞았다. 현관으로부터 객실, 침실 집안에 있는 전등이란 전등은 다 켜있다. 웬일일까? 내 뒤를 따라다니며 전등불을 끄던 아내가 빈집에 불을 밝히다니? 《아버님이 오셨어요.》 아내는 밝은 얼굴로 말했다. 《아버지가?》 나는 다짜고짜 아버지의 침실 문을 열었다. 《편히 다녀오셨습니까. 아버지!》 《오냐. 콜록콜록.》 《퍽 근심했댔습니다.》 《됐다. 좀 쉬고 싶으니 어서 나가봐라.》 《네.》 나는 아버지의 눈썹부터 바라봤다. 떠날 때는 빳빳하게 빗어 올렸던 눈썹이 축 처져 있다. 좋은 신호가 아니다. 이런 때 아버지에게 위로의 말씀을 올린다거나 군말을 했다가는 무리를 빚는다는 걸 잘 알고 있는 나다. 지지콜콜하는 데엔 질색하시는 아버지시니까. 나는 조용히 아버지의 침실 문을 닫고 객실로 나왔다. 아내가 취사칸에서 저녁상을 차리느라 부산을 피운다. 그 손놀림이 가볍고 빨라보였다. 사위는 장모의 사위요, 며느리는 시아버지의 며느리라는 말이 정답임에 틀림없다. 아버지가 돌아오자 나보다 아내가 더 좋아했다. 나 대신 아버지가 고독이라는 자리를 메워줘서일까? 아니 평상시에도 고독과 아내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교원이라는 직업적 특수성 때문이지는 몰라도 아내는 조용히 홀로 있기를 좋아한다. 매일 분필가루에 분치장하고 애들한테 콩볶이가 돼서 그런지 아내는 집안일을 거두는 외엔 침실에 박혀서 나들이조차 하지 않는 고질병을 갖고 있다. 거기에다 마음 씀씀이나 넉넉한가 모든 처사나 행동거지가 1+1=2이다. 용돈에도 여지가 없다. 자기한테도 그랬고 나한테도 그랬다. 그 돈을 어디다 어떻게 썼는가를 꼭꼭 따지는 아내다. 그런데 아버지한테만은 헤프리만큼 너그러웠고 주먹이 컸다. 그 것이 어떤 때는 너무한다 싶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나는 아내의 그 행실을 나무라거나 이의를 제기한 적이 없다. 그 것이 되려 감사했다. 아내가 아버지에게까지 바가지를 긁는다면 나는 벌써 가정을 파괴했을 것이다. 우리 가정은 이렇게 큰 모순도 없고 큰 기쁨도 없이 시들먹히 기둥뿌리에 매달려 살아오는 집안이다. 《아버님께 저녁진지 드시라고 하세요.》 아내가 저녁상을 차려놓고 말했다. 《몸이 불편하신지 쉬고 싶다오.》 《그래도 쌀이 막대라고 때를 거르시지 말아야지요.》 아내는 내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아버지의 침실 문을 노크했다. 《아버님, 저녁진지 드세요.》 《먹고 싶지 않네. 콜록콜록.》 《끼니를 거르시면 되나요. 한 술이라도 뜨고 누우세요.》 《아니 자네들끼리 먹게나.》 《아버님, 아버님이 자시지 않으면 우리도 먹지 못해요.》 《먹는 것보다 쉬는 것이 보약인데 콜록콜록.》 《자, 아버님 제가 부축할 테니 일어나세요. 욱―호호호.》 아버지의 방에서 들려오는 말소리와 아내의 웃음소리가 내 뒤 등에서 울렸다. 웃음소리? 처음이라 싶게 어쩌다 들어보는 아내의 웃음소리다. 언제였던가? 귀에 설만치 생소하게 느껴지는 웃음소리를 들어본지가. 잘 기억되지는 않지만 내가 쌍둥이를 목마 태울 때였을 것이다. 쌍둥이를 길러본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쌍둥이들의 승벽심은 부모들도 당해내는 재간이 없다. 과자나 사탕을 주어도 똑같이 주어야지 누구한테 하나라도 더 주면 발버둥질이거나 투정질이다. 그리고 어느 누구에게 쪽을 놓는 눈치만 보여도 생트집을 잡지 않으면 앵돌아진다. 그래서 나는 목마를 태워줘도 번갈아가며 똑같게 태워주곤 했다. 그 날도 설영이를 먼저 목마 태워주고 광천이를 태워주는데 불시에 목덜미가 뜨끈뜨끈해 났다. 광천이란 녀석이 오줌을 쐈던 것이다. 오줌은 적삼을 적시며 사등으로 줄줄 흘러내렸다. 《여보, 이 녀석 좀 받아 안소.》 《왜 그래요?》 《날벼락 맞았다니까.》 아내가 광천이를 받아 안고 내 등을 찰싹찰싹 때리며 깔깔댔다. 《아들 덕에 오줌벼락 맞았군요. 호호호.》 아들의 오줌벼락 맞은 것이 그토록 멋져 보이고 신났던지 아내는 만족하게 웃었다. 그 후로는 더 들어보지 못한 아내의 웃음소리다. 그 웃음소리가 방금 전 아버지의 침실에서 들려왔다. 내가 아들의 오줌벼락을 맞았을 때처럼 시름없이 웃는 툭 터진 웃음이 아니라 어딘가 만들어지고 다듬어지고 막힌 듯한 웃음이기는 하지만 나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듯한 아내의 웃음소리다. 우리 집은 워낙 웃음이 없는 집이다. 서로가 서로를 걱정하고 아끼면서도 과묵한 성격의 임자들이라서 그런지 웃음만은 없었다. 웃음을 모르고 산 지오랬다. 그래서인지 오늘저녁 아내의 웃음소리는 낯설면서도 귀에 익은, 멀면서도 가까운 소리로 맞혀왔다. 터벅터벅… 찰싸닥―찰싸닥… 아버지의 발걸음소리와 아내의 끌신 끄는 소리가 엇갈리며 들려왔다. 나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버지, 몹시 편찮으십니까?》 《괜찮다. 길에서 좀 지쳤나보다. 콜록콜록.》 《그 간 이 사람이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릅니다.》 나는 《제가》하고 말하려다 단오의 색채를 더해주느라 웃어주던 아내의 얼굴과 마주치자 《이 사람이》하면서 아내를 힐끔 쳐다봤다. 하지만 아내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사라진지 오랬다. 《웬 걱정이었어? 콜록콜록. 죽을 데로 갔다구?》 《자, 시장하시겠는데 저녁 들자요.》 내가 늦게 오는 바람에 저녁이 아니라 밤참이나 진배없는 우리 집 저녁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아내는 단오명절이라고 상다리 부러지게 차렸지만 나는 먹는 둥 마는 둥 집는 둥 마는 둥 했다. 정순이와 함께 산천어로 만포식한데다 술이 거나한 채 풀리지 않아서였다. 《아버지, 까막골 형편은 어떻습데까?》 저녁 숟가락 놓고 아내가 바나나 가지러 간 짬에 내가 물었다. 《까막골이라고 무릉도원이겠냐? 콜록콜록. 말이 아니더라.》 《알 사람 더러 있습데까?》 《야장간집이 가달가달 붙어있더구나.》 《그간 어디 계셨댔습니까?》 《야장간집에 있었지. 콜록콜록.》 《아버지도 잠자리랑 불편했을 텐데 인츰 돌아오시지 않구요.》 《이 녀석, 콜록콜록. 그 곳에 네 어미가 묻혀있어. 그리구 네 뼈마디가 자란 고장이여. 콜록콜록. 이번 걸음이 마지막이라 싶으면서 발이 떨어져야지?》 아버지의 그 말씀에 나는 말문이 막혀버리고 말았다. 까막골, 어떤 고장일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어머니가 묻혀있는 땅이다. 내가 철이 들면서 청명과 추석이 오면 나는 항상 어버지를 따라 어머니의 산소에 가곤 했다. 지금은 어머니의 묘지가 까막골 어느 쪽 어디에 있었던지 아리송하지만 그 때엔 해마다 어머니의 산소를 찾아 절을 올리곤 했다. 어머니에게서 받은 것도 없고 내가 줄 것도 없는 모자간의 정이지만 그저 어머니가 보고 싶고 그립다는 그 하나로 묘지를 찾았었다. 어려서 그랬던지 어머니의 묘지를 보면 어머니를 본 듯한 그런 달짝지근한 동심에 휘말리면서 말이다. 그 후 까막골을 떠나자 어머니의 묘지도 잃었고 까막골도 잊고 있었다. 《아버지, 어머니의 묘지는요?》 《휴―쑥밭이 된 벽돌공장이 앉아있더구나. 콜록콜록 나 좀 쉬어야겠다.》 아버지는 바나나도 들지 않고 자리를 뜨셨다. 터벅터벅… 나는 침실로 들어가시는 아버지를 바라봤다. 어찌나 허리가 구부정한지 아버지의 머리가 어깨 위에 달랑 놓여있는 것 같았고 양 어깨가 어찌나 처져 내렸는지 당금이라도 그 머리가 굴러 떨어질 것 같았다. 터벅터벅… 발을 뗄 때마다 평형을 잃고 있는 두 다리, 그 때마다 허우적거리는 듯한 팔의 움직임으로 겨우 몸을 지탱하고 있는 아버지, 나는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며 자식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하지 못한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내일 아버지를 모시고 꼭 병원으로 가기오.》 나는 아내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서재로 향했다. 《오늘저녁에도 서재에서 주무시겠어요?》 아내의 서글픈 목소리가 등 뒤에서 날아왔다. 그 소리는 어찌 보면 《나를 과부로 만들 셈이에요》하는 소리로 들렸다. 여자들은 이불 속 남편의 짓거리를 보면 남편이 난봉 피웠나 피우지 않았나를 다 안다고 장담한다. 장담까지는 모르겠지만 기미를 알아차릴 것이다. 나는 정순이를 만난 다음부터 아내와의 그 짓을 딱 끊고 말았다. 끊고 싶어서가 아니라 되지 않았다. 너무나 많이 보아왔고 너무나 많이 다루어 온 익숙한 육체, 언제나 계속되는 같은 동작…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아내를 품고 누워도 내 남성은 죽어있었다. 아내에 대한 미안한 생각이 들 때도 많았다. 그래서 오늘저녁엔 꼭 아내를 위로해주자고 마음먹고 이불속에 기어들지만 아내의 나체만 몸에 닿으면 그것이 죽어간다. 그럴 때마다 풍만하고 성감적인 정순이의 육체를 생각하며 정순이와 정사를 벌인다고 생각하면서 새로운 시도를 하지만 그 것도 잘 안 된다. 한 번 성공해봤던가? 그 것마저 실패작으로… 《일이 되는 걸 봐가면서…》 이 몇 달 새 내 서재도 엉망이다. 내가 쓰다만 소설원고는 책상귀퉁머리에서 먼지만 보얗게 들쓰고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 허인숙 어머니의 일기인데 그것마저 온종일 임자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일기를 보려고 일기책을 내 앞으로 당겨왔다. 그러나 글눈이 막혀버렸다. 방금 보았던 아버지의 어깨, 아버지의 다리가 내 눈을 막아버렸던 것이다. 나는 둔팍한 몸을 의자에 실으며 스르르 눈을 감아버렸다. 《콜록콜록…》 아버지의 기침소리가 잠결에 들려왔다. 새벽 3시? 나는 후닥닥 몸을 일으키며 벽시계를 쳐다봤다. 새벽 한시 반이었다. 녹 쓸고 부속품들이 낡아버린 아버지의 시계…
여기에서 련재5 끝남
나는 다시 일기를 보기 시작했다.
1954년 7월 6일 맑음.
샘물골을 향한 내 발걸음은 가벼웠다. 자식을 던져버렸다는, 제 혈육을 남 주었다는, 자식 떼고 돌아서는 어미는 발자국마다 피가 난다는 기나긴 여로의 피로는 무거운 짐을 벗어던졌다는, 멍에를 벗겨 던졌다는 개운한 생각으로 바뀌면서 마음은 한결 홀가분해졌다. 원래 S시 시당위에 들러서 김 서기에게 그 간 있었던 일을 회보하고 샘물골로 가려 했으나 내 마음이 샘물골로 앞서 달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김 서기에게 회보하려면 하루 해를 막아야 하니까. 황차 S시에서 우리 용천구까지는 겨우 마차 한 대가 유일한 교통수단인데 내가 기차역에서 내리자마자 그 마차를 잡았으니 두 생각 가질 수 없었다. 그 마차를 잡는다는 것은 시위서기를 만나기보다 더 힘들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나는 마차로 용천구까지 왔고 지금 용천구에서 샘물골로 가는 길을 조이고 있다. 그런데 길이 축나지 않는다. 30리 길을 제집 나들 듯 씽씽 나들었고 눈을 감고도 찾던 길인데 그 길이 줄어들 줄 모르는, 짜증나는 길로 되고 말았다. 자드락길처럼 발목을 잡고 놓칠 않고 재 넘는 소로길처럼 몸에 칭칭 감겨 만든다. 길이 더 늘어났나? 아니 길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 마음이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어서 빨리 샘물골에 당도하고 싶은 조급증, 어서 빨리 고향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그 다급한 마음, 어서 빨리 강 촌장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소원에서였다. 솔개령은 예이제 없이 나를 반겨맞아 주었다. 솔개령 상산봉에 떡 뻗치고 선 곰바위, 그 곰바위는 마치 푸른 투구와 푸른 갑옷을 떨쳐입고 검푸른 창파를 헤가르는 한 척의 함선처럼 장백의 임해를 지켜서고 있다. 물씬물씬 풍기는 송진내, 숨이 꺽꺽 막힐 듯이 흉벽에 와 닿는 쑥 내음, 7월의 열기에 빨려 오르는 습습한 흙냄새… 솔개령은 가공이거나 분치장을 하지 않은 원래의 그 모습 그대로 나를 맞아주었다. 우리의 쉼터였던 솔개령 길가의 진대나무도 자리 뜸을 하지 않고 무난히 누워 코를 골고 있었다. 다슬대로 다슬어 반들반들해진 진대나무의 쉼 자리, 눈에 익고 눈에 박힐 대로 박힌 그 자리를 보는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고 말았다. 바로 저 자리였다. 폭우가 쏟아지던 날 저녁 강 촌장의 가슴을 파고들었던 곳이. 무슨 힘이 나에게 그토록 큰 힘과 담력을 주었던지? 아니 나의 힘과 담력이 아니라 강 촌장의 바위짝 같은 가슴팍, 통나무 같은 팔뚝, 술내와 담배내에 절고 전 체취가 나를 무력하게 만들었고 자석처럼 나를 끄당겨서였다. 그 앞에서 나는 너무나 하잘 것 없고 무기력한 연체동물이었다. 그 가슴팍, 그 팔뚝, 그 체취를 얼마나 원망했던가! 얼마나 저주했던가! 영원히 기억에서 지워버리려고 강심을 먹었지만 그 승부는 언제나 내 쪽에서 지고 말았다. 지금처럼. 내가 이겨야 하는데 내가 이겨야 하는데 하면서도 여자의 타고난 여린 마음에서인지 타고난 속성에서인지 번마다 내가 지고 있었다. 미우면서도 그리게 되고 욕하면서도 욕 속에서 뼈를 빼어버리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느티나무에 걸터앉았다. 우리의 쉼터였다. 항상 강 촌장과 함께 앉아 버릇해서 그런지 한 자리가 단단히 빈 듯한 허전한 느낌이 든다. 삶은 감자면 삶은 감자, 풋강내이면 풋강냉이, 생기면 생긴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도시락을 헤치고 진대나무에 나란히 앉아 초기기를 말리던 보금자리다. 그런데 지금은 나 혼자다. 아니 홀로가 아니다. 이제 곧 강 촌장을 만나게 될 텐데… 나는 소지품이 든 가방을 들고 자리를 일었다. 그리고는 치마폭에 바람을 일으키며 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해질녘에야 샘물골에 닿았다. 나는 울바자 문을 열고 집에 들어섰다. 아니 그런데? 풀밭으로 변했으리라고 믿었던 텃밭이 풀 한포기 없고 가지며 고추며 배추가 먹음직스럽게 자라고 있지 않는가. 밭 다룸 새를 보면 임자를 안다고 호미귀만 대충 날리는 풋내기 농군의 서툰 일솜씨가 아니라 밭머리부터 알뜰히 가꾸는 감농군의 쌀 내 나는 다룸 새다. 강 촌장의 손부리였다. 이랑이 비뚤세라 곧게 가대기질한 솜씨, 한 줌 흙이 옮겨 앉아도 틈이 갈듯이 높낮음 없이 흙을 얹은 밭고랑, 울바자에 뻗어 오르기 시작한 열콩…그 모두가 강 촌장의 손때 묻은 자리였다. 강 촌장이 아니고는 그렇게 할 사람도 해줄 사람도 없었다. 가슴이 뜨거웠다. 이제 강 촌장을 만나면 무엇부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도저히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오면서 곱씹어 외웠던 인사말도 치매증에 걸렸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그저 목이 멜 뿐이다. 내가 왔다는 소리를 듣고 마을사람들이 우리 집으로 몰려들었다. 아낙네들이 먼지털이를 한다 동이로 물을 길어들인다 구들을 닦는다 하면서 난동 아닌 난동을 부리고 장정들이 도끼로 땔나무를 팬다 비웠던 집이래서 불이 잘 들지 않는다고 구새목을 뜯는다 하며 북새판 아닌 북새판을 벌렸다. 인정을 동이 째로 쏟아 붓는 샘물골 인심이었다. 그래서 시골사람 벌방에 가서 살지 못한다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시골인심에 발목을 잡혀 진둥나무 속을 빠져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오구작작 모여들어 떠들고 먹고 마실 때까지도 강 촌장이 자리를 비우고 있었다. 남 먼저 달려가서 일손을 거들어주고 기쁨을 나눠줄 강 촌장이 자리를 파할 때까지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먼저 강 촌장이 왜 보이지 않는가고 묻기도 무엇했다. 과거지사가 없었다면 떳떳이 물었으련만 지금의 나로선 옆구리가 켕겨나서 먼저 물을 수가 없다. 누군가 먼저 강 촌장이라는 말만 혀끝에 발라도 내가 얼른 받아 물으련만 강 촌장이라는 이름 석 자 입술에 올리지 않는다. 나는 그 것이 섭섭했다. 《왜 강 촌장이 보이지 않아요?》 참고 참던 끝에 내가 물었다. 일촌지장이요 고락을 함께 하던 분을 묻는 것이 도리나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배짱으로 말이다. 《아유―허 동무는 모르겠구만. 강 촌장네는 이사를 갔수.》 강동집 어머니가 알려주었다. 강동(지금의 하바로프스크)에서 살다 왔다고 강동집이라 불리는 어머니다. 《네? 이사를?》 내 가슴에서 핏덩이가 떨어졌다. 그렇게 바라고 바랐는데 그렇게 보고 싶었는데 이사를 가다니? 강 촌장이 없는 샘물골이 있을 수 없다고 상급에서 그토록 칭찬이 자자했는데 이사를 가다니? 강 촌장 덕에 학교를 세우고 이제 곧 전기를 들여오게 됐다고 샘물골 사람들이 강 촌장이 아니라 《우리 촌장》이라고 불렀는데 이사를 가다니? 내가 있는데 내가 돌아왔는데 이사를 가다니? 《언제 갔어요?》 《새해를 잡아들어 얼마 있지 않고 떠났수.》 《어디 갔나요?》 《글쎄, 오간다 말없이 훌쩍 떠났는데…》 몰상식이 아니라 몰이해였다. 국가공무원이면 전근이라는 말이 통하겠지만 소 궁둥이를 채질하며 땅 파먹고 사는 땅 두더지가 아닌가. 농민들 이사는 자원이 위주이고 이사 가는 마을의 동의만 거치면 끝이다. 이것을 모르는 강 촌장이 아닌데 훌쩍 이사를 갔다? 나 보기 면구스러워서? 내가 보기 싫어서? 아니다. 그럴 수 없다. 나를 《학습》보내면서 그토록 성수나한 사람이 강 촌장이었고 나를 바래주느라고 솔개령 진대나무 쉼터를 지날 때 나에게 눈을 슴뻑해보이던 강 촌장이었다. 그러던 강 촌장이 이사를 가다니? 그래, 그래서였을 거야. 짚이는 데가 있었다. 소쩍―소쩍― 한밤의 고요를 찢으며 소쩍새가 슬피 울고 있다. 벽에 걸린 석유등잔이 가물가물 문짝을 비집고 들어오는 산바람에 한들거리고 있다. 밤이 깊어가건만 잠이 오지 않는다. 잠을 청할 수 없는 밤이다. 왜 내게는 고통만 따르는 걸까? 영웅의 발자국마다엔 죄가 고인다고 그래서 그럴까? 영웅은 공산주의 실현만을 생각한다고 했는데 나는 왜서 이럴까? 설익은 영웅? 아니면 졸부? 나는 이 때까지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도 않았거니와 생각한 적도 없었다. 당의 말이면 끝이었고 그대로 살아왔다. 그 것으로 희열을 느꼈고 그 것으로 자신을 자부했다. 그러던 내가 언제부터 나라는 존재를 의식했고 영예 속에 자신을 침투시켰던가? 내가 여자라는 피할 수 없는 존재를 확인했을 때부터? 영예와 환호성은 자신의 위치를 확인해주었고 그 위치 속에서 자신의 우세를 체감했으며 공적더미의 진공관 속에 자신의 촉수를 들이밀기 시작했다는 것을 지금 새삼스레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강 촌장을 알게 되면서 그와 몸을 섞으면서 나도 사람이고 여자라는 것을 확인했었다. 그 흡인력과 집착력은 《영웅》을 찜쪄먹을 정도였다. 그 뿐 아니다. 그 자가마당은 좀체 사라질 줄 모르는 인력처럼 계속 나를 잡아끌고 있다. 그래서 강 촌장을 잊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소쩍―소쩍― 저 새도 나처럼 외기러기가 돼서 저토록 외롭게 슬피 우는 걸까? 제발 울음이라도 그쳐주렴! 벽에 걸린 아버님과 남편의 유상이 지금 나를 지켜보고 있다. 그 눈에 맞은 자신이 끔직스럽다. 신음소리가 이 짬새로 저절로 새어나온다. 나는 감히 그 유상들을 쳐다볼 용기가 없다. 용서받지 못할 끼 섞인 여자, 죄지은 여자, 지금 나는 원래의 나로 돌아가고 있다. 저 유상 앞에서 더는 다시 강 촌장을 생각지 않겠다고 몇 번이나 용서를 빌고 몇 번이나 다졌던가! 그런데 그 다짐들이 강 촌장이라는 사람 앞에서만은 그토록 무맥해지다니? 지금도 나는 유상 앞에서 또 다진다. 그런데 그 다짐이 얼마나 오래갈는지 나도 장담할 수 없다. 소쩍―소쩍― 나도 소쩍새가 되었나보다. 싫던 저 소리가 차츰 가슴을 물어뜯으며 흉벽을 차분히 적셔준다. 짝을 잃고 밤마다 슬피 우는 새, 내 신세도 소쩍새, 나는 오늘밤 소쩍새가 되어 저 소쩍새를 동무해줄 것이다.
1954년 7월 8일 흐린 날.
간밤에 소쩍새와 나처럼 뜬눈으로 밤을 팼는지 하늘은 찌뿌둥한 얼굴로 눈을 잡아 뜯으며 새아침을 불러왔다. 하늘의 게트림처럼 꼬리에 꼬리를 문 거무칙칙한 구름장들이 솔개령을 휘감고 소나무를 태질하면서 샘물골로 밀려왔다. 심상찮은 날씨다. 전 같으면 밀림의 입김인 산안개가 솔개령 중턱에서 떠돌다가 잠들어버렸으련만 오늘은 먹장구름이 그 하얀 안개를 삼켜버리고 샘물골을 향해 내리꼰지고 있다. 날씨가 기승을 부리고 밤새운 내 몸이 지칠 대로 지쳤지만 나는 길을 떠나야 했다. 강 촌장의 이사의 비밀을 밝혀내지 않고는 집안에 박혀있어도 쉼이 될 것 같지 않다. 강 촌장에 대한 운우지정에서가 아니다.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알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 이가 왜 이사를 했는지 어떻게 이사를 했는지 그걸 알고 싶어서이다. 이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은 단연 한 사람―시위의 김 서기일 것이다. 우리 두 사람의 비밀은 김 서기만이 알고 있으니까. 나는 전처럼 도시락 하나만을 달랑 들고 새벽길을 떠났다. 그러나 그 길은 어제 오후의 샘물골길처럼 가볍지 않다. 무겁기만 하다. 번개가 번쩍이고 우뢰가 요동쳤다. 밀림이 윙―윙―서럽게 울고 길섶 쑥대들이 허리를 꺾으며 비명을 질렀다. 봉양을 등한시했던지 하늘이 땅에 엄벌을 내리고 있는 터였다. 뇌성이 높은 곳에 빗방울 없다는 말 틀리지 않은가 싶다. 다행스럽게도 하늘은 비의 세례를 주지는 않았다. 궂은 날씨 때문인지 아니면 내 몸이 너무나 피곤기를 풀지 못해서 그랬던지 솔개령 기슭 석개울을 건널 때도, 솔개령 진대나무 쉼터를 지날 때도 연민의 정은 전혀 겉묻어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어서 빨리 김 서기를 만나 사실의 자초지종을 알아보고픈 그 하나의 마음가짐이었다. 내가 김 서기의 사무실문을 노크했을 때는 퇴근 무렵이었다. 그 때까지 김 서기의 사무실 창문에서는 밝은 전등불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들어오시오.》 안에서 김 서기의 걸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표달능력은 빵점, 내용은 만점인 김 서기의 석쉼한 소리는 정서가 없고 고조장단이 분명하지 않았다. 웅변가의 재질을 전혀 갖추지 못한 저질적인 말재간이라는 뒷공론이 많았다. 우리를 배워줄 때도 그랬다. 《표현능력 빵점》인 선생님이었다. 하지만 교수내용이 하도 충실하고 학생들의 심리동태를 통찰하는 예리한 안광 때문에 누구든 움씰 못했고 그 덕에 존경을 받기도 했다. 학교 때 귀 아프게 들어온 교수, 사회에서 수 없이 들어온 연설 때문에 수 만 명 사람들이 떠드는 그 속에서도 김 서기의 목소리만은 분명히 가려낼 수 있는 나였다. 그런데 그 소리의 속내를 지금도 모르고 있다. 내 속과 색채를 숨기고 뿜는 소리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김 서기의 목소리는 저울판에 올릴 수 없는 신비함을 갖고 있었다. 《이거 누구요? 우리의 〈영웅〉이 돌아왔구만!》 김천수 서기가 나를 보더니 의자에서 벌컥 일어섰다. 사람들이 모인 장소에서 만났건 단독으로 만났건 김천수 서기는 언제나 나의 대명사로 불리는 《영웅》이라는 두 글자를 경기병처럼 쓰곤 했다. 《김 서기 동지, 그 간 심려를 끼쳐 미안해요.》 《그래, 십년감수했어. 십년감수.》 《죄송해요.》 《그 대가를 단단히 치러야 할 걸. 나도 받아낼 만큼은 받아내고 허허허.》 김천수 서기는 나를 으스러지게 포옹하면서 가마뚜껑 같은 손으로 내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어때? 고생 많았지?》 《아니요. 김 서기 동지의 형님 내외분의 살뜰한 보살핌으로 편안히 보냈어요.》 《객지생활 반년, 말이 쉽지. 말이 쉬워. 자 앉소.》 김 서기는 언제나 그러하듯 내 찻잔에 손수 차물을 부었다. 《나에게 바친 〈군령장〉(軍令狀)은 그대로 시행했겠지?》 《네, 애를 주면서 서약서까지 썼어요. 애를 영원히 찾지도 않고 데려오지도 않을 것이라는 내용으로 말이에요.》 《남자 애요? 여자 애요?》 《남자 애였어요.》 《남자 애라…인숙이, 나를 몹시 욕했지? 지독한 놈이라고…》 《아니예요. 김 서기 동지에 대한 유감같은 건 하나도 없었어요. 정말이예요.》 《인숙이, 나도 애들 아버지요. 바꿔놓고 나보고 어느 한 애를 남 주라면 나는 목이 날아나도 못 주겠소. 그러면서 인숙이한테는 그렇게 하라고 명령했소. 이 게 어디 사람이 할 짓이요?》 나는 김 서기를 쳐다보았다. 다른 얼굴이었다. 연단에 올라 연설할 때 정치와 원칙으로 빚어 만들었던 서툰 조각가의 조각품이 아니었다. 비판할 때 냉혹하다 싶을 정도로 날이 선 눈길로 상대방의 육체를 각을 뜨던, 예리한 화가의 화필에서 그려진 사각형 모형도도 아니었다. 아버지로 된 얼굴이었다. 아버지로서의 감정, 아버지로서의 자애, 아버지로서의 책임감을 지닌 그런 진짜 아버지로 된 얼굴이었다. 나는 아버지로 된 김 서기의 얼굴을 처음 보았다. 그 얼굴이 내 마음을 울려주었다. 《선생님, 솔직한 말씀 올려 될까요?》 《말하오. 말해! 모든 설음 모든 고통을 다 말하오!》 김 서기는 쌈지를 꺼내더니 엽초를 말기 시작했다. 서툰 담배꾼의 담배말이처럼 김 서기는 담배를 만다는 것이 담배종이만 찢곤 했다. 벌써 세 대 째 말기 시작하지만 어쩐지 그 담배도 말아낼 것 같지 않다. 눈을 감고서도 담배만은 실수 한번 없이 만다고 자랑하던 김 서기가 말이다. 《금방 해산했을 때 전 진짜 홀가분한 기분이었어요. 멍에를 벗은들 그처럼 개운했을까요? 그리고 저를 그처럼 아끼고 돌봐준 선생님에게 목이 메도록 감격했어요. 선생님이 아닌 다른 그 누구도 저를 이처럼 보호해줄 사람 없을 거라고 눈물을 흘렸댔어요. 그런데 짧디 짧은 시간이지만 애에게 젖을 먹이고 우유에 습관 되게끔 우유로 바꿔 먹이면서 들인 그 정이 그토록 무서울 줄은 진짜 몰랐어요.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이 모성애라는 말만 들어왔던 제가 어머니가 된 다음에야 모성애의 마력을 알게 됐어요. 그 마력이 바로 제 생명, 제 희망, 제 일생의 종착점이었어요. 흑흑흑. 선생님, 용서하십시오. 제 새끼가 얼마나 귀중한 복덩이였으면 어디론가 남모르는 곳에 숨어살면서 애를 기르려는 생각까지 했겠어요? 흑흑흑 부끄러운 말씀입니다. 서약서에 글을 쓸 때 저는 먹물로 쓴 것이 아니라 제 피로 썼댔어요. 그리고는 밤새 울었어요. 남을 줬으니 성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제 새끼가 지금은 점점 멀어져가고 있어요. 앓지 말고 제발 잘 커야겠는데…흑흑흑.》 《인숙이, 용서하오.》 김 서기가 내 손을 꼭 잡으며 말을 이었다. 《인숙이, 잘했소. 눈물을 흘리는 것보다 그 눈물을 참는 것이 더 힘든 거요.》 《선생님, 세상은 요지경이라더니 진짜 그런가 봐요.》 《인숙이, 나는 아버지로서가 아니라 시당위원회 서기이기 때문에 인숙에게 그 길을 걸으라 명령했고 인숙이는 어머니로서가 아니라 공산당원이기 때문에 그 명령에 복종한 거요. 우리 앞에 놓여진 길, 우리가 선택할 길은 오직 그 하나의 길 뿐이었소.》 《알고 있어요.》 《아니 다는 모르고 있을 거요. 성공에는 희생이 있기 마련이오. 그 희생이 크냐 작냐 하는 차이뿐이요. 만약 인숙의 그런 희생이 없었다면 인숙이는 평범한 어머니로 살아갈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의 사업에는 마멸할 수 없는 손실을 가져다줄 것이요. 물론 인숙이는 역사의 잿더미 속에 묻힐 거구…》 《선생님, 저도 지금에야 저를 좀 알 것 같아요. 안심하세요. 절대 선생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어요. 믿어주세요.》 《믿구 말구. 내가 인숙이를 왜 못 믿어?》 그제야 김 서기는 담배 한 대를 겨우 말았다. 네 번째만의 성공? 다섯 번째만의 성공? 재떨이에는 김 서기가 담배를 말다 찢어버린 종이가 수북이 쌓여있다. 《김 서기 동지, 강 촌장을 어디 이사시켰어요?》 나는 감히 김 서기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하면서 머리를 수깃한 채 물었다. 내 정수리로 담배에 성냥불을 붙이려다 그대로 굳어진 김 서기의 꽛꽛한 모습이 맞혀왔다. 《그 건 왜 묻소?》 《김 서기 동지가 강제이주 시켰지요?》 《…》 《절대 저를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강 촌장에 대한 연민의 정이나 금후의 지속적인 사랑을 위해서 묻는 것이 아니에요. 떠날 때도 제가 말씀 올렸지만 강 촌장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어요. 제가 주동이었고 제가 꼬셨어요. 벌을 주려면 저에게 줘야지 죄 없는 강 촌장에게 내려서야 되나요?》 《그렇소. 내가 시켰소. 어떤 처벌도 내리지 않고 그저 이사시키는 형식만 택했을 뿐이요. 강 촌장으로 놓고 보면 이건 너무나 가벼운 처벌이요. 아니 처벌도 아니요. 당원이 없는 촌으로 당원을 파견하는 형식이었으니까 강 촌장도 가서 잘할 거요.》 《강 촌장에게 제가 임신했다는 걸 알려줬겠지요?》 《물론 그러지 않으면 그 사람을 설득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까. 그리구 금후를 삼가기 위해서도 말해줘야 했소.》 《그러면 저는 한생 죄를 지은 몸으로 살 거예요.》 《죄? 그 죄 때문에 인숙이는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소? 처벌이면 그 보다 더 큰 처벌이 어디 있소? 용기를 내오. 인숙이는 아직도 우리의 영웅으로 살아있으니까.》 《김 서기 동지, 강 촌장이 이사한 곳을 알려줄 수 없나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죄하고 오겠어요. 그래야 제 마음도 편안할 것 같아요.》 《안 되오. 이건 조직의 비밀이요. 인숙의 해산을 극비에 붙였던 것처럼 말이요.》 조직의 비밀, 그 건 상대치로 계산되는 수학적 공식이 아니라 절대치로 계산되는 철학적 공식이었다. 공산당원에게는 조직의 비밀을 목숨으로 사수할 의무가 있을 뿐 그 비밀을 말하거나 물어볼 권리가 없다. 조직의 비밀, 그 건 언제나 종지부를 의미할 뿐 어떤 수의 정부(正負)를 나타내거나 연결을 말해주는 기호가 아니다. 조직의 비밀이라는 말에 나는 더는 물을 수가 없었다. 아니 물어서는 안 되었다. 《인숙이, 정치는 언제나 잔혹한 법이요. 네가 죽지 않으면 내가 살지 못하고 내가 죽지 않으면 네가 살지 못하는 피어린 싸움이요. 이것이 바로 정치투쟁이요. 역사가 그러했고 현실 역시 그렇소. 건국의 역사가 그러했고 그 후 연이어 벌어진 혁명투쟁들이 그러했소. 이런 엄혹한 현실 앞에서 우리 공산당원들은 어째야 하오? 앞장에 나서야지. 단두대에 오르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진구렁에 빠지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니까. 인숙이 때 마침 잘 왔소. 우리 시에서 처음으로 인민대표대회를 열게 되는데 그 회의에 꼭 참가하오. 중앙에서는 9월쯤 열리게 될 거요.》 《선거돼야 참가하지요.》 《영웅이 선거되지 않으면 누가 되겠소? 허허허.》 《…》 《휴―나도 이젠 한 시름 놓았소. 인숙이가 애를 업고 오면 어쩌나 하고 근심이 태산 같았소. 어느 날이었던가. 글쎄 인숙이가 애를 업고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겠소? 어찌나 놀랐던지 나는 악―소리 지르며 벌컥 일어났댔소. 온몸은 땀벌창이 되고 얼굴에서는 식은땀만 철철 흘렸댔소. 꿈이었소.》 《죄송해요. 선생님.》 《이거 이러다간 인숙이를 저녁 굶기겠는데? 뭘 먹을까? 어쩌다 만났는데 물만두집에 갈까?》 《저녁은 제가 살 테니 관자집(館子―음식점)에 가시죠.》 우리는 자리를 일었다. 거리에 나섰다. 앞에서 걷는 김 서기의 거쿨진 허우대가 깜박깜박 조는 듯한 가로등 밑을 지날 때마다 큰 그림자를 남기며 나를 숨겨주고 있었다. 미더운 선생님, 나를 지켜주는 시 당위원회의 서기, 그 때처럼 김천수 서기의 존재가 나의 우산이 되어 보이고 방파제가 되어보기는 처음이었다. 과거 나의 모든 영예가 김천수 서기와 갈라놓을 수 없었던 것처럼 앞으로도 김천수 서기를 떠날 수 없음을 깊이 감안하게 되었다. 《표달능력 빵점》인 김 서기가 오늘저녁엔 세상을 뒤흔드는 웅변가로 내 앞에 나타났었다. 속내를 전혀 뽑을 줄 모른다던 김 서기는 오늘저녁 내 앞에서 진속을 보여주었다. 나는 그것으로 만족했다. 그래서 더 큰 믿음이 갔다. 김 서기의 말씀에서 원래의 나를 찾았고 원래의 나로 나를 가꿀 것이다. 그 것만이 김 서기에 대한 보답이고 나에 대한 채찍일 것이다. 오늘저녁엔 잠이 잘 올 것이다. 엊저녁 눈을 붙여보지 못한 그 몫까지 합쳐서 늘어지게 자고 싶다. 반가운 저녁, 너에게 키스한다.
《콜록콜록》 기침소리를 물고 들려오는 아버지의 발걸음소리. 터벅터벅… 전에는 뚜벅뚜벅 절도 있게 들려오던 저 소리가 오늘 새벽엔 절름발이 걸음처럼 불협화음으로 들린다. 엊저녁에도 귀에 거슬리게 들리던 치륜이 맞지 않는 소리다. 터벅터벅… 아버지의 발자국소리는 영락없이 내 서재에 와서 멎었다. 《너 밤을 새운 모양이구나.》 《네. 아버지, 잠이 오지 않아서요.》 《몸을 상할라. 콜록콜록.》 아버지는 손수 깎아 저민 사과 쪽을 담은 접시를 소리 없이 내 앞에 놓고 물러섰다. 아버지는 매일 저녁 이렇게 당신 자시라고 마련해드린 밤참을 나에게 돌리곤 하셨다. 이건 이미 굳어진지 오랜 아버지의 습성이다. 아버지는 피골이 상접하다 할 지경으로 야윈 모습이다. 점점 못해가는 아버지를 쳐다보면서 나는 아들로서 해야 할 모든 일을 하지 못했다는 죄송 스런 마음을 버릴 수가 없었다. 《아버지, 오늘은 꼭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읍시다.》 《병원엔 왜? 뭐 죽을병이라도 든 것 같으냐? 콜록콜록 당치도 않는 소리.》 아버지는 문 뒤에 몸을 숨기면서 말했다. 《일기에 묻혀 있다보니 내가 너무 등한시했어.》 나는 나를 들으라고 자탄하면서 창문의 커튼을 열었다. 동창이 밝아오고 있었다. 부르하통하강 둑엔 아침단련을 나오는 사람들이 하나둘 불어나기 시작했다. 그 속엔 언제나 보아오는 《ᄀ》자형의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타발타발 걸어가는 모습이 끼어있다. 오늘 아침엔 이상하리만치 그 할머니가 부러워난다. 저렇게 하루하루 생명을 연장해서 뭘 하나 하던 내가 말이다. 관 속에 들어가도 늦었다 싶게 보아오던 저 할머니가 이토록 부럽다니? 나의 처세술에 병집이 생겨서일까 아니면 생명의 가치관이 흔들리기 때문일까? 어쨌든 저 할머니가 고맙도록 부럽다. 아버지는 아침 숟가락을 드네 마네 하시다가 상을 물렸다. 《여보, 당신 오늘 청가를 받아야겠소.》 아버지가 침실로 사라지자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왜서요?》 《아버지를 보지 못했소? 오늘 병원으로 모시고 가기오.》 《제가 할 말을 앞질러했네요.》 《당신도 그렇게 생각했소?》 《밥술을 줄이지 눈에 띄게 못해 가시지 전들 마음 편하겠어요?》 《아버지는 내 말을 도끼등처럼 여기니까 당신 좀 잘 구슬리오. 오늘 새벽에 병원으로 가시자니까 뗑했소.》 《알겠어요.》 아내가 어떻게 타일렀는지는 몰라도 내 말을 콧방귀로 여기던 아버지가 병원진찰을 받겠다는 승낙을 내렸다. 우리 부부는 택시를 불러 아버지를 모시고 연변병원을 찾았다. 아버지와 나는 지금까지 병원 문이 어디에 붙었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고 살아왔었다. 병원과는 멀리하며 살아야 한다던 아버지였다. 《야. 이거 어디 사람 찾아올 데냐. 콜록콜록. 진찰이고 뭐고 집어치우고 돌아가자. 콜록콜록…》 웃는 얼굴은 찾아볼 수 없고 찡그린 얼굴이 아니면 절름발, 배를 끌어안고 병원을 찾는 환자들 때문에 심기가 불편했던지 아버지가 머리를 저었다. 나도 병원엔 뻐꾸기라 어디 가서 어떻게 수속을 밟을지 전혀 갈피가 서지 않았다. 《아버님, 좀만 참으면 돼요. 여기 걸상에 앉아계세요.》 서당개 삼년에 풍월을 보고 짖는다고 병원 문을 뻔질나게 드나들던 아내 덕에 아버지의 전면검사는 그래도 실수 없이 이어졌다. 뢴트겐 촬영도, CT도, 피화험도 오전에 마무리 짓고 이제 마지막 간염검사인 B초만 남았다. 돈이 어른은 어른이었다. 모든 검사를 특검비만 더 지불하면 모든 것이 우선이었고 결과도 빨리 나왔다. 뇌 CT도, 뢴트겐 흉부촬영도, 혈질검사. 당뇨검사, 소변검사도 별다른 모병이 없었는데 간염B초에 걸릴 줄이야? 담당의사가 나를 불렀다. 《환자의 아드님 되는 분이십니까?》 《녜.》 나는 의사의 다음 대답이 겁났다. 의사가 환자의 신변보호인을 찾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한다는 것을 소설을 보면서 이미 알고 있은 나였다. 《간암입니다.》 《녜?》 《이제 간 CT를 한 번 더해보면 확진되겠지만 B초만 봐도 간암말기입니다. 간 두 번째 엽에 닭알만큼 한 혹이 자랐습니다. 아니 부친을 이렇게 될 때까지 내버려두다니요?》 《죄송합니다.》 《입원치료를 받으시려면 입원수속을 해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이 정도면 입원치료의 효과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생명을 좀더 연장할 수 있을까 그 정도입니다. 아니면 상급병원으로 소개해드릴까요?》 《선생님의 소견은 어떻습니까?》 《일단 간 CT를 해보고 결정합시다.》 담당의사의 말은 당당했다. 이 때까지 오진이 어떤 것인지 모르고 의료진에서 사업했다는 그런 자부감까지 비쳐보였다. 나는 의자에서 자리를 뜰 수 없었다. 아버지가 간암이라니? 그 건 청천벽력이었다. 이 때까지 병원 문을 모르고 사시던 아버지가 병원 문에 첫발을 딛는 순간에 간암이라는 사망선고를 받다니? 그 것도 간암말기. 간암말기라면 철부지를 내놓고는 다 알고 있는 염라대왕의 호출이 아닌가? 나는 아버지를 잃어서는 안 된다. 어떤 아버지라고? 아버지이자 어머니인 나의 아버지가 아닌가! 이 자식 하나 믿고 한생 재취 한 번 하지 않은 아버지! 이 자식의 출세를 위해 생활의 저층에서 인간대접을 받지 못하며 살아오신 아버지. 나는 그런 아버지를 여윌 수가 없다. 현실은 너무나도 잔혹하다. 나한테만 잔혹하다. 그 날 오후 간 CT를 해봤지만 결론은 여전했다. 한 달을 넘기지 못할 거라는 확진이다. 우리는 아버지를 겨우 설복해서 입원시켰다. 우리 부부는 밤과 낮을 바꾸어가며 아버지의 간호에 나섰다. 그러니 아내는 교수에서 손을 떼야 했고 나도 일기에서 눈을 걷어 들여야 했다. 이렇게 보름 남아 입원치료를 했지만 아버지의 병은 호전되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점점 악화될 뿐이다. 오늘 저녁은 아내가 아버지의 병간호를 하는 날이다. 집에는 나 혼자 남게 되었다. 모든 것이 귀찮았다. 일손이 잡히지 않아 다른 일에 정신을 팔 수 없고 잠을 청하려 해도 잠귀신이 죽어버렸는지 눈뿌리만 아파났다. 내가 이리 궁싯 저리 궁싯하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오빠. 나 정순이야.》 《오, 너 웬 일이야?》 《오빠와 술 한 잔 하고 싶어서.》 《나 지금 술 마실 기분이 아닌데?》 《알고 있어. 그래서 술 마시자는 거야. 오빠가 올래? 아니면 내가 갈까?》 《오늘 저녁 나 혼자 있게 내버려둬.》 《안 돼! 나 갈께 기다려!》 정순이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정순이는 언제나 쑥떡같은 내 말을 찰떡같이 받아들이는 여자다. 언제 한 번 내 말을 거역한 적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거역이 아니라 강압적으로 내 말을 문질러버렸다. 그 강압이 밉지는 않았다. 외려 잘됐구나 하는 행운감까지 받아 안게 되었다. 그래 잘됐지. 잘 되구 말구, 비운의 운명을 지니고 홀로 배회하면서 제 골수를 파먹기보다 도움 되지 않거나 값없는 일에 시간을 던져버리는 것도 낭패는 없을 것 같았다. 정순이는 한 시간 푼히 지난 다음에야 우리 집에 당도했다. 《오빠. 오래 기다렸지?》 《좀.》 《횟집에 들러 오빠가 즐기는 산천어 사시미를 해오느라 좀 지체됐어.》 《그래?》 《오빠. 왜 그래? 울상이 되지 말고 좀 웃어봐!》 정순이는 사가지고 온 안주감을 식탁에 챙겨놓으며 집적거렸다. 정순이의 행동거지는 그녀의 평상시 스타일이 아니다. 말이 많은 편이지만 절대 수다쟁이가 아닌, 제 하고 싶은 말만 하는, 하고 싶은 말은 꼭 하고야마는 그런 여성이었다. 《오빠, 얼음 있지?》 《냉장고를 열고 봐. 있을 거야.》 《오케이!》 우리는 식탁을 마주하고 앉았다. 정순이는 수입제 위스키를 가방에서 꺼내 얼음담긴 내 술잔에 부으며 말했다. 《오빠는 너무해. 어쩜 이런 일도 나를 속일 수 있어?》 《어디서 들었나?》 《내 곁에는 사람이 없는 줄 알았어?》 《좋은 일도 아닌 걸 갖고 뭘.》 《좋은 일은 알리지 않아도 궂은 일은 알려야 해. 그것이 진짜야 오빠!》 《자, 술이나 들자.》 우리는 잔을 기울였다. 산천어 사시미. 고급술… 술이 사시미 맛을 돋우고 사시미가 술을 청하는 바람에 우리는 잔을 비우고 또 비웠다. 《오빠, 괴롭지? 나 오빠의 괴로움 나눠갖고 싶어.》 술이 거나해지자 정순이는 내 손을 꼭 잡으며 나를 쳐다봤다. 정순이의 눈굽에 물기가 찰랑찰랑 차올랐다. 《오빠는 잘 모를 거야. 울어야 할 때 울지 못하는 그 괴로움.〈문화대혁명〉때 간첩으로 몰린 아버지가 자살했을 때 나는 울지도 못했어. 아니 울 권리도 없었어. 그 때 얼마나 고통스럽던지 아버지 대신 내가 자살했더라면 하는 생각까지 했댔어. 오빠. 인생은 뜬 구름이라지 않아? 그 때의 그 진통도 시간이 지나니 한 조각의 추억으로 남을 뿐 기념비로는 떠오르지 않아 인생은 망가진 추억, 그렇게 말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아.》 《정순아. 너만 보면 왜 내 기분이 붕 뜨는지 몰라. 유부남인 내가 말이야. 아마 사랑은 따로 있나봐.》 《오빠도 참, 그걸 이제야 알았어? 사랑은 워낙 자립성을 가진 독립체야. 한 사람만의 독점물이 아니야. 한 두 사람에게 속할 수도 있고 그에 속하지 않을 수도 있는 객체. 그 것이 바로 사랑이야.》 《너는 워낙 철학가가 됐을 걸 그랬다.》 《오빠는 도대체 왜 그래? 지난번에는 내가 오빠보고 요리사가 됐을 걸 그랬다고 했더니 오늘저녁엔 또 오빠가 나보고 철학가가 됐을 걸 그랬다고 하네. 호호호…》 《그랬던가 허허허…》 《오빠. 바로 그 모습이야. 소탈하게 웃는 오빠의 모습, 그 모습을 보고 싶어서 오빠를 찾아왔어.》 《그래? 그럼 이 오빠의 웃음을 위해서 건배!》 《건배!》 호호호… 허허허… 우리는 웃었다. 술을 마시고도 웃고 안주를 집고도 웃었다. 술이 정순이의 웃음을 만들었고 정순이는 나의 웃음을 만들어주었다. 아버지 때문에 방금까지도 울고 있던 내가. 그런데 웃고 있다니? 나로서도 지금의 내가 진짜 나인가 싶을 정도로 병상에서 죽음과 싸우고 있는 아버지를 까맣게 잊고 있다. 호로자식? 나는 아마 호로자식인가보다. 《오빠의 웃음, 오늘 정순이의 첫 번째 목적달성! 다음은 두 번째 목적!》 정순이는 날듯이 기뻐하며 핸드백을 열더니 카드 한 장을 내미는 것이었다. 《오빠, 입원비가 엄청나게 들 거야. 이 카드에서 마음대로 빼 써. 중국인민은행의 신용카드인데 오빠의 이름으로 적금했어. 비밀번호는 오빠가 출생한 해인 54와 출생월일인 68,5468이야.》 《이 것만은 안 돼. 돈거래는 질색이야.》 《그럴 줄 알고 카드로 준비한 거야. 오빠가 만약 나한테서 용돈을 빈다면 난 무일푼이라고 딱 잡아뗐을 거야. 하지만 이 돈은 달라. 아버님에게 드리는 내 성의야. 내가 아버님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과 힘은 이 것밖에 없어.》 《돈이 우리 사이를 멀어지게 만들 수 있다는 걸 너 모르고 있나?》 《알아. 알기 때문에 오빠에게 드리는 것이 아니라 아버님께 드리는 거야.》 《…》 《무언은 승낙. 자 두 번째 목적도 성공! 오빠 건배!》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나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잔을 들었다. 정순이는 이런 여자였다. 긴가민가하면서 좀자르기만 하는 꼬무락 여자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떡도 아니요 밥도 아닌 것을 떡이요 밥이요 하면서 두리뭉실 얼버무리는 뼈없는 여자도 아니었다. 칼로 썩은 무 밑둥 베듯 썩썩 잘라버리는 날이 선 여자였다. 그래서 내가 정순이를 좋아했고 좋아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술이 끝나자 정순이는 두 말없이 떠나가 버렸다. 빈 술병이며 술안주 찌끼며 몽땅 비닐주머니에 넣어가지고 훌쩍 가버렸다. 내가 더 놀다가라고 그렇게도 말렸건만 오빠를 위해서 떠나야 한다나? 번개처럼 왔다가 우뢰처럼 떠나간 여자, 정순이는 이런 여자였다. 정순이가 없는 집 안은 더 썰렁했다. 온기도 술내음도 정도 몽땅 갖고 갔다. 그래서 더 한산해졌다. 딴 때 같으면 반 근 위스키에 곤죽이 됐으련만 오늘저녁엔 이상하리만치 정신이 풀싹처럼 파릿파릿 해난다. 나는 침실이 아니라 서재에 몸을 묻었다. 어쩐지 그간 멀리했던 허인숙 어머니의 일기를 보고파서다. 지금까지의 허인숙 어머니보다 그 후의 허인숙 어머니가 더 궁금해서다. 나는 보다만 일기장을 번지기 시작했다.
그 후의 일기에는 나의 눈꼬리를 잡을 수 있는 감칠맛 나는 단대목이나 희한한 일들이 없었다. 중국의 현대사에는 오를 수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내 소설에는 써먹을 수 없는 제1차 5개년 계획이요, 총로선이요, 반우파투쟁이요, 대약진이요, 공사화운동이요. 반우경투쟁이요 하는 정치운동뿐이었다. 흥취도 없고 멋도 없는 이런 부분을 나는 가차 없이 번져 넘겼다. 물론 운동의 선두마다 허인숙 어머니가 서있었고 그 배후에 김 서기가 있었지만 그 것에는 나의 시력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영웅과 정확한 정치영도는 언제나 쌍둥이니까. 나는 아버지의 병간호를 하다가 짬 나는 대로 일기에 달라붙었다. 일기가 나의 유일한 시간 소모제였고 잡념을 몰아내는 소일거리였기 때문이었다. 일기장을 번갯불 나게 번져 넘기던 나는 하루의 일기에서 속도를 늦추고 말았다.
1966년 11월 9일 개임.
샘물골에서도 나에 대한 대자보가 나붙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용천공사(공사화운동 때 공사로 개칭되었음)에 한두 장씩 붙던 것이 지금은 샘물골 대대(촌도 대대로 고쳐졌음) 사무실벽에까지 붙게 되었다. 《자본주의 길로 나아가는 집권파의 충실한 졸개》로부터 대리인, 불여우, 암펌, 암캐 등등 감투라는 감투를 다 씌우고 욕지거리라는 욕지거리를 꺼리지 않은 대자보들이다. 나는 진짜 이해할 수 없다. 이 때까지 혁명과 공산주의를 위해서 몸바쳐온 내가 일조일석에 자본주의 길로 나아가는 집권파의 졸개가 되다니? 문화대혁명이 일어난 이 몇 달간 나에게는 반발심밖엔 자란 것이 없다. 집체일엔 손실이다 하면서 나앉던 노랭이들이 무슨 혁명적 반란파요 하면서 우쭐대는 꼴을 보면 눈이 감긴다. 성으로 올라간 김천수 서기는 무사한지? 나는 나보다 나의 서기, 나의 은사가 더 근심됐다. 이번 운동은 웃머리부터 자르는 성세호 대한 불길이다. 김천수 서기도 무사할 것 같지 못하다. 예전 같으면 이런 어려운 처지에 김 서기부터 찾으련만 지금은 형편이 거꾸로 됐으니 찾을 수도 물을 수도 없다. 김천수 서기가 그립다. 모든 연락이 두절된 지금 그저 김천수 서기가 무사하기만을 빌 뿐이다. 발편잠 한 번 들어보지 못한 나는 조반을 지으려고 나무 가지러 문을 떼고 나섰다. 해가 유리창문에 들었으니 늦어도 한참 늦은 아침이었다. 내가 나무 한 아름 안고 돌아서는 찰나 큼직한 대자보 한 장이 벽을 가리고 있는 것이 눈에 날아들었다. 《갈보 허인숙 탄백하라!》 내 손에서 장작개비들이 쏟아져 내리면서 발등을 때렸다. 나는 그 자리에 폴싹 물앉고 말았다. 앞이 캄캄해났다. 불화가 코밑에 떨어진 것이다.
1966년 11월 21일 첫눈이 내림.
예전의 이 때쯤이면 타작을 하느라 샘물골이 들썽하련만 지금껏 논밭에는 벼무지가 쌓여진 대로 버림을 받고 사원들에게서 외면당하고 있다. 더기밭에 심은 콩은 쥐와 꿩들의 주둥아리에 다 녹아나서 빈 콩대만 엉성하게 서있다. 쌀보다 혁명이 더 중요하다나? 예전 같으면 사원들을 농사에 몰아붙이련만 지금의 내 신세로서는 제 몸을 건지기도 힘들다. 그러니 농사가 다 뭐랴? 점심때가 다가올 무렵 대대의 유일한 혁명파조직인 《홍기반란파》조직에서 나를 불렀다. 나는 이리 끌려 다니고 저리 끌려 다니는 처지다보니 군말 없이 나를 데리러 온 반란파를 따라 지금은 홍기반란파조직사무실로 불리는 대대사무실에 들어섰다. 첫발을 들여놓는 순간 나는 여느 때보다 분위기가 삼엄하다는 촉감에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하나밖에 없는 대대의 유일한 사무상인 허름한 테이블을 앞에 놓고 30대의 낯모를 사람이 앉아있고 그 양 옆으로 익히 알고 있는 샘물골 반란파들이 줄쳐 있는데 얼굴마다에 살기가 번뜩인다. 《허인숙!》 테이블을 마주하고 앉은 낯모를 얼굴이 나를 불렀다. 《예―》 《탄백하면 관대히 처리하고 항거하면 엄하게 징벌한다는 당의 정책을 알고 있겠지?》 《예―》 비수와 같은 서릿발 내린 눈으로 내 얼굴을 지져대던 30대가 한참 지나서야 조용히 물었다. 《김천수라는 사람 알고 있겠지?》 《예―》 《김천수와는 어떤 관곈가?》 《저의 선생님이자 S시 당위서기였습니다.》 《누가 그걸 몰라 묻는 줄 아는가?》 낯모를 사람이 주먹으로 테이블을 탕 내리치며 엄포를 놓았다. 그러자 반란파들이 이구동성으로 《탄백하라! 탄백하라!》하면서 구호를 외쳤다. 《김천수와의 사적관계 말이야.》 《그저 은사와 제자, 영도와 피영도의 관계뿐입니다.》 《뭐야? 계속 항거할 텐가! 그럼 내가 솔직히 알려주지. 김천수는 일찍 당내에 기여든 자본주의 길로 나아가는 집권파야. 김천수에 대해서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적발해!》 《…》 적발할 것이 없었다. 내가 알고 있는 김천수 서기는 청백하다 못해 백지장처럼 하얀 분이다. 내가 대답을 못하고 꾸물거리고 있자 반란파들이 또 구호를 외쳐댔다. 《탄백하면 관대하게 처벌하고 항거하면 엄하게 징벌한다!》 머리가 핑핑 돌 지경으로 구호소리는 사무실 창문이며 벽이며 천장을 물어뜯었다. 《그럼 내 한 가지만 알려주지. 일찍 당내에 기여든 김천수란 놈은 복벽을 시도하면서 허인숙 너를 춰올리며 이용했고 너는 그 놈의 구미에 맞춰 그 놈이 시키는 대로 했어. 그 놈은 자기의 음험한 심보를 감추기 위해 너를 방패로 내세웠다는 말이야. 알겠어?》 《그 건 진짜 그랬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을 말해주십시오.》 《사실? 김천수란 놈이 다 불었는데 지금도 항거할 셈인가?》 30대가 탁상을 내리치자 반란파들의 구호소리가 또다시 울려 퍼졌다. 《그럼 강 촌장은 알고 있겠지?》 《예―에》 강 촌장이라는 말에 나는 숨통이 막히는 것 같았다. 문화대혁명이 터지자 줄곧 내 가슴에 옹이를 박은 사살이 간통이라는 두 자였다. 오늘 아침 《갈보 허인숙 탄백하라》는 대자보를 보았을 때 그 자리에 폴싹 물앉은 것도 바로 그 두 자 때문이었다. 《강 촌장과는 어떤 관곈가?》 《지부서기와 촌장과의 관계, 그 것뿐입니다.》 《완고하군. 안되겠어. 끌어내 갓!》 30대가 벌컥 일어서며 소리쳤다. 그러자 대대 민병련장이자 반란파두목인 강 옆집 둘째가 나를 집까지 호송했다. 그 때로부터 나는 대문 밖 출입을 금지 당했고 모든 자유를 박탈당하고 말았다. 마당에는 밤낮없이 보초꾼들이 지켜 있었고 심문이 끊임없이 이어지곤 했다.
1966년 11월 24일 날씨 모름.
벌써 연 사흘째 심문이 이어지고 있다. 모든 것을 다 참고 견딜 수가 있다. 굶주림도 언 구들장도 협박도 다 수용범위 내였다. 그런데 잠을 재우지 않는 데는 어쩔 수 없다. 그들은 한 사람이 심문하다 지치면 다른 사람을 바꾸고 그 사람이 지치면 또 다른 사람을 바꿀 수 있지만 나는 나를 대신해줄 사람이 없다. 그들의 작전은 순 피로전이었다. 지치게 해서 자백을 받으려는 것이 그들의 작전이다. 심문의 초점은 하나―김천수와 강 촌장 나와의 사적관계다. 특히 강 촌장과 나와의 관계에서 못을 박고 빼려 않는다. 나는 이를 사려 물면서 강 촌장과의 치정사를 숨기리라 다짐했다. 내가 졸까 하면 얼굴에 찬물을 끼얹고 쓰러질까 하면 벽과 방문 모서리에 박아 넣으면서 눕게도 못하고 자게도 못하면서 사흘째나 연장전을 벌이고 있다. 이처럼 더 큰 고역이 어디 있고 이처럼 힘든 옥살이가 어디 있으랴? 한잠 푹 자고 싶다. 잠이 오지 않는 것이 제일 큰 고충이라고 여겨오던 내가 잠을 자지 못하는 고통을 겪다니? 자고 싶다. 푹 자고 싶다. 마지막엔 내 속을 다 털어내고 시원히 자고 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점심때쯤이나 됐을까? 아침인지 저녁인지 분별할 수 없는 나였지만 점심 먹으로 가자고 한 반란파의 말에서 어렴풋이나마 점심때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으로 점심때로 추측하게 된 것이다. 《허인숙, 진짜 완고하구나.》 30대가 내 앞에 앉아 담배에 불을 달며 말했다. 《지금도 뻗칠 텐가?》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은 다 말했습니다.》 《증거가 있어야 마지못해 승인하는 완고분자.》 30대는 치째진 눈길로 나를 쏘아보며 가방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내 앞에 내밀었다. 《자백서》라는 글발이 어렴풋이 보였다. 자백서 밑에 씌여진 이름 김천수, 나는 김천수라는 이름에 눈을 화등잔처럼 밝혔다. 그 이름 석 자가 내 동공 안에 비수처럼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자백서
1954년 초 나는 허인숙의 고백을 통해서 샘물골 강 촌장과 허인숙의 부정행위를 알았다. 그 때 허인숙이는 이미 임신한 몸이었다. 이 사실을 덮어 감추기 위해 나는 1954년 양력설이 지나자 흑룡강성 밀산현 양강공사 명신촌에 있는 나의 육촌형 김영석 집으로 해산시키러 보냈다. 그리고 강 촌장은 흑룡강으로 강제이주 시켰다. 1954년 7월 9일, 허인숙은 해산한 아들을 남에게 주고 무사히 돌아왔다. 이 사실이 확실함을 증명한다. 김천수 1966년 11월 15일
나는 졸도하고 말았다. 그 후의 일은 하나도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자백서와 김천수라는 이름만 남았을 뿐이다.
1968년 12월 31일 눈이 내림.
오늘은 또 어디로 끌고 가겠는지. 끌 건 몰 건 갈 데로 가라지. 지난 2년간 나는 《갈보―허인숙》이라는 패쪽을 걸고 S시 골골을 끌려 다니며 투쟁을 받았다. 처음에는 소름끼치도록 그 투쟁이 무서웠고 얼굴이 가려워났지만 지금은 화냥년이건 씹할 년이건 별의별 소리를 다 들어도 마음은 편하다. 내 전부를 다 팔아버렸고 내 전부를 훼멸시켰으니 내게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으니까. 《불었구나. 물었구나.》 불었다고 물었다고 옹매듭졌던 김천수 서기에 대한 원한도 한 줌의 재가 되고 남은 것은 꼭두각시인생에 대한 앙금밖에 없다. 나는 인생과 무엇을 바꾸어왔던가? 저 농짝 속에 깊이 간수해온 영예의 상장과 공로메달? 그렇다. 그 것이다. 그 것이 전부다. 역사가 나를 말해주는 그 영예들이 농짝 속에 깊숙이 감춰져 있다. 아, 과거엔 그 것들에 왜 그토록 큰 미련을 두었던지? 왜 그 것을 위해 자신의 살을 뜯어먹고 자신의 피를 빨아먹고 자신의 뼈를 갉아먹었던지? 후회막급이다. 후회 없이 살겠다던 내가 후회를 하다니? 후회하지 않을 수 없는 참혹한 현실, 후회하게 만드는 비참한 현황, 이 전국은 언제가야 풀릴는지? 마당에서 대대혁명위원회 성원이 나를 부르고 있다. 또 끌려갈 판이다. 오늘은 어디로 끌고 가려는지?
따르릉 따르릉. 전화벨 소리가 일기책에서 나를 떼어냈다. 나는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 빨리 병원으로 오세요.》 아내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뭐? 아버지가 잘못 됐소?》 《아니, 아버님이 당신을 찾고 있어요.》 《알겠소.》 사망선을 가로타고 그네질 하는 아버지가 나를 찾는다는 소리에 나는 경황없이 집을 뛰쳐나와 택시를 잡아탔다. 《이 사람 경천이, 콜록콜록.》 내가 아버지의 병실 문을 떼고 들어서자 아버지가 힘겹게 나를 불렀다. 나는 《경천이》라는 그 소리에 목에 칼을 박는 아픔을 느꼈다. 아버지는 50고개를 넘긴 이 아들을 보고도 언제 한번 《이 사람》이거나 《경천이》라는 대등을 써본 적이 없다. 《경천아》가 아니면 《이랬나 저랬나》하는 하대를 썼을 뿐이다. 존대보다 그 하대에서 나는 아버지라는 믿음을 더 받았고 아버지의 사랑을 더 느끼곤 했다. 귀에 익을 대로 익었고 벽을 느끼게 하지 않는 그 《이랬나 저랬나》가 급시에 대등으로 변하다니? 그 소리는 그처럼 멀게, 그처럼 서먹서먹하게 들려왔다. 급시에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부자관계가 홍수에 밀린 보뚝처럼 터져 갈라지는 것 같았고 메의 힘과 충격에 바위가 쩡 하고 갈라터지는 것 같았다. 《아버지, 웬일이십니까?》 《이 사람, 경천이 콜록콜록.》 《아버지, 말씀 낮추십시오. 전처럼 〈경천아〉하고 불러주십시오. 그 소리가 더 듣고 싶습니다.》 《아니네. 콜록콜록 이 사람…》 아버지는 마디마다 뼈가 그대로 노출되는 앙상한 손으로 내 손을 꼭 잡으며 말을 잊지 못했다. 아내가 아버지의 눈썹을 다듬어 올렸는지 늘 눈을 덮고 있던 처진 눈썹만 보아오던 나는 처음으로 가장 가까운 거리를 두고 아버지의 눈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자줏빛 물감을 들인 듯 검푸른 색깔에 깔린 우묵한 눈확, 황달이 들어 노랗게 변한 눈자위, 검은빛을 잃어버린 토색 나는 동공…죽음을 재촉하는 그 변화 속에서 살아 숨쉬는 목숨이라고, 목숨이 붙어있다고 눈물이 그득히 고여 올랐다. 《아버지, 왜 이러십니까? 병색도 가셔지고 살도 오르고 병이 도라진 기미가 확연한데요.》 《그런가? 콜록콜록 눈감고 아웅하는군. 허허허.》 아버지는 웃으셨다. 환한 웃음이 아니라 서글픈 웃음이었다. 맥을 버린 웃음이었다. 눈물에 가린 웃음이었다. 《이 사람 경천이, 날 퇴원시켜주게나.》 《무슨 말씀하십니까? 병이 나을 때까지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지요. 그래야 다시 한번 까막골에 다녀오시지 않겠어요?》 《콜록콜록 내 병을 내가 몰라? 입원비도 억찰텐데.》 《아버지 치료비는 근심 마십시오. 저금한 돈만 해도 아버지의 치료비를 대고도 남습니다.》 《치료비도 치료비겠지만 콜록콜록 나 내 집에서 죽고 싶네. 자네들이 꺼리지 않는다면 콜록콜록.》 《우리가 꺼리다니요? 아버지의 병을 꺼리는 자식 보셨습니까? 아버지는 더더구나 저의 어머니고 아버지가 아닙니까? 아버지!》 나는 침대에 비스듬히 기대앉은 아버지의 허리를 꼭 감아 안으며 애시 적에 그랬던 것처럼 아버지의 가슴에 머리를 묻었다. 그 때에야 나는 진짜 아버지를 여의지 않을까 하는 무서운 생각에 묻혀버렸다. 의사 앞에서 사형선고를 받을 때에도 지금처럼 가깝게 뼈저리게 아버지의 죽음을 실감하진 못했다. 《경천이, 아무리 부자간이라 해도 죽음은 꺼리게 되네. 콜록콜록 죽음이 부모 정 자식 정 다 걷어가지고 간다는 말 못 들었소?》 《아버지의 소원 정 그러시다면 제가 의사 선생님과 상론해보겠습니다.》 《내가 내 자리가 좋다고 나가면 콜록콜록 자네들이 더 고생일거구. 죽은 다음에도 죽음자리를 꺼려할거구. 콜록콜록 그래두 내 집에서 죽고 싶네. 의사와는 상론할 것두 없네.》 《그래도 의사와 상론하고 결정하겠습니다.》 나는 그 자리로 담당 의사를 찾았다. 이제 며칠 지탱하지 못할 것이니 환자의 소원을 풀어드리는 것도 바람직하다는 의사의 대답이었다. 나는 그 날 오후로 아버지를 퇴원시켰다.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의 정서는 확 달라졌다. 병원에 누워계실 때의 병에 깔린 모습, 생명의 마지막 활주로를 달리느라 허가차게 산소를 감빨아 들이며 죽음의 고배를 맛보던 숨을 헐떡이던 그런 모습이 아니다. 진짜 생명을 되찾지 않을까 하는 가들가들한 소생의 희망이나마 보여주는 야릇하고 쨍하는 가벼운 모습이다. 그 날 저녁, 병원에 계실 때 물 한 모금 넘기기 힘들어하시던 아버지는 아내가 쑨 미음도 한 공기 자시고 과실즙도 몇 숟가락 떴다. 아버지의 정서가 돌아서자 우리의 기분도 홀가분해졌다. 꽤나 오래 우리를 멀리했던 가정적 분위기가 가까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 기쁨, 그 희망은 며칠 가지 못했다. 아버지의 병세가 하강선을 그리면서 급히 악화되기 시작했다. 간복수가 와서 심장과 폐를 압박하는 바람에 아버지는 숨도 겨우 톺아올렸고 엎친 데 덮친다고 간혼미까지 들이닥치는 통에 아버지는 완전히 사경에 처하게 되었다. 나는 급히 전화기를 들고 연변병원에 왕진을 청했다. 구급차가 와서 아버지에게 주사를 놓는다 배에 찬 물을 뽑는다 해서야 아버지는 의식을 되찾았다. 의사들이 다 돌아가자 아버지가 나를 불렀다. 《이 사람 경…겅천이…콜록콜록 미…미안하에…》 《아버지도 별 말씀 다 하십니다. 아들을 보고 미안하다니요? 이 건 자식으로 응당 해야 할 일입니다.》 《경…천…이…암만 해도 앞…앞이 보이질 않…네. 저 뽀비를 열고 콜록콜록…봉…봉투를 꺼…꺼내주게.》 나는 아버지의 옷 궤짝 밑에 달려있는 서랍을 열었다. 거기에는 내가 소설원고 초고를 쓰면 넣어두곤 하던 큼직한 재료봉투가 끈으로 꽁꽁 동여져 있었다. 나는 재료봉투를 들었다. 묵직했다. 나는 그 봉투를 아버지의 앞에 놓았다. 《보…보게. 내…내가 죽…은 다…다음에.》 《아버지, 아버지는 절대 세상 뜨시지 않아요. 뜰 수 없어요. 흑흑흑.》 《멍청이 처…처럼 울…기는…콜록콜록.》 아버지는 힘겹게 손을 들어 내 눈물을 닦아주며 사색이 된 얼굴에 보일락 말락 미소를 떠올렸다. 《경…천…아…》 《네. 아버지.》 《경천아》하는 그 소리에 나는 귀문을 버쩍 열었다. 듣다 반가운 부름, 아버지를 되찾은 듯한 다감한 소리, 나는 그 부름이 좋았다. 《아…버…지의 부탁…콜록콜록.》 《내…내 골회를 약…수…동 휴양소에…》 《약수동 노인휴양소에 가셨댔어요?》 아버지가 머리를 끄덕이셨다. 《가토도 하시구요?》 《그…래.》 《그러면 아버지가 강…》 내 입에서 강자가 나오기 바쁘게 아버지는 머리를 저으셨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무서운 꼭두각시요 풀기 힘든 수수께끼였다. 도대체 아버지와 허인숙 어머니와의 사이는? 강 촌장과는? 숱한 의문부호들이 내 머리를 기습해왔다. 《경…천…아! 용…용서…》 아버지는 벌컥 자리를 일더니 여생에 남은 모든 빛과 열을 다해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 눈길에서 부모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애틋한 사랑과 정을 보았다. 마치 나를 친자식으로 믿고 마지막으로 지켜봐주시던 허인숙 어머니의 눈길과 같은 그런 눈길을 보았다. 아버지는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나를 지켜보던 그 모습 그대로 자리에 쓰러지셨다. 그리고는 숨을 거두었다. 아버지는 이렇게 외동아들을 달랑 남겨놓은 채 아무런 여한도 없이 깨끗한 한생을 마치셨다. 나는 울지 않았다. 눈물로 아버지의 값진 한생을 바꾸기에는, 눈물로 아버지의 지성을 바꾸기에는, 눈물로 아버지의 생전의 진통과 고초를 바꾸기에는 내 눈물이 너무나 가볍고 값싸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장례는 이튿날 치렀다. 소문 없이 태어나서 이름 없이 돌아가신 아버지처럼 아버지 장례도 소문 없이 치르고 소문 없이 골회함만 남겨놓았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이튿날 아침, 나는 정순이의 핸드폰 번호를 눌렀다. 《여보세요?》 정순이의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울려왔다. 《정순이니? 나 오빠다.》 《오빠? 웬 일이야?》 《오늘 차를 뺄 수 있겠어?》 《오빠의 명령이라면 무조건.》 《좋아. 빨리 대기해줘. 우리 집 앞에서.》 《알겠어.》 정순이의 자가용은 나를 구겨 싣고 연룡고속공로를 따라 달리고 있었다. 단오 날까지도 햇빛이 숨바꼭질을 하던 검은 해란벌이 파란 단장을 한 모내기 뒤끝이라 보기만 해도 싱싱했다. 《왜 또 약수동으로 가는 거야?》 《아버지가 세상 뜨셨어.》 《뭐야? 그런데 왜 나한테는 알리지 않았어?》 《불필요한 참견은 불필요한 오해와 불필요한 희생을 낳게 된다는 걸 너 몰라서 묻나?》 《알겠어. 하지만 섭섭해.》 《미―안.》 약수동 노인휴양소에 다다를 때까지 우리 사이에는 오가는 말이 없었다. 아버지를 여의었다는 비운이 내 입을 막았고 정순이에게 감염된 내 정서가 정순이의 입을 막아서였다. 휴양소에서 우리를 처음 맞아준 사람은 물론 소장인 한영희였다. 약삭빠르고 발놀림이 가벼운 영희는 언제나 그랬듯이 반갑게 우리를 맞아주었다. 《웬 일로 또 오셨어요?》 《새도 제 앉고 싶은 나무에 앉는다지 않소? 오고 싶어서 왔소.》 《환영, 이 영희는 언제 어느 때든 환영입니다.》 우박이 내리쳐도, 강타를 받아도, 질책을 받아도 언제 한 번 얼굴을 찡그릴 것 같지 않은, 살갗 밑에 낭만만 들어차 있을 듯한 그런 맑은 모습의 영희다. 그래서 신음 소리와 앓음 소리에 묻혀있는 이 휴양소에서 항상 영희의 맑은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고 웃음꽃을 볼 수 있는 모양이다. 영희는 휴양소의 만개한 함박꽃이다. 《그저 산보하러 오신 것 같지 않은데 문 선생님, 웬 일이시지요?》 사무실에 들어서자 영희가 찻물을 부으며 물었다. 《물론 한 가지 상론할 일이 있어서 왔소.》 《뭔데요?》 《아버지가 세상을 뜨셨소.》 《네? 문 아바이가요?》 《그렇소. 아버지의 골회를 산 좋고 물 맑은 약수동에 묻고 싶어서.》 내 말에 영희는 좋다 궂다 대답이 없었다. 무언가 생각하는 듯한 사색의 여운이 미소 밑에 깔려 있는 것이 분명했다. 《문 아바이는 여기에 한 번도 오신 적이 없는데 우리 휴양소는 어떻게 알고 허인숙 어머니의 묘지를 어떻게 알았을까요?》 《아니요. 왔다가셨소. 청명 후에 휴양소를 찾았다가 허인숙 어머니의 묘지에 가토까지 하신분이…》 《그럼 그 강씨라던 분이 문 아바이셨던가요?》 나는 머리만 끄덕였다. 《긴 눈썹이 처져 내리고 콜록콜록 잔기침을 자주 하는 분이…》 《그렇소. 그 때 아버지는 고향인 까막골을 가신다면서 집을 나섰댔는데 여기를 찾아오실 줄은 정말 생각 밖이었소.》 《문 아바이였군요.》 《지난번 단오에 왔을 때 모양새만 물었어도 벌써 알았을 텐데 까막골로 떠나신 아버지가 여기를 찾을 줄은 정말 뜻밖이었소. 그리고 찾아온 분이 강씨라기에 아버지와 전혀 연결은 시키지 않았구.》 《그런 일이었구만요.》 《어떻소? 묘 자리 하나 내줄 수 있소? 돈을 내라면 돈을 내고 뭐나 다 해드릴 수 있소.》 《문 선생님의 진국을 알만해요. 그 땅은 우리 휴양소의 땅이기에 얼마든지 빌려드릴 수 있어요. 그저 문 선생님의 마음만 요구해요.》 《아버지를 묻은 땅인데 내가 약수동을 잊을 수 있겠소?》 나는 정순이를 시켜 두도진에 가서 고기며 술, 채소, 과실들을 사오게 했다. 휴양소의 노인들도 구면이라 구애 없이 푸짐한 점심밥을 앞에 놓고 마음껏 마시고 마음껏 즐겼다. 《허인숙은 천당에 가서도 웃으며 살겠다. 저런 무던한 아들을 둬서…》 《나에게도 저런 아들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고?》 《나를 보오. 자식이 있어 무슨 소용이요? 자식도 자식 나름에 가지.》 노인들이 나를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효자아들이라고. 《노인님들, 근심 마십시오. 이제부터 제가 여러분들의 아들입니다.》 나는 노인들에게 술을 권하며 말했다. 《감사할시구.》 《그래 줬으면 얼마나 좋겠나?》 《어 좋을시구. 나에게도 아들 하나 생겼다.》 내 말에 얼마나 성수났던지 한 할머니는 일어나 춤까지 덩실덩실 췄다. 《언제쯤 묘지를 앉히겠나요?》 떠날 때 영희가 물었다. 《내일 당장.》 《일군들을 불러야겠지요?》 《삯은 푼푼히 드릴 테니 장정 몇 명만 불러주오.》 《알겠어요. 그럼 내일 또 만나자요.》 우리는 영희와 작별하고 약수동 마을을 빠져나왔다. 진흙과 자갈에 묻힌 시골길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비온 뒤끝이라 전번보다 더 파이고 큼직한 돌들이 내노라 하고 머리를 쳐들고 있었다. 몹시 파인 길에는 누군가 나무 가지며 돌들을 채워놓고 지나간 자리가 역력했다. 시골사람들이란? 모래 몇 수레면 수선할 수 있는 길도 내버린 채로 두다니? 《내일 내가 따라와도 되는 거야 오빠.》 《되고 말고.》 《그럼 언니도 와야 할 텐데 언니를 무슨 낯으로 대하나?》 《범 무서운 줄 모르던 네 입에서도 그런 말 다 나오나?》 《나도 여자야. 언니로 놓고 보면 사랑의 원수고…》 《아무런 내색 내지 말고 전처럼 언니 동생하면서 지내. 그 것이 제일 편할 거야.》 《남자들은 다 오빠 같아? 그게 그리 쉬운 줄 알아?》 《힘들지. 힘들기 때문에 감추는 거 아냐?》 《알았어!》 국도에 나서자 승용차는 질풍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차창을 열었다. 시원한 바람이 머리칼을 날렸다. 구수한 흙냄새가 폐부를 적셨다. 《에어컨을 꺼버려.》 《오빠. 오빤 진짜 문 아바이 아들 맞아?》 《여지도 없는 물음. 나는 에누리 없는 아버지의 아들이야.》 《그런데 오늘 보니 이상한 느낌이 들어. 문 아바이가 어쩌면 강 촌장 같아.》 《강 촌장?》 《그렇잖으면 왜 허인숙 어머니의 묘지를 찾았겠나 말이야.》 《아버지는 내가 하도 허인숙 어머니의 일기에 달라붙으니 도대체 어떤 분이기에 아들이 저토록 심혈을 기울이겠는가 하는 궁금증에 휴양소를 찾았을 거야.》 《그럴 수도 있겠지만 맞혀오는 내 감각은 달라.》 《잡생각 꼴깍 삼키구 핸들이나 바로 잡아. 네 덕에 자칫하다간 우리도 약수동에 묻히고 말겠다.》 《안심해. 백퍼센트 보장.》 정순이는 지그시 액셀을 밟았다. 승용차는 줄 떠난 화살처럼 연길을 향해 나는 듯이 달렸다. 이튿날 나는 약속대로 아버지의 골회를 약수동 노인휴양소 허인숙 어머니의 옆에 모셨다.
이제 갈 것은 다 가고 줄 것은 다주고 남은 것이 없다. 아버지가 나에게 남긴 뼈저린 추억을 가셔버리고 아버지가 쓰시던 일체 소지품은 다 태우거나 던져버렸다. 아버지의 침실은 텅 비어 있다. 그런데 그 텅 빈 침실에서 들려오는 콜록콜록하는 아버지의 기침소리와 터벅터벅하던 아버지의 발자국소리는 지워버릴 수 없다. 콜록콜록… 새벽마다 나를 깨우던 기침소리, 태엽이 풀리고 부속품들이 낡아 때 없이 종을 울리기는 했지만 아버지의 빈방에서 들려오는 그 기침소리는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 지금도 계속 들려오고 있다. 스르륵 스르륵… 끌신 끄는 소리가 터벅터벅 하던 아버지의 발걸음소리와 바뀌어 들려온다. 아버지의 발걸음 소리처럼 달짝지근한 맛, 그 소리를 듣지 않으면 무언가 귀한 물건을 잃어버린 듯한 그런 차분한 맛을 주는 소리가 아니라 거친 맛을 주는 끌신 끄는 소리다. 문이 빠끔히 열린다. 아버지의 얼굴 대신 잠을 설 때운 아내의 부석부석한 얼굴이 나타났다. 《밤참 드시라요.》 《생각 없소.》 《그러다 몸 상하겠어요.》 아버지가 하시던 그 말 그대로다. 그런데 아버지의 소리와는 완연 엇갈린 소리다. 아버지의 말씀에는 책망보다 의무감이 한 쟁반 가득 담겨 있었다. 아내는 선 자리에서 몸을 돌린다. 아버지는 꼭꼭 내 책상 앞에 쟁반을 놓고 나가시지만 아내는 그 자리에서 돌아선다. 그 것부터가 틀렸고 그 것부터가 달랐다. 누군가는 부모의 사랑보다 아내의 사랑이 제일이라고 했다. 그래서 백년해로 한다는 말이 나왔는지는 몰라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식 버리는 부모는 없어도 남편 버리는 아내는 많은 법이니까. 그래서 부모사랑 세상에서 으뜸이라지 않는가! 아버지는 우리 집 기둥뿌리까지 몽땅 뽑아가지고 저 세상으로 가지 않았나 싶다. 내가 버리고 내가 태워버린 것이 아니라 손수 챙겨가지고 가신 것이 틀림없었다. 내가 출근할 때마다 《아버지 다녀오겠습니다.》하고 인사할 때마다 들어오던 《오냐. 잘 다녀와.》하던 목소리도 퇴근하여 집에 들어서면서 《아버지 다녀왔습니다.》하며 인사를 올릴 때마다 들어오던 《오냐, 왔느냐》하며 반기던 아버지의 목소리도 더는 들을 수 없다. 덜컥하고 열리거나 닫기는 문소리가 아버지의 목소리를 대신할 뿐이다. 아버지가 계시기에 하루 세 끼 더운 밥 더운 반찬을 차려 올리던 그 번거로우면서도 따끈한 맛을 주던 식탁도 식어있을 때가 더 많다. 우리는 각자 시간나는 대로 제 수요에 따라 홀로 식탁에 마주 앉곤 한다. 아버지는 우리의 식미와 때시걱까지 안고 가셨다.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 우리 집은 온기를 잃은 냉랭한 집으로 냉각되어 가고 있었다. 정과 사랑이 아니라 사람이 살고 있고 숨쉬고 있다는 그 감각마저 몽땅 들고 가셨다.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 우리 집은 하나의 거대한 냉장고다. 아버지를 잃은 우리 집은 각자는 자기 대로라는 가품도 없고 문벌도 없고 세대주도 없는 망가진 가문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아버지는 가문의 생존이요 가정의 자부라는 그 마지막 지탱점까지 몽땅 뽑아 가셨다.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 우리 집은 아파트단지의 찌들어가는 오막살이다. 내 탁상 위에는 보다만 허인숙 어머니의 일기책이 질서 없이 널려진 채로 있었다. 나는 일기를 마저 보려고 일기책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다른 일기들은 빠짐없이 있었지만 유독 1970년부터 1974년까지의 4년간에 걸쳐 쓴 일기들이 빠져 있었다. 그 삼엄했던 《문화대혁명》때의 일기까지 보존되어 있는데 그 후의 일기가 빠져있다니? 4년간 일기를 쓰지 않았다는 말인가? 그럴 수 없었다. 허인숙 어머니는 한생 일기와 동무하며 사신 분이니까. 그렇듯 오랫동안 붓을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그렇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