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원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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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대담]생활 속에서 소설을 낚아올리다 댓글:  조회:321  추천:0  2019-07-18
생활 속에서 소설을 낚아올리다 림원춘&김홍란     초대작가: 림원춘 (소설가, 연변작가협회 전임 부주석) 진행자: 김홍란 (《도라지》잡지사 전임 주필)   일시: 2017년 9월 1일 장소: 연길시 백산호텔 커피숍  사진: 김향자   김홍란(이하 김): 안녕하세요? 정말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동안 건강 때문에 고생 많으신 걸로 아는데 오늘 우리 문단의 저명한 소설가이신 림원춘선생님을 대담코너에 모실 수 있어서 내심 기쁩니다.   림원춘(이하 림): 감사합니다.   김: 현재 《장백산》잡지에 선생님의 장편소설 〈산귀신〉이 련재되는 걸 보며 고령이심에도, 그리고 건강이 안 좋으심에도 왕성한 창작활동을 이어가시는 선생님께 크게 감동받고 있습니다. 1958년에 소설로 등단을 하시여 60년이라는 작가인생을 살아오신 선생님에게서 소설 쓰기란 정녕 멈출 줄 모르고 흐르는 강물과도 같지 않나 싶어요. 옹근 인생을 문학에 다 바쳐오신 그 정신과 식을 줄 모르는 열정이 후배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군요. 그런 뜨거운 열정이 선생님의 후배, 그 후배의 후배들에게서는 갈수록 미약해지는 현실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선생님 앞에 마주하는 마음이 많이 송구스러워지네요.   림: 저는 언제나 글 쓰는 작업을 제 살을 뜯어먹고 제 피를 빨아먹고 제 뼈를 갉아먹는 고된 로동이라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쉬임없이 쓰고 있어요. 왜? 저는 ‘민족’이라는 두 글자를 머리에서 비워본 적이 없어요. 우리 조상들은 두만강을 건너와 이 땅에 첫 괭이를 박았고 첫 귀틀집을 앉혔으며 왜놈들과 피어린 투쟁을 했습니다. 지금 연변의 언덕마다 마을마다 하얀 렬사비가 서있는데 그 렬사비는 항일투쟁의 95% 이상, 해방전쟁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우리 조선족 렬사들이 흘린 피로 세워진 겁니다. 우리는 이런 위대한 민족의 후손들이예요. 그런데 이런 민족이 지금 ‘동화’라는 두 글자를 앞에 두고 흔들리고 있어요. 울고 있어요. 민족의 동화는 과거에도 지금에도 언어로부터 시작됐고 시작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교육진지이고 하나는 문단이라는 진지입니다. 저는 이 진지를 지키는 굳건한 보초병이예요. 한마디로 민족에 대한 사명감입니다.   김: 선생님께서는 1937년 룡정의 한 가난한 농민가정에서 태여나셨어요. 어린 나이긴 했지만 일제시기를 겪었고 광복과 해방을 맞이했으며 해방초의 가난과 각종 정치운동 그리고 문화대혁명의 동란을 거쳐 개혁개방의 새 시기까지 쭉 살아오고 계십니다. 그 시간들은 조선족의 옹근 력사이기도 하죠. 선생님께서 60년간 창작하신 작품들 속에는 조선족 력사의 전모가 반영되고 있어 의미가 더 깊지 않나 싶어요. 평론가 림연선생님은 림원춘작가님을 “민족화어시대(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40년대)에 태여나서 국가화어시대(20세기 50년대부터 70년대)에 작가로 성장하여 현대화어시대(20세기 80년대부터 오늘까지)에 일약 중국조선족문단의 중견작가 내지 국외에까지 명성을 떨친 저명한 작가로 부상”하셨다면서 “작가 림원춘의 필봉은 민족사의 전 령역을 답파하고 있다. 민족사의 3단계중 그 어느 단계도 공백으로 남기지 않고 완주했다. 이 사실이야말로 이례적이다.”라고 했습니다.   사실 ‘작가를 말하다’라는 문학대담을 진행해갈 수록 신선한 형식이여서 인기가 있을 것이라는 초반의 가벼운 생각보다는 비록 전면적이진 못하더라도 중점작가, 대표적 작가를 조명하는 일이 결국은 우리 문단을 전반적으로 정리하고 기록하는 작업이 된다는 생각에 어깨가 점점 무거워집니다. 조선족문학의 제2세대 소설가이시고 우리 문단의 대표작가이신 림원춘선생님을 이번 대담의 초대작가로 모시게 된 건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의미가 깊다는 생각이 들어요.   림: 저는 《장백산》잡지의 대담코너를 앞두고 많이 망설였어요. 내가 나서야 하나 나서지 말아야 하나를 두고 말입니다. 사실 저는 저명한 작가도 대표적 작가도 아닙니다. 겸손해서가 아니라 전에 이런 고배를 맛본 적이 있어요. 1984년, 소설〈몽당치마〉로 전국상을 받고 오자 모든 조선족 보도매체가 요란할 정도로 저를 올리췄고 〈몽당치마〉보다 더 좋은 작품을 써달라고 부탁을 해왔어요. 저는 그 칭찬을 편달로 삼지 않고 개 잡은 포수처럼 기껏 어깨를 살리고 창작담이요 보고회요 하면서 동북삼성을 답파하다 싶이 했습니다. 결국 도취감에 2년 동안이나 소설 한편 써내지 못했어요. 망신살이 들었던 거죠.   이 나이에 ‘과분한 칭찬이나 평가’를 듣는다고 들뜰리는 없겠지만 자제하고 싶군요. 그냥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김: 선생님께서는 어린 나이에 벌써 고된 로동을 시작하셨다죠. 어려운 생활여건 속에서도 자식들 공부시키기 위해 부모님은 먼 심심산골로 부대 파러 떠나시고 열살 어린이였던 선생님은 집안 살림을 도맡아하며 공부하는 형님의 뒤바라지를 맡으셨어요. 그 때의 한없이 고생스러웠던 생활이 오히려 후날의 창작에 큰 도움이 되였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참 인상에 깊이 남네요.   림: 사실 저는 동년을 모르고 자랐어요. 한창 투정을 부릴 나이에 부모가 부대 파러 동량리(연길현 용신구)로 떠나는 바람에 제가 소학교 2학년 때부터 형님을 시중들며 주부질하지 않으면 안되였어요. 그것도 쌀밥이면 하기나 쉽지요. 보리쌀에 감자를 얹어 하는 밥이라 새벽에 일어나 밥을 지어야 했고 하학하고 돌아오면 물을 긷는다 보리쌀을 삶는다며 저녁차비를 하느라 애들과 술래잡기 한번 못해봤어요. 그 뿐인가요? 먹을 감자조차 없어 굶은 채 학교 갔던 적이 한두번 아니며 2, 3일씩 굶다 보니 교실에서 쓰러진 적도 여러번 있었어요.   말 그대로 저는 어머니의 아들로가 아니라 딸로 동년기를 보냈습니다. 시집간 누나를 제외하고 어머니 곁에는 저 밖에 없으니 어머니의 시중을 제가 다 들어야 했지요. 소학교 4학년 때 저는 어머니 곁에서 두부콩 갈기, 두부 앗기, 메주콩 삶기, 장 담그기에다 감자떡, 시루떡, 송편, 증편, 순대, 팥죽 만들기∼ 못해본 일이 없으며 다 만들 줄 알아요. 그런가 하면 썩 후날 제가 몸 담고 있던 방송국에서 ‘백정’이라 불리울 만큼 돼지, 개, 양, 게사니, 오리 잡기에서도 능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생을 경험하고 생활에서 만능으로 살아온 경력이 소설가인 저에게는 나쁘지 않았던 거 같아요. 창작에서 많은 소재를 얻을 수 있었던 건 물론 작가의 삶에서 난관을 이겨내고 의지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였다고 생각합니다.   김: 1949년도에 형님 분이 연변대학교 조문학부에 입학하셨고 이어 1956년도에 선생님께서 형님의 뒤를 이어 연변대학교 조문학부에 입학하셨어요. 그 시대에 두 형제가 나란히 같은 대학, 같은 학부에 진학한 자체도 경이로운 일인데 선생님은 형님의 수업까지 들으며 문학공부를 하는 행운을 지니셨어요. 그렇게 롤모델이나 다름없을 형님의 영향으로 원래의 꿈이 공정사나 외교관이였다던 선생님은 작가 쪽으로 꿈을 바꾸게 되였고 대학교 시절 열혈청년, 팔방미인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여러 분야에서 활약하셨던 선생님께서는 그 넘치는 에너지를 그 후 작가의 삶에서도 쭉 이어오시며 창작의 필을 한시도 멈추지 않으셨어요.   림: 어린 시절 룡정에서 함께 밥 끓여먹으며 공부할 때 우리는 거꾸로 된 형제였습니다. 제가 눈을 잡아뜯으며 일어나 아침밥을 해놓고 형님을 깨우면 형님은 응쭰하고 돌아누우며 조금만 더 자겠다고 투정부리군 했으니까요. 하하하.   그러던 형제가 1956년에 연변대학에서 외국문학강좌장(교연실 주임)과 학생의 신분으로 다시 만났습니다. 동북사범대학 연구원을 졸업한 형님은 교수를 잘하여 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이였어요. 그런가 하면 연변작가협회 회원으로 창작활동을 하기도 했죠.   형님은 저보고 문학을 하라는 말씀을 한번도 한적 없어요. 하지만 대성중학교 때 토지개혁선전대에서 연극, 노래로 맹활약했던 형님의 멋진 모습, 자기가 보던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였는가》 등 소설을 넘겨주며 과외독서를 시킨 영향, 형님이 신문에 발표한 수필 등 영향은 소학교 때부터 고중, 대학에 이르기까지 줄곧 연극, 합창대에서 활약하고 연변대학 문오부 부부장을 했던 저의 경력과 일치되면서 저의 지향은 차츰 ‘문학’이라는 두 글자에 못을 박게 되였어요.   우리 형제는 지금도 네 집 내 집 없이 다정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언젠가 형님은 병석에 누워 저의 소설집을 보면서 “이젠 네가 내 문학선생이구나.”라며 대견하게 웃으셨어요. 내가 형님의 선생? 소 웃다 꾸레미 터질 소리. 저는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영원한 형님의 학생입니다.   김: 선생님의 문학경력을 살펴보면 대학교 때 단편소설 〈쇠물이 흐른다〉를 《아리랑》에 발표하시며 등단합니다. 이어 오체르크, 장막극도 연거퍼 발표하며 소설문학과 극문학에 심취, 1960년 대학 졸업 후 연변인민방송국 문예부 부주임으로 일하는 동안 소설을 륙속 발표, 문화대혁명 기간 공백기를 맞이해야 했지만 작가의 꿈과 사명감을 버리지 않고 한동안의 휴식 후 단편소설들을 창작 발표, 1981년 연변텔레비죤방송국에 전근하여 편집부 주임으로 발탁되였고 1982년 연변작가협회에 전근하여 전직작가, 국가1급작가로서 왕성한 창작활동을 펼칩니다.   지금까지 중단편소설 90여편, 평론 40여편, 시 20여수, 산문 20여편 발표. 단편소설집 《꽃노을》(1980), 《몽당치마》(1984), 중단편소설집 《몽당치마》, 중편소설집 《눈물 젖은 숲》(1995), 장편소설 《짓밟힌 넋》(1988), 《파도에 실린 사랑》(1986), 《우산은 비에 운다》(2004), 《그날의 25시》 외 《림원춘소설선집》(6권, 2011-2012), 장편실화문학 《분투자의 발자국》, 《예고된 파멸의 기록》(1992), 《태양에는 흑점이 없다》, 텔레비죤련속극본 《아리랑》 등 많은 작품을 창작, 출간하셨어요.   그런가 하면 전국우수단편소설상, 전국소수민족문학상(2차), 길림성소수민족문학상(2차), 연변조선족자치주정부 진달래문예상(2차), 연변작가협회문학상(2차), 《연변문학》문학상, 《장백산》문학상(2차) 등 수차례 수상하는 경력을 쌓으셨고 중국작가협회 회원, 연변작가협회 부주석, 중국소수민족문학학회 상무리사로 계시면서 문학사업의 발전을 위해 큰 힘을 보태셨습니다.   림: 저는 수두룩한 글을 쓰면서 과분할 만큼 상을 많이 받았고 영예도 많이 받아안았습니다. 하지만 그 ‘영예’는 언제나 ‘멍에’로 되군 했어요. 왜냐 하면 받을 때는 흥분되고 기분 또한 좋았지만 좀 지나면 무거운 ‘보따리’로 되기 때문이죠. ‘영예’가 동력으로 돼야 하는데 저는 한번도 그 영예를 동력으로 전환시키지 못하고 시름거리로 만들군 했습니다. 성숙되지 못한 글쟁이라서 그런 거죠.   김: 선생님의 작가생애를 살펴보면서 가장 강렬하게 인상받았던 건 선생님께서 자신의 초반기 창작에 대해 철저히 부정하신 부분이였어요. 전반에 걸친 선생님의 소설세계는 사실주의라는 굵은 선으로 관통되여있지만 거기에는 혁명적사실주의 창작에서 비판적사실주의 창작으로 넘어선 력정이 선명하게 찍혀있어요. 좌적인 사조가 살판칠 때 우리의 작가들은 스스로도 ‘인류 령혼의 기사’, ‘생활의 개조자, 설계사’, ‘시대의 선각자, 계몽자’로 자처하며 계급적, 민족적, 시대적 등 대단한 사명감에 들떠있었으며 그래서 순수문학보다는 참여문학이 훨씬 인기가 있었죠. 그런 시대적 영향하에 선생님의 작품에도 시대적 사명감에 의해 창작된 것이 훨씬 많은 비중을 차지하였고 어느 평론가가 말씀한 것처럼 선생님 소설의 “혁명적사실주의는 거창한 시대적 담론을 충실히 담아”왔습니다.   썩 후날, 자신의 지나온 창작을 아프게 돌아보며 깊은 반성을 하신 선생님은 이런 글을 남기셨어요. “나는 나를 모르고 작가의 대렬에 들어선 사람이다. 누구나 다 자신을 알아야만 작가로 되고 좋은 글을 쓴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나는 너무나 오랜 시간, 몇십년이라는 너무나 길고 긴 시간을 두고 나를 모르고 글을 쓴 사람이다. 나를 아껴주고 나의 작품을 보아온 독자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얼마나 신나는 ‘나팔수’로 됐고 얼마나 많은 ‘분치장’을 했으며 얼마나 훌륭한 ‘미용사’로 됐던가를. 그 때의 나는 나를 모르고 있었다. 아니 안다고 해도 모르지 않으면 안되였다. 나에게 붙어다닌 작가라는 이 기형아는 남이 만들어준 꼭두각시에 불과했고 앵무새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피해자이면서 또 가해자였다∼ 나는 원초적인 나를 되찾고 싶다. 늦었지만 잃었던 나를, 빼앗겼던 나를 갖고 싶다.”   선생님의 통렬한 반성과 간절한 소원이 담긴 이 글을 읽으며 가슴이 뭉클해났어요. 그 시대가 남겨준 뼈아픈 상처, 그것을 딛고 새로운 출발을 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창작에서 자신의 과거를 철저히 부정하고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건 작가에게는 막중한 과제임에 틀림 없지요. 용기 내여 자신을 마주하신 선생님의 작가적 자세가 돋보이는 부분입니다.   림: 사실 저는 많은 글을 썼지만 건질 만한 소설은 몇편 안됩니다. 1980년도 말, 저는 한국의 한 출판사로부터 소설집을 묶겠으니 단편소설들을 보내달라는 청탁을 받았어요. 단편소설집을 묶자면 세권도 넘을 분량의 작품을 썼으니 한권 분량 쯤은 어렵잖게 고를 수 있을 거라고 장담했어요.   그런데 정작 작업에 착수하고 보니 고를 수 있는 작품이 얼마 안됐어요. 그러다 보니 중편소설을 보충하지 않으면 안됐습니다. 단편소설집 《몽당치마》가 중단편소설집으로 된 건 이런 원인 때문이죠. 그 때야 저는 굳어진 의식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가를 느끼게 되였어요.   자기반성이 없는 작가는 전도가 없다고 봅니다. 철저한 혁명적사실주의 작가로부터 비판적사실주의 작가로 변신하는 데는 뼈를 깎는 아픔을 겪어야 했고 긴 시간이 수요되였어요. 과거에는 취재의 초점을 ‘선진’이란 것에만 맞추던 데로부터 나중엔 ‘선진’ 속에 가려있는 ‘락후’에로 돌렸고 보통인간들 특히나 사회의 저층에서 허덕이는 보통백성들의 희로애락과 그들의 진실한 소망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로부터 저는 언제나 약자의 편이였으며 약자의 대변인이 되였어요. 하지만 과거에 저를 따라다니던 ‘혁명’이라는 두 글자는 그 후에도 끈질기게 저의 꼬리를 물고 놓지 않았으며 지금도 저의 작품에 가담가담 그 ‘혁명’의 냄새가 풍기군 합니다.   김: 소설가 림원춘 하면 누구나 가장 먼저 단편소설 〈몽당치마〉를 떠올리게 됩니다. 저 역시 80년대 초반 대학교 수업시간에 〈몽당치마〉를 배우면서 작가 림원춘선생님을 머리 속에 깊이 각인시키게 되였어요. 〈몽당치마〉는 그 시대에 대히트를 친 소설이였죠.   사실 문학정신의 부활과 문학 본체에로의 회귀로 특징지어지는 1980년대에 우리의 소설창작은 획기적인 성과를 이룩하였으나 이 시기 조선족작가들은 문학의 주체성, 인간의 주체성, 민족의 주체성에 대한 사고와 더불어 관념과 방법상에서 커다란 변화를 거치면서 소설창작에서 새로운 특징을 보여줍니다. 영웅의 시대가 사라지고 평민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소설의 세속화 현상이 나타나게 된 것은 1980년대 소설의 주요특징의 하나였어요. 작가들의 시각은 거시적 투시로부터 미시적 관찰에로, 력사적 사고로부터 세속적인 인생에로, 정치적인 내용으로부터 생활적인 내용에로 전환을 가져왔으며 문학은 점차 우아한 기질을 버리고 세속적인 인문주의 맛을 담았어요. 그리고 평민의식의 각성과 함께 인물의 평민화가 도래했죠. 그 중심에 〈몽당치마〉가 있었습니다.   〈몽당치마〉는 20세기 후반기를 시대배경으로 하면서 조선족의 전통적인 풍속을 집대성해보일 수 있는 결혼잔치를 무대로, 그 속에서 표현되는 친척들 사이의 미묘한 태도변화로 빈부와 지위의 변화에 따라 인간관계가 변화되는 비정한 현실과 인정세태를 한폭의 풍속도와 같이 그려 개혁개방 후 조선족문단에서 성공한 첫 세태소설로 주목받았어요. 당시 중국작가협회 당조서기였던 팽목은 《인민일보》에 실은 글에서 “림원춘의 단편소설 〈몽당치마〉는 중국조선족인민들의 아름다운 민속도이다.”라고 했죠.   림: 제가 〈몽당치마〉로 전국상을 받은 후에 한 첫마디가 “〈몽당치마〉는 우리 민족이 나에게 준 복이며 나는 그 복받은 행운아이다.”라는 말이였어요.   저는 자고로 부자집 문턱은 높고 못사는 집 문턱은 낮다고 여겼댔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런 것이 아니라 가난의 문턱은 높고 잘사는 집 문턱은 낮았어요. 아버지는 언제나 당신은 친조카만 해도 열넷이나 된다고 말씀하셨어요. 하지만 제가 알고 있는 사촌형은 단 한분 뿐입니다. 가난하다 보니 찾아오는 친척들이 없었지요. 그리고 어머니는 친척집 군일에 갈 적마다 보에 싸들고 간 몸뻬(녀성들이 집안에서 일할 때 입는 막바지)를 갈아입고 가마목을 차지하고 앉아서는 땀을 철철 흘리며 일만 하셨어요. 부조돈 대신 말입니다. 하지만 형님이 동북사범대학 연구원을 졸업하고 연변대학에 와서 교편을 잡은 데다 저까지 대학을 졸업하고 연변인민방송국 기자로 사업하게 되자 사촌들은 물론 먼 친척들까지도 찾아들군 했어요. 그리고 친척집 잔치에 우리 형제가 참가하면 꼭 상빈으로 보내군 했습니다.   어머니는 언제나 베치마를 입고 다니셨어요. 치마기슭이 닳아 판나면 감싸고 또 감싸고 하다 보니 나중엔 무릎을 겨우 가리는 몽당베치마로 되였지요. 그 베치마가〈몽당치마〉의 원형이며 우리 집 가정사가 소설 〈몽당치마〉의 실제적인 소재입니다.   김: 〈몽당치마〉는 《연변문예》 1983년 1호에 발표되자 마자 조선족사회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1984년 전국우수단편소설상을 수상, 조선족문단에서 오늘까지 국가상을 수상한 유일한 작품입니다. 소설은 《연변문예》상, 연변작가협회문학상, 길림성정부장백산문예상, 제2차 전국소수민족문학상 등 수많은 영예를 받아안았고 지어 드라마로 제작되여 중앙 TV에서 방송되기까지 했어요. 또한 영어, 일어, 로씨야어, 에스빠냐어, 프랑스어로 번역되였으며 지금까지 줄곧 조선어문 고중교과서에 실렸습니다.   이토록 소설이 발표되자 마자 놀라운 효과를 거둘 수 있은 건 우선 짙은 민족적 색채와 향토맛 때문이고 다음은 ‘동불사댁’이라는 조선족녀성의 긍정적인 형상을 잘 부각해서라는 평을 받고 있어요. 〈몽당치마〉는 자신을 되찾고 싶다고 하신 선생님께서 혁명적사실주의 창작에서 비판적사실주의 창작으로 전이하기 시작한 리정표적 작품이자 조선족문단의 기념비적 작품입니다.   림: 과찬입니다. 저에게 그런 복과 행운을 준 백의겨레에게 그 영예를 돌립니다.   김: 평론가 최삼룡선생님은 “림원춘선생님은 시종 생활에 대하여 진실하게 반영해야 한다는 사실주의 창작방법에 충실한 작가이며 자기의 작품을 광범한 독자들의 훌륭한 정신식량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숭고한 사명감을 지니고 붓을 드는 작가”라고 하셨어요. 선생님께서는 어느 글에선가 이렇게 적으셨지요. “나는 생활을 동경한다. 생활은 나의 스승이며 나의 토양이다. 생활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 최저한도의 요구이다.” 실제적으로 선생님께서는 몇달, 지어 1년씩 기층이나 농촌에 자주 내려가셔서 직접 생활체험을 하시고 문학 소재를 얻고 작품 창작을 하셨어요. 지어 “훈춘은 나의 제2고향이자 창작기지”라고 선생님은 말씀하시죠.   림: 그래요. 저는 작가는 책상앞을 떠나야 하다고 생각합니다. “생활은 문학의 원천”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1981년 초, 저는 연변텔레비죤방송국으로 전근하는 기회를 빌어 두달간 훈춘에 내려가 생활체험하면서 하루에 평균 만자 지어 2만 5천자에 달하는 창작을 하며 장편소설 《짓밟힌 넋》을 완성했어요. 1984년에는 훈춘현 선전부 부부장 직을 맡고 훈춘으로 내려가 1년간 생활체험을 하며 12편의 단편소설을 써냈구요. 1990년에는 사회주의사상공작대로 룡정시 용신향에 내려가 수개월간 생활한 적도 있어요. 지금까지 수백만자에 달하는 저의 소설은 몽땅 그런 생활속에서 온 겁니다.   하지만 생활 속으로 깊이 들어간다는 건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예요. 또 대중과 함께 일하고 그들과 함께 얘기를 나눈다고 하여 생활 속으로 들어갔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아니죠. 가장 중요한 건 그들의 마음을 빼먹는 겁니다. 아니 우선은 제 마음을 빼주는 겁니다. 듣기 좋은 말로 한다면 진심을 다한 소통을 하는 거죠. 그들의 질고를 헤아려주고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그들을 위한 일을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별의별 일을 다 경험했어요. 주인집 애가 급성위장염에 걸리자 10리 령길을 넘어 공사병원으로 업고 가기도 했고 아주머니를 도와 나무를 패주고 저녁불을 때주고 물을 길어주기도 했으며 다리골절상을 입은 로농을 안고 병원을 찾아가기도 했어요. 그랬더니 지금도 그 마을로 가면 저를 남으로 생각하지 않고 제집식구처럼 대해줍니다.   대신 가족들에게는 마음에 상처를 남길 만큼 무심했어요. 소학교에 다니는 큰딸과 쌍둥이 두 아들을 안해한테 다 맡겨놓고 혼자 훈춘에 가서 2년간 생활체험을 한 무정한 저를 두고 안해는 “당신한테 집은 려관일 뿐이군요.”라며 서운해했죠.   김: 선생님께서는 또한 언제나 높은 작가적 사명감을 갖고 창작에 림하셨어요. 선생님은 말씀하십니다. “저는 늘 민족에 대한 자부심이 없는 작가는 그 민족의 훌륭한 작가로 될 수 없다고 말해왔습니다. 그리고 저 개인에게는 미안한 일을 할 수 있을 망정 조선족이라는 민족 앞에는 절대 티끌 만한 흠집도 남겨서는 안된다고 자신을 채찍질했으며 부끄럼 없도록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선생님의 그런 자부심은 사명감으로 이어졌으며 조선족에 대한 관심과 고민에서 잘 나타나는데요. 80년대 후반기에 이르러 선생님께서는 민족정신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자랑스럽게만 생각해온 조선족이 내면에 안고 있는 문제점을 똑똑히 보아내게 되면서 선생님의 작품은 민족의 렬근성을 파헤치고 고발하는 데로 필묵을 바치게 되죠. 단편소설 〈반주술 두냥〉, 〈까치는 울어예건만〉, 〈그 날 해는 짧았다〉 등이 이에 해당한 작품들이라고 하는데요. 보다 싶이 선생님의 소설은 민족적 사명감으로부터 출발하여 우리 민족의 정신과 민족적 륜리의식을 보여주면서 민족적인 렬근성을 파헤친 작품들이 주요한 한 부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림: 저는 과거에도 그랬거니와 지금도 마찬가지로 우리 민족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민족의 렬근성마저 덮어감추면서 민족을 사랑한다는 건 거짓이라고 봅니다. 우리 민족이 더 높은 차원에로 부상하도록 하기 위해 우리 민족의 결함과 오유를 파헤치는 건 수치스러운 게 아니라 자기 민족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을 ‘문화혁명’을 거치면서 더 똑똑하게 알게 되였어요. 저는 중단편소설 뿐만 아니라 장편소설 , 에서 거침없이 쏟아냈어요. 이것이 우리 민족을 지키고 우리 민족을 위하는 절실한 태도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김: 한편 진, 선, 미에 대한 격찬과 가, 악, 추에 대한 질타는 선생님의 소설창작에서 중대한 비중을 차지하면서 또 하나의 계렬을 이루고 있는데 이는 선생님의 일관적인 미학주장을 보여주는 테마이기도 합니다. 그 대표작으로 장편실화문학 , , 이 있죠.   은 선생님의 새로운 창작자세와 얼굴을 가장 뚜렷이 보여준 작품입니다. 90년대 초반, 조선족사회를 들썽하게 했던 대형사기사건인 한옥희사건, 돈이 어떻게 권력을 리용했고 권력은 또 어떻게 돈을 리용했는지 그 비리와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선생님께서는 권력층에서 오는 온갖 위협과 압력을 무릅쓰고 취재를 하였고 끝내 제1부를 책으로 출간하여 3만 5천부를 발행하는 기록을 냈습니다. 선생님은 “비합리적이고 불공평한 사회를 두고 그 밑바닥에서 생존을 위해 기여다니는 수많은 백성들의 대변인이 되여 그들을 위해 말하고 부르짖고 싶은 욕망으로 붓을 놓지 못했다.”고 하셨어요. 진정 사회의 비리를 외면하지 못하는 량심 있는 작가이신 거죠.   림: 진, 선, 미와 가, 악, 추는 어떻게 보면 저의 전반 소설을 관통하고 있는 주제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력사거나 사회를 고찰하면 절대적인 건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서민층에서 진선미가 많이 나타나며 권력층에서 가악추가 많이 표현됩니다. 한옥희사건도 마찬가지예요. 저는 저층에서 허덕이는 백성들의 대변인이 되여 한발을 감옥에 들여놓는다는 각오로 반년 동안 숨어다니면서 한옥희사건을 취재했어요. 주당위 선전부, 주당위 부서기, 주공안국 국장들로부터 오는 “한옥희의 출판을 정지하지 않으면 당신한테 내려질 수갑을 책임질 수 없다.”는 엄중경고도 무시한 채 말이죠.   결국 권력의 벽을 뚫지 못하고 반성품으로 되고 말았어요. 그렇게 기대하고 응원해주신 독자들께 미안할 뿐입니다.   김: 선생님께서는 그동안 수많은 단편소설을 창작함과 더불어 중편소설, 장편소설 창작에서도 큰 성과를 거두셨습니다. 그중 장편소설 는 2002년 3월부터 2003년 3월 사이에 《장백산》 잡지에 련재, 2004년 12월에 료녕민족출판사에서 출판, 같은 해 한국에서 《족보》로 제목을 바꾸어 출판, 2012년 3월 연변인민출판사에서 재출판했습니다. 총 4차례의 출판은 흔치 않은 일이며 그만큼 작가의 저력과 작품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점이 아닐가요.   시대가 영웅을 낳지만 그들도 살이 있고 피가 있고 뼈가 있고 감정이 있는 보통인간이란 걸 늦게나마 깨달으신 선생님께서는 그들의 인간적인 내면을 이 소설을 통해 보여주려 했습니다. 소설가 허련순선생님은 를 “서사에만 치우치던 창작방법에서 벗어난 심리소설로서 즉 인물들의 내면 탐색의 흔적을 성찰한 것이 주요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내면 탐색과 관련하여 욕망의 뿌리로 내려가려는 작가의 상상력이 돋보이며 제도나 권력, 의념의 제약 등 억겁의 굴레로부터 인간의 내면을 구원하려는 시도와 동시에 개인 주체의 위기에서 탈출하려는 강렬한 의지 또한 괄목할 만하다∼ 작가 특유의 입담과 날렵한 필치가 돋보이는 림원춘소설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다.”라고 하셨어요.   림: 늦었지만 젊은 작가들을 따라배워 심리적 특점들에 력점을 두고 노력한 것만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들을 따라가기엔 역부족입니다. 때가 지났지요.   김: 겸손한 말씀이십니다. 한편 는 녀성테마 내지 페미니즘 성향의 소설이라고 보기도 하는데요. 사실 선생님께서는 오랜 기간 녀성 소재와 테마에 각별한 관심을 가져오셨습니다. “문학이란 어느 한 부류의 인간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 인류를 위해야 한다.”고 인정하는 견지에서 약소군체거나 소외된 인간에까지 인간애를 경주하고 있으며 예나 지금이나 낡은 륜리도덕에서 해방받지 못한 조선족녀성들에게 작가적인 사명감과 책임감을 다하지 못하고 있음에 죄의식을 느끼셨어요. 지어 ‘녀성들의 대변인’, ‘녀성작가’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녀성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깊으셨던 부분은 정말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네요.   림: 자고로 우리의 녀성들은 사회에서나 가정에서 속박받고 멸시당하는 약소군체였으며 지금도 그 계률에서 완전히 해탈되지 못한 피동형 군체입니다. 만약 우리마저 그들을 외면한다면 그들은 지탱점마저 잃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분들은 우리의 어머니들입니다. 영웅의 뒤에는 현처량모가 있듯이 훌륭한 가정도 그 뒤에는 현명한 안해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녀성들은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어요. 그런 녀성들을 위해 저는 눈 감을 때까지 그녀들의 대변인으로 나설 겁니다.   김: 선생님의 인생은 문학을 빼고는 얘기가 안될 정도로 선생님에게서 문학은 너무나 중요하지 않았나 싶어요. 그만큼 선생님께서는 평생의 격정과 정력을 오로지 문학 하나에만 다 쏟아부으셨어요. 열정을 쏟아부으신 만큼 높은 문학적 성과를 거두셨고 수많은 우수한 작품을 남기셨습니다. 최고의 명예를 따낸 〈몽당치마〉와 초중, 고중 교재에 선정된 여러편의 소설, 그리고 후반기의 장편소설들이 이 점을 잘 증명해주고 있어요. 작가적 량심을 지키며 지금껏 문학에 모든 걸 다 바쳐오신 선생님, 그런 문학을 지금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림: 저는 문학을 위해서 자식도 미색도 돈도 권력도 다 저버렸어요. 그렇다 해도 저는 아무런 여한이 없습니다. 되려 남을 해치지 않고 한생 가난한 선비로 살아온 그것에 만족합니다.   유감이라면 제한된 환경, 제한된 사유, 제한된 언어, 제한된 필치 때문에 좋은 작품을 많이 쓰지 못한 점입니다.   김: 선생님께서는 후배사랑이 끔찍하신 걸로도 유명하십니다. 그 어느 시기든 줄기차게 자신의 창작을 견지하는 한편 끊임없이 문학후배들에게 관심을 보이시고 사랑을 쏟으셨어요. 소탈하고 꾸밈없고 진정으로 사람을 대하시는 선생님을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따랐죠. 선생님 댁에서 개잡이를 하거나 한밤중에 ‘쳐들어’가서 문학을 둘러싼 이야기로 열띤 분위기를 만들던 추억들을 후배작가들은 지금도 잊지 못하면서 선생님의 인격을 높이 사고 있어요. 또한 농촌에 내려가면 농민들을 가족처럼 스스럼없이 대하고 그들과의 정분을 몇십년간 이어오기도 하시다 보니 선생님에게는 그야말로 친구가 많으십니다. 그런가 하면 불의에는 가차없이 대하다가도 어려운 사람에게는 마음이 한없이 약해지시죠. 투명하고 깨끗하고 거짓 없으며 물욕에 오염되지 않고 세상과 인간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시는 선생님을 문학후배들은 ‘샘 같은 분’이라고 합니다.   림: ‘샘 같은 분’, 하하하, 우습네요. 저는 그처럼 깨끗한 사람이 못됩니다. 남들을 모두 자기처럼 믿었다가 얼림수에 들어 애매한 사람을 탓하기도 했고 꼬임수에 들어 좋은 친구를 나쁜 사람이라고 욕설을 퍼부은 적도 있어요.   아무튼 지금 저는 문단의 어른으로 돼버렸네요. 어른이면 후배들을 사랑하고 보듬고 포옹해야 하는데 참 힘든 과업인 것 같아요. 지켜봐주시기 바랍니다.   김: 선생님은 또 지독한 낚시애호가인 걸로 알고 있어요. ‘첫번째 애인’이 문학이라면 ‘두번째 애인’이 낚시라고 할 정도라니 낚시를 무척이나 좋아하셨나봐요.   많은 지인 분들이 또 선생님의 ‘빙어冰鱼’ 맛에 그렇게 환상을 갖고 있더군요. 급하시기로 유명한 선생님의 성격은 번개불에도 콩을 구워먹을 수 있을 정도라는데 그렇게 급한 성격으로 어떻게 몇시간씩 고요하니 앉아 낚시를 할 수 있으셨는지 참으로 신기하네요. 아니면 급한 성격을 낚시하는 걸로 중화라도 시키시려 했던가요?   림: 이틀 전에도 훈춘에 낚시하러 다녀왔어요. (웃음) 낚시애호가라기보다는 낚시질군이라고 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겁니다. 낚시질이라면 저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낚시통을 끌어안는 낚시미치광이예요. 그래서 친구들은 제가 물에 빠지는 날엔 한 많은 고기들에게 뜯기여 뼈다귀도 찾지 못할 것이라고 우스개를 하죠.   저는 손에서 일감이 떨어지면 엉뎅이를 붙이고 있지 못해요. 일감이 떨어지면 어데 가서 강도질을 하거나 싸움판이라도 벌려야 직성이 풀릴 그런 불 같은 인간입니다. 하지만 붓대만 잡으면 밤낮을 모르고 작품 속에 빠져드는 글귀신으로 돼버려요. 낚시질 역시 마찬가집니다. 고기가 잡힐 때는 안해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와도 “응, 좀 있다 가마.” 하면서 동동이에만 눈을 팔 그런 미치광입니다. 고기가 잡히지 않으면 머나먼 청산을 바라보며 채 끝내지 못했던 소설구상에 빠져들군 하죠. 그러다 큰 고기가 물려 낚시대를 끌고 가는 바람에 낚시대를 잃어버린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하하.   김: 소설에 빠져 멋지게 살아오신 선생님, 선생님께서 남기신 력작들이 앞으로도 우리 문단을 계속 빛내가리라 믿습니다. 문학을 향한 식지 않은 열정과 오로지 문학이라는 외곬에만 투혼해오신 우리 문단의 저명한 소설가 림원춘선생님의 문학정신에 진정 존경을 표합니다.   오늘 대담 참으로 고마웠어요. 내내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림: 고맙습니다. 출처:2017 제5호
18    작가는 탁상머리를 떠나야 한다 댓글:  조회:194  추천:0  2019-07-09
작가는 탁상머리를 떠나야 한다 림원춘(소설가)     언제부터였던지 비평가들이나 작가들 입에서 ‘생활’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별로 들어보지 못한 것 같다. 지어는 서먹서먹하게 안겨오는 잊혀진 용어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지난 9월 2일, 연변작가협회 소설창작위원회에서는 룡정시에서 ‘다매체시대 소설문학의 출구는?’라는 테마로 세미나를 가졌었다. 몇시간에 걸치는 그 토론에서도 나는 생활이라는 말을 한마디도 듣지 못했다. ‘생활’이라는 두 글자가 빠져버리니 어쩐지 소설문학의 한 귀퉁이가 잘리운 것 같은 서운함을 감출 길 없었다. 나는 외래어를 자랑하며 지식을 과시하는 적잖은 글들을 많이 보아왔지만 가슴에 와닿고 생활맛이 짙은 글은 그리 많이 보지 못했다. 물론 그런 글도 필요하겠지만 좋게는 우리 문학의 현주소를 두고 입씨름을 해야 하지 않을가 생각한다. 문학은 인간을 떠날 수 없다. 인간이 생활을 떠날 수 없듯이 우리의 문학 역시 ‘인간생활’을 떠날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 ‘생활’을 운운하기 꺼려하며 ‘생활’을 말하면 마치 시대에 몹시 뒤진 것처럼 생각한다. 우리의 작품이 왜 독자들을 잃어가고 독자들의 외면을 당하는가 하는 것을 두고 우리 작가들은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하며 절대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시대적 요인도 있겠지만 작가에게 절대적으로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금 일부 소설들을 보면 책상 앞에서 꾸며냈거나 언어희롱을 했다는 감을 주는가 하면 아무런 가공도 거치지 않은 원초적인 생활을 라체 그대로 소설이랍시고 드러내는 페단들이 있다. 생활을 떠날 수 없다 하여 생활 자체가 소설로 되는 것이 아니며 그렇다고 생활을 외면하고 올리는 글도 역시 소설로 될 수 없는 것이다. 소설은 절대적으로 인간을 떠날 수 없고 인간생활을 떠날 수 없다. 그런 만큼 소설가들은 행장을 둘러메고 생활 속으로 들어가 인간들의 희로애락을 발굴하고 재창조하여 소설이라는 옷을 입혀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고역’이라는 두 글자를 항상 업고 다녀야 한다. ‘생활 속으로’라는 말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소설은 재미있게 써야 한다고 말해왔다. 재미없게 써놓고 독자들이 보지 않는다고 독자들을 나무라서는 절대 안된다. 또 재미있게 썼다 하여 그것이 다 력작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로 되는 것은 먼저 독자들을 보게 하는 것이다. 봐야 좋고 나쁨을 가릴 것이 아닌가. 독자들이 모르고 있는 작품을 천평 우에 올려놓고 “력작이요, 졸작이요.” 하는 것은 무리가 아닌가 싶다. 좋은 작품은 언제나 독자들이 따르기 마련이다.  나는 이 때까지 몇백만자에 달하는 많은 소설을 썼다. 그 작품들 속에 우리 민족의 삶의 흔적이 담기지 않은 작품은 한편도 없다. 그렇다 하여 내 작품 모두가 명작으로 된 것은 아니다. 부끄럽지만 그 속에서 건질 만한 작품은 몇편 되지 않고 북데기가 대부분이다. 그렇게 ‘생활’을 강조하면서 ‘생활’ 속으로 들어갔다는 작가가 쓰레기만 남기다니? 많은 작품들이 생활의 ‘복사’라는 그 언덕을 넘지 못했으며 우리 민족의 운명에 파문을 그릴 수 있는 돌을 던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림원춘의 창작‘한계’가 아닌가 싶다. 이제 나에게서 다른 그 무엇을 바란다면 “이젠 저의 소설을 접어줍소서!” 하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남은 것은 ‘나이 먹은 타령’ 밖에 없으니까. 붓을 들었던 김에 한가지만 ‘덧들이’할가 한다. 지금 우리의 문단에는 ‘만세’평론이 란무하고 있다. 나는 ‘만세’평론은 작가에게도 비평가에게도 해를 끼칠 뿐 아무런 도움도 없다고 말해왔었다. 내 말이 틀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릇됐거나 틀린 것을 묵인하고 ‘인심 잃을 글은 쓰지 않고’ 만세만 부른다면 언제 가야 우리 문단이 활기를 되찾을 수 있겠는가? 심히 걱정된다. 이제 오래잖으면 새해의 동창이 밝아온다. “새해에는 좋은 작품을 많이 써줍소사!” 하는 것이 선배작가로서 후배작가들에게 드리는 간곡한 부탁이다.  
17    [작가평]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 댓글:  조회:1273  추천:1  2012-10-06
작가평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   림원춘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거나 말해야한다는 이 두마디는 로작가거나 신진작가, 성과를 올렸거나 올리지 못한 모든 작가들을 망라하여 작가라는 이름을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서 입버릇처럼 떠나지 않는 으로 되고 있다.     백번 지당한 말이다. 왜냐하면 작가는 작품을 떠날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잖은 작가들은 이 말의 무게와 진의를 다는 터득하지 못하고 있다. 창작활동은 우리들이 쉽게 말하는것처럼 그런 손쉬운 일이 아니라 제 살을 뜯어먹고 제 피를 빨아먹고 제 뼈를 갉아먹는 고된 로동이기 때문이다. 하여 웃으며 들어섰다가 울며 나온다는 말도 생겨나지 않았나싶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는 이 심오한 이미지와 함께 먼저 떠오르는것이 이 말 앞에서 떳떳하지 못했던 자신과 서글퍼지는 자신이다. 그런가 하면 좀 늦다 싶지만 이 말을 실현하기 위해 열심히 붓끝을 날리는 한 작가가 선연히 떠오른다. 그가 바로 작가 허룡석선생이다.    허룡석이라는 이 이름 석자를 작가들치고 모르는 사람이 없을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현임 연변작가협회주석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석이라는 허룡석은 알고 있었지만 많은 독자층을 점유하고 있는 허룡석은 모르고 있었다. 우리는 보도매체에서 장기간 지도일군으로 사업했던 허룡석은 알고 있었지만 수필과 소설에서 두각을 내밀었던 허룡석은 모르고 있었다.    이젠 옛말로 돼버렸고 우습광스러운 일로 흘려버렸지만  허룡석선생이 연변작가 협회주석으로 선출될 때 , 하면서 이러쿵 저러쿵 말도 많았었다. 지어 분과를 편성할 때 면서 비난의 목소리도 그치지 않았다. 이렇듯 작가들의 말밥에 올랐던 허룡석선생이 이 몇해사이 무게있는 소설들과 수필들을 륙속 뽑아내여 문단을 깜짝 놀라게 하리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을것이다. 지어 말밥에 올려놓았던 사람들이 되려 무색할 지경으로. 나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였다는 것을 고백하면서 허룡석선생의 근작에 대해 몇마디 곁들일가 한다. 1. 비리와의 전쟁     어찌 보면 비리와의 전쟁은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우리 작가들의 앞에 놓인 과제가 아닌가싶다. 지어 비리가 문학을 만들고 비리가 문학을 발전시킨다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세계명작 모두가 비리를 취급하지 않은 작품이 없고 비리를 떠난 것이 없다. 그렇듯 우리의 문학은 한시각도 비리와의 전쟁을 멈춘적이 없고 그 전쟁은 앞으로도 계속될것이다.     작가의 한 작품으로 비리를 근절시킨다는것은 얼토당토 않은 거짓이다. 하지만 인류문명의 기사라고 일컸는 작가라고 한다면 적어도 비리를 보고 분개할 줄 알고 통탄할줄 알고 폭로할줄 알고 비판할줄 알아야지 않겠는가. 비리를 보고도 외면하거나 에돌아간다면 훌륭한 작가로 될수 없거니와 지어 작가라고 말할수 없을것이다. 작가의 사명감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는가 싶다. 사명감, 사명감 하면서 말로만 외우지 말고 한번 붓끝에 담아 보시라. 자칫하면 코피가 터질수 있고 정갱이가 물러날수도 있으며 옥살이도 할수 있다. 우리 민족의 력사를 간단히 훓어보아도 비리와의 전쟁에서 정배살이를 했거나 단두대에 올랐거나 떼죽음을 당한 문인들이 수두룩하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언제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렇다하여 들은척만척 본척만척 할수 없지 않는가. 김학철선생님처럼 황제도 말에서 끌어내릴수 있는 담략과 전투적 정신이 있다면 제몸에 불이 달린다한들 무서울것 뭐랴? 하지만 그것은 누구나 다 할수있는 쉬운일이 아니다. 바로 쉽지 않다는 이 말에 력점을 두면서 허룡석선생의 단편소설 (도라지잡지 2009년6기)를 말해볼가 한다.    단편소설 는 마치 러시아 작가 고골리의 처럼 씌여진, 권력층 자체가 자체의 비리를 직설적으로 폭로한 폭로문학이자 풍자문학이다.    이 소설의 리해를 위해 내용을 간추린다 .    성당위 조직부 부부장 초효화가 렴정건설조사조를 거느리고 시위서기 조희문이 똬리를 틀고 있는 도시로 내려온다. 조사조성원으로는 부패행위를 수자와 때, 장소와 사람이름, 전화번호, 지어 핸드폰번호까지 100 % 로 검측하는 전자뇌와 과학일군.     제일 처음 전자뇌의 검측을 받은것은 시급간부들이다. 그중 시규률검사위원회 서기 리만규의 검사결과는 다음과 같다. 97차에 거쳐 도합 3478만원 수뢰. 1차성적으로 제일 많이 수뢰한 금액 500만원인데 수뢰한 금액밑에는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떻게 돈을 주었다는것까지 똑똑히 밝혀져 있었으며 회뢰한 사람과 이름, 전화번호, 핸드폰번호까지 낱낱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거래하고 있은 애인은 8명, 그녀들의 이름, 년령, 직업, 전화번호, 핸드폰번호까지 찍혀 나왔으며 제일 나어린 녀성은 18세밖에 안되였다. 그 중 6명의 녀인에게 집을 사주었고 2명의 녀인에게 승용차를 사주었다...그리고 상급지도자들에게 회뢰한 금액은 600만원, 그속에는 시위서기 조희문에게 회뢰한 금액 백만원도 들어있다. 시당위 부서기 석기성, 시정건설을 책임진 부시장 장덕진, 시정협부주석 왕수산, 시인대부주임 관두성...몽땅 수뢰와 회뢰투성이고 오물투성이다.                                                                                                         소설은 전자뇌라는 매개물을 통해 황당적인 수법으로 당과 정부의 일부 간부들의 부패상을 신랄하게 폭로,비판하고 준절히 통책하고 있다.    항간에는 돈이자 권력이고 권력이자 돈이라는 말이 말의 반찬처럼 떠돌고있다. 옛날에는 뢰물이 수류탄 두개와 비행기 한대 (술 두병과 닭 한마리 )면 족했었다. 그러다 시계, 자전거, 록음기, 텔레비죤수상기로 발전됐다. 그러나 지금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금화, 그것도 과급, 처급, 현급, 지구급…올라가면 갈수록 관직의 값도 가배로 올라간다. 이런 소문은 헛소문만은 아니다. 신문매체가 보도한데 의하면 이러한 부패행위가 사천성에도 있었고 흑룡강성에서도 있었다. 진공상태가 아닌이상 전국각지에 다 있은것이다. 그토록 렴정건설이 잘 된다는 우리 연길시에도 있지 않았던가!    보시다 싶이, 아시다싶이 비리는 도처에 있다. 문제는 우리의 작가들이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음페적이거나 공개적인 수단을 망론하고) 이런 비리를 대하는가에 있다.      단편소설 는 황당수법과 유모아를 곁들인 폭로문학으로 부정부패를 근절하려는 당의 결심과 부패간부를 송두리채 잡아냈으면 하는 인민대중의 념원, 또한 자기들의 부정부패를 덮어감추기 위하여 갖은 수작을 꾸며대는 부패간부들의 인물형상을 잘 그려냈다. 비록 전반적으로 보아 성공적인 작품이라고 말하기는 이르지만 부정부패척결을 소설에 담아 신랄하게 비판함으로써 우리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준 훌륭한 작품이라고 보아진다.    특히 우리들을 감탄하게 하는것은 허룡석선생의 작가적태도이다. 다 알다싶이 허룡석선생은 연변작가협회주석이다. 그는 주석이라는 베일을 벗어버리고 보통 작가들도 말하기 힘든, 말하기 저어하는 당내의 비리를 서슴없이 파헤쳤다. 웬간한 결심과 담략이 없이는 실로 하기 힘든 작업이다. 나는 허룡석선생이 보여준 이런 작가적 정신을 흠모하고 찬양한다. 2. 뜨거운 사명감 우리 백의겨례는 당에서 부르면 부르는대로, 시키면 시키는대로 하는 우량한 혁명전통을 갖고 있다. 항일 투사의 98%, 조국해방전쟁의 93%의 혁명렬사들을 갖고 있는 우리 민족은 사회주의 건설시기에도 언제나 앞장에 나섰으며 운동때마다 자신들의 영웅을 배출하군 했다. 당에서 준 임무를 초과하면 했지 절대 적게 하지 않는 그런 들끓는 열정을 갖고 있는 민족으로 소문이 짜하다는것을 자타가 다 알고있는 일이다. 하여 혁명은 북경으로부터 연변으로가 아니라 연변으로부터 북경으로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 이것은 우리 민족의 고유의 특징이자 우점이다. 그리고 치명적인 약점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무조건 따른다는 무조건은 맹목성을 동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맹목성은 류의민 민족으로서의 렬근성에서 오기도 하지만 이 만들어 낸 강압에서 오기도 한다. 하여 틀린 당의 말도 옳다하면 옳다하고 전진하라 하면 전진해야 했고 또 전진했었다. 그로하여 우리 민족이 입은 손실이 적단 말인가? 전국적으로 제일 먼저 진행된 토지개혁에서는 좌경으로 하여 있어서는 안되고 또 있지 말아야 할 이라는 계급을 하나 더 만들어 냈고 호조합작시기에는 이라는, 로시아의 를 답습한 오유적인 을 만들어 내여 수억의 농민들에게 피해를 입혔고 총로선, 대약진, 인민공사 때에는 공산주의로 간다며 공공식당까지 만들어 배를 곯아야 했고 논 한무에서 10만근의 벼를 수확했다는 허풍치기에 앞장서기도 했다. 강철대약진, 대채따라배우기, 문화대혁명… 모든 운동에서 앞장서는 민족, 그 민족이 바로 우리 조선족이였다. 더욱 한심한것은 민족정풍때 조선족이 조선족 민족주의 분자를 잡아내는 한심한 꼴을 보여주기도 했다. 때는 숱한 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산아제한정책 역시 그랬다. 인구과잉은 소수민족인구의 증장에서 온것이 아니라 전국인구의 95%를 점하고 있는 한족들에 의해 초래된것이였다. 하지만 1가족 1인 출생이라는 평균주의로 (소수민족은 1가족 2인 출생도 허용했다) 소수민족 인구는 급격한 하강선을 긋게 되였다. 이 운동에서도 우리 조선족은 훌륭한 을 보여주었다. 층층이 내려오면서 동원대회를 열고 당원대회에서는 당성으로 보증하라 하고 가족단위로 보증서를 쓰게 하고 보도매체에서는 여차여차하게 저출생률이 상해시를 초과했고 천분의 몇프로안에 들었소 하면서 떠들썩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병원마다 절육수술실을 따로 두고 무료로 절육수술을 했으며 그것도 모자라서 순회절육수술대를 조직하여 촌마다 마을마다 돌아 다녔는가 하면 시내에 있는 가도에까지 내려와 강압적으로 절육수술을 하군 했다. 저출산률과 산아제한 퍼센트에서 전국의 앞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마지막엔 집법기관까지 동원된 놀라운 사실까지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오늘 허룡석선생의 중편소설 ( 내가 처음 보았던 제목은 였다.)를 진맥한다. 중편소설는 개혁개방과 시장경제의 충격으로 조선족집거지구의 해체, 해외로의 진출, 인구의 마이너스성장, 문화교육의 답보와 후퇴, 경제의 부진 등등으로 날로 가속화되는 라는 네 글자를 앞에둔 시점에서 씌여진 작품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우리민족은 이라는 말에 습관된 민족이며 그것으로 만족하는 민족이다. 하여 빈곤현이 속출하고 로임을 제대로 지불하지 못하면서도 모범자치주요 민족단결모범이요 문명단위요 선진단위요 위생도시요 하는 등등의 월계관만은 수두룩히 쓰고있다. 또 그것으로 오늘의 오점들에 면사포를 씌워주며 부족점들을 미화해주고 있다. 지금 항간에는 연변은 의 장소라는 말까지 떠돌고 있다. 그것도 그럴것이 경제는 춰세우지 못했지만 이런저런 월계관 덕분에 많은 지도간부들이 성으로, 중앙으로 승진하고 지방에서도 층층히 올라오면서 그런 월계관으로 승급의 사다리를 놓고…    허룡석선생은 자기의 중편소설 에서 산아제한이라는 특정된 단대목을 틀어쥐고 우리 민족의 절대적순종, 이라는 자아만족, 이라는 허영심…등등 고질로 돼버린 약점들을 신랄한 필치로 폭로하고 질타하였으며 산아제한으로부터 급하강선을 그은 인구의 마이너스성장으로 하여 빚어지는 우리 민족의 불운을 통탄하고 있다.    민족의 동화는 언제나 언어의 동화로부터 시작된다. 언어는 바로 그 민족의 상징이며 가장 중요한 표현수단이다. 인구의 마이너스성장으로 하여 우리의 언어를 지키는 보루였던 학교가, 촌마다 향마다 있던 학교가 페교되고 닭사양장으로 돼지사양장으로 돼버렸거나 돼버리고있다.    허룡석선생은 중편소설 에서 당의 민족정책을 덮어감춘 산아제한정책의 가혹성과 그 후유증을 홍순이와 채옥이라는 두 조선족녀인을 통해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지구병원 한 병실에서 30년간이나 내려오면서 한이 맺혔던 두 녀인이 서로 만난다. 한 녀인은 지구산아제한판공실주임 김홍순이고 한 녀인은 지금도 평안촌에서 한생을 자궁병으로 고생하는 양채옥이다.    30년전, 김홍순은 하향지식청년으로 입당까지 하고 대전공사 부련회주임까지 승진한다. 그때 부부한쌍이 자식 하나만 낳아야 한다는 산아제한정책이 내려왔다. 김홍순은 당위의 지시하에 산아제한사업에서 락후한 면모를 개변시키기 위하여 도보로, 자전거로 대대마다 생산대마다 답파하면서 절육수술을 강요한다. 그는 평안촌 양채옥이 두번째 자식을 낳으려고 청수동림장 양봉장에 피신한, 임신 여섯달이나 되는 양채옥까지 찾아내여 류산시키려고 현립병원에로 호송한다. 양채옥은 정신적구박과 육체적 타격으로 병원문앞에서 6개월태아를 류산한다. 공사당위에서는 그렇게 하고도 안심되지 않아 김홍순더러 양채옥은 물론 전 공사의 생육년령에 속하는 부녀들에게 부인병을 검사한다는 미명으로 몰래 피임환까지 넣게 한다.    산아제한으로 공을 세웠고 명성을 날린 공사당위서기는 광명현당위의 부서기로 승진하고 김홍순은 또 광명현 산아제한판공실주임, 지구 산아제한판공실주임으로 련이어 승급하여 전국산아제한경험교류회에서 경험을 소개하기도 한다. 그후 그는 자궁암에 걸려 지구병원에 입원한다.    한편 양채옥은 류산시간을 훨씬 초과한 태아를 류산한 후유증과 몰래 넣은 피임환 때문에 30년간 고생하다가 자궁병으로 지구병원에 입원하게 되였는데 원쑤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공교롭게도 한병실에서 한생 한을 품고 있었던 김홍순을 만난다.    양채옥의 행패질과 욕소리속에서 점차 자책과 죄의식에 모대기던 김홍순은 몰래 양채옥의 치료비를 대주고 림종시에 는 말을 남기며 눈을 감았고 갈등과 모순속에서 지난날의 옹이를 푼 양채옥은 남편을 시켜 김홍순의 혼을 부르게 한다.    허룡석선생의 중편소설 는 대조적 수법으로 조선족 두 녀인의 같지 않은 운명을 보여준 생태학적 소설로서 두녀인의 운명을 통하여 우리민족의 렬근성을 폭로하고 비판한 우수한 작품이다.    특히 짚고 넘어가고 싶은것은 가 우리 문학의 공백점을 메워 주었다는 그점이다. 산아제한은 우리 민족에게 잊을수 없는 뼈아픈 한을 남긴 으로서 우리 민족의 발전과 미래에 어두운 그림자를 남긴 비극이였다. 하지만 이때까지 그 어느 작가도 이 제재를 다루려 하지 않았고 또 다루지도 못했었다. 과거에 산아제한을 칭송하는 시 몇편 본듯한 기억밖에 없다. 하지만 오늘 허룡석선생의 붓끝에서 잊혀졌던 제재가 우리 문단에 등단했으니 진짜 칭송할만한 희사라하지 않을수 없다.   3. 풍자와 해학    1937년, 2차세계대전직전에 쓰딸린은 불안정한 변방을 공고히 한다는 미명으로 울라지보스토크 등 동부연해지구에 있던 우리 동포들을 중앙아세아로 강제이주시켰다. 뭐 조선사람은 일본사람과 친한 불온민족이라나? 그때 중앙아세아로 강제이주한 제1세대 조선사람들의 말을 들어보아도 그 고생을 무어라 형용할수도 없었다. (지금 그 1세들은 거의 다 사망하였다) 기차와 트럭에 실려 중앙아세아 초지에 나무단처럼 부리워진 1세들은 모기, 마실물, 량식, 폭우와 눈보라…등 자연계의 갖은 시달림을 받으며 죽지 못해 살았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사실이 기간 연변땅에서도 있었다. 라는 노래가 연변땅에 울려퍼질 때 변방을 공고히 하기 위해 변방에 살고 있는 들을 몽땅 내지로 강제이주시켰다. 허룡석선생은 중편소설 ( 2009년 제6기)에서 재치있는 필치로 강제이주라는 특정된 환경과 혁명이라는 전제하에서 팔부마저 현행반혁명으로 만들어 강제이주를 시키는 의 무단성, 참혹성, 극단성, 몽매성을 에누리없이 폭로, 비판하고 있다.     만약 팔부가 아니라 정상인이 반혁명모자를 쓰고 강제이주를 당한다면 그때의 정치환경으로 보아 당연한것으로 받아들일수 있다. 하지만 지력상수가 빵점인 팔부ㅡ부부간의 짓거리도 부끄러운줄 모르고 자랑하고 일 잘하기에 팔간집 새각시가 공평하게 12부를 주어야 한다고 제기하니 자기가 자보한 8부를 주지 않고 왜 12부를 주겠다고 하느냐며 행패를 부리고…이런 팔부가 년말총화때 사원들이 잘한다고 춰주는 바람에 흥이 나서 잔치집에서만 부르라는 라는 노래를 불러 현행반혁명이라는 모자를 쓰고 강제이주를 가게 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팔부가 아니라 그가 보통백성이였어도 그토록 독자들의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을것이다. 팔부에게마저 반혁명모자를 씌우고 강제이주를 시키는, 정치와 혁명이라는 잔혹성, 비인간성을 라체 그대로 보여주었기 때문에 그토록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공감대를 만들었던것이다. 소설은 먼저는 흡인력이 있어야 한다. 독자를 끌어야 한다는 말이다. 자기만이 보고 자기만이 흠상하자고 글을 쓰는 작가는 한사람도 없다. 보이기 위해서 글을 쓴다. 보여야 사명감이요 백의겨례요 뭐요 하며 운운지설할것이 아닌가? 허룡석선생의 중편소설 는 아주 재치있게 씌여진 구독성이 강한 소설이다. 어떤 사람은 작가가 독자들을 끌기 위해 짓거리를 많이 썼고 짓거리가 많기 때문에 재미있다고들 한다. 얼핏보면 그런것 같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런것이 아니다. 주인공을 팔부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 짓거리를 쓰지 않을수 없고 또 그 짓거리가 팔부라는 인물형상의 훌륭한 밑거름으로 되기 때문이다. 진짜 흥미선은 그 짓거리에 있는것이 아니라 풍자와 해학에 있다. 풍자와 해학은 쌍둥이처럼 풍자가 없으면 해학이 없고 해학이 없으면 풍자가 없는 인과관계를 갖고있다. 허룡석선생의 필체거나 언어를 보면 밭머리 쉼 할때 신문지에 잎담배를 굵직하게 말아물고 풀썩풀썩 연기를 뿜으며 시름없이 담배를 피우고있는 농부들이거나 시원하게 오이냉국 한사발 마시고 땀을 훔치는 농촌 아낙네들 같은 구수한 맛을 다분히 주는 이야기거리와 언어를 쓰기 때문에 기름에 튀긴 맛이 아니라 토장국냄새가 물씬 풍긴다. 때문에 독자들이 쉽게 접근하고 받아물수 있는 여지를 많이 주고있다. 거기에다 풍자와 해학적수법을 교묘하게 도입하다보니 자연스레 독자들의 이목을 끌게 된다. 허룡석선생의 중편소설 는 , 특히는 9차당대회의 승리적 페막을 경축하는 장면을 심혈을 기울려 대서특필했지만 하나도 지루하거나 지겨운 감을 주지 않고 너무나 진실하다는 감을 준다. 그 진실속에는 무서운 풍자가 숨어있다. 경축활동에 팔부가 참가한다거나 초롱불을 흔든다거나 10리 남아되는 공사로 초롱불행진을 한다거나 공사에서 영접하는 사람이 없다거나 등등, 그러면서도 웃음거리는 비일비재이다. 짓거리를 하다가 채 못하고 경축활동에 참가하는 팔부거나 그 짓거리를 위해서 밤을 새며 팔부를 기다리는 팔부안해…정치와 운동에 대한 풍자적 수법이 이 소설의 사건, 인물 전편에 관통되여 있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읽는 사람이 따분하지 않고 다 읽지 않고는 손을 뗄수 없게 만든다. 이 소설에는 또 하나의 주의를 돌려야 할 은유가 숨어있다. 그렇게 앞뒤를 가리지 못하는 팔부가 자기가 부른 노래를 누구한테서 배웠느냐고 공작대가 그렇게 족쳐댈 때에도 자기에게 노래를 배워준 를 대지 않고 생뚱같이 죽은 아버지한테서 배웠다고 끝까지 뻗힌것이다. 그 살벌한 시기에 수많은 펀펀한 사람들도 자기 생존과 리익을 위하여 핍박에 의해 다른 사람을 물어먹었었다. 그런데 팔부는 을 혼자 뒤집어쓰고 로 몰려 강제이주를 당할 때까지도 당사자를 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고있다. 아무런 욕심도 없고 아무런 리해관계도 없는 팔부가 왜 그 노래를 죽은 아버지한테서 배웠다고 뻗혔을가? 팔부의 량심 밑바탕에도 그 무슨 남을 동정하는 인간성이 깔려있어서일가? 아니면 자기가 불면 그 사람도 자기처럼 끌려나와 투쟁받는것이 싫어서였을가? 작가는 마지막에 “성철형과 고모 그리고 형수가 억울하게 죽은지 수십년이 지났다. 하지만 오늘까지도 나는 거짓이라고는 모르는 팔부 성철형이 공작대가 그렇게 족쳐댈 때에도 왜 그 노래를 죽은 아버지한테서 배웠다고 뻗혔는지 의문이 풀리지 않고있다.”고 서술하면서 사색의 여운을 독자들에게 남겨주었다. 우리는 그 여운을 씹으면서 팔부형을 동정하던데로부터 존경하게까지 되며 의 잔혹성과 비인간성을 더욱 저주하게 된다. 허룡석선생의 중편소설 는 풍자적수법으로 운동을 가장 진실하게 밑뿌리까지 파헤치고 가장 예리하게 비판한 문제작으로 성공한 작품이다. 그리고 이 소설 역시 가운데서의 강제이주라는 공백점을 메워주었다는것을 기껍게 지적하는바이다. 3. 사회문제를 다루는 작가 작가라 하면 글을 만든다는 공통한 이미지가 있지만 글을 만든다는데는 여러가지 부류가 있다. 전문 사랑만을 취급하는 애정소설가, 정탐소설만을 쓰는 탐정소설가, 필봉을 비판에만 돌리는 비판소설가, 전문 풍자하고 조소하는 풍자작가, 남녀간의 성만 다루는 성문학가… 우에서 말한 비판소설가를 더 준확한 말로 바꾼다면 사회문제를 다루는 문제작가라고 하는것이 옳을것이다. 그렇다면 허룡석선생은 어느 부류에 속하는 작가일가? 두말없이 문제작가라고 해야 적중한 말일것이다. 앞에서 말한 단편소설 , 중편소설 , 중편소설 등 모두가 문제작일뿐 아니라 이번에 나가는 수필 인생3부곡 , , , 잡문 , , 단편소설 은 모두가 훌륭한 문제작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수필과 잡문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 때문에 붓끝을 돌려 단편소설 에 대해 엿줘볼가 한다. 허룡석선생의 단편소설 은 독특한 기법으로 씌여진 문제작으로 내용이거나 사건 모두가 허룡석선생도 이미 써먹었고 기타 많은 작가들이 써왔던것으로 신선도가 낮은것이다. 그러면서도 소설이 왜 새롭게 느껴지는것일가?  이라고 불리는 장부시장이 개발상 고승래의 초청을 받고 시에서 유일한 5성급호텔인 로 간다. 미녀들의 배동하에 취하도록 술을 마시고 한 미녀와 동침까지 한다. 이튿날 깨여보니 회뢰했던 돈뭉치도 미녀도 간곳없이 사라지고 부시장은 장기들의 반란으로 고통을 겪다가 병원에 실려간다. 그런데 죽는줄 알았던 이 수술을 하고 나와 몇달후에 대리시장으로 승진한다. 작자는 이렇게 반전을 꾀함으로써 부정부패 척결이 아직도 준험한 단계에 처해 있으며 오랜 시일이 걸려야 할것임을 시사해준다. 만일 을 죽게 했거나 들통이나 잡혀가게 했더면 부정부패 척결의 승리를 보여줄수도 있었겠지만 이것으로 현실을 덮어감출수 없으며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수 없는것이다. 이것이 전부의 내용이다. 어찌보면 소설이 될것 같지 않은 소재로 소설을 만든것 같다. 그러나 읽어내려갈수록 새록새록 새롭게 느껴진다. 그것은 바로 독특한 창작기법때문이다. 기존의 소설과는 달리 장기들을 동원시켜 진수성찬과 술에 초부하를 받는 장기들의 고충과 연회석의 진전이 잘 배합되는, 다시 말하면 내외호응이 잘 맞아떨어지고 내용과 형식이 치륜처럼 잘 맞물리는 예술형식을 취했기 때문이 아닌가싶다. 이런 이인화기법은 과거 많은 작가들이 써왔지만 대상물과 피대상물의 유기적배합, 대상물도 말하고 피대상물도 말하는 수법은 처음 보아온다. 형식상의 새로운 창도가 돋보인다. 허룡석선생은 이라는 틀을 완전히 깨버리고 탈바꿈한 사회문제를 다루는 문제작가로 우리들에게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그러한 창작정신, 그러한 작가적 태도, 그러한 창작열정은 좋은 토양으로 되여 더 좋고 더 우수한 작품을 만들어낼것이다. 믿어의심치 않는다. 우리들에게 좋은 작품을 선물한 허룡석선생에게 감사드린다.   2010년 제6기  
16    우산은 비에 운다 (끝) 댓글:  조회:914  추천:43  2009-07-31
8. 꿈     나는 지금 큰 《?》를 염두에 두고 한창 장편소설을 구상하고 있다. 예술의 경지는 나를 용마에 앉힌 채 하늘을 날게 하고 있다. 따르릉 따르릉…     망나니, 어떤 식어빠진 녀석이 남의 사색의 여울에 돌멩이를 뿌리는 걸까.     나는 홱 수화기를 나꿔챘다.     《여보시오.》     《저예요. 오빠!》     《웬 일이야?》     《오빠, 나 지금 연길공항에 나와 있어요!》     《공항에?》     《그래요. 오빠. 빨리 올 수 있겠어요?》     《그래, 곧 갈게.》     나는 대충 옷을 걸치고 문을 나섰다. 윙―하고 눈보라가 귀뺨을 때렸다. 매서운 날씨다.     나는 택시를 잡아탔다.     공항입구에서 정순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찌된 일이야?》     《나 홍콩으로 가는 길이예요.》     《이때까지 말도 없다가 홍두깨처럼 홍콩은 무슨 홍콩이야?》     《오빠, 커피숍에 올라가 차 한 잔 할까요?》     《그래, 커피 한잔씩 하지.》     우리는 공항 이층에 자리 잡고 있는 커피숍으로 올라갔다.     《오빠, 나무가 왜 눈물을 흘리는지 아시나요?》     커피 두 잔이 차탁에 오르자 정순이가 물어왔다.     《거야 고독해서 울겠지.》     《아니예요. 바람이 없어서.》     《바람?》     《그래요. 나는 나무, 오빠는 바람이니까요.》     《그건 그렇고 홍콩에는 왜 가는 거야?》     《언젠가 제가 오빠의 애를 갖고 싶다고 했지요?》     《그런데?》     《임신한 지 일곱 달 됐어요.》     《뭐야?》     《왜 놀라세요? 겁나요?》     정순이는 커피 잔을 입에 가져가다 말고 나를 지켜보면서 물었다.     《아―니, 오래잖으면 쉰 고개에 오르겠는데 임신을 해?》     《예순둥이도 있는데 쉰둥이가 없겠어요?》     《잘 믿기질 않는구나.》     《정 믿지 못하겠으면 제 배를 만져보세요.》     정순이는 내 오른손을 끌어다 제 배에 갖다대면서 말했다.     나는 정순이의 배를 만져보았다. 불룩했다. 나는 아연실색했다. 임신을 하다니?     《나는 오빠 애만은 꼭 낳을 거예요. 나아서 곱게 곱게 기를 거예요.》     《왜 진작 말하지 않았나?》     《진작 말했더라면 유산하라고 강요했을 걸요?》     《…》     《오빠, 뒷걱정 하나도 할 것 없어요. 한 가지만 묻겠어요. 오빠에게 누가 미치지 않게 이 뱃속의 애에게 강씨가 아닌 다른 성을 달아줄까요?》     《뭐야? 그건 안 돼! 내 자식을 나처럼 만들 수는 없어!》     《진심예요?》     《나처럼 제 성을 타지 못한 불운의 씨앗으로는 절대 만들지 않을 거야!》     《오빠, 감사해요. 나 오빠의 그 말 듣고 싶었어요. 그 말 한마디 듣고 싶어서 오빠를 공항으로 부른 거예요. 오빠, 정말 행복해요.》     정순이는 눈굽을 적시는 눈물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지켜보면서 복스럽게 웃었다.     우리는 다정한 부부처럼 손을 맞잡고 공항출구로 걸어갔다. 붕―     활주로를 밀어내면서 비행기가 이륙한다.     나는 이륙하는 비행기의 붕―하는 요란한 소리에 눈을 버쩍 떴다. 꿈이었다.                                            끝
15    우산은 비에 운다(7) 댓글:  조회:1013  추천:40  2009-04-01
7. 끝날 수 없는 이야기     팔월 한가위.     우리 부부가 약수동으로 가는 날이다.     부모의 묘소를 약수동에 모셨으니 벌초하고 제를 지내야 했다. 벌초도 벌초겠지만 비석을 세우기 위해서도 꼭 가야 했다. 석공에게 부탁해 구하기 힘든 하얀 옥석을 마련했고 비문까지 다 새겼으니 이제 세우기만 하면 된다.     우리 부부가 한창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데 정순이한테서 전화가 왔다.     《오빠, 준비됐어요?》    《됐어.》     《오빠, 내가 짐차와 짐꾼까지 다 마련했으니 오빠 네는 집 앞에서 기다리기만 하면 돼요.》     《몇 시지?》    《십분 후.》    《알겠다.》     십분 후, 우리 부부는 정순이의 자가용에 앉았다. 뒤에는 비석과 제물 그리고 TV를 실은 양용트럭이 따랐다.     언제부터 한가위가 추모보다 놀이로 변했는지는 몰라도 이 날이면 도심으로부터 교외에 이르기까지 들놀이에 나선 사람들로 붐빈다. 벌초와 제를 지내는 시간은 1, 2십 분이면 족하지만 먹고 마시는 데는 시간이라는 약속력이 없다. 추석놀이는 그토록 자유분방하다.     차가 사람을 막고 사람이 차를 막는 도회의 심지를 벗어나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정순이는 차의 속도를 가하기 시작했다. 자가용이 땀을 뻘뻘 흘리며 용을 썼다.     선가을을 마친 교외의 언덕마다엔 곡식무지들이 보기 좋게 무져 있고 배추밭과 무밭들이 짙은 녹색을 자랑하면서 가담가담 끼어있다.     《언니, 우리 사과 배 추렴하고 갈까요?》     만무과원을 지날 때 정순이가 물었다.     보기만 해도 배부른 만무과원의 과일풍년이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사과 배 무지를 앞에 놓고 한창 선별작업을 벌이고 있는 아낙네들, 선별이 끝난 특등품 사과 배가 들어있는 박스를 길섶에 쌓고 있는 장정들…과농들이 일손을 다그치고 있다. 무서리가 된서리를 불러오고 과일이 얼어버리면 일년 농사 폐농으로 되고 마니 추석인데도 저렇게 쉼을 모른다.     《아니, 생각 없어.》     아내의 대답이다. 저렇다니까. 저런 여자였다. 먹고 싶지 않아도 너스레를 떨면서 먹고 싶은 척하면 얼마나 좋으랴? 보기 좋고 마음 편하고...그런데 교편출신이 돼서 그런지 무어나 꽉 막혀있는 여자였다.     나는 앞좌석에 나란히 앉은 두 여자를 내다보며 O형 여자와 A형 여자를 생각했다.     일본의 노미 마시히코는 자신의 《혈액형 인간학》에서 O형을 이렇게 쓰고 있다. 《O형은 그 사랑의 화력을 자신의 목적을 향해 집중시킬 수 있다. 화려할 뿐만 아니라 상대를 전부 불태워버리지 않고는 멈추지 않는 방향성과 집중성도 불을 연상시킨다. 목적성, 지향성이 강하고 사고방식이나 행동도 직선적인 O형은 불꽃같은 사랑의 무대에서도 주저하지 않고 곧장 앞으로 나아가는 추진력을 보여준다. 목표로 하는 상대를 획득하는 능력은 O형이 일등이다. A형은 자신이 남한테 속는 것을 싫어하는 만큼 정직함, 천진함, 솔직함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일일이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아도 되고 정신적으로 편안하게 해주는 상대를 추구한다. 상대가 사랑표현을 해와도 금방 마음이 끌리거나 좀처럼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지 못한다. 또 좋아하는 상대에 대해서도 자꾸 확인을 하려 한다. A형 인간은 외곬으로 자기 혼자 깊이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핸들을 잡은 정순이, 안전벨트를 매고 그 옆에 앉아있는 아내 이 두 여자는 틀림없이 O형과 A형이다.     이 자리에 A형 여성만 없다면 오가는 말들이 끊일 새 없고 분위기가 활발했을 것이다. 그런데 저 A형 여성이 냉장고처럼 버티고 앉아 분위기를 영하로 떨어뜨리고 있다. 나는 차창을 열었다.     해란벌이 한눈에 날아들었다. 유수같은 세월이라더니 세월은 빠르기도 했다. 어제그제 모내기를 한 것 같은 해란벌이 천석만석 벼를 안고 셈평 좋게 누워 있다. 봄에는 굶주림과 기갈에 헐썩거리더니 가을에는 황금나락을 깔고 배포유하게 앉아있다. 과일도 풍년, 쌀도 풍년, 쌍풍년이 든 고향산천이다.     《정순아, 저 뒤차에 뭘 실었나? 얼핏 보니 텔레비전 수상기 같던데.》       《그래요. 24인치짜리 색 텔레비전 10대, 노래방 기계 한 틀.》     《그렇게 많이 사선 뭘 하게?》     《약수동 노인휴양소 노인들에게 드리는 제 작은 정성예요.》     《저렇게 많은 텔레비전을? 한두 대면 될 텐데 저게 돈이 얼마요?》     아내가 입을 짝 벌렸다.     《많이 들지 않았어요.》     《동생은 자선사업가가 아니오?》     《언니, 저는 복지사업을 할 수 있는 그런 능력가가 아니예요. 또 제가 복지사업을 해봤자 구멍 뚫어진 항아리에 물붓길 거예요. 학교에 가보면 학교를, 농촌에 가보면 농촌을, 공장에 가보면 공장을, 어디 가보나 돕고 싶고 도와야 할 곳들 뿐예요. 누구를 돕고 누구를 돕지 않겠어요?     언니, 난 그저 고독하게 보내는 휴양소 노인들이 만년을 복하게 보내시다 돌아가시기를 바랄 뿐예요.     오빠의 생모와 같은 분들이 더는 다시 그런 비극을 안고 저 세상으로 가지 않았으면 하는 그런 바람 뿐예요.》     《정순아, 그만해! 알겠다.》     《오빠, 오빠는 그래 오빠의 생모와 같은 분들이 오빠의 생모 한 사람 뿐인 줄 아세요?》     《됐다지 않나!》     나는 꽥 소리를 질렀다. 손에 쥐는 것이 없는 승용차 안이라 그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내 손에 다 부서지고 말았을 것이다.     우리는 말이 없었다. 내 성깔에 아내는 기가 죽을 수 있어도 정순이는 절대 기죽을 여자가 아니다. 그런데도 말이 없다. 무언가 깊이 사색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오빠의 생모와 같은 분들이 그래 오빠의 생모 한 사람 뿐인 줄 아세요?》     내 뺨을 후려쳤던 정순이의 말이 내 귓전에서 쟁쟁 울렸다. 그렇다. 꼭두각시 인생을 살았고 살고 있으면서도 왜서 꼭두각시 인생을 살았고 살고 있는지 모르고 죽었거나 살고 있는 사람이 어찌 어머니와 나뿐이랴! 세상은 요지경 속에 들어있는, 살아 숨쉬는 영혼과 육체들이 가련하다.     우리들이 약수동 노인휴양소에 도착한 때는 오전 아홉 시경, 노인들이 앞서 간 이들의 묘지를 벌초하려고 서두르는 때였다.     휴양소 건물 벽에는 고추다래가 빨갛게 걸려있고 연목가지엔 내년에 종자로 쓸 옥수수가 짝짓기로 걸려있다. 가을정취에 폭 취한, 그래서 어디 가나 풍년가을의 향긋한 열매 맛을 볼 수 있었고 어디 가나 겨울의 태동을 예고하는, 이지러져 가는 단풍의 여린 숨결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늦가을의 마지막미소를 볼 수 있었다.     우리의 승용차가 약수동 노인휴양소 마당에 들어서자 예의 그 여자―휴양소 소장 한영희가 앞치마를 두른 채 달려 나왔다. 추석음식준비를 하던 맵시 같았다.     《오셨어요? 오실 줄 알았어요. 오실 줄 알았어요!》     영희는 내 손을 잡고 퐁퐁 뛰었다.     아내와 정순이도 영희와는 초면이라는 대문을 넘어선 터수라 구애 없이 인사들을 나누었다.     《영희, 오늘 이 정순 사장님이 휴양소 노인들에게 귀중한 선물을 갖고 왔소. 텔레비전과 노래방 기계.》     《아유, 반가운 소식예요. 감사해요.》     영희가 정순의 목을 꼭 껴안으며 반겼다.     《제 작은 성의입니다. 마음으로 받아주세요.》     우리들이 인사수작을 하고 있는데 어느 샌 텔레비전과 노래방 기계를 부린 일꾼들이 나를 찾았다.     《비석도 부릴까요?》     《아니, 비석은 묘지까지 싣고 가야겠소.》     비석이라는 소리에 영희가 나와 적재함에 놓여있는 비석을 번갈아보며 물었다.     《일기를 다 보셨나요?》     나는 머리만 끄덕였다.    《허인숙 할머니의 친자식을 찾았지요?》     나는 말없이 또 머리를 끄덕였다.     《문 선생님이지요?》     《…》     《전 이미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왜 말해주지 않았소?》     《내가 입이 닳도록 말해봤자 문 선생님이 믿지 않았을 테니까요.》     《맞아. 그 때는 누가 뭐래도 믿지 않았을 거요.》     《이젠 유물을 가져갈 때가 됐지요?》     《된 것 같소. 저 영희 이러기요. 일꾼 두 사람을 남길 테니 영희가 책임지고 칸칸마다 텔레비전을 놓고 구락부에 노래방 기계까지 놓도록 해주오. 우리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비석을 세워야겠소.》     《그러세요. 여기 일을 배치해놓고 저도 올라가보겠어요.》     우리는 노인들을 찾아 추석인사를 올린 다음 트럭에 앉아 공동묘지를 향했다.     뒷산 기슭에는 들국화가 한창이었다. 다른 꽃들은 이미 사라졌지만 들국화만은 강한 생명력을 과시하면서 산기슭과 공동묘지 둘레에 연한 남색물감을 들이며 곱게 곱게 피어 있었다.     우리들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묘소 앞에 이르렀을 때 나는 깜짝 놀라 그 자리에 멍하니 선 채 움직일 수 없었다.     누군가 어머니의 묘를 벌초했던 것이다.     아버지의 묘지는 더께머리처럼 풀들이 한 뼘나마 자란 채 벌초를 해줄 자식들을 가다리고 있었지만 어머니의 묘는 면도를 한 듯 한 치 넘는 풀포기마저 구경할 수 없었다.     나와 함께 일기를 본 독자들은 알겠지만 허인숙 어머니에겐 나를 내놓고 벌초해줄 자식 하나 없었다. 그런데 나 먼저 벌초를 한 사람이 있다? 묘지 앞에는 들국화 한 묶음까지 놓여있었다. 시들지 않고 생생한 모습 그대로인걸 보면 벌초를 한 분은 묘지를 떠난 지 오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누굴까? 강 촌장? 나의 생부? 순간 머리를 치는 것이 나의 생부였다. 아버지라는 말 한번 번져보지 못했고 어떻게 생겼는지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생부―강 촌장이었다.     나는 사위를 들러보았다. 그러나 벌초의 임자는 눈에 띄지 않았다.     비석을 세우는 데는 많은 품이 들지 않았다. 묘지 앞에 용대석을 앉히고 용대석에 난 구멍에 비석을 맞춰 넣으니 끝이다. 품이 먹는 작업이라면 용대석이 놀지 않게 콘크리트를 하는 일이었다. 비석을 앉히는 사이 나는 아버지 묘를 벌초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머니 묘지 앞에 놓여 있는 들국화는 내 머리를 떠날 줄 몰랐다.     《아니 오빠, 어찌된 일이예요? 〈현비유인 허인숙 지묘〉라는 비문의 뒷면에 쓴 묘주는 강경천이구요. 〈현고학생 문태성 지묘〉라는 비문의 묘주는 문경천, 오빠의 성씨가 두 가지로 됐군요.》     정순이는 우습다는 듯이 두 묘지사이에서 두 비석을 번갈아보며 말했다.      《워낙 내 성씨가 두 가지가 아니냐?》     《오빠의 뜻 알겠어요.》     우리는 들국화 한 다발씩 꺾어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비석 앞에 놓고 제물을 차리기 시작했다. 그 때 영희가 땀을 훔치며 묘지로 올라왔다.     《그만 늦었어요.》     《바쁠 텐데요.》     아내가 미안해하면서 인사한다는 것이 절반 말은 제가 심키고 말았다. 제가 할 말을 학생들에게 송두리째 빼줘서 그런지 아내의 말은 언제나 말을 아끼는 구두쇠처럼 단 마디로 끝나곤 했다.     《영희, 오늘 아침 누군가 어머니 묘지를 찾은 분이 없었소?》     《없었는데요.》    《이상한데?》     내 어머니의 묘지가 벌초되어 있는 사실을 말했다.     《오, 알겠어요. 한 달 전에 허인숙 할머니의 오빠되시는 분이 왔다 가셨어요.》     《오빠?》     《네. 내가 어떻게 되는 사이인가고 자꾸 캐묻자 겨우 오빠라고 대답하더군요.》     《오빠? 우리 어머니가 무남독녀 외딸이라는 걸 영희는 모르고 있었소?》     《진짜 그렇구나. 왜 깜빡했을까?》     《그 분 주소나 성명도 남기지 않으셨소?》     《아니요. 이 묘지만 둘러보고 말없이 사라졌어요. 혹시 강 촌장이 아닐까요?》     《글쎄요.》     나는 마음 편하지 않았다. 편할 수 없었다. 또 다른 하나의 아버지라는 음영이 나의 반쪽하늘을 가리면서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날 우리는 노인들과 함께 추석을 쇠느라 오후 늦게야 약수동을 떠났다. 누구도 말이 없는 멋쩍고  슴슴한 귀로였다.     《오빠, 일기를 다 보셨다지요?》     《그래, 다 봤어.》     《다 못 보셨어요.》     《다 못 보다니?》     《아직 생부의 일기가 남아있지 않고 뭐예요. 종잇장에 적힌 일기가 아니라 마음속에 적힌 일기 말예요.》     《마음속에 적힌 일기…》     나는 그 일기를 마저 읽어야 했다. 끝나지 않은 일기가 아니라 끝날 수 없는 일기, 마음속 그 일기를 마저 읽어야 했다. 그 누구에게도 물을 수 없고 그 누구의 해답도 기다릴 수 없는 일기, 나는 그 일기를 계속 읽어야 했다.     나는 숙였던 머리를 치켜들었다. 그러자 머리가 핑―돌면서 숱한 《?》들이 헛거미처럼 눈앞에서 춤췄다. 사라졌다가는 또 나타나고 사라졌다가는 또 나타나고…《?》의 장엄한 대행진은 끝날 줄 몰랐다.                      계속해...
14    우산은 비에 운다(6) 댓글:  조회:1132  추천:39  2009-04-01
 6. 채 읽지 못했던 일기     허인숙 어머니의 빠진 일기책을 찾다가 나는 우연히 아버지가 운명하시면서 내게 준 동이고 또 동여맨 큰 재료봉투를 발견했다.     아버지의 유물이라 정히 간수하느라 책상서랍에 넣고 자물쇠를 잠궈놓은 것을 깜박했던 것이다.     무엇이 들어있기에 이토록 꽁꽁 동였을까.     아버지는 나에게 물려줄 재산이나 보물이 없었다. 이 건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가난을 물려주었고 배움을 물려줬을 뿐이다. 나도 그것에 만족했고 더 바라는 것이 없었다.     나는 재료봉투의 끈을 풀었다. 그런데 이 건? 허인숙 어머니의 일기책이었다. 잃어버렸다고 쓰지 않았다고 내가 그토록 찾던 허인숙 어머니의 일기책이 아버지의 손에 들어가 있다니?     워낙 허인숙 어머니와 아버지는 혈연관계도 없거니와 연줄도 없는 남남이었다. 허인숙 어머니가 아버지를 알고 있는 것은 무깍지, 아버지가 허인숙 어머니를 알고 있는 것은 《노동영웅》이라는 방패뿐이었다. 살고 있는 고장도 연변과 흑룡강이라는 몇 천 리 떨어진, 기차로 며칠 도보로 며칠을 가야 하는 머나먼 고장이었다.     그런데 허인숙 어머니의 일기책이 아버지의 손에 들어가 있다니?     세상에는 필연과 우연이라는 두 극치가 다 우연히 존재한다고는 하지만 우연 치고 이런 우연이 또 어디 있으랴?     나는 뒤를 물지 못했던 허인숙 어머니의 일기책을 펼치고 걸탐스레 읽기 시작했다.   1969년 12월. 눈보라 치는 날     강제노동은 끝날 줄 몰랐다. 제일 어지럽고 힘든 일은 언제나 내 몫이다. 지치고 힘들지만 매일 끌려 다니며 투쟁 받을 때보다는 한결 편하다. 새로운 운동이 있거나 공사혁명위원회에서 따로 행사가 없을 때는 나를 끌어내지 않았다. 끌려 나가지 않는 날이 나에게는 가장 복된 날이다.     요즈음은 도시학생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빈하중농 재교육을 받으러 농촌으로 내려온단다.     샘물골 대대에서는 연길에서 오는 집체호 학생들을 맞을 준비를 하느라 집체호를 짓는다 땔나무를 장만한다 양식을 준비한다 하면서 눈코 뜰 새 없이 보낸다. 나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집체호를 짓는 일의 잡공으로 배치 받았다. 노동개조를 당하는 몸이라 아파도 아프다는 소리를 못하고 바빠도 바쁘다는 소리 한번 못하는 몸이다.     집짓기에서 가장 힘든 노동이 잡공이라는 것은 집을 지어본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벽돌운반, 기초돌 운반, 흙이기기, 구들 놓기 몽땅 고역들이다.     나는 한달 내처 이런 일만 해왔다. 그래도 노동태도는 항상 0점이다. 잘해도 0점 못해도 0점, 몽땅 0점이다. 0점은 내 꼬리였다.     오늘 오후 집체호 학생들이 내려온단다.     사원들은 학생들이 내려온다고 한 쪽에선 환영준비를 하고 한 쪽에선 음식준비를 하느라 법석이다. 하건만 나는 그 어느 쪽에도 가담할 수 없다. 자격도 없었지만 새로 편 장판을 닦으라는 어명이 내려서였다.     오후 3시쯤 되어서였나. 동구 밖에서 북소리 징소리 울려 퍼졌다.     나는 장판을 닦던 맵시로 눈보라에 윙윙 울어대는 유리창을 통해 동구 밖을 내다봤다.     앞에 큼직한 붉은 꽃을 단 20여 명 학생들이 붉은 기발을 앞세우고 《빈하중농을 따라 배우자》는 구호를 부르며 열을 지어 마을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 양 옆에서 사원들이 팔을 치켜들며 《집체호 학생들을 환영한다.》는 구호를 부르며 그들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삽시에 샘물골은 활기에 넘쳐 있었다.     앞에서 깃발을 치켜들고 들어서는 꺽다리 학생을 훔쳐보는 순간, 나는 기절초풍하고 말았다     강 촌장이었다. 틀림없는 강 촌장이었다. 키꼴이라든가 짙은 눈썹이라든가 날이 선 콧마루라든가 쩍 벌어진 가슴팍이라든가 강 촌장이 틀림없었다.     다음 순간, 나는 그만 실망하고 말았다. 집체호에 들어서는 그들 나이 모두 10대를 넘기지 못한 애송이들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날 환영모임에도 나는 참가하지 못했다. 아니 참가할 수 없는 몸이었다.     밤이면 밤마다 나는 일에 지쳐 곤드라지곤 한다. 어떤 날엔 몸을 운신할 수가 없어 저녁을 비운 채 이불 속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저녁엔 잠이 오지 않는다. 우리 집 문턱이 닳도록 사람들이 드나들던 옛날이 옛말처럼 되어버리고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진지 오래지만 오늘저녁엔 그 사람들 발길이 무지무지 그립다.     집체호 쪽에선 누가 메고 왔는지 아코디언 소리에 맞춰 혁명가가 울려 퍼지고 마셔라 부어라 하는 소리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나는 캄캄한 집안을 지키고 있는 홀몸, 외로움이 나를 슬프게 만든다. 외로움이 나에겐, 큰 안위로 될지도 모른다. 항상 끌려 다닐 때만 해도 언제 한 번 외롭다거나 고독하다고 여긴 적 있었던가. 내일 하루를 또 어떻게 넘길 것인가 하는 근심으로 바작이지 않았던가. 외롭다는 생각부터가 내 신세도 좀 풀린 것 같다는 안위로 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더 슬프고 더 고독한지 모르겠다.     이 때까지 꿈에도 나타나지 않던 강 촌장이 그리워진다. 강 촌장을 신통히도 빼문 그 학생을 본 순간부터 그리워진 강 촌장이다. 멀리 이사를 가기 잘했지 샘물골에 붙박혀 있었더라면 나와 함께 이리 끌려 다니고 저리 끌려 다녔을 것이다. 난봉꾼이라는 패쪽을 목에 걸고…     그런 강 촌장이 눈에 띄지 않고 눈 앞에 보이지 않은 것이 참말 다행이다. 만약 그런 강 촌장을 봤더라면 나는 서슬을 마셨을 것이다.     강 촌장을 닮은 그 학생에 슬그머니 마음이 쏠린다. 아버지는 뭘 하고 성은 무엇인지? 나이는 얼마인지?     오늘 저녁엔 환영식을 하느라 떠들썩한 소음 때문이 아니라 그 학생 때문에 잠을 설친 것 같다.     제발 빨리 잠들어야 하겠는데… 1969년 12월 24일 눈보라.     벌방바람은 사흘이요, 골연바람은 열흘이라는 말이 있다. 산이 없는 벌방은 바람이 더 세차고 오래 불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시골에서는 이 골연 저 골연 골연마다 바람을 만들어내는지 바람이 잘 새 없다. 그래서 시골바람 벌방바람 찜쪄먹는다는 말까지 나오지 않았나 본다. 샘물골 눈보라는 잠들 줄 몰랐다.     눈보라치는 오늘새벽에도 나는 오줌통을 지고 동네돌이를 해야 한다.     《요강 내놓으시오! 요강 내놓으시오!》     집집마다 밤새 눈 오줌을 받아서 퇴비장에 붓는 것이 내 식전임무다. 그리고는 산에서 긁어온 부식토나 썩은 나뭇잎을 덮어 놓는다     나는 샘물골의 비료공장이다.     새벽이면 집집마다의 오줌을 거둬 질소비료를 만들고 낮이면 변소를 돌아다니며 인분을 끈다. 씨 뿌릴 때 붂에 줄 고급비료를 만들기 위해서다.     이렇게 나는 샘물골의 《오줌통》이요 《똥통》이 되고 말았다.     《요강 내놓으시오. 요강 내놓으시오.》     눈보라 소리가 내 목소리를 휘감아 쥐고 동구 밖으로 내동댕이치는 바람에 나는 목이 터져라 소리치지만 집집마다의 바당문은 열릴 줄 몰랐다.     솔뿌리도 얼어터진다는 장백의 강추위에 요강이 얼어 튈까 봐 그러는지 살을 에는 추위에 이불 속 신세를 더 지자고 그러는지 사원들은 코만 골아댈 뿐 요강을 제 때에 내놓지 않았다.     나는 그런 집 문 앞에서 요강을 내놓으라고 거듭 외쳐대야 한다. 그래야 마지못해 삐걱하는 바당문 소리와 함께 찌그러진 소래요 헌 물통이요 하는 요강 아닌 요강이 나온다. 그러면 나는 그걸 내가 메고 다니는 오줌통에 담아가지고 또 다른 집으로 옮긴다.     나는 제일 마지막으로 집체호를 찾았다. 사람이 많은데다 엊저녁 환영연까지 베풀었으니 오줌이 많을 줄 알았다. 하지만 마당에 오줌 싼 자리는 많았으나 오줌통은 없었다.     《아뿔싸, 오줌통을 준비해놓는 걸 깜박했구나.》     나는 그제야 집체호에 요강을 준비해놓지 않은 걸 후회했다.     내가 집체호를 마지막으로 찾은 데는 나만의 생각이 따로 있어서였다. 강 촌장을 닮았다는 그 총각을 한 번 더 보고 싶어서였다.     십몇 년을 잊고 살아왔고 투쟁 받으면서 다시 떠올린 강 촌장, 남을 주었던 핏덩이 생각이 간절해서였다.     밤새 잠을 설치면서 그 총각이 내 핏덩이가 아닐까 하는 얼토당토 않는 생각으로 궁싯거리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하늘의 조화였다. 날이 밝고 동산에 해가 뾰주름이 얼굴을 내밀었건만 그 때까지 집체호 학생들은 코만 곯아댈 뿐이었다. 먼 여로에 환영연까지 겹치다보니 피곤기가 몰려든 모양이다.     물독에 살얼음이 간 취사칸은 말이 아니었다. 뜯다만 닭고기들이 뼈 채로 소래에 수북이 담겨있고 먹네 마네하며 쏟아놓은 밥들이 보얗게 언 채 사발마다 수북이 쌓여있었다. 술병들이 나뒹굴고 마시다만 막걸리가 동이 안에서 살얼음을 쓰고 있었다.     나는 취사칸부터 정리하기 시작했다. 눈을 뜨고는 지나쳐버릴 수 없었다. 이런 자식들을 내보낸 부모들이 자식 때문에 얼마나 마음고생 할까? 내 핏덩이도 살아있다면 얘들처럼 하향지식청년으로 집체호에 나갔을 텐데…     나는 장작불을 지폈다.     내가 놓은 구들이라 그런지 불길이 소리치며 들어갔다.     사실 나는 마을의 《오줌통》, 《똥통》뿐 아니라 마을의 《온돌장이》다. 1964년 사회주의교육운동 때 한줌의 비료라도 더 얻어내려고 나는 비료돌격대를 조직하여 집집마다의 온돌을 뜯는 운동을 벌였었다. 이 것도 물론 주위에 올라가신 김 서기의 귀띔 때문이었다. 한 집 온돌을 털면 그을음과 구들재, 흙까지 합쳐서 몇 수레씩이나 되는 비료를 얻을 수 있었다. 이렇게 나는 몇 달 새에 백여 호 잘 되는 샘물골 집집들을 몽땅 털어 몇 백 수레나 되는 고급비료를 얻어냈다. 이 일로 하여 《영웅은 살아있다》는 특대신문기사 하나를 더 얻게 되었다.     집체호의 구들도 내가 놓았으니 《온돌장이》솜씨라 불이 잘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손두께처럼 앉은 밥 가마의 누룽지를 긁어내고 마침한 장작개비를 골라 시루를 놓았다. 그리고는 큼직한 소래에 먹다만 밥들을 쏟아놓고 시루에 얹었다.     한쪽 가마에는 무를 썰어 넣고 끓인 닭국이 반나마 남아 있었다. 나는 부엌에 수북이 쌓여있는 뜯다만 닭 뼈와 남은 고기를 국 가마에 쏟아 넣고 가마뚜껑을 닫았다.     불은 잘도 피어올랐다.     나는 장작개비 한 아름 부엌에 쑤셔 넣은 다음 오줌통 지게를 메고 집체호 문을 나섰다. 그런데 걸음이 잘 되지 않는다.     예의 그 총각을 보지 못하고 돌아서는 아쉬움 때문이었다. 1969년 12월 31일 맑음.     《집체호》청년들이 샘물골에 자리 잡은 지도 일 주일 남아 된다.     그런데 내가 보고픈 그 총각이 보이질 않는다. 오줌을 받느라고 새벽에 집체호를 찾아도 늦은 아침에 찾아도 다른 젊은이들은 다 보여도 매일 찾게 되는 그 총각만은 얼굴을 감추고 있었다.     후에야 안 일이지만 집체호 호장이 되어 공사로 학습을 갔다나?     오늘은 60년대의 마지막 날, 내일이면 70년대를 맞게 된다. 그래도 내 손에서는 오줌통과 똥통이 떨어질 줄 몰랐다.     나는 아침 늦게야 언 똥을 끌 곡괭이와 삽 그리고 똥 광주리를 메고 집체호의 변소를 찾았다. 사람이 많다보니 하루 멀다하게 찾아가는 곳이다. 말이 변소라지만 단나무를 단 채로 들러쳐 만든 간이측간이나 진배없다. 나는 무심코 남자변소로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으흠―》하는 소리와 함께 측간 문으로 사용되는 가마니가 들리면서 한 총각이 나왔다. 꺽다리였다. 그 총각이었다.     나는 어망결에 머리 숙이면서 미안하다는 인사를 올렸다.     《괜찮습니다.》     그 총각은 웃을 듯 말 듯 하면서 나를 피해 숙사로 발길을 옮겼다. 그런데 저건? 그가 머리를 돌리는 순간 나는 분명 보았다. 내가 찾아내려던 그 흔적을. 귀밑 기미를. 완쪽 볼에 동전만한 기미가 붙어있었다. 틀림없어! 내 아들! 내 아들!     《얘야! 아들아!》     나는 그 총각의 등 뒤에서 소리치고 또 쳤다. 하지만 마음속 외침뿐 말은 한 마디도 나가지 못했다.     《이 녀석 봐라. 귀 밑에 큼직한 기미를 달고 났어. 복 받을 녀석이야!》     《기미를 달고 나오면 장군이 된다던데.》     해산할 때 산파할미와 주인집 아주머니가 하시던 말씀이 귓전을 울린다.     귀밑 기미, 오른 쪽 젖꼭지를 물렸을 때 애의 귀 밑을 장식해준 그 기미를 혀로 핥아도 주고 꼭꼭 씹어도 주며 어머니가 된 기쁨, 어머니가 된 자랑은 얼마나 컸던가.     내 눈에 헛거미가 앉은 건 아닐까? 눈보라가 휙 불어치면서 내 얼굴을 덮쳐서야 나는 제 정신이 들었다. 머나먼 북대황에 뿌리치고 온 애가 샘물골에 나타나기는 전혀 불가능한 일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때 나는 어떻게 인분을 깼던지 어떻게 광주리에 담았던지 전혀 기억되지 않는다. 나는 필연 이 건 우연이건 가능하건 불가능하건 그 귀밑 기미에 대한 생각을 물리칠 수 없었다. 물리칠 힘이 없어서였다.     오늘날은 무슨 일이나 제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인분을 인분더미에 붓지 않고 우사의 소똥 무지에 던진다거나 오줌을 부식토에 쏟지 않고 변소에 쏟아 넣는다거나 일손이 거꾸로 돌아가버리고 말았다. 이 일로 하여 소대장에게 호된 비판을 받았고 노력공을 10부나 떼이고 말았다.     노력공을 많이 받았건 10부를 떼였건 나로서는 그 건 큰 관심사가 아니다. 두 손으로 입 하나 건사하지 못 할라구?     귀밑 기미, 그저 귀밑 기미에 대한 생각뿐이다.     새해를 맞는다고, 그믐날이라고 샘물골 전체가 웃음꽃을 피우고 있다. 대대에서는 돼지를 잡는다 떡쌀 준비로 정미를 한다 사람마다 분주히 돌고 있다. 집체호에서는 물만두를 빚어먹는다며 남녀분별 없이 물만두 빚기에 달라붙어 있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는 할 일이 없다. 새해를 쇠라고 비게 쪽으로 돼지고기 반 근을 주니 그 뿐이다.     돼지고기 반 근, 많지는 않지만 어쩌다 받아보는 고기라 그 거라도 받으니 반갑다.     나는 저녁에 그 돼지고기를 넣고 시래기 국을 끓였다. 고깃점이 들어갔다고 국은 시원하고 구수했다. 하지만 고깃점이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았다. 귀밑 기미 생각 때문에.     오늘저녁도 귀밑 기미 때문에 눈을 잡아 뜯어야 하나? 그럴 것 같다. 피치 못하고 피할 수 없는 그 생각 때문에… 1970년 1월 16일 맑음.     요즈음 우리 샘물골에서는 겨울나무 장만이 한창이다. 도회지에서는 석탄과 불쏘시개면 끝이지만 산을 믿고 나무로 행사하는 우리 시골에서는 땔나무를 준비해야 한다.     신 새벽부터 산에서도 마을에서도 온통 나무를 켜는 톱 소리와 도끼질 소리뿐이다. 철을 놓치면 한해 땔나무를 잃게 되니 그럴 수밖에 없다. 나는 남들처럼 굵은 자작나무나 참나무를 해올 형편이 못 된다. 아버님이 계실 때는 아버님을 따라 우리도 남들처럼 굵은 나무를 베어 가지를 쳐버리고 실어왔건만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 지금은 엄두도 낼 수 없다. 남자의 힘을 당한다던 나도 필경엔 여자였던 것이다. 큰나무는 내 혼자의 손과 힘에 너무나 부쳤다.     나는 남들이 버리고 간 나뭇가지를 주어 모을 수밖에 없다. 그 나뭇가지들을 주어 단을 묶으려고 나는 밤새 새끼를 꼬았다.     오늘도 나는 단나무 하러 남들이 버리고 간 나뭇가지 주으러 가야 한다.     나는 신에 감발을 하고 개털모자를 눌러쓰고 낫과 새끼뭉치를 들고 바자문을 나섰다 삽작문 닫히는 소리와 함께 무엇인가 뇌리를 때렸다.     귀밑 기미가 앓고 있다던데? 새벽 오줌 받으러 집체호에 들렸을 때 식당 당번한테서 들은 소리다. 집체호의 젊은이들도 겨울나무 채비를 하느라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도끼를 간다 톱을 찾는다 하면서 부쩍 고았지만 그 속에서 귀밑 기미를 보지 못했던 것이다.     깜박했다. 밥술 놓기 바쁘게 가본다는 것이 제 설음에 묻혀 있다보니 살짝했던 모양이다.     나는 나무차림 그대로 집체호로 달려갔다. 모두 산으로 갔는지 집체호는 조용했다.     나는 남성숙사의 문을 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귀밑기미가 이불을 쓰고 누운 채 꼼짝 못하고 있었다.     《호장, 몹시 아프오?》     내가 그의 이불깃을 살며시 들며 물었다. 물씬 땀내와 화기가 확 풍겨 올랐다.     《괜…괜찮습니다.》     《아유, 열이 대단하구만. 병원을 가지 않아서 되겠소?》     《방금 대대의 맨발의사가 왔다갔습니다.》     《미음이라도 좀 마셨소?》     《…》     《안되겠소. 뭐나 좀 입질을 해야지.》     나는 그 길로 산으로 간 것이 아니라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귀밑기미에게 죽이라도 쒀다 줘야 했다.     《죽? 아니야. 열을 치는 데는 닭곰탕이 제일이지.》     나는 죽을 쑤려고 쌀독에 넣었던 조롱박 바가지를 놓고 《구구…구구…》하면서 씨암탉을 불러들였다.     아버님이 계실 때도 그랬지만 우리 집에 무슨 귀신이 붙었는지 집짐승치기가 잘 되지 않았다. 돼지새끼를 사놓으면 몇 달 지나지 않아 병들어 죽어버리고 닭치기를 하려고 봄에 병아리를 깨워놓으면 쥐가 물어가고 황가리가 들면서 종자를 말리곤 했다. 그러나 하늘이 도왔던지 올해에도 병아리를 깨우라고 암탉 한 마리만은 남겨두었다.     나는 그 씨암탉 목을 비틀었다. 만약 다른 학생이 그렇게 누워 있었다면 내가 닭목을 틀었을까? 밖에 나와 고생하는 젊은이라 불쌍하게 여겨 쌀미음을 끓였을지는 몰라도 이렇게 닭목까지는 비틀지 않았을 것이다. 처음 집체호 호장을 보는 순간부터도 그랬지만 지금도 강 촌장이라는 그 짙은 감정이 뿌리내리면서 집체호 호장에 대한 호감과 관심은 날로 깊어가기만 했다. 그리고 그 귀밑기미, 나의 첫 귀염둥이에게 붙어있던 그 귀밑기미 때문에 자식에게 다 주지 못했고 자식을 위해서 다하지 못했던 그 무엇을 주고픈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갚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어머니가 진 빚을 갚고 싶었다. 주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어머니로서 주지 못했던 모든 것을 주고 싶었다.     나는 닭곰탕을 해가지고 조심스레 집체호를 찾아갔다.      집체호 호장은 아침처럼 이불을 덮고 누운 그대로였다. 내 정성이 고인 닭곰탕 한 숟가락만 먹여도 곧 자리를 털고 일어날 것 같은 그런 어머니의 심정, 닭곰탕 한 모금 마시고 땀을 흘리며 열이 내렸다면서 히쭉 웃어줄 그런 아들을 보는 어머니의 기대로, 어머니도 닭다리 하나 자시라면서 닭다리 하나는 나를 주고 제가 한 다리 쭉 찢어 볼이 메어지게 먹는 그런 아들을 그리면서 나는 닭곰탕을 집체호 호장의 머리맡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이불깃을 살풋이 들었다.     어쩐지 쌕쌕 코를 골며 자는 애의 얼굴이라도 더 보고 싶어서 애의 얼굴을 반쯤 가린 포대기를 들던 그 때의 그 심정으로. 어쩌면? 어쩌면? 귀밑기미가 먼저 눈에 들어오다니? 갓난애의 포대기를 들 때도 장군이 된다던 귀밑기미가 먼저 눈에 띄었고 집체호 호장의 이불깃을 드는 이 순간에도 귀밑기미가 먼저 눈을 자극했다. 나의 귀염둥이의 귀밑기미는 연한 적갈색, 집체호 호장의 귀밑기미는 검은 색, 색깔이 다를 뿐이었다.     《호장은 양친이 다 계시겠지?》     《아니 아버지뿐입니다. 어머니는 산후풍으로 저를 낳은 지 한 달만에 세상 뜨셨답니다.》     《호장을 기르느라 아버지께서 고생 많으셨겠소.》     《그건 한 입으로 다 말할 수 없습니다.》     《금년에 몇 살이지?》     《1954년 6월 8일생이니까 열일곱 살입니다.》     《6월 8일?》     《네.》     《어쩌면…》     《무슨…일이라도 있습니까?》     《아…아니 아무 일도 아니요.》     나는 목이 메여 더 말할 수 없었다. 불확실성이 확실성으로 점점 거리를 좁혀오고 불투명체가 희붐히 투명체로 탈바꿈하고 있다는 착각에서 자신을 해탈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스쳐지나가는 한 순간이었다. 그랬으면 그렇게 됐으면 하는 그 바람에서 오는 일종 소원과 환상이 집요하게 가슴을 파고든 환각에서였다. 내가 나를 되찾았을 때 집체호 호장은 어쩐지 전보다 더 낯설게, 더 멀어져보였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이 다 갖고 있는 어머니라는 그 마음만은 변함없었다.     이 검은 색 귀밑기미도 산후풍으로 어머니를 여의셨다니 어머니를 모르고 자란, 어머니란 말 한 마디 불러보지 못하고 자란 젊은이가 아닌가. 나의 적갈 색 귀밑기미도 어머니를 모르고 어머니란 말 한 마디 불러보지 못하고 자랐을 것이 아닌가? 같은 처지, 같은 설음, 같은 슬픔을 타고난 두 귀밑기미, 두 귀밑기미의 운명은 왜 이토록 기구할까?     나는 이 시각 집체호 호장의 친어머니가 돼주고 싶었다. 친어머니로부터 지금까지 그가 받아보지 못했던 것 그가 갖지 못했던 모든 것을 다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집체호 호장은 나의 닭곰탕 한 숟가락도 마시려 않았다. 묻는 것도 대답해주고 말도 잘하던 젭체호 호장이 변덕스럽다할 정도로 닭곰탕을 보더니 팩 돌아누우며 이불을 폭 쓰는 것이었다.     팩 돌아눕는 그 매서운 동작은 방금까지 어머니로 되었던 나에게, 어머니로서의 사랑을 지녔던 나에게 무서운 강타를 안겨주었다. 패쪽을 목에 걸고 투쟁 받는 나를 실감하게 했고 나를 단두대에 나선 죄수로 만들어주었다.     나는 나를 알았다. 아직도 강제노동을 하는 죄수로서의 나를 알았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눈앞을 막았다. 남에 대한 동정은 물론 남을 동정할 수 없는, 받을 수도 줄 수도 없는 처지가 된 내가 이처럼 비참할 수가 없다.     나는 후둘후둘 떨리는 두 다리에 겨우 몸을 싣고 집체호를 나섰다. 내 두 손에는 지금까지 뜨끈뜨끈한 닭곰탕이 들려 있다. 빠꼼히 열린 덮개 밑에서 흰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다. 따뜻한 온기와 흰 김이 모락모락 새어나는 닭곰탕, 이건 닭곰탕이 아니라 만신창이 되고 피투성이 된 내 육체의 변신이었다.     나는 눈 무지 속에 닭곰탕이 담긴 질그릇을 던져버렸다. 무슨 정신에 집까지 뛰어왔던지 나는 지금도 생각나지 않는다. 옷도 벗지 않은 채 이불을 덮어쓰고 누워버렸다는 생각밖에는 없다. 웃었다 울었다 하면서 몽환병자처럼 장밤 헛소리 쳤다는 기억이 아슴프레 하다. 미친년 개꿈 꾼다는데 개꿈에 미친년 붙었나?     나는 인간에서 배제된 사람, 숨쉬는 송장이다.     나는 허인숙 어머니의 일기를 더는 읽어내려 갈 여력이 없었다. 그 닭곰탕이 허인숙 어머니에게 그토록 큰 타격을 주다니? 살아 숨쉬는 송장으로 만들다니? 지금 내가 그렇다. 내가 꼭 마치 살아 숨쉬는 송장이 된 꼴이다.     나는 미칠 것만 같았다. 어디 가서 피투성이 되도록 얻어맞고 싶다. 도적질하다 붙잡혀 영창에라도 들어가고 싶다. 강간하다가 여자의 목이라도 비틀어 죽이고 싶다. 시원히 내 목에 칼이라도 박고 싶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차오른다. 자극, 자극제가 필요이상으로 수요 됐다.     《여보! 여보!》     다급한 아내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온다.     《여보! 여보―》     《아니 웬일이세요?》     《술상 차려!》     《혼자서는 술을 들지 않던 분이…》     《웬 군말이야? 못 들었어? 술상 차리라는 소리.》     《아니 왜…왜 이러세요?》     《왜? 술…술 마시겠다는 말이야! 술을!》     《네―》     아내는 눈에 달이 오른 내 광기에 겁이 더럭 났던지 찍 소리 못 내고 돌아섰다.     나는 다람쥐처럼 작은 서재에서 바재이다가 문을 박지르고 취사칸으로 나갔다.     나는 식탁에 마주서서 아내가 준비해놓은 《조양주》병뚜껑을 열고 꿀컥꿀컥 술 나팔을 불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아내의 기겁소리가 술 냄새와 함께 목구멍으로 기어들어왔다. 꿀컥꿀컥.     독한 술이 주라를 지져댔다. 꺽 막혔던 목구멍이 입을 짝 벌린 듯 후련해났다.     《여보세요. 왜 이러세요?》     아내가 달려들어 술병을 빼앗으며 소리쳤다.     《이거 못 놓겠어?》     《제발, 제발 이러지 마세요. 여보세요. 제발…》     아내는 부들부들 떨며 술잔에 술을 부었다. 나는 안주도 집지 않고 술잔을 들어 단모금에 마셔버리고 마루바닥에 술잔을 동댕이쳤다. 쨩 하며 술잔이 박살났다.     《내가 죄인이야! 내가 죄를 졌다는 말이야!》     《여보세요. 오늘저녁 왜 이러세요?》     《왜 이래? 죄를 진 놈이 돼서 이러는 거야! 술 부어!》     나는 고래고래 소리만 질러댔다. 왜서 히스테리발작을 했는지 나로서도 알쏭달쏭하지만 한 번 고함질치고 두드려 패고 마시고 싶었다는 것만은 명백했다.     나는 한생 선하게 살아오려 했고 선하게 살아가겠다면서 50고개를 넘겼다. 그런데 선한 마음을 선한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악한 사람이라는 것은 몰랐었다. 허인숙 어머니의 닭곰탕에서 나는 그 때의 내가 가장 악하고 독한 인간이었다는 것을 보았다. 그러니 내가 왜 미치지 않겠는가. 그쯤이면 또 괜찮아도 그 선한 마음에 사탕폭탕이니 복벽이니 하는 감투까지 씌워놓고 투쟁하고 칼질을 했으니 선하게 살았다는 내가 도대체 어떤 망나닌가 말이다.     나이를 공짜배기로 먹고 먹물을 거꾸로 먹은 놈. 술이나 퍼먹다가 주라가 터질 놈…나는 계속 놈 하는 놈 자로 술안주를 하면서 술병을 비우고 말았다. 그리고는 고주망태가 되어 침대에 쓰러졌다.     몇 시나 됐을까?     이튿날 아침 내가 눈을 떴을 때는 집안이 환히 밝아 있었고 유리창으로 아침햇살이 비껴들고 있었다.     머리가 빠개지는 것 같았고 천근들이 무쇠덩이 같아 쳐들 수 없었다. 사지가 지끈지끈 쏴나는 것이 몸이 말째였다.     《여보, 여보―》     내가 몇 번이나 소리쳐도 아내의 대답은 감감. 대체 어디 갔을까?     나는 겨우 몸을 지탱하면서 취사칸에 들어섰다. 거기에도 아내는 없었다. 그 대신 글쪽지가 놓여있었다.     출근시간이 되어 떠납니다. 된장찌개를 끓여놨으니 해장이나 하시고 푹 쉬세요.                           아내로부터     아내? 항아리는 아니고? 나는 항아리라는 말을 뱉으며 피식 웃고 말았다. 아내는 언제나 남편은 두레박, 아내는 항아리하면서 살아온 여자였다. 남편이 들어올리는 물을 한 방울이라도 쏟을까봐 조심조심 제 항아리에 부어넣는 그런 구두쇠였다.     원고료가 나와도 내 손으로 돈을 찾은 적은 한 번도 없다. 심지어 몇 원 되지 않는 원고료 통지단이 와도 그건 몽땅 아내의 몫이다. 아내는 확실히 우리 집 항아리였다. 그런데 그 항아리 속에 들어간 돈은 종시 나올 줄 몰랐다. 이 일로 하여 우리 부부는 입씨름이 잦았다. 그래도 아내는 요지부동이다. 수전노가 돼서 그런지 돈고생 막고생이라는 걸 알아서 그런지 아내의 항아리는 덮개만 덮으면 끝이다. 그것이 나는 싫었다. 생기면 쓰고 없으면 쓰지 않고 이것이 내 생활의 준칙이다. 돈, 돈 하다가는 돈 소리에 깔려죽게 마련이니까.     된장찌개를 끓여놓았다는 아내의 글쪽지에서 처음 떠오른 것이 아내의 본명보다 아내의 대명사―항아리이다.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악이 없이 웃었다.     나는 된장찌개 몇 숟가락 뜨네 마네 하다가 서재로 발길을 돌렸다.     책상 위에는 어제 보다만 허인숙 어머니의 일기책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그 일기책에 눈길이 미치는 순간 나는 몸을 오싹했다. 우경번안풍을 비판하면서 허인숙 어머니를 투쟁하던 그 닭곰탕 이야기가 그대로 적혀있을까 봐서였다. 어진 인품에 도끼질하는 자신을 보는 것 같아서였다. 일기책에서 멀리 떠나고 싶었다. 바람 따라 물결 따라 어디론가 가고 또 가고 싶었다.     나는 정순이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정순이냐?》     《아, 오빠, 오빠예요?》     《오빠예요라니?》     《나 이제부터 오빠한테 존대어를 쓰기로 작심했어요.》     가슴이 섬뜩해났다. 《예요》하는 소리가 벽돌장이 되어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벽으로 쌓아지는 것만 같았다.     《싫어. 그냥 이랬어 저랬어 해! 그 말이 내게는 더 듣기 좋아.》     《오빠, 걱정 말아요. 금방 좋아질 거예요. 호호호.》     《귀에 선데? 어쩐지 배설물 같아.》     《시각이 변하지 않는 한 청각도 변하지 않을 거예요. 오빠, 그런데 웬 일이지요?》     《어디 건 나를 멀리멀리 버려줘!》     《오빠, 일 났어요?》     정순이의 다급한 물음이었다. 챙챙하던 목소리가 오리오리 찢기는 듯한 잡음까지 섞였다.     《일은 무슨? 차를 뺄 수 있겠나?》     《오빠의 명령이라면 물론.》     나는 수화기를 놓았다. 그리고는 얼굴에 대충 비누칠을 하기 시작했다.     정순이의 자가용은 제 시간에 약속한 지점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나는 주저 없이 차문을 열고 운전석 옆자리에 앉으면서 안전벨트를 몸에 걸었다.     《오빠, 왜 얼굴 부었어요?》     정순이는 선글라스를 올리며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지난밤에 과음했댔어.》     《과음? 오빠는 낯이 붓을 지경까지 과음하시는 분이 아닌데? 지난밤 무슨 일 있었어요?》    《아―니.》     《늦게까지 글 쓰셨어요?》     《아―니.》     《언니와 다투셨어요?》     《아―니.》     정순이는 더 묻지 않고 차를 가동시켰다.     《어디로 몰까요?》     《네 마음대로 어디 건 멀리 갔으면 좋겠다.》     정순이는 잠시 생각하다가 공항 쪽으로 차머리를 돌렸다. 공항 맞은 켠으로 연길시를 에돌아가 왕청 쪽으로 가는 외환도로가 빠져 있었던 것이다.     《너 왜 나보고 존대어를 쓰는 거지? 나는 그게 싫어.》     승용차가 뾰족산을 지나고 이란록장을 지나서야 나는 내 가슴 속에 꺼림직 하게 박혀있던 못을 뽑아들었다.     《저도 이젠 50고개를 바라고 있잖아요?》     《그래서 이상 존대한다는 말이지?》     《어차피 그렇게 될 건데요 뭐.》     《싫어. 거리가 멀어진 것 같은 느낌이야!》     《호호호. 제가 변한 것 같아서요?》     《…》     《오빠를 더 사랑하고 존경하고 싶어서 말투를 고친 거예요. 호호호 이럴 땐 오빠는 바보 같아. 》     《워낙 바보지.》     《작가 선생님, 잔걱정 꼴칵 삼키시구요. 지난밤 일이나 탄백하세요. 진짜 언니와 싸운 건 아니구요?》     《아니랬잖아. 한 번 대판들이 싸움을 하고났으면 속이라도 풀릴 텐데 그럴 때마다 슬슬 피하는 네 언니를 너도 잘 알고 있지 않나.》     《그런데 왜 오빠의 기분 빙점이지요?》     《여자들 눈은 갑판을 뚫는다더니 말 그른데 없구나.》     《오늘은 자백, 그 것만이 오빠의 살길예요. 알겠어요? 자백!》 승용차가 차창자를 지나 왕청현 영마루로 치달아 오르자 정순이는 에어컨을 끄고 차창 문을 열면서 말했다.     《너 도대체 나를 어디로 싣고 가는 거냐?》     《오빠가 멀리 가고 싶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우리 천성별장들을 둘러 보자요. 거기 가서 기분전환도 시켜보고요.》     만천성은 가야하를 막고 수력발전소를 앉힌 큰 댐이다. 댐에 잡혀있는 몇 십 리 물결을 따라 양 옆 산기슭에 유흥업소들이 들어앉은 별장마을이다. 놀이방, 토종닭집, 뱃놀이…먹을 것과 놀이거리들이 구전한 경치구역의 산뜻한 별장들, 아동저수지의 산천어 별장은 촉도 댈 수 없다.     이른 점심때라서 그런지 만천성은 별장마다 승용차와 버스들이 줄 박혀 들어앉아 있었다. 만천성이 유람지구로 어찌나 소문났던지 백두산, 백두산 하던 손님들 반이 만천성으로 쏠린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휴식일도 아니건만 만천성은 손님들로 붐비고 있었다.     저수지를 낀 길 쪽엔 낚시꾼들이 낚싯대들을 펴놓고 줄느런히 앉아있고 붕―붕―고동을 울리며 유람선이 물결을 가르며 미끄러져가고 있었다. 만천성은 유람구로 건설된 지 몇 해 되지 않는 신건 별장촌이다. 그런데도 그 꾸밈새거나 앉은 자리가 스산하게 느껴지지 않고 오래 전에 세워지고 다듬어지고 가꾸어진 아담한 맛을 다분히 안겨준다.     나는 만천성이라는 말은 들었지만 직접 진맥해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나무와 물이면 《제일》하는 내 구미에 맞아서 그런지 만천성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내 기분은 완전전환이다.     《오빠, 이젠 자백할 때가 됐지요?》     우리가 승용차로 만천성을 한바퀴 돌아보고 벼랑 가에 토시고 앉은 《옥천옥》의 객방에 마주앉았을 때 정순이가 물어왔다. 이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정순이의 눈길은 내 얼굴에서 떠날 줄 몰랐다.     나는 허인숙 어머니의 닭곰탕 이야기와 그 닭곰탕을 두고 투쟁했던 내 쓰라림을 그대로 일러주었다.     《난 또 상전벽해가 되는 큰일이나 생겼다구요?》     《너 그 일기를 직접 보지 못해서 그렇지 보고나면 너도 미칠 거야. 그런 정성은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런 정성을 되바가지 씌우고…》     《오빠가 그랬어요? 시대가 그랬구 정치가 그랬지요.》     《그런 시대 그런 정치 속에서도 착하게 산 사람 얼마나 많다구? 정직한 어머니를 산송장으로 만들어버린 인간도 인간이냐?》     《작가군요. 오빠는 확실히 작가야. 그것도 감상적인 작가, 그래서 오빠의 소설은 몽땅 비극인가 봐요.》     술상이 들어왔다. 안주는 몽땅 당지의 해산물―붕어튀김, 잉어회, 쫑개미어 탕이었다.     우리는 잔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술 놀이에는 천하명당이었다. 출렁이는 호수의 물갈기가 실오리 같고 지나가는 유람선들이 애들 놀이감 유람선처럼 보이는 것이 마치 비행기에서 술 놀이판을 벌이는 듯한 기분이다.     《왜 인생은 후회만 남기는지 몰라. 후회는 인생의 뒤꼬리?》     《오빠, 전 후회와는 담을 쌓고 사는 여자예요. 절대 후회하지 않아요. 심지어 내 첫사랑, 내 첫 정조를 바친 오빠를 뺏긴 것마저 후회하지 않아요. 후회는 인생의 꼬리인 것이 아니라 인생의 올가미니까요.》     《인생이 왜 이처럼 고달픈지 모르겠어. 요즈음 나는 고달픔 속에서 살아.》     《복잡한 세월에 고달프지 않은 사람 어디 있어요? 살아가자니 자연 고달파지지요. 고달파지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서 고달파지지요.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요?》     《어쩐지 모든 고달픔이 나에게만 덮치는 것 같아.》     《아버님을 여읜 슬픔의 연장일 거예요. 그래서 요즈음 난 오빠한테 전화하는 걸 일체 엄금하기로 했어요.》     《고맙다.》     《오빠, 난 고달프지 않은 것 같아요? 자가용에 먹을 걱정 입을 걱정 없이 마음 놓고 쏘다니니 태평스레 보이지요? 팔자 늘어지게 보이지요? 뭔가 사업을 시작해보려니 고달픈 일만 생겨요. 돈을 넘써보고 합작하려는 사람 있는가 하면 몸을 줘야 도장을 찍어주겠다는 권력 나부랭이도 있어요. 드러내놓고 몸값을 내라는 거예요. 전화벨이 쉴 새 없이 울리고 핸드폰이 잠들 줄 모르고…에이 시끄러워.》     《전에 내가 자랄 때나 공부할 때는 돈이 제일 큰 고달픔이었지. 그 때 나는 돈만 있으면 고달픔은 자연히 없어질 거라고 믿었어. 그런데 먹고 살 수 있는 지금까지 고달픔이 덜미를 잡고 있으니 후회처럼 고달픔도 인생의 동반자가 아닌가 싶다.》     《고달픔을 천직으로 생각하면 한결 나아질 거예요.》     《그 말 한마디 좋구나. 고달픔은 인간의 천직.》     《내가 소설언어 하나 만들었잖아요? 자 축하!》     우리는 웃음 속에서 술을 나누었다.     술상을 물리고 우리는 다정한 부부처럼 손을 맞잡고 《옥천옥》주위를 산책하기 시작했다.     어디서 실어왔는지 인도에는 굵기가 똑같은 자갈을 깔고 양 옆에 소나무를 심었는데 걸을 때마다 자갈이 밟히는 올통볼통한 감촉이 더 감미로웠다. 화단은 몽땅 당지의 야생화―들장미, 함박꽃, 나리꽃 같은 들꽃들이어서 산에 묻혀 산다는 산맛을 더해주어 이채를 돋우고 있다. 우리는 벼랑가로 걸어갔다. 벼랑은 난간으로 막혀 있다.     바람 한 점 없는 무더위였지만 호수가 뿜어 올리는 시원한 냉기가 열기를 몰아가는 바람에 이 곳 벼랑바위 산정에서는 더위를 체감할 수 없을 정도다. 산 좋고 물 맑은 고장이라는 소리는 많이 들어왔고 나도 소설에서 많이 써온 말이지만 이처럼 수려하고 우아한 고장은 처음 본 나다. 무석의 태호나 항주의 서호가 아름답기는 하지만 그 미는 사람의 손에서 다듬어지고 부풀려진, 마치 화백의 붓끝에서 그려진 인조미일 뿐이다. 그러나 이곳 만천성의 《옥천옥》벼랑가는 대자연이 하사한 비바람과 눈보라가 보듬어주고 다듬어주고 쓸어준 조각이요 화폭이라 서호와 태호 마저 얼굴을 붉히며 돌아설 미의 극치다.     철썩 처절썩 철썩 처절썩…     벼랑 밑에서는 하얀 물갈기가 바위에 발톱을 걸고 이끼를 물어뜯다가 더는 지탱하지 못하고 지친 몸체를 물 속에 처박으며 하얀 꼬리만 남긴다. 그 밑을 스쳐 지나는 유람선에서는 들꽃을 꺾어든 유람객들이 우리를 쳐다보며 꽃다발을 흔든다.    《좋은 곳을 놓쳤어요.》     정순이는 유람객들에게 손을 흔들어 답례하며 개탄했다.     《무슨 뜻이지?》     《오빠, 잊었어요? 언젠가 제가 오빠의 창작실을 마련해드리겠다지 않았나요?》     《진짜였나?》     《언제는 정순이가 거짓말하는 걸 봤어요? 언녕 알았더면 이 자리를 잡는 건데…》     정순이는 정말 아쉬워했다. 서운한 기색이 역력했다.     《정순아, 나 아직 머리가 채 정리되지 않았어. 자리가 없겠나? 천하의 절경 예 아니더냐 하는 우리 연변에서 말이다.》     《오빠, 기회는 언제나 한 번밖에 없는 법이예요. 그 기회를 놓치면 모든 것을 잃게 되고 모든 것을 버리게 돼요. 기회는 저절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거예요. 창조, 알겠어요? 오빠!》     《또 시작하는 거야?》     《아니 투―항!》     《정순아, 나 어쩌면 좋지?》     나는 정순이의 어깨에 팔을 얹으며 말했다.     《뭘요?》     《그 일기를 보기가 겁나.》     《그럼 보지 않으면 되잖아요.》     《보지 않을 수도 없구…》     《우유부단. 오빠는…》     《관둬. 또 무슨 감투가 날아들지 모르겠구나.》     《감투가 아니라 진짜 삿갓이예요. 오빠는 활달한 성격의 미남아지만 너무나 소심해요. 명예와 명성에 깔려 과감히 현실을 정시하고 현실에 도전하는 작가로가 아니라 현실의 뒤꽁무니를 따르기만 하는 위군자식 작가라는 말예요. 알겠어요? 오빠!》     《나는 위군자는 아니야.》     나는 위군자라는 말에 발끈해났다.     《위군자는 이마빼기에 도장을 박고 다니나요?》     정순이도 톡 쏘았다.     《왜 우리 둘은 만나기만 하면 싱갱이질이야?》     《통일열차에 앉아야 하니까요. 호호호.》     《그 것 비슷한 말이구나. 허허허.》     만천성 유람은 나에게 활력소를 불어넣는 좋은 기회였다. 자연에 대한 친밀감, 자연에 대한 흠상도 흠상이겠지만 정순이와의 입씨름을 거친 다음에는 무언가 남는 것이 있었다. 그리고 번마다 머리를 치는 것이 있었다. 정순이는 확실히 나의 세척제였고 점착제였다.     《집 문 떼기가 진짜 싫구나.》     승용차가 신원아파트 지정지점에 도착하자 내가 말했다. 감옥같이 생각되는 집이다.     《싫어도 들어가야 해요.》     정순이는 내 이마에 뻑 하고 키스를 하면서 어서 내리라고 눈짓했다.     《깍쟁이!》     《바보 오빠!》     비어 있으려니 하면서 헛일삼아 초인종을 눌렀는데 생각 밖으로 아내가 문을 열어주었다.     《아니 오늘은 웬 일이오? 퇴근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근심스러워 남 먼저 퇴근했댔어요.》     《근심?》     나는 신을 벗으며 아내를 쳐다보았다. 눈확이 푹 꺼져들어간 것이 학질을 앓고 난 사람 같았다. 근심을 안고 이불 속에 기어 들어갔다가 눈 한 번 붙여보지 못하고 걱정을 안은 채 이불 속에서 기어 나온 사람, 아내의 눈은 피곤기로 검누렇게 뜨고 있었다.     《근심하지 않게 됐어요? 온밤 앓음 소리를 하면서 헛소리를 치다가 새벽녘에야 잠든 당신을 두고 출근했는데 어찌 마음 놓을 수 있어요? 온종일 집에 전화를 해도 받는 사람 있나… 나 당신 잘못됐나 했어요.》     《과부로 나앉을까봐 겁나서?》     《엊저녁 같아선 과부가 되는 편이 더 낫겠어요.》     《내가 그렇게 주정 뺐는가?》     《주정이 아니라 행패였어요.》     《행패?》     《그럼요. 행패를 부렸지요.》     《당신 보고 행패부릴 턱이 없는데…》     《누가 알아요.》     앵돌아지지 않은 아내의 말에는 가시가 있었다. 아니 말은 가시가 돋은 것 같았지만 남편이 무사함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는 느슨한 그 무엇이 있었다     몇 년 만이던가? 애들을 외국에 보낸 후로 우리 부부가 처음으로 나누어 보는 긴 대담이다. 한 마디 물음에 한 마디로 답변하면 끝, 우리의 말은 일문일답식으로 결말을 고하곤 했었다. 동태처럼 땅땅 얼고 북어처럼 깡깡 마른, 합성어가 아닌 단일어가 오갔을 뿐이다. 나는 습관적으로 서재로 향했다.     《저녁 드시지 않겠어요?》     《먹고 왔소.》     엊저녁처럼 똑같은 물음에 똑같은  대답을 하며 나는 서재에 들어섰다.     허인숙 어머니의 일기는 엊저녁에 펼쳐놓은 그대로 팔을 쩍 벌린 채 누워 있었다.     책상으로 접근하기 겁났다. 신비를 파헤치는 탐구물이 되어 나를 흡인하고 내 이목을 끌던 일기였다. 숟가락 놓기 바쁘게 달라붙었고 짬만 나지면 번져보던 일기였다. 흑진주를 캐는 탄부들처럼 버럭더미를 뚜지고 또 뚜지면서 일기 속의 기름진 석탄덩이 한 알 두 알 캐온 나였다.     그런데 그 일기책이 눈에 설고 멀어 보인다. 아니 겁난다. 일기에서 더러운 자신의 정체를 보았고 또 다른 자신이 나타날까봐서다.     하지만 나는 일기 보는 것을 중도이폐할 수 없었다. 어떻게 해서 지금 내가 보고 있는  허인숙 어머니의 일기가 아버지의 손에 들어갔는지 아버지와 허인숙 어머니와는 어떤 사이였는지 그 내속이 일기에 담겨져 있을 것 같아서다.     나는 계속 일기를 보기 시작했다.     별다른 것이 없었다.     나는 도깨비 기왓장 번지듯 일기장을 넘겼다. 1970년도와 1971년도에 쓴 일기는 이렇게 빨리도 넘어갔다.     그러다 내 눈을 잡는 일기가 나타났다.    1972년 7월 18일. 개임     오늘 나는 연길로 가야 한다. 이 때까지 가슴에 맺혔던 옹이를 빼버리고 수수께끼의 실마리를 풀고 싶다. 행여나 하는 짧고 옅은 바램이 줄 끊어진 연처럼 날려가도 좋다. 허실을 밝히지 않고는 더는 붙박혀 있을 수가 없다.     때가 된 것 같다. 3년간이나 마음속에 품고 있었고 마음속에서 길러오던 소망을 알아볼 때 되었다.     어느 하루 한 번도 내 베개머리에서 떠나본 적 없고 떠날 수도 없었던 비밀, 그 비밀을 알아보러 연길로 가야 한다.     후치질도 끝났으니 농한기라 할 일도 크게 없었다. 세월이 흐르고 시간이 가니 나에 대한 감시와 강압노동도 잠잠해졌는지 요즈음은 사람을 놓고 들볶아대지 않았다.     나는 샘물골 대대 치보주임의 허락을 받고 지금 연길로 가고 있다.     전에는 연길도 내가 문 앞 나들듯 하던 도회지다. 당대회요, 인민대표대회요, 사적보고대회요 하면서 모아산 고개를 얼마나 넘나들었는지 모른다. 그 때가 아마 내게는 가장 빛나는 황금시절이었을 것이다. 어디 가나 떠받들리던 허인숙, 그 허인숙이 이미 고물이 되어버렸을 낡은 버스에 몸을 담근 채 모아산 고개를 오르고 있다. 만무과원, 푸른 솔밭, 숲 속을 헤엄치는 포장도로… 몇 년만에 처음 달려보는 길이지만 변한 것은 하나도 없다. 변할 수도 없었지만 변하지도 않았다. 변하건 변하지 않건 그 건 내 관심사가 아니다. 내 관심사는 사람을 찾는 것이다. 집체호 호장 문경천의 아버지, 그 분을 찾아야 한다.     연길시 광명가 2거 8조 15호, 내 종점역이다.     내가 이리 묻고 저리 물으면서 겨우 문경천의 집 문을 두드렸을 때는 어스름이 내리기 시작한 저녁녘이었다.     네거리 양 쪽에 올방자를 틀고 앉은 집들은 벽돌에 양철이 아니면 기와를 얹은 연지곤지는 몰라도 대충 분치장이라도 하여 겉보기에 괜찮았지만 그 집들에 가려진 골목집들은 구더기에게 속살을 파 먹힌 썩은 물고기처럼 숭숭 구멍 뚫린, 껍질만 남은 게딱지같은 집들이 숨 막히는 좁은 골목에 매달려 할싹거리고 있다.     땅 깊이가 모자라 더 들어가지 못하고 제가 버리는 석탄재에 재가 묻혀 더 머리를 들지 못하는, 출입을 하려면 먼저 웃문턱에 머리를 박아야 하고 출입문이 땅속에 반나마 묻힌 집들이 뒤엉켜 사는 동네, 이 동네가 오늘의 연길의 현주소다.     지붕에 기름종이며 비닐천 조각들을 덮고 벽돌이며 돌멩이 나무토막 같은 무게를 누를 수 있는 물건이면 무어나 올려놓은 지붕, 그 지붕에 깔려 날숨은 쉬고 있었으나 들숨을 쉬지 못하고 있는 골목집들의 허덕임, 이것이 오늘의 연길의 산 현장이다.     연길시 광명가 2거 8조 15호, 이 주소도 연길시 뒷골목에 붙어 겨우 연명해가는 보통 일가의 문패다.     《주인님 계십니까?》     나는 내 앞에 어떤 분이 나타날 것인가를 그려보면서 문을 두드렸다. 속이 두근두근 했다.     《콜록콜록…》     집안으로부터 기침소리가 들려왔다.     《주인님 계십니까?》     《밖에 누가 왔소?》     한참 지나서야 문이 열리며 억대우 같은 사나이가 나타났다. 나는 문을 열어준 임자의 얼굴부터 쳐다보았다. 그러나 짙어져가는 어둠 때문에 가려볼 수가 없었다.     《이 집이 문경천 학생 댁입니까?》    《그렇소이다. 그런데? 콜록콜록…》     《예―전 경천이가 내려가 있는 샘물골에서 왔습니다.》     《그러시우? 이거 반가운 손님이구만. 콜록콜록. 어서 들어오시우.》     그제야 주인은 웃으며 나를 맞았다. 어둠에 깔려 얼굴에 피어오르는 진짜 웃음은 볼 수 없었지만 나를 반겨 맞는 말 속에서 그가 웃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단칸방이었다. 십여 평방 남짓한 작은 살림집이지만 널마루를 깐 바당이며 부엌, 가마… 있을 것은 다 갖춰져 있다.     《이거 집이 누추해서…》     주인이 전등을 켜며 송구스럽게 말했다. 집안은 단통 대낮처럼 밝았다. 그 불빛을 빌어 나는 내가 찾고 있는 주인공부터 살펴보았다.     아, 틀림없었다. 18년이라는 세파가 짓밟고 지나간 자리가 역력했고 가난이 빈창자를 훑고 지나간 흔적이 상처의 더께를 남겼지만 원형이 자리 뜸을 하지 않은 내가 찾는 주인공이었다.     《그래 우리 경천이 콜록콜록. 잘 있습니까? 앓지는 않습니까? 콜록콜록…일은 잘 합네까?》     《예. 녜.》     무슨 정신에서였는지 나는 그저 《예. 녜》하는 대답만 남기며 넋 나간 사람처럼 주인의 얼굴에 거울을 비추었다.     《그 녀석 군에 나가겠다고 편지 왔던데 콜록콜록…》     《절 모르시겠습니까?》     《누구신데?》       그제야 경천이 아버지는 나에게 천천히 머리를 돌렸다. 아들에게만 정신이 팔렸고 아들에게만 정신을 팔았던 주인은 의아한 눈길로 나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의 눈시울이 파들파들 떨려나기 시작했다.     《흑룡강성의 명신촌을 기억하고 계시겠지요?》     《…》     《명신촌의 김 촌장을 기억하고 계시겠지요?》     《…》     주인은 대답 한 마디 없었다. 나를 살펴보던 그 자세 그대로 굳어버렸다. 일체가 정지상태다.     《경천이는 기른 애지요?》     《아니 내 친자식이요! 콜록콜록… 내 친자식이란 말이요!》     죽은 듯이 나만 지켜보던 경천이 아버지가 벌떡 일어서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요? 나가시요! 나가!》주인은 어찌나 놀랐던지 어찌나 성났던지 그릇이고 재떨이고 가릴 것 없이 손에 쥐는 대로 밖에 던지며 안절부절 했다.     《경천아버지. 안심하십시오. 제가 경천이를 빼앗자고 이렇게 찾아온 것이 아닙니다.》     《나가시오. 나가! 콜록콜록…난 댁이 누군지 모르우다.》     《경천아버지. 그 때에도 눈치 채셨지만 난 친자식 앞에서도 내가 어머니라고 떳떳이 나설 수 있는 그런 어머니가 못됩니다. 나는 자랑스러운 어머니가 아닙니다. 그리고 남이 18년 동안이나 곱게 기른 자식을 제 자식이라 해서 마구 빼앗으려는 그런 악한 여자도 아닙니다.     내게는 자식이 없습니다. 부모들이 세상 뜬 후에는 가까운 친척도 없습니다. 자식을 되찾아 자식의 신세를 보려는 생각은 더더구나 없습니다. 그저 저 것이 내 새끼구나 하는 그 생각 하나만으로도 저는 행복합니다. 경천아버지, 제발 빕니다. 이때까지 홀로 살아온 저에게, 당의 사업만을 믿고 살아온 저에게 제 곁에도 친자식이 있다는 위안이라도 받게 은혜를 베풀어주십시오.》     《콜록콜록…》     《저는 지금 경천이가 내 곁으로 오겠대도 받아들일 형편이 못되는 여자입니다. 흑흑… 아니 앞으로도 받아들일 수 없을 겁니다. 흑흑흑… 경천이에게 누가 미칠 겁니다. 흑흑흑…》     《콜록콜록…》     《경천아버지, 제가 경천이를 빼앗자고 찾아온 것이 아니라는 걸 믿어주십시오. 그저 남을 준 제 새끼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그 한 마디 대답을 바라고 찾아왔습니다. 흑흑흑… 전 그 한 마디면 만족입니다. 그 한 마디면 황천에 가도 눈을 감겠습니다. 흑흑흑…》     《콜록콜록…》     주인은 말없이 일어서더니 어머니가 시집올 때 가지고온 농짝인지 구리 못으로 새를 수놓고 조개껍질로 앞면을 장식한 농짝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손을 떨던 것이 다리를 떨고 좀 지나자  전신을 떨기 시작했다. 평형을 잃어가고 있었다.     쥐었던 물건을 다시 쥐었다간 놓고 하면서 후들후들 떨며 찾고 또 찾고 있었다.     무엇을 저토록 열심히 찾고 있을까? 나는 저러다 쓰러지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으로 콩알만한 가슴을 옥죄었다.     한참 뒤적여서야 경천아버지는 덮개를 꼭 닫은 작은 양철통을 집어 들고 덜덜 이빨까지 쪼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말없이 그 양철통을 내 앞에 밀어놓고 돌아서더니 어깨를 들먹이기 시작했다.     나는 양철통 뚜껑을 열었다. 통 안에는 작은 종이말이가 들어 있었다.     나는 종이말이를 펼쳤다.     엉? 서약서? 18년 전 내가 썼던 서약서였다. 귀염둥이를 맡기면서 영원히 찾지 않고 데려가지 않겠다고 서약한 증명서다.     《경천아버지! 흑흑흑…》     《짐승도 새끼 귀한 줄 아는데 콜록콜록 사람으로 생겨 어찌 친혈육을 갈라놓겠수. 흑흑…》     《전… 전… 흑흑흑.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 더 크다지 않습니까? 약속대로 서약을 지킬 겁니다.》     《아니, 서약은 서약이고 혈육은 혈육이고 흑흑흑…》     경천아버지는 서약서를 들고 보다가 쫙쫙 찢어버렸다.     《한 마디 부탁만 콜록콜록…들어주시겠수?》     《어서 말씀하십시오.》     《경천이를…경천이를 나한테서 떼어가지만 말아주시우다. 흑흑흑… 그 애가 없는 세상은 세상이 아니구 콜록콜록. 그 애가 없는 난…나는 내가 아니우다. 흑흑…》      《경천아버지! 흑흑흑… 약속대로 영원히 묻지 않고 찾지도 않을 겁니다. 흑흑흑….》     《어머니! 어머니―》     나는 일기를 보다말고 어머니를 부르며 책상을 내리쳤다.     《어머니!》     이때까지 불러보지 못했고 불러볼 수도 없었던 이름―어머니를 부르며 서재를 들부수기 시작했다. 서재의 유리문이 박살나고 꽃병이 날아가고 전화통이 나뒹굴었다. 미치고 싶었다. 미칠 것만 같았다.     《어머니―흑흑흑… 나는 왜 어머니를 곁에 모시고도 어머니라는 말 한 마디 불러보지 못하고 어머니는 왜 자식을 코앞에 놓고도 자식이 라는 말 한 마디 번지지 못했나요? 왜서? 왜서요? 어머니―누가 우리를 갈라놓았던가요? 누가? 누가? 흑흑흑…》     모든 것이 귀찮았고 모든 것이 껄끄럽기만 했다. 세상이 싫었고 세상에 대한 배신감으로 자신을 끝없이 구타하고 싶었다. 자신을 찢어죽이고 싶었다. 이때까지 믿음으로 살아왔던 그 믿음이 자신을 희롱하고 농락한 도깨비 방망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 순간에 폭발하는 히스테리처럼 나는 보이면 보이는 대로 쥐면 쥐는 대로 짓부수기 시작했다.     《여보!》     어디선가 아내의 기겁한 목소리가 들린다. 형체는 보이지 않고 메마른 아내 목소리가 개미소리처럼 귓전에서 배회한다.     《이년!》      나는  아내를 찾는다. 아내의 머리채를 감아쥐고 태질해치우고 싶다. 아니 아내의 목에 칼이라도 박고 싶다. 아내도 죽이고 나도 죽고…     집안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부술 것은 다 부셔버리고 던질 것은 다 던져버렸을 때에야 나는 차츰 나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발광체가 자신의 빛을 다 연소하고 완전 무기물이 되었을 때처럼 나도 내 울분을 다 토해버리고 기진했을 때에야 나는 맥없이 걸상에 주저앉았다.     내가 왜서 이랬지? 왜서 이러지? 그 건 분명 나도 모르고 있었다. 그저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것이다. 미치기 위해서 미치는 것이 아니라 미치고 싶어서 미치는 것처럼 나도 그러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것이다. 그래서 미쳤고 그래서 미치광이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계속해...
13    우산은 비에 운다(5) 댓글:  조회:1401  추천:54  2009-03-30
5.  버려진 생명 1954년 7월 5일 맑음     덜커덕 덜커덕…     증기기관차는 힘에 부친 무거운 바곤들을 끌고 숨 가쁘게 록도령 중턱을 오르고 있다. 흑룡강성과 길림성의 경계선을 향해 치달아 오르고 있음에 틀림없다.     다 같은 중국, 다 같은 땅, 다 같은 철길, 다 같은 숲이건만 흑룡강성과 길림성의 갈림길이라는 의미가 나에게 주는 자극은 예이제 없다. 먼 길을 떠났다가 귀향길에 오를 때마다 역전을 헤고 집과의 거리와 시간을 따지게 되는 것에 습관 되어서일까?     록도령은 늘차게만 느껴지고 기차는 굼뱅이처럼 굼뜨기만 하다.     꼬리 하나 남길 것 없고 겨릅대 하나 가져갈 것 없이, 아쉬움도 서러움도 없이, 미련도 애틋함도 없이 허허벌판 북대황을 팽개치고 온 나다. 그런데 한 쪽 허파가 아릴사하고 마음이 찜찜해나는 것은?     칙―칙―폭―폭―     기차는 헐떡거리며 겨우 숨쉬고 있다. 그 맥 빠진 소리와 함께 내 가슴도 갑갑해났다. 방금 전까지 고향과 가까워지고 고향이 당금이라는 조바심과 희열은 아무런 대가도 없이 사라지는 기관차의 연기처럼 날려가고 무엇을 잃었다는 허탈감에 자신의 사지를 각을 뜨고 신경중추를 육장으로 만들고 육체를 칼탕치고 있다.     엊저녁, 서약서에 손도장을 찍던 일이 방불히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가 방금 지난 여름밤은 짧고도 길었다. 기다리는 마음, 보내는 마음, 그 마음을 희롱하고 유린하는 밤의 유령이 방 안 구석구석을 배회하면서 수시로 우리 모자를 노리고 있다.     귀염둥이는 이 방 안에서 어떤 비극이 막을 열지 어떤 곡성이 창호지를 찢을지도 모르고 조용히 소리 없이 자고 있다.     방 안이, 명신촌이, 북대황이, 세계가 숨을 거둔 이 밤, 쉴 새 없이 들려오던 개구리의 울음소리도, 밤이면 찾아오던 부엉이의 울음소리도, 모든 소리가 잠에 취한 숨 막히는 밤이다. 답답한 밤이다.     나는 이 적막에 오장육부가 뒤집히는 것 같다. 적막과 고독은 쌍둥이라지만 고독의 전주곡인 적막이 더 싫다. 더 무섭다.     폭풍 전야, 바로 그것이다.     쌔근쌔근 소리를 내며 잠을 자곤 하던 귀염둥이도 이 저녁만은 숨소리 하나 없이 밤의 장막에 쌓여 자고 있다. 나는 그 것마저 섭섭하고 싫다. 나는 귀염둥이를 흔들기도 하고 살짝 꼬집기도 해보았다. 그래도 귀염둥이는 손발 하나 까딱없이 콧구멍만 팔딱팔딱 한다. 그것도 나는 싫다. 《응아―》하고 울기를 바라는 내 마음이다.     나는 젖통을 만져보았다. 마지막으로 귀염둥이에게 젖꼭지를 물려보고 젖 한 방울 먹여보고 싶은, 버렸다 다시 찾은 마음 때문이다. 열흘 전까지만 해도 팽팽하고 젖이 줄줄 흐르던 젖통은 지금은  후줄근해지고 쥐어짜도 나오질 않는다.     반짝, 젖꼭지에서 젖인지 땀인지 물기가 빛났다. 나는 그 빛 방울을 귀염둥이의 입에 댔다. 하지만 귀염둥이의 입술에는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갈망의 기갈에서 오는 허광이다. 나는 그것도 싫다. 싫기 때문에 더 무섭다.     모든 준비가 되어 있다. 모든 각오가 되어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이별, 그 것이다.     애 옷 견지도 보자기에 꽁꽁 싸놓았고 기저귀도 깨끗하게 빨고 말려서 가방에 차곡차곡 챙겨 넣었고 우유병이며 봉다리 우유도 다 준비해 놓았다. 남은 것은 떠나보내는 것, 남을 주는 절차만 남아있다.     덜커덕. 삐익―.     울바자문 소리와 함께 발자국 소리가 들려온다. 순간, 내 가슴이 방망이질하기 시작한다. 숨이 가빠진다. 방금 전까지의 적막과 고독이 도가니 속에서 용암으로 분출하고 있다. 드디어 올 것이 온 것이다.     주인집 내외분이 비밀리에 찾아준 귀염둥이의 새 아빠 엄마다.     《오래 기다렸지?》     주인아주머니가 조용히 물었다. 그간 나처럼 아기에게 정이 들었던지 주인집 아주머니의 말은 색이 날아 있었고 얼굴도 무표정이다. 주인집 아주버니도 엽초를 말았다 풀었다 하면서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걸 봐선 심신이 불편한 모양이다.     두 사람이 모셔온 아기의 새 아빠 엄마는 50대 중반의 어머니와 아들로 짐작되는 30대 문턱을 넘어설지 말지 한 젊은이다.     《인사를 하오, 애기를 업어갈 모자간이오.》     나는 인사 대신 모자간만 지켜보았다. 내 귀염둥이를 잘 기를 수 있을지 없을지 하는 것을 내 눈저울의 천평 위에 놓고 싶어서였다. 보낸 다음에야 잘 기르겠으면 기르고 못 기르겠으면 못 기르고 내가 알 수도 없는 또 알 바도 아니지만 이 시각만은 귀염둥이의 기둥이 돼주고 뒷힘이 돼주고 싶었다. 만점을 주느냐 빵점을 주느냐 하는 시험관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내 눈금에 올려 놓았다.     50대 중반의 노인의 얼굴은 귀가 딱 들어맞고 음양이 선명한 입체감을 자아내게끔 조립이 잘 되지는 못했지만 하나하나 뜯어놓고 보면 미운 곳이 한 곳도 없는, 양 미간이라든가 하관이라든가 이마라든가 조금도 남부럽지 않을 반듯한 농촌어머니였다. 나들이차림이거나 옷단장을 하지 않은 평소의 옷매무새에서 수더분한 농촌아낙네들의 흙냄새가 다분히 풍겨왔다.     아들은 구척 강골에 눈썹이 진한 호랑이상이다. 눈썹만 빼놓는다면 강 촌장과 비슷한 그런 형의 걸때 센 사나이 같았다. 관상과는 달리 머리를 쳐들고 나를 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오른손 식지를 까래눈을 뜯는 걸 보면 그도 소똥내에 절고 호미자루에 멍이 든 손을 갖고 있는 땅 뚜쟁이가 틀림없다.     《왜 새엄마 될 분은 오시지 않았어요?》     내가 물었다.     《본가에 불상사가 생겨서 급히 가다보니…》     50대 중반의 어머니가 몸둘 바를 몰라 하며 얼버무렸다.     《옥선이, 마음 놓소. 이 집은 마을에서 으뜸가는 모범가정이오.》     《그 뿐인 줄 아오. 살림살이도 알뜰한 집이오.》     주인집 아주머니가 곁을 섰다.     《좋아요. 남의 새끼지만 제 새끼처럼 잘…잘 길러줘요. 흑흑흑.》     나는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저, 서약서라도 써주면 안 될까요? 혹시…》     말없이 머리만 수깃하고 있던 30대 사나이가 말했다.     《좋아요. 흑흑흑.》     나는 김 촌장이 갖다 주는 필기장에 연필꽁다리로 이렇게 썼다.               서약서     오늘 내 자식을 맡기는 바 영원히 찾지도 않고 데려가지도 않을 것이다.                    1954년 7월 4일                      김옥선     《이 애의 진짜 성은 제비 강(姜), 강씨이고 흑흑흑…이 애의 출생일은 금년 6월 8일이예요. 흑흑흑. 출생일만은 제대로 호구에 올려주세요. 흑흑흑.》     《친자식처럼 기를 테니 근심마시우.》     주인집 아주머니가 달게 자는 귀염둥이를 안아 새 할머니에게 넘겼다.      《얘야―》     나는 모진 소리를 지르면서 새 할머니의 품에서 내 자식을, 내 새끼를 빼앗아 안았다.     그래도 귀염둥이는 멋모르고 빈 입을 쩝쩝 다시며 자고 있다.     《이 녀석아, 눈 떠! 눈 뜨고 엄마 한번 봐! 흑흑흑…》     하지만 밉상스런 귀염둥이는 내 소리를 들은 둥 만 둥 자고만 있다. 몰인정한 귀염둥이, 이 어미의 심정 왜 몰라주나? 말똥말똥한 눈 한 번 더 보고 싶고 향긋한 똥 내음 한 번 더 맡고 싶고 귀맛 돋우는 울음소리 한 번 더 듣고 싶은 이 에미의 마음 이토록 몰라준단 말이냐! 나는 귀염둥이를 때려주고 물어뜯고 찢어놓고 싶었다.     《흑흑흑…》     나는 언제 어느 새 내 품에서 귀염둥이를 뺏아갔는지도 모르고 서럽게 서럽게 울고만 있었다.     덜커덕.     차가 멈춰서는 흔들림에 나는 정신을 차렸다.     기차가 록도역에 당도했던 것이다.     록도역에서 도시락으로 주린 배를 굼때우자 내내 빙점(氷點)이던 내 기분은 비등점으로 번져눕기 시작했다. 하루가 새롭던 북대황의 신물나는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옛날의 허인숙이로 되살아와 고향땅을 밟았기 때문이리라.     고향땅에 들어선 기차는 내리막길이라 칙칙폭폭 하는 절주에 맞춰 신나게 달렸다.     나는 차창을 열었다.     풀내음에 물씬 젖은 습습한 여름바람이 주렸던 내 가슴을 적시면서 나를 취하게 했다. 그 풀내음이 옛날의 허인숙이를 되만들어 주고 있었다. 강 촌장은 내가 오는 줄 모를 거야. 안다면 소수레를 몰고 구정부까지 마중 오련만…     급시에 강 촌장이 그리워졌다. 그래서 기차에 앞서 내 마음은 이미 샘물골로 날아가고 있었다.     이날 일기는 여기에 와서 붓을 멈추었다.     그 후의 허인숙 어머니는? 강 촌장과의 인연은? 그런 관심과 미묘한 로맨스 때문에 눈의 초점은 일기장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팽팽한 가야금줄처럼 내 마음의 탕개도 죄어들었다. 하지만 나는 일기장을 덮고 말았다.     아버지가 근심됐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집을 나선 지 일주일 넘었는데 지금까지 무소식이다. 무고히 도착하셨는지? 밤은 편히 주무시는지? 콩장이나 두부찌개를 반가워하는데 때시걱은 제 때에 자시는지? 기침은 어떠신지? 그들먹이  차오르는 아버지에 대한 근심과 걱정 때문에 글눈이 헛갈리면서 제대로 읽어내려 갈 수 없었다.     황차 오늘은 5월 5일, 단오명절이다.     단오마다 우리는 아버지를 모시고 애들과 함께 천렵을 떠나곤 했었다. 지금은 씨종자가 말라 구경하기조차 힘들지만 몇 해 전만 해도 연집강에는 한 뼘나마 되는 버들치와 모래무치가 우글우글 했었다.     지금도 간직하고 있지만 남들이 고기그물이라는 말도 번져보기 전에 나에게는 내 손수 뜬 고기그물 일곱 채가 있었다. 물론 고무바지도 있었고…     단오날 천렵놀이를 떠나는 때가 우리 집에서는 제일 경사스런 날이다. 나는 고기잡이 공구를 준비하느라 분주했고 아내는 점심 장만에 신경을 곤두세우곤 했다. 아버지는 애들 신발이며 옷 단속을 하느라 기침깇을 새도 없었고…     이렇게 우리들이 집을 나설 때 손자손녀의 손목 잡고 우리 앞에서 걸어가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제일 멋지고 자랑스러웠다.     어느 해 단오였던지 잘 기억되지 않는다. 그 날은 어찌나 고기가 잘 걸리는지 허리가 아파서 제 때에 고기를 뜯어낼 수 없었다. 그물에 걸린 고기를 제 때에 뜯지 못하면 그 고기를 뜯어먹느라고 민물가재들이 달려드는 통에 애를 먹는다. 고기 위에 가재들이 달리고 가재 위에 가재가 달리면서 가재뭉치가 큰 공만큼 되기도 한다. 그물쟁이들에겐 가재가 원수, 그 건 하나도 틀리지 않는 명언이다. 고기만 뜯어먹었으면 좋으련만 집게와 발이 그물에 걸려 그물을 절단 낸다. 가재를 미물이라고 보면 그건 너무나 잘못된 판단이다. 그물에 걸린 어떤 물고기들은 눈알, 내장, 고기점을 몽땅 뜯기고 하얀 뼈만 앙상하게 남는데 골격조립가의 섬세한 손도 가재의 그 재간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내가 그물 칠 차비를 할 때면 아버지는 언제나 애들을 데리고 삭정이부터 줍기 시작한다. 애들이 생선국보다 가재를 더 좋아한다고 불부터 지펴놓고 내가 가재 잡아 올리기를 기다리신다.     연집강에 민물가재가 어찌나 많았던지 고기그물에 뭉쳐 한 덩어리가 된 가재를 몽땅 잡으려고 그물 밑에 소래를 대고 털면 두어 사발씩 떨어지곤 했다. 그러면 애들은 좋다고 박수를 치며 숯불에 가재를 굽는데 맛보다 토색의 색깔을 번지면서 빨갛게 익어가는 가재가 더 군침을 흘리게 한다.     그 날이면 아내의 기분도 거꾸로 흐른다. 평소에는 입술 무겁기가 천근이요 입 여는 걸 보려면 천년이요 하는 아내마저도 내가 뜯어 올리는 물고기를 보고는 입이 함박만 해진다.     그 날은 물고기도 많이 걸렸고 가재도 많이 잡았다. 그런데 우리들이 한창 생선국을 끓여놓고 점심 먹을 채비를 하는데 소나기가 퍼부을 줄이야! 불단오일 줄 알았는데 물단오가 되니 한 해 농사는 그렇다 치고 점심 한 끼 어떻게 먹는단 말인가?     《비를 맞으며 먹는 음식도 멋이란다. 쿨룩쿨룩.》     미처 비올 것을 예상 못하고 비에 대비하지 못했던 우리는 억수로 퍼붓는 비를 맞으며 술잔을 기울였다.     《콜록콜록―경천아, 너는 알겠는지 모르겠지만 밭머리에서 이렇게 비를 맞으며 도시락을 먹은 때가 한 두 번인 줄 아니? 콜록콜록.》     《한 번은 기억됩니다. 아버지. 빗물에 보리밥을 말아자시며 이것도 별맛이구나 하시며 웃으시던 아버지 말입니다.》     《허허허. 그랬던가? 콜록콜록.》     진짜 우리를 그 날 덧국물을 부을 필요 없이 자연스레 빗물로 덧국을 만들면서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 아버지도 그 애들도 없다. 언제나 단오천렵 떠나볼는지?     휑뎅그렁한 집안에서 숨쉬고 있는 두 목숨 ― 아내와 나는 서로가 서로를 간섭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의 일만 하는 두 벙어리―들이 저마다 제 방에서, 제 공간에서, 제 세계에서 살고 있다.     아버지가 계실 때는 살맛나는 집안 같고 모든 것이 빈틈없이 정리되어 있는 집 같던 집이 그릇 하나 자리 뜸 한 것 없지만 아버지가 계시지 않으니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고 삼거풀처럼 헝클어진 것 같아 안절부절 어쩔 수 없다.     취사칸에서 물소리가 나고 그릇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일손이 잡히지 않아 취사칸으로 발길을 돌렸다.     단오라고 아내는 쑥떡이며 송편이며 갖가지 떡들을, 포장지만 떼면 먹게 만든 떡들을 사다가 식탁에 올려놓은 채 볶음채를 만드느라 여념이 없다.     《당신 오늘 뭘 하지?》     《뭘 하겠어요? 학교 나가지.》     《단오 날에도?》     《언제는 단오라고 쉰 적 있어요?》     《전에는 쉬었잖아?》     《청가 맡았지요.》     《오늘 청가 맡으면 안 돼?》     《안 돼요. 교수가 있어요.》     《이런? 제…》     나는 제길 하고 소리치려다 말고 입을 다물어 버렸다. 일문일답식 대화―군말도 없고 여음도 없고 유머도 없는 여위디 여윈 강대 같은 오가는 말에 이미 넌덜머리가 난 나다. 나는 홱―발길을 돌려 서재에 들어섰다. 내가 왜 이토록 제제하지 못하고 죄 없는 아내와 화풀이 하고 스스로 성내는 걸까? 단오 날 아버지가 계시지 않아서? 아니 그것만은 아니었다. 그럼? 옳아, 그 것이었다.     허인숙 어머니의 일기, 그 것이었다. 귀염둥이를 남에게 주었다는 찌뿌둥한 생각, 귀염둥이의 왼쪽 귀밑에 큼직한 기미가 있었다는 찜찜한 생각, 귀염둥이의 생일이 나와 같다는 꺼림직 한 생각, 그 생각에서 해탈되지 못해 성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삼위일치는 여지조차 없는 우연의 일치라고 판단하면서도 자신을 그 우연 속에 밀어 넣고 함께 볶이고 함께 지지게 되는 것은 너무나 이상했다. 이상기후처럼 흐렸다 맑았다 불었다 잦았다 좀체 갈피 잡을 수가 없다.     나는 전화기를 들었다.     《오빠야?》     내가 말하기도 전에 정순이의 터질 듯 영근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대방의 전화기에 나의 전화번호가 먼저 들어갔으니 정순이가 나라고 판정한 모양이다.     《오, 그래. 나야.》     《오빠, 왜 그래?》     《오늘 단오인 거 아나?》     《알고 있어!》     《너 오늘 뭘 하는데?》     《오늘 떡쑥 뜯으러 갈까 했어.》     《식품매장에 쑥떡 천진데 떡쑥 뜯으러 가?》     《그래도 내가 만들어 먹는 쑥떡이 더 맛있더라.》     《그러지 말고 너 나와 함께 어디 다녀오자.》     《어딘데?》     《더 묻지 말고.》     《알았어!》     덜컥, 정순이 전화기 놓는 소리와 함께 오가는 말도 끊겨 버렸다. 활기에 넘친 정순이의 목소리에 전염되어서인지 내 저기압상태도 다소 풀리기 시작했다. 꽁꽁 얼었던 겨울얼음덩이가 봄기운에 눈서기가 되듯 내 등골에 맺혔던 서릿발도 정순이의 말 몇 마디에 스르르 녹고 말았다.     《오빠, 핸들을 어디로 돌려?》     《…》     《응?》     《아니 오빠, 왜 이래? 차는 몰라 하고 갈 곳은 가르쳐 주지 않고…》     《응? 그랬던가?》     그제야 나는 바싹 정신을 차렸다. 앞에 붉은 등이 켜 있고 네거리 입구였다.     《저―거시기 거 있잖아? 산천어 별장…》     《산천어 별장?》     《응, 그래. 산천어 별장 가는 중간에 있잖니? 약수동 노인휴양소.》     《아―니 오빤…오늘 왜 이래? 정신 나간 사람처럼.》     정순이는 나를 말똥말똥 쳐다보며 말했다. 아주 낯선 얼굴을 해보이면서 말이다.     《오늘 이 사람 어찌된 셈판이야? 금시에 팔부가 됐나?》     정순이의 눈은 그렇게 묻고 있었다.     《약수동 노인휴양소에는 왜?》     《청명에 허인숙 어머니의 묘지를 가토도 못해드렸는데 늦었지만 오늘 흙 한 삽 떠놓고 싶어.》     《그럼 진작 그렇다고 말해줘야지 어정쩡해 있으면 낸들 어떻게 해?》     《미―안.》     그제야 나는 히쭉 웃으며 머리를 수깃해 보였다.     《오빠는 익살쟁이야. 호호호.》     정순이의 마음도 개운해진 모양이다.     《오빠, 오빤 방금 무슨 생각을 했지?》     《응―그거 저―아무 것도 아니야.》     《진짜?》     정순이는 브레이크를 급히 밟으며 승용차를 길섶에 세워버렸다.     《내려. 내려서 걸어가! 나 몰라!》     《너 또 집게입이 된 거야?》     《모른다지 않아? 빨리 내려!》     《요 건 쓸개 빼먹고 간 빼먹고 다 빼먹어야 시름 놓는다니까. 허허허.》     《대체 무슨 일인데 나까지 속여야 해?》     《그저 속이 찜찜해서 그래.》     우리의 승용차는 모아산 기슭 국도변에 멈춰 있었고 우리의 실랑이도 그 곳에서 시작되었다.     고속공로는 꼬리 물고 달리는 차량에 밟히고 깔려 갈범 같은 소리를 지르며 진통을 달래고 있었다. 연길과 룡정 사이를 오가는 모든 물량을 한 어깨에 둘러메고 숨 가쁘게 헐떡이고 있다.     단오라 차량이 급증하는 바람에 차도로 비집고 들어서기도 힘들 것 같았다. 들놀이, 공원놀이 떠나는 놀이버스가 늘고 자가용이 급증한 걸 보면 오늘도 모아산 소나무밭 놀이터는 인산인해를 이룰 것 같았다. 벌써 몇 십 대나 되는 관광버스가 모아산 공원 정차장에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정순아, 나 요즘 허인숙 어머니의 일기를 보면서 이상한 생각에 갈마들고 있어.》     나는 내가 본 허인숙 어머니 일기의 내용을 들려주었다.     《이상하지 않아? 귀밑기미도 같고 출생 년월일도 같고…》     《그럼 오빠가 그 사생아라고 생각해?》     내 이야기에 귀를 솔깃하던 정순이는 내게서 눈길을 떼지 않으며 물었다. 나는 차창을 열고 길게 삼켰던 담배연기를 뿜느라 정순이를 보지는 못했지만 지금 정순이의 눈이 내 얼굴에 자국을 남기고 있다는 것을 제6감각으로 알고 있었다.     《어쩐지 자신을 자꾸만 그 쪽으로 끌어가고 있어.》     《의심병.》     《뭐야?》     《지나친 집착과 과로에서 오는 피해망상증.》     《직사포!》     《자, 출발!》     정순이는 발동을 걸면서 소리쳤다. 승용차는 차량들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고속활주로에 들어섰다. 정순이는 액셀을 힘 있게 밟았다.     《오빤 마음이 너무 여린 게 흠이야. 사람이 악할 땐 악하고 착할 땐 착하고 분별이 있어야 하는데 오빠에게는 착한 일면뿐이야.》     《반편?》     《그럼 내가 멍청이 오빠의 고마로 돼도? 엉터리없는 소리. 많은 사람들이 훌륭한 정치가는 훌륭한 정치수완이 있다고 말들 하는데 그 정치수완이란 게 대체 뭐야? 한 마디로 말하면 자르는 것과 포용이지. 자를 것은 자르고 포용할 것은 포용하는 것이 정치이고 그럴 줄 아는 사람이 정치가 아냐? 그런데 오빠는 포용밖엔 몰라. 그래서 일생동안 관직을 얻은 것이 정(正)자는 달아보지 못하고 부(副)자만 달고 다녔지. 안 그래?》     《그것이 전부는 아니야.》     《물론 그 건 나도 알아. 자른다는 것과 포용은 쉽게 말하면 악과 선인데 선을 베풀어 성공한 사람 얼마나 봤어? 지금 기독교에서도 불교에서도 온 종교계가 선, 선하면서 선을 베풀어야 한다고 떠들지만 선은 악의 전패자야. 영원한 전패자가 될지도 모르고…지금 사업에서 성공한 사람 모두가 선을 앞세운 줄 알아? 악을 앞세우고 악이 성공시켜준 거야. 감옥을 제집처럼 나들던 사람, 불량배라고 몰리던 사람, 그런 사람들이 사업에서 성공한 비결이 지식과 정보가 아니라 얼리고 닥치고 사기치고 그런 악덕으로 일어선 거야.     악과 선이 혼돈하는 현실, 선은 없어도 성공할 수 있지만 악이 없으면 성공하지 못한다는 그 비결을 나는 내게서, 어제의 내게서 찾았어. 오빠!》     《너는 현실을 새카맣게 보고 있구나.》      《그럼 오빠는 범람하는 사회의 비리를 어떻게 봐? 비리를 그래 백성들이 만들어낸 거야? 위에서도 만들고 밑에서도 만들고 나도 만들고 있어.》     《너도?》     《그래. 나도 악으로 성공한 사람이니까. 그 때 내가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은 악만 없었다면 난 두 남자의 희생품이 되어 벌써 쓰레기통에 처박혔을 거야. 지금의 난 옛날 오빠가 생각했던 순진하고 정직한 그런 정순이가 아니야. 난 악한 여자야. 악해도 무지무지 악한 그런 여자, 그것이 지금의 나야. 물론 오빠한테는 옛날의 정순이로 돌아왔지만…아니, 한생 옛날의 정순이가 되어줄 거야.》     《알고 있었어.》     《아니 오빤 다는 몰라. 오빠, 이 정순이가 어떤 여자였는지 오늘 다 말해줄까? 그렇다고 날 버리진 않겠지?     북경에서 내가 외국어학원을 졸업하고 한 일본회사에서 일할 때였어. 가정용 전기기구를 만드는 도요다회사의 분사, 분사라지만 대단한 재벌이었어. 장사골이 튼 늙다리였어. 우리는 만나자마자 눈이 맞았어. 두 대상이 눈이 맞는다는 건 서로가 상대방을 탐닉하고 무언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 아니겠어? 늙다리는 나의 젊음과 패기를 탐닉했고 나는 늙다리의 돈을 탐닉했고…결국 나는 내 젊은 육체로 늙다리를 꼬셔 북경에 호텔을 짓는다 빌딩을 짓는다 도요다회사의 상품을 끌어들인다 하면서 일본에 있는 그 늙다리의 자산을 수 없이 중국에 끌어들였어. 그 사이 내 손에 들어온 달러가 얼마나 됐는지 알아? 오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거야. 내 배가 차자 내 손으로 그 늙다리의 회사를 부도내고 그 덕에 빌딩 하나를 먹어버렸어. 생각해봐. 매일 치달아 오르는 북경의 땅값으로 계산하면 그 빌딩 하나만 갖고도 난 일년에 몇 백만 원씩 벌고 있어.     악과 악의 전쟁, 잃는 것도 있고 얻는 것도 있지만 선과 악의 전쟁보다는 몇 갑절 힘들고 치열한 전쟁, 그래도 무언가 남고 얻을 수 있는 전쟁이었어.     한국 기업가와도 나는 선으로 대한 것이 아니라 악으로 대했어. 선은 악의 대명사에 불과했어.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사랑하는 척하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지 오빤 모를 거야. 나는 그런 지겨운 세월 5, 6년을 살아왔어. 내가 이혼소송을 먼저 걸면 빈털터리로 나앉을까봐 전처 자식들을 학대한다 친지관계를 벌인다 하면서 말썽을 부리고 야단을 치고…결국 제 쪽지에 물러나게 했지. 나는 내 생활비와 딸의 몫으로 서울에 있는, 싯가로 수십 억대 가는 금은방 하나를 차지했고.     오빠, 정순이는 이런 여자야. 오빠가 생각할 수도 없는 악착같은 여자야. 이러지 않으면 내가 살아남지 못하는 걸 어쩌겠어? 나는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여야 했어. 내가 더 잘 되기 위해 남을 해쳐야 했어!     알겠어? 오빠, 사람과 사람과의 싸움은 이런 거야. 하지만 오빠는 마음치레만 하면 모든 것이 저절로 굴러들어오는 줄로만 알지. 현실은 너를 외면하고 현실은 너를 그렇게 대하지 않는데 오빠는 그 현실을 태산같이 믿고 현실이 너에게 무언가를 하사할 것l라고 믿고 있지. 냉혹한 현실의 노예, 오빠는 너무나 고루해. 난 오빠의 그 것이 싫어!》     《이제 싫다는 그 말 몇 번 들었지?》     《오빠가 현실을 투시하는 작품을 내놓을 때까지, 귀 아플 때까지 할 거야.》     《사람이 사는 방식이 서로가 틀린다는 걸 너도 모르진 않겠지?》     《하지만 살기 위한 수단은 한 가지뿐이야. 네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고…경쟁 자체가 그 것 아냐? 기업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나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정순이의 말엔 일리가 있었다. 내가 아무리 날뛰는 작가라 해도 정순이의 현대적 사고방식과 창의력, 모험성에는 미칠 바 못되었다.     냉혹한 현실의 노예?     나는 지금까지 현실에 바칠 것만을 생각하며 살아왔었다. 아니 바치면서 살아왔다. 그 것으로 나는 기뻤고 그 것으로 만족했다. 심지어 《문화대혁명》이라는 엄혹한 현실이 나를 철창 속에 밀어 넣었을 때마저 나는 현실을 위해서 내가 못 다 바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했었다. 얻는다는 것에는 전혀 마음 쓰지 않은 나였다. 나는 지금껏 이 것을 나의 귀중한 수장품으로 생각하며 대대로 물려줄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다.     그렇다면 내가 현실을 대했던 것처럼 현실도 나에게 줄 것만을 생각했던가? 나를 죽였다 살렸다한 것도 현실이요, 박대하고 천대했던 것도 현실이었다. 아니 그건 지나친 말이다. 나에 대한 보상으로 부(副)자라도 주었으니까.     불공정한 것이 현실이요, 공정하지 못한 것이 현실이라는 말이 있다. 현실 자체는 누구에게나 다 공정한 혜택을 주지 못한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영악이 성실을 찜쪄 먹는 현실을 두고는 아연해질 수밖에 없다.     정순이와 나는 비암산 고개를 치달아오를 때까지 말 한 마디 없었다. 나는 현실을 탐색하느라 입 놀릴 여유를 갖지 못했고 정순이도 깊이 생각하는 무언가가 있는 듯했다.     《오빠, 난 왜 오빠만 보면 그냥 꼬집고 싶어질까?》     백미러에 나를 피끗 쳐다보는 정순이의 눈이 나타났다.     《사랑하기 때문에.》     《말이 다사해지는 건?》     《믿기 때문에.》     《오빠, 오빠도 그렇게 생각했어? 똑 같은 생각, 완연한 일치! OK!》 정순이는 철부지 애들처럼 엉덩이를 달싹이며 연신 OK를 불러댔다.     《멋져! 멋진 오빠야!》     《걸림돌만 되지 않았으면 족하겠어.》     《오빠, 나 절대 오빠의 가정 파괴하지 않고 재미있게 살 거야. 고마, 알겠어? 고마로 말이야.》     《힘들 걸?》     《그래 힘들어, 오빠를 위해 오빠의 가정을 파괴하지 않는다는 것이 내가 악착같이 돈을 긁어모을 때보다 더 힘들어. 힘들지만 지켜갈 거야.》     《그 소리도 두 번째 듣는데?》     《이번이 마지막!》     언뜻하는 새에 우리는 비암산 고개를 넘었고 지금은 무연한 허래성벌(동성벌)을 끼고 달리고 있다.     해란강물을 다분히 먹은 갈아 번진 논밭들이 거울처럼 안겨왔다. 벌도 시원하고 마음도 후련했다.     두도진을 지날 때였다.     정순이 식품상점 앞에서 차를 세웠다.     《쉬어가려구?》     《노인휴양소로 가면서 단오 날 빈손으로 가나?》     《아유―깜짝이야.》     나는 그 때까지 빈손이라는 것도 잊고 있었다. 노인들 대접도 대접이려니와 허인숙 어머니의 묘소를 소주 한잔 없이 가다니? 이런 얼간이라니?     내가 승용차에서 내렸을 때 정순이는 벌써 주인과 함께 사과상자며 귤상자며 음료수상자며 술상자며 상자 째로 승용차 뒷좌석에 싣고 있었다. 나는 셈을 치르려고 돈지갑을 꺼냈다. 내가 매장 앞에서 주인과 물건값을 계산하는데 다이아몬드반지가 반짝하면서 하얀 여자의 손이 내 돈지갑을 막는 것이었다. 정순의 손이었다.     《여자를 옆에 두고 남자들이 돈지갑에 손을 넣는 건 난 질색이야.》     나는 군말 없이 돈지갑을 되넣고 정순이에게 밀맡겨버렸다.     《너 하나 차고 났더라면 천하를 호령했을 텐데…》     《그래? 그랬더라면 지금쯤 나는 벌써 거지가 되어 길거리에 나앉았을 거야.》     승용차는 어느새 약수동마을을 빠지고 있었다. 녹엽이 짙어져선지 지난 봄 약수동에 들어섰을 때처럼 약수동마을은 갓 겨울을 털고 앉은, 동면을 겪은 부억부억한 얼굴이 아니었다. 잠을 채 깨지 못한, 머리가 더부룩한 얼굴들이 문짝을 비집고 택시를 지켜보던 그런 눈들도 아니었다. 기둥이 비뚤고 게딱지처럼 발발 기는 집들에도 노오란 볏짚지붕이 얹혀 쌀 익어가는 내음을 피웠고 흙에 묻혀 사는 사람들의 독특한 체취를 풍기고 있었다. 폭우가 쏟아지면 폴싹 물앉을 것 같은 강풍이 불면 기둥뿌리까지 뽑혀갈 것 같은 헐망한 집들에도 집 생색을 내느라 울바자까지 가뿐하게 둘러서 있었다.     초봄에 봤을 때만 해도 그래도 살맛나는 약수동이었다.     단오라지만 약수동은 단오 맛을 잃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개울가 버들방천에 그네를 매고 모래사장에 씨름장을 닦았으련만 지금은 그네도 널뛰기도, 씨름판도 사라져버린 지 오래다. 농망기라 그럴 새가 없었던 것이다.     약수동 노인휴양소도 약수동 마을과 진배없었다. 단오라는, 일력이나 달력에 붙은 두 글자뿐 옛 그림자도 찾을 수 없었다. 옛날 같으면 강가 버들숲 속에 척 다리를 토시고 앉아 수염을 쓱 내리쓸며 아들의 씨름을 구경할 할아버지들이나 치마저고리를 곱게 입고 그네줄을 따라다니며 딸이나 며느리의 그네를 응원할 할머니들이 지금 휴양소 뜰 안에서 남새를 가꾸고 있다.     힘자라는 데까지 할 수 있는 데까지 노인 모두가 여력을 바치고 있다.     우리의 승용차가 휴양소 대문을 비집고 들어서자 처음 맞은 여인 역시 앳된 목소리의 임자―휴양소의 딸이요 어머니라 부르던 한영희 소장이다.     《오셨어요? 오실 줄 알았어요. 꼭 오시리라 믿었어요.》     내가 땅에 발을 내려놓기도 전에 영희는 내 손부터 덥석 잡으며 밝게 웃었다. 내가 처음 전화에서 들었던 소리, 허인숙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떠나갈 때에 들었던 그 소리 그대로다. 자신의 말에는 에누리가 없고 자신의 말을 거슬려본 사람 없다는 그런 자신감과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사모님이세요?》     뒤늦게 내린 정순이를 보자 영희가 나를 빠끔 쳐다보며 물었다.     나를 궁지에 몰아넣는 난처한 물음이다.     《동생예요.》     내가 우물거리며 어떻게 대답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을 때 정순이는 손을 내밀며 자기소개를 했다.     《아, 그러세요?》     영희는 스스럼없이 정순이의 손을 잡아주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그 눈길은 문 선생님에게도 여동생이 있었던가요? 하고 묻고 있었다. 의심이 병이라고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내 신상을 꿰질러보고 묻는 차디찬 눈길 같았다.     나를 허인숙 어머니의 친자식으로 알고 있는 노인들이 일손을 털고 우리한테로 몰려들었다. 나는 노인들에게 인사를 올리고 영희를 따라 소장실이자 침실인 그의 사무실에 들어섰다.     현관에도 사무실에도 쑥내가 물씬했다. 싱그러웠다. 콩기름과 참기름에 절었던 몸이 모공을 활짝 열고 쑥대를 감빨아 들이느라 입을 짝짝 벌리고 있었다. 그래서 몸이 거뜬해나는 것일까?     《단오 전 쑥은 보약이라면서 노인들이 떡쑥을 뜯어말리는 통에…》 영희가 미안해했다.     《시내에서는 돈을 주고도 맡을 수 없는 내음이요.》     《쑥 냄새 진짜 싱그러워요.》     쑥내에 취해서 그랬던지 쑥내를 탐내서 그랬던지 정순이도 들숨을 길게 쉬였다가 호―하고 내뿜으며 기분 좋게 말했다.     내 눈길은 나도 모르게 서류 궤짝 위에 놓여있는 큼직한 종이함에 쏠렸다. 두 달 전 내가 이 곳을 떠날 때의 그 모습 그대로 자리지킴을 하고 있었다.     허인숙 어머니가 아들에게 줄 유물로 남기셨다는 영예의 증거물―상장과 깃발이 들어있는 함이었다. 임자를 고대하면서 드팀없이 앉아있는 함.     (빨리 친아들을 찾아야겠는데…)     나는 종이함을 보자 내가 해야 할 일을 못 다한 것 같은 책임감과 허인숙 어머니의 소원을 이뤄드리지 못했다는 미안함으로 감히 그 함을 정시할 수 없었다.     (미안합니다. 어머니.)     《일기는 다 보셨어요?》     영희의 목소리가 귀전에서 울렸다.     《일기요? 미안하지만 다 보지 못했소. 나로서는 열심히 보느라 했는데 분량이 하도 엄청나서…》     《괜찮아요. 천천히 보세요.》     《저―영희, 삽 한 자루 빌릴 수 없을까?》     《삽이요?》     《청명에 와서 가토도 못해드렸는데 허인숙 어머니의 묘소에 흙 한 삼이라도 올려놓고 싶소.》     《농촌인데 삽이야 없겠어요?》     취사칸 쪽에선 뭔가 지지고 볶으면서 아낙네들이 떠들어대고 있었다. 그 소음은 귀찮게 들리는 잡음이 아니라 이곳에도 목숨들이 붙어있고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삶의 활력소로 안겨왔다. 지난 번 허인숙 어머니가 사망했을 때의 가담가담 들려오던 노인들의 흐느낌소리와는 완연히 다른 음식이요 색채다.     《오늘 단오라고 동네아주머니들이 모여와 점심준비를 하느라 그래요.》     《좋은 일들을 하고 계시는군.》     《명절마다 저렇게 찾아와요. 저―제가 묘소를 안내하지 않아도 되겠지요? 문 선생님이 알고계시니까요.》     《멀지도 않은데 괜찮소. 어서 볼일 보오.》     나는 삽을 받아 쥐며 기꺼이 대답했다.     정순이와 나는 제물을 챙겨들고 공동묘지를 찾아 뒷산 기슭을 향했다.     푸른 숲이 날짐승을 불러들인다는 푸르른 대자연, 청송, 홍송, 낙엽송이 빼곡히 들어선 언덕마을, 문만 열면 들나물, 산나물 뜯을 수 있는 오붓한 동네…이 곳이 골회만 남긴 영혼들이 살고 있는 고향이다.     《오빠, 땅 밑에 누워있는 저분들이 우리를 보면 뭐랄까?》     《미친 년놈들, 이렇게 질책할 거야.》     《아니, 너희들이 부러워. 이럴 거야.》     《왜?》     《이념의 만족 속에서 가치관을 모르고 살아오신 분들, 노력만을 알고 향수를 모르고 한생을 보내신 분들이니까.》     《그렇다고 자신들을 후회하지도 않았을 거야.》     《오빠, 바로 그거야. 그것이 불쌍하고 가련해. 죽으면서도 어째 죽는지 모르고 죽는 그것이…》     《너는 다 알고 죽을 것 같아?》     《조금은 알 것 같아.》    《알아? 알면 얼마나 알 것 같아? 우리가 모르고 있는 것이 얼만데? 모르고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하긴 모르고 죽는 것도 복 중의 복이야. 알려고 하면 끝이 없고 알고 나면 머리만 아프니까. 현실에 대한 도피보다 현실에 대한 무마, 그것이 제일 편안한 길이니까.》     《또 시작하는 거야?》     《아니, 기권!》     우리는 곧바로 허인숙 어머니의 묘소를 찾아갔다.       묘지 앞에서 나는 어정쩡해질 수밖에 없었다. 다른 묘지들은 청명에 가토를 한 흙들이 채 풀리지 않아 흙덩이들이 듬성듬성 보였지만 허인숙 어머니의 묘지는 떡가루를 뿌린 듯 흠잡을 곳 없이 보드라운 흙으로 덮여 있었기 때문이다.     흙 한 삽을 더 떠 얹거나 흙 한줌을 쥐어내도 균형을 잃고 흠집이 생길 것 같이 그렇게 잘 가꾸고 다듬어진 묘지다.      새로 쓴 묘소라 다른 묘지보다 몹시 어설프리라 믿었고 그래서 삽까지 가지고 왔는데 진짜 생각 밖이었다.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이 스치고 지나갔음이 틀림없었다. 단 하나 어설픈 것은 《현비유인 허인숙지묘》라고 통나무를 깎아 나무갓을 씌워 만든 비석 아닌 《비석》이었다.     《왜 비석을 세우지 않았지?》     《내가 어찌 아나? 정부에서 할 탓인데.》     《영웅에게 동상은 만들어주지 못할망정 돌 하나 세워주지 못해?》     정순이는 머리를 살래살래 저었다.     《오빠, 우리 추석에 다시 오자. 내가 비석을 세워드리겠어.》     《생각 잘했구나. 나도 방금 그 생각 했더랬어.》     《오빠와는 언제나 일치!》     우리는 묘전에 백지를 펴놓고 갖고 온 제물을 챙겼다. 간소하다 못해 눈에 차지도 않는 제물을. 그리고는 정성껏 절을 올렸다.     《오빠, 집체호 때의 허인숙 어머니 생각 나? 오빠는 나보다 3년 앞서 나갔으니 더 잘 알거야. 새벽마다 오줌통 지게를 지고 집집마다 돌면서   〈요강 내놓으시오. 요강 내놓으시오〉하던 허인숙 어머니의 목소리가 지금도 들려오는 것 같아.》     《정치는 가혹한 거야. 몇 십 년 혁명에 몸 바쳐 온 영웅들, 하루 새에 단두대에 앉히고 오줌 모으는 똥통꾼으로 만들었으니까.》     나는 지나간 나날의 죄의식과 자책감에 나도 몰래 얼굴이 붉어졌다.     《1970년였어…》     나는 요즈음 파랗게 장식하며 자라는 풀싹들을 살펴보며 감회에 젖어 말했다.     《우리들이 배낭을 메고 샘물골 집체호로 내려갔을 때였어.     40대의 여인이 매일 똥통을 메고 온 마을 변소를 돌면서 똥을 치는 걸 봤어. 남자도 아닌 여자가 말이야. 날 밝기 전이면 〈요강 내놓으시오〉 〈요강 내놓으시오〉하는 그 여인의 목소리가 우리 잠을 깨우고. 처음에 나는 그 여인을 무심히 보았고 그 소리도 무심히 들었어.     그 후 정치대장이 우리 집체호에 와서 샘물골 계급투쟁 정황을 소개해주었을 때에야 그 여인이 바로 전국에 이름 날린 허인숙이라는 걸 알았어. 소학교 때부터 내 우상이 되어주고 방향이 되어주던 어머니가 바로 〈똥통 여인〉이라는 걸 알았을 때 난 어안이 벙벙해지고 말았어.     〈겉은 조용한 것 같지만 우리 샘물골에는 계급투쟁이 치열합니다. 허인숙과 같은 자본주의 길로 나아가는 집권파의 사냥개가 있고 갈보가 있습니다. 그 놈들은 언제든 복벽을 꿈꾸고 있습니다.〉     정치대장의 연설은 이렇게 끝났어. 그래서 내가 고뿔에 걸렸을 때 닭곰탕을 해가지고 온 허인숙 어머니의 닭곰탕 한 방울 마시지 않았고 눈물로 내 곁을 떠나시게 한 거야.     정순아, 너 모를 거야. 림표를 비판하고 공자를 비판할 때 용천공사(지금의 향을 그 때는 공사라 했음)에서는 성세호대한 대비판 운동을 벌였어.     그 때 나는 집체호 호장이었고 입당 대상자였어. 그러니 대비판도 내가 앞장섰지.     투쟁대상은 물론 허인숙 어머니와 용천에 있는 지주 노랑대가리였지. 패쪽을 건 두 사람을 소학교 강당 무대 위에 세워놓고 내가 먼저 대비판을 시작했어.     〈허인숙은 일찍 당내에 기어든 자본주의 길로 나아가는 집권파의 사냥개였습니다. 이 년은 중국의 3세에 희망을 건다는 제국주의의 구미에 맞춰 젊은 세대들을 자기 곁에 끌어들이면서 사탕폭탄을 먹이며 복벽을 꿈꾸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독감에 걸려 앓고 있을 때 닭곰탕을 해가지고 왔던 사실을 살을 붙여가며 폭로했어. 내 말에 장내는 불도가니처럼 끓어올랐고 계급의 의분으로 차 넘쳤어.     〈허인숙은 철두철미 부패한 자본주의 사상에 물젖은 갈보였습니다.〉     나는 마지막 말을 이렇게 맺으며 무대 위에 서있는 허인숙 어머니를 쳐다봤어. 사색(死色)이 되어있었지.     하루 멀다하게 투쟁대회를 벌이다보니 허인숙 어머니가 투쟁 받는 장면을 많이 목격해왔지만 그 때처럼 죽어있는 허인숙 어머니는 처음 봤어. 그 죽은 얼굴에서도 두 줄기의 눈물이 흘러 강한 전등 빛에 반짝하고 불꽃을 튕기면서 내 동공에 반사되었어. 처음 보는 눈물이었어.     구호소리와 환호성 속에서 나는 개잡은 포수처럼 우쭐했지만 그 눈물 꽃을 보는 순간, 내 그만 기가 꺾이고 말았지. 그 어떤 외침도 그 어떤 타격도 그 눈물 꽃을 당할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어. 피보다 진한 눈물이었어.     정순아, 그 일을 두고 나 한생을 후회하면서 살아온 사람이야. 정치대장의 추김에 들어 입당해보겠다고 입당도 못하면서 미친개질한 걸 생각할 때마다 자신을 인간 밖으로 던져버리고 싶을 뿐이야.》     나는 다시 술 한 잔 부어 허인숙 어머니의 묘전에 뿌리고 절을 올렸다.     《죄 많은 이 녀석을 용서해주십시오.》     《오빠도 그럴 때가 다 있었나?》     정순이는 내 거동을 살피면서 물었다.     《있었지. 미쳤을 때.》     《미쳤을 때, 미쳤을 때…》     정순이는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허래성벌을 내려다보았다. 나도 그 곳에 눈을 주었다. 하지만 산에 막혀 벌은 보이지 않고 산 너머 또 산이 보일 뿐이다. 산 너머 또 산이…     우리들이 말없이 앉아 있는데 영희가 숨 가쁘게 우리를 찾아왔다.     《빨리 내려가 점심식사를 합시다. 노인들이 기다리고 계세요.》     《영희, 한 가지 물어도 괜찮겠소?》     《뭔데요? 어서 말씀하세요.》     《이 허인숙 어머니의 묘소에 누군가 왔다가지 않았소?》     《그러지 않아도 식사 후 말씀드리려던 참이었어요. 며칠 전에 강씨라는 노인이 왔다갔어요.》     《강 촌장?》     《우리 휴양소에 찾아와서 허인숙 할머니가 계시던 10호실을 살펴보시고 묘지를 찾아 이렇게 가토까지 깨끗하게 하고 떠나셨어요.》     《어데 계시는지 허인숙 어머니와는 어떤 사이인지 묻지 않았소?》     《왜 묻지 않았겠어요? 아무리 캐물어도 말 한 마디 없이 다시 오겠다는 말 한 마디만 남기고 떠나셨어요.》     《오셨을 때 나한테 전화라도 할 거지?》     《했댔어요. 받는 사람 없었어요.》    《낭패구만 낭패!》     나는 신기루처럼 떠오르던 황홀한 궁전이 순식간에 기둥 뽑히고 기왓장 날아가고 들보가 부러지면서 무너져 내려앉는 듯한 그런 참담한 기분이 들었다. 강 촌장을 만났다면 모두 다 알 것 같고 모두 다 찾아낼 것 같은 그런 흥분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허인숙 어머니의 정인(情人)을 보고 싶다는 호기심 때문이었을까? 강 촌장을 만나지 못한 것은 정말 맹랑한 일이었다.     우리는 휴양소 노인들과 함께 단오를 쇠고 오후 일찍 차머리를 돌렸다. 울퉁불퉁한 시골의 돌밭길은 우리를 못 견디게 들썩거려 놓았지만 정순이도 나도 말이 없었다. 나만 보면 꼬집고 싶다던 정순이마저 앵무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승용차가 국도의 입구에 이르자 정순이는 브레이크를 밟으며 나를 쳐다봤다.     《오빠, 산천어 별장이 멀지 않았는데 산천어 몇 마리 낚아가지고 갈까?》     《글쎄…》     《그래야 우리도 멋지게 단오를 쇠지?》     《글쎄…》     《산천어 사시미에 양주, 생각만 해도 기분난다.》    《좋도록…》     《아니 오빠, 오늘 왜 이래? 혼 나간 사람 같아.》     《응? 오…》     그 때에야 나는 강 촌장이라는 한 노인으로부터 나를 떼어냈다. 그 때까지 나는 그냥 강 촌장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신비하게 나타났다가 감쪽같이 사라진 인물, 그 인물이 나에게는 강한 충격제였고 무서운 자극제였다. 허인숙 어머니가 임신의 진통과 해산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항시 잊지 않고 그리워하던 강 촌장에 대한 그 정감의 여파가 내 흥분조를 건드려서 그랬는지 아니면 고요히 자던 호수에 파문이 일듯 머리 속에 공백으로만 남아있던 빈자리에 강 촌장이라는 이름이 뛰어들며 일으킨 물갈기라서 그랬던지 나는 강 촌장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래? 그럼 어쩌지?》     나는 그제야 히죽 웃으며 정순이를 쳐다봤다.     《이런 때면 오빤 신통히도 바보 같아.》     《네 앞에서만은 언제나 바보가 되고 싶고 애기가 되고 싶어.》     《괴짜, 오빤 괴짜야.》     《방금 산천어를 잡아가지고 단오를 쇠려고 했지? 멋진 생각이야. 자, 산천어 별장으로 출발!》     《오케이!》     정순이는 산천어 별장으로 차머리를 돌렸다. 그리고는 힘 있게 액셀을 밟았다. 도요다 승용차는 물너울이 넘실대는 아동저수지를 옆에 끼고 녹음이 우거진 진둥나무 숲을 헤치며 질풍처럼 달렸다.     오후의 해꼬리를 잡았는데도 산천어 별장에는 승용차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대부분 외제승용차들이었다. 단오라는 이름을 걸고 찾아든 공짜배기들이 아니면 코밑치성을 드리러온 얼렁뚱땅이들일 것이다.     《이거, 기분 잡치는데?》     《오빤 얼굴이 넓으니까  나타나지 말고 앉은 자리에 꼼짝 말고 있어. 오늘은 낚시질 꼴깍 삼키고 산천어 몇 마리 사가지고 가자.》     정순이는 머리 위에 올려 걸었던 선글라스를 내리며 핸드백을 들고 차문을 나섰다.     나는 차창으로 사위를 살폈다. 숲 속에도 사람, 낚시터에도 사람, 산천어 별장은 사람으로 붐비고 있었다. 아직 술상을 차고 앉았는지 별장에서 술 냄새 물씬 풍기는 매듭 없는 소리들이 꼬리를 물고 쏟아져 나왔다. 간드러진 웃음, 허파 빈 너털웃음, 그 웃음소리마저 술 냄새에 절어있었다. 정순이는 별반 지체하지 않고 푸들푸들 뛰는 산천어 세 마리를 비닐주머니에 들고 운전석에 들어섰다.     《남들이 낚은 걸 빼앗아왔어.》     《도적질한 건 아니구?》     《빼앗았건 도적질했건 등호니까 성질은 날강도, 호호호…》     《너는 워낙 하나 차고 났어야 했는데…》     《그랬더라면 오빠를 갖지 못하는 건 어쩌구?》     《허허허…》     《호호호.》     우리는 식었던 마음들을 달구며 귀로에 올랐다. 정순이의 집은 연길시 개발구역에 새로 지은 아파트단지에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정순이 차에 숱하게 앉아 다녔고 그녀와 많은 접촉을 가졌지만 집을 어디다 잡았는지 어떻게 사는지 모르고 있었다. 묻지도 않았고 정순이도 알려주지 않았다. 우리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서로를 아끼고 탐닉하면서도 서로를 집에 끌어들이지 않았다.     《삼단원 삼층 동쪽 집, 차를 차고에 넣고 올 테니까 오빠 먼저 들어가요.》     정순이는 집 열쇠를 나에게 맡기며 말했다.     나는 그 때까지도 비닐주머니 속에서 푸들푸들 뛰는 산천어를 들고 삼층 동쪽 문을 열었다. 내가 상상했던 것처럼 정순이가 살고 있는 집은 궁궐처럼 화려하지 않았다. 면적이 90평방미터 쯤 된다고 해야 할까? 객실과 침실 두 칸, 취사칸, 위생실… 아파트단지를 돌아다니며 내가 흔히 보아오던 그런 보통 살립집이다. 장식도 수수했다. 문틀과 문 모두를 홍송으로 만든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일까?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하나도 없다.     《이 걸 어쩌지? 아침에 오빠가 부르는 바람에 들볶아치다가 그만 집을 치우지 못해서…》     정순이가 뒤따라 들어서며 살짝 보조개를 팠다.     《아니, 괜찮아.》     《오빠, 미안해.》     정순이는 내 왼쪽 볼에 입술을 살짝 댔다 떼며 해쭉했다.     살림기구라든가 가정용 전기기구라든가 집 장식이라든가 그 모든 것을 보아서는 정순이가 자랑하던 그런 갑부 같지 않았다. 침실도 그렇고 객실도 그렇고 눈을 잡아끄는 것이 하나도 없다. 객실에는 심지어 소파마저도 없다. 그러다 내가 놀란 것은 북쪽 칸을 보는 순간이었다. 당초 침실로 쓰게 되어 있는 것 같은데 정순이는 침실이 아니라 사무실로 쓰고 있었다. 큼직한 테이블과 회전의자.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팩스, 노트북, 전화, 복사기… 현대화 작업설비와 통신설비를 갖춘 작업실이다.     《오빠, 집 안이 스산하지?》     《아니, 이 북쪽 칸에서 진짜 너를 보았고 네 얼굴을 봤어!》     《내 지휘부야. 난 없으면서 있는 것처럼 버젓하게 차려놓는 건 질색이야. 필요 이상은 거추장스러우니까.》     나는 정순이의 거처를 살펴보면서 내 아내를 떠올렸다. 정순이 집에 비하면 우리 집은 온갖 잡동사니가 꽉 들어찬 숨 가쁜 박물관이다. 원래 3세대 다섯 식구가 살던 집이라 가장 집물이 많은 탓도 있겠지만 남 다른 것이나 남들에게 있는 것이면 승강내기로 사들이는 아내의 고집스런 취미 때문에 공간을 찾을 수 없다.     식기만 해도 그렇다. 꽃 사발. 꽃 소래, 꽃 종지…실제 사용하고 있는 것은 십분의 일도 안 되건만 눈요기에 그치는 이런 그릇들이 찬장에 넘쳐난다. 그래도 부족한지 계속 사들인다. 아내의 말을 빌면 싱크대나 찬장에서 여자의 알뜰한 솜씨를 읽을 수 있다나? 진짜 곰팡내 나는 여자다. 그 뿐 아니다. 침실이나 객실은 완전한 미술 전시관이다. 내가 그림을 걸어놓는 건 진품 한 두 가지면 된다고 입이 닳도록 말했건만 아내는 어디서 얻어오는지 싸구려그림이나 족자를 가져다 걸어놓는데 마지막엔 내가 손을 들고 나앉았다. 집 안에 들어서면 첫눈에 띄는 것이 그림이나 족자라나?     작은 것과 세세한 것에 눈을 도사리면서 큰 것을 멀리하는 여자, 그 여자가 바로 내 아내다.     《오빠. 이건 모두 일본 영감쟁이와 한국 기업가한테서 배운 거야. 그들은 사업에 필요한 것이라면 돈을 아낄 줄 모르지만 생활에 불필요한 물건엔 눈부터 찡그려.》     《옳은 처사야, 돈 팔고 부담감 가지는 멍청이 짓, 우리는 이 때까지 그런 부담감을 안고 살아온 족속이야. 기업을 시작하기 전에 돈을 대출받아서는 자기의 아파트와 자가용부터 사고 상품이 나오기 전에 그 상품의 성공 여부도 모르면서 축하파티부터 여는, 우리는 그런 것에 물젖은 동방족속이야.》     《오빠 우리의 전투가 또 시작되는 거야?》     《아―니, 투―항!》     《오빠, 사시미 잘한댔지?》     《물론이지. 어부니까.》     나는 겉옷을 훌렁훌렁 벗어 정순이의 침대 위에 팽개치고 행주치마를 걸치며 싱크대에 마주섰다. 그리고는 큼직한 소래에 물을 담고 비닐주머니 속의 산천어를 쏟아놓았다. 산천어가 풀쩍풀쩍 뛰면서 눈 깜짝할 새에 싱크대를 물판으로 만들었다.     나는 꼬리질하면서 계속 물방울을 튕겨 올리는 산천어 한 놈을 꽉 틀어잡고 칼등으로 대가리를 콱 쳤다. 그 놈은 꼬리를 파르르 떨면서 코에 피를 흘리며 죽어갔다.     《아유 깜짝이야. 오빤 너무나 지독해! 잔인해!》     냉장고에서 홍당무며 양파, 부추며 마늘을 꺼내 다듬던 정순이는 내 거동을 지켜보다가 새된 소리를 질렀다.     《아직 너를 따르자면 멀었어!》     《내가 그토록 지독했나?》     《나는 고작 물고기를 죽였지만 너는 사람을 잡았으니까.》     《오빠, 고만해. 지나간 일 생각하면 지금도 입에서 신물 나!》     《좋아, 우리의 3차대전 결속.》     나는 산천어 세 마리를 다 죽여 놓고 고기를 발라내 물고기 등심에 칼끝을 박았다. 그런데 칼이 들지 않았다.     《아니, 이 것도 칼이야? 두부모도 베지 못하겠다. 숫돌 없나?》     《내가 말했잖아? 필요용품은 완전 구비.》     정순이는 싱크대의 왼쪽 서랍을 열더니 숫돌 2개를 내놓았다. 센 숫돌과 보드라운 숫돌이다. 나는 정순이를 다시 쳐다보았다. 사람마다 생활양식과 방식 추구는 서로 달라도 생활의 최저 수요는 같은 모양이다. 의식주의 최저 필수품, 그 것 말이다.     《왜 사람을 그렇게 봐?》     《치마 두른 떨렁방울, 여자라는 티를 속일 수 없지.》     《이게 어디 여자가 할 일이야? 남자가 할 일이지.》     《생활의 적응력은 여자가 더 강한 법이야.》     《오빠에게서 배웠어. 오빠가 첫 원고료를 타가지고 우리들이 술을 마시고 취하던 그날, 오빠가 처음으로 산 물건이 뭐야? 우리 집체호에서 쓸 센 숫돌과 보드라운 숫돌, 잊었어?》     《그랬던가? 허허허.》     정순이는 나물을 씻고 나는 고기살을 바르고…처음으로 남의 간섭도 남의 눈치도 볼 것 없는 집안에서 우리들이 먹을 음식을 우리들이 장만하는 자리…부부간에 만들고 부부간에 갖는 그런 자리가 별 뜻도 없이 너무나 평범한, 너무나 보잘 것 없는 자리로 단단히 되었지만 오늘 정순이와 나란히 선 이 자리는 쓰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자리다. 다듬고 가꾸고 싶은 자리다.     나는 큼직한 꽃 접시에 얼음을 한 번 깐 다음 정순이가 씻어 놓은 상추를 펴고 그 위에 발가우리하게 저민 산천어 고기를 차곡차곡 펴놓았다.     《오빤, 작가가 되기엔 너무 아까워. 요리사가 될 걸 그랬어! 오빠 요리솜씨 일등!》     내 솜씨와 갖춤새를 지켜보던 정순이는 손뼉을 치며 환성을 질렀다. 환성을 들을 만도 했다. 껍질을 바르고 고기를 뜯어내 저미는 시간이 몇 분 걸리지 않았으니까. 《집체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친구들끼리 천렵을 가거나 낚시질 갈 때면 안주감과 점심채비는 내 차례다. 내가 끓인 어탕이 제일 맛있다나? 나도 그렇다. 희한하게 생선국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끓이기를 좋아하고 끓일 공구를 마련하기 좋아한다. 하기에 천렵이나 낚시질 떠날 때면 언제나 나에게 가방 하나가 더 생긴다. 끓여먹을 공구와 양념장, 잡동사니가 들어있는 가방 말이다.     정순이는 남은 산천어 한 마리에 고기를 발라낸 산천어까지 넣고 끓이면서 한국식 해물탕을 만든다면서 야단이다. 내가 맛을 봤다. 뭔가 부족했다. 홍당무, 깻잎, 콩나물…나도 한국에 가서 먹어봤지만 들어가야 할 것은 거진 들어간 것 같았다. 그런데 뭔가 부족했다. 나는 얼른 된장 반 숟가락을 떠 넣었다.     《오빠, 해물탕에 된장 넣어?》     《해물탕이 따로 있다던? 맛나면 해물탕이지. 자, 맛봐!》     나는 국자에 국물을 담아 정순이의 앞에 내밀었다.     《된장냄새 나는 해물탕?》     《어서 맛보라니까.》     정순이가 국물을 맛보았다.     《아유―둘이 먹다 죽어도 모르겠네. 오빠, 그런데 왜 된장냄새가 안 나지?》     《너 우리 민족의 이 된장이 만능 양념이라는 걸 몰랐니? 옛날에도 노벨상이라는 것이 있었다면 분명코 우리의 된장이 노벨상을 탔을 거야. 된장을 조금 넣으면 비린내도 가시고 느끼한 맛도 없애고 입안이 거뿐해져, 너 돼지고기도 맹물에 삶지 말고 된장국에 삶아봐. 고소한 맛과 시원한 맛, 일품이야 일품!》     《오빠는 검식가야. 아는 것도 많고.》     《너를 내놓고는…》     《뭐야?》     정순이는 내 가슴을 다듬이질했다.     《항복. 내가 왜 널 몰라?》     나는 행주치마를 두른 그대로 정순이를 포옹했다. 달콤한 정순이의 입김이 귀방울을 간지럽혔다.     《오빠. 술과 안주는 동반이라면서?》    정순이는 위스키 한 모금에 산천어 사시미 한 점을 입에 넣고 씹으며 말했다.     《누가 그래?》     《안주가 없으면 술을 못 마시고 술이 없으면 안주를 집지 못 한다고…》     《동반, 동반 잘 아네? 그건 술 마실 때 남자가 여자를 두고 한 소리야. 여자 없으면 술맛 간다는 술상의 남녀동반이야.》     《그래서 요즘 남자들은 술상에 앉아도, 노래방에 가도, 들놀이에 가도 놀이방 아가씨를 부른다 애인을 부른다 하며 난리야?》     《또 정치가 시작되는 거 아냐? 이거 술맛 간다.》     《그럼 스톱. 오빠 자―쨍!》     정순이는 위스키 잔을 내 잔에 툭 치며 눈귀부터 웃었다.     위스키 잔에서는 얼음덩이들이 잘가닥잘가닥 소리를 내고 우리의 입술에선 쪽쪽 입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소리가 이어졌다.     내가 언제부터 내 필묵을 아끼지 않는 버릇을 키웠는지 모르겠다. 나는 글깍쟁이라는 별호를 달고 있는 사람이다. 웬만해서는 붓을 들지 않고 붓을 들었다하면 말 한마디 글 한자를 톱으로 켜먹는다. 그것도 자기가 먼저 울고 웃지 않으면서 어찌 독자들을 울고 웃기겠는가 하면서 정서의 흐름을 다듬고 또 다듬는 글벌레다. 이것저것 생각나는 대로 마구잡이 글을 쓰는 잡(雜)가가 아니라 소설 하나만을 틀어쥐고 놓지 않는 단(單)가 글쟁이다.     이렇듯 소중하게 아껴오던 자신의 필묵을 언제부터 망탕 놀렸던가? 작년? 재작년? 아니 몇 달 전부터인 것 같다. 정순이를 만난 그 날부터. 이상했다. 정순이에 대한 글, 정순이와 만났던 이야기의 글은 싫지 않았다. 쓰고 또 쓰고 싶었다. 그래서 정순이만 만나면 내 글은 저절로 길어진다. 독자들이 싫증을 느낀다는 걸 알면서도 붓을 놓고 싶지 않은 걸 어쩌랴?     나는 지금 정순이의 말, 행동, 정서, 심지어 나보고 반말을 쓰는 것마저 아무런 가공도 없이 원시형태 그대로 적는다. 가미하거나 다듬는다면 정순이의 형상에 손상이 갈 것 같기 때문이다. 이것이 지금 나의 진솔한 고백이다.     《오빠, 내가 다른 남편 얻는다면 오빤 울 거지?》     위스키 한 병을 굽내고 다른 병뚜껑을 땄을 때 정순이는 나에게 물었다. 만취는 되지 않았지만 알딸딸한 기운을 넘어 아리송한 몽롱의 입구에 들어섰을 때였다.     《너 오빠를 잘 안다면서 그걸 물어?》     《한 마디만 듣고 싶어서.》     《울 거냐고?》     《그래 맞아. 그 대답이야. 오빠, 말해줘! 울 거라고.》     《속으로 울면서도 겉으로는 웃는 그런 오빠를 너 몰라서 묻냐?》     《그 말 싫어! 듣기 싫어!》     《울 거야. 아니 널 죽일 거야! 첫사랑이 이토록 무서운 줄 난 몰랐어! 너도 죽이고 나도 죽을 거야!》     나는 술 광기를 썼다. 미친놈처럼 소리쳤다. 나머지 위스키를 단숨에 마셔버리고 술잔을 동댕이쳤다. 쨩―소리와 함께 술잔이 구들바닥에서 박살났다.     《오―빠!》     순간 정순이는 내 품에 안기며 어깨를 들먹거렸다. 나는 정순이를 으스러지게 껴안았다.     《오빠, 이게 오빠의 참 모습이야. 집체호 때의 오빠, 그런 오빠로 돌아온 게 고마워 오빠―》     나는 어떻게 침대에 누웠는지 그리고 어떻게 잠들었는지 몰랐다. 옷을 입은 채 술에 골아떨어진 게 분명했다.     누군가 나를 흔드는 바람에 눈을 떴다.     정순이가 나를 흔들고 있었다.     《오빠, 너무 늦겠어. 빨리 일어나.》     나는 흐리멍텅한 눈길로 방안을 살폈다. 내 침실이 아니다. 눈 설고 낯선 침실이다. 불은 죽이고도 제 잠자리를 찾던 내 침실이 아니다.     《이거 어떻게 된 일이지?》     《오빤 많이 취했더랬어. 나도 취하고.》     《오빠, 어서 집으로 돌아가!》     《괜찮아, 오늘 저녁 자고 가겠어!》     《안돼. 오빠! 언니가 기다리고 있잖아?》     《괜찮아.》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자고 싶었다. 정순이의 침대에서, 정순이의 체취가 다분한 이부자리 속에서 하룻밤 푹 자고 싶었다.     《안 된대두. 오빠!》     정순이는 마구잡이로 나를 안아 일으키며 말했다.     《집에서 언니가 기다리잖아. 오늘 단오 아냐?》     《단오면 어떻구 추석이면 어떻구 아버지도 계시지 않은데 괜찮아.》     《오늘 저녁만은 안 돼! 언니를 실망시켜선 절대 안 돼!》     《괜찮다지 않아!》     내가 발끈했다.     《안 돼! 언니가 얼마나 오빠를 사랑하고 있다고? 내가 질투 할 지경으로 말이야. 그런 언니를 실망시키다니? 안 돼! 빨리 일어나!》     앙탈에 가까운 정순이의 들볶음을 견뎌낼 수 없어 나는 일어나 옷매무새를 바로 했다. 나는 가야 했다. 앞으로의 정순이를 위해서, 앞으로의 나를 위해서, 앞으로의 우리를 위해서 나는 꼭 가야 했다.     《오빠, 오빠를 보내고 나면 난 장밤 홀로 울 거야. 오빠는 소설에서 고독이라는 단어를 쉽게 써먹지만 그 고독이 얼마나 무섭고 얼마나 지독한지 오빠는 잘 모를 거야. 고독―그건 죽음의 전주곡, 지옥의 첫 발자국이야.     오늘 저녁 나도 오빠를 돌려보내고 싶지 않아. 언니한테 뺏기고 싶지 않아. 하지만 나는 오빠를 뺏어야 하고 뺏기지 않으면 안 돼. 나도 여자이니까. 어머니니까. 오빠가 결혼한다는 소식 들었을 때처럼 나는 여자이기 때문에 지고 말았고 여자이기 때문에 져야 해!     오빠는 몰랐을 거야. 오빠가 결혼한다는 청첩장을 손에 받아 쥐고 내가 얼마나 울었는지를. 그 때 내가 얼마나 오빠를 저주하고 증오했는지를. 오빠의 첫 남성을 내가 가졌고 내 첫 정조를 오빠에게 바쳤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니었어. 끝내는 언니에게 지고 말았다는 참패감에서 오는 실망과 절망 때문이었어. 그래서 울었어. 그래서 자살하려고 수면제 한 움큼 먹었고.     내가 병원에서 의식을 회복하자 오빠에 대한 보복과 언니에 대한 울분을 품고 분연히 낯선 북경 땅을 밟게 됐어. 알겠어? 오빠, 나는 이렇게 성공한 사람이야. 그 증오와 울분이 나를 성공시킨 거야. 그때 내가 오빠의 아내가 됐더라면 지금쯤 이 정순이도 언니처럼 평범한 가정주부가 되고 말았을 거야. 이건 오빠와 언니에게 감사드려야 할 일이야.     오빠, 내가 왜 연길로 되돌아왔고 연길에 온 지 얼마 되지만 오빠를 찾지 않았는지 알아? 솔직한 말을 한다면 보복을 하기 위해서 복수를 하기 위해서였어. 그래서 짬짬이 오빠를 노렸고 오빠의 일거일동을 살폈어. 아니 놀라지 마. 정순이의 솔직한 고백이야.     내가 오빠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을 때 난 우연한 기회에 오빠의 근작 장편소설 〈고독이 머물고 간 자리〉를 봤어. 그 소설에서 나는 내 원형을 봤고 오빠에 대한 원심을 잃었어. 고독이 머물고 간 자리, 우리 두 사람 모두가 첫사랑의 등나무넝쿨에 엉켜 있으며 고독이 머물고 간 자리에서 배회하고 있다는 걸 알았어.     복수? 그건 사랑이었어. 사랑하기 때문에 복수하려 한 거고.     내가 처음으로 연길에 와서 오빠를 만나던 기억 나? 난 보복이냐 사랑이냐를 놓고 며칠 밤 붐비던 끝에 오빠를 꼬셔냈고 오빠를 골탕 먹이려 들었어.     오빠와 언니를 이혼시키고 다시 오빠와 내가 결혼하고 그런 다음 오빠를 내동이치고…그런데 그날, 오빠 앞에서 나는 참패하고 말았어. 고독이 머물고 간 자리를 잊지 못하고 있는 오빠, 변함없는 오빠를 봤을 때 난 오빠의 가슴에 칼을 박을 수 없었어. 아니 내가 오히려 휘말려들고 말았어. 영원히 오빠를 행복하게 해드리고 오빠를 성공시켜드리고 싶었어.     오빠, 정순이 나쁜 년이지? 악착한 년이지? 내 이런 앙심도 모르고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사랑해주고 아껴주는 오빠에게 감사해. 오빠의 그런 마음이 이 정순이를 구해줬고 여자로 만들어줬는지 모르겠어.     오빠, 빨리 떠나. 언니가 기다리고 있어. 내가 지녔던 고독을 언니에게 전가시켜선 안 돼. 알겠어? 오빠! 여자들의 마음 저울에 올리기 힘들다지만 여린 게 여자들이야. 언니가 기다리고 있어. 오늘 나를 기쁘게 했던 것처럼 언니에게도 단오 명절의 기쁨을 갖다 줘.》     《정순아, 고맙다.》     《오빠, 나처럼 나눠가지는 사랑도 있어?》     《나눠가지는 사랑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주는 사람은 나눠주지 못해. 내 동공 속에 네가 들어있듯이.》     나는 정순이의 말에서 경악과 환희를 느끼면서 정순이를 품안에 넣었다.     《오빠, 정순이를 욕하지 않겠지?》     《욕하지. 죽도록…》     나는 정순이를 다시 한 번 으스러지게 껴안았다가 풀어주었다. 그리고는 문을 나섰다.     신원아파트 단지는 저녁이 하품을 하기 전까지는 가로등과 집집마다 쏟아져 나오는 전등 빛으로 대낮처럼 밝아있었다.     오늘은 불단오가 돼서 더위를 일찍 불러들였는지 부르하통하강 둑 산책로엔 치마 바람의 여인들이 애들 손목을 잡고 저녁 산보를 하고 있다. 보기만 해도 여유가 있는 저녁이다.     빨래질하는 여인들의 물방치소리가 유난히 귀맛 좋게 들려온다. 근년엔 드물게 듣는 소리다. 세탁기가 좋다면서도 세탁기로는 묵은 때를 다 씻지 못한다면서 저렇게 빨래감을 갖고나와 강가에서 빨래질하는 우리의 여인들이다. 방치질하고 헹구는 그 모습이 강물에 비낀 전등 빛에 어른거린다.     나는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감옥 같은 집이다. 아버지가 떠나신 후 나는 내 집을 감옥같이 생각해왔다. 집이니 집인가 했고 집이니 찾아들었다. 안식처라는 이미지는 벌써 상실해버린 집, 그 집에 몸을 담그기가 진짜 싫었다. 싫지만 찾아야 했고 들어가야 했다. 가장이라는 세대주라는 의무감이 귀찮게 나를 떠밀고 있기 때문이다.     집안은 환하게 웃으며 나를 맞았다. 현관으로부터 객실, 침실 집안에 있는 전등이란 전등은 다 켜있다.     웬일일까? 내 뒤를 따라다니며 전등불을 끄던 아내가 빈집에 불을 밝히다니?    《아버님이 오셨어요.》     아내는 밝은 얼굴로 말했다.    《아버지가?》     나는 다짜고짜 아버지의 침실 문을 열었다.     《편히 다녀오셨습니까. 아버지!》     《오냐. 콜록콜록.》     《퍽 근심했댔습니다.》     《됐다. 좀 쉬고 싶으니 어서 나가봐라.》     《네.》     나는 아버지의 눈썹부터 바라봤다. 떠날 때는 빳빳하게 빗어 올렸던 눈썹이 축 처져 있다. 좋은 신호가 아니다. 이런 때 아버지에게 위로의 말씀을 올린다거나 군말을 했다가는 무리를 빚는다는 걸 잘 알고 있는 나다. 지지콜콜하는 데엔 질색하시는 아버지시니까.     나는 조용히 아버지의 침실 문을 닫고 객실로 나왔다. 아내가 취사칸에서 저녁상을 차리느라 부산을 피운다. 그 손놀림이 가볍고 빨라보였다.     사위는 장모의 사위요, 며느리는 시아버지의 며느리라는 말이 정답임에 틀림없다. 아버지가 돌아오자 나보다 아내가 더 좋아했다. 나 대신 아버지가 고독이라는 자리를 메워줘서일까? 아니 평상시에도 고독과 아내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교원이라는 직업적 특수성 때문이지는 몰라도 아내는 조용히 홀로 있기를 좋아한다. 매일 분필가루에 분치장하고 애들한테 콩볶이가 돼서 그런지 아내는 집안일을 거두는 외엔 침실에 박혀서 나들이조차 하지 않는 고질병을 갖고 있다. 거기에다 마음 씀씀이나 넉넉한가 모든 처사나 행동거지가 1+1=2이다.     용돈에도 여지가 없다. 자기한테도 그랬고 나한테도 그랬다. 그 돈을 어디다 어떻게 썼는가를 꼭꼭 따지는 아내다. 그런데 아버지한테만은 헤프리만큼 너그러웠고 주먹이 컸다. 그 것이 어떤 때는 너무한다 싶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나는 아내의 그 행실을 나무라거나 이의를 제기한 적이 없다. 그 것이 되려 감사했다. 아내가 아버지에게까지 바가지를 긁는다면 나는 벌써 가정을 파괴했을 것이다.     우리 가정은 이렇게 큰 모순도 없고 큰 기쁨도 없이 시들먹히 기둥뿌리에 매달려 살아오는 집안이다.     《아버님께 저녁진지 드시라고 하세요.》     아내가 저녁상을 차려놓고 말했다.     《몸이 불편하신지 쉬고 싶다오.》     《그래도 쌀이 막대라고 때를 거르시지 말아야지요.》     아내는 내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아버지의 침실 문을 노크했다.     《아버님, 저녁진지 드세요.》     《먹고 싶지 않네. 콜록콜록.》     《끼니를 거르시면 되나요. 한 술이라도 뜨고 누우세요.》     《아니 자네들끼리 먹게나.》     《아버님, 아버님이 자시지 않으면 우리도 먹지 못해요.》     《먹는 것보다 쉬는 것이 보약인데 콜록콜록.》     《자, 아버님 제가 부축할 테니 일어나세요. 욱―호호호.》     아버지의 방에서 들려오는 말소리와 아내의 웃음소리가 내 뒤 등에서 울렸다.     웃음소리? 처음이라 싶게 어쩌다 들어보는 아내의 웃음소리다. 언제였던가? 귀에 설만치 생소하게 느껴지는 웃음소리를 들어본지가. 잘 기억되지는 않지만 내가 쌍둥이를 목마 태울 때였을 것이다.     쌍둥이를 길러본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쌍둥이들의 승벽심은 부모들도 당해내는 재간이 없다. 과자나 사탕을 주어도 똑같이 주어야지 누구한테 하나라도 더 주면 발버둥질이거나 투정질이다. 그리고 어느 누구에게 쪽을 놓는 눈치만 보여도 생트집을 잡지 않으면 앵돌아진다. 그래서 나는 목마를 태워줘도 번갈아가며 똑같게 태워주곤 했다.     그 날도 설영이를 먼저 목마 태워주고 광천이를 태워주는데 불시에 목덜미가 뜨끈뜨끈해 났다.     광천이란 녀석이 오줌을 쐈던 것이다. 오줌은 적삼을 적시며 사등으로 줄줄 흘러내렸다.     《여보, 이 녀석 좀 받아 안소.》     《왜 그래요?》     《날벼락 맞았다니까.》     아내가 광천이를 받아 안고 내 등을 찰싹찰싹 때리며 깔깔댔다.     《아들 덕에 오줌벼락 맞았군요. 호호호.》     아들의 오줌벼락 맞은 것이 그토록 멋져 보이고 신났던지 아내는 만족하게 웃었다.     그 후로는 더 들어보지 못한 아내의 웃음소리다. 그 웃음소리가 방금 전 아버지의 침실에서 들려왔다. 내가 아들의 오줌벼락을 맞았을 때처럼 시름없이 웃는 툭 터진 웃음이 아니라 어딘가 만들어지고 다듬어지고 막힌 듯한 웃음이기는 하지만 나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듯한 아내의 웃음소리다.     우리 집은 워낙 웃음이 없는 집이다. 서로가 서로를 걱정하고 아끼면서도 과묵한 성격의 임자들이라서 그런지 웃음만은 없었다. 웃음을 모르고 산 지오랬다. 그래서인지 오늘저녁 아내의 웃음소리는 낯설면서도 귀에 익은, 멀면서도 가까운 소리로 맞혀왔다.     터벅터벅…     찰싸닥―찰싸닥…     아버지의 발걸음소리와 아내의 끌신 끄는 소리가 엇갈리며 들려왔다.     나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버지, 몹시 편찮으십니까?》     《괜찮다. 길에서 좀 지쳤나보다. 콜록콜록.》     《그 간 이 사람이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릅니다.》     나는 《제가》하고 말하려다 단오의 색채를 더해주느라 웃어주던 아내의 얼굴과 마주치자 《이 사람이》하면서 아내를 힐끔 쳐다봤다. 하지만 아내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사라진지 오랬다.     《웬 걱정이었어? 콜록콜록. 죽을 데로 갔다구?》     《자, 시장하시겠는데 저녁 들자요.》     내가 늦게 오는 바람에 저녁이 아니라 밤참이나 진배없는 우리 집 저녁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아내는 단오명절이라고 상다리 부러지게 차렸지만 나는 먹는 둥 마는 둥 집는 둥 마는 둥 했다. 정순이와 함께 산천어로 만포식한데다 술이 거나한 채 풀리지 않아서였다.     《아버지, 까막골 형편은 어떻습데까?》     저녁 숟가락 놓고 아내가 바나나 가지러 간 짬에 내가 물었다.     《까막골이라고 무릉도원이겠냐? 콜록콜록. 말이 아니더라.》     《알 사람 더러 있습데까?》     《야장간집이 가달가달 붙어있더구나.》     《그간 어디 계셨댔습니까?》     《야장간집에 있었지. 콜록콜록.》     《아버지도 잠자리랑 불편했을 텐데 인츰 돌아오시지 않구요.》     《이 녀석, 콜록콜록. 그 곳에 네 어미가 묻혀있어. 그리구 네 뼈마디가 자란 고장이여. 콜록콜록. 이번 걸음이 마지막이라 싶으면서 발이 떨어져야지?》     아버지의 그 말씀에 나는 말문이 막혀버리고 말았다. 까막골, 어떤 고장일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어머니가 묻혀있는 땅이다.     내가 철이 들면서 청명과 추석이 오면 나는 항상 어버지를 따라 어머니의 산소에 가곤 했다. 지금은 어머니의 묘지가 까막골 어느 쪽 어디에 있었던지 아리송하지만 그 때엔 해마다 어머니의 산소를 찾아 절을 올리곤 했다. 어머니에게서 받은 것도 없고 내가 줄 것도 없는 모자간의 정이지만 그저 어머니가 보고 싶고 그립다는 그 하나로 묘지를 찾았었다. 어려서 그랬던지 어머니의 묘지를 보면 어머니를 본 듯한 그런 달짝지근한 동심에 휘말리면서 말이다.     그 후 까막골을 떠나자 어머니의 묘지도 잃었고 까막골도 잊고 있었다.     《아버지, 어머니의 묘지는요?》     《휴―쑥밭이 된 벽돌공장이 앉아있더구나. 콜록콜록 나 좀 쉬어야겠다.》     아버지는 바나나도 들지 않고 자리를 뜨셨다.     터벅터벅…     나는 침실로 들어가시는 아버지를 바라봤다. 어찌나 허리가 구부정한지 아버지의 머리가 어깨 위에 달랑 놓여있는 것 같았고 양 어깨가 어찌나 처져 내렸는지 당금이라도 그 머리가 굴러 떨어질 것 같았다.     터벅터벅…     발을 뗄 때마다 평형을 잃고 있는 두 다리, 그 때마다 허우적거리는 듯한 팔의 움직임으로 겨우 몸을 지탱하고 있는 아버지, 나는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며 자식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하지 못한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내일 아버지를 모시고 꼭 병원으로 가기오.》     나는 아내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서재로 향했다.     《오늘저녁에도 서재에서 주무시겠어요?》     아내의 서글픈 목소리가 등 뒤에서 날아왔다. 그 소리는 어찌 보면 《나를 과부로 만들 셈이에요》하는 소리로 들렸다.     여자들은 이불 속 남편의 짓거리를 보면 남편이 난봉 피웠나 피우지 않았나를 다 안다고 장담한다. 장담까지는 모르겠지만 기미를 알아차릴 것이다.     나는 정순이를 만난 다음부터 아내와의 그 짓을 딱 끊고 말았다. 끊고 싶어서가 아니라 되지 않았다. 너무나 많이 보아왔고 너무나 많이 다루어 온 익숙한 육체, 언제나 계속되는 같은 동작…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아내를 품고 누워도 내 남성은 죽어있었다.     아내에 대한 미안한 생각이 들 때도 많았다. 그래서 오늘저녁엔 꼭 아내를 위로해주자고 마음먹고 이불속에 기어들지만 아내의 나체만 몸에 닿으면 그것이 죽어간다. 그럴 때마다 풍만하고 성감적인 정순이의 육체를 생각하며 정순이와 정사를 벌인다고 생각하면서 새로운 시도를 하지만 그 것도 잘 안 된다. 한 번 성공해봤던가? 그 것마저 실패작으로…     《일이 되는 걸 봐가면서…》     이 몇 달 새 내 서재도 엉망이다. 내가 쓰다만 소설원고는 책상귀퉁머리에서 먼지만 보얗게 들쓰고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 허인숙 어머니의 일기인데 그것마저 온종일 임자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일기를 보려고 일기책을 내 앞으로 당겨왔다. 그러나 글눈이 막혀버렸다. 방금 보았던 아버지의 어깨, 아버지의 다리가 내 눈을 막아버렸던 것이다.     나는 둔팍한 몸을 의자에 실으며 스르르 눈을 감아버렸다.     《콜록콜록…》     아버지의 기침소리가 잠결에 들려왔다. 새벽 3시? 나는 후닥닥 몸을 일으키며 벽시계를 쳐다봤다. 새벽 한시 반이었다. 녹 쓸고 부속품들이 낡아버린 아버지의 시계…        여기에서 련재5 끝남       나는 다시 일기를 보기 시작했다. 1954년 7월 6일 맑음.     샘물골을 향한 내 발걸음은 가벼웠다.     자식을 던져버렸다는, 제 혈육을 남 주었다는, 자식 떼고 돌아서는 어미는 발자국마다 피가 난다는 기나긴 여로의 피로는 무거운 짐을 벗어던졌다는, 멍에를 벗겨 던졌다는 개운한 생각으로 바뀌면서 마음은 한결 홀가분해졌다.     원래 S시 시당위에 들러서 김 서기에게 그 간 있었던 일을 회보하고 샘물골로 가려 했으나 내 마음이 샘물골로 앞서 달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김 서기에게 회보하려면 하루 해를 막아야 하니까. 황차 S시에서 우리 용천구까지는 겨우 마차 한 대가 유일한 교통수단인데 내가 기차역에서 내리자마자 그 마차를 잡았으니 두 생각 가질 수 없었다. 그 마차를 잡는다는 것은 시위서기를 만나기보다 더 힘들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나는 마차로 용천구까지 왔고 지금 용천구에서 샘물골로 가는 길을 조이고 있다.     그런데 길이 축나지 않는다. 30리 길을 제집 나들 듯 씽씽 나들었고 눈을 감고도 찾던 길인데 그 길이 줄어들 줄 모르는, 짜증나는 길로 되고 말았다. 자드락길처럼 발목을 잡고 놓칠 않고 재 넘는 소로길처럼 몸에 칭칭 감겨 만든다. 길이 더 늘어났나? 아니 길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 마음이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어서 빨리 샘물골에 당도하고 싶은 조급증, 어서 빨리 고향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그 다급한 마음, 어서 빨리 강 촌장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소원에서였다.     솔개령은 예이제 없이 나를 반겨맞아 주었다. 솔개령 상산봉에 떡 뻗치고 선 곰바위, 그 곰바위는 마치 푸른 투구와 푸른 갑옷을 떨쳐입고 검푸른 창파를 헤가르는 한 척의 함선처럼 장백의 임해를 지켜서고 있다. 물씬물씬 풍기는 송진내, 숨이 꺽꺽 막힐 듯이 흉벽에 와 닿는 쑥 내음, 7월의 열기에 빨려 오르는 습습한 흙냄새…     솔개령은 가공이거나 분치장을 하지 않은 원래의 그 모습 그대로 나를 맞아주었다.     우리의 쉼터였던 솔개령 길가의 진대나무도 자리 뜸을 하지 않고 무난히 누워 코를 골고 있었다.     다슬대로 다슬어 반들반들해진 진대나무의 쉼 자리, 눈에 익고 눈에 박힐 대로 박힌 그 자리를 보는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고 말았다. 바로 저 자리였다. 폭우가 쏟아지던 날 저녁 강 촌장의 가슴을 파고들었던 곳이. 무슨 힘이 나에게 그토록 큰 힘과 담력을 주었던지? 아니 나의 힘과 담력이 아니라 강 촌장의 바위짝 같은 가슴팍, 통나무 같은 팔뚝, 술내와 담배내에 절고 전 체취가 나를 무력하게 만들었고 자석처럼 나를 끄당겨서였다. 그 앞에서 나는 너무나 하잘 것 없고 무기력한 연체동물이었다.     그 가슴팍, 그 팔뚝, 그 체취를 얼마나 원망했던가! 얼마나 저주했던가! 영원히 기억에서 지워버리려고 강심을 먹었지만 그 승부는 언제나 내 쪽에서 지고 말았다. 지금처럼. 내가 이겨야 하는데 내가 이겨야 하는데 하면서도 여자의 타고난 여린 마음에서인지 타고난 속성에서인지 번마다 내가 지고 있었다. 미우면서도 그리게 되고 욕하면서도 욕 속에서 뼈를 빼어버리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느티나무에 걸터앉았다. 우리의 쉼터였다. 항상 강 촌장과 함께 앉아 버릇해서 그런지 한 자리가 단단히 빈 듯한 허전한 느낌이 든다. 삶은 감자면 삶은 감자, 풋강내이면 풋강냉이, 생기면 생긴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도시락을 헤치고 진대나무에 나란히 앉아 초기기를 말리던 보금자리다. 그런데 지금은 나 혼자다. 아니 홀로가 아니다. 이제 곧 강 촌장을 만나게 될 텐데…     나는 소지품이 든 가방을 들고 자리를 일었다. 그리고는 치마폭에 바람을 일으키며 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해질녘에야 샘물골에 닿았다.     나는 울바자 문을 열고 집에 들어섰다. 아니 그런데? 풀밭으로 변했으리라고 믿었던 텃밭이 풀 한포기 없고 가지며 고추며 배추가 먹음직스럽게 자라고 있지 않는가. 밭 다룸 새를 보면 임자를 안다고 호미귀만 대충 날리는 풋내기 농군의 서툰 일솜씨가 아니라 밭머리부터 알뜰히 가꾸는 감농군의 쌀 내 나는 다룸 새다.     강 촌장의 손부리였다. 이랑이 비뚤세라 곧게 가대기질한 솜씨, 한 줌 흙이 옮겨 앉아도 틈이 갈듯이 높낮음 없이 흙을 얹은 밭고랑, 울바자에 뻗어 오르기 시작한 열콩…그 모두가 강 촌장의 손때 묻은 자리였다. 강 촌장이 아니고는 그렇게 할 사람도 해줄 사람도 없었다. 가슴이 뜨거웠다. 이제 강 촌장을 만나면 무엇부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도저히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오면서 곱씹어 외웠던 인사말도 치매증에 걸렸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그저 목이 멜 뿐이다.     내가 왔다는 소리를 듣고 마을사람들이 우리 집으로 몰려들었다. 아낙네들이 먼지털이를 한다 동이로 물을 길어들인다 구들을 닦는다 하면서 난동 아닌 난동을 부리고 장정들이 도끼로 땔나무를 팬다 비웠던 집이래서 불이 잘 들지 않는다고 구새목을 뜯는다 하며 북새판 아닌 북새판을 벌렸다.     인정을 동이 째로 쏟아 붓는 샘물골 인심이었다. 그래서 시골사람 벌방에 가서 살지 못한다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시골인심에 발목을 잡혀 진둥나무 속을 빠져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오구작작 모여들어 떠들고 먹고 마실 때까지도 강 촌장이 자리를 비우고 있었다. 남 먼저 달려가서 일손을 거들어주고 기쁨을 나눠줄 강 촌장이 자리를 파할 때까지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먼저 강 촌장이 왜 보이지 않는가고 묻기도 무엇했다. 과거지사가 없었다면 떳떳이 물었으련만 지금의 나로선 옆구리가 켕겨나서 먼저 물을 수가 없다. 누군가 먼저 강 촌장이라는 말만 혀끝에 발라도 내가 얼른 받아 물으련만 강 촌장이라는 이름 석 자 입술에 올리지 않는다. 나는 그 것이 섭섭했다.     《왜 강 촌장이 보이지 않아요?》     참고 참던 끝에 내가 물었다. 일촌지장이요 고락을 함께 하던 분을 묻는 것이 도리나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배짱으로 말이다.     《아유―허 동무는 모르겠구만. 강 촌장네는 이사를 갔수.》     강동집 어머니가 알려주었다. 강동(지금의 하바로프스크)에서 살다 왔다고 강동집이라 불리는 어머니다.     《네? 이사를?》     내 가슴에서 핏덩이가 떨어졌다. 그렇게 바라고 바랐는데 그렇게 보고 싶었는데 이사를 가다니? 강 촌장이 없는 샘물골이 있을 수 없다고 상급에서 그토록 칭찬이 자자했는데 이사를 가다니? 강 촌장 덕에 학교를 세우고 이제 곧 전기를 들여오게 됐다고 샘물골 사람들이 강 촌장이 아니라 《우리 촌장》이라고 불렀는데 이사를 가다니? 내가 있는데 내가 돌아왔는데 이사를 가다니?     《언제 갔어요?》     《새해를 잡아들어 얼마 있지 않고 떠났수.》     《어디 갔나요?》     《글쎄, 오간다 말없이 훌쩍 떠났는데…》     몰상식이 아니라 몰이해였다. 국가공무원이면 전근이라는 말이 통하겠지만 소 궁둥이를 채질하며 땅 파먹고 사는 땅 두더지가 아닌가. 농민들 이사는 자원이 위주이고 이사 가는 마을의 동의만 거치면 끝이다. 이것을 모르는 강 촌장이 아닌데 훌쩍 이사를 갔다? 나 보기 면구스러워서? 내가 보기 싫어서? 아니다. 그럴 수 없다. 나를 《학습》보내면서 그토록 성수나한 사람이 강 촌장이었고 나를 바래주느라고 솔개령 진대나무 쉼터를 지날 때 나에게 눈을 슴뻑해보이던 강 촌장이었다. 그러던 강 촌장이 이사를 가다니? 그래, 그래서였을 거야. 짚이는 데가 있었다.     소쩍―소쩍―     한밤의 고요를 찢으며 소쩍새가 슬피 울고 있다. 벽에 걸린 석유등잔이 가물가물 문짝을 비집고 들어오는 산바람에 한들거리고 있다.     밤이 깊어가건만 잠이 오지 않는다. 잠을 청할 수 없는 밤이다. 왜 내게는 고통만 따르는 걸까? 영웅의 발자국마다엔 죄가 고인다고 그래서 그럴까? 영웅은 공산주의 실현만을 생각한다고 했는데 나는 왜서 이럴까? 설익은 영웅? 아니면 졸부?     나는 이 때까지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도 않았거니와 생각한 적도 없었다. 당의 말이면 끝이었고 그대로 살아왔다. 그 것으로 희열을 느꼈고 그 것으로 자신을 자부했다. 그러던 내가 언제부터 나라는 존재를 의식했고 영예 속에 자신을 침투시켰던가? 내가 여자라는 피할 수 없는 존재를 확인했을 때부터? 영예와 환호성은 자신의 위치를 확인해주었고 그 위치 속에서 자신의 우세를 체감했으며 공적더미의 진공관 속에 자신의 촉수를 들이밀기 시작했다는 것을 지금 새삼스레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강 촌장을 알게 되면서 그와 몸을 섞으면서 나도 사람이고 여자라는 것을 확인했었다. 그 흡인력과 집착력은 《영웅》을 찜쪄먹을 정도였다. 그 뿐 아니다. 그 자가마당은 좀체 사라질 줄 모르는 인력처럼 계속 나를 잡아끌고 있다. 그래서 강 촌장을 잊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소쩍―소쩍―     저 새도 나처럼 외기러기가 돼서 저토록 외롭게 슬피 우는 걸까? 제발 울음이라도 그쳐주렴!     벽에 걸린 아버님과 남편의 유상이 지금 나를 지켜보고 있다. 그 눈에 맞은 자신이 끔직스럽다. 신음소리가 이 짬새로 저절로 새어나온다. 나는 감히 그 유상들을 쳐다볼 용기가 없다. 용서받지 못할 끼 섞인 여자, 죄지은 여자, 지금 나는 원래의 나로 돌아가고 있다.     저 유상 앞에서 더는 다시 강 촌장을 생각지 않겠다고 몇 번이나 용서를 빌고 몇 번이나 다졌던가! 그런데 그 다짐들이 강 촌장이라는 사람 앞에서만은 그토록 무맥해지다니?     지금도 나는 유상 앞에서 또 다진다. 그런데 그 다짐이 얼마나 오래갈는지 나도 장담할 수 없다.     소쩍―소쩍―     나도 소쩍새가 되었나보다. 싫던 저 소리가 차츰 가슴을 물어뜯으며 흉벽을 차분히 적셔준다.     짝을 잃고 밤마다 슬피 우는 새, 내 신세도 소쩍새, 나는 오늘밤 소쩍새가 되어 저 소쩍새를 동무해줄 것이다. 1954년 7월 8일 흐린 날.     간밤에 소쩍새와 나처럼 뜬눈으로 밤을 팼는지 하늘은 찌뿌둥한 얼굴로 눈을 잡아 뜯으며 새아침을 불러왔다. 하늘의 게트림처럼 꼬리에 꼬리를 문 거무칙칙한 구름장들이 솔개령을 휘감고 소나무를 태질하면서 샘물골로 밀려왔다. 심상찮은 날씨다.     전 같으면 밀림의 입김인 산안개가 솔개령 중턱에서 떠돌다가 잠들어버렸으련만 오늘은 먹장구름이 그 하얀 안개를 삼켜버리고 샘물골을 향해 내리꼰지고 있다.     날씨가 기승을 부리고 밤새운 내 몸이 지칠 대로 지쳤지만 나는 길을 떠나야 했다. 강 촌장의 이사의 비밀을 밝혀내지 않고는 집안에 박혀있어도 쉼이 될 것 같지 않다. 강 촌장에 대한 운우지정에서가 아니다.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알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 이가 왜 이사를 했는지 어떻게 이사를 했는지 그걸 알고 싶어서이다.     이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은 단연 한 사람―시위의 김 서기일 것이다. 우리 두 사람의 비밀은 김 서기만이 알고 있으니까.     나는 전처럼 도시락 하나만을 달랑 들고 새벽길을 떠났다. 그러나 그 길은 어제 오후의 샘물골길처럼 가볍지 않다. 무겁기만 하다.     번개가 번쩍이고 우뢰가 요동쳤다. 밀림이 윙―윙―서럽게 울고 길섶 쑥대들이 허리를 꺾으며 비명을 질렀다. 봉양을 등한시했던지 하늘이 땅에 엄벌을 내리고 있는 터였다. 뇌성이 높은 곳에 빗방울 없다는 말 틀리지 않은가 싶다. 다행스럽게도 하늘은 비의 세례를 주지는 않았다.     궂은 날씨 때문인지 아니면 내 몸이 너무나 피곤기를 풀지 못해서 그랬던지 솔개령 기슭 석개울을 건널 때도, 솔개령 진대나무 쉼터를 지날 때도 연민의 정은 전혀 겉묻어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어서 빨리 김 서기를 만나 사실의 자초지종을 알아보고픈 그 하나의 마음가짐이었다.     내가 김 서기의 사무실문을 노크했을 때는 퇴근 무렵이었다. 그 때까지 김 서기의 사무실 창문에서는 밝은 전등불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들어오시오.》     안에서 김 서기의 걸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표달능력은 빵점, 내용은 만점인 김 서기의 석쉼한 소리는 정서가 없고 고조장단이 분명하지 않았다. 웅변가의 재질을 전혀 갖추지 못한 저질적인 말재간이라는 뒷공론이 많았다. 우리를 배워줄 때도 그랬다. 《표현능력 빵점》인 선생님이었다. 하지만 교수내용이 하도 충실하고 학생들의 심리동태를 통찰하는 예리한 안광 때문에 누구든 움씰 못했고 그 덕에 존경을 받기도 했다.     학교 때 귀 아프게 들어온 교수, 사회에서 수 없이 들어온 연설 때문에 수 만 명 사람들이 떠드는 그 속에서도 김 서기의 목소리만은 분명히 가려낼 수 있는 나였다. 그런데 그 소리의 속내를 지금도 모르고 있다. 내 속과 색채를 숨기고 뿜는 소리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김 서기의 목소리는 저울판에 올릴 수 없는 신비함을 갖고 있었다.     《이거 누구요? 우리의 〈영웅〉이 돌아왔구만!》     김천수 서기가 나를 보더니 의자에서 벌컥 일어섰다. 사람들이 모인 장소에서 만났건 단독으로 만났건 김천수 서기는 언제나 나의 대명사로 불리는 《영웅》이라는 두 글자를 경기병처럼 쓰곤 했다.     《김 서기 동지, 그 간 심려를 끼쳐 미안해요.》     《그래, 십년감수했어. 십년감수.》     《죄송해요.》     《그 대가를 단단히 치러야 할 걸. 나도 받아낼 만큼은 받아내고 허허허.》     김천수 서기는 나를 으스러지게 포옹하면서 가마뚜껑 같은 손으로 내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어때? 고생 많았지?》     《아니요. 김 서기 동지의 형님 내외분의 살뜰한 보살핌으로 편안히 보냈어요.》     《객지생활 반년, 말이 쉽지. 말이 쉬워. 자 앉소.》     김 서기는 언제나 그러하듯 내 찻잔에 손수 차물을 부었다.     《나에게 바친 〈군령장〉(軍令狀)은 그대로 시행했겠지?》     《네, 애를 주면서 서약서까지 썼어요. 애를 영원히 찾지도 않고 데려오지도 않을 것이라는 내용으로 말이에요.》     《남자 애요? 여자 애요?》     《남자 애였어요.》     《남자 애라…인숙이, 나를 몹시 욕했지? 지독한 놈이라고…》     《아니예요. 김 서기 동지에 대한 유감같은 건 하나도 없었어요. 정말이예요.》     《인숙이, 나도 애들 아버지요. 바꿔놓고 나보고 어느 한 애를 남 주라면 나는 목이 날아나도 못 주겠소. 그러면서 인숙이한테는 그렇게 하라고 명령했소. 이 게 어디 사람이 할 짓이요?》     나는 김 서기를 쳐다보았다. 다른 얼굴이었다. 연단에 올라 연설할 때 정치와 원칙으로 빚어 만들었던 서툰 조각가의 조각품이 아니었다. 비판할 때 냉혹하다 싶을 정도로 날이 선 눈길로 상대방의 육체를 각을 뜨던, 예리한 화가의 화필에서 그려진 사각형 모형도도 아니었다.     아버지로 된 얼굴이었다. 아버지로서의 감정, 아버지로서의 자애, 아버지로서의 책임감을 지닌 그런 진짜 아버지로 된 얼굴이었다. 나는 아버지로 된 김 서기의 얼굴을 처음 보았다. 그 얼굴이 내 마음을 울려주었다.     《선생님,  솔직한 말씀 올려 될까요?》     《말하오. 말해! 모든 설음 모든 고통을 다 말하오!》     김 서기는 쌈지를 꺼내더니 엽초를 말기 시작했다. 서툰 담배꾼의 담배말이처럼 김 서기는 담배를 만다는 것이 담배종이만 찢곤 했다. 벌써 세 대 째 말기 시작하지만 어쩐지 그 담배도 말아낼 것 같지 않다. 눈을 감고서도 담배만은 실수 한번 없이 만다고 자랑하던 김 서기가 말이다.     《금방 해산했을 때 전 진짜 홀가분한 기분이었어요. 멍에를 벗은들 그처럼 개운했을까요? 그리고 저를 그처럼 아끼고 돌봐준 선생님에게 목이 메도록 감격했어요. 선생님이 아닌 다른 그 누구도 저를 이처럼 보호해줄 사람 없을 거라고 눈물을 흘렸댔어요.     그런데 짧디 짧은 시간이지만 애에게 젖을 먹이고 우유에 습관 되게끔 우유로 바꿔 먹이면서 들인 그 정이 그토록 무서울 줄은 진짜 몰랐어요.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이 모성애라는 말만 들어왔던 제가 어머니가 된 다음에야 모성애의 마력을 알게 됐어요. 그 마력이 바로 제 생명, 제 희망, 제 일생의 종착점이었어요. 흑흑흑.     선생님, 용서하십시오. 제 새끼가 얼마나 귀중한 복덩이였으면 어디론가 남모르는 곳에 숨어살면서 애를 기르려는 생각까지 했겠어요? 흑흑흑 부끄러운 말씀입니다.     서약서에 글을 쓸 때 저는 먹물로 쓴 것이 아니라 제 피로 썼댔어요. 그리고는 밤새 울었어요.     남을 줬으니 성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제 새끼가 지금은 점점 멀어져가고 있어요. 앓지 말고 제발 잘 커야겠는데…흑흑흑.》     《인숙이, 용서하오.》     김 서기가 내 손을 꼭 잡으며 말을 이었다.     《인숙이, 잘했소. 눈물을 흘리는 것보다 그 눈물을 참는 것이 더 힘든 거요.》     《선생님, 세상은 요지경이라더니 진짜 그런가 봐요.》     《인숙이, 나는 아버지로서가 아니라 시당위원회 서기이기 때문에 인숙에게 그 길을 걸으라 명령했고 인숙이는 어머니로서가 아니라 공산당원이기 때문에 그 명령에 복종한 거요. 우리 앞에 놓여진 길, 우리가 선택할 길은 오직 그 하나의 길 뿐이었소.》     《알고 있어요.》     《아니 다는 모르고 있을 거요. 성공에는 희생이 있기 마련이오. 그 희생이 크냐 작냐 하는 차이뿐이요. 만약 인숙의 그런 희생이 없었다면 인숙이는 평범한 어머니로 살아갈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의 사업에는 마멸할 수 없는 손실을 가져다줄 것이요. 물론 인숙이는 역사의 잿더미 속에 묻힐 거구…》    《선생님, 저도 지금에야 저를 좀 알 것 같아요. 안심하세요. 절대 선생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어요. 믿어주세요.》    《믿구 말구. 내가 인숙이를 왜 못 믿어?》     그제야 김 서기는 담배 한 대를 겨우 말았다. 네 번째만의 성공? 다섯 번째만의 성공? 재떨이에는 김 서기가 담배를 말다 찢어버린 종이가 수북이 쌓여있다.     《김 서기 동지, 강 촌장을 어디 이사시켰어요?》     나는 감히 김 서기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하면서 머리를 수깃한 채 물었다. 내 정수리로 담배에 성냥불을 붙이려다 그대로 굳어진 김 서기의 꽛꽛한 모습이 맞혀왔다.     《그 건 왜 묻소?》     《김 서기 동지가 강제이주 시켰지요?》     《…》     《절대 저를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강 촌장에 대한 연민의 정이나 금후의 지속적인 사랑을 위해서 묻는 것이 아니에요.     떠날 때도 제가 말씀 올렸지만 강 촌장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어요. 제가 주동이었고 제가 꼬셨어요. 벌을 주려면 저에게 줘야지 죄 없는 강 촌장에게 내려서야 되나요?》     《그렇소. 내가 시켰소. 어떤 처벌도 내리지 않고 그저 이사시키는 형식만 택했을 뿐이요. 강 촌장으로 놓고 보면 이건 너무나 가벼운 처벌이요. 아니 처벌도 아니요. 당원이 없는 촌으로 당원을 파견하는 형식이었으니까 강 촌장도 가서 잘할 거요.》     《강 촌장에게 제가 임신했다는 걸 알려줬겠지요?》     《물론 그러지 않으면 그 사람을 설득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까. 그리구 금후를 삼가기 위해서도 말해줘야 했소.》     《그러면 저는 한생 죄를 지은 몸으로 살 거예요.》     《죄? 그 죄 때문에 인숙이는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소? 처벌이면 그 보다 더 큰 처벌이 어디 있소? 용기를 내오. 인숙이는 아직도 우리의 영웅으로 살아있으니까.》     《김 서기 동지, 강 촌장이 이사한 곳을 알려줄 수 없나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죄하고 오겠어요. 그래야 제 마음도 편안할 것 같아요.》     《안 되오. 이건 조직의 비밀이요. 인숙의 해산을 극비에 붙였던 것처럼 말이요.》     조직의 비밀, 그 건 상대치로 계산되는 수학적 공식이 아니라 절대치로 계산되는 철학적 공식이었다. 공산당원에게는 조직의 비밀을 목숨으로 사수할 의무가 있을 뿐 그 비밀을 말하거나 물어볼 권리가 없다. 조직의 비밀, 그 건 언제나 종지부를 의미할 뿐 어떤 수의 정부(正負)를 나타내거나 연결을 말해주는 기호가 아니다.     조직의 비밀이라는 말에 나는 더는 물을 수가 없었다. 아니 물어서는 안 되었다.     《인숙이, 정치는 언제나 잔혹한 법이요. 네가 죽지 않으면 내가 살지 못하고 내가 죽지 않으면 네가 살지 못하는 피어린 싸움이요. 이것이 바로 정치투쟁이요. 역사가 그러했고 현실 역시 그렇소. 건국의 역사가 그러했고 그 후 연이어 벌어진 혁명투쟁들이 그러했소.     이런 엄혹한 현실 앞에서 우리 공산당원들은 어째야 하오? 앞장에 나서야지. 단두대에 오르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진구렁에 빠지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니까.     인숙이 때 마침 잘 왔소. 우리 시에서 처음으로 인민대표대회를 열게 되는데 그 회의에 꼭 참가하오. 중앙에서는 9월쯤 열리게 될 거요.》     《선거돼야 참가하지요.》     《영웅이 선거되지 않으면 누가 되겠소? 허허허.》     《…》     《휴―나도 이젠 한 시름 놓았소. 인숙이가 애를 업고 오면 어쩌나 하고 근심이 태산 같았소. 어느 날이었던가. 글쎄 인숙이가 애를 업고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겠소? 어찌나 놀랐던지 나는 악―소리 지르며 벌컥 일어났댔소. 온몸은 땀벌창이 되고 얼굴에서는 식은땀만 철철 흘렸댔소. 꿈이었소.》     《죄송해요. 선생님.》     《이거 이러다간 인숙이를 저녁 굶기겠는데? 뭘 먹을까? 어쩌다 만났는데 물만두집에 갈까?》     《저녁은 제가 살 테니 관자집(館子―음식점)에 가시죠.》     우리는 자리를 일었다.     거리에 나섰다.     앞에서 걷는 김 서기의 거쿨진 허우대가 깜박깜박 조는 듯한 가로등 밑을 지날 때마다 큰 그림자를 남기며 나를 숨겨주고 있었다.     미더운 선생님, 나를 지켜주는 시 당위원회의 서기, 그 때처럼 김천수 서기의 존재가 나의 우산이 되어 보이고 방파제가 되어보기는 처음이었다. 과거 나의 모든 영예가 김천수 서기와 갈라놓을 수 없었던 것처럼 앞으로도 김천수 서기를 떠날 수 없음을 깊이 감안하게 되었다.     《표달능력 빵점》인 김 서기가 오늘저녁엔 세상을 뒤흔드는 웅변가로 내 앞에 나타났었다. 속내를 전혀 뽑을 줄 모른다던 김 서기는 오늘저녁 내 앞에서 진속을 보여주었다. 나는 그것으로 만족했다. 그래서 더 큰 믿음이 갔다. 김 서기의 말씀에서 원래의 나를 찾았고 원래의 나로 나를 가꿀 것이다. 그 것만이 김 서기에 대한 보답이고 나에 대한 채찍일 것이다.     오늘저녁엔 잠이 잘 올 것이다. 엊저녁 눈을 붙여보지 못한 그 몫까지 합쳐서 늘어지게 자고 싶다.     반가운 저녁, 너에게 키스한다.     《콜록콜록》     기침소리를 물고 들려오는 아버지의 발걸음소리.     터벅터벅…     전에는 뚜벅뚜벅 절도 있게 들려오던 저 소리가 오늘 새벽엔 절름발이 걸음처럼 불협화음으로 들린다. 엊저녁에도 귀에 거슬리게 들리던 치륜이 맞지 않는 소리다. 터벅터벅…     아버지의 발자국소리는 영락없이 내 서재에 와서 멎었다.     《너 밤을 새운 모양이구나.》     《네. 아버지, 잠이 오지 않아서요.》     《몸을 상할라. 콜록콜록.》     아버지는 손수 깎아 저민 사과 쪽을 담은 접시를 소리 없이 내 앞에 놓고 물러섰다. 아버지는 매일 저녁 이렇게 당신 자시라고 마련해드린 밤참을 나에게 돌리곤 하셨다. 이건 이미 굳어진지 오랜 아버지의 습성이다. 아버지는 피골이 상접하다 할 지경으로 야윈 모습이다. 점점 못해가는 아버지를 쳐다보면서 나는 아들로서 해야 할 모든 일을 하지 못했다는 죄송 스런 마음을 버릴 수가 없었다.     《아버지, 오늘은 꼭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읍시다.》     《병원엔 왜? 뭐 죽을병이라도 든 것 같으냐? 콜록콜록 당치도 않는 소리.》     아버지는 문 뒤에 몸을 숨기면서 말했다.     《일기에 묻혀 있다보니 내가 너무 등한시했어.》     나는 나를 들으라고 자탄하면서 창문의 커튼을 열었다. 동창이 밝아오고 있었다.     부르하통하강 둑엔 아침단련을 나오는 사람들이 하나둘 불어나기 시작했다. 그 속엔 언제나 보아오는 《ᄀ》자형의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타발타발 걸어가는 모습이 끼어있다.     오늘 아침엔 이상하리만치 그 할머니가 부러워난다. 저렇게 하루하루 생명을 연장해서 뭘 하나 하던 내가 말이다. 관 속에 들어가도 늦었다 싶게 보아오던 저 할머니가 이토록 부럽다니? 나의 처세술에 병집이 생겨서일까 아니면 생명의 가치관이 흔들리기 때문일까? 어쨌든 저 할머니가 고맙도록 부럽다.     아버지는 아침 숟가락을 드네 마네 하시다가 상을 물렸다.     《여보, 당신 오늘 청가를 받아야겠소.》     아버지가 침실로 사라지자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왜서요?》     《아버지를 보지 못했소? 오늘 병원으로 모시고 가기오.》    《제가 할 말을 앞질러했네요.》     《당신도 그렇게 생각했소?》     《밥술을 줄이지 눈에 띄게 못해 가시지 전들 마음 편하겠어요?》     《아버지는 내 말을 도끼등처럼 여기니까 당신 좀 잘 구슬리오. 오늘 새벽에 병원으로 가시자니까 뗑했소.》     《알겠어요.》     아내가 어떻게 타일렀는지는 몰라도 내 말을 콧방귀로 여기던 아버지가 병원진찰을 받겠다는 승낙을 내렸다.     우리 부부는 택시를 불러 아버지를 모시고 연변병원을 찾았다. 아버지와 나는 지금까지 병원 문이 어디에 붙었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고 살아왔었다.     병원과는 멀리하며 살아야 한다던 아버지였다.     《야. 이거 어디 사람 찾아올 데냐. 콜록콜록. 진찰이고 뭐고 집어치우고 돌아가자. 콜록콜록…》     웃는 얼굴은 찾아볼 수 없고 찡그린 얼굴이 아니면 절름발, 배를 끌어안고 병원을 찾는 환자들 때문에 심기가 불편했던지 아버지가 머리를 저었다. 나도 병원엔 뻐꾸기라 어디 가서 어떻게 수속을 밟을지 전혀 갈피가 서지 않았다.     《아버님, 좀만 참으면 돼요. 여기 걸상에 앉아계세요.》     서당개 삼년에 풍월을 보고 짖는다고 병원 문을 뻔질나게 드나들던 아내 덕에 아버지의 전면검사는 그래도 실수 없이 이어졌다. 뢴트겐 촬영도, CT도, 피화험도 오전에 마무리 짓고 이제 마지막 간염검사인 B초만 남았다. 돈이 어른은 어른이었다. 모든 검사를 특검비만 더 지불하면 모든 것이 우선이었고 결과도 빨리 나왔다. 뇌 CT도, 뢴트겐 흉부촬영도, 혈질검사. 당뇨검사, 소변검사도 별다른 모병이 없었는데 간염B초에 걸릴 줄이야?     담당의사가 나를 불렀다.     《환자의 아드님 되는 분이십니까?》     《녜.》     나는 의사의 다음 대답이 겁났다. 의사가 환자의 신변보호인을 찾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한다는 것을 소설을 보면서 이미 알고 있은 나였다.     《간암입니다.》     《녜?》     《이제 간 CT를 한 번 더해보면 확진되겠지만 B초만 봐도 간암말기입니다. 간 두 번째 엽에 닭알만큼 한 혹이 자랐습니다. 아니 부친을 이렇게 될 때까지 내버려두다니요?》     《죄송합니다.》     《입원치료를 받으시려면 입원수속을 해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이 정도면 입원치료의 효과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생명을 좀더 연장할 수 있을까 그 정도입니다. 아니면 상급병원으로 소개해드릴까요?》     《선생님의 소견은 어떻습니까?》     《일단 간 CT를 해보고 결정합시다.》     담당의사의 말은 당당했다. 이 때까지 오진이 어떤 것인지 모르고 의료진에서 사업했다는 그런 자부감까지 비쳐보였다.     나는 의자에서 자리를 뜰 수 없었다. 아버지가 간암이라니? 그 건 청천벽력이었다. 이 때까지 병원 문을 모르고 사시던 아버지가 병원 문에 첫발을 딛는 순간에 간암이라는 사망선고를 받다니? 그 것도 간암말기. 간암말기라면 철부지를 내놓고는 다 알고 있는 염라대왕의 호출이 아닌가?     나는 아버지를 잃어서는 안 된다. 어떤 아버지라고? 아버지이자 어머니인 나의 아버지가 아닌가! 이 자식 하나 믿고 한생 재취 한 번 하지 않은 아버지! 이 자식의 출세를 위해 생활의 저층에서 인간대접을 받지 못하며 살아오신 아버지. 나는 그런 아버지를 여윌 수가 없다. 현실은 너무나도 잔혹하다. 나한테만 잔혹하다.     그 날 오후 간 CT를 해봤지만 결론은 여전했다. 한 달을 넘기지 못할  거라는 확진이다.     우리는 아버지를 겨우 설복해서 입원시켰다. 우리 부부는 밤과 낮을 바꾸어가며 아버지의 간호에 나섰다. 그러니 아내는 교수에서 손을 떼야 했고 나도 일기에서 눈을 걷어 들여야 했다.     이렇게 보름 남아 입원치료를 했지만 아버지의 병은 호전되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점점 악화될 뿐이다.     오늘 저녁은 아내가 아버지의 병간호를 하는 날이다. 집에는 나 혼자 남게 되었다.     모든 것이 귀찮았다. 일손이 잡히지 않아 다른 일에 정신을 팔 수 없고 잠을 청하려 해도 잠귀신이 죽어버렸는지 눈뿌리만 아파났다. 내가 이리 궁싯 저리 궁싯하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오빠. 나 정순이야.》     《오, 너 웬 일이야?》     《오빠와 술 한 잔 하고 싶어서.》     《나 지금 술 마실 기분이 아닌데?》     《알고 있어. 그래서 술 마시자는 거야. 오빠가 올래? 아니면 내가 갈까?》     《오늘 저녁 나 혼자 있게 내버려둬.》     《안 돼! 나 갈께 기다려!》     정순이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정순이는 언제나 쑥떡같은 내 말을 찰떡같이 받아들이는 여자다. 언제 한 번 내 말을 거역한 적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거역이 아니라 강압적으로 내 말을 문질러버렸다. 그 강압이 밉지는 않았다. 외려 잘됐구나 하는 행운감까지 받아 안게 되었다. 그래 잘됐지. 잘 되구 말구, 비운의 운명을 지니고 홀로 배회하면서 제 골수를 파먹기보다 도움 되지 않거나 값없는 일에 시간을 던져버리는 것도 낭패는 없을 것 같았다. 정순이는 한 시간 푼히 지난 다음에야 우리 집에 당도했다.     《오빠. 오래 기다렸지?》     《좀.》     《횟집에 들러 오빠가 즐기는 산천어 사시미를 해오느라 좀 지체됐어.》     《그래?》     《오빠. 왜 그래? 울상이 되지 말고 좀 웃어봐!》     정순이는 사가지고 온 안주감을 식탁에 챙겨놓으며 집적거렸다. 정순이의 행동거지는 그녀의 평상시 스타일이 아니다. 말이 많은 편이지만 절대 수다쟁이가 아닌, 제 하고 싶은 말만 하는, 하고 싶은 말은 꼭 하고야마는 그런 여성이었다.     《오빠, 얼음 있지?》     《냉장고를 열고 봐. 있을 거야.》     《오케이!》     우리는 식탁을 마주하고 앉았다. 정순이는 수입제 위스키를 가방에서 꺼내 얼음담긴 내 술잔에 부으며 말했다.     《오빠는 너무해. 어쩜 이런 일도 나를 속일 수 있어?》     《어디서 들었나?》     《내 곁에는 사람이 없는 줄 알았어?》     《좋은 일도 아닌 걸 갖고 뭘.》     《좋은 일은 알리지 않아도 궂은 일은 알려야 해. 그것이 진짜야 오빠!》     《자, 술이나 들자.》     우리는 잔을 기울였다. 산천어 사시미. 고급술… 술이 사시미 맛을 돋우고 사시미가 술을 청하는 바람에 우리는 잔을 비우고 또 비웠다.     《오빠, 괴롭지? 나 오빠의 괴로움 나눠갖고 싶어.》     술이 거나해지자 정순이는 내 손을 꼭 잡으며 나를 쳐다봤다. 정순이의 눈굽에 물기가 찰랑찰랑 차올랐다.     《오빠는 잘 모를 거야. 울어야 할 때 울지 못하는 그 괴로움.〈문화대혁명〉때 간첩으로 몰린 아버지가 자살했을 때 나는 울지도 못했어. 아니 울 권리도 없었어. 그 때 얼마나 고통스럽던지 아버지 대신 내가 자살했더라면 하는 생각까지 했댔어.     오빠. 인생은 뜬 구름이라지 않아? 그 때의 그 진통도 시간이 지나니 한 조각의 추억으로 남을 뿐 기념비로는 떠오르지 않아 인생은 망가진 추억, 그렇게 말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아.》     《정순아. 너만 보면 왜 내 기분이 붕 뜨는지 몰라. 유부남인 내가 말이야. 아마 사랑은 따로 있나봐.》     《오빠도 참, 그걸 이제야 알았어? 사랑은 워낙 자립성을 가진 독립체야. 한 사람만의 독점물이 아니야. 한 두 사람에게 속할 수도 있고 그에 속하지 않을 수도 있는 객체. 그 것이 바로 사랑이야.》     《너는 워낙 철학가가 됐을 걸 그랬다.》     《오빠는 도대체 왜 그래? 지난번에는 내가 오빠보고 요리사가 됐을 걸 그랬다고 했더니 오늘저녁엔 또 오빠가 나보고 철학가가 됐을 걸 그랬다고 하네. 호호호…》     《그랬던가 허허허…》     《오빠. 바로 그 모습이야. 소탈하게 웃는 오빠의 모습, 그 모습을 보고 싶어서 오빠를 찾아왔어.》     《그래? 그럼 이 오빠의 웃음을 위해서 건배!》     《건배!》     호호호…     허허허…     우리는 웃었다. 술을 마시고도 웃고 안주를 집고도 웃었다. 술이 정순이의 웃음을 만들었고 정순이는 나의 웃음을 만들어주었다. 아버지 때문에 방금까지도 울고 있던 내가. 그런데 웃고 있다니? 나로서도 지금의 내가 진짜 나인가 싶을 정도로 병상에서 죽음과 싸우고 있는 아버지를 까맣게 잊고 있다. 호로자식? 나는 아마 호로자식인가보다.     《오빠의 웃음, 오늘 정순이의 첫 번째 목적달성! 다음은 두 번째 목적!》     정순이는 날듯이 기뻐하며 핸드백을 열더니 카드 한 장을 내미는 것이었다.     《오빠, 입원비가 엄청나게 들 거야. 이 카드에서 마음대로 빼 써. 중국인민은행의 신용카드인데 오빠의 이름으로 적금했어. 비밀번호는 오빠가 출생한 해인 54와 출생월일인 68,5468이야.》     《이 것만은 안 돼. 돈거래는 질색이야.》     《그럴 줄 알고 카드로 준비한 거야. 오빠가 만약 나한테서 용돈을 빈다면 난 무일푼이라고 딱 잡아뗐을 거야. 하지만 이 돈은 달라. 아버님에게 드리는 내 성의야. 내가 아버님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과 힘은 이 것밖에 없어.》     《돈이 우리 사이를 멀어지게 만들 수 있다는 걸 너 모르고 있나?》     《알아. 알기 때문에 오빠에게 드리는 것이 아니라 아버님께 드리는 거야.》     《…》     《무언은 승낙. 자 두 번째 목적도 성공! 오빠 건배!》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나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잔을 들었다.     정순이는 이런 여자였다. 긴가민가하면서 좀자르기만 하는 꼬무락 여자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떡도 아니요 밥도 아닌 것을 떡이요 밥이요 하면서 두리뭉실 얼버무리는 뼈없는 여자도 아니었다. 칼로 썩은 무 밑둥 베듯 썩썩 잘라버리는 날이 선 여자였다. 그래서 내가 정순이를 좋아했고 좋아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술이 끝나자 정순이는 두 말없이 떠나가 버렸다. 빈 술병이며 술안주 찌끼며 몽땅 비닐주머니에 넣어가지고 훌쩍 가버렸다. 내가 더 놀다가라고 그렇게도 말렸건만 오빠를 위해서 떠나야 한다나? 번개처럼 왔다가 우뢰처럼 떠나간 여자, 정순이는 이런 여자였다.     정순이가 없는 집 안은 더 썰렁했다. 온기도 술내음도 정도 몽땅 갖고 갔다. 그래서 더 한산해졌다. 딴 때 같으면 반 근 위스키에 곤죽이 됐으련만 오늘저녁엔 이상하리만치 정신이 풀싹처럼 파릿파릿 해난다.     나는 침실이 아니라 서재에 몸을 묻었다. 어쩐지 그간 멀리했던 허인숙 어머니의 일기를 보고파서다. 지금까지의 허인숙 어머니보다 그 후의 허인숙 어머니가 더 궁금해서다.     나는 보다만 일기장을 번지기 시작했다.     그 후의 일기에는 나의 눈꼬리를 잡을 수 있는 감칠맛 나는 단대목이나 희한한 일들이 없었다. 중국의 현대사에는 오를 수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내 소설에는 써먹을 수 없는 제1차 5개년 계획이요, 총로선이요, 반우파투쟁이요, 대약진이요, 공사화운동이요. 반우경투쟁이요 하는 정치운동뿐이었다. 흥취도 없고 멋도 없는 이런 부분을 나는 가차 없이 번져 넘겼다. 물론 운동의 선두마다 허인숙 어머니가 서있었고 그 배후에 김 서기가 있었지만 그 것에는 나의 시력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영웅과 정확한 정치영도는 언제나 쌍둥이니까.     나는 아버지의 병간호를 하다가 짬 나는 대로 일기에 달라붙었다. 일기가 나의 유일한 시간 소모제였고 잡념을 몰아내는 소일거리였기 때문이었다.     일기장을 번갯불 나게 번져 넘기던 나는 하루의 일기에서 속도를 늦추고 말았다. 1966년 11월 9일 개임.     샘물골에서도 나에 대한 대자보가 나붙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용천공사(공사화운동 때 공사로 개칭되었음)에 한두 장씩 붙던 것이 지금은 샘물골 대대(촌도 대대로 고쳐졌음) 사무실벽에까지 붙게 되었다.     《자본주의 길로 나아가는 집권파의 충실한 졸개》로부터 대리인, 불여우, 암펌, 암캐 등등 감투라는 감투를 다 씌우고 욕지거리라는 욕지거리를 꺼리지 않은 대자보들이다.     나는 진짜 이해할 수 없다. 이 때까지 혁명과 공산주의를 위해서 몸바쳐온 내가 일조일석에 자본주의 길로 나아가는 집권파의 졸개가 되다니?     문화대혁명이 일어난 이 몇 달간 나에게는 반발심밖엔 자란 것이 없다. 집체일엔 손실이다 하면서 나앉던 노랭이들이 무슨 혁명적 반란파요 하면서 우쭐대는 꼴을 보면 눈이 감긴다.     성으로 올라간 김천수 서기는 무사한지? 나는 나보다 나의 서기, 나의 은사가 더 근심됐다. 이번 운동은 웃머리부터 자르는 성세호 대한 불길이다. 김천수 서기도 무사할 것 같지 못하다.     예전 같으면 이런 어려운 처지에 김 서기부터 찾으련만 지금은 형편이 거꾸로 됐으니 찾을 수도 물을 수도 없다.     김천수 서기가 그립다. 모든 연락이 두절된 지금 그저 김천수 서기가 무사하기만을 빌 뿐이다.     발편잠 한 번 들어보지 못한 나는 조반을 지으려고 나무 가지러 문을 떼고 나섰다. 해가 유리창문에 들었으니 늦어도 한참 늦은 아침이었다. 내가 나무 한 아름 안고 돌아서는 찰나 큼직한 대자보 한 장이 벽을 가리고 있는 것이 눈에 날아들었다.     《갈보 허인숙 탄백하라!》     내 손에서 장작개비들이 쏟아져 내리면서 발등을 때렸다. 나는 그 자리에 폴싹 물앉고 말았다. 앞이 캄캄해났다. 불화가 코밑에 떨어진 것이다. 1966년 11월 21일 첫눈이 내림.     예전의 이 때쯤이면 타작을 하느라 샘물골이 들썽하련만 지금껏 논밭에는 벼무지가 쌓여진 대로 버림을 받고 사원들에게서 외면당하고 있다. 더기밭에 심은 콩은 쥐와 꿩들의 주둥아리에 다 녹아나서 빈 콩대만 엉성하게 서있다.     쌀보다 혁명이 더 중요하다나? 예전 같으면 사원들을 농사에 몰아붙이련만 지금의 내 신세로서는 제 몸을 건지기도 힘들다. 그러니 농사가 다 뭐랴?     점심때가 다가올 무렵 대대의 유일한 혁명파조직인 《홍기반란파》조직에서 나를 불렀다. 나는 이리 끌려 다니고 저리 끌려 다니는 처지다보니 군말 없이 나를 데리러 온 반란파를 따라 지금은 홍기반란파조직사무실로 불리는 대대사무실에 들어섰다.     첫발을 들여놓는 순간 나는 여느 때보다 분위기가 삼엄하다는 촉감에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하나밖에 없는 대대의 유일한 사무상인 허름한 테이블을 앞에 놓고 30대의 낯모를 사람이 앉아있고 그 양 옆으로 익히 알고 있는 샘물골 반란파들이 줄쳐 있는데 얼굴마다에 살기가 번뜩인다.     《허인숙!》     테이블을 마주하고 앉은 낯모를 얼굴이 나를 불렀다.     《예―》     《탄백하면 관대히 처리하고 항거하면 엄하게 징벌한다는 당의 정책을 알고 있겠지?》     《예―》     비수와 같은 서릿발 내린 눈으로 내 얼굴을 지져대던 30대가 한참 지나서야 조용히 물었다.     《김천수라는 사람 알고 있겠지?》    《예―》     《김천수와는 어떤 관곈가?》     《저의 선생님이자 S시 당위서기였습니다.》     《누가 그걸 몰라 묻는 줄 아는가?》      낯모를 사람이 주먹으로 테이블을 탕 내리치며 엄포를 놓았다. 그러자 반란파들이 이구동성으로 《탄백하라! 탄백하라!》하면서 구호를 외쳤다.     《김천수와의 사적관계 말이야.》     《그저 은사와 제자, 영도와 피영도의 관계뿐입니다.》     《뭐야? 계속 항거할 텐가! 그럼 내가 솔직히 알려주지. 김천수는 일찍 당내에 기여든 자본주의 길로 나아가는 집권파야. 김천수에 대해서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적발해!》     《…》     적발할 것이 없었다. 내가 알고 있는 김천수 서기는 청백하다 못해 백지장처럼 하얀 분이다.     내가 대답을 못하고 꾸물거리고 있자 반란파들이 또 구호를 외쳐댔다.     《탄백하면 관대하게 처벌하고 항거하면 엄하게 징벌한다!》     머리가 핑핑 돌 지경으로 구호소리는 사무실 창문이며 벽이며 천장을 물어뜯었다.     《그럼 내 한 가지만 알려주지. 일찍 당내에 기여든 김천수란 놈은 복벽을 시도하면서 허인숙 너를 춰올리며 이용했고 너는 그 놈의 구미에 맞춰 그 놈이 시키는 대로 했어. 그 놈은 자기의 음험한 심보를 감추기 위해 너를 방패로 내세웠다는 말이야. 알겠어?》     《그 건 진짜 그랬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을 말해주십시오.》     《사실? 김천수란 놈이 다 불었는데 지금도 항거할 셈인가?》     30대가 탁상을 내리치자 반란파들의 구호소리가 또다시 울려 퍼졌다.     《그럼 강 촌장은 알고 있겠지?》     《예―에》     강 촌장이라는 말에 나는 숨통이 막히는 것 같았다. 문화대혁명이 터지자 줄곧 내 가슴에 옹이를 박은 사살이 간통이라는 두 자였다. 오늘 아침 《갈보 허인숙 탄백하라》는 대자보를 보았을 때 그 자리에 폴싹 물앉은 것도 바로 그 두 자 때문이었다.     《강 촌장과는 어떤 관곈가?》     《지부서기와 촌장과의 관계, 그 것뿐입니다.》     《완고하군. 안되겠어. 끌어내 갓!》     30대가 벌컥 일어서며 소리쳤다. 그러자 대대 민병련장이자 반란파두목인 강 옆집 둘째가 나를 집까지 호송했다.     그 때로부터 나는 대문 밖 출입을 금지 당했고 모든 자유를 박탈당하고 말았다. 마당에는 밤낮없이 보초꾼들이 지켜 있었고 심문이 끊임없이 이어지곤 했다. 1966년 11월 24일 날씨 모름.     벌써 연 사흘째 심문이 이어지고 있다.     모든 것을 다 참고 견딜 수가 있다. 굶주림도 언 구들장도 협박도 다 수용범위 내였다. 그런데 잠을 재우지 않는 데는 어쩔 수 없다. 그들은 한 사람이 심문하다 지치면 다른 사람을 바꾸고 그 사람이 지치면 또 다른 사람을 바꿀 수 있지만 나는 나를 대신해줄 사람이 없다.     그들의 작전은 순 피로전이었다. 지치게 해서 자백을 받으려는 것이 그들의 작전이다.     심문의 초점은 하나―김천수와 강 촌장 나와의 사적관계다. 특히 강 촌장과 나와의 관계에서 못을 박고 빼려 않는다.     나는 이를 사려 물면서 강 촌장과의 치정사를 숨기리라 다짐했다.     내가 졸까 하면 얼굴에 찬물을 끼얹고 쓰러질까 하면 벽과 방문 모서리에 박아 넣으면서 눕게도 못하고 자게도 못하면서 사흘째나 연장전을 벌이고 있다. 이처럼 더 큰 고역이 어디 있고 이처럼 힘든 옥살이가 어디 있으랴?     한잠 푹 자고 싶다. 잠이 오지 않는 것이 제일 큰 고충이라고 여겨오던 내가 잠을 자지 못하는 고통을 겪다니? 자고 싶다. 푹 자고 싶다. 마지막엔 내 속을 다 털어내고 시원히 자고 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점심때쯤이나 됐을까? 아침인지 저녁인지 분별할 수 없는 나였지만 점심 먹으로 가자고 한 반란파의 말에서 어렴풋이나마 점심때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으로 점심때로 추측하게 된 것이다.     《허인숙, 진짜 완고하구나.》     30대가 내 앞에 앉아 담배에 불을 달며 말했다.     《지금도 뻗칠 텐가?》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은 다 말했습니다.》     《증거가 있어야 마지못해 승인하는 완고분자.》     30대는 치째진 눈길로 나를 쏘아보며 가방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내 앞에 내밀었다.     《자백서》라는 글발이 어렴풋이 보였다. 자백서 밑에 씌여진 이름 김천수, 나는 김천수라는 이름에 눈을 화등잔처럼 밝혔다. 그 이름 석 자가 내 동공 안에 비수처럼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자백서     1954년 초 나는 허인숙의 고백을 통해서 샘물골 강 촌장과 허인숙의 부정행위를 알았다. 그 때 허인숙이는 이미 임신한 몸이었다. 이 사실을 덮어 감추기 위해 나는 1954년 양력설이 지나자 흑룡강성 밀산현 양강공사 명신촌에 있는 나의 육촌형 김영석 집으로 해산시키러 보냈다. 그리고 강 촌장은 흑룡강으로 강제이주 시켰다.     1954년 7월 9일, 허인숙은 해산한 아들을 남에게 주고 무사히 돌아왔다.     이 사실이 확실함을 증명한다.                                김천수                       1966년 11월 15일     나는 졸도하고 말았다.     그 후의 일은 하나도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자백서와 김천수라는 이름만 남았을 뿐이다. 1968년 12월 31일 눈이 내림.     오늘은 또 어디로 끌고 가겠는지.     끌 건 몰 건 갈 데로 가라지.     지난 2년간 나는 《갈보―허인숙》이라는 패쪽을 걸고 S시 골골을 끌려 다니며 투쟁을 받았다. 처음에는 소름끼치도록 그 투쟁이 무서웠고 얼굴이 가려워났지만 지금은 화냥년이건 씹할 년이건 별의별 소리를 다 들어도 마음은 편하다. 내 전부를 다 팔아버렸고 내 전부를 훼멸시켰으니 내게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으니까.     《불었구나. 물었구나.》     불었다고 물었다고 옹매듭졌던 김천수 서기에 대한 원한도 한 줌의 재가 되고 남은 것은 꼭두각시인생에 대한 앙금밖에 없다.     나는 인생과 무엇을 바꾸어왔던가? 저 농짝 속에 깊이 간수해온 영예의 상장과 공로메달? 그렇다. 그 것이다. 그 것이 전부다. 역사가 나를 말해주는 그 영예들이 농짝 속에 깊숙이 감춰져 있다.     아, 과거엔 그 것들에 왜 그토록 큰 미련을 두었던지? 왜 그 것을 위해 자신의 살을 뜯어먹고 자신의 피를 빨아먹고 자신의 뼈를 갉아먹었던지?     후회막급이다. 후회 없이 살겠다던 내가 후회를 하다니? 후회하지 않을 수 없는 참혹한 현실, 후회하게 만드는 비참한 현황, 이 전국은 언제가야 풀릴는지?     마당에서 대대혁명위원회 성원이 나를 부르고 있다. 또 끌려갈 판이다.     오늘은 어디로 끌고 가려는지?     따르릉 따르릉.     전화벨 소리가 일기책에서 나를 떼어냈다. 나는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 빨리 병원으로 오세요.》     아내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뭐? 아버지가 잘못 됐소?》     《아니, 아버님이 당신을 찾고 있어요.》     《알겠소.》     사망선을 가로타고 그네질 하는 아버지가 나를 찾는다는 소리에 나는 경황없이 집을 뛰쳐나와 택시를 잡아탔다.    《이 사람 경천이, 콜록콜록.》     내가 아버지의 병실 문을 떼고 들어서자 아버지가 힘겹게 나를 불렀다. 나는 《경천이》라는 그 소리에 목에 칼을 박는 아픔을 느꼈다. 아버지는 50고개를 넘긴 이 아들을 보고도 언제 한번 《이 사람》이거나 《경천이》라는 대등을 써본 적이 없다. 《경천아》가 아니면 《이랬나 저랬나》하는 하대를 썼을 뿐이다. 존대보다 그 하대에서 나는 아버지라는 믿음을 더 받았고 아버지의 사랑을 더 느끼곤 했다. 귀에 익을 대로 익었고 벽을 느끼게 하지 않는 그 《이랬나 저랬나》가 급시에 대등으로 변하다니?     그 소리는 그처럼 멀게, 그처럼 서먹서먹하게 들려왔다. 급시에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부자관계가 홍수에 밀린 보뚝처럼 터져 갈라지는 것 같았고 메의 힘과 충격에 바위가 쩡 하고 갈라터지는 것 같았다.     《아버지, 웬일이십니까?》     《이 사람, 경천이 콜록콜록.》     《아버지, 말씀 낮추십시오. 전처럼 〈경천아〉하고 불러주십시오. 그 소리가 더 듣고 싶습니다.》     《아니네. 콜록콜록 이 사람…》     아버지는 마디마다 뼈가 그대로 노출되는 앙상한 손으로 내 손을 꼭 잡으며 말을 잊지 못했다. 아내가 아버지의 눈썹을 다듬어 올렸는지 늘 눈을 덮고 있던 처진 눈썹만 보아오던 나는 처음으로 가장 가까운 거리를 두고 아버지의 눈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자줏빛 물감을 들인 듯 검푸른 색깔에 깔린 우묵한 눈확, 황달이 들어 노랗게 변한 눈자위, 검은빛을 잃어버린 토색 나는 동공…죽음을 재촉하는 그 변화 속에서 살아 숨쉬는 목숨이라고, 목숨이 붙어있다고 눈물이 그득히 고여 올랐다.     《아버지, 왜 이러십니까? 병색도 가셔지고 살도 오르고 병이 도라진 기미가 확연한데요.》     《그런가? 콜록콜록 눈감고 아웅하는군. 허허허.》     아버지는 웃으셨다. 환한 웃음이 아니라 서글픈 웃음이었다. 맥을 버린 웃음이었다. 눈물에 가린 웃음이었다.     《이 사람 경천이, 날 퇴원시켜주게나.》     《무슨 말씀하십니까? 병이 나을 때까지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지요. 그래야 다시 한번 까막골에 다녀오시지 않겠어요?》     《콜록콜록 내 병을 내가 몰라? 입원비도 억찰텐데.》     《아버지 치료비는 근심 마십시오. 저금한 돈만 해도 아버지의 치료비를 대고도 남습니다.》     《치료비도 치료비겠지만 콜록콜록 나 내 집에서 죽고 싶네. 자네들이 꺼리지 않는다면 콜록콜록.》     《우리가 꺼리다니요? 아버지의 병을 꺼리는 자식 보셨습니까? 아버지는 더더구나 저의 어머니고 아버지가 아닙니까? 아버지!》     나는 침대에 비스듬히 기대앉은 아버지의 허리를 꼭 감아 안으며 애시 적에 그랬던 것처럼 아버지의 가슴에 머리를 묻었다.     그 때에야 나는 진짜 아버지를 여의지 않을까 하는 무서운 생각에 묻혀버렸다. 의사 앞에서 사형선고를 받을 때에도 지금처럼 가깝게 뼈저리게 아버지의 죽음을 실감하진 못했다.     《경천이, 아무리 부자간이라 해도 죽음은 꺼리게 되네. 콜록콜록 죽음이 부모 정 자식 정 다 걷어가지고 간다는 말 못 들었소?》     《아버지의 소원 정 그러시다면 제가 의사 선생님과 상론해보겠습니다.》     《내가 내 자리가 좋다고 나가면 콜록콜록 자네들이 더 고생일거구. 죽은 다음에도 죽음자리를 꺼려할거구. 콜록콜록 그래두 내 집에서 죽고 싶네. 의사와는 상론할 것두 없네.》     《그래도 의사와 상론하고 결정하겠습니다.》     나는 그 자리로 담당 의사를 찾았다. 이제 며칠 지탱하지 못할 것이니 환자의 소원을 풀어드리는 것도 바람직하다는 의사의 대답이었다.     나는 그 날 오후로 아버지를 퇴원시켰다.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의 정서는 확 달라졌다. 병원에 누워계실 때의 병에 깔린 모습, 생명의 마지막 활주로를 달리느라 허가차게 산소를 감빨아 들이며 죽음의 고배를 맛보던 숨을 헐떡이던 그런 모습이 아니다. 진짜 생명을 되찾지 않을까 하는 가들가들한 소생의 희망이나마 보여주는 야릇하고 쨍하는 가벼운 모습이다.     그 날 저녁, 병원에 계실 때 물 한 모금 넘기기 힘들어하시던 아버지는 아내가 쑨 미음도 한 공기 자시고 과실즙도 몇 숟가락 떴다.     아버지의 정서가 돌아서자 우리의 기분도 홀가분해졌다. 꽤나 오래 우리를 멀리했던 가정적 분위기가 가까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 기쁨, 그 희망은 며칠 가지 못했다. 아버지의 병세가 하강선을 그리면서 급히 악화되기 시작했다. 간복수가 와서 심장과 폐를 압박하는 바람에 아버지는 숨도 겨우 톺아올렸고 엎친 데 덮친다고 간혼미까지 들이닥치는 통에 아버지는 완전히 사경에 처하게 되었다.     나는 급히 전화기를 들고 연변병원에 왕진을 청했다. 구급차가 와서 아버지에게 주사를 놓는다 배에 찬 물을 뽑는다 해서야 아버지는 의식을 되찾았다.     의사들이 다 돌아가자 아버지가 나를 불렀다.     《이 사람 경…겅천이…콜록콜록 미…미안하에…》     《아버지도 별 말씀 다 하십니다. 아들을 보고 미안하다니요? 이 건 자식으로 응당 해야 할 일입니다.》     《경…천…이…암만 해도 앞…앞이 보이질 않…네. 저 뽀비를 열고 콜록콜록…봉…봉투를 꺼…꺼내주게.》     나는 아버지의 옷 궤짝 밑에 달려있는 서랍을 열었다. 거기에는 내가 소설원고 초고를 쓰면 넣어두곤 하던 큼직한 재료봉투가 끈으로 꽁꽁 동여져 있었다.     나는 재료봉투를 들었다. 묵직했다.     나는 그 봉투를 아버지의 앞에 놓았다.      《보…보게. 내…내가 죽…은 다…다음에.》     《아버지, 아버지는 절대 세상 뜨시지 않아요. 뜰 수 없어요. 흑흑흑.》     《멍청이 처…처럼 울…기는…콜록콜록.》     아버지는 힘겹게 손을 들어 내 눈물을 닦아주며 사색이 된 얼굴에 보일락 말락 미소를 떠올렸다.     《경…천…아…》     《네. 아버지.》     《경천아》하는 그 소리에 나는 귀문을 버쩍 열었다. 듣다 반가운 부름, 아버지를 되찾은 듯한 다감한 소리, 나는 그 부름이 좋았다.     《아…버…지의 부탁…콜록콜록.》     《내…내 골회를 약…수…동 휴양소에…》     《약수동 노인휴양소에 가셨댔어요?》      아버지가 머리를 끄덕이셨다.     《가토도 하시구요?》     《그…래.》     《그러면 아버지가 강…》     내 입에서 강자가 나오기 바쁘게 아버지는 머리를 저으셨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무서운 꼭두각시요 풀기 힘든 수수께끼였다. 도대체 아버지와 허인숙 어머니와의 사이는? 강 촌장과는? 숱한 의문부호들이 내 머리를 기습해왔다.     《경…천…아! 용…용서…》     아버지는 벌컥 자리를 일더니 여생에 남은 모든 빛과 열을 다해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 눈길에서 부모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애틋한 사랑과 정을 보았다. 마치 나를 친자식으로 믿고 마지막으로 지켜봐주시던 허인숙 어머니의 눈길과 같은 그런 눈길을 보았다.     아버지는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나를 지켜보던 그 모습 그대로 자리에 쓰러지셨다. 그리고는 숨을 거두었다.     아버지는 이렇게 외동아들을 달랑 남겨놓은 채 아무런 여한도 없이 깨끗한 한생을 마치셨다.     나는 울지 않았다. 눈물로 아버지의 값진 한생을 바꾸기에는, 눈물로 아버지의 지성을 바꾸기에는, 눈물로 아버지의 생전의 진통과 고초를 바꾸기에는 내 눈물이 너무나 가볍고 값싸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장례는 이튿날 치렀다. 소문 없이 태어나서 이름 없이 돌아가신 아버지처럼 아버지 장례도 소문 없이 치르고 소문 없이 골회함만 남겨놓았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이튿날 아침, 나는 정순이의 핸드폰 번호를 눌렀다.     《여보세요?》     정순이의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울려왔다.     《정순이니? 나 오빠다.》     《오빠? 웬 일이야?》     《오늘 차를 뺄 수 있겠어?》     《오빠의 명령이라면 무조건.》     《좋아. 빨리 대기해줘. 우리 집 앞에서.》     《알겠어.》     정순이의 자가용은 나를 구겨 싣고 연룡고속공로를 따라 달리고 있었다.     단오 날까지도 햇빛이 숨바꼭질을 하던 검은 해란벌이 파란 단장을 한 모내기 뒤끝이라 보기만 해도 싱싱했다.     《왜 또 약수동으로 가는 거야?》     《아버지가 세상 뜨셨어.》     《뭐야? 그런데 왜 나한테는 알리지 않았어?》     《불필요한 참견은 불필요한 오해와 불필요한 희생을 낳게 된다는 걸 너 몰라서 묻나?》     《알겠어. 하지만 섭섭해.》     《미―안.》     약수동 노인휴양소에 다다를 때까지 우리 사이에는 오가는 말이 없었다. 아버지를 여의었다는 비운이 내 입을 막았고 정순이에게 감염된 내 정서가 정순이의 입을 막아서였다.     휴양소에서 우리를 처음 맞아준 사람은 물론 소장인 한영희였다. 약삭빠르고 발놀림이 가벼운 영희는 언제나 그랬듯이 반갑게 우리를 맞아주었다.     《웬 일로 또 오셨어요?》     《새도 제 앉고 싶은 나무에 앉는다지 않소? 오고 싶어서 왔소.》     《환영, 이 영희는 언제 어느 때든 환영입니다.》     우박이 내리쳐도, 강타를 받아도, 질책을 받아도 언제 한 번 얼굴을 찡그릴 것 같지 않은, 살갗 밑에 낭만만 들어차 있을 듯한 그런 맑은 모습의 영희다. 그래서 신음 소리와 앓음 소리에 묻혀있는 이 휴양소에서 항상 영희의 맑은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고 웃음꽃을 볼 수 있는 모양이다. 영희는 휴양소의 만개한 함박꽃이다.     《그저 산보하러 오신 것 같지 않은데 문 선생님, 웬 일이시지요?》 사무실에 들어서자 영희가 찻물을 부으며 물었다.     《물론 한 가지 상론할 일이 있어서 왔소.》     《뭔데요?》     《아버지가 세상을 뜨셨소.》     《네? 문 아바이가요?》     《그렇소. 아버지의 골회를 산 좋고 물 맑은 약수동에 묻고 싶어서.》 내 말에 영희는 좋다 궂다 대답이 없었다. 무언가 생각하는 듯한 사색의 여운이 미소 밑에 깔려 있는 것이 분명했다.     《문 아바이는 여기에 한 번도 오신 적이 없는데 우리 휴양소는 어떻게 알고 허인숙 어머니의 묘지를 어떻게 알았을까요?》     《아니요. 왔다가셨소. 청명 후에 휴양소를 찾았다가 허인숙 어머니의 묘지에 가토까지 하신분이…》     《그럼 그 강씨라던 분이 문 아바이셨던가요?》     나는 머리만 끄덕였다.     《긴 눈썹이 처져 내리고 콜록콜록 잔기침을 자주 하는 분이…》     《그렇소. 그 때 아버지는 고향인 까막골을 가신다면서 집을 나섰댔는데 여기를 찾아오실 줄은 정말 생각 밖이었소.》     《문 아바이였군요.》     《지난번 단오에 왔을 때 모양새만 물었어도 벌써 알았을 텐데 까막골로 떠나신 아버지가 여기를 찾을 줄은 정말 뜻밖이었소. 그리고 찾아온 분이 강씨라기에 아버지와 전혀 연결은 시키지 않았구.》     《그런 일이었구만요.》     《어떻소? 묘 자리 하나 내줄 수 있소? 돈을 내라면 돈을 내고 뭐나 다 해드릴 수 있소.》     《문 선생님의 진국을 알만해요. 그 땅은 우리 휴양소의 땅이기에 얼마든지 빌려드릴 수 있어요. 그저 문 선생님의 마음만 요구해요.》     《아버지를 묻은 땅인데 내가 약수동을 잊을 수 있겠소?》     나는 정순이를 시켜 두도진에 가서 고기며 술, 채소, 과실들을 사오게 했다.     휴양소의 노인들도 구면이라 구애 없이 푸짐한 점심밥을 앞에 놓고 마음껏 마시고 마음껏 즐겼다.     《허인숙은 천당에 가서도 웃으며 살겠다. 저런 무던한 아들을 둬서…》     《나에게도 저런 아들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고?》     《나를 보오. 자식이 있어 무슨 소용이요? 자식도 자식 나름에 가지.》     노인들이 나를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효자아들이라고.     《노인님들, 근심 마십시오. 이제부터 제가 여러분들의 아들입니다.》 나는 노인들에게 술을 권하며 말했다.     《감사할시구.》     《그래 줬으면 얼마나 좋겠나?》     《어 좋을시구. 나에게도 아들 하나 생겼다.》     내 말에 얼마나 성수났던지 한 할머니는 일어나 춤까지 덩실덩실 췄다.     《언제쯤 묘지를 앉히겠나요?》     떠날 때 영희가 물었다.     《내일 당장.》     《일군들을 불러야겠지요?》     《삯은 푼푼히 드릴 테니 장정 몇 명만 불러주오.》     《알겠어요. 그럼 내일 또 만나자요.》     우리는 영희와 작별하고 약수동 마을을 빠져나왔다. 진흙과 자갈에 묻힌 시골길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비온 뒤끝이라 전번보다 더 파이고 큼직한 돌들이 내노라 하고 머리를 쳐들고 있었다. 몹시 파인 길에는 누군가 나무 가지며 돌들을 채워놓고 지나간 자리가 역력했다. 시골사람들이란? 모래 몇 수레면 수선할 수 있는 길도 내버린 채로 두다니?     《내일 내가 따라와도 되는 거야 오빠.》     《되고 말고.》     《그럼 언니도 와야 할 텐데 언니를 무슨 낯으로 대하나?》     《범 무서운 줄 모르던 네 입에서도 그런 말 다 나오나?》     《나도 여자야. 언니로 놓고 보면 사랑의 원수고…》     《아무런 내색 내지 말고 전처럼 언니 동생하면서 지내. 그 것이 제일 편할 거야.》     《남자들은 다 오빠 같아? 그게 그리 쉬운 줄 알아?》     《힘들지. 힘들기 때문에 감추는 거 아냐?》     《알았어!》     국도에 나서자 승용차는 질풍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차창을 열었다. 시원한 바람이 머리칼을 날렸다. 구수한 흙냄새가 폐부를 적셨다.     《에어컨을 꺼버려.》     《오빠. 오빤 진짜 문 아바이 아들 맞아?》     《여지도 없는 물음. 나는 에누리 없는 아버지의 아들이야.》     《그런데 오늘 보니 이상한 느낌이 들어. 문 아바이가 어쩌면 강 촌장 같아.》     《강 촌장?》     《그렇잖으면 왜 허인숙 어머니의 묘지를 찾았겠나 말이야.》     《아버지는 내가 하도 허인숙 어머니의 일기에 달라붙으니 도대체 어떤 분이기에 아들이 저토록 심혈을 기울이겠는가 하는 궁금증에 휴양소를 찾았을 거야.》     《그럴 수도 있겠지만 맞혀오는 내 감각은 달라.》     《잡생각 꼴깍 삼키구 핸들이나 바로 잡아. 네 덕에 자칫하다간 우리도 약수동에 묻히고 말겠다.》     《안심해. 백퍼센트 보장.》      정순이는 지그시 액셀을 밟았다. 승용차는 줄 떠난 화살처럼 연길을 향해 나는 듯이 달렸다.     이튿날 나는 약속대로 아버지의 골회를 약수동 노인휴양소 허인숙 어머니의 옆에 모셨다.     이제 갈 것은 다 가고 줄 것은 다주고 남은 것이 없다. 아버지가 나에게 남긴 뼈저린 추억을 가셔버리고 아버지가 쓰시던 일체 소지품은 다 태우거나 던져버렸다. 아버지의 침실은 텅 비어 있다. 그런데 그 텅 빈 침실에서 들려오는 콜록콜록하는 아버지의 기침소리와 터벅터벅하던 아버지의 발자국소리는 지워버릴 수 없다.     콜록콜록… 새벽마다 나를 깨우던 기침소리, 태엽이 풀리고 부속품들이 낡아 때 없이 종을 울리기는 했지만 아버지의 빈방에서 들려오는 그 기침소리는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 지금도 계속 들려오고 있다.     스르륵 스르륵…     끌신 끄는 소리가 터벅터벅 하던 아버지의 발걸음소리와 바뀌어 들려온다. 아버지의 발걸음 소리처럼 달짝지근한 맛, 그 소리를 듣지 않으면 무언가 귀한 물건을 잃어버린 듯한 그런 차분한 맛을 주는 소리가 아니라 거친 맛을 주는 끌신 끄는 소리다.     문이 빠끔히 열린다.     아버지의 얼굴 대신 잠을 설 때운 아내의 부석부석한 얼굴이 나타났다.     《밤참 드시라요.》     《생각 없소.》     《그러다 몸 상하겠어요.》     아버지가 하시던 그 말 그대로다. 그런데 아버지의 소리와는 완연 엇갈린 소리다. 아버지의 말씀에는 책망보다 의무감이 한 쟁반 가득 담겨 있었다.     아내는 선 자리에서 몸을 돌린다. 아버지는 꼭꼭 내 책상 앞에 쟁반을 놓고 나가시지만 아내는 그 자리에서 돌아선다.     그 것부터가 틀렸고 그 것부터가 달랐다. 누군가는 부모의 사랑보다 아내의 사랑이 제일이라고 했다. 그래서 백년해로 한다는 말이 나왔는지는 몰라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식 버리는 부모는 없어도 남편 버리는 아내는 많은 법이니까. 그래서 부모사랑 세상에서 으뜸이라지 않는가!     아버지는 우리 집 기둥뿌리까지 몽땅 뽑아가지고 저 세상으로 가지 않았나 싶다. 내가 버리고 내가 태워버린 것이 아니라 손수 챙겨가지고 가신 것이 틀림없었다. 내가 출근할 때마다 《아버지 다녀오겠습니다.》하고 인사할 때마다 들어오던 《오냐. 잘 다녀와.》하던 목소리도 퇴근하여 집에 들어서면서 《아버지 다녀왔습니다.》하며 인사를 올릴 때마다 들어오던 《오냐, 왔느냐》하며 반기던 아버지의 목소리도 더는 들을 수 없다. 덜컥하고 열리거나 닫기는 문소리가 아버지의 목소리를 대신할 뿐이다.     아버지가 계시기에 하루 세 끼 더운 밥 더운 반찬을 차려 올리던 그 번거로우면서도 따끈한 맛을 주던 식탁도 식어있을 때가 더 많다. 우리는 각자 시간나는 대로 제 수요에 따라 홀로 식탁에 마주 앉곤 한다. 아버지는 우리의 식미와 때시걱까지 안고 가셨다.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 우리 집은 온기를 잃은 냉랭한 집으로 냉각되어 가고 있었다. 정과 사랑이 아니라 사람이 살고 있고 숨쉬고 있다는 그 감각마저 몽땅 들고 가셨다.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 우리 집은 하나의 거대한 냉장고다.     아버지를 잃은 우리 집은 각자는 자기 대로라는 가품도 없고 문벌도 없고 세대주도 없는 망가진 가문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아버지는 가문의 생존이요 가정의 자부라는 그 마지막 지탱점까지 몽땅 뽑아 가셨다.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 우리 집은 아파트단지의 찌들어가는 오막살이다. 내 탁상 위에는 보다만 허인숙 어머니의 일기책이 질서 없이 널려진 채로 있었다.     나는 일기를 마저 보려고 일기책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다른 일기들은 빠짐없이 있었지만 유독 1970년부터 1974년까지의 4년간에 걸쳐 쓴 일기들이 빠져 있었다.     그 삼엄했던 《문화대혁명》때의 일기까지 보존되어 있는데 그 후의 일기가 빠져있다니? 4년간 일기를 쓰지 않았다는 말인가? 그럴 수 없었다. 허인숙 어머니는 한생 일기와 동무하며 사신 분이니까. 그렇듯 오랫동안 붓을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12    우산은 비에 운다(4) 댓글:  조회:1220  추천:54  2009-03-11
4 사생아     나는 잠시 일기를 접쳐놓았다. 쉬고 싶었다. 일기속의 허인숙 어머니도 지쳐 있었고 그 일기를 읽는 나도 지쳐 있다. 인생은 지치면서 사는 것일까? 산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 그 자체가 죽음의 길을 닦아가고 죽음을 재촉하는 과정과 결과가 아닌가 싶다. 기실 허인숙 어머니도 살기 위해서 죽어가고 있었다. 일기가 그렇게 말했다. 나도 살기 위해서 죽어가고 있다. 현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일기 속의 허인숙 어머니는 너무나도 무서운 괴로움에 시딜리고 있었고 그 일기를 읽는 나도 지하막장에 자신의 인생을 묻어버리는 듯한 진통을 겪고 있다. 반 세기전의 허인숙 어머니나 지금의 나나  인생행로의 저울추는 다를 바 없고 삶의 진로는 변함이 없다. 살기 위해서 자신을 죽여야 하고 죽기 위해서 자신을 살려야 하니까.     살기 위해서 허인숙 어머니는 남을 속여야 했다. 나도 살기 위해서 독자들을 속여야 한다. 임신이 드러나는 날이 허인숙 어머니가 죽는 날인 것처럼 이 일기의 비밀이 드러나는 날이 나의 작가 생명이 끝나는 날일 것이다. 속이며 속고 사는 세상 임금이 백성을 속이고 백성이 임금을 속이며 살아온 역사처럼 현실속의 인간들도 속이며 속고 살아간다. 일기가 고스란히 그 내 속을 파헤치고 있다.     이렇게 생각을 굴리자 더 갑갑해난다. 외도를 하건 강도질 하건 살인을 하건 무어든 해야 풀릴 것 같은 그런 심태다. 저절로 제 몸을 망그러뜨리고 싶고 저절로 제 마음을 칼탕치고 싶다. 미칠 것만 같다. 이것이 지금의 나고 이것이 나의 고백이다.     콜록콜록…      아버지의 잔 기침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벽시계를 쳐다보았다. 시침이 12시를 가리키고 있다. 밤 12시, 시침이 새벽 3시를 가리키려면 아직 3시간 더 달려야 한다. 그런데 기침소리가 들리다니? 부속품이 낡아서 그런지 요즈음 아버지의 기침시계는 때 없이 종을 울린다. 기침소리를 꼬리 물고 영락없이 들려오는 아버지의 발자국소리. 그 발자국소리와 함께 서재의 문이 열린다.     《또 밤을 팰 셈이냐?》     문설주와 문 사이로 요즈음 자주 보아오는 아버지의 처진 눈썹과 그 사이로 나를 지켜보는 아버지의 우묵한 눈이 나타났다.     《아닙니다. 이제 불을 끄겠습니다.》     나는 미안한 감이 들어 이렇게 대답하며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아버지의 저 얼굴은? 이슬이 맺힌 듯 물방울이 전등불빛에 번뜩거렸다. 땀이다. 땀!     《아버지, 많이 아프십니까?》     《아프긴? 요즈음 잠이 잘 오지 않는구나. 콜록콜록… 잠이 들까하면 꿈이 달려들구. 콜록콜록…》     《몸이 허해서 그렇습니다. 보약을 쓰셔야겠습니다.》     《보약? 너나 보약을 쓰거라. 너 수척해진 꼴을 봐. 콜록콜록…》     《일기를 보느라 잠을 설쳐서 그렇지 저는 무병합니다.》     《전에는 꿈을 모르고 잠을 잤댔는데 참 별일이구나. 콜록콜록… 방금 전에도 너 에미가 칼을 들고 달려드는… 꿈… 콜록콜록… 앞길을 재촉하느라 그러는지…》     《아버지도 별말씀 다 하십니다. 악몽이 길조라지 않습니까? 아버지. 근심 마십시오. 오늘 제가 보약 한 제 지어다드리겠습니다. 일기에 난 파묻혀 있다보니 제가 너무 등한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네가 죄송할 게 뭐냐? 콜록콜록… 내가 발이 없나? 돈이 없나? 나 절로 의원을 보여도 너끈한데 콜록콜록… 이놈의 꿈만 없어도 발편잠 자겠는데… 어서 불을 끄거라.》     《녜, 아버지!》 스르륵, 미끄러지듯 서재 문이 닫혔다.     뚜벅뚜벅… 맥 빠진 아버지의 발걸음소리가 멀어졌다. 나만 지친 것이 아니라 아버지도 지쳐 있었다. 전에는 빠른 절주로 힘차게 울리던 아버지의 발걸음소리가 지금은 느리게, 그것도 발뒤축을 질질 끄는 소리까지 겹쳐서 들려왔다. 허인숙 어머니의 일기가 재화를 가져다준 것일까? 내가 일기를 보기 시작하면서 우리 집 생활절주는 삼검불처럼 헝클어지기 시작했고 저마다 제 둥지 속에서 같지 않은 호흡을 하고 있다. 주먹질이거나 큰소리 한 마디 없는 냉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이것을 우리 식솔―아버지와 아내 그리고 나 모두가 피부로 느끼고 있으면서도 말하지 않고 있을 뿐이었다.     《아니 절 좀 편안히 자게 해주세요.》     내가 서재의 불을 끄고 침실에 들어가 이불 속에 몸을 오그라뜨리자 아내가 투덜거렸다.     《미안하오.》     《항상 미안하오. 미안하오. 이젠 그 말 듣기마저 지겨워요.》     《내일부터는 서재에다 이부자리를 펴겠소.》     《당신 몸은 쇠로 빚었나요?》     《시작하면 끝을 보고야 마는 내 성미를 몰라서 그러오?》     《다른 사람 살펴도 봐야지요?》     《그럼 나더러 어쩌라는 말이오?》     《당신 소원대로 하세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날벼락 떨어지겠는 걸 어째요. 이젠 말릴 맥도 없어요.》     아내는 이불을 감고 팩 돌아누우며 앵돌아진다. 전 같으면 수면 부족으로 오는 현훈증이오, 출근길 버스에서 졸다 내릴 역을 놓쳤소, 교수안을 쓰다가 테이블에 엎드려 코를 골아 망신을 당했소 하면서 장광설을 늘어놓았을 텐데 오늘 저녁엔 바가지 긁는 소리가 길지 않다. 코고는 소리도 구시럭대는 소리도 없다.     아내도 지쳐 있는 모양이다. 지쳐서 말꼬리를 물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워낙 아내의 지청구에 이미 넌덜머리가 나있던 나였다. 그것이 나를 놓고 보면 잘코사니였으나 지쳐 있는 아내의 모습을 보니 어딘가 측은한 생각까지 들었다. 심지어 내가 너무하지 않나 싶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사이, 몇 십 년 살을 섞으며 살아온 아내가 그토록 몰상식하고 이해력이 없는 아내가, 커피 한 잔 타주지 않는 아내가 괘씸하고 미웠다. 미운 50고개라더니 그래서 그럴까? 이불을 감고 팩 돌아눕는 거동도 그렇고 숨소리 한 번 크게 쉬지 않는 죽은 듯한 모양새도 그렇고 고운 데 없이 다 미웠다.     쪽잠 문이나 열어봤는지? 잠을 설치고 새날을 맞은 나는 찌푸린 날씨처럼 마음이 흐리터분하여 도무지 일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일기책에도 눈길이 가지 않았다. 파도에 실린 난파선처럼 산란해진 마음을 잡아둘 수 있는 항구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밥술을 드네 마네하고 말없이 집을 나섰다. 바깥 날씨는 꽤나 한산했다. 나는 어디라 없이 발 가는대로 내 몸을 맡겼다. 걷고 싶었다. 이렇게 걷고 걷노라면 지구의 막끝까지라도 걸어갈 것 같았다.     내가 부유보건원 담장을 끼고 걸을 때였다. 뿡-하는 경적소리와 함께 도요다 승용차 한 대가 내 옆에 와  급정거하는 것이었다. 나는 어리둥절한 김에 담장 쪽으로 한 발 물러섰다. 그 때 승용차 운전석 문이 열리며 낯익은 얼굴이 나타났다.     《호호호…》     《아니… 너?》     샘물골 집체호로 내려갔을 때 나보다 삼년 늦게 내려온, 나를 오빠라면서 각근히 따르던 정순이었다.     내 빨래를 도맡아 하고 심지어 팬티까지도 꺼리지 않고 빨아주던 그녀였다. 하여 집체호에서는 물론 샘물골 사람 모두가 정순이와 나를 점찍은 배짝으로 여겼다. 비록 큰 키는 아니지만 살찐 복숭아처럼 오동통한 몸매는 남자들치고 누구라도 탐닉하고 싶어 할 육감적인 체질이었다. 얼굴 역시 하나하나 뜯어놓고 보면 곱다할 곳이 하나도 없지만 그 모든 것을 제자리에 붙여놓으면 조화를 잘 이루는 미인의 얼굴 부럽지 않은 용모와 섹시한 윤곽을 갖고 있었다. 활달하고 그 누구도 접근할 수 있는 붙임성 좋은 성미 때문에 모두들 정순이를 좋아했다. 내가 만약 지금의 아내한테 임신을 시키지 않았다면 정순이를 택했을 것이다.     정순이는 진공형의 여인이었다. 내가 지금의 아내와 미타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정순이는 서슴없이 나를 끌고 숲 속으로 들어갔고 거리낌 없이 자신의 나체를 드러내 놓았다. 둘이 미친 듯 서로를 탐닉한 후에도 정순이는 부끄러워 하는 기색 하나 없이 웃고 떠들며 사람들 속에 끼어 들었고 평소와 다름없이 남성들 숙소를 드나들었다.     시내로 올라온 후에도 정순이와 나의 관계는 변함없었다.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할 때 두 말 없이 응해 나서곤 했다. 그러다 정순이가 북경에 있는 어느 일본 회사에 취직하면서 우리의 관계는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전화 한 통 편지 한 장 없었다.     그런 정순이가 귀신처럼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오빠, 어데 가나?》     《발 가는대로.》     《그럼 어서 내 차에 올라오.》     《네가 진짜 정순이가 옳아?》     《호호호… 나 말고 정순이가 또 있나요?》     《이거 몇 년 만이야?》     《인사는 차차 하고 빨리 차에 올라 오빠!》     정순이는 다짜고짜 내 팔목을 잡고 운전석 옆자리에 구겨 넣으면서 말했다.     《오빠, 진짜 그리웠다 보고 싶었어!》     정순이는 운전석에 앉자 핸들 위에 손을 얹으며 나만 말끄러미 쳐다보았다. 정순이는 전혀 변한데 없었다. 값진 옷, 푸른 보석반지, 백금 목걸이, 붉은 보석귀걸이, 양 어깨에 드리운 검누렇게 염색한 부푼 머리만 아니라면 집체호 때의 정순이 그대로일 것이다.     《나도…》     《오빠!》     내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정순이는 내 목을 와락 끌어안고 사정없이 내 입술을 감빨기 시작했다.     《야, 길가는 사람들이 보겠다.》     《보면 뭐래? 실컷 보라지.》     정순이는 내 입술과 볼에 숱한 자국을 남겨놓고서야 물러앉았다.     《오빤 유명 작가가 됐다면서?》     《그저 흉내 내는 정도야.》     《거짓부리. 내가 모르는 줄 알구? 오빠 어데 갈까? 오늘 실컷 드라이브 하고 싶어.》      《좋아. 어디 건 멀리 갔으면 좋겠다.》     《오빠, 먹을 걸 사가지고 산골 별장으로 갈까?》     《얘 그러지 말고 우리가 집체호로 내려갔던 샘물골에 가보지 않으련?》     《야. 샘물골엔 골짜기마다 우리의 보금자리가 있었어. 호호호…》     《얘는… 너 조금도 변한 데가 없구나. 허허허…》     《오빠는 변했나 뭐요.》     《얘, 내가 서시장에 들려 붕어하고 메기를 살 테니 너는 집에 가서 끓여먹을 그릇과 수저를 갖고 와. 우리 솔개령 밑 석개울에서 천렵놀이 하자. 그것도 멋질 거야. 집체호 때 잘들 그랬잖아?》     《차 짐받이에 뭐나 다 있어. 자, 출발!》     도요다 승용차는 연서교를 지나 거침없이 공원교쪽으로 꺾어들었다.     《너 언제부터 차를 몰았나?》     《10년.》    《오래됐구나.》    《오빠는?》    《지금껏 자전거 탈 줄도 몰라.》    《잘 됐네. 앞으로 내가 오빠 운전기사가 될 테니까.》     정순이는 나를 보고 눈을 끔쩍해보였다. 그것마저 변하지 않았다. 정순이는 자기가 대견스럽다고 여기거나 나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았다고 여길 때면 지금처럼 눈을 끔쩍해보였다. 그럴 때면 나는 대답으로 왼쪽 볼을 실룩해 보였다.     《오빠는 조금도 변한 데가 없어!》     내가 왼 볼을 실룩하자 정순이는 신이 나서 말했다.     《너 왜 오간다 한 마디 말도 없이 훌쩍 달아나버렸지?》     《오빠를 더 괴롭히지 않기 위해서. 오빠는 나 때문에 제 때에 장가도 들지 못하고 있잖았나?》     《그럼 전화나 편지라도 날렸어야지.》     《난 무척 괴로웠어. 그래서 내린 결론이 단념, 그것이었어.》     《그런데 오늘 또 만났구나.》     《인연인가 봐.》     서시장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우리는 곧추 시장 안에 들어섰다. 술 두 병, 음료수 한 상자, 메기 두 마리 그리고 고추장, 생강, 파, 마늘, 오이 등 채소와 양념감을 사가지고 사람들로 붐비는 서시장을 빠져나왔다. 서시장에 들어서본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장마당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온 연길시 사람 전체가 서시장에 몰려들지 않았나 싶게 느껴지는 곳이 바로 싸구려와 흥정으로 모든 소음을 짓누르는 연길시 서시장이다. 서울하면 동대문 남대문을 모르는 이 없듯이 연길하면 서시장을 모르는 이 없다. 소비도시인 연길의 소비중심이 바로 서시장이기 때문이다.     《언제 연길에 왔나?》     승용차가 국도에 들어서자 내가 물었다.    《일 주일 전.》    《그런데 왜 나를 찾지 않았어?》    《날 짐승도 둥지를 틀어야 알을 낳는다지 않나? 나도 엉덩이를 붙일 곳을 마련해야지. 그러느라 늦었어.》    《그간 어떻게 보냈지?》    《오빠, 궁금해? 돈을 벌기 위해 일본 회사에 들어갔고 작은 빌딩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그 사람한테 몸을 바쳤고 그리고는 두 사람 빠이빠이. 그 후 한국의 기업가를 만나 한국에 가서 결혼하고 딸 하나 낳고 또 빠이빠이. 그저 그래.》     정순이는 나에게 몸을 주었을 때처럼 다른 사람에게 몸을 준 것을 대수롭잖게 입밖에 던졌다. 마치 달지도 쓰지도 않는 일상사처럼.     《그렇다고 나를 갈보라고 생각 말아. 딱 필요할 때 오빠를 포함한 세 남자에게 주었을 뿐이야. 오빤 이런 내가 싫어?》     《아니야. 그것도 생존을 위한 일종 수단이니까. 개의치 않아.》    《호호호… 오빠도 눈을 텄네. 오빠. 남성 문예인들 거개가 난봉꾼이라던데 오빠도 난봉꾼 아냐?》     《네가 보기엔?》     《아닌 것 같아.》     《너까지 합쳐 2대 1이니까. 뭐라 말한다?》     《졸장부. 호호호…》     《허허허…》     며칠 전, 내가 약수동 노인휴양소에 다녀올 때까지만 해도 연한 녹색을 띠였던 대지는 짙은 녹색으로 몸단장하기 시작했다. 시간은 그토록 무궁한 힘을 가진 예술가가 되어 붓 하나로 푸른 세계를 수놓고 있었다. 시간은 유수와 같고 세월은 빠르다지만 지난 며칠 새처럼 빠를까? 일기를 읽느라 서재에 묻혀버린 나는 며칠이라는 시간이 만들어낸 대자연의 조화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시간은 확실히 대자연의 덜미를 잡고 있는 마술사다.     승용차는 가로수의 검열을 받으며 살같이 달렸다. 선글라스를 건 정순이는 곁눈 한번 팔지 않고 앞만 주시하고 있었다. 시속이 120킬로미터를 넘고 있었다.     《너무 빨리 모는 거 아냐?》     《왜 겁나?》     《겁난다기보다는…》     《겁먹지 말아 오빠, 날 믿어!》     승용차는 잘 포장된 국도를 따라 거침없이 달렸다. 2시간 푼히 달려 시에 이른 우리는 다방을 찾아 커피 두 잔을 주문했다. 칸칸마다 봉폐되어 있는 다방은 연인들이나 젊은이들을 끌어들이기에 충분했다. 외계와 단절된 우리 둘만의 세계에서 나는 정순이와 마주 앉았다.     《오빠. 기억하고 있어?》     정순이 커피 잔을 들고 홀짝거리다가 나를 보고 물었다.     《뭔데?》     《오빠의 첫 단편소설〈이지러진 쪼각달〉이 발표됐을 때 그 원고료로 한 턱 내던 일.》     《그랬던가? 허허허…》     나는 잊고 있은 듯이 웃어버렸다. 한 번도 잊은 적 없는 한 차례의 로맨스였다. 처음으로 98원이라는 큰 돈을 손에 쥔 나는 그 돈을 어디에 쓸지 몰랐다. 그 때 마침 정순이와 나는 용천공사 공소합작사로 화학비료를 사러 가게 되었다.     질소비료 네 포대를 수레에 싣고 나니 점심때가 되었다. 정순이와 나는 공사에서 꾸리는 식당에 들어섰다.     《뭘 먹지?》     내가 물었다.     《배갈.》     《뭐야?》     《오빠, 오늘 취하고 싶어.》     《아는 사람 만나면 어쩔려구?》     《졸장부, 여자는 취하면 안 된대? 취하는 것으로 오빠의 처녀작을 축하하고 싶어!》     이렇게 되어 우리는 맛스런 요리를 청해놓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한 잔 두 잔… 술이 술을 청한다고 60프로짜리 소주 두 병을 굽냈다. 그러다보니 정순이는 고주망태가 되어 제 몸도 건사하지 못하게 되었다. 나도 취한 상태였으나 정순이처럼 인사불성까지 되지는 않았다. 나는 안간힘을 다해 정순이를 안고 식당 문을 빠져나왔다. 정순이를 어떻게 소수레에 눕혔는지 잘 기억되지 않지만 정순이가 몹시 무거웠다는 생각만은 지워지지 않는다. 나는 소수레를 몰고 용케도 용천공사 정부마을을 빠져나왔다. 망신당할까 봐 정신을 가다듬은 덕분이 아닌가 싶다. 마을을 벗어나자 더는 지탱할 수 없어 나도 소수레에 올라 정순이와 가지런히 눕고 말았다. 그 뒤는 어떻게 되었는지…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우리가 샘물골에 와있었다. 소가 영물이라더니 틀림없었다. 우리를 싣고 제 집까지 왔던 것이다.     이 일이 있은 후 샘물골에서는 별의별 소문이 다 떠돌았다. 정순이와 내가 수레 위에서 끌어안고  잤다는 둥 여자 주정뱅이가 생겼다는 둥 말도 많았다. 그 일로 하여 나는 기가 죽어 어깨가 처졌지만 정순이는 그렇지 않았다. 여전히 웃고 떠들며 사람들 속에 끼어들었다.     《너 그 때 죄를 짓고도 무슨 용기에 어깨를 으쓱하고 다녔어?》     내가 커피 한 모금 마시고 물었다.     《죄? 술 마시고 취하는 건 당연한 일인데 죄는 무슨 죄야? 여자는 취하면 안 된데?》     《취한 청년남녀가 수레 위에서 자고 있었으니…》     《졸장부, 취했으니 잔 거 아냐? 그 때 어깨가 처져 다니는 오빠가 밉상이더라.》     《소 볼기짝 같은…》     나는 소 볼기짝 같은 년이라고 말하려다 지나친 것 같아서 입술까지 나온 말을 감빨아드리고 말았다.     《오빤 뭐나 다 좋은데 그 염치. 염치 하는 것이 질색이야. 지금 염치 믿고 살 때야?》     《자, 길을 조이지 않으련?》     《뽀뽀 한 번 하구.》      정순이는 내 곁에 와 내 목을 끌어안았다. 흐무진 정순의 유방이 내 가슴을 압박해왔다. 하신에 기운이 뻗치면서 내 손은 나도 모르게 정순이의 젖무덤을 파고들었다.     《오빠. 그건 다치지 마. 그러면 난 참지 못해!》     《괜찮을 거야.》     나는 점점 열이 올라 씩씩거리며 손을 떼지 않았다. 정순이의 숨소리도 점점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정순이는 내 목을 감았던 팔을 풀며 말했다.     《안돼. 이런 곳에선 재미가 없어. 소리도 칠 수 없구. 자, 오빠. 떠나자.》     잠깐 몸을 식힌 후 우리는 다방을 빠져나와 승용차에 올랐다. S시는 그간 몰라 볼만치 변모했다. 30여 년 전엔 삼층집이 제일 높았었는데 지금은 고층빌딩들이 줄줄이 들어앉았고 비가 오면 진탕으로 길손들을 괴롭히던 거리들이 몽땅 포장되어 시내라는 실감을 남김없이 노출시키고 있었다.     승용차는 잠간 사이에 S시를 빠져나왔다. 시내의 인파 속을 헤가를 때엔 교통질서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핸들을 잡은 정순이보다 내가 더 신경질적이고 나도 모르게 욕설이 나갔지만 시외로 나서니 그런 일이 있었나 싶게 마음마저 홀가분해졌다.     샘물골로 가는 길은 포장되지 않은 모래길이었다. 하지만 아스팔트 못지않게 잘 닦여 있었다.     전에는 아내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산다던 용천향이다. 낯익은 고장의 골연에 잡아들자 내 마음은 갑자기 설레기 시작했다. 그 간 샘물골은 어떻게 변했을까? 친구들과 우리를 관심해주던 샘물골 사람들은 모두 무고한지? 갑자기 그들이 보고 싶고 그들이 그리워졌다.     정순이는 용천향 골연에 들어서자 갑자기 속력을 죽이며 천천히 몰았다. 선글라스까지 벗었다. 그녀도 감개가 깊은 모양이다.     《오빠, 우리가 이 길을 몇 번이나 오갔을까? 몇 십 번? 몇 백 번?》     《헤아릴 수 없지.》     《집체호는 실제상 배움의 길을 차단해버린 대 재난이었어. 우리는 그 피해자들이고. 그 무지한 혁명 속에서 우리가 배운 것이 뭐야? 그래 오빠는 작가가 될 행운을 지녔으니 배운 것이 많을 거야. 그렇지? 하지만 나에게 남은 건 배우지 못한 한(恨)뿐이야. 나는 그 한을 품고 억척스레 돈벌이에 나섰고 지금은 내 한생 쓰고도 남을 돈이 있어. 그런데 그 돈이 뭐야? 돈 없는 사람은 돈이 제일이라지만 돈 있는 사람은 돈처럼 부담스럽고 허무한 것이 없어. 있고 보면 없었던 때가 제일인 것처럼 나 지금 원점으로 돌아가고 싶은 심정이야. 돈이 그립고 아껴 쓰던 그 때로 말이야.》     《우리는 너무나 많은 대가를 지불했어. 몽매가 천재를 만들 수 없잖아? 봉폐된 환경, 외계와 단절된 세계는 수 십 년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근시안으로 만들었고 몽매무지라는 진구렁 속에 빠뜨렸어.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우리는 그 속의 일원이었어.》     《오빠. 기분 잡친다. 우리 이런 말하지 말자. 어때?》     《좋도록.》     《왜 기분 나빠?》     《아니 농촌에서 애 아빠나 엄마가 되었다가 늦게야 정책락실을 받아 시내로 올라와 고생하는 내 동료들을 생각하고 있어. 그들이야말로 진짜 피해자들이야.》     《그 말 끊자고 했잖아?》     《그래 끊자, 끊어!》     승용차는 오불꼬불한 산골길을 누비며 다시 전속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사람은 변해도 산천은 변하지 않는다더니 돌문이며 호랑바위의 소나무며 당금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받침돌 위에 겨우 뻗치고 앉아있는 사자바위며 변한 데 없었다.     용천향 소재지를 지날 때였다. 기분상태가 마이너스였던 정순이 신나서 소리쳤다.     《오빠, 저것 봐! 우리 둘이 술 마시던 공소합작사 식당이 그대로 있네. 우리 내려가 볼까?》     《뭐 볼 게 있다고 그래?》     《나 보고 싶은데?》     《정 보고 싶다면 돌아갈 때 보자. 빨리 길을 줄여!》     사실 나도 내려가 보고 싶었다. 나의 첫 원고료로 한 턱 내던 장소요, 정순이와 마주앉아 기분 좋은 술추렴을 하던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 지은 향정부, 우편국, 세무서 등 몇몇 건축물을 내놓고는 변한 데가 없는 향정부 소재지에 발자국을 남기고 싶지 않아서였다. 30여 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지만 한심하다 싶게 변모한 데가 없었다. 그래서 쓸쓸했고 그래서 섭섭했다.     승용차는 솔개령을 톱아오르기 시작했다. 수레길만 남겼던 솔개령 령길은 울퉁불퉁하기는 했지만 제법 자동차가 씽씽 달릴 수 있는 돌과 모래로 포장된 큰 길이었다. 길 양켠에 꽉 박아섰던 홍송 청송은 오간 데 없고 보잘 것 없는 잡목들만 무성했다. 샘물골이 자랑하던 솔개령은 민둥산으로 변했다. 솔개령 정상에 오르자 전에는 구경도 못했던 단칸짜리 작은 벽돌집 한 채가 자리지킴을 하고 있다. 출입문에 용천목재검사소라는 낯선 간판이 걸려 있고 엉덩이에 큼직한 돌을 단 차단기가 큰길을 가로막고 있다.     모든 것이 변했고 모든 것이 낯설었다. 우리는 약속도 없이 서로가 서로를 쳐다보며 차에서 내렸다.     강 촌장과 허인숙 어머니의 쉼터였다는 진대나무가 누웠던 자리를 찾고 싶었고 허인숙 어머니를 여성으로 죄인으로 만들었던 그 로맨틱한 장소라도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작가로서의 호기심일 뿐이었다. 30여 년이 지난 오늘 진대나무가 썩지 않고 그냥 남아있을 수 없고 남아있다 해도 목재검사소 벽돌집이 벌써 깔고 뭉개버렸을 것이다.     지체할 흥도 멋도 없었다. 처참하게 머리를 깎인 솔개령에 꼬물만한 미련도 없었다. 아름다운 추억만 남기고 죽어간 솔개령에 한숨만 남긴 채 우리는 샘물골로 달렸다.     샘물골 마을은 내가 찾아갔던 약수동 마을보다 더 볼품없는 처참한 형상이었다. 마치 전쟁을 갓 치르고 난 포격 맞은 폐허와 같은 농촌 마을 같았다. 내 마음은 마치 우박에 두들겨 맞아 구멍이 숭숭 뚫린 호박잎처럼 만신창이 되어 있었다.     문을 닫은 지 오래되었을 샘물골 소학교는 유리창문이 거덜 나 있었고 풀이 무성한 학교 마당엔 소들이 꼬리를 휘휘 저으며 유유히 풀을 뜯고 있었다. 우리들이 들어있던 마을에서 유일한 벽돌집이었던 집체호집은 들보가 내려앉았는지 지붕허리가 뭉텅 잘리고 썩은 이끼에 덮인 기와 사이로 비술이며 능쟁이 같은 풀과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나는 정순이의 손을 잡고 우리의 보금자리였던 집체호 집안으로 들어갔다. 시멘트로 곱게 만들어졌던 부엌은 구들목이 물앉았고 온돌은 구들돌들이 보기 흉하게 드러나 있었다. 발 디딜 곳 없이 개똥이며 닭똥이며 새똥이 널려있는 것이 예전에 사람들이 들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그 험한 상처를 보여주었다. 천장이며 문설주에 드럼드럼 달려 바람에 흐느적거리는 거미줄은 악마의 소굴처럼 소름끼치게 했다. 몸서리가 쳐졌다. 우리는 아무런 미련도 없이 밖으로 나왔다. 아니 치료할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받고 뛰쳐나왔다.     그 때까지도 우리 사이에선 한 마디의 말도 오가지 않았다. 슬프다고 할까 괴롭다고 할까 말 못할 얼굴의 어두운 그림자가 우리의 마음을 다 말해주고 있었다. 확실히 우리는 울고 있었다. 통곡보다 더 육신을 괴롭히는 소리 없는 울음을 울고 있었다.     《잘 있거라. 역사의 증견자여!》     집체호의 뒷집은 바로 허인숙 어머니가 살던 집이었다. 네 기둥이 겨우 구멍 뚫린 지붕을 이고 숨 가쁘게 서있는 이 초가는 다행히도 다른 집들처럼 집터만 남는 비운을 모면하기는 했지만 조만간에 쓰러져버릴 운명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담벼락이 다 떨어져 가시새가 백골처럼 환히 드러난 벽, 이엉이 내려앉아 방안에 무더기 쌓여있는 짚, 곰팡이 냄새가 확확 풍기는 집안, 어디를 가도 어디를 보아도 살맛나는 곳은 하나도 없었다. 전에 허인숙 어머니가 계실 때는 마당에 풀 한포기 날세라 집안에 먼지 하나 앉을세라 뽑고 닦으면서 기름기 반지르르 하던 집이었다. 하지만 그 주인이 없고 보니 그 아담하던 집이 볼품없이 허물어지고 있었다.     《정순아, 이 집 임자가 누구였는지 기억 나?》     《기억 하고말고, 아들만 있으면 나 같은 며느리를 삼겠다고 애지중지해주던 허인숙 어머니를 내 어떻게 잊어?》     《그 어머니가 얼마 전에 세상 뜨셨어!》     《뭐야? 진짜야? 오빠!》     《내가 거짓말하는 걸 본 적 있나?》     《허인숙 어머니가 사망하시다니? 그렇잖아도 오빠보고 물으려던 참인데?》      《약수동 노인휴양소에서 사망하셨어.》     《생전에 한번 보고 싶었는데.》     《참 훌륭한 어머니였지.》     《그 때 오빠와 내가 술에 취해 말밥에 올랐을 때도 허인숙 어머니가 눌러주셨잖아?》     《사내 녀석이 대가 없다면서 기를 펴고 살라고 뒤를 밀어준 분도 그 어머니였어.》     《그럼 오빤 생전에 허인숙 어머니를 봤겠구나.》     《임종 직전에 봤다. 내가 눈을 감겨드렸어!》     《잘했다. 오빠!》     나는 허인숙 어머니가 나를 아들로 오해하고 임종 전에 찾았다는 이야기는 감추어두고 전혀 입밖에 비치지 않았다. 정순이까지 알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샘물골 마을은 가슴에 두터운 얼음층을 남기며 우리와 멀어지기 시작했다. 산나물이나 산열매, 약재가 풍부한 샘물골은 부업조건이 좋은데다 땅이 기름져서 돈벌이에는 드러난 고장이었다. 첫 귀틀집을 짓고 첫 괭이를 박았던 우리의 겨레들은 무너지고 무너져가는 집만 남기고 어디로 자취를 감추었단 말인가? 그들의 땀과 그들의 손에서 일구어졌던 옥토를 버리고 어디에 가서 방황하고 있는지? 현실은 샘물골 마을에 너무나 엄혹한 형벌을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솔개령 기슭 냇물 곁에 차를 세우고 먹을 것들을 부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때까지도 죽지 않고 풀떡거리는 메기를 담은 비닐주머니를 들고 냇물을 따라 버들방천을 내려갔다. 조약돌까지 다 내려다보이는 맑은 석천, 조잘대는 물소리, 푸른 버들숲, 싱그러운 풀내음을 풍기는 청신한 대기는 가라앉았던 샘물골 마을의 무거운 기분을 몽땅 가셔주었다. 나는 휘파람을 휙휙 불면서 인적기가 닿지 않은 조용한 버들방천 속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버드나무가지들을 서로서로 얽으면서 제법 아늑한 은신처를 만들었을 때 정순이가 가스레인지와 먹을 것이 든 냄비를 들고 나타났다.     《아니, 동방화촉 밝힐 셈이야?》     《같은 값이면 분홍치마랬지 않아? 우리의 집을 잘 만들어야지.》     《됐어. 오빠. 눈가림만 하면 돼!》     나는 발로 땅바닥 모래까지 골고루 다진 다음 냄비와 메기가 든 비닐주머니를 갖고 강가에 내려앉았다. 쌀쌀하던 아침 날씨와는 달리 점심때가 되자 제법 여름 날씨처럼 따뜻했다. 천렵놀이엔 안성맞춤인 기온이다.     내가 한창 고기 밸을 따고 있을 때 정순이도 파, 고추, 오이 등 남새들을 갖고 내 옆에 와 앉았다.     《야. 물도 맑지다. 이런 곳에 별장을 짓고 살았으면 좋겠다. 오빠는 안 그래?》     《너 내 소원이 뭔지 아니? 공기 좋고 물 맑은 이런 곳에 집을 짓고 글을 쓰는 거다. 그러다 머리 아프면 고기잡이 하거나 터전을 가꾸고.》     《그런데 왜 안 그래? 돈이 없어서?》     《아내가 도리머리질이야. 그것이 소원이면 혼자 가 살래.》     《참, 인멀미 나는 도시생활에 싫증도 안 나나봐, 오빠, 내가 양어장까지 갖춘 별장 지을 테니까 오빠가 와 글을 써.》     《그러다 이혼소리 나면 어쩔려구?》     《내가 절대 오빠 가정 파괴하지 않을 테니까 걱정 마.》     나는 깨끗하게 씻은 메기를 토막 내고 냄비에  마침하게 물을 담아가지고 버들 숲 ㅡ 우리의 놀이터로 올라왔다. 이곳으로 찾아올 손님들도 없겠지만 찾아온다 해도 곁에 와 보지 않고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게 버들 숲으로 잘 포장된 보금자리였다. 정순이는 어느새 돗자리까지 펴놓았다.     나는 가스레인지에 불을 달고 냄비를 올려놓았다. 그 때 깨끗하게 다듬고 씻은 남새를 들고 정순이가 올라왔다.     《오빠는 지금도 주방장 노릇 잘 하나?》     《주방장이라니?》     《왜 잊었나? 집체호 때 개를 잡거나 물고기국을 끓일 때면 우리 여성들을 제쳐놓고 오빠가 팔을 걷고 나서지 않았나?》     《허허허 그랬던가?》     그랬다. 개나 물고기뿐 아니라 닭, 오리, 양을 잡아 추렴할 때면 내 손을 몰리우고는 안 됐다. 그래서 《집체호의 백정》이라는 별호까지 달지 않았던가!     《집체호 때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그 땐 왜 우리 모두가 도적놈 행세를 하지 않으면 안 됐나? 오빠.》     《도적놈 행세를 하고 싶어서 했나? 전도에 대한 실망과 미래에 대한 절망에서 오는 히스테리였지.》     《하긴 그래. 우리가 뭐 배를 곯았나 얼어죽었나? 그런데도 밤중이면 남의 닭을 훔쳐 잡아먹는다 집체의 양을 끌어다 잡아먹는다. 완전 도적놈 행세를 했지. 우리 여자애들마저 타작 때 옥수수나 콩을 도적질해 닦아먹는 일 쯤은 여반장으로 여겼으니 말이야. 하향지식청년이라는 이름을 걸고 안하무인격으로 말이야. 너무나 한심했어!》     《배신감에서 오는 일종 반발이었어. 실제상 그 피해자는 우리가 아니라 농민들이었구.》     《우리는 농민형제들에게 미안한 일을 너무나 많이 한 죄 많은 인간이야.》     구수한 고깃국 냄새가 코를 찔렀다. 향긋하면서도 시원한 메기국 그 향취에 끌려 집체호 때의 시시껄렁한 말을 삼켜버리고 우리는 먹을 채비를 했다.     《자! 수레 위에서 자던 우리의 옛일을 추억하면서!》     《자, 새로운 추억을 남길 미래를 위해서!》     우리는 잔을 들었다.     집체호의 고향에 와서 마시는 술이라 그런지 술은 달고 쓰거웠다. 수 천 수 만의 하향지식청년의 진통과 괴로움을 안고 무너진 집체호처럼 술은 쓰거운 뒷맛을 남기며 목구멍으로 넘어갔고 농민들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았던 감미로운 추억처럼 술은 달콤한 향취를 풍기며 전신에 퍼졌다.    《오빠가 끓이는 물고기 탕은 진짜 일품이야.》     정순이 메기 한 토막 떠들고 먹으며 말했다.     《전에는 없었을 때 먹으니 맛있었고 지금은 야외에서 먹으니 맛있겠지. 입맛은 장소와 환경에 따라 수시로 변하니까.》     《아니야. 오빠가 배워준 대로 끓여도 내가 만든 건 어떻게 된 셈판인지 이런 맛이 나지 않았어.》     《물고기를 사다 집에서 내가 끓였는데도 지금처럼 맛난 적 없었어.》     《오빠, 이게 바로 오빠 맛이야.》     《내 맛?》     《그래 오빠만이 만들 수 있고 오빠만이 갖고 있는 맛, 내가 그 맛을 되찾아보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알아? 이제야 찾았어. 오빠! 오빠, 눈감고 입을 벌려!》     《왜?》     《글쎄, 시키는 대로 하라니까.》     진공형인 정순이의 명령이었다.     나는 정순이가 시키는 대로 눈을 감고 입을 벌렸다. 어디선가 물 마시는 소리가 나는 듯 하더니 정순이의 입이 내 입을 막으며 입에 물었던 술을 내 입에 쏟아 넣었다. 나는 어쩔 새 없이 그 술을 삼키고 말았다.     《술 맛 어때? 이게 키스주라는 거야.》     《너 못하는 짓 없구나. 허허허…》     정순이는 보골보골 끓는 냄비에서 메기 한 토막 집어 들고 홀홀 불어 식힌 다음 내 입에 넣어주었다. 그 멋과 그 맛 또한 별미였다.     《아니 오빠만 받아 마시고 나는 안 줄래?》     《그래도 되나?》     《졸장부.》     정순이는 술병을 눈짓하며 심심찮게 하던 《졸장부》라는 말을 되뇌었다.     나는 술 한 모금 가득 입안에 물고 정순이를 끌어당겼다. 그러자 정순이는 내 무릎 위에 앉으며 목을 꼭 끌어안았다. 나는 개암벌레처럼 몽골몽골 살이 오른 정순의 허리를 꼭 끌어안고 정순이의 입에 내 입을 댔다. 그리고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술을 뿜어 넣었다. 정순이는 갓난애가 엄마의 젖꼭지를 빨듯이 내 입술을 빨며 꼴깍꼴깍 술을 받아마셨다. 내 입안의 술이 바닥났는데도 정순이는 입술을 뗄 생각 않고 내 혀까지 빨아들였다. 그 흡인력은 대단했다 나는 혀뿌리가 빠지는가 했다.     술기가 오른 데다 두 입술이 붙고 육체가 한 덩어리 되다보니 술 생각보다 다른 생각이 앞섰다. 우리의 두 손은 서로를 애무하기 시작했다. 내 손은 나도 모르게 정순의 속적삼 속을 파고들었다. 한 손으로는 다 감쌀 수 없이 풍만하고 50고개를 바라보는 여인이라고는 믿어지지 않게 탄력을 잃지 않은 유방은 짜릿하게 내 신경세포를 자극했다. 앞가슴 미용을 잘해서 그런지 딸을 낳은 어머니인데도 유방은 처녀 때의 팽팽한 맛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내 손은 정순의 브래지어를 벗기고 등허리며 포동포동한 어깨며 털이 보송보송한 겨드랑이며 내 손끝이 닿을 수 있는 곳은 어디라 없이 매만지고 어루쓸었다.     정순이의 손도 내 허리띠를 풀고 거침없이 하신으로 뻗어왔다. 어두운 곳에서 성내고 있는 내 남근을 움켜잡고 성교할 때처럼 상하로 움직였다. 숨소리가 점점 달아오르고 행동도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정순이는 내 혀를 빨다가 살랑살랑 물어놓기도 하고 코를 잘근잘근 씹기도 했다. 그것은 성감을 불러일으키는 무서운 자극제였다.     한참 나를 애무해주던 정순이는 나에게서 떨어져나가더니 활활 옷을 벗기 시작했다. 나도 벗었다.     정순이는 알몸인 채 치마와 엷은 털 재킷을 펴놓고 그 위에 반듯하게 누웠다. 나는 나체의 정순이를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스페인 궁전화가 오야가 그린 나체의 마하가 떠올랐다. 그림 속의 마하보다 현실 속의 《마하》가 더 입체적이고 육감적이었다. 비록 마하보다 체격이 쭉 빠지지 못하고 더 이쁘지는 않지만 정순이의 발달된 흉부와 둔부, 눈덩이처럼 하얀 속살, 샘물터를 둘러싼 다박솔 마냥 음부를 둘러싼 밀집된 음모는 마하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정감체들이다.     나는 정순이의 처녀를 빼앗을 때도 정순의 육체가 이렇듯 아름다운 줄 몰랐다. 그저 다른 여자들보다 젖통이 크고 엉덩이가 크다는 것에 만족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내 앞에 반듯하게 누워있는 지금의 정순이는 곡선미가 강하고 선이 굵고 굴곡이 심한 여성미를 한 몸에 지닌 풍만한 육체를 가진 여성이다. 반듯하게 누웠는데도 젖무덤은 앉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모양을 헝클이지 않고 봉긋한 그대로며 발가우리한 젖꽃판 중심에 박혀있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젖꼭지도 탐스럽게 돋아있다. 양쪽에 S자를 그리며 흘러내린 곡선은 성숙된 여체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는 육감적이고 매력적인 여성미의 특징을 잘 살려내고 있다.     나는 수차 정순이의 육체를 빼앗아 보았지만 그때까지 정순이의 육체가 이렇듯 완미할줄 몰랐다. 그저 빼앗고 주는 것으로 만족했을 뿐이다. 정순이는 언제나 능동적으로 빼앗기려 했고 나는 항상 피동으로 주었을 뿐이다. 지금처럼 마음 놓고 정순이의 육체를 흔상해보지도 못했고 시름없이 내 나체를 드러내보이지도 못했다.     《좋았어? 오빠!》     그 일이 끝나자 정순이는 팬티를 입으며 이마의 땀을 훔쳤다.     《최고였어!》     《어쩌면 오빠의 멋진 그것 때문에 내가 오빠를 사랑하는지도 몰라.》     《사랑의 전부는 아니지만 그것이 근본이거든.》     《오빠, 오빠 다음 내가 두 남성을 섬겼는데 성교를 할 때마다 오빠를 생각하고 오빠의 그것으로 받아들였어, 그러지 않고는 도무지 오르가즘에 오를 수가 없었거든.》     정순이는 옷을 다 입고 내 가슴에 머리를 기대며 말했다.     《그렇게 멋져 보여?》     나는 정순이의 땀 밴 이마에 내 이마를 대며 물었다.     《멋지고도 남아. 두 남자는 난봉꾼들이라 여자를 다루는 데는 이골이 텄다고 자랑하지만 그 짓에선 오빠를 담당 못해!》     《아버지, 어머니에게 감사를 드려야겠군. 자, 술기운이 다 빠졌다. 한 잔 들자!》     우리는 다시 술잔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네 한 잔, 내 한 잔, 진짜 술판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오빠, 산후풍으로 세상 뜨셨다는 오빠의 어머니는 어떤 분이실까? 보고 싶다. 오빠는 꼭 어머니를 닮았을 거야.》     《그러면 어머니는 박색이래두?》     《오빠가 미남이잖아?》     《네 눈에 미남으로 보일지는 몰라도 나는 울퉁불퉁한 올감자야.》     《그것이 남자의 미거든.》     메기국에 술 두병을 까고 나니 우리는 녹초가 되어버렸다. 도무지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정순이는 내 무릎을 벤 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나도 오른 팔을 정순이에게 베워준 채 정순이를 끌어안고 깊은 잠에 곯아떨어졌다.     얼마나 잤는지 우리들이 선뜩한 기분에 눈을 떴을 때는 날이 어둑어둑해질 때였다. 우리는 흐리터분한 정신으로 가스레인지며 냄비며 쓸만한 물건들만 거두어가지고 승용차가 서있는 곳으로 비칠거리며 다가갔다. 정순이는 냇가에 가서 찬물로 세수를 하고 머리를 훔친 다음에야 운전대에 올라 핸들을 잡았다.     《어때? 운전할만해? 아니면 한잠 더 자고가든지?》     《걱정 마. 오빠를 시체로 만들지 않을 테니까.》     정순이는 눈을 껌벅해보였다. 내 대답 역시 실룩하는 왼쪽 볼의 움직임이었다.     《괘씸한 남자, 미운 남자, 나쁜 남자!》     실룩하는 내 볼의 움직임이 추파보다 더 심한 충격을 주었는지 정순이는 내 목을 끌어안고 귓방울을 잘근잘근 씹었다.     《자, 출발!》     《오케이!》     정순이는 차에 시동을 걸고 헤드라이트를 켠 다음 차를 몰고 천천히 차도에 들어섰다. 원길에 들어서자 차는 올 때처럼 살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밤길은 낮 길보다 더 빨랐다. 낮에는 산천경개를 구경한다 추억담을 나눈다 하면서 천천히 달렸지만 밤에는 거칠 곳이 없었다. 전조등 불빛에 안겨오는 토막 난 솔개령과 용천향 풍경이라 볼거리도 없었거니와 더 보고 싶지도 않았다.     차는 전속으로 용천향 골연을 빠져나와 잠깐 사이에 S시에 이르렀다.     《오빠, 커피 한 잔 하고 갈까?》     《커피보다 나 술 생각난다.》     《술? 멋지다. 나도 마시고 싶던 참이야.》     《너 술 마시고 차를 어떻게 몰아?》     《우리 오빠 잔걱정 말라니까.》     우리는 S시에 와서 꾸리는 북조선의 《모란봉》호텔 앞에 차를 세웠다.     우리가 문에 들어서기도 전에 문어귀에 대기하고 서있던 한복차림의 예쁘장한 색시가 《어서 오세요.》하는 평양말씨를 남기며 곱게 인사했다.     실내에선 경음악으로 된 《꽃파는 처녀》의 주제가가 조용히 울리고 있었다.     《몇 분이시죠?》     복무원아가씨가 활짝 웃으며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우리 두 사람인데 조용한 칸 있지요?》     정순이 나 먼저 앞질러 물었다.     《있어요.》     우리 둘은 이층의 자그마한 칸에 안내되었다. 아담하게 장식된 사치한 방이었다. 우리는 털게 두 마리와 송어 사시미 한 접시, 평양냉면 두 그릇 그리고 맥주를 청했다.     송어 사시미도 산뜻하고 맛있었지만 싱싱한 털게 맛은 별미였다.     《오빠, 이 좋은 안주를 놓고 맥주 한잔만 들고 쫄쫄거리자니 멋 적어!》     《할 수 없지. 핸들을 잡아야 하니까.》     《오빠는 미안한 생각도 없는가 보지?》     《왜 너하고 함께 마시고 먹고 정사까지 벌이면서도 죄의식 같은 것이 전혀 없는지 몰라. 평시엔 남의 여성을 훔쳐보고서도 죄를 지은 것 같아 얼굴부터 붉히던 내가 말이다.》     《내가 오빠의 눈을 틔워줬으니까. 안 그래? 남성으로 만들어줬다니까.》     《얘, 너 재가하지 않고 그냥 홀몸으로 살 셈이냐?》     《오빠는 결혼이 부부에게 주는 부담도 몰라? 남편은 평생 한 여자가 자기 것이 된 기분이 되고 마누라는 주부라는 직업에 영구 취직하여 남편의 뒷바라지를 해야 한다는 오랏줄에 옭매이게 되고 그러는 사이 결혼의 타락, 부부의 타락이 시작되는 거야. 그래서 생활은 짜증스러워지고 도망갈 구실을 찾게 되고… 내가 두 남자와 결혼하여 얻은 결론이 바로 이거야.》     《너는 진짜 현대파구나.》     《갈보는 아니구? 나는 종래로 나를 갈보라고 생각해본 적 없어. 인간의 본질적 속성이 동물성에 있다는 것뿐이야. 동물과 다른 점이라면 도덕범주에 의해서 억제하고 참을 줄 아는 것뿐이야.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자기는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며 그런 짓은 가장 추저분한 것처럼 표방한다는 말이야. 기실 그런 유형의 사람들이 그 짓을 더 하면서 말이야. 우습잖아? 많은 사람들은 한생 한 여자와 한 남자를 지켰다고 자랑스레 말하지만 난 외려 그들이 불쌍하게 보여. 가련하게 느껴진단 말이야.》     《어쩌면 네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요즈음 난 한 여인이 반세기 동안 쓴 일기를 보고 있다. 한 번의 실수, 단 한 번 남성과의 교접에서 받은 상처 때문에 고민하고 절망하고 자신을 괴롭히는 쓰라린 역사를 쓴 일기 말이야. 나 지금 모순 속에 빠져있어. 나는 지금 너와 동품하면서도 무난하고 자책감도 받지 않는데 그 여인은 왜 한 번의 상처 때문에 일생을 망쳐야 하는가 하는 것 때문에 말이다.》     《어떤 여인인데?》     《너도 잘 알고 있는 허인숙 어머니야. 》     《허인숙 어머니?》     《그래!》     나는 허인숙 어머니의 일기를 내가 본 데까지 다 말해주었다.     《허인숙 어머니에게 그런 쓰라린 과거사가 있었나? 나는 전혀 몰랐는데?》     《너도 몰랐고 나도 모르고 있었지. 알 수도 없었구.》     《오빠는 그래서 허인숙 어머니가 살던 집을 자상히 살폈구나.》     《…》     《오빠는 허인숙 어머니의 아들 맞아?》     《너 허파에 바람 들지 않았나? 얼토당토 않는 소리 작작해! 잠시 아들이 되어주었다. 그 것뿐이야. 자, 그만하고 마시자.》     우리는 밤늦게야 헤어졌다.     정순이는 나를 집 앞까지 태워주고 차머리를 돌렸다.     《또 연락 줘!》     《빠이 빠이!》     나는 정순이의 자가용이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다가 완전 실종되었을 때에야 집 문을 떼고 들어섰다. 나를 처음 맞은 것은 역시 눈썹이 처져 내린 아버지의 얼굴이었다.     《아버지 다녀왔습니다.》     《자식두, 콜록콜록… 어데 가면 간다고 말하면 얼굴 깎이냐?》     《죄송합니다. 아버지. 사실은 머리 쉬러 나갔다가 친구들을 만나 그 길로 취재하러 떠났습니다.》     《그래두 전화야 쳐야지. 콜록콜록…》     《미안합니다.》     나는 곧바로 서재로 발길을 돌렸다. 변화된 것은 하나도 없다. 오늘 아침 내가 떠날 때보다만 일기책이 자기의 속을 드러내 보이며 그대로 책상 위에 놓여있다.     《아버지. 밤 편히 주무십시오.》     나는 문설주를 짚고 돌아서는 아버지의 구부정한 등을 무심히 지켜보며 밤 인사를 올렸다.     아니? 아버지의 등이 저토록 휘다니? 저럴 수가? 새로운 발견이었다. 놀라운 발견이었다. 이 때까지 아버지의 등은, 지하층에서 가난의 무게를 두 어깨에 떠메고 일어선 아버지의 등은 휠 줄 모르는 무쇠어깨라고 자랑해온 나였다. 매일 아침 단련하러 나오는 《ᄀ》자형의 안 노인을 지켜보면서도 우리 아버지의 등은 숨을 거두는 그 시각에도 저 안 노인처럼 굽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던 나였다. 그런데  그런데…     노쇠는 일종 자연스러운 생존규율이라고 하지만 아버지에 한해서만은 억압이요 강박이라는 압박감이 내 마음을 지지고 볶고 튀기고 있음을 어쩔 수 없다. 어쩌면 저럴 수 있단 말인가? 석마돌을  들어 돌드레라는 별호를 단 지 얼만데, 씨름판의 황소라는 별칭을 받은 지가 얼만데 저토록 등이 휜단 말인가?     방금 전까지 있었던, 정순이와의 로맨스와 황홀경은 박살 난 거울처럼 산산조각이 나고 아버지에 대한 죄송한 마음이 제자리에서 똬리를 틀기 시작했다. 정신도 육체도 영원히 변함없는 아버지로만 여겨왔던 자신의 무지와 등한함에 송곳질하면서 질질 끄는 맥없는 아버지의 발걸음소리를 눈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버지, 이 불효자식을 용서하십시오.》     나는 맥없이 소파에 몸을 실으면서 나도 모르게 서재에 눈을 주었다. 서재 정면에서 오붓한 한 가족이 웃고 있다. 액틀에 넣은 우리 가족사진이다. 오누이 쌍둥이들이 할아버지를 모시고 양 옆에 앉고 우리 부부가 그 뒤에 서서 웃으며 찍은 사진이다. 쌍둥이를 외국에 보내며 찍은 유일한 가족사진이다. 그 속에 꼭 있어야 할 한 자리―어머니의 자리가 비어있다. 그 빈 자리 때문에 웃고 있는 사진 속의 얼굴들이 울고 있는 듯한 착각으로 안겨오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 자리를 메우려고 우리 부부가 새어머니를 모시겠다는 간곡한 당부를 올렸지만 아버지에게서만은 마이동풍으로 되어버리곤 했다. 전혀 통하지 않았다.     《난 너희들만으로도 족하다.》     그것이 전부였다. 그것으로 끝나버리곤 했다. 지금 저 사진속의 오누이 쌍둥이들―일본으로 유학간 아들 광천이도 웃고 한국으로 시집간 딸 설영이도 웃고 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울고 있다. 가족이 무엇이고 가정이 무엇이길래? 거미신세, 그것이 우리의 역사였고 우리의 현실이고 우리의 미래가 아닐까? 인간의 번식과 생존은 가족을 단위로 한다는 한 역사학자의 말이 새삼스레 떠오른다.     한국으로 시집을 간 딸 설영이는 지금 덧니를 드러내놓고 시름없이 웃고 있다. 저를 지켜보며 울고 있는  이 아빠노릇 못한 아빠를 설영이는 보고나 있는지? 생각이나 하고 있는지?     쌍둥이를 낳던 그 해는 왜 그리도 지지리 가난했던지? 그 때 우리 부부는 서로 갈라져 있었다. 아내는 통화시 조선족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나는 연길에서 방송국 기자로 일했었다.     십이 평방미터 되나마나한 집, 그것이 우리 부자가 사는 집이었고 우리 가족의 둥우리였다. 우리가 사는 《굴》은 마당보다 한 미터나 꺼져내린, 비가 오면 곧 바당에 배를 띄우게 되는 오막살이였다. 그래서 비 오는 날이면 아버지가 삽과 물통을 들고 빗물을 지켜 나서기 일쑤였다. 밤에 빗방울소리만 들려도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삽과 물통을 찾아들고 나서는 그런 집 아닌 집이었다.     그 해는 장마철도 아닌데 어찌나 비가 억수로 퍼붓는지 하루도 시름 놓고 발편잠을 잘 수가 없었다. 빗방울소리라 하면 신경에 날부터 세우는 우리 부자간이었으니까.     아내가 해산하러 연길로 왔다.     오누이 쌍둥이를 낳았다.     그 때 아버지가 얼마나 기뻐하시던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 날도 비는 장대 드리우듯 쏟아져 내렸다. 아버지와 나는 마당에 고인 물을 퍼낸다 골목물이 넘어올까 봐 도랑을 판다하며 눈코 뜰 새 없이 보내는데 아내가 쌍둥이를 낳았다는 급보가 왔다.     쌍둥이라는 소리에 나는 앞이 캄캄해졌다. 서로 갈라져 있어 하나도 키우기 어려운 형편에 쌍둥이를 낳으면 하나는 누가 키운다는 말인가.     《얼씨구 절씨구, 우리 집안에 경사 났구나 쿨룩쿨룩… 손자손녀 한꺼번에 안아보게 됐구나 좋을시구.》     아버지는 도랑을 파던 삽자루를 팽개치고 씽 집안으로 들어가더니 좁쌀죽을 끓인다 돼지발쪽을 삶는다 하며 부산을 피웠다. 얼마나 성수 났던지 흥흥 콧노래까지 부르면서 말이다.     내 예측은 틀리지 않았다. 고생문이 열렸던 것이다. 아버지는 진짜 보모가 되고 나는 심부름꾼이 되고… 쉴 새 없이 갈아대야 하는 쌍둥이의 기저귀를 씻고 산모를 돌보려니 아버지는 편히 담배 한 대 태울 새 없이 바삐 돌아쳐야 했지만 얼굴에서는 웃음기가 가실 새 없었다.     한 달에 한 사람에게 서 근씩 주는 배급쌀. 그 쌀로는 산모의 몸을 춰세우는 데도 태반 부족이었다. 아버지는 입쌀 한 알 구경 못하고 옥수수쌀이 아니면 옥수수국수로 끼니를 때우셨지만 얼굴에선 항상 웃음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제일 큰 두통거리는 우유였다. 아내의 젖이 모자라는 통에 남자라고 광천이에게만 젖을 먹이고 설영이에게는 우유를 먹여야 했다. 사실 설영이는 세상에 태어나서 어머니 젖꼭지 한 번 물어보지 못하고 자란 애였다.     돈을 주고도 살수 없는 것이 우유였다. 우유가루는 구경할 수도 없었고 생우유를 공급하는 연변종축장에서도 환자나 갓난애에게만 한 달에 몇 근씩 배급했다. 어머니의 젖 한 방울 얻어먹지 못하는 설영이는 배고파 울음을 그칠 새 없었다. 습관되지 않아서인지 머리를 팩팩 돌리면서 어머니의 젖꼭지는 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가장 바빠 마지않는 분이 아버지였다. 울음을 그치게 하느라 애를 업고 자장가를 흥얼거리기도 하고 절주 있게 몸을 움직이며 애의 궁둥이를 다독이기도 하면서 애와 함께 밤을 패곤 했었다. 애가 배고파 울 때마다 아버지의 눈굽이 젖어나는걸 한두 번만 목격한 내가 아니다. 아버지는 나도 저렇게 키웠으리라. 그 때면 나도 울었다. 배고파 우는 애가 불쌍해서 아니라 아버지의 눈물이 목메서였다.     쌍둥이를 낳았다고 아내의 산후휴가는 남들의 곱절인 반년이었다. 반년이 지나자 아내는 광천이를 업고 통화로 떠나가고 집에는 아버지와 나 그리고 반년 자란 설영이가 남게 되었다.     진짜 고생은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 애들에게는 어머니가 있어야 했다. 애들의 따사로운 품은 어머니의 품이고 보금자리는 어머니의 가슴이다. 어머니의 체취를 아는지 어머니의 체온을 느끼는지 어머니를 떠나보낸 그 날 저녁부터 설영이가 어찌나 보채는지 아버지와 나는 온밤 뜬눈으로 지새워야 했다. 할아버지가 손녀의 엄마가 되고 아빠가 보모로 변하는 질변 속에서 설영이는 배고픔과 엄마의 품을 떠난 이중 고를 맛보아야 했다.     철부지의 시달림 속에서 몰라보리만치 수척해진 아버지가 걱정되었고  그런 아버지를 보기가 미안했다. 죄송한 마음 그지없지만 나로서는 어쩔 방도가 나지지 않았다.     《남을 주자.》 이 것이 그 때 내가 생각한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자전거도 없이 맨발바람으로 10리 남아 되는 남산기슭 종축장을 찾아 새벽 3시면 꼭 꼭 달려야 하는 종축장길이 힘겨워서가 아니었다. 배고파 우는 애를 업고 달래다 애가 잠들자 애를 업은 그 모양 그대로 쓰러져 자는 그 고충이 커서도 아니었다. 내가 출근하면 홀로 애의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 아버지의 고생을 생각해서였다. 날따라 수척해지는 아버지의 건강을 염려해서였다.     엎친 데 덮친다고 설영의 유일한 어머니였던 아버지는 전염성 이질에 걸려 병원에 입원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날이었다.     아버지를 입원시킨 그 이튿날 새벽 3시, 나는 종전대로 우유 받으러 종축장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우유를 받지 못하면 설영이는 하루 종일 굶게 되니까. 나는 애가 깰까 봐 조심조심 문을 나섰다. 질척질척…      늦가을 찬비가 주책없이 내리고 있었다. 비 내리는 줄 모르고 우산을 들고 나오지 않은 것이 후회되었다. 다시 들어가 우산을 갖고 나오려다가 애가 깨면 어쩌나 해서 그냥 가기로 작심했다. 명멸하는 가로등이 빗속에서 꿈벅꿈벅 졸고 있었다. 가로등도 좋고 빗방울도 좋고 나는 그 것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머리 속에는 오로지 설영이 뿐이었다 깨지 않았을까 울지 않을까 하는 그 조바심뿐이었다. 제발 깨지 말았으면 하는 그 바램뿐이었다.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제발 제발 깨지만 말아다오. 울지만 말아다오. 찬비에 등허리가 선뜩선뜩해졌다. 온몸이 젖어들어 왔다. 그래도 좋았다. 우유를 받을 수 있고 설영이가 깨지만 않는다면.     공교로웠다. 맥이 풀렸다. 조바심과 오한으로 온몸을 반죽하면서 한 시간 넘게 기다렸는데, 종축장 철대문에 붙어있는 쪽문이 언제 열리려나 바라고 또 바랐는데 오늘 우유는 몽땅 병원으로 돌린다는 전갈이 왔다. 여보시오. 저에게 선심 좀 써주시오. 어미 없는 제 딸애가 지금 배고파 울고 있어요. 수백 마리 젖소를 키우는 종축장에서 우유 한 근 선사할 수 없나요? 제 딸애가, 나의 설영이가 젖 달라 울고 있어요! 제발 선심 좀 베푸소서. 당신들에게도 젖먹이 애들이 있겠지요? 젖먹이 애들을 키워왔겠지요? 나에게 나에게 우유 한 근만 배급해주소서. 비나이다. 비나이다. 우유 한 근만 하사하소서. 우유 한 근이면 우리 설영이, 나의 설영이가 하루를 살수 있어요. 제발 한 근만 남겨주소서. 제발… 제발…     비는 그칠 줄 모르고 내렸다. 나의 몸뚱아리는 물참봉이 된 지 오래다. 귀밑으로는 머리를 타고 흐르는 빗물이 오래 전에 열기를 잃은 가슴팍으로 줄줄 흘러들었다.     아, 이 빗물이 우유였으면… 나는 그 때 처음으로 제 몸에 흘러드는 빗물이 우유였으면 얼마나 좋으랴 하는 비현실적인 갈망과 욕구로 자신을 환상 속으로 몰아갔다.     무언가 뜨끈뜨끈한 액체가 두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눈물이었다. 피보다 진한 눈물이었다. 과거에 대한 혐오감, 현실에 대한 실망감, 미래에 대한 허탈감이 반죽된 진한 액체였다.     아, 설영이는? 잠에서 깨어나 발버둥치며 우는 설영이의 모습이 번개처럼 뇌리를 때렸다. 나는 제정신 없이 빈 링겔 병을 거머쥔 채 집을 향해 뛰었다.     문을 떼고 들어서는 순간, 예감은 직감으로 둔갑하고 직감은 현실로 탈바꿈하여 나를 아연실색케 했다.     설영이는 발버둥치며 울다 못해 맥이 진하여 배만 헐썩거리며 흑흑 흐느끼고 있었다. 엉덩이에 채워준 기저귀마저 벗겨져 나간 알몸뚱이의 딸자식이 목소리까지 쉬어빠진 채 힘겹게 숨을 톺아올리고 있었다.     《설영아!》     나는 내 몸이 빗물 봉창이라는 것도 잊고 애를 와락 끌어안았다. 설영이는 화들짝 놀라면서 데룩데룩 나를 뜯어보더니 낯익어 보였던지 그제서야 팔을 휘적거리며 와―하고 갈린 목소리를 터뜨리는 것이었다. 나는 그 때까지도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로 설영이의 얼굴을 비비며 애와 함께 통곡했다.     《에잇, 빌어먹을 자식, 애비구실 못하면서 낳기는? 철부지보다 못한 자식!》     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 죽어라 동가슴을 두드리며 울고 또 울었다. 딸 하나 배불리 먹이지 못하고 딸 하나 바로 키우지 못하는 팔부, 그러면서도 뻔뻔스럽게 기자라고? 도대체 기자는 뭐고 애비는 뭐냐?     창천아, 날벼락이라도 내려다오!     그 날 오후, 나는 더는 어쩔 수가 없어 설영이를 남에게 주고 말았다.     《설영아, 죄 많은 이 아빠를 영원히 저주해다오!》     이것이 내가 딸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나는 미칠 것만 같았다. 소주라도 콱 마시고 곤드레만드레 취하고 싶었다. 육장벌레가 되도록 얻어맞으면서 누군가와 싸우고 싶었고 가정 집물을 짓부셔 버리면서 행패를 부리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자격도 권리도 없는 놈이었다. 병원에 누워계시는 아버지를 보살펴야 하는 몸이었다.     나는 저녁녘에야 아버지가 입원한 전염병동을 찾았다.     《너 설영이는 어쩌구 쿨룩쿨룩 이렇게 찾아왔나?》     《잠시 옆집 아주머니에게 부탁드렸습니다.》     《내가 없으니 너 고생 많겠구나. 쿨룩쿨룩… 방정맞게도 하필이면 고양이 손도 빌려 써야 할 때 이런 못된 병에 걸릴 건 뭐람? 쿨룩쿨룩…그래 설영이는 별탈이 없나?》     《녜.》     《다행이구나. 설영이한테 전염시키지 않았나 퍽 근심했더랬다. 하늘이 알아봐준 모양이구나. 다행이다. 다행이야. 쿨룩쿨룩…》     《아버지, 병환이 어떻습니까?》     《나 괜찮아. 설사도 멎구, 나 내일이면 퇴원해도 될 것 같다. 설영이 근심 네 근심 옥살이 하는 것 같다.》      《아무 근심마시고 의사 선생이 시키는 대로 하십시오. 그러다 병이 재발하면 어쩝니까?》     나는 아버지의 침대머리에 있는 탁상을 청소하려고 보온병이며 고뿌를 옮겨놓기 시작했다.     《너 지금 뭘 하는 거야?》     《청소하려구요.》     《냉큼 물러서지 못해!》     아버지의 불호령이었다.     《아버지…》     《너 이곳이 어떤 곳인지 몰라서 그래? 그러다 균이라도 묻혀 가면 어쩔려구 그래? 설영이를 죽이고 싶으냐? 쿨룩쿨룩… 그러지 말고 당금 물러가!》     《아버지 설영이는…》     나는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버지 앞에서 설영이를 남에게 주었다는 말만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설영의 어머니이셨던 아버지 앞에서만은…     《얘, 깜박했구나. 쿨룩쿨룩… 이거면 설영이는 며칠 배불리 먹을 수 있을 거다. 허허허…》     아버지는 탁상서랍을 열더니 완달산표 우유 한 봉지를 꺼내어 나한테 내밀며 만족한 웃음을 웃으셨다.     《아버지. 이건…》     《주임의사 선생님과 사정사정해서 한 봉지 샀어. 쿨룩쿨룩…우유도 주임의사가 비준해야 살수 있다나? 허―참.》     《녜?》     우유 봉다리를 받아 쥔 내 손이 떨렸다. 우유… 배고파 울던 설영의 눈물범벅이 된 얼굴이 내 앞에서 클로즈업 된다. 빈 우유병을 두 손으로 꽉 움켜잡고 걸탐스레 빨아대는 설영이. 그러다 입에 들어가는 것이 없으면 응아하고 울음을 터치는 설영이, 빨고 또 빨다가 맥이 진하여 스르르 눈을 감은 설영이, 빈 젖꼭지를 빨고 또 빨다보니 입술에 물집까지 생긴 설영이…     《아버지, 설영이는…》     《설영이가 어째?》     《남을 줬습니다. 흑흑흑…》     《뭐야? 이 녀석, 당금 찾아와! 쿨룩쿨룩… 뭘 하고 있어? 빨리 찾아오지 못해?》     《아버지…》     《남을 줄 거면 싸지르기는 왜 싸질렀어? 그래도 애비라고? 이거 안 되겠다. 쿨룩쿨룩… 내가 퇴원해야지.》     《아버지, 좌중하십시오. 제가 찾아오겠습니다. 찾아오면 되지 않습니까?》     《찾아오지 않았다간 알지? 쿨룩쿨룩…》     아버지는 어찌나 노하셨는지 일어섰다 앉았다 몸둘 바를 몰라 하셨다. 올려 빗겨진 아버지의 긴 눈썹이 푸들푸들 떨렸다.     《뭘 하고 있어? 빨리 찾아오지 않고!》     《녜, 알겠습니다.》     그 날 저녁, 나는 설영이를 찾아오지 않았다. 아니 찾아오지 못했다 방금 당지부 대회에서 내 입당이 통과되었는데 설영이를 되찾아오면 내 꼬라지가 어떻게 되나 말이다. 애 때문에 제 때에 출근을 못하고 결근을 하고… 생각만 해도 몸서리 처졌다. 끝까지 혁명을 하겠다고, 공산주의를 실현하겠다고 맹세한 놈이 자식에게 빠져 일도 제대로 못하는 팔부가 되고 싶지 않아서였다.     혁명과 가정, 내가 선택할 길은 단 하나― 가정을 버리는 것이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다. 사흘째 되는 날 설영이가 돌아올 줄이야?     얼굴엔 핏기 하나 없고 입술이 파랗게 된 설영이, 터질듯 배가 동동 불어 숨을 할딱거리는 설영이 반 주검이 되어 내 앞에 나타났다     친부모와 한 시내를 쓰고 살면서 남의 자식 데려다 죽였다는 소리를 들으면 어쩌랴 싶어 되돌려왔다는 양부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죽어가는 설영이를 내려다보았다. 보낼 때만 해도 배고프면 울고 배부르면 웃던 발가우리하던 설영이였다. 지치면 자고 깨면 발버둥질 치던 애가 지금 내 앞에서 꼼짝 못하고 숨만 가들가들 붙어있다. 살려야 했다. 아버지의 죄를 씻기 위해서라도 설영이만은 살려야 했다.     나는 두 말 없이 꼼짝 움직이지 못하는 애를 안고 연변병원으로 달려갔다.      소화불량증이었다. 굶다시피 하던 애가 양부의 집에 가서 진한 우유를 배터지도록 먹었던 모양이다. 양부들은 그것이 귀엽다고 먹이고 또 먹이고…     애들의 목숨 풀잎 같다더니 말 그른 데 없었다. 고무관으로 위속의 저장물을 몽땅 빼내고 증류수로 말끔히 씻어내니 입술부터 빨개났다. 그리고 내 피 60그램을 수혈 받은 즉시로 설영이는 원래의 제 모습을 되찾았다.     이렇게 설영이는 우리의 품으로 되돌아왔고 훌륭한 어머니―할아버지의 품에서 곱게곱게 자랄 수 잇었다.     액틀속의 설영이는 지금 환하게 웃고 있다. 밉상이 아닌 그 덧니를 드러내놓고… 하지만 난 지금 울고 있다. 등이 굽고 끌신 뒤축을 질질 끄는 아버지의 헝클어진 발자국소리를 들으며…     거미, 아버지는 나의 어미거미. 설영의 어미거미다. 아니 온 집안의 어미거미다. 자식과 손자손녀들에게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빨려 저렇게 지치고 늙고 까풀만 남게 되었다. 나도 아버지처럼 어느 땐가는 맨 껍데기만 남겠지만 앞서가는 아버지가 안쓰러워 울고 또 울었다.     《아니, 여보…》     아내의 놀라운 부르짖음이 내 뒤통수를 때렸다. 발자국소리 하나 없이 문소리 한 번 없이 언제나 조용히 나타났다 자취 없이 사라지는 아내다.     《당신 지금 울고 있잖아요?》     《내일 하루 청가 맡을 수 있겠지?》     《무슨 일인데요?》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으로 가봐!》     《당신이 모시고 가면 안 되나요?》     《아버지가 내 말을 들어주나? 아니 하면 그 뿐인데, 여보, 며느리 말이라면 어렵게 받아들이는 아버지시거든 그러니 명심하고 아버지를 병원으로 모시고 가오. 아무리 생각해도 안 되겠어. 병을 보이고 병이 있다면 병 치료를 하고 병이 없대도 보약 한 제 써드려. 축가는 아버지를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알겠어요.》     《그리고 아버지의 식사를 명심하오. 뭘 드시고 싶어 하는지 잘 살피면서…》     《알겠어요.》     《그리고 …. 됐어. 그만 나가보오.》     《주무시지 않겠어요?》     《나 일기를 봐야 하오.》     《알겠어요.》     아내는 조용히 자리를 떴다. 참 희한한 일이다. 전 같으면 어디 갔다 왔나? 왜 늦었나? 누구를 만났나 하면서 꼬리에 꼬리를 물 아내가 알겠어요 하는 대답만으로 종지부를 찍다니. 여성들은 촉각동물과 같다더니 내 낌새에서 뭔가 신통치 않은 것을 피부로 느낀 모양이다. 여자들이란 애완견과 같다니까 허허허…     나는 시름없이 테이블에 마주앉아 일기책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1954년 1월 8일 눈 내림     오늘 김천수 서기의 비서가 편지 한통과 돈 30원을 나에게 맡기고 돌아갔다. 촌 간부들을 모아놓고 내가 성으로 반년동안 학습 간다는 것과 촌에서 열사의 아버지를 잘 모셔야 한다는 현위의 지시정신까지 선포하고.     내가 성으로 학습하러 간다니 제일 기뻐한 사람은 물론 강 촌장이다. 샘물골에서 봉황이 났다며 술좌석을 베풀어 김 서기의 비서를 대접한 것도 강 촌장이요. 기쁜 김에 술을 사발들이로 마신 것도 강 촌장이다. 내가 잘 된다니 그토록 반가워 한 강 촌장이다.     나를 위해 좋아하는 강 촌장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강 촌장은 거짓을 모르는 사람이다. 그래서 강 촌장이라 하면 마을사람들은 물론 인근마을에서까지 칭찬이 자자하다. 그리고 마을의 대소사는 물론 뉘 집에 쌀이 떨어지고 뉘 집에 생일이 있다는 것까지 손금 보듯 다 알고 있는 그다. 하지만 그런 강 촌장도, 나와 몸을 섞기까지 한 강 촌장도 나의 비밀만은 모르고 있다. 나는 그것이 더욱 안타깝다. 말하지 않을 수도 말할 수도 없는 궁경에 빠진 나이기 때문이다.     《영수 아버지, 성이라는 곳이 얼마나 높은지 아십니까? 누구나 다 가고 싶으면 가는 곳인 줄 압니까? 아닙니다. 아니, 우리같은 촌뜨기들은 바라보지도 못하는 곳입니다. 그러니 며느리를 위해서 한잔 드십시우.》     《다 당과 모 주석의 덕택이네, 내가 며늘 하나만은 잘 두었지. 이 사람 며느리, 내 걱정 말고 잘 배우고 와서 더 많은 일을 하게나 허허허…》     술좌석에서 하던 강 촌장과 아버님의 말씀이 귀에 쟁쟁하다. 죄 지은 며느리가 죄를 숨기러 가는데 그토록 기뻐하시다니? 불쌍한 분들, 속으면서도 속는 줄 모르고 경사났다 법석이라니.     나는 깨끗하게 빨고 기운 아버님의 옷 견지들을 차곡차곡 개어 아버님의 농짝에 넣으며 괴로움에 모대겼다. 드르렁 드르렁…     방에서 아버님이 곤하게 주무신다. 기쁜 김에 과음하신 모양이다. 아침부터 산짐승 잡이를 떠나신다고 야단이시더니 저렇게 술에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아버님의 농짝 밑에서 무언가 땅땅한 물건이 맞혀왔다. 나는 그것을 꺼냈다. 남편의 유상이다. 액틀에 넣어 벽에 걸어놓았던 참군할 때 찍은 남편의 유상이다. 내가 그 사진을 보고 눈물을 흘린다고 아버님이 몰래 감춰둔 사진이다. 남편은 웃고 있었다. 모르긴 해도 남편은 이처럼 웃으면서 숨을 거두었으리라.     남편의 웃고 있는 얼굴 위에 물방울이 꽃살을 그리며 떨어졌다. 눈물이었다. 나는 웃고 있는 남편의 유상 위에 눈물방울을 떨구며 울고 있었다.     《용서하십시오. 아니면 죄지은 이 년에게 혹독한 형벌이라도 내려주세요. 흑흑… 죽음으로 당신 앞에 지은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면 흑흑흑 기꺼이 이 천한 목숨 바치겠어요. 흑흑흑… 왜 대답이 없나요? 흑흑흑…》     나는 남편의 유상이 들어있는 액틀을 가슴에 꼭 품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아니 이 사람…》     내 흐느낌 소리에 깨셨는지 아버님이 일어나 앉으며 나를 불렀다.     《녜 아버님.》     《이 기쁜 날에 웬 눈물인가?》     《저. 너무 기뻐서 그래요.》     내가 안고 있는 유상에 눈길을 주던 아버님이 기미를 알아채고 한숨을 토하신다.     《안되겠네. 이사람 이번에 학습을 갔다 와선 좋은 자리를 봐서 재가 하게.》     《뭐래요? 아버님! 제가 아버님을 모시고 살겠다지 않았나요?》     《늙은 게야 이제 어쩌겠냐만 젊은 자네야 다르지 않는가? 젊은 시절 헛 보내지 말고 꼭 재가를 하게.》     《아니예요. 전 절대 재가하지 않겠어요.》     《그래 한생 홀로 살겠다는 말인가?》     《아버님을 모시고 있겠어요.》     《젊은 자네가 홀로 늙는 걸 보라는 말인가? 안 되네 안 돼! 그건 아들을 빼앗긴 것보다 더 큰 고통이네. 나를 편안하게 하겠거든 재가를 하게.》     《아버님은 제가 싫으세요?》     《…싫네 싫어!》     아버님은 이렇게 말씀하며 후둘후둘 떨리는 다리에 겨우 몸을 싣고 방문을 떼고 나가셨다. 며느리 앞에서 눈물을 보이기 싫었기 때문이리라. 나는 싫다는 아버님의 말씀을 알고도 남음이 있다. 오로지 나를 위해서 이 쥐며느리 같은 나를 위해서 속에 없는 말씀을 하셨다는 걸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아버님은 그런 분이시다. 나를 위해서라면 고양이 뿔이라도 얻어올 그런 분이시다. 엄동설한 눈보라 속에서도 동구 밖에서 회의하러 갔다 오는 나를 맞아주는 아버님이시다. 죽은 아들의 몫까지 다해서 나를 어여삐 여겨주시는 그런 시아버님이다.     《문 아바이 계십니까?》     내가 아버님이 입을 옷들을 챙겨 농짝에 넣고 갖고 떠날 휴대품들을 정리하고 있는데 강 촌장의 부름소리가 들려왔다. 물론 집안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바당문부터 떼고 들어서면서 말이다.     《오셨어요?》     《짐을 꾸리는 참이오? 인숙이, 오늘 저녁 촌에서 환송연을 열기로 했으니 저녁을 짓지 마오.》     《아니. 영 간다고 환송연까지 베풀며 이래요? 그만 두세요. 반년 후면 돌아오겠는데.》     《이건 우리 촌의 영광인데 환송연을 베풀지 않아서야 되오? 뭐 부족 되는 것은 없소? 있으면 서슴없이 말하오. 개인 일로 가는 것도 아닌데.》     《없어요.》     《이 걸 받소. 그 간의 생활비요.》     강 촌장은 돈 200원을 내 앞에 밀어놓으며 싱글벙글했다.     《필요 없어요. 학습 가는데 무슨 돈 이백 원씩이나 쓰겠어요.》     《그리고 이 돈 50원은 내가 주는 거요. 생활비에 보태오.》      《강 촌장 네도 생활이 여의치가 않은데 이렇게 큰돈을 … 도루 갖고 가세요.》     나는 그제야 강 촌장을 정면으로 마주 보았다. 그의 얼굴은 웃고 있었다. 250원이라는 큰 돈 앞에서 나는 머리 숙여졌다. 거짓이 숱한 피해를 주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단둘 밖에 없는 이런 기회에 진실을 말해주고 싶었다. 강 촌장도 이 비밀을 알아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사실…》     《촌 재정도 괜찮고 내 생활도 좋으니 걱정할 것 없소. 그저 몸 무고히 학습을 마치고 돌아오오. 돌아올 그날까지 기다리고 있겠소.》     강 촌장은 그 한 마디를 남겨놓고 얼굴이 빨개지면서 문을 박지르고 나갔다. 나는 멍하니 그의 뒷모습만 지켜보았다.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이 내 시야를 부옇게 가렸다. 나는 그가 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꼼짝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     뚝배기, 목석, 무정한 양반, 체취만을 남기고 간  사람…     반년 넘게 볼 수 없는데 포옹 한번 없다니? 단 둘만의 세계에서 단둘만이 나눌 수 있는 공간에서 껴안으면 어떻고 입 맞추면 어떻고 뭐가 대수랴? 솔직한 말을 한다면 그 때 나는 강 촌장이 나를 꼭 껴안아주기를 바랬다. 그러면 나는 그의 가슴을 파고들었을 것이다. 내가 발을 상해 솔개령을 넘을 때처럼…     아녀자의 이런 마음도 몰라주고 장승같은 저 무뚝뚝이는 기다리겠다는 말 한 마디만 남겨두고 훌쩍 떠나버렸다. 그 것이 몹시 섭섭했다. 아깝도록 섭섭했다.     나는 설레는 마음을 다잡느라 바당문을 열어놓은 채 꼼짝 않고 서 있었다. 어찌 보면 강 촌장의 그런 냉담과 무성한 행동이 잘된 일이기도 했다. 만약 강 촌장이 나를 포옹해주고 애무해주었다면 나는 그의 목을 꼭 끌어안으면서 서럽게 서럽게 울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제 신세를 한탄하고 고스란히 이 때까지 지켜온 비밀을 말했을 것이다. 이 때까지 《무쇠 여인》으로 불린 나였지만 남성 앞에서는 여인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리라. 누군가 말했듯이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여려지고 약해지는 것이 여인이 아닌가 싶다.     나는 그런 촌장에게 심리적 고통을 남겨주고 떠나고는 싶지 않았다. 진통을 나누고 싶지 않았다. 원래 생각했던 대로 내 짐을 내가 지고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방금 전 강 촌장이 내 마음을 몰라준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몰랐다. 천번만번 잘 된 일이다.     농촌에서의 환송연회는 인사치레도 없고 예의범절도 없다. 그저 푸짐한 음식에 술 그리고 북 장고를 울리며 노는 것이 고작이다. 북 장고가 없으면 물을 담은 대야에 바가지를 엎어놓고 두드리거나 젓가락으로 술상을 치며 놀아도 신나는 오락판이 된다.     기실 나는 노래하거나 춤출 기분 아니었다. 그러나 거짓을 꾸미려면 마지막까지 꾸며야 했기 때문에 나오지 않는 웃음도 웃어주고 억지 춤도 추었다.     놀음 끝에 재벌 술판을 벌이다보니 환송연은 밤늦게야 끝났다. 내가 길 채비를 하느라 옷 견지들을 정리하는데 배속의 태아가 또 꿈틀거렸다. 요즈음은 태동이 심하다. 어머니가 될 날을 재촉하는 모양이다. 태동은 큰 부담거리기도 했지만 어머니가 된다는 달콤한 꿈도 심어주었다. 오늘밤은 어쩐지 지새울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새날이 언제야 밝으려는지? 1954년 1월 9일 눈보라침     윙―윙―     눈보라친다.     장백의 눈보라다.     바위도 쩡쩡 얼어 튀고 솔뿌리도 갈라터진다는 장백의 엄한이 숨쉬는 목숨들을 외면한 채 대지를 꽁꽁 얼궈붙이며 기승을 부린다. 부르릉 부르릉…     창호지가 갈범 같은 소리를 지르며 떨고 있다. 그 소리는 윙윙거리는 눈보라를 엎누르며 뼈 속까지 파고든다. 이런 날씨엔 《행차금지》라는 말이 있다. 자칫하다간 길에서 얼어 죽거나 눈사태에 묻혀 자취 없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런 날씨임에도 나는 길을 떠나야 한다. 오늘 저녁차로 떠난다고 공포했으니 피탈을 댈 수 있는 여지가 없다. 당의 결정이며 조직의 수요니까.     나는 새벽조반을 해놓고 아버님이 일어나시기를 기다렸다. 항상 날 밝기 전에 잠자리에서 일어나던 아버님이 엊저녁 늦게야 들어오시더니 지금껏 아무런 기척이 없다. 화로에 올려놓은 곱돌솥에선 아버님이 즐기는 청북장이 보글보글 끓고 있고 부엌에 건 작은 솥에서는 닭곰탕이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푸푸 입김을 토한다. 언제 가야 이렇게 내 손으로 지은 밥을 다시 아버님에게 대접해보려는지? 반년, 너무나도 길고긴 아득한 시간으로 여겨진다. 내가 회의에 가거나 순회보고를 떠나는 날을 제쳐놓고는 이 때까지 남들이 지어드리는 밥이나 손수 지은 밥을 자셔보지 못한 아버님이다. 그런데 이번엔 사정이 달랐다. 반년 동안 남의 손에서 때시걱을 들어야 했다. 생각만 해도 억이 찬 일이다.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서로 갈라져서 남이 해주는 밥을 얻어먹어야 하는 가련하고 불쌍한 신세… 화로 위에서는 곱돌솥이 보글보글 끓고 있다. 가마솥에선 닭곰탕이 향기를 풍기고… 그 소리와 그 맛은 곧 헤어져 살아야 할 운명을 지닌 내 가슴에 잊지 못할 상처와 비운을 남기며 집안을 배회하고 있다.     나는 아버님을 푹 쉬게 하려고 아침 해가 창문을 반 조각으로 갈라놓았을 때에야 방문을 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잠드셨을 줄 알았던 아버님이 자리를 비웠다. 나는 얼른 이불 속에 손을 밀어 넣었다. 이불 속은 온기가 없이 산산하다. 나가신지 오래되었나보다. 그제야 나는 대충 겉옷을 걸치고 밖에 나섰다. 사랑채에도 변소에도 뒤뜰 안에도 아버님이 계셨음직한 곳은 다 뒤졌지만 아버님은 그림자도 남기지 않았다ㅣ.     《아버님! 아버님―》     내 부름소리에 윙윙거리는 눈보라만 화답할 뿐…     살을 에일 듯한 눈보라가 사정없이 덮쳐왔다. 삽시에 나는 눈사람으로 변하고 말았다. 눈썹과 머리수건은 온통 성에로 뒤덮이고 온 몸은 눈으로 휩싸이고 있었다. 대소한 추위라지만 올겨울 들어서 처음 맞는 강추위였다.     마실을 가셨을까? 아니 새벽에 남의 집 문고리를 잡는 아버님이 아니었다. 식전 마을돌이는 게으름뱅이들 하는 짓이라며 혀를 끌끌 차시던 아버님이다. 그렇다면 이 추운 식전에 어디 가셨단 말인가? 그래도 혹여나 나는 솜옷을 꾸둥쳐 입고 대문을 나섰다.     강 촌장 집이며 전라도 집이며 강 옆집이며 아버님이 발 닿을 집을 다 찾았지만 아버님은 계시지 않았다.     나는 속이 후끈 달아올랐다. 어쨌으면 좋을지 행방이 알려지지 않았다. 가슴이 바질바질  끓었다. 내가 안절부절하고 있는데 강 촌장이 부름소리도 없이 문을 떼고 들어섰다.     《아직 오시지 않았소?》     나는 대답을 못하고 머리만 가로저었다. 목구멍에서 소리가 뱅뱅 돌뿐 나가지 않았던 것이다.     《산으로 가셨나? 이런 날 산으로 가시면 안 되는데…》     강 촌장은 이 말만 남기고는 두 말없이 문을 떼고 나갔다.     산으로 가셨는가 하는 강 촌장의 말에 나는 짚이는 데가 있어 사랑채로 달려갔다. 틀림없었다. 산으로 다닐 때 아버님이 끼고 다니던 노루가죽으로 만든 토시며 감발을 하던 솜신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왜 깜빡했을까? 설이 다가오는데 산짐승을 잡지 못해 김 서기에게 뭘 보내겠는가 하시면서 근심하던 아버님이셨다. 해마다 이맘때면 꿩이나 노루를 잡아 설 선물로 보내곤 했었다. 그런데 올겨울은 잡아들면서부터 초겨울에는 빈손으로 돌아온 적 없던 아버님이 헛방만 치고 돌아오곤 하셨다. 오늘 내가 떠난다니 산짐승을 바라고 영락없이 산으로 가셨을 것이다. 며느리의 얼굴과 체면을 생각해서 인정사정 모르는 눈보라 속을 헤치면서…     나는 옷차림을 다시 했다. 내가 아버님을 따라 겨울 나무하러 다닐 때 쓰던 개털모자며 여우털조끼며 노루가죽 토시며 나는 완전한 겨울 포수 차림으로 탈바꿈했다.     우리 샘물골에서는 늦겨울에 땔나무를 하는데 그 때면 마을이 떠나갈 듯 도끼질 소리와 나무 켜는 톱 소리로 요란하다. 한 해 동안 땔나무를 장만하느라 집집마다 분주하다. 나무가 흔한 우리 샘물골에서는 솔가지나 검불은 물론 발매치도 눈에 두지 않는다. 적어서 애 허리통만한 불땀이 센 참나무나 봇나무를 톱으로 켜서 가지를 다 잘라 내린 다음 소발구에 싣고 온다. 그것을 마침하게 톱으로 자른 다음 도끼로 쪼개 울바자를 따라 착착 쌓아둔다. 한겨울에 일년 나무를 장만하는 것은 언 생나무라 톱날이 잘 들어가고 도끼날을 잘 받기 때문이다. 도끼질할 때마다 언 나무가 발시를 따라 쪽쪽 갈라질 때면 진짜 신바람난다. 이 때 바삐 보내는 사람 역시 아낙네들이다. 아낙네들은 두부를 앗는다 떡가루를 낸다 막걸리 독을 앉힌다 야단법석이다. 특히 겨울철 샘물골 막걸리는 인근에 짜하다. 샘물에 빚은 누룩 때문인지 샘물에 씻고 샘물에 곤 찹쌀죽 때문인지 쩡하고 달콤한 막걸리 맛에 멋모르고 마셨다가는 코앞을 가리지 못하고 고주망태가 된다는 소문까지 나 있다. 하여 겨울철 샘물골 막걸리를 알고 있는 손님들은 샘물골에 와서 소주를 찾는 것이 아니라 막걸리부터 찾는다.     나도 아버님 때문에 해마다 막걸리 독부터 김치움에 앉히곤 했다. 장작을 패다가도 김치움에서 떠다드리는 막걸리를 마시고는 《어―시원하다.》하시며 턱수염을 쓱―내리쓰는 아버님의 만족한 웃음을 볼 때마다 마치 내가 막걸리를 마신 기분이 들곤 했다.     일손이 여벌 있는 집들은 아낙네들이 나서서 춤추지 않아도 되지만 우리 집같이 일손이 혼자인 집은 여성들이 따라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나무 가지를 따는 일도 그렇지만 그 무거운 통나무를 발구에 싣자면 혼자 손으로는 힘들기 때문이다. 나는 해마다 아버님을 따라 산에 오르곤 했다. 그 때 차리고 나선 복장이 지금 내가 입고 있는 똑 마치 사나이 차림새 같은 이 옷매무시다.     나는 제 정신이 아닌 남의 정신으로 대문을 나섰다. 그때 강 촌장은 벌써 장정 대여섯 거느리고 남산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눈보라가 하얀 꼬리를 물고 그들을 삼킬 때마다 그들은 헤엄치듯 허우적거리다가 잠깐 바람이 숨을 돌릴 때면 다시 허리를 펴고 달리곤 했다.     나도 그들의 뒤를 따라 탈탈거렸다. 눈보라를 등지고 잠깐 서 있노라면 어쩔 새 없이 무릎마디까지 눈에 묻히곤 했다.     내가 할딱거리며 더기밭기슭에 이르렀을 때였다. 앞서 달려가던 강 촌장네들이 더기밭 언덕 위에서 서성거리는 모습이 눈보라 속을 통해 어렴풋이 보였다. 불길한 예감에 등골이 선뜩했다. 삽시에 내 육신이 장승으로 돼버린 느낌이다. 나는 한 발짝도 내디딜 수 없었다. 나는 그들만 지켜보았다. 강 촌장네들이 엎드린 채 꾸물거리고 있었다.     《아버님―》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았던지 나는 아버님을 부르며 더기밭 언덕을 향해 치달아 올랐다.     내가 헐레벌떡 언덕에 올랐을 때 아버님은 강 촌장의 품에 안겨 있었다. 한 손엔 장꿩, 다른 손엔 빈 술병을 쥔 채로.     《아버님! 아버님―》     나는 강 촌장의 품에 안겨 있는 아버님을 흔들며 소리쳤다. 하지만 대답 대신 꿩과 술병을 꼭 틀어쥐고 있는 아버님이 두 손만이 흔들거리고 있었다.     《아버님 흑흑흑…》     나는 얼어 굳어진 아버님의 시체를 안고 목 놓아 울었다. 하느님도 무정하고 세상도 야박했다. 나에게서 아버님을 빼앗아가다니? 천벌을 받아야 할 년은 못된 이 년인데 아버님이 그 벌을 받다니?     《아버님, 저를 두고 홀로 가시다니요? 아버님 흑흑흑…》     재화는 코밑에서 떨어진다더니 이런 날벼락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며느리가 성으로 학습 간다는 말에 그토록 기뻐하시던 아버님, 며느리만은 잘 두었다고 자랑하시던 아버님이 며느리가 떠나는 이 아침에 세상을 하직하다니?     《아버님, 저까지 데려가주세요. 아버님! 흑흑흑…》     모든 재화는 내 눈썹 밑에서 떨어졌다. 내가 눈보라치는 이 아침에 학습 아닌 《학습》을 간다고 하지 않았어도 아버님이 이렇듯 처참하게 내 곁을 떠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세상에 용서받지 못할 죄만 짓지 않았어도 아버님은 세상을 하직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늘이여 나에게 천벌을 내려다오! 땅이여 나를 네 지심 속에 묻어다오!     하지만 하늘도 땅도 무심했다. 죽어야 할 이 목숨은 악착같이 검질기기도 했다. 산목숨 끊지 못한다고 아버님의 장례를 치른 이튿날 나는 밀산행 열차에 몸을 싣고 말았다.       1954년 2월 15일 맑음     내가 이 낯선 고장에 피신을 온 지도 어언 한 달이 넘는다. 나에게는 한 달이라는 시간이 몇 년 맞잡이로 아니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그 모든 시간보다 더 길게 느껴진다. 고향 샘물골에 있을 때는 하루해가 언제 지나는지 모르고 바삐 돌아쳤는데 할 일 없는 놀부가 돼서 그런지 이 고장의 해는 늘어진 황소처럼 스느적스느적 겨우 발걸음을 옮겨 놓는 것처럼 느껴왔다. 어서 빨리 뱃속에 든 무거운 짐을 부리고 싶은 그 조바심 때문인지 모른다.     내가 하는 일은 고작해야 때시걱을 돕는 일, 농한기인데다 설부터 대보름 사이라 할 일도 없었거니와 내가 들어있는 집은 김천수 선생님의 친척되는 분이기에 나에 대해 각별히 신경을 써주셨다. 친조카처럼 말이다.     내 이름은 김천수 선생님의 말씀대로 김옥선으로 변성명했고 내 들어있는 집주인―김영석이라는 분의 조카로 불리워졌다.     흑룡강성 밀산현 양강구 명신촌은 백여 호의 인가가 들어앉은 순 조선족 마을이다. 대동아전쟁으를 발동한 일본제국주의는 1943년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이곳 중소변경에 조선사람들을 대량 옮겨 앉혔는데 명신촌은 이렇게 연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이주시켜 생긴 마을이다.     10여 년 전 이곳 명신촌은 목릉강을 끼고 앉은 허허벌판이었다. 땅을 마음대로 붙이고 공량은 물지 않고 씨앗과 당해에 먹을 양식을 무상으로 준다는 왜놈들의 감언이설에 이사 온 가난뱅이들, 그들의 앞에 펼쳐진 명신촌은 모기떼가 구름처럼 몰려다니고 썩은 진펄과 갈대가 키를 넘는 초지였다. 군용트럭과 마차에 실려 복지라고 찾아온 고장이 바로 이런 생지옥이었다. 눈물을 흘려도 통곡을 해도 오도가도  못하게 된 신세, 어디 가서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그들은 갈을 베여 대충 초막을 짓고 풀밭을 번져 농사랍시고 벼농사를 지었다. 하도 벌이 넓고 땅이 기름져서 첫해 농사는 풀농사 절반 쌀농사 절반 반농사를 지었지만 입에 풀칠은 면하게 되었다.     그 해 여름에 산에 가서 나무를 찍어다 집을 짓고 겨울에 일망무제한 초원에 불을 질러 수백 쌍 되는 밭을 얻어내고 이듬해 봄에 목릉강을 끌어들여 벼농사의 기틀을 잡아놓았다.     이렇게 고생 끝에 밥술이나 뜨게 되자 공량도 없고 뭐뭐도 없다던 왜놈들은 첫 해에 꿔다 먹은 누룩덩이같은 뜬 좁쌀, 수수쌀 대신 벼를 받아갔고 공량도 엄청나게 바치게 했다.     명신촌은 이렇게 앉은 마을이다.     이 고장에선 땅이 그리운 줄 몰랐다. 논두렁을 쌓고 갈아번지면 그것이 제 밭이다. 써레질이랍시고 대충 논판을 고른 다음 산파거나 점파를 하면 그것으로 일년 농사가 끝이다. 논 기음을 매나 돌피를 뽑나 농사꾼치고는 편안한 농군들이다. 이런 멋에 이 고장사람들은 자리 뜰 생각 않고 지금껏 늘어앉아있다.     《조카, 왜 그리 울적해서 구석장군 노릇만 하오? 그러지 말고 마실돌이도 하고 바람 쏘이러도 다니오.》     내가 하도 마을출입을 하지 않고 집구석만 지키고 있으니 집주인이 권고하는 것이었다. 50고개를 바라보는 김영석 씨는 명신촌의 개척자이자 촌장으로 위망이 대단한 분이다. 김영석 촌장의 말이라 하면 팥으로 메주를 쑨대도 곧이들을 그렇듯 신망 높고 믿음직한 일촌 지장이다.     내가 명신촌에 첫발을 들여놓은 그 날 저녁만 해도 그랬다. 연변에서 촌장의 조카가 왔다는 소리를 듣고 마을 아낙네들이 한 구들 모여앉아 이것저것 연변소식을 묻는다 음식대접을 한다 하며 법석 고았다.     《인심이 박한 연변에서 상재(霜災)까지 입어 폐농했다니 뭘 먹구 사누?》     《임신한 몸으로 이 곳까지 찾아올 때야 여북했을라구?》     《연변사람들이 잘 돼야 우리도 기를 펴고 살 텐데.》     《사람은 자꾸 늘어나지 땅은 손바닥만 하지 어떻게 신세를 고치겠어요?》     임신하여 영양보충 하러 이 곳까지 왔다는 주인아주머니 말에 팔자 늘어진 이 곳 아낙네들이 찧고 빻고 했다.     이튿날부터 두부를 앗으면 두부, 돼지를 잡으면 돼지고기, 심지어 제사음식도 빼놓을세라 색다른 음식만 생기면 나를 먹으라 가져다주곤 했다. 쌀독에서 인심이 생긴다고 먹거리가 흔하니 인심도 후했다.     마을사람들이 그렇게도 자기네 집으로 놀러오라고 팔소매를 잡아끌었지만 나는 동네 출입을 일체 삼갔다. 놀러 다닐 형편도 아니었지만 그렇게 다닐 마음의 여유가 없다.     《삼촌, 제 걱정 마시래도요. 먹고 자고 먹고 자고 떡판에 올라앉았는데 웬 근심이세요?》     《왜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조카가 외로워 보이누만. 아낙네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웃고 떠들면 외로움도 가셔질 텐데.》     《아니예요. 삼촌, 아직 서먹서먹해서 그래요. 좀 지나면 저도 한 동아리가 될 거예요.》     《그래야지. 사람이란 까마귀 무리에 가면 까마귀로 되고 학의 무리에 가면 학으로 돼야 하오.》     《알겠어요. 삼촌.》     삼촌의 그 말이 삼촌의 인생철학인 듯도 싶었다. 명신촌에서 김 촌장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듯이 인근 한족마을에서도 명신촌의 로진(老金)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삼촌은 인근 한족마을과도 각별한 사이였다. 하여 한전만 다루는 한족마을에서도 해마다 명신촌에 와서 콩과 벼를 바꿔가고 명신촌에서는 벼와 바꾼 콩으로 메주도 쑤고 기름도 짰다.     삼촌댁도 삼촌 못지않게 주먹이 크고 배포 유한 여인이다. 뼈도 굵게 생겼지만 성미 또한 괄괄하다.     내가 삼촌 집에 투숙한 이튿날 삼촌댁은 임신 때 몸보신 잘해야 애도 건강해진다며 하나밖에 없는 씨암탉을 곰하여 내 밥상에 올려놓는 것이었다. 지난해 닭을 두 배나 깨웠는데 항가리와 슬기가 드는 바람에 종자를 말리웠다나? 그렇게 겨우 남긴 씨암탉을 잡았으니 내 목구멍으로 넘어갈 수 있나 말이다. 내가 먹으려 하지 않자 삼촌댁은 입쌀자루를 이고 한족마을에 가서 닭 세 마리를 바꾸어다 목을 비틀었다. 삼촌댁은 이렇게 통이 큰 여성이다.     남의 집 쌀밥이 제집 죽물만 못하다고 눈칫밥 신세는 어제도 오늘도, 이 곳에서도 저 곳에서도 다 같은 모양이다. 나에게 극진히 대해주면 줄수록 그 벽이 허물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두터워지면서 좀체 공간을 줄일 수가 없다. 외려 대충 먹여주고 재워준다면 마음 편하고 더 친숙해질 것 같았다. 손님 대접하듯 하는 삼촌 내외분의 그 정성이 우리 사이를 되려 어색하고 어렵게 만들고 있었다.     그들 부부의 후한 대접을 받으며 보낸 한 달이지만 내 마음은 그 어느 하루도 개인 날이 없었다. 장꿩과 술병을 꼭 쥐고 동사하신 아버님의 모습이 항상 눈앞에서 어른거리고 소 수레를 몰고 나를 용천구까지 바래주던 강 촌장의 후더운 얼굴이 내 잠자리를 파고들기 때문이었다.     괘씸한 강 촌장, 남은 한생 지고 일어날 수 없는 보따리를 메고 가는데 자기는 신바람 나서 웃음꽃을 활짝 피웠지? 내가 누구 때문에 남의 집 눈칫밥을 먹는데? 웃고 있는 강 촌장이 미웠다. 나를 북대황 한끝으로 밀어버린 강 촌장이 미웠다. 강 촌장이 없었더라면 내가 이 지경까지 이를라구? 나를 이렇게 만들어놓고도 자기는 잠자리에서 여편네를 끼고 히히덕거리겠지? 그 여편네도 미웠다. 다 미웠다. 실컷 패주었으면 속이 후련할 것 같다.     강 촌장 때문에? 내가 좋아서 내가 저질러 놓은 화를 가지고 강 촌장을 나무라다니? 잠자는 사자를 깨운 당사자는 누군데 애매한 강 촌장을 나무람하다니?     그립고 보고 싶어서 강 촌장이 미웠고 술내, 담배내, 땀내가 섞인 체취가 그리워서 강 촌장이 괘씸했다.     나는 이렇게 매일 밤 강 촌장과 싸우다가 잠드는 때가 많다. 아니, 강 촌장을 보고 싶어서 울다 잠드는 때가 더 많다.     오늘밤엔 또 강 촌장과 싸우지 않으려는지? 강 촌장 품이 그립다.        1954년 3월 17일 눈 내림.     꽃샘 잎샘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는 말이 있다.     이 때쯤이면 우리 샘물골에서는 지붕에 고드름이 달리고 버들개지들이 포동포동 살찌기 시작하지만 이곳 북대황 일각에 자리잡고 있는 명신촌에선 봄기운을 느낄 수가 없다.     고향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몇 천 리 벌을 깔고 앉은 이곳 북만의 귀퉁머리에서는 꽃샘이 터졌는지 밤중부터 쏟아지기 시작한 눈이 그칠 줄 몰랐다. 고향에서는 산에 막혀 눈 내리는 그 끝은 볼 수 없는가 알았더니 산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고 지내는 이 고장에서도 지평선을 메우며 내리는 눈의 끝을 볼 수가 없다.     밤새 울어대던 무리승냥이의 울음소리도 날이 밝자 가뭇없이 사라지고 사르륵사르륵 창호지를 스치는 소리만 들려온다.     북대황의 새아침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 새벽과 함께 명신촌이 와자자 끓어 번졌다. 간밤에 이리떼들이 명천집 굴암퇘지를 물어갔단다.     이 곳 북대황 허허벌판의 첫손 꼽히는 우환거리는 호랑이나 곰이 아닌 이리떼들이다. 수백 마리씩 무리지어 다니는 이리떼들은 가축은 물론 사람도 가리지 않고 해친다고 한다. 명신촌에서도 대낮에 승냥이가 들어와 무산집 갓난애를 물어갔단다.     몇 해 전에는 해방군통신병이 통신연락을 나갔다가 이리떼를 만나 한 다발의 총탄을 다 퍼붓고도 이리떼의 피해에서 벗어나지 못했단다. 해방군전사들이 그를 찾아냈을 때 총탄을 맞고 너부러진 수십 마리 승냥이와 한 구의 백골이었단다.     북대황의 이리떼는 그토록 악착스럽고 그토록 무서운 존재로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마을이 들어앉고 호수가 늘어나면서 상대적으로 이리떼가 줄기는 했지만 지금까지도 이리떼의 습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돼지우리에 새끼줄을 얽는다 가시쇠줄을 느린다 하면서 방책을 대지만 주린 승냥이들은 말려낼 수는 없었다.     아침 설거지를 끝내고 나는 집을 나섰다. 변소를 찾는 외에 집을 나서는 때가 거의 없다시피 하는 나였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눈이라도 폭 맞고 싶었다.     오줌꽃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얼어버린다는 북대황 대소한 추위처럼 뼈를 에이지는 않았지만 그 꼬리가 남아있어 여간 매섭지 않다. 대문가에 이르기도 전에 머리카락과 머리수건에 하얀 성에가 앉고 숨을 쉴 때마다 입김이 연기처럼 뿜어 나왔다.     내린 눈은 벌써 무릎을 차고 있었다. 무서운 폭설이다.     대문을 나선 나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선 채 남쪽 하늘을 쳐다봤다. 몽롱한 세계, 백설의 세계, 하얀 세계가 내 시야를 가렸다. 내 고향 샘물골에도 이처럼 시름없이 눈이 내리고 있는지? 하얀 비단보에 푸른 청송들을 그려놓은 듯한 겨울의 솔개령, 정든 고향산천도 지금쯤 눈의 세례를 받고 있는지?     그 날 눈보라치던 아침, 생각만 해도 눈앞이 아찔해난다. 밤마다 꿈속을 파고드는 장꿩과 술병, 아버님 묘지에 함께 묻혀진 장꿩과 술병은 지금도 변하지 않은 그대로일 것이다. 어쩐지 장꿩과 술병을 공연히 묻어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영원한 기념물로 남겨 나의 죄를 질책하는 산 증견인으로 만들었더라면 하는 생각에 말이다. 그러면 혹여 아버님을 잊을 수 있을는지? 너무나 아버님을 생각하기 때문에 아버님을 잊고 싶다.     눈이 펑펑 쏟아진 담. 그 눈 속에서 동사한 아버님 시체와 정신 잃은 나를 업고 눈보라를 헤치며 더기밭에서 마을로 돌아오는 강 촌장네들을 보는 것만 같다. 눈무지에 빠지기도 하고 미끄러져 구르기도 하면서 진짜 그네들이 죽을 고비를 넘겼을 것이다.     그 날은 억척스레 눈보라가 치더니만 아버님의 장례 날은 바람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였다. 있어서는 안 되고 없어야 할 더기밭 언덕 위에 세워진 묘지 하나, 아버님이 세상 뜬 그 자리에 아버님을 모신 묘지.     그 차디찬 땅 속에서 아버님은 어떻게 홀로 보내시는지? 내가 곁에 있다면 자주 찾아가 흙 한 삽이라도 더 떠 얹으련만…그럼 바람도 덜 맞고 추위도 덜 스며들 것이 아닌가.     《아니, 이 추운 날에 뭘 보고 있소?》     《네. 아주머니, 시원히 눈이라도 맞고 싶어요.》     《입술까지 파랗게 질렸는데 눈을 맞고 싶다? 동태가 되고 싶소?》     주인집 아주머니가 내 등에 쌓인 눈을 툭툭 털어주며 나무랐다.     《아주머니, 눈이 한정 없이 내리네요.》     《이까짓 눈이 다 뭐요? 어떤 해에는 집까지 묻어버린다오》     《봄눈은 쌀눈이라지 않아요? 복눈이예요.》     《홀몸도 아닌데 자 밖에서 떨지 말고 어서 집으로 들어가기오.》     주인집 아주머니가 끌다시피 내 팔을 잡고 집에 들어섰다.     투둑둑 툭툭…     태동이 제법 심하다. 몸꼴도 임신부답게 제법 부풀어 올랐다. 이 고역살이는 언제가야 끝을 볼는지? 하루가 새롭다. 아직도 석 달을 이렇게 뻗쳐야 할 것을 생각하니 몸이 더 무거워진다.     내가 누우려고 자리를 찾고 있는데 김 촌장을 부르는 소리와 함께 하루에도 몇 번씩 이 집 문고리를 쥐었다 놓았다 하는 소식통―떠꺼머리총각이 들어섰다. 그간 나와도 꽤 익숙한 사이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농촌에 내려온, 이 마을에서는 먹물을 제일 많이 먹은 수재였다. 농사는 얼레뚱땅 입안에 쌀알이 들어갈 만큼 대충 짓지만 먹물 맛을 보이느라 그러는지 신문만은 빼놓지 않고 주문했다. 그래서 그에게 달린 별명이 《소식통》이다.     《김 촌장이 어데 갔슴 둥?》     소식통이 신문을 돌돌 말아 쥐고 들어서며 물었다.     《숟가락 놓기 바쁘게 나갔는데 나도 모르겠소.》     《저―연변아줌마, 어디서 보던 분이라 생각했는데 신문에 실린 이 분이 연변아줌마 아님 둥?》     소식통이 신문을 펼쳐 보이며 나보고 말했다. 신문에 실린 분? 나는 속이 꿈틀했다. 내 정체가 들짱나는 날에는 모든 계획이 수포가 되기 때문이다.     소식통은 누리끼리한 색깔의 묵은 신문을 내 앞에 펼쳐놓았다. 신문에는 남편의 열사증을 받은 이튿날 더기밭에서 마을 아낙네들과 함께 감자를 캘 때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그 날 신문과 방송기자들이 귀찮다싶게 찰거머리처럼 달라붙더니 그것이 끝내 일을 저지르고만 것이다. 단발머리를 한다 옷치장을 고친다 하면서 변모해보겠다고 무진 애를 썼지만 생김새만은 깎아 만들지 못하는가보다.     《허인숙 아주머니를 그러오? 내가 이 아주머니처럼 이름 날렸으면 살아 산 보람이라도 있잖겠소? 호호호.》     속은 꽁꽁 얼어붙었지만 나는 억지웃음을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신통하꾸마.》     소식통이 신문 속의 허인숙이와 나를 번갈아보며 머리를 갸우뚱거렸다.     《그러지 않아도 많은 분들이 허인숙 아주머니와 나를 쌍둥이 아닌가 하오. 내가 허인숙 아주머니라면 이렇게 팔자 느러지게 들어앉아 있을 수 있겠소?》     《글쎄 그 것도 그렇수꾸마.》     《비슷한 사람이 세상에 한두 사람이요?》     주인집 아주머니가 가시대에서 그릇을 가시다가 신문도 보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세상사람 제각각이라지만 비슷한 사람 많습지비.》     소식통은 그제야 한 발짝 물러섰다.     나는 주인집 아주머니에게 골백번 절이라도 하고 싶었다. 당혹스럽던 나를 구세주처럼 곤혹의 심연 속에서 구해주었기 때문이다.     한 차례의 비극은 이렇게 희극적으로 끝났다. 위기를 무난히 모면한 셈이다. 하지만 위기감은 여전히 나를 괴롭히고 있다. 언제 어떤 일이 들이닥칠지 누가 알랴? 예상하지 못했던 낡은 신문 한 장이 나를 벼랑가로 끌고 갔듯이 또 그 무엇이 나를 창해 속으로 몰고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신문은 하나의 경종이었다. 소식통이 아닌 또 다른 사람이 신문을 들고 나를 찾아오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랴!     《총각선생, 볼거리가 없어서 답답하던 참인데 그 신문 빌리지 않겠소?》     나는 소식통이 신문을 들고 다니며 마을에 소문을 펼까 봐 아예 그 신문을 없애버릴 잡도리를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봅소.》     소식통은 군말 없이 신문을 내놓았다.     저녁 불을 땔 때 나는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그 신문을 아궁이에 집어넣었다.     투두둑 툭툭…     배속의 태아가 또 뛰논다. 밖으로 나오겠다고 발버둥치는 모양이다. 팔삭둥이도 있다는데 칠삭둥이라도 돼서 빨리 나와 버렸으면 좋겠다. 나에게는 그 소원밖에는 없다. 거뜬한 몸이 되어 새로운 나로 변신하고 싶다. 소원과 현실, 그건 왜 걸맞지 않고 항상 뒤틀어지기만 할까? 현실은 항상 소원을 희롱하고 희생물로 만들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속이면서 살고 속인다는 것을 알면서도 속이는 것이 인생행로의 절주감이 아닌가 싶다.     따르릉 따르릉…     내가 여기까지 일기를 읽었을 때 고요한 집안의 새벽공기를 치째며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아들 녀석에게서 오는 전화일 것이다. 일본 유학을 간 광천이는 언제나 새벽에 전화를 걸어오곤 하니까.     《여보세요.》     내가 송수화기를 들고 이렇게 말하자 아들 목소리 대신 귀에 익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나야! 정순이.》     《응 알겠다. 그런데 새벽에 웬일이야?》     《오빠, 시간 있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지.》     《오늘 우리 친구들이 시골별장으로 산보놀이 가는데 오빠, 나와 함께 가지 않을래?》     《그런 일이면 시간 빼기가 힘들 텐데…》     《안돼. 오빠, 다른 사람들은 다 짝이 있는데 나만 외기러기야. 오빤 그런 정순이가 불쌍하지 않아?》     《그럼 짝을 하나 얻으면 될 거 아냐?》     《오빠 말고 내게 짝이 어데 있어? 지난번 차를 세웠던 곳에 차를 대기시킬 테니까 9시까지 나와.》     《그건…》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순이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정순이는 이런 여자다. 남성적이면서도 여성적인, 야하면서도 온순한, 섹시하면서도 여린, 정순이는 그런 여자다. 내 팔을 잡고 숲 속으로 끌어들이는 담 큰 여성인가 하면 내가 지금의 아내와 결혼하게 된다는 소식을 듣고 원망이나 나무람 한 마디 없이 눈물만 똑똑 떨구던 그런 나약한 여인이었다. 모르긴 해도 정순이의 이런 이중적 성격이 부를 창조하는 데서는 성공시켰지만 가정의 복을 창조하는 데서는 실패로 종지부를 찍게 했을 것이다.     나는 정순이를 실망시킬 수 없었다. 정순이를 실망시킬 수 없다기보다 내가 나를 실망시키지 말아야 했다. 일기 속의 허인숙 어머니와 함께 명신촌에 갇혀 있었던 마음도 풀어보고 정순의 친구들도 만나보고 싶었다. 그 《친구》들에 마음이 쏠렸다. 이상했다. 나만 못했으면 하는 그런 바램을 갖게 된다는 것이. 나와 비슷하거나 나보다 한 주먹 위에서 노는 친구들이라면 시기와 질투가 생길 것이라는 생각을 배제할 수 없으리라는 바람직하지 못한 마음이 꿈실대는 것을 체감하면서. 아마 그래서 더 가고 싶어 했을 것이다.     나는 창문에 친 커튼을 젖히고 문을 열었다. 새벽이슬에 함뿍 젖은 아침 대기가 매캐한 석탄연기를 싣고 서재에 몰려든다. 새벽조반을 하느라 서쪽 켠에 올망졸망 들어앉은 단층집 연통에서 뿜어 올리는 연기다.     나는 한껏 기지개를 켜면서 한눈에 안겨오는 연길시내를 바라봤다. 보얀 연기에 시야가 가려 그렇게 잘 보이던 백산호텔이나 연길백화점과 같은 고층건물마저 어렴풋하다. 연길시는 자기가 지펴 올리는 연기에 깔려 숨 가쁘게 헐떡거린다.      나는 강둑 산책로에 눈을 돌렸다. 봄철은 하루 멀다하게 나이를 먹는다더니 며칠 전과는 달리 강변버들방천은 제법 푸른 우산을 쓴 듯 푸른 기운이 감돌고 있다.     유보도로 《ᄀ》자형으로 허리가 굽은 꼬부랑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탈싹탈싹 걸어가고 있다. 아침 신체단련에 끈질긴 할머니였다. 관속에 들어가도 늦었다 싶게 나이를 자셨건만 기울어지는 생명의 천평 위에 언제나 자기 쪽에 무게를 더하려고 저렇게 악을 쓰며 몸 단련에 나선 모양이다.     나는 저 꼬부랑 할머니를 볼 때마다 먼저 생각나는 이가 아버지다. 몸조리만 잘하면 한 세기는 능히 벋디딜 수 있는 체구를 갖고 있지만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몸을 팽개치니 콜록콜록 기침만 얻을 수밖에. 아침저녁으로 산보도 하고 신체단련도 하라고 내가 그렇게 강권했건만 아버지는 골방장군길 하면서 내 말은 콧방귀로 날려 보낸다.     콜록콜록… 뚜벅뚜벅…     아버지의 기침소리와 걸음소리만 들어도 나는 아버지의 건강상태와 정서를 틀림없이 진단할 수 있다. 그처럼 나는 아버지의 기침소리와 발걸음소리에 익숙해 있다. 소리의 높낮음과 절주는 아버지의 실체를 말해주는 확인서였고 진단서였다.     《나 오늘 까막골에 다녀올란다. 콜록콜록.》     아버지가 서재 문을 열고 항상 그랬듯이 머리만 들이밀고 말씀하셨다.     나는 아버지를 돌아보았다.     눈을 덮던 더부룩한 눈썹이 아니다. 눈썹을 빗어 올리니 요즈음 보아오던 어깨 처지고 맥 빠졌던 아버지가 아닌 것 같았다.     《아닙니다. 오늘 병원으로 가셔야 합니다. 집사람이 모시고 갈 겁니다.》     《뭐? 병원? 소 웃다 꾸레미 터지겠다. 병원? 내가 뭐 죽을병에라도 걸렸단 말이냐?》      《아버지가 수척해지시니…》     《두 말이면 잔소리다. 나 오늘 까막골로 떠나니 그런 줄 알아 콜록콜록.》     어느 관상쟁이가 말했듯이 아버지는 호랑이상이나 먹물만 좀 먹었어도 벼슬자리에 앉을 팔잔데 그만 학교 문을 나서지 못해서 권세를 얻지 못하고 호미자루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오늘 아침 아버지의 모습을 보니 저 어깨에 왕별 하나만 붙여놓아도 세상을 호령할 것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까막골에는 왜 다녀오시렵니까?》     《어쩐지 고향에 한번 다녀오고 싶구나. 콜록콜록.》     《까막골에 가도 아는 사람 하나 없을 텐데요.》     《죽기 전에 집터라도 한번 보고 싶구나.》     《이 다음 제가 모시고 가지요.》     《내가 뭐 송장인 줄 아냐?》     《요즈음 몸도 불편하신 것 같은데. 병원으로…》     《오늘 떠나겠으니 그리 알거라. 콜록콜록.》     아버지는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서재 문을 닫아버렸다.     뚜벅뚜벅…     발걸음소리가 기운차다. 그건 더 말리지 말라는 무언의 암시다.     콜록콜록 음―     기침소리 뒤에 음 하는 여운을 달았다. 그건 발설한 다음엔 그예 하고야만다는 단호한 의지의 표현이다.     나는 이런 아버지 앞에서 한번도 이겨본 적 없다. 그 누군가는 최대의 효성은 지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효자가 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언제나 지고 있다. 지는 것으로 아버지를 만족시켰다.     나는 침실 문을 열었다. 아내는 그 때까지 쌕쌕 코를 골며 곤히 자고 있다. 나는 군말 없이 아내를 흔들었다.     《아니 왜 이러세요?》     짜증 섞인 아내의 말이다.     《빨리 일어나라니까.》     《지금 몇 신데 자게도 못하고 사람을 들볶아요?》     《일어나라니까.》     명령과 같은 위험기를 담은 내 말에 아내가 벌떡 일어났다. 내 저기압 상태를 잘 더듬어내는 아내다. 내 목소리가 아무리 낮고 무게가 없어도 아내는 그 억양과 말투에서 내 정서와 감정을 포착하고 자신을 그 정서와 감정에 용해시킬 줄 아는 여성으로 탈바꿈하려고 무척 신경을 곤두세운다. 요즈음 내가 잠자리에 잘 들지 않고 서재에만 박혀있자 아내는 위기감을 느꼈는지 바가지를 긁지 않고 내 눈치를 살피면서 슬슬 비위를 맞추는 아량 있는 여인처럼 자신을 가꿔갔다. 자칫했다간 아내라는 자리까지 빼앗기게 된다는 것을 늦게나마 깨달은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가정을 파괴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저 그렇게 보였을 뿐이다.     《웬 일이세요?》     《오늘 아버지가 까막골에 다녀 오시겠다오.》     《아니 병원으로 모시고 가라지 않았어요?》     《그건 취소!》     《취소?》     《그렇소. 하루하루 몸이 못해가니까 마음이 허수한지 고향에 가보고 싶다는 걸 무슨 수로 막소?》     《그럼 모시고 가야지 어떻게 홀로 보내세요?》     《그예 홀로 떠나시겠다오. 아버지의 성미야 당신도 잘 알지 않소? 그러니 나들이옷을 잘 챙겨드리고 용돈도 푸짐히 드리오.》     《알겠어요.》     아버지는 조반을 치르자 집을 나섰다. 우리가 새 아파트로 이사 온 후 처음 갖는 나들이였다.      아버지의 기침소리를 듣지 않으면 나는 언제나 우리 집안에서 무엇인가 결여되고 도적맞은 듯한, 꼭 있어야 하고 꼭 필요한 그 무엇이 공백으로 된 듯한 공허감에 빠지곤 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엔 이상했다. 감각세포들이 죽어버렸는지 콜록콜록하는 소리가 멈춘 지 오래되었는데도 별다른 느낌이 오지 않는다. 평행을 잃고 방안을 맴돌지도 않았고 갑갑증에 냉수 한 사발 들이켜지도 않았다. 아버지와의 거리가 멀어져서일까? 아버지에 대한 나의 효성이 부족해서일까? 그런 같지도 않다. 이상하다. 이토록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다니?     옳지, 그렇지! 늙은 소 콩밭으로 한다고 내 마음이 딴 데 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놀이터, 바로 그 것이다. 정순이의 친구들과 함께 별장으로 놀러간다는 그 흥분조가 효심을 밀어냈던 것이다. 망할 자식! 그러면서 제 딴에는 효자라고? 네깟 같은 효자 셋만 있으면 세상의 효자 다 목을 매고 말겠다.     따르릉, 따르릉…     자지러진 전화벨소리.     《여보세요.》     《오빠 뭘 해?》     《벌써 9시가 됐나? 미안.》     《빨리 내려와. 오빠!》     나는 취재가방 하나 달랑 들고 층계를 내려왔다. 아파트 귀퉁머리에 눈에 익은 정순이의 까만 도요다 승용차가 서 있다. 그 속에 정순이가 앉아 있을 것이라는 생각만 해도 마음이 붕 뜨는 것 같았다.     《미안해!》     승용차 문을 열고 정순이의 옆에 앉으며 내가 말했다.     《오빠. 벌 받아야 해. 자…》     정순이는 선글라스를 벗고 얼굴을 내 쪽으로 돌리며 눈을 감았다. 나는 뻑 하고 정순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     《오케이!》     정순이는 해쭉 웃어 보이며 선글라스를 꼈다. 그리고는 발동을 걸었다.     시내교통은 말이 아니었다. 가스관을 묻느라 양쪽 도로를 파헤친 통에 자동차가 빠지지 못해 거북이걸음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막혔다. 모든 것이 막혔다. 온 연길시가 《정지》라는 두 글자에 비끌어 매여 있었다.     《진짜 짜증나네.》     《연길시가 두더지 도시라는 걸 너 여태 모르고 있었나? 파곤 묻고 되 파고 또 묻고 작년 한 해에 애단로만 해도 네 번이나 이런 수술을 당했어. 연길시의 돈이 땅 속으로 무더기로 쓸어 들어가는 판이지.》     《왜 그러지 오빠?》     《무계획적인 일 대 일의 건설이니까. 우정 전력, 가스, 배수… 그 모든 부문이 저마다 돈 생기는 대로 무작정 뚜지니까 판 자리를 또 파고 또 파고 하지. 그러니 돈은 무진장 땅 속으로 들어가고 그 부담을 안느라 백성들만 땀을 빼는 거야.》     《내가 시장이래도 한 바지를 입을 걸? 가난하면 왜 옷을 기워 입기만 하는지 너 알고 있지? 누더기, 그것이 지금의 연길이야.》     《이름 하나 잘 지었다. 누더기, 호호호.》     《웃지 말고 핸들이나 단단히 잡아. 사람 다치겠다.》     《예―알겠소이다. 서방님.》     인멀미 나고 짜증나는 연길시를 벗어나자 우리는 화창한 봄날의 아지랑이 속에 묻혔다. 어제 날엔 노고지리 우짖는 봄이라고 했지만 지금은 구슬땀 피어나는 봄이라고 부르는 그 봄이 잠든 해란벌과 만무과원을 깨우고 있다.     송림이 우거진 모아산 기슭에 이르자 논갈이를 마친 무연한 해란벌이 모내기를 기다리며 시름없이 누워있고 기름진 해란벌을 가르며 해란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모아산 기슭을 따라 용정시 북쪽까지 뻗은 만무과원에는 눈송이처럼 하얗게 덮어쓰고 있던 꽃 이파리를 털어버린 사과 배나무들이 사과 배를 빚느라 한창 단즙을 빨아올리고 있다.     《오빠, 요즘 나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     《무슨 생각?》     《오빠 애를 갖고 싶다는 생각.》     《우리 둘 모두를 훼멸시키려고?》     《안심해 오빠, 향항이나 심수에 가서 소문 없이 애를 낳아가지고 올 거야. 그러면 누구의 애라는 걸 아무도 모를 거야.》     《잡생각 구겨치우고 핸들이나 바로 잡아.》     《오빠, 난 논다니가 아냐. 오빠의 고마라는 말이야. 고마!》     《알고 있어. 그래서 너의 종놈도 돼보고 주인도 돼보는 거야.》 이 때의 정순이는 말괄량이가 아니라 진짜배기 얌전이다. 얼핏 보면 그 어디에도 내성적이면서도 조용한 구석이 보이지 않는 덜렁쇠 같은 정순이다. 겉 본 안이라지만 정순이는 그와는 판이한 숙녀다. 차분하고 인절미 같은, 백설기 같은 하야말끔한 여인이다.     《오빠, 내 소원 들어주겠어?》     《애를 갖고 싶다는 소원이면 거절!》     《졸장부, 그건 내가 할 탓에 달렸어. 오빠가 상관하래? 그건 그렇고 오빠가 조용히 글을 쓸 수 있는 별장 하나 만들어주고 싶어. 이건 거절 않겠지?》     《소문나면 어쩌지?》     《참 오빠, 언제까지 남의 눈치 보며 살래? 눈치놀음에 자기를 갖지 못하고 살아온 오빠가 앞으로도 남의 정신으로 살 테야? 난 오빠의 그것이 싫어! 싫단 말이야!》     승용차는 비암산 굽이를 돌고 있었다. 일송정이 코앞에 다가왔다. 일송정, 선구자의 노래와 함께 한겨레의 마음을 지키고 있는 한 그루의 소나무와 정자, 그 소나무와 정자를 지키고 있는 선구자의 탑. 언제 보아도 어디 가서도 숙연히 머리 숙여지는 역사의 증견자이다. 우리 영원히 기리고 기릴 배달민족의 상징이다.     나는 차창을 열었다. 시원한 바람이 차창으로 스며들었다. 나는 숙연히 머리 숙였다.     《네 뿌리가 내 가슴에 영원히 뻗어있기를!》     나는 속으로 이렇게 말하며 차창을 닫았다.     《변함없는 오빠의 마음, 나는 그런 오빠가 좋아!》     정순이 내 마음을 읽고 이렇게 말했다.     《방금 나를 싫다고 해놓고도?》     《싫은 오빠가 고운 오빠, 이 것이 현재의 문경천 오빠야!》     《듣기 싫진 않군. 그런데 한정 없이 어디로 끌고 가는 거야》     《지금 놀이는 도심을 멀리 벗어날수록 좋다지 않아? 아동저수지 위초리에 산천어를 기르는 별장이 있는데 오늘 산천어 먹으러 가는 거야.》     《산천어?》     《왜 그렇게 놀라. 오빠?》     《왜 놀라냐구? 이 우둔한 것아, 산천어가 어떤 물고기인지 너 알기나 하나? 네 입에서 산천어라는 말이 그렇게 쉽게 흘러나와? 귀축같은…》     30여 년 전만 해도 산천어와 이면수, 고들메기 같은 맛좋은 물고기들이 연변의 어느 골연에나 다 있었다. 하지만 사처에 목재판이 들어앉고 가공공장이 들어서면서 수질이 오염되고 씨종자를 말릴 지경으로 그물이요, 축전지요, 화학약품이요 하는 현대화 어로공구로 마구잡이로 고기를 잡는 통에 지금은 훈춘과 화룡, 안도 같은 깊은 산중의 석천에서만 간혹 볼 수 있는 희귀한 어종이다. 그런 물고기를 먹으러 간다? 나로서는 꿈도 꾸기 어렵거니와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다.     승용차는 아동 저수지의 변두리를 따라 구불구불 뻗어간 비포장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포장되어 있지 않는 산골길이라지만 사토질 땅이라 포장도로 못지않게 잘 다듬어지고 반듯한 길이다.     예전엔 뗏목이 흐르고 정장어, 이면수, 산천어가 흔해 빠졌다는 장인강이 이곳 룡문향에 와서 허리를 잘리고 갇히면서 호수를 이루고 있는 그 물집이 지금의 아동저수지이다. 기암괴석도 좋지만 정갈한 물, 푸르른 숲으로 인기를 끄는 명승지이다.     아동저수지 윗목 강 건너편 벽돌집 앞에 국산승용차 두 대가 서 있는 것이 멀리에서 보였다.     《저 친구들이 한발 앞섰네.》     《저 곳이야?》     《그래, 오빠.》     《그 전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들이야?》     《아니 새로 사귄 친구, 돈이 돈인 줄 모르는 이른바 부유층들이야.》      《그럼 나는 학의 무리에 끼인 까마귀 아냐? 가난뱅이 선비.》     《오빤 까마귀 무리 속의 학이야. 저치들은 돈 냄새를 피우고 사장님 행세를 하지만 기실 빈털터리들이야. 기업가랍시고 이름은 번듯하지만 기실 속이 텅 빈 들가방들이야. 은행에서는 이미 대출해준 돈을 받아내기 위해 기업을 살리라고 계속 대출해주지만 부도난 기업을 살리기가 쉬워? 굽 빠진 항아리에 물붓기지. 기업은 부도났어도 사장님이거나 경리님들은 잘 산다는 말 못 들었어? 저치들이 바로 그런 거품기업의 사장님들이야.》     정순이는 아는 것도 많았다. 연길에 발을 들여놓은 지 얼마 되지 않지만 기업의 실태나 경제형편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외국기업가의 손부리에서 닥달이 된 예리한 촉수로 세계 속의 연길, 중국 속의 연길, 연길 속의 기업들을 감안하고 해부하지 않았나싶다.     《내가 저런 치들을 제일 싫어한다는 걸 정순인 잘 알 텐데?》     《오빠를 내가 왜 몰라? 오빠는 그래 항상 소농경제의 울타리에서 맴돌이치는 농경문학권에서 살 셈이야? 농촌 아줌마들의 치마저고리는 잘 알아도 도시경제의 싸구려나 사기치기를 알아? 저런 사람들과 자주 상종하고 저런 사람들을 잘 알아야 진짜 상품경제로 진입한 도시문학권으로 들어올 수 있다고 봐. 안 그래? 내가 너무 했나. 오빠.》     《아니.》     《21세기는 정보화시대 지식경쟁의 시대라지 않나? 난 그저 오빠를 위해서 다리를 놓아줄 뿐이야.》     《나쁠 것 없지. 당할 것도 없으니까.》     도요다는 콘크리트 다리를 건너 소수레나 겨우 통할사한 울퉁불퉁한 진흙길에 접어들었다. 꽤나 험한 길이다. 길홈에 고였던 물이 튕기면서 승용차는 삽시에 흙투성이로 돼버렸다.     우리가 산천어 별장에 다다랐을 때 정자에서 우리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우르르 승용차로 몰려들었다. 세 쌍의 남녀였다.     《자, 인사들 하세요. 제 오빠, 유명작가 문경천 선생님.》     승용차에서 내리자 정순이는 나부터 소개했다.     《성함을 들어 뫼신지 오랩니다. 이렇게 만나뵈어 무지무지 영광스럽습니다. 해란강무역회사 조재권이라 부릅니다.》     번대머리였다. 체통이 작은 배에 비계가 얼마나 들어찼는지 혁대가 배꼽 아래에 처져 있다. 인물체격은 삐여진 데 없었으나 꽤나 해사하고 푸접 좋아 보였다.     다음 사람은 말라깽이를 겨우 면할사한, 조재권이와 현저한 대조를 이루는 백두산특산품무역회사 리 사장이었다. 50대 중반을 저울질하는 고수머리다. 보통 키를 벗을사한 멋스러운 사나이로 그 체격에 살점 한 킬로그램만 더 얹었어도 40대로 볼 수 있는 낙천적인 사람이었다.     다른 한 사나이는 모 은행 대출과 박 과장이라는 텁석나룻이었다. 눈딱부리만 아니었어도 처녀들의 눈길을 한 몸에 잡아끌 30대 초반의 젊은이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너무나 점잖을 빼는 것이 말투거나 행동거지가 로봇 같았다.     《자, 오늘 들놀이의 첫 프로는 박 과장님을 모시고 하는 낚시질 시합입니다. 일등한 팀에게는 후한 상금이 있는데 일체 비용은 제가 담당합니다. 시간은 한 시간.》     인사수작이 끝나자 번대머리가 보란 듯이 나서서 말했다. 오늘 들놀이의 주인공임을 뻐젓이 내비친 것이다. 번대머리의 말에 동참이라도 하듯이 박 과장이라는 텁석나룻이 털수세 같은 턱을 만지며 만족하게 웃었다.     《얘들아, 빨리 낚시도구들을 가져와!》     번대머리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노리개로 함께 따라왔던 20대의 여자들이 이미 준비해놓았던 낚시기구를 갖고 와서 남자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자신 있어?》     정순이는 낚싯대를 받아 쥐며 나에게 눈짓했다. 나는 히쭉 웃었다. 낚시질에서 두 번째 가라면 아예 낚시터에 앉지 않는 나였다. 겨울철 얼음구멍 낚시질로부터 봄, 여름, 가을, 철따라 변하는 고기미끼와 어종, 낚시선택, 물의 심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였기 때문이다.     산천어 낚시질인 만큼 환경이 조용해야 했다. 성질이 급하고 날랜 산천어는 인적기만 나도 도망쳐버린다. 그리고 육식어종이기에 떡으로 만든 미끼를 쓰지 말아야 하고 낚시는 가라앉히지 말고 한 뼘쯤 띄워야 한다. 물론 강 낚시가 아니고 못에서 기르는 산천어여서 좀 다를 수는 있겠지만 유전된 습성은 크게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대황구직공 휴양소로 휴양을 갔을 때였다. 그 때 휴양소에는 고기잡이로 한몫 보고 오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휴양소를 끼고 흐르는 사만강은 이면수, 산천어, 고들메기로 소문난 석개울이었다. 봄이면 두만강에서 송어가 알낳이 하러 사만강을 오르는데 빨래하던 아줌마들이 빨래방치로 송어를 잡았다는 물고기의 보금자리였다.     그 때 나에게는 고기잡이 짝패들이 있었다. 며칠 전부터 지렁이를 모래흙에 잘 재웠다가 날씨를 봐가며 떠나는데 우리들이 낚시질을 떠났다 하면 그 많은 휴양원들이 저녁을 먹지 않고 우리의 개선을 기다린다. 우리들이 도착하면 큰 가마에 이면수, 산천어, 고들메기를 앉혀놓고 함께 식사하는데 장작불을 둘러싸고 먹는 그 어탕이 별미였다.     대황구직공 휴양소에서 30리쯤 사만강을 따라 올라가면 원시림이나 진배없는 인적기 닿지 않는 수림이 나진다. 우리 낚시 짝패들은 서로 5, 6리쯤 상거하고 강에 붙는데 그 고기잡이가 가관이다.     고기가 붙었음직한 쓸을 만나면 자취 없이 살금살금 다가가서 미리 준비했던, 지렁이를 통째로 너실너실 꿴 낚시를 쓸웃목에 던진다. 그러면 물살에 동동이가 한들한들 떠내려가다가 쑥 물속으로 잠겨든다. 낚싯대를 툭 재치면 움씰하고 산천어거나 산고돌이 달려온다. 재수 붙는 날에는 두어 근 잘되는 이면수도 잡히고…이렇게 한 쓸에서 두세 마리 잡고는 물을 따라 아래로 자리를 떠야 한다. 자취소리에 나머지 고기들이 도망쳐버렸기 때문이다. 쓸이 좋다고 고기가 잡혔다고 앉은 버팀을 하다가는 빵점이다.     이렇게 삼십여 리 잘되는 사만강 강줄기를 타고 휴양소까지 오면 열 근 넘는 다래끼가 차고 넘친다. 내가 정순이 보고 히쭉 한 건 바로 이런 산 패쪽을 등에 짊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를 제한 나머지 세 쌍은 몇 미터를 사이 두고 둑 근처에 줄느런히 앉았다. 나는 그 반대편 외딴 곳을 찾았다.     《이렇게 홀로 앉아도 되는 거야?》     정순이는 심란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물어왔다.     《걱정 마!》     《그러다 잡지 못하면…》     《제발 방정 떨지 마.》     나는 먼저 낚시찌부터 맞추기 시작했다. 누가 낚시를 맺는지 몰라도 한참은 모르는 생군이었다. 물에 던져보니 낚시찌가 고기 물린 듯이 물 속으로 쑥 들어갔다. 나는 낚시봉을 뜯어내고 동동이와 맞추느라 꽤나 시간을 먹어버렸다.     《야―물렸다!》     《마수걸이다!》     환성과 함께 텁석나룻의 낚싯대가 활처럼 휘어들었다. 박 과장은 아양 떠는 미녀들의 환호성에 맞춰 이쪽 갔다 저쪽 갔다 하면서 보란 듯이 고기를 놀리고 있었다. 낚싯대가 휜 정도와 고기가 노는 것을 봐선 대물이 아닌 것 같은데 턱수세는 우정 고기를 꺼내지 않고 있었다. 고기잡이 맛보다 처녀애들의 감탄사가 더 맛 나는 모양이다.     《오빠―》     시샘이 났던지 정순이는 꼬집는 소리를 쳤다.     《조용!》     나는 서두르지 않고 낚시를 다 맞춘 다음 미끼를 보았다. 미끼통에 지렁이가 30여 마리 잘 있었다. 나는 지렁이 여람 마리를 골라 손톱눈으로 몇 토막씩 자른 다음 진흙에 섞어 조금씩 그리고 사이를 두면서 동동이가 설 자리에 뿌려주었다. 조급해할 것 없었다.     나는 담배를 꺼내 불을 붙여 문 다음 한 모금 깊게 빨아들였다.     《오빠―》     정순이가 발을 동동 굴렀다. 건너편에서 또 한 마리 건져내고 있었다. 나는 다시 한 번 히쭉 해보였다.     나는 담배 한 모금 더 빤 다음에야 셈평 좋게 낚시에 지렁이 허리를 꿰여 던졌다.     아니나 다를까 몇 초 지나지 않아 찌가 쑥―물속으로 사라졌다. 순간을 놓칠세라 나는 낚싯대를 쳤다. 묵직하게 맞혀오는 감각과 함께 낚싯줄이 팽팽해지면서 윙윙 울었다.     《걸렸다!》     정순이는 일어나서 태양모를 휘두르며 환성을 올렸다.     《조용!》     나는 고기를 놀리면서 정순이만 들을 수 있게 밑바닥 소리로 말했다. 산천어는 한 근 푼한 놈이었다. 산천어치고는 대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뒤를 이어 나는 몇 분 사이를 두고 연속 산천어를 낚아냈다. 먹이 맛을 본 고기는 그 주위를 맴돌면서 멀리 달아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나는 가담가담 지렁이를 토막내어 뿌려주면서 쉴 새 없이 잡아냈다. 그러자 제일 성수난 사람이 정순이였다. 고기를 그물망태에 넣을 적마다 소리는 치지 못하고 건너편을 향해 흔들어 보이고야 망태 속에 집어넣었다.     건너편 쪽 세 처녀들이 우르르 나한테로 몰려왔다.     골이 난 텁석나룻과 번대머리, 말라깽이는 빈 낚시만 던졌다 건졌다 하면서 신경질을 부렸다.     좋다마다. 낚시질이란 워낙 그런 법이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상대방은 낚아내는데 자기는 잡지 못하면 심통이 터지게 마련이다 심지어 낚싯대마저 꺾어버리는 상서롭지 못한 일들이 종종 생기곤 한다.     《오빠, 제가 해보자요.》     정순이는 곁에 낯모를 여자들이 있자 존경어를 쓰며 나에게서 낚싯대를 빼앗았다. 모여든 고기들이라 정순이가 낚싯대를 들어도 매한가지였다. 고기들이 경천이와 정순이를 알아볼까? 찌는 사정없이 물속으로 들어갔다.     《오빠!》     정순이는 휘여 든 낚싯대를 쳐들고 어쩔 줄 몰라 하며 소리쳤다.     《덤비지 말어! 줄을 늦추지 말고 천천히 당겨!》     하지만 처음 쥐여본 낚싯대로 처음 걸어본 고기라 내 말이 귀에 들어갈 리 없었다. 정순이는 마구잡이로 낚싯대를 쳐들고 당겼다. 그 힘에, 그 탄성에 한 근 되나마나한 산천어가 나는 듯이 둥둥 떠서 우리가 앉은 뒤쪽에 퉁 떨어졌다.     《허허허, 너 일등 낚시꾼이구나.》     《꿩 잡는 것이 매라지 않아요?》     한 시간 푼한 낚시시합은 이렇게 웃음 속에서 일방적으로 끝났다.     낚시질이 끝나자 바로 점심식사가 시작되었다. 먼저 잡은 산천어를 가져다 국을 끓이고 어회를 만들었던 것이다.     《오늘 두 번째 프로를 시작하겠습니다. 시작하기 전에 제가 여쭐 말씀이 있습니다. 사실은 제가 박 과장님의 신세를 많이 지고해서 박 과장님을 모신 김에 가까이 보내는 여러분들을 청했습니다. 그러니 이 첫 잔은 박 과장님에게 올려야겠습니다.》     쌍쌍이 술상에 들어앉자 번대머리가 모태주를 잔에 부으며 말했다. 그 말 떨어지기 바쁘게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박수치는데 습관 되고 골이 튼 사람들이니까.     《술잔이야 좌상부터…》     텁석나룻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못 이기는 체 첫잔을 받아 자기 앞에 놓았다. 말라깽이가 못마땅해 하면서도 얼굴에 웃음을 담는 모습이 우습게 안겨왔다.     《자, 박 과장님의 신체건강과 우리의 사업을 위하여 건배!》     《건배!》     술판에 닥달이 된 사람들이라 일시에 건배를 부르며 잔을 부딪쳤다. 산천어 국도 그렇고 산천어 사시미도 그렇고 그 맛이 진짜 일품이다. 살점이 흩어지지 않고 담백하고 향그러운 것이 입안을 산뜻하게 한다. 말라깽이들도 박 과장을 위해서 건배, 논다니들도 박 과장을 위해서 건배, 모든 술잔이 박 과장을 에워싸고 도는 판에 술이 거나하게 되었다.     산천어 사시미가 떨어질까 하면 또 들여오고 산천어 국이 축날까 하면 또 끓여오고…그러다보니 산천어를 얼마나 칼도마에 올렸는지 모른다.     산천어 덕에 모태주병이 한 병 두 병 비어나가고 쌍쌍이 끌어안고 마시는 술맛에 혀들이 굽기 시작했다. 텁석나룻이건 번대머리건 말라깽이건 체면유지라는 허울을 완전히 벗어버리고 옆에 끼고 앉은 논다니들을 마음대로 주물러대기 시작했다. 돈주머니를 만난 논다니들도 허벅지고 젖무덤이고 가리지 않고 그들의 손에 맡겨버렸다.     《자―오늘 세 번째 프로는 더 취하기 전에 산나물 뜯으러 산으로 가는 겁니다. 약속시간은 한 시간, 일 분이라도 초과하면 위법입니다. 술은 갔다 와서 마저 마시기로 하고 자, 출발!》     번대머리의 말은 훌륭한 서비스이자 진공령이었다. 모두들 술상을 그대로 남겨놓고 자리를 일었다. 논다니들은 제가 맡은 남자들에게 신을 신겨준다 부축한다 하면서 부산을 떨었다. 짝패들은 저마다 서로 끌어안기도 하고 팔을 겯기도 하면서 엎디면 코 닿을 뒷산 소나무 숲 속으로 《산나물》캐러 떠났다.     하지만 정순이는 내 팔을 걸고 정자로 가는 것이었다.     《우…우리는 산…산나물 캐러 안…안가는 거냐?》     나는 휘청거렸다.     《오빠, 이런 때 오빠가 산나물 캐러 가면 오빠의 명성이 어떻게 돼? 오빠도 저 사람들 층차에서 놀 거야?》     《내…내가 저…저 사람들과 뭐…뭐가 달라? 함께 술…술 마시고 함께…너…너 나 싫어하는 거 아…아냐?》     《왜 오빠를 싫어하겠어? 하지만 이런 때 좋아하는 거 아냐!》     《다…다 좋아하는데 나…나만…》     나는 정순이를 뒷산 솔밭 쪽으로 끌면서 소리쳤다.     《오빠, 왜 이래? 내 얼굴 위해 이러는 줄 알아? 정 나를 갖고 싶으면 돌아갈 때 마음대로 가져. 하지만 지금은 안 돼!》     나는 정순이를 다시 보았다. 이 여성이 내 앞에서 서슴없이 자신의 몸통을 드러내놓고 몸을 섞던 그 정순이란 말인가? 너무나 헤프다 싶을 정도로 너무나 추접다 싶을 정도로 정사를 나누던 정순이란 말인가? 틀림없었다. 그 정순이였다. 그 고마였다.     《고맙다 정순아!》     《오빠 취하지 않았구나. 오빤 나빠! 나빠!》     정순이는 종주먹으로 내 가슴을 팼다. 팬 것이 아니라 다독였다.     《미안해!》     《오빠, 나 때문에 성나진 않았지?》     《성났어! 네가 너무 미워서…》     나는 정순이를 와락 끌어안고 뚫어져라 얼굴만 지켜보았다.     《오빠!》     정순이는 내 목을 꼭 끌어안고 입술을 감빨기 시작했다. 이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했고 흡족했다.     《자, 우리 계속 낚시질 하자꾸나.》     《오케이!》     우리는 낚시터에 가지런히 앉았다.     우리는 해질녘에야 산천어 몇 마리씩 선사받고 그들과 헤어졌다.     후한 대접을 받고 귀중한 선물까지 받았으니 의례 나는 번대머리에게 감사하게 생각해야 했다. 하지만 어딘가 저질적이고 저층차의 인간들과 휩쓸렸다는 꺼림직 한 마음만은 가셔버릴 수 없었다. 마치 나도 그들과 한 바지를 입었다는 그런 느낌으로 말이다.     《그 백두산무역회사 사장인지 뭔지 하는 말라깽이 말이야 밉상이더라.》     우리의 승용차가 산천어 별장을 멀리 벗어나자 내가 말했다.     《왜?》     《제 딸 같은 계집을 끼고 있으면서도 눈길은 너에게만 팔더라.》     《오빠, 질투하는 거야?》     《나도 모르겠어!》     《이 정순이를 남한테 빼앗길까 걱정이야? 근심말래두요. 나의 작가 선생님!》     《그 걸 믿으면서도 어쩐지 싫더란 말이다.》     《그 건 오빠가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야. 기분 좋은데.》     《꿈을 꾸면 해몽부터 하는 네 앞에서 한다하는 이 작가도 어쩌는 수가 없구나. 하하하.》     《오빠는 너무나 천진하다 할 정도로 솔직해.》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거든. 오늘 잘 먹고 잘 놀았지만 어딘가 미적지근한 구석이 있어. 지금 실업자가 무지무지 늘어나고 적잖은 시와 현에서는 노임마저 제 때에 주지 못하고 있는데 권력과 금전을 쥐고 있고 저 치들은 어때? 한 근에 3, 40원씩 하는 산천어도 마음대로 잡아먹고 딸 같은 여자들도 마음대로 끼고 놀고…세상이 불공평해도 너무나 불공평해.》     《그렇다고 저 사람들을 나무랄 수는 없잖아? 오빠는 오빠의 사는 방식이 있고 저 사람들은 저 사람들의 사는 방식이 따로 있는 거야. 오빠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모두 오빠처럼 정직하게 살기를 바라지만 그건 현실을 떠난 하나의 공상에 불과해. 빈부 차이가 심해지고 갈등이 심해지는 사회현실은 오빠와 같은 그런 소박한 감정을 희롱할 뿐이야. 오늘 같은 것쯤은 아무 것도 아니야. 오빠는 모르는 것이 너무도 많아. 우리나라에 비밀이 얼마나 많다구?》     《그렇다고 쉽사리 포기할 수는 없을 것 같아.》     《오빠는 고상한 인격의 소유자, 정직이라는 높은 함량을 지닌 지성인인 것만은 틀림없어. 이 면에서 오빠는 절대 기질적인 변화를 가져와선 안 돼! 하지만 현실을 감안하고 현실에 적응할 줄 아는 작가가 돼야 한다고 봐. 오빠는 너무나 수구적이고 보수적이야. 이 면에서 정순이는 오빠보다 한 발 앞섰어. 오빠 두고 봐. 오빠를 과거형 작가로부터 현실적인 작가, 미래지향적인 작가로 만들기 위해 이 정순이가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가를!》     《함구무언이다.》     《오빠는 베치마로부터 미니스커트로 전향해야 돼. 거기에 오빠의 미래가 있고 희망이 있어. 내가 오빠의 선생 노릇 한 거 아냐?》     《괜찮아.》     이러쿵저러쿵 정순이가 말했으니 망정이지 정순이가 아니고 다른 누가 그렇게 말했다면 나는 벌써 항변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정순이의 말에 내 자존심은 이미 발바닥이 되었다. 그렇다고 몹시 언짢아진 건 아니었다. 나를 위한 정순의 갸륵한 진심을 읽었기 때문이다.     《오빠, 우리 커피 한 잔씩 할까?》     연길 도심에 들어서자 정순이가 제의했다.     《아니 오늘만은 미안.》     《기분 나빴어?》     《아니야. 진짜 피곤해.》     정순이는 더 물어오지 않았다.     신원아파트 단지 약속된 장소에 이르자 정순이는 브레이크를 밟았다.     《오빠, 안녕!》     《또 전화할 거지?》     《물론 오빠도 전화해.》     나는 대답대신 정순의 볼에 뻑 하고 입을 맞추고는 차에서 내렸다.     《오셨어요?》     저녁상을 차려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던 아내가 자리를 일며 나를 맞았다. 차분하고 가라앉은 아내의 목소리는 아버지가 계시지 않은 썰렁한 집안에 살얼음을 앉히는 듯했다. 아버지의 콜록콜록 하는 기침소리가 멎고 뚜벅뚜벅 하는 발걸음 소리가 사라진 집안은 확실히 활기를 잃고 있었다. 전등을 켜지 않은 지금의 집안처럼 무언가 보이지 않고 무언가 잃은 듯한, 허전하고 텅 빈 공간이 방금까지도 뜨거웠던 내 가슴에 찬물을 끼얹어 주었다. 이 때에야 나는 아버지가 갖고 있는 우리 집안에서의 위치를 실감했다. 아버지는 우리 집안의 마음의 기둥이자 생활의 뿌리였다. 그런데 아침에는 왜 그것을 몰랐을까? 잠시나마 한쪽으로 치우쳤던 상봉의 기쁨과 다가올 쾌락이 이 때까지 몸을 절구었던 소중함과 절실함을 한 푼의 가치도 없이 내동댕이치게 했으리라. 눈에 달이 오르면 처자식도 모른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저녁 드세요.》     《먹고 왔소.》     아내의 목소리는 뒤꼬리가 처져 있었다. 처량하고 가련한 소리다. 언제부터 내가 아내를 오늘처럼 불쌍하고 애틋하게 보았던가? 앞에서 말했지만 전에 쩍하면 들어오던 《어디 갔댔어요?》 《뭘 했어요?》 《누굴 만났어요?》하면서 꼬치꼬치 캐묻고 바가지를 긁던, 꼬집던 그런 아내가 아니어서 차라리 그런 소리를 들었다면 강새암을 한다고 와당탕 밥상이라도 들었다 놓았으면 마음자리나마 편할 텐데 지금은 그렇지를 못했다. 내가 정순이와 놀아댔다는 그런 수치감과 자책감에서? 아니, 나는 종래로 정순이와 몸을 섞은 일을 가지고 후회하거나 미안하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 없다. 철면피하다고? 혹여 다른 여성들과 희희닥거렸거나 논다니들과 휩쓸렸다면 나는 죄의식에 머리도 들고 다니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정순이와는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는 응당한 일로, 전부터 그런 관계였다는 당연한 처사로 여겼다. 그래서 뻔뻔스러워졌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오늘 저녁 아내의 맥 빠진 소리를 잔자누룩한 환경의 조화도 아니오, 내 마음가짐의 나약함도 아닌 다툴 수도, 맞설 수도 없는, 이상할 정도로 얄팍해진 애잔한 마음가짐으로 응대해주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하루 종일 애들과 씨름하고 분필가루를 뒤집어쓴 아내가 가여워서? 전에도 그 전에도 그런 아내였는데 하필이면 오늘 저녁에 가련상이라니? 아니 가여워서가 아니라 50고개를 바라볼 때까지 응당 받아야 할 향수를 모르고 두더지처럼 살아온, 저금만 알고 소비를 모르는 아내가 측은해서였다. 전에는 나도 그렇게 살아오면서 그 것을 응당한 것으로 심지어 생활준칙으로 삼아왔었다. 정순이를 만나면서부터 소비와 향수를 알게 되었고 내 인생살이 관념이 조금이나마 자리 뜸을 하게 되었다. 좋게 변하든 나쁘게 변하든 나는 그 변화가 싫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변하고 있었다.     《여보, 미안하지만 혼자 먹소. 난 작업을 해야겠소.》     나는 옷을 갈아입고 서재에 들어섰다. 서재는 나의 마음의 안식처였다. 궂은 일이 있거나 마음 상하는 일이 있어도 서재의 테이블을 마주하고 앉으면 언제든 마음이 편안해지고 일감이 있다는 일종 직업적 희열에 묻히게 된다.     책상 위에는 아침에 보다만 허인숙 어머니의 일기가 그대로 펼쳐져 있었다.     나는 일기에 파묻히기 시작했다.        1954년 6월 8일 맑음.     북대황의 낮과 밤의 기온은 하늘과 땅 차이. 낮에는 찌는 듯 무덥다가도 해만 떨어지면 급작스레 추워지는데 겨울이 오지 않았나 하는 느낌까지 준다. 식전 일에 나가는 농민들은 솜옷을 걸치고 나갔다가 조반 먹으러 들어올 때면 솜옷을 둘러메고 오기가 일쑤다. 그 뿐 아니다. 낮에는 왕벌 같은 등에가 비행기의 고음 같은 무서운 소리를 지르면서 무리지어 달려드는 통에 들판에 소를 맬 수 없다. 자칫했다간 등에의 공격에 혼비백산한 소들이 코뚜레를 떼고 야수처럼 날치며 소 무리에 뛰어들어 소싸움을 벌이는가 하면 무엇이나 보이는 족족 떠박지른다. 그러다가도 해만 떨어지면 등에 무리는 가뭇없이 자취를 감추고 그 대신 모기떼들이 구름처럼 내려앉는다. 하여 명신촌 집집들에서는 가을 고추를 벽에 걸어놓고 말리듯 모기쑥태를 땋아 주렁주렁 이엉 밑에 걸어 말린다. 저녁 마실을 가도 모기쑥태를 잊어서는 안 되고 저녁을 먹을 때도 모깃불을 피우지 않고는 모기들 성화에 어쩔 수 없다.     북대황의 낮과 밤은 이렇게 달랐다.     요즈음은 부지깽이도 뛴다는 모내기철이다.     지금쯤 내 고향 샘물골에서는 모내기를 하느라 논밭에서 날을 밝히며 일손들을 다우치련만 이곳 명신촌에서는 닭이 세 홰를 칠 때까지도 잠 나락에 빠져 있다. 참, 이렇게 제 잘 잠을 다 자고 입에 쌀알이 들어가는지?     샘물골에서는 아낙네들 빼놓고는 농사질을 못하는가 싶게 아낙네들의 손길이 가지 않는데 없건만 이곳 북대황에서는 여성들의 손이 거의 닿지 않는다. 고양이 뿔도 빌려 쓴다는 모내기철인데도 아낙네들은 담갔던 볍씨나 마대에 넣어주고 점파를 할 때 볍씨 심부름이나 점파기를 옮겨놓는 것을 도와주면 그 뿐이다. 그것도 점파를 하는 집들에서만 그렇지 산파를 하는 집들의 여성들은 자기 밭이 어디 붙었는지 모를 지경이다. 바삐 보낸다 하면 다른 때보다 일찍 한 조반을 하고 점심밥을 날라다 주는 것이 고작이다.     샘물골이 그립다. 이젠 모내기도 거의 끝나갈 것이다. 닭이 첫 홰를 치면 일어나 아침밥을 지어놓고 둘째 홰를 치면 쪽걸상을 들고 모판에 나가 처절썩처절썩 신나는 일손을 놀리던 때가. 별을 이고 나갔다가 달을 지고 들어서는 그 힘겨운 노동이. 손에 일감이 없고 일에 굳어졌던 손을 놀린다는 것이 이처럼 괴롭고 힘든 줄은 난생 처음 겪어보는 나다. 한다하는 장정들과 손을 맞잡고 대농군으로 농사일에 나서던 내가 촌의 대사를 손에 쥐고 남성들 앞에서도 호령하고 지휘하던 내가, 지탑을 잡고 논밭을 갈고 목도를 해도 남성들과 짝패를 묻던 내가, 쌍줄마대 벼마대도 씽 등에 업고 공량수레에 싣던 내가, 조밭기음은 물론 콩밭기음에서도 한다하는 대장부도 찜쪄 먹던 《여장군》인 내가 말이다.     골방장군 노릇한다는 것이 이처럼 고역살이일 줄은 정말 몰랐다. 쌀이나 씻고 불이나 땔까 하면 주인집 내외가 야단이다. 막달이니 몸 간수나 잘하라고 하면서. 지금 모내기철인데도 내 두 손에는 수쇠를 꼭 채워놓고 있다.     밤중부터 복통이 오기 시작했다.     동통 때문에 아침도 거르고 말았다.     너울가지 좋은 주인집 아주머니는 해산 전의 아픔이라면서 산파할미를 불러 온다 남편을 시켜 가물치를(산후에 제일이란다) 얻어오게 한다 부산을 피웠다.     띄엄띄엄 주기적으로 아파나던 복통은 점심때가 가까워지자 몇 초 사이도 거를세라 연속 아파났다. 해산동통은 죽지 않은 아픔이라서 의례 그렇거니 해서 그렇지 어찌나 아픈지 동통이 올 때면 진짜 죽고 싶다. 해산할 때를 생각하면 두 번 다시 애를 갖고싶지 않다는 이상분들 말씀 틀림없었다. 처음에는 그래도 이를 악물고 참고 참으면서 비지땀만 짜냈지만 동통이 잦고 심하니 염치고 뭐고 없었다.     《아이―아이고―》     애를 낳기 전에 내가 먼저 죽을 것 같다. 골반이 우둑우둑 소리 나면서 물러나는 것 같고 창자가 밖으로 튕겨 나오는 것 같았다. 누군가 해산 전의 동통은 급성이선염이거나 위경련 발작과 똑같다고 한 말 틀림없었다.     《그래 아프면 마음 놓고 소리치게나.》     산파할미가 내 양쪽 다리 사이에 앉아서 허벅지를 꼭 누르면서 안심시켰다.     《자, 자궁이 열렸는데 힘을 주게!》     《힘을 내게. 하나, 둘, 셋―》     내 등 뒤에서 나를 꼭 안고 있던 주인집 아주머니가 응원이나 하듯 소리쳤다.     《아이고 나 죽는다.》     나는 무어나 물어뜯고 쥐어뜯고 싶었다. 그 아픔은 무엇으로도 형용할 수 없었다. 남들은 아침을 하다가도 부엌에서 애를 낳는다고 하던데 이거라고야?     《자―다시 한 번 하나, 둘, 셋―》     나는 그 소리에 맞춰 죽을힘을 다해 아랫배에 힘을 주었다.     왈칵하고 무언가 하신으로 쏟아지는 느낌이 왔다. 온 내장이 몽땅 하신으로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응―아―》     애기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이구, 고추야 고추!》     산파할미의 기쁨에 겨운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고추라는 말이 듣기는 좋았지만 나는 애를 볼 기력마저 없었다. 나도 이젠 어머니가 됐다는 희미한 자부감과 일년 가까이 지녀왔던 시름거리, 근심거리를 벗어던졌다는 안도감이 스쳤을 뿐이다.     《애두 크기도 하네. 그래도 순산이니 다행이요.》     주인집 아주머니가 환성을 올렸다.     《이 녀석 봐라. 귀밑에 큼직한 기미를 달고 났어. 복 받을 녀석이야!》     《기미를 달고 나오면 장군이 된다던데.》     나는 그 소리들을 다 받아들일 여력이 없었다. 그저 맥을 버리고 꼼짝 않고 누워있을 뿐이었다.     산파할미가 산후 뒤처리를 마감할 때까지 나는 내 애가, 내가 낳은 애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지 않았다. 산모들은 해산 후의 동통도 멎기 전에 애부터 찾는다는데 도적애가 돼서 그런지 애비 없는 애를 낳았다는 소문이 겁나서였던지 머리를 들고 볼 용기가 없었다.     용기가 아니라 보고 싶다고 생각만 해도 지겨웠다. 기생충처럼, 흡혈귀처럼 열 달이나 내 몸에 악착같이 붙어 다니면서 내 인생을 망치려 했던 또 상표와 영예와 성망의 금자탑을 일조일석에 무너뜨리려 했던 유형의 멍에, 그것을 떼어버리고 그것을 벗겨 던졌던 것이다.     이제는 만 시름 놓게 되었다. 이제는 그 전의 허인숙이 되어 하늘 높이 훨훨 날 수 있게 되었다.     동통이 차츰 가셔지면서 강 촌장이 그리워났다. 강 촌장이 이런 장면을 목격했다면 어쨌을까? 아버지가 된 기쁨을 안고 웃어주었을까? 그래 웃어주었을 거야. 남자 애를 낳아주었다고. 여자 애만 연속 둘이나 낳은 강 촌장이 남자 애 비위를 얼마나 했다고? 시물시물 웃는 강 촌장의 웃는 모습을 보는 것만 같다. 흐뭇해하면서도 좋다는 말 한 마디 없이 입술이 귀에 붙을 지경으로 웃어주는 강 촌장이.     아니 기절초풍 했을 거야. 정치생명이 오락가락하는 도박판을 앞에 놓고 아들이 다 뭐냐? 왜 진작 자기에게 진상을 말하지 않았느냐고 자기에게 말했더라면 유산시켰을 걸 그랬다고 나무랄 수도 있었을 거야. 꼭 나무랐을 거야.     자기애를 낳을 때까지 모르고 있은 눈치 무딘 양반, 남자들은 다 그럴까?     강 촌장이 보고 싶다. 오늘의 이 기쁨, 이 환희를 함께 나누고 싶다. 이젠 지루하던 밤이 외롭지 않을 것이다. 잠시일 것이지만 갓난둥이가 나를 동무해주고 내 마음을 위로해줄 것이다. 나는 갓난둥이의 친구가 되고 갓난둥이는 내 친구가 되고…         1954년 6월 25일 개임.     내가 소녀였을 때 어머니라는 이름과 나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아니 그 거리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스스로가 어머니로 될 수 있다는 여지도 없이 나는 지금도 어머니의 딸이고 앞으로도 어머니의 딸일 것이라는 단일하면서도 단순한, 천진하면서도 애 어린 생각에서 떠날 수 없었다.     나이가 들면서, 처녀로 머리 태를 땋으면서, 큰상을 받으면서 그 때서야 나는 나도 어머니가 될 수 있다는, 어머니가 될 것이라는 어머니와의 밀착관계를 떠올리게 되었다. 딸로 태어나서 어머니가 되는 시간은 길지도 짧지도 않건만 그 느낌은 인생항로의 종말처럼 길었고 진짜 어머니가 되는 시간은 한 순간에 지나지 않았다. 한 순간의 열광, 한 순간의 희열, 한 순간의 불꽃 그것이 어머니였다.     누군가는 여성으로 태어나서 어머니라는 말 한마디 들어보지 못하는 것처럼 처참한 일은 없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어머니가 된 것처럼 큰 불행이 없다. 어머니가 되었기 때문에 천리타향에서 반년 넘게 역경을 치렀고 또 어머니가 되었기 때문에 가슴에 두터운 앙금을 앉혔고 더 큰 눈물을 흘렸다. 아니 지금도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귀염둥이는 잘도 자라고 있다. 먹고는 자고 쏘고는 먹고 보채지도 않고 태수 없이 자랐다. 주글주글 하던 얼굴이 보얗게 젖살이 오르고 엉덩짝은 찰싹찰싹 소리가 날만큼 보독하다.     지금 갓난둥이는 웃는 것처럼 볼을 실룩거리기도 하고 입을 쩝쩝 다시기도 하면서 쌔근쌔근 잠들고 있다.     자는 모양이 얼마나 고운지? 그냥 지켜봐도 곱고 울어도 곱고 똥을 싸도 곱고 발버둥질 쳐도 곱다. 미운 남이요 고운 제 새끼라더니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귀염둥이는 특별히 고운 것 같았다. 그 고운 뒤꼬리를 문 것이 바로 어머니였다. 오늘에야 나는 진짜 어머니가 된 기쁨, 어머니가 된 행복, 어머니가 된 자랑을 느낀다. 귀염둥이는 내 생명의 전부고 내 존재의 총적가치다. 귀염둥이는 나이고 나는 귀염둥이이다. 귀염둥이와 나를 갈라놓고 생각할 여지가 없다. 왜일까? 보름 전까지만 해도 혹처럼 진드기처럼 여겨오던 애가 이처럼 고와지다니? 나로서도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정이 들대로 든 귀염둥이, 그 귀염둥이가 지금 시름없이 자고 있다. 하지만 난 지금 울고 있다. 자격 없는 어머니, 죄 지은 어머니이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 분명 내 뱃속에서 키웠고 내가 낳았건만 내 새끼라고 떳떳이 말할 수 없는, 어머니라는 이름에서 배제된 어머니가 되어 울고 있다.     오래잖으면 귀염둥이와 갈라져야 하는 팔자, 그 다음엔 찾을 수도 찾지도 말아야 하는 신세… 생각만 해도 앞이 캄캄해난다. 내 전생에 무슨 죄를 져서 이처럼 큰 대가를 지불하고 이처럼 큰 비운을 지녀야 한다는 말인가. 짐승들도 제 새끼를 알아본다는데 인간의 탈을 쓰고 내가 내 새끼를 버려야 하다니?     젖을 가게 하느라 젖가슴을 꼭 동인 가슴띠가 질벅히 젖어난다. 귀염둥이의 입 다시는 모양만 보아도 실룩거리는 양 볼만 보아도 젖꼭지가 찡찡해나면서 젖이 흐른다. 젖은 왜 이렇게도 많은지? 그 젖을 마음껏 먹이지 못하고 염소젖을 대신 먹여야 하는 이 어미의 심정을 어머니들만은 알고 있을 것이다.     언제였던가? 귀염둥이에게 첫 젖꼭지를 물리면서 모성애의 달콤한 꿈 나락에 빠졌던 때가 어머니라는 실감체가 육감으로 안겨오는 순간, 나는 모든 것을 잊고 있었다. 그저 어머니라는 생각 하나 뿐이었다. 그 것으로 충족했고 행복했다. 그러나 그 행복감은 오래 갈수 없었고 오래가지도 않았다. 귀염둥이의 탄생과 연분을 타고난 이별이라는 두 글자가 엄혹한 현실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귀염둥이를 들쳐 업고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다. 남모르는 외딴 곳에서 귀염둥이를 기르면서 귀염둥이와 함께 살고 싶다. 현실이 용납해주고 용서해준다면 나는 나를 버리고 그렇게 살 것이다. 그러면 당의 위신은? 김 서기는? 샘물골은? 그 건 엄청난 대가를 요구하고 있다.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대가. 내 앞에는 나를 죽이고 자식을 버리는 선택성 없는 그 한 길밖에 없다. 그 것이 나를 이토록 비참하게 만들고 있다. 그 것이 지금 나의 눈물을 쥐여 짜고 있다.     땡땡, 벽시계가 새벽 두 시를 알린다.     응아―     늦지도 빠르지도 않게 귀염둥이가 울음소리를 터트렸다. 꼭 이 때면 깨어나 젖을 달라는 신호를 울리는 귀염둥이다. 기저귀를 갈아주고 젖을 먹여주면 투정 한 번 없이 젖꼭지를 문 채 단잠에 드는 순돌이다.     《응아―응아―》     젖을 떼려고 엊저녁부터 염소젖으로 바꿨더니 젖 맛이 달라서 그런지 어미 젖꼭지를 알아서 그런지 우유병 고무젖꼭지는 빨려 않는다. 지난밤에도 고무젖꼭지를 빨지 않겠다고 이리 비틀 저리 비틀 머리를 팩팩 돌리다가 배고팠던지 겨우 몇 모금 빨다가 잠든 애였다.     《애들이 젖 맛은 신통히 알아맞힌다니까.》     주인집 아주머니가 어느새 애의 울음소리를 들었는지 지난밤 가마목에 널어 말렸던 기저귀를 들고 방문을 떼고 들어섰다. 애의 울음소리와 남편의 코고는 소리에 가장 민감한 것이 어머니요 아내들이라 그래서 그런지 주인집 아주머니는 고된 일과 바꾸어온 굳잠에 들었다가도 귀염둥이의 응아 하는 마지막 여음이 끝나기도 전에 방문을 떼고 들어서곤 했다.     《아주머니…》     《걱정할 것 없소. 애들은 굶어죽는 법이 없고 배고프면 먹게 마련이오.》     내가 앞가슴을 흥건히 적신 젖 싸개와 천을 부둥켜안고 배고파 우는 귀염둥이를 내려다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주인집 아주머니가 위로 애를 받아 안으며 말했다.     어미의 젖통에서는 샘물처럼 젖이 흐르고 있는데 애는 배고파 울고… 이 젖을 마지막으로 배불리 먹일 수만 있다면… 나의 마지막 소원이었다. 마지막으로 귀염둥이에게 젖꼭지를 물려봤으면 하는 바램. 마지막으로 줄 것을 주었다는 위안, 마지막으로 어머니였다는 그 향수, 그 모든 것을 귀염둥이와 나누고 싶은 그 하나뿐이었다.     나는 가슴띠를 풀기 시작했다.     《왜 못난 짓 하려 들어?》     주인집 아주머니가 나를 나무랐다. 그리고는 발버둥질치는 애를 안고 《어화둥둥 어화둥둥》 그네를 띄우다가 추슬려 올리며 가슴에 꼭 품은 채 우유병을 애의 입에 물리는 것이었다. 애는 처음에는 혀끝으로 고무젖꼭지를 밀어내다가 먹을 것이 입에 들어가자 걸탐스레 빨아대기 시작했다. 몇 모금 빨고는 투정질을 하고 몇 모금 빨고는 투정질을 했지만 귀염둥이는 배를 채우고 다시 꿈나라로 빠져 들어갔다.     《아주머니, 김천수 서기와 어떻게 되는 사이인가요?》     벽에 걸린 액틀에는 언제 함께 찍었는지 누렇게 뜸이 간 김천수 서기와 주인집 아주버니가 함께 찍은 사진이 들어 있다.     반년 넘게 지내오면서도 묻기 저어되어 감히 묻지도 못했던 말을 끝내는 묻고야 말았다.     《 육촌 시동생이오, 팔촌이 한 집안이라고 옛날 같으면 한 구들에서 살련만 살 길을 찾아 저마다 흩어지다 보니 이렇게 그립게 살고 있소. 옛날부터 이 김씨 가문이 어찌나 지지리 가난했던지 자라는 자식마다 학교 문은 고사하고 서당 문 앞에도 들어서보지 못했다오, 그러다 천수 시동생이 하도 똑똑하고 글눈을 일찍 틔워서 김씨 가문의 문객 하나 키워본다고 김씨 문중회에서 돈을 모아 공부시켰다오. 천수 시동생은 그 은공을 잊지 않고 지금도 명절이면 명절마다 옷가지를 사서 보내준다 소비돈을 보내준다 잊지 않고 있소.》     《김천수 선생님은 제 중학교 때의 은사예요. 그리고 제 입당소개인이구요.》     《가만, 묻기 어려운 말이지만 혹여 이 애가 천수 시동생의 애가 아니오? 천수 시동생의 애라면 내가 맡아 기르겠소.》     《녜? 아주머니, 그 건 당치도 않아요. 김 선생님은 절대 그런 분이 아니예요.》     《그래도 난 시동생의 애가 아닌 가 의심했댔소.》     《믿고 말씀해주시니 감사해요. 하지만 아주머니 그건 안심해요. 이 일 때문에 김 선생님에게 심려를 끼쳐드리는 것만 해도 전 얼굴을 들 수 없어요.》     《그래 그예 애를 두고 가겠소?》     《조직의 수요래요. 저도 그렇게 약속하고 이 곳까지 찾아왔어요. 김 서기도 편지에 그렇게 쓰지 않으셨어요? 흑흑흑…》     《그건 그렇구… 뭐가 뭐니 해도 제 핏줄을 어떻게 떼 던지고 가나? 흑흑흑…》     대장부를 찜쪄 먹는다던 주인집 아주머니, 주먹이 크고 입심 좋고 무슨 일에서나 칼로 두부모 베듯 하던 주인집 아주머니, 남성적인 반석같은 가슴에도 여자라는 낙인이 찍혀있어 여린 가슴을 눈물로 적시고 있다.     《아주머니, 전…전… 흑흑흑…》     《내 마음 이런데 어미 된 옥선의 마음 오죽하겠소? 흑흑흑…》     《여자는 눈물을 깨물어 먹고 살아야 하오.》     《아주머니, 저를 못쓸 년이라고 머리를 잡아 뜯거나 승냥이 밥이라도 되게 내몰아주세요. 그러면 마음이라도 편할 것 같아요.흑흑흑…》     《응아―》     내 울음소리에 귀염둥이가 푸뜰 깨어났다. 제 젖을 먹지 못해서 그런지 귀염둥이는 깊은 잠을 들지 못했다.     《애를 봐서라도 참아야 하오.》     아주머니는 눈물을 훔치며 정지로 나갔다.     내 어머니도 응아 하는 내 울음소리를 들어봤을까? 이 때까지 응아응아 하는 애들 울음 속에 나 자신을 섞으면서 보내왔고 너무도 익숙하고 평범한 소리로 들리던 저 소리가 왜 이토록 새록새록 할까? 이 때까지 귓방울을 후비던 소리… 반갑고 눈물겹고 귀맛 돋우고 가슴 뜯는 나의 귀염둥이의 소리, 남들은 들을 수 없고 나만이 들을 수 있는 나의 독점물… 나만의 향수물.     나는 가슴에 동였던 띠를 풀었다. 내 젖으로 질벅해진 띠를. 그리고는 우는 귀염둥이에게 젖꼭지를 물렸다.     찰나, 내 육신 전부가 녹아내려 애의 입 안으로 들어간다. 살도, 피도, 뼈도 일체가 단즙으로 변하여 꼴깍꼴깍 귀염둥이의 입으로 흘러들어간다. 내 젖을 빨면서 애는 송아지처럼 커지고 나는 개미처럼 점점 작아진다. 귀염둥이는 흥이 나서 발로 내 배를 걷어차면서 뻑뻑 젖을 빤다. 젖꽃판에 닿아오는 귀염둥이의 차분한 입술, 젖꼭지가 빠져나갈 지경으로 흡인하다가는 잘근잘근 씹기도 하는 귀염둥이의 입놀림…     귀염둥이가 내 분신인 것이 아니라 내가 귀염둥이의 분신이 된 듯한 느낌이다. 귀염둥이가 내 살점인 것이 아니라 내가 귀염둥이의 살점이었다.     귀염둥이는 한참 젖을 빨다가 젖을 문 채 나를 빤히 쳐다본다. 눈 한번 깜짝 않고 동공 한번 움직이지 않은 채 내 얼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당금이라도 하야말쑥한 코를 물어놓고 싶고 발가우리한 귀를 물어놓고 싶고 볼타구니를 물어놓고 싶고… 미칠 것만 같다. 미쳐서 귀염둥이가 되고 싶다.     아, 행복한 어머니, 나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어머니다. 세상을 독차지한 어머니. 세상의 모든 기쁨, 모든 행복, 모든 행운을 한 몸에 지닌 어머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세계라고 했을까?     귀염둥이는 배가 불렀는지 내 젖꼭지를 문 채 쌔근쌔근 잠에 빠졌다. 나도 귀염둥이를 끼고 누워 꿈속으로 헤엄쳐 갔다.                                    계속해...
11    시골마을 댓글:  조회:1118  추천:23  2009-03-06
눈길에서                                     올해엔 철도 이르게 든다싶더니 겨울이라는 말이 떨어지기도전에 밑창난 하늘에서 함박눈이 더미로 쏟아져내렸다. 전같으면 이맘때에 오는 눈은 땅에 떨어지기 도전에 녹아버렸으련만 오늘 내리는 눈은 미처 녹을새도 없이 쌓여올랐다. 이런 날에 자동차를 몰기란 여간 짜증나는 일이 아니다.      불어치는 눈보라에 이마빼기를 얻어맞고 자동차는 갈범같은 소리를 지르며 숨가쁘게 10리령길을 톺고있다. 숫눈길이라 길과 밭을 분간할수 없었으나 줄느런히 늘어선 가로수가 훌륭한 길잡이로 되여 운전수는 눈을 크게 팔지 않고도 방향반을 돌릴수 있었다.     령에 거의 올라설무렵 어둠이 장막을 드리우기 시작했다. 운전수는 전조등을 켰다. 그러자 티없이 하얀 눈의 반사광과 함께 령마루에서 작은 물체가 움직이는것이 눈에 확 날아들었다.     《이런 날에 길을 떠나다니?》     운전수는 자기가 길을 잘못 떠난 분풀이삼아 이름모를 그 길손을 탓하면서 지그시 가속기를 밟았다.      그 사람과의 거리가 줄어들어 모든것을 똑똑히 볼수 있게 되자 운전수는 그만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이런 날씨에 빈몸도 힘겨울텐데 글쎄 콩단을 박아실은 지게를 지고 령을 오르고있지 않는가! 순간 콩단을 짊어진 지게임자때문에 지체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운전수의 뇌리를 쳤다. 평시에 달릴 때도 손을 들거나 자동차 적재함에 매달리는 행객들때문에 여간애를 먹지 않는데 이런 곳에서 이런 때 짐을 진 사람을 만났으니 그야 더 말해뭘하랴.    운전수는 짐을 진 사람이 의례 손을 들겠거니 하면서 나팔을 울렸다. 앞에 가던 사람은 그제야 길을 비켜서며 자동차쪽으로 몸을 돌리는것이였다. 강한 전조등불빛에 지게임자의 모습이 환히 드러났다. 늙은이였다. 눈사람처럼 온몸에 하얀 눈을 뒤집어썼지만 몸창봉이 된 얼굴만은 주름살마저도 확연히 알렸다. 눈을 떠인 눈섭밑으로 우묵하게 자리잡은 눈이라든가 축 처진 눈두덩밑으로 얼기설기 뻗어간 깊은 주름이라든가 이가 빠져서 패워들어간 량볼을 보면 칠순고개를 바라보는 늙은이임이 틀림없었다. 그 늙은이는 스쳐지나는 빈 자동차를 멍하니 바라볼뿐 앉혀달라고 손을 들지 않았다. 그것이 되려 운전수에게는 자연스럽지 못하게 느껴졌다. 하여 그는 속도를 늦추었다. 그래도 그 늙은이는 앉혀달라고 손을 흔들거나 자동차 있는데로 다우쳐오지도 않았다.  운전수는 끝내 제동기를 밟고야 말았다.    《아바이, 앉으십시오.》      운전수는 머리를 내밀고 소리쳤다. 그래도 그 늙은이는 묵묵불언이였다. 운전수는 듣지 못했나 하여 다시 소리쳤다.     《아바이, 앉으십시오!》     그제야 늙은이는 황소숨을 쉬면서 힘에 부친 발걸음을 옮기는것이였다.     《아바이, 제가 모셔다드리지요..》     운전수는 문을 열고 뛰여내리며 소리쳤다.    《차비가 없수다.》    늙은이는 지게작대로 땅을 짚으며 한발작 한발작 겨우 옮겨놓으며 말했다.    《이 눈길에 짐을 지고 어떻게 간다고 그럽니까? 어디까지 가십니까?》    《령아래 룡천동이우다.》    《룡천동이요?》    운전수는 아연해졌다. 룡천동까지 가자면 아직도 2리 푼했다. 자동차로는 몇분 아니면 가닿을 곳이지만 짐을 지고 무릎을 오르는 눈길을 걷자면 밤중이 될것이다. 더구나 오금 뜬 로인들의 걸음에…    《제가 모셔다드리지요.》    《돈이 없수다.》    《누가 돈을 받겠답니까? 어서 짐을 실읍시다.》    운전수는 억지로 로인의 지게를 벗기고 지게채로 콩단을 적재함에 실었다. 그리고는 로인을 부축하여 운전대옆자리에 모셨다. 그제야 운전수는 한시름 놓은듯 다시 방향반을 잡았다. 내리막길을 잡아든 자동차는 미끌면서 말을 잘 듣지 않았다. 그래도 운전수의 마음은 가벼웠다.    《아바이, 집에 자식들이 없습니까? 왜 이런 날에 콩단을 메고 다니십니까?》    로인의 처경에 측은해진 운전수는 가긍스럽게 생각되여 이렇게 물었다.    《있수다.》    《그런데 왜 아들을 시키지 않습니까?》    《말은 운수를 오늘내로 해야 한다면서 떠나는바람에…허참, 방정맞게도 큰눈이 쏟아지는통에 이런 봉변을 당했수다. 하지만 콩 한알 허실하지 않았으니 다행이우다.》    자동차에 앉으면서도 감사하다는 말한마디 없이 자물쇠처럼 입을 꾹 다물고 있던 로인은 말문을 열자 술술 말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입술에 잔주름을 박으며 웃음꽃을 피우는 로인의 모습에서 운전수는 로인의 벅찬 마음을 대뜸 보아낼수 있었다.    《그러면 미루었다가 아들을 시키지요. 로인께서 고생할게 있습니까?》    《언녕부터 뜨락또르에 실어오라고 했는데 지금 젊은이들이 쌀이 귀한줄 안다구 그러우? 내가 너무도 재촉하니가 그까짓 40전이면 한근 하는 콩을 가지고 잔소리를 한다고 제사 되려 와들랑하지 않겠수? 허참, 차가 하루만 뛰면 몇백근 콩을 사고도 남음 있겠는데 큰 떡을 모르고 작은 떡만 쥐라고 한다면서 그예 시내부업을 가는데야 어쩌는수가 있수? 지금 젊은이들은 그렇다니까. 쌀이 귀한줄 아는가 돈이 귀한줄 아는가 쯔쯔쯔…창생으로 배를 속이고는 못사는 법이고 쌀알 모르고는 배를 곯는 법인데 참…》    로인은 담배쌈지를 꺼내여 굵직하게 한대 말아 입에 물고 옆차기에서 성냥을 더듬어 꺼내였다. 하지만 성냥은 누기차서 불이 일어나지 않았다. 운전수는 인츰 속도표옆에 붙은 담배불붙이개를 꺼내여 로인에게 드렸다.    《그런데 왜 빈차가 지나는걸 보면서도 손을 드시지 않았습니까?》    운전수는 수수께끼를 풀려고 물었다.    《자고로 돈이 없으면 차에 못앉는 법이우. 그런데 손을 다 들다니? 일밭으로 가는 사람이 려비를 가지구 떠나겠수? 젊은이, 그렇지 않수?》    《그래도 오늘같은 때야 정황이 다르지 않습니까?》    운전수는 조심스레 방향반을 잡으며 말했다.    《이 사람 젊은이, 우리 마을에 당도했네.》    로인은 몇모금 빨지 않은 담배를 부벼끄며 내리려고 서둘렀다.    《어느 집입니까? 집까지 모셔다드리지요.》    《이거 미안해서…》    로인은 더수기를 썩썩 긁다가 무엇인가 생각된듯 한손으로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그래 자네의 갈길만 급하지 않다면 그러는것도 랑패없겠네.》    운전수는 로인이 가리키는 손길을 따라 마을길에 들어섰다. 집집마다에는 전등불이 환하고 마지막 연기가 모락모락 피여오르고 있었다. 늦은 집들에서는 한창 저녁상에 둘러앉았을것이다.    로인은 벽돌로 담장을 쌓고 쇠살로 대문을 한 으리으리한 이층집앞에 와서 차를 세웠다. 시내에서도 보기 드문 멋들어진 주택이다. 운전수는 시골에 이런 집이 있나 하는 눈치로 발동을 끄지 않은채 창문마다 전등불이 새여나오는 주택을 살피고있었다. 그는 로인이 재삼 내리라고 재촉해서야 발동을 끄고 운전실에서 내렸다.    《이 집입니까?》    《그렇네. 어서 집으로 들어가게.》    《대단합니다. 대단해요.》    운전수는 로인의 말씀을 귀밖으로 흘러보내며 제 생각대로 찬탄만 올렸다.    《자, 눈을 맞지 말고 어서 집으로 들어가게나.》    로인은 운전수의 팔목을 잡아끌며 재촉했다. 그제야 운전수는 제 정신이 든듯 적재함에 올라 지게와 콩단을 들어내렸다.    《이 사람, 그거야 급할게 있나. 추운데 빨리 들어가 몸을 녹이게나.》    《아바이, 전 갈길이 급하니 인츰 떠나야겠습니다.》    《아무리 급해도 내 집으로 온 이상 그렇게 쉬이 떠나지 못할걸세.》    로인은 다짜고짜로 운전수를 집으로 끌었다. 운전수는 막무가내로 로인에게 끌려 대문에 들어섰다.    《아유, 귀신밥이 되나 했더니 돌아오셨구려.》    로친이 맨발바람으로 정지문을 떼고 달려나오며 반겨맞았다.    《여보 로친, 오늘 귀인을 모셔왔소. 귀인을! 허허허.》    령감은 운전수를 가리키며 호탕하게 웃었다.    《자, 루추한 집이지만 어서 들어갑시다.》    로친이 운전수를 보고 말했다. 루추한 집이라는 말은 로친이 한생에서 이미 굳어진 말이다. 인사치례에서 이미 굳어진 말이다. 인사치례에서가 아니라 실제 그렇게 살아온 로친이였다. 하여 객실에다 목욕탕설비까지 갖춘 현대식 건물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입버릇처럼 그 말을 하군 한다.    저녁상은 푸짐했다. 손님이 온다는 연통도 없었건만 농촌에서 보기 힘든 청도표맥주가 상에 올랐는가 하면 《륙,해,공》군이 빠짐없이 다 올랐다.    《이 사람, 자네에게 차비를 준다면 자넨 받지 않을거네. 자네의 행실이 하도 갸륵하여 주는건데 이 쌀 쉰근은 우리 로친이 자네 처에게 주는거고 이 담배 다섯덩이는 내가 자네에게 주는거네. 차비로 생각지말고 성의로 받아주게.》    저녁상을 물리고 차에 발동을 걸자 령감이 쌀주머니를 메고 자동차 있는데로 다가오면서 말했다.    《아바이, 이러면 안됩니다. 마음만은 다 받겠으니 도로 가져가십시오.》    운전수가 극구 사절했다.    《차비를 계산한다면 난 한생을 갚아도 다 갚지 못할거네.》    령감은 힝하고 힘을 쓰더니 쌀자루를 적재함에 올려놓았다. 콩짐을 지고 령길을 오를 때는 발길도 겨우 떼던 로인이 어디서 그런 힘이 솟구쳤는지? 그는 로친이 가지고나온 담배꾸레미를 제가 앉았던 자리에 올려놓고 운전실문을 닫으며 소리쳤다.                                                           《자, 어서 떠나게!》     《아바이, 잘 먹구 떠나면서 성씨도 묻지 않았군요. 성씨를 어떻게 쓰십니까?》      운전수가 차창을 열고 내다보며 물었다.     《집을 아는데 성씨를 물을게 있나? 그저 룡천동 꺽다리령감이라고 하면 되네. 허허허.》 담배흥정      가을철을 잡아들자 장마당은 한결 흥성해졌다. 장마당 근처의 과일가게거나 어물전은 더 말할것도 없고 물샐틈없이 들어앉은 난전들에도 토산품으로 한결 이채를 돋구고 있다. 무엇을 먹고싶거나 무엇을 사고싶으면 고양이뿔외에는 다 살수 있는 곳이 바로 이 장마당이다. 하여 장마당은 해가 져서 파장할 때까지 장군들로 붐비고 사람들로 들끓는다. 더욱이 담배를 피우는 남성들의 인기를 끄는 곳은 담배전을 벌리고있는 장마당 한쪽 구석이다. 아낙네들은 팔죽이거나 쉰떡, 인절미, 시루떡, 순대를 파는 음식점으로 부지런히 나들지만 남성들은 많게는 담배전으로 발길을 돌린다.     이른저녁때라 담배 팔러 온 장군들도 한사람 두사람 장을 거두기 시작했다. 낮에만 해도 그렇게 많던 담배들이 팔리고 되돌아가고 하다나니 이젠 몇사람 남지 않았다. 백석골에서 왔다는 살집 좋은 아주머니와 룡천에서 왔다는 작달막하고 초췌한 령감 그리고 시교에서 왔다는 중년사나이뿐이다. 살집 좋은 아주머니나 중년사나이는 담배 한꾸레미씩 앞에 놓고 있어 담배를 판다는 냄새가 확 풍겨오지만 령감은 가들가들 한덩이만 앞에 놓고 있어 보기만 해도 령감의 생김새처럼 좀스러웠다. 앞에서 말한 두분은 담배꾸레미를 보기 좋게 척 헤쳐놓고있어 팔 물건이라는것이 대뜸 알렸지만 령감은 빗물방울이 튕긴다고 한덩이뿐인 담배마저 비닐천으로 감아놓고있어 팔 물건인지 산 물건인지도 가리기 어려웠다.     《아바이, 이 담배를 삽소. 굴초를 한 담배꾸마.》     살집 좋은 아주머니가 늦은 장 보러 온 구레나룻이 희슥희슥하고 키가 훤칠한 로인을 불러들였다. 그 로인은 소리없이 담배덩이에서 담배를 뜯어내여 맛을 보고는 입맛을 흐리웠던지 인츰 불을 꺼버리는것이였다.    《눅게 팔테니 어서 삽소.》     살집 좋은 아주머니가 선심을 쓰면서 말했지만 키다리령감은 아무말 없이 시교에서 온 중년사나이의 담배꾸레미로 옮겨갔다. 그는 담배맛도 보지 않고 색깔만 보고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물러섰다. 그리고는 말라꽹이령감한테로 갔다.     《령감, 그 담배를 팔것이우?》     령감이 비닐천으로 싼 담배를 가리키며 말라꽹이령감 보고 물었다.     《팔지 않으려면 왜 여기에 서있겠소?》     팔 사람은 살 사람을 청해들이고 빈말로라도 선심을 쓴다는데 말라꽹이령감은 생김새처럼 심사마저도 비뚤어먹었는지 첫마디말부터 곱게 나오지 않았다. 여늬 사람같으면 발길을 돌리련만 키다리령감은 그 말을 탓하지 않고 다가가서 비닐천을 풀기 시작했다. 담배는 보기만 해도 입맛을 돋구었다. 키다리령감은 담배잎 앞초리를 뜯지 않고 꼭지를 묶은 뒤꼬리를 뜯어 말아물며 물었다.     《얼마우?》     《2원이우,》     《2원?》     키다리령감이 불을 붙여 한모금 빨자 담배 향기가 확 풍겼다.     《음, 담배는 좋구만. 그런데 덩이가 작아서…1원 80전이면 언녕 팔아치웠겠수. 1전 한푼 곯지 못하겠소.》     겉나름만 봐도 20전을 더 받겠다고 담배 한덩이를 놓고 부들부들 떨 령감이였다. 키다리령감은 구레나룻을 쓱 문지르고는 말없이 2원짜리를 꺼내놓았다.     《이걸 싹 털어 가져가우.》     말라꽹이령감은 비닐천에 떨어진 담배부스레기를 싹싹 끌어모으며 키다리령감을 보고 말했다. 구두쇠라고 했으면 좋을지 좁쌀이라고 했으면 좋을지 말라꽹이령감은 그런 령감인 모양이였다.     《그게 몇대 된다구 그러우?》     그 말에 말라꽹이령감은 키다리령감을 쳐다보며 안색을 흐리웠다.     《령감도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우?》     말라꽹이령감은 몇대 되지 않은 담배부스레기를 싹싹 끌어 자기의 담배쌈지에 넣으며 혼자말처럼 외웠다.     《담배 한잎에 얼마나 많은 땀을 쏟고 얼마나 많은 손을 돌려야 하는지를 모르누만.》     자리를 떴던 키다리령감은 그 말에 오금이 저려나 더는 발을 옮겨놓을수 없었다. 지금은 아들덕에 시내에 들어와있지만 한뉘 농사군으로 지내온 키다리령감은 담배에 가는 잔손질이 얼마인지를 잘 알고있었던것이다. 아침저녁으로 순을 주는 일만 해도 허리쉼을 할새가 없는 일이 담배농사다.     《령감, 령감이 지은 담배가 맛 좋지만 령감의 그 말이 귀에 쑥 들어오누만.》     키다리령감은 말라꽹이령감을 보고 진심으로 말했다. 그러자 오만상을 하고 있던 말라꽹이령감의 얼굴에 주름과 함께 웃음이 피여오르기 시작했다.     《령감, 령감에게서 20전을 못 받은셈치고 우리 선술을 하지 않겠수?》     《하기우.》     키다리령감도 선선히 대답했다.     《술동무가 없어 쪽쪽해서 어떻게 혼자 술을 드나 했더니 잘 만났소.》     구두쇠로만 보이던 말라꽹이령감은 마음이 여간 헐하지 않았다. 그는 선술집이 아니라 개장집으로 키다리령감을 이끌었다.     《복무원새애기, 개고기 두사라에다 술 넉냥, 개장 두그릇만 가져다주오.》     반가운 손님을 모시듯 키다리령감을 자리에 앉히자 말라꽹이령감은 호주머니에서 10원짜리 지전을 꺼내여 상우에 놓으며 소리쳤다. 겉보기 다르고 안보기 다르다더니 말라꽹이령감은 생김새와 달리 통도 여간 크지 않았다. 몇대 되지 않는 담배부스레기를 끌던 령감같지 않았다.     《령감, 이래서야 되우? 이러다간 담배판 돈을 다 불어먹겠소.》     키다리령감이 죄송하여 말했다.     《허허, 담배 세덩이 값도 되나마나한걸 가지고 뭘 그러우?》     말라꽹이령감은 담배쌈지를 꺼내여 한대 말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키다리령감은 말라꽹이령감을 바라보았다. 리해하기 힘든 령감이였다. 그렇게 좁쌀처럼 놀던 령감이 손이 이렇게 크다구야?     《령감, 이렇게 돈을 팔면서 그래 20전때문에 빈 장터를 지키고있었수? 》     《허허허, 그래 내가 20전때문에 오돌오돌 떨면서 있은줄 아우? 허허허, 이것보우. 여기에 10원짜리만 해도 몇십장이 들어있수.》     말라꽹이령감은 불룩한 호주머니를 툭툭 치며 배포유하게 웃었다.     《어떤 젊은이들은 담배 사러 와서 맛을 본다는게 앞초리를 반잎이나 문질러내여 썩썩 비벼 말지 않겠수? 절반 나마 흘려버리며말이우. 그 사람들이 담배가 어떻게 나오는지 알기나 하고 담배를 피우우? 그런 사람들은 보기만 하면 열물까지 올라온다니까.》     술안주와 술이 상에 올랐다. 말라꽹이령감은 술잔이 찰찰 넘게 술을 부었다.     《자, 속이 따끈따끈하게 한잔 굽을 내기우.》     두 늙은이는 잔을 들었다.     《담배맛도 모르고 담배가 어떻게 생기는지 모르는 사람들을 보면 담배 팔 생각보다 되려 살 생각부터 앞선다니까.》     술이 거나해지자 말라꽹이령감은 말이 많아졌다.     《그래서말이우. 그런 사람들에게는 아예 촉도 붙이지 못하게 한덩이에 3원씩 불렀댔수. 돈때문인줄 아우? 아니우. 금년에 아들이 번 돈을 내놓고 내가 지은 담배농사만 해도 3천원은 잘될거우.》     《뭐, 3천원?》     키다리령감은 입을 딱 벌렸다.     《왜 믿어지지 않수? 난 전문 담배농사만 한다우.》     말라꽹이령감은 술기운이 오르자 말에 더 흥을 돋구었다.     《령감, 령감의 신세를 이렇게 지면서 이때까지 통성명도 없었구만.》     키다리령감이 미안쩍게 말했다.     《초면이자 구면이라 구태여 물을게 있수? 그저 룡천동 말라꽹이령감이라고 부르면 되오. 허허허허.》 밥 한그릇     동해식당은 사람들로 붐비였다. 오늘은 장날이라 장군들이 시원한 국수거나 속이 후끈한 개장을 자시려고 물려든통에 여느때보다 더 복잡했다. 장군들을 보고 장마당옆에 자리를 잡은 동해식당은 장날이면 장보러 온 사람들의 덕을 택택히 보고있었다.      점심시간이라 식당안은 앉을자리 없이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 곱살하게 생긴 복무원처녀는 손님들에게 음식을 날라가고 빈 그릇들을 걷어들이느라 땀을 철철 흘리면서 뛰여다녔다. 손님들의 식미가 제나름이라 이곳저곳에서 복무원처녀를 보고 제가 요구하는 음식을 가져오라 독촉이 불같다. 그래도 복무원처녀는 낯 한번 찡그리지 않고 해쭉해쭉 웃으며 모든 부름소리에 순순히 은하군 했다. 식당 한가운데 술상을 차지하고 앉은 젊은이들은 고주망태가 되도록 술을 마시고도 연신채와 술을 청하는것이였다. 어떤 채는 저가락 맛도 보지 못한채 술과 맥주에 적셔지고 어떤 채들은 서로 뒤섞여 소고기볶음인지 개고기챈지 분간할수 없게 되었다. 접시우에 접시가 덧놓이고 맥주고뿌가 줄쳐있었다.     젊은이들이 차지한 옆상에 한 로인이 앉아있었다.     《아바이 뭘 자시렵니까?》     복무원처녀는 령감의 곁에 가서 물었지만 령감은 들었는둥말았는둥 아무런 반응도 없이 젊은이들 상만 응시하고 있다.     《아바이, 뭘 자시렵니까?》     복무원처녀는 한소리 높여 다시 물었다. 그제야 령감은 복무원처녀에게 낯을 돌리며 기분없이 말했다.     《식욕이 떨어져서 좀 있다 먹겠소.》     령감의 대답은 시큰둥했다.     《그럼 자리나 내주세요.》     《좀 있다 먹겠다는데도 자리를 내라으? 늙은게 다리쉼을 해도 안되우?》     령감은 별로 성내는 기색도 없이 느직느직 말했다.     젊은이들은 한창 부어라마셔라하다가 밥에는 숟가락도 대지 않은채 다리를 꼬며 나갔다. 그들이 차지했던 상에는 먹다 남은 채와 마시다 남은 맥주가 한상 그득했다. 떠놓은채로 있는 하얀 이밥사발들이 임자를 찾지 못하고 돼지죽그릇을 기다리고있었다.     상우에 놓여있는 밥을 지켜보던 령감은 낯을 찡그리다가 밥 한그릇을 자기 상우에 갖다놓고 복무원처녀를 불렀다.     《새애기!》     언녕부터 령감의 거동을 지켜보던 복무원처녀는 자기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도 못들은척하고 있었다.     (이게 어느땐가? 지금도 거지처럼 남이 먹다 남은 밥을 먹는 사람이 있다니? 굶으면 굶었지 밥 한그릇으로 아들 며느리의 낯을 깎다니? 저 령감의 자식들이 봤으면 뭐라겠는가?)     복무원처녀는 령감의 행실이 아니꼬와났다. 옷차림새는 번듯하게 조끼까지 받쳐입고 거지행세를 하다니?     《새애기!》     령감이 다시 불렀다. 그제야 복무원처녀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령감한테로 다가갔다.     《새애기, 개장만 한그릇 가져다주오.》     《밥은요?》     《여기 있지 않소?》     령감은 앞에 놓은 밥을 가리켰다.     《그건 다른 손님들이 먹다 남은거얘요.》     복무원처녀는 먹다 남은것이라는 말에 악센트를 가해 남들이 다 듣도록 또박또박 끊어 말했다.     《숟가락도 대지 않았으니 일없소. 개장만 가져다주오.》     《밥 한그릇에 몇푼 간다고 그러세요?》     《뭐라우?》     복무원처녀의 말에 령감은 화를 벌컥냈다. 그렇듯 안온하고 조용하던 령감의 얼굴이 삽시에 청동색을 띠였다. 어찌나 성났던지 수염까지 푸들푸들 떨렸다.     《새애기는 그래 이 쌀이 어떻게 나오는지 알기나 하고 밥술을 드오?》     령감이 어찌나 호랑이상을 했던지 복무원처녀는 쳐다보기마저 겁나했다. 그는 무슨 봉변이 떨어질지 모를 무서운 생각에 자리를 떠나 령감이 청한대로 개장국 한그릇을 가져다 령감의 앞에 놓았다.그러자 령감은 더는 성내지 않고 복무원처녀가 가져다주는 개장을 받아 점심을 자시기 시작했다.     령감은 게눈감추듯 개장 한그릇을 굽내고 수염을 씻으며 물러앉았다.     《새애기.》     령감은 이마의 땀을 훔치며 복무원처녀를 불렀다.     《왜 그러세요?》     《밥과 개장국 값이요.》     령감은 조끼 안호주머니에서 한웅큼 잘되는 지전뭉치를 꺼내여 5원짜리 한장을 뽑아 복무원처녀를 주며 말했다.     《아니 밥 한그릇은 남이 먹던…아니 남들이 이미 값을 치른것인데요.》     복무원처녀는 남들이 먹던것이라고 말하려다가 령감의 비위를 상할가봐 이렇게 돌려 말했다.     《새애기, 사람이란 쌀을 모르고도 살지 못하는 법인데 저것 보오.》     령감은 젊은이들을 물리고 간 상을 가리키며 말을 계속했다.     《저 사람들이 쌀 버러지들이요. 쌀이 어떻게 생긴다고 하얀 이밥을 저렇게 돼지죽그릇에 처넣는단말이요? 새애기는 아마 나를 거지사촌으로 봤을테지만 난 지금 저금한 돈만 해도 만원각수를 넘소. 돈이 없어서 젊은이들이 버리고 간 밥을 먹은줄 아오? 뜨끈뜨끈한 새밥이 싫어서 다식어빠진 밥을 먹은줄 아오?흘린 땀이 아까와서 그랬소!》     령감은 기어이 밥값까지 치르라면서 복무원처녀의 등을 밀었다.     《아바이, 어데 계십니까?》     복무원처녀는 낯을 붉히며 거스름돈을 령감앞에 내밀었다. 령감은 세여보지도 않고 받아서 조끼호주머니에 밀어넣으며 웃었다.     《룡천동에 있소. 룡천동 뚱보령감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소. 허허허.》 연변문학 1985년 1월호
10    우산은 비에 운다(3) 댓글:  조회:1240  추천:21  2009-03-04
      3. 불륜의 씨앗     초상을 치르고 난 상주처럼 나는 진짜 지쳐 있었다. 육체도 지쳤고 정신도 지쳤다. 모든 것이 지쳐있었다.     집에는 아버지 홀로 계셨다. 아내는 아직 퇴근을 하지 않은 모양이다. 《어데 가 있었나? 이틀씩이나. 콜록콜록….》     내가 문을 떼고 들어서기 바쁘게 아버지가 북쪽 침실 문을 열며 물으셨다. 《약수동 로인휴양소에 있었습니다.》 《그래? 그 분은…》     아버지의 눈길이 내 얼굴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빗질하지 않은 아버지의 긴 눈썹이 내가 떠날 때의 모양 그대로 눈을 덮고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빗어 올리던 눈썹을 덮인 그대로 내버려두다니? 그러면서도 나는 아버지의 눈길이 눈썹을 비집고 나의 일거일동을 샅샅이 훑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사망했습니다. 초상을 치르고 오는 길입니다.》 《초상? 음―콜록콜록…》     그때서야 나는 눈썹 밑에 숨었던 아버지의 눈이 슴벅하고 감겼다 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푹 꺼져 들어간 눈확 속에서 어떻게 지탱하고 있었을까 싶은 눈망울이 눈을 감는 순간에 움씰하더니 눈을 뜨는 순간엔 원래의 자리를 그대로 지키면서 원형을 찾고 있었다.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갔던 것이다. 《저, 아버지도 사망한 분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허인숙이라고 전쟁 당시 전선지원모범으로 소문 높던 분 말입니다.》 《글쎄 이름은 많이 들어봤는데 보지는 못했어. 그래 못 봤지 못 보구 말구 콜록콜록…》 《어찌된 사연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분의 아들 이름도 내 이름처럼 문경천이었던가 봅니다. 그래서 저를 친아들로 알고 있었구요.》 《뭐? 아니 아니 우리 문씨 가문에는 그런 여자가 없었어. 그 여자는 우리 문씨 가문의 사람이 아니야! 콜록콜록…》     아버지는 스스로의 초조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던지 후둘후둘 다리를 떨며 자기 침실로 들어가셨다. 몸체를 겨우 지탱하는 걸 봐서 내가 집을 떠난 이틀 새에 몹시 앓고 계신 것 같았다. 참, 아버지는? 나만 집에 없으면 끼니를 바로 찾지 않고 거르시는 때가 많다니까. 이번에도 필경은 나 때문에 밥술을 제대로 드시지 않은 모양 같았다. 《아버지, 어데 몸이 불편하십니까?》     나는 아버지의 침실 문을 열며 물었다. 문 열기 바쁘게 독하고 진한 담뱃진 냄새가 코를 찔렀다. 코에 익을 대로 익고 내 몸에까지 슴배여든 그 담뱃진 냄새에 나는 습관 될 만치 습관 된 몸이다. 그 어디 가나 그 냄새만 맡아도 아버지가 여기 계시는구나 하고 쉽게 찾을 수 있는 그런 냄새다. 그 냄새를 나는 아버지 냄새라고 일러왔다. 역하기는 했지만 아버지 냄새라고 생각하니 그리 싫지 않았고 하루만 그 냄새를 맡지 않아도 아버지 생각을 하게 되는 그런 특수한 냄새다. 《아니, 아무렇지도 않다. 아무렇지도 콜록콜록…》 《괜찮으시면 저와 함께 병원으로 갑시다.》 《성한 몸인데 병원은 무슨? 괜찮아. 콜록콜록…》 《철시가 바뀌는 봄철이니 몸 각별히 조심하십시오.》 《내 걱정 말라니까.》     짜증 섞인 아버지의 말씀에 나는 침실 문을 닫고 물러섰다. 제아무리 좋은 말 좋은 일이라도 두 번 다시 말하면 왈칵 성을 내며 돌아앉는 아버지의 성미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서재에 몸을 담그고 허인숙 어머니의 일기책이 들어있는 종이함을 열었다. 그러자 학생용필기장이며 크고 작은 수첩 심지어는 마분지(해방 초기에 쓰던 누런 종이)를 접어서 책을 묶은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일기장이라기보다 잡화점의 물건들 같은 잡동사니를 쌓아둔 것 같이 그 모양새가 제각각이었다. 그러나 연대순으로 차곡차곡 쌓은 일기책은 겉보기와는 달리 작 정리되어 있었다.     나는 서재로 통한 전화선 코드부터 빼버렸다. 글을 쓰거나 책을 볼 때 제일 시끄럽게 구는 껄끄러운 물건이 바로 전화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채 쓰지 못한 소설원고, 볼펜, 잉크 사전 따위들은 제자리에 갖다놓고 눈에 거침없도록 정돈했다. 일기를 탐독할 수 있는 환경부터 마련하기 위해서다.     나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시간을 갖기 위해서다. 어쩐지 일기책에 손을 대기가 꺼림직 하고 서먹서먹했다. 남의 한생의 비밀을 끄집어낸다는 것이 미흡하기도 했거니와 도적놈처럼 생각되어서다. 호기심이 없어서? 아니 그건 더 물을 것도 없다. 훔쳐서라도 보고 싶다. 비밀이라는 딱지가 붙은 물건에 더 눈길이 가는 것처럼 말이다. 숨기면 숨길수록 더 파고 싶고 더 알고 싶은 것이 비밀이라는 낯선 두 글자가 아닌가. 덮개를 떼고 보면 속이 텅텅 비어 있지만 덮개를 열기 직전까지는 자신의 신경세포가 그 덮개에 밀착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 힘 때문인지 나는 마분지로 손수 만들었을 필기장 같은 일기책을 꺼내들었다.     나는 첫 장을 펼쳤다. 글자들이 검누렇게 뜨고 종이 밑바탕마저 누렇다보니 글이 잘 알리지 않았지만 얼핏 들어오는 눈저울에도 먹물 맛을 볼만치 본 정자로 또박또박 쓴 반듯한 글씨체였다. 글씨체만 보아도 주인공의 진심을 읽을 수 있었다.     일기는 1950년 8월 16일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숨겨진 비밀을 파헤칠 듯한 그런 기분이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나는 실망하고 말았다. 알릴 수 없는 한 처녀의 치정사거나 남산을 안고 넘어지는 처녀의 비운이거나 이념이라는 구풍이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면서 휩쓸고 지나간 백골 더미 같은 가정사가 아니라 평범한 아주 평범한 일상사들이었다. 사사건건 다 여쭐 수는 없지만 간추린다면 이러한 것들이었다. 어머니가 세상 뜨자 연변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샘물골로 돌아왔다는 이야기, 학교 때의 남자친구가 참군하게 되자 서둘러 결혼했다는 이야기, 결혼해서 사흘만에 남편이 전선으로 떠나갔다는 이야기, 뉘 집에도 있을 수 있고 누구에게도 있을 수 있는 감칠맛을 잃은 일기였다.     나는 그 일기장의 페이지를 다 넘기지 않고 덮어버렸다. 사맥이 나른했다. 큰 기대를 걸었다가 그 기대가 썩은 무 밑둥처럼 넘어졌을 때와 같은 그런 실망감에 절은 언짢은 기분이 들었다.     잡친 기분을 돌려야 했다. 그러지 않고는 반세기를 내려오면서 써온 허인숙 어머니의 일기를 한 페이지도 읽을 것 같지 않았다. 행여나 건질 것이 있지 않을까 하여 나는 잡히는 대로 일기책 한권을 뽑아들고 책가위를 넘겼다. 일기를 쓰기 시작한지 3년 후인 1953년 10월 16일 일기였다.       1953년 10월 16일 흐림      요즈음은 좀체 잠을 이룰 수가 없다. 회의요 순회강연이요 하면서 밤늦게 자리에 들지만 좀체 잠이 오지 않는다. 잠을 청해봤자 쪽잠, 온밤 악몽에서 허덕인다.     이번 달에는 꼭 오려니 하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달거리가 또 오지 않았다.     매달 거르지 않고 오던 달거리가 멎은 지 두 달, 임신이 아닌가 싶다. 진짜 임신이면 나는 자살할 수밖에 없다. 전국전선지원모범이요 전국집단화의  선줄군이라는 내가, 남편이 전선에 나가있는 군속녀인의 몸으로 임신했다는 소문이 나면 나는 물론 우리 겨레들에게 먹칠을 하기 때문이다.     그 때 내가 왜 몸을 허락했던가? 그날 저녁만 아니었어도 이런 걱정과 폐단은 없었을 텐데…후회막급이다.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랴? 이미 다 쑨 죽이 돼버렸는데.     현립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고 싶다. 확실하게 알아봤으면 속이라도 편할 것 같다. 죽든지 살든지 빨리 판결이 났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 길도 막혀버렸다. 한 달이 멀다하게 신문에 사진이 박히고 내 사적이 실렸는데 가명을 쓴다 해도 의사들이 나를 몰라볼 리 없다. 더더구나 모주석께서 나를 접견할 때 모주석과 악수하는 장면이 신문 반면 크기만큼 실렸으니 철부지를 내놓고는 나를 다 알아볼 것이다. 그러니 무슨 수로 검사를 받으랴? 이럴 때 남편이라도 돌아와주면 얼마나 좋으랴? 용서를 빌고 처분을 기다리고…정전협정이 맺어져 남들은 전선에서 고향으로 돌아오고 있는데 죽었는지 살았는지 남편은 감감 무소식이다.     시아버님은 내 이런 속내는 모르고 나만 보면 물으신다. 《자네 어데 아픈가? 몹시 축갔네. 일만 일이라고 하지 말고 의원을 보이게.》     나보다 내 몸을 더 아끼고 말없이 내 뒤 시중을 드는 시아버님이다. 우리 집안은 며느리가 시아버지노릇하고 시아버지가 며느리 노릇하는 거꾸로 된 집이다. 한 해의 절반 이상을 밖으로 돌아다니는 나 때문에 아버님이 세간을 도맡다시피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며느리 자랑에 락을 보신다나?     나는 그런 아버님을 보기가 부끄러워 될수록 정면접촉을 피한다. 그럴수록 아버님의 눈길은 짓궂게 내 뒤를 따른다. 나는 아버님의 그런 눈길이 싫지는 않지만 그럴수록 수족을 묶이고 있다. 죄진 녀인, 죄 많은 며느리이기 때문이다.     아버님, 제발 이 나쁜 며느리를 멀리 하소서.     나는 이 하루의 일기에서 반짝하고 불꽃을 튕기는 불씨를 보았다. 찾을 것을 찾고야 말았다는 희열이 전신을 뜨겁게 달구었다. 나는 되돌아와 첫 일기부터 다시 읽어야 했다. 그러지 않고는 도저히 직성이 풀리지 않고 이 수수께끼를 풀 것 같지 않았다.     밤이 깊었다. 나는 담배 쉼 눈 쉼 한 번 하지 않고 일기에 달라붙었다. 택시들도 잠나락에 빠졌는지 달리면서 길을 핥는 소리 한번 들리지 않고 서재엔 낮잠을 자고 난 고요가 무서우리만큼 구석구석에서 기어 나와 유령처럼 내 신변을 감돌고 있다.     쌔근쌔근…     남쪽 침실에서는 아내의 코고는 소리가 들린다. 드르렁드르렁 내 코고는 소리를 자장가로 여기며 내 코고는 소리가 없으면 잠들지 못한다는 아내, 이틀 동안 자리를 비웠더니 자지 못했던 모양이다.     콜록콜록…     북쪽 침실에서도 아버지의 기침소리가 들린다. 벌써 새벽 3시가 됐나? 나는 벽시계를 쳐다보았다. 아니? 새벽 1시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깨시다니? 태엽을 너무 주었나? 새벽 3시면 어김없이 들려오던 저 기침소리가 두 시간이나 앞당기다니? 이 밤, 우리 집안의 모든 것이―사람도, 시간도 감정도 모두 평형을 잃고 있는 걸까?     뚜벅뚜벅…     아버지의 침실 문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서재 앞에 와서 멎었다. 《너 지금도 글을 쓰나?》     아버지가 조심스레 서재 문을 열고 머리만 들이밀며 물었다. 모든 눈썹이 검은 눈썹 한 오리 찾을 수 없는 하얀 눈썹이 아래로 처져 내린 낮에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 《녜. 아니 일기를 봅니다.》 《몸 망칠라 콜록콜록…아니 초저녁에 자고 새벽 글을 쓰던 사람이 새벽 한 시 되도록 일기를 보다니?》 《녜―허인숙 어머니가 반세기 썼다는 일기입니다.》 《뭐 일기?》     아버지의 눈길이 나로부터 잔뜩 쌓여있는 일기책으로 걸음발 타며 옮겨지고 있었다. 《남의 일기를 훔쳐보다니? 콜록콜록…그건 콜록. 좀도적이야.》 《제가 물려받은 유물입니다.》 《저승으로 간 녀자에게서?》 《녜.》 《모를 소리, 일기를 유물로 주다니 콜록콜록…》     아버지는 더 캐묻지 않고 소리 없이 문을 닫으셨다. 뚜벅뚜벅…느린 발걸음 소리에 맞춰 콜록콜록하는 기침소리가 박자를 잃고 헝클어져 들려온다. 허참, 오늘 저녁엔 왜 모든 것이 잡동사니처럼 헝클어져 있을까? 아버지는 매일 저녁 두 번씩 내 서재를 살피시는 분이다. 저녁 8시 반 되면 서재의 불이 꺼졌는가를 살피고 새벽 3시 반 되면 서재의 불이 켜져 있는가를 지켜본다. 이건 30여 년 아버지의 몸에 밴 습관이다. 마치 담뱃진 냄새가 아버지의 뼈 속까지 슴밴 것처럼. 이토록 자식을 아끼고 사랑하는 분은 흔치 않으리라. 나는 두 손에 효성을 들고 아버지는 두 손에 사랑과 채찍을 쥔, 우리 부자간은 이런 사이다.     나는 계속 일기를 보았다. 1950년부터 1952년 사이에 씌여진 일기는 격정과 분투, 영예의 산물이라고 할까? 남편을 전선에 떠나보내고 소가 없어 자기가 가대기를 끌었다는 이야기, 전선을 지원하기 위해 시아버지에게 대접할 벼만 남겨놓고 몽땅 나라에 바쳤다는 이야기, 샘물골 여성들을 동원하여 놋식기, 놋대접 심지어 놋젓가락까지 몽땅 걷어 군기공장에 보냈다는 이야기, 당기 앞에서 주먹을 들고 입당선서를 했다는 이야기, 전선지원모범으로 북경에 다녀왔다는 이야기, 샘물골에서 제일 처음으로 호조조를 꾸렸다는 이야기 등등 사적식 일기였다.     신문기자가 아니고 소설가여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난 인간의 운명을 떠난 이런 일기에는 그리 큰 흥미가 없다.      1953년 3월 25일 맑음     오늘 용천 구정부에서 회의에 참석하라는 통지를 받았다.     우리 샘물골에서 용천 구정부까지는 30리, 그 사이에 10리 무인지경인 솔개령이 가로놓여 있다. 이 솔개령 상산봉에는 낮에도 호랑이가 출몰하고 곰이나 멧돼지, 승냥이가 욱실거린다는 곳이다. 중요한 교통수단인 자동차는 물론 마차도 통하지 않았고 소수레가 고작이다. 그러니 구정부에서 회의에 오라거나 일이 있어서 구정부를 찾아갈 적마다 제일 두통거리는 이 솔개령이다.     나는 이른 조반을 치르고 도시락 보자기를 든 채 강 촌장과 함께 길을 떠났다. 우리 샘물골에는 강 촌장과 나밖에는 당원이 없었기에 두 사람이 붙어있거나 붙어 다니는 시간이 많다.     오늘은 날씨마저 쾌청해 길에 나선 기분 또한 상쾌했다. 봄추위에 여우가 눈물 흘린다는 매서운 날씨였지만 솔개령 넘을 근심을 가시고보니 마음이 든든했다. 나는 홀로 솔개령을 넘을 때면 아버님이 만들어준 큼직한 작대기를 들고 길 량옆에 빼곡히 들어선 아름드리 소나무를 탕탕 치면서 《우여―우여―》하고 소리치곤 한다. 산짐승들이 사람의 소리를 제일 무서워한다나?     오늘은 그 작대기를 들지 않아도 된다. 강촌장과 함께 가니까. 봄갈이는 벌에서 시골로 올려하고 가을걷이는 시골에서 벌로 내리한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마을 앞 냇가의 버드나무는 버들개지를 업을 채비를 하느라 버들싹들을 벼알 만큼 키웠지만 이곳 솔개령 길은 겨울에 온 눈이 그대로 깔려 있다.     무섭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는 이 솔개령이 좋다. 하늘을 찌를 듯한 청송 홍송이 꽉 들어서고 가을이면 머루 다래가 향기를 뿜는 대자연은 아무런 보수도 없이 청신한 공기, 풍성한 가을 열매를 하사하니 말이다. 솔개령 기슭을 감도는 석개울에는 산천어와 산고돌, 버들치, 모래무치가 떼를 지어 노닌다. 살기 좋고 보기 좋은 내 고향산천이다. 《다리쉼이나 하고 갈까?》     영에 오르자 강촌장이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러자요.》     솔개령 령마루 길 옆에 누워 있는 아름드리 진대나무는 우리의 쉼터다. 사실 우리는 누가 쉬자는 말이 없어도 자연스레 진대나무에 걸터앉아 땀도 들이고 다리쉼을 하곤 한다. 우리들이 얼마나 앉았다났던지 진대나무에는 반들반들한 자리까지 나 있다. 《영수에게서는 아직도 소식 없소?》     강촌장이 신문지를 찢어 엽초를 말아 물며 물었다. 그 자태가 그토록 미더워 보일 수가 없다.     시골에서 잔뼈를 키운 강촌장은 억대우 같은 사나이다. 일손을 다우친다 하면 성난 들소처럼 바위에다 뿔을 박으면서도 내밀고야마는 그런 성미의 사람이다. 벼락이 내리쳐도 끄떡하지 않을 그런 대장부다. 그러면서도 샘물골의 어진 품성을 타고나 남들의 어려움을 제 아픈 살점처럼 생각하는 분이다. 강 촌장의 신세를 얼마나 졌는지 모른다. 밭갈이철이면 밭갈이, 모내기철이면 모내기, 기음철이면 기음, 가을철이면 가을걷이, 탈곡…우리 집 절반 농사는 강 촌장이 하는 셈이다. 진짜 큰오빠처럼 미더운 분이다. 《없어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지 않아요?》     나는 소식 없는 남편 때문에 속을 빠질빠질 끓이면서도 태연한 체 대답했다. 《그래, 돌아오겠지. 돌아오구 말구.》     강촌장은 절반 타나마나한 담배를 발로 비벼 끄며 자리를 떴다. 남편 때문에 강촌장도 가슴을 끓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길을 조이기요.》     우리는 절반 쉼도 하지 않고 자리를 떴다.     우리들이 구정부에 이르렀을 때는 회의군들이 이미 다 모였을 때다. 김천수 구장이 우리를 맞았다. 《오―영웅이 왔구만.》     김천수 구장은 《영웅》이라는 두 글자에 힘을 주며 나의 손을 잡아주었다. 김천수 구장은 나의 스승이자 입당 소개인이다. 성품이거나 걸걸한 성미거나 다 좋은데 나는 그 《영웅》이라는 소리가 질색이다. 내가 전국모범이요, 성모범이요 하는 모범을 숱하게 따내자 나와 가까이 보내던 친구들과 마을사람들 심지어는 친지들까지도 나와 벽을 두고 말을 나누기 시작했다. 나는 멀어져가는 그 거리감이 싫다. 야, 자 하던 사이가 이랬소, 저랬소 하는 사이로 변하고 때 없이 사람들이 넘나들던 우리 집 문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우리 용천구는 1952년에 합작화를 실현하여 전국적으로 가장 빨리 합작화의 길에 들어선 유명 짜한 구다. 전 구에서도 샘물골이 첫코로 농업생산합작사를 꾸렸고 우리 샘물골 농업생산합작사가 용천구를 이끌었던 것이다. 나도 이 때문에 더 이름을 날리게 되었고 영웅으로 떠받들리게 되었다.     오늘 회의는 춘경 생산동원대회다. 춘경 생산준비에 대한 각 촌의 회보와 구장의 연설 그리고 《옳소》하는 소리로 회의는 끝났다. 말은 세 마디지만 농촌회의라 이리 끌고 저리 끌고 질질 끌면서 해질녘에야 회의를 마무리 지었다.     우리는 드바삐 귀로에 올랐다. 어둡기 전에 솔개령을 넘어야 했다.     솔개령 령마루에 거의 오를 무렵, 이런 맹랑한 일이라구야, 짙어가는 어둠에 길이 잘 보이지 않아 발을 접질린 것이다. 나는 그 자리에 풍당 물앉고 말았다. 《아니 어찌된 일이요?》     앞서 가던 강촌장이 되돌아서며 물었다. 《발을 곱디뎠어요.》 《몹시 다쳤소?》     강촌장이 접질린 내 왼쪽 발목을 놀리며 물었다. 얼마나 통증이 심하던지 나는 대답 대신 아이고 하는 신음소리만 냈다. 발목은 단통 퉁퉁 부어올랐다. 《이거 안 되겠는데 어쩐다?》     강촌장이 안절부절 못했다. 서성거리기도 하고 엽초를 말아 불을 붙였다가는 몇 모금 빨지 않고 홱 던져버리기도 하면서… 종시 방법이 나지 않는 모양이다. 그러다가 결단을 내렸는지 나에게 등을 들이댔다. 《업히우오.》 《아니 괜찮아요. 부축만 해주세요.》     나는 강촌장에게 왼팔을 맡긴 채 외발 뜀을 하면서 걷기 시작했다 그것도 잠시, 땀만 나고 앞길이 축나지 않았다. 나는 할 수 무가내로 왼팔을 강촌장의 목에 두르고 반신을 강촌장의 몸에 의지했다. 강촌장의 손이 나의 겨드랑이 밑으로 들어왔다. 부끄러웠다. 남편의 손 외에는 이 때까지 그 누구의 손도 내 겨드랑이 밑으로 들어와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솔개령에서 밤을 지새울 수는 없는 일.     처음에는 긴장하여 송장처럼 전신이 꽛꽛해 났지만 그것도 잠시, 한참 걷고 나니 아무렇지도 않았다. 거리를 두면서 부추김을 받던 나는 통증으로 쏴나는 발목과 피로 때문에 점점 강촌장과 가까워지면서 몸 전부를 기둥 같은 강촌장에게 맡겼다.     강촌장의 따스한 체온이 내 가슴을 덥혀주고 담배 내음과 술 내음이 푹 밴 강촌장의 구수한 체취가 내 코를 찔렀다. 남편과 이틀 저녁 한 자리에 들어보고는 처음으로 남자와 가까이 가져보는 시간과 거리였다. 강촌장도 지쳤는지 내 겨드랑이를 감은 그의 오른팔이 점점 더 힘 있게 갈마들었다. 풀꺽풀꺽  뛸 적마다 강촌장의 오른손이 나의 젖가슴에 닿아 왔다. 통증으로 식은땀만 흘리면서도 강촌장의 체온과 체취, 포옹 아닌 포옹은 싫지 않았다. 이상했다. 그래서 모두들 남자를 좋다고 하는가? 남편의 품이 그리워 온밤 신고를 하다가 새벽녘에야 쪽잠에 드는 때가 많은 나였다. 남자의 품이 그리워서 그랬던지 젖가슴에 닿는 강촌장의 손도 좋았고 씩씩 힘겹게 내뿜는 그의 술 냄새도 좋았다.     이렇게 우리는 쉬었다가는 걷고 쉬었다가는 걷고 하면서 밤늦어서야 집에 다다를 수 있었다.     밤이 깊었다.     등잔불 밑에서 일기를 쓰고 있는 내 가슴 몹시 두근거린다. 또 밤을 샐 것 같다. 강촌장의 체취와 따스하던 손길이 남편의 품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1953년 3월 26일 맑음     통증으로 밤을 새웠다.     발목의 아픔보다 강촌장을 무슨 낯으로 만나나 하는 부끄러움과 근심이 먼저 앞섰다. 그런데 그 강촌장이 의원을 앞세우고 우리 집 아침 문을 먼저 열 줄이야? 《어떻소?》     나는 엊저녁 일에 내 속내를 홀딱 뒤집어 보인 것 같아 얼굴만 붉혔다. 《아유―몹시 부었구만.》     내 발목에 눈길을 주던 강촌장이 놀라며 소리쳤다. 《선생님, 치료비는 촌에서 안을 테니까 돈 걱정 말고 좋은 약을 다 쓰십시오!》 《다른 병과 달라 시간이 좀 걸리겠는데…》     의사가 난감해 하며 뜨적뜨적 말했다. 《안됩니다. 사흘 안에 걷게 하십시오!》     강촌장은 나를 내려다보며 덧붙였다. 《오늘, 복사골로 내려가 봐야겠소. 그 자식들은 굼벵이 혼을 타고 났는지 꿈지럭거리며 지금까지도 퇴비가 마당에 그냥 쌓여 있다오. 오래잖으면 밭갈이가 시작되겠는데 혼뜨검 내줘야겠소.》     강촌장은 내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씽―바당문으로 사라졌다.     강촌장은 이런 분이다. 범의 혼을 타고난 사람이다. 나는 그런 강촌장이 싫지 않다.     아버님은 아침상을 물리자 바람으로 집을 나섰다. 모르긴 해도 밭에 채 내가지 못한 두엄을 실어낼 것이다. 원래 오늘 나와 함께 하기로 했는데 오장이 펀펀해가지고 이렇게 집을 지키고 있자니 미안한 생각만 든다. 내가 문씨 가문의 문턱을 넘어서서 오늘처럼 펑퍼짐 앉아 있어보기는 처음이다. 시집온 사흘만에 남편을 군대에 보낸다 시어머니 계시지 않은 가사를 맡아 본다 2년 새에 단 하루도 집안에 붙박혀 있어 본적 없다.     할 일 없이 집안에 누워있으니 손이 간지러워나고 잡생각만 든다. 고독과 외로움이 피곤한 나의 육체를 괴롭힌다. 남편은 지금 어디서 싸우고 있을까? 부상이라도 당하지 않았을까? 이런 때 남편이 옆을 지켜줬으면 얼마나 좋을까? 병신 된 남편이라도, 자리를 일지 못하며 앓고 있는 남편이라도, 남편이라는 허수아비라도 내 곁에만 있어준다면 족할 것 같다. 벌써 일 년째 소식이 끊긴 남편이다. 무정한 남편…     강촌장은 지금쯤 복사골에 도착하여 북새판을  벌일 것이다. 툰장을 닦아세울 것이다. 전국모범이 출마한 우리 촌에서 남들한테 뒤져서야 되겠나 하며 내 이름을 앞세우고 불호령을 내릴 것이다. 엽초를 연속 말아대면서…엽초 맛이 그리도 좋은지? 생담배 타는 냄새는 지독하리만치 콧구멍을 쑤셔대지만 강촌장이 삼켰다 뱉은 담배 냄새는 왜 싫지 않을까?     엊저녁 나를 휘감아 안았던 강촌장의 억센 팔과 발을 뗄 때마다 젖무덤에 닿던 강촌장의 손이 짜릿하게 맞혀온다. 이상하다. 내가 언제부터 이토록 강촌장을 생각했던가? 잔칫날 오락판에서 판을 치던 그 때부터? 남편이 참군할 때 《아우!》하면서 눈물을 훔치던 그때부터? 아니 멋진 사람이라고 여긴 적은 있어도 오늘처럼 이성의 감정으로 대한 적은 없었다. 사업상의 동반자 그것이 전부였다.     아마 작년 홍수 때부터였을 것이다. 그 때 샘물골에 골물이 터졌을 때 마을과 밭을 보위하기 위해 생명도 마다않고 터지려는 둑 앞에 선참으로 뛰어들어 몸으로 둑을 막아 나서던 강촌장, 그 때에야 나는 진짜 강촌장―바위벽처럼 넓은 동가슴과 근육이 울툭불툭 튀어나온 두 팔…무궁한 힘을 빛뿌리는 그의 동체를 보았다. 그런 품에 안겨봤으면 하는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는 안 될 욕구가 생겼다. 그 후 나의 이런 욕구 때문에 자신을 얼마나 비난하고 반성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 수요와 욕구가 강촌장을 만날 때마다 머리를 쳐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바로 엊저녁 내가 머리와 젖가슴을 묻었던 가슴이 그때의 그 떡판 같던 가슴이었고 나의 겨드랑이를 휘감았던 팔이 그때의 그 팔이었다.     그 가슴과 그 팔이 눈앞에서 아른거린다.     잊자 하면서도 잊지 못하고 버리자 하면서도 버리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내가 화냥년이 라서? 나도 모르겠다. 자신이 자신을 모르고 자신이 자신을 장담하지 못하는 것이 세상의 여자라고 했다. 나도 아마 녀자가 돼서 그런가보다.       1953년 4월 10일 맑음     련 이틀째 강촌장이 보이지 않는다. 누가 보면 주착머리 없다 할 지경으로 문턱이 다슬도록 우리 집 문고리를 잡던 강촌장이다. 회의에 갔나? 회의에 가면 나보고 무슨 회의에 간다고 알리고 떠나는 분인데…아니면 병져 누웠나?     나는 강촌장 집을 찾아갔다. 내 예측이 틀림없었다. 앓고 있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 있다. 《몹시 편찮으세요?》 《아니 고뿔인 것 같소. 요즈음 밭갈이 때문에 뛰어다녔더니 편도선염이 도진 것 같소. 이런 것쯤이야. 저녁에 술 서너량이면 뚝 떨어지지.》     목소리까지 변했다. 쉰 목소리다. 말한다 하면 곁 사람의 흉벽까지 울려주는 우렁우렁한 그 목소리가 아니다. 《너무 무리했어요.》 《밤만 자고나면 뼈에 피 아홉 동이씩 고이는데 이 힘을 뒀다 어데 쓰겠소?》 《병 앞에서는 한다하는 장수가 없어요. 의원을 부를까요?》 《이 때까지 침 한 대 안 맞고 약 한 알 안 먹어보았소. 걱정 말래두 허허허.》 《푹 쉬세요.》     그 웃음소리에 쫓겨 나는 문을 나섰다. 열이 얼마나 나는가 이마라도 짚어보고 싶었던 자신이 우스웠다. 아니 곁사람은 없는데 그러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그리고 누가 보면 사업토론을 하는 것처럼 보이려던 자신이 치사하기도 했다.     어쨌든 한번 보았으니 시름 놓인다. 하루만 보이지 않아도 찾게 되고 살피게 되는 사람이다. 누구는 공산당원은 특수재료로 만들어졌다고 했지만 나는 그렇지 못해서 그런지 남자가 그리운 건 속일 수 없다.      1953년 5월 4일 흐림    《모범》이라는 두 글자가 진짜 부담스럽다. 아무런 영예도 지니지 못했던 평범했던 지난날이 그립다. 시름없이 내키는 대로 일할 수 있었으니까. 지금은 너무나 떠받들리니까 되려 눈치놀음을 하게 된다. 아파도 아프다는 소리를 못하고 바빠도 바쁘다는 소리를 못한다. 《영웅》이라는 게 저 모양인가고 손가락질 하는 것 같아서… 《〈모범〉은 시작일 뿐이요. 전진의 동력으로 삼소.》     웃어른들은 이런 말뿐이다. 그 말이, 그 모범이 두 어깨를 누르는 보따리가 된지 오래다. 당의 화신이 되어 련이어 꼬리를 무는 정치운동의 선두에 나서야 한다. 나는 그것이 싫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꼭두각시, 그것이 《모범》이다. 그러니 언제 한 번 시름 놓고 발편잠 잘 수 있으랴?     이 모범며느리의 뒷바라지를 해주느라 고생하시는 아버님이 불쌍하다. 아버님도 《모범》아버님이 돼야 하니까 말이다.     나의 머리 위에 놓인 월계관은 웃어른들이 여차여차하게 하라고 시켜준 덕분이다. 나는 나를 갖고 싶다. 원초적인 나를. 나는 언제 가야 나를 갖게 될까?     오늘도 그랬다. 5.4 청년절을 맞으면서 S시 공청단위원회에서는 청년들을 조직하여 이 《모범인물》의 사적보고회를 조직했다.     회장에 들어서자 천여 명 청년들이 기립한 채 박수갈채를 보냈다. 무대 위쪽에 《전국로력모범 허인숙 사적보고회》라는 플랭카드가 가로 걸려 있고 《전국전선지원모범 허인숙 동지를 따라 배우자》, 《집단화의 선줄군 허인숙 동지를 따라 배우자》라는 플랭카드가 무대 양켠에 내리 드리워 있었다. 박수갈채와 장엄한 회장, 내 가슴도 덩달아 뛰기 시작했다. 진짜 《영웅》이구나 하는 자부심과 자랑이 그들먹 차올랐다. 이건 사적보고회의에 참석할 적마다 받아 안은 감수이자 느낌이다. 이상했다. 청취자들과 나의 호흡의 일치에서 오는 감수에서일까? 하지만 그 순간은 길지 않았다.     나의 사적보고는 이젠 한 자도 빼지 않고 틀리지 않고 류수처럼 흐른다. 너무나 많이 했고 그토록 차수가 잦았기 때문에 몽땅 외워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보고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허탈에 빠진 사람처럼 그 모든 것이 진짜 내가 한, 내 것이라는 말인가 하는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을 자신에게 들이댄다. 대답이 궁해진다. 노루꼬리만치 해놓고 서발장대처럼 늘리는 재간은 어디서 배웠는지?     그 뒤꼬리를 무는 것이 우울증이다. 하지 말았어야 할 일을 하고났을 때처럼 마음이 불안해진다.     나는 지금 그 불안을 안고 이 일기를 쓴다. 그리고 다시 묻는다. 나는 언제 가야 나를 가져볼까?         1953년 8월 3일 비 내림     오늘 또 회의에 참석하라는 구정부의 통지를 받았다.     날씨가 바람 한 점 없이 어찌나 물크는지 동구 밖을 벗어나기도 전에 이마에 땀부터 돋아났다. 시집올 때 연지곤지 찍어보고 화장과 담을 쌓고 살았던 나는 어느 때부터인지 분화장은 몰라도 크림만은 꼭꼭 바르곤 했다. 살결을 보호한다기보다 누구에겐가 곱게 보이려는 심사가 움텄기 때문이다 구정부로 가거나 S시로 갈 때면 보통 때보다 크림 한 점 더 떼 내여 바르고 얼레빗질도 한두 번 더 하게 된다. 나들이옷이라야 별 것 없지만 몇 견지 되지 않는 옷 중에서도 어느 옷을 입을까를 먼저 생각하고 입었다 벗었다 다사스런 차림새에 시간을 축낸다. 강 촌장과 한길에 나설 때면 더더욱 그렇다.     그렇게 요란스레 차려입고 나선 옷이라야 반소매 하얀 적삼에 까만 치마다.     구정부로 회의하러 가는 각 촌의 간부들도 마찬가지다. 무던한 농촌 아낙네들은 남편의 차림새에 신경전을 벌이면서 풀을 먹여 다듬이질하여 농짝에 간직했던 적삼이나 무명바지를 꺼내 입힌다. 한생 소 궁둥이를 두드리면서 농사라는 두 글자밖에 몰랐던 그들에게 때벗이를 하는 날이 구정부로 회의하러 가는 날이거나 일보러 가는 날일 것이다.     오늘 강촌장도 베적삼에 까만 무명바지를 입고 나섰는데 초모자를 쓴 모습이 한결 소박하고 우아하다. 무엇을 입혀도 보기 좋은 남성이다.     이렇게 강촌장과 나란히 동구 밖을 빠질 때면 어쩐지 회의하러 간다는 기분보다 본가집 나들이를 떠나는 그런 기분이 앞선다. 회의하러 가는 차수가 잦고 함께 다니는 때가 많아서 습관 된 본의 아닌 본의인지는 몰라도 그렇게 엉뚱한 생각을 굴리는 때가 많다.     한여름 솔개령은 말 그대로 신선한 별장이다. 눈 덮인 겨울의 솔개령은 소나무가 우거져 흰 바탕에 푸른 주단을 수놓은 병풍 같은 모습인가 하면 여름의 솔개령은 바위를 물어뜯으며 흐르는 개천과 소나무 숲을 헤집고 빠져나간 수레길을 화폭에 담은 한 폭의 거대한 벽화 같았다.     솔개령 기슭에 닿자 벌써부터 짙은 송진내가 물씬물씬 풍겨오고 신선한 풀 내음이 코를 찌른다. 참나리 꽃이 풀숲을 헤집고 얼굴을 내민 채 빨갛게 웃어주고 꺼겅―꺼겅 하는 장꿩의 울음소리, 딱딱딱 딱따구리의 나무 쪼는 소리, 삐쭁―삐쭁―드르르 삐쭁―이름모를 산새들의 노래 소리…날짐승들의 대합창이 솔개령의 풍치를 더해준다. 그래서 솔개령을 미의 극치라고 하지 않는가 싶다.     이런 솔개령이 나는 좋다. 그런데 저 무뚝뚝한 강촌장은 대자연의 이런 경치를 감미할 줄도 모르고 저만 앞서서 뚜벅뚜벅 걸어간다. 밉살스런 촌장, 소곤소곤 이야기하면서 나란히 걸어가면 누가 뭐라나? 보는 사람 듣는 사람 없는 령길인데.     또 발목을 접질렸으면 싶다. 그러면 이번에는 아예 안겨가거나 업혀갈 거야. 저 모양새를 보지? 한번 돌아보지 않고 맥없잖은가 물어도 보지 않고 수걱수걱 걷기만 하다니?     아니 철따구니 없이 내가 무슨 잡생각을 하나? 회의시간에 늦겠는데…     구에서 열린 이번 회의는 풀거름 고조를 일으키는데 대한 동원대회다. 풀대가 굳어지고 풀씨가 영글기 전에 청초를 베여 두엄을 만들라는 상급의 지시정신이다. 풀을 베여 퇴비장에 쌓아놓고 그 위에 소똥이며 인분 따위를 덮어놓으면 훌륭한 농가비료가 되는데 이런 풀거름 고조는 매년마다 있는 일이다.     매인당 풀 50단씩 베여야 한다는 전투적 임무, 그것이 오늘 회의의 주요 의정이다.     각 촌간부들이 봄 여름 고생했다며 구정부에서 개를 잡아 앉혔다. 농촌 개 추렴엔 술잔이 아니라 종지가 안성맞춤이다. 종지에 술을 부어놓고 권커니 잣커니 하면서 개고기점을 양념장에 찍어 울대가 부러지도록 꿀컥하고 넘길 때면 세상이 오락가락 한다. 그 멋에 풀밭에 머리를 틀어박고 사는지는 몰라도 시내에서는 맛볼 수 없는 신선미다.     나도 남성들의 강권에 못 이겨 몇 모금 잘 마셨다. 아니 남성들 틈바구니에 끼이니 정신을 좀 흐리고 싶었다. 몇 잔술에 알딸딸해지기 시작했다.     술좌석은 늦저녁 때에야 파장을 했다.     우리는 30리 길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부랴부랴 길을 떠났다. 《어디를 가 봐도 우리 샘물골 만한 고장은 보지 못했소. 크지는 않지만 앞에 벌을 끼고 있겠다 뒷산에는 나무가 꽉 박아섰겠다 먹을 걱정 땔 걱정 있나 부러울 것이 없소. 이제 전기만 들어오면 시내가 부럽지 않을 거요.》     아침에 솔개령을 오를 때의 강촌장이 아니다. 술이 거나해지자 말이 많아졌다. 평소에는 입을 봉한 채 웬만해서는 입을 열지 않던 분이 술 몇 잔 들어가니 변설이다. 술이 벙어리 입을 열게 한다고 그래서 그런지? 《그래요. 우리 샘물골 처럼 풍요하고 인심 좋은 고장은 없어요.》    왠지 나도 덩달아 좋아했다. 밤 산길을 남편 아닌 다른 남성과 걷는다는 거부감은 전혀 없다. 《이제 샘물골 초가집들을 몽땅 기와집으로 바꿀 셈이요. 이를 악물고 몇 년 악전고투하면 문제  없소. 자라는 애들을 위해서 학교도 앉히고.》 《좋은 생각이에요.》     나는 애들처럼 퐁퐁 뛰며 강촌장의 팔을 잡았다. 홍수 때 보았던 울끈불끈 튕겨 나온 억센 근육이 손바닥을 자극했다. 《누가 보면 어쩔라구.》     강촌장은 내 손에서 팔을 빼려고 했다. 《코앞도 보이지 않는 령길에서 누가 본다고 그래요. 가자요.》     나는 강촌장의 팔을 잡은 채 령을 올랐다. 신나는 밤길이다.     우리들이 령에 올라 방금 진대나무 쉼터에 앉았는데 이걸 어쩌나? 비가 쏟아질 줄이야. 맨 적삼 바람인 나는 삽시에 물병아리가 될 판이다. 선뜩선뜩 몸이 젖기 시작했다. 강촌장은 말없이 보자기를 풀더니 어디서 얻었는지 군용비옷을 꺼내 나에게 씌워주었다. 《강촌장은?》 《난 괜찮소. 술 뒤꼬리라 외려 시원하오.》 《그러지 말고 이리 오세요. 함께 쓰자요.》     나는 강촌장 옆에 다가가서 비옷 섶을 들고 그에게 씌워주었다. 비가 어찌나 억수로 쏟아졌던지 몇 분 되지 않는 사이에 그의 옷은 흠뻑 젖었다. 《아―유 폭 젖었구만요.》 《괜찮소.》     나는 내 몸을 그의 가슴에 밀착시키며 그의 목을 감싸 안았다. 그는 내가 하는 대로 몸을 맡긴 채 꼼짝 않고 있었다. 적삼이 비에 젖어 몸에 달라붙어 나체나 다름없는 두 육체가 한 덩어리 되었다. 식었던 두 몸체가 점점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그의 숨결이 점점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내 숨결도 높아갔다. 드디어 그의 팔이 내 허리를 감더니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순간 나도 그의 목을 꼭 끌어안으며 수염이 꺼칠꺼칠한 그의 볼에 내 볼을 갖다 댔다. 술내음과 담배내, 땀내가 섞인 그의 체취가 참을 수 없이 나의 코를 자극했다. 남성적인 체취다. 그의 손도 자연스럽게 나의 젖무덤을 파고들며 유방을 애무하기 시작했다. 세상만사가 다 잊혀지는 순간이다. 나는 정신없이 그의 입술을 감빨기 시작했다. 성에 굶주렸던 나는 미친 사람처럼 그의 육체만을 탐내고 있었다. 유방을 자극하던 그의 손이 하신으로 뻗어 내렸다. 나는 참고 참았던 신음소리를 토하고 말았다.     나는 치마의 단추를 벗겼다. 그는 비옷을 벗겨 길바닥에 펴놓고 나를 건뜩 들어 비옷 위에 눕혔다. 비는 그치지 않고 그냥 쏟아졌다. 서로의 성을 점유하려고 불덩이처럼 달아오른 우리에게는 그까짓 비가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그렇게 두 나체는 비옷 위에서 비를 맞으며 욕구를 채웠다.     그 일이 끝나고 몸이 식어지자 우리는 말없이 옷을 주어입고 그 자리를 떴다.     나는 그의 허리를 꼭 끌어안고 그의 넓은 가슴에 머리를 묻은 채 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그의 손도 내 허리를 감고 와서 적삼 속을 파고들었다. 그리고는 유방을 꼭 쥔 채 놓지 않았다. 멋진 산보요 멋진 동행이다. 나는 한 없이 행복했다.     령을 내려 석개울에 다달았다. 우리는 징검다리를 건너지 않고 물에 들어섰다. 흙 범벅이 된 신과 옷을 대충 씻기 위해서. 내가 흙투성이 된 그의 비옷을 씻고 있는데 그가 내 뒤에서 나를 덥석 안으며 두 손으로 나의 젖무덤을 움켜쥐었다. 내 몸은 다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엉덩이와 하신으로 꽛괏해진 그의 남성이 맞혀왔다. 욕정은 다시 불같이 타올랐다. 나는 치마를 걷어 올리고 속곳을 벗겨 내렸다. 그러자 그의 남성이 자연스럽게 내 육체를 향해 육박해왔다. 나는 다시 신음소리를 토해내고야 말았다. 그의 힘은 무진장했다. 죽어지질 않았다. 오래도록 오래도록…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달콤한 잠자락에 빠져들었다.     나는 여기까지 보고 일기책을 덮었다. 불확실성이 확실성을 갉아먹던 옥매듭을 풀고 보니 시름이 놓였다. 허인숙 어머니의 친아들은 문경천이 아니라 강경천인 것이다. 그러니 내가 찾아야 할 대상은 나 아닌 다른 문경천도 아니요 강경천이다. 어디 가면 강경천 씨를 찾을 수 있을까?            (연재1)          여기까지 읽는데 꼬박 이틀이 걸렸다. 여기에 적은 것은 내가 필요한 부분만을 발췌했을 뿐 실은 장편소설 분량이었다. 나는 눈을 감고 잠시 휴식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나의 귀밑 기미를 바라보며 눈을 감으시던 허인숙 어머니가 떠올랐다. 사실 허인숙 어머니의 사적도 영웅적이겠지만 이 일기는 더 영웅적이다. 그 때에 이런 일기를 쓴다는 것은, 솔직한 고백을 한다는 것은 웬만한 담력이 아니고서는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기 때문이다. 인성을 말살하는 이성문제가 정치문제를 찜쪄 먹는 혹독한 시기였으니까. 검었다 푸르렀다 하는 변덕스런 날씨처럼 수시로 변하는 사회현실 앞에서 이런 일기를 썼고 보존했다는 건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콜록 콜록… 아버지의 기침소리가 서재의 문을 두드렸다. 이상하리만치 요즈음은 아침산보도 노인활동실에도 나가지 않고 곰방대만 물고계시는 아버지다. 《너 요즘 어찌된 일이냐? 때를 제 때에 찾나 제 때에 취침을 하나 콜록콜록…》 아버지의 눈썹은 다듬지 않은 그대로다. 눈썹을 빗어 올렸을 때는 얼굴의 윤곽을 두드러지게 하면서 엄한 노인의 늠름한 풍채를 돋보여주던 것이 눈썹이 축 처져 내리니 갑절 연로해 보이고 뿌리 삭은 갈대같이 보인다. 《아버지, 요즈음 퍽 축가셨습니다.》 《내 걱정은 말구. 콜록콜록…》 아버지의 한 손에 사과를 깎아 담은 접시가 들려 있다. 사과접시가 보일까말까 떨리고 있다.     《아버지!》     《콜록콜록 저것 봐. 너를 먹으라고 깎아놓은 사과도 다 말라가고 있구나.》     《죄송합니다. 아버지.》     《몸 상한다 조심해. 콜록콜록》     아버지는 쌓여있는 일기책들을 힐끔 쳐다보더니 문을 닫으셨다. 30여 년 글을 써왔지만 아버지는 나에게 뭘 쓰느냐 어떻게 쓰느냐 하면서 한번도 물은 적이 없었다. 그저 글을 쓰고 있구나 하는 것으로 만족하시는 아버지다. 그런데 내가 지나치다 할 정도로 일기에 파묻혀 있다보니 탈이라도 생길까봐 걱정하시는 모양이다. 나는 그런 아버지가 목 메이도록 감사했다.     나는 다시 일기에 파묻히기 시작했다.      1953년 8월 15일     오늘은 용천구에서 운동대회를 하는 날이다. 광복을 맞은 날이라고 해마다 이 날이면 용천구 중심소학교 운동마당에서 축구며 씨름, 그네뛰기, 널뛰기 등 운동을 벌인다.     이 날이 우리 시골 사람에게는 제일 큰 명절이다. 우리 샘물골처럼 구정부와 제일 멀리 떨어져 있는 심심산골 사람들은 용천구로 가는 날이 서울 행차나 진배없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온 동네가 떨쳐나서서 소수레에 먹을 것을 싣고 둥―둥―북을 울리며 떠난다. 여성들은 시집올 때 입고 왔던 첫날 옷들을 꺼내 입고 북소리에 덩실덩실 춤추며 마을을 빠지는데 그 행렬이 사또행차를 방불케 한다. 수레에 전날 잡은 소고기와 큰솥, 집집마다 모은 쌀과 남새들을 싣고 그 뒤를 따르는 떠들썩하고 무질서한 대오―아직 촌 때를 벗지는 못했지만 샘물골에서는 한 해에 한 번밖에 볼 수 없는 방대한 행렬이다.     아버님은 내가 큰 마음먹고 지어드린 무명바지저고리에 손수 삼은 초신을 신고 노인들 속에 끼여 있다. 흐뭇한 모습이다. 어쩌다 하나밖에 없는 며느리를 앞세우고 울바자를 넘었으니 왜 그렇지 않으랴! 그럴수록 나는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강 촌장은 빠진 사람 없나 빠진 물건 없나 이것저것 물으며 바삐 돌아친다. 어쩌다 내 눈과 마주칠 때면 얼굴부터 붉히며 얼른 피해버린다. 그 날 저녁 일이 있은 후로 서로 마주보기를 거북스레 생각하는 서먹서먹한 사이다. 그 꺼려하는 것 같고 미안해하는 사이에 서로를 단속하지 못하는 정이 오간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욕정과 죄책감에서 방황하고 있다. 유부남을 유혹하여 간통한 창부, 군속여인과 정사를 나눈 방탕아, 이것이 우리들 서로를 묶고 있는 오랏줄이다. 그러면서도 그 날 저녁 뜨거웠던 몸체를 식힐 줄 모르면서도 이성이라는 자기마당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해탈할줄 모르는 사람들이다.     솔개령에 올랐다. 솔개령은 번함 없이 그 푸르른 몸체로 샘물골 사람 모두를 한 품에 안아주었다. 그러나 나는 이 솔개령이, 만물을 소생시키고 젊음을 주고 삶을 주던 솔개령이 늙고 지쳐서 맥없이 누워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우리들의 쉼터였던 길섶 진대나무도 구새먹어 당금 물앉아 버릴 것 같았고 비옷을 폈던 자리도 한 뼘나마 내려앉은 것 같았다. 죄와 환락의 증견인―솔개령, 나는 더 지체 말고 솔개령을 떠나고 싶었다. 그것이 마음을 달래고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출로이니까. 나는 앞서 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오늘 운동대회는 진짜 멋지게 마무리 지었다. 우리 샘물골이 몽땅 일등을 따냈다. 샘물골이 생긴 후 처음 있는 경사다.     자정이 가까워 온다. 일등을 했다고 마을에 돌아와 떠들썩하며 잔치까지 벌인 목숨들이 잠꼬대와 코고는 소리로 방안을 채우는 한밤중이다. 나는 잠들 수 없다. 잠들 수 없는 밤이다. 혹여 임신이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덜미를 잡혀 잠을 청할 수 없다. 한 번 실수에 일생을 망친다고 그 날의 실수가 내 일생을 망치는 건 아닐까?     큰절을 올리며 비오나니 임신만 시키지 말아주소서.      1953년 9월 5일 비 내림     그렇게도 빌고 빌었건만 그렇게도 기다리고 기다렸건만 오지 말아야 할 것은 끝내 오고야 말았다. 이 달 달거리가 없다. 무서운 신호다. 그것이 올 때마다 몸이 지긋지긋 해지면서 귀찮고 불편하게 여겨지던 것이 지금은 그 때가 그립다. 달거리가 있다면 만 시름 덜 것 같다.     녹비(풀 비료)를 나르느라 너무 지쳐서? 몸의 균형이 파괴된다면 건너뛰는 때가 있다는데 그래서 그런지? 반병신 되더라도 임신만 되지 않았으면…     요즈음 일손이 잡히지 않는다. 입맛도 떨어지고 가들가들 붙어 다니던 잠도 꼬리를 뺐다. 어떻게 했으면 좋을는지? 강 촌장과도 말할 수 없다. 그에게 부담거리를 안겨주고 싶지 않다. 내가 유혹했으니 나를 죽여줘야지 남까지 해칠 수 없다. 다음 달에는 있을는지 다음 달을 바라고 살아야지. 내게는 그 바람밖에 없다.     다음 달? 다음 달 일기를 먼저 보았던 나는 몸부림치며 태질하는 허인숙 여인의 아픈 상처를 보는 것 같아 힘에 겨워 손부리 아파서 다음 일기장 페이지를 넘길 수 없었다. 한 여인의 고초―사랑과 불륜, 이성과 욕구, 만족과 악과, 노출과 숨김 뒤를 무는 신음소리를 듣는 것만 같았다. 이러루한 일로 매장되고 매몰된 망각된 인간들을 볼만치 보아온 나였다. 그러니 허인숙 여인의 운명을 두고 근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운명의 신이 어떤 판결을 내릴지?      1953년 10월 18일 맑음     오래잖으면 선가을도 끝나게 된다. 그러면 옥수수밭에 곰이 들고 감자밭에 멧돼지가 들고 콩밭에 꿩이 들고 배추, 무밭에 노루 사슴이 들어 곡식과 남새를 해치는 일도 즘즘해질 것이다. 곡식들이 영글기 시작하면서 골칫거리는 산짐승들의 성화다. 옹노를 놓는다 창애를 놓는다 하면서 산짐승들을 한 해에도 수 없이 죽이지만 번식률이 얼마나 빠른지 날짐승과 길짐승들은 줄어들 줄 모른다. 콩밭에 꿩 무리가 내리고 감자밭에 멧돼지 무리가 든다 소리만 나면 웬만한 밭뙈기는 절단을 내니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청장년들은 밤새 양철소래나 솥뚜껑을 두드리면서 밭을 지켜 나선다. 그 덕에 우리 샘물골에서는 산짐승고기가 빌 새 없다. 겨울에는 올무를 놓아 노루며 산토끼를 잡아들이고 창애로 꿩을 잡아왔다. 청장년들은 몇몇씩 또아리를 무어 곰을 잡아오기도 했다. 강대거나 속이 빈 아름드리 나무속에서 동면하는 곰을 잡아온다나? 도끼며 톱, 화승총을 갖고 말이다. 그리고 곡괭이, 곽지, 삽을 들고 산에 올라 오소리 굴을 들추는데 한 번에 오소리와 너구리를 여남 마리씩 붙잡아오기도 했다. 그 뿐 아니다. 산짐승이 나드는 밭머리나 길에 창애를 놓는데 보통 멧돼지와 노루가 발이 찡겨 잡히곤 했다. 한 번은 표범이 창애에 걸려 멀리 도망치지 못하고 몽둥이찜질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샘물골은 이런 고장이다. 노루나 멧돼지, 곰을 잡은 날이면 동네잔치가 벌어지는 날이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한 집에 모여 푸짐한 산짐승고기로 한 때를 넘긴다. 뉘 집에서나 홀로 먹는 법이 없다. 아버님은 올무나 창애 놓이 능수다. 언제나 빈손으로 돌아오는 때가 없다. 아버님 덕에 우리 집은 산짐승고기가 빌 새 없다. 다 먹지 못하면 간장에 졸여 독에 넣었다가 농망기에 반찬을 하면 그것도 별미다. 보리저녁 때 쯤 나는 광주리를 들고 집을 나섰다. 주름살 잡힌 마음도 다림질할 겸 울적한 기분을 돌려도 볼 겸 머루 따러 나서는 길이다. 수심에 잠겨 집에서 앙가슴을 뜯기보다 시원한 공기라도 마시면 한결 마음 편할 것 같아서다. 간밤에 무서리가 내렸으니 머루 맛이 한창일 것이다. 나는 메밀밭골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계절은 속일 수 없고 시간은 무섭다고 하더니 얼마 전까지 산발을 빨갛게 물들였던 단풍은 검누렇게 일그러져가고 그 속에서 뭇 단풍이 비집고나와 마지막 발광체를 뽐내고 있다. 흐느러지게 익은 늦가을의 참신한 대기도, 낙엽을 띄우며 졸졸 흐르는 맑은 냇물도, 풍성한 열매도, 옥 맺힌 내 마음을 풀어주지는 못했다. 나는 지금 태산 같은 근심을 안고 이 산길을 걷고 있다. 임신이라는 큰 보따리를 이고 수레길을 따라 산을 오르고 있다. 보따리를 부리울 아무런 방책도 없이 그저 발 가는대로 무거운 몸을 맡기고 있다. 내 자취소리를 듣지 못했는지 기름기 번지르르하고 피둥피둥 살찐 송아지만한 노루 한 마리가 물을 마시고 아무런 걱정 없이 내 앞을 가로지르며 뚜벅뚜벅 산을 오른다. 저 노루만도 못한 내 신세, 저 노루처럼 나도 마음 편히 가져봤으면… 앞에서 누군가 풀대를 스치며 걸어오고 있다. 강 촌장이다. 원수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아니 원수가 아니지. 강 촌장에게 빚을 진 건 나니까. 올 봄에 농업생산합작사를 세웠으니까 강 촌장이 아니라 강 주임이라 불러야 했다. 하지만 나도 그렇고 샘물골 사람들도 그렇고 이미 굳어진 그대로 부르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그의 호칭은 계속 강 촌장이다. 강 촌장의 손에 장꿩 두 마리가 들려 있다. 아마 올무 보러 갔다 오는 모양이다. 《아니, 어디로 가는 길이오?》 《머루 따러요. 메밀밭골 어귀 머루 넝쿨에 머루가 가득 달렸던데…》 나는 이글이글 타는 강 촌장의 눈길을 피하며 말했다. 《저녁 때가 다 되었는데 머루 따러 가다니?》 나는 한 발 비켜서며 강 촌장에게 길을 내주었다. 그러자 강 촌장이 내 팔을 덥석 잡고 앞으로 끌어당겼다. 《왜 나를 피하오?》 《꼬리 길면 잡힌다는 말 몰라요?》 《혹시 몸에 이상이 생긴 건 아니오?》 《아―니 아니요.》 《항상 얼굴을 펴지 못하니까 그래서 그런가 했소. 나도 속을 썩였댔소.》 강 촌장은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담배 냄새와 땀 냄새에 전 그의 체취가 취하도록 나를 자극했다. 나는 드넓은 그의 품에 안겨 실컷 울고 싶었다. 통곡이라도 했으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질 것 같았다. 홀로 가슴앓이를 한 그 서러움을 한껏 하소연하고 싶었다. 나쁜 양반, 왜 이제야 물어요? 수염이 꺼칠꺼칠 맞혀오는 강 촌장의 입술이 내 입술을 더듬고 있었다. 《이러지 마세요. 싣걱질이 한창인데 남들이 보겠어요.》 나는 강 촌장을 밀치며 그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강 촌장도 할 수 무가내였던지 발밑에 떨어진 장꿩 두 마리를 내 광주리에 담아주고는 몸을 돌렸다. 《아버님에게 대접하오.》 그는 긴 말 없이 그 한 마디만 남겨놓고 터벅터벅 마을을 향했다. 뒤 한 번 돌아보지 않는 야속한 사람, 어쩌면 저토록 무뚝뚝할까? 거짓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 그래도 나는 그 사람이 밉지는 않다. 내 꿈속을 자주 파고드는 사람, 악몽에서 나를 깨워주는 사람, 나는 그 사람이 싫지 않다.      1953년 10월 25일 맑음     오늘은 늦감자 캐는 날이다.     장정들은 콩걷이에 나서고 더기밭에 심은 감자를 캐는 일은 여성들이 맡기로 했다.     샘물골 감자라 하면 인근은 물론 도회지에서도 소문 짜하다.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토실토실한 주먹만한 감자들, 삶으면 꽃망울 터지듯이 하얀 속살을 드러내며 소나무껍질처럼 감자껍질이 일어난다. 어찌나 잘 영글고 전분이 많은지 목구멍으로 넘어갈 때마다 목이 꺽꺽 막힌다. 거기에다 고추장을 쓱―발라먹거나 시큼한 나박김치를 밑반찬으로 하면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른다는 샘물골 감자다.      감자 캐러 갈 때면 보통 도시락을 싸지 않는다. 그저 고추장이거나 김치, 짠지 같은 것들을 들고 가면 만사대필이다. 점심 무렵이면 감자넝쿨이나 마른 풋나무를 무져 놓고 감자구이를 하는데 그 맛이 삶은 감자가 왔다 울고 간다.     더더욱 가관인 것은 구은 감자를 먹느라 볼타구니에 검댕이 칠을 하고서도 제가 저를 모르고 남을 놀려주다가 되려 놀림 당하는 웃음주머니 점심식사다. 일 하면서도 웃고 먹으면서도 웃고 항시 웃음꽃을 피우는 감자밭이다.     올해에도 더기밭에 심은 감자는 풍작이다. 호미를 박고 감자넝쿨을 당기면 주먹만큼 한 감자들이 대여섯 개씩 딸려 나오곤 한다. 감자밭은 진짜 성수나는 일터요 들썽들썽한 웃음판이다.     나도 감자알이 나오는 재미와 걸직한 아낙네들의 입씨름에 말려들어 잠시나마 나를 잊고 웃음판에 끼어들 수 있었다.     한창 일손이 잡히고 일축이 난다싶을 때 강 촌장이 헐레벌떡 감자밭으로 달려왔다.     《야―촌장이 왔다.》     감자밭에서 일시에 환성이 터졌다. 여자 입 셋이면 남자를 각을 뜨고도 남는다는 입심 좋은 샘물골 아낙네들이다. 입씨름 상대가 없어서 입방아를 찧지 못하고 속이 간지러워지던 차에 강 촌장이 나타났으니 얼싸 좋다 하는 판이다.     《강 촌장, 빈손으로 그것만 차고 오면 어쩌우?》     《남자들에게야 그것밖에 볼게 있수?》     《올해엔 낟알풍년 감자풍년이 들었는데 촌장으로 보고만 있을 수 있어요?》     《한 턱 내겠어요? 안 내겠어요?》     《한 턱 내지 않으려면 그거라도 떼놓고 가우.》     《호호호…하하하…》     더기밭에 웃음보가 터졌다.     《좋소. 좋습니다. 저녁에 한 턱 내지요. 지금 김 서기 동지가 오셔서 인숙 동무를 찾고 있습니다.》     김 서기가 샘물골에 오셨다는 소리에 일터는 물 뿌린 듯 조용해졌다. 김천수 서기가 샘물골로 오시다니? 김천수 서기는 우리 용천구 구장을 맡아 하시다가 금년 6월에 서기로 발령을 받고 S시로 간 나의 은사다.     《인숙 동무, 빨리 내려가기오.》     강 촌장이 나를 보고 나직이 말했다.     《무슨 일인데요?》     《나도 모르겠소. 빨리 내려가기오. 김 서기 동지가 기다리고 계시오.》     강 촌장의 말은 혓바닥 밑에서 새어나오는 맥 풀린 어투다.     나는 강 촌장을 따라 재를 내리기 시작했다. 앞에서 말없이 걷고 있는 강 촌장의 두 어깨가 축 처져있다. 걸음도 그 전처럼 씨엉씨엉하지 못하다.     나는 가슴이 출렁했다. 김 서기가 혹시 우리 일을 알고 찾아온 건 아닌지? 그렇지 않다면 강 촌장이 저토록 오금이 물러날 수 있을까? 순간 나의 가슴은 방망이질하기 시작했다. 나는 참을 수 없었다.     《혹시 우리 일이 탄로난 건 아닐까요?》     나는 강 촌장에게 바싹 다가서며 물었다.     《무슨 소리요? 농업사가 선 첫해라 농사형편이 어떤가 시찰 나왔던 김에 들르셨다오.》     《그런 걸 난 또…》     그제야 나는 활랑이던 가슴을 달래며 걸음을 재우쳤다.     김천수 서기는 우리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님도 계셨다. 우리들이 문을 떼고 들어서자 김 서기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손을 내밀었다. 나는 기꺼운 심정으로 나를 떠밀어주고 뒤힘을 서주시는 선생님의 미더운 손을 굳게 잡았다.     《힘들지?》     《괜찮습니다. 선생님!》     나는 언제나 공공장소나 낯모를 사람이 끼였을 때만 구장 혹은 서기라고 불렀지 단 두 사람이거나 가까운 사람이 곁에 있을 때는 언제나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힘들 거요. 힘들어. 모범이라는 두 글자가 얼마나 힘든가는 내가 잘 알고 있소.》     《선생님께 미안한 모범이 되어 죄송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인사거래를 할 때까지도 아버님은 벽 쪽으로 머리를 돌린 채 돌아보지도 않았다. 전에는 문을 떼고 들어서기 바쁘게 《이 사람 왔나?》하면서 내 손에 들려있는 쟁기거나 광주리를 받아주던 아버님이었다. 그런데 머리 한번 돌리시지 않다니? 어디 편찮거나 노여운 일이라도 계신가 봐.   《아버님!》     나는 아버님 곁에 다가앉으며 아버님의 반응을 기다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아버님이 돌아앉으며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이 사람 며느리 흑흑흑…》     아버님은 내 왼쪽 어깨에 머리를 얹으며 한 없이 통곡하는 것이었다. 나는 웬 영문인지 몰라 김천수 선생님을 쳐다보았다.     《인숙이, 큰맘 먹소. 난 인숙이가 아무리 큰 고통이라도 이겨내리라 굳게 믿소.》     《흑흑흑…이 사람 며느리, 영수가 죽었네. 흑흑…영수가 죽었어. 흑흑》     《뭐라나요?》      《인숙이, 남편이 희생됐소!》     김 서기가 눈굽을 적시며 말했다.    《아―유―아버님 흑흑…》     나는 아버님의 무릎 위에 머리를 놓고 서럽게 통곡했다. 남편이 희생되다니? 미칠 것만 같았다. 내 집 문전에 날벼락이 떨어지다니? 어쩌면 그럴 수가? 전혀 믿기질 않았다.     《난…난…흑흑흑 난 누굴 믿고 사나? 우리 집 기둥이 내려앉았어. 흑흑…우리 집 기둥이…흑흑…》     《아버님―흑흑흑…》     《인숙이, 참소 참아. 아버님을 위로해드려야 할 인숙이 이렇게 울면 아버님은 어쩌우? 독자아들을 잃은 아버님을 생각해야지.》     김 서기가 내 어깨를 흔들며 달랬다. 선생님 말씀이 옳았다. 곁 사람의 그 어떤 위로의 말도 아버님의 눈물을 멎게 하고 아버님이 눈물을 닦아드리지 못하리라.     《아버님 흑흑흑…》     《이 사람 며느리 흑흑흑…》     아버님은 너무나 안타까워 내 두 어깨를 잡고 흔들며 낙루하셨다.     아버님과 나는 한참 통곡하고 나서야 울음소리를 그치고 어깨만 들먹거렸다.     《인숙이. 인숙이는 보통사람이 아니오. 모범공산당원이오. 비통을 힘으로 바꾸오. 난 꼭 그러리라 굳게 믿소. 이건 서기로서가 아니라 은사로 하는 부탁이오.》     《선생님, 흑흑 절 믿어주세요. 흑흑…》     《믿소. 과거에도 믿었고 지금도 믿고 있으며 앞으로도 믿을 거요.》     김천수 서기는 그제야 열사증과 붉은 비로도천에 곱게 싼 훈장-1급 영웅훈장, 1급 국기훈장, 군공메달 등 남편의 업적을 말해주는 훈장들을 내놓았다.     《정전시각을 두 시간 앞둔 어느 한 전투에서 한 치의 땅이라도 빼앗기지 않으려고 부상 당한 몸으로 마지막 진지를 고수하다가 놈들의 맹폭격에 목숨을 잃었다오. 문영수 동지는 영웅이오. 우리 시에서는 문영수 동지의 영웅업적을 따라 배우는 고조를 일으킬 것이오. 영웅 남편과 영웅 아내 인숙이는 2중 영웅의 화신이요. 당은 인숙 동지를 믿고 있소. 영웅의 아내답게. 영웅답게 살리라고 말이오.》     《…》     나는 대답을 올리지 못했다. 당 앞에 죄지은 여인이기 때문이다.     《강 주임, 술 한 병 얻어오오.》     《녜, 김 서기 동지.》     그 때까지 바당에 서서 손등으로 눈물을 씻고 있던 강 촌장이 김 서기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문을 나섰다.     김 서기는 손수 밥상을 깨끗이 닦아 윗방 벽 쪽에 붙여놓고 벽에 걸려있던 남편의 사진을 벗겨내 상 위에 세워놓았다. 남편이 참군하면서 찍은 독사진이다. 나는 그 사진을 확대해 액틀에 넣어 벽에 걸어두었었다. 남편이 그리울 때마다 쳐다보던 사진이다. 두 달 전 그 일이 있은 후로 미안한 마음에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던 사진이다.     나는 김 서기의 갖춤 새를 눈치 채고 얼른 일어나 깨끗한 사발에 정수를 담아 상 위에 올려놓았다.     《술잔도 깨끗이 닦아 가져오오.》     《녜, 흑흑흑…》     나는 술잔과 수저를 깨끗이 씻어 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 때 강 촌장이 소주 한 병을 들고 들어섰다.     《영광스럽게 희생된 문영수 열사에게 술 한 잔이라도 붓고 싶어서 이렇게 제사상을 마련했소. 인숙이, 세상 뜬 남편에게 먼저 부어 올리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술병을 들고 술을 부었다. 그리고는 큰절을 올렸다.     《여보세요. 흑흑…나를 두고 왜 먼저 가셨어요. 흑흑…》나는 엎드린 그 채로 땅을 치며 통곡했다. 그대로 영영 일어나지 못하고 죽어버렸으면 싶었다. 살고 싶지 않았다. 강 촌장이 울고 있는 나를 부추켜 세웠다. 그제야 김 서기가 제사상 앞에 정중히 다가서더니 내가 부은 술잔의 술을 유상 앞에 골고루 뿌려놓고 술을 부었다.     《문영수 동지는 우리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있을 것입니다. 고이 잠드십시오.》     김 서기는 말을 마치고는 머리 숙여 묵도를 했다. 그 묵도가 흐느낌으로 비애를 톱질하는 집안의 분위기를 더 짙게 하고 있었다.     강 촌장의 차례다. 강 촌장이 술을 붓고 절을 올렸다.     《영수야, 네가 죽다니? 흑흑흑…이 송아지 친구야 흑흑…》     강 촌장은 엎드린 채 머리를 땅에 쪼며 통곡했다. 그 통곡소리는 그토록 애절하고 슬펐다. 눈물에 젖은 그 통곡소리는 용서를 비는 친구의 통절한 외침처럼 나의 고막을 때렸다.     추도식 아닌 추도행렬이 꼬리를 물었다. 샘물골은 물론 인근 마을, 용천구에서 조문객들이 쓸어들었다.     밤이 깊었다.     아버님도 나도 잠들지 못하고 있다. 잠들 수 없는 밤이다. 너무나 큰 재화가, 너무나 큰 불행이 운명을 희롱하면서 우리 집 기둥뿌리를 빼가고 삭막한 사막에 우리 두 사람을 내동댕이친 것이다.     나는 유상을 쳐다보았다. 남편은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은 내 가슴에 비수를 박고 오장육부를 칼탕치고 있었다. 어쩌면 남편은 나 때문에 희생된 것 같았다. 내가 지은 죄의 보답인 것 같았다. 그 죄의 대가는 너무나도 엄청났다.     《그래, 남편은 나 때문에 죽었어. 아니 내가 죽였어.》     허파가 미여지도록 올리미는 이 아픔은 무섭도록 목구멍을 지져댔다.     《이 악착한 아내를 용서해주세요. 아니 진정 나를 생각한다면 이 자리에 벼락이라도 내려주세요. 흑흑…》     나는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벽에 기대 아들의 유상을 멀거니 바라보면서 한숨만 풀풀 내쉬고 있는 아버님만 아니어도 나는 서슬이라도 마셨을 것이다. 곁에 일점혈육 없는 아버님, 외로운 아버님을 홀로 두고 나는 그 길을 택할 수 없다.     《이 사람아, 이젠 내려가서 눈 좀 붙이게나. 죽은 건 죽었지만 산사람이야 살아야지?》     《아버님, 오늘 저녁엔 제가 남편을 지키겠으니 아버님이 내려가 쉬세요. 그러다 아버님까지 몸져누우시면 전 어떡해요. 흑흑…》     《호로 자식, 부모 먼저 죽는 것이 제일 큰 불효라는 것도 모르고 흑흑…》     《사람이 불효나요? 눈 먼 총알이 불효지요. 흑흑…》     이렇게 우리는 눈물과 한숨, 비애와 통곡, 후회와 절망이라는 비극 속에서 그 한밤의 막을 내렸다. 다음 비극은 또 언제 들이닥칠는지?       1953년 10월 26일 맑음       나는 호미를 들고 더기밭에 나타났다. 모범이 돼서 남편의 열사증을 받은 이튿날로 일밭에 나타난 것도 아니요, 일손이 딸려서 감자 캐러 나온 것도 아니다. 집을 지키고 있자니 눈물뿐이고 남편의 유상을 바라보면 후회와 죄책감뿐이기 때문에 좀처럼 불안한 마음을 다잡을 길 없었다. 지금 내 유일한 안위와 휴식은 일손을 놓지 않는 것이고 아낙네들 틈새에 끼는 것이다. 그래서 호미를 들었고 그래서 더기밭을 찾았다.     신문사와 방송국 기자들이 나를 찾아 더기밭까지 왔다. 사진을 찍는다 이것저것 묻는다 전혀 일손을 잡을 새 없이 나를 콩마당질했다. 진짜 귀찮았다.     아낙네들은 기자들이 내려왔다고 감자를 굽는다 사진에 낼 좋은 감자를 고른다 엉덩이를 붙일 새 없이 북새판을 벌렸지만 나의 기분은 저기압이었다.     《허인숙 동지, 무슨 힘이 열사증을 받은 이튿날에도 일밭으로 나오게 했습니까?》     《비통을 힘으로 바꿔야지요.》     나는 선생님이 부탁하던 말 그대로 앵무새처럼 옮겨놓았다. 사실 그 말은 내 말이 아니었다. 진짜 내 말은 《집안에 박혀 울고 있기보단 일밭에 나오는 것이 마음 달래는데 나을까 싶어서요》였다. 그런데 기자들 앞이라 그 말을 하기가 쑥스럽기도 하고 나답지 못하다고 여겨 그렇게 말했다. 나답지 못하다? 그럼 너는? 나다운 것이 무엇인가? 남편과 갈라진 지 2년, 그 2년을 참지 못해서 군서방질 하는 화냥년? 그래서 남편을 잡아먹은 갈보? 사실 나다운 나는 두 달 전에 벌써 죽어버리고 없다. 진짜? 두 달 전 솔개령에서의 내가 나다운 내가 아니었을까? 뼈가 있고 살이 있고 피가 있는 나, 그것이 외피를 쓰지 않은 내가 아니었던가? 옛날의 허인숙과 지금의 허인숙 그것이 진짜 허울과 면사포만 남은 허인숙이 아닐까? 그런 나에게 지금 기자들이 내려와서 왕관까지 씌우려든다. 잘 짜여진 연극이다.    《허인숙 동지, 금후의 타산은 어떻습니까?》    《기자 동지, 나에게서 더 좋은 말을 들으려니 말고 구운 감자나 실컷 자시고 가세요. 저는 기자 선생님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훌륭한 여성도 아니고 대단한 인물은 더더욱 아닙니다. 진짜 취재를 하려거든 여기에서 감자를 캐고 있는 모든 여성들을 찾으십시오. 저 여성들이 나보다 열 배나 훌륭한 분들입니다.》     이건 내 진심이었다. 적어도 인격적으로 나보다 나은 여성들이니까. 그뿐 아니다. 솔직하게 말한다면 내 《모범》이라는 두 글자 가운데의 한 글자는 샘물골 여성들의 몫이다.     기자들의 취재가 얼마나 불안스러웠던지 오늘 밤 나는 오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한다. 엎친 데 덮친다고 남편에 대한 슬픔과 기자들이 던지고 간 불행까지 안고 자야 한다.       1953년 10월 28일 진눈깨비     우리 샘물골은 교통이 불편한 심산에 묻혀 있다보니 그 날 신문을 이튿날에야 배달받는다. 그러니 우리 샘물골에서는 신문이지만 벌방이거나 도시에서는 구문이다.     더기밭 감자를 다 캐고 구덩이를 파서 묻고 나니 진눈깨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하늘이 도왔는지 때마침 일손을 털게 되었다. 호미귀에 찍혔거나 상한 지스러기 감자들을 한 광주리씩 나누어 이고 집에 이르니 이른 저녁때다.     내가 저녁 채비를 서두르는데 강 촌장이 신문을 들고 들어섰다. 희색이 만면하다.     《이것 보오. 어제 신문에 굉장히 실렸소.》     강 촌장이 신문을 내밀며 환희와 기쁨이 담긴 그러면서도 그 희열은 혓바닥 밑에 감추며 말했다.     나는 신문을 받아보았다. 아니 이게 어찌된 일인가? 신문 첫 면에 《영웅 남편, 영웅 아내》라는 큰 활자가 박힌 제목과 함께 감자무지와 감자 캐는 샘물골 여인들을 배경으로 한 나의 감자 캐는 사진이 큼직하게 박혀있지 않은가? 꺼림직 하고 바라지 않던 일은 이렇게 끝내 터지고야 말았다.     나는 글줄을 훑기 시작했다. 영웅된 남편의 열사증을 받은 그 이튿날 샘물골 여인들을 이끌고 감자 캐러 나섰다는 둥 비통을 힘으로 바꾸어 대생산열조를 일으켰다는 둥 좋은 소리라는 좋은 소리는 다 박혀 있다. 심지어는 모범이라는 두 글자 가운데의 한 글자는 샘물골 여인들의 몫이라는 나의 말을 인용하면서 나의 겸손성을 말이 모자라서 더 춰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왜 나를 칭찬하고 춰올리는 신문기사를 보고 배신감까지 가지게 되었을까? 그 전에도 이랬던가? 아니다. 《임신》이라는 핍박감과 《과부》라는 열등감이 없었다면 나는 별다른 의미 없이 그 기사를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깨가 으쓱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처지가 달랐다. 격이 높아지고 소문 높을수록 《임신》이라는 무거운 족쇄를 벗기기 더 힘겹기 때문이다. 이미 풀어버리기 어려운 위치에 놓여있고 그 일 때문에 지쳐있지만 말이다.     《너무나 한심해요.》     나는 신문을 홱 뿌리쳤다. 더는 다시 보고 싶지도 않았다. 오래지 않아 신문에 실릴 열사의 아내가, 영웅의 아내가 임신했다는 놀라운 기사를 보는 것 같아서.     《아니 왜 이러우? 그래도 난 분조별로 독보가지 시킬 타산을 했는데.》     《뭐래요? 서푼 어치도 가지 않는 일을 가지고 와짝 고우려구요?》     《우리 샘물골 영광인데 서푼 어치도 가지 않다니?》     《제발 빌어요. 나를 조용히 있게 내버려두세요.》     《그래도 난 인숙이를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거라고 생각했소.》     《제발 이러지 말아주세요.》     《알겠소. 알겠소.》     강 촌장은 마치 죄지은 사람처럼 내 눈치를 살피며 문을 나섰다.     눈치 무디기는? 남성들은 다 저런가? 샘물골을 쩡쩡 울리며 합작화의 길에서 탱크처럼 내밀던 때가 엊그제인데 한 여자 앞에서 저토록 주눅이 들다니? 솔개령 석천에서 나를 덥석 끌어안던 그 용기와 사내대장부의 기백은 어디로 갔는지? 사랑에 빠진 남성들은 채찍을 들었던 손에 노예라는 방패를 든다더니 그래서 그런가?     서리 맞은 호박잎처럼 시래기상이 되어 문을 나선 강 촌장을 생각하니 어쩐지 마음이 불안했다. 가련하고 측은한 생각까지 들었다. 내가 너무했잖아?     내가 씨암탉을 잡아 앉히고 부엌아궁이에 불을 지키고 있는데 아버님이 신문을 들고 들어오셨다.     《이 사람, 자네 또 신문에 났네. 신문에 났어!》     주름을 펴지 못하고 계시던 아버님의 얼굴에 어쩌다 화기가 돌아 있었다. 나의 사적이 신문에 실리거나 방송에 오를 때마다 흐뭇해하시던 아버님이다. 어제 그제 아들의 열사증을 받고 때시걱을 전폐하다시피 수저를 들지 않던 아버님이 신문에 실린 이 며느리 때문에 구겨진 주름살을 펴고 있다. 그런 아버님이 자랑스럽고 고맙다. 하지만 나는 감히 머리를 쳐들고 아버님을 정시할 수 없다. 친손자가 아닌 다른 씨종자가 내 배속에 들어있다는 것을 알면 아버님은 어쩌실까? 기절초풍할 것이다. 나는 그것이 두렵다.     《아버님, 오늘도 일 나가셨어요.》     《어쩌겠나. 저 녀석을 잊으려면 일밖에 없는 걸, 휴…》     《잊으셔야지요. 저를 생각해서라도 잊으셔야 해요.》     나는 눈물을 깨물어 먹으며 겨우 입을 열었다.     《시간이 가노라면 차차 잊어지겠지. 그런데 휴…》     《아들을 잊기 전에 아버님이 몸져눕겠어요.》     《나는 괜찮네. 자네나 몸조리 잘하게.》     이 이틀간 아버님과 어쩌다 가져보는 긴 대화다. 남편의 열사증은 오순도순 오고가던 우리의 이야기마저 앗아가 버렸던 것이다. 밥상을 마주하고 《어서 드세요.》《자네 먹게나.》하는 두 마디 말로 싱갱이질 하다가 밥술을 드네 하고 수저를 놓고 마는 것이 그간 오고갔던 전부의 말이나 진배없었다.     오늘 저녁 아버님은 어쩌다 닭고깃국 한 사발을 다 드셨다. 나도 닭고기 몇 점 씹었지만 입 안이 쓰거워나면서 좀체 닭고기 맛이라고는 나지 않았다. 오늘 저녁에도 나는 수저를 드네 마네 했다. 입덧하는 년처럼 식욕도 없고 기아감도 없다.     밤이 깊어간다. 윗방에서는 아버님의 코고는 소리가 들린다. 닭고기에 두 냥 술, 그 두 냥 술이 아버님의 잠을 되찾아준 모양이다.     나도 자리를 펴고 누웠다. 오늘 밤엔 악몽에 시달리지 않을런지?     1953년 11월 28일 눈 내림     이제는 행여나 하는 그 한 가닥 여린 희망마저 버려야 한다. 젖통이 탱탱 불어나고 젖꽃판이 연분홍색으로 변하고 젖꼭지가 커지기 시작했다. 입덧은 나지 않았지만 이 모든 증상은 임신을 확인해주었다. 임신이 무엇을 말해주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나에 대한 일종 사형선고다. 그러니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뱃속에 든 애를 지워야 한다.     이것은 말없는 사형판결이다. 내가 살려면 뱃속의 애를 죽여야 하고 뱃속의 애를 살리려면 내가 죽어야 한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이 한 가닥  뿐이다.     우리 샘물골에서는 오늘 오전에야 벼 탈곡을 마무리 지었다. 벌방에서는 벌써 탈곡을 끝냈을 테지만 우리 골연에서는 탈곡장을 새로 닦는다 소똥물매를 놓는다 하는 바람에 일이 처져 있었다. 땅에 모래가 많다보니 소똥물매를 놓지 않고는 낟알에 모래알이 섞여서 전혀 타작을 할 수 없다. 그 물매가 마르거나 얼기를 기다려야 하니 일이 처질 수밖에 없다. 하늘도 알아봐줬는지 벼 탈곡이 끝나자마자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기 시작했다. 탈곡을 마친지라 남성들은 술추렴에 곤드레만드레 고주망태가 되었고 아버님도 술이 과하셨는지 낮잠에 푹 빠져 있다.     나는 이때다 싶어 메밀밭골을 향해 타발타발 령을 오르기 시작했다. 인적기가 끊어진 틈을 타서였다.     나는 돌아서서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하늘도 눈, 골짜기도 눈, 마을도 눈, 샘물골 전체가 하얀 비단에 덮여 있다. 지금 샘물골은 눈의 세례를 받으며 포근히 잠들고 있다.     뉘 집에선가 연기가 몰몰 피어오르고 있다. 강 촌장 집이다. 오늘 강 촌장 집에서 돼지를 엎어놓고 동네잔치는 벌였다. 마을의 술고래들이 아직도 술상을 차고 있는 모양이다.     눈이 내린다. 하얀 눈이 발목을 덮는 해솜 같은 눈을 밟으며 나는 메밀밭골 어구로 걸어가고 있다. 늦가을 머루 따러 갔을 때 여름 홍수에 핥기운 한길나마 되는 언덕을 보았던 것이다.     눈이 내린다. 비단결 같은 눈이, 나는 머리를 들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씻고 또 씻고 바래고 또 바래여 하얗다 못해 푸르스름하게 보이던 눈이 검푸른 점들이 되어 내 얼굴에 내려앉는다. 밑창 난 하늘에서 끝없이 쏟아지는 눈꽃이다. 선뜩선뜩 달아오른 나의 얼굴을 시원스럽게 물어뜯는다. 사르륵사르륵 얼굴에서 녹아내리는 눈꽃살의 마지막 신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꺼겅 꺼겅… 먹을 곳을 잃은 꿩 무리들이 산기슭에서 방향 없이 날아 친다. 노루들도 갈팡질팡이다. 내일쯤이면 올무군들과 창애군들은 산토끼와 노루, 꿩잡이에 나설 것이다. 눈이 내리기를 바라는 산골의 《포수》들이니까.     길섶 나뭇가지들을 스칠 적마다 가지를 타고 그네를 뛰던 눈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내린다. 나는 머리에 덮쌓이는 눈을 털 생각도 않고 강 언덕을 찾아 눈길을 헤친다. 시큼한 나박김치와 김치물로 때시걱을 치르다시피 한 나는 지치다 못해 한 발짝 떼기조차 힘들다. 다리에 모래주머니를 찬 것 같다. 주저앉고만 싶다.     개울언덕도 눈 속에 자기의 험상궂은 형체를 감추고 있다. 홍수에 핥기고 뜯기고 빗물에 볼품없이 엉망이 되었던 언덕, 그 언덕도 하얀 화장을 하고나니 예쁘장하게 보인다.     나는 언덕 코숭이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한 길 푼한 깊이가 눈 뿌리 아찔하게 깊어 보인다. 마치 단두대에 올라선 기분이다. 이제 곧 살인이 시작될 판이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아래로 뛰어내렸다. 털썩하는 순간 아래배가 찡하면서 아팠다. 만약 사형수가 내 유치한 꼴을 봤다면 들었던 칼을 내리고 코웃음 칠 것이다. 살인을 꿈꾸는 여자가 한다는 짓이 고작 한 길 푼한 언덕에서 뛰어내리는 것이라고, 그래도 나는 그 언덕과 성공적인 뛰어내림에 큰 기대를 품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저녁 나는 유산하는 꿈을 꾸며 굳잠에 빠졌다.          1953년 11월 29일 맑음     하혈하기 시작한다.     무서우리만치 피가 흐른다.     미처 어쩔 새가 없다.     나는 손에 쥐는 대로 베개수건을 벗겨들고 바당문을 나섰다. 눈이 내린 뒤라 초겨울 새벽 날씨는 살을 에이 듯 맵짰다. 몸이 쪼그라드는 듯 오싹해난다.     변소에 들어서기도 전에 왈칵하고 핏덩이가 쏟아져 내린다. 성공, 드디어 성공이다. 석 달 동안 고뇌와 번뇌, 근심과 걱정으로 모대기던 혹을 떼어버린 것이다. 이젠 만 시름 덜고 예전의 나로 되살아날 수 있다.     날 것 같다. 나는 너무도 기뻐 《야―》하고 소리친다. 제 소리에 놀라 눈을 뜨고 보니 꿈이다.     온몸에 땀이 흥건히 배었다. 나는 배를 만져보았다. 하혈은 커녕 아무런 진통도 없다. 남들은 얼음 강판에 미끄러져 넘어져도 유산한다는데 이건 어떻게 생겨먹은 녀석인지 언덕에서 뛰어내려도 악착같이 달라붙어 있다.     사지가 나른해지면서 움직일 맥도 없다. 현실을 너무나도 무시한 행운의 꿈이 이토록 나를 멀리 내동댕이치다니? 꿈마저도 나를 희롱하고 가들가들 붙어있는 희망의 연줄을 끊어버리다니? 이것이 내가 여성으로 돼보고 싶었던 여성으로 해보고 싶었던 그 순간의 보응이라는 말인가? 한 순간에 있었던 희열은 엄청난 대가를 요구하고 있다. 휴― 사람은 누구나 다 같으련만 왜 나만이 모든 인간들이 다 갖고 있고 가져야 할 가장 평범한 속성마저도 외면해야 하는가?     나의 양쪽 눈귀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린다.     덜컥 방문이 열렸다.     아버님이 머리를 내밀고 나를 살펴보며 물었다.     《이 사람, 어데 아픈가?》     《아니요. 아버님.》     나는 얼른 눈물을 훔치며 일어나 앉았다.     《헛소리까지 치는걸 보니 몸이 말이 아니네. 오늘 나와 같이 병원으로 가게나.》     《아니. 아무렇지도 않아요. 꿈을 꿨나 봐요.》     《꿈?》     《네. 꿈에 그 이를 봤어요.》     《허참. 언제 가야 잊혀지겠는지…》     아버님은 혀를 두르며 방문을 닫으셨다.     엉뚱한 거짓말에 저절로 얼굴이 붉어졌다.     언제부터 이렇게 아버님 앞에서 거짓말을 슬슬 거침없이 하게 되었는지 나도 놀랄 일이다. 돈 일전을 더 써도 아버님 앞에 고스란히 말씀 올리던 나였다. 거짓말은 나의 본의가 아니다. 그러던 내가 이처럼 천연덕스럽게 변하다니? 가혹한 현실의 핍박은 나를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게 했다. 그러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으니까.     아버님은 조반을 마치자 신들메를 조이더니 사랑채에 걸어놓았던 올무와 창애, 콩단을 메고 집을 나섰다. 눈 내린 뒤 토끼발작이거나 노루발작을 발견하면 그 토끼와 노루는 영낙없이 사냥꾼의 것이 된다는 올무군들의 말이 우리 샘물골에서는 격언처럼 떠돌고 있다. 짐승, 발작 찾기엔 첫눈이 제격이라나? 아버님은 그래서 아침 일찍 떠나신 모양이다. 창애를 놓을 땐 눈에 묻은 창애 근처에 콩대를 꽂아놓으면 꿩들이 콩대를 보고 날아든다나? 겨울 노루잡이엔 올무도 좋지만 찰코가 제격이란다. 노루가 잘 내리는 콩밭이거나 무밭에 찰코를 묻고 그 위에 콩대를 꽂아놓지 않으면 무 잎, 배추 잎을 널어놓으면 그걸 먹다가 찰코에 다리가 걸린단다. 그래서 우리 집엔 타작하지 않은 콩단과 말리지 않고 푸른 잎 그대로 얼궈 둔 무 잎과 배추가 이듬해 봄까지 보관된다.     포수들이 왔다가 울고 간다고 소문난 아버님은 오늘 아침처럼 짬만 나면 산에 오르거나 산짐승들이 잘 내리는 밭을 찾으신다. 산짐승 잡이가 아버님의 유일한 취미니까.     내가 시집오기 전 해에 상처하신 아버님은 내가 그토록 새 어머님을 모셔오자고 해도 아들이 돌아온 다음 보자고 하면서 딱 잡아떼는 것이다. 며느리를 두고 늙은 것들이 동방화촉을 켤 수 없다는 것이다. 오십대 중반밖에 이르지 않은 아버님이 왜 여인이 그립지 않으랴. 하지만 외롭게 보내는 이 못난 며느리를 생각해서 재취를 거절했던 것이다.     그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목이 멘다. 그런 아버님 앞에서 거짓말을 하고 능지처참 당해도 시원찮을 죄를 짓고…     내가 아침상을 치우고 한창 돼지죽을 끓이고 있는데 급시에 개들이 짖어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바당문을 내다보니 온 마을의 개가 몽땅 앞산 기슭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다. 개 무리를 십여 미터 앞둔 곳에서 노루 두 마리가 달리고 있었다. 눈 내린 뒤라 먹을 것을 찾아 노루가 마을에 내려왔던 모양이다. 이렇게 멋모르고 마을에 내려왔다가 얼음 강판에 들어서면 영락없이 잡히고 만다. 우리 샘물골에선 강판에 들어선 이런 노루들을 한 해에 한두 마리씩 잡곤 했다. 내가 정신없이 남산을 바라보고 있는데 강 촌장이 눈에 언뜻 했다. 나는 재빨리 바당문을 닫고 바당에 들어섰다. 가슴이 방망이질하기 시작했다. 뱃속에 죄악의 씨앗을 품고 있으면서도 항상 꿈속을 파고들고 하루만 보이지 않아도 궁금증에 눈이 온 마을을 훑는 나다.    《문 노인 계십니까?》    아니나 다를까 강 촌장이 바당문을 떼고 들어섰다.   《아버님은 어데 가셨수?》    바당에 우두커니 서있는 나를 보자 강 촌장이 물었다.   《산에 가셨어요?》    내 소리 떨어지기 바쁘게 강 촌장이 나를 와락 품에 안았다.    《인숙이, 제발 나를 버리지 말아주오. 왜 나만 보면 피하는 거요? 응?》     《누가 들어오겠어요. 이러지 말아요.》     나는 강 촌장을 밀치며 말했다. 아니 밀치는 척하면서 강 촌장의 가슴에 머리를 묻었다. 수염을 깎지 않아 얼굴은 거칠었지만 물씬 풍기는 체취는 코에 익은 그대로다.     《얼굴에 잠이 돋고 수척해진 인숙이를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팠소.》     《후회하지는 않구요.》     《후회하지 않소. 단두대에 오른대도 후회하지 않을 거요.》 강 촌장의 손이 내 젖무덤을 더듬기 시작했다. 나는 얼른 그 손을 뿌리쳤다. 부풀어 오르고 팽팽해진 유방을 만지우고 싶지 않았다. 아니 만지우고 싶었지만 강 촌장이 눈치 챌까 봐 겁났다. 한 사람의 고통을 두 사람이 나눌 수는 없었다.     《누가 보겠어요.》     《인숙이, 내일 새벽에 시내로 공량 바치러 가는데 함께 가기오. 시내 큰 병원에 가서 병을 보이오. 면상을 보니 병이 들어도 단단히 든 것 같소.》     《잠을 설쳐서 그래요. 전 괜찮아요.》     《남편을 잃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야…》     《안심하세요. 좀 지나면 나을 거예요.》     《너무 고집부리지 마오. 공량수레를 따라 가기오.》     《안심하라는데요.》    나는 얼른 구들에 올라섰다. 둘이 그렇게 마주 서있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우선 내가 나를 장담할 수 없었다. 여자가 임신하면 남자를 더 생각하게 되고 남자는 여자를 멀리한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강 촌장이 더 그리워지거나 보고 싶을 때가 많다. 전도와 일생을 망쳤다고 속으로 욕설을 퍼부으면서도 말이다.     《내일 날 밝기 전에 떠날 거요. 잊지 마오.》     강 촌장은 나를 보고 눈을 껌벅했다. 그리고는 문을 나섰다.     아버님은 점심 드시러 오시지 않았다. 이른 조반을 들고 나가셨는데 얼마나 초기 드실까? 나는 점심상을 차려놓고 아버님 들어서기만을 기다렸다. 벽시계가 오후2시를 가리켰다. 그래도 아버님의 기척은 들리지 않았다. 불길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나는 옷을 꾸둥쳐 입고 문을 나섰다.     아버님은 해마다 콩밭자리를 찾아다니며 창애를 놓곤 했다. 틀림없이 더기밭 콩밭 자리에 가셨을 것이다. 나는 숨을 달달 끓이며 더기밭 오르막길에 들어섰다. 한 자 넘게 내린 눈이 지쳐버린 발을 휘감는 통에 온 몸은 삽시에 물자루가 돼버렸다.     내가 더기밭에 거의 오를 무렵 그제서야 아버님은 장꿩 두 마리를 들고 내려오고 있었다.     《아니, 자네 어찌된 일인가?》     《아버님이 오시지 않아서…》     《허참, 샘물골 골골을 눈감고도 다닐 수 있는데 나를 찾아오다니 쯧쯧… 그 땀을 보게나.》     《지금 몇 시인지 아세요? 초기 드시겠어요.》     나는 아버님 손에 들려있는 꿩을 받아 쥐며 말했다.     《더기밭에 창애를 놓고 노루 올무를 놓으러 산에 갔다 오니 이런 장꿩이 치웠지 않겠나? 얼마나 신나던지? 큰 눈이 내렸으니 꿩들이 굶어 먹거리가 보이면 정신없이 달려든다는 말이네 허허허…》     《그래도 때시걱이야 제 때에 드셔야지요.》     《아침에 암탉을 잡아 자네 몸보신시킬까 하다가 꿩이 낫다기에 나섰더니 운이 텄네. 운이 텄어. 허허허…》     아버님은 시름없이 웃으셨다. 남편의 열사증을 받은 후 처음 들어보는 명쾌한 웃음이다. 그 웃음에 내 마음도 홀가분해졌다. 우리는 이렇게 웃으며 령을 내렸다. 오늘 밤은 꿈자리가 좋을 것 같다. 강 촌장과의 만남도 좋았고 아버님의 꿩 사냥도 좋았으니까.    1953년 12월 30일 흐림     태동에 잠을 깼다. 놀라운 잠을 깼다.     놀라운 일이다.     무서운 징조다.     그간 언덕에서 뛰어내린다. 돼지 울 담장에서 굴러 떨어진다. 강판에서 넘어진다 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보았지만 뱃속의 씨앗은 떨어지긴 커녕 그냥 자라고 있었다. 어디 그 뿐인가. 금계랍을 먹으면 애를 지울 수 있다기에 금계랍을 먹으니 눈이 잘 보이지 않고 귀에서 소리가 나고 메스꺼워 다른 병을 얻지 않았나 후회하기도 했고 수면제를 콱 먹으면 된다기에 수면제를 먹고 하루 낮 하루 밤을 정신없이 잠 속에 빠져버리기도 했고 설사약을 콱 먹으면 내리민다기에 설사약 과다복용으로 사흘간 연속 설사를 해봤지만 악종이 돼서 그런지 태아는 붙어서 떨어질 줄 몰랐다. 이렇게 자비약과 자비방법을 쓰며 끌어오다가 태동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기갈이 일 지경이다. 몸꼴이 날까 봐 배에 천을 탱탱 감고 다녔고 숨쉬기 바쁠 정도로 유방을 꼭 싸고 다닌 나였다. 이제는 어떻게 한단 말인가? 뾰족한 수가 나지지 않는다.     자살? 나로서는 그 길밖에 더는 없다. 세상을 웃기기보다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는 것이 더 편할 것이다. 한생 손가락질 받으며 살기보다 한생 잠들어 버리는 것이 더 행복할 것이다.     내가 생명을 놓고 티격태격 하고 있는데 강 촌장의 부름소리가 들려왔다.     《문 노인 계십니까?》     나는 얼른 이불을 감싸 안았다.     언제나 그랬듯이 강 촌장은 대답소리를 기다리지 않고 문을 떼고 들어섰다.     《아니, 아직 일어나지 않았댔구만.》     《웬 일이세요?》     《김 서기께서 급히  올라오라는 전갈이 왔소.》     《무슨 일로요?》     《그건 나도 모르겠소. 서두르오.》     강 촌장은 더 서있기가 민망스러웠던지 얼른 문을 열고 나갔다. 시 당위서기가 나를 부른다. 무슨 일일까? 나는 그 진의를 해몽할 방법이 없다. 나는 아침 설거지가 끝나는 대로 길 채비를 했다. 나는 퇴근 무렵에야 중국공산당 S시 위원회 청사에 이르렀다. 김천수 시위서기는 그 때까지 퇴근하지 않고 계셨다.     시위서기의 사무실은 간소하고 소박했다. 테이블과 소파 몇 개 그것이 전부였다.     《오 인숙이, 이 눈길에 고생 많았지?》    《괜찮았어요. 선생님!》     미더운 은사의 앞에서 나는 당금 애로 변한 심정이었다.     《자, 피곤할 텐데 앉소.》      김 서기는 소파를 가리켰다. 그리고는 보온병의 차물을 고뿌에 부어 내 앞에 놓았다.    《선생님, 웬 일로 부르셨습니까?》     나는 이 사무실에 들어설 때까지 품고 왔던 궁금증에 다짜고짜로 이렇게 물었다.     《급하기는? 콩밭머리에서 두부를 찾겠소. 그래 샘물골 형편은 어떻소?》     언제나 그런 것처럼 김 서기는 자신의 용무를 말씀하기 전에 상대방의 형편부터 먼저 물어봤다. 이것은 그의 굳어진 습관이다.    《지금 동기부업으로 한창 가마니를 짜고 있어요.》    《그것 잘 하는구만. 겨울철만 되면 먹고 마시면서 놀아치는 악습을 고쳐야지.》     김 서기는 내 옆에 앉으면서 장한 얼굴빛을 보냈다.    《내가 왜 인숙이를 불렀는지 아오?》    《무슨 일인데요?》    《좋은 일이지. 좋은 일이야. 이번에 우수한 농촌간부 한 명을 골라 성당교로 학습 보내라는 성당위의 지시가 내렸소. 우리 시위에서는 재삼 연구하고 토론한 끝에 인숙이를 보내기로 했소.》    《저를요?》    《그렇소. 가능하게 인숙이의 일생에서 한 번밖에 없을 행운의 기회요.》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런 몸으로 학습을 가다니?     《안 됩니다. 선생님. 제가 떠나면 아버님은 어떻게 합니까?》     《근심할 필요 없소. 시 당위에서는 그것까지 다 고려하고 내린 결정이오. 학습기한은 반년, 반년동안 아버님을 강 촌장이 맡기로 했소.》     《안 돼요. 아버님은 저를 떠나서는 한시도 마음 붙이고 있지 못해요.》    《오늘 오전 전화로 아버님의 허락까지 다 받았소.》     그 말에 나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더 변명할 건덕지가 없다.    《못 가겠어요.》    《못 가겠다? 이건 당의 수요이며 당의 결정이오. 인숙이는 언제부터 당의 말을 거역하기 시작했소?》     김 서기의 예리한 눈길이 나를 해부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하면서 나는 감히 시위서기의 얼굴을 쳐다볼 수 없었다.     그 전에 내가 김천수 선생님에게서 글을 배울 때도 그랬다. 어머님과 싸우고 도시락을 들고 오지 않고 등교하거나 잡념에 빠져 시간집중을 하지 않거나 동학들과 말다툼하고 정서가 소침할 때거나 한번도 김 선생님의 눈길에서 벗어나본 적 없었다. 선생님의 눈길은 틀림없는 나침판이었고 저울이었으며 수술칼이었다. 나뿐 아니라 동학들 모두가 그러했다. 그 누구도 선생님의 눈길에서 도망칠 수가 없었다.     지금 그 눈길이 나를 저울판에 올려놓고 있다.    《김 서기 동지, 용서하세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당의 결정을 받들지 못하겠어요.》    《이유는?》    《전…전… 갈 수 없는 몸이에요.》    《갈 수 없는 몸이라?》    《녜.》    《어디 아프기라도 한거요?》    《녜.》    《무슨 병이요?》    《…》    《임신이지?》     선생님의 물음은 그 어떤 차림새거나 갖춤 새를 갖추지 않은 단도직입이었다. 그 물음은 예리한 비수가 되어 내 심장을 박았다. 더는 거짓말 할 수도 회피할 수도 없었다. 눈물부터 앞섰다.    《선생님, 전… 전… 어쩌면 좋아요. 흑흑흑…》    나는 옆에 앉아계시는 선생님의 팔을 붙잡고 마구 흔들다가 끝내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지금까지 참고 참았던 고뇌, 혼자만이 속을 썩이고 뇌장을 칼탕치던 번뇌를 울음 속에 용해시키며 엉엉 울었다. 내가 실컷 울 때까지 선생님은 말씀 한 마디 없이 앉은 그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애 아버지는 누구지?》    《…》    《나는 너의 선생님이자 입당소개인이다.》    《…》    《내 추측이 틀리지 않는다면 강 촌장이지.》    《선생님. 강 촌장에게는 흑흑 … 죄가 없어요. 흑흑… 제가 유혹했어요. 흑흑흑…》     나는 강 촌장과의 관계를 한 마디 거짓 없이 고스란히 다 말했다. 선생님의 물음에서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섯 달에 난다는 말이지?》    《흑흑흑…》    《이 우둔한 것아. 그걸 왜 이제야 나한테 말하느냐? 이 선생이. 이 입당소개인이 이 시위서기가 미덥지 않아서?》     김 서기는 성나서였던지 아니면 섭섭해서였던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더니 뚜벅뚜벅 방안을 거닐기 시작했다.     《인숙아, 네가 어떤 사람이고 네가 어떤 자리에 있는 여성이라는 것을 진짜로 알았다면 넌 절대 그런 오류를 범하지 않았을 거야. 너 자신만이 아니야. 너의 영광은 나의 영광이자 우리 조선족의 영광이야. 네 몸에 조금이라도 피가 섞인다면 그건 우리 조선족의 불행이요 수치다. 너는 그래 이런 수학적 계산도 몰랐단 말이냐?》     《선생님! 흑흑흑…》     《나도 너에게 솔직한 고백을 하고 싶다. 일년도 되지 않는 시간 내에 구장에서 일약 시위서기가 된 사람은 나밖에는 없을 것이다. 내가 남들보다 일을 더 잘하거나 많이 해서일까? 아니다. 너 같은 사람을 너 같은 우리 조선족의 자랑거리를 육성해냈기 때문이다. 그러니 네가 나에게 준 힘과 덕은 내가 너를 배워준 그 모든 것을 합친 것보다 더 많고 크다. 그렇다 하여 지금 네가 범한 오류를 묵과하거나 용서하고 싶지는 않다.》     《선생님, 흑흑… 절 죽여주세요. 전 죽고 싶어요.》     《그런 말은 나약한 사람의 입에서만 나오는 말이다. 어쩔 수 없을 때 하는 변명과 같은 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죽고 싶다니? 그것도 공산당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냐?》     《흑흑흑…》     《인숙아. 지금 너 괴롭지? 하지만 너보다 더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선생의 마음 무지무지 괴롭다. 제자가 출세했을 때 제자가 영예를 따냈을 때 선생님보다 더 기뻐한 사람은 세상에 없었을 것이다. 부모의 기쁨도 선생님의 기쁨을 따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제자가 오류를 범했을 때 제자가 잘못된 길을 걸었을 때 제일 고통스러워하는 사람 역시 선생님이다.》     김천수 서기는 다시 일어나 뚜벅뚜벅 방안을 거닐기 시작했다. 무언가 깊이 사색하면서… 그러더니 내 앞에 와 발걸음을 멈추고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인숙아, 이건 우리 두 사람만이 알고 있는 비밀로 하기다. 그리고 빨리 샘물골을 떠나거라.》     《녜? 흑흑흑…》     《그렇게 놀라지 말고 애를 해산할 때까지만 피해있으란 말이다. 샘물골에는 내가 성으로 학습을 간다고 할 테니까 근심할 것 없다. 흑룡강성 밀산현  양강에 나의 육촌 형이 있는데 해산할 때까지 거기에 있거라. 김옥선이라고 이름을 고치고 참고 있으면 된다. 갈 때 내가 편지 한 장 써줄 테니 모든 것이 안전할 거다.》     《흑흑흑…》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해산 후 애를 남에게 주는 것, 금후 묻지도 말고 찾지도 말고, 알겠나?》     《선생님, 저도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 흑흑…》     《어서 말 하거라.》     《아까도 말씀 올렸지만 강 촌장에게는 죄가 없어요. 어떠한 처분도 내리지 말아주십시오.》     《강 촌장을 처분하려면 자연 인숙이를 거들어야 하는데 그런 못난 짓을 어떻게 하나? 안심 하거라.》     《알겠습니다. 당에 누를 끼쳐 죄송합니다.》     《이건 내 개인의 결정이 아니라 당의 결정이라는 걸 명심하오.》     우리의 이야기는 이것으로 매듭지었다.     그날 저녁 김 서기는 나에게 맛있는 저녁 한 끼를 마련해주고 잠자리까지 배치해주었다.     《빨리 떠날 채비를 하오. 며칠 후 내가 비서를 내려 보내겠소.》     《감사합니다. 선생님!》     《이번 일은 탄로되면 절대 안 되는 극비요. 극비!》     김 서기는 극비라는 두 자에 못을 박으면서 나와 갈라졌다. 멀어져가는 선생님의 뒷모습이 평형을 잃고 있었다. 몹시 지친 모습이었다. 어깨를 축 떨구고 비칠거린다 할 정도로 걸어가시는 선생님이 측은해보이기까지 했다. 나 때문에 선생님도 고뇌의 진창길을 걸어가고 있었으니까. 《선생님, 이 은혜를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나는 나 때문에 휘청거리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다지고 또 다졌다.     다지고 또 다졌다. 진심에서? 진심이었다. 그때만은 진심이었다. 살 구멍을 찾아 헤매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던가? 죽지도 못하고 살지도 못하고 쥐구멍을 찾아 헤맬 때 구명은인이 나타나 빛을 주었을 때 허파를 뚫고 쏟아지는 세포들의 외침이 은혜를 절대 잊지 않겠다는 발악에 가까운 소리가 본심이 아니고 무엇이랴?     탈피를 하고 싶다고, 자기대로 살고 싶다고, 자기를 갖고 싶다고 자아와의 전쟁포고를 한 지 얼마 되는데 살기 위해, 남부럽잖은 인간으로 둔갑하고 싶어서 스스로 목에 오랏줄을 걸다니? 상급의 《관심》은 사실상 더 무서운 《철쇄》라는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나는 그렇게 밖에는 더 할 말이 없었다. 그 일에 절대 잊지 않겠다는 본의면서도  본의 아닌 그 말을…     밤이 깊었다. 오늘밤엔 또 어떤 꿈이 날아들는지?  
9    우산은 비에 운다(2) 댓글:  조회:1156  추천:26  2009-03-04
2 유서      덜컥거리는 차체의 심한 요동에 나는 눈을 번쩍 떴다. 택시가 포장도로를 벗어나 울퉁불퉁한 산길에 접어든 것이다. 약수동이 멀리에서 안겨왔다. 폐허처럼 변하고 있는 간도의 많은 농촌들이 그렇듯이 약수동도 몇 호 되지 않는 붉은 기와집 틈새에 낀 게딱지같은 초가집들이 발발 기어 다니는 한산한 마을이다.     20여 년 전, 내가 취재차 약수동을 다녀왔을 때만 해도 약수동은 리갑장네 검은 기와집을 빼놓고는 기와집을 구경할 수 없는 초가들 뿐이었지만 봄이면 노랗게 이영을 예고 가을이면 지붕 위에서 박이 뒹굴고 고추다래가 벽을 빨갛게 수놓았던 몇 십 호 잘되는 살기 좋은 오붓한 마을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몇 채의 붉은 기와집은 내노라 했지만, 허물어졌거나 문짝이 나뒹구는 빈집들이 초라한 나체를 드러내고 있는 통에 신통히도 산과 물이 뒤바뀌고 집과 하늘이 거꾸로 선 철부지의 서툰 한 폭의 그림처럼 보였다. 마을은 그렇듯 헝클어져 있었다. 많은 조선족 농촌들이 황폐화 되고 있듯이 약수동도 태질하면서 악을 썼지만 빈곤이라는 엄청난 시련앞에서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많은 녀성들이 도시로, 연해지구로, 외국으로 돈벌이를 떠나는 통에 총각마을이 늘고 있는 잔인한 현실임에랴.     약수동 로인휴양소는 개울물 언덕 바라지에 보기 좋게 앉아있었다. 붉은 담장 속에 묻혀있는 《∪》자형의 아담한 이 벽돌집은 자녀가 없는 외로운 로인들을 위해서 정부에서 지어준 집이다. 의지가지 없는 로인들이 천년 약수를 마시며 복하게 오래오래 앉으시라고.     택시는 살풍경을 이룬 마을 진창길에 코를 박으며 기우뚱 기우뚱 숨 가쁘게 기어가고 있었다. 이 길에도 내 발자국이 찍혀있으련만… 하늘을 안고 무너져가는 마을을 바라보며 나는 몸을 움츠렸다. 한기가 등골을 타고 흐르는 것 같았다. 그런 속에 그래도 목숨들이 숨어있다고 개들이 짖어대고 통나무연통에선 아침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다. 산간마을의 고요를 짓뭉개버리며 울리는 승용차의 엔진소리에 집집들의 바당문이 삐걱삐걱 열리며 밤새 죽어있던 더부룩한 머리들이 불쑥불쑥 문틈을 비집고 나타난다.     나에게는 그들을 살펴볼 용기가 없었다. 보지 못할 것을 보았고 보지 말았어야 할 것을 본 것 같은 수치감에 그들을 외면한 채 로인휴양소만 응시하고 있었다. 어쩐지 내가 발가벗긴 그런 초라하고 불쌍하고 가련한 존재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흙탕물에 뒹굴고 난 듯한 택시는 개울을 넘어서자 언제 그랬더냐싶게 부르릉 하고 몸체를 떨면서 대바람에 로인휴양소 언덕받이에 올라섰다. 휴양소의 철문은 열려진 채로였다. 마당에는 푸른 십자가가 붙은 하얀 구급차가 서있다. 급보를 받고 병원의사들이 왕진을 온 모양이다.     구급차를 보는 순간에야 나는 《어머니》라는 생각에 화들짝 놀라며 차문을 열고 뛰어 내렸다. 무슨 힘에? 무엇 때문에? 나도 몰랐다. 그 순간 일체가 보이지 않았고 일체가 들리지 않았다. 그저 어머니, 어머니뿐이었다. 어머니라는 자기마당이 그토록 무서운 힘으로 나를 잡아끌다니? 자동차의 엔진소리 멎기 바쁘게 서른 남짓한 녀인이 끌신을 발에 건 채 문을 박지르고 달려왔다. 《문경천 선생이시죠?》     전화에서 익혀왔던 , 나이를 찜쪄먹을 앳띤 목소리의 임자였다. 《녜, 그렇습니다.》 《오실 줄 알았어요. 꼭 오시리라 믿었어요.》     녀인은 무턱대고 내 손을 잡아끌면서 기쁨 절반 슬픔 절반을 반죽하며 말했다. 《전화에서 말씀드렸지만 전 어머니가 한 분 뿐입니다.》 《그러지 마시고 어서 환자부터 만나보세요. 만나보시면 알게 될 거예요.》     나는 녀인에게 끌려 로인이 거처하고 있다는 10호실에 이르렀다.     10호실 문 앞에는 옷을 대충 추려 입고 나선 로인들 10여 명이 옹기종기 모여 방안의 동정을 살피고 있었다.     모르긴 해도 10호실 안에서는 심상찮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핏기를 잃은 산송장 같은 그들 모두의 얼굴에는 오래잖아 자신들 앞에 차례질 10호실 안을 두고 자신들의 내일을 걱정하고 근심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죽는 것을 아까워할 나이를 벌써 넘긴 로인들이건만 죽어야 한다면서 죽지 못하는 것이 인생이요 산다하면서 살지 못하는 것이 삶의 천칙이려니 그 이들도 생명의 자대 앞에서는 무기력한 모양이다. 아니, 그래도 더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는 것이 생명의 원초가 아닌가 싶다. 《돌아가 쉬시라는데 왜 이러구들 계세요. 빨리 제 방으로 돌아가세요.》     30대 녀인이 문을 막아 선 로인들을 보고 말했다. 그제야 로인들은 무표정한 장승같은 모습 그대로 말없이 우리들에게 길을 내주었다. 나는 녀인의 뒤를 따라 10호실에 들어섰다.     북쪽 켠에 뻗어있는 현관을 등지고 남쪽에 자리잡고 있는 10호실은 깨끗하게 꾸며진 단칸방이다. 한쪽 구석에는 로인이 시집올 때 갖고 온 혼수인지 구리 못이 총총 박힌 낡아빠진 옛 농짝 하나가 당그랗게 놓여있고 창문턱엔 함박꽃이며 들국화 등 들꽃들을 심은 화분 몇 통이 보기 좋게 자리지킴을 하고 있다. 꽤 아담한 방이다. 작은 바닥에는 무드기 쌓여있는 토막토막 패놓은 장작개비가 인적기를 더해주면서 안식처라는 기분을 돋구어준다. 작은 부엌 아궁이에서는 그때까지 찌직찌직 소리 내며 장작이 타고 있었다. 마치 이 방 주인의 숨결처럼…     로인은 요위에 반듯하게 누운 채 눈을 꼭 감고 있었다. 링겔 주사약이 소리 없이 로인의 팔로 흘러들고 있었다.     의사는 우리들이 들어선 것도 모르고 청진기를 환자의 가슴에 댄 채 숨을 죽이고 있었고 간호사는 혈압을 재느라 여념이 없다. 나는 의사와 간호사의 말없는 거동에서 환자가 경각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었다.     바로 저 이였다. 아들이라고 나를 찾은 분. 요위에서 죽은 듯이 누워있는 분이다. 어머니하고 내가 찾아온 분. 모자(母子)이던 우리 모자는 만나지 말았어야 할 시각, 만나지 말았어야 할 곳에서 이렇게 만났다. 《할머니, 할머니! 문경천 선생님이 오셨어요. 아드님이 오셨어요!》     30대 여인은 다짜고짜 조용히 눈을 감고 가쁘게 숨을 톺아올리는 로인을 흔들며 소리쳤다. 어디선가 본 듯한 낯익은 얼굴이다. 어디서였던가? 《할머니, 정신 차리세요. 아드님이 오셨어요!》     그 소리에 죽은 듯이 누워있던 환자가 눈을 버쩍 뜨고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예기치 않았던 순간의 그 눈빛은 환자에게서는 볼 수 없고 볼 수 있으리라고는 누구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생명의 환희로 빛나는 그런 찬연한 빛이었다. 고기붙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피골이 상접한 그 야위디 야윈 몸체에서 누렇게 뜨고 산세포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을 그 면상에서, 맥이 진해 겨우 한 번씩 톺아올리는 그 숨결에서, 어디에도 목숨이 숨어있을 곳 없는 동체에서, 그렇듯 강하고 그렇듯 힘찬 열광이 쏟아져 나오다니?     바로 그 눈빛의 임자였다. 허인숙 어머니, 나를 친자식처럼 아껴주고 사랑해주던 그 어머니다.     1969년 말 내가 하향지식청년으로 S시 샘물골 집체호로 내려갔을 때 강제로동을 하면서 매일 새벽 《요강 내놓으시오》하고 소리치며 오줌통을 메고 다니시던 어머니, 말밥에 오르고 사악한 인심에 몰리면서도 항상 집체호를 잊지 않고 찾으시던 어머니였다. 비 오는 날이면 비 오는 날마다 땔나무가 젖지 않나 빨래를 걷어 들였느냐 하면서 비닐 천을 쓰고 맨발바람으로 집체호를 살펴보시던 어머니였다.     그해 겨울, 겨울나무를 할 때였다. 그날 나는 독감에 걸려 산으로 나무하러 가지 못하고 숙사에 홀로 누워 있었다.     연기에 몸이 떨리고 사지가 쏴나면서 꼼짝할 수 없었다. 그때 허인숙 어머니가 닭곰탕을 해들고 집체호로 오셨다. 《어서 먹게. 고뿔은 밥상머리에 내려앉는다지 않았나?》 《어머니…》     나는 목이 메여 뒷말을 끌어올리지 못했다. 이때까지 어머니의 사랑 한번 받아보지 못하고 자라온 나였다. 친어머니가 몽땅 되찾아갔고 빼앗아갔던 어머니의 사랑, 그 사랑을 허인숙 어머니가 되돌려 주고 있었다. 그 감격으로 나는 그 때 허인숙 어머니가 노동개조 대상이라는 것마저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저 어머니로 보였을 뿐이었다. 《집에 양친은 다 계시지?》 《아니, 아버지뿐입니다. 어머니는 저를 낳고 산후풍으로 돌아가셨답니다.》 《산후풍? 워낙 연길에 있었댔소?》 《아니요. 흑룡강성 밀산현에 있었습니다.》 《밀산현? 몇 살이지?》 《열일곱, 1954년 6월 8일생입니다.》 《6월 8일?》     어머니의 두 눈길이 나의 얼굴에서 멎은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지심이라도 꿰뚫을 듯한 그런 강한 눈빛이 나의 얼굴을 투시하고 있었다. 현란한 빛이었다. 찬연한 빛이었다. 휘황한 빛이었다. 《아니?》 《아무 일도 아니야. 어서 먹게나!》     하지만 나는 숟가락을 들다말고 놓아버렸다. 적들의 사탕폭탄에 절대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민병련장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했기 때문이었다. 감정의 포로, 인정의 포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단순한 생각 때문이었다.     내가 숟가락을 놓자 어머니의 눈길이 맥없이 처져 내렸다. 삽시에 광채를 잃고 당혹감까지 갖게 하는 그런 서글픈 눈길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왜 먹지 않지?》     나는 허인숙 어머니의 그 눈길을 마주 볼 수가 없어 돌아누우며 어머니를 외면해버렸다. 《알겠네. 알고 있어! 흑흑흑…》     흐느낌 소리가 들려왔다. 흐느낌 소리가 점점 멀어져갔다.     지금 나를 쳐다보고 있는 허인숙 어머니의 눈길이 바로 그때 나를 지켜보던 그렇듯 광채를 휘뿌리던  눈길이다. 나는 그 눈빛을 피할 길 없었다. 아니 피하고 싶지 않았다. 만약 이제 그 눈빛을 피한다면 천당으로 오르는 로인의 마지막 눈빛을 영원히 잃을 것 같아서 나는 로인의 팔을 잡으며 감격에 목 메여 소리쳤다. 《어머니!》     처음으로, 난생 처음으로 불러보는 어머니였다. 얼마나 불러보고 싶었고 얼마나 바라마지 않던 신성한 이름인가! 한 번만이라도 불러봤으면 원이 없겠다던 그 이름, 가슴오리에 꼭 품은 채 고이 간직하고 관 속으로 들어가겠다던 그 이름, 내 어머니가 아니라 남의 어머니를 앞에 두고 나는 평생의 소원을 다 담고 그 이름을 뱉고 말았다.     이 어머니도 나처럼 여리디 여린 가슴 속에 자식이라는 이름 두 자만을 간직한 채 자식의 이름 한 번 불러보지 못한 기구한 운명을 타고났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남의 자식도 제 자식이라고 찾으시는 어머니, 나는 그런 어머니 앞에서 친자식이 되어주고 싶었다.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다.     년로하고 맥이 진해 더는 아들을 도와줄 수 없게 되자 어머니를 료양소에 뿌리쳤을 그 문경천이라는 개자식에 대한 울분을 어머니라는 따뜻한 이름 속에 묻어두고 아들이 되어 어머니라고 부르고 싶었다. 이건 진짜 내 허파의 공기통마다에서 공명을 불러일으키며 나온 목소리였다. 아니 어머니의 임종을 맞은 친자식의 외침이었다. 《어머니! 문경천입니다.》 《문…경…천…》     어머니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들릴까말까 입술을 놀리며 마른 소나무 가지 같은 앙상한 손을 움직이는 것이었다. 나는 얼른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 따뜻했다. 온기가 숨어있을 틈바구니가 없을 것 같은 마르고 거친 손에서 따사로운 체감이 내 전신에 흘러들었다. 정말 기적이었다. 송장이나 진배없는 마르고 마른 어머니의 손에서 따스한 온기를 느끼다니?     로인은 내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 눈길은 내 얼굴의 모공 하나 눈썹 한 가닥 놓칠세라 참빗질하기 시작했다. 한 초 한 초… 시간은 지체 없이 흘렀다. 하지만 내 마음의 초침은 언제 어떻게 멎을지 몰랐다. 그토록 초조한 순간순간이었다. 가짜 아들이라 하여 주저하거나 미안한 마음에서가 아니라 로인의 눈에 담겨진 시계태엽이 얼마나 오래 동안 지속될 수 있을까 하는 그 근심 때문이었다.     내 얼굴을 각 뜨던 로인의 두 눈이 내 귀밑에 붙어있는 동전만큼 큰 기미에 와서 딱 멎었다. 한참 나의 귀밑 기미를 지켜보던 로인은 안간힘을 쓰면서 내 손을 꼭 잡고 소리치는 것이었다. 소리래야 들릴 듯 말 듯했지만 나는 어쩐지 그 기진한 소리가 귀벽을 후려치는 외침으로 느껴졌다. 《경…천…아…》     로인은 내 이름을 부르며 몸을 반쯤 일으키다가 털썩 쓰러지고 말았다. 순간 뚝뚝 혈관 속으로 흘러들던 링겔액 방울이 멎었다. 심장이 박동을 멈춘 것이다. 하지만 로인의 두 눈은 그냥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어머니! 어머니!》     나는 애타게 어머니를 부르면서 몸을 흔들었다. 그러나 내 부름소리에 화답한 것은 멈춰선 맥박과 식어가는 로인의 사체였다. 나는 나를 지켜보고 있는 어머니의 두 눈을 내리쓸었다.   《이젠 내 연기는 끝났습니다. 내가 맡은 배역을 제대로 수행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내 나름대로 열심히 했습니다. 진짜로 했습니다. 세상을 하직하는 한 운명의 소원 하나 들어주지 못 하겠나 해서 말입니다. 아니, 집체호 때 받은 사랑 전부를 간직한 채 말입니다. 서툴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세상 뜬 분이 친아들이었다는 것을 믿으면서 눈을 감았으면 하는 그 바램뿐이었습니다. 그 믿음으로 마지막 숨을 거두셨다면 저는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휴양소에 계시는 로인들이 사망한 분에게 상수를 입히는 동안 나는 소장실에서 30대의 그 녀인에게 말했다. 밖에서 《허인숙, 허인숙, 허인숙!》하고 혼을 부르는 소리가 문 짬을 비집고 들어왔다. 저렇게 혼을 부르는 소리를 들어본 지도 몇 십 년에 난다. 옛날 까막골에 살 때 들어보고는 들어보지 못한 혼을 부르는 소리다. 석쉼하고 거친 소리이기는 했지만 동료의 죽음을 슬퍼하는 애잔한 맛이 신경을 조이는 그런 목소리였다. 시내에서는 벌써 사라졌지만 로인들이 계시는 곳이라 잊혀지고 잃어가고 있는 우리의 풍속이 뒤꼬리를 무는 모양이다. 시내에서야 죽으면 이튿날 화장터에 들어가 한 줌의 재로 되지만 이 곳 약수동 로인휴양소에서만은 그 초혼(招魂)이 되살아 있다. 《아니,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방금 사망한 분이 누구신지 아시겠어요?》 《알고 있습니다.》     집체호에서 나를 친아들처럼 보살펴주었던 어머니, 남편을 군에 보내고 전선을 지원하기 위해 녀성으로 첫 지탑을 잡고 밭갈이에 나섰고 합작화의 길에서 첫 호조조를 무었다는 녀인, 그 녀인을 왜 모르랴!     나는 소학교 어문교과서에서 배웠던 허인숙 어머니의 빛나는 사적을 잘 알고 있었다. 소학교 2학년 조선어문시간, 《조선족 여인의 자랑―허인숙》이라는 과문을 배울 때였다. 허인숙 어머니의 사적이 얼마나 나를 감동시켰던지 나도 크면 허인숙 어머니처럼 되겠다는 작문까지 썼고 그 작문이 벽보판에 실리기까지 했었다. 허인숙 어머니는 우리 조선족의 자랑이었고 본보기였다. 그런 어머니가 방금 내 앞에서 내 손을 꼭 잡은 채 소문 없이 숨을 거두다니? 그것도 나를 아들이라면서… 《잠시나마 그런 훌륭한 어머니의 아들이 된 것을 자랑으로 생각합니다. 적지만 세상 뜬 분에게 제사상이라도 차려 올려주십시오.》     나는 돈지갑에서 백 원짜리 두 장을 꺼내 녀인 앞에 놓으며 말했다. 《떠나시려구요?》 《네. 집에서 로부가 기다리고 계십니다. 저에게도 어머니날을 기쁘게 해드려야 할 아버지가 계십니다.》 《잠깐만.》     약수동 로인휴양소 소장은 서랍을 열더니 편지 한통을 꺼내 나에게 넘기면서 말했다. 《허인숙 할머니의 유서입니다. 꼭 문선생님에게 전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유서?》 《녜. 저는 바빠서 나가봐야겠어요. 여기에서 조용히 유서를 보세요. 그리고 저를 기다려주세요.》     녀인의 말에는 여지가 없었다. 가야 한다는 나의 말에 기분을 잡쳤는지 아니면 아들 배역이 끝나지 않았다고 쐐기를 박는지 상냥하던 말씨가 무뚝뚝하다 할만치 꼬리가 달려있지 않았다.     나는 편지봉투를 살펴보았다. 두꺼운 종이를 손수 접어서 만든 자작 편지 봉투였다. 겉봉에는 아무것도 써 있지 않고 文京天(문경천)이라는 이름만 적혀있을 뿐이었다. 글씨는 오불꼬불 볼모양 없었지만 볼펜을 꼭꼭 박은 흔적을 봐서 정성을 담아 쓴 것이 틀림없었다. 봉투는 밥풀로 단단히 밀봉되어 있었다.     나는 편지 겉봉을 뜯어야 할지 말지 좀 자르며 망설이고 있었다. 필경 나 아닌 다른 문경천에게 남긴 편지겠는데 내가 봐서 되겠는가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남의 편지를 뜯어본 적이 없다. 아내에게 오는 편지도 밀봉된 봉투 채로 고스란히 넘겨주는 그런 유형의 남자다.     10호실에서 들려오던 떠들썩한 소음도 잠잠해지고 휴양소에 목숨들이 붙어있는지 의심할 정도로 정적이 감돌기 시작했다. 어느 로인의 흐느낌 소리인지 가담가담 눈물 섞인 흑흑 하는 소리만 들려올 뿐이다. 그 흐느낌 소리는 못 견디게 나의 갈비뼈를 물어뜯으며 뇌장을 육장으로 만들고 있었다. 나는 그런 정적이 싫었고 흐느낌 소리가 싫었다. 《빨리 이곳을 빠져 나가자. 숨 막히고 답답한 이곳을 떠나 자유자재로 나를 지배할 수 있는 내 서재로 가자.》     나는 휴양소 소장에게 떠난다는 쪽지 한 장 남겨두려고 상 위에 있는 일력 한 장을 떼어냈다. 그리고는 볼펜을 찾아들었다. 그 때 노크 소리도 없이 문이 빠끔히 열리며 머리가 백발인 로인이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상수는 다 입혔으니 상주께서 과목(過目)해주십시오.》     상주? 초상난 집 호상도감이라더니 이거야 진짜 나를 두고 한 말이 아닌가? 상주라니? 아들도 친척도 아닌 내가 어찌 상주가 된단 말인가? 원체 내가 이곳을 찾아온 것부터 잘못이었다. 어머니라고 부른 것은 더더욱 잘못이고. 그러니 로인들이 나를 상주로 모실 수밖에야. 나는 《아들》이라는 집게에 딱 집혀 오도가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곤경에 빠지고 말았다. 그렇다고 비운에 젖어있는 로인들 앞에서 나는 진짜 아들이 아니라 가짜 아들이라고 구구절절 설명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나는 마음을 다잡기 시작했다. 내가 이름 모를 한 어머니를 위해서 진짜 아들이 됐다면 휴양소의 모든 아버지 어머니들을 위해서 끝까지 진짜 아들이 돼주겠다고.     나는 백발로인의 안내를 받으며 10호실에 들어섰다. 허인숙 어머니는 하얀 치마에 버선까지 곱게 신은 채 칠성판 위에 누워 있었다. 검은 오리 하나 찾을 수 없는 비단실 같은 머리도 곱게 빗어 올려 깨끗한 원래의 모습 그대로를 칠성판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헝클어지고 적삼 앞섶이 벌려졌던 링겔을 달고 있을 때의 그런 헝클어진 모양새가 아니었다. 대자연과 모진 세파 속에서 바래고 바랜 하얀 넋을 지닌 배달민족의 녀인다운 녀인이었다.     나는 무릎을 꿇고 허인숙 어머니를 내려다보았다. 한때 세상을 호령하고 땅을 주름잡던 로영웅도 숨을 거두니 완연한 보통백성이었다. 어떤 힘이 이 녀인을 《무쇠녀인》으로 만들었을까? 어떤 희망이 이 녀인에게 철의 날개를 달아주었을까? 어렸을 때 내가 그토록 흠모하던 어머니, 나는 또 다시 그 어머니의 친아들이 되어 어머니의 얼굴에 백포를 씌워주었다.     장례는 간단했다. 추도식도 번다하지 않았다. 향에서 향장을 비롯한 부녀회 주임, 민정위원 등 10여명이 참석했고 S시에서도 민정국 부국장을 대표로 파견했을 뿐이었다. 그러니 나까지 합해서 겨우 20여명의 추도객이 모였을 뿐 조촐한 추도행렬이었다.     빛나는 과거와 가련한 종말…그때 내 머리를 때린 것은 이 한 마디였다. 지나간 역사를 되새길 수는 없지만 허인숙 어머니가 바친 대가가 촌장이거나 자그마한 과장 나부랭이들만 못하다는 말인가? 나는 몇 해 전에 S시의 한 국장 부친의 장례식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 장례식을 보고 놀라마지 않았었다. 국장 본인도 아니요 아무 이름도 없는 부친이 사망했는데 그 시의 향과 진마다에서 당서기가 아니면 향장이 출마하고 다른 국들에서 국장들이 참석하다보니 동원된 승용차와 버스만 해도 몇 십 대나 되었다.     허인숙 어머니의 장례와 판이한 대조를 이루는 장례식이었다. 무엇 때문에? 무엇 때문에? 연결고리처럼 떨어지지 않고 꼬리 무는 의문부호들이 어리둥절할 지경으로 내 머리를 혼잡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이름을 날렸다가 이름 없이 사라진 허인숙 어머니를 기억이나 하고 있을지…지금쯤 어머니날을 맞아 부모를 모시고 가정에 단란히 모여앉아 웃음꽃을 피우고 있을 자식들, 처자식을 거느리고 소나무밭에서 푸짐한 음식파티를 벌였을 부모들, 공원의 벤치에 나란히 앉아서 달콤한 사랑에 빠져있을 청춘들…그들은 오늘의 그들을 위해 뼈와 살을 몽땅 바친 허인숙 어머니를 기억이나 하고 있는지?     내 마음은 울적했다. 마치 내 친어머니가 모욕 받고 치욕을 당한 그런 느낌이었다. 거꾸로 흐르는 세상, 거꾸로 된 세상, 혼탁한 세상…     간단한, 아주 간단한 장례가 끝나자 나는 곧추 연길로 돌아오려고 했다. 그런데 약수동 로인휴양소 소장인 그 30대의 녀인이 손을 꼭 잡는 바람에 좀체 빠져나올 수 없었다. 《약수동으로 가자요.》 《이젠 제가 해야 할 아니 할 수 있는 모든 일이 다 끝나지 않았습니까?》 《아니예요. 끝나지 않았어요.》 《또 있습니까?》 《있어요. 허인숙 할머니가 남겨놓은 유물이 있습니다.》 《유물?》 《녜.》 《그 유물이 나와 무슨 상관입니까?》 《문선생님에게 물려주신 거니까요.》 《이거 무언가 잘못돼도 한참은 잘못됐습니다. 오해라도 무서운 오해입니다.》 《잘못됐건 오해건 저는 허인숙 할머니의 유언대로 집행할 뿐입니다.》     이렇게 되어 나는 장례에 참석했던 몇몇 로인들과 함께 약수동 로인휴양소로 되잡혀 오고 말았다. 《유서를 다 보셨어요?》     사무실이라면 사무실이요, 침실이라면 침실인 소장의 사무실에 들어서자 30대의 녀인이 다그쳐 물었다. 《아니.》 《왜요?》 《제겐 남의 편지를 뜯어보는 습관이 없습니다.》 《편지 겉봉에 분명히 문경천이라고 선생님의 성함을 적지 않았나요?》 《나 아닌 다른 문경천일 겁니다.》     허인숙 어머니의 유서는 내가 놓았던 그대로 상위에 놓여 있었다. 30대 녀인은 왜 저토록 고집불통일까 하는 이상한 눈으로 나와 유서를 번갈아보다가 화가 난 듯 유서를 확 집어 나에게 내미는 것이었다. 《이 유서는 허인숙 할머니가 사흘 전에 쓴 것이에요. 돋보기를 걸고 한자 두자 힘겹게 쓴 것이에요. 쓰다가는 눈물짓고 쓰다가는 눈물짓고 얼마나 락루하셨는지 몰라요. 정 꺼리시면 제가 증명을 설 테니 겉봉을 뜯으세요.》 《전…》 《작가이신 문선생님은 언제부터 그렇게 담이 작아지셨지요? 그래 외로운 어머니의 유서를 읽을 용기마저 없나요? 그래도 저는 문선생님은 가슴 속에 종지굽이 아니라 독을 앉힌 줄만 알았어요.》     그 말에는 나도 대답거리가 없었다. 곁을 서주겠다는 30대 녀인의 말에서 자격지심이 꺾이고 반발이 생긴 나는 유서의 겉봉을 찢고야 말았다. 유서는 길지 않았다. 글씨체가 고르지 않고 어떤 곳은 불펜의 잉크가 눈물이 젖어 피는 바람에 꼭 박아 쓴 자리만 알리지 않았다면 무슨 글자인지 알아보기 힘겨웠을 것이다. 모든 정성과 모든 슬픔을 볼펜에 담은 허인숙 어머니의 모습이 그대로 비껴 있는 유서였다.           내 아들 경천에게     아들이라는 말도 처음 던져보고 네 이름도 처음 불러보는 이 어미의 마음을 너는 아는지? 용서해다오. 경천아! 영예와 강권 앞에서 아들마저 내쳤던 죄 많은 이 어미를. 모자가 갈라진지 50여 성상 너는 어머니를 잃었고 나는 아들을 잃었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대가를 치렀다. 영예와 굴욕의 대가로 얻은 것은 생리별, 이 어미는 황천에 가서도 그 대가를 치를 것이다. 그리고 너에게 진 죄를 속죄할 것이다.     나는 너에게 물려줄 아무런 유산도 없다. 평생 내가 써왔던 일기책 한 상자 그리고 내가 받은 영예의 깃발과 상장이 들어있는 종이함이다. 그것을 너에게 물려준다.     내가 쓴 일기를 보면 너를 알고 나를 알 것이다.                2001년 4월 5일             죄 많은 어머니로부터       보고 또 보았지만 갈래가 알리지 않고 점점 오리무중에 빠져 들어가는 유서를 두고 나는 지금의 현실에서 탈출할 수 있는 구멍수를 찾을 수 없었다. 허인숙 어머니가 살아계신다면 오해를 풀어드리고 자상히 설명해 올릴 수 있겠지만 고인이 되었으니 누구한테 넋두리를 한단 말인가? 그렇다면 30대 녀인한테? 내 앞에서 내 거동을 유심히 살피고 있는 저 녀인은 더더욱 나를 모르고 있을 것이다. 안다 해도 작가라는 허울 좋은 이름뿐, 우리 가정의 력사는 감감부지일것이다. 그러면서도 짓궂게 나를 잡아두는 원인은? 그 속내는 나도 가늠할 길 없다.     나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한 모금 깊숙이 빨았다. 담배연기에 그을은 가슴벽이 후련해지는것 같았다. 《내가 찾겠습니다. 허인숙 어머니의 진짜 아들을 찾아 꼭 이 유서와 유물들을 전해드려야겠습니다.》 《감사한 말씀입니다. 문선생님, 허인숙 할머니의 친아들을 찾기 전에 할머니의 일기를 한번 보시면 어떨까요? 지금까지 일기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은 할머니와 저뿐입니다. 보시면 선생님의 창작에도 큰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남의 일기를 보다니요?》 《허인숙 할머니는 유서에서 이 일기를 선생님에게 맡긴다지 않았습니까?》 《아니요. 나를 친자식으로 오해하고 하신 말씀입니다.》 《누구에게 맡겼건 후세에 도움 된다면 누구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한번 보시고 친자식을 찾아드려도 늦지 않을 거예요. 또 친자식을 찾는데 도움될 수도 있으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럼 일기만은 먼저 빌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선생님 편토록 하십시오.》     그제야 30대의 녀인은 느슨한 웃음기를 담으며 마음의 탕개를 푸는 것 같았다. 자기가 한 말은 허실 없이 지키고 자기가 한 약속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꼭 다짐받고야마는 그런 맵고 짠 류형의 녀인임에 틀림없었다. 사소한 일에서도 빈틈없는 녀인, 그래서 철부지로 되돌아가는 로인들의 따스한 어머니가 되어 있지 않는가 싶다. 진짜 존경이 가고 우러러 보고 싶은 녀인이다. 《한마디 물어도 괜찮겠습니까?》 녀인의 미소가 굳어졌던 벽을 허물어버리자 나는 스스럼없이 말했다. 《뭔데요?》 《제가 왜 허인숙 어머니의 아들로 지목되었을까요?》 《딱히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문선생님의 왼쪽 귀밑에 난 그 기미 때문이었을 겁니다.》 《기미?》     그 때서야 나는 허인숙 어머니가 나의 왼쪽 귀밑에 난 기미에 눈을 박은 채 숨을 거두던 일이 떠올랐다. 묘한 일치였다. 그럼 허인숙 어머니의 친아들도 왼쪽 귀밑에 기미가 있단 말인가? 《작년엔가 선생님께서 텔레비전에서 창작담을 말씀하신 적 있지요? 그때 허인숙 할머니가 그 텔레비전을 보시다가 〈아들〉하면서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다가 한없이 락루하셨어요. 저는 처음에 치매증이 아닌가 하고 의심했었어요. 하지만 제 생각이 틀렸다는 걸 전 그 이튿날에야 알았어요. 그 이튿날 할머니는 저에게 선생님의 집 전화번호를 알아달라고 간곡히 부탁하셨어요. 그 소원이야 풀어드리지 못하겠어요? 작가 분을 수소문하기란 손쉬운 일이니까요.》 《오―그런 일이었구먼. 허허허 살다보니 벼라별 일 다 있구먼. 이 귀밑 기미가 그토록 큰 오해를 사다니? 허허허.》     나는 내 귀밑에 난 기미를 만지며 헤프게 웃었다. 폭우가 휩쓸고 지나간 후의 고요―하늘도 땅도 사람도 모든 만물이 성수(聖水)에 목욕하고 잠나락에 빠져버린 듯한 고요처럼 나의 귀밑 기미는 있을 수 없고 있어서는 안 될 풍파를 일으키고 자취 없이 지나갔다. 오해가 풀리기 전에는 모든 신경말초가 하나의 초점을 향해 촉수를 뻗었지만 오해가 풀린 지금은 그 촉수가 둔각처럼 무디어져 자극의 가치를 상실해버렸다. 그런 자극이 상실되자 오히려 싱겁고 멋쩍었다. 쑥스럽기도 하고 거북하기도 하고…     나는 전화기 앞에 가서 택시를 불렀다. 인젠 돌아갈 때가 된 것이다. 《떠나기 전에 허인숙 어머니의 묘소를 찾아 술 한 잔이라도 부어드려야지 않을까요?》 《선생님 마음이 내키신다면…》     30대 녀인이 나를 쳐다보며 살짝 웃어보였다. 온 얼굴이 웃기 전에 눈부터 먼저 웃어주는 귀엽상스러운 녀인이다. 고된 봄 농사일에 살갗이 타고 피부가 거칠어지기는 했지만 옷 속에 숨겨진 살결은 두부모처럼 하야말쑥한 깨끗한 녀인이다. 키는 그리 큰 편도 작은 편도 아닌 보통 키에 다부지게 생긴 녀인이다. 《선생님은 왜 제 성함을 묻지 않나요?》 《실례될까봐, 지금 물어도 괜찮겠지요?》 《말씀 낮추세요. 전 한영희라고 해요. 로인들을 모신 지가 벌써 십 년 철을 잡아들었어요.》 《그럼 출가하기 전부터 여기서 일했다는 말입니까?》 《말씀 낮추라지 않았어요? 출가 후였어요.》 《그럼 집은 누가 돌보오?》 《제겐 집이 없어요. 이 료양소가 제 집이에요.》     아차, 내가 또 실수를 했나? 또 다른 사람의 상처를 건드리다니? 영희에게도 말 못할 아픔이 있을 것이다. 멍에처럼 비운과 쓰라림을 짊어지고 사는 것이 녀인들의 운명일까? 나는 영희의 아픈 상처에 더는 침질하고 싶지 않아 슬쩍 말머리를 돌리고 말았다. 《영희, 한 시간 후면 택시가 올 텐데 어서 허인숙 어머니 묘소로 가기오. 술을 부어 올리고 떠나야 불효자식이라는 감투라도 벗지? 하하하》     나는 우정 웃어 보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리는 간단한 제물을 챙겨가지고 뒷산 남석굽이를 향했다. 허인숙 어머니의 골회를 거기에 모셨던 것이다.     늦봄의 약수동은 휴양소에 묻혀있는 로인들과는 달리 만물이 소생하는 활기찬 모습이다. 나무들이 기지개를 켜며 뼈마디를 늘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소의 영각소리가 골연을 메우는 활기찬 모습이다. 농부들은 한창 지탑을 잡고 밭갈이에 나섰고 아낙네들이 씨앗을 두며 자귀를 밟고 있었다. 대지를 짙은 록색으로 물들이는 늦봄, 이런 대자연 속에 몸을 두면 나도 록색인이 될 것 같은 그런 푸른 기분이 들었다.     새로 흙을 얹은 허인숙 어머니의 묘지 뒤에 이미 쓴지 오래 된 묘소 여남 개가 줄지어 있다.      《영희, 저 묘지들은?》     내가 낡은 묘지들을 가리키며 영희에게 물었다. 《우리 휴양소에 계시다가 사망한 분들이에요.》 《오―알겠소.》     나는 영희가 챙겨가지고 간 제물들을 허인숙 어머니의 묘전에 차려놓고 술잔에 술을 부었다. 《어머니, 아들이 붓는 술입니다. 꼭 어머니의 친아들을 찾아 어머니의 묘지를 지켜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숙연한 마음으로 큰절을 올렸다. 영희도 말없이 나를 따라 절을 올렸다. 《선생님, 저하고 술 한 잔 하시지 않을래요?》     간단한 제사가 끝나자 영희가 내게 말했다. 장례가 끝나고 음식상 앞에 마주 앉았을 때 술 한 방울 입에 대지 않던 영희였다. 피곤을 풀라며 내가 그렇게 강권했는데도 술잔을 입술에 대지 않던 영희였다. 그러던 영희가 술을 청한다? 《좋다마다, 원래 제사 술은 되가져가지 않는 법이요.》     우리는 묘지 옆 소나무밭 기슭에 보자기를 펴놓고 마주앉았다. 그러자 제사 지내러 온 기분이 아니라 마치 야외 산보를 나온 그런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번갈아 술을 부으며 말없이 잔들을 비웠다. 《제게도 미처 이름을 달아주지 못한 자식이 있었어요.》     술이 거나하게 되자 영희가 애상에 잠겨 말머리를 뗐다. 《그런데?》 《저는 처녀의 몸으로 임신한 나쁜 여자였어요. 유부남을 사랑한 나쁜 여자, 고등학교 때의 제 어문선생님을 사랑한 방탕한 학생이었어요. 우리 선생님이 어찌나 멋지고 빼어난지 선생님과 갈라져 산다는 생각마저 저를 몸서리치게 했어요. 제가 유혹했지요. 그러다보니 제가 고중을 졸업할 때에는 임신한 몸이 되고 말았어요. 저는 병원에 가서 수술하라는 선생님의 권고도 포기했어요. 선생님의 애를 기르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대학교시험도 포기하면서 말이에요.     부모들이 임신한 저를 알게 되었을 때는 저는 이미 류산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 때였어요. 부모들이 애 아버지가 누구냐고 족쳐대도 저는 선생님을 생각해서 입을 봉하고 있었고 대답 한 마디 하지 않았어요. 선생님께 누가 미칠까 봐요. 결국 저는 부모들의 강요에 못 이겨 먼 친척집에 가서 해산하고 몸이 춰 서자 선생님 보러 집으로 돌아왔어요. 그런데 선생님의 태도가 그토록 랭담할 줄이야? 남 보듯 하더란 말이에요. 저는 죽고 싶었어요. 아니 죽으려고 서슬까지 준비해놓았어요. 그러나 어미 없이 자랄 애를 생각해서 고아가 되어버릴 내 새끼를 생각해서 목숨을 끊지 못했어요. 저는 한생 그 애를 잘 키우면서 살려고 다시 친척집으로 갔어요. 그런데 누가 알았겠어요. 그 집이 관내로 돈벌이를 떠났을 줄을…흑흑흑》 《그럼 애는?》 《데리고 갔는지 남을 줬는지 흑흑…살아 있으면 한창 학교 다닐 나인데…》 《인생과 슬픔은 동반자라더니 말 그른데 없구먼. 젊은 영희에게 마저 그런 슬픔이 따르다니…재가하지 않았소?》 《자식 없는 저 외로운 로인들을 두고 제가 어디로 가겠어요. 저는 우리 휴양소 로인들의 딸이자 보모이자 어머니예요. 자, 기분 잡치는 소리는 그만하고 술을 들라요.》     영희는 내 손에 쥐여 있는 술병을 빼앗아 빈 잔에 술을 부었다. 《문선생님, 저는 선생님이 허인숙 할머니의 친자식이건 친자식이 아니건 상관하지 않아요. 글을 써주세요. 휴양소에서 자식 없이 고독하게 살아가는 로인들을 위해서 글을 써주세요. 그 욕심에서 제가 선생님을 모셨어요. 그간 선생님을 피곤하게 해드려 죄송해요.》 《그건 우리 세대 작가들이 해야 할 신성한 직책이요.》 《그렇게 생각하시면 정말 감사하겠어요. 자, 건배!》     우리는 마지막 술잔의 술까지 마셔버렸다.     뿡―뿡―     휴양소 마당에 들어선 택시가 도착했다는 신호를 울렸다. 우리는 부랴부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허인숙 할머니에 대해 모르는 것이나 의문 나는 것이 있으면 또 저를 찾으세요.》 《친아들을 찾기 전까지 내가 아들이 되어 해마다 제사 지내러 올 거요.》     나는 영희가 챙겨준 허인숙 어머니의 일기가 들어있는 종이함을 택시짐받이에 싣고 약수동 로인휴양소를 떠났다. 짧디 짧은 시간, 때 묻을 시간도 없고 그럴 여유도 없었지만 마치 나는 눈에 익은 고향마을을 떠나가는 듯한 서운한 마음을 가라앉힐 바 없었다.     찾아오는 손님 없는 한적한 곳이라 내가 떠날 때 휴양소에 계시는 로인들이 몽땅 나와서 손을 저었다. 한 해 두 해 지남에 따라 하나 둘 사라지는 손들이 있으리라. 소문 없이 사라져가는 손들, 나는 그 손들을 위해서 두 팔을 휘저으며 작별인사를 했다.
8    우산은 비에 운다(1) 댓글:  조회:1271  추천:16  2009-03-04
[장편소설] ―우산은 목마르게 비를 기다리면서도 천둥소리만 들어도 지레 겁에 질린다―            1. 어머니 날        엄마가 없는 집, 엄마가 없는 애, 엄마가 없는…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힘겹고 쓰린, 입술에 담기엔 너무나도 지겹고 뼈를 에는 이 말이 언제부터 고통의 대명사가 되었는지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라는 존재-- 엄마가 지켰던 자리, 엄마가 남겼던 그림자, 엄마가 두고 간 목소리. 엄마가 뿌리고 간 내음-- 살아 숨쉬는 그 모든 존재의 가치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엄마라는 두 글자는 생겨나면서부터 인간의 희노애락을 한 몸체에 담았고 또 인간들의 희노애락을 위해서 자신의 몸체를 몽땅 연소시킬 줄 아는, 아니 에너지 전부를 연소시키는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엄마라는 두 글자에는 버릴 게 하나도 없다. 찌꺼기가 없고 나머지가 없고 언제나 부족한 감을 주는 무한대의 절감체이다. 그래서 세상사람 모두가 가장 위대하고 신성한 이름을 엄마라고 부르지 않는가 싶다. 세상 모두가 엄마이고 엄마가 세상 모두이기 때문이다.     그런 엄마의 날, 그런 어머니날이 돌아왔다. 우리가 사는 간도 땅에서 언제부터 어머니날을 기념해왔는지 잘 기억되지는 않지만 몇 년 전부터 외국바람이 불어오면서 치르는 행사가 아닌가 싶다. 사실 어머니날은 1913년 미국 필라델피아 교회에서 시작하여 전 세계에 파급된 세계적인 명절이건만 오랫동안 세계와 외면하고 등지고 살았던 우리는 이제야 제 명절을 찾지 않았나 싶다. 나라에서 정해준 명절은 아니지만 부모를 생각하는 효성에서 기리는 기념일인 만큼 그 여파와 파장은 국경일 못지 않게 백성들 마음속에 뿌리내리고 있었다.      오늘은 어머니날, 하지만 50고개를 넘긴 우리 신변에는 내 아내를, 나를 축하해줄 자식 하나 없다. 자식들 모두 엉덩이에 바람개비를 차고 외국으로 돈벌이를 떠났으니 말이다. 가난에 찌들고 권력과 수모에 멍이 든 가슴들이 돈의 힘을 알기 시작하면서 불어 닥친 회오리바람이라 웬만한 병신 내놓고는 다들 떠나가는 판이다. 그러니 어머니날은 진짜 곤혹스럽고 짜증나는 날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집에는 그래도 이 날을 기념해줄 사람이 한 분 계신다. 아버지시다. 일찍 어머님을 황천으로 보내고 홀로 이 자식을 키워준, 그래서 내가 아버지이자 어머니로 부르는 아버지시다. 한 평생 콜록콜록 잔기침을 해대면서도 손에 곰방대를 놓지 못 하시는 아버지. 그 아버지가 지금 북쪽 침실에서 콜록콜록 하고 계신다. 아마 또 곰방대에 불을 붙이신 모양이다. 그러니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이 시각이 틀림없는 새벽 3시일 것이다. 아버지의 기침소리는 틀림없는 시계니까. 30여 년, 나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 기침소리와 함께 기상했고 글을 써왔다. 고약한 버릇, 몇 십 년 동안 고질이 돼버린 달짝지근한 버릇…     오늘은 어머니날, 하지만 이 아침 어머니의 얼굴마저 떠오르지 않는다. 고왔던지 미웠던지 컸던지 작았던지 악했던지 선했던지 기억에 남는 건 하나도 없다. 그럴 수밖에. 알지도 못했고 알 수도 없는 나였으니까. 어머님은 나를 낳고 산후풍으로 이 핏덩이를 속세에 내동댕이친 채 저 세상으로 떠나셨단다. 그러니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어머니를 모르고 어머니라는 말 한마디 불러보지 못하고 자라온, 고아나 진배없는 애였다.     콜록콜록…     아버지의 방에서는 계속 귀에 익은 그 기침소리가 들려온다. 허파를 긁어내고 담배내에 절고 담배연기로 년륜을 아로새긴 기침소리다. 매일 새벽마다 들려오는 기침소리가 없으면 오히려 이상이 생기지나 않으셨나 의심하게 되는, 귓방울에 동동 달려 떨어지지 않는 기침소리…. 달라졌다면 전에는 쿨룩쿨룩 하고 가슴을 쾅쾅 울리며 나오던 소리가 지금은 목구멍에서 달달 끓는 가래가 섞인 기진한 소리로 변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 들어본 소리가 《아가야》보다 쿨룩쿨룩 하는 아버지의 기침소리였다. 홍역 미열로 얻은 기침이라 백약이 무효라나? 사실 한다하는 치료는 다 해봤지만 아버지의 기침은 떨어질 줄 몰랐다. 저렇게 기침을 달고 살면서 어떻게 70고개를 넘기셨는지.     오늘 새벽도 저 기침소리는 마치 기상나팔처럼 나를 잠에서 깨웠고 《이젠 글 쓸 때가 되었는데》 하며 붓대를 쥐어주었다. 엊저녁 친구들과 곤죽이 되도록 술을 퍼마셨는데도 마력을 지녔는지 저 기침소리에 술기를 몽땅 빼내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 이렇게 사색의 여울을 이어가고 있다.     어머니날, 내가 아버지에게 드릴 선물이 무엇일까? 나는 아버지에게 너무나 많은 빚을 진 사람이다. 돈으로도 물건으로도 다 갚을 수 없는 아버지에게 진 빚, 그 빚을 갚을 때가 되지 않았을까? 아버지 덕분에 글쟁이가 되었으니 아버지의 일생을 글로 남기는 것이 가장 큰 효성이고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그래, 그것이야. 아버지를 글로 남겨놓자. 심 봉사 못지 않은 아버지를….     따르릉 따르릉…     아버지의 기침소리를 물고 아버지에 대한 사색을 굳히고 있는데 다급한 전화벨소리가 내 시간을 동강내 버린다. 주책머리 없는 녀석, 웬 간 빠진 녀석이 신 새벽에 전화를 건담? 고주망태가 된 녀석이거나 얼간이 아니고서야 남의 새벽잠을 깨울 수 있냐 말이다. 황차 나는 아버지에게 드릴 선물 준비로 형상의 닻줄을 단단히 조이고 있는 판인데 전화의 희롱으로 사유를 엉망진창으로 만들다니. 괘씸한 녀석!     나는 찜찜한 마음 그대로 수화기를 들었다. 《문경천 선생님 댁이지요?》     젖내가 풍기는 애 어린 여자의 목소리다. 다방아가씨처럼 말을 곱게 뱉느라 입을 오므려뜨리는 모습이 소리를 통해 보였다. 《예, 그렇습니다.》     나는 희롱물이 된 것 같은 언짢은 기분대로 퉁명스레 대답했다. 《문경천 선생님 계신가요?》 《예. 접니다.》 《여기는 약수동 로인휴양소인데요. 문선생님 모친께서 병이 위중하니 급히 와주시기 바래요.》 《뭐요? 모친? 미안하지만 전화를 잘못 건건 아닙니까? 저에게는 모친이 안 계십니다. 별세하신지 반세기도 넘습니다.》 《아녜요. 살아계셔요. 마지막으로 만나보시겠다는데 꼭 와주세요. 아니 꼭 오셔야 해요.》     상대방은 내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처녀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바늘로 쑤셔도 들어갈 것 같지 않고 헝클어질 것 같지 않는, 단단한 그 무엇이 들어있는 여지가 없는 소리였다. 목소리는 여린 몸체에서 나는 야릇한 체취가 다분했지만 그 여림 속에 묻힌 의지만은 쇳덩이 같았고 땅땅했다. 도대체 새벽에 전화를 거는 처녀에게 무슨 용기와 힘이 있어 그렇듯 떳떳하고 그렇듯 서슴없는 태도를 보이는 것일까? 황차 어머니를 여읜 지 50여 년이 넘는 내게…. 어머니라는 말 한마디 불러보지 못하고 어머니의 얼굴 한번 보지 못한 나를 두고….     어머니가 병환에 계신다? 마지막으로 만나보시겠단다? 허허허 진짜 배꼽 잡을 일이다. 지금 중국에는 어느 기공법에서 만들어낸 재생론법이 나와서 별의별 소문이 다 돌고 있다. 리씨 가문의 누구는 몇 살에 죽었는데 일년 후에 장씨 가문의 누구로 환생하여 낳자마자 제 성과 나이 심지어 마을 이름과 마을 어귀에 서있는 느티나무까지 알고 있다는 둥 박씨 가문의 누구는 늘그막에 죽으면서 자기는 앞으로 무엇으로 환생할 것이라는 유언을 남겼는데 그 노인 말처럼 어느 동네의 누구로 태어나, 얼마 지나지 않아 자기는 원래 누구였다는 말을 했다는 둥 기괴망측한 말들이 혀끝에서 구르다가 입소문이 짜하게 났다. 그렇다면  내 어머니도 그 재생법처럼 다시 환생했단 말인가? 진짜 환생했다면 제일 처음 찾을 사람이 이 아들이겠는데 병들어 누울 때까지 왜 아들을 찾지 않다가 마지막 순간에야 찾는단 말인가? 세상만사는 복잡다단하고 해괴망측하지만 이처럼 허무한 일이 또 어디 있을까?     나는 방금 왔던 전화는 안 받은 셈치고 써내려가던 글을 계속 쓰려고 붓대를 다시 잡았다. 하지만 붓이 천근들이 무쇠덩이가 되어 좀체 움직일 수 없었다. 아버지의 산 형상이 주마등처럼 줄치던 사유가 발을 딱 멈춘 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 정말 이상했다.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보고 싶어한다는 그 한마디, 그 한마디에 스톱한 채 모든 것이 죽어있다니? 웬 꼭두각시일까? 나의 어머니라는 세 글자는 이미 풀려진 수수께끼였지만 성씨도 이름도 모를 처녀에게 당하고 보니 그저 심심풀이로 듣거나 두엄무지에 팽개칠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심상한 일이라고 깊이 묻어둘 것도 없고 그렇다고 가볍게 입술을 쓱 문지르고 던져버릴 파지 쪽은 더더욱 아닌가 싶다.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단언하면서도 모름지기 갈비뼈를 쑤셔대는 그 생각에서 도망칠 수 없었다. 사람이란 이상한 존재다. 아니라고 하면서도 무시로 집착하면서도 그 아니라는 반대쪽 사소한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점점 더 깊이 빠져들어 가며 마지막에는 정말 아닐까 하고 의심까지 가지게 되는 것이… 병환에 계시는 그 어머니는 나의 어머니가 아니라는, 절대 아니라는 속단을 내렸으면서도 나는 그 이상한 전화소리에 꼬리를 물린 채 좀체 벗어날 수 없었다. 이상했다. 자기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확신하면서도 속이 갑갑해졌다. 십여 평 넓이의 서재가 급작스레 공간을 줄이며 한 평 되나마나한 작은 감방으로 나를 각을 떠넣는 것 같았고 내 스스로 선택하고 이용하고 여유를 갖고 있던 새벽의 창작시간은 순식간에 내 목을 조르며 어디론가 나를 끌어가고 있었다. 그 공간과 시간은 내 힘만으로는 버텨낼 수 없는 그렇듯 무진한 힘을 갖고 내 등을 밀고 있었다.     나는 창문 커튼을 젖혔다. 동이 트면서 어머니날이 시작된 것이다.     나는 창문을 활짝 열었다. 그러자 축축하게 젖어 있는 아침 공기가 시원하게 내 가슴을 적셨다. 나는 틈 새 없이 가슴을 메우고 있던 연기뭉치를 내뿜으며 누기차고 비릿한 아침공기를 감빨아 들였다.     우리 집은 부르하통하강 둑 옆에 자리 잡고 있는 신원 아파트단지 내에 있다. 커튼만 젖히면 연변대학이며 공원이며 연길시 도심이 한눈에 날아든다. 녹지를 넓히는 것이 아니라 공원마저 야금야금 먹어 들어가며 아파트단지를 앉히는 숨 막히는 도시, 인도마저 미터가 아니라 뼘으로 다투며 가게를 세우는 코 막힌 인간들, 골목길을 방불케 하는 아스팔트길에 용납할 수 없을 정도로 택시만 늘어나 잡음과 공기오염을 최고치로 끌어올리는 족속들, 그것이 자살행위라는 최소한의 상식마저 모르는 그 무지와 몽매 속에서 밤새 악몽만 꾸던 인간들이 지금 강둑 산책로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짧은 아침 시간이지만 대자연이 하사한 혜택을 입어보려고 그 시간을 놓칠까봐 줄줄이 나서고 있다. 늙은이, 젊은이, 애들, 심지어 애완견까지 졸졸 따라나선다. 밤새 도심의 탄산가스에 절고 굳어진 몸들을 풀어볼 심산인 것 같다. 그래도 살아 숨쉬는 목숨들이라 숨쉴 틈바구니를 잘 찾고 있는 것이 다행이다.     강둑에 자리 잡은 공원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쑥스러운 신풍공원에서 아낙네들이 한창 우리 민족의 전통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고 있다. 아침 신체단련을 하고 있는 참이다. 춤도 서툴고 작은 록음기에서 비집고 나오는 노랫소리도 들리나마나하지만 가담가담 귀청을 파고드는 우리의 선율과 여성들의 팔 동작만은 유난히 다감하게 안겨온다.     저이들이다. 오늘 복 받을 분들이. 어머니날에 어머니가 된 자랑과 기쁨을 안고 꽃묶음을 받아 안고 지나간 고통과 고역살이를 깡그리 잊어버릴 우리의 여인들. 하지만 저 속에는 내 어머니가 없다. 산후풍에만 걸리지 않았어도 어머니는 지금껏 살아계시련만 너무나 일찍 너무나 불쌍하게 요절해버리셨다. 나 때문에 나 때문에…. 아버지의 말씀에 따르면 어머니는 키가 훤칠한 미인이셨단다. 고운 마음씨를 지니고 동네일에 발 벗고 나섰다는 어머니, 오늘처럼 어머니가 그리워진 때가 몇 번 있었던가? 학교 가던 날, 장가들던 날, 아버지가 회갑상을 받던 날 그리고 오늘… 오늘은 어머니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보고 죽었으면 하는, 이루어지지도 않고 이룰 수도 없는 그 소원 하나뿐이다. 어머니의 젖내음도 싫고 뽀뽀도 싫고 챙겨주는 도시락도 싫고 그저 보고 싶을 뿐이다. 어쩌면 사진 한 장 남기지 않았을까?     강둑 산책로로 등허리 휜 안 로인이 지팡이를 짚고 타발타발 지나고 있다. 등허리가 어찌나 휘었는지 옆에서 보면 《ᄀ》자형의 구십 고령은 넘었을 안 로인이다. 내가 아침 산보를 할 때마다 마주치는 로인이다. 관 속에 들어가도 호사라고 하면서 상주들이 오히려 춤을 출 고령이건만 단 하루라도 생명을 연장해보겠다는 그 무서운 욕망으로 매일 아침마다 끈질기게 강둑 산책로에 나서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 안 로인보다 더 젊고 예뻤을 내 어머니는? 자리를 비우고 있다. 나에게는 어머니를 대신해 어머니가 비운 빈 자리를 메울 힘이 없다. 만약 그 빈 공간을 메울 수만 있다면 내 생명 전부를 바친다 해도 아까울 것이 없을 것이다. 휴― 세상은 왜 이다지도 무정하고 불공평한지?     스르륵… 서재 문이 열리는 기척이 났다.   《아니. 오늘 아침엔 왜 아침 산보를 안 하세요?》   《음? 오―당신이요?》   《아침 산보만은 비 오는 날 눈보라치는 날 가리지 않던 분이…》   《당신, 시어머니를 보지 못한 것을 한스러워했지? 오늘 당신에게 시어머니가 생겼소.》   《롱담 그만하시고 시원한 아침 공기 마시러 빨리 나가세요.》     아내는 내가 아침마다 갈아입고 나가는 운동복이며 등산모를 챙겨든 채 굳어진 나를 떠밀며 말했다. 그렇듯 자상한 아내다.     내가 문학 심포지엄에 참석하거나 특강을 나갈 때면 넥타이와 와이셔츠 양복까지 색깔 맞추어 챙겨주는 아내다. 차림새에 조그만 흠집이 보여도 꼭 고쳐주고, 옷에 티 하나 묻어도 그것을 뜯어주고야 볼우물을 살짝 패는 아내, 나는 그런 아내가 ― 쌍둥이 엄마가 좋았다. 물론 젊었을 때는 더 좋았고 그런데 나이가 원수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쉰 고개에 오르면 쉬쉬해진다고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아내의 바가지 긁는 소리가 잦아지고 자기 계율에 맞춰 울타리를 치는 쌍둥이 어미의 집요한 고집이 잦기만 했다. 나는 넌덜머리가 날 지경으로 그것이 싫었다. 젊었을 적부터 그랬지만 언제나 자유분방하게 살려고 하는 내 생활방식은 아내의 말고삐에서 빠져나가려는 야생마와 같았다. 그럴 때마다 치륜이 맞지 않아 덜컥거리기 일쑤였다. 그러다가도 내가 퇴근하거나 회의에 참석하고 집으로 돌아와 아내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으면 허탈감과 허전함에 빠져 수소문한다. 전화기를 들었다 놓았다 하며 부산을 피운다. 이성적인 자기마당을 잃은 늘그막 가정적 사랑이 이렇지 않을까 싶다. 서로서로가 잘 알면서도 서로서로의 결함과 옹고집을 고칠 줄 모르는 그것이 50고개의 사랑과 가정일 것이다.   《여보세요. 진짜 안 나가실 거예요?》   《나 어머니 보러 갈 거요.》   《어머니요?》   《당신에게 시어머니가 생겼다지 않았소?》   《아니 웬 홍두깨예요?》   《오늘 아침 전화 한통 받았소.》     나는 새벽에 받았던 전화 내용을 대충 말해주었다. 대충이 아니라 오고간 말 몇 마디를 곧이곧대로 일러주었다.   《진짜 이상한 전화군요.》   《그러게 말이요.》   《그런데 그 분이 당신의 성함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바로 그 것이요. 그 것이 더 궁금해요. 생명이 경각에 달렸다는 분이 내 이름까지 안다는 게 나로서는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요.》   《당신이 작가니까 책에서 보신 거 아닐까요?》   《나도 그렇게 생각했소. 책에 이름을 많이 냈으니까 열에 들떴을 때 헛소리로 내 이름을 댔을 거라고 말이요.》   《그런데 그 처녀애가 우리 집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았을까요?》   《그거야 쉬운 일이지. 작가협회에 물어보면 바로 알 텐데.》   《글쎄요. 그런데 잘 믿기지가 않아요. 하필이면 당신에게 그런 전화가 올 건 뭐예요?》   《살다보면 이런저런 일 다 있으니까. 그런데 여보, 빨리 아침 준비하오. 어쨌건 생사를 다투는 그 어머니를 찾아봐야겠소. 오늘 어머니날이 아니오? 외롭게 사시는 아버지 어머니들을 우정 찾아뵐 수도 있는데 황차 아들이라고 나를 찾고 있는 그 어머니의 아들이 되어 위로해준들 나쁠 거야 없지 않소? 어쩐지 인생의 마지막 길에 들어선 그 어머니의 소원이라면 진짜 아들이 돼주고 싶은 심정이요.》   《잘 생각하셨어요.》     콜록콜록…     아버지의 기침소리가 지척에서 들렸다. 우리는 말을 끊고 뒤를 돌아보았다. 아버지의 체구가 서재의 출입구를 막고 있었다. 지금은 줄어들어 볼품없지만 젊었을 땐 씨름판에서 판막이를 한다는 구척장수였다. 총각 땐 마을에 하나밖에 없는 석마돌을 들었다고 석마돌장수라는 이름까지 달았단다. 지금도 비록 등이 휘고 얼굴에 밭고랑 같은 주름살이 거미줄처럼 얼기설기 얽히기는 했지만 툭 튀여 나온 관골과 산맥처럼 이마로부터 흘러내린 높은 콧마루, 짙고 긴 눈썹만은 옛적의 위엄을 그냥 돋보이고 있었다. 그런 아버지가 지금 쇳덩이라도 쥐기만 하면 부스러뜨릴 듯한 갈고리 같은 손으로 문설주를 턱 잡고 나만 지켜보고 있다. 헌데 웬 일이실까? 눈썹이 얼마나 긴지 매일 아침마다 빗으로 빗어 올리던 눈썹은 빗어 올리지 않으면 눈을 가릴 만큼 숱 많은 긴 눈썹은 빗 맛도 보지 못한 채 척 드리워 눈을 덮고 있는 것이 아닌가? 눈썹 사이로 정기 없는 아버지의 눈이 나만을 멀거니 쳐다보고 있다.   《아버지, 어데 편찮으십니까?》   《아니. 콜록콜록 너 방금 뭐랬지? 어머니가 찾는다구? 콜록콜록…》   《예… 별일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도 아버지께 여쭤보려던 참입니다. 오늘 아침 이상한 전화를 받았습니다.》   《콜록… 어떤 전환데?》   《글쎄 약수동 로인휴양소에서 생사를 다투는 제 어머니가 저를 찾는다지 않겠습니까? 허허… 망령드신 로인인가 봅니다.》   《콜록콜록…》     나는 대수롭지 않게 아뢰며 아버지에게 눈길을 주었다. 순간, 눈썹 밑에서 나의 눈길을 피하며 축 처진 눈두덕을 파르르 떠는 아버지의 눈을 볼 수 있었다. 웬만한 일에는 어지간한 말에는 얼굴의 주름살 한 올 헝클어뜨리지 않는 아버지다. 보았는 둥 만 둥 들었는 둥 만 둥 콜록콜록 기침 두 마디면 대답이 전부인 아버지다. 그런데 눈꺼풀을 떤다? 나는 아버지의 그 작은 변화에서 무엇인가 더 찾아내고 더 파내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금방 후회하고 말았다.     어머니날에 아버지의 아픈 상처를 건드리다니? 아버지는 나 하나만을 믿고 재취 한번 하지 않으셨다. 나에게 계모의 눈칫밥을 먹이지 않으려고 심 봉사처럼 동냥젖을 먹이고 손수 암죽을 쑤어 먹이면서 나를 키웠다. 오뉴월 땡볕에서도 나를 들쳐업은 채 풀 속에 머리를 들이밀고 호미귀를 날렸고 후치질을 하셨다. 봄에 입은 새 베적삼은 나를 업고 여름을 지내고나면 사등짝이 칼로 오려내듯이 삭아 문드러졌다니 아버지 홀린 땀이 얼마였으랴! 아니 흘린 땀보다 흘린 눈물이 더 많았으리라.     지금은 기억에 어렴풋하지만 아마 소학교 일학년 때 봄 소풍 가는 날이었을 것이다. 다른 집 애들은 다 어머니가 따라가는데 나는 왜 어머니가 없냐고 발버둥치며 울었을 때 어머니 대신 아버지가 나를 품에 꼭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시던 그 모습이 눈에 생생하다. 아니 아버지의 눈물보다 내 가슴에 쿵쿵 전해오던 아버지의 심장박동 소리가 지금도 내 흉벽을 치는 것만 같다. 하나밖에 없는 이 아들을 공부시키겠다고 분연히 고향을 등지고 연길시내로 와서 온돌장이, 구두장이, 자전거수리장이 등 인간의 하층에서 장이로 구르며 돈 한잎 두잎 모아 내 학비를 조달하셨던 아버지, 용상에 모셔도 다 모시지 못할 그 아버지의 아픈 상처를 내가 건드리다니? 산후풍으로 떠나신 어머니가 남긴 상처, 한생을 사시면서 아물지 못한 그 상처에 내가 침질을 하다니? 나는 아버지의 동공에서 아버지의 눈꺼풀에서 채 읽지 못했던 상처의 마지막 아픔까지 읽을 수가 있었다.   《용서하십시오. 아버지, 벌써 아버지가 되었건만 아버지의 아픈 상처를 몰라주는 이 못난 아들을 용서해주십시오. 이럴 땐 이 불효자식에게 질타라도 해주신다면 마음이나마 편하겠습니다. 50여 성상 쌓인 설움과 한탄, 다지고 또 다져넣었던 눈물을 쏟으면서 이 아들의 마음을 각을 떠준다면 위안이라도 받지 않겠습니까? 아버지!》     눈꺼풀을 파르르 떨 뿐 한마디 말씀 없는 아버지의 두터운 입술을 쳐다보면서 나는 이렇게 울고 또 울었다. 어머니라는 이름은 눈물과 웃음으로 빚어졌다더니 어머니가 비우고 간 이 자리는 어머니날에 웃음으로 포만상태를 이루어야 할 이 자리는 눈물 없는 눈물로 질척했다.     눈물로 얼룩진 나의 서재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서로의 숨소리를 귀동냥 할 수 있는 무서운 침묵이다. 누군가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침묵이라고 했다. 진짜 그랬다. 이 시각처럼 침묵이 무서워 보이기는 처음이다.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침묵 속에서 어서 빨리 벗어나고 싶은 것도 있었지만 어머니날  어머니를 버리고 갔을 그 후안무치한 후레자식에 대한 일종의 보복심에서 아버지에게 말씀 올렸다.   《아버지,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해서라도 임종을 앞둔 이름 모를 그 어머니를 위로해드리고 싶습니다. 다만 몇 분간이라도 그분의 아들이 되어주고 싶습니다.》   《콜록콜록…》     아버지는 좋다 궂다 대답 한 마디 없이 돌아섰다. 아니 그 기침소리가 소리 없는 승낙이요 무언의 대답이다.   《여보, 진짜 떠나실 거예요.》   《떠나야지. 어차피 우리도 그 길을 걸을 사람들 아니요? 힘 든 일도 아닌데 임종 전의 혼이야 달래지 못하겠소?》   《저도 함께 가겠어요.》   《그럼 아버지는 어떻게 하겠소? 오늘 어머니날인데 내 어머니인 아버지를 잘 위로해드리구려. 쌍둥이한테서 전화도 올 텐데 말이요.》   《알겠어요.》     이른 조반을 치른 후 나는 아버지께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올리고 택시를 잡아탔다. 아침 출근시간보다 이른 시각이라 거리는 그다지 붐비지 않았다. 하지만 연길이라는 이 특수한 소비도시는 전에 없이 택시가 실북 드나들듯 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사람보다 택시가 더 많은 이른 아침이다.     택시는 도심을 벗어나자 새로 닦은 고속도로를 따라 약수동쪽으로 살같이 달렸다. 이젠 제법 봄기운이 완연해 나무들도 파랗게 단장하기 시작했고 골짜기 응달엔 때늦은 진달래가 나무들 사이에서 마지막 화장을 하고 있다. 야산에는 메살구 꽃이 하얗게 피어 볼품없던 민둥산이 하얀 꽃 바다를 이루고 있다. 도심에서 배기가스에 절고 싸구려소리에 멍들고 황토공원의 황사를 뒤집어쓰며 먼지투성이 된 몸뚱아리가 청순한 대기에 목욕한 듯 거뜬했지만 내 가슴 한 모퉁이를 채우고 있는 미적지근한 땟국물은 가실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떤 분일까? 무슨 연고로 나를 아들로 착각하고 있는 걸까? 신기루처럼 떠오른 환각? 아니면 로년의 치매증? 혹시나 동성동명인 또 다른 내가 있는 것은 아닐까? 어쨌든 가서 직접 보면 알 것이다. 나는 모든 잡념을 잊기로 하고 등받이에 몸을 묻으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7    [소설]국수 한사발 댓글:  조회:1140  추천:15  2009-02-16
그는 이때까지 사회와 담을 쌓고 사는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30여년 교단을 지켜온 우수교사, 분필가루에 허파가 하얗게 변하고 손끝이 푸른 잉크에 물들어 파랗게 변한, 열심히 교수안을 써온 로교사, 그러면서도 공짜 연회거나 술추렴엔 손을 싹 씻고 나서는 사람, 그래서 학교에서는 그를 <<외고집>>으로 부르고 있었다. 남을 집으로 청하는 법 모르고 남이 청하는것을 번번이 사절해버리는 격리된 사람, 지어 아들의 입학점수가 1점 모자라서 중점학교인 자기의 학교에 붙이지 못하고 2류 학교에 보낸 사람-그런 정직한 선생이 근래에는 <<외고집>>으로부터 <<구두쇠>>로 호칭이 바뀌여져버렸다. 저녁자습시간까지도 학생들 곁은 한시도 떠나지 않고 모든 정력을 학교에만 바친, <<령혼의 공정사>>로 되기에 손색이 없는 교단의 주인이였다. 백여명 넘는 교직원가운데서 그를 놓고 보면 상류에 속하는 로임을 받고있으니 응당 부유층에 속해야 했었다. 하지만 그의 집에는 21촌짜리 천연색텔레비죤이 고작, 남들이 다 갖고 있는 전기랭장고도 없는, 학교에서 일등 가난뱅이로 되고 말았다. <<당신 좀 다른 선생들 집을 돌아보세요. 없는것 없이 살아요.>> <<그것이 그렇게 부럽소?>> <<젊은 선생들보다도 못하니 망신스러워서 어디 살겠어요?.. <<여보, 학교라는 이 마지막 보루까지 비리에 물젖는다면 그사회는 곪는 법이요.>> <<당신 혼자 지켜낼것 같아요? 학교도 오염될대로 돼버렸어요.>> <<아무튼 난 선생이라는 신성한 이름에 먹칠하고싶지 않소.>> 안해의 지청구앞에서 그는 언제나 이 한마디로 매듭짓군 했다. 뒤문거래거나 <<선물>>이 화페로 변한 지금까지도, 비리가 철부지의 코앞에 이른 지금까지도 그는 이렇게 살아왔으며 또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오늘 점심무렵, 그는 학부형을 방문하고 돌아오다가 <<진달래 랭면옥>>을 지나게 되였다. 무더위에 목이 칼칼해나면서 랭면 생각이 간절했다. 한창 점심시간이라<<진달래>>랭면옥은 앉을 자기라 없었고 표파는 곳에는 손님들의 신꼴박듯 박아서서 밀치고 닥치고 하였다. 밀건 당기건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줄을 섰다. 세 사람이 서로 먼저 사겠다고 밀치는 습성, 이런 국민소질앞에서 언제나 혀를 끌끌 차던 그였다. 어떤 떄는 <<줄을 섭시다!>>하고 소리쳐서 남들의 눈총을 받을때도 있었다. 그래서 웬간해서는 랭면옥에 들리지 않는 그가 오늘은 하도 랭면생각이 나서 이렇게 줄을 서고 있다. <<선생님!>> 누군가 그를 불렀다. 진달래식당에서 복무원으로 일하는 그의 제자였다. <<선생님, 이리 오세요.>> 학생은 다짜고짜로 선생님의 팔을 끌었다. <<아직 국수표를 못끊었어.>> <<제가 끊어드릴테니 근심마세요.>> 이렇게 그는 제자의 덕분으로 표를 끊을 때도 국수를 받을 때도 줄을 서지 않고 국사사발을 받아안게 되였다. 처음이였다. 뻐스를 탈때에도, 기차에 오를때에도 언제 어디서나 학생들을 줄을 세울때처럼 그도 줄서는데 습관된 사람이였다. 그런데 줄도 서지 않고 국사사발을 받아안았다. 매표구앞에서는 지금껏 밀치닥거리고 있었다. 그것을 지켜보는 그의 얼굴에는 일그러진 미소가 떠올랐다.먼저 받은 국수사발이 싫지는 않았던것이다
6    [수필]빈자리 댓글:  조회:809  추천:20  2009-02-16
아들 명철이가 학기말시험지를 가지고 헐레벌떡 집에 뛰여들어섰다.    《엄마, 몽땅 백점이야.》    명철이는 책가방에서 시험지를 꺼내더니 마치 기발처럼 펼쳐들고 내앞에서 퐁퐁 뛰며 자랑하는것이였다.    지난번 기말시험을 쳤을때처럼.    《우리 명철이 용쿠나.》    나는 귀염둥이를 덥석 들고 한바퀴 빙 돌린 다음 가슴에 꼭 품으며 웃음속에 눈물을 담았다.    왜 그렇지 않으랴. 모든 희망과 기탁점을 아들 하나에게 둔 나였으니까/    나는 명철이를 위해서 돈을 내라면 돈을 내고 위생용품을 사오라면 비누며 세수대야며 수건 같은것들을 군말없이 사오군 했었다. 그러면서도 학급 행사에는 까딱 비치지 않고 명철의 공부시중에만 열중했다.    《엄마, 담임선생님이 말씀하시던데 모레 학급 간부들을 선거한대.》    《우리 명철이가 공부를 잘했으니 학급장이야 따먹었겠지?》    나는 웃음을 버리지 않은채 명철의 볼레 뽀뽀를 퍼부었다.    《엄마 돈 있나? 돈만 있음녀 학급장질 한대.》   《뭐야?》   《우리 학급 영남이는 아버지가 세무국 국장이여서 공부를 못해도 학급장질 했대.》   《누가 그러던?》   《애들이.》   《너 그런 말하면 나쁜 애가 돼., 알겠니?》    나는 명철의 말에 못을 박았지만 애들의 말이라고 그저 흘러버릴수 없었다.     명철의 공부만 틀어쥐다나니 학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학부형들이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있는 나였다. 그래서 착하고 공부 잘하는 명철이가 소선대 소대장 하나 못하는것이 아닐가?    명철이한테서 계시를 받은 나는 이튿날 저녁 명철이의 담임선생님이 퇴근하는걸 기다렸다가 무작정 식당으로 끌었다.    어떻게 키운 애라고?    명철이의 아버지는 아들애의 대학공부비용까지 마련한다면서 벌써 7년째 한국에 나가 돈을 벌고 있다.   그런데 내가 무슨짓을 저지르고 있담?    우리 사회에서 학교만큼은 깨끗한 곳이 없고 학교에는 절대 비리가 없다고 믿어온 나였다.    그 마지막 보루를 믿고 그것을 신임한 나였다.    그런데?   《선생님, 뭘 드실가요?》   《대충 저녁이랍시고 먹으면 되지 이런 아까운 돈을 팔아선 뭘 해요?》    20대의 처녀 담임선생이 사양하는 어줍은 말씀.  《첫 대면인데 그럴수 있나요? 배갈 아니면 포도주?》  《포도주로 합시다.》   고급 포도주에다 푸짐한 반찬들을 청해놓고 우리는 시름없이 술잔을 비우기 시작했다.   《명철이를 선생님에게 맡겨놓고 너무나 관심을 돌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뭘요, 명철이는 착하고 공부도 잘하는데요.》   《다 선생님 덕분입니다.》   우리는 포도주 한병 굽을 내고 또 한병 청했다.   《명철의 아버지가 돈벌이하러 한국에 나가셨다면서요? 돈을 많이 벌었겠어요?》   《뭘요. 애를 공부시킬만한 돈을 벌고 있는 셈이지요.》   《명철 어머니, 우리 손을 잡읍시다. 가정과 제가 손을 잡으면 명철이는 꼭 큰 인물이 될거예요.》   《하지만 명철이는 지금껏 소선대 소대장 한자리도 하지 못하고 있어요.》   《지금 한자리가 비여있는데... 어쨌든 배합을 잘합시다.》   《빈자리라니요?》   《학습위원.》   《그래요? 꼭 부탁드립니다.》   나는 미리 준비해두었던 3천원 지페가 들어있는 편지봉투를 내밀었다.    《이건 뭔데요?》   《적지만 저의 성의이니 받아주십시오.》   《이러면 제가 교단에서 쫓겨납니다.》   《우리 두사람의 비밀이 아닙니까?》   나는 남들이 눈치챌가봐 날랜 솜씨로 담임선생님의 핸드빽속에 돈뭉치를 밀어넣었다.   《꼭 부탁드립니다.》   《종종 련계를 합시다.》   우리는 자리를 떴다.    우리가 앉았던 빈자리는 또 다른 학부형에 의해 인츰 메워질것이다.    
5    [단편]몽당치마 댓글:  조회:7083  추천:26  2009-02-11
1  너울을 쓰고 이씨 가문의 문턱을 넘어서는 그날까지도 나는 그 여인을 본적이 없었다. 사촌만 해도 스물넷이나 된다고 시아버님께서 자랑삼아 말씀하시더니 친척들이 너무 많아서 그 여인을 몰라봤는지 모르겠다.  가계가 양반의 후예라서 그랬던지, 아니면 지체가 이만저만 아니여서 그랬던지 시집에 모인 친척들은 많기도 했다. 얼핏 스치는 눈어림으로도 몇십명 잘될상 싶었따. 그속에서도 나는 그런 여인을 본적이 없었다.  이씨네 가문엔 친척들이 많기도 했다. 첫날 색시라 나는 부끄러워서 낯을 들지 못하면서도 걱정스런 마음을 가라앉힐바 없었다. 기쁜 마음은 한이 없지만 시름거리도 그에 못지 않았따. 시름거리란 다른것이 아니였다. 본가집 살림 궁하다보니 이튿날 아침 친척들에게 올릴 례단을 남들처럼 많이 준비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 여인과 같은 그런 여인은 해임수에 넣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군일이 생길때마다 좋소 궂소 하고 들이밀쭉 내밀쭉 하는것도 친척이요 잘했소 못했소 하고 얼굴을 붉히는 것도 친척이니 말이다. 다른 손들에게서야 극상해서 잘 차렸소 못 차렸소 잘 먹었소 못 멋었소 하는 소리로 끝을 보지만 친척들은 입술에 말을 발라가지고 두고두고 옛말을 하게 되니 기실 반가운것도 친척이요 무서운 것도 친척인셈이다. 지어 인사차례 마저 내가 받을 절을 네가 먼저 받았다 네가 받을걸 내가 받았다 하며 노염내고 돌아앉게 되니 까딱하면 말썽이요 지떡하면 당장 떠난다는 판이라 기뻐하는것도 친척이요 곤대질하는것도 친척인 법이다. 하물며 한다 하는 이씨 가문의 맏며느리로 들어서는 내가 예단감을 푼푼히 준비하지 못했으니 뒤가 무겁지 않을수 있겠는가.  치마폭을잡아 끌고 뒤는 다는 걱정은 그것만이 아니였다. 내노라 하게 차려 가지고 오지 못하고 겨우 이불 한채에 첫날옷, 트렁크 하나뿐인데 트렁크속에 든것마저 태반이 시집에서 예장감으로 가져온것이니 친척들이 색시의 차림새를 구경할때 뒤소리를 얼마나 할까싶어 꽃방석에 앉은것이 아니라 우툴두툴한 바위위에 앉은 것만 같았다.  색시의 큰상차림에서 그 집안을 보아낸다는 말이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근년에는 승벽내기로 큰 상들을 준비하곤 했는데 내가 받은 상은 얼핏 스치는 눈저울에도 쉰장 하나를 가지고는 될상싶지 않았다. 상다리 부러지게 차렸다는 말이 내가 받은 상을 두고 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럴수록 꼬리를 무는 걱정은 더 커갔다. 모든것은 엎음갚음이라지만 한쪽이 너무 기울어졌으니 면목이 서지 않은것은 둘째치고 뒤공론에 귀가 가려울것이 더 걱정이였다.  첫날 색새의 일솜씨를 구경하느라고 그랬던지 아니면 첫손으로 지은 밥을 맛보느라고 그랬던지 이튿날 아침 진지를 새색시가 짓는것은 조선족의 재래로 내려온 습관이였다. 글눈보다 일눈을 먼저 틔운 나를 놓고보면, 더더구나 때시걱은 내 손 몰래 지나친 일이 없으니 만큼 손끝에서 물방울이 말라본적 없는 나를 놓고보면 그까짓 밥을 하는것쯤은 대수가 아니였으나 숱한 친척들의 눈길이 나를 투시한다고 생각되자 어쩐지 손이 말을 듣지 않았다. 한 두사람의 밥도 아니요 수십명의 밥을 지어야 하니 밥이 타거나 서는것은 여반장인데 어떻게 하면 타지도 않고 설지도 않게 눅지도 않고 되지도 않게 하겠는가 하는 우려가 가슴 한구석을 누르고 있었다. 그것도 그럴것이 처음 짖는 밥이 눅으면 각시복을 받지 못하고, 되면 남편복을 받지 못하고 , 설면 살림이 궁해지고 타면 집안이 망한다는 얼거지 떨거지 소리를 신조처럼 믿어오는, 이씨 가문의 풍속이니 말이다. 하기야 밥이 타거나 되면 여차여차하게 복을 누리고... ... 여차하게 자손들을 잘 키운다고 왕청같은 좋은 말을 늘어 놓으면서 술잔을 기울이기 마련이지만, 다시 말하면 나빠도 좋은 징조로 돌려대면서 아침을 쓰기 마련이지만 같은 값이면 분홍치마랬다고 어쨌든 첫 밥을 물맞게 잘 지어야 했다. 아마 이래서 삼일전까지 색시는 기쁨 절반 시름 절반이라고들 하는 모양이었다.  "아유, 새색시가 벌써 가마목에 앉았구만””  내가 밥물을 맞추느라고 가마에서 ㅁ루을 떠냈다가는 적은것 같아서 도로 쏟아넣고 쏟아 넣었다가는 많은것 같아서 되떠내면서 가불을 짓지 못하는데 키가 훤칠한 40좌우의 아주머니가 부엌문을 떼고 들어서면서 미안쩍게 말하는것이었다. 남성적인 바스 음성이었다. 그는 곧바로 가마 앞으로 오더니 밥물을 보는것이었다.  "묵은 쌀과 달라 햅쌀이 돼서 물을 적게 타오. 물을 좀 떠내오””  그 아주머니는 내 귀에 대고 조용히 귀뜸해주고 부엌에 내려앉더니만 장작을 아궁이에 밀어넣기 시작했다.  나는 밥물을 떠내다말고 그 아주머니를 내려다보았다. 낯선분이었다. 약혼한지 이년이나 되는새에 나는 남편과 함께 친척집을 다 돌아보앗고 시집에서 약혼잔치를 차렸을때도 가문에 호구를 붙인 사람이면 사돈의 팔촌까지 다 모여왔지만 지금 부엌에 앉아있는 여인은 본적이 없었다. 잔치 이튿날이라 동네 아주머니가 와서 거들어줄리도 없었다. 그렇다면 저 고마운 여인은 누구일까? 새색시라 나는 곁사람과 누구인가 묻지도 못하고 그저 그 아주머니가 시키는대로 가마에서 물을 떠냈다. 장작을 서리우던 그 여인은 안심되지 않아떤지 다시 우쭐 일어나 밥물을 보고서야 낯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량귀밑으로 훔쳐오리며 웃음기를 보일까 말까 하면서 부엌에 앉는것이었다. 그 여인이 일어서는 순간 나는 어덴가 격에 맞지 않는 그의 옷매무시에 눈을 주었다. 몽당치마였다. 무릎을 겨우 가이운 그 검은 몽당치마는 판나지는 않았지만 색이 날아있었다. 아마 부엌일을 하려고 뉘것이건 쥐이는대로 대충 걸치고 왔나 보다고 생각했다.  내가 밥을 다 안쳐놓고 가시대에 마주앉아 그릇들을 가시려고 할때 사랑채에 나갔던 시어머님이 두부며 돼지고기를 한소래 담아들고 들어섰다.  "이 사람 조카댁, 왔구만””  시어머님은 그 아주머님을 보자 대뜸 화색이 만면해지면서 말했다.  "잠깐 눈을 붙인다는것이 그만 너무 잤댔어요."  이상하리만치 코에 걸리는 달짝지근한 바스음성으로 말하며 그 여인은 늦어서 미안하다는 듯 나를 흘끔 쳐다보고는 인츰 머리를 숙이며 부엌아궁이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조카댁?"  나는 흠칫 놀랐다. 어머님의 조카댁이면 나에게는 동서간이 되지 않는가? 그런데 왜 나는 여직 모르고 있었을까? 아마 료령이거나 흑룡강에 멀리 떨어져 있는 먼 친척인가 보다고 여겼다.  "그 입술에 물집이진걸 보게. 사촌 시동생을 장가 보내력다 자네가 드러눕고 말겠네."  시어머님이 혀를 끌끌 차면서 말했다.  "작은 어머님도 별말씀 다하세요, 뭐 못할 일을 해요?"  "자네 몸은 쇠로 빚었겠나?"  "되려 부끄러워요."  알고 보니 사촌동서였구나... 나는 인사도 못올리고 처음 대하는 사촌동서를 보기 면구스러워서 귀밑부터 고추물을 들이기 시작했다.예의바르고 인사범절이 여간하지 않다던 이씨네가문에서 왜 사촌끼리도 인사를 시키지 않는단 말인가. 엊저녁에 노래와 춤판이 벌어졌을때 일가 친척들은 물론 코흘리개까지도 다 출도한 셈이지만 사촌동서만은 본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더더구나 자기의 생색을 내느라 친척들은 자기와 신랑과는 여사여사한 친척이 되는데 손님들이 오셔서 기쁘게 놀아주니 감사하다는 인사말 몇마디쯤 하고야 노래거나 춤을 추는 판인데 자기로서가 아니라 소개를 받으며 떳떳이 나서야 할 사촌동서를 면목도 익히지 못했던것이다. 별난 집안도 다있따싶으면서 다시 동서를 내려다보니 동서도 낯이 빨개진채 부지갱이로 불만 뚜지고 있었다. 나의 눈길은 다시 그 몽당치마에 가 떨어 졌다. 섰을 때는 겨우나마 무릎마디를 가리워 주던것이 쭈크리고 앉으니 무릎도가리우지 못했다. 그 밑으로 판난 수갑이며 양말짝을 풀어서 물레로 뺀 무명실에 섞어 뜬 알록달록한 내의가 보였다. 그것은 나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처음 대한다는데도 기인되겠지만 옷매무시로부터 바스음성에 이르기까지 그 모두가 팔간집에 차고 넘는 친척들 가운데서 기중 나의 이목을 끌었다.  그 다사한 잔치에 그릇 하나 '틸�진것이 없으니 복우에 복이라는 등 잔치술 뒤끝엔 싸움이 벌어지기 일쑤인데 유리 한장 깨여지지 않았으니 잘 살겠다는둥 거기다 새색시가 한 밥이 딱 맞춤하니 호박이 덩굴채로 굴러 들겠다는둥 (기실 사촌동서가 제 홀로의 생각에 묻혀있다보니 불을 맞추어 때지 못해서 밥이 탔건만.) 이런저런 좋다는 소리를 다하면서 아침 늦게야 상을 물리고 내가 제일 걱정하는 가문잔치가 새로 벌어지게 되였다. 예전에는 축수라고 일컬어왔지만 지금은 가문잔치로 번져눕고 말았다. 매 사람에게 드릴 예단을 한가지씩 상우에 놓고 신랑이 술을 부으면 신부가 술잔을 권한 다음 신랑신부가 함께 절을 올리는것이니 아마 집안사람끼리 하는 잔치라고 하여 가문잔치라고 하는가 싶다. 나는 옆에서 시키는대로 시아버님, 시어머님, 차례로 내려가면서 내가 가지고온 예단을 올려놓고 술을 권한다음 남편과 함께 절을 올리곤 했다. 내가 가지고 온 밑천을 내가 잘 알고 이었다. 친척들은 많고 예단은 적은데 어떻게 한단말인가? 술을 권하고 절을 올리지만 나의 몸은 얼어있었다. 나는 송곳방석에 앉은 사람처럼 다음에는 뭘 올려놓나 뭘 올려놓나 하면서 옆에서 시중드는 시어머님의 눈치만 살피곤 했따. 하지만, 시어머님은 아무런 딴 기미도 보이지 않고 나이론 양말이며 세수수건 같은것을 상위에 올려놓는것이였다. 하지만 그것들은 내가 준비해온 례단이 아니였다. 나는 그제야 시어머님이 나를 위해서 예단을 따로 준비해두고 있었다는것을 알았다.  가문잔치도 거의 끝나게 되었다. 하지만, 당당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새각시의 례단을 받아야 할 몽당치마의 몫은 그때까지도 없었다. 예의를 놓고 보거나 친척들의 차례를 놓고 보아도 사촌동서는 언녕 례단을 받았어야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사촌동서를 차자는 사람이 없엇고 사촌동서도 나서려 하지 않았다. 애들에게까지 손수건 하나씩 주는 판이라 나는 너무도 이상하여 옆에 계시는 시어머님 보고 가만히 귀띔했다.  "어머님, 사촌동서 몫은 없어요?"  "아유, 깜박 잊었구만."  그제야 시어머님은 가마목께로 눈길을 던지며 소리쳤다.  "이 사람 조카댁! 이 사람-"  하지만 가마목은 비어있었다. 가문잔치가 벌어지기 전까지도 땀벌창이 되어 가마를 안고 돌던 사촌동서는 어데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이 사람 동불사댁은 어데 갔나?"  하지만 그 누구도 모르고 있었다. 언제 자리를 떴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알려고도 하지 않아다. 누구 다음에 제 몫이 돌아오겠는가 어느떡이 더 큰가를 살피다나니 남의 걱정 할새가 없었거니와 몽당치마에 대해선 눈에 담아보지도 않았으니 어데 갔는지 알리 없었다.  "빨리 동불사댁을 찾아오게!"  시어머님이 정지에 대고 소리쳤다.  "빈손으로 왔으니 자리를 피했나봐요."  같은 사촌동서인 조양천댁이 입을 이죽거리며 찾아서는 뭘 하겠는가 하는 투로 말했다.  나는 그 소리에 아릴사 하면서도 시큼한 그 무엇을 느끼며 바스음성이 들리기를 기다리며 바당문께로 눈을 돌렸다. 하건만 떡과 과자를 든 조무래기들이 좋아서 떠들어대며 들락날락 할뿐 눈에 익을 몽당치마는 보이지 않았다. 시어머님만은 어덴가 못마땅한 기분이였으나 다른 친척들은 여전히 웃고 또느는 품이 몽당치마쯤은 안중에 있는상 싶지도 않았다.  인사차례가 끝난 뒤끝에 부어라 마셔라 하는것이 격으로 됐으니 재벌 술상을 벌려야 했다. 동서들도 많고 쌍태를 드리운 ㅅ ㅐㄱ시들도 맣ㄴ았지만 선뜻 팔을 걷어 붙이고 가마목에 들어앉는 여인은 하나도 없었다. 이상하리만치 맥맥한 기분이었다.  "이 사람 조카댁, 빨리 상을 차리게."  뒤끝이 부산하고 그릇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시어머님이 조양천댁을 보고 말했다.  "동불사 형님은 어데 가셨나? 인남아 빨리 가서 동불사 맏어머님을 오시라고 해라!"  조양천댁은 어느새 쥐였는지 채함지에서 닭고기를 쥐여 제 아들에게 주며 소리쳤다.  "아니 동불사댁만 맛인가? 자네가 가마목에 앉으면 못쓰나?"  시어머님이 안색을 흐리우며 말씀했다. 손포가 많지만 진짜 손쓸 사람이 없었으니 말이다.  "동불사 형님이 다해놔서 뭔지 알아야 하지요?"  산뜻하게차려입은 치마저고리에 기름이 뛸가 그랬던지 그릇마다 기름이 묻어서 미끌미끌하여 손대기 싫어서 그랬던지 조양천에 계시는 사촌동서는 좀체 가마목을 차지하려 하지 않았다.  "칠칠한 여자들이 한구들이 돼도 가마목지킬 사람은 하나도 없구나! 쯔쯔..."  시어머님이 조카들과 손녀들을 둘러보며 나무람했다. 그제서야 정지에 앉았던 여자들이 뜨직뜨직 가마목께로 다가갔다. 보기가 차마 면구스러워 나도 첫날옷을 벗고 일차비로 삼일에 입는 옷을갈아 입었다.  그때, 바로 덜커덩하는 문소리와 함께 몽당치마가 바당문안에 들어섰다. 나는 무릎을 가리울까 말까 하는 치마가 펄렁이며 바당문턱위에서 날리는 것만 좁고도 동불사에 계시는 사촌동서구나 하고 대뜸 넘겨짚었다. 그제야 정지에서는 몇십년만에 만나느 친지를 대하는것처럼 우와하고 일어서면서 낯에 웃음 꽃들을 피우는 것이였다. 아낙네들은 너나없이 콩나물이 머리를 쳐들듯 우쭐우쭐 일어서며 야단법석이었다.  "아니 어데 갔다가 인제 오우?"  "작은 어머님이 례단을 놓고 얼마나 기다렸다구?"  "그래도 동서가 집안의 모막이라니..."  "동서가 없으니 한자리 빈것 같습데."  이 입 저 입에서 튕겨나오는 말에 나는 웬일인가 싶어 이 동서 저 형님, 조카, 아주머니들을 둘러보았다.례단을 받을때는 그 누구도 찾지 않던 그들이 그새 그리도 못견디게 그리워졌을가? 그들은 낯에 웃음을 달달 구을림녀서 자기가 더 관심있다는 듯이 목소리를 두드러지게 내느라 짬을 타다가 다른 사람의 여음을 물면서 한음 높이는데 그 소리들이 합쳐서 장타령 비슷한 그 무슨 음조를 이루고 있었다. 그 누구보다 기다렸다는 긋이 뽑아대는 조양천댁의 가늘면서도 삐여진 쏘프라노식 음성이 더더욱 두드러졌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그들은 약속이나 한듯 가마목께서 물러나 고방에 들어가는가 하면 먼발치로 앉은 걸음을 치는 것이었다.  "속탈을 만나서..."  귀맛 돋구는 그 바스음성이었다. 그 소리는 고음으로 고우던 다른 음성들과 대조되면서 귀맛좋게 들려왔다. 하건만 그 소리는 햅쌀이 돼서 물을 덜 탄다고 소근거리던 부드러운 저음과는 달리 어딘가 젖어있었다.  나는 동불사댁을 쳐다보았다. 그 널직스럼하고 실주름 마다엔 인자가 폭폭 갚였던 얼굴이 어덴가 일그러져 보였고 땀구멍마다 서글픔이 파고든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인침 웃음을 담으며 팔을 걷고 가마목에 앉는것이었다.  어렸을ㅈ거부터 궂은 일 된일 가리지 않고 일에서 뼈마디를 키워왔는지라 나는 동불사 동서의 일솜씨에 마음이 확 쏠렸다. 뼈도 굵거니와 살집도 좋아서 얼핏 보면 손발이 잴것 같지 않았으나 가마목을에 여간 숙달하지 않아다. 무슨 일에서나 입보다 손발을 먼저 놀리는 그런 류형의 농촌여성이었다. 잔치객들이 잔치선물로 떡이며 과자등속을 이고 들고 한 사람 두사람 떠나가기 시작했다. 하건만 동불사 동서는 가마목을 척 차지하고 앉아서는 그 시끄러운 뒤걷이를 하는 것이였다. 우리집은 형제간이 사형제나 되지만 모두 사내들이고 여자가 없다보니 시어머님이 자질구레한 뒤수습을 해야 했다. 이것을 잘 알고 있는 동불사 동서는 집에 잔밥들이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줄 번연히 알면서도 작은 어머니의 일손을 덜어주느라 늦게 떠나기로 작심했던것이다.  오후에 잔치객들이 다 떠나자 빌려온 그릇들을 돌려주는 한편 저녁 차비를 하느라 나는 동불사 동서와 함께 가마목에 앉게 되었다.  "형님, 이씨 가문에 친척이 많다더니 정말 많기도 하구만요."  인사할때는 다 소개받았으나 친삼촌이거나 외삼촌 몇몇 가까운 친척을 내놓고는 딱히 몇촌벌 되는 관계인지 까맣게 잊고 있었던 나는 그 널직한 팔간집에 신골박듯 들어찼던 친척들을 상기하면서 동불사 동서보고 말했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소."  동불사 동서는 서운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나는 그 많은 친척을 두고 왜 저러냐 싶어 물었다.  "그 많은 친척을 두고 적다니요?"  "한 집안끼로도 친척이 있는 집이 있고 없는 집이 있소."  알고도 모를 소리였다. 친척이면 친척이지 친척이 따로 있단 말인가? 나는 저녁거리로 돼지고기를 썰다 말고 동서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팔죽같은 땀을 흘리며 팔을 걷어붙이고 일하는 동서의 얼굴에서는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다.  "왜 아주버님과 동행하지 않았어요?"  "아주버님?"  동서는 이상하리만치 의혹에 찬 눈길로 나를 쳐다보다가 일손을 다그치는 것이였다.  "그럼요. 애들까지도 다 데리고 오지요. 친척마다 다 데리고 왔던데요."  "사람값에 오르지 못하는걸 데려와선 뭘 하겠소?"  귀에 걸리는 부드러운 바스가 아니라 거쉰 바스였다.  "네?"  동불사 동서는 더는 말과 싱갱이질 하기 싫었던지 아니면 나의 물음을 피하느라 그랬던지 구지렁물을 버린다 쓰다 남은 채소 소래를 사랑채에 내간다 하는 선일들만 골라하는 것이었다.  동불사 동서는 뒷일을 말끔하게 다해놓고 그날 저녁 늦차로 떠나겠다고 서둘렀다. 시어머님은 내가 놓았던 례단이며 먹다 남은 떡이며 낡은 옷견지 같은 것들을 한보따리 꿍쳐서 동불사 동서에게 주었다.  "헌 투레기뿐인데 애들에게 기워 입히게나””  "작은 어머니, 나도 친척이노라 하고 나설때가 있을까요?"  동불사 동서는 말없이 보꾸레미를 받으며 눈물을 훔쳤다. 짧은 사이지만 함께 뒤걷이를 하면서 맺힌 정에서였던지 동서의 그 말에 나는 가슴이 찡해옴을 어쩔수 없었다. 그 말에서 나는 동서를 주눅이 들게 한 생활 처지를 엿볼수 있었다.  "애들이 자라는것이 잠시라는 말도 있지 않소? 그것들이 자라면 옛말할때가 있을거요."  시어머니는 자켓호주머니에 손을 넣더니만 미리 준비했던 돈 10원을 꺼내여 동서의 손에 쥐여주었다.  "적은데 애들 학비에 보태오."  "이 꾸레미는 받아도 돈은 못받겠어요. 빈손으로 온것만 해도 낯을 들지 못하겠어요." 실히실히한 몸집과 남성적인 체대에 맞는 바스음성이 아니라 거쉬면서도 가는 고음이 모기소리처럼 그 실한 목구멍에서 겨우 새어 나왔다.  아, 나는 그제사 동불사 동서가 왜 례단을 올릴때 자리를 피했는가를 알았다. 그리고 이씨 가문을 나들기 시작한지 이년 남짓이 되지만, 흑룡강이나 료녕이 아니라 자동차를 타도 한시간 안팎에 다달을 가까은 곳에 사촌동서가 살고 있었지만 왜 지금껏 모르고 있었는가를 알았다. 나는 물갈기 이는 가슴을 엎누르며 사촌동서의 손을 꼭 쥐고 말했다.  "형님, 치마라도 한감 사입으세요."  "이렇게 신세만 져서…"  "진짜 신세를 누가 지오? 보리고개에 강냉이쌀을 꾸어다 먹고 가을에는 입쌀을 보내고 몇푼되지 않는 돈을 빌려쓰고는 그 배로 쌀되박을 들고 오니 진짜 신세를 누가 지나 말이요. 바쁜 목을 열어 주었다고 그 배로 갚으면서도 항상 신세를 지는것처럼 생각하지… 손에 쥔것이 없고보면 그런법이요 쯔쯔… 가난이 원쑤라니까."  지금은 집안에 앉아서 가마뚜껑을 운전하고 있지만 토지개혁때 부녀회사업까지 맡아하셨다는 시어머님의 말씀은 정말 시원시원도 했다. 그 말씀을 듣는 서슬에 나는 몽당치마를 대신해서 시어머님께 절이라도 올리고 싶은, 그런 감정에 사로잡혔다.  동불사 동서는 밤차로 떠나갔다. 하건만 눈에 익은 그 몽당치마와 귀맛 돋구는 그 바스음성만은 잊을 수 없었다.  2  이씨 가문은 사람이 불으면 불었지 줄어들줄 모른다더니 사람이 많기도 했다. 거기에다 사돈이요, 문객이요 하면서 경사가 나질때마다 사돈에 거돈까지 몰려들다 보니 잔치가 벌어진다 하면 친척잔치로 이삼일씩 걸리는것이 보통이었다.  시아버님이 지구교육처 처장으로 사업하고 남편이 공업국 국장으로 일하는 덕분이였던지 손이 두텁게 부조를 해서 그랬던지 나는 이씨 가문의 장손댁도 아니건만 간곳마다 장손댁으로 받들렸다. 촌수를 알아보니 이씨 가문의 장손댁은 동불사 동서였고 소 깔먹듯 무르고 센것 없이 밥소래를 굽내며 무럭무럭 자라는 그 집 자식들이 이씨 집안의 대를 물 진짜 후예였다. 추석이요 설이요 하는 명절때마다 집안사람들이 이집저집 몰켜다니며 닭을 잡는다 개를 잡는다 하면서 질탕하게 마시고 먹고 놀곤 했지만 몽당치마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혹여 내가 몸이 불편해서 낯을 보이지 않으면 사람을 띄운다 자전차에 앉혀간다 하면 야단버석이었지만 동ㅂ루사 동서에 대해선 모시기는 커녕 입에도 올리지 않았다. 그런때면 사람들의 기억에서 몽당치마가 영영 사라지고 있었던것이다. 그렇지만 나의 머리속에선 몽당치마가 항상 맴돌곤 했다. 그 바스음성이 안타깝게 그리워지는때도 있었다.  "아니, 동불사 동서는 왜 오시지 않았어요?"  설쇠러 조양천 동서네 집을로 갔을때 나는 돼지를 엎질러 놓고 순대를 만들어 자시는 친척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그 동서가 잔밥들때문에 문을 나설수 있어야지?"  조양천 동서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 애들이 제구실을 하기 전까지야 언제 나다닐새가 있다구?"  "새끼를 먹일라니 공부시킬라니 발 뗄 새나 있겠소?"  공팔칠팔하면서 이사람 저사람 조양천 동서를 두둔해 나섰다.  나는 그 소리가 못내 섭섭했다. 그저 섭섭할뿐이었다. 내가 바스음성을 생각했다면 고작 불쌍하구나 하는것에 그쳤을 것이다.  동불사 동서는 이렇게 먹어라 써라 하는 때마다 자리를 비우곤 했다. 하지만 일손이 모자라거나 고된 일이 생길때마다 저마다 그를 찾았고 그를 생각했으며 그를 데려오려고 사람까지 띄우곤 했다.  내가 시집온 이듬해 가을에 시아버님의 회갑잔치를 하게 되었다. 고양이 손도 빌어쓸 바쁜 가을철이건만 시아버님의 회갑잔치는 일대성황을 이루었다. 사흘전부터 친척들이 오기 시작했는데 막달을 잡은 나를 놓고보면 회갑날이 아니라 친척들 대접부터가 뻐근할 정도였다. 더더구나 이백여근 되는 떡쌀을 씻는다 팥고물을 만든다 두부를 앗는다 막걸리를 거른다 돼지를 잡는다 큰상차림을 한다 일이 딸리고 손이 모자라는 통에 땀을 동이로 쏟았지만 일축은 나지 않았다.  조양천 동서는 회갑전날 아침차를 타고 왔다. 그는 보라는듯이 과자와 사탕과실을 넣은 큰 상차림 구럭을 이고 들고 문에 들어섰다.  "아유, 오늘은 차객들이 얼마나 많은지 겨우 비비고 올라 앉았어요. 짐이라는게 작히나 무거운가-"  조양천댁은 남들이 듣지 못할가봐 길게 말을 뽑았다.  "이 사람 조카, 길에서 고생했네."  마음씨 후더분한 시어머님이 얼른 일어나 짐 받으러 바닥에 내려서면서 말했다.  "조양천에 색과자가 없어서 룡정까지 갔다 오느라 늦었어요."  조양천댁은 얼굴에 땀도 나지 않았건만 똬리를 만들었던 수건을 풀어 땀을 씻는척하며 계속 떠따고았다.  "상을 차리지 않으면 못올덴가? 원-"  "조카로 작은 아버님의 회갑상도 차리지 않겠어요?"  친척들은이구동성으로 조양천댁의 성의가 이만저만 아니라는둥 친척사이에 등한시 하지 않는다는둥 입술이 닳게 칭찬들을 늘어놓았다. 그러자 조양천 동서는 구렁이가 몸을 춰세우듯 어깨를 으쓱 살려올리며 고방으로 들어가는것이였다.  나는 조양천 동서의 성품이 워낙 그렇다 싶어 맞장구를 치지 않았다.  "이 사람, 일이 처져서 말이 아니네. 빨리 옷을 갈아 입고 가마목에 앉게."  시어머님이 일 재촉을 했다.  "아니 동불사 형님은 오지 않았어요?"  조양천 동서는 그제야 고방에서 머리를 내밀고 누구인가를 찾듯이 이곳저곳을 살피며 물었다.  "일부러 알리지 않았네!"  "아니 작은 아버님의 회갑인데 알려서만 오겠나요? 제발로 와야지요, 이런때 오지 않으면 언제 오겠나요?"  워낙 가늘고 높은 소리에 한음 더 높였다.  그러자 친척들도 와야 한다거니 사람을 띄워서라도 데려와야 한다거니 하며 왁작 고아댔다.  "입이 넷이 그 손을 믿고 사는 사람을 어찌 오너라 거거라 하겠나? 하물며 이 바쁜 가을철에 말이네."  시어머님이 딱한 표정ㅇ르 지으며 동불사 동서를 감싸 나섰다.  "제아무리 목구멍이 포도청이래도 시아버님 맞잡인 작은 아버님의 회갑에도 오지 않다니요? 아무리 그렇다고 이 좋은 세월에 산사람의 입에 거미줄이 쓸겠어요?"  남의 흠 잡으면 그만큼 제 어깨가 올라가는 판이라 조양천댁은 점점 모가지가 세졌다.  나는 이런 때 동불사 동서가 와서 일을 거들어 주면 얼마나 좋으랴 하면서도 잔밥 넷이나 데리고 사는 과부의 신세가 얼마나 고되랴싶어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좋은 일에는 생각나지 않다가도 바쁜 대목에 이르면 생각난다는 말이 이런 때르 ㄹ두고 하는 말이리라.  이렇게 말이 잘새없을 때 덜컹하는 바당문 소리와 함께 동불사 동서가 들어섰다. 일년전에 입고 왔던 그 매무시 그대로였다. 딴 차림새라면 우둘질 체대에 어울리지 않는, 젖가슴이 팽팽할 정도로 단추를 겨우 잠근 학생복 저고리를 입은것이었다.  얼핏 스치는 눈어림에도 큰애의 저고리를 입고 왔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동불사 형님이 오셨어요!"  나는 너무나 기뻐서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소리쳤다.  "이 사람, 우정 알리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알고 찾아 왔나?"  시어머님도 자리를 털고 일어서면서 동불사 동서의 손에 쥐여있는 술병을 받았다.  "선가을을 끝내고 오느라 그만 늦었어요."  돐만에 들어보는 남성적인 성미가 담긴 그 바스음성이었다.  사람이 직접 눈앞에 나타나자 방금까지 이러쿵 저러쿵 하면서 콩이야 메주야 하던 친척들은 여간한 성의가 아니라는둥 혼자손으로 그 집을 빠져나온것만도 대단하다는둥 칭찬이 자자했다. 나는 친척들의 낯을 새삼스럽게 다시 뜯어보았다. 방금전까지 자기들이 뱉은 말은 되씹어 삼키고 판판 다른 말을 하고 있건만 그들의 낯에선 붉은 기미라거나 미안쩍은 기색이라고는 전혀 찾아볼수 없엇고 그렇듯 태연하고 천연덕스러웠다.  "나도 방금 왔는데 형님은 무슨 차를 타고 오셨소?"  조양천댁이 토라져서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물었다. 그러면서 그는 시어머니의 손에 쥐여있는 술병에 야멸찬 눈길을 주었다. 그 눈빛은 상을 차리지 못할진데 차라리 빈손으로 올거지 술 한근이 뭐요? 하고 말하는 상 싶었다. 기실 친척들의 눈길은 모두 그런 말을 하고 있었다.  "뻐스를 타고 왔소."  동불사 동서는 고방으로 들어가더니만 저고리만은 벗어 qurdpo 걸어놓고 맨적삼 바람으로 나와 말없이 가마목에 앉는것이었다. 동서는 아무런 말도 없이, 누가 뭐라건 말씨름엔 쇠통 삐치지 않고 힘겨운 일만 수걱수걱 하였다. 조양천 동서는 큰상차림을 준비합네 하고 옷을 차려입고 시내로 들락날락 하면서 기실 겨우내 애들에게 입힐 고운 옷들을 골라사느라 야단쳣지만 동불사 동서는 가마목에서 땀을 동이 들이로 쏟고 있었다. 곁에서 보기에도 안되어 내가 좀 쉬면서 하라고 몇번이나 말했지만 그는 그때마다 고개를 끄덕여 보였을 뿐 이 일이 끝나면 저 일, 저 일이 끝나면 이 일, 이 일 저 일 손쉬울줄 몰랐다.  이씨 가문에는 친척들의 많기도 했다.시아버님의 회갑상을 내놓고 친척들에게서 들어온 상만 해도 스물네상이나 되니 말이다. 회값아상수를 보고 그 집안을 알고 집집이 차린 상으로 집집을 안다는 말이 이를 두고 하는 말이리라. 그래서 그런지 친척들마다 제상차림에서 이목을 끌게 하느라 상위에 놓았던 색과자를 저쪽에 옮겨놓고 저쪽에 놓았던 사과를 이쪽에 옮겨오며 놓앗다가는 옮기고 놓았다가는 옮기고 함녀서 상을 안고 법석거렸다. 결국은 그 상위에 물건이 그것이요 그 빛깔이 고작 그것이었지만 저마다 제 상빛을 도드라지게 하느라 시간을 퍽 끌었다.그런가 하면 상차림 가지수를 세느라 여념없는 사람도 있었다. 이제 그 가지수를 가지고 뉘 집은 이렇고 뉘 집은 저렇다면서 말에 장부를 앉힐 판이다.상차림에서 조양천 동서의 승벽은 여간하지 않았다. 남이 차린 상을 유심히 본 다음 자기 상에 없는것이 있음녀 그건 보면서도 눅거리가 돼서 안샀다거니 회갑상에 그런걸 다 놓겠는가 하면서 비탈린 말만 하기 일쑤였다.  남들이 상차림에 분주할때 동불사 동서는 머리를 푹 떨구고 손니치를 음식을 만드느라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안절부절 못하며 일손을 가누지 못하는, 몽당치마로 무릎을 가리우느라 손으로 치마폭을 당기는 그의 행동거지에서 그의 기분상태가 몹시 갈앚아 있음을 보았다. 나는 동불사 동서가 상을 차려오지 못하고 빈손으로 와서 그런다는걸 대뜸 눈치 챌수 있었다. 일은 뼈빠지게 하면서도 그렇게 면구스러워 하는 품새가 안돼서 나는 시어머님께 동불사 동서에게 상을 차려 드리라고 가만히 일렀다. 떡판에 가서는 떡이요 술판에 가서는 술이랬다고 겉치레뿐인 상차림이지만 남들에게 짝져서야 되겠는가 싶어서였다. 특히나 그 후한 인품에 빈손때문에 주눅이 들게 하고 싶지 않았기때문이다.  시아버님과 시어머님꼐 올리는 인사가 허리르 넘어 섰는데도 지난 번 잔치때처럼 동불사 동서의 이름은 없었다. 5촌, 6촌들 차례까지 지나 8촌으로 넘어섰는데도 말이다. 동서보다 내가 더 섭섭했다. 나는 부엌에서 매운탕을 끓이고 있는 동서를 내려다 보았다. 동서도 나를 쳐다보았다. 그 찰나, 나는 동서의 눈급에 연녹은 물같은 눈물이 괴여 있음을 보았다. 그 눈물은 왜서 내가 와서 이런 수모를 당해야 하는가 하소연 하는것 같았고 그런 자기를 구원하지 못하는 나를 원망하는것만 같았다. 동서는 나를 보더니 인츰 일고방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작년 잔치때처럼 자리를 피하는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몇분 지나지 않아 나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동서가 어제 입고 왔던 그 학생복을 단정히 입고 술병을 들고 고방에서 나왔으니 말이다.  "형님, 어머님꼐서 형님의 상을 마련했으니 들고 나가세요."  기분을 잡치지 않고 인사 올리러 나가는 동서의 그 인품이 너무나 고맙고 기꺼워서 시어머님이 차려놓은 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겉치레를 해선 뭘 하겠소? 있으면 있는것 만큼 행세해야지."  동불사 동서는 동동 달리는 몽당치마를 내리당겨 놓고는 코신을 발에 걸고 문을 나서는 것이었다. 나는 정지문을 열고 어쩌나 하여 밖을 내다보았다. 마당둘레어는 사람들로 모를 박았는데 조무래기들의 눈을 끄잡아 당긴것은 앞마당을 차고 넘는 큰상이었다. 그들은 저마다 상을 물릴때 어느것부터 달라겠나하고 겨누고 있는 상 싶었다.  "친척에서 더 인사할 사람이 없소?" 8촌 시형이 축수집행을 서다가 사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엇다. 나는 너무나 급하여 있다고 소리치려고 목을 빼들었다. 하지만 나는 소리칠 수 없었다. 사람들 틈을 비집고 나서는 몽당치마가 눈에 띄었던것이다. 동불사 동서는 큰상이 아니라 술 한병을 들고 시아버님이 받은 상 앞으로 가더니만 강냉이속으로 틀어 막은 마개를 빼고 잔에 술을 붓는것이었다. 그리고는 머리를 들어 아버님 어머님을 쳐다보는데 긴 속눈섭마다 물기에 젖어있었다. "작은 아버님 작은 어머님, 두분께서 오래오래 복하게 앉으세요." 동불사 동서는 살풋이 앉으며 절을 올렸다. 알록달록한 아랫 내의가, 작년에 입고 왔을때보다 헝겊기운자리가 두드러진 내의가 몽당치마에 가리우지 못하고 다 드러났지만 절하는 맵시가 하도 탐탁하고 진지하여 그의 깨끗한 마음을 흐리우지는 못하였다. "야- 질부가 부어주는 술이 더 달구나! " 시아버님은 다른 사람들이 부은 술은 입술이나 대다 말았지만 동불사 동서가 부은 술은 한방울도 남기지 않고 굽을 비우고 나서 기껍게 말씀하셨다. 그 소리와 함꼐 조양천댁이 입을 삐죽하는것이 나의 눈결에 맞쳐왔다. 같은 사촌동서라지만 간곳마다 제노라 하면서 큰소리만 치고 부조하는 물건의 무게만 뜨는 그 행실이 눈에 거슬렸다. 오늘도 시아버님이 동불사 동서를 칭찬하니 기뻐할 대신 앵돌아질건 뭐람? 하물며 그들은 친동서간이 아닌가? 나는 기뻤다. 간곳마다 빈손이라면서 주저하고 일로 그 빈손을 봉창하는 동서를 위해 기뻤다. 딱히 업신받는다고 짚기 어렵지만 실제상 업신 당하고 있는 몽당치마를 위해 기뻤다. 동불사 동서에 대한 나의 동정심은 두 차례의 잔치일에서 더 깊어졌다.  이번에도 그는 다른 손님들이 다 떠나고 없었지만 마지막 거둠질까지 싹 하고 저녁 늦차로 떠났다. 나는 내가 일할때 입으려고 준비했던 검은 통치마와 토색저고리를 동서에게 드렸다. 우리는 체대도 엇비슷하고 통체도 비스듬해서 남의 옷을 빌어입은것 같지는 않을것이다. "이렇게 신세만 져서…" 역시 같은 말을 남기며 그는 차에 올랐다. 인생의 행로는 파란곡절로 얽혀 있다더니 말 그른데 없었다.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것이 돈이요, 살다가도 죽고 죽다가도 사는것이 인간이라 부귀영화는 영구한것이 아니요 생명도 영우너한것이 아니다. 환갑이 지났건만 50대의 분들을 찜쪄 먹는다던 시아버님이 글쎄 중풍을 만나 급작스레 세상 뜰줄이야 누가 생각인들 했으랴! 가문의 기둥이요 집안의 대들보라고 여겨오던 시아버님이 세상뜨자 단란하던 우리 집은 차츰 네 귀가 비뚫어지기 시작했다. 시아버님이 세상뜬지 몇달되지도 않았는데 간염으로 시름시름 앓던 시어머님이 간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시아버님의 혼백을 따라가게 되었다. 이렇게 되어 한해 몇달 사이를 두고 나는 시부모를 몽땅 여의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그 이듬해엔 공업국장으로 일하던 남편이””민족공업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깃발을 들고 협애한 민족주의 사상을 고취했다는 감투끈으로 민족주의 분자에 우경 기회주의 분자로 되는 통에 우리집은 영락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으며, 얼마 되지 않아 생활의 질고에서 허덕이게 되었다. 생활도 생활이겠지만 사람 그리운것이 더 고통스러웠다. 시부모가 세상뜨자 뜸해지기 시작하던 친척들의 발걸음이 남편이 그 무슨 분자로 되자 영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이씨네 가문에 사람이 많다더니 사람이 없는것이 이씨네 집안이었다. 시아버님이 생전일적만 해도 웬간한 일이 있어도 줄을 쳐서 찾아오던 친척들이 남편이 로동개조를 하면서 부터는 낯도 들이밀지 않았다. 가문이 친척지간 촌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가문의 촌수를 만들고 가문의 촌수가 친척사이를 만드는것이 나리라 돈이 감누의 친척을 만든다는 옛말이 틀림 없을상싶게 생활이 영락되자 형제사이도 이웃만 못하게 되었다. 이웃이 사촌만 낫다는 말이 참말 지당하였다. 남편을 따라 옥천동으로 내려온후 친척들은 우리가 죽는지 사는지도 모르고 있었지만 마음씨 착한 이웃 할머니들은 색다른 음식이 있어도 놋식기에 담아서는 치마폭에 감춰가지고 애들을 먹이라며 가져다주곤 했다. 가난이 씨종자만 만든다고 내가 시집온 5년새에 두 남매를 낳은데다 또 태기가 있게 되어 오래잖으면 자식 셋을 가진 어머니로 되게 되었다. 새끼들이 많으면 늘그만ㄱ에나마 낙을 볼때가 있으려니 하는 그 희망에서 낳고 낳고 자꾸 낳는가 싶다. 남편이 벌지 못하는 대신 내가 벌어야 하겠는데 배가 불룩하여 일도 못하게 되자 우리 집 생활은 궁하다못해 쌀독에 거미줄이 칠 지경으로 됐다. 돈이 돈을 낳고 가난이 가난을 낳는다고 가난할수록 애들마저 밥을 어떻게나 먹어대는지 남들과 똑같이 량식분배를 받아도 우리집은 항상 딸리기만 했다. 언제나 음력설을 넘기기 바쁘게 쌀독에서 바가지 소리가 달가당 거렸다. 생산대에 가서 량식을 꿔 먹기는 했으나 그것도 한두번이지 항상 주머니를 들고 다닐수는 없었다. 나는 할수 없이 막무가내로 시내에 있는 친척들을 찾아가서 가을에 입쌀을 주기로 하고 강냉이쌀과 강냉이가루를 꿔다 먹고는 벼를 찧기 바쁘게 이여다주곤 했다. 이렇게 일년에 몇백근씩 꿔다 먹은 쌀을 물어주고나면 그 이듬해 봄을 넘기기가 바빴다. 남의 신세를 지는 것은 태산같으나 량식 기갈은 해마다 더해만 갔다. 기실 강냉이쌀을 가져다 먹고 입쌀을 가져다 주니 번마다 내가 밑지는 셈이지만 주라가 무서운 법이라 신세를 진다지 않을수가 없었다. 앉은 자리에서 손발을 놀리지 안고 강냉이 대신 입쌀을 받아 먹으면서도 그들은 나에게 신세를 지우고 차비까지 팔면서 입쌀을 머리털이 빠지게 이여다 주면서도 나는 그들의 신세를 진다고 해야 했다. 아마 몽당치마도 그전에 이랬으리라! 그 많은 친척들 가운데서 발길을 끊지 않은것은 유독 몽당치마인 동불사 동서였다. 남편이 로동개조를 하게 될때도 일부러 찾아와서 나를 위로해 줬고 옥천동을 내려올때도 와서 짐까지 꾸려주었다. 지금은 그전보다 몇배나 더 먼 거리를 상거해 있고 자동차까지 바로 통하지 않는 벽촌에 내려와 있건만 감자가 나지면 감자를 이고 강냉이가 나지면 강냉이를 이고 찾아오곤 한다. 내일은 팔월 한가위날이다.남편은 부모들의 산소를 벌초하러 떠나가고 집에는 철부지들과 나뿐이였다. 여염집 같으면 떡친다 막걸리를 거른다 하면서 야단치련만 우리 집은 초상난 집처럼 스산하기만 했다. 전같으면 친척들이 찾아들어 씨암탉을 잡는다 개목을 단다 하면 법석이련만 지금은 아무도 찾아오는 이 없다. "한 집안끼리도 친척이 있는 집이 있고 없는 집이 있소." 나는 그 때 동불사 동서가 하던 말의 뜻을 오늘에야 딱히 알게 되었다. 지금 우리집은 적적해도 친척들 뉘집에선가는 떡치고 술빚고 부어라 마셔라 하면서 웃음꽃을 피울거이다. 아마 지금쯤은 달마중에 어른 애들 할것 없이 어느 마을 동구밖에 나섰을 지도 모른다. 나는 그들이 그립기도 하면서 한없이 미웠다. 남남간도 아닌데 아무러면 그렇게도 무정할수 있단 말인가. 좋을땐 친척이요 나쁠땐 남이라더니 말 그른데 없었다. 워낙 좋아도 친척이요 나빠도 친척이어야 진짜 친척이련만 제 살둥이를 트느라고 그런지 사람마다 그처럼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이 안타깝기만 했다. "소쩍- 소쩍-" 뒤동산 소나무 숲속에서 소쩍새가 슬피 울었다. 그 처량한 울음소리는 외롭고 쓸쓸한 가슴에 비애의 파문을 일으키면서 살속까지 파고 들었다. 나는 울것만 같았다. 실컷 울고 났으면 속이 후련할것만 같았다. "아니 이 집에서는 왜 상기도 불을 켜지 않고 있나?" 바스음성이었다. 항상 귀에 쟁쟁 울리던 그 웅글은 목소리였다. 나는 자리에서 벌컥 일어섰다. 내가 미처 문을 열어 드리기 바쁘게””빼걱-"하는 바당문소리와 함께 동불사 동서가 큼직한 광주리를 이고 들어서는 것이였다.  "형님! 흑흑…" 나는 동서를 보자 친어머니를 만난것처럼 이때까지 쌓이고 쌓였던 설음이 북받쳐 올라와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아니 집에 불상사라도 생겼소?" 근심어린 바스음성이 우렁우렁 나의 가슴에 까지 맞쳐왔다. 하지만 나는 무턱대고 울기만 했다. 그저 울고만 싶었다. "아니, 대보름에 웬 곡성이요?" 정수리에 선뜩 찬 물기가 떨어졌다. 식은 땀방울 이었다. 그제야 나는 그의 가슴에서 머리를 들었다. 맏동서는 그때까지도 광주리를 인채 철철 땀만 흘리고 있었다.  "아유 , 짐도 받지 않고…" 나는 짐을 받아 내려놓고 이니츰 석유등잔에 불을 달앗다.  "애 아버지는 어데 갔소?" 근심스런 물음이었다. "벌초하러 갔어요." "오- 난 또…" 동불사 동서는 그제야 신을 벗고 구들에 올라서면서 시름 놓은듯 후-하고 한숨을 쉬었다.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면 매일 동이로 쏟아도 부족이요. 눈물을 깨물어먹고 살아야 하오. 특히 여자들 말이요." 그는 머리수건으로 나의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이런때 욕이라도 한바탕 해줬으면 나오던 눈물도 들어가련만 눈물을 닦아주며 애무해주니 눈물이 저절로 솟구쳐 오름을 어찌할수 없었다.  "추석쇠러 왔는데 웃어야 할 대신 울기부터 하니 원-"  "왜서 이렇게 늦었어요?" 나는 눈물을 훔치며 그제야 인사말을 했다.  "내일 추석이라 객들이 어찌나 많은지? 겨우 마지막 차를 잡아타고 이 아래 공사마을까지 오니 해가 나불나불 지더구만."  "공사에서 여기까지마도 시오린데요. 숱한 고생을 했네요. 이것 보지 저녁전이겠는데…" 나는 불을 때려고 바당에 내려섰다. 그러자 동불사 동서가 내팔을 잡고 끄잡아 올렸다. "저기 떡도 있고 하니 묵은 밥이나 몇술 있으면 되오." "아직 저녁불도 때지 않았어요." "내가 땔테니 올라가오. 그 몸으로 오르내리기가 얼마나 힘들겠소?" 동불사 동서는 나를 떠밀어 올리고 자기가 바당에 내려 앉으며 말했다. 가마는 굶을 때가 있어도 부엌 아궁이는 굶은적이 없는 도목나무고장이라 장작을 서리우니 가마가 인츰 싱싱 끓어 올랐다. 나는 생산대에서 추렴한 소고기를 씻어 안쳣다. 단오, 추석, 설 이렇게 뒤서너번 들어보는 고기추렴 외에는 일년치고 고기맛을 모르고 살아오는터였다. 동서가 오니 추석 기분이 도는것만 같았다. 나는 고기를 씻어 안치다 말고 동서를 내려다 보았다. 부엌 아궁이에서 비껴나오는 불빛에 비친 동서의 모습은 때국물이 흐르던 궁상이 아니었다. 몸에 걸친것이 몽당치마도 아니요 알락달락한 내의도 아니요 학생복 저고리도 아니요 그렇다고 내가 드렸던 그 치마저고리도 아니였다. 새로 맞춰 입은 주색 흔방직 치마저고리였다. 가난떄를 벗는것이 제일 큰 때벗이라더니 가난티를 말끔히 가셔 버리지는 못했지만 큰 애가 학교문을 나서서 벌고 돈냥이나 손에 쥐게 되니 탈피를 한것처럼 말끔했다. "형님, 형님은 이젠 옛말을 하게 됐어요." "동서는 오랠줄 아오? 이제 생원의 일이 풀리고 애들이 자라면 나보다 더 예말을 하며 살거요. 류수같은것이 세월이라 오랜것 같으면서도 빠른것이 세월이요." "코흘리개들이 언제 가야 제 구실을 하겠어요?"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이요." "형님 그 많던 친척들이 다 어데 갔을까요? " 나는 내가 시집올때와 시아버님의 회갑날을 상기하면서 이렇게 물었다. "먹어라 써라 하는것이 친척이요 발길을 끊음녀 이웃보다 못한것이 친척이라지 않소? " 동불사 동서는 국가마가 끓는 것을 보고 장작 몇가치를 더 서리우더니만 구들로 올라왔다. 그는 자는 애들을 유심히 내려다 보다가 이고 왔던 광주리를 헤치기 시작했다. "있는대로 이고 오느라고는 했지만 별것 없소. 초바심을 해서 친 차이떡이요. " 동서는 들기도 힘겨운 큼직한 떡보자기를 내놓앗다. "이건 햅쌀이구 이건 소고기구 이건… " 동서는 나이론 수건에 싼 천을 헤쳐 보이면서 말을 이었다. "동서에게 주려구 끊었는데 마음에 들겠는지 모르겠소. " 하얀 나이론 적삼과 밤색 치마감이었다. "지금 이것저것 가릴 신세가 됐나요? 조카들이나 사입히지 돈을 팔며 왜 사왔어요? " 시집올때의 밑천을 다 부려먹고 시집에서 해준것마저 거덜이 나다나니 나에게는 지금 입고 있는 때가 다닥다닥한 단벌 치마저고리밖에 없엇다. 오죽하면 벌초하러 가는 남편이 내가 입고 있던 런닝그를 입고 또났겠는가? 나는 눈시울이 찡해났다. "없고 보면 모든것이 구멍 빠진 항아리와 같소. 곁에서 도와주는것이 몇참 간다고 그러우? 제 두손을 갖고 일어서야지 남이 돕는건 그 때 뿐이요. 신세를 진다는 소리만 들었지… " "떨어진다 하니 왜 이렇게 칼로 자르듯 몽창 떨어져 나갈까요? " "그러게 굽빠진 항아리는 때도 가난구멍은 때지 못한다고 하지 않소?" "지금 같아서는 헤여나갈것 같지 않아요." "두 손을 맞들고 벌면 몇참 간다고 그러오? " 저녁을 치르고는 우리는 자리에 누웠다. 길에서 지쳤던지 시름을 덜어서 그랬던지 동불사 동서는 눕자마자 코를 골았다. 하지만 나는 오만가지 생각에 좀체 잠들수가 없었다. "소쩍-소쩍-" 소쩍새가 다시 울기 시작했다. 하건만 나는 외롭지 않았다. 그것은 옛날의 몽당치마-바스음성이 나의 옆을 지키고 있었기때문이다. 3 남편만 아니였어도 나는 친척들과의 거래를 끊어버렸을것이다. 불쌍한 남편의 면목을 봐서 나는 친척들가 다시 래왕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하기는 내 뒤가 꿀려서 쌀꾸러 다니면서부터 래왕이 시작되기는 했지만 말이다. 여름 한철 쌀꾸러 다니고 가을 한철 갚느라고 치마꼬리가 닳게 다녔으니 제발로 문을 연셈이다. 부지런히 친척들집 문턱을 넘나들다나니 나는 자연히 네집이 어느때 생진이요 잔치요 회갑이요 하는 경사를 다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쇠통 모른척 하고 눈을 감아버리기로 작심했다. 내밀것이 있어야 떳떳이 나서련만 쥐면 두주먹밖에 없는 무우 밑둥같은 신세에 그것도 차리고 나설 옷마저 없는 주제에 어데로 간단 말인가? 하지만 친척들은 군일이 생길적마다 나를 잊이았았다. 그전에도 백도라지요 노들강변이요 하면서 춤판을 벌일때는 몽당치마를 잊었어도 군일에 일손이 딸릴때마다 몽당치마를 생각했듯이 가마목손이 부족할때마다 나를 생각하곤 했으리라. 털은 내리쓸게 마련이고 물은 내리흐르게 마련이라고 손우분들은 손우처신을 해야 하고 손아래 사람들은 그 본을 받아야 한다. 나는 동불사 형님이 하던대로 빈손이지만 군일에 가서 부조를 못하는 대신 힘으로 그 몫을 담당하곤 했다. 그러니 시끄럽고 힘든 일은 내가 맡아해야 했다. 그래야 다소 마음이 풀리곤 했다. 일에서 굳어진 두손을 갖고 있기때문에도 그러하겠지만 일손을 놓으면 송구스러워서 앉아있을수가 없으니 어찌하랴? 부조할 형편이 되지 못하여 두 손과 힘을 가지고 왔으니 그것으로 미봉할수 밖에 없으니 말이다. 한번은 조양천 동서가 아들을 보내서 맏딸이 시집가니 그때 오라는 청탁을하였다. 남편이 로동개조를 하기 시작해서부터 십몇년동안 발길을 끊었던 조양천 동서가 사람까지 띄워 나를 청했으니 심히 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어떤 때는 문턱이 다슬게 다니다가도 어떤때는 모른척하고 나앉은 일을 생각하면 분하기 그지 없엇으나 조카들을 봐서라도 가야 했다. "아유 동서, 제앞이 막막해서 살자고 버둑거리다나니 한번 가보지도 못하고 … 어찌 고생하오? 생원은 무사하오? 애들은 잘 자라오?" 내가 문을 떼고 들어서자 조양천 동서는 전에 없이 반겨 맞으며 입치례를 하면서 물을 말을 단꺼번에 뿜어버렸다. 십몇년새에 이마의 잔주름이 늘어났지만 남달리 삐여진 그의 고음은 여전하였다. "고생이야 다 같지요. 그간 무사하셨어요?" "우리는 그럭저럭 탈없이 보내오. 아유 그 곱던 낯이 왜 이렇게 됐소?" 달망지게 생긴 조양천 동서는 나의 손목을 잡고 손등을 싹싹 어루만져주면서 있는걱정 없는걱정 다했다. 환갑때에야 셈이 다 든다더니 쉰고개를 바라보는 조양천 동서도 인제야 지난날을 후회하는 갑다 여겨 얼어붙었던 가슴속 한 귀퉁이가 스르르 녹아내리는것만 같았다. "아니 잔치라면서 왜 집안이 이리도 조용한가요?" 나는 잔치객들이 없는 조용한 집안을 둘러보며 물었다. "잔치날자는 아직 열흘이 있소." "네?" "제 어미가 무재간이 돼서 그런지 딸년도 무재간이요. 잔치날자는 바득바득 다가오는데 꽃방석이며 베개머리에 수를 하나도 놓지 못했소. 그래 생각다못해 동서를 불렀소." 나에게는 어머님 손부리에서 물려받은 한가지 잔재간이 있었다. 수놓이였다. 이 몇년래 나는 저녁마다 수놓이를 해서 장간새를 사고 애들 학비를 보탰다. 푼돈잎은 나의 수놓이에서 생겼다. 조양천 동서의 귀동냥은 빠르기도 했다. 나는 그날 저녁부터 재봉기 앞에 앉아서 꽃방석이며 홰보. 베개머리에 수를 놓기 시작했다. 꽃방석이나 베개머리에 놓은 수를 보고 첫날 색시의 손부리르 보게 마련이니 나는 시집가는 조카를 대신해서 있는 정성과 재간을 다 피웠다. 휘늘어진 수양버들에 제비가 날아드는것도, 활짝 핀 난초꽃에 나비 쌍쌍 날아예는 것도, 소나무옆을 감도는 벽계수에 백학이 내려앉는것도, 달밤 송백수를 품에 안은 츠렁바위에서 호랑이 따응하며 앞발을 쳐드는것도, 어쨌든 이때까지 내가 보아왔고 좋다고 생각되던것을 몽땅 수놓아주었다. 나는 밤낮 여드레를 재봉기 앞에서 보냈다. 내가 수놓이를 마치고 재봉기에서 물러앉은 그날 동불사 동서가 애들까지 몽땅 데리고 들어섰다. "아유-작은 동서가 한발 앞섰구만." "형님!" 나는 어찌나 반가왔던지 한참 동안이나 동불사 동서의 손을 꼭 쥐고 놓지 않았다. 가는 정이 있어야 오는 정이 있고 가는 떡이 커야 오는 떡이 크다고 기쁠때나 설울때나 발길을 끊지 않고 뭐나 주지 못해 까래가시르 뜯으며 지내온, 열몇해를 가고온 그 정이 고리에 묻어 올라오는 그물처럼 몽땅 솟구쳐 올랐다. "대학에 간 큰녀석은 공부를 잘하오?" "예 형님, 집에서도 바쁠텐데 또 돈을 보냈더군요. 며칠전에 그애한테서 편지가 왔댔어요." 아버지때문에 대학교로 추천을 받지 못하고 한해 호미 대학을 다닌 우맂비 큰 녀석이 밥을 한소래씩 굽내던 맏아들이 금년봄에 시험을 쳐서 대학에 붙었댔다. 대학에 붙은건 좋은 일이나 뒤를 댈 걱정, 차려보내야 할 걱정 태산같은 걱정으로 눈 한번 붙여보지 못하는데 동불사 동서가 데트론옷 한벌과 동 이십원을 갖고 찾아왔던것이다. 그런데 며칠전 큰어머니께서 또 돈 이십원을 보내왔다는 편지가 대학에 간 녀석한테서 왔으니 그렇게 고마울 변이 어데 있으랴! "그 녀석 신세를 지려고 그러는줄 아오? 우리같은것도 잘살라고 하는 좋은 세월에 마음껏 공부를 하라고 그러지." 돌불사 동서는 내 입에서 또 군소리가 나올까봐 그랬던지 말없이 내 손을 물리치고 인츰 구들에 올라섰다. 나는 습관적으로 그의 치마에 눈이 미쳤다. 축 내리드리운, 엷은 세루로 만든 회색치마였다. 구들에 발을 올려 놓는 그 서슬에 나이론 양말목에 감싸인 남색 털실내의가 치마꼬리 사이로 보였다. "몽당치마와 세루치마…" 나는 몽당치마를 입고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던 동불사 동서를 생각하며 조카들을 둘러 보았다. 세루가 아니면 라사천으로 몸을 감은 다큰 처녀총각들이였다. 입던 옷견지와 쌀을 이고 내가 동불사로 갔을적마다 떄국물이 얼룩진 낯에 꾀죄죄 코를 흘리며 게눈 감추듯 밥그릇을 굽을 내고 나의 밥그릇을 쳐다보던 그 철부지들이였다. 나느 조카들을 보며 지금 집에서 숟가락을 들고 아버지거나 형님누나의 밥그릇을 쳐다볼 막동이를 생각했다. 그러자 알수 없고 이름 모를 그 무엇이 허파를 물어뜯는 통에 더 볼수가 없었다. 나는 낯을 돌렸다. 눈시울이 뜨끈뜨끈해 나는것 같아 손등을 눈에 가져갔다. 손등이 축축히 젖어났다. 어느새 옷을 갈아 입었는지 동불사 동서는 일할때 입던 옷을 갈아입고 그전처럼 가마목을 차지하고 앉는것이였다. 그는 쌀함박을 들다말고 부엌에 앉아 있는 나를 내려다 보았다. 내가 처음으로 불을 때고 있는 몽당치마를 내려다 볼때처럼…나는 치마폭으로 얼른 발목을 덮었다. 판난 머리수건이며 양말 할것 없이 실이 나올수 있는 물건은 다 풀어서 떠 입은 , 걸레사촌이나 될 알락달락한 내의 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나는 몸둘바를 모르면서 동서를 올려다 보았다. 동서는 그때까지도 까딱않고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그의 눈에서 반디불 같은 불빛을 보았다. 눈초리에 달려 떨어질까 말까하면서 달랑달랑 달려있는 이슬방울 이었다. 나의 옷매무시와 앉음새를 보고 그전의 자기를 생각해서였으리라. 아니 나의 처지를 보고 나를 대신한 눈물이리라! "동서, 불을 콱 서리우오!" 성난 거쉰소리라고 할까 동정이 푹 스민 상냥한 소리라고 할까 가늠할수 없는 바스음성으로 말하며 동불사 동서는 떡쌀을 푹푹 떠서 물함박에 담는것이였다. "호호호…" 그 때 웃방에서는 웃음보가 터졌다. 조양천 동서의 웃음소리는 유달리 달달 구을고 있었다. "형님, 모두들 례장감을 보겠다고 해서 헤쳐놓았는데 형님도 얼른 들어와 보오!" 역시 때그르르 구으는 고음이 정지를 향해 흘러나왔따. 하건만 나를 들어와 보라는 소리는 없었다. 섭섭하기는 했지만 차라리 보라고 하는 소리보다 더 반가왔다. 제 몫이 없으니 낯을 들이밀고 례단을 구경할 면목이 없으니 말이다. "이런 작은집에서 보내온 라사천 외투고 이건 큰집에서 보내온 사지옷이고 이건…" 조양천 동서는 말에 꽃을 피우면서 이건 누가 보내온것이요 저건 누가 보내온것이요 하면서 자랑을 늘어놓았다. 나는 머리를 들수 없었다. 온 친척마다 면목을 낼수 있는 물건이 다 있었지만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었으니 말이다. "아유—수도 곱게 놓았네. 누가 놓았어요?" 누군가 이렇게 감탄하는 소리가 떠드는 속에서 들려왔다. 나는 속이 꿈틀했다. 그러면서 내 이름이 드러날것이란 집작이 들면서 저도 모르게 속이 두근두근 거렸다. "이건…" 조양천 동서의 말이었다. 그 소리는 방금전처럼 그렇게 되알지지도 못했고 그렇게 높지도 못했다. "누군 누구겠소. 색시의 손재간이겠지." 누군가 곁에서 쐐기를 쳤다. "정말 손재간이 이만저만이 아니요. 신랑이 복을 받았다니까." "이렇게 손부리 여문 색시를 어데서 찾는답네?" "야—수마다 살아 있는것 같구만. 수에서 마음이 보이오." 이 구석 저 구석에서 칭찬소리가 자자했다. "공부를 제대로 했는가 그애가 배운 재간이란 그것밖에 없어요." 조양천 동서는 이렇게 말해 놓고는 정지를 흘끔 내려다 보는것이였다. 나는 부엌에 앉은채 가마사이를 통해서 그것을 똑똑히 볼수 있었다. 순간, 나는 가슴이 괴여오름을 어찌할수 없었다. 나는 그래도 옥천동 동서가 눈을 잡아 뜯으면 조카를 위해서 수놓은것이라고 한마디 할줄 알았다. 또 그렇게 믿었다. 그러면 면목이나마 설것이 아닌가? 딸의 손재간이라고…한뜸도 수를 놓지 못했을땐 손이야 발이야 사람까지 띄워서 청해온다 청해간다 야단치던 조양천 동서가 제 안속을 다 차리자 이름도 거들지 않고 례단 구경을 하라는 말도 없지 않은가? 나는 너무나 부아가 나서 못할짓인줄 알면서도 속으로 돈 계산을 해보았다. 열견지라 적어도 이삼십원은 되리라. 그 돈으로 례장감을 사서 준다면 나도 남만 못하지는 않을것이다. 그런데 입술에도 올리지 않다니...머슴을 살아도 이렇게는 않을것이다. 나는 더 붙박혀 있을수가 없었다.잔치하는 날 아침 손님들이 들락날락 하는 틈을 타서 나는 가만히 조양천을 떠나고 말았다. "이제 다시는 친척들의 군일에 가지 않으리라!" 나는 집에 돌아오면서 이렇게 다졌다. 그리고 그 후엔 뉘집 군일이건 낯을 내밀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동불사 동서에게서 맏아들 잔치를 하니 오라는 전갈을 받았다. 다른데는 가지 않아도 동불사에는 가지 않을수 없었다. 아니 청하지 않아도 가야 할 형편이였다. 만사를 제쳐놓고라도 꼭 가야 했다. 그런데 역시 빈속이었다. 다른 집은 염치불구하고 빈손을 갈수 있다지만 동불사 동서네 집은 빈손으로 갈수 없었다. 신세를 진걸 다는 갚지 못해도 다만 얼마라도 성의만은 보여야 했다. 하지만 마음뿐으로 획책이 나지지 않았다. 큰애의 뒤를 대려고 사놓은 돼지도 이제 오금이 떴을뿐이고 닭마저 병들어 쓸어내다 나니 몇마리 되지 않았다. 집안에 돈푼이나 받을만한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내가 이궁리 저궁리 하면서 속을 태우는데 동불사 동서가 막동이에게 옷감을 보내왔다. 잔치날 입을 자기의 옷을 짓겠는데 짬이 없어 만들지 못하니 아무런 근심말고 그것이나 만들어 가지고 오라는 것이었다. 제물건을 내놓지 못해 마음에 썩 내려가지 않으면서도 나에게는 그렇게 하는수 밖에 없었다. 동불사 동서가 입을 옷이라면 따로 재단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내 몸에 맞으면 동불사 동서의 몸에도 맞았다. 나는 보내온 진한 곤색 테드론천으로 치마저고리를 만들어가지고 동불사로 떠났다.  잔치날 사흘전부터 친척들이 동불사로 쓸어들기 시작했다. 그전에 우리집에 군일이 생길때마다 모여들듯이 그렇게 새로 지은 벽돌집이 터지게 모여들었다. 그전에는 친척들의 발길이 끊어졌거나 희소하던 집에 처음으로 구들을 차고 넘쳤다. 무엇이 발길을 끊게 했고 무엇이 문을 열어주었는지 딱히는 알수 없어도 아마 가난때가 길을 메웠고 돈이 새문을 열러주엇으리라.  친척들에게서 가문의 여호걸이요 집안의 자랑이라고 불리우는 조양천댁이 신랑의 작은 어머니라고 이래라 저래라 시킴질로 떠들썩한 그속에서 나는 가마목을 차지하고 말없이 일만 수걱수걱 하였다.  아무탈없이 그럭저럭 잔치날을 무사히 넘기고 이튿날 아침에 가문잔치가 새로 벌어지게 되었다. 웃방에선 새각시를 치장시켜주고 너울을 씌워주느라 볶아치고 동불사 동서는 례단을 준비하느라 새각시와 이것 저것 물으며 바삐 보내고 있었다. 나는 아침상이나 제꺽 걷어치우고 일찌 감치 자리를 피하려고 생각했다. 낯이 소볼기짝 처럼 두터우면 몰라도 빈손으로 와서 새색새의 례단까지 받는다는것은 볼편을 얻어맞기보다 더 바쁜 노릇이기때문이다.  가문잔치가 시작되는 눈치를 채자 그릇들을 가시다 말고 나는 슬그머니 밖으로 나와버렸다. 뒷집에 들어가 잠시 앉았다가 나오려고 집모퉁이를 도는데 누군가 팔을 꽉 잡는것이었다. 나는 남성적인 힘의 충격을 느끼면서 와뜰 놀라 뒤를 돌아보앗다. 동불사 동서였다.  "어디로 가오?" 몹시 화난, 바사진 바스음성이였다. 일그러진 낯은 찌뿌둥한 날씨라기보다 벼락치는 날씨 같았다. 입술은 모진 고통을 실룩거리고 있었다. 이때까지 난 그렇듯 성내는 동서를 처음 보았다. 보기만 해도 무서울 지경이었다. "저…" 나는 대답이 궁해서 오른손 손가락으로 아래 입술을 뜯으며 머뭇거렸다. "그래 정말 자리를 피할테요? 나의 가슴에 못을 박겠단 말이요?" "형님, 그래서 그런것이 아니라…" "그전에 내가 받은 수모만 해도 족한데 동서가 또 받아야 하니…" 너룰 지켜보는 동불사 동서의 눈굽에 눈물이 자리를 틀기 시작했다. 그러자 나의 눈굽에도 뜨거운 그 무엇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동서에게서 오는 뜨거운 열기가 나의 눈물을 끓이고 있었던 것이다. "형님, 잘못했어요…" 나는 목메여 겨우 대답하며 머리를 수그렸다. "그래야지. 언녕 그래야 하오! 가난에 짓눌리워 머리를 들지 못하다니…" 동불사 동서는 나의 머리를 치켜들면서 옷고름으로 볼을 타는 눈물을 씻어주며 말했다. "이 좋은 날에 눈물을 흘리다니…자, 들어가기요." 동불사 동서는 치마폭을 들고 눈물을 씻고는 나를 보고 시무룩이 웃어보이며 바당문을 떼고 들어섰다. 내가 례단 받을 차례가 되었다. 옷매무시가 하도 어지러워 새각시앞에 앉기 저어하는데 누군가 뒤에서 옆구리를 쿡 질렀다. 아까 팔을 잡혔을때 받았던 그런 남성적ㅇ니 충격이었다. 동불사 동서였다. 나는 부끄러운대로 색시앞에 앉았다. 그러자 새색시는 작은 두리상우에 곤색 데트론천으로 만든 치마저고리 한벌을 놓는것이었다. 나는 놀랐다. 남들에게는 베개수건이요 양말이요 하는 것들을 놓던것이 옷 한벌을 놓다니? "형님!" 나는 어리둥절하여 어쩔바를 몰라 하면서 동불사 동서를 불렀다. 그러나 동불사 동서는 얼굴에 느슨한 웃음을 담으면서 웅글진 바스음성으로 말하는 것이였다. "이때까지 저 동서가 우리 친척들에게 한 부조는 대가를 친담녀 그 누구보다 많았고 고생도 제일 많이 했소. 그래서 난 우리 이씨 가문의 이름으로 저 례단을 놓았소!" 진짜 가문의 녀호걸다운 맏동서다운 틀거지 잡힌 그 말에 친척들은 이구동성으로””옳소!"하며 박수를 치는것이었다. 나는 눈시울로부터 뼈속까지 찡해남을 느꼈다. 나는 더는 머리를 들고 있을수가 없었다. 나는 머리를 수그리다 말고 어데선가 눈에 익은 천 같아서 상위에 놓인 례단을 다시 쳐다보았다. 아, 이런 변이 있는가! 그건 틀림없이 내 손으로 지은곤색데트론 치마저고리였다. "형님, 이건…" 나는 다시 동불수 동서를 쳐다보았다. "그건 우리 며느리가 동서에게 드리는거요…" 그는 소리없이 만족한 웃음을 보였다. 그 웃음은 그렇듯 구김새없이 너울쳤다. 나는 그 기분대로 새각시 부어주느 술을 한방울도 남기지 않고 굽을 비웠다. 바로 그 찰나””어머니!"하며 부르는 귀에 익은 소리가 나의 신경을 꼬드겼다. 내가 미처 대답할새도 업ㅂ는데 문소리와 함께 고중에 다니는 딸이 문을 떼고 들어섰다. "아니 이게 누구냐?" 동불사 동서가 허둥지둥 사람을 헤집고 나가 애의 두 손을 꼭 잡으며 반갑게 말했다. 나는 속이 섬찍했다. 어미의꼬락서니도 말이 아닌데 딸의 매무시마저 저 꼴이니 친척들이 뭐라겠는가? 오지 말라고 그렇게 당부했는데 공부는 하지 않고 차비를 팔면서 올건 뭐람? 나는 낯이 화끈 달아올랐다. "어머니, 아버지가 곧 오시래요!" "뭐? 일 났냐?" 나는 가슴이 후두둑 해났다. 삼일까지 보고 간다는것을 번연히 알고 있는 남편이 애를 띄우다니? 웬간한 일이 아니면 그럴 남편이 아니었다. "집에 일이 생겼느냐? " 동불사 동서가 다급히 물었다. "어머니, 아버지 문제가 해결됐대요!" "뭐라나? 얘야 다시 말해라!" 나는 제 귀를 의심했다. 꿈결에 들은 소리만 같았다. "아버지 문제가 해결됐어요. 어제 시공업국에서 두 사람이 우리집에 찾아와서 아버지가 억울한 루명을 벗었다지 않겠어요? 다시 공업국장으로 올라간대요. 래일 모레 자동차를 가지고 짐 실으로 온다면서 짐을 꾸리라더군요. 그래서 찾아왔어요!" "아유-이게 꿈이냐 생시냐? 형님! 흑흑흑…" 나는 가문 잔치라는것도 잊고 동불사 동서를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이때까지 참고 참아오던 눈물을 동불사 동서의 앞가슴에 쏟았다. 그저 울고만 싶었다. 기뻐서 울고 만 싶었다. 동불사 동서도 내 머리에다 얼굴을 대고 흑흑 흐느꼈다. "슬퍼도 눈물이요 기뻐도 눈물이라더니 말 그른데 없구나. 자—우리 집안의 쌍중 경사로다. 이 사람 며느리 술을 붓게!" 동불사 동서는 나의 손을 끌고 일어서더니만 눈물을 씻을 생각도 않고 춤을 덩실덩실 추면서 소리쳤다. 나도 덩달아 춤을 추었다. 동불사 동서는 춤을 추면서 귀맛을 돋구는 그 바스음성으로 노래가락까지 뽑았다. "쾌지나 칭칭 나네…" 이렇게 되어 한바탕 춤판이 벌어졌다. 나는 그날 오후차로 동불사를 떠나게 되었다. 역으로 나가기전에 동불사동서는 조용히 나를 불러 앉혔다. "그 옷을 벗어놓고 이 치마저고리르 갈아입고 가오." 동불사 동서는 내가 만들었고 내가 례단으로 받은 곤색데트론 치마저고리를 내놓으면서 말했다. "이때까지도 이걸 입었을라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겠어요?" "입소. 동서가 입는걸 내 눈으로 보고싶소!" 동불사 동서는 며느리를 앞에 둔 시어머니처럼 나를 정겹게 바라보며 희망과 기쁨의 미소를 담았다. 그 미소는 보일까 말까 하는 눈가장 자리의 실주름을 타고 온 낯에 흘렀다. 하지만 그 미소는 되려 체 흘리지 못한 나의 눈물을 몽땅 끄잡아 올리고 말았다. 친어머니에게서만 오는 그런 따스한 정이 가슴을 파고 흘렀던 것이다. "이제 국장댁이 될텐데 눈물은 호호호…" 동불사 동서는 통쾌하게 웃었다. 웃으면서 눈물방울을 땅에 떨궜다. 나는 친척들의 융숭한 환송을 받으며 차에 올랐다. 내가 이씨 가문에 발을 들여놓은후 잔치집으로 다니면서 처음으로 받아보는 환송이다. 이제 그들은 시내에 있는 우리집으로 문쪽이 다슬게 찾아들것이다. 물론 조양천 동서가 첫 사람으로 들어설것이고… 나는 눈에 보이지 않을때까지 손젓는 몽당치마-동불사 동서에게서 눈을 데지 않으며 달리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4    [소설]담요 댓글:  조회:969  추천:21  2009-02-11
결혼한지 몇년후부터 그들 부부는 조용한 날 하루없이 콩닦이처럼 토독토독 튀고 튕기는 나날을 보내야 했다. 남편이 늦게 퇴근해도, 수도꽂지에서 물이 똑똑 떨어져도, 문짝에서 삐걱삐걱 소리나도 안해의 바가지 긁는 소리, 밥이 질어도 찌개가 짜도 밥상에 고기붙이가 없어도 남편의 투정질 소리...    그들부부의 입방아 찧는 소리는 이러루한 자질구레한 일로부터 시작되군 했다.   그러다가 총각때는 어쨌소, 처녀때는 어쨌소 하는 비양으로 승급하다가 나중에는 밥상을 엎지르는데까지 이르군 했다. 하지만 이렇게 콩다닥 하다가도 일단 잠자리에 들기만 하면 언제 싸워봤나싶게 한품에 들군 했다.     이러던 그들의 입에서 요즘엔 리혼소리가 푸술히 쏟아져 나왔다.   《이렇게 밤낮 싸우면서 살아선 뭘 해? 리혼하기요!》 《리혼이요? 합시다. 누가 겁낼줄 알아요?》 《녀자라면 녀자맛이 있어야지, 이거라고야 제 남편을 거지 발싸개보다 못하게 여기니...못살아!》 《남편이면 남편노릇 해야지 제집을 려관방처럼 여기는 남자와 어떻게 살아요? 못살아요!》    이렇게 콩튀기로부터 콩마당질에 이른 그들 부부는 정식 리혼길에 오르고 말았다. 리혼하러 민정국 혼인등록처로 떠나는 날 아침, 그들부부는 처음으로 한마디 말도 없이 밥상에 마주앉았다. 잠에서 깨여나 입을 열기 시작하면 잠이 들때까지 입을 다물줄 모르던 그들 부부엿다. 그런데 말이 없다.    리혼이라는 두 글자가 그토록 무겁다는것을 실감하게 하는 아침이였다. 《마지막으로 부어올리는 술이니 푹 드세요.》 물기가 차분한 안해의 목소리였다.《마지막으로 집어주는 닭다리요. 많이 먹소.》    후줄근한 남편의 목소리였다.    아침을 마치자 그들 부부는 언제 싸워봤더냐싶게 어색함없이 거리에 나섰다.     리혼하러 가면서도 그들은 크게 벽을 느끼지 않았고 그렇다고 크게 애석해하지도 않았다.   어쩐지 보통 일상사처럼 구애없이 얼굴 한번 일그러뜨리지 않고 걸었다.     네거리의 의약상점앞을 지날때였다.    《잠간만 기다려주세요.》    안해가 말을 남기고는 상점안으로 몸을 감췄다.     한참 지나서야 안해가 약구럭을 들고 나왔다.    《리혼하면서 드리는 마지막 선물이예요. <인삼정>, 그간 당신 몸 퍽 축갔어요.》    《인삼정?》    《저한테 마지막 선물 안할래요?》    《사주지, 뭘로 할가?》    《애들 담요.》    《뭐? 담요?》    《제가 해산하면 애의 성을 당신의 성을 따르게 할가요 아니면 재가한 남편의 성을 따르게 할가요?》    《뭐야? 당신이 임신했소?》    《임신한지 넉달!》    《그런걸 왜 이제야 말해! 가자!》    남편은 다짜고짜로 안해의 팔을 끌고 집으로 향했다.
3    림원춘 프로필 댓글:  조회:1185  추천:38  2009-02-11
림원춘 략력: 출생: 1937년 음력 12월 15일생.학력: 연변대학 조문학부. 1958년 단편소설<쇠물>로 문단 데뷔.1960년-1982년 연변인민방송국, 텔레비죤방송국 문예기자1982년-현재 연변작가협회 전직작가.중국작가협회 회원, 국가 1급작가. 수상작품: 단편소설<꽃노을>--전국제1차소수민족문학상(1980년)          단편소설<몽당치마>--1983년 전국우수단편소설상 1984년                       제2차전국소수민족문학상.           연변작가협회 성립 50주년 특별공헌상 (2007년 4월 ) 저자: 단편소설집<몽당치마>,<꽃노을>      장편소설<짓밟힌 넋>, 장편실화<개척자의 발자국> 등 출판. 교재에 실린 작품: 단편소설 <꽃노을>--중학생조선어문2학년단편소설<몽당치마>--연변대학습작교과서, 종업원대학교과서, 사범학교교과서, 고중조선어문교과서.가사<조국땅은 그 어데 가나 내 고향>--소학교2학년 조선어문교과서.
2    [단편]보이는 소리(림원춘) 댓글:  조회:1355  추천:30  2009-01-06
단편소설보이는 소리림원춘연길공항에서 나는 하나의 세계를 받아안았다. 국제선 대기실 출구에서였다. 가볍고도 무거운 세겹 포대기에 잘 포장된 손자녀석이였다.    “응아- 응아-”    물씬 풍겨오는 우유냄새에 앞서 내 귀를 때린것이 포대기속에서 울려오는 자지러진 손자녀석의 울음소리였다. 내가 처음으로 선물받은 꽤나 야무진 소리였다. 태여난지 둬달 되나마나한 어린애, 아니 완전 피덩어리에게서 어쩌면 그토록 새된 소리가 나오는것일가?    “응아- 응아-”    우느라고 힘을 쓰는통에 얼굴이 지지벌개져서 그런지는 몰라도 손자녀석은 갓 태여난 애들을 방불케 하는 틀림없는 피덩어리였다.    리륙하고 착륙하는 비행기의 소음, 손님들이거나 친지들을 맞느라 웃고 떠드는, 그 주파수를 헤아릴길 없는 대기실안에서 손자녀석의 울음소리는 그 모든 소리들의 틈새를 비집고 매섭게 울렸다.    포대기속은 하나의 세계, 손자녀석의 세계였다. 웃음도 있고 울음도 있는, 해빛도 있고 어둠도 있을, 희로애락을 다 갖춘, 그 누구도 범접 못하는 손자녀석만의 세계였다.    나도 한때는 그런 세계가 있었을것이다. 일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세계의 일각 말이다. 하지만 어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그때의 나의 세계는 어머니의 잔등이였단다. 어찌나 보챘던지 기음을 맬 때에도 어머니는 나를 업고 호미를 날렸고 방아를 찧을 때도 나를 업고 방아채를 디디셨단다. 그러니 잠자는 시간을 내놓고는 어머니의 잔등에서 살다싶이 했을것이다. 아니 어머니의 등에 업혀 잘 때에도 내가 깨여나 울가봐 자는 나를 둘쳐업은채 어머니는 가을도 했고 도리깨질도 하셨단다. 할아버지의 눈살이 무서워서였다나? 할아버지는 내가 조금만 울어도 “애를 울리면서 뭘 하나?” 하고 호통치셨단다. 그러니 어머니는 나때문에 시집살이에 눈치살이까지 했을것이다. 어머니의 베적삼이 내 오줌에 삭아 한해를 넘기지 못했다니 그 역고를 짐작하고도 남을것이다.    그런 내가 오늘 할배가 되여 손주까지 받아안았다. 피덩어리 같은 손자였지만 손자라는 그 흐뭇한 마음이 찜찜하고 시큼털털하던 지나온 시간의 앙금과 찌꺼기들을 몽땅 가셔주었다.    “응아- 응아-”    “이 녀석 벌써 낯을 가리나?”    “그렇게 곤두세우다싶이 안으니 애가 불편해서 그러지요.”    로친이 빼앗다싶이 애를 받아안았다. 기실은 나 먼저 안고싶어했을 로친이였을것이다. 울고있는 손자의 눈가위를, 눈물없이 소리만 치는 손자를, 눈물을 훔쳐주는척하며 손자의 얼굴에서 눈길을 떼지 않던 로친이였다. 로친의 얼굴은 만족과 흡족으로 부풀대로 부풀어있었다.    애들은 묘했다. 체취를 알아서인지 손길을 알아서인지 할머니가 받아안자 손자녀석은 곧바로 울음을 그쳤다. 그리고는 또랑또랑 할머니의 얼굴에서 눈길을 떼지 않았다. 할머니의 얼굴을 따라 움직이는 까아만 눈동자에서 파아란 불빛이 흘러나왔다. 황홀한 빛갈이였다.    “아그- 아그-”    로친이 턱을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녀석을 달래였다.    “흐드득 끽!”    손자녀석이 언제 울어봤더냐싶게 팔다리를 버둑거리면서 소리치는것이였다. 그 소리에서 흥그러진 향내가 물씬했다.    얼핏 맞혀오는 눈길에서도 손자녀석은 잘 생겼거나 고운 애는 아니였다. 코가 납작스레하고 외겹눈인데다 살결마저 거무스레하다보니 미남아라는 소리를 듣기에는 천번 틀린 녀석이였다. 하지만 손자라는 이미지가 부여하는 뜻은 달랐다. 손자의 모든것이 고와보였다. 아니, 고와보인것이 아니라 흠잡을데 없이 고왔다.    늦가을 날씨는 여간 을씨년스럽지 않았다. 바람이 모진데다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고있었다. 대기실에서 주차장까지는 50메터도 되나마나한 거리, 나는 손자녀석이 비를 맞을가봐 입고있던 외투를 벗었다.    “그런 먼지투성이를 어떻게 애에게 씌워줘요?”    로친이 나무랐다. 그러면서 이미 준비하여 갖고나온 작은 털담요로 손자녀석의 몸을 감고 숨이 막히지 않게 머리쪽만 살짝 들어올리는것이였다. 손자녀석은 재포장된 완연한 금덩어리였다.    집에는 손자녀석을 맞을 일체 준비가 다되여있었다. 작은 이부자리며 일회용기저귀며 우유며 놀이감이며… 공항으로 가기전 마누라는 그 모든것들을 재검토하고 재확인한 다음에야 문을 나섰던것이다.    집에 들어서자 나는 기쁜김에 담배부터 찾았다. 담배생각이 나서였다. 담배인이 뼈속까지 슴밴 나였다. 내가 담배에 불을 붙이려고 라이터에 불을 달았을 때였다.    “담배를 피우겠거든 밖에 나가 피우세요. 이제부터 집안에서 담배는 엄금이예요!”    로친이 명령하다싶이 말했다. 명령하다싶이가 아니라 완전한 명령이였다. 눈길도 매서웠지만 소리마저 날이 서있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보다 곁사람들이 더 해를 본다는걸 몰라요?”    마누라가 재삼 못을 박았다. 우리 부부간이 살고있을 때엔 움쩍을 못하던 로친이 손자녀석의 등을 믿고 득세하는판이였다.    나는 말없이 담배불을 붙여물고 문을 나섰다. 손자도 손자겠지만 며느리의 눈치도 보여서였다. 밖에서는 그냥 늦가을 찬비가 황사처럼 보얀 안개를 만들고있었다. 바람이 휙 하고 스쳐지날적마다 이슬 같은 망가진 비방울이 얼굴에 뿌려왔다. 순간, 나는 죄를 짓고 쫓겨난 사람처럼 어덴가 쓸쓸한감이 들었다. 제 집을 갖고 제 마음대로 하던 제 세상은 끝이구나 하는 서운한감 말이다.    나는 길게 담배 한모금 감빨아 들였다가 휴- 하고 내뿜었다. 코와 입에서 연통처럼 빠져나가는 담배연기와 함께 가슴에 막혔던것이 확 열리면서 무언가 빠져나가는것 같았다. 그러자 손자라는 생각이 나의 덜미를 잡았다. 손자를 놓고 뭘 더 흥정하랴? 노예가 되든 종놈이 되든 상관없었다. 손자는 나의 황제였으니까.    비오는 저녁켠의 날씨는 꽤나 쌀쌀했다. 나는 으스스 몸을 떨었다. 하지만 문을 떼고 들어섰을 때 집안은 화끈했다. 열기로 화끈한것이 아니라 기분으로 화끈했다. 싸움을 모르고 웃음을 모르고 시끄러움을 모르고 들썩하는것을 모르던 외롭던 집안에 손자녀석의 키드득 하는 웃음소리가 꽃을 피웠기때문이다. 며느리와 손자녀석이 갖고 온 성탄례물이였다.    “응아- 응아-”    “왜 애를 울려?”    그 울음소리를 그렇게도 그리워했고 바랐으면서도 나는 이렇게 소리쳤다. 처음엔 아름다운 멜로디처럼 들리던것이 애가 이마의 피줄을 세우면서 하도 기를 쓰고 울어대니까 살점을 뜯어내는것 같아서였다. 모르긴 해도 나의 할아버지도 그래서 나를 울린다고 어머니를 탓했을것이다. 손자녀석은 진짜 나의 살점이였다. 정말 끝내준다니까.    “애들은 울리면서 키워야 해요.”    “아니 시에미, 며느리 둘씩이나 있으면서 애를 울려?”    나는 어쩌다 만난 며느리까지 거들며 마누라를 힐난했다. 내 말에서는 시큼한 냄새가 확 풍겼다.    “제가 오좀 싸고 찐찐하니까 우는걸 우린들 용빼는수가 있어요? 좀만 참아요.”    “그럼 기저귀를 제때에 바꿔줘야지.”    “호호호! 됐어요. 애때문에 두분 진짜 싸우시겠어요.”    제자식 고와서 입씨름하는것이 번연한지라 며느리가 우리 사이에 쐐기를 박았다.    “어화 둥둥 내 손자요.”    손자녀석의 기저귀를 바꿔채워준 로친이 손자를 안고 둥둥 춤추면서 가락을 뽑았다.    “여보세요. 손자라고 얕보지 말아요. 우리 손자 외국귀빈이예요.”    “외국귀빈이라니?”    “외국사람이면 외국귀빈이지 뭐겠어요? 일본국적에 올렸어요.”    “뭐야? 얘, 며늘아가, 그게 실말이냐?”    “녜, 아버님!”    “아유, 하느님맙시사. 할아버지, 아버지가 조선사람인데 일본사람으로 만들다니? 그게 어디 될말이냐?”    “남들은 일본국적에 올리지 못해서 아글타글하는판인데 너무나 좋아서 흥타령이세요? 그리구 일본국적에 올린다 해서 다 일본사람으로 돼요?”    “무식하긴, 어느 나라 국적이면 어느 나라 사람으로 되는거야!”    “아버님, 노여워마십시오. 이 애의 장래를 생각해서 그렇게 했어요.”    “장래를? 이제 두고 보아라.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녀석들이 중국이라는 대국앞에 무릎을 꿇지 않나.”    “아버님이 일본에 가보시지 않아 그래요.”    “광복전에 그놈들을 볼만치 보았다. 음…”    나는 건가래를 떼며 돌아앉았다. 마뜩치가 않았다. 손자녀석을 일본놈으로 만든다는게 께름직하고 찜찜했다. 소수민족이라는 이름을 달고 살아가는것도 서럽고 고달픈데 하나밖에 없는 손자녀석을 일본국적에 올리다니? 그럼 도대체 나는 누가 되는데? 앞으로 나는 나도 찾지 못하게 되고 나도 갖지 못하게 될것 같았다.    “애의 이름을 뭐라 지었나?”    “디시모도 히로아끼예요.”    “디시모도 히로아끼?”    며느리의 말에서 먼지가 풀썩했다. 제 딸 같았으면 구들장을 들었다 놓았으련만 데려온 자식이라 차마 그렇게는 못했다. 사돈을 보고는 친딸처럼 생각하겠다고 열번 백번 말했지만 정작 일에 맞다들면 쪽을 놓게 되고 벽이 생기는것이 친딸과 며느리와의 차이가 아닌가싶다. 김씨네 집안 종가집 손자를 제 성도 갖게 못하다니?    “그래 그냥 일본에 눌러앉을 셈이냐?”    나는 10년전에 아들녀석을 일본류학으로 보냈었다. 돈도 벌고 기술도 배워가지고 돌아오라고 말이다. 그런데 손자녀석까지 일본호적에 붙였으니 그냥 일본에 엉뎅이를 붙이고 살 심사 같았다. 괘씸한 녀석, 하나밖에 없는 아들녀석이라고 곱게 길렀더니 애비 에미를 다 잊고 제 좋은 멋에 살다니?    “차차 지내보면서 결정짓겠어요. 민족기시가 얼마나 심한지 그냥 파묻혀있을것 같지는 않아요. 아버님.”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며느리 얼굴이 어쩐지 낯설어보였다. 너울을 쓴 며느리의 절을 받을 때의 그 얼굴 같지 않았다. 따스하고 귀여운 맛이 없었다. 멀어보이는 얼굴이였다.    “음-”    나는 집으로 돌아온 첫날부터 며느리보고 이러쿵저러쿵하기 싫어서 돌아앉고말았다. 가슴에서 보얗게 안개가 피여올랐다. 갑갑했다. 될대로 되라지. 내가 이제 손자녀석 장가가는걸 볼가?    “응아- 응아-”    배가 고팠던지 손자녀석이 또 울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그 울음소리는 아까처럼 살점을 뜯어내는것 같지는 않았다. 일본놈새끼를 만들었다는 그 섭섭함에서였던지 아니면 몇번 울음소리에 습관되여서였던지 처음처럼 신경을 찢지는 않았다. 그랬건만 마음은 톱질하고있었다. 종가집 장손으로 김씨집안의 기둥이 될 녀석이였으니까.    “애가 우는데 뭣들 하고있어?”    할아버지도 지금의 나처럼 그런 마음이였을가? 그래서 나의 오줌에 어머니의 베적삼이 삭아 떨어지게 했을가? 그랬을것이다. 나는 김씨가문의 3대 장손이였으니까. 할아버지의 웃대에는 형제들 몇분이였는지는 몰라도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나도 아들도 손자도 5대를 내려오면서 외독자였다. 그러니 손자녀석은 김씨가문의 곁가지가 아니라 뿌리였던것이다.    그날 밤 나는 굳잠 한번 자지 못했다. 손자녀석이 울지 않나 귀를 도사리면서 울음소리만 들리면 자리에서 벌컥 일어나군 했다. 잠귀 둔한 로친이 제때에 손자녀석의 기저귀를 바꿔주지 않거나 우유를 제때에 먹여주지 않나싶어서였다. 하나도 도움되지 않으면서 이 근심 저 걱정으로 속을 끓이게 되는것은 어쩔수 없었다. 다심하다기보다 부스스한 늙은이의 마음에서였다.     며느리가 애를 업고 왔다는 소식을 듣고 친척들과 아들며느리의 친구들이 꼬리를 물고 찾아들었다. 일본에서 낳은 애라서 더더욱 호기심을 끌었을것이다. 일본에서 낳았건 시골초가집에서 낳았건 그 애 그 애련만 일본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손자는 점수 만점을 따고있었다.    “일본물을 먹고 자라서 그런지 이 애 눈 좀 봐. 얼마나 또렷하나.”    “아유, 어데 하나 빠진데 없네. 일본에서는 영양관리를 그토록 잘한다면서? 그래서 이렇게 반듯할거야.”    “애 우는 소리 좀 들어봐. 얼마나 챙챙하냐? 온종일 시내로 돌아다녀도 구두에 먼지 하나 앉지 않는다더니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에서 태여나서 그런 모양이야.”    “고급영양가를 흡취해서 그렇지.”    외국나들이를 해보지 못한 시골무지랭이들이라 일본이 좋다 하니 일본에서 낳은 애까지 좋다하는판이다. 외겹눈도 여차여차하게 쌍겹눈보다 더 곱고 납작코도 여차여차하게 고와보인다는판이니 한구들 넘쳐나게 사람들이 들어앉았지만 진짜 사람은 손자녀석 하나뿐인것 같았다. 우리 집안을 놓고 보면 귀한 자식이라 그래서 듣기 좋은 말들을 하겠지만 내 귀에는 그런 말들이 입발린 말처럼 듣기 좋게 들어오지는 않았다. 밉다는 말보다 곱다는 말이 싫지는 않았지만 너무 지나치니 껄끄럽게 맞혀오는것은 어쩔수 없었다.    “일본에서 낳기만 했을줄 아시우? 일본에 호적까지 올렸다우.”    너도나도 춰올리는 바람에 어깨가 으쓱했던지 로친이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손자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낳았다 하여 일본국적이 되는줄 아우? 우리 아들이 일본친구를 통해 입적을 시켰다우.”    “일본국적까지? 아버지, 어머니를 잘 만나 이 애는 호강하게 됐어요.”    “이 고장에서 룡이 났네요.”    “할아버지 할머니도 손자신세 보게 됐어요.”    일본국적말까지 나오자 친척들이 와 하고 너도나도 나섰다.    “이름도 일본이름이라오. 뭐 다시모…”    “디시모도 히로아끼예요.”    며느리가 인츰 시어머니의 말을 받았다.    그러자 구들에서는 재다시 와  하는 함성이 터졌다.    우리 집안이 독자로 내려오다보니 앉을자리 설자리 없이 모인 친척들 가운데서 김씨가문의 친척들은 하나도 없었다. 나의 처가편이 아니면 아들의 처가편뿐이였다. 그것이 다행스러웠다. 만약 김씨가문의 사람들이 그 소리를 듣는다면 대를 끊는다고 얼마나 섭섭해하랴?    “얘, 며늘아가, 나 좀 보자.”    나는 며느리를 나의 서재로 불러들였다. 네거리의 잡다한 모든 소음들을 몽땅 들어다 옮겨놓은듯한 객실과 주방에서 들리는 말들이 귀에 거슬리기도 했거니와 그런 분위기에서 몸을 빼고싶어서였다.    “아버님, 어데 편찮으세요?”    내 기색을 살피던 며느리가 얼굴을 좁히며 물어왔다.    “손자녀석 출생증이 있겠지?”    “녜, 있어요.”    “갖고왔느냐?”    “녜.”    “나 좀 보자.”    며느리가 나가려고 서재문을 열었다. 그러자 망그러지고 부서진 웃음들과 말소리들이 문짝이 날려가게 서재로 확 쏠려들었다. 그 소리에 밀려 창문에 비꼈던 해살마저 갈지(之)자를 그리면서 창턱에 앉은 먼지를 보얗게 일구고있었다.    잠시후 며느리가 손자녀석의 출생증을 갖고 들어왔다.    “다른 부탁은 없으세요?”    “없다. 손님들 섭섭해하지 않게 점심을 잘 챙겨드려라.”    “걱정마세요, 아버님.”    며느리가 나가자 나는 손자녀석의 출생증을 살펴보았다. 손자녀석이 2002년 7월 3일 오사까에서 출생했다는 생생한 기록이였다. 나는 이미 준비했던 호적부의 갈피속에 손자녀석의 출생증을 정히 접어넣고 문을 나섰다.    내가 손자녀석을 나의 호적에 올린후 집문고리를 잡았을 때 한구들 꽉 찼던 손님들은 다 돌아가고 집에는 로친만이 오또기처럼 달랑 버려져있었다.    “아니, 얘들은 어데 갔소?”    “외가집에서 데려갔어요.”    “외가집? 우유며 기저귀며 옷가지들을 다 챙겨보냈소?”    “아유, 별 걱정 다 하네. 그게 어디 령감이 삐칠 일이예요? 그런데 당신 어데 갔다 오시는 길이예요? 점심을 드셨어요?”    “어데 갔다 오긴? 애를 호적에 올렸지.”    “아니, 일본에서 올렸다는데 또 우리 집 호적에 올려도 된대유?”    “일본소리는 좀 작작 해둬.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부끄럽긴요? 좋기만 하네요.”    “제 종자를 남의 종자로 만들었는데도 부끄럽지 않아? 그래도 흥타령이야?”    “됐어요, 됐어요. 또 시작하는군.”    내 말에서 쌩 하고 찬바람이 일자 로친이 지레 방패를 들었다. 우리는 이래서 칠십 먹도록 한번 싸움 같은 싸움을 해보지 못하고 살아오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내 말에 날이 서거나 눈길이 째지면 로친이 방패부터 들었으니까.    “그래 애 이름을 뭐라 지었어요?”    “김영근, 우리 김씨가문의 영원한 뿌리니까.”    “늙은 냄새가 확 풍기는군. 영근이라 그 이름 당신에게 붙였으면 딱 맞겠어요.”    “무식하긴. 그 이름 진짜 조선사람 이름이야.”    “애 이름을 짓겠으면 며느리와 상론이라도 해봐야지 할아버지 행세만 해서야 되나요?”    “자고로 손자의 이름은 할배가 짓기 마련이야. 그것도 모르고 무식하긴.”    로친의 말처럼 손자녀석의 이름이 낡아빠지고 흔해빠진 이름일는지는 몰라도 그 디시모도인지 다시모도인지 하는 일본이름보다는 썩 듣기 좋았고 퍽 마음에 들었다. 손자녀석을 내 호적에 입적시키고 김영근이라는 이름 석자를 호적부에 딱 붙이고나니 그 무거웠던 마음을 다소나마 달랠수 있었다. 이제는 손자가 내 몸에 착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으리라는 그 위안이였다. 아니 위안이 아니라 법적으로 내 손자라는 그 담보에서였다.     며느리는 영근이를 우리 령감로친에게 맡겨놓고 일주일만에 일본으로 훌 날아가버렸다. 유치원에 보낼 때까지만 길러달라는 무던한 부탁을 한아름 안겨놓고 말이다.    “여보, 우리 어멈 한분 모셔오기요.”    영근이를 보느라 새우잠 한번 들지 못하는 로친이 불쌍하기도 하고 전에는 손발을 동여놓고 살다싶이하던 나까지 잔손질에서 벗어날수 없게 되자 내가 말했다.     “내가 안된다지 않았어요? 내 손자를 남에게 맡기고싶지 않아요.”     “당신이 돼가는 꼴을 좀 보오. 며칠새에 눈이 방아확처럼 됐소.”     “거야 자지 못해서 그렇지 병나서 그런줄 아세요? 어멈을 데려온다 해도 내가 시름놓고 잘줄 아세요? 안될 소릴 더는 다시 하지 말아요.”    “그럼 나도 명확하게 일러두겠소. 일체 잔심부름 이제부터 끝!”    손자는 복덩이면서도 애물단지였다. 로친이 영근에게 딱 붙어서 떨어지지 않자 집안의 자질구레한 일들이 내 손에서 떠날줄 몰랐다. 벼룩시장에 가서 남새를 사들인다, 찬거리를 얻어들인다 하는건 물론 집안청소요, 그릇 가시는 일까지 몽땅 내 몫이였다. 할아버지가 어멈노릇을 하지 않으면 안될 형편이였다.    녀성들에게는 남자를 다스리는 깊은 학문이거나 비결이 있지 않는가싶다. 내가 자질구레한 집안일에서 일체 손을 떼겠다고 장엄하게 선포했음에도 로친은 나를 어쩔수 없게 그 일에 달라붙지 않으면 안되게 만든다.    “여보세요. 당신 즐겨 자시는 돼지고기 삼겹살이 떨어졌네요.”    “그런데는?”    “내가 아침시장에 가야 할텐데 영근이가 열이 나는것 같아서…”    “뭐야?”    나는 달게 자고있는 손자의 이마를 짚어보았다. 로친의 말처럼 열이 있는것 같았다. 그런 애를 로친의 등에 업혀 벼룩시장에 보낼수는 없었다. 그러다 병이라도 도지면 큰일이였다. 그때까지도 나는 애들 체온이 성인들보다 더 높다는걸 모르고있었다. 그러니 감쪽같이 속을수밖에야.     나는 두말없이 시장에 갈 준비를 했다.    “여보세요. 시장에 갔던김에 시금치 한근, 홍당근 두개, 오이 한근 사오세요. 시금치와 당근을 폭 고아서 그 물을 우유와 함께 애에게 먹여야겠어요.”    옳거니, 실은 돼지고기 삼겹살을 걱정해서가 아니라 손자녀석에게 먹일 남새즙을 걱정해서였다. 로친은 번마다 이렇게 나를 부려먹었다. 이래라 저래라 하면서 시키는것이 아니라 내가 제일 아끼고 아파하는 마음속 한구석을 동집게로 꼭 짚고 늘어지면서 나 스스로 그걸 하지 않으면 안되게 만들군 했다.    매일마다 시켜주는 애의 목욕도 그러했다.    “나 홀로서도 목욕시켜줄수 있는데 그러면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아요? 그러다 애가 감기에라도 걸리면 어쩌겠어요?”    그 감기라는 말에 나는 어쩔수 없이 로친의 심부름군이 되고만다. 이렇게 나는 옴짝달싹 못하고 손자녀석의 포로가 되여 집구석을 떠날수 없게 되였다.    “아니 우리 집에 돈이 없소? 뭐가 모자라오? 더는 삐쳐낼것 같지 않소. 어멈 한분 모셔오기요.”    “누가 돈때문에 그런대요? 남의 식솔 하나 둔다는게 말처럼 그렇게 쉬운줄 알아요? 음식을 가려도 걱정, 아파도 걱정, 근심거리 혹 하나 더 나는 셈이예요.”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어멈을 바꾸면 될거 아니오? 남들도 다 어멈을 두고 애들을 기르는데 우리 집만 안된다는 법 없지 않소?”    “좀만 참아요. 우리 영근이 이제 걸음마를 탈 때면 당신 손 빌지 않을게요.”    “그러다 내가 지레 눕고말겠소.”    나보다 로친이 더 걱정스러웠다. 달포 푼한 새에 로친은 반쪽이 되고말았다. 그러면서도 어멈소리만 나오면 팩 돌아지군 했다. 거의나 반세기를 살을 섞으며 살아온 부부사이지만 로친의 그 옹고집을 나는 리해할수 없었다.    “이러다 우리 령감로친이 지쳐눕고말겠소. 어멈 한분 모셔오기요.”    “안된다지 않아요?”    “당신 제 살을 뜯기우면서 돈을 모았다가 관속에 넣고 갈 셈이요?”    “돈때문 아니라지 않았어요?”    “그럼 도대체 뭐요?”    “그예 실말을 듣고싶어요?”    “당신은 그래 손자에게 잡혀 꼼짝 못하는 령감도 보이지 않소?”    “영근의 정을 나눠갖고싶지 않아요.”    그것이였구나. 손자의 정을 독점하고싶은 할머니의 욕망과 욕구, 그래서 어멈소리만 나오면 앵돌아지군 했구나. 어멈을 두면 애의 정이 자연 어멈에게 쏠리게 되니까.    나는 로친이 리해될것 같으면서도 리해되지 않았다. 어멈을 둔다 해서 어멈이 정을 떼가나 애를 업어가나 제 살붙이는 어데까지나 제 살붙인데 말이다. 오랍누이를 키워본 어머니 같지 않았다. 로친은 제 자식을 사랑하고 아끼기는 했지만 지금 손자녀석에게 쏟는 정처럼 그렇게까지 집착하지는 않았다. 더더구나 우리 둘은 모두 자기의 일터로 출근하면서 애들을 기르다보니 애들을 반 제자식 반 남의 자식처럼 키웠었다. 그때 자식에게 다 주지 못했던 정성과 사랑을 보상하느라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영근에게 몰붓는 로친의 정과 보살핌은 각별했다.    나도 물론 아들보다 손자가 더 귀엽고 고왔다. 아들딸을 기를 때는 부끄럽다면서 애들을 안아주거나 뽀뽀해주지도 못했지만 손자녀석은 달랐다. 밤낮 붙어있다싶이 하는 지금도 영근의 쌕쌕  잠든 소리거나 장꿩이 우는 소리 같은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면 안절부절못한다.    아버지, 어머니가 자식에게 주는 사랑과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자에게 쏟아붓는 사랑은 어덴가 다른것 같았다. 심도거나 광도, 색채가 다른것 같았다. 맛도 다르고 냄새도 달랐다. 받는 감각도 달랐고 주는 온도도 달랐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데 어떻게 다른지는 딱 짚을수가 없었다. 그 사이를 금을 긋고 말할수 없는것이 아들에 대한 사랑과 손자에 대한 사랑이 아닌가싶다. 어쨌든 형용할수 없고 말할수 없는것이 손자에 대한 사랑이다.    손자녀석때문에 귀신 나락 까먹은 소리 들을수 없던 집안이 눈을 떠서부터 눈을 감을 때까지 해종일 전쟁판이다. 좀체 진정할수 없고 진정할수 있는 시간적여유를 주지 않는것이 손자손녀를 키우는 집안일것이다. 그래도 좋았다. 손자녀석이 별탈없이 잘 커주니 감사한 마음뿐이다.    이렇게 영근이는 우리 곁에서 2년을 자랐다. 손자녀석은 올된 녀석이였다. 돌전에 걸음마를 탔고 두돌전에 앵무새처럼 제법 잘 조잘댔다.    그런데 묘한것은 영근이 처음 배운 말이 “할매”, “할배”였고 “엄마”, “아빠”가 아니였다. 엄마아빠를 모르고 자란 애였으니까. 할매, 할배를 먼저 배우면 어떻고 엄마, 아빠를 먼저 배우면 어떻고 쪽을 놓을건 없지만 일본에 있는 아들, 며느리는 어덴가 다른것 같았다. 전화를 받을적마다 매우 섭섭해하는 기색이 확연히 보이는것 같았다.    전화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손자녀석때문에 일본에 있는 아들며느리가 밀어넣은 돈이 아름찰것이다. 우리 령감, 로친 단둘이 있을적엔 한달에 한번씩이라고 할가 가물에 씨 나듯 전화를 했지만 손자를 두고간 다음부터는 하루 멀다하게 전화가 왔다. 말로는 아버지, 어머니가 무고한가 해서 친다고 했지만 기실은 제 자식이 무사한가, 잘 크는가 하는 그 마음이 앞선것이 환히 엿보였다. 그래서 손자녀석이 말을 못할 때에는 자는 애를 깨워서 울리거나 울지 않을 때는 살을 꼬집어서라도 울음소리를 듣게 했다.    “울음소리를 들으니 디시모도 아니 영근이가 큰것이 보여요.”    아들이 흡족해서 전화를 받았다.    “그 디시모도인지 뭔지 하는 이름 때려치워! 제 좋은 이름을 두고 웬 디시모도야!”    내가 꽥 소리쳤다. 돼먹어도 덜 돼먹은 녀석, 우리 집안에서는 있을수 없는 일이였다.    “아버지, 노여워마십시오. 어쨌건 영근이는 일본에서 공부할 애가 아닙니까?”    “일본에서? 적어도 여기에서 소학교공부를 마쳐야 해! 그래야 제 말과 제 글을 알게 돼!”    “그건 두고 봅시다.”    “두고 보고 할것 없다.”    나는 수화기를 탕 하고 놓아버렸다. 눈치를 보니 손자녀석을 완전 일본놈으로 만들 심사였다. 내가 보내지 않으면 되지 제가 어쩔 셈인데? 괘씸한 녀석!    영근이는 앵무새처럼 제법 말을 잘 받아하던 어저께였다. 일본에서 또 전화가 왔다. 며느리의 전화였다. 우리는 송수화기를 영근의 귀에 가져가면서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으니 “엄마”라고 부르라고 일렀다.    “할매!”    생뚱같은 소리였다. 색갈이 엇갈린 소리였다.    “할매가 아니라 엄마야, 엄마라고 불러!”    로친이 다시 일러주었다. 로친이 듣기에도 안됐던 모양이다.    “할매!”    하건만 영근의 입에서는 같은 말만 반복되였다. 그 소리에 서리가 살짝 내려앉았다. 며느리가 그 소리를 듣고 얼마나 섭섭해하랴? 량미간이 좁혀지는 며느리의 얼굴이 환히 보였다. 우리가 엄마, 아빠라고 말을 배워주지 않아서 그런것 같아서 켕기기도 하고.    나는 영근에게서 송수화기를 빼앗았다.    “얘, 아가. 엄마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너무 섭섭해마라. 그간 영근이가 엄마, 아빠를 한번도 보지 못해서 그래. 앞으로는 할매, 할배가 아니라 어쨌든 엄마, 아빠야.”    “섭섭하긴요? 말까지 하는 영근이를 보니 기쁩니다. 큰것이 보입니다.”    “그래 많이 컸어. 몹시 보고싶지?”    “녜, 보고싶어요. 이번 휴가에 영근이 보러 꼭 가겠어요. 아버님, 어머님 몸 무고히 계십시오.”    “응, 그래. 너희들도 몸 조심하거라.”    나는 수화기를 놓았다. 그리고는 손자녀석의 볼기짝을 슬쩍 때렸다.    “이 녀석, 엄마라고 부르라는데 왜 할매 할매 하는거야.”    “할배!”    손자녀석은 어쩔수 없다니까. 볼기짝을 맞고도 할배라면서 두손을 들고 할아버지 품에 날아드는데야 어쩐단 말인가. 나는 손자녀석을 한품에 안고 량볼에 번갈아가며 뽀뽀를 해주었다.    “이 녀석, 넌 아무때건 일본으로 갈 녀석이야. 하지만 우리 말과 글을 다 배워주고 보낼테야. 알았느냐?”    나는 재다시 뽀뽀를 해주었다. 손자녀석은 내 말을 다 알아들은듯이 어물쩍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쟈식!”    나는 넉가래 같은 손으로 손자녀석의 볼기짝을 다독여주었다. 볼기짝에서 라이라크향내가 산발했다.     쫄깃쫄깃하고 보들보들한 달짝지근한 손자와의 생활은 그리 길지 못했다. 2년나마 되는 시간이라 짧다보면 짧고 길다보면 긴 시간이였다. 하지만 나에게서는 한순간으로밖에는 느껴지지 않았다. 약속대로 아들며느리가 영근이를 안아갔던것이다. 일본에서 애들을 공부시키려면 유치원부터 배워야 한다면서 말이다.    연길공항에서 손자를 배웅하고 집으로 돌아와 문을 떼고 들어서는 순간, 나는 분명 손자녀석의 부름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두팔을 벌리고 달려오는 그 녀석의 모습이 나풀거렸다.    “할배!”    내가 밖에 나갔다가 들어올 때면 손자녀석은 언제나 두팔을 쩍 벌리고 나한테 달려오면서 이렇게 소리치군 했다. 방금 내가 들은 소리는 귀에 익을대로 익은 영근의 그 소리였다. 고막을 퉁퉁 울리고 귀방울을 찌릉찌릉하게 하던 손자녀석의 그 부름소리였다. 항상 저고리 앞섶에 먹어리부스레기를 달고 두팔을 벌리며 허둥지둥 달려오던 영근의 그 모습이였다.    “영근아!”    나는 저도 모르게 이렇게 소리치며 집안을 살폈다. 하지만 집안은 텅텅 비여있었다. 130여평방메터나 되는 넓은 공간, 그 공간을 메워주던 주인공은 그림자도 던지지 않았다.    그때에야 나는 손자가 진짜 내 곁을 떠났다는것을 알았고 확신했다. 공항대기실로부터 탑승실로 올라가는 층계에서 손자녀석을 바랠 때에 “진짜 가는구나.” 하는 생각을 얼핏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히기는 했지만 지금처럼 “영 갔구나.” 하는 생각까지는 가져보지 못했다.    진짜 영 가버렸다. 그 녀석이 차지했던 모든 자리가 비여있었다. 모든 구석이 비여있었다. 그 녀석이 있을 때엔 우리 령감로친의 공간은 잠시도 지체할줄 모르는 영근의 움직임에 몽땅 잡혀버리고 없었다. 내 침실의 침대마저 내가 차지할수 있는 공간이 아니였다. 그 녀석의 공간이였다.    내가 침실에서 텔레비죤을 볼라치면 제가 내 무릎에 앉아서 이 쟌넬 저 쟌넬 가리지 않고 마음대로 눌러대는가 하면 내가 글을 쓰려고 볼펜을 잡으면 제가 빼앗아쥐고 원고지에 제 마음대로 오려대군 했다. 그러니 그 녀석 잠들기전엔 내 침실도 내 공간이 아니였다.    손자가 떠나버린 집은 집이 아니였다. 온기가 없었다. 그 녀석이 집안의 화기를 몽땅 걷어가지고 갔던것이다. 하지만 그 녀석이 남긴 빵과 우유냄새, 그림자는 그대로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연필이며 볼펜이며 저가락이며 손에 쥐우는대로 벽에 대고 오린 흔적이며 구석구석에 널려있는 놀이감들은 그 녀석의 자취를 원형 그대로 고스란히 남겨주고있었다.    로친도 나도 그 흔적을 지우려 하지 않았다. 그 흔적들에서 손자녀석의 움직임을 보는것 같았고 말소리를 듣는것 같아서였다.    밤 늦게야 전화벨소리가 울렸다.    이제나저제나 하면서 전화기를 지키고있던 로친이 송수화기를 들었다.    “응, 무사히 도착했나? 오, 그럼 됐다. 영근이는 지금 뭘 하나? 잔다구? 됐다. 깨우지 말아. 얘, 아침이면 우유와 빵, 점심에는 밥에다 소고기탕이거나 돼지고기국, 저녁에는 생선, 알았지? 잊지 말고 잘 챙겨먹여!”    “가만, 전화를 끊지 마우.”    “얘, 아버지가 바꿔달란다.”    나는 송수화기를 넘겨받았다.    “아비냐? 무사히 도착했다니 시름 놨다. 내가 이곳 유치원에서 배우는 조선말교과서를 보냈네라. 아직 이르겠지만 좀 지나면 잊지 말고 한글을 가르치거라. 집에서는 조선말을 쓰고. 알았지? 그리고 영근이가 된장국을 무척 좋아하느니라. 된장과 고추장은 내가 잊지 않고 꼭꼭 부쳐보낼테니 그리 알고 영근이에게 된장 많이 먹여. 된장독에 바람들지 않는다고 된장을 많이 먹여서 랑패될것 없다. 우리는 된장, 고추장을 모르고는 살지 못하는 민족이다. 응, 응, 그럼 됐다. 우리 근심은 말고 애나 잘 살펴!”    아들과의 통화는 이것으로 끝나고말았다. 아니 내가 끝내버렸다.    “아니, 나는 말도 채 하지 못했는데 왜 수화기를 놔버렸어요?”    “장밤 전화를 칠 셈이요? 무식하긴, 전화료금이 얼만데?”    “그래도 할말이야 해야지 않겠어요? 애에게 옷을 어떻게 입히라는 말을 못했는데.”    “별 걱정 다 하네. 걔들이 알아서 챙겨주지 않으리.”    “지금 애들은 몰라요. 애가 추워하는지 더워하는지 걔들이 알기나 하는줄 아세요?”    “그렇다고 로친이 항상 곁에 붙어있겠소? 무식하긴. 됐소 됐어!”    영근이를 떠나보낸 첫날밤은 잠들수 없는 밤이였다. 그 녀석 갈건 뭐야. “할배!” 하는 소리 한마디만 들었어도 이 밤이 이토록 지겹지는 않으련만. 보름달이 그 환한 얼굴 그대로 전라의 몸체를 드러내고 창문에 붙어있었다. 언제였던가 손자녀석이 집안을 도적질해보는 보름달을 손가락질하며 “할배, 저건 뭐야?” 하며 고사리같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던 때가. 그때만 해도 손자녀석은 내 곁을 떠나지 않으리라고 믿었다. 그런데 “저건 뭐야?”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때 떠나고말았다. 진짜 잠들수 없는 밤이였다. 앞으로 이런 밤을 얼마나 보내야 할는지?     두번째 전화.    “일본에서는 왜 전화가 오지 않을가요?”속을 바질바질 끓이면서 일본소식만 기다리던 로친이 보름 지나도록 전화통이 죽어있자 삿자리가시를 뜯기 시작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지 않았소? 별 탈이 없으니 전화가 없겠지. 무식하긴.”    기실 보름 넘도록 소식 한마디 없으니 나도 속에 재를 앉히고있는 참이였다. 처음엔 “할배!” 하는 손자녀석의 부름소리를 듣고싶던데로부터 너무도 오래 무소식이니 혹시 앓지나 않는지 하는 근심으로 탈바꿈하면서 안절부절못하게 되였다. 그것도 그럴것이 손자녀석이 곁에 있을 땐 시끄럽다 할 지경으로 뻔질나게 전화통을 숨가쁘게 하던 녀석들이 전화통을 쉬게 하고있으니 말이다.    따르릉, 따르릉.    우리들이 너도나도 속앓이를 하고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시우?”    내가 먼저 송수화기를 들었다.    “아버지, 그간 무사하셨습니까?”    “왜 지금껏 전화 한통 없었느냐?”    “죄송합니다. 회사일에 바삐 돌아치다보니.”    “영근이는 무사하냐?”    “녜, 얘 영근아,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널 찾는다.”    아들이 영근이를 부르는 소리가 수화기에서 울려왔다.    “할배!”    잠시 지나 수화기에서 여물대로 여물어서 다치기만 하면 톡 터질것 같은 챙챙한 목소리가 달달 구을러왔다.    “이 녀석, 영근이야?”    “응, 할배. 응응응.”    손자녀석이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울음을 터뜨렸다.    “이 녀석, 울기는 왜 울어?”    “응응. 나 할배 할매 보구싶다 응응.”    “나도 네가 보고싶어!”    “응응. 나 연길 가겠다. 일본 나빠!”    영근의 울음소리를 들으니 가슴이 찢어지는것 같았다. 손자녀석이 옆에만 있다면 꼭 끌어안고 함께 울어줄것만 같았다.    “뭐? 영근이 운다구?”    송수화기를 든 내 귀에 제 귀를 밀착시키고 귀동냥하던 로친이 수화기를 나꿔챘다.    “영근아, 할매야 할매…”    “할매… 응응응.”    송수화기에서 울리는 영근의 목소리가 내 귀에까지 들려왔다.    “애두 울긴? 울지 말아 흑흑흑.”    “나 연길 가겠다. 할배 할매한테 가겠다 응응.”    “응, 오나 오나. 흑흑흑…”    “왜 할아버지 할머니 보고 인사는 하지 않고 울기만 하나?”    “응… 응응응.”    송수화기에서 일본의 목소리들이 다 들려왔다. 애비가 영근의 송수화기를 빼앗은것이 분명했다.    “왜 애를 울려?”    로친이 호통쳤다.    “어머니, 어저께 영근이를 이곳 일본유치원에 보냈더니 낯설어서 그럽니다. 며칠 지나면 때가 묻을겁니다.”    “어유- 애가 불쌍하구나.”    로친이 눈물을 훔쳤다.    “됐소! 그만해!”    나는 로친이 쥐고있는 송수화기를 빼앗아 전화통에 쾅 놓았다. 손자를 더는 울리고싶지 않았다. 일본에 간 다음 처음으로 들어보는 손자의 말소리가 울음소리였으니 부아가 동할대로 동한 나였다. 더더구나 연길로 되돌아오겠다는 손자녀석의 울음섞인 말이 피타는 항소처럼 들려서였다. 얼마나 싫었으면 엄마, 아빠곁을 떠나 연길로 돌아오겠다고 할가? 발버둥치며 눈물범벅이 된 손자녀석이 눈에 환히 보였다.    그날 밤도 나는 굳잠 한번 들지 못했다. 초생달이 문짬을 비집고 들어와 나를 도적질해보고있었다.    스물두번째 전화.    달포째 일본에서 전화 한통 없자 내가 오사까로 전화를 쳤다.    “모시 모시(여보세요).”    며느리가 전화를 받았다.    “모시모시가 아니라 시아비다.”    “녜, 아버님, 그간 무고하셨어요?”    나의 떫은 말에 얼굴을 붉히는 며느리가 보였다.    “그래 영근이는 잘 있나?”    “녜.”    “영근이를 바꿔. 그 녀석 목소리를 듣고싶구나.”    “녜, 아버님. 디시모도, 디시모도!”    디시모도라니? 저 철딱서니없는 녀석들이 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을 개에게 돌 던지듯 던져버리고 그예 일본이름을 불러? 돼먹지 못해도 한참은 돼먹지 못한 녀석들이군. 할아버지가 어찌고 지어준 이름인데? 그 이름 두자를 위해서 신선이라고 불리는 관상쟁이를 찾아간다, 점쟁이를 찾아간다 하면서 얻은 이름인데 그 이름을 차버려? 음  괘씸한 녀석들.    “디시모도!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널 부른다.”    “할배!”    한참 지나 석계수처럼 맑은 영근의 목소리가 들렸다. 참 감칠맛나는 할배라는 소리였다. 남의 자식들이 할배라고 부른다면 그토록 달지는 않았을것이다. 제 손자가 할배라고 부르는 소리는 소리가 아니라 찰떡같았다.    “영근이냐?”    “응.”    “할아버지 할머니가 보고싶지?”    “응.”    “이 녀석 할아버지 보고 응이 뭐냐? 녜하고 대답해야지.”    “녜.”    “그래 우리 영근이도 이젠 컸구나. 영근아, 너 할배, 할매 보러 연길로 오지 않겠니?”    “오겠다.”    “이 녀석아, 오겠다가 뭐냐? 가겠다면 가겠다지.”    “가겠다.”    손자녀석은 이제 몇달만 지나면 네돐이 된다. 벌써 연길을 떠난지 일년 반 된다. 재잘재잘 말도 잘하고 할아버지 담배심부름도 잘하던 녀석이 오라가라하는 말도 가릴줄 모른다. 여기에 그냥 눌러두었다면 제 의사소통을 잘할텐데 제 말도 바로 번지지 못하다니? 그것이 섭섭했다. 아니, 괘씸했다. 손자녀석이 괘씸한것이 아니라 아들, 며느리가 괘씸했다. 영근에게 조선말을 가르치는걸 잊지 말라고 내가 그렇게도 신신당부했건만 일년 푼한 새에 애를 반벙어리로 만들다니?    “말도 하지 않으면서 뭘 해요? 저리 비켜요.”    너무나 어처구니없어서 내가 송수화기만 들고있으니 로친이 송수화기를 빼앗으며 말했다.    “영근아, 영근아!”    “응.”    “너 유치원에 잘 다니니?”    “응.”    “밥도 잘 먹고?”    “응.”    “아빠 엄마 말씀도 잘 듣고?”    “응.”    “너 할매 보러 언제 오겠니?”    “응.”    “얘가 왜 응 소리밖에 몰라? 너 엄마와 전화 바꿔라.”    그러자 송수화기를 탕 하고 놓는 소리가 들렸다. 통화는 이렇게 이어졌고 이렇게 끝나버렸다.    “어유- 이젠 손자와도 죽으라는지 살라는지 모르면서 살아야겠군.”    “애를 일본호적에 올렸다고 진자랑만 늘어놓더니 꼴 좋게 됐다.”    “령감의 속알머리는 어떻게 생겨먹었기에 남의 기만 채우는가요?”    “기를 채우는것이 아니라 앞이 보인다는 말이여.”    “앞이고 뒤고 영근이가 잘된다면 끝이지요. 우리 이제 볼게 있어요?”    “꼭 일본호적에 올리고 일본말을 배워야 잘된다는 법이야 없겠지? 자고로 잘되고 못되고는 사람에게 달린거야.”    “됐어요 됐어요. 말싸움에서 내가 언제 령감을 이겨본적 있어요?”    “무식하긴.”    손자녀석때문에 자칫 령감, 로친의 싸움으로 번질번했다. 손자녀석이 가고  없자 우리의 싸움 아닌 싸움은 언제나 내쪽이 득세했고 내가 이기군 했다. 영근이를 턱대고 내노라 하던 로친은 기가 죽어 움쩍을 못했다. 로친과 싸워 이기면 어떻고 지면 어떠랴. 이겼다 해서 이긴 사람 못 봤고 졌다 해서 진 사람 못 봤다. 하지만 지려 하지 않는것이 부부싸움이요, 령감로친의 싸움이 아닌가싶다.    영근이때문에 나는 진짜 기가 상해있었다. “나 할배, 할매 보고싶다. 나 연길 가겠다.” 하면서 울어대던 그때의 영근이만 떠올렸고 그때의 영근이 되기만을 바랐었다. 그런데 방금전의 통화는 우리 사이를 금이 서게 했으며 벽을 느끼게 했다. 그 금이 무엇이며 그 벽이 무엇인지 딱히 말할수는 없지만 어쨌든 기탁점이 어렴풋해지는 서운한 마음은 감출길 없었다.    “여보 로친, 술 있지? 술 한잔 가져와!”    “아니, 찾지 않던 술은 왜 찾아요?”    “웬 잔소리여, 가져오라면 가져오는거지.”    “예, 있어요 있어요. 마시고싶으면 한독이라도 마셔요.”    로친이 구들에 신문지를 펴놓고 술병과 알콜램프, 말린 물고기를 가져다놓았다. 우리 집 술안주는 언제나 단 한가지  말린 물고기였다. 친구들이 와도 말린 물고기요, 친척들이 와도 말린 물고기였다. 번다하지 않고 시끄럽지 않은 즉석술안주였다. 사시장철 내가 잡아들이는 버들치며 모래무치들을 간을 맞춰 말리웠다가 술생각이 나거나 친구들이 오면 술안주로 구워먹는 특식이 말리운 물고기였다.    “여보 로친, 로친도 와서 한잔 하구려.”    내가 알콜램프에 물고기를 구우면서 말했다.    “술로 심사나 달래볼가요?”    “그래, 좋다마다. 언짢은 때는 이놈이 제격이라니까.”    우리는 권커니작커니 하면서 술을 마셨다. 하지만 취해지질 않았다. 워낙 심란한 마음을 잡고 잠을 청하려고 벌인 술판인데 잠은커녕 눈초리가 빳빳해났다.    술로는 잠을 청할수 없는 밤이였다.     마흔두번째 전화.    오늘은 손자녀석의 다섯돐 생일이다.    영근이녀석 곁에 있다면 공원놀이며 백화상점이며 단설기점을 데리고 다니면서 그 녀석 놀고싶은대로, 사고싶은대로, 먹고싶은대로 사주련만 멀리 떨어져있다보니 그러지를 못하는것이 안타까왔다.    집안에 차고 넘쳤던 그 녀석의 공간도 하나 둘 줄다보니 그림자거나 자취마저 사라지고 지금은 먼지만 내려앉는 썰렁한 허공처럼 되여버렸다. 로친이 그 녀석 돌아오면 다시 주겠다고 놀이감이며 그림책들을 어데다 감추었는지 종적도 보이지 않고 령감, 로친만이 있을 때의 그 한적하고 찬 기운이 쌩쌩 귀방울을 스치는 외로운 섬을 되살려 올렸다. 아니 한가지만은 손자녀석의 체온을 느끼게 하는 따사로움을 보여주었다. 영근이가 두돌때 령감, 로친이 손자녀석을 가운데 앉히고 찍은 사진이였다.    한복을 입은 손자녀석이 웃고있었다. 그 웃음은 언제라 할것없이 밀페된 공간을 꽉 채우면서 우리한테로 다가왔다. 기면서, 걸으면서, 달음박질치면서. 유치원 책가방을 메고서 우리한테로 안겨왔다.    나는 아들, 며느리가 출근하기전에 통화하려고 송수화기를 들었다.    전화벨소리가 울린지 한참 되여서야 대방에서 송수화기를 드는 소리가 들렸다.    “모시모시.”    잠을 깨지 못한 아들의 목소리였다. “모시모시” 하는 소리를 너무나 많이 들어서, 너무나 지루하게 들어서 그런지 이젠 둔감상태에 빠져 이색적인 반발까지는 일지 않았다.    “나 아버지다.”    “녜, 아버지, 무고하셨습니까?”    “우리는 잘 보낸다. 그런데 영근이는 어떻냐?”    “별탈없이 유치원에도 잘 다닙니다.”    “오늘 그 녀석 생일인걸 알고있나?”    “녜, 오늘 사진도 찍고 놀이터로 데리고 갈 예산입니다.”    “오늘만은 그 녀석 하자는대로 다 해줘. 그 녀석 지금 뭘 하나?”    “주방에서 아침준비를 하는 제 어미를 도와준다며 물장난합니다.”    “그녀석과 바꿔.”    “녜. 디시모도, 디시모도! 오지상 데스요(할아버지다).”    전화기에서 울려오는 소리였다. 그 소리가 끝난지 이슥해서야 손자녀석의 말소리가 들렸다.    “오지상 오하이요 고자이마스(할아버지 안녕하십니까).”    “영근아, 너의 생일을 축하한다.”    “…”    “왜 대답이 없나? 유치원에는 잘 다니니?”    “…”    “이녀석 벙어리가 됐나? 오늘 아빠, 엄마 보고 맛있는걸 많이 사달라고  해!”    “…”    “이 녀석, 왜 말을 못해? 말 좀 해봐!”    “와까리마센(몰라요).”    손자녀석이 일방적으로 탕 하고 송수화기를 놓아버렸다. 버르장머리없는 녀석, 할아버지의 전화를 함부로 끊어버리다니? 그럴수밖에 없었다. 할아버지의 말을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했으니까.    기쁨도 한순간이요, 실망도 한순간이였다. 영근의 목소리에서 커가는 소리를 보았고 그의 말에서 멀어져가는 손자를 보았다. 연길과 오사까라는 거리감보다 머리속에서 늘어나는 거리감, 허탈감은 우리 사이를 더는 짧게 메울것 같지 않았다. 그제야 나는 변한다는것을 통절히 실감하게 되였다. 사회도 변하고 사람도 변하고 모든것이 변하고있었다. 그 변화속에서 생존을 위한 박투와 적응성이 지나온 모든것을 훼멸시킨다는것도 뼈아프게 느꼈다.    앞으로 영근이와 나는 몇촌이나 될가?    나는 그 해답때문에 오늘밤도 지새울것 같다.    “여보 로친! 술 가져와!”    “아침부터 웬 술타령이예요?”    “마시고싶을 때 마시는것이 술이지. 무식하긴!”    이제 나는 말리운 물고기를 하나하나 알콜램프불에 구우면서 60도짜리 배갈을 마실것이다. 목도 지지고 마음도 지지고 오장륙부도 지지면서…   -《장백산》2007년도 제4호     ◉림원춘: 1937년생. 1960년 연변대학 졸업. 중국작가협회 회원, 국가 1급작가. 단편소설집《몽당치마》,《꽃노을》, 장편소설《짓밟힌 넋》, 장편실화《개척자의 발 자국》등 출판. 전국우수단편소설상, 전국소수민족문학상 등 문학대상 수차례 수상.    
1    료동벌의 해당화 (림원춘) 댓글:  조회:1144  추천:73  2007-10-08
료동벌의 해당화 림원춘괴나리보짐에 쪽바가지를 차고 살길을 찾아 고향을 등지고 눈물을 휘뿌리며 압록강을 건너지 않으면 안되였던 할아버지, 두살 어린 나이에 철없이 짝자궁을 치며 감나무 주렁진 고향― 울산군 온양면 고산리를 하직하지 않으면 안되였던 아버지, 그 후예로 서간도에 태줄을 묻고 뼈를 굳혀온 작가 박성군은 동년의 여린 가슴에 《고향》이라는 두글자를 가슴에 묻고 뿌리를 내리면서 힘겨운 발걸음을 떼였다. 민족의 얼, 그것은 우리 민족의 지탱점이였고  작가 박성군을 키워온 모체였다. 한 작가로 민족의 자부심이 없는 작가는 그 민족의 훌륭한 작가가 아니라고 작가 박성군은 항상 말하고있다. 어찌보면 민족의 뿌리가 박성군을 작가로 만들었고 민족의 얼이 그를 《료동벌의 해당화》로 급성장하게 한 원동력이 아닌가싶다. 그는 그토록 우리 민족을 사랑했고 그는 그토록 우리 민족의 렬근성을 타매했으며 그는 그토록 우리 민족의 앞날을 걱정했었다. 하여 그의 붓끝에서는 계렬소설이나 다름없이 위장결혼의 소재를 다루었고 그 위장결혼의 허울을 아무런 미련도 없이 벗겨내고있다. 위장결혼으로 벌어지는 가정의 파탄, 부모를 잃고 방황하는 자식들의 타락, 결혼이라는 교역에서 벌어지는 사기, 돈의 유혹에 빠져 몸까지 망치고마는 비참한 운명… 작가 박성군은 민족에 대한 책임감과 민족을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위장결혼의 실질을 파헤치면서 민족을 망치고 자신을 망치는 위장결혼을 타매하고 더는 다시 패가망신(敗家亡身)하는 위험한 기로에 들어서지 말것을 호소하고있다. 소설집 《오작교는 운다》는 많은 작가들이 외면했고 붓끝을 돌리지 못했던 위장결혼의 실태를 파헤쳤으며 예리한 안광으로 어두운 구석을 조명한것으로 우리 문학의 공간을 메우고있다. 소설집 《오작교는 운다》의 력사적가치, 문학적가치가 여기에 있지 않는가싶다. 작가 박성군은 부지런하고 착하고 어진 아버지의 성품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감농군, 농민기업가, 자선가, 사회활동가로 한겨레의 넋을 빛내왔으며 빛내여가고있다. 그는 문학의 공백이나 다름없는 료동벌 불모의 땅에 문학의 꽃을 피우기 위해 1987년 봄에 료녕성조선족작가단체를 발기했고 불구의 몸으로 수십차 정부 유관부문을 찾아다니면서 끝내 사단법인 《심양시조선족문학회》를 설립하였던것이다. 그가 초대부회장으로부터 회장으로 근 20년 문학회를 이끌어오면서 지금 료녕성 8개 시, 현의 70여명 작가군을 갖고있는 문인단체로 부상시켜놓은것이다. 그가 창설한 문학회는 지금까지 문학쎄미나를 22차나 진행하면서 작가들의 자질제고에 전념하여왔다. 그는 21세기에 들어와서 문인단체의 자체의 간행물이 없는것을 가슴 아파하면서 한국을 방문하는 기회를 리용하여 고향 울산에 친인척들을 찾아가 문학회의 간행물을 출판하고저 하는데 출판경비를 후원하여달라고 호소하였던것이다. 그리하여 2000년 12월에 울주문화원 리두철원장께서 2001년부터 문학회 기관지 《료동문학》작품집을 매년 두기 출판하는 경비를 후원하여주는 계약을 맺고 2001년 8월 5일 《료동문학》 창간호를 출판하게 되였고 지금까지 제10기를 출간하였다. 그는 료동벌 조선족작가들을 위해 사재를 털어 1986년 료녕조선문보 《압록강 문학상》 첫 기금을 내놓았고 자식들에게 얼음과자 한개를 사주는것을 아끼면서 문학창작활동, 쎄미나 등 많은 문화활동에 의연하는것을 잊지 않았었다. 한가지 말을 더 첨부하고싶은것은 그가 료녕의 문학사업에 온 심혈을 기울이면서 형제 성, 시의 문학사업에도 관심을 가지고 자기의 특수한 사회관계로 《연변문학》, 《장백산》 등에 자기 고향에서 후원금을 적으나마 인입해주는데 가교역할을 했다는것이다. 료녕조선족문학의 발전에는 작가 박성군을 잊을수 없다. 그 력사의 흐름을 이끌어나간, 그리고 이끌어나가고있는 진두에 박성군이 서있다. 작가 박성군은 항시 료녕 겨레의 문학과 숨결을 같이하여왔으며 박성군의 문학은 압록강반의 해당화로, 료녕조선족문학동산의 한떨기 진분홍꽃으로 빛을 뿌리고있다. 그만큼 박성군은 문학으로나 사업으로나 몸으로나 마음으로나 료녕 겨레문학에 뿌리내리고있다. 작가 박성군은 일개인만의 문학이 아닌 료녕성 겨레문학을 위하여 자기의 문학창작을 제단우에 희생으로 올려놓고 소중한 창작시간을 할애하면서 불편한 다리로 사시장철 애를 쓰며 뛰여다니였다. 창작열에 약동하는 열혈남아에서 겨레문학의 《전도사》로, 료녕문학의 조직자로 전념하였던것이다. 소설집 《오작교는 운다》에 실린 많은 소설들에 작가 박성군의 이런 고매한 정신이 깔려있고 빛나고있다. 작가로 되기전에 먼저 사람으로 되라는 우리의 명언이 있다. 언제나 먼저 남을 생각하고 연후에야 자신을 생각하는 작가의 후더운 마음씨가 소설집 《오작교는 운다》를 만들었고 소설집의 무게를 더해주지 않았나싶다. 《료동벌의 해당화》 이 말은 작가 박성군에게 붙인 과찬이 아니다. 료동벌의 문학과 박성군이라는 이름 석자는 떼여버릴래야 떼여버릴수 없는 밀착된 이름이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것이다. 작가 박성군에게서 더 훌륭한 작품들이 쏟아질것이라는 확신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연변문학>> 2007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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