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원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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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평]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
2012년 10월 06일 23시 24분  조회:1273  추천:1  작성자: 림원춘
작가평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
 
림원춘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거나 말해야한다는 이 두마디는 로작가거나 신진작가, 성과를 올렸거나 올리지 못한 모든 작가들을 망라하여 작가라는 이름을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서 입버릇처럼 떠나지 않는 <명언>으로 되고 있다.

    백번 지당한 말이다. 왜냐하면 작가는 작품을 떠날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잖은 작가들은 이 말의 무게와 진의를 다는 터득하지 못하고 있다. 창작활동은 우리들이 쉽게 말하는것처럼 그런 손쉬운 일이 아니라 제 살을 뜯어먹고 제 피를 빨아먹고 제 뼈를 갉아먹는 고된 로동이기 때문이다. 하여 웃으며 들어섰다가 울며 나온다는 말도 생겨나지 않았나싶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는 이 심오한 이미지와 함께 먼저 떠오르는것이 이 말 앞에서 떳떳하지 못했던 자신과 서글퍼지는 자신이다. 그런가 하면 좀 늦다 싶지만 이 말을 실현하기 위해 열심히 붓끝을 날리는 한 작가가 선연히 떠오른다. 그가 바로 작가 허룡석선생이다.

   허룡석이라는 이 이름 석자를 작가들치고 모르는 사람이 없을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현임 연변작가협회주석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석이라는 허룡석은 알고 있었지만 많은 독자층을 점유하고 있는 허룡석은 모르고 있었다. 우리는 보도매체에서 장기간 지도일군으로 사업했던 허룡석은 알고 있었지만 수필과 소설에서 두각을 내밀었던 허룡석은 모르고 있었다.

   이젠 옛말로 돼버렸고 우습광스러운 일로 흘려버렸지만  허룡석선생이 연변작가 협회주석으로 선출될 때 <외항이 내항을 령도한다>, <작품도 없는 사람이 주석으로 된다>하면서 이러쿵 저러쿵 말도 많았었다. 지어 분과를 편성할 때 <소설도 쓰지 않는 사람이 소설분과에 든다>면서 비난의 목소리도 그치지 않았다.

이렇듯 작가들의 말밥에 올랐던 허룡석선생이 이 몇해사이 무게있는 소설들과 수필들을 륙속 뽑아내여 문단을 깜짝 놀라게 하리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을것이다. 지어 말밥에 올려놓았던 사람들이 되려 무색할 지경으로. 나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였다는 것을 고백하면서 허룡석선생의 근작에 대해 몇마디 곁들일가 한다.

1. 비리와의 전쟁
    어찌 보면 비리와의 전쟁은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우리 작가들의 앞에 놓인 과제가 아닌가싶다. 지어 비리가 문학을 만들고 비리가 문학을 발전시킨다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세계명작 모두가 비리를 취급하지 않은 작품이 없고 비리를 떠난 것이 없다. 그렇듯 우리의 문학은 한시각도 비리와의 전쟁을 멈춘적이 없고 그 전쟁은 앞으로도 계속될것이다.

    작가의 한 작품으로 비리를 근절시킨다는것은 얼토당토 않은 거짓이다. 하지만 인류문명의 기사라고 일컸는 작가라고 한다면 적어도 비리를 보고 분개할 줄 알고 통탄할줄 알고 폭로할줄 알고 비판할줄 알아야지 않겠는가. 비리를 보고도 외면하거나 에돌아간다면 훌륭한 작가로 될수 없거니와 지어 작가라고 말할수 없을것이다. 작가의 사명감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는가 싶다. 사명감, 사명감 하면서 말로만 외우지 말고 한번 붓끝에 담아 보시라. 자칫하면 코피가 터질수 있고 정갱이가 물러날수도 있으며 옥살이도 할수 있다. 우리 민족의 력사를 간단히 훓어보아도 비리와의 전쟁에서 정배살이를 했거나 단두대에 올랐거나 떼죽음을 당한 문인들이 수두룩하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언제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렇다하여 들은척만척 본척만척 할수 없지 않는가. 김학철선생님처럼 황제도 말에서 끌어내릴수 있는 담략과 전투적 정신이 있다면 제몸에 불이 달린다한들 무서울것 뭐랴? 하지만 그것은 누구나 다 할수있는 쉬운일이 아니다. 바로 쉽지 않다는 이 말에 력점을 두면서 허룡석선생의 단편소설 <전자뇌, 경례!> (도라지잡지 2009년6기)를 말해볼가 한다.

   단편소설 <전자뇌, 경례!>는 마치 러시아 작가 고골리의 <검찰관>처럼 씌여진, 권력층 자체가 자체의 비리를 직설적으로 폭로한 폭로문학이자 풍자문학이다.

   이 소설의 리해를 위해 내용을 간추린다 .

   성당위 조직부 부부장 초효화가 렴정건설조사조를 거느리고 시위서기 조희문이 똬리를 틀고 있는 도시로 내려온다. 조사조성원으로는 부패행위를 수자와 때, 장소와 사람이름, 전화번호, 지어 핸드폰번호까지 100 % 로 검측하는 전자뇌와 과학일군.
    제일 처음 전자뇌의 검측을 받은것은 시급간부들이다. 그중 시규률검사위원회 서기 리만규의 검사결과는 다음과 같다. 97차에 거쳐 도합 3478만원 수뢰. 1차성적으로 제일 많이 수뢰한 금액 500만원인데 수뢰한 금액밑에는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떻게 돈을 주었다는것까지 똑똑히 밝혀져 있었으며 회뢰한 사람과 이름, 전화번호, 핸드폰번호까지 낱낱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거래하고 있은 애인은 8명, 그녀들의 이름, 년령, 직업, 전화번호, 핸드폰번호까지 찍혀 나왔으며 제일 나어린 녀성은 18세밖에 안되였다. 그 중 6명의 녀인에게 집을 사주었고 2명의 녀인에게 승용차를 사주었다...그리고 상급지도자들에게 회뢰한 금액은 600만원, 그속에는 시위서기 조희문에게 회뢰한 금액 백만원도 들어있다. 시당위 부서기 석기성, 시정건설을 책임진 부시장 장덕진, 시정협부주석 왕수산, 시인대부주임 관두성...몽땅 수뢰와 회뢰투성이고 오물투성이다.                                                                                                    
    소설은 전자뇌라는 매개물을 통해 황당적인 수법으로 당과 정부의 일부 간부들의 부패상을 신랄하게 폭로,비판하고 준절히 통책하고 있다.

   항간에는 돈이자 권력이고 권력이자 돈이라는 말이 말의 반찬처럼 떠돌고있다. 옛날에는 뢰물이 수류탄 두개와 비행기 한대 (술 두병과 닭 한마리 )면 족했었다. 그러다 시계, 자전거, 록음기, 텔레비죤수상기로 발전됐다. 그러나 지금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금화, 그것도 과급, 처급, 현급, 지구급…올라가면 갈수록 관직의 값도 가배로 올라간다. 이런 소문은 헛소문만은 아니다. 신문매체가 보도한데 의하면 이러한 부패행위가 사천성에도 있었고 흑룡강성에서도 있었다. 진공상태가 아닌이상 전국각지에 다 있은것이다. 그토록 렴정건설이 잘 된다는 우리 연길시에도 있지 않았던가!

   보시다 싶이, 아시다싶이 비리는 도처에 있다. 문제는 우리의 작가들이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음페적이거나 공개적인 수단을 망론하고) 이런 비리를 대하는가에 있다.

     단편소설 <전자뇌, 경례!>는 황당수법과 유모아를 곁들인 폭로문학으로 부정부패를 근절하려는 당의 결심과 부패간부를 송두리채 잡아냈으면 하는 인민대중의 념원, 또한 자기들의 부정부패를 덮어감추기 위하여 갖은 수작을 꾸며대는 부패간부들의 인물형상을 잘 그려냈다. 비록 전반적으로 보아 성공적인 작품이라고 말하기는 이르지만 부정부패척결을 소설에 담아 신랄하게 비판함으로써 우리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준 훌륭한 작품이라고 보아진다.

   특히 우리들을 감탄하게 하는것은 허룡석선생의 작가적태도이다. 다 알다싶이 허룡석선생은 연변작가협회주석이다. 그는 주석이라는 베일을 벗어버리고 보통 작가들도 말하기 힘든, 말하기 저어하는 당내의 비리를 서슴없이 파헤쳤다. 웬간한 결심과 담략이 없이는 실로 하기 힘든 작업이다. 나는 허룡석선생이 보여준 이런 작가적 정신을 흠모하고 찬양한다.

2. 뜨거운 사명감
우리 백의겨례는 당에서 부르면 부르는대로, 시키면 시키는대로 하는 우량한 혁명전통을 갖고 있다. 항일 투사의 98%, 조국해방전쟁의 93%의 혁명렬사들을 갖고 있는 우리 민족은 사회주의 건설시기에도 언제나 앞장에 나섰으며 운동때마다 자신들의 영웅을 배출하군 했다. 당에서 준 임무를 초과하면 했지 절대 적게 하지 않는 그런 들끓는 열정을 갖고 있는 민족으로 소문이 짜하다는것을 자타가 다 알고있는 일이다. 하여 혁명은 북경으로부터 연변으로가 아니라 연변으로부터 북경으로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당의 부름따라 앞으로!>, 이것은 우리 민족의 고유의 특징이자 우점이다. 그리고 치명적인 약점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무조건 따른다는 무조건은 맹목성을 동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맹목성은 류의민 민족으로서의 렬근성에서 오기도 하지만 <신>이 만들어 낸 강압에서 오기도 한다. 하여 틀린 당의 말도 옳다하면 옳다하고 전진하라 하면 전진해야 했고 또 전진했었다. 그로하여 우리 민족이 입은 손실이 적단 말인가? 전국적으로 제일 먼저 진행된 토지개혁에서는 좌경으로 하여 있어서는 안되고 또 있지 말아야 할 <기편중농>이라는 계급을 하나 더 만들어 냈고 호조합작시기에는 <새벽집단농장>이라는, 로시아의 <꼴호즈>를 답습한 오유적인 <집단농장>을 만들어 내여 수억의 농민들에게 피해를 입혔고 총로선, 대약진, 인민공사 때에는 공산주의로 간다며 공공식당까지 만들어 배를 곯아야 했고 논 한무에서 10만근의 벼를 수확했다는 허풍치기에 앞장서기도 했다. 강철대약진, 대채따라배우기, 문화대혁명… 모든 운동에서 앞장서는 민족, 그 민족이 바로 우리 조선족이였다. 더욱 한심한것은 민족정풍때 조선족이 조선족 민족주의 분자를 잡아내는 한심한 꼴을 보여주기도 했다. <문화대혁명>때는 숱한 <특무>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산아제한정책 역시 그랬다. 인구과잉은 소수민족인구의 증장에서 온것이 아니라 전국인구의 95%를 점하고 있는 한족들에 의해 초래된것이였다. 하지만 1가족 1인 출생이라는 평균주의로 (소수민족은 1가족 2인 출생도 허용했다) 소수민족 인구는 급격한 하강선을 긋게 되였다. 이 운동에서도 우리 조선족은 훌륭한 <모범>을 보여주었다. 층층이 내려오면서 동원대회를 열고 당원대회에서는 당성으로 보증하라 하고 가족단위로 보증서를 쓰게 하고 보도매체에서는 여차여차하게 저출생률이 상해시를 초과했고 천분의 몇프로안에 들었소 하면서 떠들썩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병원마다 절육수술실을 따로 두고 무료로 절육수술을 했으며 그것도 모자라서 순회절육수술대를 조직하여 촌마다 마을마다 돌아 다녔는가 하면 시내에 있는 가도에까지 내려와 강압적으로 절육수술을 하군 했다. 저출산률과 산아제한 퍼센트에서 전국의 앞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마지막엔 집법기관까지 동원된 놀라운 사실까지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오늘 허룡석선생의 중편소설 <해후> (<2010년 연변문학4기> 내가 처음 보았던 제목은 <모범<살인녀>>였다.)를 진맥한다.

중편소설<해후>는 개혁개방과 시장경제의 충격으로 조선족집거지구의 해체, 해외로의 진출, 인구의 마이너스성장, 문화교육의 답보와 후퇴, 경제의 부진 등등으로 날로 가속화되는 <민족동화>라는 네 글자를 앞에둔 시점에서 씌여진 작품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우리민족은 <제일>이라는 말에 습관된 민족이며 그것으로 만족하는 민족이다. 하여 빈곤현이 속출하고 로임을 제대로 지불하지 못하면서도 모범자치주요 민족단결모범이요 문명단위요 선진단위요 위생도시요 하는 등등의 월계관만은 수두룩히 쓰고있다. 또 그것으로 오늘의 오점들에 면사포를 씌워주며 부족점들을 미화해주고 있다. 지금 항간에는 연변은 <도금>의 장소라는 말까지 떠돌고 있다. 그것도 그럴것이 경제는 춰세우지 못했지만 이런저런 월계관 덕분에 많은 지도간부들이 성으로, 중앙으로 승진하고 지방에서도 층층히 올라오면서 그런 월계관으로 승급의 사다리를 놓고…

   허룡석선생은 자기의 중편소설 <해후>에서 산아제한이라는 특정된 단대목을 틀어쥐고 우리 민족의 절대적순종, <제일>이라는 자아만족, <초과완성>이라는 허영심…등등 고질로 돼버린 약점들을 신랄한 필치로 폭로하고 질타하였으며 산아제한으로부터 급하강선을 그은 인구의 마이너스성장으로 하여 빚어지는 우리 민족의 불운을 통탄하고 있다.

   민족의 동화는 언제나 언어의 동화로부터 시작된다. 언어는 바로 그 민족의 상징이며 가장 중요한 표현수단이다. 인구의 마이너스성장으로 하여 우리의 언어를 지키는 보루였던 학교가, 촌마다 향마다 있던 학교가 페교되고 닭사양장으로 돼지사양장으로 돼버렸거나 돼버리고있다.

   허룡석선생은 중편소설 <해후>에서 당의 민족정책을 덮어감춘 산아제한정책의 가혹성과 그 후유증을 홍순이와 채옥이라는 두 조선족녀인을 통해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지구병원 한 병실에서 30년간이나 내려오면서 한이 맺혔던 두 녀인이 서로 만난다. 한 녀인은 지구산아제한판공실주임 김홍순이고 한 녀인은 지금도 평안촌에서 한생을 자궁병으로 고생하는 양채옥이다.

   30년전, 김홍순은 하향지식청년으로 입당까지 하고 대전공사 부련회주임까지 승진한다. 그때 부부한쌍이 자식 하나만 낳아야 한다는 산아제한정책이 내려왔다. 김홍순은 당위의 지시하에 산아제한사업에서 락후한 면모를 개변시키기 위하여 도보로, 자전거로 대대마다 생산대마다 답파하면서 절육수술을 강요한다. 그는 평안촌 양채옥이 두번째 자식을 낳으려고 청수동림장 양봉장에 피신한, 임신 여섯달이나 되는 양채옥까지 찾아내여 류산시키려고 현립병원에로 호송한다. 양채옥은 정신적구박과 육체적 타격으로 병원문앞에서 6개월태아를 류산한다. 공사당위에서는 그렇게 하고도 안심되지 않아 김홍순더러 양채옥은 물론 전 공사의 생육년령에 속하는 부녀들에게 부인병을 검사한다는 미명으로 몰래 피임환까지 넣게 한다.

   산아제한으로 공을 세웠고 명성을 날린 공사당위서기는 광명현당위의 부서기로 승진하고 김홍순은 또 광명현 산아제한판공실주임, 지구 산아제한판공실주임으로 련이어 승급하여 전국산아제한경험교류회에서 경험을 소개하기도 한다. 그후 그는 자궁암에 걸려 지구병원에 입원한다.

   한편 양채옥은 류산시간을 훨씬 초과한 태아를 류산한 후유증과 몰래 넣은 피임환 때문에 30년간 고생하다가 자궁병으로 지구병원에 입원하게 되였는데 원쑤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공교롭게도 한병실에서 한생 한을 품고 있었던 김홍순을 만난다.

   양채옥의 행패질과 욕소리속에서 점차 자책과 죄의식에 모대기던 김홍순은 몰래 양채옥의 치료비를 대주고 림종시에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며 눈을 감았고 갈등과 모순속에서 지난날의 옹이를 푼 양채옥은 남편을 시켜 김홍순의 혼을 부르게 한다.
   허룡석선생의 중편소설 <해후>는 대조적 수법으로 조선족 두 녀인의 같지 않은 운명을 보여준 생태학적 소설로서 두녀인의 운명을 통하여 우리민족의 렬근성을 폭로하고 비판한 우수한 작품이다.

   특히 짚고 넘어가고 싶은것은 <해후>가 우리 문학의 공백점을 메워 주었다는 그점이다. 산아제한은 우리 민족에게 잊을수 없는 뼈아픈 한을 남긴 <운동>으로서 우리 민족의 발전과 미래에 어두운 그림자를 남긴 비극이였다. 하지만 이때까지 그 어느 작가도 이 제재를 다루려 하지 않았고 또 다루지도 못했었다. 과거에 산아제한을 칭송하는 시 몇편 본듯한 기억밖에 없다. 하지만 오늘 허룡석선생의 붓끝에서 잊혀졌던 제재가 우리 문단에 등단했으니 진짜 칭송할만한 희사라하지 않을수 없다.
 
3. 풍자와 해학
   1937년, 2차세계대전직전에 쓰딸린은 불안정한 변방을 공고히 한다는 미명으로 울라지보스토크 등 동부연해지구에 있던 우리 동포들을 중앙아세아로 강제이주시켰다. 뭐 조선사람은 일본사람과 친한 불온민족이라나? 그때 중앙아세아로 강제이주한 제1세대 조선사람들의 말을 들어보아도 그 고생을 무어라 형용할수도 없었다. (지금 그 1세들은 거의 다 사망하였다) 기차와 트럭에 실려 중앙아세아 초지에 나무단처럼 부리워진 1세들은 모기, 마실물, 량식, 폭우와 눈보라…등 자연계의 갖은 시달림을 받으며 죽지 못해 살았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사실이 <문화대혁명>기간 연변땅에서도 있었다. <대해항행은 키잡이에 의거하네>라는 노래가 연변땅에 울려퍼질 때 변방을 공고히 하기 위해 변방에 살고 있는 <5류분자>들을 몽땅 내지로 강제이주시켰다.

허룡석선생은 중편소설 <팔부형이 이사가다> (<장백산> 2009년 제6기)에서 재치있는 필치로 강제이주라는 특정된 환경과 혁명이라는 전제하에서 팔부마저 현행반혁명으로 만들어 강제이주를 시키는 <문화대혁명>의 무단성, 참혹성, 극단성, 몽매성을 에누리없이 폭로, 비판하고 있다.

    만약 팔부가 아니라 정상인이 반혁명모자를 쓰고 강제이주를 당한다면 그때의 정치환경으로 보아 당연한것으로 받아들일수 있다. 하지만 지력상수가 빵점인 팔부ㅡ부부간의 짓거리도 부끄러운줄 모르고 자랑하고 일 잘하기에 팔간집 새각시가 공평하게 12부를 주어야 한다고 제기하니 자기가 자보한 8부를 주지 않고 왜 12부를 주겠다고 하느냐며 행패를 부리고…이런 팔부가 년말총화때 사원들이 잘한다고 춰주는 바람에 흥이 나서 잔치집에서만 부르라는 <비판받은 두동무>라는 노래를 불러 현행반혁명이라는 모자를 쓰고 강제이주를 가게 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팔부가 아니라 그가 보통백성이였어도 그토록 독자들의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을것이다. 팔부에게마저 반혁명모자를 씌우고 강제이주를 시키는, 정치와 혁명이라는 잔혹성, 비인간성을 라체 그대로 보여주었기 때문에 그토록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공감대를 만들었던것이다.

소설은 먼저는 흡인력이 있어야 한다. 독자를 끌어야 한다는 말이다. 자기만이 보고 자기만이 흠상하자고 글을 쓰는 작가는 한사람도 없다. 보이기 위해서 글을 쓴다. 보여야 사명감이요 백의겨례요 뭐요 하며 운운지설할것이 아닌가?

허룡석선생의 중편소설 <팔부가 이사가다>는 아주 재치있게 씌여진 구독성이 강한 소설이다. 어떤 사람은 작가가 독자들을 끌기 위해 짓거리를 많이 썼고 짓거리가 많기 때문에 재미있다고들 한다.

얼핏보면 그런것 같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런것이 아니다. 주인공을 팔부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 짓거리를 쓰지 않을수 없고 또 그 짓거리가 팔부라는 인물형상의 훌륭한 밑거름으로 되기 때문이다.

진짜 흥미선은 그 짓거리에 있는것이 아니라 풍자와 해학에 있다. 풍자와 해학은 쌍둥이처럼 풍자가 없으면 해학이 없고 해학이 없으면 풍자가 없는 인과관계를 갖고있다.

허룡석선생의 필체거나 언어를 보면 밭머리 쉼 할때 신문지에 잎담배를 굵직하게 말아물고 풀썩풀썩 연기를 뿜으며 시름없이 담배를 피우고있는 농부들이거나 시원하게 오이냉국 한사발 마시고 땀을 훔치는 농촌 아낙네들 같은 구수한 맛을 다분히 주는 이야기거리와 언어를 쓰기 때문에 기름에 튀긴 맛이 아니라 토장국냄새가 물씬 풍긴다. 때문에 독자들이 쉽게 접근하고 받아물수 있는 여지를 많이 주고있다. 거기에다 풍자와 해학적수법을 교묘하게 도입하다보니 자연스레 독자들의 이목을 끌게 된다.

허룡석선생의 중편소설 <팔부형이 이사가다>는 <문화대혁명>, 특히는 9차당대회의 승리적 페막을 경축하는 장면을 심혈을 기울려 대서특필했지만 하나도 지루하거나 지겨운 감을 주지 않고 너무나 진실하다는 감을 준다. 그 진실속에는 무서운 풍자가 숨어있다. 경축활동에 팔부가 참가한다거나 초롱불을 흔든다거나 10리 남아되는 공사로 초롱불행진을 한다거나 공사에서 영접하는 사람이 없다거나 등등, 그러면서도 웃음거리는 비일비재이다. 짓거리를 하다가 채 못하고 경축활동에 참가하는 팔부거나 그 짓거리를 위해서 밤을 새며 팔부를 기다리는 팔부안해…정치와 운동에 대한 풍자적 수법이 이 소설의 사건, 인물 전편에 관통되여 있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읽는 사람이 따분하지 않고 다 읽지 않고는 손을 뗄수 없게 만든다.

이 소설에는 또 하나의 주의를 돌려야 할 은유가 숨어있다. 그렇게 앞뒤를 가리지 못하는 팔부가 자기가 부른 노래를 누구한테서 배웠느냐고 공작대가 그렇게 족쳐댈 때에도 자기에게 노래를 배워준 <풍각쟁이>를 대지 않고 생뚱같이 죽은 아버지한테서 배웠다고 끝까지 뻗힌것이다. 그 살벌한 시기에 수많은 펀펀한 사람들도 자기 생존과 리익을 위하여 핍박에 의해 다른 사람을 물어먹었었다. 그런데 팔부는 <반혁명죄행>을 혼자 뒤집어쓰고 <현행반혁명분자>로 몰려 강제이주를 당할 때까지도 당사자를 <적발>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고있다. 아무런 욕심도 없고 아무런 리해관계도 없는 팔부가 왜 그 노래를 죽은 아버지한테서 배웠다고 뻗혔을가? 팔부의 량심 밑바탕에도 그 무슨 남을 동정하는 인간성이 깔려있어서일가? 아니면 자기가 불면 그 사람도 자기처럼 끌려나와 투쟁받는것이 싫어서였을가? 작가는 마지막에 “성철형과 고모 그리고 형수가 억울하게 죽은지 수십년이 지났다. 하지만 오늘까지도 나는 거짓이라고는 모르는 팔부 성철형이 공작대가 그렇게 족쳐댈 때에도 왜 그 노래를 죽은 아버지한테서 배웠다고 뻗혔는지 의문이 풀리지 않고있다.”고 서술하면서 사색의 여운을 독자들에게 남겨주었다. 우리는 그 여운을 씹으면서 팔부형을 동정하던데로부터 존경하게까지 되며 <문화대혁명>의 잔혹성과 비인간성을 더욱 저주하게 된다.

허룡석선생의 중편소설 <팔부형이 이사가다>는 풍자적수법으로 <문화대혁명> 운동을 가장 진실하게 밑뿌리까지 파헤치고 가장 예리하게 비판한 문제작으로 성공한 작품이다. 그리고 이 소설 역시 <문화대혁명>가운데서의 강제이주라는 공백점을 메워주었다는것을 기껍게 지적하는바이다.

3. 사회문제를 다루는 작가
작가라 하면 글을 만든다는 공통한 이미지가 있지만 글을 만든다는데는 여러가지 부류가 있다. 전문 사랑만을 취급하는 애정소설가, 정탐소설만을 쓰는 탐정소설가, 필봉을 비판에만 돌리는 비판소설가, 전문 풍자하고 조소하는 풍자작가, 남녀간의 성만 다루는 성문학가…

우에서 말한 비판소설가를 더 준확한 말로 바꾼다면 사회문제를 다루는 문제작가라고 하는것이 옳을것이다. 그렇다면 허룡석선생은 어느 부류에 속하는 작가일가? 두말없이 문제작가라고 해야 적중한 말일것이다. 앞에서 말한 단편소설 <전자뇌ㅡ경례>, 중편소설 <해후>, 중편소설 <팔부형이 이사가다> 등 모두가 문제작일뿐 아니라 이번에 나가는 수필 인생3부곡 <인생은 널뛰기>, <인생은 뽈차기>, <인생은 소용돌이>, 잡문 <낯가죽은 엷으면 좋느리라>, <아첨쟁이의 속마음>, 단편소설 <장기들의 반란>은 모두가 훌륭한 문제작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수필과 잡문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 때문에 붓끝을 돌려 단편소설 <장기들의 반란>에 대해 엿줘볼가 한다.

허룡석선생의 단편소설 <장기들의 반란>은 독특한 기법으로 씌여진 문제작으로 내용이거나 사건 모두가 허룡석선생도 이미 써먹었고 기타 많은 작가들이 써왔던것으로 신선도가 낮은것이다. 그러면서도 소설이 왜 새롭게 느껴지는것일가?

 <조롱박>이라고 불리는 장부시장이 개발상 고승래의 초청을 받고 시에서 유일한 5성급호텔인 <성달호텔>로 간다. 미녀들의 배동하에 취하도록 술을 마시고 한 미녀와 동침까지 한다. 이튿날 깨여보니 회뢰했던 돈뭉치도 미녀도 간곳없이 사라지고 <조롱박>부시장은 장기들의 반란으로 고통을 겪다가 병원에 실려간다. 그런데 죽는줄 알았던 <조롱박>이 수술을 하고 나와 몇달후에 대리시장으로 승진한다. 작자는 이렇게 반전을 꾀함으로써 부정부패 척결이 아직도 준험한 단계에 처해 있으며 오랜 시일이 걸려야 할것임을 시사해준다. 만일 <조롱박>을 죽게 했거나 들통이나 잡혀가게 했더면 부정부패 척결의 승리를 보여줄수도 있었겠지만 이것으로 현실을 덮어감출수 없으며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수 없는것이다. 이것이 전부의 내용이다. 어찌보면 소설이 될것 같지 않은 소재로 소설을 만든것 같다. 그러나 읽어내려갈수록 새록새록 새롭게 느껴진다. 그것은 바로 독특한 창작기법때문이다.

기존의 소설과는 달리 장기들을 동원시켜 진수성찬과 술에 초부하를 받는 장기들의 고충과 연회석의 진전이 잘 배합되는, 다시 말하면 내외호응이 잘 맞아떨어지고 내용과 형식이 치륜처럼 잘 맞물리는 예술형식을 취했기 때문이 아닌가싶다.

이런 이인화기법은 과거 많은 작가들이 써왔지만 대상물과 피대상물의 유기적배합, 대상물도 말하고 피대상물도 말하는 수법은 처음 보아온다. 형식상의 새로운 창도가 돋보인다.

허룡석선생은 <작가협회주석>이라는 틀을 완전히 깨버리고 탈바꿈한 사회문제를 다루는 문제작가로 우리들에게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그러한 창작정신, 그러한 작가적 태도, 그러한 창작열정은 좋은 토양으로 되여 더 좋고 더 우수한 작품을 만들어낼것이다. 믿어의심치 않는다.

우리들에게 좋은 작품을 선물한 허룡석선생에게 감사드린다.
 
<장백산> 2010년 제6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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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1 ]

1   작성자 : 김송죽
날자:2012-12-03 06:05:26
림형, 내가하고푼 말을 했구만!
좋은 글 다시한번 읽고 가오. 화이팅!
Total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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