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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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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음악 겨울나무 그리고 나 댓글:  조회:132  추천:0  2022-02-25
음악 겨울나무 그리고 나 □ 류서연 해빛이 너무 좋아 그냥 스쳐지나 가기에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문득 음악을 듣고 싶었다. 아니 내 마음에 음악이 흘러든다면 이 순간만은  좋은 시간이 될 것 같았다. 거기다가 달콤한 커피까지 곁들인다면 과시 더없는 금상첨화겠다. 나는 베토벤의 교향곡을 틀어놓았다. 고요한 방안에서 울려퍼지는 웅장한 교향곡은 장미꽃향기로 피여올라 집안 구석구석에 퍼지면서 새하얀 해살과 함께 집안을 가득 채우고 내 마음에 서서히 흘러든다. 나는 음악의 장엄한 선률에 비스듬히 몸을 기대고 두 눈을 감고 내 나름 대로의 깊은 상념에 잠겼다. 그 소리는 때로는 잔잔한 시내물이 돌돌 흐르는 것 같이 미묘하였고 때로는 숲속의 산새들이 지절지절 즐겁게 노래 부르는 소리처럼 청아하였으며 때로는 망망한 푸른 초원에서 천군만마가 종횡무진으로 내달리는 것처럼 야성미가 넘치고 거침없었으며 웅장하였다. 미묘하고 아름답고 장쾌한 소리는 내 마음을 그득  채우고 나를 한껏 도취시켰다. 밖은 지금 눈보라가 쌩쌩 휘몰아치지만 집안은 무척 따뜻하다. 게다가 음악까지 흐르니 더없이 안온하고 쾌적한 분위기다. 나는 경쾌하고 신난 오지리 음악도 듣기 좋아하고 클래식음악도 듣기 좋아하며 구수하고 구성진 우리 민족의 타령도 듣기 좋아한다. 우리 민족의 파란만장한 애환이 담긴 아리랑도 듣기 좋아하고 청소년들의 구미에 맞는 률동적인 현대음악도 듣기 좋아한다. 이 시각 베토벤이 만들어낸 위대한 교향곡에 심취해있노라니 자아를 잊는다. 베토벤의 웅장한 교향곡에는 마치 베토벤의 피타는 노력이 담겨있고 음악에 대한 그의 끈끈한 열정과 인내와 드팀없는 추구가 담겨있으며 그의 깊은 령혼이 담겨 살아 숨쉬는 것 같아 나는 온몸에 전률을 느끼며 이름할 수 없는 깊은 감동을 받는다. 인간을 무아지경에로 이끌어가는 음악은 계속 울려퍼진다. 쏘파에서 일어난 나는 핑크색 예쁜 머그잔에 커피 한잔 타 들고 창가에 서서 맑은 유리창에 내리쪼이는 새하얀 겨울해살을 흥겹게 받으며 마음을 열어놓고 있다. 어쩌면 무엇이든지 열린 마음으로 들어와 다시 내 마음을 채워주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문득 잎을 다 떨군 앙상한 겨울나무 한그루가 내 시선을 빼앗아간다. 무상한 세월 속에서 늘 같은 자리를 드팀없이 지키면서 서있는 그 겨울나무를 보니 마음이 측은해온다. 한잔의 커피를 홀짝이며 그린 듯이 창가에 서서 하염없이 밖을 내다본다. 겨울나무가 추위에 바르르 몸을 떤다. 온 대지가 추위에 꽁꽁 얼어붙는 이 겨울에 옷을 다 벗어버린 겨울나무는 얼마나 추울가? 벌거벗은 몸으로 렬악한 환경과 혹한 속에서도 가혹한 겨울을 견뎌내야 하는 것은 저 겨울나무가 몸속에 예비되여있는 충만한 봄기운을 느끼면서 고통과 아픔과 인고의 시간들을 견뎌내기 때문이 아닐가? 견강한 의지와 완강한 생명력을 소유하고 있는 겨울나무이기에 비록 앙상한 몸이지만 추위와 맞서 싸우면서 봄을 잉태하고 래년 봄에 다시 푸르른 새옷을 떨쳐입을 그날을 위하여 겨울나무는 저렇게 기꺼이 두 팔 벌려 혹독한 추위를, 겨울을 껴안으리라. 그런 겨울나무를 보노라니 이름할 수 없는 먹먹한 감정이 솟구치면서 경이로운 생각이 갈마드는 것을 주체할 수 없었고 내 눈굽은 기어이 젖어들었다. 아마도 지나온 아픈 내 삶이 떠올라서였으리라. 아니 나도 어쩌면 저 겨울나무처럼 내 삶에 다가올 꽃피는 봄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내 마음은 한없이 부풀어오른다. 눈을 감고 겨울의 따뜻한 정오의 해살에, 감미로운 음악에 그대로 몸을 맡긴다. 지나온 4년 병마의 고통에 시달렸던 아픈 시간을 돌아본다. 암진단을 받고 내 생활이 바닥에 떨어졌을 때 하늘도 무너져내리고  땅도 꺼져버렸다. 그때 슬픔과 아픔과 고통으로 채워진 내 마음을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는 음악이였다. 음악은 내 전신의 신경을 마취시켰고 모든 것을 잊게 하였다. 음악을 들으면서 나는 아픈 내 마음을 달래였고 음악을 들으면서 삶의 불공평에서 오는 울분을 토했으며 음악을 들으면서 내 삶의 새로운 분출구를 찾으려고 몸부림쳤고 음악을 들으면서 힘든 내 마음을 달래였으며 스스로 한없는 위로를 받기도 했다. 내 마음에 오아시스가 되여주고 내 인생의 마취제가 되여준 음악, 아 음악이 있었기에 나는 그동안 생활의 힘든 무게도 이겨낼 수 있었고 내 인생이 이색적인 색채를 띠며 더 살맛이 나고 더 아름다운 것으로 될 수 있었으리라. 이 시각 음악을 들으면서 한그루 겨울나무를 보노라니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인생의 고해를 건너온 나를 향해 화사한 봄이 사뿐사뿐 걸어오는 듯싶다. 아니, 환상이 아니다. 정녕 저 언덕너머에서 봄의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겨울의 매서운 칼날에 꽁꽁 말랐던 나무가지에 초록빛 움이 트고 꽃밭에도 싹이 돋아나고 꽃나무들이 자라날 것이고 장미의 빛갈과 그윽한 향기로 봄은 피여날 것이다. 벌써 큰 물살처럼 파도치며 내 마음에 봄이 온다. 나는 두 팔을 벌리고 설레이는 가슴의 숨결을 더 듬고 있다. 나는 마음을 활짝 열고 봄을 맞을 준비를 한다. 희망의 파랑새가 내 귀에 대고 정겹게 속삭인다. “아픔이 없는 인생이란 없고 아픔은 영원한 것이 아니니 더는 슬퍼 말라고. 인생도 아픔이 있어야 더 단단해지고 살맛이 나는 것이라고. 그러니 이제는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봄을 맞이하고 봄바람에 마음껏 취해보라고.” 파랑새의 속삭임에 캄캄하던 턴넬에서 한줄기 밝은 해빛이 비쳐들고 배추잎 같은 싱싱한 푸르름이 내 혈관을 따라 전신에 퍼진다. 내 눈앞에 떨기떨기 아름다운 꽃밭이 펼쳐지고 내 삶을 익혀갈 꿈과 기쁨의 풍경을 마주한다. 음악도 서서히 멎고 머그잔의  커피도 어느새 굽이 났다. 하지만 내 마음의 여운은 가라앉지 않는다. 세찬 여울이 인다.   그래 이제부터 새로운 시작이다. 봄은 희망의 불씨를 켜들고 꿈틀거리며 힘찬 생명의 숨결로 다가온다. 푸른 하늘의 눈부신 해살을 맞이한다… 연변일보 
11    수필을 빚다 댓글:  조회:147  추천:0  2021-04-12
수필을 빚다 □ 류서연 달빛마저 구름에 가리운 고즈넉한 밤, 이런 밤이면 잠자던 사색이 스멀스멀 일어나 나에게는 맛있는 수필을 빚는  더없이 좋은 황금시간이 된다. 낮에는 이런저런 일로 어정쩡하게 보내다가도 밤만 되면 자판을 두드리는 것이 이미 습관 아닌 습관으로 되였다. 그날도 나는 저녁밥을 먹기 바쁘게 컴퓨터 앞에 앉아서 키보드를 두드렸다. 언제부터 시작해놓은 수필을 또 쓰기 시작하였다. 내 정성을 담아 내 모든 감각기관을 동원하여 한자 한자 열심히 쓰고는 지우고 지우고는 다시 쓰기를 반복하다 보니 글줄은 얼마 내려가지 않았는데 밤은 자꾸만 깊어가고 나의 인내심은 슬슬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암만 들여다보아도 써놓은 글이 엉망이고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짜증이 났다. 결김에 나는 삭제버튼을 마구 눌러댔다. 그러자 한장 푼히 써놓은 글들이 좌르륵좌르륵 순식간에 지워졌다. 텅 비여버려 백지가 된 컴퓨터 화면이 네모난 눈으로 퀭하니 나를 보면서 나의 무딘 필을 조롱이라도 하는 듯싶다. 한참을 뚫어져라 빈 화면을 보고 있다가 힝하니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향하였다. 랭장고 문을 쫘아악 열고 그린 듯이 서있었다. 랭장고에서 서려나오는 찬 기운이 내 얼굴에 확 덮치면서 잔뜩 열이 오른 내 머리를 랭각시켜주는 듯하다. 단번에 정신이 번쩍 들면서 머리가 맑아지고 속이 후련해지면서 글이 내려가지 않아 숨막히고 답답하던 마음이 얼마간 풀리는 것 같았다. 이어 내 머리속에는 내가 왜 여기에 서있지? 지금 무얼 하고 있지? 무얼 하려고 하지? 라는 물음표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튀여나왔다. 나는 잠간 망설이다가 부산스레 여기저기 헤집으며 낮에 사다 그대로 넣어둔 자두를 꺼내 와락와락 씻었다. 다 씻은 자두를 가지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와작와작 자두를 먹으면서 나는 지금 다 지워지고 제목만 달랑 남은 컴퓨터의 빈 화면을 바라보았다. 자두를 련거퍼 대여섯개를 먹고 나니 배가 불룩해졌다. 나는 아무 생각이 없이 넋을 잃고 앉아있었다. 갑자기 후회가 몰려왔다. 분김에 써놓은 글을 지워버린 것이 무척 배 아팠으나 이미 엎지른 물이였다. 굳잠에 빠져든 고요한 밤은 소리없이 깊어간다. 뭇별들도 깜박깜박 반짝이며 이 밤의 고요와 평화를 이야기한다.  휘영청 둥근 달님도 심심한지 구름너머로 얼굴을 내밀고 우두커니 가 된 내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면서 이 시간까지 자지 않고 웬 청승을 떠느냐고  책망하는 것 같다. 그러건 말건 나는 개의치 않았다. 얼마나 오래 앉아있었을가? 고장난 라지오처럼 갑자기 멈추어버린 내 머리가 서서히 발동이 걸리고 이어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다. 집안 구석구석에 외로움과 고독이 길게 내려앉은 이 밤 나는 지금 천년고독을 안주 삼아 수필을 빚고 있다. 또 한편의 새로운 수필의 탄생을 위해 고뇌한다. 나는 방금 전에 쓰다만 글에 또다시 빠져들었다. 천천히 사색의 나래를 펼친다. 실타래처럼 얼기설기 엉키였던 글의 실마리가 풀리는 것 같아서 점점 사유의 그물을 펼쳐나간다. 야금야금 아주 천천히 사유의 폭을 넓히면서 내 머리속에서 글감들을 하나하나 고른다. 이 글감도 좋은 것 같고 저 글감도 좋은 것 같지만 대담하게 버릴 건 버리고 써야 할 글감들만 한줄에 꿰여놓는다. 충분히 구상을 무르익힌 다음에는 쓰려는 주제를 둘러싸고 사유의 그물을 점점 좁혀간다. 물만두 속을 꽁꽁 다져넣고 정성스레 물만두를 빚듯 내 사유와 감성과 모든 감각기관을 최대한 동원하여 수필의 뼈대를 세우고 가지를 붙이고 그 앙상한 가지에 어떤 옷을 입혀야 나만의 개성을 나타내고 충분히 독자들의 공감을 자아낼 수가 있을가 고심하는 것 역시 쉽지 않은 공정이다. 그리고는 하나하나의 언어를 조합하여 다음단계인 글쓰기 작업에 들어간다. 글쓰기란 고름을 짜내듯 고민하고 머리를 써야 하는 힘든 작업이지만 내가 쓴 글이 단 한줄이라도 치렬한 삶의 현장에서 생존하기 위해 두 발에 땀이 나도록 열심히 뛰여다니고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아 힘들고 괴롭고 아픈 삶을 살아가는 독자들의 피페한 마음에 감로수로, 생명수로 흘러들어 삶의 오아시스가 되여주고, 부족한 글이지만 독자들이 내 글에서 키스 전의 가슴 뛰는 흥분과 설레임을 만나고 희망과 축복을 만난다면 나는 기꺼이 내 혼신을 다해 사랑의 마음으로 그윽한 삶의 향기를 풍기는 수필을 빚기 위해 모지름을 쓸 것이다. 그리고 수필을 빚으면서 내 삶에서 오는 고독을 수필로 한땀 한땀 기워간다. 그래서 고요한 적막이 흐르는 깊은 이 밤에도 혼자이지만 나는 결코 외롭지 않다. 고독을 잘근잘근 으깨여 거기에다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 고통과 아픔이라는 다양한 인생의 조미료를 한데 조합하여  나만의 조리법으로 수필을 빚고 행복을 빚고 내 삶을 조리해가는 마음은 결코 외롭지 않다. 아니 수필을 빚을 때면 내 작은 가슴은 풍요로움으로 그들먹이 차오른다. 그날도 나는 수필 를 빚으면서 깊은 고뇌에 빠졌다. 제목은 정해놓았지만 어떻게 써야 할지 도무지 두서가 잡히지 않았다. 녀성에게서 가장 소중한 한쪽 가슴을 잃은 한 녀성의 애환을 어떻게 다루어야 독자들의 마음에 감동을 안겨줄가? 고민을 하고 또 하다가 무엇인가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옴폭 도려진 가슴에 사랑을 담고 정을 담는다면 가슴은 다시 사랑으로 봉긋이 솟아오르리라는 아름다운 념원을 담는 것이였다. 그때 알았다. 수필은 끝없는 고뇌로 빚어진다는 것을… 이 몇년간 백여편의 수필을 빚으면서 나는 하나하나의 삶의 리치를 깨닫는 가운데서 부단히 나 자신을 정화시켰고  살면서 버리고 비우는 삶의 슬기를 깨달았다. 겨울나무가 새봄맞이를 위해 잎과 열매 모든 것을 남김없이 털어내듯 모든 욕망과 욕심을 버리고 기꺼이 지갑을 비워가며 여유 있고 즐거운 마음으로 신나게 사는 법을 배웠다. 그런 인생이야말로 행복하고 폼 나는 인생이 아닐가? 비우고 버리는 것을 배우면서 나는 내 몸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욕심들을 하나하나 버리기 시작하였다. 욕심도 버리고 영예도 탐하지 않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고 너무 즐겁고 행복하였다. 그러자 그동안 내 마음을 옭아맨 그 어떤 멍에에서 해탈된 듯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지면서 주변의 아름다운 꽃과 사랑스러운 풀과 나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산들바람과 숲의 은은한 향기에 취해 잠시 멈춰설 줄도 알게 되였으며 누군가 낯선 사람과도 눈이 마주치면 잔잔한 미소를 보낼 줄 알게 되였다. 그리고 지치고 피곤하면 어디든 앉아 쉬고 가는 게 인생이라는 또 하나의 평범한 인생의 리치를 깨닫게 되였고 때가 되면 버리고 비우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어쩌면 빈손으로 왔다가  한줌의 재가 되여 결국은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인생의 의미를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참된 삶의 자세를 터득하였는지도 모른다. 버리기에 익숙해지고 그렇게 하나둘 버리는 가운데서 스스로 내 삶을 관조하고 내 마음을 부단히 려과시켜가는 가운데서 내 삶의 질은 부단히 향상되여갔다. 그러면서  마음으로, 정성으로 한편 한편의 수필을 빚는 가운데서 삶에서 오는 외로움도, 고독도, 번민도 내 삶을 비껴갔고 나는 평범한 일상에서 오는 인생의 가장 충만한 행복을 만끽하면서 스스로 내 삶을 행복하게 리드해간다. 아무런 미련 없이 버리고 비우고 수필을 빚으면서 사는 인생 나만의 멋으로 황혼을 빛내가는 나의 인생은 너무 멋지다. 드디여 라는 또 한편의 새로운 수필이 내 고뇌로 빚어졌다. 끝없는 고뇌로 수필을 빚고 삶을 빚으면서 황혼을 맛있게 조리해가는 내 인생은 영원히 수필과 함께 할 것이다. 연변일보 
10    숨쉬는 거리□ 류서연 댓글:  조회:201  추천:0  2020-05-18
하루종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집에만 꾹 박혀있다가 강아지를 산책시키려고 싫은 대로 할 수 없이 밖에 나갔다. 밖에 나오니 한 겨울의 찬 바람이 몸에 확 덮친다. 몸이 오싹해났지만 그래도 찬공기를 마시니 답답한 마음이 얼마간 풀리고 후련해졌다. 여느때 같으면 이 시간이면 장백로는 오고가는 차량들의 물결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했는데 그제날과는 사뭇 다른 한산한 거리이다. 명절이라지만 명절의 분위기를 꼬물 만큼도 느낄 수 없다. 한순간에 거리는 그제날의 생기와  활기를 잃은 듯하다. 산골도시 거리도 이러할 진대 바이러스가 한창 제멋대로 성행하고 있는 무한의 거리야말로 얼마나 더 처량하고 휑뎅그레할가? 천만명 넘는 인구가 살고 있는 거리는 매일마다 흥성거렸을 텐데 지금은 온 도시가 숨도 못 쉬고 공포에 떨고있겠지? 한적한 밤거리를 자박자박 내 앞에서 걸어가고 있는 강아지와 함께 걸으면서 무한의 거리를 상상해보니 내 마음에 알 수 없는 한줄기 찬바람이 스며들어왔다. 이때 앞에서 촐랑촐랑 걷고 있던 강아지가 오똑 걸음을 멈추고 머리를 돌리더니 똥그란 눈으로 나를 말똥말똥 쳐다본다. 거리에 왜 사람이 이렇게 적냐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강아지의 귀여운 모습에 저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번지면서 방금 전까지의 휑한 마음에 스멀스멀 안정감이 찾아든다. 가로등은 훤하지만 다니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 은근히 긴장했는데 말이다. 경자년 설을 맞아 거리는 여전히 숨 쉬고 있지만 마치 죽음의 도시 같았다. 한바탕 쓰나미가 지나간 듯 공포감까지 느끼게 하는 밤거리에서 가로등만이 커다란 눈을 껌벅거린다. 그 모습은 도시가 아직 살아있음을 나에게 확인시켜주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는 강아지는 신나기만 하다. 자기 볼 일을 다 보고 나서 무척 즐거운 모양이다. 앙증맞은 네 다리로 콩크리트 바닥을 마구 헤집는다. 집에 들어선 나는 서둘러 강아지를 씻기고 모멘트를 열어보았다. 요즘따라 주변의 뉴스에 무척 신경이 씌이는 나이다. 여기저기 위챗내용을 확인하던중 억만 사람을 감동시켰다는 50장의 사진에 관한 문장을 보았다. 매 한장의 사진마다 그렇듯 진실하고 아름다웠으며 감동적이여서 나의 눈물샘을 자극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한장한장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눈물은 기어이 내 볼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아름다운 20대의 간호사가 삭발하는 모습은 내 심장을 아프게 찌른다. 아마도 2년 전 삭발해야만 했던 내 모습이 떠올라서 일가? 녀성들에게 비단결같이 아름다운 머리결은 생명과도 같은 너무 소중한 존재이다. 하지만 관건적인 관두에 생과 사의 문턱에서 헤매는 환자들을 위해 단 일초의 시간이라도 아끼려고 삭발을 한 그 간호사는 오히려 찬란하게 웃고 있었다. 그 웃음 뒤에서 그의 숭고하고 아름다운 내면이 숨쉬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의 용감한 선택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졌고 간호사의 아름다운 장거에 우리 사회의 밝은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다. 이어 문 하나를 사이두고 엄마와 아들이 대화하는 장면에 내 눈길이 멈췄다. 지척의 거리에서 문 하나를 사이두고 생과 사가 오고 가는 두 모자의 모습은 아름다운 슬픔이였다. 이래서 지척이 천리라는 말도 있는 걸가? 엄마에게 다가가지도 못하고 엄마가 잘못 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못한 채 천진한 아이는 엄마를 향해 목청을 돋구어 웨친다. “어머니 집에 오지 못한지 벌써 며칠이 되나요?” 감염과 격리구역 밖에서 한 간호원의 아이가 창문을 마주하고 애된 소리로 어머니를 부르는 애절한 부름소리는 사람들의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놓는다. 이어 메아리로 되여 무한상공에 울려퍼진다. 이 뿐이 아니였다. 환자들을 구하는 제1선에서 오래동안 장갑을 끼고 있어 땀에 절어 쭈글쭈글해지고 허여멀겋게 된 간호사의 손은 모나리자의 손보다 더 아름다웠고 얼굴 여기저기에 피로와 땀의 흔적이 슴배인 간호사의 얼굴은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각인되였으며 뒤잔등이 흠뻑 젖은 남의사의 뒤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다. 아, 사진 한장한장 마다에 담겨있는 그 아름다운 모습과 사연을 어찌 한 입으로 다 이야기하랴. 이야기 하기에는 내 언어가 모자라기 때문이요 우리 백의천사들의 장거가 너무도 내 마음을 울리기 때문이리라. 세상에 이보다 더 아름다운 그림이 있을가? 세계의 이름난 명화도 이름다운 사진 앞에서 무색해지리라. 하기에 매 한장의 사진마다 억만 사람들의 마음에 그렇게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이리라. 그리고 여든의 고령임에도 의사의 성스러운 사명감을 안고 초심을 잃지 않고 직접 전선에 뛰여든 종남산 원사의 거동은 백의천사라는 그 이름을 가장 아름다운 경지로 승화시켰다. 50장의 사진 앞에서 나라면 이렇게 할 수 있었을가를 생각해보니 얼굴이 화끈거려난다. 암진단을 받고 나서 담임으로서 졸업시험을 3개월 앞둔 학생들을 무책임하게 뿌리치고 공산당원의 사명감도 잊은 채 살겠다고  단연히 수술대에 오르지 않았던가? 그 일은 지금도 내 인생에서 하나의 유감으로 남아있고 30년내 교원생애에 하나의 지울 수 없는 그림자로 되여 수시로 내 마음을 괴롭힌다. 수술을 받고 나서야 석달 만 참았던 걸 하는 생각이 오래동안 내 발목을 붙잡았었다. 우리가 편히 잠자리에 드는 이 시각도 죽음 앞에서도 한치의 두려움 없이 싸우는 백의천사들의 모습에 나자신을 비춰보니 나 자신이 너무 작고 초라하게 생각되면서 리기적인 나 자신을 채찍질하노라니 한조각 부끄러운 내 마음을 주체 할 수가 없었고 사진 앞에서 북받치는 감격에 마음이 먹먹해온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면 나의 저그마한 힘이라도 보탤가고 생각해본다. 무거운 마음으로 나는 창가에 다가가 고요한 밤거리를 내다본다.  포성이 없는 전쟁터에서 목숨을 내걸고 한마디 원망도 불평도 없이 묵묵히 자신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바이러스와 치렬하게 싸우고 있는 수많은 백의천사들이 있기에 우리의 도시는 다시 숨 쉴 것이고 약동할 것이며 두팔 벌려 기꺼이 바야흐로 다가오는 새 생명의 푸르름을 맞이할 것이다.   이때 어디선가 둔중한 폭죽소리가 들려왔다. 이어 창문 밖에서 아름다운 꽃보라가 날린다. 어느 부지런한 사람이 터치는 축복의 숨소리였고 안녕과 평화가 이제 곧 찾아올 거라는 희망의 메아리였다. 공포에 떨던 거리는 깨여났다. 활발하게 숨 쉬고 있었다. 연변일보 
9    [수필] 아침에 느끼는 행복 (류서연) 댓글:  조회:183  추천:0  2017-09-12
수필 아침에 느끼는 행복 류서연 “달그락 달그락” 아침에 귀맛좋게 들려오는 소리에 눈을 떴다. 잠이 덜깬 눈을 비비며 습관적으로 랭수를 한잔 마시려고 잠옷바람으로 주방에 들어갔다. “어머나?” 나는 눈앞의 광경에 두눈이 휘둥그래졌다. 갑자기 잠기가 말끔히 가셔지는것 같았다. 종래로 주방에 들어설줄 모르던 남편이 아침을 짓느라 부산을 떨고있었다. 그러는 남편의 모습은 어딘가 부자연스럽고 생소하기까지 하였다. 나는 한참이나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어 내 입에서는 저도모르게 녀성특유의 호들갑스러운 탄성이 새여나왔다. “아니, 여보, 당신 오늘 웬일이얘요. 당신이 아침밥을 다 짓고. 오늘 해가 서쪽에서 뜬게 아니얘요?” “원, 호들갑을 떨기는 어서 앉소. 어제밤 당신이 늦게까지 글을 쓰는것 같아서 아침에 조금이라도 더 자라고 안깨웠소. 어서 씻고 아침을 먹기요. 출근을 해야지.” 식탁에는 벌써 칼치구이며 감자볶음이며 가지반찬이 가지런히 놓여있었고 곱돌장사기에서는 된장찌개가 보글보글 끓고있었다. “여보오. 월요일 아침부터 기분이 너무 좋은데요, 고마워요. 맛있게 먹을게요.” 나는 식탁에 마주 앉았다. 저가락을 입에 문채 무엇부터 먹을가 밥투정하는 아이들처럼 한참을 머뭇거리며 행복한 고민을 하였다.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쿡 솟을것만 같았다. 가지반찬을 한점 집어 입에 넣었다. 맛이 간간하니 입에 딱 맞았다. “여보오. 당신 어쩜 반찬을 이렇게 잘하였어요? 간이 딱 맞네요. 너무 맛있어요.   고마워요.” “됐소. 어서 아침을 먹기요.” 남편도 싫지 않은지 빙그레 미소를 짓는다. 기분이 무척 좋은가보다. 나는 남편의 얼굴을 보면서 노오랗게 잘 구워진 칼치를 한토막 집어 남편의 밥그릇에 얹어주었다. 너무도 오래간만에 남편과 함께 먹는 아침밥이였다. 이 아침 평범한 일상에서 오는 가장 평범한 행복에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가슴끝자락으로부터 이름할수 없는 감정이 밀물처럼 밀려오는것 같았다. 펑범한 감동이 안겨주는 울림이 이렇게 크고 가슴이 벅차다는것을 처음으로 느껴보는 마음 따뜻한 순간이였다. 밥을 먹고 즐거운 심정으로 출근길에 오른 나의 발걸음은 마치 날개라도 돋친듯 무척 가벼웠다. 흥겨운 코노래가 절로 흘러나왔다. 매일같이  보던 길가의 가로수도 오늘은 여느때보다 더 다정하게 보이였고 맑고 푸른 하늘도 더 정답게 안겨왔으며 9월의 서늘한 바람이 기분좋게 얼굴을 스치며 지나간다. 가을이 무르익어가는 은은한 향기가 코끝을 자극하며 페부에까지 스며들어 내 마음을 싱그럽게 해준다. 대문어구에서 이름모를 학생들이 씩씩하게 인사를 하며 반갑게 맞아준다. 언제보아도 늘 활기와 생기로 차넘치는 교정의 아침은 나의 마음을 행복하게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생기발랄한 학생들의 모습에 내 마음도 함께 융화되여 스르르 녹아드는것 같았다. 역시 학교는 학생들이 오구작작 모여서 떠들썩하게 들끓어야 학교 같고 출근하는 마음도 늘 그 어떤 기대로 부풀어 오른다. 교실에 들어서니 학급학생들이 약속이나 한듯이 일제히 일어나 허리를 굽석하며 이구동성으로 인사를 올린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학생들의 반가운 인사소리에 온 몸에서는 대뜸 싱싱한 젊음의 기운이  감도는것 같았고 새로운 에너지가 팍팍 솟는것 같았다. 아직 애티를 채 벗지 못한30여명학생들의 귀여운 모습을 보면서 나는 담임사업을 하기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직을 앞두고 다시 손을 댄  담임사업이 비록 육체적으로 심신이 힘들고 매일 출근을 하면 퇴근을 할 때까지 학급의 자잘한 일들로 신경을 쓸 일이 많지만 매일매일 아이들과 함께 하는것이 너무 즐겁고 행복하였다. 지천명의 나이에도 아이들속에 묻혀 아이들과 함께 숨쉬면서 매일 평범한 일상에서 오는 하나하나의 내 삶의 조각들로  퍼즐을 맞추어 가듯 행복을 만들어가고 있는 하루하루가 너무 즐겁다. 하기에 아이들과 함께 하는 내 삶은 나에게 있어서 다이야몬드처럼 너무 소중하고 행복한 삶이다. 삶을 살아가면서 지천명의 나이에도 아직도  직장에서 나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는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이며 할일이 있다는 자체가 얼마나 가슴이 뿌듯하고 행복한  일인가를 이 아침에 다시 한번 새삼스레 깨닫는 순간이였다. 이제야 알것 같았다. 생기발랄한 아이들이 내 삶의 활력소가 되여주어 내 삶은 이렇듯 행복하고 이렇듯 충실하고 이렇듯 풍요로웠구나. 새삼스레 이 아침에 행복의 기준에 대해 생각해본다. 행복의 기준이란 무엇일가? 아니 행복의 기준에는 그 어떤 정답도 없고 그 어떤 자대도 없는것 같다. 행복이란 결코 돈이 많아서도 아니고 막강한 권력이 있어서도 아니며 명예를 소유한것은 더구나 아니다. 아침에 눈 뜨면 또 다른 새로운 태양을 볼수있는 것도 행복이며 따뜻한 봄바람이 피부에 와닿는 부드러운 감촉에도 행복이 스며들고  새들의 청아한 노래가 귀가를 스치는 정다운 소리에도 우리들이 느끼지 못한 행복이 있었다. 그리고 집집마다에서 들리는 아이들의 울음소리, 부부간이 다투는 소리 그러다가 다시 희희덕거리는 소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행복의 멜로디가 아닌가? 또한 매일마다 주방에서 풍기는 구수한 찌개냄새와 반찬의 냄새는 가장 싱그럽고 그윽한 행복의 향기가 아닌가? 지극히 평범한 행복이 가장 큰 행복임을 이 아침에 절실히 느끼면서 지금 열심히 과문랑독을 하는 아이들의 귀여운 모습을 다시 한번 보노라니 마음이 저릿해온다. 평범한 이 아침 해맑은 아이들의 순진한 얼굴을 보면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평범한 행복을 감수하면서 사는것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인생이라는것을 지천명의 나이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행복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해준 이 아침이 너무 고맙다. 연변일보 2015-6-18
8    갈색구두 댓글:  조회:515  추천:5  2014-12-12
갈색구두  □ 류서연          계절이 바뀌여 내 빨간색 구두를 신장안에서 꺼내는데 신장 두번째층의 낡은 구두 한컬레가 눈에 띄였다. (다 낡은 구두를 버리지 않고 왜 아직 넣어두고있지. 괜히 자리나 차지하게 참.) 나는 되는대로 낡은 구두를 집어내여 쓰레기통에 넣었다. 그리고 나의 빨간색 가을구두를 예쁘게 잘 닦아 래일 출근할 때 쉽게 신게 준비해놓았다. 신솔과 구두약을 신장에 넣고 돌아서려는데 왜서일가, 쓰레기통에 세워 넣어진 낡은 구두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있지 않겠는가? 급기야 나는 측은한 생각이 들면서 그 낡은 구두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뒤축도 물앉고 가죽도 주글주글하고 앞부리도 껍질이 다 벗겨진 남편의 낡은 구두 한컬레, 이 구두가 남편이 세상과 맞다들어 싸워온 흔적 같아 나는 다시 쓰레기통에 던진 구두를 꺼내 조용히 구두약을 발라 알뜰히 닦기 시작했다. 어쩜 이 구두가 남편이 한국에 가서 고생하며 살아온 삶의 표징이 아닐가싶어 나는 가슴이 짠하였다. 14년전 출국하는 남편의 인생길이 순탄하라고 이국땅에 가서 좋은 구두 신고 하는 일이 척척 잘 풀리라고 나는 없는 살림에 그때 돈으로 몇백원을 주고 새 구두를 사서 신겨보냈던 바로 그 갈색구두였다. 남편이 떠나기 전날, 나는 남편에게 새 구두를 사주고싶어서 막무가내로 남편을 데리고 처음으로 백화점에 구두를 사러 갔었다. 헌데 정작 신파는 매대를 한바퀴 돌면서 만져보고 신어보고 하면서 종시 결단을 내리지 못하였다. 마음에 들거나 보기 좋은 신식구두는 값이 엄청 비싸서 그때 생활형편에서는 선뜻 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제 한국에 가서 발바닥이 부르트게 뛰여다닐 남편에게 불편한 싸구려구두를 신겨보낸다는것은 말도 안되였다. 나는 구두를 사지 않아도 된다는 남편에게 억지로 몇백원을 주고 갈색소가죽구두를 사서 신겼다. 그 구두는 양식도 좋고 질도 좋았으며 무엇보다 나와 련애할 때 내내 남편이 신고다니던 갈색구두같아 너무 신났다. 다른 사람의 중매로 남편과 첫선을 볼 때였다. 나는 첫눈에 남편에게 마음이 끌리였다. 깔끔하게 생긴 생김새도 마음에 들었고 더우기는 윤이 나게 정갈하게 닦아 신은 갈색구두에서 남자의 알뜰한 성품이 엿보이는것 같아 더 좋았다. 갈색을 유난히 좋아하는 남편은 첫 길에 우리 집에 다녀올 때도 갈색구두를 신었고 장가드는 날에도 갈색구두를 신었었다. 남편도 련애시절에 신었던 구두가 생각났던지 만면에 느슨한 미소를 머금고있었다. 남편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 마음도 덩달아 즐거웠다. 하긴 연길에 들어온지 몇년이 되도록  쥐꼬리만한 내 혼자의 로임에 매달려 살면서 나는 늘 생활난에 쪼들렸다. 먹고 사는 일이 버겁다보니 나는 몇년동안 남편에게 그럴듯한 좋은 구두 한컬레 사 신기지 못했었다. 그게 늘 가시처럼 마음에 걸렸는데 마침 남편은 돈을 벌어보겠다면서 기어이 한국행을 택했다. 나는 집을 떠나 이국땅에 가는 남편에게 낡은 구두를 신고 가게 할수 없어서 신겨보냈는데 남편은 찌져질듯한 삶의 애처로움을 그 구두에 담아 귀국할 때에 집에 가져왔던것이다. 그제날 가슴 시린 이야기가 담긴 그 구두를 보고있노라니 지나간 아련한 추억이 떠올라 눈굽이 젖어들고 마음이 애잔해나면서 새 구두를 신고 어린애처럼 좋아하던 남편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그런데 나는 아무 생각없이 구두를 버리려 하다니, 이 구두는 남편이 우리 가정을 위하여 고생한 상징이라고 생각하니 던지기로 생각한 내 마음이 미워 자책을 가지게 되였다. 나는 너무 가슴이 아파 눈물이 났다. 나는 눈물을 손으로 쓱 닦고 다시 낡은 구두를 보고 또 보았다. 삶이 물앉아 닳고닳아서 볼품없던 지난 우리들의 삶을 구두는 주름으로 얼기설기 받쳐가며 우리 가정을 일궈세웠지 않았을가 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이름할수 없는 남편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과 존중의 감정이 솟구쳤다. 이 신을 신고 이국땅에서 얼마나 열심히 뛰여다녔으면 그렇게 질긴 소가죽구두가 이렇게 볼모양이 없이 되였을가? 구겨지고 닳고닳은 그 구두에는 흡사 남편의 고달픈 인생의 흔적이 덕지덕지 묻어있는것 같았고 이국땅에서 천대와 멸시를 받으면서 이를 악물고 살아온 삶의 피눈물 같았다. 볼품없이 구겨지고 망가진 구두를 보면서 다시한번 남편이 끌고 온 삶은 결코 간단하지가 않았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오면서 마음 끝자락으로부터 뜨거운 용암이 올리치미는것 같았다. 한 가족의 생계를 위하여, 가족의 행복을 위하여 외로움속에서 사나이의 고독을 꾹꾹 씹어삼키고 멸시와 천대를 받아가면서 살아왔을 남편의 삶이 방불히 그 주름진 구두의 갈피마다에 담겨있는것 같았고 그 구두를 신고 땀내를 물씬 풍기면서 열심히 뛰여다녔을 남편의 모습이 구겨지고 망가진 구두에 얼기설기 엉겨있는것만 같았다. 30대 후반에 출국하여 10여년 세월을 남의 나라에 가서 남의 주머니의 돈을 버느라니 그 삶이 얼마나 힘들고 고달팠을가? 사랑하는 가족을 멀리 떨어져 십몇년을 혼자의 몸으로 모든 괴로움과 고생을 겪으면서도 남편은 불평 한마디, 원망 한마디 없었다. 오히려 그 고생을 한 가족을 떠메야 할 남자의 숙명으로, 책임감으로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그렇게 열심히 뛰여다닌 보람으로 남편은 나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포근한 행복의 둥지를 만들어주었다. 남편의 삶과 너무도 닮아있는 낡은 구두, 그 구두를 구겨지고 낡았다고 어느 누가 손가락질하랴. 아니 우로는 부모님 잘 모시고 아래로는 자식 잘 키우기 위하여 앞만 바라보면서 열심히 살아온 삶의 년륜이 묻어나는 남편의 낡은 구두는 새 구두보다 더 정겹고 더 삶의 냄새가 풍겨 이 시각 나에게 가슴 훈훈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아니 어쩌면 낡은 구두는 자신의 삶을 힘겹게 끌고오면서 자신의 발에 길들여져 더 정겹고 더 편한지도 모른다. 그래서 구두에 주름이 가고 볼품없이 구겨지고 낡았지만 내 눈에는 그 구겨짐이 너무도 찬란하고 아름답게 안겨와 가슴이 벅차올랐다. “여보, 신을 찾다 말고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오?” “아니, 아니예요.” 나는 괜히 남편에게 내 속마음을 들킨것 같아 바삐 하던 일을 마무리하였다. 나는 버리려던 남편의 구두를 가슴에 꼭 그러안았다. 남편의 익숙한 냄새가 내 온몸에 서서히 퍼진다. 그 낡은 구두는 바로 자식을 위하여, 가족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것을 헌신한 내 남편과 같은 이 세상 중년들의 애달픈 삶과 너무 닮아있었고 무엇보다 남편의 고달픈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슴배여있기에 구두를 버리는것은 어쩌면 힘들게 살아 온 남편의 삶 자체 그리고 우리의 사랑을 버리는것 같아 차마 버릴수 없었다. 나는 그제날의 애틋하고 소중한 추억과 함께 갈색구두를 윤기나게 알른알른 닦아서 다시 신장안에 고이 넣어두었다. 남편에 대한 내 사랑의 마음과 함께…   연변일보
7    고독의 아픔 댓글:  조회:434  추천:2  2014-07-18
삶을 살아가면서 나라는 존재가 누군가에게 잊혀진다는것은 더없이 슬픈 일이고 괴로운 일이다. 갈라지면 못살것처럼 죽도록 사랑했던 련인들도 갈라지면 서로가 서로를 잊어가고 몇십년 살을 부비며 살아온 부부들도 갈라서면 서로의 존재를 잊어간다. 언제부턴가 둘 사이에 자식이라는 사랑의 끈이 있어도 자연스레 서로가 서로에게 잊혀져가는 세상이 되여버렸다. 그래서 나는 슬프다. 그래서 고독의 아픔은 견디기 힘들다. 특히 생존경쟁이 치렬한 현대사회이다보니 생활의 절주가 미친듯이 빨라지고 먹고 살아가는것이 점점 힘에 부치고 버거워지는 현대생활에서 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독한 고독의 아픔을 겪는다. 그래서 나는 저녁에 퇴근하여 집에 들어서면 신을 벗기 바쁘게 습관적으로 텔레비죤부터 켜고 핸드백에서 스마트폰부터 꺼내 놓는다. 스마트폰이 항상 눈앞에 보여야 시름이 놓인다. 다음은 가장 간편한 라면 하나로 대충 저녁을 에때우고 온 저녁 컴퓨터앞에서 고독하게 지지리 긴 저녁시간을 보내다가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외로이 잠자리에 든다. 무겁게 내리 드리운 어둠의 장막도 고독을 가릴수 없다. 그만큼 고독은 무섭고 아프다. 아침에 눈을 뜨면 찬란한 해살이 창문 너머로 눈부시게 쏟아져 들어오지만 해살의 따스함을 감수하기에는 여유가 없다. 마음속에 들어찬 고독의 비중이 너무 많아서 따스한 아침 해살과 함께 아침의 행복을 느낄 마음의 빈자리가 없다. 궁궐 같은 집에서 눈도 마주칠 사람이 없다는 현실에 마음은 점점 멍이 들어간다. 피페해간다. 먼 옛날에는 한집 식구가 동그란 밥상머리에 오손도손 정겹게 마주앉아 어머니의 사랑의 냄새가 푹 배인 구수한 된장찌개에 소박한 아침밥을 먹으면서도 얼마나 행복했던가? 헌데 지금은 예전과 너무도 판이한 쓸쓸한 아침풍경이다. 집은 번쩍번쩍 현대적인 기물들로 부족함이 없이 잘 꾸며졌지만 생의 즐거움을 느낄수가 없다.집안 구석구석에 고독의 그림자만 길게 드리워있다. 오늘도 세대주가 없이 혼자 맞이하는 아침풍경은 쓸쓸하기만 하다. 아침식사 역시 조촐하기 그지없다. 홀로 앉아 그 넓은 고급식탁에 달랑 김치 하나 놓고 찬물에 대충 밥을 말아 먹는다. 그러면 아침식사도 끝이 난다. 정말로 어느 가난한 부부의“왕후의 밥 걸인의 찬” 이라는 이야기를 련상시키는 아침 밥상이다. 다음은 부랴부랴 출근길에 오른다. 출근길에 오르는 발걸음은 그래도 날개가 돋친듯 날듯이 가볍다. 하는 일이 힘에 버거워도 항상 일에 쫓기워 스트레스를 받아도 사업터가 있다는것이 얼마나 큰 위안으로 되는지 모른다. 출근만이 나의 고독을 달래주는 가장 좋은 안식처이니 나 같은 외토리 출근족들에게는 그래도 할 일이 있다는 자체가 하루중에서 가장 큰 행복으로 다가온다. 이때면 나는 하루의 바쁜 일상에 매워 잠시나마 고독의 아픔에서 벗어날수 있다… 개혁개방후 우리 민족은 물질적으로 부유해져 먼 옛날보다 살기 좋은 풍요로운 세상이 되였지만 그리움에 부대끼고 정에 시달리고 외로움에 지쳐 정신상의 고독은 점점 더 깊어가고있다. 골수에까지 스며들고있다. 하여 요즘 현실에는 우울증이라는 사치한 현대병이 끊임없이 인간을 침습하고 인간의 마음을 좀 먹고있다. 이 지구공간에 나속에 네가 있고 너속에 나가 있는 현실이지만 고독이라는 바이러스는 지금 무서운 속도로 만연되여가고있다. 그 바이러스는 나에게 옮아가고 너에게 옮아가고 우리 사회 전체에 옮아가고있다. 그래서 너무 슬프다.이것은 아마도 고독이 가져다준 아픔이 아닐가? 뼈에 사무친 고독의 그 아픔 어떻게 하면 치유될가? 그것은 바로 고독을 외면하지 말고 고독을 즐기는것이 아닐가? 나에게는 그대가 그대에게는 내가 곧 고독인것이다. 어둠이 내려도 외로움만은 가릴수 없다. 진정한 자기 모습은 고독속에 들어있다. 그러니 고독을 아파하지 말고 고독에 쫓기지 말고 고독을 껴안고 고독을 맘껏 즐기는것만이 고독에서 벗어나는 길일것이다. 출처 연변일보
6    봄날의 이야기 댓글:  조회:538  추천:7  2014-05-23
봄날의 이야기 류서연 봄이 깊어가고있다. 심장까지 파고든다. 화사한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여나 보는 사람들의 시각을 즐겁게 하고 어느새 초록의 물결이 대지를 뒤덮기 시작한다. 병아리 가슴털처럼 노오란 해살이 대지를 어루만지는 화창한 봄날의 일요일은 집에서 그냥 보내기가 너무 아깝다. 창문밖으로 내다보는것만으로도 즐거운 느낌을 주는 봄날의 경치다. 이런 날은 방에만 콕 박혀있지 말고 산으로 들로 어디로든 가고싶다. 봄날의 정취를 느끼며 마음껏 봄날의 이야기를 쓰고싶다. 화창한 날씨의 유혹에 이끌려 들에 나왔다. 봄날의  해살에 눈이 부시였다. 혼자서 터덜터덜 모아산 등산길에 올랐다. 휴일이라 모아산은 사람들로 붐비였다. 세월이 좋아져 스스로 건강을 지키고 운동을 선호하는 사람들의 대오가 늘어나면서 모아산은 활기를 띠기 시작하고 한적할 새가 없다. 오늘도 모아산은 사람들로 붐빈다. 북적거리는 인파를 구경하는것만으로도 마음이 즐겁다. 집에서 나오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이 가는대로 걷는다.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눈에 들어오는 사람과 경치를 구경하면서 혼자 걷는 재미도 별미였다. 걷다보니 눈앞에 한폭의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 저도 모르게 발목을 잡혔다. 바람에 하늘거리는 풍선을  들고 캐드득캐드득 웃어대는 아이의 천진한 웃음소리. 사랑스러운 아이를 보면서 행복에 겨워 “하하—— 호호——” 웃음을 짓는 젊은 각시의 명랑한 웃음소리, 그런 안해와 사랑스러운 딸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남자의 애틋한 눈길. 세식구의 행복한 모습과 아름다운 봄날의 풍경이 조화되여 한폭의 아름다운 화폭을 이루면서 내 눈앞에 가장 아름다운 장면을 펼쳐놓았다. 나는 한참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흡사 행복한 그 정경에 빨려들어가는것 같았고 그들과 한데 융합되는것 같았다. 이 사회를 구성하는 세포인 가족, 어느 가족이나 저렇게 단란하고 화목한 생활을 영위한다면 우리 사회는 얼나마 아름답고 살맛나는 사회로 될것인가라는 생각이 갈마들면서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피여오르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세식구의 행복한 정경에 내 마음까지도 따뜻해났다. 봄향기에 취하고 사람들의 즐거운 모습에  취하여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눈앞에 이상한 광경이 들어와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남자가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두손은 땅바닥을 짚고 있고 녀자가 남자를 내려다보는 풍경이였다. 무슨 잘못을 얼마나 크게 했기에 그 많은 사람들앞에서 남자가 저러고있는가싶으면서 부쩍 호기심이 동했다. 가까이 가보았다. 그게 아니였다.중풍이 든 시아버지를 며느리가 운동시키는 중이였다.  두툼하게 옷을 입은 남자는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있었지만 60대 중반쯤은 되여보였고  녀자는 30대 후반쯤 되여보였다. 시아버지는 걷기운동을 하다가 앞으로 엎어졌고 며느리는 시아버지를 내려다보며 혼자 일어서게 내버려두고있는것이였다.  아니 내버려두고있는게 아니라 혼자 일어나기 련습을 시키고있는것이 더 타당하다고 해야겠다. “운동을 해야 하는데 련며칠 비가 와서 운동을 못 시켜드렸어요. 마침 오늘 날씨가 그나마 비가 오지 않아서 옷을 많이 입혀드리고 나왔거든요.” 혼자  련습을 하다가 자빠질수도 있기에 스스로 일어서는 련습을 해야 한다고 그녀는 묻지도 않는 내게 말을 걸어온다. 그러나 시아버지는 스스로 일어서지를 못했다. 다리에 힘을 주는듯 안깐힘을 쓰는것 같은데 마음대로 되지를 않나보다. 자꾸 며느리의 바지가랭이를 붙잡으려 두손을 허우적거렸다. 그건 너무 안타깝고 슬픈 광경이였다. 며느리는 “아버님, 조금만 더 애를 써보세요.저 붙잡으려 하지 말고요. 스스로 일어서도록 해보세요”고 어린애 타이르듯 다정하게 말한다. 다시 시아버지는 끙끙 애를 썼다. 보기가 안타까왔다. 제발 빨리 일어났으면 하는 생각에 그 자리를 뜨지 못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시아버지는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이때 40대의 남자가 손에 물병을 쥐고 뛰여오더니만 녀자에게 원망조로 말한다. “여보, 아버지를 일으키지 않고 뭐하오?” “당신이 자꾸 그러니 아버님이 더 안되지요.” 며느리가 손을 내밀자 시아버지는 한손은 며느리가 내미는 손을 잡고 다른 한손은 며느리의 바지가랭이를 붙잡고 간신히 일어났다. “그 며느리 참 대단하네요. 요즘 저런 착한 며느리가 어디 있소.” “아버님,  며느리 참 잘 보았네요. 복 받았어요.” 여기저기에서 며느리에 대한 찬사가 터져나왔다. 나는 다시한번 그 녀자를 보았다. 얼굴도 곱상한 녀자는 마음도 어쩜 저렇게 예쁠가 싶으면서 그 녀자의 효심에 마음이 찡해났다. 자식들마다 부모님들에게 저렇게 효도를 한다면 이 세상 부모님들은 만년을 얼마나 얼마나 행복하게 보내랴싶었다. 어디선가 아리랑의  노래소리가 구슬프게 들려온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날 두고 가신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 우리 민족의 슬픔과 기쁨 우리 민족의 파란만장한 력사를 보여주는 아리랑노래, 들어도 들어도 가슴 뭉클해지는 노래, 우리 민족의 영원한 뿌리이고 우리 민족의 령혼이 담긴 아리랑노래소리에 이끌려 나는 며느리와 시아버지를 다시한번 일별하고  자리를 옮겼다. 속으로 며느리의 효성에  경의와 찬사를 보내면서 시아버님이 어서 완쾌되기를 기원하며 노래소리가 울리는 곳으로 천천히 올라갔다. 일여덟명 되는 중년남자들이 마른 안주에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키면서 노래가락을 뽑고있었다. 모두들 얼근히 술이 잘된 모양이였다. 술병을 마이크로 삼아 아리랑을 부르는 남자의 얼굴에는 고단한 삶의 흔적이 력연하였다. 그 모습이 서글퍼보여 나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삶에 무슨 한이 그렇게 서리서리 얽혔는지 남자의 노래는 구곡간장이 타들어가는듯 구슬프고 애달팠다. “태평양을 건너 대서양을 건너 너 마누라도 가고 내 마누라도 갔구나. 외토리의 고독한 삶을  누가 알아줄고. 우리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노래를 부르다말고 남자가 꺼이꺼이 땅을 치며 설음을 토하고있었다. “임마, 그만 해라. 또 그놈 마누라타령이니? 백년도 못 사는 우리네 인생 술이나 마시며 즐기자. 나는 뭐 마누라가 안 그리운줄 아니? 다 속으로 삼키면서 이렇게 산다. 내가 보니 마누라가 없어도 살아지더라. 자, 술이나 마시자.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노나니…” “야, 이제사 발동이 걸리는구나.” “아리랑을 부르라구. 오늘은 우리네 설음을 아리랑곡조에 담아 저 고개너머에  날려보내자.” 보매 마누라를 외국에 보내놓고 외롭게 사는 기러기 남편들인것 같았다. 나는 남자들의 대화에 한참을 귀를 기울였다. 남들이 보면 웬 녀자가 남정네들이 술타령, 인생타령이나 하는것을 구경이나 하면서 청승을 떠는가고 이상하게 생각하겠지만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우리 민족의 슬픈 현실을  보여주는것만 같아 무척 가슴이 아팠다. 방금까지의 흥그럽던 마음은 한떼의 남자들의 아리랑타령에 의해 가뭇없이 사라졌다.  말 못할 설음과 고통을 마음에 꾹꾹 담아두고 술로 곰삭이는 남자들을 보면서 내 가슴도 아파왔다. 언제면 한가족이 모여 함께 산책도 하고 등산도 하고 부부가 나란히 장바구니도 함께 들고다니면서 장바구니에 평범한 가족의 행복, 기쁨, 슬픔, 애환을 담아볼가? 나는 산을 올라가다말고 도로 내려왔다. 도무지 더 올라갈 흥이 나지 않았다. 아리랑의 노래가 계속 내 등을 아프게 찌르고있는것 같았고  내 마음을 울리고있는것 같았다. 우리 민족이 겪는 리산의 아픔이 언제면 끝날가? 묘연하기만 하다. 모아산을 내려오는 발걸음이 무겁다. 방금까지의 즐겁던 기분은 한순간에 가라앉았다. 붕어빵 하나에 추억과, 오이 하나에 생활과, 풍선 하나에 애환을 담고 봄날의 이야기는 오늘도 래일도 계속 이어지리라.          
5    수필 같은 삶을 살고싶다 댓글:  조회:475  추천:3  2014-01-17
지천명의 나이에 들어선 나는 어느 순간부터 그만 수필이라는 아름다운 늪에 풍더덩 빠져버렸다. 자기도 모르게 내 마음 내 령혼까지 빼앗겨버렸다. 수필의 무궁무진한 매력에 깊이깊이 심취되여버렸다. 은은한 음악을 틀어놓고 한잔의 달콤하고 향기로운 커피를 마시면서 수필을 읽는 그 재미 그 즐거움이란 말로 형용할수 없었다. 수필 전체에 흐르는 섬세한 감정, 생동하고 감칠맛나는 언어, 풍부한 인생의 경험과 오묘한 생활의 철리를 담은 수필은 읽으면 읽을수록 재미가 있고 흥미진진하다는것을 너무 늦게 터득하였다. 아니 무엇보다도 수필을 읽노라면 뒤늦게나마 삶의 지혜와 생활의 리치를 깨닫고 자신을 반성하는 가운데서 나 자신의 부족점이 스스로 고쳐지는것 같고 나 자신의 인격이 승화되여가는것 같아 더욱더 내 마음을 매혹시켰다. 수필집을 손에 들기만 하면 나는 마치 강한 자석에라도 끌리듯 글속에 깊숙이 빨려들어가게 되고 내 마음은 걷잡을수 없이 설레인다. 수필을 읽노라면 나는 내 일상의 번민도 괴로움도 깡그리 잊고 현대생활의 빠른 절주에서 오는 생활의 고달픔도 스트레스도 훌훌 털어버린다. 그러노라면 마음은 더없이 가뿐해지고 나는 어느새 작자 자신과 한덩어리가 되여 작자와 함께 울고 웃으면서 인생의 희로애락을 감수한다. 짧고 간결하면서도 흥미진진하게 생활의 리치를 함축성있게 다룬 피천득선생님의 수필은 우리에게 인생의 오묘한 삶의 리치를 가르쳐주었고 중국의 수백만 독자를 울린 “오늘 내가 살아갈 리유”에서는 온몸에 전이된 암세포때문에 뼈가 녹아내리는 고통속에서도 삶의 희망을 잃지 않고 나날이 새로와지는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인생의 소중한 가치를 돌아보았고 우리에게 오늘 내가 살아갈 리유를 가르쳐주었으며 장영희선생님의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에서는 자신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새겨두고 밑줄을 긋고싶은 문장들이 내물처럼 졸졸 흐르고 읽다보면 무한한 에너지가 충전되고 뭔가 열심히 최선을 다해보고싶게 만들고 이 세상에 삶의 용기를 잃은 사람들에게 삶의 희망을 안겨주고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되여야겠다고 자신을 돌아보게 하였다. 아니, 다종다양한 수필들은 내 살아온 인생을 조용히 뒤돌아보게 하였고 내 자신을 깊이 성찰하게 하였으며 내 마음을 깨끗하게 정화시켜주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내 마음은 부단히 다양한 주제의 수필에 의하여 맑고 깨끗하게 려과되여 내 사상경지는 부단히 높아져갔으며 내 삶의 질도 부단히 향상되여갔다. 명작가들의 수필을 읽으면서 수필의 매력에 깊이 빠져들수록 언제부터인가는 가식없고 아름답고 우아한 수필과 같은 그런 아름다운 삶을 살고싶은 소망이 꽁꽁 닫겨져있던 내 마음속 문을 살며시 노크하였다. 그리고 그 소망이 내 마음속에 둥지를 틀고 점점 커갈수록 나는 더구나 손에서 수필집을 놓을수가 없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아무런 꾸밈도 가식도 없는 진솔한 수필처럼 서투른 글이나마 내 글을 애독하는 독자들에게 은은한 사랑과 정서적소양을 주고 내 마음을 진솔하게 드러내여 독자들을 깊이 공감시킬수 있는 그런 수필 같은 삶을 살고싶은 소망이 내 마음을 사로잡고 놓지 않는다. 아니 이제라도 수필과 인연을 맺고 여생을 멋지게 아름다운 수필처럼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그런 수필 같은 삶을 살고싶은 마음이다. 너무 뒤늦게 내 인생을 관조하고 성찰하고 반성하는 나 자신이 어쩜 허구프고 어이없고 내 반성이 부질없는짓 같지만, 또 “공수래 공수거”라는 말도 있다지만 나는 이 세상에 왔다간 조그마한 흔적이라도 남기고싶다. 날짐승도 날아가면 울을소리를 남기고 들짐승도 지나가면 발자국을 남긴다고 만물의 령장인 인간으로 태여나서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한번밖에 없는 내 인생이 한줌의 재로 되여 연기처럼 바람처럼 사라진다면 얼마나 슬프고 허무할가? 비록 큐리부인처럼 위대하게는 살지 못했지만 이제 여생이라도 아름답고 우아한 수필처럼 가치있게 보람있게 살고싶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나 자신이 살아온 삶의 소중한 추억, 풍부한 경험, 인생의 절망과 희망 모든것을 있는 그대로 독자들에게 펼쳐보이고 내 마음을 그대로 털어내여 인생에서 고민하고 방황하고 좌절당하여 갈팡잘팡하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여주고 밝은 등대가 되여주고싶은 그런 수필 같은 삶을 살고싶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타인에 대한 미움이 너무 커서 자기 마음을 주체할수 없을 때 내 글이 독자들에게 비옥한 밑거름으로 되여 독자들의 마음에 사랑의 씨앗을 심어주어 그들로 하여금 타인을 사랑하고 생활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는 그런 수필 같은 삶을 살고싶다. 싱그러운 향기를 풍기는 나 자신이 살아온 인생사를 뒤돌아보는 여유로움을 즐기고 이제라도 삶 자체를 아름다운 수필처럼 살고싶어 자기 밑천을 다 털고도 인격을 잃지 않는, 그러면서도 즐거운 웃음이 절로 나고 성숙한 녀성으로서의 기질이 다분하고 재치가 넘치는, 그러면서도 누구나 공감하는 진실과 아름다움이 그윽한 그런 수필 같은 삶을 살고싶다. 황혼의 길목에서 서쪽하늘로 서서히 지는 아름다운 저녁노을을 조용히 바라보며 담담하게 미소를 지을줄 아는 성숙한 녀인으로 되여 이 세상에서 가장 은은하고 향기롭고 아름다운 흔적을 남기는 그런 수필 같은 삶을 살고싶다.
4    [수필] 영원한 향기 댓글:  조회:514  추천:4  2014-01-13
대학을 졸업한후 려권을 내려고 3년만에 집으로 돌아온 아들애는 발을 들여놓기 바쁘게 된장찌개부터 찾는다. 집을 떠나 혼자서 외로운 객지생활을 하다보니 엄마의 손맛이 무던히도 그리웠던 모양이다. 나는 그동안 쌓인 정담을 나눌 새도 없이 부랴부랴 행주치마를 두르고 주방에 들어가 이른 저녁밥을 지었다. 나는 전기밥솥에 쌀부터 씻어 안치고 이어 배추시래기와 파, 애호박 풋고추를 송송 썰고 삼겹살과 두부는 납작납작하게 썰어 곱돌장사기에 넣었다. 이윽고 전기밥솥에서는 구수한 밥향기가 모락모락 피여오르고 곱돌장사기에서는 된장찌개가 보글보글 끓었다. 샤워를 마치고 주방으로 나온 아들애는 내 어깨를 감싸안으면서 싱글벙글 웃었다. 《엄마, 바로 이 냄새얘요. 엄마냄새와 고향냄새, 와— 너무 싱그럽고 구수해요. 나 외지에서 이 냄새가 너무 그리워서 미칠번했어요.》 《너 어릴 때는 된장찌개에는 숟가락도 대지 않았는데.》 《그땐 된장찌개가 그렇게 맛있는줄 몰랐거든요. 근데 외지에 가있으니 이상하게 자꾸 집에서 먹던 된장찌개와 엄마가 해주던 김치가 많이 생각났어요.》 아들애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밥도 다되였고 된장찌개도 간이 알맞게 맛있게 끓여졌다. 너무 오래간만에 아들애와 함께 밥상에 마주앉았다. 나는 내내 흐뭇한 마음으로 걸탐스레 밥을 먹고있는 아들애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들애는 된장찌개가 구수하다며 연신 감탄을 련발했다. 어릴 때는 늘 피자나 햄버거, 닭고기튀김만 찾으면서 된장찌개만 끓이면 집안에서 냄새가 난다고 이마살부터 찡그리던 녀석이였는데… 《그렇게 맛있어? 정말 많이 먹고싶었구나. 천천히 먹어. 그리고 이 소고기장졸임도 좀 먹어라.》 《된장찌개부터 먹구요. 이번에 갈 때는 된장을 가지고 가서 나절로 끓여먹어야겠어요. 엄마도 잡수세요. 둘이 먹다 한 사람 죽어도 모르겠네요.》 맛갈스레 밥을 먹던 아들애는 어지간히 배가 부른 모양인지 왼손으로 더부룩한 배를 어루만진다. 《그래 나도 어디 먹어보자. 얼마나 맛있기에.》 아들애의 친절한 권유에 된장찌개를 한술 떠서 입에 넣으니 정말 싱그럽고 구수한 된장찌개의 깊은 맛이 온몸에 쭉 퍼지면서 마음끝자락까지 후련해졌다. 어릴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된장찌개를 성인이 다된 지금 열심히 찾는 아들애를 보면서 우리 민족의 상징인 전통음식을 잊지 않고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나는 저도 모르게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조선민족이 즐겨 먹는 웰빙(건강)음식인 된장찌개, 우리 선조들의 슬기와 지혜가 담긴 된장찌개, 우리 민족의 얼과 건강을 지켜주는 된장찌개, 오랜 세월을 거쳐 숙성된 된장으로 끓이는 된장찌개야말로 바로 고향의 맛이고 가족의 맛이며 엄마의 맛이였다. 그 고유한 맛으로 슬기로운 우리 선조들은 유구한 우리 민족의 찬란한 문화를 장식했고 세계의 방방곡곡에 그윽한 향기를 만발하고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알게 모르게 조선민족의 고유한 전통을 잃어가고있다. 콩을 원료로 만든 조상들의 슬기와 지혜가 담긴 된장찌개는 늘 먹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 음식이지만 우리 밥상에는 전통적인 된장찌개대신 개량된 찌개들이 보란듯이 오르고 서양음식인 빵이나 쏘세지가 사흘이 멀다하게 오르고있다. 우리 녀성들은 자기 편리를 위하여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한테 건강을 해치는 닭다리튀김이나 햄버거 등 인스턴트(즉석)음식을 스스럼없이 먹인다. 가족의 건강과 민족의 미래를 지켜가는 식탁에서 우리 손으로 선조들의 지혜을 말살하고 민족의 얼이 담긴 《고향》을 말살해가고있다. 현시대 젊은 녀성들의 이런 모습을 볼 때면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음식문화가 날마다 색바래져가는것 같아 너무 안타깝다. 우리 민족이 전통음식의 소실과 함께 다른 민족에 동화될가봐 무서움이 앞선다. 언젠가 한국텔레비죤에서 외국인들이 한국에 려행을 왔다가 한국의 전통음식인 된장찌개를 먹으며 맛있다고 연신 찬탄하며 엄지손가락을 내흔들던 모습이 눈앞에 선히 떠오른다. 외국인들도 이처럼 우리 민족의 전통음식에 취미를 가지고 선호하고있지 않는가?!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하루라도 된장찌개를 먹지 않으면 벌써 속이 허하고 입맛이 떨어져했다. 된장찌개에다 밥을 푹푹 말아서 먹어야 속이 풀리고 정신이 충만된다. 려행을 떠날 때도 된장이나 고추장을 잊지 않고 배낭에 넣는다. 된장찌개나 고추장만 있으면 다른 반찬이 없어도 밥 한그릇을 뚝딱 밑굽 낼수 있기때문이다. 나는 된장찌개를 한술 떠서 입에 넣었다. 순간 또 온몸에 구수하고 싱그러운 향기가 쭉 퍼지면서 힘이 불끈불끈 치솟았다. 된장찌개가 우리 식탁에서 영원히 그윽한 향기를 풍기기를 소망하면서 나와 아들애는 그 깊은 맛에 또다시 도취되고말았다.   /류서연
3    떠오르는 태양을 보면서 댓글:  조회:539  추천:3  2013-08-16
떠오르는 태양을 보면서    류서연   동녘하늘이 휘붐히 밝아오기 시작한다. 아침 다섯시에 알람을 놓았는데 저절로 눈이 떠진다. 모텔주인이 아침 다섯시 22분에 해가 뜬다고 하였으니 동해바다의 일출을 보려면 아직 한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했다. 다시 잠을 청하려 하였지만 해뜨는 시간을 놓쳐 일출을 보지 못하면 두고두고 후회할것 같아서 아예 살며시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얼마나 앉아있었는지 드디여 창문이 훤해지자 무작정 곤히 자고있는 남편을 흔들어 깨웠다. 잠도 채 깨지 못한 남편을 앞세우고 소녀처럼 들뜬 마음으로 동해바다에서 떠오르는 아침의 태양을 보려고 모텔을 나섰다. 밖에 나오니 아침의 청신한 공기와 싱그러운 바다바람이 한데 어울려 코를 간지럽힌다. 해변가 여기저기에 사람들이 웅기중기 모여있었다. 아마 나처럼 일출을 보려고 나온 사람들인것 같았다. 나는 이른새벽의 시원한 백사장에서 다시한번 바다물에 발을 담근채 아침의 청신한 공기를 한껏 들이쉬면서 세상만물을 너그럽게 비춰주는 둥근 태양이 솟아오르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 마침내 일망무제한 동해바다의 지평선 너머에서 금빛물감이 재롱을 부린다. 각일각 짙어가는 금빛 물감과 함께 붉은 점 같기도 하고 붉은 띠 같기도 한것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 수많은 붉은것들은 금빛물감과 차츰차츰 하나로 합쳐지면서 동쪽하늘을 점점이 수놓는가싶더니 어느사이에 동쪽하늘은 온통 붉은색으로 물들여졌다. 이제사 태양이 머리를 내밀 준비를 마친것이다. 드디여 피빛으로 붉게 물든 동쪽하늘에서 눈섭모양의 빨간 태양이 빠금히 머리를 내밀기 시작하더니 곧 이어 수줍은듯 살며시 고개를 들고 호랑이꼬리처럼 생긴 구름우로 힘차게 솟아오르며 점점 그 아름다운 동그란 자태를 드러낸다. 태양이 구름너머에서 완전히 얼굴을 내민것이다. 나는 황홀한 그 순간을 놓칠세라 부지런히 사진기샤타를 눌렀다. 이윽고 붉디붉은 하나의 완전한 붉은색 덩어리가 지평선너머에서 불끈 힘차게 솟아올랐다. 동해의 바다물도 기다리다 신이 났는지 하늘을 향해 튕겨오르며 붉은 해를 반긴다. 해안에 부딪치는 하얀 파도에 오래동안 마음 깊숙한 곳에 겹겹이 쌓인 먼지와 스트레스들이 깨끗이 씻겨나가고 인생의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는듯하였다. 문득 어디선가 밤새 외로움에 떨던 갈매기 한마리가 붉게 물든 바다우를 힘껏 날아올라 창공을 빙글빙글 돈다. 이윽고 갈매기는 둥그런 원을 그리고 축하비행을 하면서 동해바다의 일출을 힘차게 맞이한다. 한낱 미물들도 태양이 솟아오르니 즐거운가보다. 여기저기에서 환희에 가까운 탄성소리가 들려왔다. 아, 너무 신기하고 황홀하고 아름다왔다. 이 시각 동해의 바다물에 발을 담그고 이국땅에서 붉디붉은 태양을 바라보노라니 감개가 무량하다. 불끈 솟아오른 붉은 태양, 수억만년을 두고 매일 같은 열정으로 자신의 온몸을 불태워온 정열의 태양, 무궁무진한 에네르기로 대자연을 풍요롭게 살찌워주고 인류를 키워온 은혜로운 태양, 태양은 추호의 불평도 원망도 없이 세상만물이 살아갈수 있도록 빛과 열을 고스란히 하사하고있다. 태양은 늘 주기만 하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저 세상만물이 평화롭게 행복하게 살기만을 바랄뿐이다. 가끔 검은 구름이 심술을 부려도 너그러운 태양의 마음은 일편단심 변함이 없다. 급시우를 한껏 머금고 생기를 되찾은 세상만물을 굽어보며 행복하게 웃음을 짓는 태양이다. 헌데 사시장철 해빛의 따사로움을 먹고 살면서도 인류는 정녕 무엇을 배워가는가? 탐욕과 리기심에 눈이 어두워 자기욕심만 채우려들면서 자신의 리익이 조금이라도 침범당하면 서로 물고뜯고 하는것을 서슴지 않는다. 더불어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서로 베풀면서 살아가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인정이 점점 메말라간다. 한층집에서 살아도 서로 이름도 모르고 지내고 복도에서 항상 어깨를 스치며 지나다녀도 따뜻한 미소 한번 보낼줄 모르고. 그러다보니 이웃간에 믿음이 사라지고 한 직장에서는 동료들사이에 치렬한 경쟁이 벌어지고 내가 살아남고 내가 남보다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매몰차게 밟고 올라가야만 되는 랭담한 현실, 태양은 어김없이 자기 몸을 불태워 만물에 사랑을 주고있지만 사람과 사람사이에 서로 베풀고 서로 배려하는 마음이란 꼬물만큼도 찾아보기 힘든 세상이 되였다. 이 시각 붉디붉은 태양을 보노라니 한조각 부끄러운 마음을 주체할길 없다. 이제부터라도 나 자신부터 시작하여 태양의 너그러운 마음과 헌신정신을 따라배워 베푸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자신을 반성하고있다. 아니 너나가 할것없이 태양의 헌신정신을 따라배워 선행을 베푼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더 아름다울가? 여름의 찬란한 아침해살이 동해바다를 아름답게 비추고있다. 동해바다가에서 일출을 보면서 나도 이제 여생을 뜨겁게 불타오르는 태양을 가슴깊이 간직하고 매일매일을 사심없이 베푸는 삶을 살아가리라고 생각하면서 다음 려행코스를 향하여 아쉬운 발걸음을 옮겼다.
2    꿈도 세월 따라 멀어져간다 댓글:  조회:543  추천:2  2013-05-31
꿈도 세월 따라 멀어져간다 오늘도 저녁 퇴근시간이 다 되여오자 선생님들은 퇴근준비에 부산스럽다. 하지만 나는 담임교원인지라 아직 학교에 더 있어야 하므로 책상에 머리를 파묻고 내 할 일을 하고있는데 교무실에서 분위기를 제일 잘 돋구는 김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우리 오늘 공작 그만하고 저녁비과나 합시다. 집에 돌아가 저녁식탁에 무얼 해올리겠는지 서로 좋은 아이디어를 내놓읍시다. 하루 세끼 먹는 반찬때문에 얼마나 신경이 쓰이는륙지 몰라요? 시장에 가면 살 채소가 없어요. 매일 똑같은 채소니 오늘 저녁에는 또 무얼 해먹어야 하는지?…” 김선생님의 말에 동료들은 하던 일들을 중지하고 너도나도 입을 열기 시작하였다. 이 시간만큼은 일을 떠나서 모두들 선생님들이 아닌 영락없는 가정주부들이고 아줌마들이다. 나는 동료들의 이야기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서 한참을 턱을 고이고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나도 언제부터인가 내 아들, 내 남편만을 위해 사는 완전한 가정적인 아줌마로 변신해있었던것이다. 그러노라니 어린 시절 가졌던 꿈은 아득하게 나와 멀어져갔다. 나에게도 아름다운 칠색꿈을 꾸던 소녀시절이 있었을텐데, 그때의 나의 미래는 얼마나 찬란하고 황홀하고 희망이 넘쳤던가? 그런데 지금 현실은 어떠한가?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던 시절은 기억조차 가물가물할 정도로 나와 아득하게 멀어져갔으며 현실은 꿈처럼 그렇게 아름다와보이지 않았다. 일상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것은 없는데 자기도 모르게 나이테만 잔뜩 늘어났다. 소녀시절 꾸던 그 아름답고 황홀했던 꿈을 이루지도 못한채 덧없이 흘러간 세월은 어느덧 나를 영원히 올것 같지 않았던 50고개에 훌쩍 실어다놓았다. 내가 언제 벌써 이렇게 나이를 먹었지? 별로 오래 산것 같지 않은데 마음은 아직도 긴 생머리를 어깨너머로 날리던 열여덟살 소녀처럼 새파랗게 젊었는데 녀자 나이 벌써 오십을 넘었다는게 어쩐지 썩 즐거운 일은 아니였다. 생기발랄한 젊은이들을 보면 부럽기만 하고 나에게도 저런 좋은 시절이 있었던가싶다. 나이를 먹고보니 씩씩하고 활기에 넘친 젊은이들이 그렇게 부러울수가 없었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이 늘 하던 세월앞에서 륙십대는 오십대를 부러워하고 오십대는 사십대를 부러워하고 사십대는 삼십대를 부러워한다는 말뜻을 인제야 좀 알것 같았다. 10년만 젊었어도 어떻게 해서라도 어린 시절 가졌던 내 꿈을 이루어보겠는데 인생을 살면서 꿈도 이루어보지 못한채 허망하게 흘러간 세월앞에서 그저 깊은 탄식만 나온다. 그동안 나는 뭘하고 살았나? 하루에도 마음속으로 수십번 자신에게 물어보면서 내가 살아온 지난날을 뒤돌아본다. 문득 이룩해놓은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현실에 자신이 더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내가 이룩한것이면 남들도 다 이룩해놓은것이였다. 공부하고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업에 참가하고 다음은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나 결혼해서 아이 낳아 키우고 남편 섬기고 시부모님 모시고 하루 세끼 밥먹고 출근하고 잠자고 매일 똑같이 되풀이되는 바쁜 일상에 쫓기우면서 살다보니 세월은 어느결에 덧없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아마 나이 먹은 우리 50대 아줌마들은 다 이럴것이다.모여앉으면 하루 세끼 식구들의 때시걱 걱정이고 자식의 취직걱정이고 시집장가 보낼 걱정이고 남편건강에 대한 걱정이다. 게다가 언제 쓰러질지 모를 년로한 시부모님, 친정부모님들에 대한 걱정에 마음은 한시도 가벼울 때가 없다. 언제나 그 어떤 보이지 않는 무형의 멍에에 눌리워 마음은 늘 무겁다. 삶이란 그저 그런것인가보다. 저 산을 넘으면 무엇인가 색다른것이 나를 기쁘고 즐겁게 해줄것이라고 여겨 허위허위 산을 넘어보지만 그곳 역시 이곳과 다를바가 크게 없다. 이렇게 인생은 한고비한고비 넘으면서 인간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덧없이 흘러가는것이리라. 남보다 경제적으로 좀 더 풍족하고 안일하고 여유있게 살아왔거나 좀 더 높은 직위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흠모의 대상이 되여 부러움을 자아내며 일해왔거나 이제 와서 나이를 먹고보니 느끼는 감정이란 별로 차이가 있어보이지 않는다. 매일과 같이 되풀이되는 똑같은 일상을 살면서 사람마다 식사한 자리가 다르고 일한 정도가 다르며 일의 종류가 다를뿐 하루 세끼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인생을 살아가면서 고민하고 방황하고 걱정을 하지 않는 사람이란 아마 이 세상에 단 한사람도 없을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해서 얻은것이 무엇이냐이다. 친구들은 이구동성으로 한결같은 대답을 한다. 남편 건강하고 자식공부 잘 시켜 좋은 직장에 취직시키고 근심걱정 없이 하루 세끼 배부르게 먹고 큰 불행이 없고 온 가족이 평화로우면 바로 제일 큰 행복이란다. 나처럼 그들도 어린 시절 가졌던 황홀한 꿈이 있었을텐데 그제날 품었던 꿈에 대한 이야기는 일언반구도 없다. 일시에 슬픔이 몰려왔다.도대체 우리의 인생에서 성공의 징표는 무엇일가? 아니 인생에 성공의 징표란 없다. 가족을 위하여, 자식을 위하여 자기의 꿈을 접고 어머니로, 안해로, 딸로, 며느리로 살아야 했던 나에게 소녀시절 꿈은 이룰수 없는 사치에 불과했고 오르지 못할 높은 나무였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신이 가진 이름외에 덤으로 덧붙여진 이름에 연연하고 충실하다보니 꿈을 이룰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여태까지 먹고 살기 위하여 동분서주해온 자신이 어찌보면 너무도 한스러웠다. 하지만 50 고개를 넘고보니 이제야 삶의 여유가 생겨 자기 자신을 뒤돌아보게 되고 인생을 관조하고 성찰해보게 되였다. 과연 내가 살면서 해놓은것이 무엇이더냐? 힘들게 짊어지고 오던 꿈은 다 어디로 가버리고 나는 지금 가벼움과 허탈함으로 인생의 석양을 맞이한것일가? 허망하게 흘러가버린 꿈앞에서 저도 모르게 망연자실해진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는 현실에 해놓은것은 아무것도 없고 나이만 잔뜩 먹었다는 엄연한 현실앞에서 일시에 슬픔과 비애의 감정이 몰려왔다. 그 서글픈 마음 무엇이라고 표현할가? 아니 허무하게 흘러가버린 꿈앞에서 돌이킬수 없는 지난날을 두고 안타까움에, 괴로움에 내 마음을 주체할길 없다. 이 시각 그제날 아름다운 꿈을 마음껏 꾸던 그 시절이 하아얀 그리움으로 모락모락 피여오르면서 내 가슴을 아련히 적시고있다. 하지만 내주거나 물릴수 없는것이 인생이다. 지나온 내 삶이 그러하듯 앞으로 살아갈 삶 역시 별로 다르지 않을것이다. 자식 취직시키고나면 다음은 성가시켜야 하고 그 다음에는 또 다른 새로운 근심걱정이 생겨나고 그리고 어느날엔가는 량가부모님들을 한분한분 곁을 떠나보내야 하는 인생의 가장 큰 비통과 슬픔을 겪고… 아, 꿈이란 얼마나 허망하고 무미건조한것이였던가! 왜 몰랐을가? 세월이 가듯 꿈도 세월의 흐름과 함께 덧없이 멀어져간다는것을!
1    영원한 아름다움 댓글:  조회:1296  추천:3  2013-04-09
영원한 아름다움 류서연 언젠가 삼촌의 생일에 갔다가 사돈집의 세살 난 손녀애가 거울앞에서 두발을 동동 구르면서 머리를 다시 매여달라고 생떼를 쓰며 울고있는것을 보았다. “엄마, 이 머리 미워, 서영의 마음에 안들어, 나 머리 다시 해줘어. 토끼머리 해달란 말이얘요.” 아직 아무런 세상물정도 모른채 이 세상에 태여난지 겨우 2년 하고 여섯달밖에 안된 아이가 무엇을 안다고 머리모양이 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예쁘지 않다고 거울앞에서 저렇게 생떼를 써가며 울고있을가? 저 죄꼬만것이 무엇을 안다고 자신의 성(性)이 녀성임을 나타낼가? 귀엽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여 저도 모르게 쿡쿡 웃음이 나왔다. 아마 녀성에게는 본능적으로 어릴적부터 남에게 아름답게 보이려는 그 어떤 속성이 있는가보다. 눈가에 령롱한 은구슬같은 눈물방울이 대롱대롱 달린 귀엽고 천진하고 사랑스런 아이를 보면서 이 세상은 녀성이 있어 더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오늘도 조물주가 어쩌면 그렇게 아름답고 신비한 녀체를 만들었을가 하는 생각에 감개가 무량하다. 녀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창조물이고 가장 신비한 예술의 극치이다. 아무튼 녀성이 있어 이 세상은 더 다채롭고 더 아름다우며 더 살맛이 나는 세상이 아닐가? 하기에 세상의 녀성들 치고 아름다움을 싫어할 녀성은 한사람도 없다. 녀성들이 끊임없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것도 어찌보면 자신들의 근원인 아담과 이브를 의식한것도 있겠지만 어찌보면 아름다움에 대한 녀성들의 원초적인 본능 때문이 아닐가. 하기에 화장을 해도 머리를 잘라도 새옷을 사입어도 항상 나보다 내 남편, 내 주위의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것인가를 먼저 념두에 두고 모든것을 실행하는것이 이 세상 모든 녀성들이 가지고있는 가장 기본적인 속성이다. 그러노라니 그제날 가슴 푸근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했던 70대의 할머니의 모습이 눈앞에 선히 떠오른다. 그날은 봄빛이 화창한 봄날이였다. 겨우내 제멋대로 자라난 푸시시한 머리를 손질하려고 미용원에서 한창 파마를 하고있는데 반백이 된 로부부가 다정하게 손을 잡고 나란히 미용원에 들어섰다. 년세가 70이 훨씬 넘어 보였는데 다른 로인들보다 옷차림새가 정갈하고 멋스러웠다. “여보오? 아재, 우리 할멈 머리 이쁘게 해주오. 래일 우리 결혼기념일을 맞으며 려행을 떠난다오. 로친을 아름답게 치장시키고 데리고 가야지. 사람이란 나이 들수록 더 깔끔하고 아름답게 가꾸고 다녀야지. 녀자의 천성이 자신을 아름답게 가꾸는것이거든. 그러니 우리 할멈의 머리를 멋지게 해주구려. 허허.” 사람 좋게 웃으면서 정겹게 할머니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눈길에는 애정이라기보다 반평생 함께 해온 자신의 반려에 대한 애틋한 정이 듬뿍 어려있었다. 할머니는 흐믓한 눈길로 그런 할아버지를 바라보시면서 한마디 한다. “원 령감두, 이 아재가 어련히 알아서 이쁘게 해주지 않을라구. 좀 점잖게 앉아계시소…” 할머니가 곱게 눈을 흘기며 할아버지를 가볍게 핀잔한다. 파마가 끝나자 손거울을 손에 쥐고 거울앞에서 이리저리 몸을 돌리면서 자신의 머리모양을 뒤로도 비춰보고 옆으로도 비춰보던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향해 입을 열었다. “령감 나 어떻수? 이쁨둥? ” “암. 이쁘구 말구. 십년은 더 젊어보이는것 같구먼. 언녕 파마를 하라는데 얼마나 보기 좋소. 허―허―.” “그렇네유 령감, 나도 너무 기분이 좋아유,” 할아버지의 말에 한결 흥이 난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향해 그윽한 미소를 날린다. 할아버지도 할머니를 흐뭇한 마음으로 바라본다. 할아버지의 눈길을 의식한 할머니는 수줍은지 살짝 얼굴을 붉히였다. 부끄러움을 타는 할머니의 모습은 마치 순수한 열여덟살 소녀의 모습을 방불케 하였다. 아,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그날 나는 머리를 곱게 다듬고 손을 잡고 즐거운 심정으로 나란히 미용원을 나서는 로부부의 뒤모습을 보면서 할머니에게서 젊은 녀성에게서 보는 미와는 또 다른 가슴 푸근한 아름다움을 보았다. 그러면서 몸은 비록 늙었어도 자신의 몸을 아름답게 가꾸기에 게을리 하지 않고 자신의 외모에 신경을 쓰는만큼 한생을 살아오면서 자신의 마음가짐도 무척 아름답게 가꾸어왔을것이라는 생각이 갈마들었다. 헌데 지금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점점 나이테가 늘어나면서 허다한 녀성들이 스스로 자신이 녀성임을 포기한듯 자기의 몸매를 가꾸지 않고 푸시시한 몸가짐을 하는것을 보면서 안타깝기도 하고 같은 녀자로서 왜 저럴수 있을가 하는 생각이 갈마든다. 늙는다는것은 흐르는 세월에 의해 나이를 먹는다는 뜻이지 마음이 늙는다는 뜻은 아닌데 말이다. 이는 슬픈 일이 아닐수 없다. 하지만 더 슬픈것은 나이와 함께 생각이 늙어간다는것이다. 생각이 늙어지면 자연히 자신의 외모를 가꾸기에 게을러지고 그러다보면 자연히 마음도 아름답게 가꾸는데 게을러지는것이다. 나는 자신의 외모를 아름답게 가꾸어가는것에 열중하는 녀성을 사랑한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외모보다 더 아름답게 가꾸어가기에 게을리 하지 않는 녀성을 더욱 사랑한다. 그것은 외모의 아름다움과 내면의 아름다움을 겸비한 녀성이야말로 진정 아름다운 녀성으로 거듭날수 있기때문이다. 이 세상에 녀성으로 태여난 자체가 아름다움이듯 평생을 내면과 외면에 신경을 쓰면서 아름다움을 가꾸는 일을 즐길 때 녀성들은 가장 아름다운 녀성으로 거듭나는것이 아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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