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이야기
류서연
봄이 깊어가고있다. 심장까지 파고든다. 화사한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여나 보는 사람들의 시각을 즐겁게 하고 어느새 초록의 물결이 대지를 뒤덮기 시작한다. 병아리 가슴털처럼 노오란 해살이 대지를 어루만지는 화창한 봄날의 일요일은 집에서 그냥 보내기가 너무 아깝다. 창문밖으로 내다보는것만으로도 즐거운 느낌을 주는 봄날의 경치다. 이런 날은 방에만 콕 박혀있지 말고 산으로 들로 어디로든 가고싶다. 봄날의 정취를 느끼며 마음껏 봄날의 이야기를 쓰고싶다.
화창한 날씨의 유혹에 이끌려 들에 나왔다. 봄날의 해살에 눈이 부시였다. 혼자서 터덜터덜 모아산 등산길에 올랐다. 휴일이라 모아산은 사람들로 붐비였다. 세월이 좋아져 스스로 건강을 지키고 운동을 선호하는 사람들의 대오가 늘어나면서 모아산은 활기를 띠기 시작하고 한적할 새가 없다. 오늘도 모아산은 사람들로 붐빈다. 북적거리는 인파를 구경하는것만으로도 마음이 즐겁다. 집에서 나오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이 가는대로 걷는다.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눈에 들어오는 사람과 경치를 구경하면서 혼자 걷는 재미도 별미였다.
걷다보니 눈앞에 한폭의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 저도 모르게 발목을 잡혔다. 바람에 하늘거리는 풍선을 들고 캐드득캐드득 웃어대는 아이의 천진한 웃음소리. 사랑스러운 아이를 보면서 행복에 겨워 “하하—— 호호——” 웃음을 짓는 젊은 각시의 명랑한 웃음소리, 그런 안해와 사랑스러운 딸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남자의 애틋한 눈길. 세식구의 행복한 모습과 아름다운 봄날의 풍경이 조화되여 한폭의 아름다운 화폭을 이루면서 내 눈앞에 가장 아름다운 장면을 펼쳐놓았다. 나는 한참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흡사 행복한 그 정경에 빨려들어가는것 같았고 그들과 한데 융합되는것 같았다. 이 사회를 구성하는 세포인 가족, 어느 가족이나 저렇게 단란하고 화목한 생활을 영위한다면 우리 사회는 얼나마 아름답고 살맛나는 사회로 될것인가라는 생각이 갈마들면서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피여오르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세식구의 행복한 정경에 내 마음까지도 따뜻해났다.
봄향기에 취하고 사람들의 즐거운 모습에 취하여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눈앞에 이상한 광경이 들어와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남자가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두손은 땅바닥을 짚고 있고 녀자가 남자를 내려다보는 풍경이였다. 무슨 잘못을 얼마나 크게 했기에 그 많은 사람들앞에서 남자가 저러고있는가싶으면서 부쩍 호기심이 동했다. 가까이 가보았다. 그게 아니였다.중풍이 든 시아버지를 며느리가 운동시키는 중이였다. 두툼하게 옷을 입은 남자는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있었지만 60대 중반쯤은 되여보였고 녀자는 30대 후반쯤 되여보였다. 시아버지는 걷기운동을 하다가 앞으로 엎어졌고 며느리는 시아버지를 내려다보며 혼자 일어서게 내버려두고있는것이였다. 아니 내버려두고있는게 아니라 혼자 일어나기 련습을 시키고있는것이 더 타당하다고 해야겠다.
“운동을 해야 하는데 련며칠 비가 와서 운동을 못 시켜드렸어요. 마침 오늘 날씨가 그나마 비가 오지 않아서 옷을 많이 입혀드리고 나왔거든요.”
혼자 련습을 하다가 자빠질수도 있기에 스스로 일어서는 련습을 해야 한다고 그녀는 묻지도 않는 내게 말을 걸어온다. 그러나 시아버지는 스스로 일어서지를 못했다. 다리에 힘을 주는듯 안깐힘을 쓰는것 같은데 마음대로 되지를 않나보다. 자꾸 며느리의 바지가랭이를 붙잡으려 두손을 허우적거렸다. 그건 너무 안타깝고 슬픈 광경이였다. 며느리는 “아버님, 조금만 더 애를 써보세요.저 붙잡으려 하지 말고요. 스스로 일어서도록 해보세요”고 어린애 타이르듯 다정하게 말한다. 다시 시아버지는 끙끙 애를 썼다. 보기가 안타까왔다. 제발 빨리 일어났으면 하는 생각에 그 자리를 뜨지 못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시아버지는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이때 40대의 남자가 손에 물병을 쥐고 뛰여오더니만 녀자에게 원망조로 말한다.
“여보, 아버지를 일으키지 않고 뭐하오?”
“당신이 자꾸 그러니 아버님이 더 안되지요.”
며느리가 손을 내밀자 시아버지는 한손은 며느리가 내미는 손을 잡고 다른 한손은 며느리의 바지가랭이를 붙잡고 간신히 일어났다.
“그 며느리 참 대단하네요. 요즘 저런 착한 며느리가 어디 있소.”
“아버님, 며느리 참 잘 보았네요. 복 받았어요.”
여기저기에서 며느리에 대한 찬사가 터져나왔다. 나는 다시한번 그 녀자를 보았다. 얼굴도 곱상한 녀자는 마음도 어쩜 저렇게 예쁠가 싶으면서 그 녀자의 효심에 마음이 찡해났다. 자식들마다 부모님들에게 저렇게 효도를 한다면 이 세상 부모님들은 만년을 얼마나 얼마나 행복하게 보내랴싶었다.
어디선가 아리랑의 노래소리가 구슬프게 들려온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날 두고 가신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 우리 민족의 슬픔과 기쁨 우리 민족의 파란만장한 력사를 보여주는 아리랑노래, 들어도 들어도 가슴 뭉클해지는 노래, 우리 민족의 영원한 뿌리이고 우리 민족의 령혼이 담긴 아리랑노래소리에 이끌려 나는 며느리와 시아버지를 다시한번 일별하고 자리를 옮겼다. 속으로 며느리의 효성에 경의와 찬사를 보내면서 시아버님이 어서 완쾌되기를 기원하며 노래소리가 울리는 곳으로 천천히 올라갔다. 일여덟명 되는 중년남자들이 마른 안주에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키면서 노래가락을 뽑고있었다. 모두들 얼근히 술이 잘된 모양이였다. 술병을 마이크로 삼아 아리랑을 부르는 남자의 얼굴에는 고단한 삶의 흔적이 력연하였다. 그 모습이 서글퍼보여 나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삶에 무슨 한이 그렇게 서리서리 얽혔는지 남자의 노래는 구곡간장이 타들어가는듯 구슬프고 애달팠다.
“태평양을 건너 대서양을 건너 너 마누라도 가고 내 마누라도 갔구나. 외토리의 고독한 삶을 누가 알아줄고. 우리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노래를 부르다말고 남자가 꺼이꺼이 땅을 치며 설음을 토하고있었다.
“임마, 그만 해라. 또 그놈 마누라타령이니? 백년도 못 사는 우리네 인생 술이나 마시며 즐기자. 나는 뭐 마누라가 안 그리운줄 아니? 다 속으로 삼키면서 이렇게 산다. 내가 보니 마누라가 없어도 살아지더라. 자, 술이나 마시자.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노나니…”
“야, 이제사 발동이 걸리는구나.”
“아리랑을 부르라구. 오늘은 우리네 설음을 아리랑곡조에 담아 저 고개너머에 날려보내자.”
보매 마누라를 외국에 보내놓고 외롭게 사는 기러기 남편들인것 같았다. 나는 남자들의 대화에 한참을 귀를 기울였다. 남들이 보면 웬 녀자가 남정네들이 술타령, 인생타령이나 하는것을 구경이나 하면서 청승을 떠는가고 이상하게 생각하겠지만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우리 민족의 슬픈 현실을 보여주는것만 같아 무척 가슴이 아팠다. 방금까지의 흥그럽던 마음은 한떼의 남자들의 아리랑타령에 의해 가뭇없이 사라졌다. 말 못할 설음과 고통을 마음에 꾹꾹 담아두고 술로 곰삭이는 남자들을 보면서 내 가슴도 아파왔다. 언제면 한가족이 모여 함께 산책도 하고 등산도 하고 부부가 나란히 장바구니도 함께 들고다니면서 장바구니에 평범한 가족의 행복, 기쁨, 슬픔, 애환을 담아볼가?
나는 산을 올라가다말고 도로 내려왔다. 도무지 더 올라갈 흥이 나지 않았다. 아리랑의 노래가 계속 내 등을 아프게 찌르고있는것 같았고 내 마음을 울리고있는것 같았다. 우리 민족이 겪는 리산의 아픔이 언제면 끝날가? 묘연하기만 하다.
모아산을 내려오는 발걸음이 무겁다. 방금까지의 즐겁던 기분은 한순간에 가라앉았다. 붕어빵 하나에 추억과, 오이 하나에 생활과, 풍선 하나에 애환을 담고 봄날의 이야기는 오늘도 래일도 계속 이어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