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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을 빚다
2021년 04월 12일 08시 44분  조회:147  추천:0  작성자: 류서연

수필을 빚다
□ 류서연

달빛마저 구름에 가리운 고즈넉한 밤, 이런 밤이면 잠자던 사색이 스멀스멀 일어나 나에게는 맛있는 수필을 빚는  더없이 좋은 황금시간이 된다.

낮에는 이런저런 일로 어정쩡하게 보내다가도 밤만 되면 자판을 두드리는 것이 이미 습관 아닌 습관으로 되였다. 그날도 나는 저녁밥을 먹기 바쁘게 컴퓨터 앞에 앉아서 키보드를 두드렸다. 언제부터 시작해놓은 수필을 또 쓰기 시작하였다.

내 정성을 담아 내 모든 감각기관을 동원하여 한자 한자 열심히 쓰고는 지우고 지우고는 다시 쓰기를 반복하다 보니 글줄은 얼마 내려가지 않았는데 밤은 자꾸만 깊어가고 나의 인내심은 슬슬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암만 들여다보아도 써놓은 글이 엉망이고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짜증이 났다. 결김에 나는 삭제버튼을 마구 눌러댔다. 그러자 한장 푼히 써놓은 글들이 좌르륵좌르륵 순식간에 지워졌다. 텅 비여버려 백지가 된 컴퓨터 화면이 네모난 눈으로 퀭하니 나를 보면서 나의 무딘 필을 조롱이라도 하는 듯싶다.

한참을 뚫어져라 빈 화면을 보고 있다가 힝하니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향하였다. 랭장고 문을 쫘아악 열고 그린 듯이 서있었다. 랭장고에서 서려나오는 찬 기운이 내 얼굴에 확 덮치면서 잔뜩 열이 오른 내 머리를 랭각시켜주는 듯하다. 단번에 정신이 번쩍 들면서 머리가 맑아지고 속이 후련해지면서 글이 내려가지 않아 숨막히고 답답하던 마음이 얼마간 풀리는 것 같았다.

이어 내 머리속에는 내가 왜 여기에 서있지? 지금 무얼 하고 있지? 무얼 하려고 하지? 라는 물음표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튀여나왔다.

나는 잠간 망설이다가 부산스레 여기저기 헤집으며 낮에 사다 그대로 넣어둔 자두를 꺼내 와락와락 씻었다. 다 씻은 자두를 가지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와작와작 자두를 먹으면서 나는 지금 다 지워지고 제목만 달랑 남은 컴퓨터의 빈 화면을 바라보았다. 자두를 련거퍼 대여섯개를 먹고 나니 배가 불룩해졌다. 나는 아무 생각이 없이 넋을 잃고 앉아있었다. 갑자기 후회가 몰려왔다. 분김에 써놓은 글을 지워버린 것이 무척 배 아팠으나 이미 엎지른 물이였다.

굳잠에 빠져든 고요한 밤은 소리없이 깊어간다. 뭇별들도 깜박깜박 반짝이며 이 밤의 고요와 평화를 이야기한다.  휘영청 둥근 달님도 심심한지 구름너머로 얼굴을 내밀고 우두커니 가 된 내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면서 이 시간까지 자지 않고 웬 청승을 떠느냐고  책망하는 것 같다. 그러건 말건 나는 개의치 않았다. 얼마나 오래 앉아있었을가? 고장난 라지오처럼 갑자기 멈추어버린 내 머리가 서서히 발동이 걸리고 이어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다. 집안 구석구석에 외로움과 고독이 길게 내려앉은 이 밤 나는 지금 천년고독을 안주 삼아 수필을 빚고 있다. 또 한편의 새로운 수필의 탄생을 위해 고뇌한다.

나는 방금 전에 쓰다만 글에 또다시 빠져들었다. 천천히 사색의 나래를 펼친다. 실타래처럼 얼기설기 엉키였던 글의 실마리가 풀리는 것 같아서 점점 사유의 그물을 펼쳐나간다. 야금야금 아주 천천히 사유의 폭을 넓히면서 내 머리속에서 글감들을 하나하나 고른다. 이 글감도 좋은 것 같고 저 글감도 좋은 것 같지만 대담하게 버릴 건 버리고 써야 할 글감들만 한줄에 꿰여놓는다. 충분히 구상을 무르익힌 다음에는 쓰려는 주제를 둘러싸고 사유의 그물을 점점 좁혀간다. 물만두 속을 꽁꽁 다져넣고 정성스레 물만두를 빚듯 내 사유와 감성과 모든 감각기관을 최대한 동원하여 수필의 뼈대를 세우고 가지를 붙이고 그 앙상한 가지에 어떤 옷을 입혀야 나만의 개성을 나타내고 충분히 독자들의 공감을 자아낼 수가 있을가 고심하는 것 역시 쉽지 않은 공정이다. 그리고는 하나하나의 언어를 조합하여 다음단계인 글쓰기 작업에 들어간다.

글쓰기란 고름을 짜내듯 고민하고 머리를 써야 하는 힘든 작업이지만 내가 쓴 글이 단 한줄이라도 치렬한 삶의 현장에서 생존하기 위해 두 발에 땀이 나도록 열심히 뛰여다니고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아 힘들고 괴롭고 아픈 삶을 살아가는 독자들의 피페한 마음에 감로수로, 생명수로 흘러들어 삶의 오아시스가 되여주고, 부족한 글이지만 독자들이 내 글에서 키스 전의 가슴 뛰는 흥분과 설레임을 만나고 희망과 축복을 만난다면 나는 기꺼이 내 혼신을 다해 사랑의 마음으로 그윽한 삶의 향기를 풍기는 수필을 빚기 위해 모지름을 쓸 것이다. 그리고 수필을 빚으면서 내 삶에서 오는 고독을 수필로 한땀 한땀 기워간다. 그래서 고요한 적막이 흐르는 깊은 이 밤에도 혼자이지만 나는 결코 외롭지 않다. 고독을 잘근잘근 으깨여 거기에다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 고통과 아픔이라는 다양한 인생의 조미료를 한데 조합하여  나만의 조리법으로 수필을 빚고 행복을 빚고 내 삶을 조리해가는 마음은 결코 외롭지 않다. 아니 수필을 빚을 때면 내 작은 가슴은 풍요로움으로 그들먹이 차오른다. 그날도 나는 수필 <옥을 파낸 자리>를 빚으면서 깊은 고뇌에 빠졌다. 제목은 정해놓았지만 어떻게 써야 할지 도무지 두서가 잡히지 않았다. 녀성에게서 가장 소중한 한쪽 가슴을 잃은 한 녀성의 애환을 어떻게 다루어야 독자들의 마음에 감동을 안겨줄가? 고민을 하고 또 하다가 무엇인가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옴폭 도려진 가슴에 사랑을 담고 정을 담는다면 가슴은 다시 사랑으로 봉긋이 솟아오르리라는 아름다운 념원을 담는 것이였다. 그때 알았다. 수필은 끝없는 고뇌로 빚어진다는 것을…

이 몇년간 백여편의 수필을 빚으면서 나는 하나하나의 삶의 리치를 깨닫는 가운데서 부단히 나 자신을 정화시켰고  살면서 버리고 비우는 삶의 슬기를 깨달았다. 겨울나무가 새봄맞이를 위해 잎과 열매 모든 것을 남김없이 털어내듯 모든 욕망과 욕심을 버리고 기꺼이 지갑을 비워가며 여유 있고 즐거운 마음으로 신나게 사는 법을 배웠다. 그런 인생이야말로 행복하고 폼 나는 인생이 아닐가? 비우고 버리는 것을 배우면서 나는 내 몸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욕심들을 하나하나 버리기 시작하였다. 욕심도 버리고 영예도 탐하지 않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고 너무 즐겁고 행복하였다. 그러자 그동안 내 마음을 옭아맨 그 어떤 멍에에서 해탈된 듯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지면서 주변의 아름다운 꽃과 사랑스러운 풀과 나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산들바람과 숲의 은은한 향기에 취해 잠시 멈춰설 줄도 알게 되였으며 누군가 낯선 사람과도 눈이 마주치면 잔잔한 미소를 보낼 줄 알게 되였다. 그리고 지치고 피곤하면 어디든 앉아 쉬고 가는 게 인생이라는 또 하나의 평범한 인생의 리치를 깨닫게 되였고 때가 되면 버리고 비우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어쩌면 빈손으로 왔다가  한줌의 재가 되여 결국은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인생의 의미를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참된 삶의 자세를 터득하였는지도 모른다. 버리기에 익숙해지고 그렇게 하나둘 버리는 가운데서 스스로 내 삶을 관조하고 내 마음을 부단히 려과시켜가는 가운데서 내 삶의 질은 부단히 향상되여갔다. 그러면서  마음으로, 정성으로 한편 한편의 수필을 빚는 가운데서 삶에서 오는 외로움도, 고독도, 번민도 내 삶을 비껴갔고 나는 평범한 일상에서 오는 인생의 가장 충만한 행복을 만끽하면서 스스로 내 삶을 행복하게 리드해간다. 아무런 미련 없이 버리고 비우고 수필을 빚으면서 사는 인생 나만의 멋으로 황혼을 빛내가는 나의 인생은 너무 멋지다. 드디여 <내 인생의 마취제>라는 또 한편의 새로운 수필이 내 고뇌로 빚어졌다.

끝없는 고뇌로 수필을 빚고 삶을 빚으면서 황혼을 맛있게 조리해가는 내 인생은 영원히 수필과 함께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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