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mxclub 블로그홈 | 로그인
명상클럽
<< 4월 2024 >>
 123456
78910111213
14151617181920
21222324252627
282930    

방문자

홈 > 불교경전

전체 [ 39 ]

39    调象师--中198经(調御地經) 댓글:  조회:2360  추천:1  2015-07-06
 (一九八)中阿含大品调御地经第七(第五后诵) 我闻如是 一时。佛游王舍城。在竹林迦兰陀园 尔时。沙弥阿夷那和提亦游王舍城。在无事处。住禅屋中。彼时王童子耆婆先那中后仿佯。至沙弥阿夷那和提所。共相问讯。却坐一面。语曰。贤者阿奇舍那。欲有所问。听我问耶 沙弥阿夷那和提告曰。贤王童子。欲问便问。我闻当思 王童子问曰。阿奇舍那。实比丘此法.律中不放逸。行精勤。得一心耶 沙弥答曰。贤王童子。实比丘此法.律中不放逸。行精勤。得一心 王童子复问曰。贤者阿奇舍那。汝当随所闻。汝随所诵习者。尽向我说。如比丘此法.律中不放逸。行精勤。得一心 沙弥答曰。贤王童子。我不堪任随所闻法。随所诵习。广向汝说。如比丘此法.律中不放逸。行精勤。得一心也。贤王童子。若我随所闻法。随所诵习。向贤王童子说。如比丘此法.律中不放逸。行精勤。得一心者。或贤王童子不知也。如是我唐烦劳 王童子语沙弥曰。贤者阿奇舍那。汝未为他所伏。以何意故而自退耶。贤者阿奇舍那。如随所闻法。随所诵习。可向我说。如比丘此法.律中不放逸。行精勤。得一心。若我知者为善。若我不知者。我便不复更问诸法。于是。沙弥阿夷那和提随所闻法。随所诵习。向王童子耆婆先那说。如比丘此法.律中不放逸。行精勤。得一心 于是。王童子耆婆先那语曰。贤者阿奇舍那。若比丘此法.律中不放逸。行精勤。得一心者。终无是处。说无是处已。即从坐起。不辞而去 王童子耆婆先那去后不久。于是。沙弥阿夷那和提往诣佛所。稽首作礼。却坐一面。与王童子耆婆先那所共论者。尽向佛说。世尊闻已。告沙弥曰。阿奇舍那。止。王童子耆婆先那云何得。行欲着欲。为欲爱所食。为欲所烧。若地断欲.断欲爱.断欲烧热。无欲知.无欲见.无欲觉。此地王童子知者.见者。终无是处。所以者何。阿奇舍那。王童子耆婆先那常行欲也 阿奇舍那。犹四调御。象调御.马调御.牛调御.人调御。于中二调御不可调御。二调御可调御。阿奇舍那。于意云何。若此二调御不可调御。此未调.未调地.未调御受御事者。终无是处。若此二调御可调御.善调御。此调.未调地。御受御事者。必有是处。如是。此阿奇舍那。止。王童子耆婆先那云何得。行欲着欲。为欲爱所食。为欲所烧。若地断欲.断欲爱.断欲烦热。无欲知.无欲见.无欲觉。此地王童子知者.见者。终无是处。所以者何。阿奇舍那。王童子耆婆先那常行欲也 阿奇舍那。犹去村不远。有大石山。无缺无穿。实而不虚。坚固不动。都合为一。或有二人正欲见者。彼中一人速疾上山。第二人者依住山下。石山上人见石山边有好平地.园观.林木.清泉.华池.长流.河水。山上人见已。语山下人汝见山边有好平地.园观.林木.清泉.华池.长流.河水耶。山下人答曰。若我见山。彼边有好平地.园观.林木.清泉.华池.长流.河水者。终无是处。于是。石山上人疾疾来下。捉山下人速疾将上。于石山上。到已问曰。汝见山边有好平地.园观.林木.清泉.华池.长流.河水耶。彼人答曰。今始见也。复问彼人曰。汝本言见者。终无是处。今复言见。为何谓耶。彼人答曰。我本为山之所障碍。故不见耳。如是。阿奇舍那。止。王童子耆婆先那云何得。行欲着欲。为欲爱所食。为欲所烧。若地断欲.断欲爱.断欲烦热。无欲知.无欲见.无欲觉。此地王童子知者.见者。终无是处 阿奇舍那。昔者刹利顶生王有捕象师。王告之曰。汝捕象师。为我捕取野象将来。得已白我。时。捕象师受王教已。即乘王象往野林中。彼捕象师在野林中见大野象。见已捉系。着王象项。彼时王象将野象出在于露地。彼捕象师还诣刹利顶生王所。白曰。天王。已得野象。系在露地。随天王意。刹利顶生王闻已告曰。善调象师。汝今可速调此野象。伏令善调象。善调已。还来白我。于是善调象师受王教已。持极大杖。着右肩上。往野象所。以杖着地。系野象项。制乐野意。除野欲念。止野疲劳。令乐村邑。习爱人间。善调象师先与饮食 阿奇舍那。若彼野象从调象师初受饮食。善调象师便作是念。今此野象必得生活。所以者何。此野大象初受饮食。若彼野象从调象师初受饮食者。善调象师则以柔软可爱言向。卧起.去来.取舍.屈申。若彼野象从调象师。则以柔软可爱言向。卧起.去来.取舍.屈申者。如是野象随调象师教。阿奇舍那。若彼野象从调象师随受教者。善调象师则缚前两脚.后脚.两[月坒].两胁.尾脊.头额.耳.牙。及缚其鼻。使人捉钩。骑其头上。令众多人持刀.楯.槊.鉾.戟.斧.钺而在前立。善调象师手执锋鉾。在野象前而作是语。我今治汝。令不移动。治汝勿动摇。若彼野象从调象师治不移动时。不举前脚。亦不动后脚。两[月坒].两胁.尾脊.头额.耳.牙及鼻皆不动摇。如是野象随调象师住不移动 阿奇舍那。若彼野象随调象师不移动者。彼于尔时忍刀.楯.槊.鉾.戟.斧.钺.唤呼高声。若啸吹螺.击鼓.椎钟。皆能堪忍。若彼野象能堪忍者。彼于尔时调御.善调御。得上调御.得最上调御。上速疾.无上速疾。可中王乘。受食王廪。称说王象 如是。阿奇舍那。若时如来出世。无所著.等正觉.明行成为.善逝.世间解.无上士.道法御.天人师。号佛众祐。彼于此世。天及魔.梵.沙门.梵志。从人至天。自知自觉。自作证成就游。彼说法初妙.中妙.竟亦妙。有义有文。具足清净。显现梵行。彼所说法。居士子闻。居士子闻已。得信如来所说法。彼得信已。剃除须发。着袈裟衣。至信.舍家.无家.学道。阿奇舍那。尔时圣弟子出在露地。犹王野象。如是野象贪欲乐著者。谓在林中。阿奇舍那。如是天及人贪欲乐着。谓在五欲。色.声.香.味.触。如来初始御彼比丘。汝当护身及命清净。当护口.意及命清净 若圣弟子护身及命清净。护口.意及命清净者。如来复调御比丘。汝当观内身如身。乃至观觉.心.法如法。若圣弟子观内身如身。乃至观觉.心.法如法者。此四念处。谓在贤圣弟子心中。系缚其心。制乐家意。除家欲念。止家疲劳。令乐正法。修习圣戒。阿奇舍那。犹调象师受刹利顶生王教已。持极大杖。着右肩上。往野象所。以杖着地。系野象颈。制乐野意。除野欲念。止野疲劳。令乐村邑。习爱人间。如是。阿奇舍那。此四念处。谓在贤圣弟子心中。系缚其心。制乐家意。除家欲念。止家疲劳。令乐正法。修习圣戒 若圣弟子观内身如身。乃至观觉.心.法如法。彼如来复更调御比丘。汝当观内身如身。莫念欲相应念乃至观觉.心.法如法。莫念非法相应念。若圣弟子观内身如身。不念欲相应念。乃至观觉.心.法如法。不念非法相应念者。如是圣弟子随如来教。阿奇舍那。犹如野象从调象师。则以柔软可爱言向。卧起.去来.取舍.屈伸者。如是野象随调象师教。如是。阿奇舍那。若圣弟子观内身如身。不念欲相应念。乃至观觉.心.法如法。不念非法相应念。如是圣弟子随如来教 若圣弟子随如来教者。如来复更调御比丘。汝当离欲.离恶不善之法。至得第四禅成就游。若圣弟子离欲.离恶不善之法。至得第四禅成就游者。如是圣弟子则随如来住不移动。阿奇舍那。犹如野象从调象师治不移动时。不举前脚。亦不动后脚。两[月坒].两胁.尾脊.头额.耳.牙及鼻皆不动摇。如是野象随调象师住不移动。如是。阿奇舍那。若圣弟子离欲.离恶不善之法。至得第四禅成就游者。如是圣弟子则随如来住不移动 若圣弟子随如来住不移动者。彼于尔时则能堪忍饥渴.寒热.蚊虻.蝇蚤.风日所逼。恶声.捶杖亦能忍之。身遇诸疾极为苦痛。至命欲绝。诸不可乐皆能堪耐。阿奇舍那。犹如野象随调象师住不移动。彼于尔时忍刀.楯.槊.鉾.戟.斧.钺.唤呼高声。若啸吹螺.击鼓.椎钟。皆能堪忍。如是。阿奇舍那。若圣弟子随如来住不移动者。彼于尔时则能堪忍饥渴.寒热.蚊虻.蝇蚤.风日所逼。恶声.捶杖亦能忍之。身遇诸疾极为苦痛。至命欲绝。诸不可乐皆能堪耐 阿奇舍那。若圣弟子随如来能堪忍者。彼于尔时调御.善调御。得上调御.最上调御。得上息.最上息。除诸曲恶.恐怖.愚痴及谀谄。清净止尘。无垢无秽。可呼可请。可敬可重。实可供养。为一切天人良福田也。阿奇舍那。犹如野象能堪忍者。彼于尔时调御.善调御。得上调御.得最上调御。上速疾.无上速疾。可中王乘。受食王廪。称说王象。如是。阿奇舍那。若圣弟子随如来能堪忍者。彼于尔时调御.善调御。得上调御.最上调御。得上息。最上息。除诸曲恶.恐怖.愚痴及谀谄。清净止尘。无垢无秽。可呼可请。可敬可重。实可供养。为一切天人良福田也 阿奇舍那。少野象不调御死者。说不调御死。中.老野象不调御死者。说不调御死。阿奇舍那。少圣弟子不调御命终者。说不调御命终。中.老圣弟子不调御命终者。说不调御命终。阿奇舍那。少野象善调御死者。说善调御死。中.老野象善调死者。说善调御死。阿奇舍那。少圣弟子善调御命终者。说善调御命终。中.老圣弟子善调御命终者。说善调御命终 佛说如是。沙弥阿夷那和提及诸比丘闻佛所说。欢喜奉行 调御地经第七竟(二千八百九十一字) 198) 조어지경(調御地經)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에 유행하실 적에 죽림가란다원(竹林迦蘭陀園)에 계셨다. 그 때 사미 아이나화제(阿夷那和提)도 또한 왕사성에 노닐면서 일 없는 곳[無事處 : 절]의 선실(禪室)에 있었다. 그 때 왕의 동자[王童子] 기바선나(耆婆先那)는 오후에 천천히 걸어 사미 아이나화제가 있는 곳으로 가서 서로 인사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말하였다. "현자 아기사나(阿寄舍那)여, 물을 말이 있는데 들어 주겠습니까?" "어진 왕동자여, 묻고 싶으면 물으십시오. 제가 듣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왕동자가 물었다. "아기사나여, 비구가 이 법과 율 안에서 방일하지 않고 수행하고 정근하면 한 마음이 된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어진 왕동자여, 사실입니다. 비구가 이 법과 율 안에서 방일하지 않고 수행하고 정근하면 한 마음이 됩니다." "현자 아기사나여, 그러면 그대가 들은 대로 그대가 외운 대로 '비구가 이 법과 율 안에서 방일하지 않고 수행하고 정근하면 한 마음이 된다'는 그대로를 저에게 모두 말해주십시오." "어진 왕동자여, 저는 제가 들은 대로 제가 외운 대로 '비구가 이 법과 율 안에서 방일하지 않고 수행하고 정근하면 한 마음이 된다'는 그대로를 당신에게 자세히 말할 수 없습니다. 어진 왕동자여, 혹 제가 들은 대로 외운 대로 '비구가 이 법과 율 안에서 방일하지 않고 수행하고 정근하면 한 마음이 된다'는 그대로를 말하더라도 아마 어진 왕동자는 그것을 알아듣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면 저는 헛수고만 하게 될 것입니다." 왕동자는 사미에게 말했다. "현자 아기사나여, 그대는 아직 다른 사람에게 항복 당한 적이 없는데 무슨 생각으로 스스로 물러섭니까? 현자 아기사나여, 그대가 들은 대로 그대가 외운 대로 '비구가 이 법과 율 안에서 방일하지 않고 수행하고 정근하면 한 마음이 된다'는 그대로를 저에게 말해 보십시오. 만일 제가 알아들으면 좋고, 만일 제가 알아듣지 못하면 저는 다시는 아무 법도 묻지 않겠습니다." 이에 사미 아이나화제는 들은 대로 외운 대로 '비구가 이 법과 율 안에서 방일하지 않고 수행하고 정근하면 한 마음이 된다'는 그대로를 왕동자 기바선나에게 말하였다. 이에 왕동자 기바선나가 말하였다. "현자 아기사나여, 설령 비구가 이 법과 율 안에서 방일하지 않고 수행하고 정근한다고 하더라도 한 마음은 끝내 될 수 없습니다." 왕동자는 이렇게 말하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하직 인사도 하지 않고 떠나 버렸다. 왕동자 기바선나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미 아이나화제는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왕동자 기바선나와 서로 이야기한 것을 모두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께서 들으시고 곧 사미에게 말씀하셨다. "아기사나여, 그만두라. 왕동자 기바선나를 어떻게 하겠는가? 그는 욕심을 부리고 욕심에 집착하여 욕애(欲愛)에 먹히고 욕심에 불타고 있다. 따라서 지금으로서는 욕심을 끊고 욕애를 끊고 욕심의 번열을 끊어 욕지(欲知)가 없고 욕견(欲見)이 없으며 욕각(欲覺)이 없는 경지를, 이 왕동자는 알려고 하고 보려고 하더라도 끝내 그리 될 수 없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아기사나여, 왕동자 기바선나는 언제나 욕심을 부리기 때문이니라. 아기사나여, 마치 코끼리 길들임 말 길들임 소 길들임 사람 길들임의 네 가지 길들임[四調御]이 있는데, 그 중에는 길들이려 해도 길들일 수 없는 둘과 길들이려 하면 길들일 수 있는 둘이 있는 것과 같다. 아기사나여, 네 뜻에는 어떠하냐? 만일 그 둘이 길들이려 해도 길들일 수 없는 것이라면, 길들이지 않았고, 길들이지 못한 상태에 있으며, 훈련받지 않은 그것이 훈련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끝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만일 그 둘이 길들이려 하면 길들일 수 있고 잘 길들일 수 있는 것이라면, 길들일 수 있지만 아직 길들이지 못한 상태에 있고 훈련받지 못한 그것이 훈련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분명 있을 수 있는 일이니라. 이와 같으니 아기사나여, 그만 두라. 왕동자 기바선나를 어떻게 하겠느냐? 그는 욕심을 부리고 욕심에 집착하며 욕애에 먹히고 욕심에 불타고 있다. 그래서 지금으로서는 욕심을 끊고 욕애를 끊으며 욕심에 불타는 것을 끊어 욕지가 없고 욕견이 없으며 욕각이 없는 경지를, 왕동자는 알려고 하고 보려고 하더라도 끝내 그리 될 수 없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아기사나여, 왕동자 기바선나는 언제나 욕심을 부리기 때문이니라. 아기사나여,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큰 돌산이 있었는데, 그 산이 이지러진 데도 없고 뚫린 곳도 없으며, 속이 꽉 차 비지 않았고, 견고하여 움직이지 않으며, 모두 붙어 한 덩이로 되어 있었다. 어떤 두 사람은 그것을 직접 보려고 하였다. 그 중 한 사람은 곧장 산으로 올라갔고, 다른 한 사람은 산 아래 머물러 있었다. 돌산 위로 올라간 사람은 돌산 너머 있는 좋고 편편한 땅과 동산 수풀 맑은 샘 꽃이 피어 있는 못 긴 강과 하수(河水)를 본 뒤에 산 아래 있는 사람에게 말했다. '너는 저 산 너머에 있는 좋고 편편한 땅과 동산 수풀 맑은 샘 꽃이 피어 있는 못 긴 강과 하수가 보이느냐?' 산 밑에 있는 사람이 대답했다. '내가 보기에는 그 너머에 좋고 편편한 땅과 동산 수풀 맑은 샘 꽃이 피어 있는 못 긴 강과 하수가 있을 수 없다.' 이에 돌산 위에 있던 사람은 재빨리 내려와 산 아래 있는 사람을 붙들고 산 위로 얼른 올라가서 물었다. '너는 이 산 너머에 있는 좋고 편편한 땅과 동산 수풀 맑은 샘 꽃이 피어 있는 못 긴 강과 하수가 보이느냐?' 그 사람은 그제서야 비로소 '보인다'고 대답했다. 다시 그 사람에게 물었다. '네가 아까는 그것이 있을 수 없다고 하다가 지금은 보인다고 하니 무슨 까닭인가?' 그 사람은 대답했다. '내가 아까는 산이 가려서 보지 못했다.' 이와 같나니, 아기사나여 그만두라. 왕동자 기바선나를 어떻게 하겠는가? 그는 욕심을 부리고 욕심에 집착하며 욕애에 먹히고 욕심에 불타고 있다. 지금으로서는 욕심을 끊고 욕애를 끊고 욕심의 번열을 끊어 욕지가 없고 욕견이 없으며 욕각이 없는 경지를, 왕동자는 알려고 하고 보려고 하더라도 끝내 그리 될 수 없느니라. 아기사나여, 옛날에 찰리족(刹利族)의 정생왕(頂生王)에게 코끼리 잡는 사람이 있었다. 왕은 그에게 '너 코끼리 잡는 기술자야, 나를 위해 야생 코끼리를 잡아가지고 와서 내게 알려라'고 했다. 그 때 코끼리 잡는 기술자는 왕의 명령을 받고 곧 왕의 코끼리를 타고 들판의 숲으로 갔다. 그는 들판 숲속에서 큰 야생 코끼리를 보고 그것을 잡아 왕의 코끼리 목에 잡아매었다. 왕의 코끼리는 그 야생 코끼리를 끌고 숲 밖으로 나와 궁으로 갔다. 코끼리 잡는 기술자는 정생왕에게 가서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이미 야생 코끼리를 잡아다가 밖에 매어 두었습니다. 왕의 뜻대로 하소서." 정생왕이 명하였다. "훌륭한 코끼리 조련사여, 너는 이제 빨리 이 야생 코끼리를 길들이고 항복받아 길이 잘 든 코끼리로 만들어라. 그리고 잘 길들인 뒤에는 곧 내게 와서 알려라." 이에 훌륭한 코끼리 조련사는 왕의 명령을 받고 아주 큰 막대기를 어깨에 메고 야생 코끼리가 있다는 곳으로 가서, 막대기를 땅에 박고 야생 코끼리의 목을 매어 야생을 좋아하는 코끼리의 마음을 억제하고, 야생에 대한 욕심을 없애고, 야생에 대한 생각에서 생긴 피로를 쉬게 하였다. 그래서 마을을 좋아하게 하고 사람을 따르게 하기 위해 코끼리 조련사는 먼저 음식부터 주었다. 아기사나여, 만일 그 야생 코끼리가 처음부터 코끼리 조련사가 주는 음식을 받아먹으면 그 코끼리 조련사는 곧 이렇게 생각한다. '이 야생 코끼리는 반드시 살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이 큰 야생 코끼리가 처음부터 음식을 받아먹기 때문이다.' 만일 그 야생 코끼리가 처음부터 코끼리 조련사가 주는 음식을 받아먹으면 코끼리 조련사는 부드럽고 상냥한 말로 눕고 일어나며, 가고 오며, 집고 버리며, 굽히고 펴라고 말한다. 만일 그 야생 코끼리가 코끼리 조련사를 따른다면, 부드럽고 상냥한 말로 '눕고 일어나며, 가고 오며, 집고 버리며, 굽히고 펴라'고 하면, 그 말대로 야생 코끼리는 코끼리 조련사가 시키는 대로 따를 것이다. 아기사나여, 만일 그 야생 코끼리가 코끼리 조련사의 명을 따르면, 그 코끼리 조련사는 곧 두 앞다리 두 뒷다리 두 볼기짝 두 옆구리 꼬리 등 목 머리 귀 어금니를 결박하고, 또 그 코를 결박한 뒤에 사람을 시켜 갈고리를 가지고 그 머리 위에 타게 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을 시켜 칼 방패 긴 창 양지창 민눈창 도끼 큰 도끼를 가지고 그 앞에 서게 한다. 코끼리 조련사는 손에 칼을 들고 야생 코끼리 앞에서 '나는 이제 너를 다루어 움직이지 못하게 하리니 너를 다룰 때 절대로 움직이지 말라'고 말한다. 만일 그 야생 코끼리가 코끼리 조련사가 다루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 때 그는 앞다리를 들지 않고 또한 뒷다리도 움직이지 않으며, 두 볼기짝 두 옆구리 꼬리 등 목 머리 귀 어금니 및 코를 모두 움직이지 않는다. 이처럼 야생 코끼리는 코끼리 조련사의 명령을 따라 가만히 있고 움직이지 않느니라. 아기사나여, 만일 그 야생 코끼리가 코끼리 조련사의 명령을 따라 가만히 있고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는 그 때에는 칼과 방패 긴 창 양지창 민눈창 도끼와 큰 고함 소리를 참고, 또 고둥을 불고 북을 치며 종을 치더라도 능히 다 참고 견딘다. 만일 그 야생 코끼리가 그것들을 능히 참고 견딘다면, 그는 그 때에는 길들고, 잘 길들고, 제일로 길들고, 최상으로 길들여져서, 제일 빠르고 위없이 빨라, 왕이 타는 코끼리가 되어 왕의 곡식을 받아먹고, 왕의 코끼리라 일컬어진다. 이와 같이 아기사나여, 만일 때로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 등정각 명행성위 선서 세간해 무상사 도법어 천인사 불중우라 불린다. 그는 이 세상에서 하늘 악마 범천 사문 범지 등 사람에서 하늘에 이르기까지를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으며, 스스로 체험하고 성취하여 노닌다. 그의 설법은 처음도 묘하고 중간도 묘하고 마지막도 또한 묘하다. 뜻도 있고 문채도 있으며, 구족하고 청정하여 범행을 나타낸다. 그의 설법을 거사의 아들이 들으면 거사의 아들은 그것을 듣고는 여래의 설법을 믿게 되고, 그는 그것을 믿은 뒤에는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우느니라. 아기사나여, 그 때 거룩한 제자들은 집에서 나와 밖에서 산다. 이 야생 코끼리가 탐욕을 내고 즐기고 집착하는 것은 숲속에서 살기 때문인 것처럼 아기사나여, 이 하늘과 사람이 탐욕을 내고 즐기고 집착하는 것은 빛깔 소리 냄새 맛 감촉 등 이 5욕 가운데서 살기 때문이다. 여래는 처음으로 그 비구들을 길들일 때 '너희들은 마땅히 몸과 목숨을 청정히 보호하고, 입과 뜻과 목숨을 청정히 보호하라'고 말한다. 만일 거룩한 제자가 몸과 목숨을 청정히 보호하고, 입과 뜻과 목숨을 청정히 보호하면, 여래는 다시 그 비구들을 길들인다. '너희들은 마땅히 안 몸[內身]을 몸 그대로 관찰하고, 나아가 감각[覺]과 마음[心]과 법(法)에 이르기까지 관찰하되 감각과 마음과 법 그대로 관찰하라.' 만일 거룩한 제자들이 몸을 관찰하기를 몸 그대로 하고, 나아가 감각과 마음과 법에 이르기까지 관찰하되 감각과 마음과 법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관찰하면, 이 4념처(念處)는 이른바 거룩한 제자들의 마음 속에서 그 마음을 결박하여 집을 좋아하는 뜻을 제어하고, 집에 대한 욕심을 없애며, 집에 대한 생각에서 생기는 피로를 쉬게 한다. 그래서 바른 법을 좋아하게 하고, 성인의 계를 닦아 익히게 한다. 아기사나여, 마치 코끼리 조련사가 찰리 정생왕의 명령을 받고는 아주 큰 막대기를 오른쪽 어깨에 메고 야생 코끼리가 있는 곳으로 가서, 막대기를 땅에 박고 야생 코끼리 목을 매어 야생을 좋아하는 뜻을 제어하고, 야생에 대한 욕심을 없애고, 야생의 피로를 쉬게 하여 마을을 좋아하게 하고, 사람을 따르게 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아기사나여, 이 4념처는 이른바 거룩한 제자들의 마음 속에서 그 마음을 결박하여 집을 좋아하는 뜻을 제어하고, 집에 대한 욕심을 없애고, 집에 대한 생각에서 생기는 피로를 쉬게 한다. 그래서 바른 법을 좋아하게 하고, 성인의 계를 닦아 익히게 한다. 만일 거룩한 제자들이 안 몸을 관찰하되 몸 그대로 관찰하고, 나아가 감각과 마음과 법에 이르기까지 관찰하되 감각과 마음과 법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관찰하면, 여래는 다시 그 비구들을 길들인다. '너희들은 마땅히 안 몸을 관찰하되 몸 그대로를 관찰하여 욕심과 서로 어울리려는 생각을 내지 말고, 나아가 감각과 마음과 법에 대하여 관찰하되 감각과 마음과 법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관찰하여 법이 아닌 것과 서로 어울리려는 생각을 내지 말라.' 만일 거룩한 제자가 안 몸을 관찰하되 몸 그대로를 관찰하여 욕심과 서로 어울리려는 생각을 내지 않고, 나아가 감각과 마음과 법을 관찰하되 감각과 마음과 법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를 관찰하여 법이 아닌 것과 서로 어울리려는 생각을 내지 않는다면, 이런 거룩한 제자들은 여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니라. 아기사나여, 마치 야생 코끼리가 코끼리 조련사의 부드럽고 상냥한 말을 따라 눕고 일어나며, 가고 오며, 집고 버리며 굽히고 펴고 한다면 이런 야생 코끼리는 코끼리 조련사의 명령을 따르는 것인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아기사나여, 만일 거룩한 제자들이 안 몸을 관찰하되 몸 그대로를 관찰하여 욕심과 서로 어울리려는 생각을 내지 않고 나아가 감각과 마음과 법을 관찰하되 감각과 마음과 법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를 관찰하여 법이 아닌 것과 서로 어울리려는 생각을 내지 않는다면, 이런 거룩한 제자들은 곧 여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니라. 만일 거룩한 제자들이 여래의 가르침을 따르면 여래는 다시 그 비구들을 길들인다. '너희들은 마땅히 욕심을 여의고 착하지 않은 악법을 여의며, 나아가 제 4 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닐라.' 만일 거룩한 제자들이 욕심을 여의고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을 여의며, 나아가 제 4 선을 성취하여 노닐게 되면, 이런 거룩한 제자들은 곧 여래를 따라 머물고 이동하지 않는다. 아기사나여, 마치 야생 코끼리가 코끼리 조련사의 다룸을 좇아 움직이지 않을 때에는 앞다리도 들지 않고, 또한 뒷다리도 움직이지 않으며, 두 볼기짝 두 옆구리 꼬리 등 목 머리 귀 어금니 및 코를 모두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아기사나여, 만일 거룩한 제자들이 욕심을 여의고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을 여의며 나아가 제 4 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닐게 되면, 이런 거룩한 제자들은 곧 여래를 따라 머물고 이동하지 않느니라. 만일 거룩한 제자들이 여래를 따라 머물고 움직이지 않으면, 그들은 그 때에는 능히 굶주림과 목마름 추위 더위 모기 등에 파리 벼룩 바람 햇볕 따위의 시달림을 참고, 욕설과 매질도 능히 참아내며, 몸이 모든 병에 걸려 지극히 고통스럽고 심지어는 목숨이 끊어지려 하더라도 그런 어려움을 다 능히 참고 견뎌낸다. 아기사나여, 마치 야생 코끼리가 코끼리 조련사를 따라 가만히 있고 움직이지 않으면, 그는 그 때에는 칼과 방패 긴 창 양지창 민눈창 도끼와 큰 고함 소리 등을 참고, 또 고둥을 불고 북을 치며 종을 치더라도 다 능히 참고 견디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아기사나여, 만일 거룩한 제자들이 여래를 따라 머물러 움직이지 않으면, 그는 그 때에는 능히 굶주림과 목마름 추위 더위 모기 등에 파리 벼룩 바람 햇볕 따위의 시달림을 참고, 욕설과 매질도 능히 참아내며, 몸이 모든 병에 걸려 지극히 고통스럽고 심지어는 목숨이 끊어지려 하더라도 그런 어려움까지 다 능히 참고 견디느니라. 아기사나여, 만일 거룩한 제자가 여래를 따라 능히 참고 견디면 그는 그 때에는 길들고, 잘 길들고, 제일로 길들고, 최상으로 길들여져서, 제일로 쉬고 최상으로 쉬어, 모든 악과 두려움, 어리석음 및 아첨을 버리고 청정하게 티끌을 없애 때가 없고, 더러움이 없어 부를 만하고 청할 만하며, 공경할 만하고 존중할 만하며, 실로 공양할 만하여 모든 하늘과 인간의 좋은 복밭이 된다. 아기사나여, 마치 야생 코끼리가 잘 참아내면 그는 그 때에는 길들고, 잘 길들고, 제일로 길들고, 최상으로 길들여져서, 제일 빠르고 위없이 빨라, 왕이 타고 다니는 코끼리가 되어 왕의 곡식을 받아먹고, 왕의 코끼리라고 불려지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아기사나여, 만일 거룩한 제자들이 여래를 따라 잘 참고 견뎌내면 그들은 그 때에는 길들고, 잘 길들고, 제일로 길들고, 최상으로 길들여져서, 제일로 쉬고 최상으로 쉬어, 모든 악과 두려움, 어리석음 및 아첨을 버리고 청정하게 티끌을 없애 때가 없고, 더러움이 없어 부를 만하고 청할 만하며, 공경할 만하고 존중할 만하며, 실로 공양할 만하여 모든 하늘과 인간의 좋은 복밭이 되느니라. 아기사나여, 어린 야생 코끼리가 길들지 못하고 죽으면 길들지 못하고 죽었다고 말하며, 젊거나 늙은 야생 코끼리도 길들지 못하고 죽으면 길들지 못하고 죽었다고 말한다. 아기사나여, 어린 거룩한 제자가 길들지 못하고 목숨을 마치면 길들지 못하고 목숨을 마쳤다고 말하며, 젊거나 늙은 거룩한 제자도 길들지 못하고 목숨을 마치면 길들지 못하고 목숨을 마쳤다고 말한다. 아기사나여, 어린 야생 코끼리가 잘 길들여졌다가 죽으면 잘 길들여졌는데 죽었다고 말하고, 젊거나 늙은 야생 코끼리도 잘 길들여졌다가 죽으면 잘 길들여졌는데 죽었다고 말한다. 아기사나여, 어린 거룩한 제자가 잘 길들여졌다가 목숨을 마치면 잘 길들여졌는데 목숨을 마쳤다고 말하고, 젊거나 늙은 거룩한 제자도 잘 길들여졌다가 목숨을 마치면 잘 길들여졌는데 목숨을 마쳤다고 말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사미 아이나화제와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조어지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2,891자이다. 『중아함경 』 제 5 권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모두 8,682자이다.]
38    汝等于我行慈事。莫行怨事 댓글:  조회:2347  추천:1  2015-07-06
汝等于我行慈事。莫行怨事。 阿难。云何弟子于师行怨事。不行慈事。若尊师为弟子说法。怜念愍伤。求义及饶益。求安隐快乐。发慈悲心。是为饶益。是为快乐。是为饶益乐。若彼弟子而不恭敬。亦不顺行。不立于智。其心不趣向法次法。不受正法。违犯师教。不能得定者。如是弟子于师行怨事。不行慈事。 阿难。云何弟子于师行慈事。不行怨事。若尊师为弟子说法。怜念愍伤。求义及饶益。求安隐快乐。发慈悲心。是为饶益。是为快乐。是为饶益乐。若彼弟子恭敬顺行而立于智。其心归趣向法次法。受持正法。不违师教。能得定者。如是弟子于师行慈事。不行怨事。阿难。是故汝等于我行慈事。莫行怨事。所以者何。我不如是说。如陶师作瓦。阿难。我说严急至苦。若有真实者。必能往也。
37    마음챙김의 확립-- 대념처경 댓글:  조회:2062  추천:28  2009-05-07
대념처경 大念處經       마음챙김의 확립(Mahaasatipat*t*haana Sutta, D22)     초기불전연구원 각묵스님이 빠알리어에서 한글로 직접 번역.   경의 차례   I. 서언 II. 몸의 관찰[身隨觀] II-1.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 II-2. 네 가지 자세[四威儀] II-3. 분명하게 알아차림 II-4. 몸의 32가지 부위에 대한 혐오 II-5. 네 가지 근본물질[四大] II-6. 아홉 가지 공동묘지의 관찰 III. 느낌의 관찰[受隨觀] IV. 마음의 관찰[心隨觀] V. 법의 관찰[法隨觀] V-1. 다섯 가지 장애[五蓋] V-2. 다섯 가지 무더기[五蘊] V-3. 여섯 가지 감각장소[六處] V-4.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七覺支] V-5.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 V-5-1.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苦聖諦] V-5-2.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集聖諦] V-5-3. 괴로움의 지멸의 성스러운 진리[滅聖諦] V-5-4. 도닦음의 성스러운 진리[道聖諦] VI. 결어   I. 서언   1-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 세존께서는 꾸루 지방의 깜맛사담마라는 꾸루족들의 읍에 머무셨다. 그곳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부르셨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1-2. “비구들이여, 이 도는 유일한 길이니 중생들의 청정을 위하고 근심과 탄식을 다 건너기 위한 것이며,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사라지게 하고 옳은 방법을 터득하고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處]’이다.”   1-3. “무엇이 네 가지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隨觀]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 되어 머문다.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受隨觀]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 되어 머문다.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心隨觀]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 되어 머문다.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隨觀]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 되어 머문다.”   II. 몸의 관찰[身隨觀]   II-1.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   2-1.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가 숲 속에 가거나 나무 아래에 가거나 외진 처소에 가서 가부좌를 틀고 몸을 곧추세우고 전면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 앉는다. 그는 마음챙겨 숨을 들이쉬고 마음챙겨 숨을 내쉰다. 길게 들이쉬면서 ‘길게 들이쉰다’고 꿰뚫어 알고(pajānāti), 길게 내쉬면서 ‘길게 내쉰다’고 꿰뚫어 안다. 짧게 들이쉬면서 ‘짧게 들이쉰다’고 꿰뚫어 알고, 짧게 내쉬면서 ‘짧게 내쉰다’고 꿰뚫어 안다. ‘온 몸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sikkhati) 온 몸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신행(身行)을 편안히 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신행을 편안히 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II-2. 네 가지 자세[四威儀]   3.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걸어가면서 ‘걷고 있다’고 꿰뚫어 알고, 서있으면서 ‘서있다’고 꿰뚫어 알며, 앉아있으면서 ‘앉아있다’고 꿰뚫어 알고, 누워있으면서 ‘누워있다’고 꿰뚫어 안다. 또 그의 몸이 다른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든 그 자세대로 꿰뚫어 안다.” “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隨觀] 머문다. … 그는 세상에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II-3. 분명하게 알아차림 4.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나아갈 때도 물러날 때도 [자신의 거동을] 분명히 알면서[正知] 행한다(sampajāna-kāri). 앞을 볼 때도 돌아 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구부릴 때도 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가사·발우·의복을 지닐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먹을 때도 마실 때도 씹을 때도 맛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대소변을 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걸으면서·서면서·앉으면서·잠들면서·잠을 깨면서·말하면서·침묵하면서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隨觀] 머문다. …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II-4. 몸의 32가지 부위에 대한 혐오 5-1.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 몸이 여러 가지 부정(不淨)한 것으로 가득 차 있음을 발바닥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며 그리고 머리털에서부터 내려가며 반조한다. 즉 ‘이 몸에는 머리털·몸털·손발톱·이빨·살갗·살·힘줄·뼈·골수·콩팥·염통·간·근막·지라·허파·큰창자·작은창자·위·똥·쓸개즙·가래·고름·피·땀·굳기름·눈물·[피부의기름기·침·콧물·관절활액·오줌 등이 있다’고. 대념처경 주석 2-4. 몸의 32부위   5-2. 비구들이여, 이는 마치 양쪽에 아가리가 있는 자루에 여러 가지 곡식, 즉 밭벼·논벼·콩·완두·기장·현미 등이 가득 담겨 있는데 어떤 눈 밝은 사람 이 그 자루를 풀고 일일이 헤쳐 보면서 ‘이것은 밭벼, 이것은 논벼, 이것은 콩, 이것은 완두, 이것은 기장, 이것은 현미’라 하는 것과 같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여러 가지 부정한 것으로 가득 차 있는 이 몸을 발바닥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며 그리고 머리털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가며 반조한다. 즉 ‘이 몸에는 머리털·몸털·손발톱·이·살갗·살·힘줄·뼈·골수·콩팥·염통·간·근막·지라·허파·큰창자·작은창자·위·똥·쓸개즙·가래·고름·피·땀·굳기름·눈물·[피부의] 기름기·침·콧물·관절활액·오줌 등이 있다’고.”   “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隨觀] 머문다. …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II-5. 네 가지 근본물질[四大]   6.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 몸을 처해진 대로 놓여진 대로 요소[界]별로 고찰한다. ‘이 몸에는 땅[地]의 요소, 물[水]의 요소, 불[火]의 요소, 바람[風]의 요소가 있다’고.   비구들이여, 마치 솜씨 좋은 백정이나 그 조수가 소를 잡아서 각을 뜬 다음 큰길 네 거리에 이를 벌려놓고 앉아있는 것과 같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이 몸을 처해진 대로 놓여진 대로 요소[界]별로 고찰한다. ‘이 몸에는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가 있다’고.”   “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隨觀] 머문다. …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II-6. 아홉 가지 공동묘지의 관찰   7. “다시 비구들이여, ① 비구는 마치 묘지에 버려진, 죽은 지 하루나 이틀 또는 사흘 된 시체가 부풀고 검푸르게 되고 문드러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몸을 그에 비추어 바라본다(upasamharati). ‘이 몸 또한 그와 같고, 그와 같이 될 것이며, 그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고.” “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隨觀] 머문다. …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8. “다시 비구들이여, ② 비구는 마치 묘지에 버려진 시체를 까마귀가 마구 쪼아 먹고, 솔개가 마구 쪼아 먹고, 독수리가 마구 쪼아 먹고, 개가 마구 뜯어먹고, 자칼이 마구 뜯어먹고, 수없이 많은 갖가지 벌레들이 덤벼들어 파먹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몸을 그에 비추어 바라본다. ‘이 몸 또한 그와 같고, 그와 같이 될 것이며, 그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고.” “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隨觀] 머문다. …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9. 다시 비구들이여, ③ 비구는 마치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해골이 되어 살과 피가 묻은 채 힘줄로 얽히어 서로 이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 ④ 해골이 되어 살은 없이 피만 엉긴 채 힘줄로 얽히어 서로 이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 ⑤ 해골이 되어 살과 피는 없고 힘줄만 남아 서로 이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 ⑥ 해골이 되어 힘줄도 사라지고 뼈들이 흩어져서 여기에는 손뼈, 저기에는 발뼈, 또 저기에는 정강이뼈, 저기에는 넓적다리뼈, 저기에는 엉덩이뼈, 저기에는 등뼈, 저기에는 갈빗대, 저기에는 가슴뼈, 저기에는 팔뼈, 저기에는 어깨뼈, 저기에는 목뼈, 저기에는 턱뼈, 저기에는 치골, 저기에는 두개골 등이 사방에 널려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몸을 그에 비추어 바라본다. ‘이 몸도 또한 그와 같고, 그와 같이 될 것이며, 그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고. “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隨觀] 머문다. …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10-1. “다시 비구들이여, ⑦ 비구는 마치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해골이 되어 뼈가 조개껍질 색깔같이 하얗게 백골이 된 것을 보게 될 것이다 … ⑧ 해골이 되어 풍상을 겪어 단지 뼈 무더기가 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 ⑨ 해골이 되었다가 다시 삭아서 티끌로 변한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몸을 그에 비추어 바라본다. ‘이 몸도 또한 그와 같고, 그와 같이 될 것이며, 그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고.”   10-2. “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隨觀] 머문다. 혹은 밖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안팎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法]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그는 ‘몸이 있구나’라고 마음챙김을 잘 확립하나니 지혜만이 있고 마음챙김만이 현전할 때까지. 이제 그는 [갈애와 사견에]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III. 느낌의 관찰[受隨觀]   11-1.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受隨觀] 머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즐거운 느낌을 느끼면서 ‘즐거운 느낌을 느낀다’고 꿰뚫어 안다. 괴로운 느낌을 느끼면서 ‘괴로운 느낌을 느낀다’고 꿰뚫어 안다.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끼면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낀다’고 꿰뚫어 안다. 세간적인 즐거운 느낌을 느끼면서 ‘세간적인 즐거운 느낌을 느낀다’고 꿰뚫어 안다. 출세간적인 즐거운 느낌을 … 세간적인 괴로운 느낌을 … 출세간적인 괴로운 느낌을 … 세간적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 출세간적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끼면서 ‘출세간적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낀다’고 꿰뚫어 안다.”   11-2. “이와 같이 안으로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受隨觀] 머문다. 혹은 밖으로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안팎으로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느낌에서 일어나는 현상[法]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느낌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느낌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그는 ‘느낌이 있구나’라고 마음챙김을 잘 확립하나니 지혜만이 있고 마음챙김만이 현전할 때까지. 이제 그는 [갈애와 사견에]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 머문다.”   IV. 마음의 관찰[心隨觀]   12-1.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心隨觀] 머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① 탐욕이 있는 마음을 탐욕이 있는 마음이라 꿰뚫어 안다. 탐욕을 여읜 마음을 탐욕이 없는 마음이라 꿰뚫어 안다. ② 성냄이 있는 … 성냄을 여읜 … ③ 미혹이 있는 … 미혹을 여읜 … ④ 위축된 … 산란한 … ⑤ 고귀한 … 고귀하지 않은 … ⑥ [아직도] 위가 남아있는 … [더 이상] 위가 없는[無上心] … ⑦ 삼매에 든 … 삼매에 들지 않은 … ⑧ 해탈한 … 해탈하지 않은 마음을 해탈하지 않은 마음이라 꿰뚫어 안다.”   12-2. “이와 같이 안으로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心隨觀] 머문다. 혹은 밖으로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안팎으로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法]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마음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마음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그는 ‘마음이 있구나’라고 마음챙김을 잘 확립하나니 지혜만이 있고 마음챙김만이 현전할 때까지. 이제 그는 [갈애와 사견에]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머문다.”   V. 법의 관찰[法隨觀]   V-1. 다섯 가지 장애[五蓋]   13-1.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隨觀] 머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다섯 가지 장애[五蓋]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다섯 가지 장애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자기에게 감각 욕망이 있을 때 ‘내게 감각 욕망이 있다’고 꿰뚫어 알고, 감각 욕망이 없을 때 ‘내게 감각 욕망이 없다’고 꿰뚫어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감각 욕망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꿰뚫어 알고, 일어난 감각 욕망을 어떻게 제거하는지 꿰뚫어 알며, 어떻게 하면 제거한 감각 욕망이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꿰뚫어 안다.   13-2. 자기에게 악의가 있을 때 ‘내게 악의가 있다’고 꿰뚫어 알고, 악의가 없을 때 ‘내게 악의가 없다’고 꿰뚫어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악의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꿰뚫어 알고, 일어난 악의를 어떻게 제거하는지 꿰뚫어 알며, 어떻게 하면 제거 한 악의가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꿰뚫어 안다.   13-3. 자기에게 해태와 혼침이 있을 때 ‘내게 해태와 혼침이 있다’고 꿰뚫어 알고, 해태와 혼침이 없을 때 ‘내게 해태와 혼침이 없다’고 꿰뚫어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해태와 혼침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꿰뚫어 알고, 일어난 해태와 혼침을 어떻게 제거하는지 꿰뚫어 알며, 어떻게 하면 제거한 해태와 혼침이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꿰뚫어 안다.   13-4. 자기에게 들뜸과 후회가 있을 때 ‘내게 들뜸과 후회가 있다’고 꿰뚫어 알고, 들뜸과 후회가 없을 때 ‘내게 들뜸 과 후회가 없다’고 꿰뚫어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들뜸과 후회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꿰뚫어 알고, 일어난 들뜸과 후회를 어떻게 제거하는지 꿰뚫어 알며, 어떻게 하면 제거한 들뜸과 후회가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꿰뚫어 안다.   13-5. 자기에게 회의적 의심이 있을 때 ‘내게 의심이 있다’고 꿰뚫어 알고, 의심이 없을 때 ‘내게 의심이 없다’고 꿰뚫어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의심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꿰뚫어 알고, 일어난 의심을 어떻게 제거하는지 꿰뚫어 알며, 어떻게 하면 제거한 의심이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꿰뚫어 안다.”   13-6. 이와 같이 안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隨觀] 머문다. 혹은 밖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안팎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법에서 일어나는 현상[法]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법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법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그는 ‘법이 있구나’라고 마음챙김을 잘 확립하나니 지혜만이 있고 마음챙김만이 현전할 때까지. 이제 그는 [갈애와 사견에]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다섯 가지 장애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V-2. 다섯 가지 무더기[五蘊]   14.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다섯 가지 취착하는 무더기[五取蘊]들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隨觀] 머문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다섯 가지 취착하는 무더기들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이것이 물질이다. 이것이 물질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물질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느낌이다. 이것이 느낌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느낌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인식이다. 이것이 인식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인식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상카라[行]들이다. 이것이 상카라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상카라들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알음알이다. 이것이 알음알이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알음알이의 사라짐이다’라고 [관찰하며 머문다].   이와 같이 안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隨觀] 머문다. …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다섯 가지 취착하는 무더기들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V-3. 여섯 가지 감각장소[六處]   15.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여섯 가지 안팎의 감각장소[六內外處]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隨觀] 머문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여섯 가지 안팎의 감각장소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눈을 꿰뚫어 안다. 형상을 꿰뚫어 안다. 이 둘을 조건으로[緣] 일어난 족쇄도 꿰뚫어 안다. 전에 없던 족쇄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꿰뚫어 알고, 일어난 족쇄를 어떻게 제거하는지 꿰뚫어 알며, 어떻게 하면 제거한 족쇄가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꿰뚫어 안다. 귀를 꿰뚫어 안다. 소리를 꿰뚫어 안다. … 코를 꿰뚫어 안다. 냄새를 꿰뚫어 안다. … 혀를 꿰뚫어 안다. 맛을 꿰뚫어 안다. … 몸을 꿰뚫어 안다. 감촉을 꿰뚫어 안다. … 마노를 꿰뚫어 안다. 이 둘을 조건으로 일어난 족쇄도 꿰뚫어 안다. 법을 꿰뚫어 안다. 전에 없던 족쇄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꿰뚫어 알고, 일어난 족쇄를 어떻게 제거하는지 꿰뚫어 알며, 어떻게 하면 제거한 족쇄가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꿰뚫어 안다.   이와 같이 안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隨觀] 머문다. …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여섯 가지 안팎의 감각장소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V-4.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七覺支]   16-1.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七覺支]들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들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자기에게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구성요소[念覺支]가 있을 때 ‘내게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있다’고 꿰뚫어 알고,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없을 때 ‘내게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없다’고 꿰뚫어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꿰뚫어 알고, 일어난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어떻게 닦아서 성취하는지 꿰뚫어 안다.   16-2. 자기에게 법을 간택하는 깨달음의 구성요소[擇法覺支]가 있을 때 … 정진의 깨달음의 구성요소[精進覺支]가 있을 때 … 희열의 깨달음의 구성요소[喜覺支]가 있을 때 … 편안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輕安覺支]가 있을 때 … 삼매의 깨달음의 구성요소[定覺支]가 있을 때 … 평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捨覺支]가 있을 때 ‘내게 평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있다’고 꿰뚫어 알고, 평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없을 때 ‘내게 평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없다’고 꿰뚫어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평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꿰뚫어 알고, 일어난 평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어떻게 닦아서 성취하는지 꿰뚫어 안다.   16-3. 이와 같이 안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隨觀] 머문다. …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들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V-5.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   17.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隨觀] 머문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무는가? 여기 비구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지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지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V-5-1.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苦聖諦]   18-1.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인가? 태어남도 괴로움이다. 늙음도 괴로움이다. 병도 괴로움이다. 죽음도 괴로움이다.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도 괴로움이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괴로움이다. 요컨대 다섯 가지 취착하는 무더기[五取蘊]들 자체가 괴로움이다.”   18-2.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태어남인가? 이런 저런 중생들의 무리로부터 이런 저런 중생들의 태어남, 출생, 도래함, 생김, 탄생, 오온의 나타남, 감각장소[處]를 획득함 ―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태어남이라 한다.”   18-3.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늙음인가? 이런 저런 중생들의 무리 가운데서 이런 저런 중생들의 늙음, 노쇠함, 부서진 [이빨], 희어진 [머리털], 주름진 피부, 수명의 감소, 감각기능[根]의 허약함 ― 이를 일러 늙음이라 한다.”   18-4.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죽음인가? 이런 저런 중생들의 무리로부터 이런 저런 중생들의 종말, 제거됨, 부서짐, 사라짐, 사망, 죽음, 서거, 오온의 부서짐, 시체를 안치함, 생명기능[命根]의 끊어짐 ― 이를 일러 죽음이라 한다.”   18-5.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근심인가? 비구들이여, 이런 저런 불행을 만나고 이런 저런 괴로운 현상에 맞닿은 사람의 근심, 근심함, 근심스러움, 내면의 근심, 내면의 슬픔 ― 이를 일러 근심이라 한다.”   18-6.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탄식인가? 비구들이여, 이런 저런 불행을 만나고 이런 저런 괴로운 법에 맞닿은 사람의 한탄, 비탄, 한탄함, 비탄함, 한탄스러움, 비탄스러움 ― 이를 일러 탄식이라 한다.”   18-7.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육체적 고통인가? 비구들이여, 몸의 고통, 몸의 불편함, 몸에 맞닿아 생긴 고통스럽고 불편한 느낌 ― 이를 일러 육체적 고통이라 한다.”   18-8.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정신적 고통인가? 비구들이여, 정신적인 불편함, 마음에 맞닿아 생긴 고통스럽고 불편한 느낌 ― 이를 일러 정신적 고통이라 한다.”   18-9.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절망인가? 비구들이여, 이런 저런 불행을 만나고 이런 저런 괴로운 법에 맞닿은 사람의 실망, 절망, 실망함, 절망함 ― 이를 일러 절망이라 한다.”   18-10.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인가? 비구들이여, 태어나기 마련인 중생들에게 이런 바람이 일어난다. ‘오 참으로 우리에게 태어나는 법이 있지 않기를! 참으로 그 태어남이 우리에게 오지 않기를!’이라고. 그러나 이것은 원함으로서 얻어지지 않는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이것도 괴로움이다. 비구들이여, 늙기 마련인 중생들에게 … 병들기 마련인 중생들에게 … 죽기 마련인 중생들에게 …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을 하기 마련인 중생들에게 이런 바람이 일어난다. ‘오 참으로 우리에게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하는 법이 있지 않기를! 참으로 그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우리에게 오지 않기를!’이라고. 그러나 이것은 원함으로서 얻어지지 않는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이것도 역시 괴로움이다.”   18-11.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요컨대 다섯 가지 취착하는 무더기[五取蘊]들 자체가 괴로움인가? 그것은 취착하는 물질의 무더기[色取蘊], 취착하는 느낌의 무더기[受取蘊], 취착하는 인식의 무더기[想取蘊], 취착하는 상카라들의 무더기[行取蘊], 취착하는 알음알이의 무더기[識取蘊]이다. 비구들이여, 요컨대 취착하는 이 다섯 가지 무더기들 자체가 괴로움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라 한다.”   V-5-2.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集聖諦]   19-1.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苦集聖諦]인가? 그것은 갈애이니,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고 환희와 탐욕이 함께 하며 여기저기서 즐기는 것이다. 즉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慾愛], 존재에 대한 갈애[有愛],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갈애[無有愛]가 그것이다.”   19-2. “다시 비구들이여, 이런 갈애는 어디서 일어나서 어디서 자리 잡는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 있으면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는다. 그러면 세상에서 어떤 것이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인가? 눈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귀는 … 코는 … 혀는 … 몸은 … 마노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고 여기서 자리 잡는다. 형상은 … 소리는 … 냄새는 … 맛은 … 감촉은 … [마노의 대상인] 법[法]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고 여기서 자리 잡는다. 눈의 알음알이는 … 귀의 알음알이는 … 코의 알음알이는 … 혀의 알음알이는 … 몸의 알음알이는 … 마노의 알음알이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고 여기서 자리 잡는다.”   19-3. “눈의 감각접촉[觸]은 … 귀의 감각접촉은 … 코의 감각접촉은 … 혀의 감각접촉은 … 몸의 감각접촉은 … 마노의 감각접촉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고 여기서 자리 잡는다. 눈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 귀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 코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 혀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 몸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 마노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고 여기서 자리 잡는다. 눈의 인식은 … 귀의 인식은 … 코의 인식은 … 혀의 인식은 … 몸의 인식은 … 마노의 인식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고 여기서 자리 잡는다.”   19-4. “눈의 의도는 … 귀의 의도는 … 코의 의도는 … 혀의 의도는 … 몸의 의도는 … 마노의 의도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고 여기서 자리 잡는다. 눈의 갈애는 … 귀의 갈애는 … 코의 갈애는 … 혀의 갈애는 … 몸의 갈애는 … 마노의 갈애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고 여기서 자리 잡는다. 눈의 일으킨 생각[尋]은 … 귀의 일으킨 생각은 … 코의 일으킨 생각은 … 혀의 일으킨 생각은 … 몸의 일으킨 생각은 … 마노의 일으킨 생각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고 여기서 자리 잡는다. 눈의 지속적인 고찰[伺]은 … 귀의 지속적인 고찰은 … 코의 지속적인 고찰은 … 혀의 지속적인 고찰은 … 몸의 지속적인 고찰은 … 마노의 지속적인 고찰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고 여기서 자리 잡는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라 한다.”   V-5-3. 괴로움의 지멸의 성스러운 진리[滅聖諦]   20-1.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의 지멸의 성스러운 진리[苦滅聖諦]인가? 갈애가 남김없이 빛바래어 지멸함, 버림, 놓아버림, 벗어남, 집착 없음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지멸의 성스러운 진리라 한다.”   20-2. “다시 비구들이여, 그런 이 갈애는 어디서 없어지고 어디서 지멸되는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 있으면 거기서 이 갈애는 없어지고 거기서 지멸된다. 그러면 세상에서 어떤 것이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인가? 눈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귀는 … 코는 … 혀는 … 몸은 … 마음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없어지고 여기서 지멸된다. 형상은 … 소리는 … 냄새는 … 맛은 … 감촉은 … [마노의 대상인] 법[法]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없어지고 여기서 지멸된다. 눈의 알음알이는 … 귀의 알음알이는 … 코의 알음알이는 … 혀의 알음알이는 … 몸의 알음알이는 … 마노의 알음알이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없어지고 여기서 지멸된다.”   20-3. “눈의 감각접촉은 … 귀의 감각접촉은 … 코의 감각접촉은 … 혀의 감각접촉은 … 몸의 감각접촉은 … 마노의 감각접촉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없어지고 여기서 지멸된다. 눈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 귀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 코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 혀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 몸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 마노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없어지고 여기서 지멸된다. 눈의 인식은 … 귀의 인식은 … 코의 인식은 … 혀의 인식은 … 몸의 인식은 … 마노의 인식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없어지고 여기서 지멸된다.”   20-4. “눈의 의도는 … 귀의 의도는 … 코의 의도는 … 혀의 의도는 … 몸의 의도는 … 마노의 의도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없어지고 여기서 지멸된다. 눈의 갈애는 … 귀의 갈애는 … 코의 갈애는 … 혀의 갈애는 … 몸의 갈애는 … 마노의 갈애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없어지고 여기서 지멸된다. 눈의 일으킨 생각은 … 귀의 일으킨 생각은 … 코의 일으킨 생각은 … 혀의 일으킨 생각은 … 몸의 일으킨 생각은 … 마노의 일으킨 생각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없어지고 여기서 지멸된다. 눈의 지속적인 고찰은 … 귀의 지속적인 고찰은 … 코의 지속적인 고찰은 … 혀의 지속적인 고찰은 … 몸의 지속적인 고찰은 … 마노의 지속적인 고찰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없어지고 여기서 지멸된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지멸의 성스러운 진리라 한다.”   V-5-4. 도닦음의 성스러운 진리[道聖諦]   21-1.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의 지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의 성스러운 진리[苦滅道聖諦]인가? 그것은 바로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도[八支聖道]이니, 즉 바른 견해[正見], 바른 사유[正思惟], 바른 말[正語], 바른 행위[正業], 바른 생계[正命], 바른 정진[正精進], 바른 마음챙김[正念], 바른 삼매[正定]이다.”   21-2.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견해[正見]인가? 비구들이여, 괴로움에 대한 지혜, 괴로움의 일어남에 대한 지혜, 괴로움의 지멸에 대한 지혜, 괴로움의 지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에 대한 지혜 ― 이를 일러 바른 견해라 한다.”   21-3.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사유[正思惟]인가? 비구들이여, 출리에 대한 사유, 악의 없음에 대한 사유, 해코지 않음[不害]에 대한 사유 ― 이를 일러 바른 사유라 한다.”   21-4.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말[正語]인가? 비구들이여, 거짓말을 삼가하고 중상모략을 삼가하고 욕설을 삼가하고 잡담을 삼가하는 것 ― 이를 일러 바른 말이라 한다.”   21-5.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행위[正業]인가? 비구들이여, 살생을 삼가하고 도둑질을 삼가하고 삿된 음행을 삼가하는 것 ― 이를 일러 바른 행위라 한다.”   21-6.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생계[正命]인가?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삿된 생계를 제거하고 바른 생계로 생명을 영위한다. ―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바른 생계라 한다.”   21-7.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정진[正精進]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악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을 일어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의욕을 생기게 하고 정진하고 힘을 내고 마음을 다잡고 애를 쓴다. 이미 일어난 사악하고 해로운 법들을 제거하기 위하여 의욕을 생기게 하고 정진하고 힘을 내고 마음을 다잡고 애를 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유익한 법[善法]들을 일어나도록 하기 위해서 의욕을 생기게 하고 정진하고 힘을 내고 마음을 다잡고 애를 쓴다. 이미 일어난 유익한 법들을 지속시키고 사라지지 않게 하고 증장시키고 충만하게 하고 개발하기 위해서 의욕을 생기게 하고 정진하고 힘을 내고 마음을 다잡고 애를 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바른 정진이라 한다.”   21-8.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마음챙김[正念]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隨觀]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며 머문다. 느낌들에서 … 마음에서 …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隨觀]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며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바른 마음챙김이라 한다.”   21-9.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삼매[正定]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욕망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을 떨쳐버린 뒤, 일으킨 생각[尋]과 지속적인 고찰[伺]이 있고 떨쳐버렸음에서 생겼고, 희열[喜, pīti]과 행복[樂, sukha]이 있는 초선(初禪)에 들어 머문다.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을 가라앉혔기 때문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자기 내면의 것이고, 확신(sampasādana)이 있으며, 마음의 단일한 상태이고,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이 없고,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二禪)에 들어 머문다. 희열이 빛바랬기 때문에 평온하게 머물고,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며[正念正知] 몸으로 행복을 경험한다. 이를 두고 성자들이 ‘평온하게 마음챙기며 행복하게 머문다’고 묘사하는 제3선(三禪)에 들어 머문다.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아울러 그 이전에 이미 기쁨과 슬픔을 없앴으므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며, 평온으로 인해 마음챙김이 청정한[捨念淸淨] 제4선(四禪)에 들어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바른 삼매라 한다.”   21-10. “이와 같이 안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隨觀] 머문다. 혹은 밖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안팎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법들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법들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법들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그는 ‘법이 있구나’라고 마음챙김을 잘 확립하나니 지혜만이 있고 마음챙김만이 현전할 때까지. 이제 그는 [갈애와 사견에]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VI. 결어   22. “비구들이여, 누구든지 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處]을 이와 같이 칠 년을 닦는 사람은 두 가지 결과 중의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지금 여기서 구경지(究竟智)를 얻거나, 취착의 자취가 남아 있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경지[不還果]를 기대할 수 있다.   비구들이여, 칠 년은 그만두고 누구든지 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이와 같이 육 년을 닦는 사람은 … 오 년을 … 사 년을 … 삼 년을 … 이 년을 … 일년은 그만두고 누구든지 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이와 같이 일곱 달을 닦는 사람은 두 가지 결과 중의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지금 여기서 구경지를 얻거나, 취착의 자취가 남아 있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경지를 기대할 수 있다.   일곱 달은 그만두고 누구든지 여섯 달을 … 다섯 달을 … 네 달을 … 세 달을 … 두 달을 … 한 달을 … 반달을 … 반달은 그만두고 누구든지 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이와 같이 칠 일을 닦는 사람은 두 가지 결과 중의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지금 여기서 구경지를 얻거나, 취착의 자취가 남아 있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경지를 기대할 수 있다.”   “‘비구들이여, 이 도는 유일한 길이니 중생들의 청정을 위하고 근심과 탄식을 다 건너기 위한 것이며,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사라지게 하고 옳은 방법을 터득하고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處]이다.’라고 설한 것은 이것을 반연하여 설하였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설하셨다. 그 비구들은 마음이 흡족해져서 세존의 설법을 기뻐하였다. (대념처경 끝)
36    汝不應爾。謂汝從呧至吠 댓글:  조회:1949  추천:46  2009-01-31
170) 앵무경(鸚鵡經)1) 제 4 [제4 분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적에 승림급고독원(勝林給孤獨園)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는 밤이 지나고 이른 새벽이 되자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사위성에 들어가 밥을 비실 때에 앵무 마납(鸚鵡摩納)2)의 집으로 가셨다. 이 때 도제(都提)의 아들 앵무 마납은 볼 일이 있어 밖에 나가고 집에 없었다. 그 때 도제의 아들 앵무 마납의 집에 있던 흰 개가 큰 평상 위에 올라가서 금쟁반에 담긴 밥을 먹고 있다가, 멀리 세존께서 오시는 것을 보고 곧 짖었다.  1) 이 경의 이역본으로 송(宋) 시대 천식재(天息災)가 한역한 『분별선악보응경(分別善惡報應經) 』 실역(失譯) 『불설도 조경(佛說兜調經) 』 유송(劉宋) 시대 구나발타라가 한역한 『불설앵무경(佛說鸚鵡經) 』 수(隋) 시대 구담범지가 한역한 『 불위수가장자설업보차별경(佛爲首迦長者說業報差別經) 』 송 시대 시호(施護)가 한역한 『불설정의우바새소문경(佛說淨意優婆 塞所問經) 』이 있다. 2) 앵무는 이름이고 마납(摩納, m nava)은 바라문 동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앵무는 바라문 도제(都提, Todeyya)의 아들이 다. 세존께서는 흰 개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그래서는 안 된다. 으르렁거리다가 짖기까지 하는구나." 흰 개는 그 말을 듣고 몹시 성질을 부리다가 평상에서 내려와 나무더미 주변으로 가더니 시름에 잠겨 누웠다. 조금 뒤 도제의 아들 앵무 마납은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크게 성질을 부리고는 평상에서 내려와 나무더미 주변에 가서 시름에 잠겨 누워 있는 흰 개를 보고 집안 사람에게 물었다. "누가 우리 개를 건드렸기에 개가 몹시 성이 나서 평상에서 내려와 나무더미 주변에 가서 시름에 잠겨 누웠는가?" 집안 사람들이 대답하였다. "저희들이 저 흰 개를 건드려 몹시 성나게 하고, 평상에서 내려와 나무더미 주변에 가서 시름하면서 누워 있게 한 것이 아닙니다. 마납께서는 마땅히 아셔야 합니다. 오늘 사문 구담(瞿曇)께서 밥을 빌러 오셨을 때 저 흰 개가 그 분을 보고 곧 쫓아가며 짖었습니다. 사문 구담께서는 흰 개를 보고 '너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는 으르렁거리더니 짖기까지 하는구나'라고 하셨습니다. 마납이시여, 그 때문에 저 흰 개가 몹시 성이나 평상에서 내려와 나무더미 주변으로 가서 시름하며 누워 있는 것입니다." 도제의 아들 앵무 마납은 이 말을 듣고 화를 발칵 내며 세존을 모함하고, 세존을 비방하고, 세존을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이렇게 사문 구담을 모함하고 비방하고 떨어뜨리려는 생각으로 곧 사위성을 나가 승림급고독원으로 갔다. 그 때 세존께서는 한량없는 대중에게 앞뒤로 둘러싸여 설법하고 계셨다. 세존께서는 멀리서 도제의 아들 앵무 마납이 오는 것을 보고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도제의 아들 앵무 마납이 오는 것이 보이느냐?" "예, 보입니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도제의 아들 앵무 마납은 이제 목숨을 마치면 팔을 굽혔다 펴는 짧은 시간 내에 틀림없이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왜냐 하면 그는 내게 몹시 화를 내었기 때문이다. 어떤 중생이라도 마음으로 크게 화를 내면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지옥에 태어나게 된다." 이 때 도제의 아들 앵무 마납이 부처님께 나아가 말했다. "사문 구담이여, 오늘 우리 집에 와서 밥을 빌었습니까?" 세존께서는 대답하셨다. "내가 오늘 너의 집에 가서 밥을 빌었다." "구담이여, 우리 집 흰 개를 보고 무슨 말을 하였기에 우리 개가 몹시 성이 나서 평상에서 내려와 나무더미 주변에 가서 시름하며 누워 있는 겁니까?" 세존께서는 대답하셨다. "나는 오늘 이른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사위성에 들어가 밥을 빌러 이집 저집 다니다가 너의 집에 가서 밥을 빌게 되었다. 그 때 흰 개가 멀리서 내가 오는 것을 보고 짖기에 나는 그 흰 개를 보고 말했다. '너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는 으르렁거리더니 짖기까지 하는구나.' 그랬더니, 그 흰 개가 몹시 성을 내며 평상에서 내려와 나무더미 주변으로 가서 시름하며 누웠다." 앵무 마납이 세존에게 여쭈었다. "저 흰 개는 전생에 나와 어떤 관계였습니까?"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만두라, 그만두라. 마납아, 부디 내게 묻지 말라. 네가 그것을 들으면 틀림없이 언짢아 할 것이다." 앵무 마납은 두 번 세 번 세존에게 여쭈었다. "저 흰 개는 전생에 나와 어떤 관계였습니까?" 세존께서도 또한 두 번 세 번 말씀하셨다. "그만두라, 그만두라. 마납아, 부디 내게 묻지 말라. 네가 그것을 들으면 틀림없이 언짢아 할 것이다." 세존께서는 다시 마납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두 번 세 번 내게 묻기를 그치지 않는구나. 마납아, 마땅히 알라. 저 흰 개는 전생에 네 아버지였고 이름은 도제(都提)3)였느니라." 3) 코살라국에 살았던 유명한 바라문이다. 앵무 마납은 이 말을 듣고 몇 배나 더 화가 나서 세존을 모함하고, 세존을 비방하고, 세존을 떨어뜨리려 하였다. 이렇게 사문 구담을 모함하고 비방하고 떨어뜨리려는 생각으로 세존께 말하였다. "우리 아버지는 크게 보시를 행하였고, 큰 사당을 지었으니,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서는 바로 범천에 나셨을 것입니다. 그러니 무슨 인연으로 저 하천한 개로 태어났겠습니까?"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네 아버지 도제는 증상만(增上慢) 때문에 저 하천한 개로 태어났느니라. 범지로서 증상만을 가지고서 그 생을 마치면 여섯 곳에 태어나니 닭 개 돼지 승냥이 다섯째는 나귀 여섯째는 지옥이라네. 앵무 마납아, 만일 네가 내 말을 믿지 못하겠거든 너는 돌아가 흰 개에게 '흰 개야, 만일 전생에 내 아버지였다면 저 큰 평상 위로 돌아가거라'고 말해 보라. 마납아, 그러면 그 흰 개는 반드시 평상 위로 올라갈 것이다. 그리고 '흰 개야, 만일 네가 전생에 내 아버지였다면 다시 저 금쟁반에 담긴 밥을 먹거라'고 말해 보라. 마납아, 그러면 그 흰 개는 반드시 또 금쟁반의 밥을 먹을 것이다. 그리고 또 '만일 네가 전생에 내 아버지였다면 내가 모르고 있는 금 은 수정 등의 보물을 숨겨 둔 장소를 내게 가르쳐다오'라고 말해 보라. 마납아, 그 흰 개는 반드시 그가 이전에 가졌던 금 은 수정 등의 보물이 숨겨진 장소를 너에게 가르쳐 줄 것이다. 또 그것은 네가 모르던 것이리라." 이에 앵무 마납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잘 받아 가져 외웠으며, 세존의 주위를 돌고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 흰 개에게 말했다. "흰 개야, 만일 네가 전생에 내 아버지였다면 저 큰 평상 위로 돌아가거라." 그러자 흰 개는 곧 큰 평상 위로 돌아갔다. "흰 개야, 만일 네가 전생에 내 아버지였다면 저 금쟁반에 담긴 밥을 다시 먹거라." 그러자 흰 개는 곧 돌아가 금쟁반에 담긴 밥을 먹었다. "만일 네가 전생에 내 아버지였다면 아버지가 예전에 가졌던 금 은 수정 등의 보물이 숨겨진 내가 모르는 장소를 가르쳐다오." 흰 개는 곧 큰 평상 위에서 내려와 전생에 잠을 자던 방으로 가서 입과 발로 침상의 네 다리 밑을 파헤쳤다. 앵무 마납은 그 곳에서 많은 보물을 얻었다. 이에 도제의 아들 앵무 마납은 뜻밖의 보물을 얻고, 매우 기뻐하며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하고는 승림급고독원을 향해 두 번 세 번 큰 소리로 세존을 찬탄하였다. "사문 구담의 말씀은 거짓이 아니다. 사문 구담의 말씀은 진실이다. 사문 구담의 말씀은 참되다." 이렇게 두 번 세 번 찬탄한 뒤에 사위성을 나서 승림급고독원으로 갔다. 그 때 세존께서는 한량없는 대중에게 앞뒤로 둘러싸여 설법하고 계셨다. 세존께서는 멀리서 앵무 마납이 오는 것을 보시고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앵무 마납이 오는 것이 보이느냐?" "예, 보입니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앵무 마납은 이제 목숨을 마치면 팔을 굽혔다 펴는 짧은 시간 내에 틀림없이 좋은 곳으로 갈 것이다. 왜냐 하면 그는 나에 대해 지극히 착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중생이라도 착한 마음을 가지면 반드시 좋은 곳으로 가서 하늘에 태어나게 될 것이다." 그 때 앵무 마납은 부처님께 나아가 문안드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어떻더냐, 마납아. 그 흰 개가 내 말대로 하더냐?" "구담이시여, 진실로 그 말씀과 같았습니다. 구담이시여, 저는 다시 여쭐 말씀이 있습니다. 들어 주신다면 감히 여쭙겠습니다." "네 마음대로 물으라." "구담이시여, 어떤 인연으로 저 중생들은 다 같이 사람 몸을 받고도 지위에 높고 낮음이 있고, 얼굴이 묘하고 묘하지 않습니까? 무엇 때문입니까? 구담이시여, 제가 살펴보니 단명하는 자와 장수하는 자가 있고, 병이 많은 이와 병이 적은 이가 있으며, 얼굴이 단정한 자와 얼굴이 단정하지 못한 자가 있고, 위덕이 없는 자와 위덕이 있는 자가 있으며, 비천한 종족과 존귀한 종족이 있고, 재물이 없는 자와 재물이 있는 자가 있으며, 나쁜 지혜를 가진 자와 착한 지혜를 가진 자가 있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저 중생들은 자기가 행한 업으로 말미암아, 업에 따라 과보를 받는다. 업을 인연하고 업을 의지하여, 업에 따른 장소에서 중생은 그 업에 따라 높아지기도 하고 낮아지기도 하며, 묘하고 묘하지 않은 곳에 태어난다." 앵무 마납이 세존께 여쭈었다. "사문 구담의 말씀은 너무 간략하고 자세하지 않아 저는 알지 못하겠습니다. 원컨대 사문 구담이시여, 자세히 말씀하시어 저로 하여금 그 뜻을 알게 하소서."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마납아, 자세히 듣고 잘 기억하라. 내가 너를 위해 자세히 분별해서 설명해 주리라." "예, 분부를 받들어 경청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납아, 무슨 인연으로 어떤 남자나 여자는 수명이 지극히 짧은가? 어떤 남자나 여자는 생물을 죽인다. 그들은 지극히 흉악하여 피를 마시고 해칠 뜻을 가지며, 언제나 모질어 모든 중생과 나아가 곤충에 이르기까지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 그들은 이 업을 빠짐 없이 받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날 것이요, 사람으로 태어나더라도 그 수명이 지극히 짧을 것이다. 왜냐 하면 이 길은 짧은 수명을 받나니, 이른바 그 남자나 여자는 지극히 흉악하여 생물을 죽이고 피를 마셨기 때문이다. 마납아, 마땅히 알라. 이런 업에는 이런 갚음[報]이 있느니라. 마납아, 무슨 인연으로 어떤 남자나 여자는 수명이 지극히 긴가? 혹 어떤 남자나 여자는 살생을 여의고 살생을 끊는다. 그들은 칼이나 막대기를 버리고, 제 자신이나 남에 대해 부끄러움을 가지며,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 있어 모든 중생들은 물론 나아가 곤충에 이르기까지도 이익을 준다. 그들은 이 업을 빠짐 없이 받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좋은 곳으로 올라가 하늘에 날 것이요, 혹 사람으로 태어나더라도 그 수명이 지극히 길 것이다. 왜냐 하면 이 길은 긴 수명을 받나니, 그 남자나 여자는 살생을 여의고 살생을 끊었기 때문이다. 마납아, 마땅히 알라. 이런 업에는 이런 갚음이 있느니라. 마납아, 무슨 인연으로 어떤 남자나 여자는 질병이 많은가? 혹 어떤 남자 나 여자는 중생을 못살게 군다. 그들은 혹은 주먹으로, 혹은 막대기나 돌로, 혹은 칼이나 몽둥이로 중생을 못살게 군다. 그들은 이 업을 남김 없이 받아 몸이 무너지고 목슴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날 것이요, 혹 사람으로 태어나더라도 질병이 많을 것이다. 왜냐 하면 이 길은 많은 질병을 받나니, 그 남자나 여자는 중생을 못살게 굴었기 때문이니라. 마납아, 마땅히 알라. 이런 업에는 이런 갚음이 있느니라. 마납아, 무슨 인연으로 어떤 남자나 여자는 질병이 없는가? 혹 어떤 남자나 여자는 중생을 못살게 굴지 않는다. 그들은 주먹으로, 막대기 돌이나 칼이나 몽둥이로 중생을 못살게 굴지 않는다. 그들은 이 업을 빠짐 없이 받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좋은 곳으로 올라가 하늘에 날 것이요, 혹 사람으로 태어나더라도 질병이 없을 것이다. 왜냐 하면 이 길은 질병 없음을 받나니, 이른바 그 남자나 여자는 중생을 못살게 굴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마납아, 마땅히 알라. 이런 업에는 이런 갚음이 있느니라. 무슨 인연으로 어떤 남자나 여자는 형체가 단정하지 못한가? 혹 어떤 남자나 여자는 성질이 급하고 번민이 많다. 그들은 조금만 말을 들어도 곧 몹시 화를 내고 증오와 질투로 괴로워하며 여러 사람들과 다툰다. 그들은 이 업을 빠짐 없이 받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날 것이요, 혹 사람으로 태어나더라도 형체가 단정하지 못할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이 길은 단정하지 못한 형체를 받나니, 이른바 그 남자나 여자는 성질이 급하고 번민이 많았기 때문이다. 마납아, 마땅히 알라. 이런 업에는 이런 갚음이 있느니라. 마납아, 무슨 인연으로 어떤 남자나 여자는 형체가 단정한가? 혹 어떤 남자나 여자는 성질이 급하지 않고 번민도 많지 않다. 그들은 부드러운 말을 듣건 추악하고 나쁜 말을 듣건 몹시 화내지 않고, 미워하거나 질투하고 걱정하지 않으며, 여러 사람들과 다투지도 않는다. 그들은 이 업을 빠짐 없이 받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좋은 곳으로 올라가 하늘에 날 것이요, 혹 사람으로 태어나더라도 형체가 단정할 것이다. 왜냐 하면 이 길은 단정한 형체를 받나니, 이른바 그 남자나 여자는 성질이 급하지 않고 번민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납아, 마땅히 알라. 이런 업에는 이런 갚음이 있느니라. 마납아, 무슨 인연으로 어떤 남자나 여자는 위덕(威德)이 없는가? 혹 어떤 남자나 여자는 속으로 질투를 품는다. 그들은 남이 공양과 공경을 받는 것을 보고는 곧 질투를 내며, 혹 남이 물건을 가진 것을 보면 곧 내 소유로 만들고 싶어 한다. 그들은 이 업을 빠짐없이 받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날 것이요, 혹 사람으로 태어나더라도 위덕이 없을 것이다. 왜냐 하면 이 길은 위덕 없음을 받나니, 이른바 그 남자나 여자는 속으로 질투를 품었기 때문이다. 마납아, 마땅히 알라. 이런 업에는 이런 갚음이 있느니라. 마납아, 무슨 인연으로 어떤 남자나 여자는 큰 위덕이 있는가? 혹 어떤 남자나 여자는 질투하지 않는다. 그들은 남이 공양과 공경을 받는 것을 보아도 질투를 내지 않으며, 혹 남이 물건을 가진 것을 보아도 내 소유로 만들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 업을 빠짐 없이 받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좋은 곳으로 올라가 하늘에 날 것이요, 혹 사람으로 태어나더라도 큰 위덕이 있을 것이다. 왜냐 하면 이 길은 위덕을 받나니, 이른바 그 남자나 여자는 질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납아, 마땅히 알라. 이런 업에는 이런 갚음이 있느니라. 마납아, 무슨 인연으로 어떤 남자나 여자는 비천한 종족으로 태어나는가? 혹 어떤 남자나 여자는 매우 방자하고 거만하다. 그들은 공경해야 할 사람을 공경하지 않고, 소중히 여겨야 할 사람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며, 귀하게 여겨야 할 사람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받들어야 할 사람을 받들지 않으며, 공양해야 할 사람을 공양하지 않고, 길을 비켜 주어야 할 사람에게 길을 비켜 주지 않으며, 자리를 내주어야 할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지 않고, 합장하고 절하며 문안드려야 할 사람에게 합장하고 절하며 문안드리지 않는다. 그들은 이 업을 빠짐 없이 받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날 것이요, 혹 사람으로 태어나더라도 비천한 종족으로 태어날 것이다. 왜냐 하면 이 길은 비천한 종족에 태어남을 받나니, 이른바 그 남자와 여자는 매우 방자하고 거만했기 때문이다. 마납아, 마땅히 알라. 이런 업에는 이런 갚음이 있느니라. 마납아, 무슨 인연으로 어떤 남자나 여자는 존귀한 종족으로 태어나는가? 혹 어떤 남자나 여자는 매우 방자하거나 거만하지 않다. 그들은 공경해야 할 사람을 공경하고 소중히 여겨야 할 사람을 소중히 여기며, 귀하게 여겨야 할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받들어야 할 사람을 받들며, 공양해야 할 사람을 공양하고, 길을 비켜 주어야 할 사람에게는 길을 비켜 주며, 자리를 내주어야 할 사람에게는 자리를 내주고, 합장하고 절하며 문안드려야 할 사람에게는 합장하고 절하며 문안드린다. 그들은 이 업을 빠짐 없이 받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좋은 곳으로 올라가 하늘에 날 것이요, 혹 사람으로 태어나더라도 존귀한 종족으로 태어날 것이다. 왜냐 하면 이 길은 존귀한 종족에 태어남을 받나니, 이른바 그 남자나 여자는 매우 방자하거나 거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납아, 마땅히 알라. 이런 업에는 이런 갚음이 있느니라. 마납아, 무슨 인연으로 어떤 남자나 여자는 재물이 없는가? 혹 어떤 남자나 여자는 시주가 되지 않고 보시를 행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문 범지 빈궁한 사람 고독한 사람 나그네 거지에게 음식 의복 꽃다발 바르는 향 집 평상 등불 급사를 보시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 업을 빠짐 없이 받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날 것이요, 혹 사람으로 태어나더라도 재물이 없을 것이다. 왜냐 하면 이 길은 많은 재물이 없음을 받나니, 이른바 그 남자나 여자는 시주가 되지 않고 보시를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납아, 마땅히 알라. 이런 업에는 이런 갚음이 있느니라. 마납아, 무슨 인연으로 어떤 남자나 여자는 재물이 많은가? 혹 어떤 남자나 여자는 시주가 되어 보시한다. 그는 사문 범지 빈궁한 사람 고독한 사람 나그네 거지에게 음식 의복 꽃다발 바르는 향 집 평상 등불 급사를 보시한다. 그들은 이 업을 빠짐 없이 받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좋은 곳으로 올라가 하늘에 날 것이요, 혹 사람으로 태어나더라도 재물이 많을 것이다. 왜냐 하면 이 길은 많은 재물을 받나니, 이른바 그 남자나 여자는 시주가 되어 보시를 행하였기 때문이다. 마납아, 마땅히 알라. 이런 업에는 이런 갚음이 있느니라. 마납아, 무슨 인연으로 어떤 남자나 여자는 나쁜 지혜만 있는가? 혹 어떤 남자나 여자는 저들에게 자주 가서 일을 묻지 않는다. 그들은 혹 이름과 덕망이 있는 사문 범지가 있더라도 수시로 저들을 찾아가 이렇게 그 뜻을 묻지 않는다. '여러 존자시여, 어떤 것이 착한 것이며, 어떤 것이 착하지 않은 것입니까? 어떤 것이 죄가 되며, 어떤 것이 죄가 되지 않습니까? 어떤 것이 묘하며, 어떤 것이 묘하지 않습니까? 어떤 것이 백법(白法)이고 어떤 것이 흑법(黑法)입니까? 흑법과 백법은 어디서 생깁니까? 어떤 이유로 현세에 과보를 받고, 어떤 이유로 후세에 과보를 받습니까?' 또 설사 묻더라도 그대로 행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 업을 빠짐없이 받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날 것이요, 혹 사람으로 태어나더라도 나쁜 지혜가 있을 것이다. 왜냐 하면 이 길은 나쁜 지혜를 받나니, 이른바 그 남자나 여자는 저들에게 자주 가서 일을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납아, 마땅히 알라. 이런 업에는 이런 갚음이 있느니라. 마납아, 무슨 인연으로 어떤 남자나 여자는 착한 지혜가 있는가? 혹 어떤 남자나 여자는 저들에게 자주 가서 일을 묻는다. 그들은 혹 이름과 덕망이 있는 사문 범지가 있으면 수시로 저들에게 자주 찾아가 이렇게 그 뜻을 묻는다. '여러 존자시여, 어떤 것이 착한 것이며, 어떤 것이 착하지 않은 것입니까? 어떤 것이 죄가 되며, 어떤 것이 죄가 되지 않습니까? 어떤 것이 묘한 것이며 어떤 것이 묘하지 않은 것입니까? 어떤 것이 백법(白法)이고 어떤 것이 흑법(黑法)입니까? 흑법과 백법은 어디서 생깁니까? 어떤 이유로 현재에 과보를 받고, 어떤 이유로 후세에 과보를 받습니까?' 이렇게 그 뜻을 물은 뒤에는 그것을 잘 실천한다. 그는 이 업을 빠짐 없이 받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좋은 곳으로 가서 하늘에 날 것이요, 혹 사람으로 태어나더라도 훌륭한 지혜가 있을 것이다. 왜냐 하면 이 길은 훌륭한 지혜를 받나니, 이른바 그 남자와 여자는 저들에게 자주 가서 일을 물었기 때문이다. 마납아, 마땅히 알라. 이런 업에는 이런 갚음이 있느니라. 마납아, 마땅히 알라. 짧은 수명에 알맞은 업을 지으면 반드시 수명이 짧고, 긴 수명에 알맞은 업을 지으면 반드시 수명이 길며, 병이 많기에 알맞은 업을 지으면 반드시 병이 많고, 병이 적기에 알맞은 업을 지으면 반드시 병이 적으며, 단정하지 않기에 알맞은 업을 지으면 반드시 단정하지 않고, 단정하기에 알맞은 업을 지으면 반드시 단정하며, 위덕이 없기에 알맞은 업을 지으면 반드시 위덕이 없고, 위덕이 있기에 알맞은 업을 지으면 반드시 위덕이 있으며, 비천한 종족에 알맞은 업을 지으면 반드시 비천한 종족으로 태어나고, 존귀한 종족에 알맞은 업을 지으면 반드시 존귀한 종족으로 태어나며, 재물이 없기에 알맞은 업을 지으면 반드시 재물이 없고, 재물이 많기에 알맞은 업을 지으면 반드시 재물이 많으며, 나쁜 지혜에 알맞은 업을 지으면 반드시 나쁜 지혜를 얻고, 착한 지혜에 알맞은 업을 지으면 반드시 착한 지혜를 얻는다. 마납아, 이것이 내가 앞에서 말한 '저 중생들은 자기가 행한 업을 말미암아 그 업에 따라 과보를 얻는다. 업을 인연하고 업을 의지하여, 업에 따른 장소에서 중생은 그 업에 따라 높아지기도 하고 낮아지기도 하며, 묘하고 묘하지 않은 곳에 태어난다'고 한 것이니라." 도제의 아들 앵무 마납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미 이해했습니다. 선서시여, 저는 이미 알았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부터 부처님과 법과 비구 스님들께 귀의합니다. 원하옵건대 세존이시여, 저를 우바새로 받아 주소서. 오늘부터 몸이 마치도록 귀의하여 목숨을 다하겠나이다. 세존이시여, 오늘부터 도제의 집에 들어가기를 이 사위국 땅 여느 우바새 집에 들어가시듯 하시어, 도제 가문이 늘 이익과 진리를 얻게 하시고, 요익과 안온과 즐거움을 얻게 해 주소서."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도제의 아들 앵무 마납과 한량없는 대중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앵무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3,465자이다.]
35    彌勒 댓글:  조회:2347  추천:42  2009-01-08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 숲<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서 五백의 큰 비구들과 함께 계셨다. 그 때에 아아난다는 오른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는 세존님께 사뢰었다. "여래께서는 지극히 밝으시고 살피지 못하는 일이 없나이다. 미래, 과거, 현재 三세를 모두 밝게 알으시고 과거 모든 부처님의 성과 이름과 그 제자, 보살들의 시중군의 많고 적음을 모두 알으시며 一 겁, 백 겁 혹은 무수한 겁을 다 관찰하여 알으시고 또 국왕, 대신, 인민들의 성과 이름을 능히 분별하시며 지금 현재의 여러 나라들도 모두 밝게 아시나이다. 먼 장래에 미륵 아라한, 다 옳게 깨달은 이께서 세상에 나오실 때에 그 제자들의 많고 적음과 그 부처님의 풍성함과 즐거움은 얼마나 계속되겠사온지 그 사정을 듣고자 하나이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너는 네 자리로 돌아가 앉아 내 말을 들으라. 그리고 미륵이 세상에 나오실 때 그 나라의 풍성함과 즐거움과 그 제자의 많고 적음을 잘 듣고 기억하여 마음에 새겨두라." 때에 아아난다는 부처님 분부를 듣고 곧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아아난다에게 말씀하셨다. "먼 장래에 이 나라에 계두(鷄頭)라는 성곽(城郭)이 있어 동서는 十二 요오자나요, 남북은 七 요오자나로서 토지는 풍성하고 인민은 번성하며 거리는 줄을 이룰 것이다. 그 때에 그 성안에는 수광(水光)이라는 용왕이 있어 밤이면 비를 내려 향기롭고 낮은 맑고 환할 것이다. 이 때에 계두성 안에 나찰 귀신이 있어 이름을 엽화(葉華)라 할 것이다. 그는 법을 따라 행하고 바른 법을 어기지 않으며 늘 인민들이 잠들기를 기다려 온갖 나쁘고 더러운 것을 치우고 또 향수를 땅에 부려 매우 향기롭고 깨끗할 것이다. 아아난다야, 알라. 그 때에 남섬부주는 동, 서, 남, 북 十만 요오자나요 모든 산하와 석벽을 다 저절로 없어질 것이요, 네 바다의 물은 모두 한쪽에 모일 것이다. 또 그 때의 남섬부주는 매우 편편하며 거울처럼 맑고 밝을 것이다. 온 남섬부주 안에는 곡식이 풍성하고 인민이 번성하며 온갖 보배가 많고 마을들은 서로 가까워 닭 우는 소리가 잇달을 것이다. 또 그 때에는 더러운 꽃과 과일들은 모두 말라지고 나쁘고 더러운 물건은 스스로 없어지며 그 밖의 달고 아름다우며 매우 향기로운 과수가 땅에서 날 것이다. 그 때에는 기후는 화창하고 네 철은 때를 맞추며 사람 몸에는 백 여덟 가지 근심이 없을 것이다. 탐욕, 성냄, 어리석음은 성하지 않아 사람들 마음은 고르고 모두 그 뜻이 같아서, 서로 보면 기뻐하고 좋은 말로 대하며 말씨는 같아 차별이 없기는 저 북구로주 사람들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크고 작기가 꼭 같아서 여러 가지 차별이 없을 것이다. 또 그 때의 남녀들이 대소변이 보고 싶으면 땅은 스스로 갈라졌다가 일을 마치면 도로 합쳐질 것이다. 그 때에 남섬부주 안에는 멥쌀이 저절로 나는데 껍질이 없으며 매우 향기롭고 맛나며 그것을 먹으면 괴로움이 없어질 것이다. 또 이른바 금, 은의 보배와 자거, 마노, 진주, 호박 등이 땅에 흩어져 있어도 그것을 살피고 기록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들은 그 보배를 손에 들고 저희끼리 말할 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이 보배 때문에 서로 해치고 감옥에 가두며 무수히 고통 하였다. 그러나 지금 이 보배들은 기와 쪽이나 돌과 같아서 아무도 지키는 사람이 없다.' 그 때에 법왕이 나타나 이름을 양카라 할 것이다. 그는 바른 법으로 인민을 다스리고 일곱 가지 보배를 성취할 것이니 일곱 가지 보배란, 바퀴, 코끼리, 말, 구슬, 미녀, 장군, 창고지기이니 이것을 일곱 가지 보배라 한다. 그는 이 남섬부주를 통치할 때에 칼이나 몸뚱이를 쓰지 않아도 항복하지 않을 이가 없을 것이다. 아아난다야, 거기는 지금과 같은 네 보배 창고가 있을 것이다. 건타월국의 이라발 보배 창고에는 온갖 보배롭고 이상한 물건이 많아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둘째는 이제라국의 반주 큰 창고인데 거기도 보배가 많다. 셋째는 수뢰타국에 있는 큰 보배 창고인데 거기도 보배가 많다. 넷째는 바라나양카에 있는 큰 창고인데 온갖 보배가 많아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이 네 개 큰 창고가 저절로 나타날 것이다. 여러 창고지기는 모두 그 왕에게 가서 아뢸 것이다. '원컨대 대왕은 이 보배 창고의 물건을 빈궁한 사람들에게 보시하소서.' 그 때에 양카왕은 그 보배를 얻고도 살피고 기록하지 않을 것이니 뜻에 재물이라는 생각이 없기 때문이니라. 때에 남섬부주 안에는 나무 뒤에 옷이 저절로 열릴 것이다. 그것은 매우 곱고 보드라워 사람들은 그것을 가져다 입을 것이다. 마치 지금 북구로주 땅의 나무 위에 옷이 저절로 열리는 것과 다름없을 것이다. 그 때에 그 왕에게는 대신이 있어 이름을 수범마라 할 것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왕과 친하여 왕은 그를 매우 사랑하고 존경할 것이다. 또 그는 얼굴이 단정하고 키는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으며 살찌지도 않고 여위지도 않으며 희지도 않고 검지도 않으며 늙지도 않고 젊지도 않을 것이다. 또 그 수범마에게는 아내가 있어 이름을 범마월이라 할 것이다. 그는 미녀 중에서도 가장 뛰어나고 묘하여 천제(天帝)의 왕비 같을 것이다. 입에서는 우트팔라 연꽃 향기가 나고 몸에서는 챤다나 향기가 날 것이다. 그래서 여러 여자들의 마흔 여덟 가지 맵시도 그 앞에서는 아주 무색하여질 것이다. 그리고 그는 병도 없고 어지러운 생각도 없으리라. 그 때에 미륵 보살은 도솔천에서 그 부모의 늙지도 젊지도 않는 것을 관찰하고 곧 신(神)을 내려 아래로 응하여 오른 옆구리로 날 것이다. 그것은 마치 내가 오른 옆구리로 난 것처럼 미륵보살도 그러할 것이다. 때에 도솔천의 여러 하늘들은 각기 외칠 것이다. '미륵 보살은 이미 신을 내려 내려가셨다.' 그 때에 수범마는 곧 그 아들을 위하여 이름을 지어 '미륵'이라 할 것이다. 그는 서른 두 가지 거룩한 모습과 八十 가지 뛰어난 모양으로 그 몸을 장엄하고 그 몸은 황금빛일 것이다. 그 때의 사람 수명은 매우 길어 모두 八만 四천 세요, 또 아무 병도 없을 것이다. 또 여자는 나이 五백 세가 되어야 시집갈 것이다. 그 때에 미륵 보살은 얼마 동안 집에 있다가 곧 집을 떠나 도를 배울 것이다. 그 계두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 용화(龍華)라는 도수(道樹)가 있다. 높이는 一 요오자나요, 넓이는 五백 보다. 미륵 보살은 그 나무 밑에 앉아 위없는 도를 이루려 하여, 그날 밤중에 집을 떠나 그 밤으로 곧 위없는 도를 이룰 것이다. 때에 三천 대천 세계는 여섯 번 진동하고 지신(地神)들은 각각 저희들끼리 말할 것이다. '지금 미륵은 성불하셨다.' 그 소리는 사천왕 궁전에까지 들릴 것이다. '미륵은 성불하셨다.' 그리하여 三十三천, 야아마천, 도솔천, 화재천, 타화자재천에까지 들리고 더 나아가 범천에까지 들릴 것이다. '미륵은 불도를 이루었다.' 그 때에 대장(大將)이라는 마왕은 법으로 그 세계를 다스리고 교화하였다. 그는 여래의 명성을 듣고 못내 기뻐해 어쩔 줄을 모르면서 이레낮, 이레 밤을 자지 않을 것이다. 그는 욕심 세계의 수없는 하늘 사람들을 데리고 미륵 부처님께 나아가 공경하고 예배할 것이다. 미륵 부처님은 그 하늘들을 위하여 미묘한 논(論)을 설명할 것이다. 이른바 그 논이란 보시와 계율과 천상에 나는데 대한 논이요, 욕심은 더러운 것이므로 그것을 뛰어 나는 것이 좋다고 말씀하실 것이다. 그 때에 미륵 부처님은 그 사람들이 마음을 내어 기뻐하는 것을 보고 모든 부처 세존님이 항상 말씀하시는 법, 즉 괴로움과 그 원인과 그것의 사라짐과 그 사라지는 길의 이치를 그 하늘 사람들을 위하여 널리 해설하실 것이다. 그래서 그 자리에 있던 八만 四천 천자들은 온갖 번뇌가 없어지고 법눈이 깨끗하게 될 것이다. 그 때에 마왕 대장은 그 세계 인민들에게 말할 것이다. '너희들은 빨리 집을 나오라. 왜냐하면 미륵님이 오늘 저쪽 언덕으로 건너셨다. 그리고 너희들도 이끌어 저쪽 언덕에 이르게 하실 것이다.' 그 때에 계두성 안에 장자가 있어 이름을 선재(善財)라 한다. 그는 마왕의 분부와 또 부처라는 말을 듣고는 八만 四천 무리를 데리고 미륵 부처님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발아래 예배하고 한쪽에 앉는다. 미륵 부처님은 그를 위해 미묘한 논을 말씀하실 것이다. 이른바 논이란, 보시와 계율과 천상에 나는데 대한 논이요, 욕심은 더러운 것이므로 그것을 뛰어 나는 것이 좋다고 말씀하실 것이다. 때에 미륵 부처님은 사람들의 마음이 열리고 뜻이 풀린 것을 보시고, 여러 부처 세존님이 항상 말씀하시는 법, 즉 괴로움과 그 원인과 그것의 사라짐과 그 사라지는 길의 이치를, 그 사람들을 위하여 널리 분별하실 것이다. 그래서 그 자리에 있던 八만 四천 인은 온갖 번뇌가 없어지고 법눈이 깨끗하게 될 것이다. 때에 선재와 八만 四천 인들은 앞으로 나아가 부처님께 사뢸 것이다. '집을 떠나 범행을 잘 닦아서 모두 아라한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미륵 부처님의 첫 번째 모임은 八만 四천 아라한이 될 것이다. 이 때에 양카왕은 미륵님이 이미 불도를 이루셨다는 말을 듣고 곧 그 부처님께 나아가 법을 듣고자 할 것이다. 때에 미륵 부처님은 그를 위하여 설법하실 것이다. 그 법은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으며 마지막도 좋고 뜻은 매우 깊고 그윽할 것이다. 왕은 그 뒤에 태자를 세우고는 이발사에게 보물을 주고 또 여러 범지들에게는 잡보물을 줄 것이다. 그리고 八만 四천 범지들을 데리고 그 부처님께 나아가 사문이 되기를 원하여 아라한이 될 것이다. 오직 수범마만은 세 가지 번뇌를 끊고 기필코 괴로움을 완전히 벗어나게 될 것이다. 때에 부처님 어머니 범마월도 八만 四천 궁녀들을 데리고 부처님께 나아가 사문이 되기를 원하여 모두 아라한이 될 것이다. 오직 범마월만은 세 가지 번뇌를 끊고 수다원을 이룰 것이다. 또 크샤트리야 부녀들도 미륵 여래님이 세상에 나와 부처가 되었다는 말을 듣고, 그 수천만 무리들은 부처님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발아래 예배하고 한쪽에 앉아, 각기 사문이 될 마음을 내어 집을 나와 도를 배울 것이다. 그래서 차례를 뛰어 넘어 깨달음을 증득하는 이도 있고 혹은 증득하지 못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아아난다야, 그 때에 차례를 뛰어 넘어, 증득하지 못하는 이는 모두 법을 받드는 사람으로서 일체 세상은 즐겨 할 것이 못 된다는 생각으로 세상을 싫어할 것이다. 그 때에 미륵 부처님은 세 가지 교법을 말씀하실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내 제자 중의 저 카아샤파 같은 이는 열 두 가지 두우타행을 행할 것이다. 그는 과거의 여러 부처님 밑에서 범행을 잘 닦은 이로서 항상 미륵 부처님을 도와 인민들을 교화할 것이다." 그 때에 카아샤파는 여래님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서 가부하고 앉아, 몸과 뜻을 바루고 생각을 매어 앞에 두고 있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 카아샤파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제 늙어 나이 八十이 넘었다. 그런데 내게는 큰 성문 네 사람이 있어 능히 세상을 교화한다. 그들은 모두 지혜가 끝이 없고 온갖 덕을 두루 갖추었다. 그 네 사람이란 이른바, 큰 카아샤파 비구, 군도발한 비구, 빈두로 비구, 라아훌라 비구이니라. 너희들 네 큰 성문들은 결코 반열반하지 말라. 내 법이 아주 멸한 뒤에 열반에 들라. 큰 카아샤파도 열반에 들지 말고 미륵님이 세상에 나오시기를 기다리라. 왜 그러냐 하면 미륵님이 교화할 제자는 다 석가 부처의 제자로서, 내가 끼친 교화로 말미암아 번뇌를 다하였기 때문이다. 카아샤파는 저 마가다국의 비제촌의 산중에 있으리라. 때에 미륵 여래는 수천 인에게 앞, 뒤로 둘러싸이어 그 산중으로 갈 것이다. 부처님의 은혜를 입은 여러 귀신들은 미륵 부처님을 위하여 문을 열고 카아샤파의 좌선하는 굴을 보도록 할 것이다. 그 때에 미륵 부처님은 오른 손을 펴서 카아샤파를 가리키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말할 것이다. '이 사람은 먼 옛날 석가 부처님의 제자로서 이름을 카아샤파라 한다. 지금까지도 두우타의 고행으로서 제일이다.' 그 때에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처음 보는 일이라고 찬탄할 것이다. 그리고 그 수없는 백천 중생들은 온갖 번뇌가 없어지고 법눈이 깨끗하게 될 것이요, 또 어떤 중생은 카아샤파의 몸을 자세히 볼 것이다. 이것이 최초의 모임으로서 九十六억 인민들은 모두 아라한이 될 것이다. 그들은 다 내 제자다. 왜 그러냐 하면 그들은 다 내 교훈을 받았고 또 보시, 사랑, 이익 같은 행동의 네 가지 인연 때문이니라. 아아난다야, 그 때에 미륵 부처님은 카아샤파의 상가리이를 받아 입을 것이니 그 때에 카아샤파의 몸은 갑자기 별처럼 흩어질 것이다. 그러면 미륵 부처님은 또 갖가지 향과 꽃으로 카아샤파를 공양할 것이다. 왜냐 하면 모든 부처 세존은 바른 법을 공경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요, 미륵도 또 내게서 바른 법의 교화를 받아 위없는 바르고 참된 깨달음을 이루었기 때문이니라. 아아난다야, 알라. 미륵 부처님의 두 번째 모임에는 九十四억 인인데 그들은 다 아라한이다. 그들도 과거에 내가 가르친 제자로서 네 가지 공양을 행하였기 때문이니라. 또 미륵 부처님의 세 번째 모임에는 九十二억 인인데 그들도 다 아라한으로서 내가 과거에 가르친 제자이니라. 그 때의 비구들의 성명은 다 자씨(慈氏) 제자라 할 것이다. 마치 지금의 내 성문들이 모두 석가 제자라고 일컫는 것과 같느니라. 그 때에 미륵 부처님은 제자들을 위해 설법할 것이다. 즉 '너희 비구들은 덧없다는 생각, 진실로 괴롭다는 생각, 내가 없다는 생각, 진실로 공하다는 생각, 색은 변한다는 생각, 푸르딩딩하다는 생각, 퉁퉁 부었다는 생각, 밥이 소화되지 않았다는 생각, 피라는 생각, 일체 세상은 즐겨 할 것이 없다는 생각을 닦아야 하느니라. 왜 그러냐 하면 비구들이여, 알라. 이 열 가지 생각은 다 과거 석가모니 부처님이 너희들을 위해 말씀하시어 번뇌를 없애고 마음의 해탈을 얻게 하셨기 때문이니라. 만일 이 대중 가운데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가 있으면 그는 과거에 범행을 닦고 내게 온 것이다. 혹은 석가모니 부처님에게서 그 법을 받들어 가져다가 내게 온 것이요, 혹은 석가모니 부처님 밑에서 세 가지 보배를 공양하고 내게 온 것이니라. 혹은 석가모니 부처님 밑에서 잠깐 동안 선의 근본을 닦고 내게 온 것이요, 혹은 석가모니 부처님 밑에서 네 가지 평등한 마음을 닦고 내게 온 것이다. 혹은 석가모니 부처님 밑에서 다섯 가지 계율을 받들어 지니고 세 분에게 귀의하고 내게 온 것이요, 혹은 석가모니 부처님 밑에서 절이나 탑을 세우고 내게 온 것이니라. 혹은 석가모니 부처님 밑에서 헌 절을 수리하고 내게 온 것이요, 혹은 석가모니 부처님 밑에서 여덟 가지 재법을 지니고 내게 온 것이다. 혹은 석가모니 부처님께 향과 꽃을 공양하고 내게 온 것이요, 혹은 그에게 부처의 법을 듣고는 슬피 울며 눈물을 흘리고 내게 온 것이니라. 혹은 석가모니 부처님에게 전일한 마음으로 법을 듣고 내게 온 것이요, 또는 목숨을 마칠 때까지 범행을 닦다가 내게 온 것이다. 혹은 쓸고 읽고 외우다가 내게 온 것이요,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다가 내게 온 사람이다.'하리라. 그리고 미륵 부처님은 곧 다음 게송을 읊을 것이다. 계율을 가지며 많이 듣는 덕 선정과 생각하는 업을 늘이고 깨끗한 범행을 잘 닦던 이 거기서 내게로 와서 났구나 보시를 권하고 기쁜 마음을 내어서 마음의 근본을 닦아 행하고 뜻에는 여러 가지 생각 없나니 그러다가 모두 다 내게로 왔네 혹은 평등한 마음을 내어 모든 부처님 받들어 섬기고 성스런 무리들께 공양하던 이 모두 다 내게로 와서 났다네 혹은 계율과 경전을 외우고 잘 익혀 남을 위해 설명해 주며 일심으로 법의 근본 생각했나니 그러다가 지금 다 내게로 왔네 석가 종족은 잘 교화하여서 온갖 사리에게 공양하였고 법을 받들어 섬겨 공양했나니 그러다가 지금 다 내게로 왔네 혹 어떤 이는 경전을 베껴 쓰고 흰 비단 위에 게송을 읊어 쓰며 그 온갖 경전을 공양하나니 그러다가 모두 다 내게로 왔네 채색 비단과 온갖 물건을 절에 가져가 공양하면서 스스로 '나무불' 일컬었나니 그러다가 모두 다 내게로 왔네 현재의 부처님과 또 과거의 그 모든 부처님께 공양 드리고 선정은 바르고 또 평등하나니 그러므로 부처님과 또 그 법과 성스런 그 중들을 섬겨 받들라 알뜰한 마음으로 세 보배 섬기면 반드시 하염없는 곳에 이르리.   아아난다야, 미륵 부처님은 그 대중 가운데 이 게송을 읊을 것이다. 그 때에 대중 가운데의 여러 하늘과 사람들은 그 열 가지 생각을 깊이 생각하고 열 한 사람의 여자는 온갖 번뇌가 없어지고 법눈이 깨끗하게 될 것이다. 미륵 부처님 때에는 천년 동안 계율을 범하는 중이 없을 것이다. 그는 항상 한 게송으로 계율을 삼을 것이다. 입과 뜻으로 악을 행하지 말고 몸으로도 또한 범하지 말라 이 세 가지의 나쁜 행 버리면 생, 사의 깊은 바다 벗어나리라. 천 년을 지낸 뒤에 계율을 범하는 이가 있어 다시 계율을 정할 것이다. 미륵 부처님의 수명은 八만 四천 세일 것이요, 그가 반열반한 뒤에 그 끼친 법도 八만 四천 년 보존될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그 때의 중생들은 모두 그 근기가 지혜롭기 때문이니라. 만일 선남자, 선여인으로서 미륵 부처님과 세 번 모임의 성문들과 또 계두성과 양카왕을 보고, 네 개의 큰 보배 창고를 보고 싶어하거나, 또 저절로 난 멥쌀을 먹고 저절로 된 옷을 입다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천상에 나기를 바라는 이는 부디 부지런히 정진하여 게으르지 말랴. 그리고 법사(法師)들을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되 이름 난 꽃과 찧은 향 등 갖가지로 공양하여 빠뜨림이 없게 하라. 아아난다야,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아아난다와 대중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三) 聞如是 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與大比丘眾五百人俱 爾時。阿難偏露右肩。右膝著地。白世尊言。如來玄鑒。無事不察。當來.過去.現在三世皆悉明了。諸過去諸佛姓字.名號。弟子菩薩翼從多少。皆悉知之。一劫.百劫.若無數劫。悉觀察知。亦復知國王.大臣.人民姓字。斯能分別。如今現在國界若干。亦復明了。 將來久遠彌勒出現。至真.等正覺。欲聞其變。弟子翼從佛境豐樂。為經幾時 佛告阿難。汝還就座。聽我所說。彌勒出現。國土豐樂。弟子多少。善思念之。執在心懷。 是時。阿難從佛受教。即還就座 爾時。世尊告阿難曰。將來久遠於此國界。當有城郭名曰雞頭。東西十二由旬。南北七由旬。土地豐熟。人民熾盛。街巷成行。爾時。城中有龍王名曰水光。夜雨澤香。晝則清和。是時。雞頭城中有羅剎鬼名曰葉華。所行順法。不違正教。伺人民寢寐之後。除去穢惡諸不淨者。又以香汁而灑其地。極為香淨。阿難當知。爾時。閻浮地東.西.南.北十萬由旬。諸山河石壁皆自消滅。四大海水各據一方 時。閻浮地極為平整。如鏡清明。舉閻浮地內。穀食豐賤。人民熾盛。多諸珍寶。諸村落相近。雞鳴相接。是時。弊花果樹枯竭。穢惡亦自消滅。其餘甘美果樹。香氣殊好者。皆生乎地。爾時。時氣和適。四時順節。人身之中無有百八之患。貪欲.瞋恚.愚癡不大殷勤。人心平均皆同一意。相見歡悅。善言相向。言辭一類。無有差別。如彼鬱單曰人。而無有異。是時。閻浮地內人民大小皆同一嚮。無若干之差別也。彼時男女之類意欲大小便。地自然開。事訖之後。地復還合。爾時。閻浮地內自然生粳米。亦無皮裹。極為香美。食無患苦。所謂金銀.珍寶.車磲.瑪瑙.真珠.虎珀。各散在地。無人省錄。是時。人民手執此寶。自相謂言。昔者之人由此寶故。各相傷害。繫閉牢獄。更無數苦惱。如今此寶與瓦石同流。無人守護 爾時。法王出現。名曰蠰佉。正法治化。七寶成就。所謂七寶者。輪寶.象寶.馬寶.珠寶.玉女寶.典兵寶.守藏之寶。是謂七寶。領此閻浮地內。不以刀杖。自然靡伏。如今。阿難。四珍之藏。乾陀越國伊羅鉢寶藏。多諸珍琦異物。不可稱計。第二彌梯羅國般綢大藏。亦多珍寶。第三須賴吒大國有寶藏。亦多珍寶。第四婆羅奈蠰佉有大藏。多諸珍寶。不可稱計。此四大藏自然應現。諸守藏人各來白王。唯願大王以此寶藏之物。惠施貧窮。爾時。蠰佉大王得此寶已。亦復不省祿之。意無財物之想。時。閻浮地內自然樹上生衣。極細柔軟。人取著之。如今鬱單曰人自然樹上生衣。而無有異 爾時。彼王有大臣。名曰修梵摩。是王少小同好。王甚愛敬。又且顏貌端正。不長.不短。不肥.不瘦。不白.不黑。不老.不少。是時。修梵摩有妻。名曰梵摩越。玉女中最極為殊妙。如天帝妃。口作優鉢蓮花香。身作栴檀香。諸婦人八十四態。永無復有。亦無疾病亂想之念。爾時。彌勒菩薩於兜率天。觀察父母不老.不少。便降神下應。從右脅生。如我今日右脅生無異。彌勒菩薩亦復如是。兜率諸天各各唱令。彌勒菩薩已降神下。是時。修梵摩即與子立字。名曰彌勒。有三十二相.八十種好。莊嚴其身。身黃金色。爾時。人壽極長。無有諸患。皆壽八萬四千歲。女人年五百歲然後出適。爾時。彌勒在家未經幾時。便當出家學道 爾時。去雞頭城不遠。有道樹名曰龍華。高一由旬。廣五百步。時。彌勒菩薩坐彼樹下。成無上道果。當其夜半。彌勒出家。即其夜成無上道。時。三千大千剎土。六變震動。地神各各相告曰。今彌勒已成佛。轉至聞四天王宮。彌勒已成佛道。轉轉聞徹三十三天.焰天.兜率天.化自在天.他化自在天。聲展轉乃至梵天。彌勒已成佛道。爾時。魔名大將以法治化。聞如來名教音響之聲。歡喜踊躍。不能自勝。七日七夜不眠不寐。是時。魔王將欲界無數天人。至彌勒佛所。恭敬禮拜 彌勒聖尊與諸天漸漸說法微妙之論。所謂論者。施論.戒論.生天之論。欲不淨想。出要為妙。爾時。彌勒見諸人民已發心歡喜。諸佛世尊常所說法。苦.習.盡.道。悉與諸天人廣分別其義。爾時。座上八萬四千天子諸塵垢盡。得法眼淨。爾時。大將魔王告彼界人民之類曰。汝等速出家。所以然者。彌勒今日已度彼岸。亦當度汝等使至彼岸 爾時。雞頭城中長者。名曰善財。聞魔王教令。又聞佛音響。將八萬四千眾。至彌勒佛所。頭面禮足。在一面坐。爾時。彌勒漸與說法微妙之論。所謂論者。施論.戒論.生天之論。欲不淨想。出要為妙。爾時。彌勒見諸人民心開意解。如諸佛世尊常所說法。苦.習.盡.道。與諸人民廣分別義。爾時。座上八萬四千人。諸塵垢盡。得法眼淨。是時。善財與八萬四千人等。即前白佛。求索出家。善修梵行。盡成阿羅漢道。爾時。彌勒初會八萬四千阿羅漢 是時。蠰佉王聞彌勒已成佛道。便往至佛所。欲得聞法。時。彌勒與說法。初善.中善.竟善。義理深邃。爾時。大王復於異時立太子。賜剃頭師珍寶。復以雜寶與諸梵志。將八萬四千眾生。往至佛所。求作沙門。盡成道果。得阿羅漢 是時。修梵摩大長者聞彌勒已成佛道。將八萬四千梵志之眾。往至佛所。求作沙門。得阿羅漢。唯修梵摩一人。斷三結使。必盡苦際 是時。佛母梵摩越復將八萬四千婇女之眾。往至佛所。求作沙門。是時。諸女人盡得羅漢。唯有梵摩越一人。斷三結使。成須陀洹 爾時。諸剎利婦聞彌勒如來出現世間。成等正覺。數千萬眾往至佛所。頭面禮足。在一面坐。各各生心。求作沙門。出家學道。或有越次取證。或有不取證者。爾時。阿難。其不越次取證者。盡是奉法之人。患厭一切世間不可樂想。爾時。彌勒當說三乘之教。如我今日弟子之中。大迦葉者行十二頭陀。過去諸佛所善修梵行。此人常佐彌勒。勸化人民 爾時。迦葉去如來不遠。結加趺坐。正身正意。繫念在前。爾時。世尊告迦葉曰。吾今年已衰耗。年向八十餘。然今如來有四大聲聞。堪任遊化。智慧無盡。眾德具足。云何為四。所謂大迦葉比丘.君屠鉢漢比丘.賓頭盧比丘.羅云比丘。汝等四大聲聞要不般涅槃。須吾法沒盡。然後乃當般涅槃。大迦葉亦不應般涅槃。要須彌勒出現世間。所以然者。彌勒所化弟子。盡是釋迦文佛弟子。由我遺化得盡有漏。摩竭國界毘提村中。大迦葉於彼山中住。又彌勒如來將無數千人眾。前後圍遶。往至此山中。遂蒙佛恩。諸鬼神當與開門。使得見迦葉禪窟 是時。彌勒伸右手指示迦葉。告諸人民。過去久遠釋迦文佛弟子。名曰迦葉。今日現在。頭陀苦行最為第一。是時。諸人民見已。歎未曾有。無數百千眾生。諸塵垢盡。得法眼淨。或復有眾生。見迦葉身已。此名為最初之會。九十六億人。皆得阿羅漢。斯等之人皆是我弟子。所以然者。悉由受我教訓之所致也。亦由四事因緣。惠施.仁愛.利人.等利。爾時。阿難。彌勒如來當取迦葉僧伽梨著之。是時。迦葉身體奄然星散。是時。彌勒復取種種香華。供養迦葉。所以然者。諸佛世尊有恭敬心於正法故。彌勒亦由我所受正法化。得成無上正真之道 阿難當知。彌勒佛第二會時。有九十四億人。皆是阿羅漢。亦復是我遺教弟子。行四事供養之所致也。又彌勒第三之會九十二億人。皆是阿羅漢。亦復是我遺教弟子 爾時。比丘姓號皆名慈氏弟子。如我今日諸聲聞皆稱釋迦弟子。爾時。彌勒與諸弟子說法。汝等比丘。當思惟無常之想.樂有苦想.計我無我想.實有空想.色變之想.青瘀之想.腹脹之想.食不消想.血想.一切世間不可樂想。所以然者。比丘當知。此十想者。皆是過去釋迦文佛與汝等說。令得盡有漏.心得解脫 若復此眾中釋迦文佛弟子。 過去時修於梵行。來至我所。 或於釋迦文佛所。奉持其法。來至我所。 或復於釋迦文佛所。供養三寶。來至我所。 或於釋迦文佛所。彈指之頃。修於善本。來至此間。 或於釋迦文佛所。行四等心。來至此者。 或於釋迦文佛所。受持五戒.三自歸。來至我所。 或於釋迦文佛所。起神寺廟。來至我所。 或於釋迦文佛所。補治故寺。來至我所。 或於釋迦文佛所。受八關齋法。來至我所。 或於釋迦文佛所。香花供養。來至此者。 或復於彼聞佛法。悲泣墮淚。來至我所。 或復於釋迦文佛。專意聽法。來至我所。 復盡形壽善修梵行。來至我所。 或復書讀諷誦。來至我所者。承事供養。來至我所者 是時。彌勒便說此偈  增益戒聞德  禪及思惟業 善修於梵行  而來至我所 勸施發歡心  修行心原本 意無若干想  皆來至我所 或發平等心  承事於諸佛 飯食與聖眾  皆來至我所 或誦戒契經  善習與人說 熾然於法本  今來至我所 釋種善能化  供養諸舍利 承事法供養  今來至我所 若有書寫經  頌宣於素上 其有供養經  皆來至我所 繒綵及眾物  供養於神寺 自稱南無佛  皆來至我所 供養於現在  諸佛過去者 禪定正平等  亦無有增減 是故於佛法  承事於聖眾 專心事三寶  必至無為處  阿難當知。彌勒如來在彼眾中當說此偈。 爾時。眾中諸天.人民思惟此十想。十一垓人諸塵垢盡。得法眼淨 彌勒如來千歲之中。眾僧無有瑕穢。爾時恒以一偈。以為禁戒  口意不行惡  身亦無所犯 當除此三行  速脫生死淵  過千歲之後。當有犯戒之人。遂復立戒 彌勒如來當壽八萬四千歲。般涅槃後。遺法當存八萬四千歲。所以然者。爾時眾生皆是利根。 其有善男子.善女人。欲得見彌勒佛。及三會聲聞眾。及雞頭城。及見蠰佉王。并四大藏珍寶者。 欲食自然粳米。并著自然衣裳。身壞命終生天上者。彼善男子.善女人。當勤加精進。無生懈怠。 亦當供養諸法師承事。名華.擣香種種供養無令有失。如是。阿難。當作是學 爾時。阿難及諸大會聞佛所說。歡喜奉行 增壹阿含經卷第四十四 //
34    98) 염처경(念處經) 7년동안 아니 잠간동안이라도 4념처를 .... 댓글:  조회:2264  추천:53  2008-11-25
第十 念处经 98) 염처경(念處經) 7년동안 아니 잠간동안이라도 4념처를   第十 念处经   北传中阿九八、念处经(大正藏一、五八二页。)巴利长部二二、大念处经(南传七、但其十八--二一本经缺,其他全合。)  本经为得一乘之究竟解脱涅盘而说四念处者。   如是我闻。  一时,世尊往库卢国康摩萨单摩之聚落。  尔时,世尊呼诸比丘曰:诸比丘!  彼等比丘应世尊言:世尊!   世尊乃曰:  诸比丘!于此,为有情之净化、愁悲之超越、苦忧之消灭、正道之获得、涅盘之作证,此有一法,即四念处也。  四者何耶?曰:  比丘!于此,于身随观身,热心而注意,甚深持念,于世间除去贪忧。  于受随观受,热心而甚注意,有持念,于世间除去贪忧。  于心随观心,热心而甚注意,有持念。于世间除去贪忧。  于法随观法,热心而甚注意,有持念,于世间除去贪忧。  [如是谓四念处]。   诸比丘!如何是比丘于身随观身耶?  诸比丘!于此,比丘或行于闲林、或行于树下、或行于空闲处,结跏趺坐,以身正直,当前丘念。彼念而出息,念而入息。或长出息,知予长出息;或长入息,知予长入息。或短出息,知予短出息;或短入息,知予短入息。或修观予觉一切身而出息;或修观予觉一切身而入息。又修观予令静止身行而出息。或修观予令静止身行而入息。  诸比丘!恰如精巧之辘驴工或辘驴工之弟子,或长旋转而知予长旋转,或短旋转而知予短旋转,  如是,比丘或长出息而知予长出息;或长入息,知予长入息。或短出息,知予短出息;或短入息,知予短入息。或修观予觉一切身而出息;或修观予觉一切身而入息。又修观予令静止身行而出息。或修观予令静止身行而入息。  如是,于内身而随观身,于外身而随观身,于内外身而随观身。于身而随观某法、于身而随观灭法、于身而随观某灭之法。彼现身是存在之念,如是资其慧,资其思念。彼无有依止而住,即不执着世间。  如是,比丘则于身随观身也。   诸比丘!复次,  比丘或行,而知予在行;  或立而知予在立;  或坐而知予在坐;  或卧而知予在卧。  如彼身之所示,其知如是。  如是,于内身而随观身,于外身而随观身,于内外身而随观身。于身而随观某法、于身而随观灭法、于身而随观某灭之法。彼现身是存在之念,如是资其慧,资其思念。彼无有依止而住,即不执着世间。  如是,比丘于身随观身而住。   诸比丘!复次,  比丘是往、是归,善识之;  前观、后观,善识之;  欲屈、欲伸,善识之;  欲持大衣、衣钵,善识之;  在啖,饮、嚼、味,善识之;  大小便时,善识之;  在行、住、坐、眠、寤、言、默,善识之而住。  如是,于内身而随观身,于外身而随观身,于内外身而随观身。于身而随观某法、于身而随观灭法、于身而随观某灭之法。彼现身是存在之念,如是资其慧,资其思念。彼无有依止而住,即不执着世间。  如是,比丘于身随观身而住。   复次,诸比丘!  比丘善观此身,从头顶至足底止,皆为皮肤所覆,其中充满种种不净,即:于此身有发、毛、爪、齿、皮、肉、筋、骨、髓、肾、心、肝、肋、脾、肺、肠、肠系膜、胃、粪、脑、胆汁、胃液、脓、血、汗、脂、泪、膏、唾、涕、关节滑液、小便也。  诸比丘!恰如有两口之袋,以充[填]种种谷物,即:稻、粟、绿豆、豆颗、胡麻、米。以此,具眼者出而观察此是稻、此是粟、此是绿豆、此是豆颗、此是胡麻、此是大米也。  如是,比丘善观此身,从头顶至足底止,为皮肤所覆,其中充满种种不净,即:此身有发、毛、爪、齿、皮、肉、筋、骨、髓、肾、心、肝、肋、脾、肺、肠、肠系膜、胃、粪、脑、胆汁、胃液、脓、血、汗、脂、泪、膏、唾、涕、关节滑液、小便也。  如是,于内身而随观身,于外身而随观身,于内外身而随观身。于身而随观某法、于身而随观灭法、于身而随观某灭之法。彼现身是存在之念,如是资其慧,资其思念。彼无有依止而住,即不执着世间。  如是,比丘于身随观身而住。   复次,诸比丘!  比丘以此身,其如所置、如其所示,以观察界,即:此身有地界、水界、火界、风界。  诸比丘!恰如熟练之屠牛者或屠牛者之弟子,于衢屠牛,坐干路口,一分一分以割其体。  如是,比丘以界观察此身,其如所置、如其所示,以观察界,即:此身有地界、水界、火界、风界也。  如是,于内身而随观身,于外身而随观身,于内外身而随观身。于身而随观某法、于身而随观灭法、于身而随观某灭之法。彼现身是存在之念,如是资其慧,资其思念。彼无有依止而住,即不执着世间。  如是,比丘于身随观身而住。   复次,诸比丘!  譬如比丘,见死尸被遗弃于墓地,或经一日、或二日、或三日,膨胀而变色青黑,分化腐烂,彼致念此身:观此身亦如是法,成为如是,难免如此之状况。  如是,于内身而随观身,于外身而随观身,于内外身而随观身。于身而随观某法、于身而随观灭法、于身而随观某灭之法。彼现身是存在之念,如是资其慧,资其思念。彼无有依止而住,即不执着世间。  复次,诸比丘!譬如比丘见死尸被遗弃于墓地,或被鸟、兀鹰、鹫野狗、豺或被种种虫类啄啖,彼致念此身:观此身亦如是法,成为如是,彼难免如是之状况。  如是,于内身而随观身,于外身而随观身,于内外身而随观身。于身而随观某法、于身而随观灭法、于身而随观某灭之法。彼现身是存在之念,如是资其慧,资其思念。彼无有依止而住,即不执着世间。  复次,诸比丘!比丘见死尸被遗弃于墓地,骸骨之连锁,尚带血肉,被筋连缚。又,连锁之骸骨(已经)肉隤血污,被筋连缚。又,血肉皆无,唯筋连缚。又,骨节解散,散乱诸方,手骨、足骨、胫骨、腿骨、腰骨、脊骨、头骸骨等,各于异处。彼致念此身:此身亦如是之法、成为如是,彼难免如此之状况。  如是,于内身而随观身,于外身而随观身,于内外身而随观身。于身而随观某法、于身而随观灭法、于身而随观某灭之法。彼现身是存在之念,如是资其慧,资其思念。彼无有依止而住,即不执着世间。  复次,诸比丘!比丘见死尸被遗弃于墓地,其骨白似螺色,经年堆积,又腐烂而为碎,彼致念此身:观此身亦如是之法,成为如是,彼难免如此之状况。  如是,于内身随观身、于外身随观身、于内外身随观身而住。于身随观集法、于身随观灭法、于身随观集灭之法而住。彼现身存在之念,如是资其慧,资其思念。彼无有依止而住,不执着世间。  如是,比丘于身随观身而住。   诸比丘!比丘如何于受随观受而住耶?  于此,比丘受乐受而知:予受乐受;  受苦受而知:予受苦受;  受不苦不乐受而知:予受不苦不乐受;  受物质之乐受而知:予受物质之乐受;  受非物质之乐受而知:予受非物质之乐受;  受物质之苦受而知:予受物质之苦受;  受非物质之苦受而知:予受非物质之苦受;  受物质之不苦不乐受而知:予受物质之不苦不乐受;  受非物质之不苦不乐受而知:予受非物质之不苦不乐受。  如是,于内受而随观受,于外受而随观受,于内外受而随观受。于受而随观集法、于受而随观灭法、于受而随观集灭之法而住。若彼现受存在之念,如是资其慧,资其思念,彼无有依止而住。不执着世间。  如是,比丘于受随欢爱而住。   诸比丘!比丘如何于心随观心而住耶?  于此,比丘有贪欲心而知:有贪欲心;  无贪欲心而知:无贪欲心;  有嗔恚心而知有嗔恚心,  无嗔恚心而知无嗔恚心;  有愚痴心而知有愚痴心;  无愚痴心而知无愚痴心;  摄心而知摄心;  散心而知散心;  高广心而知高广心;  非高广心而知:非高广心;  有上心而知:有上心;  无上心而知:无上心;  定心而知:定心;  非定心而知:非定心;  解脱心而知:解脱心;  非解脱心而知:非解脱心;  如是,于内心随观心,于外心随观心,于内外心随观心而住。于心而随观集法,于心而随观灭法,于心而随观生灭之法而住。彼现心存在之念,如是资其慧、资其思念。彼无有依止而住,不执着世间。  如是,比丘于心随观心而住。   诸比丘!比丘如何于法随观法而住耶?曰:  于此,比丘于五盖法随观法而住。  比丘如何于五盖法随观法而住耶?诸比丘!于此:  比丘内存有爱欲而知:予内存有爱欲;  若内无爱欲而知:予内无爱欲;  未生之爱欲生起者,其知之;  已生之爱欲舍离者,其知之;  所舍离之爱欲于未来不生者,其知之;  又,于内有嗔恚而知:予内有嗔恚;  内无嗔恚而知:予于内无嗔恚;  有未生之嗔恚生起者,其知之;  有已生嗔恚之舍离者,其知之;  所舍离之嗔恚于未来不生者,其知之;  于昏沉、睡眠、掉悔及疑,亦如是。  如是,于内法随观法、于外法随观法于内外法随观法而住。于法随观集法而住,于法随观灭法而住,于法随观集灭之法而住。彼现法存在之念,如是资其慧、资其思念。彼无有依止而住,不执着世间。  如是,比丘于五盖法随观法而住。   复次,诸比丘!比丘于五取蕴之法随观法而住。  诸比丘!比丘如何于五取蕴之法随观法而住耶?于此,  比丘于:有如是色、有如是色之集、有如是色之没;有如是受、有如是受之集、有如是受之没;有如是想、有如是想之集、有如是想之没;有如是行、有如是行之集、有如是行之没;有如是识、有如是识之集、有如是识之没。  如是,于内法随观法、于外法随观法于内外法随观法而住。于法随观集法而住,于法随观灭法而住,于法随观集灭之法而住。彼现法存在之念,如是资其慧、资其思念。彼无有依止而住,不执着世间。  如是,比丘于五取蕴之法随观法而住。   复次,诸比丘!比丘于六内外处之法随观法而住。  诸比丘!比丘如何于六内外处之法随观法而住耶?  于此,比丘知眼、知色、知缘此两者而生结。未生之结生起者,其知之;已生之结舍离者,其知之;所舍离之结于未来不生者,其知之。  知耳、知声、知缘此两者而生结。未生之结生起者,其知之;已生之结舍离者,其知之;所舍离之结于未来不生者,其知之。  知鼻、知香、知缘此两者而生结。未生之结生起者,其知之;已生之结舍离者,其知之;所舍离之结于未来不生者,其知之。  知舌、知味、知缘此两者而生结。未生之结生起者,其知之;已生之结舍离者,其知之;所舍离之结于未来不生者,其知之。  知身、知触、知缘此两者而生结。未生之结生起者,其知之;已生之结舍离者,其知之;所舍离之结于未来不生者,其知之。  知意、知法、知缘此两者而生结。未生之结生起者,其知之;已生之结舍离者,其知之;已舍离之结于未来不生者,其知之。  如是,于内法随观法、于外法随观法于内外法随观法而住。于法随观集法而住,于法随观灭法而住,于法随观集灭之法而住。彼现法存在之念,如是资其慧、资其思念。彼无有依止而住,不执着世间。  如是,比丘于六内外处之法随观法而住。   复次,诸比丘!比丘于七觉支法随观法而住。  诸比丘!比丘如何于七觉支法随观法而住耶?诸比丘!于此,  比丘内有念觉支而知:予内有念觉支;  内无念觉知而知:予内无念觉支;  若未生念觉支有生起者,其知之;  有已生念觉支修习完满者其知之。  内有择法觉支而知:予内有择法觉支;  内无择法觉支而知:予内无择法觉支;  未生之择法觉支有生起者,其知之;  有已生之择法觉支修习完满者,其知之。  比丘内有精进觉支而知:予内有精进觉支;  内无精进觉知而知:予内无精进觉支;  若未生精进觉支有生起者,其知之;  有已生精进觉支修习完满者其知之。  比丘内有喜觉支而知:予内有喜觉支;  内无喜觉知而知:予内无喜觉支;  若未生喜觉支有生起者,其知之;  有已生喜觉支修习完满者其知之。  比丘内有轻安觉支而知:予内有轻安觉支;  内无轻安觉知而知:予内无轻安觉支;  若未生轻安觉支有生起者,其知之;  有已生轻安觉支修习完满者其知之。  比丘内有定觉支而知:予内有定觉支;  内无定觉知而知:予内无定觉支;  若未生定觉支有生起者,其知之;  有已生定觉支修习完满者其知之。  比丘内有舍觉支而知:予内有舍觉支;  内无舍觉知而知:予内无舍觉支;  若未生舍觉支有生起者,其知之;  有已生舍觉支修习完满者其知之。  如是,于内法随观法、于外法随观法于内外法随观法而住。于法随观集法而住,于法随观灭法而住,于法随观集灭之法而住。彼现法存在之念,如是资其慧、资其思念。彼无有依止而住,不执着世间。  如是,比丘于七觉支之法随观法而住。   复次,诸比丘!比丘于四圣谛法随观法而住。  比丘如何于四圣谛法随观法而住耶?诸比丘!比丘于此:  如实知:此是苦;  如实知:此是苦之集;  如实知:此是苦之灭;  如实知:此是致苦灭之道。  如是,于内法随观法而住、于外法随观法而住、于内外法随观法而住。于法随观集法、于法随观灭法、于法随观集灭之法而住。彼现法存在之念,如是资其慧、资其思念。彼无有依止而住,不执着世间。  如是,比丘于四圣谛法随观法而住。   诸比丘!此等四念处如是修习七年者,彼于二果中可预期一果,即:  于现法得究竟智、又,若有依者,则不还位也。  虽不至七年、六年、五年、四年、三年、二年、或一年,修习此四念处者;  虽不至一年,于七个月修习此四念处者,彼于二果中可预期一果:  于现法得究竟智,若有依者,则不还位也。  虽不至七月,实于六月、五月、四月、三月、二月、一月,或半月!  虽不至半月,仅七日修习此四念处者,彼于二果中可预期一果:  即于现法得究竟智。又,若有依者,则不还位也。   如此说:诸比丘!于此,为有情之净化、愁悲之超越、苦忧之消灭、正道之到达、涅盘之作证,有此一法,即四念处也。是缘此而说之也。  世尊如是说已,彼等比丘欢喜信受世尊之所说。         98) 염처경(念處經) 7년동안 아니 잠간동안이라도 4념처를 닦는다면   (九八)中阿含因品念處經第二(第二小土城誦) 我聞如是 一時。佛遊拘樓瘦。在劍磨瑟曇拘樓都邑 爾時。世尊告諸比丘。有一道淨眾生。度憂畏。滅苦惱。斷啼哭。得正法。謂四念處。 若有過去諸如來.無所著.等正覺悉斷五蓋.心穢.慧羸。立心正住於四念處。修七覺支。得覺無上正盡之覺。若有未來諸如來.無所著.等正覺悉斷五蓋.心穢.慧羸。立心正住於四念處。修七覺支。得覺無上正盡之覺。我今現在如來.無所著.等正覺。我亦斷五蓋.心穢.慧羸。立心正住於四念處。修七覺支。得覺無上正盡之覺 云何為四。觀身如身念處。如是觀覺心法如法念處。云何觀身如身念處。 比丘者。行則知行。住則知住。坐則知坐。臥則知臥。眠則知眠。寤則知寤。眠寐則知眠寤。如是比丘觀內身如身。觀外身如身。立念在身。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身如身。 復次。比丘觀身如身。比丘者。正知出入。善觀分別。屈伸低昂。儀容庠序。善著僧伽梨及諸衣鉢。行住坐臥。眠寤語默皆正知之。如是比丘觀內身如身。觀外身如身。立念在身。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身如身 復次。比丘觀身如身。比丘者。生惡不善念。以善法念治斷滅止。猶木工師.木工弟子。彼持墨繩。用拼於木。則以利斧斫治令直。如是比丘生惡不善念。以善法念治斷滅止。如是比丘觀內身如身。觀外身如身。立念在身。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身如身。 復次。比丘觀身如身。比丘者。齒齒相著。舌逼上齶。以心治心。治斷滅止。猶二力士捉一羸人。處處捉旋。自在打鍛。如是比丘齒齒相著。舌逼上齶。以心治心。治斷滅止。如是比丘觀內身如身。觀外身如身。立念在身。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身如身 復次。比丘觀身如身。比丘者。念入息即知念入息。念出息即知念出息。入息長即知入息長。出息長即知出息長。入息短即知入息短。出息短即知出息短。學一切身息入。覺一切身息出。學止身行息入。學止口行息出。如是比丘觀內身如身。觀外身如身。立念在身。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身如身 復次。比丘觀身如身。比丘者。離生喜樂。漬身潤澤。普遍充滿於此身中。離生喜樂無處不遍。猶工浴人器盛澡豆。水和成摶。水漬潤澤。普遍充滿無處不周。如是比丘離生喜樂。漬身潤澤。普遍充滿於此身中。離生喜樂無處不遍。如是比丘觀內身如身。觀外身如身。立念在身。有知有見。有明見達。是謂比丘觀身如身 復次。比丘觀身如身。比丘者。定生喜樂。漬身潤澤。普遍充滿於此身中。定生喜樂無處不遍。猶如山泉。清淨不濁。充滿流溢。四方水來。無緣得入。即彼泉底。水自涌出。流溢於外。漬山潤澤。普遍充滿無處不周。如是比丘定生喜樂。漬身潤澤。普遍充滿於此身中。定生喜樂無處不遍。如是比丘觀內身如身。觀外身如身。立念在身。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身如身 復次。比丘觀身如身。比丘者。無喜生樂。漬身潤澤。普遍充滿於此身中。無喜生樂無處不遍。猶青蓮華。紅.赤.白蓮。水生水長。在於水底。彼根莖華葉悉漬潤澤。普遍充滿無處不周。如是比丘無喜生樂。漬身潤澤。普遍充滿於此身中。無喜生樂無處不遍。如是比丘觀內身如身。觀外身如身。立念在身。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身如身 復次。比丘觀身如身。比丘者。於此身中。以清淨心意解遍滿成就遊。於此身中。以清淨心無處不遍。猶有一人。被七肘衣或八肘衣。從頭至足。於其身體無處不覆。如是比丘於此身中。以清淨心無處不遍。如是比丘觀內身如身。觀外身如身。立念在身。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身如身 復次。比丘觀身如身。比丘者。念光明想。善受善持。善憶所念。如前後亦然。如後前亦然。如晝夜亦然。如夜晝亦然。如下上亦然。如上下亦然。如是不顛倒。心無有纏。修光明心。心終不為闇之所覆。如是比丘觀內身如身。觀外身如身。立念在身。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身如身 復次。比丘觀身如身。比丘者。善受觀相。善憶所念。猶如有人。坐觀臥人。臥觀坐人。如是比丘善受觀相。善憶所念。如是比丘觀內身如身。觀外身如身。立念在身。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身如身 復次。比丘觀身如身。比丘者。此身隨住。隨其好惡。從頭至足。觀見種種不淨充滿。我此身中有髮.髦.爪.齒.麤細薄膚.皮.肉.筋.骨.心.腎.肝.肺.大腸.小腸.脾.胃.摶糞.腦及腦根.淚.汗.涕.唾.膿.血.肪.髓.涎.膽.小便。猶如器盛若干種子。有目之士。悉見分明。謂稻.粟種.蔓菁.芥子。如是比丘此身隨住。隨其好惡。從頭至足。觀見種種不淨充滿。我此身中有髮.髦.爪.齒.麤細薄膚.皮.肉.筋.骨.心.腎.肝.肺.大腸.小腸.脾.胃.摶糞.腦及腦根.淚.汗.涕.唾.膿.血.肪.髓.涎.膽.小便。如是比丘觀內身如身。觀外身如身。立念在身。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身如身 復次。比丘觀身如身。比丘者。觀身諸界。我此身中有地界.水界.火界.風界.空界.識界.猶如屠兒殺牛。剝皮布地於上。分作六段。如是比丘觀身諸界。我此身中。地界.水界.火界.風界.空界.識界。如是比丘觀內身如身。觀外身如身。立念在身。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身如身 復次。比丘觀身如身。比丘者。觀彼死屍。或一.二日。至六.七日。烏鴟所啄。豺狼所食。火燒埋地。悉腐爛壞。見已自比。今我此身亦復如是。俱有此法。終不得離。如是比丘觀內身如身。觀外身如身。立念在身。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身如身 復次。比丘觀身如身。比丘者。如本見息道骸骨青色。爛腐食半。骨璅在地。見已自比。今我此身亦復如是。俱有此法。終不得離。如是比丘觀內身如身。觀外身如身。立念在身。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身如身。復次。比丘觀身如身。比丘者。如本見息道。離皮肉血。唯筋相連。見已自比。今我此身亦復如是。俱有此法。終不得離。如是比丘觀內身如身。觀外身如身。立念在身。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身如身 復次。比丘觀身如身。比丘者。如本見息道骨節解散。散在諸方。足骨.膞骨.髀骨.髖骨.脊骨.肩骨.頸骨.髑髏骨。各在異處。見已自比。今我此身亦復如是。俱有此法。終不得離。如是比丘觀內身如身。觀外身如身。立念在身。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身如身。 復次。比丘觀身如身。比丘者。如本見息道骨白如螺。青猶鴿色。赤若血塗。腐壞碎粖。見已自比。今我此身亦復如是。俱有此法。終不得離。如是比丘觀內身如身。觀外身如身。立念在身。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身如身。若比丘.比丘尼。如是少少觀身如身者。是謂觀身如身念處 云何觀覺如覺念處。 比丘者。覺樂覺時。便知覺樂覺。覺苦覺時。便知覺苦覺。覺不苦不樂覺時。便知覺不苦不樂覺。覺樂身.苦身.不苦不樂身。樂心.苦心.不苦不樂心。樂食.苦食.不苦不樂食。樂無食.苦無食.不苦不樂無食。樂欲.苦欲.不苦不樂欲。樂無欲.苦無欲覺.不苦不樂無欲覺時。便知覺不苦不樂無欲覺。如是比丘觀內覺如覺。觀外覺如覺。立念在覺。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覺如覺。若比丘.比丘尼如是少少觀覺如覺者。是謂觀覺如覺念處 云何觀心如心念處。 比丘者.有欲心知有欲心如真。無欲心知無欲心如真。有恚無恚.有癡無癡.有穢污無穢污.有合有散.有下有高.有小有大.修不修.定不定。有不解脫心知不解脫心如真。有解脫心知解脫心如真。如是比丘觀內心如心。觀外心如心。立念在心。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心如心。若有比丘.比丘尼如是少少觀心如心者。是謂觀心如心念處 云何觀法如法念處。 眼緣色生內結。比丘者。內實有結知內有結如真。內實無結知內無結如真。若未生內結而生者知如真。若已生內結滅不復生者知如真。如是耳.鼻.舌.身。意緣法生內結。比丘者。內實有結知內有結如真。內實無結知內無結如真。若未生內結而生者知如真。若已生內結滅不復生者知如真。如是比丘觀內法如法。觀外法如法。立念在法。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法如法。謂內六處 復次。比丘觀法如法。比丘者。內實有欲知有欲如真。內實無欲知無欲如真。若未生欲而生者知如真。若已生欲滅不復生者知如真。如是瞋恚.睡眠.調悔。內實有疑知有疑如真。內實無疑知無疑如真。若未生疑而生者知如真。若已生疑滅不復生者知如真。如是比丘觀內法如法。觀外法如法。立念在法。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法如法。謂五蓋也 復次。比丘觀法如法。比丘者。內實有念覺支知有念覺支如真。內實無念覺支知無念覺支如真。若未生念覺支而生者知如真。若已生念覺支便住不忘而不衰退。轉修增廣者知如真。如是法.精進.喜.息.定。比丘者。內實有捨覺支知有捨覺支如真。內實無捨覺支知無捨覺支如真。若未生捨覺支而生者知如真。若已生捨覺支便住不忘而不衰退。轉修增廣者知如真。如是比丘觀內法如法。觀外法如法。立念在法。有知有見。有明有達。是謂比丘觀法如法。謂七覺支。若有比丘.比丘尼如是少少觀法如法者。是謂觀法如法念處 若有比丘.比丘尼七年立心正住四念處者。彼必得二果。或現法得究竟智。或有餘得阿那含。 置七年。六五四三二一年。若有比丘.比丘尼七月立心正住四念處者。彼必得二果。或現法得究竟智。或有餘得阿那含。 置七月。六五四三二一月。若有比丘.比丘尼七日七夜立心正住四念處者。彼必得二果。或現法得究竟智。或有餘得阿那含。 置七日七夜。六五四三二。置一日一夜。若有比丘.比丘尼少少須臾頃立心正住四念處者。彼朝行如是。暮必得昇進。暮行如是。朝必得昇進 佛說如是。彼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念處經第二竟(三千一百三十七字) 中阿含經卷第二十四(八千六百九字)(第二小土城誦)   98) 염처경(念處經) 제 2 [제2 소토성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구루수(拘樓瘦)를 유행하실 적에 도읍인 검마슬담(檢磨瑟曇)에 머무셨다. 그 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중생을 깨끗하게 하고, 걱정과 두려움에서 제도하며, 고뇌를 없애고 슬픔을 끊고, 바른 법을 얻게 하는 도(道)가 있으니, 곧 4념처(念處)이니라. 과거의 모든 여래(如來) 무소착(無所着) 등정각(等正覺)께서는 다 5개(蓋)1) 와 마음의 번뇌[心穢]와 지혜의 미약함을 끊고 마음을 세워 4념처에 바르게 머무르고, 7각지(覺支)를 닦아 위없는 정진의 깨달음(無上正盡之覺)을 얻으셨다. 또 미래의 모든 여래 무소착 등정각께서도 다 5개와 마음의 번뇌[心穢]와 지혜의 미약함을 끊고 마음을 세워 4념처에 바르게 머무르고, 7각지를 닦아 위없는 정진의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나는 지금 현재의 여래 무소착 등정각으로서, 나도 또한 5개와 마음의 번뇌[心穢]와 지혜의 미약함을 끊고 마음을 세워 4념처에 바르게 머무르고, 7각지를 닦아 위없는 정진의 깨달음을 깨닫게 되었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몸[身]을 몸 그대로 관하는 염처(念處)이고, 이와 같이 각(覺)을 각(覺) 그대로 관하며, 마음[心]을 마음 그대로 관하고, 법(法)을 법 그대로 관하는 염처이니라. 어떤 것을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염처라 하는가? 비구는 다니면[行] 다시는 줄을 알고, 머물면[住] 머무는 줄을 알며, 앉으면[坐] 앉은 줄 알고, 누우면[臥] 누운 줄 알며, 자면 자는 줄 알고, 깨면 깬 줄 알며, 자다 깨면 자다 깨는 줄 안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內身]을 몸[身]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外身]을 몸 그대로 관하여서, 생각을 몸에 두어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明]이 있고 통달함[達]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는 들고 남[出入]을 바르게 알고, 굽히고 펴거나 낮추고 우러르는 것을 분별하고 잘 관하여 몸가짐과 거동에 질서가 있고, 승가리(僧伽梨)와 옷과 발우를 잘 지니고, 다니고 머물거나 앉고 눕거나 자고 깨거나, 말하고 침묵하는 것을 다 바르게 안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서, 생각을 몸에 두어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는 악하고 착하지 않은 생각이 생기면 착한 법[善法]의 생각으로써 다스려 끊고 없애 그치게 하나니, 마치 목수나 목수의 제자가 먹줄을 나무에 퉁기고는 곧 날카로운 도끼로 쪼아 곧게 다듬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는 악하고 착하지 않은 생각이 생기면 착한 법의 생각으로써 다스려 끊고 없애 그치게 한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서, 생각을 몸에 두어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는 아래윗니를 서로 붙이고 혀를 잇몸 천장에 붙인 채 마음으로써 마음을 다스려서, 다스려 끊고 없애 그치게 하나니, 마치 두 역사(力士)가 나약한 한 사람을 붙잡고 곳곳으로 끌고 다니며 마음대로 두드리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는 아래윗니를 서로 붙이고 혀를 잇몸 천장에 붙이고 마음으로써 마음을 다스려서, 다스려 끊고 없애 그치게 한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고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는 들숨[入息]을 생각하되 곧 들숨을 생각하는 줄을 알고, 날숨[出息]을 생각하되 곧 날숨을 생각하는 줄을 알며, 들숨이 길면 곧 들숨이 긴 줄을 알고, 날숨이 길면 곧 날숨이 긴 줄을 알며, 들숨이 짧으면 곧 들숨이 짧은 줄을 알고, 날숨이 짧으면 곧 날숨이 짧은 줄을 알며, 온몸으로 숨을 들이쉬는 것을 배우고, 온몸으로 숨을 내쉬는 것을 배우며, 몸의 행[身行]을 그치고 숨 들이쉬는 법을 배우고, 입의 행[口行]을 그치고 숨 내쉬는 법을 배운다. 이와 같이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가 욕망을 여의고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으로 몸을 적시고 윤택하게 하며 두루 충만하게 하면, 욕망을 여의고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은 온몸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게 된다. 비유하면 마치 목욕하는 도구를 만드는 어떤 사람이 그릇에 가루비누[?豆]를 담아 물과 섞어서 덩어리로 만든 것을 물에 가져다 담그면 그 물이 윤택해지는데 두루 충만하여 미치지 않은 곳이 없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도 욕망을 여의고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으로 몸을 적시고 윤택하게 하며 두루 충만하게 하면, 욕망을 여의고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은 온몸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게 된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가 선정에서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으로 몸을 적시고 윤택하게 하며 두루 충만하게 하면, 선정에서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은 온몸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게 된다. 비유하면 마치 산의 샘물이 청정하여 흐리지 않고 충만하게 흘러 넘쳐 사방의 물이 흘러들어갈 길이 없으면, 곧 그 샘 밑바닥에서 저절로 솟아나는 물은 밖으로 흘러 넘쳐 산을 적시고 윤택하게 하되 두루 충만하여 미치지 않은 곳이 없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도 선정에서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으로 몸을 적시고 윤택하게 하며 두루 충만하게 하면, 선정에서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은 온몸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게 된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가 기쁨[喜]이 없는 데서 생겨난 즐거움[樂]으로 몸을 적시고 윤택하게 하며 두루 충만하게 하면, 기쁨이 없는 데서 생겨난 즐거움은 온몸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게 된다. 비유하면 마치 푸른 연꽃이나 붉고 빨갛고 흰 연꽃이 물에서 나고 물에서 자라 물밑에 있으면, 그 뿌리와 줄기와 꽃과 잎은 모두 촉촉하고 윤택하며 두루 충만하게 되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도 기쁨이 없는 데서 생겨난 즐거움으로 몸을 적시고 윤택하게 하며 두루 충만하게 하면, 기쁨이 없는데서 생겨난 즐거움은 온몸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게 된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가 이 몸 속에서 청정한 마음으로 뜻을 터득하여 두루 충만하게 성취하여 노닐면, 청정한 마음은 온몸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게 된다. 마치 어떤 사람이 7주(?)나 8주 되는 옷을 입으면 머리에서 발에 이르기까지 그 몸을 감싸지 못하는 곳이 없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도 청정한 마음이 온몸에 미치지 않은 곳이 없게 된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는 광명상(光明想)을 생각하여 잘 받아 지니고 생각한 바를 잘 기억하여, 앞에서와 같이 뒤에서도 또한 그러하고 뒤에서와 같이 앞에서도 또한 그러하며, 낮에와 같이 밤에도 또한 그러하고 밤에와 같이 낮에도 또한 그러하며, 아래서와 같이 위에서도 또한 그러하고 위에서와 같이 아래서도 또한 그러하나니, 이렇게 뒤바뀌지 않고, 마음에 얽매임 없이 광명심을 닦으면 마음은 끝내 어둠에 덮이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는 관찰하는 모습[觀相]을 잘 받아들이고 생각한 바를 잘 기억하나니, 마치 어떤 사람이 앉아서 누운 사람을 관찰하고, 누워서 앉은 사람을 관찰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는 관찰하는 모습을 잘 받아들이고 생각한 바를 잘 기억한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가 이 몸은 어디 있거나 좋거나 밉거나 머리에서 발에 이르기까지 온갖 더러운 것으로 충만해 있다고 관찰하는 것이다. '내 이 몸 가운데에는 머리털 털 손톱 이 추하고 곱고 엷은 살갗 가죽 살 힘줄 뼈 심장 콩팥 간 허파 큰 창자 작은 창자 지라 밥통 똥 골 뇌수[腦根] 눈꼽 땀 눈물 가래침 고름 피 기름 골수 침 쓸개 오줌이 있다.' 마치 그릇에 몇 가지 종자(種子)를 담은 것 같아서 눈이 있는 사람은 다 분명히 보나니, 곧 벼나 조의 종자나 갓 무우 겨자의 종자와 같다. 이와 같이 비구는 이 몸은 어디 있거나, 좋고 밉거나 머리에서 발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더러운 것이 충만해 있다고 관찰한다. '내 이 몸 가운데에는 머리털 털 손톱 이 추하고 곱고 엷은 살갗 가죽 살 힘줄 뼈 심장 콩팥 간 허파 큰 창자 작은 창자 지라 밥통 똥 골 뇌수 눈꼽 땀 눈물 가래침 고름 피 기름 골수 침 쓸개 오줌이 있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가 몸에 있는 모든 경계를 관찰하는 것이다. '내 몸에는 흙의 요소[地界] 물의 요소[水界] 불의 요소[火界] 바람의 요소[風界] 허공의 요소[空界] 의식의 요소[識界]가 있다.' 마치 백정이 소를 잡아 껍질을 벗겨 땅에 펴고 그것을 여섯 동강으로 가르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 있는 모든 경계를 관찰한다. '내 몸에는 흙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 허공의 요소 의식의 요소가 있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가 저 송장이 하루 이틀, 혹은 엿새나 이레가 되어 까마귀나 소리개[?]에게 쪼이고 승냥이나 이리에게 먹히며, 불에 타고 땅에 묻혀 다 썩어 문드러지는 것을 관찰하는 것이다. 관찰한 뒤에는 자기에게 견준다. '이제 내 이 몸도 또한 이와 같아서 이 법이 함께하니, 끝내 벗어날 길이 없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는 묘지에 버려진 몸의 해골이 푸른빛으로 썩어 문드러지고 반쯤 남은 뼈사슬이 땅에 뒹구는 것을 보게 되면 그것을 관찰한 뒤에 자기에게 견준다. '이제 내 이 몸도 또한 이와 같아서 이 법이 함께하니, 끝내 벗어날 길이 없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는 묘지에 버려진 몸이 가죽과 살과 피가 분리되어 오직 힘줄만 서로 이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되면 그것을 관찰한 뒤에 자기에게 견준다. '이제 내 이 몸도 또한 이와 같아서 이 법이 함께하니, 끝내 벗어날 길이 없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는 묘지에 버려진 몸의 뼈마디가 분리되어 여러 곳에 흩어져 발뼈 장딴지뼈 넓적다리뼈 허리뼈 등뼈 어깨뼈 목뼈 머리뼈들이 제각기 다른 곳에 흩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되면 그것을 관찰한 뒤에 자기에게 견준다. '이제 내 이 몸도 또한 이와 같아서 이 법이 함께하니, 끝내 벗어날 길이 없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는 묘지에 버려진 몸의 뼈가 마치 소라[螺]처럼 희고 집비둘기처럼 푸르며, 피를 칠한 것처럼 붉고 썩어 문드러지고 부서져 가루가 되는 것을 보게 되면 그것을 관찰한 뒤에 자기에게 견준다. '이제 내 이 몸도 또한 이와 같아서 이 법이 함께하니 끝내 벗어날 길이 없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나니, 만일 비구 비구니가 이렇게 조금이라도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면, 이것을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염처(念處)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각(覺)을 각(覺) 그대로 관하는 염처라 하는가? 비구는 즐거운 감각을 깨달을 땐 곧 즐거운 감각을 깨닫는 줄 알고, 괴로운 감각을 깨달을 땐 곧 괴로운 감각을 깨닫는 줄 알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감각을 깨달을 땐 곧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감각을 깨닫는 줄 안다. 즐거운 몸[樂身] 괴로운 몸[苦身]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몸[不苦不樂身]과 즐거운 마음[樂心] 괴로운 마음[苦心]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마음[不苦不樂心]과 좋아하는 음식[樂食] 괴로운 음식[苦食] 괴롭지도 않고 좋지도 않은 음식[不苦不樂食]과 즐거운 무식[樂無食] 괴로운 무식[苦無食]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무식[不苦不樂無食]과 즐거운 욕심 괴로운 욕심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욕심과 즐거운 무욕각[樂無欲覺] 괴로운 무욕각[苦無欲覺]도 또한 그러하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무욕각을 깨달을 땐 곧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무욕각을 깨닫는 줄을 안다. 이렇게 비구는 안의 각[內覺]을 각 그대로 관하고, 바깥 각[外覺]을 각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각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각을 각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나니, 만일 비구 비구니가 이렇게 조금이라도 각을 각 그대로 관하면, 이것을 각을 각 그대로 관하는 염처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마음[心]을 마음 그대로 관하는 염처라 하는가? 비구는 욕심이 있으면 욕심이 있음을 사실 그대로 알고, 욕심이 없으면 욕심이 없음을 사실 그대로 알며, 성냄[?]이 있고 성냄이 없는 것과 어리석음[癡]이 있고 어리석음이 없는 것과 더러움[穢]이 있고 더러움이 없는 것과 모임이 있고 흩어짐이 있는 것과 낮춤이 있고 높임이 있는 것과 작음이 있고 큼이 있는 것과 닦고[修] 닦지 않음과 정[定]하고 정하지 않은 것도 또한 그러하며, 해탈하지 않은 마음이 있으면 해탈하지 않은 마음을 사실 그대로 알고 해탈한 마음이 있으면 해탈한 마음을 사실 그대로 안다. 이렇게 비구는 안 마음[內心]을 마음 그대로 관하고, 바깥 마음[外心]을 마음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마음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마음을 마음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나니, 만일 어떤 비구 비구니가 이렇게 조금이라도 마음을 마음 그대로 관하면, 이것을 마음을 마음 그대로 관하는 염처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법(法)을 법 그대로 관하는 염처라 하는가? 눈은 색을 연(緣)하여 안의 번뇌[內結]가 생긴다. 비구는 안에 진실로 번뇌가 있으면 안에 번뇌가 있음을 사실 그대로 알고, 안에 진실로 번뇌[結]가 없으면 안에 번뇌가 없음을 사실 그대로 알며, 만약 아직 생기지 않은 안의 번뇌가 생기면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만일 이미 생긴 안의 번뇌가 멸해 다시 생기지 않으면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안다. 이와 같이 귀 코 혀 몸도 또한 그러하며, 뜻은 법을 연하여 안의 번뇌가 생긴다. 비구는 안에 진실로 번뇌가 있으면 안에 번뇌가 있음을 사실 그대로 알고, 안에 진실로 번뇌가 없으면 안에 번뇌가 없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며, 만일 아직 생기지 않은 안의 번뇌가 생기면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만일 이미 생긴 안의 번뇌가 멸해 다시 생기지 않으면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안다. 이렇게 비구는 안의 법을 법 그대로 관하고, 바깥의 법을 법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법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법을 법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나니, 곧 안의 6처(處)이니라. 또 비구가 법을 법 그대로 관하는 것은, 비구는 안에 진실로 욕심이 있으면 욕심이 있음을 사실 그대로 알고, 안에 진실로 욕심이 없으면 욕심이 없음을 사실 그대로 알며, 만일 아직 생기지 않은 욕심이 생기면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만일 이미 생긴 욕심이 멸해 다시 생기지 않으면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안다. 이와 같이 성냄[瞋?] 수면[睡眠] 들뜸[掉悔]도 또한 그러하며, 안에 진실로 의심이 있으면 의심이 있음을 사실 그대로 알고, 안에 진실로 의심이 없으면 의심이 없음을 사실 그대로 알며, 만일 아직 생기지 않은 의심이 생기면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만일 이미 생긴 의심이 멸해 다시 생기지 않으면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안다. 이와 같이 비구는 안의 법을 법 그대로 관하고, 바깥 법을 법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법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법을 법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나니, 곧 5개(蓋) 이니라. 또 비구가 법을 법 그대로 관하는 것은, 비구는 안에 진실로 염각지(念覺支)가 있으면 염각지가 있음을 사실 그대로 알고, 안에 진실로 염각지가 없으면 염각지가 없음을 사실 그대로 알며, 만일 아직 생기지 않은 염각지가 생기면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만일 이미 생긴 염각지가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고 또 쇠퇴하지도 않고 더욱 닦아 더하고 넓어지면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안다. 이와 같이 택법(擇法) 정진(精進) 기쁨[喜] 쉼[息] 정(定)도 또한 그러하며, 비구는 안에 진실로 사각지(捨覺支)가 있으면 사각지가 있음을 사실 그대로 알고, 안에 진실로 사각지가 없으면 사각지가 없음을 사실 그대로 알며, 만일 아직 생기지 않은 사각지가 생기면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만일 이미 생긴 사각지가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고 쇠퇴하지도 않고, 더욱 닦아 더하고 넓어지면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안다. 이렇게 비구는 안의 법을 법 그대로 관하고, 바깥 법을 법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법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법을 법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나니, 곧 7각지(覺支)이니라. 만일 어떤 비구 비구니가 이렇게 조금이라도 법을 법 그대로 관하면, 이것을 법을 법 그대로 관하는 염처라 하느니라. 만일 어떤 비구 비구니가 7년 동안 마음을 세워 바르게 4념처(念處)에 머무르면 그는 반드시 2과(果)를 얻을 것이니, 현법(現法)에서 구경(究竟)의 지혜를 얻거나, 혹은 남음[餘]이 있으면 아나함(阿那含)을 얻을 것이다. 7년 6년 5년 4년 3년 2년 1년은 그만두고, 만일 어떤 비구 비구니가 7개월 동안이라도 마음을 세워 바르게 4념처에 머무르면 그는 반드시 2과(果)를 얻을 것이니, 현재에서 구경의 지혜를 얻거나, 혹은 남음이 있으면 아나함을 얻을 것이다. 7개월 6개월 5개월 4개월 3개월 2개월 1개월은 그만두고, 어떤 비구 비구니가 이레 낮 이레 밤 동안이라도 마음을 세워 바르게 4념처에 머무르면 그는 반드시 2과(果)를 얻을 것이니, 현법에서 구경의 지혜를 얻거나, 혹은 남음이 있으면 아나함을 얻을 것이다. 이레 낮 이레 밤이나 6 5 4 3 2일은 그만두고 하루 낮 하룻밤도 그만두고, 만일 어떤 비구 비구니가 잠깐 동안이라도 마음을 세워 바르게 4념처에 머물러, 아침에 이렇게 행하면 저녁에는 반드시 승진(昇進)하게 될 것이요, 저녁에 이렇게 행하면 아침에는 반드시 승진하게 될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염처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3,137자이다. 『중아함경 』 제24권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모두 8,609자이다.]       1) 범어로는 pannca varan ni이며, 5장(障)이라고도 한다. 사람의 심성(心性)을 장애하여 선법(善法)을 낼 수 없게 하는 5법(法)을 말함. 첫째 탐욕개(貪欲蓋)로서 5욕(欲)에 집착하기 때문에 심성을 장애하는 것이다. 둘째 진에개(瞋?蓋)로서 성냄 때문에 심성을 장애하는 것이다. 셋째 수면개(睡眠蓋)로서 마음이 흐려지고 몸이 둔해짐으로 인하여 심성을 장애하는 것이다. 넷째 조희개(調戱蓋)로서 마음이 들뜨고 희동함 때문에 심성을 장해하는 것이다. 다섯째 의개(疑蓋)로서 결연한 의지가 미약하여 법에 후퇴함으로써 심성을 장애하는 것을 말한다. 한문출처 : 중화전자불전협회(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修大藏經) 국역출처 : 동국역경원 전자불전연구소 한글대장경 ----------------------------------------------------------------------------------  
二九. 清净经 17. 청정경(淸淨經) --我所制衣 불설장아함경 제 十二권제 二분 청정경(淸淨經) 제 十三이렇게 내가 들었다.어느 때 부처님은 가비라국의 면기(緬祇) 우바새의 동산에서 큰 비구 무리 천 二백 五十인과 함께 계셨다.때에 사미(沙彌) 주나(周那)는 파파(波波)국에서 여름 안거(安居)를 마친 뒤 가사와 바루를 가지고 가비라국의 면기 동산으로 나아가 아난이 있는 곳으로 가서 머리로 그 발에 예배하고 한 쪽에 서서 아난에게 사뢰었다.“저 파파성 안에 있는 니건자(尼乾子)는 죽은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 제자들은 두 파로 갈라져 각각 서로 다투고 있습니다. 서로 맞대고 헐고 욕하면서 상하의 분별도 없고 서로 상대방의 허물을 들추며 그 지견(知見)을 다투어 ‘나는 이것을 아는데 너는 그것을 모른다. 내 행은 참되고 바른데 너는 삿된 소견을 가지고 있다’고하여 앞의 것으로써 뒤에 붙이고, 뒤의 것으로써 앞에 붙이며, 뒤바뀌고 어지러이 얽히어 어떤 일정한 법칙이 없어 서로 ‘내가 하는 것은 묘하고 네가 하는 말은 그르다. 너에게 의심이 있거든 마땅히 내게 물으라’고 합니다. 대덕(大德) 아난이여, 그래서 니건자를 섬기던 저 나라 사람들은 이 다투는 것을 듣고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아난은 주나 사미에게 말했다.“우리는 할 말이 있어 세존께 여쭈려 한다. 이제 너와 함께 나아가 이 사실을 세존께 여쭈어 보자. 만일 세존께서 어떤 가르침이 계시거든 우리는 다 같이 받들어 행하자.”그 때 사미 주나는 아난의 말을 듣고 곧 세존께 나아가 머리로 그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서 있었다.아난은 세존께 여쭈었다.“이 사미 주나는 파파국에서 여름 안거를 마친 뒤 가사와 바루를 가지고 이곳에 와 제 발에 절하고 제게 말했습니다. 파파국에 있던 니건자는 죽은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 제자들은 두 파로 갈라져 각각 서로 다투고 있다 합니다. 그들은 서로 맞대고 헐고 욕하면서 상하의 구별도 없답니다. 서로 상대방의 단점을 들추어 그 지견을 주장하고 있답니다. ‘나는 이것을 아는데 너는 그것을 모른다. 내 행은 참되고 바른데 너는 삿된 소견을 가지고 있다’고. 앞의 것으로써 뒤에 붙이고 뒤의 것으로써 앞에 붙이어, 뒤바뀐 소견이 어지러이 얽히어 어떤 일정한 법칙이 없답니다. ‘내 말은 옳고 네 말은 그르다. 너는 의심나는 것이 있거든 내게 물으라’고. 그래서 니건자를 섬기던 저 파파 국민들은 이 다툼을 듣고 걱정을 한다고 합니다.”세존은 주나 사미에게 말씀하셨다.“그렇다. 주나야, 저 그른 법 가운데는 족히 들을 만한 것이 없다. 그것은 삼마아삼붓다[三耶三佛]의 하신 말씀이 아니다. 마치 썩은 탑에 색칠하기 어려운 것처럼, 저들에게는 스승이 있다고 하지만 그는 다 삿된 소견을 품었고 또 그들에게는 법이 있다고 하지마는 그것은 다 참되고 바른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족히 들을 것이 못되고, 그것으로는 번뇌를 떠날 수가 없다. 그것은 삼마아삼붓다의 하신 말씀이 아니어서, 마치 썩은 탑에는 색칠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저 모든 제자들이 그 법을 따르지 않고 삿된 소견을 버리며 바른 소견을 행할 때, 주나냐, 만일 어떤 사람이 그 제자에게 말하기를 ‘여러분, 그대들의 스승의 법은 마땅히 그 가운데서 행할 만한데 왜 버리느냐.’하고, 그 때 그 제자가 만일 그 말을 믿는다면 그 두 사람은 함께 도(道)를 잃어 무량한 죄를 받을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그에게는 비록 법이 있지마는 그것은 진정한 법이 아니기 때문이다.주나야, 만일 그 스승의 소견이 삿되지 않고 그 법이 진정하여 족히 들어 행할 만하고 또 번뇌를 떠나게 할 수 있으면 그것은 삼약삼붓다의 말씀일 것이다. 마치 새로운 탑에는 색칠하기 쉬운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저 모든 제자들이 이 법 가운데 있어서 부지런히 닦지도 못하고 성취하지도 못해 평등한 도를 버리고 삿된 소견으로 들어갈 때, 만일 어떤 사람이 그 제자들에게 와서 말하기를 ‘여러분, 그대들 스승의 법은 마땅히 그 가운데서 행할 만한데 왜 그것을 버리고 삿된 소견으로 들어가느냐.’하고, 그 때 그 제자가 만일 그 말을 믿는다면, 그 두 사람은 함께 진정한 도를 보아 무량한 복을 얻을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그 법은 진정하기 때문이다.주나야, 저들에게는 스승이 있어도 그들은 다 삿된 소견을 품었고 다시 법이 있다 하지마는 그것은 다 진정하지 않다. 그러므로 그것은 족히 들을 만한 것이 못되고 또 그것은 번뇌를 떠나게 하지도 못해 삼약삼붓다의 말씀이 아닌 것은 마치 썩은 탑은 색칠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 제자로써 법 중의 법을 성취하고 그 행을 순종하면서 모든 삿된 소견을 일으킬 때 주나야, 만일 어떤 사람이 그 제자에게 와서 말하기를 ‘네 스승의 법은 바르고 네가 행하는 것은 옳다. 이제 그것을 부지런히 수행하는 것이 이러하니, 너는 반드시 현재에서 도과(道果)를 성취하리라’ 하고, 만일 그 제자가 그 말을 믿어 받는다면 그들 두 사람은 함께 도를 잃고 무량한 죄를 받을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그 법이 진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주나야, 만일 그 스승의 소견이 삿되지 않고 그 법은 진정하여 족히 들을 만하고 또 번뇌를 떠날 수 있으면 그것은 삼약삼붓다의 말씀으로써 마치 새 탑은 색칠하기 쉬운 것과 같다. 그런데 그 제자로서 법 중의 법을 성취하고 수순(隨順)하고 수행하여 바른 소견을 낼 때 만일 어떤 사람이 그 제자에게 와서 ‘너의 스승의 법은 바르고 너의 행하는 것은 옳다. 이제 그것을 부지런히 수행하는 것이 이러하니 너는 반드시 현재의 세계에서 도과를 성취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자. 만일 그 제자가 그 말을 믿어 받는다면 그들 두 사람은 다 바른 소견으로서 무량한 복을 얻을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그 법은 진정하기 때문이다. 주나야, 혹 어떤 도사(導師)는 세상에 나와 그 제자에게 걱정이 있게 하고 혹 어떤 도사는 세상에 나와 그 제자에게 걱정이 없게 한다. 어떤 것을 도사가 세상에 나와 그 제자에게 걱정이 있게 한다고 하는가. 주나야, 도사가 새로이 세상에 나와 성도 한지 오래지 않았는데 그 법은 구족하고 범행(梵行)은 청정하다. 여실한 진요(眞要)를 펴서 나타내지 못하고 그러나 도사는 어느새 멸도(滅度)에 든다. 그 때 그 제자들은 수행할 수가 없어 다 근심스리 말한다. ‘우리 스승은 새로이 세상에 나와 성도 한지 오래지 않았는데 그 법은 청정하고 범행은 구족했다. 그러나 여실한 진요는 끝내 펴서 나타내지 못하고 이제 도사는 갑자기 멸도에 드셨다. 그래서 우리 제자들은 수행할 수가 없다.’고 하면 이것을 도사가 세상에 나타나 그 제자를 걱정하게 하는 것이라 한다. 어떤 것을 도사가 세상에 나와 그 제자에게 걱정이 없게 하는 것이라 하는가. 도사가 세상에 나오매 그 법은 청정하고 범행은 구족하며 여실한 진요를 널리 편 뒤에 도사가 바야흐로 멸도에 들므로 그 제자들은 다 수행할 수 있어 걱정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 스승은 세상에 나와 성도 한지 오래지 않다. 그 법은 청정하고 범행은 구족 하여 여실한 진요를 널리 펴셨다. 이네 도사가 갑자기 멸도 하시더라도 우리 제자들로 하여금 다 수행하게 한다.’ 이것을 주나야, 도사가 세상에 나오매 제자가 걱정이 없다 하는 것이다.”부처님은 다시 주나에게 말씀하셨다.“주나야, 범행을 성취하는 지(支)라는 것은 이른바 도사가 세상에 나와 집을 떠난 지 오래지 않고 그 이름이 널리 퍼지지 않으면 이것을 범행지(梵行支)의 구족하지 못한 것이라 한다. 주나야, 도사가 세상에 나와 집을 떠난 지 이미 오래고 그 이름이 널리 퍼지면 이것을 범행지의 구족만(滿)이라 한다. 주나야, 도사가 세상에 나와 집을 떠난 지 이미 오래고 그 이름이 널리 퍼졌으면서도 모든 제자가 이직 그 훈계와 가르침을 받지 못하여 범행을 구족하지 못하고 안락한 곳에 이르지 못하며, 아직 자기의 이익을 거두지 못하고 아직 법을 받아 널리 펴서 연설하지 못하며 이론(異論)이 있어 일어났을 때에는 법다이 가서 그것을 멸하지 못하고 아직 그 변화로 신통증(證)을 이루지 못했으면 이것을 범행지의 구족하지 못한 것이라 한다. 주나야, 도사가 세상에 나와 집을 떠난 지 이미 오래고 그 이름도 널리 퍼지어 모든 제자는 다 그 교훈을 받아 범행이 구족하고 안온한 곳에 이르렀으며 이미 자기의 이익을 거두었고 또 법을 받아 분별하여 연설하며 이론이 있어 일어났을 때에는 능히 법다이 가서 그것을 멸하고 변화가 구족하여 신통증을 이루었으면 이것을 범행지의 구족만이라 한다.주나야, 도사가 세상에 나와 집을 떠난 지 또한 오래고 그 이름이 널리 퍼졌다 하더라도 모든 비구니가 그 교훈을 받지 못하고 편안한 곳에 이르지 못하며 자기의 이익을 거두지 못하며 법을 받아 널리 펴서 연설하지 못하며, 이론이 있어 일어났을 때 능히 법으로써 실답게 멸하지 못하며 변화가 없어 신통증을 이루지 못하면 이는 범행지가 구족하지 못한 것이다. 주나야, 도사가 세상에 나와 집을 떠난 지도 오래고 이름도 널리 퍼졌으면 모든 비구니가 다 그 교훈을 받아 범행이 구족하며 안온한 곳에 이르러 자기의 이익을 거두며 또한 능히 법을 받아 분별하고 연설하며, 이론이 있어 일어나면 능히 법다이 멸하며 변화가 구족하고 신통증을 이루었으면 이를 범행지의 구족만이라 한다. 주나야, 모든 우바새, 우바이가 널리 범행을 닦고 내지 변화가 구족하여 신통증을 성취함도 또한 이와 같다.주나야, 만일 도사가 세상에 있지 않고 그 명문(名聞)이 없고 이양(利養)이 없으면 그것은 범행지의 구족만이 아니다. 만일 도사가 세상에 있으면서 명문과 이양이 다 구족하여 줄어듦이 없으면 그것은 범행지의 구족만이다. 만일 도사가 세상에 있어 명문과 이양이 다 구족하더라고 모든 비구의 명문과 이양이 구족하지 못하면 그것은 범행지가 구족하지 않은 것이다. 만일 도사가 세상에 있어 명문과 이양이 구족하여 줄어듦이 없고 모든 비구 중도 또한 구족하면 그것은 범행지의 구족만이다. 비구니 중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다. 주나야, 나는 집을 떠난 지 이미 오래 되었고 이름은 널리 퍼졌으며 나의 모든 비구들은 이미 나의 가르침을 받았고 안온한 곳에 이르렀으며 스스로 자기의 이익을 얻었고 다시 능히 법을 받아 남을 위하여 연설하며 이론이 일어났을 때에는 능히 법다이 멸하고 변화가 구족하여 신통증을 이루었다. 모든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도 또한 그러하다. 주나야, 나는 그로서 널리 범행을 유포하고, 내지 변화가 구족하여 신통증을 이루었다. 주나야, 일체 세간의 모든 도사로써 그 명문과 이양을 얻는 것이 나 여래, 지진, 등적각과 같은 이를 보지 못했다. 주나야, 모든 세간의 모든 무리들로서 그 명문과 이양이나 무리들과 같은 것을 보지 못했다. ???????????????????????????????????????????????????????????????????????????????????? 주나야, 만일 바로 말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보려고 해도 보지 못한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어떤 것이 보려고 해도 보지 못하는 것인가. 일체의 범행을 청정하고 구족하여 두루 펴서 나타내 보이는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려고 해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그 때 세존은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울두람자(鬱頭籃子)는 대중 가운데서 이렇게 말한다. ‘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고 한다. 어떤 것을 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이라 하는가. 마치 ‘칼은 볼 수 있어도 칼날은 볼 수 없다는 것과 같다’고. 모든 비구들이여, 저 사람은 범부의 무식한 말을 끌어 비유로 하는 것이 이와 같다. 주나야, 만일 바로 말하고자 한다면 보고도 보지 못한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어떤 것이 보고도 보지 못하는 것인가. 너는 마땅히 바로 말하라. 일체 범행은 청정구족하여 펴서 보이고 흘러 퍼지는 것이니 이것을 보고도 보지 못하는 것이라 한다. 주나야, 저 서로 계속하는 법[相續法]은 구족하여 하여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주나야, 모든 법 가운데의 범행은 낙(酪)과 소 가운데서 제호이니라.” ??????????????????????????????????????????????????????????????????????????????????그 때 세존은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나는 이 법 가운데서 몸소 스스로 증명을 얻었다. 이른바 四념처(念處), 四신통, 四의단(意斷), 四선(禪), 五근(根), 五력(力), 七각의(覺意), 현성, 八도(道)가 그것이다. 너희들은 다 함께 화합하여 서로 다툼질을 하지 말라. 동일한 스승의 제자는 동일한 물과 젖이다. 여래의 정법에 있어서 마땅히 자기 등불로 유쾌히 안락을 얻어야 하고 안락을 얻어 마쳐야 한다.   만일 어떤 비구가 설법하는 자리에서 이런 말을 하는 이가 있었다 하자.  ‘저이가 말한 구절은 옳지 않고 그 뜻도 옳지 않다.’고 하면 비구는 그 말을 듣거든 그것을 옳다고도 말하지 말고 그르다고도 말하지 말라. 마땅히 그 비구에게 이렇게 말하라. ‘어떤가 여러분, 내 글귀는 이러하고 너의 글귀는 이러하다. 내 뜻은 이러하고 너의 뜻은 이러하다. 어느 것이 낫고 어느 것이 못한가.’ 그 때 그 비구는 대답하리라. ‘내 글귀는 이러하고 내 뜻은 이러하다. 너의 글귀는 이러하고 너의 뜻은 이러하다. 그래서 너의 글귀가 이겼고 너의 뜻도 이겼다’고 한다면, 그 비구가 이렇게 말할 때 또한 그것을 그르다고도 말고 옳다고도 말라. 마땅히 그 비구를 충고하고 꾸짖고 그치게 하고 마땅히 함께 그 바른 것을 찾도록 하라. 이렇게 다 함께 화합하여 서로 다툼질을 하지 말라. 동일한 스승의 제자는 동일한 물과 젖이다. 여래의 바른 법 가운데서 마땅히 자기 등불로 유쾌히 안락을 얻어야 하고 안락을 얻어 마쳐야 한다.만일 어떤 비구가 설법할 때 그 중에 어떤 비구가 있어 이런 말을 했다고 하자. ‘저이가 말한 글귀는 바르지 못하다. 그러나 그 뜻은 바르다’고. 비구는 그 말을 듣거든 옳다고도 말하지 말고 그르다고도 말하지 말라. 그리고 마땅히 그 비구에게 말하라. ‘어떤가 비구여, 내 글귀는 이러하고 너의 글귀는 이러하다.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른가.’ 만일 그 비구가 곧 대답하되 ‘내 글귀는 이러하고 네 글귀는 이러하다. 네 글귀가 낫다.’그 비구는 이렇게 말할 때 비구는 또한 말하기를 ‘이것은 옳다고 할 수 없고 그르다고도 할 수 없다’하고, 마땅히 그 비구를 충고하고 꾸짖어 그치게 하고 마땅히 함께 연구하라. 이렇게 다 함께 화합할 것이요, 서로 싸움질을 하지 말라. 동일한 스승의 제자는 동일한 물과 젖이다. 여래의 정법 가운데서 마땅히 자기 등불로 유쾌한 안락을 얻어야 하고 안락을 얻어 마쳐야 한다.만일 어떤 비구가 설법할 때에 그 중에 어떤 비구가 있어 이렇게 말했다 하자. ‘저이가 말하는 글귀는 바르지마는 뜻은 바르지 않다.’고 한다면 비구는 그 말을 듣거든 옳다고도 말하지 말고 그르다고도 말하지 말라. 마땅히 그 비구에게 이렇게 말하라. ‘어떤가 비구여, 내 뜻은 이러하고 너의 뜻은 이러하다. 너의 뜻이 이겼다’고 하거든 그 비구가 이렇게 말할 때 또한 그것을 옳다고도 말하지 말고 그르다고도 말하지 말라. 마땅히 그 비구를 충고하고 꾸짖고 그치게 하고 또 마땅히 함께 바른 것을 찾도록 하라. 이렇게 비구는 다 함께 화합하여 싸움질을 하지 말라. 동일한 스승의 제자는 동일한 물과 젖이다. 여래의 정법 가운데서 마땅히 자기 등불로 유쾌한 안락을 얻어야 하고 안락을 얻어 마쳐야 한다. 또 어떤 비구가 설법할 때에 그 중에 어떤 비구가 있어 이렇게 말했다 하자. ‘저이의 말하는 글귀도 바르고 뜻도 또한 바르다.’고 하거든 비구는 그 말을 듣고 그 말을 그르다고 하지 말고 마땅히 그를 칭찬해 말하라. ‘네 말이 옳다, 네 말이 옳다’고.그러므로 비구들이여, 十二부경(部經)에 대하여 자기 몸소 진리를 얻어 마땅히 널리 흘러 퍼뜨리라. 一은 관경(貫經) 二는 기야경(祇夜經) 三은 수기경(手記經) 四는 게경(偈經) 五는 법구경(法句經) 六은 상응경(相應經) 七은 본연경(本緣經) 八은 천본경(天本經) 九는 광경(廣經) 十은 미증유경(未曾有經) 十一은 비유경(譬喩經) 十二는 대교경(大敎經)이다. 마땅히 이것을 잘 받아 가지고 헤아리고 관찰하여 널리 펴서 분포하라.모든 비구들이여, 내가 제정한 옷이 혹은 무덤 사이의 옷, 혹은 장자의 옷, 혹은 추하고 천한 옷, 이 옷들은 추위와 더위 모기나 등에를 막기에 넉넉하고 몸뚱이를 가리기에 넉넉하다. 모든 비구들이여, 내가 제정한 음식이 혹은 빌어먹기, 혹은 거사의 음식, 이 음식이면 스스로 족하다. 만일 몸이 괴로워 여러 가지 병이 부닥쳐 와서 드디어 죽지나 않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에 이 음식을 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족한 줄 알면 그만인 것이다. 모든 비구들이여, 내가 제정한 주처(住處)가 혹은 나무 밑에 있고 혹은 한 데 있으며 혹은 방안에 있고 혹은 누각 위에 있으며 혹은 굴속에 있고 혹은 그 밖의 여러 곳에 있다. 이 주처들은 추위 더위와 바람 비와 모기 등에를 막기에 족하며 한적하고 게으를 때 쉴 곳이 된다. 모든 비구들이여, 내가 제정한 약은 대소변, 소, 유, 흑석밀(黑石蜜) 등이니 이런 약이면 스스로 족하다. 혹은 몸의 고통이 생기고 뭇 병이 닥쳐와서, 드디어 죽지나 않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에 이 약을 쓰는 것이다.”부처님은 말씀하셨다.“혹 어떤 외도(外道)의 범지가 와서 ‘사문 석자(釋子)는 온갖 즐거움으로 스스로 즐긴다’고 말하거든 너희들은 이렇게 대답하라. ‘너희들은 그런 말을 하지 말라. 사문 석자는 온갖 즐거움으로서 스스로 즐긴다. 무슨 까닭인가. 즐거움으로써 스스로 즐기는 데는 여래의 꾸짖는 것이 있고 즐거움으로써 스스로 즐기는 데는 여래의 칭찬하는 것이 있다’고 하라. 만일 외도 범지가 다시 묻기를 ‘어떤 즐거움을 즐기는 것을 고오타마는 꾸짖는가’ 하거든 너희들은 마땅히 대답하라. ‘五욕의 공덕은 사랑할 만하고 즐길 만한 것으로서 사람의 탐착하는 바다. 어떤 것이 五인가. 눈은 빛을 본다. 그것은 사랑할 만하고 즐길 만한 것으로서 사람의 탐착하는 것이다. 귀는 소리를 듣고 코는 냄새를 맡고 혀는 맛을 알고 몸은 촉감을 안다. 그것은 사랑할 만하고 즐길 만 한 것으로서 사람의 탐착하는 것이다. 여러분이여, 五욕의 인연은 희락(喜樂)을 낸다. 이것이 여래, 지진, 등정각의 꾸짖으시는 것이다. 마치 그것은 어떤 사람이 중생을 죽이는 것으로써 스스로 즐거움을 삼는 것과 같다. 이것은 여래, 지진, 등정각의 꾸짖으시는 것이다. 또 마치 어떤 사람이 가만히 도둑질함으로써 스스로 즐거움을 삼는 것과 같다. 이것은 여래의 꾸짖으시는 것이다. 또 마치 어떤 사람이 범행(梵行)을 범하는 것으로써 스스로 즐거움을 삼는 것과 같다. 이것은 여래의 꾸짖으시는 것이다. 또 마치 어떤 사람이 일부러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써 스스로 즐거움을 삼는 것과 같다. 이것은 여래의 꾸짖으시는 것이다. 또 마치 어떤 사람이 마음대로 방탕 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여래의 꾸짖으시는 것이다. 또 마치 어떤 사람이 여래의 말씀하신 바른 행이 아닌 다른 고행을 행함으로써 스스로 즐거움을 삼는 것과 같다. 이것은 여래의 꾸짖으시는 것이다.모든 비구여, 여래는 사람의 탐착하는 바의 五욕의 공덕을 꾸짖으시는 것이다. 어떤 것이 五인가. 눈은 빛을 본다. 그것은 사랑할 만하고 즐길 만한 것으로써 사람의 탐착하는 것이다. 귀는 소리를 듣고 코는 냄새를 알고 혀는 맛을 알고 몸은 촉감을 안다. 그것은 사랑할 만하고 즐길 만 한 것으로써 사람의 탐착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모든 즐거움에도 사문 석자에게는 이러한 즐거움이 없다. 마치 어떤 사람이 일부러 중생을 죽이는 것으로써 즐거움을 삼으나 사문 석자에게는 그러한 즐거움은 없는 것과 같다. 마치 어떤 사람이 공공연하게 도둑질하는 것으로써 스스로 즐거움을 삼지만 사문 석자에게는 그러한 즐거움은 없는 것과 같다. 마치 어떤 사람이 범행을 범하는 것으로서 스스로 즐거움을 삼지만 사문 석자에게는 그러한 즐거움이 없는 것과 같다. 마치 어떤 사람이 일부러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써 스스로 즐거움을 삼거니와 사문 석자에게는 그러한 즐거움은 없는 것과 같다. 마치 어떤 사람이 마음대로 방탕 하는 것으로써 스스로 즐거움을 삼되 사문 석자에게는 그러한 즐거움이 없는 것과 같다. 마치 어떤 사람이 다른 고행을 행하는 것으로써 스스로 즐거움을 삼는 이 있지만 사문 석자에게는 그러한 즐거움은 없는 것과 같다’.만일 어떤 외도 범지가 ‘어떤 즐거움을 즐기는 것을 사문 고오타마는 칭찬하시는가.’고 묻거든 모든 비구들이여, 너희들은 마땅히 대답하라. ‘여러분, 五욕의 공덕은 사랑할 만하고 즐길 만하여 사람의 탐착하는 바다. 어떤 것이 五인가. 눈은 빛을 알고 내지 마음은 법진(法塵)을 알아 그것은 사랑할 만하고 즐길 만하여 사람의 탐착하는 것이다. 여러분, 五욕을 인연하여 생기는 즐거움은 마땅히 빨리 멸해 없애야 한다. 마치 그것은 어떤 사람이 일부러 중생을 죽임으로써 스스로 즐거워하지만 그러한 즐거움은 마땅히 빨리 멸해 없애야 하는 것과 같다. 또 마치 사람이 있어 공공연히 도둑질함으로써 스스로 즐거워하지만 그러한 즐거움은 빨리 없애야 하는 것과 같다. 또 마치 사람이 있어 범행을 범함으로써 스스로 즐거워하지만 그러한 즐거움은 빨리 없애야 하는 것과 같다. 또 마치 어떤 사람이 일부러 거짓말을 함으로써 스스로 즐거워하지만 그러한 즐거움은 빨리 없애야 하는 것과 같다. 또 마치 어떤 사람이 마음대로 방탕함으로써 스스로 즐거워하지만 그러한 즐거움은 빨리 없애야 하는 것과 같다. 또 마치 어떤 사람이 외도의 고행을 행함으로써 스스로 즐거워하지만 그러한 즐거움은 빨리 없애야 하는 것과 같다.그런데 만일 어떤 사람이 있어 탐욕을 버리고 다시 악법이 없어 각(覺)이 있고 관(觀)이 있으면서도 이생희락(離生喜樂)으로 초선(初禪)에 들어가면 그러한 즐거움은 부처님의 칭찬하시는 바이니라. 또 어떤 사람이 각(覺)과 관(觀)을 없애고 안으로 기쁜 한 마음이어서 각도 없고 관도 없어 정생희락(定生喜樂)인 제 二선(禪)에 들어간다면 그런 즐거움은 부처님의 칭찬하시는 바이니라. 또 어떤 사람이 기쁨을 버리고 사(捨)에 들어가 스스로 몸의 즐거움을 알고 성현이 구하는 바의 호념일심(護念一心)인 제 三선에 들어간다면 그러한 즐거움은 부처님의 칭찬하시는 바이니라. 즐거움도 다하고 괴로움도 다하고 걱정과 기쁨이 먼저 없어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호념청정(護念淸淨)인 제 四선에 들어간다면 그러한 즐거움은 부처님의 칭찬하시는 바이니라’고 하라.만일 외도 범지가 있어 묻기를 ‘너희들은 그 즐거움에서 얼마 마한 공덕의 과(果)를 구하느냐.’고 하거든 마땅히 그들에게 대답하라. ‘이 즐거움에는 七과(果)의 공덕이 있다. 어떤 것이 七인가. 현세에서 도증(道證)을 이룰 것이다. 만일 현세에서 이루지 못하면 목숨을 마칠 때 이룰 것이요, 만일 목숨을 마칠 때에도 이루지 못하면 반드시 五하결(下結)을 다해 중간반열반(中間般涅槃), 생피반열반(生彼般涅槃), 행반열반(行般涅槃), 무행반열반(無行般涅槃), 상류아가니타반열반(上流阿迦尼咤般涅槃)을 얻을 것이다. 여러분, 이것이 이 즐거움의 七공덕이 되는 것이다. 여러분, 만일 비구가 학지(學地)에 있어 위로 안온처(安穩處)를 구하고자 하나 아직 五개(蓋)를 없애지 못했다 하자. 어떤 것이 五인가. 탐욕개(貪慾蓋), 진에개, 수면개(睡眠蓋), 도희개(掉戱蓋), 의개(疑蓋)가 그것이다. 저 학지에 있는 비구로서 위로 안온처를 구하고자 하면서 아직 五개를 없애지 못하고 四념처(念處)에 정근하지 못하고 七각의(覺意)에 정근하지 못하고는 상인(上人)의 법과 현성의 지혜의 증성(增盛)을 얻으려 하여 알고자 하고 보고자 하더라도 그렇게 될 수 없는 것이다.여러분, 학지 비구로서 위로 안온처를 구하고자 하여 능히 탐욕개, 진에개, 수면개, 도희개, 의개 등의 五개를 없애고 또 四념처에 있어서 능히 정근하고 七각의에 있어서 여실히 수행하여 상인의 법과 현성의 지혜의 증성을 얻고자 하여 알고자 하고 보고자 하기를 구한다면 그것은 될 수 있는 것이다. 여러분 혹은 어떤 비구가 있어 번뇌가 다한 아라한으로서 해야 할 일을 이미 다하고 무거운 짐을 버리고 스스로 자기의 이익을 거두고, 모든 유(有)의 번뇌를 다하고, 바른 지혜로써 해탈하여 九사(事)를 행하지 않는다고 하자. 그러면 어떤 것이 九인가. 一은 생생하지 않고 二는 도둑질하지 않으며 三은 간음하지 않고 四는 거짓말하지 않으며 五는 도(道)를 버리지 않고 六은 욕심을 따르지 않으며 七은 성냄을 따르지 않고 八은 두려움을 따르지 않으며 九는 어리석음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여러분, 이것이 번뇌가 다한 아라한이 해야 할 일을 다해 마치고 무거운 짐을 버리고 스스로 자기의 이익을 거두고 모든 유(有)의 번뇌를 다해 바른 지혜로써 해탈하고 九사(事)를 멀리 떠난다고 하는 것이다’고 하여라.또 어떤 외도 범지가 있어 말하기를 ‘사문 석자(釋子)는 머무르지 않는 법이 있다’고 하거든 너희들은 대답해 말하라. ‘여러분, 그런 말을 하지 말라. 사문 석자는 부주법이 있다고. 무슨 까닭인가. 사문 석자는 그 법이 항상 머물러 동전(動轉)할 수 없다. 마치 그것은 문지방은 항상 있어서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다. 사문 석자도 또한 그와 같아서 그 법은 항상 머물러 이동하지 않는다’고. 또 어떤 외도 범지가 있어 말하기를 ‘사문 고오타마는 과거 세상의 일은 다 알지마는 미래의 일은 모른다’한다면, 그 이학(異學) 범지는 지혜도 다르고 지혜의 관(觀)도 또한 달라 그의 말은 허망한 것이다. 여래는 과거 세상의 일은 눈앞에 있는 것처럼 알고 보지 못하는 것이 없고 미래 세상에 있어서도 도(道)의 지혜를 낸다. 또 과거 세상의 일이 허망하고 진실하지 못하여 즐거워할 것이 못되고 이익될 것이 없으면 부처님은 곧 기억하지 않으신다. 혹은 과거의 일이 진실하기도 하고 즐거워할 만하기도 하나, 이익 되는 바가 없으면 부처님은 또한 기억하지 않으신다. 만일 과거의 일이 진실하기도 하고 즐거워할 만하며 또 이익되는 바도 있으면 여래는 그것을 다 알고 그리고 기억하신다. 미래와 현재에도 또한 그러하다. 여래는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있어서 마땅히 시어(時語), 실어(實語), 의어(義語), 이어(利語), 법어(法語), 율어(律語)로서 허망함이 없다.부처님은 초저녁에 최정각(最正覺)을 이루시고 새벽에 이르기까지 그 중간에 말씀하신 것은 다 여실하다. 그러므로 여래라 이름한다. 다시 여래의 말씀은 사실과 같고 사실은 말씀과 같다. 그러므로 여래라 이름한다. 어떤 이유로 등정각(等正覺)이라 이름하는가. 부처님의 알고 보는 바 멸한 바 깨달은 바를 부처님은 다 깨달아 알으신다. 그러므로 등정각이라 이름한다.또 어떤 외도 범지가 있어 말한다. ‘세간은 항상 있다. 오직 이것이 진실한 것이요 그 밖의 것은 허망한 것이다.’ 혹은 또 말한다. ‘이 세상은 항상 됨이 없다. 오직 이것이 진실한 것이요 그 외의 것은 허망하다’고. 혹은 또 말한다. ‘세간은 항상 있기도 하고 항상 됨이 없기도 하다. 오직 이것이 진실한 것이요 그 밖의 것은 허망하다’고. 혹은 또 말한다. ‘이 세간은 항상 있는 것도 아니요 항상 됨이 없는 것도 아니다. 오직 이것은 진실한 것이요 그 밖의 것은 허망하다’고. 혹은 또 말한다. ‘이 세간은 갓[邊]이 있다. 오직 이것이 진실한 것이요 그 밖의 것은 허망하다’ 혹은 또 말한다. ‘이 세간은 갓이 없다. 오직 이것이 진실한 것이요 그 밖의 것은 허망하다.’ 혹은 또 말한다. ‘이 세간은 갓이 있기도 하고 갓이 없기도 하다. 오직 이것이 진실한 것이요 그 밖의 것은 허망하다.’ 혹은 또 말한다. ‘이 세간은 갓이 있는 것도 아니요 갓이 없는 것도 아니다. 오직 이것이 진실한 것이요 그 밖의 것은 허망하다’고.혹은 말한다. ‘이 목숨과 이 몸은 이것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허망하다.’ 혹은 또 말한다. ‘목숨도 아니요 몸도 아니다. 이것은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허망하다.’ 혹은 또 말한다. ‘명이 다르고 몸이 다르다. 이것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허망하다.’ 혹은 또 말한다. ‘다른 목숨도 아니요 다른 몸이 아니다. 이것은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허망하다.’ 혹은 또 말한다. ‘여래는 마침이 있다. 이것은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허망하다.’ 혹은 또 말한다. ‘여래는 마치지 않는다. 이것은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허망하다.’ 혹은 또 말한다. ‘여래는 마침도 아니요 마치지 않음도 아니다. 이것은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허망하다.’이러한 모든 소견이 있는데 이것을 본생본견(本生本見)이라 이름한다. 이제 너를 위하여 기록한다. ‘이른바 이 세상이 항상 있다. 내지 여래는 마침도 아니요 마치지 않음도 아니다. 이것은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허망하다.’는 것은 본견본생인데 너를 위해 기록한다. 이른바 미견미생(未見未生)도 나는 또 기록하나니 어떤 것이 미견미생으로서 내가 기록하는 것인가. ‘색(色)은 <나>다. 상(想)을 쫓아 마침이 있다. 이것은 진실하고 다른 것은 허망하다.’ ‘색이 없는 것이 <나>다. 상을 쫓아 마침이 있다.’ 또 색이 있기도 하고 또 색이 없기도 한 것이 <나>다. 상을 쫓아 마침이 있다. ‘색이 있지도 않고 색이 없지도 않은 것이 <나>다. 상을 쫓아 마침이 있다. <나>는 갓이 있다. <나>는 갓이 없다. <나>는 갓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나>는 갓이 있는 것도 아니요 갓이 없는 것도 아니다. 상을 쫓아 마침이 있다. 나는 즐거움이 있다. 상을 쫓아 마침이 있다. 나는 괴로움과 즐거움이 있다. 상을 쫓아 마침이 있다. 나는 괴로움도 즐거움도 없다. 상을 쫓아 마침이 있다. 한 상이 <나>다. 상을 쫓아 마침이 있다. 갖가지 상이 나다. 상을 쫓아 마침이 있다. 적은 상이 나다. 상을 쫓아 마침이 있다. 무량한 상이 나다. 상을 쫓아 마침이 있다. 이것은 진실하고 다른 것은 허망하다.’는 이것이 삿된 소견의 본견본생으로써 내가 기록하는 것이다.어떤 사문 바라문은 이러한 주장과 이러한 소견을 가지고 있다. ‘이 세상은 항상 있다. 이것은 진실하고 다른 것은 허망하다. 내지 무량한 상(想)은 <나>로서 이것은 진실하고 다른 것은 허망하다.’ 또 ‘이러한 주장과 이러한 소견을 가지는 것은 진실하고 다른 것은 허망하다.’ 너희들은 마땅히 그에게 대답하라. ‘너는 참으로 그러한 주장을 하는데 어찌하여 이 세상은 항상 있으며 그것은 진실하고 다른 것은 허망하다 하는가. 그러한 말을 부처님은 허락하시지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이 모든 소견 가운데에는 각각 번뇌가 있다. 나는 이치로써 미루어 볼 때 모든 사문 바라문 중에는 나와 짝할 이가 없다. 하물며 거기서 지나가고자 함이랴. 이 모든 삿된 소견은 다만 말이 있을 뿐 족히 함께 의논할 것이 없다. 내지 무량한 생각이 <나>라는 것도 또한 그와 같다.”“혹 어떤 사문 바라문은 이런 말을 한다. ‘이 세간은 스스로 만든 것이다’라고. 또 어떤 사문 바라문은 ‘이 세간은 남이 만든 것이다’고. 혹은 다시 말한다. ‘스스로 만들기도 하고 남이 만들기도 한다’고. 혹은 또 말한다. ‘스스로 만든 것도 아니요 남이 만든 것도 아니다. 갑자기 있어진 것이다’고. 저 사문 바라문이 세간은 스스로 지어진 것이라고 말한 것은 그들이 모두 촉(觸)의 인연을 말미암기 때문이다. 만일 촉의 인연을 떠나 말한다면 그럴 리가 없을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六입(入)을 말미암기 때문에 촉을 내고, 촉을 말미암기 때문에 수(受)를 내고, 수를 말미암기 때문에 애(愛)를 내고, 애를 말미암기 때문에 취(取)를 내고, 취를 말미암기 때문에 유(有)를 내고, 유를 말미암기 때문에 생(生)을 내고, 생을 말미암기 때문에 노, 사, 우, 비, 고, 뇌(老, 死, 憂. 悲, 苦, 惱)의 환(患)의 덩어리가 있는 것이다. 만일 六입이 없으면 촉이 없고, 촉이 없으면 수가 없고, 수가 없으면 애가 없고, 애가 없으면 취가 없고, 취가 없으면 유가 없고, 유가 없으면 생이 없고, 생이 없으면 노, 사, 우, 비, 고, 뇌의 큰 환의 음집(陰集)이 없을 것이다. 또 말하기를 ‘이 세간은 남이 만들었다’하고, 또 말하기를 ‘이 세간은 스스로 만든 것도 아니요 남이 만든 것이 아니다. 갑자기 있는 것이다’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으니 촉을 말미암아 있는 것으로서 촉이 없으면 없는 것이다.”부처님은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만일 이러한 모든 사악(邪惡)한 소견을 없애려고 하거든 四념처(念處)에 있어서 마땅히 三행(行)을 닦아라. 어떤 것이 비구가 모든 악을 없애려고 四념처에 있어서 三행을 닦는 것인가. 비구여, 내신신관(內身身觀)을 부지런히 닦아 게으르지 않고, 기억하여 잊지 않아 세상의 탐욕과 걱정을 없애는 것이다. 또 외신신관(外身身觀)을 부지런히 닦아 게으르지 않고, 기억하고 잊지 않아 세상의 탐욕과 걱정을 없애는 것이다. 또 내외신신관을 기억하고 잊어버리지 않아 세상의 탐욕과 걱정을 없애는 것이다. 수, 의, 법(受, 意, 法)의 관(觀)도 또한 그와 같이 하는 것이다. 이것이 모든 악법을 멸하기 위하여 四념처에 있어서 三종의 행을 닦는 것이다. 또 八해탈(解脫)이 있다. 어떤 것이 八인가. 색(色)이 색을 관(觀)하는 것은 초해탈이요, 안에 색상(色想)이 있어 밖으로 색을 관하는 것은 二해탈이요, 정(淨)해탈은 三해탈이요, 색상을 건너 건넜다는 생각을 없애고 공처(空處)에 머무르는 것은 四해탈이요, 공처를 버리고 식처(識處)에 머무르는 것은 五해탈이요, 식처를 버리고 불용처(不用處)에 머무르는 것은 六해탈이요, 불용처를 버리고 유상무상처(有想無想處)에 머무르는 것은 七해탈이요, 멸진정(滅盡定)은 八해탈이다.”그 때에 아난은 세존의 뒤에서 부채로 부처님께 부채질을 하고 있다가 곧 오른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 무릎을 땅에 붙이고 손을 깍지끼고 부처님께 여쭈었다.“매우 기이합니다. 세존이시여, 이 법은 청정하고 미묘하기 제일입니다. 마땅히 무어라 이름하고 어떻게 받들어 가져야 하겠나이까.”부처님은 아난에게 말씀하셨다.“이 경은 청정(淸淨)이라 이름하고 너는 마땅히 청정하게 이것을 가져라.”아난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환희 하여 받들어 행했다.     쭌다여, 이러한 그대들이 모두가 조화롭고 서로 담소를 나누고 분쟁을 하지 않으며 공부지을 때 어떤 동료 수행자가 승가에서 법을 말하게 될 것이다. 거기서 만일 그대들에게 '이 존자는 뜻도 잘못 파악하고 있고 문장도 잘못 드러내고 있다.'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를 인정하지도 말고 공박하지도 말아야 한다. 인정하지도 공박하지도 않은 뒤 그에게 이렇게 말해주어야 한다. '도반이여, 이 뜻이 되기 위해서는 이런 문장들이 더 타당합니까, 아니면 저런 문장들이 더 타당합니까? 그리고 이런 문장들에서는 이 뜻이 더 타당합니까, 아니면 저 뜻이 더 타당합니까?'라고. 그러면 만일 그가 말하기를 '도반들이여, 이 뜻이 되기 위해서는 이런 문장들이 더 타당합니다. 그리고 이런 문장들에서는 이 뜻이 더 타당합니다.'라고 한다면 그를 우쭐하게 하지도 말고 나무라지도 말아야 한다. 우쭐하게도 하지 않고 나무라지도 않은 뒤 그 뜻과 그 문장들을 준수하도록 그에게 잘 인식시켜야 한다. (D29. 18)   쭌다여, 또 다른 동료 수행자가 승가에서 법을 말하게 될 것이다. 거기서 만일 그대들에게 '이 존자는 뜻은 잘못 파악하고 있는데 문장은 바르게 드러내고 있다.'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를 인정하지도 말고 공박하지도 말아야 한다. 인정하지도 공박하지도 않은 뒤 그에게 이렇게 말해주어야 한다. '도반이여, 이런 문장들에서는 이 뜻이 더 타당합니까, 아니면 저 뜻이 더 타당합니까?'라고. 그러면 만일 그가 말하기를 '도반들이여,  이런 문장들에서는 이 뜻이 더 타당합니다.'라고 한다면 그를 우쭐하게 하지도 말고 나무라지도 말아야 한다. 우쭐하게도 하지 않고 나무라지도 않은 뒤 그 뜻과 그 문장들을 준수하도록 그에게 잘 인식시켜야 한다. (D29. 19)   쭌다여, 또 다른 동료 수행자가 승가에서 법을 말하게 될 것이다. 거기서 만일 그대들에게 '이 존자는 뜻은 바르게 파악하고 있는데 문장은 잘못 드러내고 있다.'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를 인정하지도 말고 공박하지도 말아야 한다. 인정하지도 공박하지도 않은 뒤 그에게 이렇게 말해주어야 한다. '도반이여, 이 뜻이 되기 위해서는 이런 문장들이 더 타당합니까, 아니면 저런 문장들이 더 타당합니까?'라고. 그러면 만일 그가 말하기를 '도반들이여,  이 뜻이 되기 위해서는 이런 문장들이 더 타당합니다.'라고 한다면 그를 우쭐하게 하지도 말고 나무라지도 말아야 한다. 우쭐하게도 하지 않고 나무라지도 않은 뒤 그 뜻과 그 문장들을 준수하도록 그에게 잘 인식시켜야 한다. (D29. 20)   쭌다여, 또 다른 동료 수행자가 승가에서 법을 말하게 될 것이다. 거기서 만일 그대들에게 '이 존자는 뜻도 바르게 파악하고 있고 문장도 바르게 드러내고 있다.'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에게 '좋습니다.'라고 말해야 하고 기뻐해야 한다. 그에게 '좋습니다.'라고 말하고 기뻐한 뒤 그에게 '도반이여, 우리가 이처럼 뜻을 갖추고 문장을 갖춘 존자와 같은 동료 수행자를 만났으니, 우리는 참으로 이익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큰 이익을 얻었습니다.'라고 말해 주어야 한다.佛說長阿含經卷第十二     後秦弘始年佛陀耶舍共竺佛念譯   (一七)第二分清淨經第十三 如是我聞 一時。佛在迦維羅衛國緬祇優婆塞林中。與大比丘千二百五十人俱 時。有沙彌周那在波波國。夏安居已。執持衣鉢。漸詣迦維羅衛緬祇園中。至阿難所。頭面禮足。於一面立。白阿難言。波波城內有尼乾子。命終未久。其諸弟子分為二分。各共諍訟。面相毀罵。無復上下。迭相求短。競其知見。我能知是。汝不能知。我行真正。汝為邪見。以前著後。以後著前。顛倒錯亂。無有法則。我所為妙。汝所言非。汝有所疑。當諮問我。大德阿難。時。彼國人民事尼乾者。聞諍訟已。生厭患心 阿難語周那沙彌曰。我等有言欲啟世尊。今共汝往。宣啟此事。若世尊有所戒敕。當共奉行 爾時。沙彌周那聞阿難語已。即共詣世尊。頭面禮足。在一面立。爾時。阿難白世尊曰。此沙彌周那在波波國夏安居已。執持衣鉢。漸來至此。禮我足。語我言。波波國有尼乾子。命終未久。其諸弟子分為二分。各共諍訟。面相毀罵。無復上下。迭相求短。競其知見。我能知是。汝不能知。我行真正。汝為邪見。以前著後。以後著前。顛倒錯亂。無有法則。我所言是。汝所言非。汝有所疑。當諮問我。時。彼國人民事尼乾者。聞諍訟已。生厭患心 世尊告周那沙彌曰。如是。周那。彼非法中不足聽聞。此非三耶三佛所說。猶如朽塔難可汙色。彼雖有師。盡懷邪見。雖復有法。盡不真正。不足聽採。不能出要。非是三耶三佛所說。猶如故塔不可汙也。彼諸弟子有不順其法。捨彼異見。行於正見。 周那。若有人來語彼弟子。諸賢。汝師法正。當於中行。何以捨離。 其彼弟子信其言者。則二俱失道。獲無量罪。所以者何。彼雖有法。然不真正故。 周那。若師不邪見。其法真正。善可聽採。能得出要。三耶三佛所說。譬如新塔易可汙色。然諸弟子於此法中。不能勤修。不能成就。捨平等道。入於邪見。若有人來語彼弟子。諸賢。汝師法正。當於中行。何以捨離。入於邪見。其彼弟子信其言者。則二俱見真正。獲無量福。所以者何。其法真正 佛告周那。彼雖有師。然懷邪見。雖復有法。盡不真正。不足聽採。不能出要。非三耶三佛所說。猶如朽塔不可汙色。彼諸弟子法法成就。隨順其行。起諸邪見。周那。若有人來語其弟子言。汝師法正。汝所行是。今所修行勤苦如是。應於現法成就道果。彼諸弟子信受其言者。則二俱失道。獲無量罪。所以者何。以法不真正故。 周那。若師不邪見。其法真正。善可聽採。能得出要。三耶三佛所說。譬如新塔易為汙色。又其弟子法法成就。隨順修行而生正見。若有人來語其弟子言。汝師法正。汝所行是。今所修行勤苦如是。應於現法成就道果。彼諸弟子信受其言。二俱正見。獲無量福。所以者何。法真正故 周那。或有導師出世。使弟子生憂。或有導師出世。使弟子無憂。云何導師出世。使弟子生憂。 周那。導師新出世間。成道未久。其法具足。梵行清淨。如實真要而不布現。然彼導師速取滅度。其諸弟子不得修行。皆愁憂言。師初出世。成道未久。其法清淨。梵行具足。如實真要。竟不布現。而今導師便速滅度。我等弟子不得修行。是為導師出世。弟子愁憂。云何導師出世。弟子不憂。 謂導師出世。其法清淨。梵行具足。如實真要而廣流布。然後導師方取滅度。其諸弟子皆得修行。不懷憂言。師初出世。成道未久。其法清淨。梵行具足。如實真要而不布現。而今導師便速滅度。使我弟子不得修行。如是。周那。導師出世。弟子無憂 佛告周那。此支成就梵行。謂導師出世。出家未久。名聞未廣。是謂梵行支不具足。 周那。導師出世。出家既久。名聞廣遠。是謂梵行支具足滿。 周那。導師出世。出家既久。名聞亦廣。而諸弟子未受訓誨。未具梵行。未至安處。未獲己利。未能受法分布演說。有異論起不能如法而往滅之。未能變化成神通證。是為梵行支不具足。 周那。導師出世。出家既久。名聞亦廣。而諸弟子盡受教訓。梵行具足。至安隱處。已獲己利。又能受法分別演說。有異論起能如法滅。變化具足成神通證。是為梵行支具足滿 周那。導師出世。出家亦久。名聞亦廣。諸比丘尼未受訓誨。未至安處。未獲己利。未能受法分布演說。有異論起不能以法如實除滅。未能變化成神通證。是為梵行支未具足。 周那。導師出世。出家亦久。名聞亦廣。諸比丘尼盡受教訓。梵行具足。至安隱處。已獲己利。復能受法分別演說。有異論起能如法滅。變化具足成神通證。是為梵行支具足滿。 周那。諸優婆塞.優婆夷廣修梵行。乃至變化具足成神通證。亦復如是 周那。若導師不在世。無有名聞。利養損減。則梵行支不具足滿。 若導師在世。名聞利養。皆悉具足。無有損減。則梵行支為具足滿。 若導師在世。名聞利養。皆悉具足。而諸比丘名聞利養。不能具足。是為梵行支不具足。 若導師在世。名聞利養。具足無損。諸比丘眾亦復具足。則梵行支為具足滿。比丘尼眾亦復如是   周那。我出家久。名聞廣遠。我諸比丘已受教誡。到安隱處。自獲己利。復能受法為人說法。有異論起能如法滅。變化具足成神通證。諸比丘.比丘尼.優婆塞.優婆夷皆亦如是。 周那。我以廣流布梵行。乃至變化具足成神通證。 周那。一切世間所有導師。不見有得名聞利養如我如來.至真.等正覺者也。 周那。諸世間所有徒眾。不見有名聞利養如我眾也。   周那。若欲正說者。當言見不可見。云何見不可見。一切梵行清淨具足。宣示布現。是名見不可見 爾時。世尊告諸比丘。鬱頭藍子在大眾中而作是說。有見不見。云何名見不見。如刀可見。刃不可見。諸比丘。彼子乃引凡夫無識之言以為譬喻。如是。周那。若欲正說者。當言見不見。云何見不見。 汝當正欲說言。一切梵行清淨具足。宣示流布。是不可見。 周那。彼相續法不具足而可得。不相續法具足而不可得。周那。諸法中梵行。酪酥中醍醐   주나야, 만일 바르게 말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해야 한다. 어떤 것이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것인가? 일체의 범행을 청정히 구족하여 두루 펴서 나타내 보이는 것이니, 이것을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것이라 한다.”    그 때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울두람자(鬱頭藍子)6)가 대중들 가운데서 이렇게 말했다.     6) Uddaka Rmaputta로 부처님께서 처음 출가하여 도를 배웠던 두 선인(仙人) 가운데 한 사람이다.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것이 있다. 어떤 것을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것이라 하는가? 마치 칼은 볼 수 있어도 칼날은 볼 수 없는 것과 같다."    모든 비구들이여, 그 사람은 범부의 무식한 말로 비유를 들어 그렇게 말한 것이다. 주나야, 만일 바르게 말하고자 한다면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것을 말해야 한다. 무엇을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것이라고 하는가? 네가 바로 일체 범행을 청정하게 구족하여 두루 펴서 나타내 보여 흘러 퍼지게 해야 한다고 말하려고 한다면, 그것이 볼 수 없는 것이니라. 주나야, 저 인과가 계속되는 법[相續法]은 구족하지 않아도 얻을 수 있지만, 인과가 계속되지 않는 법은 구족하여도 얻을 수는 없는 것이다. 주나야, 모든 법 범행(梵行)은 비유하면 낙(酪)과 소(?) 가운데 제호와 같은 것이니라.” 爾時。世尊告諸比丘。我於是法躬自作證。 謂四念處.四神足.四意斷.四禪.五根.五力.七覺意.賢聖八道。 汝等盡共和合。勿生諍訟。同一師受。同一水乳。於如來正法。當自熾然。快得安樂。得安樂已。 若有比丘說法中有作是言。彼所說句不正。義理不正。比丘聞已。不可言是。不可言非。 當語彼比丘言。云何。諸賢。我句如是。汝句如是。我義如是。汝義如是。何者為勝。何者為負。 若彼比丘報言。我句如是。我義如是。汝句如是。汝義如是。汝句亦勝。汝義亦勝彼比丘說此。亦不得非。亦不得是。當諫彼比丘。當呵當止。當共推求。如是盡共和合。勿生諍訟。同一受同一師同一乳。於如來正法。當自熾然。快得安樂 得安樂已。若有比丘說法。中有比丘作是言。彼所說句不正。義正。比丘聞已。不可言是。不可言非。當語彼比丘言。云何。比丘。我句如是。汝句如是。何者為是。何者為非。若彼比丘報言。我句如是。汝句如是。汝句亦勝。彼比丘說此。亦不得言是。不得言非。當諫彼比丘。當呵當止。當共推求。如是盡共和合。勿生諍訟。同一師受。同一水乳。於如來正法。當自熾然。快得安樂 得安樂已。若有比丘說法。中有比丘作是言。彼所說句正。義不正。比丘聞已。不可言是。不可言非。當語彼比丘言。云何。比丘。我義如是。汝義如是。何者為是。何者為非。若彼報言。我義如是。汝義如是。汝義而勝。彼比丘說此已。亦不得言是。亦不得言非。當諫彼比丘。當呵當止。當共推求。如是比丘盡共和合。勿生諍訟。同一師受。同一水乳。於如來正法。當自熾然。快得安樂 得安樂已。若有比丘說法。中有比丘作如是言。彼所說句正。義正。比丘聞已。不得言非。當稱讚彼言。汝所言是。汝所言是。是故。比丘。於十二部經自身作證。當廣流布。 一曰貫經。二曰祇夜經。三曰受記經。四曰偈經。五曰法句經。六曰相應經。七曰本緣經。八曰天本經。九曰廣經。十曰未曾有經。十一曰譬喻經。十二曰大教經。當善受持。稱量觀察。廣演分布   諸比丘。我所制衣。若塚間衣。若長者衣.麤賤衣。此衣足障寒暑.蚊虻。足蔽四體。 諸比丘。我所制食。若乞食。若居士食。此食自足。若身苦惱。眾患切已。恐遂至死。故聽此食。知足而已。諸比丘。我所制住處。若在樹下。若在露地。若在房內。若樓閣上。若在窟內。若在種種住處。此處自足。為障寒暑.風雨.蚊虻。下至閑靜懈息之處。諸比丘。我所制藥。若大小便。酥油蜜.黑石蜜。此藥自足。若身生苦惱。眾患切已。恐遂至死。故聽此藥   佛言。或有外道梵志來作是語。沙門釋子以眾樂自娛。若有此言。當如是報。汝等莫作此言。謂沙門釋子以眾樂自娛。所以者何。有樂自娛。如來呵責。有樂自娛。如來稱譽。若外道梵志問言。 何樂自娛。瞿曇呵責。設有此語。汝等當報。五欲功德。可愛可樂。人所貪著。云何為五。 眼知色。可愛可樂。人所貪著。耳聞聲.鼻知香.舌知味.身知觸。可愛可樂。人所貪著。 諸賢。猶是五欲緣生喜樂。此是如來.至真.等正覺之所呵責也。 猶如有人故殺眾生。自以為樂。此是如來.至真.等正覺之所呵責。 猶如有人私竊偷盜。自以為樂。此為如來之所呵責。 猶如有人犯於梵行。自以為樂。此是如來之所呵責。 猶如有人故作妄語。自以為樂。此是如來之所呵責。 猶如有人放蕩自恣。此是如來之所呵責。 猶如有人行外苦行。非是如來所說正行。自以為樂。此是如來之所呵責 諸比丘。呵責五欲功德。人所貪著。云何為五。 眼知色。可愛可樂。人所貪著。耳聞聲.鼻知香.舌知味.身知觸。可愛可樂。人所貪著。 如此諸樂。沙門釋子無如此樂。 猶如有人故殺眾生。以此為樂。沙門釋子無如此樂。 猶如有人公為盜賊。自以為樂。沙門釋子無如是樂。 猶如有人犯於梵行。自以為樂。沙門釋子無如是樂。 猶如有人故作妄語。自以為樂。沙門釋子無如是樂。 猶如有人放蕩自恣。自以為樂。沙門釋子無如是樂。 猶如有人行外苦行。自以為樂。沙門釋子無如是樂 若外道梵志作如是問。何樂自娛。沙門瞿曇之所稱譽。 諸比丘。彼若有此言。汝等當答彼言。諸賢。有五欲功德。可愛可樂。人所貪著。云何為五。 眼知色。乃至意知法。可愛可樂。人所貪著。諸賢。五欲因緣生樂。當速除滅。 猶如有人故殺眾生。自以為樂。有如此樂。應速除滅。 猶如有人公為盜賊。自以為樂。有如此樂。應速除滅。 猶如有人犯於梵行。自以為樂。有如此樂。應速除滅。 猶如有人故為妄語。自以為樂。有如此樂。應速除滅。 猶如有人放蕩自恣。自以為樂。有如此樂。應速除滅。 猶如有人行外苦行。自以為樂。有如是樂。應速除滅。 猶如有人去離貪欲。無復惡法。有覺.有觀。離生喜.樂。入初禪。如是樂者。佛所稱譽。 猶如有人滅於覺.觀。內喜.一心。無覺.無觀。定生喜.樂。入第二禪。如是樂者。佛所稱譽。 猶如有人除喜入捨。自知身樂。賢聖所求。護念一心。入第三禪。如是樂者。佛所稱譽。 樂盡苦盡。憂.喜先滅。不苦不樂。護念清淨。入第四禪。如是樂者。佛所稱譽   若有外道梵志作如是問。汝等於此樂中求幾果功德。應答彼言。此樂當有七果功德。云何為七。 於現法中。得成道證。正使不成。臨命終時。當成道證。 若臨命終復不成者。當盡五下結。中間般涅槃.生彼般涅槃.行般涅槃.無行般涅槃.上流阿迦尼吒般涅槃。諸賢。是為此樂有七功德。 諸賢。若比丘在學地欲上。求安隱處。未除五蓋。云何為五。 貪欲蓋.瞋恚蓋.睡眠蓋.掉戲蓋.疑蓋。 彼學比丘方欲上求。求安隱處。未滅五蓋。於四念處不能精勤。於七覺意不能勤修。欲得上人法.賢聖智慧增盛。求欲知欲見者。無有是處。 諸賢。學地比丘欲上求。求安隱處。能滅五蓋。貪欲蓋.瞋恚蓋.睡眠蓋.掉戲蓋.疑蓋。於四意處又能精勤。於七覺意如實修行。欲得上人法.賢聖智慧增上。求欲知欲見者。則有是處。 諸賢。若有比丘漏盡阿羅漢。所作已辦。捨於重擔。自獲己利。盡諸有結使。正智解脫。不為九事。 云何為九。一者不殺。二者不盜。三者不婬。四者不妄語。五者不捨道。六者不隨欲。七者不隨恚。 八者不隨怖。九者不隨癡。諸賢。是為漏盡阿羅漢所作已辦。捨於重擔。自獲己利。盡諸有結。正智得解。遠離九事   或有外道梵志作是說言。沙門釋子有不住法。 應報彼言。諸賢。莫作是說。沙門釋子有不住法。所以者何。沙門釋子。其法常住。不可動轉。 譬如門閫常住不動。沙門釋子亦復如是。其法常住。無有移動。 或有外道梵志作是說言。 沙門瞿曇盡知過去世事。不知未來事。彼比丘.彼異學梵志智異。智觀亦異。所言虛妄。 如來於彼過去事。若在目前。無不知見。 於未來世。生於道智。過去世事虛妄不實。不足喜樂。無所利益。佛則不記。 或過去事有實。無可喜樂。無所利益。佛亦不記。若過去事有實.可樂。而無利益。佛亦不記。.. 若過去事有實.可樂。有所利益。如來盡知然後記之。未來.現在。亦復如是。 如來於過去.未來.現在。應時語.實語.義語.利語.法語.律語。無有虛也。 佛於初夜成最正覺。及末後夜。於其中間有所言說。盡皆如實。故名如來。 復次。如來所說如事。事如所說。故名如來。 以何等義。名等正覺。佛所知見.所滅.所覺。佛盡覺知。故名等正覺   或有外道梵志作如是說。世間常存。唯此為實。餘者虛妄。 或復說言。此世無常。唯此為實。餘者虛妄。 或復有言。世間有常無常。唯此為實。餘者虛妄。 或復有言。此世間非有常非無常。唯此為實。餘者虛妄。 或復有言。此世間有邊。唯此為實。餘者為虛妄。 或復有言。世間無邊。唯此為實。餘者虛妄。或復有言。世間有邊無邊。唯此為實。餘者虛妄。 或復有言。世間非有邊非無邊。唯此為實。餘者虛妄。或復有言。是命是身。此實餘虛。 或復有言。非命非身。此實餘虛。或復有言。命異身異。此實餘虛。 或復有言。非異命非異身。此實餘虛。或復有言。如來終。此實餘虛。 或復有言。如來不終。此實餘虛。或復有言。如來終不終。此實餘虛。 或復有言。如來非終非不終。此實餘虛。諸有此見。名本生本見。今為汝記。 謂。此世常存。乃至如來非終非不終。唯此為實。餘者虛妄。是為本見本生。為汝記之 所謂未見未生者。我亦記之。何者未見未生。我所記者。 色是我。從想有終。此實餘虛。無色是我。從想有終。亦有色亦無色是我。從想有終。非有色非無色是我。從想有終。我有邊。我無邊。我有邊無邊。我非有邊非無邊。從想有終。我有樂。從想有終。我無樂。從想有終。我有苦樂。從想有終。我無苦樂。從想有終。一想是我。從想有終。種種想是我。從想有終。少想是我。從想有終。無量想是我。從想有終。此實餘虛。是為邪見本見本生。我之所記   或有沙門.婆羅門有如是論.有如是見。此世常存。此實餘虛。乃至無量想是我。此實餘虛。 彼沙門.婆羅門復作如是說.如是見。此實。餘者虛妄。當報彼言。汝實作此論。 云何此世常存。此實餘虛耶。如此語者。佛所不許。所以者何。此諸見中各有結使。我以理推。 諸沙門.婆羅門中。無與我等者。況欲出過。此諸邪見但有言耳。不中共論。 乃至無量想是我。亦復如是 或有沙門.婆羅門作是說。此世間自造。復有沙門.婆羅門言。此世間他造。 或復有言。自造他造。或復有言。非自造非他造。忽然而有。 彼沙門.婆羅門言世間自造者。是沙門.婆羅門皆因觸因緣。若離觸因而能說者。無有是處。 所以者何。由六入身故生觸。由觸故生受。由受故生愛。由愛故生取。由取故生有。由有故生生。 由生故有老.死.憂.悲.苦惱。大患陰集。若無六入則無觸。無觸則無受。無受則無愛。無愛則無取。無取則無有。無有則無生。無生則無老.死.憂.悲.苦惱。大患陰集。 又言此世間他造。又言此世間自造他造。又言此世間非自造非他造。忽然而有。亦復如是。 因觸而有。無觸則無 佛告諸比丘。若欲滅此諸邪惡見者。於四念處當修三行。云何比丘滅此諸惡。於四念處當修三行。 比丘謂內身身觀。精勤不懈。憶念不忘。除世貪憂。外身身觀。精勤不懈。憶念不忘。除世貪憂。 內外身身觀。憶念不忘。除世貪憂。受.意.法觀。亦復如是。 是為滅眾惡法。於四念處。三種修行。有八解脫。云何為八。 色觀色。初解脫。內有色想。外觀色。二解脫。淨解脫。三解脫。度色想滅有對想。住空處。四解脫。捨空處。住識處。五解脫。捨識處。住不用處。六解脫。捨不用處。住有想無想處。七解脫。滅盡定。八解脫 爾時。阿難在世尊後執扇扇佛。即偏露右肩。右膝著地。叉手白佛言。甚奇。世尊。此法清淨。微妙第一。當云何名。云何奉持 佛告阿難。此經名為清淨。汝當清淨持之 爾時。阿難聞佛所說。歡喜奉行   二九 清净经   本经相当于汉译长阿含卷第一七之清净经(大正藏一)。世尊住缅只之庵罗林时,新比丘周陀由波婆城阿难之处来,奉告尼干子之死后,其学徒间之分裂、斗争、固执排他主张之状态。阿难与周陀同诣佛处,以告其事由,佛教诫弟子等之将来,所说的就是本经。先对于师、法、弟子,说示师之死,在弟子们为忧悲及不忧悲之情形;其次说清净梵行之成就,及说四种之安乐行和其果报,最后为远离诸种谬见,而敬示身、受、心、法之四念处。   如是我闻。 一   尔时,世尊与释迦族人暂住于缅只若人之庵罗林中。其时,尼干子于波婆[城]命终,彼命终时,尼干子则分成二派,生起争议、斗争、相斗而互相以锐舌交锋而住。言:“汝不知此之律、法,我知此之律、法;汝何能知此之律、法耶?”汝是依邪行,我是从正行。”我言与[理]相应,汝之言与[理]不相应。”应去于前汝说于后,应说于后而云于前。”“汝之言论反反覆覆而无熟虑。”汝之言论堕于负处。”“如果可以者,放弃汝自己之言论,使汝自己解脱!”尼干子之徒中,想行杀戮。尼干子之在家弟子等,对尼干子生起厌恶、坏情绪、反对,其状态,如非正说、误说、非导[出离]、非至寂静、非依正觉者所说之法、律,又如不得为依止处之破塔。 二   时,沙弥周陀于波婆安居已,[彼]于舍尔村,诣具寿阿难之处,诣已,礼拜具寿阿难,却坐一面,坐于一面之沙弥周陀向具寿阿难言:  “大德!尼干子今于波婆[城]命终,彼命终后,尼干分为二派……又如不得为依止处之破塔。”  如是言时,具寿阿难如是言沙弥周陀曰:“友,周陀!此值得白世尊之话。友,周陀曰我等诣世尊之处,诣已,以此事奉白世尊。”  沙弥周陀答应具寿阿难:“然,大德。” 三   于此,具寿阿难与沙弥周陀诣世尊前之处,诣已,礼拜世尊,却坐一面。坐于一面之具寿阿难如是白世尊言:“世尊!此沙弥周陀如是言:“尼干子今于波婆[城]命终,彼命终后,尼干分为二派……如不得为依止处之破塔。”  [世尊:]“周陀!实如是,此非正说,是错误之说,非导[出离],非令至寂静,非由等正觉所说之法、律也。 四   周陀!于此,世有导师而非正觉者。法非正说,令错误,非导[出离],非令至寂静,非由正觉者之所说。而且其弟子于此[恶]法中,不成就法随法行而住,不真正成就,不随法行,逸脱其法。若入向彼等如是言:“友!此是汝之善得,此是汝之善利。汝之师非等正觉者,法非正说,令错误,非导[出离],非令至寂静,非由等正觉者之所说。而且汝于其法,不成就法随法行前住,非真正成就,不随法行,逸脱其法。”周陀!如是,其师于此被侮蔑,其法于此被侮蔑,其弟子于此受称赞。周陀!若有人如是对其弟子言:“尊者!凡汝师所说示之法,汝如是行之!”则劝导者,受劝与者及受劝导而如实奉行者,此等皆生非福。何以故?不论如何!周陀!此之法、律,非是正说,令错误,非导[出离]非令至寂静,非由等正觉者之所说也。 五   复次,周陀!于此,世有导师而非等正觉者,法非正说,令错误,非导[出离],非令至寂静,非由等正觉者之所说。而且其弟子于此[恶]法中,成就法随法而住,真正成就,随法行,以行其法。某人向彼如是言:“友!此非汝之善得,此非汝之 利益;汝之师非等正觉者,法非正说,令错误,非导[出离],非令至寂静,非由等正觉者之所说。而且汝于其[恶]法,成就法随法而住,真正成就,随法行,以行其法。”如是,周陀!于此其师被侮蔑,其法被侮蔑,其弟子亦如是受侮蔑。周陀!若有人如斯对弟子言:“尊者!趣向正理者,将成就正理。”则称赞者,受称赞者及受称赞而努力精进者,此等一切皆生非福也。何以故?不论如何?周陀!此法、律,非正说,令错误,非导[出离],非令至寂静,非等正觉者之所说也。 六   复次,周陀!于此,世有导师是等正觉者。法是正说、善说,导[出离],令至寂静,由等正觉者之所说也。而且其弟子于彼[善]法,非成就法随法行而住,非真正成就,非随法行,逸脱其法。有某人向彼如是言:“友!此非汝之善得,非汝之善利。汝之师是等正觉者,法是正说、善说,导[出离],令至寂静,由等正觉者之所说也。而且汝于其[善]法,非成就法随法行而住,非真正成就,非随法行,逸脱其法。”如是,周陀!于此,师被称赞,于此,法被称赞,而且弟子于此被侮蔑。周陀!若有人如斯对弟子言…“尊者!如师所说示之法,汝应成就之。”则劝导者,受劝导者及受劝导而如是奉行者,其等皆生福。何以故,不论如何,周陀!此法是正说、善说,导[出离],令至寂静,由等正觉者之所说也。 七   复次,周陀!世有导师是等正觉者。法是正说、善说,导(出离),令至寂静,由等正觉者之所说也。而且于其[善]法之弟子,成就法随法而住,真正成就,有随法行,以行其法。有某人同彼如是言:“友!此是汝之善得,此是汝之利益。汝之师是应供、等正觉者。法是正说、善说,导[出离],令至寂静,由等正觉者之所说也。而且汝于其法,成就法随法行前住,真正成就,有随法行,以行其法。”如是,周陀!师于此受称赞,法于此受称赞,弟子于此受称赞。周陀!若有人如斯对弟子言:“尊者趋向正理者,将成就正理。”则称赞者,受称赞者及受称赞而努力精进者,彼等更生多福。何以故?不论如何,周陀!此法、律,是正说、善说,导[出离],令至寂静,由等正觉者之所说也。 八   复次,周陀!于此导师是应供、等正觉者出现于世。而且对于法是正说、善说,导[出离]令至寂静,由等正觉者之所说也。然而其弟子非善知妙法,未成就纯粹圆满,彼等之导师灭度时,未得明了一切句身,未有不可思议之梵行,不能于人中说示。周陀!如是导师灭度时,于弟子有忧苦也。何以故?不论如何:“我等之导师是应供、等正觉者出现于世,对于法是正说、善说,导[出离],令至寂静,由等正觉者之所说也。然而,我等不善如妙法,未成就纯粹圆满,彼等之导师灭度时,既未得明了一切句身,有不可思议之梵行,而于人中说示。”周陀!如是之导师灭度时,于弟子有忧苦。 九   复次,周陀!于此,导师是应供、等正觉者出现于世。法是正说、善说,导[出离],令至寂静,由等正觉者之所说也。而且彼之弟子善如妙法,又成就纯粹圆满,彼等之导师灭度时,既得明了一切句身,有不可思议之梵行,能于人中说示。周陀!如是,导师之灭度时,弟子无忧苦。何以故?不论如何:“我等之导师是应供、等正觉者出现于世。法是正说、善说,导[出离],令至寂静,由等正觉者之所说也。而且我等善如妙法,成就纯粹圆满,我等之导师灭度时,已得明了一切句身,有不可思议之梵行,能于人中说示。”周陀!如是,导师之灭度,于弟子无忧苦。 十    周陀!若具备此等支之梵行者:此导师虽是耆宿,出家行道已久,已达晚年之老境而非长老;如是,彼非依此梵行支而圆满成就。然,周陀!具备此等支之梵行者,而且导师是耆宿,出家修道已久,已达晚年老境之长老者,如是,则成就圆满此等支之梵行。 十一   周陀!若具备此等支之梵行。而且导师是耆宿,出家修道已久,达晚年老境之长老也。然而彼之长老弟子比丘,非到达完全者、学行者、无畏者、涅槃,实不堪宣示妙法;不能以法制伏已生之异论,不能说示不可思议之法,如是,此非成就圆满其等支之梵行。 十二   复次,周陀!若具备此等支之梵行;而且导师是耆宿,出家修道已久,已达晚年老境之长老;而彼之长老弟子比丘[已达……]……乃至……  彼之中年弟子比丘(非达……)……乃至……  彼之中年弟子比丘(已达……)……乃至……  彼之新弟子比丘(非达……)……乃至……  彼之新弟子比丘(已达……)……乃至……  彼之长老弟子比丘尼(非达……)……乃至……  彼之长老弟子比丘尼(已达……)……乃至……  彼之中年弟子比丘尼(非达……)……乃至……  彼之中年弟子比丘尼(已达……)……乃至……  彼之新弟子比丘尼(非达……)……乃至……  彼之新弟子比丘尼(已达……)……乃至……  彼之优婆塞白衣在家弟子之梵行者(……不能……)……乃至……  彼之优婆塞白衣在家弟子之梵行者(……能……)……乃至……  彼之优婆塞白衣在家弟子之受欲者(……不能……)……乃至……  彼之优婆塞白衣在家弟子之受欲者(……能……)……乃至……  彼之优婆夷白衣在家弟子之梵行者(……不能……)……乃至……  彼之优婆夷白衣在家弟子之梵行者(……能……)……乃至……  彼之优婆夷白衣在家弟子之受欲者(……不能……)……乃至……  彼之优婆夷白衣在家弟子之受欲者(……能……)……乃至……  然,于彼无梵行、无丰富、无繁荣、无名声广布……而,于彼有梵行、有丰富、有繁荣、有名声广布……于人人之中善实说;但非达最胜之利养、称扬。如是,此非成就圆满其等支之梵行。 十三   复次,周陀!有具此等支之梵行者,导师是耆宿,出家修道已久,已达晚年老境之长老,而且彼之长老弟子比丘到达完全者、学行者……乃至……说不可思议之妙法,  且彼之中年弟子比丘……  且彼之新弟子比丘……  且彼之长老弟子比丘尼……  且彼之中年弟子比丘尼……  且彼之新弟子比丘尼……  且彼之优婆塞白衣在家弟子之梵行者……  且彼之优婆塞白衣在家弟子之受欲者……  且彼之优婆夷白衣在家弟子之梵行者……  且彼之优婆夷白衣在家弟子之受欲者……  且于彼有梵行、有丰富、有繁荣、名声广布,乃至于人人之中善宣说,到达最胜之利养、称誉。如是成就圆满此等支之梵行。 十四   然,周陀!我今是应供、等正觉者为世之导师而出现;且法是正说、善说,导[出离],令至寂静,由等正觉者之所说。而且我弟子善知妙法,成就纯粹圆满,已得明了一切句身,有不可思议之梵行,能于人中实说,周陀!我今为长老、耆宿,出家修道已久,达晚年老境之导师。 十五   复次,周陀!我今有到达完全者,学行者、无畏者、涅槃之长老弟子比丘,实是宣说妙法,若有生起异论者,能以法制伏之,制伏已而说不可思议之法。然而,周陀!我今有……中年弟子比丘。又周陀!  我今有……新弟子比丘。又周陀!  我今有……长老弟子比丘尼。又周陀!  我今有……中年弟子比丘尼。又周陀!  我今有……新弟子比丘尼。又周陀!  我今有……优婆塞白衣在家弟子之梵行者。又周陀!  我今有……优婆塞白衣在家弟子之受欲者。又周陀!  我今有……优婆夷白衣在家弟子之梵行者。又周陀!  我今有……优优夷白衣在家弟子之受欲者。又周陀!于我有梵行,有丰富,有繁荣,有名声广布,乃至善说于人人之中。 十六   然,周陀!今虽诸导师出现于世,但不见其他一导师,如我得如是最胜利养、名誉。周陀!而且今僧伽或宗派众团出现于世,周陀!不见其他一僧伽,如我比丘僧伽得如是最胜利养、名誉。周陀!凡正说之时:“具足一切相、一切相成就圆满,无灭、无增、纯粹圆满之梵行,已明显善说示。”此谓正说:“具足一切相……乃至……已明显善说示。”周陀!郁头蓝弗曾作如是言:“视而不见。”如何是视而不见耶?虽见彼剃刀善磨之面而不见其刃也。周陀!此云:“视而不见。”周陀!依此郁头蓝弗所说之事,是凡夫卑劣、非圣、无义相应,以就剃刃而言也。周陀,正说时,云:“视而不见,”应去正说是:“视而不见。”如何为视而不见耶?如是具足一切相,一切相成就圆满,无减、无增,纯粹圆满之梵行,已明显善说示。实若彼想此应除去,如是思惟:“如斯会更清净。”则是不见。若彼想此应增加而思惟:“如此会更清净,”则不见,是谓:“视而不见”也。然,周陀!正说之时,谓:“具足一切相……乃至……之梵行,已明显善说示。此正说应谓:“具足一切相,一切相成就圆满,不减、不增,纯粹圆满之梵行,已明显善说示。” 十七   周陀,是故于此,由我证偏知法,对汝等开示。于此处,即一切者共来,共会集,以义理对义理,以字句对字句,应宣说、等调、不诤也。此梵行则永远久住:乃为众人之利益、众人之安乐、慈愍世间、人天之义利、利益、安乐也。周陀!如何法是由我证偏知而宣说?于此,即一切者其来,来会集,以义理对义理,以字句对字句,应宣说、等诵、不诤,即此梵行永远久住,乃为众人之利益、众人之安乐、慈愍世间、人天之利义、利益、安乐者,即:四念处、四正勤、四神足、五根、五力、七觉支,八支圣道也。周陀!此法是依我之知解而说:于此即一切者共来,一切者共会集,义理对义理,字句对字句,应宣说、等诵、不诤。即此梵行永远久住,乃为众人之利益、众人之安乐、慈愍世间、人天之利义、利益、安乐也。 十八   周陀!汝应当学斯M合、喜欢、不诤者。有其他之之同梵行者,于僧伽中说法,若汝等判断:“此具寿,于义理实是误解,于字句实是误说”时,不应赞成,不应诤论。不应赞成、不应诤论,汝等应如是对彼云:“友!对此义理,由其字句?或此字句?与何相应耶?或对此字句,是其义理?或此义理?与何者相应耶?”于彼若如斯云:“友!对此义理,由其字句始为相应,对此文句,由其义理始相应”者,不应排斥彼,亦不应拒否。不应排斥彼,不应拒否;其义理及其字句,应小心善示知之。 十九   复次,周陀!有同梵行者,于僧伽中说法,若汝等判断:“此具寿,对义理 虽实误解,但对字句是正述”时,不应赞成,不应诤论;不赞成、不诤论而汝等应如是对彼云:“友!对此字句,是其义理?或此义理?与何者相应耶?”彼若如斯云:“友!对此字句,是由其义理始为相应”者,不应排斥彼、不应拒否;不排斥、不拒否而其义理,应小心善示知之。 二十    复次,周陀!有同梵行者,于僧伽中说法,若汝等判断:“此具寿,对义理虽实正解,对字句是误述”时,其不应赞成,不应诤论;不赞成、不诤论而如是对彼云:“友!对此义理,是其字句?或此字句?与何者相应耶?”彼若如是一的:“友!对此义理,其字句,比此更相应也。”不应排斥彼,不应拒否;不排斥、不拒否而对其字句,应小心善示知之。 二一   复次,周陀!若有同梵行者,于僧伽中说法,若汝等判断:“此具寿,正解义理,正述字句”时,应言:“善哉!”而赞成、喜欢。对彼言:“善哉!”而赞成、欢喜,应如是对彼言:“友!如我具寿,如是通达义理、字句,得见此同梵行者,乃我等之利益,我等之利得也。” 二二   周陀!我非唯为制伏现法之有漏而对汝等说法1;周陀!亦非唯为坏灭现世之有漏而对汝等说法;周陀!我是为令制伏现法之有漏、坏灭来世之有漏而对汝等说法也。然,于此,周陀!我为汝等所制之衣,实为防汝等之寒、防汝等之暑,为防虻、蚊、风、热、蛇虫之所触,而且覆裈裆,我为汝等制立之托钵,实为令安住汝等之身体,为防伤害,为养活,为修梵行:“如是,我灭除故痛,令新痛不生,又我之生活无过且安稳。”我为汝制立居住,实为防寒、防暑、防虻、蚊、风、热、蛇虫之所触,而且消除时节之厄,为好闲居、独坐也。我为汝等制立疾病之资具、药品、资粮,实为防苦恼、痛之生起,为令离苦也。 二三   复次,周陀!有此事;外道之普行者如是言:“释子沙门专心于安乐行而住。”周陀!外道普行者如是言时,应如斯答彼:“友!何者为安乐行耶?安乐行亦有多种多样。”周陀!于此,有四安乐行,卑劣、凡夫、非圣、非义相应,非导远离,非导离欲,非导于灭,非导于寂静,非导于智,非导于正觉,非导涅槃也。四者何耶?周陀!于此,或愚痴者,自喜乐杀害有情,此为第一安乐行。复次,周陀!于 此,有自喜乐取不与物者,此为第二安乐行。复次,周陀!于此,自喜乐为妄语者,此为第三安乐行。复次,周陀!于此,满足、具足、耽着于五欲乐者,此为第四安乐行也。周陀!此等四安乐行,是卑劣、凡夫、非圣、非义相应,非导远离,非导离欲,非导于灭,非导于寂静,非导于智,非导正觉,非道涅槃也。 二四   复次,有此事;外道普行者如是言:“释子沙门,专心于此等四安乐行而住!应回答彼等:“非然!”彼等以非正语、非然、非事实诽谤汝也。周陀!于此,有四种安乐行,必导远离,导离欲,导于灭,导于寂静,导于智,导于正觉,导于涅槃也。四种者何耶?周陀!于此,有比丘离诸欲,离不善法,有寻有伺,而由离生喜乐,达初禅而住,此为第一安乐行。复次,周陀!有比丘灭寻伺,内心安静,得心一境相,无寻无伺,由定生喜乐,达第二禅而住,此为第二安乐行。复次,周陀!比丘脱喜……乃至……为第三安乐行。复次,周陀!比丘舍离乐……乃至……此为 第四安乐行也。周陀!此等四种安乐行,必导于远离、离欲、灭、寂静、智、正觉、涅槃也。  复次,周陀!有此事,外道普行者如是言:“释子沙门专心于此等四种安乐行而住?”应回答彼等:“然!”彼等以语正语,不以非然、非事实之诽谤。 二五   复次,周陀!有此事,外道普行者如是言:“又,友!专心于此等四种安乐行而住者,可期行如何之果[报]、如何之利益耶?”外道普行者如是言,应如是回答彼:“友!专心于此等四种安乐行前住者,可期待四果、四利益。四种者何耶?友!因克断三结之比丘成为预流、不堕恶处,决定向正觉,此为第一果、第一利益。又,友!克断三结之比丘成为一来,消灭贪、嗔、痴,唯一度来此世间作苦之边际,此为第二果、第二利益。又,友…克断五下分结之比丘成为化生,于彼处般涅槃,更不由其处再还世间,此为第三果、第三利益。又,友!比丘漏尽,无漏心解脱、慧解脱,于现法中自知解、实证而住,此为第四果、第四利益也。友!专心于此等四种安乐行而住者,可期待此四果、四利益。” 二六   复次,周陀!有此事,外道普行者如是言:“释子沙门不住法而住。”周陀!外道普行者如是言者,应如是回答彼:“依彼知者、见者、阿罗汉、等正觉者、世尊,说声闻法,令知消尽命数。友!犹如因陀罗柱及如铁柱善依据深根底而不震不动。友!如是,依彼知者、见者、阿罗汉、等正觉者、世尊,说声闻法,令知消尽命数。友!彼阿罗汉诸漏已尽、[梵行]已立、所作已辨、舍负重担、获利、尽有之结使、正智解脱之比丘,得成九事。友!漏尽之比丘,不可能故意夺生物之生命;漏尽之比丘,不可能以盗心取不与之物;漏尽比丘,不可能行邪淫;漏尽比丘,不可能以正如语妄语;漏尽比丘,不可能如前在俗时,蓄财富享受欲乐;漏尽比丘,不可能行欲道:漏尽比丘,不可能行嗔道;漏尽比丘,不可能行痴道;漏尽比丘,不可能行怖畏道。友!彼阿罗汉诸漏已尽、[梵行]已立、所作已办、舍负重担、获利、尽有之结使,正智解脱之比丘,不可能行此九事。” 二七   复次,周陀!有此事,外道普行者如是言:“沙门瞿昙令知关于过去无涯之智见;然而不令知关于未来无涯之智见,其究竟如何?其究竟如何?”彼外道普行者以无智所扰之智见,认为不应不令知无智所扰之智见;此犹如愚者之无知。周陀!世尊对过去有随念智,彼凡限于随愿意之忆念。有关于未来世尊是生起菩提生智:“此为最后生,今后无再生也。” 二八   周陀!对于过去,若虚妄、不真实、非义利相应者,如来不说也。周陀!对于过去,若真实,于义利相应者,如来知是时而答彼问。周陀!对于未来,若虚妄、不真实、非义利相应者,如来不说也。周陀!对于未来,若真实、于义利相应者,如来如是时,略述回答彼问。周陀!对于现在,若虚妄、不真实、非义利相应者, 如来不说也。周陀!对于现在,若真实、而非义利相应者,如来亦不说也。周陀!对于现在,若真实、于义利相应者,如来知是时而回答彼问。如是,周陀!于过去、未来、现在之法,如来是时语者、实语者、义语者、法语者、律语者,故名为如来。 二九   周陀!含括天、魔、梵之世界及沙门、婆罗门、众生、天、人之见闻觉知、未达、依意思惟彼等之一切,如来现正觉,故名为如来。周陀!如来于夜分正觉无上等正觉,于夜分无余涅槃界般涅槃。于此二之间,说语教示,一切真实而无其他,故名为如来。周陀!如来之所说如其所行,如其所行而如其所说。如是行如所说,说如所行,故名为如来。含括天、魔、梵之世界及沙门、婆罗门、众生、天、人[之世界],如来征服之而不被征服。一切物之见者、调御者,故名为如来。 三0   复次,周陀!有此事,外道普行者,如是言:“友!如来死后存在耶?而此为真实,其他为虚伪耶?”周陀!外道普行者如是问,应如斯答彼:“友!世尊不说:“如来死后存在,唯此为真实,其他为虚伪。””  复次,周陀!有此事,外道普行者而如是言:“友!如来死后不存在,而唯此为真实,其他为虚伪耶?”周陀!外道普行者如是云,应如斯答彼:“友!又世尊不说:“如来死后不存在,唯此为真实,其他为虚伪。”   复次,周陀!有此事,外道普行者而如是言:“友!如来死后存在又不存在……乃至……如来死后非存在又非不存在耶?而唯此为真实,其他为虚伪耶?”周陀!外道普行者如是云,应如斯答彼:“友!世尊不说:‘如来死后非存在,又非不存在。唯此为真实,其他为虚伪。’” 三一   复次,周陀!有此事,外道普者而如是言:“何故,沙门瞿昙不说耶?”周陀!外道普行者如是云,应如斯答彼:“友!不论如何,于此义利不相应,于法不相应,非根本梵行,非导远离,非导离贪,非导于灭,非导寂静,非导于智,非导正觉,非导涅槃。故如来不说也。” 三二   复次,周陀!有此事,外道普行者而如是言:“友!沙门瞿昙以何为说耶?”周陀!外道普行者如是云,应如斯答彼:“友!世尊说:“此是苦。”友!世尊说:“此是苦之集。”友!世尊说:“此是苦之灭。”友!世尊说:“此是导苦灭之道也。” 三三   复次,周陀!有此事,外道普行者而如是言:“友!沙门瞿昙何故说此耶?”周陀!外道普行者如是云,应如斯答彼:“友!此实于义利相应,于法相应,是根本梵行,决定导远离、离贪、灭、寂静、智、正觉、涅槃也。是故世尊宣说此也。” 三四   周陀!凡有关此等过去见解之依处,其当说者,我已对汝等宣说。而对汝等不该说者,我将如何2说耶?周陀!凡有关此等未来见解之依处,其当说者,我已对汝等宣说,而对汝等不该说者,我将如何说耶?  周陀!如何关于此等过去见解之依处,其当说者,我已对汝等宣说耶?3  周陀!某沙门、婆罗门有斯说、有斯见:“我及世间是常。唯此为真实,其他是虚伪。”  复次,周陀!某沙门、婆罗门有所说、有斯见:  “我及世间是无常……乃至……  我及世间是亦常亦无常……乃至……  我及世间是非常非无常……乃至……  我及世间是自造……乃至……  我及世间是他造……乃至……  我及世间是亦自造亦他造……乃至……  我及世间是非自造亦非他造,乃忽然而生,唯此为真实,其他是虚伪。”  “乐与苦是常。  乐与苦是无常。  乐与苦是亦常亦无常。  乐与苦是非常非无常。  乐与苦是自造。  乐与苦是他造。  乐与苦是亦自造亦他造。  乐与苦是非自造非他造,忽然而生。唯此为真实,其他是虚伪。” 三五   于是,周陀!彼沙门、婆罗门有所说、有斯见:“我及世间是常住,唯此为真实,其他是虚伪。”我至彼等处而如是言:“友!汝言我及世间是常住是事实耶?”凡彼等如是言:“唯此为真实,其他是虚伪。”此,我不认许。何以故,周陀!世间有一类有情之异想者,周陀!于智我不见有与我相等者,何况有比我更优胜者乎?我于此事有增上智,即我为最胜者也。 三六   周陀!彼沙门、婆罗门有斯说、有斯见:  “我及世间是无常。  我及世间是亦常亦无常。  我及世间是非常非无常。  我及世间是自造。  我及世间是他造。  我及世间是亦自造亦他造。  我及世间是非自造非他造,忽然而生也。  乐与苦是常住。  乐与苦是无常。  乐与苦是亦常亦无常。  乐与苦是非常非无常。  乐与苦是自造。   乐与苦是他造。  乐与苦是亦自造亦他造。  乐与苦是非自造非他造,乃忽然而生。唯此为真实,其他是虚伪。”  我至彼等处如是言:“友!汝云乐与苦是非自造非他造,乃忽然而生是事实乎?而彼等如斯言:“唯此为真实,其他为虚伪。”此,我不认许。何以故,周陀!世间有一类有情之异想者,于智我不见有与我相等者,何况有比我更优胜者乎?而且我于此事有增上智,即我为最胜者也。于是,周陀!凡有关过去见解之依处,其当说者,我已对汝等宣说;而对汝等不该说者,我将如何说耶? 三七   周陀!凡有关未来见解之低处,其当说者,已对汝等宣说;而对汝等不该说者,我将如何说耶?  周陀!某沙门、婆罗门有所说、有所见:“我是有色而死后为无病,唯此为真实,其他是虚伪。”  复次,周陀!某沙门、婆罗门有斯说、有斯见:  “我是无色……  我是亦有色亦无色……  我是非有色非无色……  我是有想……  我是无想……  我是非有想非无想……  我将被消灭、破坏,死后不存在,唯此为真实,其他是处伪。” 三八   于是,周陀!彼沙门、婆罗门有所说、有斯见:“我是有色而死后为无病,唯此是真实,其他为虚伪。”我至彼等处,如是言:“友!汝云我是有色而死后为无病,是事实乎?”于彼等如是言:“唯此是真实,其他为虚伪。”此,我不认许。何以故,周陀!我于智不见有与我相等者,何况有比我更优胜者乎?而且周陀!我对于此事有增上智,即我为最胜也。 三九   于此,周陀!彼沙门、婆罗门,有所说、有斯见:  “我是无色……乃至……  我是亦有色亦无色……乃至……  我是非有色非无色……乃至……  我是有想……  我是无想……  我是非有想非无想……  我将被消灭、破坏,死后不存在,唯此是真实,其他为虚伪。”  我至彼等处,如是言:“友!汝云我将被消灭、破坏,死后不存在,是事实耶?”周陀!彼等云:“唯此是真实,其他为虚伪。”此,我不认许。何以故,周陀!凡世间有一类有情之异想,周陀!我于知不见有与我相等者,何况有比我更优胜者乎?而且我于此事有增上智,即我为最胜者也。周陀!凡有关未来见解之依处,其当说者,已对汝等宣说,而对汝等不该说者,我将如何说耶? 四十    周陀!为舍有关此等过去见解之低处及有关未来见解之依处,为令知超越如是,我说示四念处。四[念处]者何耶?周陀!于此,有比丘于身观身而住,热诚而有正念正知,以断世间之贪、忧。于受……于心……于法观身而住,热诚而有正念正知,以断世间之贪、忧。周陀!为舍有关此等过去见解之依处及有关未来见解 之处,为令知超越如是,我说示此等之四念处。” 四一   其时,具寿宇拔越那立于世尊之后,以扇为世尊煽风,而且具寿宇拔越那,如次白世尊:  “稀有哉!世尊!未曾有哉!世尊!世尊!此法门实是清净也;世尊!此法门实甚清净。世尊!应何名此法门耶?”  “然者,宇拔越那!此法门名为清净,汝当受持之。”  世尊如是言已,具寿宇拔越那闻世尊之所说,欢喜、[受持]。 注:1 .原本为navam,于暹罗本有na vo从此而译之。2 .如何云云,于原本kim no aham……应订正为而读。3 .原本于次有“对汝等不该说”一句,今依异本除去此句,下于第三七节之初处亦然。  
32    1108. 득안경(得眼經)若人懺而不受者。是愚癡人 댓글:  조회:2078  추천:81  2008-10-16
1108. 득안경(得眼經)9)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이른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사위성에 들어가 걸식하셨다. 걸식을 마치시고 정사(精舍)에 돌아와 가사와 발우를 두고 발을 씻은 뒤에 니사단(尼師壇)을 오른 어깨에 메고 안다림(安陀林)으로 들어가, 니사단을 펴고 어떤 나무 밑에 앉아 낮 선정에 들어가셨다. 그 때 기원(祗園)에서 두 비구 사이에 싸움이 일어났는데 한 사람이 꾸짖어도 한 사람은 잠자코 있었다. 그 꾸짖던 사람은 곧 뉘우치고 그에게 사과하였다. 그런데 그 비구는 그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가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 절 안에 있던 비구들이 서로 권하고 충고하느라고 고함을 치며 시끄러웠다. 그 때 세존께서는 사람 귀보다 뛰어난 깨끗한 천이(天耳)로 기원에서 시끄럽게 고함소리가 오가는 것을 들으셨다. 그 소리를 들으시고는 선정에서 깨어나 정사로 돌아와 대중 앞에 자리를 펴고 앉아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오늘 이른 아침에 걸식하고 돌아와 안다림으로 들어가 낮 선정에 들었다가 정사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고함소리를 들었다. 누가 그렇게 하였느냐? 비구들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정사에서 두 비구가 싸웠는데, 한 비구는 꾸짖었으나 한 비구는 잠자코 있었습니다. 그 때 꾸짖던 비구가 이내 잘못을 뉘우치고 사과하였으나, 그가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이 권하고 충고하느라 큰 소리가 나고 시끄러웠습니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어리석은 비구가 상대방이 뉘우치고 사과하는데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는가? 상대가 뉘우치는데 그것을 받아주지 않으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 이다. 그는 오랜 세월 동안 유익하지 못한 괴로움을 받을 것이다. 비구들아, 과거 세상에 석제환인은 33천에서 싸움이 있었을 때, 이렇게 게송으로 가르치고 훈계하였다. 다른 사람을 해칠 마음 없으면 성냄도 또한 얽어매지 못하나니 원한을 품고 오래 두지 말고 성내는 마음에 머물지도 말라. 아무리 화가 치밀어 오르더라도 그 때문에 추한 말을 하지 말라. 구태여 남의 흠을 애써 찾아내어 그의 허점과 단점을 들추지 말고 항상 마땅히 스스로 단속하여 정의로써 안으로 반성하고 살펴라. 성내지도 말고 해치지도 말며 언제나 성현들과 함께 하여라. 악한 사람과 함께 있게 되더라도 마치 돌산처럼 강하고 굳세어라. 울화가 치밀어도 잘 참아내라 달리는 마차를 제어하는 것처럼 내가 말하는 훌륭한 마부란 고삐 잡은 이를 말하는 게 아니니라.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석제환인은 33천의 자재왕의 지위에 있으면서도 성내지 않는 것을 찬탄하였다. 너희들도 그렇게 하여야 한다. 바른 믿음으로 집 아닌 데로 출가하여 도를 배우고 있으니 성내지 않는 것을 찬탄하는 공부를 해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一一○八) 如是我聞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爾時。世尊晨朝著衣持鉢。入舍衛城乞食。乞食已。還精舍。舉衣鉢。洗足已。持尼師壇。著右肩上。至安陀林。布尼師壇。坐一樹下。入晝正受 爾時。祇桓中有兩比丘諍起。一人罵詈。一人默然。其罵詈者。即便改悔懺謝於彼。而彼比丘不受其懺。以不受懺故。時。精舍中眾多比丘共相勸諫。高聲鬧亂 爾時。世尊以淨天耳過於人耳。聞祇桓中高聲鬧亂。聞已。從禪覺。還精舍。於大眾前敷座而坐。告諸比丘。我今晨朝乞食。還至安陀林。坐禪人晝正受。聞精舍中高聲大聲。紛紜鬧亂。竟為是誰 比丘白佛。此精舍中有二比丘諍起。一比丘罵。一者默然。時。罵比丘尋向悔謝。而彼不受。緣不受故。多人勸諫。故致大聲。高聲鬧亂 佛告比丘。云何。比丘。愚癡之人。人向悔謝。不受其懺。若人懺而不受者。是愚癡人。長夜當得不饒益苦。諸比丘。過去世時。釋提桓因有三十三天共諍。說偈教誡言  於他無害心  瞋亦不纏結 懷恨不經久  於瞋以不住 雖復瞋恚盛  不發於麤言 不求彼開節  揚人之虛短 常當自防護  以義內省察 不怒亦不害  常與賢聖俱 若與惡人俱  剛彊猶山石 盛恚能自持  如制逸馬車 我說為善御  非謂執繩者  佛告諸比丘。釋提桓因於三十三天為自在王。常行忍辱。亦復讚歎行忍者。汝等比丘正信.非家.出家學道。當行忍辱。讚歎忍者。應當學 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31    727. 구이나갈경(拘夷懦竭經) 정진 댓글:  조회:1978  추천:69  2008-09-12
 727. 구이나갈경(拘夷懦竭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역사(力士)라고 하는 마을을 유행하시다가 구이나갈성(拘夷那竭城)과 희련하(希連河) 중간에 머무시면서, 그 마을 옆에서 존자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내 울다라승(鬱多羅僧)을 네 겹으로 접어 깔아라. 나는 지금 등이 아파 잠깐 누워서 쉬어야겠다. 존자 아난은 분부를 받고 곧 울다라승을 네 겹으로 접어 깔고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울다라승을 네 겹으로 접어 깔았습니다. 세존께서는 때를 아시옵소서. 그 때 세존께서 승가리(僧伽梨)를 두텁게 접어 머리에 베고, 오른쪽으로 누워 발을 포개시고 생각을 밝은 모양에 두고,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깨달음의 생각을 가지신 뒤에, 존자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7각지를 설명해보아라. 그러자 존자 아난이 곧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른바 염각지는 세존께서 스스로 깨달아 등정각(等正覺)을 이루신 뒤에 '멀리 여읨에 의존하고 욕심 없음에 의존하며, 소멸에 의존하고, 버림으로 회향한다[向於捨]'고 말씀하신 바로 그 것입니다. 택법각지․정진각지․희각지․의각지․정각지․사각지도, 세존께서 스스로 깨달아 등정각을 이루신 뒤에 '멀리 여읨에 의존하고 욕심 없음에 의존하며, 소멸에 의존하고, 버림으로 회향한다'고 말씀하신 바로 그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정진을 설명하였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정진을 설명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정진을 설명하였습니다, 선서시여.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다만 정진만이라도 닦아 익히고, 많이 닦아 익히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多羅三?三菩提)를 얻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신 뒤에 몸을 바르게 하시고 단정히 앉아 삼매에 드셨다. 그 때 어떤 비구가 곧 게송으로 말했다. 아름답고 묘한 법 즐겨 들으시려고 병환을 참고 남을 시켜 말하게 하자 비구는 분부 받고 곧 법을 설하여 7가지를 하나하나 설명하였네. 장하여라, 존자 아난이여, 밝은 지혜와 묘한 말솜씨와 훌륭하고 깨끗한 법을 가지고 더러움을 여의는 미묘한 말씀이었네. 염각지․택법각지․정진각지와 희각지․의각지․정각지․사각지 이것이 바로 7각지[覺分]로서 미묘한 좋은 진리의 말씀이라네. 7각지에 대한 설명 듣고 바른 깨달음의 맛 깊게 알게 하고자 몸은 비록 큰 고통을 더하더라도 아픔을 참고 단정히 앉아 들으셨네. 바른 법을 관하여 법의 왕 되어서도 언제나 남을 위해 연설하시고 그리고도 남의 설법 즐겨 들으시거니 하물며 그 법 듣지 못한 다른 사람이겠느냐. 비록 으뜸가는 큰 지혜 있고 열 가지 힘 가지고 존경을 받는 사람 그도 또한 마땅히 빨리 서둘러 여기 와서 바른 법 들어야 하리. 많이 들어 아는 것 많은 사람으로서 경전과 아비담을 환히 알고 법과 율에 깊이 잘 통달한 이도 이 법을 들어야 하겠거늘 하물며 다른 사람이겠느냐. 참다운 그 법의 연설을 듣되 오롯한 마음과 지혜로써 들으면 부처님 말씀하신 그 법 안에서 탐욕을 여의고 기쁨을 얻으리라. 기쁨을 얻으면 몸도 편히 쉬게 되고 그와 같이 마음도 스스로 즐거우며 마음이 즐거우면 선정을 얻게 되어 바르게 관찰하여 일을 행하리라. 세 가지 세계 싫어하고 미워하면 탐욕을 여의어 마음이 해탈하고 모든 존재의 세계 싫어하고 미워하면 인간이나 천상에는 태어나지 않으리니 등불이 꺼진 듯 남음이 없어 마침내 반열반(般涅槃)에 들리라. 가장 훌륭한 진리 말씀하시는 그 법을 들으면 복과 이익 많으리니 그러므로 마땅히 오롯한 생각으로 이 대사(大師)의 말씀을 들어라. 그 비구는 이 게송을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728. 설경(說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7각지[覺分]가 있다. 어떤 것이 일곱 가지인가? 이른바 염각지와 …… (내지)……사각지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七二七) 如是我聞 一時。佛在力士聚落人間遊行。於拘夷那竭城希連河中間住。於聚落側告尊者阿難。令四重襞疊敷世尊鬱多羅僧。我今背疾。欲小臥息 尊者阿難即受教敕。四重襞疊敷鬱多羅僧已。白佛言。世尊。已四重襞疊敷鬱多羅僧。唯世尊知時 爾時。世尊厚襞僧伽梨枕頭。右脅而臥。足足相累。繫念明相。正念正智。作起覺想。告尊者阿難。汝說七覺分 時。尊者阿難即白佛言。世尊。所謂念覺分。世尊自覺成等正覺。說依遠離.依無欲.依滅.向於捨。擇法.精進.喜.猗.定.捨覺分。世尊自覺成等正覺。說依遠離.依無欲.依滅.向於捨 佛告阿難。汝說精進耶 阿難白佛。我說精進。世尊。說精進。善逝 佛告阿難。唯精進。修習多修習。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說是語已。正坐端身繫念 時。有異比丘即說偈言  樂聞美妙法  忍疾告人說 比丘即說法  轉於七覺分 善哉尊阿難  明解巧便說 有勝白淨法  離垢微妙說 念.擇法.精進.  喜.猗.定.捨覺 此則七覺分  微妙之善說 聞說七覺分  深達正覺味 身嬰大苦患  忍疾端坐聽           嬰   ying1   頸飾也 觀為正法王  常為人演說 猶樂聞所說  況餘未聞者 第一大智慧  十力所禮者 彼亦應疾疾  來聽說正法 諸多聞通達  契經阿毘曇 善通法律者  應聽況餘者 聞說如實法  專心黠慧聽 於佛所說法  得離欲歡喜 歡喜身猗息  心自樂亦然 心樂得正受  正觀有事行 厭惡三趣者  離欲心解脫 厭惡諸有趣  不集於人天 無餘猶燈滅  究竟般涅槃 聞法多福利  最勝之所說 是故當專思  聽大師所說  異比丘說此偈已。從座起而去 //
30    592. 급고독경(給孤獨經) 급고독장자이야기 댓글:  조회:2211  추천:89  2008-07-22
592. 급고독경(給孤獨經)20)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왕사성에 있는 한림(寒林)21)의 묘지 사이에 머물고 계셨다. 20) 이 경은 『별역잡아함경』 제9권 26번째 소경과 같은 내용이다. 21) 팔리어로는 S tavana라고 함. 죽은 시체들을 내다버리는 장소를 말함. 그 때 급고독(給孤獨) 장자는 조금 볼 일이 있어 왕사성(王舍城)으로 가서 어느 장자의 집에 머물고 있었다. 밤에 그 장자는 그 처자와 종과 머슴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다들 일어나 장작을 쪼개 불을 지펴 밥을 짓고 떡을 만들고, 여러 가지 요리를 만들고 온 집안을 장엄하도록 하라. 급고독 장자는 그것을 보고 이렇게 생각하였다. '지금 이 장자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가? 딸을 시집보내던가 며느리를 맞기라도 하는 건가? 아니면 손님이나 왕이나 대신을 초청하기라도 한 건가?'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곧 그 장자에게 물었다. 당신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딸을 시집보내던가 며느리를 맞기라도 하는 겁니까? 아니면 손님이나 왕이나 대신을 초청하기라도 한 겁니까? 장자가 급고독 장자에게 대답했다. 나는 딸을 시집보내거나 며느리를 맞는 것도 아니며, 또한 왕이나 대신을 초청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부처님과 비구스님을 초청하여 공양을 올리려고 할 뿐입니다. 그 때 급고독 장자는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는 부처님이라는 이름을 듣고는, 마음이 너무 기뻐 온몸의 털구멍이 다 느긋해져 그 장자에게 물었다. 어떤 이를 부처라고 합니까? 장자가 대답하였다. 사문 구담이라는 분이 계시는데, 그 분은 석가 종족의 아들로서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바른 믿음으로 집 없는 데로 출가하여 도를 배워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多羅三?三菩提)를 얻으셨습니다. 그 분을 부처라고 합니다. 급고독 장자가 물었다. 어떤 이를 스님이라고 합니까? 그 장자가 말했다. 만일 바라문의 종족이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부처님을 따라 출가하거나, 혹은 찰리종(刹利種)․비사종(毘舍種)․수다라종(首陀羅種)의 선남자들이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바른 믿음으로 집 없는 데로 부처님께서 출가하셨듯이 그를 따라 출가하면, 그들을 스님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 부처님과 현재 그곳에 있는 스님들을 초청하여 모든 공양들을 베풀려고 하는 것입니다. 급고독 장자가 그 장자에게 물었다. 제가 지금 세존을 찾아뵈어도 괜찮겠습니까? 그 장자가 대답하였다. 당신은 일단 여기에 계십시오. 제가 세존을 청해 우리 집으로 오시면 여기서 뵐 수 있을 것입니다. 급고독 장자는 그 날 밤에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생각하다가 이내 잠이 들었다. 아직 날이 밝기도 전인데 갑자기 환하게 밝은 형상이 보여 그는 날이 밝았다고 생각하고, 그 집을 나와 성문으로 달려가서 성문 아래 이르렀는데, 밤의 2경(更)이 시작될 무렵이었으므로 아직 성문은 열리지 않을 시간이었다. 왕가의 일상적인 법도에서는 멀리서 오고 가는 사신들을 기다리기 위하여 초저녁〔初夜〕이 지나야 비로소 성문을 닫고, 한밤중이 지나면 곧 다시 문을 열어 행인들로 하여금 일찍 오가게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때 급고독 장자는 성문이 열린 것을 보고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것은 틀림없이 밤이 지나고 새벽이 되어 문이 열린 것이다.' 그래서 밝은 형상을 따라 성문을 나왔는데 성문을 나오자, 그렇게 밝던 형상은 온데 간데 없고 도로 깜깜한 밤으로 되돌아갔다. 급고독 장자는 마음에 문득 두려움이 생겨 온몸의 털이 곤두서 이렇게 생각하였다. '무위(無爲)를 증득한 사람이나 귀신 혹은 간교한 사람이 나를 놀라게 하려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그는 곧 돌아가려고 하였다. 그 때 성문 옆에 어떤 천신이 서 있었다. 그 천신은 몸에서 광명을 발하여 그 성문에서부터 한림의 묘지까지 광명을 두루 비추었다. 그는 급고독 장자에게 말했다. 그대는 우선 앞으로 나아가라. 그러면 뛰어난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부디 물러나 되돌아가지는 말라. 그 때 그 천신이 곧 게송으로 말했다. 백 필의 좋은 말에 백 근의 황금을 가득 실은 노새가 끄는 수레와 말이 끄는 수레 각각 백 대가 있네. 거기다가 갖가지 진기하고 값진 보물들을 실어다 주리니 과거에 착한 종자 심은 사람은 이런 복된 과보 얻으리라. 그러나 어떤 사람이 존경하는 마음으로 부처님 향해 한 걸음 나아간다면 앞에 말한 사람의 복은 그의 16분의 1도 되지 않으리라. 그러므로 장자여, 그대는 마땅히 앞으로 나아가고, 부디 물러나 되돌아가지 말라. 그리고 그는 다시 게송으로 말했다. 설산(雪山)의 큰 용상(龍象) 순금으로 장식되고 거대한 몸집에 크고 긴 어금니 지녔는데 이런 코끼리를 보시한 사람도 부처님을 향한 복에 비하면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장자여, 그대는 어서 앞으로 나아가 저와 같이 큰 이익을 얻어야 한다. 다시 되돌아갈 일이 아니다. 그는 다시 게송으로 말했다. 금보사국(金菩?國)22)에 있는 수백 명의 여자들은 갖가지 묘한 보배와 영락으로 잘 꾸몄네. 비록 그들을 남에게 준다 해도 부처님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가는 그 공덕에 비하면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장자여, 어서 앞으로 나아가 저와 같이 뛰어난 이익을 얻어야 한다. 다시 되돌아갈 일이 아니다. 그 때 급고독 장자가 천신에게 물었다. 현자여, 당신은 누구십니까? 천신이 대답하였다. 나는 마두식건(摩頭息?)이라는 큰 마나바(摩那婆)로서 옛날에 장자의 좋은 벗이었는데, 존자 사리불(舍利弗)과 대목건련(大目?連)에게 믿고 존경하는 마음을 내어, 그 공덕의 인연으로 하늘에 태어나게 되었고 지금은 이 성문을 맡고 있다. 그래서 장자에게 '다만 앞으로 나아가고 부디 물러나 되돌아가지 말라. 앞으로 나아가면 이익을 얻을 것이니 다시 되돌아갈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러자 급고독 장자가 이런 생각을 하였다.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출현하심은 작은 일이 아니다. 그리고 바른 법을 들을 수 있는 것도 또한 작은 일이 아니다. 그래서 천신은 내게 앞으로 나아가라고 권한 것이다. 나는 어서 가서 세존을 뵈어야겠다.' 그리고 급고독 장자는 곧 그 광명을 따라 한림의 묘지로 갔다. 그 때 세존께서는 방에서 나와 한데를 거닐고 계셨다. 급고독 장자는 멀리 부처님이 보이자, 곧 그 앞으로 나아가 속인의 예법대로 공손히 안부를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떠십니까? 기거하심이 편안하십니까? 그 때 세존께서는 게송으로 대답하셨다. 바라문이여, 열반은 언제나 안락하나니 애욕에 물들지 않고 해탈해 영원히 남음이 없다. 일체의 희망을 끊고 마음의 불길을 억눌렀으니 마음은 이제 고요히 쉬게 되어 편안하고 아늑하게 잘 수 있노라. 그 때 세존께서는 급고독 장자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아, 몸을 단정히 하고 생각을 모은 뒤에 그를 위해 설법하여, 가르쳐 보이고 기뻐하게 하셨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모든 법은 무상한 것이라는 것과, 보시라는 복된 일과, 계를 잘 지키는 복된 일과, 하늘에 태어나게 하는 복된 일에 대한 것과, 탐욕의 맛․탐욕의 근심․탐욕에서 벗어남과 멀리 여읨이라는 복된 일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급고독 장자는 법을 듣고 법을 보고 법을 얻고 법에 들어가고 법을 알아 모든 의혹에서 벗어났고, 남의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남의 제도에 힘입지 않고 바른 법과 계에 들어가, 마음에 두려움이 없게 되었다. 그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단정하게 하고 부처님께 예를 올린 다음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미 구제되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미 구제되었습니다. 선서시여, 저는 오늘부터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부처님께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며 승가에 귀의하여 우바새가 되겠습니다. 부디 저를 증명하소서. 그 때 세존께서 급고독 장자에게 물으셨다. 그대 이름이 무엇인가? 장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제 이름은 수달다(須達多)이며, 늘 고독하고 빈곤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제해 준다고 하여, 요새 사람들은 저를 급고독(給孤獨)이라 부릅니다. 세존께서는 다시 물으셨다. 그대의 집은 어디에 있는가? 장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구살라국 사람인데, 그 성의 이름은 사위성(舍衛城)이라고 합니다. 원하옵건대 부디 세존께서는 사위성으로 오십시오. 그러면 저는 마땅히 목숨이 다하도록 의복․음식․방․침구와 병에 따른 탕약을 모두 공급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장자에게 물으셨다. 사위성에 정사(精舍)가 있는가? 장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장자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거기에 정사를 세워 여러 비구들이 오고 가면서 머물게 하라. 장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오직 세존께서 사위성에 오시기만 한다면 저는 마땅히 정사와 승방(僧房)을 지어, 여러 비구들이 오고 가면서 머물게 하겠습니다. 그 때 세존께서는 잠자코 그 청을 들어주셨다. 장자는 불세존께서 잠자코 청을 들어주신 줄 알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서 떠나갔다. 22) 팔리어로는 Ka oja라고 함. 인도 16대국 가운데 하나로서 의역하여 가애(可愛)라고 함. 인더스 강 서쪽에 위치한 나라로 원래는 과일 열매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임. 그 나라 사람들의 얼굴이 과일 열매와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에 이렇게 불려지게 되었고, 유난히 미녀(美女)들이 많았다고 함. 지금은 대략 아프가니스탄 지방으로 추정됨.
563. 니건경(尼?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비사리국(毘舍離國) 미후지(??池) 가에 있는 중각강당(重閣講堂)에 계셨는데, 존자 아난도 그곳에 머물고 있었다. 그 때 니건(尼?)5)의 제자 무외 리차(無畏離車)6)와 아기비(阿耆毘)의 제자 총명동자(聰明童子) 리차가 존자 아난의 처소로 함께 찾아와, 서로 인사하고 위로한 뒤에 한쪽에 앉았다. 그 때 무외 리차가 존자 아난에게 말했다. 우리 스승 니건자(尼?子)는 불타는 법[熾然法]을 끄고 청정하고 뛰어나시어, 제자들을 위해 이러한 도를 설하셨으니, '숙명(宿命:前生)의 업은 고행(苦行)을 행함으로써 그것을 다 없애고, 몸의 업[身業]을 짓지 않음으로써 연결다리를 끊어 미래 세상에서는 모든 번뇌가 다시는 없고 모든 업이 아주 다하며, 업이 아주 다했기 때문에 온갖 고통이 아주 다하고 온갖 고통이 아주 다했기 때문에 고통을 완전히 벗어난다'고 하셨습니다. 존자 아난이여, 이 뜻은 무엇입니까? 존자 아난이 리차에게 말했다. 여래․응공․등정각께서는 알고 보신 것으로 불타는 법을 여의고 청정하고 뛰어나게 하는 방법과 일승의 도로써 중생을 깨끗하게 하고, 근심과 슬픔을 여의며, 고통과 번민을 벗어나 진여법(眞如法)을 얻게 하기 위해 세 가지를 설하셨습니다.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5) 팔리어로는 Niga ha라고 함. 계박(繫縛)을 여읜다는 뜻으로 사람의 이름임. 6) 팔리어로는 Abhaya Licchavi라고 함. 리차(離車)의 이름으로, 리차는 중인도 비사리국 찰제리(刹帝利) 종족의 이름임. 7) 팔리어로는 p timokkha이며, 한역하여 별별해탈(別別解脫) 혹은 별해탈계(別解脫戒)라고도 함. 그릇되고 잘못됨에서 따로따로 해탈한다는 뜻. 즉 계행(戒行)을 지켜 능히 따로따로 몸과 입의 잘못을 방지함으로써 점차로 모든 번뇌의 속박에서 해탈하게 된다. 승단 가운데 비구․비구니라면 마땅히 지속적으로 지켜야 할 계율의 근본조문. 이러한 거룩한 제자는 깨끗한 계에 머물러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7)를 받고 위의(威儀)를 구족하며, 모든 죄를 믿어 두려워하는 생각을 가집니다. 이렇게 받아 지니고서 깨끗한 계를 구족하면 전생의 업[宿業]이 점점 없어져 현세에서 불타는 법[熾法]을 여읠 수 있으며, 때를 기다리지 않고서도 바른 법을 얻게 되어, 통달하고 밝게 보고 관찰하여 지혜로써 스스로 깨닫게 됩니다. 리차 장자여, 이것이 이른바 여래․응공․등정각께서 알고 보신 것으로 불타는 법을 여의고 청정하고 뛰어나게 하며, 일승의 도로써 중생을 깨끗하게 하고, 고통과 번민을 없애며, 근심과 슬픔을 벗어나 진여법(眞如法)을 얻게 하기 위해 설하신 것입니다. 다시 리차여, 이와 같이 깨끗한 계를 구족하고 욕심과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떠나 제4선(禪)에 구족하게 머물면, 이것이 이른바 여래․응공․등정각께서는 불타는 법을 여의고  참다운 법을 얻게 하기 위해 설하신 것입니다. 다시 삼매정수(三昧正受)가 있어, 이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聖諦]를 사실 그대로 알고, 이 괴로움의 발생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集聖諦]․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滅聖諦]․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滅道跡聖諦]를 사실 그대로 압니다. 이와 같이 지혜로운 마음을 구족하여 업을 다시 짓지 않으면, 전생의 업이 점점 끊어져 현세에서 바른 법을 얻어 모든 불타는 법을 여읠 수 있으며, 때를 기다리지 않고서도 통달하고 밝게 보아 스스로 깨닫는 지혜가 생깁니다. 리차여, 이것이 이른바 여래․응공․등정각께서 알고 보신 것으로 불타는 법을 여의고 청정하고 뛰어나게 하며, 일승의 도로써 중생을 깨끗하게 하고, 고통과 번민을 여의고 근심과 슬픔을 없애 참다운 법을 얻게 하기 위해 세 번째로 설하신 것입니다. 그 때 니건의 제자 리차 무외는 잠자코 있었다. 그 때 아기비 제자 리차 총명은 리차 무외에게 거듭 말했다. 이상하구려. 무외여, 왜 잠자코 있소? 여래․응공․등정각의 말씀과, 알고 보신 바와 좋은 설법을 듣고도 왜 기뻐하지 않소? 리차 무외가 대답하였다. 나는 그 이치에 대해 생각하느라고 잠자코 있었을 뿐이오. 세존이신 사문구담의 설법을 듣고 누군들 기뻐하지 않겠소? 만일 누군가 구담의 설법을 듣고도 기뻐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으로서, 오랜 세월 동안 의롭지 못하고 이익이 없는 고통을 받을 것이오. 그 때 니건 제자 리차 무외와 아기비 제자 총명은 부처님 설법과 존자 아난의 말을 거듭 듣고 기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五六三) 如是我聞 一時。佛住毘舍離獼猴池側重閣講堂。尊者阿難亦在彼住 爾時。無畏離車。是尼犍弟子.聰明童子離車。是阿耆毘弟子。俱往尊者阿難所。共相問訊慰勞已。於一面坐。時。無畏離車語尊者阿難。我師尼犍子滅熾然法。清淨超出。為諸弟子說如是道。宿命之業。行苦行故。悉能吐之。身業不作。斷截橋梁。於未來世無復諸漏。諸業永盡。業永盡故。眾苦永盡。苦永盡故。究竟苦邊。尊者阿難。此義云何 尊者阿難語離車言。如來.應.等正覺所知所見。說三種離熾然清淨超出道。以一乘道淨眾生.離憂悲.越苦惱。得真如法。何等為三。 如是。聖弟子住於淨戒。受波羅提木叉。威儀具足。信於諸罪過。生怖畏想。受持如是具足淨戒。宿業漸吐。得現法。離熾然。不待時節。能得正法。通達現見觀察。智慧自覺。離車長者。 是名如來.應.等正覺說所知所見說離熾然。清淨超出。以一乘道淨眾生.滅苦惱.越憂悲。得真如法 復次。離車。如是淨戒具足。離欲.惡不善法。乃至第四禪具足住。是名如來.應.等正覺說離熾然。乃至得如實法。復有三昧正受。於此苦聖諦如實知。此苦集聖諦.苦滅聖諦.苦滅道迹聖諦如實知。具足如是智慧心。業更不造。宿業漸已斷。得現正法。離諸熾然。不待時節。通達現見。生自覺智。離車。是名如來.應.等正覺所知所見說第三離熾然。清淨超出。以一乘道淨眾生.離苦惱.滅憂悲。得如實法 爾時。尼犍弟子離車無畏默然住 爾時。阿耆毘弟子離車聰慧重語離車無畏言。怪哉。無畏。何默然住。於如來.應.等正覺所說.所知.所見.善說法。聞不隨喜耶 離車無畏答言。我思惟其義。故默然住耳。誰聞世尊沙門瞿曇所說法不隨喜者。 若有聞沙門瞿曇說法而不隨喜者。此則愚夫。長夜當受非義不饒益苦 時。尼犍弟子離車無畏.阿耆毘弟子聰慧重聞佛所說法。尊者阿難陀所說。歡喜隨喜。從座起去 //
28    395.一切諸法之本--일체 법의 근본 댓글:  조회:2043  추천:93  2008-06-22
6.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우가라 대숲 동산에서 五백의 큰 비구들과 함께 계셨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지금 너희들을 위해 이제 묘한 법을 설명하리라. 이것은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으며 마지막도 좋다. 그 이치는 깊고 그윽하며 범행을 청정히 수행하는 것이다. 이 경 이름은 '일체 법의 근본'이라 한다. 너희들은 잘 명심하라." "그리하겠나이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일체 법의 근본'이라 하는가. 비구들이여, 범부들은 성현의 가르침을 듣지 못하고 여래의 말씀을 지니지 못하며 좋은 벗을 친하지 않고 좋은 벗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땅을 관찰하여 여실히 안다. '이것은 땅이다. 이것은 분명히 땅이다. 또 이것은 여실히 땅이다. 또 이것은 물이다. 또 이것은 불이다. 또 이것은 바람이다.' 이 네 가지 요소가 합해서 사람이 된 것이니 그것은 어리석은 사람이 즐겨 하는 것이니라. 하늘은 스스로 하늘인 것을 알아 하늘 가운데 하늘임을 즐겨 하고, 범천은 스스로 범천인 것을 알며 대범천은 스스로 대범천인 것을 알아 자기보다 나은 것이 없다 하고 광음천들은 스스로 광음천으로 말미암아 된 줄을 서로 알며 변정천은 스스로 변정천인 것을 알고 과실천은 스스로 과실천인 것을 알아 착란하지 않느니라. 또 아비야타천은 스스로 아비야타천인 것을 알고 공처천은 스스로 공처처인 것을 알며 식처천은 스스로 식처천인 것을 알고 불용처천은 스스로 불용처천인 것을 알며 유상무상처천은 스스로 유상무상처천인 것을 아느니라. 보는 이는 스스로 보는 줄을 알고 듣는 이는 스스로 듣는 줄을 알며 하고자 하는 이는 스스로 하고자 하는 줄을 알고 지혜로운 이는 스스로 지혜로운 줄을 알며 한 가지 무리는 스스로 한가지 무리인 줄을 알고 여러 가지 무리는 스스로 여러 가지 무리인 줄을 알며 모두 갖춘 이는 스스로 모두 갖춘 줄을 알고 열반한 이는 스스로 열반한 줄을 알아 그 안에서 스스로 즐긴다. 왜 그러냐 하면 그것은 지혜로운 이도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니라. 그러나 성인의 제자는 성인을 가서 뵈옵고 그 법을 받으며 좋은 벗을 섬기고 좋은 벗을 친한다. 이 땅의 요소를 관찰하고는 그것을 모두 분명히 알고 그것의 온 곳을 알기 때문에 거기에 집착하지 않아서 물드는 마음이 없다. 물, 불, 바람의 요소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느니라. 사람, 하늘, 범왕천, 광음천, 변정천, 과실천, 아비야타천, 공처천, 식처천, 불용처천, 유상무상처천과 보고 듣고 생각하고 아는 것과 한 가지, 여러 가지 내지 열반에 있어서도 그 열반에 집착하지 않고 또 열반이라는 생각도 내지 않는다. 왜 그러냐 하면 그것을 모두 잘 분별하고 잘 관찰하기 때문이니라. 만일 그 비구가 번뇌가 없어진 아라한으로서 할 일을 이미 마치고 무거운 짐을 버리고 생, 사의 근본을 알아 평등이 해탈한 이라면 그는 능히 땅의 요소를 분별하기 때문에 거기에 집착하는 생각을 전연 일으키지 않는다. 사람, 하늘, 범왕천 내지 유상무상처천에 있어서도 그러하며, 열반에 이르렀어도 열반에 집착하지 않고 열반이라는 생각을 내지 않는다. 왜 그러냐 하면 그것은 모두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없어졌기 때문이니라. 비구들이여, 알라. 여래, 아라한, 다 옳게 깨달은 이는 땅의 요소라는 생각도 일으키지 않는다. 왜 그러냐 하면 그것은 다 애욕의 그물을 부수었기 때문이다. 존재[有]로 말미암아 생(生)이 있고 생으로 말미암아 늙음과 죽음이 있는데 그것을 모두 없앴기 때문에 여래는 가장 바른 깨달음을 이루었느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비구들은 그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왜 그러냐 하면 악마 파아피야스가 그들의 마음을 막아 버렸기 때문이었다. "이 경 이름을 '일체 법의 근본'이라 한다. 나는 이제 자세히 설명하였다. 모든 부처, 세존의 수행할 바를 나는 이제 완전히 실행하였다. 너희들은 부디 조용한 곳이나 나무 밑에서 뜻을 바로 하고 단정히 앉아 이 묘한 이치를 깊이 생각하라. 지금 하지 않으면 뒤에 후회하여도 소용없을 것이다. 이것이 나의 가르침이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六) 聞如是 一時。佛在優迦羅竹園中。與大比丘眾五百人俱 爾時。世尊告諸比丘。我今與汝當說妙法。初善.中善.竟善。義理深邃。清淨修行梵行。此經名曰。一切諸法之本。汝等善思念之 諸比丘對曰。如是。世尊。是時。諸比丘從佛受教 佛告之曰。彼云何名為一切諸法之本。於是。比丘。凡夫之人不睹賢聖之教。亦不掌護如來言教。不親近善知識。不受善知識言教。彼觀此地如實知之。此是地如審是地。如實是地。亦復是水。亦復是火。亦復是風。四事合以為人。愚者之所娛樂。天自知為天。樂於天中天。梵天自知為梵天。大梵自知為大梵。無能出者。光音天還自相知由光音天來。遍淨天自知為遍淨天。果實天自知為果實天而不錯亂。阿毘耶陀天自知為阿毘耶陀天。空處天自知為空處天。識處天自知為識處天。不用處天自知為不用處天。有想無想處天自知為有想無想處天。見者自知為見。聞者自知為聞。欲者自知為欲。智者自知為智。一類自知為一類。若干類自知為若干類。悉具足自知為悉具足。涅槃自知為涅槃。於中而自娛樂。所以然者。非智者之所說也 若聖弟子往覲聖人。承受其法。與善知識從事。恒親近善知識。觀此地種皆悉分明。知所來處。亦不著於地。無有污染之心。水.火.風亦復如是。人.天.梵王.光音.遍淨.果實.阿毘耶陀天.空處.識處.不用處.有想無想處。見.聞.念.知。一種.若干種。乃至於涅槃。亦不著於涅槃。不起涅槃之想。所以然者。皆由善分別.善觀察。若彼比丘漏盡阿羅漢。所作已辦。捨於重擔。盡生死原本。平等解脫。彼能分別地種。都不起想著。地種.人.天.梵王。乃至有想無想處。亦復如是。 至於涅槃。不著涅槃。不起涅槃之想。所以然者。皆由壞婬.怒.癡之所致也。 比丘當知。如來.至真.等正覺善能分別於地。亦不著於地種。不起地種之想。所以然者。 皆由破愛網之所致。因有有生。因生有老死。皆悉除盡。是故如來成最正覺。 佛說此語時。是時諸比丘不受其教。所以然者。由魔波旬閉塞心意故 此經名曰。一切諸法之本。我今具足說之。諸佛世尊所應修行。我今已具足施行。汝等當念閑居樹下。端意坐禪。思惟妙義。今不為者。後悔無益。此是我之教誡也 爾時。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
27    10)누진경(漏盡經) 댓글:  조회:2292  추천:80  2008-05-02
10)누진경(漏盡經)20) 제 10 [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루수(拘樓瘦)를 유행하실 적에 도읍인 검마슬담(劒磨瑟曇)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알거나 봄으로써 모든 번뇌[漏]가 다하게 되나니, 알지 못해서도 안 되고 보지 못해서도 안 된다.   어떤 것을 알거나 봄으로써 모든 번뇌를 다하게 할 수 있다고 하는가?   바른 생각[正思惟]과 바르지 않은 생각[不正思惟]이 있다.   만일 바르지 않게 생각하면, 아직 생겨나지 않은 욕루(欲漏)가 생겨나고 이미 생긴 것은 더욱 자라나게 된다. 아직 생겨나지 않은 유루(有漏 : 生存에 집착하는 번뇌)와 무명루(無明漏 : 無智의 번뇌)가 생겨나고 이미 생긴 것은 더욱 자라나게 된다. 만일 바르게 생각하면, 아직 생겨나지 않은 욕루는 생겨나지 않고 이미 생긴 것이라 하더라도 곧 없어진다. 아직 생겨나지 않은 유루와 무명루는 생겨나지 않고 이미 생긴 것이라 하더라도 곧 없어진다. 그런데 범부와 어리석은 사람은 바른 법을 듣지 못하고 참지식[眞知識 : 善知識]을 만나지 못하여, 거룩한 법을 알지 못하고 거룩한 법에 인도되어 길들여지지[調御]도 못하며 참다운 법을 알지도 못하느니라. 바르지 않게 생각하면 아직 생겨나지 않은 욕루가 생겨나고 이미 생긴 것은 더욱 자라나게 된다. 아직 생겨나지 않은 유루와 무명루가 생겨나고 이미 생긴 것은 더욱 자라나게 된다. 바르게 생각하면, 아직 생겨나지 않은 욕루는 생겨나지 않고 이미 생겼다 하더라도 곧 없어진다.   참다운 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각하지 않아야 할 법은 생각하고 생각해야 할 법은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하지 않아야 할 법은 생각하고 생각해야 할 법은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아직 생겨나지 않은 욕루는 생겨나고 이미 생긴 것은 더욱 자라나게 된다. 아직 생겨나지 않은 유루와 무명루가 생겨나고 이미 생긴 것은 더욱 자라나게 된다. 많이 들은 거룩한 제자들은 바른 법을 얻어 듣고 참지식을 만나며, 거룩한 법에 인도되어 길들여지고 참다운 법을 알게 되느니라. 바르지 않게 생각하는 자는 아직 생겨나지 않은 욕루는 생겨나고 이미 생긴 것은 더욱 자라나게 된다. 아직 생겨나지 않은 유루와 무명루는 생겨나고 이미 생긴 것은 더욱 자라나게 된다. 바르게 생각하는 자는 아직 생겨나지 않은 욕루도 생겨나지 않고 이미 생겼다 하더라도 곧 없어진다. 아직 생겨나지 않은 유루와 무명루는 생겨나지 않고 이미 생겼다 하더라도 곧 없어진다. 참다운 법을 이미 알아, 생각하지 않아야 할 법은 생각하지 않고 마땅히 생각해야 할 법만 곧 생각한다. 생각하지 않아야 할 법은 생각하지 않고 생각해야 할 법만 생각하기 때문에, 아직 생겨나지 않은 욕루는 생겨나지 않고 이미 생겼다하더라도 곧 없어진다. 아직 생겨나지 않은 유루와 무명루는 생겨나지 않고, 이미 생겼다 하더라도 곧 없어지느니라. 누(漏)와 번뇌와 걱정과 슬픔을 끊는 일곱 가지 법이 있으니, 무엇이 일곱 가지인가? 유루(有漏)는 견해[見]를 좇아 끊고, 유루는 보호[護]를 좇아 끊으며, 유루는 떠남[離]을 좇아 끊고, 유루는 수용[用]을 좇아 끊으며, 유루는 참음[忍]을 좇아 끊고, 유루는 없앰[除]을 좇아 끊으며, 유루는 생각[思惟]을 좇아 끊는다. 유루는 견해를 좇아 끊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범부와 어리석은 사람은 바 른 법을 듣지 못하고, 참지식을 만나지 못하며, 거룩한 법을 알지 못하고, 거룩한 법에 인도되어 가르침을 받지 못하며, 참다운 법을 알지 못하고, 바르게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곧 이러한 생각을 낸다. '나에게 과거의 세상이 있었는가, 나에게 과거의 세상이 없었는가? 나에게 무슨 원인으로 인해 과거의 세상이 있었는가, 나에게 어떠한 과거의 세상이 있었는가? 나에게 미래의 세상이 있을 것인가, 나에게 미래의 세상이 없을 것인가? 나에게 무슨 원인으로 미래의 세상이 있을 것인가, 나에게 어떠한 미래의 세상이 있을 것인가?' 또 스스로 의심한다. '내 몸을 무엇이라 하는가? 이것은 무엇인가? 이제 이 중생들은 어디로부터 왔으며 장차는 어디로 갈 것인가? 본래 무슨 인연으로 존재하게 되었으며 장차는 무슨 인연으로 존재하게 될 것인가?' 그는 이와 같이 바르지 않게 생각하여, 여섯 가지 견해[見]가 생겨나나니, 이 견해가 생김을 따라 나에 대하여 나[神]라는 것이 있다는 견해를 내고, 이 견해가 생겨 나에 대하여 나라는 것이 없다는 견해를 내며, 이 견해가 생겨 나로 말미암아 나라고 인식하는 견해를 내고, 이 견해가 생겨 나로 말미암아 나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는 견해를 내며, 이 견해가 생겨 나가 아닌 것을 나라고 인식하는 견해를 내고, 이 견해가 생겨 이것은 바로 나다라는 견해를 낸다. 이 나라는 것은 능히 말하고 능히 알고 능히 행동하며, 능히 행동하게 하고 능히 일어나게 하며, 가서 태어나는 곳마다 선악의 과보를 받는다. 그것은 결정코 어디로부터 온 곳도 없고, 꼭 있는 것도 아니며 꼭 있어야 할 것도 아니라고 한다. 이것을 견해의 폐단이라고 하는데, 이런 견해에 흔들리고 이런 견해의 번뇌[見結]에 결박을 당한다. 범부와 어리석은 사람은 이 때문에 곧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많이 들은 거룩한 제자들은 바른 법을 듣고 참지식을 만나며, 거룩한 법에 인도되어 가르침을 받음으로써 참다운 법을 알아 괴로움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고, 괴로움의 발생 괴로움의 소멸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안다. 이와 같이 사실 그대로 알아 마치면 3결(結)이 다 끊어지나니, 신견결(身見結)과 계취결(戒取結)과 의결(疑結)이 다 끊어진다. 이 3결이 이미 다 끊어져서 사라지면 수다원(須陀洹)을 얻어 악법에 떨어지지 않고, 결정코 정각(正覺)에 나아가 마지막에는 7유(有)21)를 받고, 천상과 인간에 일곱 번 오가기를 마치면 곧 괴로움의 끝을 얻는다. 만일 알지도 못하고 보지 못하는 이는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고, 만일 알거나 보면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지 않는다. 이것을 존재에 집착하는 번뇌는 견해[見]를 좇아 끊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유루는 보호[護]를 좇아 끊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비구가 눈으로 물질을 보고, 안근(眼根)을 보호하는 자는 바른 생각으로써 깨끗하지 않은 것이라고 관찰하기 때문이다. 안근을 보호하지 않는 자는 바르지 않은 생각으로써 깨끗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만일 보호하지 않으면 곧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고, 보호하면 곧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지 않는다. 이와 같이 귀 코 혀 몸 뜻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며, 법을 알아 의근(意根)을 보호하는 자는 바른 생각으로써 깨끗하지 않은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요, 의근을 보호하지 않는 자는 바르지 않은 생각으로써 깨끗한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만일 보호하지 않으면 곧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고, 보호하면 곧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지 않는다. 이것을 유루는 보호를 좇아 끊는 것이라 하느니라. 유루는 떠남[離]을 좇아 끊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비구가 사나운 코끼리를 보면 곧 마땅히 멀리 떠나가야 하며, 사나운 말 사나운 소 사나운 개 독사 험한 길 개천 구덩이 은밀한 곳 강 깊은 샘 산 바위 나쁜 스승 나쁜 벗 나쁜 이도(異道) 나쁜 마을 나쁜 처소를 보아도 꼭 멀리 떠나야 한다. 만일 범행을 닦는 모든 사람들이 그들과 함께 거처하면서 의심이 없는 사람을 의심을 일으키게 하거든, 비구는 마땅히 나쁜 스승 나쁜 벗 나쁜 이도 나쁜 마을 나쁜 처소를 떠나야 한다. 만일 범행을 닦는 모든 이가 그들과 함께 거처하면서 의심이 없는 사람에게 의심을 일으키게 하거든, 마땅히 다 멀리 떠나야 한다. 만일 여의지 않으면 곧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길 것이요, 여의면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일컬어 유루는 떠남을 좇아 끊는 것이라 한다. 유루는 씀[用]을 좇아 끊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만일 비구가 의복을 입는다면 그것은 이양을 위해서도 아니요, 뽐내기 위해서도 아니며, 겉치레를 위해서도 아니다. 다만 모기 등에 바람 비 추위 더움 때문이요, 부끄러움 때문이다. 만일 음식을 먹는다면 그것은 이양을 위해서도 아니요, 뽐내기 위해서도 아니며 살찌기를 바라거나 즐기기 위해서도 아니다. 다만 몸을 오랫동안 보전하여 번뇌와 걱정과 슬픔을 없애기 위해서요, 범행을 실천하기 위해서이며, 묵은 병을 고치고 새로운 병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며, 오래 살고 안온하고 병이 없게 하기 위해서이다. 만일 거처할 곳 방사(房舍) 평상 요 침구를 쓴다면 그것은 이양을 위해서도 아니요, 뽐내기 위해서도 아니며 겉치레를 위해서도 아니다. 다만 피로할 때 쉴 수 있게 하기 위해서요, 고요히 앉아 선정에 들기 위해서이다. 만일 약을 쓴다면 그것은 이양을 위해서도 아니요, 뽐내기 위해서도 아니며 살찌고 즐기기 위해서도 아니다. 다만 병들고 괴로운 것을 없애기 위해서요, 목숨을 거두어 잡기 위해서이며, 안온하고 병이 없게 하기 위해서이다. 만일 그것들을 쓰지 않으면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고, 그것을 쓰면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지 않는다. 이것을 유루는 씀을 좇아 끊는 것이라 하느니라.  유루는 참음[忍]을 좇아 끊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비구는 정진하여 악하고 불선함을 끊고 선한 법을 닦기 때문에 항상 생각을 일으킴이 있고, 마음을 통일하여 정근하며, 몸 가죽 살 힘줄 뼈 피 골수가 다 마르도록 정진을 버리지 않고 구하던 바를 다 얻고서야 정진을 버린다. 비구는 또 마땅히 굶주림 목마름 추위 더위 모기 등에 파리 벼룩 이 따위를 견디고 참아내야 하고, 바람이나 햇볕의 핍박을 받고 욕설과 매질을 당해도 또한 능히 그것을 참으며, 몸이 온갖 병에 걸려 몹시 고통스럽거나 목숨이 끊어질 듯한 온갖 불쾌한 것들도 다 능히 견디고 참아내야 한다. 만일 그것을 참아내지 못하면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길 것이고, 그것을 참아내면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유루는 참음을 좇아 끊는 것이라 하느니라. 유루는 없앰[除]을 좇아 끊는다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비구에게 탐욕의 마음이 생겼을 때 그것을 끊어 없애거나 버려 여의지 못하거나, 성냄의 마음과 해치려는 마음이 생겼을 때 끊어 없애거나 버려 여의지 못할 경우, 만일 그것을 없애지 않으면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길 것이고, 그것을 없애면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유루는 없앰을 좇아 끊는 것이라 하느니라.  유루는 생각을 좇아 끊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비구가 첫 번째 염각지(念覺支)22)를 생각하여, 떠남을 의지하고 욕심 없음을 의지하며 멸해 다함을 의지하면, 곧 나고 죽음을 벗어나는 경지[出要法]로 나아간다. 택법각지(擇法覺支) 정진각지(精進覺支) 희각지(喜覺支) 식각지(息覺支) 정각지(定覺支)도 마찬가지이며, 또 일곱째 사각지(舍覺支)를 생각하여, 떠남을 의지하고 욕심 없음을 의지하며 멸해 다함을 의지하면, 곧 나고 죽음을 벗어나는 경지로 나아간다. 만일 생각하지 않으면 곧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고, 생각하면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지 않는다. 이것을 유루는 사유를 좇아 끊는 것이라 하느니라. 만일 비구로 하여금 유루에 대하여 견해를 좇아 끊을 것은 곧 견해로써 끊게 하고, 유루에 대하여 보호를 좇아 끊을 것은 곧 보호로써 끊게 하며, 유루에 대하여 떠남을 좇아 끊을 것은 곧 떠남으로써 끊게 하고, 유루에 대하여 씀을 좇아 끊을 것은 씀으로써 끊게 하며, 유루에 대하여 참음을 좇아 끊을 것은 곧 참음으로써 끊게 하고, 유루에 대하여 없앰을 좇아 끊을 것은 곧 없앰으로써 끊게 하며, 유루에 대하여 사유를 좇아 끊을 것은 곧 사유로써 끊게 한다면, 이것을 비구가 모든 누(漏)가 다 끊어지고 모든 맺힘[結]이 이미 풀려, 능히 바른 지혜로써 괴로움의 끝을 얻은 것이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20) 이 경은 『증일아함경 』 제34권 제40품인 「칠일품」의 여섯 번째 소경과 내용이 동일하며, 이역경으로는 안세고(安世高)가 한역한 『불설일체유섭수인경(佛說一切流攝守因經) 』이 있다. 21) 여기에서 유(有)란 생사의 과보를 말한다. 또는 과보를 받을 원인[因]을 말하기도 하는데, 지옥유(地獄有) 방생유(旁生有) 아귀유(餓鬼有) 천유(天有) 인유(人有) 업유(業有) 중유(中有)를 말한다. 22) 불도를 수행함에 있어서 늘 잘 생각하여 정(定) 혜(慧)가 고르게 하는 것을 말한다. [이 누진경에 수록되어 있는 경문의 글자 수는 모두 1,621자이다. 『중아함경 』 제 2 권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모두 7,934자이고, 첫 번째 「칠법품」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모두 16,043자이다.]23) 23) 원문에서 밝히고 있는 글자 수의 합과 실제 소경의 글자 수를 합한 것과는 서로 차이가 많다. 2권의 총 글자수는 소경들을 합한 결과 7,926자인데 여기에서는 7,934자라고 하였고, 「칠법품」인 『중아함경 』 제 1 권과 제 2 권을 합하면 실제는 16,035자인데 여기에서는 16,043자라고 하였다. (一○)中阿含七法品漏盡經第十(初一日誦)   我聞如是。   一時。佛遊拘樓瘦。在劒磨瑟曇拘樓都邑。   爾時。世尊告諸比丘。以知.以見故諸漏得盡。非不知.非不見也。云何以知.以見故諸漏得盡耶。有正思惟.不正思惟。若不正思惟者。未生欲漏而生。已生便增廣。未生有漏.無明漏而生。已生便增廣。若正思惟者。未生欲漏而不生。已生便滅。未生有漏.無明漏而不生。已生便滅。   然凡夫愚人不得聞正法。不值真知識。不知聖法。不調御聖法。不知如真法。不正思惟者。未生欲漏而生。已生便增廣。未生有漏.無明漏而生。已生便增廣。正思惟者。未生欲漏而不生。已生便滅。未生有漏.無明漏而不生。已生便滅。不知如真法故。不應念法而念。應念法而不念。以不應念法而念。應念法而不念故。未生欲漏而生。已生便增廣。未生有漏.無明漏而生。已生便增廣。   多聞聖弟子得聞正法。值真知識。調御聖法。知如真法。不正思惟者。未生欲漏而生。已生便增廣。未生有漏.無明漏而生。已生便增廣。正思惟者。未生欲漏而不生。已生便滅。未生有漏.無明漏而不生。已生便滅。知如真法已。不應念法不念。應念法便念。以不應念法不念。應念法便念故。未生欲漏而不生。已生便滅。未生有漏.無明漏而不生。已生便滅也。   有七斷漏.煩惱.憂慼法。云何為七。有漏從見斷。有漏從護斷。有漏從離斷。有漏從用斷。有漏從忍斷。有漏從除斷。有漏從思惟斷。   云何有漏從見斷耶。凡夫愚人不得聞正法。不值真知識。不知聖法。不調御聖法。不知如真法。不正思惟故。便作是念。我有過去世。我無過去世。我何因過去世。我云何過去世耶。我有未來世。我無未來世。我何因未來世。我云何未來世耶。自疑己身何謂。是云何是耶。今此眾生從何所來。當至何所。本何因有。當何因有。彼作如是不正思惟。於六見中隨其見生而生真有神。此見生而生真無神。此見生而生神見神。此見生而生神見非神。此見生而生非神見神。此見生而生此是神。能語.能知.能作.教.作起.教起。生彼彼處。受善惡報。定無所從來。定不有.定不當有。是謂見之弊。為見所動。見結所繫。凡夫愚人以是之故。便受生.老.病.死苦也。   多聞聖弟子得聞正法。值真知識。調御聖法。知如真法。知苦如真。知苦習.知苦滅.知苦滅道如真。如是知如真已。則三結盡。身見.戒取.疑三結盡已。得須陀洹。不墮惡法。定趣正覺。極受七有。天上人間七往來已。便得苦際。若不知見者。則生煩惱.憂慼。知見則不生煩惱.憂慼。是謂有漏從見斷也。   云何有漏從護斷耶。比丘。眼見色護眼根者。以正思惟不淨觀也。不護眼根者。不正思惟以淨觀也。若不護者。則生煩惱.憂慼。護則不生煩惱.憂慼。如是耳.鼻.舌.身.意知法。護意根者。以正思惟不淨觀也。不護意根者。不正思惟以淨觀也。若不護者。則生煩惱.憂慼。護則不生煩惱.憂慼。是謂有漏從護斷也。   云何有漏從離斷耶。比丘。見惡象則當遠離。惡馬.惡牛.惡狗.毒蛇.惡道.溝坑.屏廁.江河.深泉.山巖.惡知識.惡朋友.惡異道.惡閭里.惡居止。若諸梵行與其同處。人無疑者而使有疑。比丘者應當離。惡知識.惡朋友.惡異道.惡閭里.惡居止。若諸梵行與其同處。人無疑者而使有疑。盡當遠離。若不離者。則生煩惱.憂慼。離則不生煩惱.憂慼。是謂有漏從離斷也。   云何有漏從用斷耶。比丘。若用衣服。非為利故。非以貢高故。非為嚴飾故。但為蚊虻.風雨.寒熱故。以慚愧故也。若用飲食。非為利故。非以貢高故。非為肥悅故。但為令身久住。除煩惱.憂慼故。以行梵行故。欲令故病斷。新病不生故。久住安隱無病故也。若用居止房舍.床褥.臥具。非為利故。非以貢高故。非為嚴飾故。但為疲惓得止息故。得靜坐故也。若用湯藥。非為利故。非以貢高故。非為肥悅故。但為除病惱故。攝御命根故。安隱無病故。若不用者。則生煩惱.憂慼。用則不生煩惱.憂慼。是謂有漏從用斷也。   云何有漏從忍斷耶。比丘。精進斷惡不善。修善法故。常有起想。專心精勤。身體.皮肉.筋骨.血髓皆令乾竭。不捨精進。要得所求。乃捨精進。比丘。復當堪忍飢渴.寒熱.蚊虻蠅蚤虱。風日所逼。惡聲捶杖。亦能忍之。身遇諸病。極為苦痛。至命欲絕。諸不可樂。皆能堪忍。若不忍者。則生煩惱.憂慼。忍則不生煩惱.憂慼。是謂有漏從忍斷也。   云何有漏從除斷耶。比丘。生欲念不除斷捨離。生恚念.害念不除斷捨離。若不除者。則生煩惱.憂慼。除則不生煩惱.憂慼。是謂有漏從除斷也。   云何有漏從思惟斷耶。比丘。思惟初念覺支。依離.依無欲.依於滅盡。起至出要。法精進喜息定。思惟第七捨覺支。依離依無欲依於滅盡。趣至出要。若不思惟者。則生煩惱.憂慼。思惟則不生煩惱.憂慼。是謂有漏從思惟斷也。   若使比丘有漏從見斷則以見斷。有漏從護斷則以護斷。有漏從離斷則以離斷。有漏從用斷則以用斷。有漏從忍斷則以忍斷。有漏從除斷則以除斷。有漏從思惟斷則以思惟斷。是謂比丘一切漏盡諸結已解。能以正智而得苦際。   佛說如是。彼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漏盡經第十竟(千六百二十一字)。   中阿含經卷第二(七千九百三十四字)   中阿含七法品第一竟(一萬六千四十三字)(初一日誦)。大正藏 第 01 冊 No. 0026 中阿含經 //
26    21)등심경(等心經) 댓글:  조회:2294  추천:95  2008-05-01
21)등심경(等心經) 제 1 [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적에 승림급고독원(勝林給孤獨園)에 계셨다. 그 때 존자 사리자(舍梨子 : 舍利弗)는 비구들과 밤에 강당에 모여, 내결(內結)과 외결(外結)에 대하여 여러 비구들을 위해 그 뜻을 분별해 설명하였다. "여러분, 세상에는 실로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그 두 가지란 무엇인가? 첫째는 내결(內結)이 있는 사람이니, 그는 아나함(阿那含)으로서 이 세간에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둘째는 외결(外結)이 있는 사람이니, 그는 아나함이 아니기 때문에 이 세간에 다시 돌아옵니다. 여러분, 어떤 것을 내결이 있는 사람인 아나함으로서 이 세간에 되돌아오지 않는다고 하는가? 만일 어떤 사람이 금계(禁戒)를 닦아 익혀서 구멍이 뚫린 적도 없고 이지러짐도 없으며, 더러움도 없고 혼탁함도 없으며, 지극히 많은 어려움도 없어서, 성인에게 칭찬을 받고 잘 닦고 잘 갖추었기 때문에,1) 그는 금계를 닦아 익혀서, 구멍이 뚫림도 없고 이지러짐도 없으며, 더러움도 없고 혼탁함도 없으며, 지극히 많은 어려움이 없어서 성인의 칭찬을 받고 잘 닦고 잘 갖춤으로 인하여 탐욕을 싫어하고 탐욕을 없애고 탐욕을 끊는 것을 배웁니다. 탐욕을 싫어하고 탐욕을 없애고 탐욕을 끊는 것을 배움으로 인하여 식해탈(息解脫)과 심해탈(心解脫)을 얻고, 그 뒤에는 즐거움 속에서 사랑하고 아껴서 그것을 여의지 못합니다. 그래서 현재 세상에서는 구경(究竟)의 지혜를 얻지 못하고,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단식천(摶食天)2)을 지나 여의생천(餘意生天)에 태어나게 됩니다. 이미 거기에 태어난 뒤에는 곧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본래 사람으로 있을 때에 금계를 닦아 익혀서 구멍이 뚫린 적도 없고 이지러짐도 없으며, 더러움도 없고 혼탁함도 없으며, 지극히 많은 어려움도 없어서, 성인에게 칭찬을 받고 잘 닦고 잘 갖추었다. 때문에 나는 금계를 닦아 익혀서 구멍이 뚫린 적도 없고 이지러짐도 없으며, 더러움도 없고 혼탁함도 없으며, 지극히 많은 어려움도 없어서, 성인의 칭찬을 받았고 잘 닦고 잘 갖춤으로 인하여, 탐욕을 싫어하고 탐욕을 없애고 탐욕을 끊는 법을 배웠다. 탐욕을 싫어하고 탐욕을 없애고 탐욕을 끊는 것을 배움으로 인하여 식해탈과 심해탈을 얻었다. 그것을 얻은 뒤에는 그 즐거움 속에서 사랑하고 아껴 그것을 여의지 못했다. 그래서 현재 세상에서 구경의 지혜를 얻지 못했고,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 단식천을 지나 여의생천에 태어나서 지금 여기에 있게 되었다.' 1) '금계를 닦아'에서부터 '잘 닦고 잘 갖추었기 때문에'까지의 내용이 『잡아함경 』 제33권 923번째 소경에는 자념정계(自念淨戒) 불괴계(不壞戒) 불결계(不缺戒) 불오계(不?戒) 부잡계(不雜戒) 불타취계(不他取戒) 선호계(善護戒) 명자칭예계(明者稱譽戒) 지자불염계(智者不厭戒)로 되어 있다. 2) 덩어리로 되어 있는 음식을 먹는 천상세계를 말하는 것으로서 즉, 욕계(欲界)의 여러 하늘들을 뜻한다. 여러분, 또 어떤 사람은 금계를 닦아 익혀서 구멍이 뚫린 적도 없고 이지러짐도 없으며, 더러움도 없고 혼탁함도 없으며 지극히 많은 어려움이 없어서, 성인의 칭찬을 받았고 잘 닦고 잘 갖추었습니다. 저는 금계를 닦고 익혀서 구멍이 뚫린 적도 없고 이지러짐도 없으며, 더러움도 없고 혼탁함도 없으며, 지극히 많은 어려움도 없어서, 성인의 칭찬을 받았고 잘 닦고 잘 갖춤으로 인하여 색계의 생명을 끊고 탐욕을 끊는 법을 배우며, 탐욕을 버리고 여의기를 배웁니다. 그는 색유(色有)3)를 끊고 탐욕을 끊는 법을 배우며, 탐욕을 버리고 여의기를 배움으로 말미암아 식해탈과 심해탈을 얻었습니다. 그것을 얻은 뒤에는 그 즐거움 속에서 그것을 사랑하고 아껴 그것을 여의지 못합니다. 그래서 현재 세상에서는 구경의 지혜를 얻지 못하고,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단식천을 지나 여의생천에 태어납니다. 거기에 난 뒤에 그는 곧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본래 사람으로 있을 때 금계를 닦아 익혀서 구멍이 뚫린 적도 없고 이지러짐도 없으며, 더러움도 없고 혼탁함도 없으며, 지극히 많은 어려움도 없어서, 성인에게 칭찬을 받았고 잘 닦고 잘 갖추었다. 때문에 나는 금계를 닦아 익혀서 구멍이 뚫린 적도 없고 이지러짐도 없으며, 더러움도 없고 혼탁함도 없으며, 지극히 많은 어려움도 없어서, 성인의 칭찬을 받았고 잘 닦고 잘 갖춤으로 인하여 다시 색유(色有 : 色界)를 끊고 탐욕을 끊는 법을 배웠으며, 탐욕을 버리고 여의는 방법을 배웠다. 색유를 끊고 탐욕을 끊는 법을 배우고, 탐욕을 버리고 여의는 방법을 배움으로 인하여 식해탈과 심해탈을 얻었다. 그것을 얻은 뒤에는 그 즐거움 속에서 그것을 사랑하고 아껴 그것을 여의지 못했다. 그래서 현재 세상에서 구경의 지혜를 얻지 못하고,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단식천을 지나 여의생천에 나서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다.' 여러분, 이것이 이른바 내결(內結)이 있는 사람으로 아나함으로서 이 세상에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것을 외결(外結)이 있는 사람인 아나함이 아니어서 이 세간에 다시 돌아오는 것이라 하는가? 만일 어떤 사람이 금계를 닦아 익히고 종해탈(從解脫)4)을 지켜 보호하며, 또 위의와 예절을 잘 지키고 털끝만한 죄를 보아도 항상 두려움을 품으며, 학문과 계를 받아 지니면 여러분, 이것이 이른바 외결이 있는 사람으로 아나함이 아니어서 이 세간에 다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그 때 많은 등심천(等心天)들은 형상이 위풍당당하고 광채가 찬란하게 빛났다. 밤이 지나고 날이 밝으려 할 때 그들은 부처님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세존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존자 사리자는 어젯밤에 비구들과 강당에 모여 내결과 외결 의 문제에 대하여 비구들을 위해 그 뜻을 분별해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여러분, 세상에는 실로 두 종류의 사람이 있나니, 곧 내결이 있는 사람과 외결이 있는 사람이다.' 세존이시여, 대중들은 그 말을 듣고 나서 다들 기뻐하였습니다. 원하옵건대 세존께서는 저들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시어 저 강당으로 나가 주시기 바랍니다." 그 때 세존께서 여러 등심천들을 위하여 아무 말씀 없이 잠자코 허락하셨다. 등심천들은 세존께서 아무 말씀 없이 잠자코 허락하셨음을 알고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부처님 주위를 세 바퀴 돈 뒤에 곧 거기서 사라졌다. 등심천들이 떠난 지 오래지 않아 세존께서 강당으로 가시어 비구들 앞에서 자리를 깔고 앉으셨다. 세존께서 앉으시고 나서 곧 찬탄하시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사리자여, 너는 너무도 훌륭하다. 왜냐 하면 네가 어젯밤에 비구들과 강당에 모였을 적에 비구들을 위하여 내결과 외결의 문제에 대해 그 뜻을 분별해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었기 때문이니라. '여러분, 세상에는 실로 두 종류의 사람이 있나니, 내결이 있는 사람과 외결이 있는 사람이다.' 사리자여, 어젯밤 동이 틀 무렵 여러 등심천들이 내게 와서 머리를 조아려 예배한 뒤에 한쪽으로 물러나서 말하기를 '세존이시여, 존자 사리자가 어젯밤에 비구들과 강당에 모였는데 비구들을 위하여 내결과 외결의 문제에 대해 그 뜻을 분별해 해설하기를 (세상에는 실로 두 종류의 사람이 있으니 내결이 있는 사람과 외결이 있는 사람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대중들은 그 말을 듣고 나서 다들 기뻐하였습니다. 원하옵건대 세존께서는 저희들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시어 저 강당으로 나가 주소서'라고 하였다. 사리자여, 나는 곧 그 모든 등심천의 신들을 위해 아무 말 없이 잠자코 허락하였다. 등심천들은 내가 아무 말 없이 그저 허락한 것을 알고, 내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내 주위를 세 바퀴 돈 뒤에 거기서 사라졌다. 사리자여, 등심천들은 10 20, 혹은 30 40, 혹은 50 60명이 송곳 끝 같은 곳에 함께 살아도 서로에게 방해되지 않는다. 사리자여, 등심천들은 본래 사람으로 있었을 때 이미 착한 마음을 닦아 지극히 넓고 매우 컸었다. 그래서 저 모든 등심천들은 혹은 10 20, 혹은 30 40, 혹은 50 60명씩 송곳 끝 같은 곳에서 함께 살아도 서로에게 방해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사리자여, 마땅히 적정(寂靜)을 배워야 한다.   모든 감각기관[根]이 적정해지고, 마음과 뜻이 적정해지며,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업이 적정해져서 세존과 모든 지혜로운 범행자를 향해야 한다. 사리자여, 저 거짓된 이학(異學)들은 영원히 쇠하고 멸하리니, 왜냐 하면 저들은 이러한 묘한 법을 듣지 못했기 때문이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등심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1,181자이다.]   3) 색계 제 4선천의 과보(果報)를 총칭하는 말로서 과보의 실재가 있음을 뜻하여 여기서 유(有)라고 한 것이다. 4)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를 말하는 것으로 별해탈(別解脫)로 번역하기도 한다. 해탈한다는 뜻으로서 계율(戒律)을 말하는 것인데, 즉 몸과 입으로 지은 허물을 따로따로 해탈하는 것이므로 별해탈이라고 한다. 한문출처 : 중화전자불전협회(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修大藏經) 국역출처 : 동국역경원 전자불전연구소 한글대장경   中阿含經卷第五     東晉罽賓三藏瞿曇僧伽提婆譯   舍梨子相應品第三(有十一經)(初一日誦)  等心.得戒.智.師子  水喻.瞿尼.陀然梵 教病.拘絺.象迹喻  分別四諦最在後    (二一)舍梨子相應品等心經第一 我聞如是 一時。佛遊舍衛國。在勝林給孤獨園 爾時。尊者舍梨子與比丘眾夜集講堂。因內結.外結。為諸比丘分別其義。諸賢。世實有二種人。云何為二。有內結人阿那含。不還此間。有外結人非阿那含。還來此間。諸賢。云何內結人阿那含。不還此間。若有一人修習禁戒。無穿無缺。無穢無濁。極多無難。聖所稱譽。善修善具。彼因修習禁戒。無穿無缺。無穢無濁。極多無難。聖所稱譽。善修善具故。復學厭欲.無欲.斷欲。因學厭欲.無欲.斷欲故。得息.心解脫。得已樂中。愛惜不離。於現法中不得究竟智。身壞命終。過摶食天。生餘意生天中。既生彼已。便作是念。我本為人時。修習禁戒。無穿無缺。無穢無濁。極多無難。聖所稱譽。善修善具。因修習禁戒。無穿無缺。無穢無濁。極多無難。聖所稱譽。善修善具故。復學厭欲.無欲.斷欲。因學厭欲.無欲.斷欲故。得息.心解脫。得已樂中。愛惜不離。於現法中不得究竟智。身壞命終。過摶食天。生餘意生天在於此中 諸賢。復有一人修習禁戒。無穿無缺。無穢無濁。極多無難。聖所稱譽。善修善具。彼因修習禁戒。無穿無缺。無穢無濁。極多無難。聖所稱譽。善修善具故。復學色有斷.貪斷業。學欲捨離。因學色有斷.貪斷業。學欲捨離故。得息.心解脫。得已樂中。愛惜不離。於現法中不得究竟智。身壞命終。過摶食天。生餘意生天中。既生彼已。便作是念。我本為人時。修習禁戒。無穿無缺。無穢無濁。極多無難。聖所稱譽。善修善具。因修習禁戒。無穿無缺。無穢無濁。極多無難。聖所稱譽。善修善具故。復學色有斷.貪斷業。學欲捨離。因學色有斷.貪斷業。學欲捨離故。得息.心解脫。得已樂中。愛惜不離。於現法中不得究竟智。身壞命終。過摶食天。生餘意生天在於此中。諸賢。是謂內結人阿那含。不還此間 諸賢。云何外結人非阿那含。來還此間。若有一人修習禁戒。守護從解脫。又復善攝威儀禮節。見纖介罪。常懷畏怖。受持學戒。諸賢。是謂外結人非阿那含。還來此間 於是。眾多等心天色像巍巍。光輝暐曄。夜將向旦。來詣佛所。稽首作禮。卻住一面。白曰。世尊。尊者舍梨子昨夜與比丘眾集在講堂。因內結.外結。為諸比丘分別其義。諸賢。世實有二種人。內結人.外結人。世尊。眾已歡喜。唯願世尊慈哀愍念。往至講堂。彼時。世尊為諸等心天默然而許。諸等心天知世尊默然許可。稽首佛足。繞三匝已。即彼處沒 諸等心天去後不久。於是世尊往至講堂比丘眾前。敷座而坐。世尊坐已。歎曰。善哉。善哉。舍梨子。汝極甚善。所以者何。汝於昨夜與比丘眾集在講堂。因內結.外結。為諸比丘分別其義。諸賢。世實有二種人。內結人.外結人。舍梨子。昨夜向旦。諸等心天來詣我所。稽首禮已。卻住一面。白我言。世尊。尊者舍梨子昨夜與比丘眾集在講堂。因內結.外結。為諸比丘分別其義。諸賢。世實有二種人。內結人.外結人。世尊。眾已歡喜。唯願世尊慈哀愍念。往至講堂。舍梨子。我便為彼諸等心天默然而許。諸等心天知我默然許可。稽首我足。繞三匝已。即彼處沒 舍梨子。諸等心天或十.二十。或三十.四十。或五十.六十。共住錐頭處。各不相妨。舍梨子。諸等心天非生彼中。甫修善心。極廣甚大。令諸等心天或十.二十。或三十.四十。或五十.六十。共住錐頭處。各不相妨。舍梨子。諸等心天本為人時。已修善心。極廣甚大。因是故。令諸等心天或十.二十。或三十.四十。或五十.六十。共住錐頭處。各不相妨。是故。舍梨子。當學寂靜。諸根寂靜。心意寂靜。身.口.意業寂靜。向於世尊及諸智梵行。舍梨子。虛偽異學。長衰永失。所以者何。謂不得聞如此妙法 佛說如是。彼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等心經第一竟(千一百八十一字)
25    30)상적유경(象跡喩經) 댓글:  조회:2349  추천:86  2008-04-28
한문출처 : 중화전자불전협회(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修大藏經) 국역출처 : 동국역경원 전자불전연구소 한글대장경 -------------------------------------------------------------------------------------- (三○)中阿含舍梨子相應品象跡喩經第十(初一日誦)   중아함 30경  사리자상응품  제10 상적유경(초 1일경) --------------------------------------------------------------------------------------  我聞如是。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一時。佛遊舍衛國。在勝林給孤獨園。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적에 승림급고독원(勝林給孤獨園)에 계셨다.   爾時。尊者舍梨子告諸比丘。諸賢。若有無量善法。彼一切法皆四聖諦所攝。來入四聖諦中。謂四聖諦於一切法最爲第一。所以者何。攝受一切眾善法故。諸賢。猶如諸畜之跡。象跡爲第一。所以者何。彼象跡者最廣大故。如是。諸賢。無量善法。彼一切法皆四聖諦所攝。來入四聖諦中。謂四聖諦於一切法最爲第一。云何爲四。謂苦聖諦。苦習.苦滅.苦滅道聖諦。諸賢。云何苦聖諦。謂生苦.老苦.病苦.死苦.怨憎會苦.愛別離苦.所求不得苦.略五盛陰苦。       그 때에 존자 사리자가 여러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여러 현자들이여, 비록 한량없는 선법(善法)이 있더라도 그 모든 법은 다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에 포섭되는 것으로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 안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일체법에서 제일이라고 합니다.왜냐 하면 많은 선법을 다 포섭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 현자들이여, 그것은 마치 모든 짐승의 발자국 중에 코끼리의 발자국이 제일 큰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왜냐 하면 저 코끼리 발자국이 가장 넓고 크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저 한량없는 일체 선법도 다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에 포섭되어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 안으로 들어옵니다. 그래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를 일체법에서 제일이라고 합니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이른바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聖諦] 괴로움의 발생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習聖諦]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滅聖諦]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滅道聖諦]가 그것입니다. 어떤 것을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라고 하는가? 이른바 남[生]은 괴로움이요, 늙음도 괴로움이며, 병듦[病]도 괴로움이요, 죽음도 괴로움이다. 원수를 만나는 일도 괴로움이요, 사랑하는 이와 이별하는 것도 괴로움입니다. 구해도 얻지 못하는 것도 괴로움이며, 간략히 줄여서 5성음(盛陰)이 괴로움입니다.   섭수(攝受) - 1,관대(寬大)한 마음으로 남을 받아 들임(포용하여 받아들임) 2,부처가 자비심으로 일체(一切) 중생(衆生)을 두둔하고 보호(保護)함. 호념(護念)   諸賢。云何五盛陰。謂色盛陰。覺.想.行.識盛陰。諸賢。云何色盛陰。謂有色。彼一切四大及四大造。諸賢。云何四大。謂地界。水.火.風界。諸賢。云何地界。諸賢。謂地界有二。有內地界。有外地界。諸賢。云何內地界。謂內身中在。內所攝堅。堅性住內之所受。此爲云何。謂髮.毛.爪.齒.麤細皮膚.肌肉.筋.骨.心.腎.肝.肺.脾.腸.胃.糞。如是比此身中餘在。內所攝。堅性住。內之所受。諸賢。是謂內地界。諸賢。外地界者。謂大是。淨是。不憎惡是。 諸賢。有時水災。是時滅外地界。       여러분, 어떤 것을 5성음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색성음(色盛陰)과 각성음(覺盛陰) 상성음(想盛陰) 행성음(行盛陰) 식성음(識盛陰)이 그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것을 색성음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색질이 있는 것으로서 그 일체는 4대와 4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어떤 것을 4대라고 하는가? 이른바 지계(地界)와 수계(水界) 화계(火界) 풍계(風界)가 그것입니다. 어떤 것을 지계라고 하는가? 지계에 두 가지가 있으니, 내지계(內地界)가 있고 외지계(外地界)가 있습니다. 어떤 것을 내지계라 하는가? 이른바 몸 속에 있는 것이니 몸에 내포되어 있는 단단한 성질의 것들로서, 몸 안에 수용되어 있는 것들입니다. 그것은 어떤 것들인가? 이른바 머리털 털 손톱 이 거칠고 고운 피부 살 근육 뼈 염통 콩팥 간 허파 지라 창자 밥통 똥 등 이와 같은 것들로서, 몸 안에 들어 있어 몸에 내포되어 있는 단단한 성질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니, 이것을 내지계라 합니다. 여러분 외지계란 무엇인가? 이른바 큰 것이 그것이요 깨끗한 것이 그것이며, 미워하지 않는 것이 그것입니다. 여러 현자여, 때로 수재(水災)를 만나면 그 때에 외지계는 멸망하게 됩니다.   諸賢。此外地界極大。極淨。極不憎惡。是無常法.盡法.衰法.變易之法。況復此身暫住。爲愛所受。謂不多聞愚癡凡夫而作此念。是我。是我所。我是彼所。多聞聖弟子不作此念。是我。是我所。我是彼所。彼云何作是念。若有他人罵리.捶打.瞋恚責數者。彼作是念。我生此苦。從因緣生。非無因緣。云何爲緣。緣苦更樂。彼觀此更樂無常。觀覺.想.行.識無常。彼心緣界住止.合一.心定.不移動。彼於後時他人來語柔辭軟言者。彼作是念。我生此樂。從因緣生。非無因緣。云何爲緣。緣樂更樂。彼觀此更樂無常。觀覺.想.行.識.無常。彼心緣界住。止合一心。定不移動。彼於後時。若幼少.中年.長老來行不可事。或以拳叉。或以石擲。或刀杖加。彼作是念。我受此身。色法麤質。四大之種。從父母生。飮食長養。常衣被覆。坐臥按摩。澡浴强忍。是破壞法。是滅盡法。離散之法。我因此身致拳叉.石擲及刀杖加。由是之故。彼極精勤而不懈怠。正身正念。不忘不癡。安定一心。彼作是念。我極精勤而不懈怠。正身正念。不忘不癡。安定一心。我受此身。應致拳叉.石擲及刀杖加。但當精勤學世尊法。       여러 현자여, 이 외지계는 지극히 크고 지극히 깨끗하며, 지극히 미워하지 않는 것이지만 이것도 무상(無常)한 법이요 다함이 있는 법이며, 쇠하는 법이요 변하는 법인데, 하물며 잠깐 머무는 애욕으로 받은 이 몸이겠습니까? 그러나 이른바 많이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범부는 '이것은 나[我]이다. 이것은 내 것[我所]이다. 나는 그의 것[彼所]이다'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이것은 나이다. 이것은 내 것이다. 나는 그의 것이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만일 어떤 다른 사람이 꾸짖고 때리며 성내어 나무라면, 그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받는 이 고통은 인연을 따라 나는 것으로서 인연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이 연이 되는가? 고갱락(苦更樂)이 연이 된다.' 그는 이 갱락이 무상한 것임을 관찰하고, 각(覺) 상(想) 행(行) 식(識)도 무상한 것임을 관찰하여, 그의 마음은 계(界)를 인연하여 머물러 그치고, 한마음과 합해 안정되어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는 뒷날 다른 사람이 와서 부드럽고 고운 말씨로 말하면, 그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받는 이 즐거움은 인연을 따라 나는 것으로써 인연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인연하는가? 낙갱락(樂更樂)을 인연한다.' 그는 이 갱락이 무상한 것임을 관찰하고, 각 상 행 식도 무상한 것임을 관찰하여, 그의 마음은 계(界)를 인연하여 머물러 그치고, 한마음과 합해 안정되어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는 또 뒷날, 만일 어떤 어린이나 젊은이나 늙은이가 와서 못할 짓을 행하며, 주먹으로 치거나 돌을 던지거나 혹은 무기로 때리면,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받은 이 몸은 색법(色法)의 거친 바탕으로 네 가지 요소[四大之種]로 이루어진 것이다. 부모에게서 태어나서 음식으로 키웠으며, 항상 옷을 입고 앉고 눕고 안마하며, 목욕하고 억지로 참으며 살아간다. 이것은 부서질 법(法)이요, 없어져 다할 법이며, 떠나 흩어질 법이다. 나는 이 몸으로 말미암아 주먹질과 돌팔매질과 칼부림을 받는다.' 그래서 그는 부지런히 힘써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바른 몸 바른 생각으로 잊지도[忘] 않고 어리석지도 않으며, 안정되고 한마음이 되어 또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부지런히 힘써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바른 몸과 바른 생각으로 잊지도 않고 어리석지도 않으며, 안정되고 한마음이 되었다. 나는 이 몸을 받았으므로 주먹질과 돌팔매질과 칼부림을 받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저 부지런히 힘써 세존의 법을 배워야 한다.'   리 : 詈 (꾸짖을 리)1,욕하다   叉 : 扠 의 대치,(집을 차)이체자 忘 - 원본(元本)과 명본(明本) 두 본에는 이 글자가 '에(恚)'자로 되어 있다. '에'자가 뜻에 더 맞지 않은가 생각되지만 우선 고려대장경을 따라 망(忘)으로 번역해 둔다.         諸賢。世尊亦如是說。若有賊來。以利刀鋸。節節解身。若汝爲賊以利刀鋸節節解身時。或心變易。或惡語言者。汝則衰退。汝當作是念。若有賊來。以利刀鋸節節解我身者。因此令我心不變易。不惡語言。當爲彼節節解我身者起哀愍心。爲彼人故。心與慈俱。遍滿一方成就遊。如是二三四方。四維上下。普周一切。心與慈俱。無結無怨。無恚無諍。極廣甚大。無量善修。遍滿一切世間成就遊。       여러 현자들이여, 세존께서도 또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도적이 와서 날이 예리한 톱으로 마디마디 몸을 자른다 하자. 만일 네가 도적에게 날이 예리한 톱으로 마디마디 몸이 잘릴 때에, 혹 마음이 변하거나 혹 추악한 말을 한다면 너는 곧 쇠퇴하는 것이다. 너는 마땅히 이렇게 생각하라. 비록 도적이 와서 날이 예리한 톱으로 마디마디 내 몸을 자르더라도, 그 때문에 나는 내 마음을 변하거나 악한 말을 하지 않을 것이며, 마디마디 내 몸을 자르는 그를 위하여 가엾게 여기는 마음을 내리라. 그를 위한 마음을 냈기 때문에, 마음은 사랑과 함께하여 1방(方)에 두루 차서 원만히 노닐며, 이렇게 2 3 4방과 4유 상 하 일체에 두루한다. 마음은 사랑과 함께하므로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어, 지극히 넓고 매우 크며 한량없는 선행을 잘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 차서 원만히 노닌다.'   諸賢。彼比丘若因佛.法.眾。不住善相應捨者。諸賢。彼比丘應慙愧羞厭。我於利無利。於德無德。謂我因佛.法.眾。不住善相應捨。諸賢。猶如初迎新婦。見其姑장。若見夫主。則慙愧羞厭。諸賢。當知比丘亦復如是。應慙愧羞厭。我於利無利。於德無德。謂我因佛.法.眾。不住善相應捨。彼因慙愧羞厭故。便住善相應捨。是妙息寂。謂捨一切有。離愛.無欲.滅盡無餘。諸賢。是謂比丘一切大學。       여러 현자들이여, 저 비구가 만일 부처님과 법과 스님들로 인하여 선(善)과 서로 호응하는 평정한 마음에 머무르지 못하면 여러 현자들이여, 그 비구는 반드시 제 자신과 다른 이에게 다음과 같이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나는 이익이 있을 만한 데도 이익이 없고, 덕이 있을 만한 데도 덕이 없다. 왜냐 하면 나는 부처님과 법과 스님들로 말미암아 선과 서로 호응하는 평정한 마음에 머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러 현자들이여, 그것은 마치 처음 맞이한 신부가 시부모를 보거나 신랑을 보며, 자신과 남에게 부끄러워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 현자들이여,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비구도 또한 그와 같이 반드시 자신과 남에게 다음과 같이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나는 이익에 대하여 이익이 없고, 덕에 대하여 덕이 없다. 왜냐 하면 나는 부처님과 법과 스님들로 말미암아 선과 서로 호응하는 평정한 마음에 머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제 자신과 남에게 부끄러워함으로 말미암아 곧 선과 서로 호응하는 평정한 마음에 머무를 것입니다. 이것은 묘한 식적(息寂)으로써, 이른바 일체의 유(有)를 버리고 애욕을 여의고, 욕이 다 멸해 남음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 현자들이여, 이것을 비구가 일체를 크게 배우는 것이라고 합니다.   장 : 嫜 (시부모 장) 1,시아버지   諸賢。云何水界。諸賢。謂水界有二。有內水界。有外水界。諸賢。云何內水界。謂內身中在。內所攝水。水性潤。內之所受。此爲云何。謂腦.腦根。淚.汗.涕.唾.膿.血.肪.髓.涎.膽.小便。如是比此身中餘在。內所攝水。水性潤。內之所受。諸賢。是謂內水界。諸賢。外水界者。謂大是。淨是。不憎惡是。諸賢。有時火災。是時滅外水界。       어떤 것을 수계(水界)라고 하는가? 이른바 수계에 두 가지가 있으니, 내수계(內水界)와 외수계(外水界)가 그것입니다. 어떤 것이 내수계인가? 몸 속에 있으며 몸에 포함되어 있는 물로서 그 물의 성질은 촉촉하며, 몸 안에 수용된 것들입니다. 그것은 어떤 것들인가? 이른바 골 뇌수 눈물 땀 콧물 가래침 고름 피 기름덩이 골수 침 가래 오줌, 이와 같은 것들로서 몸 속에 들어 있는 것들입니다. 몸에 내포된 물로서 그 물의 성질은 촉촉하며 몸 안에 받은 것이니 여러 현자들이여, 이것을 내수계라 합니다. 또 외수계란 무엇인가? 이른바 큰 것이 그것이요, 깨끗한 것이 그것이며, 미워하지 않는 것이 그것입니다. 여러 현자들이여, 화재(火災)가 있을 때에는 외수계가 멸합니다.     諸賢。此外水界極大。極淨。極不憎惡。是無常法.盡法.衰法.變易之法。況復此身暫住。爲愛所受。謂不多聞愚癡凡夫而作此念。是我。是我所。我是彼所。多聞聖弟子不作此念。是我。是我所。我是彼所。彼云何作是念。若有他人罵리.捶打.瞋恚責數者。便作是念。我生此苦。從因緣生。非無因緣。云何爲緣。緣苦更樂。彼觀此更樂無常。觀覺.想.行.識無常。彼心緣界住。止合一心。定不移動。彼於後時。他人來語柔辭軟言者。彼作是念。我生此樂。從因緣生。非無因緣。云何爲緣。緣樂更樂。彼觀此更樂無常。觀覺.想.行.識無常。彼心緣界住。止合一心。定不移動。彼於後時。若幼少.中年.長老來行不可事。或以拳扠。或以石擲。或刀杖加。彼作是念。我受此身。色法麤質。四大之種。從父母生。飮食長養。常衣被覆。坐臥按摩。澡浴強忍。是破壞法。是滅盡法。離散之法。我因此身致拳扠.石擲及刀杖加。由是之故。彼極精勤而不懈怠。正身正念。不忘不癡。安定一心。彼作是念。我極精勤而不懈怠。正身正念。不忘不癡。安定一心。我受此身應致拳扠.石擲及刀杖加。但當精勤學世尊法。       여러 현자여, 이 외수계는 지극히 크고 지극히 깨끗하며, 지극히 미워하지 않는 것이지만 이것도 무상(無常)한 법이요 다함이 있는 법이며, 쇠하는 법이요 변하는 법인데 하물며 잠깐 머무르는 애욕으로 받은 이 몸이겠습니까? 그러나 이른바 많이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범부는 '이것은 나이다, 이것은 내 것이다, 나는 그의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많이 아는 훌륭한 제자는 '이것은 나이다. 이것은 내 것이다. 나는 그의 것이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만일 어떤 다른 사람이 꾸짖고 때리거나 성내어 나무라면, 그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받는 이 고통은 인연을 좇아 난 것으로서 인연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인연하는가? 고갱락을 인연한다.' 그는 이 갱락이 무상한 것임을 관찰하고, 각 상 행 식이 무상한 것임을 관찰하여, 그의 마음은 계를 인연하여 머물러 그치고, 한마음과 합해 안정되어 움직이지 않습니다. 뒷날 다른 사람이 와서 부드럽고 고운 말씨로 말하면, 그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받는 이 즐거움은 인연을 좇아 나는 것으로서 인연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인연하는가? 낙갱락을 인연한다.' 그는 이 갱락이 무상한 것임을 관찰하고, 각 상 행 식이 무상한 것임을 관찰하여, 그 마음은 계를 인연하여 머물러 그치고 한마음과 합해, 안정되어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는 또 뒷날 만일 어떤 어린이나 젊은이나 늙은이가 와서 못할 짓을 행하며, 주먹으로 치거나 돌을 던지거나 무기로 치면 그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받은 이 몸은 색법의 거친 바탕이며 4대(大)로 이루어진 것이다. 부모에게서 태어나서 음식으로 키웠으며, 항상 옷을 입고 앉고 눕고 안마하며 목욕하고 억지로 참으며 살아간다. 이것은 부서질 법(法)이요 없어져 다할 법이며, 떠나 흩어질 법이다. 나는 이 몸으로 말미암아 주먹질과 돌팔매질과 칼부림을 받는다.'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는 부지런히 힘써 게으르지 않고, 바른 몸과 바른 생각으로 잊지도 않고 어리석게 굴지도 않으며, 안정되고 한마음이 되어 또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부지런히 힘써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바른 몸과 바른 생각으로 잊지도 않고, 어리석지도 않으며, 안정되고 한마음이 되었다. 나는 이 몸을 받았으므로 주먹질과 돌팔매질과 칼부림을 받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저 부지런히 힘써 세존의 법을 배워야 한다.'  諸賢。世尊亦如是說。若有賊來。以利刀鋸。節節解身。若汝爲賊以利刀鋸節節解身時。或心變易。或惡語言者。汝則衰退。汝當作是念。若有賊來。以利刀鋸節節解我身者。因此令我心不變易。不惡語言。當爲彼節節解我身者起哀愍心。爲彼人故。心與慈俱。遍滿一方成就遊。如是二三四方。四維上下。普周一切。心與慈俱。無結無怨。無恚無諍。極廣甚大。無量善修。遍滿一切世間成就遊。       여러 현자들이여, 세존께서도 또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도적이 와서 날이 예리한 톱으로 마디마디 몸을 자른다 하자. 만일 네가 도적에게 날이 예리한 톱으로 마디마디 몸이 잘릴 때에 마음이 변하거나 나쁜 말을 한다면, 너는 곧 쇠퇴하는 것이다. 너는 마땅히 이와 같이 생각하라. 비록 도적이 와서 날이 예리한 톱으로 내 몸을 마디마디 자르더라도 그 일 때문에 나는 내 마음을 변하게 하거나 나쁜 말을 하지 않고, 내 몸을 마디마디 자르는 그를 위하여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내리라. 그를 위하기 때문에, 마음은 자애로움과 함께하여 1방에 두루 차서 성취하여 노닐며, 이렇게 2 3 4방과 4유 상하 일체에 두루한다. 마음은 자애로움과 함께하므로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으며, 지극히 넓고 매우 크고 한량없는 선행을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 차서 성취하여 노닌다.'   諸賢。彼比丘若因佛.法.眾。不住善相應捨者。諸賢。彼比丘應慙愧羞厭。我於利無利。於德無德。謂我因佛.法.眾。不住善相應捨。諸賢。猶如初迎新婦。見其姑장。若見夫主。則慙愧羞厭。諸賢。當知比丘亦復如是。應慙愧羞厭。我於利無利。於德無德。謂我因佛.法.眾。不住善相應捨。彼因慙愧羞厭故。便住善相應捨。是妙息寂。謂捨一切有。離愛.無欲。滅盡無餘。諸賢。是謂比丘一切大學。       여러 현자들이여, 저 비구가 만일 부처님과 법과 스님들로 말미암아 선과 서로 호응하는 평정한 마음에 머무르지 못하면, 그 비구는 반드시 제 자신과 남에게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나는 유익함에 대해서 아무 유익함도 없고, 덕에 대해 아무 덕도 없다. 왜냐 하면 나는 부처님과 법과 스님들로 말미암아 선과 서로 호응하는 평정한 마음에 머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러 현자들이여, 그것은 마치 갓 시집 온 신부가 시부모를 보거나 신랑을 보면, 제 자신과 남에게 부끄러워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 현자들이여,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비구도 또한 그와 같아서 반드시 제 자신과 남에게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나는 유익함에 대해서 아무 유익함도 없고, 덕에 대해서 아무 덕도 없다. 왜냐 하면 나는 부처님과 법과 스님들로 말미암아 선과 서로 호응하는 평정한 마음에 머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제 자신과 남에게 부끄러워함으로 말미암아 곧 선과 서로 호응하는 평정한 마음에 머무를 것입니다. 이것은 묘한 식적(息寂)으로써, 이른바 일체의 유(有)를 버리고 애욕을 여의고, 욕이 다 멸해 남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 현자들이여, 이것을 비구가 일체를 크게 배우는 것이라 합니다.   諸賢。云何火界。諸賢。謂火界有二。有內火界。有外火界。諸賢。云何內火界。謂內身中在。內所攝火。火性熱。內之所受。此爲云何。謂暖身.熱身.煩悶.溫壯.消化飮食。如是比此身中餘在。內所攝火。火性熱。內之所受。諸賢。是謂內火界。諸賢。外火界者。謂大是。淨是。不憎惡是。諸賢。有時外火界起。起已燒村邑.城郭.山林.曠野。燒彼已。或至道.至水。無受而滅。諸賢。外火界滅後。人民求火。或鑽木截竹。或以珠燧。       어떤 것이 화계(火界)인가? 이른바 화계에 두 가지가 있으니, 내화계(內火界)가 있고 외화계(外火界)가 있습니다. 어떤 것이 내화계인가? 이른바 몸 속에 있으며 몸에 내포되어 있는 불로서 그 불의 성질은 뜨거우며 몸 안에 수용된 것들입니다. 그것은 어떤 것들인가? 이른바 몸을 따뜻하게 하고 몸을 뜨겁게 하며, 번민을 일으키게 하고 체온을 따뜻하게 하여 건강하게 하며, 음식을 소화시키는, 이와 같은 것들입니다. 몸 안에 있으며 몸 속에 내포되어 있는 불로서 그 불의 성질은 뜨거우며 몸 안에 수용되어 있는 것들입니다. 바로 이것을 내화계라 합니다. 또 외화계란 무엇인가? 이른바 큰 것이 그것이요, 깨끗한 것이 그것이며, 미워하지 않는 것이 그것입니다. 여러 현자들이여, 혹 때로는 외화계가 일어나는데 그것이 일어나면 마을 성곽 산림 광야를 다 태우며, 태우다가 혹은 길에 이르고 물에 이르러 받아들이는 것이 없으면 저절로 소멸됩니다. 여러 현자들이여, 외화계가 소멸한 뒤에 사람들은 불을 구하려고 나무를 비벼대거나 대나무를 끊으며, 혹은 구슬로 불을 일으키곤 합니다.     諸賢。此外火界極大。極淨。極不憎惡。是無常法.盡法.衰法.變易之法。況復此身暫住。爲愛所受。謂不多聞愚癡凡夫而作此念。是我。是我所。我是彼所。多聞聖弟子不作此念。是我。是我所。我是彼所。彼云何作是念。若有他人罵리.捶打.瞋恚責數者。便作是念。我生此苦。從因緣生。非無因緣。云何爲緣。緣苦更樂。彼觀此更樂無常。觀覺.想.行.識無常。彼心緣界住。止合一心。定不移動。彼於後時。他人來語柔辭軟言者。彼作是念。我生此樂。從因緣生。非無因緣。云何爲緣。緣樂更樂。彼觀此更樂無常。觀覺.想.行.識無常。彼心緣界住。止合一心。定不移動。彼於後時。若幼少.中年.長老來行不可事。或以拳叉。或以石擲。或刀杖加。彼作是念。我受此身。色法麤質。四大之種。從父母生。飮食長養。常衣被覆。坐臥按摩。澡浴强忍。是破壞法。是滅盡法。離散之法。我因此身致拳叉.石擲及刀杖加。由是之故。彼極精勤而不懈怠。正身正念。不忘不癡。安定一心。彼作是念。我極精勤而不懈怠。正身正念。不忘不癡。安定一心。我受此身應致拳叉.石擲及刀杖加。但當精勤學世尊法。       여러 현자들이여, 이 외화계는 지극히 크고 지극히 깨끗하며, 지극히 미워하지 않는 것이지만 이것도 무상한 법이요 다함이 없는 법이며, 쇠하는 법이요 변하는 법인데 하물며 잠깐 머무르는 애욕으로 만들어진 이 몸이겠습니까?  그러나 이른바 많이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범부는 '이것은 나이다. 이것은 내 것이다. 나는 그의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많이 아는 훌륭한 제자는 '이것은 나이다, 이것은 내 것이다, 나는 저의 것이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만일 어떤 다른 사람이 꾸짖고 때리며 성내어 나무라면, 그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받는 이 고통은 인연을 좇아 생긴 것으로서 인연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인연하는가? 고갱락을 인연한다.' 그는 이 갱락이 무상한 것임을 관찰하고, 각 상 행 식도 무상한 것임을 관찰하여, 그의 마음은 계를 인연하여 머물러 그치고, 한마음과 합해 안정되어 동요하지 않습니다. 뒷날 다른 사람이 와서 부드럽고 고운 말씨로 말하면 그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받는 이 즐거움은 인연을 좇아 생긴 것으로서 인연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인연하는가? 낙갱락을 인연한다.' 그는 이 갱락이 무상한 것임을 관찰하고, 각 상 행 식도 무상한 것임을 관찰하여 그의 마음은 계를 인연하여 머물러 그치고, 한마음과 합해 안정되어 동요하지 않습니다. 그는 또 뒷날, 만일 어떤 어린이나 젊은이나 늙은이가 와서 못할 짓을 행하며, 주먹으로 치거나 돌을 던지거나 혹은 무기로 치면, 그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받은 이 몸은 색법의 거친 바탕이며 4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부모에게서 태어나서 음식으로 키웠으며, 항상 옷을 입고 앉고 눕고 안마하며, 목욕하고 억지로 참으며 살아간다. 이것은 부서질 법(法)이요 없어져 다할 법이며, 떠나 흩어질 법이다. 나는 이 몸으로 말미암아 주먹질과 돌팔매질과 칼부림을 받는다.' 그러므로 그는 부지런히 힘써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바른 몸과 바른 생각으로 성내지 않고 어리석지 않으며, 안정되고 한마음이 됩니다. 그는 또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부지런히 힘써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바른 몸과 바른 생각으로 잊지도 않고 어리석지도 않으며, 안정되고 한마음이 되었다. 나는 이 몸을 받았으므로 주먹질과 돌팔매질과 칼부림을 받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저 부지런히 힘써 세존의 법을 배워야 한다.'  諸賢。世尊亦如是說。若有賊來。以利刀鋸。節節解身。若汝爲賊以利刀鋸節節解身時。或心變易。或惡語言者。汝則衰退。汝當作是念。若有賊來。以利刀鋸節節解我身者。因此令我心不變易。不惡語言。當爲彼節節解我身者起哀愍心。爲彼人故。心與慈俱。遍滿一方成就遊。如是二三四方。四維上下。普周一切。心與慈俱。無結無怨。無恚無諍。極廣甚大。無量善修。遍滿一切世間成就遊。       여러분, 세존께서도 또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도적이 와서 날이 예리한 톱으로 마디마디 몸을 자른다 하자. 만일 네가 도적에게 날이 예리한 톱으로 마디마디 몸이 잘릴 때에 마음이 변하거나 나쁜 말을 한다면, 너는 곧 쇠퇴하는 것이다. 너는 마땅히 이렇게 생각하라. 비록 도적이 와서 날이 예리한 톱으로 내 몸을 마디마디 자르더라도, 그 일 때문에 나는 내 마음을 변하게 하거나 나쁜 말을 하지 않고, 마땅히 내 몸을 마디마디 자르는 그를 위하여 가엾게 여기는 마음을 내리라. 그를 위하기 때문에, 마음은 자애로움과 함께하여 1방에 두루 차서 성취하여 노닐며, 이렇게 2 3 4방과 4유 상하 일체에 두루한다. 마음은 자애로움과 함께하므로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다. 지극히 넓고 매우 크며 한량없는 선행을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 차서 원만히 노닌다.'   諸賢。彼比丘若因佛.法.眾。不住善相應捨者。諸賢。彼比丘應慙愧羞厭。我於利無利。於德無德。謂我因佛.法.眾。不住善相應捨。諸賢。猶如初迎新婦。見其姑장。若見夫主。則慙愧羞厭。諸賢。當知比丘亦復如是。應慙愧羞厭。我於利無利。於德無德。謂我因佛.法.眾。不住善相應捨。彼因慙愧羞厭故。便住善相應捨。是妙息寂。謂捨一切有。離愛.無欲。滅盡無餘。諸賢。是謂比丘一切大學。       여러 현자들이여, 저 비구가 만일 부처님과 법과 스님들로 말미암아 선과 서로 호응하는 평정한 마음에 머무르지 못하면, 여러 현자들이여, 그 비구는 반드시 제 자신과 남에게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나는 유익함에 대해서 아무 유익함도 없고, 덕에 대해서 아무 덕도 없다. 왜냐 하면 나는 부처님과 법과 스님들로 말미암아 선과 서로 호응하는 평정한 마음에 머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러 현자들이여, 비유하면 마치 갓 시집 온 신부가 시부모를 보거나 신랑을 볼 적에 제 자신과 남에게 부끄러워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 현자들이여,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비구도 또한 그와 같아서 반드시 제 자신과 남에게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나는 유익함에 대해서 아무 유익함도 없고, 덕에 대해서 아무 덕도 없다. 왜냐 하면 나는 부처님과 법과 스님들로 말미암아 선과 서로 호응하는 평정한 마음에 머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제 자신과 남에게 부끄러워함으로 말미암아 곧 선과 서로 호응하는 평정한 마음에 머무를 것입니다. 이것은 묘한 식적으로써, 이른바 일체의 유(有)를 버리고 애욕을 여의고 욕이 다 멸해 남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 현자들이여, 이것을 비구가 일체를 크게 배우는 것이라 합니다.   諸賢。云何風界。諸賢。謂風界有二。有內風界。有外風界。諸賢。云何內風界。謂內身中在。內所攝風。風性動。內之所受。此爲云何。謂上風.下風.腹風.行風.체縮風.刀風.躋風.非道風.節節行風.息出風.息入風。如是比此身中餘在。內所攝風。風性動。內之所受。諸賢。是謂內風界。諸賢。外風界者。謂大是。淨是。不憎惡是。諸賢。有時外風界起。風界起時撥。屋拔樹。崩山。山巖撥已便止。纖毫不動。諸賢。外風界止後。人民求風。或以其扇。或以哆邏葉。或以衣求風。       또 어떤 것이 풍계(風界)인가? 풍계에 두 가지가 있으니, 내풍계(內風界)가 있고 외풍계(外風界)가 있습니다. 어떤 것이 내풍계인가? 이른바 몸 속에 있으며 몸 속에 내포되어 있는 바람으로서 그 바람의 성질은 움직이는 것으로서 몸 안에 수용되어 있는 것들입니다. 그것은 어떤 것들인가? 이른바 위로 부는 바람 밑으로 부는 바람 뱃속의 바람 움직이는 바람 끌어당기는 바람 칼바람 오르는 바람 정상적이지 않은 바람 뼈마디의 바람 내쉬는 바람 들이쉬는 바람, 이와 같은 것들로서 몸 속에 있으며 몸에 내포되어 있는 바람으로 그 바람의 성질은 움직이는 것으로서 몸 안에 수용되어 있는 것들입니다. 이것을 내풍계라고 합니다. 외풍계란 무엇인가? 이른바 큰 것이 그것이요, 깨끗한 것이 그것이며, 미워하지 않는 것이 그것입니다. 여러 현자들이여, 혹 어떤 때에는 외풍계가 일어나는데, 외풍계가 일어날 때에는 집을 뒤집고 나무를 뽑아내며, 산을 무너뜨리고 산을 뒤집은 뒤에는 곧 멈추어 털끝만큼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여러 현자들이여, 외풍계가 그친 뒤에 사람들은 바람을 구하려고 부채로 혹은 다라(哆邏)나무 잎으로, 혹은 옷으로 바람을 구하곤 합니다.   체 : 掣 (끌 체,절) 1,잡아당기다. 견제하다. 2,뽑다. 빼다. 3,번쩍하고 지나가다. 빨리 가다.   諸賢。此風界極大。極淨。極不憎惡。是無常法.盡法.衰法.變易之法。況復此身暫住。爲愛所受。謂不多聞愚癡凡夫而作此念。是我。是我所。我是彼所。多聞聖弟子不作此念。是我。是我所。我是彼所。彼云何作是念。若有他人罵리.捶打.瞋恚責數者。便作是念。我生此苦。從因緣生。非無因緣。云何爲緣。緣苦更樂。彼觀此更樂無常。觀覺.想.行.識無常。彼心緣界住。止合一心。定不移動。彼於後時。他人來語柔辭軟言者。彼作是念。我生此樂。從因緣生。非無因緣。云何爲緣。緣樂更樂。彼觀此更樂無常。觀覺.想.行.識無常。彼心緣界住。止合一心。定不移動。彼於後時。若幼少.中年.長老來行不可事。或以拳叉。或以石擲。或刀杖加。彼作是念。我受此身。色法麤質。四大之種。從父母生。飮食長養。常衣被覆。坐臥按摩。澡浴强忍。是破壞法。是滅盡法。離散之法。我因此身致拳叉.石擲及刀杖加。由是之故。彼極精勤而不懈怠。正身正念。不忘不癡。安定一心。彼作是念。我極精勤而不懈怠。正身正念。不忘不癡。安定一心。我受此身應致拳叉.石擲及刀杖加。但當精勤學世尊法。       여러 현자들이여, 외풍계는 지극히 크고, 지극히 깨끗하며, 지극히 미워하지 않는 것이지만, 이것도 무상한 물질이요 다함이 있는 물질이며, 쇠하는 물질이요 변하는 물질인데, 하물며 잠깐 머무르는 애욕으로 받은 이 몸이겠습니까? 그러나 이른바 많이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범부는 '이것은 나이다. 이것은 내 것이다. 나는 그의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이것은 나이다. 이것은 내 것이다. 나는 그의 것이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만일 어떤 다른 사람이 꾸짖고 때리거나 성내어 나무라면, 그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받는 이 고통은 인연을 좇아 생겨난 것으로서, 인연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인연하는가? 고갱락을 인연한다.' 그는 이 갱락이 무상한 것임을 관찰하고, 각(覺) 상(想) 행(行) 식(識)도 무상한 것임을 관찰하여, 그의 마음은 계를 인연하여 머물러 그치고, 한마음과 합해 안정되어 동요하지 않습니다. 그는 뒷날 다른 사람이 와서 부드럽고 고운 말씨로 말하면, 그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받는 이 즐거움은 인연을 좇아 생겨나는 것으로서, 인연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인연하는가? 낙갱락(樂更樂)을 인연한다.' 그는 이 갱락이 무상한 것임을 관찰하고, 각 상 행 식도 무상한 것임을 관찰하여, 그의 마음은 계를 인연하여 머물러 그치고, 한마음과 합해 안정되어 동요하지 않습니다. 그는 또 뒷날에 어떤 어린이나 젊은이나 늙은이가 와서 못할 짓을 행하고, 혹은 주먹으로 치거나 돌을 던지며 혹은 무기 따위로 때리면, 그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받은 이 몸은 색법의 거친 바탕이며 4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부모에게서 태어나 음식으로 자랐으며, 항상 옷을 입고 앉고 눕고 안마하며, 목욕하고 억지로 참으며 살아간다. 이것은 부서질 법(法)이요 없어져 다할 법이며, 떠나 흩어질 법이다. 나는 이 몸으로 인하여 주먹질과 돌팔매질과 칼부림 따위의 가해를 받는다.'  그래서 그는 부지런히 힘써 게을리하지 않고, 바른 몸과 바른 생각으로 잊지도 않고 어리석지도 않으며, 안정되고 한마음이 되어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부지런히 힘써 게을리하지 않고, 바른 몸과 바른 생각으로 잊지도 않고 어리석지도 않으며, 안정되고 한마음이 되었다. 나는 이 몸을 받았으므로 주먹질과 돌팔매질과 칼부림을 받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저 부지런히 힘써 세존의 법을 배워야 한다.'   諸賢。世尊亦如是說。若有賊來。以利刀鋸。節節解身。若汝爲賊以利刀鋸節節解身時。或心變易。或惡語言者。汝則衰退。汝當作是念。若有賊來。以利刀鋸節節解我身者。因此令我心不變易。不惡語言。當爲彼節節解我身者起哀愍心。爲彼人故。心與慈俱。遍滿一方成就遊。如是二三四方。四維上下。普周一切。心與慈俱。無結無怨。無恚無諍。極廣甚大。無量善修。遍滿一切世間成就遊。       여러 현자들이여, 세존께서도 또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도적이 와서 날이 예리한 톱으로 마디마디 몸을 자른다 하자. 만일 네가 도적에게 날이 예리한 톱으로 마디마디 몸이 잘릴 때에, 마음이 변하거나 나쁜 말을 한다면 너는 곧 쇠퇴하는 것이다. 너는 마땅히 이렇게 생각하라. 비록 도적이 와서 날이 예리한 톱으로 내 몸을 마디마디 자르더라도, 그 일 때문에 나는 내 마음을 변하게 하거나 나쁜 말을 하지 않고, 마땅히 내 몸을 마디마디 자르는 그를 위하여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내리라. 그를 위하기 때문에 마음은 자애로움과 함께하여 1방에 두루 차서 원만히 노닐며, 이렇게 2 3 4방과 4유 상하 일체에 두루한다. 마음은 자애로움과 함께하므로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어, 지극히 넓고 매우 크고 한량없는 선행을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 차서 원만히 노닌다.'   諸賢。彼比丘若因佛.法.眾。不住善相應捨者。諸賢。彼比丘應慙愧羞厭。我於利無利。於德無德。謂我因佛.法.眾。不住善相應捨。諸賢。猶如初迎新婦。見其姑장。若見夫主。則慙愧羞厭。諸賢。當知比丘亦復如是。應慙愧羞厭。我於利無利。於德無德。謂我因佛.法.眾。不住善相應捨。彼因慙愧羞厭故。便住善相應捨。是妙息寂。謂捨一切有。離愛.無欲。滅盡無餘。諸賢。是謂比丘一切大學。       여러 현자들이여, 저 비구가 만일 부처님과 법과 스님들로 인하여 선과 서로 호응하는 평정한 마음에 머무르지 못하면, 여러 현자들이여, 그 비구는 제 자신과 남에게 다음과 같이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나는 유익함에 대해서 아무 유익함도 없고, 덕에 대해서 아무 덕도 없다. 왜냐 하면 나는 부처님과 법과 스님들로 인하여 선과 서로 호응하는 평정한 마음에 머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러 현자들이여, 그것을 비유하면 마치 갓 시집온 신부가 시부모를 보거나 신랑을 볼 적에 제 자신과 남에게 부끄러워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 현자들이여,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비구도 또한 그와 같아서 반드시 제 자신과 남에게 다음과 같이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나는 유익함에 대해서 아무 유익함도 없고, 덕에 대해서 아무 덕도 없다. 왜냐 하면 나는 부처님과 법과 스님들로 인하여 선과 서로 호응하는 평정한 마음에 머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제 자신과 남에게 부끄러워함으로 말미암아 곧 선과 서로 호응하는 평정한 마음에 머무를 것입니다. 이것은 묘한 식적으로써 이른바 일체의 유(有)를 버리고 애욕을 여의고, 욕탐이 다 멸해 남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비구가 일체를 크게 배우는 것이라 합니다.   諸賢。猶如因材木。因泥土。因水草。覆裹於空。便生屋名。諸賢。當知此身亦復如是。因筋骨。因皮膚。因肉血。纏裹於空。便生身名。諸賢。若內眼處壞者。外色便不爲光明所照。則無有念。眼識不得生。諸賢。若內眼處不壞者。外色便爲光明所照。而便有念。眼識得生。諸賢。內眼處及色。眼識知外色。是屬色陰。若有覺是覺陰。若有想是想陰。若有思是思陰。若有識是識陰。如是觀陰合會。       여러 현자들이여, 마치 재목과 진흙과 물풀로써 허공을 덮으면 집이라는 이름이 생기는 것처럼, 여러 현자들이여,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이 몸도 그와 같아서 힘줄과 뼈와 피부와 살과 피로 허공을 싸면 곧 몸이라는 이름이 생기는 것입니다. 여러 현자들이여, 만일 안의 안처(眼處)가 무너지고 바깥 경계인 빛깔이 광명을 받지 못하면 곧 생각이 없게 되어 안식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여러 현자들이여, 만일 안의 안처가 무너지지 않고 바깥 경계인 빛깔이 광명을 받으면 곧 생각이 있게 되어 안식이 생겨나게 됩니다. 여러 현자들이여, 안의 안처와 빛깔, 안식이 바깥 빛깔을 알면 이것은 색음(色陰)에 속하고, 만일 각이 있으면 이것은 각음(覺陰)이요, 상이 있으면 이것은 상음(想陰)이며, 사가 있으면 이것은 사음(思陰)이요, 식이 있으면 이것은 식음(識陰)이니, 이렇게 음이 모여 합하는 것을 관찰합니다.   諸賢。世尊亦如是說。若見緣起便見法。若見法便見緣起。所以者何。 諸賢。世尊說五盛陰從因緣生。色盛陰。覺.想.行.識盛陰。 諸賢。若內耳.鼻.舌.身.意處壞者。外法便不爲光明所照。則無有念。意識不得生。 諸賢。若內意處不壞者。外法便爲光明所照而便有念。意識得生。 諸賢。內意處及法。意識知外色法。是屬色陰。若有覺是覺陰。若有想是想陰。若有思是思陰。若有識是識陰。如是觀陰合會。 諸賢。世尊亦如是說。若見緣起便見法。若見法便見緣起。所以者何。 諸賢。世尊說五盛陰從因緣生。色盛陰。覺.想.行.識盛陰。彼厭此過去.未來.現在五盛陰。厭已便無欲。無欲已便解脫。解脫已便知解脫。生已盡。梵行已立。所作已辦。不更受有。知如眞。 諸賢。是謂比丘一切大學。       여러 현자들이여, 세존께서도 또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연기를 보면 곧 법을 보고, 법을 보면 곧 연기를 본다.' 왜냐 하면 여러 현자들이여, 세존께서는 5성음(盛陰)은 인연을 좇아 생긴다고 말씀하셨으니, 색성음(色盛陰)과 각성음(覺盛陰) 상성음(想盛陰) 행성음(行盛陰) 식성음(識盛陰)이 그것입니다. 여러 현자들이여, 만일 안[內]의 이처(耳處) 비처(鼻處) 설처(舌處) 신처(身處) 의처(意處)가 무너지고 바깥의 법이 광명을 받지 못하면 곧 생각이 없게 되어 의식이 생기지 않게 됩니다. 여러 현자들이여, 만일 안의 의처가 무너지지 않고 바깥 경계인 법이 광명을 받으면 곧 생각이 있게 되어 의식이 생기게 됩니다. 안의 의처와 법과 의식이 바깥의 색법을 알면 이것은 색음에 속하고, 만일 각이 있으면 이것은 각음(覺陰)이요, 상(想)이 있으면 이것은 상음(想陰)이며, 사(思)가 있으면 이것은 사음이요, 식(識)이 있으면 이것은 식음이니, 이렇게 음이 모여 합하는 것을 관찰합니다. 여러 현자들이여, 세존께서도 또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연기를 보면 곧 법을 보고, 법을 보면 곧 연기를 본다.' 왜냐 하면 여러 현자들이여, 세존께서는 5성음은 인연을 좇아 생긴다고 말씀하셨으니, 색성음 각성음 상성음 행성음 식성음이 그것입니다. 그는 이 과거 미래 현재의 5성음을 싫어하며, 싫어한 후에는 곧 욕심이 없어지고, 욕심이 없어지면 해탈하며, 해탈하면 해탈을 알게 되어서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참뜻을 알게 됩니다. 이것을 비구가 일체를 크게 배우는 것이라 합니다."   尊者舍梨子所說如是。彼諸比丘聞尊者舍梨子所說。歡喜奉行。       존자 사리자가 이와 같이 말하자 여러 비구들은 그의 말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象跡喩經第十竟(三千八百六十七字)。       제10 상적유경 마침(글자수 3,867자)
24    세 종류의 스승 댓글:  조회:2069  추천:95  2008-01-20
105. 선니경(仙尼經) 선니의 의혹      105. 선니경(仙尼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다죽원에 계셨다. 그 때 외도 출가자 선니(仙尼)가 부처님 계신 곳으로 찾아와 공손히 인사드리고 한쪽에 앉아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예전 언젠가 사문 바라문, 혹은 차라가(遮羅迦),5) 혹은 출가한 이들은 희유강당(希有講堂)에 모여 이런 이치를 이야기하였습니다. 5) 팔리어로는 Caraka이고 유행승(遊行僧)이란 뜻이다. 6) 이하에 거론되고 있는 자들은 부처님과 동시대를 살았던 유명한 6사외도(師外道)이다. '부란나가섭(富蘭那迦葉)6)은 대중의 주인이 되어 500제자들에게 앞뒤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 제자들 가운데는 지극히 지혜로운 사람도 있었고 지극히 미련한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죽음에 다다랐을 때, 그 스승은 그들이 어디로 가서 태어날지를 예언하지 않았다. 또 말가리구사리자(末迦梨瞿舍利子)도 대중의 주인이 되어 500제자들에게 앞뒤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 제자들 가운데는 지혜로운 사람도 있었고 미련한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죽음에 다다랐을 때, 그 스승은 그들이 어디로 가서 태어날지를 예언하지 않았다. 이와 같이 선사나비라지자(先?那毘羅子)․아기다시사흠바라(阿耆多翅舍欽婆羅)․가라구다가전연(迦羅拘陀迦?延)․니건타야제자(尼?陀若提子) 등도 각각 500제자들에게 앞뒤로 둘러싸여 있었지만 그들 역시 앞의 사람들과 같았다.' 그런데 사문 구담이시여, 그 때 그 사람들 중에 이런 말을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문 구담은 대중의 주인이 되어 그의 여러 제자들 중에 목숨을 마치는 사람이 있으면 곧 아무개는 저기에 태어나고 아무개는 여기에 태어난다고 예언한다.' 저는 그 말을 듣고 먼저 의심이 생겼습니다. 사문 구담께서는 어떻게 그러한 법을 얻으셨습니까?" 부처님께서 선니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의심하지 말라. 미혹이 있으면 그는 곧 의심을 일으키게 된다. 선니야, 마땅히 알라. 세 종류의 스승이 있으니,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어떤 스승은 '현세에서 진실로 이것이 나[我]다'라고 하며 제가 아는 대로 말하지만 목숨을 마친 뒤의 일은 능히 알지 못한다. 이런 이를 세간에 출현하는 첫 번째 스승이라 한다. 또 선니야, 어떤 스승은 '현세에서 진실로 이것이 나다'라고 보고 '목숨을 마친 뒤에도 또한 이것이 나다'라고 보아 제가 아는 대로 말한다. 또 선니야, 어떤 스승은 '현세에서 진실로 이것이 나다'라고 보지도 않고 '목숨을 마친 뒤에 진실로 이것이 나다'라고 보지도 않는다. 선니야, '현세에서만 진실로 이것이 나다'라고 하며 제가 아는 대로 말하는 첫 번째 스승의 견해를 단견(斷見)이라 한다. '현세에서나 후세에서나 진실로 이것이 나다'라고 하며 제가 아는 대로 말하는 두 번째 스승의 견해를 상견(常見)이라 한다. '현세에서 진실로 이것이 나다라고 보지 않고, 목숨을 마친 뒤의 나도 또한 보지 않는다'는 것은 곧 여래․응공․등정각의 말이다. 그는 '현세에서 애욕을 끊고 탐욕을 떠나 모든 번뇌를 없애면 열반(涅槃)을 얻는다'고 말한다." 선니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의 말씀을 듣고 의심만 더욱 더할 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선니에게 말씀하셨다. "마땅히 의심을 더해야 할 것이다. 왜냐 하면 이것은 매우 깊은 이치로써 보기도 어렵고 알기도 어려워 모름지기 깊이 관찰해야만 미묘하게 도달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그것은 지혜로운 사람만이 알 수 있고 범부 중생들은 분별해 알 수 없는 것이니, 무슨 까닭인가? 중생들은 오랜 세월 동안 잘못 보고, 잘못 참았으며, 잘못 찾고, 잘못 원하였기 때문이니라." 선니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 앞에서 마음에 깨끗한 믿음을 얻었습니다. 원하옵건대, 세존께서는 저를 위해 설법하시어 저로 하여금 이 자리에서 혜안(慧眼)이 청정하게 하여 주소서." 부처님께서는 선니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너를 위해 좋아하는 대로 설명하리라. 선니야, 색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만일 무상하다면 그것은 괴로운 것인가?" "그것은 괴로운 것입니다." "만일 무상하고 괴로운 것이라면 그것은 변하고 바뀌는 법이니라.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이 과연 그런 것에 대해 '이것은 나다. 나와 다르다. 나와 나 아닌 것이 함께 있는 것이다'라고 보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수․상․행․식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세존께서는 다시 물으셨다. "어떠냐 선니야, 색이 여래인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수․상․행․식이 여래인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다시 물으셨다. "선니야, 색을 떠나서 여래가 있는가? 수․상․행․식을 떠나서 여래가 있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다시 물으셨다. "선니야, 색 안에 여래가 있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선니야, 여래 안에 색이 있는가? 여래 안에 수․상․행․식이 있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선니야, 색도 아니고 수․상․행․식도 아닌 것이 여래인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선니에게 말씀하셨다. "나의 여러 제자들은 내 말을 듣고도 그 뜻을 다 이해하지 못해 교만[慢]을 일으키고 빈틈없는 한결같음[無間等]7)을 얻지 못한다. 빈틈없이 한결같지 못하기 때문에 곧 교만이 끊어지지 않고, 교만이 끊어지지 않기 때문에 이 음(陰)을 버린 뒤에도 다른 음과 합하여 계속해 태어나느니라. 그러므로 선니야, 나는 이런 제자들에겐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이러저러한 곳에 태어난다'고 예언한다. 왜냐 하면 그들에게는 남은 교만이 있기 때문이니라. 그러나 선니야, 내 말을 듣고 그 뜻을 능히 이해하는 나의 여러 제자들은 모든 교만에서 빈틈없는 한결같음을 얻는다. 빈틈없는 한결같음을 얻기 때문에 모든 교만이 끊어지고, 모든 교만이 끊어지기 때문에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다시는 계속해 태어나지 않는다. 선니야, 나는 이런 제자들에겐 '이 음을 버린 뒤에 이러저러한 곳에 다시 태어난다'고 말하지 않는다. 왜냐 하면 예언할 만한 인연이 없기 때문이니라. 만일 내가 그들에 대해서 예언해야 한다면 나는 '그들은 모든 애욕을 끊고 유결(有結)8)을 길이 떠나 바른 뜻으로 해탈하여 고통을 완전히 벗어나리라'고 예언할 것이다. 나는 예전부터 지금까지 늘 교만의 허물[慢過]과 교만의 발생[慢集]과 교만의 생성[慢生]과 교만의 일어남[慢起]에 대하여 말하였다. 만일 그 교만에 대해서 빈틈없이 한결같이 관찰한다면 갖가지 고통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7) 팔리어로는 abhisamaya이고 통상적으로 현관(現觀)․증(證)으로 한역된다. 이해하다․요해하다․통달하다는 뜻이 있다. 8) 유(有)는 생사(生死)의 과보, 결(結)은 그 과보를 불러오는 번뇌를 뜻한다. 부처님께서 이 법을 말씀하시자, 출가한 선니는 티끌과 때를 멀리 떠나고 법안이 깨끗해졌다. 그 때 출가한 선니는 법을 보고 법을 얻어 모든 의혹을 끊었다. 그래서 남의 가르침을 받지 않고 남의 구제를 받지 않고도 바른 법안에서 마음에 두려움이 없게 되었다. 그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도 바른 법 안에서 출가하여 범행을 닦을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선니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바른 법 안에서 출가하여 구족계를 얻을 수 있고 비구의 신분이 될 수 있느니라." 그 때 선니는 출가하여 홀로 고요한 곳으로 가서 방일하지 않으며 지냈고, '족성자들이 출가하여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걸치고서 믿음으로 집에서 집 아닌 데로 출가한 목적대로, 위없는 범행을 완전히 이루고 현세에서 증득하여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은 이미 마쳐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고 스스로 안다'라고 사유하고 아라한이 되었다. 선니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부처님기설에 대한 선니의 의혹  (一○五) 如是我聞 一時。佛住王舍城迦蘭陀竹園 爾時。有外道出家名仙尼。來詣佛所。恭敬問訊。於一面坐。白佛言。世尊。先一日時。若沙門.若婆羅門.若遮羅迦.若出家。集於希有講堂。如是義稱。富蘭那迦葉為大眾主。五百弟子前後圍遶。其中有極聰慧者.有鈍根者。及其命終。悉不記說其所往生處。復有末迦梨瞿舍利子為大眾主。五百弟子前後圍遶。其諸弟子有聰慧者.有鈍根者。及其命終。悉不記說所往生處。如是先闍那毘羅胝子.阿耆多翅舍欽婆羅.迦羅拘陀迦栴延.尼揵陀若提子等。各與五百弟子前後圍遶。亦如前者。沙門瞿曇爾時亦在彼論中言。沙門瞿曇為大眾主。其諸弟子。有命終者。即記說言。某生彼處.某生此處。我先生疑。云何沙門瞿曇。得如此法 佛告仙尼。汝莫生疑。以有惑故。彼則生疑。 仙尼當知。有三種師。何等為三。 有一師。見現在世真實是我。如所知說。而無能知命終後事。是名第一師出於世間。 復次。仙尼。有一師。見現在世真實是我。命終之後亦見是我。如所知說。 復次。先尼。有一師。不見現在世真實是我。亦復不見命終之後真實是我 仙尼。其第一師見現在世真實是我。如所知說者。名曰斷見。 彼第二師見今世後世真實是我。如所知說者。則是常見。 彼第三師不見現在世真實是我。命終之後。亦不見我。是則如來.應.等正覺說。 現法愛斷.離欲.滅盡.涅槃 仙尼白佛言。世尊。我聞世尊所說。遂更增疑 佛告仙尼。正應增疑。所以者何。此甚深處。難見.難知。應須甚深照微妙至到。聰慧所了。 凡眾生類。未能辯知。所以者何。眾生長夜異見.異忍.異求.異欲故 仙尼白佛言。世尊。我於世尊所。心得淨信。唯願世尊為我說法。令我即於此座。慧眼清淨 佛告仙尼。今當為汝隨所樂說 佛告仙尼。色是常耶。為無常耶 答言。無常 世尊復問。仙尼。若無常者。是苦耶 答言。是苦 世尊復問仙尼。若無常.苦。是變易法。多聞聖弟子寧於中見我.異我.相在不 答言。不也。世尊 受.想.行.識亦復如是。復問。云何。仙尼。色是如來耶 答言。不也。世尊 受.想.行.識是如來耶 答言。不也。世尊 復問。仙尼。異色有如來耶。異受.想.行.識有如來耶 答言。不也。世尊 復問。仙尼。色中有如來耶。受.想.行.識中有如來耶 答言。不也。世尊 復問。仙尼。如來中有色耶。如來中有受.想.行.識耶 答言。不也。世尊 復問。仙尼。非色。非受.想.行.識有如來耶 答言。不也。世尊 佛告仙尼。我諸弟子聞我所說。不悉解義而起慢無間等。非無間等故。慢則不斷。慢不斷故。捨此陰已。與陰相續生。是故。仙尼。我則記說。是諸弟子身壞命終。生彼彼處。所以者何。以彼有餘慢故 仙尼。我諸弟子於我所說。能解義者。彼於諸慢得無間等。得無間等故。諸慢則斷。諸慢斷故。 身壞命終。更不相續。仙尼。如是弟子我不說彼捨此陰已。生彼彼處。所以者何。無因緣可記說故。 欲令我記說者。當記說。彼斷諸愛欲。永離有結。正意解脫。究竟苦邊。 我從昔來及今現在常說慢過.慢集.慢生.慢起。若於慢無間等觀。眾苦不生 佛說此法時。仙尼出家遠塵離垢。得法眼淨 爾時。仙尼出家見法.得法。斷諸疑惑。不由他知。不由他度。於正法中。心得無畏。從座起。合掌白佛言。世尊。我得於正法中出家修梵行不 佛告仙尼。汝於正法得出家.受具足戒.得比丘分 爾時。仙尼得出家已。獨一靜處修不放逸。住如是思惟。所以族姓子。剃除鬚髮。正信.非家.出家學道。修行梵行。見法自知得證。我生已盡。梵行已立。所作已作。自知不受後有。得阿羅漢 聞佛所說。歡喜奉行
65. 수경(受經 : 觀察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항상 방편을 써서 선정을 닦고 익혀 안으로 그 마음을 고요히 해야 하느니라. 왜냐 하면 비구가 항상 방편을 써서 선정을 닦고 익혀 안으로 그 마음을 고요히 하면 사실 그대로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사실 그대로 관찰하는가? '이것은 색(色)이다. 이것은 색의 발생이다. 이것은 색의 소멸이다. 수․상․행도 마찬가지이며, 이것은 식이다. 이것은 식의 발생이다. 이것은 식의 소멸이다'라고 관찰하는 것이니라. 어떤 것이 색의 발생[色集]이며, 수(受)․상(想)․행(行)․식(識)의 발생[集]인가?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괴롭거나 즐겁거나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 대해서 '이것은 수의 발생[受集]이다. 이것은 수의 소멸[受滅]이다. 이것은 수에 맛들임[受味]이다. 이것은 수의 재앙[受患]이다. 이것은 수에서 벗어남[受離]이다'라고 사실 그대로 관찰하지 못한다. 사실 그대로 관찰하지 못하기 때문에 수를 즐거워하고 집착하여 취함[取]이 생기고, 취함을 인연하여 존재[有]가 있게 되며, 존재를 인연하여 태어남이 있게 되고, 태어남을 인연하여 늙음․병듦․죽음․근심․슬픔․번민․괴로움이 있게 되며, 이와 같이 완전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발생[集]으로부터 생긴다. 이것을 색의 발생이라 하고, 이것을 수․상․행․식의 발생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색의 소멸[色滅]이며, 수(受)․상(想)․행(行)․식(識)의 소멸[滅]인가?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괴롭거나 즐겁거나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들을 받으면 '이것은 수의 발생이다. 이것은 수의 소멸이다. 이것은 수에 맛들임이다. 이것은 수의 재앙이다. 이것은 수에서 벗어남이다'라고 사실 그대로 관찰한다. 사실 그대로 관찰하기 때문에 수에 대한 즐거움과 집착이 소멸하고, 집착이 소멸하기 때문에 취함이 소멸하며, 취함이 소멸하기 때문에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기 때문에 태어남이 소멸하며, 태어남이 소멸하기 때문에 늙음․병듦․죽음․근심․슬픔․번민․괴로움이 소멸하고, 이와 같이 완전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다 소멸하게 된다. 이것을 색의 소멸이라 하고, 수․상․행․식의 소멸이라 하느니라. 그러므로 비구는 항상 방편을 써서 선정을 닦고 익혀 안으로 그 마음을 고요히 해야 한다. 비구가 선정에 머물러 안으로 그 마음을 고요히 하고 방편을 부지런히 닦는다면 사실 그대로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관찰경(觀察經)에서 설하신 내용과 마찬가지로, 분별(分別)․종종분별(種種分別)․지(知)․광지(廣知)․종종지(種種知)․친근(親近)․친근수습(親近修習)․입(入)․촉(觸)․증(證)의 23)경도 또한 이와 같이 자세히 설명하셨다. 3) 대만(臺灣)에서 간행된 불광대장경 각주에는 "계산해 보면 10경이라 해야 옳다. 또 뒤의 『생경(生經)』 과 『낙경(樂經)』 에서는 모두 '12경(十二經)'이라 하였다. 이를 참조한다면 '이(二)'자 위에 '십(十)'자가 탈락된 것으로 생각된다"고 되어 있다.  六五) 如是我聞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爾時。世尊告諸比丘。 常當修習方便禪思。內寂其心。所以者何。比丘常當修習方便禪思。內寂其心。如實觀察。 云何如實觀察。此是色.此是65. 수경(受經 : 觀察經) 色集.此是色滅。此是受.想.行.識。此是識集.此是識滅 云何色集。受.想.行.識集。愚癡無聞凡夫於苦.樂.不苦不樂受。不如實觀察。此受集.受滅.受味.受患.受離不如實觀察故。於受樂著生取。取緣有。有緣生。生緣老.病.死.憂.悲.惱苦。如是純大苦聚從集而生。是名色集。是名受.想.行.識集 云何色滅。受.想.行.識滅。多聞聖弟子受諸苦.樂.不苦不樂受。如實觀察。受集.受滅.受味.受患.受離如實觀察故。於受樂著滅。著滅故取滅。取滅故有滅。有滅故生滅。生滅故老.病.死.憂.悲.惱苦滅。如是純大苦聚皆悉得滅。是名色滅。受.想.行.識滅 是故。比丘。常當修習方便禪思。內寂其心。比丘。禪思住。內寂其心。精勤方便。如實觀察 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如觀察。如是分別.種種分別.知.廣知.種種知.親近.親近修習.入.觸.證二經。亦如是廣說
22    나는 세상과 다투지않는데 세상이 나와다투는구나 댓글:  조회:2019  추천:134  2007-12-04
37. 아경(我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세상과 다투지 않는데 세상이 나와 다투는구나. 무슨 까닭인가? 비구들아, 만일 법답게 말하는 사람이라면 세상과 다투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의 지혜로운 사람들이 '그렇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나도 또한 '그렇다'고 말한다. '세상의 지혜로운 사람들이 그렇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나도 또한 그렇다고 말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비구들아, 색은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라는 주장에 대해 세상의 지혜로운 사람들은 '그렇다'고 말하고, 나도 또한 '그렇다'고 말한다. 이와 같이 수․상․행․식은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라는 주장에 대해 세상의 지혜로운 사람들은 '그렇다'고 말하고, 나도 또한 '그렇다'고 말하느니라.     세상의 지혜로운 사람들이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나도 또한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것은 무엇인가? 이른바 색은 항상하고 변하거나 바뀌지 않으며 바르게 머무르는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세상의 지혜로운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나도 또한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이와 같이 수․상․행․식은 항상하고 변하거나 바뀌지 않으며 바르게 머무르는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세상의 지혜로운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나도 또한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이것이 이른바 '세상의 지혜로운 사람들이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나도 또한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는 것이니라.   비구들아, 세간에는 세간법(世間法)이 있어, 나는 그것을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아 사람들을 위해 분별하고 연설하고 나타내 보이지만 세간의 눈먼 장님들은 그것을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내 허물이 아니니라.   비구들아, '세간의 세간법을 나는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아 사람들을 위해 연설하고 분별하고 나타내 보이지만, 저 세간의 눈먼 장님들은 그것을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비구들아, 색이란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니, 이것이 세간의 세간법이다. 이와 같이 수․상․행․식도 무상하고 괴로운 것이니, 이것이 세간의 세간법이니라.   비구들아, 이러한 세간의 세간법을 나는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아 사람들을 위해 분별하고 연설하고 나타내 보이지만 저 세간의 눈먼 장님들은 그것을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다. 저 눈먼 장님들이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것을 낸들 어떻게 하겠는가?"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21    六方의 례의와 부처가 설하는 례의 댓글:  조회:1987  추천:105  2007-11-30
    16. 선생경(善生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라열기성(羅閱祇城)의 기사굴산(耆??山)에서 큰 비구 대중 1,250명과 함께 계셨다.   그 때 부처님께서 때가 되어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성 안에 들어가 밥을 빌고 계셨다. 그 때 라열기성에 선생(善生)11)이라는 장자(長者)의 아들이 있었다.    11) Siglaka)은 시가라월(尸迦羅越)로 음역하기도 한다.   그는 이른 아침에 성을 나와 동산으로 가서 소풍하곤 했는데 방금 목욕을 하고 나서 온몸이 젖은 채로 동ㆍ서ㆍ남ㆍ북과 상ㆍ하의 모든 방위를 향해 두루 예배하였다. 그 때 세존께서 선생 장자가 동산으로 나가 소풍하는데 갓 목욕하여 온몸이 젖은 채로 모든 방위를 향해 절하는 것을 보았다. 세존께서는 그것을 보고 곧 그에게로 가 선생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무슨 일로 이른 아침에 성을 나와 동산 숲에서 온몸이 젖은 채로 모든 방위를 향해 절을 하는가?”   그러자 선생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희 아버지께서 임종하실 적에 "네가 예배하고자 하거든 마땅히 먼저 동방ㆍ남방ㆍ서방ㆍ북방ㆍ상방ㆍ하방에 예배하라"고 제게 유언하셨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명령을 감히 어길 수 없어 목욕한 뒤 손을 모으고 동방을 향해 예배하고 남ㆍ서ㆍ북방과 상ㆍ하 모든 방위에도 두루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 때 세존께서 선생에게 말씀하셨다.   “장자의 아들아, 그것은 방위라는 이름이 있을 뿐이다.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우리 현성법(賢聖法)에서는 그 6방에 예배하는 것을 공경으로 여기지 않는다.”   선생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원컨대 세존이시여, 저에게 현성법에서는 어떻게 6방에 예배하는지 그 법을 말씀해 주소서.”   부처님께서 장자의 아들에게 말씀하셨다.   “자세히 들어라, 자세히 들어라. 잘 생각해보고 기억하라. 마땅히 너를 위하여 설명하리라.”   선생이 대답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즐겨 듣고 싶습니다.”   부처님께서 선생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네 가지 결업(結業)12)에 대해 알고 네 곳에서 악행을 짓지 않으며 또 능히 여섯 가지 손재업(損財業)을 안다면 선생아, 이것을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네 가지 악행을 떠나 6방을 예경한다"고 하느니라.    12) 아래에서는 결행(結行)이라 하였다.   그러면 이승에서도 좋고 저승에서도 좋은 과보를 얻을 것이요, 이승에서도 뿌리[根]가 되고 저승에서도 뿌리가 될 것이다. 현재에서는 지혜로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고 세상의 1과(果)를 얻으며,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서는 하늘의 좋은 곳에 태어날 것이다.   선생아, 마땅히 알라. 네 가지 결행(結行)이란 무엇인가? 첫 번째는 살생이요, 두 번째는 도둑질이요, 세 번째는 음탕한 짓을 하는 것이요, 네 번째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네 곳[處]인가? 첫 번째는 욕심이요, 두 번째는 성냄이요, 세 번째는 두려움이요, 네 번째는 어리석음이다. 만일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이 네 곳에서 악을 지으면 곧 손해가 있을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게송을 지어 말씀하셨다.   탐욕과 성냄과 두려움과 어리석음   이 네 가지 법을 가진 사람은   마치 그믐을 향하는 달처럼   그 명예가 날로 줄어들리라.   부처님께서 다시 선생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이 네 가지로써 악을 짓지 않으면 곧 이익이 있을 것이다.”   그 때 세존께서 다시 게송을 지어 말씀하셨다.   탐욕과 성냄과 두려움과 어리석음   이런 악행을 짓지 않는 사람은   마치 보름을 향하는 달처럼   그 명예가 날로 더해가리라.   부처님께서 선생에게 말씀하셨다.   “여섯 가지 손재업(損財業)이란 무엇인가? 첫 번째는 술에 빠지는 것이요, 두 번째는 노름하는 것이며, 세 번째는 방탕한 짓을 하는 것이요, 네 번째는 기악(伎樂)에 미혹되는 것이며, 다섯 번째는 악한 벗과 사귀는 것이요, 여섯 번째는 게으른 것이니, 이것을 여섯 가지 손재업이라고 한다. 선생아, 만일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네 가지 결행을 알고 네 곳에서 악행을 짓지 않으며 또 여섯 가지 손재업을 안다면, 선생아, 이것이 네 곳을 떠나 6방을 공양하는 것이 된다. 그러면 금생도 좋고 후생도 좋으며, 이승에서 뿌리가 되고 저승에서도 뿌리가 될 것이다. 현재에서는 지혜로운 자들에게 칭찬받고 세상의 1과(果)를 얻으며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서는 하늘의 좋은 곳에 태어날 것이다.   선생아, 마땅히 알라. 술을 마시면 여섯 가지 손실이 있다. 첫 번째는 재물을 없애게 되고, 두 번째는 병이 생기며, 세 번째는 다투게 되고, 네 번째는 나쁜 이름이 퍼지게 되며, 다섯 번째는 성을 내고 사나워지게 되고, 여섯 번째는 지혜가 날로 줄어든다. 선생아, 만일 저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술 마시기를 그치지 않으면 그 집의 살림은 날로 줄어들 것이다.   선생아, 노름을 해도 여섯 가지 손실이 있다. 어떤 것이 여섯 가지인가? 첫 번째는 재산이 날로 없어지고, 두 번째는 이기더라도 원한을 사게 되며, 세 번째는 지혜로운 사람에게 꾸지람을 듣고, 네 번째는 사람들이 공경하지도 믿지도 않으며, 다섯 번째는 사람들이 멀리하게 되고, 여섯 번째는 도둑질할 마음이 생기게 된다. 선생아, 이것을 노름으로 생겨나는 여섯 가지 손실이라 한다. 만일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노름하기를 그치지 않으면 그 집의 살림은 날로 줄어들 것이다.   방탕에도 여섯 가지 손실이 있다. 첫 번째는 자기 몸을 보호하지 못하고, 두 번째는 재물을 보호하지 못하며, 세 번째는 자손을 보호하지 못하고, 네 번째는 항상 스스로 놀라고 두려워하며, 다섯 번째는 온갖 괴로움과 불행이 항상 그 몸을 휘감고, 여섯 번째는 허망한 일이 생기기 쉽다. 이것을 방탕의 여섯 가지 손실이라고 한다. 만일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방탕한 짓거리를 멈추지 않으면 그 집의 재산은 날로 줄어들 것이다.   선생아, 기악에 미쳐도 여섯 가지 손실이 있다. 첫 번째는 가수를 구해야 하고, 두 번째는 춤꾼을 구해야 하며, 세 번째는 거문고와 비파를 구해야 하고, 네 번째는 파내조(波內早, akkhna)를 구해야 하며, 다섯 번째는 손에 드는 작은 방울[多羅槃, pissara]을 구해야 하고, 여섯 번째는 큰 북[首呵那, kumbhath]을 구해야 한다. 이것을 기악의 여섯 가지 손실이라고 한다.   만일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기악을 즐겨 그치지 않으면 그 집의 재산은 날로 줄어들 것이다.   악한 벗과 사귀는 것에도 여섯 가지 손실이 있다. 첫 번째는 속임수를 써 속이게 되고, 두 번째는 으슥한 곳을 좋아하게 되며, 세 번째는 남의 집사람을 꾀이게 되고, 네 번째는 남의 물건을 얻으려고 꾀하게 되며, 다섯 번째는 재물과 이익만 좇게 되고, 여섯 번째는 남의 허물을 들추어내기를 좋아하게 된다. 이것을 악한 벗과 사귀는 여섯 가지 손실이라 한다. 만일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악한 벗과 사귀기를 그치지 않으면 그 집의 재산은 날로 줄어들 것이다.   게으름에도 여섯 가지 손실이 있다. 첫 번째는 부유하고 즐겁다고 일하려 하지 않는 것이요, 두 번째는 가난하고 궁핍하다면서 부지런히 일하려 하지 않는 것이며, 세 번째는 춥다고 부지런히 일하려 하지 않는 것이요, 네 번째는 덥다고 부지런히 일하려 하지 않는 것이며, 다섯 번째는 때가 이르다고 부지런히 일하려 하지 않고, 여섯 번째는 때가 늦었다고 부지런히 일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을 게으름의 여섯 가지 손실이라 한다. 만일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게으름을 그치지 않으면 그 집의 재산은 날로 줄어들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다시 게송을 지어 말씀하셨다.   술에 미혹해 빠지는 사람   그에게는 또 술친구만 늘어나   올바르게 모은 재산   어느새 다시 흩어지고 마네.   술 마심에 절도가 없고   언제나 노래와 춤과 유희 즐기며   대낮에 남의 집에 놀러 다니니   그로 인해 스스로 함정에 떨어지네.   나쁜 벗 사귀어 고치지 않고   도 닦는 사람을 비방해 말하니   세상 사람들 삿된 소견을 비웃고   행실이 더럽다고 버림받으리.   좋다 나쁘다 겉모양에 집착하고   의논하는 것이라곤 승부를 겨루는 일   악함13)과 친해 돌아올 줄 모르면   행실이 더럽다고 남의 버림받으리.    13) "요(要)"자로 되어 있는데 송ㆍ원ㆍ명 3본에는 모두 "악(惡)"으로 되어 있다. 여기에서는 "악(惡)"자를 취하여 번역하였다.   술 때문에 거칠고 미혹하게 되어   가난하고 궁핍한 것 생각하지 못하고   재물을 가벼이 여겨 사치 좋아하다가   가정을 파괴하고 재앙을 불러오네.   노름하고 술 마시는 무리를 만들고   음탕한 남의 여자 엿보며   더러운 행실을 좋아하여 익히나니   마치 그믐을 향하는 달 같구나.   악한 짓을 행하고 악한 과보 받으며   악한 벗들과 함께 일을 저지르면   이승에서나 저승에서나   언제나 얻는 것 하나도 없네.   대낮에는 마냥 잠자기만 좋아하고   밤에는 깨어 바라는 것 많으면   외롭고 어리석어 좋은 벗 없고   집안의 살림살이 다스릴 줄 모르네.   이르다 늦다 핑계대며 일하기 싫어하고   춥다 덥다 핑계로 더욱 게으름 피우니   하던 일은 하나도 끝맺지 못하고   또 다시 다 된 일도 망치고 마네.   추위와 더위 가리지 않고   아침 저녁으로 부지런히 일하면   어느 사업이고 안 될 것 없어   마침내 근심 걱정 없게 되리라.   부처님께서 선생에게 말씀하셨다.   “친한 체하는 네 가지 원수가 있으니 너는 마땅히 깨달아 알라. 어떤 것을 네 가지라 하는가? 첫 번째는 두려운 체하면서 복종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달콤한 말이며, 세 번째는 공경하고 순종하는 체하는 것이요, 네 번째는 나쁜 벗이다.   두려워서 복종하는 데에는 네 가지 사연[事]이 있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 번째는 먼저는 주었다가 뒤에 가서 빼앗는 것이요, 두 번째는 적은 것을 주고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이며, 세 번째는 두려워서 억지로 친한 체하는 것이요, 네 번째는 이익을 위하기 때문에 친한 체하는 것이다. 이것을 두려워서 복종하는 네 가지 사연이라고 한다.   달콤한 말로 친한 체하는 데에도 또 네 가지 사연이 있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 번째는 선하건 악하건 무조건 따르는 것이요, 두 번째는 어려움이 있으면 저버리는 것이며, 세 번째는 겉으로 어서 오라고 하며 속으로는 막는 것이요, 네 번째는 위태로운 일이 생기면 곧 배척하는 것이다. 이것을 달콤한 말로 친한 체하는 네 가지 사연이라고 한다.   공경하고 순종하며 친한 체하는 것에도 또 네 가지 사연이 있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 번째는 미리 속이는 것이요, 두 번째는 나중에 속이는 것이며, 세 번째는 현재에 속이는 것이요, 네 번째는 조그마한 허물만 보아도 곧 매질하는 것이다. 이것을 공경하고 순종하며 친한 체하는 네 가지 사연이라고 한다.   악한 벗이 친한 체하는 것에도 또 네 가지 사연이 있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 번째는 술을 마실 때에 벗이 되는 것이요, 두 번째는 도박할 때에 벗이 되는 것이며, 세 번째는 음탕한 짓을 할 때에 벗이 되는 것이요, 네 번째는 노래하고 춤출 때에 벗이 되는 것이다. 이것을 악한 벗이 친한 체하는 네 가지 사연이라고 한다.”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다시 게송을 지어 말씀하셨다.   두려워 복종하면서 억지로 친한 체하고   달콤한 말로도 그렇게 하며   공경하고 순종하며 거짓으로 친한 체하고   악한 벗은 나쁜 짓으로 친한 체하네.   이런 친구 믿을 수 없나니   어서 빨리 그들을 멀리 하라.   지혜로운 사람은 마땅히 알아   마치 위험한 길을 피하듯 하네    부처님께서 선생에게 말씀하셨다.   “친할 만한 친구에 네 가지가 있다. 그들은 이익되는 바가 많고 또 사람을 구원하고 보호한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 번째는 잘못을 그치게 하는 친구이고, 두 번째는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는 친구이며, 세 번째는 남을 이롭게 하는 친구이고, 네 번째는 고락을 함께하는 친구이다. 이것이 친할 만한 네 가지 친구로서 사람을 이롭게 하는 바가 많고 사람을 구원하고 보호하나니 마땅히 그들을 친근히 하라.   선생아, 잘못을 그치게 하는 것에 네 가지 사연[事]이 있으니, 그들은 이롭게 하는 바가 많고 사람을 구원하고 보호한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 번째는 사람이 악한 짓을 하는 것을 보면 곧 그것을 말리는 것이요, 두 번째는 사람에게 정직한 도리를 보여 주는 것이며, 세 번째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엾이 여기는 것이요, 네 번째는 사람들에게 하늘에 태어나는 길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것이 허물을 그치게 하는 네 가지로서 이익되는 바가 많고 사람을 구원하고 보호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는 것에도 네 가지 사연이 있다. 첫 번째는 남의 이익을 보면 대신 기뻐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남의 악을 보면 대신 걱정하는 것이며, 세 번째는 남의 덕을 칭찬하고 기리는 것이요, 네 번째는 남이 악을 말하는 것을 보면 곧 그것을 막는 것이다. 이것이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는 네 가지로서 이익되는 바가 많고 사람을 구원하고 보호하는 것이다.   남을 이롭게 하는 것에도 네 가지 사연이 있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 번째는 그가 방일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그가 방일하여 재산을 잃는 일이 없도록 보호하는 것이며, 세 번째는 그가 두려워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요, 네 번째는 남몰래 서로 가르쳐 훈계하는 것이다. 이것이 남을 이롭게 하는 네 가지로서 이익되는 바가 많고 사람을 구원하고 보호하는 것이다.   고락을 함께하는 것에도 네 가지가 있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 번째는 그를 위해 신명을 아끼지 않는 것이요, 두 번째는 그를 위해 재물을 아끼지 않는 것이며, 세 번째는 그를 위해 그의 두려움을 구제해 주는 것이요, 네 번째는 그를 위해 남몰래 깨우쳐 훈계하는 것이다. 이것이 고락을 함께하는 네 가지로서 이익되는 바가 많고 또 사람을 구원하고 보호하는 것이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다시 게송을 지어 말씀하셨다.   허물을 억제하고 악함을 막아주는 친구   남을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는 친구   남을 이롭게 하여 그를 도와주는 친구   제 일처럼 고락을 함께하는 친구   이런 친구라야 친할 만한 친구이며   지혜로운 이들이 가까이 할 자   친구 중에 더없이 좋은 친구   마치 그 어머니 아들을 사랑하듯이.   만일 친할 만한 친구를 친하려거든   마땅히 견고한 친구를 친하도록 하라.   친근히 하는 이가 계행을 구족하면   불빛이 사람을 비추듯 하리라.   부처님께서 선생에게 말씀하셨다.   “마땅히 여섯방위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 어떤 것이 여섯 가지인가? 부모는 동방이요, 사장(師長)은 남방이요, 아내는 서방이요, 친척은 북방이요, 종들은 하방이요, 사문 바라문과 행이 높은 모든 사람은 상방이다.   선생아, 남의 자식된 자는 마땅히 다섯 가지 일로써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敬順]해야 한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첫 번째는 이바지해 받들어 모시되 부족함이 없게 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할 일이 있으면 무슨 일이든지 먼저 부모에게 아뢰는 것이며, 세 번째는 부모가 하는 일은 순종하고 거스르지 않는 것이요, 네 번째는 부모의 바른 명령을 감히 어기지 않는 것이며, 다섯 번째는 부모가 하던 바른 가업(家業)을 끊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선생아, 대개 남의 자식된 자는 다섯 가지 일로써 부모에게 공경하고 순종해야 하며, 부모도 다섯 가지 일로써 그 아들을 사랑해야 한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첫 번째는 자식을 통제하여 악을 행하는 것을 용서하지 않는 것이요, 두 번째는 가리키고 타이르되 모범을 보여주는 것이며, 세 번째는 그 사랑이 뼈 속까지 사무치도록 하는 것이요, 네 번째는 자식에게 좋은 짝을 구해주는 것이며, 다섯 번째는 때에 따라 필요한 물건을 대주는 것이다. 선생아, 자식이 부모에게 공경하고 순종하며 공손히 받들어 섬기면 그 방위는 안온하여 걱정과 두려움이 없을 것이다.   선생아, 제자가 스승을 공경하고 받드는 데에도 또 다섯 가지 일이 있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첫 번째는 필요한 것을 대주는 것이요, 두 번째는 예경하고 공양하는 것이며, 세 번째는 존중하고 우러러 받드는 것이요, 네 번째는 스승의 가르침이 있으면 공손히 따르고 어기지 않는 것이며, 다섯 번째는 스승에게 법을 듣고는 잘 기억해 잊지 않는 것이다. 선생아, 대개 제자된 자는 마땅히 이 다섯 가지 법으로써 스승과 어른을 공경하고 섬겨야 한다.    스승과 어른도 또한 다섯 가지 일로써 제자를 잘 보살펴야 한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첫 번째는 법대로 잘 길들이는 것이요, 두 번째는 그가 듣지 못한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며, 세 번째는 묻는 바에 따라 그 뜻을 알게 해 주는 것이요, 네 번째는 좋은 벗을 소개하는 것이며, 다섯 번째는 인색함이 없이 아는 것을 다 가르쳐 주는 것이다. 선생아, 제자가 스승과 어른을 공경하고 순종하며 공손히 받들어 모시면 그 방위는 안온하여 걱정이나 두려움이 없을 것이다.   선생아, 남편이 아내를 공경하는 데에도 또한 다섯 가지가 있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첫 번째는 서로 예의로써 대접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위엄을 지키는 것이며, 세 번째는 제 때에 옷과 양식을 대주는 것이요, 네 번째는 때에 따라 몸치장을 하게 하는 것이며, 다섯 번째는 집안일을 맡기는 것이다. 선생아, 남편은 이 다섯 가지 일로써 아내를 공경하고 대접해야 한다.    아내도 또한 다섯 가지 일로써 남편을 공경해야 한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첫 번째는 먼저 일어나는 것이요, 두 번째는 나중에 앉는 것이며, 세 번째는 부드러운 말을 쓰는 것이요, 네 번째는 공경하고 순종하는 것이며, 다섯 번째는 뜻을 먼저 알아 받드는 것이다. 선생아, 남편이 아내14)를 이같이 공경하고 대접하는 것이다. 이같이 공경히 대접하면 그 방위는 안온하여 걱정과 두려움이 없을 것이다.    14) 보면 여기는 “아내가 남편을…”로 되어야 할 것 같다. 송ㆍ원ㆍ명 3본에는 “아내가 남편을…”로 되어 있다.     선생아, 사람된 자는 마땅히 다섯 가지 일로써 친족을 가까이하고 공경해야 한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첫 번째는 베풀어주는 것이요, 두 번째는 착한 말을 쓰는 것이며, 세 번째는 이롭게 하는 것이요, 네 번째는 이익을 함께하는 것이며, 다섯 번째는 속이지 않는 것이다. 선생아, 이것이 다섯 가지 일로써 친족을 가까이하고 공경하는 것이다.   친족도 또한 다섯 가지 일로써 그 사람을 가까이하고 공경해야 한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첫 번째는 방종하고 안일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방종하고 안일하여 재산을 잃는 일이 없도록 보호하는 것이며, 세 번째는 두려움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요, 네 번째는 남몰래 서로 가르쳐 훈계하는 것이며, 다섯 번째는 항상 서로 칭찬하는 것이다. 선생아, 이렇게 친족을 보살피고 공경하면 그 방위는 안온하여 걱정이나 두려움이 없을 것이다.   선생아, 주인은 다섯 가지 일로써 하인을 가르쳐야 한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첫 번째는 그 능력에 알맞게 부리는 것이요, 두 번째는 제때에 음식을 주는 것이며, 세 번째는 제때에 보수를 주는 것이요. 네 번째는 병이 들면 약을 주는 것이요, 다섯 번째는 휴가를 허락하는 것이다. 선생아, 이것이 다섯 가지 일로써 하인을 부리는 것이다.    하인도 또 다섯 가지 일로써 그 주인을 받들어 섬겨야 한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첫 번째는 일찍 일어나는 것이요, 두 번째는 일을 빈틈없이 처리하는 것이며, 세 번째는 주지 않으면 가지지 않는 것이요, 네 번째는 일을 순서 있게 하는 것이며, 다섯 번째는 주인의 이름을 드날리는 것이다. 이것이 주인이 하인을 잘 대접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그 방위는 안온하여 걱정과 두려움이 없을 것이다.   선생아, 시주(施主)는 마땅히 다섯 가지 일로써 사문 바라문을 공양해 받들어야 한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첫 번째는 따뜻한 행동으로 대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따뜻한 말로 대하는 것이며, 세 번째는 따뜻한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요, 네 번째는 때 맞추어 보시하는 것이며, 다섯 번째는 문을 막지 않는 것이다. 선생아, 이처럼 시주는 이 다섯 가지 일로써 사문 바라문을 공양해 받들어야 한다.    사문 바라문은 또 여섯 가지 일로써 가르쳐야 한다. 어떤 것이 여섯 가지인가? 첫 번째는 악을 짓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착한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며, 세 번째는 선한 마음을 품게 하는 것이요, 네 번째는 듣지 못한 것을 들려 주는 것이며, 다섯 번째는 이미 들은 것은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요, 여섯 번째는 하늘에 태어나는 길을 열어 보이는 것이다. 선생아, 이것이 시주가 사문 바라문을 공손히 받드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그 방위는 안온하여 걱정이나 두려움이 없을 것이다.”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다시 게송으로써 말씀하셨다.   부모는 동방이고   스승은 남방이며    아내는 서방이고   친족은 북방이며   하인은 하방이고   사문은 상방이네.   모든 장자의 아들들아   모든 방위에 예경하고   공경하고 순종해 때를 놓치지 않으면   죽어서는 모두 천상에 태어나리.   은혜로운 보시와 부드러운 말   사람들에게 많은 이익 준다네.   너와 나 이익을 공평히 하고   가진 것을 남과 함께 나눠 가져라.   이 네 가지15)는 큰 짐이라   무거운 짐 실은 수레와 같네.   그러나 세간에 이 네 가지가 없다면   효성스런 봉양은 있을 수 없네.    15) 구절에서 거론된 보시(布施)ㆍ애어(愛語)ㆍ이행(利行)ㆍ동사(同事)의 4섭법(攝法)을 말한다.   이 법은 세간에 있어    지혜로운 사람이 선택하는 것   이것을 행하면 큰 과보 얻고   아름다운 이름 멀리 퍼지리.   평상과 자리를 장엄하게 꾸미고   훌륭한 음식을 차려 올리며   필요한 물건을 공급해 주면   아름다운 이름 멀리 퍼지리.   친구는 서로 버리지 않고   이익되는 일들을 서로 보여주며   상하가 늘 서로 화합한다면   이 때 비로소 좋은 명예 얻는다.   마땅히 먼저 기예부터 익히고   그런 다음 재물 늘릴 직업을 가지며   재물을 얻어 이미 구족하거든   마땅히 스스로 지키고 보호하라.   재물 쓰되 사치하지 말고   마땅히 줄 사람 가리어 주라.   남을 속이고 함부로 내닫거든   아무리 빌어도 주지 말아라.   재물을 쌓되 적은 데서 시작하라.   마치 여러 꽃에서 꿀을 모으는 벌처럼   재물은 날마다 점점 불어나   마침내 줄거나 소모됨이 없으리라.   첫째는 음식에 만족할 줄 알고   둘째는 일을 하되 게으르지 말며   셋째는 미리 모으고 쌓아   그것으로 궁핍할 때를 준비하라.   넷째는 밭 갈고 장사도 하며   목장 만들어 짐승 먹이고   다섯째는 마땅히 탑묘(塔廟)를 세우고   여섯째는 절의 방사(房舍)를 지어라.   재가자는 이 6업(業)을 부지런히 힘써   잘 닦아 그 때를 놓치지 말라.   이와 같이 그 행을 닦아 나가면   집안살림 줄어들 일 없고   재물은 날로 점점 불어나   바다로 온갖 강물 흘러들 듯하리.   그 때 선생(善生)은 세존께 아뢰었다.   “참으로 좋습니다. 세존이시여, 이것은 실로 제가 본래 기대했던 것보다 월등하고 제 아버지의 가르침을 넘어섰습니다. 엎어진 자로 하여금 우러름을 얻게 하고, 닫힌 자로 하여금 열림을 얻게 하며, 미혹한 자로 하여금 깨달음을 얻게 하고, 어두운 방에 등불을 켜서 눈 있는 자가 보게 하셨습니다. 여래의 말씀도 그와 같아서 무수한 방편으로써 어리석음의 어두움을 깨치게 하고 맑고 깨끗한 법을 보여주셨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부처님께서는 여래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이시기 때문에 능히 열어 보이시어 세상의 밝은 길잡이가 되셨습니다. 저는 이제 부처님께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고 승가에 귀의합니다. 오직 원하옵건대 세존께서는 제가 바른 법 가운데서 우바새가 되는 것을 허락해 주소서. 저는 오늘부터 죽을 때까지 살생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으며, 음탕하지 않고 속이지 않으며, 술을 마시지 않겠습니다.”   그 때 선생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환희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20    현재는 즐겁지만 미래에는 괴로운 과보--受法經 댓글:  조회:2059  추천:76  2007-11-27
174) 수법경(受法經) 제 3 [제4 분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적에 승림급고독원(勝林給孤獨園)7)에 계셨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7)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이라고도 한다. 바사닉왕의 태자인 제타(Jeta)가 숲을 보시하였다. 제타는 기타(祇陀) 제다 (制多)로 음역하기도 하고 승(勝) 전승(戰勝)으로 한역하기도 한다. 8) 본문에서 현재의 고(苦) 락(樂) 등 감수작용(感受作用)과 그에 따른 과보를 이야기하고 있다. 따라서, 수법(受法)은 곧 감수작용이나 느낌을 말한다. "세상에는 진실로 네 가지 수법(受法)8)이 있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혹 어떤 수법은 현재는 즐겁지만 미래에는 괴로운 과보[苦報]를 받고, 혹 어떤 수법은 현재는 괴롭지만 미래에는 즐거운 과보[樂報]를 받으며, 혹 어떤 수법은 현재도 괴롭고 미래에도 또한 괴로운 과보를 받고, 혹 어떤 수법은 현재도 즐겁고 미래에도 또한 즐거운 과보를 받는다. 어떤 것이 현재는 즐겁지만 미래에는 괴로운 과보를 받는 수법(受法)인가? 혹 어떤 사문 범지는 아름답게 꾸민 여자와 즐기면서 이렇게 말한다. '저 사문과 범지는 애욕에서 미래에 어떠한 두려움이 있고 어떠한 재환(災患)이 있는 것을 보았기에 애욕을 끊고 애욕을 끊기를 주장하는가?' 그러면서 아름답게 꾸민 여자 몸에서 즐거운 촉감을 느끼며 그 여자와 서로 즐기고 유희한다. 그는 이 법을 빠짐 없이 받고는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태어난다. 그제야 그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저 사문과 범지는 애욕에서 이 미래의 두려움과 이 재환을 보았으므로 애욕을 끊고 애욕을 끊으라고 시설하였구나. 우리는 애욕을 시설하고, 애욕을 다투고, 애욕을 인연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극심한 고통과 매우 심한 괴로움을 받는 것이다.' 마치 여름날 몹시 뜨거운 한낮에 등나무나 칡의 열매가 햇볕에 바짝 말라 씨가 퉁겨져 사라(娑羅)나무 밑에 떨어지는 것과 같다. 그 때 그 사라나무의 신이 그 때문에 두려워하게 되면 그 나무신의 인근 종자촌(種子村)이나 신촌(神村)에 사는 친척과 친구들, 즉 온갖 곡식과 약초와 나무의 신들은 그 종자에서 미래에 두려움과 재환이 있을 것을 보고, 곧 그 나무신을 찾아가 위로하여 말한다. '나무신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나무신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지금 이 종자는 혹은 사슴에게 먹히기도 하고, 공작에게 먹히기도 하며, 혹은 바람에 날려 가기도 하고, 마을 사람들이 지른 불에 타기도 하며, 혹은 들불에 타기도 하고, 혹은 부서져서 종자노릇을 못하게 되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나무신이여, 너는 안전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이 종자가 사슴에게 먹히지도 않고, 공작에게 먹히지도 않으며, 바람에 날려 가지도 않고, 마을 사람들이 지른 불에 타지도 않으며, 들불에 타지도 않고, 또 부서져서 종자노릇을 못하지도 않는다고 하자. 그러면 이 종자는 깨어지지도 않았고, 구멍이 뚫리지도 않았으며, 쪼개지지도 않았고, 바람이나 비나 햇볕에 상하지도 않았으므로 큰비를 만나 젖게 되면 곧 빠른 속도로 자라날 것이다.' 그 나무신은 이렇게 생각한다. '저 변방의 종자촌이나 신촌에 사는 친척과 친구들, 즉 온갖 곡식과 약초와 나무의 신들은 종자에서 미래의 어떤 두려움과 어떤 재환이 있는 것을 보았기에 내게 와서 이렇게 말했을까? (나무신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나무신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이 종자는 혹 사슴에게 먹히기도 하고, 혹은 공작에게 먹히기도 하며, 혹은 바람에 날려 가기도 하고, 혹은 마을 사람들이 지른 불에 타기도 하며, 혹은 들불에 타기도 하고, 혹은 부서져서 종자노릇을 못하게 되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나무신이여, 너는 안전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이 종자가 사슴에게 먹히지도 않고, 공작에게 먹히지도 않으며, 바람에 날려 가지도 않고, 마을 사람들이 지른 불에 타지도 않으며, 들불에 타지도 않고, 또한 부서져서 종자노릇을 못하지도 않는다고 하자. 그러면 이 종자는 깨어지지도 않았고, 구멍나지도 않았으며, 또한 쪼개지지도 않았고, 바람이나 비나 햇볕에 상하지도 않았으므로 큰비를 만나 젖게 되면 곧 빠른 속도로 자라날 것이다.)' 그 씨앗에서 싹이 터 줄기와 가지와 잎사귀가 생기고 부드러운 마디가 생겨 몸에 부딪치면 사라나무는 기뻐한다. 이 줄기와 가지와 잎사귀가 생기고 부드러운 마디를 이루어 몸에 부딪치면 사라나무는 기뻐하며 즐거운 촉감을 느낀다. 그러나 덩굴은 나무에 의지하여 큰 가지와 마디와 잎사귀를 이루어 그 나무를 둘러싸고 그 위를 뒤덮는다. 온통 뒤덮이고 나면 그때서야 그 나무신은 이렇게 생각한다. '저 인근 종자촌이나 신촌에 사는 친척과 친구들, 즉 온갖 곡식과 약초와 나무의 신들은 종자에서 이 미래의 두려움과 이 재환을 보았기 때문에 나를 찾아와 위로하며 이렇게 말했었구나. (나무신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나무신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이 종자는 혹 사슴에게 먹히기도 하고, 혹은 공작에게 먹히기도 하며. 혹은 바람에 날려 가기도 하고, 혹은 마을 사람들이 지른 불에 타기도 하며, 혹은 들불에 타기도 하고, 혹은 부서져서 종자노릇을 못하게 되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나무신이여, 너는 안전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이 종자가 사슴에게 먹히지도 않고, 공작에게도 먹히지도 않으며, 바람에도 날려 가지도 않고, 마을 사람들이 지른 불에 타지도 않으며, 들불에도 타지도 않고, 또 부서져서 종자노릇을 못하게 되지도 않는다고 하자. 이 종자는 깨어지지도 않았고, 구멍이 나지도 않았으며, 또한 쪼개지지도 않았고, 바람이나 비나 햇볕에 상해를 입지도 않았다. 따라서 큰비를 맞아 촉촉해지면 곧 빠른 속도로 싹이 자라날 것이다.) 나는 종자를 말미암고 종자를 반연하였기 때문에 이 극심한 고통과 매우 심한 괴로움을 받는구나.' 이와 같이 어떤 사문 범지는 아름답게 장식한 여자와 서로 즐기면서 이렇게 말한다. '저 사문과 범지들은 애욕에서 미래의 어떤 두려움과 어떤 재환이 있는 것을 보았기에 욕심을 끊고, 욕심을 끊으라고 시설(施設)하는가?' 그들은 아름답게 치장한 여자 몸에서 기분 좋은 촉감을 느껴 그 여자와 서로 즐기고 유희한다. 그들은 이 법을 빠짐 없이 받고는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태어난다. 그제야 그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저 사문과 범지들은 애욕에서 이 미래의 두려움과 재환을 보았기 때문에 애욕을 끊고, 애욕을 끊으라고 시설하였구나. 우리는 애욕을 말미암고, 애욕을 다투고, 애욕을 인연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극심한 고통과 매우 심한 괴로움을 받는 것이다.' 이상의 법을 현재는 즐겁지만 미래에는 괴로움의 과보를 받는 수법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현재는 괴롭지만 미래에는 즐거운 과보를 받는 수법(受法)인가? 혹 어떤 사람에게는 타고난 무겁고 탁한 탐욕 무겁고 탁한 성냄 무겁고 탁한 어리석음이 있다. 그는 자주 욕심을 따라 괴로움을 받고 걱정하고 슬퍼하며, 자주 성내는 마음과 어리석은 마음을 따라 괴로움을 받고 걱정하고 슬퍼한다. 그는 그 괴로움과 걱정 때문에 한평생 범행을 닦고, 눈물을 흘리면서 울기까지 한다. 그는 이 법을 받아 완전히 이루고는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반드시 좋은 곳으로 올라가 하늘에 태어난다. 이것을 현재는 괴롭지만 미래에는 즐거운 과보를 받는 수법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현재도 괴롭고, 미래에도 또한 괴로운 과보를 받는 수법(受法)인가? 어떤 사문 범지는 옷을 입지 않고 맨몸이 되어, 혹은 손으로 옷을 삼기도 하고, 혹은 나뭇잎으로 옷을 삼기도 하며, 혹은 구슬로 옷을 삼기도 한다. 혹은 병으로 물을 뜨지 않기도 하고, 혹은 두레박으로 물을 뜨지 않기도 한다. 칼이나 몽둥이를 사용해서 빼앗은 음식은 먹지 않고, 남을 속여서 얻은 음식도 먹지 않는다. 직접 찾아가지도 않고, 소식을 보내지도 않는다. 존자를 오게 하지도 않고, 존자를 좋게 여기지도 않으며, 존자를 머물게 하지도 않는다. 만일 둘이서 음식을 먹으면 그 가운데 끼어서 먹지 않고, 아이 밴 여자가 있는 집 음식은 먹지 않으며, 개를 기르는 집 음식은 먹지 않고, 똥파리가 날아다니는 집 음식은 먹지 않는다. 생선을 먹지 않고, 고기도 먹지 않으며, 술을 마시지 않고, 더러운 물도 마시지 않으며, 혹은 물을 전혀 마시지 않거나 마시지 않는 행을 배운다. 혹은 한 입만 먹고 그 한 입으로 만족하기도 하고, 혹은 2 3 4 내지 일곱 입을 먹고 일곱 입으로 만족하기도 한다. 혹은 한 집에서 얻은 음식을 먹고 한 번 얻은 것으로 만족하기도 하며, 혹은 2 3 4 내지 일곱 집에서 음식을 얻고 일곱 집에서 얻은 음식으로 만족기도 한다. 혹은 하루에 한 끼를 먹고 한 끼를 먹는 것으로 만족기도 하며, 혹은 2 3 4 5 6 7일이나 반 달, 한 달에 한 끼를 먹고 그 한 끼로 만족하기도 한다. 혹은 들판의 채소를 먹기도 하고, 혹은 피[?子]를 먹기도 하며, 혹은 메기장을 먹기도 하고, 혹은 보리 기울을 먹기도 하며, 혹은 두두라(頭頭邏)9)로 지은 밥을 먹기도 하고, 혹은 거친 밥을 먹기도 한다. 혹은 일 없는 곳으로 가서 일 없이 지내기도 하며, 혹은 나무뿌리를 먹기도 하고, 혹은 나무열매를 먹기도 하며, 혹은 저절로 떨어진 과일을 먹기도 한다. 혹은 여러 조각의 천을 이어 만든 옷을 입기도 하고, 혹은 털옷을 입기도 하며, 혹은 두사(頭舍)옷을 입기도 하고, 혹은 털두사옷을 입기도 하며, 혹은 통가죽옷을 입기도 하고, 혹은 구멍난 가죽옷을 입기도 하며, 혹은 완전히 너덜거리는 가죽옷을 입기도 한다. 혹은 머리를 흩트리기도 하고, 혹은 머리를 땋기도 하며, 혹은 머리를 흐트러지게 땋기도 하며, 혹은 머리를 깎기도 하고, 혹은 수염을 깎기도 하고, 혹은 수염과 머리를 깎기도 하며, 혹은 머리를 뽑기도 하고, 혹은 수염을 뽑기도 하며, 혹은 수염과 머리를 뽑기도 한다. 혹은 섰기만 하기도 하고, 혹은 앉기만 하기도 하며, 혹은 앉은걸음을 배기도 한다. 혹은 가시덤불에 누워 가시덤불로 평상을 삼기도 하고, 풀 위에 누워 풀로 평상을 삼기도 한다. 혹은 물을 섬겨 밤낮 손으로 물을 긷기도 하고, 혹은 불을 섬겨 밤이 새도록 불을 피우기도 하며, 혹은 해와 달을 섬겨 높고 큰 신이라 하며 그를 향해 합장기도 한다. 이러한 무리들은 한량없는 괴로움을 받고 번거롭고 갑갑한 행을 배운다. 그들은 이 법을 받아 완성하고는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반드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태어난다. 이런 것들을 현재도 괴롭고 미래에도 또한 괴로움의 과보를 받는 수법이라 하느니라. 9) 두두라(頭頭邏, daddula)는 쌀의 일종이다. 어떤 것이 현재도 즐겁고 미래에도 또한 즐거운 과보를 받는 수법(受法)인가? 어떤 사람은 애초부터 무겁고 탁한 탐욕 무겁고 탁한 성냄 무겁고 탁한 어리석음이 없다. 그는 자주 욕심을 따르지 않아 괴로움과 걱정과 슬픔을 받지 않으며, 자주 성내는 마음과 어리석은 마음을 따르지 않아 괴로움과 걱정과 슬픔을 받지 않는다. 그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한평생 범행을 닦아 그 마음이 즐겁고 기쁘다. 그는 이 법을 받아 완전히 이룬 뒤에 다섯 가지 하분결(下分結)이 다하고, 저곳에 화생하여 반열반(般涅槃)에 들어가 물러나지 않는 법을 얻어 이 세상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이것을 현재도 즐겁고, 미래에도 즐거운 과보를 받는 수법이라 한다. 따라서 세간에는 진실로 이 네 가지 수법(受法)이 있다고 말한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수법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1,583자이다.]
‹처음  이전 1 2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