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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종곱새 지종~ 댓글:  조회:1874  추천:4  2011-12-18
  외국사람과 친한지 얼마 되지 않아 외국에 간지 몇달도 되지 않아 교회에 다닌지 얼마되지 않아 찬송가를 부르고 다니는 고향친구들, 그리고 무슨 연구회에 다니더니면 황당하고도 과학적 근거도 없는 이론을 풀고 다니는 친구들을 보고 이글을 여기에 올립니다. 애야 ! 에미다. 못난 에미랄지라도 네에미다. 옛말에 못사는 집에 식구가 많다고 우리집에는 너무 식구가 많았고  너무 가난하고 말끔하였다. 나는 그래도   너희 형제들을 공동히 잘살게 하려고 똑같이 나눠먹고 나눠입히고 하면서 너희들을 잘 키우려고 애를쓰고 악을 쓰던 에미라는 말이다. 네가, 네가, 네가 어쩌면 그렇게 ... 네말을 듣고 나는 기막혀 말도 나오지 않는구나.너의 말을 듣고 나는 가난이 죄가 아니라는 말을 믿지 못하겠구나. 어쩌면 나의죄는 가난이였던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네가 나를 싫어하는 원인도 그죄가 없다는 가난이 아니라고 말할수 있을가?!  내가 부자였더라면 네가 지금 나를 버릴수가 있을가?! 내가 부자였더라면 네가 정녕 친에미를 찾어 간다고 떠들고 있을수 있을가?! 넌 어릴 때부터 새하얀 대복에 붉디붉은넥타이를 펄럭이며 목청도 명량하게 소리높이 노래를 불렀지... "우리는 공산주의 후계자 붉은넥타이 가슴에서 팔랑이네." 나는 그때 학교를 다니는 네가 얼마나 귀엽고 얼마나 기특하고 얼마나 갸륵하였던지... 더욱이 네가 학교에서 랑랑하게 글을 읽을때 그모습 아직도 내눈앞에 선하고 내귀에는 네가 읽던 그 첫페이지 첫장이 아직도 메아리 치는듯하고나.  "나는 나의 조국을 사랑한다. 우리의 조국은 중화인민 공화국이다." 그리고 좀 더 크자 너는 또 그런 노래를 불렀지 너희 형님누나들이 지은 노래를 말이다. "약진이다 약진, 약진이다 약진 약진 약진 대약진 황하 장강 뛰여넘어 ........" 너희 형제들은 항상 힘찬 노래를 지어서 전국에 퍼뜨렸고 그노래는 너의 고향에서만 불러진 것이 아니라 전국에서도 수상을 하지 않았는냐! 너희는 그렇게 나의 말을 잘 들었고 또 귀담아 들었으며 심지어 내가 말을 꺼내기 전에 너는 내 눈치를 알아 미리 준비하여둔 것도 같았다. 그래서 너는 너희형제중 항상 나의 칭찬을 독차지하지 않았니? 그리고 나 또한 너에게 칭찬에 인색하지 않았고... 너는 내가 가리키는 혁명의 큰길로 삼대혁명붉은기를 높이 쳐들고 힘드는줄도 모르고 힘차게 달렸지?! 이에미는 항상 네가 자랑스러웠고..네가 대견 스러웠지... 그리고 네가 믿음직 하였었다. "갈래갈래 가는길은 천만갈래 여도 행복으로 가는길은 인민공사뿐이라네" 너는 이런 멋진 노래를, 아름다운 노래를, 기백이 넘치는 혁명의 노래를  지어 부르면서 ... 인민공사 넓은길로 활개쳐 나갔지. 그리고 너는 항상 그 구사회중국의 생활을 잊지 않았고 항상 그옛날 그 지주부농.그리고 자본가들의 착취와압박을 잊지 않으며. 회억대비를 하지 않았느냐! "따라 배우자 뢰봉을 당과혁명에 충실하며 ........... 지난날을 잊지 않으며 계급투쟁 영원히 하리" 너는 항상 계급투쟁을 가슴에 아로새기고 "일체 반동파는 저절로 역사의 무대에서 물러나지 않는다"고 부단한 혁명을 끝까지 견지한다고 웨치고 또 웨쳤지 않았더냐! 그젯날 너희들의 노래는 전국 방방곡곡에 울려 퍼지였으며. 너희들은 전국의 모범이 되기에 손색이 없었지... 휴~  그런데 오늘 너는 어쩌면 그렇게 ... 너 친에미한테 돈벌러 가더니만 그렇게 변해 버리는구나. 정말 저번에도 말했다? "네에미 쌀독에는 인심이 나는것이 아니라 좀이 나는 같구나." 네에미 너를 낳았다는 그에미네 쌀독이 말이다. 세상에 전례없는  대혁명때에도 너는 항상 침식을 잃고 추호도 게으름없이 밤이면 대자보를 써서 아침이면 일찍히 일어나 길거리에 내붙히며 대자보에서는 항상 민족이고 조국이고 찾아 보자해도 찾을수도 없었고 다만 세계혁명과 공산주의, 그리고 전인류를 위하여 너희들은 민족도 조국도 친인척도 념두에도 두지 않았고, 그리고 오직 중국혁명을 위하여 더 나아가서는 아시아혁명을 위하여 또 더크게는 전 인류를 위하여 ... 대공무사 공사분명하지 않았더냐 ?! 너는 항상 혁명을 끝까지 진행하겠다고 맹세하고 맹세하고 또 맹세 하였지 않는냐?! 너희 맹세 소리는 땅을 진동하였고 하늘에서 메아리 치였으며 바다에 울려 퍼지였다. 그런데 네가 네에미를 찾아 떠나간지 한달도 안되여 그렇게 하느님의 설교에 미혹되더니 그렇게 변해 버리는냐?! 그래  너는 진정 공산교육이 싫었더냐 ? 아니면 입으로? 혁명을 웨치였는냐? 아니면 너는 본래  타고난 종곱새 였더냐? 그리고 너희네가 지은 연변인민 공산당을 노래하네는 연변의 명곡으로 일등상을  받았고 당시 연변인민들 모두가 흥겹게 그리고 속으로 우러러 부르지 않았더냐 ?!거기에 어깨춤이 들썩들썩 저절로 춤도 추지 않았더냐?! 그리고 이노래는 당시 연변의 명곡으로 손색이 없었고 연변사람이면 남녀노소 불문하고  이노래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그리고,그리고 이노래는 영광스럽게 전국소수민족경연대회때마다 이노래는 전국의 명곡으로 9백 60만 평방메터의 창공에도 울려 퍼지지 않았더냐?! "장백에서 북경성이 천리만리 멀다하랴 연변인민 한마음으로 공산당을 노래하네. 송이송이 해바라기 태양을 따라 돌고 연변인민 한마음으로 공산당에 충성하네." 그런 네가 어쩌면 너희 친에미를 만나러 가더니 네가 부르던 혁명가곡은 다 잊어버리고 언제부터 하느님의 찬송가가 너희를 매료 하였더냐 ?! 너는 진정 하느님의 설교가 좋았더냐 ? 아니면 목사님의 감언리설에 네가 가슴으로부터 감격되여 네코마루가 찡하여  지였더냐? 아니면 네가슴이 울렁거려 눈물샘이 솟았더냐 ?  아니면 ??? 옛날에 돈에 침 뱉는늠 없다고는 하지만 ... 어쩌면 너는 그돈 개들도 안먹는다는 그돈에 부끄러움도 자존심도 버리고 그렇게 빨리, 아니 벌써 등이 휘여 곱새등이 다 되였구나 ? 種곱새처럼 말이다. 그제날, 너희들은 항상 이에미에 충성에 충성을 맹세하였으며 너는 항상 고성방가 하였지 ! "공산당이 없으면 새중국이 없고 공산당이 없으면 곧 새중국이 없네. .................. 공산당은 백성을 위하네 공산당은 인민의 구성이라네" 그리고 너는 공산당의 유력한 후계자 공청단에 가입하려고 그렇게 굳은 결심에 맹세까지 더해 하면서 신청서를 써 올리고 결심서를 받치였고 또 당에 가입하려고 그렇게 사상회보도 하여가면서 당의 뒤를 졸졸 따라 다니던 네가 아니였냐? 그러던 네가 너희 그 잘난 에미를 보러 간다고 떠나더니만 어쩌면 그렇게 변해 버리는냐? 어쩌면 그렇게 빨리,그하느님의 아들이 되여 버렸더냐! 어쩌면 그렇게 하루 아침에 하느님의 딸이 되여 버렸는냐? 어떻게 그렇게 빨리 교회에 다닌지 한달도 되지 않아 하느님의 충실한 신도가 되여 버렸는냐?! 오~ 하는님 맙소사.하느님을 믿지 않는 이 에미도 너무 네일이 기막히니 저절로 하느님을 부르게 되는구나. "중이 강을 건널적엔 나미아미타불 하다가 강에 빠지면 하느님 맙소사 한다"더만 ... 이에미도 너의 그 기막힌 스피드반역에 하느님이 저절로 나오는구나. 그옛날 네가, 네가 열심히 부르던 노래는 아직도 이에미의 귀에서 메아리치는듯 하지만  그것이 다 거짓이였는냐?! 아니면 연극이 였는냐 ?! 아니면 너는 진정 타고난 그.그,그, 종곱새였더냐 ?! 너는 목사님의 설교에 반했더냐 ? 하느님의 설교에 미쳐 버렸더냐 ?? 아니면 돈, 그 돈소리에 머리가 돌았더냐.??? 나는 그래도 네가 돈벌러 너희네 친에미를 찾어 간다고 하니, 너와 영원히  헤여지는 것은 아닌것 같아서 크게 말리지 않았다만 요즘은 조금이나마 후회되는 마음이 없다고는 못하겠다. 진정, 내말은 진정이다. 진정 네에미가 너를 받아준다면 돌아오지 않아도 나는 할말은 없다. 아쉬운 마음 그지 없지만... 그러나 네에미는 네가 그렇게 애원하였어도 네가 그렇게 침식까지 전페하고 단식까지 하였어도 언제 너를 받아 주겠다고 하더냐? 그리고 네가 그렇게 감지덕지하며 미운것이 하나도 없으며 욕한번 하지 않았다는데... 데모는 왜하뇨.단식은 왜하뇨?그래 원망이 없는 데모가 어디 있으며 불만이 없는 단식도 있다더냐?! 얘야! 너는 본래 천성이 너무 착하여 남들의 말에 그렇게 귀가 얕아서 그리고 순진하고 때묻지 않아서 남들의 말을 감히 거역하거나 반대 의견을 표달하지 못한것이 아닌가 싶구나. 그리고 그것이 너의 장점이자 약점인것을 나도 잘 안다. 네가 진정 네에미 품에 다시 안기고 싶다면 나는 굳히 다시 말리지 않겠다만, 다만 다시 이에미 농사가 풍년이 드는 그때 ,그때엔 또다시 이에미를 찾아  놀러라도 오려무나.그리고 고향엔 올농사 또 풍년이 들었구나.요즘은 년년이 풍년이 드는구나 ! 오! 나의 두귀에는 아직도 네가 부르던 노래가사들이 나의 두귀에 메아리 치는구나 "일어나라 굶주린 노예  전세계 노고 대중들 낡은 세계 짓부셔 버리고 우리는 천하의 주인이 되자 이는 판가리 싸움이니 단결하여 내일로 인터내쇼나얼 꼭 실현하자" 이노래가 바로 네가 제일 즐겨 부른 노래였지, 그러나 너는 이제는 벌써 그힘차고 박력있는 노래들은 다 잊어 버리고 찬송가를 부르는구나. 우수에 젖은듯 잠에 취한듯 두눈을 지긋이 감고 부르는 찬송가소리 어쩐지 애처로워 보이고 가련하기도 하고 어딘가 모르게 불쌍도 하고나. 저멀리 교회의 종소리가 덩~덩~  울리는 가운데... 모름지기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섞여 있는듯도 하고나. 그옛날 네에미 나라에 그유명한 에밀레 종소리처럼 에밀레 에밀레 하는 소리가 말이다. 일처리를 잘 하여라! 먼후날 고향에 에밀레 종소리가 다시 울리지 않기를 바라면 말이다. 에밀레 ~ 에밀레~        
16    요사한 고급동물 댓글:  조회:1927  추천:0  2011-11-23
 우리민족은 옛적부터 개고기를 아주 즐겨 먹었다.   개고기를 어찌나 좋아하였던지 개고기는 여름철 최고의 보신용으로 심지어는 삼복철에 개고기는 더위를 물리치는 제일 좋은 보약이라고까지 한다.   그러나 쌀독에서 인심난다는 말이 맞는지 아니면 세월이 조금 윤택해져서 그런지 요즘은 개를 애완용으로 기르는 인간들이 나날이 늘어 나면서 개를 잡아 먹는 인간은 이젠 인간 취급도 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전에는 제집 앞에서 몇 년간 집 지키고 주인보고 꼬리 젓던 개도 서슴없이 잡아 먹고는 개트림?!을 껄~껄 하고는 그대로 술자리에서 저가락장단 맞추어 흥에 겨워 노래 부르고 춤까지 추었었다.   일전에 동불사에 있는 내 친구는 내가 가을철에 놀러 갔더니 아침 조깅 삼아 마을 둘러 보려 일찍 일어나 친구와 함께 삽작문을 나서는데 친구가 "잠깐!"하더니 문앞에서 우리보고 꼬리 저으며 아양떨고 있는 개를 바줄에 매서 끌고 가길래 난 이상했다.   아니? 개를 그대로 불러도 ... 아니면 휘파람 하나 휘~ ㅎ하여도 잘만 따라 오는 개를 왜 바줄로 매서 끌고 가는가?!고 이상하게 생각하는데 그대로 개를 얼려서 목을 매서 뒤뜰에 있는 배나무 큰 가지에 그대로 달아 매 놓고는 집안에 대고 아버지한테“아버지달아 놓았습꾸마” 하고 큰 소리 치는데 ... 난 그 배나무에 목을 매달린 개를 보고 어찌나 끔찍하게 무서웠던지…   그것도 잠깐, 그보다 아침조킹 삼아 촌마을을 한바퀴 돌아보고 집에 들어서니 친구 아버지 "재우 올라 가라" 재촉하더니 우리앞에 김이 문문나는 시뻘건 개간을 도마에 저며 놓았는데,.. 난 비위가 약해서 정말 저가락이 개간에 닫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친구와 친구 아버지는 칼 도마채로 하얗게 튀당한 개사체! 뻘건 혀를 가로 물고 있는 개다가리! 큰함지에 담아 있는 개내장! 옆에서 김이 모락모락나는 개간에 큼직한 돌소금을 칼등으로 꾹꾹 눌러서 조금 보드랍게 짛더니 거기에 아직도 팔닥거리는 듯한 개간을 소금에 뚝뚝 눌러 찍어 소주를 곁들어 맛나게 먹더라.   나도 비록 개간은 비위가 맞지 않아 저가락질 못하였었지만 그개고기는 어찌나 맛이 있던지 ... 지금도 그개고기가 내가 평생 먹어 본 개고기중 최고였지 않는가 싶다. 정말 말 그대로 시골에서 기르는오리지널 똥개여서 그런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당시엔 그렇게 배가 부를적도 아니여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때 그사건이 인상이 깊어서 난 그친구만 만나면 그개고기 이야기를 꺼내곤 하였고 나의 동창들을 만나면 나의 그 농촌친구를 "내가 놀러 가니 개를 잡아주더라"고 통이 크고 씀씀이가 사내다운 친구라고 항상 자랑하곤 하였었다.   그런데 그런 친구도 외국에 가서 몇 년 있더니 이젠 개고기를 먹지도 않는다고 한다.   전번에 그집에 놀러갔더니 여우새끼 같은 개새끼 한마리가 그친구 무릎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던데 술판 시작부터 술판이 끊날때까지 술상에서 그개를 안고 술을먹더니 술상이 파해서 내가 일어나 돌아오는데 나를 바래 주면서 문밖까지 그 여우새끼 같은개를 안고 나오더라...   참, 그 머지 않는 80년대 까지만 해도 아침에 개를 바줄에 끌고가다가 번개같이 배나무에 달아놓고 "아버지~배나무에 달아 놓았습꾸마"하던 그, 그 죽어 느러진개 사체옆! 삶은 개대가리 옆에서 지저분하고 울퉁불퉁 고불고불한 개밸이 담겨 있는 함지박 옆에서 김이 문문나는 시뻘건 피가 떨어지는 듯하는 개간을 소금에 저며 먹던 그가, 이젠 개고기도 먹지 않는다고 한다. 거기에 "야 ! 인간이 어떻게 개고기를 먹냐?! "하면서 ..   인간은 이렇게 간사하다. 배가 조금 부르면 이렇게 간사해지는가부다. 정말 돈도 많고 양심이 좋아졌다고한다면 그개를 안고 다니는 돈이면 그개를 기르고 먹이는 돈이면 북한 어린이들에게 과자하나 사탕한알이라도 더 지원했으면 좋겠건만.   저렇게 여우새끼 같은 개새끼를 죽도록 사랑하다가도 그 어느날 수재가 들거나 흉년이 들어 먹을것이 없어진다면 제일 처음에 품안에 안고 다닐 그개새끼를 잡아 먹을것이며 그런 개새끼같은 먹을거리가 없어진다면 사람도 잡아 인육도 먹는것이 우리 인간이다.   인간 우리 인간은 정말 얼마나 요사하고 간사하며 치사한가?! 이세상에 그어느 동물보다 악독하며 요사하며 간사하고 치사한 고급동물이 바로 우리 인간이 아닐까!      
15    아이러니한 흉보기 댓글:  조회:2154  추천:0  2011-11-18
남의 말, 뒤에서 남의 말을 하는 것을 제일 미워하신다는 분, 우리 협회에는 그런 분이 있었다.   어느날,나하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하는말: "xxx 그분은 왜 뒤에서 남의 말을 하기 그렇게 좋아하는지 모르겠소?! 어제도 누구누구 어떠어떴소 ? 하고 뒤에서 말을 하는데 ... 난, 참! 왜 그렇게 남의 말을 뒤에서 하기 좋아 하는지 모르겠소?!" 우리 조선족들 말이 아주 많다. 난 한국사람들만 말이 많은가 했더니 우리 조선족들도 요즘은 한국분들 보다 더 하면 더했지 ... 한국분들을 빰칠 정도로 말들이 많다. 특히 요즘은 한국에서 배워와서 무슨 협회회 무슨 모임이요 연구회요 ... 많기도 한데 모두들 말들이 많다. 나도 몇개 협회를 다니고 있는데 정말 하나도 마음에 드는것이 없다 재미로 다닌다기에는 너무 말들이 많고 억지로 다니기에는 마음이 편치가 않고 신체 단련한다기에는 가슴속에 스트레스를 더하는 것 같다. 그러던 중 이런 사람을 만나서 이런 유머를 만들었다. 제일 남의 흉을 보지 않는 다는 사람, 남의 뒷말을 하는 것을 제일 미워하신다는 분이 나한테 이런 뒷말을 하는데 정말 아이러니 하다.         
14    市建&낭비 댓글:  조회:1782  추천:1  2011-11-04
드르릉 거리는 중장비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서 창밖을 내다 보니 대형포크레인 하나가 강둑에 난간, 콩크리트 난간들의 뿌리를 뽑고 있었다.  아니!? 불과 몇달전에 새로 도색을 하였던 것을 저렇게 비참하게 뿌리를 뽑다니 ... 공신에 사시는 노인들은 지나 가다 오다가 하면서 또 욕설을 느려 놓는다. 아니 이렇게 뽑을 거면 전번에 도색은 왜 새로 해 가지고 전번날에도 난간 쇠사슬을 다시 용접하고 수리하더만 왜? 또 이렇게 뽑아 버리지? 참 ! 이렇게 우리백성들의 세금을 낭비하고 있는 관료들이 언제쯤 정신 차릴가? 이젠 백성들도 옛날 시민들과 달리 어떤 것이 낭비고 어떤 것이 합리하고 어떤 것을 다 잘 알고 있었다. 모두들 아침이면 그들이 중장비로 기둥을 뽑아 버리는 것을 보면서 의논이 분분하더니 급기에 또 많은 욕설들이 아침부터 시작된다. 저기 저 철봉대와쌍봉대를 세운거 좀 보소!아유 이 거리표식판에 글씨를 좀 보소! 저기 앞 거리엔 가로수를 일년에 한번씩 바꾸는 것 같구먼 ...저 앞에 건물은 언제나 마무리를 한다오? 정말 시민들은 의견이 분분하였다. 이런 것을 어디에 누가 말해야 하는데 하는데 하면서도 아직도 고쳐지지 않는 것을 보면 누가 앞장서서 말하는 사람은 없는 가부다 모두들 뒤에서는 벼라별 욕설이 난무하고 탓하고 비웃지만 ... 정작 시정에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시정건설에는 항상 백년대계로 질량제일이란 구호를 잊지 말고 장원한 관점으로 원대한 목표를 세우고 밀고 나가야 하는데 이건 머 시정간부를 바꾸면 가로수도 바꾸고 길거리에 말없이 멋지게 서있는 난간도 뿌리를 뽑는 지꺼리나 하는 것이 아닌지도 의심이 된다.  정말 새로 당선된 시정간부들은 당선되자부터 저런  잘 서있는 난간 뿌리를 뽑지말고 시정부에 불합리한 시정건설에 쓰는 경비를 낭비하는 관료주의 비리나 현상이나 뿌리를 뽑아 버렸으면 속 이 시원하겠다. 언제면 고향에 시정간부들이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가?!
13    새로운 계급투쟁! 댓글:  조회:2307  추천:2  2011-10-26
중국에 모택동이 말씀하였던가?  “반란에 도리가 있다”고 ... 이한마디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각종 파들이 어찌나 많았던지 ... 아직도 그때 생각하면 지긋지긋하다. 물론 도리가 없는 반란은 없겠지만... 하여간 그때문에 중국에서는 숱한 문물들을 때려 부수고 불사르고 ... 하였었다. “까닭없는 무덤이 없다”고 도리가 없는 반란도 없겠다고 할수가 있다. 그때는 노래도 없었고 어쩌다 지은 노래들을 보면 모두가 한결같이 북경을 노래하지 않으면 모택동을 노래했고 ... 노래가사에 사랑이란 두글자가 들어갔다하면 무조건 독초로 분류되지 않으면 황색으로 시들어 버리군 했다. 그때 우리 반란파들이 즐겨 부른 노래 하나 있었으니... "혁명은 손님을 접대하거나 밥을 먹는 것이 아니며. 문장을 짓거나 수놓이를 하는것도 아니고. 혁명은 폭동이며 한계급이 다른 한계급을 뒤엎는 격렬한 행동이다. "라는 노래가사인데... 아마도 당시의 최고지시에 곡을 붙혀서 불렀던 것이다. 이노래는 당시의 반란파들의 군가나 다름이 없었다. 그렇다. 혁명은 폭동이며 ... 격렬한 행동이다. 그렇다면 요즘 자본주의 국가들인 미국이나 유럽에서 일어나는 시위나 파업은 무엇인가. 그래 그들이 하는 시위나 파업이 손님을 접대하거나 ... 문장을 짓거나 수놓이를 하는 것이고 격렬한 행동이 아니란 말인가. 격렬한 행동은 폭동이며 다른 계급을 뒤엎자는 혁명이다. 난 요즘 자본주의국가들의 이런 파격적인 집체 행동을 보고 이 노래가 생각났다. 그리고 그당시 중국에 암탉이 해를 치던 세상에 전례없는 문화대혁명때 그 최고 지시가 떠올랐다. "반란에 도리가 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의 반란에는 무슨 도리가 있는가. 더 쉽게 벌고 더많이 먹겠다는것이고 더 잘 먹고 더 잘 살겠다는 것이다. 그들의 불만은 1%에 있는데 그것이 바로 빈부차이에 대한 불만이다. 빈부차이는 정확히 말하면 자본주의제도하에서 불가피면적인 필연적인 산물이다. 위대한 도사 모택동이 일찍 말씀하신 "착취가 있는곳에는 투쟁이 있고 압박이 있는곳에는 반항이 있다"는 모택동의 최고 지시가 千 眞 萬 確 천진만확 의 진리라는 것을 입증했다. 착취가 없다면 그들이 불만이 존재하지 않을테고 압박이 없었다면 반항이 생겼을가.천부당 만부당하다. 압박이 있고 착취가 있는곳에 반항은 불가피한 것이며 파업은 필연적인 것이다. 이것은 자본주의사회는 ; 모든 인간은 자신이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며 또 그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가하는것"이 자본주의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파업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그리고 파도식으로 하나가 일어나고 하나가 잦아들고 하나가 잦아들면 또 새로운 파도가 일어나는 것이다. 더욱이 우리인간들의 인생은 불만족의 계속이기 때문에 오늘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고 허락한다면 명년이나 후에는 또 다른 요구가 생기고 다른 욕구가 불타 오른다. 그렇다면 이런 모순은 어느때 없어지는가? 그것도 간단하다. 더이상 지배자와 피지배자란 계급이 없는 그때 ,계급이나 계급의 모순이 없는 그때, 전국민의 노고대중이 주인이 되는 그때, 바로 그때에 이런 파업은 영원히 영원히 다시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그사회가 바로 빈부차이가 없는 사회 계급이 없는 공산주의 사회가 아닐가 싶다. 그렇다면 그어느날 이찬란한 꿈! 지구촌 99%가 갈망하는 공산주의 사회가 진정 실현되지 않을가 ?! 꿈이였다고 생각하기엔 너무나 미련이 남아 돌아선다고 생각하기엔 너무나 멀어진 그대 ... ...
12    双욕을 먹어도 싸다 댓글:  조회:2584  추천:0  2011-09-20
내가 외국에 나가니 한국분들은 만만디 중국이라고 항상 비웃고 그랬다. 나는 그래도  중국에서 태여 난지라 그들이 그런말 할 때마다 난 그다지 달갑지 않아하였지만 오늘 내가 고향에 돌아와 보니 정말 만만디는 만만디였다. 세상에 어느때 부터 닦고 있다고 하는 이란 쪽에 고속도로는 아직도 먼지가 풀풀 나고 ... 집을 지은지 삼년이 넘는다고 하는 건물들도 아직도 마무리가 되지 않고 ... ... 어느때 부터 지었다는 하남다리는 이제야 불이 밝히고 ...... 부르하통하반에 울고 있는 두형제를 비웃어 쓴 기사를 올렸더니 강물에 돌 던진격이고 ... 그래도 이런 그런 만만디 보다 더 몹쓸것은 질량문제이다. 무엇을 만드나 질량이 차한 것이다. 전번날에는 부르하통하 삼거리에 있는 신호등이 또 어느 분이 밤중에 사고를 내였는지 부서져 있은지 한달여반에 겨우 신호등 기둥 같은 같은 것이 있기에 오메 이제야 신호등을 세우는가부다 고 하면서도 속으로 정말 만만디는 만만디다 고 한국사람들의 그옛날 비웃음 소리가 들리는 듯 하였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보니 그것은 한달전 망가진 신호등 기둥인것이 아니라 새로 세우는 거리표식이였다. 그렇다면 신호등은 언제 어느해에 세워질지 ... 감감무소식이다. 새로 세운 거리표식이라 여기는 무슨 거리인가 살펴 보았더니 이건 참 웃지도 울지도 못할 일이였다. "공시거리"라고 써 있는데 난 한참 머리를 갸웃 거렸다. 공시거리라 새로 거리명을  지었나 ... 하고 말이다. 드뎌 밑에 한어를 보고 알았다. 공신거리를 받침하나 빼놓고  간판을 잘못 썼던 것이였다. 공시거리라 참 소웃다 꾸레미 터질 일이다. 이런 도로 표식을 만들었으면 누가 검사라도 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머 급히 만드느라고 급해서? 헤덤베서 그랬다면 나도 이해는 하겠지만 이건 그런 간단한 것을 일주일이 거의 걸려 만든것이 그따위로 만들어서 달아 놓고 돈 받고 달아나 버렸는데 ... 이런 새 거리표식을 또 다시하라면 그늠들이 와서 또 손으로 쓱 받침하나  끝고 달아나면 이 거리표시는 또 병신이 되는 것이다. 태여나자 마자 병신된 거리표시가 또 언제까지 저길에 서 있을지 모르겠다. 아마 영원히 남지 않을까 싶다. 또 지나다니는 사람마다 욕설이 많다. 이건 또 어디서 만들었는가 시정부인가 아니면 양로단인가 이건 또 누가 만들었는가 한족인가 조선족인가 이건 또 누가 만들었는가 외지 사람인가부다. 고향에 대한 애착이 없다. 이건  또 어느  한족간부가 시켰다. 조선글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건 분명히 ... 전번날에는 삐걱 거리는 쌍봉대와철봉대 형제들을 욕하더니 이젠 또 거리표시를 더불어 쌍욕거리가 생겼다. 새로 선 도로 표식은 길량옆에서 오늘 아침부터 공신 삼거리에서 오고 가는 행인들의 쌍욕을 먹고 있다. 참 좀 검사라도 했으면 ... 일을 애들에게 맡겼으면 선생님처럼 꼭 시정부에서 나와서 검사를 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내가 어릴때 학교 선생님은 항상 시험칠때 마다 헤덤비지 말고 하나하나 꼼꼼히 착실히 검사하며 답을 적으라고 하였다. 그리고 시간이 남으면 꼭 검사를 하고 또 하고 시험시간이 끝나는 종소리가 울리면 시험지를 바치라고 시험때 마다 신신당부하였다. 거리표식을 외지사람들에게 시킨 간부동지는 정말 쌍욕을 먹어도 마땅하다.
11    부르하통하반에서 울고 있는 "두형제" 댓글:  조회:2445  추천:1  2011-09-02
고향에 오래만에 돌아 오니 고향은 변화는 정말 말그대로 천지개벽이였다. 그러나 주정배는 항상 "好事不说跑不了,坏事不说不得了" 원칙으로 문제점을 꼬집기 좋아한다. 전번에는 고향의 겨울 하늘에 너무 많은 연기가 보이기에 그대로 카메라를 들어서 샤타를 눌렀다. 사진이 꽤 괜찮게 나왔는지라 "연길시인가 했더니 연기시로구나 " 하고 풍자적인 제목을 유머스럽게 달아서 모 신문에 보냈더니 강물에 돌 던진격이였다. 하긴 ...밥통이 떨어질지도 모르는 일이니 감히 신문에 내지 못하는 것은 이해도 할만 하다. 하지만 이주정배는 자꾸만 이런 것들이 눈에 보이니 ... 저기 부르하통하 강반에 운동기구들도 많이 세워서 아침이면 운동하기도 편리 하다. 반갑게도 요즘 또 새기구들을 세웠던데 ... 일을 시켰으면 마무리를 잘 시키고 마무리를 하였다면 꼭 검사를 하여야 한다. 그런데 부르하통하반에 쌍봉과 철봉대를 가각 하나씩 새로 세웠는데 이건, 머 완전히 ... 일할때 감독은 몰라도 검사는 했어야 할 것이 아닌가?마지막 돈 주기전에는 꼭 험수란 것을 하고 합격되어야 돈을 지불하는 것이 마땅한것이다. 새로 세운 철봉과 쌍봉대를 보면 너무 기가 막혀서 욕도 나오지 않고 웃음만 나온다. 보는 사람마다 욕한다. 글쎄 시정부를 욕하는지 환경관리국을 욕하는지 ... 어디를 욕하는 지 나도 모를겠다. 어디서 만들었는지 하여간 만든 놈들을 욕하는 것이겠지만 내 생각에는 일을 시킨놈도 욕을 먹어도 싸겠다. 일을 시키고서 검사를 하지 않으니 이런 페단이 생기는 것이다. 이침이면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보면 한두마디 투덜 거리는 것을 보면 재미 있다. #어떤 새끼들이 일을 이렇게 하고 갔단 말이야 #일을 이렇게 하고 돈을 받았단 말인가 #아니 돈만 받으면 일을 대충해도 머 어디가서 잡을 수 있는가 #또 제 아들이나 친구들에게 한잔먹고 일거리를 주었을걸 ... #야 ~ 이건 정말 너무 한심하다. 야 정말 대충 검사라도 해야지 ... ㅉㅉㅉㅉㅉ ... ... 아침마다 부르하통하 강변에서 시민들의 욕을 듣고 있는 철봉대와 쌍봉대 형제는 오늘도 둘이서 자신들을 욕하는 시민들에게 이렇게 말한는듯 "삐~삐걱 ~ 사고 나도 죽어도 우리는 몰라요." "삐걱~삐걱~우리를 탓하지 마세요! " "삐걱~삐걱걱~원래 밑에다 세면도 넣고 기초를 잘 다져야 되는데 ... 오늘도 철봉과 쌍봉 두형제는  울며서 삐걱~삐걱~   울고 있다.
10    남녕서 資本運作를 하시는 조선족 사업가들 ... 댓글:  조회:3040  추천:2  2011-08-30
우리말 속담에는 “ 집에 앉아 있는 똑똑이 보다 나다니는 머저리가 낫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요즘은 이 속담도 시대에 맞는 말이 아닌 모양이다. 십 여년을 밖에서 떠돌아 다니다가 몇 달 전 고향에 돌아온 나는 내가 완전히 바보가 된 느낌이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몇 십 년을 타향에서 보내다가 고향에 돌아 왔으니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고향이 많이 변했으리라 믿고는 있었지만 이건 변해도 너무 변한 것이었다. 물론 연길시 도시 전체가 변한 것도 경이로웠지만 그보다도 더 많이 변한 것이 사람들의 의식형태였다. 그래도 무슨 깜짝 쇼를 해 보겠노라고 기별도 하지 않고 고향에 도착한 나는 공항에 내리자 마자 택시를 잡고 延纺으로 가자고 하였다. 그런데 이기사가 택시를 끌고 가는 길이 어떻게 보아도 연방이 아니기에 난 이기사가 타국에 오래있은 나의 어눌한 중국말을 잘 알아 듣지 못하였는가 싶어서 한마디 다시 하였다. “我去延纺!” 그 기사님은 “ 知到了 “하고는 계속 달리는 것이다. 아니, 이 길이 아닌데 … 아니 내가 연길 토배기로 연길에 몇 십 년을 살았는데 … 난 다시 말했다. “我说,不是,簡直去不快吗!” 阿牙,你傻呀!这时间那边道太堵了! 기사의 대답이었다. 傻呀 고향에 도착한 날 내가 들은 중국말이다. 집에 돌아온 내가 해야 할 급선무는 신분증 발급이었다. 타향살이 십 여 년에 신분증도 종적을 어디에 감추었는지 어느 나라에서 잃어 버렸는지 알 길이 묘연하다. 아침 일찍 택시를 잡고 “공안국“하고 말했다. 그런데 택시 기사가 이번에도 왕청 같은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이번에는 다행이 조선족기사인지라 내가 물었다. (공안국이 이사 갔어요?) (아~ 예! 공안국이 이사간지 꽤 되였는데 외국에 오래 있은 모양입니다.)기사의 대답 (십 여 년 외국에 있다가 고향에 돌아 오니 본래 연길 토배기인 내가 되려 촌놈이 된 기분입니다그려 ) 나의 자탄하는 말에 이기사님이 웃으며 한술 더 뜬다. (연길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외국에 가서 3년 이상 있다가 오면 작은 바보라 하고 5년 이상 있다고 오면 큰 바보라고 …) 난 “예~ ” 하면서 속으로 "자식! 네가 외국 한번 나가 봐 집에 있는 똑똑이 보다 나가 다니는 머저리가 낫다고 자본주의에서 돈만 버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것도 얼마나 많은데 … 솔직히 자본주의경제학 이론도 다시 배우는 것과 같단 말이야 !어떻게 보면 대학 하나 더 다닌 것만큼 똑똑해 진다고 … " 기사님의 말씀대로라면 난 외국에 18년이나 있었는데 18년! 그럼 나는 특등 바보란 말인가?! 하여간 나는 고향에 도착한날 니싸야 하는 말을 들었고 외국에 갔다가 온 사람은 고향에서 바보 취급을 하는 것을 못마땅해 속으로 퍼그나 불쾌해 하였었다. 고향에 돌아온 약 한달 후, 저 멀리 광주에 있다는 조카, 일본에서 유학공부하고 돌아온 조카가 나한테 전화가 왔다. 우선 편지의 문안이라고 핸드폰으로 인사 치레 마치고 나서는 조카가 묻는 것이다. (삼촌! 요즘 집에서 무얼 함까?!) (머 할거 있나 ?! 그저 매날 집에서 먹고 자고, 먹고 자고 너무 술만 마시고 자기만 하여서 얼굴도 팅팅 부었다. 야, 미치겠다. 여전에 외국에 있을때, 일이 힘들고 많을 때는 고향에 가번 한번 기껏 먹고 놀아 봤으면 했는데 이거 정말 놀기도 힘 드는 구나 이건 머 벌어 놓은 거도 많지 않은데 놀고 먹자고 하니 똥집이 타고 … 소화도 잘 되지 않고 ...) 나의 한탄에 대뜸 들려 오는 조카의 목소리가 그렇게 반가울 줄이야 ... (삼촌! 그러면 여기 광주에 와서 일 좀 하겠어요? 여기 우리 친구가 한국공장에서 번역도 하고 물 건도 포장해서 한국에 보내는 하는 일을 하는 내 친구가 있는데 요즘 미국비자가 나와서 미국으로 들어 간대요. 그런 데 한국사장이 대타할 사람을 찾아 놓고 가라고 하는데 삼촌이 하겠어요?) 두 귀가 솔깃해 난 핸드폰을 귀에 바짝 가져다 붙히고 다시 물었다. (한국사장이 남자야 여자야 ) (예, 여자인데요.) 여자란 말에 원래 여자를 무던히도 밝히는 주정배는 사내답게 그대로 결정을 내렸다. (내 들어 가겠다. 그런데 면담해서 나를 나이 많아서 싫다고 하면 어쩔까?) (예, 될 거예요. 그쪽이 우리보다 더 급하니깐요. 숙식은 근심 마세요.) 머, 일도 그저 검품이나 하고 샘플을 만들어 한국에 보내는 일이라고 하니 난 떠나기도 전에 내 마음은 날아 날아 광주를 갔다. 마침 조카의 남편, 조카사위가 볼일이 있어 연길에 나왔는지라 우리는 며칠 후 북경행 비행기에 올라 탔다. 북경에서 광주를 향하는 비행기를 기다리는데 장장 반나절 걸렸었다. 조카를 따라 탑승할 때에야 비행기가 광주행 비행기가 아니라는 것을 난 알았다. 나의 의아한 눈길을 의식했던지 조카사위가 말한다. (저들이 사는 거기는 광주 시내가 아니고, 광주 변두리 시골 쪽에 있는 작은 현성입니다.) 난 별로 개의치 않았다. 일하러 가는 놈이 시골이던 도시던 일만 쉽고 편하고 돈만 많으면야 ... 그것이 나에게는 만족이었다. 조카 집에 도착한 난 이튿날 아침에야 깨달았다. 내가 속히웠다는 것을 … 난 정말 바보였다. 그날 아침에야 그것이 다단계라는 것을 알았으니깐 … 난 조카한테 사기를 당한 기분이었다. 고향에 돌아오는 첫날에 그 택시기사의 말이 생각 났다. “니싸야 !... ”또 그말이 생각났다. “3년이면 작은 바보 5년이면 큰 바보”라고 하던 그말이... 거기, 바로 거기, 거기 광서남녕에는 나 같은 바보가 외국에서 3년 이상 돈 벌고 온 작은 바보, 5년 이상 돈 벌고 온 큰 바보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리고 서울에서 다단계에 들어 돈을 억수로? 많이 벌고 도망간 그분들, 우리 조선족 바보,그 바보 윈조들 대부분이 거기에 합류 하였더라. 그리고 연길에서 행방을 찾을 수 없는 상층건축에 계시던 똑똑한 양반바보들이 적잖게 남녕에 둥지를 틀고 핸드폰만 들고 사업(私业)을 하고 있더라 그래도 자대 밑에는 세면지로 된 서류봉투를 끼고 다니는 폼이 정말 일품이었다. 그리하여 그 도시 대학교 운동장에는 아침마다 큰 바보 작은 바보들이 모여서 조깅을 하면서 서로 위안의 말들을 주고 받는다. “어!? 너도 왔어! 야! 잘 왔다.” “어머! 너도 왔냐? 참 잘 왔다.”그리고는 어쩌다가 종종 모여 한잔씩 하면서 서로 들은 이야기들을 전하며 서로 위안하고 서로 격려하고 서로 고무해 준다. “야 똥돌이는 벌써 87股 승진해서 돈 100만원을 타고 졸업해서 연길에 갔다더라” “전번에 똥순이는 20만원씩 두 달이나 타고 입이 함박만 해졌다고 하더라” “그리고 아무개 아무개는 돈 2백만원이나 탔는데 여기서는 차 사기가 너무 힘들고 시간이 길어서 연길에 가서 그랜저 한대 사서 타고 4명이나 더 데리고 차를 몰고 나왔더라 … 그리고 누구는 집을 샀는데 앉은 자리에서 되팔아 18만원을 벌었단다. 그들이 전하는 희소식들을 잘 들어보면 모두가 더라 더라로 끝나는 말이였다. …더라. … 더라. 자신들이 직접 목격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란 말이다. 그들,저멀리 남녕에서 資本運作를 하시고 계시는 조선족 사업가?들은 낮에도 밤에도 할 일들이 없어서 맨날 전화번호만 들여다 보면서 다음 바보 1호를 찾는다. “요놈을 아니, 저놈을? 아니지, 요놈은 2호로 하고 이놈은 3호로 … ”하면서. 그러면서 한국에 피땀으로 벌어온 그 돈을 광서남녕에 처넣고 아니, 쏟아 붓고 있었다. 그리고 저들 나름대로 전략도 짜고 있었다. 사람 데려 올때는 절대 남녕에 있다는 말을 하면 실패요. 광주나 상해에 있다고 하여야 된다는 둥 ... 봉급을 너무 많이 준다고 하면 믿지 않는다는 둥 난 정말, 18년 타향살이에 나도 바보가 되었다는 것을 승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도 그 바보무리 속에서 자그마치 한달 가까이 다단계 정신교육을 받고 혼이 나갈뻔 한 내가 정신을 차린 것은 친구의 한마디 때문이였다. 지금도 친구의 한마디가 귀속에 쟁쟁하다. "너 거기 가입하면 나한테 전화도 하지 마라!"
9    기자동무 너무하오! 댓글:  조회:3936  추천:7  2011-08-16
기자동무 너무하오! 연변가수 백청강에게 정찬배란 기자가 중국인인가?한국인인가? 하는 질문을 들이 댔다고 하는 소리를 듣고서 이글을 여기에 올립니다. 억,억이란 수자는 누가 어떻게 보아도 대단한 수자요. 글쎄 그수자가 너무커서 10 억이라 하면... 어머나 ... 하고 억이 막혀 뭔 소리가 나오지도 않소. 10억도 훨씬 넘는 중국의 인구도 대단하오. 625 때 총알이 모자라서 막지 못했오 ... 하던데... ㅎㅎㅎ 실말이 아니것도 알면서도 비유가 합당하지 않다고는 못하겠오. 그보다도 더욱더 감탄할것은 그 10억이 넘는 인구중에 60 년 가까이 함께 생활 하면서도 자기의 품위를 잃지 않고 자기 풍속을 버리지 않았을 뿐더러 더욱더 발전시킨 민족이 있으니 그민족이 바로 고구려 후손인 조선족이니... 그누가 감탄하지 않을가 싶소. 그누가 우러러 보지 않을가도 싶고 ... 세계각국에 우리 민족의 교포나 동포나 ... 많기도 하지만 어느 민족이 어느나라에서 자기 언어 (발전은 논하지도 말고 )잊어버리거나 소실하시지 않았소? 미국교포들을 보오. 1세도 우리 말을 앓어버린지 오래고...2세는 우리한글은 번지지도 못하고...3세는 우리가 항상 자랑해온 검은머리 검은눈 황색피부도 소실되고 있지 않소?! 일본의 교포는 또 어떻소? 마찬가지지 아니요?유럽? 남미?북미?모두 똑같지 않소? 유독, 유독 중국에 계시는 조선족만은 우리말을 잊어 버리지 않았고... 우리 글도 잊어 버리지 않았을 뿐더러 더욱더 발전시키며 어디서나 우리말을 하며 심지어 간판에도 한국보다도 더 한국적으로 우리글을 쓰고 있을 뿐더러 우리말 방송국, 우리말 TV 방송국 ,우리 노래와춤의 연변 가무단, 구연단, 출판사...이런것을 아직도 보존하고 발전시키고 있는데...미워하시는당신들... 너무하지 않다고 못하겠소. 그13억이란 인구를 가진 중국에서...그13억이 동시에 점프하면 지구도 박살난다는 13억 중국에서 ...여지껏 우리를 지켜온 조선족을 업수이 여기시는 당신들... 너무 하지 않다고 할수가 있겠소? 대혁명때 남북한 때문에 그렇게 타격과의심 ... 멸시와업시움을 받으며도 꾹 참고 자기를 지켜온 민족이요.그러며도 조선글과풍습을 끝까지 지켜온 조선족이요. 끝끝내 개방의 해빛속에 한국서울에 와서 조선족도 그들과(미국교포) 같은 대우를 달라고 데모도, 애원도 해보았지만 누가 조선족을 곱게 보았소?! 누가 그들을 상대나 했소?! 그러면서도 고구려 문제가 터지니 어찌 조선족을 앞장에 서라고 ... 조선족을 따라다니며 질문하는 기자가 어찌나 얄밉던지...조선족의 영웅 조남기동지한테도 물어보시지...고구려는 누구의 것인가고... 이덕수 한테 물어 보시지 자신의 정체성에 확답을 하시라고 ... 이것이 그래 너무하지 않다고 할사람이 있겠소? 당신이라면 그자리에서 대답을 할수 있겠소? 기자동지! 당신이 만약 조남기씨의 입장이라면 당신은 ... 입이나 벙긋할수가 있겠소? 요즘 친일파를 숙청하는 이때 당신의 목소리가 그렇게 높던데...그당시 친일파가 우쭐할때 당신은 ... 당신의 목소리는 모기소리만큼도 못하였오. 5공 6공때까지도 감히 친일파에 대하여 일언방구나 뀐 적이 있소? 인간이란 바로 그렇게 간사하오. 똑마치 아침에 우는새는 배고파 울지만 저녘에 우는새는 짝이 없어 운단 말처럼... 화장실 들어갈적 마음 다르고 화장실 나올적 마음이 다른것처럼... 만약에 믿지 못하겠으면 중국에 아들을 유학보낸 그의 부모들에게 물어보오. 그들도 고구려에 대해서 태도를 표시하라면 잠간 머뭇거리며 생각을 더듬거릴 것이요. 왜냐면 아들이 사랑하는 아들이 중국에 있기에... 기자님! 제발 너무 기막힌 질문을 하지 말아주오! 조선족에게 말이요. 그들은 아직도 자신을 억제하며 기를 못펴며 살때가 많소. 그것은 바로 당신들 같은 바보 기자들 때문인 것이요. 조선족이 고구려가 우리것이라고 하면 우리것이 되는것이요?조선족이 없다면 고구려를 찾을수 없소?? 조선족이 먼저 데모나 ... 하면 쳐 들어라도 오겠단 말이요??? 아니면 미국에 도움을 ... 제발 그들 조선족을 괴롭히지 말았으면 하는것이 나의 바램이요. 제발 그들을 미워 하지 말아주오! ...  
8    터치페이 댓글:  조회:2783  추천:2  2011-08-15
터치페이 터치란 영어로 손을 대거나 손으로 건드리거나 다치다는 말이다. 페이는 무엇을 갚다 지불하다 치르다 이런 말인데 한국 젊은이들 속에서는 요즘 이런 터치페이가 유행이란다. 터치페이란 한마디로 손을 댄 물건에 값을 지불한다는 말이 되겠다. 여기서의 용도는 자신이 먹은 음식은 자신이 지불하라는 말이 되는 셈. 이 말의 기원은 어디인지는 모르겠고 한국에 들어 온지는 그 역사가 멀지 않은 몇 년 전부터 였던 것 같다. 즉 다시 말하면 한국 분들이 일본으로 돈 벌러 가던 그 시절 그때에 일본에서 배워온 말이 아닌가 짚어 본다. 물론 동양에서 서양문화를 제일 먼저 접수하고 빨리 실행하는 일본사람이 서양에서 배워온 것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일본음식은 담아 나오는 음식마다 값이 매겨져 있고 그 접시의 크기 모양 그리고 거기에 담은 음식의 고하에 따라 값이 틀리다. 거기에 짠돌이 같은 일본 사람은 서로 먹은 음식값을 지불하기 싫어해서 거기에 사람마다 음식의 기호가 틀리고 음식의 량이 다르니 이런 터치페이, 서양식터치페이를 빨리 배워가지고 나온 것도 아닌가 싶기도하다. 한국음식은 이렇게 음식을 접시마다 값을 매긴 것이 아니고 음식의 분량에 따라 값을 매긴다. 고기는 1인분에 얼마? 탕은 대 중 소로 나누어서 값을 매기는데 아주 합당하다. 정말 두 식구면 2인분 세 식구면 3인분 시키면 된다. 그런데 우리고향에서는 중국식을 아직도 고집하고 있더라. 요리에 따라 값이 다르게 매겼는데 그 량도 아주 많다. 저번에 친구들의 초대에 나갔는데 한 사람이 하나씩 시켰다는 요리가 사람이 아홉이니 아홉가지가 나와야 하는데 쌍으로 나와야 한다고 한가지를 추가 시켰는데 보기만 하여도 도저히 다 먹을 수 없을 것이 알렸다. 그런데 거기에 무식하게 요리를 시킨 우리보다 더 무식한 식당의 노반이란 여자는 다 먹지 못할것임에 뻔할 뻔자인데 보너스로 한접시 하나 더 올려 주는데 난 어이 없었다. 정말 보너스를 주려면 버릴 것은 주지 말고 … 다른 것으로 주던지 아니면 … 그대로 음식은 태반이 남았는데도 모두들 채는 집을 념도 하지 않고 그대로 맥주만 들이 마시는데 … 난 그 음식이 남아 버려지는 것이 정말 아까웠다. 그 음식이 아까워서 한 젓가락이라도 더 짚는라고 부지런히 젓가락질 하였는데 그만 음식이 너무 기름져서 외국생활을 너무 오래한 난 이튿날에 설사하는데 장장 5일을 누워 앓았다. 휴~ 후에 친구들과 또다시 술상을 벌렸는데 내가 물었다. 왜 이렇게 낭비 하는가고. 했더니 한 친구는 중국사람들은 이렇게 낭비해야 面質가 선다고 생각한다. 고 한다. 그리고 한 친구는 이것은 옛날부터 내려온 전통이란다. 전통이라면 아마도 중국이 개혁개방 하면서 공산당 간부들이 국가 돈을 갖고 배 두드리며 처먹고 버리고 하던 그 시절부터 내려온 전통이 아닌가 싶다. 그때는 정말 그랬다. 국가 돈으로 처먹고는 절반도 못 먹고 버리면서 끝에는 담배 한 보씩 나누어 가지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게트림 하며 이수시개로 이쑤시며 식당문을 나서는게 창피스러운줄도 모르고 그게 무슨 큰 자랑거리라도 되는 듯 배를 쑥 내밀고 얼굴이 벌개서 큰소리로 웃고 떠들고 @#$%^&*(하면서 작별인사를 나누던 시절에 내려온 전통이 틀림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요즘은 그것이 아니지 않는가? 요즘 우리는 그 누구도 공가의 돈으로 그렇게 먹고 트림 할 사람은 없다. 모두가 퇴직하고 집에서 놀고 있는 주제에 그 옛 버릇 나쁜 버릇만 남아 있어서 … 중국의 모택동동지도 일찍 이렇게 말씀하셨다." 떠벌려 낭비하는 것은 제일 큰 죄악이다 "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낭비해서 되겠는가. 진정 자기가 돈을 지불 한다면 자기가 피땀으로 모아 번 돈이라면 이렇게 낭비 할까 그리고 자신이 외국에서 갖은 능욕을 참아가며 피땀으로 번 돈이라면 이렇게 낭비 할건가 하고 의심이 된다. 우리도 이런 낭비벽을 없애려면 한국사람들이 일본의 터치페이를 그렇게 웃던 것이 일본사람을 따라 배우듯 우리도 한국사람들을 깍쟁이라 비웃지 말고 이런 터치페이를 하루 빨리 배우는 것이 우리 생활에서 낭비가 줄어드는 지름길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한마디 더 붙혀 말할 것은 “시에미 학대를 받으며 시집살이 한 며느리가 며느리를 맞으면 똑같이 그 시에미처럼 된다”고 하던데 일본늠의 터치페이를 웃던 한국 분들이 요즘은 일본의 터치페이를 시작하고 있듯이 한국늠들을 그렇게 욕하던 우리 민족도 터치페이를 할 그날이 꼭 돌아오고 말 것이 아닐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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