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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겨울을 건너온 여자
2011년 11월 07일 19시 09분  조회:1726  추천:0  작성자: 요가공주


시인 박서원씨의 이야기입니다.

[ 여성동아 98년 12월호 ]

 

성폭행 피해 털어놓은 뒤 내가 겪은 사연들

시인 박서원

“나 같은 여자, 나보다 더한 여자가 그렇게 많은 줄 정말 몰랐다”

글: 이혜련 기자 / 사진: 김용해, 지재만 기자

 

 

 

서른아홉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맑고 청순한 얼굴, 박서원씨의 겉모습에선 병마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가끔 몸이 마비되고 통증에 시달리며 수면제를 먹고서야 잠이 든다.

 

지난 8월 자전 에세이 <천년의 겨울을 건너온 여자>를 펴낸 후 박서원씨는 자신처럼 상처받고 살아온 수많은 여성들의 전화와 편지를 받고 있다. 전화를 받자마자 우느라고 말을 잇지 못하는 여성도 있고, 성폭행 후유증으로 정신과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는 여성도 있고, “우리 딸 좀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어머니도 있었다. 또 아무에게도 말 못했던 숨겨진 가족사를 장문의 편지에 털어놓은 여성도 있었고, 성폭행 후유증으로 교도소까지 간 여성의 편지도 받았다.

 

“이 세상의 소설과 텔레비전 연속극에 나올 법한 내용의 전화와 편지는 다 받았어요. 책을 쓸 때만 해도 ‘나처럼 고통받는 여자들이 또 있을 거야’ 하고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세상에 이렇게 불행한 여자들이 많다니 너무 놀라고 슬퍼서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저도 그런 고통을 겪어보았기 때문에 그들의 상처가 그대로 제 심장에 와서 꽂힙니다. 그러면서 그 동안 나만 불행하다고 생각했던 껍질이 완전히 벗겨져 나갔어요.”

 

상처받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열여덟 살 때 성폭행을 당하고 그 후유증으로 기면증이라는 희귀신경증에 시달리며 살아온 박서원씨 또한 악몽처럼 자신을 짓눌러온 어둠과 불행의 그림자를 떨치고 스스로를 완전히 치유했다.

 

그는 이제 상처받고 아픈 여성들을 어루만지는 치료사가 되었다. 그는 용기를 내라고, 자신을 사랑하라고 그리고 용서하라고 말해준다.

 

“내가 당했던 사실을 자꾸 부정하고 숨길수록 극복하기가 어렵습니다. 그걸 꺼내야 극복할 수 있는데, 많은 여성들이 미리 겁먹고 포기합니다. 용기를 내야 해요. 그리고 내가 날 사랑해줘야 합니다. 내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내 존재가 결정되고, 천국과 지옥이 갈립니다. 절망, 분노, 자괴감에서 빠져나오지 않으면 평생을 고립되고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하니까 그게 바로 지옥이죠.”

용서하고 자유로워지는 데 17년이나 걸려

 

사실 그도 용기를 내기가 쉽지 않았다. 엄마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속에만 짓물러온 그 고통을 어떻게 끄집어낸단 말인가. 책이 나오기 직전까지도 그 부분은 성폭행을 당할 뻔했다는 식으로 적당히 얼버무렸다.

 

그가 두려워했던 것은 자신에게 쏟아질 세상의 시선만이 아니었다. 동생 부부가 이혼한 후 아들처럼 기르고 있는 조카까지 세상의 손가락질을 당할까 걱정이 되었다.

 

그러다 20여년 간 그를 치료해온 한양대병원 김광일 박사의 “용기를 낼 수 없겠느냐”는 한마디가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그는 며칠 밤낮을 용기란 말을 곱씹은 끝에 결심했다.

 

“이렇다 할 성공을 거둔 것도 없고 남을 위해 무엇을 한 일도 없는, 보잘 것 없는 인생이지만 꼭 보여줘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용기임을 깨달았습니다. 억울한 일을 겪고도 나처럼 소리 죽여 울어온 다른 여자들에게 나의 독백이 보탬이 될지는 모르지만 진실을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가 세상을 껴안을 수 있는 힘을 주었다고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치민이도 언젠가는 고모를 진정으로 껴안아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용서를 해야 자유로워진다고 말하면 대부분의 여성들은 어떻게 용서할 수가 있느냐고, 정말로 용서하면 자유로워질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그는 용서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그도 자신을 성폭행한남자를 용서하고 자유로워지는 데 17년이나 걸렸다고 말한다.

 

“그런 영화만 봐도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불쑥불쑥 그 놈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에 미칠 것 같은데 어떻게 쉽게 용서가 되겠어요. 하지만 용서하지 않으면 내가 평생 고통 속에 살아야 하니까 나를 위해서 용서해야 하는 겁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천주교신자니까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을 하루에도 수없이 되뇌며 살았습니다. ‘예수님이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어. 그러니까 용서해야 돼’ 하고 말입니다. 지금은 인격을 가진 인간이 어떻게 짐승처럼 되고,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지 연민을 느끼고, 그런 사람들을 구원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제 자신의 고통을 웃으면서까지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사회에서 성폭행을 당했다는 것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고 말해서도 안되는 수치로 여겨진다. 그렇기 때문에 성폭행당한 사실을 털어놓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남자들 중에 그런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책이 나온 후 신문 잡지 방송에서 인터뷰를 많이 했어요. 남자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그들의 뜨악한 시선 속에서 ‘이 여자가 뭘 믿고 이렇게 당당할까? 성폭행당했다는 게 무슨 자랑거리라고 이렇게 떠들고 다니는 거야?’ 하는 생각을 느낄 때가 많았습니다. 제 이야기를 들은 여자들은 ‘맞아 맞아’ 하고 공감을 표시하는데, 기득권을 갖고 살아온 남자들의 머릿속에는 여자들이 어떻게 억눌리고 당하고 사는지 입력이 안돼 있는 거죠.”  

검사 결과 그의 청각은 보통 사람보다 7배나 예민한 것으로 나타났다. 무슨 소리가 들려서 뒤를 돌아보면 티슈 한 장이 떨어져 있을 정도로 예민하다. 청각뿐 아니라 그는 신경 자체를 예민하게 타고났다.

 

만약 따뜻한 부모 밑에서 사랑받고 자랐다면 기면증이라는 희귀 신경증으로까지 발전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성장과정은 불우했다. 여덟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세 아이를 데리고 생계 자체를 걱정해야 했던 어머니는 딸의 마음까지 돌볼 여유가 없었다. 갈 곳이 마땅치 않아 외할머니집에 맡겨졌던 그는 외할머니의 학대를 받으며 자라야 했다.

 

그의 외증조할머니, 외할머니 그리고 어머니까지 외가쪽 여자들은 대대로 남자 없이 집안을 꾸려왔다. 너무 가난해서 열네 살 때 기생으로 팔려간 외할머니 그리고 서른세 살에 과부가 된 어머니. 지금처럼 여자들이 마음대로 직업도 가질 수 없었던 시절, 여자 혼자 자식을 키우며 산다는 것은 세상에 몸과 마음을 다 내던져야 하는 것이었다.

 

조숙했던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외할머니와 어머니를 보면서 저렇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남자에게 빌붙어야 하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그리고 독신으로 순결을 지키면서 살겠다고 맹세했다. 그는 처녀신으로 달과 사냥의 여신인 아르테미스처럼 순결하고 당당하게 살고자 했다.  

그의 꿈은 대학교수가 돼서 글을 쓰면서 사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꿈을 꾸기에는 너무 가난했다. 그는 중학교 졸업하고부터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해야 했다. 신문팔이도 해보았고 구두닦이도 했다. 구두닦이를 하다가 구역을 침범했다고 깡패들에게 칼로 위협을 당하기도 했다. 낮에는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밤에 공부하는 야간상업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과 카뮈의 <이방인>을 사랑하고 첨탑 위의 피뢰침 같은 감수성을 가진 소녀에게 주산, 부기 따위는 맞지 않았다. 학교를 그만둔 그는 신문사 사환으로 일하며 대입검정고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성폭행 충격으로 만신창이가 된 몸과 마음

 

그때까지는 가난하고 힘들어도 꿈이 있어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그는 그의 인생이 구겨지고 무너진 그 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5월8일 어버이날이었다. 거리에서는 카네이션을 팔고 있었다. 그 얼마전에 남산 시립도서관에 갔다가 알게 된 모대학 재학중인 ROTC가 그에게 축제파트너가 돼 달라고 했다. 저녁식사 후 ROTC는 그에게 산책이나 하자며 남산으로 데려갔고, 거기서 그는 성폭행을 당했다.

 

성폭행의 충격은 그에게 세상이 무너진 것보다 더 끔찍한 것이었다. 그는 자신에게도 외가쪽 여자들에게 들씌워진 저주가 내린 것이라고 생각했다. 순결을 지키는 것이 집안 여자들이 겪어온 불행에서 벗어나는 길이라고 믿었던 그는 삶의 목표를 잃어버렸다. 남자에 대한 증오, 자신에 대한 경멸과 좌절 그리고 신에 대한 원망에 시달리며 그는 병들어갔다. 

전화벨만 울려도 놀라서 심장발작을 일으켰고, 신경안정제를 먹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었다. 갑자기 눈앞이 흐려졌고, 시도 때도 없이 경련을 일으키다가 정신을 잃곤 했다. 청각과 후각이 극도로 예민해져 보통 사람은 들을 수 없고 맡을 수 없는 소리와 냄새가 그를 괴롭혔다. 환청과 환각도 갈수록 심해졌다. 수전증이 심해서 컵에 든 물도 마시기 힘들었다. 자율신경장애까지 겹쳐 물건을 제대로 잡을 수가 없었고 걸음도 마음대로 옮길 수 없었다. 침을 삼키지 못해 정박아처럼 입밖으로 질질 흘려야 했다.

 

동생들도 누나가 미쳤다고 멀리했고, 동네에서도 다 손가락질했다. 동네사람들은 병원에서도 치료가 안되고 자꾸 환각을 보는 그를 무병이 들렸다고 했다. 무당들이 내림굿을 받아야 한다고 했지만 그는 끝까지 거부했다. 그에게는 가톨릭이라는 종교가 있었고, 문학을 하며 살겠다는 한가닥 불씨 때문이었다.

 

큰외삼촌의 소개로 찾아간 한양대 병원에서 그는 기면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신경증 중에서도 가장 희귀한 병으로 주 증세는 시도 때도 없이 경련을 일으키다 기절하듯 잠이 드는 전신마비이며 잠들 무렵 환상에 시달리는 것도 기면증의 특징이다. 기면증은 아직도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

 

아무 곳에서나 마비되어 쓰러져서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는 것도 견디기 힘들었지만 가장 두려웠던 것은 성폭행을 또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못된 남자들에게 어딘가 온전치 못하게 보이는 여자, 거기다 온몸이 마비돼서 꼼짝도 못하는 여자가 얼마나 만만해 보일 것인가. 실제로 마비되어 쓰러졌을 때 어떤 남자에게 업혀 자꾸 후미진 골목으로 끌려갔다가 겨우 도망친 적도 있었다.  

 

“6개월만에 겨우 차도를 보여 혼자 걸어다닐 수 있었고, 1년이 지나서야 다시 책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몇 줄만 읽으면 글자가 보이지 않아 한줄 읽고 다른 일을 하다가 다시 읽고 하면서 하루에 한 장씩 두달만에 책 한 권을 읽었을 때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노력하면 다시 할 수 있다는 생각, 문학을 해야겠다는 집념이 생겼습니다.”

 

문학과 함께 그를 모진 고통에서 건져올린 것은 사랑이었다. 세상 기준으로 보면 불륜이라고 하는 것, 결혼한 남자, 그것도 22세나 연상인 사람과의 사랑. 아버지의 고향후배라는 인연으로 가까워진 그 교수는 남들이 다 손가락질하고 업수이 여기는 그를 가치있는 인간, 사랑스러운 여자로 받아주었다. 박서원씨는 그를 통해 끝없이 자신을 저주하고 툭하면 자살을 기도했던 자기자신에 대한 사랑을 되찾았다고 말한다.

 

“그분을 사랑하면서 사랑 자체를 깨달았습니다. 남성에 대한 혐오와 공포 때문에 아무도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았던 내 안에 든 여자의 힘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힘으로 시를 써서 여성들의 입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89년 <문학정신>에 ‘학대증’ 외 7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했다. 그리고 시집 <아무도 없어요>(90년 열음사), <난간 위의 고양이>(95년 세계사), <이 완벽한 세계>(97년 세계사)를 출간했다. <난간 위의 고양이>로 그는 95년 한국일보사가 선정한 평론가 5인 추천한 ‘올해의 우수시인’으로 뽑혔다.

그의 시는 기존 어느 시인의 시와도 다르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표현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듯한 고통이 느껴진다. 그가 시집을 내는 데 큰 도움을 주었고, 문단에서 후원자 역할을 하고 있는 상지대 국문과 김정란 교수는 “박서원의 시를 처음 보았을 때 가슴을 후벼내던 그 아픔을 잊지 못한다. 그동안 내가 말로는 페미니스트인 체하면서 어떡하든 남성들의 사랑을 받고 싶어서 얼마나 눈치를 보았는지 절절하게 깨달았다. 그를 만난 후 내 시도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의 시에는 매달 피를 흘리고 생명을 잉태하는 여성성을 표현한 것이 많다. 그것은 관념적인 표현이 아니라 그의 체험을 통해서 얻어진 것이다.

 

그는 장기간의 약물복용 후유증으로 스물세 살부터 서른두 살까지 10년간 생리가 끊겼었다. 여자로서 절정인 시기에 그의 자궁은 불모지가 되었다.

 

“생리가 끊기면서 더 이상 나는 여자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아기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됐다는 게 너무 억울했어요. 가만히 제 몸을 들여다보며 내 몸 속에 우물이 있다면 그 속에서 맑은 물을 퍼올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쓴 시가 ‘생리불순’입니다. 그 시를 발표했을 때 독자들의 반응이 굉장히 좋았어요. 그리고 생리가 터진 겁니다. 말이 나오면서 피가 쏟아진 거예요. 마치 그 동안 억눌려 있던 자궁이 말을 하는 것 같았어요.”


 

생리는 다시 하고 있지만 지금도 약을 먹고 있는 그는 아기를 낳을 수 없는 몸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속에서는 수많은 아이를 낳았고, 지금도 계속 낳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산고’라는 시에서 “백 살까지 가랑이를 벌리고 아기를 낳으리라”고 썼다. 그는 여성에게 당연한 것을 폭력에 의해 빼앗김으로써 오히려 여성성과 창조성에 눈을 뜰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또 조카 치민이를 기르면서 여성성을 모성을 통해 전체를 향한 사랑으로 발전시켰다. 치민이는 부모의 불화로 다섯 살이 되도록 대소변도 못 가리고 말 한마디 하지 않는 반응성 애착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아이의 마음을 열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했다. 마비가 올 때면 혼자 방에 들어가 쓰러지고, 마비가 풀린 후 나와서 아이에게는 웃는 모습을 보여주는 고통을 견뎌냈다. 지금 초등학교 2학년인 치민이는 보통 아이들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건강한 아이가 되었고, 그 또한 아이의 숙제를 도와주고 간식을 만들어주는 보통 엄마로 살고 있다.

 

그는 조카가 자신을 구원했다고 말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자신을 학대했던 외할머니와 애증을 가지고 있던 어머니도 이해하게 되었다. 이제 그는 자신을 저주받은 가문이라고 여겼던 집안을 지키는 여사제라고 생각한다.

 

그의 시집과 에세이집을 읽고 그에게 전화해오는 여성들 중에는 “그래도 당신은 문학적 재능이 있어서 고통을 극복하고 시인이 되었지만, 나는 아무것도 잘 하는 게 없으니 어떻게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겠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는 자신에게 재능이 있어서 고통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게 아니라 고통을 극복함으로써 재능을 찾아냈다며 상처받은 여성들에게 자기를 사랑하고 다른 사람의 불행에 귀 기울이라는 이야기한다.

 

“누구에게나 특별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 특별함은 내가 나를 사랑하고 똑바로 응시할 때야 비로소 드러납니다. 스스로를 아끼고 자기 생을 사랑해야 해요. 또 자기 안에만 머무를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불행에도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합니다. 저는 남성의 폭력뿐 아니라 여성 자신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어요. 시집살이를 겪었던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시집살이를 시키는 식으로 여성이 여성을 학대하는 고리를 이제는 끊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에세이를 냈을 때도 여성문인들 사이에서 치민이가 제가 낳은 아이라는 둥, 성폭행당했다는 것은 꾸며낸 이야기라는 둥 말이 많았어요. 왜 여자들의 아픔을 여자들이 감싸주지 못하는 거죠. 여자들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남자를 비판하기 전에 여자 스스로 자각하고 자매애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글을 읽고  슬프고 또 감동적이었습니다.
 예전에 제 친구가 이런 일을 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춤을 추던 아이였는데,  그 친구가 춤을 추면 그렇게 눈물이 났답니다.
 그 아름다움이 슬프면서 아름다운.....  
 아마 스스로가 겪었던 고통을 예술로 승화해 낸 그 힘이 전달이 되어서인가 봅니다.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이유..
  우리는 고통을 통해서 더욱 발전된 존재로 다가설 수 있는것 같습니다.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납니다.
  영성의 발전의 동인은 고통과 권태와 만남이라구요..

  그러고 보면 내가 겪는 아픔, 고통들이 나를 성장시키기 위한 밑거름이라는 어른들의 말씀이 진리인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 겪는 모든 일들이 감사하지 않을 일이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슬픅 


 

그의 시는 기존 어느 시인의 시와도 다르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표현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듯한 고통이 느껴진다. 그가 시집을 내는 데 큰 도움을 주었고, 문단에서 후원자 역할을 하고 있는 상지대 국문과 김정란 교수는 “박서원의 시를 처음 보았을 때 가슴을 후벼내던 그 아픔을 잊지 못한다. 그동안 내가 말로는 페미니스트인 체하면서 어떡하든 남성들의 사랑을 받고 싶어서 얼마나 눈치를 보았는지 절절하게 깨달았다. 그를 만난 후 내 시도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의 시에는 매달 피를 흘리고 생명을 잉태하는 여성성을 표현한 것이 많다. 그것은 관념적인 표현이 아니라 그의 체험을 통해서 얻어진 것이다.

 

그는 장기간의 약물복용 후유증으로 스물세 살부터 서른두 살까지 10년간 생리가 끊겼었다. 여자로서 절정인 시기에 그의 자궁은 불모지가 되었다.

 

“생리가 끊기면서 더 이상 나는 여자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아기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됐다는 게 너무 억울했어요. 가만히 제 몸을 들여다보며 내 몸 속에 우물이 있다면 그 속에서 맑은 물을 퍼올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쓴 시가 ‘생리불순’입니다. 그 시를 발표했을 때 독자들의 반응이 굉장히 좋았어요. 그리고 생리가 터진 겁니다. 말이 나오면서 피가 쏟아진 거예요. 마치 그 동안 억눌려 있던 자궁이 말을 하는 것 같았어요.”


 

 

 

그는 왜 성폭행당했다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숨겨야 하느냐고 묻는다. 역사 속에서 여자들이 수없이 당해왔고, 강간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금도 직장에서 지하철에서 가정에서 많은 여자들이 성폭력을 당하고 있다. 그것은 여자의 잘못이 아니라 가부장 이데올로기, 남성중심사회의 폭력에 희생된 것이라고 말한다. 당한 것만도 억울하고 분한데 왜 피해자가 오히려 부끄러워하고 주눅들고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하느냐는 것이다.

 

“제가 성폭행을 당했던 일을 밝힌 게 제 개인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먼 옛날부터 수많은 여자들이 당해온 일이고 지금도 당하고 있습니다. 모두 감추고 주눅들고 내빼기만 하면 앞으로도 천년이고 만년이고 계속 당하고 살아야 해요. 그렇기 때문에 이건 개인문제가 아니라 모든 여자들의 문제인 것입니다.”

 

 

평생 순결을 지키면서 독신으로 살겠다는 맹세

 

그가 서른아홉해를 살아오면서 겪어온 고통은 말이나 글로 일일이 표현하기 힘들 정도다. <천년의 겨울을 건너온 여자>를 쓰면서 그는 김광일 박사에게 자신의 병명을 정확히 알려줄 것을 부탁했다. 김박사에 의하면 경계선적 성격장애, 기면증, 성폭력 후유증 세 가지가 뒤섞여 있다고 했다. 경계선적 성격장애는 어린 시절 학대받고 자란 환경에서 기인한 것이고, 기면증은 선천적으로 신경이 아주 예민하기 때문에 발병한 것이라고 했다. 거기다 성폭행을 당함으로써 신경쇠약과 신경증이 극도로 심해진 것이었다.


 

남자를 용서하고 자유로워지는 데 17년이나 걸렸다고 말한다.

 

“그런 영화만 봐도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불쑥불쑥 그 놈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에 미칠 것 같은데 어떻게 쉽게 용서가 되겠어요. 하지만 용서하지 않으면 내가 평생 고통 속에 살아야 하니까 나를 위해서 용서해야 하는 겁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천주교신자니까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을 하루에도 수없이 되뇌며 살았습니다. ‘예수님이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어. 그러니까 용서해야 돼’ 하고 말입니다. 지금은 인격을 가진 인간이 어떻게 짐승처럼 되고,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지 연민을 느끼고, 그런 사람들을 구원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제 자신의 고통을 웃으면서까지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사회에서 성폭행을 당했다는 것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고 말해서도 안되는 수치로 여겨진다. 그렇기 때문에 성폭행당한 사실을 털어놓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남자들 중에 그런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책이 나온 후 신문 잡지 방송에서 인터뷰를 많이 했어요. 남자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그들의 뜨악한 시선 속에서 ‘이 여자가 뭘 믿고 이렇게 당당할까? 성폭행당했다는 게 무슨 자랑거리라고 이렇게 떠들고 다니는 거야?’ 하는 생각을 느낄 때가 많았습니다. 제 이야기를 들은 여자들은 ‘맞아 맞아’ 하고 공감을 표시하는데, 기득권을 갖고 살아온 남자들의 머릿속에는 여자들이 어떻게 억눌리고 당하고 사는지 입력이 안돼 있는 거죠.”  

남자를 용서하고 자유로워지는 데 17년이나 걸렸다고 말한다.

 

“그런 영화만 봐도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불쑥불쑥 그 놈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에 미칠 것 같은데 어떻게 쉽게 용서가 되겠어요. 하지만 용서하지 않으면 내가 평생 고통 속에 살아야 하니까 나를 위해서 용서해야 하는 겁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천주교신자니까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을 하루에도 수없이 되뇌며 살았습니다. ‘예수님이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어. 그러니까 용서해야 돼’ 하고 말입니다. 지금은 인격을 가진 인간이 어떻게 짐승처럼 되고,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지 연민을 느끼고, 그런 사람들을 구원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제 자신의 고통을 웃으면서까지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사회에서 성폭행을 당했다는 것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고 말해서도 안되는 수치로 여겨진다. 그렇기 때문에 성폭행당한 사실을 털어놓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남자들 중에 그런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책이 나온 후 신문 잡지 방송에서 인터뷰를 많이 했어요. 남자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그들의 뜨악한 시선 속에서 ‘이 여자가 뭘 믿고 이렇게 당당할까? 성폭행당했다는 게 무슨 자랑거리라고 이렇게 떠들고 다니는 거야?’ 하는 생각을 느낄 때가 많았습니다. 제 이야기를 들은 여자들은 ‘맞아 맞아’ 하고 공감을 표시하는데, 기득권을 갖고 살아온 남자들의 머릿속에는 여자들이 어떻게 억눌리고 당하고 사는지 입력이 안돼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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