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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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내리는 날에
2017년 06월 17일 19시 48분  조회:2401  추천:0  작성자: 최균선
                                                            눈내리는 날에
 
                                                                     야 조
 
    눈이 내린다. 송이송이 함박눈이 내린다. 헐벗고 삭막한 대지에 하늘이 전하는 늦편지인가, 눈이 내린다. 반가운 소식인양 꽃잎처럼 부풀어 사뿐사뿐 내린다. 눈이 내리는 날은 반가운 날이다. 아이들처럼 공연히 싱숭생숭해진다. 무작정 눈이 내리는 강녘에 서면 바람도 귀기울이고 모든 잡음들이 눈송이속에 스며드는듯 고즈넉하다.
    시골에서는 눈이 내리는 날이면 황둥개가 공연히 납뜨고 까치가 꼬리를 달싹이며 울어싸서 반가운 손님이라도 들이닥칠듯 공연히 기다림도 서성댄다. 모든것을 하얗게 덮으며 하염없이 내리는 눈은 그대로 일종의 애수이기도 하다. 그래도 눈이 내리는 날은 무작정 마음이 비워지는듯 여유가 생긴다. 철없던 아이로 돌아간듯 저도모르게 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머리위에, 어깨위에 살며시 내려앉는 눈송이가 곰살궂다.
    밤새 몰래 내린 눈에 추위에 떨던 가지들에 따스한 느낌을 주는 눈꽃들이 반갑 다. 눈이 내린다. 그옛날, 밤새 도둑눈이 발목이 넘도록 온 아침이면 엄마가 부엌문을 겨우 열며 “에구, 눈이 많이도 왔구나, 애들아, 일어나거라 저 건너마을 까치들이 다 얼어죽었다….”하시던 말씀이 생각나는 날이다.
    지금은 아니지만 옛날 쩍하면 눈보라가 터지던 그때는 비암산골짜기를 빠져나와 얼음강판에 해일처럼 굽이치던 눈보라가 가관이였다, 굵게, 힘차게 그치지 않을듯 다투어 몰려온다. 눈보라의 진군에 산천초목도 부르르 떠는듯싶었다. 해가 떨어지고 추운 밤은 오는데 눈발은 삭풍에 내려앉을 곳을 찾지 못하고 있었을것이다. 늦은저녁 눈발이 휘뿌리는 그 풍경이 그때는 내게 별로였지만 지금 생각하면 너무 랑만적이다. 그때는 어찌 그리 자주, 그리 많이도 눈이 내렸던지…
    눈이 함뿍 내리고나면 얼룰진 대지가 잠시는 순수해져서 좋다. 창백함의 상징색인 백설속에 풍경은 그대로 하나의 화폭이다. 겨울, 폭설만이 그려낼수 있는 그런 풍경은 북국의 이채이다. 눈이 내리는 날에는 눈에 펼쳐지는 은빛세계의 아름다움도 있지만 매번 새롭게 다가오는 설경은 먼지낀 내 마음속 깊은곳까지 청소해주는듯싶어지며 마음의 주름살도 펴지는듯하다. 눈이 오는 날은 그저 바라보아도 좋다.
    한겨울에도 별로 쉴사이 없던 농부의 시절, 그냥 눈오는 날은 마음으로부터 일손을 놓게 되여 궂은비처럼 짜증나지 않았다. 고질같은 울적함도 원망스러움도 사그라져버리기때문이다. 비소리는 가실수도 없는 마음의 구름을 몰아다 쏟아내지만 하얀 눈은 그게 아닌것이다. 그냥 평범한 겨울날이건만 눈이 소복소복 내리면 무슨 선물이라도 받은듯한 그런 기분에 답답한 마음도 없어진다.
    눈이 오면 개와 아이들이 좋아한다는 말이 있지만 눈내리는 날은 공연히 마음이 들뜨면서 아무도 짓밟지 않고 내린 그대로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을 허허벌판이나 먼 산골길을 가고싶어진다. 내리는 눈발을 차분히 맞으며 무작정 걸으면 내 마음도 보이듯하여 설레발치게 되였다. 눈이 그치면 순백의 설원과 설원위에 눈보라를 일구며 거칠것없이 달리며 부는 바람의 휘파람소리도 듣고싶어진다. 그리고 까닭모를 그리움이 갈마드는것은 아마도 인지상달이기도 하리라.
    아무튼 눈이 내리는 날은 나이에 맞지 않게 눈처럼 티없는 동년이 되여지는듯싶다. 아득히 흘러가버린 동심이 다시 찾아온듯싶다. 보이지 않는 어떤 구속력에서 벗어나서, 마냥 내모는 시간의 촉박으로부터, 온갖 욕망을 꼬드기는 유혹으로부터 벗어나 무한의 자유를 얻은듯싶다. 잃어버렸던 소년이 되고 얼룩진 심령을 깨끗이 쓸어내고 눈처럼 순수한 마음을 보듬게 되는 날이기에 눈이 오는 날은 참으로 자재적이여서 살맛이 풋풋해지는 날이다.
    눈이 많이 오면 집마당에 눈을 쳐내야 하고 마을로 통하는 오솔길도 내야 할 때는 성가셨지만 으스스해지도록 순백의 고독은 아무도 없는 망망한 설원이나 천고의 밀림이다. 가장 적막한 설경에서 누군가와 함께 걷고싶어지고 그러면 자연히 적막과 고독감을 떠올리게 되는 그런 마음이다. 길잃은 나그네처럼 숫눈길속이 이리저리 허둥대면 가슴이 그만 하얗게 비워지고 순수함은 부풀어오른다. 이 눈길을 저끝까지 가면서 나만의 발자국을 찍어가며 흩날리는 겨울하늘의 엽서를 주어든다.
    모든 만남은 언제나 영원한 첫번째 순결을 찾으려는 마음으로 숫눈길을 가노란다. 바람에 생각을 부풀리면서 시간밖으로 무수한 기억의 휴지부를 남겨두고…해마다 심령속에서 쌓였던 묵은기억을 무찔러버린다. 눈은 어디서 오는가, 어떻게 내리는가, 어디로 사라지는가. 커텐뒤에서 녀인의 옷벗는 소리같이 미묘한 펑펑 눈내리는 소리, 싸락싸락 날리는 눈소리…그 소리는 겨울의 음악이기도 하다.
희다고만 할수 없이 사색적일수밖에 없는 눈도 있지만 찐득찐득한 눈물처럼 내리는 진눈깨비는 공연히 우울해지게 한다. 눈은 내리는 정경도 좋지만 눈이 멎고 펼쳐진 은빛세계가 더 정서적이고 감상적이다. 숫눈길속에 풋풋한 순수가 쌓이는 눈내리는 날이라 그래서 눈을 좋아한다면 쎈치멘탈하다고 할수도 있으리라.
    산에 들에 눈내리여 백색의 세계는 문득문득 결백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지구가 지구로 굳어져서 맨처음을, 인간의 마음이란게 생겨난 첫시각이 궁금하듯이 순결무구한 처음의 결백을, 략탈적인 인간의 손이 닿지 않아서 때묻지 않은 결백을. 부패와 얼룩이 없는 결백의 처음을 상상해보게 하는 순백의 세계가 그래서 좋은것, 
    릴케는 "고독은 비와도 같은것"이라고 표현했지만 비는 죽어가는 혼백같은것이고 고독을 부르는것은 눈ㅡ백설이다. 순백의 눈세계에 홀로 서있다면 흔하게 찾아오는 느낌일것이다. 눈길이 거슬릴데가 전혀 없어서, 도무지 대상물에서 어떤 오점을 찾을수 없기에 고독을 부를수도 있는것이다. 니체는 순결을 지키기 힘든 자에게는 순결을 버리게 하라고 하였지만 말이다. 백설이 망망할 때면 저절로 읊조리게 된다.
 
                                              눈이 내리네. 모아산
                                                     고개의 길 아스라하니
                                                             눈내리여 하좋은 날은
                                                                     젊어서 걷고싶은 날이요
                     
                                              은빛ㅡ백설세계속에서 
                                                     색바랜 계절을 읽으며
                                                             하얗게 마음을 털어내고
                                                                     감회가득 채우는 날이요
 
                                                송이송이 하늘의 축복인듯 
                                                        눈꽃이 내리여 하얀날에는
                                                               숫눈길 나혼자 즈려밟으며
                                                                       스스로를 찍고싶은 날이요
 
                                                       2013년 11월 15일,     2016.11.24  (연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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