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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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의 한
2008년 01월 30일 11시 27분  조회:4375  추천:36  작성자: 최균선

정혜의 한

                                   

최 균 선

 

1

 

    정혜는 찌글어진 초가집퇴마루에 나앉아 별무리 쏟아져내리는 밤하늘에 상념을 걸고있다. 시골의 적막을 울어싸는 부엉이의 단조로운 울음을 삼키며 밤은 새벽으로 달리고 초롱초롱한 아기별들은 깜박깜박 조을며 하늘의 수수께끼를 풀고있다. 이제 막 둥글어가는 중순께 달이 설핀 구름속을 달리며 찢어진 웃음을 흐트러뜨리고있다.       

    정혜는 은하수건너 아득히 먼 별무리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땅꺼지게 한숨을 토했다. (호ㅡ저 창망한 하늘에 나의 별자리는 어디쯤에 있을가?) 별을 바라보는 그의 커다란 눈에 가랑가랑 맺혔던 이슬이 희고 갸름한 볼을 타고내려 고운 턱에서 맴을 돌다가 무릎우에 놓은 손등에 똑똑 떨어졌다. 허지만 작은 가슴에서 고뇌의 연기를 몰몰 피여올리는 불티는 꺼질줄 모른다.

처녀의 순진한 마음으로 무지개같이 고운 꿈 보듬으며 마침내 힘겨운 고중생활을 마치고 푸른 희망이 아지랑이처럼 피여날 새 언덕에로 날오르려고 날개를 파닥이는 스므살 한창나이, 순결무구한 처녀들이면 다 그러하듯 번거로운 학습생활에도 찬란한 해빛이 마음속에 스며들어 꽃들과 속삭이고 꽃들이 전달하는 향기처럼 한없는 희열이 몰래 어렴풋한 행복으로 엉키게 하는 시절이다. 

정혜는 야심도 만만치 않았다. 소학교때부터 초중 3년을 줄곧 반급간부로 활약 하였고 공부도 늘 앞자리를 차지했다. 향중학교에 학생들로는 하늘에 별따기같은 지구중점고중에 붙자 더구나 대학가고 연구생공부도 할 작정이여서 일심불란으로 공부하였다. 설사 빌어먹더라도 딸을 대학공부시킨다며 로심초사하는 아버지의 마음 을 헤아려서라도 헛눈 한번 팔지 말아야 했다. 그래서 청춘기의 간질거리는 마음도 리성으로 잠재워두고 책과만 씨름했다.

그런데 한창 마지막 총복습에 눈코뜰새 없는 어느 날 옆자리에 앉은 남자애가 골목을 지키고섰다가 해와 달을 걸고 사랑을 맹세할줄이야. 부끄럽고 당황하고 불안 해서 뿌리치고 달아나긴했지만 그 한밤을 가슴이 떨려서 한글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공부도 괜찮게 하지 이름이 뜨르르한 스포츠여서 반애들은 물론 졸업학년의 내노라하는 녀자애들이 추구하고있던 백마왕자가 태산같은 사랑의 맹세를 안겨준것이 행운일가? 불행일가? 아무튼 옥녀에게는 치명적인 강타가 아닐수 없었다.

남자애가 지꿎게 달라붙는 바람에 거의 밤마다 미지의 짜릿한 감각을 손짓해보며 신비로운 초련의 황홀경속에서 마음은 소란스러운 흥분으로 뒤범벅이 되여갔고 시간 은 관건적인 많은것들을 등에 업고 소리없이 새여나가버렸다…하지만 자기의 순정을 마치 씹던 껌을 내밷듯하며 다니는 정이 헤픈애들처럼 첫사랑의 미혼탕에 쓰러지지는 않았다. 모질게 마음먹고 순정의 골방을 꽁꽁 닫아걸었던것이다.

거절해버린 사랑의 반작용이랄가? 그렇게 윽벼르고있던 정법대학엔 5점차이가 나서 못가게 되였지만 1류대학의 통지서는 받아안게 되였다. 이젠 학비만 준비하면 훨훨 날아가게 된다. 하지만 만원이란 그의 가정형편에서는 그야말로 천문수자였다. 정혜는 자칫 대학꿈이 산산히 깨여질수 있다고 생각하니 속절없는 눈물만 샘솟듯 흘러나올뿐이다.

애꿎은 담배만 피우시는 아버지의 초라한 모습을 보기가 너무 민망해서 대학길을 접어버릴가도 생각해보기도 했다. 금박을 올린 통지서가 그렇게 유혹을 던지고있지만 마음은 종시 질정하지 못한다. 그는 몇백번이나 입술을 깨물었는지 모른다. 그럴때마 다 간다온다없이 가출해버린 어머니가 한없이 밉고 저주스러웠다.

…어데서 술을 잔뜩 마시고 들어온 아버지가 여윈 가슴을 탕탕 치며 울먹거린다. 그렇게 패기넘치던 아버지가 이 며칠새에 폴싹 늙었음을 발견하며 정혜는 입술을 깨물었다. 빨간 피가 돋아나고 아팠지만 가슴이 더 아팠다.

ㅡ정혜야, 너는 내 희망이고 자랑이였는데 어떡하냐…후유ㅡ그러나 울지마. 네가 울면 이 아버지 가슴에선 열길고드름이 드리우는구나, 내가 끝까지 해볼게 응?

그렇게 무너져내리는 아버지를 보고 아무데도 안가겠으니 너무 상심하지 말라고 말해놓고 문을 뛰쳐나온 정혜였다. 여기저기 돈꾸러다니는 아버지의 초췌한 모습을 뒤쫓으며 질정하지 못하다가도 마당앞 백양나무에 까치울면 안타까운 기대와 희망이 꼼지락거리던 가슴이 못견디게 죄여들었다. (, 딸은 몹쓸 도적이라더니 나야말로 아버지의 마음을 송두리채 훔쳐내고 있구나. 일년학비 만원에 숙사비가 매달 몇백원 그리고…)아름찬 돈계산을 하다가 정혜는 토방에 폭 엎어져 방황하는 자신을 질책하 면서 울고 또 울었다…

ㅡ정혜야, 너 또 우느냐? 네에미는 정말 몹쓸년이지, 범도 새끼를 둔 골을 뒤돌아본다는데 제속에서 떨어진 딸도 팽개 치고 어데가서 제좋은 노릇하는지…미워 하고 울어봐야 쓴죽이 밥이 되겠냐? 에구, 가난이 죄로구나. 네애비는 하늘이 무너 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구 하지만 손털고 나앉게 생겼으니 이걸 어쩌누? 흐흑…

락망이 절반, 위안이 절반으로 어루만지는 외할머니의 말도 이 시각, 정혜에게는 멀고 먼 꿈나라에서 들려오는것 같았다. 아닌게 아니라 정혜가 눈물로 나날을 보낼 때 그의 아버지 한철이는 속이 재가가 되여 뛰여다녔다. 열손가락 깨물어 안아픈 손가락이 없다지만 외동딸인지라 금이야 옥이야 하던 자신이였다.

대학에 갈수 있는 좋은 머리를 가지고있었지만 한마을애서 자라나 현성고중까지 함께 간 미순이와 사랑에 빠져10년공부 나무아미타불이 되였고 비록 결혼했지만 한평생 풀속에 머리를 틀어박게 되였다. 어떻게 살아가든 사랑만 있다면 행복하다던 미순이가 골안을 휘쓸어간 시내바람에 소리없이 잠적해버리고나니 오직 사랑하는 딸애가 삶의 기둥이였고 전부의 내용이기도 했다.

정혜가 현고중에 붙은 그해 가을 학비마련으로 집안이 부산해지자 가난에 더는 열불나서 못살겠다며 가출해버린 안해가 죽이고싶도록 미웠지만 인물만은 내돌릴만한 자색이였다. 딸도 그런 제에미를 먹고 눈듯이 희한하게 잘 생긴데다가 심성도 참해서 그에게는 곧 목숨같은 존재였다. 하늘도 무심하지 않아서 딸년이 드디어 성공하였다. 하지만 학비를 마련할 일이 아득했다. 아글타글 한푼두푼 모아두었던 얼마안되는 돈마저 미친년이 가지고 도망가다보니 빈털털이 신세가 된 한철이였다.

 

2.

 

한창 잘 나가고있다는 옛동창에 일루의 희망을 걸고 훈춘까지 찾아갔다가 역시 헛탕치고 돌아온 날 저녁무렵 술을 억병으로 마신 한철이는 집에 들어가지 않고 곧추 뒤산숲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귀신에게 홀려다니듯 정처없이 숲속길을 방황하며 쓰고 떫고 괴로운 생각을 반추했다. 하늘이 무너져도 딸애의 학비를 마련해야 했다.

비록 농토에 묻혀사는 신세였지만 자존심만은  강한 그였다. 그러나 농민의 자존 심따위를 내들 처지가 아니였다. 룡정, 왕청…사돈에 팔촌까지 찾아가볼만한 곳은 다 돌아다녔고 번번히 빈손으로 돌아왔다. 그때마다 배반하고 간 안해를 찾아내여 갈기 갈기 찢어발기고싶었다. 딸만은 어떻게든 대학공부시키자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그 윤기돌던 입술이 떠올라 더구나 가슴이 뿌직뿌직 찢겼다.

친척도 친구들도 다 귀찮았다. 사랑하는 딸에게 미안했고 가출해버린 안해에게 원한만 사무쳤다. 딸애는 대학에 안간다고는 했지만 말하는 입과 바라보는 그 눈길이 그렇게 다른것을 보며 억장이 무너져내렸다. 무능한 애비때문에 딸애가 앞길이 막막하게 됐다고 생각하니 자기 자신의 존재가치가 너무나 허무했다. 생마늘을 삼킨 듯 쓰라린 가슴에 소외감만 치밀어오르고 소태기름을 삼킨듯 쓰디쓴 고독감에 입맛을 다시면서 누구에게라없이 《뿌드득》이를 갈았다.

이따금 오열과 비슷한 오한이 나기도 했고 이마에 식은땀이 흥건하기도 했다. 그는 지금 무서운 시련을 겪고있었다. 이젠 풀어질대로 풀어진 의식을 오리오리 옥매듭지으면서 새삼스레 자기 앞에 놓인 생사의 갈림길에 두려움과 애석함과 까닭 없는 미움과 증오를 동시에 느끼고있었다. 그렇게 비겁한 자신에 대해 랭소하면서도 자꾸 단침을 삼키게 되고 목이 꺽 메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사람은 남을 저주할 힘이 없을 때 자살한다던가.

미친년 달래캐듯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그는 제일 높은 산봉의 어느 소나무밑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아직 해가 질 저녁무렵이 아니였는데도 숲속은 어둡고 하늘엔 더러워진 천쪼각같은 잔구름들이 누더기럼 널려있었다. 미구에 서서히 석양이 피빛같이 서천을 물들이고있었다. 그러나 한철의 가슴속에서는 방금까지도 설설 끓던 더운 피가 점차 식어가고있었다. 그의 눈은 보기에도 무서우리만큼 침침하고 암담 해있었다. 설사 열개의 해가 다시 떠오른다해도 그의 눈에 빛을 담아주지는 못할것 이다. 마음도 퍼렇게 멍들었고 내노라 하던 칠척사나이 자존도 겨울에 먹자고 소금물에 잠궈둔 늦외처럼 주눅이 들었다.

돈많은자들에게는 만원같은것은 어느 계집의 가슴에 쑤셔넣어도 속을 앓을 돈이 아니지만 그는 무던히도 속을 태웠다.(에익, 망할것! 돈이 뭐게?) 돈은 특수상품이고 일종 부호라고 한다. 모할아버지의 그림이 찍혀있는 매개물, 아니 종이장이지만 귀신 을 석마를 돌리게 할수 있다. 지금 그에게 있어서 돈은 창녀이고 악마였다.

그는 지금 만원이 변한 각종 유령들속에서 모지름쓰고있었다. 그것들을 멸시할수 록 가볍게 털어버리려고 애쓸수록 유령들은 그의 신경중추속에서 더 뻔뻔스럽게 더욱 얄궂게 춤을 추었다. 그는 헤여나올길 없는 절망에 빠진 자신을 발견하고 또 한번 몸서리쳤다.고방구석에서 그냥 쿨쩍거리고있을 딸애의 모습이 보이는듯했다.

슬프도록 맑고 아름답고 청청한 목소리를 가진 딸애다. 응석을 부릴때마다 싫지 않은 그 목소리를 들으며 누가 딸애만큼 자기를 실망의 황무지에 주저앉지 않도록 용기를 불러주랴싶었다. 제멋에겨워 노래를 부를때면 맑은 꽃향기를 실은듯 만물이 약동하는 숨결같은 봄바람이 불어오는듯 하였고 먼 바다에서 날아예는 갈매기의 울음소리를 들을때처럼 어떤 애수도 안겨주는 그런 목소리였다.

그런 딸애를 보면 안해의 화사한 얼굴과 까르르하고 웃음소리속에서 다 큰 계집 애를 꼭 그러안아주군 했다. 그처럼 그에게 있어서 딸과 가난한 시골살림에 진저리난 다며 지청구를 흘리다가 끝내 도망가버린 안해와 자기가 하나로 융화된 통일체였다. 그래서 더구나 돈은 이 시각, 귀신을 웃길수도 있다는 마력이 아니라 자기의 한 목숨, 그 자체이기도 했다.

그는 독한 마라초를 한대 말아 물고 굴뚝같이 진한 연기를 토하다가 엉뚱한 생각이 건가래침과 함께 탁 뱉아졌다. 가난구제는 나라님도 못한다는 속담은 가난이 무엇인지 모르는 나라님이 만들어낸것이 분명하다. 아니면 가난구제에 마음을 쓰지 않는 배불뚝이 관료들이나 만든것일수도 있다.

사람이 산다는것은 안해와 자식과 함께 사랑과 희망과 행복을 길게 길게 땋아 내려가는것이 아니랴! 그러나 한줄은 이미 끊어진지 오래고 마지막 그 한줄마저 막 끊어지려고 한다. 그는 생각과 시간이 정지된 표정으로 꼴깍 지고있는 마지막 해 를 넋잃고 바라보았다. 그의 어깨너머로 황혼의 잔영이 슬프게 떨고있었다.

잔광은 란자당해 죽어가는 사람의 상처에서 흘러내리는 피처럼 숲속을 적시고있 었다. 림종을 맞는 해는 유언도 없이 원통해서 눈을 뜬채 마지막으로 밤의 자객이 찌 른 칼날을 노려보고있었다. 미구에 하늘의 많은 부분을 이미 점령해버린 밤의 왕국에 는 성급한 별들이 반짝거리며 신생의 기쁨을 속삭이고있었지만 그의 눈속에는 그것  들이 그저 애처럽게만 보였다.  

그는 얼마후면 싸늘한 시체로 굳어져 그 험한 인간들의 시장에서 기가죽어 돌아 다니지 않게 되고 배신과 허위와 욕망과 실망이 꿈틀대는 더러운 인파속에서 뒤몰리 지 않아도 될것이다. 비장한 결심을 내리고있는 그의 얼굴에 늦가을 빈들녘과도 같은 허무함과 회한의 짙은 그림자가 떨면서 지나갔다. 안주머니에서 흰약병을 꺼낼때는 손이 떨렸지만 입안에 한꺼번에 쏟아넣을 때엔 그렇게도 성급했다. 그리고 싱싱한 멋이 사라져가는 소나무아래 풀밭에 훌렁 드러누워 두눈을 꼭 감았다……

이튿날도, 그 다음 날도 한철이가 돌아오지 않는데다가 누군가 그날 한철이가 술병을 들고 숲속을 헤매는것을 보았다고해서 옆집 친구는 급기야 파출소에 신고했다. 모두들 간대루야하고 가슴을 조리며 산속을 뒤지다가 저녁무렵에 끝내 찾아냈다. 한철이가 숲속의 소나무아래에 수면제를 먹고 아픈 마음을 영원히 잠재웠던것이다. 한철의 웃옷 안주머니에서 유서가 나졌다.

ㅡ사랑하는 내 딸 정혜야. 아주 멀리까지 너의 장래를 마련해주고 오래오래 지켜보며 부녀간의 사랑이 무엇인지 느끼게 하려던 이 못난 아버지는 그만 투항하고 간다. 미안하구나. 그러나 아버지구실을 옳게 못하는 주제에 실망어린 네 눈을 어찌 보고 이 세상에 무슨 낯을 들고 다니겠니? 더구나 너의 엄마조차 지켜내지 못했으니 어찌 이 밝은 세상에서 구질구질한 목숨을 살아가겠니?

피아노곡조가 맞지 않을 때 피아니스트를 총살해버리는게 가장 깊은 동정이라면 이 자격이 없는 아버지는 스스로 사라져야 하겠지? 이러는 나를 니엄마는 절대 용서 하지 않겠지만 너만은 리해해다오. 너에 대한 희망은 빵과 같은것이였지, 그런데 한오리 가느다란 그 희망의 줄마저 끊겼으니 나 인젠 빵이 없는 사람이 된거야. 그러니 죽어야 마땅하지 않겠니?………

정혜는 더 읽어내려갈수가 없었다.

(아ㅡ버ㅡ지ㅡ이ㅡ제가 아버지를 해쳤어요. 아ㅡ버ㅡ지ㅡ이ㅡ)하고 실넋해버린 정혜를 보며 도와주지 않은 이웃들의 가슴에서 널장이 떨어졌다. 박정한 친척들도 소식을 듣고 머리를 들지 못했다. 일가친척들 사이에도 인심후한 큰형님이였고 동네 에서 걱정도감이던 한철이는 그렇게 한을 품고 박정한 세상을 버렸다…

한철의 자살사건은 골령을 들썽했다. 농민들의 가슴속에 더구나 실망정서를 지펴올렸던것이다. 급해맞은 현민정부문에서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식으로나마 옥녀를 찾아 의연금을 모아줄테니 학교에 가라고 권고했으나 옥녀는 한사코 거절했다. 거절 했다기보다 량심상에서 갈수 없는터였다. 일은 그렇게 흐지부지해졌고 한철의 막무 가내한 죽음은 시간의 흐름에 차차 씻겨가버렸다.

비명에 죽은 아버지의 싸늘한 가슴에 매달려 실성할듯 울어싸면서도 눈물로 결심했었다. 아버지의 목숨을 앗아간 대학공부는 아예 단념해버렸다. 돈이 곧 세계인 이 시대, 어떤 경로를 걷든 돈을 벌어서 어머니에게 복수할 일념에 전률했다. 그는 연길시내를 누비며다니다가 어느 안마원에 견습공으로 들어갔다.

                                 3

 

정혜에게는 고달픈 세월이였지만 멋대로 그렇게 흘러갔다. 그러다가 중학교때 유일한 딱친구였던 양미의 권고로 그가 있다는《흥부노래방》에 들어갔다. 손님들과 함께 춤추고 노래도 하고 술을 마셔주며 받는 팁이 웬간히 짭짤했다. 그러나 커다란 돈나무를 잡는게 그의 목표였다. 그러던 어느 날,《신사노래방》아가씨가 부족한데 정혜를 보내라는 전갈이 왔다. 정혜는 여느때처럼 손님과 함께 술을 마시고 춤이나 추고 팁을 받고 나오면 되겠지 하고 별생각없이 달려갔다.

살집이 좋고 잘 보양해서 조금 젊어보이긴 해도 지천명도 저믈어가는 한 기름진 남자가 혼자 앉아있다가 정혜가 들어서는것을 보고 반색했다. 속내를 알수 없게 생긴 두눈이 정혜의 가슴을 얼레빗질하고는 곧추 얼굴에 박혔다.

한쌍의 볼우물을 파는 애된 얼굴은 웃지 않아도 마냥 웃는듯했고 총명혜지로 빛나는 한쌍의 커다란 눈은 그렇듯 맑고 그윽했다. 몸에 찰싹 붙는 옷을 입고 다니는 여느 배동아가씨들처럼 요염한 차림도 아니였고 눅거리 귀걸이, 목걸이따위를 걸지 않았지만 현대미도 고전미도 아닌 알수 없는 단아한 모습이 너무나 성감적이여서 침이 꿀꺽 삼켜졌다.

이슬맞은 수국처럼 청신하면서도 섹시한 정혜를《흥부노래방》에서 처음 보았을 때 그는 이미 첫눈에 점찍어두었던것이다. 그래서 은밀히 뒤조사를 해보았더니 아직 오염되지 않은 동정녀였다. 그래서 오늘 서둘러 이름을 찍어서 불러들인터이다.

어둑시그레한 불빛아래 늙이와 단둘이 앉은 옥녀는 여느 날과 달리 별스레 몸이 으스스해 났다. 다른 사내들은 옆에 앉기 바쁘게 손짓이 건너오고 그런대로 가만이 있으면 들어갈데 안들어갈데를 가리지 않고 집적리는게 보통이였지만 로신사는 시종 점잖은 빼고있었다. 밤이 이슥해서 남자가 자리를 옮겨서 즐겨보지 않겠느냐고 제의 해오자 자기는 아직 그렇게 깊이 들어가서 돈을 벌고싶지 않다고 딱 거절했다.

ㅡ미안해요. 전 배동아가씨질은 하지만 그런 일만은…

ㅡ응, 그래?! 진탕속에 백합을 보는격이군. 참 유감인데…나 한번 자극을 찾자고 너를 불러온건 아니야, 나를 따르면 정말 좋은 일이 많을텐데…난 네가 그 노래방에 유일하게 오염되지 않은 나리꽃이라는걸 알지, 그래서 하는 말인데말야. 하지만 네가 정 아니라면 뭐 할수 없지, 나는  이 바닥에서 한다는 신사야, 아무에게나 내미는것 아니지만 특별히 주는거니까 받아두어, 혹 생각이 돌면 날 찾아와!

곤두선 감정의 줄기를 매몰차게 부러뜨리는 계집애가 귀뺨을 후려치고싶도록 괘씸했지만 마음을 눅잦혔다. (햇병아리같은 계집애가 한창 놀고있네. 어느 안전이라 고…흥,) 늙은 신사의 웃음은 몸깊은 곳에서부터 야릇한 흔들림의 불꽃을 튕겨올리 는것만 같았다. 옥녀는 아직 그의 표정에 관심이 없었지만 얼결에 남자가 내미는 명함장을 받아쥐였다. 어스레한 불빛속에서도 금박을 올린《리승필교수문진》이라는 글자들이 유혹하듯이 확 안겨왔다. 그러나 노복의 눈에는 귀인이 없다던가, 그동안 내노라하는 벼라별 부자들과 부딪쳤던 옥녀로서는 고작해야 진료소따위나 꾸려놓고 허세를 부리는 늙은 령감태기가 대번에 마음이 기울어질만큼 탐탁해 보이지 않았다.    

ㅡ감사합니다. 하지만 전 그저 술만 배동하고 노래나 불러들이고 싶어요.

ㅡ그래, 나 마구잡이로 놀아대는 그런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니 안심해. , 그럼 노해한곡 부탁하지, 아가씨가 제일 잘 하는 노래를 불러봐.

 옥녀가 마이크를 들고 노래를 부르자 남자는 가볍게 박자를 맞추며 흥이나서 연신 감탄성을 올렸다.…사랑은 아무나 하나? 사랑은 아무나 하나? 눈이라도 마추쳐 야지ㅡ녀자의  웃음이 눈물인줄 그 누가 알랴! 돈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의 순정…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 도대체 왜 이러는지 몰라…꼬집어 말할순 없어도 서러운 마음 나도 몰라, 이래서는 안되는줄 알아, 래일이 슬픔인줄 알아…

아름다운 음악이 생활을 장식한다지만 이런 유흥업소에서의 음악은 향락을 자극할뿐이다. 생활자체는 일련의 시끄러운 자질구레한 일과 음모와 궤계로 가득차 있다. 사람의 진정과 품성은 이런 자질구레한 일에서 여지없이 드러난다. 옥녀는 노래에 열중하다보니 남자의 은밀한 손동작은 포착하지 못했다. 련거퍼 몇곡을 부르 고 자리에 돌아온 옥녀는 로신사가 내주는 맥주잔을 받아서 단모금에 마셔버렸다.

ㅡ애썼어, 컬컬할텐데 한잔 더 쭈욱 내라구, , 그렇게…아가씬 참 여간내기가 아닌데!사람들은 배동아가씨들을 경멸하지만 난 아니야, 사는 방법은 저마끔이니까,

손에 빨깍빨깍하는것이 두툼하게 쥐여졌다. 돈을 손가방에 넣는 그녀의 마음이 이상하게 간지러워났다. 다른 때보다 취기가 급작스레 오르는것일가? 전신이 해나른 해지고 가슴속 어데선가 뜨거운 불덩어리가 굴러다는것 같았다. 그만 가야겠다고 일어섰지만 천정이 빙그르르 돌아가면서 쏘파에 그대로 무너졌다…

그다음 사내가 자기를 부축해서 자가용에 싣는것도 몰랐고 먼길을 들추며 달리는 차안에서 남자의 두툼한 손이 기탄없이 온몸을 만지는것도 몰랐다. 남자가 자기를 어린애처럼 안아다 널직하고 폭신한 침대에 내동댕이치는지도 전혀 모르고 그대로 무방비상태로 곤드라졌다.

로신사는 넥타이를 풀며 옥녀를 내려다 보았다. 이름 그대로 녀자의 얼굴이 너무 순결무구해서 오히려 점직해나는것을 숨길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얼핏 스쳐지나간 량심의 잔부스러기였다. 남자는 자기속에 동물의 모습을 감추고 있는것이다. 남자는 다 자기 내부에 쥐를 잡아 얼른 먹지 않고 장난을 하는 고양이 심보를 가지고 있고 나비를 유혹해서 그믈로 얽었다가 그 피를 빨아먹는 거미를 가지고있다. 남자는 그런 생각을 하며 비릿하게 웃었다. 쌕쌕 단김을 내뿜는 오똑한 코며 이제 막 피여나려는 봉선화 꽃잎처럼 방싯 벌려진 입술…그 모든것을 이제 여지없이 죽탕져줄판이다.

남자의 거칠고 다급한 손길에 거미줄이 한오리 한오리 끊어져나가고 마침내 브래 지어속에 숨어있던 두개의 붕긋한 유방이 툭 튀여나와 눈이 부시게 했다. 채송화 화판같은 그속에 연보라색의 꽃봉오리가 웅성의 략탈을 기다리고있다. 한마리 싱싱한 물고기처럼 신비롭고 경이로운 녀체의 부드러운 곡선, 미끈하고 탄탄한 허벅지가 곱게 모이는 곳에 무성한 숲이 펼쳐져 있었고 그속에 환락의 샘이 패여있었다. 아직은 덜익은 풋살구일지 몰라도 거기에 미답의 새경험이 있고 자극이 있을것이다.

돈은 여생에 다 쓸수 없을만큼 벌어놓았고 지금도 벌어들이고 있는 그로서는 수많는 녀자들의 몸을 거쳐 젊은 시절에 만끽하지 못한 그 육욕의 향연속에 질탕거리 는 인생지락밖에 더 없었다. 50대는 사랑에는 절름발이라지만 색에 들어가서는 석양 처럼 이글이글 불타오른다는것을 햇병아리같은 녀자애들은 모른다. 

한해전 근 3년간 데리고 살던 녀자를 한국의 로신사에게 주어버리고 두루춘풍 식으로 이 계집, 저 계집을 갈아타며 도락을 했지만 이번엔 새큼한 풋살구를 마음껏 깨물며 지구전을 하고싶었다. 마음에 드는 계집애를 찾아내면 무슨 수를 쓰더라도 버젓이 애처로 맞아들일 궁리도 굴리고있던 그였다. 마침내 하늘이 점지해준 햇살구 가 입가에까지 굴러들었으니 이 아니 즐거운가,

이 시각, 아무 방비도없이 드러날대로 드러나 있는 동녀의 라체가 시들어버릴듯 싶던 그의 음욕을 거세차게 불질렀다. 기나긴 겨울밤이 새도록 동녀의 거기를 짓밟아 보고싶었다. 분명 남자의 습격에 겁을 먹고 무감동할지라도 이 로운동가의 광증에 시달리며 몸부림치는 그 모습이 얼마나 극적일가? 그래, 남자는 이멋에 사는거야, 방금 먹은《위거》가 은을 내느라고 페니스를 무섭게 솟구치며 돌격을 재촉했다. 사나이의 눈길에 파란 빛이 흘렀다.

그 병적으로 기름이 끓어오르는듯한 눈빛, 쾌락과 욕정으로 잔뜩 흥분되여있는 눈빛, 먹이를 발견했을 때 떠돌이 야생동물의 그런 눈빛, 살아있는 동물의 목숨은 노리지 못하고 이미 죽어가거나 다른 짐승들이 먹다남긴 썩어가는 동물의 시체를 보는 순간 발산하는 그런 더럽고 비속한 동물의 눈빛, 그 눈빛이 지금 막 정혜를 덮치고있었다. 만약 정혜가 맑은 정신으로 그런 남자를 올려다 보았다면 소름이 끼쳐 비명을 질렀을것이다. 야들야들한 동녀의 촉감이 방불히 전신에 번져오는것 같았다. 침대우에서는 무슨 신사가 없다. 그는 막 발정이 난 늙은 황소가 얌전한 암소를 올라 타듯이 녀자를 마구 덮쳤다. 가슴에 젖무덤이 뭉클 감촉되여왔다…

그때까지 몽롱한 의식속에서 죽은듯이 누워있던 정혜는 받아내기 어려운 육체의 압박감과 란폭한 파괴의 아픔에 어렴풋이 눈을 뜨긴 하였지만 누군가의 얼굴이 환각 처럼 얼른거렸을뿐이다. 모진 아픔에 정신이 번쩍 들었을때는 너무 늦었다. 자신을 짓뭉개고있는 남자를 밀어내려고 힘껏 버둥거리며 몸을 비틀었지만 이미 아무 쓸모없는 저항으로 팔을 허우적거리다가 이윽고 모든 움직임을 멈추고 큰 바위밑에 깔린 들꽃처럼 시들해지면서 자신을 서서히 포기해버렸다. 신선한 향기가 흩어지고 숨가쁜 허덕임과 피로만이 남았다.

…이른 아침, 남자가 다시 자기 가슴우에 엎어져서 발악을 할 때에는 자신도 이상하리만큼 사이비한 쾌감이 혈관속에 퍼지듯이 전달되면서 멍해있던 그의 정신을 흥분에 떨게 하였다. 목안이 말라들고 전신이 달아오르며 가볍게 떨리더니 후에는 걷잡을수 없이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내렸다. 동시에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산골 짜기에 메아리같은 울음이 터져나왔다.

그의 인생에 전환점인 밤이였다. 아버지의 생죽음을 겪고 꿈마저 버려야 했던 그 모든 고통과 소녀궁이 처참히 짓밟힌 그 설음도 시간과 더불어 점점 색바래여갔다. 정혜는 그가 부등켜안으려던 돈나무가 비록 탐탁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무서운 금구도 넘은이상 로신사의 작은 꿀벌로 들어앉기로 작정했다. 늙은 남자의 양배추속같이 희고 살찐 가슴의 무게와 광증을 받아내노라면 이발이 절로 물러날무렵의 둔하게 아프고 근질근질한 상반된 쾌감에도 차차 적응되여갔다.

자기 이름으로 된 아빠트도 생기고 꿈에 그리던 자가용도 굴러들어왔다. 핸들을 연길바닥을 누비노라면 생활의 풍요로움도 만끽하는듯 싶었다. 하는 일이란 화장하고 드라이브삼아 여기저 쇼핑을 다니고 그리고는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자극적인 잡지들을 뒤번지는게 도우미아줌마에게 잔소리나 늘여놓는게 고작이다. 허나 그것도 한동안이였다. 마음은 한말뚝에 곱다라니 매여있다가 눈을 싸매고 석마돌의 주위를 천리를 가듯 가고 또 가는 당나귀가 아니다. 그녀의 생각의 호수에 파도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문턱을 넘으면서도 열두가지 생각을 한다는 녀자들의 본성이 어데가랴,

천진란만하던 학창시절의 고운 꿈은 어데로 갔는가? 비록 좋은 옷으로 몸을 감싸고있었지만 령혼이 이미 도망해버린 빈 육체는 헛간과 다름없었다. 찌들린 생각에 쫓기는 그런 날 밤이면 마음의 서랍들이 위쪽으로부터 차례차례 열리기 시작 하면서 그가 살아온 동안  열어보기조차  무서웠던 그 맨 아래 층서랍이 삐그덕 거리며 열리고 그안에 담겨있던 자신의 내장이, 자기를 육체이게 해준 그 내장들이 소금에 절여지듯이 꿈틀거리였다.

                                4.

 

ㅡ야, 정혜야, 아예 나와 결혼하자, 나도 이젠 너절한 계집들의 시궁창에 넌덜머 리가 났어. 널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해 줄거야!

ㅡ할아버지같은 사람에게 감정이 생길수 있을가요? 웃기지마요, 내가 그렇게 된 몸이여서 할수 없이 붙어있는거지 좋아서 그러는줄 알아? 능구렝이같은게…

ㅡ이 계집애야, 아바이소리 하지말라구했지? 이제 다시 그렇게 불렀다가는 없을 줄알아, 아저씨라구 불러라, 한국사람들처럼 말이야! 그건 그렇구, 너 아무리 숫처 녀를 내게 바쳤지만 배동아가씨로 굴러 다니지 않았어? 굴러들어오는 복을 차던질 네처지가 아니잖아?

ㅡ그래, 두꺼비가 어쩌다 고니고기를 삼켰다칩시다. 그러나 정욕은 사랑이 없어 도 만족되지만 사랑은 정이 없으면 안되는거 몰라요?

ㅡ어허, 이년 봐라. 곱다곱다하니까 꼭두에 올라앉아 똥쌀작정이냐? ? 이젠 너 뛰여봤자 여래불의 손바닥에서 오줌을 갈기는 손오공만도 못되는 처지야, 허허허…

ㅡ그래 말 다했어? 쓴죽이 밥이 안되지만 쉬쉬한 감주를 만들기야 번대머리가 중이 되는것처럼 쉬운 일이 아닐가요? 우리 서로 배짱내기로 놀아봅시다. 누가 더 오래 견디나,

ㅡ아니, 아니, 오해하지마, 네기 그런 녀자란 말이 아니야, 내가 한 말을 찾으마. 요귀여운것아, 하긴 네가 내 막내아들과 동갑내기여서 세대차이가 있지만 남자의 애욕은 퇴직하기 싫어하는법이거든. 공자는 일흔두살이나 되는 령감과 열여덟살먹은 녀자애사이에서 만들어졌다지 않아? 그래서 만고성인이 나온거야,

공자의 애비에 비하면 나 아직 청춘인셈이구 넌 공자에미보다 세살이나 더 먹은 녀자지, 으허허허!어때? 우리 아들 하나 낳을가? 연길바닥서 건축왕이라 불리는 그 친구가 비로 나만은 어리지만 열아홉살 어린 부인과 아들을 척 만들어내고 당당하게 살더라. 남들이 뭐라든 우리만 좋으면 되잖아? 싫으면 이 아저씨의 부인이 되겠다는 열여덟살짜리 애들도 한둘이 아니야, 돈에 미친년들이 지금 얼마라구, 한두름이라도 꿸수 있으니까 너 잘 알아서 결정해!

애젊은 녀자애를 별장에 숨겨놓고 밤마다 즐기고있지만 아예 안해로 들여앉히고 싶어 안달이 난 남자가 요즘 바짝 결혼소리를 해온다. 정혜는 숫제 작정하고 나선 이 길이기에 어떤 보람을 가지고 사는건 아니였지만 나이가 너무 차나서 우선 마음이 동하지 않았고 다른 고장도 아닌 손바닥만한 연길에서 령감태기의 아이까지 낳으며 살아갈 용기가 좀체로 나지 않았다.

남녀간의 육체적생활은 감정과 정서의 생활이다. 그렇다면 지금 자신의 생활이 정서의 지배를 받는것일가? 감성과 참다운 생활은 더 말할것도 없이 너무나 커다란 차이를 보이고있다. 참다운 사랑, 참다운 격정, 참다운 슬픔, 참다운 노여움, 참다운 미움, 참다운 한탄을 자신의 육체가 너무도 알고있었다. 이럴줄 알았더면 생생 끓던 그 나이때 남자애가 덤벼치는대로 순정이나 바치고 말았더면 영원히 아름다운 추억이 나 남겼을걸 하는 쓰거운 회한이 갈마들기도 했다.

자기에게 남아있는것이 무엇인가? 오직 색마에게서 아심아심 짜낸 돈으로 하여 조금이나마 생의 리유를 찾군했다. 생활은 곧잘 사람을 조롱한다. 아니, 자신이 자초 생활을 잘못 리해했는지 모른다. 자신의 마음은 물이 몽땅 새여버린 나무통처럼 텅비여버리고 미구에 깡마르고 터갈라져서 산산히 쪼각나고말것이다.  

령감쟁이는 한동한 밤마다 들어붙어서 물고빨며 지랄네굽을 안더니 말대로 고험해 보느라고 그러는지 다른 년들과 운동전을 하느라고 그러는지 오지 않을 때가 잦아졌다. 그런 날엔 밤깊도록 혼자 온갖 지꿎은 생각에 자신을 괴롭히다가도 머리를 세차게 흔들기도 했다. 자신의 망가진 정조처럼 티없이 깨끗하고 성실한 덕성을 간직할 필요는 없다. 미만한 인생의 감정같은것도 자기에게는 영원히 인연이 없는 것이였다. 랑만적인생은 어렸을 때의 어렴풋한 견해였을뿐 이제는 인생이 무엇인지 다 알것같았다.

    쓸쓸한 가을바람이 창가를 후려치며 어둠속에서 휘파람을 불어대고있다. 호젓한 앞마당에서 떨어지는 나무잎 하나하나의 소리는 그의 가슴속 깊이에서 지는 청춘의 락엽으로 느껴졌다. 육신이 한대의 양초라면 령혼은 타오르는 불꽃이 아닐가? 령혼은 심지가 박혀있는한 언제까 타올라야 했다. 최후의 한방울이 남을때까지 타올라야 했 다. 어떻게든 살아가야 했고 돈을 버는것이 지금은 생의 전부의 내용이였다.

    문득 얼마전에 있었던 우연한 상봉이 떠오르며 입안이 씁쓸해났다. 그날 집구석 에 쳐박힌지 너무 오랜지라 여기저기 상가들을 돌고나서 친구들도 볼겸해서 노래방에 들렸다. 카운터에서 친구와 이러쿵저렇쿵 지껄이고있는데 한무리 청년남녀들이 들이 닥쳤다. 원쑤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낯익은 얼굴들속에 첫사랑의 단꿈을 안겨 주었던 리홍이도 있을줄이야, 방학간에 친구들끼리 몰려다니며 랑만을 흘리는것이다.

    리홍이 이쪽을 건너다 보며 얼굴을 붉히고있다. 두쌍의 눈들이 교차되면서 서로 의 표정을 읽엇다. 흘러간 3년세월이 거두어간 사춘기시절의 흔적과 옛기억의 잔해 들을 서로의 얼굴에서 조금씩 발견해내면서 상대방의 정서와 기분의 미세한 흐름을 저울질했다. 남자애는 그동안 많이도 숙성했다. 얼굴엔 구레나루터가 알리고 키꼴은 더 의젓하게 빠졌는데 행동거지도 무척 듬직해 보였다. 리홍이 먼저 괴로운듯 외면했다. 정혜도 공연히 치솟는 질투심과 환멸감에 얼굴을 홱 돌려버렷다.  서있을 생각이 없었다. 그가 친구와 간다는 소리도 없이 돌아서서 출입문을 여는데 귀익은 중음이 뒤통수를 쳤다.

ㅡ정혜, 나 좀 보자.

………

ㅡ저기 다방에 가서 좀 얘기해,

ㅡ나 너를 몰라. 저리 비켜,

정혜가 매몰차게 내뱉았지만 리홍이는 햇내기가 아니였다. 그는 무작정 정혜의 팔을 잡아쥐고 밖으로 내끌었다. 정혜는 남자의 완력에 의해 묻어갔다기보다 모종의 관성으로 따라갔다. 그들은 길건너 다방에 들어갔다. 복무원아가씨가 보리차를 따라놓고 무엇을 마시겠는가고 물으며 부러운 눈길을 두사람의 얼굴에 박는것이 확연했다. 정혜는 저도 모르게 떠오르는 쓰거운 미소를 쫓느라 애썼다.

ㅡ나, 널 잊지 않았어, 그런데…네가 대학을 포기할줄은 몰랐어, 물론 너에게 더없이 미안해, 그러나 난 진정이였기에 서로서로 동력을 얻고있다고 생각했어, 사실 난 너때문에 늦공부에 열심했던거야, 물론 너의 집에 생긴 일을 들어서 알고있었지. 근데 네가 노래방에 다닌다는 소문을 듣고 철저히 실망했어. 넌 이런데 있을 체질이 아니지 않니?

    옥녀는 리홍이를 건너다보지도 않고 속으로 말하고있었다. (, 낮꿈을 꾸고있네. , 너를 몰랐을 때는 내 마음이 조용한 호수처럼 잔잔했어, 비록 더 큰 꿈때문에 네 자존심을 꺾을수밖에 없어지만 너는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져 파문을 일으켜놓고 끝까지 지켜보지도 않은 개구쟁이야, 물결처럼 내 가슴을 헝클어놓고 뒤도 돌아보지 않았지? 나만 추억의 오솔길에서 헤매고 다녔고 안타까운 마음을 달래며 너를 축복한줄 너 알기나 해? 넌 지금 어엿한 대학생이 되였다고 날아갈듯 하겠지만 내가 지금 어떤 녀자가 되였는지 속속들이 안다면 너 나에게 침을 뱉겠지… 나는 말없이 고이 내 상처와 아픔을 지니고있다. 내 입은 부질없는 하소연을 못참고있지만 나는 부끄럽고 무서운 체험을 너에게 말할 힘이 없다…)

리홍이도 생각의 고삐를 다잡고있었다. 사실 어릴 때 멋모르고 한 사랑의 맹세 였지만 대학에 올라와서 그것이 그저 장난이 아니였음을 날이 갈수록 심장으로 절절 하게 느꼈던 그였다. 그만큼 정혜의 조우에 가슴아파했고 자책과 더불어 그리움이 엉켜돌았다. 그의 가슴속에 늘 량심의 그림자가 드리워있어 지난날의 행위를 반성하 하게 하였고 그 회상으로 마음이 멍들기도 했다. 결국 운명의 낭떠러지에서 모대기는 첫사랑을 구해주지 못한것을 한탄하였다.

그러나 노래방에서 정혜를 찾을만큼  상상이 나래치지 못했다. 그리고 아직 할말 이 없음을 절감하고 열심히 공부하면서 언젠가 만나면 허심탄회하게 말할 생각이였다. (정혜야, 어리광대같은 계집애들처럼 망가지지 말고 기다려라, 내가 성공하고나서 널 찾고 지켜줄거니까…) 

성공한 기쁨을 마음껏 누리는 때에 비참한 실패자를 만났으니 지꿎은 운명의 희롱인가? 그는 슬며시 정혜를 훔쳐보았다. 소녀시절의 풋병아리같던 애가 이젠 제법 천금녀같이 차리고있다. 불쾌한 마음이 욱 치밀었다. 스믈세살 처녀의 애티는 보이지 않고 어덴가 산전수전 다 겪은 로처녀의 그것과 같은 성숙을 슬프게 바라보며 그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정혜가 어떻게 류행아가씨로 될수 있었는가를 알고싶지도 않았고 또 알았다한들 어쩔수 없는 일이였다. 생각하기도 두려운 어떤 막연한 추측이 그의 마음을 싸늘하게 만들고있었다. 무너진 인생의 페허를 바라보는만큼 마음이 아픈 일은 아마 더 없을것이다.

    이들 젊은 또래들은 그 어떤 좋은 일이라도 해낼수 있고 그 어떤 나쁜 일이라도 저지를수 있었다. 때로는 의젓한 대장부로도 되고 때로는 그냥 촐랑대는 까불이들로 된다. 그들은 고중 3년을 다니며 초중생의 유치한 때를 매미가 허울을 벗듯 벗어버 리고 이제 대공을 날아옐 청춘남아로 발돋움한것이다. 그러면서도 저마다 상처입은 가슴과 청춘기의 빈혈증을 가지고있으며 지식의 결여가 처처에서 드러나고 리성적인 판단력이 박약하다.

한편 그 강한 자존심만큼 자비심도 가지고있고 황당한 용기와 교만성을 가지고 있는만큼 사이비한 고결성과 거친 사유도 가지고있다. 리홍이가 바로 지금 이런 상태에서 정혜를 마주하고있는것이였다. 그는 이젠 롱구뽈로 감정이 헤픈 소녀애들의 춘정을 사로잡던 햇내기 고중생이 아니였던것이다.

    그는 지금 마음속으로 편지를 쓰고있었다. (옥녀야, 너의 가슴속에 고이 받들려 있던 그 소중한 령혼이 세월의 풍파속에 지금 어떻게 현연되고있는지 나는 속속들이 모른다. 그러나 그 무엇으로도 지워버릴수 없는 슬픔으로 인생의 오솔길을 걸으면서 통탄하고 있겠지? 그러나 너는 이 세상에서 마땅히 얻을수 있었고 또 얻어야 하였던 소중한것들을 언녕 잃어버렸다는것을 나는 짐작하고있다.

    그때 넌 나의 충정을 우습게 여겼기에 련애류행병에 걸린 고중생들이 그 모든 유혹과 자유분방한 환상에 자신을 내던질 때 너만은 사춘기의 간지러운 속삭임도 눈감아버리고 열심히 공부했지? 나 그러는 네가 우러러 보였고 너에게서 약속을 받아냄으로써 나에게 무엇으로 바꿀수 없는, 그리고 누구도 나에게 줄수 없는 지혜를 주리라고 생각하며 너에게 맹세했던거야. 나는 그 맹세를 지켜보며 기다렸어, 그런데 너는 가정비극의 희생양이 되였고 마침내 타락의 길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바로 그속에서 너는 본심이 꼬드기는 모순된 아픔과 고통과 말못할 슬픔과 고독과 번민을 안고 몸부림쳤다는걸 나는 알고있었다고 솔직히 말해야 하겠다. 나는 너의 집에 불상사를 들어서 알았다. 내 스스로 어떤 미안한 마음이 들면 찾아가고도 싶었다. 그러면서 네가 찾아오는 환상도 해보았어, 지금 너는 그저 자기 운명만 탓하고 자기를 절망의 갑속에 밀어넣은 자신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있지?

    정혜야, 이제라도 자신에게서 해탈할수는 없을가? , 참으로 가슴아픈 너의 과거이구나. 그때 네가 찾아왔더면 내가 널 어떻게 도와주려고 결심하고 있었어. 나의 아버지가 돈을 잘 버는줄 너도 알고있지 않았니? 이런 이야기가 지금에 와서 무슨 소용이 있겠냐만은 그때 내 마음은 정말 진정이였어. 믿기지 않겠지만도…

    정혜야, 우린 인생길이 갈리였지만 고중시절에 싹튼 그  사랑의 씨앗은 지금도 변함없어, 우리 영원한 친구인거다. 내 말이 우습게 들리지? 나 지망하던 대학에 갔지만 너의 방조를 잊지 않을거야. 나 대학을 졸업하고 어데가든지 너를 생가하면서 네앞길을 축원할거다. 네가 내마음을 받아주든말든…이제 다시 만나면 지금처럼 대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잘있어라. 나는 간다.)

    그들은 그렇게 몇마디 나누지 못했고 더구나 옥매듭을 지은채 헤여졌다. 정혜는 끝끝내 눈을 들어 리홍을 바래주지 않았다. 허지만 며칠후 노래방으로 보낸 리홍의 편지를 받아보고 가슴을 치며 울었다. 편지를 읽으면서 그제날의 멋모르고 가슴을 설레였던 야릇한 감정이 사랑의 씨앗이였다는것을 시인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나 배는 이미 강을 건너갔고 막차도 산굽이를 돌아갔다. 그래서 더구나 통곡이 나왔다.

    그는 리홍이를 잊어야 했다. 눈에 들어간 티는 비비면 비빌수록 아픈법이다. 더 참을래야 참을수 없을땐 눈까풀을 뒤집어보아야 한다. 그러면서도 정혜는 형언할길 없는 어떤 웨침이 막 터져나오려는걸 가까스로 억눌렀다.(그처럼 가까이 있었던 남자가 막 먼곳으로 떠나가버린다. 이렇게 가면 평생 다시 만나지 못할수도 있지 않을가?) 격정의 회오리바람이 갈기갈기 찢겨진 마음의 쪼각들을 마구 날렸다.

기실 리홍이 비록 담보할수 없었던 시절의 첫사랑이였지만 노래방에서 손님들앞 에서 노래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리홍이를 상대하여 노래한다고 생각할만큼 잊은적이 별로 없었다. 두 사람의 운명적인 만남에는 운명적인 리별이 있기마련이다. 청춘시절, 한때의 추억으로 자기를 위안도 하며 멍이든 가슴을 달래여 왔다고 할가?

 

5.

  

정혜는 리홍의 말에 충격을 받았는지는 몰라도 며칠 죽고싶을만큼 고통에 빠져서 물욕도 허여심도 다 죽어버렸다. 이제 새 출발이란 말은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이미 궤도에 올라선 기차인만큼 그냥 굴러갈수밖에 없다. 정혜는 리승필과 등기하지 않은 림시부부로 되려고 주판알을 굴렸다. 령감이 들어온 밤, 담판이 시작되였다.

ㅡ 나 먼저 물어볼게 있어요. 잠시 결혼은 안되구 동거는 할수 있어요. 그런데 집에 마님은 어쩔텐가요?

ㅡ이 바보야, 내가 몇번 말했니? 죽었다구. 내 집에서 살면서 확인해, 다음은 무어냐?

ㅡ좋아요, 그건 내눈으로 확인하면 되는거구요. 그리구 일이 잘 풀리면 장차 결혼할런지도 몰라요. 그러나 지금은 안해요. 내요구를 들어주겠다면 아저씨의 림시 안해가 되여주겠지만 안들어 주면 이 지긋지긋한 노릇도 다 때려치우고 제멋대로 살테니까 알아서 처리해요.

ㅡ그래 언제 결혼하겠니? 그리고 두가지 조건이란건 무어냐?

ㅡ나 공부할래요. 먼저 사립학교에 들어가 복습하고 대학시험을 칠거야요. 내 동무도 3년 사회에서 굴러다니다가 지금 학생이 되였어요, 그앤 돈많은 한국사람의 양딸로 들어갔거든요. 그러니 아저씨도 나를 영원히 가지려거든 양딸로 삼아요. 그래야 공부하는 기간 명분이 서는거야요.

ㅡ그 한국령감쟁이 미쳤군그래. 낮에는 양딸이구 밤에는 정부란 말이지? 개들을 웃기고있네. 하긴 좋은 세상이긴 좋은 세상이여, 헛허허…

ㅡ뭐가 우스운데요. 지금 양딸이라는 이름을 걸고 네좋고 내좋게 사는 사람이 한 둘인줄 아나요?

ㅡ그래 그렇다구 치자. 내가 널 어떻게 믿고 돈을 투자한단말이니? 되지도 않을 소리! 대학을 나오면 나 꼬부랑령감이 다 되는데 네가 포르르 날아가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을 할수 있니?

ㅡ에이, 바보! 공부해도 당신곁에서 살면 되잖아? 나 외지대학에 가려는것도 아니구 여기 의학원같은델 나오자는거야. 말했잖아 일이 뜻대로 되면 로옹의 젊은 부인이 될수도 있다구, 결혼하고나서 당신 더 늙으면 사업을 이어갈 사람 있어야 되잖아? 아들이 있다지만 의사질을 싫어한다니까 물려줄수도 없고 지금 들어가서 정식부인 되면 그 동갑내기 아들을 어떻게 마주한단말이야? 나 못해!

ㅡ하긴 생각이 괜찮은데…그런데 그 자식은 내 아들이 아니야, 녀편네가 돌계집 이여서 얻어다 키운것이야, 내성을 태우고 친자식처럼 곱게 길러주긴했지만 말이다. 지금도 뒤바라지를 해주지만 날 세계헌병인 부쉬보다 더 미워하고있으니까 네가 아이 하나 덜썩 낳아주렴, 으흐흐흐…좋아, 좋아!

ㅡ그럼 약속하는거죠? 좋아, 여기 각서를 써요. 나도 당신을 믿지 못하니까.

ㅡ요것이 누굴 찜쪄먹으려구? 넌 무얼로 담보하는데?

ㅡ아이, 바보, 이미 도장찍었잖아?

며칠후 리승필은 정혜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다. 집안에 들어선 옥녀는 다시 한번 끔쩍 놀랐다. 정부에게 집을 사줄만큼의 부자면 집안이 어떻겠다는것을 짐작은 했지만 궁전처럼 꾸려놓고 살고있었다. 230평방이나 되는 집안이 어찌나 너른지 숨박곡질을 해도 될상싶었다. 생각이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녀색에 죽을판 살판하는 이 령감태기가 자기 아니래도 필경 다른 녀자를 안해로 맞아들일것은 뻔했다. 그런 자리를 누구에게 양보 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쳤다. 그는 제법 안주인이 된듯이 집안의 가구배치를 제구미에 맞게 다시 할 궁리까지 하였다.

이미 망가진 자기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는 길이란 령감태기의 정식부인으로 되여 호강하다가 재산을 차지하는것이다. 령감의 씨는 절대 받지 않으리라 작심했다. 자기 아닌 지망자가 없으란 법이 없다. 돈이라면 범벅덩이에 쉬파리처럼 날아드는 웬 미친년에게 빈틈을 줄수도 있다.남의 눈치고 뭐고 아예 척 들어않고 싶어지기도 했다. 그렇게 하리라고 마음을 다져먹으니 대청같은 온집이 한손에 잡혀든듯 마음이 지레 뿌듯해 났다. 령감에게서 한껏 짜낸다음 다시 작전해도 늦지 않을것이다.

그녀는 청소공들을 불러서 대청소를 했다. 자기 공부방으로 쓸 방은 자기손으로 다시 했다. 화장대를 털어내다가 정교하게 만든 사진첩이 나왔다. 무심히 첫장을 번지던 그의 입에서 비명같은 소리가 터져나왔다. 세상은 넓고도 좁다더니 이런 해괴 망칙한 일도 다 있던가? 령감의 목을 안고있는 녀자가 너무나 낯이 익었다. 가출해서 잠적해버린 녀자, 평생을 두고 저주하리라던 어머니일줄 꿈에나 생각했던가?

그는 무슨 몹쓸 물건이나 쥔것처럼 사진첩을 와락 팽겨치고 히스테리적으로 발버둥치며 울었다. 비록 자기 딸마저 버린 그 녀자였지만 좋으나 궂으나 낳아주고 십여년을 키워준 하늘같이 생각하던 어머니이다. , 돈은 이렇게 두세대의 녀자들을 제마음대로 롱락할수 있는가? 옥녀의 충격적인 심정은 그 어떤 언어로도 표달하지 못할것이다. 그녀의 환멸과 원한과 비분을 형용할 말들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한동안 울고난 옥녀는 자기가 어떻게 해야 한다는것을 속으로 헤아리고 있었지만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어째야 하는가? 아무리 타락한 자기일지라도 엄마가 섬기던 남자에게 후임으로 들어붙어있을수 없었다. 마음같아선 당장 이 더러운 집에 불이라도 콱 지르고싶었다. 그러나 어데로 갈것인가? 치욕으로 얼룩진 이 도시를 영영 떠나야 하나? 억울함과 모멸감과 증오심과 허탈감에서 전신을 떨던 정혜의 마음에 마침내 독기가 얽히고 서렸다.

복수하는것이였다. 그는 애초에 령감이 골골할때까지 치사하게 붙어살 마음이 없었다. 자기의 색으로 후벼내고 빨아내여 맥살을 완전히 뽑아버리고 야금야금 돈을 챙기는것이였다. 나이로는 비록 망울을 터치지 않은 한떨기 꽃이지만 이미 더러운 쉬파리가 거쳐간 변소옆에 잡초처럼 되여진 자기로서는 도덕이니 량심이니 정조이니 하는것은 이꽃 저꽃에 옮겨 앉으며 허랑하게 놀아대는 나비더러 꿀벌이 되라는것과 같이 우스운 노릇이 아니냐?

저녁에 령감이 들어오자 사진첩을 꺼내놓고 넌지시 넘겨짚어보았다. 녀자문제에 들어가서는 렴치도 없고 수치감도 없이 완연히 늑대가 된 령감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 하였다. 옥녀는 너무나 뻔뻔스러운 상판을 피가 줄줄 흐르게 콱 할퀴어놓고싶은것을  간신히 참았다. 속에서 화산이 터지고 얼굴엔 성에가 불리여있었다.

ㅡ그 녀자말이냐? , 처음엔 가정부로 들여왔는데 이틀이 넘지 않고 내 이불안 으로 들어오더구나. 연길바닥에서 그렇게 잘 생긴 녀자는 드믈거야, 처음엔 촌티가 흐르고 손도 거칠었지만 차차 때물을 벗으니 절색이더라, 그리구 잠자리에서 사람을 죽여주었지, 아까운 년이긴했지만 너무 앙탈해서 한국의 내 친구에게 시집보내주었어. 왜 질투가 나냐? 너도 원한다면 몇년후 좋은 총각한테 시집보낼수 있어, 돈도 많이 주구…이 사람이 마음은 부처님을 울릴만큼 착하지, 으허허…

정녀는 자기가 필경 사색이 되여지는것을 느끼면서도 코웃음쳤다.(응 그래, 대자대비하신 미륵보살이다. 네가 아무리 지랄발광하지만 언젠가는 내 손에서 숨을 거두게 될거니까 잘해봐 이 색마야,)사실 령감은 정혜를 은근히 무서워했다. 녀자가 일단 자기에게 춘약을 먹이고 간음했다고 고발하는 날엔 설사 감옥은 아니가더래도 세상을 크게 웃길것은 뻔했던것이다. 그래서 잠자리에서 마음대로 주물러대지만 로옹들이 거개 젊은 녀자에게 쥐여살듯 그도 그렇게 쥐여살게 되였다.

옥녀는 령감과 붙어산 엄마의 일을 더 생각하지 않기로 모질게 마음먹고 시치 미를 뚝 땄다. 엄마가 황당하니까  자기같은 황당한 계집애가 생기는것이고 세상이 악착하니 자기도 악착하게 될수밖에 없는것이라고 자신을 변호하였다. 세상이 차츰 개명해지면서 녀자들이 자기에게 붙은것을 제마음대로 써먹지 못하던 우스운 시대도 지나가고 지금은 버젓하게 허가증까지 내고 돈벌이하는것을 더는 단속하지 않는 호시절이다. 처녀가 아이를 낳아도 할 말이 있다더라. 이미 다 된 밥을 구태여 시래기 넣고 죽으로 만들필요가 있겠는가?

(스므살, 순수했던 옥녀는 언녕 죽었다. 이 인생극장에 아닌 보살하는 녀자들이 어디 나혼자뿐이더냐?)그는 허울만 남은 육신을 끌고있었지만 령혼은 천길나락에 떨어져 몸부림치고있었다. 뻔뻔스러운 자신을 생각하면 통곡이 나올때가 한두번이 아니였지만 입을 사려물었다. 밤마다 치사하리만큼 집착하다가 지쳐서 뻐드러졌을 때 기름진 배때기에 식칼을 콱 박고 죽어버리고싶은것을 용케도 참아오는터였다.

 

6.

 

낮에는 리령감의 양딸이고 밤에는 엄연한 안해이기도 한 동거생활을 한지도 어언 반년이 다 되여 갔다. 하루는 참고서같은것을 찾을가 해서 그동안 한번도 발길을 들여놓지 않던 령감의 귀공자의 방을 열고 들어갔다.

갑부의 귀공자공부방이 다르긴 달랐다. 세상이 어쩌면 이렇게도 불공평할수 있느냐며 한참 저주를 퍼붓다가 책장에서 참고서들을 뽑아냈다. 한아름이나 안고 나오다가 문을 닫는 서슬에 책이 한권 떨어지며 갈피속에 끼였던 사진 한장이 발밑에 떨어졌다. 한남자애의 독사진이였다. 얼결에 사진을 집어든 순간 눈이 굳어졌고 간질이 오는것처럼 사지가 와들와들 떨려났다. 사진속에 남자애는 다른 누가 아니라 리홍이였던것이다. 그 사진은 3년전 자기에게 주었던것과 똑 같은 사진이였다.

옥녀는 그자리에 폴싹 물앉았다. 된 몽둥이에 정수리를 얻어맞은것같기도 하였고 온몸에 피가 싹 빠져버린듯이 꼼짝할수 없었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미쳐난 사람 처럼 아츠러운 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렇게 정신없이 웃던 그는 마침내 방바닥에 쓰러 져서 아이처럼 엉엉 울어댔다. 그렇게 울다가 울다가 흐리멍텅하게 정신이 든 그는 부랴부랴 트렁크를 챙겼다. 시계를 보니 오후 세시였다. 이 집에 한시라도 있을수 없었다. 그슬픈 행운과 은밀한 치부계획도 미련이 없었다. 

두개의 트렁크를 들고 나온 그는 택시에 몸을 던졌다. 령감이 맡겨둔 저축통장에 돈을 다 찾아내고 역으로 나갔다. 심양행렬차를 탈수 있었다. 온갖 불행과 수치와 눈물젖은 추억의 땅 연길을 떠나야만 하는 그의 마음은 갈갈이 찢기였고 아리다못해 쓰리고 아프다못해 마비되여버렸다. 초점을 잃은 두눈만 차창에 박혔을뿐이다.

밤차는 어둠을 뚫고 줄기차게 달렸다. 연길에서 멀어질수록 그의 마음은 뒤로뒤 로 밀리는듯 하다가도 다시 끝간데 없는 만주벌판처럼 아득한 천애지각으로 흩어져 갔다. 그는 기차에 올라서야 심양서탑부근에서 돈을 잘 벌고있다던 양미를 생각해냈 다. 그 애는 세상을 굴러다닌 경력이 몇해 앞선 애였다. 일년전 먼저 가면서 일이 여의치 않으면 찾아오라고 주소도 알려주고 핸드폰번호까지 알려주었다. 일이 이지경에 이르렀으니 막사는 길밖에 없었다. 가진것이란 너무나 일찍 시들어버린 육체뿐이다.

심양에서 쉽게 일을 시작했다. 부끄러울 일도 량심을 울일도 없고 장래같은건 더구나 없었다. 래일은 삼수갑산을 가더라도 살고볼 일이다. 내대고 보면 이처럼 쉬운 일도 없는것 같았고 아무 재간도 없는 자기로서는 유일한 삶의 도경이라고 자아위아했다. 령혼과 인격을 들이대면서도 생판 모르는 사람들끼리 마치 사랑하는 사람들처럼 잠꼬대같은 신음을 내지르며 교미에 열중한다. 남자의 거세찬 충격력에 유방이 시들하게 춤추고 부단히 진공해오는 그것이 육신을 하수도로 만들고있다.

옥녀는 마음을 독하게 먹고 자기학대식으로 자신을 마구 내굴렀지만 음욕에 미친 사내들의 발광에 시달리며 시름시름 죽어 가고있는 청춘과 감정을 슬프게 생각하며 몰래 울때가 많았다. 그런 밤이면 으례히 줄담배를 피워댄다. 홀로 담배를 피우는 녀자는 남자에게 시달린 녀자라던가?

담배끝에 매달린 불꽃의 색갈이 갓피여난 아침꽃의 색갈처럼 싱싱하고 선명하다. 담배불의 두가지 색갈이 지니는 공통점이 알리는듯 싶었다. 그건 분명 생명감이였다. 타오르는 불꽃의 생명감, 그는 담배를 깊이깊이 빨아들였지만 연기는 삼키지 않고 두 눈을 모들떠서 빨갛게 타는 담배불에 슬픈 눈길을 박는다.

그 투명한 밝음과 싱싱한 색갈로 타는 불꽃에서 자기를 읽는다. 불꽃이 타오르는  정열, 타오르는 생명력으로, 자신이 신념하는 세계를 위해 타오르는 자기의 청춘으로 착각되기도 했다 그러나 불꽃이 다타고나면 무엇이 남을가? 회색재뿐이리라. 그만큼 의 허무가 또 어데있으랴! 녹쓸고 시린 가슴의 항아리에 불덩이를 집어넣어도 싸늘하 기만하다.

칼도마우에 고기는 칼을 두려워하지 않는법이다. 그가 매일같이 하는 일이란 무슨 임무나 집행하듯이 몸을 받쳐올리고 돈을 챙겨넣는 그짓이였다. 자기 가슴을 거쳐가는 수많은 남자들중엔 잘난 남자도 있고 살갑게구는 남자도 있었으며 점잖은 중년사내들도 있었지만 마음은 시종 겨울하늘처럼 음울했다.

서탑부근의 《사업》이 불경기에 처하자 영미를 따라 수천명 조선족녀자애들이 돈을 잘 벌고있다는 수도권 에로 진출했다. 그러나 일에 착수하고보니 가도록 심산이였다. 연변아가씨들에 대한 평판이 일락천장이였던것이다. 오죽하면 눅거리아 아가씨라는 대명사가 붙었겠는가? 자기로 말하면 환멸감같은 말은 너무나 사치스러운 표현이겠지만 어쨌든 모멸감에 모대기지 않을수 없었다.

다른 애들은 돈도 벌고 새록새록 육욕의 감각을 찾으니 꿩먹고 알먹기가 아니 냐고 너스레떨지만 열물만 올리밀었다. 거짓신음소리를 내면서 허위적인 정서로 하는 그 짓거리는 어디까지나 동물의 그 짓과 다를게 없다. 무슨 떳떳한 직업일군이라도 된듯 북경에 산다는 자호감까지 느끼면서 개선장군처럼 비행기타고 집에 다녀와서는 히히닥거리는것을 볼때마다 자기 스스로 낯가죽이 발가지는것 같았다.

그래도 걸어야 하는 이 인생길이다. 펄펄 날며 살아갈 아버지가 죽었다. 아니, 돈이 사람을 죽였다. 결코 마음속으로나마 자기의 책임을  벗어보려고 짜내는 변명이 아니였다. 일이 이렇게 된바하곤 악바리쓰고 돈을 버는길밖에 없다고 생각하면서 기계사람처럼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세상은 넓고도 좁다는 옛말이 그른데 없었다. 자기때문에 비운의 함정에 굴러떨어졌다고 생각하며 은근히 그리고있던 녀자애와 이 북경의 뒤골목에서 해후 할줄 어찌 생각이나 했으랴!연길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날 기독교앞 뻐스정류소에서 삼십대중반의 사내가 웬 녀자애를 마구잡이로 끌어내리더니 개패듯 하는것이 눈에 안겨왔다. 녀자애는 벌써 불성모양이 되여있었다.

행객들은 저마끔 눈을 흘기며 지나갔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워낙 성미가 카랑카랑한 그는 무슨 영문인지는 알수없었지만 본능이 발목을 잡았다. 그녀가 슬금슬금 다가서자 사나이가 녀자애를 구석쪽으로 끌고가서 구시렁거렸다. 귀결에 들려오는 말소리가 례사로운 일이 아님을 알려주었다.

ㅡ너 오늘 잘 걸렸다. 어쩌겠니? 파출소에 가겠니? 돈이 없다구? 그럼 다른걸로 배상해야지 이 간나야,

ㅡ제가 무얼로 배상한단말인가요?

ㅡ히히히, 엉덩이가 이만큼 커가지고 그것두 몰라? 네가 이뻐서 그런거야, 그래 어쩔테야? 날 따라 갈것이냐 아니면…

ㅡ아저씨, 나 아저씨호주머니에 손은 넣었지만 아무것도 꺼내지 못했잖아요> 제손을 잡고도 자꾸 돈을 내놓으라면 뭘 내놓으란 말인가요?

ㅡ허 이것 그저! 그러게 순순히 날 따라오라하지 않아?

옥녀는 보다못해 사나이를 막아나섰다.

    ㅡ그만 때려요. 이 애가 무슨 잘못이 있기에 대낮에 사람을 마구 때리는거예요?

    ㅡ넌 누구냐? 한패당이냐? 이계집애가 금방 차안에서 내 돈지갑을 훔쳤단말이야, 같이 주먹맛 보고싶지 않으면 쓸데없는 일에 삐치지 말고 저리 꺼져!

    ㅡ얼만데요? 2백원이라구요? , 그럼 내가 이 애의 몸을 수색할게요. 만약 돈이 나오지 않으면 구타죄로 경찰에 알릴줄 알아요.

    남자는 코웃음치며 그냥 소녀에게 행패질했다. 옥녀는 제꺽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순라경찰들이 들이닥쳤다. 그제야 낌새를 채고 내빼려던 남자는 덜미를 잡혀서 벌벌 떨며 사연을 말했다. 그꼴을 지켜보는 옥녀는 메쓰꺼웠다. 약자와는 한정없이 거들먹거리다가도 자기보다 강한자에게는 그렇게 비굴할수 없는 그런 벌거지같은 남자를 너무도 많이 보아왔다. 그런 구차스러운 생명을 내들고 다니는 남자를 보니 저주와 미움과 용기가 가슴에서 솟구쳤던것이다.

무작정 녀자애를 집에 데려왔다. 얼굴바탕이 이만저만이 아닌 녀자애는 시골 태생이였다. 중학교3학년을 다니다가 부모가 리혼하는 바람에 할머니와 함께 있다가 할머니마저 세상을 뜨고나서 거리의 류랑녀가 된 불쌍한 애였다…그애를 여기 북경에서 다시 만난것이다. 첫눈에 자기와 같은 어였한 배동아가씨가 되여있다는것이 알렸다. 그린듯 가늘면서도 짙고 꼬부장한 눈섭아래 크고 양순한 눈길이 물기를 머금고있었다. 그러나 애된 얼굴에서 이미 청춘의 푸른 잎이 생활의 무정한 된서리에 시들어버리고있음이 력연했다. 

《언니!》친혈육을 만난듯 반가워서 펄쩍 뛰던 녀자애의 얼굴은 금시 홍시처럼 빨갛게 상기되였다가 또 해쓱해졌다. 그러나 녀자애의 눈길에는 신뢰, 존경, 감격, 위안, 순종의 빛이 가득차 흐르고있었다. 마침내 꽃술같은 속눈섭이 파르르 떨리며 마주붙자 맑은 이슬이 덧거니 맺거니 하다가 함함한 두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옥녀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며 그날처럼 전신을 바르르 떨고있었다. 옥녀는 그애에 게서 자기의 과거를 읽으면서 와락 그러안았다. 그러나 눈물은 없었다. 마음의 샘터가 마르면 눈물도 가뭄이 드는법이다. 시들어버린 생명의 나무가지에 더러워진 령혼의 쪼각들이 넝마처럼 걸려 펄럭일뿐이다.

그렇게 순결하던 시골의 소녀애, 그는 자기때문에 이 길에 빠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기보다 어리지만 지금은 자기처럼 수없이 많은 남자들에게 짓밟힌 이 애도 이미 녀자가 아니였다. 어느 사람이나 기탄없이 오수를 쏟아붓고 으쓱해서 지페를 버리고는 돌아섰을것이다. 육신을 잃어버린 고달픈 령혼이 혼자 울부짖었을것이고 아무도 마음이 아프게 들어주지 않았을것이다.

 

                                 7.

 

시골처녀애는 홍희라고 했다. 홍희를 만난 그날 이후 오고갈데 없는 그를 자기가 일하던 노래방에 데리고 가서 잡일을 시키도록 부탁했다. 로임을 잠시 주지 않고 그저 먹여주고 재워주는 조건으로 받아주었다. 그런데 거기서부터 홍희의 운명은 비틀어졌던것이다. 어느 날 소문이 짜한 화룡 깡패두목이 노래방에 와서 홍희를 독방에 끌어들였다.홍희는 그렇게 열일곱살 애숭이로 당하고 말았던것이다.

그때로부터 홍희는 차차 직업적본능을 터득하기 시작했고 얼마후 그 깡패의 성화를 피해 온다간다는 말이 없이 연길을 떠나버렸던것이다. 그후 심양, 청도등지를 거쳐 청춘의 아름다움을 팔며 살았고 구류소맛도 몇번 보았다고 했다.

ㅡ언니, 난 무엇때문에 살아가는지 모르겠어요. 자신이 죽었는지? 살아있는지 모를때가 많아요. 내 육신은 찟기고 짓밟혀 누더기가 되였으니…나는 누군가? 나는 어디로 가고있는가? 내가 지금 어디까지 가려고 하는가? 하는 생각에 매달려 정신이 빠진 사람처럼 멍해있을때가 많아요. 언니는요?

ㅡ넌 어린 나이에 생각은 나보다 더 심각하구나. 묻지마, 부끄럽구나.

ㅡ나의 꿈은 작가가 되는것이였어요. 그러나 지금 내머리속은 가을 벌판처럼 텅텅 비였어요. 내가 지금 알고있는것이란 벌거벗은 남자들과 지페와 부딪치는 술잔 과 으슥한 방과 더러운 침대뿐이예요. 그러나 큰 거리에 나오면 풍요로움과 향락과 안락, 자족에 넘치는 얼굴들, 번창한 거리, 이 모든것은 우리들과는 너무나 인연이 없어요. 나는 흐르는 인파와 네온싸인, 자동차의 물결, 온갖 소음과 웃음소리, 노래 방의 쟈즈곡이 정말 증오스러워요.

그러나 나는 얼굴에 비굴하고 너절한 웃음을 잔뜩  발라가며 살아야 하거든요. 모두 이 짓으로 돈을 모았다지만 그 돈을 제손으로 훌훌 써버릴수 있나요? 피땀에 젖은 돈이라는 말이 있지만 우리의 돈은 무엇에 절은 돈이라 할가요? 그런 돈이라도 언닌 좀 모았나요? 누가 우리 같은 녀자를 안해로 삼겠나요? 장차…

ㅡ얘야, 낡은 정조관념에 매달려 자기를 지키기에는 이 세상이 너무 얼룰덜룩하 고 아름다운 꿈으로 살기엔 삶의 길이 너무 울퉁불퉁하다고 생각하면 조금 안심 될거야. 자기를 속이는거지, 속이지 않으면 어쩌니? 가슴이 막 터지는데…난 래일을 생각하지 않아, 래일을 생각하면 컴컴한 동굴속에 콱 떨어져들어간듯한 기분이야,

내 육체가 내것이 아니듯이 내 령혼도 내것이 아니야, 나는 언녕 녀자이기를 때려친 암컷에 불과해. 내가 이 일을 시작한 리유가 돈을 위한것이라지만 이제 생각해보니 단지 그런것도 아닌것같아. 자신을 속인다는건 언청이 아가리에 콩가 루격이지, 돈을 번다는 목적은 다 한가지겠지만 세상의 모든 처녀들의 우리들처럼 기껏 짓이기우면서도 멸시당하는 구지레한 돈을 벌지는 않지? 양은 산비탈에 내놓 아도 볕에 끄을리지 않고 돼지는 우리안에 갇혀있어도 희여지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지 않니? 아무도 우리를 그냥 이 진탕길에 들어서라고 강요하 않았으니 우리 스스 로 선택을 잘 못한것이 아니겠니?

ㅡ하긴 그래요. 여기에 있는 언니들. 아지미들 거개 눈물겨운 사연이 있더라구요. 있잖아요? 집이 동불사에 있다는 미나란 애말이예요. 나와 동갑내기인데 나처럼 연길에서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더군요. 처음 싫다는데도 사십먹은 남자가 자기 개다 리들을 시켜서 네각을 붙들게 하고 모두 보는데서 유린당했다지 뭐얘요. 돈을 많이 벌어서 농촌에서 고생하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공부잘하는 녀동생을 대학에 보내여 언니구실 잘 하는것이 소원이였다는데…

부모가 다죽고 외삼촌에게 얹혀살다가 열아홉에 시집을 갔다는 룡정의 언니도 정말 불행한 녀자더군요. 남편이란자는 술을 마시고는 못사는게 안해탓이기나 한것 처럼 그냥 두들겨팼다지 않아요? 그래서 리혼하고 선택한 직업이 이 일이라며 그냥 후회하면서도 손을 씻고 나앉지 못하지요. 이제 마흔이 넘게 이짓을 했지만 돈도 못모으고 나이만 잔뜩 먹어서 들어붙는 남자도 없는 순녀아지미도 정말 불쌍하지요. 그아지미를 볼때마다 나의 십년후의 모습이 떠올라서 막 소름이 끼쳐요…

ㅡ그러게 말이야. 더 이상 더러워질수 없는 육체를 내대고 교역을 하면서도 우리 모두가 리상적인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아이도 낳으면서 안정된 생활을 하려는 꿈을 버리지 않으니 얼마나 우습니? 내가 어떤 리유를 말하듯이 그들 모두에게 자기 나름의 리유들이 있겠지만 그게 타락의 정당한 리유가 못되는거야.

옥녀는 말을 더 이어갈수 없었다. 나어린 홍희의 고뇌의 화로에 자신의 곰팡이 낀 우울증을 말리는것같아서 모닥불을 뒤집어쓴듯이 얼굴이 뜨거워졌다. 그는 자기 자신을 기만해 왔었다. 악마가 자기의 운명을 비틀어놓았다고 저주하면서 남자들앞 에서 사랑의 천사가 미소하는것처럼 자기를 꾸며왔다. 이제 그 허위적인 사유도 더는 자신을 붙들어줄수 없게 된것이다.

ㅡ그 몇분을 위해서 돈을 날리는 남자에게 몇분간을 죽여줍시사하고 몸을 들이대 고나서 돈을 받아쥐는 우리들중에서 어느편이 더 바보스러울가요? 그래도 성문화라는 상표를 붙이니 그런 론리대로 한다면 우리는 현대성문화급선봉이 된셈이지요. 정말 울다가 웃을 표현이지요? 안그래요?

사실 그랬다. 그녀는 남자의 신분이나 생김새, 옷차림에 신경을 쓰지 않았고 사생활같은것을 알아둘 필요도 없었다. 그저 화대를 많이 받아낼 궁리가 앞서다보니 다른 계집애들이 말하는것처럼 섹스의 신비감도 없었고 가슴이 뛰는 일도 없었으며 오르가즘같은것은 더구나 있을리 없었다. 한창 젊은 때여서 래일에 아름다운 모든것을 기탁하고 방종의 내리막길로 굴러가지만 언젠가는 몸이 늙고 그러면 이짓도 더 해내지 못하게 되고 한평생 같이 살 남자를 찾을 기회도 잃어버린다는것을 생각하면 정말 세상이 지옥으로 변한다.

휘저어 헤쳐나갈수 없는 어둠, 소리쳐 불러도 물리칠수 없는 적막과 소외, 발로 걷어차 일구어세울수 없는 땅, 끌어내려 갈기갈기 찢어발길수도 없는 하늘…이제 더는 참고 견딜수  없다, 아무것도 참을수 없어…남자들은 좋은 물건들이 아니다. 그들은 라체를 전시하는 녀자가 입으로가 아니라 젖통으로 말하고 미끈한 허벅다리와 그 사이에 숨겨진 삼각 지대로 말하는걸 어떤 자호감으로 착각하는 동물들이다.

…그들은 어쩌다 밤일이 일찍 끝나서 숙소에 돌아오는 날엔 그렇게 친자매처럼 한침대에서 딩굴면서 육욕의 략탈에 처녀의 터전이 쑥밭이 된 자신들의 신세를 한탄 하며 남자들을 저주하고 세상을 물어뜯으면서 울고 웃었다. 그들에겐 향수의 감정도 효도의 마음도 이미 너무 색바래여있었다.

이제와서 무엇을 할수 있단 말인가? 산다는것은 아버지유언처럼 세월과 함께 사랑과 희망을 곱게곱게 빚어가는것이련만 그것은 언녕 인연이 없는 꿈이다. 스믈 다섯살, 나이는 아직도 청춘을 지키고있다. 그러나 세월령감에게 속절없이 코를 꿰이여 끌려가며 차차 늙어가고 녀자의 자본인 미색도 바닥이 나서 더는 남자들의 환심을 살일도 없이 천덕꾸러기로 될것이다.

, 내 인생은 어디서부터 허위적이고 어디까지 진실인가? 이 몇몇해를  다시는 못찾을 청춘과 순결을 탕진했다. 돈을 번다고 출발한 이 길이다. 그러나 이제 생각해보니 그게 전부가 아니였음을 자인하지 않을수 없었다. 처녀들이면 다 갖는 리상과 사랑과 행복과 배우고싶다는 욕망과 안정된 직장을 가지고 싶은 동경이 수많은 사나이들의 란폭한 발설속에서 요절해버리고 빈 껍데기육체에 정신적불구자가 되여진 지금 당장이라도 걷어치운다고 곤백번 다지다가도 그냥 버리지 못하고 관성 처럼 한 방향으로 몸을 내맡기고 있는 자기다.

그러면서도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낯모를 남자애들이 자기의 더러운  행각을 꿰뚫 어보고 비웃는듯싶어 고개를 떨구곤 했다. 나무는 껍질로 살고 사람은 얼굴로 산다지 않았던가? 이전에도 이말의 뜻을 전혀 모른것은 아니다. 세상일은 무엇이나 인과보 응의 계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도리도 모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리령감과 뒹굴어먹을 때 그 모든 악과가 자기에게 무엇을 남길것인가는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이런 미색으로 바꾸어오는 청춘밥은 한평생 먹을수는 없는것이다. 속절없이 망가 져버린 젊음, 부끄럼없이 내번질 중년, 그 옛날 일본군의 위안부들처럼 생육능력도 없이 찌들어버린 육체를 주체할길 없는 로년, 그리고 드디어 받아안아야 할 허무와 후회, 그리고 죽음…그것은 지금 멋모르고 날뛰는 모든 나어린 매음녀들의 미래이고 귀속이 아니겠는가? 이제 남은 몇십년의 인생길을 사랑해줄 사람도 사랑할 사람도 없이 헝클어진 자기 그림자와 함께 걸어가야 할 자신을 생각하니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그 보이지 않는 충격에 옥녀는 몸서리쳐지고 정신이 아찔해났다.

멋지게 꾸미고 다니던 폭포같이 흘러내린 머리도 되는대로 내버려둔채였고 눈은 초점을 잃고있었다. 모진 세월도 천성적인 그녀의 아름다움을 얼굴과 몸매에서 아직 빼앗아가지 못했지만 순결과 청신함을 잃은 녀자의 아름다움이란 서리내린뒤의 배추밭풍경과 같다고 할가? 스스로 청춘미를 랑비한 자신은 그야말로 무덤속에 유령 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에게 최후의 치명적강타를 안긴것은 홍희와의 기우였다. 재수없던 그날 호텔방에서 한참 교역을 하던중 갑자기 들이닥친 경찰들에게 잡히여 류치장에 갇혔다. 처음 당하는 일도 아니여서 홍희가 벌금돈을 가져오면 곧 풀려날 일이였다. 그런데 심문실에서 정혜는 실성하고 말았다. 심문을 받기시작하는 순간 벼락치듯이 책상을 쾅 치는 소리에 와뜰 놀라서 얼굴을 드는 순간 그만 기절하고만것이다. 그를 심문한 경찰이 어찌하여 리홍이가 된단말인가?

리홍이도 넋이 나간 사람처럼 한식경이나 정혜를 노려보다가 아무말도 없이 나가 버렸다. 하지만 정혜의 맞은켠에 의연히 분노와 실망과 련민의 정으로 범벅이되여진 리홍의 한쌍의 누이 허궁 달려있는것 같았다. 홍희가 벌금을 냈는지 아니면 리홍이가 뒤문을 열어주었는지 아무튼 하루밤 철창속에서 구을다가 풀려나왔다.

그날밤 배불뚝이50대의 사내의 흐릿한 눈길이 그의 라체를 란사할 때 자신이 그 이상으로 비참해질수가 없다고 이를 사려물었다. 그러나 결국 한장이라도 더 받아내기 위해 밤을 함께 해주고말았던것이다. 피임투도 거절하고 마구 덤벼치며 개처럼 들어붙던 그 남방사내와 잠자리를 같이한후부터 옥녀는 까닭없이 정신이 흐리멍텅해지면서 열이 나고 온 몸이 참을수 없을정도로 지긋지긋해 났다. 홍희가 그래도 경험이 있어서 동업녀들이 단골로 다니는 어느 개체병원에 끌고가서 검사를 받아보게 했다. 아니나다를가 마침내 걸리고야 만것이다.

정혜는 자신을 철저히 포기한 상태로 육체적고통과 정신적인 허탈속에서 몸부림 쳤다. 얼굴이 백지장처럼 해쓱해 다녔다. 그녀는 지독한 악심을 품고 힘자라는껏 남자들을 끌어들였다. 생각대로 한다면 자기를 짓밟은 이 세상의 모든 남자들에게 전염시켜 고통과 후회속에서 서서히 죽어가게 하고싶었다.

그는 혼자 중얼거리다 동화속의 마녀처럼 모골이 속연해지도록 깔깔 웃어대기도 했다.(하하하…내가 머저리였어, 누가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수 있단말인가? 아니야, 내 자신이 음기에 물젖고 정욕에 습관되여 좋아한게 아니란 말인가? 결국 내게 남은건 자기 멸시와 절망밖에 없어, 헌 발싸개, 공동변소라는 치욕과 세상사람들의 기시만 남았어, 내게 정들었다고 씨벌이던 남자새끼들도 쓴외보듯 할것이다…어어엉, 난 어째? 어떻게 살아야 해?)

그랬다. 그녀가 오늘 받아안은것은 허무. 삶의 커다란 허무와 깊은 한의 구덩이 였다. 거기에 들어섰을 때 이미 삶에 종지부가 찍혀진것과 같다. 그 모든 부산하고 황당했던 수많은 자질구레한 일들이 그를 못견디게 괴롭혔다. 병든 옥녀를  보살펴줄  사람은 어린 홍희뿐이였다. 그가 다시 정혜를 데리고 병원에 가서 진찰시켰더니 정신분렬증이 올 징표란다.    

…어느 날 한밤중에 몸을 추스르고 일어선 옥녀는 오래간만에 몸단장을 곱게 하고나서 편지를 썼다.

 ㅡ홍이야, 내가 지금 너의 이름을 그 때처럼 떳떳이 부를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가 생각하면서 마지막으로 너의 앞에 쓰디쓴 참회의 눈물을 머금고 이글을 쓴다. 네가 나를 미워하고 경멸해도 사실 난 자기를 깡그리 내버릴만큼 너를 사랑했다. 아니, 이제와서 보면 너를 사랑하려고 노력했던것인지도 모르겠구나. 그게 어떤것 이였던간에 너는 지금의 나에게 저 《금빛야차》의 남주인공 처럼 분노의 구두발을 안길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될수 있다면 너의 그 모멸에 찬 말과 몰인정한 구두발을 탓하지 않겠다, 다만 나의 어리석음에 풍자적인 의미로 되고 응당한 마침표로 찍혀졌을뿐이라고 생각하고싶다. 너를 사랑하고 자기를 미워하는 나의 지금의 심정을 너는 영원히 알수 없을것이다. 그 모진 수모도 견뎌내고 눈물도 삼켜온 나이지만 결국 자기학대로 체크할수밖에 없구나.

그 구지레한 인생극장에서 네가 나에게 살아가는 힘을 준다고 생각하며 용케도 버티여왔다. 그러나 그건 오늘에 와서 자기속임이 되였구나. 그러나 나중에 자기마저 기만하며 살아야 하는한 마음이 어떤것인지 넌 알고싶지도 않겠지? 독사의 혀바닥에 발린 침이 독이 있는줄은 누구나 다 알고있을거다. 그러나 난 그것을 마시며 살아왔다. 누구를 위해서였던지 지금와서는 나자신도  잘 모르겠다. 생활의 관성인지, 타성인지도 모르 겠다. 인젠 인생자체를 저주하며 인생을 살만한 리유와 오기마저 없구나. 내게 남은 것은 사랑하지 않는것, 아끼지 않는것뿐이겠지?

…자기의 녀성을 싸구려 세방의 시렁우에 얹어놓고 백원짜리지페냄새가 나는 웃음으로 남자들을 꼬시며 하루하루 더 수습할 나위없이 망가져버릴 젊음, 때묻은 양말을 벗듯이 부끄러움모르고 속옷을 벗어부치고  남자의 가슴밑에 드러눕고 거짓 신음을 하고 간드러진 목소리로 달콤한 속삭임으로 음욕을 꼬드기면서 자기의 몸속에 정자를 쏟아넣게 하고 다른 사내가 반복하게 하는 그런 인생을 나는 살아 왔었다.

그렇게 썩은 내청춘의 생명을 누가 되찾아줄수 있겠니? 내가 겪어본 소위 문명한 인간들은 모두 제정신들이 아니다. 돈과 섹스, 이 두가지 광기에 자기를 혹사시키고 있다. 특히 돈이라는 이 광기는 더구나 사람을 경악하게 한다. 녀자는 돈에 웃고 섹스에 흐느끼고…

나는 후회하지만 너무 늦었다. 난 이길을 걷지 말아야 했다. 나에게도 나의 삶의 길이 있었지만 운명은 나를 희롱했다. 나는 불쌍한 녀자야, 나같은 녀자를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하다못해 리해하여주고 동정해줄 남자가 있을가?

 듀마의 소설 “동백꼿아가씨”를 나는 좋아했다. 비록 내가 그녀처럼 한남자를 진심으로 사랑한 고상한 기녀는 아니지만 나는 그녀를 숭배했었다. 그 소설에 이런 구절이 있더라. 세상사람들은 해볕을 본 일이 없는 장님이나 자연의 조화된 주악을 못들어본 귀머거리나 마음에 있는 말을 해본 일이 없는 벙어리는 불쌍히 여길줄 알면서도 창피하다는 얼토당토않는 구실을 내걸고 이런 마음의 장님, 령혼의 귀머 거리, 량심의 벙어리는 동정하려하지 않는다. 하여 모진 고통은 불쌍한 그들을 미쳐 버리게 하고 마침내 선한것을 보아낼 능력도, 하느님의 말을 들을 능력도, 사랑이나 신앙의 순결한 말을 운운할 힘마저 다 잃게 한다고…

인생항로의 입구에다 꾸밈없이 두개의 패말을 세워놓고 그 하나에는 《순결의 길》, 다른 하나에는 《타락의 길》이라고 써놓고 선택하게 하는 따위로는 중국대지 에 만연된 매음문제가 해결되는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처럼 환경의 유혹을 받은 녀자들을 두번째 길로부터 첫번째 길로 이끌어주어야 하는것이라고… 나의 그리스 도는 어데 있을가? 네가 바로 내 그리스도가 되여주리라 믿고 이날 이때까지 목숨을 이어온거다. 그러나 인습은 에누리없구나. 그래서 나도 세상을 살고싶지 않다. 가장 완벽하게 이 구지레한 삶의 진탕길에서 빠져나가는 방법, 가장 간결하게 자기를 정리하는 방법은 목숨을 끊어버리는것이겠지?

나는 이 세상을 떠나야 내 령혼이 해탈될것이다. 그래, 세상사람들은 우리 같은 녀자들을 타락녀, 더러운 탕녀라고 침뱉을것이다. 그러나 더럽다는 탕녀들에게 빨려드는 남자들이 득시글거리니 웃기지 않니? 확실히 나는 매음으로 살아온 탕녀 이다. 허지만 그렇게 음탕하게 살아오면서도 사랑, 순수의 사랑을 갈망하였다고 말하면 넌 코웃음을 치겠지? 하긴 난 모든 남자들에게 환멸을 느낀지 오래다.

나는 뛸데없는 탕녀다. 그러나 나는 수백명의 남자를 겪으면서 나의 더러워진 이 육체보다 더욱 구지레한 세상을 읽었다. 타락은 그래 녀자들의 전리품이니? 나로서는 음탕한 남자들의 루추한 몰골을 형용할길이 없구나. 그런데 왜 질책은 녀자들의 몫이 되여야 하는지 알수 없구나. 그래 음탕의 표준이 무얼가? 남자들은 거개 색을 좋아할 뿐이지 음탕하지 않다고 나발불고 다니더라.

나는 비록 성적자극속에서 생리적쾌감을 느낄수 없는 병신녀가 되였지만 마음은 그냥 숙녀로 살고있으니 얼마 황당한 녀자이니? 나는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야 하는 가? 욕망의 바다에서 표류하는 노없는 쪽배가 곧 나의 모습인줄 안다. 나도 한때는 자기만의 성지를 찾으려고 했었다. 예수가 성결한 구원의 손길을 뻗쳐주리라 생각하 며 열심히 기도했다. 나는 예수에게 진심으로 참회하면서 용서를 빌었지만 아무런 감동도 없는것 같더라. 어쩌면 예수님도 이 어지러운 세상을 아예 등져버렸는지…

우매속에서의 몸부림은 피어리고 눈물로 얼룩진 후퇴라는걸 나도 알고있다. , 이제 와서 내가 이런 말을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니? 다만 이 세상에서 내 속심을 털어놓을 마지막 친인이 너밖에 없다고 생각하기에 반갑지 않을 이 유언을 남기는것 이니 읽지 않아도 괜찮다. 혹시 홍희가 너에게 부쳐주지 않을수도 있고…

인의도덕은 모든 남자들이 입에 걸고 다니는 말이지? 사랑이란 간지러운 단어도 기실 진정한 의미를 담지 못하고있음을 뒤늦게 알았다. 이 세상엔 오직 타락한 동물 의 맹목적이고 야만적인 성폭력만 남은거야. 남자들이 아무때나 음욕이 발작할때에는 인의도덕이란것이 구중천에서 기발처럼 펄럭거릴뿐인거야. 

잘 살아라, 난 그냥 사랑하면서 가련다. 속죄가 없는 곳엔 용서도 없겠지? 홍이야!대답하기 싫으면 대답하지 않아도 돼, 나는 무조건 너를 사랑하니까…너도 장차 이 음욕의 세상에서 자맥질하지 않는다고 장담못할거다.

안녕을 빈다. 내가 사랑했지만 사랑하지 못한 남자야!

 

홍희에게:

너에겐 긴말을 하지 않겠다. 너와는 너무나 많은 말을 해왔고 너는 나를 자기처 럼 잘 알고있으니 말이다. 이 될성부르지 못한 언니는 먼저 저 세상으로 가련다.

마지막으로 부끄러운 부탁하나 하자. 내 인생비극을 소설로 써다오. 결코 죽은 후의 변상적기념비를 세우기 위해서가 아니다. 사랑도, 도덕도 리기적인 향락의 저울 판에 오르고 성실한 삶의 터전이 날로 황페해가는 현실속에서 하나밖에 없는 자기의  정조도 인간의 존엄도 길가의 구멍가게에서 사서 씹다가 뱉아버리는 눅거리껌처럼 여기고있는 우리 같은 처녀들에게 뒤골목의 비극을 적라라하게 조명해보임으로써 아직 오염되지 않은 처녀들의 인생행로에 어슴프레한 지시등이나마 되게 해주었으면 원이 없겠다…

                                  

미성

 

…밤차는 동으로 동으로 숨차게 내달린다. 그녀 자신이 속한 어느 별은 멀고 먼 하늘 어디에 숨어서 반짝이겠지만 그의 가슴속에는 별빛이 비쳐들 자리가 없다. 부끄 러운 몸이지만 아버지, 어머니의 령전에서 한바탕 통곡하며 가슴에 가득 엉킨 오열을 모조리 털어내고 싶었다. 그리고 어린 홍희에게 또다시 충격을 주고싶지 않기도해서 서럽고 서러운 치욕의 귀향길에 올랐다. 아버지, 어머니의 체취가 남아있는 철남의 고향집가마목에서 따뜻하게 잠들었다가 유감없이 영별의 길을 떠나고 싶었던것이다.

침대차 맨 꼭대기에 두눈을 꼭 감고 누운 옥녀는 몇시간이고 아무런 미동도 없이 아무 생각도 없이 오직 한가지 마음으로 죽음을 손짓하고 있었다. 렬차는 새벽으로 달리고 있다. 차창이 휘붐히 밝아오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날이 활짝 밝았다. 이제 동녁에서 아침해가 이글거리며 솟을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의 태양은 바야흐로 생명의 지평선 저쪽으로 지고있다.

누가 켜놓은 록음기에서인지 애틋한 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가사를 씹었다. 차표한장 손에 들고 떠나야 하네./ 예정된 시간표대로 떠나야 하네/ 너는 상행선 나는 하행선렬차에 몸을 실었다./ 사랑했지만 갈길이 달랐다…

…손님에게 시달리고 아침 늦게야 숙소로 돌아와서 정혜의 유서를 읽은 홍희는 파출소에 있다는 리홍에게 유서를 부쳐보내고 천방지축 연길려객기에 올랐다. 무서운 예감대로 정혜는 리승필이가 사주었다는 아빠트의 침대우에서 고요히 잠들어있었다. 언제 죽었는지 마냥 평화롭게 잠든 천사의 모습이였다. 홍희는 그렇게 영영 잠들 어버린 그녀를 붙안고 몸부림쳤다. 그 언젠가는 자기도 이렇게 홀로 누워서 영영 잠들어벌수 있을것이다.

ㅡ언니야! 바보처럼 이렇게 가면 무엇이 달라지는데. 불쌍한 언니야ㅡ

홍희가 아무리 불러도 한과 서러움으로 질식한 정혜는 대답이 없다. 그가 아무리 그녀의 시체를 실은 밀차를 붙잡고 싱개이질해도 정혜의 령혼은 이미 해탈을 위해 멀리멀리 가버린뒤다. 리홍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기가 나갈때까지 화장터에 보관하라고 당부했다. 한이서린 정혜의 유령이 리홍이가 앉아오는 비행기의 주위에서 맴돌고있을것이다…

 

 

 

                       2007 2 28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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