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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루드베키아, 루드베키아-정희정
2019년 07월 16일 11시 13분  조회:609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정희정    

루드베키아, 루드베키아
 
 
책에 잠긴 시선을 창 밖으로 옮긴 것은 사람들의 소란스러움 때문이였다. 첫눈이 내리고 있다는 소리에 나는 내게 가장 첫눈다웠던 설레임을 떠올려 보려고 했다. 아득하게 먼 기억 뒤편에서 그에 대한 부스레기라도 떠올려 보려고 했으나 수많은 의미에서 시작된 그럴 법한 눈더미 속에 뒤덮인 기억들은 고요히 잠든 채 숨소리만 내고 있었다. 그 설레임의 기억을 깨우지 못하고 나는 창 밖을 향해 멍만 때릴 뿐이다. 사람들의 머리우로 분분히 떨어진 눈들은 어디서 온 누구의 기억일가? 아마도 루드베키아를 처음으로 받아본 한 녀인의 사랑이야기는 아닐가, 이런 생각과 함께 나는 그만 시선을 거두고 책장을 번진다.
루드베키아, 나는 그 꽃을 그림으로 받아본 적이 있다.
한 사람을 떠올렸을 때 아직도 여린 마음 한구석에 아픈 게 남아있다면 그것은 사랑을 다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깡그리 사라진 줄로 알았던 그에 대한 마음이 아무 것도 떠올리지 못하는 날, 한점 두점 소리없이 내게 내려앉아 뜨겁게 녹아번지는 눈꽃 때문에 아직도 그때 만큼이나 뜨겁다는 걸 깨닫는다. 이 아픈 깨달음 속에서 나는 기형도 시 속의 장님처럼 불빛 한점 없는 빈 집을 더듬듯 지난날을 애써 더듬어본다.
27센치메터의 키차이만큼, 나와 그의 거리는 처음엔 더 가까워지지도 더 멀어지지도 않는 딱 그만큼이였다. 그런 거리 속에서 우리는 자주 만났다. 낯설음을 깨려고 처음으로 그와 함께 떠난 등산길은 높고도 힘겨웠다. 산 중턱 쉼터 걸상에 앉은 나에게 그는 이렇게 물어왔다.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중에서 하나만 선택할 수만 있다면 어느 것을 선택하겠냐고, 나는 현재라고 대답했다. 나의 대답을 듣고 고민에 심히 빠져버린 그는 한참 후에야 “나는 미래.”라고 답했다. 그의 답이 조금 리해하기 어려웠지만 나는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언젠가는 리해될 거라는 생각에. 전혀 다른 세상을 살다가 만난 그와 나였다. 그래서 늘 언젠가는 리해될 거라고 생각에 숨죽여 조용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는 미지근한 사이에서 나는 듣는 자의 역할을 했고 그는 나에게 들려주는 자의 역할을 했다. 정치, 력사, 문학 등 상관없이 그는 나에게 많은 것을 들려주었다. 그가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나는 늘 그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았는데 실은 내가 바라본 것은 20대답지않게 부드러면서도 진지함, 그 진지함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흘러나왔는지 그게 늘 궁금하기도 했다.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다는 게 많다는 걸 느꼈을 때는 바로 그때였다. 내 나이또래하고는 한번도 나눠본 적이 없는 나카무라하루키 이야기, 헤르만헤세 이야기, 안란드 이야기, 위대한 빌게츠 이야기, 그리고 여러가지 력사이야기, 철학 이야기 등을 자주 나누었다. 그러다가 각자의 생각을 넘어 더 깊게 자기 자신의 얘기까지 나누게 되였다. 자신에 대하여 얘기를 나누면서 취기에 절여진 그의 눈에서 의도가 없는 눈물을 본 적이 몇번 있었다. 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바람에 바들거리는 나무잎처럼 흐느끼면서 예전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그를 나는 바라보기만 했었다. 그에게 어떤 아픔이 있었길래 시간을 되돌려 돌아가고 싶었는지 묻고 싶었으나 처음처럼 나는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다치면 터져버려 다시 상처로 되는 것들이 있다는 걸 알기에 나는 그를 지켜주고 싶은 마음에 위로의 말조차 꺼내지 않았다.
우리의 27센치메터의 거리는 그때부터 조금씩 좁혀져 갔다. 눈물이 많고 유리처럼 맑고 여린 마음을 가진 그와 함께 사소한 것까지 나누게 되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서로가 여유를 부릴 수 있는 날이면 그는 늘 나의 다리를 베고 누워 내가 읊어주는 바이런의 시를 즐겨 들었다. 질리지도 않게 자꾸 들려달라고 졸라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의 세상에서 내가 좋아하는 걸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고마움에 못이기는 척 들려주곤 했다. 유심히 귀를 기울이면서 시어와 시어 사이를 음미하는 그의 모습은 전보다 더 깊은 진지함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가?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나의 말들이 더는 그의 립장에 서지 않고 비수로 되여 그의 마음에 꽂히기에 이르기까지 내 주위에서는 그에 대한 많은 얘기들이 오갔다. 내가 한번도 다녀간 적이 없는 그의 과거 얘기에 나는 쉼없이 내 안에서 나 자신과 갈등한 끝에 서서히 마음을 닫아버렸고 결국은 그게 사랑이 아닌 깊은 의미에서의 우정이 더 맞을 것 같다는 리유로 리별을 선포했다.
리별 후에도 가끔씩 친한 친구인 척 만나긴 했지만 아직도 내 안의 그의 과거에 대한 갈등으로 그를 떠올리거나 그의 얼굴을 볼 때마다 마지막 노을을 타고 흘러내린 비방울에 바닥으로 몸져누운 여린 가지처럼 외롭고 아팠다. 그래서 그와 함께 시간을 나누면서도 이름 모를 화가 자주 치밀어 올라오곤 했다. 나의 상태를 파악한 그는 몇번이나 리유를 물어왔지만 마음닫기로 결정 내린 나는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다.
진정으로 리별을 맞이한 그날 역시 우리는 등산길에 있었다. 그날따라 떼를 써가면서까지 상행선이 아닌 하행선으로 산을 역주행해서 타고 싶었다. 헐떡이는 나를 더는 기다려주지 않고 제 먼저 올라가는 그의 뒤모습을 보면서 나는 미래를 선택하겠다는 그의 모습과 어린아이처럼 과거를 울고 있는 그의 모습이 한데 겹쳐지는 가운데 이젠 정말로 끝이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있는 현재가 아닌, 내가 한번도 걸어보지 못했던 과거, 그리고 내가 존재하지 않는 미래를 선택한 그에게 더는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은 절차도 없이 여름에서 한겨울로 랭담해 갔다.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비방울과 함께 가로등빛이 내린 어느 여름날 밤, 찬바람에 하얗게 질린 나의 손을 보고는 주춤거리다 결국 결심한 듯 어둠 속에서 가만히 나의 손을 잡아주던 그의 모습을. 왜 항상 버림받는 쪽이 나의 쪽인지 모르겠다며 울먹이는 목소리와 함께 뒤모습을 보인 기억도, 너를 만나서 참 다행이라는 고백 섞인 진지함을 보인 모습도, 한순간, 때를 놓친 눈꽃처럼 제 안의 뜨거움을 만나 비로 내려 나의 온몸을 타고 발밑에서 산산이 으깨져 내렸다.
잠에서 풀린 추억처럼 그때 왜 그에게 들려주었던 “사랑이란 어둠 속에서 말없이 손을 꼭 잡아주는 것”이라는, 내가 그에게 했던 말을 섬세하게 기억해준 그의 모습은 기억하지 못했던 걸가? 한참을 걸어가다 저 멀리서 헐떡이면서 나를 기다려주고 있는 그의 마지막 앞모습은 왜 기억하지 못했던 걸가? 누구보다 여린 사람이란 걸 잘 알면서 왜 나는 그에게 묻지도 않고 묵은 지처럼 스스로 침묵 속에서 리별하기로 마음먹었던 걸가? 왜 그래야만 했을가? 리별을 선포한 건 나의 쪽인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채한 것 같은 답답함을 느낀 쪽도, 새벽하늘처럼 깊고 푸르게 멍든 쪽도 나의 맘이였는지 잘 모르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런데 며칠전, 우연히 한 이야기를 듣게 되였다. 간통을 저지른 한 녀자를 심판하는 하느님의 이야기였다. 그때를 놓고 말하면 간통은 죽을 죄다. 모두들 그 녀자를 돌로 쳐죽일 준비를 하고 있는 가운데 하느님께서는 너희들 중에 죄 없는 자, 저 녀자에게 돌을 던져라고 하셨다. 그러자 모두들 말없이 돌을 내려놓았다. 모두에게 죄가 있었던 것이다. 그중에서 하나는, 남의 죄로 자신의 죄를 덮으려는 죄,(녀자가 간통하는 것을 지켜보고 그것을 고발하는 것으로 자신이 엿본 죄를 덮으려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직접 보지도 못하고 그녀가 죄 있다는 것을 귀로 듣고 판단한 죄, 내가 바로 그 후자인 귀로만 듣고 돌을 쥔 수많은 사람 중의 한 사람이였다.
내가 없었던 과거 때문에, 그 사람의 아픔으로 그 사람을 다시한번 죽였으니, 나 역시 그를 아프게 했던 사람들과 하나도 다를 바 없었다. 어쩌면 내가 더 나쁜 사람이였을지도 모른다. 그 유리처럼 부서지기 쉬운 마음을 왜 한번 더 묻지도 않고 땅바닥으로 놓아버렸던 걸가? 왜 힘들어하는 그의 곁에서 함께 해주지 못하고 가시 같은 나의 아픔을 감당해내지 못할 정도로 부풀려 가면서 그로부터 떠나버리려는 결심을 내렸을가?
그날, 그 이야기를 듣고 목구멍으로 자꾸 세여나오는 울음을 겨우겨우 참아내고 어둑컴컴한 밤의 등줄기에 기대여 평생의 울음을 다 울어버릴듯 동굴 같은 이불 속에서 울음소리를 내였다. 많이 미안했다. 그를 미워한 만큼, 나 자신에 대한 미움이 배로 느껴졌다. 벌레자국 가득한 나무잎이 바람에 바들거리면서도 가지가 있다는 생각에 가지를 꼬옥 붙들고 그 세찬 바람도 이겨낼 수 있다고 희망한 그를 나는 랭정하게 털어버렸으니, 벌레자국 가득한 그의 과거 때문에, 그게 그의 상처인 줄도 모르고, 내 마음이 힘들고 버겁다는 리유로…
창 밖을 보지도 않았는데도 자꾸 귀속으로 눈꽃들이 녹아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득히 멀었던 동상 걸린 기억들도 함께 나른하게 풀려나왔다. 귀에서 자꾸 나 자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찌 사랑하게 되였느냐고 물으시기에.” 나의 다리를 베여눕고 그가 스르르 눈을 감았다. “그 수많은 눈길을 읽으시고도…” 눈을 감은 그의 눈초리가 조금씩 흔들렸다. “그대를 보는 순간 인생이 시작된 것을…” 나는 책장 틈새로 몰래 그를 훔쳐보았다. 언제 눈을 떴는지 그가 나를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미래가 두려워 마음은 늘 제자리이지만” 그가 다시 눈을 감았다. “사랑은 말없이 끝없는 슬픔 끝을 헤매이며”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숨지는 그날까지 살아있는 것을…” 그가 말없이 나의 손을 잡아주었다.
예고도 없이 찾아온 무거운 추억 한걸음에 나는 그만 읽고 있던 책을 덮어버렸다. 그와의 추억을 나에게서 잠시라도 퇴조시키고 싶었다. 꾹꾹 눌러 담은 찬밥 같은 내 안의 눈물들이 차갑고 무겁게 느껴졌다. 그에게서 한번도 받아본 적 없다고 생각했던 꽃, 그 꽃이 142페이지에서 작은 숨소리를 내며 고이 잠들어있었다. 내가 덮어버린 건 추억 뿐만이 아니였다. 그것은 눈물만큼 진지한 그의 사랑이기도 했다.            
 
 
씨앗은 으깨진 꽃잎의 사랑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씨앗이 다시 싹으로 되기 전에는 자신의 내면깊이에서 먼저 썩어버려야 한다고, 모든 생명의 파괴는 자신의 곪음에서 시작된다고, 무딘 마음이 뒤늦게야 깊이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 되였다. 곁에서 아까운 후회들이 숨을 들이키고 있다. 처음 그 27센치메터보다 메아리가 들리는 거리에 우리는 지금 마주보고 있는 걸가. 너무 늦어버린 건 아니겠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핸드폰을 쥔 손은 더는 차갑지 않았다. 련결음이 울렸다. 한번, 두번. 건너편에서 잔잔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금방 시작된 겨울은 아직은 많이 부드러운 것처럼, 하고 싶은 말들도 이 눈꽃송이처럼 마냥 부드럽기만 하다. 이 눈꽃들로 살 같은 무거움을 이겨낼 수 있을가? 하지만 루드베키아, 고마운 나의 루드베키아, 네가 있음으로 나는 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꽃이 되여보는 걸,  
이번엔 추억이 아닌 나는 눈길을 달렸다.  

출처:<<도라지>>2017년 제3기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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