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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사이’의 온도-김단
2019년 07월 18일 10시 23분  조회:761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김단
 ‘사이’의 온도
 
1. 말주머니 여는 온도
 
창 밖은 노랗게 달아오른 해살에 아스팔트가 끈적해지고 내 마음에서는 심열이 솟구쳐 안팎으로 열기가 후끈후끈 해난다. 무더위 속 도심에는 행인의 그림자를 보기 드물다. 모두들 에어컨 바람이 제대로 나오는 상가를 찾아 맛있는 점심을 즐기고 있지 않으면 도시를 벗어나 어느 시원한 계곡에 맥주와 수박을 담궈놓고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을 것이다. 이참에 도시도 내면의 무게를 비우고 나른한 휴식을 즐길 모양이다.
날씨도 덥고 입맛도 없으니 외출하지도 말고 오늘은 집에서 시원한 오이랭국이나 해먹을려고 오랜만에 랭장고 문을 열었다. 시원한 바람과 함께 랭장고 신선실에 챙겨놓은 야채가 보였다. 게다가 크고 작은 반찬통들이 살을 맞대고 빼곡이 들어앉아있다.
‘오이랭국이고 뭐고 랭장고 청소부터 해야겠구나…’
손이 가는 대로 제일 앞에 있는 반찬통을 열어보았다. 시큼한 냄새와 함께 소고기고추졸임 사이사이에 파랗고 하얀 솜 같은 곰팡이들이 듬성듬성 들어앉았다.
“랭장고에 보관했다가 며칠 지나서도 다 못 먹으면 한번 데웠다가 식혀서 다시 랭장고에 넣어둬라.”
엄마가 당부했던 것처럼 소고기고추졸임의 온도를 조금만 조절해주었더라면 ‘수명’을 조금이나마 더 늘일 수 있었던건데…
그 외에도 ‘장렬한 최후’를 맞이한 음식들이 가득했다. 언제 료리 의욕이 충만했던 날에 사두었던 기본재료들인지 아니면 지나가던 길에 그냥 행사가격이여서 통 크게 샀던 음식들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다이어트를 결심했던 날에 샀던 바나나 한뭉치도 그 고운 살결에 주근깨가 다닥다닥 돋아나있었고 더위에 물컹물컹해져 냄새가 나기 전에 쓰레기통으로 들어가야 될듯 싶다.  
쓰레기통으로 버려지는건 류통기한이 지난 음식뿐만 아니였다. 자연과 인간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동물 사이, 사람과 물건 사이 등 세상 모든 것이 온도에 의해 가늠이 되였다.  
온도조절이 제대로 되지 않아 변질돼가는 사이사이가 점점 위태롭다. 사람사이에 류통기한이 박혀있는 것도 아니고 킁킁 냄새를 맡아본 뒤 변했다고 쓰레기통으로 버릴 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 둘의 온도
 
“나는 아이가 생기면 이렇게 피곤하게 살지 않을 거예요.”
“직접 나서 키워보면 알게 될게요.”
결혼생활 1년차, 동료들의 얘기가 새삼 실감이 나기 시작한다. 아이까지 생기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더더욱 줄어들 것이다.      
리허설 없이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인생무대에서 난생처음 엄마라는 역할을 맡게 되는 우리는 때로는 서툴게, 때로는 설레이게 아이와의 온도를 맞춰간다.
“어제 밤에 아이가 여러번 잠에서 깨는 바람에 난 선잠을 잤어. 아휴 피곤해.”
아이는 엄마에게 쾌적한 거리감각 따위는 요구하지 않는다. 숨막히고 뜨겁도록 가까운 사이를 원한다. 엄마는 그 뜨거운 사이에서 자신을 소진시키기도 한다.
“아이를 재우고 나서 어쩌다 니가 올린 글을 읽어볼 여유가 생겼어. 나이가 들면서 자꾸 늘어가는 배역에 가끔 힘이 부친다. 엄마배역만 하다 나 자신으로 돌아가는 시간은 하루에 고작 10분, 이런 마음이 뻥 뚫리게 좋은 글 더 부탁해.”
대학동창생이 밤 11시에 위챗 모멘트에 올린 나의 글을 읽고 나서 올린 대글이였다. 요즘 위챗 모멘트에 아이 엄마들은 자신의 일상보다는 아이와 함께 보낸 일상을 올리기에 여념이 없다. 아이가 있는 동료 언니들은 출근하여도 얼굴에는 항상 피곤한 기색이 력력하다. 낮에는 열심히 근무하고 퇴근후면 집으로 돌아가 아이와 놀아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아이가 없는 나는 가끔 리해되지 않을 때도 있었고 나는 절대 피곤하게 아이를 키우지 않을 거라는 다짐도 미리 해본 적이 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엄마는 위대하고 엄마가 되기 위한 온도는 원초적 본능이였다.
“집에 먹을 반찬은 있니? 된장하고 고추가루 더 가져다줄까? 새로 해둔 게 있는데…”
“집 아래에 왔다, 내려오라.”
“올라오세요, 쉬다가요.”
“할 일이 많아서 먹을거리만 주고 가야 한다. 얼른 내려오라.”
어릴 적 엄마와 함께 생활했던 기억은 거의 없었다. 소학교에 들어가서부터 어른이 되기까지 엄마는 늘 외국에서 일을 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엄마가 보고 싶으면 엄마 냄새가 배인 옷을 꺼내 눈을 감고 킁킁 맡았다. 향긋한 냄새가 후각을 자극하면 엄마가 바로 내 곁으로 소환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결혼을 한 뒤 엄마는 며칠에 한번씩 여러가지 반찬거리를 날라주셨다. 다리가 아프니 무거운 걸 들고 오지 말고 내가 가지러 가겠다고 해도 고집스럽게 꼭 들고 오셨다.
“끼니를 해먹을 시간이 없으면 반찬 꺼내먹으면 편하다.”
일주일에 며칠씩 꼬박꼬박 날라다 주는 그 보자기 속 반찬들은 내가 지치지 않고 ‘밥벌이’를 할 수 있도록 힘이 되여주었다.
나는 이제 더이상 옷장 습기가 큼큼하게 배여있는 엄마 옷에 코를 갖다대면서 증발된 엄마의 흔적을 애타게 더듬어낼 필요가 없었고 휴일날 외국에서 걸려올 엄마의 전화를 손꼽아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생각해보면 외국으로 돈 벌러 갔을 때 엄마 나이는 기껏해야 서른다섯, 지금의 나보다 고작 세살 더 많은 녀자였다. 서로 떨어져있어도 아이인 나는 엄마의 온도가 항상 부드럽고 따뜻했다. 꼭마치 내가 엄마의 자궁 속에서 하나의 우주로 자라날 때의 그 부드러웠던 물마냥… 그리고 나도 서서히 그 온도를 지니게 된다. 내 몸속의 새로운 우주의 기원을 위하여.
 
너와 나의 온도
 
“오늘 저녁엔 뭘 먹으러 갈까?”
“아무거나 니들 먹고 싶은 거로.”
“양고기뀀 먹으러 갈래?”
“어제 뀀 먹었어.”
“그럼 어디 갈건데?”
“아무래나, 니들 가고 싶은 대로.”
“아, 몰라 너희 둘이 결정해라, 밥한끼 먹기 힘들구나.”
“그래 먹지 마, 먹지 마.”
머리를 맞대고 뭘 먹을가 서로 열을 올리다가도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셋 다 동시에 핸드폰을 만지작거린다.
그러다 그중 한 친구가 갑자기 음악을 틀고 살풀이 무용을 추기 시작한다. 하나 둘 입으로 구호를 중얼거리며 추는 걸 보아서는 공연안무를 익숙히 하고 있는 모양이였다. 또 한명은 아예 커피숍 쏘파에 드러누워서 식지로 핸드폰 화면을 부단히 밀어올린다. 저 추임새는 인터넷 쇼핑을 하기 위해 마음에 드는 물건을 찾는 것임이 틀림없다. 나는 한쪽으로 이들을 보면서 다른 한쪽으로는 갓 구워 올린 피자를 입으로 밀어넣으면서 허기진 배를 달래기에 바쁘다.
얼굴은 편안하고 표정은 소박하며 몸은 자유로워지는 그들 사이에서 나는 제일 행복한 온도를 느끼고 있다. 목에 피대를 세우고 얼굴이 벌개지도록 열 띤 토론을 하다가 갑자기 대화가 뚝 끊겨도 전혀 불편하지 않다.
간간히 일 얘기가 나오기도 하지만 그 어떤 획기적인 결론이거나 큰 성과를 내야 하는 회의와는 다르다. 가끔 인과관계가 없는 이야기들이 질서 없이 마구 툭툭 튀여나와도 우리는 매끈하게 얘기를 이어나갈 수 있다. 누구의 말을 자르고 앞다투어 대답을 하든 누구의 말에 집중을 하지 않고 또다른 엉뚱한 말을 내뱉든 이런 것들은 우리 사이에 전혀 장애가 되지 않는다.
질풍노도의 감정 얘기도 빠질 수가 없다. 말하는 사람이 온도를 높여가면 듣는 사람은 비난과 질책이 아닌 그 사람의 이야기에 공감을 가지면서 상대방의 온도를 조절해준다. 말하는 사람도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그 방법에 대해서는 뻔히 알고 있는데 생각처럼 되지 않으니 듣는 사람이 공감해주기를 원했던 것이다.  
“사회에 나가면 친구를 사귀기 힘들다”라는 말에 반박이라도 하는듯 나는 현재 제일 친한 친구들을 학교에서가 아닌 사회에서 만나 지금까지 ‘신선도’를 유지하면서 우정을 이어가고 있다. 그 우정의 기원에 대해 우리 서로 이야기를 해본 적이 있는데 그 누구도 서로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났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했다.
“얘들아, 한시간째 못 결정하고 있다. 저녁을 어디 가 먹니?”
“그냥 전번에 갔던 데로 가자.”
“그래, 그러자.”
매번 치열한 토론을 해도 결국은 문턱이 닳토록 다니던 단골 맛집을 가군 했다. 우리 사이 마음 온도는 늘 36.5도로 순환되면서 처음이나 지금이나 우리 사이를 맴도는 공기는 부드럽고, 기쁨과 슬픔, 한숨과 침묵이 과장되는 법이 없이 단순하게 넘나든다.
 
마무리 온도
 
“만나면 같이 밥 먹자.”
“응, 알았어.”
사이의 온도를 알기 위해 우리는 서로의 언어를 해석하기 시작한다. 반가우면 다음에로 미루지 말고 마주친 순간에 마음의 주파수를 맞춰 바로 식사를 하면서 술이라도 한잔 기울였으련만…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인사에 “응, 알았어.”라고 미리 정해둔 건설적인 답도 있다는 점이다.
짧은 인사뒤 이내 어색한 기운이 두 사람 사이를 오간다. 만약 엘레베터와 같이 사방이 막힌 좁은 공간에서라면 온몸이 간지러워나 견디기 힘든 증상은 더 빨리 나타난다. 마침 그날 입은 옷에 호주머니도 없다면 갈 곳을 잃은 두 손은 본능적으로 핸드폰을 찾아갔을 것이다.
“전화번호나 위챗 알려줘 후에 전화할께.”
위챗을 추가하고 전화번호를 저장했지만 우리 서로는 일년이 지나도 이년이 지나도 말 그대로 전화번호와 위챗아이디만 저장된 ‘아는 사이’로 존재한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사람들과의 접촉이 더 빈번해진다. 정이 많아 따뜻한 사람, 마음이 닫혀있어서 미지근한 사람, 때론 상대방의 온도가 높아서 당황할 때도 있고 너무 차가워서 오싹해날 때도 있다. 시시각각 변화되는 사람들 사이의 온도 때문에 나는 명치끝에 바위가 걸린 듯한 체증에 시달리기도 하고 차가웠다 더웠다를 반복하는 세상의 중심에서 현기증을 느끼기도 한다.
“넌 정말 최고야”로 나의 열정에 불쏘시개를 넣어주다가도 “이것밖에 안되니”로 찬물을 확 끼얹는다. 두뇌를 가동하고 몰두하여 일을 하고 있는데 “쟤네들은 정말 쉽게 일한다.”는 공기의 궤도에 따라 우리의 고막을 간지럽힌다. 이렇듯 사이의 온도는 언어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나는 관계에서 생겨나는 상처를 아물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친절한 인사에도 사이 좋은 대화에도 진심어린 부탁에도 나는 스스로 온도를 부단히 내려 조절한다. 표정은 무뚝뚝하게 언어는 차갑게 행동은 무관심하게 늘 그런 온도를 유지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 또한 오래 버티지 못했다. 내가 변함없이 0도를 유지해도 상대방은 더웠다 차가웠다를 반복하면서 나를 녹였다 끓였다 한다. 롱락당한 느낌만 들 뿐이다.
무기력한 관계 속에서 때로는 쓰레기가 아닌 진심도 관성에 의해 자연스럽게 쓰레기통으로 버려진다. 마음속으로 얼려둔 ‘감정 쓰레기’들은 하나둘 늘어난다. 자신의 온도를 무조건 낮춘다 해서 혼탁하던 ‘사이’의 공기가 순식간에 맑아질 수는 없을 터이니 다른 사람들과도 36.5도의 쾌적한 마음의 온도를 가져보는 건 어떨가?
 공동체적 삶을 살았던 예전 사람들은 무리를 떠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고 했다. 관계에 금이 가면 직접적으로 생존에 협박이 가기 때문이다. 째지게 가난했던 시절도 그들 사이는 쾌적한 36.5도를 유지하면서 살아갔다. 음식에 대한 불안이 크지 않은 현대인들 ‘사이’는 오히려 조화롭지 못하다.
환경과 사람 사이의 온도 때문에 지구는 매일 민감해지고 있다. 몇도의 차이로 우리는 삶의 변화를 잘 느끼지 못한 채 살고 있지만 정작 북극곰은 삶의 터전을 잃게 될 위험에 빠진다. 지구의 온난화로 북극곰은 ‘온도의 피해자’로 되고 사람들은 온도의 과잉 혹은 온도의 부족으로 점차 ‘감정의 난민’으로 된다. 탈출이 불가한 우리들 ‘사이’에는 파괴성적인 재앙을 막아낼 수 있는 적절한 ‘온도’가 필요하다.
출처:<<도라지>> 2017년 제6기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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