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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지》문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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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먼 곳의 전야(외1편)
2021년 06월 23일 14시 22분  조회:260  추천:0  작성자: 도라지
시와 먼 곳의 전야

▣ 수필 / 채복숙

 
이쁘장한 젊은 녀자가 그림을 보고 있다. 세련된 초록의 원피스를 입고 검은 핸드백을 든 채 머리를 20~30도의 각으로 살짝 들어올려 오른쪽 우, 화면에 나타나지 않은 그림을 보고 있다.

녀자는 대략 7:3 비례의 장방형 구도 안에 서 있다. 명도를 살짝 떨어뜨려 조금은 우울해 보이는 색감의 연두색 풀무늬 벽지 우에는, 역시 살짝 우울해 보이는 낮은 하늘과 머리를 풀어헤친 나무를 그린 풍경화가 있다. 녀자는 아마 갤러리 속에 몸을 담고 있는 것이리라. 백열등에 직접 조명을 받은 듯 얼굴 피부는 눈처럼 희고 깨끗하다. 그러나 두 볼은 오히려 발가우리하다. 눈은 속쌍거풀이고 입술은 작고 도톰하다. 미인이다.

미인은 가슴이 깊게 파인 원피스 안에 하트형 깃의 다홍색 스웨터를 입었다. 하트형 깃의 끝에는 작은 금속고리가 걸려있고 그 고리에는 하얀 진주 패물이 걸려있다. 그뿐이 아니다. 하트형의 스웨트 깃은 량옆을 돌아가며 같은 색상의 남홍(南红) 마노 구슬로 치장했다. 백조의 목같이 희고 예쁜 목에는 가는 금목걸이가 걸려 있는데, 그 목걸이는 또 무늬가 보이락말락하다. 이미지는 세밀함이 극치에 달한다.

사진일가?

사진이 아니라 ‘동경’이라는 제목의 그림이다. 그림이지만 사진이 울고 갈 지경으로 리얼리티하다.

나는 한때 신문의 ‘예술살롱’란을 담당한 적 있다. 그때 예술평론이라 하기에는 많이 부족하지만, 스스로는 느낌이 그럴 듯한 감상문들을 꽤나 썼었다. 우의 그림도 그때 만난 것이다. 나는 그림을 보며 세밀화의 극치가 이같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음에 혀를 내둘렀다.

중국에서는 회화의 전통 쟝르로 공필화라는 것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정신과 기품, 경지를 중시하는 화파가 우선시되였고 사진과 똑같게, 혹은 사진보다 더 세밀한 그림은 근래에 많이 흥기하기 시작한 것 같다. 현재 중국 회화 시장에서는 세밀화가 상당한 자리를 차지하고, 가격이 천문수자인 그림을 그려내는 화가도 적지 않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서방 미술계는 여러 화파들이 돌고 돌아 슈퍼리얼리즘이라는 경향이 생겨났다고 한다.

그런데 사진예술은 또 다른 추구가 있는 것 같다.

사진이란 이름을 한자로 풀이하면 베낄 사에 참 진이다. 참을 베낀다는 뜻이다. 말 그대로 피사체를 그대로 베낀다는 뜻으로 리해해야겠다. 초기의 사진은 결코 미술의 령역이 아니였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디지털 기술로 다양한 사진 이미지들이 만들어지고 있으며, 이런 기술들이 사진의 개념을 완전 바꿔 버렸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지금 사진은 당당히 예술의 한 분야로 되여, 있는 그대로 담아내지 않고, 낯설거나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만들어 보여주기도 한다. 현재, 사진작가들은 상상력의 한계에 도전하면서 또 다른 극치의 작품들을 만들어낸다.

그러고 보면 미술작품은 사진화 되고, 사진작품은 미술화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세상은 타자를 배척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타자가 되고 싶어하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사는 일상은 거의 비슷한 나날들의 중복이다. 단조롭고 따분하다. 서로 다른 시간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거의 완벽에 가깝게 똑같은 일상이다. 대개의 사람들은 그 매일매일의 비슷한 일상에서 도망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홀로의 려행, 먼 곳에로의 동경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정작 홀로 떠돌아다니는 사람은 안정된 환경과 따뜻한 가족이 그립다고 하니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령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라는 것들이 많이 류행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에는 ‘생활은 눈앞의 구차한 일상만이 아니야, 시와 먼 곳의 전야도 있어’라는 꽤 근사한 노래도 있었다.

대략 7~8년 전, ‘시와 먼 곳의 전야’를 위해 교사직을 그만뒀다는 녀교사의 일화가 전 중국을 들썩이게 한 적도 있다.

이 일화의 주인공 녀교사가 썼다는 사직서는 단 한줄로 된 “세상은 저렇게 크고 나는 그것을 보러 가고 싶다”이다. 그런데 심심한 네티즌들이 그것을 대련(对联)으로 만들었으니, 그중 가장 이름난 것이 “돈지갑은 요렇게 작고 어디에도 갈 수 없다”이다. 거기에 횡서(横批)로 “출근이나 잘해라”고 달았다고 한다.

사람은 항상 리상적이 되여 보이는 다른 누군가가 부럽고, 예술은 늘 상반되는 령역에로 꾸준히 파고 들어가는 것 같다. 자아에 대한 불만이 새로운 자아를 만들려는 노력으로 이어지는 게 아닐가.

요즘도 꽃은 피였건만 일상은 단조롭다.

그래서 나도 시와 먼 곳의 전야가 한결 더 그리운가 보다.

일상을 탈피할 수 없다면 그리운 시와 먼 곳의 전야를 내가 직접 만들어낼 수밖에 없겠지…

다시 한번 ‘동경’이라는 그림을 들여다본다.

그림 속의 그녀도 시와 먼 곳의 전야를 보고 있는 것이리라.

격조가 살짝 우울하지만 눈빛이 례사롭지 않아 동경이라는 것이 더 돋보인다.



채복숙 프로필
채복숙, 흑룡강신문사 기자 경력, 현재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 편집. '민족문학' 잡지 년도상 등 수상.


채복숙의 다른 작품 감상

인생은 색갈의 강이야-
▣ 수필 / 채복숙


 
출처가 어디인지는 알 수 없지만 ‘휴일의 성소(圣所)는 침대’라는 말이 있다.(출처를 알 수 없으니 일단은 본인의 명언으로 치자.) 더구나 해빛 따뜻하고 나른한 봄날 주말이면 침대에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는 산만함이 나처럼 게으르지만, 매일 아침 꼬박꼬박 제시간에 출근해야 할 출근족에게는 황금 같은 휴식일 것이다. 그런데 전번 휴일에는 아침부터 급히 나가 돌아야 할 일이 생겼다. 나는 속으로 ‘알파카’라는 동물의 한어 속칭을 몇번이나 외우기는 했지만 별 수 없는 일이였다.

바로 며칠 전, 사월 중순임에도 눈을 퍼부은 이 곳 북방 도시는 아직도 우중충했고, 나는 선잠에서 깬 아이처럼 기분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온 오전 시간을 할애해 해야 할 일들을 다 하고 나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거리에 나서니 아침에 올 때까지만 해도 그냥 텁텁한 다갈색으로만 인식되던 사위가 갑자기 연분홍 물결에 설레이고 있었다.

“어? 언제 꽃이 폈지? 아침에는 못 봤는데?”

그렇다, 아침에는 꽃이 핀 걸 못 본 거다. 선잠에서 깨여 떼를 써야겠는데, 떼를 쓸 수 없는 어른은 눈앞의 풍경도 선택적으로 본 것이였다.

거리 전체가 연분홍의 물결이 되여 흐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작은 바람에도 그 연분홍들은 솰솰 설레이였다. 긴 어둠의 겨울을 지나 드디여 봄이 온 것이였다.

봄은 연분홍이다.

젊은 시절 나는 연분홍을 되게 좋아했다. 옷장 전체가 연분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체격이 가녀린 나에게 연분홍 옷은 이래저래 잘 어울렸다. 친구들은 나와 같이 쇼핑을 나가면 분홍색만 봐도 “저기 네 스타일이 있다”고 소리칠 정도였다. 스스로도 연분홍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아, 친구들이 “참 예쁘구나”고 할 때면 저절로 입이 함박만 해졌다. 나는 그렇게 나이가 꽤 들 때까지 그게 인사적인 칭찬일 수도 있다는 걸 전혀 생각지 못했으니, 심성이 단순해 빠진 건 확실하다.

세월은 쏜살같이 흘렀고, 나는 리유 없이 마냥 빨간색이 좋은 시간을 보낸 적 있다.

온 여름 빨간 반팔티에 빨간 핸드백을 메고 사처로 쏘다니군 했으며 이래저래 사람을 웃기는 사고도 적잖게 쳤다. 그때의 나는 여러가지 일들에 참여했고, 또 그 모든 것들에 신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상 우에 놓인 빨간 계혈석 팔찌가 싱겁게 바닥 우로 굴러떨어지며 산산조각이 났다. 비싼 것은 아니였지만, 그것은 내가 유난히 아끼는 것이였고, 여름 내내 나와 같이한 것이였다. 미신이라 하겠지만 나는 그것이 주인을 대신해 액을 막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신대로라면 나는 그것을 종이봉투에 담아 어디엔가 고이 매장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어쩐지 씁쓸한 기분이 되여 그냥 쓰레기통에 담아버렸다.

그 날 저녁, 나는 한창 빨갛게 피고 있는 월계화 가지를 쑥덕 잘라버렸다.

“난 아직 자를 때가 안되였단 말이야!” 월계화는 이렇게 소리치며 내 손가락을 덥석 물었다. 뾰족하고 단단한 가시에 찔린 손에서는 찔끔―하고 새빨간 피방울이 배여 내왔다. 몇년 동안 잘도 꽃을 피우던 월계화는 이젠 내 기억에서 가물가물 사라져 간다.

가을이면 나는 락엽과 똑같은 색갈의 가벼운 재킷을 입기 좋아했다.

박봉을 받는 내가 백화점에서 일개 재킷 하나를 월급의 1/3을 주고 산다는 건 무리긴 무리였지만 나는 눈 한번 깜빡 안하고 그것을 사들이였다. 그것은 밝은 노란색 우에 흰색의 반투명 막을 친 것처럼 선명하면서도 뽐냄이 없고, 발랄하면서도 진중함이 있는 색상이였다. 재킷은 락엽처럼 가벼웠지만, 가을바람을 제법 잘 막아냈다. 그 시절 나는 자연에 들어가는 것이 좋았다. 오후의 밝은 해살을 받으며, 락엽이 덮인 소로길을 걷노라면 머리가 맑아지고 기분이 상쾌했다. 그것을 두고 나는 인생을 누리는 것이라 정의했다.

그때 나는 자연 속에서 많은 것들을 주어왔다. 다친 자국이나 흠집 하나 없이 깨끗한 락엽 한장은 좋아하는 시집 속에 끼워 넣었고, 탑처럼 정중한 모양을 가진 솔방울은 서가 우에 잘 세워 두었다. 그리고 맑은 하늘 아래의 산이며 들이며, 물이며 등 가을 풍경들은 사진으로 고화되여 내 기억 속과 클라우드 속에 동시 저장되였다.

북방의 겨울은 매섭기는 하지만 짜장 청정한 기운이 있다. 그 청정한 기운은 특히나 감청색의 하늘빛에서 선연하게 안겨온다. 감청색은 또 바다의 색갈이기도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람보석의 색갈이기도 한다. 그것은 온갖 희열과 슬픔, 분노, 사랑과 미움이 인생이라는 용광로에서 단련되여 나온 것처럼 단단하고 순수하다.

그 단단하고 순수한 감청색을 옷으로 만들어 입으면 고상하고 신비스러운 멋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컨트롤하기 쉬운 색상은 아니다.

나는 겨울이면 감청색의 깃 높은 스웨터를 입는다. 그것을 입고 나면 쌀쌀맞고 랭정하면서도 순수한 느낌이 묻어난다. 그 쌀쌀맞고, 랭정하면서도 순수한 시간들에 나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한다. 그리고 그 생각의 편린들을 손 가는 대로 잡히는 종이장에 아무렇게나 적어놓는다. 그 종이 조각 우의 글자들은 철학가의 고상한 언어들처럼 두서가 없지만 또한 내 삶의 단증이 되기도 하다.
그리고 봄이 왔다.

나는 연분홍과 감청색으로 짜깁기를 한 스카프를 둘렀다. 연분홍과 감청색은 천생연분인 것처럼 잘 어울린다. 발랄하면서도 랭정하고, 순수하면서도 고급스럽다. 나는 봄바람 속에서 스카프를 날리며 꽃이 핀 것을 본다. 연분홍꽃들은 여전히 아름답고, 봄날은 여전히 단순하다.

해빛이 내리쬔다. 투명한 해살은 온갖 색상들을 품고 있다. 애기풀의 화사한 연두색이며, 오래된 건물의 진중한 암회색이며, 지나가는 회사원의 깔끔한 하얀색이며… 세상은 색갈의 회합이고, 인생은 색갈의 강이다.

집으로 돌아왔다. 창문으로 밝은 해살이 가득 들어와 침실은 명정한 분위기가 난다. 금전운이 좋으라 친 베이지색 카텐이 유난히 럭셔리한 감을 준다. 편안한 침대에 몸을 뉘였지만 생각은 제멋대로 쏴쏴― 흐른다. 올 봄에는 아까 보았던 아방가르드한 아가씨처럼 머리카락을 보라색으로 염색하면 어떨가? 그러면 계절의 륜회처럼 마음에도 또 새로운 색상들이 흘러들겠지…
 
《도라지》2021년 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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