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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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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또 다른 은혜로움 치유
2014년 11월 01일 13시 04분  조회:3088  추천:1  작성자: 넉두리

문학의 또 다른 은혜로움 치유

 
박민근




 
 
어째서 좋은 문학을 위대하다고 하는 걸까? 이 뻔한 질문에 답하기 어려운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문학이 가진 넓고 깊은 능력 때문일 것이다. 문학 읽기는 다른 일이 따라가기 어려운 숱한 긍정성을 갖고 있다. 문학이 가진 능력 가운데 단연 독보적인 것은 인간을 고통에서 구하는 치유의 힘이다.
 
문학 읽기는 상처 입은 자를 재생시키는 내면의 공간을 마련한다, 부활시킨다. 상처란 대개 내면을 잃을 때 생기기 때문이다.
 
어쩌면 문학작품 읽기면 충분하다. 마음을 다친 사람은 지하철이나 작은 골방에서도, 시끄러운 공공장소나 한적한 시골길 나무 그루터기 위에 앉아서도 절대 회복의 시공간을 마련할 수 있다. 단지 책을 펴고, 그 심층을 더듬어 따라가기만 해도 치유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존경받는 비평가 해럴드 블룸은 독서, 특히 문학작품 읽기가 우리 삶에서 필요한 까닭이 책이 가진 치유력에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독서기술How to read and why≫ 처음을 이렇게 열고 있다.
 
“책을 잘 읽는 유일한 방법은 없지만 왜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는 있다. 정보는 무한히 널려 있다. 그런데 지혜는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운이 좋다면 선생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우리는 혼자이며 남의 도움 없이 해결해 나가야 한다. 잘 읽는 것은 고독이 제공하는 크나큰 즐거움 중 하나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적어도 내 경험으로는 치유의 효과가 가장 큰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독서는 우리에게 우리 자신이나 친구, 또는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 속에 있는 타자성(他者性)을 일깨워준다. 상상에 의한 허구의 문학인 순문학은 타자성이며, 바로 그러한 이유로 고독을 경감시켜 준다. 우리가 읽는 이유는 사람들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우정이 너무 취약하고, 위축되거나 사라지기 쉬우며, 공간과 시간과 불완전한 연민, 그리고 가정과 애정 생활의 온갖 슬픔으로 짓눌리기 쉽기 때문이다.”
 
문학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또한 매우 인간적인 일이기도 하다. 게임이나 사냥, 탐식이나 육욕은 짐승들도 할 수 있는 영역이다. 대부분의 훌륭한 문학작품은 한 사람의 작가가 인간 존재에 대한 탐색과 그 여정으로 얻는 가치와 울림을 전한다. 특히 좋은 문학은 깊은 울림을 간직하고 있으며, 그 울림은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인도한다.
 
우리는 살며 숱한 상처와 시련을 겪고 견디며 살아간다. 그런데 이 상처 많은 인생이, 이 세상의 험한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마음의 단련과 회복이 무엇보다도 필요한데, 이를 가장 성실하게 도울 수 있는 일이 문학작품을 읽는 것이다.
 
만약 우리 현대인이 문학에서 멀어진다면 그것은 이 소중한 치유의 기능을 잃는 안타까운 일인 것이다.
 
나날은 상처를 입히지만, 문학을 읽고 또 읽으면 그 상처는 단지 상처가 아니라 내적 성장과 인생의 본질에 대한 이해를 돕는 밑거름으로 자리할 수 있다. 문학 읽기가 치유적으로 작용할 때는 자신의 삶의 경험을 반추하는 순기능이 잘 일어날 때이다. 
 
나는 문학 읽기에 어려움이 그리 크지 않은 내담자 대부분에게 ≪독서기술≫이 아닌, ≪독서기술≫에 실린 작품목록을 보여준다. 사실 이 책은 비평가의 글쓰기답게 읽기가 녹록치 않은 편이다.
 
다만 ≪독서기술≫가 제시하는 문학작품의 목록들은 명성이 자자한 노비평가가 선별한 치유력 높은 작품들로 채워져 있다.
 
책에는 대중이 이미 잘 알고 있는, 이반 투르게네프에서부터 이탈로 칼비노 같은 작가까지, 그리고 대중들이 쉽게 접하지 않았을, 월터 새비지 랜도나 존 키츠, 내서네이얼 웨스트 같은 작가들을 포함하여, 또 대중들이 익히 알고 있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같은 작품부터, 조금은 생속한 헨리크 입센의 ≪헤다 가블레르≫, 윌리엄 포크너의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토머스 핀천의 ≪제49호 품목의 경매≫같은 작품들에 이르기까지 해럴드 블룸의 격조 있는 이해와 감상이 실려 있다.
 
나는 이 책 자체보다는 이 책에서 선별한 작품들을 읽어보라고 권한다. 이 책을 읽는 것은 문학작품을 읽은 이후 고려할 일이다. 아니 굳이 이 책을 읽지 않아도 상관없다고까지 말할 때가 많다.
 
 ≪독서기술≫이 추천하는 책들은 베스트셀러가 아닌 스테디셀러의 목록으로 채워져 있다. 나 역시 금방 유행하다 사라지는 책보다는 시간을 견딘 책을 권한다. 오래된 책은 그 자생력이나 뿌리가 강한 책이기도 하다. 잠시 나왔다 사라지는 책에 비해 꺼트릴 수 없는 내부의 힘이 존재하는 책인 것이다.
 
세상에는 세월이 가도 퇴색하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영화 ≪캐러비안의 해적≫도 재밌지만, ≪아라비안나이트≫나 ≪오디세이아≫를 능가하긴 어렵다. 사랑받는 자기계발서나 힐링 서적이 노장의 잠언들이나 스피노자의 세계이해 만큼을 제시하기는 쉽지가 않다. 세월을 견디며 고전의 글귀 한 줄 한 줄에 깊은 의미의 층이 새겨지는 까닭이다. 누군가 만약 내 책과 톨스토이 책을 두고 고민하고 있다면 나는 지체 없이 톨스토이를 들라고 권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고전을 읽는 일이 ‘도전’이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고전 읽기가 현재에 도움 되지 않는 시간낭비쯤으로 치부된다.
 
하지만 고전을 읽으면 큰 성장을 담보할 수 있다. 조금 낯설어졌거나 내 몸에 맞지 않는 듯한 이야기가 갑갑해진 내 마음, 온갖 규격이나 틀로 이미 짜여버린 내 지성을 초월하게 돕는 진심어린 치유제이다. 자신의 구미에, 생각사이즈에 맞는 이야기로만 위안 받고 싶어 하는 것은 어쩌면 흔한 욕심이지만, 자기를 깨치는 성장을 방해할 가능성이 있다.
 
때로 느낌과 생각의 심연으로 이끄는 이야기들에 선선히 마음과 영혼을 내맡길 필요가 있다. 인생에서 때로는 세찬 ‘죽비’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진희씨의 우울증은 묵고 깊었다. 명문대를 나와 번듯한 직장에서 나름 인정받는 그녀였지만, 고등학교 시절부터 자주 또 힘겹게 우울증이라는 자신 안의 악마와 전쟁을 벌여야만 했다.
 
이 작은 악마는 이제 물러갈 듯도 했지만, 쉬이 물러가지 않았다. 퍽 오래 진희씨의 자기처방은 끊임없이, 유행하는 베스트셀러 힐링 서적을 읽는 것이었다.
 
그녀는 나름 독서광이었다.
 
나와의 상담에서도 자신이 그간 읽은 힐링서를 쭉 나열하고, 자기 감상과 평가를 조리 있게 풀어냈다.
 
그래서 그녀와의 상담은 유쾌하면서도 한편으로 답답했다. 최근 그녀는 책 읽기가 도움이 되지 않아 옛날 영화를 다운받아 보는 것으로 ‘전향’했다고 고백했다.
 
좋은 영화는 조금 더 나은 ‘회복’ 효과를, 그렇지만 일시적인, 가져다주는 것 같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나는 영화를 많이 봤으니 이제 책을 좀 읽으라며, 치유서와 문학작품을 권했다. 그리고 또 다시 해럴드 블룸의 ≪독서기술≫에 나오는 목록을 보였다.
 
그녀 역시 한때 문학작품을 많이 읽었다고 했다. 하지만 어지러웠다고 했다.
 
“선생님, 제가 17살쯤이었던가요? ≪채털리 부인의 연인≫을 읽는데, 어찌나 혼란스러웠는지요. 그리고 까뮈의 ≪페스트≫는 읽기 자체가 고문이었어요.”
 
“그러셨군요. 그렇지만 지금 그 작품들을 다시 읽는다면 어쩌면 전과는 많이 다른 의미로 다가올지 몰라요.”
 
“어쨌든 명작소설은 그리 흥미가 없어요. 더 갑갑해지기만 하고, 시간도 너무 오래 걸리고.”
 
“진희씨, 하지만 어떤 때는 우리의 그 조급한 시간관념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얼마 전 저도 ≪데미안≫을 오랜 만에 다시 읽고서 큰 감회에 사로잡혔답니다. 혹시 여기 나와 있는 제인 오스틴의 ≪엠마≫나, 토마스 만의 ≪마의 산≫, 토니 모리슨의 ≪솔로몬의 노래≫는 읽어보셨나요? 제 말을 믿고 한 번 시도해보세요.”
 
결국 그녀는 내 조금은 ‘억지스러운’ 권유를 받아들여 학창 시절 사놓고 미처 보지 않았거나, 예전 읽었던 ‘명작’을 다시 한 번 읽게 되었다. 그녀는 그 경험이 놀라웠다고 했다. 그것은 강렬한 빛이 커튼 뒤에서 새어나오는 듯한 신선하고도 경이로운 경험이었다고 했다.
 
예의, 잘 접하지 않던 치유서와 문학 감상이 그녀에게 회복의 단서를 마련해주었다.
 
여전히 우리 마음의 떠나지 않는 짙은 암흑들로 스산한 이때, 그동안 읽으려는 마음만 품고 치워두었던 그 고전들에 한 번 도전해보길 바란다. 문학에 한 번 자신을 내맡겨보길 바란다.






 
박민근독서치료연구소 소장 /  ≪당신이 이기지 못할 상처는 없다≫ 저자
 
박민근 작가, 심리치료사
44세 (만 43세) 남성
출생: 1971년 7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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