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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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도대체 누가 애국(愛國)인가?
2013년 01월 30일 22시 07분  조회:4565  추천:6  작성자: 김송죽
 

 에세이 도대체 누가 애국(愛國)인가?

 

인간은 창작본능을 갖고있다. 하기에 끊임없이 창조작용을 발휘하는 것이요 문화는 발전하게되는 것이다. 이 발전은 인간의 필요에서 나오거니와 인간본능에서 나오는 숙명이기도하다.

한데 이런 민족문화와 발달의 원동력인 민족사상이 고갈돼서 작용을 못하고 그것이 한갓 옛것에 매달린다면 그 민족의 문화는 결정코 퇴보하거니와 따라서 민족은 결국 멸망하게되고마는 것이다. 한편 또 그렇다고 민족의 관습을 떠나 그 어떤 공상적인 문화를 내온다면 그때는 또한 두말할것 없이 발전은 고사하고 민족은 재난을 초래하고 말 것이다.

뚜렸한 그 견본을 우리는 바로 지나간 60~70년대 중국에서 들끓었던 "문화대혁명"에서 찾아볼수 있는 것이다.

 

현금 중국에서는 자본주의경제모식을 본딴 중국식의 물결이 본격적으로 일면서 본래인식되였던 사회주의리념은 부결되고 새롭게 모색되여 찾게 된 것시 결국은 유교인 것이다. 8년전인 2005년도 9월초에 200명이 넘는 중국의 지도자와 화교학자들이 한지리에 모여 유학연구대토론회(儒學硏究大討論會)를 연바있다. 그때 그 모임에서 도출된 한결같은 주장인즉 바로 "유학에서 사회충돌을 피하고 세계평화를 유지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였다. 

(<<世界日報>> 2005년 9월 27일자)

 

이로부터 중국의 국학도 의연히 전통종교인 유교의 토대우에서 지속하게되였던 것이다. 과연 잘된일이다. 독자는 다들 한때 천안문광장에 높다란 공자동상이 버젓이 일어섯다는 소식을 들은일이 기억날 것이다. 틀림없다. 과연그랬다. 한데 그것이 지금은 력사기념관에 들어가있다. 내 생각에는 그것이 아마 아직은 천안문에 걸려있는 모택동의 초상과 그냥 마주하기가 불편해서 그리로 옮겨진것 같다. (백성들에게 인식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모택동은 "문화혁명"을 발동하면서 맨먼저 부르짖은것이 퍼쓰쥬(破四舊)였다. 퍼쓰쥬(破四舊)란 낡은사상, 낡은문화, 낡은풍속, 낡은습관을 가리킨다. 1966년 6월 1일, "인민일보"는 <<모든 요물잡귀를 쓸어버리자>>는 사론을 발표했는데 거기서 제기된 "몇천년래 일체착취계급이 만들어서 인민을 해쳐왔던 낡은사상, 낡은문화, 낡은풍속, 낡은습관"이라는 구호가 결국은 문혁(文革)의 <<16조>>로 고착되면서 퍼쓰쥬,리쓰신(破四舊,立四新) 즉 네가지 낡은것을 타파하고 네가지 새로운것을 세우자는 것이 문화혁명의 목표로 되었던 것이다. 한데 네가지낡은것을 어떻게 타파할것인가에 대해서 중앙은  명확한 설명이 없었다.

 

그 시대를 겪어본 사람이면 다가 알다싶이 문혁(文革)이란건 그를 발기한 자가 불민함으로 하여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전대미문의 대재난이였던 것이다. 그것이 중화의 문명에 해를 끼친것을 보면 너무나도 한심하고 혹심해서 그야말로 일구난설이다. 그때 공자(孔子)를 비롯한 허다한 선인(先人)의 능묘(陵墓)들이 정도부동하게 털리우고 파궤되였거니와 문물은 대량으로 훼손되였던 것이다. 그러했으니 중국은 제민족의 고유한 경천법조(敬天法祖)의 문화전통을 제절로 부정하고 제손으로 구중천에 내던져버렸던 것이다.

그야말로 세상을 웃기는 한심한 바보짓이였다!

 

문화혁명이 일어나 얼마안되여 천안문광장에서 모택동의 검열과 지지를 받은 북경의 홍위병들은 샤딩줴신(下定決心)을 부르짖으면서 기차로 산동에 가 공자묘부터 뢰관(雷管)으로 부셔버렸다.

 

산동 곡부(曲阜)에 있는 공묘(孔廟), 공부(孔府), 공림(孔林)을 "삼공(三孔)"이라 부르는데 공묘(孔廟)는 제를 지내는 곳이고 공림(孔林)은 공자와 그의 가족묘지가 있는 곳이고 공부(孔府)는 세습적인 연성공(衍聖公) 즉 서한(西漢)때로부터 공자의 처가편의 후예가 거주하는 곳인바 중국에서는 명나라때와 청나라때에 황궁못지 않게 대량의 력사당안과 문물이 보존돼있었다. 그런것이 퍼쓰쥬(破四舊)바람에 맨먼저 파괴되고 도적을 맞아 거덜이 나고 만 것이다.

 

1966년 8월 23일, 곡부현정부는 외지의 홍위병들이 곧 들이닥치리라는 소식을  접하게되였다. 그러자 곡부제1중학교에서는 "시급히 동원하여 일체 계급적들의 파괴활동을 방지하자!"는 프랑카트를 만들어 교문에 내걸었던 것이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농민들도 신속히 모여와 공부의 문을 지켰다. 미처 붉은완장을 만들어 팔에 낄 새도 없었던 그들은 그저 붉은 천오리에 "빈하중농"이라는 네글자를 써서 앞가슴에 달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분노했다. 홍위병들이 이제 삼공(三孔)을 습격하리라는 것을 알아차린 그들은 집집의 나무상자들을 거두어 그것으로 삼공(三孔)입구에 있는 돌사자를 가리웠다. 그래놓고는 모택동의 상을 들어다 그앞에 놓고서는 표어를 내걸었던 것이다. 허나 그들의 그같은 노력은 공자를 반격하는 노조(怒潮)를 막아내기에는 너무도 무기력했던 것이다.

 

1966년 11월 11일, 당시 중앙문혁소조의 조장이였던 진백달(陳伯達)은 북경에서 전보로 "공묘, 공부, 공림을 태우지 말라"고 지시하고는 "공자의 모는 파버려도 된다"고 했던 것이다.

같은날, 중앙문혁소조성원이였던 척본우(戚本禹)는 전화를 걸어왔는데 그는 "명대이전의 석패들은 남기고 청대의 석패들은 부수어도 된다. 공자의 모는 파버려도 된다"고 지시했던 것이다. 상방보검(上方寶劍)이라 그같이 상급에서 특허한 권력이 있는지라 북경에서 간 홍위병들은 담이 커질대로 커졌다.

11월 13일에 그들은 공부(孔府)의 대문을 활 열어 제끼였다. 그러고나서 하루지나 15일날에는 대문앞에서 "공가점을 철저히 짓부셔버리는 선서대회"를 한 것이다. 그러고나서 그들은 패를 나누어 공묘(孔廟), 공림(孔林), 주공묘(周公廟)에 뛰여들어 비(碑)를 마구까부시고 편액들을 뜯어내리고 조각상들을 뚜드려마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기세 흉흉하기가 말이 아니였다. 신주를 모신 감실에 뛰여든 홍위병들은 땅에 떨어진 성현의 머리를 뽈차듯 이리굴리고 저리굴리면서 좋다고 웃으면 서 고와댔다. 이와 동시에 홍위병이 당지의 농민들가운데서 뽑아낸, 손에다 곡괭이와 삽을 든 자들로 무어진 한무리의 "쪼판패"는  공자(孔子), 공리(孔鯉), 공급(孔伋) 조손삼대의 모를 파헤치는 작업을 동시에 벌렸던 것이다.

 

11월19일, 거대하고 무거운 대성지성문선왕(大成至聖文宣王)의 비(碑)를 끌어 엎어뜨리고는 그것을 두동강으로 만들어버렸다. 혁명적인 꼬마맹장들은 그래놓고나서 뢰관(雷管)과 작약으로 공자의 모를 폭파해버린 것이다.

그야말로 무지막지 포악한 행위였다.

홍위병들은 그렇게 한 후 공림에서 다섯구의 시체를 끄집어냈으니 그것은 75대 적손(嫡孫) 공상가(孔祥珂)와 그의 부인, 76대 적손(嫡孫) 공령이(孔令貽)와 그의 처 외 하나였다. 시체를 꺼내보니 그때까지도 별 손상없이 거의 완정하게 보존돼있은 것이였다. 그런것을 홍위병들은 쇠꽉지로 찍어서 모양없이 만들었거니와 파낸 시체를 그 자리에다 대엿새를 내쳐두었다가 그냥보기사 싫었던지 공림의 동남쪽에 있는 흙구덩이에 가져다 처넣고는 불에 태워버린것이다.

 

홍위병들이 그같이 모를 파헤친 후 혁명적인 촌민들은 발광적으로 모안에 있은 순장품들을 도둑질해갔다. 그때 밤에 뜨락또르로 모들을 밀어버렸는데 그번 도둑질에 부자가 된 자가 적지 않다는 설이 지금도 나돌고있다.

2천년넘도록 보존되여 내려오던 근 3,000여무에 달하는 공씨가족의 모들은 이렇게 거덜이나고 만 것이다. 말대 연성공(衍聖公)인 공덕성(孔德成)은 공령이(孔令貽)의 아들인데 장개석이 대만으로 가면서 거의 강박하다싶히 데리고갔다. 그는 2008년에 세상을 떠났다. 대륙을 그렇게 떠나간 그가 생전에는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해서 한번도 조상께 제를 지내지 못했거니와 대륙에서는 조상의 모와 시체들이 다 그모양으로 형편없이 만들어놓았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그랬은즉 숨이 지는 시각까지 그는 그 모욕과 치욕을 어떻게 참고 받아냈을가? 

 

당년에 혁명자가 퍼쓰쥬(破四舊)를 하고 리쓰신(立四新)을 해야한다면서 철없는 홍위병들을 추기여 저지른 천추에 용남못할 그 죄악들이 이제는 력사에 꼭 기재될 것이다. 이 외에도 그같은 사실들이 많고많지만 나는 다른건 더 말하지 않겠다.

(독자는 내가 재작년에 이미 써 올린 "후례자식의 혁명"을 비롯하여 "음지에 묻힌 비밀"에서 유관자료들을 더 찾아 한번 읽어보기바란다.)

      

"대륙에서 줄기차게 문화대혁명을 하느라 할 때에 대만성에서는 이에 대응하여 중화문화부흥운동(中華文化復興運動)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것은 1966년 11월에 손중산(孫中山)의 아들 손과(孫科)와 공자의 적손(嫡孫)  공덕성(孔德成) 등이 련명으로 발기한 것이였는데 포괄된 내용은 "대량의 고적(古籍)들을 정리하고, 중국력대의 충효인물(忠孝人物)과 문선들을 편찬인쇄하며, 중국과학기술사총서를 편역하며, 중국인문(中國人文) 및 사회과학총서를 편찬한다" 는 것이였다.   
 (<<中國新聞周刊>>에서)

 

그리고 장개석은 생전에 미국이 세 번이나 대륙에다 원자탄을 던지자는것을 그러면 절대안된다고 막았다. 그런다면 자기는 민족앞에 죄인이 된다는 것이였다. "文革"기간에도 그는 쏘련에서 같이 손잡고 대륙을 치자는 제의역시  절대 그럴 수 없다면서 일축해버렸던 것이다. 
(
文革時將開石拒絶蘇聯帮助反共大陸을 보라)

 

도대체 누가 애국(愛國)인가? 

이역시 다시금 숙고해봐야 할 일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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