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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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아이들은 죄없다.
2013년 03월 26일 06시 59분  조회:4383  추천:4  작성자: 김송죽
 

에세이 아이들은 죄없다.

1966년, 바로 국민경제조설이 기본적으로 완성되여 국가가 제3차5개년계획을시작할 때에 의식령역에서의 비판운동이 점차 정치운동으로 번지면서 방향을 당의 령도층에 돌리였다. 하여 장장 10여년간이나 당과 인민에게 엄중한 재난을 가져다준 문화대혁명”이 터지게되였던 것이다.

모택동은 문화혁명초기 8차나 천안문에 올라 100여만명의 홍위병들을 접견했는데 그 시간을 라렬하면 아래와 같다.
1966년 8월18일, 8월 31일, 9월 15일, 10월1일, 10월 18일, 11월 3일, 11월 10일, 11일, 11월 25일, 11월 26일. 그중에서 11월 10일, 11일과 11월 25일, 26일은 거리가 짧으니 한차례씩으로 계산했다.

모택동의 접견을 받은 대학이나 중학교의 학생들은 다가 돌아와서는 “수정주의를 뒤엎는다”면서 짧은기한내에 “홍위병”을 조직하여서는 학교령도와 선생들을 끄집어내여 투쟁했기에 당정기관들은 충격을 받게되였던 것이다. 하여 그 운동은 재빨리 당내로부터 사회에 퍼짐으로 하여 급속히 전국성적인 사회동란이 시작되였던 것이다.
1966년 11월, 상해공예미술학교와 상해희극학원의 홍위병들은 저희들을 배워준 교원과 교장선생을 투쟁하면서 그 장면을 사진찍어 전국에 널어놓았다. 

그와같은 일들이 전국의 각처에서 벌어졌다.

“문화대혁명”이 일어난 후 당령도층내에서는 광대한 간부군중이 “좌”경착오와 극좌적인 사조에 대해서 시종 정도부동한 형식으로 제지하고 항쟁했다. 제지와 항쟁의 표현은 비판에 대한 표현과 조판(造反)에 대한 소극적인 태도 즉 각자가 자기의 강위에서 사업과 생산을 견지하거나 아니면 우도우(武斗)에 항의하면서 “문화대혁명”의 착오적인 작법을 엄하게 비평한 그것이다.... 허지만 문화혁명기세를  막아내지는 못했다.


문화혁명은 이른바 네가지 낡은것을 쓸어버는 거세찬 퍼쓰쥬(破四舊) 기세를 일킴으로 하여. 그시절을 산 람들에게 큰 재난을 가져다주었던 것이다. 중화의 문명이 이루헤아릴수없이 손실을 보았다. 공자(孔子), 악비(岳飛)를 비롯한 많은 선인(先人)들의 능묘(陵墓)가 파괴되고 문물들이 털리우고 훼손되였다. 중화민족의 고유한 경천법조(敬天法祖)의 문화전통은 그렇게 훼멸되였던 것이다.

탈권을 놓고 벌린 패투쟁이 전국에 만연되였다. 전국의 각지에서 조판패(造派)들이 서로 제가 권력을 잡자는데서 패거리를 뭇다보니 분쟁과 충돌이 심했다. 무단적인 투쟁은 잔혹하했거니와 격화되였던 것이다. 하여 곳곳에서 상망자를 적잖게 낸것이다.  1967년가을, 그러한 형세였음에도 사부치, 왕력, 강청 등은 그것을 좋은 기회로 여기고 “공(公), 검(檢), 법(法)을 철저히 부숴버리라”면서 “문공무위(文攻武衛)”를 해야한다는 구호를 내놓고 투쟁을 선동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북경에서는 지어 국제법을 어기고 야만스레 영국대판처(英國代瓣處)에 불을 지르는 미런한 짓을 하기까지한 것이다.
그해의 몇 달은 “문화대혁명”이 전국적으로 발동되면서 가장격렬했던바 사회재난이 가장 업중한 계단이였다.

1967년에는 지어 향항에서마저도 문혁시위가 있은것이다.

    

문화혁명을 하면서 그 어디의 홍위병이나 다가 국가의 령도자들을 참혹하게 투쟁했다. 1968년 10월 13일부터 31일, 당의 9차대회를 열기위한 준비로서 8계 12중전회를 열었는데 당내의 생활이 극히 불정상적인 상황에서 강청, 강생, 사부치가 꾸며만든 류소기문제에 관한 “심사보고”를 통과했다. 그자들은 류소기에게 근본 있지도않는 “반역자, 내부간첩, 공인역적”이라는 죄명을 씌워 “그의 당적을 영원히 지워버리고 당내외의 일체직무를 철소한다”는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류소기의 딸의 회고록을 보면 그날은 바로 류소기의 70세 생일이였던 것이다. 이날 류소기는 억울함을 못이겨 집에서 통곡했다. 1년후 병을 앓던 류소기는 치료도 제대로못받다가 가슴에 깊은 원한을 품은채 사망하고만 것이다.   

그 외에도 팽덕회를 비롯한 국가의 고급간부 다수가 그같이 억울하게 투쟁받고 사망한 것이다.

억울한 투쟁과 죽음은 지어 청해의 핵기지에까지 감염이 되어 4,000여명에 달하는 사업일군이 박해받았고 다섯사람은 미묘하게 총살을 당하기까지 한 것이다.

중국의 첫 번째 “동방홍1호위성”이 예정된 비행궤도를 보면 파키스탄, 예멘, 우간다, 잠비아 등 제삼세계의 수도를 지나게끔 되어진건데 주은래총리가 기술인원들에게 지시하기를 위성이 각국의 수도위를 날아지날때는 우리 위성이 보내는 노래소리를 명확히 들을 수 있게끔하라고 지시했던 것이다. 그 위성의 이름이 “동방홍”이니 당연히 “동방홍”을 부르기로되였다. 한데 모택동을 하늘높이 떠받들고 숭배하는 때라서 어떤 사람이 제기하기를 탄도에다가 모택동의 상장을 박아놓자고제의했다. 그런다면 모택동을 열애하는 표현이 충분히 알리게되리라는 것이였다. 그러자 그 제의에 반대하는 사람이 나졌다. 반대리유인즉은 모택동의 상장(像章)을 박아넣는다면 무계가 엄중히 무거워지면서 위성자체의 의기가 내는 열을 정상적으로 발산못해 고장날 수 있기에 안된다는 것이였다. 그래도 쟁론을 하다가 나중에는 이 문제를 주은래총리에게 회보했더니 그가 다음과같이 말한것이다.
“당신들 보라구,정치상 숭엄한 인민대회당에마저도 모주석상장을 걸어놓았으니.... 과학을 하는 사람이면 과학적인 태도를 가져얄게 아니겠는가. 객관규률을 존중하는게 좋겠다”

하여 달았던 상장을 뜯어버린 것이다.
연구자들은 그 첫위성이 만약시 고장나면 공중에서 자폭자멸하게끔만든 것이다.
인조위성까지 만들어 낸 그들의 공적은 그야말로 대단한 것이다. 하건만도 그들중 적잖은 과학가들이 문화혁명기간에 참혹한 박해를 받은것이다. 대호가 221인 청해핵기지에서는 중국의 첫 원자탄은 물론 수소탄도 만든것이다. 그런 상황이였는데 1969년 10월 림표의 “1호명령”에 의하여 221기지는 급속히 3선으로 이동하게되였다. 한데 221은 기지를 옮기는 과정에 뜻밖에도 두차례나 폭발사고가 생겼던 것이다. 그것이 본래는 일반적인 안전사고였다. 하건만 그것은 승급을 해서 국내외의 계급의 적이 짜고서 일으킨 반혁명파괴활동이라면서 “파안하면서 대오정리”를 시작한건데 류학을 했던 사람들은 모두 특무로 몰리우고 사업상 생활상 가까이지냈던 사람은 반혁명집단으로 몰아버렸댔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기지의 80%넘는 차간의 과(科)실(室)이상간부, 90%의 고(高)중(中)급인원이 심사를 받고 박해를 받은 것이다. 1971년 9월 13일까지의 2년사이 4,000명에 달하는 직공이 심사, 박해를 받았은것이 되는데 그중 310명이 욕질과 매질에 시달림받아 잔페가 되고 40명넘는 직공이 원을 품은채 자살했다. 그리고  다섯사람은 똑똑한 죄명도 없이 총살을 당하고만 것이다. 그야말로 가슴터지는 원안이였다. 그런것이 1974년에와서야 한차레의 억울한 안건으로 정책락실을 받았다.    (
《北京晚报》、《中华传奇》)


그 썩 전에 북경에서만도 홍팔원(紅八月) 그 한달사이 홍위병들의 손에 매맞아죽고 자살한 지식분자가 1,700이 넘는다.

문화대혁명기간에 북경의 어떤 홍위병은 개국원수의 귀뺨을 때리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했거니와 팽덕회원수에게 발길질을 했고 국가를 지은 작사자 전한선생에게 오줌을 먹이였다. 어떤 녀홍위병은 송경령의 머리를 깍아버리겠다고 날쳤거니와 할빈의 한 녀홍위병은 리범오성장을 투쟁하면서 가위를 들고 달려들어 머리를 깍는 장면이 사진에 찍히기까지 했다. 그뿐이 아니였다. 철없는 홍위병들은  조일만의 남편을 때려죽이였다 그러니 아들은 고통을 덜기위해 목을 매여 자살해버렸다. 홍위병들은 증국번(曾國藩)의 외손녀를 동뭉치달린 피대로 때려죽였다. 원인은 다른게아니다, 그녀의 외할아버지는 예전의 력사인물이라는데서.  

당시 모택동을 접견했던 홍위병들의 그 한사람에 대한 개인숭배는 신통히도 1932년에 독일에서 대의멸친(大義滅親)을 부르짖으면서 생겨났던 히틀러청년단이 그 파시스 히틀러를 숭배하고 신을 믿듯이 떠받들던 그모양으로 일종의 발광적이고도 야만적인 종교형상이 되어 그 기세가 최고봉에 올랐던 것이다. 그들은 담이커질대로 커져서 그야말로 안하무인격이였다. 마구때리고 뚜드려마스고 빼앗고 지어는 사람을 죽이면 그것이 혁명이고 충성인줄로 알았다. 그러니 그 일대의 충성이란 기실은 단순히 리해된 계급투쟁인식으로부터 생겨진 맹동이였을 따름이지 기실은 혁명성과는 1만8천리나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하길래 어떤 학자는 “홍위병”들의 행위를 "다른게아니다. 인간성과 리지를 잃은 한차례의 무모하고 미친작난질이다."라고했다. 그 애들이 어떻게 되어 그같이 망나니짓을 할수 있었던가? 한번다시 돌이켜 깊이생각해 볼바가 아니겠는가?.... 아이들은 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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