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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터] - 세계의 3대 미녀 영화배우 매력에 매료되다...(1,2편)
2016년 11월 21일 00시 11분  조회:8162  추천:0  작성자: 죽림
세계의 3대 미녀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
 
1929년 5월 4일(벨기에) ~ 1993년 1월 20일
170cm, 49kg
아들 : 션 페러, 루카 도티
 

 
 정식 풀네임은 오드리 캐슬린 러스턴(Audrey Kathleen Ruston)
세간에선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이란 이름이 더 유명하다.
영국의 영화배우. 전성기 때 당대 최고의 미녀였으며 연기력도 뛰어났다.
 또한 노년기에 아름다운 선행을 펼쳐 더욱 더 유명해진다.
당시 주로 글래머 여배우들이 인기를 얻고 있던 시절에 호리호리하고 지적이며
고전적인 미인으로 등장하여 당대 최고의 미인 자리에 오르게 된다.
 또한 현재까지도 영원한 미의 상징으로 불리우고 있다.
 세기의 미녀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닐 정도로 그녀의 사진이 21세기의 휴대폰 광고에 쓰였을 정도
20세기 최고의 미녀라 불리지만 본인은 외모에 불만이 많았다고 한다.
 지인들에게 털어놓기를 "나는 피부도 좋지 않아 화장을 하지 않으면 볼품이 없고, 얼굴이 각졌고 콧등도 매끄럽지 않고…"라고 했다고..
 "이런 얼굴로 영화배우가 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다."고 말했던 적도 있다고 한다(...)
 
벨기에 태생이며 영국의 은행가인 아버지 조지프 앤서니 러스턴(Joseph Anthony Ruston)과 
네덜란드의 귀족인 엘라 판 헤임스트라 남작 부인(Baroness Ella van Heemstra) 사이에서 태어나
벨기에와 영국, 네덜란드를 옮겨가며 지냈다. 아버지는 오드리를 낳은 후 가정을 버리고 방랑,
헵번이 영화배우로 성공한 이후에 잠깐 다시 만난 게 전부라고 한다.
10대 시절 대부분을 네덜란드에서 보냈고, 그때 살던 곳이 바로 마켓 가든 작전으로 악명 높은 아른헴이었다.
실제 자원하여 부상병 치료에 나섰다 전투에 휘말린 적도 있다고...
 당시의 처참한 경험 때문에 평생 전쟁 영화 만큼은 출연을 사양했다고 한다.
 (할리우드판 <전쟁과 평화>에 출연하긴 하지만 전투 장면에서는 출연하지 않았다.)
 여담으로 당시 16세의 간호사였던 헵번이 치료한 어느 영국군 부상병과 20여년 후에 다시 만나게 된다.
 그 부상병은 007 시리즈 감독 테렌스 영.
원래 건강한 몸도 아니었고 전쟁 중에 갖은 고생을 다하며 영양 실조로 인한 합병증에 시달렸다.
 종전 후 영국에 돌아왔을 무렵 전쟁 난민 지원 모금을 위한 홍보 포스터의 모델이 될 정도로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고
로우틴 때까지만 해도 발레리나로도 제법 유명했으나 키가 너무 커져(170cm) 포기했다고 한다.
어려운 집안 사정 속에 연기 활동으로 집안에 보탬을 주다 1950년대 들어와 조금씩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그러다 24세 때인 1953년에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영화 <로마의 휴일(Roman Holiday)>의 여주인공인 앤 공주 역에 오디션을 거친 후 발탁되어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더불어 첫 할리우드 주연 영화로 아카데미 주연 여우상까지 받을 정도로 연기력에서도 인정을 받는다.
이때 원래 프랑크 캐프라 감독이 캐리 그랜트와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주연으로 만들 예정이였으나
조지 스티븐스에게 프로젝트가 넘어갔고, 스티븐스도 거절해서 윌리엄 와일러가 감독하게 된 것이다.
 와일러는 앤 공주를 진 시몬즈에게 맡기고 싶었지만 스케쥴이 안 맞아서 캐스팅이 불발되고
예산도 축소되어 신인 여배우를 캐스팅할 수 밖에 없었다.
하룻밤에 찍는다는 설정도 예산을 아끼기 위해 나온 아이디어
그레고리 펙은 자기 이름만 크게 나온 포스터를 보자,
"헵번이 오스카를 탈 게 분명한데, 내 이름만 포스터에 나오면, 사람들은 나를 쪼잔하다고 비난할 거다."라면서
그녀의 이름도 같은 크기로 포스터에 넣으라고 파라마운트 사에 요청했다고 한다.  그의 예상대로 헵번은 오스카 주연 여우상을 수상했고,
거기다 <로마의 휴일> 직후 영화사 쪽의 반대를 무릅쓰고 영화가 아니라 브로드웨이 연극인 <운디네>에 출연,
연극의 아카데미상이라 할 수 있는 토니상의 주연 여우상을 또 수상한다.
이후 1954년작인 <사브리나>에서 여 주인공인 사브리나 페어차일드(Sabrina Fairchild) 역을 훌륭하게 소화하며
 제27회 아카데미상 주연 여우상 후보에 오르 는등 인지도를 점점 높혀간다.
그리고 1961년, 블레이크 에드워즈 감독의 작품인 <티파니에서 아침을(Breakfast at Tiffany's)>에서
주인공을 맡은 그녀는 시대의 아이콘으로 다시 한 번 자리매김한다.
 특히 이른 아침에 검정색 선글라스 & 드레스를 입은 여주인공 홀리 골라이틀리(Holly Golightly)가
택시에서 내려 뉴욕 5번가에 위치한 티파니 보석상의 쇼윈도우 앞에서 패스트푸드를 먹는 모습은
 전설적인 명장면으로 그녀에게 스크린의 불멸성을 부여하였다.
 물론 영화 내에서 상류층의 남자들을 만나며 신분 상승을 꿈꾸는 여성 홀리 역을 훌륭하게 소화한 건 덤이었다.
영화상에서 맡은 배역 자체는 다양한데 데뷔작부터 해서 대부분의 영화상에서
순진 무구함으로 세상의 때에 찌든 남자들을 변화시키는 여성을 연기했다.
 오드리 헵번의 연기력이 모자랐기 때문이 아니라 영화사나 대중들이 가장 오드리 헵번에게 바랬던 게 저런 이미지였기 때문이다.
연기 생활 후반기에 찍은 <어두워질 때까지>에선 기존 이미지와는 다른 강렬한 연기를 보여줬다.
노래 실력도 괜찮아서 뮤지컬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에 출연하기도 했고, 위에서 설명한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는
후에 명곡의 반열에 든 '문 리버'를 직접 부르기도 했다.
60년대 후반부터는 영화 출연을 줄여 가다가 스티븐 스필버그의 1989년작 <영혼은 그대곁에(Always)>를 마지막으로 영화에선 은퇴하였다.
공교롭게도 그녀의 출세작 <로마의 휴>일과 유작 <영혼은 그대 곁에>의 원작자는 할리우드에서 가장 유명한 좌파 영화인 달턴 트럼보였다.
리처드 드레이퓌스는 스필버그에게 "그런데 누가 천사를 연기할 거지?"라고 물었고,
 스필버그가 "오드리 헵번"이라고 대답하자, 드레이퓨즈는 "그래, 그녀말고 누가 천사를 맡을 수 있을까!"라고 감탄했다고...
첫 결혼 전 약혼했던 연인이 있었으나 헵번이 유명해지면서 스케쥴이 바빠지자 헤어진다.
이후 미국 배우인 유부남 멜 페러와 사귀게 되는데 멜 페러는 엄청난 바람둥이였고 성질도 더러웠지만 헵번을 구워 삶았다.
결국 멜 페러는 세 번째 부인을 버리고 오드리 헵번과 네 번째 결혼을 하는데,
이 결혼은 아무리 봐도 헵번이 아깝다는 이야기가 많았다고 한다. 말하자면 탑 여배우가 한물간 이혼남 배우랑 결혼하는 셈이었으니...
헵번은 아이를 좋아하여 많이 가지려고 했는데 첫 번째 임신 때 사고로 유산한 후 이후, 잦은 유산을 했고, 아들 하나로 끝났다.
 이 결혼은 불행하게 끝장났는데 멜 페러의 바람기 때문에 결국 헵번은 아들 하나를 낳고 이혼하였다.
이후로 헵번은 멜 페러를 피했으며, 면전에서 그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싫어했다고 한다.
 멜 페러는 장수하다가 2009년 90살로 사망
두 번째 결혼은 이탈리아 의사인 안드레아 도티와 하는데, 재혼 시 나이가 40세였는데 아들 하나를 낳았다.
이후로도 임신에 노력했으나 결국 더 이상 출산을 하지 못했다.
 남자 복은 지질이도 없는지 안드레아 도티도 바람둥이였고, 참고 살다가 결혼 후 13년만에 이혼한다.
그래도 도티와는 계속 연락하고 지냈다고...
이후 사망 시까지 네덜란드 배우인 로버트 월더와 동거했으나 결혼을 하진 않았고 아이는 없었다(동거 시작했을 때 나이가 50대였으니...).
영화계 은퇴 이후 유니세프 대사로서 인권 운동과 인도주의적 활동에 참가하고 제3 세계 오지 마을에 가서 아이들을 도와주었으며,
그런 활동에서 미소짓는 노년의 헵번이 보여준 모습은 젊을 적 미녀의 이미지 못지 않게 유명하고 또한 아름다웠다.
특히 1992년 암 투병중임에도 불구하고 소말리아를 방문하여 봉사 활동을 한 것은 유명한 일이다.
 이런 모습을 보인 분이라 헵번의 아버지가 나치 동조자였다고 까는 소수의 사람들은 십자 포화를 TOT로 맞게 된다.
흡연으로 인한 결장암으로 사망.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보여준 긴 담배 파이프가 유명하며 아직까지도 헵번 파이프라고 하면 통한다.
 

 

 

 

 

 

 

 

 


 
 
 
엘리자베스 테일러(Elizabeth Taylor)
 
1932년 2월 27일(영국) ~ 2011년 3월 23일
 

 
영국의 영화배우. 런던 햄스터드 출신으로 유대계 미국인인 프랜시스 렌 테일러와 세라 비올라 웜브롯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형제자매는 오빠 하워드 테일러가 있다. 엘리자베스라는 이름은 할머니의 이름을 땄다고 한다.
애칭인 '리즈(Liz)'로 자주 불린다. 제2차 세계 대전 때 미국으로 이민갔고,
 1942년 10세 때 배우로 데뷔했으며 인기를 얻은 것은 <녹원의 천사>라는 영화에 아역 배우로 출연했을 때부터였다.
이후 2001년까지 50편의 영화 - 드라마나 미니시리즈, 성우로 출연한 것까지 합치면 80여 편를 찍으며 세계 최고의 미녀로 뽑히기도 했다.
 대표작으로는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클레오파트라>,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자이언트> 등이 있다.
 단순히 외모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아카데미 주연 여우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으며, 골든 글로브 4회, 영국 아카데미 2회 수상자이기도 하다.
8번의 결혼식을 올린 것으로도 유명하며, 2011년 3월 23일 울혈성 심부전증 투병 중 향년 79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사실상 그녀의 사망으로 20세기 할리우드의 여신이라 불리었던 여인들
(비비안 리, 오드리 헵번, 그레이스 켈리, 캐서린 헵번) 대부분이 이제는 모두 역사 속으로만 남게 되었다.
말 그대로 그녀는 미녀의 대명사. 키는 약 163cm였다는데 그녀의 전성기 시절엔 그녀의 키 역시 미인의 기준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1963년 개봉한 영화 <클레오파트라>에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역인
리처드 버튼과 열연한 주인공 클레오파트라 7세 역은 그녀가 아니면 소화하지 못했다고 할 정도였다.
보라색 눈으로도 유명하다. 세계 제일의 미인으로 알려진 그녀지만 사실은 20세 전후에 코를 성형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고 있다.
 테일러의 코가 너무 퍼지고 넓다는 영화사 중역의 권유로 코를 좁히는 성형 수술을 했고 결과는 세기의 미인 탄생된 것이다.
이는 할리우드 비화나 테일러의 몇몇 전기에도 나오는 사실이다. <젊은이의 양지> 이후로 확실히 코가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나이가 든 후에도 수 십번의 성형 수술로 성형 중독 의혹까지 제기되기도 했다.
 너무 성형을 많이 해서 오히려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 많은 팬들을 실망시키기도...
테일러에 대해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결혼이혼인데,
힐튼 호텔의 후계자 니키 힐튼과 결혼한 것을 시작으로 무려 8번의 결혼과 이혼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사실상 젊은 세대가 생각하는 그녀의 이미지는 세기의 미인 여배우라기보다는
결혼과 이혼을 밥 먹듯 하는 돈 많은 성형 중독 아줌마(...)
 결혼까지는 안 갔다 하더라도 그 외에도 수많은 남자 배우들과의 염문을 뿌리고 다녔다.
그녀와 결혼한 남자들의 목록을 살펴보자면······
*콘래드 니키 힐튼 주니어(Conrad Hilton Jr.; 1950~1951) - 힐튼 호텔 경영자의 아들. 그때 테일러의 나이는 겨우 17살
*마이클 와일딩(Michael Wilding; 1952~1957) - 영국 출신의 영화배우. 이 사람과의 사이에서 아들 두 명을 출산
*마이크 토드(Mike Todd; 1957~1958) - 영화 제작자. 매우 재능있는 사람이었지만 '테일러 남편'으로 더 알려졌다.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고, 딸 한 명을 출산했다.
*에디 피셔(Eddie Fisher; 1959~1964) - 프랭크 시나트라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팝 가수. 이 시기부터 테일러의 막장 행보가 시작되는데 에디 피셔는 마이크 토드의 친구였고 유부남이었던 것도 모자라 그의 부인은 테일러의 친구였던 영화배우 데비 레이놀즈 즉 남편의 친구이자 친구의 남편과 바람을 피운 것이다. 교황청에서도 이 불륜에 대해 비난했다. 에디 피셔는 테일러와 이혼한 뒤 슬럼프에 빠져 다시는 재기하지 못했다. 이 사람의 딸이 유명한 <스타워즈>의 레아 공주 역을 맡은 캐리 피셔. 캐리 피셔는 테일러의 딸은 아니다.
*리처드 버튼(Richard Burton; 1964~1975, 1975~1976) - 당대 최고의 유명한 배우. 영화 <클레오파트라>를 함께 찍으며 사랑에 빠진다. 연도를 보면 알겠지만 이 사람과는 이혼 후 재혼했다가 다시 이혼했다. 둘의 결혼식은 '세기의 결혼식' 이라고 불리웠으며, 이때 버튼이 테일러에게 선물한 33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로 유명하다. 버튼은 웨일즈 출신의 울컥 하는 성격에다가 알코올 중독까지 있어서 엄청나게 싸웠지만 테일러가 가장 사랑한 남자였고, 테일러는 죽은 후에 이 사람과 함께 묻히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딸 머리아 버튼이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났다.
*존 윌리엄 워너(John William Warner; 1976~1982) - 정치인. 테일러와 결혼한 이후 그 후광으로 상원의원이 되었으며, 이후 5선까지 당선된다. 해군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래리 포텐스키(Larry Fortensky; 1991~1996) - 20살 연하의 건설 노동자이자 트럭 운전기사로 마이클 잭슨의 농장인 네버랜드에서 결혼식을 올린 것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 버튼과 워너 사이에 주미 이란 대사인 아르데시 자헤디와 염문을 뿌렸지만 당시 이란 국왕 레자 팔레비의 압력으로 헤어졌다. 한때 할리우드 최고의 바람둥이이던 워런 비티와도 사귀었다. 사랑하면 결혼해야한다는 주의의 여자와 사랑해도 결혼은 최대한 미루자 주의의 남자의 결합은 곧 깨어졌다. 마이클 잭슨과 절친한 친구 사이여서 잭슨이 성 추행 논란에 휩싸였을 때 그의 편을 들었으며 잭슨 또한 그녀를 위해 곡을 만들었을 정도로 절친이었다. 또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도 친분이 있어서 대통령으로 취임할 때 축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80년대 아직 에이즈가 더러운 게이병, 창녀나 마약 중독자나 걸릴 병이라 매도되던 시절, 오랜 친구인 록 허드슨이 에이즈 투병을 고백했을 때, 편견없이 이전과 똑같이 대해준 몇 안 되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올리비아 허시(Olivia Hussey)
 
1951년 4월 17일(아르헨티나) ~
164cm
배우자 : 데이비드 아이슬리
아들 : 알렉산더 마틴 맥스
딸 : 인디아 아이슬리
 

 
아르헨티나 출생의 영국 배우.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원조 줄리엣이 한 마디로 모든 것이 설명된다.
 이는 역으로 이야기하면 줄리엣 이상의 역할을 만드는 데는 실패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1951년 4월 17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아르헨티나 탱고 댄서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2살 때 부모의 이혼 이후 어머니와 살다가 영국으로 이주한다.
1964년, TV 영화 <더 크런치>의 배우로 데뷔했고, 1968년에는 그녀에게 불멸의 영예를 안겨준 <로미오와 줄리엣>에 출연했다.
 이때 그의 나이는 불과 17세. 청순한 그녀의 모습이 한 마디로 전 세계가 빠져들었으며
잊혀지지 않는 청춘의 연인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대히트로 그녀는 이듬해인 1969년에 골든 글로브 신인 여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후 여러 작품들에 출연했지만 줄리엣의 이미지를 뛰어넘을 수는 없었으며
그나마 나자렛 예수에서 성모 마리아 역을 한것이 줄리엣 다음으로 가장 유명한 편이지만
그 마리아마저도 줄리엣의 느낌이 물씬 났으니...
3번의 결혼을 통해 각각 3명의 아이를 두고 있다.
 2번째 남편은 일본 가수 후세 아키라인데 이 사람이 한국계라는 말이 있지만 확실한 근거는 없다.
현재의 남편은 가수 겸 배우인 데이비드 아이슬리.
그와의 사이에서 딸 인디아 아이슬리를 낳았는데 그녀는 <언더월드4>에서 주연을 맡기도 했다.
 
인디아 아이슬리(1993년생)↓
 

 
71년 결혼한 첫 번째 남편 딘 폴 마틴의 프로포즈를 받아들인 사연도 인상적이다.
 등을 돌리고 선 채 "내 눈동자 색이 뭐죠?"라는 질문에 대답한 유일한 남자였다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78년 이혼한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세계 3대 미녀에 대해 알아보려고 해요.
시대마다 당대를 대표하는 미의 기준은 달라지지만
세월이 지나도 여전한 아름다움으로
세계 3대 미녀라 칭송받는 이들이 있는데요,
바로 ‘엘리자베스 테일러’, ‘오드리 햅번’, ‘올리비아 핫세’입니다.







1. 엘리자베스 테일러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10살이라는 아주 어린나이에
처음 영화계에 입문하게 되는데요,
아름다운 외모와 고혹적인 매력으로
수많은 작품에서 사랑을 받으며
일약 최고의 여배우가 됩니다.









이렇게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그녀였지만,
한 여자로서 그녀의 개인적인 삶은 그리 아름답지만은 못했는데요,
무려 8번의 결혼생활을 경험했다고 하네요.
역시 ‘미녀는 괴로워’ 라는 말이 맞는 것 같은 느낌이네요.




 

2. 오드리 햅번







햅번 스타일로 지금까지도 많은 여성들에게 사랑받는 오드리 햅번.
시대를 앞선 센스와 감각적인 분위기가
여전히 사랑스럽고 세련된 여배우이죠~









명작으로 꼽히는 <티파니에서 아침을>, <마이 페어 레이디> 등의
많은 작품을 통해 최고의 미녀로 기억되지만,
배우 활동을 은퇴한 이후에 어려운 이들을 돕는 선행을 펼쳤던 그녀의 행보로 
더욱 아름답게 기억되는 이 시대의 워너비 스타 에요!







3. 올리비아 핫세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 역을 맡아
한순간의 세계적인 스타가 된 올리비아 핫세!
우리나라에서는 1세대 아이돌

S.E.S. 의 유진과 닮은 꼴로 한창 많이 언급이 되기도 했었지요~







올리비아 핫세는 청순하고 고귀한 이미지가
줄리엣과 딱 맞아 떨어져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되었지만
그 때의 이미지가 너무 커서
이 후 작품들에서는 큰 빛을 보지 못했다고 하네요

=세계 3대 미녀 이야기 (2편)


 


1.브룩 쉴즈 (1965.05.3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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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미인 1편이 1950~60년대의 3대 여신이었다면, 2편에서는 80년대를 호령했던 3명의 미인들을 만나보겠습니다. 특히 1980년대의 미녀들은 이미 책받침을 통해서 우리와 친분을 쌓기도 하였죠? 첫 번째 절세 미녀는 브룩 쉴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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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절세 미녀를 타임지는 1980년대 전세계 제일의 미녀라 치켜 올리기도 하였구요. 사람들은 엘리자베스 테일러 이후 최고의 미녀라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화려한(?) 미모와 달리 브룩 쉴즈의 영화들은 크게 흥행하지는 못했습니다. 브룩 쉴즈의 연기력에도 비판의 목소리가 있었습니다만, 조각한 듯한 저 미모로 다 용서가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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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저 남자는 누구냐구요? 최근 브룩 쉴즈의 모습은 1980년대에 전 세계를 주름잡던 그 미모는 온데간데 없는 강인한 남성과도 같은 모습인데요. 흔히 거인증이라 불리는 말단비대증이 원인이라고 합니다. 성형부작용도 아니고, 참 안타깝지요. 그렇지만 우리 가슴 속에 그녀는 한 시대를 휘어잡았던 절세 미녀로 기억될 것입니다.


 



2.소피마르소 (1966.11.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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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붐> 이라는 영화를 알고 계신가요? 저 시끄러운 장소에서도 주변 소음 없이 재생되는 음악만 들을 수 있는, 거기에 저렇게 생긴 여성을 꼬실 수(?) 있는 엄청난 성능을 가진, 헤드폰 장면을 알고 계신가 말이에요. 오늘 두 번째 절세 미녀는 소피 마르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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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말하고 있는 저 눈빛과 어쩐지 우울해보이는 분위기의 소피 마르소는 프랑스가 낳은 절세 미녀입니다. 1980년대의 절세 미녀들은 우리에게 책받침을 통해서 친숙해졌다고 이야기 했었죠? 그 중에서도 이 분은 정말 책받침의 여왕이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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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 마르소도 브룩 쉴즈와 마찬가지로 연기력에 대한 비판이 있기도 했었는데요. 멜 깁슨의 <브레이브 하트>에 출연하면서 이러한 비판을 잠재우기도 하였습니다. 그녀는 자기 의견 표현이 분명하고 거침없는 성격 탓에 까다로운 배우로 인식되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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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가 된 소피 마르소의 모습이랍니다. 이거 완전 사기지요? 다른 절세 미녀들은 나이를 먹는데 그녀만 세월이 비껴가는 것 같네요. 소피 마르소가 인터뷰에서 말했다는 아래 저 글은 정말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들지요. 그러나 그 아름다움 잃지 마세요. 저 왕팬이에요.


 


"나는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두렵지 않다. 삶은 원래 주름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아닌가."
-소피 마르소


 



3.피비케이츠 (1963.07.1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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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 아버지와 중국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피비 케이츠는 다른 절세 미녀들이 갖지 못했던 동양적인 미모가 있어 우리와 더 친숙한 듯 합니다. 소피 마르소의 검은 머리와는 다른 동양적인 느낌이 풀풀 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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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이 예쁘다구요? 피비 케이츠가 입고 있어서 예쁘게 보이는 거겠지요? 한때 배우 신애라가 피비 케이츠 닮은꼴로 유명했지요. 신애라나 피비 케이츠는 외모뿐 아니라 잘생긴 당대 최고 인기 남자배우와 결혼한 것, 결혼 생활을 잘 보내고 있다는 점도 같은데, 이거 평행이론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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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라다이스>는 피비 케이츠의 대표작 중 하나 입니다. 이 영화에서 러브신으로 뭇 남성들의 가슴을 멎게 하기도 했지요. 특히 영화와 함께 주제곡 또한 직접 불러 화제가 되었습니다. 저 미모를 가지고 연기도 기본은 되고 노래도 잘하고, 1989년에 배우 캐빈 클라인과 결혼 후에는 결혼 생활에 충실했습니다. 이 정도되면 엄친딸도 아니고 이걸 어떻게 불러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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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비 케이츠 역시 소피 마르소와 마찬가지로 충분히 젊어 보입니다. 위 사진은 44세의 피비 케이츠라고 하네요. 거짓말 조금 보태서 20대 후반이라고 해도 충분해 보이는데요.


 


현재는 뉴욕에서 '블루트리' 라는 잡화점을 운영하며 살고 있다고 합니다. 피비 케이츠는 꿈만 꾸지 않고 자기가 샵을 운영하는 꿈을 이룬 배우네요. 피비 케이츠를 보면서 아름다운 외모도 부럽지만 소박(?)하게 예쁜 결혼 생활하며 자신의 작은(?) 꿈을 이루어가는 삶도 부러워지네요. 다사다난한 결혼생활과 수많은 스캔들로 인생을 보냈던 1950-60년대 절세 미녀들과는 비교되는 삶입니다.


 


소피 마르소를 제외하면(?) 그래도 이들의 아름다움은 저물게 되어 있는가 봅니다. 하지만, 지저분한 사생활로 찜찜함을 주고 간 배우가 있었는가 하면, 우리 가슴에 진정한 아름다움을 남기고 간 배우가 있었고 소박하게 자신의 꿈을 이뤄가는 미녀도 있었습니다. 세계 3대 미녀 이야기 편을 마치며, 내 인생은 어떻게 남겨져야 할까 고민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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