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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환상 문학의 대가 아르헨티나 시인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2016년 11월 29일 22시 54분  조회:5811  추천:0  작성자: 죽림
현대 환상 문학의 대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Jorge Luis Borges
 
 
출생일 1899년 08월 24일
사망일 1986년 06월 14일
국적 아르헨티나
대표작 《불한당들의 세계사》,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 《알렙》 등
간결하고 건조한 문체와 환상적 사실주의로 라틴 문학의 대표 작가가 되었으며 이후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목차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보르헤스는 아르헨티나의 시인이자 소설가로, 소설과 시, 형이상학, 신화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문학 작품을 통해 마술적 사실주의를 구축하면서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호르헤 프란시스코 이시도르 루이스 보르헤스는 1899년 8월 24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호르헤 기예르모 보르헤스는 변호사이자 심리학 교수로, 영국계 집안 태생이었다. 때문에 보르헤스는 어린 시절 스페인어보다 영어를 먼저 배우고 영어권 소설들을 읽으며 자랐다. 아버지와 가정교사들에게 교육받았으며, 6세 때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할 만큼 조숙했다. 일찍부터 문학, 철학, 그리스-로마 신화에 관심이 많았고, 7세 때 영어로 그리스 신화 개관을 작성했으며, 8세 때 첫 단편소설을 썼고, 9세 때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를 스페인어로 번역하여 신문 〈나라〉에 발표했다.
15세 때 아버지의 눈 치료 때문에 가족 모두 스위스 제네바로 이주했는데, 이곳에서 장 칼뱅 중등학교에 다니며 프랑스어, 독일어, 라틴어를 공부했다.
19세 때 스페인으로 옮겨갔으며, 본격적으로 시 작품을 발표했다. 그는 기예르모 데 토레스와 함께 잡지 〈울트라〉를 중심으로 스페인 아방가르드 문예운동인 울트라이스모(Ultraísmo, 극단주의) 운동을 주도했다. 울트라이스모 운동은 당시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등지에서 일어나고 있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등과 같이 전통적인 모더니즘을 비판하고 인간의 감성과 감각의 세계를 중시하는 운동이다.
22세 때 가족과 함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돌아온 보르헤스는 시와 에세이 작품을 발표하는 한편, 문예지 〈프리즘〉, 〈프로아〉 등을 창간해 아르헨티나 문단에 울트라이스모를 소개했다. 보르헤스는 스페인에서 영향을 받은 극단적 간결미와 압축미를 강조하는 성향에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활기차고 다문화적인 분위기, 탱고, 속어시 등에서 영향을 받은 토속적인 감성과 속어를 결합시키면서 자신만의 문학 세계를 개화시켰다. 24세 때 첫 시집 《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열기》를 펴낸 이후 시집 《앞의 달》, 《산 마르틴 노트》, 에세이집 《심문들》, 《내 기다림의 크기》, 《아르헨티나인의 언어》 등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주목받는 시인이자 에세이스트로 명성을 쌓았다.
 
팬에게 둘러싸인 보르헤스
1931년, 보르헤스는 아돌프 카사레스 등과 함께 문예지 〈수르〉에 참여하면서 서구적 문학 경향과 아르헨티나의 향토성을 결합하는 운동을 전개했다. 그는 민족주의의 배타성을 비판하면서 국지성을 극복하는 세계주의를 주창했다. 그러면서 1930년대에는 소설 실험을 시도했으며, 1935년 첫 소설집 《불한당들의 세계사》를 펴냈다.
작가로서 명성을 얻기는 했으나 이 시기에 아버지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가세가 기울자 보르헤스는 생계를 꾸려야 하는 처지가 되어 1937년부터 시립 미겔 카네 도서관에서 수석 사서로 일하기 시작했다. 1938년에는 아버지가 사망하는 불행을 겪은 데다, 계단을 오르던 중 열려 있던 창문에 머리를 부딪쳐 다쳤는데, 이 상처가 패혈증으로 번지면서 한 달 넘게 병상 생활을 했다. 또한 보르헤스의 아버지는 유전적인 이유로 시력이 약화되다 실명했는데, 보르헤스 역시 이런 유전적인 요인에 더해 지나친 독서로 이 무렵 시력이 많이 약화되어 있었다. 말년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시력을 잃어 후기 작품들은 구술을 통해 비서에게 정서시켰다.
보르헤스는 병상 생활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단편소설들을 창작했다. 상처의 후유증이 지나치게 커서 자신이 앞으로 시를 계속 쓸 수 있을지 의심하며 소설 〈피에르 메나르, 돈 키호테의 저자〉를 쓰는 한편,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소설집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1941, 후일 몇몇 단편을 추가해 《픽션들》로 출간된다), 《알렙》(1949)에 수록되는 작품들 대다수를 썼다. 이 작품들은 '발생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계시'로 탄생했다고 하는데, 이는 그에게 있어 이성적으로 통제 가능한 일시적 착란 상태를 일컫는다. 그는 패혈증으로 인한 환각을 겪으면서 자신의 정신질환을 의심했으며, 일시적으로 말을 못하게 되는 등의 일을 겪었는데, 이런 상태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일시적 착란 상태의 특징인 시공간의 무한한 확장과 이에 따른 심리적 공황 상태를 겪으면서, 마술적 사실주의라 불리는 무한하고 환상적이며 모든 시공간 및 관념의 경계가 허물어진 세계라는 독특한 보르헤스 문학이 탄생한 것이다.
1946년, 보르헤스는 당시 대통령이었던 후안 페론의 집권을 반대하는 지식인들의 시위와 시국 선언문 작성에 참여했다. 후안 페론은 1943년 쿠데타를 일으켜 군사 정부를 세우고 아르헨티나 정치를 장악했으며, 3년 후인 1946년 대통령에 당선된 인물이다. 이 일로 보르헤스는 도서관을 사임하고, 강연과 저술 활동으로 생계를 꾸려 나간다. 1949년에는 누이와 어머니가 페론 집권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가 투옥되기도 한다. 이런 정치 상황 속에서도 보르헤스는 1950년에는 아르헨티나 문인협회 회장으로 뽑혔다.
1955년, 독재정치로 경제가 파탄나자 군사 혁명이 일어나 페론이 국외 추방되었다. 페론이 실각한 후 보르헤스는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 관장으로 임명되었으며,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 영문학 교수직을 맡게 되었다. 그는 이 무렵 거의 실명 상태에 이르렀는데, 국립도서관장으로서 80만 권의 책을 관리하게 되었음에도 책을 읽지 못하게 된 자신의 처지에 대해 '책과 밤을 동시에 주신 신의 경이로운 아이러니'라며 '꿈속의 도서관에서 읽을 것'이라는 시를 쓰기도 한다.
보르헤스는 어머니와 친구들의 도움으로 독서 및 집필 활동을 할 수 있었으나, 1950년대 후반부터는 강연에 집중했고, 산문 집필이 어려워져 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1960년대에 발표된 〈창조가〉, 〈가상의 존재들에 대한 책〉 등은 산문과 운문의 구별을 거의 없앤 작품들이다.
1961년에는 사뮈엘 베케트와 공동으로 국제 출판인 협회상인 포멘터상을 받았으며, 1960년대 서구 사회에 라틴 아메리카의 마술적 사실주의 문학이 붐을 일으키자 그 선구자이자 대표적인 인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1967년 어린 시절부터 친구로 지낸 엘사 아스테트 밀란과 결혼했으나 1970년 이혼했으며, 1986년 오랫동안 비서를 지낸 일본계 아르헨티나인 마리아 고다마와 결혼했다.
1973년, 국민들의 향수로 페론이 재집권하면서 보르헤스는 도서관장 자리에서 물러나 이후 유럽, 미국 등지로 강연을 다녔다. 1980년에는 세르반테스 문학상을 받았다.
보르헤스는 시와 산문 사이의 경계를 없애고, 소설의 본질은 허구임을 직시하고 현실 도피로서가 아닌 진정한 현실로서의 환상 문학, 즉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등 다양한 소설적 실험을 하여 20세기 포스트모더니즘 철학 및 문학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보르헤스는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상징적 인물로 꼽히지만, 노벨 문학상만은 받지 못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보르헤스가 노벨 문학상을 받지 못한 것은 그의 불명예가 아니라 노벨 문학상의 불명예라고 말하기도 한다.
1985년, 스위스에 강연을 갔다가 병 때문에 제네바에 정착했으며, 이듬해 6월 14일 간암으로 사망했다.             ///@@@책속으로
 
우리는 승리를 얻을 수도 있고 재앙을 겪을 수도 있지만, 그 두 가지 허깨비를 똑같이 취급해야 해요. -104쪽
책은 상상력의 연장이고 기억의 연장이에요. 책은 아마도 우리가 과거에 대해 알고 있는 유일한 것일 거예요. -122쪽
우리에게 금지된 것은 없어요. 그걸 하는 것은, 적어도 시도해보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답니다. -155쪽
작가는 순수한 자세로 써야 해요.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아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하고 있는 게 자신의 시가 아닌 거예요. -170쪽
난 미학이라는 게 없어요. 나는 단지 시와 이야기를 ‘쓸 수 있을 뿐’이에요. -181쪽
시는 말을 넘어서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말은 단지 상징일 뿐이니까요. 시는 말의 음악성 속에 존재하는 거예요. -183쪽
궁극적으로 우정이 사랑보다 중요할 거예요. 어쩌면 사랑의 진정한 기능은, 사랑의 의무는 우정이 되는 것인지도 모르죠. 그렇지 않으면 사랑은 도중에 끝나버릴 테니까요. -186쪽
난 의무적인 독서는 잘못된 거라고 생각해요. 의무적인 독서보다는 차라리 의무적인 사랑이나 의무적인 행복에 대해 얘기하는 게 나을 거예요. 우리는 즐거움을 위해 책을 읽어야 해요. -212쪽
나는 시를 매우 사적이고 중요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답니다. 물론 그걸 느낄 수도 있고 못 느낄 수도 있죠. 만약 느낀다면, 그걸 설명할 필요는 없어요. -274쪽
나는 이 문제를 풀기 위해 계속 노력할 거예요. 나의 모든 시도가 쓸데없으리란 것을 알지만, 기쁨은 해답이 아니라 수수께끼에 있으니까요. -303쪽
 
 
서평
 
눈먼 보르헤스에게 말은 유일한 소통 방식
말하기는 글쓰기 못지않게 내밀한 언어 형식
 
1980년에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여든의 나이로 대담을 위해 뉴욕, 시카고, 보스턴을 여행했다. 수많은 청중들 앞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군중이라는 것은 환상이에요.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아요. 나는 여러분에게 개인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거예요.” 당시 눈이 먼 보르헤스에게 ‘말’은 유일한 소통 방식이었다.
 
그에게 말하기는 글쓰기 못지않게 내밀한 언어 형식이자 세상과의 통로로 자리하고 있었다. 이를 본 시인이자 철학자 윌리스 반스톤은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예전의 사상가와 철학자들은 생각이움직이는 것이어서 파도 위의 잉크와 마찬가지로 고정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에게 남겨진 현자들의 기록은 대부분 그 시대에 우연히 그들의 말을 받아 적고 기록하게 된 익명의 사람들에게서 나온 것이다.” 실제로 반스톤은 보르헤스와 나눈 대화에서 여전히 반짝이는 사유와 정신을 발견했고, 이를 하나의 작품처럼 남겨두고자 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의 말을 받아 적던 플라톤을 자처하며 직접『보르헤스의 말』을 엮었다.
 
그의 말마따나 “보르헤스의 생각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는 게 우리에게는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보르헤스의 말』은 그가 1976년과 1980년에 한 인터뷰 열한 개를 모은 책이다. 시력을 잃어가던
시기에 대한 담담한 회고뿐 아니라 말년에 이른 보르헤스의 문학, 창작, 죽음에 대한 견해까지 담고
있다. 그는 인터뷰마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조지프 러디어드 키플링, 에드거 앨런 포, 월트 휘트먼, 에밀리 디킨슨에 대한 애정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그러면서 유아론과 영지주의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는데, 이 과정에서 보르헤스는 자신의 말이 하나의 주장으로 굳어질까 염려하여 ‘오늘은 그래요’ 라는 식으로 대화를 마무리 짓곤 했다.
 
“아, 그럴지도 몰라요. 오늘은 영지주의자, 내일은 불가지론자이면 어때요? 다 똑같은 거예요.” 이런 식의 불분명한 태도는 그의 작품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모호성, 사실과 허구 사이의 틈새라는 우주적 수수께끼를 연상시킨다.
 
 
세계 시민적인 사고와 개방성
언어를 통해 아름다움을 모색한 보르헤스
 
보르헤스는 1899년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영국 출신 할머니와 가정교사의 영향으로 모국어인 스페인어보다 영어를 먼저 배웠다. 이러한 유년기는 그에게 언어에 대한 개방성과 세계 시민적인 사고를 갖게 하는 바탕이 되었다.
 
나는 두 할머니 중 한 분과 얘기할 땐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말해야 하고, 다른 분과 얘기할 땐 또 다른 방식으로 말해야 한다는 걸 알았어요. 그 두 가지 방식을 스페인어와 영어라고 부른다는 걸 알게 되었죠. 그건 자연스러운 것이었어요. -244쪽
 
보르헤스는 고대영어, 라틴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도 꾸준히 공부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언어 간의 유의미한 차이뿐 아니라 개별적인 음악성에도 심취했다.

앵글로색슨인들은 로마(Rome)를 로마버그(Romaburgh)라고 불렀어요. 우린 그 두 단어에 흠뻑 빠졌지요. 그리고 『앵글로색슨 연대기』에서 아름다운 문장을 발견했어요. “줄리어스 시저는 브리튼 섬을 찾은 최초의 로마인이었다.”라는 문장이었어요. 그런데 그 문장을 고대영어로 읽으면 더 멋진 울림이 있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페루라는 거리를 달리며 소리쳤어요. “이울리우스 세카세르…….”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봤지만 우린 개의치 않았어요. 아름다움을 발견했으니까요! -197쪽
 
보르헤스는 언어를 통해 아름다움을 발견하고자 했다. 여기서 그가 쏟은 노력은 자신이 쓴 작품들의 근원을 찾으려는 노력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보르헤스는 언어를 통해 예술을 탐구했던 학자이고, 자신을 그대로 반영한 작품들을 꾸준히 써낸 작가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말년에 얻은 언어학적, 문학적 통찰은 아이러니였다. 좌절 속에서도 지켜야 할, 생의 의지였다.
 
반스톤 / 당신은 마음 상태나 감정이나 지성에 관한 한 단어를 찾고 있나요? 당신이 이 세상을 뜨기
전에? 만약을 가정해서 드리는 질문이에요? 찾고자 하는 건 무엇인가요?
 
보르헤스 / 참 단어를 발견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걸 찾지 않는 거예요. 우리는 현재의 순간을 살아야 해요. 그러면 나중에 그 단어들이 우리에게 주어질 수도 있어요. 안 주어질 수도 있고요. 우리는 시행착오를 통해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해요. 우리는 실수를 저질러야 하고, 실수를 이겨내야 합니다. 그건 평생 해야 하는 일이지요. -188쪽
 
 
“기쁨은 해답이 아니라 수수께끼에 있으니까요” 죽음을 앞둔 문학가가 남긴 질문들과 답
 
『보르헤스의 말』은 눈멀고 나이든 문학가가 죽음을 앞두고 어떤 심정이었는지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나는 몸과 영혼, 모두 완전히 죽고 싶어요. 그리고 잊히고 싶어요. -92쪽
 
고통스럽게 삶을 유지해온 보르헤스에게 죽음은 “희망이 가득한 것”이었다. 그는 삶을 악몽처럼
견뎌왔기에 죽음을 매 순간 도래하는 어떤 것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난 사람이 늘 죽는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단순히 뭔가를 기계적으로 반복하고 있을 때 우리는 뭔가를 느끼지 않고 뭔가를 발견하지 않아요. 그 순간 우리는 죽은 것이에요. 물론 삶은 어느 순간에나 돌아올 수 있어요. -38쪽
 
인터뷰 속에서 보르헤스는 수없이 자살을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의 말마따나 삶도 죽음처럼 매 순간 돌아오는 것이었기에, 그는 자신에게 남아 있는 삶을 긍정할 수밖에 없었다. 후 보르헤스는 글쓰기가 아닌 말하기를 통해 언어를, 아름다움을 탐구해나갔다. 말은 시력을 잃은 그에게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새로운 돌파구로써 작용하기도 했다.
 
직접적이고 내밀한 소통 방식이라는 점에서 글과 비슷하되 전혀 다른 매체였기에, 그가 삶을 대하는 태도마저도 바꾸어놓았다. 그러므로 『보르헤스의 말』은 20세기 사상계에 큰 영향을 끼친 대기가 남긴, 독특하면서도 유일한 형식의 ‘작품’일지 모른다.
 
나는 이 문제를 풀기 위해 계속 노력할 거예요. 나의 모든 시도가 쓸데없으리란 것을 알지만,
기쁨은 해답이 아니라 수수께끼에 있으니까요. -303쪽
.
 
.
황현산 문학평론가
 
보르헤스를 읽는다는 것은 모든 방향으로 뚫려 있는 정신을 만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보르헤스 본인은 정신이 늘 메말라 있었다고 말한다. 뚫려 있는 길의 끝까지 갔다는 말이 되겠다. 대화록인 이 책에서 그는 그 뚫린 길을 어떻게 만났고, 또 그 길에서 무엇을 만나고 무엇을 만들었는지 가볍고도 명석한 언어로 말한다.
 
그가 시력을 잃고 모든 글을 구술해서 쓰던 시절에 이루어진 이 대화는 구어가 문어의 논리성을 확보하고 문어가 구어의 구체성을 다시 회복하는 신기한 문체의 한 기적을 보여준다. 어느 페이지를 열어도 재미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면 더 재미있다.
 

 ===@@===

 

 

 

 

축복의 시

 

                      -  마리아 에스떼르 바스께스에게



누구도 눈물이나 비난쯤으로 깎아 내리지 말기를.
책과 밤을 동시에 주신
신의 경이로운 아이러니, 그 오묘함에 대한
나의 허심탄회한 심경을.


신은 빛을 여읜 눈을
이 장서 도시의 주인으로 만들었다.
여명마저 열정으로 굴복시키는 몰상식한 구절구절을
내 눈은 꿈속의 도서관에서 읽을 수 있을 뿐.


낮은 무한한 장서를 헛되이
눈에 선사하네.
알렉산드리아에서 소멸한 원고들같이
까다로운 책들을.


(그리스 신화에서) 샘물과 정원 사이에서
어느 한 왕이 굶주림과 갈증으로 죽어갔네.
높고도 깊은 눈먼 도서관 구석구석을
나도 정처 없이 헤매이네.


백과사전, 아틀라스, 동방,
서구, 세기, 왕조,
상징, 우주, 우주론을
벽들이 하릴없이 선사하네.


도서관에서 으레
낙원을 연상했던 내가,
천천히 나의 그림자에 싸여, 더듬거리는 지팡이로
텅 빈 어스름을 탐문하네.


우연이라는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필시 이를 지배하리니.
어떤 이가 또다른 희뿌연 오후에
이미 수많은 책과 어둠을 얻었지.


느릿한 복도를 헤매일 때
막연하고 성스러운 공포로 나는,
똑같은 나날, 똑같은 걸음걸음을 옮겼을
이미 죽고 없는 그라고 느낀다.


여럿인 나, 하나의 그림자인 나,
둘 중 누가 이 시를 쓰는 것일까?
저주가 같을지면
나를 부르는 이름이 무엇이 중요하랴?


그루삭이든 보르헤스이든,
나는 이 정겨운 세상이
꿈과 망각을 닮아 모호하고 창백한 재로
일그러져 꺼져 가는 것을 바라본다.
 

 

보르헤스의 시집인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열기'에 들어있는 '축복의 시'이다.
그의 시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의 소설처럼.
보르헤스의 '픽션들' 역시 재미있게 읽었는데 다음에 소개하기로 하고,
여기 누군가의 서평을 그대로 옮겨본다.

남미문학을 세계문학으로 이끈 아르헨티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의 시선집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열기]. 그는 '픽션들' 등 소설로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문학적 출발점은 시다. 그의 내면이 담긴 이번 시집은 그의 문학과 삶을 비춰주는 '거울'과도 같다. '누구도 눈물이나 비난쯤으로 깎아내리지 마시라/책과 밤을 동시에 주신/신의 경이로운 아이러니, 그 오묘함에 대한/나의 허심탄회한 심경을... 높고도 깊은 눈 넌 도서관 구석구석을/나도 정처없이 헤매네' ('축복의 시') 보르헤스 스스로 손꼽는 이 시는 그가 거의 시력을 상실했던 국립도서관장 재임 시절 쓴 것이다. 그토록 좋아하는 책의 바다에서 단 한줄의 글도 읽을 수 없는 극한적 불행을 그는 축복이라는 아이러니로 노래한다. 물리적 세계는 그에게서 사라졌지만 세계의 불행하고 어두운 이면을 들여다보는 심안은 더욱 밝아진 것인지 모른다.
 
===============@@@=========
중남미문학의 거장 호르헤루이스 보르헤스

포스트모더니즘과 후기구조주의 철학의 시조로 추앙되는 중남미문학의 거장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1899∼1986). 그는 생의 후반을 암흑 속에서 보내며 어둠을 질료로 환상의 세계를 구축한 20세기의 거장이었다.

그는 1955년 그토록 바라던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에 임명됐을 때 서서히 약화되던 시력마저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고 「신은 빛을 여읜 눈을/이 장서도시의 주인으로 만들었다」며 「책과 밤을 동시에 주신/신의 경이로운 아이러니」를 시로 읊었다. 어린시절부터 과도하게 책을 본데다 유전적인 이유까지 겹쳐 생의 후반 30여년을 어둠 속에서 살아야 했던 그는 눈으로 볼 수 있는 세계를 잃은 대신 오히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지워버린 금세기 세계문학의 독특한 금자탑을 쌓은 것이다.

가르시아 마르케스나 에코,푸코,데리다 같은 이들의 정신적 스승으로 추앙됐던 보르헤스는 90년대 들어 국내에서도 열광적인 신도들을 거느리며 「보르헤스붐」을 조성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보르헤스에 대한 총체적 이해가 아직은 부족한 국내 사정을 감안해 「세계의 문학」 가을호는 그의 탄생 1백주년을 계기로 보르헤스의 진면목을 새롭게 조명하는 특집을 기획해 눈길을 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보르헤스는 책으로 둘러싸인 서재가 가장 중요한 유년기의 기억이자 인생의 가장 큰 사건이라고 회고할 만큼 성장 환경 자체가 문학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모국어인 스페인어 외에도 영국계 할머니로부터 배운 영어를 6살 때부터 자유자재로 구사했으며 유럽에 가서는 라틴어와 프랑스어,독일어로 된 책을 읽었다.

1935년 단편 「불한당들의 세계사」를 발표하면서 소설가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그의 단편 「픽션들」과 「알레프」는 유럽과 미국의 문학과 비평계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픽션들」 속에 삽입된 「바벨의 도서관」 「바빌로니아의 복권」은 소설의 죽음을 외치는 금세기말의 문학세계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한 대표적 작품들로 손꼽힌다.

보르헤스에게 세계란 「미숙한 신이 만들어낸 카오스」이자 「미로」로 받아들여졌다. 그의 이런 세계 인식은 후기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등 20세기 후반을 이끄는 사조의 원류가 되었고, 보르헤스는 그 세계관을 탐정소설 형식에 환상적 내용으로 즐겨 담았다. 환상적 리얼리즘의 대표주자로 지목되는 중남미의 소설가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보르헤스는 내게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우주를 도서관으로 해석하는 보르헤스의 발상에서 그 모티브를 빌려온 것이기도 하다.

「세계의 문학」 보르헤스 특집은 콜롬비아에서 보르헤스를 연구한 우석균씨(서울대 스페인어과 강사)의 보르헤스론과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대표시들을 번역해 수록하고 있다. 우씨는 「흑백사진에 갇힌 보르헤스의 천연색 욕망」을 통해 『보르헤스에 대한 지나친 신비적 포장으로 그의 진면목이 잘못 알려진 측면이 있다』며 『그의 내향성과 소심함, 남성다움에 대한 동경이야말로 많은 작품의 모태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68세에 첫 결혼을 한 뒤 87세에 자신의 여비서와 두번째 결혼을 했지만 불과 두달 후에 세상을 떠나야 했던 보르헤스. 자신의 환상적인 작품만큼이나 기이한 인생을 살았던 보르헤스의 탄생 1백주년은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는 그의 문학적 위상을 검증하는 새삼스러운 좌표인 셈이다.

출전: 세계일보 1999년 8월 13일

 

거리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


 
기사 이미지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거리들은

어느덧 내 영혼의 고갱이라네.

분주함과 황망함에 넌덜머리 나는

격정의 거리들이 아니라

나무와 석양으로 온화해진

아라발의 감미로운 거리,

불후의 광대무변에 질려

대평원 그리고 참으로 광활한 하늘이 자아내는

가없는 경관으로 감히 치닫지 못하는

소박한 집들이 있는,

자애로운 나무들마저 무심한 한층 외곽의 거리들.
 

이러 모든 거리들은 영혼을 탐하는 이들에겐

행복의 약속이라네.

(…)



아르헨티나 작가 보르헤스의 첫 시집인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열기』의 권두시다. 보르헤스는 자신이 태어나 자라고 시의 꿈을 키운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다양한 공간, 예컨대 거리·잡화점·점방·담벼락·오두막·광장·길모퉁이를 사랑했다. 그 거리는 그의 영혼의 “고갱이”(중심)였고 “행복의 약속”이었다. 이런 점에서 시인은 공간에 의미의 꽃을 심는 자다.

오민석·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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