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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도 시작에 자아도취하지말고 평생 만족할줄 몰라야...
2017년 10월 12일 23시 03분  조회:1706  추천:0  작성자: 죽림

유명 화가의 미술 작품들 (4) : 모네 Claude Monet (1840~1926)

 

빛 위주의 자연을 창조(創造

 

 

 

 

아틀리에의 한구석

 

19세기 후반의 중후한 사실적인 화풍을 보이는 모네의 초기 작품이다. 모네는 1860 년부터 1862년까지 군에 복무하는 동안 알제리에 파견 나갔을 때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는 이곳에서 늘 새로운 자연을 그렸다고 술회했는데, 하지만 이 작품에는 이국적인 풍물도, 그가 매혹된 빛과 색채의 인상도 그려져 있지 않다. 뒷면에 그려진 칼과 총 등에는 그의 군대 생활이 암시되어 있을 따름이다.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놓여진 책과 막 뚜껑을 연 스케치 상자의 난잡함, 풍경인 듯한 벽걸이와 붉은 융단 등이 견실한 필치와 암울한 색채로 극명(克明)하게 그려져 있다. 화기(畵技) 향상을 위한 습작이라고는 하지만 뛰어난 묘사력을 보인 작품이다.

 

 

 

 

노르망디의 농장의 뜰

 

1864년 7월 모네는 바질과 함께 노르망디의 옹페르에 머물면서 이 말을 근처의 생시메움 농장에서 숲과 농가를 즐겨 그렸다. '모네는 눈(眼)에 지나지 않는다.'-세잔은 그의 그림을 놓고 이렇게 말했는데,이는 바깥 햇살 속의 자연에 대한 모네의 솔직한 신뢰를 퍽 아이러니 컬하게 비평한 말이다. 농가 벽면에 보이는 명암(明暗)의 선명한 콘트라스트라든가 수면에 비친 그늘의 묘사에서 모네의 빛에 대한 집요하고 솔직한 관심이 뚜렷이 드러나 있다. 세잔의 말을 연상케 하는 작품이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후덥 지근한 분위기를 나타내기 위해 사물의 그늘을 차분히 가라 앉히면서 소박한 풍토색을 짙게 풍겨주고 있다.

 

 

 

뜰의 여인

 

1866년 여름, 모네가 카미유와 함께 살고 있던 집 마당에서 카미유를 모델로 해서 그린 작품이다. 마당에 깊은 도랑을 파서 캔버스의 위쪽을 그릴 때에는 그 도랑 밑으로 내려놓고 그렸다고 한다. 이따금 이곳을 방문했던 바질과 쿠르베는 그 색다른 제작 광경을 보고 곧잘 웃어댔다고 한다. 화면에 그려진 네 여인은 모두가 카미유의 포즈에 의해 제작되었는데, 제각기 다른 포즈나 배치는 바질이 보관한 사진에 의해 전해지고 있다. 대범한 화크추우르는 쿠르베의 영향을 받은 것 같은데, 하얗게 빛나는 의상과 그 음영(陰影)과의 편평(扁平)한 색면의 아라베스크가 장식적으로 처리되고 있는 것이 퍽 인상적이다.

 

 

 

 

 

카미유, 녹색의 의상

 

야심적인 대작<풀밭 위에서의 식사>의 완성을 한때 단념했던 모네가 이에 대신하여 불과 나흘 동안에 완성하여 1866년 살롱에 출품한 그림이다. 모델은 카미유로서 짙은 녹색 무늬의 의상에 모피(毛皮)가 붙은 검은 코트를 걸치고 모자의 리본을 오른손으로 쥐며 상체를 약간 화가 쪽으로 돌린 포즈가 특이하다. 마치 걷고 있는 한 순간을 포착한 듯한 이 그림은 쿠르베의 <아틀리에>에 나오는 인물 자세와 비슷하다. 이 그림에 보이는 철저한 사실(寫實)과 중후한 색조에는 쿠르베의 영향이 적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다른 풍경화와 함께 살롱에 받아들여져 비록 좋지 않은 벽면에 걸려지기는 했지만, 많은 비평가들로부터 특유의 수법을 주목받기도 했다.

 

 

 

 

생타드레스의 테라스

 

르아브르 근처에 있는 생 타드레스의 해변 풍경을 그린 작품으로 화면 앞 쪽에 앉아있는 인물은 모네의 부친이다. 이 그림은 중간쯤에서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위쪽의 바다 풍경은 수평선과 깃대가 직각으로 교차되어 종과 횡의 선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아래쪽의 테라스는 부감적(府瞰的)으로 조망되어 약간 경사진 구도로 이룩되어 있다. 이와 같이 두 가지 다른 구도의 맞춤은 당시로서는 매우 대담한 시도였다고 보는데, 그러나 주목할 점은 여기에서 모네가 쿠르베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 뚜렷하게 인상파의 수법에 접근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불투명한 색채로 밝음과 어두움이 뚜렷이 대비되고 있음과 동시에, 순도 높은 선명한 여러 빛깔의 반점에 의해 화단의 아기 자기한 빛이 효과를 더해 주고 있다.

 

 

 

라 그르누이에르

 

라 그르누이에르는 세느 강변의 유명한 행락지로서 모파상이 소설 무대로도 자주 등장한다. 빛이 희롱하는 물의 표현에 적잖은 관심을 지니고 있었던 모네는, 그보다 먼저 이 놀이터를 찾아와 제작에 전념하고 있었던 르노와르와 1869년의 한 여름을 함께 보냈다. 이 작품은 그 무렵에 그렸던 현존하는 3점 가운데의 하나다. 화면 오른쪽에 보트를 빌려주는 곳이 보이며, 여기서 다리를 건너 몇몇 사람들이 중앙의 작은 섬 그늘에 묘여 있다. 이 그림의 명암은 모두가 색채의 선명한 대비가 되어 빛을 반사하는 수면과 그늘의 인상을 명쾌하게 표현하고 있다. 특히 리듬이 있는 재빠른 필촉은 물의 반사와 사람들의 움직임을 발랄하게 포착하여 여름 휴일의 분위기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고디베르 부인의 초상

 

1868년 르아브르의 선주(船主) 고디베르의 주문에 의해 그의 부인의 초상화를 그렸다. 이 무렵 모네는 끼니를 제대로 때울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하였다. 그동안 모네는 숙모의 신세를 줄곧 지고 있다가, 부인 카미유와 막 태어난 쟝을 거느리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구하고 있었기 때문에 돈이 무척 아쉬워 남의 초상화 그리기에 바빴다. 이처럼 초상화에 골몰하다 보니 데상력이 향상되고 구도 역시 차츰 세련되기에 이른다. 이 초상화는 부인 카미유의 초상 초상화와 마찬가지로 옆으로 서 있는 모습으로 치마를 길게 늘어뜨려, 동작이 있는 어떤 한 순간을 그려 놓았다. 마네류(流)의 매우 폭넓은 색면에 의한 형태를 포착하고 있는 이 그림은 부인의 얼굴보다는 의상의 성질(性質)이나 광택의 효과를 더 노리고 있어 보인다.

 

 

 

 

 

개양귀비

 

모네의 초기 말엽에 해당되는 34세 때의 작품인데, 광활한 초원 속에 핀 무수한 개양귀비의 빨간 '색채의 향연'을 그린, 목가적이고 전원적인 서정이 감도는 아름다운 그림이다. 모네는 이 그림에서 선연(鮮姸)한 빛을 집요하게 추구하면서 색채의 독자적 주장을 회화적 차원으로 표현했는데, 화면을 상하로 양분시킨 늘어선 나무들의 검푸름과, 경쾌한 터치로 처리된 게양귀비의 빨간 반점, 푸른 하늘과 솜털구름, 그리고 화면 중앙의 멀리 보이는 건물, 포즈를 취한 여인의 옷과 양산의 수색(水色)이 빛을 담뿍 받았으면서도 독립된 색채를 나타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장대한 공간감(空間感)과 더불어 색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듯한 초여름의 향연이다.

 

 

 

 

양산을 든 부인

 

경쾌하고 속도감 있는 터치, 바람에 휘날리는 스카프, 드높은 하늘과 뭉개 구름, 좌측으로 약간 쏠린 풀잎, 앞으로 기운 듯한 몸매가 원색의 초원과 조화를 이루어 화면을 밝고 상쾌하게, 그리고 행복감까지를 자아내게 한다. 양각(仰角)의 중심부에 위치한 모델은 모네의 의붓딸로 생각되는데, 양산의 그림자가 해의 높이, 즉 그림을 그린 시간을 설명해 주고 있다. 색채 혁명을 일으킨 모네의 집요하면서도 명쾌하고 섬세한 감각이 표출된 빛과 색채와 대기(大氣)의 시원한 어울림을 이 한폭의 그림에서 들을 수 있다.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본 행복했던 쥬베르니 시대의 모네의 생활 기록을 읽는 느낌이다.

 

 

 

 

 

시슬리家의 저녁 식사

 

모네의 일반적인 작품 계열과 작품에서 벗어난 특이한 그림이다. 신실한 화우(畵友) 시슬리 식구들의 단란한 저녁 식사 광경을 약간 높은 대각선 위치에서 부감(俯瞰) 한 작품인데, 식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보다 램프와 램프빛의 효과가 이 그림의 모티브이며, 일정한 장소에 일정하게 주어진 빛, 그것도 대자연의 빛이 아닌 인공(人工)의 빛을 집요하게 묘사하려는 모네의 의식과 또 하나의 시각을 읽을 수 있다. 하얀 식탁 위의 검소한 차림, 희미한 그림자와 다갈색의 벽면 등이 서로 조화되어 차분하고 온화한 뉘앙스를 표출시켰고, 또한 화가의 생활 수준과 청교도적인 가풍을 간접적으로 시사했다. 제 1회 인상파전이 열리기 4년 전의 그림이라는데 주목해야 한다.

 

 

 

 

 

잔담

 

잔담은 암스테르담에서 북서쪽 9km 지점에 있는 기름진 땅이다. 멀리 교회 건물과 숲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고, 흐르는 운하, 꽃이 핀 벌판, 빨간 지붕과 녹 백색으로 칠한 작은 집들이 네덜란드 포플라 사이로 보이는데, 이 전경이 수면에 거꾸로 투영되어 춤을 추는 듯 넘실거리고 있다. 모네는 이 기막힌 풍광을 놓치기가 싫어 <잔담>을 그린 모양이다. 모네가 왜 잔담을 방문했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도비니의 초청으로 이곳에 들른 것으로 보이며, 런던을 방문했을 때 터너의 풍경화에 크게 감명받은 것으로 보아 터너풍(風)이 엿보인다는 주장도 있으나, 어디까지나 모네의 독자적인 시각 체험이 재치 있게 표출된 작품 중의 하나이다.

 

 

 

 

 

카푸시뉴 거리

 

인상파의 산실(産室)인 사진 작가 나다르의 스튜디오 2층에서, 가까운 거리를 내려다보고 그린 2점의 그림 가운데 하나, 1874년, 제 1회 인상파전(展)에 출품한 작품이다. 제 1회 인상파전이 나다르 스튜디오에서 열렸기 때문에 관객들은, 실제 눈으로 본 거리와 이 그림을 대조하면서 감상할 수 있었는데, 당시 평론가들이 '핀트가 맞지 않은 사진 같다'고 혹평했다. 그때 사람들은 세부까지 극명하게 표현하는 것을 그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그림을 보고 놀란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 모네는 기억에 의한 관념적인 묘사를 단호히 배격, 눈에 보이는 대로의 이미지를 캔버스에 담았다. 엷은 연기에 쌓인 듯한 파리의 공기와 군중의 움직임을 나타낸 찰필(擦筆)의 효과가 인상적이다.

 

 

 

 

아르쟝뚜유의 다리

 

1871년 말경 모네는 파리 서쪽 교외인 아르쟝뚜유 강변에 집 한 채를 빌려 약 1년 동안 여기서 세느 강을 주제로 한 많은 우수한 작품을 그렸다. 르노와르나 시슬리, 그리고 나중에는 마네도 이곳에 찾아들어 함께 그림을 그렸다. 이 무렵에 그린 풍경화 가운데에서도 이 그림은 모네의 원숙한 기법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수면의 부분에는 버무려지지 않은 순수색이 조그마한 터치로 양면에 병치(竝置)되어, 물의 투명한 느낌, 그늘의 흔들림, 빛의 섬세한 반사등이 놀라울 정도로 선명하고 또한 싱그럽게 표현되어 있다. 색채 상호간의 미묘한 대비(對比)와 리듬을 모네가 얼마나 정확하게 직관적으로 파악하고 있는가를 이 그림은 잘 표현하고 있다.

 

 

 

 

눈 속의 아르쟝뚜유

 

모네는 야외 사생을 시작하면서 설경(雪景)을 즐겨 그렸다. 르노와르는 '왜 설경 같은 것을 그리는지 모르겠어. 자연이 마치 병들어 있는 것 같아서 말이야.'라고 말했지만, 모네는 그러한 친구와는 달리 은백(銀白)의 세계에도 빛과 그늘이 있음을 깨닫고 그 미묘한 뉘앙스를 묘출하는데 온 정성을 기울였다. 옹플르 근처의 마을 어귀를 묘사한 이 그림은, 자연 상태의 변화의 다양성을 매우 솔직하고도 훌륭하게 부각시켜 놓았다. 눈 덮인 시골 아침의 청순함은, 근경의 하얀 길보다도 중경인 나뭇가지에 엷게 붙어 있는 눈의 베일을 통해서 아스라한 빛의 진동으로부터 우러나오고 있어 보인다. 볕살에 녹아 눈이 떨어져 한결 가벼워진 가지가 즐거운 듯 뻗쳐 있어 싱그러운 느낌조차 든다.

 

 

 

 

생 라자르 驛

 

1878년부터 78년에 걸쳐 모네는 파리의 생라자르 역과 그 주변을 테마로 한 일련의 작품을 그렸었다, 1877년 봄에 열렸던 인상파 제 3회 전시회에는 이 연작(連作) 일곱 편이 출품되었는데, 이 그림은 그 가운데 한 작품이다. 철도를 주제로 한 회화로는 영국의 풍경화 작가 터너의 <비, 증기, 속도> 등이 있지만, 이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것은 모네와 피사로, 시슬리 등이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교외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역과 기차가 자주 제재가 된 것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모네는 역 구내의 정경을 여러 가지 각도에서 그렸는데, 특히 그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이 새로운 기계 문명의 산물 자체가 아니라, 여기서 느껴지는 동적인 분위기였던 것 같다. 스피디한 터치가 퍽 인상적이다.

 

 

 

 

일본 의상의 여자

 

19세기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일본의 이른바 우끼요 에(浮世畵)가 유럽에 흘러 들어 가기 시작했고, 모네도 그 판화의 콜렉션을 그 무렵에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작품은 모네가 일본을 알게 되면서 그린 일본 취향의 회화다. 모네는 애인인 카미유에게 일본의 기모노를 입히고, 벽면도 일본 부채로 가득 채워 놓았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포즈나 장식적인 의장화(意匠化)의 구도 역시 일본 풍 인데, 그는 그 후 동양에 대한 감화를 크게 받아 양식적으로 이를 소화시키기도 했다. 모네가 이처럼 색다른 주제를 다루게 된 원인의 하나는, 이 무렵에 모네가 인물화를 버렸다고 불만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답변으로 내놓은 것이라고 한다.

 

 

 

 

과일이 있는 靜物

 

모네의 모티브에는 정물이 별로 없다. 10년 전 르노와르와 함께 일할 때는 가끔 꽃과 정물화에 손을 댔는데, 광선의 변화와 보색(補色)의 작용에 관심을 쏟고 부터는 주로 풍경화를 그렸다. 이 그림에서 우리들은 먼저 르노와르의 풍윤한 색채를 연상하는 반면, 세잔의 정물화에서 볼 수 있는 엄격한 조형 질서의 구축은 전혀 볼 수 없다. 하얀 테이블 위에 자연스럽게 놓여진 포도, 배, 사과 등이 부드러운 광선을 받아 한결 윤이 나고 싱싱하게 보이기만 한다. 모네는 일년 전에 가난과 싸우다 병사한 사랑하는 부인 카미유의 환상을 응시하면서 이 그림을 그렸다 한다. 실의와 고독, 그리고 적요(寂寥)를 자위하기 위해 정물화에 다시 손을 댔으나, 평정되지 않는 그의 마음을 나타낸 듯, 거칠고 빠른 터치를 전화면에서 엿볼 수 있다.

 

 

 

 

旗로 장식된 몽토르귀유 거리

 

1876년 6월 30일, 파리 만국 박람회 개최를 축하하는 깃대가 몽토르귀유 거리를 가득 메워 놓았다. 독불(獨佛) 전쟁 이후 처음으로 열리는 축제 행사로서 파리는 한참 흥청거리고 있었다. 이런 광경을 모네는 두 점이나 재빨리 그려내어 제 4회 인상파 전시회에 출품했다. 모네는 나부끼는 깃발의 물결에 매혹되었다. 잡답한 군중 속을 헤치고 지나가던 모네는 문득 그림 그리기에 적당한 발코니를 발견하자, 집주인을 찾아가 그림 그릴 장소를 애써 빌려서 단숨에 완성해 냈다. 모네는 이 발코니 위에서 붉은 빛, 푸른 빛, 흰빛의 난무를 경쾌한 터치로 소묘했는데, 거리의 흥분과 소란함이 그대로 화면 위에 배어 있는 것만 같다. 이 벅찬 색채의 향연은 야수파, 미래파의 회화에로 이어지는 무드이기도 하다.

 

 

 

 

베투유의 敎會堂

 

1878년 초, 모네는 6년 동안 살던 아르쟝 뚜유를 떠나 세느 하류에 있는 조그만 마을로 이사, 1881년까지 4년 동안 살았다. 친구들도 큰 마음을 먹어야 찾아올 수 있는 그러한 벽지 마을이다. 모네는 이곳에서 집 한 채를 빌어 생활했고 아틀리에 용 보트를 하나 마련했다. 교회 건물은 마을언덕에 있었는데, 이 교회에 있던 스테인드 글라스는 꽤 알려진 그림이었으나 지금은 그 <유리 그림>이 없어졌다. 강변의 잔설(殘雪)을 씻는 파도는 풍광을 받아 회색으로 변용되고, 눈이 녹아 강물이 불었는지, 아무렇게나 그은 듯한 필적을 생각케 하는 붓 놀림이 흐린 날씨의 음울한 공기를 극명하게 표출시키고 있다. 이 땅의 겨울은 모네에겐 쓰라린 추억이며 세느 강변의 잔설을 밟는 모네의 심정 또한 무척 착잡했을 것으로 보인다.

 

 

 

 

아르쟝뚜유의 홍수

 

색채의 프리즘적 분석과 필촉 분할(筆觸分割)에 의한 빛의 효과를 발전시켜 온 모네는, 맑은 날씨가 아닌 흐린 날씨의 일광이 자연 현상을 어떻게 변용 시키느냐에 큰 관심을 갖고 <홍수>, <눈>, <안개> 등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가난에 시달리던 아르쟝뚜유 시대의 말기에 만난 홍수를 그린 것으로, 흑백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검적색과 엷은 먹색으로 연출된 대자연의 드라마이다. 하늘과 맞닿은 지평선 상에 보이는 먹점은 무한대한 자연의 힘과 거리감을 시사한 침수된 건물들이고, 화면의 3분의 1을 지배하는 나무들과 물위에 투영된 실루엣의 굴절은 빛의 조화가 얼마나 신묘한가를, 그의 회화 언어로 표출시킨 시각 체험이기도 하다.

 

 

 

 

 

라바쿠르, 햇빛과 눈

 

눈이 쌓인 갯마을 라바쿠르. 추위와 정적만이 감도는 하얀 산야를 따스한 겨울 햇살이 감미롭게 애무하고 있다. 햇볕을 듬뿍 머금은 장밋빛의 대안(對岸)과, 햇빛을 적게 받은 평지의 눈더미를 난 온색(暖 溫色)으로 대조시키면서 화면을 크게 양분하고, 집 앞에 늘어선 나무들의 갈색 실루엣과 검은 배의 터치가 '구도상의 짜임새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다닥다닥 붙은 딱딱한 집들은 거리를 암시하면서 연속성을 나타냈고, 눈이 쌓인 강변의 부드러운 선을 검은 배의 그림자가 보강해 주고 있다. 모네는 1875년에도 수 점의 설경을 그렸는데, 특히 이 작품은 베트유 시대의 슬픈 마음을 '눈'이라는 순백(純白)한 모티브로 표출시킨 '심정의 표백'이라고도 해석될 수 있다.

 

 

 

 

 

해바라기

 

모네는 만년에 이르러 풀과 꽃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그런데 1880 년 이전에 독립된 꽃의 정물과가 적은 것은 퍽 기이한 노릇이라고 말하는 평론가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모네는 야외에서 화가(畵架)를 세워 제작하는 것을 신조로 삼고 있었던 화가였으므로, 아틀리에 안에서 차분히 앉아서 제작을 해야 하는 이런 장르에 종사하는 시간이 많지 못했던 것 같다. 모네는 변하기 쉬운 자연 현상과 기후에 집착하고 있었다. 계절이나, 시각에 하지만 첫 부인 카미유가 죽은 다음, 특히 1880년부터 82년에 걸쳐 이상하리만큼 꽃과 과일 등 정물화에 골몰했다. 아내를 잃은 슬픔을 달래기 위해 그는 아틀리에에서 감정의 응어리를 정물화에 쏟아 놓은 것이다.

 

 

 

 

두 짚가리

 

<짚가리> 시리즈는 모네에게 부와 명성을 동시에 안겨준 기념비 적인 작품들이다. <두 짚가리>를 완성시킨 1891년 5월, 뒤랑 뤼엘 화랑에서 짚가리 시리즈 중 15점을 전시했는데 3일만에 매진되어, 모네는 생전 처음으로 거금을 만져 보았다. 아침의 청렬(淸冽), 한낮의 심록(深綠), 저녁 노을의 변환(變幻), 일몰의 연소(燃燒) 등 대자연과 대기 현상을 그의 독특한 회화 언어로 표출시킨 모네는 이 그림에서 전동한 듯한 필촉으로 역광 효과(逆光效果)의 미묘한 뉘앙스를 정확하게 그려냈다. 그는 불에 타는 듯한 일몰의 짚단을 그리기 위해 밭 가운데 10여 개의 화가(畵架)를 세워 놓고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빛을 쫓아 이 화가에서 저 화가로 옮기면서 제작했다는데 빛의 조건이 지속되는 사이에는 무서운 속도로 그렸다 한다.

 

 

 

 

에프트 강변의 포플라

 

모네의 포플라 연작(連作)에는 재미있는 사연이 있다. 어느 날 쥬베르니 근처의 리메츠를 산책하면서, 에프트 강변에 줄지어 자란 포플라에 매료되었다. 그런데 한 포플라 나무에 붉은 천이 감겨졌고, 이 나무들이 경매에 붙여져 곧 근처의 제재소로 실려 갈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나는 포플라 나무의 경매 연기를 신청했는데 각하되었고, 그래서 입찰 희망자를 찾아가 낙찰 가격보다 많은 돈을 줄 테니 그림을 다 그릴 때까지 참아 달라고 간청했다. 포플라 연작은 이래서 탄생했다.' 쭉쭉 솟아 오른 몸뚱이, 무성한 잎새, 이곳 햇빛이 닿으면 여러 색깔로 변한다. 그 뿐이랴, 에푸트 강에 투영된 그림자 또한 일품이었지-. 이 작품은 포플라 연작 중 초기의 것이며, 모네는 20점이 넘는 연작 중에서 6점을 골라 1892년 3월 뤼엘 화랑에서 전시회를 가졌다.

 

 

 

 

 

런던, 워털루 다리

 

빛의 변화에 따라 사물의 이미지도 변한다. 모네가 런던을 세 차례 방문했을 때 그린 모든 그림, 즉 다리, 건물, 강도 빛의 강 약에 따라 상이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 그림은 1950년대 한국의 영화 팬들을 울린 명화 '워털루 브리지'를 사보이 호텔 5층 발코니에서 템즈 강을 끼고 그린 인상적인 작품이다. 화면은 청, 녹, 자주 빛 색이 뒤엉킨 부드러운 색조로 물과 하늘을 표현했고, 그 속에 엷은 자주 빛의 환상적인 워털루 브리지가 멍하니 떠 있다. 모네는 이 그림을 그리면서 안개가 빛을 삼키고 확산시켜 대상의 포름을 포착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실토했는데, 아무튼 런던 연작 가운데서는 아주 낭만적인 정취와 런던다운 분위기가 충만한 작품이다.

 

 

 

 

 

뱃놀이

 

모네가 1883년부터 산 쥬베르니는 세느로 흘러 들어가는 에프트 강의 상류에 위치했고, 모네의 가족들은 이따금 에프트 강에서 뱃놀이를 했다. 모네는 이 뱃놀이와 강변의 무성한 포플라 연작을 그렸는데, 이 작품은 같은 계열의 것이다. 미망인 앨리스가 데려온 두 딸이 하얀 옷차림으로 작은 배를 타고 서로 마주 보며 정겹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수면에 투영된 그림자의 물결과 햇빛을 듬뿍 머금은 은파가 이 아가씨들의 뉘앙스를 더욱 청결하고 밀도 짙은 것으로 부각시켰다. 배의 선미(船尾)만을 4각형으로 잘라 화면 중앙에 앉히고, 일체의 장식적 요소를 배제한 파격적인 구도가 오히려 빛과 그림자를 대담하게 대비시킨 효과로 나타나, 화면 전체가 오히려 신선하고 더욱 밝아 보인다.

 

 

 

 

햇볕을 담뿍 받은 포플라

 

일광을 담뿍 받은 포플라가 황록색으로 변해 바람에 나부낀다. '빛의 엽사(獵師)'인 모네에게는 에프트 강변의 포플라야말로 엽사의 그물과 같은 존재다. 시간과 날씨와 장소, 그리고 화포의 대소에 따라 빛을 변용시킬 수 있는 모티브이다. 이 그림은 한낮에 에프트 강의 배 위에서, 쨍쨍 내리쬐는 햇살을 받고 하늘 높이 솟은 포플라를 그린 것인데, 전체를 밝은 색채로 상호 대비시키고, 물감을 두텁게 바른 마티에르가 수간(樹幹)과 잎과 수근(樹根) 언저리의 잡초들의 양감(量感)을 나타내 주고 있다. 수직과 수평의 선을 강조한 구도도 이 연작의 큰 특색으로 주목할 만하다. 포플라를 통해 창조해 낸 하늘과 물과 빛의 대화라면 좀 지나친 표현일는지-.

 

 

 

 

 

루앙 大聖堂의 아침

 

겸재 정 선이 <금강산>을 수십점 그렸고, 고호는 <해바라기>를, 세잔은 <상드 빅토아르 산>을, 모네는 <수련>과 <포플라>와 <짚가리>와, 이 <루앙 대성당>을 연작으로 그렸다. 화가가 한 주제를 반복해서 제작하는 게 연작인데, 모네의 많은 연작 중에서 <루앙 대성당>이 가장 연작다운 연작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모네는 1892년부터 꼭 2년 동안에 그린 <루앙 대성당>의 연작 작품들을 1895년 봄, 뒤랑 뤼엘 화랑에 전시했는데, 피사로는 런던에 있는 아들에게 '높은 격조와 깊은 의미'를 찬탄하는 편지를 써 보냈고, 세잔도 피사로와 같은 의견을 제시했다. 일정한 시간대(時間帶)의 바람과 빛과 그림자가 용해해서 형성시킨 적막과 신비로운 이미지, 그리고 고색 창연한 거대한 무엇을 연상시키는 작품이다.

 

 

 

루앙 大聖堂의 한낮

 

 

 

 

루앙 大聖堂의 저녁

 

 

 

 

 

파도치는 투루빌 海

 

가파른 낭떠러지가 계속되는 해안선은 투루빌이라고 하기보다는, 세느 강 입구로부터 오른쪽에 아름답게 펼쳐 있는 에틀타나디에프 등이 있는 북쪽 해안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투루빌 근처에서 모네는 몇점을 제작해 냈기 때문에 아마도 그림 제목이 바뀌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억센 파도치는 바다 풍경에 감명을 받은 모네는 날카롭고 활달한 붓놀림으로 파도의 맹위를 잘 묘출해 놓았다. 모네는 과연 그가 받은 충동 그대로를 화폭에 옮기는 화가라는 것을 이 그림을 통해서 실감케 된다. 그는 어떤 감동적인 풍경에 접하면 민감하게 움직인다. 물론 그는 풍경을 정치(精緻)하게 보거나 분석하지도 않는다. 무엇보다도 그가 처음 느낀 인상에 충실했던 것이다.

 

 

 

 

 

베네치아, 팔라초 듀칼레

 

베네치아의 연작을 완성시킨 후 모네는 어느 대담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궁전을 건축한 사람은 분명 최초의 인상파임에 틀림없다. 그는 이 건물을 물위에 띄워 인상파 화가들로 하여금 열심히 그리도록 했다.' 모네는 이 건물들을 7점이나 그렸는데, 견고한 구조물로서가 아니라, 베네치아의 대기를 진동시키며 광채를 내뿜는 색과 형태의 모티브로서 이 건물들을 선택한 것이다. 이 그림은 밝은 빛을 받아 화사하게 빛나는 궁전의 실제와 그림자, 실상과 허상, 정립상과 도립상의 형태와 이 색채를 눈동자에 비친 그대로 그려, 소위 우주적 구상(宇宙的 構成)에 접근시킨 회심작으로, 그의 예술적 특질이 유감없이 표출되어 있다. 특히 수면 위에 투영된 삐딱한 실루엣은 퍽 인상적이다.

 

 

 

 

런던의 國會 議事堂

 

1899년부터 1901년까지 모네는 세 차례에 걸쳐 런던에 건너가 거기서 겨울을 보냈다. 템즈 강을 중심으로하여 워털루 다리, 차링 크로즈 다리, 국회 의사당 등을 주제로 한 백 점 가까운 그림을 모네는 런던에서 제작했다. 그런데 그 대부분을 런던에서 완성한 것이 아니라, 쥬베르니에 가지고 돌아와서 완성시켰다고 한다. 이 작품은 성 토마스 병원의 발코니에서 템즈 강 너머 국회 의사당을 바라보면서 그린 풍경이다. 화면 전체가 깊은 안개 속에 침잠되어, 어슴푸레하게 빛나는 오렌지 빛깔의 태양이 수면에 빛을 던져 고딕풍의 건축을 마치 환각처럼 푸르스름하게 떠올려 놓았다. 부드러운 필촉으로 바른 미묘한 색채는 서로 혼융되어 몽환적인 로맨틱한 공간을 창조해 내고 있다.

 

 

 

 

수련의 연못

LETANG AUX NYMPHEAS

1907년 캔버스 유채 101.5X74.5Cm

도꾜 브리지스턴 미술관 소장

 

 

 

자화상

 

어느 화가든지 곧잘 자화상을 그리곤 한다. 화가는 물론이고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므로, 자화상은 한 예술가를 이해하는데 있어 적잖은 도움을 준다. 모네는 자화상을 이따금 그렸다고 하나, 현재 남아 있는 것은 1886년의 베레모를 쓴 반신상(半身像)과 77세의 백발 상반신상 두 점뿐이다. 친구 클레망소에 의하면 모네는 밀짚모자를 쓴 호외의 자화상을 두 장 그렸으나 자기 불만이 폭발하여 찢어 버린 일도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파기되지 않고 남아 있는 이 작품은 모네의 개성을 그 나름대로 잘 나타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직하기도 하고 때로는 고집스럽기도 했던, 그리고 평생 만족할 줄 몰랐던 화가의 귀중한 만년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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