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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공상
2018년 06월 14일 01시 27분  조회:4463  추천:0  작성자: 죽림
...시 「공상(空想)」은 윤동주가 쓴 시들 중에서 최초로 활자화된 것으로서, 그 점에서는 아주 기념비적인 작품이라 하겠다. 「공상」은 1935년 10월에 발간된 『숭실활천(崇實活泉)』지에 게재되었다. 『숭실활천』은 숭실중학교 학생회에서 간행하던 학우회지로서 1922년에 창간되었다.1

공상(空想)

空想 ─
내 마음의 塔
나는 말없이 이 塔을 쌓고 있다.
名譽와 虛榮의 天空에다
무너질 줄 모르고
한 층 두 층 높이 쌓는다.

無限한 나의 空想 ─
그것은 내 마음의 바다,
나는 두 팔을 벌려서
나의 바다에서
自由로이 헤엄친다.
黃金 知慾의 水平線을 向하여.

  윤동주는 이때 시를 실었을 뿐 아니라 『숭실활천』의 편집도 했었다고 한다. 그 일에 대해 문익환 목사는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동주는 숭실학교에 한 학기(필자 주: 두 학기의 착오)밖에 다니지 않았지만, 그동안 학교 문예지 편집을 맡았었고 거기 동주의 시 한 편이 실렸던 걸로 기억하고 있다. 갓 편입해온 학생에게 그 일이 돌아간 것은 <은진중학교>에서 먼저 숭실에 나가 있던 이영헌(李永獻, 현 장로회 신학대학 교수)이가 문예부장이 되면서 동주에게 그 일을 맡겼기 때문이다. 그때 동주는 내게도 시를 한 편 써 내라고 하였다. 그래서 한 편 써 내었더니 <이게 어디 시야> 하면서 되돌려주는 것이었다.
  그 이후로 시는 나와 관계없는 것이 되어버리고 말았었다. 동주가 살아 있어서 내가 하는 성서번역을 도와주었다면(살아 있다면 기꺼이 도와 주었을 것이다) 나는 영영 시를 써보지 못하고 말았을 것이다.2

  이것은 윤동주 자신의 시의 변모와 관련해서도 아주 흥미있는 일화다. 그가 위의 시 「공상」을 학교 잡지에 싣던 무렵에, 문익환의 시를 보고는 <이게 어디 시야>라는 매우 야무진 무안을 주며 되돌려주었다는 것은, 당시 그 자신의 <시관(詩觀)>이랄까 하는 것을 뚜렷이 갖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 <시관>이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것은 그가 <시>라고 자부한 그 자신의 「공상」이란 시에서 연역해낼 수 밖에 없다.
  「공상」이라는 시를 다시 곰곰이 뜯어 읽어보자. 그가 <화려하고 조숙한 느낌의 수사들을 사용해서 엮은 그물로 어떤 형이상학적인 관념을 맵씨 있게 낚는 것>을 <시>라고 생각한 게 아닐까, 아무래도 그런 인상을 부인할 수 없다. 「공상」뿐만 아니라 1936년 10월 이전의 시들은 대개 그런 분위기이다.

...

  이렇게 일관된 일련의 시적 경향들은 1935년 10월에 이르기까지 윤동주가 생각했던 <시>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파악하기에 충분한 자료가 되고 있다. 아마도 문익환의 시는 이런 기준과 구도에 도저히 미치지 못했기에 그의 눈에 <시>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문학소년 취향의 관념적이고 또 상당한 현학취미를 보이는 <어려운> 시들은 1935년 10월을 끝으로 그뒤로는 일제히 자취를 감춘다.







이 시는 화자가 황금 같은 지식을 이루어 명예를 얻어 허영을 부리고 싶은 공상을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시의 전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화자는 공상을 한다. 그러나 화자의 공상은 아무런 내용이 없는 공상이 아니다. 탑을 쌓듯이 나는 말없이 무너지지 않는 공상을 하고 있다. 그 공상은 명예를 얻고 허영을 부리는 것이다. 화자는 명예를 얻기 위해 무너질 줄 모르고 한 층 두 층 탑을 높이 쌓듯이 천천이 그리고 끊임없이 생각을 한다. 무한한 나의 공상은 끝이 없이 넓은 내 마음의 바다에 펼쳐져 있다. 화자는 두 팔을 펼쳐서 화자의 꿈과 희망과 이상의 바다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공상을 한다. 화자가 명예와 허영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 황금 같은 지식의 욕심에 도달할 수 있는 지욕(知慾)의 수평선을 향하여.

 

이 시를 구절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공상>은 사전에는 ‘현실적이 아니거나 실현될 가망이 없는 것을 마음대로 상상함’이라 되어 있다. 그러나 이 시는 사전적 의미의 공상이 아니라 화자가 실현하고 싶은 이상을 이루는 생각을 ‘공상’이라고 하였다.

 

내 마음의 탑 나는 말없이 이 탑을 쌓고 있다. 명예와 허영의 천공에다 무너질 줄 모르고 한 층 두 층 높이 쌓는다.’는 화자가 원하는 명예와 허영이 이루어졌다고 상상하고 이를 바탕으로 더 높은 곳에 이르기 위하여 마음의 탑을 말없이 한 층 두 층 높이 쌓는다는 말이다. ‘명예와 허영의 천공’은 화자가 일차적으로 이루고 싶은 꿈, 이상이다. 화자가 바라는 ‘명예와 허영’은 지식으로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어떤 것이다. ‘허영’이라 한 것은 화자가 공상하는 지금의 위치에서 이루기 어려운 것이므로 ‘허영’이라고 말한 것으로 보인다. 화자가 ‘탑’을 쌓는 것은 ‘탑’이란 무엇인가 기념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고 바벨탑처럼 높이 올라가기 위해서 쌓는 것일 수도 있다. ‘말없이 이 탑을 쌓고 있다.’는 화자가 말없이 화자의 꿈과 이상의 세계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아다. ‘무너질 줄 모르고 한 층 두 층 높이 쌓는다.’는 화자가 꿈꾸는 이상의 세계를 막연하게 바라는 것이 아니라 신념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반드시 이룰 수 있도록 견고하게 계획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무한한 나의 공상 ── 그것은 내 마음의 바다, 나는 두 팔을 펼쳐서 나의 바다에서 자유로이 헤엄친다. 황금 지욕(知慾)의 수평선을 향하여.’는 화자가 궁극적으로 도달하려는 곳이 황금과 같이 고귀한 것이고 그것은 화자가 가지고 있는 지식의 욕심을 모두 충족하는 것이다. 화자가 ‘무한한 나의 공상 ── 그것은 내 마음의 바다’라 한 것은 화자의 ‘무한한 나의 공상 ──’이 이상, 꿈을 의미하는 ‘내 마음의 바다,’라는 것을 관습적 상징으로 말한 것이다. ‘나는 두 팔을 펼쳐서 나의 바다에서 자유로이 헤엄친다.’는 화자가 꿈꾸는 이상의 세계에서 자유롭게 공상을 한다는 의미이다. ‘황금 지욕(知慾)의 수평선을 향하여.’에서 ‘황금 지욕(知慾)’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확실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수평선을 향하여.’라 하여 화자가 도달하려하는 곳인 ‘수평선’은 쉽게 갈 수 없는 곳이다. ‘수평선’은 ‘하늘과 바다가 멀리 맞닿아 경계를 이루는 선’으로 그곳은 ‘리’ 있는 곳이다. ‘황금 지욕(知慾)’에서 ‘지욕(知慾)’은 사전에 없는 말로 화자가 만들어 낸 조어로 보인다. 그 의미를 한자의 뜻으로 풀어보면 ‘알고자 하는 욕심’ 또는 ‘욕심을 앎’이다. 여기에서는 앞의 의미로 쓰였다고 본다. ‘황금’은 화자가 알고자 하는 ‘지욕(知慾)’이 황금과 같이 귀한 것이라는 의미로 쓰인 것이거나 ‘지욕(知慾)’을 수식하는 것으로 보면 황금과 같은 귀한 지식을 욕심낸다는 의미로 쓰였다고 할 수 있다. 어떤 뜻으로 쓰였다 하더라도 화자는 무엇인가 귀한 것을 알고자 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화자가 이로 인하여 명예를 얻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화자는 현재 상태에서 이러한 바램이 ‘허영’으로 생각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이상을 이루려는 공상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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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인 서거 73주년에 부쳐
                                 /이효상

2월 16일(2018년)은 윤동주시인 서거 73주년이 된다. 오늘도 우리는 시대의 아픔을 안고 해방을 꿈꾸며 밤하늘에 별빛같은 삶을 산 시인 윤동주와 시를 다시 기억하게 된다. 
윤동주 시인이 시인으로 자리한 것은 문학에 심취해 1935년 10월에 발간된 『숭실활천(崇實活泉)』제15호에「공상(空想)」을 발표하게 되는데 이 시는 최초로 활자화 된 것으로 황순원의 시와 양주동박사의 글이 함께 게재되며 주목받게 된다.
윤동주시인은 1941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면서 자선시집을 77부 졸업기념으로 출판하려 했다. 시집 제목을「병원」으로 하려고 했을 만큼 일제 치하에서 고통받고 있는 우리 민족에 대한 치유와 위로의 심장이 간절했던 것같다.
그러나 은사이자 멘토인 이양하교수는 일제의 출판 검열을 통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충고했고, 또 출판경비를 조달하기도 만만치 않아 출판을 포기하고 말았다. 대신 친필로 쓴 시작 노트 세권을 만들어 그 중 한권을 이양하 교수에게, 또 한권은 후배 정병욱에게, 그리고 나머지는 본인이 소장했다. 그러나 끝내 두권은 사라졌고 다행히 정병욱에게 준 한권만 남게 되었다. 악랄한 일체 치하에서 사상범으로 몰려 후쿠오카 감옥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위대한 시인의 존재와 그가 남긴 명시들이 하마터면 문학사에서 영원히 사라질 뻔한 것이다. 
  윤동주의 시가 본격적으로 알려진 데는 연희전문학교 친구였던 강처중의 역할이 컸다. 윤동주는 일본 유학중 강처중에게 편지와 함께 시를 적어 보내었고 해방후 경향신문 기자로 있던 1947년 2월 13일자 경향신문 4면에 윤동주의 시 <쉽게 쓰여진 시>를 발표하였다. 윤동주 시를 소개한 이는 정지용 시인이었다. 그것도 윤동주 생전에 가장 존경하던 시인 경향신문 편집국장 정지용주간의 해설까지 붙여서 실은 것이다. 사후 첫 활자화된 시로 그 해 3월1일자 김용호가 발행한「문화창조」(2호)에 윤동주의 시 <무서운 시간>이 함께 발표된다. 
 1948년 1월 30일 정음사에서는 유진오의 시집「창」과 윤곤강의「피리」를 출판하느라 분주한 가운데 정병욱이 가진 노트의 26편과 강처중이 받은 원고 5편을 모은 31편의 시로 유고시집을 긴급 제작 발간하게 된다. 추모식용으로 벽지표지로 만든 유고시집「하늘과 별과 시」가 추모식에  10권이 나옴으로 죽었던 시인이 다시 시로 부활하게 된다. 
  유고시집「하늘과 별과 시」는 정지용의 서문과 강처중의 발문으로 세상에 첫 얼굴을 내밀었다. 결국 이 모든 일이 시인과 그의 시를 기억하던 정병욱과 강처중, 그리고 정지용, 윤동주의 친동생 윤일주의 공로로 이루어졌다. 그야말로 역사적 성과가 아닐 수 없다. 그만큼 역사의 기록은 소중하고 신성하다. 
  이 시집과 더불어 1948년 백민문화사에서 3월 1일자 발행한「백민」잡지에 고 윤동주 라는 이름으로 <슬픈족속>이라는 시가 발표되고, 이후 1953년 9월 시와 평론집「초극」에 윤동주 시에 대한 최초의 본격적인 비평「윤동주의 정신적 소묘」가 고석규에 의해 발표된다. 
  시인으로서 대중성을 확보하며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시집을 정음사에서 보급용 초판으로 2종을 출간한 1955년 2월 15일 10주기 추모식때이다. 이때 유고본에 실렸던 정지용의 서문과 강처중의 발문은 제외된다. 편집은 정병욱의 자문을 받아 윤일주가 하고 표지화를 김환기가 담당했다. 이때 윤동주 시인의 동생 윤혜원이 월남하면서 가지고 온 노트의 80편의 시를 추가하므로 111편의 시가 수록되게 된다. 1967년에는 백철, 박주진, 문익환, 장덕순의 글을 책 말미에 추가 수록하고 판형을 바꾸어 재 간행하게 된다. 그후 그동안 게재 유보되었던 시 작품 23편을 추가하여 출판하게 된다.
  1972년「현대시학」1월호는 윤동주 시집 46편이 수록되면서 시인의 시와 시세계에 대한 재평가 작업을 계속했다.
  그러나 시인의 시와 죽음을 공공연히 비하하던 소리가 있어 왔으나 1977년에 시인의 죽음에 대한 ‘일경의 극비문서 전문’과 ‘재판 판결문’등이 공개되면서 다시 윤동주 시인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게 되었다. 
  1980년대 후반 중국의 개방 개혁의 물결을 타고 연변대 교수로 부임한 와세다 대학  오오무라 마쓰오(大村益夫) 교수가 용정의 동산중앙교회 묘지에 가서 40년간이나 잡초에 묻혀있던 윤동주의 무덤을 찾아내고 평전을 써서 세상에 알린다. 그러자 대한민국 정부는 이런 윤동주 시인의 공훈을 기려 1990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게 된다.
  지난해 연말 ‘별이 된 윤동주시인 탄생 100주년 기념전시회’를 열었다. 크리스천 시인이자 민족저항시인이었던 윤동주 시인의 시 정신을 기리며 두 주간 인사동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가졌다. 크리스천만이 아닌 일반인들 특히 시인, 주부, 교수, 수녀, 승려, 학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수천여명이 넘는 발걸음이 이어졌다.
전시회는 윤동주 시인이 태어난 만주 북간도를 중심으로 시작해서 그의 사후 출판된 유고 시집과 육필원고 그리고 추모 기념 작품들까지 300여점의 작품을 통해 처절했던 시인의 삶의 궤적을 소개하였다. 이 전시회에서 참석자들은 1948년 유고시집과 1955년 발행된 초판시집, ‘별헤는 밤’, ‘십자가’ 등 캘리그라피로 쓴 시 작품 등을 주목하였고, 기념강연과 시낭송 시음회를 통하여 시인의 정신을 되새겼다. 
  모두들 왜 그렇게 윤동주 시인을 좋아하느냐고 묻는다. ...북간도에서 태어나 주변인물이기에 무관심해왔던 한국**는 가슴을 넓히고 깊이를 더해야 하겠다. 윤동주 시인은 사실 한국**의 보배이자, 자랑이다. 윤동주시인은 식민지 시대의 지성인으로 마땅히 감당해야할 고뇌와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맑은 영혼과 깨끗한 시심으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 수난의 가시밭길을 걸어갔다. 그리고 죽음을 맞았다. 그러나 잠시 죽은 것 같았던 그 죽음이 죽음으로써 끝나지 않고 다시 시로 부활하여 한국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시인 윤동주로 살아 오늘도 울림이 있는 감동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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