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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해보니 알겠더라
2020년 05월 07일 09시 20분  조회:684  추천:0  작성자: 리련화

97세 고령 할머니를 모시고 은행에 다녀올 일이 생겼다. 할머니를 줄곧 모시던 큰아버지도 이제는 77세라 우리 손군들이 나서야 했다.

큰아버지께서 전날 저녁부터 자꾸 걱정하시길래 걱정 붙들어매시라고 안심시켰다. 휠체어에 모시면 되는데 뭘 그리 걱정이람.

“걱정 말아요. 할머니께서 아예 운신을 못하시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이튿날 아침, 할머니를 모시러 갈 때부터 삐그덕거리기 시작했다. 겨울이라고 양로원 지하주차장을 봉쇄해버린 것이였다. 8층에 계시는 할머니를 자가용까지 모시려면 2층까지 엘레베이터를 리용한 후 다른 동으로 이동하고 다시 계단을 리용해야만 1층 로비까지 나올 수 있었다.

어떤 생각 없는 사람이 설계했는지 욕이 나왔다. 다른 시설도 아니고 양로원에서 이런 설계라니? 더군다나 연길시에서 가장 그럴듯하다는 장백산아빠트양로원에서.

지하주차장을 리용하지 않으면 할머니의 이동은 아예 불가능했다. 지하주차장으로 찾아가서 문지기에게 사정을 얘기하고 지하주차장 대문을 열어달라고 했더니 겨울이라 안된다고 딱 잡아뗀다. 인정사정 보지 않고 직무에 충실하는 단정한 태도에 손이 올라가 경례할 번했다.

하는 수 없이 할머니가 계신 층의 간호장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얘기했더니 바로 문지기에게 전화를 걸겠다고 했고, 애태웠던 마음이 무색하게 곧바로 지하주차장의 문이 열렸다. 짜증은 이미 내 감정주머니를 거의 채운 상태였다.

어렵사리 할머니를 자가용에 모시고 은행까지 당도했다. 그런데 문 앞에 한뽐 되는 문턱이 두개나 있는 게 아닌가? 낑낑거리고 휠체어를 겨우 들어 올려놓았더니 이번엔 문의 너비가 휠체어와 거의 맞먹게 좁게 생긴 것이였다. 지그재그로 휠체어를 조금씩 밀어넣어 문은 겨우 통과했다. 그런데 두겹짜리 문이였다. 게다가 겨울이라고 첫번째 문은 가장 오른켠의 것을, 두번째 문은 가장 왼켠의 것을 열게끔 해놓아서 욕이 나갔다.

카드 수속이 시작됐다. 본인 인증을 하기 위해서 기계에 달린 카메라를 응시해야 하는데 카메라가 키 170 정도의 사람을 비추게끔 조절돼있어서 할머니는 커녕 나도 뒤발꿈치를 들어야 할 정도였다.

수속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고 수속을 마치자 할머니께서는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하셨다. 그 은행의 화장실 턱은 왜 그리 높은지… 내 무릎 정도까지 오는 화장실을 할머니는 겨우 올라가셨고 손잡이도 없어서 곁에서 사람이 부축해야만 했다.

그렇게 악몽 같은 은행을 나왔다. 큰어머니께서는 할머니께서 어렵게 시내로 나오셨는데 왔던 김에 또 다른 은행의 업무도 보자고 하셨고 우리는 휠체어를 밀고 바로 옆에 얼마 떨어지지 않은 또 다른 은행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은행 앞에 커다란 주차장은 차가 들어가는 통로만 있고 인행통로 입구에는 말뚝을 박아놔서 휠체어가 근본 들어갈 수가 없었다. 억이 막혔다. 우리는 차가 지나갈 때 가름대가 들린 틈을 타서 휠체어를 밀고 지나갈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그 은행은 장애인들을 위한 기초시설이 마련돼있어서 큰 고생은 하지 않았다. 입구는 장애인통로를 마련해서 계단이 아닌, 완만한 올리막길이였고 작은 턱들이 있는 곳은 비스듬히 처리해놓아 휠체어 이동이 그나마 편리했다.

정상인들이라면 평소에 신경쓰지 않았을 법한 작은 턱마저도 그날 나에게는 큰 산으로 안겨왔다. 다시 주차장 가름대 밑으로 빠져나와 할머니를 양로원까지 모셔다드리고 나서 나는 녹초가 됐다.

일본의 뻐스가 정차한 후 사람들이 내리기 편리하라고 차체를 비스듬히 기울이는 영상, 뻐스기사가 장애인이 나타나면 휠체어 이동이 편리하라고 철판을 꺼내서 깔고 무릎을 꿇고 서비스하는 영상, 이런 것들을 보면서 우리는 아직도 멀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장애인 사용이 극히 드물다는 리유로 장애인 시설들은 페쇄하거나 혹은 거리낌없이 침해당한다. 맹인도로에다 그려놓은 주차자리만 봐도 알 수 있다. 이 사회가 장애인들에게 얼마나 각박한지를.

한편 장애인들은 외출하고 싶어도 산 넘어 산인 집 밖 시설을 생각하고 외출을 자제할 것이고… 그래서 주변에서 장애인을 보기 드물어진 것이 아닐가.

내가 당해보니 알겠다. 행동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집 밖은 정말 전쟁터라는 것을.

연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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