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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의 佛敎강의
2008년 07월 18일 22시 55분  조회:2046  추천:86  작성자: 명상클럽

보르헤스의 佛敎강의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20세기 서구지성에 매우 큰 영향을 준 작가다. 문학가로 사상가로 명망 높은 그가 타계 10년 전에 <불교강의>를 저술, 자신의 사상 근저에 불교가 뒷받침됐음을 알게 한다.

본지는 새해를 맞아 보르헤스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어떻게 ‘자기화’시켰는지를 정확히 알 수 있는 <불교강의>를 연재한다.

                                            <현대불교신문 편집자 주>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Jorge Luis Borges 1899-1986)


1899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출생

1908년「나시온 Nacion」오스카 와일드의 단편「행복한 왕자」를 스페인어로 번역

1914년 가족과 함께 스위스로 이주

1919년 스페인으로 이주, 스페인판 아방가르드인 '최후주의' 운동을 주도

1921년 아르헨티나로 돌아와 잡지 「프리즘」을 창간

1921년「노소뜨로스」에 울뜨라이스모강령 발표

1923년 첫 시집「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열기」출간

1930년「수르 Sur」에 주요 필진으로 참여

1935년「불한당들의 세계사 Historia universal de la infamia」이후 단편소설에 주력

1937년 시립 미겔 카네 도서관 수석 사서직, 시장검열관,영미문학교수,국립도서관장,한림원 위원 역임

1942년 비오이 까사레스와 단편 추리소설집「이시드로 빠로디의 여섯 개의 문제」공동 집필

1945년 아르헨티나 문인 협회 특별상 수상

1950년 아르헨티나 문인 협회 회장으로 선출
 

1955년 페론의 실각 후 국립도서관장에 임명(1955-1973)

1956년 부에노스 아이레스 국립대학 영문학 교수직 겸임, 아르헨티나 국민 문학상 수상, 시력 상실

1961년 사무엘 베케트와 국제 출판인 협회가 수여하는 포멘터상 공동 수상

1980년 세르반테스상 수상

1986년 스위스 제네바로 이주한 뒤 간암으로 사망

 

* 편역자 : 김홍근


1957년 부산 生. 외대 스페인어과 졸업, 同 대학원 수료(문학석사). 스페인 마드리드 대학원 수료(문학박사, 중남미문학 전공). 서울대 대학원, 고려대 대학원 강사. 현 한국외국어대 강사·성천문화재단 연구실장·문학평론가.

 

 

1. 연재를 시작하며   

 

‘20세기의 창조자’라고 불리는 남미 아르헨티나 출신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는 1976년 <불교강의>를 저술했다. 20세기 후반에 활동하는 전세계 작가와 지식인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쳤으며, 후기구조주의와 해체주의 혹은 포스트모더니즘 등 최근 서구사상사 상의 큰 반전을 이루고 있는 정신적 흐름의 사상적 기초와 인식의 맹아(萌芽)를 마련한 것으로 알려진 보르헤스가 불교강의를 직접 저술할 정도로 불교에 깊은 애착과 정통한 이해를 가졌던 것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다. 보르헤스의 불교강의 연재가 진행됨에 따라, 작금 서구사상가들이 맞고 있는 ‘인식의 전환’에 불교가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에 대한 단초가 드러날 것이다.


보르헤스에 미친 불교의 영향을 살펴보기 위해 먼저 그의 대표적 단편소설인 <알레프>를 보자.

이 소설에는 보르헤스 자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사귀던 애인이 죽고난 뒤 기일을 맞아 그녀의 집에서 가족과 친지들의 추모 모임이 열렸을 때 그도 참석한다. 그곳에서 죽은 애인의 사촌오빠를 만나는데, 이 사람은 반쯤 실성한 것 같은 시인이었다. 왜냐하면 취중에 “지구 표면 전체를 묘사하는 시를 쓰겠다”는 호언을 보르헤스에게 떠들어 댔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믿지 않는 보르헤스에게 시인은 부에노스아이레스시(市) 외곽에 있는 자신의 고택 지하실에 우주의 비밀을 간직한 물체가 있는데 그것은 동전만한 크기의 발광체(發光體)라고 알려준다. 그 말을 외면했던 보르헤스는 여러날이 지난 뒤, 혹시나 하는 생각에 그 집을 찾아가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그 집 지하실에서 보르헤스는 ‘알레프’라고 불리는 발광체를 보게 된다. 그는 그 순간을 이렇게 묘사한다.


“그때 나는 알레프를 보았다. … 그 거대한 순간에 나는 수백만 가지의 황홀하거나 잔혹한 장면들을 보았다. 정말 놀라운 일은, 그 많은 장면들이 한 점에서 보이는데도, 서로 겹쳐지지도 않고, 투명한 실루엣으로 보이지도 않았다는 사실이다. 내가 본 것은 한 번에 보았는데, 글로 쓰자니 이렇게 하나하나 나열할 수 밖에 없다. … 알레프의 직경은 2~3센티미터밖에 안 되지만, 우주 전 공간이 축소되지 않고 거기 있었다. 각각의 사물의 갯수는 무한했는데, 왜냐하면 (거울에 비친 달이 복수가 되는 것처럼) 나는 우주의 모든 지점에서 그것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 나는 내 얼굴과 내장을 보았으며, 너의 얼굴을 보았다. 나는 현기증이 나서 울고 말았다. 왜냐하면, 인간들이 그 이름을 남용하지만 결코 본 일이 없는 玄玄한 가상의 대상, 즉 불가해한 우주를 내 두 눈이 보았기 때문이다.”

(보르헤스 전집 Ⅰ, 625쪽. 이하 보르헤스 글은 원문에서 필자가 직접 번역)


보르헤스의 서술은 평범한 소설속의 묘사를 뛰어 넘는 직관이 담겨 있다. 그것은 마치 번개같이 짧은 순간에 우주의 신비를 깨달은 어느 각자(覺者)의 체험담같기 때문이다. 보르헤스는 그 무한 시공간체(時空間體)의 이름을 <알레프>라 불렀는데, 이 말은 히브리어 알파베트의 첫글자로, 흔히 문명의 기원을 상징하며 또한 신성(神性)을 담고 있는 글자로 생각되어지는 것이다. <알레프>는 희랍어에서는 알파로 발음된다.


보르헤스는 그의 <불교강의> 중 붓다에 관한 전설을 설명하는 곳에서 싯다르타 태자가 오랜 수행 끝에 보리수 아래 앉아 정각(正覺)을 이루는 장면을 이렇게 묘사한다.


“홀로 나무 아래 정좌한 싯타르타는 순간적으로 자신과 모든 중생의 수많은 전생을 보았다. 한눈에 우주 구석구석의 수없는 세계를 전관(全觀)했다. 그뒤, 모든 인(因)과 과(果)의 사슬들을 직관했다. 새벽녘에는 사성제(四聖諦)를 관(觀)하였다.”

(보르헤스, <불교강의> 10쪽)


보르헤스 자신이 묘사한 이 글을 보면, 그의 단편 <알레프>의 모티브가 바로 붓다의 정각 장면이고, 자신이 지하실에서 본 광경은 붓다가 깨달음에 이르렀을 때 직관한 공(空)을 관통한 진리의 모습을 자신의 입장에서 자세히 풀어 쓴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보르헤스는 그의 단편을 통해 불타의 깨달음의 내용을 밝혀보고 싶어 했던 것이고, 또 그 작업을 통해, 그도 붓다처럼 우주의 비의(秘義)를 엿보았다는 체험을 작품화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불타가 성도한 깨달음의 내용을 정밀하게 표현한 <화엄경>의 핵심인 입법계품(入法界品)에서, 선재(善財) 동자가 오랜 순례 뒤 깨달음에 이르렀을 때 전관한 장엄세계의 모습은 보르헤스가 <알레프>에서 묘사한 놀라운 체험의 장면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알레프는 탑으로 상징된다.


“숫자상으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이 모든 탑들이 전혀 따로따로의 방식대로 서 있는 게 아니라, 각각의 탑들은 나머지 모두와의 완전한 조화 속에서 그 나름의 개별적 존재성을 보유하고 있다. … 젊은 순례자 수다나(善財)는 각개의 탑 하나하나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탑들 속에서, 즉 하나에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고 그 각각이 모든 것을 포함하는 그런 곳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카프라,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 범양사출판부, 343쪽에서 재인용)


의상대사가 불타의 깨달음의 내용을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에서 칠언절구의 시로 노래했듯이, 보르헤스도 그것을 <알레프>라는 소설속에서 작품화한 것이다. <알레프>는 1949년 발표된 작품이다. 따라서 보르헤스는 매우 일찍부터 불경(佛經)을 읽었다는 증거가 된다. 그는 여러차례 인터뷰에서 니체와 쇼펜하우어를 통해 불교를 알게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1914년부터 스위스 제네바에서 거주하며 학교를 다녔는데, 그가 니체와 쇼펜하우어를 읽은 시기는 독일어를 배워 독일 문학과 철학을 원문으로 읽었던 1918년(19세) 때였기 때문에 불교는 이때 이미 상당히 이해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는 <불교강의>를 쓰면서 에드워드 콘즈(Edward Conze), 다이세즈 쓰지키(D. T. Suzuki), 파올 도이센(Paul Deussen), 아더 윌리(Arthur Waley) 등 수많은 불교학자와 중국문학가들의 책을 인용하고 있다. 그는 또한 노장사상(老莊思想)에 정통했고, 주역(周易)의 서문을 쓴 일도 있다. 그가 만년에 이르러 고향 부에노스 아이레스시에서 가장 애착을 가진 일곱가지 주제를 7일간에 걸쳐 강연을 했을 때도 불교를 포함시켰다. 불교는 보르헤스가 젊을 때부터 죽을 때까지 집착했고, 그의 사상이 변화를 맞을 때마다 그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던 중요한 테마였다.


보르헤스는 1899년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변호사인 아버지과 영문학자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유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그는 영어, 불어, 스페인어로 된 책이 무한히 꽂혀있었던 도서관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특히 할머니가 영국인이었기 때문에 집안에선 영어와 스페인어를 동시에 사용하였다. 이 영향으로 그는 유년시절부터 많은 영국소설을 읽게 되었다.

보르헤스는 15세 되던 해인 1914년에 아버지를 따라 유럽으로 이주하였다. 그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유럽식 교육을 받으며 불어와 독어를 익히게 되었다. 이어 라틴어도 마스터하게 된다. 1921년 조국 아르헨티나로 돌아온 그는 새로운 문예사조를 반영하는 문학잡지를 발간하면서 본격적인 문학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는 초기에 당시 유행하던 아방가르드 풍의 시를 썼다. 그러나 곧 그의 형이상학적이고 철학적인 성향을 표현하기 위해 에세이를 쓰기 시작한다. 그는 아버지가 사망한 해인 1938년 시립도서관에 취직하였다. 같은 해 성탄절날 창문에 머리를 부딪히는 사고를 당해 의식불명 상태에까지 빠진다. 의식이 돌아온 뒤, 스스로의 사고 능력을 실험해보기 위해 처음으로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하였다. 그의 대표작은 1944년 출판한 단편집 <픽션>과 1949년 출판한 <알레프>에 수록된 소설들이다. 그가 처음 이 작품들을 발표했을 땐 당시 문학계로부터 이해를 받지 못하고 단지 소수의 지식인 작가들만이 그의 글을 읽었다.

 

대중으로부터 외면받던 그는 1961년 베케트와 유럽출판인상을 공동으로 수상하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후 그는 1967년 하버드 대학 찰스 엘리엇 노른 렉취에서 강의하고 계속적으로 작품을 발표하는 등 1986년 죽을 때까지 왕성한 문학활동을 하였다. 

 

 

2. 보르헤스의 불교사상   


20세기가 저무는 지금 보르헤스가 인구에 회자되는 이유는 그의 작품이 서구의 지성들에게 끼친 영향력 때문이다. 이성을 중시하는 헬레니즘과 계시를 중시하는 헤브라이즘 사이에서 사상적 변전을 거듭해왔던 서구사상의 흐름이 18세기 이후 계몽주의와 과학주의에 의해 이성 중심의 극단적 지적 편향을 보였을 때, 편협한 이성주의의 한계를 누구보다 먼저 예리하게 지적하고 그 극복 대안을 제시한 사람이 보르헤스이다.


20세기 후반부에 세계 지성계를 리드하는 미셀 푸코, 자크 데리다, 모리스 블랑쇼, 쥬네트 등 프랑스 후기구조주의 철학자들과 평론가들 그리고 존 가드너, 토마스 핀천, 존 바스 등 미국의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한결같이 그들의 사상적 원천으로서, 정신적 아버지로서 보르헤스를 지목하고 있는 것이다.


보르헤스가 그들에게 끼친 공통된 영향은 그가 보여준 ‘이성주의적 이분법-주체와 객체, 자아와 타아(他我) 등-의 붕괴’이다. 보르헤스의 이런 사상은 물론 불교사상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불교에 대한 보르헤스의 관심은, <알레프>에서 보여준 불타가 깨달음에 도달한 순간에 직관했던 시공을 초월한 세계의 모습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그 ‘깨달음의 내용’에 초점을 맞춘다.

불타가 녹야원(鹿野苑)에서 처음 법륜(法輪)을 굴렸을 때의 설법이 그 ‘깨달음’의 내용을 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은 고, 집, 멸, 도의 사성제(四聖諦)와 그 바탕이 되는 삼법인(三法印) 즉 제행무상(諸行無常), 일체개고(一切皆苦), 제법무아(諸法無我)이다.


석가가 깨달은 내용의 핵심을 전하는 사성제와 삼법인은, 현실의 실상(實相)을 직시한 결과로 보게 된 인간 존재의 참된 모습을 보여준다. 인간을 구성하는 오온(五蘊)은 실체가 없어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고(苦)이며, 고의 원인[集]은 인간의 집착에서 오며, 집착은 인간의 무지에서 온다. 여기서 보르헤스는 서구의 이성주의가 안고 있는 고를 깨닫고 그것이 신, 로고스 혹은 제일원인 같은 ‘근원’과 ‘중심’에 대한 집착에서 온 것이라고 보았다.


보르헤스는 근원과 중심을 추적해 보았다. 그것은 형이하학적ㆍ공간적으로는 존재할 수 없었다. 우리가 보고 만질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의 중심은 바티칸에도, 예루살렘에도, 메카에도 없었다. 따라서 형이상학적인 중심을 추구할 수 밖에 없고, 그때 그가 만난 세계의 중심은 ‘한 권의 신성한 책’ 혹은 ‘도서관’이었다. 이때부터 보르헤스에게는 ‘도서관’의 이미지가 항상 따라다녔다. 그는 도서관에서 태어나, 도서관에서 살다가, 도서관에서 죽고, 도서관에 묻힌 작가였다.


그러나 그는 그가 추구했던 책과 도서관을 영원히 만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담고 있고 모든 것의 근원을 담보하는 한 권의 신성한 책을 상정하면, 그 순간 그 책은 이미 다른 ‘책’의 존재를 인정해야만 하기 때문이었다. 즉 어떤 책도 고유의 실체를 가진, 자성(自性)을 지닌 책이 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책이 성립하려면, 언어의 체계가 사전에 필요하고, 언어의 체계는 인간의 사회가 형성되어야 하고… 즉 모든 책은 끊임없이 이전의 다른 책의 존재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그가 깨달은 것은 ‘제법무아’였다. 모든 책은 고유한 자성을 가질 수가 없다. 모든 책은 다른 책들과의 인연소기(因緣所起)의 관계에 놓여져 있는 것이었다. 중심이 해체되고, 근원이 부정되자, 그의 관심을 끈 것은 텍스트들의 관계성이었다. 이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의 핵심이론인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이다.


현상적인 모든 사물은 모두 인(직접원인)과 연(간접원인)에 따라 생긴다고 보는 연기론에 텍스트를 대입하면 그대로 상호텍스트성 이론이 되는 것이다. 모든 사상(事象)이 서로 관계되어 성립하는 것처럼, 모든 책은 이전과 이후의 다른 책들과의 밀접한 연관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결국 근원적인, 세계의 중심이 되는, 오리지날한 책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중심의 부정은 ‘다원(多元)’을 낳고, 실체의 부정은 ‘상호관계성’을 낳는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핵심개념 중의 하나인 ‘다원주의’는 이렇게 ‘상호텍스트성’과 동전의 앞뒤면같은 관계를 가진다.


한편 한 권의 책이 다른 책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성립된다면, 독창적인 작품을 생산하는 작가(作家)라는 개념도 의심받게 된다. 과연 그만의 오리지날한 작품을 쓰는 작가가 존재할 수 있는가? 제법무아는 ‘작가’에게도 어김없이 적용되고, 작가도 연기법-상호텍스트성을 벗어날 수 없다. 여기서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의 또 하나의 핵심적인 개념인 ‘작가의 죽음’이 탄생한다.


색(色)과 공(空)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존재의 연기성(空性)을 깨달아 진공정도(眞空正道)의 정관을 얻는다는 용수(龍樹)의 <중론(中論)>이 이룩한 ‘부정의 극복을 통한 대긍정’의 가르침대로, 작가의 죽음이라는 부정적 성격은 ‘독자의 탄생’이라는 긍정적 창조를 낳는다. ‘소아(小我: 작가)’의 죽음 뒤에 따르는 해방된 ‘대아(大我: 독자)의 탄생은 문학행위의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

즉 한 텍스트에 대한 모든 권위와 도그마는 사라지고, 모든 텍스트는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 앞에 그대로 노출되게 된 것이다. 모든 책은 자기만의 완고하고 허위투성이의 자성(유일한 해석)을 버리고, 다른 텍스트들과 대화를 시작하게 된다. 여기서 종교다원주의적 발상이 싹트게 된다.


제법무아의 시각에서 세계가 공이라고 하는 사상은, 객관적 현상을 실체로 인정하고 그 드러난 모습에 충실하려는 리얼리즘 문학과는 양립하기가 어렵게 된다. 보르헤스는 리얼리즘 작가들과는 달리 현실을 공(空)으로 보았다. 그는 ‘공’을 서구적인 용어 내에서 ‘환상(幻想)’ 혹은 ‘환영(幻影)’으로 표현했다. 만일 현실 자체가 환영(마야)이라면, 그 현실을 충실하게 그려낸 문학작품은 ‘환상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실을 충실히 반영하면 할수록, 그 작품은 더욱 환상적이 된다. 그는 자신의 문학을 ‘환상적 사실주의’라고 부른다. 환상적 사실주의는 ‘색즉시공’의 문학적 표현이기도 하다.


제법이 무아라는 것, 제행이 무상이라는 것, 세상의 중심이 없다는 것 등의 생각은 현실에 대한 정직한 직시에서 나온 것들이다. 이것은 결코 부정적인 생각이 아니다. 오히려 무아(無我)이기 때문에 모두가 세상의 주인공이 된다. 무상(無常)이기 때문에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 세계의 중심이 없기 때문에 내가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있다. 보르헤스의 글들은 서구의 많은 지식인들에게 그들에게 부족했던 것에 대한 무한한 상상력의 씨앗을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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