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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때 아닌 한기
2017년 05월 15일 20시 20분  조회:1399  추천:6  작성자: 동녘해




제6회 전국조선족대학생 이육사문학상 대상수상작품

 

단편소설

 

 

때 아닌 한기

최민(연변대학 2015급 석사연구생)

 

 

내가 허융의 전화를 받은것은 10시 40분이 조금 지나서였다. 전화에서 들려오는 허융의 목소리는 웬 일인가싶을 정도로 한껏 들떠있었다. 나는 또 "사업"때문이겠지 하고 생각을 굴리면서 휴대폰을 귀에 가져다 댔다. 허융은 자기가 어제 연길에 왔고 초중 동창 몇을 청했으니 함께 술이나 한잔 마시자는것이였다. 

"화끈하게 쏠테니 얼른 나와라. 너 거기 누기 있는지 아니?알면 좋아 입이 쩍 벌어질게다."

"누가 있는데?"

제법 롱담까지 섞어가며 고아대는 허융의 말에 어딘가 호기심이 끌린 나는 저도 몰래 목소리를 높여 다잡아 물었다. 사실 나도 아침밥을 먹자마자 북경에 있는 모 한국회사에서 보내온 자료번역을 하느라 컴퓨터앞에 앉은것이 그때까지 화장실 한번 다녀오지 않았던지라 온몸이 뻐끈해남을 느끼고있었던것이다. 나는 자기에게 휴가 한번 주는셈 치고 나가보기로 작심했다. 

입추가 지나 처서를 바라보는8월 하순에 접어들었지만 날씨는 여전히 찌물쿠었다. 할머니 몇분이 길옆에 빨간 고추를 널어놓고 앉아 밭고랑같은 주름살이 얼기설기 지나간 얼굴에 함뿍 해볕을 받아 마시며 한담을 나누는 모습이 그림처럼 한눈에 안겨들었다. 

"볕이 얼매나 좋소그래, 고치(고추)사 점심 볕에 빠짝 말려야 색이 빨가니 좋게 나오지그래."

"그렇당게. 무시게나 시간을 놓지지 말그 제때에 바짝 해야제. 아이, 더버라."

귀속에 날아드는 할머니들의 말을 되네이며 나는 저도 몰래 왼손바닥을 펴들고 땀으로 흥건히 젖어있는 이마를 닦았다. 

(휴- 정말 덥네.)

나는 이마를 닦던 왼손을 내려다 티셔츠자락을 당겨 흔들며 허융네가 모여있다는 "오발탄"을 향해 잰걸음을 놓았다.

허융이 전화에서 알려주던 오발탄 "90번째" 방에는 허융을 제외하고도 두 사람이 더 있었는데 한명은 초중때 우리 학급 부반장이였던 김서희였고 다른 한명은 무슨 일에서나 체면을 앞서우고 지나치게 자존심을 세워 걸핏하면 얼굴을 붉히군 하던 정문이였다. 

상우에 저가락 4 쌍이 올라있는것으로 보아 손님은 우리 넷뿐인것 같았다. 내가 미처 자리에 앉기도전에 허융이 서희를 가리키며 목소리를 높였다.

"야, 최민아. 저게 누기야? 내 말했지. 알기만 하면 입이 쩍 벌어질게라구."

그 말에 나는 서희를 힐끗 훔쳐보고는 인차 눈길을 허융이쪽으로 돌리며 말없이 입만 쩝쩝 다셨다. "

서희는 초중때 얼굴이 이쁘장한데다 공부까지 잘해서 사춘기를 앓는 우리 학급 남자애들의 눈길을 한몸에 받아안았던 학급의 꽃이였다. 서희의 몸에는 물론 나의 눈길도 더 박힐 자리가 없이 찍혀져있을것이였다. 초중때 그 이쁘장하고 똑똑하던 녀자애는 어느새 예쁘고 지적인 녀자로 변해있었다.

나는 그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고는 자리를 찾아 앉았다. 에어컨을 켜지 않아서였던지 "90번째"방도 바깥 못지 않게 더웠다. 

"야- 이게 몇년만이니? 반갑다야. 돈은 걱정 말구 오늘 실컷 마셔라. 服务员,这个的给个吧.还要这个,然后再拿一箱九度,要凉的,不给钱啊不凉的话(복무원, 이것을 주세요. 이것두요. 9도맥주도 한상자 올리구요. 시원하지 않으면 돈을 내지 않을겁니다).”

큰 소리로 음식을 주문하는 허융을 바라보면서며 서희와 정문은 키득키득 웃음을 흘렸다. 

“왜 웃니?”

그들의 웃음 포인트가 무엇인지 미처 감을 잡지 못한 허융이서희에게 물었다. 

“상해에서 그렇게 오래 살았다는 애가 어쩌면 한족말이 하나도 늘지 않았니?”

“참, 나는 무슨 개판인지 한족말은 어떻게 해두 늘지 않더라야, 소학교까지 조선족만 모여 살던 시골에 박혀있었대나서 그런가? 근데 뭐 어떠야, 이렇게 말해두 상해사람들이 다 알아듣는데 뭐.”

허융의 말에 나도 웃음을 터뜨렸다. 사실 허융이 구사하는 "연변식 한어"는 그렇게 이상한것이 아니였다. 어릴 때 한족사람들과 거의 접촉할수 없는 시골 조선족마을에서 자라다보면 혀가 순수한 우리 말에 굳어지는지 어른이 되여서도 한족말에 습관이 잘 되지 않았던것이다. 하지만 상해에서 거의 10년을 산다는 허융이 어릴적 그대로 "연변식 한어"를 구사하는것은 실로 웃지 않고 넘길수 없었던것이다.

우리가 웃고 떠드는 사이 주문한 음식이 상에 오르고 맥주도 들어왔다. 허융이 맥주컵을 높이 쳐들고 말했다.

“돈은 걱정 말구 실컷 마셔라. 오늘 련계할수 있는 동창들은 다 부르자 했는데 딱 너희들뿐이구나. 반갑다야, 우선 동창들을 위해서, 특히 나의 '사업파트너'를 위해서 그리구 나의 이름이 박힌 책이 출판된것을 위해서 깐베이(干杯).” 

말을 마친 허융이 먼저 맥주 한컵을 입에 쏟아넣었다。 그때 서희가 맥주컵을 살짝 입에 댔다가 떼면서 말했다. 

“동창들을 위한다는것은 알겠는데 '사업파트너'는 뭐고 너의 이름이 박힌 책이 출판됐다는것은 또 무슨 말이니?”

서희의 말에 허융이 시물거리며 옆에 놓인 가방을 열더니 안에서 책 세권을 꺼내여 우리앞에 내밀며 말했다. 

"별것 아니다, 한개씩 가져라."

허융의 손에서 급히 책을 받아 표지를 들여다본 나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나는것 같았다. "실용번역연구"라는 제목밑에 작자의 이름과 "허융 역"이라는 글자가 똑똑히 박혀있었던것이다. 

"세상에, 세상에. 이 책을 진짜 네가 번역한거니?"

서희도 나만치나 놀랐던지 한껏 동공을 키웠다. 

"왜? 글을 모르는 애들처럼."

허융이 어깨를 으쓱하고는 내쪽에 눈길을 돌렸다. 나는 뭔가 짚히는데가 있어서 조용히 입가에 허거픈 웃음을 피워올렸다. 

허융은 워낙 공부에 흥미를 잃었던지라 초중을 졸업하고 겨우 직업고중에 진학하였었는데 그것도 1년쯤 다니다가 사회에 나왔었다. 뭐라도 배우고 익혀야 할 한창 나이에 집에서 허송세월하는 허융을 두고 그 애 부모들의 근심은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하루 또 하루 거세져가는 부모들의 잔소리에 진저리가 날대로 난 허융은 "출세하여 본때를 보인다"면서 무작정 상해로 떠났었다. 하지만 초중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한 허융을 채용하려는 회사가 없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것은 허융의 잔머리가 베어링 돌아가듯 팽팽 잘도 도는것이였다. 허융이 직업소개소를 통해 상해에 진출한 한국사람들을 알게 되였던것이다. 보따리장사나 다름없는 작은 규모의 회사를 운영하는 그들은 높은 로임을 주고 전업통역을 청할수 없는 처진지라 허융과 같이 "연변식 한어"를 구사해도 대체적인 뜻은 전달할수 있는 사람들을 헐값으로 청하려고 했던것이다. 

통역은 그런대로 응부할수 있었지만 번역은 실로 허융에게 무리가 아닐수 없었다. 그러한 수요에 만족을 주기 위해 허융이 생각해낸것이 바로 "사업파트너"였고 그 "사업파트너"로 지목한 적임자가 바로 나였던것이다. 

초중을 졸업하고 순리롭게 연변1중에 입학한 나는 그때 여가시간을 타서 한국드라마번역실무를 취급하는 "천사드라마번역회사"에 이름을 걸어놓고 드라마번역을 했는데 허융이 누구에게선가 그 소식을 접했던것이다. "천사드라마번역회사"의 일은 번역비 한푼 못 받고 그저 스크린에서 "번역: 최민"이라는 네 글자를 보는 재미에 만족해야 하는것이였다. 그 와중에 허융이 천자당 인민페로 20원씩 번역비를 주겠다고 하니 나는 이게 웬 떡인가싶어 쾌히 동의했던것이다. 당시 고중 2학년 학생이였던 나는 제 재간으로 돈을 번다는게 그렇듯 자부심이 차넘칠수 없었고 천자당 20원이라는 그 액수도 사실 적은것이 아니였다. 그때는 스마트폰이나 위채트와 같은 현대적인 통신수단이 없었던지라 우리는 매번 휴대폰으로 “사업”에 대한 문제를 토론했고 메일로전자파일을 주고받았다. 허융이 보내준 전자파일을 받은 날이면나는 연변1중옆에 있던 만화방에 가서 1장에 1원씩 주고 프린트를 해서는 집으로 가지고 와 밤을 패가며 번역을 했다. 매번 “사업” 한건을 완성하면 허융은 언제나 내가 응당 받아야 할 번역비보다 100원을 더 보내면서 프린트비용이나 휴대폰료금으로 쓰라는것이였다. 그때마다 나는 허융이 참 통이 크고 인정미가 넘친다고 생각했었다. 

“사장 이름을 뗐으믄사 내 이름으로 된 책 한개는 있어야 재? 내 아래에 지금 통역이 셋이나 있다. 챠… 내 처음 상해에 갔을때 번역 일감이 얼마나 많던지 너네는 아마 상상두 못할게다. 그기다 값으두 톡톡하지, 그때 가격으로 통역은 하루에 이삼백원씩 했구 번역으는 천자당 칠십원씩 했는데, 그기다 번역할수 있는 사람까지 적으니… 내사 돈으 비잘기(비자루)로 막 쓸어담았지야…”

(뭐, 70원?)

허융은 흥이 나서 두팔을 내두르며 자기의 사업에 대해 늘어놓았지만 나는 "천자당 70원"이라는 말을 되네이며 가슴이 오그러드는것만 같았다. 허융은 순간 나의 표정이 흐려지는것을 발견했던지 잠간 말을 멈추고 내 컵에 맥주를 따르며 힐끔 내 눈치를 살피는것이였다. 

(다 지난 일이야, 그때는 그 돈도 감사했었지.)

나는 속으로 애써 자신을 달래며 맥주병을 당겨다 그의 잔에 부어주었다. 그러자 허융이 나를 향해 어색하게 웃으며 큰 소리로 말했다.

“이 잔은 내가 단독으로 너에게 찡(敬)하마."

허융은 맥주를 한모금 크게 마시고는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미안했다야, 그때는 나도 살아야 했으니. 아이 그러야?”

“다 지나간 일을 가지구 뭐… 리해한다, 당연히.”

따지고보면 사실 허융을 그렇게 원망할것도 없을것 같았다. 어린 나이에 처음으로 낯선 도시에 들어가 혼자 생활하려니 돈이 그만큼 필요했을것이고 그 필요한 돈을 벌려니 그 어떤 방법과 수단도 가릴수 없었을것이였다. 2년후, 어느 한 통화에서 내가 대학에 입학하니 고중때보다 용돈이 훨씬 더 많이 든다고 말말간에 비쳤는데 그후부터는 천자당 70원씩 올려주는것이였다. 자기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번역을 맡겨주는 회사를 설복하여 천자당 70원씩 받기로 했다는것이였다. 그후 대학에 다니던 4년 동안 나는 천자당 70원이라는 번역비를 받으면서 줄곧 허융의 "사업파트너"를 충당했었다. 비록 시간이 흐르면서 일감이 전처럼 그렇게 많지는 않았지만 가끔 생기는 번역비가 나의 대학생활에 큰 보탬이 된것만은 부정할수 없는 사실이였다. 

(그래, 감사하게 생각하는거야. 역시 세상을 배우는 과정이였는것을.)

이런 생각이 들자 나는 다시 기분이 개운해졌다. 

나와 허융이 "미안하다.", "리해한다" 하면서 주거나 받거니 하는 모습을 멀거니 바라보던 정문이 우리들 사이에 맺혔던 오해가 풀려간다고 생각했던지 갑자기 맥주컵을 들면서 말했다. 

“자- 너희들의 리해를 위하여, 그리구 나의 휘황찬란한 앞날을 위하여 깐베이!”

정문이 단숨에 맥주컵을 비웠다. 나도 따라서 맥주컵을 비워 상에 내려놓고는 정문의 얼굴에 눈길을 박으며 물었다. 

“그래 연길보다 낳니? 너희 중경이.”

나는 무슨 오기때문이였던지 일부러 "너희 중경"이라고 표현했다. 

나와 정문은 대학교 4학년때 실습기지에서 한번 만난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우리가 초중을 졸업한후의 첫 만남이였다. 허융은 비록 초중때보다는 성격이 좀 활달해진것 같았지만 체면을 중시고 일마다에서 자존심을 내세우는것은 그때와 별 차이가 없었다. 그는 평범하게 고중 공부을 마치고 어느 평범한 대학의 신문전업에서 공부를 하다가 졸업실습을 위해 그곳에 온것이였다. 우리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지내면서 평범하게 졸업실습을 끝마치게 되였다.

우리가 떠날무렵에 실습기지에서 나와 정문을 찾아 그곳에취직할 생각이 없는가고 묻는것이였다. 사업단위초빙시험을 통과하면 인차 편제를 가질수 있다는것이였다. 나는 그때 이미 연구생공부를 하려고 결정하였던지라 단연히 그 청을 거절하였다. 하지만 정문도 나와 같은 선택을 한다는게 놀라왔다. 정문이 그 곳에 취직할수 있는 기회를 포기한 주되는 원인은 바로 로임이 대도시들보다 적다는것이였다. 

"로임을 연길보다 많이 받으면 뭐하니? 그만치 많이 써야 하는데. 남들의 흉내만 내자구 해두 내 막 미치갰다."

정문이 맥주컵을 상에 탁 내려놓으며 이마살을 찌프렸다. 나는 인차 정문에게도 여의치 않은 일들이 많은 모양이라고 생각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힘들면 연길에 와 살지? 그때 실습하던 단위에서 사업편제까지 해결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재야? 한번 가서 물어보면 될것도 같은데.”

“로임두 얼마 안되는 그 단위에서 무슨 일 할 재미가 있다구.”

“로임은 천천히 오를게 아니야? 어디서 처음부터 높은 로임을 주는데?”

“아무리 처음부터 높은 로임을 받을수 없다해두 연길 로임은대도시에서 받는 최저로임보다두 적을게다, 내 지금 중경에서 4000원은 받는데야, 물론 그기서 그 돈으루 먹고 살기는 힘들지만… 그래두 누가 로임을 얼마 받는가, 어디서 일하는가 물어보믄 연길에서 일하고 2000원씩 받는다고 말하기보다야 체면이 서지야.”

나는 더 이상 뭐라고 할 말을 찾지 못하였다. 사실 정문의 말이 맞는지도 모를 일이였다. 내놓으라면 젊음밖에 없는 청춘들에게 가장 중요한것은 자존심일것이다. 물론 나이들면 허영에 들뜬 자존심 같은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것을 깨달을수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나이가 들어야 알수 있는 도리이고 젊은 청춘들에게는 젊은 오늘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될것이였다. 

“야- 참, 한심하다. 겨우 4000원을 받으면서 그 잘난 곳에서 고생하니?"

허융이 갑자기 손바닥으로 탁 소리나게 상을 내리치면서 말을 이었다. 

"상해 와서 내밑에서 일해라. 그러잖아두 이번에 내 통역하는 애들 몇을 더 데려가자구 왔다. 니 일을 잘하믄 내 급두 줄게."

그 말에 정문이 허허 웃으며 말했다.

“천자에 70원밖에 아이하는 번역으 해서 언제 돈으 번다구. 우리 중경에서도 천자에 80원은 한다드라. 급하무 막 100원까지 뛴다든데 뭐.”

이에 허융도 질세라 열을 올렸다. 

“천자에 70원은 7,8년전 일이구 그새 그냥 오르다가 2, 3년전부터는 천자당 200원으로 올랐는데야. 번역비 오르는 속도 아무튼 보통사람은 놀라 까무러칠게다."

침을 탁탁 튕기며 호기스럽게 소리치던 허융은 또다시 뭔가를 생각했던지 급기야 말을 멈추고 힐끔 나의 눈치를 살피는것이였다. 순간 나는 두 어깨가 와뜰 떨리고 두팔에 온통 닭살이 돋아올랐다. 그 동안 허융을 고맙게 생각해온 내가 한심하게 느껴지면서 괘씸한 기분이 칭칭 갈마들었다. 하지만 허융은 아까 처음에 천자당 70원이였다고 말했다가 나에게 미안한 기색을 짓던것과는 달리 제법 당당하게 말을 이었다. 

"담이 크고 머리 잘 돌아가는 사람이 이기는게지무. 내 회사에 지금 본과졸업생두 하나 있다. 내 회사 비록 지금은 사람이 몇이 안 되지만…"

"회사라면 법인등록은 했니?"

서희가 못 믿겠다는듯 허융을 유심히 살피며 물었다. 

"뭐라구? 범인등록? 범인이라믄 나쁜놈이재야?"

"세상에 어쩜, 공상국에 가서 등록했는가 말이다."

"그거 해서 뭘하니? 돈만 잘 벌면 되지. 내 회사 이제…"

"그래, 맞다. ㅋㅋㅋㅋ… 허융아, 너의 '회사' 날로 발전장대해 지기를 위하여 그리고 나의 자격증을 위하여 깐베이!"

서희가 히물히물 웃으며 맥주컵을 들고 소리쳤다. 

“뭐? 자격증이라니? 네가 사법고시에 통과했다는 소식을 들은것 같은데."

나는 맥주컵을 집으며 웬 소리냐는듯 서희를 건너다보았다. 

서희는 우수한 성적으로 북경에 있는 명문대학에 입학하여 법학을 전공하였고 졸업하면서 사법고시를 통과하였다고 했다.동창들을 통해 그 소식을 들으면서 나는 그의 앞날이 탄탄대로일것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서희가 나를 향해 서글프게 웃으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지금 네일아트자격증을 따려구 준비중이다.”

“뭐?”

나의 놀란 표정을 살피면서 서희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대학교 졸업하고 인차 취직하려 했는데 그게 쉬운게 아니였지. 우리에게는 법원, 검찰원이 제일 좋은 선택이구 다음은 변호사, 그 다음은 회사의 법률고문이나 비서 같은것도 괜찮았지만 한족말이 서툰 나는 그런 기회를 잡기가 여간만 힘든게 아니였지.”

서희의 목소리에서는 점점 힘이 빠져갔지만 나는 웬 일인지 그가 행복한 고민을 하는것 같이 느껴졌다. 

“사법고시도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한 사람이 아무려면…”

“사법고시 통과했다고 다 되는게 아니거든. 사법고시는 사실 준비만 철저하게 하면 누구나 넘을수 있는거야, 그 다음이 문제지. 사회생활이라는게 어디 그리 쉽데? 특히 검찰원, 법원 같은데는 사업단위초빙시험도 통과해야 되는데.”

“시험을 치면 되지야, 너네는 공부하기가 제일 쉬운게 아니니?”

허융이 웬 일이냐는듯 서희의 말을 가로챘다. 

“물론 그 시험도 통과했었지. 필답은 큰 문제가 아니였거든.근데 면접에서 문제가 생기는거야. 나처럼 한족말이 서툴구 또 당지에 인맥 하나 없는 사람이 그 오묘한 면접을 어떻게 통과하겠니?”

서희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머리를 끄덕이지 않을수 없었다. 서희의 현실이 바로 연변의 조선족 시골미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요행 연길에 들어와 아글타글 공부해서 명문대학에 간 대부분 조선족대학생들의 현주소였던것이다. 

“그럼 변호사나 하지그러니?. 변호사두 돈으 엄청나게 버는 직업 아니니? 무스거보다 돈이 중요하지. 돈 많이 벌어야 체면두 서구.”

정문은 또 돈으로 화제를 돌렸다. 사실 나도 정문의 말에 공감이 갔다. 변호사도 확실히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했던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어. 면접에서 떨어진후 나도 변호사사무소에 취직하자고 했었지. 근데 아무리 어째도 변호사는 말발인데 한족애들하고 말로 이긴다는것은 불가능하더라, 준비를 아무리 많이 해가도 급하면 한족말이 잘 나오지 않았거든. 몇곳을 다니면서 면접을 거쳤는데 번마다 떨어지자 자연히 맥을 버릴수 밖에… 이 길두 아니구나싶더라.”

“그럼 비서나 법률고문은? 그런 일은 특별한 말발이 필요한것두 아니구. 법률지식만 제대로 장악하면 될것 같은데?”

내 말에 서희가 호- 하고 긴 한숨을 내쉬고는 이렇게 물었다. 

“니 지금 연구생공부 한댔지? 그럼 한가지 물어보자. 한어에서 '的, 地, 得'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너 정확하게 아니?”

나는 서희의 그 물음에 당당하게 대답할수 없었다. 사실 이 문제는 한어에서 가장 기초적인 문제 같지만 완벽하게 사용하려면 여간만 까다로운것이 아니였다. 내가 인차 대답하지 못하자서희가 말을 이었다. 

“기실 나도 비서나 법률고문으로 일해보려고 생각하지 않은것은 아니다. 한 회사에 들어가 인턴으로 있는 기간에는 여러명이 함께 한자리를 놓고 경쟁하게 되지. 법률지식이나 일상 대화에서는 큰 문제가 없는데 필력에서는 역시 문제가 생기는거야.한어를 모어로 어릴 때부터 배워온 애들과 경쟁하려니 필력에서 그 애들을 따를수 없는거야. 주어진 문장을 외우고 쓰라면 괜찮은데 주어진 시간내에 한자로 몇천자씩 보고서나 법률문서를 작성하라고 하면 참 힘들더라…”

대도시에서 리상적인 일자리를 구할수 없게 된 서희는 새로운 꿈을 안고 한국에 진출했다고 한다. 그때 서희의 부모도 한국에 나가 돈벌이를 하고있었던것이다. 하지만 학교에서 중국 법률을 전공한 서희의 지식으로는 근본 한국의 법조계에 발을 붙일수 없는 형편이였다. 서희는 진로때문에 다시 방황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네일아트를 접촉하게 되였던것이다. 새롭게 접촉한 그 분야는 서희에게 그처럼 유혹적이였다고 한다. 누군가의 손톱에 섬세하고도 화려한 생명을 불어넣는 그 일이야말로 자기의 적성에 꼭 들어맞는것 같았다는것이다. 

(그래,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거야.)

서희는 뒤늦게야 자기가 진정 무엇을 좋아하는가를 알게 되였고 진정한 미래를 찾게 되였다고 했다. 서희는 웃으면서 말하고있었지만 나는 그를 위해 내심 아쉬운 생각이 갈마들었다. 그는 어떻게 말해도 명문대학을 나오고 사법고시를 통과한 법률학 전문인재라고 생각되였던것이다. 

“밖에서 안되면 연변에 돌아올수도 있지 않니? 여기서는 조선족 법관이나 변호사를 수요할텐데. ”

“그렇긴 하지. 내가 한국에 나간 후, 연변 어느 시의 법원에서 조선족인재를 초빙한다면서 전화로 내 의향을 묻더라. 하지만 내가 거절했다."

"왜?"

나는 제일처럼 안타깝게 생각되여 다잡아 물었다.

"왜는? 싫어서지. 연변에서 20년을 살았는데 대학공부를 하구 다시 이 촌구석에 온단 말이니? 따져보면 법학이 내가 진정 좋아하는 일도 아닌것 같았구. 법학을 배우는 내내 힘들었거든. 네일아트를 배울 때처럼 흥겹고 즐겁지 않았단 말이야. ”

"서희 말이 맞다. 참, 너네 대학 공부 해서 뭘 하니? 서희야. 너두 생각 있으믄 내밑에 들어와 일하면서 번역으 배워라. 내 다른 애들보다 돈으 더 주마."

허융의 말에 우리는 약속이나 한듯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허융은 우리가 왜 웃는지를 알지 못하는것 같았다. 너무도 당당한 허융의 모습에 억이 막혔던지 서희가 한마디 내쏘았다. 

"니밑에서 일하라구? '这个的给个吧'라구 말하는 니밑에서 번역을 배우면서 일하라구?”

하지만 허융은 기가 꺽일대신 제법 어깨까지 으쓱하면서 자신만만한 어투로 말했다.

“야, 이래뵈두 내 그기서는 번역에서 배태랑이다.”

“배태랑이 아이라 베테랑이겠지, 니 이 수준두 베테랑이라니 상해 번역수준 빤히 들여다보인다야.”

서희는 허융이 자기를 제밑에 들어와 일하라고 하는 말에 사뭇 자존심이 깎였던지 얼굴을 붉히며 톡 내쏘고는 내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최민아, 너 연구생공부를 한다고 했지? 무슨 전업이니?"

"조선어학. "

나는 여기서 말을 멈추고 컵에 약간 남아있던 맥주를 다 마셔버린후 정색해서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박사공부까지 끝내고 연변에 남으려구.”

"연변에?"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목소리를 높여 "연변에?" 하고는 외계인을 바라보듯 나의 얼굴에 눈길을 꽂았다. 

“야, 미쳤니? 조선족이 조선어를 못할라구 연구까지… 그것두 박사까지나…”

허융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정문도 한술 떴다.

“로임두 이렇게 낮은데서 무슨 재미루? 그것두 박사까지 한후에 연길에서 살겠다니…”

서희도 빠질세라 한마디 했다.

“한평생 연변에서 산다는게 생각만 해두 지루한 일 아니니?”

나는 연거퍼 날아오는 물음에 어느것부터 먼저 대답해야 할지 몰라 그들 셋을 번갈아 살피다가 앞에 놓인 맥주병을 들어 그대로 입에 털어넣고는 이렇게 말했다. 

“다 나가면 어찌니, 누구라도 이곳을 지키고 건설해야지. 그래야 이곳에서두 진정한 베테랑이 나올수 있을게구 돈때문에 무작정 이곳을 떠나는 사람들두 적어질게구 언젠가는 떠나갔던 사람들도 돌아올게 아니니?”

"생각 한번 와늘 매짜게 한다야, 니 혼자 그렇게 생각해서 무슨 쓸데 있니? 나르 봐라. 상해 가서 10년이 채 아이 돼서 번역회사 차린거. 연길에서 내 이렇게 출세할수 있니? 앞으로 내 우리 회사르 와늘, 와늘… ”

쫙 펼쳐 든 허융의 두팔이 하늘 너른줄 모르고 넓어져갔다.

“얌마, 벌만큼 벌었으면 연변에 돌아와 조용히 살아라. 그곳에서 계속 그렇게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사업파트너'들이 다 떠나버리면 어떻게 하려구?"

“연변에?"

허융이 코웃음을 치고는 말을 이었다. 

"이 촌구석에 뭘 할게 있다고그러니? 이제 내 번역회사가 이렇게, 이렇게 커지는 날이면…"

허융의 말이 채 끝나기도전에 상우에 올려놓은 그의 휴대폰이 울기 시작했다. 허융은 말을 끊고 점잖게 휴대폰을 주어 귀에 가져댔다.

"여보세요? 내가 서사장입니다."

허융은 제법 어험 하고 건가래까지 떼면서 얼마 나오지도 않은 배를 앞으로 쑥 내밀었다. 

"네?"

허융의 눈동자가 갑자기 커져 이마를 쳤고 쑥 내밀었던 배도 움찔 들어갔다.

"김선생, 그그… 그게 무슨 말임까? 내가 번역비를 다 주지 않았슴까? 그런데뭐뭐… 저저… 저 무슨 권을 침범했다구? 내 번역비를 다 줬으면 내 이름으 책에 박을수 있는게지. 내 돈으주구 그 원고를 샀는데…"

나는 대충 허융의 뜻을 알것 같아 머리를 끄덕이면서 서희를 건너다보았다. 서희도 알겠다는듯 입가에 쓴 웃음을 짓고있었다. 

"자 어째 저래니? 무스거 침범했다구? 쟤 법에 걸렸재?"

정문이 나와 서희를 번갈아 살피면서 황급히 물었다. 서희는 정문의 말을 못 들은듯 맥주컵을 들고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고있었다. 그때 허융이 신경질적으로 핸드폰을 상우에 탁 소리나게 내려놓으며 소리쳤다. 

"야- 미치갰다. 이게 와늘 아다모끼다. 내 돈으 주구 번역시켰는데, 내 돈으주구 원고르 사서 거기다 내 이름으 박았는데…저저 저 무스거 침범했다구 와늘 란리다… 야, 최민아. 세상 어디에 이같은 아다모끼 다 있니? 니 말해봐라, 최만아."

허융이 내쪽을 향해 홰홰 손을 저어댔다. 나는 그러는 허융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보고싶지 않아 창밖으로 머리를 돌렸다. 

할아버지 몇분이 가로수아래에 쪽걸상을 놓고 앉아 부채질을 하면서 한담을 주고 받는 모습이 그림처럼 한눈에 안겨들었다. 

밖은 여전히 무더운 모양이였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 온몸으로 때 아닌 한기를 느끼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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