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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중편소설* 대치 댓글:  조회:2140  추천:1  2014-09-11
중편소설 대치 왕족 1 다어르한과 러흐한이 돌아간후, 마씨는 련속 담배 두가치를 태우고는 끝내 흰갈기늑대를 쫓아가려고 결심했다. 마씨는 다어르한과 러흐한을 마뜩지 않게 생각하고있었다. 며칠전, 마씨는 늑대잡이대원들과 함께 흰갈기늑대 한마리를 유인하여 함정에 빠뜨렸었다. 하지만 흰갈기득대는 놀랍게도 함정에서 기여올라 어둠속으로 도망쳐버렸던것이다. 마씨가 참기 어려운것은 다어르한과 러흐한이 흰갈기늑대가 바로 늑대왕이라는 말을 근본 입밖에 내지 않은것이였다. 만약 그들이 흰갈기늑대가 늑대왕이라는것을 말만 했더라면 늑대잡이대원들은 긍정코 함정에 빠진 흰갈기늑대에게 총을 갈겼을것이다. 다른 늑대잡이소대에서 잡은 늑대는 모두 보통 늑대에 불과했었다. 만약 마씨네가 흰갈기늑대를 잡았더라면 늑대왕을 잡은것으로 되여 빠이하바현성에 돌아가 한껏 으시댈수 있었을것이다. 늑대잡이대원들은 말을 타고 인차 테레크목축구에 들어섰다. 테레크목축구는 너무도 고요해서 아무 소리도 들을수 없었다. 늑대잡이대원들이 들어서자 목축구는 삽시에 소란스러워졌다. 말발굽소리는 협곡에 메아리쳤는데 마치도 누군가 골짜기에서 웬 일이냐고 기나긴 물음을 던지는듯싶었다. 마씨의 속에는 커다란 의문이 서리고있었다. 그도 사실 흰갈기늑대를 쫓아잡을수 있을지 의문이였던것이다. 마씨는 반드시 흰갈기늑대를 쫓아 잡으리라 마음을 굳혔다. 흰갈기늑대가 눈앞에서 꼬리를 사려버렸는데도 만약 잡지 못한다면 목민들이 늘 하는 말처럼 그와 그의 늑대잡이대원들은 “그림자가 없는 사람”으로 변해버릴것이였다. 목민들이 말하는 “그림자가 없는 사람”이란 바로 낯이 깎이는 일을 저질러놓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 몸을 사리는이들을 말하는것이였다. 마씨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흰갈기늑대를 잡으리라 결심했다. 마씨는 절대 “그림자가 없는사람”으로는 될수 없다고 생각했던것이다. 이렇게 결심을 내리자 마씨는 말등이 한결 든든하게 느껴졌고 걸음걸이도 사뭇 온당하게 생각되였다. 두차례의 비가 내려서였던지 산은 푸름이 더 짙어진듯싶었고 나무움도 제법 터올라 완연한 모습을 들어내고있었으며 땅에서 갓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던 애기풀들도 파릇파릇 잎눈을 틔워가고있었다. 다른 목장이라면 이 무렵에 소나 양을 볼수 없고 따라서 방목군들의 모습도 찾아보기 힘들것이였다. 아직 대지가 푸른 단장을 하기에는 이른 시간이였던것이다. 하지만 테레크목장에서는 이미 새해의 방목을 시작했었다. 흰갈기늑대가 도망을 가고 늑대잡이대원들이 철수하자 테레크목장은 조용해졌다. 목민들은 시름놓고 소나 양을 방목할수 있어서 여간만 기뻐하지 않았다. 이제 십여일이 지나면 테레크목장은 목초들로 바다를 이룰것이였다. 소나 양들은 목초의 바다에서 자맥질을 하며 마음껏 배를 불리울수 있을것이였다. 마씨와 목민들의 생각은 늘 이렇게 한 곬으로 흐를수 없었다. 목민들은 늑대가 나타나지 않기를 바랐다. 늑대의 그림자가 영원히 비끼지 않아야 소나 양들이 시름을 놓고 설레이는 풀바다에서 마음껏 자맥질을 할수 있었던것이다. 하지만 마씨는 늑대들이 날마다 초원 여기저기에 출몰하기를 소원했다. 늑대의 마리수도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되였다. 그래야만 마씨는 통쾌하게 늑대잡이를 할수 있었던것이다. 한필의 말을 두 사람이 탈수 없고 하나의 칼집에 두자루의 칼을 넣울수 없는것처럼 같은 늑대라 해도 그놈을 바라보는 목민들과 늑대잡이대원들의 태도는 엄연히 다른것이였다. 하기에 목민들과 늑대잡이대원들은 서로 대방을 바라볼 때 눈에서 이름할수 없는 복잡한 빛을 내쏠수밖에 없었던것이다. 십여일만 지나면 어미늑대들이 새끼를 낳기 시작한다는 말을 얻어들은 마씨는 저으기 머리를 쳐드는 흥분을 눅잦힐수 없었다. 흰갈기늑대는 새끼를 밴 암컷이였던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으면 흰갈기늑대도 새끼를 낳게 될것이였다. 하기에 흰갈기늑대를 찾아내고 그놈을 잡는 일은 시간문제일뿐이지 그렇게 힘든것은 아니라고 생각되였다. 한 늑대잡이대원이 마씨에게 이 계절의 늑대는 잡기 쉬우면서도 어렵다고 말했다. 이른바 잡기 쉽다고 하는것은 어미늑대가 곧 새끼를 낳게 되기때문에 주의력이 분산되여있고 체력이 고르지 않기에 포획에서 성공률이 높다는것이였다. 하지만 이 계절에 늑대는 곧 새끼를 낳아야 하기에 암컷은 물론이고 수컷도 새끼에 대한 보호심에서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생사를 잃고 대항한다는것이였다. 마씨는 그런것들에 대하여 그리 깊이 생각하려고 하지 않았다. 오직 흰갈기늑대를 찾아내기만 하면 주변에 몸을 숨기고 살피다가 그놈이 새끼를 낳기 시작하면 총을 쏠 예산이였다. 그때면 흰갈기늑대는 도망칠수 없을것이요, 반항할 맥도 없어 끝내는 늑대잡이대원들의 포획물이 되고말것이였다. 늑대잡이대오는 테레크목장을 금방 벗어나자 한가지 소식을 듣게 되였는데 어제 카나스하곡에서 늑대로부터 큰 재난을 당했다는것이였다. 늑대무리가 빠이하바촌의 몽크네 양을 여러마리나 물어죽였는데 그 늑대무리속의 한마리가 목에 흰 털이 있더라는것이였다. 다른 늑대들이 양무리를 향해 달려들 때 목에 흰 털이 있는 양은 한옆에 서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있었는데 어쩜 그 늑대무리의 우두머리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마씨는 그놈이 긍정코 흰갈기늑대일것이라고 단정했다. 흰갈기늑대는 그 무리의 우두머리일뿐만아니라 산속의 늑대왕이다. 마씨는 그 소문에 대한 자기의 견해를 피력하면서 대원들을 이끌고 카나스하곡을 향해 걸음을 재우쳤다. 어제 빠이하바촌의 몽크는 양을 널따란 풀밭에 몰아넣은후 말을 타고 카나스호로 갔다. 몽크는 카나스호에 큰 홍어며 “호수괴물”이 실고있다는 소문을 들었던것이다. 몽크는 운수가 좋으면 큰 홍어나 “호수괴물”을 볼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나름대로 생각했었다. 카나스호에 살고있는 홍어나 “호수괴물”은 근년에 늘 사람들의 입에 오르군 했었는데 그 내용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질수록 더욱 신비하고 자극적이였으며 그에 대한 설법도 여러가지로 갈라졌다. 그중의 한가지가 “호수괴물”이 몇년전에 나타난적이 있다는것이다. 그때는 카나스호가 아직 개발되기전의 처녀지였다. 어느날, 한무리의 양들이 호수가에 소담히 자란 잔풀을 뜯고있었다. 그날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푸르디푸르렀는데 광활한 초원과 어울려 한폭의 태고연한 그림을 펼쳐보이고있었다. 갑자기 호수물이 반공중에 올리솟다가 갈라지면서 웬 괴물의 몸뚱이가 뿌옇하게 모습을 들어내더니 양 몇마리를 붙잡아 호수에 끌어들였다. 목민이 호수가로 달려와보니 수면에는 한고패 또 한고패의 잔잔한 파문만 일어났다가 사라질뿐이였다. 나머지 양들은 너무도 놀라 연신 “매매매…” 하고 당황스럽게 울어대고있었다. 다른 한가지는 큰 홍어에 대한 이야기인데 몇년전 홍어도 호수에 나타난적이 있다는것이다. 어느날, 한 사람이 호수가의 큰 돌판에 앉아 낚시질을 하고있었다. 온 오전이 다 지났지만 낚시군은 물고기 한마리도 낚지 못하였다. 낚시군은 기분이 잡쳐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그때 눈앞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깔고 앉았던 돌판이 갑자기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차츰 호수중앙으로 움직여갔던것이다. 낚시군이 자세히 살펴보니 그가 온 오전을 깔고 앉았던 “돌판”은 돌이 아니라 큰 물고기였던것이다. 그후에도 큰 홍어가 나타났었는데 맞은켠의 산마루에 있던 한 사람이 똑똑히 보았다는것이다. 그 사람이 본 홍어의 길이는 10여메터가 실히 되였다고 했다. 그놈이 몸을 움직일 때마다 수면에 큰 파도가 일어났는데 그때마다 옹근 호수가 흔들리는듯싶었다는것이다. 잠간후 그놈이 갑자기 수면에 솟아올랐는데 물고기모양의 대가리와 아가미, 날개, 배, 꼬리를 똑똑히 가려볼수 있었다. 그놈은 한번 수면에 솟았다가 인차 다시 물속에 들어갔고 수면은 따라서 평온을 찾았다는것이다. 몽크는 오래도록 호수가에서 서성이였지만 호수에서 아무런 이상한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몽크는 자기가 때를 맞춰오지 못해 홍어와 “호수괴물”이 바닥에서 잠을 자고있는것일것이라고 생각했다. 몽크는 호수가에 예쁜 조약돌들이 널려있는것을 보고 몇개 주어가지고 돌아가려고 마음 먹었다. 그때 몽크가 타고왔던 말이 갑자기 호용하면서 불안하게 발굽을 모래를 파서 사처에 튕겨놓았다. 일종의 불안한 에감이 몸크의 머리를 치고들어왔다. 몽크는 자기의 양들이 근심되여 말을 타고 양무리를 찾아 풀밭으로 달려갔다. 양무리는 조용히 풀을 뜨고있었는데 아무런 이상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몽크의 말은 여전히 불안하게 울어댔다. 어쩌면 큰 위험이 그놈곁에 도사리고있기라도 하는듯싶었다. 혹시 늑대라도 있는것일가? 말은 령성이 있는 동물로서 늑대에 대한 감각이 아주 정확했다. 늑대가 아직 모습을 들어내지도 않았는데 말은 벌써 늑대를 감지하고 경각성 높이 소리를 지르군 했다. 경험이 풍부한 목민들은 말이 한번 소리를 지르는것은 달리겠다는 뜻이고 세번 소리를 지르는것은 긍정코 늑대가 왔다는 뜻이라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몽크는 늑대가 다가오고있다고 확신하고 급히 말에서 내려 양들을 한곳에 몰아세웠다. 몽크는 양을 몰고 카나스강을 건너 맞은켠에 있는 산기슭으로 가려고 게획했다. 양무리는 강기슭으로 가더니 웬지 좀처럼 물에 들어서려고 하지 않았다. 그때 말이 또 몇번 울어번졌다. 몽크는 속으로 못내 긴장해서 있는 힘을 다해 양들을 강에 몰아넣었다. 몽크는 지레 긴장했던 탓으로 양들이 강에 들어서기를 저어하고 맗이 불안하게 울부짖는다는 점에 주의를 돌리지 못했던것이다. 양무리가 금방 강중심에 들어섰을 때 갑자기 맞은켠으로부터 히스테리적인 울부짖음소리가 들려오더니 늑대무리가 산언덕에서 달려내려와 강기슭을 닿았다. 양무리는 허둥지둥 강중심에 몰켜섰다. 늑대들은 강역에 붙어서서 호시탐탐 양무리를 지켜보고있을뿐 급히 강에 들어서려고 하지 않았다. 몽크는 늑대들이 무엇때문에 인차 강에 들어가 양무리를 덮치지 않는지를 알수 없었다. 몽크는 돌멩이를 주어 양무리를 향해 뿌렸다. 양무리로 하여금 빨리 강을 건느게 하려는 심사에서였다. 돌멩이가 한놈의 등을 맞혔다. 그와 함께 양무리가 또 강에서 허둥거려 일대 혼란을 이루었다. 이때 늑대무리에서 아치러운 울부짖음이 터졌고 이어서 늑대 한마리가 무리앞에 나섰다. 몽크는 앞에 나선 늑대의 목에 흰털이 있는것을 보아냈다. 그 시각 흰털은 웬지 음침한 빛을 뿌리면서 몽크로 하여금 일종의 공포감을 느끼게 하였다. 몽크는 전에 마을의 로인들로부터 목에 흰털이 있는 늑대가 바로 흰갈기늑대라는 말을 들은적이 있었던것이다. 흰갈기늑대는 늑대세계에서 제일 흉맹한 품종이였다. 몽크는 덮쳐드는 공포로 하여 온몸이 와들와들 떨리기 시작했다. 흰갈기늑대가 한마디 울부짖기만 하면 강역에서 서성거리는 늑대들이 양을 향해 덮쳐들것만 같았던것이다. 아니나다를가 흰갈기늑대가 한마디 울부짖자 늑대들이 첨벙첨벙 강에 뛰여들었다. “세상에, 끝장이야!” 몽크는 흠칫 몸을 떨면서 절망적으로 소리치고는 인차 양무리를 강변으로 되돌아오라는 뜻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몽크의 부름소리는 늑대들의 울부짖음에 눌려 양무리에 닿지 못하는듯싶었다. 양들은 진퇴량난이 되여 강중심에서 갈팡질팡할뿐이였다. 몽크는 양들이 강중심에 다달은후 공격을 개시하려고 늑대무리들이 일부러 시간을 끌면서 때를 기다렸다는것을 알것 같았다. 양은 물에서 빨리 달릴수 없기에 늑대들이 손 쉽게 양을 잡을수 있었던것이다. 삽시에 강물은 뻘겋게 물들기 시작했다. 늑대들이 양을 물어죽이기 시작했던것이다. 몽크를 더욱 놀라게 한것은 늑대들이 자유자재로 헤염을 친다는것이였다. 늑대들은 목숨을 잃은 양을 물고 유유히 강변을 향해 헤여왔던것이다. 몽크는 자기의 양들이 늑대에게 한마리 또 한마리 죽어가는것을 두눈을 펀히 뜨고 지켜볼수 밖에 없었다. 몽크로서는 그야말로 어쩔수 없는 상황이였다. 모든 늑대들이 저마다 죽은 양을 물고 강역에 오르자 다행히도 목숨을 건진 나머지 몇마리 양이 몽크의 곁으로 다가왔다. 몽크는 양들을 몰아 강변을 떠나게 했다. 그때에야 몽크는 말이 발굽으로 땅을 차서 큼직한 웅뎅이를 만들어놓은것을 발견했다. 이 소문은 점심에 빠이하바촌에 전해졌다. 사람들은 모두 늑대의 창궐함과 교활함에 놀라마지 않았다. 어쩌면 사람은 늑대의 적수가 될수 없다고 회의를 느끼는이들도 있는것 같았다. 사실 사람이 적수공권으로 늑대무리를 만나면 운수사납게도 고스란히 변을 당할수 밖에 없을것이였다. 하지만 빠이하바촌의 많은 사람들은 결코 늑대에게 손을 들려고는 하지 않았다. 황차 늑대잡이대원들이 마을에 도착했는지라 그들과 힘을 합쳐 늑대무리를 소멸하려고 마음을 다졌다. 늑대가 아무리 빠르다고 해도 늑대잡이대원들의 총알만큼은 빠르지 못할것이라도 믿고있는 그들이였던것이다. 만약 늑대무리에서 먼저 한마리만 잡는다면 다른 늑대들은 사람들이 살상력이 대단한 무기로 자기들을 데처하고있다는것을 알게 될것이고 그러면 더 이상 사람을 향해 덮치려고 하지 못할것이였다. 어떻게 하면 늑대무리를 깡그리 소멸할수 있을가? 이 문제는 사람들이 오래동안 참답게 계획해야할것이였다. 목민들은 그제야 상급에서 늑대잡이대오를 무은것은 참말 잘 된 일이라고 긍정했다. 늑대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탄알보다는 많지 못할것이였다. 어미늑대가 새끼를 배서 낳기까지는 4, 5개월의 시간이 걸렸는데 사람은 이 시간이면 수천수만매의 탈알을 만들어낼수 있을것이였다. 하기에 사람은 늑대를 깨끗이 소멸하지 못할가봐 근심을 할 필요는 없는것이였다. 다어르한은 아직 돌아오지 않고있었다. 동네사람들은 모두 올해 늑대가 너무 많아 머리를 앓고있었다. 그들은 어느날 늑대무리가 갑자기 빠이하바촌을 덮칠가봐 두려워하고있었다. 그 며칠, 동네사람들은 모여앉기만 하면 어떻게 늑대무리를 대처할것인가를 의논했다. 그때 늑대잡이대오가 카나스하곡으로 늑대잡이를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였던것이다. 목민들은 그 소식을 듣고 모두들 기뻐마지 않았다. 한 목민은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부터 늑대가 많아지기 시작했지. 하다보니 지금은 늑대를 막을래야 막을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니까. 만약 더 이상 늑대를 잡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살아갈수 없을거네.” 다른 한 사람은 또 이렇게 말했다. “이 몇년간의 침통한 교훈이 증명하다싶이 늑대와의 싸움을 통해 남은것은 늑대와 사람간의 원한뿐이죠. 이런 원한은 생기기 쉽지만 지워지기는 어렵지요. 늑대들의 성화에 앞으로는 더욱 살기 어려워질것이요.” 모두들 그 말에 참 일리가 있다고 느꼈다. 사실이 증명하다싶이 날마다 늑대가 늘어감에 따라 사람들이 받는 피해도 늘어가고있으니 하루속히 늑대를 섬멸해야함은 천만 지당한것이였던것이다. 다르어한은 늑대 한마리를 잡으면 열마리가 달려들어 복수를 할것이라고 했지만 사람들은 모두 그것은 다르어한의 억측에 불과한것이라고 믿었다. 혹시 그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그것은 썩 후에 생길수 있는것이니 급한것은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끄는것이라고 판단했던것이다. 하면서도 사람들은 한번도 그 말을 긍정하는것은 잊지 않았다. “다르어한의 말은 참 도리에 맞다니까.” “이 도리는 실로 옛말이 그른데 없다는것을 증명하는것이요. 예로부터 늑대는 령성을 가지고있다지 않았소?” “그렇지. 늑대는 천성적으로 령성을 가지고있지. 그렇지 않고야 어떻게 달을 바라보며 포효할수 있겠소. 늑대가 달을 보고 포효하는것은 그놈들이 하늘에 두고온 고향이 그리워서라는거요. 몽골족로인들이 세상을 뜬후 사람들은 우차에 그 시신을 싣고 초원에서 한없이 달린다오. 그렇게 달리다 시신이 우차에서 떨어지면 사람들은 더 이상 그 시신을 관계하지 않는는데 밤에 어둠을 타서 늑대들이 먹어버리는거지. 역시 그들은 늑대가 하늘이 내린 령물이라고 믿기때문이겠지. 늑대가 시신을 먹어버리면 그 령혼은 늑대와 함께 하늘에 올라간다고 믿는것이지.” “늑대에게 그런 령성이 있다니… 과연 사람은 늑대의 적수가 될수 없는것이지.” “하지만 지금은 늑대잡이대오까지 있어데 두려울게 없지. 그들에겐 총까지 있는데야 뭘.” 몽크는 겨우 살아남은 6마리의 양을 몰고 빠이하바촌으로 돌아갔다. 그는 사람들이 의논하는 소리를 듣고 거친 숨을 톺으면서 말했다. “괜히 입들만 살아가지구 거기서 상아가 돋아날것 같소? 손가락으로는 말안장을 들어내릴수 없는거요. 만약 늑대가 당신들의 양을 잡아먹었다면 당신들이 이렇게 편히 앉아서 입방아들을 찧을수 있겠소?” 모두들 사실 몽크를 동정하지 않는것은 아니였다. 그들도 늑대들이 몽크네 양을 다 잡아 먹고 겨우 6마리만 남겼다는것을 알고있었던것이다. 몽크네 양은 늑대들에게 놀라 혼이 나가있었고 몽크는 늑대들이 자기네 양을 숱해 잡아먹었다는것에 놀라 넋을 놓고있었다. 그때 사람들의 눈에 비친 몽크는 늑대에게 혼을 빼앗긴 불쌍한 양을 방불케 하였다. 몽크는 늑대에게 혼을 빼앗긴 6마리의 양을 우리에 몰아넣은후 문에큼직한 자물소리를 잠그고는 다시 집을 나서지 않았다. 2 이튿날아침, 마씨는 늑대잡이대원들을 인솔하여 카나스하기슭에 이르렀다. 그들은 멀리에서부터 한 사람이 강기슭에 앉아 가딱 움직이지 않고 넋을 잃은듯 수면을 응시하고있는것을 보았다. 그 사람이 바로 몽크였다. 그는 늑대무리에 숱한 양을 잃은후 빠이하바촌에 돌아가 장밤을 뜬눈으로 보냈다. 그는 자기가 이 몇년사이 늑대에게 양을 제일 많이 잃은 사람으로 되였다고 생각하니 도무지 동네사람들앞에서 머리를 들고다닐수 없을것 같이 창피하게 느껴졌다. 생각할수록 분한 생각만 들었고 그 분노가 속에서 사나운 파도로 되여 아픈 가슴을 후려쳤다. 몽크는 장밤 눈 한번 못 붙이고 낡을 밝혔다. 몽크는 큰 칼을 찾아들고 늑대를 찾아 복수를 하려고 길에 올랐다. 하지만 어데 가서 득대를 찾는단 말인가? 설레이는 파도는 쏴—쏴— 청승스럽게 울어대고있었는데 어쩌면 쉬지 않고 몽크를 비웃는것만 같았다. 몽크는 떨어버릴수 없는 굴욕을 느끼고있었다. 늑대는 이곳에서 배를 불리고 이미 다른 곳으로 양무리를 찾아 떠난듯싶었다. 몽크는 차츰 그곳에서 비애에 차 넋없이 양무리를 기다린다고 해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것을 알것 같았다. 몽크는 실망한 나머지 바위에 머리를 박아 죽어버리고싶었다. 이때 늑대잡이대오가 왔다. 몽크는 한줄기의 희망을 보는것만 같았다. 늑대잡이대오는 총으로 손쉽게 늑대를 쏘아 잡을수 있을것이였다. 그렇게만 된다면 몽크는 단번에 가슴속에 서리고 서렸던 원한을 풀수 있을것 같았다. 몽크는 저도 몰래 힘이 솟구쳐 선뜻이 늑대잡이대오의 길안내를 하겠다고 자진해나섰다. 길에서 몽크는 늑대잡이대원들이 의론하는 말을 들었는데 다어르한이 있다면 긍정코 늑대를 단번에 쏘아죽일수 있을것이라는것이였다. 몽크는 빠이하바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이 다어르한이라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다어르한은 40여년이나 사냥으로 생계를 이어왔는데 그만치 솜씨도 좋았다. 그의 손에서 목숨을 잃은 늑대가 얼마나 되는지 그도 모를것이였다. 몽크는 다어르한처럼 뛰여난 솜씨로 늑대를 족쳐버리고싶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늑대에게 목숨을 잃은 양들의 복수를 단번에 해치울수 있을것 같았다. 마씨는 몽크에게 어제 있은 일에 대하여 상세하게 물었다. 몽크가 입을 열었다. “늑대무리에서 한 놈은 목에 흰털이 둘러져있었어요. 다른 늑대들은 모두 그놈의 눈치를 보며 행동했구요. 나의 양들이 강에서 늑대들에게 물려죽을 때 그놈은 강역에 서서 흥미있게 지켜보고있었어요. 마치 큰 령도가 부하들이 일하는것을 지켜보는듯 했지요.” 마씨는 목에 흰털이 둘러져있는 그놈이 긍정코 흰갈기늑대일것이라고 다시한번 판단했다. 마씨는 총가목을 으스러지게 틀어쥐였다. 마치도 흰갈기늑대가 곁에 숨어서 수시로 덮쳐들 위험이 있을가 잔뜩 긴장한듯한 태세였다. 흰갈기늑대에 대한 정확한 소문을 들은 마씨는 일면 기쁘기도 하고 일면 근심스럽기도 하였다. 기쁘다면 흰갈기늑대가 어디에 있는줄을 끝내 알아낸것이였다. 하기에 마씨에게는 정확한 공격목표가 생겼던것이다. 반면에 근심스러운것은 흰갈기늑대가 생각하던것보다 더 사나울수도 있을것이라는 점이였다. 마씨는 정말 흰갈기늑대를 마주한다면 어떻게 응부해야 할가를 두고 참답게 생각을 굴려보았다. 단번에 그놈을 쏘아죽인다는것은 어쩜 생각처럼 쉽지 않을수도 있다는 우려가 들었다. 만약 총을 쏘아 단번에 그놈을 죽여버리지 못하면 자기뿐만 아니라 전반 늑대잡이대오의 수치로 될것이 번연했다. 그렇다고 흰갈기늑대를 잡자던 계획을 포기할수는 없었다. 만약 그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다면 굴욕적인 그 소문은 아얼타이의 구석구석을 파고들것이였다. 그렇게만 된다면 마씨와 그의 늑대잡이대원들은 진짜로 명실공히 사람들앞에 얼굴을 들고다닐수 없는 “그림자가 없는 사람”으로 될것이였다. 마씨네는 손쉽게 늑대들이 양을 감춰둔 곳을 찾아냈다. 늑대는 확실이 교활한 짐승이였다. 그놈들은 죽은 양을 강에 있는 돌멩이밑에 감춰두었던것이다. 그렇게 감추면 새나 다른 동물들이 쉽게 발견할수 없었고 죽은 양에서 나는 냄새도 공기중에 떠돌지 않을수 있었던것이다. 그야말로 하나의 실수도 없게 보관했다고 할수 있었다. 하지만 전날밤에 한차례의 큰 비가 내려 물이 붇는바람에 양꼬리 하나가 돌밑에 삐쭉이 들어나왔다. 늑대잡이대원들이 한눈에 그 양꼬리를 발견하고 힘껏 잡아당기자 죽은 양 한마리가 통째로 끌려나왔다. 그들은 다른 돌멩이밑에서 죽은 양 몇마리를 순식간에 찾아냈다. “당나귀 밑구멍에서 빠져나온것 같은 늑대란 놈, 교활하기는 도둑놈들 찜져먹겠네.” 마씨가 걸쭉하게 한마디 욕설을 퍼부었다. 몽크는 늑대들이 인차 죽은 양을 먹어버릴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여 그는 죽은 양들을 돌밑에서 빼내여 강역으로 끌어올렸다. 몽크는 늑대들이 그곳으로 돌아와 못내 실망할것이라 생각하며 저도몰래 잘코사니를 불렀다. 그때 마씨가 몽크를 막으며 입을 열었다. “인젠 이곳이 바로 늑대무리가 죽은 양을 숨긴 곳이라는것을 확인할수 있소. 그러니 우리는 이곳에서 조용히 그놈들을 기다려야 하오. 늑대란 놈들은 모두 교활하기 그지없소. 하기에 죽은 양들을 모두 제자리에 가져다놓아야겠소. 자칫하면 그놈들이 의심하고 꼬리를 뺄수도 있으니까.” 몽크는 마씨의 말에 도리가 있다고 생각되였다. 하여 그는 아쉬움을 달래면서 죽은 양들을 가져다 물속의 돌멩이밑에 밀어넣었다. 마씨는 자세히 지형을 관찰했다. 산등성이뒤에 있는 몇개의 큰 바위는 그럴듯한 매복처로 될것 같았다. 늑대들이 돌아와 죽은 양을 먹으려고 할 때 늑대잡이대원들은 높은 지대에 서서 아래에 대고 총을 쏘아 늑대들을 소멸하기 쉬울것이였다. 계획이 서자 그들은 인차 몸을 움직여 매복지점으로 들어가서 총에 탄알을 제우고 늑대무리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들은 늑대들의 청각이 아주 민감하다는것을 알고있었다. 만약 늑대들이 죽은 양을 찾아 다가올 때 격발기를 노리쇠를 당긴다면 늑대들은 그 동정을 듣고 인차 도망칠것이였다. 하기에 늑대들이 죽은 양을 숨겨둔 곳으로 오기전에 탄알을 재워두었다가 늑대들이 다가들기만 하면 총을 쏠수있어야 했던것이다. 온 오전을 기다렸지만 늑대들의 그림자도 얼씬하지 않았다. 점심때, 몽크의 부친 아칸이 말을 타고 찾아왔다. 아칸은 아들 몽크네 양을 늑대가 물어갔다는 소문을 들은후 속에서 울화가 치밀어 가만히 앉아만 있을수 없었던것이다. 아칸 역시 동네에서는 한다하는 오랜 사냥군으로서 30여년의 사냥경험이 있었다. 하기에 빠이하바에서 사냥을 꼽으라면 다어르한과 비슷하게 이름을 올릴수 있었다. 하늘 높은줄 모르고 늑대란 놈들들이 감히 아칸 아들네 양을 잡아먹었으니 아칸이 어찌 가만히 앉아만 있을수 있으랴. 아칸은 도무지 진정할수 없었다. 오랜 사냥경력이  있는 아칸으로서는 도무지 그같은 릉욕을 받아당할수 없었던것이다. 아칸은 오래동안 간수하여두었던 사냥총을 내리워 잘 닦아들고 단숨에 말을 달려 쫓아왔던것이다. 문을 나설 때 마누라가 아칸의 뒤에 대고 소리쳤다. “어디로 가슈? 태풍을 만난 나무잎처럼 씽—씽— 날아서.” 아칸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카나스하루 가오. 늑대 잡으러.” “안가면 안 돼요?” 마누라도 올해 늑대가 수없이 많이 나타났다는 소문을 들은지라 모름지기 근심이 나서 애원하듯 소리쳤다. “안되지. 안가면.” “왜 안돼요?” “늑대란 놈들이 우리 몽크네 양을 잡아먹었다우. 그 애 겨우 20살을 넘겨서 바람할애비두 아직 그 애 머리에 쓴 모자를 날려보지 못했는데… 눈령감두 아직 그 애 신은 장화에 얼음 한번 얼궈보지 못했단 말이우. 그런 애숭이가 그래 이같이 엄청난 일을 혼자 받아당할수 있단 말이요? 그러니 애비인 내가 가서 그 애를 위로해야 할게 아니요? 그 애와 늑대잡이대원들을 도와 늑대를 잡아야 한단 말이우.” “그런 일이네요. 좋아요. 그럼 가보세요.” “그러이, 나는 가오.” 아칸은 소리치면서 말등에 뛰여 올라 두 다리를 말배에 딱 부쳤다. 말은 인차 마을을 벗어났다. 말이 껑충껑충 뛰여가는바람에 아칸은 발이 말등자에 비틀려 몹시 아파났다. 아칸은 잠간 발을 움직여 아픔을 달래다가 다시 두 다리로 말배를 꽉 조이며 채찍을 날렸다. 말은 눈 깜빡 할 새에 멀리로 뛰여갔다. 몽크는 그때까지도 카나스하기슭에 있었다. 몽크나 마씨는 모두 사냥에 깊은 경험이 없기에 늑대의 상대가 못되였다. 그들이 만약 맹목적으로 늑대와 대적을 한다면 의외의 일이 생길 가능성이 많았다. 카나하기슭에 다달은 아칸은 머리를 들어 저멀리 설산을 바라보았다. 그는 가슴속밑자락에서 한줄기의 힘이 솟구쳐오르는듯싶었다.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나는 왜 이렇게 박절하게 늑대를 잡으려고 하는가? 가슴이 후둑후둑 뛰게 아칸의 등을 미는 답안은 바로 원한때문이였다. 늑대들이 아들 몽크네 양을 물어죽였기때문이였다. 하기에 아칸은 늑대를 잡아 아들 몽크를 위해 복수를 해야 했던것이다. 그외 또 다른 원인이라면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수 없는 비밀 같은것이 한가지 있기는 했다. 근년에 와서 아칸은 늑대가죽이나 이발, 늑대대퇴골 같은것을 밀매하여 적지않은 돈을 벌었던것이다. 며칠전에 하바하현성의 장사군들이 인편에 소식을 전해왔는데 올해는 늑대가죽이나 늑대이발 그리고 늑대대퇴골이 모두 값이 폭등했다는것이였다. 거기다 올해 늑대들이 사처에 출몰한다는 말까지 얻어들은 아칸은 재간껏 솜씨를 펴서 늑대를 잡아 목돈을 벌어볼 생각이였다. 올해 수많은 늑대들이 출몰하여 목민들에게 일종의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고있지만 어쩜 아칸에게는 돈을 벌수있는 절호의 기회로 되는지도 몰랐다. 아칸은 이 기회를 놓지지 않고 늑대를 잡으리라 결심했던것이다. 늑대잡이대원들은 제발로 찾아온 아칸을 보고 모두 기뻐마지 않았다. 어쩌면 물이 드디여 강에 흘러들고 양무리에 마침내 선두양이 생겼다고 생각하는것 같았다. 아무튼 그들에게는 든든한 의지가 생겼던것이다. 아칸은 늑대들이 물어죽인 양을 물속의 돌밑에 숨겼다는 말을 들은후 한껏 량미간을 찌프렸다. 아칸마저도 늑대들이 그처럼 교활할줄은 생각지 못했던것이다. 만약 강물이 불면서 양꼬리를 밖에 들어내지 않았더라면 누구도 늑대들이 물속에다 꿍꿍이를 꾸며놓았다는것을 몰랐을것이다. 마씨가 아칸에게 물었다. “어쩌면 좋을가유? 우리는 이미 반나절이나 기다렸는데 늑대란 놈들이 여직 나타나지 않는구만유.” 아칸이 입을 열었다. “그놈들이 어제 우리 아들네 양을 잡아 만포식했으니 아직 배가 고프지 않은거겠지. 그러니 이렇게 반나절을 열번 더 기다려도 그놈들은 오지 않을거네.” 마씨는 얼굴에 짙은 근심을 담아들고 아칸을 바라보면서 다급히 물었다. “그럼 우리 어찌하면 좋을가유?” 아칸이 시무룩히 웃으며 말했다. “자네는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지만 그놈들은 스스로 어찌해야 할지를 잘 알걸세. 그놈들은 진작 자네들이 찾아올것을 짐작했을걸.” 늑대잡이대원들은 모두 이상한 눈길로 아칸을 바라보았다. 자기들이 길에서 발자국도 저겨디디며 그렇게 조심했는데 늑대들이 어떻게 그 동정을 알수 있는가 하는 의아한 눈길들이였다. 그들은 마씨의 충고대로 길섶에다 오줌을 누지 않았고 침 한방울 뱉지 않았으며 지어는 길에 난 발자욱마저 나무잎으로 살살 쓸어서 지우며 왔던것이다. 그런데도 늑대가 그들의 동정을 알아냈단 말인가? 아칸이 마씨네를 보고 물었다. “자네들, 바람에는 신경을 썼댔나? 사냥군이라면 응당 첫해에 바람소리를 든는법을 배워야 하고 구름을 보는법을 배워야 한다네. 자네들은 바람에 대하여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늑대란 놈들은 아닐걸세. 그들은 바람을 자기들의 생명의 끈으로 생각하고 단단히 잡고있다네. 어쩌면 바람에 의지해 살아간다고도 할수 있지.” 늑대잡이대원들은 그제야 자기네들이 근본 바람에 대하여 생각해보지 않았다는것을 의식하게 되였다. 하지만 늑대잡이대원들은 응당 어떻게 바람에 주의를 돌려야 하는지를 모르고있었으며 바람을 방심하면 어떤 후과가 초래된다는것도 알지 못했다. 아칸은 늑대잡이대원들을 보고 두손을 높이 쳐들어 손으로 바람을 느껴보라고 했다. 잠간후 그들은 모두 손을 내리우고 손에 바람이 느껴진다고 대답했다. 바람은 어느새 그들의 손을 차갑게 해주던것이다. 아칸은 바람을 마주하고 섰다. 어쩌면 바람을 향해 일종의 경건한 의식을 하는것만 같았다. 누군가 바람을 알고있다면 그것은 그가 바람을 존경하기때문일것이다. 누군가 바람을 알고 그 바람을 존경한다면 곧 바람을 리용할줄 할게 될것이다. 누군가 바람을 잘 리용하기만 한다면 그는 바람으로부터 크나큰 보답을 받게 될것이다. 아칸은 손으로 카나스하곡아래쪽에 있는 산기슭의 평지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기를 보라구. 얼마나 평탄한가. 바람은 저기까지 불어간후 앞으로 더 나아가지 않구 자취를 감출걸세. 그래서 늑대들은 저 부근에 숨기를 좋아할거구. 그것은 자기들의 냄새가 바람에 날려 다른 곳에 퍼지는것을 막기 위해서겠지. 다른이들이 냄새마저 맡지 못하는 곳에 숨에서 태평성세를 누리려는거겠지. 어쩌면 그놈들이 지금 어딘가에 숨어서 자네들이 자리를 뜨기를 기다리고있을지도 몰라.” 한 늑대잡이대원이 물었다. “늑대들이 어떻게 우리가 이 곳에 있는줄을 알가요?” “자네들은 지금 바로 바람이 통하는 길목에 있지 않는가. 바람이 자네들의 냄새를 실어다준거지. 늑대들은 그렇게 자네들의 냄새를 맡고 자네들이 지금 이곳에 있다는것을 아는거구. 그놈들은 긍정코 저 평지부근의 어느곳에 숨어있을걸세.” 바람도 사람들의 행적을 폭로할수 있구나. 늑대잡이대원들은 갑자기 뭔가를 터득하는듯싶었다. 따라서 늑대들의 교활함에 다시한번 놀라기도 했다. 그들은 모두 늑대야말로 신출귀몰하는 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사람은 웬간해서 늑대를 쫓아잡을수 없겠지만 늑대는 어느 순간 어느곳에서 불쑥 뛰여나와 사람을 공격할수도 있는것이였다. 참으로 다행이였다. 만약 아칸이 이런것들을 알려주지 않았다면 늑대잡이대원들이 어찌 생각이나 했겠는가? 늑대란 참으로 무서운 짐승이구나. 마씨는 스멀스멀 밀려드는 공포를 떨쳐버릴수 없었다. 하지만 또 반면에 강한 승부욕이 파랗게 머리를 쳐드는것도 어쩔수 없었다. 흰갈기늑대도 꼭 저 무리에 있을것이다. 바로 저기서 늑대무리를 지휘하여 사람들과 싸워이기려고 할것이다. 마씨는 산기슭의 넓은 평지를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나무와 돌멩이와 흙언덕 외에 다른 물건이라고는 없었다. 늑대는 어디에 숨은것일가? 마씨는 이미 테레크목장에서 흰갈기늑대의 흉악함을 경험한적이 있는지라 만약 정말 그놈이 이 늑대무리를 지휘한다면 긍정코 사람들의 눈에 뜨이지 않을 교묘한 곳에 몸을 숨겼을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씨는 늑대들이 비록 눈에 뜨이지는 않지만 꼭 평지부근의 어느 곳에 몸을 숨기고있을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런 생각이 들자 마씨의 눈앞에는 또 흰갈기늑대의 교활한 눈길이 떠올랐다. 그 눈길은 마씨를 다시 공포에로 몰아갔다. 어쩌면 머리우에서 한들거리는 예리한 보검이 당금 머리에 떨어질것만 같이 조마조마한 심정이였다. 마씨는 흰갈기늑대가 속시원히 눈앞에 나타났으면 그래도 숨통이 트일것 같았지만 일면 또 흰갈기늑대가 정말 자기들을 덮칠가봐 두렵기도 했다. 흰갈기늑대가 나타나면 마씨는 잽싸게 방아쇠를 당길것이지만 단번에 그놈을 명중하지 못할가봐 두려웠던것이다. 아칸은 마씨의 복잡한 심사를 환히 꿰뚫어보는것 같았다. 그는 벙글써 웃으며 마씨에게 물었다. “자네, 두려운거지?” 마씨는 아칸이 자기를 겁쟁이라고 할것 같아 인차 발뺌을 했다. “아, 아니요.” 아칸이 말을 이었다. “말의 심사는 발굽에서 보이고 사람의 심사는 얼굴에서 보이는거라네. 자네의 얼굴에 지금 나 무섭수 하구 쓰여져있다네.” 마씨는 더 이상 아칸을 속이고싶지 않아 속내를 들어내보였다. “그래유, 웬지 흰갈기득대가 정말 무섭단 말이예유, 그놈은 보기 드물게 흉악하거든요.” 아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들이 테레크목장에서 이미 그놈을 만났더랬다지? 나두 그 소문을 들었네.” “그래요, 우리는 그때 그놈을 함정에 빠뜨렸댔어유. 총으로 단번에 그놈을 쏴죽일수도 있었쥬. 하지만 그놈은 끝내 도망친걸유.” 아칸이 알겠다는듯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다어르한이 떠난후 그놈이 곧 도망을 쳤더랬지?” “그래유.” “음… 만약 다어르한이 떠나지 않았더면 그놈이 도망치지 않았을수도 있었겠네. 다어르한이 떠나자 마자 그놈이 도망친걸보면…” “다어르한 그 사람의 몸에서는 늘 흉악한 빛이 흐른다니까요. 흰갈기늑대도 그 점을 느꼈던가봐요. 그래서 다어르한이 떠나자마자 시름놓고 도망친것 같아유.” 아칸이 다시한번 머리를 끄덕이며 “아마 그럴걸세.” 하고 말했다. 아칸은 그런 점까지 인차 터득하는것을 보면 마씨도 보통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되였다. 마씨가 아칸에게 말했다. “나는 꼭 흰갈기늑대를 잡을거예유. 그놈이 바로 저 아래에 있을거니까.” 아칸이 마씨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럴수도 있겠지.” 마씨는 애원하는듯한 목소리로 아칸에게 물었다. “어서 말씀 좀 해보세유, 우리 지금 어떻게 해야 할가유?” 아칸이 대답했다. “방법이라… 아마두 먼저 그놈을 유인해내야 하겠지?” 늑대잡이대원들은 그 말에 모두 흥분하기 시작했다. 만약 정말 흰갈기늑대를 유인해낼수 있다면 그들은 그놈에게 통쾌하게 총알세례를 안겨줄것이였다. 흰갈기늑대가 아무리 교활하다고 해도 비발치느듯 날아드는 총알은 피할수 없을것이니까. 아칸은 늑대잡이대원들을 바라보며 모두들 자기의 지휘에 따라야 한다고 충고했다. 말 그대로 흰갈기늑대를 대처하기 쉽지 않을것이요, 만약 그놈을 정말 쏘아죽인다고 해도 그렇게 현명한 방법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놈이 죽으면 자칫 사람과 늑대 간의 기나긴 혈전이 시작될수도 있다는것이였다. 지난날일을 돌이켜보아도 사람은 언제나 원한에 찬 늑ㄹ대들의 보복적인 진공을 받아당할수 없었던것이다. 만약 늑대들이 정말 원한이 골수에 사무쳐서 사람에게 보복을 할라치면 사람은 십중팔구 목숨을 보존하기 어려웠던것이다. 하기에 흰갈기늑대를 죽이지 않고서도 늑대무리를 쫓아버릴수 있으면 극력 그 방법을 택하는게 명지한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그놈들을 쫓아서 더 이상 양을 손해보지 않으려는것이 목적이라면 그것이 최상의 방법이라는것이였다. 늑대잡이대원들은 아칸이 왜 그렇게 이야기하는지를 알수 없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칸은 강가에 앉아서 하염없이 협곡쪽을 바라보았다. 뽀얀 안개가 산을 먹어버려 산에 난 길이 잘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산에 워낙 길이 없는듯 느껴지기도 했다. 목장을 드나드는 소와 양은 반드시 그 산길을 지나야 했다.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겨울이면 산길은 눈속에 누워 묵묵히 이듬해 다시 나타날 소나 양을 기다렸다. 평소 산길은 늘 고요했다. 오직 늑대가 나타나야만 산길은 잠간씩 북적거렸다. 늑대는 문뜩문뜩 나타나서 소나 양을 덮치군 했다. 하기에 해마다 몇마리의 소나 양들이 이 길에서 목숨을 잃군 하였다. 길은 소리없이 멀리로 뻗어가고 그 길을 오가는 적지 않은 소와 양들이 해마다 늑대들에게 목숨을 잃었다. 마씨가 아칸에게 물었다.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가요?” 아칸은 잠간 생각을 굴리더니 몽크와 한 늑대잡이대원을 불러다가 방법을 대서 양 몇마리를 그곳까지 몰아오라고 분부했다. 양이 있으면 늑대들을 유인해낼수 있다는것이였다. 몽크와 늑대잡이대원은 말을 타고 마을로 돌아갔다. 두시간후, 그들은 다시 카나스하곡아래쪽에 나타났다. 그들은 몽크네 집에 남아있는 여섯마리 양을 몽땅 몰아왔다. 그들은 떠날 때 아칸이 분부한대로 양을 카나스하곡에 몰아넣고 걸음을 멈추었다. 양들은 유유히 풀을 뜯기 시작했다. 몽크와 늑대잡이대원은 그곳에서 아칸의 기별을 기다렸다. 딱히 할 일도 없는지라 그들은 한담을 시작했다. 몽크와 늑대잡이 대원이 하곡에 들어서서 얼마 안되여 아칸과 늑대잡이대원들은몽크네 뒤를 따라 하곡에 들어가는 늑대무리를 발견하게 되였다. 20마리는 실히 될것 같았다. 그놈들은 몸을 한껏 낮추고 어슬렁어슬렁 몽크네를 따랐던것이다. 몽크와 늑대잡이대원은 바로 아칸이 늑대를 유인하기 위해 던진 미끼였던것이다. 늑대들이 나무잎과 바위에 의지해 몸을 숨기며 따라왔기에 몽크와 늑대잡이대원은 오래동안 그놈들을 발견하지 못했던것이다. 아칸과 늑대잡이대원들은 진작 늑대무리를 발견하고 주시하고있었다. 늑대무리가 비록 조용히 몽크네를 따라왔지만 행동만은 여간만 날렵하지 않았다. 그놈들은 한 굽이를 에돌자 삽시에 자취를 감춰버렸다. “늑대무리가 안 보여요.”     한 늑대잡이대원이 놀라 소리쳤다. 잠간후 그들은 늑대무리가 길 다른쪽에 있는것을 발견했다. 늑대무리는 굽이를 돌면 자기들의 행적이 발견될가봐 눈 깜빡 할 새에 길 다른쪽에 들어섰던것이다. 늑대무리는 산등성이에서 지켜보는 사람들도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행동이 날렵했던것이다. 마씨는 늑대무리에 흰갈기늑대가 있는가를 살폈다. 하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서 똑똑히 볼수 없었다. 그때 한 늑대잡이대원이 또 소리쳤다. “늑대무리가 또 없어졌어요.” 모두들 도정신해서 여기저기를 살폈지만 늑대무리는 과연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하곡에는 몽크와 그와 함께 간 늑대잡이대원과 몽크네의 6마리 양이 어렴풋이 보여올뿐이였다. 한참후에야 아칸네는 늑대무리가 로반아래에서 어슬렁어슬렁 걸음을 옮기는것을 볼수 있었다. 그때까지도 몽크와 늑대잡이대원은 자기들의 뒤를 따르는 늑대무리를 의식하지 못하고있었지만 그놈들은 고도의 경각성만을 가지고있었다. 그놈들은 길 한쪽으로 한동안 걸음을 옮긴후 인차 로선을 바꾸어 들어서군 했다. 늑대무리는 그 같은 경계심으로 자기들에게 미칠 어떠한 상해도 미연에 방비했던것이다. 늑대무리는 천친히 수림속에 들어섰다. 그 장면을 지켜보면서 아칸은 연신 감탄을 금치 못했다. “늑대들이 참으로 창궐하단 말이요, 창궐해. 분명 사람이 있는것을 알면서도 기어코 양을 잡아먹으려고 뒤를 따릊니 말이요. 마씨는 여진히 흰갈기늑대가 생각나서 아칸에게 물었다. “저 놈들속에 흰갈기늑대가 있을가요?” 아칸이 입가에 웃음을 띠우고 말했다. “보통 늑대도 대처하기 힘들어하면서 흰갈기늑대를 찾다니…” 마씨가 호기심을 버리지 못하고 아래말을 이었다. “며칠전에 테레크목장에서 다어르한은 흰갈기늑대가 바로 늑대왕이라는것을 알고있었어유. 하지만 그는 나에게 그 점을 알려주지 않았기에 나는 그저 그놈과 어깨를 스쳐지났을뿐이쥬. 나는 기어코 그놈을 죽여버릴거예유. 맹세해유.” 마씨의 말을 듣고 아칸이 입을 열었다. “맹세는 그렇게 쉽사리 하는게 아니라우. 이발은 어떻게 해도 칼로 변할수 없거든. 맹세만으로는 하늘을 떠받칠수 없는거라우. 하물며 그놈이 흰갈기늑대인데야. 어쩌면 자네는 며칠전에 이생에서 마지막으로 흰갈기늑대를 만난것일지도 모르는 일이라우. 후에는 다시 흰갈기늑대를 만날수 없을지도 있다는거지. 나는 30여년이나 사냥을 했지만 한번도 흰갈기늑대를 본적이 없다우.” 아칸의 말을 들으며 마씨는 가슴속밑자락으로부터 머리를 쳐드는 잔잔한 아픔을 느꼈다. 그 시각 마씨는 다어르한이 흰갈기늑대를 바라볼 때의 그 고통스럽고 차디찬 눈길을 떠올리고있었던것이다. 다어르한은 40여년이라는 사냥경력을 가지고있었다. 하기에 그 자신도 자기의 총에 맞아 죽은 늑대가 얼마나 되는지를 헤아릴수 없었다. 그런데도 다어르한은 왜 흰갈기늑대를 보면서 얼굴에 그 같이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을가? 마씨는 눈길을 수림에 들어선 늑대무리에게 돌렸다. 마씨는 더 이상 다어르한이 늑대를 바라볼 때의 그 눈길을 떠올리고싶지 않았다. 마씨는 속으로 다어르한의 종잡을수 없었던 그 눈길은 일종의 무서운 사실을 예고하는것이였을것이라고 짐작했다. 마씨는 그 무서운 사실이 무엇인지를 딱히 찍어 말할수는 없어도 심리적인 예감은 아주 강렬했으며 그 느낌 또한 사뭇 불길한것이였다. 마씨는 한숨을 내쉬면서 속으로 자신을 달랬다. 그래, 더 이상 그놈을 생각하지 말자. 흰갈기늑대란 그 존재 자체가 상세롭지 못한것이니까. 어떤 일이 있었더라도 그것은 다어르한이 당해야 할 몫이니까 나하구는 아무 관계도 없는거야. 마씨는 수림에 있는 늑대무리를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목에 흰갈기를 가진 늑대를 발견할수 없었고 그의 눈앞에도 다시는 다어르한의 착잡한 눈길이 떠오르지 않았다. 마씨는 그 늑대무리에 흰갈기늑대가 없다고 단정하려고 애를 썼다.  마씨는 이번 걸음에 꼭 흰갈기늑대를 잡겠다고 맹세했었지만 도무지 희망이 없을것 같았다. 그렇게 마음을 잡자 마씨는 어딘가 실의감 같은것이 몰려왔다. 늑대잡이대원들은 한시급히 늑대무리를 향해 공격을 개시하고싶어했지만 아칸이극력 막아나서며 이렇게 말했다. “급해할것 없소. 아직 그놈들이 우리와 멀리 떨어져있으니까. 만약 지금 뛰쳐나간다면 자네들이 아직 그놈들곁에 다달으지도 못했을 때 그놈들이 먼저 알고 도망갈거요. 그놈들은 소나 양이 목장에 들어가기를 기다려 긍정코 오래동안 수림에 매복해있을것이요. 올해 날씨는 늦도록 그렇게 따듯해지지 않는구만. 그래서 양무리들이 며칠 늦게야 목장에 들어가게 되는게지. 늑대들은 목장에 들어오는 양무리들을 기다리느라 진작 굶주림에 처해있을것이요. 그래서 어제는 미친듯이 몽크네 양을 잡아먹은거구.” 마씨가 아칸에게 다잡아 물었다. “그놈들이 어제 양고기를 배불리 먹었겠는데 왜 오늘도 물러가지 않는거죠?” “그놈들이 어제 양을 잡아 배불리 먹고서도 아직 물러가지 않는것은 올해 여름나이준비를 하기 위해서라오. 그놈들은 수많은 양무리나 소무리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것이지. 만약 양무리나 소무리가 나타나면 방금처럼 슬그머니 꽁무니를 따라서 그들이 어니 목장으로 가는가를 살피는게지. 그놈들은 소나 양무리가 목장에 들어서기를 기다렸다가 긴긴 여름을 가면서 한마리한마리 잡아먹으려는것이지.” “참, 늑대 그놈들이 흉악하기도 하군요.” “그럼, 늑대들은 바로 그 흉악함으로 이 세상에 살아남는거라오. 그놈들이 방금빠져나온 그 수림은 바로 협곡우에 있는것이라오. 소나 양들은 목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협곡을 지나야 하지. 늑대들은 소나 양이 그곳을 지날 때를 기다렸다가 조용히 따라서는거라오. 올해는 날씨때문에 소나 양이 목장에 들억서는 시간이 여느해보다 늦어진것이지. 하지만 그놈들은 여전리 이곳에서 지나가는 양이나 소무리를 기다리려고 할것이요. 만약 소나 양들이 목장으로 들어가는 시간이 며칠 더 연기된다면 그놈들은 어제 물속에 숨겨놓은 양고기를 다 먹어도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어려울것이요. 그럼 그놈들은 저마다 맥이 빠져서 몸을 지탱하기마저 힘겨울테지. 하지만 그놈들의 눈길만은 여전히 평소와 꼭같이 서리발칠것이요. 그놈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더 가슴에 심어둔 신념을 불꽃처럼 활활 불태울것이니까. 늑대들은 곤난에 처할수록 더욱더 야성을 들어낸다오. 하기에 아무리 굶주린 상태라고 해도 순간적으로 목표를 향해 맹공격을 할수 있는것이지. 하지만 그놈들은 몸을 숨기고있을 때는 굶주림에 당장 쓸어질듯싶어도 아무 소리 내지 않는다오. 가끔은 적당한 기회를 노리기 위하여 바람이 불어치고 폭풍우가 쏟아져도 지어는 겨울에 한기가 뼈속까지 슴여들어도 꼼짝하지 않는다오.” “그점에서 늑대들은 사람과 비슷하쥬?” “어쩜 사격수들이 늑대들에게서 일종의 계발을 받았는지도 모르지. 전장에서 사격수들은 매복하고있을 때 어떤 일이 있어도 꼼짝 움직이지 않는다오. 목표물이 나타날 때까지 말이요.” “그럼 우리 지금 어떻게 하면 좋을가요?” “물론 조심해야지. 워낙 그놈들은 한자리에서 계속 소나 양무리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려고 했을것이요. 몽크네와 6마리의 양이 나타나기전까지는 말이요. 하지만 몽크네 일행을 보고 그놈들은 목장에 들어가는것이라 착각하고 따라붙은거지. 그래서 늑대들을 너무 창궐하다고 하는것이요. 분명 사람이 함께하는것을 보면서도 그렇듯 대담하게 따라붙는것을 보면 그놈들이 꼭 무슨 음모궤계를 꾸미고있는것이요.” 갑자기 찬바람이 불어왔다. 늑대잡이대원들은 일순 온몸을 오스스 떨었다. 기온이 갑자기 내려가는듯싶었다. 몽크와 늑대잡이대원은 양을 몰고 아칸네가 매복해있는 곳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이때 토끼 한마리가 마른 풀속에서 뛰여나왔다. 그놈은 부근에 늑대가 어슬렁거리는것을 모르고있었다. 하기야 늑대무리가 줄곧 바기의 몸을 숨겨왔으니 토끼가 늑대의 동정을 느끼지 못하는것도 무리는 아니였다. 토끼가 사태를 파악했을 때는 이미 늑대무리에 들어선 다음이였다. 토끼는 늑대가 제일 잡아먹기 좋아하는 작은 동물이였다. 토끼의 속도가 비록 아주 빠르다고는 하지만 늑대앞에서는 그야말로 번데기앞에서 주름잡기였다. 늑대는 잠간 새에 토끼를 따라잡아서는 그 예리한 발톱으로 죽어라 토끼를 눌러 숨도 바로 쉴수 없게 만들었다. 토끼는 비록 몸뚱이가 작지만 그 고기는 아주 맛이 있었다. 늑대는 토끼를 잡아먹은후 오래도록 그 고소한 고기맛을 며칠씩 음미하군했다. 마른 풀속에서 뛰여나온 그 토끼는 실로 스스로 늑대아가리에 들어간셈이였다. 하지만 이상한것은 늑대들이 그 토끼를 인차 닾치지 않고 되려 못본듯이 강가의 수림으로 들어가버리는것이였다. 늑대무리는 그렇게 또 한번 수림에 몸을 숨겼다. 아칸의 얼굴에 어두운 기색이 실리기 시작했다. 만약 그때 늑대가 토끼를 잡아먹었더라면 그 기회를 빌어 그놈들의 약점을 파악할수 있을것이고 그놈들을 소멸할수 있다는 신심을 굳혔을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늑대들이 스스로 찾아든 먹이를 놓아버린것이다. 아칸은 수림속으로 들어간 그 늑대들이 초능력을 가진 킬러처럼 느껴졌다. 그놈들은 소리없이 위험에서 벗어났던것이다. 늑대도 아칸도 경거망동하지 않았다. 하지만 늑대도 아칸도 이미 보이지 않는 전술을 쓰기 시작했던것이다. 마씨가 감탄했다. “늑대가 참 침착하게 행동하네유.” 아칸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저놈들의 무리에두 침착하지 못한 놈이 있을거네. 그놈은 꼭 눈앞에서 들까부는 저 토끼를 잡아먹고싶겠지. 그러나 다른 놈들이 랭정하고 분노에 찬 눈길로 자기를 쏘아보고있으니 감히 손을 쓰지 못하고있는거지. 지슴쯤은 토끼도 사실 무엇인가를 느끼고 놀라서 혼이 구중천으로 올라갔을걸세. 묘하게도 그놈 역시 약은 놈이라  진작 늑대들이 오늘은 자기를 잡아먹지 않을거라고 판단한거야. 그래서 도망칠 용기가 생긴거구. 생각해보게. 토끼가 얼마나 시름놓구 뛰여서 인차 종적을 감추던가. 늑대가 일부러 토끼를 놓아준것은 바로 무리들속에서 절대적인 안정을 유지하려는 심사에서이지. 그리구 또 한가지, 그놈들은 자기들이 토끼를 잡으려고 허둥거리는 사이 바람이 자기들의 냄새를 멀리로 실어갈것이라는것까지 예측한거야. 그러면 미각이 예민한 동물들은 멀리에서도 늑대냄새를 맡을수 있거든. 수림에 사는 새들도 늑대를 보고 당황망조해서 우짖어댈거구. 이러한 상황은 모두 늑대들의 정체를 세상에 알리게 되는거지. 그러면 며칠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수 있으니 그놈들은 바로 그것을 미연에 막으려는것이지. 늑대는 어떤것을 놓아서 어떤것을 얻어야 한다는 리해득실을 제일 잘 아는 동물이라고 할수 있는거지. 이 같이 관건적인 시각에 늑대들은 작은 토끼를 놓아서 큰것을 얻으려는 장원한 타산을 한거지.” 마씨는 아칸의 분석에 진심으로 탄복하는듯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그는 아칸의 사냥솜씨가 전혀 다어르한에 짝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것 같았다. 마씨는 자기를 도와주려고 하지 않고  멀리로 가버린 다어르한에 대하여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황차 진심으로 자기를 도와주려고 찾아온 아칸이 곁에 있는데야. 아칸이야 말로 자기와 제일 가까이에 있는 진실한 사냥능수였던것이다. 산골짜기를 가로 지난 오솔길에서 몽크와 늑대잡이대원은 잠간 걸음을 멈추고 양들이 풀읋 뜯게 하였다. 아칸이 생각하건대 늑대는 양들이 길에서 움직일 때는 절대 덮치지 않을것이였다. 하지만 양들이 걷지를 않고 머리를 숙여 풀을 뜯는다면 상황은 달라지게 되는것이였다. 양들이 풀을 뜯느라 경계심을 늦춘 그 기회를 타서 늑대는 손쉽게 양들을 물어죽일수 있는것이였다. 그런 생각에서 아칸은 몽크에게 길에서 양들을 산골짜기에 몰아넣어 풀을 뜻게 하라고 미연에 분부를 해두었던것이다. 이렇게 해야만 늑대무리를 사격이 가능한 구역에 유인해드릴수 있는것이였다. 비록 늑대무리를 유인해들인다고 해도 아칸은 늑대잡이대원들이 꼭 늑대무리를 소멸할수 있다고는 믿지 않았다. 아칸은 늑대잡이대원들의 솜씨를 그닥 믿지 않았던것이다. 하기에 아칸은 딱히 늑대무리를 소멸하려는 생각보다도 그놈들을 크게 놀래워 목장이 보다 안정되게 하려는 타산을 더 많이 했다. 갑자기 한 늑대잡이대원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빨리, 빨리 저기 늑대무리뒤쪽을 보세유, 흰갈기늑대가 있어유.” 모두들 그가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았다. 늑대무리뒤쪽에 있는 바위우에 늑대 한마리가 웅크리고 있었는데 목에 둘러진 흰털이 유표하게 눈을 파고들었다. 흰갈기늑대가 틀림없었다. 모두들 흥분으로 들끓었다. 흰갈기늑대가 관연 늑대무리에 있었던것이다. 그놈은 쉽사리 무리를 떠날수 없었던지 멀리로 도망가지 않았던것이다. 마씨는 흰갈기늑대를 뚫어지게 쏘아보며 일행의 의론을 들었다. 하지만 마씨는 정작 한마디도 삐치지 않았다. 흰갈기늑대는 마씨에게 굴욕을 안겨준 원흉이였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그놈을 쏘아죽이고싶었다. 하지만 마씨는 사실 단번에 그놈의 명줄을 끊어버릴 자신이 없었다. 하기에 그는 스스로 “참자, 참아!”  하고 자신을 달랬다. 참기만 하면 어느땐가 확실핟게 그놈의 명줄을 끊을수 있는 기회를 만났을수 있을것이라고 스스로를 달랬다. 생각을 고쳐먹자 흰갈기늑대를 바라보는 눈길이 약간 순해졌다. 마씨는 흰갈기늑대가 바위우에 허리를 납짝 붙이고 누워있는 모양을 이윽하니 바라보았다. 흰갈기늑대도 어딘가 불쌍한데가 있다는 생각이 순간 머리속에 떠올랐다. 워낙 그놈도 다른 어미늑대들처럼 굴에 들어가 새끼 낳을 시간을 기다려야 했을것이다. 하지만 흰갈기늑대는 테리크목장에서 함정에 빠지는바람에 수컷이 파놓은 늑대굴을 잃고 이렇게 류랑의 길에 오르게 되였던것이다. 하지만 그놈은 필경 늑대왕인지라 이 무리에서도 여전히 다른 놈들의 보살핌을 받을수는 있는것이였다. 흰갈기늑대는 바위우에 엎드려 꼼짝도 하지 않았다. 다른 놈들도 수림에 엎드려 움직이지를 않았다. 늑대는 보통 오던 길을 되돌아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 시각 늑대들은 그런것은 고려없이 흰갈기늑대의 명령을 조용히 기다리고있는것 같았다. 그놈의 명령에 따라 뭔가를 기다리고있는듯싶었다. 몽크와 그와 함께 한 늑대잡이대원은 어딘가 조급증이 일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수시로 아칸과 다른 늑대잡이들이 매복해있는쪽을 곁눈질 했다. 하지만 아칸은 여전히 가타부타 말이 없는지라 얼지로 아무 큰심도 없는듯한 강가에서 한담을 했다. 몽크와 늑대잡이대원들은 그때까지도 뒤에 늑대무리가 따른다는것을 모르고있었다. 하지만 아칸은 양을 발견한 늑대무리는 언젠까지라도  그들을 따르다가 갑자기 앞에 나설것이라고 판단했다. 늑대들은 몽크네를 따르기만 하면 언젠가는 더 많은 양들이 있는 목장이 나질것이라고 믿고있을것이기때문이였다. 만약 수많은 양들이 욱실거리는 목장을 찾지 못한다손쳐도 조용히 몽크네를 따르기만 하면 그들이 몰고가는 6마리의 양을 잡아먹어도 수지 맞는 일이라고 생각하는것 같았다. 늑대들에게 있어서 이 시각 양은 제일 큰 유혹으로서 어느놈이든 군침을 흘리지 않을수는 없을것이였다. 몽크와 늑대잡이대원은 아칸이 뭐라고 지령을 내리기를 내심하게 기다렸다. 하지만 산골짜기는 여전히 그처럼 조용했다. 아칸네는 어쩌면 새로운 계획을 짜고있는지도 모를 일이였다.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왔다가 조용히 그들을 스쳐버렸다. 카나스하도 출렁출렁 노래를 부르며 어디론가 급히 흘러가고있었다. 몽크와 늑대잡이대원은 자기들의 모든것이 늑대들을 유인하기 위한것이라는것이 들통 나는것을 두려워하는듯 일부러 목소리르 높여 웃고 떠들었다. 그러다가도 애들처럼 쫓거니 쫓기거니 분주히 돌아치기도 했다. 그들의 목적은 늑대들로 하여금 자기네가 늑대무리를 발견하지 못하고있다고 착각하게 하려는것이였다. 그렇게 해야만 늙대무리가 자여스럽게 자기들이 느린 올가미에 머리를 들이밀것이라 생각했던것이다.    늑대무리는 수림에서 오래도록 다른 동정이 없었다. 늑대와 사람은 서로 자기들만의 기나긴 기다림에 지쳐있었다. 물론 늑대들이 기다리는것은 사람이 기르는 양일것이고 사람들이 기다리는것은 그 양을 호시탐탐 노리는 늑대무리에 통쾌하게 총을 쏠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것이다. 적막한 기다림속에는 서슬 푸른 살기가 숨어 숨쉬고있었다. 3 아칸과 마씨는 한담으로 시간을 보냈다. 아칸은 마씨가 이미 60살을 넘겼다는 말에 놀랐다. 마씨는 이번에 늑대잡이대오의 대장을 맡게 된것은 사실 자기가 소원해서가 아니라고 말했다. 마씨는 이미 60살을 넘긴 사람으로서 응당 생명을 죽이는 일을 더 이상 하지 말고 집에서 차분히 여생을 보내면서 건강관리나 열심히 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에 령도들이 기어코 자기를 대장으로 뽑는바람에 어쩔수 없이 늑대잡이에 나서게 되였다고 했다. 이번에 늑대잡이를 시작한후 마씨는 늑대를 잡기 쉽지않고 자칫하면 목숨마저 잃을수 있다는것을 다시한번 절감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마씨는 이번 걸음이 점점 더 속수무책으로 느껴졌다. 어제밤, 마씨는 사실 빠이하바로 다녀왔었다. 가서 아칸에게 어떻게 하면 늑대를 소멸할수 있는가를 가르쳐달라고 부탁했던것이다. 동네사람들은 아칸이 30여년이나 사냥을 했ㄷ기에 경험이 매우 풍부하여 빠이하바촌에서는 또 하나의 다어르한이라고 할수 있다고 긍정했던것이다. 하기에 아칸을 늑대잡이대오의 코치로 모실수 있다는것이였다. 마씨는 사실 투바인과 카자흐인의 생활에 대하여 깊은 료해가 없었다. 마씨는 즉시 아칸네 집을 찾아가 늑대잡이대의 코치로 되여달라고 간청하려고 했다. 그때 동네의 한 목민이 마씨를 막아나서며 “하늘의 구름도 흘러가면 그림자를 보이는데 사람이 친구네 집을 찾아가면서 어찌 아무 뜻도 보이지 않을수가 있는가”고 말했다. 뜻인즉  절대로 빈손으로 찾아가면 안된다는것이였다. 그 목민은 마씨를 도와 설탕과 전차 그리고 흰술을 마련해주었다. 마씨는 그것들을 들고 아칸을 찾아갔었다. 마씨는 아칸을 만나자마자 조심스럽게 늑대잡이대오의 코치를 맡아달라고 말을 꺼냈다. 그때 아칸은 한창 늑대가 몽크네 양을 물어죽여서 끌고 간 일을 두고  상심해하고있었다. 하여 다른 일이 귀찮게 느껴져서였던지 “생각이 없다.”고 한마디로 잘라버렸다. 마씨가 아무리 간청을 해도 아칸은 여전히 머리를 저으며 “안돼, 싫다구.” 하고 잡아뗐다. 마씨는 돌아가서 어떻게 대원들의 얼굴을 마주할가를 생각하니 근심이 앞서서 다시한번 아칸에게 말했다. “만약 정말 친히 나설수 없다면 방법이라도 대주면 안돼유? 그것두 안된다면 내 이 대장노릇을 어떻게 해먹으란 말이쥬? 돌아가서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란 말인가유.” 마씨의 간청에 잠간 뭔가를 생각하던 아칸이 입을 열었다. “자네들 카나스하쪽에 가서 살펴보게. 늑대들이 몽크네 양을 잡아갔는데 절대 다 먹어치웠을수는 없네. 그러니 긍정코 어디엔가 숨겨두었을테지. 그놈들은 배가 고프면 그리로 가서 먹을것이네. 자네들은 늑대들이 죽은 양을 숨겨둔 곳을 찾아내여 그 부근에서 늑대들이 오기를 기다려야 하네. 어쩌면 자네들은 늑대무리를 손쉽게 만날수도 있을것이네.” 아칸의 말을 들으며 마씨는 보물이라도 얻은듯한 심정으로 연신 감사하다고 사례했다. 아칸은 마씨에게 정말 늑대무리가 나타나더라도 꼭 시기가 성숙되였을 때 공격을 개시하라고 당부했다. 만약 시기가 아닌되도 공격을 시작했다가는 적잖은 시끄러움을 초래할것이라고 했다. 아칸은 그래도 시름이 놓이지 않았던지 날아나간 탄알은 돌아올수 없으니  꼭 자기의 말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자 마씨가 아칸에게 어떤 정황하에서 능히 공격할수 있고 어떤 정황하에서 공격하면 안되는가고 물었다. 아칸이 시무룩히 웃으며 말했다. “그거야 나도 여기서 알수 없지. 그런것은 정황을 봐가면서 판단해야 하니까.” 그 바람에 마씨는 더 이상 캐여물을수도 없었다. 마씨는 아칸에게 다 한번  사례하고는 돌아와 대원들을 이끌고 인차 카나스하로 왔던것이다. 한편 마씨를 돌려보낸후 아칸은 아무리 생각해도 몰려드는 근심을 털어버릴수 없었다. 카나스하쪽에서 늑대의 화를 입었다는 엄연한 사실은 뾰족한 송곳으로 되여 아칸의 가슴을 찍어댔던것이다. 아칸도 지난 가을부터 올해 봄 사이에 놀랍게도 많은 늑대가 창궐하게 활동한다는 풍문을 들던것이다. 하지만 아칸을 포함한 빠이하바촌의 모든이들은 도대체 얼마나 되는 늑대들이 어떻게 설쳐대고있느지를 잘 모르고있었다. 아칸은 진짜 “놀랍게도 많은 늑대가 창궐하게 활동”해서 사람들이 공포에 떠는지 아니면 그냥 “놀랍게도 많은 늑대가 창궐하게 활동”한다는 소문에 그냥 두려움에 떠는지도 확신할수 없었다. 하지만 테레크목장에 흰갈기늑대가 출몰했었고 카나스하쪽에서 늑대로부터 화를 입을 입었다는 소문을 들은다음부터는 진짜 늑대무리가 눈앞에까지 왔다는것을 직감하게 되였다. 어쩌면 늑대의 거친 숨소리가 당금 귀를 치게 될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늑대란 놈들이 정말 왔구나. 아칸은 내심으로부터 스멀스멀 몰려드는 공포를 누를길이 없었다. 아칸은 늑대때문에 공포에 떨고 공포에 떠는 자기때문에 두려움을 느끼는것이였다. 아칸은 웬지 늑대잡이를 하다가 큰일이 일어날수도 있다는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아칸은 아까 마씨를 만났을 때 어떻게 위안했으면 좋을지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하여 늑대는 그렇게 잡기 쉬운 동물이 아니므로 자네들이 한여름을 산에서 보내도 결국 늑대 한마리 잡을수 없으리라는 애매한 말만 했던것이다. 게다가 나중에 늑대도 잡지 못하고 사람도 상하지 않으면 제일 좋은 결과일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었다. 당시 마씨도 아칸의 말을 듣고 안도의 숨을 내쉬고는 정말 그러한 결과가 나타나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늑대무리는 계속 기회를 기다리고있었다. 그놈들은 기다림속에서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고 까딱 움직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기다림이 끝나면 갑자기 뛰여나와 손쌀같이 목표를 향해 달려들수도 있을것이였다. 늑대는 속도가 빠르고 기세가 흉맹하기로 상상을 초월한다. 한번 늑대에게 놀라고나면 평소 관심없이 지나치던 바위며 나무들이 모두 흉맹한 늑대로 되여 옹근 세상을 다 삼켜버리려는것만 같이 느껴질것이다. 사람들도  계속 기회를 노리고있었다. 오직 늑대무리가 계속 기다리고있다면 사람도 그놈들을 주시하며 계속 기다리고있을것이였다. 갑자기 늑대무리가 숨어있는 수림ㅇ[ㅔ서 거친 웨침소리가 울려나왔다. 그 소리가 아주 높아서 사람들은 누군가 바로 옆에서 소리 지르는듯한 착각을 가지게 했다. 하지만 늑대잡이대원들이 아무리 주변을 살펴보아도  그렇게 큰 소리를 낼만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잠간후 아칸과 한 늑대잡이대원이 수림속에서 한 검은 그림자가 언뜰거리는것을 동시에 발견했다. 머리가 놀랍게 큰 놈이였는데 곁에 있는 나무를 떠박질렀다. 나무는 탄성에 의해 앞으로 나갔다가 돌아오며 그놈의 머리를 냅다갈겼다. 그 바람에 그놈은 분노했던지 다시 머리로 나무를 들이박았다. 나무는 순식간에 뚝 부러져나갔다. 그놈은 나무와 함께 앞으로 넘어졌다가 천천히 기여일어났다. 그놈은 덩치 큰 반달가슴곰이였다. 멀리 않은 곳에서 늑대들이 슬금슬금 모습을 들어내여 반달가슴곰을 쏘아보고있었다. 방금 그 반달가슴곰이 그처럼 거칠고 큰 소리를 질렀던것이다. 반달가슴곰은 늑대들이 들어간 수림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빈 나무속에 들어있었던것이다 .동면하고있던 반달가슴곰이 동면할 때가 된것이였다. 긴긴겨울을 잠만 자느라 반달가슴곰은 몸에 저장해두었던 지방을 대부분 소모해버린터였다. 따듯한 날씨와 훈훈한 바람은 반달가슴곰으로 하여금 인차 굶주림을 느끼게 하였다. 그 굶주림은 참기어려운것이였다. 반달가슴곰은 급급히 빈 나무속에서 기여나와 몇번 사지를 놀린후 먹이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주변에는 금방 머리를 내민 애기풀만 보일뿐 먹을만한것은 찾을수 없었다. 반달가슴곰은 별수 없어 마을부근으로 내려가 먹을것을 찾기로 했다. 반달가슴곰은 사람들이 이 계절에 감자를 심는다는것을 알고있었던것이다. 비록 땅에 묻힌 감자쪼각이 작기는 해도 찾아내기만 한다면 그런대로 기아는 달랠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했던것이다. 긴긴 겨울을 동면으로 보낸 반달가슴곰은 금방 잠에서 깨여나 촉각이 둔했기에 먼저번의 그 작은 토끼처럼 스스로 늑대무리가 숨어있는 수림으로 찾아들었던것이다.  늑대무리를 발견한 반달가슴곰은 갈음을 멈추었다. 반달가슴곰은 늑대무리를 두려워할 대신 되려 거칠게 소리를 질러대면서 늑대무리를 쏘아보았다. 반달가슴곰은 마을에 내려가 감자쪼각을 파서 기아를 달래려던 생각을 바꿔 늑대를 한마리 잡아 만포식을 하려고 마음 먹었다. 늑대무리에서는 일대 소란이 일어났다. 뜻밖에 나타난 불청객 반달가슴곰으로 하여 늑대들은 커다란 시끄러움에 부딪치게 된것이다. 늑대들은 자기들의 존재를 들어내지 말아야 하기에 섣불리 반달가슴곰과 대결을 벌릴수도 없는것이였다. 하여 늑대들은 반달가슴곰이 스스로 그곳을 떠나기만을 바랐던것이다. 하지만 반달가슴곰은 세상 무서운것이 없다는듯 괜히 거친 소리를 크게 질러대면서 늑대들과 맞장을 떠보려는듯한 태세를 지었던것이다. 늑대들은 반달가슴곰의 거동에 약간 긴장감을 느끼면서 슬금슬금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어느때 날아들지 모를 반달가슴곰의 두텁고 큼직한 발을 힘을 합쳐 막아보려는것이였다. 늑대들이 철석같이 모여서자 반달가슴곰은 일시 어떻게 공격했으면 좋을지 궁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반달가슴곰은 두눈 가득 분노를 담아 늑대들을 쏘아보았다. 늑대와 반달가슴곰 간의 긴장한 대치상태가 형성되였다. 반달가슴곰은 성격이 거칠기로 유명한데 동물들중에서 인내력이 제일 차하다고 할수 있었다. 시간이 잠간 흐르자 반달가슴곰은 차츰 지루하고 숨막히는 기분을 주체하기 어려웠던지 앞발을 들어 나무를 갈겨댔다. 순간 나무는 뚝 하는 소리와 함께 불거지고말았다.  반달가슴곰은 수림이 찢어지라 소리를 질러대며 허리 부러진 나무를 다시한번 쳐서 저쪽으로 날려보냈다. 그 바람에 수림에서는 잠간 요란한 소리가 울러퍼졌다. 반달가슴곰의 거친 거동으로보아 얼마 안 있으면 늑대무리와 혈전을 벌릴것만 같았다. “그놈 늑대들의 운수도 불길하구려.” 아칸이 한숨을 푸 내쉬며 중얼거렸다. 아니나다를가 늑대무리들이 불안하게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놈들은 서로 눈길을 주고 받으면서 뭔가를 의논하는듯싶었다. 갑자기 늑대 한마리가 뢰성같이 소리를 질러댔다. 늑대잡이대원들은 깜짝 놀라면서 모두 소리나는쪽을  바라보았다. 흰갈기늑대가 눈에안겨들었다. 보매 방금 소리를 지른 놈이 바로 흰갈기늑대인것 같았다. 흰갈기늑대는 늑대무리를 지휘하여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려고 마음 먹은것 같았다. 흰갈기늑대의 포효가 멎자 늑대 한마리가 갑자기 무리에서 나와 반달가슴곰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바위곁까지 뛰여가 분노에 찬 눈길로 쏘아보았다.  그 거동에 더욱 진노한 반달가슴곰은 수림이 떠나갈듯 쩌렁쩌렁 소리를 질러대더니 쏜살같이 늑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자 늑대는 몸을 돌려 산아래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분통이 터져버린 반달가슴곰이 어찌 포기할수 있으랴. 반달가슴곰은 앞에서 달리는 늑대를 쫓아 젖 먹던 힘을 다해 뛰여갔다. 이것이 바로 흰갈기늑대가 바라는 효과였다. 흰갈기늑대는 방금 도망치기 시작한 그놈을 제물로 반달가슴곰을 유인하여 그곳을 떠나게 하려는것이였다. 오직 그렇게 해야만 다른 놈들이 더 이상 시끄러움을 받지 않고 그곳에 남아 사람들과 양무리의 동정을 살필수 있다고 판단했던것이다. 늑대들로 말하면 이 나날은 정말 너무 힘들어 숨쉬기마저 힘든 시간들이였다. 늑대들은 벌써 며칠이나 먹이를 찾아 헤맸지만 수림에 사는 동물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지어는 토끼 한마리도 쉽게 눈에 뜨이지 않았던것이다. 하기에 눈앞에 있는 여섯마리의 양은 그처럼 소중한것이였고 그놈들은 바로 그 소중한 양을 놓지지 않기 위해 갖은 방법을 다하여 뒤를 따르고있었던것이다. 늑대무리는 될수 있는한 그놈들을 따라 목장에 들어가 더 많은 양이나 소를 잡아 기아를 달래려는것이였다. 그 시각의 늑대는 사람을 방불케 했다. 사람처럼 사색하고 판단하고 견지할줄 알았다.  더 큰 리익을 위해서는 장원한 타산을 할줄도 알았던것이다. 사람들은 늘 늑대를 교활한 동물이라고 하는데 그 교활함은 사람들과의 겨룸에서 양성된것일수도 있다. 늑대는 그렇게 양성된 교활함을 무기로 사람들과 또 새로운 겨룸을 시작하는것이다. 어느 목민은 이렇게 말한적이 있다. “늑대에게는 사람의 사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늑대의 사유가 없는거죠. 하기에 사람은 결코 늑대를 당해낼수 없는것입니다.” 그놈은 반달가슴곰앞에서 나는듯이 달려 눈 깜빡 할 새에 수림을 벗어나 작은 도랑에 들어섰다. 하지만 그놈을 쫓는 반달가슴곰의 속도도 그에 못지 않았다. 반달가슴곰도 나는 돌멩이처럼 도랑에 뛰여들어 늑대에게 덮쳤다. 산골짜기는 비교적 넓은편이여서 늑대는 네다리로 활개치며 손쉽게 그곳을 벗어날수 있었다. 하지만 늑대는 산골짜기밖의 그 넓다란 평지가 자기의 생명이 마감할 자리로 될줄은 몰랐을것이다. 반달가슴곰의 속도가 놀랍게도 빨라지더니 삽시에 크 바위처럼 늑대의 등을 내리눌렀다. 늑대가 몸을 빼려고 할 때 반달가슴곰은 그 커다란 발로 늑대를 후려쳤다. 늑대는 눈앞에서 무수한 오각별들이 번쩍이는듯한 환영을 느끼면서 한옆으로 나가넘어졌다. 반달가슴곰은 인차 따라가서 또 한번 늑대의 등을 후려쳤다. 늑대의 허리가 우지끈 소리를 내면서 끊어졌다. 늑대는 극심한 동통을 느끼며 산천이 떠나갈듯 고통스럽게 소리를 질러올렸다. 하늘땅이 까맣게 변하며 흔들리고있었다. 갑자기 땅이 꺼지며 커다란 심연으로 되여 자기의 몸뚱이를 집어삼키는것만 같았다. 늑대무리들은 그놈의 애절한 부르짖음을 듣고있었다. 반달가슴곰을 유인하는 임무를 맡고 나간 자기들의 동료가 마지막 숨을 톺고있다는것을 느끼고있었다. 하지만 늑대무리는 여전리 움직이지 않았다. 숨소리 한번 크게 내쉬지 않고 땅에 그린듯이 누워있었다. 반달가슴곰은 다시 몇번이나 앞발로 늑대를 후려쳤다. 그 바람에 늑대의 머리가 산산조각이 났다. 흰 뇌즙과 붉은 피가 사처에 튕겨나갔다. 하지만 몸뚱이는 굳어진듯 움직이지 않고있었다. 늑대잡이대원들은 소리없이 늑대무리에서 펼쳐지는 드라마와도 같은 이야기를 지켜보고있었다. 흰갈기늑대가 파견해보낸 그놈은 자기의 목숨으로 자기들 무리가 계속 기회를 기다릴수록 비장한 생명의 찬가를 엮어놓았던것이다. 그놈은 무리를 떠나 죽음의 심연으로 들어가는 순간에도 약간한 주저심마저 보이지 않았었다. 그놈은 반달가슴곰의 발에 얻어맞아 목숨을 다하는 그 순간까지도 떳떳한 모습을 잃지 않았던것이다. 아칸은 그놈이 반달가슴곰의 발밑에 쓰러지는 장면을 지켜보면서 다시한번 그 당당함에 놀라지 않응ㄹ수 없었다. 그놈은 죽음의 방식으로 자기가 소원하는바를 이루어내려했던것이다. 몽크와 늑대잡이대원도 그때 자기들 뒤에서 나는 거친 동정을 감지하고있었다. 하지만 아칸의 지령을 받지 못하였기에 어떻다할 행동을 보이지 않고 여전히 강가에서 한담을 해나갔다. 그들 두 사람이 떠나올 때 아칸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늑대무리가 모두 모습을 들어낸 후에야 그곳을 떠날수 있다고 당부했던것이다.  하기에 늑대무리가 모습을 들어내지 않으면 그들은 바위처럼, 나무처럼 그곳을 지키고있어야 했다. 몽크는 자기에게 남은 마지막 6마리의 양마저 늑대들의 먹이로 될가봐 근심했었다. 그러자 아칸은 “걱정말어, 늑대가 양무리에 덮치기전에 우리가 총을 쏠것이나까.” 하고 위안했기에 몽크는 다소 근심을 덜수 있었다. 늑대잡이대원들은 숨소리마저 죽여가며 늑대의 동정을 살폈다. 하지만 늑대들은 이미 동료를 잃은 아픔을 가지고있으면서도 좀처럼 수림에서 나오려고 하지 않았다. 늑대잡이대원들은 늑대들이 기다리는것이 도대체 어떤 판국인지를 짐작할수 없었다. 그러니 그놈들이 어느때 6마리의 양을 향해 공격을 개시할지는 더구나 모르는 일이였다. 하기에 늑대잡이대원들은 바질바질 속을 태우며 늑대들의 눈치를 보아가는판이였다. 늑대의 인내력에 대하여 누군가는 “서서 3일, 웅크려 3일, 엎드려 3일”이라고 묘사한적이 있다.  오후가 되자 산골짜기에는 안개가 자오록하게 퍼지기 시작했고 수림은 뽀얀 너울을 뒤집어쓰게 되였다. 도랑도 돌돌 하는 물소리만 들릴뿐 그림자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아레태산속에는 늘 안개가 서려있었는데 중할 때에는 전체 산맥을 모두 안개속에 삼켜버리군 했었다. 태양이 솟아오르자 안개는 차츰 걷혀지기 시작했고 땅우의 파란 풀잎들에는 수정같은 물방울이 맺혀 반짝반짝 해살을 반사했다. 이때 한무리의 양과 소들이 카나스하변의 산골짜기로 들어섰다. 그들의 뒤를 따라는이들은 올해 제일 처음으로 목장에 들어가는 목민들이였다. 목민들은 아침 일찍 길에 올랐기에 벌써 산골짜기에 이르렀다. 소나 양의 울음소리가 고요하던 산간을 일시 소란스럽게 울려주었다. 목민들은 먼곳에 있는 목장을 바라고 길에 올랐던것이다. 그들은 산골짜기 하나를 지나서 또 다른 산골짜기에 들어섰다. 목민들은 길을 좋이는 내내 말 한마디없었고 얼굴에 그렇다할 표정도 짓지 않았다. 그들은 묵묵히 하루 또 하루 걸음만 재촉할뿐이였다. 어쩌면 목민들은 그 모습으로 한해 또 한해 걷는 자세마저 변함이 없이 산길을 걸었을것이고 그들 발밑에 뻗어나간 산길은 해해년년 그 모습 그대로 목민들을 맞아주었을것이다. 목민들의 생활은 그렇게 조용히 이어져가고있었다. 아칸과 늑대잡이대원들은 비록 아직 목민들의 대오를 보지 못하였지만 산간을 울리는 소와 양의 소란스러운 울부짖음에 근 무리가 자기들을 향해 다가오고있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아칸은 대개 천여마리정도는 될것이라고 짐작했다. 아칸과 늑대잡이대원들은 어딘가 긴장해났다. 목민들이 소와 양을 몰고 늑대들이 숨어있는 곳을 지나간다면 긍정코 어딘가에 숨어있는 늑대무리를 놀래울것이였다. 하지만 아칸과 늑대잡이대원들은 이;ㄹ시 그 목민들의 걸음을 제지시킬만한 방법이 없었다. 아칸은 목민들이 별고없이 산골짜기를 벗어나고 다시 평온이 찾아들기를 속으로 빌었다. 아칸은 수림속 어딘가에 숨어있을 늑대들이 진작 목민들 일행에 대하여 주시를 돌렸을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들을 리용하여 수림속에 숨어있는 늑대들을 끌어낼수는 없을가? 아얼태일대에서 목민들은 해마다 5월이면 목장으로 들어가는데 늘 늑대들이 몰래 그 뒤를 따르군 했었다. 목민들은 긴긴 겨울을 숨막히는 움에서 갑갑하게 보내야 했고 양들은 겨우내내 마른 사료만 먹어야 했으며 늑대들도 기아를 달래며 양무리들의 도래를 기다려야 했다. 봄을 맞은 소와 양은 한시바삐 목장에 도착하여 야들야들한 풀을 마음껏 뜯고싶어 잰걸음을 옮겼고 흐르는 소와 양무리를 바라보는 늑대들은 당금 그놈들을 잡아먹고싶으면서도 적당한 기회를 노리느라 부지런히 그놈들의 뒤꽁무니만 따랐다. 겉으로보면 목민들 일행의 이동은 순탄한것 같았다. 하기에 목민들은 누구도 자기들의 뒤에 커다란 위험이 도사리고있다는것을 생각조차하지 못하고있었다. 목민들 일행은 빠이하바에서 오는 길이였다. 그들의 걸음걸이는 아주 늘였는데 한시간이 지나서야 산골짜기에 들어설수 있었다. 소와 양의 발굽에서 흙먼지가 일어나 골짜기를 뽀얗게 덮었다. 산골짜기는 차츰 소란스러워졌다. 평소 양들은 동네 각 집들에 분산되여있었다. 하기에 목민들은 동네에 그렇게 많은 양들이 있는줄을 모르고있었다. 하지만 함께 산골자기에 모이고보니 양무리가 놀랍게 커서 저마다 혀를 내둘렀다. 양무리뒤에서 걸음을 옮기는 목민들은 각별히 경각성을 높이고있었다. 그들도 진작 올해는 늑대무리가 처처에 타나난다는 소식을 들어 알고있었던것이다. 목민들은 산골짜기에 들어선지 소리없이 수림이며 하곡이며 도랑이며 풀숲이며를 살펴보았다. 늑대는 왕왕 그런 곳들에 몸을 숨겼다가 사람들이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서 뛰쳐나와 공격을 개시했던것이다. 늑대들은 단번에 몇마리의 양을 물어갔고 목민들은 자기의 살점같은 양을 물고 달아나는 늑대들을 향해 입에 담기도 힘든 걸쭉한 욕들을 퍼부었다.  이러한 사고는 해마다 목장으로 이동하는 길에서 몇번씩 일어나군 했다. 하기에 목민들은 이런 사연을 상기하기만 하면 얼굴색부터 달라졌다. 목민들은 이런 끔찍한 사연이 남겨준 고통과 비애를 감출수 없었던것이다. 하지만 이번 길에 목민들이 이상하게 느낀것은 오는 길 내내 너무 조용했다는 점이였다. 수림이나 하곡 그리고 도랑이나 풀숲을 막론하고 아무 동정도 없었던것이다. 옛말 같은 이 평화에 목민들은 되려 불안함을 감지하고있었던것이다. 그들은 올해 늑대무리가 왕년보다 많다더니 그 놈들도 다른해와 다른 방법으로 구석진 곳에 숨어서 양무리를 노리는것이 아닌가 속구구를 했다.  목민들은 소와 양을 몰고 몽크와 늑대잡이대원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몽크는 부근에 늑대무리가 숨어있으며 그놈들을 잡으려고 늑대잡이대원들이 매복해있다는 사실을 목민들에게 알려주었다. 목민들은 늑대잡이대오와 배합하여 늑대를 족칠 타산으로 산골짜기에 소와 양무리를 멈춰세워 늑대무리를 유인하기로 했다. 그들은 날이 어두우면 늑대무리가 꼭 양무리에 다가붙을것이라고 짐작하고있었다. 이것은 늑대가 양을 잡는 일반적인 방법이였다. 그놈들은 소나 양이 가는 방향을 확정한후 조용히 뒤를 따르다가 기회를 타서 공격했던것이다. 어느해, 몇몇 목민들이 소와 양을 몰고 목장으로 들어가고있었는데 한무리의 늑대가 슬금슬금 뒤를 따랐다. 그들이 처음 도착한 목장은 풀들의 자람새가 그닥 좋지 않았다. 하여 목민들은 흩어져 풀의 자람새가 더 좋은 곳을 찾아떠났다.  그날밤, 늑대무리는 그중 한 목민의 양무리를 습격하였다. 그놈들은 여러마리의 양을 물어죽인후 수림으로 끌고들어가 만포식을 했던것이다. 며칠이 지나 늑대들은 또 다른 한 목민의 양을 습격하여 수림으로 물어갔다. 한차례 또 한차례의 늑대의 습격으로 하여 그 몇몇 목민들의 양은 한마리도 남지 못했다. 가을이 되여 마을로 돌아갈 때 그 몇몇 목민은 얼굴에 수심을 가득 띄우고 말했다. “마을을 나올 때는 양이 가득했지만 돌아갈 때는 양 한마리 없구려. 올해 우리의걸음은 마치도 늑대에게 먹이를 가져다 바친격이라니까. 목장을 찾아가던 길에서 우리는 진작 늑대들에게 발견되여 목표로 지목된거지. 그래서 그놈들이 한번 또 한번 우리의 양들을 습격한것이라니까.” 그때로부터 목민들은 목장으로 들어갈 때면 늑대가 뒤를 따르지 않는가 하고 특별히 조심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늑대들은 사람들이 자기들에 대하여 방비하고있다는것을 의식했던지 으슥진 곳에 숨어 목민들이 어느 목장에 가는가를 살폈고 공격할수 있는 기회를 노렸던것이다. 지금 며칠이나 수림에 숨어서 사람과 대치상태에 있는 늑대무리가 바로 이점을 설명하고있는것이였다. 늑대를 유인하기 위하여 몽크와 목민들은 소와 양을 풀어놓아 땅에서 금방 돋아오르는 애디풀을 뜯게 하였다. 그렇게 하면 늑대들은 그 소와 양들이 그곳에서 떠나지 않을것이라는 착각을 할것이고 따라서 경각성을 늦추게 될것이였다. 마씨는 다시한번 흰갈기늑대를 바라보았다. 그놈은 시종 늑대무리의 맨 뒤에 있었다. 만약 그놈의 목에 있는 흰갈기가 그렇게 선명하지 않다면 쉽게 가려볼수 없을것이였다. 마씨는 흰갈기늑대를 쏘아보면서 중얼거렸다. “네놈이 내 눈에서 벗어날수는 없지. 날개가 달렸대도 안될걸.” 하지만 그것은 근근히 마씨의 생각일뿐 얼마 지나지 않아 흰갈기늑대가 보이지 않았다. 마씨는 늑대무리를 참빗질했다. 그는 흰갈기늑대가 절대 멀리로는 도망가지 않을것이라고 믿어의심치 않았다. 마씨는 흰갈기늑대가 새끼를 가지고어서 절대 무리를 떨어지지 않을것이라는것을 알고있었던것이다. 아니나다를가 한참ㅎ루 흰갈기늑대가 다시 나타났다. 마씨는 그놈을 더 눈박아보면서 중얼거렸다. “감히 내 눈을 벗어나려구? 어림도 없지. 좀 있다가 총을 쏠 시기가 성숙되면 나는 네놈 먼저 처단해버릴것이다. 그때 네놈이 어쩌나 어디 한번 두고보자.” 흰갈기늑대는 그렇게 마씨의 눈에서 살아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하였다. 하지만 결코 시종 마씨의 시야에서 벗어난것은 아니였다. 마씨는 정력을 집중하여 늑대무리를 소탕할 가장 적당한 시기를 노리고있었다. 시간은 느리게도 흘렀다. 목민들은 겉으로 아무 근심이 없는듯 보였지만 속으로는 소와 양 무리가 걷잡을수 없이 흩어질가봐 마음을 조이고있었다. 만약 소나 양 무리가 사처로 뿔뿔이 헤쳐지면 늑대들에게 공격할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것이나 진배없어 사처에서 달려들것이였다. 날이 어두워지자 소와 양 무리는 드디여 한곳에 모이기 시작했다. 목민들은 마른나무를 모아 불을 지펴놓고 노래하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불은 하늘 높이 황황 솟아올랐다. 늑대는 천생 불을 두려워 하는 동물로서 절대 그 순간에는 소나 양 무리를 습격하지 못할것이였다. 그날 밤이 깊어지자 몇몇 목민은 한결같이 그곳을 떠나려고 마음 먹었다. 그들은 밤이 이슥하도록 늑대들이 나타나지 않는것을 보면 웬 만해서는 결코 늑대무리를 유인해낼수 없을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던것이다. 지어는 늑대무리가 진작 그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지 않았는가 하는 추측까지 하는것이였다. 하기에 그들은 그곳에서 결과가 없는 기다림을 더 이상하지 않으려는것이였다. 몽크가 간절하게 만류해도 목민들은 기어코 떠나려고 했다. 몽크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어제 나는 그렇게 많은 양을 손실보고도 겨우 남은 6마리의 양을 미끼로 내놓았네유. 그런데 당신들은 참, 두려운게 뭐유?” 몽크의 말이 얼마나 간절하던지 이미 떠나려고 마음 먹은 목민들의 마음을 돌릴수는 없었다. 목민들은 어둠을 타서 소와 양 무리를 몰고 급급히 길을 떠났다. 사실 목민들은그곳에 있기를 두려워했던것이다. 날이 어두워진후 목민들은 몽크와 늑대잡이대원이 무엇인가를 획책하는것을 듣고 이들의 방법으로 과연 늑대무리를 유인해낼수 있는가 의심을 품게 되였던것이다. 그들은 몽크네의 방법으로는 근본 늑대무리를 유인해낼수 없다고 판단했던것이다. 자정이 지나자 한 목민이 말했다. “이 무렵은 늑대들이 양을 덮치기 제일 좋은 때가 아니유? 이때면 사람들은 단잠에 빠지구 양들은 곤해서 모두 격강성을 상실하기에 늑대들은 손쉽게 목적을 달성하게 되지유. 이것이 바로 양들이 자정에 자주 잃어지는 원인이지유. 하지만 늑대들이 아직도 나타나지 않는것으로보아 이곳에 근본 늑대가 없다는것이 아닐가유?” 이 말을 들은 목민들은 저마다 한풀씩 꺾이는듯한 표정들이였다. 그들은 서로 눈길을 마주치고는 인차 그곳을 떠나자고 합의를 보았다. 목민들이 떠나려할 때 몽크는 자기의 6마리 양마저 없어진것을 발견했다. 6마리의 양이 천여마리의 양무리에 섞였으니 있다고 해도 어찌 인차 찾아낸단 말인가? 몽크는 목민들에게 목장에 도착하여 양을 나누고나서 남는 6마리는 자기의것이니 며칠뒤에 꼭 찾으러 가겠다고 말했다. 목민들은 밤도와 길을 떠났다. 새벽녘에 늑대 한마리가 길게 울부짖었다. 그 바람에 늑대무리에는 일대 소동이 일어났다. 깊은 잠에 들었던 마씨는 련이어 들려오는 늑대의 포효에 놀라 두눈을 번쩍 뜻고 인차 총을 찾아들었다. 마씨는 처음에 소리지른 그 늑대가 바로 흰갈기늑대일것이라고 판단했다. 마씨는 테레크목장에서 수차나 흰갈기늑대의 포효를 들었던지라 그 소리를 똑똑히 기억하고있었다. 마씨는 벌떡 일어서서 늑대무리가 숨어있는 곳에  총부리를  돌리고 묘준을 했다. 늑대무리가 즉시 뛰쳐나올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왔던것이다. 어둠이 너무 짙어서 마씨는 사실 아무것도 제대로 볼수 없었지만 그 흰갈기늑대가 바로 눈앞에 서서 흉악한 두눈으로 자기를 노려보고있을것이라는 예감이 들어서였다. 어쩌면 긴 포효와 함께 달려들어 단숨에 그의 목줄을 물어 끊일지도 모르는 일이였다. 방아쇠를 건 식지가 파들파들 떨리기 시작했다. 몇번인가 자칫 먹칠을 한듯한 하늘에 대고 방아쇠를 당길번하기까지 했다. 마씨에게 있어서 흰갈기늑대는 그렇게 위압적인것이였다. 그놈이 나타나든지 나타나지 않든지 그놈의 그림자는 늘 마씨의 머리속에서 맴돌고있었던것이다.  대낮이든 밤이든 마씨는 언제나 그놈의 그림자를 보고있었던것이다. 마씨는 자기는 좀처럼 그놈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할것이라고 생각했다. 언젠가는 꼭 그놈에게 패배하게 될것이라는 우려가 머리속을 치고들어오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4 동녘이 푸름푸름 밝아왔다.   산골짜기에 눈부신 해살이 내려앉았다. 나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있었고 바위는 여전히 그 자리에 엎드려있었으며 강은 여전히 그 맵시로 흘러가고있었다. 몽크와 그와 함께 갔던 늑대잡이대원은 아칸의 곁으로 돌아왔다. 하곡에는 목민 한 사람도 남지 않았고 소나 양 한마리도 없었다. 지난밤의 소리없는 대치는 하곡에 아무 흔적도 남기지 못했었다. 흰갈기늑대는 천천히 바위우에 올라서서 위엄있게 포효했다. 다른 늑대들도 절망적으로 몇번씩 울부짖고는 몸을 돌려 강변의  낮은 나무숲으로 들어갔다. 태양이 솟아오르자 하곡의 모든것을 똑똑히 볼수 있었다. 하곡의 모든 사물도 조용한 기다림속에서 무슨 일인가 발생하기를 묵묵히 기다려온것 같았다.  아칸은 늑대무리의 동정을 관찰한후 몽크와 그와 함께 했던 늑대잡이대원에게 말했다. “늑대들이 또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것 같구나. 우리 조심해야겠다. 그놈들이 양을 따라오다가 갑자기 목표물을 잃고나서 갑자기 기아를 느끼게 될것이다. 더욱이 그놈들은 이번 실수로 하여 다른 무리들앞에서 부끄러워 머리를 쳐들지 못할것이다. 이때로부터 저놈들은 굴욕을 짊어진 늑대무리로 되는것이지. 지금 저 낮은 수림이 저놈들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고있다. 저놈들은 저 곳에서 숨어서 잠시 안정감을 느끼겠지만 결코 오래는 있지 않을것이다. 저놈들은 우리가 여기에 매복해있다는것을 알것이지만 결코 어제밤에 잃어진 양들을 포기하려고는 하지 않을것이다. 하기에 끝까지 우리를 따라 목장까지 가려고 할것이다.” 몽크는 늑대들이 무슨 방법으로 어제밤에 잃어진 양무리를 찾아낼수 있을가 잠간 생각을 굴렸다. 아칸이 말핮 않으면 누구도 모를것이였다. 잠간후 흰갈기늑대가 무리들을 향해 다가갔다. 그놈은 눈길을 자기와 가까이에 있는 한마리 늑대에게 박았다. 그러자 그놈은 흰갈기늑대를 향해 낮은 소리를 짓더니 무리를 떠나 수림을 지나서 카나스하곡상류를 따라 뛰여갔다. 그 장면을 보고 아칸이 입을 열었다. “흰갈기늑대가 저놈을 보내 소식을 탐문하려는것이다. 늑대무리는지금부터 저놈의 소식을 기다리게 되겠지. 이것 역시 늑대들이 늘 쓰는 방법이란다. 나가서 소식을 탐문할 때는 반드시 한마리가 단독으로 나가게 된단다. 뽑혀서 나가는 놈은 용감하고 지혜로와야 하겠지. 만약 목표를 찾게 되면 저놈은 주변의 구뎅이에 주둥이를 대고 소리를 쳐서 소식을 전하지. 늑대무리는 그 소리를 들은후 인차 그쪽으로 몰려간단다. 하지만 소식을 탐문하러간 늑대가 위험에 봉착했을 때는 다시 돌아가지 못하고 혼자서 그 위험을 뚫고나와야 한단다. 위험에서 벗어난다면 무리에 돌아갈수 있지만 만약 위험을 벗어날수 없다면 황야에서 외롭게 목숨을 잃는것이지. 그래서 홀로 임무를 맡아 나가는 놈은 늑대무리의 결사대원이라고 할수 있단다. 결사대로 뽑힌 놈은 응당 몸집이 건장한단다. 건장한 신체는 임무를 수행하는데 제일 가는 조건이니까. 일단 결사대원으로 뽑히면 달통되지 않아도 나갈수밖에 없단다. 무리의 다른 늑대들이 칼날같은 눈길로 쏘아보고있으니까. 하여 속으로 얼마나 싫어도 겉으로는 묵묵히 머리를 숙이고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거지. 우두머리가 결사대로 뽑힌 놈에게 낮은 소리로 몇마디 중얼거리는데 그것은 바로 명령이란다. 그놈은 명령을 받은 즉시 무리를 떠나 목적지로 뛰여가야 하는거지. 앞서도 말했지만 늑대들은 아주 총명하단다. 그들은 목민들이 해마다 다음과 같은 두가지 곳에서 방목을 한다는것을 알거든. 첫번째는 물론 풀밭이겠지. 그것은 전적으로 소나 양을 위한 선택이라고 할수 있지. 풀밭에는 소나 양이 필요로 하는 모든 먹이가 있으니까. 두번째는 아마 강가라고 해야 할것이다. 그것은 사람과 짐승을 모두 위한 선택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그것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모두 물을 먹어야 살수 있으니까. 두가지를 비교할 때 물은 풀보다 더 중요하다고 할수 있지. 풀은 어디든지 다 있지만 물은 그거 아니잖아? 만약 어느 한 곳에 풀만 있고 물이 없다면 목민들은 아마 그곳을 포기하고 다른 곳을 찾을수 밖에 없을걸. 하기에 늑대들은 우선 목민들이 물이 있는 곳을 찾을것이라고 생각하는거야. 그래서 아까 결사대로 뽑힌 그놈도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목민들의 그림자를 찾기 시작한거야. 저놈들은 이미 자기들의 눈앞에서 사라진 소와 양을 꼭 찾아내려는거지. 절대 포기하려고 하지 않을거니까. 일단 찾기만 하면 그놈들은 일체 방법을 다하여 그 소와 양무리를 도륙내려고 할거다.” 아칸의 말을 들으며 몽크와 그 늑대잡이대원은 늑대들이 그 어떤 곤난에 부딪쳐도 갖은 방법을 다하여 목적한바를 이루고야마는 늑대들의 견정불이함에 다시한번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몽크네는 온밤 눈 한번 붙이지 못했지만 그닥 피곤기를 느끼지 못했다. 그들의 머리속에는 온통 어떻게 하면 늑대무리를 제거할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뿐이였다. 결사대로 뽑힌 그 늑대는 천천히 모습을 감췄다. 아칸은 몽크와 한 늑대잡이대원을 파견하여 그놈의 뒤를 밟으며 그놈이 어떤 상황에 부딪치는가를 관찰하라고 했다. 아울러 어떠한 상황에 부딪쳐도 절대 그놈을 놀래우지 말고 즉시 돌아와 정황을 알리라고 당부했다. 몽크와 늑대잡이대원은 조용히 앞서간 늑대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늑놈은 인차 한 소택지에 도착하여 몸을 바위뒤에 숨기고 조용히 주변을 살펴보았다. 몽크와 늑대잡이대원은 바람에 날려오는 이상한 냄새를 맡았다. 몽크네는 앞에 있는 늑대도 꼭 그 괴상한 냄새를 맡고 급히 바위뒤에 몸을 숨긴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놈도 그 냄새가 무슨 냄새인지는 알수 없어도 소택지에 무엇인가가 숨겨져 있다고 믿는것만은 틀림 없었다. 잠간후 그놈은 소택지를 에돌아서 앞으로 달려갔다. 그놈이 방금 얼마를 가지 못했을 때 소택지곁의 나무뒤에서 검스레한 몸뚱이의 짐승이 모습을 들어냈다. 그놈은 거쿨진 몸뚱이를 가진 메돼지였다.  메돼지는 길게 거친 소리를 지르며 늑대를 쫓아갔다. 방금 공기속에 떠돌던 그 괴상한 냄새는 바로 그 메돼지에게서 풍기는것이였다. 메돼지는 바로 그 소택지에서 사는것 같았다. 늑대가 자기의 령지에 들어와 부산을 떠는 까닭에 메돼지는 대단히 노했던지 당장 늑대를 깔아뭉개여 분풀이를 하려는것 같았다. 사람들은 늘 돼지가 첫째요, 곰이 둘째이며 호랑이가 셋째라고 말한다. 그만치 메돼지의 이발은 아주 예리하다. 어떠한 동물이든지 메돼지에게 물리기만 하면 순식간에 뚝 하는 소리와 함께 피가 솟아나오게 되였다. 결사대로 뽑힌 늑대는 길에서 메돼지를 만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지 메돼지가 덮쳐들 때 일시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못하고있다가 당황해서 한쪽으로 비켜섰다. 평소라면 늑대가 되려 메돼지를 공격했을것이다. 행동상에서 메돼지는 늑대들보다 령활하지 못했던것이다. 늑대들은 메돼지의 그 치명적인 약점을 리용하여 신속하게 목줄이나 고완 같은 취약한 부분을 공격하여 메돼지가 쓰러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우두머리로부터 명확한 임무를 받아가지고 가는 그놈은 메돼지와 싱갱이질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놈은 메돼지의 공격을 피해 갑자기 강에 뛰여들더니 맞은켠대안을 향해 헤여갔다. 매돼지가 더 이상 쫓아오지 않음을 감지한 늑대는 다시 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목민들의 발자취를 찾았다. 그놈은 오래동안 걸어서야 산뒤에 있는 큰 목장에 들어섰다. 몇몇 목민들이 확실히 그곳에 멈추어있었다. 소와 양은 한창 풀을 뜯느라 여념이 없었다. 목장의 풀은 자람새가 좋았는데 한여름 내내 소와 양들이 배를 불리고도 남을것 같았다. 몽크와 늑대잡이대원은 멀리서서 늑대가 계속하여 어떤 행동을 취하는가를 살폈다. 늑대는 천천히 발걸음을 얾겨 목장곁에 있는 수림속으로 들어가 여유작작 풀을 뜯고있는 소와 양을 바라보더니 몸을 돌리는것이였다. 그놈은 올 때보다 속도를 더 빨렸다. 그놈이 풀숲에 들어가자 숲은 작은 파도를 일으키는것만 같았다. 풀숲을 스쳐가는 그놈은 하나의 그림자로 되여 언뜰거렸다. 그놈은 어느새 강역까지 와서 흠칫 걸음을 멈추었다. 물속의 돌밑에 숨겨둔 죽은 양의 나리 하나가 물우에 들어난것을 보았던것이다. 그놈은 양다리를 누른 돌우에 뛰여올랐다. 그러자 물밑에 있는 죽은 양이 돌들틈에 끼워 있는것이 통째로 보였다. 그놈은 잠간 죽은 양을 내려다보더니 돌에서 내려 강에 들어갔다. 하지만 죽은 양을 다치지 않고 다시 강가에 올라와 무리를 찾아 달려갔다. 그놈은 비록 배가 곺았을테지만 임무를 수행하는것이 더 급했던지 죽은 양에 입한번 대지 않고 다시 길을 재촉했던것이다. 몽크와 늑대잡이대원도 대오를 찾아 돌아갔다. 그들은 아칸에게 결사대로 나갔던 늑대가 목장에서 목민들과 소 그리고 양을 발견한후 눈앞에 놓인 죽은 양도 먹지 않고 신속히 돌아갔다는 정황을 알렸다. 아칸의 예측과 다름이 없이 결사대로 나갔던 그놈은 목장의 목민들과 소, 양의 수자 그리고 주변의 지형을 상세하게 관찰하고 돌아갔던것이다. 그는 이 소식을 흰갈기늑대를 비롯한 무리의 다른 늑대들에게 상세하게 알렸을것이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강에서 보았던 물우에 떠오른 양다리에 대한 이야기도 했을것이다. 사람들이 그 양다리를 발견하기만 하면 돌밑에 감춰둔 죽은 양들을 들춰내기는 식은 죽 먹기일것이니까. 마씨가 한 늑대잡이대원을 파견하여 물우에 들어난 양다리를 다시 돌밑에 감춰두라고 시켰다. 그러자 아칸이 막아나섰다. 이미 그럴 필요가 없게 되였다는것이였다. 늑대무리가 이제 곧 목장을 향해 떠나게 될것인데 대오는 정력을 집중하여 늑대들의 동정을 살피면서 그놈들이 사격범위에 들어서기를 기다리면 된다고 했다. 모둗,ㄹ 도정신을 해서 낮은 수림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결사대로 나갔던 그놈이 돌아간후 늑대들이 십분 흥분에 들뜨면서 즉시 헤쳐지는것을 발견하였다.  그놈들은 저마다 쏜살같이 낮은 수림에서 뛰여나왔다. 늑대잡이대원들은 누구나 늑대들이 무슨 궁리를 하고있다는것을 다 짐작하고있었다. 그들은 당금은 강에 숨겨둔 몇마리의 죽은 양외에 더 이상 기아를 달랠 방법을 알았던것이다. 그들은 서ㅏ로 먼저 뛰여가서 죽은 양을 차지하려는것이였다. 저마다 달리는 속도가 놀라왔다. 늑대들의 검은 그림자는 언뜰언뜰 사람들의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늑대무리는 카나하로 향한 산길을 꽉 메우고있었다. 누군가 전에 늑대가 달릴 때의 속도를 자세하게 관찰한적이 있었다. 늑대들은 먹이에 덮칠 때의 속도가 제일 빨랐는데 보통 이동할 때 속도의 3~4배에 달했다. 늑대가 뒤를 쫓는다는것을 알게 되면 앞에서 달리는 목표도 속도가 자연히 빨라질수밖에 없을것이였다. 늑대무리는 아무것도 고려할 새 없이 오직 먹이만을 바라고 달리고있었다. 하다보니 그 속도는 도무지 상상할수 없이 빨랐다. 그놈들은 어느새 늑대ㅑ잡이대원들의 사격범위에 들섰다. 마씨가 드디여 사격명령을 내렸다. 대원들은 동시에 사격을 시작했다. 귀청을 째는듯한 총소리가 산골짜기를 메우며 울러퍼졌다. 늑대잡이대원들은 처음으로 반자동보총을 늑대잡이에 리용하는지라 총 사용이 그닥 령활하지 못했고 게다가 어제점심무렵부터 계속 땅에 엎드려있었기에 손발이 굳어져있어서 누구도 늑대를 명중하지 못하였다. 총알은 땅에 떨어져 뽀얀 흙먼지를 파올리기만 했다. 늑대들의 반응은 아주 빨랐다. 총소리가 나자 그놈들은 재빨리 바위뒤에 몸을 숨기고 늑대잡이대원들이 숨은 곳을 바라보았다. 늑대잡이대원들은 저마다 얼굴에 긴장한 빛을 띠웠다. 그들은 며칠이나 애타게 기회를 기다렸건만 정작 늑대무리가 나타나니 저마다 헛총질을 할줄은 누구도 생각 못했던것이다. 마씨는 분을 삼키지 못하고 씩씩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대원들을 원망했다. “당황해 하지 말라니까. 묘준을 잘하고 쏘란 말이야. “ 말을 마친 마씨는 총을 들어 늑대를 향해 열심히 묘준하더니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그것 역시 땅에 떨어져 애꿎은 흙먼지만 피워올렸다. 마씨마저 명중을 하지 못하자 대원들은 모두 풀이 죽어 한숨만 풀풀 내쉬였다. 아칸은 늑대잡이대원들의 그닥지 않은 사격솜씨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늑대잡이대원들은 워낙 한 사람도 훈련을 거친적이 없이 겨우 총을 다룰줄이나 아는 정황이였던것이다. 개미는 궁전을 지을수 없고 참새는 설산을 날아넘을수 없는것이다. 늑대잡이대원들의 그 사격솜씨로는 진종일 총을 쏘아도 늑대 한마리 명중할수 없을것이였다. 하지만 늑대잡이대원들은 저마다 락심하지 않고 분분히 늑대를 향하여 열심히 묘준했다. 두번째 사격이 시작되였다. 늑대잡이대원들은 너도나도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여전히 늑대 한마리 넘어지지 않고 골짜기에 뽀얀 흙먼지만 타래쳐 올랐다. 늑대잡이대원들은 사격을 멈추고 실의감에 빠져 바위뒤에 반쯤 몸을 숨기고있는 늑대무리들을 바라보았다. 정말이지 저마다의 눈길이 탄알로 되여 날아가 늑대무리를 쓰러뜨리지 못하는것이 안타까왔다. 마씨도 긴 한숨을 내쉬였다. “술잔이 없으면 술을 마실수 없고 좋은 사격술이 없으면 늑대를 잡을수 없는것이지. 탄알만 랑비하지 말고 사격을 그만둡세.” 이때 늑대 한마리가 바위뒤에서 여유작작 걸어나왔다. 죽음도 두려워 하지 않는듯, 늑대잡이대원들 같은이는 근본 눈에도 차지 않는듯한 표정이였다. 늑대잡이대원들은 너무도 분해 저마다 몸을 떨었다. 저놈은 그래 목숨도 아깝지 않단 말인가? 지나친 분노로 하여 늑대잡이대원들은 다시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저마다 총을 꼬나들고 늑대를 향해 총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아칸이 늑대잡이대원들을 제지시키려고 했지만 이미 총알이 날아버린후였다. 앞에 나섰던 늑대는 비발치는듯한 탄알을 등지고 산비탈로 뛰여올라갔다. 그놈의 거동은 더구나 늑대잡이대원들의 신경을 자극했다. 우리가 그래 저놈마저 놓친단 말인가? 기어코 쏴죽이고말리라. 그들이 이를 옥물고 방아쇠를 당겨댔지만 그놈은 여전히 털끝 하나 손색이 없이 산비탈을 주름 잡았다. 늑대잡이대원들의 사격솜씨는 그야말로 형언할수 없이 차했다. 무시로 뒤에 떨어지는 탄알에 흥분했던지 늑대는 전보다도 더 날쌔게 산등성이를 톺아올랐다. 그놈이 큰 바위에 올라섰을 때 아칸은 그놈의 목에 흰갈기가 둘러져있는것을 발견하였다. 그놈의 다리에 난 흰털은 발톱까지 내려와 있었다. 아칸은 놀라서 소리쳤다. “저놈, 흰갈기늑대다.” 그제야 마씨와 다른 늑대잡이대원들도 그놈의 목에 둘러져있는 흰갈기를 발견했다. 하지만 그놈은 이미 사격권을 벗어나 산꼭대기를 톺아오르고있었다. 하지만 마씨와 일부 늑대잡이대원들은 진작 까만 점으로 변해버린 흰갈기늑대를 향해 마구 불질을 해댔다. 그 기세는 마치도 그놈이 그림자로 변해도 끝까지 총을 쏘겠다는것만 같았다. 아칸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만 하구 저쪽을 보게. 늑대무리가 총 출동을 했네.” 모두들 머리를 돌려보니 바위뒤에 숨어있던 늑대들이 모두 뛰쳐나와 반대방향으로 달려가고있었다. 한마리 또 한마리 뛰여가는 늑대들의 모양은 마치도 날아가는 하늘의 구름송이가 땅에 검은 그림자를 늘여놓은듯싶었다. 늑대잡이대원들은 그제야 흰갈기늑대가 대원들의 눈길을 끌어 자기를 향해 총을 쏘게 하고 다른 늑대들은 반대방향으로 도망치게 한것이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늑대들의 속도는 아주 빨랐다. 늑대무리는 삽시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아칸을 포함한 모든 늑대잡이대원들이 늑대에게 속은것이다. 모두들 풀풀 한숨을 톺았지만 도무지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늑대잡이대원들을 유인하여 산꼭대기에 오른 흰갈기늑대는 머리를 돌려 아칸네를 내려다보았다. 어쩌면 여우작작 산아래를 내려다보며 인간의 아둔함을 비웃는것만 같았다. 늑대잡이대원들도 스스로가 아주 아둔한것만 같이 느껴졌다. 사실 오늘 흰갈기늑대가 사용한 방법은 어제 반달가슴곰에게 보였던 방법과 비슷했던것이다. 반달가슴곰은 미끼로 던져진 늑대를 때려죽였지만 사람인 늑대잡이대원들은 흰반달가슴곰을 두고 어찧랄 방법이 없었던것이다. 사람은 그야말로 반달가슴곰보다도 못핸 존재인듯싶었다. 아칸은 멀리 바라보이는 설산에 눈길을 박고서서 아무말도 없었다. 흰갈기늑대가 나타났다는 말을 들은후부터 아칸은 마씨와 다름없이 이제 곧 불길한 일이 일어날것이라는 예측을 했던것이다. 아칸이 늑대를 대하는 태도는 다른 사람들과 달랐다. 그는 남몰래 늑대의 몸에서 돈이 될만한것들을 사들이고 또 남몰래 팔았던것이다. 아칸은 이 같은 일을 이미 2년이나 이어왔는데 모두 아주 순리로왔다. 하기에 아칸은 직접 늑대를 잡고싶은 생각이 그렇게 강렬하지 않았던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늑대들이 자기 아들 몽크네 양을 잡아먹은 일을 생각하니 괜히 분통이 터져서 말을 타고 늑대잡이대원들을 따라왔던것이다. 하지만 이 며칠 아칸의 속은 그렇게 편한것이 아니였다. 늘 꿈속에서 어렴뭇한 얼굴의 동물을 보고있었던것이다. 아칸은 그 어렴풋한 얼굴들이 긍정코 늑대일거쇼이라고 판단했다. 그 얼굴은 시종 그렇게 흐릿한것만은 아니였다. 간혹 그 모습이 또렷할 때도 있었는데 마치도 자기에게 무엇인가를 암시하려는것만 같았다. 그 암시란 무엇일가? 아칸은 가끔 자기가 나중에 늑대의 아가리에서 목숨을 끝맺지 않을가 하는 우려가 갈마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아칸은 망연한 눈길로 다시한번 저멀리 설산을 바라보았다. 설산은 티 한점 묻지 않은듯 희고희였다. 어쩌면 영원히 그렇게 오염없이 도고하게 그 자리를 지킬것만 같았다. 결백한 설산을 바라보는 아칸의 마음은 칼로 저미는듯 아파났다. 아칸은 깨끗한 설산을 바라볼수록 얼룩이 져서 볼품이 없는 자기의 마음을 읽는것만 같아 두려움마저 느껴졌다. 아칸은 그 두려움이 어디로부터 오는것이라는것을 알고있었다. 하지만 아칸은 스스로 어지러워지는 그 마음을 다스릴수 없었고 그 두려움에서 벗어날수 없었다. 늑대잡이대원들은 사라져버린 늑대무리를 찾아떠난다고 윽별렀다. 그놈들을 찾아서 기회를 보아 도륙을 낸다는것이였다. 아칸은 괜히 흥분에 끓는 늑대잡이대원들을 바라보며 설레설레 머리를 저었다. 늑대잡이대원들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것이다. 아칸은 몽크를 데리고 ㅃ짜이하바로 돌아가려고 마음을 굳혔다. 떠날 때 아칸은 늑대잡이대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신은 길을 걸어 바닥이 나야 영광스러운것이요, 늑대는 함정에 빠져야 고분고분해지는것이지. 자네들은 급해하지 말고 늑대의 습관을 더 많이 익히고 늑대를 잡는 재간을 더 련마해야 진정 늑대와 제대로 되는 겨룸을 할수 있을거네. 키가 채 크지 못했는데 말을 타려 덤벼치고 칼날이 채 벼려지지 않았는데 고기를 썰려고 다가든다면 결국은 헛고생만 하게 되는것이지. 늑대들이 자네들을 웃을거네.” 늑대잡이대원들은 진정 자기들을 비웃는것이 늑대가 아니라 아칸이라는것을 알고는 괜히 분통이 털져올랐다. 아칸은 몽크를 데리고 돌아갔다. 떠날 때 아칸은 눈길을 돌려 카나스하변의 그 오솔길을 바라보았다. 늑대무리의 냄새마저 사라진뒤였다. 오솔길은 개미 한마리 없이 비여있었다. 오솔길을 바라보는 아칸의 마음도 구멍이 펑 뚫리는것만 같았다. 아칸은 며칠간의 늑대와의 대치에서 자기가 철저하게 패했다는것을 승인하지 않을수 없었다. 비단 패했을뿐만 아니라 가슴에 그들먹하던 자신감마저 송두리채 뽑혀버리고말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늑대잡이대원들은 카나스하변을 따라 늑대의 자취를 찾아헤맸다. 그들은 몽크네가 보았던 목장에 이르렀고 소와 양을 방목하는 목민들을 보게 되였다. 늑대잡이대원들은 방금 지나간 한시간안에 이곳에서 또 한차례의 심금을 울려주는 장면이 연출되였다는것을 짐작하게 되였다. 목장은 아주 넓었는데 중감으로 한줄기의 강이 흘러지나고있었다. 강물은 해볕에 반짝반짝 빛을 뿌리고있었다. 이곳은 실로 리상적인 방목지였다. 못민들은 목장에 텐트를 쳐놓았었다. 파아란 연기가 텐트우로 날아올라 조용한 목장의 하늘을 감돌고있었다. 늑대무리는 늑대잡이대원들의 총구멍을 피해 도망친후 인차 이 목장을 찾은것 같았다. 하지만 그놈들은 인차 양무리에 덮친것이 아니라 목장곁에 있는 모리언덕뒤에 숨어서 목장의 동정을 자세히 살폈던것이다. 늑대의 랭정함은 동물계에서 첫손을 꼽아야 할것이였다. 늑대는 어떠한 정황에 부딪쳐도 자기들의 존재를 쉽사리 들어내려고 하지 않았으며 더욱이 자기들의 타산이 대방에게 알려지게 하지 않았다. 하기에 늑대는 새로운 곳에 도착한후 먼저 자기들을 깊숙이 숨겨둔후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늑대들은 목민들이 아직 자기들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했다고 의식한후에야 천천히 목장에 다가들어 기회를 노렸다가 양무리를 덮쳤던것이다. 결사대로 뽑혀 정황을 알아보러 왔던 그놈은 수림한쪽에서 풀을 뜯고있는 양 한마리를 발견하게 되였다. 그놈은 자기가 무거운 사명을 훌륭하게 완성하여 이 목장을 찾아낸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하고있었다. 하여 그놈은 다른 늑대들이 목장의 동정을 조용히 살피고있을 때 감히 무리를 떠나 목장주변을 맴돌면서 빠른 시간내에 배를 불릴수 있는 더 좋은 먹이를 찾아헤맸던것이다. 목민들의 소와 양은 목장 깊은 곳에서 여유작작 풀을 뜯고있었다. 만약 그놈이 무작정 소나 양무리를 습격한다며 인차 목민들에게 종적을 들어낼수 있을것이였다. 하여 그놈이 어떻게 할가 망설이고 있을 때 목장주변에서 풀을 뜯고있는 양 한마리를 발견하게 된것이다. 그놈은 솟구치는 흥분을 주체할수 없어했다. 이 뜻밖의 발견은 그놈으로 하여금 더 없는 자호감을 느끼게 했던것이다. 그놈은 풀을 뜯는 양을 한참이나 자세하게 관찰했다. 양은 아무 위험도 느끼지 못하고 풀을 뜯는듯싶었다. 파릇파릇 돋아오르는 애기풀에 모든 근심을 날려보낸것 같았다. 그놈은 무리들에 이 기쁜 소식을 알려 다시한번 자기의 능력을 자랑하고싶었다. 그놈은 급히 수림으로 달려가 이 소식을 무리에 알렸다. 다른 놈들은 한창 어떻게 하면 목장 깊은 곳에 있는 소와 양무리를 덮칠것인가를 고민하고있던참이라 모두들 그 소식에 여간만 흥분해 하지 않았다. 그놈들은 목장곁의 수림에서 시름없이 풀을 뜯는 양은 자기들을 의식하지 못할것이고 목민들도 그곳이 시선밖이라 그닥 경각성을 높이지 않을것이라는것을 알고있었다. 하기에 그깟 양 한마리를 잡아먹는것은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일것이였다. 이른바 기아에서 해방되는것이요, 욕망을 실현할수 있는 자극적인 순간인것이였다. 늑대무리는 엉금엉금 양이 있는 곳으로 다가들었다. 결사대로 나갔던 그양은 더욱 흥분에 날뛰였다. 기나긴 기다림과 간고한 수색작업이 드디여 달콤한 결실을 맺는 순간이라고 생각했던것이다. 만문한 양고기로 배곺음을 달래면서 동료들은 모두 그놈의 공로를 치하할것이고 그로 하여 그놈은 무리에서 위신이 하늘처럼 올라갈것이였다. 하지만 일이란 왕왕 그렇게 간단한것만은 아니였다. 겉으로 보건대 여유작작 풀을 뜯고있는 그 양은 사실 목민들이 뿌린 미끼였던것이다. 목민들은 진작 늑대들의 생활습관을 알고있었기에 늑대들을 대적할 방법을 미리 강구하여 늑대들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려고 계획하고있었던것이다. 목장에 들어선후 목민들은 늑대무리가 꼭 뒤를 따라올것이라는것을 예견했던것이다. 하여 목민들은 일부러 양 한마리를 목장주변에서 풀을 뜯게 풀어놓았던것이다. 늑대들은 필경 목민들의 그 심사까지는 알수 없었고 드디여 올가미에 걸려들게 되였던것이다. 늑대들이 그 양에게 덮쳐들려던 찰나 그중 한마리가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발목에 덫을 맞았던것이다. 그놈은 너무도 고통스러워 울부짖으면서 데굴데굴 굴렀다. 그외 다른 두마리의 늑대는 뛰여오나다 그만 몸뚱이를 흠칫하더니 함정에 빠져버렸다. 함정안에는 예리한 나무송곳이 박혀있었던지라 늑대는 떨어지며 찔려서 황천으로 가고말았다. 덫과 함정은 목민들이 목장에 들어선후 놓고 판것이였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늑대무리를 대처할만한 효ㅕ과적인 방법이 없다면 한두날후 진짜 늑대무리가 몰려들 때 속수무책으로 그놈들의 아구리에 소나 양을 잃고말것이라고 생각했던것이다. 목민들은 덫을 놓고 함정을 판후에야 시름을 놓고 목장에 소와 양무리를 풀어놓은후 시름놓고 텐트에 들어가 우유차를 끓여마셨던것이다. 그 두가지 방법은 늑대무리를 대처하는데 모두 좋은 효과가 있었다. 눈 깜빡 할 새에 함정에 빠진 늑대 두마리를 잡았고 덫에 치인 한놈도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었던것이다. 그놈들의 끝장을 본 늑대무리는 놀라 돌아서서 뿔뿔이 도망쳤다. 그놈들은 종래로 그 같은 정황에 부딪친적이 없었던것이다. 늑대들은 목장 어디에나 덫이 놓여있고 함정이 파져있는것처러 느껴져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다. 그때 목장곁의 수림에서 늑대의 포효가 들려왔다. 흰갈기늑대가 소리치는것이였다. 늑대잡이대원들은 소리는쪽을 바라보았다. 흰갈기늑대의 포효가 분명하건만 그놈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늑대잡이대원들은 전에 테리크목장에서 그놈의 포효를 간담이 서늘하게 들어서 귀에 익었던것이다. 흰갈기늑대는 시종 몸을 숨기고 늑대잡이대원들을 노려보고있었던것이다. 당황망조해 하던 늑대들은 흰갈기늑대의 포효를 듣고 점차 안정을 찾아갔다. 그놈들은 인차 목장에서 물러나 수림으로 들어갔다. 늑대는 걸음을 옮길 때 보통 나무숲에 몸을 가리기를 좋아한다. 될수있는한 사람들에게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이다. 늑대무리는 수림에 들어간후 인차 어딘가에 종적을 감추었다. 잠간후 수림에서 또 쩌렁쩌렁한 울부짖음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가 멎은후 수림에서는 다른 동정이 없었다. 늑대잡이대원들은 흰갈기늑대가 마씨의 곁에서 그같이 큰 소리를 질렀다는것을 모르고있었다. 그때 마씨는 목장주변에서 서성이고있었다. 그는 속으로 시종 흰갈기늑대를 생각하고있었다. 마씨는 갑자기 섬뜩한 기운이 목에 닿는것을 느꼈다. 마씨는 홱 고개를 돌렸다. 놀랍게도 흰갈기늑대가 뒤에 서있었다. 마씨는 온몸에 경련이 일어났다. 이놈이 어느때 이곳에 와 섰단 말인가? 마씨는 흰갈기늑대가 뒤를 따른다는것을 조금도 느끼지 못했던것이다. 흰갈기늑대는 마씨를 쏘아보며 거친 숨을 몰아쉬고있었다. 마씨는 흰갈기늑대가 그 모습으로 자기의 뒤에 서있은지 한참 된다는것을 짐작할수 있었다. 흰갈기늑대의 숨소리는 비록 거칠었지만 비교적 절주가 있었던것이다. 마씨의 눈길이 흰갈기늑대의 눈길과 마주치는 순간 그놈은 수림이 떠나갈듯 괴성을 질러올렸던것이다. 마씨는 마치도 갑자기 그 무엇엔가 뒤통수를 얻어맞는듯한 충격을 느꼈다. 온몸에서 맥이 쑥 빠지는것만 같았다. 마씨는 그때 손에 총가목을 틀어쥐고있었다. 하지만 그는 웬 일인지 그 총에 대하여 아무런 감각도 없었다. 마씨는 이번 걸음에 흰갈기늑대를 꼭 잡으려고 했던것이다. 하지만 그놈의 포효소리는 마씨의 머리에서 그놈을 잡으려던 생각마저 깡그치치워버린듯싶었다. 마씨는 순간 자기가 그놈을 잡으로 왔다는 생각마저 떠올리지 못했다. 흰갈기늑대가 마씨의 앞으로 한발 다가섰다. 약간 벌려진 흰갈기늑대의 입으로 아래우 네개의 길다란 이발이 들어나 차디찬 빛을 번쩍이고있었다. 그놈의 목에 둘러진 흰갈기는 하나 또 하나의 바늘로 되여 꼿꼿이 일어나있었다. 바람이 설렁설렁 불어왔지만 바늘로 살아난 흰갈기는 움직이지도 않았다. 마씨는 더 이상 흰갈기늑대를 바라보고싶지 않았다. 하지만 또 감히 그놈의 곁을 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의 눈길은 마치도 흰갈기늑대에게 든든히 꼬리를 잡힌듯 임의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흰갈기늑대는 마씨의 앞으로 바짝 다가들었다. 마씨는 이제 곧 흰갈기늑대가 자기에게 덮칠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굴렸다. 그러자 이름 못할 공포가 가슴속밑자락으로부터 머리를 쳐들었다. 마씨는 한오리의 희망마저 놓아버린듯 그 자리에 무너져내릴것만 같았다. 순간 마씨는 자기의 이번 걸음을 두고 뼈저리게 후회했다. 60살을 넘겨먹은 사람이 무엇을 더 바랄게 있다고 늑대잡이대오의 대장까지 맡아가지고 산에 와서 이 같은 모험을 한단 말인가? 당금 흰갈기늑대에게 물려 목숨을 잃을 처지에 놓였지만 소리 한번 칠만한 맥도 없는것이 아닌가? 마씨는 두눈을 으스러지게 꼭 감았다. 삽시에 세상 만물이 어둠속에 빠져드는듯싶었다. 마씨는 자기의 목숨마저 포기하고싶었다. 황차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질 쳐도 이제 곧 흰갈기늑대의 입에 들어가버릴 생명인데야. 하지만 흰갈기늑대는 뜻밖에도 마씨를 힐끔 훔쳐보더니 대가리를 번쩍 쳐들고 앞을 걸음을 옮겼다. 그놈의 속도는 바람처럼 빨랐다. 눈 깜빡 할 새에 수림속에 종적을 감추고말았다. 늑대잡이대원들이 둘러쌌을 때에야 마씨는 간신히 두눈을 떴다. 그제야 방금 흰갈기늑대가 눈앞에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자기의 손에 시종 총이 들려있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잠간후 마씨는 늑대잡이대원들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바바…방금 흰갈기늑대가 나타났었네.” 한 늑대잡이대원이 말했다. “그래유, 확실히 흰갈기늑대가 나타났댔지유, 하지만 지금은 도망치고 없어요.” “그놈이 도도…도망을 갔어?” “그래요. 도망갔어요, 그놈이. 우리는 헛걸음을 한거지유.” 마씨는 여전히 공포가 채 가셔지지 않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래, 도망갈라면 가라지뭐.” 한 늑대집이대원이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 인젠 돌아가는건가유?” 마씨가 대답했다. “돌아가야지.” 마씨는 늑대잡이대원들에게 방금 있었던 꿈 같은 일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몰랐다. 마씨는 총이 천근 무게나 되는듯 느껴져 더 이상 들고있을수 없었다. 마씨는 돌아오는 길에서 넋을 놓은듯 내내 중얼거렸다. “흰갈기늑대 그놈 말이여… 그놈이 글쎄… 그놈 말이여…” 마씨의 두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씨는 필경 마씨일뿐이여서 다어르한처럼 손이 떨릴 때 칼끝으로 손가락을 꼭 누르고있으면 인차 멎는다는것을 모르고있었다. 손은 오래동안 후들후들 떨리다가 겨우 멈추었다. 마씨는 몸은 겨릅대처럼 걸음을 옮겨디딜 때마다 좌우로 흔들거렸다. 목민들은 우야— 솔히치며 쓸어나와  덫에 치인 늑대에게 몽둥이를 날렸다. 늑대의 대가리는 몽둥이에 낮아 산산이 부서지고말았다. 그들은 분풀이를 할겸 그리고 다른 목장 목민들에게 자기들이 늑대 3마리를 잡았다는것을 알릴겸 더욱이는 늑대들에게 보여줄겸해서 늑대대가리를 베여내여 목장부근의 나무에 걸어놓았다. 늑대 대가리나 시체를 나무에 걸어놓는것은 목민들이 늑대를 잡은후 늘 치르는 의식 같은것이였다. 늑대잡이대원들은 목민들의 성과를 진심으로 부러워했다. 총도 없는 목민들이 맨손으로 늑대를 3마리나 잡았으니 늑대잡이대원들이 부러워할만도 한 일이였다. 늑대잡이대오라는 이름을 가지고 손에 총까지 잡은이들이 저마다 십여발의 탄알을 쏘고서도 늑대 털 한대 건드리지 못했으니 부끄러워 어찌 얼굴을 들고다닌단 말인가. 그날오후, 늑대잡이대원들은 수림에서 늑대 시체 하나를 발견했는데 몸뚱이가 산산히 부서져있었다. 겨우 남은 늑대가죽에는 늑대들의 날카로운 발톱자욱이 가득 나있었다. 늑대잡이대원들은 저마다 한가지 참혹한 장면을 그려보고있었다. 늑대무리는 황급히 목장에서 도망쳐나온후 저주의 눈길을 결사대원으로 나가 소식을 탐지했던 그놈에게 박았을것이다. 그놈들은 결사대로 나갔던 그 늑대가 자세하게 정황을 살피지 않고 돌아와 거짓 정보를 제공했기에 동료 셋을 잃었다고 판단하고 그 늑대를 찢어죽이는것으로 분풀이를 했을것이다. 그 늑대는 억울해서 원망에 가득차 울부짖었을것이고 다른 늑대들은 더구나 살기에 넘쳐 그 늑대를 물고 찢었을것이다. 야성이 스쳐간 황량한 초원에는 제 명에 눈을 감지 못한 그 늑대의 찢어진 시신이 처량하게 널리게 되였을것이다. 왕족(王族),감숙 천수 사람. 1991년말에 입대하여 서장 아리로 감. 후에 신강으로 전근. 2002년에 전업. 현재 우루무치 모 출판사에서 사업함. 저작으로는 산문집 《첫페지》, 《황제의 채찍》, 《짐승부락》 장편산문《낭떠러지락원》, 《투바의 서》, 《늑대의 경계》등이 있음. 총정치부 제9회 “해방군”문예상”, “빙심”산문상, “천산”문예상 등 여러가지 문학상을 을 획득.
20    나의 위대한 어머니 댓글:  조회:1885  추천:0  2014-07-27
나의 위대한 어머니   풍립삼     나의 어머니 왕문진은 2012년 3월 7일 12:10분에 인생려정을 끝마쳤다. 그이는 인생의 사명을 완수하고 집에서 조용히 눈을 감으셨는데 향년 92세였다. 어머니는 1920년 1월 23일에 탄생하셨다. 원적은 산동성 창락현 왕가장이다. 18살에 나의 아버지 풍지강과 가정을 이루어 슬하에 3남 2녀를 두었는데 아들들로는 풍립삼, 풍립성, 풍계량이고 딸들로는 풍금영, 풍금아이다. 어머니께서 눈을 감으실 때 둘째아들 풍립성과 사위 최청산이 곁을 지켰다. 어머니는 해방전쟁당시 심양에서 아버지를 엄호하여 지하혁명을 하셨다. 당시 아버지의 지하당령도는 해방후에 시공안국 국장을 지냈던 우정파이다. 신분이 폭로된후 아버지와 우정파는 함께 북경으로 도망가 신가구에 거처하면서 해방을 맞았다. 북경이 해방된후 아버지는 중앙재정학원전신인 중앙세무학교의 설립에 참가하셨다. 그후 어머니는 줄곧 북경에서 생활하다가 세상을 떠나신것이다. 어머니의 아버지 즉 나의 외할아버지는 20여세에 촌장으로 되여 무장으로 토비들의 습격을 막아내다가 영용하게 몸을 바쳤다. 그때로부터 어머니와 외할머니는 한무남짓한 밭에 매워서 겨우 목숨을 이어왔다. 어머니는 전쟁의 풍운을 겪으셨고 갖은 환난을 다 맛보면서 주린배를 끌어안고 류리걸식도 하셨다. 극좌로선이 판을 치던 년대에는 억울하게 기시와 굴욕을 당해야 했다. 한 사람이 출세를 하면 닭개짐승도 하늘에 오르고 한 사람이 사고를 치면 온 가정이 곤난에 허덕이게 된다고 했다. 천당과 지옥은 눈 깜빡 할 사이에 오갈수 있는것이다. 이러한 고험은 어머니의 강인한 성격과 응변능력 그리고 위대한 인격을 키워주었다. 만약 종교가들이 묘사하는 아름답고 행복한 천국이 정말 있다면 어머니의 령혼은 반드시 천사들에게 받들려 생화가 가득 펼쳐진 천국의 길을 따라 천당으로 가게 될것이다. 어머니는 인격이 위대하고 품덕이 고상했으며 고생을 두려워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즐겨 도우셨다. 그이는 3대를 키워내셨다. 간난신고를 다 겪으셨지만 어떠한 곤난도 그의 강인한 성격을 개변시키지는 못했다. 그는 덮쳐드는 곤난을 전승하면서 많은 업적을 쌓으셨는데 그야말로 인간사회의 모범이요, 어머니들의 본보기라고 할수 있다. 어머니의 인생행로는 그대로 높고 우렁찬 어머니의 노래를 구성했다고 할수 있다. 인간세상에는 많은 죄악과 추악과 불공평이 존재한다. 그들은 어머니와 그리고 어머니와 비슷한 필생의 심혈을 조금도 남김없이 아들딸들의 성장에 쏟으신분들의 공로와 희생을 보지 못한듯이 홀시할수 있지만 천국은 그들을 포상할것이다. 동시에 인간세상에서 징벌을 받지 않았거나 징벌할수 없는 일체 죄악, 추악과 불공정을 지옥에 보내여 심판할것이다. 나의 친구이고 저명한 작가와 평론가이며 인문문학출판사 전 부총편집이였던 하계치선생이 보내온 대련에는 이렇게 씌여져있다.   위대한 어머니 앞길을 밝게 비춰주니 우수한 아들딸들 후세의 본보기 되네   전련은 십분 맞는 말이지만 후련은 나로 하여금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하게 한다. 계치의 기대에 도달하려면 우리는 진정으로 선을 지향하는 목적을 가슴에 담고 근면하고 성실하게 책을 읽어야 할것이며 사고하고 자생하고 자률해야 할것이다. 또한 어머니를 따라배워야 할것이다. 인류에게 있어서 제일 가깝고 친절하고 순결하고 소박하고 원견성이 있으며 기초적인 효응이 있고 발전공간이 있고 봄날의 따스한 바람처럼 령혼을 어루쓰러주고 키워낼수 있는 교육은 우리 어머니들이 제일 먼저 실시하고 또 나중에 완성한다. 당년에 동승인민공사에서 살 때 누군가 어머니의 손에서 나 어린 계량이를 사가겠다고 했다. 그때 우리 가정은 이미 파탄될 지경에 이르렀던것이다. 어머니는 그 사람의 청을 단마디에 거절해버렸다. 어머니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 더 이상 영위해나갈수 없는 가정이지만 목숨을 걸고 지키려고 결심했던것이다. 어머니의 사랑속에서 계량은 하루하루 커갔고 오늘의 인재로 자라났다. 이것이 그래 어머니가 창조해낸 기적이 아니란 말인가? 이 아름찬 양육의 정을 무엇으로 다 보답한단 말인가! 금아는 소학교에 다닐 때 간염에 걸린적이 있는데 얼굴이 누르끄레 하고 몸집이 아주 가냘파보였다. 집에 돈이 없어 공공뻐스를 탈수 없었기에 나는 해전문 사도구로부터 우안문외 제2전염병원까지 금아를 업고 갔다. 하지만 200원이나 되는 입원담보금은 어디 가서 구할데가 없었다. 나는 끝내 금아를 입원시키지 못한채 겨우 약 한봉지를 받아가지고는 금아를 업고 집으로 돌아왔다. 금아의 병은 따로 치료를 하지 않았지만 어느새 저절로 나아버렸다. 어머니께서 어떻게 금아의 병을 다스렸는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고있다. 지난세기 삼년재해 때, 산동 창락의 농촌에 사시던 나의 할머니와 외할머니는 선후로 굶어서 돌아가셨다. 하지만 북경 해전의 작은 방에서 겨우 연명을 해가는던 어머니와 우리 다섯 오누이는 뜻밖에 조금도 몸을 상하지 않았다. 우리는 천민이라 빈하중농들처럼 혁명적구호를 부르면서 인민공사의 곡식을 훔쳐올수는 없었지만 신근하게 로동하고 절약하고 참아내면서 이를 악물고 목숨을 이어왔던것이다. 어머니는 주어온 낡은 삽으로 집뒤에 있는 벽돌이며 돌멩이가 구을던 땅을 밭으로 개간했다. 그밭에다 옥수수를 심고 공장에서 나오는 페수구에서 물을 떠나다가 뿌려주었다. 가을이 되자 놀랍게도 그밭에서 수확을 할수 있었다. 인민공사에서 가을걷이를 할 때면 우리 온 식구는 아침일찍 나가서 이삭주의를 했다. 농민들이 떨어뜨린 고구마며 당근이며 콩꼬투리며 밀이삭을 광주리에 주어담았다. 돈이 없어 석탄을 살수 없었기에 립성은 늘 기차역전에 가서 코크스를 주었다. 립성은 가끔 그 지역에서 왕처럼 우쭐거리는 역전마을 애들에게 얻어맞아 얼굴이 멍들고 옷이 찢겨져 돌아올 때도 있었다. 그런날 밤이면 어머니는 못내 가슴 아파하시며 찢어진 옷을 한땀한땀 기워주셨다. 풀을 베여 팔아 푼돈을 벌어들이던 그해, 립성은 겨우 12, 3살이였을것이다. 어느 토요일이였는데 내가 학교에서 돌아와보니 벌써 날이 어두워져있었다. 하지만 립성이는 그때까지도 집에 돌아오지 않았었다. 나는 손전등을 들고 오솔길을 따라가 립성을 마중하러 갔다. 멀리서 립성이 머리를 푹 숙인채 풀을 가득 실은 밀차를 끌고 망아지처럼 힘겹게 걸어오는것이 보였다. 나는 앞으로 달려가서 낮은 소리로 “립성아.” 하고 불렀다. 그때 립성의 두눈에는 맑은 이슬이 맺혀 반짝이고있었다. 나는 소리없이 립성의 손에서 밀차를 빼앗았다… 년세가 지긋하신분들은 개혁개방이전의 북경골목에서 늘 못사는 집 아이들이 고물을 줏는 사륜차를 끌고 다니는 풍경을 보셨을것이다. 나무판에 쇠바퀴로 된 사륜차의 페달을 두발로 밟으면서 휙휙 소리나게 나는듯이 달리는 모습들을 말이다. 어머니는 강철학원부근에서 보모를 하신적이 있는데 혼자서 두집을 돌보셨다. 어머니는 아침일찍 나갔다가 날이 어두워야 돌아오셨다. 힘들어도 앉거나 누울수가 없었다. 기껏해야 약간 허리를 펴서 움직이면 그게 곧 휴식이엿다. 그야말로 숨 돌릴 기회마저 따로 없었던것이다. 다리에 부스럼이 나고 피가 흘렀으며 고름이 흐르고 부식되여 구더기가 생기기까지 했다. 그 지경이 되여도 어머니는 쉴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이면 어머니는 급히 소금물로 상처를 씻어내고 헝겊으로 꽁꽁 감싸버렸다. 이튿날아침이면 어머니는 아무 일도 없는듯 또 출근을 하셨다. 어머니는 주인집에서 상처가 곪아나는 냄새를 맡고 자기를 해고시킬가봐 제일 겁나하셨다. 어머니는 우리들을 먹여살리기 위하여 몸부림을 치셨을뿐만 아니라 또 우리의 학습에도 갖은 심혈을 다 기울이셨다. 하여 우리는 모두 소학교, 중학교에 다닐수 있었고 나는 대학까지 나오게 되였다. 나는 어머니께서 겪으신 그 고생을 죽어서도 잊지 못할것이다.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늘 사는게 힘이 난다고 말씀하셨다. 오직 자식들만 곁에 있으면 희망이 보인다는것이 어머니의 삶의 신조였던것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역시 한순간에 귀전을 스치는 바람과 같다는것이였다. 금영은 12살좌우부터 늘 공사에 달려가 보조금을 요구했다. 공사에서는 어머니가 다섯 오누이를 힘겹게 키우는것을 알고있었다. 그들은 또 총명한 금영이를 아주 좋아했다. 공사에서는 종래로 우리 가정을 난처하게 굴지 않았다. 금영은 매번 공사로 갈 때마다 10원, 15원 지어는 20원의 보조금을 받아왔다. 금영이는 북경녀자3중학교의 3호학생이였다. 그해 금영이는 초중이를 졸업하고 나는 고중을 졸업했다. 가정을 꾸려나가고 나를 대학에 보내기 위하여 금영이는 16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사업에 참가할수밖에 없었다. 금영이는 사업에 참가하자마자 교육국에 가서 포황유에 있는 20평남짓한 아빠트를 얻어왔다. 하여 우리는 사도구의 나무판대기로 뒤벽을 막아 바람이 크게 불면 수시로 넘어갈수 있었던 주인이 워낙 창고로 쓰려던 창문이 없는6평도 되지 않는 그 흙벽돌집을 떠날수 있었다. 나는 사도구의 그 흙벽돌집이 당시 중국에서 제일 좁고 초라하고 위험하고 어두워서 누구도 감히 거주하려 하지 않는 또 사실상 누구도 거주했던적이 없었던 “집”이였다고 말할수 있다. 비가 오면 집이 무너질가봐 들어갈수 없었고 우뢰가 울면 네벽에서 흙이 투둑투둑 떨어져내렸다. 그야말로 가축우리보다도 못했고 “백모녀”에서 양백로가 살던 집보다도 못했었다. 아마 희얼이 살던 산굴보다는 좀 나았다고 할가. 하여 집주인도 우리에게 집세를 내라는 말을 하지 못하였다. 사실 그곳을 “집”이라고 말하는것은 그곳에 대한 감사의 마음때문에 약간 높이 대우를 해주고 과장을 한것뿐이지 절대 “집”이라는 이름으로 통하기에는 과분한 곳이였다. 그처럼 악렬한 환경에서 생활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스스로를 사람이라고 확신하고있었다. 나는 정말 나 자신의 위대한 락관주의정신에 대하여 자호감을 느끼지 않을수 없다. 그처럼 초라하고 비천한 환경을 벗어나 하루아침에 넓고 밝고 따스하고 명실공히 사람이 거처할수 있는 능히 금영이가 학가만소학교에서 빌어온 네개의 낡아빠진 학교에서 한쪽에 밀어놓았던 손질하면 그런대로 쓸수 있는 접이침대를 놓을수 있고 손님이 오면 앉을 자리가 있는 “고층아빠트”에 이사를 오게 한것은 금영이가 평생에 느낀 제일 큰 성취감이였고 행복이였을것이다. 금영이가 우리 가정을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희생을 나는 영원히 잊을수 없다. 후에 금영이는 학력이 낮다는 관계로 교단을 떠나 농민, 공인을 거쳐 사무원으로 되였다가 공회주석이라는 중임을 짊어지기도 했다. 념원과 현실, 재능과 출로는 현제한 차이가 있어 우울할 때가 많다. 이러한 사실은 언제나 우리로 하여금 가슴아프게 하고 어떻게 그것을 보상할가를 두고 갈피를 잡을수 없게 한다. 그때 나는 책꽂이가 욕심이 났지만 집 형편으로는 살수 없었다. 어머니는 어디에서 주어왔는지 모를 나무판대기를 칼로 깎아 못을 박아서 네모난 책꽂이를 만들었다. 칠도 올리지 않아 네면의 색갈마저 다른 책꽂이였지만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광명일보》에 입사할 때까지 그것을 썼다. 후에 이사를 하다가 잃어버리고말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정말 아쉽기 그지없다. 구차한 집에서 효자가 난다고 했다. 물론 집이 구차하면 모리배도 나올수 있다. 리익이 있으면 정을 쏟고 리익이 없으면 돌아설수 있는것이다. 사리사욕에 정신이 팔려 불효를 저지를수 있는것이다. 대학에 올라간후 나는 본분을 지키려 했을뿐 그렇게 힘들여 공부를 하지 않았다. 그대신 많이 사고하고 습작에 열중했다. 그것 역시 워낙은 정상적인 행동들이였지만 정치지도원은 “반동학생”들의 언행과 습관으로 느낀것 같았다. 나는 흑백이 전도되고 단장취의하며 없는 사실을 날조하고 작은 일을 크게 부풀리는 등 굴욕을 다 당하면서도 뭐라고 항변할수마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단잠에 든 밤에도 나는 복도의 전등불아래에서 밤을 패가며 검토서를 써야 했다. 당시 나는 죽도록 글을 읽어 “반혁명”이 된것을 한탄했고 금영이로 하여금 공부를 그만두게 한것도 뼈저리게 후회했다. 하늘이시여 왜 이렇게 사람을 알아주지 못하나이까! 나는 옥연담의 그 황량한 가을 물가에 벌써 다가서고있었다. 수면우에 갑자기 한줄로 나란히 선 어머니와 네 형제자매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충신으로 될수 없으면 효자나 되자. 가을바람이 얼굴을 간지럽혔고 락엽이 가득 땅에 떨어져내렸다. 발걸음이 무거워나며 처량하기를 이를데 없었다. 나는 그 얼굴들이 그때 왜 거기서 떠오르는지 알수 없었다. 어쩌면 어머니께서 나를 위험에서 구하려는것은 아니였을가? 중학교, 대학교 때의 동학들이 우리 가정에 대한 동정과 관심을 나는 영원히 가슴에 아로새길것이다. 4중에 다닐 때 류소지는 산서가에서 우리 집으로 와 논적이 있다. 그가 집으로 돌아간후 나는 상우에서 돈 5원을 발견했다. 사실 한잔의 물로 한수레의 장작에 붙은 불을 끌수 없듯이 당시 가난에 허덕이던 우리에게는 그 돈이 별로 큰 도움은 없었지만 정만은 부유한 사람들이 천금을 던져주는것보다 더 진하고 깊었다. 북경사범학원식당에서는 매주 금요일아침에 기름에 튀긴 떡을 하나씩 주었다. 그것은 당시 사범학원학생들이 제일 즐겨먹는 음식이였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먹지 않고 남겼다가 나어린 계량과 금아에게 주었다. 두군휘가 그것을 알고는 떡을 먹지 않고 남겼다가 나에게 주며 말했다. “한 사람이 반개라니, 썰썰이나 일으킬게 아니냐? 한 사람이 하나씩 먹게 해라.” 두군휘는 대학교를 졸업하는 그후의 3년간 계속 나에게 떡을 남겨주었다. 두군휘는 그렇게 매주 금요일만 되면 온 오전을 배고픔속에서 보냈던것이다. 3년, 그 기나긴 나날을 견지하기는 정말 쉽지 않았을것이다. 어머니께서는 늘 우리에게 “사람이라면 꼭 정의가 있어야 하고 은정에 보답할줄 알아야 한다.”고 타이르셨다. 황경발, 왕경산과 같은 선생님들, 류소지, 두군휘와 같은 동학들, 진진, 악건일과 같은 친구들, 호춘계, 양배군 등과 같은 학생들은 영원히 나에게 고마움을 느끼게 하는 사람들이다. 어머니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바라는것이 없었다. 공부를 더 하려고 미국에 처음 갔을 때, 계량이는 춥고 배 고프고 고독해서 막막하기만 했다. 그때 계량이는 젊었지만 이미 갖은 고생과 단련을 다 거친후였다. 계량이는 아주 총명했고 또 매우 견강했다. 환경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계량이는 꼭 헤쳐나오려고 마음 먹었다. 아무도 바랄이가 없는 그곳에서 새로운 천지를 열려고 결심했던것이다. 개학을 했지만 아무것도 알아들을수 없어 계량이는 어리둥절하긴만 했다. 이듬해에 계량이는 우수를 했고 그 다음해에는 안해를 미국으로 데려갔다. 5년만에 또 어머니를 모셔갔고 6년철에는 장모님을 데려내갔다. 어머니는 미시시피강변의 청풍명월을 향수하기 힘들어하는것 같았고 미니애폴리스의 황유로 튀겨낸 닭구이를 자시기 버거워하시는것 같았다. 어머니는 얼마 안되여 산서가 7호의 16평밖에 안되는 두칸짜리 작은 집으로 돌아와 만두며 밀국수며 오이며 가지며를 자셨고 공동변소에 다니셨다. 어머니는 이웃을 방문하고 그들과 한담을 나누는것을 락으로 아셨다. 어머니는 어디에 사시나 시종 그렇게 만족을 하셨고 종래로 자신의 생활조건을 개선할데 대하여 아무런 요구도 제기한적이 없다. 어머니는 천생 남들과 비길줄을 모르시는것 같았다. 어머니의 함의는 바로 모든것을 자식들을 위해 바치는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모양이였다. 그만치 어머니의 념원은 오직 자식들의 평안과 행복인것 같았다. 그이는 자식들이 사업때문에 고민을 하지 말기를 바라셨고 큰 일을 할수 있기를 희망하셨으며 날마다 진보하기를 기도하셨다. 어머니는 자신이 자식들의 짐으로 되지 않는다고 이웃들이 칭찬한다며 그렇게 기뻐하셨다. 어머니는 보는 말을 서슴없이 하셨고 또 그 말씀에 책임을 지셨다. 어머니는 정직하고 용감함을 좋아하셨고 권세에 아부하는것을 제일 하찮게 보셨으며 언제나 약자를 동정했다. 1964년, 북경사범학원 정치보도원은 군중들을 동원하여 나를 “반동학생”으로 몰아갔다. 나는 그것이 나에 대한 무함이며 시비를 전도하는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검토서를 쓰지 않았고 자료에 서명도 하지 않았다. 나중에 정치보도원은 이렇게 나를 위협하였다. “자료에 서명만 하면 능히 인민내부모순으로 처리할수 있다. 하지만 서명하지 않을 경우에는 적아간의 모순으로 처리하겠다. 그렇게만 된다면 정상적으로 졸업을 할수 있을지는 미결이다.” 나는 하늘을 치솟을것 같은 분노를 누르면서도 머리를 숙여 서명을 하지 않을수 없었다. 나는 정상적으로 졸업을 해야 했고 취직을 해야 했으며 월급을 받아 가정을 살려야 했다. 나는 포황유에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누에콩 반사발에다 집에 올 때 사가지고 온 작은 병에 넣은 “얼궈터우”술을 마셨다. 술독이 피자 나는 잠이들고말았다. 꿈에 내가 억울하다고 소리치는 바람에 어머니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어머니는 거의 명령에 가까운 어조로 나에게 말씀하셨다. “억울한 일이 있으면 속에 담아두지 말고 고발하거라. 지금 바로 가거라. 네가 없으면 집이 돌아 못갈거라고 생각하느냐? 금영이 한달에 2, 30원씩은 벌어드리고 나도 보모를 하여 2, 30원씩은 나온다. 그게면 된다. 빨리 가보거라. 지금 가라는데두. 승인할것은 승인하고 승인하지 못할것은 때려죽인대두 승인하지 말거라. 너의 아버지의 교훈을 잊었느냐? 《참두아(斩窦娥)》가 바로 이런 이야기를 하고있다.” 나는 학교를 찾아갔다. 하지만 원이나 계에서는 근본 나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들은 내가 착오를 견지한다고 비평하지 않았고 내가 자신을 변명한다고도 책망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내가 쓴 자료만 남겨놓고는 돌아가 기다리라고 했다. 나를 접대하는 그들은 그야말로 오만의 극치라고 할수 있었다. 학교에서는 내가 제일 근심하던 로동실습을 할 자격은 박탈하지 않았다. 인민내부모순으로 처리된것 같았다. 나는 “조직”과 맞서서는 절대 이길수 없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그것은 권리를 장악하고있는 전제자의 오만하고 광기에 가까운 권위에 도전하는것으로 되기때문이였다. 전제자가 실패를 달가와 하지 않는 도전자에게 돌려주는것은 더 거센 핍박과 박해와 굴욕과 진압일뿐이였다. 하지만 나는 실패가 정해놓은것일지라도 인격상에서 더욱 굴욕감을 느끼고 운명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며 기가 꺾여서 투지를 상실하고 스스로를 철저히 아Q식으로 만들수는 없었다. 하지만 닭알로 바위를 치는 식으로 고생을 사서한 결과는 어머니도 생각지 못한것이였다. 어머니는 백성을 위하여 단비를 뿌려주는 청관에 대한 극을 너무 많이 보셨던것이다. 어머니는 이 시대에 포공이 너무나 적으며 시키면 시키는대로 절대 복종하는 관리들이 너무나 많다는것을 모르셨다. 어머니는 또 시비야 어떻게 되여있든 이른바 “조직”의 리익, 영예, 존엄과 권위는 절대 모독을 당하면 안되고 “조직”을 대표하고 “조직”에 속하는 사람의 사고와 실천이 곧 최고의 원칙으로 된다는것을 알지 못하셨다. 그리고 어머니는 정치지도원은 학교에서 “조직”을 대표하여 학생들에게 사상교육을 진행하고 정치적감독을 실시하는 간부라는것을 모르셨고 “조직”은 아무 재간도 없는 보잘것 없는 사람도 위세가 당당해지게 하고 비할수 없이 강대해지게 하기에 절대 그와 평등해질수 없으며 반드시 그들이 말하는 “진리”에 굴복해야 한다는것도 알지 못하셨다. 어머니는 학교가 더 이상 “도리를 전도하고 학업을 전수하며 의혹을 풀어주는 곳”이 아니며 이미 행정급별이 있는 “무산계급혁명사업의 후계자”를 양성하는 국가기구와 “계급투쟁리론”을 리용하여 “의식형태령역의 계급투쟁”을 전개하는 전쟁마당이라는것도 알지 못하셨다. “조직”에서 어느 학생에게 “생각과 행동이 같지 않다”는 모자를 씌우면 그 학생은 아무리 학습성적이 좋아도 어쩔수 없는것이였다. 한장의 졸업감정이 그 학생의 일생을 결정하게 되는데 절대 스스로 그 모자를 벗어내칠수 없었던것이다. 내가 온 가정의 생사가 불구하고 결사적인 각오로 달려들어도 정치보도원들은 최종적으로 승리를 쟁취할수 있게 되여있는것이였다. 사회주의공유제도와 로동취업권이 나라에 장악되고 정치, 경제, 문화가 일체화 된 체제하에서 중국에는 정부에 목숨으로 대항하는자들이 나타나기 어려울것이다. 나는 나에게 억지로 씌워놓은 “반동학생”이라는 결론을 반대하고 나의 력사적인 진면모를 회복해달라고 요구했다. “문화대혁명”이 시작되자 나는 “우경번안급선봉”으로 몰리워 감금을 당했고 구타를 당했으며 비평과 투쟁을 받았다. 나중에 맞아서 허리가 부러져서야 “특혜”를 받아 집으로 돌아가 치료를 받을수 있었다. 나는 어머니를 보고 깜짝 놀랐다. 어머니는 워낙 머리칼이 검으셨는데 백날도 안되는 사이에 귀밑머리가 하얗게 세여버렸었다. 어머니도 놀라셨다. 어머니가 급해서 안절부절 못했다. 어머니는 큰 근심에 빠져버렸다. 아들이 불효를 저질렀습니다. 미안합니다. 어머니! 나는 두무릎을 꺾으며 고통스럽게 어머니를 불렀다. 눈물이 얼굴을 적셨고 목소리가 처량하게 들렸다. 어머니께서 나를 당겨시며 날이선 목소리로 욕설을 퍼부었다. “이게 다 너의 아버지라는 그 물건짝때문에 생긴 일들이다.” 나는 어머니가 사람을 욕하는것을 그때 한번밖에 본적이 없다. 어머니는 나를 위해 억울함을 호소하셨다. 이것이 바로 어머니의 용감성이라고 할수 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때 응당 누구의 책임을 추궁해야할지를 모르고 계셨다. 이것은 어머니의 비애였다. 어머니는 평생을 정직하게 로련하게 도리를 따지면서 존엄있게 살아오셨다. 그이는 종래로 다른 사람을 업신보지 않았고 다른 사람도 당신을 업신보지 못하게 했다. 어머니의 그같이 소박한 독립과 민주의적인 정신은 나로 하여금 저도 모르는 사이에 감화되게 하였다. 나는 어머니의 그 이신작칙하는 가르침을 깊이깊이 머리속에 기억하고있다. 어머니께서 멀리로 떠나가신다. 우리는 그이와 작별인사를 나누어야 할 때가 되였다. 이것은 우리가 어머니를 더욱 깊이 료해할수 있는 적당한 기회이다. 어머니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통하여 전통리론도덕이 가정에 대한 제약과 합리성 및 필요성을 인식해야 할것이다. 이것은 우리 가정의 임무일뿐만 아니라 지어는 우리 전반 민족이 짊어져야 할 임무라고 해야할것이다. 어머니의 일생을 회고하면 나는 위안도 느끼지만 가슴이 아프고 부끄럽기도 하다. 어머니는 흉금이 넓으시고 패기가 있으며 결단성이 있는분이셨다. 어머니의 패기는 내성적인것이였고 겸손한것이였다. 하기에 분노했을 때나 즐거우실 때 절대로 초조해하거나 거만하지 않으셨다. 전쟁으로 혼란스럽던 40년대에도 그이는 비발치는듯한 초연탄우를 무릅쓰고 애어린 금영이를 품에 안은채 남편을 찾으러 천리길에 올랐었다. “3반운동”시기에도 어머니는 도리에 의거하여 자기의 권리를 찾으려고 중앙세무학교에 찾아가 다시 아버지의 사건을 심리해달라고 당당하게 요구를 제기하였다. 하지만 같은 곳에 감금되여 심사를 받던 류초는 누구도 관심을 돌려주는 사람이 없은데서 고민을 하다가 실망하고 동맥을 끊어 자살을 하고말았다. 삼년재해시기, 극도로 되는 기아때문에 사람마다 몸이 부어나던 때에도 어머니는 놀랍게 백여근이나 되는 전국통용량표를 모아서 급할 때를 대비하셨다. “문화대혁명”의 광란속에서도 어머니는 금아와 계량이 면회를 오는 기회를 리용하여 나에게 절대로 “몸에다 온 가정의 운명을 짊어졌다.”는 점을 잊지 말라고 충고했으며 만약 형을 선고받아 감옥에 들어간다고 해도 꼭 살아남아야지 절대로 남에게 맞아죽거나 스스로 기막혀 죽어서는 안된다고 타일러주셨다. 한 녀인과 다섯 자식으로 무어진 가정은 취약해서 비바람을 이여내기 어렵다고 생각할것이다. 하지만 이 가정에 어머니가 계셨기에 우리 가정이라는 이 함선은 그 어떤 풍랑고초도 꿋꿋이 이겨나갈수 있었으며 죽음의 문턱에서도 의연히 살아남을수 있었다. 어머니에게는 뛰여난 감화력이 있었다. 하기에 우리 자식들은 모두 자각적으로 형세에 다라서 큰 국면에 복종할수 있었으며 목숨을 내걸고라도 가정을 보위하고 위험속에서 가정을 구해낼수 있었다. 어머니는 이 가정의 생존, 성장, 발전 장대를 위하여 자존자강하고 정의를 중히 여기며 간고분투하고 불요불굴하는 우량한 가풍을 형성하셨다. 어머니에게도 어쩌면 약점이 있을것이다. 이를테면 남존녀비와 같은 관념이나 모든것은 명에 따른것이라는 숙명관념 같은것들을 들수 있다. 하지만 력사적인 국한성이나 문화적인 국한성으로 볼 때 이것을 착오라고 할수 없다. 오직 리해를 해야 하지 구태여 다른것을 바랄수 없는것이다. 우리는 절대로 신선을 흥량하는것과 같은 표준으로 보통사람을 볼수 없다. 하지만 지나치게 관용을 베풀거나 자아방종하고 도덕의 자아완성을 거절해도 안된다.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시기 1년전부터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셨다. 그는 자신의 건강, 수명, 동통, 치료, 음식, 기거, 호리, 지어는 후사에 이르기까지 아무런 지시나 교대도 없으셨다. 어떻게 하는게 쉬우면 어떻게 처리하라는 뜻이였다. 어머니께서 유일하게 근심하시는것은 내가 근 20년간 시종 혼자 사는것이였다. 어머니는 나를 뽈 때마다 물으셨는데 어쩌면 그게 마음의 병으로 되셨는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어머니께서 림종하시기 두달전에 나는 류미를 집으로 데리고 갈수 있었다. 류미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길이 매우 부드러웠다. 그리고 량미간이 활짝 펴졌으며 얼굴에 웃음이 가득 번지셨다. 어머니는 수척한 손으로 미래의 며느리의 손을 잡고 말씀하셨다. “좋네, 참 좋아. 다투지 말게. 일이 있으면 서로 앞장서서 하게나. 재밌게 살게.” 우리는 참지 못하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깊숙히 허리를 꺾었다. 우리는 어머니께서 림종전에 해주신 마지막 축복을 가슴속 깊이 간직하고있다. 어머니께서는 일생동안 충후하고 인간적이셨고 탁월했으며 사랑으로 사람들을 대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요구는 매우 엄하셨다. 내심으로부터 출발하여 어머니의 몸에서 강렬하게 보여지는 전통문화의 감동적이고 빛나는 자각을 섭취해야만 우리의 인격이 고상하게 될수 있고 어머니께서 여전히 우리와 함께 계시는것 같은 느낌을 진정으로 감수할수 있을것이다. 어머니의 유체고별의식은 장엄하고 경건하게 진행되였다. 어머니의 자애로운 모습을 담은 유상은 여전히 생전의 모습을 보는듯싶었다. 추모시와 대련들이 유상량옆에 걸렸다. 화한은 고별청에 겹겹이 둘러쌓였다. 나의 대학교 스승님들인 왕경산, 왕몽, 나의 스승이자 친구들인 원응, 리국문, 소연상, 나의 문학계, 예술계, 신문계, 교육계, 기업계의 친구들인 진진, 정이청, 진건공, 왕덕추, 리치국, 호옥룡, 안성신, 류옥산, 최군연, 류소지, 장서발, 륙려나, 리기, 장락산, 리영, 리려, 수려군, 진단진, 류석성, 부활, 고엽매, 왕소용, 라정문, 악건일, 장덕녕, 허지운, 소립군, 주정, 한소혜, 로약강, 리명생, 조대붕, 전혜생, 두군휘, 리춘유, 목상신, 왕조건, 호춘계, 부문하, 양배군, 송평, 왕복명, 성아야, 량옥존, 증진남, 장왈개, 조애진, 방화, 호계금, 차매, 풍하, 경육민, 조옥지, 복운진, 왕성도 등도 화환을 들고 찾아왔다. 원응선생이 화환에 남긴 서명은 “우질원응(愚侄袁鹰)”이였다. 나는 그에게 “우질”이라는 두 글자를 삭제하자고 제기했지만 원응선생은 기어코 남겨야 한다고 고집했다. 원응선생의 그 겸손함에 나는 지금도 황공함을 느낀다. 전에 “당대지식청년문학의 아버지”로 불리운, 당년에 내가 협화골과에서 척주를 수술할 때 밤도와 나를 간호해주던 악건일, 장덕녕 부부는 “왕문진로인님을 추모하여”라는 만사를 지어왔다. 그리고 나의 중학교, 대학교 때의 동창이며 당년에 격렬하게 사범학원의 압제와 타격에 반항하여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고 일생을 방황하던 재능이 있지만 운명이 기구했던 류소지는 추모시 “풍백모송”을 보내왔다. 태두식, 정영식의 성취가 있고 업적이 있는 스승과 친구들이 나의 어머니를 위하여 마지막길을 바래준것은 어머니의 영광이다. 나는 이로하여 긍지를 느끼면서도 얼마간 놀라왔다. “장군이 가니 큰 나무가 잎이 떨어진다” 했던가.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나는 삽시에 넋이 나가버린것만 같아 눈앞이 아찔해났다. 어머니께서 살아계실적에는 어머니가 없는 자리를 상상해본적이 없었지만 어머니께서 돌아가시자 비여있는 그 자리가 그렇게 크게 느껴질수 없었다. 내가 무너진다면 누가 나를 잡아줄가? 내가 비통해한다면 누가 나의 하소연을 들어줄가? 내가 의혹스러워 한다면 누가 와서 해답을줄가? 내가 충동되였을 때, 너무 흥분하여 모든것을 잊어버렸을 때 누가 와서 나를 깨워주고 랭정을 되찾게 충고해줄가? 어머니를 잃은 고통은 이 세상에서 제일 큰 고통이요, 신심을 잃은 비통함은 이 세상에서 제일 큰 비통함일것이다. 그리고 자식이 부모를 봉양하려 하지만 친인이 계시지 않는것이 이 세상의 제일 큰 유감이라는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우리 가정의 지난날때문에 그리고 우리가 영원히 어머니의 아들딸들이라는것때문에 자호감을 느낀다. 인간의 길에서 어머니를 바래주는 대오가 점점 멀어져 간다. 천국의 길에서 어머니를 맞아주는 노래소리가 들려온다 어머니, 편히 가십시오! 어머니, 감사합니다!   《중국당대문학작품선집》조선문판에 실림
19    “어리석음”과 “재기” 댓글:  조회:1985  추천:0  2014-07-27
“어리석음”과 “재기” ―주여창선생을 추억하며   장이무     주여창선생이 영면하셨다. 로일대학자들이 한분, 두분 세상을 떠나신다. 이것은 누구도 거역할수 없는 세월의 힘이다. 주선생은 그래도 장수하셨다고 할수 있다. 그이께서는 20세기 중국지식분자의 전형적인 인생행로를 걸어오셨다. 그의 자서전을 읽었는데 사실 그의 인생경력이 그렇게 놀라운것은 아니였다. 사람들이 그의 인생이 평범하지 않다고 하는것은 그와 《홍루몽》에 얽힌 평생의 인연때문인것 같다. 이러한 인연은 그로 하여금 중대한 력사적풍운변화속에서 누구도 감당할수 없는 독특한 역할을 하게 했다. 이 점은 20세기 중국인의 문화상상중에 있는 《홍루몽》의 독특한 위치 및 그 의의와 같은것으로서 주선생의 평범한 학자생애에 극히 평범하지 않은 의미를 부여한다. 주선생은 사실 20세기후반기에 중국대륙의 풍운변화속에서 능히 중국의 전통적인 정신을 계승한 정수적인 인물이라고 할수 있다. 그의 존재는 우리들로 하여금 중국의 대 변혁가운데서도 변하지 않는 많은 물건들이 계승, 발전되고있었다는것을 알게 하였다. 어느 민족의 운명이나 흥망성쇠가 있다. 그리고 또 어느 민족이나 그 민족을 수호하는 일부 령혼적인 인물이 필요한데 그런 인물은 력사와 문화의 정신적인 분위기속에서 나타나게 되는것이다. 주선생의 의의는 사실 그 객체의 력량에 대한 느낌과 중국문화의 진귀환 보물인《홍루몽》에 있는것이다. 주선생은 우리에게 다채로운 “홍학”세계를 펼쳐주었다. 만약 주선생이 없다면 20세기후반기의 중국의 문화사는 어딘가 적막하게 느껴질것이요, 조설근과 《홍루몽》도 지기가 없게 될것이다. 나는 늘 이상한 생각을 굴리군 한다. 《홍루몽》의 경우는 주선생을 만났기에 전보다 확실히 달라진것이 아닐가? 물론 주선생 본인도《홍루몽》에 대하여 일생동안 집착을 보였다고 말쓴하신적이 있다. 주선생은 사실 나의 중학시절의 우상이였다. 그때 우리 집에는 옛 버전의 《홍루몽의 새로운 증거(红楼梦新证)》라는 책이 있었다. 그때는 “문화대혁명”시기여서 새로운 책이 부족했다. 나는 부모들의 장서를 뒤져보기를 무척 좋아했다. 《홍루몽의 새로운 증거》는 번체자를 사용했는데 배판도 세로짜기로 되여있어서 읽기가 매우 불편했다. 책은 보풀이 일었지만 그 내용은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다. 특히 그 《력사사건편년(史事编年)》은 강옹건(康雍乾) 3대 력사사건을 집성했다. 책에는 정사의 기재도 있고 야사의 이야기도 있었는데 소설을 읽는것처럼 생동한 느낌이였다. 그 책을 읽으면서 나는 주여창이라는 존함을 처음 접하게 되였다. 후에 그 책의 새로운 버전이 나와 독자들을 기쁘게 했다. 나는 인차 그 책을 사서 다시 통독했다. 새로운 버전에는 이전 버전에 없던 새로운 내용들이 보충되여 그야말로 당시 홍학의 집대성이라고 할수 있었다. 그책을 통하여 나는 “홍학”의 복잡성을 알게 되였다. “홍학”을 리해한다는것은 단지 소설에 대한 연구뿐만이 아니라 판본이 있고 가세가 있고 탐일(探役)을 중심으로 하는 방대한 계통이다. 하기에 겉보기는 자질구레해보이지만 속내를 따져보면 오묘하기 그지 없다. 외인들의 눈에는 늘 따분하게 보일수도 있지만 알고보면 안에 수많은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담겨져있다. 이를테면 조설근초상의 진가여부, 잃어버렸던 “정본(靖本)”의 신비한 이야기는 셜록홈즈의 탐정이야기처럼 전기적이였다. 이러한 점들은 모두 나로 하여금 주선생에 대하여 경모의 정으로 충만되게 했다. 당년에 모씨가 《홍루몽》을 너무 좋아해서 다섯번이나 읽었다는 말도 있다. 하기에 “홍학”은 의심할바 없는 저명한 학설이며 “홍학”을 담론하는것은 당시의 류행문화였다. 주선생의 책을 읽으면서 두가지 느낌이 강렬했는데 지금도 인상이 깊다. 그중 하나는 분위기가 절대 무겁지 않다는것이다. 주선생의 학술문장은 생동하고 흥미롭다. 사소한 고증이라도 그 필치가 읽는이들을 황홀하게 한다. 두번째는 여러가지 도리와 사리에 통달했다는것이다. 주선생은《홍루몽》의 판본, 조설근의 가세 그리고 80회후의 줄거리에 대한 탐구와 예술감정문화에 대한 관심을 융합시켜놓았다. 나는 주선생의 뛰여난 박학과 비길데 없는 집중력에 탄복한다. 그때로부터 나는 스스로 무엇이라고 설명할수 없이《홍루몽》에 집착하는 “홍학”애호자로 되였다. 나는 줄곧 어쩌면 다소 기묘하다고 할수 있는 학문의 발전에 관심을 가졌으며 “홍학”에 대한 시시비비에 빠져 살았다. 나는 전업적인 연구자가 아니기에 비록 그렇다할 견해를 발표하지 못했지만 장애령이 말한것처럼 “홍루몽에 미쳐버린 사람”과 비슷하게 되여버렸다. “홍학”에 빠져버린 나는 많은 시간과 정력을 소모했다. 이 점은 나로 하여금 더욱 쉽게 중국의 풍부함과 복잡성을 리해하게 했으며 중국문화의 넓고도 심오함을 느낄수 있게 했다. 내가 나 개인과 목전의 상관 연구외에도 중국의 정서와 지식에 대하여 약간의 료해를 가지게 된것은 모두 주선생이 나에게 준 최초의 계몽결과라고 생각한다. 내가 처음으로 주선생을 만난것은 지난세기 80년대초에 북경대학에서였다. 그 무렵, “홍학”은 사람들의 깊은 중시를 받고있었다. 중문전업에는 “홍학”을 연구하는 학생소조가 있었다. 그 핵심인물은 후에 재담과 연극대본을 창작하여 명성을 떨치다가 한창 나이에 세상을 뜬 량좌이다. 이 학생소조는 줄곧 아주 활약적이였으며 일부 문장도 발표했다. 나와 한 학급에 다녔던 마흔래도 그 소조에 참가했었는데 그는 당년에 “홍학”에 푹 빠져있던 재간 많은 녀학생이였다. 그녀는 고중때 벌써 《홍루몽학술지》에 문장을 발표했는데 그것은 후날에 나온 “신개념작문”에서 우승을 하기보다 더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할수 있었다. 우리의 소년시대는 “문화대혁명”후기였다. 그때는 젊은이들에게 적합한 문화가 발달되지 못했었기에 그들은 인차 성인들의 문화를 접촉하게 되였고 쉽게 그속으로 빠져들게 되였다. 소조에서는 주선생에게 특별강좌를 부탁했다. 주선생은 그번에도 “홍학”에 대하여 담론했다. 그는 《홍루몽》의 정취에 푹 빠져있었다. 나는 지금도 그가 장화시(葬花诗)를 읊으면서 도취되여있던 모습을 잊을수 없다. 강연을 하는 주선생의 목소리는 아주 낮았다. 그는 청중들의 반응 같은것에는 중시를 돌리지 않고 자기의 세계에만 푹 빠져있었다. 그는 마치 자기도 《홍루몽》중의 한 인물로 된듯싶었다. 그에게 있어서 그 세계는 우리의 현실보다 더욱 현실적인것 같았다. 그는 사실 그 세계에서 여유롭게 헤염치기를 더 바랐을것이다. 그는 가보를 헤아리듯이 판본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고 가세에 대하여 이야기를 했다. 그러한것들은 모두 학자의 직업적인 사업이 아니라《홍루몽》과의 마음의 투합이였다. 그후 나는 여러 장소에서 주선생을 만나게 되였다. 그의 여위고 허약한 신체와 쇠약한 시력 및 청력은 그의 여유로움을 저애할수 없었다. 이로보아도 주선생은 자기의 세계에서 사는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주선생은 겉보기에 온화하고 조예가 깊어보였는데 전통적인 유학자의 풍도가 있었다. 말할 때 그는 목소리가 가늘고 부드러웠다. 그러나 내가 보건대 그의 성격은 아주 강렬하고 극단적인 면이 있었다. 우리들이 추측하는 조설근이나 소설에 나오는 가보옥과 비슷한데도 있었다. 이를테면 정을 위해서는 “어리석게”도 놀수 있는 기질이 있다는것이다. 이 “어리석음”이란 바로 일종의 강렬한 성격이고 자신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끝없는 집착이다. 이러한 “어리석음”은 그의 재능과 충분하게 결합되였다. “어리석음”과 집념만이 아니라 넓은 흉금과 박식한 지식은 주선생으로 하여금 《홍루몽》의 신비한 경지에서 여유롭게 노닐게 했던것이다. 주선생의 재기는 줄곧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이면에서 그는 전종서선생과 아주 비슷하다. 그들은 워낙 외국어를 학습했지만 중국문화의 깊은 리해로 충만되여있었다. 주선생의 뛰여난 재간은 일찍 호적과 전종서 선생의 높은 긍정을 받았었다. 그는 양만리의 시에 주석을 단적도 있다. 그리고 서법을 론하거나 시사를 쓰고 감상하는데도 뛰여난 견해를 가지고있었다. 그의 문언시는 아주 뛰여나다. 가장 전기적인 이야기는 그가 조설근의 시를 모방하였는데 홍학자들이 진품이라고 단정했다는것이다. 모두들 그 시가 진짜 조설근의 손에서 나온것인줄로 알았던것이다. 나중에 주선생이 자기가 모방한것이라고 이실직고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어리석음과 재기는 바로 주선생의 령혼이였다. 고학을 하던 년대, 주선생은 어디에도 의지할데가 없어 중국의 전통속으로 돌아왔다. 그에게는 굳은 믿음이 있었다. 그는 중국문화의 우월성과 아름다움을 굳게 믿었고 중화문화의 필연적인 복흥을 굳게 믿었던것이다. 중국문화에 대한 그의 강렬한 신념은 그로 하여금 그의 큰 관심과 여러 방면의 재능을 모두 그의 인상속에서 누구와도 비길수 없는 인재라고 느껴지는 조설근과 그가 창작한《홍루몽》에 쏟아부었다. 조설근과《홍루몽》에 대한 집념은 주선생으로 하여금 자신의 어리석음과 재주를 모두 그 한점에 집중하게 했다. 주선생은 뛰여난 재능이 있는것만치 중화문화의 일오(壹奥)[i]에 대하여서도 체험이 깊었다. 그는 홍학자로 될 필요성이 완전히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재기로 보면 능히 전종서선생처럼 고금동서를 넘나드는 거인으로 될수 있었던것이다. 주선생은 영어에 아주 능했는데 오래전에 벌써 륙기의《문부》를 영문으로 번역하였었다. 나는 전에 주선생이 만약 홍학의 그 얼키고 설킨 시시비비에 말려들지 않았다면 지금 보건데 아주 자잘한것 같은 일들에 정력을 소비하지 않았다면 그가 이루어낸 업적은 지금보다 훨씬 더 컸을것이고 중화문화에 대한 그의 리해는 가능하게 더욱 넓게 퍼졌을것이라고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나는 또 주선생이 절대 그러한 선택을 하지 않을것이라는것을 알고있었다. 그만치 주선생은 “어리석었던것”이다. 하지만 이런 “어리석음’과 그의 재기가 결합되였기에 그에게서는 고리타분한 냄새를 좀처럼 맡을수 없었다. 주선생은 절대 재기가 일반적인 사람들처럼 고증을 죽은 학문으로 만들지 않았다. 그는 범속하지 않은 자신의 깨달음으로 고증을 했다. 그는 뛰여난 시인처럼 자기의 창조성과 상상력으로 학문을 증실했던것이다. 주선생이 나와 같은 “홍학”애호자들을 제일 탄복시킨 일은 바로 “조선(曹宣)”에 대한 고증이다. 이것은 주선생의 재기와 사실이 결합된 제일 좋은 증명이며 또한 주선생의 제일 휘황한 고증이라고도 할수 있다. 그는 순전히 추단으로 출발하여 조설근의 할아버지 조인에게 조선이라고 부르는 형제가 있다고 제기하였다. 이것은 모두들 그 사람의 자를 “자유(子猷)”로 부르는데서 비롯된것이다. 《시경》과 같은 고서에서 “선”은 “유”와 관련이 있다. 이로부터 그 사람의 이름은 “조선”이지 절대 “조의”가 아니라고 판단했던것이다. 이 사실은 후에 나온 사료들에 의하여 증명되였다. 이러한 고증은 바로 주선생의 고금동서를 주름잡는 해박한 재기와 진실을 밝히려고 집념하는 “우직함”을 증명해주는것이다. 주선생은 사실 극단적으로 두가지 종류의 인물을 찾아헤맸다. 중화문화에 대한 그의 큰 관심과 서방의 충격아래에 있는 중화문화에 대한 사수는 그로 하여금 아주 원대한 문화적인 사야를 가질수 있게 했다. 하지만 그는 이상할만치 세부적인것들에 집념을 했고 고증에 집착했다. 하여 그는 시와도 같은 드넓은 심경과 조금도 어김없는 고증을 결합시켰던것이다. 그러다보니 간혹 사람들로 하여금 필요이상 과도하게 해석을 하는것이 아니냐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를테면 조설근의 가세에 대하여 주선생은 시종 “풍윤설”과 “료양설”을 고집했는데 치렬한 론쟁이 있었다. 지어는 부동한 설법을 가지고있는 사람들과 대인관계에서 응어리까지 가지고있었다. 사실 조설근이 “풍윤인”이라는것은 5대전의 사실로서 조설근의 창작과는 아무 관계도 없다. 하지만 주선생은 여전히 조설근과 송나라의 조연의 관계를 이어놓으려고 했고 그로부터 조설근과 위진시대의 조씨가문을 련결해보려고 애를 섰다. 이것은 사실 중화의 “시경과 례기 전문가”의 핵심문제와 관계되는것이다. 조씨네 가문은 중원의 명문귀족으로부터 만주의 노예로 전락되였는데 그 상황이 매우 복잡하다. 때문에《홍루몽》의 위대함에 유전자적인 기초가 있게 되였다. 이러한 생각을 두고 우리는 현실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생각할수 있지만 사실은 주선생의 시심이라고 할수 있다. 그는 조설근과 중화문화를 너무나도 사랑했었기에 제일 광대한 구상을 하지 않을수 없었을것이다. “홍학”은 현대 중국에서 제일 독특한 학술공간으로서 전통적인 중국문화를 제일 직접적으로 표현했는바 중화문화의 제일 직접적인 체현이라고 할수 있다. 그의 텍스트의 풍부함은 중화민족의 문화적미의 제일 직접적인 체현이다. 그는 전통과 현대성의 직접적인 련속성을 증명하였다. 하기에 “홍학”은 또한 현대적인 텍스트이다. 사람들은 현대적인 개인해방의 시각에서 이 텍스트를 상세히 밝혀내고있다. 《홍루몽》에는 현대와 전통적인 중국의 복잡한 풍정이 어울려있다. “홍학”은 소설연구외에도 현대적인 학술에 실제운행의 본보기를 제공하여주었다. 판본이나 가세 혹은 탐일(探佚)을 막론하고 모두 전통과 현대가 련결되는 한개 방면으로 된다. 주선생의 독특한 점은 그가 이 모든 점에 대하여 모두 중대한 공헌을 했다는것에 있다. 제일 보귀한것은 주선생의 시심과 재기와 학식이 이처럼 교묘하게 결합될수 있었다는것이다. 주선생이 타계하셨다. 우리는 다시 그와 같이 글재주가 뛰여난 천재적인 학자를 모실수 없을것이다. 력사적인 고증과 현대적인 방법이 결합되고 억압감속에서 창조력이 충만되였던 인물이 우리곁을 떠나셨다. 주선생은 현대중국의 하나의 자랑이다. 그는 자기의 전통이 진귀하다는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있으며 《홍루몽》이 있음으로 하여 이 나라에 진정으로 정교하고 아름다운 문화정신이 있다는것을 알려주고있다. 이 점은 어떠한 변화라도 개변할수 없는것이다. 주선생의 경지를 따를만한자는 이 세상에 더 이상 있을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참답게 이러한 흥미있는 서적들을 읽어내려갈것이며 주선생과 함께《홍루몽》과 조설근의 세계에서 마음껏 헤염을 칠것이다.   (최동일 역)   일오(壹奥):일음곤(壹音困), 주선생은 전에 한 홍학자의 문학과 사학 기초가 그닥지 않다면서 이 학자가 일(壹)을 호(壶)라고 읽었는데 사실 이것은 부동한 뜻을 가진 두글자라고 지적했다.    《중국당대문학작품선집》조선문판에 실림
18    -1987년, 미국에서의 왕증기 댓글:  조회:2082  추천:0  2014-07-27
그는 자신을 이 통로의 대문을 두드리는 사람이라고 믿었다 -1987년, 미국에서의 왕증기 손욱 지난세기 80년대, 섭화령과 그의 남편은 아이오와대학에 국제습작중심을 설립했는데 많은 대륙의 작가들이 그곳에 다녀왔다. 섭화령은 어릴 때 대륙에 살다가 1949년에 대만으로 건너갔고 후에는 미국적을 가졌다. 그는 대만에 있을 때 은해광, 호적과 같은이들과 교제를 하면서 이단자들에 대하여 깊은 감수를 가지게 되였다. 그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모두 특점이 있었다. 국제필회중심을 설립하고 필회를 조직하는것은 바로 그의 마음속의 작가들을 위하여 모여앉을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려는것이였다. 적지 않은 중국작가들이 초청을 받고 아이오와국제필회에 참가했다. 정령, 애청, 소건, 왕몽, 소연상, 왕안억 등도 필회에 참가하여 이채를 돋구었다. 하지만 이들은 미국에 도착한후 모두 매체의 의도에 따라 발언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중국문제에 대하여 함축성이 있게 서술했고 일부 사람들은 아예 발언을 거부했다. 그것은 하나의 특수한 년대였다. 1980년을 전후하여 중국은 금방 “문화대혁명”의 동란속에서 헤여나오기 시작했기에 작가들의 마음이 아직 채 열리지 않았던것이다. 그들은 외계에 대하여 거리감을 가지고있었는데 이러한 심리상태는 섭화령에게 아주 깊은 인상을 남겨놓았다. 왕증기가 아이오와습작중심에 가게 된것은 1987년 8월이였다. 동행한이들로는 대륙작가 오조광, 대만작가 진영진이였다. 그 시절은 사람마다 능히 출국할수 있은것이 아니다. 작가로서 미국으로 갈수 있다는것은 일종의 영예였다. 왕증기에게 있어서 그번 출국은 그야말로 의외의 수확이라고 할수 있었다. 왕증기는 미국에 면목이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양진녕, 리정도, 왕호, 장충하… 그들은 모두 서남련합대학시기의 관계인사들이였지만 갈라진지 몇십년이 되여있었다. 출국을 한 그 친구들은 모두 미국의 대학들에서 한자리씩 차지하고있었다. 그들 모두가 밝은 모습을 보여주는것이 자연적으로 국내사람들보다 정력이 충만되여있는것 같았다. 왕증기는 미국의 친구들에게 시끄러움을 끼치고싶지 않아했다. 그는 조용히 보고서를 쓰고 바람이나 쏘이려 했던것이다. 그들은 금방 국경을 벗어나 동경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쌘프랜시스코에 도착했다. 려정이 매우 순조로왔다. 녀승무원들의 태도가 너무나도 살가와서 내심으로부터 따스함을 느꼈다. 그는 국내 승무원들의 봉사수준을 외국과 비길수조차 없다고 생각했다. “문화대혁명”이라는 대재난은 나라의 기강을 크게 상하게 했던것이다. 국내에서는 사람과 사람 지간에 친밀한 교류를 바랄수 없었다. 적어도 사회적인 측면에서 보편적인 랭담성은 누구에게나 상해로 되였던것이다. 국외에서의 이같은 대비는 그로 하여금 못내 가슴이 아프게 했다. 그의 일정은 매우 느슨하게 배치되여있었다. 떠나올 때 소연상이 그에게 출국해서 장편작품을 쓰지 말라고 귀띔을 했던것이다. 왕증기는 그의 말을 듣고 “새 료재”와 같은 글이나 끄적거려보려고 마음 먹었던것이다. 그는 시간을 타서 뉴욕, 보스턴, 시카코 등지를 돌아보려고 계획했다. 그에게 제일 인상이 깊은것은 미국의 자유로운 분위기였는데 상상보다도 더 체감도가 높았다. 그곳 사람들은 수시로 사색을 할수 있고 표달을 할수 있었다. 그는 안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여러차례나 이 점을 피력했다. 그리고 후에 쓴 “링컨의 코밑에서”라는 글에서 그 감수를 전면적으로 서술했다. …링컨묘는 흰 화강석으로 된 네모난 탐모양의 건축이다. 묘앞에는 링컨의 립상이 있고 량옆에는 각각 내전영웅들의 군상이 세워져있다. 한쪽에는 군기를 들고 전진하는 장면이고 다른 한쪽은 발굽을 치켜든 전마이다. 묘앞에서 몇발작 떨어진 곳에 있는 초석에는 동으로 주조한 아주 큰 링컨의 두상이 있다. 나는 링컨의 묘가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깔끔해보이고 깨끗하다. 어느 한 프랑스작가는 남경에 가서 중산릉을 참관한적이 있는데 링컨의 묘는 중산릉에 비교할수 없다고 했다. 그만치 중산릉은 기백이 넘친다는것이였다. 나는 그에게 풍격이 부동할따름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바로 풍격이 완전히 다르다는데 있는것이다. 그 프랑스작가는 링컨묘는 이름 그대로 “묘”이고 중산릉은 “릉”이라는데 중시를 돌리지 못했던것이다. 우리는 묘에 들어가 한바퀴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링컨과 링컨의 부인 그리고 그들의 세 아들이 안장되여있었다. 묘의 중앙에는 앉은 자세로 된 링컨의 동상이 놓여져있었다. 그의 세 아들의 동상도 있었는데 비교적 작았다. 링컨의 아들들은 링컨을 많이 닮은것 같았다. 링컨묘는 링컨과 그들의 가족을 기념하기 위한것이였는데 이것 역시 미국식사상이라고 생각되였다. 링컨의 부인앞에는 “링컨의 친밀한 전우”였다는 뜻을 나타내는 어떠한 문구도 없었고 그런 뜻을 보여주는 형상물도 존재하지 않았다. 길을 따라 묘에서 나와보니 많은 사람들이 링컨의 코를 만지고있었다. 물론 두상의 코를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데리고 온 어린이를 번쩍 들어서 링컨의 두상에 가까이해주었는데 그게 좋다고 어린이들은 깔깔거리며 링컨의 코를 만져댔다. 링컨의 두상에는 검은칠이 한벌 올라있었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어른의 코를 만졌던지 코부분만 황동으로 된 바탕이 들어나 반짝반짝 빛을 발산하고있었다. 사람들은 왜 링컨의 코를 만지려고 할가? 링컨의 코는 보기 좋게 우뚝 솟아있었는데 그 코를 만지면 좋은 기운을 받을수 있다는 미신이 관광객들속에서 통했던것이다. 몇몇 작가들은 링컨의 코를 잡고 사진까지 찍었다. 누군가 나에게 한장 찍어 기념을 남기라고 했지만 나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웃음으로 그들의 호의에 답복했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시인 에드가 리 마스터의 옛집에 들렸다. 마스터는 링컨의 일부 관점에 대하여 동의하지 않았다. 나는 우리를 접대하는 한 녀사에게 마스터는 구경 링컨의 어떤 관점을 동의하지 않았는가고 물었다. 그녀는 구체적인것은 잘 모르겠지만 그 두 사람의 관계가 좋지 않은것만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당신들은 그들의 관점이 일치하든 일치하지 않든 똑 같이 기념하고있군요. 그렇죠?” 나의 물음에 그녀가 이렇게 대답했다. “오직 인류의 문화에 공헌을 했다면 우리는 모두 기념합니다. 그들의 관계가 좋았던 나빴던 그건 문제가 되지 않지요.” “이것을 대체로 미국의 민주라고 하겠지요?” “당신, 참 옳은 말을 하시네요.” 그녀의 말에 나는 한술 더 떴다. “나는 저 많은 사람들이 링컨의 코를 만지는것을 찬성하지 않습니다.” 나의 말에 그녀가 동을 달았다. “나도 찬성하지 않는답니다.” 마스터의 옛집을 돌아보고 오는 길에 우리는 칼 샌드버그의 옛집에 들렸다. 칼 샌드버그에 대하여 중국의 독자들은 비교적 익숙하다. 그이 시 “안개”는 중국독자들속에서 널리 랑송되고있다. 칼 샌드버그는“링컨-전쟁년대에”라는 장시를 쓴적이 있다. 그는 링컨의 관점을 찬성했던것이다. 호텔에 돌아와서 나는 이런 생각을 굴려보았다. “링컨의 코를 만질수 있는가? 없는가?” 나중에 나는 이렇게 판단했다. “만질수 있다. 누구의 코도 만질수 있다. 때문에 링컨의 코도 만질수 있는것이다. 누구의 코라고 특별히 신성한것은 아니다.” 링컨은 “모든 인생은 평등하다.”는 명언을 남겼다. 나는 또 자유, 평등, 박애는 갈라놓을수 없는 개념이라고 생각했다. 자유는 평등을 전제로 하는것이다. 오늘날, 중국이 제창해야 할것은 바로“모든 인생은 평등하다.”는 정신일것이다. 이번 미국행에서 나는 많은 자극을 받았다. 제일 뼈저리게 느낀것은 바로 이 한단락의 사실일것이다. 중국사람들은 혁명을 거쳤지만 여전히 비굴함을 벗어던지지 못했다. 문화적인 방면에서 볼 때 되려 몇걸음 퇴보한것 같다. 자신의 우파생활과 “문화대혁명”중의 조우를 떠올리면 왕증기는 내심 소태를 씹은것 같을것이다. 사상이 충격을 받는 그 순간이 바로 정신이 자각을 되찾는 시각일것이다. 그는 미국에서 일부 대만작가들과 교류를 할수 있는 기회를 가질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것이다. 량안의 작가들이 다른 곳에서 만나 마음속의 고배를 털어놓느라니 자극이 컸을것이다. 진영진은 왕증기가 좋아하는 대만문인이다. 진영진의 성정은 왕증기로 하여금 적지 않는 감동을 받게 하였다. 진씨는 대만에 많지 않은 책임감이 있는 인물이다. 그의 소설의 현실의식은 보통사람들보다 더 깊다. 그의 심미적인 경로에는 로신의 게시가 아주 많다고봐야 할것이다. 그는 사람을 열정적으로 대하고 인품이 후덕하다. 그들의 문풍은 많은 차이점을 보이지만 이상하게도 그들의 마음은 한곬으로 쏠리고있었다. 어느한번, 나는 향항에서 진영진에게 왕증기에 대하여 이야기를 한적이 있다. 그번에도 진영진은 왕증기에 대하여 못내 탄복하는것이였다. 그러는 진영진을 보면서 나는 여러번이나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렇게 부동한 두 사람이 이처럼 사이 좋게 교류할수 있다니… 그야말로 중국현대문학에서 깊이 연구해야할 현상이 아닌가? 왕증기는 안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쓴적이 있다. 18일에 “나는 왜 창작을 하는가?”라는 제목의 토론회의가 있었소. 나는 처음에 발언을 하지 않아도 되려니 생각했었는데 웬걸 회의측에서는 누구나 다 발언을 하라고 요구했소. 이번 발언은 한자의 성씨필획의 순서에 따라서 배치되여 나는 세번째로 발언해야 했소. 다행히도 회의전에 약간 생각해둔것이 있었으니 망정이지… 나는 이렇게 말했소. “…나는 왜 창작을 하는가? 나는 어릴 때부터 수학을 잘 못했기에(웃음)… 내가 초중에 다릴 때 어느 한 선생님은 나를 보고 장래에 건축을 배우라고 했습니다. 나는 건축사가 되는것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나는 그림을 잘 그렸거든요. 하지만 건축사가 되려면 수학을 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특히 기하를 말입죠. 그 선생님은 나의 기하재능을 키워주려고 온갖 심혈을 다 쏟으셨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맥을 버리고 탄식을 하는것이였습니다. “각하의 기하는 동성파의 기하입니다.” (웃음) 기하는 한걸음한걸음 론증을 거쳐야 합니다. 나의 기하는 매우 간단했던것입니다. 나는 전에 때때중이 사는 절에 머문적이 있습니다. 국내에서 여러 사람이 나에게 중이 돼본적이 있는가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모두《수계》를 본적이 있었던것입니다. 이곳의 많은 중국류학생들도 《수계》를 본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나는 중이 된적이 없습니다. 항일전쟁시기, 일본사람들이 우리 현성옆에까지 쳐들어왔었습다. 그때 나는 시골로 피난을 가서 절에 거처했던것입니다. 그대 나는 대학입학시험준비를 하기 위한 교과서외에 두권의 책을 더 가져갔었는데 그것이 바로 《심종문문집》과 《뚜르게네브선집》입니다. 나는 지금까지도 이 두 사람의 영향을 받고있습니다. 나는 젊었을 때 서방현대주의의 영향을 받았기에 시를 쓰기가 매우 힘듭니다. 대학때의 어느날, 두 동창이 내앞에서 걸었습니다. 그중 한 사람이 물었습니다. “누가 왕증기냐?” 다른 한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읽어도 알수 알수 없고 자기가 읽어도 알수 없는 그런 시를 쓰는 놈이 바로 왕중기지.”(큰 웃음) 나는 올해 67살입니다. 인생의 달고 쓰고 시고 매운 맛을 모두 봤고 춘하추동을 모두 거쳐왔다고 해야지요. 나는 부득불 구름에서 땅으로 내려올수밖에 없었습니다. OK!(박수)” 이날 토론회의는 아주 성공적이였소. 대부분 사람들이 정채로운 발언을 했는데 섭화령도 매우 기뻐했다오. 진영진의 아버지(82세)는 특히 온 가족(부인, 딸, 사위, 외손녀)을 데리고6시간이나 차를 타고 와서 중국작가들을 만나주었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셨소. 그날밤, 영진의 고모부가 연경호텔에서 중국작가들을 초대했소. 연석에서 영진의 아버지가 연설했는데 감정으로 충만되였다오. 오조광도 연설을 했소. 그는 먼저번에 아이오와주에 가서 영진의 아버지를 뵈운적이 있다오. 폴 엥글이 영진의 아버지를 포옹해주었소. 두 로인이 포옹하자 모두들 무척 감동했소. 나도 영진의 아버지를 포옹했소. 저도몰래 눈물이 주르르 굴러내렸다오. 그후 나는 영진이와도 포옹했소. 우리 두 사람은 소리내여 울기직전에 이르렀소. 《중보》의 녀성편집 조우방이 나의 얼굴에 키스를 했고 오래도록 나의 손을 잡아주었다오. 연석이 파한후 섭화령이 우리 모두를 초청해서 그의 집으로 가 술을 마시며 한담을 하자고 했소. 우리는 한담을 하고 노래도 불렀소. 갈라질 무렵에 섭화령은 정추여선생의 부인을 포옹했소. 람릉이라고 부르는 녀작가는 크게 울음을 터치기까지 했다오. 왕증기는 이 편지를 정성들여 섰다. 화면감이 강하고 여러가지 감정을 보는듯이 그려낸것이다. 만약 당시 국내에 있었다면 이렇게 자유로울수 없었을것이다. 잔혹한 내란을 겪은후 다른 곳에서 국내를 바라보며 감상에 빠지게 된것은 당연한 일일것이다. 중국의 근 백년의 운명은 수많은 문인들로 하여금 시름을 놓고 길을 선택할수 없게 했다. 그야말로 만면에 상처자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때문에 소부분 사람들만이 자유롭게 글을 쓸수 있었던것이다. 따져보면 모두들 어느정도 답답하게 살고있다. 왕증기는 말 타고 꽃 구경하는식의 그번 방문으로 미국사회의 근본면모를 다 보아낼수 없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그는 미국의 여러 곳들을 돌면서 언제나 흥에 겨워했다. 하지만 영어구사능력이 수수해서 그렇게 자유자재로운것만은 아니였다. 하여 그는 젊었을 때 영어공부를 홀시하여 능란하게 영어를 구사할수 없는것을 못내 후회했다. 외출을 하려면 자연적으로 모임에 참가해야 하고 연설을 해야 했다. 왕증기는 선후하여 예일대학, 하버드대학,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에서 연설을 했다. 그때 중국대륙에서는 한창 사상해방운동을 벌리고있었다. 서양사람들은 왕증기가 정치문제에 대하여 거론하기를 바라고있었다. 하지만 조심성이 많은 왕증기는 묘하게도 그런 민감한 문제들을 회피했다. 그는 흥미진진하게 언어와 책임감 문제에 대해서만 피력했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들에도 숨어있는 가시가 있었다. 심미리론상에서는 완전히 국내의 주류와 달랐다. 그의 사고의 맥락은 이미 문학가의 상태로 돌아가있었다. 언어의 심처에는 개성적인 물건들이 많다. 다른 사람의 눈에 그는 총명하고 자연적이며 사랑스럽게 비춰졌다. 주덕희는 지어 “왕증기는 미국화인들과 인연이 깊다. 모두들 그의 작품에서 풍기는 냄새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왕증기는 당시 중국문단에서 제일 큰 문제는 언어의 표달에서 시끄러운 일들이 발생하는것이라고 보고있었다. 보편적인 팔고문과 보편적인 무미건조함이 문단을 가득 채우고있다고 생각했던것이다. 그는 사처로 다니면서 문자의 맛에 대하여, 지혜로운 어구의 중요성에 대하여 연설했다. 그는 보건대 형식주의와 같은 문제도 실제상에서는 정신의 육체가 부식되는것이라고 믿고있었다. 미국으로 가기전에 왕증기는 《문예연구》에 “소설의 언어에 대하여(잡기)”를 발표하였는데 미국의 대학들에서 강연을 할 때도 그 내용들을 들먹였다. 이를테면 하버드대학에서 연설할 때의 제목은 “중국문학의 언어문제”였다. 그는 연설에서 옛날 사람들이 운운하던 “기”에 대한 문제를 피력했다. “언어의 아름다움은 언어의 본연이나 표달하고저 하는 의의에 있는것이 아니라 그 언어가 얼마나 되는 내용을 암시하는가, 얼마나 많은 정보를 전달하는가 하는데 있다. 즉 독자들로 하여금 보고싶은 정경이 얼마나 광대무변한가를 느낄수 있게 하는것이다. 옛 사람들이 ‘언외지의’, ‘현외지음’이라고 하는것은 바로 이러한 도리이다. 국내의 한 평론가는 나의 작품을 평론한적이 있는데 그는 ‘왕증기의 언어는 참으로 괴상하다. 뜯어보면 구절마다 평범하지만 그것들을 모아놓으면 그만의 냄새가 난다.’고 말했다. 내가 생각하건대 모든 사람들의 언어도 이러할것이다. 만약 마디마디가 경구라면 사람들이 받아 당하기 어려울것이다. 언어는 한구절 한구절 써내는것이 아니라 모여서 만들어지는것이다. 언어는 집을 짓는것처럼 한장 또 한장의 벽돌을 쌓아서는 안된다. 그렇게 한다면 언어를 쌓아놓는것밖에 안되는것이다. 언어의 아름다움은 한구절 한구절의 말에 있는것이 아니라 말과 말 사이의 관계에 있는것이다. 포세신은 왕희지의 글을 론하면서 “한글자 한글자씩 보면 그다지 멋을 느낄수 없다. 하지만 글자의 여러 부분, 글자와 글자 사이는 ‘로옹이 어린 손자를 이끄는듯 해서 정을 느끼게 되고 강약이 서로 통하는듯하다.’ 고 말했다. 중국사람들은 글자를 쓸 때 행기(行气)에 중시를 돌린다. 언어는 곳곳에서 서로 통하게 되는데 내재적인 련계를 가지고있다. 언어는 나무와 같아 나무가지와 나무잎이 있어야 하고 진액이 흘러내려야 한다. 가지 하나가 움직이면 곁에 있는 나머지 가지들도 함께 움직이게 되여있다. 언어는 ‘살아있는것’이다.” 왕증기의 몇차례 연설은 모두 상투적이여서 얼마나 중시를 받았는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하지만 내가 보건대 왕증기의 중요한 창작심득은 그의 일생의 경험을 몇마디에 모두 담았다는것이다. 당시 청중들은 왕증기의 연설을 귀담아 들었다고 한다. 그의 언어가 일부분 학생들을 감동시킨것 같다. 미국사람들은 워낙 자유정신에 대하여 깊은 중시를 돌리기에 표달하려는 내용에 대하여 크게 주의를 돌리지 않는다. 하지만 당시 중국인들속에서 그 점을 의식한 사람은 그렇게 많지 못할것이다. 비록 3개월밖에 안되는 시간이지만 왕증기는 크게 시야를 넓혔을것이다. 그는 차츰 집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중국의 좋은 점에 대하여 생각을 굴리기 시작했던것이다. 미국으로 가서 제일 좋은 감수는 적막감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일부 류학생들은 “미국은 산이 좋고 물이 좋고 적막이 좋다. 국내는 어지럽고 혼란하고 정말 즐겁다.” 고 말한다. 왕증기도 그러한 감수를 받았는지는 알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미국에서 한달이 지나자 그가 안해를 생각하고 자식들을 그리워한것만은 사실이다. 재미나는 에피소드 하나가 있다. 어느날밤, 그가 잠이 들었는데 숙소에 도적이 들어와 돈을 훔쳐갔다. 이 일은 왕증기를 대단히 기분상하게 했다. 그는 미국사회는 비록 평등할지라도 사람들은 매우 복잡하다고 느꼈다. 이것은 그의 강렬한 감수였다. 그는 이 일을 안해에게만 말했을뿐 다른 장소에서는 크게 떠들지 않았다. 미국을 떠나기전에 왕증기는 섭화령에게 편지를 써서 많은 감사의 말을 했다. 섭화령은 량실추를 좋아했고 심종문을 존경했으며 빙심, 애청에 대해서도 극도로 추앙했다. 그렇게 본다면 왕증기의 가치도 알수 있지 않는가? 왕증기는 섭화령이라는 미국 화인학자에게서 존재의 의의를 느꼈을것이다. 그는 량실추와 같지 않았고 심종문과도 달랐다. 하지만 그들의 뒤에 비슷한 배경이 있다는것만은 사실이다. “량실추를 추억하여”라는 글에서 섭화령은 심종문에 대한 호감을 썼다. 그것은 경파(京派)의 여맥이라고 할수 있다. 아무튼 참으로 재미있는 일이라 해야겠다. 왕증기 등이 미국으로 간것은 섭화령에게 있어서 옛꿈의 련속이라고 할수 있었지만 왕증기에게는 새로운 꿈이나 다름이 없었다. 몇년이 지난후 나는 미국으로 가서 뉴욕의 거리를 활보하다가 당년의 왕증기의 감수를 돌이켜보게 되였다. 그는 자기의 “껍질이 갈라졌다.”고 말했는데 그야말로 생동한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미국에 다녀온적이 있는 적지않은 작가들의 창작풍격이 변화를 가져왔다. 왕몽, 왕안억이 바로 그 전형이다. 하지만 그들과 달리 왕증기는 되려 자기의 선택에 대한 자신감을 강하게 했다. 동방인들이 예로부터 가지고있는 문명은 때로 이 세간에서 서양인들과의 대비중에 진화를 하는것이다. 문화는 사실 일종의 살아가는 방법에 불과하다. 즉 정신을 표달하는 통로인것이다. 왕증기는 고국의 정신통로가 아직 완전하게 열리있지 않다는것을 알고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기야말로 이 통로의 대문을 두드리는 사람이라고 믿었다. (최동일 역) 《중국당대문학작품선집》조선문판에 실림.
17    소젖을 먹는 돼지 댓글:  조회:1773  추천:0  2014-01-20
콩크리트길량옆에 아담하게 가꾸어진 파아란 풀밭을 볼 때마다 나는 그 작은 돼지를 떠올린다. 보잘것 없는 그 작은 돼지가 세상에 무서운것 없다는듯 사람그림자 하나 얼씬하지 않는 풀밭을 지나서 혼자 숙영지로 돌아오군 했던것이다. 나는 지금도 해빛아래에서 반짝이던 연분홍 몸뚱이를 가진 그 작은 돼지를 똑똑히 기억하고있다. 모종의 의미에서 볼 때 젖소는 두가지 부류가 있다.  그중 한가지는 송아지가 먼저 젖을 빨아 먹은후에야 젖을 짜게 하는 류형이다. 만약 송아지가 젖을 먹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있어도 어미소는 사람들이 젖을 짜지 못하게 한다. 다른 한가지는 송아지가 젖을 빨지 않았는데도 사람들에게 젖통을 내주는 류형이다. 내가 초원에 있을 때 거주했던 빠투네 집 젖소는 첫 류형에 속했다. 빠투네 집에 살 때 나는 처음으로 눈물을 흘리는 소를 보게 되였다. 그날아침, 금방 태여난 송아지가 무슨 영문인지 우리안에 죽어있었다. 내가 밖에 나갔을 때 검은 점과 흰 점이 얼룩진 어미소가 담장 한구석의 나무기둥에 매여져있었는데 얼굴에서 콩알같은 눈물이 둘둘 굴러내렸다. 어미소는 그때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있었다. 그 장면을 보기전에 나는 동물도 눈물을 흘린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었지만 그저 사람들이 해보는 소리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눈앞에서 펑펑 눈물을 쏟고있는 어미소를 보면서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을수 없었다. 눈물을 통해 비감한 정서를 표달하는것을 보면 소도 감정이 풍부한 동물인가싶다.  내가 빠투네 집에 거주할 때 마신 우유차는 모두 그 젖소의 젖으로 만든것이였다. 송아지가 죽은 그날아침부터 어미소는 젖을 내지 않았다. 빠투의 안해가 갖은 방법을 다해보았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  어느날, 빠투는 마두금(马头琴)으로 흐느끼는듯 쓸쓸한 곡조를 연주했고 그의 안해는 그에 걸맞는 몽골족민요를 불렀다.   그것은 유구한 력사를 가진 권내가(劝奶歌)였다.  목민들은 늘 이런 방식으로 새끼에게 젖을 먹이지 않으려는 어미들의 모성을 자극해서 젖을 내게 했던것이다.  하지만 그 곡조도 어미소에게는 아무 작용이 없었다. 빠투는 어미소가 그냥 그 상태대로 나가면 꼭 병에 걸릴것이라고 근심했다.  빠투는 사실 식구들이 마실 소젖이 없어 근심하는것은 아니였다. 빠투네 소우리에는 금방 새끼를 낳은 어미소가 두마리나 더 있었다. 며칠간, 비통에 젖어있던 어미소는 차츰 투우장에서 칼에 찔린 투우처럼 미쳐날뛰면서 보이는 물건은 모두 떠박질렀다. 빠투는 별수없이 어미소를 우리에서 끌어내여 울안 한구석에 단독으로 매놓았다. 어미소는 조각상처럼 외롭게 서서 울밖의 세상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어미소는 세상에 대한 모든 흥미를 잃은것 같았다. 지어는 밤에 미친듯이 달려들어 피를 빨아대는 등에를 쫓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송아지가 죽은후 네번째 아침, 내가 아침밥을 먹고 강변에 나가려고 할 때 어미소가 송아지를 단 다른 두마리의 어미소와 함께 울안을 벗어나 방목장으로 가고있었다. 나는 빠투에게 어미소가 안정을 찾았는가고 물었다. 그러자 빠투는 나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더니 입을 열었다. “그렇소, 아침에 젖을 짰다오.” “참 좋은 일이군.” 나의 말에 빠투가 동을 달았다. “참 알고도 모를 일이요. 저놈이 새끼를 잃고도 저렇게 빨리 젖이 돌아서다니.” 그날 나는 많은 일들을 처리하느라 더 이상 어미소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날밤, 나는 일기를 쓰고난후 울안에 나가 산책이나 하자고 생각했다. 나는 손전지를 들고 밖에 나섰다. 교교한 달빛이 울안에 부드러운 빛을 뿌려주고있어 손전지가 필요 없었다. 얼마나 오래동안 별구경을 하지 않았던가? 하늘에는 뭇별들이 바다를 이루고있었다. 나는 수많은 별자리중에서 몇개밖에 알지 못했다.  그때 갑자기 무슨 소리가 들렸다. 둥지에 돌아온 제비의 즐거운 비명 같았다. 아니, 든든히 닫지 않은 수도꼭지에서 물이 새는 소리 같기도 했다. 그 소리는 소우리의 한쪽 구석에서 들려왔다. 바로 그때 초원의 지평선에서 아름다운 람색의 불꽃이 튕겨올랐다. 나는 어딘가 긴장해 났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에게 그 불꽃은 초원에서 흔히 볼수 있는 린광에 지나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나는 손전지를 켜들고 소우리안의 구석구석을 비춰보았다. 나는 그 불빛을 빌어 영원히 잊을수 없는 그 장면을 보게 되였다. 그때, 송아지를 잃은 어미말은 엎드려 저녁에 먹은 먹이를 반추하고있었다. 놀라운것은 그 장면이 아니라 빠투네가 기르는 흰털의 작은 돼지가 어미소의 젖을 빨고있다는것이였다. 작은 돼지는 앞다리를 꿇고 앉아 열심히 소젖을 빨고있었다. 어미소도 작은 돼지도 내가 자기들을 바라보고있다는것을 눈치채지 못하고있었다.  어미소는 손전지의 강렬한 빛에 눈이 부신지 두눈을 껌뻑이다가 옆으로 머리를 돌렸다.  나는 손전지를 끄고 높뛰는 가슴을 진정하느라 애썼다. 어미소가 돼지에게 젖을 먹인다는것은 어느모로 보나 납득이 잘 가지 않는 일이였다. 나는 다시 손전지를 켜서 어미소와 작은 돼지를 비춰보았다. 작은 돼지는 그때까지도 소젖을 빨기에 여념이 없었다. 어쩌면 흘러간 동년의 그 행복했던 나날로 돌아간듯싶은 모양이였다. 나는 기적과도 같은 그 장면을 두고 상상을 펼쳐보았다. 어느날, 송아지를 잃고 비통에 빠져있던 어미소가 지쳐서 우리바닥에 엎드려있는데 세상 무서운줄을 모르는 그 작은 돼지가 우연히 어미소의 젖꼭지를 발견하고 달려들었을것이다. 작은 돼지가 젖꼭지를 빨자 어미소는 서서히 잃어가던 모성의 본능을 다시 찾게 되였을것이다. 그것은 새끼를 잃은 어미늑대가 엄마를 잃은 어린 아이에게 젖꼭지를 물려 키웠다는 전설과도 같은 맥락일것이다. 이튿날아침, 나는 빠투네 부부에게 이 일을 말해주었다. 나의 말을 듣고도 빠투네 부부는 믿지 않는 눈치였다. 작은 돼지는 여러 사람이 보는앞에서 어미소의 젖을 빨려고 하지 않았다. 빠투네 부부가 못 믿겠다는듯 나를 보며 머리를 저었다. 그러자 나도 어제밤에 본 모든것이 꿈인양 아리숭해졌다. 우리안에 있던 다섯마리의 소가 방목장으로 풀을 뜯으러 나갈 때 놀랍게도 작은 돼지가 따라나섰다. 나와 빠투네 부부는 놀라운 눈길로 작은 돼지가 어미소의 곁에 딱 붙어서서 작은 언덕을 지나 초원심처로 들어가는것을 보았다. 그야말로 믿기 어려운 장면이였다. 나는 작은 돼지가 머리에 뿔을 이고 돌아올가봐 겁이 났다. 그날, 나는 자전거를 타고 외출을 하려다가 앞바퀴가 터진것을 발견했다. 뾰족한 작은 양뼈가 바퀴에 박혔던것이다. 바퀴를 다 수리하니 오전 아홉시가 넘어있었다. 초원의 오전 열기가 확확 뿜겨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무더위로 하여 몹시 기분이 처졌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강변으로 나갔다. 바로 그곳에서 나는 또 한번 깜작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아물아물 피여오르는 아지랑이로 하여 나는 내가 잘못본것이라고 생각했다. 연분홍 털을 가진 작은 돼지가 타박타박 걸어오고있었던것이다. 망망한 대 초원에서 늑대 한마리가 달려온다면 말 한필이 뛰여온다면 지어는 소 한마리가 걸어온다면 그렇게 놀라지는 않을것이다. 하지만 내 눈앞에 나타난 그놈은 연분홍 털을 가진 작은 돼지였다. 나는 도무지 믿고싶지 않았다. 하지만 작은 돼지는 그렇게 당당해보였다. 그렇게 당당한 걸음으로 초원에 있는 숙영지로 돌아오고있었던것이다. 그 장면을 띄워본것은 나 혼자가 아니였다. 백양나무아래에 서서 뻐스를 기다리던 그 두 사람도 분명 그 장면을 보았던것이다. 그들도 작은 돼지에게 호기심을 느끼는것 같았다. 그중 한 사람은 그 사실을 증명해보려는듯 작은 돼지의 뒤를 한참이나 쫓아가며 큰 소리로 뭐라 웨쳐댔다.  뻐스가 백양나무아래에 멈춰서자 그 두 사람은 뻐스에 올랐다. 나는 사라져가는 뻐스를 바라보면서 그 두 사람은 긴긴 장거리려행에 흥미로운 화제를 찾게 되였을것이라고 생각했다. 그후 작은 돼지는 당당하게 소우리에 자리를 옮겼다. 소무리가 숙영지로 돌아올 때면 작은 돼지는 깡충깡충 뛰여나가 어미소를 마중했다. 어미소도 머리를 숙이고 작은 돼지를 살랑살랑 핥아주었다.  우리에 들어가 어미소가 엎드리면 작은 돼지는 앞다리를 꿇고 앉아 젖꼭지를 빨았다. 소문을 듣고 모여온 애들이 그 장면을 보고 놀라 두눈을 올롱하게 뜨고 쯧쯧쯧 혀를 찼다. 매일아침, 작은 돼지는 어미소를 따라 방목장으로 갔다가는 해가 중천에 걸리기도전에 혼자서 숙영지로 돌아왔다. 그해 늦여름, 내가 초원을 떠날 때까지 작은 돼지는 본분에 어울리지 않는 어미소와의 동거를 계속하고있었다. 초원에 늑대가 출몰한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작은 돼지는 행운스럽게도 한번도 늑대를 만나적이 없는것 같았다. 이듬해, 나는 다시 초원으로 가서 빠투네 집을 찾았다. 나는 문에 들어서기 바쁘게 빠투에게 작은 돼지가 잘 자라는가고  물었다. “잡아 먹었소.” 빠투가 주저없이 대답했다. 나는 문뜩 커다란 실의감을 느꼈다. 내 표정이 몹시 흐려있었던지 빠투가 물었다. “왜 그러오?” “정말 잡아 먹었단 말이요? 그 돼지를.” “그럼 정말이지. 그놈의 고기가 참 고소했다오. 다른 돼지고기들은 비교도 못할만치.” 나는 작은 돼지가 큰 돼지로 성장했다는것을 잊고있었던것이다. 큰 돼지로 성장한 “작은 돼지”는 필경 여느 큰 돼지들이 맞는 운명을 빗겨갈수 없었던것이다. 그놈이 비록 소젖을 먹고 자란 돼지일지라도. 그놈은 망망한 초원을 수없이 홀로 지나면서도 늑대에게 잡히우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식탐은 벗어날수 없었던것이다. 나는 어미소에 대해서도 물었다. 빠투네가 작은 돼지를 잡아 먹은후 어미소는 또 거칠게 변하여 사람을 몇이나 상하게 했다고 한다. 원성이 잦아지자 빠투는 어미소를 팔아버렸다는것이다… 나는 지금도 가끔 그놈들을 머리에 떠올리군 한다. 
16    망아지가 강을 건너다*거르러치무거 헤어 댓글:  조회:1620  추천:0  2014-01-07
이른아침, 초원으로 들어온 파는 말안장을 내리웠다. 몸이 홀가분해진 어미말은 여유작작 말무리들을 떠나서 무성한 풀밭에 가 엎드렸다. 파는 멀리서 어미말을 바라보면서 그놈이 저절로 이제 다가올 모든 일을 잘 수습할것이라고 생각했다. 파는 풀언덕에 앉아서 유유히 흐르는 말무리를 바라보았다. 말들은 가을의 높은 하늘아래서 풍성한 풀밭을 누비며 마음껏 먹이를 뜯느라 머리도 들지 않았다. 겨울이 오기전에 말들은 영양분이 풍부한 우질 개보리풀을 많이 먹어두어야 했다. 옆구리에 지방이 두둑하게 올라 붙어야 기나긴 겨울을 무사히 날수 있었던것이다. 일부 몸이 허약한 말들은 초원의 차디찬 겨울을 이길수 없어 조각처럼 눈속에 얼어붙을 때도 있었다. 그들은 고독하게 긴긴 겨울을 그렇게 서있다가 봄이 터서 눈이 녹는 어느날에 가서야 스르르 무너져내렸다. 어미말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무엇이 불안한지 안전부절 못했다. 그것은 처음으로 새끼를 낳는 어미말들의 본능적인 행동이였다. 비록 천성적으로 생육능력은 가지고있으면서도 정작 마주치니 당황스러운것 같았다. 어미말은 천천히 맴돌이를 치면서 크게 코투레질을 했다. 땅에다 코를 대고 냄새를 맡으면서 새끼를 낳기에 마땅한 곳을 찾아헤맸다. 어미말은 머리를 흔들고 불안하게 꼬리를 저으면서 비릿한 냄새를 맡고 몰려드는 파리를 쫓았다. 어미말의 옆구리는 살이 찌다못해 가을날의 풍요로운 풀밭처럼 풍만하고 안온해보였다. 밤색의 털은 기름기가 흘러 해볕에 눈부셨고 배는 불러서 남산을 방불케 했다. 털밑으로 불뚝 솟아오른 혈관은 당금 툭 하고 터져버릴것만 같았다. 파는 머리를 들고 저 멀리 지평선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그것은 가을날 초원의 오후였다. 하늘은 시리도록 푸르렀다. 하얀 구름 한송이가 저 멀리 하늘가에 나타났다사라졌다를 반복했다. 어릴 때 파는 푸르른 하늘에서 천천히 다가오는 커다란 구름송이때문에 몹시 놀란적이 있었다. 그는 뿌리를 내린듯 한자리에 굳어져서 커다란 보루같은 구름송이를 오래도록 쳐다보았다. 그 바람에 달려오는 양들과도 몇번이나 부딪쳤는지 모른다. 하여 어른들은 파를 두고 좀 바보스러운데가 있다고 비웃었다.  파는 십여살이 된 오늘에도 그처럼 넋을 놓고 하늘을 쳐다보기를 좋아했다. 파는 오래도록 하늘을 바라보고있노라면 어느 순간에 그 푸르름에 빨려들어가 헤여나오지 못할것이라고 생각했다.  시원한 가을바람이 풍요로운 초원에 불어오자 무성한 풀들이 쏴쏴 기분 좋은 음악을 연주했다. 파는 명랑한 가을하늘을 좋아 했다. 반대로 비가 쿨쩍거리는 날씨는 웬지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비오는 날이면 바람마저 젖어버린듯 불안했다. 파는 오직 태양이 머리를 내밀어야 젖은 바람도 말리울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했다. 바람은 누르스름하게 변해가는 초원을 부드럽게 쓸어주고있었는데 마치도 설레이는 수면을 보는듯싶었다. 일망무제하게 펼쳐진 풀들이 가을바람에 파도를 일으키며 저 멀리 지평선으로  사라졌다. 지평선저쪽에는 무엇이 있을가? 해볕 좋고 바람 시원한 어느 명랑한 하루, 파는 말을 타고 길에 올라 옹근 하루를 달린적이 있었다. 하지만 앞에는 여전히 일망무제한 록색의 지평선이였다. 얼마나 오래 달리든 세상은 달라질것이 없을것만 같았다. 순간 파는 초원은 끝이 없으며 자기는 영원히 지평선을 밟아볼수 없을것이라고 생각했다. 초원에 어둠이 깃들자 파는 말등에서 깜빡 잠이 들었다. 파는 꿈결에 동년의 요람으로 돌아간듯싶어 그처럼 행복할수 없었다. 파는 그날 말등에서 옹근 하루밤을 보냈다. 초원의 오솔길을 익숙히 알고있는 말은 파를 등에 싣고 숙영지로 돌아왔다. 파가 눈을 떠보니 숙영지의 천막들에서는 아침밥을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여올랐다. 해는 이미 한발이나 떠있었다. 파는 해볕을 받아 온몸이 따뜻해났다. 파는 초원에서 풍기는 싱그러운 풀냄새를 맡고있었다. 그는 움직이고싶지 않았다. 그 맵시로 따스한 초원에서 계속 단잠을 자고싶었다.  파는 어릴 때 진종일 풀을 뜯고 배가 뚱뚱해서 숙영지로 돌아오는 말들을 보면서 늘 일종의 묘한 충동을 느끼군했다. 바로 그 배를 칼로 오려보고싶은것이였다. 안에서 무엇이 튀여나올가가 그렇게도 궁금했던것이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파는 동년의 유치했던 그 상상으로 하여 얼굴을 붉히군 했다. 몇몇 젊은 말들이 심심했던지 쫓고 쫓기는 놀음을 했다. 그들은 모두 자기들에게 그처럼 빠른 속도와 민첩한 운동신경이 있다는것을 놀랍게 생각하는것 같았다. 그들은 진정한 질주를 배우기 시작했던것이다. 그들은 멋지게 생긴 발굽으로 큰 호선을 그을줄도 알았다. 그들이 발길질을 할 때면  수많은 곤충들이 놀라서 도망쳤다. 초원에 사는 제비들은 그 좋은 기회를 놓지지 않고 바짝 쫓아가서 오동통 살이 오른 곤충들을 잡아 먹었다. 파는 천천히 초원을 살펴보다가 갑자기 그 어미말을 떠올리며 깜짝 놀랐다. 어미말이 보이지 않았던것이다. 그때 어미말은 그곳에서 멀지 않은 작은 구덩이에 들어가있었다. 파는 어미말을 발견한후에야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그곳으로 다가갔다. 어미말은 네다리를 쭉 펴고 옆으로 누워있었는데 그 동작이 사뭇 괴상해보였다. 파는 종래로 말이 그같은 동작을 취한것을 본적이 없었다. 말은 몸집이 매우 여위여있었는데 배만 남산처럼 커보였다. 파는 자기 앞에 누워있는 말이 그처럼 생소하게 보일수가 없었다. 어미말은 그곳에서 벌써 한참이나 몸부림을 친듯 몸뚱이밑의 흙이 군데군데 패여있었다. 털은 그새 거무스름하게 변해있었다. 괴상하게 취한 그 동작은 어미말로 하여금 호흡을 더 힘들게 하는것 같았다. 어미말은 자꾸 코구멍을 벌름거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였다. 파를 본 어미말은 물에서 구원을 청하는듯 높이 쳐든 머리를 마구 흔들어댔다. 잠간 지나자 어미말은 머리마저 무거워 쳐들기 힘든듯 다시 아래로 떨어뜨리며 킁 하고 코숨을 내쉬였다. 그 바람에 땅에서 풀썩 먼지가 일어났다.  피가 섞인 걸쭉한 물이 어미말의 뒤다리사이에서 흘러내렸다. 망아지가 곧 나오려는것 같았다.  파는 종래로 망아지를 받아본적이 없었다. 파는 너무도 긴장해서 연신 주변을 살펴보았다. 점심시간이라 주변에서는 사람그림자 하나 얼씬하지 않았다. 어미말이 거칠게 숨을 톺았다. 파는 꿇어앉아 어미말의 머리를 쳐들었다. 파는 그렇게 하면 어미말이 숨 쉬기가 쉬워질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가 어미말의 숨이 고르로와지기 시작했다. 신선한 공기를 마신 어미말은 차츰 안정을 찾아갔다. 파는 어미말의 긴장된 목을 바라보면서 그놈이 안간힘을 다해 자기 일생에서의  첫 생명을 탄생시키고있다는것을 느꼈다. 어미말은 무기력하게 머리를 저어댔다. 두눈은 애써 크게 뜨고있었는데 큰 사발아구리를 방불케 했다. 어미말의 머리를 받쳐들고있는 파는 차츰 팔이 저려나는 감을 느꼈다. 파는 땀으로 흥건한 어미말의 머리를 땅에 내려놓았다. 어미말의 호흡은 다시 곤난해졌다. 그 자세는 확실히 어미말로 하여금 호흡을 힘들게 하는것 같았다.   량쪽으로 들어나보이는 어미말의 갈비대는 죽어가는 나비의 가냘픈 날개를 방불케 했다. 입귀로 뻘건 혀가 흘러왔는데 풀잎이며 흙 같은것들이 묻어있었다. 파는 방금 자기가 누워있던 곳으로 달려가 안장과 굴레를 찾아들었다. 파는 말무리로 달려가서 해빛에 번쩍이는 늙은 말의 등에 안장을 올려놓았다. 그후 손 쉽게 굴레까지 씌우고는 말등에 올라앉았다. 한시바삐 숙영지로 가서 경험이 있는 어른을 모셔다 어미말의 출산을 도와야 했던것이다. 늙은 말은 조급한 파의 마음을 아는지 마는지 여유작작 몸을 흔들면서 숙영지를 향하여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얼마를 달리지 않아 걸음을 멈추고 코두레질을 했다. 파가 말등에서 다리질을 하면서 크게 소리를 질러도 말은 더 이상 앞으로 달리려 하지 않고 괜히 헛다리질만 해댔다. 파는 늙은 말이 무언가 불안한 느낌을 받은것이라고 생각했다. 전에 어른들은 워낙 온순하던 말이 갑자기 불안해지는데는 꼭 그럴만한 리유가 있다고 말씀했던것이다. 파는 천천히 머리를 쳐들었다. 그때에야 파는 그들과 조금 떨어져있는 곳에서 머리를 수긋하고 풀을 뜯어 먹던 말들이 모두 머리를 쳐들고 그곳을 바라보고있는것을 발견했다. 몇몇 어미말들은 젖을 빠는 망아지들을 쫓아내기까지 했다. 젖꼭지를 빼앗긴 망아지들은 윤기흐르는 몸뚱이를 바들바들 떨면서 불안하게 투레질을 했고 발굽으로 흙을 파올렸다 늑대는 그곳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도사리고있었다. 바싹 여윈 늑대는 혀름 날름거리면서 연신 거친 숨을 몰아쉬였다. 늑대는 예민한 후각으로 어미말이 곧 새끼를 낳게 될것이라는것을 감지한것 같았다. 파는 늑대를 향해 말을 달렸다. 늙은 말은 불만스럽게 연신 투레질을 해대면서도 늑대를 향해 달려갔다. 늑대도 많이 늙어보였다. 그 세월을 살아오느라 늑대는 한두번만 사냥군들의 추격을 받은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그놈은 번마다 용케도 사냥군들의 추격을 벗어난 모양이였다. 그놈은 십여살밖에 안되는 남자애가 말무리를 돌보고있다는것을 아는것 같았다. 아니라면 감히 대낮에 말무리를 접근하려고 하지 못했을것이다. 파가 말을 달려 늑대의 앞에 도착했는데도 늑대는 도무지 도망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파는 늑대를 향해 크게 소리쳤다. 말등에 앉았는지라 파는 늑대가 두렵지 않았다. 늑대는 그제야 천천히 몸을 일으켜 앞으로 몇발작 뛰여갔다. 하지만 파가 더 이상 쫓아오는 눈치가 없자 다시 걸음을 멈추고 멀리에 있는 말무리들을 바라보았다. 그 계절에 말은 절대 늑대를 따라잡을수 없다는것을 파는 잘 알고있었다. 초원의 풀은 풍성했고 말은 한창 살이 오르고있었던것이다. 하기에 늑대는 몸을 숨길만한 곳이 참 많았다. 아무 곳에나 숨어도 풀바다에 빠진듯 찾기 쉽지 않을것이였다. 하지만 겨울이라면 늑대는 초원에 나타나자마자 사람들의 눈에 뜨일것이고 말의 추격을 당해내지 못할것이였다. 파는 혼자 숙영지에 가서 어른들을 모셔다 어미말의 출산을 돕는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늑대는 근근히 망아지가 쓰고있던 포의를 주어먹으려고 기다릴수도 있는것이였다. 하지만 늑대가 갑자기 어미말과 망아지를 습격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수 있단 말인가? 비록 곁에 있던 수말이 어미말을 보호하려고 나설수 있지만 망아지가 상처를 입지 않는다고 보장할수 없는 일이였다. 파는 용단을 내리지 못하고 풀이 죽어 말등에서 내려왔다. 해빛은 여전히 찬란했지만 파는 도무지 정신을 차릴수 없었다. 어미말은 출산을 앞두고 여전히 몸부림을 치고있었다. 물에 빠진듯 네다리를 마구 허둥대다가도 갑자기 이발을 다 들어내며 고통스럽게 소리를 질렀다. 말은 한참씩 몸부림을 치다가도 지친듯 네다리를 땅에 떨어뜨리고 죽은듯이 옆으로 누워벼렸다.  파는 두려운듯 발볌발볌 어미말쪽으로 다가가 풀우에 쪼크리고 앉았다. 이제 곧 망아지가 나오게 될거야. 파는 그렇게 생각을 굴리고있었다. 그 시각 어미말의 두눈에서는 주먹같은 눈물이 둘둘 굴러떨어졌다. 가을의 해볕에 말라가고있던 풀잎들이 그 눈물을 흡수해들여 인차 흔적마저 남지 않았다. 어미말은 길다란 눈초리에 싸인 두눈을 연신 껌뻑거렸다. 그 시각 어미말은 아무것도 보고싶지 않아 하는것 같았다.  멍하니 뜬 그의 두눈에는 하늘에 둥실 뜬 구름이 비껴있을뿐이였다. 그 시각 어미말은 자기의 눈길을 푸르른 하늘에 용해시켜버리는려는것 같았다.  파가 갑자기 일어섰다. 더 이상 기다릴수 없다고 생각했다. 어둠이 몰려오고있었다.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어미말이 망아지를 낳지 못한다면 별수없이 어미말을 풀밭에 그대로 두고갈수밖에 없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무슨 일이 발생할지 예측할수 없었다. 파는 채찍에서 가죽끈을 풀어냈다. 그 순간 초원에서 파가 리용할수 있는것은 오직 그것뿐이였다. 파는 어미말곁으로 다가가 그놈의 두뒤다리사이에 쭈크리고 앉았다. 어미말은 그때 이미 무엇인가를 알아차렸는지 있는 힘을 다해 몸부림을 쳐댔다. 뒤다리는 경련을 일으키는듯 마구 떨렸다. 어미말은 길게 숨을 토했다. 그 순간이 너무 길어 파는 어미말이 다시는 숨을 들이쉬지 못하는것이 아닌가 근심했다. 파는 초원에 살면서 그런 일들을 가끔 본적이 있었던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어미말은 들숨을 끌었다. 파도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어미말은 몹시 추운듯 덜덜 이를 쪼아댔다. 그 소리와 함께 뜨거운 액체가 풀우에 줄줄 흘러내렸다. 봄날의 따뜻한 밤에 그해의 마지막 얼음이 녹아내리는듯싶었다. 어미말은 태고연한 방식으로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느라 몸부림을 치고있었다. 밤처럼 생긴 촉촉한 물건이 어미말의 두다리사이에 나타났다. 파는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그것이 망아지의 발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파는 손에 감아 쥐고있는 끈을 떠 올렸다. 끈이 손가락을 너무 꼭 감고있어서 하얗게 번져가고있었다. 파는 끈을 풀고 손을 흔들었다. 그후 저려나는 다리를 펴들고 선자리에서 몇번인가 풍풍 올리 뛰다가 다시 쭈크리고 앉았다. 파는 주저없이 끈의 한쪽끝을 올가미로 만들어 들고 어미말의 두다리사이에서 아까 보았던 밤처럼 생긴 그 물건을 찾았다. 망아지의 발굽이 옳았다. 파는 올가미를 발굽에 걸고 천천히 당기기 시작했다. 한껏 긴장되여있는 파의 모습은 마치도 폭파물의 도화선을 손에 쥐고있는것만 같았다. 파는 망아지가 어미말의 배속에서 몸부림을 치고있다고 생각했다. 그놈도 빨리 세상에 나오고싶은데 무엇인가 산도에 걸린것 같았다. 파는 차츰 손에 힘을 주었다. 어이말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어미말은 갑자기 몽둥이에 머리를 얻어 맞은듯 흠칫하더니 머리를 돌려 파를 바라보았다. 어미말의 커다란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어미말의 머리가 또 떨어뜨려졌다. 파는 더 이상 힘을 주기 무서웠다. 마치도 자신이 가공하는 옥석에 흠을 내면 머리가 날아갈 처지에 놓인 석공이 된듯한 기분이였다.  산도에 걸려있는 물체가 천천히 움직이기 사작했다. 나올듯말듯 파의 애간장을 태웠다. 잠간 지나자 육안으로 보아낼수 있을 정도로 빨리 밀려나오기 시작했다. 망아지의 다리가 다 나왔다. 이어 축축히 젖어있는 머리도 나왔다… 줄곧 비슷한 힘으로 끈을 당기고있던 파는 갑자기 자기와 줄당기기를 하고있던 대방이 완전히 힘을 놓아버린듯한 느낌을 받으면서 뒤로 훌렁 자빠졌다. 망아지가 수많은 즙에 들쓰워진 과실처럼 땅에 떨어졌던것이다. 덮씌워져있던 막이 터지면서 망아지가 풀밭에 들어났다. 망아지가 끝내 세상을 보게 된것이다. 파는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망아지는 얇은 종이장처럼 톡 치면 구멍이라도 뚫릴듯  취약해보였다. 배가 가볍게 움직여졌다. 망아지는 안간힘을 다해 생명중의 첫 공기를 마시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여름날 황혼의 초원의 공기에는 싱그러운 풀향기가 가득 배여있었다. 파는 또 바삐 돌아치기 시작했다. 그는 오른손식지의 손톱을 망아지목아래의 흰색막에 끼워넣고 조심스럽게 뜯어냈다. 그리고 풀잎을 뜯어 쥐고 망아지몸뚱이에 들어붙은 포의를 긁어내고 입과 코구멍에 들어있는 점막을 닦아냈다. 망아지의 호흡은 차츰 정상으로 돌아갔다. 까아만 털을 가진 귀엽게 생긴 망아지였다. 털은 채 마르지 않았지만 여전히 해빛에 반짝이였다. 파는 풀우에 앉아 가죽끈에 달라붙은 풀씨며 점막이며 피자국들을 뜯고 닦아냈다. 파는 가죽끈을 다시 채찍대에 비끌어 맸다. 파가 어미말쪽으로 머리를 돌렸을 때 그놈은 기적적으로 일어나있었다. 배속에 있던 망아지가 빠져나오고보니 어미말은 전보다 많이 여위여있었다. 어미말은 머리를 숙이고 잠간 망아지냄새를 맡다가 귀와 코를 핥아주기 시작했다. 망아지는 어미말의 사랑에 힘을 입었든지 안간힘을 다해 일어서려고 했다. 망아지는 처음에 가느다란 다리를 후들후들 떨면서 몸을 일으키더니 무릎을 꿇고 앉았다. 망아지는 이슬을 가득 머금은 이삭처럼 머리를 푹 숙이고있었다. 가느다란 목으로 머리를 쳐들어올릴수 없는 모양이였다. 코등마저 수시로 풀밭을 쪼았다. 망아지는 더 이상 몸을 가누지 못하고 옆으로 쿵 넘어졌다. 어마말은 머리를 숙이고 망아지의 목을 핥다가 갑자기 투레질을 하면서 다시한번 용기를 내라고 고무하는것 같았다. 파는 그때 망아지가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것 같이 느껴졌다. 그 순간 망아지가 일어서려고 애를 쓰는것은 생명의 본능때문이라고 생각되였다. 사람들에게 길들여지기전, 말은 갓 태여나 일어서기전의 그 순간이 제일 위험한 시각이였다. 그 시점의 망아지에게는 위험에 대적할수 있는 아무 능력도 없었던것이다. 망아지가 스스로 일어서서 젖을 빨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것은 생존할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관건적인 문제였다. 망아지는 또 일어서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저가락처럼 가는 네다리로 미끄러운 풀우에 든든히 발을 부치기는 여전히 무리인것 같았다.  망아지가 끝내 몸을 일으켰다. 후들후들 다리를 떨다가 간신히 몸의 평형을 잡는것 같았다. 망아지는 놀랍게도 어미말의 곁으로 다가가 젖꼭지를 찾아 물고 빨기 시작했다. 누가 배워주지 않았건만 그 동작은 그처럼 익숙해보였다. 젖을  몇 모금 빨자 보리이삭처럼 꼬부라졌던 꼬리가 천천히 펴지더니 한들한들 움직였다. 차츰 움직임이 빨라지더니 나중에는 제법 절주까지 느껴졌다. 흐르는 금빛이 초원을 감싸안았다. 초원은 이미 세상에서 제일 큰 고요의 왕국으로 된듯싶었다. 말들은 차분한 모습으로 황혼에 몸을 맡기고있었는데 저마다 그렇게 의젓해보일수 없었다. 초원의 말들은 대를 이어오면서 그렇듯 아름다운 황혼을 얼마나 많이 맞이했는지 모를 일이다. 그들의 후손들도 선조들처럼 황혼이 아름다운 그 초원에서 한세대 또 한세대를 이어 번식해갈것이다. 파는 말등에 올라앉아 채찍을 휘두르면서 배 부르게 풀을 뜯어 먹고 꾸벅꾸벅 조는 말들을 몰아 숙영지로 돌아갔다. 파는 길에서 하루 낮을 애타게 기다리고있던 늙은 늑대가 조용히 몸을 숨기고있던 풀숲에서 나와 어미말이 엎드려있던 풀밭쪽으로 가는것을 보았다. 늙은 늑대는 하루 낮을 기다린 보람으로 망아지를 감쌌던 포의를 주어먹을수 있을것이였다. 늙은늑대는 얼마후 그 포의를 소화시켜 배설물을 밖으로 내보낼것이고 초원은 그 배설물을 흡수하여 풀들을 키울것이며 망아지는 그 풀을  뜯어먹고 큰 말로  자랄것이다 초원의 생명은 그렇게 이어지는것이였다. 파는 줄곧 망아지곁에 서서 걸음을 옮겼다. 망아지의 다리는 가늘고 길었으며 발굽은 뾰족했다. 콤파스처럼 생긴 망아지의 발굽이 땅을 내디딜 때마다 부드러운 풀잎들이 밟혀서 모양을 잃었다. 망아지는 어미말과 약간 떨어져 뛰여가다가도 어미말의 곁에 붙어서서 어미말과 같은 속도를 유지했다. 망아지는 어미말을 바짝 따라 붙으면 아무 위험도 없을것이라고 생각하는것 같았다. 파는 발뒤축으로 말의 뚱뚱한 배를 가볍게 때리며 고삐를 당기고는 머리를 돌려 무리를 벗어나는 말을 향해 소리쳤다. 휘두르는 채찍이 무서운지 그놈은 고분고분 무리에 돌아왔다. 낮은 언덕을 넘어서자 강줄기 하나가 앞을 막았다. 강은 뱀처럼 구불구불 풀밭을 누비며 내려오고있었다. 전에 숙영지로 돌아가는 길에 그 강을 볼 때마다 파는 자기도 그 강물을 따라 어디론가 정처없이 흘러가는듯한 환상을 하면서 스스로가 강의 일부분으로 된듯한 기분이 들었었다. 오래동안 지평선을 바라보면서 느꼈던 우울함을 털어버리려는듯 파는 갑자기 적진을 향해 돌격하는 사람처럼 목청을 다해 소리치며 말을 몰아 언덕을 내려갔다. 그것은 파가 말들을 이끌고 숙영지로 돌아갈 때마다 취하는 행동들이였다. 대부분 말들이 파의 애어린 목소리를 뒤로 한채 늘쩡늘쩡 언덕을 내려왔다. 하지만 뒤에 있는 성질 급한 놈들이 달리면서 앞의 놈들을 재촉했기에 나중에는 전반 말무리가 줄기차게 언덕을 달려 내려오기도 했다.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선명한 절주에 따라 말발굽밑에서 먼지가 뽀얗게 일어났다. 파는 채찍을 후두르면서 말무리를 쫓아 강에 들어섰다.  수많은 말발굽들이 고요하던 강물을 흔들어놓았다. 말발굽에 튕겨오른 물보라가 칠색의 빛을 발산하면서 예쁜 무지개를 형성했다. 말들은 강물에 들어선후 속도를 늦추고 맞은켠 언덕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숙영지는 바로 강언덕 맞은켠에 있었다. 진종일 해볕에 달구어진 파는  찬 강물이 몸에 닿자 부르르 몸을 떨었다. 강물에 들어선후에야 파는 어미말이 무리에 없는것을 발견했다. 파는 머리를 돌려 어미말을 찾았다. 어미말이 그제야 강물에 들어서고있었다. 하지만 어미말을 따르던 까아만 털의 망아지는 감히 강에 들어서지 못했다. 파는 말머리를 돌려 강기슭으로 달려갔다. 망아지에게 있어서 황혼에 물든 금빛의 강물은 범접하기 힘든 존재인듯싶었다. 망아지는 아직 굳지 않은 자기의 발굽을 강물에 넣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있었다.  어미말은 몸을 돌려 강기슭으로 돌아가 망아지의 등을 가볍게 핥아주었다. 망아지는 인차 어미말의 다리밑으로 들어갔다. 망아지에게 있어서 그곳은 세상에서 제일 안전한 곳인것 같았다. 하지만 어미말이 강으로 들어가자 망아지는 여전히 결심을 내리지 못했다.  망아지의 눈에는 고요한 강물이 큰 홍수처럼 느껴지는것 같았다. 어미말이 강역에 서서 연신 투레질을 했지만 망아지는 좀처럼 발굽을 강에 들여놓지 못했다. 파는 말을 타고 언덕에 올랐다. 망아지는 물에 들어서있는 어미말을 애타게 바라보았다. 그 시각 저가락처럼 가는 망아지의 네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있었다. 파는 말에서 내려 고삐를 손에 움켜쥐고 천천히 망아지쪽으로 다가갔다. 긴 눈초리에 싸인 포도같은 눈망울이 흑진주처럼 반짝였다. 망아지는 미동도 없이 파만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 눈길이 막연해보였다. 망아지는 어미를 따라가야 안전하다고 믿고있었지만 그 시각 물에 들어서있는 어미를 감히 따라설수 없는 처지라 자기를 향해 다가오는 파에게 일종의 희망을 걸어보려는것 같기도 했다. 파는 허리를 굽히고 두손을 내밀어 망아지의 겁에 질린 얼굴을 받쳐들었다. 망아지의 몸에는 싱그러운 풀향기가 배여있었다. 따뜻하고 달콤한 느낌이 파의 두손으로 퍼져나갔다.  하지만 망아지의 눈길은 여전히 어미말의 몸뚱이를 떠나지 못했다. 파는 망아지의 작은 심장이 터질듯 빨리 뛴다고 느껴졌다. “괜찮아, 괜찮대두.” 파가 중얼거리며 망아지를 안았다. 망아지는 조금도 발버둥질을 치지 않았다. 파는 망아지를 자기가 탔던 말등에 올려놓았다. 파는 망아지를 붙잡은채 조심스럽게 말등에 올랐다. 말등에 앉은 망아지는 어딘가 불편함을 느꼈던지 불안스럽게 머리를 저어댔다. 어미말은 맞은켠 언덕에 거의 오르고있었다. 파는 속도를 내서 어미말을 따라 잡았다. 어미말은 그들쪽으로 다가와 망아지냄새를 맡았다. 망아지는 차츰 안정을 찾으면서 말등에 엎드렸다. 말무리는 이미 맞은켠 언덕에 올라서서 파네를 바라보고있었다. 이미 바싹 마른 망아지의 털은 부드러운 원단같이 느껴졌다. 파는 망아지의 몸뚱이를 꼭 잡아주었다. 망아지의 심장은 전처럼 그렇게 높이 뛰지 않았다. 망아지는 말등에 납짝 엎드려 두려운 눈길로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았다. 강중심에 들어사자 물소리가 한결 또렸해졌다. 강변에서는 물이 급촉하게 흐르는것을 느낄수 없다. 강바닥까지 내리비치는 어룽어룽한 나무가지의 그림자가 강물의 속도가 얼마나 급촉한가를 잘 보여주고있을뿐이였다. 파도 한줄기의 강한 힘이 웃쪽에서 밀려내려와 말의 배를 치고있다는것을 감촉할수 있었다. 강물은 절주가 있던 말의 발걸음을 흐트러놓고있었다. 하지만 말은 인차 발걸음을 조절하고 침착하게 걸음을 내디뎠다. 파는 매일 말무리를 이끌고 강을 지나기에 제일 깊은 곳이라고 해야 말배에나 대일것이라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그리고 강밑이 평탄하기에 정상적인 말이라면 절대로 미끌어 넘어가는 일이 없을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듯한 강물이 파의 무릎을 적셔주었다. 초원을 가로지나는 이 강은 북방에 있는 큰 호수에서 발원한것이였다. 강은 풀들이 무성한 초원을 지나 남방에 있는 다른 한 큰 호수에 흘러들었다. 파가 세상을 알아서부터 그 강은 하루도 쉬지 않고 그렇게 흘러 초원의 생령들을 키워주었던것이다. 파는 강도 초원처럼 생명이 있다는것을 알고있었다. 강언덕에 오른 파는 말등에서 내렸다. 물이 가득 들어간 장화에서 꾸륵꾸륵 소리가 났다. 파는 망아지를 조심스럽게 풀밭에 내리워놓았다. 망아지는 몇초동안 풀밭에 멍하니 서있었다. 발굽밑의 그 땅이 새롭게 느껴지는것 같았다. 망아지는 갑자기 머리를 돌려 어미말을 찾았다. 망아지의 눈이 반짝 빛났다. 망아지는 어미말을 향해 뛰여갔다.  그것은 그 망아지의 생명중 첫 질주였다. 파는 망아지가 뛰다가 넘어라도 질가봐 손에 땀을 쥐였다. 하지만 망아지는 용케도 어미말의 곁에 도착하여 몸뚱이를 비벼댔다. 파는 초원의 말들은 땅에 든든히 발굽을 박은후 절대 넘어지지 않는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만약 진짜 넘어졌다면 그 말은 절대 다시 일어설수 없을것이였다. 태양은 지평선너머로 얼굴을 숨겼다. 파는 태양이 지평선너머의 그 대지에 떨어지는 거대한 소리를 듣는듯싶었다. 태양은 광활한 초원을 쩌렁쩌렁 울리며 대지의 품에 안겨 혼신을 불태울것이고 그 정열로 새로운 하루를 맞이할것이였다. 초원의 행운아로 불리우는 말들은 솟아오르는 태양의 따스한 빛속에서 단잠을 자다가 땅과 하늘이 맞닿는 장려한 풍경을 감상하게 될것이다. 지평선너머에는 무엇이 살가? 말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영원히 풀수 없는 수수께끼로 남을것이다. 파는 채찍을 휘두르며 말들을 몰아 숙영지를 향해 떠났다. 멀리로 보이는 푸르스름한 지평선에 숙영지의 륜곽이 보여오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유백색의 천막과 수레가 있었다. 흰 연기가 굴뚝에서 모락모락 피여올랐다. 바람이 숨어버린 황혼녘이라 연기는 곧추 하늘로 솟아올랐다. 엄마는 파를 향해 저녁을 먹으라고 소리쳤다. 동생 T.BING에게: 이 글은 너에게 보내는 새해선물이다. 나는 전에 그렇듯 너를 부러워했더랬지. 동생아, 너도 그때 곁에 있었더라면 금방 태여난 망아지를 안고 강을 건널수 있었을거다. 검은 털의 망아지는 지금도 잘 있느냐?  
15    백조목장*거르러치무거 헤허 댓글:  조회:2021  추천:1  2013-12-23
백조목장 ―초원의 여름을 적는다 그해 봄과 여름에 나는 친구네 목장에서 생활했다. 천당같은 그곳은 후룬베엘초원의 오원커기에 자리잡고있었다. 친구네 목장부근에는 모래산 하나가 있었는데 그우에는 초원에서 보기 힘든 적송 몇그루가 자라고있었다. 나무들의 직경으로 미루어볼 때 모두 백살이 넘을것 같았다.  나는 매일 목장에 있는 몇마리의 세퍼드를 데리고 산꼭대기에 올라가 머나먼 초원을 바라보는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초원은 끝이 보이지 않는 록색의 세계였다. 머나먼 지평선을 바라보다보면 나중에는 하늘과 하나로 되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온후 목장에서 찍은 사진들을 도시에 사는 친구들에게 보내주었다. 친구들은 목장의 순결한 록색을 도무지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모두들 내가 포토샵을 리용해 그런 사진효과를 얻었다고 했다. 나는 그들에게 구구히 해석을 하고싶지 않았다. 나에게 있어서 초원은 일종의 생활방식일뿐이다. 나도 사실 초원의 그 푸르름에 대해 어떻게 해석할 방법이 없다. 초원은 푸르다 못해 사람들로 하여금 그속에 흘러들고싶게 하는 광활한 세계이다. 그해봄, 나는 일생에서 처음으로 그처럼 방대한 철새의 이동장면을 보게 되였다. 수만마리의 큰 기러기들이 무리를 지어 낮게 날아예기 시작했는데 그 모양은 검은 구름과도 같았다. 그것은 세상 모두가 분망한 계절이였다. 큰 기러기들의 이동은 이른 아침으로부터 밤 늦게까지 계속 되였다. 맑은 밤하늘에서는 병에 걸려 날기 힘든 갈매기들의  급한 울음소리가 오래도록 퍼지기도 했다. 그들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싶었던것이다. 북방의 고향으로 돌아가서 새끼를 낳아 키우고싶었던것이다. 망망한 밤하늘을 쳐다보노라면 뭉게뭉게 흐르는 구름들사이에서 무리를 지어 날아예는 갈매기들을 자주 볼수 있었다. 그들의 가늘고 뾰족한 날개는 수면을 스치는 날렵한 지느러미를 방불케 했다. 초원도 흥성거리기 시작했다. 그 목장은 바로 호수가에 자리잡고있었다. 목초사이에는 좁지만 물이 많은 개울이 흐르고있었다. 하여 그 초원은 더없이 아름다와보였다.  해맑은 어느날 아침, 나는 철새들이 더 이상 북쪽으로 날지 않고 그곳에서 배회하는것을 보았다. 그들은 풀밭에 내렸다 날아올랐다를 반복하며 열심히 무엇인가를 찾고있었다. 일부 철새들이 초원에서 둥지를 틀만한 곳을 찾고있었던것이다.  나는 새들에 대하여 익숙하지 못했기에 그들이 그저 물새가 아니면 도요새일것이라고 생각했다. 한주일도 채 되지 않았는데 그들은 한곳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러다가도  사람들이 다가오면 불안하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들은 멀리로 날아가지 않고 주위에서 배회하다가 다시 원 자리에 내려 앉군 했다. 바로 그 무렵에 한 친구가 목장으로 나를 보러 왔다. 이튿날 이른아침, 우리는 함께 모래산으로 가서 일출을 구경하기로 했다. 우리가 풀밭을 지날 때 한마리 또 한마리의 새들이 련이어 하늘로 날아올랐다. 나는 친구에게 손쉽게 새둥지를 찾을수 있다고 장담했다. 그는 나의 말을 믿지 않았다. 사실 그 목장은 그 친구의것이였다. 친구는 전에 초원에 새둥지가 있다는 소리를 들은적이 없었던것이다. 바로 그때, 우리로부터 5, 6메터쯤 떨어진 풀밭에서 또 한마리의 새가 우리의 발걸음소리에 놀라 하늘로 날아올랐다. 나는 방금 새가 날아오른 그 위치를 확정하고 천천히 그쪽으로 다가갔다. 나는 허리를 굽혀 풀들을 헤쳤다. 아니나 다를가 풀밑에 옴폭하게 들어간 새둥지가 있었다. 풀을 결어만든것이였다.  겉에 회색 반점이 있는 담청색 작은 알 세개가 둥지에 들어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알을 꺼내들었다. 방금 하늘로 날아오른 어미의 체온이 여전히 알에 남아있었다. 나는 시무룩히 웃으며 새알을 친구앞에 내밀었다. 친구는 매우 놀라와 하며 어떻게 새둥지를 그처럼 쉽게 찾을수 있느냐고 물었다. 새둥지와 주변의 환경 그리고 새알의 보호색이 모두 비슷해서 쉽게 분별할수 없었던것이다. 친구가 자세하게 새알을 구경한후 나는 인차 새알을 다시 둥지에 넣어주었다. 새알이 식으면 부화에 영향이 있었던것이다. 내가 간단한 솜씨를 보인것뿐인데 친구는 나의 재간에 탄복하는것 같았다. 전에 친구는 내가 맹견들앞에서 전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것을 보고도 매우 이상하게 생각했던것이다.  나는 친구에게 자세히 관찰을 하면 그쯤한것은 쉽게 알아낼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 둥지에서 날아오른 새는 메추리처럼 그렇게 교활한것 같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둥지에 다가서는것을 보고도 그 새는 그냥 둥지에 앉아있다가 사람들이 거의 접근해서야 날아오른것이다. 그로 미루어보아 그 새의 지력이 낮거나 그들이 종래로 사람을 접촉한적이 없는것 같았다. 그 종류의 새들은 언제나 직접 둥지에서 날아오르지 종래로 다른 음모궤계를 꾸미지 않았던것이다. 산꼭대기의 소나무에는 또 꿩매의 둥지도 있었지만 나는 친구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뀅매가 이미 새끼를 부화했던것이다. 모래산아래의 옅은 골짜기에는 늙은 오소리 한마리가 살고있었다. 나는 아침에 세퍼드를 데리고 산책을 하다가 가끔 검은 색과 흰색이 섞인 오소리의 머리가 굴어구에 나타나는것을 보았던것이다. 몇번은 아침 일찍 일어나 모래산기슭에 이르렀을 때 금방 먹이를 먹고 굴로 돌아오는 늙은 오소리를 직접 본적도 있었다. 혈기왕성한 세퍼드가 오소리를 쫓아갔다. 하지만 그놈은 오소리처럼 체대가 작고 똥똥하게 생긴 짐승을 대적해본 경험이 없었다. 오소리가 송곳이를 들어내면서 도망을 치자 세퍼드는 감히 쫓아가지도 못했다. 이면에서 그놈은 숙영지에 사는 “검은 곰”이라 불리우는 세퍼드를 따라배워야 할것이다.  “검은 곰”에게 물려 죽은 오소리가 얼마인지는 누구도 몰랐다. “검은 곰”의 나이가 많아짐에 따라 얼굴에 난 상처자국에는 흰 털이 돋아올랐다. 그놈은 늙어서 힘겨운 탓인지 종래로 나와 함께 산책을 하지 않고 대부분 시간을 굴에 엎드려 잠을 잤다. 젊어서 한때는 아주 예리했을 그놈의 이발은 이미 다 빠져있었다. 만년에 이른 “검은 곰”은 자는 일을 내놓고는 더 이상 할수 있는게 없는상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착각이였다. 그해봄, 내가 금방 목장에 갔을 때 “검은 곰”은 놀랍게도 나에게 자기의 솜씨를 펼쳐보였다. 그것은 어느 황혼무렵이였다. 양들은 이미 우리에 들어갔다. 나는 문앞에 서서 불타는 노을이 내려앉은 풀밭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때 줄곧 굴안에 엎드려있던 “검은 곰”이 몸을 일으키더니 풀밭을 바라보는것이였다. 눈길이 진지했다. 전에 늘 보던 생각은 뻔하지만 힘이 부쳐하던 그 표정이 아니였다. “검은 곰”의 온몸에 갑자기 혈기가 왕성해진듯싶었다. 나는 “검은 곰”의 눈길을 따라 푸른 초원을 바라보았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검은 곰”은 어디론가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속도가 그닥 빠르지 않았지만 차츰 나는듯해보였고 한점 흐트러짐이 없이 목표를 향하고있었다. “검은 곰”이 2, 30메터를 달렸을 때 앞에서 갑자기 털뭉치 같은것이 불쑥 솟아올랐다. 순간 나는 그 털뭉치의 임자가 바로 늑대라는것을 알아차렸다. 늑대는 양들 몰래 목장으로 따라오다가 풀밭에 매복하여 공격할 기회를 노리고있었던것이다. 늑대는 도망치려고 하지 않고 달려오는 “검은 곰”을 마주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상한것은 “검은 곰”이 달려가면서 소리를 쳐 다른 세퍼드들을 부르지 않는것이였다.   “검은 곰”은 열살도 넘어있었다. 악렬한 기후와 충족하지 못한 먹이때문에 초원의  세퍼드들은 보통 열살을 넘기지 못하고있었다. “검은 곰”은 진작 늑대앞을 막아서있었다. 내가 이발 한대 없는 “검은 곰”이 어떻게 공격을 할가를 두고 근심하고있을 때 그놈이 갑자기 돌멩이처럼 늑대에게 몸을 던졌다.  늑대는 “검은 곰”에게서 오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벌렁 나가 넘어져서 한고패 구르고는 겨우 기여일어났다. 늑대는 어리둥절해서 “검은 곰”을 바라보았다. 그놈은 종래로 그런 공격을 당해본적이 없었던것이다.  “검은 곰”은 이발이 한대도 없었지만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큰 소리로 으르렁거리면서 늑대에게 덮쳐들었다. 늑대가 “검은 곰”을 맞받아 나갔다. 늑대와 “검은 곰”은 한동아리가 되여 돌아갔다. 그때 몇마리의 세퍼드가 집뒤에서 뛰여나왔다. 그놈들은 너무도 놀라 풀밭에서 늑대와 결투를 벌리고있는 “검은 곰”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나는 세퍼드들에게 빨리 공격하라고 큰 소리로 명령했다. 그제야 그놈들은 번쩍 정신이 들었던지 현장을 향해 뛰여갔다. 세퍼드들이 소리치며 달려오자 늑대는 인차 사태를 파악하고 몸을 돌려 초원심처로 도망을 쳤다. 늑대는 그때 이발이 없는 늙은 개 한마리는 대적할수 있었지만 혈기왕성한 젊은 세퍼드무리는 당할수 없을것이라고 판단했을것이다. 봄날의 초원에는 먹이가 많지 않았다. 늑대는 제대로 먹이를 먹지 못해 몸이 몹시 여위여 있었다. 그놈은 세퍼드들과 힘으로 대적은 할수 없었지만 속도는 세퍼드들을 찜쪄먹을 정도였다.  달려온 세퍼드들과 함께 늑대를 쫓아가던 “검은 곰”이 얼마를 안가서 돌아왔다. 그의 입부근에 또 새로운 상처가 생겨났다. “검은 곰”은 마당에 엎드려 늑대가 도망친 방향을 한참 바라보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드넓은 초원에서 세퍼드가 먹지 못해 몸이 겨릅대같은 늑대를 쫓아 잡을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령에 가까왔다. “검은 곰”은 늑대를 자기의 령지에서 쫓아내기만 하면 만족해야 한다고 생각했던것이다. “검은 곰”은 내가 던져주는 먹이를 받아먹지 않았고 내가 자기의 몸을 만지지도 못하게 했다. “검은 곰”이 그런 뜻을 보이자 나도 더 이상 그런 동작으로 그놈의 존엄을 건드리지 않았다. 늑대를 쫓아가던 다른 세퍼드들은 바보스럽게도 둥근달이 떠올라서야 숙영지로 돌아왔다. 그들은 울안에 들어서자 마자 물통에 마주서서 벌컥벌컥 물을 먹었다. 젊은 세퍼드들은 기를 돋구며 늑대를 쫓아가서 굴에 몰아넣은것 같았다. 나는 그 늙은 오소리가 늘 세퍼드들에게 쫓기우면서도 왜 이사를 가지 않는지가 몹시 궁금했다. 나는 목장부근에 있는 그 호수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랐다. 그 호수는 옛날에 강이 막히면서 생겨난것 같았다.  물속은 그렇게 깊은것 같지 않았다. 그것을 호수라고 부르는것도 억지감이 없는것은 아니였다. 어쩌면 물웅덩이라고 하는게 더 적절할지도 모를 일이였다.  나는 망원경을 들고 그 호수를 찾아갔다. 호수에는 아비목에 속하는 새들과 들오리 같은 물새들이 많이 살았다. 호수로 통하는 풀밭에는 울퉁불퉁한 돌멩이가 가득 널려있었다. 호수가에 이르니 땅이 어찌나 진지 빠졌다가는 발을 뽑기가 어려울것 같았다. 봄이 되여 금방 얼음이 풀릴 때 소 한마리가 호수가에서 물을 먹다가 진창에 빠져들어간적이 있었다. 나는 부근에 있던 사람들과 함께 그 소를 진창에서 끌어내느라 진종일 애를 뗐다. 온몸이 흙투성이로 된것은 물론 춥고 배 고파서 참을수 없었다. 우리는 이미 진창에 목까지 빠져버린 그 소를 그냥 버리자고 마음 먹었었다. 하지만 차마 그럴수도 없었다. 날이 어두워서야 우리는 끝내 소를 구해냈다. 나는 그 소 신세처럼 될가봐 겁이 나서 감히 호수가로 다가갈수 없었다.    나는 맑은 날씨를 골라 호수와 멀리 뻘어진 곳에서 망원경으로 수면을 관찰했다. 그 호수에 사는 물새의 품종을 파악하려는 목적에서였다. 수면에는 확실히 내가 모르는 품종의 물새들이 있었다. 나는 그 호수가 왜 오랜 세월을 내려오면서 말라들지 않았는가 하는것이 궁금해서 주변을 살피다가 우에서 흐르는 강줄기가 좁은 지류를 형성하면서 호수에 흘러드는것을 발견했다. 한메터도 되나 마나한 그 강줄기가 호수에 물을 공급하고있었던것이다.   목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그마한 진(镇)이 있었다. 나는2, 3일에 한번씩 걸어서 진으로 가 pc방에 들려  전자우편을 확인했다. 그리고 슈퍼마케트에 들려 전화를 치거나 노트북에 충전을 했다. 목장에는 전기가 없었던것이다. 진으로 가려면 반드시 십여메터 길이의 콩크리트다리를 건너야 했다. 그날 나는 진에서 돌아오다가 다리우에 잠간 서있었다. 특별한 일이 없었다. 다만 무료한 감이 들어서 무엇인가 놀음거리나 찾아보려는것이였다. 나는 교각이 경도가 아주 높은 암석이라는것을 발견했다. 그 무렵, 나는 몸에 지니고 다니던 스위스군도로 고기를 잘라 먹고 물건을 깎고 가죽을 벗기다보니 칼날이 무뎌있었다. 나는 천연숫돌과도 같은 교각에다가 칼을 갈고싶어 맞춤한 각도를 찾았다. 내가 정신을 집중하지 못했던지 아니면 내가 각도를 잘못 잡았던 탓인지 그만 칼이 내 손을 벗어나 다리밑으로 떨어졌다. 허리를 굽혀 다리아래를 내려다보니 붉은 칼자루가 맑은 물에서 보석처럼 반짝이고있었다. 나는 칼자루가 붉은 색이이기를 참 잘했다고 감탄했다. 칼자루가 붉은색이기에 떨어뜨렸을 때 주변의 환경과 선명한 구별이 되여 인차 찾을수 있었던것이다. 나는 다리에서 내려서서 칼이 떨어진 곳을 향해 걸어갔다. 그때 나는 어깨에 메였던 노트북을 벗어서 강가에 내려놓았다. 그곳은 다리우에서 보기보다 거리가 좀더 멀었지만 빨간 칼자루는 여전히 선명하게 보였다. 나는 물깊이가 반메터쯤은 될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신과 양말을 벗고 바지가랑이도 높이 말아올렸다. 그 시각은 비록 점심녘이였지만 강물은 찬기운이 뼈속까지 슴여드는것 같았다. 강밑에 울퉁불퉁한 조각돌들이 깔려있어 발바닥이 여간만 아프지 않았다. 나는 물밑에서 칼을 주어들어 물기를 닦고는 칼날을 접어서 칼집에 넣었다. 나는 몸을 돌리면서 다리우를 힐끔 바라보았다. 처음에 나는 그것을 교각에 옅게 묻고있는 갈대뿌리에 매달린 수초덩이쯤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에 비해 그 모양이 너무 정교한것 같았다. 비록 그것이 교각에 자란 갈대들 사이에 섞여있었지만 여전히 나의 눈길을 끌었다. 나는 그 것이 절대 자연적으로 형성된것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다리가 찬물에 얼어서 뻣뻣했지만 나는 호기심을 버리지 못하고 그곳을 향해 다가갔다. 도중에 나는 두개의 교각이 교차하면서 생긴 물살이 센 곳을 지나야 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곳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급물살로 하여 도무지 몸을 지탱할수 없었다. 나는 안간힘을 다해서 그곳을 벗어났다.  나는 차츰 다리아래의 소용돌이때문에 형성된 작은 모래섬과 가까와졌다.  나는 그곳에 도착해서야 교각에 매달려있는 그것이 바로 큰 새둥지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나는 잠간 주저하다가 생둥지를 향해 더 가까이 다가가 적당한 자리를 찾아 섰다. 갈대의 그루터기가 칼끝처럼 뾰족했다. 그것은 내가 본 새둥지들가운데서 제일 큰것이였다. 새둥지는 콩크리트다리의 교각에 있었는데 수면과 반메터쯤 떨어진것 같았다. 새둥지의 직경은 한메터가 넘을것 같았다. 나는 흥분으로 하여 가슴이 후둑후둑 높뛰였다.  그것은 분명 백조둥지였다. 나는 갈대를 헤치고 둥지안을 들여다보았다. 안에 아무것도 없었지만 나는 그 둥지가 꼭 금방 튼것이라고 확정했다. 둥지에 사용된 갈대의 물에 잠긴 부분이 그때까지 신선한대로 있었던것이다. 그 발견으로 하여 나의 가슴은 매우 흥분했지만 물에 들어서 있는 나의 다리는 너무 얼어서 감각마저 잃어질것만 같았다. 나는 급히 강가에 올라가 양말을 가지고 젖은 발을 닦았다. 그때에야 나는 나의 발이 조각돌에 긁혔던지 갈대뿌리에 긁혔던지 군데군데 상처가 나있는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발이 감각을 잃어서인지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호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여 상처를 닦은후 신만 신었다. 젖은 양말을 호주머니에 집어넣은 나는 노트북을 주어 메고 강변을 따라 걷다가 다리우에 올라섰다. 나는 다리우에서 아래를 굽어보았다. 그곳에서는 근본 새둥지를 똑똑하게 볼수 없었다. 나는 목장을 향해 걸음을 옮기면서 생각을 굴려보았다. 이 일망무제한 초원에서 백조는 왜 하필 교각에 둥지를 틀었을가? 그 다리우로 날마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녔다. 그리고 오래동안 수리를 하지 않은 그 다리우로 차들이 자나갈 때면 언제나 큰 진동이 발생하군 했다. 어떤 시각으로 보나 그곳은 절대 백조가 둥지를 틀기 적합한 곳이 아니였다. 전에 나는 초원에서 유람을 할 때 종달새의 둥지를 발견한적이 있었다. 그 둥지는 놀랍게도 두 바퀴흔적 사이의 풀밭에 있었다. 초원심처의 길은 사실 수레나 자동차바퀴가 지나가면서 낸 흔적에 지나지 않았다. 종달새는 바로 그 바퀴흔적 사이에다가 둥지를 틀었던것이다. 어느날, 나는 오전의 4시간을 리용하여 그곳을 지나가는 차량과 사람들을 통계한적이 있었다. 결과 대형트럭 2대와 소형트럭 3대, 수레 한대와 사람을 등에 태운 말 두필 그리고 행인 네 사람이 지나갔다. 하지만 놀랍게도 종달새의 둥지를 다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어미종달새는 대형트럭이 굉장한 소리를 내며 지나갈 때 잠간 하늘로 날아올랐을뿐 다른 때는 줄곧 둥지에 앉아있었다.  나는 그곳을 지날 때면 늘 종달새의 둥지를 살펴보았다.   둥지에서는 네마리의 새끼종달새가 까나왔고 그 둥지에서 날개를 굳혀 하늘로 날아올랐다. 자연계에서의 일부 현상을 사람들은 영원히 리해할수 없을것이다. 이튿날, 나는 아침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 망원경을 들고 모래산으로 올라갔다. 태양이 금방 솟아오르고있었다. 몇마리의 세퍼드들이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내곁을 스쳐지났다. 나는 끝내 산꼭대기에 올라섰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가없는 초원이 푸른 파도를 일으키고있었다. 지평선에서 하얀점 하나가 보여왔다. 나는 그것이 금방 일떠세운 누군가의 천막일것이라고 생각했다. 천막옆의 굴뚝으로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피여오르고있었다. 천막의 녀주인이 아침에 먹을 우유차를 끓이는것 같았다. 유목민들의 하루가 그렇게 시작되고있었다. 하늘이 푸르렀다. 커다란 몸뚱이를 가진 초원의 독수리 몇마리가 공중의 높아가는 난기류를 빌어 하루의 첫 사냥을 시작했다. 금빛 명주끈같은 강물이 조용히 흘러가는것이 그처럼 고요해보였다. 그러한 정경은 천당과도 같이 풍요롭고 아름다운 목장에서 천여년을 계속되고있었다. 나는 어깨에 메였던 망원경을 내리워 들었다. 그 다리는 모래산과 3킬로메터쯤 떨어져있었다. 콩크리트다리는 처음에 망원경에서 어슴프레 륜곽만 보였다. 나는 호흡을 멈추고 조심스럽게 단추를 돌려 초점을 맞추었다. 다리아래의 수면이 보였다. 하지만 영상이 그렇게 똑똑하지 않았다. 나는 또 교각에 붙어있는 겨울날 유리창에 얼어 붙은 서리와 같이 흰 물건을 어렴풋이 볼수있었다. 나는 연신 단추를 돌려 정확하게 초점을 맞추려고 했지만 그 흰 물체가 도무지 똑똑하게 보여지지 않았다. 나는 몇년 동안 줄곧 그 로씨야망원경을 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녔지만 그번처럼 실망한적은 없었다.  나는 어떤 일이 있더라고 그 흰 물체를 똑똑하게 보고싶었다. 나는 급히 모래산을 내려섰다. 목장의 작은 집 벽에는 렌즈가 하나인 오래된 망원경이  걸려있었다. 나는 이미 색까지 거멓게 변해버린 그 망원경이 어디서 왔는지를 알지 못했지만 겉모양으로 봐서는 력사가 100년도 넘을것 같았다. 나는 벽에 걸려 고라니머리와 같이 장식품으로 되여있던 망원경을 내리워 먼지를 닦았다. 망원경은 그런대로  사용할만 했는데 길이를 다 늘궈보니 놀랍게도 한메터나 되였다. 내가 낡은 망원경을 들고 다시 모래산에 오를 때 세퍼드들은 나를 따라오지 않고 밖에서 먹이를 기다렸다. 나는 몇십메터나 되는 모래산에 다시 올라갔다. 나는 낡은 망원경을 눈앞에 가져다댔지만 모든것이 뿌옇게 보일뿐이였다. 나는 단추를 돌려 망원경의 거리를 조절했다. 차츰 물체가 똑똑하게 보이기 시작하더니 끝내 검은 물체가 눈에 안겨들었다. 나는 좀더 세심하게 초점을 맞추었다. 성공했다. 그놈은 바로 마당에 앉아 먹이를 기다리는 세퍼드였다. 그놈의 수염까지 똑똑하게 보였다. 나는 망원경을 내리워 자세히 관찰했다. 렌즈부근에 로씨야문자 몇개가 적혀있었다. 망원경은 로씨야에서 제작한것이 확실했다. 백년이 지난후에도 그 망원경의 렌즈는 조금도 손색이 없었다. 나는 웬지 내가 수년간 감금되여있다가 풀려나온 해적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나는 대단한 해적이야! 나는 해적 랑빠얼(让巴尔)이고 나는 해적 듀건(杜根)이야. 무연한 초원은 바로 나의 바다이고 모래산은 나의 함선이야. 나는 지금 망원경을 들고 먼 바다를 바라보고있는거야… 나는 그렇게 잡생각을 굴리면서 망원경을 돌다리쪽으로 돌렸다. 망원경에 갑자기 커다란 머리 하나가 들어왔다. 나는 깜짝 놀랐다. 하지만 인차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망원경에 눈을 가져갔다. 그것은 분명 클로즈업된 백조의 머리였다. 렌즈의 효과때문인지 부리가 매우 넓어보였다. 백조는 그때 바로 내쪽을 응시하고있었다.  나는 종래로 그처럼 똑똑하게 야생백조를 관찰해본적이 없었다. 나는 후둑후둑 높뛰는 가슴을 겨우 진정하면서 낡은 망원경의 초점을 조절해나갔다. 백조는 내가 멀리서 망원경으로 자기를 관찰하고있다는것을 모르고있었다. 그때 백조는 수면우에 둥실 떠있었는데 날개를 몸량쪽으로 넓게 펴고있었다. 하얀 그 모습은  채 녹지 않은 눈덩이처럼 순결해보였다. 호형으로 되여있는 긴목과 살풋이 숙이고있는 아래턱은 조류중에서 보기 드문 그 우아함을 자랑하고있었다. 그 순간 백조는 그냥 물에 떠있을뿐이였는데 그 모습은 누구도 범접 못할것 같은 천사의 기품을 보여주고있었다. 나는 계속 단추를 돌려 거리를 조절했다. 그 바람에 시야가 점점 더 넓고 똑똑해졌다. 교각아래에는 또 다른 백조 한마리가 물에 떠있었다.  나는 비록 그 두마리 백조의 성별을 구별할수는 없었지만 본능적으로 교각아래에 있는 놈이 암컷이라고 추측되였다. 그놈은 내가 처음에 본 그 백조쪽으로 천천히 헤염을 쳐갔는데 목을 낮게 숙이고있었다. 마치 총각앞에서 부끄러움을 타는 숫처녀를 보는듯 했다. 처음에 보았던  백조옆에 다달은 그놈은 귤색 부리를 내밀어 대방의 등을 부드럽게 빗어주었다. 한참후 암컷이라고 생각되는 그 백조가 천천히 교각밑의 모래섬으로 헤여갔다. 그놈은 천천히 모래섬에 오르더니 교각에 있는 둥지로 날아들어갔다. 그렇다면 그놈은 분명 알을 낳으려는것일것이다.  백조들의 번식기가 시작된것이다. 나는 너무도 흥분되여 어쩌면 좋을지 몰랐다. 그야말로 기적이라고 할수 있었다. 백조가 어쩌면 사람들이 오가는 다리아래에 알을 낳는단 말인가? 나는 그렇게 목장에서 제일 사람을 흥분시키는 비밀을 속에 품게 되였다. 매일아침, 나는 모래산의 꼭대기에 올라가 망원경으로 돌다리를 관찰했다. 다른 사람에게는 아주 평범해보일 다리이지만 교각에 있는 백조둥지로 하여 나는 그 다리가 매우 특수하게 생각되였다. 아침이면 백조는 조심스럽게 수면을 헤여다녔다. 그들은 종래로 다리량측의 행인들의 눈에 뜨일수 있는 넓은 수면에는 나가지 않았다. 어느한번, 나는 그놈들이 함께 나는것을 본적이 있다.   그놈들은 약속이나 한듯 나란히 앞뒤에서 날개를 퍼득이며 넓은 수면을 가르고 나아갔다. 날개짓이 빨라지자 그들의 몸뚱이는 차츰수면을 떠올랐다. 잠간후 그들의 두발만 노처럼 수면을 긋고있었다. 그 바람에 그들의 몸뚱이옆에 튀여오르는 물보라는 아침의 해빛속에서 아름다운 색채를 련발했다. 넓게 펼쳐진 백조의 날개는 해볓아래에서 투명하게 보였다. 이어 그들의 몸뚱이가 류선형으로 변했고 차츰 날개를 젓는 차수가 적어지면서 안정을 찾아갔다. 나는 공중에 날아오른 그들의 모습을 망원경으로 살폈다. 드디여 그들의 흰 몸뚱이가 두개의 작은 점으로 보아다가 푸른 하늘에 섞여버렸다. 백조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그 아름다운 장면은 한번만 보아도 오래오래 머리속에 남아있을것이다. 이틀에 한번씩 나는 노트북을 들고 진에 가서 충전을 하고 전화를 걸었으며 PC방에 가서 전자우편을 확인했다. 진으로 가는 길에 나는 꼭 그 다리를 지나야했지만 절대 교각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돌아갈 때는 먼저 주변을 살펴 사람이 없는것을 확인한후 목장쪽을 향한 다리어구에서 잠간  걸음을 멈추었다. 말 그대로 잠간 걸음을 멈추고 교각을 힐끔 훔쳐볼뿐이였다. 나는 감히 직접 교각에 내려가 백조둥지를 보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 둥지에 살고있는 한쌍의 백조를 놀래우면 큰 죄라도 받을가봐 두려웠던것이다. 백조들도 조심성이 많았다. 그들은 언제나 행인들이 다리를 지날 때면 모래섬에 있는 갈대숲으로 들어가 몸을 숨겼다. 그줄을 알고있는 나는 번마다 갈대숲에 눈길을 주었지만 겨우 한번인가 갈대숲에서 언뜰거리는 백조의 그림자를 보았을뿐이다. 그렇게 조용히 반달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그날 내가 진에 갔다가 돌아올 때 끝내 내가 줄곧 근심해오던 일이 발생하고야 말았다. 다리우에 차 한대가 서있었고 다리아래에서 두 사람이 무엇인가를 찾고있는것이 멀리에서 보였다.   나는 너무도 급해서 손에 땀을 쥐였다. 나는 애써 정서를 통제하면서 아무일이 없는듯 다리를 향해 걸었다. 가까이에 가서야  나는 그것이 개량을 거친 찌프차라는것을 알아보았다. 차체에는 수많은 조명과 필요없는 물건들이 달려있었다. 그밖에 “곰이 출몰합니다. 조심하세요.”라는 문구도 붙어있었다. 총적으로 차주인은 본분을 지키는 온순한 사람이 아니는듯싶었다. 아니나 다를가 차를 타고 온 두 젊은이도 몸에 괴상한 옷들을 걸치고있었다. 나는 어떻게 그들을 그곳에서 떠나게 할가를 두고 고민했다.  그들은 다리아래 강가에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사진 찍고있었다. 나는 다리란간에 붙어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갈대밭에서 하얀 그림자가 어렴풋이 보였다. 백조였다. 나의 긴장때문인지 아니면 정말 털색이 선명해서인지 갈대밭속에 있는 백조가 유난히도 나의 눈길을 끌었다. 젊은이들은 강가에 피여난 노랜색 꽃을 사진 찍고있었다. 나는 젊은이들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그때까지 젊은이들은 분명 백조를 발견하지 못고있었다. 다행이라고 생각되였다. 만약 그들이 백조둥지를 발견한다면 그 안전을 담보할수 있다고 장담할수 없을것이였다. 나는 그들에게 서쪽으로 4, 5킬로메터쯤 떨어진 곳에 매우 아름다운 계곡이 있다는것을 알려주었다. 먼 옛날 칭키스칸이 그 계곡에서 첫 안해를 맞이했다는 전설도 들려주었다. 계곡에 가면 예쁜 보석도 주을수 있을것이라고 덧붙였다. 젊은이들의 눈이 반짝했다. 한시바삐 그 보석을 손에 넣고싶어하는 욕망이 그대로 보여졌다. 그들은 나에게 간단히 인사를 건네고는 부랴부랴 차를 몰아 그곳을 떠났다. 사실 나의 말은 거짓이 아니였다. 그곳에는 정말 아름다운 계곡이 있었고 아름다운 마노석을 주을수 있었다. 칭키스칸이 첫 안해를 맞이했다는 전설도 아예 없는 일이라고는 할수 없었다. 칭키스칸이 그곳에서 첫 안해를 맞지 말라는 법도 없지는 않는가? 전설에 의하면 칭키스칸이 첫 안해를 맞으러 그곳에 갔을 때 그만 세퍼드에게 물려 상처를 입었다고 한다. 나는 숙영지에 있는  “검은 곰”이 바로 칭키스칸을 물었다는 그 세퍼드의 몇십대 후손쯤 되지 않을가 하는 생각도 굴려보았다. 나는 한시름을 놓았다. 백조가 나의것도 아닌데 그들이 만약 백조를 발견했다해도 다치지 말라고 권고할만한 리유가 없었던것이다. 나는 그들이 잠시는 그곳을 떠났지만 인차 돌아올가봐 근심되였다. 그들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것 같았다. 그들에게는 근본적으로 생태평형을 보호해야 한다는 개념이 없었던것이다. 그들은 사진을 찍던 노란 꽃을  꺾어가지고 떠났던것이다. 그들도 사실은 미지의 세계를 알고싶어하지만 미지의 세계에 대한 최저한도의 존중마저 모르는것이였다.  지난해 봄, 나는 대흥안령 깊은 산속에 자리잡은 오원커족숙영지에서 향항의 한 녀기자를 만난적이 있었다. 당시는 바로 순록이 새끼를 낳는 계절이였다. 갓 태여난 새끼순록은 매우 깜찍했다. 나는 그 기자에게 절대로 갓 태여난 순록을 만져서는 안된다고 여러번 당부했다. 하지만 내가 오원커족친구와 함께 산에 가서 사슴을 찾아가지고 돌아오자 갓 태여난 새끼순록이 어미순록의 발밑에 죽어있었다. 녀기자가 호기심을 누르지 못하고 새끼순록을 손으로 만져보았던것이다. 그렇게 새끼순록의 몸에는 녀기자의 체취가 남게 되였고 어미순록은 사람의 냄새가 배인 새끼순록을 죽여버렸던것이다. 그 무렵, 다리우에 사람이 나타나기만 하면 나는 그가 유람객이든 현지인이든 가리지 않고 달려가 갖은 방법으로 그들이 그곳을 떠나게 했다. 나는 웬지 다리우에 나타난 사람들은 모두 백조를 해칠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강가에서 양을 방목하는소년이 있었다. 내가 그곳에 나타나 세번째로 말을 걸자 소년은 나에게 경계심을 보이면서 양무리를 몰아 그곳을 떠나갔다. 소년에게 오해를 받았지만 나는 내 목적을 이룬것으로 하여 여간만 기쁘지 않았다. 별 일 없이 한달이란 시간이 흘러갔다. 그날아침에도 나는 망원경을 들고 모래산으로 올라갔다. 나는 차츰 그 망원경을 소중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나는 매일 반짝반짝 빛이 나게 망원경을 닦았고 양가죽으로 통도 만들었다. 그날도 백조들은 다리밑에서 춤을 추고있었다. 날개는 넓게 펴져있었는데 한번씩 물을 칠 때마다 하얀 물보라가 뽀얗게 날아올랐다. 그 장면을 살펴보던 나는 갑자기 그들의 동작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는 몸집이 좀더 큰 수컷이 아름다운 털을 정리하고 풍도가 있게 암컷의 주변에서 빙빙 돌아치면서 친절을 보였었는데 그날은 그냥 날개로 물장구만 치는것이 전처럼 그렇게 힘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전에 없이 꼭 붙어있었는데 모양으로 보아 물밑에서 무엇인가 그들을 속박하는것 같았다. 나는 그들이 물장구를 치는것이 아니라 몸부림을 친다고 판단했다. 어제저녁편에 내가 모래산에 올라서 망원경으로 관찰할 때까지만 해도 모든것이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강변에서 물을 먹던 소들이 그 아름다운 장면에 넋을 놓고있었다. 나는 백조들이 수초에 발이 묶인것이라고 판단했다. 나는 쏜살같이 모래산에서 달려 내려왔다.  세퍼드들은 어제밤에 잡은 양머리가 욕심 나 문앞에 쭈크리고있었다. 하지만 내가 모래산에서 달려내려오는것을 보고는 웬 일이냐는듯 내쪽으로 뛰여왔다. 그들은 내가 무슨 사냥물을 발견했다고 생각하는것 같았다. 나는 그놈들을 데리고 다리를 향해 줄곧 뛰여갔다. 속도가 매우 빨랐다. 나는 차츰 숨 쉬기마저 가빠졌다. 하지만 나는 다리어구에 도착해서 실망하고말았다.   한 사람이 백조를 어깨에 메고 강가에 올라오고있었다. 백조는 놀랍게도 커보였다. 백조의 목이 그 사람의 어깨에 메워져있었는데 그때 백조의 다리가 땅에 질질 끌리고있었다. 하얗던 백조의 털에 이미 검은 오물이 가득 묻어있었다. 백조의 발목에는 덫이 물려있었다. 그것은 쇠사슬이 달린 산짐승을 잡을 때 사용하는 덫이였다. 나는 전에 그런 덫을 본적이 있었다. 보통 초원에 출몰하는 늑대를 잡을 때나 쓰는 덫이였다. 나는 일시 억이 막혀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백조는 이미 죽어있었다. 생명을 다한 그 커다란 몸체는 더 이상 그렇게 고귀하고 아름답지가 않았다.  다른 한마리의 백조도 죽어서 강가에 던져져있었다. 그놈의 발목에도 똑 같은 덫이 물려있었다. 다른 한 사람이 쭈크리고 앉아 덫에 련결된 쇠사슬을 벗겨내고있었다. “손을 떼시오!” 나는 크게 소리를 지르며 거친 숨을 몰아쉬였다.  그들은 놀라운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방금 백조를 잡은데서 오는 승리의 희열때문에 내가 곁으로 다가가는것조차 중시를 돌리지 못했던것이다. 나를 발견한 그들은 놀라움에서 벗어나 어색한듯 얼굴에 웃음을 띄워올렸다. 나는 그 두 사람을 기억하고있었다. 초봄의 어느 깊은밤, 세퍼드들이 갑자기 짖어대기 시작했다. 나는 급히 밖으로 뛰여나갔다. 누군가 양우리에 들어갔다가 세퍼드들에게 포위되였던것이다. 나는 손전지를 켜서 그 사람의 얼굴을 비추어보았다. 장기간 술을 과하게 마셔 얼굴이 붓고 눈알이 파랗게 변해있었다. 그날도 그 사람은 술을 가득 마시고 취해서 양우리에 들어와 멍하니 서있었던것이다. 그는 눈앞에 다가오는 위험을 조금도 의식하지 못하는것 같았다. 그 사람의 옷소매 한짝은 벌써 세퍼드들에게 물려 찢어져있었다. 그때 만약 어느 세퍼드가 그 사람을 물어뜯어 피를 흘리게만 한다면 그 피비린내는 다른 세퍼드들의 야성을 한껏 불러일으킬것이였다. 나는 그 사람의 욕설을 아랑곳 하지 않고 앞에 나서서 세퍼드들을 물러서라고 소리쳤다. 나는그 사람을 이끌고 양우리밖에 나와 길에까지 데려다주었다. 그 사람은 몸을 가누지 못해 흔들흔들하면서 진방향으로 걸어갔다. 다른 사람은 몸이 몹시 허약했다.  한달전의 어느날 오후였다. 나는 그 사람이 삽을 들고 나의 친구네 목장으로 가는것을 보게 되였다. 나는 그게 이상스럽게 생각되여 세퍼들을 끌고 그 사람의 뒤를 따랐다. 내가 도착했을 때 그 사람은 이미 오소리굴을 파헤치고있었다. 나는 그 사람에게 오소리굴을 파지 말것을 간청했다. 그 사람은 처음에 아니꼬운 눈길로 나를 쏘아보더니 그래도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않고 돌아갔다. 바로 그 두 사람이 손을 맞춰 백조를 잡은것이였다. 나를 알아본 그들의 눈길이 복잡해졌다. 그들은 나의 눈길로부터 일종의 불안감을 느낀것 같았다. 그때 나는 금방 3킬로메터를 단숨에 뛰여오느라 얼굴이 불깃불깃해지고 숨이 거칠어있었던것이다. 게다가 그들이 백조를 잡은것으로 하여 더없는 분노를 느꼈던것이다. 그들은 사실 그러한 나의 표정보다도 내뒤에서 자기들을 노려보는 몇마리의 세퍼드들때문에 더 겁을 먹은듯 해보였다.   그들은 나의 뜻을 읽지 못한듯 멍하니 서서 사태의 진전을 살피는듯싶었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쭈크리고 앉아 백조의 발에 걸린 덫에서 쇠사슬을 뽑아내던 사람이 갑자기 그 일을 그만두고  까닭도 없이 백조의 곁에 있는 풀을 와락와락 잡아뽑았다.  나는 그때 목숨을 잃은 백조때문에 그들이 백조알까지 둥지에서 들어냈다는것을 알지 못하고있었다.   모두 발에다가 목이 긴 장화를 신고있는것이 만단의 준비를 하고 백조 잡으러 온것 같았다. 내 추측이 틀리지 않는다면 그들은 어제저녁에 물에다가 덫을 놓은것 같았다. 두마리의 백조는 아침에 깨여나 강가에서 배회하다가 덫에 걸린모양이였다. 나는 일시 그들에게 뭐라고 말했으면 좋을지 몰랐다. “당신들이 백조를 잡은것은 잘못된 행실이요.” 하고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 장면에서 그런 말을 입에 올린다는것은 양이 늑대를 보고 “나를 잡아 먹지 마세요.” 하고 청을 드는것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백조가 죽었다는 사실은 개변할수 없는것이였다. 그들의 눈에서 백조는 게사니보다 좀더 큰 동물로 보일것이고 고기가 좀더 많이 날것이라고 생각될것이였다. 총적으로 그들은 이 세상 동물을 모두 고기덩이로만 볼것이였다. 나는 끝까지 그자들에게 세퍼드들을 추기고싶은 충동을 억제했다. 그들도 어쩔바를 몰라 난처해 했다. 그중 한 사람이 내가 자기들에게 큰 위협으로 될수 없다는것을 느꼈던지 갑자기 허리를 굽혀 땅에서 백조를 주어들려고 했다. 그 사람이 백조의 목을 들어 우로 당기자 아래로 처져있던 백조의 머리가 덜렁 움직였다. 그때 백조의 머리와 목은 겨우 가죽에 붙어있는듯 해보였다.  백조의 목은 이미 끊어져버렸던것이다. 그 사람은 백조의 목을 잡아 어깨에 멨다. 그러자 백조의 귤색 발이 땅에 끌렸다. 그 사람은 다른 한쪽손으로 땅에서 둥지를 들려고 했다. “못 내려놓겠소?” 내가 큰 소리를 질렀다. 목이 끊어진 백조를 어깨에 메고있는 그 사람을 보면서 나는 끝내 리지를 잃고말았다. 세퍼드들이 나의 어조에서 이미 무엇인가를 느낀듯싶었다. 그들은 눈에 시퍼런 불을 켜고 앞에 있는 두 사람을 쏘아보면서 위협적으로 으르렁거렸다. 나의 목소리가 너무 컸던지 아니면 세퍼드들이 지나친 위엄을 보였던지 두 사람은 두려움에 덜덜 떨면서 내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그들은 간교한 눈길로 어떻게 하면 거기서 무사히 빠져나갈것인가 기회를 노리고있었다. 그들의 눈길은 천천히 내곁에 있는 세퍼드들에게 쏠렸다. 세퍼드들은 저 멀리 지평선에서 울려오는 우뢰소리처럼 낮고 무게있게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길에서 나는 그놈들이 나의 명령만 떨어지면 어떻게 행동할것이라는것을 보아낼수 있었다. 목부근의 털을 꼿꼿이 치켜세우고 연신 으르렁거리는 그놈들은 모두 성난 사자를 방불케 했다. 나는 평소 주방에서 신선한 고기들을 가만히 꺼내여 그놈들에게 먹인 효과가 그 순간에 발휘된다고 생각했다. 세퍼드들이 으르렁거리는 소리에 키가 좀더 큰 사람의 얼굴이 사색이 되였다. 그 사람은 분명 술에 취해 양우리로 잘못 들어갔던 그날밤의 아슬아슬했던 순간을 떠올리는것 같았다. 그는 자기의 친구에게 백조알을 담은 둥지를 내리워놓으라고 눈짓을 하며 입속으로 얼버무렸다. “그…그것 말이야, 새끼를 깨워 자래우면 한마리에 8백원은 실히 받는다구.” 그들이 떠났다. 요행 백조알을 구할수 있게 되였다. 나는 그들이 생태평형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이 없을뿐이지 그렇게 탐욕이 많은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그렇게 순순히 돌아간것은 내가 목장부근의 몽골족목민들에게 자기들의 행실을 일러줄가봐 두려운것도 원인이였을것이다. 오랜세월을 내려오면서 목민들은 종래로 백조와 같은 물새들을 해치지 않았던것이다. 초원에는 많은 금기들이 있었다. 만약 목민들이 그들의 행실을 알게 된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것이였다. 그들이 죽은 백조를 어깨에 메고 사라지는 뒤모습을 보면서 나는 분을 삭이지 못하고 욕을 퍼부었다. 내가 어릴 때 놀음에 탐하여 일을 그르치면 할머니가 그렇게 나를 욕했던것이다. 그 욕을 그놈들에게 하고나니 가슴이 따뜻해지면서 할머니가 그리워졌다. 나는 그 순간에 왜 입으로 그런 욕이 터져나갔는지를 알수 없다. 둥지에 들어있는 백조알을 내려다보면서 나는 일시 어쩌면 좋을지 궁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백조알은 모두 아홉개였다. 유백색의 백조알은 집에서 기르는 가금알들에 비해 좀더 클뿐 모양에서는 조금도 다른데가 없었다. 그중 한알은 방금 그들이 들고나올 때 부딪쳐 깨여졌는데 그 쯤으로 노란색의 섬유질 같은 물질이 흘러나왔다. 나는 그 알을 골라서 조심스럽게 옆에다 놓은후 다른 알들을 자세하게 살펴보았다. 더는 깨여진것이 없었다. 백조알은 하나가 한근은 실히 될것 같았다. 나는 강가에다 작은 구뎅이를 파고 깨여진 백조알을 파묻은후 교각의 백조둥지가 있던 곳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둥지를 가리기 위하여 백조들이 물어다놓은 갈대가 어수선하게 널려있었다. 하루아침 새에 단란하던 백조가족이 그렇게 훼멸되고만것이다. 나는 웃옷을 벗어서 백조알우에 조심스럽게 덮었다.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았기에 백조알은 여전히 따듯한 상태를 유지하고있었다. 어떻게 하면 백조알을 목장으로 무사하게 가져갈수 있을가? 나는 한참이나 머리를 굴렸다. 나는 웃옷을 땅에 펴놓고 둥지를 그우에 올려놓은후 알들이 서로 부딪칠가봐 사이에 보드라운 풀을 넣어주었다.  그후 소중한 보물이라도 안은듯 조심스럽게 목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겨놓았다. 목장에 있던 친구는 멀리에서 벌써 내가 무엇인가를 안은 모양을 보고 또 좋은것을 주은 모양이라고 생각한것 같았다. 목장으로 간후 나는 늘 내딴에는 쓸모가 있다고 생각되는 물건들을 주어들여 방에 쌓아놓았던것이다. 그 속에는 락타의 두개골이며 선사시대에 살았던 거대한 체대를 가진  쥐화석이며 괴상한 룡모양의 나무가지며가 있었다. 친구는 나를 “쓰레기 줏는 사람”이라고 했다. 나는 어릴 때 성공적으로 메추리알을 부화시킨 경험이 있을뿐 다른 가금알은 부화시켜본적이 없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백조알을 침대우에 올려놓은후 집안을 발칵 뒤져 백조알을 넣고 부화시킬만한 용기를 찾았다. 라면을 담은 종이상자가 눈에 띄였다. 나는 보드라운 원단으로 된 옷을 종아상자안에 펴고 백조알을 한알한알 정성스럽게올려놓은후 백조알우에다가 두터운 수건을 덮었다. 나는 백조알을 넣은 종이상자를 부엌과 벽 하나를 사이에 둔 나의 침대머리에 올려놓았다. 더없이 흥분되였다. 목장이 당금 백조의 천국으로 될것만 같았다. 그러한 환상은 어릴 때 풀밭에서 주어온 새알을 보면서도 늘 있었다. 알에서 새로운 생명이 태여난다는것 자체가 바로 크나큰 기대였던것이다. “키워낼수 없을거다.” 친구가 신심이 없어했다. 하지만 나는 그 친구가 고맙기까지 했다. 최저로 백조알을 부화시킬수 없다고 랭수는 끼얹지 않았던것이다. 나는 확실히 백조알과 같이 큰 알은 부화시켜보지 못했던것이다. 관찰에 의하면 백조부부가 그 알을 부화시키기 시작한지 거의 한달이 되여오는것 같았다. 하기에 부화에서 관건적인 시간은 지났을것이라고 판단했다. 알속에서 백조가 이미 모양을 갖춰가고있을것이였다. 부딪쳐 깨여진 알에서 보았던 섬유질 비슷한 물체가 바로 새끼백조의 털일것이라고 생각했다. 백조알이 제대로 된 온도를 유지하기만 한다면 며칠이 지나지 않아 새끼백조가 태여날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부화되여 나온 새끼백조를 어떻게 키우고 나중에 어디로 보낼것인가 하는 일들은 모두 그때에 가서 연구할것이라고 생각했다. 눈앞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백조알을 어떻게 새끼백조로 만드느냐 하는것이였다. 이튿날아침, 나는 백조알들이 매우 안정되여있는것을 발견했다. 백조알들이 식어버린것이 아닌가 하고 근심되였다. 알속의 생명이 박동을 멈춘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었던것이다. 나는 한알을 꺼내여 해빛에 들어 자세히 살폈다. 안에 있는 검으스름한 물체가 똑똑하게 보였지만 그것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는 판단할 방법이 없었다. 나는 알을 귀가에 가져다 대보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날 나는 하루종일 양우리에서 양똥을 쳐냈다. 저녁에 밥상에 마주앉아서야 나는 백조알을 살펴보는 일을 잊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인차 둥지로 다가가 우에 덮었던 두터운 수건을 열어젖혔다. 알들은 돌멩이처럼 둥지안에 고스란히 들어있었다. 나는 손으로 알들을 만져보았다. 아무런 동정이 없었지만 따뜻했다. 너무도 피곤했던 나는 부랴부랴 밥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 나는 늦게야 잠에서 깨여났다. 따뜻한 해볕속에서 보드라운 털을 가진 무엇이 나의 귀를 간지르는듯한 감을 느꼈다. 내가 거주하는 그 집에는 쥐들이 많았다. 그리고 고양이도 한마리 있었다. 고양이는 그때 발정기에 있었다. 그놈을 내놓고는 사방 몇십킬로메터안에 다른 고양이가 없었다. 사랑때문에 지쳐버린 고양이는 매우 우울한 상태에 빠져있었는데 진종일 히스테리적으로 울부짖기만 했다. 그러다보니 쥐들이 잔치를 벌려도 실컷 놀아라 하는 태도였다.  목장의 쥐들은 실로 사람들곁에서 잔치를 벌리고도 남을 놈들이였다. 시퍼런 대낮에 사람들이 빤히 보는앞에서 먹이를 훔쳐 먹거나 물건을 쏠아대군 했다. 며칠전 내가 모래산에서 내려와 금방 집에 들어서는데 큰 쥐 한마리가 내 침대앞에 떡하니 앉아서 나를 빤히 올려다보는것이였다. 목장에 사는 쥐는 대개 집에서 사는 그런 품종이였다. 사람들이 생활용품을 초원에 들여올 때 묻어온것 같았다.  나는 대부분의 동물을 좋아했지만 쥐는 생리적으로 싫어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쑥 내밀어 내 귀를 건드리는 그놈을 한쪽에 탁 밀쳐버리며 두눈을 번쩍 떴다. 하얀 물체가 눈앞에서 아장거렸다. 나는 너무도 놀라 벌떡 일어서며 머리를 한쪽으로 비켰다. 그 바람에 나는 머리를 벽에다 퉁 하고 부딪치고말았다. 그 충격에 나는 정신이 드는듯싶었다. 나는 두눈을 똑바로 뜨고 다시 그 하얀 물체를 살폈다. 그놈은 하얀 털을 가진 작은 새였다. 아니 새가 아니라 바로 새끼백조였다. 그놈은 나의 베개우에서 바들바들 떨고있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그놈의 머리를 몇번 다독여준후  주변을 둘러보았다. 세상에! 나의 침대우에는 새끼백조가 가득했다.  짧은 흥분이 지나가자 나는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잠결에 몸을 마구 뒤적이지 않은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나는 지뢰구역에나 들어선듯 조심스럽게 일어나 이불을 포갠후 침대에서 내려갔다. 바닥에 내려선 나는 새끼백조들을 세여보았다. 일곱마리까지 세였을 때 나는 정말 식은땀을 흘리지 않을수 없었다.  아무리 훑어보아도 여덟번째 새끼백조가 보이지 않았던것이다. 내가 잠결에 몸을 뒤척이다가 깔아죽은것은 아닐가? 나는 침대 여기저기를 살펴보았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문뜩 무슨 생각엔가 잡힌 나는 백조알을 넣어두었던 종이상자를 들여다보았다. 아니나 다를가 새끼백조 한마리가 안간힘을 다해 알에서 까나오고있었다. 몸뚱이가 절반쯤 밖으로 나와 있었고 엉뎅이쪽은 그냥 알에 묻겨있었다. 새깨백조가 알에서 까나오는 일은 그야말로 생사를 가름하는 아름찬 과정이였다.    나는 새끼백조의 몸에서 조심스럽게 껍질을 뜯어냈다. 새끼백조의 촉촉한 털이 나의 손바닥을 간지럽혔다. 나는 그처럼 아름다운 새끼백조를 본적이 없었다. 마치도 한송이의 순결한 눈꽃을 보는것만 같았다. 작은 부리는  분홍색을 띠고있었다. 나는 죽어간 두마리의 백조를 슬퍼했다. 어쩌면 새끼들의 출생을 하루 앞두고 그처럼 불행하게 눈을 감는단 말인가? 여덟마리의 새끼백조가 성공적으로 세상을 보게 되였다. 그들놈은 천성적으로 나에 대한 공포같은것은 가지고 나오지 않은것 같았다.   그놈들은 껍질에서 나오자 마자 단잠에 든 나를 보게 된것이다. 모든 조류들처럼 그놈들도 세상에 나와 제일 처음으로 본 생명체를 어미로 생각하고 따르는것 같았다. 내가 손을 내밀면 그놈들은 주저없이 나의 손바닥우에 올라와 작은 부리로 나의 손가락을 쪼아주었다. 너무도 깜찍하고 여려보였다. 나는 만지기만 해도 그놈들이 사라져버릴것만 같아 힘주어 쥐지도 못하고 그냥 손바닥에 들고 다녔다.  나는 그놈들을 한마리 한마리 주어서 보드라운 수건을 밑에 깐 종이함에 넣은후 부엌에 닿은 벽쪽에다가 놓아주었다.  금방 까난 새끼백조들의 배에는 노른자위 같은 물질이 있어서 구태여 먹이를 먹지 않아도 괜찮았다. 하지만 후날이 문제였다. 나는 어떻게 새끼백조들의 먹이를 해결할것인가를 두고 고민했다. 나는 진종일 일손이 잘 잡히지 않아 잠간 일을 하고는 집에 들어와 새끼백조를 살펴보았다. 새끼백조들은 모두 편안해보였다. 어제보다 큰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내가 종이상자우에 머리를 들이밀자 여덟마리의 새끼백조가 동시에 머리를 들고 나를 쳐다보았다. 목에서는 작은 소리가 새여나왔고 눈길은 나의 움직임에 따라 흔들렸다. 밤에 나는 종이상자를 나의 침대우에 올려놓았다. 나와 부엌에 닿인 벽 사이에서 새끼백조들은 온밤을 따듯하게 보낼수 있을것 같았다. 이튿날 아침식사후, 나는 새끼백조들의  먹이를 준비하느라 바삐 돌아쳤다. 하루 동안의 고민을 거쳐 나는 먹이가 풍족하지 못한 목장에서 그래도 적합하다고 느껴지는 메뉴를 고안해냈는데 그게 바로 좁쌀죽에다가 우유를 섞어 먹이는것이였다. 거기다가 어분이나 뼈가루 같은것을 섞어주면 더 이상 좋을수 없겠지만 목장에서는 정말 구할수 없는것들이였다. 그대신 소나 양들에게 먹이는 소금을 가져다 약간 타주었다.  나는 먹이를 쟁반에 담아 조심스럽게 종이상자안에 넣어준후 옆에 앉아 그놈들이 먹이를 먹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놈들은 좀처럼 먹이를 먹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놈들은 아직 머리를 숙이고 먹이를 찾아 먹을줄을  모르는것 같았다. 그놈들은 하나같이 머리를 높이 쳐들고있었기에 쟁반에 담겨진 먹이를 볼수 없었던것이다. 그놈들이 한번 또 한번 먹이가 담긴 쟁반을 밟고 지나가자 나는 갈수록 실망스러워 아예 종이상자곁을 떠나고말았다. 그날오후, 나는 종이상자옆에 다가서서 습관적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이게 웬 일이란 말인가? 쟁반에 가득 담겨있던 먹이가 얼마 남지 않았다. 그중 한마리는 그때까지도 머리를 숙이고 먹이를 쪼아댔다. 나는 얼마나 흥분되는지 몰랐다. 보통 야생의 날짐승을 키우기 힘들다고 하는것은 그놈들이 끝까지 먹이를 거절하기때문이였다. 하지만 나의 백조들은 용케도 그 난관을 넘었던것이다. 나는 그놈들이 밤에 추위를 탈가봐 종이상자를 계속 부엌에 닿아있는 벽밑의 침대머리에 놓아주었다. 매일아침, 그놈들은 나보다 훨씬 빨리 일어나 용케도 종이상자를 넘어나와 나의 머리를 쪼아주었다. 그놈들은 나의 얼굴에서 귀나 코와 같이 불거져 나온 부분을 쫓기 좋아했다. 나는 아침마다 잠간이라도 더 자기 위해 이불로 머리를 가리웠다. 그러면서도 함부로 몸을 뒤적이지는 못했다. 조금이라도 조심하지 않으면 새끼백조들을 깔수 있었던것이다. 새끼백조들은 알에서 까나와 처음으로 나를 본때문인지 평소에도 내가 곁에 나타나기만 하면 못내 흥분하는것 같았다. 내가 밖에 나갔다가 집에 들어서면 그놈들은 한무리의 강아지들마냥 나에게 모여들어 뭐라고 지절거렸다. 지어는 나의 발등에 뛰여올라 바지가랭이를 타고 바라오르려고 시도하기까지 했다. 나는 애써 그놈들에게 쏠리는 사랑을 억제하면서 될수록이면 그놈들을 만지는 일 같은것은 하지 않으려고 했다. 나는 몇번인가 그놈들을 만지는 과정에 사람들이 왜 부드러운 물체를 묘사할 때 “백조같은”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지를 알것 같았다. 백조의 털은 그만치 이 세상 그 무엇에도 비교하지 못할만큼 부드러웠던것이다. 나는 나의 백조들이 푸르른 하늘에 날라올라 저 멀리 남쪽세계로 려행을 떠났으면 하는 바람을 떨쳐버릴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놈들이 결국은 어느 동물원에 남아 사람들의 구경거리로 될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생김생김이나 코에 난 반점 그리고 몸뚱이에 있는 다른 미세한 특점들로부터 완전히 그놈들을 분별해낼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이름을 지어주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나는 곧 그 목장을 떠나야 했다. 나는 그전에 백조들을 어디에든지 안착시켜야 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나는 백조들과 갈라질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감정을 깊이 하는것은 나에게 있어서나 백조들에게 있어서나 모두 그렇게 바람직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되였다. 한주일이 지나자 백조들은 원래의 한배나 커보였다. 해볕이 찬연하던 어느날 오전, 나는 그놈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고싶었다. 문밖으로 나가기전 나는 호기심이 많은 세퍼드들이 백조들에게 끼칠 위험성을 충분히 고려했다. 만약 세퍼드들이 마음 먹고 백조들에게 덮치지 않고 그냥 호기심으로 앞다리를 한번 휘두른다 해도  백조들의 다리는 쉽게 끊어질것이였다. 나는 종이상자를 들고 집에서 나갈 때 가죽채찍을 손에 드는것도 잊지 않았다. 내가 종이상자를 들고 문밖을 나서자 울안에 엎드려 볕쪼임을 하던 세퍼드들이 제법 신나했다. 그들은 모두 종이상자안에 무슨 먹이가 들어있는줄로 아는것 같았다. 먹이가 아니라도 꼭 자기들이 모르는 신비한 물체가 들어있을것이라 생각하는것 같았다. 세퍼드들은 평소에도 모든 미지의 세계에 짙은 호기심을 가지고있었던것이다.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종이상자를 땅에 내리워놓고 채찍을 든채 곁에 섰다.  새끼백조들이 경사져있는 종이상자에서 하나둘 기여나오자 세퍼드들속에서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나이 어린 두마리의 세퍼드가 선참으로 제일 앞에선 새끼백조에게   덮쳐들었다. 나는 크게 소리치며 채찍을 휘둘러 앞에선 세퍼드를 힘껏 내리쳤다. 세퍼드들이 처음으로 백조들에게 덮쳐들 때 반드시 깊은 기억을 남겨주어야 했던것이다. 새끼백조들의 금후의 안전을 위하여 나는 세퍼드들에게 미안한줄을 알면서도 독한 마음을 먹었다. 앞에서 다려오던 세퍼드는 너무도 아파 선자리에서 펄쩍펄쩍 올리뛰였다. 그 바람에 그놈의 뒤를 다라오던 놈들도 옆으로 비켜섰다. 세퍼드들은 모두 소가죽채찍의 위엄을 잘 알고있었다.  세퍼드들이 주방에서 고기를 훔쳐먹었거나 옷을 물어찢을 때면 친구는 소가죽채찍으로 그놈들을 단단히 훈계했던것이다. 내가 소가죽채찍을 사용한것은 그번이 처음이였다. 세퍼드들이 세상물정에 대한 료해는 실로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세퍼드들은 단번에 눈앞에 있는 작은 새들은 주인의것으로서 절대 침범할수 없다는것을 알게 된것 같았다.  세퍼드들은 천천히 헤쳐져가 다시 울안에 엎드려 해볕을 쪼였다. 그 전반 과정에서 나이 든 개들이 침착성을 보였다. 그중에서 “검은 곰”은 시종 움직이지도 않았다. 나는 정신을 집중하여 세퍼드들의 호기심을 말살시켜버린후 머리를 돌려 새끼백조들을 찾았다. 세퍼드가 달려올 때 제일 앞에 있던 새끼백조는 너무도 놀라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세퍼드들이 물러가자 그들은 집앞의 풀밭으로 몰려갔다. 그놈들은 부리로 작은 풀들을 쪼아보기까지 했다. 내가 정성들여 만들어준 먹이도 그들의 식욕을 만족시키지 못하는것 같았다. 그들은 천성적으로 비타민이 들어간 푸른 잎 식물을 먹어야 했던것이다. 새끼백조들이 세퍼드를 보고 놀랄것이라 생각한 나의 추측이 빗나갔다는것이 인차 증명되였다. 새끼백조 한마리가무서움도 모르고 마당에 엎드려 볕쪼임을 하는 세퍼드를 향해 쫑드르르 달려간것이다. 세퍼드는 머리를 들어 새끼백조를 지켜보면서도 감히 일어나 쫓지는 못했다. 내가 휘두른 가죽채찍이 그놈의 호기심을 억제하는것 같았다. 새끼백조가 세퍼드의 코앞으로 다가갔다. 세퍼드는 코방울을 벌름거리면서 새끼백조의 냄새를 맡았다. 나는 너무도 긴장해서 다시 채찍을 부여잡았다. 세퍼드는 엎드린채로 그 한마리만 냄새를 맡았다. 세퍼드는 호기심을 보이는가싶더니 인차 흥미를 잃은듯 머리를 돌렸다. 하지만 새끼백조는 그야말로 세상 무서운것을 모르는듯 세퍼드의 다리를 밟고 올라 등을 딛고 섰다. 세퍼드의 등에 난 나른한 털때문에 새끼백조는 자꾸 발을 헛디디며 몸을 가누지못했지만 여전히 발볌발볌 세퍼드의 몸우에서 산책을 했다. 한참이나 그대로 새끼백조에게 몸을 맡기고있던 세퍼드가 갑자기 상가신듯 몸을 떨더니 벌떡 일어나 등에 있던 새끼백조를 떨구어버리고 풀더미곁으로 다가가 엎드렸다. 세퍼드의 등에서 굴러 떨어진 새끼백조는 다시 기여일어나 부리로 애기풀을 쫏기 시작했다. 그제야 나는 안도의 숨을 내 쉬였다. 사실이 증명하다싶이 새끼백조들은 목장에서 제일 사나운 존재인 세퍼드들과 능히 우호적으로 지낼수 있었던것이다. 그후로부터 낮이면 새끼백조들은 목장부근의 풀밭에서 풀을 뜯으며 놀았다. 만약 새끼백조들이 너무 멀리 가나싶으면 나는 세퍼드들을 시켜 몰아오게 했다. 세퍼드들은 과연 나의 명령이 떨어지기 바쁘게 뛰여가 새끼백조들을 나의 옆으로 데려왔다. 새끼백조들은 그에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닌것 같았다. 그놈들은 사나운 세퍼드들에게 엉뎅이라도 물릴가봐 무서운듯 되똥되똥 달려오면서 점차 힘이 자라나는 날개를 퍼덕이고 꽥꽥 소리를 질러댔다. 하지만 그 이상의 대항은 할수 없는 그들이였다. 새끼백조들이 어떻게 불만스러워 하던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들을 위한것이였다. 광활한 초원우에서 모든 육식동물들은 통통하게 살이오른 그놈들을 보고 침을 세발씩이나 흘릴것이였다. 새끼백조들은 그렇게 목장에서 날이 어두울 때까지 놀다가 집에 들어가서 밤을 보냈다. 그놈들은 더 이상 나의 침대우에서 잘수 없었다. 나는 드디여 침대보를 깨끗이 씻을수 있게 되였다. 침대에보에서 나는 냄새는 그야말로 뭐라고 형용할수 없었다. 두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나는 또 진에 가서 전화를 걸고 노트북에 충전을 했다. 충전이 끝나기를 기다리면서 나는 한 손님이 상점주인과 한담을 하는 소리를 엿들었다. 그들은 바로 무참히 죽어간 한쌍의 백조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있었다.  그들은 백조를 튀해서 삶아먹었다고 한다. 백조고기는 큰 솥으로 세개나 됐는데 그 두사람의 친척, 친구들이 모여 옹근 이틀이나 먹었다고 했다. 백조의 껍질은 통채로 벗겨냈는데 매우 아름다왔다고 했다. 그자들은 겨울에 껍찔까지 붙어있는 그 털을 솜바지에 넣을것이였다. 그러면 능히 씨베리아의 찬바람도 막을수 있을것이였다. 목장으로 돌아오는 길에서도 나는 새끼백조들을 어디에 보낼가를 궁리했다. 료해한데 의하면 후룬베얼초원에는 그때까지 새끼백조를 수양할만한 곳이 없었다. 하지만 부근에 있는 습지보호구역에는 그래도 새끼백조를 맡길수 있을것만 같았다. 그곳 사람들에게 새끼백조를 키워본 경험이 있는지 없는지가 근심될뿐이였다. 나는 시간이 날 때 도시로 들어가서 새끼백조의 수양을 두고 자문을 해보리라 마음 먹었다. 참으로 분망한 나날들이였다. 새끼백조들이 날마다 몰라보게 커갈수록 생각지 못했던 시끄러운 일들도 련속 생겨났다. 나는 늘 새끼백조들을 세기에 바빴다. 언제나 마리수가  채 차지 않았다. 나는 세퍼드들을 동원하여 새끼백조를 찾아오게 했다.  나는 점점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세퍼드들이 찾아온 새끼백조까지 합쳐서 마리수가 차는것 같다가도  잠간 지나 다시 세여보면 또 모자라는것 같았다. 그런 현상이 자꾸 반복되자 세퍼드들도 흥미를 잃어가는지 전처럼 그렇게 열정을 보이지 않았다. 새끼백조들도 하루에 몇번씩 세퍼드들에게 쫓기느라 피곤에 지쳐있었다. 목장에 있는 모든 세퍼드들이 나에게 신심을 잃게 되자 나는 직접 풀밭으로 가서 새끼백조들을 몰아왔다. 나의 근심은 필요없는것이 아니였다. 하지만 진정으로 새끼백조들에게 위험으로 되는것은 내가 근심하는 맹수도 아니요 교활한 초원의 여우도 아닌 까치였다. 목장에는 까치가 매우 많았는데 도무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그놈들은 바로 집부근에 서식했다. 금방 목장에 왔을 때 나는 늘 먹고 남은 밥을 그놈들에게 뿌려주었지만 그후 인차 그런 인심을 베풀고싶지 않아졌다. 그놈들은 천성적으로 좀도적습성이 있는것 같았다. 조금만 눈길을 다른데로 팔면 그놈들은 물건들을 훔쳐갔다. 내가 빨아서 널어놓은 셔츠의 단추도 그놈들이 싹 뜯어가버렸고  등산화의 신끈도 뽑아갔던것이다. 나는 그놈들이 옷단추를 어떻게 뜯었고 등산화에서 신끈은 어떻게 풀어냈을지가 무척 궁금했다. 그놈들은 또 세퍼드의 먹이그릇에 덮쳐들어 먹이를 훔쳐 먹기도 했다. 그 모양은 마치도 아프리카초원에 사는 흉악한 콘도르를 방불케 했다.  까치들에게는 한가지 무서운 애호가 있었는데 늘 피에 굶주려있는것이였다. 그들은 소만 보면 잔등에 내려 앉아 여기저기 뛰여다녔고 귀등이나 어깨의 주름이 간 피부를 쪼아댔다. 소는 그것을 향수하는것 같았다. 하기에 나는 까치들이 소의 몸뚱이에서 기생충을 잡아 먹는것이라고 생각하고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그놈들은 소의 몸뚱이에서 기생충만  잡아 먹는것이 아니였다. 그놈들은 소가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서 가죽을 쪼아 상처까지 내는것이였다. 소는 사실 반응이 둔한 동물이였다. 그것은 아마 그들의 가죽이 너무 두껍고 가죽밑의 신경도 풍부하지 못한 탓이였을것이다.  그놈들은 그렇게 소의 가죽을 짓찧은후 상처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빨아먹었던것이다. 3, 4마리의 까치가 얼룩소의 잔등에 붙어서 피를 빨아먹는 장면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너무도 놀라 굳어졌다. 까치에 대한 좋은 인상이 삽시에 사라져버린것이다. 까치들때문에 난 소등의 상처는 잘 아물지 않았고 쉽게 감염이 되였다. 까치들은 기회만 있으면 아물어 붙기 시작하는 소등의 상처를 다시 짓찧어서 피를 빨아먹었다. 그놈들이 과연 내가 알고있던 까치란 말인가? 나는 그래도 그놈들을 리해하자고 자신을 달랬다. 초원에 사는 까치들은 생활이 어렵기에 생존을 휘해서는 그처럼 흉악하게 변할수도 있는것이였다. 어느날부터인가 그놈들이 새끼백조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내가 발견했을 때 세마리의 까치가 새끼백조 한마리를 포위하고는 참혹하게 물어 뜯는것이였다. 나는 크게 소리를 지르며 그곳으로 달려갔다. 까치들도 놀랐는지 새끼백조를 던지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하지만 멀리로는 날아가지 않고  자칫 입에 들어올번 했던 새끼백조를 호시탐탐 노려보는것이였다.  나는 새끼백조를 안아서 자세하게 살펴보았다. 새끼백조는 놀라서 부들부들 떨고있었는데 날개에 작은 상처가 나있었다. 나는 그쯤한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나는 까치들을 절대 방심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고 집에 들어가 받침대가 있는 새총을 꺼내왔다. 그때까지도 그 세마리의 까치는 멀리 가지 않고있었다. 나는 받침대에 붙어있는 탄창에서 탄알을 꺼내여 고무주머니에 넣고는 크게 소리를 질러댔다. 새들이 놀라 공중에 날아오를 때 새총을 당겨 명중만 하면 되는것이였다.  나는 첫번에 까치 한마리를 명중했다. 내 사격술이 좋은것보다 까치와의 거리가 가까왔던것이다. 내가 곁으로 다가갔을 때까지도 그놈은 날개를 퍼덕거리며 고통을 호소했다. 나를 발견한 그놈은 하늘로 날아오르려고 몸부림을 쳤다. 나는 잽싸게 손을 내밀어 그놈을 붙잡았다. 다른 두마리는 눈 깜빡할 새에 어디론가 날아가버렸다. 나는 사실 새총을 쏠 때 손에 힘을 크게 주지 않았다. 까치를 쏴죽이고싶지는 않았던것이다. 하기에 탄알은 그저 까치의 몸에 맞았를뿐 큰 상처는 내지 않았던것이다. 나는 끈으로 까치다리를 묶어서 바자에 달아매놓았다. 그러자 까치는 그곳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쳐댔다. 십여마리의 까치가 그곳을 향해 낮게 날아오더니 풀밭에 내려앉았다. 잠간후 그놈들은 한결같이 날아올라 다시 묶이워 있는 그놈을 향해 몰려들었다. 나는 그놈들을 향해 새총을 쏘았다. 탄알은 그들 부근의 땅에 떨어져내리며 먼지를 일으켰다. 그 바람에 까치들은 다시 위험을 느꼈던지 탄알이 닿치 못하는 곳으로 날아가버렸다. 날이 어두워져서야 나는 바자에 매달려 기진맥진해진 까치를 풀어주었다. 그놈은 드디여 살길이 열렸다고 생각했던지 다른 놈들은 돌아볼 새도 없이 멀리멀리로 날아갔다. 그놈에 대한 나의 징벌이 과연 효험이 있는듯싶었다. 그후로부터 까치들은 다시 목장에 나타나지 못했다. 간혹 한두마리가 목장부근에서 먹이를 찾아헤매다가도 나만 보면 도망쳐버렸다. 나는 다시 아침에 모래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큰 백조들이 불행을 당하던 그날 모래산에 던지고온 망원경이 그대로 있었다. 나는 망원경을 주어들고 우에 묻은 모래를 닦은후 눈앞에 가져다댔다. 나는 망원경을 돌다리쪽으로 돌렸다. 습관적이였다. 그 시각 나는 망원경에서 백조들의 천사같은 모습을 볼수 없다는것을 너무도 똑똑히 알고있었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더 이상 다른 백조들이 그곳에다 둥지를 틀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했다. 무참히 죽어간 한쌍의 백조가 사람과 차들이 분주히 오가는 교각에 둥지를 틀었다는것은 이미 기적인것이였다. 만약 다른 백조가 또 그곳에다 둥지를 틀었다면 그것은 이미 기적을 넘어선 평범한 사연으로 될것이였다. 한달쯤 지난 어느 맑은 아침, 나는 평소처럼 세퍼드들을 데리고 모래산에 올랐다. 나는 망원경을 눈앞에 가져다 대고 망망한 초원을 둘러보았다. 그 광활함에 나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나의 친구가 말했듯이 초원은 그야말로 신심을 잃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용기를 줄수있을것만 같았다. 나의 곁에 서있던 세퍼드가 갑자기 불안하게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그 몇달 동안 나는 세퍼드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의 신체언어와 소리에 대하여 많은 료해를 하고있었다. 지어는 그들의 눈길만 보아도 그놈들이 주방에 들어가 고기를 훔쳐 먹었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짧으면서도 급한 소리는 그들이 무엇인가를 발견했다는 신호였다. 나는 망원경을 내리우고 곁에 있는 세퍼드들을 살펴보았다. 그들은 눈 한번 깜빡하지 않고 앞을 바라보고있었다. 멀리 지평선에 낯선 사람이 나타났을 때 그들은 보통 그러한 행동을 취했다. 그들의 눈길을 따라 바라보니 그곳은 바로 집이 있는 방향이였다. 찬연한 해빛속이지만 웬지 집 륜곽이 희미하게 보여왔다. 나는 인차 검은 연기가 집을 둘러싸고있다고 판단했다. 나는 나는듯이 모래산을 달려내려갔다. 금방 먹이를 먹고 돌아가는 늙은 오소리가 나의 앞을 스쳐지나다가 깜짝 놀라는것이였다. 그놈은 짧다란 다리를 달싹이며 급급히 굴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것을 보고서야  오소리도 그렇게 빨리 달릴수 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나는 미친듯이 집안으로 달려들어갔다. 연기가 입으로 날아들었다. 나는 인차 밖으로 나와 헝겊쪼박을 찾아서 물에 적셨다가 얼굴을 가리웠다. 나는 다시 집안으로 들어가 창문을 열었다. 연기가 밖으로 밀려나간후에야 나는 불이 난것이 아니라 젖은 양똥이 타지 않고 부엌으로 연기만 몰려나온것임을 알게 되였다. 한참 지나자 연기는 집안에서 말끔히 빠져나갔다. 나는 얼굴에 가리웠던 잡냄새가 진동하는 젖은 헝겊을 벗고 긴 숨을 내쉬였다. 그때에야 나는 나의 방으로 통하는 문이 열려져있는것을 발견했다. 나는 나의 방으로 들어가보았다. 모든것이 끝난 뒤였다. 백조들이 모두 방구석에 쓰러져있었던것이다. 그들은 연기를 피해보려고 모진 애를 쓴것 같았다. 연기가 방으로 쓸어들 때 그들은 공포에 떨면서 한걸음한걸음 벽구석으로 물러서서 한덩이로 된듯싶었다. 연기가 점점 짙어지면서 공기가 희박해지자 그들은 별수 없이 다른 백조의 몸뚱이를 밟고 서서 머리를 우로 쳐들었을것이다. 하지만 그런 노력도 그들의 불쌍한 생명을 구해줄수는 없었던것이다. 그들이 두려움에 차서 구석으로 몰려들지 않고 용감하게 밖으로 달려나갔다면 신선한 공기는 그들의 생명을 구해줄수 있었을것이다. 하지만 뜻밖에 덮쳐든 생명의 위험앞에서 그들은 너무나도 무기력했던것이다. 나는 백조들의 시체를 종이상자에 주어담아 밖으로 내간후 한마리한마리 땅에 꺼내놓았다. 그제라도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 살아날수 있지 않을가 하는 바램에서였다. 나는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백조들의 주둥이에 입을 대고 인공호흡까지 시켰다. 하지만 주둥이가 내 입에서 떨어지는 찰나 통통하게 불어올랐던 배가 후즐근하게 줄어들었다. 그놈들의 몸뚱이는 이미 생명과 아득하게 멀리 떨어져있었던것이다. 나는 “돌이킬수 없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더 똑똑하게 알것만 같았다. 그 며칠, 나는 백조들을 데리고 물가에 가보려고 계획했었지만 시종 시간을 탈수 없었다. 하여 그들은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물통보다 더 넓은 수면을 보지 못했던것이다. 나는 그놈들을 목장남쪽의 습기가 없는 풀밭에 묻어주었다. 세퍼드나 맹수들이 파낼가봐 근심되여 구덩이를 매우 깊이 팠다. 나는 그해 늦여름에 친구네 목장을 떠나왔다. 이듬해봄, 친구는 나에게 편지를 보내와 목장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늙은 오소리가 추운 겨울을 나지 못하고 굴옆에서 얼어죽었다는것이였다. 기나긴 겨울을 나기에 그놈은 너무도 늙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두마리의 암세퍼드가 새끼를 낳았는데 모두 아홉마리라고 했다.  
14    매트리스우에서 자는 곰*거르러치무거 헤허 댓글:  조회:2034  추천:0  2013-12-11
“깨여나라, 아야…” 소리가 들려온지 한참 되는것 같았다. 아야는 끝내 무거운 눈을 떴다. 할아버지는 침대머리에 서서 아야를 빤히 내려다보고있었다. 희끗희끗한 할아버지의 머리칼은 창밖에서 비쳐들어오는 해빛에 반사되여 눈부셨다. “왜 그러세요?” 아야는 해빛이 찔러대는 두눈을 연신 비비면서 물었다.아직도 1분쯤 지나야 아야는 완전히 잠에서 깨여날수 있을것 같았다. “얼른 일어나라니까. 오늘 너를 데리고 가서 좋은 구경을 시켜주마.” 할아바지는 말씀하면서 집을 나섰다. 문은 여전히 빠금히 열려져있었다. 해빛은 둑을 넘어선 홍수마냥 집안에 흘러들어 아야를 삼켜버렸다.  “좋은 구경을 시켜준다구요?” 아야는 잠나라에서 펄쩍 뛰여나왔다. 할아버지의 말씀은 그야말로 유혹적이였다. 아야는 속도를 내서 옷을 주어 입은후 신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 그의 어깨가 원목으로 된 문가에 맞혔다. 피부에 소나무의 거친 껍질흔적이 남았을것이라고 아야는 생각했다.  여름이 시작돼서부터 할아버지는 벌써 여러번이나 아야를 데리고 어디 가서 좋은 구경을 시켜주겠다고 말씀했었다. 한번은 비가 멎은후의 아침이였다. 공기습도가 100프로에 달하는지 걸을라치면 수분이 얼굴에 물방울로 매쳐 흘러내렸다. 아야는 묵묵히 걸음을 옮기는 할아버지의 뒤를 부지런히 따랐는데 물에 빠졌다가 금방 구원되여 강변에 올라온 강아지처럼 연신 얼굴의 물방울을 훔쳤다. 그날 아침, 아야와 할아버지는 오랜 시간을 걷기만 했다. 아야가 너무 힘들어 더 이상 걸을 맥이 없다고 투정을 부렸다. 할아버지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머리를 숙이고 부지런히 걸음을 재우치던 아야가 그만 할아버지의 몸에 부딪쳤다. 아야는 할아버지와 함께 인차 아름드리 자작나무뒤에 숨었다. 아야는 조심스럽게 숨소리마저 죽였다. 오래동안 삼림에서 살아온 아야는 어떤 때에 소리를 내야 하는지 그리고 큰 소리를 내야 하는지를 잘 알고있었으며 또 어떤 때에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용납되지 않는지를 짐작하고있었다. 할아버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은 그들이 서있는 언덕아래의 작은 물웅뎅이였다. 웅뎅이옆에는 이미 이삭이 패인 부들이 가득 했고 좁은 수면에는 부평초가 두텁게 떠있었다.  빠알간 잠자리들이 지난밤의 추위에서 아직 헤여나오지 못했던지 수면우에서 부자연스럽게 빙빙 돌아쳤다. 아야는 그곳에 좋은 구경거리가 있는것이 보이지 않았다. 수면에는 수생식물이 너무 많아 많은 산소와 자양분이 필요했다. 물속에는 물고기도 별로 없었다. 아야는 웬 일이냐는듯 연신 할아버지를 쳐다보았다. 할아버지는 눈 한번 깜빡하지 않고 물웅뎅이를 지켜보고 계셨다. 얼굴에는 아무 표정도 어리지 않았는데 지어  땀방울도 볼수 없었다. 긴장한듯 뻣뻣해진 피부밑에는 관골만 불뚝 살아나보일뿐이였다. 갑자기 할아버지의 얼굴에서 가는 미소가 피여올랐다. 아야도 분명 물결이 갈라지는 소리를 들은것 같았다. 아야도 할아버지의 눈길을 따라 언덕아래에 있는 물웅뎅이를 바라보았다. 아야는 처음에 그것을 물가운데 솟아난 작은 언덕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그 “언덕”이 움직였다. 잠간후, 파아란 수초가 섞인 물이 그 “언덕”에서 흘러내렸다. 먼저 물속에서 머리를 내민것은 오래동안 물속에서 부패된것 같은 나무토막이였는데 우에 많은 가지들이 남아있었다.  그 뒤를 따라 산짐승의 머리 하나가 불쑥 솟아올랐다. 그 머리는 놀랍게 컸는데 앞부분에 괴상하게 생긴 코가 붙어있었다. 그야말로 너무도 못 생긴 동물이였다. 그놈이 물웅뎅이에서 완전히 몸을 들어내자 그 모양이 작은 섬을 방불케 했다. 어림짐작으로도 그놈의 길이는 3메터에 가까왔고 키는 2메터를 접근할것 같았다. 아야로서는 종래로 본적이 없는 커다란 체대의 동물이였다. 큰 코밑에 있는 입술은 연신 푸들거리고있었는데 입귀로는 파아란 수초가 새여나오고있었다. 커다란 몸집과 어울리지 않게 작은 두눈은 툭 튀여나왔는데 할아버지와 아야가 있는 곳을 망연하게 바라보고있었다. 물에 젖은 갈색 나는 털은 해빛에 반사되여 반짝반짝 빛났다. 그놈의 어깨부근은 불쑥 튀여나와 있었는데 단봉락타의 육봉 같았다. “엘크로구나.” 할아버지가 낮은 목소리로 말씀했다. 어쩌면 아야가 놀라서 소리를 쳐 엘크를 쫓을것 같아서 먼저 말해 안심을 시키려는것 같았다. 하지만 아야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소리를 지르고말았다. 그런 정황에서 소리를 지르지 말라고 하면 할아버지와 같은 년장자들이나 가능할지 모를 일이였다. 사실 아야도 의식적으로 소리를 지른것은 아니였다. 그때 아야는 아침이슬에 흠뻑 젖은 신을 벗었다가 다시 신으려고 했던것이다. 젖은 신속에서 발이 퍼져 여간만  불편한것이 아니였다. 신을 벗어들고 무엇인가에 발을 올려 놓으려는 순간 아야는 그만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다가 넘어지면서 저도 몰래 큰 소리를 질러 엘크를 놀래웠던것이다. 엘크는 침착하게 몸을 돌리더니 놀라운 속도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마치도 매생이를 타는 재간이 좋은 사람이 푸른 수면을 가르고 질주를 하는것만 같았다. 엘크는 축축하게 젖은 흙언덕으로 올라가더니 인차 무성한 숲속으로 사라졌다. 그곳은 나무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삼림이였지만 엘크가 얼마나 행동이 잽쌌던지 아야는 나무가지 흔들리는것조차 본것 같지 않았다. 엘크가 언덕에 오르자 물웅뎅이에 커다란 검은 공간이 생겨났다가 인차 떠다니는 부평초에 의해 메워졌다. 그날아침, 할아버지는 아야를 나무람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바로 아야에게 엘크와 같은 거대한 체구의 산짐승을구경시키기 위한것이였다. 할아버지는 늘 지금 보지 않으면 후에는 볼 기회가 없을것이라고 생각했던것이다.   아야는 할아버지가 오늘은 무엇을 구경시키려는것일가 하고 생각을 굴려보았다. 할아버지는 입버릇처럼  “좋은것들이 점점 적어진다.”고 말씀하셨다.  할아버지는 앞에서 걸음을 옮기셨다. 그뒤를 따르는 아야는 할아버지의 등에서 땀이 흘러내려 점점 더 큰 흔적을 남겨놓는것을 지켜보고있었다. 발밑에는 길이 아니라 뽑혀진 나무뿌리며 꺾어진 나무가지며 날이 선 돌쪼박들이 널려있었지만 할아버지의 발걸음은 시종 침착했다.  아야가 되려 허둥지둥 발걸음이 어지러워졌다. 그는 돌멩이를 밟아 휘청이지 않으면 나무가지에 옷섶이 걸려 걸음을 멈추었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삼림에서 오래동안 말라온 나무가지들은 아야의 몸에 맞혀 신음같은 소리를 내며 부러져내렸다. 그때마다 아야는 흠칫흠칫 놀라군 했다. 그리고 두툼한 락엽에 몸을 숨기고있던 쥐들이 뛰쳐나올 때면 아야는 당금 심장이 멎는듯한 공포를 느끼기도 했다.  아야는 할아버지의 뒤를 졸졸 따랐다. 무서워서 조금도 게을리 할수 없었던것이다. 처음에 할아버지와 함께 삼림에 들어갔을 때 아야는 너무도 힘들어 휴식을 하자고 연신 할아버지를 졸랐었다. “너 참, 몸이 허약하구나.” 할아버지가 근심스러운듯한 표정으로 말씀했다. 삼림이 끝나고 완만한 비탈이 나타났다. 아야는 무성한 삼림 한가운데에 그 같은 비탈이 있었다는것이 놀라왔다. 파아란 풀은 융단처럼 비탈로부터 저쪽면의 골짜기에까지 펼쳐져있었다.  아야는 미끄러운 얼음우에서 허우적거리다가 강변에 올라온 새끼사슴처럼 파아란 풀로 덮인 언덕을 보고 잠시 어쩔바를 몰라했다. 아야는 할아버지를 따라 록색언덕에 올라섰다. 파아란 꿈나라에 들어선듯한 느낌이였다. 그곳은 해볕이 따스한 바람 한점 불지 않는 곳이였다. 그곳에는 수많은 고추잠자리가 모여있었다. 그놈들은 삼림에서 흐르는 일종의 기류에 좌우지되는듯 보이지 않는 중심을 에워싸고 배회하고있었다. “조심해라, 물을 밟지 않게.” 앞에서 걸음을 재우치던 할아버지가 귀띔했다. 할아버지는 아야의 기분이 붕 떠있다는것을 진작 보아낸듯싶었다. 아야는 오래동안 느껴보지 못하던 선선한 느낌이 운동화속의 발을 감싸는듯싶었다. 그들은 이미 록색으로 뒤덮인 골짜기밑에 도달해있었다. 여름내내 내린 비물이 모두 그곳에 고인듯 했다. 아야와 할아버지의 발검음소리에 놀란 청개구리가 물속에서 펄쩍 뛰여올랐다. 할아버지는 풀들에 가리워진 오솔길에 올라섰다. 하지만 아야는 그 길로 걷기 싫어 고의적으로 곁에 고여있는 물에 들어갔다. 그 바람에 더 많은 청개구리들이 란시라도 터진듯 풀쩍풀쩍 뛰여오르더니 그 맵시로 더 깊은 물속에 사라졌다. 아야의 바지에는 가루같은 부들의 노르스름한 씨들이 들어붙었다. 할아버지는 머리를 돌려 아야를 바라보았지만 뭐라고 나무라지는 않았다. 두개의 작은산 사이에 있는 습지를 걸어지난 그들은 다시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할아버지의 발걸음이 늘여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오래동안 산길을 걸어온 사람들의 특유의 발걸음이였다. 할아버지는 선택성이 있게 발을 옮겨디뎌 될수록 소리가 나지 않게 했다. 땅에 널려있는 돌멩이나 바싹 마른 나무가지를 용케 지나서 맞춤한 곳에 발을 내려놓는 할아버지의 발밑에서는 정말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아야는 할아버지처럼 걸음을 옮기자면 쉽지 않지만 기어코 그 방법을 배워내리라 마음 먹었다. 그들은 천천히 언덕을 올랐다. 갑자기 퍼더덕 하는 큰 소리가 났다. 아야는 지뢰라도 밟은듯 깜짝 놀라 두눈을 꼭 감았다. 온몸을 으스스 떨리게 하는 찬 기운이 아야의 발에서부터 머리쪽으로 스멀스멀 기여올랐다. 아야는 머리가 핑핑 돌아가는듯싶었다. 아야가 두눈을 떴을 때 부산한 소리를 내며 날아오른 새는 벌써 멀리로 가서 두어번 원을 그리더니 습지곁에 있는 풀밭에 내려앉았다. 그놈은 메추리였다. 아야는 자기의 행동이 저으기 만족되였다. 비록 놀라기는 했지만 지난번처럼 크게 소리 지르지 않고 자신을 통제했던것이다.  메추리와 같은 새들은 몸뚱이가 무겁기때문에 땅에서 날아오를 때 반드시 안간힘을 다하여 날개짓을 해야했다. 하기에 날개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던것이다. 그놈들은 또 평소에는 죽은듯이 나무에 숨어있다가도 사람들이 다가가면 갑자기 하늘로 날아올랐다. 아야는 그놈이 방금 할아버지가 곁에 갔을 때는 왜 날아오르지 않았는지 몹시 궁금했다. 뒤에서 그렇게 큰 동정이 났지만 할아버지는 머리도 돌리지 않고 묵묵히 걸음만 재우쳤다. 아야의 발걸음도 전보다 많이 가벼워졌다. 신에 물이 들어가서 자꾸 꿀럭꿀럭 소리가 났다. 할아버지가 잠간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 바람에 아야도 멈추어섰다. 아야는 그것이 방향을 가늠하기 위한것이라는것을 알고있었다. 산길에 습관이 된 사람들에게는 모두 그런 습관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임의의 마른 나무가지 하나로도 자기가 서있는 위치를 알아낼수 있을것이라고 아야는 생각했다. 할아버지는 머리를 돌려 아야를 바라보았지만 얼굴에는 별 다른 표정이 없었다. 하지만 진작 아야의 눈길에서 답안을 찾은것 같았다. 그에 할아버지도 내심으로 만족하는것 같았다. 조용한 삼림에서는 말이 필요 없었다. 눈길로도 얼마든지 뜻을 전달할수 있었던것이다. 아야도 못내 흥분되였다. 그도 진작 그런 방법으로 할아버지와 교류를 해보고싶었던것이다. 아야는 자기도 차츰 성숙되여 가는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야는 할아버지의 뒤를 바싹따라 “좋은 물건”이 있는 그곳에 거의 도착하고있었다. 그들은 끝까지 큰 동정을 내지 않았다.  태양은 이미 두어발 떠오른 상태였다. 해빛은 나무가지사이를 뚫고 땅을 비추었고 습기는 나무가지사이를 지나 공중으로 날아오르며 무지개같이 황홀한 색채를 련발했다. 아야는 삼림속의 고요함이 좋았다. 아야는 저 멀리 삼림의 어느 곳에서 딱따구리가 나무를 쫓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높은 소리는 아니였지만 삼림이라 멀리까지 울렸던것이다. 바람이 불어와 나무꼭대기에 난 가지들을 어루쓸어 싸락싸락하는 소리를 냈다. 삼림에는 또 작은 새들의 합창도 있었다. 아야는 근본 그 작은 새들이 어디에 숨어있는지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구성진 노래소리는 아야로 하여금 어느 성대한 모임에 참가한듯한 느낌을 주었다.  아야는 전에 가끔 집뒤에 있는 자작나무숲에 들어가 새소리를 들은적이있었다. 날이 희붐하게 밝아올 때의 새소리가 제일 구성졌다. 아야는 새들의 노래소리를 록음한적이 있었다. 하지만 록음된 새소리는 현장에서 듣기보다 못했다. 그뒤로부터 아야는 새소리를 다시 록음하지 않았다. 참, 무슨 헛생각이람… 아야는 잡생각을 굴리는 자신을 나무랐다.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무엇인가에 부딪쳐 소리를 낼수 있기때문이였다. 아야는 할아버지와 함께 언덕우에 올라섰다. 큰 소나무들이 하늘을 찌르며 쭉쭉 올리 뻗어있었는데 아야로 하여금 연신 감탄을 터치게 했다. 할아버지는 아야에게 소나무들은 자기옆에 있는 나무들도 해볕을 충족하게 받게 하기 위해 우만 바라보고 자란다고 알려주었다.   아야는 소나무에 응고되여있는 송진 한쪼박을 뜯어내서 입에 넣었다. 씁쓰레한 느낌이 바짝 마른 아야의 입안에서 감돌았다. 삼림에 사는 애들은 모두 아야처럼 송진을 껌으로 생각하고있었던것이다.  할아버지는 물속에서 걷는듯 걸음을 늦게 옮겼다. 아야는 가끔 할아버지가 걸음을 멈추지 않았나 뒤를 돌아보았다. 제일 처음 할아버지와 함께 삼림으로 들어왔을 때 아야는 나이가 매우 어렸었다. 그는 할아버지의 느릿느릿한 걸음을 보고 매우 우습게 생각했다. 하지만 삼림으로 들어오는 차수가 잦아질수록 아야는 할아버지가 왜 그렇게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겨놓는가를 알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삼림속의 모든것을 놀래우지 말자고 생각했던것이다. 아야는 조용하게 삼림에 서있으면 자기도 삼림의 일부분으로 된듯한 느낌이 들었다. 자기도 한그루의 나무로 된듯했던것이다.   어느한번, 아야는 의식적으로 할아버지와 함께 나무옆에 꼼짝 않고 서있은적이 있었다. 물론 할아버지가 먼저 나무옆에 다가가셨던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무숲에 사슴뿌리 한쌍이 나타났다. 아야는 호기심이 동해 사숨뿔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잠간 지나 사슴머리가 나타났다. 이어 길다란 목이며 미츨한 몸뚱이도 보였다. 털은 해빛에 반짝반짝 빛나고있었다. 사슴은 머리를 숙이고 부지런히 먹이를 찾아 먹으며 다가왔다. 얼마후 머리를 쳐든 사슴은 나무옆에 꼿꼿이 서있는 할아버지와 아야를 발견한듯싶었다. 하지만 사슴의 눈에는 공포의 빛이 어리지 않았다. 아야는 종래로 그처럼 부드러운 눈길을 본적이 없는것 같았다. 까아만 눈망울에는 티끌 한점 묻지 않은것 같았다. 사슴은 샘물처럼 맑은 눈동자로 아야와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사슴은 아야와 할아버지를 삼림의 일부분으로 여기는것 같았다. 잠간후 사슴은 몸을 돌려 삼림심처로 들어갔다. 아야는 갑자기 가슴이 쿵쿵 소리를 내며 높뛰고있다는것을 느꼈다. 도무지 자기의 눈을 믿을수 없었던것이다. “네가 노력만 한다면 영원히 삼림의 일부분으로 될수 있단다.” 할아버지는 아야를 보고 말씀하시면서 의미심장하게 앞쪽을 가리켰다. 아야는 “좋은 물건”이 앞에 있다고 믿었다. 긴장해서 호흡마저 가빠졌다. 하지만 아야는 더 힘을 주어 숨소리를 눌렀다. 그 바람에 얼굴마저 빨개졌다. 아야는 끝내 할아버지의 옆에 붙어섰다. 언덕저쪽에는 나무가 몇그루밖에 서있지 않는 넓고 평탄한 풀밭이 있었다. 그곳에서는 나무뒤에 몸을 숨기고 산아래의 모든것을 한눈에 바라볼수 있었다. 그들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파아란 풀과는 어울리지 않는 매트리스 하나가 놓여져있었다. 재료때문이였던지 매트리스는 해빛에 반사되여 눈이 부셨다. 아야는 심산속에서 그같이 현대적인 매트리스를 본다는게 놀라왔다. 설마 저 매트리스를 “좋은 물건”이라고 했을가? 몇년전,  그곳으로부터 얼마나 떨이지지 않은 곳에 리조트가 있었다는것을 아야는 지금도 기억하고있었다. 리조트는  경영부진으로 하여 인차 문을 닫았었다. 호기심으로 왔던 유람객들은 사실 전기도 없고 물도 없는 산중생활에 적응할수 없었던것이다. 그때 누군가 리조트에서 쓰던 매트리스를 이곳에 던져버린게 분명했다. 할아버지는 저 매트리스가 그렇게 좋은 물건으로 생각되셨을가? 아야는 처음으로 할아버지의 판단력에 이의를 느끼게 되였다. 아야는 머리를 돌려 할아버지를 훔쳐보았다. 그때 할아버지는 미동도 없이 아야옆에 서서 두눈을 쪼프리고 언덕아래의 아늑한 풀밭을 바라보셨다. 아야는 할아버지가 무엇을 기다리고있다는것을 알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삼림에 대하여 아는것이 매우 많았다.  아야가 할아버지와 함께 보냈던 첫 겨울의 큰 눈이 내리던 그날밤, 아야는 난로가 뿜어내는 열기에 취해 혼곤히 잠이 들어있었다. 등잔불밑에서 사슴뿔을 다듬던 할아버지는 갑자기 손에 들었던 사슴뿔을 상우에 올려놓았다. 사슴뿔에는 어미사슴이 새끼사슴에게 젖을 먹이는 륜곽이 절반쯤 조각되여있었다. 할아버지는 두눈을 쪼프리고 미동도 없이 앉아서 무엇인가에 귀를 기울이다가 머리를 돌려 아야에게 눈길을 돌렸다. 할아버지가 미소를 지으셨다. 그 미소에는 목적을 달성한데서 오는 만족감 같은것이 어려있었다. 아야는 할아버지의 눈길에서 그 “목적”이 무엇인가를 찾아보고싶었다. 할아버지는 등잔심지를 돋구어놓고 창가로 다가가서는 아야에게 다가오라고 눈짓을 했다. 아야는 창문에 한벌 얼어붙은 성에를 손가락으로 파서  작은 구멍을 만들었다. 고요한 달빛아래에서 눈덮인 삼림은 그처럼 신비스럽게 느껴졌다. 어쩌면 로씨야황야에서 제일 아스라니 멀어져있는 동화를 보는것 같았다. 두마리의 예쁜 여우가 밖에 서있었다. 그중 한마리가 깜찍한 머리를 돌려 창문쪽을 바라보고있었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자신의 낙언을 실현했던것이다. 아야가 산에 들어오기전에 할아버지는 아야에게 여우를 구경시켜주겠다고 말씀했던것이다. 아야는 정말 타는듯한 붉은 털을 가진 여우를 보고싶었었다. 겨울을 맞은 여우털은 예쁘고 두터웠고 굵직한 여우꼬리는 가볍게 한들거렸다. 여우의 몸은 고동색으로 보였는데   달빛아래에서 은은한 빛을 뿌리고있었다. 그 시각, 그놈들은 먹이를 찾으러 집앞에 나타났던것이다. 아야가 여우를 구경하러 삼림으로 가고싶다고 했을  때 할아버지는 “여우 구경을 왜 삼림속에 가서 하려는거니?” 하고 되물었었다. 그날밤부터 할아버지는 먹고 남은 밥이나 반찬을 마당에 있는 큰 나무아래에 뿌려놓았다. 할아버지는 그놈들이 꼭 먹이를 찾아 마당에 올것이라는것을 알고있었던것이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삼림속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손금 보듯 알고있었던것이다. 아야는 얼어붙은듯 꼿꼿이 서서 눈 한번 깜빡하지 않고 무엇인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놈은 엄청나게 큰 몸뚱이를 가진 동물이였다. 곰이다! 아야는 심장이 당금 튀여나올것만 같이 긴장해졌다.  식물이 풍부한 이 계절에 곰은 삼림속에 있는 모든 먹이를 배에 집어넣고 그것들을 지방으로 만들려는것 같았다.  그놈은 흔들흔들 삼림을 벗어나더니 여유작작 아야네를 향해 다가왔다. 사람을 내놓고 삼림에는 더 이상 곰의 상대가 없었다.  사냥군이라는 직업도 차츰 인류사회에서 사라져가고있었다. 하기에 그놈은 “천당”에서 사는거나 다름없었다. 아야는 산처럼 큰 몸뚱이의 야수를 바라보면서 공포로 하여 온몸이 오그라드는것 같았다. 하지만 그와중에도 그놈이 매트리스 있는 곳으로 다가가는것은 여간만 흥미롭지 않았다. 곰은 매트리스를 보고도 생소한 물건을 접촉할 때 보이는 조심성 같은것은 진작 팽개친듯싶었다. 매트리스곁으로 다가간 곰은 잠간 걸음을 멈추고 본능적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어 굵은 목을 흔들면서 코방울을 벌름거려 주변의 공기냄새를 맡는것 같았다.  아야는 호흡을 멈추고 손가락 하나를 입에 넣었다. 하지만 너무 긴장했던 탓으로 입안이 몹시 말라있었다. 아야는 힘껏 침을 모아 손가락을 적신후 입에서 뽑아 눈앞으로 가져왔다. 바람의 방향을 예측하려는것이였다. 하지만 방향이 가려지기전에 손가락이 선뜩 해나면서 약간 묻어있던 침을 몰아가버려 도대체 어느방향에서 불어온 바람인지 가려낼수 없었다. 할아버지는 손가락에 침을 묻쳐 바람방향을 알아내는 방법을 아야에게 배워준지 오래지 않았다.  곰은 자기의 후각을 완전히 믿고 주변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는것 같았다. 그놈은 갑자기 뒤다리 두개에 몸을 의지하여 섰다.  가슴에 있는 둥근 달 모양의 하얀 털이 들어났다. 곰들은 간혹 그렇게 선 자세로 사냥물을 관찰할 때가 있기는 했지만 그 자세는 결코 곰들이 마음대로 취할수 있는그런 자세는 아니였다. 그놈은 몇초간 그렇게 선자세를 취하다가 앞발을 매트리스에 쿵 하고 내려놓았다.   멀리 떨어져있는 아야도 곰이 매트리스에 떨어져 내릴 때 나던 그 소리를 똑똑히 들었다. 곰은 그 동작을 련속 세번이나 반복했다. 아야가 매트리스속의 용수철이 곰의 그같은 충격을 받아낼수 있을가 근심하고있을 때 곰이 매트리스변두리에 앞발을 걸치더니 차츰 매트리스우로 기여올라갔다. 잠간후 곰은 완전히 매트리스우에 올라가 엎드렸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였다. 아야는 할아버지를 건너다보았다. 할아버지의 표정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아야는 할아버지가 처음으로 그곳에 온것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할아버지는 꼭 먼저 그곳에 와서 미트리스우에서 자는 곰을 관찰하기 맞춤한 지점을 선택한것이 분명했다. 곰은 찌는듯이 내리 쬐이는 해볕을 가리우기 위해 왼쪽앞다리로 눈앞을 가리우고있었는데 그 자세는 모래사장에서 휴식의 한때를 보내고있는 피서객을 방불케 했다.     자는듯 움직이지 않던 곰이 갑자기 분노해서 오른쪽앞다리를 번쩍 들어 마구 휘둘렀다. 곰의 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모기를 쫓는것 같았다.  아야는 숨소리마저 죽여가며 조용히 서있는다는것이  매우 힘들었다. 그는 신체중심을 왼발에 실으려고 시도했다. 그런 방법으로 한쪽발이나마 쉬워보려는것이였다. 하지만 정말 신체의 중심이 왼쪽발에 모두 옮겨가는 순간 뜻밖의 사태가 벌어졌다. 아야가 딛고있던 마른 나무가지가 우지끈 하고 부러졌던것이다. 아야는 너무도 놀라 숨마저 멎는것 같았다. 곰도 놀라 머리를 쳐들고 소리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곰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삼림속으로 들어갔다. 더 이상 매트리스우에서 자고싶은 흥미가 없어진 모양이였다. 아야가 머리를 돌렸을 때 할아버지는 오던 방향으로 몸을 돌려 걸음을 옮기고있었다. 아야는 자기가 조심하지 않아 큰 소리를 내게 된것을 매우 후회했다. 자기가 정말 있을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다고 생각했다. 할아버지는 곰이 갑자기 그곳을 떠난것을 두고 아무 반응도 없었다. 어쩌면 곰의 그 표현이 빨리 끝나기를 은근히 기다린것 같기까지 했다. 귀로에 선 그들의 발걸음은 매우 느렸다. 때는 정오라 태양은 머리우에 걸려있었다. 하지만 무성한 나무가지들이 해볕을 가리워주어 그렇게 무덥지는 않았다. 삼림은 너무 고요해서 새들의 노래소리조차 들을수 없었다. 다만 나무가지를 뚫고 내리는 해빛이 길에 얼룩덜룩 그림자를 던져줄뿐이였다. 길에서 습기가 모락모락 피여올랐다. 아야는 할아버지의 등에 돋았던 땀이 차츰 마르고 륜곽이 분명한 가루로 된 땀흔적이 남는것을  발견했다. 매번 삼림에 들어올 때마다 그러한 일이 발생했다. 어쩌면 그것은 여름날에 산길을 걷는 사람들이 반드시 겪어야 할 규칙 같은것인지도 모를 일이였다. 할아버지는 그런 행동으로 아야에게 삼림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주려고 한것 같았다. 아야와 할아버지는 제일 마지막 산등성이에 올랐다. 나무집이 멀리에서 보여왔다. 할아버지는 걸음을 멈추고 어깨에 멨던 물통을 내리워 아야에게 넘겨주었다. 아야는 물통덮개를 탈아열고 할아버지의 체온때문에 미지근해진 물을 몇모금 마셨다. 아야는 이미 칠이 군데군데 벗겨진 군용물통을 다시 할아버지에게 건네주었다. 할아버지도 물통을 받아 한모금 마셨다. 그것은 아야와 할아버지의 휴식이였다. 그 습관은 이미 몸에 배여있었다. 번마다 산길을 걸을 때면 할아버지는 적당한 지점을 찾아서 한참씩 휴식을 했다. 할아버지는 두눈을 쪼프리고 하늘가로 펼쳐진 무연한 삼림을 하염없이 바라보군했다. 그곳에서는 지평선을 볼수 없었다. 아야가 오기전, 할아버지는 그 삼림에서 홀로 살았었다.   세찬 바람이 불어왔다. 망망한 삼림은 쏴쏴 파도소리를 냈다. 수많은 락엽수들이 바람에 파도를 타고있었다. 대면적의 삼림은 언제나 사람들의 눈으로는 알아볼수 없을 정도로 바람에 설레이고있었다. 그것은 푸른 삼림의 호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삼림은 자지 않고있었던것이다. “할아버지, 그 곰말이예요…” 아야가 잠간 말을 끊었다가 이었다. “그러지 말아야 했죠, 그렇죠?” 할아버지는 아무말도 없이 물통을 다시 어깨에 멨다. 그들은 산을 내리기 시작했다. 산을 내리는것은 오르는것보다 더 힘들다고 생각하는 아야였다. 아야는 입을 꾹 다물고 몸을 뒤로 한채 걸음을 옮겼다. 아야는 어떤 자세로 산을 내려가야 쉽다는것을 알고있었다. 처음에 아야는 흥에 겨워 소리치며 달려내려가 풀밭에 쓰러졌었다. 풀이 부드러웠기에 아야는 아무 상처도 입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번 경험을 통하여 아야는 산을 내릴 때는 몸을 뒤로 하거나 반쯤 옆으로 돌리고 한발자국 한발자국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디뎌야 한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아야와 할아버지는 거의 같은 시각에 눈을 떴다. 그들이 울안을 나갈 때 해빛은 아직 나무가지를 넘어와 울안을 비추지 못하고있었다. 한번 다녀왔던 경험이 있기에 그들의 걸음은 전날보다 빨랐다. 그들의 몸을 스치는 매 한그루의 식물은 모두 작은 물땅크를 방불케 했다. 아야와 할아버지는 될수록 식물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나무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곳은 사실 위험이 도사리고있는 지대이기도 했다. 나무가지에 맺혀있는 물방울이 동시에 떨어져 내리면 그야말로 작은 못이 터져내리는것과 같은 파괴력이 있었던것이다. 하지만 나무들이 빼곡한 삼림에서 걸을 때 그놈들을 다치지 않는다는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아야와 할아버지가 삼림을 벗어났을 때는 옷이 몽땅 젖은 뒤였다. 만약 그들이 좀만 후에 삼림에 들어섰다면 이슬이 말라서 그 정도는 되지 않았을것이다. 태양이 높이 솟아올랐다.  걸음을 재우치느라 지쳐버린 그들은 마른 나무가지를 찾아 앉아 휴식을 하면서 이슬에 젖은 옷을 말리웠다. 할아버지가 물통을 벗어서 아야에게 넘겨주었다. 아야는 물 몇모금을 마신후 다시 할아버지에게 물통을 돌려주었다. 할아버지는 물을 마시지 않았다. 태양이 높이 솟아오름에 따라 젖었던 옷도 차츰 말라드는것 같았다. 아야는 옷에서 수증기가 증발하는 그 과정을 생생하게 느낄수 있을것 같았다. 아야는 할아버지의 옷을 지켜보았다. 아니나 다를가 할아버지의 옷에서 수증기가 빠져나가는것이 가물가물 보였다. 이슬에 젖은 깃털을 다 말리웠던지 새들도 차츰 삼림에서 날아예기 시작했다. 새들마다 자기의 독특한 목소리로 구성지게 노래를 불렀다. 삼림에 들어가지 않고는 그처럼 생동한 새들의 노래를 들을수 없을것이다. 그야말로 몇백가지 새들의 노래의 하모니라고 할수 있었다. 애들의 휘파람소리 같은것도 있었고 나무몽둥이로 무엇을 치는것 같은 소리도 있었으며 들고양이가 놀라서 우짖는것 같은 소리도 있었다. 그런 비슷한 소리외에 듣기만 해도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릴것 같이 시원한 소리도 있었다. 아야는 만약 삼림에 새들의 소리가 없다면 묘지처럼 적막할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야는 새들의 노래속에서 처음 듣는 생소한 소리만 골라보려고 귀를 기울였다. 만약 정말 생소한 소리를 가려낸다면 신대륙을 발견한것처럼 기쁠것이라고 생각되였다. 그 생소한 소리는 언제나 수많은 새들의 노래에 파묻겨 제대로 가려내기 힘들었다. 아야는 삼림에서 노래하는 그 새들을 영원히 보지 못할수도 있을것이라는 생각이 갈마들었다.   그래도 아야는 생소한 노래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차츰 그 노래소리는 바위틈에서 졸졸 흘러내리는 샘물소리처럼 똑똑해지는듯싶었다. 아야는 그 노래소리를 깊이깊이 머리속에 간직했다. 그해여름, 아야는 세가지의 부동한 새소리를 새롭게 기억하게 되였다. 아야는 가끔 자기에게 절대 새소리에 속히우지 말라고 경고했다.   어느날아침, 아야는 굉장하게 높은 새소리에 놀라 깨여난적이 있었다. 아야는 근 한시간이나 갈대밭을 헤집으면서 대관절 얼마나 큰 새이기에 그같이 높은 소리를 낼수 있는가고 생각했다. 하지만 갈대밭에 숨어서 그같이 큰 소리로 우짖는 작은 새 한마리를 보았을 때 아야는 너무도 실망스러워 자기의 눈마저 의심되였다. 아야는 꾀꼬리소리를 제일 좋아했다. 꾀꼬리는 나무집앞에 있는 관목림에 둥지를 틀었다. 둥지는 나무잎과 여러가지 섬유소로 지어졌는데 닭알보다도 더 작았다. 금방 부화된 새끼꾀꼬리는 콩알만큼밖에 되지 않았다. 아야는 새끼꾀꼬리가 부화되여 둥지를 떠나기까지 12일이 걸린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아야는 꾀꼬리의 청아한 노래소리와 함께 잠을 깨군 했다.  꾀꼬리들이 나무집앞에 둥지를 트는것은 그곳이 다른 동물들의 습격을 받지 않는 안전한 곳이라고 생각하기때문이였다. 갑자기 멀리로 보이는 삼림에서 연기와 같은것이 솟아올랐다. 그것도 바람 없는 날 굴뚝에서 피여오르는 연기처럼 모락모락 솟는것이 아니라 세찬 바람을 만난듯 마구 머리를 풀어헤치고 놀라운 속도로 사방에 퍼져나갔다. “연기”는 갑자기 진해지다가 또 연하게 번지기도 했다.  그것은 사실 집단적으로 먹이를 찾으러 나선 찌르레기무리였다. 그놈들이 앞다투어 지저귀는 소리와 날개를 파닥이는 소리가 어울려 수천만개의 비방울이 나무잎을 두드리는 소리처럼 들렸던것이다. 수만마리의 새들이 함께 움직였기에 그 소리가 성세호대했고 강대한 회오리바람을 일으킬수 있었던것이다. 찌르레기들은 눈 깜빡할 새에 삼림속으로 사라졌다. 그 기세에 매도 놀라 어쩔줄을 몰라했다. 그것은 찌르레기들만의 생존방식이였다. 새로운 하루가 또 시작되였다. “걸을가요?” 아야는 여전히 몸이 근질근질해나서 좀더 해볕을 쪼이고싶었지만 너무 오래 앉아있은것 같아 몸을 일으키며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할아버지는 아무 말도 없이 몸을 일으켰다. 매트리스는 여전히 원래의 곳에 놓여져있었다. 그것은 안에 용수철을 넣은 보통매트리스로서 별 다른 특징이 없었다. 매트리스변두리쪽에 무엇엔가 찔려서 난 구멍이 있었는데 주인은 그것때문에 매트리스를 던진것 같았다.  매트리스에 찍혀져있는 몇송이의 백합꽃은 이미 색이 바래져있었다. 아야는 쪼크리고 앉아 매트리스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무엇을 찾느냐?” 할아버지가 물었다. “아니요.” 아야가 대답하면서 일어나 사방을 둘러보는체 했다. 아야는 사실 매트리스우에서 곰털을 찾아보았던것이다. 아야는 부근의 관목림에서 마른 나무가지를 주어왔다. 할아버지는 그것들을 매트리스우에 장져놓았다. 할아버지는 아야에게 숲으로 깊이 들어가지 말라고 재삼 당부했다.   “곰이 부근에 숨어있을지 모른단다.” 마른 나무가지가 매트리스우에 가득 장져졌다. 할아버지가 성냥개비를 그어 나무가지에 불을 달았다. 불은 바람에 파르르 떨더니 인차 꺼져버린듯싶었다. 나무가지가 완전히 마르지 않은것 같았다. 아야는 할아버지가 비오는 날에도 우등불을 피우는것을 본적이 있었다. 그런 할아버지가 자기가 그래도 말랐다고 주어온 나무가지에 불을 붙이지 못하는것이 참 이상하다고 아야가 생각하고있을 때 갑자기 확 하는 소리와 함께 나무가지에 불꽃이 피여올랐다.  불길은 빨리도 옮겨 붙으며 확확 열기를 뿜었다. 그 바람에 아야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몇걸음 뒤로 물러섰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보면서 아야는 못내 흥분되였다.  할아버지는 시종 아야에게 불장난을 하지 말라고 타일렀다.  더구나 삼림속에서는 성냥도 가지고 놀지 못하게 했다. 연기도 별로 나지 않았지만 불꽃은 아야의 키를 훤씬 넘어서며 확확 소리까지 냈다. 불은 반시간 넘어 타올랐다. 그 사이에 아야는 마른 나무가지를 더 집어넣었다. 불이 완전히 꺼지자 하얀 재와 검으스름하게 변한 용수철 십여개가 남았다. 아야는 몇차례의 비를 맞으면 검으스름한 용수철이 벌겋게 녹이 쓸것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오래오래 흐른뒤 벌겋게 녹이 쓴 용수철은 붉으스름한 가루로 변하여 흙속에 완전히 묻혀버릴것이였다.  아야와 할아버지는 모두 산언덕에 올라섰다. 할아버지가 아야에게 무슨 손동작을  해보였다. 그 바람에 아야는 선자리에 굳어졌다. 그때 아야와 할아버지는 모두 한그루의 큰 나무뒤에 서있었다. 그때 검은 털을 가진 곰 한마리가 맞은켠의 산기슭에 얼굴을 내밀었다.  그놈은 불길이 타오르는 냄새를 맡고 그곳에서 서성이는것 같았다.  그놈은 조심스럽게 앞으로 몇걸음을 옮겨놓았다.  목표는 한무지의 재로 변한 매트리스인것 같았다.  곰은 갑자기 머리를 돌려 도망쳤다. 아야는 그놈이 다시는 그곳으로 오지 못할것이라고 생각했다.  
13    엘크*거르러치무거 헤허 댓글:  조회:1697  추천:0  2013-12-06
1. 지난밤의 바람 봄을 맞은 강에서 늦게까지 녹기 싫어하는 얼음처럼 오래동안 삼림에 내려 앉아 자리를 틀고있던 적막은 고독한 총소리에 산산히 깨여졌다. 거리썬커(格利什克)마저도 그 총소리가 머리칼을 쭈볏이 일어서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귀청을 째는듯한 총소리는 고요한 삼림에서 점점 더 멀리 퍼져나갔다. 총소리는 보이지 않는 맹수의 포효소리처럼 산곡에 메아리쳤다. 산골짜기들에 머물고있던 새들이 황망히 우짖으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거리썬커는 하늘을 가르며 날아가던 탄알의 궤적을 똑똑히 보았었다. 탄알은 사실 날았다고 표현하기 힘들 지경으로 총소리가 울리기 바쁘게 인차 그놈의 굵고 번들번들한 목에 검은 꽃무늬를 피워놓았었다. 그놈은 마치도 커다란 흙무지가 덮쳐오는 홍수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지듯 개울에 쓰러지며 사방으로 물방울을 튕겼다. 거리썬커는 총을 들고 여전히 사격자세를 취하면서 그놈이 넘어간 곳을 주시했다. 덩실한 그놈의 등은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줄곧 거리썬커의 옆에서 돌아치던 꼬리 없는 사냥개가 펄쩍 뛰여 일어나 앞으로 나아갔다. 거리썬커는 드디여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어깨에 올려놓고있던 총을 내리우고 앉아 여태 쪼크리고있느라 뻣뻣해진 다리를 움직였다. 거리썬커는 호주머니에서 자작나무껍질로 만든 작은 함을 꺼내여 안에서 입담배(口烟)를 조금 꺼내 입에 넣었다. 맵싸하면서도 편한 느낌이 입안에서 감돌더니 그 냄새가 가슴속에까지 유유히 퍼졌다. 거리썬커는 흡족한듯 두눈을 지그시 감았다. 죽음이란 그렇듯 완만하면서도 고통스러운것이였다. 거리썬커가 총을 들고 개울가로 다가갔을 때 모든것이 끝나있었다. 그놈은 이미 호흡이 멈추어 개울에 쓰러져있었다. 마치도 바다 한가운데 불쑥 솟아오른 작은 섬 같아보였다. 꼬리 없는 사냥개는 미친듯이 그놈의 몸을 물고 뜯어댔다. 그놈은 어미엘크였다. 거리썬커가 소리를 질러서야 꼬리 없는 사냥개는 극도록 흥분된 상태로 개울복판에 서서 마지못해 피가 얼룩진 머리를 쳐들고 거친 숨을 몰아쉬였다. 거리썬커가 안간힘을 다 쓰고 꼬리 없는 사냥개가 옆에서 거들었지만 도무지 어미엘크를 강변에 끌어올릴수 없었다. 거리썬커는 엘크의 머리를 개울쪽으로 향하게 하고 목을 찔러 피를 뽑았다. 바스락바스락 하는 소리가 거리썬커의 뒤에서 들려왔다. 거리썬커는 반사적으로 옆에 놓인 총을 주어들고 몸을 돌려 묘준했다. 그런 동작들을 하는데 1초의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금방 사냥물을 포획했을 때가 사냥군에게는 가장 위험한 순간이였다. 사냥물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냄새가 부근에 있는 곰과 같은 맹수들을 불러올수 있었던것이다. 무성한 관목림에서 몸을 움츠리고있는 붉으스름한 털을 가진 작은 동물이 눈에 들어왔다. 거리썬커는 그제야 천천히 총을 내리웠다. 그놈은 새끼엘크였다. 그놈은 부들부들 떨면서 강변의 관목림에서 간신히 머리를 내밀었다. 그놈의 털은 붉은색을 띠고있었는데 가을날의 불타는 락엽송 색갈을 방불케 했다. 몸뚱이 크기로 보아 태여난지 한달쯤 됨직했다. 그놈은 포도처럼 동글한 눈을 크게 뜨고 눈앞에 펼쳐지는 생소한 세상을 바라보고있었다. 그놈은 방금 눈앞에서 벌어진 그 사실을 믿고싶지 않아 하는것 같았다. 하늘을 진감할듯한 그 총소리가 그놈을 몹시 놀래운듯싶었다. 어미엘크가 개울에 쓰러지자 새끼엘크는 어쩔바를 몰라 하며 허둥지둥 삼림으로 들어가 숨은 모양이였다. 꼬리 없는 사냥개는 그제야 자기의 실직때문에 부끄러워 하는것 같았다. 그놈은 분노한듯 포효하면서 새끼엘크를 향해 쏜살같이 뛰여갔다. 거리썬커가 큰 소리로 제지시켜서야 꼬리 없는 사냥개는 새끼엘크에게 덮치지 않았다. 아니라면 새끼엘크는 진작꼬리 없는 사냥개에게 목줄을 물려 끊겼을것이다. 꼬리 없는 사냥개는 아쉬운지 새끼엘크의 곁을 맴돌면서 가끔씩 거칠게 소리를 질러댔다. 새끼엘크는 너무도 무서워 부들부들 떨면서 몸둘바를 몰라했다. 그 시각 삼림도 새끼엘크를 숨겨주지 못했다. 새끼엘크는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를 간신히 끌고 거리썬커의 앞으로 다가와 그의 두다리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거리썬커는 사냥개를 제지시킬뿐 일시 어쨌으면 좋을지 몰라 망설였다. 하지만 새끼엘크는 어느새 거리썬커의 손을 찾아 손가락을 입에 물고 빨기 시작했다. 새끼엘크의 보들보들한 혀바닥이 따듯한 난류가 되여 사냥으로 거칠어진 거리썬커의 손가락을 덥혀주고있었다. 거리썬커는 어미 잃은 새끼엘크를 어떻게 처리할가를 두고 많은 고민을 했다. 하지만 그줄을 모르는 새끼얼크는 거리썬커를 졸졸 따라 숙영지로 갔다. 어쩌면 얼굴에 주름살이 쪼록쪼록한 그 늙은이의 몸에 어미엘크의 혼이 옮겨 붙은것이나 아닐가 하고 생각하는것 같았다. 거리썬커가 천막으로 들어가자 새끼엘크도 따라들어갔다. 새끼엘크는 너무도 지친듯싶었다. 그 하루사이에 새끼엘크는 받아 당하기 힘든 무시무시한 일을 껶어냈던것이다. 새끼엘크는 천막으로 들어가자마자 구석을 찾아 엎드렸다. 그제야 새끼엘크는 저도 모르게 사람들이 사는 천막으로 들어선것을 좀 후회하는듯싶었다. 삼림속을 뛰여다니는 야생동물인 새끼엘크가 사람들이 사는 작은 공간에 들어선후 느껴지는 공포감은 무지한 호기심으로 표달되였다. 천막중간에 놓여진 난로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을 보면서 새끼엘크는 그것이 바로 모든 야생동물들이 제일 꺼리는 그 불이라는것이로구나 하고 생각했을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공포감도 새끼엘크의 피로를 물리칠수는 없는것 같았다. 새끼엘크는 그곳을 자기에게 제일 안전한 곳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였다. 새끼엘크는 천막 한구석에 옹크리고 누웠다. 그 모습은 너무도 작아보였다. 새끼엘크는 머리를 배에 딱 붙이고 혼곤히 잠들어버렸다. 거리썬커는 총을 침대머리에 걸어놓은후에야 천막 한구석에 쪼크리고 누워 단잠을 자는 새끼엘크에게 주의를 돌리기 시작했다. 거리썬커가 일생 처음으로 엘크를 사냥한것은 13살 나던 해였다. 그번에 사용한것은 당시 거리썬커의 키와 비슷한 크기의 로씨야제 보총이였다. 그때로부터 거리썬커는 헤아릴수 없이 많은 엘크를 사냥했다. 하지만 새끼엘크를 잡은것은 이번이 처음이였다. 거리썬커는 새끼엘크의 옆에 조크리고 앉았다. 새끼엘크의 붉으스름한 털은 천막밖에서 비쳐들어오는 해빛에 비쳐 반짝반짝 빛나고있었는데 여름날 황혼녘의 불타는 노을을 방불케 했다. 거리썬커는 새끼엘크의 발굽에 무엇인가 뽈록 튀여나온것을 발견했다. 호기심이 동한 거리썬커는 조심스럽게 그곳을 만져보았다. 하지만 다른것은 만져지지 않고 나른한 발굽만 손에 맞혀왔다. 마치 잘 익은 밤톨 같았다. 뽈록 튀여나온 그 부분을 꼭 누르자 쏙 하고 들어가기까지 했다. 거리썬커는 소중한 골동품을 잘못 눌러 망가먹을가봐 두려운듯한 표정으로 손을 당겨왔다. 새끼엘크는 거리썬커의 그 행동에 놀라 눈을 뜨고 천천히 머리를 쳐들었다. 눈동자가 참 맑았다. 너무 맑아서 퐁퐁 솟아오르는 샘물을 방불케 했다. 그 눈에서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안이 졸졸 새여나와 더없이 불쌍하게 느껴졌다. 새끼엘크는 자기가 어떻게 그 생소한 세상으로 왔는지를 아는것 같지 않았다. 새끼엘크는 흠칫흠칫 놀라면서 몸을 일으키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거리썬커를 발견하고는 두려운듯 다시 조용해졌다. 새끼엘크는 귀엽게 생긴 머리를 조심스럽게 거리썬커에게 가져가서는 인사라도 하는듯 부드러운 혀를 나름거리며 거리썬커의 손을 찾았다. 또 거리썬커의 손가락을 빨려는것 같았다. 잠간후 새끼엘크는 머리를 배에 붙이고 바들바들 떨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새끼엘크는 단잠에 들었던지 꼬리 없는 사냥개가 천막밖에서 흉악스러운 눈길로 자주 천막안을 들여다보며 으르렁거리는것도 모르고있었다. 거리썬커는 번마다 꼬리 없는 사냥개를 제지시켰다. 꼬리 없는 사냥개는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모르고있었다. 그것은 꼬리 없는 사냥개의 직책이였던것이다. 꼬리 없는 사냥개는 삼림에 들어와 사람들과 함께 사냥을 하면서부터 그것을 자기의 운명으로 믿고있었다. 꼬리 없는 사냥개는 사냥물을 추격하여 면바로 대방의 몸에 덮쳐야 했고 그놈들의 뒤다리를 물어 뜯어야 했으며 더 좋기는 그놈들의 목줄을 물어 끊어야 했다. 그리고 일찍 동면에서 깨여난 곰이 숙영지를 습격할 때면 용감하게 맞받아 나가 등에 덮쳐 들어 게거품을 흘리면서 주인이 그놈에게 총을 쏘아 넘어뜨리기를 기다려야 했다. 그날밤, 거리썬커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갑자기 무엇인가가 넘어지는듯한 큰 소리에 잠에서 깨여난 거리썬커는 급히 침대머리에서 총을 찾아들었다. 하지만 그 소리가 천막안에서 울렸다는 생각이 인차 머리를 쳤다. 그렇다면 그것은 숙영지를 습격하러 내려온 곰이 한 짓이 아니라는 말이 되는것이다. 거리썬커는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초불을 붙였다. 귤색의 따뜻한 불꽃이 어두운 천막안을 밝혔다. 꿈속에서 보는듯한 정경이 펼쳐졌다. 새끼엘크가 삼림에서 길을 잃은듯 길다란 네다리를 바들바들 떨면서 하늘하늘 춤을 추는 초불을 불안한 눈길로 바라보고있었다. 그 눈에는 맑은 물이 가득 담겨 반짝이고있었다. 그때 새끼엘크는 난로옆에 서있었는데 가냘픈 그 모양은 처음으로 삼림에 들어갔다가 잘못을 저지른 어린애를 방불케 했다. 그놈의 발굽옆에는 차번져놓은 먹이그릇이 놓여져있었다. 한참이나 초불을 바라보던 새끼엘크는 초불에 대한 호기심을 접었는지 다시 먹이에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새끼엘크는 바닥에 널려진 밥덩이에 코를 대고 킁킁거렸다. 하지만 그놈은 바닥에 가득 널려있는 밥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를 아직 모르는것 같았다. “배가 고파?” 거리썬커는 자기가 무슨 생각으로 그 말을 했는지 의심스러웠다. 천막안에서 거리썬커는 보통 말을 하지 않았었다. 말을 하고싶지 않은것이 아니라 말할 기회가 없었던것이다. 심산속에 위치한 그 숙영지에서 거리썬커는 혼자 근 백마리에 달하는 순록을 방목하고있었다. 새끼엘크는 방금 난생 처음으로 사람의 목소리를 들었을것이다. 생소한 목소리, 생소한 환경에 불안해진 새끼엘크는 방금전의 그 소리를 더 똑똑히 들으려는듯 두귀를 쫑긋 치켜세웠다. 그것은 새끼엘크가 인류의 소리에 대한 첫 기억으로 될것이였다. 새끼엘크가 원하든 말든 그놈은 이미 인류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던것이다. 거리썬커는 병에 넣은 순록의 젖을 찾아냈다. 순록의 젖은 워낙 많지 않기에 평소에는 차를 끓일 때 조금씩 넣을뿐이였다. 전날에 짠 젖이였기에 벌써 얼마간 응고되여 있었다.  거리썬커는 손으로 한덩이를 떠서 들고 새끼엘크를 불렀다. 새끼엘크에게는 그때까지도 이름이 없었다. 만약 줄곧 어미엘크를 따라다녔다면 새끼엘크는 근본 이름이 필요없었을것이다. 엘크의 세계에서 그놈은 너무도 평범한 한마리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놈은 이미 인류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는지라 인류가 사는 방법대로 이름이 있어야 했다.  이름은 사람들이 그놈을 부를 때 꼭 필요한것이였다. 거리썬커는 그놈을 그냥 “작은 엘크”라 부르기로 했다. 순록의 젖은 작은 엘크에게 익숙한것이였다. 비록 어미엘크의 젖에서 나는 상큼한그 냄새와는 좀 달랐지만 그 시각 순록의 젖은 그처럼 작은 엘크의 구미를 당기고있었다. 작은 엘크는 천천히 거리썬커곁으로 다가와 혀를 내밀어 병을 핥고 빨아대기 시작했다. 병에 들어있는 순록의 젖을 단숨에 다 먹어치우지 못하는것이 한스러운것 같았다. 작은 엘크는 두눈을 지그시 감고 자기의 몸에서 벌어지고있는 모든것을 향수하는것만 같았다. 작은 엘크는 눈 한번 깜빡 할 새에 순록의 젖을 한병 굽을 냈다. 말끔하게 빨아 먹은 병을 당겨오자 작은 엘크는 머리를 들고 거리썬커를 쳐다보았다. 아직 배가 차지 않는 모양이였다. 전에 어미엘크의 젖을 마음대로 빨아먹던 작은 엘크는 종래로 그런 일을 당해본적이 없는것 같았다. 그곳으로 오기전 작은 엘크는 어미엘크의 젖이 영원히 마르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한것 같았다. 날이 이미 어두웠는지라 거리썬커는 밖에 나가 순록의 젖을 더 짜올수도 없었다. 긴긴밤, 배가 고파난 작은 엘크는 깊은 잠을 자지 못하고 천막안에서 분주하게 왔다 갔다를 반복했다. 천막안의 모든것이 점점 작은 엘크의 호기심을 유발하는것 같았다. 먹이그릇을 올려놓은 시렁이 너무 높아 작은 엘크는 도무지 입을 댈수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 냄새는 못 견디게 작은 엘크의 코를 파고들었다. 어둠속에서 그놈은 끝내 먹이그릇을 올려놓은 시렁을 걷어차 넘어뜨렸던것이다. 시렁우에 올려놓았던 소래며 병이며가 바닥에 가득 널렸다. 큰 일을 저질러 놓고도 작은 엘크는 진정하지 못하고 옆으로 비켜서서 여전히 허둥거렸다. 작은 엘크는 그것 역시 새로운 경험이라고 할수 있었다. 초불아래에서 작은 엘크는 바닥에 가득 널려있는 높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 그 물건들을 살펴보았다.  자연에서는 그러한 금속 부딪치는 소리를 들을수 없었던것이다. 거리썬커는 작은 엘크를 향해 상징적으로 한마디 소리치고는 다시 잠에 곯아떨어졌다. 그는 정말 눈을 뜨고싶지 않았던것이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거리썬커는 웬 재채기소리를 듣게 되였다. 거리썬커는 이상한 생각이 갈마들었다. 작은 엘크도 재채기를 할줄 안단 말인가? 거리썬커는 엘크가 재채기를 할줄 안다는 소리를 종래로 들어본적이 없었던것이다. 거리썬커는 손더듬으로 성냥을 찾아 초에 불을 붙였다. 거리썬커의 눈앞에는 폭풍이 스쳐지난듯한 살풍경스러운 장면이 펼쳐졌다. 밀가루포대가 찢어져 사처에 밀가루가 날려있었던것이다. 그리고 천막복판에 서있는 작은 엘크의 온몸에는 밀가루가 하얗게 들씌워져있었다. 그날밤, 거리썬커는 도무지 제대로 잠을 잘수 없었다. 작은 엘크는 한시도 진정하지 않고 련속 일을 쳤다. 그놈은 방금 물통을 번져놓는가싶더니 또 조심하지 않아 엉뎅이를 뻘겋게 달아오른 난로에 부딪쳐서 데기도 했다. 천막안은 작은 엘크의 털이 끄슬고 가죽이 익어번지는 이상한 냄새가 가득 찼다. 나중에 작은 엘크는 술통마저 차서 번져놓았다. 거리썬커는 별수 없이 끈을 찾아 그놈의 목을 비끌어매서 천막구석의 가름대에 묶어놓은후 초불을 불어껐다. 거리썬커는 사냥개가 작은 엘크를 물어 뜯어 내장을 파먹을가봐 감히 천막밖에는 내놓을수 없었다. 천막안은 잠시 안정을 찾았다. 거리썬커가 잠에 곯아떨어진지 얼마 안되여 갑자기 천막이 마구 흔들리기 시작했다. 놀라 깨여난 거리썬커는 일시 영문을 알수 없어 창문을 통해 천막밖을 내다보았다. 뭇별이 반짝이는 맑은 하늘이 창문으로 머리를 들이 밀었다. 귀를 기울여보아도 바람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천막은 왜 그렇게 흔들린것일가? 거리썬커는 피곤해서 몸도 가누기 힘들었지만 별수 없이 또 일어나서 초에 불을 붙였다. 거리썬커의 예산대로 작은 엘크가 밭갈이를 하는 둥굴소처럼 안간힘을 다해 자기의 목에 감겨진 줄을 끌어당기고있었던것이다. 그 바람에 크게 뜬 두눈이 뻘겋게 충혈되여있었고 배에는 굵은 피줄이 퍼렇게 살아나있었다. 끈은 이미 작은 엘크의 목부위의 털을 비집고 들어가 가죽을 죄이고있었다. 작은 엘크는 자기의 목을 죄이는 그 끈을 끊으려고 모지름을 쓰고있었다. 멀건 침이 그놈의 입귀를 타고 줄줄 흘러내렸다. 거리썬커는 그 작은 몸뚱이에서 나오는 힘에 천막이 흔들린다는것이 놀랍게 생각되였다. 거리썬커는 주저없이 작은 엘크쪽으로 다가갔다. 그놈의 목에 감긴 끈을 인차 풀어주지 않으면 그놈이 곧 목이 졸려 죽을것만 같았다. “죽여치워야 속이 시원할 놈 같으니라구.” 거리썬커는 중얼중얼 작은 엘크를 욕하기 시작했다. 끈이 작은 엘크의 목을 너무 꽁꽁 죄였기에 일시 거리썬커의 손가락이 들어갈 틈이 없었다. 하지만 작은 엘크는 여전히 젖 먹던 힘까지 다하고있었다. 거리썬커는 별수 없이 베개밑에서 사냥칼을 꺼내들었다. 끈이 너무 팽팽하게 죄여있었기에 칼날을 대자마자 툭 하고 끊어져버렸다. 작은 엘크는 끈이 끊어지는 속도 그대로 천막벽에 부딪쳤다. 다행히 범포로 만들어진 천막이였기에 작은 엘크는 어디도 다치지 않았다. 작은 엘크는 겨우 몸을 바로한후 크게 들숨을 들이쉬였다. 거리썬커는 그놈이 천막안의 공기를 다 마셔버리려는것이나 아닐가 하고 생각했다. 작은 엘크는 차츰 안정을 찾아갔다. 그놈은 비록 작은 체구였지만 절대로 그 어떤 속박도 받으려고 하지 않았던것이다. 그 일이 있은후 거리썬커는 다시 작은 엘크의 목을  끈으로 묶으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놈은 엘크였지 순록이 아니였던것이다. 동녘이 푸름푸름 밝아왔다. 푸르스름한 그 빛은 겨울날의 얼어붙은 수면을 방불케 했다. 작은 엘크는 다시 천막구석을 찾아 몸을 옹송그리고 잠이 들었다. 거리썬커도 너무나 힘들었다. 그는 자리에 눕자 마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거리썬커가 다시 눈을 떴을 때 태양은 창문을 비추고있었고 난로불은 진작 꺼져있었다. 하지만 창문으로 비쳐든 해볕때문에 거리썬커는 그닥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손가락이 몹시 차다고 느껴졌다. 거리썬커는 머리를 돌려서야 작은 엘크가 자기의 손가락을 빨고있음을 발견했다. 거리썬커가 손가락을 움직이자 작은 엘크는 손가락을 빨던 동작을 멈추고 불안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거리썬커는 빨리 일어나 난로에 불을 피우고 차물을 끓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 먼저 순록의 우리에 가서 젖을 짜와야 한다고 판단했다. 거리썬커는 일년 사계절 사람그림자 하나 없는 심산에서 순록을 돌보며 살아야 했다. 한두달에 한번씩 쌀이나 밀가루 그리고 소금과 같은 생활필수품을 올려다 주는 사람이 있었다. 가끔은 비닐주머니에다 흰술을 담아다줄 때도 있었다. 술은 숙영지로 들어오기만 하면  요귀처럼 거리썬커를 곤죽이 되도록 취하게 만들었다. 거리썬커는 번마다 많은 술을 마셨고 그 술은 거리썬커의 위에서 빨리 타번졌다. 술은 거리썬커의 몸을 활활 태워 재더미로 만들고싶어하는것 같았다. 거리썬커는 술에 취하기만 하면 산에서 뛰여노는 순록을 돌보는 일마저 까맣게 잊었고 순록이 달아난것을 발견하고는 끝도 없이 산을 찾아 헤매군했다. 그렇게 술에 취해 쓰러지는 순간은 거리썬커가 휴식을 하는 시간들인지도 몰랐다. 그런 시간들에야만 거리썬커는 비로소 모든 시름을 던져버리고 마음껏 휴식을 할수 있었다. 가끔 한번 취하면 일주일이나 깨지 못할 때도 있었다. 잠간 술을 깨는가싶으면 또 대량의 술을 마셔 사라지려던 화염을 활활 타오르게 했던것이다. 한주일후, 무연한 황야와도 같은 혼미에서 깨여난 거리썬커는 힘겹게 몸을 일으켜 강변으로 가서 물을 길어와야 했다. 그때면 버려진 숙영지와 같이 거칠은 얼굴이 수면에 삐끼군 했다. 거리썬커는 천막에 돌아와 차물을 끓여놓고 신선한 순록의 젖을 마셨다. 며칠이나 음식을 받지 못한 위가 반응을 하기 시작했다. 거리썬커는 연신 구역질을 했지만 파아란 담즙만 찔끔찔끔 올라올뿐이였다. 거리썬커에게 있어서 그것은 삼림에서의 생활의 일부분이라고 할수 있었다. 순록의 젖이 위에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 거리썬커는 다시 삼림에서의 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그 생활은 전에 아무것도 발생한적이 없는듯 그처럼 평범했다. 진종일 가도 숙영지에는 거리썬커와 순록과 꼬리 없는 사냥개뿐이였다. 거리썬커는 날마다 꼬리 없는 사냥개를 끌고 숙영지를 멀리 벗어난 순록을 찾아와야 했다. 작은 엘크의 돌연적인 출현은 거리썬커의 조용한 생활에 파문을 밀고왔다. 작은 엘크는 놀라운 속도로 커갔다. 얼마 안되여 작은 엘크는 거리썬커가 먹여주는 신선한 순록의 젖에 의탁하려고 하지 않았다. 작은 엘크는 어떤 먹이에나 왕성한 식욕을 보였다. “참, 대단해!” 거리썬커는 작은 엘크의 영원히 포만감을 모를것 같은 위를 두고 감탄하지 않을수 없었다. 작은 엘크의 세계에는 먹이밖에 없는것 같았다. 그의 모든 세상은 먹이를 둘러싸고 돌아가는듯싶었다. 그외 더 있다면 거리썬커라고 부르는 머리칼이 뿌옇게 세여가는 늙은일것이였다. 그 늙은이는 작은 엘크의 먹이의 원천이였다. 쌀밥, 남새, 고기… 어느 한가지도 마다하는것이 없었다. 작은 엘크의 위는 먹이가 들어가도 들어가도 채워지지 않는 끝없는 심연인듯싶었다. 숙영지에는 언제나 작은 엘크의 먹이가 충족했다. 거리썬커는 가끔 호기심이 동해 작은 엘크의 위가 도대체 얼마나 큰가를 실험해보고싶었다. 하여 작은 엘크가 마음대로 먹게 놔두기도 했다. 그때마다 거리썬커는 놀랍게 많은 수량의  먹이가 놀라운 속도로 눈앞에서 사라지는것을 놀랍게 지켜보아야만 했다. 거리썬커는 작은 엘크의 앞에 먹이가 있기만 하면 작은 엘크의 입이 영원히 닫겨지지 않을것이라고 판단했다. 지어 천막까지도 아작아작 다 먹어버릴것만 같았다. 거리썬커는 고무풍선처럼 똥똥 뿔어나는 작은 엘크의 배에 파아랗게 돋아나는 혈관을 보면서 감히 더 이상 지켜볼수만 없었다. 만약 자기가 제지시키지 않는다면 그놈은 배가 툭 터져버려도 계속 먹이를 먹어댈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엘크는 절대 먹이의 맛을 가늠하는것이 아니라 무작정 먹이를 위에 집어놓는것을 목적으로 하는것 같았다. 오직 눈앞에 보이는 먹이를 모두 배속에 집어넣어야 비로소 시름을 놓을것 같았다. 눈앞에 놓여져있던 먹이그릇이 굽을 보여서야 작은 엘크는 머리를 쳐들고 거리썬커를 바라보았다. 작은 엘크는 그제야 탐식에서 벗어나 현실세계로 돌아온듯싶었다. 하지만 작은 엘크의 현실세계에는 여전히 먹이가 모자라는듯싶었다. 먹이야, 먹이야. 다 어디로 갔느냐? 작은 엘크의 가련한 표정은 거리썬커에게 그렇게 묻는듯싶었다. 절대 더 먹일수 없었다. 거리썬커는 드디여 작은 엘크의 위의 크기를 시험해보자던 생각을 포기하고말았다.   2. 고요한 세계 가을날 아침, 작은 엘크는 투명하고 반짝이는 해빛아래 숙영지앞의 공지에 서서 몸뚱이와 어울리지 않게 큰 머리를 흔들어댔다. 작은 엘크의 머리는 어쩌면 너무나 많은 영양을 흡수한듯 했다. 하지만 작은 엘크는 그 큰 머리로 아직도 하루종일 뭘 하면서 놀가를 결정하지 못한듯싶었다. 가는 나무가지가 작은 엘크에게서 머지 않은 풀밭에 떨어지면서 낮은 소리를 냈다. 작은 엘크는 놀라운듯 머리를 쳐들었다. 순간 삼림세계에서 극히 평범하지만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주는 그 장면을 보게 되였다. 넋을 잃은듯한 친칠라 한마리가 용수철같은 등허리를 잔뜩 쳐들고 키가 큰 락엽송줄기를 미친듯이 기여올랐다. 그뒤로 털색이 알록달록한 꿩매가 놀라운 비행기교를 발휘하여 친칠라를 쫓아 나무주위를 뱅뱅 돌아쳤다. 그렇게 고속비행을 할수 있는 맹금들은 날렵한 날개와 길고 가는 꼬리로 빼곡한 나무가지사이를 마음대로 날아다니며 수렵물을 공격할수 있었다. 꿩매는 부지런히 날개를 퍼덕이면서 보슬보슬한 털을 가진 친칠라의 뒤를 바싹 쫓았다. 조류의 세계에서 아마도 꿩매만이 그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수렵물을 쫓아 잡을것이다. 매나 독수리 같은 대형의 맹금들은 감히 그러한 환경에서 사냥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할것이다. 그놈들은 힘이 무진장 하지만 령민성은 부족해서 걸핏하면 빽빽한 나무가지에 부딪쳐 목을 끊어먹을수 있었던것이다. 그것은 삼림에서 늘 볼수있는 장면이였다. 친칠라는 반드시 꿩매보다 더 빨리 달려야 생명을 부지할수 있었다. 반면에 꿩매는 친칠라보다 더 빨리 날아야 수렵물을 사냥해서 허기진 배를 달랠수 있었다. 이것은 삼림에서의 생존법칙이였다. 머리를 잔뜩 쳐들고 쫓고 쫓기는 친칠라와 꿩매의 사투를 지켜보고있던 작은 엘크는 천막쪽에서 거리썬커가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작은 엘크는 거리썬커를 따라 삼림에 들어온후 그러한 부름이 먹이와 련결되여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작은 엘크는 나무우에서 펼쳐지는 친칠라와 꿩매의 사투에 흥미를 잃고 모락모락 연기가 피여오르는 천막으로 네다리를 날렸다. 천막은 안온함을 의미하는 곳이였고 먹이를 상징하는 곳이였다. 그날아침, 작은 엘크는 단번에 큼직한 소래에 담겨져있는 입쌀죽을 다 먹었고 또 제일 큰 빵도 두개나 먹어버렸다. 배 부르게 먹이를 먹고난 작은 엘크는 천막앞에서 고무풍선처럼 똥똥하게 불어난 배를 땅에 딱붙이고 엎드려 해볕을 쪼였다. 그 모양은 다리가 가늘고 배가 큰 게으른 거미를 방불케 했다. 작은 엘크는 그렇게 숙영지에서 입쌀죽을 한 소래씩 먹어치우는 하나 또 하나의 행복한 아침을 맞았고 아무 할 일도 없는 하루 또 하루의 무료한 낮시간들을 허송했으며 활활 피여오르는 난로불로 따뜻한 천막의 밤을 보냈다. 숙영지의 생활에 습관이 된 작은 엘크는 차츰 뼈가 굵어갔다. 작은 엘크는 순록무리와 함께 숙영지와 멀리 떨어진 곳까지도 갈수 있었다. 체형상으로 볼 때 엘크는 순록들과 같은 과에 속하는 동물이였다. 오랜시간 동안 작은 엘크는 자기를 순록이라고 믿고있은것 같았다. 어릴 때 어미엘크와 함께 했던 그 약간의 기억마저 시간의 흐름과 함께 말끔히 사라져버린듯 했다. 아침마다 작은 엘크는 순록무리들과 함께 숙영지를 떠나 깊은 삼림속으로 들어갔다. 이미 야성을 상실한 순록들이 머리를 숙이고 날렵하게 입술을 움직여 땅에서 리트머스이끼(石蕊)나 지의류를 찾아 먹을 때면 그뒤를 따라가는 작은 엘크는 막연한 눈길로 그놈들을 바라볼뿐이였다. 작은 엘크는 머리를 숙여 그런것들을 직접 뜯어 먹지 않고도 자기의 위가 근본 그런 식물들을 받아당할수 없다는것을 잘 알고있는듯 했다. 그때 작은 엘크는 이미 진정으로 황야를 떠나있었지만 그의 몸에 잠재해있는 본능은 그에게 먹이가 눈앞에 널려있다고 암시를 하고있었다. 작은 엘크는 시력이 그닥 좋지 않은 자기의 두눈보다 코를 더 믿었다. 작은 엘크는 인차 자기만의 세계를 찾은듯싶었다. 작은 엘크가 머리를 쳐들기만 하면 자작나무며 백양나무며 관목과 같은 나무의 새싹들이 그의 입에 닿을수 있었다. 작은 엘크는 도톰한 입술을 벌려 수지향이 짙게 풍기는 파릇파릇한 나무잎을 입에 넣으면 될것이였다. 작은 엘크는 그것이야 말로 자기의 훌륭한 먹이라고 알고있었다.  누구도 작은 엘크에게 그 같은 나무잎이나 싹을 먹어야 한다고 배워준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몸에 숨어있는 본능의 지배아래 무성한 삼림에서 자기에게 적합한 먹이를 더 많이 찾으려고 애쓰게 되였던것이다. 거리썬커는 차츰 작은 엘크가 이미 야생의 엘크들이 오래동안 이어오던 식습관에 적응되였다는것을 발견하게 되였다. 하기에 작은 엘크는 순록들과 함께 삼림으로 가도 절대 순록들과 먹이를 쟁탈하지 않을것이라고 믿었다. 그들에게는 필경 서로의 부동한 먹이가 있었던것이다. 사람들이 먹는 음식은 작은 엘크의 간식으로 될수도 있었다. 그는 빵이며 구은 만두며 밀가루국수 같은 음식도 절대 거절하는 법이 없었다. 그러한 음식들은 작은 엘크의 몸을 부단히 변화시켜주는것 같았다. 거리썬커는 작은 엘크가 어릴 때 가지고있던 적갈색의 털이 차츰 황혼빛을 방불케 하는 짙은 갈색으로 변한것을 발견했다. 동시에 영양이 충족하여 털에 기름기가 흘렀는데 비단필처럼 윤기가 돌았다. 작은 엘크에게 있어서 변화는 털뿐만이 아니였다. 그놈의 체구도 튼실하게 변해갔는데 다리는 길었고 키는 다 큰 순록과 비슷했다. 다만 체중이 보통 순록들보다 좀 가벼울뿐이였다. 거리썬커는 작은 엘크가 야생의 같은 나이의 엘크들보다 크고 튼실하다고 생각했다. 작은 엘크가 그처럼 빨리 크기 시작하기전에 거리썬커는 그놈이 인차 천막생활에 작응하는것을 보고 잠간 놀랐을뿐이였다. 밤이면 작은 엘크는 머리로 천막문을 막은 커튼을 밀어 열고는 밖으로 나가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잠간후 관목림에서는 개울물 흐르는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오줌 누는 소리였다. 작은 엘크는 오줌도 참 오래 누었다. 한번은 거리썬커가 그 시간을 재여보았는데 2분도 더 되였다. 그놈의 방광도 위처럼 큰것 같았다. 작은 엘크는 오줌을 다 눈후 한몸 가득 한기를 안고 천막안에 들어와 난로곁의 따스한 곳을 찾아 다시 꿈나라에 들어가군 했다. 작은 엘크는 자기의 성장을 의식하지 못하고 자기가 그냥 새끼라고만 생각하는것 같았다. 하지만 작은 엘크는 사실 날마다 몰라보게 자라갔다. 작은 엘크는 계속 천막안에서 거리썬커와 함께 지내려고 했다. 하지만 천막은 이미 작은 엘크를 용납하기에 너무 작았다. 작은 엘크가 육중한 몸을 움직일라치면 가끔은 엉뎅이로 난로를 쳐서 비뚤게 만들어놓을 때도 있었다. 그러면 난로안에서 나온 까만 재들이 천막안을  뽀얗게 어질러 놓았다. 그런것에 이미 습관이 된 작은 엘크는 아무 일도 없었던듯이 천막의 여지저기를 헤집고 다니다가 물통에 주저앉기도 했다. 물통이 큰 소리를 내며 넘어지면 작은 엘크는 약간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기여 일어났다. 하지만 물통은 이미 세찬 바람을 만난 종이함처럼 찌그러진 뒤였다. 작은 엘크는 평소 늘 조심하느라 했지만 천막안은 언제나 코끼리가 도자기상점에 들어간 판국으로 하루에도 몇번씩 먹이그릇이 나뒹굴고 시렁이 넘어지면서 소래며 사발과 같은것들이 바닥에 널렸다. 달빛이 교교하던 어느날저녁, 거리썬커는 끝내 작은 엘크를 천막에서 쫓아냈다. 작은 엘크는 기어코 다시 천막안으로 들어가려고 부득부득 애를 썼다. 하지만 거리썬커가 끈으로 천막문을 막은 커튼을 고정시켜 놓은데서 작은 엘크는 도무지 소원성취를 할수 없었다. 작은 엘크가 고정한 커튼쯤으로 머리를 들이밀어 천막안을 살필라치면 거리썬커는 인차 묵직한 장작가지를 뿌렸다. 작은 엘크는 별수 없이 천막안으로 들어가려는 생각을 포기하는듯싶었다. 하지만 그놈은 천막밖에서 시종 고통스러운 신음을 했다. 거리썬커는 창문을 통해 작은 엘크가 분노에 찬 눈길로 지나가는 순록을 막아서서 으르렁 거리는것을 보았다. 작은 엘크는 긴긴 밤을 패며 천막주변을 분주하게 돌아쳤다. 이튿날아침, 날이 채 밝지도 않았지만 거리썬커는 자리에서 일어나 난로를 피우려고 커튼을 고정한 끈을 풀었다. 천막주변에서 작은 엘크를 찾을수 없었다. 거리썬커는 급히 작은 엘크를 찾아나섰다. 다행이 멀지 않은 관목숲에서 작은 엘크의 재빛 륜곽이 보여왔다. 털끝에는 온통 이슬이 덮여있었다. 작은 엘크는 거리썬커를 향해 다가오는듯싶더니 못 본듯 그의 옆을 스쳐지났다. 작은 엘크는 그때까지도 거리썬커에게 화를 내고있는것 같았다.  작은 엘크는 관목숲에서 밤을 낸 모양이였다. 관목숲에서의 그 첫날밤이 상상처럼 그렇게 무섭지는 않은듯 했다. 그날부터 작은 엘크는 다시 낮고 비좁은 천막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간혹 천막안에 머리를 들이밀고 살피기는 했지만 그것 역시 천막안에서 풍기는 먹이냄새의 유혹때문이였다. 작은 엘크는 나날이 숙영지에서의 생활에 습관되여갔다. 날마다 황혼이 되여 천막마다에서 모락모락 밥 짓는 연기가 피여오를 때면 커다란 몸뚱이의 작은 엘크는 순록무리들과 함께 천천히 숙영지로 돌아왔다. 숙영지에 어둠이 깃들어도 순록들은 여전히 밖에서 서성대기를 좋아했다. 그놈들도 자기들에게 위협으로 되는 야수들이 사람과 사람들이 사용하는 불을 제일 무서워하고있다는것을 아는듯싶었다. 하기에 순록들은 사람이 살고있는 숙영지를  안전지대로 생각하고있었다. 숙영지보다 삼림을 더 좋아하는 순록들도 가끔씩 있었지만 그들도 나중에는 숙영지로 돌아왔다. 거리썬커는 한무리의 흘갈색 순록무리가 멀리에서 숙영지를 향해 다가오는것을 바라보았다. 그놈들은 삼림에서 뭉게뭉게 떠다니는 연무를 방불케 했다. 그 몽롱한 연무속에서 한줄기의 밝은 불꽃이 타오르고있었는데 그 색갈은 마치도 용해된 동을 보는듯싶었다. 그것은 바로 순록무리에 서있는 작은 엘크의 털색이였다. 숙영지에 돌아온후이면 순록들은 인차 제각기 흩어졌지만 작은 엘크는 천천히 천막앞으로 다가가 큼직한 머리를 어둠침침한 천막에 들이밀고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거리썬커를 찾는것 같았다. 만약 그때 거리썬커가 천막안에 있다면 작은 엘크에게 빵과 같은 먹이를 던져주었을것이다. 그것은 작은 엘크만이 누릴수 있는 특권이였다. 그것도 아니라면 작은 엘크는 기어코 천막안에 들어가려고 했을것이다. 만약 거리썬커가 천막안에 없다면 작은 엘크는 천막어구에 잠간 앉아있다가 마당으로 나가서 조용히 그를 기다렸을것이다. 그렇게 무작정 거리썬커를 기다릴 때면 작은 엘크는 반혼미상태에 들어간듯 머리를 푹 숙이고 두귀를 떨어뜨리고 앉아 두눈을 반쯤 감고 졸음에 빠져있었다. 하지만 그날, 작은 엘크는 무슨 동정인가를 들은듯 갑자기 머리를 번쩍 쳐들고 소리나는 쪽을 살폈다. 작은 엘크는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소리나는 방향이 삼림속의 어느 구석이라는것을 확인한 작은 엘크는 껑충껑충 그쪽으로 뛰여갔다. 작은 엘크의 네다리는 길고 튼실했는데 고요한 수면을 가르고 나가는 전투함을 방불케 했다. 작은 엘크는 중도에 거리썬커와 그의 뒤를 따르는 꼬리 없는 사냥개를 만났다. 작은 엘크는 자기의 몸뚱이가 얼마나 컸다는것을 조금도 모르는듯 주인을 만난 강아지마냥 거리썬커에게  매달렸다. 작은 엘크는 연신 킁킁 거리면서 큼직한 머리를 거리썬커의 가슴에다 마구 부볐다. 진종일 삼림을 누비고 다니느라 지칠대로 지친 꼬리 없는 사냥개는 못마당한듯한 눈길로 작은 엘크를 쏘아보면서 으르렁거렸다. 거리썬커는 총에 재웠던 탄알을 뽑았다. 작은 엘크가 잘못해서 방아쇠를 당기기라도 한다면 큰 일을 칠수 있기때문이였다. 그후 거리썬커는 스스로 여전히 새끼라고 자처하고있는 커다란 몸뚱이의 작은 엘크를 몇마디 훈계했다. 그 바람에 하늘을 찌를것 같던 그놈의 열정이 좀 식은것 같았다. 작은 엘크는 커다란 몸뚱이를 끌고 강아지마냥 거리썬커의 뒤를 졸졸 따라 황혼의 깃드는 숙영지로 돌아갔다. 작은 엘크는 처음에 물에 대하여 특수한 느낌이 없었다. 작은 엘크는 가끔 강을 건너거나 못을 가로지날 때면 설레이는 수면을 바라보면서 공포를 느낄 때도 있었고 커다란 즐거움을 느낄 때도 있었다. 그놈은 자기도 순록과 꼭 같다고 생각하면서 오직 륙지만이 제일 안전한 곳이라고 믿는것 같았다. 작은 엘크의 몸에 숨어있던 야수의 본능은 종래로 그를 포기한적이 없는것 같았다. 작은 엘크는 언제나 속에서 꿈틀대고있는 그 욕망을 느끼고있었다. 그는 야드르르한 나무가지나 싹만 아니라 다른 먹이도 굶주림을 달랠수 있다는것을 알고있었다. 작은 엘크는 인차 새로운 먹이들을 발견하게 되였다.  강변이나 못 곁은 작은 엘크가 먹이를 찾는 새로운 지점으로 되였다. 수련이며 가래며 향포며 부평초며… 먹을만한것들이 참 많았다. 처음에 작은 엘크는 무릎까지 오는 물에 들어가서 헤맸지만 차츰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작은 엘크의 넓은 발굽은 바로 그때를 위해 준비된것 같았다. 두쪽으로 갈라진 발굽은 그놈의 큰 몸뚱이를 받아당하는데 유리했을뿐만아니라 수렁에 쉽게 빠져들지 않게 해주었다. 딱 한번, 작은 엘크는 급히 몸을 앞으로 내밀어 향포를 뜯어 먹으려 하다가 발을 헛디뎌 강에 빠진적이 있었다. 강물은 삽시에 작은 엘크의 몸뚱이를 삼켰다. 작은 엘크는 안간힘을 다해 네다리를 허둥거렸다. 작은 엘크는 몇초동안 그렇게 허우적거리다가 갑자기 스스로 코구멍을 딱 막을수 있다는것을 발견하게 되였다. 그리고 처음에 황급히 허둥거려지던 네다리가 노대처럼 조화롭게 저어지는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하여 작은 엘크는 손쉽게 물을 가르며 강역으로 헤여 나가 신선한 공기를 길게 들이마셨다. 작은 엘크는 천성적으로 헤염을 칠줄 알고있었던것이다. 조물주는 세상만물을 만들 때 작은 엘크에게 그러한 재간을 선물한것 같았다. 모기와 말파리들이 안개처럼 뽀얗게 하늘을 덮으며 날아와 작은 엘크의 몸뚱이에 덮쳐들어 피를 빨아댔다. 말파리는 지어 알을 순록의 코구멍에 쓸어놓기도 했다. 말파리알은 순록의 코구멍에서 까난후 큰 말파리로 자라서야 날아나왔다. 말파리알이 코구멍에서 까나고 자라는 동안 순록은 불편하여 끊임없이 재채기를 해댔다. 모기며 말파리들이 날치는 밤이면 거리썬커는 늘 지의류와 젖은 나무로 불을 피워 연기를 쏘여주었다. 하지만 웬간해서는 모기나 말파리들을 쫓는데 별 작용이 없었다. 일부 순록들은 모기나 말파리의 습격을 너무도 참기 바빠 삼림속에서 미친듯이 뛰여다니기도 했다. 물론 대부분의 순록들은 그놈들의 습격을 참으면서 억지로 참을 청하다가도 극도에 달하면 부르르 머리를 털어댈뿐이였다. 그만치 순록들은 풍성한 털과 두터운 가죽을 가지고있었던것이다. 그러한 날밤이면 작은 엘크는 혼자서 숙영지를 벗어나 강변을 향해 발걸음을 재우쳤다. 하늘 가득히 반짝이는 별무리며 교교한 달빛아래 반짝이는 보석과도 같은 이슬방울은 작은 엘크의 발걸음을 여간만 흥겹게 하지 않았다. 그것은 작은 엘크가 모기며 말파리와 같은 해충을 피할수 있는 성지와도 같은 곳이였다. 작은 엘크가 강변으로 오는 동안에도 모기나 말파리는 놓치지 않고 쫓아와 여간만 성가스러운것이 아니였다.  부드러운 달빛아래에서 반짝이는 강물을 보게 된 작은 엘크는 주저할 새 없이 강둑을 내려가 물에 들어섰다. 작은 엘크는 한참 등을 물에 잠그고있다가 아예 머리까지 물속에 쑥 집어넣었다. 미친듯이 달려들어 피를 빨아 먹던 모기나 말파리들은 갑자기 물속으로 들어간 작은 엘크로 하여 어쩔바를 몰라했다. 물은 모기나 말파리들의 천적이였다. 자기들에게 신선한 피를 공급하던 작은 엘크가 순식간에 물속에 사라지자 모기나 말파리들은 별수없이 오던 길을 따라 되돌아가 다른 목표물을 찾을수밖에 없었다. 하긴 크게 실망할것도 없었다. 그놈들은 돌아가는 길에 관목림에 들렸다가 달빛을 빌어 먹이를 찾으러 나온 마록을 만날수 있었던것이다. 잠간후 작은 엘크는 물속에서 머리를 쳐들었다. 물방울이 작은 엘크의 머리에 자란 손바닥만한 뿔에서 줄줄 흘러내렸다. 작은 엘크의 입에는 어느새 신선한 수초가 가득 물려있었다. 작은 엘크는 긴긴밤을 시원하게 물속에서 보내면서 수초를 뜯어 먹었다. 작은 엘크는 동녘이 푸름푸름 밝아서야 아쉬운 표정으로 강변에 올라왔다. 삼림에서 일찍 깨여난 새들이 지저귀면서  숙영지로 날아가고있었다. 작은 엘크는 거리썬커가 아침에 사람들이 먹는 탄수화물이 많이 들어있는 먹이를 줄것을 바랐다. 그날, 거리썬커는 무리를 떨어져 흑룡강경내에 들어간 순록을 찾기 위해 옹근 하루를 헤매고 다녔었다. 어둠이 깃들어서야 거리썬커는 흑룡강경내에서 찾아낸 순록들을 끌고 숙영지로 돌아오고있었다. 그들이 고요한 강가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꼬리 없는 사냥개가 무엇인가를 발견했는지 무섭게 으르렁거리더니 뚫어져라 수면을 바라보는것이였다. 거리썬커는 일시 꼬리 없는 사냥개의 행동이 무엇을 설명하는지를 알수 없었다. 절대 사냥물을 발견했을 때 하는 행동은 아니였다. 하지만 무엇엔가 유혹된것만은 틀림없었다. 거리썬커는 꼬리 없는 사냥개가 멋쩍은듯 머리를 젓는것을 발견했다. 어쩌면 공기중에 있는 무슨 냄새를 몰아가기라도 하려는것 같았다. 이어 꼬리 없는 사냥개는 머리를 돌리고 숙영지방향으로  달려갔다. 거리썬커는 꼬리 없는 사냥개가 피곤해서 그럴것이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강변을 따라 얼마 가지 않았을 때 강에서 물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이어 물속에서 커다란 몸뚱이를 가진 록색 털의 괴물이 솟아올랐다. 당황해난 거리썬커는 인차 어깨에 멘 총을 내리워 들었다. 하지만 그 록색의 털은 인차 떨어져 내리고 큰 코를 가진 머리 하나가 나타났다. 작은 엘크였다. 그때 그놈의 머리에 난 뿔에는 아름다운 수련이 걸려있었다.  작은 엘크는 쩝쩝 무엇인가를 씹고있었는데 록색의 즙이 그놈의 입가에서 줄줄 흘러내렸다. 작은 엘크는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려다가 거리썬커를 발견했다. 작은 엘크는 성큼성큼 강변으로 올라와 요란하게 몸을 떨면서 사처에 물방울을 튕겨놓았다. 작은 엘크는 생각밖의 지점에서 주인을 만난것이 그처럼 반가운지 도무지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는 표정이였다. 작은 엘크는 단숨에 거리썬커의 가슴에 덮쳤다. 사냥물을 덮치는 온몸이 물에 젖은 악어를 방불케 했다. 작은 엘크는 거리썬커가 큰 소리로 제지시켜서야 겨우 흥분을 가라앉혔다. 하지만 커리썬커의 옷은 몽땅 젖어버렸다. 3. 가을날의 힘겨운 그 순간들 작은 엘크는 또 하나의 가을을 맞아왔다. 가을은 삼림에서 제일 고요하고 풍요로운 계절이였다.  락엽송은 하루밤사이에 빠알갛게 타오르기 시작하여 봄날보다 더 생기로 차넘치는 경상을 연출했다. 하늘이 높고 푸르렀다. 해빛은 공기가 투명함에 따라 더욱 풍부한 침투력을 가지는것 같았다. 단풍 든 나무잎들이 맑은 개울물에 떨어져내렸다가 눈 깜빡 할 새에 어디론가 흘러가버렸다. 삼림의 모든것이 안정적이고 따스해보였다. 동물들은 차디찬 북방의 겨울이 돌아오기전에 에너지를 보충하느라고 바빴다. 숙영지의 순록들도 더 이상 곰들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 가을이면 곰들은 열매가 주렁진 관목림에 들어앉아 과즙이 줄줄 흐르는 과일들을 만포식했다. 당분이 많은 그런 과일들은 곰의 배에 들어가 풍부한 지방으로 되여 자리를 잡았다. 첫눈이 내리면 피둥피둥 살이 찐 곰들은 바람을 피할수 있는 나무구멍을 찾아 동면을 하면서 옹근 겨울을 나군 한다. 과일로 축적된 지방으로 곰들은 이듬해 봄까지 버틴다.  눈이 녹아 흐르는 물방울들이 동면에 처한 곰들을 깨운다. 메돼지는 오래동안 개암나무숲을 헤맨다. 탱글탱글 잘 여문 개암을 실컷 주어먹은 메돼지들은 식곤증이 도발해서 나무아래에 들어누워 잠을 잘 때도 있다. 하지만 그놈들은 눈을 뜨기 바쁘게 또 먹이를 주어 먹는다. 갈비대밑에 지방이 두둑하게 올라붙을 때까지 그들은 끊이지 않고 먹이를 주어 먹는다. 삼림의 가을에서 제일 분망한 놈은 그래도 다람쥐라고 해야할것이다. 그놈들은 놀라운 속도로 잘 염근 여러가지 종자들을 굴속으로 끌어들인다. 곧 찾아오게 될 겨울을 위해 먹이장만을 하는것이다. 계절의 신비한 유혹때문인지 부끄럼을 잘 타고 담이 작은 고라니까지도 삼림의 하늘을 가득 메우며 날아예는 고추잠자리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사람들이 가까이 가면 흠칫 놀라면서 어디론가 사라져버린다. 작은 엘크는 사실 계절의 변화에 대하여 그렇게 민감한것은 아니였다. 그놈은 늘 할일없이 강가에 앉아있다가는 물에 들어가 수초나 향포를 뜯어 먹은후 숙영지로 돌아가 물에 젖은 몸뚱이를 말리우고 모래불에서 한참씩 싱갱이질을 하고는 또 삼림에 들어가 먹이를 찾아헤맸다.  삼림이 큰지라 어디를 가도 먹이를 찾을수 있었다. 작은 엘크는 날마다 배가 떡 벌어져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다녔다. 작은 엘크는 가끔 혼자 삼림에 들어가 염기구덩이를 찾거나 순록의 무리를 멀리 떨어져 강이나 못가에서 배회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시간은 순록들과 함께 했다. 작은 엘크는 매일 순록들과 함께 숙영지부근에서 먹이를 찾다가도 황혼녘이면 불타는 석양을 멍하니 바라보군 했다. 거리썬커가 소금주머니를 흔들어 내는 소리가 들리기만 하면 작은 엘크는 순록들과 함께 나무사이를 꿰질러 황급히  그곳에 도착한후 앞다투어 거리썬커의 손에서 소금알갱이를 핥아 먹군 했다. 작은 엘크도 삼림의 모든 동물들과 똑 같이 광물질과 무기염에 대한 욕구를 극복할수 없었다. 작은 엘크는 어느새 순록중에서 제일 큰 수순록보다도 더 몸집이 더 크게 자라났다. 머리에 자란 뿔도 놀랍게 컸는데 사람들은 그 뿔이 작은 엘크의 머리를 눌러 쳐들수 없게 할가봐 근심했다. 작은 엘크가 믿건 말건 황야의 기아인 엘크의 몸에서 야성은 이미 사라지고말았지만 야수와도 같은 외형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작은 엘크는 나날이 튼실하게 변하고있었다. 목덜미의 가죽은 하루 다르게 처져내렸는데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 작은 엘크는 가려운데를 긁으려고 사발아구리만큼  굵은 마른 나무에다 썩썩 몸뚱이를 비볐다. 얼마 힘을 쓰지 않은것 같았는데 그 마른 나무가 우찌끈 끊어지고말았다. 작은 엘크에게는 어느새 놀라운 힘이 자라있었던것이다. 그 엄청난 힘은 작은 엘크에게 있어서 판도라의 상자와도 같은것이였다. 하지만 작은 엘크는 그 상자를 어떻게 열어야 하는지 모르고있었다. 작은 엘크는 아직 다 크지 못한 새끼였다. 하지만 해마다 9월이 돌아와 일종의 욕망때문에 흥분하고있는 수놈들의 목이 차츰 실해지고 그놈들이 먹이사슬끝에 처한 육식동물들처럼 거칠게 부르짖을 때 그리고 진종일 두눈을 붉히며 암사슴을 쫓아다닐 때 작은 엘크는 어김없이 그놈들의 눈에 든 가시처럼 치부되였다. 어쩌면 모든 수놈들이 자기들 순록무리에 몸집이 굉장하게 큰 적수가 숨어있다는것을 아는것 같았다. 작은 엘크가 순록무리에 나타나기만 하면 그놈들은 힘을 합쳐 쫓아내려고 노력했다. 순록들의 뿔에 찔려 온몸에 상처를 입은 작은 엘크는 풀이 죽어 삼림속으로 깊이 들어가 몸을 숨길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타래쳐오르는 욕망을 주체할수 없어 두눈이 뻘개진 수놈들은 웬간해서는 작은 엘크를 놓아주려고 하지 않았다. 작은 엘크는 별수없이 강변으로 피신해서 강물에 뛰여들어갈수밖에 없었다. 수놈들은 그제야 더 이상 작은 엘크를 쫓을 용기가 없었던지 몸을 돌려 다른 목표물을 찾아 떠났다. 작은 엘크는 날마다 변해가는 세상을 제대로 리해할수 없었다. 평소 그렇게 온순하던 수놈들이 왜 갑자기 흉악하게 변한것일가? 그놈들이 흥분할 때면 바위라도 뚫고 지나갈것만 같았던것이다. 작은 엘크는 물속에 서서 수놈들이 당당한 기세로 삼림을 향해 달려가는 뒤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작은 엘크는 수놈들이 다시 돌아올가봐 두려워 감히 언덕에 오를수 없었다. 만약 그놈들이 다시 자기를 쫓아온다면 작은 엘크는 그놈들의 발톱에서 벗어날 자신이 없을것 같았다. 작은 엘크는 물속에 오래도록 서있다가 날이 어두워서야 조심스럽게 역에 올라와 몸에 묻은 물방울을 털고 발볌발볌 숙영지를 향해 다가갔다. 하지만 수놈들은 다시 작은 엘크의 냄새를 맡고 쫓기 시작했다. 작은 엘크의 피난처는 강뿐이였다. 하지만 늦가을의 강물은 이미 살을 에이는듯 차가왔다. 그러한 일은 하루에도 5, 6차례씩 반복되였다. 해마다 순록이 발정하는 계절이면 작은 엘크는 늘 불안한 순간들을 보내야 했다. 갑자기 덮쳐드는 수순록들을 피하기 위하여 작은 엘크는 낮이면 숙영지를 멀리 떠났다가 날이 어두워야 천막부근으로 돌아와 먹이를 얻어 먹었다. 그러한 나날은 순록들의 발정기가 끝날 때까지 계속되였다.   첫눈이 내려야 수순록들을 흥분에 떨게 하던 호르몬이 차츰 소실되는것 같았다. 작은 엘크는 그제야 다시 순록들의 무리에 끼여 안정된 생활을 할수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것은 순록들의 발정기가 일년에 한번뿐인것이였다. 작은 엘크가 세살에 나던 그해 가을, 순록들의 발정기가 되였다. 하루밤사이에 수놈들은 집단적으로 미쳐난듯싶었다. 전날밤에만 해도 그놈들은 여전히 얌전한 순록이였다. 하지만 이튿날아침에 잠에서 깨자 그놈들은 활활 타는듯한 눈길로 작은 엘크를 노려보았다. 그놈들은 차츰 작은 엘크를 조여오기 시작했다. 제일 처음 작은 엘크를 공격한것은 수순록중에서 몸집이 제일 큰 놈이였다. 그놈은 작은 엘크의 옆으로부터 갑자기 덮쳐들었다. 뿔은 사정없이 작은 엘크의 옆구리를 찔렀다. 아무 방비도 없이 서있던 작은 엘크는 소리 한번 지르지 못하고 옆으로 훌렁 나가 번져졌다. 하지만 엄청난 힘을 가지고있는 작은 엘크는 아무일도 없었던듯 다시 기여일어났다.  그때까지도 작은 엘크는 자기의 신변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있는지를 모르고있었다. 지난해 가을, 순록들의 발정기에 껶었던 그 아픈 추억들이 차츰 머리속에서 사라져버렸던것이다. 그해는 날씨가 일찍 차가와져서인지 순록들의 발정기도 앞당겨진듯싶었다. 먼저 작은 엘크를 공격했던 그 수놈은 자기의 공격이 큰 작용을 일으키지 못한것을 보고 분노해서 자세를 바로 잡고는 다시한번 덮쳐들었다. 돌연적인 공격에 깜짝 놀란 작은 엘크는 본능적으로 머리를 숙여 뿔로 그놈의 공격을 막아냈다. 작은 엘크와  비교해볼 때 그놈의 힘은 많이 부족해보였다. 그번 공격으로 하여 수놈은 머리가 핑핑 돌아가는듯 아팠지만 작은 엘크는 수놈의 뿌리와 엉켰던 자기의 뿌리를 픽 돌려뽑아냈다. 그 바람에 몇백근이나 되는 수놈이 한켠으로 뿌리워나가 쓰러졌다. 그놈이 다시 일어났을 때 작은 엘크는 보란듯이 머리를 떡하니 쳐들고있었다. 그 순간 작은 엘크는 갑자기 자기의 힘을 발견하게 되였다. 여태껏 자기밖에 없는듯 시뚝거리던 순록들이 그처럼 무맥하다는것에 놀랐다. 작은 엘크는 자기에게 황야에서 온 무한한 힘이 있고 돌멩이같은 몸뚱이가 있으며 튼튼한 목덜미가 있고 큼직한 발굽이 있다는것을 발견하게 되였다. 수놈은 실패를 승인하는듯 머리를 푹숙이고 돌아섰다. 하지만 겨룸이 끝난것은 아니였다. 순록무리에 있는 모든 수놈들이 작은 엘크를 적수로 생각했던것이다. 한마리 또 한마리의 수놈이 작은 엘크에게 공격을 시도했다. 그것은 영원히 끝이 없는 결투와 같이 느껴졌다. 작은 엘크가 금방 한놈을 쓰러뜨리고 자세도 바로 잡지 못하고있을 때 또 다른 놈이 뿌리를 세워들고 공격해왔다. 결투는 점점 더 치렬해졌다. 처음에 옆에서 구경만 하던 거리썬커는 더 이상 보고만 있을수 없어 나무가지를 찾아들고 수놈들을 쫓아냈다. 거리썬커가 금방 천막에 들어가면 수놈들은 또 다시 작은 엘크에게 모여들었다. 거리썬커도 두눈이 충혈되여 미쳐날뛰는 그놈들을 더 이상 어쩔 방법이 없었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작은 엘크가 손해를 볼 일은 없을것 같았다. 되려 결투에서 작은 엘크가 최선을 다하는것 같지 않았다. 작은 엘크는 수놈들을 물어 땅에 메치기는 했지만 웬지 요해부위를 물어 뜯으려고 하지 않았다. 결투는 긴긴 밤을 이어졌다. 컴컴한 삼림은 그놈들이 물고 뜯는 소리로 아비규환이 되여있었다. 이튿날아침, 천막밖으로 나온 거리썬커는 순록무리의 수놈들이 모두 숙영지에서 얼마간 떨어진 자작나무숲으로 도망쳐간것을 발견하였다. 모두들 풀이 죽어있었다. 작은 엘크는 어미순록과 새끼순록들 사이에 떡하니 서있었다. 표정이 시뚝해보였지만 두눈에는 역시 피곤기가 가득 몰려있었다. 하루 낮과 하루 밤을 이어진 결투에서 수놈 두마리가 뿔을 한쪽씩 잃어버렸고 한놈이 갈비뼈가 끊어졌지만 작은 엘크의 몸에는 근근히 순록들의 뿔에 긁히운 자리가 약간 났을뿐이였다. 작은 엘크가 순록무리의 모든 수놈들을 격패시켰지만 어미순록들은 작은 엘크에게 꼬물만치도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세살에 난 작은 엘크는 더 이상 그제날의 새끼엘크가 아니였다. 황야의 무성한 삼림도 더 이상 그에게 공포의 존재가 아니였다.  그후로부터 해마다 가을이면 작은 엘크는 순록의 무리에서 나와 삼림속으로 들어가군 했다. 한달이 지나 순록들의 발정기가 끝나면 작은 엘크는 또 아무 일도 없었던듯 순록의 무리에 나타났다. 그 한달간 작은 엘크는 몸이 몹시 축해지군 했는데 겨우 껍질만 붙어있는듯싶었다.        4. 오향   작은 엘크가 4살이 되던해 봄, 산에 덮인 눈은 늦게까지 채 녹지 않았다. 그때, 거리썬커가 장작을 패고있었는데 뾰족하게 생긴 나무토막이 날아와 장화를 들이쳐 발에 작은 상처를 냈다. 거리썬커는 상처를 크게 생각하지 않고 간단하게 처치를 했다. 이튿날아침에 일어나 보니 상처를 입었던 발이 퉁퉁 부어있었다. 거리썬커는 사냥용칼을 불에 달구어가지고 작 익은 밤처럼 불깃불깃하게 부어오른 부위를 째고 안에서 나무가시를 뽑아낸후 알콜로 깨끗하게 상처자국을 닦았다. 하지만 상처자국은 벌써 감염되여있었다. 발은 놀라운 속도로 무섭게 부어올랐다. 산아래의 오향에 집이 있었지만 거리썬커는 평소 정말 어쩔수 없는 일이 아니면 마을로 내려가지 않았다. 내려간다고 해도 보통 집에서 밤을 새는 법이 없었다. 집에는 누구도 없었던것이다. 하지만 거리썬커는 감염된 상처때문에 마을로  내려가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날아침, 거리썬커는 휘붐히 밝아오는 새벽빛을 밟으며 쩔뚝쩔뚝 천막을 나섰다. 작은 엘크가 천막앞에 서서 불안한 눈길로 거리썬커를 바라보고있었는데 머리에는 성에가 한벌 덮여있었다. 작은 엘크는 거리썬커가 천막에서 나온것을 보고 흥분해 하며 대포소리를 방불케 하는 높은 소리로 재채기를 한후 거리썬커의 품에 머리를 틀어박았다. 하얀 성에들이 후두둑 땅에 떨어져내렸다. 거리썬커는 작은 엘크의 머리를 톡톡 다독여주었다. 거리썬커가 천천히 산길을 내려갈 때 작은 엘크는 꼬리없는 사냥개를 따라 걸음을 재우쳤다. 거리썬커의 발걸음은 매우 더뎠다. 그는 걷다가도 개울을 만나기만 하면 신음소리를 내면서 개울가로 다가가 풍덩 주저앉았다. 그는 장화며 양말이며를 모두 벗고 뻘겋게 부어오른 발을 차디찬 개울물에 담구었다. 그러면 열이나고 아픈 증상이 다소 가라앉는듯 했다. 그렇게 겨우 오향으로 통하는 모래를 편 길가에 이르렀을 때 태양은 이미 한발이나 떠오른 뒤였다. 거리썬커는 줄줄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작은 엘크는 끝까지 거리썬커를 따라갈 모양이였다. 거리썬커는 작은 엘크를 어떻게 처리했으면 좋을지 몰라 잠간 주저했다. 처음에 거리썬커는 작은 엘크가 목재를 수송하는 차들이 지나다니는 모래를 편 길가에까지 왔다가 혼자서 숙영지로 돌아갈것이라고 믿었던것이다. 하지만 작은 엘크는 도무지 돌아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엘크를 데리고 마을로 내려간다는것은 어찌보나 타당한 처사가 아닌것 같았다. 거리썬커는 자세히 작은 엘크를 여겨보았다. 거리썬커는 작은 엘크가 그처럼 커있다는것에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평소 날마다 보다나니 그새 작은 엘크가 성장하는것을 크게 느끼지 못했을뿐이였다. 거리썬커의 눈앞에 서있는것은 윤기가 흐르는 갈색의 털을 가진 커다란 몸뚱이의 야수였다. 다 큰 수소처럼 건장해보였다. 하지만 작은 엘크에게는 수소의 다리보다도 더 튼실한 긴 다리가 있었다. 작은 엘크의 울퉁불퉁하게 생긴 머리에 돋아난 두개의 뿔은 거인이 내민 두개의 손바닥을 방불케 했다. 거리썬커는 작은 엘크를 마을로 데리고 내려갔다가 어떤 일이 발생할지 상상할수 없었다. 거리썬커는 큰 소리를 쳐 작은 엘크를 숙영지로 돌려보내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작은 엘크는 또 작은 엘크대로 도무지 거리썬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평소 거리썬커가 사냥을 가거나 순록들을 방목하러 나갈 때면 작은 엘크는 그렇게 열정적으로 따라나서지 않았었다. 아마도 아침에 거리썬커가 부드럽게 등을 다독여준것을 그놈이 다른 뜻으로 리해했거나 아니면  그들이 내려온 길이 전보다 다른 방향으로 향해져서 그놈이 뭔가 근심을 하는지도 모를 일이였다. 그 길이 어디로 통한다는것을 알게 되면 작은 엘크가 근심을 하는것도 당연할것이였다. 그 길을 따라 앞으로 줄곧 가게 되면 삼림이 점점 적어지고 야수와 새들이 갈수록 적어지는 반면에 불과 쇠붙이냄새가 짙어질것이였다. 그 길의 한쪽끝은 바로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였다. 작은 엘크는 그 아침이 다른 날과 다르기때문에 반드시 주인인 거리썬커를 바싹 따라야만 안전할것이라고 믿는것 같았다.   작은 엘크를 쫓는 거리썬커의 높은 목소리가 삼림을 쩌렁쩌렁 울렸다. 그 바람에 아침먹이를 먹던 다람쥐가 놀라서 소나무꼭대기에까지 치달아올라 모습을 숨겼다. 장밤을 바삐 보내고 나무우에 올라가 휴식을 하던 올빼미도 불만스러운듯 거리썬커를 노려보다가 조용히 다른 곳으로 날아가버렸다. 작은 엘크는 그 시각 어릴 때 천막을 마구 뒤흔들어놓던 그러한 집착을 보이기 시작했다. 거리썬커가 어떻게 고함을 질러도 작은 엘크는 뒤에 맞춤하게 떨어져서 슬금슬금 눈치를 살피며 게속 따라왔다. 발이 불편한 거리썬커는 몇발자국 쫓아가다가도 고통스럽게 얼굴을 찡그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였다. 거리썬커는 그 시각 작은 엘크를 두고 정말 어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여 그는 꼬리 없는 사냥개를 추겨 작은 엘크를 쫓아버리게 했다. 꼬리 없는 사냥개는 거리썬커가 쩔뚝거리면서 높은 소리로 작은 엘크를 쫓는것을 보고 웬 일인지 몰라 몹시 궁금해 했다. 게다가 또 작은 엘크를 쫓으라는 거리썬커의 명령을 받고는 더욱 어리둥절해졌다. 꼬리 없는 사냥개는 주인의 명령을 어떻게 대해야 한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이른바 주인의 어떤 명령은 반드시 집행하고 어떤 명령은 보류해야 한다는것을 알고있었던것이다. 이를테면 주인이 도망치는 사냥물을 쫓아가 잡아오라는 명령을 내리거나 곰이 숙영지에 들어와서 순록무리를 향해 포효를 하고있다면 만사를 불구하고 충격해야 하는것이였다. 꼬리 없는 사냥개는 그런 일에 종래로 주저한적이 없었다. 하지만 주인이 함께 사는 작은 엘크를 쫓아버리라고 명령을 내린데는 어떻게 해야할지를 몰라 주저할수밖에 없었다. 그 시각 주인의 명령은 천막안에 들어와 먹이를 훔치는 순록들을 쫓아버리라는 경우와 똑 같았던것이다. 그렇다면 주인은 나를 보고 사냥물을 추격하라는 명령을 내린것은 아닐가? 꼬리 없는 사냥개는 그것도 불가능한것이라고 생각했다. 부근에는 근본 사냥물의 냄새가 없었던것이다. 꼬리 없는 사냥개의 체력과 시력이 전보다 못한것은 당연한것이였다. 하지만 후각은 조금도 퇴화되지 않고있었다. 그 부근에는 절대 숨어있는 사냥물이 없었던것이다. 그렇다면 작은 엘크가 사냥물이란 말인가? 그것도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였다. 작은 엘크가 숙영지에 나타난후 꼬리 없는 사냥개는 호기심이 동해 그를 쫓아다니다가 번마다 거리썬커에게 된욕을 보았던것이다. 거리썬커가 다시 독촉을 하자 꼬리 없는 사냥개도 어딘가 조급해났다. 그는 어둡게 으르렁거리면서 작은 엘크를 향해 덮쳐들었다. 그 시각 작은 엘크는 전에 꼬리 없는 사냥개에게 쫓기우던 새끼 엘크가 아니였다. 작은 엘크는 꼬리 없는 사냥개의 공격을 물리칠수 있는 충족한 힘이 있었다. 하지만 작은 엘크는 례의적으로 두어걸음 뒤로 물러섰다. 거리썬커가 계속 추격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꼬리 없는 사냥개는 다시 덮쳐들어 작은 엘크의 앞다리를 슬쩍 무는 시늉을 해서 거리썬커에게 보여주려고 했다. 그 순간 작은 엘크는 슬쩍 머리를 숙여 커다란 뿔로 꼬리 없는 사냥개의 공격을 막아버렸다. 만약 근근히 막아보려는 생각이 아니였다면 꼬리 없는 사냥개는 진작 배가 찢어졌거나 저쪽으로 훌렁 나가 넘어지고말았을것이다. 꼬리 없는 사냥개는 작은 엘크의 힘을 느끼고있었다. 그는 진작 젊을 때 메돼지를 쫓아 잡던 그러한 힘을 잃어가고있었던것이다. 그리고 공격에 대한 반응도 전처럼 민감하지 못하였다. 아니라면 꼬리 없는 사냥개는 작은 엘크가 미처 반응을 하기전에 앞다리를 물어버라고 슬쩍 비켜섰을것이다. 사실말이지 젊을 때라면 꼬리 없는 사냥개는 작은 엘크가 아니라 미친 곰이 덮쳐든대도 슬슬 골려줄수 있었을것이다. 하지만 꼬리 없는 사냥개는 필경 너무 늙어있었다. 그럴만한 힘도 없었고 그렇게 날렵하지도 못했다. 꼬리 없는 사냥개는 미안한듯 거리썬커를 훔쳐보았다. 다행스럽게도 거리썬커는 꼬리 없는 사냥개를 나무리려는 뜻이 조금도 없어보였다.  어쩌면 거리썬커도 꼬리 없는 사냥개도 몸에서 무궁무진한 힘이 솟아나는 작은 엘크를 두고 스스로 무기력함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거리썬커는 상처를 입은 발이 너무도 불편해서 잠간을 걷고는 개울에 내려가 발을 물에 담구었다. 그들은 그렇게 하루 낮, 하루밤을 걸어 이튿날아침에야 마을어구에 도착했다. 해빛이 산등성이에 있는 나무가지를 비출 때 그들은 마을의 륜곽을 어렴풋이 볼수 있었다. 아담한 마을에 들어 앉은 나무집들에서는 밥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여오르고있었다. 오향은 삼림에 사는 오원커부족의 산아래에 있는 주둔지였다. 그들이 오향에 들어서면서 보니 길에는 사람그림자 하나 얼씬하지 않았다. 평소 낯선 사람이 마을에 들어서면 개들이 먼저 발견하군 했다. 그날도 례외가 아니였다. 멀리에서 개 한마리가 먼저 거리썬커네를 발견하게 되였다. 사람 하나, 개 한마리 그리고 몸뚱이가 커다란 야수 한마리로 구성된 거리썬커네 대오는 오향의 그 개에게 큰 흥미를 불러일으키면서도 어딘가 공포감을 던져주는듯싶었다. 거리썬커네 대오를 처음 발견한 개가 기승스럽게 짖어대는 소리를 듣고 마을의 다른 개들로 그곳으로 몰려왔다. 어쩌면 오향에 사는 모든 개들이 다 모여온듯싶었다. 오향에 사는 모든 가정들에서는 한마리 혹은 그 이상의 개들을 기르고있었다. 그놈들은 앞다투어 짖어대는것으로 거리썬커네를 환영하는것 같았다. 사실 사람과 개는 그렇게 생소한 사이가 아니였다. 하지만 거리썬커를 따르는 작은 엘크는 그놈들에게 큰 위협을 주는 모양이였다. 오향에 사는 어린 개들은 아직 삼림에 들어가 엘크와 같은 몸집이 큰 야수들을 본적이 없었던것이다. 진종일 마을이나 돌아다니며 별 할일이 없어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던 오향의 개들은 작은 엘크에게서 나는 그 냄새가 사뭇 신선하게 느껴지기도 한것 같았다. 오향에 사는 늙은 개들은 몸집이 커다란 그 야수가 바로 엘크라는것을 알고있었다. 그놈들은 젊었을 때 갈비뼈가 부러지거나 눈알을 잃는 대가를 내면서 엘크를 포위공격하여 잡은 경력이 었었던것이다. 그놈들은 또 거리썬커와 꼬리 없는 사냥개에게서 나는 냄새에 대해서도 매우 익숙한듯 했다. 오향의 개들은 처음에 사람과 개가 왜 엘크라는 몸집이 큰 야수와 함께 마을에 내려왔는가 하는것을 못내 이상스럽게 생각하는것 같았다. 하지만 그러한 의문은 인차 오래동안 삼림을 떠나있다가 다시 야수를 만났다는 흥분에 밀려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모양이였다. 먼저 나이 지긋한 개들이 작은 엘크를 향해 공격을 시도했다.  그 시각, 작은 엘크는 처음 보는 오향의 모든것에 큰 호기심을 느끼고있었다. 사람들이 사는 나무집이며 울안이며 골목길이며 그리고 전에 맡아보지 못했던 이상한 냄새들이며가 모두 신비하게 느껴진것 같았다. 그러한것들은 모두 작은 엘크가 처음으로 접촉하는것이였다. 처음 보는 생소한 물건과 냄새가 주의력을 분산시켰던지 처음에 작은 엘크는 자기들을 향해 다가오는 개무리들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사실 작은 엘크는 그놈들이 바로 꼬리 없는 사냥개와 같은 동물이라는것을 알고있었다. 다른것이라면 모두에게 꼬리 하나씩 더 붙어있다는것뿐이였다. 거리썬커의 질책과 꼬리 없는 사냥개의 울부짖음 그리고 오향의 개무리들의 포효속에서 작은 엘크가 으르렁거리는 소리는 작은 물방울이 떨어지는듯 미약하게 들렸다. 오향의 개들은 이미 피비린내를 맡은 늑대들처럼 흉악하게 송곳이를 들어내며 거리를 줄여왔다. 기진맥진한 거리썬커와 꼬리 없는 사냥개는 오향의 개들에게 밀리워 한 곳에 몰려섰다. 젊었을 때 사냥군을 따라 삼림을 질주하던 나이 많은 개들이 앞에 섰다. 그놈들은 훈련을 받은 사냥개들처럼 빙 둘러서서 안으로 조여들었다. 두려움을 모르는 젊은 개들이 늙은 개들의 뒤에 빠싹 붙어서서 으르렁거렸다. 만약 늙은 사냥개들이 앞에서서 위용을 떨치지 않는다면 젊은 사냥개들은 감히 작은 엘크에게 다가들지 못할것이였다. 작은 엘크의 몸에서 풍기는 야수의 자신감과 황야의 거친 분위기는 오향의 젊은 개들로 하여금 저으기 주눅이 들게 했던것이다. 앞에 섰던 개가 갑자기 습격을 해왔다. 작은 엘크가 아직 영문을 알아차리지도 못하고있을 때 그놈의 예리한 이발이 뒤다리를 물어 뜯었다. 작은 엘크는 너무도 놀라 펄쩍 올리뛰면서 뒤다리를 물고있는 그놈을 한쪽에 뿌려쳤다. 그때 다른 한놈이 또 작은 엘크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들어 앞다리에 이발을 박았다.  삼림을 벗어난지 오래 된 오향의 사냥개들은 단결합작하여 사냥물을 포획할수 있는 기회를 다시 얻게 된것으로 하여 사뭇 흥분하는듯 했다. 그놈들은 평소 각자의 울안에 엎드려 망망한 삼림을 멍하니 바라볼뿐이였다.  작은 엘크를 둘러싸고 그놈들은 단합이 참 잘 되였다. 그러한 포위공격은 작은 엘크가 처음 당해보는것이였다. 작은 엘크는 일시 어느쪽을 중시해야할지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숙영지에 있을 때 작은 엘크는 한번에 순록 한놈씩 상대하였기에 산지사방에서 들어오는 공격을 막아내는 경험이 없었던것이니다. 작은 엘크는 풍성한 털때문에 심한 상처는 입지 않았지만 여전히 모양은 볼썽사납게 변했다. 작은 엘크는 등을 물어 뜯으려고 두눈이 혈안이 되여 달려드는 오향의 사냥개들의 포위를 간신히 벗어나 강변으로 도망쳐서 풍덩 강물에 뛰여들었다.  오향의 사냥개들은 강변까지 쫓아와서 씩씩 거친 숨을 몰아쉬며 강물에 몸을 담근 작은 엘크를 노려보았다. 그놈들도 물에서는 자기들이 엘크의 적수가 못될것이라는것을 아는것 같았다. 작은 엘크는 놀라운 속도로 강저쪽기슭으로 헤염을 쳐가 머리도 돌리지 않고 삼림속으로 사라졌다. 거리썬커는 작은 엘크가 사라진쪽을 바라보면서도 그닥 급해하지 않았다. 작은 엘크가 사라진쪽은 숙영지로 가는  방향이였던것이다. 거리썬커는 작은 엘크가 숙영지로 돌아가는게 오향에 있기보다 훨씬 더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오향은 필경 작은 엘크가 있을 곳이 아니였던것이다. 오향에 있는 거리썬커의 집은 비워둔지가 벌써 몇년이 잘되였지만 줄곧 이웃들이 보살펴왔기에 깨긋하게 정리되여있었다. 거리썬커는 이웃집에 가서 장작을 한아름 안아다가 불을 지폈다. 나무집에는 간단한 침대와 나무걸상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삼림속의 천막에서 오래동안 생활해온 거리썬커는 지붕이 있는 나무집이 훨씬 더 호화로운 느낌이 들다가도 갑갑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거리썬커는 오전에 향위생소로 갔다. 의사는 거리썬커의 발에 난 상처를 째고 곪긴 부위를 도려낸후 소독을 했다. 그후 적점주사를 꽂아주었다. 소염을 해야했던것이다. 거리썬커는 오향에서 한달쯤 휴식을 해야 할것 같았다. 점심밥을 먹고난 거리썬커는 울안에 엎드려있는 꼬리 없는 사냥개에게 먹이를 준후 집안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불편한 발로 하루 낮, 하루 밤을 걸어서 오향에 도착한 거리썬커는 온몸의 뼈들이 모두 각이 나간 나무걸상처럼 어느때 뽑혀나갈지 모른다고 생각되였다.  거리썬커는 부지중 젊었을 때를 떠올렸다. 어느한번은 상처를 입은 사슴을 붙잡기 위해 이틀 낮, 이틀 밤을 쫓아다닌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도 지금처럼은 힘들지 않았었다. 거리썬커는 끝내 상처집은 그 사슴을 붙잡아 메고 숙영지로 돌아왔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였다. 비록 삼림이라고 하지만 세월은 역시 사람들에게 자기의 힘을 과시하는것 같았다.   인간의 쇠락은 반드시 찾아오는 계절과 같은것이여서 싫다고 거절할수도 없는것이였다. 오향의 나무집들에서 밥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여오를 때 거리썬커는 밖으로 나와 황혼으로 붉게 물든 뭇산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거리썬커는 저도 몰래 작은 엘크가 근심되였다. 작은 엘크가 용케 숙영지를 찾을수 있을가? 혹시 길에서 맹수를 만나 불행을 당하는것은 아닐가? 거리썬커는 삼림에서 작은 엘크에게 해를 끼칠수 있는 동물은 곰밖에 없다는것을 알고있었다. 그때는 바로 곰들이 금방 동면을 끝내고 사처로 먹이를 찾아다니는 계절이였다. 저녁편이 다 되여서야 거리썬커는 피곤이 좀 풀린것 같았다. 그제야 거리썬커는 자기가 누워있는 침대가 너무 폭신폭신해서 되려 불편함이 느껴졌다. 거리썬커는 몇번이고 뒤척거리다가 저도 몰래 스르르 잠에 빠졌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던지 거리썬커는 갑자기 무엇인가 버스럭거리는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여났다. 오래동안 삼림에서 생활해온 거리썬커는 약간 버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도 소리라쳐 잠을 깨군 했다. 거리썬커는 손을 더듬어 총을 잡으려고 했지만 손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그제야 거리썬커는 그곳이 삼림속의 천막이 아니라 따뜻한 나무집이라는것을 생각했다. 총은 자기전에 진작 벽에다가 걸어두었던것이다. 발은 금방 산에서 내려왔을 때처럼 그렇게 아프지는 않았지만 걸음을 옮기려면 여전히 쩔뚝거려야 했다. 거리썬커는 조용히 일어나 문을 밀어열었다. 교교한 달빛아래 울안에는 하얀 빛이 가득 깔려있었다. 성에가 살짝 내려앉은듯싶었다. 검으스름한 그림자가 울안에 떡 버티고 서있었는데 그곳에서 뽀얀 김이 모락모락 서려오르고있었다. 거리썬커는 그곳을 향해 다가가다가 놀라 굳어졌다. 그놈은 작은 엘크였던것이다. 작은 엘크는 머리를 숙이고 서서 꼬리 없는 사냥개에게 코를 대고 킁킁거렸다. 어쩌면 인사를 건네는듯싶었다. 거리썬커가 나온것을 본 작은 엘크는 천천히 다가왔다. 거리썬커는 손을 내밀어 작은 엘크의 목을 다독여주었다. 그때 작은 엘크의 온몸은 몽땅 젖어있었다. 금방 강을 건너 달려온것 같았다. 몸에서는 계속 따듯한 김이 피여올랐다. 강물이 작은 엘크의 몸에서 나던 냄새를 씻어버렸던지 오향의 사냥개들은 그때 다른 냄새를 맡아내지 못하고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오향의 그 밤은 광란의 밤으로 변해버렸을것이다. 작은 엘크는 거리썬커의 손을 찾고있었다. 거리썬커는 천천히 손을 내밀어 작은 엘크의 코등을 만져주었다. 거리썬커는 작은 엘크에게 먹이를 찾아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거리썬커는 작은 엘크가 오향의 사냥개무리를 따돌리고 용케 자기의 나무집을 찾아온것이 참 대견스럽게 생각되였다. 작은 엘크는 분명 거리썬커와 꼬리 없는 사냥개의 냄새를 잊지 않고있었던것이다. 이튿날아침, 작은 엘크는 일찍 잠을 깼다. 간밤에 작은 엘크는 꼬리 없는 사냥개와 함께 울안에서 잠을 잤던것이다. 산아래는 삼림의 숙영지보다 좀 따스한것 같았다. 이틀이나 제대로 된 먹이를 먹지 못했던 작은 엘크에게 지난밤 거리썬커가 던져준 빵은 그야말로 보잘것 없는것이였다. 작은 엘크는 여전히 배가 고팠지만 너무도 피곤한데서 울안에 엎드려 잠을 청할수 밖에 없었다. 푸름푸름한 새벽 빛을 밟으며 작은 엘크는 울안을 나섰다. 몸을 옹송그리고 누워 단잠을 자던 꼬리 없는 사냥개는 머리를 약간 들어 작은 엘크를 살펴보다가 다시 머리를 배에 붙이고 잠이 들었다. 늙은 개는 충족한 수면이 필요했던것이다.   적막이 흐르는 산길에서 작은 엘크는 잠간 어디로 갈지를 몰라 주저했다. 하지만 그는 인차 자기가 가야할 방향을 가려냈다. 그곳은 오향과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못이였는데 안에는 수초와 달콤한 부들이 가득했다. 그곳은 어제 도망을 치려고 급급히 넘었던 그 강의 아래쪽이였다. 못에 들어가 시원하게 물장구를 치는데는 그곳이 매우 안전했다. 그리고 배가 불룩하게 수초를 뜯어먹고 그 달콤한 맛을 음미하며 못가에 오르기도 참으로 편리한 곳이였다. 비록 배가 뽈록하게 먹이를 먹었지만 작은 엘크는 그때가지도 완전한 포만감을 느낄수 없었다. 작은 엘크에게 있어서 그곳은 필경 생소한것이였다. 삼림속의 숙영지와 비교해볼 때 그곳에는 집이며 먼지가 너무 많았다. 작은 엘크는 급히 거리썬커의 곁으로 돌아가고싶었다. 따스한 해살이 작은 엘크의 몸에 맺혔던 반짝이는 물방울들을 모두 걷어가버렸다. 흥겨운 기분으로 걸음을 다그치고있던 작은 엘크는 그때 미처 오향의 사냥개들이 모두 잠에서 깼다는것을 생각하지 못하고있었다. 작은 엘크는 영문도 알아차릴 새 없이 자기가 오향의 사냥개들에게 포위되여 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위험이 눈앞에 박두한것이다. 오향의 사냥개들은 한놈도 빠짐없이 모여든듯싶었다. 무슨 집회를 방불케 했다. 앞에는 늙은 사냥개들이 서있었다. 그들은 음침한 표정으로 웃입술을 말아올리고 으르렁으르렁 거친 소리를 냈다. 늙은 사냥개들의 뒤에 붙어선 다른 개들도 모두 흉악한 표정으로 포효하고있었다. 그 시각 작은 엘크의 옆에는 거리썬커도 꼬리 없는 사냥개도 없었다. 하지만 오향의 사냥개들은 섣불리 다가들지 못했다. 그들은 온몸이 물에 젖어있는 작은 엘크가 굉장한 힘을 가진 야수로 느껴졌던것이다. 해빛에 반짝이는 작은 엘크의 갈색 털이 그처럼 위엄있어보였다. 작은 엘크의 몸에서는 한번도 삼림속에 들어가본적이 없는 오향의 사냥개들이 공포를 느끼게 하는 야성이 살아숨쉬고있었다. 아직 배가 채 부르지 않은 작은 엘크는 한시바삐 거리썬커가 있는 작은 울안으로 가고싶었다. 그곳에 가서 숙영지에서처럼 거리썬커가 던져주는 빵을 먹고싶었다. 작은 엘크는 앞을 바라고 걸음을 다그쳤다.  사냥개들도 작은 엘크를 따라 급히 움직였다. 하지만 시종 일정한 거리를 두고 따라왔다. 그것은 하나의 가상적인 공간과 같은것이였다. 그놈들은 시종 작은 엘크를 중간에 넣고 든든한 울타리를 형성하고있다고 생각하는것 같았다. 작은 엘크가 앞만 바라보고 달리느라 머리 한번 돌려보지 않고있는데 갑자기 또 한마리의 늙은 사냥개가 덮쳐들더니 뒤다리를 덥썩 물어 당겼다. 늙은 사냥개가 몇대 남지 않은 이발로 그처럼 멋진 동작을 완성한것으로 하여 득의양양해 하고있을 때 작은 엘크는 반사적으로 늙은 사냥개에게 물리워 있는 뒤다리를 탁 잡아챘다가 다시 한번 힘껏 날렸다. 늙은 사냥개는 어쩔 사이 없이 저쪽으로 나가 털썩 하고 떨어져내렸다. 그 바람에 땅에서 뽀얀 먼지가 날아올랐다. 다른 사냥개들이 앞다투어 작은 엘크에게 달려들었다. 일부 늙은 사냥개들은 젊은 날의 휘황했던 순간들을 그리워 하는것 같았다. 그리고 젊은 사냥개들은 하루빨리 용기를 키워 삼림속으로 들어가는 자격을 얻고싶어하는 모양이였다.   사냥개들의 힘을 어느 정도 알게 된 작은 엘크는 여유작작 거리썬커가 있는 울안으로 들어갔다. 오향의 사냥개들이 작은 엘크를 놓칠세라 바짝 쫓아와 덮칠 기회를 노렸다. 그놈들은 자기들에게 있는 최대의 능력을 다 발휘하여 작은 엘크의 넓은 등이며 튼실한 다리며 근육이 불끈 솟은 목덜미며 지어는 치렁처링한 꼬리까지도 물어 뜯고싶어했다. 하지만 작은 엘크는 여전히 그놈들 같은것은 안중에도 없다는듯이 여유작작 걸음을 옮겼다. 작은 엘크의 큰 뿔은 흐늘흐늘 춤을 추는 큰 손바닥을 방불케 했다. 그리고 튼실한 발굽은 둥글둥글한 몽둥이를 떠올리게 했다. 그에 비해 작은 엘크의 뒤를 따라오는 사냥개들은 우수수 떨어지는 락엽을 보는듯 했다. 거리썬커는 작은 엘크가 울안으로 들어오는 동정을 듣고 밖으로 나왔다. 그때 작은 엘크는 뒤를 따라는 마지막 사냥개를 걷어차서 이웃집 지붕우에 뿌려던진 뒤였다. 그놈은 지붕우에서 정신을 차린후 일시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어리둥절해 했다. 하지만 인차 자기의 처지를 감안하고는 놀라서 지붕우에 엎드린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놈은 종래로 그렇게 높은 곳에 올라가본적이 없었던것이다. 작은 엘크는 거리썬커가 밖으로 나오는것을 보고 급히 달려갔다. 삼림의 숙영지에 있을 때처럼 기대에 차 작은 눈을 껌뻑거리며 거리썬커의 두손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작은 엘크는 여전히 잠간 남은 위의 공간을 채울 빵이나 죽을 바라는것이였다. 작은 엘크는 이미 섬유질을 배 부르게 먹은후 사람들이 먹는 탄수화합물을 약간씩 먹는것에 습관이 되였던것이다. 그날아침, 오향에 사는 사람들은 작은 엘크가 식은죽 먹기로 오향의 사냥개들을 소탕하는 장면을 구경했다. 백씨도 구경군들속에 있었다. 이튿날, 백씨는 거리썬커를 찾아갔다.  오향은 크지 않은 동네였다. 거리썬커는 비록 몇년 동안 마을에 내려오지 않았었지만 대부분 사람들을 알고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굴려보아도 백씨를 본 기억이 없었다. 거리썬커는 흐릿하고 음침한 백씨의 눈길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백씨는 거리썬커에게 뭐라고 많은 말을 했다. 거리썬커는 한족말을 잘 몰랐지만 그래도 백씨가 작은 엘크를 팔라고 청을 든다는것만은 짐작할수 있었다. 거리썬커는 여직 아무 물건도 팔아본적이 없었다. 하기에 작은 엘크를 사겠다고 나서는 백씨를 앞에 두고 일시 어떻게 답변했으면 좋을지 몰라 주저했다. 물론 거리썬커는 뭐라고 말할수도 없었다. 거리썬커가 한족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것처럼 백씨도 오원커족말을 제대로 알아들을수 없을것이였다.  거리썬커는 침묵으로 말이 많은 백씨를 상대하며 조용히 총을 닦았다. 더 이상의 대화는 불가능하다는것을 눈치챈 백씨는 몸을 일으켰다. 거리썬커네 집을 떠날 때 백씨는 아쉬운듯 울안에 엎드려 있는 작은 엘크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백씨는 지난번에 순록 두마리를 대흥안령에 가져다 팔아서 번 얼마 안되는 돈을 진작 술을 마시는데 다 처넣었던것이다. 그번에 팔아넘긴것은 보통 순록이였다. 하지만 백씨가 지금 눈독을 들이고있는것은 엘크이다. 만약 작은 엘크를 끌어다 팔수만 있다면 꼭 백씨가 1년동안 술을 사 마실 돈이 생길것이였다. 백씨는 급해하지 않았다. 그는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괴벽한 성격을 가진 거리썬커를  삶아낼것이라고 마음 먹었다. 하지만 백씨의 그 야망은 시종 성공을 하지 못했다. 오원커족남자들을 넘어뜨리는데 제일 효험이 있다는 술도 거리썬커에게는 조금도 먹혀들지 않았다. 그래도 백씨는 술의 힘을 굳게 믿고있었다. 아무리 성정이 곧은 사람이라 해도 술을 취하게 먹여놓으면 움켜쥔 물건을 손쉽게 내놓을것이라고 믿었던것이다. 지난번에 대흥안령에 내다가 팔아버린 그 순록 두마리도 백씨가 순록을 기르는 한 나그네에게 술을 가득 먹인후 상상도 못할 싼 가격으로 산것이였다. 백씨는 그 가격이 양 두마리의 가격도 채 안된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흐리멍텅한 기분에 순록 두마리를 헐값에 팔아버린 그 사람은 그후 며칠이나 후회를 했다. 오원커족사람들은 세세대대로 순록을 파는 일이 없었던것이다. 후회해도 소용이 없었다. 백씨마저도 그 순록이 어디로 끌려갔는지를 모르고있었던것이다. 거리썬커는 술병을 들고 집에 들어서는 백씨를 보고도 머리 한번 끄덕이지 않았다. 그때 거리썬커는 사냥용칼을 갈고있었다. 백씨는 또 그럴듯하게 자기의 생각을 피력해갔다. 이를테면 작은 엘크를 자기에게 팔면 삼림과 진배없는 동물락원에서 잘 먹이고 잘 재우며 행복하게 키울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또 일년 사시절 콩크리트속에서 사는 도시사람들은 작은 엘크를 통하여 삼림야수의 진면목을 보아내게 될것이라고 덧붙였다. 거리썬커는 백씨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말았는지 한마디 답변도 하지 않았다. 한참이나 흥이 도도해서 열변을 토한 백씨는 자기가 또 헛물을 켠것이라고 판단했다. 급해난 백씨는 고무줄로 중간을 묶은 돈다발을 꺼내여 거리썬커의 호주머니에 넣어주려고 했다.  백씨의 행동이 드디여 거리썬커를 노하게 했다. 거리썬커는 백씨에게 머리도 돌리지 않고 돈을 꺼내 홱 팽개쳤다. 백씨는 너무도 놀라 멍해졌다. 그때 거리썬커는 손톱으로 칼날이 잘 갈아졌는지를 가늠하고있었다. 거리썬커의 옆에 엎드려 잠이 들었던 꼬리 없는 사냥개는 주인이 몹시 성나있다는것을 읽어낸듯싶었다. 꼬리 없는 사냥개는 갑자기 졸음을 털어버리고 목덜미의 털을 빳빳이 치켜세우며 상처자국이 가득한 코등가죽을 잔뜩 찡그렸다. 그리고 입술을 말아올린후 날카로운 송곳이를 들어냈다. 목에서는 으르렁으르렁 음침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때 만약 거리썬커가 약간 눈짓이라도 했다면 꼬리 없는 사냥개는 끝없이 주절거리는 백씨에게 달려들어 아작아작 뼈라도 씹어 삼켰을것이다. 백씨는 속으로 거리썬커를 세상물정을 모르는 괴벽한 령감이라고 욕했고 꼬리 없는 사냥개를 빨리 뒈져버리라고 주문을 걸었다. 그는 바닥에 널린 돈을 다 주은후 가지고갔던 술병을 찾아들고 급급히 거리썬커네 나무집에서 나왔다. 울안에서 볕쪼임을 하던 작은 엘크는 커다란 머리를 천천히 들어 집안에서 나오는 백씨를 하찮게 쓸어보았다.  백씨는 몹시 기분이 상했지만 어찌할 방도가 생각나지 않았다. 백씨는 문을 나서기전에 이웃들에게 거리썬커의 성격에 대하여 물은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이웃들은 거리썬커를 두고 결정한 일은 죽어도 번복하지 않는다고 했던것이다. 하지만 그때 백씨는 설마 하고 깊이 듣지 않았었는데 과연 톡톡히 꼴을 먹은것이다. 백씨는 그저 그렇게 손을 놓는다는게 마음에 걸렸다. 작은 엘크를 산밖에 내다가 팔아서 큰 돈을 벌어보고싶은 유혹이 시종 백씨에게서 사라지지 않았던것이다. 백씨는 잠간 주저하다가 다시 나무집으로 들어가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차 다시 들어간다 해도 나무껍질같은 거리썬커의 거친 얼굴을 한번 더 보게 될뿐 희망은 없을것이라고 생각했다.   백씨는 푸 하고 한숨을 내쉬면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백씨는 거리썬커네 울안을 벗어나려고 하다가 갑자기 나무집옆에 있는 작은 창고를 발견하게 되였다. 창고문은 닫겨져있었는데 우에 녹이 쓴 자물쇠가 걸려져있었다. 백씨는 전날 거리썬커가 두병 한주머니를 그안에 넣던 생각이 났다. 백씨의 머리에는 순간 음험한 계획이 모양을 잡아갔다. 그는 주저없이 창고를 향해 다가갔다. 백씨는 금방 오향에 왔던 어느날 양을 잡은적이 있었다. 백씨가 칼을 들고 다가서자 놀란 양은 몸부림을 치다가 백씨의 다리를 걷어차 넘어뜨렸다. 다시 기여일어난 백씨는 그 양을 거꾸로 매달아놓고 산채로 껍질을 발라냈다. 숱한 애들이 그것을 구경하려고 모여들었다. 그들은 껍질을 절반도 넘게 벗기우고도 고통스럽게 몸부림을 치며 피를 흘리는 양을 넋없이 바라보았다. 그때 지나가던 할머니 한분이 애들을 쫓으면서 중얼거렸다. “저 순진한 애들의 몸에 악귀가 들어가면 어쩌누…” 백씨의 몸에는 정말 나쁜 령혼이 얼마간 들어있는듯싶었지만 그 자신은 시종 그것을 모르고있었다. 그는 살그머니 창고문을 당겨열었다. 찌익- 하는 문소리에 백씨는 그만 제풀에 놀라 식은땀을 쫙 흘렸다. 그는 인차 머리를 돌리고 집안을 훔쳐보았다. 거리썬커가 집안에서 창문을 등지고 앉아 칼을 가느라 밖에다 눈길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백씨는 분명 꼬리 없는 사냥개가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때  꼬리 없는 사냥개는 거리썬커의 뒤에 서서 백씨를 내다보고있었던것이다. 순간 백씨의 머리에는 오향의 한 사냥군과 함께 술을 마실 때 들은 꼬리 없는 사냥개에 대한 전설같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꼬리 없는 사냥개는 엄동설한의 어느날 거리썬커가 삼림에서 주은 강아지가 자란것이였다. 그때 강아지는 얼어서 마지막 숨을 톱고있었다. 거리썬커는 웃웃을 헤치고 강아지를 인차 품에 넣었다. 강아지가 눈을 뜨자 거리썬커는 사슴젖을 먹이기 시작했다. 그 강아지가 자라서 오향에서는 보기드문 용맹한 사냥개로 된것이다. 꼬리 없는 사냥개는 사냥을 나가서 령활하게 거리썬커를 협조했다. 겨울이면 가끔 두툼한 눈속에서 고라니를 잡아 숙영지로 가져오기도 했다.  어느해 이른 봄, 곰 한마리가 갑자기 숙영지를 습격한적이 있었다. 거리썬커는 급하게 총알을 재우다가 그만 실수하고말았다. 곰이 거리썬커를 공격하려는 찰나, 꼬리 없는 사냥개가 곰에게 덮쳐든것이다. 그 기회를 빌어 거리썬커는 다시 탄알을 재운후 곰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바로 그번 곰과의 결투에서 그놈은 꼬리를 잃게 되였던것이다. 전에 누군가 백씨에게 거리썬커네 집에 갔다가는 장작개비 하나도 거저 들고나오지 말아야 한다고 귀띔한적이 있었다. 만약 무엇이라도 들고나오다가 꼬리 없는 사냥개에게 들키기만 하면 손목 하나쯤은 내놓을 각오를 해야 한다는것이였다. 수시로 꼬리 없는 사냥개가 뛰쳐나와 궁둥이를 물어 뜯을 위험이 도사리고있었지만 백씨 또한 쉽게 그 기회를 놓지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창고문을 당겨 열었다. 두병이 그대로 문옆에 놓여져있었다. 꼬리 없는 사냥개가 그것을 발견하고 음침한 목소리로 으르렁거리며 머리를 높이 쳐들었다. 그것은 공격을 앞두고 취하는 꼬리 없는 사냥개의 마지막 경고였다. 하지만 백씨는 억지로 용기를 내서 꽁꽁 묶어놓은 자루아구리를 열었다. 너무도 긴장해서 온몸에 식은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행운스럽게도 꼬리 없는 사냥개는 웬 일인지 백씨에게 덮쳐들지 않았다. 백씨는 천천히 뒤걸음질을 쳐서 창고를 나와 잰걸음으로 울안을 벗어났다.  꼬리 없는 사냥개는 여전히 쫓아올 기미가 아니였다. 끝내 무사히 거리썬커네 울안을 벗어난 백씨는 해방을 받은듯 안도의 숨을 길게 토했다. 백씨는 담장쯤으로 꼬리 없는 사냥개를 훔쳐보았다. 그때 꼬리 없는 사냥개는 창고앞을 한고패 돌아보고는 다시 울안으로 가서 엎드려 잠을 청하는것 같았다. 울안 한구석에 멍하니 엎드려 있던 작은 엘크는 갑자기 바람에 날려오는 고소한 냄새를 맡게 되였다. 그는 천천히 머리를 쳐들고 코방울을 벌름거렸다. 작은 엘크는 그 생소한 냄새가 문이 열려져있는 창고안에서 풍긴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작은 엘크는 천천히 창고쪽으로 다가갔다. 창고문이 너무 낮아 기여들어갈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눈길은 인차 이상한 냄새를 풍기는 문옆에 놓인 주머니에 쏠렸다. 작은 엘크는 문안에 머리만 들이밀었다. 무엇인가를 발견한듯 그의 눈이 반짝 빛났다. 어쩌면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듯한 표정이였다. 백씨는 울밖에서 그 장면을 훔쳐보고있었다. 웃음주머니가 흔들거렸다. 흥, 내가 가질수 없다면 죽여버리는거야! 그날 저녁무렵에 거리썬커는 칼날이 잘 가라졌는가를 검사하려고 손톱에 그어보았다. 칼날은 손톱에 하얀색 가는 줄을 남겼다. 거리썬커는 흡족한듯 가볍게 머리를 끄덕이며 칼을 칼집에 넣은후 숫돌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꼬리 없는 사냥개는 주인이 나온것을 보고 머리를 쳐들더니 약간 남은 꼬리를 살살 저어댔다. 거리썬커는 우호적으로 꼬리 없는 사냥개에게 손을 저어보였다. 그때 거리썬커는 작은 엘크가 이상한 표정을 짓고 괴상하게 네다리를 옆으로 향한채 땅에 누워있는것을 발견했다.   거리썬커는 천천히 작은 엘크가 누워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작은 엘크의 배는 보기에 무서울 지경으로 커져있었다. 삽시간에 임신을 한것이나 아닐가 하는 착각이 거리썬커의 머리를 스쳐지났다. 하지만 작은 엘크는 분명 수컷이였다. 거리썬커는 뚱뚱한 배를 가누지 못해 땅에 쓰러져 고통스러워 하는 작은 엘크를 바라보면서 일시 어쩔바를 몰라했다. 땅에 엎드려 그 장면을 지켜보던 꼬리 없는 사냥개가 주인의 긴장한 표정을 보고 큰 일이 발생했다는것을 알게 된것 같았다. 꼬리 없는 사냥개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작은 엘크쪽으로 다가가 코방울 벌름거리며 냄새를 맡더니 인차 거리썬커를 쳐다보았다. 거리썬커는 꼬리 없는 사냥개의 그 눈길을 리해할수 있었다. 꼬리 없는 사냥개는 분명 죽음의 냄새를 맡았던것이다. 꼬리 없는 사냥개는 죽음의 그림자가 왜 그곳에 드리워야 했는지 그리고 작은 엘크가 왜 그 불행을 당해야 했는지를  알지 못해 안달아 하는것만 같았다.    그것은 피를 부르지 않은 이상한 죽음이였다. 거리썬커는 작은 엘크의 옆에 쭈크리고 앉아 그의 목덜미를 만져보았다. 작은 엘크의 꽛꽛한 털이 거리썬커의 손바닥을 간지를뿐 조금도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작은 엘크는 이미 호흡을 멈추었던것이다. 작은 엘크는 주머니에 있던 두병을 다 먹은후 또 한통의 물을 다 들이켰던것이다. 최대한 압축된후 말라버린 두병은 작은 엘크의 위에 들어가 놀라운 속도로 퍼지기 시작했던것이다. 작은 엘크는 그렇게 배 터져 죽어버린것이였다. 거리썬커는 오래도록 울안에 앉아있었다. 그가 정신을 차리고 몸을 추스리려 할 때 태양은 이미 산너머에 떨어졌다. 거리썬커는 웬지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났고  두다리가 마비되는듯싶었다. 오직 왼쪽다리바깥쪽만이 약간 온기가 돌았다. 그것은 꼬리 없는 사냥개가 줄곧 왼쪽다리옆에 엎드려 거리썬커를 동반해주었기때문이였다.  어둠이 울안을 삼키고있었다. 거리썬커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집안으로 들어가 칼을 꺼내들었다. 금방 갈아놓은 칼이 그렇게 빨리 용도가 생길지를 몰랐던 거리썬커였다. 거리썬커는 다시한번 한숨을 내쉬면서 절레절레 머리를 흔들었다. 시간이 더 지나면 껍질도 발라내지 못할것 같았다. 작은 엘크는 몸집이 너무 크기에 울밖으로 끌어내자 해도 각을 뜯어야 할것 같았다. 거리썬커는 사냥용칼을 뽑아들었지만 일시 어디로부터 칼을 내야할지 궁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거리썬커가 제 손으로 잡지 않은 동물을 껍질 벗기는것은 그번이 처음이였다. 껍질을 벗기려면 어디에라도 칼을 대야 했다. 거리썬커는 습관대로 먼저 동맥을 끊어 피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꽛꽛하게 굳어버렸는지라 피도 흐를것 같지 않았다. 거리썬커는 칼자루를 꽉 틀어잡고 작은 엘크의 목에  칼날을 박았다. 칼을 잡은 그의 손은 여전히 부들부들 떨렸다. 칼날은 작은 엘크의 목에 있는 두터운 가죽을 약간 찌르고 들어갔다. 거리썬커가 결심을 내리고 다시 칼을 잡은 손에 힘을 가하려고 할 때 놀랍게도 작은 엘크가 푸― 하고 한숨을 토해냈다. 거리썬커는 너무도 놀라 뒤로 벌렁 넘어지고말았다. 꼬리 없는 사냥개도 너무 놀라 펄쩍 올리뛰였다. 날렵한 그 동작은 도무지 늙은 사냥개의 몸에서 연출된것이라고 믿기지 않았다. 꼬리 없는 사냥개는 사실 작은 엘크에게 특별한 감정 같은것이 없었다. 당년에 처음 작은 엘크를 발견했을 때 만약 거리썬커가 제지하지 않았더라면 진작 날가로운 발톱으로 작은 엘크의 배를 갈라버렸을것이였다. 죽은것 같던 작은 엘크를 보면서도 꼬리 없는 사냥개는 특별한 느낌 같은것이 없었다. 지어는 거리썬커가 빨리 작은 엘크의 배를 가른후 내장을 뽑아 던져주기를 기다리기까지 했었다. 그날밤, 오향의 많은 사람들은 거리썬커가 꼬리 없는 사냥개와 함께 소처럼 큰 몸뚱이의 야수를 데리고 마을을 벗어나는것을 보았다. 죽은줄로만 알았던 작은 엘크는 거리썬커가 사냥용칼로 목을 따주는 바람에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다시 살아난듯싶었다.    그들은 오향을 벗어나 교교한 달빛이 부드럽게 비춰주는 오솔길로 해서 자작나무숲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어느새 강변에 도착했다. 출렁이는 강물은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급급히 흘러갔다. 작은 엘크는 여전히 목이 마르는지 강변에 가서 머리를 숙이고 물을 마시려고 하다가 거리썬커가 제지 시키기도전에 그만두었다. 작은 엘크는 아까 향기로운 냄새가 풍기는 두병을 한주머니 다 먹어치운후 물도 한통 다 마셨던것이다. 잠간 지나자 목이 타는듯 하던 갈증이 해소되였다.  이어서 작은 엘크가 난생 겪어보지 못한 괴로움이 덮쳐들기 시작했다. 처음에 작은 엘크는 위에서 따뜻한 기포가 올라오는것 같았다. 그것은 사실 위험한 신호였다. 그것은 위에 가득 쌓인 두병사이에 약간 남겨진 쯤으로 올라오는 공기였다. 차츰 물이 공기가 나가버린 모든 공간을 메웠다.  두병이 위속에서 불어나기 시작했다. 그 기세가 미쳐난 야수를 방불케 했다. 작은 엘크는 자기의 배속에서 야수같은 새로운 생명이 자라나고있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뿐이였다. 두려웠다. 작은 엘크는 안간힘을 다해 호흡을 했고 배가죽에 힘을 주었다. 생각 같아서는 자꾸 커지는 야수같은 그놈을 배에서 축출해버리고싶었다. “야수”는 놀라운 속도로 자라고있었다. 작은 엘크는 그 “야수”앞에서 너무도 무기력했다. “야수”가 작은 엘크의 페를 눌러 숨을 바로 쉴수 없었다. 작은 엘크는 차츰 정신이 혼미해졌다. 대뇌에 산소공급이 잘 안되는 모양이였다. 작은 엘크는 거리썬커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고싶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몸마저 움직일수 없었다. 몸이 발굽에다 커다란 돌멩이를 달아매놓은것처럼 무거웠다. 작은 엘크는 끝내 무너지는 돌담처럼 땅에 쓰러지고말았다. 힘껏 호흡을 하느라고 했지만 몸으로 들어오는 공기는 없었다. 작은 엘크는 설레설레 머리를 저었다. 고통스러운 추억에서 헤여나오려는듯싶었다. 그날 작은 엘크는 다시 물을 먹지 않았다. 거리썬커는 작은 엘크를 데리고 강변에 난 오솔길을 따라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작은 엘크의 배에서는 그새 전쟁이라도 터진듯 연신 꾸르륵꾸르륵 요란한 소리가 났다. 작은 엘크는 그 영문을 모르고 그냥 웬 야수들이 자기의 배에서 싸움을 하는것이라고 생각했다.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왜 그놈들을 나의 배에 들여보냈단 말인가? 작은 엘크는 몸뚱이에 비해 너무도 작은 두눈에 불안한 기색을 가득 담아 거리썬커를 바라보았다. 거리썬커가 작은 엘크의 머리를 다독여주었다. 그게 큰 위안으로 느껴졌다. 작은 엘크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갈어나갔다. 작은 엘크는 한참 걸음을 옮기다가 멈추어 서서 목을 길게 빼들고 고통스럽게 부르르 몸을 떨더니 드디여 꺽 하고 높은 소리로 트림을 했다. 메탄냄새가 지독한 트림이였다. 만약 그때 어디서 불씨라도 날아온다면 작은 엘크의 트림은 그대로 한줄기의 푸른 룡이 되여버릴것이였다. 또 몇걸음을 걷다가 작은 엘크는 다시 불안한 표정으로 멈추어섰다. 그는 어색하게 뒤다리를 벌리고 서더니 홍수라도 터진듯 쏴 오줌을 갈겨댔다. 그 바람에 작은 엘크를 바짝 따르던 꼬리 없는 사냥개가 옆으로 비켜섰다. 홍수와도 같은 그 배설물에 자기의 털이라도 버릴가봐 저어하는것 같았다. 작은 엘크는 그렇게 잠간 걷다가는 오줌을 쏘고 또 다시 걸음을 옮겼다. 북처럼 불거졌던 배는 차츰 꺼져내리기 시작했다. 새벽빛이 푸름푸름 밝아서 삼림의 어둠을 걷어갔다. 작은 엘크는 긴긴 밤을 두고 얼마나 많은 오줌을 쌌는지 모른다. 작은 엘크는 무거워 나는 머리를 간신히 쳐들었다. 어쩌면 산밖에 나가서 장밤을 패며 미친듯이 놀다가 새벽에야 숙영지로 돌아오는듯한 기분이였다. 작은 엘크는 너무도 피곤했다. 사람과 엘크와 늙은 사냥개는 강변의 삼림속에서 긴긴 하루밤을 걸었다. 옹근 한주일이 지나서야 작은 엘크는 원기를 회복했다. 하지만 여전히 수시로 긴 트림을 했다. 속을 파며 올라오는 트림은 언제나 역한 냄새를 동반했는데 금방 술에서 깬 사람이 다시 술냄새를 맡았을 때처럼 작은 엘크를 힘들게 했다. 트림이 올라올 때마다 작은 엘크는 고통스럽게 두눈을 꼭 감고 반사적으로 머리를 마구 흔들었다. 숙영지에 돌아와서 처음 며칠간, 작은 엘크는 물을 먹는 외에 다른 먹이는 입에 대지도 않았다. 그 바람에 작은 엘크는 눈에 뜨이게 축해갔다. 어쩌면 가죽을 씌워놓은 해골을 보는것 같았다. 달빛이 밝던 어느날밤, 작은 엘크는 크게 한번 트림을 하고는 갑자기 못을 향해 뛰여갔다.   이튿날아침, 밖으로 나온 거리썬커는 뿔에 수초를 가득달고있는 작은 엘크를 발견했다. 그놈은 금방 쏟아지기 시작한 해볕에 젖은 몸을 말리우는것 같았다. 작은 엘크의 배는 또 눈에 띄이게 불룩해있었다. 하지만 거리썬커는 크게 근심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쉽게 소화되는 수초였던것이다. 오향사람들은 인차 몸뚱이가 큰 작은 엘크를 좋아하게되였다. 하지만 작은 엘크에게 큰 상처를 입은 몇몇 사냥개들의 주인은 여전히 시답지 않은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전에 칼로 곰을 잡았다는 전설을 가지고있는 덕망이 높은 거리썬커앞에서 그들도 내놓고 뭐라 시비를 걸지는 못했다. 게다가 상한 발만 나으면 거리썬커가 곧 삼림속으로 들어가게 될것이라고 짐작했던것이다. 오향의 애들도 며칠간은 작은 엘크에게 호기심을 보이더니 인차 흥미를 잃은듯싶었다. 어쩌면 작은 엘크가 얼굴이못생긴 야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것 같았다. 엉뚱한 짓을 좋아 하는 애들은 가끔 작은 엘크에게 돌멩이 같은것을 쥐여뿌리기도 했다. 그런 돌멩이들이 작은 엘크의 몸뚱이를 명중할 때도 있었다. 딴딴한 가죽을 가지고있는 작은 엘크는 비록 아프지는 않았지만 그 애들이 자기에게 왜 돌멩이를 뿌리는지는 리해할수 없었다. 차수가 잦아지자 작은 엘크는 아에 자기에게 돌멩이질을 하는 애들을 돌아보지도 않고 슬렁슬렁 꼬리질을 해서 모기를 쫓으며 볕쪼임을 했다. 성격이 온순한 거대한 몸뚱이의 야수를 앞에 두고 애들도 더 이상의 어뚱한 짓은 생각해낼수 없었다. 전날밤에 강에 가서 수초를 가득 뜯어 먹은 작은 엘크는 그날아침에 몸에 묻은 물기를 말리우면서 천천히 골목길로 해서 집으로 돌아오고있었다. 작은 엘크는 방목을 끝낸 소처럼 늘쩡늘쩡 걸음을 옮겨놓았다. 작은 엘크는 오향에서 더 이상 무서운것이 없었다. 작은 엘크에게 혼뜨검이 난 오향의 사냥개들은 그를 보기만 하면 꼬리를 내리우고 몸을 피했다. 작은 엘크는 로씨야식으로 지은 나무집을 에도는 담장곁에서 예전처럼 잠간 걸음을 멈추고 가려운데를 긁었다. 그때 또 웬 향기로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것은 작은  엘크가 종래로 맡아본적이 없는 냄새였다. 작은 엘크는 그 냄새를 따라서 두 담장사이에 있는 좁은 골목에 들어섰다. 갑자기 무슨 물건인가 눈앞을 스쳐지나가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작은 엘크는 그에 중시를 돌리지 않았다. 그저 어디서 바람에 날려온 가는 나무가지나 거미줄에 지나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했을뿐이였다. 하지만 그런 물건들이 점점 더 많이 떨어져내렸다. 그것은 누군가 작은 엘크를 향해 던지는 올가미였다. 작은 엘크는 일시 그 물건이 자기에게 어떤 해를 끼치리라는것은 알수 없었지만 자기의 목을 조이는 그 물건이 절대 가는 나무가지나 거미줄이 아니라는것은 확인할수 있었다. 백씨와 진종일 할일없이 빈둥거리는 몇몇 마을청년들이 담장뒤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작은 엘크가 상상처럼 그렇게 몸부림을 치지 않자 그들이 되려 이상스럽게 생각했다.  작은 엘크의 목에 떨어진 올가미가 차츰 죄여졌다. 하지만 아직 호흡이 곤난한 지경에는 이르지 않았다. 작은 엘크는 그때 목을 죄이는 올가미보다 몇발자국에 하나씩 떨어져있는 당근에 더 흥미가 있었다. 작은 엘크는 혀를 길게 내밀어 눈앞의 당근을 입에 넣은후 인차 또 다른것을 찾아 앞으로 나갔다. 백씨네는 느슨하게 줄을 끌고 천천히 앞으로 갔다. 량쪽담장사이의 골목길이 끝나는 곳에 낡은 트럭 한대가 세워져있었다. 작재함뒤면이 열려져있었는데 나무판자가 그로부터 땅에 놓여져있었다. 백씨는 당근을 매단 끈을 당겨서 적재함에까지 가져간다면 작은 엘크는 순순히 트럭의 적재함에 오를것이라고 생각하고있었다. 그때 적재함뒤면을 막고 차를 몰아가면 거액의 돈다발이 손에 들어오는것이였다.  끈에 달린 당근을 하나하나 뜯어 먹으며 앞으로 발걸음을 다그치던 작은 엘크는 트럭앞에까지 와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이상한 생각이 머리를 쳤던것이다. 머리를 들어 아무리 자세히 살펴봐도 본 기억이 없는 물건이였다. 전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근본 그런 괴물이 없었던것이다. 우에다 방수포를 덮어놓은 적재함은 어두컴컴한 상자처럼 느껴졌다. 작은 엘크는 그러한 방수포는 응당 삼림에 있는 천막에나 덮어놓아야 한다고 생각되였다. 작은 엘크도 다른 동물들처럼 벽이나 천정에 대해 천성적으로 공포를 느끼고있었던것이다. 백씨네는 너무도 순조롭게 작은 엘크를 트럭에까지 데려와서였던지 더 이상 그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들은 작은 엘크가 갑자기 멈추어서자 신경질적으로 작은 엘크의 목을 건 올가미를 힘껏 당겨 억지로 트럭에 끌어올리려고 시도했다. 작은 엘크는 목을 죄여오는 감을 느꼈다. 숙영지에서 작은 엘크가 그렇게 많은 사단을 일으켜도 거리썬커는 종래로 그의 목에 올가미를 걸지 않았었다. 작은 엘크가 천막을 뒤집어 엎기직전으로 치달으던 그날 뒤로는 말이다.  작은 엘크는 뒤로 물러서서 한시바삐 숨막히게 하는 그 좁은 골목을 벗어나려고 했다. 작은 엘크는 불안한 표정으로 연신 재채기를 하며 힘있게 머리를 쳐들었다. 그때 작은 엘크의 작은 두눈에서는 공포의 빛이 흘러나왔고 커다란 발굽은 연신 땅을 두드려댔다. 하지만 백씨네는 그것이 작은 엘크가 그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경고라는것을 모르고있었다. 그들은 적재함량쪽에 두줄로 서서 올가미를 당겼다. 백씨는 작은 엘크가 반항하는것을 보고 어딘가 불만스러워 하는것 같았다. 그는 당기던 줄을 느슨히 벌려들고 작은 엘크의 뒤로 가서 힘껏 발을 날렸다. 백씨는 큼직한 돌멩이를 걷어차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작은 엘크의 근육은 실로 돌처럼 단단했던것이다. 백씨는 미처 아파나는 자기의 발을 돌아볼 새도 없었다. 작은 엘크는 머나먼 동굴에 갇쳤다가 뛰쳐나오는 야수의 포효와도 같이 괴상한 소리를 지르며 몸을 돌렸다. 아까까지도 조금 남아있던 공포의 눈길이 어느새 맹수의 포악한 눈길로 변해있었다. 경험이 있는 사냥군이라면 모두 성난 엘크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것이다. 백씨가 작은 엘크의 발굽에 채워 저쪽으로 나가 떨어졌는데도 그 몇몇 청년들은 여전히 손에 쥔 끈을 힘껏 당겼다. 작은 엘크가 몇번 머리를 젖자 끈이 청년들의 손에서 빠져나왔다. 그 바람에 청년들의 손바닥에 뻘건 피자국이 선명하게 생겨났다. 사실 작은 엘크에게 있어서 그쯤한 끈은 사실거미줄에 지나지 않았던것이다. 작은 엘크는 진작 야수로 변해 미친듯이 포효하고있었다. 그는 그 몇몇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포위망에서 벗어나 한시바삐 거리썬커의 곁으로 돌아가고싶었다. 그들은 여전히 실패를 달가와 하지 않고 작은 엘크를 트럭에 올리실으려고 시도했다. 작은 엘크는 더 이상 참을수 없었다. 그제야 사태를 파악한 백씨네는 내 꼴 봐라 하는 식으로 도망치기에 급급했다. 오향사람들이 동정을 듣고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땅크를 방불케 하는 야수가 트럭과 담장 사이를 미친듯이 오가며 닥치는대로 마구 들이박는것을 똑똑하게 보고있었다. 트럭이 무섭게 흔들렸다. 담장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작은 엘크는 여전히 진정을 하지 못했다. 갑자기 담장이 무너져내렸다. 작은 엘크는 십여개의 올가미를 목에 건채 커다란 네 발굽으로 세상을 다 뒤엎으려는듯 련달아 땅을 굴러대다가 뽀얗게 먼지를 일으키며 그곳을 벗어났다. 작은 엘크가 떠나간 골목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작은 엘크에게 공격을 당한 청년들이 랑패상을 짓고 땅에 너부러져 연신 신음을 했다. 거리썬커가 금방 울안에 나왔을 때 작은 엘크가 금방 포화를 뚫고 나온듯한 모습으로 들어서고있었다. 목에는 십여개의 올가미가 걸려있었고 뿔에는 너덜너덜해진 바지 하나가 걸여있었다. 거리썬커를 본 작은 엘크는 다소 시름이 놓이는지 멈추어 서서 거친 숨을 몰아쉬였다. 어릴 때 수순록들에게 당한후 억울한듯 거리썬커를 찾던 그 모습을 보는듯싶었다. 거리썬커는 부드럽게 작은 엘크의 입과 코를 만져주었고 그의 목에 걸려있는 올가미들을 풀어주었으며 뿔에 걸려있는 너덜너덜해진 바지를 내리워주었다. 거리썬커는 작은 엘크의 몸을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다행스럽게도 큰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 거리썬커는 작은 엘크를 더 이상 오향에 둘수 없다고 판단했다. 백씨네가 어느날 또 작은 엘크를 꾀여다 팔아버리려고 시도할것이라 생각되였다. 만약 팔려가기만 하면 작은 엘크는 영원히 철창에 갇혀 살아야 할것이였다. 몇년전에 거리썬커는 새끼곰을 잡아다가 산밖의 동물원에 보낸적이 있었다. 거리썬커는 산밖에 나갔다 온 사람들을 통해 성년이 된 그 곰이 어두컴컴한 동굴에 갇혀 산다는 소식을 들었던것이다. 황야에서 무적의 힘을 과시해야 할 그놈은 야성을 다 잃어버리고 맨날 구경군들앞에서 뒹굴며 먹이를 동냥한다는것이였다. 그 소문을 들으면서 거리썬커는 일찍 그럴줄을 알았더면 어릴 때 진작 총으로 쏴죽일것을 그랬다고 자신을 나무랐다. 거리썬커는 발이 채 아물지 않았지만 그날밤으로 작은 엘크와 꼬리 없는 사냥개를 데리고 숙영지를 향해 걸음을 재우쳤다.       5. 봄날의 강물   그것은 작은 엘크가 숙영지로 와서 여섯번째로 맞는 봄이였다. 거리썬커는 웬지 자꾸 졸음이 몰려들었다. 지어는 장작을 패다가도 졸음이 쏟아져 그 자리에 누워 잠을 잤다. 눈만 붙이면 오래도록 잠을 잤다. 날이 어두워지면 울안의 기온이 크게 떨어져 온몸이 꽛꽛해났다. 꼬리 없는 사냥개가 부드럽게 거리썬커의 얼굴을 핥아주어서야 놀라 잠을 깨군 했다. 처음에 거리썬커는 그저 춘곤증이 작용하는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졸음은 보통 춘곤증을 초월하는것 같았다. 어느날 저녁무렵, 거리썬커는 울안에 앉은채로 잠을 자다가 꼬리 없는 사냥개가 얼굴을 핥아주는 바람에 눈을 떴다. 전에 없던 편안함이 느껴졌다. 해볕이 따스하게 그의 얼굴을 비추었다. 마치도 어릴 때 삼림에서 친구들과 함께 유희를 놀던 동년으로 돌아간듯싶었다. 어머니가 저녁을 먹으러 들어오라고 소리를 치는듯한 환청이 들렸다. 소나무가 파도처럼 설레였다. 하지만 그 순간 거리썬커는 막을수 없는 자연의 힘을 볼수 없었다. 다만 어렴풋이 느낄수 있을뿐이였다. 작은 엘크는 숙영지부근에서 배회하고있었다. 내심하게 거리썬커를 기다리는듯싶었다. 거리썬커가 자기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기를 고대하는것 같았다. 거리썬커는 기다리던 순간이 도래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작은 엘크를 떠나보내는 순간이였다. 그날아침, 밤도와 배부르게 수초를 먹은 작은 엘크는 만족스러운듯 흥겹게 숙영지로 돌아왔다. 그를 기다리는것은 홍탕을 섞은 죽이였다. 작은 엘크가 후룩후룩 죽을 먹고있을 때 거리썬커는 작은 엘크의 귀등에 숨은 이를 잡아주었다. 작은 엘크는 한통이나 되는 죽을 말끔히 먹어치웠다. 죽을 너무 많이 먹어서인지 걸음을 걸으니 배에서 물이 출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침밥을 먹은후 거리썬커는 꼬리 없는 사냥개와 작은 엘크를 데리고 길에 올랐다. 거리썬커는 해빛 따스한 삼림속을 천천히 걸었다. 그는 벌써 얼마나 오래동안 삼림에서 생활했던지 기억마저 묘연했다. 그는 백여년을 내려오며 순록의 발자국밑에서 생겨난 오솔길들을 너무도 익숙하게 알고있었다. 그는 또 삼림속에 일곱가닥의 뿌리가 달린 아름다운 마록이 살고있고 강물 어느 부근에 살찐 물고기들이 노닌다는것도 알고있었다. 그리고 삼림에서 수시로 들꿩이 날아예고 고라니가 출몰한다는것도 알고있었다. 꼬리 없는 사냥개가 흥흥 코김을 내쏘며 거리썬커에게 무엇인가를 귀띔하는것 같았다. 하지만 거리썬커는 못 들은듯 머리를 수긋하고 앞으로 걸음만 옮기다가 갑자기 자기의 앞을 스쳐 앞으로 달려가는 꼬리 없는 사냥개를 돌아오라고 소리쳤다.  꼬리 없는 사냥개는 거리썬커의 뜻을 몰라 멍해졌다.  거리썬커는 눈앞에 나타난 사냥물도 발견하지 못하고 묵묵히 걸음을 옮기기만 했다. 꼬리 없는 사냥개는 수시로 머리를 돌려 삼림속으로 도망쳐 들어가는 고라니의 달싹거리는 꼬리를 멍하니 바라보면서 못내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그때 작은 엘크는 별 생각이 없이 거리썬커의 뒤를 묵묵히 따라 걷다가도 금방 머리를 쳐드는 애기풀을 뜯어 먹었다. 그들은 오래동안 걸어서 작은 엘크가 종래로 와본적이 없는 풀밭에 닿았다. 조금만 더 앞으로 가면 사람의 발자국도 닿은적이 없는 원시삼림이였다. 그곳은 삼림속의 평평한 공지였다. 거리썬커는 쓰러져있는 고목을 당겨다 걸터 앉은후 조심스럽게 총을 걸쳐놓고 호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꼬리 없는 사냥개는 거리썬커의 발치에 엎드렸다. 하지만 힘이 넘쳐나는 작은 엘크는 옆에 있는 자작나무곁으로 다가가 돋아나는 파아란 싹을 뜯어 먹었다. 작은 엘크의 위는 그야말로 끝이 보이지 않는 심연 같았다. 거리썬커는 그곳에 앉아 오래도록 작은 엘크를 주시했다. 작은 엘크를 금방 숙영지에 데려왔을 때 그놈은 새끼양처럼 작았었는데 지금은 그의 키를 넘어서는 커다란 엘크로 자라난것이다.  거리썬커는 그러한 생각을 굴리면서 찾아드는 어둠을 맞이했다. 거리썬커는 어디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연하게 생각되였다. 멀지 않은 나무숲에서 까마귀 한마리가 날아오르며 청승스럽게 울어댔다. 그 울음소리는 거리썬커에게 손을 쓰게끔 용기를 준것 같았다. 거리썬커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크게 소리쳤다. 그때 그의 손끝은 작은 엘크의 코를 가리키고있었다. 작은 엘크는그 소리에 깜작 놀라 멍해졌다. 금방 따서 입에 넣은 파란 싹이 그의 입귀로 흘러내렸다. 숙영지에서처럼 상자를 밟아 마스지도 않았고 물통을 차번지지도 않았으며 천막안에 들어가 시렁을 넘어뜨리지 않았고 먹이를 훔쳐 먹지도 않았는데 거리썬커가 왜 그렇게 성나 소리치는지 알수 없었다. 작은 엘크는 천천히 거리썬커의 앞으로 다가가 커다란 코등을 내밀어 거리썬커의 손바닥에 비벼댔다. 거리썬커의 표정에서 구경 무슨 영문인지를 알고싶어하는것 같았다. 거리썬커의 꺼칠꺼칠한 손바닥이 작은 엘크의 얼굴을 사정없이 때렸다. 작은 엘크는 흠칫 놀라면서 뒤로 한발자국 물러서서 작은 두눈을 크게 치떴다. 그는 방금 발생한 모든것을 도무지 믿을수가 없었다. 작은 엘크는 선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거리썬커는 만약 그때 손을 멈춘다면 다시 손을 쓸만한용기를 얻지 못할것이라는것을 너무도 잘 알고있었다. 거리썬커는 주먹에 힘을 주어 작은 엘크의 목을 들이쳤다. 작은 엘크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는 눈앞에서 벌어지고있는 모든것이 환각이라고 생각하는것 같았다. 거리썬커는 시큰시큰해 나는 손등을 비볐다. 더 이상 작은 엘크를 때릴 힘이 없는것 같았다. 그 시각 거리썬커는 분명 자기가 돌멩이를 내리쳤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였다. 거리썬커는 막연한듯 머리를 설레설레 젓다가 뒤로 몇걸음 물러서서 쓰러진 고목에 기대놓았던 총을 주어들었다. 거리썬커는 탄알을 재운후 총탁을 어깨에 올려놓았다. 총알은 작은 엘크에게서 한메터도 채 되지 않는 곳에 떨어졌다. 총소리는 고요하던 삼림의 황혼을 들깨워놓고는 인차 사라졌다. 꼬리 없는 사냥개에게 있어서 총소리는 공격의 전주곡이였다. 그놈이 다른 사냥개들과 함께 사냥을 나가기 시작해서부터 총소리는 바로 추격을 의미했고 결투를 상징했으며 피비린내를 떠올리게 했다. 감정을 표달하는데 꼭 필요한 그놈의 꼬리도 총성이 지나간후의 한차례 결투에서 잃은것이였다. 탄알은 땅을 스치며 먼지만 일으켰다. 꼬리 없는 사냥개의 기억에 다른 사람이 총을 쏘아 사냥물을 명중하지 못한적은 있어도 거리썬커가 명중하지 못하는 일은 처음이였다. 꼬리 없는 사냥개는 생각할수록 뭐가 무엇인지 통 리해할수 없었다. 주인이 쏜 탄알이 왜 저놈의 발치에 와서 떨어진단 말인가? 그 정도로 명중을 잘 하지 못했단 말인가? 꼬리 없는 사냥개는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답안을 찾을길이 없는지 절레절레 머리를 저으며 거리썬커를 바라보았다. 얼기설기 주름이 간 거리썬커의 얼굴에 복잡한 표정이 스쳐지났다. 어쩌면 처음 보는듯한 생소한 표정이였다. 평소 거리썬커는 총을 쏜후 얼굴에 아주 평온한 기색을 짓군 했다. 아니라면 다시한번 총을 쏘아 사냥물의 고통을 빨리 끝내줄뿐이였다. 뽀얗게 날리던 먼지가 가라 앉은지 이슥했건만 작은 엘크는 연전히 무슨 일이 발생하고있는지를 모르고있었다. 그는 무거워 나는 머리를 불안하게 저어댔다. 이어 또 총소리가 울렸다. 탄알은 작은 엘크로부터 더욱 가까운 거리에 떨어졌는데 튕겨오른 모래알들이 그의 앞다리를 스쳐지났다. 작은 엘크는 불안해서 진정을 하지 못했다. 그는 크게 뜬 충혈된 두눈으로 뚫어져라 거리썬커를 찍어보았다. 가슴에서는 거친 숨소리가 연신 터져올랐다. 거리썬커는 작은 엘크가 몹시 불안할 때 그러한 동작을 취한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줄곧 거리썬커의 옆을 지키고있던 꼬리 없는 사냥개는 갑자기 무엇인가를 알것만 같았다. 거리썬커는 분명 작은 엘크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것이였다. 그러자 꼬리 없는 사냥개는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주인이 작은 엘크에게 총을 쐈는데 나는 그에게 달려들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주인은 작은 엘크를 죽이려고 하는것이다. 오랜 세월을 함께 생활해온 식구와도 같은 작은 엘크를 죽이려고 하는것이다. 추운 겨울밤, 서로 몸을 꼭 붙이고 불어오는 찬 바람을 막아내던 동지와도 같은 작은 엘크를 죽이려고 하는것이다. 정확한 판단을 하지 못한 꼬리 없는 사냥개는 급해서 미칠것만 같았다. 꼬리 없는 사냥개는 어릴 때 거리썬커와 함께 사냥을 나가군 했는데 사냥물을 보기만 하면 흥분해서 마구 날뛰였다. 하여 총을 쏠 적당한 시기를 놓친 거리썬커는 결김에 꼬리 없는 사냥개를 마구 때린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썩 후에야 꼬리 없는 사냥개는 사냥물을 발견하면 앞에서 날뛰지 말고 사냥물이 어디에 숨어있다는것을 알려야 한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꼬리 없는 사냥개는 바로 그 순간이 소리를 치지 말고 조용하게 있어야 할 때라는것을 알고있었지만 가슴속에서 올리미는 일종의 충동은 도무지 그를 진정할수 없게 만들었다. 꼬리 없는 사냥개는 목에 힘을 주며 무섭게 으르렁거렸다. 어쩌면 판단력을 잃은것 같은 주인에게 당신이 죽이려고 하는것은 숙영지에서 매일 함께 살던 작은 엘크라고 엄하게 경고를 하는듯싶었다. 하지만 거리썬커는 꼬리 없는사냥개의뜻을 전혀 아는것 같지 않았다. 급해난 꼬리 없는 사냥개는 용기를 내서 거리썬커의 다리에 자기의 몸을 힘껏 부딪쳤다. 그것은 아주 위험한 동작이였다. 탄알을 총에 재워 들고있던 사냥군이 준비 없는 공격에 넘어라도 지면서  방아쇠를 당긴다면 후과는 상상할수 없는것이였다. 거리썬커는 정신을 번쩍 차리면서 꼬리 없는 사냥개의 옆구리를 힘껏 걷어찼다. 너무나도 강력한 발길이였다. 하지만 꼬리 없는 사냥개는 이를 옥물고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꼬리 없는 사냥개는 영원히 리해할수 없을것 같은 인간세상을 두고 막연하게 머리만 저을뿐이였다.  거리썬커는 작은 엘크에게 더 이상 이 세상을 리해할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는 작은 엘크의 발밑에 있는 돌멩이를 묘준해 또 방아쇠를 당겼다. 그는 바로 돌멩이의 옆면을 묘준했던것이다. 총알은 정확하게 돌멩이를 마치면서 귀청을 째는듯한 소리를 냈다. 탄알에 맞아 떨어진 돌조각이 날아서 작은 엘크의 코등을 때렸다. 작은 엘크는 크게 재채기를 하면서 펄쩍 올리솟았다.  이어 작은 엘크는 몇발자국 앞으로 달리다가 걸음을 멈추고 머리를 돌려 거리썬커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길에는 수많은 의문이 담겨져있었다. 작은 엘크는 자기에게 고통을 주는 장본인이 바로 거리썬커의 손에 들려서 파아란 연기를 몰몰 피워올리는 그 총이라는것을 똑똑히 알수 있었다. 이어서 발생한 일들은 거리썬커마저도 놀라서 두눈이 휘둥그레해지게 했다. 거리썬커는 한번 또 한번 탄알을 재웠다. 탄알은 정확하게 작은 엘크의 발굽밑이며 귀옆이며를 스쳐지났다. 거리썬커는 스스로도 자기의 사격술이 그렇게 뛰여난것에 놀라는것 같았다.  작은 엘크는 너무도 놀라 미칠것만 같았다. 그는 종래 그렇게 많은 총알이 신변에 떨어져내리는 경험을 해본적이 없었다. 련달아 터지는 총소리와 코를 파고드는 매캐한 탄약냄새는 작은 엘크를 공포의 수렁으로 몰아가고있었다. 탄알에 맞은 돌멩이며 흙덩이들이 어지럽게 날아와 작은 엘크의 몸뚱이를 때렸다. 한순간이였다. 커다란 돌멩이 하나가 날아와 잔물결 출렁이던 작은 엘크의 마음의 호수에 면바로 떨어져내리는것 같았다. 그 파문이 채 가셔지기도전에 작은 엘크가 아득바득 잡아쥐고있던 인류와의 뉴대가 우지끈 부러져나가는듯싶었다. 작은 엘크는 순간 공포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몇년전의 피로 얼룩졌던 그 오후에 작은 엘크는 거리썬커에게 어미를 잃고 숙영지로 갔던것이다.  작은 엘크는 부르르 몸을 떨며 기승스럽게 머리를 흔들었다. 재현되려는 몇년전의 그 악몽을 떨쳐버리려는것 같았다. 비발치는듯한 탄알도 더 이상 작은 엘크의 중시를 일으키지 못하는것 같았다. 작은 엘크는 자기에게 총을 쏴대는 거리썬커를 절망에 찬 눈길로 바라보았다. 저 사람이 한때 나에게 먹이를 주고 잠자리를 주고 사랑을 주던 그 사람이란 말인가? 작은 엘크는 낯선 사람을 보는듯싶었다. 종래로 본적이 없던 낯선 사람을 마주한것 같았다. 작은 엘크는 몸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았다. 금방 시동을 건 군함을 방불케 했다. 차츰 속도가 빨라졌다. 네다리가 어울려 돌아가는것이 달리는게 아니라 나는것만 같았다. 삼림속의 울퉁불퉁한 돌밭길에서 자기가 그처럼 빨리 달릴수 있다는게 스스로도 놀라울 따름이였다. 나무사이에 엉켜진 풀덩굴도 작은 엘크의 앞길을 막지 못했다. 삼림은 작은 엘크의 세상이였다. 작은 엘크는 황야에 속하는 맹수였다. 작은 엘크의 적동색 그림자는 눈 깜박 할 새에 삼림속으로 사라졌다. 거리썬커는 쉬지 않고 작은 엘크가 사라진쪽을 향해 눈먼 총질을 해댔다. 사격은 탄알이 떨어질 때까지 계속되였다. 마지막 탄알까지 날려보내고난 거리썬커는 멍하니 서서 작은 엘크가 사라진쪽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콩 볶는듯한 총소리가 여전히 귀청을 째는듯 했다. 거리썬커는 손에 들고있던 총을 스르르 땅에 떨구었다. 그 순간총은 거리썬커에게너무도 무겁게 느껴졌다. 초연이 말끔하게 걷혔다. 거리썬커는 총을 주어들고 그에 기대여 겨우 몸을 지탱했다. 거리썬커는 그곳에 뿌리를 내린듯싶었다. 태양은 서서히 산저쪽에 얼굴을 감추고있었다. 삼림에 찬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바람이 불어쳤다. 거리썬커는 그제야 청각이 회복되는것 같았다. 자지러진 총소리와 그 메아리들이 차츰 멀리로 사라지는것 같았다. 바람이 연출하는 소나무파도가 쏴쏴 노래를 부르고있었다. 삼림에 어둠이 내려 앉았다. 거리썬커는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 거리썬커는 꼬리 없는 사냥개를 찾아 주변을 살폈다. 그놈은 소리없이 거리썬커의 옆에 엎드려 작은 엘크가 사라진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있었다. 거리썬커는 꼬리 없는 사냥개의 두터운 목덜미가 축 처져내린것을 발견했다. 벌써 몇년째 꼬박 거리썬커를 따른 사냥개였다. 털에도 기름기가 별로 보이지 않았고 옆구리는 쑥 꺼져들어가있었다. 뿌옇한 눈길에는 한점의 정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놈은 이미 너무 늙어버린것이였다. 거리썬커는 뼈속까지 파고드는 무기력함을 느꼈다. 그는 겨우 총에 몸을 의지하여 돌멩이우에 앉았다. 그는 조용히 총을 곁에 내리워놓고 꼬리 없는 사냥개를 불렀다. 거리썬커는 벌써 오래동안 그렇게 다정하게 꼬리 없는 사냥개를 부른적이 없었다. 그들은 함께 있은 시간이 너무 오래기에 그렇게 부르지 않고 눈짓 한번만으로도 서로의 뜻을 전할수 있었던것이다.  꼬리 없는 사냥개가 머리를 돌려 거리썬커를 바라보았다. 꼬리 없는 사냥개의 눈길에서 잠간 초점이 사라진듯 해보였다. 거리썬커는 다시한번 조용히 꼬리 없는 사냥개를 불렀다. 그 부름소리에 초점을 잃은것 같던 꼬리 없는 사냥개의 눈길이 반짝 빛났다. 어릴 때, 꼬리 없는 사냥개는 거리썬커와 함께 사냥을 나갔다가 길을 잃은적이 있었다. 거리썬커는 그때 바로 지금처럼 꼬리 없는 사냥개를 부르면서 찾아헤맸던것이다. 꼬리 없는 사냥개는 천천히 거리썬커의 곁으로 다가가 무거워 나는 머리를 그의 품에 기댔다.  그들은 함께 작은 엘크가 사라진쪽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들은 그렇게 오래도록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날이 완전히 어두워서야 그들은 숙영지로 돌아갔다. 봄이 왔다. 공기중에는 언 땅을 녹이는 따듯한 기운이 타래치고있었다. 거리썬커와 꼬리 없는 사냥개는 강에 가로 놓인 나무다리를 지나 또 오래도록 걸음을 옮겼다. 숙영지는 삼림심처에 있었다. 주변은 어두컴컴했다.     6. 바람은 여전히 세차다   그번 바람은 터지기전에 아무 징조도 없었다. 아침까지만 해도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맑았다. 정오가 지나자 검은 구름이 고삐를 벗어난 들말처럼 산등성이를 넘어왔다. 바람은 성냥가치를 끊어버리듯 아름드리 나무들을 동강냈다. 산아래의 오향에도 세찬 바람이 불어쳐 몇몇 나무집은 지붕이 날려갔다. 그번 광풍은 눈 깜박할 새에 지나갔지만 오향은 전쟁을 거치고난듯 황량한 풍경을 연출해냈다. 날씨가 차츰 맑아지면서 하늘에서 갑자기 눈송이가 날아내렸다. 그것은 6월의 하늘이였다. 오향의 몇몇 젊은이들이 삼림에 있는 숙영지로 갔을 때 거리썬커는 천막앞에 누워있었다. 그의 몸은 이미 꽛꽛하게 굳어있었다. 그의 손에 그때까지 도끼가 쥐여져있는것으로 보아 장작을 패다가 쓰러진것 같았다. 꼬리 없는 사냥개는 여위다 못해 뼈에다 가죽을 씌우놓은것 같았지만 사람들이 울안에 모여드는것을 보고 무섭게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그의 두눈은 흐려있었는데 이미 머리를 쳐들 힘마저 없는것 같았다. 사람들은 거리썬커의 시신을 숙영지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한그루의 큰 나무우에 올려놓았다.  풍장은 오원커족인민들의 원시석인 장사방법이였다. 사람들이 거리썬커의 시신을 금방 나무우에 안치했을 때 꼬리 없는 사냥개가 다가왔다. 그는 머리를 푹 숙이고 거리썬커의 시신을 올려놓은 나무주위를 묵묵히 몇고패 돌더니 소리없이 나무에 몸을 기대고 앉았다. 커리썬커를 따라 몇년을 삼림에서 살아온 꼬리 없는 사냥개는 그후 다시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두눈을 감았다… 오원커족사람들은 소금주머니를 흔들면서 순록을 끌고 새로운 숙영지를 찾아 떠났다. 그후 오원커족사람들은 다시 그 삼림에 들어가지 않았다. 몇년후, 산밖에서 온 한 사냥군이 그 삼림에 발을 들여놓았다. 사냥군은 그 삼림에서 거대한 몸집을 가진 엘크 한마리를 보게 되였다. 그놈의 키는 사람의 기보다도 더 컸다. 당황한 가운데 사냥군은 가지고 왔던 탄알을 단숨에 쏴버렸다. 그중 한알이 엘크의 왼쪽귀방울을 뚫고 지나갔다.   사냥군이 정신을 추스리고 결과를 확인하려고 할 때 엘크는 이미 그의 곁에 달려와 있었다. 그놈은 커다란 뿔로 사냥군을 툭 쳐서 저쪽에 뿌리쳤다. 사냥군이 다행히 관목숲에 떨어졌으니 망정이지 아니라면 그 자리에서 뼈가 부러졌을것이였다. 사냥군은 머리가 어지러워 몸을 지탱할수 없었다. 그때 엘크가 세수소래아구리만큼한 발굽을 번쩍 들어 사냥군에게 덮쳤다. 죽었구나, 꼼짝 못하고 죽게 되였구나. 얼굴이 파김치로 되여버린 사냥군은 두눈을 꼭 감고 중얼거렸다. 엘크의 커다란 발굽이 사냥군의 머리를 밟기만 한다면 그 자리에서 뇌수가 터져버릴것이였다. 사냥군은 비록 엘크에게 물려 죽은 사람은 본적이 없었지만 엘크에게 채워서 다리가 끊어진 사냥개는 본적이 있었다. 사냥군은 더 이상 지탱하지 못하고 놀라서 그 자리에 무너져내렸다. 얼마후 사람들이 사냥군을 발견했을 때 그는 이미 죽은듯싶었다. 해볕은 그의 얼굴도 빠드리지 않고 따뜻하게 비춰주었다. 얼마후, 사냥군이 천천히 눈을 떴다. 그때 엘크의 갈색 뒤모습이 삼림속으로 천천히 사라졌다. 물론 이 모든것은 그 사냥군이 후에 전설처럼 이야기한것이여서 그 진실성은 가늠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 사냥군의 옆구리에는 확실히 깊은 상처자국이 나있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 상처자국은 엘크가 자기를 들어 뿌려던질 때 뿔에 긁혀 난것이라고 했다.  그 사냥군을 내놓고도 땔나무를 하는 사람들이나 약재를 캐는 사람들이 가끔 삼림에 발을 들여놓을 때가 있었는데 모두들 수풀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엘크를 본적이 있다고 했다. 모두들 그놈의 왼쪽귀에 탄알자리가 똑똑하게 나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엘크는 사람을 보고 다른 동물들처럼 도망치지 않고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머리에 우뚝 솟아있는 커다란 뿔이 위무당당해보였다. 그놈은 코방울을 벌름거리며 삼림에 들어선 낯선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여유작작 삼림속으로 살아지군 했다. 삼림속에서 엘크를 본적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 놀라운 크기에 혀를 내둘렀다.      엘크: 몸길이는 2∼2.6m이고 키는 1.5∼2m이다. 무스, 락타사슴이라고도 불리운다. 현존하는 최대의 사슴으로서 몸집이 말보다 크다. 수컷에게는 손바닥모양의 뿔이 있다.     몸은 튼튼하고 앞다리와 뒤다리는 길지만 꼬리는 짧다. 주둥이는 넓고 밑으로 늘어졌으며 얼굴은 길고 귀는 크다. 발굽은 가늘고 길며 끝이 뾰족하다. 여름털은 검은빛을 띤 갈색, 검은색, 붉은 빛을 띤 갈색, 회색을 띤 갈색이지만 겨울털은 회색을 띤다. 어린 새끼는 붉은 빛을 띤 갈색이다.      엘크는 보통 습지나 삼림지대에서 단독으로 생활한다.  9―10월의 번식기에는 수컷들이 암컷을 두고 격렬하게 싸움을 한다. 여름에는 호수나 산간계곡이 가까운 곳에서 수중식물을 찾아 잎이나 가는 가지를 뜯어 먹는다. 임신기간은 240일좌우이고 한배에 1∼3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수명은약 20년이다. 카나다, 북아메리카, 스웨덴, 노르웨이, 씨베리아, 중국, 몽골 등지에 분포되여있다.
12    고요한 자작나무숲*거르러치무거 헤허 댓글:  조회:1797  추천:2  2013-12-03
고요한 자작나무숲 -나의 동년의 이야기 빠투는 총을 내리웠다. 그 장면을 지켜보면서 빠투는 천천히 두걸음을 뒤로 물러선후 몸을 돌려 관목림으로 들어갔다. 바람 한점 없는 관목림은 물결이 일지 않는 수면을 련상케 했다. 그놈은 록색의 호수에 빠져들어간듯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빠투는 그 늑대를 다시 만나리라고는 정말 생각한적이 없었다. 그놈은 귀신도 모르게 그곳에 나타났었다. 그놈은 자기가 감쪽같이 삼림과 하나로 융합된것으로 하여 기쁨을 금할수 없어했을것이다.  빠투는 수렵물에 접근할 때 될수 있는 한 대방이 눈치를 채지 못하게 했다. 그는 숨소리 한번 크게 내쉬지 않았다.대방은 그를 나무가지나 돌멩이로 착각할 때가 많았다. 빠투는 어릴 때부터 이 삼림에서 다람쥐와 같은 작은 동물을 쫓군 했다. 그때 그의 키는 총대보다 얼마 더 크지 않았었다.  근심이 가득해보이는 암늑대는 그때 빠투를 보지 못하고있었다. 빠투가 걸음을 천천히 옮겨놓았기에 발밑에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던것이다. 게다가 빠투는 그때 바람이 흐르는 방향에 서있었다. 하여 늑대가 백화림을 돌아나올 때 빠투는 늑대와 정면으로 딱 마주쳤던것이다. 몇년간 산에서 생활했던 빠투는 본능적으로 어깨에서 총을 내리워 들었다. 같은 동작을 반복적으로 하면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후에는  그 동작이 신체의 일부분으로 굳어지게 되는것이다. 가늠쇠가 그놈의 두눈사이에서 좀 올라간 위치에 놓였다. 빠투는 그놈과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었기에 다른 부위를 근본 느끼지 못했었다. 하지만 웬 일인지 빠투는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다. 손때가 묻어 반들반들해진 금속에 오른손식지의 힘을 살짝 주어 당기는 그 동작은 사실 그처럼 간단한것이였다. 그것은 빠투가 수렵물을 발견한 다음 모든 준비를 마친후 취하는 최후의 동작이였다. 땅 하는 총소리가 울린후 빠투는 천천히 죽어있는 수렵물곁으로 가서 편안한 자리를 찾아 앉아 한참씩 해볕을 쪼였다. 그후 허리에 찼던 비수를 꺼내여 껍질을 발랐다. 암늑대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놈도 그처럼 가까운 거리에서 도망친다는것은 불가능하다는것을 알고있는것 같았다. 그놈은 멀거니 빠투를 바라보기만 했다. 빠투는 잠간 주저했다. 아주 잠간이였다. 빠투는 총을 내리웠다. 늑대가 내 꼴봐라 하고 도망을 치는것을 보면서도 빠투는 자기가 왜 그런 행동을 취해야 했는지를 똑똑히 알수 없었다. 혹시 총소리가 강변에 있는 사슴을 놀래울가봐 두려웠던것일가? 그놈은 머리에 아름다운 뿔을 떠인 멋진 수사슴이였다. 어제 빠투는 강변에서 그놈을 놓쳤던것이다. 확실히 총소리는 그놈을 놀래울수 있었다. 빠투는 총을 다시 오른쪽어깨에 메였다. 선들선들 불어오는 바람에 자작나무숲은 파도처럼 설레이면서 쏴쏴 기분 좋은 소리를 냈다. 몽롱한 아침해빛속에서 자작나무줄기에 난 검은색 마디는 눈처럼 빠투를 바라보고있었다. 빠투는 강변으로 갔다. 그해봄, 빠투는 이미 사슴 두마리를 잡았었다. 그해, 남자애는 여섯살이였다. 겉모습만 보면 그는 아직 어린 양과도 같아 웬간한 바람에도 쓰러질것 같았다. 나무숲은 어린 양과 같은 남자애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이듬해, 그 자작나무숲부근에서 빠투는 또 암늑대 한마리를 발견했다. 빠투는 그놈이 꼭 지난해 보았던 그 암늑대라고 판단했다. 빠투는 한번만 보면 그 짐승의 특점을 기억할수 있었다. 특히 그의 총부리앞에서 도망친 짐승에 대해서는 더구나 인상이 깊었다. 사실 그의 총부리앞에서 도망친 짐승이 얼마 안되였다.  곰이든 고라니든 나중에는 꼭 그의 총부리앞에서 사라질것이였다. 그 암늑대는 다른 늑대들보다 알아보기 더 쉬웠다. 그놈의 얼굴량쪽에 다른 놈들에게 없는 흰 털이 자라있었던것이다. 하지만 늑대와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 빠투는 인차 총을 쏠수 없었다. 그놈은 잠간 삼림에 머리를 들어내보였다가  빠투를 발견하고 인차 사라졌던것이다. 빠투는 자작나무숲으로 걸어들어가다가 오솔길을 발견하였다. 늑대는 꼭 그 부근에 있을것이였다. 늑대는 그 오솔길로 먹이 찾으러 가거나 물을 먹으러 다닐것이였다. 그놈은 오솔길부근에 한두해 있은것 같지 않았다. 빠투는 매일 강변의 사냥터로 나왔다. 사흘이나 지났지만 사슴은 한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빠투는 이른새벽에 밥도 먹지 않고 천막을 나왔다. 그는 추위를 막느라 연신 털옷을 여몄다. 하지만 삼림을 뒤흔드는 칼바람은 여전히 뼈속까지 파고들었다. 빠투는 습관적으로 삼림속에 있는 오솔길에 올라섰다. 마른 나무가지나 나무잎을 밟아도 사슴가죽신을 신은 발밑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하늘에는 려명전의 마지막 어둠이 감돌고있었다. 몇개 남지 않은 별들은 그때까지도 자취를 감추지 않고 서로 영원히 리해할수 없는 눈처럼 아아한 하늘가에서 차가운 빛을 뿌리고있었다. 삼림속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을수 없었다. 하지만 자세히 귀를 기울이노라면 바람이 참백송나무가지를 지날 때 내는 속삭임 같은 낮은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새들이 모두 단잠에 든것 같았다. 염기구덩이(碱场)는 숲속의 작은 공지에 있었다. 고라니며 사슴과 같은 동물들이 늘 염기구덩이에 내려와 염분을 섭취하군 했다.  빠투는 강변의 작은 언덕에 있는 관목림에 몸을 숨겼다. 그곳은 시야가 넓어서 능히 염기구덩이부근을 살필수 있었고 강둑도 30여메터는 바라볼수 있었다. 그리고 맞은켠 강변의 자작나무숲에 있는 간격이 그닥 떨어지지 않은 두개의 갈라진 틈도 시야에 들어왔다. 그것은 사슴이 강변으로 물을  먹으러 오느라 남긴 흔적이였다. 염분이 섞인 흙을 한참씩 핥고난 사슴들은 보통 강변에 가서 물을 먹었다. 검푸른색을 띤 수면에서 흰색의 안개같은 수증기가 모락모락 피여올랐는데 영원히 벗겨낼수 없는 삼림의 면사포를 방불케 했다. 빠투는 잘 다져진 고라니껍질을 땅에 펴고 그우에 엎드렸다. 그렇게 하자 찬바람을 피할수 있었다. 빠투는 총의 가늠쇠를 왼쪽켠의 갈라진 틈에 맞추어놓았다. 하늘이 푸름푸름 밝아왔다. 새소리가 풀리는 얼음소리처럼 들려왔고 별들이 차츰 사라져버렸다. 여기저기에서 부드럽거나 히스테리적인 동물들의 울부짖음이 들려려왔고 수많은 새들의 합창이 시작되였다. 그 시각 삼림은 동물들의 세계였다. 하지만 삼림의 그 같은 환락의 장면도 빠투에게 즐거움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빠투는 땅에 펴놓았던 고라니껍질을 돌돌 말아 들고 총을 어깨에 멘채 그곳을 떠났다. 역시 아무 수확도 없는 아침이였다. 사슴은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던것이다. 천막에 빨리 도착하기 위해 빠투는 지름길을 택했다. 삼림속에 펼쳐진 풀밭을 지날 때 빠투는 바람을 타고 간간히 풍겨오는 비릿한 냄새를 맡았다. 그것은 피냄새였다. 빠투는 그런 냄새에 너무도 익숙해있었다.  빠투는 손에 들었던 고라니가죽을 땅에 놓은후 어깨에서 총을 내리웠다. 빠투는 냄새가 나는 곳을 향해 발볌발볌 다가갔다. 발걸음을 조심한데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풀밭의 정황을 똑똑히 보게 된 빠투는 긴장을 풀면서 손에 꽉 쥐였던 총을 다시 어깨에 멨다. 풀밭에는 사슴의 잔해 한구가 널려있었던것이다. 내장은 이미 다 들어낸 상태이고 남은것은 꽛꽛하게 된 복강과 하늘로 쳐들린 네다리뿐이였다. 그놈은 암사슴이였다. 그 사슴을 공격한 동물은 늑대이지 곰은 아닌것 같았다. 사슴의 몸에는 곰의 발톱에 긁히운 면도칼에 베인듯한 좁고 긴 상처가 없었던것이다. 곰은 수렵물을 먹은후 나머지는 꼭 마른 나무잎이거나 흙으로 덮어놓고 그 자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고 누워 잠을 자군 했다. 하기에 곰이 남긴 먹이에 접근한다는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였다. 빠투는 전에 보았던 그 암늑대가 사슴을 물어죽인것이라고 생각했다. 암늑대는 새끼를 낳아 기르고있었던것이다. 아마도 어제저녁 황혼무렵에 사슴을 포획한것 같았다. 암늑대는 사슴을 잡아서 급히 배가죽을 찢은후 내장을 먹어버리고 급히 굴로 가서 새끼늑대들에게 젖을 먹인것 같았다. 자작나무숲은 그 암늑대의 사냥터인것 같았다. 하기에 사슴들은 그 늑대를 피해 어디론가 사라져버린것이였다. 빠투는 벌써 몇년전에 그곳을 사냥터로 정했었다. 빠투는 그곳을 아주 좋은 사냥터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로부터 자작나무숲속의 그 사냥터를 물려받은후 빠투는 해마다 그곳에서 사슴 한마리씩 잡았던것이다. 어느해도 빠친적이 없었다. 빠투에게 있어서 그곳은 산신령이 보호하는 사냥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빠투는 사슴잔해를 그대로 둔채 고라니껍질을 주어들고 돌아섰다. 천막에 돌아오니 날이 이미 밝아 있었다. 빠투는 강변에 가서 물을 길어다가 차를 끓였다. 그는 구운 빵과 말리운 고기를 먹은후 한순간의 휴식도 하지 않은채 총을 들고 다시 사냥터로 갔다. 빠투는 암늑대가 꼭 다시 사슴잔해가 있는 곳으로 갈것이라고 판단했다. 암늑대는 바로 포유기에 처해있기에 많은 먹이가 필요했던것이다. 빠투는 강변에 몸을 숨긴후 고라니가죽을 나무아래에 펴고 그우에 엎드려 강 맞은켠을 살폈다. 빠투는 강변에서 매화꽃 같은 암늑대의 발자국을 발견했던것이다. 그로보아 암늑대의 굴은 부근에 있는것 같았다.    늑대는 늘 지나다니던 길로 다니기를 좋아했다. 따뜻한 해빛이 나무가지사이로 빠투의 몸에 어룽어룽 내려앉았다. 어느새 빠투는 살풋이 잠이 들어버렸다. 빠투는 꿈에 어릴 때의 왜소한 자신을 보았다. 그는 어른들 몰래 혼자서 강변으로 달려가 은빛 물고기들이 노니는 강물에서 자맥질을 했다. 따뜻한 해볕에 데워진 강물은 빠투로 하여금 쏟아지는 졸음을 달래기 힘들게 했다. 그때 암늑대가 나타났다. 어쩌면 그놈의 동정을 들었다기보다 느꼈다고 하는것이 나을것이다. 빠투는 두눈을 번쩍  뜨고 오른손식지로 방아쇠를 당겼다. 암늑대 한놈뿐이 아니였다. 맞은켠 강변의 모래불에서 청회색 털을 가진 암늑대가  두리벙두리벙 주변을 살피고있었다. 그놈의 곁에는 금방 젖을 뗀듯한 보들보들한 털을 가진 새끼늑대 두마리가 서있었다. 새끼늑대들은 처음으로 어미를 따라 나온것 같았다. 새끼늑대들의 예리한 송곳이로 하여 어미늑대는 몹시 부담스러운 모양이였다. 하여 어미늑대는 새끼늑대들을 이끌고 고기를 먹는 방법을 가르쳐주러 나온것 같았다. 새끼늑대들에게 사냥터는 생소한 세상이여서 모든게 신기한듯 했다. 그때 새끼늑대들은 강변에 가로 누워있은지 오랜 마른 나무가지를 뛰여넘느라고 헤덤볐다. 어미늑대가 손쉽게 나무가지를 뛰여넘었지만 새끼늑대들에게는 직경이 그닥 크지 않은 그 나무가지도 가파로운 산봉우리만치나 느껴지는 모양이였다. 새끼늑대들은 그 나무가지를 돌아 갈수도 있었지만 강한 집착을 보이면서 한번 또 한번 나무가지에 올랐다가 두르르 굴러떨어졌다. 어미늑대는 어딘가 긴장한 표정을 보이면서 주변을 살피다가도 코를 쑥 내밀고 킁킁 냄새를 맡았다. 빠투는 자기가 정한 그 위치가 매우 안전하다는것을 알고있었다. 그곳은 바람이 흐르는 방향이여서 늑대는 빠투의 냄새를 절대 맡을수 없었다. 어미늑대는 새끼늑대들이 큰 바위를 움직이는듯 나무가지를 바라오르는데 집착을 보이는것을 보고 그만 인내심을 잃고말았다. 어미늑대는 마른 나무쪽으로 다가와 두마리의 새끼늑대를 물어 마른 나무의 다른 한쪽에 가져다 놓았다. 하지만 강변에 이른 어미늑대는 또 주저했다. 그곳은 여울이라 물은 그리 깊지 않았다. 물이 제일 깊은 곳이라고 해야 어미늑대의 배를 넘지 않았다. 여울에는 또 크고 작은 돌멩이들이 가득 깔려있었다. 어미늑대로 말하면 그 여울을 지난다는것은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지만 새끼늑대들에게는 바다를 가로지나는것만치나 두려운 일이였다. 졸졸 소리를 내며 흘러가는 생소한 물질― 물을 두고 새끼늑대들은 주저하지 않을수 없었다. 모든 생소한 물질은 새끼늑대들에게 커다란 공포로 다가왔던것이다. 새끼늑대들은 불안한 눈길로 조심스럽게 쉼없이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그 물은 자기들이 서있는 땅과 완전히 다른 세상인듯 해보였다. 새끼늑대들은 조심조심 다가가 코등을 물에 살짝 대였다가 놀라서 다급하게 뒤로 물러섰다. 차디찬 물은 부드러운듯 하면서도 딱히 어떻다고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들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낼수 없었다. 어미늑대도 새끼늑대들을 이끌고 나올 때 이 점을 고려하지 못한것 같았다. 어미늑대는 가볍게 한 새끼늑대의 목덜미털을 물었다. 어쩌면 그놈을 물고 강을 건너려는것 같았다. 하지만 웬 일인지 어미늑대는 새끼늑대를 내리워 놓았다. 강변의 모래밭에서 어미늑대는 앞발로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다. 강변의 흙은 축축하고 보드라와서 인차 두개의 구덩이가 패워졌다. 빠투는 드디여 어미늑대를 가늠쇠에 묘준했다. 하지만 그는 미처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빠투는 어미늑대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수 없었던것이다. 어미늑대는 두마리의 새끼늑대를 하나하나 구덩이에 물어다넣은후 모래를 밀어넣었다. 얼마 안되여 두마리의 새끼 늑대는 머리만 밖에 내놓게 되였다. 새끼늑대들은 어미늑대가 하는대로 몸을 맡기고 아무 반항도 하지 않았다. 어미늑대는 모래밭에 들어난 새끼늑대들의 작은 머리를 흐뭇하게 살펴보았다. 마치 땅밑으로부터 자라오른 이상한 과실 같아보였다. 어미늑대는 인차 강을 건넌후 자기가 내장을 다 파먹고  남긴 사슴잔해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어미늑대는 먹이를 배부르게 먹고 다시 강을 건너가 새끼늑대들을 데리고 굴로 돌아가려고 계획하고있는것 같았다. 빠투는 그때까지도 총을 쏘지 않았다. 빠투는 자작나무삼림을 에돌아 강변의 모래밭으로 갔다. 머리만 내놓은 두마리의 새끼늑대가 조용히 빠투를 바라보고있었다. 몸을 모래에 묻기지 않았다면 깡충깡충 뛰여 도망이라도 갔을지 모를 일이였다.  빠투는 일시 어쨌으면 좋을지 몰라 망설이다가 새끼늑대들 옆에 쪼크리고 앉아 손으로 그중 한마리의 머리를 꾹 눌렀다. 보슬보슬한 털이 손에 느껴졌는데 막 피여나는 민들레씨앗 같았다. 새끼늑대는 빠투의 손길이 불만스러운지 마구 머리를 내저었다. 빠투는 정말 딱히 무엇을 했으면 좋을지 몰랐다. 대개 어미늑대가 돌아올 시간이 되였을것이라는 막연한 생각만 떠오를뿐이였다. 빠투는 사실 어미늑대가 그렇게 두려운것은 아니였다. 다만 새끼늑대를  앞에 두고 어쨌으면 좋을지 몰라 주저할 때 어미늑대까지 돌아온다면 더구나 어쩔바를 몰라 속수무책으로 될것이라는 우려가 들었던것이다. 잠간후 빠투는 사냥용칼을 꺼내여 손쉽게 새끼늑대들의 머리를 잘라냈다. 새끼늑대들은 몸이 모래에 묻겨있었기에 몸부림도 치지 못했다. 새끼늑대들의 두개의 머리는 익을 때로 익어서 떨어진 열매처럼 빠투의 손에 들렸다. 빠투는 손에 들려있는 새끼늑대들의  머리를 멍하니 내려다보다가 다시 그놈들의 목에 붙여놓고 흙으로 옆을 묻어주었다. 새끼늑대들은 워낙 피를 얼마 흘리지 않았었는데 얼마 안되는 그 피도 빠투에 의해 모래로 잘 덮혀졌다. 그렇게 되자 겉으로 보건대 어미늑대가 떠날 때와 별 차이가 없어보였다. 빠투는 자기가 엎드려있던 곳으로 돌아와 고라니껍질우에 엎드려 총부리를 새끼늑대들이 있는 곳으로 돌려놓았다. 빠투는 손바닥에 질펀히 배여나오는 식은땀을 바지섶에 쓱쓱 문질러 닦았다. 그때 어미늑대가 무거운 배를 끌고 돌아왔다. 너무 급히 많은 고기를 집어삼키다 나니 어미늑대는 몸을 움직이기 힘겨워 했다. 어미늑대의 배가 커진것이 확연하게 알렸다. 포유기의 어미늑대는 단번에 십여근의 고기도 먹을수 있었다. 어미늑대는 굴에 돌아와 배속의 그 고기들을 소화시키군 했다. 어미늑대는 인차 무엇인가 자기가 떠날 때와 다른것을  발견한것 같았다. 그리고 생소한 냄새도 맡은것 같았다. 강을 건넌후 어미늑대는 불안한 표정으로 멈추어섰다. 어쩌면 방금 빠투가 남긴 냄새가 어미늑대에게 긴장감을 불러주었는지도 모를 일이였다. 어미늑대는 사실 한시라도 새끼늑대들의 곁을 떠나고싶지 않았었다. 만약 새끼늑대들이 없다면 어미늑대는사람의 냄새나 쇠붙이 그리고 불냄새를 맡으면 인차 그곳을 떠날것이였다. 삼림에 사는 늑대들에게 있어서 사람은 철전지 원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어미늑대는 새끼늑대를 구덩이에서 꺼내 올리려고 서둘렀다. 자기의 배가 불렀으니 새끼늑대들을 이끌고 굴에 돌아가 그놈들에게 젖을 먹이려고 생각하는것 같았다. 그렇게 되면 그 하루는 먹이감을 얻으러 다시 굴에서 나오지 않아도 될것이였다. 어미늑대는 한 새끼늑대의 앞으로 다가갔다. 어미늑대는 현실이 상상과 완전히 다른것을 감안하게 되였다. 먹이를 달라고 머리를 마구 흔들며 낑낑소리를 질러대야할 새끼늑대가 아무 반응도 해오지 않았던것이다. 어미늑대는 새끼늑대가 아직 잠에서 깨여나지 못한것이나 아닐가 하고 생각했다. 어미늑대는 다른 한마리 새끼늑대곁으로 다가가 모래를 파내다가 상상도 못한 기막힌 일을 당하고야 말았다. 새끼늑대의 머리가 떨어져내렸던것이다. 어미늑대는 너무도 놀라서 한켠으로 피해 섰다. 어미늑대는 그 같이 공포스러운 일을  종래로 당해본적이 없었던것이다. 어미늑대는 도무지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를 알수 없었다.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앞발을 내밀어 땅에 떨어진 새끼늑대의 머리를 가볍게 건드렸다. 어쩌면 새끼늑대에게 속했던 그 머리가 불시에 날아올라 자기의 코등이라도 물어뜯을가봐 두려워 하는것 같았다. 피비린 냄새가 어미늑대의 코를 파고들었다. 빠투가 사냥용칼로 새끼늑대의 머리를 벨 때 그 속도가 너무 빠르고 칼자국도 너무 가쯘해서 피가 얼마 흐르지 않았었다. 그리고 새끼늑대의 머리를 다시 몸뚱이에 붙여놓고 모래로 파묻을 때 또 모래가 머리에서 흐르는 피를 흡수하였기에 새끼늑대의 몸에서는 피가 얼마  흐르지 않았던것이다. 어미늑대의 앞에서 구으는 새끼늑대의 머리는 마치도 그의 몸에서 떨어진 부속품에 지나지 않아보였다. 어미늑대는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영문을 알수 없어 다른 새끼늑대앞으로 다가갔다. 어미늑대는 다리를 들어 조심스럽게 새끼늑대의 머리를 건드렸다. 순간 그놈의 머리도 땅에 떨어져내렸다. 그 모든것을 이미 당해본 어미늑대였지만 여전히 놀라 어쩔바를 몰라하며 한옆으로 비켜서서 두려운 눈길로 새끼늑대의 머리를 살펴보았다. 어미늑대는 미동도 없이 굳어져서 무엇인가를 생각하고있었다. 어미늑대에게 있어서 그 모든것은 생소한 유희로 느껴졌을지도 모를 일이였다. 어미늑대는 머리가 떨어져나간 새끼늑대의 몸뚱이를 둘러싸고 빙빙 돌아치다가 갑자기 멈추어섰다. 그리고는 먹이를 먹다가 목이 메기라도 한듯 머리를 잔뜩 쳐들고 높은 소리로 꺼이꺼이 울어댔다. 빠투는 늑대의 울음소리를 좋아 하지 않았다. 그는 어미늑대를 향하여 힘껏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이 어미늑대를 명중하지 못했다. 방금 어미늑대가 갑자기 멈추어설 때 가늠쇠에 어미늑대의 옆구리가 놓였던것이다. 빠투는 가늠쇠를 어미늑대의 앞다리에서 조금 뒤에 있는 위치에 놓고 방아쇠를 당기려고 했던것이다. 하지만 웬지 인차 흥미가 없어졌다. 탄알은 어미늑대앞에 있는 모래밭에 떨어져 구덩이를 파면서 뽀얀 먼지를 일으켰다. 총소리에 놀란 어미늑대는 용수철처럼 펄떡 올리 솟더니 삼림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빠투는 그곳을 떠나 천막으로 돌아와 굳잠에 빠져들었다. 그해봄, 빠투는 사냥에서 아무 수확도 얻지 못했다. 그해 남자애는 일곱살이였다. 그해겨울. 남자애는 오래동안 병마에 시달렸다. 빠투가 삼림에 들어가 사냥을 하던 그때, 남자애는 금방 병이 완쾌된 뒤였다. 남자애는 몸이 허약하여 종이장을 방불케 했다. 남자애는 문옆에 힘 없이 기대 서서 삼림속으로 사라지는 빠투의 뒤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남자애는 여전히 삼림으로 들어갈만한 자격이 없었다. 세번째 해, 남자애는 빠투와 함께 자작나무숲에 있는 그 숙영지에 나타났다. 숙영지에는 지난해 우등불을 피웠던 검스레한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빠투는 숙영지에 천막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해도 남자애는 소학교에 붙을 나이가 안되였다. 그처럼 어란 남자애가 삼림으로 들어온다는것은 보통사람으로서는 납득이 안되는 일이였다. 하지만 남자애는 끝내 삼림으로 들어오게 되였던것이다. 아니, 어쩌면 남자애를 데리고 삼림으로 들어온 빠투가 성공했다고 해야 할것이다. 빠투가 남자애를 데리고 집을 나올 때 남자애의 할머니는 그 일을 감감 모르고있었다. 그 같이 위험한 일은 빠투를 내놓고 누구도 동의하지 않을것이였다. 남자애는 당당하게 삼림에 발을 들여놓게 되였던것이다. 남자애는 세살나던 해에 처음으로 도시에서 삼림으로 들어온적이 있었다. 그때 빠투는 남자애를 강변으로 데리고 가 목욕을 시켰었다. 남자애는 그때 같은 나이의 다른 애들보다 좀더 커보이기는 했지만 여전히 애숭이는 애숭이였다. 삼림은 남자애에게 있어서 생소하기를 미지의 야밤같은 세상이였다. 전에 남자애에게 있어서 삼림은 그저 마을뒤에 있는 록색의 숲이나 다를게 없었다. 하지만 고요한 밤에 깊은 산골짜기에서 은은히 들려오는 늑대의 울부짖음은 남자애에게 삼림의 생소한 이미지를 심어주기 시작했다. 달빛이 교교한 밤이면 늑대의 포효는 혼자가 아니라 삼림과 떨어질래야 떨어질수 없는 한부분으로 된듯 했다. 뽀얀 안개를 뚫고 들려오는듯한 포효는  언제나 삼림의 상공에서 오래도록 메아리 치군 했다. 남자애는 가끔 갈망이 가득 찬 떨리는 목소리로 높이높이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한 행동은 인차 빠투에게 제지를 당했다. 삼림에서 도전적인 그러한 부르짖음은 허용되지 않았던것이다. 늑대들의 포효가 없는 날밤이면 남자애는 웬지 뭔가를 잃어버린듯한 실의감이 들었다. 워낙 단조로운 세계에 뭔가가 결핍한듯 느껴졌던것이다. 남자애는 비록 나이가 어렸지만 스스로 애수란 어떤것인가를 리해하려고 하는것 같았다. 남자애는 비록 말을 많이 하지 않았지만 삼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고있는듯싶었다. 남자애는 그날을 애타게 기다려왔다. 하기에 남자애는 그 순간에도 꿈이 현실로 변한것으로 인한 흥분 같은것을 얼마 느끼지 못하는것 같았다. 남자애는 빠투의 뒤를 졸졸 따랐다. 남자애의 등에는 빠투가 준비해준 소금과 성냥을 넣은 작은 주머니가 메워져있었다. 남자애는 삼림에서 될수록이면 발자국소리를 작게 내야한다는것을 알고있었다. 남자애는 애써 발걸음을 가볍게 옮겨놓았다. 남자애에게 있어서 그것은 그리 어려운 동작이 아니였다. 남자애는 자기를 작은 사슴이나 새끼고양이라고 상상했다.  천막을 다 세우자 남자애는 삼림속에 들어가 마른 나무를 주어왔다. 삼림은 전에 한번도 벌목을 당해본적이 없는것 같았다. 나무들은 하늘을 찌를듯 꼿꼿이 자랐는데 서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있었다. 그러한 자세로 나무들은 충족하게 해볕을 쪼이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것 같았다.  나무에서 가지가 떨어진 부분들은 눈으로 되여 조용히 남자애를 바라보는듯싶었다. 남자애는 천천히 지난해 나무에서 떨어진 가지들을 주으며 나아갔다. 그새 바싹 마른 나무가지는 매우 가벼웠다. 남자애는 생명이 다하면 무엇이나 그렇게 가벼워지는것이라고 생각했다. 남자애는 넘어져있는 자작나무 한그루를 발견했다. 한차례의 폭풍우나 벌레의 침입이 다 자란 그 나무를 넘어뜨린것 같았다. 그 나무에 비해볼 때 남자애는 자기가 주어들고있는 나무가지들이 그처럼보잘것 없이 작아보였다. 하지만 남자애는 그것들을 내리워놓고 넘어져있는 큰 나무를 끌려고 하지 않았다. 나무가 넘어진지 너무 오래서 이미 땅과 이어져있지나 않을가 하는 우려가 들었던것이다. 남자애는 빠투의 도움이 없이 스스로 넘어진 나무를 천막에 끌어가고싶었다. 하지만 남자애는 그 계획을 포기하고 다시 마른 나무가지들을 줏기 시작했다. 남자애가 천막앞에 왔을 때 빠투는 이미 불을 지피고 앉아서 총을 검사하고있었다. 로씨야에서 사왔다는 그 사냥총은 평소 보양이 참 잘되여있었다. 빠투는 총을 사용하지 않는 계절에는 늘 벽에 정중히 걸어두었었다. 가죽으로 만든 총집에는 양기름이 가득 발라져있었다. 그리고 나무로 만든 총개머리는 오래동안 사람들의 손에 달아서 짙은 갈색을 보이고있었는데 옥을 만지는듯 매끌매끌 했다.  빠투가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서 남자애는 총을 만져본적이 있었다. 남자애는 금방이라도 날아나버릴듯한 새를 다루듯 조심스럽게 총을 다루었다. 좀더 나이가 들자 남자애는 자기에게 속하는 총을 가질수 있었다. 삼림속에서 남자애는 많은 시간을 빠투의 등에 업히워있었지만 그래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남자애는 종래로 그렇게 많은 길을 걸어본적이 없었던것이다. 남자애가 빠투의 뒤를 따를 때면 관목림에서 갑자기 족제비가 뛰여나와 나무가지 사이를 비추는 해빛을 받으며 감쪽같이 사라질 때도 있었다. 그 동작이 너무도 빨라 한줄기의 금빛 해살이 스쳐가는듯싶었다. 남자애는 순간 무엇을 보았던지 멍해질 때도 있었다. 유연한 몸집을 가진 족제비가 몸을 날릴 때면 땅에서 솟아오르는 황금빛 손바닥을 방불케 했다. 족제비도 남자애를 발견하고 놀라는것 같았다. 남자애의 발자국소리가 가까와 지자 족제비는 제일 빠른 속도로 해빛 따스한 오솔길에 치달아 올랐다. 족제비는 한참 달리다 말고 멈춰서서 너무도 놀라 어쩔줄을 몰라하는 남자애를 바라보았다.  그애말로 령민한 들짐승이였다. 그놈은 종래로 남자애처럼 작은 사람을 보지 못한것 같았다. 그로 하여 그놈은 더구나 놀라는것 같았고 그렇게 작은 사람도 사람이라고 할수 있는지를 두고 고민하는것 같았다. 남자애는 비록 작기는 했지만 영락없는 사람이였다. 남자애는 높뛰는 가슴을 누를 길이 없었다. 그는 앞에서 걸어가는 빠투를 부르고싶었다. 하지만 남자애는 애써 자기의 정서를 통제했다. 그는 삼림속을 거닐 때 응당 아무 소리도 내지 말아야 한다는것을 알고있었던것이다. 빠투는 남자애가 걸음을 멈추었다는것을 느끼고 머리를 돌렸다. 족제비는 놀라운 속도로 눈 깜빡할 새에 오솔길옆의 관목림으로 들어가버렸다. 하기에 빠투는 머리를 돌렸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남자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새물새물 웃기만 했다. 아직 생소한 삼림을 마주한 남자애지만 나름대로의 비밀을 가지게 되였던것이다. 남자애는 급히 몇걸음을 달려 빠투를 따라잡았다. 삼림에서 빠투를 떨어진다는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였던것이다. 남자애는 너무 힘들어 빠투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그는 갑자기 나무우에서 무엇인가가 스쳐지나는것을 발견했다.  남자애는 사냥군의 후대로서의 예민한 감각을 이미 구비하고있었던것이다. 나무우를 스쳐지난 그놈은 다람쥐였다. 다람쥐는 나무에 붙어서서 볼주머니로 견과 한알을 내밀어보이면서 앞발로 가슴을 붙안고있었다. 그때 다름쥐는 빠투와 남자애를 발견한듯싶었다. 어쩌면 그들의 출현이 너무 급작스러웠던지 다름쥐는 놀라서 펄쩍 올리 뛰였다. 딴딴한 견과가 다름쥐의 볼주머니에서 흘러나와 빠투와 남자애의 앞에서 멀지 않은 곳에 굴러왔다. 다름쥐는 놀랍고 당황했던지 새된 소리를 지르며 잽싸게 소나무를 타고 올라가 삽시간에 뒤면으로 사라졌다. 남자애의 얼굴에 가벼운 웃음이 피여올랐다. 하지만 빠투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한듯 묵묵히 걸음만 옮기면서 남자애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이른 아침, 빠투가 강변의 염기구덩이로 갈 때 남자애는 아직도 꿈나라에서 헤매고있었다. 빠투는 남자애의 몸에 고라니껍질을 여며주고 거의 사그러지는 우등불에 장작 몇개를 더 넣은후 총을 들고 일어섰다. 남자애가 잠을 깬것은 날이 밝은 뒤였다. 남자애는 자기가 물론 집에 있을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눈을 떴을 때 비쳐들어오는 해빛은 유리창문을 뚫고들어오는것이 아니라 천막에 난 쯤으로 새여들어오는것이였다. 남자애는 오래동안 꾸어오던 삼림으로 오고싶던 꿈이 현실로 된것으로 하여 얼마나 기쁜지 몰랐다. 남자애는 천막을 나왔다. 해빛이 부셔서 눈을 제대로 뜰수 없었다. 수많은 새들이 노래를 부르고있었지만 남자애는 그 새들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다. 남자애는 땅에서 돌멩이를 주어들고 새들이 있겠다싶은 나무숲을 향해  힘껏 뿌렸다. 하지만 그 돌멩이는 바다에 던져넣은듯 아무 효과도 없었다. 새들은 여전히 자기들의 구성진 노래를 계속하고있었다.  빠투가 빈손으로 천막에 돌아왔을 때 남자애는 강변에 가서 물을 길어다가 반찬을 만들어놓은 후였다. 빠투는 밥술을 뜨는둥 마는둥 하고는 눈을 붙이려고 자리에 들었다. 남자애가 빠투와 함께 처음으로 사슴을 잡은것은 삼림에 들어와서 사흘째 되던 날 아침이였다. 깊은 잠에 들지 못했던 남자애는 빠투가 일어나면서 잠자리에 깔았던 고라니가죽이 벌컥벌컥 소리를 내자 따라서 눈을 떴다. 남자애는 자기가 어디에 있다는것을 알고있었다. 남자애가 내다보니 천막밖은 여전히 컴컴해있었다. 별빛이 총총한 저 멀리 하늘가에서 파르스름한 가는 빛들이 머리를 쳐들고있었다. 남자애는 빠투의 뒤를 부지런히 따르면서 자기의 꿈에서 헤여나오려고 애를 썼다. 남자애의 발걸음은 여전히 무거워보였다. 그는 종래로 그처럼 일찌기 잠에서 깬적이 없었던것이다. 너무 일찍 일어난데서 남재애는 눈을 붙이자 마자 깨여난듯한 느낌이 들었다. 남자애는 어둠에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잠간 시간이 흐르자 주변의 나무들을 알아볼수 있었다. 그들이 자작나무숲에 거의 이르고있을 때 갑자기 은빛을 내는 나무 한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어둠속에서도 그렇게 눈에 띄우는것이 마치도 금방 갈라놓은 흰색의 어복 같았다. 새벽녘의 시원한 공기는 남자애로 하여금 차츰 정신을 맑게 해주었다. 어쩌면 몸속에 있는 다른 한쪽 눈이 차츰 뜨여지는듯싶었다. 남자애는 빠투의 발자국을 꼭꼭 밟으며 뒤를 따라 걸었다. 빠투가 걷고 지나간 곳에는 마른 나무가지 같은것들이 발에 밟혀서  요란한 소리를 낼 근심이 없었다. 빠투가 발걸음을 크게 떼지 않았기에 따라 잡기도 쉬웠다. 그들은 강변의 관목림에서 몸을 숨길만한 곳을 찾았다. 삼림은 너무도 조용했다. 남자애는 고라니껍질우에 엎드려 앞에 있는 강줄기를 살폈다. 강물은 그때까지도 어둠에서 헤여나오지 못하고있었는데 괴물이 검은 꿈을 꾸고있는듯싶었다. 남자애의 애 어린 머리에 그 같은 생각이 한두번만 떠오른것이 아니였다. 갑자기 수면에서 커다란 몸집의 괴물이 떠오르는듯한 환영이 보였다. 비늘이 가득한 뿔은 예리한 검은색 칼처럼 고요한 수면을 가르고 지나가면서 뒤에 흰색의 소용돌이를 이루었고 수많은 물꽃을 피워올렸다. 남자애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그는 눈 한번 깜빡 하지 않고 수면에 나타난 괴물의 커다란 륜곽을 바라보았다. 괴물은 놀라운 속도로 헤여나왔다. 남자애는 너무도 무서워 부들부들 떨었다. 호흡이 가빠졌고 입안이 바싹바싹 말라들었다. 남자애는 머리를 돌려 빠투를 바라보았다. 그때 빠투는 머리를 총탁에 대고 굳잠에 빠져있었다.  남자애는 빠투를 깨우지 않았다. 그는 세상에 괴물이란 없는것이라고 자신을 달랬다. 하지만 괴물은 확실이 존재해있었고 슬금슬금 그들이 몸을 숨기고있는 곳으로 접근했다. 괴물이 앞을 헤여지나는 찰나 남자애는 그 괴물의 정체를 똑똑히 보았다. 그야말로 괴성을 지르고싶게 무서운 놈이였다. 몸집이 거대했고 검은 색을 띠였으며 전문 물속에서 사는것 같았다.  그놈은 또 지느러미와 뿔을 꼿꼿이 치켜세우고있었다. 그것은 사실 끊어진후 강에 들어와 오래동안 물에 떠다닌 나무였다. 장시간 물에 잠겨있었기에 곰팡이까지 끼여있었던것이다. 나무에는 또 가지가 끊겨진 자리가 가득 나있었는데 어둠속에서 한마리의 괴물을 방불케 했던것이다. 그것은 확실히 괴물이 아니라 나무였다. 그 나무는 강을 따라 내려가다가 삼림을 벗어나게 될것이고 초원을 가로지나게 될것이며 마을과 평원과 광활한 대지를 거쳐서 땅의 끝쪽에 이르러 바다에 흘러들게 될것이다. 남자애는 여직 바다를 보지 못했었다. 하지만 어른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것은 끝을 알수 없는 무변의 초원과도 같은 가없는 물의 세계라는것을 알고있었다. 남자애는 피곤기가 가뭇없이 사라졌다. 남자애는 맞은켠 강변의 한 나무에서 록색의 불빛 두개가 반짝이는것을 발견했다. 남자애는 눈 한번 깜빡하지 않고 그 불빛을 여겨보았다. 그 불빛은 지하에 오래동안 묻혀있다가 다시 해빛을 본 보석과도 같아보였다. 남자애는 록색의  불빛을 내는 무엇인가의 어슴푸레한 륜곽을 볼수있었다. 동녘하늘이 푸름푸름 밝아왔다. 록색의 그 불빛이 사라지려고 할 무렵, 남자애는 뚱뚱한 몸집을 가진 큰 새 한마리를 발견했다. 고양이와 비슷한 머리에 두개의 뾰족한 귀를 방불케 하는 털모숨을 치켜세우고있었다. 그놈은 금방 밤 사냥을 마친 올빼미였는데 조용히 강물을 바라보고있었다. 올빼미는 남자애에게 발각되였다는것을 알았던지 날개를 퍼덕거리며 둔중한 몸집을 하늘로 날아올렸다. 올빼미가 떠난 그 나무아래의 갈라진 틈에 잎이 다 떨어진 나무가지가 놓여있는듯싶었다. 남자애는 그 나무가지에 눈길을 모았다. 아, 그것은 나무가지가 아니라 나무가지와 같은 뿔을 머리에 떠인 사슴이였다. 그것은 남자애가 처음으로 보는 사슴이였다. 남자애는 눈 한번 깜빡하지 않고 멋지게 생긴 그 짐승을 바라보았다. 남자애는 갑자기 잘못 본것이나 아닐가 하는 우려가 들었다. 사슴의 머리는 줄곧 움직이지 않았는데 진짜 잎이 다 떨어진 나무가지 같아보였다. 한참 지나서 그놈의 귀가 약간 움직였다. 그놈은 주변의 동정에 귀를 기울이고있었던것이다. 그놈은 천천히 머리를 돌렸다. 따라서 귀는 더욱 령활하게 움직였다. 그놈은 무슨 동정인가를 들은것 같았다. 그놈은 또 돌멩이처럼 굳어졌다. 한참 지나서 사슴이 또 몸을 움직였다. 남자애는 그제야 건장한 몸집의 수사슴을 똑똑히 볼수 있었다. 주변의 색갈과 다른 갈색의 털은 반짝반짝 빛을 뿌렸는데 하늘거리는 불꽃을 보는듯한 느낌이였다. 남자애의 눈길도 반짝 빛났다. 사슴은 길다란 목을 쑥 내밀고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것도 한순간이였다. 사슴은 갑자기 머리를 잔뜩 쳐들고 마술에라도 걸린듯 마구 흔들더니 뒤에 있는 삼림속으로 달려들어갔다. 남자애는 인차 사슴이 왜 그렇게 놀랐는지를 알수 있었다. 워낙은 사슴이 물을 먹던 곳에서 10메터도 채 못되는 곳에 늑대 한마리가 나타났던것이다. 늑대는 사슴이 도망친방향을 가늠하는듯 주변을 살펴보더니 관목림속으로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었다. 늑대는 아무 동정도 없이 조용히 사라졌다. 그야말로 남자애가 종래로 본적이 없는 분주한 세상이였다. “저놈이 또 나타나서 성가시게 구는군.” 빠투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남자애는 그때에야 빠투가 깨여난것을 알게 되였다. 빠투는 오른손식지를 방아쇠에서 내리우고있었다. 사슴이 도망치는 소리가 빠투를 잠에서 때운듯싶었다. 하지만 빠투는 미처 방아쇠를 당길 새가 없은것 같았다. 사슴을 겁 먹게 한 그 늑대도 빠른 속도로 삼림속에 몸을 숨겨버렸다. 빠투는 천막에 돌아와 아침밥을 먹은후 다시 남자애를 데리고 문을 나섰다. 빠투는 아침과 다른 길을 택했다. 도중에 그들은 강 하나를 건넌후 찌는듯한 해볕을 머리에 이고 삼림을 가로 지났다. 빠투는 길을 가다가도 허리를 굽히고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를 오렸다. 그리고는 허리를 펴고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주변을 살피다가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들은 얼마 걷지 않고 멈추어섰다. 남자애는 자기들이 어디에 왔는지를 모르고있었다. 하지만 자기들이 아침에 매복해있던 그곳의 맞은켠에 와있다는것은 어렴풋이나마 느낄수 있었다. 빠투는 또 주변을 살펴보다가 앞에 있는 언덕을 목표로 정한것 같았다. 그들은 언덕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빠투가 갑자기 남자애를 향해 걸음을 멈추라고 눈짓을 했다. 그후 빠투는 총을 들고 살금살금 언덕을 향해 다가갔다. 빠투가 다시 남자애를 향해 눈짓을 하자 남자애는 그 뜻을 알아맞추고 언덕쪽으로 걸음을 재우쳤다. 만약 자세히 보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저 파아란 풀들이 돋아난 작은 언덕옆에 비물에 밀려 생겨난 골짜기쯤으로 여겨질것이였다. 하지만 빠투가 골짜기어구에 무성하게 돋아난 풀들을 헤치자 작은 동굴입구 하나가 나타났다. “어미늑대가 나갔다.” 빠투가 조용히 말하면서 동굴우에 올라가 힘껏 발을 굴러댔다. 흙부스러기들이 우수수 떨어져 동굴입구를 막았다. 하지만 동굴입구가 완전히 막히지는 않았다.  남자애는 빠투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수 없었다. 빠투는 남자애를 데리고 그곳을 따났다. 하지만 그들은 그리 멀리 가지는 않았다. 남자애는 자기들이 그냥 동굴입구를 한고패 돌아온것 같은 느낌이였다. 남자애는 빠투가 선택한 한그루의 고목뒤에 몸을 숨겨서야 자기들이 작은 언덕의 다른 한쪽켠으로 왔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놈이 꼭 이곳에서 떠났을거다.” 남자애는 기다리기 시작했다. 간절한 기다림은 차츰 따뜻한 해빛과 시원한 바람에 녹아들었다. 남자애는 소르르 잠이 들었다. 그들은 과연 무엇을 기다리고있는것일가? 남자애는 흠칫 놀랐다. 빠투가 남자애의 손등을 살짝 다쳤던것이다. 남자애는 머리를 쳐들었다. 어미늑대가 남자애네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발걸음이 늘쩡늘쩡 했다. 어미늑대의 입에는 무엇인가 물려있었다. 피뜩 보면 물건을 가득 담은 검은색 주머니 같았다. 절대 새끼늑대가 아니라고 생각되였다. 남자애는 의심스러웠다. 그래 이놈은 제 먹이만 밝히는 어미늑대란 말인가? 하지만 빠투는 어미늑대가 동굴입구가 파괴된것을 발견한후 인차 새끼늑대들과 함께 그곳을 떠나온다는것을 똑똑히 알고있었다. 그것은 늑대의 본성이였다. 어미늑대는 빠투네가 돌아져오던 반대방향으로 오는것이였다. 남자애는 점점 가까와 오는 어미늑대를 주시했다. 어미늑대에게 그 주머니는 너무나 무거운것 같았다. 어미늑대는 매우 힘들어했다. 어미늑대는 힘껏 머리를 쳐들고  입에 문 주머니가 땅에 끌리지 않게 했다. 어미늑대는 남자애가 전에 보았던 모든 늑대들보다 더 잘생긴것 같았다. 그놈은 체대가 미끈했고 코등이며 머리며 등허리의  륜곽이 선명했다. 회백색의 입술도 매우 깔끔해보였다. 남자애는 갑자기 자기의 그 생각을 빠투에게 들려주고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때 바투는 이미 그놈에게 총부리를 겨누고있었다. 남자애는 빠투를 향해 입을 열고싶었지만 이미 늦었다는것을 느끼게 되였다. 하지만 어미늑대는 그때까지도 자기를 기다리는 운명이 어떠하리라는것을 조금도 눈치 채지 못하고있었다. 총소리가 울렸다. 남자애는 그 소리가 빠투의 총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라 하늘에서 울리는 천둥소리처럼 들렸다. 총부리에서 파아란 연기가 몰몰 피여나왔다.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남자애는 갑자기 머리가 핑핑 돌아가고 구역질이 올라옴을 느꼈다. 남자애는 그제야 매번 총을 만지고 난후 손에서 나던 그 냄새가 무슨 냄새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남자애는 탄알이 날아가던 그 궤적을 똑똑하게 본듯싶었다. 탄알은 상상도 못할 속도를 가진 꿀벌처럼 어미늑대의 가슴으로 날아들었었다. 남자애는 꿀벌과도 같이 작은 그 물건이 그렇게 큰 힘이 있다는것이 믿기지 않았다. 어미늑대는 앞으로부터 불어오는 태풍을 만난듯 멈추어 서서 몸을 떨어댔다. 물론 그놈은 자기에게 총을 쏜 흉수를 확인할 새도 없었다. 어미늑대는 선자리에서 고통스럽게 뱅뱅 돌아쳤다. 그놈은 분명 세상이 그렇게 빙빙 돈다고 생각했을것이다. 해빛도 초원도 자작나무잎도 땅도 그렇게 도는것이라고 느꼈을것이다. 그놈은 안전한 곳을 찾아 자기의 몸을 안정시키려고 생각했을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기의 몸뚱이 하나 안정하게 눕힐만한 그런 자리를 찾을수 없었을것이다. 그놈은 무엇인가를 찾아 빙빙 돌아가는 자기의 몸을 기대이고싶었을것이다. 어미늑대는 쓸어지고싶지 않았을것이다. 아니 쓸어지면 안되였던것이다. 어미늑대는 그때까지도 입에 물고있는 주머니를 내리워놓지 않았다. 빠투는 남자애와 함께 어미늑대를 향해 다가갔다. 빠투는 남자애가 어미늑대의 곁으로 바짝 다가드는것을 제지시키지 않았다. 어미늑대는 그때 이미 쓰러져버렸던것이다. 빠투는 자기의 사격솜씨를 두고 십분 만족해 하는것 같았다. 어미늑대는 이미 죽어있었다. 천천히 식어가는 늑대의 몸은 그처럼 여워고 가냘파보였다. 정말이지 웬간한 개보다도 커보이지 않았다. 남자애는 자기가 아직 잘 모르고있는 그 무엇이 절반쯤 뜨고있는 어미늑대의 눈에서 사라지고있다는것을 느꼈다.  남자애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고싶었다. 그리고 어미늑대가 마지막 순간에 무엇을 보았는지를 알고싶었다. 빠투는 옆에 있는 돌멩이우에 주저 앉았다. 그는 허리를 굽히며 힘들게 신음소리를 냈다. 빠투는 웬 일인지 자기의 사냥물을 살펴보고싶은 생각마저 없는듯 했다. 그 계절에는 늑대의 털마저 다른 계절처럼 그렇게 풍성하지 않았다. 남자애는 어미늑대의 옆에 쪼크리고 앉았다. 남자애가 해빛을 가리우자 어미늑대의 머리가 그림자에 가리워졌다. 그때 남자애는 어미늑대의 눈이 맑은 개울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맑음도 순간이였다. 어쩌면 한 생명이 이 세상에 잠간스쳤다 갔다는 사실을 알려주려는것 같았다. 어미늑대의 눈은 차츰 흐려졌다. 남자애는 더 이상 늑대의 눈을 보고싶지 않았다. 남자애는 어미늑대의 몸에서 상처자국을 발견하지 못했다. 어미늑대는 죽는 그 순간에도 검은색 주머니를 내려놓지 않고있었다. 그것이 남자애의 주의력을 끌었다. 남자애는 나무가지를 주어들고 어미늑대의 입에서 그 주머니를 꺼내려고 했다. 하지만 나무가지가 너무 가늘어서 성공하지 못했다. 남자애는 손에 들었던 나무가지를 던져버렸다. 어미늑대가 죽었다고 생각하니 무서움도 사라졌다. 남자애는 어미늑대의 머리를 쳐들었다. 무거움이 손으로 느껴졌다. 남자애는 어미늑대의 입을 벌렸다. 크게 힘들지도 않았다. 거품이 섞인 피가 어미늑대의 입에서 흘러내렸다.  피는 남자애의 손에 흘러내렸다. 피는 그때까지도 따듯했다. 빠투의 총은 단번에 어미늑대의 페를 명중했던것이다. 파편은 또 다른 중요한 기관에도 박혔다. 어미늑대는 얼마 고통을 느끼지 않고 눈을 감았던것이다. 남자애는 주머니를 손에 들었다. 주머니는 그리 크지 않았다. 주머니에서는 비릿한 냄새가  풍겨나왔다. 남자애는 그 주머니가 눈에 익었다. 주머니는 바로 웬 동물의 위였다.  어쩌면 고라니나 사슴 같은 초식동물의 위 같아보였다. 주머니는 이미  꺼덕꺼덕 말라있었다.  그때 주머니에서 무슨 물건인가 꿈틀거리는것 같았다. 남자애는 놀라 소리치면서 주머니를 땅에 던져버렸다. 주머니안에서 무엇인가가 불만스러운듯 낑낑 소리를 냈다. 남자애는 다시 주머니를 다치지 않았다. 빠투가 주머니를 주어 꺼꾸로 들었다. 주머니안에서 털이 보송보송한 물건이 세개나 떨어져내렸다. 그 물건들은 땅에 닿자 마자  소리를 내는 놀이감처럼 불안하게 신음소리를 냈다. 그놈들은 바로 세마리의 새끼늑대였다. 새끼늑대들은 갑자기 주머니안의 검은 환경에서 밖으로 나와서인지 몹시 불안해 했다. 짧은 네다리는 젖살이 올라 포동포동한 몸뚱이를 받치기 힘들어 후들후들 떨리고있었다. 그놈들은 무엇을 찾는지 부산하게 선자리에서 맴돌이를 쳤다. 새끼늑대들의 눈빛은 푸르스름한 짙은 빛을 띠고있었는데 이른 아침 세상을 덮은 안개의 색갈을 방불케 했다. 남자애는그 눈빛에 무엇이 섞여있는지 보아낼수 없었다. 새끼늑대들은 인차 자기들의 목표를 찾아낸듯 쓰러져있는 어미늑대를 향해 달려갔다. 새끼늑대들은 힘있게 어미늑대의 품을 파고 들어가 조용히 머리를 숨기고있었다. 어미늑대의 차가와지는 품은 새끼늑대들에게 여전히 그처럼 따스하게 느껴졌던 모양이였다. 새끼늑대들은 신음소리를 내지 않고 차츰 안정을 찾아갔다. 남자애는 머리를 숙이고 서서 어미늑대의 품에 몸을 채 숨기지 못한 새끼늑대를 바라보았다. 새끼늑대의 붉으스름한 작은 입은 어미늑대의 배에서 젖꼭지를 찾아 헤매고있었다. 남자애는 몸을 일으켰다. 어쩌면 자기의 몸에 있던 따스한 그 무엇이 차츰 사라지는것만 같았다.  바람이 지나간 자작나무숲에서 나무잎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졸졸 흐르는 개울물소리를 떠올리게 했다. 남자애는 그 바람이 꼭 산꼭대기에까지 불어갈것이라고 생각되였다.  제일 높은 산꼭대기의 그 삼림을 지나면 뒤에는 광활한 초원이 펼쳐질것이였다.  
11    스키장의 썰매견*거르러치무거 헤허 댓글:  조회:2252  추천:1  2013-11-29
고산훈련기지에 가 썰매를 탈 때 나는 처음으로 그놈을 보았다. 전에 나는 늘 시내에 있는 썰매장으로 가거나 야외썰매장으로 가서 스키를 탔다. 올해 겨울이 시작될 때 내가 사는 집뒤 광장의 호수에다 초급스키애호자들을 위한 몇십메터 길이의 설매장을 만들었다. 스키장이 채 완성되기도전에 나는 스노우보드를 메고 그곳으로 갔다. 나의 몸은 늘 제설기에서 나오는 싸라기눈을 맞아 얼군했는데 마치도 흰 껍데기를 뒤집어 쓴듯 했다. 그곳에서 사업하는 한 일군이 나에게 조건이 괜찮은 스키장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주었다. 전에 나는 인터넷에서 그 스키장에 대한 정보를 본적이 없었다. 알고보니 그 스키장은 체육학원의 제2학교구역이였다. 고산지대에 위치한 스키훈련기지였기에 학교에서는 특별히 홍보를 하지 않았던것이다. 그러니 그곳에 대해 아는 사람이 적을수밖에 없었다. 기차를 두번 갈아탄후 뻐스에 앉아 한참을 달려서야 높은 산사이에 있는 스키장을 볼수 있었다. 멀리서 바라보니 산꼭대기에서 시작된 2킬로메터에 달하는 가파로운 미끄럼길을 볼수 있었다. 나는 흥분을 금할수 없었다. 한시바삐 스키화를 바꿔 신고 미끄럼길에서 날아내리고싶었다. 나는 행리들을 봉고차에서 내리웠다. 머리를 들어 산정을 바라보니 하얀 눈에 반사되는 해빛은 무던히도 나의 눈을 자극했다. 나는 머리우로 올렸던 스노우고글(雪镜)을 내리워 눈을 가리웠다. 바로 그때 그놈이 오렌지색으로 변해버린 나의 시야로 뛰여들었다. 나는 그놈의 모양을 똑똑히 보려고 스노우고글을 벗어들었다. 그놈은 은백색 털을 가진 개였다. 그놈은 스키도구를 파는 대청에서 달려나와 줄곧 나에게로 뛰여왔다. 그놈의 목표는 바로 나였다. 그때 내곁에는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 어떤 공포도 느끼지 않았다. 그 어떤 개라도 “당신을 공격하겠습니다.”라는 신호를 그런 방법으로 보내지는 않았던것이다. 나는 그런 장면에 이미 습관되여있었다. 매번 한동안의 외출을 마치고 집에 들어서면 나의 두마리 개도 그런 방법으로 나를 환영해주었던것이다. 내가 그들의 시야에 나타나기만 하면 그들은 주저없이 그렇게 나에게 덮쳐들었던것이다. 주인에 대한 끝없는 충성심이 그들의 격정을 불러주었던것이다. 그들은 열광했다. 그 열광은 자기들의 앞을 가로막고있는 그 어떤 장애라도 모두 뒤엎으려는것 같았다. 그놈들은 높이 솟으며 나의 품에 안겨 입을 맞추었고 이발로 나의 손을 핥아댔다. 그놈들은 애써 자기들의 흥분을 통제하고있었기에 절대 나의 손을 진짜 물어 뜯는 불상사는 생길수 없었다. 그놈들의 꼬리는 직승비행기의 프로펠러처럼  팽팽 돌아쳤다. 그놈들은 그런 방법으로 오래동안 주인과 갈려져있던 그리움을 보여주고 해소하려 했던것이다. 그런 환영식이 긴 시간 이어질 때도 있었다. 모든 동작이 끝나고나면 그들은 마치 10킬로메터를 금방 달린듯 숨이 차서 헐떡 거렸고 입귀로 느침을 질질 흘렸다. 사실 더 많은 느침은 이미 나의 옷과 얼굴을 흥건히 적신 뒤였다. 스키장에서 만난 그놈도 바로 오래동안 떨어져있던 주인을  맞는듯한 열정으로 나를 향해 뛰여왔던것이다. 나는 그놈을 마주하고 일시 어쨌으면 좋을지 몰라 망설였다. 그놈의 표정으로 보아 그놈은 필경 나를 자기의 주인으로 착각한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나는 그런 놈을 키웠던 기억이 없었다. 그놈의 속도가 아주 빨랐지만 나는 그래도 인차 그놈이 은회색 털을 가진 세퍼드(狼犬)라는것을 알아보았다. 나는10여마리의 개를 기른적이 있는데 그놈들이 어디에 있는지를 똑똑히 알고있었다. 확실히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놈도 한두마리 있기는 했지만 그놈들은 눈앞에서 껑충거리는 그놈과 같은 품종이 아니였다. 나는 어려서 초원에 살 때 유백색의 세퍼드를 기른적이 있는데 어느날 황혼녘에 조용히 집을 나간후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고있다. 물론 그들의 털 색갈이 다르기는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변할수는 있것이다. 그리나 그놈이 머나먼 초원에서 적설이 두터운 그 고산지대로 들어올수 있단 말인가? 그놈이 만약 지금도 살아있다면 20살에 가까울것이다. 나는 아직 20살에 나는 개를 본적이 없다. 나는 사실 개에 대하여 깊은 료해는 없지만 개의 20살은 사람의200살에 해당될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한 친구는 14살에 나는 개를 기르적이 있는데 잘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했다. 그리고 걸음도 잘 걷지 못했다. 나의 친구는 늘 그놈을 안고 밖에 나가서 해볕쪼임을 시켰다. 그렇다면 20살에 나는 개는 더구나 그러한 방식으로 나를 맞아줄수 없을것이다. 그놈이 나의 앞에 달려와 섰다.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있던 간에 그놈은 여전히 자기의 방식대로 오래동안 속에 품고있던 그리움과 열정을 보여주려고 했다. 손에 들려있는 행리들이 행동을 방해할가봐 나는 그것들을 눈우에 내려놓았다. 아무리 작은 개라고 해도 마음 먹고 덮쳐들 때의 그 힘을 절대 얕볼수 없다. 나는 전에 가방을 등에 메고 있다가 개가 덮쳐드는 바람에 넘어진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개들이 속에 있는 전부의 열광을 보여줄 때 그 힘은  가늠하기 어려운것이다. 나는 그놈이 오래전에 나와 갈라졌던 그놈이 옳든 말든 먼저 열광에 가까운 그놈의 충동을 마주할수밖에 없었다. 나는 인차 두손을 가슴에 가져갔다. 그렇게 하면 그놈이 달려들 때 인차 팔을 벌려 그놈을 안아줄수 있었으며 또 그놈이 너무 높게 올리뛰여 나의 얼굴을 긁는것도 예방할수 있었다. 내가 기르는 개 아야(阿雅)도 그렇게 덮치기를 좋아했다. 여름이면 나는 늘 아야에게 그렇게 당하군 했다. 그놈의 네다리가 어제 내린 눈을 마구 찍어올려 사처에 뿌렸다. 먼거리를 달려온 뻐스에서 행리를 내리우는 유람객들의 눈길이 우리에게 쏠렸다. 나도 어딘가 그놈의 열광에 감동되여 흥분을 금할수 없었다. 개들의 열정은 그렇게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힘을 가지고있었다. 그놈은 내앞에 뛰여와 덮치려고 하다가 갑자기 멈추어 서서 나를 찍어보았다. 방금까지 보이던 열정과 흥분이 눈 깜빡 할 새에 령하 50도로 내려가는듯싶었다. 그놈은 크나큰 실망에 빠져들고있었다. 자기에게 속하는 모든 세상을 다 잃은듯 실망하고있었다. 그것은 내가 제일 보기 힘든 다른 물종의 눈에서 새여나오는 눈빛이였다. 만약 가능하다면 나는 영원히 그러한 눈 빛을 보지 않을것이다. 나는 매번 스키타러 가거나 공무로 먼길을 떠날 때면 내가 기르는 두마리 개들의 눈에서 그런 빛을 보군 한다. 그 눈빛에는 늘 커다란 실망이 섞여있다. 그 순간이면 나는 그놈들이 이 세상에 대해서까지 흥미를 잃는것이나 아닌가 하고 생각된다. 그놈은 차츰 나를 한번도 본적이 없다는것을 의식하는것 같았다. 습관적인 랭담이 안개마냥 그의 눈에서 흘러나왔다. 그놈은 차디찬 눈길로 나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옆으로 비켜섰다. 나는 그때를 빌어 그놈을 똑똑히 살펴볼수 있었다. 그놈은 수컷이였는데 흔치 않은 품종인 씨베리아썰매견이였다. 그놈은 체구가 건장했고 허리통이 단단했으며 털이 매우 풍성했다. 게다가 두귀까지 꼿꼿이 올리솟아 피뜩보면 늑대를 련상케 했다. 그놈의 홍채는 흰색이였기에 눈빛에는 개들에게서 보기 힘든 랭혹함이 력연했다. 나는 종래로 쌜매견을 길러본적이 없었기에 그한 품종에 대하여 아무 료해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놈이 방금 나를 보고 흥분하던 그 행위가 아무 유래도 없을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주변에서 줄곧 나를 지켜보고있던 사람들도 어쩌면 그놈의 행동이 잘 리해되지 않는듯싶었다. 그들은 워낙 오래동안 갈라져있던 주인과 개의 감동적인 상봉을 그려보았을것이였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장면은 마치도 절반쯤 흘러가던 연극이 갑자기 정지된듯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놈의 돌연적인 행동으로 하여 크게 난처한 느낌이 없었다. 그놈에게 꼭 그럴만한 리유가 있을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사실은 빨리 산에 올라가 스키를 타고싶었다. 하여 상징적으로 가볍게 인사를 하고는 그놈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놈도 나의 인사에 답례를 하는듯 차가운 코끝으로 나의 손을 가볍게 다쳐주었다. 나는 대청에 들어가 돈을 내고 삭도표를 받아들었다. 나는 머리를 돌려 대청문곁에 있는 그놈을 바라보고는 인차 삭도를 타려고 기다리고있는 사람들속으로 들어갔다. 그놈은 목을 길게 빼들고 큰 길을 바라보고있었다. 무릇 스키장으로 들어오는 차들은 모두 적설이 두터운 산길을 지나야 했다. 스키장 미끄럼길은 참으로 훌륭했다. 금방 눈을 다져놓은데다가 어제 또 눈까지 내렸던것이다. 산으로 올라가기전에 나는 스키판에다가 초를 먹였었다. 스키가 날아내릴 때 흩날리는 눈안개는 그처럼 아름다울수가 없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나는 쉬지 않고 스키를 탔다. 지어는 점심밥도 먹지 않았다. 삭도가 작동을 멈추어서야 나는 스키를 타고 대청앞까지 내려갔다. 그놈은 그때까지도 대청문앞에 쭈크리고 앉아 하염없이 산길을 바라보고있었다. 어둠이 깃들고있는지라 산길에서 유람객들을 실은 뻐스가 내려올리 만무했다. 진종일 스키장에서 스키를 타느라 기진맥진한 유람객들이 차를 몰고 시내로 돌아가는 모습이 가끔 눈에 띄였다. 나는 대청문앞에 서서 묵묵히 그놈의 뒤모습을 바라보았다. 산길 저 멀리로 사라지는 차들을 막연한 눈길로 바라보는 그놈의 뒤모습이 어딘가 쓸쓸해보였다. 나는 이틀을 예산하고 떠났기에 그날밤은 스키장에서 나기로 했다. 저녁밥을 다 먹은 나는 대청에 놓인 쏘파에 앉아 산발을 물들이는 석양을 바라보았고 체육학교 학생들이 나누는 한담도 귀동냥했다. 비록 하루낮의 접촉이였지만 나는 이미 그들과 익숙해있었다. 그들은 모두 10여살 푼한 애숭이들이였다. 그중 제일 어려보이는 애는 겨우 10살이나 됨직해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스키 타는 재간이 좋아서 180도, 360도 회전동작을 멋지게 소화해냈다. 그밖에도 올리비아점프를 끝낸후 공중에서 스키판을 잡기며 공중회전 같은것과 같은 고난도 동작도 훌륭하게 완성했다. 그들이 가을날의 기러들떼처럼 줄을 지어내려올 때면 미끄럼길에는 호선들이 보기 좋게 생겨나군 했다. 나는 그들의 뒤를 따라 내려오려고 시도해보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그들의 속도를 따라 잡을수 없었다. 그들의 한담을 통해 나는 그들중에 전국선수권보유자가 있다는것도 알게 되였다. 내가 소년들과 한담하고있을 때 그놈이 또 우리앞에 나타났다. 밖에 너무 오래동안 있었던때문인지 그놈은 대청에 들어오자마자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놈은 언몸을 녹이려는 심사에서였던지 한동안 대청안에 서있었는데 그때 그놈의 눈은 흐릿한것이 초점이 없어보였다. 내가 시탐조로 부르자 그놈은 깜짝 놀라는것 같았다. 금방 동면에서 깨여나는듯싶었다. 그놈은 여직 나를 기억하고있었다. 일종의 례의에서였던지 그놈은 천천히 나의 곁으로 다가왔다. 소년들도 그놈을 발견하고 높은 목소리로 불렀다. 그놈의 얼굴에는 성에가 가득 끼여있었다. 소년들은 그놈의 등을 다독여주었고 머리를 쓰다듬기도 했다. 그 동작으로보아 소년들은 그놈과 익숙한 사이인것 같았다. 어쩌면 그놈은 소년들 모두의 애완견이나 되는듯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놈이 억지로 소년들의 친절을 받아주고있다는것을 느낄수 있었다. 그놈은 애써 온화한 표정을 지으며 소년들더러 마음껏 자기의 털을 만지게 내버려두었다. 그 와중에도 그놈의 눈에서는 우울한 빛이 흘러나왔다. 그 눈빛은 그놈의 털을 만지작거리는 소년들의 손길을 벗어나 대청의 커다란 유리창을 뚫고 석양에 붉게 물든 산길에 가있었다. 그 시각 산길은 스키장의 미끄럼길처럼 고즈넉해있었다. 그 시각 그 길로는 절대 차들이 내려올수 없었다. 나는 그놈이 무엇인가를 애타게 기다리고있는것이라고 판단했다. 그 기다림은 그놈의 전부의 세계라고 할수도 있을것이였다. “얘를 알아요?” 얼굴이 검실검실하고 코등에 약간 동상을 입은 한 남자애가 나에게 물었다. 나는 그 남자애에게 인상이 깊었다. 낮에 나와 그 남자애는 두번이나 한 삭도에 앉아 산꼭대기에 올라가면서 어떻게 스키를 보양해야 하는가를 두고 담론했던것이다. 나는 그 남자애에게 아침에 내가 금방 스키장으로 왔을 때 있었던 일을 상세하게 들려주었다. “그런 일이 있었어요?” 나의 말을 듣고난 남자애의 얼굴에 놀라움이 스쳐지났다. “형은 참으로 얘 주인 같이 생겼어요.” 남자애는 나에게 그놈의 경력을 이야기해주었다. 남자애의 친구들도 옆에서 가끔 한두마디씩 보충했다. 갓 눈이 내려 얼마 안돼서부터 스키장에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몰려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업성을 띤 전문스키장이 아니기에 필경은 찾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게다가 미끄럼길이 가파로와서 초학자들은 감히 찾아오지도 못했다. 그놈은 키골이 장대한 한 사나이와 함께 스키장에 나타났다. 그놈은 스키장에 오자마자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놈과 같은 씨베리아썰매견은 금방 북방도시들에 나타나기 시작했기에 그 수효가 많지 않았고 가격도 놀라울 정도로 비쌌다. 유람객들은 주인의 동의를 얻은후 앞다투어 그놈과 사진을 찍기에 바빴다. 그놈의 주인은 진종일 스키를 타느라고 여념이 없었다.하지만 그들이 곧 스키장을 떠나게 될 무렵에 무슨 일이 발생했던지 주인은 갑자기 그놈을 때리고 차고 야단이였다. 그후 주인은 그놈을  떨궈둔채 차를 타고 그곳을 훌쩍 떠나버렸다. 그놈은 죽기내기로 차를 따라 뛰여갔다. 한참 지나자 차도 그놈도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튿날아침, 소년들은 대청밖에서 온몸에 먼지를 뒤집어 쓴채 피곤에 지쳐있는 썰매견을 발견하였다. 그놈은 주인의 차를 따라잡지 못했고 또 고속도도로에까지 닿지도 못한것 같았다. 그놈은 주인에게서 완전히 포기당한것이였다. 비록 그놈은 달리기에 능한 품종이였지만 네 바퀴를 가진 찌프차를 따라 잡기엔 심장이 받아당할수 없었던 모양이였다.  그날부터 그놈은 줄곧 스키장에 남아있게 되였다. 겨울이 지나고 새로운 한해가 시작되였다가 다시 그해의 첫눈을 맞았다. “여름에 유람객들이 없을 때 얘는 늘 길옆에 나서서 하염없이 산길을 바라보았다고 해요.” 소년들중 유일한 그 녀자애가 말을 잠간 끊고 그놈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다가 아래말을 이었다. “첫눈이 내리자 얘는 더없이 흥분돼 했대요. 얘는 날마다 주차장으로 가서 차에서 내리는 유람객들을 살펴보았대요. 분명 자기를 두고 간 주인을 기다리는것이죠. 애타게…” 나는 지난 겨울 주인이 앉은 차를 쫓아가다가 심장이 폭발하는것 같아 멈춰서서 사라지는 찌프차를 무기력하게 바라보던 그놈의 모습을 상상하고싶지 않았다. 그놈에게 있어서 그 절망은 어떠한것이였을가? 그놈은 또 어떠한 인내심으로 이 스키장에서 일년을 기다려왔을가? 그놈은 자기의 주인이 꼭 자기를 데리러 올것이라고 굳게 믿는듯싶었다. 소년들은 그놈에게 먹이를 마련해주었고 목욕도 시켜주었다. 하지만 그놈은 여직 그 어느 소년도 새 주인으로 모시지 않았다. 그놈은 날마다 길어구에 쭈크리고 앉아 산길을 바라보았다. 첫눈이 내린후 그놈은 대청문앞으로 옮겨가 앉아 대청을 드나드는 유람객들을 참빗질했다. 어느날 어느 차에서 주인이 내리기를 그렇게도 간절히 바라는 모양이였다. 소년들이 말했듯이 나의 키꼴이며 내가 입은 스키복의 색갈이 그놈의 주인과 비슷한것 같았다. 그리고 그놈의 주인도 스노우보드를 탔다고 했다.  내가 차에서 내릴 때 그놈은 나의 겉모습을 피뜩 보고 지레 흥분한것 같았다. 하지만 그 흥분뒤로 몰려드는 절망은 또 얼마나 컸을가? 나는 필경 그놈의 주인이 아니였다. 그냥 그놈의 주인과  비슷했을뿐이였다. 나는 소년들과 함께 레몬파이를 먹다가 한조각을 그놈에게 뿌려주었다. 그놈은 조심스럽게 냄새를 맡으며 불안한 눈길로 나를 시탐했다. 그 모양이 못내 조심스러워보였다. 그러한 조심성은 늘 사람들에게 놀림을 당하는 개들에게서 보편적으로 보여지는것이였다. 그놈들은 자기에게 우호적인 행동을 보이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쉽게 믿음을 주지 않았다.  어쩌면 자기에게 던져두는 한줌의 먹이뒤에 몽둥이가 숨겨져있거나 거친 발길질이 뒤따를것이라고 의심하는것 같았다. 그만치 그놈들은 요지경같은 심사를 가지고있는 인류를 그닥 믿어워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놈에게 있어서 그것은 일종의 패러독스인지도 몰랐다. 그놈은 오직 한마음으로 일년내내 자기를 떠나버린 주인을 기다려왔던것이다. 그놈은 한참이나 냄새를 맡은후 소년들의 고무아래 천천히 레몬파이를 먹기 시작했고 잠간후에는 나의 손에 묻은 레몬파이부스러기까지 핥았다. 개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일종  믿음의  표시였다. 소년들의 말에 의하면 그놈은 소년들외에는 종래로 누구의 손에서도 먹이를 받아먹지 않았다고 한다. 일년내내 스키장에 살면서 그놈은 유람객들에게서 많은 수모를 당했었다. 어떤 사람들은 고추장을 중간에 바른 빵을 그놈에게 던져주었고 또 일부 사람들은 먹이를 뿌려주었다가 그놈이 먹으려고 다가서면 불시에 괴상한 소리를 질러 그놈을 놀래웠던것이다. 그래도 그놈이 나에게 약간한 믿음을 주는것은 나의 외모가 그놈의 주인과 비슷하고 나의 몸에 나의 개들의 냄새가 배여있는것때문이라고 생각되였다. 내가 소년들과 한담하고있을 때 그놈은 줄곧 우리곁에 엎드려있었다. 하지만 그놈은 좀처럼 주의력을 집중하지 못하고 대청문앞에서 조금이라도 동정이 있으면 긴장한 눈길로 그쪽을 바라보군 했다. 그놈은 여전히 무엇인가를 애타게 기다리고있었던것이다. 나는 소년들과 인사를 나눈후  침실로 들어갔다. 침실은 6인용이였는데 나는 그중의 침대 하나를 사용할뿐이였다. 하지만 다른 다섯 침대에 손님이 없었기에 내가 그 침실을 혼자 사용하는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짜른 팔 운동복을 입고 봄날처럼 따스한 대청에서 희희닥닥 한담을 하던 소년들이 숙소로 돌아가자 대청안은 쥐 죽은듯 조용해졌다. 나는 침대에 누웠지만 인차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가 책 한권을 찾아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던지 나는 저도 몰래 잠이 들었다. 조용히 문을 밀어 여는 소리에 나는 잠에서 깨여났다. 그놈은 잠그지 않은 나의 침실문을 코등으로 밀어 열었지만 여전히 문밖에 서서 조용히 나를 바라보고있었다. “들어와!” 나는 조용히 인사를 건네며 그놈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놈은 나의 침대곁으로 조용히 다가왔다. 속도가 매우 느렸다. 어쩌면 매 한발자국을 내디딜 때마다 깊이 고려하는것 같았다. 그놈이 분명 자기의 대담한 행동을 두고 불안해 한다는것을 나는 인차 보아낼수 있었다. 어쩌면 그놈은 불시에 떨어질 스키스틱이나 무거운 눈신을 받아 당할 결심을 하고 나를 찾아온것이나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놈은 끝내 나의 침대곁에 와 섰다. 나는 천천히 손을 내밀어 그놈의 턱과 귀등을 만져주었다. 무릇 정상적인 개라면 그렇게 만져주는것을 모두 좋아했다. 그놈도 례외가 아니였다. 얼마 안되여 그놈의 긴장되였던 근육들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놈은 턱을 나의 침대가에 걸치고 소르르 두눈을 감았다. 그놈의 털은 아주 깨끗했는데 아무 잡냄새도 없었다. 소년들이 그놈을 정말 열심히 돌보는것 같았다. 하지만 영양불량때문인지 아니면 음식물을 골고루 섭취하지 못한때문인지 지방은 그리 많이 축적되여있지 않았다. 나는 소년들이 방학을 한후이면 누가 그놈을 돌보아줄것인가가 금심스러웠다. 소년들이 아니면 그놈은 어디가서 먹이를 찾는단 말인가? 나는 그놈의 목에 걸려있는 가는 목걸이를 만져보았다.검은색이였는데 그놈의 목부위의 털과 비슷했다. 그점은 내가 주의하지 못한것이였다. 나는 그놈의 목부근의 털을 헤치고 자세히 목걸이를 살펴보았다. 목걸이는 아주 질이 좋은것이였는데 정교로운 표찰까지 박혀있었다. 하지만 너무 오래 씻지 않아 우에 약간 녹이 쓸어서 빛은 나지 않았다. 불빛을 빌어 자세히 살펴보니 우에 무슨 도안 같은것이 찍혀져있었다. 나는 힘주어 목걸이를 닦았지만 녹은 잘 벗겨지지 않았다. 내가 갑자기 손을 멈추자 그놈은 흠칫 놀라면서 두눈을 커다랗게 뜨고 나의 손을 지켜보았다. 손, 손은 인류가 도구를 만들고 세상을 창조하는 신비의 대명사이지만 그놈에게는 죄악의 돌멩이를 던지는 도구로밖에 느껴지지 않을것이였다. 가련한 그 개는 정말 사람들의 손에 대해 공포를 느끼고있었던것이다. “괜찮아, 괜찮아.” 나는 되도록 그놈을 놀래우지 않으려고 낮은 목소리로 위안하면서 낮에 스키를 타느라 얼어서 스팀우에 올려놓아 말리우던 장갑을 주어들었다. 하지만 그 작은 동작에마저  그놈은 놀라는듯 갑자기 머리를 쳐들었다. 그놈은 내가 그 나른한 장갑에다 자기의 머리를 칠수 있는 돌멩이라도 감추지 않았는가 의심하는것 같았다. “괜찮다는데.” 내가 그렇게 말했지만 그놈은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수 없었다. 하지만 나의 어조에서 기분을 감수하는것 같았다. 나는 그때까지도 흥건히 젖은 장갑을 그놈의 앞에 내밀었다. “믿기지 않으면 냄새를 맡아봐라.” 개들은 자기의 후각을 제일 믿었던것이다. 그놈은 정말 코를 장갑에 대고 킁킁거렸다. 하지만 장갑에서는 돌멩이나 쇠붙이 냄새가 날수 없었다. 나는 젖은 장갑으로 녹이 쓴 표찰을 힘껏 닦았다. 그러자 레이저빛을  리용해 새긴 도안이 나타났는데 그것은 두귀를 바싹 치켜든 개머리였다. 바로 그놈의 머리인것 같았다. 우에는 또 “Hake”라는 네개의 영어자모가 찍혀져있었다. 하지만 주인의 주소나 전화번호 같은것은 없었다. 나는 그 영어자모를 살펴보면서 “하커(哈克)” 하고 불러보았다. 그놈은 머리를 번쩍 쳐든채 잘 생긴 두귀를 치켜세우고는 눈 한번 깜빡하지 않고 나를 바라보았다.   “하커!” 나는 다시한번 그놈을 불러보았다. 그놈이 벌떡 뛰여일어나 웬 일이냐는듯 나에게 눈길을 박았다. “하커”는 분명 그놈의 이름이였다. 다만 그놈이 “하커”로 불리워본지 너무 오랠뿐이였다.  하커의 몸은 얼어버린듯 꽛꽛해졌다. 하지만 하커의 두눈에서는 뭔가가 차츰 녹아내리기 시작하는듯싶었다. 하커는 나를 뚫어지게 지켜보고있었다. “하커!” 개들이 제일 처음 기억하는 단어는 자기의 이름이라고 한다. 하지만  하커는 아직 잘 적응이 되지 않는듯싶었다 하커는 가볍게 몸을 떨었다. 길고 긴 어둠을 헤치고 나와 끝내 태양을 본 어린애처럼 하커는 오래동안 잊고 살았던 자기의 이름을 다시 찾게 된 감격때문에 흥분하고있었다. 그 순간 아무리 따뜻한 해볕이라고 해도 차디찬 어둠속에서 오래동안 살아온 하커에게는 습관이 잘 안될것이고 그 빛은 또 잠시 하커의 눈을 아프게 자극할수도 있을것이였다. 하커! 그의 주인이 그를 스키장에 던지고 간 그날부터 누구도 그 이름을 불러준적이 없을것이였다. 자기를 부르는 이름을 들으며 하커는 조금이라도 얼었던 몸과 마음을 덥힐수 있을것이였다. 사람들에게 천리밖으로 팽개쳐진듯한 그 아픔은 오래된 얼음처럼 하커의 마음에 남아있었던것이다. 하커는 머리를 들어 또 잠간 나를 바라보더니 코등을 나의 팔밑에 밀어넣고 나의 냄새를 맡았다. 하커는 한참이나 그 자세를 유지했다. 나는 다시 책을 집어들고 읽어내려갔다. 그새 하커는 계속 그 자세를 유지하고있었다. 나는 하커가 그 자세로 그렇게 서있는것이 편안하지 못할것이라고 생각되였다. 내가 몸을 움직이자 하커가 머리를 쳐들었다. 그의 부드러운 눈길이 나의 얼굴에 잠간 머물다 갔다.  나는 하커를 그렇게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계속 둘수가 없어 집에서 나의 개들에게 하던대로 침대를 다독이며 “올라오렴.” 하고 권했다. 하커는 과연 나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눈빌이 반짝 빛났다. 하지만 하커는 여전히 주저하는것 같았다. 침대는 사람의 소유물로서 개가 올라오는것을 금했던것이다. 하지만 나의 진정어린 표현이 하커를 감동시켰던지 그는 나를 믿기 시작하는것 같았다. 하커는 침대에 뛰여올라   얼마간 돌아치더니 나의 발치에서 자기의 자리를 찾아 조용히 엎드렸다. 그후 하커는 인차 잠이 들었다. 하커는 오래동안 그렇게 시름을 놓고 굳잠을 자본것 같지 않았다. 하커는 소년들의 숙소에도 들어가본것 같지 않았다. 그들의 노력으로 그냥 스키장에 남아있는것만으로도 하커는 만족해야했던것이다.  나는 차츰 하커의 체온으로 하여 나의 발이 따뜻해짐을 느꼈다. 얼마 안되여 하커는 완전히 깊은 잠에 빠진듯싶었다. 어쩌면 나의 개들처럼 행복한 꿈나라에서 헤매이는지도 모를 일이였다. 하커는 강아지처럼 신음소리를 냈고 가볍게 몸을 떨기도 했다. 그리고 네다리는 노를 젓듯 허우적거렸다. 어쩌면 꿈속에서마저 주인의 차를 따라 달리고있는지도 모를 일이였다. 하커는 그러한 꿈을 한두번만 꾼것이 아닐것이였다. 하지만 그는 또 꿈속에서 한번도 그 차를 따라잡은적이 없을것이였다. 나는 하커가 그 불행한 꿈속에서 헤매이는것이 가음 아파 부드럽게 그의 목을 다독여주었다.  하커가 잠에서 깨여나 두눈을 멍하니 뜨고 나를 바라보고있었는데 어쩌면 젖은 유리넘어에서 오는 눈길처럼 느껴졌다. 하커는 나의 얼굴을 확인했는지 안심하고 두눈을 감았다. 하커는 인차 다시 잠이 드는것 같았다. 이튿날아침, 내가 아직 잠자리에서 일어 나지도 않았는데 소년들이 나의 침실문을 두드렸다. 그들은 하커가 나의 침대에서 굳잠을 자는것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전에 하커는 사람들의 눈길을 피해 대청의 한쪽구석에 누워 쪽잠을 잤던것이다. 대청바닥에 스틈이 들어오지 않을 때 소년들은 선생님들의 눈을 피해 하커를 자기들의 숙소에 들여다 재우려고 한적이 있었다. 하지만 하커는 종래로 소년들의 뜻을 따르지 않았었다.  어제 금방 스키장에 도착한 내가 놀라운 속도로 하커의 신임을 얻어내자 소년들은 어딘가 나를 질투하는듯한 눈빛들이였다. 하지만 소년들은 어제밤에 내가 하커의 이름을 알아내던 이야기를 듣고는 다소 리해가 간다는 표정들이였다. 그날아침, 나의 침실은 여간만 흥성하지 않았다. 십여명의 소년이 저마다 하커의 이름을 부르기에 흥겨웠다. 하카, 하커… 우리는 한번 또 한번 그놈의 이름을 불렀다. 하커도 흥성흥성한 그 분위기에 푹 빠진듯 명쾌한 목소리로 흥겹게 짖어대며 우리 주변을 돌아쳤다. 한 소년이 나에게 하커가 그렇게 흥겹게 짖어대는것을 처음 본다고 말했다. 그날아침, 나는 첫사람으로 삭도에 오를 기회를 포기하고 대청에 앉아 하커를 살펴보았다. 8시가 지나자 유람객들을 실은 뻐스가 륙속 마당에 들어섰다. 하커는 대청의 유리창을 통하여 차에서 내라는 유람객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눈여겨보고있었다. 새로운 차가 도착해서 문이 열릴 때면 하커는 몹시 긴장해 했다. 어쩌면 아리빠빠의 대문이 열리는 그 순간을 기다리는듯한 기분이였다. 나는 하커의 눈을 살펴보았다. 차가 도착해서 손님들이 다 내리기까지 하커의 눈은 시종 복잡한 분위기속에서 껌뻑이는것 같았다. 그 과정에는 박절한 기대감, 어쩔바를 몰라하는 긴장감, 이미 습관된듯한 실망감 그리고 현실에 대한 좌절감이 뒤섞여있었다. 나는 한마리의 개가 그처럼 풍부한 표정을 가지고있다는것이 놀라왔다. 하커는 찌프차를 더 주의 깊게 살폈는데 나는 인차 그 원인을 알것 같았다. 소년들은 나에게 하커의 주인이 찌프차를 몰고 스키장을 떠났다고 알려주었던것이다. 이틀간의 휴식을 마치고 내가 스키장을 떠날 때 하커는 그렇게 떨어지기 아쉬워하는 표정을 짓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나의 차를 몇발자국 따라 나오다가 멈추어 서서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내가 다시 스키장을 찾았을 때는 두주일뒤였다. 동생이 차를 몰아 나를 스키장까지 데려다주었다. 차에서 내릴 때 나는 애써 아무일도 없는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차에서 행리를 내리웠고 가끔은 대청쪽을 바라보았다. 하커가 달려와 나의 품에 안기기를 바라서였다. 스키장으로 떠나오기전에 나와 동생은 낯선 환경에서 누가 먼저 낯선 개의 믿음을 얻는가를 내기하자고 했던것이다. 나와 동생 사이에는 이것 말고 또 하나의 시합이 있었는데 그것은 누가 말을 더 잘타는가 하는것이였다. 하지만 이 시합은 나에게 큰 흥미가 없었다. 한것은 나의 말 타는 솜씨가 영원히 동생을 따를수 없다는것을 잘 알고있기때문이였다. 하여 나는 누가 먼저 낯선 개의 믿음을 얻는가 하는 이 시합에서 동생을 이기고싶었던것이다. 갑자기 몇몇 녀자들의 고함소리가 들리기에 나는 인차 머리를 돌렸다. 하커가 그자리에 있었던것이다. 나는 하커가 나의 개들처럼 안간힘을 다해 달려들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하커는 애써 정서를 통제하는것 같았다. 그는 근근히 앞발을 나의 손에 올려놓고 살랑살랑 꼬리를 저을뿐이였다. 동생은 어릴 때의 나처럼 세퍼드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있었다. 하커와 같이 훌륭한 쎌매개를 본 동생의 눈은 삽시에 어린애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형, 얘를 알아?” 동생은 눈 한번 깜빡 하지 않고 하커를 살펴보면서 나에게 물었다. “아니, 내가 어떻게 알아? 세상의 모든 개들이 나에게 호감을 보일뿐이지.” 나는 짐짓 아닌보살을 했다. “아니야, 내 눈은 속일수 없어. 얘는 꼭 형을 알고있다니까.” 동생은 실망감을 안고 돌아갔다. 동생이 아무리 친절을 보여도 하커는 시종 랭담한 표정으로 동생을 대했던것이다. 지어는 먹이를 던져주어도 외눈 한번 팔지 않았다. 스키대의 소년들이 나를 발견하고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내가 삭도에 오를 때까지도 하커는 나의 주변에서 맴돌았다. 하지만 대청문앞에 유람객들을 실은 뻐스가 와서 멈춰서자 주저하지 않고 그곳으로 뛰여갔다. 우리는 그새 스키를 두시간이나 탔다. 스키대의 소년들은 아주 권위적인 어조로 나의 스키재간이 참 빨리 는다고 치하했다. 그들은 물론 내가 평소 시간만 나면 스키도구를 둘러메고 우리 아빠트가 있는 뒤켠의 작은 스키장으로 가서  련습한다는것을 모를것이다. 우리는 미끄럼길중간에서 휴식을 하다가 저도 몰래 하커를 화제에 올리게 되였다. 나는 부지중 소년들의 분위기에 작은 변화가 일어난것을 발견했다. 소년들은 이미 무엇인가를 계획하고 자기들만의 협의가 이루어진것 같았는데 나만 모르고있는듯싶었다. 나중에 그들의 대표로 나선 전국선수권보유자가 나에게 정중한 목소리로 하커를 수양할수 없는가고 제의했다. 그들은 내가 집에서 개를 기르고있는것을 알고있었고 또 하커가 무척 나를 따른다고 믿고있었던것이다. 스키장이 곧 상업화운영에 들어가게 된다고 했다. 손님이 많아지면 하커는 우환거리로 될수 있었다. 얼마전에도 하커는 자기를 놀려대는 한 유람객의 스키복을 물어 찢어놓았던것이다. 물론 사건은 그 유람객이 먼저 도발한것이지만 스키장에서 큰 개를 기르고있다는것도 정당한 리유로는 될수 없었다. 하커는 필경 유람객들의 안전에 위협으로 되였던것이다. 스키장 지배인은 이미 하커를 어디든지 보내버리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소년들은 그 일을 두고 안타까와했다. 어떤 방법을 대서라도 하커에게 어울리는 주인을 찾아주고싶다고 했다. 소년들의 권고는 나에게 너무 돌연적으로 느껴졌다. 내가 하커를 좋아하는것은 사실이였지만 나에게는 이미 두마리의 개가 있었던것이다. 그리고 그놈들이 하커를 용납할수 있을지도 걱정이였다. 나는 점심에 동생에게 전화를 해서 그가 동의하면 하커를 수양하겠다고 소년들에게 대답했다. 점심에 스키장의 스낵점에서 대충 밥을 먹은 나는 공중전화를 찾아 동생과 통화를 했다. 동생은 하커가 스키장에서 자기의 성의를 무시한것때문에 마음이 편치않아 했다. 하지만 내가 하커의 상황을 상세하게 설명하자 동생은 인차 동의했다. 지어 하커라는 이름이 입에 잘 오르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놈이 집에 오면 그보다 더 멋진 몽골식이름을 지어주겠다고  했다. 동생은 스키장에서 하커를 보는 순간 좋아하기 시작했던것이다. 내가 전화를 마치고 나올 때 하커가 갑자기 무엇에 놀란듯 자지러지게 짖어댔다. 나는 하커가 있는쪽으로 뛰여갔다. 하커가 어느 유람객에게 발을 밟혔던것이다. 더블스키를 타는 사람들이 싣는 눈신은 경질수질로 만든것이여서 돌덩이처럼 딴딴했는데 밟히기만 하면 여간만 아픈것이 아니였다. 하커의 발을 밟은 사람은 펭긴처럼 생긴 남자였다. 그는 자기의 실수를 부끄러워할 대신 걸상에 털썩 들어 앉아서 손에 든 스키스틱으로 쩔뚝거리며 다가오는 하커를 향해 힘껏 찔렀다. 하커는 비록 성격이 포악한 축은 아니였지만 그 남자의 행동을 노려보면서 분노한 목소리로 왕왕 짖어댔다.  남자는 너무도 놀라 벌떡 일어서더니 부들부들 떨면서 비실비실 뒤로 물러섰다. 남자는 그 와중에도 주변 사람들의 눈길이 자기에게 쏠리자 얼굴이 깎인다고 생각했던지 손에 들고있는 스키스틱을 번쩍 들어 하커의 옆구리를 향해 힘껏 찔렀다. 하커는 그제야 북방세퍼드의 흉포함을 다 들어내보이려는듯 그 남자를 향해 미친듯이 포효했다. 그리고 늑대처럼 두귀를 빳빳이 치켜세워 머리에 딱 붙이고 웃입술을 한껏 말아올리며 하얀 송곳이를 들어냈다. 그것은 개들이 공격을 시도할 때의  전주곡이라고도 할수 있었다. 남자는 내심으로부터 오는 커다란 공포를 감지하고있었지만 그래도 그 얄팍한 체면을 살리려고 손에 든 스키스틱을 마구 휘둘러댔다.  시간은 긴장하게 흘러갔다. 하커는 이미 몸을 납짝 땅에 붙이고있었다. 그 동작으로보아 하커는 절대 먼저 공격할 태세는 아니였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서 본능적으로 반항할 준비는 충분히 하고있는것이였다. 나는 그 남자와 하커의 사이에 서서 천천히 손을 내밀어 하커의 머리를 살랑살랑 만져주었다. 나는 하커의 목으로부터 전해지는 가벼운 전률을 느낄수있었다. 하커는 분명 속으로 포효하고있었던것이다. 나는 그 소리없는 포효속에 하커의 분노와 공포가 섞여있을것이고 일종의 절망도 숨어있을것이라고 느꼈다. “당신의 개요?” 남자는 끝내 흉악한 개와 마주하지 않아도 될것이라는 생각때문인지 다소 안도감을 느끼는것 같았다. 하지만 얼굴에는 더 마땅찮은 기색을 띄우면서 나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나는 그 남자처럼 개를 학대하는 사람을 용서할수 없었지만 일이 더 크게 발전하는것을 방지하기 위해 애써 정서를 통제했다. 그때 나는 동생이 그 자리에 없는것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동생은 성격이 나보다 훨씬 급했다. 소학교에 다닐 때 동생은 중학교에 다니는 세 남자애가 작은 개를 강에 처넣으려는것을 발견하고 혼자서 그애들에게 달려든적이 있었다. 물론 결과는 불 보듯 뻔한것이였다. 하지만 동생은 끝내 그 작은 강아지를 구해내고야 말았다. “당신이 먼저 얘 발을 밟은게 아니요?” 내가 남자에게 따지고들었다. 남자는 나의 목소리에 섞여있는 분노를 의식한것 같았다. 나의 큰 키는 하커로 하여금 나를 자기의 주인으로 착각하게 한 외에도 그 남자와 같은 사람들에게 위협을 줄수도 있었다.  나는 하커를 한쪽구석으로 끌어왔다. 하커는 오른쪽앞발을 몹시 다쳤는지 땅에 대지 못하고 세발로 힘겹게 걸음을 옮겼다. 나는 쭈크리고 앉아 하커의 오른쪽앞발을 살펴보았다. 뼈는 상한것 같지 않았다. 그 남자가 스키스틱으로 찔렀던 옆구리도 가죽이 좀 긁혔을뿐 뼈에는 문제가 없는것 같았다. 내가 가볍게 상처를 만져주자 하커는 시름이 놓이는지 앓음소리를 했다. 하지만 일이 끝난것이 아니였다. 스키를 둘러메고 삭도를 향해 가던 소년들이 그 남자의 행실을 보게 되였던것이다. 그들은 남자의 소행에 큰 분노를 느끼고있었다. 그 남자가 무거운 눈신을 신은 발을 힘겹게 옮겨놓으며 소년들의 앞을 지날 때 그중 한 소년이 손에 들고있던 스키로 남자의 옆구리를 갈겼다. 옷을 너무 많이 주어입어 몸집이 펭긴을 방불케 하는 남자인지라 그만한 충격에 어디를 상한것은 아니였지만 그래도 약간의 아픔은 느낀 모양이였다. 남자는 소년들을 향해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소년은 확실히 고의적으로 그 남자를 공격한것이였다. 소년은 스키대원들중에서 몸집이 제일 약한 축이였다. 하지만 조금도 주눅이 들지 않고 비게덩이를 련상시키는 그 남자를 쏘아보았다. 남자는 소년의 눈길에서 무엇인가를 의식한듯싶었다. 사실 그때 십여명의 소년들이 이미 남자의 주변을 빽빽이 에워싸고있었던것이다. 소년들은 저마다 스키를 앞에 들고 수시로 공격할 태세를 보였다. 소년들은 모두 스키를 제 몸처럼 아끼고있었다. 사흘에 한번씩 초를 바르는 스키는 보기에도 그처럼 훌륭해보였다. 오직 그런 스키라야만 달리면서 미끄럼길에다가 멋진 호선을 깊숙히 그을수 있는것이였다. 남자는 어느 소년이 휘두른 스키가 당금 자기의 얼굴에 깊숙한 상처라도 내는것 같아 오금이 저려 하는듯싶었다. 남자는 여전히 욕지거리를 하면서 자리를 떴다. 그제야 소년들은 하커를 찾아와 상처를 살폈다. 나는 그 소년들이 고마왔다. 그들의 가슴속에는  여전히 인간의 따뜻한 정이 흐르고있었던것이다. 래일 동생이 차를 몰고오면 나는 하커를 데리고 함께 스키장을 떠나려고 했다. 내가 상처를 보살펴줄 때 하커는 줄곧 잘 배합해주었다. 하커는 나로부터 그 어떤 힘을 느꼈던지 더 이상 고독해 하는것 같지 않았다. 나는 산꼭대기에 도착하여 삭도에서 내리다가 깜짝 놀랐다. 하커가 이미 산길을 따라 꼭대기에 올라와 나를 기다리고있었던것이다. 하커처럼 그렇게 아무 곳에나 서있는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였다. 스키애호자들이 수시로 바람처럼 그곳을 스쳐지날수 있었던것이다. 나는 하케에게 빨리 그곳을 떠나 내쪽으로 오라고 소리치려 했다. 그때 하커도 애타게 나를 찾고있는듯싶었다. 나의 눈길이 하커의 눈길과 부딪쳤다. 하지만 그때 나는 스노우고글을 쓰고있었기에 하커가 나의 눈길을 의식했는지는 알수 없다.  그것은 고급미끄럼길이여서 수시로 사람들이 스쳐지날수 있었다. 나는  하커를 향해 크게 소리치려던 생각을 그만두었다. 내가 높게 소리지르면 하커는 내가 자기를 질책하는것이라고 착각할수도 있을것이였다. 그것은 나와의 접촉에서 금방 따사로움을 느끼기 시작한 하커에게 일종의 공포로 느껴질수도 있을것이였다. 그때 하커는 나를 잃는다는것이 세계의 종말과 다름없을것이였다. 나는 미끄럼길밖의 사람이 적은 곳을 택해서 하커를 끌고 천천히 내려갔다. 평소라면 몇분이면 될 미끄럼길을 나는 십여분이나 허비했다. 하커는 줄곧 나의 뒤를 바싹 따랐다. 미끄럼길을 다 내린 나는 인차 스키를 벗었다. 하커는 흥에 겨워 다시 미끄럼길을 오르려고 서둘렀다. 나는 하커의 머리를 끌어안고 애써 목소리를 부드럽게 하면서 빨리 미끄럼길을 떠나라고 명령했다. 나는 하커가 나의 말을 알아들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견결한 태도로 대청쪽을 가리키며 명령했다. 하커는 나의 명령을 알아들었던지 대청쪽으로 걸음을 옮겼는데 그렇게 실망하는 눈치는 아니였다. 하지만 발걸음을 옮기다가도 가끔씩 머리를 돌려 나를 바라보군 했다. 그날오후, 스키를 타는 사람들이 매우 많았다. 삭도입구는 늘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나는 산꼭대기에서   내려오다가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직접 산중턱에 있는 역에 들어가 다시 올라가는 삭도를 타군 했다. 그곳은 초급스키애호자들을 위해 마련한 출구였다. 그들에게는 보통 산꼭대기까지 올라갈 용기가 없었고 혹시 삭도를 타고 올라갔다고 해도 가파로운 산풍경이나 구경하고 급급히 내려가군 할뿐이였다. 그날오후, 고급미끄럼길은 여느때 없이 사람이 많았다. 그중 대부분은 전에 고급미끄럼길을 달려본적이 없는 사람들이였다. 하기에 그렇다할 요령이 없어 그냥 스키에 몸을 맡기고 미끄럼길을 달릴뿐이였다. 그들과 부딪치지 않으려면 그들곁을 지날 때 숙도를 늦추는 방법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을 피한후에는 또 속력을 가했다. 이 방법이 비록 안전하기는 했지만 조절하기 십분 힘든것이였다. 그렇게 조심하느라 해도 한번은 끝내 다른 사람과 부딪치고야 말았다. 나는 그가 어디에서 불쑥 내앞에 나타났는지를 몰랐다. 내가 뒤에서 검은 구름같은 존재가 날아온다는것을 느꼈을 때는 이미 비켜설 시간이 없었다. 그 사람은 폭탄처럼 나를 치고 넘어졌다. 행운스럽게도 그도 나도 상처는 입지 않았다. 다만 내가 금방 산 스노우고글이 금이 갔을뿐이였다. 그날오후, 나는 그래도 기분좋게 스키를 탄 셈이였다. 소년들은 나에게 새로운 동작도 한가지 가르쳐주었다. 내가 오후내내 미끄럼길아래까지 내려가지 않았기에 하커는 시종 미끄럼길과 삭도 사이에서 배회하고있었다.  한참이나 스키를 타다가 내려다보니 미끄럼길아래쪽에 몇몇 사람이 몰려서있었다. 그들을 발견한 소년들이 스키를 타고 나는듯이 그곳으로 내려갔다. 나는 혹시 어느 유람객이 상하기라도 한것이 아닐가 하고 생각했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그곳에 하커가 보이지 않았다.  나도 속력을 내여 그곳으로 갔다. 사람들이 점점 더 많이 몰려들었다. 한 녀자애가 울음섞인 목소리로 떠듬거렸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내가 고의적으로 그런게 아니란다.” 나는 사람들을 비집고 안으로 들어갔다. 하커가 그곳에 쓰러져있었다. 소년들이 어쩔바를 몰라 하커의 주변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있었다. 나는 스키를 벗고 하커의 곁에 쭈크리고 앉았다. 하커는 그때 이미 호흡이 멎어있었다. 나는 하커를 측면으로 눕혀놓고 그의 입을 힘껏 벌렸다. 그의 이몸은 이미 푸르스레한 색을 띠고있었다. 산소가 부족한것 같았다. 나도 금방 산에서 달여왔는지라 몹시 숨이 찼다. 하기에 모자를 벗고 귀를 하커의 가슴에 댔을 때 그의 심장박동소리를 들을수 없었다. 나는 하커에게 인공호흡을 시켰다. 한 남자애가 나를 도와 하커의 가슴을 눌러주었다. 하지만 모든것이 끝난것 같았다. 하커의 입귀에서 거품이 섞인 검스레한 피가 흘러나왔던것이다. 그 녀자애의 발에 신겨진 스키가 하커의 가슴을 힘껏 들이쳤던것이다. 하커는 페만 상한것 같지 않았다. 소년들이 스키장의 구호차를 불러왔다. 하지만 나는 이미 모든 희망을 접은 뒤였다. 하커의 눈은 먼지가 가득 묻은 얼음처럼 부옇했다. 령하 30도의 기온에서 하커의 몸은 차츰 얼어가고있었다. 하지만 소년들은 그때까지도 포기하지 않고 한 사람 또 한 사람 바꿔가면서  내가 하던 동작대로 하커에게 인공호흡을 시키느라고 바삐 돌아쳤다. 하커는 인차 얼어서 꽛꽛해졌다. 그 시각 나는 죽어서 땅에 얼어붙은 하커가 그처럼 가냘파보였다. 하커는 겉보기보다 매우 여위였던것이다. 그날, 오스트리아 국가소년스키팀의 코치가 대청에서 스키보양에 대한 강좌를했지만 나와 소녀들은 모두 참가하지 않았다. 내가 그 강좌에 가지 않은것은 그저 좋은 기회를 한번 놓지는것뿐이겠지만 스키팀의 소년들에게는 학점을 깎이는 큰 일이였을것이다. 우리는 하커를 스키장옆의 나무숲에 묻어주었다. 겨울날의 눈밭은 돌멩이처럼 딴딴하게 얼어있었다. 우리는 우등불을 피워서 옹근 두시간이나 땅을 녹인후 하커를 묻을만한 구뎅이를 파고 역시 얼어서 돌처럼 된 하커를 안에 눕혔다. 하커라는 이름의 그 씨베리아썰매견은 끝내 주인을 기다려내지 못하고 그 스키장에서 최후를 맞은것이다. 만약 하커의 주인이 지금 이 글을 보고있다면 꼭 한번  찾아주기를 권하고싶다. 하커는 지금 스키장의 고급미끄럼길오른쪽에 있는 삼림의 큰 자작나무아래에 묻혀있다. 그 자작나무는 줄기에 큰 상처자국이 나있어 찾기가 참 쉽다.  그 상처자국은 누군가의 한쪽눈을 방불케 한다.  씨베리아썰매견(西伯利亚雪橇犬) 동씨베리아에서 유래된 중형견으로서 두겹의 두터운 털과 낫모양의 꼬리, 똑바로 선 삼각형 모양의 귀, 뚜렷한 무늬가 특징이다. 씨베리아썰매견은 활동적이고 힘이 넘치며 쾌활한 품종으로서 씨베리아 북극지방의 극심한 추위와 혹독한 환경에서 건너와 북동아시아의 축치인에 의해 교배되었다. 고기와 개사료를 먹는다. 씨베리아썰매견은 대다수의 개에 비해 더욱 촘촘한 모피를 가졌는데 다양한 색상과 문양이 있다. 다수가 황금빛이나 잡색의 얼룩을 띠기도 하지만 가장 흔한 색상으로는 검은색과 흰색, 회색과 흰색, 구리빛 붉은색과 흰색 그리고 전체 흰색이다. 씨베리아썰매견은 늑대와 비슷한 모습을 가지고있다.  
10    나에게 리유를 달라 * 리치방 댓글:  조회:2006  추천:0  2013-11-18
문학의 창/단편소설 나에게 리유를 달라 리치방 1 37살이라니, 스스로도 놀라왔다. 겉보기에는 금방 30살 문턱에 올라선듯싶다. 1.78메터의 키에 하얀 피부, 두눈이 특별히 매력적인데 녀자들의 봉의눈을 방불케 했다. 겉모양만 보아서는 유럽쪽의 사람이 아닌가 착각이 갈것이지만 사실 리중은 유럽사람들과는 아무 유전관계도 없다. 친구들은 리중을 두고 응당 멋지게 생겨야 할 부분은 한곳도 빠짐없이 충분하게 멋지게 생겼다고 말한다. 리중은 한 광고회사에서 부총경리로 일한다. 부총경리, 처녀들이 들으면 귀가 활짝 열릴지도 모르지만 리중이 일하는 광고회사는 겨우 직원이 7명뿐이다. 주요한 업무는 거리의 영상광고를 제작하는 일이다. 총경리는 리중의 친삼촌이다. 리중은 몇번이나 삼촌의 회사를 떠나려고 했지만 삼촌이 번마다 간곡하게 말려서 여직 결심을 내리지 못하고있다.  “너의 아버지가 일찍 돌아간후 누가 너를 오늘까지 돌봤니? 내가 아니라면 너의 오늘이 있었을가?” 삼촌이 이 말을 처음으로 했을 때 리중은 무엇인가 묵직한것이 지지리도 힘들게 가슴을 내리누르는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뒤 듣기 싫은 노래처럼 한루건너 반복되자 그냥 귀등으로 흘려버렸다. 솔직히 말하면 리중이 해마다 회사를 위하여 벌어들이는 돈은 삼촌이 “누가 너를 오늘까지 돌봤니?”에 대답을 못할만치 적은것이 아니였다. 하지만 삼촌은 “누가 너를 오늘까지 돌봤니?”라는 리유때문에 그냥 리중을 시장바닥에서 구을러다니는 못생긴 호박정도로나 생각하고있을뿐이였다. 삼촌은 3년에 차를 3대나 바꾸더니 나중에는 보마(BMW)에 올라앉았지만 리중은 여전히 중고차시장에서 들여온 마고탄(MAGOTAN)을 굴리고다녔다. 리중은 대학시절부터 련애를 했는데 그뒤로 몇번이던지 스스로도 아리숭했지만 여직껏 기억에 남아있는 상대는 몇이 안되였다. 대부분의 경우에 대방에서 리중을 보고 헤여지자고 제기를 했었다. 리중으로서는 그게 분하고 억울했지만 상대는 그렇다할만한 리유도 주지 않고 돌아서군 했다. 후에 삼촌이 리중에게 직설적으로 한마디 했다. “너 주제를 알아야 하지, 너에게 뭐가 아쉬운게 있니? 그것도 파악 못하고 줄창 예쁘게 생긴 녀자애들의 꽁무니만 따랐으니…” 리중이 생각해보아도 삼촌의 말에 도리가 있는듯싶었다. 그야말로 한달을 뼈빠지게 일해도 손에 들어오는것은 겨우 강초 두병 값이 될가말가 하지 않는가. 친구들과 함께 밥 몇끼 먹으면 호주머니가 바닥을 보였다. 리중은 고지식한 사람이였다. 사귀던 녀자애들이 떠나갈 때마다 그는 멀어져가는 그들의 뒤모습을 바라보며 떠나는 리유나 알려달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매번 돌아오는것은 똑 같은 한마디 “리유가 없다.”였다. 어느한번은 정말 얼굴에 철판을 깔고 리유를 받아내겠다며 달려들었다. 2년간 련애를 했고 호상 헉헉 오르가즘을 타며 그 장면까지 연출했던 녀자에게서 갈라져야 하는 리유 한마디 듣지 못한다는것이 그처럼 억이 막혔던것이다. 그녀는 침대우에서 줄곧 리중의 이름을 불렀고 “사랑해, 이대로 죽어버리고싶어!” 하고 열연했었다. 리중은 그 말에 너무도 감동되여 닭똥같은 눈물까지 둘둘 떨궈버렸다. 그러던 녀인이 눈길을 돌려버린것이다. 그후 리중이 하도 검질기에 리유를 달라고 하자 그녀는 두리뭉실하게 말했다. “너, 알어? 네가 사는 그 집이 되게 작은거. 특히 그 화장실은 너무 작아서 방귀도 맘대루 뀔수 없었단 말이다. 그 낡아빠진 침대란 놈이 방안을 다 차지해버렸다는거 너 생각해보았니? 그 침대두 너의 아버지가 너에게 물려준거라며? 삐꺼덕삐꺼덕… 듣기싫게 타령은 왜 그렇게 한대? 그 소리만 들으면 막 치닫다가도 랭수를 들쓴듯이…” 리중은 그녀가 주어대는 리유때문에 떡 벌려진 입을 다물수 없었다. 어쩌면 이런 리유때문에 2년간 련애를 하고 살을 섞던 사람들이 헤여질수 있단 말인가? 그녀가 나를 사랑하기는 했었는가? 정말 사랑했는데 “화장실이 작아 방귀를 맘대루 뀔수 없어”서, 침대가 “타령을 불러… 막 치닫다가도 랭수를 들쓴듯”해서 갈라진단 말인가? 그녀는 고통에 부르르 어깨를 떠는 리중을 바라보면서 약간은 미안한듯 얼버무렸다. “네가 기… 기어코 말하라 했잖아? 내가 죽어두 말 아아…안한다는데…” 리중의 집이 20평남짓하니 작은것만은 엄연한 사실이다. 침실외에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수 있는 복도 하나가 있었는데 그 저쪽끝에 “방귀도 맘대로 뀔수 없는” 화장실이 있었다. 이 집은 아버지가 리중에게 물려준것이였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리혼한후 이 집을 리중에게 넘겨주었던것이다. 리중의 손에 열쇠를 넘겨주던 날 아버지가 했던 말이 늘 리중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너 재간이 있으면 이 집을 가지지 말아봐라. 이 집을 가지면 넌 무골충밖에 안되는기라.” 리중은 아버지의 손에서 열쇠를 받았고 그후 2년이 채 안되여 아버지는 췌장암으로 급급히 이 세상을 떠나고말았다. 아버지의 죽음을 두고 어머니는 원한에 찬듯 말했다. “누구를 탓할게 없어. 모두 그 물건이 속이 너무 좁았던 탓이야. 그야말로 밴댕이소박채를 그대로 닮았더랬지.” 아버지가 어머니와 리혼을 하게 된 리유를 리중은 줄곧 모르고있었다. 겉보건대 아버지와 어머니는 금실이 좋은 잉꼬부부였다. 간혹 거리를 나갈 때면 아버지가 어머니의 손을 잡아주었다. 하다면 그 친절도 꾸며낸것이였단 말인가? 리중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리혼을 하게 된 리유를 아버지에게 물은적이 있었다. 아버지가 얼굴을 확 붉히면서 내쏘았다. “너 에미에게 물어봐라.” 리중은 어머니에게도 리유를 달라고 했다. 어머니가 몹시 상심해서 말했다. “너의 아버지는 근본 나를 눈에 차하지 않았단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아버지나 어머니의 말이 모두 충분한 리유로 될수 없다고 느껴졌다. 리중이 34살에 나던 해, 어머니가 자궁암에 걸렸다. 리중은 어머니를 간병하느라 더 이상 련애에 정력을 쏟을수 없없다. 매일 칼날같이 퇴근해서는 어머니를 돌봐야 했던것이다. 돌본다고 해야 고작 밥을 짓고 어머니가 심심하지 않게 말동무가 되여주고 잠자기전에 얼마간씩 안마를 해드리는것이 전부였다. 어머니는 점점 응석이 많은 어린애로 변해서 가무에는 아예 손을 대지 않으려고 했다. 그 무렵, 리중은 친구들의 소개로 문화관에서 사업하는 무용보도원처녀를 만나게 되였다. 리중보다 나이가 6살이나 어렸는데 보기에는 23, 4살밖에 안되는것 같았다. 그녀는 리중네 집이 좁은것을 탓하지 않았고 “타령을 하는” 그 낡은 침대를 꺼리지도 않았다. 리중은 어느 모로보나 조건이 괜찮은 그녀가 자기를 따르는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부모가 모두 무용학원의 교수라고 말했다. 그녀는 그렇게 예쁜 축은 아니였지만 그렇다고 절대 미운축에는 들지 않을것이였다. 그날, 리중은 그녀와 함께 커피숍에 들어갔다. 리중은 그녀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사실 나는 보잘것 없는 사람이라오. 자궁암에 걸린 어머니가 침대에 누워 시간을 다투구 월급이라 해봤자 4천원 푼히 되구 달린지 20만킬로는 더 될 헌 마고탄을 굴리구…” 그녀가 입가에 실웃음을 피워물었다. “전… 사실 그쪽의 이런 점이 마음에 들어요. 쑥스러움을 탈줄 알구 솔직한… 우리 처음 만났던 날, 식사가 끝나고 그쪽에서 복무원을 불러 얼마인가고 물었었죠? 복무원이 460원이라고 대답하자 그쪽은 나를 건너다보며 쑥스럽게 웃었더랬죠. 그리고는 몸을 돌려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냈구요. 쑥스러움을 탈줄 안다는거, 지금 그만치 보귀한게 또 있을가요?” 그녀의 말에 리중이 또 한번 쑥스럽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날, 내 호주머니에 딱 460원이 있었거든요. 물론 쑥스러울만 했었죠.” 그녀가 리중의 말을 받았다. “지금 세월에 쑥스러움을 아는 남자는 꼭 녀자를 아낄줄도 알거예요. 절대 딴눈을 팔지 않을거니까요. 그것만 있으면 전 만족이예요. 집이 작은게 뭐가 중요해요? ” 그날밤, 리중은 그녀를 데리고 어머니를 보러 갔다. 어머니가 문에 들어서는 리중을 향해 빨리 뒤를 파달라고 소리쳤다. “어머니, 화장실에 가셔야지요.” 어머니가 노한 목소리로 바락바락 소리질렀다. “이놈아, 내가 제 발로 화장실에 갈만하면 왜 너를 부르겠냐?” 리중은 그녀를 보고 잠간 자리를 피해달라고 사정했다. 하지만 워낙 집이 작은지라 딱히 어디로 피할 자리도 없었다. 어머니가 누워있는 그 방을 내놓고 갈수 있는 곳이란 화장실뿐이였다. 그녀는 그 자리에 서서 리중이 어머니의 뒤를 후비는것을 바라볼수밖에 없었다. 뒤를 절반쯤 파냈을 때 어머니는 일부러 얼굴을 찡그리며 신음을 시작했는데 그 소리는 웬지 신음이 아니라 행복한 타령같이 듣겼다. 리중이 어머니의 뒤를 다 후비고 머리를 들려보니 그녀가 서있던 자리는 어느새 비여있었다. 어머니가 입가에 실웃음을 물고있었다. 리중이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어머니에게 말했다. “왜 이러세요? 어머니. 왜 딱 그녀앞에서 나보구 뒤를 파달라했어요? 어머니는 마음 먹구 내가 녀자친구를 못 사귀게 하려는게 아니예요?” 어머니가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맞아. 내가 죽은 담에나… 네가 련애에 빠져 재미를 보느라 나를 돌보지 않으면 나는 어쩌니?” 리중은 뭐라고 말을 이을수 없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은 자식의 행복을 위해 목숨까지도 내놓을 각오가 돼있다고 하지 않는가? 헌데 나의 어머니는 어쩌면… 리중은 무슨 일에나 과분하게 참다운 태도를 보였다. 그만치 무슨 일이나 리유를 똑똑히 알지 않고는 마음이 불안해서 견디기 힘들어 했다. 하여 리중은 어머니에게 캐여 물었다. “어머니, 내가 친아들이 맞아요? 납득할수 있게 리유를 줘봐요. 내가 친아들이 옳다면 왜 나를 이렇게 대해요? ” 어머니는 텔레비죤프로를 보다가 건성으로 대답했다. “네가 데리고 왔던 그 녀자, 안돼. 제가 나를 얼마나 지켜봤다구 그새를 못 참구 꼬리를 빼는가 말이다. 내가 일부러 그년을 떠보느라구 그랬다. 너 이제야 알겠니?” 리중은 그야말로 울수도 웃을수도 없었다. 리중은 그녀에게 여러번 련계를 하려 했지만 번마다 핸드폰이 꺼져있었다. 사흘후, 그녀가 리중에게 메쎄지를 보내왔다. “그쪽이 한 늙은 녀인의 뒤를 후비는것을 보고 웬지 토하고싶었어요. 나를 토하고싶게 만든 그쪽도 메스껍게 느껴졌구요.” 리중은 분노해서 인차 메쎄지를 보냈다. “그 ‘늙은 녀인’은 나의 어머니란 말이요. 그쪽은 응당 나의 효심에 감동을 했어야 했소.” 흙인형이 바다에 떨어진듯 그후 그녀에게서는 다시 회답이 없었다. 리중은 선후로 그녀에게 십여차례나 메쎄지를 보내여 갈라져야 하는 리유를 달라고 했지만 그녀에게서는 시종 아무 회답도 없었다. 어머니의 운명이 경각에 달린듯싶었다. 리중은 구급실에서 힘겹게 숨을 톱는 어머니를 지켜보면서 머리속이 하얗게 바래지는것만 같았다. 어머니는 힘겹게 눈을 뜨고 리중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그 눈길에는 리중에 대한 부름이 담겨져있는듯 했다. 리중은 귀를 어머니의 입가에 바싹 가져다댔다. 어머니가 헉헉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말을 이었다. “너너… 어머니와 아버지가 왜…왜 리혼을 했는지 알고싶다 했지?” 리중이 두눈을 슴뻑이며 머리를 끄덕였다. 어머니의 눈가에 맑은 이슬이 맺혀 반짝였다. 어머니는 잠간 무엇인가를 생각하는듯싶더니 말을 이었다. “나는 이 비비, 비밀을 가지고 지옥에 가가, 갈란다. 그곳에 가서 네 애애, 애비를 만나 도리를 따져볼란다.” 어머니의 말을 들으면서 리중은 순간 눈앞이 아찔해나는것 같았다. 어머니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 이이, 이젠 겨겨, 결혼할 때가 됐다. 나의 통장에 아아, 아직 4만원이 남아있을게다. 너에게 주는 이이, 이 에미의 사랑이라구 새새…생각해라.” 말을 마친 어머니는 스스로 옆으로 머리를 떨구었다. 리중은 어머니의 몸을 가리웠던 흰 보의 복부쪽이 홀쭉해지면서 심전도가 곧게 줄을 긋는것을 똑똑히 보았다. 리중은 그때까지 어머니의 침상옆에 무릎을 꿇고있었다. 리중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면서 두무릎이 몹시 아프다고 느꼈다. 의사가 급히 병실로 들어왔다. 그제야 리중은 어머니가 남긴 마지막 그 한마디를 음미하기 시작했다. 저금통장이 어디에 있는가? 통장을 찾았다해도 비밀번호가 얼마인지는 어떻게 알아내는가? 리중은 2년나마 어머니의 병시중을 들면서 숱한 말을 들었지만 모두 별로 값 가는 내용이 아니였다. 그러다가 어머니의 림종에 어쩌다가 무게 있는 말 한마디를 들었는데 열쇠가 없는 자물쇠로 되고만것이다. 리중은 곧 미쳐버릴것만 같았다. 리중은 자기에게 있던 3만원의 저축을 털어 교외에다 묘지를 사서 부모를 합장했다. 묘지는 크지 않았고 사람들의 눈에 잘 뜨이지도 않았다. 리중은 비석에 박혀있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진을 보면서 코끝이 시큰해났다. 당신들 생전에 복혼을 못했으니 천당에서나 함께 하세요. 무용보도원이 리중의 어머니가 돌아간 사실을 어떻게 알았던지 귀신같이 나타나 리중을 도와 어머니가 살던 집을 거두기 시작했다. 리중이 그녀에게 물었다. “그쪽, 다시 나를 찾아온 리유를 말해줄수 있어?” 그녀가 살풋이 웃으면서 말했다. “왜 모든것에 리류를 따져요?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니 이 세상에 그쪽 혼자 남은게 아니예요? 그쪽이 고독해할가봐 말동무나 해주려고 왔어요. 설마 믿지 못하는거야 아니겠죠?” 리중은 말없이 무슨 생각엔가 잠긴듯싶었다. 따져보면 그녀의 말이 못내 감동스럽기도 하다고 느껴졌다. 리중은 으스러지게 그녀를 안아주었다. 리중은 그녀의 몸이 그처럼 가냘픈데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어쩌면 뼈다귀를 안고있는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하지만 리중은 그녀를 끌어 자기의 갈비뼈쪽에 당겨왔다. 여전히 뼈가 딱딱하게 맞혀오는 느낌이였지만 리중은 그녀의 얼굴에 자기의 입술을 가져갔다. 리중이 어머니가 쓰던 궤짝을 밑바닥까지 뒤졌지만 저금통장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2 삼촌이 전화를 걸어와 누가 아버지와 어머니를 합장하라고 했는가고 따졌다. 리중이 대답했다. “내 생각대로 했어요. 이것두 삼촌의 동의를 거쳐야 하나요?” “미친놈의 자식 같으니라구. 너의 아버지는 리혼후 나에게 죽어서두 네 에미를 용서하지 않겠다고 했단다.” 삼촌의 말에 리중은 웬지 말못할 분노가 치밀었다. “그만하세요. 회사에서 삼촌이 나의 상사이지 집에서는 그저 삼촌일뿐이예요. 나에게는 내 부모를 합장할 권리가 있다구요. 그들은 분명 한때 부부였으니까요.” 리중의 말을 듣고 삼촌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런 미친놈을 봤나? 씨팔, 네 부모들이 저승에서 너를 후레자식이라구 할거다.” 말을 마친 삼촌이 일방적으로 통화를 끊어버렸다. 무용보도원이 리중에게 말했다. “그쪽, 있잖아요. 그쪽이 살고있는 집과 어머니의 이 집을 모두 팔고 돈을 합해서 새 집을 한채 사요. 내가 보아둔집이 한채 있는데 화장실이 두개나 달렸어요.” 리중이 웬 일이냐는듯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보아둔게 있다니?” 그녀가 흥이 도도해서 말했다. “89평이라나요, 침실은 18평이구 객실은 30평이래요. 화장실 두개를 합치면 20평이 되구요. 그리구 베란다도 두개나 됐어요. 복도도 꽤 넓었어요. 거기다가 얼마든지 주방을 앉힐수 있을거예요. 우리 둘이 쓰기에는 충분해요. 그쪽의 집을 팔면 40만원은 받을수 있을거예요. 어머니의 이 집은 위치가 좋아서 60만원은 받을거구요, 합치면 100만원이 아니예요? 장식에 드는 돈은 제가 낼게요. 십여만원이면 충분할거예요.” 리중은 그녀의 열변을 들으면서 마치도 꿈속에서 헤매는것 같았다. 그러면서 어머니가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들은후 그녀가 먼저 자기를 찾아온것이 아니라 마음에 드는 집을 찾아본후 방향을 잡아놓고 달려온것이 아닐가 하는 생각마저 갈마들었다. 이튿날아침, 그녀가 낯모를 사람 둘을 데리고 리중의 앞에 나타났다. 집을 보러 온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녀는 손을 내저으면서 흥이 도도해 집을 소개했다. 리중은 곁에서 그녀의 말을 들으며 그야말로 이 집을 사지 않으면 세상에 둘도 없는 멍청이, 바보, 천치로 될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집을 보러온 사람들은 그녀의 말에 감염되여 하늘 무서운줄 모르고 집 값을 높였다. 집 값이 70만원으로 껑충 뛰여올랐다. 그녀는 맑고 순진한 눈길로 그 두 사람을 바라보고있었다. 하지만 리중은 그녀의 눈길에 반죽되여있는 기쁨을 읽을수 있었다. 바로 그때, 변호사라고 자칭하는 사람이 집에 들어섰다. “망자의 아들이 옳은가요?” 변호사가 물었다. 리중은 영문을 알수 없어 어리둥절해졌다. 변호사가 다른 설명도 없이 서류가방에서 어머니의 유서를 꺼내 읽었다. 어머니는 유서에서 분명하게 이 집을 황천초라고 하는 사람에게 증정한다고 밝혔다. 리중은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짐작할수 없었다. 무용보도원이 앞으로 한발 나서더니 변호사의 옷깃을 잡아채며 언성을 높였다. “리중은 망자의 유일한 아들인데 어디서 굴러온 황씨예요?” 변호사는 그녀의 말을 아랑곳 하지 않고 랭정하게 못을 박았다. “믿기지 않으면 공증처를 찾아가보십시오.” 말을 마친 변호사는 몸을 돌렸다. “황천초, 황천초가 누굽니까?!” 리중이 대중없이 변호사의 뒤에 대고 소리쳤다. “망자가 유서에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습니까? 집을 친구인 황천초에게 증정한다구요. 황천초 그 사람의 련락방법을 알려드리지요. 하지만 이 유서는 인젠 개변할수 없습니다.” 변호사가 떠나갔지만 리중은 넑을 놓고 침대가에 앉아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하루아침에 자기 집을 삼켜버린 그 황천초가 누구인지 떠오르지 않았다. 한춤후에야 정신을 차린 리중은 변호사가 알려준 전화번호를 눌렀다. 전화가 인차 련결되였다. “내가 황천초요.” 대방의 목소리는 년륜이 들어있는것 같았지만 웬지 끌리는데가 있었다. 리중이 에돌지 않고 정곡을 찔렀다. “저의 어머니가 왜 집을 선생님께 주었습니까?” “자네 어머니는 나를 위해 자네 아버지와 리혼을 했다네. 하지만 결국 자네를 위해 나와 합치지도 못했더랬지. 자네 어머니는 나에게 진 감정빚을 갚기 위해 그 집을 나에게 주기로 결정한거라네.” 리중이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어찌 그럴수가 있죠?” 전화저쪽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는듯싶었다. “나는 나의 모든 정을 깡그리 자네 어머니에게 쏟았다네. 지어 하나밖에 없는 딸과 관계를 단절하면서 말이네. 자네 어머니가 병치료에 그렇게 많은 돈을 쓰지 않았는가? 그게 모두 내 호주머니에서 나간거라네. 자네 어머니는 전에 주식에 손을 댔다가 20만원이란 빚을 지고 말았다네. 그때문에 자네 아버지는 자네 어머니와 죽네 사네 하는 사이로 됐더랬지. 나는 내게 있던 집 한채를 팔아 그 빚을 갚아주었다네…” 리중은 더 이상 들어내려갈수 없었다. 리중은 그러한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살아왔지만 필경 일은 이미 터져버린것이였다. 리중은 핸드폰을 내리우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집을 사려고 왔던 두 사람도 무용보도원도 보이지 않았다. 리중은 혼자서 묘지를 찾았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찍은 부모의 사진을 바라보다가 손으로 그 사진을 두드리며 가슴이 터지게 어머니의 이름을 불렀고 왜서냐고 무엇때문이냐고 그 리유를 물었으며 왜 자기를 속였는가고 절규했다. 그날, 하늘에서는 구질구질 비가 내렸다. 비록 비살이 굵지는 않았지만 진종일 끊이지를 않았다. 리중은 묘지주변을 두서없이 맴돌았다. 비방울이 리중의 온몸을 때려주었다. 삼촌이 전화를 걸어와 아버지가 왜 집을 너에게 준줄을 알겠는가고 물었다. 삼촌은 또 만약 아버지가 너에게 집을 물려주지 않았다면 너는 거리에 나앉았을것이라고 했다. “인제는 내가 왜 네가 부모들을 합장하는것을 반대했는지 알만하겠지? 너의 아버지는 저승에서 너를 이를 갈며 욕할것이다. 미친놈 같으니라구.” “이런 일을 왜 인제야 나에게 말하는거예요? 아버지는 생전에 왜 이런 말을 나에게 하지 않았나요? ” 리중이 리해할수 없다는듯 삼촌에게 물었다. 삼촌이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네놈이 등한해서 보아내지 못했을뿐이지, 따져보면 그래 너네 집에 이상한 일들이 적게나 많았니? 내가 너에게 돈을 적게 준것도 사실은 다 너를 위해서였다. 너의 아버지가 나를 보고 너에게 돈을 조금만 주고 나머지는 저금하라고 당부했었거든.” 삼촌의 말에 리중이 코웃음을 쳤다. “옛말이면 듣기나 좋게요? 삼촌 같은 깍쟁이가, 인제 와서 아버지를 방패로 삼지 말아요. 좋아요, 그 돈, 나를 위해 저금했다면 인젠 돌려주세요.” 리중의 말에 삼촌은 배은망덕한 놈이라고 리중에게 줄욕을 퍼부었다. 리중은 묵묵히 묘지를 걸어나왔다. 비살이 조금 누그러든듯싶었지만 날씨는 여전히 세때쯤 굶은 며느리상으로 잔뜩 흐려있었다. 때는 어스름이 깃드는 저녁무렵이였다. 리중은 차에 올랐다. 사람그림자 하나 얼씬하지 않는 묘지에서는 두려울 정도로 무거운 정적이 흐르고있었다. 차창유리를 타고 천천히 흘러내리는 비방울은 누군가의 눈물을 방불케 했다. 리중은 어머니가 자기를 낳을 때 무척 힘들었을것이라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머리속을 파고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리중을 낳던 그해 어머니는 40살을 바라보고있었다. 리중은 태여나자마자 골연화증에 걸려 팔과 다리가 비가시처럼 여위여갔다. 어머니는 매일 리중에게 어간유를 먹였는데 리중은 투명한 알약을 보기만 하면 울음을 터뜨렸다. 리중이 울면 어머니도 따라서 눈굽을 찍으셨다. 그때 집에서는 어머니의 급성신염을 치료하기 위하여 집에 있던 대부분의 저금을 써버리고있었기에 살림이 매우 힘들었다. 어머니는 자신의 몸이 아프면서도 기름진 음식이 생기면 모두 아버지와 리중에게 양보했다. 그 바람에 어머니는 엎친데 덮친격으로 부종까지 들어 신다리를 약간만 눌러도 그 자리가 한참 지나야 웬 상태를 회복하군 했다. 음력설을 쇠던 어느날, 아버지가 리중의 국사발에서 돼지고기 한점을 건져 먹었다. 그것을 본 리중이 기절하듯 울어번졌다. 어머니는 그러는 리중이 가슴 아파 자기의 국사발에 있던 몇점 안되는 고기를 건져 리중의 사발에 놓아주었다. 리중은 그러던 어머니가 집을 황천초에게 주었다는 사실이 리해되지 않았고 또 리해하고싶지도 않았다. 리중은 도무지 어머니의 행동에 대한 합당한 리유를 생각해낼수 없었다. 황천초는 무슨 방법으로 어머니의 마음을 모조리 빼앗아 아버지와 리혼하게 했고 나중에는 집까지 삼켜버렸을가? 어머니에게는 그 무슨 말 못할 사연이 있었던것일가? 비는 띁내 멎었다. 리중이 차에 발동을 걸 때 한오리의 해빛이 힘들게 구름을 뚫고 나와 주변을 붉으스름하게 물들이고있었다. 리중은 그 한줄기의 해빛이 어쩌면 어머니의 눈빛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쳤다. 그것이 진정 어머니의 눈빛이라면 단번에 자기를 알아볼것이고 무엇인가 적당한 리유를 줄수있을것이라고 생각했다. 리중은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눈물이 두볼을 타고 둘둘 굴러내렸다. 리중은 그 눈물을 딲을념도 못하고 묵묵히 힘들게 차를 몰았다. 마침 퇴근시간이라 거리는 사람들로 붐볐다. 모두들 집으로 걸음을 재우치는것 같았다. 하지만 리중은 자기에게 집이 없다고 생각되였다. 아니 집에서 기다려줄 사람이 없다고 하는게 더 타당할것이다. 리중은 차들의 길다란 흐름속에서 버러지처럼 꿈틀꿈틀 하면서 아직 살아있음을 아렴풋이나마 느끼고있을뿐이였다. 리중은 무의식적으로 라지오를 틀었다. “나는 해볕속에서 그대를 기다리고있네/얼어터진 마음을 치유하고있다네/지난 일은 어느때고 잊혀질것이니/즐거움은 스스로 생각하기 나름//나는 해볕속에서 그대를 바라보고있다네/그대의 웃음이 나의 눈동자를 빛내여주기를/검은 구름 지나가고 비는 멎어 하늘 개였네/무지개처럼 기쁨이 걸렸네/어제날의 음영에서 벗어나/마음은 차츰 맑아진다네” 삼촌이 큰 돈벌이항목 한가지를 맡아왔다. 금방 시장에 나온 새로운 브랜드의 승용차를 위해 영상광고를 제작하는 일이였다. 광고비가 100만원이 드는 일감이였다. 삼촌은 리중에게 잘만 하면 효익에 따라 장려를 주겠다고 장담했다. 리중은 두눈을 쪼프리고 피식 웃고말았다. 리중은 여태 그런 말을 수없이 들어오다나니 더 이상 흥미를 느낄수 없었던것이다. 삼촌은 리중의 표정을 보고 정중하게 물었다. “얼마쯤 장려하면 될가?” 리중이 짧게 한마디했다. “10만원.” 삼촌이 허허허 너털웃음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넌 나의 친조카다. 일이 성사되면 설마 너를 서운하게야 하겠니?” 리중은 삼촌과 더 이상 입씨름을 하고싶지 않아 몸을 돌리며 속으로 두덜거렸다. “삼촌은 시종 나를 서운하게 했거든요.” 삼촌은 리중에 대하여 그다지 근심을 하지 않는 눈치였다. 리중은 늘 표현은 애매하게 했지만 일을 시작하기만 하면 침식을 잃어가는 그런 타입이였다. 게다가 리중은 영상광고를 제작하는 일을 제일 좋아했다. 촬영에 들어가기만 하면 어디에서 그렇게 많은 령감이 튀여나오는지 모를 일이였다. 그 승용차회사의 경리조리는 시체를 따르는 모던아가씨였는데 황황이라고 불렀다. 리중은 그 이름이 누구네 집 강아지 이름 같아서 터지려는 웃음을 겨우 참았다. 리중은 대방의 요구에 따라서 간편한 촬영기를 들고 승용차회사를 찾아갔다. 황황이 리중을 접대했다. 몇마디 대화를 거치지도 않았는데 황황이 리중을 데리고 새로운 브랜드 승용차곁으로 다가갔다. “몇개 각도에서 화면을 잡아봐요. 현장효과를 봅시다.” 리중은 황황이 자기에게 먼저 장군을 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쯤은 두려울게 없는 리중이였다. 리중은 촬영기를 들고 아래우와 좌우로 몇개 화면을 잡아 황황에게 보여주었다. 황황이 몇번 화면을 돌려보더니 모르겠다는듯 물었다. “현장엔 빛이 없는데요, 어떻게 빛효과를 촬영했죠?” 리중이 창문쯤으로 비쳐드는 몇오리의 해빛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있잖아요. 하지만 좀더 늦으면 저 빛도 잡기 어려울걸요.” 황황이 머리를 돌려 창문밑으로 새여들어오는 그 몇오리의 해빛을 살펴보았다. 아니나다를가 그 빛들이 눈에 뜨일 속도로 바깥쪽을 향해 움직이고있었다. 황황이 입가에 실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대단하네요. 그쪽 같은분이 왜 그런 회사에 박혀있어요?” 리중은 봉긋하게 솟아오른 황황의 앞가슴과 코끝을 스쳐지나는 붉으스레한 해빛을 살피면서 웃다가 되물었다. “그렇다면 ‘그런 회사’에 그처럼 큰 일감을 맡기는 그쪽도 그저 그렇다고나 할가요?” 리중의 말에 황황이 입을 다셨다. “그쪽도 참 고지식하군요. 그쪽 어른은 아마 그쪽을 데리고 놀자고 생각했을거예요. 그야말로 쇠몽둥이를 들고 바늘이라고 생각하고있는거죠.” 리중이 격하게 소리쳤다. “뭐라고 하는겁니까? 협의까지 끝난 상태가 아닙니까?” “누가 협의까지 끝났다고 했어요? 그쪽 어르신, 참 꿈은 야무지셔. 이 새로 나온 브랜드를? 흥, 그쪽 회사에 광고를 의뢰해서는 한대도 못 팔아먹을거예요.” 리중도 사정없이 소리쳤다. “잘 듣고 전해줘요, 그쪽 어르신께. 이까짓 브랜드, 천만원을 준대도 홍보하지 않을거라구.” 말을 마친 리중은 촬영기를 거두어가지고 돌아섰다. 리중은 황황이 뒤에서 킥킥 거리며 “우린 꼭 다시 만날거예요” 하고 소리치는것을 들을수 있었다. 회사에 돌아온 리중은 삼촌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삼촌이 얼굴에 간교한 웃음을 띠우며 말했다. “일부러 너를 골탕 먹이려는것은 아니였다. 먼저 사연을 알려주지 않는게 너의 승부욕을 불러일으키는데 더 유리할것이라고 생각했을뿐이다.” “하지만 그렇게 나의 자존심을 건드릴 필요는 없었잖아요.” “우리앞에는 경쟁상대가 셋이나 됐는데 모두 우리보다 실력이 앞섰단다. 하지만 우리 회사에는 네가 있지 않니? 나는 너만을 믿었더랬지. 그래서 나두 그 항목을 감히 욕심내게 된거구.” 리중이 픽 하고 코웃음을 쳤다. “나를 믿어요? 너무 믿어서 일이 끝나면 장려를 한다는 말로 나를 유혹했어요? 말해보세요. 어떻게 장려를 하려고 했어요?” 삼촌이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너 이런 어조로 나와 말하지 말아. 나는 네가 이런 방법으로 나를 대하는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리중도 격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삼촌이 나에게 무엇을 해주었는데 나보구 일에 목숨을 걸라는거예요?” 그 말에 삼촌이 탕 하고 상을 내리쳤다. “난 너의 삼촌이다. 너의 아버지가 진 20여만원의 빚을 내가 다 갚아주었다.” 리중은 삼촌의 뜻밖의 말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삼촌이 계속 열변을 토했다. “너의 아버지는 도박쟁이였다. 도박빚을 20여만원이나 졌는데 갚을수 없었지. 빚쟁이들이 너의 아버지를 쫓아다녔단다. 너의 아버지는 네가 이 사실을 알가봐 전전긍긍했었지. 어느날, 나를 찾아와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고 애걸하더라.” 리중이 더 이상 들어내려가지 못하고 상을 내리쳤다. “누가 믿어요? 증거가 있어요? 나는 왜 하나도 몰라요?” 삼촌이 서랍에서 서류를 꺼내여 책상우에 메쳤다. “너의 아버지가 죽을 때 너는 대학교에 다녔더랬지. 이것은 너의 아버지가 나에게 남긴 차용증이다.” 리중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서류를 당겨다 펼쳤다. 차용증에는 아버지의 지장까지 찍혀져있었다. 뻘겋게 찍혀져있는 지장은 마치도 아버지의 손끝에서 흐른 피자욱 같아보였다. 리중은 아버지의 림종무렵에 담당의사가 알려주어서야 아버지가 심한 심장병을 앓고있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병을 치료하기에 너무 늦은 시점이였다. 리중은 대학교에서 친한 녀자친구를 데리고 아버지가 눈을 감을 때까지 병간호를 했었다. 아버지는 리중의 녀자친구를 보고 “자네, 내 아들과 결혼해준다면 그것은 내 아들에게 더 없는 복으로 될걸세.”라고 한다미 했다. 아버지, 어머니는 그렇게 총망히 떠났다. 누구도 응당 리중에게 알려야 할 비밀들을 알려주지 않고 총망히 떠났다. 리중은 합당한 리유를 찾아 부모들의 그런 처사를 리해하고싶었다. 3 삼촌을 떠나 집에 온후에야 리중은 자기가 아직 저녁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리중은 차를 몰고나와 한 물밴새집을 찾아 들어갔다. 리중은 고기소를 넣은 물밴새 석냥 반을 청했다. 리중은 물밴새를 먹으면서 자기와 함께 아버지의 림종을 지킨 그 녀자친구가 누구던가를 떠올려보았다. 리중은 자기의 사랑이 서글프다는생각이 갈마들었다. 밤이 깊어갔다. 물밴새집에는 손님이 몇 사람 남지 않았다. 리중은 여전히 창가에 묵묵히 앉아있었다. 창밖에서는 비가 내리고있었다. 짙어가는 어둠과 함께 비줄기가 점점 더 굵어졌다. 리중은 머리를 돌려 하염없이 창밖을 내다보았다. 대살같은 비줄기는 리중으로 하여금 지나온 나날들의 수많은 이야기를 떠올리게 했다. 리중은 그 시각 어머니를 떠올렸다. 비가 내릴 대면 어머니는 늘 뒤에서 리중을 향해 소리치군 했었다. “우산을 쓰거라, 감기에 걸리면 엄마는 관계치 않겠다.” 그 목소리가 그리웠다. 하기야 지금은 비가 와도 그렇게 소리쳐줄 사람 하나 없다는것을 리중은 잘 알고있었다. 리중의 눈시울이 촉촉해졌다. 어머니가 집을 리중이 얼굴조차 모르는 황천초라는 남자에게 줘버렸지만 리중은 어머니를 그렇게 증오하고싶지는 않았다. 리중은 또 아버지도 그렇게 원망스럽지 않았다. 다만 “아버지는 왜 도박을 하셨을가?” 하는 리유를 못내 알고싶을뿐이였다. 아버지가 혹시 무엇인가를 잃으셨던것은 아닐가? 아니면 어머니와 갈라진 타격을 받아당할수 없어 그 고독을 달래려고 도박에 손을 댔던것인 아닐가? 모든것이 추측일뿐 누구도 리중에게 정확한 리유는 주지 못했다. 사흘후의 오후, 네 광고회사의 고수들이 승용차회사에 모였다. 황황이 회의를 사회했다. 황황은 그날 검은색 정장차림이였다. 리중은 그날 편안한 기분으로 천천히 황황의 얼굴을 살펴볼수 있었다. 황황의 살결은 놀랍게도 희였고 두눈은 아주 컸다. 하지만 그 큰 두눈에 웬지 말 못할 애수같은것이 그들먹하게 고여있는듯싶었다. 얇은 두입술은 짙은 빨간색을 띠고있었는데 입술의 원색이지 절대 립스틱을 진하게 바른것은 아닌듯싶었다. 황황은 열정적으로 네명의 경쟁상대들과 악수를 나누었다. 리중과 악수를 나눌 때 뜻밖에도 황황이 이렇게 속삭였다. “나를 미워하나요?” 리중은 못들은듯 례의적으로 황황의 손을 잡았다가 인차 놓아버렸다. 리중은 제비 4번을 뽑아 맨 마지막에 경쟁연설을 하게 되였다. 리중은 다른 경쟁자들의 연설에 귀를 기울이다가도 긴장한 모습으로 사태를 지켜보고있는 삼촌의 얼굴을 살폈다. 리중의 차례가 되였다. 리중은 먼저 연설을 한 세 경쟁자들처럼 서류를 황황에게 넘겨주지 않고 침착하게 열변을 토했다. “승용차가 네온등이 명멸하는 도시의 밤거리를 달리고있습니다. 십자기거리의 신호등도 모두 이 승용차를 위해 푸른등만 켜주는것 같군요. 승용차는 립체교를 지납니다. 립체교를 지나서 호수가를 달립니다. 네, 승용차가 상업거리에 들어서네요. 승용차는 거기서 나와 따듯한 가정분위기가 흐르는 주택구역에 들어섭니다. 여러분들은 묘령의 모던아가씨가 승용차에서 내릴것으로 상상하시겠지요? 아닙니다. 승용차에서는 백발을 떠이신 우아한 모습의 로인님이 얼굴에 미소를 가득 담고 내리고있습니다.” 리중은 흥에 겨워 연극대사처럼 연설을 끝내고는 자리에 돌아와 차고뿌를 손에 들고 황황을 건너다보았다. 삼촌이 화장실까지 따라들어와 간절한 눈길로 리중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때? 희망이 있는것 같아?” “알수 없죠.” 리중이 짧막하게 한마디 던져주었다. 삼촌이 봉투 하나를 리중의 손에 쥐여주며 말했다. “안에 만원이 들어있다. 황황이라는 저 녀자와 저녁 한끼 먹어라. 저 녀자가 승용차회사 기획부 경리다.” “저보구 ‘미남계’를 쓰라는건가요?” 삼촌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결혼한 녀자야. 하지만 남편은 미국에 있대. 요즘 아마 리혼소리가 오가나보더라.” 리중이 후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기다려 보세요. 보이지 않는 경쟁이 더 심할걸요.” 삼촌이 긴장한 얼굴로 바투 들이댔다. “거, 무슨 뜻이냐?” “다른 회사들에서도 목숨 걸 각오를 한다던데요. 인맥에 돈이 합쳐지면 못해낼 일이 있겠어요?” 삼촌이 묵묵히 머리만 끄덕였다. 리중이 다시 입을 열었다. “삼촌, 그쪽 어른께 얼마나 찔렀어요?” 삼촌이 머리를 저으며 말했다. “질펀하게 부었지. 하지만 그래두 60만원은 떨어질걸. 대단한 돈은 아니지만 우리 회사로 말하면 적지 않은거야.” 그날밤, 뜻밖에도 황황이 먼저 커피를 마시자고 리중을 청했다. 리중은 고급상업구역의 43층에 자리잡은 그 커피숍에 가본적이 없었다. 커피숍은 네면이 모두 대형유리창으로 되여있어 네온등이 명멸하는 도시의 밤거리를 한눈에 바라볼수 있었다. 커피솝에는 손님이 별로 많지 않았다. 하지만 자리가 대부분 두 사람이 앉게 배치되여있어 여간만 아기자기해보이지 않았다. “무엇을 마실래요?” 황황이 물었다. “블루마운틴으로 할가요?” 황황이 다소 흥분한듯 말했다. “제가 에스프레소를 대접할게요.” 리중이 다소 긴장한듯한 표정을 짓자 황황이 득의양양해서 말했다. “못 마셔봤어요?” “아니요, 못 들어봤어요.” “최상급이예요. 시내에서 오직 이 집에만 있어요. 때를 잘 못 오면 없을수도 있구요. 오늘밤에는 있을려나?” 말을 마친 황황이 웨이터를 불러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다. 웨이터는 잠간 난색을 짓더니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잠간 들어가 이 브랜드가 있는지 확인하고 올게요. 오래 동안 이 브랜드를 들여오지 않아서요.” 리중은 거들먹거리는 황황의 행실이 곱지 않게 느껴졌지만 꾹 참고 정곡을 찔렀다. “우리 회사, 어떻게 될가요?” 황황이 입가에 가는 웃음을 띠우며 물었다. “그렇게 급해요?” “락선될가봐 이러는게 아닙니다. 다만 나는 나의 기획에 대한 당신들의 태도가 궁금할뿐입니다.” 황황은 잠간 무엇인가를 생각하는듯 하더니 바투 들이댔다. “왜 차에서 내리는 사람이 백발의 로인이여야 하죠?” 리중이 자신있게 대답했다. “그쪽 회사의 승용차는 아직 류행을 타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목표를 보통사람들에게 돌려야 합니다. 가격도 15만원좌우니까요. 백발의 로인이 탈수 있는 승용차라면 누구도 감히 넘볼수 있지 않을가요? 마음만 먹으면 누구라도 집앞까지 몰아갈수 있는거죠.” 황황이 웃으면서 갑자기 엉뚱한 질문을 했다. “그쪽 혹시 예쁜 녀자들에 대해 흥취가 없는것은 아니겠죠?” “승용차광고에서 예쁜 녀자라… 너무 식상한게 아닌가요? 실증도 안나나보죠?” 황황이 다리를 꼬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은은한 조명에 비쳐지는 미끈한 다리가 성감적으로 느껴졌다. 리중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황황을 바라보기만 했다. 사실 리중도 못 당해본 장면이 없을 정도로 사교장소에 드나들던 사람이였다. 그럴 때마다 일반적으로 리중이 결산을 했고 그 값으로 한참씩 대방을 애 먹이다가 자리를 뜨군 했었다. 황황이 물었다. “듣자니 그쪽 아직도 싱글이라면서요?” 리중의 입가에 가는 웃음이 스쳤다. “나는 그쪽 회사의 태도를 알고싶습니다.” 하지만 황황은 여전히 리중의 관심사에 눈길을 돌려주지 않았다. “그게 그쪽과 그렇게 중요한 관계가 있나요?” 그때 웨이터가 쟁반에 커피잔 두개를 받쳐든 산뜻한 옷차림의 중년신사를 데리고 나타났다. “이분은 우리 커피숍의 커피조제사입니다.” 황황이 조제사의 손으로부터 커피잔을 받아서 리중에게 권했다. 커피잔은 작다못해 손바닥으로 움켜쥐면 보이지 않을것 같았다. 리중은 커피잔을 입에 가져다 두어번 맛을 보는듯 하더니 후루룩 마셔버리고는 그 맛을 음미하는듯 두눈을 스르르 감았다. 황황이 놀라며 한마디 했다. “이렇게 빨리 마셔버리다니요.” 커피제조사가 황황에게 말했다. “아닙니다. 이분이야말로 마실줄 안다고 봐야죠. 이 커피는 빨리 마시지 않으면 맛이 변합니다.” 황황은 얼굴이 시쁘둥해서 입을 열었다. “마셔본적이 있죠?” 리중이 만족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커피를 마시는데도 참 학문이 많답니다. 지난해 제가 화란의 암스테르담으로 갔을 때 한 부자친구와 함께 커피를 마신적이 있는데 그게 바로 에스프레소였습니다. 마시고난후에도 오래동안 그 은은한 맛에 취했더랬지요.” 리중의 말을 들으면서 황황은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은은한 맛에 취했다구? 이거야 뭐 모기가 피를 빨아먹은거나 진배없지 않은가? 3밀리리터도 되나마나 할것 같은데… 리중이 말을 이었다. “커피라고 해서 어느 브랜드나 모두 천천히 마셔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어떤 브랜드는 빨리 마셔야 맛이 변하지 않죠. 문제는 어떻게 마시냐가 아니라 어떻게 그 무궁무진한 맛을 음미할줄 아는가 하는것이죠…” 황황이 리중의 말을 중동무이하면서 말했다. “보아하니 그쪽은 나에 대해 연구가 있는것 같네요.” 리중이 황황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쪽, 커피에 조예가 깊다는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인데요.” 황황이 웃었다. “그쪽, 참 남다른 사람 같아요. 알려드릴게요. 그쪽, 떨어졌어요.” “그래요? 리유는요?” “없어요, 리유는.” “없다니요? 리유가…” 리중의 목소리가 약간 떨리고있었다. 황황이 입을 열었다. “저 그쪽과 친구하고싶어요.” 리중은 뭐라 대답하지 않고 몸을 일으켜 카운터로 다가갔다. 커피 두잔 값이 3960원이 나왔다. 리중은 그 천문수자에도 놀라는 눈치가 아니였다. 리중은 삼촌이 주던 봉투를 찾아서 돈을 꺼내여 한장한장 열심히 세였다. 황황이 다가와 불쾌한 표정으로 물었다. “나를 두고 이대로 가려했어요? 무엇때문이죠? 리유나 알려주세요.” 리중이 돈을 물고 돌아서서 입가에 미소를 띠우며 말했다. “리유요? 없어요.” 황황이 격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한번쯤 나의 태도를 물어주면 안돼요?” 리중이 가벼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게 중요해요?” 4 누군가 리중과 황황이 고가의 커피를 마시는 장면을 사진 찍어 블로그에 올렸다. 삽시간에 몇천명의 블로거들이 그 사진을 전재했고 평론을 달았다. 그것을 보고 삼촌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리중을 찾아왔다. “그놈들이 우리를 속인거야. 그런데도 넌 어떻게 되여 그녀자와 그런 관계까지 되였니? 결산은 누가 했니?” “물론 내가 결산했죠. 삼촌이 준 그 만원으로.” 삼촌이 분통이 터져라 소리쳤다. “돈을 쓸데가 없었더냐? 황황이란 그년이 절대 우리를 위해 좋은 말을 해준것 같지 않다.” 리중은 그 시각 삼촌과 계속 대화를 하는것이 매우 힘들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몸을 돌렸다. 삼촌이 뒤에서 소리쳤다. “그쪽에서 큰 마음이나 쓰듯이 우리에게 작은 항목 하나를 던져주더라. 20만원쯤 될거다.” 리중은 걸음을 멈추고 야멸찬 눈길로 삼촌을 바라보다가 사무실로 들어갔다. 뜻밖에도 무용보도원이 사무실에 와있었다. 리중은 그녀가 일부러 옷차림을 요염하게 한것이라고 생각했다. 화장도 과분할 정도로 짙은것 같았다. 리중이 먼저 허허허 웃음을 터뜨렸다. “그쪽두 내가 고급커피를 마시는 사진을 본게 아니요?” 그녀가 말했다. “많이 생각해봤어요. 우리 계속 합시다.” 리중이 잠간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두번이나 일방적으로 나를 떠났었는데 인젠 적당한 리유를 줘야할게 아니요?” 그녀가 인차 말을 받았다. “저는 보이는대로 구속없이 사는 사람이랍니다. 불쾌한 기분이 들면 당장에서 폭발했다가도 인차 사그러들지요. 아무일도 없었던듯.” “하지만 그 아무일이 나에게는 그대로 남아있는걸.” 그녀가 갑자기 화제를 돌렸다. “그쪽, 황황을 좋아하나요?” 그 말에 리중이 깜짝 놀라며 다잡아 물었다. “그쪽, 어떻게 황황을 아오?” 그녀가 어이없다는듯 입을 열었다. “뻔한 사실이 아닌가요? 블로그에 대서특필됐는데.” 리중이 어설프게 웃음을 짓다가 말을 시작했다. “나는 참 한심한 사람이요. 30살도 훨씬 지났지만 아무 일도 해놓은것이 없으니. 게다가 부모는 모두 돌아가시구… 집이며 차는 더 이상 낡을래야 낡을수도 없는 고물이구… 그러니 그쪽, 나에게서 눈길을 돌리는게 좋을거요.” 그녀는 가위다리를 하고 의자에 앉았는데 그 모습이 황황하고는 비할수 없이 천해보였다. 그녀가 말했다. “전 종래로 그쪽의 물건이나 돈을 탐해본적이 없어요. 나는 그쪽의 정신세계를 흠모하는거예요.” 그 말을 들으면서 리중은 어딘가 서글퍼지는 기분을 달랠수 없었다. “번마다 내가 채였는데 이번에 그쪽이 이렇게 나오니 참으로 몸둘바를 모르겠소.” 그녀가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그러줄 알았어요. 그쪽은 그렇게 뼈속까지 선한 사람이예요. 난 그점이 맘에 들어요.” 그날밤, 리중은 황천초가 걸어온 전화를 받았다. 황천초는 전화에서 꼭 한번 옛집을 찾아달라고 간청했다. 옛집이란 바로 어머니가 살던 그 집이였다. 리중의 가슴에 돌덩이처럼 내려앉은 집이기도 했다. 황천초는 리중을 찾는 리유를 밝히지 않았다. 그래도 리중은 한번 옛집을 찾아보려고 마음 먹었다.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 일은 물에 물 탄듯 아무 격정도 기대할수 없는 일상사였다. 물을 끓이다가 밀가루국수를 넣고 잠간후 닭알을 풀어넣은 다음 송송 썬 파를 몇잎 집어넣고 깨기름을 몇방울 뜰구면 끝나버렸다. 리중은 밥을 지을줄을 몰랐다. 언젠가 무용보도원에게 밥을 지을줄을 아는가고 물은적이 있었다. 그녀가 대답했다. “몰라요, 결혼하면 아마도 그쪽 신세를 져야할것 같아요.” 그 말에 리중은 기분이 잡쳤다. 웬지 운명이 늘 자기에게 롱담을 걸어오는것만 같은 기분이였다. 사흘이나 무용보도원에게 련계를 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아무일도 없는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녀는 늘 집을 보러 다녔다. 그녀는 리중에게 자기에게도 20여평쯤 되는 단간방이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또 지금 세월에 80평쯤 되는 집을 가지고있으면 참으로 괜찮은 셈이라고 했다. 그녀는 리중에게 빨리 집을 팔아치우고 새집을 사야하며 20만원쯤 들 장식비도 어서 마련해놓으라고 달구쳤다. 리중은 그녀가 집문제를 말할 때마다 가슴이 갑갑했다. 어쩌면 그녀가 자기에게 시집 오려는게 아니라 자기가 이제 사야할 새집에 시집 오려는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리중은 문을 두드리지 못하고 한참이나 망설였다. 전에는 이 문을 어머니가 열어주었었다. 어느한번은 광고촬영을 마치고 급히 집으로 돌아가며 어머니에게 “어머니, 문 열어요.” 하고 메쎄지를 보낸적이 있었다. 그후 어머니가 리중에게 말했다. “네가 나에게 보낸 메쎄지를 대부분 삭제해버리고 딱 하나만 남겨놓았단다. 그게 바로 ‘어머니, 문 열어요.’란다.” 리중은 더 이상 어머니가 그 문을 열어줄수 없다는것을 알고있었다. 하지만 기어코 그 문을 두르려야 하는 리중의 팔은 그 순간 더없이 무거워났다. 드디여 문이 열리고 60세를 넘긴듯한 얼굴이 나타났다. 정신이 포만해보였는데 어딘가 문화적인 기질도 있는것 같았다. 로인이 리중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내가 황천초라네.” 리중은 집안으로 들어가 구석구석을 살폈다. 어느 한곳도 변한것이 없이 어머니가 계실 때와 꼭 같았다. 리중은 습관적으로 침대머리에 섰다. 마지막 두해 동안 어머니는 바로 그 침대에 누워계셨고 리중은 늘 그렇게 서서 어머니에게 사과껍질을 깎아드렸던것이다. 황천초가 리중에게 저금통장 하나를 넘겨주며 말했다. “자네 어머니가 자네에게 남긴것이라네. 비밀번호는 자네의 생일이라네. 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760525일거야. 바로 76년 5월 25일이라는 뜻이겠지. 은행에 가서 비밀번호를 변경하게나. 비밀번호는 내가 모르는게 좋아.” 리중은 저금통장을 호주머니에 잘 간수한후 입을 열었다. “괜찮습니다.” 리중은 황천초에게 비밀번호를 어떻게 알게 되였는가고 묻거나 어머니가 왜 자기에게 남기는 저금통장을 당신에게 주었는가고 묻고싶었다. 하지만 나중에는 그 말들을 모두 속에 담아두고말았다. 황천초가 리중에게 커피를 마시겠냐, 아니면 차물을 마시겠냐고 물었다. “커피요.” 황천초가 주방으로 건너간지 한참 지나서 향긋한 커피향기가 풍겼다. 이어 황천초가 커피 두잔을 들고 주방에서 나왔다. 그때 리중은 객실에 책꽂이가 하나 늘어난것을 발견했다. 책꽂이에는 책들이 가득 꽂혀있었다. 황천초가 커피를 입가에 가져가며 말했다. “자네가 나를 찾아준것을 대단히 고맙게 생각하네. 자네 어머니가 이 집을 나에게 준것때문에 당신은 꼭 불평이 많을거야…” 그때 리중의 눈길이 문뜩 베란다에 걸려있는 어머니의 옷에가 멎었다. 리중은 천천히 베란다로 다가가 옷 한벌을 벗겨서 가슴에 꼭 끌어안았다. 그것은 어머니가 즐겨 입던 치포였다. 리중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주르르 굴러내렸다. 리중은 뒤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를 들었다. 머리를 돌려보니 황천초의 얼굴이 눈물로 얼룩져있었다. 황천초가 목이 메여 더듬거렸다. “나와 자네 어머니는 워낙 오래전부터 사귀였다네. 그 와중에 내가 경제상에서 잠간 문제가 생겼더랬지. 하여 나는 잡혀들어가 2년동안 로동개조를 했다네. 로동교양소에서 나와보니 자네 어머니는 자네 아버지와 결혼을 했더군. 나는 자네 어머니를 탓하지 않았다네…” 황천초는 목이 메여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리중은 가슴에 안은 어머니의치포를 내려놓지 않았다. 황천초가 잠간 지나서 말을 이었다. “자네 아버지가 세상을 뜬후 나는 자네 어머니와 결합하려고 안해와 리혼을 했다네. 하지만 자네 어머니는 결국 자네를 위해서 나와 합치지 않았더랬지. 자네 어머니는 자네를 잃을가봐 두려웠던거야. 하지만 나는 리혼을 하면서 가장 사랑하던 딸을 잃고말았어. 딸이 나와 관계를 끊어버린거야.” 리중은 더 이상 그곳에 있고싶지 않아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황천초가 리중을 눌러앉히며 말했다. “자네도 나의 딸을 알걸세. 나두 블로그에서 자네와 나의 딸이 커피를 마시는 사진을 보았다네.” 리중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황황이 딸이라구요?” 황천초가 머리를 끄덕였다. “오늘 자네를 부른게 저금통장을 건네주려는것만은 아니였다네. 자네, 나를 도와주게나. 그 애에게 잘 말해서 집으로 돌아오게 해주게나. 자네의 어머니가 없는 이 마당에 딸애까지 떠나버렸으니…” 리중은 세상이 너무 좁아 손바닥에 모두 움켜쥘수 있을것 같다고 생각되였다. 리중은 황천초를 바라보며 말했다. “말할게요, 하지만 내가 말한다고 그가 들을가요?” 황천초는 어딘가 실망하는 눈치였다. “자네 왜 그럴거라고 생각하나?” “황황은 시종 자신이 나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고있어요. 내가 그에게 이런 문제를 이야기한다는것은 그에게 내가 스스로를 높게 보는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을거예요. 그러니 아예 말을 하지 않는것이 나을거예요. 내가 말한다고 해도 그는 곧이 듣지 않을게 뻔하거든요.” 말을 마친 리중은 문을 밀고 나왔다. 리중은 자기의 무거운 발걸음소리가 어두컴컴한 복도에서 청승스럽게 들리는것 같았다. 그 시각 리중은 못견디게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싶었다. 어머니가 뒤에 대고 “얘야, 조심하거라. 2층복도에 큰 광주리가 놓여져있네라.” 하고 소리쳐주었으면 좋을것 같았다. 무용보도원은 리중에게 줄곧 집을 보러 가자고 졸랐다. 자기가 보아둔 그 집이 아주 좋다는것이였다. 리중은 더 이상 그녀의 청구를 거절할수 없어 따라나섰다. 그녀는 성격 좋은 가이드처럼 집안 구석구석을 빼놓지 않고 소개했다. 화장실에 들어서자 그녀는 변기우에 들어앉아서 시범을 보였다. 리중은 정말이지 그것만은 보아줄수 없었다. 울컥 화가 치밀어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뭘하고있는거요?” 그녀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며 말을 더듬었다. “나나, 나… 지금 그쪽 보구 이 집을 좋아해달라고 청들고싶어요.” 리중이 어이없어 입을 쩝쩝 다시다가 물었다. “왜 자꾸 집을 좋아해달라는 말만 하구 그쪽을 좋아해달라는 소리는 하지 않소? 이 집이 그래 그쪽보다 더 중요하단 말이요?” 그녀가 갑자기 벌떡 일어서더니 리중의 품을 파고들며 말했다. “전 정말 이런 집을 가지고싶어요. 그쪽은 모를거예요. 전 어릴적부터 9평도 되나마나한 집에서 오빠와 함께 살았댔어요. 가끔은 오빠가 내옆에서 수음을 하는것까지 보아야했어요.” 리중을 끌어안은 그녀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리중이 몸을 뽑아 두 팔을 벌려 그녀를 꼭 안았다. 하지만 뭐라고 위안을 해야할지 일시 떠오르지 않았다. 이때 리중의 핸드폰이 울렸다. 익숙한듯 하면서도 금방 떠오르지 않는 목소리였다. “아직도 나를 기억하고있겠지?” 스스럼없는 그 말투에 리중은 깜짝 놀랐다. 분명 자기와 깊은 인연이 있는 사람이라고 판단되였지만 그 얼굴이 인차 그려지지 않았다. 대방에서 까르르 웃음을 터쳐올렸다. “왜, 생각나지 않아? 나 고영이야.” 리중은 컥 하고 심장이 멈추는것만 같았다. 바로 고영이라고 부르는 이 녀자애가 리중네 집 화장실이 너무 작아 방귀도 마음대로 뀔수 없다고 돌아섰던것이다. 바로 고영이라고 부르는 이 녀자애가 리중을 동무해서 병원으로 가 림종에 이른 리중의 아버지를 간호했던것이다. 그번에 고영은 사흘낮, 사흘밤을 별로 눈도 붙이지 못했다. 대학교에서의 마지막 2년간, 고영이 줄곧 리중을 동반해주었다. 그들은 그때 벌써 결혼생활을 그려보았다. 하지만 고영은 그 한마디를 남기고 리중과 갈라진후 바다에 들어간 흙인형마냥 다시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었다. 리중이 호기심이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너 지금 어디에 있니? 나의 핸드폰번호는 어떻게 알았구?” “너의 핸드폰번호, 원래거잖아? 난 너의 핸드폰번호를 시종 남겨두고있었거든.” “어… 어, 그래?” 리중이 말을 잇지 못하고 얼버무렸다. 그때 고영이 또 한번 까르르 웃으며 물었다. “너, 곁에 녀자가 있지?” 리중이 무용보도원을 훔쳐보았다. 그녀가 눈 한번 깜빡하지 않고 리중을 지켜보고있었다. 리중이 고영에게 물었다. “어쩌다가 나에게 전화를 하려고 생각했니? 인젠 십년도 더 지났는데.” 고영이 일부러 익살스럽게 말했다. “네가 생각나서 전화했지. 나 아직 너만한 남자를 만나지 못했거든.” 리중은 고영의 말에 얼굴이 확 붉어졌다. 그는 이미 녀자들의 그같은 도발적인 말을 받아 당할수 없었던것이다. “너너…너, 어떻게 지내니?” “만나서 얘기해, 우리. 나도 블로그에서 네가 예쁜 아가씨와 고급커피를 마시는 사진을 보았거든. 대단하다, 너. 커피 두잔에 3900원이라니… 사람피보다도 더 비싸구나.” 리중은 놀라운 블로그의 힘을 다시한번 느끼면서 고영이 리해할수 있게 해석하려고 애를 썼다. “아니야, 그것은 한차례의 비즈니스였어.” 그 말에 고영이 동을 달았다. “나두 너와 함께 커피를 마시고싶다. 하지만 그녀와 마셨던 그런 고급커피가 아니라 우리가 늘 함께 마셨던 블루마운틴을 마시고싶을뿐이야. 너 시간과 지점을 정한후 나에게 련락해라.” 리중은 무용보도원을 집까지 차에 실어다주었다. 리중은 그녀가 자기와 침대에 오르고싶어한다고 느꼈다. 사실 리중은 그녀와 진정으로 참답게 살을 섞어본적이 없었다. 하지만 리중은 조금도 그럴 흥심이 없었다. 그녀는 리중의 어깨에 머리를 살풋이 대고 쉴새없이 종알거렸다. 리중은 품격이 있는 녀자라면 절대 그녀와 같이 가볍게 놀지 말아야 하며 가볍게 놀기 시작하면 곧 남자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하게 된다고 생각했다. 하늘에서 구질구질 비가 내려 차창유리를 깨끗이 씻어내리고있었다. 그녀가 갑자기 엉뚱한 화제를 꺼냈다. “나, 이번 달에 안 왔어요, 달거리가.” 순간 리중은 무엇엔가 호되게 머리를 얻어맞은것만 같았다. 사실 리중은 그녀와 마지막으로 침대에 오른것이 언제였던지도 기억이 묘연했다. 리중은 의식적으로 그녀에게 바투 들이댔다. “언제야? 차안에서 그때야?” 그녀가 머리를 끄덕였다. 리중은 그번 차안에서의 정사를 떠올렸다. 그녀는 그날 실 한오리 남기지 않고 리중의 옷을 홀렁 벗기며 흥분해서 소리쳤다. “나, 차안에서 처음이야. 실컷 경험해보고싶어.” 그녀가 리중을 차 뒤좌석으로 밀어갔다. 리중의 머리가 뒤창문에 맞혔고 두다리는 창문밖으로 밀려났다. 리중은 그날 차를 어디에 세웠던지 기억에 없었지만 그곳이 어느 호수가라는것만은 또렸했다. 그것은 그리 크지 않은 호수였는데 시내중심에 자리잡고있었다. 그날 리중은 분명 물새들의 지저귐소리를 들은것 같았다. 하지만 그 소리가 그녀의 신음소리가 아니였던지도 아리송했다. 그녀가 물었다. “어쩔래요?” 리중은 머리가 천근같이 무거워나 일시 뭐라고 대답을 주지 못했다. 그녀가 기분이 잡친듯 말했다. “부담을 갖지 말아요. 원하지 않는다면 수술해버릴게요.” 리중이 다잡아 물었다. “만약 수술을 하지 않는다면?” 그녀가 배시시 웃으면서 대답했다. “결혼해야죠. 새집을 그쪽도 보지 않았나요? 우리 어서 낡은 집들을 팔아요. 새집주인이 시간을 한달밖에 주지 않았어요.” 그때 리중은 차머리가 무엇인가에 부딪치는 느낌을 받았다. 아니나다를가 차 한대가 앞에 멈춰서있있다. 차안에서 한 남자가 나오더니 리중의 차앞에와 버티고 섰다. 리중이 차창을 내리웠다. 남자가 리중의 코끝을 가리키며 소리를 질러댔다. “당장 내리지 못해?” 리중이 차에서 내렸다. 남자가 자기의 차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당신이 무슨 짓을 했나 똑똑히 보라구. 나의 차는 보마란 말이요.” 리중이 다가가 살펴보니 약간 긁힌 흔적이 나있었다. 리중이 큰 일이 아니다싶어 한마디 했다. “보험회사에 가보시죠. 약간 긁힌건데요뭐.” 그 말에 남자가 분노했다. “나의 차는 보마란 말이요. 알겠소? 당신의 눅거리를 어디에 비기려구.” 그 말에 리중도 버럭 화를 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게 보만데 나하구 무슨 상관이요? 보험회사를 찾으라고 하지 않았소?” 남자가 여전히 두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왜 하필이면 내 차를 박았는가 말이요?” 리중이 맞받아쳤다. “내가 고의로 들이박았소? 그만 조심하지 않아 당신 차에 내 차를 너무 가까이 들이댄것뿐이지.” 남자가 갑자기 리중을 뚫어지게 살펴보더니 픽 하고 랭소를 하며 말했다. “당신, 리중이구만. 내 와이프하구 커피를 마신 그놈이지?” 리중이 다잡아 물었다. “당신 와이프가 황황이요?”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그렇소, 우린 아직 리혼을 하지 않았으니. 하지만 그년을 기다릴 필요는 없소. 그년을 위해 줄을 선 병신들이 가득하니. 당신은 아마 열번째쯤에나 설수 있을가?” 그 말에 리중이 랭소를 하면서 소리쳤다. “줄? 나는 종래로 그런 놀음을 하지 않소. 내 녀자친구가 차안에서 나를 기다리고있으니까. 생각있으면 보여줄가?” 그때 무용보도원이 차에서 내렸다. 그러자 남자가 홰홰 손을 흔들면서 소리쳤다. “헛소리는 걷어장지구 말해보우, 어떻게 처리하면 좋은가.” 리중도 맞받아 소리쳤다. “못 들었소? 보험회사를 찾으라구. 세번은 말했을거요.” 말을 마친 리중이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남자도 누군가와 통화를 했다. 그녀가 다시 차안으로 들어갔다. 잠간후 남자가 리중의 곁으로 다가와 핸드폰을 넘겨주며 말했다. “내 와이프 당신하구 보통 사이가 아니네.” 리중이 핸드폰을 받아 귀가에 가져갔다. “뜻밖이네요, 우리 두 사람이 진정 블로그스타가 되였네요. 듣자니 그 커피숍장사가 전보다 훨씬 잘 된대요.”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가요?” 리중이 화제를 돌렸다. “어느 정도예요?” 리중이 긁힌 자국을 다시한번 살피고는 대답했다. “살짝 한군데…” 황황이 남자를 욕하기 시작했다. “그 사람 워낙 그렇게 억지를 부리는데 습관이 돼있어요. 그래서 전 그 사람과 리혼하려고 해요…” 리중이 황황의 말을 중동무이하며 물었다. “저, 어떻게 하랍니까?” 황황이 칼로 자르듯 과단하게 대답했다. “차를 몰고 그 자리를 뜨세요.” 리중은 핸드폰을 남자에게 넘겨주고는 차에 올랐다. 남자가 리중을 향해 소리쳤다. “당신, 어찌하든 먼저 사과는 해야 할게 아니야?” 리중이 중얼거렸다. “보험회사를 찾아 가든 말든 맘대루 해보시우. 아무튼 내 돈이 나가는게 아니니까.” 남자가 계속 시비를 걸어왔다. “당신의 차가 내 꼬리를 쳤단 말이요. 이럴 때는 먼저 잘못했습니다 하고 사과하는게 도리가 아닌가?” 무용보도원이 듣다못해 입을 열었다. “그래요, 저희들이 잘못했어요.” 리중이 부르릉 차를 몰아나갔다. 남자가 리중의 차에 주먹질을 하면서 소리쳐댔다. “알아두라구, 난 아직두 황황의 남자야. 제딴에 뭐가 대단하다구!” 비가 멎었다. 온 하늘의 공기가 비에 젖어 녹녹해진듯싶었다. 리중은 뭐라고 형용할수 없이 마음이 산란해났다. 무용보도원이 옆에서 쉴새없이 재잘거렸다. “어서 결정하세요. 맞같지 않으면 아예 수술을 해버리고말겠어요. 그쪽을 좀 보세요, 당황해서 어쩌구 있는가. 정말 절 미치게 만드네요.” 리중이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으며 소리쳤다. “수술해, 수술하라구. 진짜 날 미치게 하네.” 그녀가 갑자기 어깨를 들먹이면서 리중에게 바락바락 대들었다. “좋아요. 말해보세요. 그러는 리유를 말해보세요.” 리중은 멍하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랬다. 그는 실로 자기가 그처럼 분노하는 리유를 알수 없었다. 둥근 달이 두터운 구름을 뚫고나와 번잡한 밤도시를 비추고있었다. 5 리중은 승용차회사를 위해 짧막한 영상광고를 제작했지만 웬지 그것을 들고 황황을 찾아가고싶지 않았다. 삼촌이 되려 그러는것이 당연하다는듯 얼굴에 웃음을 담고 말했다. “네가 싫으면 내가 다녀오마. 돈은 비록 많지 않지만 그 정도면 그래도 괜찮다고봐야지.” 리중은 회사맞은켠에 있는 물밴새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가 아직 숨도 채 돌리지 못하고있는데 뜻밖에도 고영이가 다가와 맞은켠 걸상에 눌러앉았다. 그 바람에 리중은 깜짝 놀라며 고영의 얼굴에게 눈길을 박았다. “너두 저 청사에 출근하니?” 고영이 말하면서 손을 들어 맞은켠을 가리켰다. 리중이 머리를 끄덕였다. 호- 고영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세상에, 나두 저 청사에 출근한단다. 그런데 어쩌면 한번도 마주친적이 없을가?” “넌 어느 회사냐?” 리중이 물었다. “해관의 통관수속을 하는 회사다.” “그 회사 몇층이지?” “20층. 넌?” “난 너보다 높아, 22층.” 말을 마친 리중이 허허 웃었다. 고영이도 얼굴에 야릇한 웃음을 피워올리며 말했다. “넌 언제나 나의 우에 있었더랬어. 내가 우에 오르려 하면 넌 절대 안된다고 했지.” 이어 두 사람은 하하하 호호호 시름없이 웃어댔다. “너, 양고기소를 청했지?” 고영이 문뜩 화제를 돌렸다. 리중이 머리를 끄덕이며 되물었다. “맞아, 넌 돼지고기소를 청한거지?” 고영이 또 한번 웃음을 터치며 말했다. “그래, 둘 다 하나도 변한게 없네.” 두 사람은 한담을 하면서 물밴새를 먹었다. “너, 하나두 안 궁금해?” “뭐가?” “결혼했니? 리혼은 안했니? 애는 있니? 이런것들 말이지.” 이때 리중의 핸드폰이 울렸다. 황황이 걸어온것이였다. “그쪽, 왜 직접 작품을 가지고 오지 않았어요? 나를 보고싶지 않다 이거죠?” 리중이 인차 대답했다. “그럴수가요. 그저 그쪽에 가서 주눅이 들고싶지 않았을뿐이지요.” “회사의 일은 어디까지나 우리 어른의 일이지 나와는 상관 없어요. 전 그래도 그쪽을 위하여 좋은 말을 많이 했어요.” 리중이 인차 화제를 돌렸다. “그쪽 아버지께서 말씀했습니다. 그쪽보구 신변에 돌아오라구요.” 그 말에 황황이 잠간 뜸을 들였다가 물어왔다. “그쪽이 어떻게 저의 아버지를 알아요?” 순간 리중이 목소리를 높였다. “설마 그쪽 아버지가 나의 어머니의 집에 살고있다는것을 모르는것은 아닐테죠?” 황황이 다시한번 뜸을 들이더니 놀랍다는듯 목소리를 높였다. “세상에, 저희 아버지가 좋아했다는분이 설마 그쪽 어머니란 말씀인가요? 이거 참, 귀신을 봤나?” “뭐요? 뜻인즉 나의 어머니가 귀신이라는 말씀?” 리중의 목소리에 가시가 박힌것을 느낀 황황이 급히 해석했다. “아니요, 그럴수가요. 귀신이라면 저의 아버지가…” 리중은 괜히 기분이 잡쳐 일방적으로 통화를 끊어버렸다. 고영은 여전히 물밴새를 맛나게 먹으면서 창밖에서 흐르는 인파와 차물결을 바라보고있었다. 물밴새집을 나온 두 사람은 묵묵히 걸어서 어느새 호수가에 이르렀다. 고영이 입을 열었다. “여기, 대학때 우리 늘 오던 곳이지? 여기서 우리 첫 키스를 했구 너 무던히도 나를 밝혔었지. 어느 한번인가 우리 키스를 하고있는데 한무리의 남자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치안대원들이라고 하면서 벌금을 물라고 했었지.” 리중이 고영의 말을 받았다. “맞아, 그들이 우릴 보고 벌금 200원을 내라고 했잖아. 그때 학생인 우리에게 어디 그 많은 돈이 있었겠어.” “너, 그래서 잽싸게 나의 손을 끌고 도망을 쳤잖아? 그들이 우리를 쫓아오구… 나중에 더 도망갈 곳이 없으니 우린 호수에 뛰여들었댔지. 난 헤염을 칠줄을 모르잖아. 너 나를 끌고 헤염을 쳐서 끝내 맞은켠 기슭에 올랐더랬지.” 리중이 말을 받았다. “그때 나의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해 있었는데 네가 나와 함께 병원에 가서 아버지를 간호했더랬지.” 고영이 머리를 끄덕이며 동을 달았다. “맞아, 너의 아버지가 뒤를 보시겠다고 할 때 네가 곁에 없으면 내가 방조해드리군 했어. 그러느라면 내 두손에 모두 너의 아버지의…” 고영의 말을 들으며 리중은 무용보도원을 머리속에 떠올렸다. 그리고 고영이가 자기와 함께 아버지를 간호해드렸다는 그 사실을 어찌 잊을수 있었을가도 생각했다. 순간적으로라도 그 사실을 잊고있었던 리유를 찾을수 없었다. 한무리의 물새들이 수면을 스치며 날아서 땅에 올라와 쫓거니 쫓기거니 재롱질을 했다. 리중과 고영은 그쪽을 향해 발볌발볌 다가갔다. 물새들은 조금도 놀라는 기미가 없이 시름을 놓고 먹이를 주어먹고있었다. 너무나 평화로와 보였다. 그 평화를 깨며 리중이 입을 열었다. “너, 너 왜 그때 그렇게 나를 떠났니?” “너에게 한단락의 공백을 남겨주고싶었어. 어떤 일은 밝히면 되려 재미가 없어지잖아?” 리중이 차분한 눈길로 고영을 바라보며 물었다. “요즘은 어때?” “혼자야, 여섯살짜리 아들놈을 데리고있어. 장난이 심해. 의사들이 그러는데 그놈, 산만증이 있대나?” 그들은 호수가를 떠났다. 걸음을 옮기면서 리중은 수시로 머리를 돌려 호수를 바라보았다. 가을빛이 짙어가고있었다. 호수가의 나무들에 단풍이 내려앉았다. 붉은색, 귤색, 록색으로 아롱진 나무들은 가을의 풍성함을 그대로 보여주려는듯싶었다. 고영이 리중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너네 집 그 침대 말이야, 지금도 일하고있니? 삐꺽삐꺽삐꺽… 참 지금 생각해보면 요람곡 같을수도 있었는데… ” 고영이 말을 끊고 킥킥 웃어댔다. 리중도 시무룩히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그래, 바로 그 삐꺽거리는 침대에서 너 나를 사랑한다고 소리쳤댔다.” 고영이 그윽한 눈길로 리중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 일이 있었어? 난 왜 하나도 기억이 안날가?” 6 동지날, 리중은 삼촌에게 청가를 맞지 않고 오스트랄리아로 유람을 떠났다. 삼촌의 광고회사에서 그냥 일만 하다가는 질식하고말것 같았던것이다. 그래도 일은 끊이지 않고 들어왔고 일을 맡을 때마다 리중은 창의력이 점점 못해지는것을 느꼈다. 그야말로 머리속에 있는것을 깡그리 털어내도 뾰족한 수를 떠올릴수 없었다. 리중은 스스로가 초라해보였다. 어쩌면 자기야말로 자기가 그렇게도 싫어하는 자기의 고물차 마고탄처럼 몰면 몰수록 모병이 생기는것 같았다. 리중은 수도공항에서 삼촌에게 전화를 걸어 오스트랄리아에 가서 며칠 바람을 쏘이다오겠다고 말했다. 뜻밖에도 삼촌이 관심조로 물었다. “너, 오스트랄리아돈이 있니? 나에게 만원이 있는데, 떠나기전에 말이라두 하지.” 비행기는 싱가포르에서 5, 6시간을 체류한후 다시 날게 되여있었다. 리중은 싱가포르공항에서 조용히 리륙시간을 기다렸다. 공항대기실에 abc 세개의 슈퍼마케트가 있었지만 리중은 웬지 돌아보고싶은 흥심이 없었다. 평소에 리중은 늘 팽이처럼 돌아쳤다. 아침에 눈을 떠서부터 밤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리중은 어느 한순간도 머리속에서 일을 놓아본적이 없었다. 잠이 들어서도 낮에 처리하던 일이나 근심하던 일이 꿈에 나타나 리중을 괴롭히군 했다. 꿈에서는 무슨 일을 처리해도 그렇게 순리롭지가 않았다. 지어는 악몽에 시달리다가 깨여날 때도 있었다. 리중은 대기실에 있는 서점을 잠간 둘러보았다. 눈길이 일본의 저명한 작가 와타나베준이치의 《부휴(浮休)》에가 멎었다. 리중은 책 제목이 이상하다고 생각되여 몇장 번져보았다. 머리말에서 “부휴”에 대하여 해석을 했는데 그 내용이 리중의 호기심을 끌었다. “인생의 짧음과 세속의 무상함”을 이야기하고있었다. 글은《장자 각의》에 나오는“삶은 뜬 구름 같은것이요, 죽음은 휴식 같은것이여라.” 라는 구절을 인용하고있었다. 헌데 사람은 왜 늙어야만 “뜬 구름”이요, “휴식”이요 하는 말에 담긴 뜻을 깨달을수 있는것일가? 글의 마지막부분에는 당조의 대시인 백거이의 시 한구절이 인용되여있었다. “사람은 천지의 손님이거늘 모든것이 뜬 구름이요, 휴식과 같아라.” 작자는 “뷰휴”의 뜻을 더 잘 설명하기 위하여 이런 통속적인 해석을 덧붙였다. “세상의 모든것은 조금만 시기를 늦추어도 가버리게 된다. 하기에 눈앞의 생활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리중은 글을 읽으면서 머리속에 무용보도원을 데리고 병원에 가서 인공류산을 시키던 그날을 떠올렸다. 수술을 끝내고 복도에 나온 그녀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해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리중은 정말 “우리 결혼합시다.” 하고 말해주고싶었다. 그때 그녀가 입을 열렀다. “그쪽, 나에게 배상해야 해요. 난 이렇게 내 자식을 아무 대가없이 버릴수 없어요.” 리중은 그녀를 생각하기만 하면 고영이 떠올랐다. 그날, 리중과 함께 물밴새를 먹은후 고영은 어디론가 출장을 갔었다. 외지로 연수하러 가는데 짧아도 반년은 걸릴것이라고 했다. 고영은 그후 리중에게 메쎄지를 한번 보내왔다. “너를 다시 보게 되여 참 기쁘구나.” 리중이 오스트랄리아로 떠나오기전에 황황이 전화를 걸어와 이렇게 말했다. “끝내 해방됐어요. 나도 그쪽처럼 싱글이예요.” 리중은 황황에게 진심으로 아버지곁에 돌아가라고 권했다. 그러자 황황이 또박또박 이렇게 대답했다. “전 용서할수 있는 일을 극력 용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예요. 하지만 용서할수 없는 일은 영원히 용서할수 없어요.” 리중은 아버지에 대한 황황의 원망이 얼마나 큰가를 짐작할수 있었다. 그렇게 친아버지마저 용서할수 없는 녀인과 함께 한다는것은 상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지는 일이라고 생각되였다. 비행기가 다시 리륙했다. 비행기안에서 리중은 계속《부휴》를 읽었다. 마지막부분을 읽을 때 비행기가 들썽이기 시작했다. 리중은 금시 토할것만 같아 비닐봉지를 찾아들었다. 하지만 내용물은 올라오지 않았다. 리중은 더 이상 책을 읽고싶은 생각이 없어서 휴지통에 던져넣었다. 와타나베준이치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사실 리중을 크게 감동시키지 못했던것이다. 와타나베준이치 역시 자기만의 고루한 사상으로 남녀주인공의 사랑을 다루고있었다. 남자주인공 구와 녀자주인공 아신은 진정으로 서로를 사랑했지만 결국은 갈라지게 되였고 각기 다른 사람을 만나 결혼한다. 몇년후에 다시 만난 그들은 또 다시 사랑을 불태우게 되는데 그때 아신이 불치의 병에 걸린다. 세속관념의 압력과 가정에 대한 책임 앞에서 구는 아신과 갈라져야 하는가? 아니면 잡아줘야 하는가? 구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결과는 식상하게도 “부휴”라는 책 제목을 그대로 그리고있었다. 현창밖으로 펼쳐지는 파아란 하늘을 내다보면서 리중은 이제 얼마만한 시간을 진정 자기만을 위해 살수 있을가 하고 생각해보았다. 리중은 전에 쉬임없이 높뛰던 자기의 심장에 안정을 찾아주고싶었다. 이제 다시 번잡한 일에 몸을 맡기면 언제 다시 시간을 내서 바깥의 신선한 공기를 마실수 있고 나무에서 지저귀는 새들의 노래소리를 들을수 있을가싶었다. 리중의 사무실에는 큰 베란다가 있었는데 거기에 나서면 큰 나무 한그루를 볼수 있었다. 나무는 잎이 무성했다. 전에 일이 바쁠 때면 그 나무에서 까치가 지저귀여도 내다볼 겨를이 없었다. 리중은 자기가 너무 일에만 빠져있고 사회교제에만 열중한다고 생각했다. 친구들의 모임이 두 곳에 있으면 그는 그 두곳 모임에 모두 참가하려고 노력했다. 누구도 노엽히고싶지 않았던것이다. 하여 리중은 한 곳에 잠간 앉았다가는 인차 다른 곳으로 달려가군 했다. 리중은 힘들어 죽을 맛이였지만 친구들은 그런 작법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어느날 한 친구가 리중에게 물었다. “너, 말해봐라. 그렇게 죽을둥 살둥 모르고 뛰여다니는 리유가 뭐니?” 리중의 첫 려행코스는 황금해안이였다. 리중은 려행사에 편입된것이 아니라 자유려행형식을 택했었다. 호텔은 리중이 인터넷에서 예약한것이였다. 리중은 행리를 들고 6층에 있는 방에 들어섰다. 베란다에 나서면 바다를 볼수 있었다. 침대는 놀라울 정도로 컸는데 여간만 폭신폭신하지 않았다. 리중은 샤와를 하고 여름옷을 갈아입은후 호텔을 나가 모래사장을 천천히 거닐었다. 바다는 눈이 시리도록 푸르렀다. 수많은 갈매기들이 시름없이 바다우를 날고있었다. 리중은 자기가 살고있는 그 도시의 호수를 머리속에 떠올렸고 그 호수의 수면을 날아예던 물새들을 상기했다. 고영의 모습이 눈앞을 스쳤다. 석달동안 고영은 아무 소식도 없었다. 배가 고팠다. 그제야 리중은 이미 저녁때가 지났다는것을 상기했다. 비행기에서 내리기전에 기내식을 먹은게 전부였다. 리중은 발이 가는대로 작은 음식점을 찾아들어가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바다가 창문너머로 보여왔다. 센 파도가 이는것 같았다. 리중은 소갈비를 주문하면서 숙련되지 않은 영어로 6할쯤 익혀달라고 부탁했다. 웨이터가 크림수프는 필요하지 않는가고 물었다. 리중이 일시 결정을 하지 못하고 머멋거리고있을 때 뒤에서 한 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셔봐, 버섯을 넣었거든. 쏘세지도 들어있구.” 리중이 소리나는쪽에 머리를 돌리다가 깜짝 놀라 굳어졌다. 고영이 땅에서 솟은듯 그곳에 서있었던것이다. 리중은 마치도 영화나 텔레비죤드라마의 한 장면을 촬영하고있는것만 같이 느껴졌다. “이게 웬 일이야?” “웬 일이긴, 너 내가 황금해안에 와 연수를 하고있는줄을 몰랐니? 너 특별히 황금해안으로 나를 찾아온게 아니였니?” 고영은 자리에 앉아 숙련된 영어로 웨이터와 뭐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후 리중에게 눈길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넌 이미 내가 이 호텔옆에서 연수를 하고있고 이 음식점에서 음식을 먹는다는것을 다 알고있었던거야, 그러면서 웬 일이냐구?” 리중은 뭐라고 변명을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아무리 우연이라고 해석해도 고영이 믿어주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했던것이다. 저녁을 먹은후 두 사람은 모래사장을 거닐었다. 그들은 손에 손을 잡고 바다에 떨어져내리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지나가던 화인이 다가와 배에 올라 일몰을 감상하면 더 아름답다고 꼬드꼈다. 그리고 배우에 맛이 좋은 술도 있다고 덧붙였다. 리중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많은 아름다움이 동시에 존재하면 좋지 않답니다.” 석양이 해면에 동동 떠있었다. 하늘은 더 이상 떨어지는 태양을 잡을수 없었던지 손을 놓아버렸다. 석양은 바다에 몸을 던졌다. 비록 석양은 볼수 없었지만 그가 남겨놓은 붉으스름한 여광은 여전히 눈길을 끌었다. 몇몇 젊은이들이 모래사장에서 원반을 뿌리고있었다. 리중도 그들과 함께 원반을 뿌리고싶어 다가갔다. 리중이 뿌린 원반이 바다에 날아들었다. 리중은 바다에 들어간 원반을 건져올렸다. 그 순간 리중은 바다에 떨어진 석양을 건져올리는듯 가슴이 활랑거렸다. 호텔의 폭신폭신한 침대우에서 고영이 흥분하여 가슴을 떨면서 “사랑해, 사랑해!” 하고 소리쳤다. 리중이 차분하게 말했다. “너, 지금 나를 사랑한다고 소리치고있다.” 고영이 말했다. “사랑해, 진정 사랑한다구!” 밤이 깊어갔다. 두 사람은 베란다에 앉아 등불이 깜빡이는 밤바다를 바라보았다. 고영이 말했다. “우연이라구? 이 부근에 몇십개나 되는 음식점이 있는데 우리가 딱 그곳에서 만날수 있었다는게 우연이라구? 어디 내가 믿을수 있게 리유를 말해봐.” “없어, 리유 같은게.” 고영이 리중에게 키스를 퍼부었다. 숨박히는 그 순간이 지나자 리중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리유를 알아야겠어. 왜 다시 나를 좋아하게 됐는지?” 고영이 속삭였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날수 없는게 아니야. 리유는 내가 이미 너를 만나버렸다는거야. 내 마음을 움직여 놓은 사람이 없는게 아니야. 리유는 네가 이미 내옆에 나타났다는거야… 나는 더 이상 다른 사람을 사랑할수 없어. 나는 이미 어떻게 너를 아껴야 한다는것을 알아버렸거든. 우리가 다시 만났다는건 쉽지 않은 일이야. 내가 점 찍은 사람을 나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거야. 세상에 좋은 사람이 많고도 많지만 나는 너 하나만으로 만족할거야!” 리치방(李治邦), 천진시군중예술관 관장. 중국작가협회 회원. 천진문학원 계약작가, 연구원.
9    그 세월의 그 꽃신* 효소 댓글:  조회:2076  추천:0  2013-08-11
그 세월의 그 꽃신   효소     1   고희연을 치른 이튿날 아침, 온구(温九)는 여느때보다 늦게 잠을 깼다. 고희연을 치르느라 기쁜김에 술을 좀 과하게 마셨던것이다. 그가 힘겹게 두눈을 뜨고보니 어느새 일곱시가 되여있었는데 해살은 그의 집어구의 마당을 비추고있었다. 빠알간 해살은 마치도 마당에 따뜻한 비단이불을 한벌 덮어놓은듯싶었다. 그때 김국(金菊)은 부엌에서 물을 끓이고있었다. 아침밥을 지으려는것이였다. 온구가 객실에 막 들어서는것을 본 김국이 부엌에서 나와 잰걸음으로 온구앞에 와섰다. 김국은 너무 급히 달려나오느라 취화통(吹火筒)을 내려놓는것마저 깜빡 잊고있었다. 취화통을 손에 들고 허둥지둥 달려나오는 김국을 보고 온구는 김국이 자기를 때리려고 헤덤벼치는줄 알았다. 김국은 온구를 때리려는것이 아니였다. 그는 온구를 향해 웃음을 날렸다. 하지만 그 웃음이 어딘가 어색하다고 생각되였다. 입귀가 우로 올라가있었고 머리는 18살 소녀처럼 갸우뚱 기울어져있었다. 그 모양을 보면서 온구는 매우 이상하게 생각되였다. 이 로친이 왜 나를 보고 이렇게 웃는것일가? 김국이도 사실은 이미 68세에 나는 할망구였다. 지난 몇십년 동안 김국은 온구앞에서 종래로 그렇게 머리를 갸웃하고 웃음을 지은적이 없었다. “왜…왜 그렇게 웃는거유?” 온구가 모르겠다는듯 김국에게 물었다. 김국은 여전히 입가에 웃음을 물고 눈까지 껌뻑거리면서 말했다. “령감, 령감이 꼭 70살이 됐다우.” “내가 70살이 됐는데 뭐가 그렇게 우스운 일이라구…” 온구는 더욱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김국은 취화통으로 온구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70살이 되면 령감이 그 사실을 있는 그대로 다 말해줄거라 하지 않았수? 령감, 설마 그 일을 잊은거야 아니겠지?” “어느 일을 그러우?” 온구가 김국을 향해 두눈을 부릅떴다. “신…” 김국이 취화통을 휙 저으면서 목소리를 높여 다시한번 그루를 박았다. “꽃신에 대한 일을 말이우.” 김국이 “꽃신”이라고 꼬집자 온구의 머리에는 즉시 예쁜 꽃신 한컬레가 떠올랐다. 온구는 그만 참지 못하고 푸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온구는 여전히 웃음을 거두지 못하고 김국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참, 대단하오. 로친… 기억력이 좋기도 하구려. 어느 왕금년의 일인데… 깨알만한 그깐 일을 나는 잊은지 옛날인데 로친은 아직두 기억하구있소?” 온구는 껄껄 웃으면서 배꼽을 잡고 돌아가다가 철썩철썩 허벅다리를 치기까지 했다. 김국은 약이 오른듯 취화통으로 온구의 입을 가리키면서 소리쳤다. “웃긴? 왜 이렇게 배꼽 빠지게 웃는거유? 웃지만 말고 얼른 사실대로 말하지 못하겠수? 그 꽃신이 도대체 어디서 온거였수? ” “급하기는…” 온구가 겨우 웃음을 거두면서 아래말을 이었다. “아침밥을 먹은후 천천히 말해주리다.” “안되우!” 김국이 꽥 소리치며 다그쳤다. “당장 말하란 말이우. 령감이 분명 약속했더랬지. 칠십살을 채우면 꼭 말해주겠다구. 내 이날을 꼭 22년이나 기다려왔단 말이요. 나는 워낙 어제밤에 령감에게 물을가 생각했더랬수. 령감이 어제밤에 그 뜨물을 들이켜구 인사불성이 돼 돼지처럼 쓰러지는 바람에… 그래두 좀 불쌍한 생각이 들어서 깨우지 않은게우.” 김국의 말이 끝나자 온구는 입가에 어색한 웃음을 띠며 말했다. “참, 성질 하나는 급하다니까. 몇십년을 기다려왔을라니 아침밥 먹을 새를 못 참는단 말이우? 그래 그새도 못 참겠다는게유? 이런… 변소가 급해지네. 온밤을 채웠더니 오줌깨가 터지려구 하네. 좀만 더 지체하면 오줌을 지리게 생겼다우.” 말을 마친 온구는 바지춤을 움켜쥐고 변소를 향해 어정어정 걸어갔다. 김국은 별수없다는듯 머리를 저으면서 말했다. “좋수. 아침밥 다 먹을 때까지만 참아주겠수. 그래두 말을 하지 않으면 가만 놔두지 않을게유.” 그 말에 온구가 머리를 돌리고 물었다. “로친, 가만 놔두지 않으면 어쩔건데?” 김국은 잠간 머뭇거리더니 소리쳤다. “밥을 안 끓여줄거유.” 온구는 무슨 일에서나 솜씨가 쟀지만 부엌일만은 아예 모르고 살았다. 하기에 김국은 오직 밥을 끓여주지 않는다고 을러메야만 온구를 굴복시킬수 있다고 생각했던것이다. 아니나 다를가 온구는 공손히 김국을 향해 흰기를 들었다. “알았다니까. 아침밥을 다 먹은후 내 꼭 그 꽃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도 빠짐없이 그대로 다해주리다.” 온구가 그렇게 고분고분 나오자 김국은 취화통을 들고 다시 부엌으로 들어갔다. 마당가에는 돌구유며 매돌이며가 가득 널려있었고 채 만들지 못한 작은 돌절구도 하나 놓여져있었다. 돌절구는 절구홈과 절구공이로 되여있었다. 절구홈은 모양이 번져놓은 모자를 방불케 했고 정구공이는 길고 굵직한 오이를 떠올리게 했다. 유채파의 사람들은 돌절구로 많이는 깨를 빻았지만 간혹 마늘이나 산초를 빻는 사람들도 있었다. 마당에 널려있는 석기는 모두 온구의 손에서 만들어진것이였다. 온구는 유채파일대에서 이름난 석공이였다. 온구가 만들어낸 석기들은 만드는족족 팔려나갔다. 온구는 변소에서 나오는 길에 또 석기를 사러 온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의 이름은 복아(福娃)였는데 리귀의 아들이였다. 리귀와 그의 마누라 원봉은 온구네 집 맞은켠에 있는 산등성이에 집을 잡고 살았다. 두 집 사람들은 마당에 나서기만 하면 서로 마주볼수 있었고 말하는 소리도 들을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똑똑히 알아들을수 없었다. 복아는 서른살을 훨씬 넘긴 로총각으로서 해마다 외지에 돈 벌러 나갔다. 하기에 집에는 늘 리귀와 원봉이만 남아있었다. 효심이 많은 복아는 계절마다 집에 와서 부모들을 찾아뵙군 했다. 복아는 온구에게 절구를 사겠다고 했다. “우리 집 늙은이들은 말인데여… 마늘즙을 내 자시길 좋아하거든여. 식칼로 마늘을 쪼으려니 그게 어디 제대로 되나요.” 온구는 마당에 널려있는 석기들을 살피면서 입을 열었다. “돌절구라… 만드는게 하나 있긴 한데 아직 일이 끝나지 않았단다. 홈은 이미 다 팠지만 절구공이는 아직이구나.” “그러세요? 그럼 오후에 다시 올게요.” 복아가 일어나 돌아가려고 하자 온구가 인차 입을 열었다. “아침밥을 먹으려면 아직도 한시간 기다려야 하니 이 짬에 내가 손을 보마. 너 가서 아침밥을 먹구 와라. 그때면 아마 일이 끝날게다.” “그럼 수고하세요.” 복아는 인사를 올리고 돌아섰다. 온구는 급히 집으로 들어가 도구상자를 들고 나왔다. 그리고 나무걸상도 하나 들어왔다. 복아는 그때까지 돌아가지 않고있었다. 복아는 만들다만 돌절구옆에 서서 뚫어져라 온구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바이는 참 기력이 좋으시네요. 걸음걸이가 날파람이 나서 전혀 로인 같지 않아요.” 온구가 허허 웃으며 말을 받았다. “늙었단다, 늙었지. 벌써 칠십인데…”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아요. 어디 저의 아버지 같겠어요. 우리 아버지가 아바이보다 몇살 아래지요? 그래두 어디 아바이처럼 망치를 흔들수 있나요? 비자루로 마당을 쓸라 해도 우리 아버지는 허리를 굽히기 힘들어할거예요.” 그때 부엌으로부터 고소한 기름냄새가 풍겨나왔다. 복아는 코를 몇번 벌름거리더니 또 말을 시작했다. “이 집 아매두 참 기력이 좋은것 같아요. 밥을 짓고 돼지를 먹이고 빨래를 하고… 어디 하나 빠지는데가 있나요? 아까는 왜 취화통을 들고 아바이한테로 뛰여왔댔어요? 우리 엄마는 이 집 아매에게 비기지도 못해요. 몇걸음만 걸으면 다리가 아프다고 란리인데요. 이 집 아매는 우리 엄마보다 세살이나 이상인걸요.” 온구는 복아의 말을 들으면서 머리를 끄덕이다가 입을 열었다. “복아야, 너 참 입이 달구나. 우리 어디 네가 말하는것처럼 그렇게 기력이 좋으냐? 너의 에미애비는 참 복받은게지, 너 같은 효자를 둬서…” 복아가 사라지자 김국이 부엌에서 쓰던 뒤집개를 손에 든채 문밖으로 나왔다. 온구가 마당에서 열심히 절구공이를 다듬는것을 본 김국이 입가에 묘한 웃음을 담고 시까스르듯 소리쳤다. “세상에… 칠십이 돼도 일손은 역시 잽싸네유.” 온구가 김국의 말을 받아쳤다. “왜? 칠십이 되면 서북풍을 먹고 사는가?” 온구가 그렇게 들이대자 김국은 일시 뭐라고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김국은 진작 온구의 말속에 다른 뜻이 숨어있다는것을 알았던것이다. 사실이지 그 몇년간 가정살림은 모두 온구의 손에 의지해왔었다. 그렇다고 온구와 김국에게 아들딸이 없는것은 아니였다. 아들은 장가 가서 세간을 났고 딸도 이미 시집을 갔었다. 그들은 해마다 두 로인에게 천원씩 생활비를 보태주겠다고 약속했었다. 하지만 그 약속은 강물에 가랑잎 흘러간 꼴로 되여버렸다. 두 로인은 자식들에게 생활비를 보내라고 독촉을 하지 않았다. 자식들도 생활이 여의치 않다는것을 너무도 잘 알고있었던것이다. 온구에게 돌을 다루는 좋은 재간이 있는게 참으로 다행이였다. 온구가 석기를 만들어 벌어들이는 돈으로도 두 로인은 얼마든지 생계를 이어갈수 있었다. 김국은 부엌으로 들어가 한참 있다가 다시 부엌문앞에 나와섰다. 김국의 입에서 또 꽃신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아침밥을 먹은후에는 절대 떼질을 못쓸거유.” “떼질이라니?” “꽃신에 대해 말해야지유. 얼른 말해보슈. 도대체 그 꽃신은 누가 준거였수?” 온구가 한심하다는듯 쩝쩝 입을 다시다가 말했다. “떼질이라니? 이 나이를 먹구서… 내가 만약 떼질을 쓰면 로친이 나에게 밥을 안해준다면서?” 김국이 어깨를 으쓱하며 배포유하게 한마디 했다. “흥! 무서운걸 알면 됐슈.”   2   온구는 나무걸상에 앉아 절구공이를 다듬었다. 그는 일손을 놀리면서 그 꽃신을 머리에 떠올렸다. 김국의 말은 실로 그른데 없었다. 꽃신에 대한 추억은 22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갈수 있었다. 그해 온구는 48살이였는데 몸집이 젊은이들과 별반 다름이 없었다. 일은 온구의 48살 생일 전날에 생겼다. 그날 저녁편에 온구는 소를 끌고 집으로 돌아오고있었다. 그의 한손에는 소고삐가 들려있었고 다른 한손에는 등초융(灯草绒)으로 만든 헝겊신이 들려있었다. 온구는 흥겹게 걸음을 옮겨놓으면서 흥얼흥얼 코노래를 불렀는데 마치도 인삼탕을 한사발 마신듯한 기분이였다. 그때 김국은 마당에서 돼지풀을 썰고있었다. 김국은 멀리에서 벌써 온구의 손에 들려있는 헝겊신을 보아냈다. 김국은 그 신을 보자마자 돼지풀을 쏠던 손을 우뚝 멈추었다. “어디서 났어요?” 김국이 호기심이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오다가 주은거라우.” 온구가 시물시물 웃었다. “그래서 흥얼거렸군요, 신 한컬레가 생겼으니…” 말을 마친 김국은 다시 돼지풀을 썰기 시작했다. 두어번 칼질을 하던 김국이 갑자기 손을 멈추었다. 어딘가 석연치가 않았던것이다. 김국은 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바투 들이댔다. “어디서 주었어요?” “방공호어구에서 주었지.” 말을 마친 온구는 꽃신을 들어 찬찬히 여겨보다가 아래말을 이었다. “방공호앞에 샘터가 있잖수? 그옆에는 또 오동나무가 한그루 서있구. 아마두 누가 샘물을 마시느라구 신을 오동나무가지에 걸어두었다가 깜빡하구 두고갔나보지 뭐. 하하하… 내가 횡재를 한거지.” 그 말을 듣고서야 김국은 시름을 놓고 다시 돼지풀을 썰었다. 소를 우리에 몰아넣은 온구는 집으로 들어와 신을 부억칸과 이어진 따뜻한 안방벽에 걸어놓았다. 저녁밥을 다 먹은 온구와 김국은 안방으로 들어가 따뜻한 물에 발을 담갔다. 발을 다 씻은 온구는 갑자기 벽에 걸려있는 신을 가리키면서 김국에게 말했다. “여보, 내가 주어온 그 신을 벗겨주오. 발에 맞는지 한번 신어보게…” 김국은 신을 벗겨들고 꼼꼼히 살펴보았다. 신안에는 꽃 한송이가 수놓아져있었다. 복숭아꽃이였다. 분홍색을 띤 복숭아꽃은 활짝 피여있었다. 그 꽃을 바라보는 김국의 눈살이 꼿꼿해졌다. “제대로 말해요. 이 신을 도대체 누가 주었어요?” “말했잖아? 주은거라구? 몇번을 더 말해.” 온구가 태연한 기색으로 짜증스럽게 말했다. 김국이 온구를 쏘아보며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주었다구요? 진짜 솜씨가 좋네요. 꽃신을 다 주어오다니…” 온구가 깜짝 놀라면서 되물었다. “꽃신이라구? 꽃을 수놓았다구?” 말을 마친 온구는 김국의 손에서 와락 신을 빼앗아 눈앞에 가져왔다. 온구는 신을 이리저리 살피면서 연신 중얼거렸다. “정말이네, 진짜 꽃을 수놓았네.” 잠간 말을 끊었던 온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런이런… 그것도 복숭아꽃이네. 아마두 맘에 있는 사람에게 주려던것 같군.” 온구의 말을 들으며 두눈을 껌뻑거리던 김국이 목소리에 가시를 박았다. “신어요, 얼른. 당신 발에 맞는가보자요.” 온구가 웬 일인지 얼굴을 붉히며 얼버무렸다. “됐소. 신어보나마나… 이같이 예쁜 신을 내가 어떻게 신고 밖에 나간다구. 그대루 벽에 걸어두오. 혹시 누가 신을 잃어버렸다고 하면 돌려줘야지. 시간이 흘러두 찾는 사람이 없으면 그때 신어봐두 늦지 않지 뭐.” 하지만 김국은 온구의 말을 듣는척도 않고 소리쳤다. “신어보라는데두, 왜? 오늘 꼭 내앞에서 신어보아야 해요.” 온구는 얼굴에 어설픈 웃음을 담고 마지못해 신을 신기 시작했다. 신은 온구의 발에 딱 들어맞았다. 어쩌면 온구의 발을 재여서 맞춘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듯싶었다. “하하하… 재수가 좋네. 어쩌면 이렇게 딱 맞을가?” 온구가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크게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김국의 분노를 자아냈다. 김국은 주먹으로 온구의 옆구리를 쿡 치며 말했다. “당신, 제대로 말해봐요. 이 신을 어느 년이 줬어요?” 온구는 억울하다는듯 두덜거렸다. “주었다고 하잖았소? 방공호앞에서.” 김국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개뿔, 줏기는… 귀신이나 속을가.” 그날 밤, 김국은 울고 불고 하며 복새통을 벌렸다. 지어 온구의 온몸을 손이 가는대로 잡아뜯기도 했다. 김국이 한번 또 한번 신을 누구에게서 가졌느냐고 물었지만 온구는 한번 또 한번 주었다고 되풀이했다. 련속 대엿새를 그렇게 달구어치고서야 김국은 약간 분이 풀려했다. 김국이 온구에게 약간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누가 주었다는것을 제대로 말만 하면 나는 더 이상 떠들지 않을거예요.” 그러자 온구도 대놓고 주었다며 딱 잡아떼지는 않았다. 김국이 그렇게 양보하는데 자기가 계속 주었다고 하는것도 좋은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던것이다. 하지만 온구는 사실의 경과를 김국에게 사실대로 털어놓지는 않고 둘러붙였다. “그 신 말이야, 사실 주은것은 아니거든. 어느 녀자가 기어코 던져주길래…” “누가 준거야?” 김국이 다잡아물었다. “아직은 대답할수 없어.” 온구가 잡아똈다. “왜 대답할수 없어?” 김국이 바짝 다가들었다. “거야 당신이 찾아가 큰일을 칠가봐 그러지.” 온구가 대답했다. 일시 뭐라고 말을 못하고 씨근거리던 김국이 물었다. “그럼 당신, 언제나 실말을 할건데?” 온구가 잠간 무엇인가를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건… 내가 칠십살이 되였을 때 말해줄게.” 김국이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세상에… 아직도 22년을 기다리란 말이야?” 온구가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더 길더라도 기다려야 할걸. 나는 70살이 되지 않으면 때려죽인대두 말하지 않을걸.” 온구가 그 꽃신을 들먹이고있을 때 사실은 김국이도 그 꽃신에 대하여 생각을 굴리고있었다. 김국은 반찬을 만들면서 조용히 꽃신에 대하여 생각했다. 사실이지 지난 22년간 김국은 늘 꽃신을 온구에게 선물한 녀자가 누구일가를 추측했었다. 몇몇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지만 종시 누구라고 딱히 짚을수는 없었다. 그중에서도 세 녀인에게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 세 녀인의 얼굴이 다시 김국의 머리속에 떠올랐다. 제일 의심이 가는 녀자는 그래도 “조롱박”이라고 해야 할것이였다. 그녀의 젖무덤이 조롱박 두개를 앞가슴에 달아맨듯 해서 사람들은 그녀를 “조롱박”이라고 불렀다. 날이 감에 따라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없다싶이 했다. “조롱박”은 여러 남정들과 집적거려 말썽을 일으킨적이 있었다. 김국은 비록 온구가 “조롱박”과 좋아하는 장면을 직접 목격한적은 없지만 어느땐가 직접 “조롱박”의 젖무덤이 풍만하다고 말하는것을 들었던것이다. 그날 온구는 김국을 보고 파렴치하게도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당신의 젖무덤이 조롱박처럼 크다면 얼마나 좋겠소?” 다른 한 녀인의 별명은 “야래향”이였다. 그녀의 남편은 좀 어리숙한편이였고 몸도 비실비실했다. 하기에 다른 남정네들이 밤이면 늘 그녀네 집을 기웃거렸다. 다른 남정네들이 밤중에 그녀의 집 문을 두드리면 그녀의 남편이 먼저 나와 문을 열어준다는 소문까지 있었다. 김국은 온구가 밤중에 “야래향”네 집에 간적이 절대 없다고 믿고있었다. 하지만 언젠가 “야래향”을 위해 매돌을 만들어준적이 있다는것은 알고있었다. 그날 아침, 온구는 아침 일찍 “야래향”네 집으로 갔다가 밤중이 되여서야 돌아왔었다. 김국이 뾰로통해서 물었다. “그까짓 매돌을 온 하루 만들었단 말이예요?” 온구가 시무룩이 웃으며 말했다. “두짝이 아니요? 오전에 웃쪽을 만들고 오후에 아래쪽을 만들었지.” 김국이 의심을 하는 다른 한 녀인은 신을 누빌줄 아는 “작은아씨”였다. 그녀는 신을 누비는 재간이 좋아서 린근에 소문이 자자했는데 그녀가 신바닥에 수놓은 꽃송이는 실로 일품이라고 할수 있었다. 하지만 “작은아씨”는 심성이 고와서 종래로 남녀간의 일에 말려들지 않았다. 김국이 구태여 그녀를 의심하는것은 온구가 들고 온 신에 수놓여진 복숭아꽃이 보통솜씨가 아니기때문이였다. 김국은 당년에 그 꽃신때문에 온구와 크게 다툰후 유채파의 부녀주임을 찾아간적이 있었다. 촌에서 부녀주임은 비록 권력이 그렇게 크지 않았지만 사소하게 삐치는 일은 적지 않았다. 오직 녀자들과 관계되는 일이라면 나서지 않는데가 없었다. 누군가 온구에게 꽃신을 선물했다는 김국의 말을 듣고 부녀주임은 아주 놀라는 표정이였다. 그날, 부녀주임은 김국과 함께 온구를 찾아 집으로 왔었다. 부녀주임은 먼저 온구를 예리하게 비판한후 누가 신을 선물했는가고 따져물었다. 온구가 두덜거렸다. “이렇게 비평하면 됐지 왜 기어코 누군가고 묻는거유?” “누군가를 알면 찾아가서 엄숙하게 비평하자고 그래요. 손벽은 혼자서 소리를 낼수 없어요.” 부녀주임이 그렇게 들볶는데도 온구의 입은 자물쇠를 잠근듯 도무지 열리지 않았다. 부녀주임은 김국을 살뜰하게 보살펴주었다. 그날도 김국이 온구에 대한 불만때문에 부엌에 불을 지피지 않았기에 김국도 온구도 하루종일 쌀알 한알 입에 넣지 못하고있었다. 그 정황을 알게 된 부녀주임이 저녁무렵에 찾아와 밀가루수제비를 끓여주었다. 부녀주임은 수제비를 사발에 담아 그들앞에 놓아주며 따뜻할 때 얼른 먹으라고 재촉했다. 김국은 부녀주임의 관심에 얼마나 감동했는지 모른다. 김국은 부녀주임이야말로 이를데없이 훌륭한 간부라고 생각했다. 그날, 부녀주임이 문을 나서려 할 때 김국은 자기가 의심하고있는 세 녀자의 이름을 말해주면서 자기를 도와 “진범”이 누구인지를 알아맞춰달라고 청을 들었다. 부녀주임은 량미간을 찌프려가며 한참이나 분석을 하더니 머리를 저으면서 자기도 “진범”이 누구인지를 정확히 알수 없다고 말했다. 부녀주임은 나중에 김국이를 보고 말했다. “쓸데없이 자꾸 생각하면 머리가 아파지거든. 그리구 좋은 사람을 억울하게 굴수도 있구. 후에 온구를 잘 지키기만 하면 돼.” 부녀주임은 말을 마치고 김국의 어깨를 툭툭 쳐주었다. 김국은 마지막 료리까지 다 볶아냈다. 아침밥을 먹을수 있었다. 김국의 가슴은 어떻다고 형언할 길 없이 설레였다. 아침밥만 다 먹으면 누가 꽃신을 저 령감에게 선물했던가를 알게 되겠지. 그새 온구도 절구공이를 다 다듬은후 만족해서 살펴보고있었다.   3   아침밥상은 풍부했다. 전골 한가지에 뜨거운 료리 4가지가 올랐다. 김국은 또 온구를 위해서 닭알후라이 두개를 해올렸다. 온구는 어딘가 감격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아침에 무슨 닭알후라이는…” 김국은 두눈을 쪼프리면서 말했다. “닭알후라이를 먹어야 힘이 나지유.” 온구는 김국의 말을 인차 리해하지 못하고 잠간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힘을 내서는 뭘 하는데? 석재 나르러 갈것두 아니구.” 김국이 입가에 웃음을 띠면서 대답했다. “꽃신에 대해서 얘기해야지유.” 그 바람에 온구는 킥킥 웃음을 삼키면서 입을 열었다. “못 말린다니까, 이 로친은.” 온구는 말하면서 저가락으로 김국의 이마를 살짝 찔러주었다. 그 모양이 어쩌면 신혼부부가 사랑놀이를 하는듯싶었다. 아침상이 거의 끝나갈무렵에 김국이 또 입을 열었다. “내가 설겆이를 대충 끝내면 령감은 즉시 그 얘기를 해야 해유.” 온구는 머리를 끄덕이며 그러마 하고 대답했다. 김국은 마당을 내다보면서 말했다. “나는 마당에 나가앉아서 그 이야기를 들을거유. 따듯하게 해볕을 쪼이면서 말이유.” 온구는 여전히 머리를 끄덕이면서 중얼거렸다. “그것두 좋겠지. 얘기를 듣다가 로친이 덜덜 떨지도 모르니까.” 김국은 풀이 펄 나게 설겆이를 끝냈다. 온구는 도구상자를 사랑채에 가져다 둔후 나무걸상을 들고 인차 마당으로 나왔다. 김국은 자기가 들고 나왔던 나무걸상을 방금 온구가 가져온 걸상옆에 나란히 놓았다. 김국은 머리를 돌려 온구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됐어유, 편히 앉아서 얘기를 시작해유. 나는 더 이상 못 기다리겠수.” 온구는 나란히 놓인 걸상 두개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허허허… 걸상을 참 재미있게 놓았구려. 조본산하구 송단단이 소품을 하는것 같네. 부끄럽지도 않수?” 김국은 흥 하고 코방귀를 뀌고는 입을 열었다. “부끄럽긴? 당년에 령감이 그 꽃신을 받을 때는 부끄럽지 않았수?” 온구는 김국의 시까스름소리를 들으면서도 일시 뭐라고 할말을 찾지 못해 공손히 걸상에 엉뎅이를 붙였다. 하지만 김국은 인차 온구의 옆에 앉지 않고 갑자기 몸을 돌려 부엌으로 들어갔다. 다시 돌아져나올 때 김국의 손에는 차탁이며 주전자며가 들려있었고 입에는 차잔도 물려있었다. 그 모양을 보고 온구가 급히 일어나 김국의 손에서 물건들을 받으며 목청을 높였다. “세상에… 로친, 무슨 재간을 피우는거유?” 김국은 차탁을 나무걸상앞에 놓은후 걸상에 앉아 차잔에 차물을 부으며 온구를 향해 머리를 까땍했다. “됐어유, 앉아서 차를 마시며 천천히 얘기해봐유. 낯 뜨거운 얘길텐데 입이 마르면 안되지유.” 온구는 걸상에 엉뎅이를 붙이며 입가에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참… 로친두, 못 말린다니까. 이게 와늘 유명한 사람들이 땐스(电视)프로를 찍는것 같지 않수?” 김국이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입가에 웃음을 바르며 말했다. “령감두 워낙 우리 유채파의 명인이 아니유?” “나같은 석공이 무슨 명인씩이나…” “명인이 아니면 어찌 꽃신까지 선물받을수 있었겠수?” 해볕이 참 좋았다. 마당에는 두터운 금빛해살이 한벌 쫙 깔려있었다. 비록 초겨울이지만 사람들에게 초봄인듯한 착각마저 일으킬것 같았다. “날씨가 참 좋지?” 온구가 입을 열었다. “날씨가 좋으면 왜유? 말을 돌리지 말구 얼른 꽃신얘기나 하세유.” 김국이 재촉했다. 온구가 어험 건가래를 떼더니 결심한듯 입을 열었다. “좋소. 그럼 내 얘기를 시작하지.” 김국은 온구의 곁으로 한뽐 다가앉으며 귀를 기울였다. 온구가 정색해서 말했다. “로친, 내가 본론을 얘기하기전에 두가지 요구를 제기하겠수. 반드시 그러마 하구 대답해야 하우.” “무슨 요구라는거유?” 김국이 급히 들이댔다. “누가 그 꽃신을 선물했다는것을 말해도 절대 화를 내면 안되우.” “생각하는것 하구는, 벌써 22년이 지났는데두. 화는 무슨 화를 낸다구 그러우?” “그리구 나에게 성깔을 부려두 안되우.” “알았슈, 성깔을 부리려면 진작 당신을 기 채워 죽였을거유. 됐으니께 얼른 얘기나 하슈.” 김국이 두가지 요구를 다 들어주겠다고 약속하자 온구는 막 입을 열려고 했다. 그때 복아가 마당에 들어서며 알은체를 했다. 김국이 복아를 바라보며 입을 쩝쩝 다시다가 원망 비슷이 한마디 했다. “복아야, 왜 딱 이때에 오는거니?” 온구는 마당에 널려있는 석기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허허허… 돈이 굴러들어오네. 복아는 절구를 사러 온거라우.” 온구의 말이 떨어지기도전에 복아가 차탁앞에 와섰다. 복아는 두눈을 크게 뜨고 웬 일이냐는듯 온구와 김국을 살펴보더니 다시 눈길을 차탁에 옮겨왔다. 잠간후 복아가 입가에 약간 웃음을 띠고 물었다. “아매아바이, 무슨 땐스프로를 찍어요?” “땐쓰프로는 무슨, 볕이 하두 좋아서 차를 마시며 볕쪼임을 하는게지.” 온구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복아가 그래도 못 믿겠다는듯 잠간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참 생활이 재미있으시네요. 나란히 앉아서 차를 마시며 웃고 얘기를 하고… 뭐가 그리 재미나서 막 손짓까지 신나게 하셨어요? 아까 저 마당에서 다 보았어요. 땐스프로를 찍는가 했어요.” 복아의 말에 김국이 얼굴을 붉히며 장황하게 동을 달았다. “산골에 사는 령감로친이 무슨 날구뛰는 재간이 있어서 땐스프로까지 다 찍겠냐? 겨울이라 별루 할 일도 없구 해서 나앉아 볕쪼임을 하는게지. 참 볕이 좋지? 이런 날씨가 어디 흔하냐?” 복아는 김국의 말을 들으면서 머리를 돌려 자기네 집쪽을 바라보다가 후―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우리 아부지, 엄마두 아바이와 아매 같았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분들은 진종일 가두 서로 말씀 한마디 안 나눈대요. 벙어리들 같아요. 아침에 그분들도 마당에서 볕을 쪼였어요. 서로 등을 돌리구요. 마치두 서로 모르는 사람들처럼요.” 온구는 처음에 복아의 말이 믿기지 않아 머리를 들어 복아네 집쪽을 바라보았다. 아니나다를가 리귀와 원봉이도 마당에 나와 볕쪼임을 하고있었다. 복아네 마당에는 동서에 벼짚무지 두개가 있었는데 리귀가 동쪽벼짚무지옆에 누워있었고 원봉이 서쪽벼짚무지옆에 누워있었다. 그들은 모두 잠이 든것 같았다. 김국이 리귀와 원봉을 건너다보고 복아에게 물었다. “복아야, 너네 아부지, 엄마는 왜 나란히 누워서 볕쪼임을 하지 않는다냐?” “우리 엄마는 아부지가 코를 곤다구 꺼리구 아부지는 엄마가 이를 간다구 꺼려요.” “그런게 싫으면 밤에는 어쩐다냐?” 김국의 물음에 복아가 잠간 주저하다가 대답했다. “두분이 다른 침대에서 잔지가 오래요. 벌써 십여년이 됐을거예요.” 복아의 말을 들으면서 김국은 슬쩍 온구를 건너다보았다.그때 온구도 김구에게 눈길을 보내오고있었다. 두 사람의 눈길이 공중에서 부딪치며 반짝 하고 불꽃을 튕겼다. 그 불꽃은 두 사람의 얼굴을 빠알갛게 물들였다. 복아가 용기를 내서 물었다. “아매와 아바이도 잠자리를 갈랐나요?” 온구가 깜짝 놀라다가 “아직은…” 하고 얼버무렸다. 김국이 인차 온구의 말을 받았다. “우리두 진작 갈라야지 하구 생각은 했는데… 우리 집은 워낙 이불이 적어서.” 온구는 그때 절구공이를 주어들고 복아에게 말했다. “절구가 다됐다. 얼른 가지구 가서 부모들께 마늘즙을 내드려라.” “얼마예요?” 복아가 온구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다른 사람이라면 100원을 받겠는데 그저 80원만 내라.” 복아가 절구를 안고 사라지자 김국은 다시 온구를 재촉했다. “인젠 됐지유? 어서 얘기를 시작해봐유.” 온구는 걸상에 앉아 차잔을 들어 입에 가져가며 차분하게 물었다. “어디로부터 얘기하면 좋을가?” “직접 이름만 말해유, 그게 누구라구.” “그럼 당신이 너무 놀랄걸. 그래두 처음부터 천천히 얘기하는게 좋을거유.” 김국이 잠간 생각을 굴리더니 말했다. “좋아유. 그럼 처음부터 들읍시다.” “그날은…” 온구는 이마살을 약간 찌프리더니 아래말을 이었다. “그날은 바로 내 생일 전날이였수. 나는 소를 끌고 방공호부근으로 갔댔지. 방공호앞에 샘물터가 있지 않았수? 샘물터옆에는 오동나무 한그루가 있지. 내가 샘물터로 다가가면서 보니 오동나무가지에 붉은 실 한오리가 걸려있는거유. 실오리가 워낙 가늘어서 찬찬히 여겨보지 않으면 아예 있는줄도 모를거유. 하지만 나는 붉은 실을 한눈에 보아냈구 또 방공호안에서 누가 나를 기다리고있다는것을 알았다우.” “그게, 바루 그게 누군가 말이유.” 김국이 다잡아물었다. “급해하기는? 천천히 들어보슈.” 온구가 김국을 슬쩍 건너다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 붉은 실은 사실 우리만 알고있는 암호였소. 오동나무에 붉은 실이 매여져있으면 영낙없이 안에 사람이 있었지. 방공호에서 나를 기다리는 그 사람은 나의 생일을 알고있었소. 그는 벌써 며칠전에 내 생일 전날에 방공호에서 나를 기다리겠다고 약속을 했었다오. 나에게 생일선물을 주겠다는거였소. 나는 소고삐를 부근에 있는 소나무에 매여놓았소. 그곳은 풀밭이였던지라 소가 마음대로 풀을 뜯어먹을수 있었다우. 나는 풀을 뜯는 소를 잠간 바라보다가 시름을 놓고 흥겹게 방공호로 들어갔다우.” “안에 사람이 있었수?” 김국이 또 참지 못하겠다는듯 물었다. “있었지.” 온구가 짤막하게 대답하고는 푸― 하고 긴숨을 내쉬더니 아래말을 이었다. “방공호안은 손을 내밀어도 보이지 않을만큼 어두웠수. 하지만 나는 안에 들어서자마자 인차 크림냄새를 맡을수 있었다우. 나는 그가 꼭 안에 있다구 확신했수. 그는 방공호에 올 때마다 얼굴에다 크림을 발랐다우. 목이나 가슴에다두 가끔 문대군 했었지. 나는 그 크림냄새를 무척 좋아했수. 그 냄새를 맡기만 하면 애들이 가지고 노는 고무풍선처럼 온몸이 불어나는것 같았다우.” “아유― 길기도… 도대체 그게 누구유? 안에서 둘이 무슨 짓을 했수?” 김국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리고있었다. “분명 로친이 화를 안 낼거라 했수. 화를 내면 나는 말을 안할거유.”     온구가 김국을 건너다보면서 침을 놓았다. “내가 어디 화를 내우? 누군가 묻지를 않수?” “급하긴, 내가 알려준다는데. 그리구 우리 둘이 안에서 무엇을 했겠소? 남녀가 둘이 컴컴한 방공호안에서…” “선물은? 생일선물은?” 김국이 소리치며 온구를 쏘아보았다. “그가 방공호안에서 생일선물을 건네준게 아니라우.” 온구는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리는듯 잠간 말을 끊었다가 천천히 이야기를 이어갔다. “우리는 안에서 급급히 그 일을 치렀다우. 일이 끝나자 그가 먼저 밖으로 나갔수. 나를 보고 한시각 지나서 나오라는거유. 번마다 일을 끝내고는 그가 먼저 밖으로 나가고 나는 한시각뒤에 나갔댔으니까. 남들의 눈에 뜨일가봐 두려웠던게지. 그날 그는 밖으로 나가면서 생일선물을 오동나무에 걸어두겠다고 말했수. 절대 잊지 말고 가져가라면서 김국이 물으면 주은것이라고 말하라 당부까지 했다우. 내가 방공호에서 나와보니 아니나다를가 오동나무가지에 무슨 물건인가 걸려있었는데 가까이 다가가보니 신이였수.” 김국이 갑자기 몸을 일으키며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이 령감쟁이가… 빨리 말하라는데. 그 화냥년이 도대체 누구냐구?” 온구가 얼굴을 흐리우면서 느릿느릿 말했다. “로친이 성을 내면 난 말하지 않을거유.” 김국이 급해서 변명했다. “누가 화를 냈다구 그래유? 당신, 변덕을 부리면 안돼유.” “로친이 지금 화를 내구있지 않수?” 김국이 한풀 꺾여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알았어유. 화를 안 낼테니 빨리 말이나 하슈.” “진작 이렇게 나올게지.” 온구는 입가에 시무룩이 웃음을 피워올리면서 김국에게 그 사람이 누구일가를 맞춰보라고 했다. 김국이 머리를 흔들면서 말했다. “내가 왜 맞춰보지 않았겠수? 제대루 맞추지 못해서 그렇지.” “허허허… 오늘 또 한번 맞춰보구려.” 김국이 눈알을 몇번 굴리다가 물었다. “ ‘조롱박’인가유?” “아니유.” “그럼 ‘야래향’이겠네유.” “그도 아니라우.” 김국은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잠간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설마… 신을 잘 누비던 그 ‘작은아씨’는 아니겠쥬?” “더구나 아니지. 나는 그의 손 한번 잡아본적이 없으니까. 하하하…”  온구가 푸하 웃음을 터치며 머리를 저었다. “그럼 도대체 누구유? 제발 좀 뱅뱅 탈지 마슈.” 김국이 애원에 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온구는 여유작작차 한모금을 마시고는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그 사람은 바로 추홍이였다우.” 김국은 벌떡 뛰여일어나 두눈을 한껏 치뜨면서 물었다. “누누…누구라우?” “추홍이였다니까.” 온구가 다시 확인해주었다. “그럴수 없수, 절대 그럴수 없수.” 김국이 딸랑이북처럼 머리를 마구 젓다가 아래말을 이었다. “추홍이라면 그 부녀주임이잖아유? 부녀주임이 어떻게…” “믿든지 말든지 맘대루 하구려. 나는 이미 알려주었으니까.” 온구의 목소리가 배포유하게 들렸다. 김국은 아무 말도 못하고있었다. 잠간 지나자 김국의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온구가 급히 일어나 김국을 부축하며 긴장한 기색을 하고 물었다. “로친, 괜찮겠수?” 김국이 두눈을 지그시 감은채로 말했다. “머리가 어지러워 그런다우. 집에 들어가 누워야겠수. 나를 좀 부축해주슈.”   4   김국이 온돌방에 들어가 눕자 온구는 옆에 앉아서 근심스러운 얼굴로 김국을 지켜보았다. 김국은 마치도 술에 취하기라도 한듯 두눈을 꼭 감고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반시간쯤 지나자 김국이 정신을 차리는듯싶었다. 김국은 눈을 뜨자마자 온구를 보고 소리쳤다. “당장 여기서 나가슈!” 온구가 깜짝 놀라다가 주눅이 든 목소리로 더듬거렸다. “로…로친, 왜왜…왜 그러우? 우리 약속하지 않았소? 화두 안 내구 성깔도 안 부린다구.” “내가 그래 화를 내구 성깔을 부리는것으로 보이유?” “그럼 화두 안 내구 성깔도 안 부린다는 사람이 왜 나를 쫓아내는거유?” 온구가 볼부은 소리를 했다. 그제야 김국이 약간 부드러운목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너무 힘들어서 그래유, 혼자 있게 해주세유.” 온구는 울며 겨자 먹기로 마당으로 나갔다. 나무걸상에 엉뎅이를 붙인 온구는 눈이나 좀 붙여볼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참이나 지나도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온구는 몸을 털고 일어나 사랑채로 가서 도구상자를 꺼내다가 석기를 다듬기 시작했다. 마당에는 석재가 가득 무져져있었다. 온구는 그 석재들로 아무것이나 만들어낼수 있었다. 온구는 절구를 하나 만들어볼가 생각했다. 아까 복아가 사갔기에 절구가 없었던것이다. 온구는 도무지 일손이 잡히지 않았다. 어이없게도 몇번이나 헛망치질까지 하여 손등을 칠번했다. 온구는 진심으로 김국이를 근심하고있었다. 혼자 온돌방에 누워 무엇을 하고있는지가 궁금했다. 온구는 몇번이나 온돌방에 들어가 김국이 무엇을 하는가를 보고 올가 생각했다가도 지레 겁을 먹고 몸을 움츠렸다. 해가 중턱에 걸릴무렵이 되자 절구홈이 모양을 갖추었다. 이미 점심때가 되였는지라 온구는 살살 배가 고파옴을 느꼈다. 온구는 끝내 온돌방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결심했다. 김국이 온 오전을 온돌방에 혼자 있었으니 화도 어느정도 가라앉았을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또 김국에게 점심밥을 지으라고 귀띔도 해야 했다. 온구는 도구들을 상자에 챙겨넣고 슬금슬금 온돌방으로 들어갔다. 문쪽을 바라고 누워있던 김국이 들어오는 온구를 보고 등을 돌려댔다. 그 바람에 김국의 엉뎅이가 온구의 눈에 들어왔다. 그 동작이 너무도 빨라 잉어가 펄떡이는듯싶었다. 김국의 반상적인 동작에 온구는 그만 참지 못하고 푸하하 웃음을 터뜨리며 물었다. “로친, 아직도 화 안 풀렸수?” “누가 화를 내우?” 김국이 등도 돌리지 않고 대답했다. 온구가 김국의 엉뎅이를 툭 치면서 말했다. “화를 안 내면 좋은 일이지. 그럼 얼른 일어나서 밥이나 챙기우. 배에서 꾸륵꾸륵 란리가 났다우.” 김국이 온구의 팔을 밀치며 바락 소리 질렀다. “추홍이를 찾아갈게지.” “이 말하는 꼴 좀 보우…” 온구가 어설프게 입가에다 웃음을 피워올리며 아래말을 이었다. “추홍이 유채파를 떠난지 언젠데, 어디 가서 추홍이를 찾는단 말이유?” “거리에 가면 찾을수 있지.” 김국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년이 로아진에다 차잎공장을 꾸렸다는걸 몰라서 그러우?” 온구는 뭐라고 일시 대답할수 없어 입만 쩝쩝 다셨다. 푹 숙어진 온구의 머리속에 추홍의 모습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추홍의 아들은 농업전업학교를 졸업한후 로아진에다 차잎가공공장을 꾸렸는데 돈을 많이 벌어 진복판에다 번듯하게 층집도 지었었다. 그후 추홍이와 그의 남편을 진에 모셔갔다. 시간은 류수같이 흘러 추홍이 유채파를 떠난지도 10여년이 되였다. 추홍이 이사를 가서 처음 몇년간, 온구는 가끔 진으로 가서 차잎가공공장에 들려보군 했었다. 온구는 겉으로는 추홍의 남편을 만난다고 했지만 실지는 추홍이를 보기 위한것이였다. 온구와 추홍의 남편은 유채파에 있을 때 관계가 아주 좋았는데 평소 형님, 동생 하는 사이였다. 한번은 김국이도 온구를 따라 진으로 가겠다고 나섰다. “부녀주임을 못 뵌지가 오래됐어유. 보고싶네유.” “그럼 같이 가보세.” 온구가 쾌히 동의했다. 온구가 추홍이를 떠올리고있을 때 김국이도 추홍이에 대해 생각하고있었다. 김국은 그날 온구를 따라 로아진으로 가던 그 정경을 여전히 똑똑하게 기억하고있었다. 그날, 문을 나설 때 김국이 입을 열었다. “전문 시간을 내서 부녀주임을 찾아뵙는데 빈손으로 갈수야 없지요.” 온구가 잠간 무엇인가를 생각하는듯하더니 말했다. “그럼 우리 돌상을 하나 가지구 갈가? 마당에다 놓구 차를 마실 때 쓰게.” “좋아요. 당신이 쪼은 돌상을 볼 때마다 그들은 당신을 떠올릴거예요.” 김국이 기뻐서 손벽을 쳤다. 그들은 돌상에 딸린 작은 돌걸상 4개도 가져다주었다. 그날, 그들은 뜨락또르를 세내여 그것들을 실어갔다. 추홍은 온구네 부부가 선물한 돌상과 돌걸상을 보고 감동돼서 뜨거운 눈물을 줄줄 흘렸다. 온구는 너무도 배가 고파 견딜수 없었다. “로친, 얼른 일어나 밥을 챙겨주우. 배 고파서 죽을 지경이라우.” 온구는 김국의 표정을 살피면서 용기를 내서 또 한번 김국의 엉뎅이를 철썩 때렸다. “추홍이를 찾아가라는데.” 김국은 역시 그 한마디였다. “거리에 있는 사람을…” 온구가 뒤말을 흐렸다. “그럼 거리에 갈거지.” 김국이 바락 소리를 질렀다. 김국의 마지막 말에 온구의 두눈이 번쩍 빛났다. 온구는 거리에 있는 음식점을 머리에 떠올렸던것이다. 사실 거리가 아니여도 촌사무실옆에 작은 음식점이 몇개 있었던것이다. 그래, 오늘 식당놀이나 해볼가? 아까 복아에게 절구를 판돈 80원이 있는데. 한끼는 푸짐하게 먹을수 있을게다. “식당놀이”를 생각하자 온구는 괜히 흥분을 금할수 없었다. 전에 온구는 종래로 촌사무실곁에 있는 그 음식점에 가본적이 없었던것이다. 온구가 시물거리며 김국에게 말했다. “밥 안 챙겨주려면 말구, 설마 내가 굶어죽을라구?” “그래, 추홍이 있는데 굶어야 안 죽겠지.” “추홍에게 가는게 아니여.” “그럼 령감, 또 다른 녀편네가 있다는거유?” 온구가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소리쳤다. “촌에 있는 음식점에 갈거유.” 그 말에 김국이 뭐라고 말할듯 입을 벌리다가 그대로 굳어졌다. 금방 온돌방을 나갔던 온구가 다시 들어와 김국의 옆으로 다가갔다. “왜 돌아왔어요?” 김국이 아니꼬운 눈길로 온구를 쏘아보며 물었다. 온구가 잠간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로친두 나와 함께 가기유. 어쩌다가 식당놀이를 하는데 부인을 옆에 끼구 가야 체면이 서지.” “부인”이라는 말에 김국이 참지 못하고 키드득 웃음을 터치며 말했다. “체면 좋아하구있네. 부인씩이나. 령감이 뭐 총리라두 됐나 착각하는게 아니우? 낯짝이 두꺼운 석수쟁이 같으니라구.” 김국의 얼굴에 웃음이 어리자 온구는 더욱 신나서 손을 내밀어 김국을 당기며 말했다. “낯짝이 두꺼우면 좋은게지 뭐. 어서 일어나슈. 석수쟁이 부인.” 그래도 김국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고 말했다. “가고싶으면 령감이나 가시우. 나는 오늘 밥을 먹고싶은 생각이 없수다.” “그럼 로친은 지금 뭘 하구싶소?” 온구가 물었다. 김국이 잠간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령감하구 추홍이 어쩌다가 눈이 맞았는지를 알구싶수.” 온구가 멋적게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거야 쉽지. 로친이 나와 함께 식당으로 가면 알게 아니유? 식당에 가서 내가 추홍이와 어떻게 눈이 맞았는지를 있는 그대로 다 말해줄게.” 김국이 기뻐하며 바투 들이댔다. “그게 정말이쥬?” “나는 역시 그 한마디라우.” 온구가 여부가 있느냐는듯 대답했다. “어느 한마디를 그러우?” “장부일언 중천금!” 김국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주어입고는 온구의 손을 끌고 문을 나섰다. 음식점은 유채파기슭에 자리잡고있었는데 옆에는 큰길이 뻗어있었다. 근년에는 또 큰길옆에 층집들이 들어앉아서 어느 진의 작은 거리를 방불케 했다. 음직점은 온구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온구네는 마당을 벗어나 뜨락또르길을 따라 10분쯤 걸은후 굽이를 돌아서 층집들이 일어선 거리에 들어섰다. 그 층집들은 촌민들이 외지에 나가 돈을 벌어다가 지은것이였다. 워낙 그들은 유채파골짜기 여기저기에 널려살았댔는데 층집을 짓고 내려와 이웃으로 살아가고있었던것이다. 김국이 전에 의심하던 그 세 녀인도 모두 층집에 살고있었다. 하지만 그들도 모두 김국이처럼 늙은 할머니로 되여있었다. 온구네가 촌사무실에 거의 도착하고있을 때 김국이 문뜩 온구에게 물었다. “오늘 그 세 녀편네를 만나지야 않겠쥬?” 온구가 모르겠다는듯 다잡아 물었다. “세 녀편네라니?” “ ‘조롱박’, ‘야래향’ 그리구 그 ‘작은아씨’를 말이지유.” “왜, 그들을 보기 무섭수?” “무서운게 아니라 좀 미안해서 그러지유.” 온구가 짐짓 모르쇠를 놓으며 물었다. “미안하다니? 왜?” 김국이 얼굴을 약간 붉히면서 말했다. “그때 나는 정말 그 셋중에 꽃신임자가 있는줄 알았다니까유.” “그러게 누가 로친 보구 맘대루 억측을 하라 했수?” 김국이 팔굽으로 온구를 툭 치면서 말했다. “모두 령감탓이라우. 그때 령감이 추홍이라고 알려만 주었어두 내가 왜 그런 억측을 했겠수?” 그들은 너 한마디 내 한마디 주고받으면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잡화점이 눈에 띄였다. 김국은 잡화점문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식당은 저쪽끝에 있는데, 왜 멈췄수?” 온구가 물었다. “아침에 절구를 판 돈에서 10원을 꺼내줘유.” “돈 10원을 해서 뭘 하려구?” “사탕을 사려구유.” “이 로친네가 애들처럼.” 온구가 한심하다는듯 말했다. “내가 먹으려는게 아니유. 그 녀편네들 손군들에게 주려구 그래유.” 그제야 김국의 심사를 알아챈 온구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 사탕을 주고 미안함을 씻겠다 그거로군.” 온구는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여 김국에게 넘겨주었다. 김국은 사탕 한봉지를 손에 사들고 신나서 흔들어보였다. 온구는 그 모양을 보고 푸하하 웃음을 터쳐올렸다. 그러자 김국이 목소리를 높였다. “왜 웃어유? 웃긴?” 얼마 걷지 않아 그들은 “야래향”네 문앞에 도착했다. 그때 “야래향”은 문앞에 앉아서 락화생을 말리우고있었다. “야래향”은 곱게 늙어있었는데 머리는 여전히 깔끔하게 빗어서 얹었고 바지에는 꽃도안까지 수놓았었다. 김국이 다가가서 손자는 어디에 갔는가고 물었다. 학교에 갔다고 했다. 김국은 사탕을 한줌 쥐여주며 말했다. “이 사탕을 손자놈이 오면 주시유.” “야래향”이 어정쩡해있다가 물었다. “혹시 집에 무슨 경사라도 생겼수?” 온구가 인차 해석했다. “아니유, 경사는 무슨. 방금 저 로친이 길에서 돈 10원을 주었다우.” 그제야 “야래향”은 사탕을 받으면서 말했다. “글쎄… 내가 이상하다 생각했지. 암튼 감사하우.”  “작은아씨”네 집에 도착하니 그는 없고 그의 다섯살 나는 손녀가 문앞에 앉아서 고양이를 데리고 놀고있었다. “할머니가 어디 갔니?” 김국의 물음에 손녀가 “할머니는 고모네 집으로 갔어요.” 하고 대답했다. “그랬구나, 너 사탕을 먹을래?” 김국의 물음에 손녀가 기뻐서 “먹을래요.” 하고 대답했다. 김국이 사탕 한줌을 손녀에게 쥐여주었다. 그것을 지켜보며 온구가 말했다. “너의 할머니가 돌아오면 김국할머니가 사탕을 주더라고 일러야 한다.” “알았어요.” 손녀가 사탕을 입에 넣으며 대답했다. “조롱박”의 아들은 특산품수구소를 경영하고있었다. 그는 온구와 김국을 알아보고 뛰여와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올렸다. “두분, 참으로 오랜만이네요.” 김국이 좌우로 두리번거리다가 물었다. “자네 엄마는 왜 안 보이나?” “조롱박”의 아들이 대답했다. “어머님은 뒤울안에서 검정귀버섯을 포장하고있어요.” 온구와 김국은 인차 뒤울안으로 들어갔다. 아니나다를가 “조롱박”은 한창 비닐봉지에다 검정귀버섯을 담고있었다. 온구는 허허 웃으며 롱담을 했다. “자네, 아직도 앞가슴이 조롱박 같나?” “조롱박”이 손으로 앞가슴을 더듬으며 말했다. “언제적의 소리를… 내려앉은지 옛날이라우.” 김국은 나머지 사탕을 모두 “조롱박”에게 주면서 말했다. “참, 오랜만이네그려. 이 사탕이나 맛보게.” “조롱박”이 일부러 목소리를 높이면서 말했다. “세상에, 무슨 이런 성의까지…” “조롱박”네 집에서 나온 그들은 몇십메터를 걸어서 “일과자(一锅煮)”라는 이름의 작은 음식점에 들어갔다. 온구와 김국을 알고있는 음식점주인은 웬 일이냐는듯 두눈을 휘둥그레 뜨고 물었다. “무슨 바람이 두분을 여기까지…” “왜 우리는 못 올덴가?” 온구가 빙그레 웃으며 되물었다. 주인이 게면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것은 아니지만… 어디 두분처럼 멋지게 식당놀이를 하는 어르신들이 있나요?” 온구가 얼굴에 웃음을 가득 담고 주인의 어깨를 툭 쳤다. “참, 듣던중 기분 좋은 말일세.” 료리를 주문할 때 온구가 주인에게 물었다. “여기서 제일 맛 좋은 료리가 어떤것인가?” 온구의 물음에 주인이 더 생각지도 않고 대답했다. “물론 일과자지요. 고기두 풀두 다 들어가니까요. 한가마에 50원입니다.” 온구가 주저없이 말했다. “좋아, 한가마 들이세. 그래, 그게 한가마면 되겠지?” “너무 비싼게 아니우?” 김국이 온구의 눈치를 살폈다. “비싸지 않아, 비싸지 않구말구. 처음으로 ‘석수쟁이 부인’을 음식점에 모셨는데… 한끼 기분 좋게 먹어야지.” 그 말에 김국이 상밑으로 온구를 걷어차며 말했다. “이 두상이, 정말 낯가죽이 두껍네.” 온구는 일과자를 올릴 때 흰술도 반근 가져오라고 했다. 김국은 처음에 술을 마시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자 온구가 김국의 귀에 입을 대고 말했다. “로친두 마셔야 내가 추홍이와 사귀던 옛말을 하지.” 온구가 이렇게 나오자 김국은 두말없이 술잔을 들었다. 너 한잔 내 한잔… 두 로인은 점점 정신이 알딸딸해졌다.   5   온구와 김국이 “일과자”에서 나왔을 때는 오후 3시가 넘어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볕이 좋았는데 오전 8, 9시경과 별반 다름이 없었다. 평소에 술을 마시지 않던 김국인지라 술이 좀 과하니 머리가 어지러워나고 걸음이 비틀거렸다. 온구는 할수없이 김국의 팔을 부축해 걸었다. 그들이 팔을 겯고 촌사무실앞을 지날 때 많은 사람들이 무슨 구경거리나 난듯 나와서 그들을 지켜보았다. 어떤 사람은 대놓고 “정말 사는것 같네.” 하고 부러워했다. 촌사무실앞을 지나 뜨락또르도로로 얼마간 걸으니 갈림길이 나타났다. “잠간 앉았다 가유.” 김국이 먼저 입을 열었다. “좋을대루 하기유.” 온구가 대답했다. 온구가 금방 자리를 찾아 앉자 김국이 온구의 옆구리를 툭 쳤다. “빨리여, 추홍이와의 일을 얘기하슈. 내가 술을 마시면 얘기한다구 하지 않았수?” “급하기는… 내 입술이 바짝 말라든게 보이지 않수?” 온구는 혀끝으로 입술을 적시면서 말했다. 갈림길의 한가닥은 방공호로 통했다. 김국은 방공호로 뻗은 그 길을 바라보다가 뭔가를 생각해낸듯 두눈을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우리 방공호에 가서 샘물을 마시자유. 방공호앞에 샘물터가 있잖수?” 온구가 잠간 무엇인가를 생각하는듯하더니 머리를 끄덕였다. “그것두 좋지. 거기서 집이 멀지 않으니까.” 그들은 걸어서 10분도 채 안되여 방공호앞에 도착했다. 방공호는 문화대혁명시기에 판것이지만 한번도 사용한적이 없었다. 김국은 방공호앞에서 무엇인가를 찾아내려는듯 부지런히 여기저기를 살폈다. 온구는 정말 목이 말랐던지 샘물터에 도착하자마자 물가에 쭈크리고 앉아 손바닥을 쫙 펴서 연신 물을 퍼마셨다. 얼마간 갈증이 가라앉을무렵에 김국이 다가와 물었다. “꽃신을 걸어두었다던 그 오동나무는 왜 보이지 않수?” “벌써 잘라버린지 오래다우.” 온구가 대답했다. 김국이 호― 하고 한숨을 내쉰후 말했다. “그 아까운 오동나무를… 왜 베버렸대유?” “하지만 그루터기는 아직 있을걸.” 온구가 말을 마치고 샘물터 가까이를 돌면서 찾아보았다. 아니나다를가 샘물터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오동나무그루터기가 있었다. 그루터기는 썩지 않았는데 국사발만큼 통사리가 굵었고 높이는 반메터 정도 되였다. 걸상으로 쓰기 좋을것 같아 온구는 그 그루터기에 엉뎅이를 붙였다. “거기에 앉으니 행복하지유?” 김국이 얼굴에 묘한 웃음을 담으며 물었다. “행복하지.” 온구가 정말 행복에 도취된듯 두눈을 스르르 감았다. “잘됐구려, 목도 마르지 않겠다, 행복하게 옛 나무를 찾았겠다… 인젠 그 풍류사를 더듬어도 되겠지유?” 그제야 온구는 자기의 허벅다리를 툭 치며 말했다. “알았소, 잘 들으라구. 옛말은 그 절구로부터 시작되였지.” 그해 여름의 어느날, 김국은 부녀대회에 참가하고 집으로 돌아와 온구에게 말했다. “부녀주임이 당신 보고 래일 집에 와서 절구를 만들어달라고 했어요.” 온구는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간부들에게 석기를 만들어주는 일은 하고싶지 않은데… 그들에게서 어찌 돈을 제대로 받을수 있겠소?” “그래두 가서 하나 만들어주세요. 부녀주임은 좋은 사람이니 섧게 대하지 않을거예요.” “당신의 면목을 봐서 갈수 밖에 없구려.” 온구가 대답했다. 이튿날, 온구는 추홍이네 집으로 찾아갔다. 추홍이는 차물을 따라주고 담배를 권하면서 아주 살갑게 굴었다. 그날 점심에는 또 랍육(蜡肉)까지 삶아주는것이 무슨 귀한 손님을 초대하는것 같았다. 온구도 있는 솜씨를 다해서 일을 제껴나갔다. 오전 9시에 일을 시작했는데 오후 3시가 되자 끝났다. 그때 추홍의 남편은 일하러 밭으로 나가고 추홍이만 집에 있었다. 온구가 추홍이를 불러 절구를 검사해보라고 했다. 그러자 추홍이 온구를 보고 살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급할게 없어요. 저 먼저 가서 목욕을 하고 올게요.” 추홍은 목욕을 마친후 비단옷을 바꿔입고 나왔는데 옷이 너무 엷어서 안에 입은 팬티까지 다 보일 지경이였다. 추홍의 모습을 본 온구는 너무도 놀라 두눈이 휘둥그래지고 얼굴이 확확 달아올랐다. 추홍이는 또 크림을 얼굴에 발랐는데 그 냄새가 온구의 코구멍을 파고들었다. 절구는 추홍이네 뒤뜰에서 보기로 했다. 온구는 절구공이를 절구홈에 넣었다. 새로 다듬은 절구공이는 매캐한 돌가루냄새를 풍기고있었다. 추홍은 먼저 절구홈을 살펴본후 절구공이를 꺼냈다. 추홍은 한손으로 절구공이를 들고 다른 한손으로 절구홈을 만지면서 얼굴에 묘한 웃음을 띠였다. “이 절구홈과 절구공이가 무엇 같아요?” “절구공이는 오이 같구 절구홈은 모자 같지유.” 추홍이 머리를 저으면서 말했다. “그보다 더 같은게 있어요. 생각해보세요.” 온구가 급히 물었다. “더 같은게라니요? 뭘가요?” 추홍이 온구에게 눈을 끔쩍해보이며 신비하게 말했다. “이것들이 남자와 녀자의 그 물건과 똑같지 않아요?” 추홍이는 말을 마치고 절구공이를 다시 절구홈에 밀어넣은후 힘을 다해 몇번 찧어보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온구는 추홍이 무슨 생각을 하고있다는것을 금세 알것 같았다. 온구는 갑자기 두팔을 쫙 벌려 으스러지게 추홍을 끌어안았다… 온구는 여기서 갑자기 말을 끊었다. “그래, 그렇게 바루 잤수?” 김국이 바투 들이댔다. “아니, 그렇게 잠간 안고있는데 추홍이 나를 밀어내더군. 제 남정네가 돌아올가봐 두려웠던게지.” “그럼 언제 또 만나서 자기 시작했수?” 김국의 목소리가 여전히 떨렸다. “그날 오후 다섯시쯤이였을게유.” “어디서?” 온구는 직접 대답을 하지 않고 손을 들어 뒤에 있는 방공호를 가리켰다. 김국은 멍하니 방공호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누가 먼저 이곳을 생각해낸거유?” “추홍이 생각해낸거지. 그가 나를 보고 다섯시에 그곳에 오라고 했소. 만약 오동나무가지에 붉은 실이 걸려있으면 바루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소.” 온구의 말이 끝나자 김국이 몸을 돌려 방공호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온구가 김국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안되우. 몇십년을 사람이 드나들지 않았는데 위험할수 있수.” 김국은 온구의 말을 들은체도 않고 기어이 안으로 들어가며 소리쳤다. “말리지 마우, 나는 기어코 들어가볼거유.” 온구는 더 으스러지게 김국을 잡아끌며 말했다. “그래두 오늘은 안되우. 기어코 들어가보겠으면 후날에 손전지를 가지고 와서 다시 들어가기유.” 온구가 애원하듯 말해서야 김국은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날, 온구와 김국은 방공호앞에 오래동안 머물다가 석양이 불타오를무렵에야 돌아섰다. 뜨락또르도로가 굽이를 도는 그곳에서 김국은 걸음을 멈추고 온구를 보면서 말했다. “우리 래일 로아진으로 가유.” 그 말에 온구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로아진에 가서는 뭘 하려구?” “추홍이를 보려구.” 온구가 긴장해서 말했다. “로친, 설마 가서 성깔을 부리려는게 아니지?” 김국이 담담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22년이나 지난 일인데 무슨 성깔을 부릴게 있수.” “그럼 왜 가보겠다는거유?” “모르겠슈. 갑자기 부녀주임이 보고싶어 그러우.” 온구는 김국의 말이 진정으로 들려 큰 결심을 내린듯 말했다. “좋소. 그럼 래일 가는거로 하기유.” 집에 거의 도착할 때 그들의 뒤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 돌아다보니 복아였다. 복아의 어깨에 화학비료 한자루가 메워져있었다. 복아가 높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매아바이, 식당놀이를 하셨다면서요? 참으로 멋지게 사셔요.” “식당놀이 한번 한게 그렇게 멋져?” 온구의 말에 복아가 부러운듯 말했다. “그럼요. 어디 우리 아부지, 엄마 같을라구요. 진종일 밖에는 한발작도 나가려 하지 않지요. 그들의 생활은 얼마나 따분할가요?” 온구가 어깨를 으쓱하며 신나서 한마디 했다. “래일 우리는 또 로아진에 가기로 했다.” 온구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김국이 온구의 옆구리를 꼬집으며 욕했다. “참으루 얼굴이 두껍구려. 로아진에 왜 가는지 잊고 떠들어대는것은 아니겠쥬?” 온구가 김국의 말을 받으며 하하하 웃었다. 김국이도 호호호 웃음을 터쳐올렸다. 웃음소리가 통쾌하게 울려퍼졌다. 그들의 얼굴에 피여난 웃음꽃은 불타는 석양보다도 더 찬란했다.   효소(晓苏), 1961년 출생. 1983년 화중사범대학 중문전업 졸업. 1985년에 문학창작을 시작하여 이미 400여만자의 작품을 발표. 소설집 《산사람 산밖의 사람(山里人山外人)》, 《검은 등(黑灯)》,《구희(狗戏)》,《금미(金米)》등이 있음. 현재 화중사범대학 문학원 교수로 사업. 1급작가. 중국작가협회 회원.      
8    호불귀(胡不归) * 적안 댓글:  조회:1762  추천:0  2013-07-03
단편소설     호불귀(胡不归)   적안     사실 그는 75세부터 85세 사이의 십년에 대해 만족하지 않았다. 그 십년사이 그는 내내 죽음이 두려워 전전긍증했었다. 언제라도 그 십년을 돌이켜보면 늘 부끄럽고 난처했다. 75세 되던 해가 1982년이였던지 1983년이였던지는 딱히 기억되지 않지만 그해 제일 작은 손녀가 태여났다는것만은 확실했다. 그날 그는 엄숙하게 두눈을 꼭 감고있는 어쩌면 거대한 파충 같은 손녀를 넌지시 바라보았다. 그는 갑자기 손녀가 못견디게 미워났다. 손녀가 너무 작은것이 미웠고 그 애가 자라 성인이 되는것을 볼수 없다는것에 분노를 느꼈으며 손녀가 일부러 그렇게 늦고 작게 태여난것만 같아 화가 치밀었고 또 의식적으로 자기가 이 세상을 떠난후 건강하고 이쁘게 자라 소박하거나 섹시한 녀인으로 되려는것 같아 참을수 없었다. 그는 자기에게 죽음을 예언하는 모든것에 혐오감을 느끼고있었다. 안해는 진작 그의 기분을 꿰뚫어본것 같았다.  “손자가 셋이나 되지 않아요? 그러니 이번에 손녀를 본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지요. 애 눈이 얼마나 커요? 입술선도 선명하게 살아있구요. 크며는 꼭 얼굴이 반반하다는 소리를 들을거예요.” 안해는 만족되는듯 머리를 끄덕이다가 말을 이었다. “성이는 1978년에 태여났지요. 그리구 올해 손녀가 태여났으니 이 두 애는 참으로 명이 좋다고 해야지요. 우리 가정의 힘든 나날이 다 지난후에 태여났으니 참으로 제때를 만나 태여났다고 할만 하거든요…” 두눈을 쪼프리며 웃는 안해의 코등에 가는 주름이 보였다. 그는 안해의 말을 듣는지 마는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안해는 태여난 애가 녀자애라고 그가 뿌루퉁해 있는것이라고 생각하는것 같았다. 안해는 늘 자기의 마음을 빌어 그의 모든것을 추측하고있었다. 그와 함께 하는 시간이 길수록 안해는 더구나그의 뼈속까지도 속속들이 들여다 보고있다고 자신하는것 같았다. 그 바람에 그는 자기에게 속하는것인지 아니면 안해에게 속하는것인지도 모를 그 추측들을 당연한 자기의 일부분으로 알고있었다. 하여 그는 종래로 안해에게 그런것들을 구태여 해석하려고 하지 않았다. 작은 손녀가 태여나서 6개월이 되였을 때 그는 한차례의 검진을 받은적이 있었는데 바로 그 검진에서 자기가 암에 걸렸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날 그는 병원 복도의 긴 걸상에 앉아서 처음으로 저승사자를 보았는데 어쩌면 그보다도 나이가 어린듯싶었다. 60살이나 됐을가? 그는 나름대로 사색을 굴렸다. 하지만 젊은이들의 눈에는 그나 저승사자나 모두 늙은이로 보일것은 당연한것이였다. 저승사자는 볼품없이 낡았지만 깨끗하게 손질을 한 중산복을 입고있었다. 만약 안해가 저승사자의 중산복을 보게 된다면 보증코 첫마디로 “원단이 참 좋네요.” 하고 말할것이라고 생각했다. 저승사자의 얼굴은 온화하고 자애로와보였는데 첫눈에도 쉽게 접촉할수 있는 사람, 아니 쉽게 접촉할수 있는 신으로 느껴졌다. 저승사자는 스스럼없이 그의 앞에 놓여진 낡은 장의자에 앉아 습관적으로 두손을 무릎우에 올려놓았다. 저승사자는 입을 열기전에 먼저 호주머니에서 누렇게 된 위생종이 한장을 꺼내여 힘껏 코를 풀었다. “요즘 날씨가 참 좋네그려?” 저승사자가 드디여 어색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면서 먼저 입을 열었다. “저… 얼마나 남았는지요?” 그는 저승사자를 향해 온화한 목소리로 물으면서 오른손을 호주머니에 넣어 곱게 접은 화험단을 꼭 움켜쥐였다. 그는 온갖 정성을 다하여 화험단을 네모나게 곱게 접어서 호주머니에 넣었던것이다. 그는 그것으로 자신이 랭정하게 현실을 받아드렸다고 확신했다. “뭐가 얼마나 남았는가구 물었수?” 저승사자가 모르겠다는듯 되물었다. 그 목소리에는 조금도 거짓이 없는것 같았다. 신이라는 그 량반이 구사하는 표준어는 그보다도 더 서툴었는데 딱히 어디 방언이 섞여있는지는 가늠할수 없었다. “나를 데리러 온것이 아닌가요?” 그는 억지로 입가에 웃음 한점을 피워올리면서 마음속에 내려앉은 그 쓸쓸함에 만족을 느껴야 한다고 자신을 다독였다. 그 처량함은 필경 자존심으로부터 생겨나는것이라고 믿고있는 그였다. “오― 그 문제를 물은거유?” 저승사자의 목소리가 차츰 틀이 잡히기 시작했다. “사실 이 문제는 그리 대단한것이 아니유. 해결하자면 아주 쉬우니까.” 저승사자는 여유작작 담배를 꺼내더니 그를 보지도 않고 입속으로 웅얼거렸다. “성냥이 어디 있더라?” “저…저는 페암이거든요.” 그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서 저승사자를 보고 말을 이었다. “그러니 내쪽에 대고 담배를 피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비록 의사의 말로는 내가 운이 좋아서 초기에 암을 발견했다고하지만요…” 저승사자는 어디서 성냥을 찾아냈는지 끝내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말했다. “괜찮소, 담배 한대때문에 무슨 일이 있을라구.” 그도 사실은 저승사자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비록 75세가 되던 그해 많은 일들을 겪기는 했지만 여전히 스스로가 매우 천진했었다고 생각했다. 근 30년이 흐른뒤에도 그는 자기가 어떻게 사형판결서와도 같은 화험단을 억지로 접었고 그때 손가락이 어떻게 떨렸으며 나중에는 또 어떻게 화험단의 아래, 우 귀를 딱 맞춰냈는가를 똑똑하게 기억하고있었다. 화험단의 아래, 우 귀를 잡아서 백분의 백으로 딱 맞게 접어내는 순간 그의 오른손 식지와 중지와 무명지는 신통히도 평면을 이루었다. 그는 아래, 우 귀가 꼭 맞게 놓인 화험단에 힘을 주어 손가락들을 쓱 그었다. 화험단은 그의 손가락들에 순간적으로 따끔한 느낌을 주면서 깔끔하게 접혀졌다. 그는 다시 손가락들에 힘을 주어 접혀진 그 부분을 여러번이나 그어댔다. 그러한 동작들을 반복하면서 그는 스스로도 얼마나 어색하게 느껴지는지 알수 없었다. 그런 어색한 장면을 회억할 때마다 그에게는 그 어색함을 피면하는 나름대로의 방법이 있었다. 매양 그렇게 몸둘바를 모르게 하는 장면이 머리속에 떠오를 때마다 그는 흥얼흥얼 코노래를 불렀는데 곡조는 당시의 기분에 따라 정해졌다. 최근 20여년간, 그는 비교적 유쾌하고 밝은 곡조의 노래를 흥얼거리기 좋아했는데 그 노래들은 그가 1948년에 해방구에서 배운것이였다. 1948년에 그는 이미 40살을 넘겼었지만 그 노래들을 부를라치면 마치 어린애 같았다.   그는 참으로 바보였지, 소문난 바보였지 삼 더하기 사가 칠인줄도 모르고 팔이라 하겠지 그는 참으로 바보였지, 소문난 바보였지 아홉살에 엄마로 되였다고 자랑하겠지 그는 참으로 바보였지, 소문난 바보였지 보초를 서라니 귀신이 잡으러 올가 무섭다 하겠지 하하하… 우습구나, 여러분들 말해보슈 귀신이 어데 있다고 그런 얘기 하는지 그가 왜 바보 같을가, 문화가 없기때문이지 글을 읽으면 바보를 면할수 있지   그는 간단하면서도 재미나는 이 민요를 고집스럽게도 매일 반복했다. 그때면 그는 의식적으로 스스로에 대한 조소를 노래에 담아냈는데 그러느라면 어색한 추억들이 머리를 움츠리군 했다. 이 노래를 배울 때 그는 교원이였는데 해방구의 어린이들과 촌민들에게 글을 가르쳤다. 그는 군데군데 떨어져나간 소흑판에다가 수자보를 적고 아래에 가사를 적어나갔다. 그러다가도 틀린 글자가 있으면 급급히 팔소매로 쓱쓱 닦았다. 그 일이 끝나면 군중들앞에 나서서 힘있게 손을 저으며 노래를 지휘했다. 그의 얼굴에는 언제나 알릴듯 말듯한 자부심 같은것이 어려있었는데 어쩌면 오직 혁명자의 눈길만이 보아낼수 있는 광채 같은것인지도 몰랐다. 그의 표정은 언제나 다른 사람들보다 몇배는 더 당당해보였다. 그는 자기의 표정이 밝고 자신감에 넘쳐야 그 노래의 선률을 흥겹게 표달할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몸은 군중들에게 노래를 배워주면서 점점 더 흥분했고 그럴수록 그는 노래에 빨려들어갔는데 힘껏 당겨진 활을 방불케 했다. 그는 그 신비로운 정토에서 늘 자신의 복잡한 과거때문에 일종의 공포감 같은것을 느끼고있었다. 그는 젊었을 때 북양시기의 학당을 졸업했고 후에는 또 일본사람이 경영하는 공장에서 오래 동안 일을 했던것이다. 그러한 공포감은 오직 노래를 배워줄 때라야만 다소 사라지는듯싶었다. 그는 자기가 새롭고 합리하고 아름다운 사물을 선택했기에 흘러간 청춘을 되찾을 기회를 가지게 되였고 그로 하여 천진란만한 어린이의 감수를 다시 느끼게 되였다고 믿었다.  그는 누군가의 긍정을 받고싶었고 포상을 받고싶었으며 용서를 받고싶었다… 그의 생명은 그러한 기다림속에서 흐르는 세월과는 상관 없을 만치 강력하게 변해갔다. 그의 웃음과 눈물도 더 이상 그의 존엄을 념두에 두지 않았다. “할아버지, 저하구 얘기하는거예요, 아니면 혼자서 중얼거리는거예요?” 그날, 그는 보청기를 끼고있었기에 손녀 녕향의 목소리를 똑똑하게 알아들을수 있었다. 그는 자기의 입술이 약간 벌려져있다는것을 느꼈다. 그때 그는 마음속에서 흐르는 곡조에 따라 반복적으로 노래를 부르고있었던것이다. 그는 자신이 두시간전에 무엇을 먹었던지를 기억하지 못했지만 반세기전에 배웠던 그 노래만은 기억하고있었다. 그는 손녀에게 뭐라고 대답하지는 않았지만 조용히 입술을 꼭 다물었다. 사실 녕향은 진작 그의 무관심에 습관이 되여있었다. 104세에 나는 그는 이미 녕향의 눈에 요물로 보인지 오랬었다. 하기에 녕향은 종래로 보통사람들의 표준으로 그를 바라본적이 없었다. 14년전, 식구들이 모여서 그의 90세 생신을 쇠여드리는 순간에도 녕향은 핸드폰으로 친구와 통화를 했었다. “오늘 진짜 몸을 뺄수 없을것 같아. 우리 할아버지가 오늘 90세 생신을 쇠거든… 쇼핑은 아무때나 할수 있지만 우리 할아버지는 정말 힘들게 오늘까지 사셨거든. 그러니 손녀인 내가 어찌 축하를 하지 않을수 있겠니?” 녕향의 아버지 즉 그의 막내아들이 녕향의 통화를 엿듣고 마뜩찮은 눈길로 흘겨보았다. 그때만 해도 그는 청력이 좋아서 웬간한 소리는 다 들을수 있었다. 그는 사실 누구앞에서도 승인하지 않았지만 몇몇 손자손녀들중에서 녕향을 제일 이뻐했다. 그것은 녕향이 제일 어려서가 아니였고 그가 그렇게 이쁘지는 않지만 그래도 약간 자색을 갖춘 녀인으로 자라주어서도 아니였다. 식구들은 모두 그를 공경스럽게 대했지만 녕향만은 그의 몸에서 흐르는 세월의 흔적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것이다. 그만치 녕향의 몸에는 천성적으로 익살스러운데가 있는것 같았다. 녕향은 스스로도 자기의 스스럼없는 웃음뒤에 일종의 심각한 랭혹함이 서려있다는것을 모르는듯싶었다. 그는 바로 녕향에게서 풍기는 그 랭혹함을 좋아했다. 녕향은 그가 앉아있는 휠체어앞에 다가와 허리를 굽히고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 방금 무슨 말을 하려고 했죠?’ 녕향은 가볍게 그의 얼굴을 보듬어주었는데 그 모습은 마치도 그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방불케 했다. 녕향의 뒤에 놓여진 쏘파에는 그의 18살에 나는 손자가 꼬부리고 누워있었다. 그는 이 가정의 제4대로서 그의 장손의 아들이였다. 그 애는 고집스럽게도 녕향을 “고모”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 애는 누나벌로밖에 보이지 않는 녕향이 어떻게 “고모”로 되는지 리해가 되지 않아했다. 그 애는 그 여름이 지나면 대학에 입학하게 되였다. 식구들은 그에게 악을 쓰고 몇년 더 살아서 5대까지 보라고 했다. 그도 가끔은 5대가 태여나면 어떤 모습일가 하고 상상한적이 있었다. 5대라고 해도 모양은 같을것 같았다. 두눈을 꼭 감고 도톰한 입술을 오물거리며 아무런 뜻도 담기지 않은 동물성적인 소리를 낼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누구에게도 5대를 보고싶다는 말을 할수 없었다. 그는 자기가 주역을 맡은 드라마가 이미 너무도 오래 동안 이어져왔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던것이다. 제5대로 태여나는 손군은 사실 자기와 아무 관계도 없을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보통사람들이 엮는 드라마가 30집 푼하다면 자기가 엮어가는 드라마는 이미 300집에 이르렀다고 느껴졌다. 이 드라마는 길다는 의미에서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부여했고 그 호기심때문에 사람들은 이 드라마가 도대체 얼마나 오래 이어지는가를 보고싶어하는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이 드라마는 그가 75세 나던 해에 종말을 고할번한적이 있었다. 그는 수술이 성공적이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맹아상태에 있던 종류를 깨끗하게 도려냈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던것이다. 수술을 맡았던 의사는 그가 사는 도시에서 제일 유명했다. 관건은 암세포가 다른 곳으로 확산되는가를 자세히 관찰하는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같은 락관적인 말도 병상을 둘러선 가족들의 얼굴에서 근심을 몰아가지는 못했다. 그날 그는 처음 저승사자를 보게 되였다. 저승사자는 빙그레 웃음을 띠고 안해와 큰 며느리 사이에 서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순간에 지나지 않았다. 그가 거슴츠레한 눈을 완전히 떴을 때 저승사자는 벌써 사라지고 없었다. 모든게 너무도 갑작스러워 그는 미처 어떻게 반응도 하지 못했다. 75살이라 그럴만도 하지, 게다가 방금 암수술까지 받았으니 행동이 느릴만도 한게지. 그는 입가에 쓸쓸한 웃음을 피워올렸다. 행동만 느려진것이 아니라 정서마저 무감각해졌다고 생각되였다. 그는 애써 팔을 들었다. 스스로라도 자신이 아직 살아있다는것을 증명하고싶었다. 팔이 약간 우로 올라갔지만 검버섯이 가담가담 피여난 손등은 볼수 없었다. 안해는 그의 쇠약한 팔을 잡아다 이불속에 넣어주며 말했다. “팔은 왜 꺼내요? 힘들게…” 그날새벽, 그는 드디여 저승사자와 단독으로 만날수 있었다. 병상을 지킨다는 맏아들은 그때까지도 잠을 자고있었다. 그는 맏아들의 피곤한 얼굴을 바라보면서 어쩜 자기보다 먼저 갈수도 있지 않을가 하는 허무한 생각을 해보았다. 저승사자가 그한테로 다가올 때 병실에서 한가닥의 빛이 번쩍이는것 같았다. 새벽이라고 하지만 그는 똑똑하게 저승사자의 얼굴을 가려볼수 있었다. “맘대루 하시죠.” 그는 저승사자를 보고 웃지 않았다. 스스로도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는 평소 누구에게나 깍뜻하게 례의를 갖추었지만 저승사자를 보고는 웬지 “교양”이라는 허울을 벗어버리고싶었던것이다. 그는 사람과 신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사람과 사람의 관계와 다르다고 생각했다. 이 점에 대해 그는 누가 구태여 배워주지 않아도 알수 있었다. “뭘 맘대루 하라는거유?” 저승사자가 물었다. “지금 바로 갑시다. 날자를 골라 가느니보다 이렇게 만났을 따라가는게 더 좋을듯하군요.” 그는 자기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있다고 느꼈다. “왜 그리 급해하는거유?” 저승사자가 그를 보고 빙그레 웃으며 아래말을 이었다. “언젠가는 떠날 길인데, 급해하는 그 모습이 보기 안 좋구려.” “기다리기 갑갑해서 그럽니다.” 하지만 이 말을 할 때 그의 표정은 그렇게 평온할수 없었다. “이보소, 거짓말을 하지 말게나.” 저승사자는 익숙한 동작으로 침대가에 걸터앉아 이윽토록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바로 지금 데려가주시오, 안되겠습니까? 식구들이 없는 이 순간이 얼마나 맞춤합니까? 아들놈도 잠을 자고있는데요.” 그 말을 하면서 그는 자기에게 더 이상 죽음에 대한 불안을 표달할만한 기력마저 없다는것을 의식하고있었다. “정말 그렇게 급한거요? 날 밝기마저 기다리지 못하겠다는거요?” 저승사자는 마작상에 앉아 벙글거리는듯한 표정이였다. 그는 지그시 두눈을 감았다. “그렇습니다.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겠습니다. 이미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무엇을 더 바란단 말입니까?” “이렇게 비관할것까지는 없을텐데.” 느릿느릿 말을 이어가는 저승사자는 허물없는 이웃집 나그네를 방불케 했다. 그는 정신을 집중하고 호흡을 딱 멈추었다. 그는 하얀 빛이 반짝이는 어둠에 자기의 의지를 모았다. 잠간후 그는 마치도 큰 결심을 내린듯싶었다. “그런 말을 마십시오. 정말 더 기다리고싶지 않습니다. 수고 많았습니다. 지금 갑시다. 내 소원을 들어주시오.” “소원이라니? 생사는 지천명이라고 했소. 나는 그저 길잡이에 지나지 않소. 다른 일들은 내가 말해도 소용이 없소.” 저승사자의 표준어는 점점 더 표준에서 멀어지는것 같았다. 아마도 탕개를 늦추니 몸에 배여있던 방언이 머리를 쳐드는것 같았다. “그래도 기다리라면 자신이 없습니다. 내 마음을 알겠습니까?” 그는 천천히 두눈을 떴다. 그는 이 말을 할 때 반드시 두눈을 떠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기의 진정을 보여주는 이 말을 할 때 두눈을 감고 평온한 표정을 짓는다는것은 자기의 뜻에 어울리지 않는것이라고 생각했다. “자네, 참 쉽지 않구려. 후―” 저승사자는 큰 짐을 벗어버린듯 길게 숨을 내뿜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 승인하게나. 지금 두려움에 떨고있는거지?” “누가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겠습니까? 말해보시오. 그래 진정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 사람을 본적이 있단 말입니까?” 그는 자기의 속심을 숨김없이 들어내보였다. “본적이 있지. 자네는 영웅을 본적이 없소?” “그렇습니다. 나는 영웅이 아니여서 죽음을 두려워 합니다. 내 대답이 만족스럽겠지요?” “내가 만족스러운것 하구는 별도의 문제지. 설사 죽음을 두려워 한대도 그건 얼굴이 깎이는 일이 아니거든. 나같은 저승사자앞에서 얼굴이 깍이는것을 두려워 할 사람도 없을게구.” “나는 이미 죽음을 두려워 한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완전히 공포에 빠지기전에 빨리 나를 데려가주시오.” “참으로 답답하구려. 자손들이 가득한데 좀더 느긋한 모습을 보여주면 안되우?” “그래서 더구나 그들에게 떠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겁니다. 지금 그들이 보지 않을 때 빨리 떠나면 안되겠습니까?” “안되오. 그들이 보면 뭐라우? 자네는 자손들로 하여금 자네가 죽음을 두려워 한다는것을 모르게 하려는게지. 그렇게 사느라니 피곤하지도 않소?” “물론 피곤하지요. 그래서 더 살고싶지 않다는겁니다. 빨리 나를 데리구 떠나주시오.” “뭐라구? 다시한번 큰 소리로 말해보오. 자네 방금 어쩌고싶다 했지? 참―” 저승사자는 약간 흥분에 젖은 목소리로 탄식을 했다. “나…나는…” 그는 말끝을 잇지 못하고 두눈을 감았다. 가까스로 다잡고있던 자신의 정서를 본래의 면목 그대로 놓아버린것이다. “정녕 나를 데려가지 않을수 있단 말입니까? 나는 사실 죽고싶지 않습니다. 비록 빨리 떠나고싶지만 나는 너무도 죽음이 두렵습니다. 도대체 내가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겠단 말입니다. 그러니 나를 영원히 살게 해주시오…” 그는 이 말을 할 때 자기가 울고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오줌을 흘렸던것이다. 그는 두눈을 떴다. 창밖이 푸름푸름 밝아오고있었다. 담록색 빛이 창문으로 새여 들어와 눈섭을 간질렀다. 그는 아래몸에 걸쳐져있는 바지며 침대보가 오줌에 푹 젖어있다는것을 느낄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어쩔수 없었다. 자기의 몰골을 생각하니 허구픈 웃음이 흘러나올뿐이였다. 맏아들이 잠에서 깨여났다. 머리칼이 푸수수하고 눈에는 여전히 잠기가 어려있었다. 맏아들은 초점없는 눈길로 그를 바라보면서 길게 하품을 했다. 그는 맏아들을 불러 바지를 갈아입혀달라고 청들고싶었다. 막 입을 열려던 그는 문득 잠투정을 하던 맏아들의 어릴 때 모습을 보는듯싶었다. 맏아들에게 자기의 루추한 몰골을 보이고싶지 않았다. 저승사자를 만나 길고도 굴욕적인 이야기를 나눈 사실도 알려주지 않기로 했다. 그는 아버지라는 신분을 다시한번 자각하고있었다. 비록 그 순간 바지가 오줌에 절어있고 침대보가 질퍽해 있을지라도… 그는 애써 자애로운 표정을 지으면서 아들을 바라보았다. 그는 반드시 좀더 사랑이 담긴 눈길로 세상을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제 와서 이것저것 따질것도 없다고 느꼈다. 만약 그때가 정말 림종이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가? 20년후, 맏아들의 장례에서 그는 이렇게 생각했었다. 그 생각을 하면서도 그의 마음속에는 세상에 대한 어느 정도의 미련이 남아있었다. 거기서 모든것을 끝낸다면 이를데 없이 좋았을것이다. 하지만 사람 목숨이란 뜻대로 되는것이 아니였다. 물론 자기의 뜻대로 세상을 사는 사람도 없는것은 아니지만. 일부 사람들은 뜻대로 살고 뜻대로 죽을수도 있는데 그런 삶을 모두어보면 대개 우아하다고 할수 있었다. 하지만 그 “우아함”뒤에 수많은 정밀한 고리들이 이어져 있다는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맏아들은 60살 나던 해 심근경색으로 돌아갔다. 그는 맏아들을 조문하러 온 사람들이 자기를 훔쳐보고있다는것을 직감했다. 사람들은 맏아들의 돌연적인 사망으로 하여 타격을 받고 그도 인차 떠날것이라 근심하는것 같았다. 90살을 넘긴 로자에 대한 그 같은 근심은 맏아들의 사망으로부터 오는 비감과 그리움을 달래주는듯싶었다. 그는 웬지 앞서 떠나간 맏아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맏아들의 장례식에서 그는 시종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런 눈길속에서 그는 조용히 자신의 첫 아들을 머리속에 떠올렸다. 맏아들은 항일전쟁이 승리를 거두던 해 중경에서 태여났다. 그와 안해는 공기 좋은 어느 아침에 가릉강변에서 만났다. 그해 그는 30살이였고 안해는 19살이였다. 넓다란 강변에 서서 그를 바라보는 안해의 두눈은 수시로 깜빡이고있었는데 저도 몰래 그로 하여금 고향의 호수를 떠올리게 했다. 그는 벌써 몇년이나 고향의 호수를 보지 못하고있었다. 그의 앞에 서있는 열아홉살의 녀대학생은 마치도 하늘가에 걸려있는 깜찍한 초승달처럼 고향에 대한 그의 그리움을 불러주었다. 그는 그녀에게 말했다. “내가 산 부부페편(夫妻肺片)을 먹었으니 그쪽은 나와 부부로 되여야 하오.” 그녀는 놀라운 눈길로 그를 바라보면서 얼굴을 붉혔다. 그녀, 아니 안해도 맏아들도 이미 이 세상에 없다. 안해를 처음 만나던 60년전의 그날에 보았던 강물도 아득한 그 옛날에 벌써 어디론가 자취를 감췄을것이다. 하다면 오늘의 가릉강에 더 이상 그 어떤 의미도 부여할수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안해는 그가 암수술을 해서 4년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웬지 자신이 안해의 생명을 갉아 먹은듯한 죄책감이 들었다. 안해가 만약 자기의 병시중을 드느라 힘들지 않았다면 얼마든지 오래 살수 있었을것이라는 생각이 갈마들었다. 그는 안해를 처음 보던 그 순간에 벌써 안해가 그렇게 견강하고 튼튼한 녀자가 아니라는것을 알았다. 안해와 달리 일부 녀인들은 확실히 태여날 때부터 윈시인들이 숭배하던 토템처럼 그 어떤 곤난도 이겨낼수 있을듯 튼실해보였던것이다. 안해는 몸매가 가냘프고 뼈골이 약했다. 기나긴 생명의 진화과정을 살펴볼 때 안해와 같이 생긴 생명체는 세상에서 소실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되였다. 수술을 하고난후 그는 늘 안해에게 “빨리 죽어야겠는데, 당신을 힘들게 할가봐 두렵구려.” 하고 말했었다. 하지만 그도 속으로는 이 말이 진심이 아니라는것을 알고있었다. 그때문인지 저승사자는 확실히 그 몇년 동안 한번도 나타난적이 없었다. “나 홀로 남는다면 무슨 살멋이 있겠어요?” 이 말을 하면서 안해는 손바닥을 가볍게 그의 어깨에 올려놓았다. 그때 그는 병원 복도의 의자에 앉아있었고 안해는 그의 옆에 오도카니 서있었다. 화학치료를 기다리는것이였다. “괜한 소리를. 애들이 돌봐줄게 아니요?” 그는 내심하게 안해를 설복하려고 했다. “애들은 이미 다 자라지 않았나요? 그 애들이 하는 말을 나는 하나도 알아들을수 없어요.” 그는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아래말을 이었다. “그래도 당신이 이렇게 살아있는게 좋아요.” “하지만 나는 이제 곧 떠날거요.” 그 말을 하고나자 웬지 가슴이 갑갑해났다. “그런 말씀 마세요. 하루를 살아도 편하게 살아야죠.” 안해는 일분일초가 아까운듯 차분하게 그를 위안했다. “그럴테지. 당신도 나에게 며칠 남지 않았다는것을 승인하는게지?” 그는 갑자기 말 못할 분노가 느껴졌다. “당신, 점심에 무엇을 자실래요?” 안해가 살갑게 물었다. “안 먹어!” 그는 소리치며 안해를 쳐다보았다. 순간 그는 자기의 눈길에 그 어떤 원한이 담겨져있을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자기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필경은 자기가 없게 될 이 세상에서도 잘 살아가게 될것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엔 자기를 가끔 떠올리기도 하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기가 없는 그 공간을 다른 무엇으로 메워가면서 완전한 호수를 이루어갈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도 또 혹시 자기를 떠올릴 때가 있겠지만 그때 자기는 벌써 호수에 거꾸로 비춰진 그림자에 지나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할라치면 분노가 치밀었고 쓸쓸함이 덮쳐들었다. 그는 가끔 저승사자가 왜 자기를 데리러 오지 않을가 하는 생각을 굴려보았다. 오직 저승사자라야만 자기의 분노와 쓸쓸함을 알아줄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왜 내가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자식들을 떠나기 아쉬워 한다고 생각하는걸가? 나는 하루 빨리 떠나고싶은데…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그는 뭔가가 시름이 놓이지 않는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회색 중산복을 입은 늙은이들이 여럿이나 병원 복도에 있었지만 그중에 저승사자는 없었다. 그의 가슴은 차츰 높뛰기 시작하였다. 높뛰다 못해 호흡마저 가빠졌다. 그는 저도 몰래 손을 올려 가슴을 문다졌다. 별 이상은 없는것 같았다. 그는 입가에 가는 웃음을 피워올렸다. 그래, 어느 암환자가 심장병으로 마감길을 간적이 있었던가? 암환자가 심장병으로 갈 확률이 많지 않다고 느꼈기에 그는 자기의 심장이 당금 폭발할것 같았고 당금 타번질듯 뜨거워났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런 증상때문에 죽지는 않을것이라고 확신했던것이다. 그러한 느낌속에서 그는 매일 안해와 비슷한 대화를 반복했다. “빨리 죽어야 할텐데, 당신을 힘들게 할가봐 두렵구려.” “나 홀로 남는다면 무슨 살멋이 있겠어요?” “괜한 소리를. 애들이 돌봐줄게 아니요?” “애들은 이미 다 자라지 않았나요? 그 애들이 하는 말을 나는 하나도 알아들을수 없어요. 그래도 당신이 이렇게 살아있는게 좋아요.” “하지만 나는 이제 곧 떠날거요.” “그런 말씀 마세요. 하루를 살아도 편하게 살아야죠.” “그럴테지. 당신도 나에게 며칠 남지 않았다는것을 승인하는게지?” 절망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여기와서 생겨나군했다. 두 사람이 주고 받는 거짓말은 흐르는 물처럼 거침이 없다가도 어찌해서 여기까지 와서는 번마다 진심을 들어내군했던것이다. 그는 자신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나는 무엇때문에 안해가 “하루를 살아도 편하게 살아야죠.” 하고 말한후 침묵을 하지 못하는것일가? 그리고 안해는 왜 “당신은 먼저 갈수 없어요. 당신의 몸은 꼭 회복될거예요.” 하고 말해주지 못하는것일가? 하지만 그는 또 인차 무엇인가를 알수 있을것 같았다. 만약 안해가 정말 “당신의 건강은 꼭 회복될거예요.” 하고 말한다면 더구나 분노를 느낄것 같았던것이다. 그는 이 말이 너무도 황당하다고 느껴졌다. 누구도 진실을 말할수는 없지만 또 너무 황당한 거짓말을 해도 안된다고 생각되였다. 이것이 바로 생활이라고 그는 믿고있었다. 그 몇년간 그는 날로 쇠잔해 가는 안해의 모습을 보고도 별다르게 의식하지 못했다. 그리고 하루 다르게 조폭해지고 불안해 하는 안해의 정서도 읽어내지 못했다. 안해는 검진을 받으러 그를 배동하여 병원에 갈 때면 늘 그보다도 걸음이 느렸었다. 병원에 새로온 호사는 되려 안해가 환자인줄로 오해하기까지 했다. 어느날, 시집갔던 딸이 그들과 함께 살겠다고 찾아왔다. 그는 사뭇 놀란 눈길로 딸을 바라보며 웬 일인가고 물었다. “어머니 건강이 날로 못해가는게 안보여요? 내가 와서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를 돌봐야지요.” 그는 딸의 그 말이 참으로 귀에 거슬린다고 생각되였다. 하지만 딸은 그의 이런 심정을 조금도 헤아리지 못하는것 같았다. “참으로 미안하구나. 애비가 오래 살아서 너를 힘들게 하네.” 그는 의식적으로 목소리에 가시를 박았다. “아버지.” 딸은 못마땅한듯 목소리를 높이며 아래말을 이었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그날이후, 딸은 그의 원쑤로 되였다. 딸의 일거일동은 그에게 오래 사는것은 그리 좋은 일이 아니라고 알려주는것 같았다. 그는 늙은 몸으로 살아가려면 어딘가 요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로부터 그는 딸과 대화할 때면 언제나 “애비가 오래 살아서 너를 힘들게 하네.”로 끝냈다. 시간이 흐르자 딸은 아예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하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아침, 그는 혼자 식탁앞에 앉아 안해가 뜨거운 콩물을 가져다주기를 기다렸다. 오랜 시간이 흐른듯싶었다. 딸은 그때 주방문앞에 서있었다. 그는 딸이 자기를 주시하고있다는것을 직감할수 있었다. 딸이 문득 입을 열렀다. “아버지, 여위신것 같아요.” 그는 흥 하고 코방귀를 뀌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죽을 날을 받아놓은 사람이 어찌 여위지 않을수 있겠냐?” 그 말에 딸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소리에는 오래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따스함이 녹아있는듯싶었다. 딸은 웃음끝에 호― 하고 한숨을 짓더니 입을 열었다. “제가 콩물을 떠다드릴게요. 어머니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어요. 좀더 쉬라고 해야죠.” 하지만 안해는 영원히 일어나지 못했다. 자다가 뇌출혈이 생겼던것이다. 안해는 그처럼 조용히 떠났다. 그는 안해의 죽음이 작다 못해 그 이상 더 작을수 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마치도 늘 상에 올리던 콩물 한사발을 잊고 올리지 않은것만치나 작은 일로 생각되는것이 이상스러웠다. 몇달후, 그의 80세 생일이 지나서 며칠 안되여 의사가 그에게 말했다. “축하합니다. 수술한지 만 5년이 지났는데 도지지 않는군요. 아마도 암세포가 말끔히 살아진것 같습니다.” 그 일이 있은후 딸은 자기의 가방을 들고 그의 집을 떠났고 또 며칠이 지나서 작은 아들네 세 식구가 그의 집을 찾았다. 작은 아들은 그가 혼자 있는것이 시름이 놓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작은 아들이 사는 단칸방이 불편해서일것이라고 나름대로 생각했다. 녕향은 그해 다섯살이였다. 녕향의 미간에는 빨간 점이 작게 나있었다. 이렇게 시작된 그들의 동거는 어느덧 25년을 이어가고있었다. 이는 누구도 짐작하지 못한 일이였다. 작은 아들네가 집에 들어오던 그날밤, 저승사자가 그를 찾아온적이 있었다. 그는 길게 들숨을 쉬고는 일어나 침대에 앉아 저승사자를 보고 말했다. “의사가 그러던데 내 병이 다 나았답니다.” 말을 마치고난 그는 자신이 사리분별이 잘 안되여 저승사자를 보고 이런 말까지 할수 있었다고 후회했다. 저승사자는 얼굴에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의사는 의사로서의 일이 따로 있는게지. 그들은 병만 볼뿐 생사는 관계할수 없다네.” 그는 무겁게 머리를 저으면서 말했다. “왜 딱 지금 찾아온겁니까? 바로 지금에 말입니다. 2년전에 왔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때 나는 마음속에 아무런 상념도 없었더랬는데요.” 저승사자도 천천히 머리를 저었다. “자네, 참으로 세상물정을 모르는구려. 나와 생사를 두고 흥정을 하려는거요?” 그가 푸―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나는 5년을 뻗쳐왔단 말입니다. 지금 간다면 그 5년철에 미안하지 않겠습니까?” 저승사자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에게 있어서 그 5년은 실로 너무도 보잘것 없는것이요. 나는 그저 자네를 안해에게 데려다 주려는것뿐이요. 자네의 안해는 지금 그곳에서 혼자 외롭게 세월을 보내고있단 말이요. 자네는 안해한테 가는게 즐겁지가 않소?” 어떻게 대답했으면 좋을지 몰라 망설이는 그를 보고 저승사자가 물었다. “자네들은 50년간 부부로 살았었는데 보고싶지도 않단 말이요?” “보고싶죠. 꿈에서도 보고싶습니다.” “그렇지. 내가 보건대도 자네는 꿈에서나 보고싶어하는것 같소.” 저승사자는 잠간 말을 끊고 허허 웃더니 아래말을 이었다. “사실 이 세상은 진작 자네와 아무 상관도 없게 되였단 말이요. 자네의 자식들을 보오. 그들은 모두 나름대로의 인생을 살고있소. 자네는 허수아비처럼 이 세상에 남아있는데 그래 외롭지도 않단 말이요?” “물론 외롭지요.” “그래서 자네를 데려가려는거요. 우리 함께 자네 안해가 있는 곳으로 가기요.” “아직 그럴 생각은 없는데요.” “자네가 아니고 안해가 먼저 죽었다는것이 기분 좋은것은 아니겠지?” 그는 저승사자의 돈후한 얼굴을 이윽토록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당신은 신인데 어찌 인간들의 사정을 알겠습니까?” “하지만 나는 자네가 지금 살아있는것을 아주 다행스럽게 생각하고있다는 사실만은 잘 알고있다네.” “언젠가는 나도 이 곳을 떠나게 될겁니다. 그때면 로친을 다시 보게 되겠지요.” “보게나. 자네 지금 살아있는것을 얼마나 행복해 하는가?” “그러니 나를 데려가지 마십시오.” 말을 마치고난 그는 마치도 무거운 짐을 벗어내친듯 홀가분한 심정이였다. 저승사자는 모르겠다는듯 머리를 저으며 진심으로 말했다. “사는게 진정 그렇게 좋소?” “아니요.” 그는 저승사자를 바라보면서 또박또박 아래말을 이었다. “나는 이미 사는데 습관이 되여버렸을뿐입니다.” “이런 리유라면 나도 접수할수 있을것 같구려.” 저승사자의 말은 그리 똑똑하게 들리지 않았다. 어쩌면 저 멀리 하늘가에서 울려오는듯싶었다. 순간 그는 저승사자와의 몇차례 만남을 어떻게 끝 맺었던지 잘 생각나지 않았다. 번마다 저승사자와의 만남을 떠올릴 때면 시간이 그 만남으로부터 얼마간 지난후인것 같은 느낌이였다. 그 만남을 떠올릴 때면 언제나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고 심장에 돌멩이가 떨어져 내린듯 가슴속 깊은 곳에서 물보라가 튕겨올랐다. 그는 다시한번 암환자는 절대 심장병으로 죽지 않는다고 확신했다. 그는 이 생각을 얼마나 많이 했던지 스스로도 알수 없었다. 그는 늘 자신은 암세포와 5년간의 사투를 벌렸고 의사가 자기를 보고 이미 암세포를 물리쳤다고 했기에 절대 심장병으로 죽지 않을것이라고 장담했다. “할아버지.” 녕향의 작은 몸체가 빠끔히 열려진 문틈으로 보였다. “왜?” “나 오줌 누고싶어.” 그는 힘들게 침대에서 내려와 끌신을 찾아신었다. “그래, 오줌 누러 가자.”  끌신 끌리는 소리가 방안에 울렸다. 녕향은 금방 그의 집에 왔기에 화장실문이 세탁기가 놓인 바로 옆이라는 사실을 자주 잊군했다. 그는 녕향의 작은 손을 끌고 화장실쪽으로 다가갔다. 그때 그의 마음은 말 못할 “감동”으로 설레이고있었다. 그는 저승사자가 아닌 손녀가 자기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에 감동하는것 같았다. 그는 녕향을 위해서라도 살수 있는 한 악착같이 살아낼것이라고 마음 먹었다. 녕향이 자라 성인이 되는것까지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생각을 하면서 그는 저승사자의 너털웃음소리를 듣는것만 같았다. 그후의 몇년간 그는 늘 “죽음”이라는 낱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간혹 옛 친구들을 만나도 자기의 “죽음”을 두고 롱담을 했는데 대개는 잊지 말고 자기의 장례음식을 먹으러 오라는것과 같은것이였다. 그는 어떤 음식을 상에 올리는것이 좋으냐를 두고 친구들과 상론도 했다. 친구들은 정말 상에 올릴 음식을 두고 진지하게 토론을 벌리기까지 했다. 그는 작은 아들에게 자기가 죽은후에도 자기 집에 눌러 살라고 당부했다. 대신에 책장에 가득 꽂혀있는 책들을 잘 처리해야 한다고 조건을 달았다. 그는 생각 같아서는 책들을 녕향에게 물려주고싶지만 녕향이 책보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자신이 출근했던 단위의 도서관에 기증을 해도 된다고 소원했다. 전에 그의 암을 치료했던 의사가 그믐날에 전화를 걸어와 설인사를 올렸다. 그는 목소리에 힘을 주면서 말했다. “관심에 감사 드립니다. 나는 아직도 살아있습니다.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게 신비할따름입니다. 하하하…” 웃음소리는 전화선을 타고 울려나갔다. 바로 그 무렵부터 그는 진작 잊은줄로 알고있던 그 오래된 민요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참으로 바보였지, 소문난 바보였지/삼 더하기 사가 칠인줄도 모르고 팔이라 하겠지...” 사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있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그는 당년에 자기들이 새로운 시대, 새로운 세상을 창조했듯이갖은 유머와 락관적인 태도로 죽음이라는 현실을 대체하려고 했던것이다. 그는 자신이 남에게 억지로 보여주는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 정신력”으로 죽음을 전승하려고 발버둥질 치고있었던것이다. 그는 그러한 노력을 들여야만 좀더 오래 살수 있을것이라고 착각하고있었다. 암수술후의 두번째 5년은 그렇게 흘러갔다. 그뒤의 기억들은 그리 똑똑하지 않았다. 눈 깜빡 할 사이에 세상은 살같이 흐르고있었다. 그는 지나온 기억들을 하나하나 잃어가면서도 질풍같이 달리는 세월의 말발굽소리는 똑똑히 듣는것만 같았다. 그는 사람들이 자기가 암에 걸렸었다는것조차 잊은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언제부터일가? 딱히는 알수 없지만 대개는 자기가 종이기저기를 착용하던 그때부터일거라고 생각되였다. 그의 청력과 시력은 나이에 비해 괜찮다고 할수 있었다. 하지만 다리는 점점 말을 들어주지 않더니 나중에는 반석처럼 굳어버렸다. 객실로부터 화장실 사이의 거리가 그에게는 고대의 두 봉화대 사이의 거리만치나 멀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미 종이기저기를 착용했기에 그 거리가 얼마나 멀든지 별 문제가 아니였다. 그의 몸은 어쩜 모래가 휘날리는 전쟁마당으로 변해버렸는지도 모를 일이였다. 암세포마저 그의 몸에서 잠들고 화석으로변했으니 말이다. 종이기저기를 착용하면서 그를 찾아온것은 날로 늘어가는 막연함뿐이였다. 그는 차츰 자기의 몸에서 풍기는 무엇인가가 부식되는듯한 그 냄새에도 그렇게 신경이 쓰이지 않았고 객실에서 누군가 자기의 바지를 벗겨놓고 몸을 씻어주는것에 대해서도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으며 졸음이 올 때 느침이 흘러내려 옷섶을 적시는것도 개의치 않았다. 하기야 느침이 흘러 옷섶을 적셨다 해도 잠간이면 말라버리는데 무슨 대수랴. 느침이 인차 마르지 않는다 해도 또 무슨 대수랴? 그는 친구들이 전화를 걸어와 다른 친구들의 부고를 전해도 무감각해 했다. 딱히 어느때부터인지는 기억에 없지만 어느날부터 간병인이 찾아와 매일 3시간씩 그를 씻어주고 닦아주고 옷을 갈아 입혀주고 먹여주느라 분주하게 돌아쳤다. 간병인은 워낙 이웃집에서 일을 하던 사람이였다. 그와 30년을 이웃하여 살고있는 나그네는 그보다 20살이나 젊었는데 알츠하이머병을 앓고있었다. 그 나그네에게는 괴상한 증상이 있었는데 간병인이 머리를 숙이고 몸을 씻겨줄 때면 갑자기 덮쳐들어 간병인의 어깨를 물어버리는것이였다. 간병인은 약들을 접시에 놓아주며 그를 보고 말했다. “내 어깨에 난 이빨자국을 좀 보세요. 어제밤까지도 피가배여나와 무서워 죽는줄을 알았어요. 그 사람에 비하면 로인님은 정말 행복해요. 90세가 넘었는데도 정신이 말짱하니까요. 이웃집에서 일할 때면 언제 퇴근시간이 되나 시계만 쳐다봐요. 그집 일을 빨리 끝내고 로인님을 보러 오고싶어서요.” 그는 간병인을 보고 어뚱하게 물었다. “손님이 있소?” 간병인은 잠간 멍해있다가 대답했다. “아니, 없는데요.” 그는 여전히 덤덤한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잠을 잘 때도 없었나?”  “그럼요. 손님이 오면 내가 어련히 로인님을 부르지 않았을라구요.” 그는 저승사자가 오래동안 오지 않는게 이상하다고 생각되였다. 그는 저승사자를 만나보고싶었다. 그렇다고 해서 기어코 저승사자를 따라가려는것은 아니였다. 구체적으로 따라가는가 마는가 하는것은 분위기에 따라서 다시 상론해볼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는 저승사자의 편하고 온후한듯 하면서도 어딘가 교활함이 어려있는 그 얼굴을 보고싶을뿐이였다. 그 무렵, 저승사자처럼 그를 흥분하게 하고 격동하게 하는 사람이나 물건들이 별로 없었다. 언젠가 그는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지팡이를 짚고 이웃집으로 간적이 있었다. 그날 그는 웬지 이웃집나그네를 꼭 한번 만나보고싶었다. 하지만 이웃집나그네는 진작 그를 기억하지 못하고있었다. 그는 처량한 눈길로 이웃집나그네를 마주보기만 했다. 이웃집나그네는 그를 보면서 연신 알아들을수도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이웃집나그네의 아들이 긴장된 눈길로 그를 바라보고있었는데 그 표정은 마치도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을 지켜보는듯 했다. 잠간후 이웃집나그네의 아들이 그의 집으로 건너가 간병인을 불러왔다. 그들은 합심해서 그를 부축해 세웠는데 마치도 귀중한 골동품을 다루는듯한 긴장함을 내비쳤다. 간병인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로인님, 담에 다시 오기로 하고 오늘은 집에 가서 약을 드십시다.”  그는 알겠다는듯 머리를 끄덕이다가 힘껏 머리를 돌려 이웃집나그네를 바라보며 말했다. “담에 또 당신 보러 올거요.” 이웃집나그네는 갑자기 어린애들처럼 두팔을 쩍 벌리면서 히스테리적으로 소리 질렀다. “당신에게 실말을 하오만 그것은 내 뜻이 아니였소. 일본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하라고 핍박을 한거요. 그들이 나를 보고 그 녀자를 강간하라고 협박했소. 정말 그들이 나를 핍박한거라니까.” 간병인은 이웃집나그네를 바라보면서 웃음을 참느라 킬킬 거렸는데 마치도 재미있는 드라마를 보는듯한 표정이였다. 그는 99세가 되던 해에 녕향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그날도 손님들은 결혼식보다 그를 “참관”하는것을 더 흥미있어 하는것 같았다. 그는 눈꺼풀이 무거워 뜨는듯 마는듯 하고있었다. 결혼식장을 장식하느라 띄워놓은 고무풍선이 포도송이처럼 안겨들었다. 그는 누구에게도 특별히 아는체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를 보는 사람마다 먼저 허리를 굽적거리며 얼굴에 웃음을 피워올렸던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보통 그러한 얼굴로 갓난애나 참대곰을 어를것이라고 생각했다. 저승사자는 하얀 보를 씌운 밥상 사이에 서서 그를 바라보며 간교한 웃음을 질질 흘리고있었다. 그는 저승사자가 따사로운 해빛속에서 그를 향해 다가오는것을 보았다. 저승사자는 그와 하얀 드레스를 차려입은 녕향의 사이에 와서 걸음을 멈추었다. “오랜만이네요.” 그는 저승사자를 향해 진심으로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구려.” 저승사자는 담담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저승사자의 나이가 자기 아들들또래나 될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는 자기가 지나온 쇠락의 시간이 보통사람들의 일생만치나 길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우리 인젠 갑시다.” 그는 잠간 말을 끊고 저승사자를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인젠 떠날 때가 됐겠지요?” “여전하시구려.” 저승사자가 입가에 웃음을 띄우며 아래말을 계속했다. “자네는 그래 정말 살고싶으면 살고 죽고싶으면 죽을수 있다고 생각하는건가? 그것도 자기가 제일 죽고싶을 때 죽을수 있다고 말일세. 생사가 그렇게 뜻대로 된다면 자네를 어찌 사람이라고 할수 있겠나?” “내 뜻은 내가 전처럼 죽음을 그렇게 두려워 하지 않는다것을 알려주고싶을뿐입니다.” “축하하네. 자네가 그 경지에 이르러서.” 저승사자의 말에는 짙은 조소가 어려있었지만 그는 이미 그런것에 습관이 되여있었다. “이번엔 진심입니다. 하지만 역시 조금도 두렵지 않은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허공에 대고 손을 허우적거리다가 말끝을 맺았다. “이번엔 꼭 나를 데려가주십시오.” 저승사자가 바투 들이댔다. “정말 생각을 굳힌겐가?” “정말입니다.” “무엇때문이지?” “전에는 죽음만 생각하면 두려웠습니다. 두려워 죽을것 같았지요. 하지만 인젠 두려움에 지쳐버렸습니다. 지쳐버리니 되려 두렵지가 않습니다. 당신을 따라 가는게 더 행복할듯 합니다. 지금 죽으면 모든것이 그처럼 안락하게 느껴질것 같습니다.” “거짓말을 하지 말게나.” 저승사자는 엄숙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언젠가도 이런 말을 하는 그를 본적이 있다고 생각하는것 같았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사는것이 죽는것보다 더 두렵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던게지?” 저승사자의 목소리에는 전에 없던 처량함이 묻어있었다. 저승사자가 푹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는 왜 그렇게 실말을 하기를 두려워 하는가?” “믿기지 않으면 맘대루 생각하십시오.” 그는 볼부어 소리쳤다. 순간 그는 자기의 몰골이 이웃집 나그네와 흡사할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 녕향의 챙챙한 목소리가 울렸다. 그는 힘겹게 눈길을 소리나는 쪽으로 돌렸다. 녕향이 손짓을 했다. “할아버지, 함께 사진을 찍는게 어때요?” 그는 100세 생일을 침대에서 쇠였다. 100세를 살아가던 어느날 그는 자기가 완전히 움직일수 없다는것을 의식했다. 그날부터 휠체어는 그의 신체의 일부분으로 되였다. 팔도 굳어져서 누군가 그의 입에 밥을 떠넣어줘야 했다. 언어능력도 떨어져서 누구도 그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는 말을 하고싶었고 또 능히 말을 할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도 사실 자기가 말을 하는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라는것을 알고있었다. 하여 그는 아예 말을 할수 없는것처럼 위장하리라 마음 먹었다. 그렇게 되면 자기가 사람들을 보고 말을 하지 않아도 실례는 안될것이라고 생각되여서였다. 그는 휠체어에 앉아 이웃집에서 나는 동정에 귀를 기울였다. 누군가 놀라는듯한 고함소리가 들리고 고통스럽게 몸부림을 치는듯한 동정이 나더니 이윽고 이웃집나그네의 욕지거리가 터져나왔다. 이어 강아지가 놀라서 왕왕 짖어댔다. 그는 문어구에 놓아둔 개사료를 이웃집나그네가 훔쳐 먹어서 생긴 해프닝일것이라고 짐작했다. 이웃집나그네의 아들이 하는 소리가 그것을 충분하게 증명한다고 믿었다. 그의 작은 아들은 퇴직을 하던날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인젠 남아 도는게 시간이거든요. 제가 아버지를 잘 돌봐드리겠습니다.” 귀밑머리가 희슥희슥해진 작은 아들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고혈압을 치료하는 약들을 복용했다. 그는 104세가 되였다. 녕향은 29살에 과부로 되였다. 녕향의 남편은 어느 비 오던 날밤에 술을 마시고 차를 몰다가 고속도도로의 란간에 부딪쳐 당장에서 목숨을 잃었던것이다. 그는 녕향이 음침한 표정을 한채 가방을 들고 집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똑똑히 보았었다. 그는 두눈을 지그시 감고 저승사자에게 물었다. “신이라는 당신이 뭔가 착각한게 아닌가요?” 그는 매일 텔레비죤을 보았다. 아니 그가 본다기보다 식구들이 텔레비죤을 볼 때면 그의 휠체어를 당겨다 텔레비죤앞에 놓아주었다. 텔레비죤에서 방송하는 프로가 뉴스든 경제프로든 드라마든 관계없이 텔레비죤을 들여다보고있으면 그만이였다. 누군가 갑자기 다른 채널을 돌려놓아도 그는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가 텔레비죤을 바라보다가 네모난 그 막에서 혹시 저승사자를 볼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바램같은것을 하고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저승사자가 어느때 어디에서 나타날지는 누구도 알수 없었던것이다. 그것은 깊은 밤이였다. 작은 아들과 며느리는 대학교 동창만회에 참가하러 나가고 없었다. 녕향은 쏘파에 앉아서 몇분에 한번씩 채널을 바꾸어댔다. 그는 멍하니 텔레비죤만 바라볼뿐 녕향의 신경질적인 행동에는 아무 불만도 없었다. 그는 텔레비죤프로보다도 조용한 여름밤에 풍기는 공기중의 촉촉한 느낌을 더 좋아하고있었다. 녕향이 손에 들었던 리모컨을 내려놓았다. 그때 텔레비죤에서는 대화프로를 방송하고있었는데 내용은 석유가격과 중동전쟁의 관계에 대한것이였다. 녕향은 얼굴도 돌리지 않고 한참이나 웃어제꼈다. “할아버지, 참 재밌죠? 그 사람이 죽은 이 몇달간 저는 왜 한번도 울지 않았을가요?” 녕향은 뭔가를 알고있다는듯 잠간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어나갔다. “할아버지는 알고있을거예요. 사실 나는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년에 나는 그가 모는 차에 앉아 다니면서 진작 그 점을 의식했어요. 그에게는 속도를 빨리면서 안전띠를 풀어버리는 습관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나는 웬지 그 위해성을 끝까지 그에게 귀뜸하지 않았어요. 그 습관이 계속되면 꼭 사고를 칠것이라는것을 명확하게 알면서도 말이죠. 할아버지, 사람의 행동이란 참으로 이상하죠? 분명 그 습관이 위험하다는것을 알면서도 속도가 빨라질 때면 나까지 가끔 안전띠를 풀어버린거 있죠? 내가 안전띠를 푸는것을 보면서도 그는 못 본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할아버지, 이건 무엇때문일가요?” 녕향은 잠간 한숨을 내쉬고 아래말을 이었다. “할아버지, 나는 왜 울지 않을가요? 할아버지에게만 미리 말씀 드리는건데요, 저는 많은 사람들앞에서 우는것을 제일 싫어해요. 그래서 할아버지의 장례식에서도 울지 않을수 있어요. 하지만 그건 절대로 내가 할아버지를 그리워하지 않아서가 아니예요. 이 점을 꼭 기억해주세요. 될수 있겠죠?” 그는 녕향을 바라보며 덤덤하게 말했다. “그래, 울지 마라. 나는 너의 마음을 충분히 리해할수 있으니까.” “나는 할아버지가 능히 말할수 있다는것을 진작 알고있었어요.” 녕향은 그를 바라보며 다섯살 나는 계집애처럼 천진하게 웃음을 빼여물었다. 그날밤, 우뢰소리가 들렸다. 그는 두눈을 꼭 감았다. 자기의 몸이 목 마른 식물처럼 비를 기다리고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저승사자가 침대머리에 앉아있었다. 그들은 서로 마주 보며 시무룩이 웃음을 피워올렸다. “갈 때가 됐겠지요?”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런것 같네.”  저승사자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는 저승사자를 보기 시작해서 처음 긍정적인 대답을 들었다고 생각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는 두눈을 감았다. “정말 미련이 없다는게지?” 저승사자는 한숨을 내쉬였다. 그는 저승사자를 바라보면서애써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다. “그렇습니다. 당신의 말은 틀린데 없습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나는 정말 사는게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요즘엔 사는것도 그렇게 두렵지 않습니다. 그러니 바로 때가 된게 아닌가요?” 그는 저승사자가 약간 허리를 굽히고있다고 느껴졌다. 이어 웃음기를 띤 저승사자의 목소리가 귀속을 파고들었다. “자네에게 한가지 비밀을 알려줘야겠네. 내가 왜 자꾸 자네를 찾아오는지 알고있는가? 나는 사실 모든 사람들에게 이같은 관심을 가지고있는게 아니라네. 자네는 이 나라에서 가장장수한 사람이라네. 그러니 길이길이 력사에 남아있을거네. 자네보다 더 장수한 사람이 나타나 자네를 대신할 그때까지는 말일세. 그러니 너무 급해 말게. 아직도 갈 때가 멀었으니까.” 그는 더 으스러지게 두눈을 감았다. 그의 눈앞에 스치는것은 지난세기 60년대말에 그가 살았던 농장이였다. 그날 그는 소를 방목해야 했다. 하지만 그날아침에 그는 조심하지 않아 신을 잘못 신었다. 두발에 모두 왼쪽신을 신었던것이다. 진종일 발이 불편했지만 그는 책임자에게 차마 신을 바꿔 신으러 가겠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로동시간에 신을 바꿔 신으로 간다는것은 당시 또 하나의 죄증으로 될수 있었던것이다. 책임자는 그가 일하기 싫어서 일부러 신을 짝짝이로 신고나왔다고 할수 있었던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자기가 신을 짝짝이로 신어 걸음을 걷기 힘들어 하는것을 재미나게 바라보고있다는것을 알고있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그때 그 눈길들은 지금 간병인이 이웃집나그네가 개사료를 훔쳐먹는것을 살필 때의 그 눈길과 다를바 없다고 생각되였다. 그는 느릿느릿 걸음을 옮기는 황소에게 기대서서 퉁퉁 부어오른 오른발을 왼쪽다리뒤에 숨겼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못한듯 위장하면서 태연한 목소리 중얼거렸다. “석양이 참 좋구나!” 그는 자신이 그 맵시로 이미 100년을 위장하여온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막연하게 나마 자기의 애원을 듣고있었다. “제발 빕니다. 빨리 나를 데려가주십시오.” 그는 아무리 빌어도 소용이 없을것이라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그의 앞에 펼쳐진것은 알른알른 빛이 나는 장판이였다. 어쩌면 그것은 신의 령지일것이고 자기는 그 장판을 닦는 사람에 지나지 않을것이라고 생각되였다. 때물이 흐르는 구질구질한 밀걸레는 “죽고싶지 않아 하는 사람”이나 “살고싶지 않아 하는 사람”들의 갈망 같은것일것이라고 느껴졌다. 그는 다시한번 저승사자를 향해 구걸했다. 아니, 엄숙하게 말해서 응당 간구했다고 해야 할것이다. 필경 그를 마주한것은 신이였으니까. 하지만 그게 무슨 구별이 있을가? 창문유리를 두드리는듯한 소리가 들렸다. 밖에서 비가 내렸다. 이제 곧 5대가 한집에서 살수 있을것이였다.   적안(笛安), 녀, 1983년 산서성 태원시에서 출생. 빠리 제4대학, 프랑스고급사회과학원을 졸업. 2003년부터 소설을 발표. 《천당을 고별하다》, 《련꽃은 얼굴과 같고 버들은 눈섭과 같아라》,《서결(西决)》, 《동예(东霓)》등 장편소설이 있음. 현재 《문예풍상(文艺风赏)》잡지 주필로 사업.  
7    황금엽* 종리화 댓글:  조회:1805  추천:0  2013-05-02
단편소설   황금엽(黄金叶)   종리화     1   선근이는 확실히 눈썰미가 좋았다. 그는 진작 엽아와 소만이의 일솜씨를 보아냈다. 엽아는 녀자지만 그가 살고있는 묘령에서는 손가락에 꼽힐만한 일군이였다. 엽아는 푼더분하게 생겼다. 얼굴이며 손이며 발이며 지어는 가슴, 엉뎅이까지 모든 사람들에게 “풍만하다”는 낱말을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엽아를 자세히 관찰해보면 또 풍만하다고만 할수 없었다. 엽아는 몸뚱이가 크지만 피부가 탱탱하고 튼실했으며 행동도 여간 날파람이 있는것이 아니였다. 묘령사람들의 눈높이로 볼 때 녀자가 그 정도라면 더 이상 바랄것이 없었다. 남자들은 누구나 신부감으로 엽아와 같은 녀자를 점 찍을것이였다. 집에서나 밖에서나 밭일이나 가무일이나 그리고 아이 낳이까지 막론하고 어느 한가지도 빠지는데가 없을것이니 말이다. 선근이는 몇년전부터 벌써 엽아의 일솜씨를 맘에 두고있었다. 그날 엽아는 해볕 좋은 마당에 앉아 열심히 담배를 장대에 걸었다. 이 일은 담배를 건조실에 넣기전의 환절이였는데 높은 기술이 필요한것이 아니였지만 나름대로 솜씨는 있어야 했다. 담배를 건조하여 꺼냈을 때 색갈이 좋은가 나쁜가? 한 장대에 걸려 있는 담배배렬이 성긴가 빽빽한가? 지어는 담배 수량이 얼마나 되는가 하는것도 모두 일군의 솜씨에 따라 달라졌다. 한 농촌녀자의 능력을 가늠하는 범위나 표준은 그렇게 까다롭지 않은것 같았지만 내속을 따져보면 섬세한 부분들이 많았다. 엽아는 그러한 범위나 표준에서 어느 누구와 비해도 출중했고 속도도 빨랐다. 어스레한 달빛아래에 앉아 잽싸게 일하는 엽아의 솜씨는 손에 익을대로 익은 일종 악기를 다루는듯했다. 따분하고 지어는 어지러운 일이지만 엽아의 얼굴에는 그 어떤 향수를 누리는듯한 표정이 어려있었다. 엽아는 왼손으로 줄을 단단히 잡아쥐고 오른손으로 담배를 두잎씩 주어서는 장대기를 사이에 두고 마주붙인후 손목에 힘을 주어 쓱- 당겼다. 줄이 당겨지는 소리가 싹- 하고 나면 담배는 예쁜 꽃처럼 정연하게 장대에 묶어졌다. 그 동작들은 엽아의 손끝에서 흥겨운 가락처럼 절주있게 흘러나왔다. 담배를 다 매달아놓은 장대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야말로 혀를 내두를 지경이였다. 장대기사이에 꽃처럼 묶여진 담배는 마치 솜씨 좋은 재봉공의 손끝에서 완성된 일매진 바늘뜸 같았다. 엽아의 일솜씨를 한참이나 구경하던 선근이는 그녀의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저씨, 엽아의 솜씨는 마치 수놓이를 하는것 같아요.   선근이는 소만이의 완력에 탄복하고있었다. 소만이는 말수가 적었지만 힘만은 무진장했다. 소만이는 마을에서 도시로  돈벌이를 가지 않은 몇이 안되는 청장년들중의 한 사람이였다. 묘령의 남자들중에서 소만이처럼 늘 집구석에 박혀있는 사람이 점점 적어졌다. 겨울에 집으로 돌아와 몸보신을 한 남자들은 보통 정월 대보름을 쇠고는 이부자리를 둘러메고 묘령 동산의 그 오솔길을 따라 산아래의 공로에 내려서서 각자가 목적한바를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작은 묘령마을이지만 로무송출에서만은 다른 마을의 앞장에 섰다.   사실 소만이도 로무송출에 나섰던 경력이 있었다. 하지만 웬 일인지 후에는 누가 죽인다고 해도 나서려고 하지 않았다. 그때 소만이는 한 건축공지에서 일년간 일했지만 로임을 일전도 받지 못했다. 게다가 도시의 건달들에게 한바탕 얻어맞고 병원에 입원까지 했었다. 그 일을 두고 묘령사람들은 한바탕 입방아들을 찧었지만 구체적인 사실에 대해서는 누구도 똑똑히 알지 못했다. 소만이가 그 일을 말하기 꺼려 했기에 누구도 감히 구체적으로 물을수 없었다. 묘령은 시골치고 꽤 큰 부락이였지만 인가는 여기저기에 분산되여있었다. 산골짜기에는 딱히 모서리라고 할만한 곳이 없어 두리뭉실 구릉이라고 하는것이 나을상싶었다. 선근이네 집과 엽아네 집은 두 산사이의 작은 평지에 자리잡고있었다. 그곳은 2, 30 가구가 살고있는 마을의 중심이라고 할수 있었다. 소만이네 집은 마을서쪽 산마루 뒤켠의 한 골짜기에 자리잡고있었다.      엽아와 소만이는 선근이네 황연(黄烟)기지에서 삯일을 하고있었다. 황연은 묘령사람들에게 명줄이나 다름이 없었다. 마을주변의 토양은 황연을 재배하기에 아주 적합했다. 하기에 묘령사람들은 누구나 황연재배에 대하여 손금보듯 잘 알고있었다. 황연재배에서의 관건은 담배종자를 잘 선정하는것이였다. 그것은 기초중의 기초였다. 만약 담배종자를 제대로 선정하지 못하면 담배는 키만 크고 헛꽃만 피여 나중에 담배잎이 버들잎처럼 되였다. 황연의 성장기는 아주 짧기에 절대 게으름을 부리지 말고 부지런히 밭에 가서 어린애를 돌보듯 잘 돌봐야 했다. 이를테면 김을 매주거나 가지를 쳐주는것과 같은 일이였다. 더욱 중요한것은 담배에 해충이 생기지 않는가를 제때에 보아내야 하는것이였다. 건조해낸 담배는 색갈이 좋아도 작은 반점이라도 있으면 제 값을 받을수 없었다. 그것은 미녀의 얼굴에 몇개의 얽은 자국이 있는것과 마찬가지였다. 담배를 따서 건조시키는 과정은 기술이 필요했다. 어느때 불을 작게 하고 어느때 불을 세게 하는가를 잘 알아야 했다. 불을 잘 조절하지 못하면 아무리 파아랗고 야드드한 담배도 색이 바래지게 되여 아무짝에도 쓸모 없게 되였다. 색갈이 좋은 담배를 만들어낸후에도  머리가 아픈 일은 어떻게 제 값을 받고 파는가 하는것이였다. 묘령사람들은 황연수매소의 사업일군들은 모두 오기가 충천하고 자태가 하늘을 찌르며 이마나 얼굴에 기름이 줄줄 흐르는듯이 보였다. 그들은 황연더미에 손을 넣어 그렇게도 쉽게 쑥- 뽑아내서 몇번 훑어보고는 값을 매겼다. 황연주인들은 수매소 일군들과 상론할 여지마저 없었다. 수매소 일군들이 매긴 가격이 황연주인들이 상상하던 가격과 큰 차이가 있어도 뒤에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있기에 어쩔수 없었다. 만약 팔지 않는다면 별수 없이 담배를 메고 다시 령을 톺아야 했다. 하기에 묘령사람들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세상에서 제일 좋은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황연수매소의 질량검사원이라고 생각했다. 황연을 수매하는데 얽히고 설킨 갈래들을 잘 알고있는 묘령사람들의 황연에 대한 감정은 사랑스럽거나 요염한 녀인을 대할 때와 같이 복잡했다. 그들은 황연을 잘 만들어 용돈을 벌려 하면서도 그 돈을 손에 쥐기까지의 여러가지 장애때문에  일종의 공포 같은것을 느끼고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많은 사람들이 황연을 만들어 파는 일을 하지 않고 산을 넘어 도시로 들어갔다. 묘령사람들은 산너머 도시에는 곳곳에 돈이 널려있어서 손만 뻗으면 그 돈을 주을수 있다고 생각했다. 젊은이들은 남자든 녀자든 도시로 나가려고 했다. 작은 능력이라도 있거나 힘개라도 쓰는 사람이면 누구도 머리 한번 돌리지 않고 산을 넘어갔다. 남자들은 대부분 건축공지에서 일했다. 진종일 뜨거운 해볕아래에서 일하는 그들의 몸은 타서 거무튀튀해졌고 여기저기에 근육들이 불뚝불뚝 튀여나왔다.  녀자들은 대부분 식당에서 접시를 씻거나 거리에서 삼륜차를 몰고 다니며 과일을 팔거나 페품을 주었다. 어떤이들은 묘령에서 만든 전병을 팔기도 했다. 하지만 몇몇 잔머리를 잘 굴리고 일처리에서 요사한 녀자애들은 머리방이나 나이트클럽 등에 들어가기도 했다. 묘령사람들은 처음에 그런 곳에 들어가는 녀자애들이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머리방이나 나이트클럽에서 일하는 녀자애들은 묘령으로 돌아올 때 옷차림이 깔끔해서 사람들의 부러움을 자아냈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묘령사람들도 그들의 눈부신 옷차림뒤에 숨은 비밀들을 알게 되였고 막무가내라는듯 순진한 애들을 버리게 되였다고 한숨을 내쉬였다. 사실 그런 녀자애들도 묘령이라는 시골에 대하여 그렇다 할 미련을 가지고있는것은 아니였다. 묘령에서 황연을 재배하는 사람은 나중에 선근이 한 사람뿐이였다. 선근이도 사실 산을 넘어볼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은것은 아니였다. 하지만 선근이는 가고싶어도 선뜻이 떠날수 없는 신분이였다, 그는 마을의 당지부서기였다. 선근이는 자기가 어떻게 몇 임기나 촌의 당지부서기를 련임해왔는지 알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선근이가 탁월한 지도자능력이 있는것도 아니였다. 묘령같은 산골에서 지부서기는 바로 닭갈비와 같은 존재였다. 묘령의 인구는 해마다 적어졌다. 일년에 한번씩 음력설을 쇨 때나 마을은 흥성흥성할뿐이였다. 평소 마을은 쥐죽은듯 조용해서 아무런 생기도 찾아볼수 없었다. 지어는 닭이며 게사니며 돼지며 개 등 가축들마저 대가리를 축 늘어뜨리고있어 온 마을 분위기가 괴괴했다. 선근이는 지부서기라고 하지만 사실 그저 마을에 남아있는 평범한 나그네에 지나지 않았다. 마을에는 대부분 로인이나 어린이 그리고 도시에 들어갈수 없는 몇몇 녀자들뿐이여서 선근이는 평소 얼굴을  맞대고  술잔을 기울일 친구마저 없었다. 어느 한번, 선근이는 진에 회의를 갔었는데 그 걸음에 진장네 집에 들어가서 돌아가지 않겠다고 주정을 부린 일까지 있었다. 그날 선근이는 진장을 보고 이렇게 애걸했다. ―제발 나더러 지부서긴지 무엇인지 하는 빌어먹을 일을 시키지 말아주시우. 우리 마을에서 내가 제일 생활이 구차하구 초라하게 산단말이우. 바깥사람들은 자가용승용차까지 굴리지만 우리 묘령사람들은 지어 뜨락또르마저 굴리지 못하니… 진장은 선근이를 보며 시무룩이 웃음을 짓다가 입을 열었다. ―선근이, 자네가 우리 집에 엉뎅이를 들이밀 때부터 나는 무엇을 쏠것이라는것을 알았다네. 나더러 돈을 내라는거지? 고려해볼수 있네. 하지만 자네, 그 돈을 제 곳에 써야 하네. 그래, 그 돈으로 먼저 길을 닦읍세. 며칠후 선근이는 과연 진정부로부터 빈곤부축자금을 조달 받았고 그 돈으로 먼저 길을 닦았다. 길이라고 해야 그 너비가 녀자들의 허리띠만큼밖에 안되였다. 길은 산아래의 공로에서 갈라져나와 여러 골짜기나 산기슭을 따라 굽이굽이 갈라져나가다가 마을 동쪽의 구릉에서 합류되였다. 모두들 선근이가 마을사람들이 산에 올라가 밭농사를 편리하게 하라고 그 길을 닦는것이라고 짐작했다. 길을 닦은후 선근이는 먼저 그 길섶에다  집들을 지었다. 그후 부근 농가들의 밭을 모두 임대해들였다.  남포를 터치우고 밭을 파헤치며 며칠이나 분주하게 돌아치더니 어느새 그럴듯한 다락전이 생겨났다. 그후에 선근이는 담배를 말리우는 건조실을 보란듯이 지어놓았다. 이어 길섶에 큰 간판 하나가 세워졌는데 거기에는 “묘령황연기지”라고 씌여져있었다. 그제야 묘령사람들은 선근이가 황연농사를 크게 해보련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2   엽아는 집에서 셋째였다. 우로는 언니가 둘이 있었다. 도리대로라면 그의 부모들은 엽아를 낳은후 생육을 그만두어야 했었다. 하지만 엽아의 아버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기어코 아들을 보고싶었다. 결과 엽아의 아버지는 과연 자기의 숙원을 이루게 되였다. 하지만 진에서 계획생육을 책임진 사업일군들은 그저 보고만 있지 않았다. 그들은 소문을 듣자마자 엽아네 집으로 찾아왔다. 그 기세는 실로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자칫하면 기둥뿌리마저 뽑힐 정도였다. 그때 엽아네 집은 살림이 구차하다 못해 그야말로 서발장대를 휘둘러도 거칠것 하나 없었다. 하지만 후에는 살림이 좀 나아졌다. 엽아의 두 언니가 산아래의 마을로 시집갔다. 엽아의 남동생도 고중을 마쳤다. 엽아는 어찌 보아도 야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그렇게 많은 중매쟁이들이 엽아를 넘보고 혼사말을 걸었지만 누구에게도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엽아는 높은 곳에는 오르지 못하면서 낮은 곳으로는 죽어도 가지 않으려는 녀자였다. 엽아는 점차 로처녀로 되여갔다. 하여 묘령사람들은 엽아를 두고 사유에 문제가 있다고 수군거렸다. 농촌에서 제 나이에 시집을 가지 않는 처녀들은 어딘가 특수한데가 있었다. 엽아는 산꼭대기에 올라가 아래를 굽어보았다. 산기슭에 있는 담배밭에는 자람새가 좋은 담배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흐믓하게 해주었다. 엽아는 두눈을 지그시 감고 크게 힘을 들여 호흡했다. 기분을 둥둥 뜨게 하는 신선한 담배냄새가 날아들어 온몸을 감싸는것 같았다. 엽아에게는 이렇게 담배냄새를 맡기 좋아하는 독특한 습관이 있었지만 누구도 모르고있었다. 엽아는 파아란 생담배잎에서 나는 냄새든 잘 건조된 황연에서 나는 냄새든 모두 좋아했다. 다른 사람들은 또 엽아가 담배를 피운적이 있다는것도 모르고있었다. 사실 엽아는 담배를 몇번 피운적이 있지만 담배인이 박힐 정도는 아니였다. 엽아가 처음으로 담배를 피운것은 몇년전이였다. 엽아는 남자들의 본을 따서 노오랗게 건조된 황연을 부스러뜨린후 종이에 담아 나팔모양으로 말았다. 첫 모금을 빨아들였을 때 엽아는 자기가 누구에게 크게 속기라도 한듯 억울한 느낌마저 들었다. 엽아는 줄쳐 나오는 기침을 참을길 없었고 둘둘 굴러떨어지는 눈물을 걷잡을수 없었다. 하지만 엽아는 그처럼 참기 힘든 곤욕속에서도 이름할수 없는 일종의 흥분을 느낄수 있었다. 마치 구름속을 헤집고 다니는듯한 환각 같은것이였다. 그런 느낌에 엽아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 느낌때문에 엽아는 한번 또 한번 담배대를 입에 물게 되였다. 하지만 필경 녀자의 몸이라 남들앞에서 대담하게 담배를 피울수 없었다. 묘령에서 담배를 피우는 녀자는 필경 사람들에게 경박하다는 인상을 주게 돼있었다. 선근이의 2륜 모터찌클이 문앞에 있었고 모터찌클곁에는 검은 털을 가진 개 한마리가 매여져있었다. 개는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왕왕 짖어댔다. 엽아가 개를 향해 소리쳤다. ―이 개같은 물건짝아. 이 할미도 알아보지 못한단말이냐? 그 소리를 들은 선근이가 창문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선근이의 모양새는 구질구질하기로 말이 아니였다. 그는 언제나  수염을 제대로 밀지 않아 꾀죄죄했고 코털은 코구멍으로 삐죽이 꼬리를 들어내고있었다. 엽아는 그런 선근이를 역겹다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선근이의 녀편네가 웃방에서 머리를 내밀고 야릇한 눈길로 엽아를 내다보며 억지로 입가에 웃음을 지어보였다. 엽아와 비겨볼 때 선근이의 녀편네는 실로 과하다할만큼 몸집이 뚱뚱했다. 하여 걸을 때면 몸집에 붙은 고기덩이가 덜렁덜렁 춤을 추는것 같았다. 선근이의 녀편네는 그야말로 “표준적인” 시골아낙네의 몸매라고 할수 있었다. 엽아는 곧추 외종숙모인 그 “표준적인” 시골아낙네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두 녀자가 히히닥거리고있을 때 소만이가 마당에 들어섰다. 해볕에 그을어버린 소만이의 피부는 검실검실했다. 웃통을 벗어제낀 소만이의 몸집에는 어디라 없이 불끈불끈 근육이 살아있었다. 소만이는 등에 메고있던 분무기를 벗어놓고는 수도가로 다가갔다, 소만이는 찬물이 콸콸 쏟아져내리는 수도꼭지아래에 머리를 들이밀고 푸푸- 소리를 내며 씻었다. 엽아는 세수하는 소만이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갑자기 무엇을 느꼈는지 살짝 얼굴을 붉히며 급히 눈길을 다른데로 돌렸다. 그것을 눈치챈 선근이의 녀편네가 하하하 크게 소리내여 웃었다. 우람진 체구의 소만이는 어쩌면 튼실한 둥글소를 닮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것 같았다. 머리를 다 씻은 소만이는 콸콸 쏟아져내리는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꿀떡꿀떡 찬물을 마셨다. 하지만 소만이는 종래로 배탈이 나지 않았다. 소만이는 힘차게 머리를 흔들어 머리카락에 묻은 물방울을 털어버리더니 두 녀자를 향해 씨엉씨엉 걸어왔다. 그때 엽아의 눈길이 소만이의 눈길과 공중에서 부딪쳤다. 그 바람에 소만이가 흠칫 놀라는가싶더니 괜히 왼손을 들어 어쭙게 자기의 어깨를 쓸어댔다. 마치 웃통을 벗어버린 자기의 몸을 엽아에게 보이는것을 부끄러워하는것 같았다. 엽아는 그런 소만이를 향해 실웃음을 지어보이며 롱담했다. ―소만아, 듣자니 너 적반시장으로 가서 선을 봤다면서? 처녀가 마음에 들던? 엽아의 말에 소만이는 무엇이라고 대답하려는듯 입귀를 실룩거렸다. 하지만 결국 아무 말도 내뱉지 못하고 머리를 푹 떨군채 자기의 집으로 들어가 수건을 찾아들고 머리를 마구 닦았다. 엽아는 소만이를 창문으로 들여다보며 말을 이었다. ―소만아, 너하구 묻잖아? 왜 대답이 없니? 아무리 그렇다 해두 너와 나는 소학교동창이 아니냐? 엽아가 아무리 입방아를 찧어도 소만이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그에 선근이가 끼여들었다. ―엽아야, 네가 하루에 소만이를 열마디이상 말을 시키면 내가 너에게 두 사람치의 일당을 주마. 엽아가 선근이의 말을 받았다. ―정말인가요? 소만아, 너두 방금 들었지? 어서 나하구 맞장구를 좀 쳐주라. 내가 돈을 벌면 너에게도 절반을 갈라줄게. 그 말에 소만이가 벙글서 입을 벌리고 껄껄 웃어댔다. 엽아는 잔뜩 이마살을 찡그리고 발을 동동 굴렀다. ―너 웃지만 말고 말을 해야지. 하지만 소만이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몸을 픽- 돌려 마당을 나가버렸다. 그 모양을 보고 선근이의 녀편네는 우스워서 죽겠다고 배를 끌어안고 돌아갔다. 선근이가 소만이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한마디 했다. ―저 같은 자식을 두고 세다리를 다 흔들어도 방귀 한번 뀌지 못한다는거야. 담배건조를 책임진 일군은 해가 서산으로 기울어질 무렵에 올라왔다. 성이 왕씨인데 별명은 왕절름발이였다. 그는 호적이 다른 마을에 있었지만 묘령에 집을 잡고있었다. 엽아는 한참동안 왕절름발이를 눈여겨보다가 입을 열었다. ―저 사람의 다리가 아무 이상도 없는데 왜 절름발이라고 부를가요? 선근이의 녀편네가 대답했다. ―사실은 절름발이가 아닌거지 뭐. 이어 목소리를 한껏 낮추며 말을 이었다. ―저 사람의 배속에 무슨 꿍꿍이가 숨어있는지는 누구도 모른단다. 전에는 보따리장사를 하면서 주변마을들을 주름잡고 다녔단다. 한번은 어느 집 새각시를 희롱하다가 그 각시의 남정에게 들켜 한바탕 개패듯 얻어맞았단다. 그 바람에 한동안 다리를 절게 되였던거야. 엽아는 왕절름발이의 반질반질한 머리통을 바라보며 웃음을 참을수 없었다. 이튿날 동녘이 푸름푸름 밝아올 때 엽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담배를 따는 일이지만 하루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온몸에서 담배기름냄새가 확확 풍겼다. 엽아는 빨아놓은 옷을 갈아입었다. 검고 기름기 흐르는 엽아의 머리칼은 어깨를 스쳤는데 정말 아름다왔다. 그녀의 머리칼은 다른 녀자들처럼 푸수수한적이 없었다. 엽아는 세수비누로 얼굴을 싹싹 씻은후 선크림을 발랐다. 엽아는 시원한 아침공기처럼 자기 몸도 청신하다고 느꼈다. 이런 날에는 아침 일찍 밭으로 가는것이 좋을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직 해볕이 그렇게 강하지 않을 때 많은 일을 해제껴야 했다. 하지만 해볕이 머리를 들지 않은 이 시각에는 밭에 이슬이 많아 옷섶을 즐벅하게 적셔 정말 귀찮았다. 선근이네 담배밭에는 벌써 8, 9명의 얼굴이 보였다. 그중 소만이와 엽아, 왕절름발이는 삯일을 온 사람들이고 둘은 선근이네 부부였으며 나머지는 선근이가 특별히 불러다 도움을 받는 친척들이였다. 맞은켠의 산언덕에 심은 담배는 모두 한가지 종류였다. 선근이는 그 담배를 황금엽이라고 불렀다. 엽아는 허리를 굽혀 부지런히 담배를 따며 생각을 굴렸다. 참으로 황금엽이라는 이름에 손색이 없구나. 전에 어디 이렇게 좋은 담배를 본적이 있었던가? 황금엽은 잎이 컸는데 건조를 해도 그 색갈이 아주 고왔다. 잎으로 있을 때는 별로 냄새가 없었지만 손가락으로 살살 문질러 그 잎을 부스러뜨리면 향긋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엽아가 한창 제 좋은 생각을 굴리고있을 때 누군가 갑자기 노래를 불렀다. 엽아가 머리를 돌려보니 목소리의 임자는 왕절름발이였다.     작은 주머니 살랑살랑 흔들리네 처녀야, 주머니에 수를 놓으려마 신랑의 허리에 둘러주게 처녀야 주머니에 수를 놓으려마 신랑의 옆구리에 둘러주려마 작은 주머니에 작은 칼을 넣어두게     노래를 부르는 왕절름발이의 목에는 하아얀 수건이 둘러져있었다. 왕절름발이는 왼손으로 담배를 따며 오른손으로 수건을 흔들고있었다. 그는 하늘을 향해 머리를 저으며 흥이 나서 노래를 불렀다. 엽아는 노래소리에 깜짝 놀랐다가 차츰 입가에 실웃음을 물었다. 그녀는 왕절름발이가 참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이가 지긋한 그가 밭에서 노래를 부른다는것이 어딘가 남달라보였다. 선근이는 못마땅한듯 왕절름발이를 쏘아보며 두덜거렸다. ―뛸데 없는 푼수라니까. 묘령에서 푼수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일처리에서 참답지 못했다. 선근이의 말을 받아 선근이의 녀편네가 삿대질을 했다. ―왕씨, 이 사람아. 그 고질을 못 고치는구려. 승냥이가 고기를 먹는 버릇을 고치겠나? 개가 똥 먹는 버릇을 고치겠나? 그 바람에 여기저기서 웃음보가 터져올랐다. 이런 재미가 있어서였던지 엽아는 그날 아침 일이 참 인상깊다고 생각했다. 담배잎에 이슬이 많아 저마다의 옷은 푹 젖어버렸다. 엽아는 자기의 웃옷이 이미 가슴과 등에 착 달라붙었다고 느꼈다. 바지가랭이도 이미 허벅지에 착 달라붙었다. 엽아는 아예 바지가랭이를 둘둘 말아올렸다. 그러자 하아얀 종아리가 들어났다. 이슬에 젖은 옷이 몸에 착 달라붙어서인지 온몸이 시원하게 느껴졌지만 몸체의 곡선이 그대로 드러나서 어딘가 민망한 감이 들었다. 특히 몸을 일으켜 눈길이 소만이의 눈길과 부딪칠 때면 더구나 몸둘바를 몰랐다. 아침에는 밀국수가 나왔다. 엽아는 소만이가 벌써 여섯그릇채 먹기 시작했다는것을 알고있었다. 그것을 보면서 엽아는 어쩐지 내심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즐거움을 감추지 못해 시무룩이 웃음을 피워올렸다. 엽아는 문가에 쪼크리고앉아 밀국수를 먹고있는 왕절름발이를 돌아다보며 입을 열었다. ―왕아저씨, 아까 부른것은 무슨 노래인가요? 한번 더 불러주세요. 엽아의 말에 왕절름발이는 갑자기 못내 흥분했다. 그는 사발에 남은 밀국수를 후룩후룩 먹어치우고는 일어서서 입을 열었다. ―엽아야, 네가 나를 왕아저씨라고 하니 어쩐지 내가 늙어보이는구나. 아까 부른것은 “수놓이노래”이다. 너처럼 어린 녀자애들은 들어보지 못했을거다. 그리고 불렀다 해도 그 맛이 날수 없지. 왕절름발이는 왼손에 사발을 오른손에 저가락을 들고는 흥겹게 노래를 부르면서 가끔 엉뎅이까지 흔들어댔다.     기다리네 기다려 기다린다만 녀동생을 기다리는건 아니라네 누구를 기다리느냐 주머니를 수놓아 오빠를 주렴 오빠에게 편지를 전해주렴아 실을 사다줄게 편지를 보내주렴 실을 사다줄게…     엽아는 정색해서 노래를 부르는 왕절름발이를 보면서 깔깔 소리내여 웃었다. 선근이의 녀편네가 소리쳤다. ―저 홀아비가 또 발정을 한게로군.  그 말에 선근이가 녀편네의 엉뎅이를 툭 걷어찼다. 그 바람에 선근이의 녀편네는 입속으로 뭐라고 우물거렸다. 아침밥을 다 먹었는데도 해볕은 그렇게 독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좀 자니자 해볕은 기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엽아네는 계속 담배를 뜯기 시작했다. 엽아는 시종 선근이의 녀편네와 나란히 서서 일했다. 그녀들은 누구도 입을 쉬우려고 하지 않았다. ―엽아야, 너 이미 로처녀 소리를 듣고있는데 왜 아직도 이러구있니? 나하구 말해보렴. 너 속으로 좋아하는 남자가 있는거지? 엽아는 겉으로는 대수롭지 않은것처럼 했지만 사실 남들과 정면으로 이 문제를 론하기 꺼려 했다. 더구나 선근이의 녀편네가 성격이 곧아서 무엇을 생각하면 그대로 말하기에 더구나 그와 이 일을 론하기가 꺼림직했다. 엽아는 짐짓 내숭을 떨며 말했다. ―남자는 무슨, 전 평생 남자를 안 찾을거예요. 혼자 살죠 뭐. 그 말에 선근이의 녀편네가 웬 일이냐는듯 아이구― 하고 길게 소리를 뽑았다. ―귀신이나 믿으라구 해라. 너 무슨 생각하고있는거니? 어느 녀자가 남자를 마다해? 선근이의 녀편네는 잠간 말을 끊고 혼자 키득키득 웃다가 아래말을 이었다. ―그래 너 한밤중에도 생각을 안한단말이니? 엽아가 얼굴을 붉히며 급히 선근이 녀편네의 말을 당겨왔다. -숙모, 그만해요. 또 그러면 그 입을 이 담배잎으로 틀어막을거예요. 하지만 선근이 녀편네는 개의치않고 계속 키득거렸다. ―너두 인젠 알것은 다 알만한 나이지 않니? 남자와 녀자가 노는 그 유희를 정말 모른단말이니? 엽아는 담배대를 가운데 둔채 담배잎을 들어 선근이 녀편네를 후려쳤다. 선근이 녀편네는 몸을 피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계집애하구는. 네년도 어느날 남정네를 끌어안구 물고 빨 날이 있을게다. 그날에도 오늘처럼 당당할수 있을가? 엽아는 아예 선근이 녀편네의 입담을 당할수 없던지 입을 삐죽해보이고는 다시 응대하지 않았다. 선근이 녀편네가 갑자기 엉뚱한 화제를 꺼냈다. ―어제밤에 내가 곰곰히 생각해보았는데 너하구 소만이가 배필인것 같다. 생각이 있으면 나에게 시원히 말해봐라. 내가 말하면 꼭 성사될수 있을게다. 엽아가 선근이 녀편네를 건너다보며 입을 필룩거렸다. ―소만이요? 그 검둥이를요? 석탄굴에서 기여나온것 같은 그놈을요? 엽아는 일부러 목소리를 높이면서 허리를 쭉 펴고는 몇고랑 밖에서 담배를 따는 소만이를 곁눈질했다. 소만이는 여느날보다 깨끗한 옷을 입고있었다. 선근이 녀편네가 입을 열었다. ―남자들 몸뚱이가 좀 검은게 무슨 허물이니? 너 저 몸뚱이를 좀 봐라. 얼마나 튼실해보이니? 너, 내 말을 들으면 랑패가 없다니까. 남자를 찾으려면 바로 소만이 같은 애를 찾아야 해. 우리 남정 같은 남자를 고르면 랑패지. 겉보기에는 그럴듯 하지만 침대에 올라가서는 영 부실하다니까. 보기 좋은 개떡이지. 그 말에 엽아가 일부러 퉥- 하고 침을 뱉고는 입을 열었다. -숙모, 돌았어요? 선근이 녀편네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너 설마 소만이가 돈이 없다고 그러는건 아니지? 엽아는 선근이 녀편네를 흘기며 말했다. ―그만하세요. 숙모하고는 통 말이 안통한다니까요. 해볕이 재글재글 끓기 시작했다. 담배잎에 내려앉았던 이슬들이 차츰 화끈화끈 열기로 변해 날아갔다. 그러자 담배잎에는 끈적끈적한 기름이 내배였다. 엽아는 그것이 좋았다. 담배잎에 돋은 기름때문에 손가락이 떡떡 들어붙었지만 그럴수록 담배잎에서는 더 짙은 냄새가 풍겼다. 엽아는 그 냄새가 자못  친근하게 느껴졌다. 엽아는 얼굴이 발그스름하게 상기되여 선근이 녀편네를 보고 물었다. ―숙모는 담배냄새가 참 좋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선근이 녀편네가 이상하다는듯 눈동자를 키웠다. ―담배냄새가 좋다구? 세상에. 나는 담배냄새를 오래 맡으면 머리가 어질어질해나거든. 그런데두 넌 이 냄새가 좋다구? 이상하다 이상해. 엽아야, 너를 어쩌면 좋니?   엽아와 선근이 녀편네는 집안으로 들어가 물을 마신후 초모자를 쓰고 나왔다. 문을 나서면서 엽아는 웬지 소만이를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만이는 수도가에서 찬물을 한소래 받아서 자기의 머리에다가 쏟아붓고있었다. 엽아는 자기가 되려 온몸이 오싹해나는것 같아서 입을 쩝쩝 다셨다. 하지만 소만이는 되려 시원하다는듯 아― 하고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엽아는 흠칫하면서 몸을 옹송그렸다. 어쩌면 그 한소래의 물이 몽땅 자기의 머리에 쏟아지는듯한 느낌이였다. 소만이는 진작 엽아의 눈길을 감지한듯싶었다. 소만이는 갑자기 몸을 돌려 초모자밑으로 드러난 엽아의 하아얀 얼굴을 바라보고있었다. 소만이는 힘차게 머리를 흔들었다. 그 바람에 수많은 물방울들이 사처로 튕겨나갔다. 저녁식사는 풍성했다. 선근이 녀편네가 닭까지 한마리 잡았다. 저물어가는 석양속에서 싱그러운 닭고기냄새가 절반 산기슭을 덮고있었다. 밭에서 일하고있는 사람들은 진작 그 닭고기냄새를 맡고있었다. 왕절름발이는 자못 흥분해하면서 또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를 끝낸 왕절름발이는 선근이를 보고 저녁에 술이 있는가고 물었다. 밭머리에 쪼크리고앉아 담배를 피우던 선근이가 통쾌하게 대답했다. ―물론이지. 취토록 마시라구. 오늘은 첫날이니까. 하지만 다음날부터는 없을걸. 마시고싶으면 자비로 사다가 마시든지. 나는 더 이상 관계치 않겠으니까. 왕절름발이가 선근이를 건너다보며 입을 열었다. ―나 말일세, 작은 모병이 있거든. 술을 마음껏 마시지 못하면 재간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니까. 그 말에 선근이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 ―자네 재간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면 난 자네를 건조실에 넣어 담배와 함께 쪄버릴거네. 옹근 하루 동안, 소만이는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엽아도 확실히 소만이가 입을 여는것을 보지 못했다. 엽아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소만이는 정말 이상한 사람이라니까. 벙어리도 아니면서 왜 진종일 말 한마디 하지 않을가? 말을 하지 않으면 얼마나 속이 갑갑할가?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친해질가? 손을 씻을 때 엽아가 소만이의 곁에 서게 되였다. 엽아는 가까이에서 소만이를 눈여겨보았다. 하지만 이미 날이 어두워진후라 소만이의 얼굴표정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소만이는 그때 웃옷을 벗으려고 하는것 같았다. 하지만 머리를 들어 엽아를 한번 훔쳐보고는 팔소매만 둘둘 감아올렸다. 엽아가 입가에 웃음을 피워올리며 물었다. ―웬 일이니? 나를 보고 부끄러워 그러니? 계집애들처럼. 소만이는 머리를 들어 엽아를 건너다보더니 벙그레 웃으면서 그제야 웃옷을 벗었다. 그러자 되려 엽아쪽에서 어딘가 불편하게 느껴져 황급히 눈길을 다른데로 돌렸다. 소만이가 세수를 끝내자 엽아가 소만이에게 수건을 건네주었다. 소만이가 수건을 받아 몸을 닦을 때 엽아는 급급히 세수하기에 바빴다. 소만이가 수건으로 몸을 닦다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선보러 간게 아니구, 장보러 갔던게요. 엽아는 한참이나 돼서야 소만이가 무슨 말을 하고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러자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세상에, 어제 내가 물었는데 오늘에야 그 대답을 하다니. 엽아는 애써 웃음을 참으면서 소만이가 건네주는 수건을 받았다. 수건을 넘겨준 소만이는 벌써 집쪽으로 걸음을 옮기고있었다. 엽아는 소만이의 거동에 놀라 멍해있다가 천천히 수건을 들어 코밑에 가져다대고 냄새를 맡아보았다. 순간 엽아는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올라 급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날 밤, 남자들은 과연 취토록 술을 마셨다. 엽아는 기어코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나누웠다. 하지만 선근이의 녀편네가 강권하는 바람에 입술에 약간 술을 댈수 밖에 없었다. 엽아는 자기의 주량을 알고있었다. 어느해 음력설날, 몇몇 친구들이 모였는데 흥이 나자 술을 마시기로 합의했다. 그번에 엽아는 근 한근에 가까운 술을 마셔버렸다. 하지만 머리는 여전히 말짱한대로였다. 그에 엽아는 스스로도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날 저녁에 마신 몇방울의 술은 사실 엽아에게 있어서 간에 기별도 가지 않았다. 하지만 기어코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는것은 사람들에게 자기가 술을 마실줄 안다는것을 들키기 싫어서였다. 아직 시집도 가지 않은 로처녀가 남자들과 한자리에 앉아서 통이 크게 술을 마신다는것은 누가 알아도 좋은 일이 아니였다.  소만이는 술자리에서도 없는 사람이나 다름이 없었다. 술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차츰 소만이의 존재를 잃어버린듯싶었다. 엽아는 술자리를 피해 옆에 나앉아 해바라기씨를 까면서 흘끔흘끔 소만이를 훔쳐보았다. 술자리에 앉은 몇몇은 이미 흥이 도도해있었다. 특히 왕절름발이는 기분이 둥둥 떠서 손발이 춤을 추고있었다. 선근이는 우뢰와 같이 큰소리로 옆에 앉은 나그네와 화권(划拳)놀이를 했다. 하지만 소만이는 돌덩이처럼 듬직하니 앉아서 연신 술잔만 기울였다. 엽아가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하자 선근이가 말했다. ―너도 여기서 자렴. 밤길이 험할텐데. 엽아가 대답했다. ―언제는 뭐 밤길을 걷지 않았나요? 괜찮아요. 그 말에 선근이의 녀편네가 동을 달았다. ―엽아의 몸매를 보세요. 웬간한 남정네들은 어쩌지 못할거예요. 그 말에 술자리에 앉았던 사람들이 모두 웃음을 터쳤다. 엽아는 힐끔 소만이를 건너다보며 입을 열었다. ―흥, 내가 되려 덮치지 않으면 다행인줄 알라 하세요. 집으로 돌아와서도 엽아는 웬지 기분이 좋았다. 그녀는 세수를 하면서 흥얼흥얼 코노래까지 했다. 그녀는 자기의 방에 들어가 침대에 걸터앉았다. 전등도 켜지 않고 그렇게 앉아 한참동안 골똘히 뭔가를 생각했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도무지 잠을 청할수 없었다. 엽아는 낮에 왕절름발이가 부르던 노래를 떠올렸고 소만이의 튼실한 몸매를 그려보았다. 소만이가 물방울이 맺힌 머리칼을 털어대던 모습이 참 멋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엽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전등을 켜고 자기의 풍만한 젖무덤을 내려다보았다. 엽아의 머리속에 갑자기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아까 소만이는 왜 그렇게 말했을가? 하루가 지나서 왜 그 한마디를 던진것일가? 내가 그래 그가 장보러 갔었다는것을 정말 모르는줄로 알았을가?  그날 엽아는 숱한 사람들 건너로 소만이를 바라보았었다. 그때 소만이는 혼자서 허둥지둥 걸음을 옮기고있었다. 엽아는 소만이의 어릴적 모습을 그려보았다. 소만이는 어릴 때 겨울이면 늘 큰 솜외투를 입고 다녔는데 남들이 입다가 물려준것이였다. 늘 외투소매로 코물을 닦아서 반들반들했다. 그때도 소만이는 말수가 적었고 마음씨가 어졌다. 하여 엽아마저도 내키지 않으면 마음대로 소만이를 못살게 굴었었다. 엽아는 엇갈려 올라간 자기의 두손이 젖무덤을 꼭쥐고있다는것을 의식하지 못했다.     3   선근이의 녀편네가 엽아를 보자마자 입을 열었다. ―어제밤에 말이다. 네가 가자마자 나그네들이 너를 두고  입방아를 찧었다. 그 말에 엽아가 입을 삐쭉거리며 한마디 했다. ―흥, 내 그럴줄 알았어요. 참으로 좋은 물건짝이 없다니까요. 뒤에서 입방아질이나 하구. 선근이의 녀편네가 말을 이었다. ―모두들 말하던데 네가 이상하다는거다. 나이가 이렇게 들었는데 시집을 가지 않으니 말이다. 조건이 남보다 못한것도 아니구. 하기야 이제 어떤 나그네가 너를 품에 안고 복을 누릴지. 엽아는 얼굴을 뜨겁게 하는 그 말을 들으면서 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날 아침, 밭에는 선근이와 왕절름발이 그리고 소만이만 나와있었다. 엽아와 선근이의 녀편네는 담배를 따기 시작했다. 산더미같이 무져진 담배잎을 한잎한잎 장대에 엮는 일은 그렇게 쉬운것이 아니였다. 하지만 엽아는 진작 이 일에 손이 익어있었다. 일손을 놀릴라치면 손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솜씨가 빨랐다. 엽아 혼자서도 다른 녀인네 두섯은 담당할수 있었다. 선근이 녀편네는 엽아를 건너다보면서 야릇한 웃음을 피워 올리다가 목소리를 한껏 깔면서 말했다. ―아침에 말이다. 왕절름발이, 그 사람이 글쎄 우물가에 앉아서 한참이나 몸단장을 하지 않겠니? 수염을 깎고 머리를 감고 지어 하얗게 씻어놓은 적삼까지 꺼내 입는거 있지. 호불아비가 언제 제 몸을 그렇게 가꾼적이 있었니? 발정이 날 때를 말구는. 엽아가 다잡아물었다. ―무슨 뜻이예요? 엽아가 선근이 녀편네를 돌아다볼 때 그는 허리를 굽혀 담배를 줏고있었다. 선근이 녀편네는 그날 선근이가 입던 낡은 적삼을 몸에 걸치고있었다. 게다가 브래지어도 하지 않아서 주글주글한 두개의 젖무덤이 축 처져내린것이 다 보였다. 그 모양을 보면서 엽아가 되려 민망해서 얼굴이 붉어졌다. 그런줄도 모르고 선근이 녀편네가 또 입을 삐쭉했다. ―남정네들은 말이다. 하나같이 그 모양이라니까. 오래동안 잠자리에서 녀자맛을 보지 못하면 단가마에 오른 개미처럼 안절부절한다니까. 그 말을 듣고난 엽아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오라잖으면 령감줄에 들어설 나그네들도 그런 생각을 해요?  선근의 녀편네가 말했다. ―그 나그네 그렇게 나이 많은게 아니다. 생긴게 늙다리 같아 그렇지. 그리고 또 늙었다고 해서 그 생각이 없다고는 할수 없지. 엽아는 믿지 못하겠다는듯 살래살래 머리를 저었다. 왕절름발이가 물 마시러 왔다. 그는 자기는 평생 끓이지 않은 물은 마시지 않는다고 하면서 보온병에서 뜨거운 물을 한고뿌 받았다. 그는 고뿌를 들고 엽아네 곁에 앉아서 후룩후룩 뜨거운 물을 마셔댔다. 왕절름발이가 물을 마시는 소리를 들으면서 엽아는 웬지 자꾸 웃고싶은것을 참을수 없었다. 왕절름발이는 과연 하얗게 씻은 적삼을 입고있었는데 제일 웃단추까지 꼭 채웠다. 반들반들한 정수리와는 달리 옆부분에 성기게 난 머리칼들은 반반하게 빗겨져있었다. 적삼호주머니에는 원주필 한대가 꽂혀져있었다. 왕절름발이의 모양새를 이윽히 지켜보던 엽아는 끝내 참지 못하고 깔깔 웃었다. 왕절름발이는 모르겠다는듯 엽아를 건너다보며 물었다. ―엽아야, 너 왜 그렇게 웃지? 엽아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선근이의 녀편네는 웃느라 젖무덤이 달랑달랑 춤을 추는것도 모르고 입방아를 찧기 시작했다. ―자네, 왕씨. 엽아가 있잖아, 엽아가 그러는데 자네가 기실은 아주 젊어보인다네. 몸단장을 하면 멋도 나구말이야. 왕절름발이는 후룩- 하고 물 한모금을 마시고는 아― 하고 길게 소리를 뽑더니 말을 이었다. ―딱히 말할수는 없지만 내가 한 10년만 젊었다면 엽아의 말을 믿을수도 있지. 내가 젊었을 때는 말이야, 정말 괜찮게 생겼다고 할만 했었지. 내가 적반시장에 척 뜨면 처녀들이구 새각시들이구 모두 나를 돌아보고 침을 흘렸다네. 어느 핸가 현 연극단에서 사람을 보내와 나를 보고 리옥화역을 맡아달라는거야.  나는 기어코 사절해버렸어. 그까짓 역을 해서는 뭘 하겠는가 하구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거든. 하지만 지금은 좀 후회된다니까. 내가 만약 그때 극단에 갔더라면 지금쯤은 중남해에 들어가 연극을 놀지 누가 알아? 그 말을 듣고 선근이 녀편네가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흥, 모양새 하구는, 토비역이나 맡으면 그나마 어울릴가? ―아니, 제수. 그래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거여? 내가  한번 몸을 움직여볼가? 왕절름발이는 손에 들고있던 고뿌를 내려놓고 가슴을 쑥 내밀며 “홍등기”에서 나오는 리옥화의 형상을 하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무슨 일에나 막힘이 없다네 고난한 집 아이가 먼저 헴이 든다네 ……     선근이가 밭에서 소리쳤다. ―이봐, 왕씨. 난 자네를 불러다 일을 시키려는게지 노래를 부르라는게 아닐세.       그 말에 왕절름발이는 노래를 멈추고 엽아와 선근이 녀편네에게 물었다. ―어떤가? 내 노래수준이. 선근이 녀편네가 말했다. ―당나귀소리 비슷하구려. 그 소리에 엽아가 입을 싸쥐고 키득거렸다. 왕절름발이가 억울하다는듯 두덜거렸다. ―흥, 내가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는것이 아니라 자네들이 들을줄을 모르는거야. 왕절름발이는 다시 고뿌를 들고 한참 후룩거리다가 흥얼거리며 밭으로 갔다.      사랑하는이, 천천히 날게나 앞에는 가시가 가득 박힌 장미가 있다네     왕절름발이의 노래소리가 바람에 날려왔다. 담배를 매단 장대를 건조실에 들여가기전에 왕절름발이는 못내 흥이 났다. 엽아는 분명 왕절름발이의 허리가 꿋꿋이 펴진것을 발견했다. 왕절름발이는 자기의 일솜씨를 보여줄 때가 왔다고 생각하는것 같았다. 그는 건조실문어구에 서서 이것저것 지시를 해대는것이 마치 전쟁터에 나선 장군을 방불케 했다. ―이것은 내가 오래동안 연구해온 새로운 방법일세. 담배를 다는 이 방법을 가지고 전매특허를 신청할가고도 생각했더랬지. 자네들 아는가? 나는 팔괘도를 연구한후 이 방법을 고안해냈다네. 자네들은 그저 건조실에 담배장대를 거는 일이 아닌가고 코웃음을 칠수도 있을걸세. 하지만 그게 아닐세. 여기에는 많은 학문이 숨어있다네. 나의 연구에 의하면 한 담배대에 자란 잎도 우의잎과 아래잎은 거는 방법이 다르고 말리는 방법도 다르다네.  선근이가 그에 역정을 내며 욕했다. ―제밀할, 바빠죽겠는데 그까짓 큰소리는 왜 치는겨? 내가  큰 돈을 주고 당신을 청해온건 실제적인 일을 하라는거야. 건조실에 담배가 가득찼다. 그러자 왕절름발이는 또 한차례 사람들의 눈이 희뜩 번져지게 했다. 그는 건조실에 제사를 지낸다고 납떴다. 왕절름발이가 말했다. ―건조실에도 령적인것이 존재한단말이요. 그러니 불을 지피기전에 반드시 화신에게 제사를 올려야 하는거요. 세상에서 제일 신성한 물건이 바로 불이란말이요. 옛날에도 병기를 만드는 장인들은 용광로에 불을 지피기전에 화신에게 큰 제사를 올렸단말이요. 건조실앞에는 진작 제사상이 차려져있었는데 우에는 여러가지 료리며 술이 올라있었다. 왕절름발이는 어디서 먹 한병을 얻어왔다. 그는 손에 먹을 묻혀서는 얼굴에다가 괴상한 도안을 그렸다. 얼굴에 그림을 그릴 때 왕절름발이의 기색은 매우 엄숙해보였다. 곁에 선 사람들은 입을 헤- 벌리고 왕절름발이를 바라볼뿐 숨도 크게 내쉬지 못했다. 왕절름발이는 경건하게 제사상앞에 꿇어앉아 건조실을 바라보며 뭐라고 중얼중얼 주문을 외우다가 벌떡 일어섰다. 그는 천천히 손발을 놀리기 시작하더니 신들린듯 너울너울 춤을 추기 시작했다. 한참이나 빙글빙글 돌아가던 왕절름발이는 다시 제사상앞에 꿇어앉았다. 그는 향을 피우고 종이를 태운후 선근이를 보고 폭죽을 터치우라고 분부했다. 묘령사람들은 모두 선근이의 황연재배기지에서 터져오르는 폭죽소리를 들을수 있었다. 이어 선근이네 건조실에서는 뭉게뭉게 연기가 피여올랐다. 그날 밤 사람들은 모두 흥분에 들떠있었다. 선근이는 전에 다시는 술상을 벌리지 않겠다고 말한적이 있었지만 그날 저녁 또 술상을 마련했다. 사람들은 선근이가 왕절름발이를 고무하기 위해서 술상을 벌린것을 알고있었다. 그날 저녁 식사도중에 한가지 사건이 발생했다. 그때 엽아가 마당으로 나갔는데 왕절름발이도 조용히 엽아의 뒤를 따랐다. 왕절름발이는 수도가에서 갑자기 목소리를 한껏 낮추어 엽아에게 이렇게 말했다. ―엽아야, 선근이네 일이 끝나서 삯전을 받게 되면 내가 너를 데리고 북경유람을 가마. 그 말에  엽아는 너무 놀라서 굳어졌다. 어쩌면 마른 하늘에서 날벼락이 치는듯한 느낌이였다. 엽아는 미처 뭐라고 반응하지 못하고 멍하니 왕절름발이를 건너다보았다. 잠간 지나서야 엽아는 솟구치는 분노를 느꼈다. 엽아는 정말 왕절름발이의 면상을 한대 갈겨주고싶었다. 한심했다. 왕절름발이가 제 주제도 모르고 덤벼들다니. 다 늙어가는 신세가 돼가지고 감히 처녀에게 그같은 주문을 걸다니? 엽아는 아무리 해도 참을수 없었다. 그야말로 묘령사람들의 말처럼 “늙은 소가 야드르르한 풀만 찾는 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엽아는 차츰 왕절름발이로부터 씻지 못할 굴욕을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엽아는 머리를 저으며 사색을 정리했다. 그래, 이것은 저 절름발이의 하잘것 없는 롱담일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엽아는 웬지 모르게 일종의 달콤함을 느끼게 되였다. 사실 로처녀로 불리우는 그날까지도 엽아는 어느 남자에게서 그같은 말을 들어본적이 없었다. 소만이는 죽어도 그렇게 단도직입적으로 그런 말을 할수 없을것이라고 엽아는 생각했다. 하기야 엽아가 롱담으로 한 말도 하루가 지나서야 겨우 대답하는 소만이였으니 말이다. 엽아는 왕절름발이가 한 말을 누구에게도 옮기지 않았다.  엽아는 그 일을 영원히 비밀로 해두리라고 생각했다. 엽아는 늘 자기에게서 일어나는 하나 또 하나의 비밀을 소중한 보물마냥 가슴속 깊은 곳에 묻어두었다. 집으로 돌아와 자리에 누운 엽아는 또 생각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북경은 어떠한 도시일가? 북경! 아, 그곳은 북경이야! 엽아는 그런 생각을 굴리는 자신이 어떤 병에라도 걸린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까지 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자기가 점점 요사해지기 시작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이 안되는 사이에 자기 생각에 그렇게 많은 변화가 일어나는것이 두려웠다.  어쩌면 자기가 선근이 녀편네가 하던 말처럼 자신을 수습하지 못하는것이 아닌가 하는 위구심이 스멀스멀 머리를 쳐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래, 내가 설마 지금 남자를 그리고있단말인가?     4   담배가 건조실에 들어갔다가 말라서 나오기까지는 닷새가 걸렸다. 그 닫새사이, 엽아는 선근이네 집으로 일하러 가지 않았다. 닷새후, 황연이 건조실에서 나온후 다시 선근이네 집으로 가서 황연을 급에 따라 조리하여 묶어놓으면 되였다. 그 일까지 마무리하면 황연에 관계되는 일련의 일들이 기본상에서 끝났다고 할수 있었다. 엽아는 그 닷새를 채 채우지 못하고 선근이네 집으로 갔다. 엽아는 자기가 먼저 선근이네 집으로 찾아갈 리유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 무렵, 엽아는 선근이네 집을 자기의 집보다도 더 좋아하는것 같았다. 세번째날, 왕절름발이가 건조실아궁이에 불을 가하려고 할 때 엽아가 갑자기 왕절름발이앞에 나타났다. 왕절름발이는 너무도 좋아서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엽아가 왔구나. 엽아는 얼굴을 찡그리고 왕절름발이를 찍어보며 물었다. ―그날 나에게 한 말이 롱담인가요? 아니면 진담인가요? 하지만 엽아는 말을 마치자마자 괜한것을 물었다고 후회했다. 사실 건조실을 찾아올 때까지만 해도 엽아는 근본 이 문제를 물어볼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무슨 귀신에게라도 홀린듯 왕절름발이를 보자마자 참지 못하고 그렇게 물었다. 왕절름발이가 두눈을 껌쩍거리며 모르겠다는듯 되물었다. ―무슨 말을 그러니? 엽아는 가슴속에서 뭔가가 철렁하고 떨어지는듯싶었다. 어쩌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다른 한쪽에서는 실망 비슷한것이 밀려왔다. 엽아는 약간 골이 난 기색으로 말했다. ―그날 나를 데리고 북경유람을 간다고 했던 말. 왕절름발이는 긴장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펴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절대로 거짓말이 아니다. 문제는 네가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거지. 엽아가 다시 그루를 박았다. ―똑똑히 말하세요. 롱담이 아니죠? 왕절름발이가 가슴을 치면서 말했다. ―너에겐 이 오빠가 그렇게 거짓말을 하는 사람으로 보였니? 엽아는 대충 왕절름발이의 진심을 안것 같아서 그곳을 떠날 때가 되였다고 생각했다. 엽아가 막 몸을 돌리고있을 때 소만이가 담배밭에 있는것이 보였다. 소만이는 허수아비처럼 한곳에 서서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엽아는 소만이가 진작 자기를 보고있었다는것을 느낄수 있었다. 엽아는 속에 모래가 가득 차있는듯 쓰리고 무거워났다. 하지만 잠간 시간이 지나자 엽아는 일종의 말 못할 쾌감을 느꼈다. 엽아는 소만이에게 보복하고싶었다. 그때에 와서야 엽아는 자기가 무엇을 생각하고 바라고있었다는것을 알것 같았다. 소만아, 소만. 너 참  그 개눈깔이 멀어도 한참이나 멀었구나. 너 그래 내가 무엇때문에 선근이네 집에 와서 삯일을 하는지 정말 모른단말이냐? 그래 너는 내가 선근이가 주는 하루에 십여원되는 돈을 보고 여기로 왔다고 생각하느냐? 그날 장마당에서 나는 너를 오래동안 지켜보았는데 너는 정말 아무 느낌도 없었단말이냐? 너 참, 못난이로구나. 그래 내가 처녀의 몸으로 먼저 너에게 청혼해야 한단말이냐? 엽아는 자기가 진작 소만이에게 자기의 마음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하고있었다. 엽아는 자기가 소만이를 좋아하고있다는것을 승인했다. 그것은 요 며칠사이에 일어난 감정이 아니였다. 엽아는 또 소만이도 은근히 자기를 좋아하고있다는것을 느끼고있었다. 하지만 소만이는 시종 주동적으로 자기에게 그 감정을 털어놓지 않았다. 엽아는 소만이가 구차한 자기네 집살림때문에 그럴것이라고 생각했다. 묘령사람들은 소만이네 집을 채우기 힘든 함정이라고 일러왔다. 소만이네 부모는 장기환자였다. 하기에 소만이네 집에서는 일년 사계절 중약을 달이는 냄새가 풍겼다. 하기에 묘령사람들은 소만이네 집에 시집 오는 녀자는 정말 눈이 멀었을것이라고들 말했다. 하기에 소만이는 평생 장가를 들수 없을것이라고 했다. 소만아, 맞지? 너 구차한 가정살림때문에 감히 말을 꺼내지 못하는것이지? 참, 이렇게 안타까울변이라구야. 네가 입만 벌리면 나는 너의 가정이 얼마나 구차해도 다 받아들일수 있는데. 나의 힘까지 합한다면 너 혼자 가정을 떠메고 나가기보다 쉬울텐데… 엽아는 자기의 마음을 소만이에게 보여주고싶었다. 하지만 엽아는 그렇게 할수 없다고 생각했다. 로처녀라고는 하지만 필경 그에게는 처녀의 자존심이 남아있었다. 그래, 소만아. 내가 이렇게 너의 말을 기다리고있는데 너는  그것마저도 들어주지 못하는거니? 엽아는 소만이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몸을 돌려 집으로 돌아갔다. 선근이 녀편네가 멀리서 엽아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엽아야, 왜 그냥 가버리는거니? 엽아는 그 소리를 들었지만 머리를 돌리지 않았다. 건조실마당에서 흥얼거리는 왕절름발이를 의심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던 선근이 녀편네의 얼굴에 검은 구름이 덮이기 시작했다. 그날 밤, 선근이 녀편네는 자기의 근심을 선근이에게 털어놓았다. 그때 선근이는 두손으로 열심히 녀편네의 젖꼭지를 주무르고있었다. 녀편네의 말에 선근이는 깜짝 놀라면서 손길을 멈추었다. ―이 미친년이, 무슨 헛소리를 하는거야? 엽아가 왕절름발이에게 속히운다구? 말두 안되는 소리. 녀편네가 급히 선근이의 말을 중둥무이했다. ―소리는 왜 질러요? 의심스럽단말이예요. 엽아가 요 며칠 우리 집에 오지 않다가 오늘 직접 왕절름발이를 찾아가 뭐라고 정색해서 지껄였어요. 그리구는 인차 돌아갔어요. 선근이는 여전히 못믿겠다는듯 말했다. ―그럴수 없소. 만약 그게 소만이라면 믿겠지만. 그들은 누가 봐도 배필이라니까. 하지만 왕절름발이는 안돼. 말라빠진 곶감같이 생겨가지구는. 녀편네가 말을 받았다. ―그 나그네를 그저 쉽게 봐서는 안돼요. 녀자를 꼬시는 수단이 보통이 아니라구요. 당신보다 열배는 나을걸요. 그 말에 선근이가 발딱 일어나앉았다. ―그 늙어빠진 개뼈다귀 같은것이 당신에게 직접거렸어? 단칼에 푹 찔러버릴가? 녀편네는 급히 몸을 돌리며 유들유들한 등짝을 선근이에게 돌리고 두덜거렸다. ―당신, 그래 녀편네도 못 믿는거예요? 선근이는 그 말에 대답도 않고 분해서 두덜거렸다. ―령감탱이, 감히 내 녀편네에게 집적거려? 내 녀편네가 아니라 엽아에게 집적거려도 가만놔두지 않을거다. 그 말에 선근이 녀편네가 머리를 돌리고 깐죽거렸다. ―세상에, 당신도 그래 엽아를 마음에 두고있었어요? 그 말에 선근이는 갑자기 녀편네의 엉뎅이를 향해 주먹을 날리며 소리쳤다. ―이 녀편네, 담이 바깥으로 나왔나? 좀 사람소리를 하지 그래. 정말 당신 말대루 엽아가 그 령감태기에게 속히운다면 내가 어떻게 엽아네 부모들 얼굴을 본단말이요? 엽아는 우리 집 일을 거들어주러 왔단말이요. 정말 엽아가 왕절름발이에게 안기는 날이면 우리도 묘령에서 얼굴을 들고 다닐수 없단말이요. 선근이 녀편네도 그 말이 옳다는듯 “그럼요.” 하고 동을 달았다. 그후 이틀간 엽아는 선근이네 집에 얼굴을 들이밀지 않았다. 그제야 선근이와 녀편네는 약간 시름을 놓는 눈치였다. 어쩌면 자기들이 괜히 놀랐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를 일이였다. 그리고 엽아의 일보다는 처음으로 건조실에 넣은 담배가 색갈이 어떻게 나올지 더 근심되였다. 선근이나 그 녀편네는 사실 왕절름발이가 담배건조에서 솜씨가 좋다는것을 소문으로만 들었을뿐 직접 보지는 못했다. 닷새째되는 날 밤에 담배를 건조실에서 꺼내게 되였다. 건조를 마친 담배는 보통 아침이나 밤에 꺼내는것이 상례였다. 금방 건조실에서 꺼낸 담배는 바짝 말라서 조금만 어디에 부딪쳐도 부서졌다. 하기에 담배를 꺼낼 때는 각별히 조심해야 했고 인차 누기를 주어야 했다. 엽아는 저녁밥을 먹은후 건조실로 왔다. 왕절름발이, 선근이, 선근이 녀편네, 엽아, 소만 모두가 건조실문앞에 서서 중요한 시각이 도래하기를 기다리고있었다. 선근이가 손에 열쇠를 들고 왕절름발이에게 물었다. ―문을 열가? 왕절름발이가 대답하지 않고 눈을 쪼프리며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그 모양을 지켜보며 엽아는 참지 못하고 키득키득 웃었다. 하지만 왕절름발이는 웃지 않고 정색해있다가 드디여 소리쳤다. ―시간이 됐소. 열쇠를 든 선근이의 오른손이 부들부들 떨리기까지 했다. 이들은 건조실을 가득채운 황금엽을 진짜 황금으로 생각하고있었다. 하기에 선근이는 이 황연기지를 일떠세우기 위하여 수많은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시간만 나면 밭을 고르고 집을 짓는 일을 했다. 다년간 모아두었던 돈도 다 이 일에 쏟아부었다. 그래도 모자라 이런저런 인맥을 통해서 대부금도 맡았다. 만약 황연재배에서 성공하지 못한다면 선근이의 노력과 쏟아 부은 돈은 바다에 돌 던진격으로 될것이였다. 문이 열렸다. 선근이는 감히 안으로 들어서지 못하고 서성거렸다. 다른 사람들도 감히 안에 들어서지 못했다. 먼저 환성을 지른이는 왕절름발이였다. 그는 애들처럼 껑충껑충 모두뜀을 했다. ―보라구, 어떤가? 선근이, 엽아야. 인젠 내 솜씨를 승인하겠지? 탄복하지? 선근이가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등신 같은것이, 솜씨 하나는 괜찮네. 건조실을 가득 채운 담배는 “황금엽”이라는 이름처럼 노오랗게 색갈이 좋았다.   문을 열어젖혔는데도 건조실안의 온도는 매우 높았다. 잠간후 왕절름발이가 소리쳤다. ―빨리 담배를 꺼내야 하오. 왕절름발이가 먼저 웃옷을 벗어내치고 웃통을 들어낸채 건조실안으로 들어갔다. 갈비뼈가 아룽아룽한 왕절름발이의 앞모습이 엽아의 눈앞으로 쓱 스쳐갔다. 소만이가 두번째로 건조실에 들어갔다. 엽아는 놓칠세라 소만이를  바라보았다. 소만이가 두다리를 쩍 벌리고 두개의 란간우에 올라섰을 때 엽아는 소만이의 종아리에 불뚝 일어선 단단한 근육을 보았다. 색갈이 좋은 담배들이 한장대 또 한장대 밖으로 들려나와 땅우에 곱게 누웠다. 선근이는 차츰 시름을 놓고 얼굴에 웃음을 피워올렸다. 선근이는 종래로 이처럼 색갈이 좋은 담배를 본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엽아는 크게 들숨을 쉬며 한번 또 한번 담배냄새를 맡았다. 코구멍을 자극하는 그 싱그러운 냄새는 엽아로 하여금 또다시 온몸이 둥둥 뜨는듯한 흥분을 느끼게 했다. 그것은 진정으로 좋은 담배에서만 나는 냄새였다. 구수하면서도 맵싸한 담배냄새는 청신한 느낌까지 더했다. 왕절름발이와 소만이는 몇번이나 건조실을 나왔다 들어갔다를 반복했다. 한번씩 건조실에서 나올 때마다 그들의 온몸은 땀으로 하여 물참봉이 되였으며 머리카락은 이마에 찰싹 들어붙었다. 엽아는 왕절름발이와 소만이의 몸뚱이를 번갈아보았다. 소만이의 몸은 근육으로 단단하게 굳어져있었지만 왕절름발이의 몸은 근육 한점 없이 축 처져있었다. 엽아는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고 실웃음을 피워올렸다. 엽아는 속으로 자신을 미쳤다고 욕했다. 머저리, 천치라고 어이없어했다. 어쩌면 내가 그런 아둔한 생각을 할수 있었단말인가? 소만이가 다시 건조실에서 나왔을 때 엽아는 소만이에게 수건을 내밀었다. 소만이는 수건을 받아 온몸으로 흐르는 땀을 닦았다. 건조실을 꽉 채웠던 노오란 담배는 한참만에야 마당에 모두 옮겨졌다. 밝은 전등불아래에 촘촘히 가려진 담배는 마치 마당을 가득 메운 황금바다 같았다. 선근이는 자못 흥분된 기색으로 녀편네를 보고 폭죽을 터치우라고 분부했다. 선근이의 녀편네는 실팍한 엉뎅이를 삐뚤거리며 급히 폭죽을 가지러 갔다. 선근이는 인차 폭죽을 걸 참대가지를 주어왔다. 소만이가 참대가지에 폭죽을 걸고 불을 달았다. 폭죽소리는 산꼭대기에서 요란하게 울렸다. 소만이는 귀를 틀어막고 탁탁 터져나가는 폭죽을 바라보았다. 소만이 역시 성공의 희열에 푹 젖어있는듯싶었다. 마지막 하나의 폭죽까지 다 터지자 소만이는 천천히 머리를 돌려 엽아를 바라보았다. 얼굴에 어렸던 웃음이 차츰 굳어지기 시작했다. 소만이는 분명 왕절름발이와 나란히 서있는 엽아를 보았다. 소만이는 왕절름발이가 담배를 꼬나물고 불을 붙이는것을 보고있었다. 엽아도 담배에 불을 붙여 빨고있었다. 엽아의 입에 물려있는 담배대에서 빨간 불빛이 반짝였다. 전등빛에 보이는 엽아의 모습은 무엇엔가 푹 빠져있는듯싶었다. 선근이며 그의 녀편네며 왕절름발이며는 엽아의 그 모습에 주의를 돌리지 못하고있었다. 오직 소만이와 엽아만이 밤하늘아래에서 전등불빛을 빌어 서로를 바라보고있었다. 사실 엽아는 소만이의 눈길에서 이글거리는 불꽃을 보지 못하고있었다.  그때 엽아는 진작 은은히 풍겨오는 담배냄새에 취해있었다. 엽아는 얼굴이 화끈거리고 발끝이 둥둥 뜨는듯한 기분을 느끼고있었다. 소만이를 바라보는 엽아의 심정은 여간만 복잡한것이 아니였다. 끝내 소만이로부터 관심을 끌어냈다는데서 오는 흥분 그리고 끝내 소만이에게 보복했다는 만족감을 느끼고있었다. 그래, 소만아. 멋져. 나한테로 와. 네가 만약 이 시각 나를 끌어안을수만 있다면 나는 오늘밤 통쾌하게 너를 따라갈것이다. 너와 나만 향수할수 있는 그 행복을 만끽할것이다. 소만이가 천천히 엽아의 쪽으로 다가왔다. 엽아의 얼굴에 어렸던 미소가 차츰 사라지기 시작했다. 엽아는 그때에야 소만이의 눈에서 반짝이는 그 불꽃을 보았다. 엽아는 그 불꽃이 분노를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얼굴에 어린 절망과 막무가내의 빛도 보아냈다. 엽아는 무의식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곁에 있던 사람들은 그제야 이제 곧 무슨 일이 발생할것을 느낀듯싶었다. 엽아의 앞에 다달은 소만이는 갑자기 손을 내밀어 엽아의 손에 들려있는 담배대를 나꿔채 던지고는 죽어라고 짓밟았다. 엽아가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소만이, 너 뭘 하는거야? 소만이는 말 한마디 없이 몸을 돌려 뚜벅뚜벅 걸음을 옮겼다. 소만이는 수도가에 다가가 찬물 한소래를 받아 들었다. 소만이는 며칠전에 엽아가 보았던 그 모습대로 찬물을 머리로부터 쭉 내리부었다.     5   어쩌면 그날 밤에 무슨 일이 꼭 일어나게 되여있었는지도 모른다. 술상은 선근이가 즉흥적으로 벌린것이였다. 사실말이지 술상을 벌려놓고서야 선근이는 무언가 후회되였다. 그날 밤 술을 마시면 누군가에게 꼭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술상에 모여 앉은 다섯 사람 모두 그날 밤 자기의 속궁리가 따로 있었다. 그래도 선근이와 그의 녀편네가 제일 기분이 좋았다고 할수 있었다. 그들은 한 건조실 가득채웠던 황금엽을 성공적으로 말려냈던것이다. 엽아가 주동적으로 술을 마시겠다고 나섰다. 엽아는 무서움도 없이 꿀떡꿀떡 빠른 속도로 술을 마셔댔다. 이미 자기의 주량을 알고있는 엽아는 어쩌면 자기가 도대체 얼마만한 술을 마실수 있는지를 시험해보려고 작정한것 같았다. 차츰 술자리가 흥성거리기 시작했다. 소만이는 여전히 얼굴에 아무 표정도 없이 앉아있었다. 선근이 녀편네는 근본 술을 마실줄 몰랐다. 몇방울만 마셔도 얼굴이 벌개나고 손발이 허공에서 놀았다. 왕절름발이는 평소 술을 잘 마신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역시 인차 나동그라졌다. 선근이, 소만이 그리고 엽아가 마지막까지 술상앞에 앉아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선근이도 너부러지고 소만이와 엽아만 술상에 남았다. 술에 만취한 엽아는 어렴풋이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였다는것을 느꼈다. 엽아는 간신히 일어나서 몸을 후들후들 떨면서 걸음을 옮겼다. 소만이도 일어나 말 없이 엽아의 뒤를 따랐다. 그들은 노오란 담배들이 잠들어있는 마당을 지나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엽아는 여전히 자기의 머리가 맑은 상태라고 생각했다. 확실히 그때 엽아의 머리는 놀랍게도 맑았다. 엽아는 소만이가 천천히 자기의 뒤를 따라온다는것을 직감했다. 엽아는 그만 돌멩이에 걸려 밑둥 끊어진 나무처럼 앞으로  쿵- 하고 넘어졌다. 그 소리와 함께 은근히 뒤를 따르던 소만이가 뛰여와 엽아의 곁에 허리를 굽혔다. 소만이가 손을 내밀어 엽아를 부축하려고 할 때 엽아가 별안간 소만이를 앞으로 끌어당겼다. 아무런 방비도 없었던 소만이는 그 맵시로 엽아의 품에 안겨들었다. 엽아는 끝내 소만이를 안았다는 생각에 안도의 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소만아, 이 곰탱이 같은것아. 너 나를 기를 채워 죽일 생각이지? 소만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엽아는 소만이를 꼭 끌어안았다. 소만이는 마치 침대우에 누운듯 편했다. 엽아가 말했다. ―내가 왜 만나는 남자마다 퇴자를 놓았는지 너 알어? 바로 네놈이 와서 청혼하기를 기다린거다. 헌데 넌 왜 여직 안왔던거야? 똑똑히 알아둬. 내가 뭐 네가 아니면 시집을 못 갈줄 알아? 네가 계속 나를 기 채우면 아무 남자나 만나 도망갈거다. 너 내 말을 믿니?  엽아는 소만이의 두팔이 자기의 몸뚱이에 힘을 실어옴을 느꼈다. 소만이가 엽아를 힘껏 끌어들이고있었다. 그제야 엽아는 소만이가 자기의 입술을 찾는다는것을 의식하게 되였다. 엽아는 주동적으로 자기의 입술을 소만이의 입술에 가져갔다. 소만이의 입술이 엽아의 입술우에 포개졌다. 엽아는 자기의 입술이 끝내 행복의 대안에 닿았다고 생각했다. 소만이가 입을 열었다. ―누가 너에게 집적거리면 내가 죽여버릴거야. 머리가 진정 맑아서야 엽아는 그날 소만이에게 “누가 감히 나에게 집적거려? 너를 내놓고.” 하고 한마디 안심을 시킬것을 그랬다고 후회했다. 하지만 그날, 엽아는 술을 많이 마신 상태여서 소만이의 감수에 대해 크게 중시를 돌리지 못했다. 엽아가 깔깔 웃으며 말했다. ―소만아, 너 그래 누구도 나를 집적거리지 못할것이라고 생각하니? 닷새전에 왕절름발이가 나를 보고 같이 북경유람을 가자고 했거든. 엽아는 벌써 그 말을 그렇게 롱담으로 할수 있었다. 엽아는 세상일이란 이렇게 우스운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굴리고있었다. 그래, 하늘이 얼마나 높은줄도 모르는 물건짝 같으니라구. 북경유람이 아니라 세계유람을 시켜준다 해봐라. 네까짓것을  소만이와 비길수 있는가? 하지만 그때 엽아는 소만이의 기분이 가라앉는다는것을 느끼지 못하고있었다. 소만이가 천천히 일어섰다. ―소만아, 웬 일이니? 소만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걸음을 옮기더니 갑자기 앞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엽아는 저도 몰래 일종의 두려움을 느꼈다. 엽아는 자기가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것을 느꼈다. 엽아는 벌떡 일어나서 소만이가 사라진 방향을 따라 쫓아갔다. 아차, 엽아는 또 한번 발을 헛디디며 앞으로 넘어졌다. 엽아는 엎어진 그 맵시로 왕왕 소리내여 통곡했다. 소만이를 내놓고는 누구도 그후에 일어난 일에 대하여 정확히 해석할수 없을것이다. 그날 밤, 경찰들이 와서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파출소로 데려갔다. 그들이 술에서 깨여난후 한 사람 한 사람 심문했다. 경찰이 먼저 선근이에게 물었다. ―소만이가 벙어리요? 선근이가 대답했다. ―아닌데요. 절대 벙어리가 아닙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말하기 싫어했습니다. 경찰은 사건의 경과를 상세하게 물었다. 하지만 선근이도 사건의 시말을 상세하게 말할수 없었다. ―무슨 감투끈인지 나도 잘 모릅니다. 그날 나는 담배를 건조실에서 꺼냈거든요. 당신들도 보고있지 않습니까? 왕씨가 불을 보았습니다. 담배색갈이 참 좋지요. 나는 기뻐서 그날 밤에 술자리를 마련하고 경축하려 했지요. 그런데 모두들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실줄이야. 경찰이 또 물었다. ―그들 둘이 싸움한다는것을 당신은 조금도 느끼지 못했소? ―나는 그저 귀신이 곡하는듯한 소리만 들었을뿐입니다. 그 소리에 너무 놀라서 일어나려고 해도 다리가 떨려 도무지 일어날수 없었지요. 간신히 일어나서 마당에 나가보니 왕씨가 마당에 쓰러져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소만이가 한쪽에 서있었구요. 그도 못박힌듯했습니다. 손에는 괭이자루를 꽉 잡고서 말입니다. 괭이자루는 대추나무로 만든것이였습니다. 대단히 든든한것이죠. 며칠전에 내가 시장에 가서 사온것입니다. 나는 왕씨가 죽은줄로 알고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선근이 녀편네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사실 술을 그렇게 많이 마시지 않았더랬어요. 하지만 나는 워낙 술을 잘 마시지 못하지요. 나는 하늘을 째는듯한 소리에 놀라 와들와들 떨었어요. 먼저 우리 나그네를 흔들어 깨웠어요. 우리 나그네는 술에 취했는지라 죽은 돼지처럼 동정이 없었습니다. 나는 감히 혼자서는 밖으로 나갈수 없었지요. 그때 밖이 아주 어두웠으니까요. 나는 우리 나그네의 몸뚱이를 발로 차서 겨우 깨웠습니다. 밖으로 나갔던 나그네가 헐레벌떡 집으로 뛰여들어와 소리쳤습니다. 큰일 났소. 소만이가 왕씨를 때려죽인것 같소. 엽아는 이렇게 말했다. ―모두 내가 입이 싼 탓이예요. 정말이지 나는 지금 나의 입을 찢어버리고싶어요. 그때 나는 발을 헛디디고 넘어져 근본 일어날수 없었어요. 그렇게 한참 쓰러져있는데 갑자기 산꼭대기에서 괴성이 들려온거예요. 나는 종아리가 부들부들 떨려서 더구나 일어설수 없었어요. 그래도 나는 이를 옥물고 간신히 일어났죠. 하지만 몇걸음 걷지 못하고 또 쓰러졌어요. 한참후 또 일어나서 걸음을 옮겼지만 역시 몇걸음 옮기지 못하고 넘어졌어요. 나는 그렇게 무진 애를 써서야 마당에 들어섰어요. 소만이가 마당에 앉아있었어요. 몽둥이는 소만이의 옆에 놓여져있었구요. 왕씨가 마당에 쓰러져있었어요. 나는 왕씨가 죽은줄로 알았어요. 선근이가 핸드폰을 꺼내들고 신호가 통하는 곳을 찾느라 헤맸어요. 선근이는 끝내 신호가 통하는 곳을 찾아 경찰에 신고했어요. 왕절름발이도 경찰의 심문을 받았다. ―나는 그때 금방 자리에 들었습니다. 잠결에 누군가 나를 허궁 들고있다는 느낌을 받았지요. 나는 누가 나와 롱질을 하는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소만이였지요. 소만이는 워낙 말하기 싫어합니다. 말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워낙 무서운데가 있지요. 소만이는 나를 끌고 어디론가 갔습니다. 나도 그게 어딘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술에 녹초가 되여있었거든요. 나는 거기에 누워 또 잠이 들었습니다. 어슴프레 기억나는것은 소만이가 몽둥이를 휘둘렀다는것뿐입니다. 아마 나의 다리를 향해 내리친것 같습니다. 나는 그때 나의 다리가 끊어져나가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나는 진짜 절름발이가 되는거지요. 나는 너무 무서워 마구 소리를 질렀습니다. 나는  진짜 몽둥이가 어디엔가 부딪치는 소리를 들었다니까요. 소리로 보아서는 몽둥이가 끊어졌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나는 아픔을 느낄수 없었습니다. 나는 후에 또다시 잠에 곯아떨어졌으니까요…   종리화(宗利华): 1971년 출생. 로신문학원 제13기 청년작가고급연수반 수료. 중국작가협회 회원. 150만자의 소설을 발표. 여러편의 작품이 《소설선간》, 《문화발취》 등 잡지에 수록되고 영어, 한국어로 번역, 출판됨.                                  
6    백구그네대 * 막언 댓글:  조회:3064  추천:3  2013-03-15
    백구그네대   막언      고밀현 동북향에는 워낙 흰털을 가진 온순한 성격의 체대가 큰 개들이 많았다. 하지만 몇대를 내려온 지금에 와서는 거의 순종을 찾아볼수 없다. 지금 그곳에서 기르는 개들은 거의다 잡종이다. 간혹 흰털의 개들도 볼수는 있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역시 어느 한 부위에 잡색을 띠고있어 혼혈의 흔적이 보인다. 하지만 그 잡색 털의 면적이 전반 개털 면적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고 또 그렇게 눈에 뜨이는 부위에 있지 않다면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백구”라고 부르지 구태여 그 뿌리를 찾아 무슨 품종인가를 따지려고 하지 않는다. 온몸이 흰털로 뒤덮였지만 앞발에 약간 검은 털이 섞인 백구가 대가리를 푹 떨구고 당금 허물어질것 같은 돌다리를 지나 내쪽으로 다가왔다. 그때 나는 다리아래의 돌계단을 딛고 서서 맑은 물에 세수를 하고있었다.   음력으로 7월말이라 지세가 낮은 동북향은 한창 찜통더위에 몸살을 하고있었다. 내가 공공뻐스에서 내려보니 찐득찐득한 땀으로 하여 적삼이 등에 찰싹 달라 붙었고 목이며 얼굴에는 황토가루가 한벌 내려앉았었다. 나는 얼굴이며 목을 깨끗하게 씻느라했지만 도무지 개운함을 느낄수 없었다. 나는 실 한오리 걸치지 않은 알몸둥이 그대로 강에 뛰여들어 물장구라도 치고싶었다. 하지만 돌다리와 가까운 길옆의 갈색을 띤 밭머리 소로길에서 사람들이 오가는것이 보였기에 마음을 고쳐 먹고 몸을 일으켰다. 나는 미혼처가 선물한 손수건을 꺼내 얼굴이며 목에서 흐르는 물방울을 닦았다. 시간은 정오를 넘기고있어서 태양이 약간 서쪽으로 기울었다. 한줄기 동남풍이 불어와 시원하게 페부에 스며들었다. 수수송치가 한들한들 춤을 추면서 스륵스르륵 노래를 부르고있었다. 백구는 흰 털을 빳빳이 세우고 꼬리를 흔들거리면서 내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제야 백구의 앞발에 있는 검은 털을 보아낼수 있었다.   앞발에 검은 털을 가진 백구는 다리목까지 와서 걸음을 멈추고 대가리를 돌려 지나왔던 황토길을 돌아보다가 다시 흐릿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길이 깊고 처량하게 느껴졌다. 그 깊고 처량함에는 나에게 무엇인가를 알려주려는 암시 비슷한 뜻이 숨겨져있는듯싶었다. 그 깊고 처량한 암시가 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내가 대학에 붙어 고향을 떠난후 아버지도 외성에 있는 형님네 집으로 가 살았기에 고향에는 사실 친척이 없었다. 하기에 나도 고향을 찾을 리유가 딱히 없었던것이다. 그새 벌써 10년 세월이 흘렀다. 10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세월이라고 해야겠다. 여름방학전에 아버지는 내가 임직해있는 학원으로 찾아와 고향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의 가슴은 몹시도 설레였다. 아버지는 나를 보고 짬을 타서 고향에 한번 가보라고 했다. 내가 잠시 일이 많아 몸을 뺄 새가 없다고 하자 아버지는 더 이상 권하지 않고 머리만 설레설레 저으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후 나는 웬지 가슴이 불안했다. 여름방학을 하자 나는 큰 마음을 먹고 모든 일을 팽개친채 고향행을 선택했던것이다.    백구는 대가리를 돌려 갈색의 황토길을 바라보다가 다시 내쪽으로 향했다. 나를 바라보는 백구의 눈길은 여전히 그처럼 흐릿해있었다. 내가 백구의 앞발에 난 검은 색 털을 바라보면서 놀랍게도 무엇인가를 떠올리고있을 때 백구가 내밀었던 뻘건 혀를 거두어들이더니 나를 향해 컹컹 짖었다. 이어 백구는 다리목의 석판에 다가가 습관적으로 뒤다리 하나를 쳐들고 오줌을 쐈다. 일을 마친 백구는 내가 내려온 다리아래의 오솔길을 따라 천천히 내쪽으로 다가왔다. 내곁에 다달은 백구는 꼬리를 뒤다리사이에 가져다 붙이고 뻘건 혀로 한번 또 한번 물을 찍어마셨다.   백구는 누군가를 기다리는것 같았다. 하기에 목이 말라서가 아니라 그렇게 물을 마시면서 심심풀이를 하려는 심사같았다. 물에는 처량한 백구의 표정이 그대로 비꼈다. 물고기들이 쉼없이 백구의 얼굴이 비낀 물속을 스쳐지나고있었다. 백구와 물고기들은 조금도 나를 두려워 하지 않았다. 나는 분명 그때 개 비린내와 물고기 비린내를 맡고있었다. 나는 단번에 백구를 강물에 차넣고 물고기들을 잡아버리고싶다는 무서운 생각을 굴리다가 그래도 품위는 지켜야지 하며 자신을 달랬다. 그때 백구가 꼬리를 치켜들며 차디찬 눈길로 나를 바라보다가 다리우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나는 백구가 목덜미의 털을 빳빳이 치켜세우고 오던길을 따라 헐레벌떡 올가는 장면을 지켜보고있었다. 이삭이 약간 초록빛을 띤 수수들이 길량옆에 숲을 이루면서 무연하게 펼쳐져있었다. 하얀 구름이 송이송이 피여난 파아란 하늘이 네모난 밭뙈기들로 이어진 벌판에 내려앉은듯싶었다. 나는 다리목까지 걸어가 행리를 주어들고 급히 다리를 건너려고 서둘렀다. 그곳에서 내가 살던 마을까지는 12리나 떨어져있었다. 올 때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기에 일찍 마을에 도착해야 주숙을 해결하기 쉬울것이였다. 내가 그런 생각을 굴리며 걸음을 옮기고있을 때 백구도 내앞에서 반달음을 했다. 나는 길옆 수수밭에서 커다란 수수잎묶음을 등에 진 한 사람이 걸어나오는것을 발견했다.    전에 나는 농촌에서 근 20년을 살았기에 수수잎은 소나 말의 최상의 사료라는것을 알고있었다. 그리고 수수알이 밸 때 떡잎을 따도 수수 산량에는 영향이 없다는것도 알고있었다. 멀리에서 산더미같은 수수잎묶음을 등에 지고 힘겹게 내쪽으로 다가오는 그 사람을 지켜보면서 나는 웬지 가슴이 무거워남을 느꼈다. 찌는듯이 무더운 여름날, 바람 한점 뚫기 힘든 수수밭에 들어가 떡잎을 따기란 얼마나 힘들다는것을 나는 너무도 잘 알고있었다. 땀으로 온몸이 적셔지고 옷이 가슴에 착 달라붙어 숨 쉬기조차 힘든것은 제쳐두고라도 수수잎에 난 잔털이 찐득찐득 땀이 내배인 피부에 달라붙어 근질거리는 그 고통은 실로 뭐라고 표현할 길이 없었다. 나는 괜히 갑갑해 나는 가슴을 만지작거리면서 후 하고 긴 숨을 내쉬였다. 차츰 수수잎묶음을 지고 다가오는 사람의 륜곽이 보였다. 푸른 마고자에 검은 바지를 입었고 거무스름한 발에는 누르스름한 고무신을 신고있었다. 긴 머리칼만 아니라면 나는 실로 그가 녀자라는것을 믿을수 없을것이였다. 허리를 잔뜩 굽히고 걸음을 옮기는 그녀의 머리는 땅과 거의 평행을 이루고있었는데 쑥 내민 목이 아주 길어보였다. 그것은 아마도 어깨에 가는 아픔을 경감시키려는 동작같았다. 그녀는 한쪽손으로 어깨를 조이는 끈의 아래쪽을 꼭 잡고 다른 한쪽손은 목뒤로 가져가 끈의 다른 한쪽을 틀어쥐고있었다. 해볕은 그녀의 목이며 두피에 배여나온 땀방울을 반짝반짝 비추고있었다. 담록색의 수수잎은 사뭇 신선해보였다. 그녀는 한발짝한발짝 힘겹게 걸음을 옮겨 끝내 다리에 올라섰다. 다리의 너비는 그녀의 등에 지워진 수수잎묶음의 너비와 비슷했다. 나는 방금 백구가 멈춰섰던 다리목의 석판우에 물러서서 그녀와 백구가 먼저 다리를 건너기를 기다렸다.   나는 백구와 그녀 사이에 보이지 않는 끈이 이어져있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백구는 기분에 따라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적느적 걸음을 옮겼고 그 끈도 때론 빳빳하게 때론 느슨하게 이어지는것 같았다. 그들이 내 앞에 다달았을 때 백구가 그 깊고도 처량한 두눈으로 나를 흘끔 건너다보았다. 백구의 눈에서 뿜겨져나오는 그 흐릿한 암시는 순간 똑똑하게 보여지는것 같았다. 백구의 검은 털이 약간 있는 두 앞발은 순식간에 나의 머리속에서 맴돌던 의문의 타래를 풀어주었다. 나는 인차 그녀가 누구인지를 떠올렸다. 머리를 푹 숙인 그녀가 내앞을 스쳐가고있었다. 힘겨운 숨소리와 코를 찌르는 땀냄새가 내 가슴속 밑자락에 깊숙이 숨어있던 그녀를 불러냈다. 그녀가 갑자기 등에 지고있던 커다란 수수잎묶음을 내려놓고 천천히 허리를 폈다. 산더미같은 수수잎묶음이 그녀의 뒤에 덩그라니 놓였는데 그녀의 젖가슴과 높이를 비슷하게 하고있었다. 그녀의 몸이 대였던 부분이 선명하게 옴폭 패여들어가있었다. 특히 힘을 받았던 부분의 수수잎들은 땀에 짓이개져있었다. 수수잎이 짓이개질 정도로 힘을 받았을 그녀의 신체 부위들이 선들바람에 특별히 시원하게 느껴질것이라는 야릇한 생각이 머리를 쳤다. 그녀는 온몸이 홀가분함을 느끼게 될것이고 순간이나마 그로부터 오는 만족을 느낄것이였다. 홀가분함, 만족 그것은 행복을 구성하는 요소로 될수있었다. 지난 세월동안 나도 그런것들을 피부로 느낀적이 있었다.   그녀는 허리를 꼿꼿이 펴고있었는데 잠시 세상 모든 근심을 잊은것 같았다. 얼굴에 덮씌운 먼지가 땀에 반죽되여 얼기설기 고랑을 짓고있었다. 쩍 벌어진 입으로는 헉헉하는 거친 숨소리가 연신 터졌다. 그녀의 덩실한 코등은 잘 자란 파를 련상케 했고 이발은 하얗게 빛났다.   나의 고향마을에는 예쁜 녀인들이 많았는데 옛날에는 궁전에 들어가는이도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몇몇은 북경에 들어가 영화배우로 활약하고있다. 그 몇몇 배우들을 나도 본적이 있지만 지금 내앞에 있는 그녀보다 별로 나은데가 없다고 느껴졌다. 만약 그녀도 그때 상처만 입지 않았어도 지금쯤은 북경에 들어가 큰 배우로 되였을지 모를 일이였다. 십여년전 그녀는 확실히 피여나는 꽃송이를 방불케 했고 별처럼 반짝이는 두눈을 가지고있었다.    “난!” 나는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   그녀는 왼쪽눈으로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흰자위에 실실이 피발이 어려있었는데 나에 대한 증오가 불타는듯싶었다.   “난, 고모!” 나는 나를 모르겠느냐는듯한 어조로 다시한번 그녀를 불렀다.   나는 그해 29살이였고 그녀는 나보다 2살이 어리였다. 고향마을을 떠났던 그 십년간 정말 많은 변화가 있은듯 했다. 만약 그때 그네를 타다가 빚어진 그 사고의 흔적만 아니라면 나는 실로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을것이다. 백구도 나의 아래우를 찬찬히 뜯어보고있었다. 그러고보니 백구의 나이도 12살이나 되였다. 그러니 응당 백구가 “만년”에 이르렀다고 해야할것이였다. 나는 백구가 그때까지 살아있다는게 놀라울뿐이였다. 백구는 살아있을뿐만아니라 매우 건강한것 같았다. 그해 단오절, 백구는 겨우 롱구뽈만 했었다. 아버지는 현성에 사는 외삼촌네 집에서 그놈을 안아왔다. 12년전, 마을에는벌써 순종의 백구가 자취를 감추었었다. 백구처럼 약간 흠이 있지만 그런대로 백구라고 부를수 있는 개도 찾기가 힘들었다.잡종 개들이 마을을 채울 때 아버지가 그놈을 안아오자 사람들은 모두 부러운 눈길을 보냈었다. 어떤 사람은 돈 30원을 내놓으면서 그놈을 사겠다고 했지만 아버지는 단번에 거절했다. 그 무렵, 농촌에서 특히 우리 고밀현 동북향과 같은 황페한 시골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재미로 개를 기르고있었다. 우리 마을은 뜻밖의 자연재해만 없으면 그런대로 배를 불릴수 있는 곳이였다.   내가 19살, 난이 17살, 백구가 4달에 나던 그해였다. 한패 또 한패의 해방군들이, 한대 또 한대의 군대차들이 북쪽으로부터 우리 마을을 지나 물밀듯이 돌다리를 건넜다. 우리 중학교에서는 거적으로 막을 치고 물을 끓여 해방군들에게 권했다. 학생선전대는 막옆에서 징을 치고 북을 두드리며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다리는 매우 좁았다. 첫대의 군용차가 조심조심 다리를 건넜다. 두번째의 군용차가 다리를 건너다가 그만 다리옆의 석판을 분지르면서 강에 떨어지고말았다. 차에 실었던 솥이며 대야며 사발 같은 취사도구들이 적지 않게 박산이 났다. 강에는 기름방울이 둥둥 떠다녔다. 전사들이 강에 뛰여들어 운전수를 들어내려 언덕으로 올려왔다. 운전수의 몸에서는 그때까지도 흙탕물이 줄줄 흐르고있었다.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운전수쪽으로 모여들었다. 흰 장갑을 낀 사람이 나팔을 들고 뭐라고 소리쳐댔다. 나와 난은 선전대의 골간이였다. 하지만 북을 치고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것마저 잊고 운전수가 누워있는쪽을 흘끔흘끔 곁눈질 했다. 잠간후 높은 수장 같은분들 몇몇이 다가와 우리 학교 빈하중농대표 곽곰보할아버지와 학교 혁명위원회 류주임과 악수를 했다. 그후 다시 장갑을 끼고 우리를 향해 손을 젓고는 그 자리에 서서 대오가 강을 건너는것을 지켜보았다. 곽곰보할아버지가 나에게 피리를 불라고 지시했고 류주임이 난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했다. “무슨 노래를 부를가요?” 난이 물었다. “ ‘그대들은 친인같아요’를 불러라.” 류주임이 대답했다. 나는 피리를 불고 난은 목청껏 노래를 불렀다. 전사들은 줄을 지어 다리를 지나갔다. 군용차들이 물을 건넜다. “흐르는 강물은 맑디맑고/곡식들은 골짜기를 덮었네” 군용차가 하얀 물보라를 일구며 지나가자 그 뒤로 혼탁한 흙물이 일었다. “해방군들 마을에 와/우리를 위해 가을걷이를 하네” 큰 차들이 모두 강을 건넌후 찌프차 두대가 주춤주춤 강에 들어섰다. 그중 한대가 먼저 나는듯이 강을 건너며 5, 6메터쯤 되는 물기둥을 일으켰다. 다른 한대도 그 뒤를 따라 강에 들어섰지만 웬 일인지 부릉부릉 소리만 내다가 발동이 꺼졌다. “오가는 한담들에/흘러간 옛 이야기 머리속을 감도네” “젠장!” 한 수장이 투덜대자 다른 한 수장이 소리쳤다. “제미랄, 돌대가리같은것들, 왕말라꽹이를 불러다 차를 끌어올리라구해!” “한가마밥을 먹고/한 등잔밑에 산다네” 잠간새에 몇십명의 전사들이 강에 들어가 발동이 꺼진 찌프차를 밀기 시작했다. 전사들은 모두 군복을 입은채로 강에 들어갔다. 강물은 무릎아래에 닿았지만 물이 튕겨 모두들 가슴까지 젖었다. 물에 젖어 색이 진해진 군복이 전사들의 몸에 착 달라붙어 저마다의 가슴이며 엉뎅이 곡선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그대들은 우리의 친혈육이라네/그대들 마음 우리와 이어져있다네” 흰 가운을 입은 몇몇 사람이 그때까지도 옷에서 흙탕물이 뚝뚝 떨어지는 운전수를 들어 붉은색 십(十)자가 박혀져있는 군용차에 올렸다. “당의 은정 헤아릴수 없네/그대들을 만나면 친인을 보는것 같다네” 그때 한 수장이 몸을 돌렸다. 보아하니 그도 다리를 건너려는것 같았다. 나는 다시 피리를 불었고 난은 다시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우리의 눈길은 여전히 그 수장의 몸에서 떨어질줄 몰랐다. 검은테 안경을 건 수장이 우리를 향해 머리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괜찮아, 노래를 참 잘 부르는구나. 피리도 괜찮게 부는군.” 곽곰보할아버지가 그 말에 동을 달았다. “수장동지들이 수고가 많다고 쟤들이 저렇게 피리를 불구 노래를 하는겝니다. 괜히 웃음거리가 되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곽곰보할아버지는 담배 한곽을 꺼내 아구리를 뜯더니 한가치를 집어서 공경스럽게 수장에게 권했다. 수장은 공손하게 담배를 사절했다. 바퀴가 여러개 달린 군용차가 강 맞은쪽에 와 멈춰 서더니 우로부터 몇몇 전사가 뛰여내렸다. 그들은 몇꾸레미의 굵직한 쇠줄과 흰 나무들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검은테 안경을 건 수장이 곁에 있는 젊고 영준하게 생긴 군관을 보고 말했다. “채대장, 선전대에 있는 악기들을 이들에게 선물하라구.” 대오는 모두 강을 건너 여러 마을에 배치되였다. 사부(师部)가 우리 마을에 들어왔다. 부대가 마을에 주둔해있던 그 나날은 매일이 설을 쇠는것 같았다. 사람들은 모두 극도록 흥분되여있었다. 군대들은 우리 집 사랑채로부터 몇십오리의 전화선을 끌어내서 사면팔방으로 늘여나갔다. 영준하게 생긴 채대장은 악기를 다루거나 노래를 부르는 문예병사들과 함께 난네 집에 주숙을 정했다. 나는 날마다 그들을 찾아가 시간을 보냈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채대장과 친해지게 되였다. 채대장이 늘 난을 보고 노래를 부르라고 했다. 채대장은 키가 매우 컸는데 머리칼이 텁수룩하고 눈섭이 짙었다. 난이 노래를 부를 때 채대장은 머리를 수긋하고 걸탐스럽게 담배를 빨았다. 그때마다 채대장의 귀가 파들파들 떨리고있었다. 채대장은 난의 자연조건이 괜찮다고 말했다. 난과 같은 조건을 가진 애들을 찾기가 조련치 않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전업적인 지도를 받지 못한것이 아쉽다고 했다. 그리고 나도 발전전도가 있다고 치하해주었다. 채대장이 우리가 기르는 앞발에 검은 털이 있는 백구를 매우 좋아한다는것을 눈치챈 아버지는 백구를 채대장에게 선물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채대장은 기어코 사양했다. 대오가 마을을 떠나더난던 그날, 나의 아버지와 난의 아버지가 채대장을 찾아가 나와 난을 데리고 떠나달라고 부탁했다. 채대장은 돌아가서 수장들에게 회보를 한후 년말에 징병을 할 때 우리를 데려가겠다고 답복했다. 갈라질 때 채대장이 나에게 《피리연주법》이라는 책을 선물했고 난에게는 《어떻게 혁명가곡을 잘 부르겠는가?》라는 책을 선물했다.   “고모.” 나는 난처한 표정을 짓고 짧막하게 그녀를 부르고는 아래말을 이었다.  “설마 나를 못 알아보는것은 아니겠지?”   우리 마을에는 여러가지 성을 가진 사람들이 다 있었다. 장씨며 왕씨며 리씨며 두씨며가 사면팔방으로부터 모여들여 호칭도 여간만 복잡한것이 아니였다. 친척고모가 친척조카에게 시집을 가거나 조카가 숙모를 홀려 도망가는 일도 어렵잖게 볼수 있었다. 그들의 나이가 어울리기만 하면 그런 일들을 구태여 비난하는 사람도 없었다. 내가 난을 고모라고 부르는것은 어릴 때부터 내려온 습관때문이지 그와 무슨 혈연관계가 있어서는 아니였다. 십년전, 그녀를 “난”이요 “고모”요 하고 부르고싶은대로 마구 불러 댈 때만 해도 나는 가끔 가슴에 서려오르는 묘한 느낌을 받군했었다. 하지만 흘러간 십년사이에 우리는 모두 성숙되였었다. 하기에 나는 예전처럼 그녀를 고모라고 부르면서도 아무런 감동을 느끼지 못했다.   “고모, 정말 나를 알아 못보는거야?” 말을 마치고 난 나는 자신의 우직함이 얼마나 한심하게 느껴지는지 몰랐다. 그녀의 얼굴에는 더 한층 처량한 빛이 어렸다. 땀방울이 둘둘 굴러내려 그녀의 머리칼을 볼에다 착 붙여놓았다. 워낙 거무스레하던 그녀의 얼굴이 그때 웬지 희읍스름한 빛을 뿌리고있었다。 그녀의 왼쪽눈에서 맑은 물방울이 맺혀 반짝이고있었다. 오른쪽눈은 눈알이 없어서인지 눈물도 보이지 않았다. 깊이 패여들어간 오른쪽눈확에는 들쑥날쑥한 눈초리가 되는대로 자라있었다. 나의 마음은 더없이 찹찹해났다. 그녀의 푹 꺼져들어간 오른쪽눈확을 보고싶지 않았다. 나는 의식적으로 그녀의 동그란 왼쪽눈섭이며 땀에 젖어 반짝이는 머리칼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오른쪽볼은 푸들푸들 떨리고있었는데 꺼져들어간 눈확쪽으로 올리달려 더욱 처량하고 괴상한 표정을 연출하고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 모양을 보고 별다른 느낌이 없을수 있겠지만 나는 그 모습을 보고 가슴이 찟기지 않을수 없었다…     십여년전의 그날밤, 나는 너의 집으로 가서 너를 불렀지. “고모, 그네 뛰는 사람들이 모두 가버렸어. 우리 함께 마음껏 그네를 뛰자.” 그러자 네가 말했지. “나는 곤하거든.” 그에 내가 졸랐더랬지. “가자는데두. 한식에 여드레나 쉬구서두 곤하긴 무슨. 마을에서 래일 그네대를 헐어서 목재로 쓴대. 오늘 아침에 마부가 대장에게 말하는걸 들었거든. 마을에서 그의 바줄을 빌어다가 그네줄을 맸는데 다 닳아버렸다고 투덜거렸다니까.” 내 말을 들으면서 너는 길게 하품을 하고는 입을 열었지. “그럼 가자.” 그때 이미 중개로 자란 백구는 몸집이 여위여 새끼때보다 귀염성이 없어보였지. 백구가 우리의 뒤를 다라왔거든. 교교한 달빛에 백구의 하얀 털이 은빛으로 반짝거렸지. 그네대는 마당어구에 세워져있었더랬지. 기둥 두개를 세우고 그 우에 원목을 가로 놓아 고정시켰더랬지. 두 가닥의 굵은 바줄에는 각기 쇠고리가 달려있었고 아래에는 그네판이 놓여있었지. 달빛아래에 묵묵히 서있는 그네대는 웬지 음침하게 느껴졌는데 마치도 저승문을 보는듯 으스스한 느낌마저 들더구나. 그네대 뒤로 얼마 되지 않는 곳은 골짜기였는데 그곳에는 가시가 가득한 홰나무들이 얼기설기 얽혀있었지. 뾰족뾰족 뻗어나온 가시들우로 차가운 달빛이 청승스럽게 비추더구나. “내가 앉을게, 너 밀어줘.” 네가 말했더랬지. “좋아. 내가 너를 하늘로 밀어보낼게.”   “좋아, 나 백구도 안고 하늘에 오를거야.”   “너 무슨 멋을 피우려구 그러니?” 내 말을 아랑곳 하지 않고 너는 백구를 불렀더랬지. “백구야, 이리와. 너도 좀 호사를 해보라니까.” 너는 한손으로 그네줄을 잡고 다른 한손으로는 백구를 안았더랬지. 너의 품에 안긴 백구는 두려운지 빠져나오겠다고 끙끙거렸더랬지. 나는 두손으로 너와 백구를 잡았다가 젓 먹던 힘까지 다해서 힘껏 하늘로 밀어올렸지. 그네는 나의 힘에 의해 관성을 타고 하늘로 날아올랐지.      우리는 높이높이 날아올랐어. 달빛은 마치도 반짝이는 수면처럼 느껴졌거든. 귀바퀴로 바람이 씽씽 불어지났어. 나는 그때 머리가 어지러워남을 느꼈단다. 하늘로 날아오르는 나와 백구를 바라보면서 너는 재밋다고 껄껄 웃어댔더랬지. 백구는 무서운지 컹컹 짖어대더구나. 우리는 드디여 그네대에 가로 얹은 원목이 있는데까지 거의 날아올랐단다. 나의 눈에는 드넓은 전야와 출렁출렁 흘러가는 강물이 보였단다. 그리고 멀리 떨어져있는 묘지들도 보였구. 싸늘한 바람이 우리의 얼굴을 때리고는 쌩쌩 물러갔단다.     나는 머리를 쳐들고 너에게 물었더랬지? “고모, 어때?” 네가 대답했지. “신선같아. 하늘로 오르는 느낌이야.” 그 말과 함께 그네줄이 끊어졌지. 너와 백구는 골짜기의 홰나무숲에 떨어졌구. 홰나무가시 하나가 너의 오른쪽눈을 찍었더랬지. 백구는 홰나무숲에서 기여나와 그네대아래에서 술에 취한듯      비틀비틀 맴돌아쳤지…   “너너, 넌 이 몇해 어…어… 어때? 잘 보내고있겠지?” 나는 그녀를 향해 꺽꺽 말을 더듬었다. 나는 그녀의 어깨가 축 처져내리고 잔뜩 긴장되였던 얼굴근육이 느슨해지는것을 보아냈다. 오른쪽눈이 없는 생리적결함때문인지 아니면 힘든 로동때문에 커다랗게 변해버린것인지 모를 왼쪽눈에서 갑자기 차디찬 빛이 무섭게 쏟아져나와 나의 온몸을 마구 찔러댔다. “그럼, 잘 보내구 말구. 먹을게 있겠다, 입을게 있겠다 거기다가 남정네에 새끼들까지… 눈깔이 하나 없는것만 빼구는 아무것도 모자라는게 없어. 이보다 더 좋을수 있겠니?” 그녀의 말에는 분명 가시가 박혀있었다.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일순 뭐라고 대답을 했으면 좋을지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나는 한참이나 머뭇거리다가 겨우 한마디 했다. “나 학교에 남게 되였다. 아마 오라지 않으면 강사로 될거야. 나는 늘 고향이 그리웠어. 고향사람들이 그리웠구 고향의 강이며 돌다리며 들이며 붉은 수수며 청신한 공기며 구성진 새소리며… 그래서 여름방학을 하자마자 이렇게 뛰여온거다. ” “뭐 그리울게 있다구, 이 비루 먹을 고장이. 다 낡아빠진 이 다리가 그리웠다구? 수수밭은 또 뭐야, 시루속같이 무덥기만 하구. 눈 껌뻑 할 새에 사람을 홀랑 삶아낼 지경이거든.” 그녀는 말하면서 천천히 내리막을 내려가 흰 재물이 꽃처럼 피여난 푸른색 마고자를 벗어 곁에 있는 돌판우에 던졌다. 그녀는 허리를 굽히고 강물에 얼굴이며 목을 씻기 시작했다. 그녀는 우에다 헐렁한 라운드반팔적삼을 입고있었는데 적삼에는 작은 구멍들이 촘촘히 나있었다. 적삼은 원래 흰색이였는데 세월을 내려오면서 회색으로 변한것 같았다. 그녀는 적삼깃을 고의춤에 쑤셔넣은후 흰 붕대로 꾹 졸라매고있었다. 그녀는 다시 나에게 눈길조차 돌리지 않고 손바닥으로 부지런히 물을 퍼서 얼굴이며 목이며 팔뚝을 씻었다. 이어 그녀는 내 같은것은 안중에도 없다는듯 고의춤에서 적삼깃을 활 당겨 둘둘 말아올리더니 손바닥으로 물을 퍼서 가슴을 문대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적삼이 축축히 젖어들더니 그녀의 풍만한 젖가슴에 찰싹 달라붙었다. 봉긋이 솟아난 두개의 젖무덤을 보면서 나는 전에 그렇게 신비하게 느껴지던 물건도 사실은 거기서 거기라고 담담하게 생각했다. 시골애들이 흥얼거리는 “결혼하지 않으면 금꼭지요 남정의 손을 거치면 은꼭지요 새끼를 낳으면 개젖이라네”라는 노래가 참으로 신통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녀를 보고 애가 몇이나 되는가고 물었다.   “셋이야.” 그녀가 손가락으로 머리칼을 빗어내리며 말하고는 적삼깃을 툭툭 털어서 다시 고의춤에 찔러넣었다.   “셋이라니? 하나밖에 못 낳는게 아니야?”   “그래, 나두 새끼를 두번 밴것은 아니지.” 그 말에 내가 인차 납득을 못하자 그는 나를 건너다보며 말했다. “한번에 세놈을 낳았어. 개처럼 세놈이나 줄줄이 내쐈거든.”   그 말에 나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억지로 얼굴에 웃음을 게발랐다. 그녀는 푸른색 마고자를 주어 무릎에 대고 몇번 털어 입더니 아래로부터 단추를 채우기 시작했다. 수수잎묶음옆에 쪼크리고 앉았던 백구도 일어서서 부르르 털을 털더니 허리를 길게 늘어뜨렸다.   “이렇게 큰 짐을 네가 어떻게?” 나는 자신이 없는듯 낮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큰 짐이라고 메지 않으면 어쩔건데? 어떤 죄값을 치뤄야 하는가는 명에 정해진거야. 피하려고 해도 피할수가 없거든.” “오누이들이야?” “아니, 몽땅 수컷들이야.” “참, 복이 터졌네. 아들은 많을수록 복이잖아?” “개떡같이 복같은 소리를 하구있네” “이 개는 그때 그게지?”   “그래, 몇날 더 살지 못할거야.”   “눈 깜박할 새에 십년이 흘렀네.” “다시한번 껌뻑 하면 우린 모두 뒈질거야.”   “그렇겠지?” 그녀와 대화를 나누는것이 갑갑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수수잎묶음옆에 앉아있는 백구를 보고 한마디했다 “너, 참 장수하구나.”   “왜? 너희들은 장수할수 있구 우리는 장수하면 안되니? 쌀밥 먹는놈들도 장수해야 하구 겨떡을 씹는놈들도 제명을 다 살아야지. 고급적인 사람도 오래 살아야 하구 저급적인 사람도 오래 살아야 한다구.” “왜 이렇게 말하니? 어디 고급적인 사람이 있구 저급적인 사람이 따로 있니?” “웃기네. 너같은 사람을 고급적이라 하지 않니? 대학교 강사까지나 되는데.” 순간 나는 얼굴이 붉어지고 귀뿌리가 화끈거렸지만 그녀에게 뭐라고 쏘아줄수도 없었다. 나는 속으로부터 뭔가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것 같았지만 애써 참았다. 나는 행리를 찾아들고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아마 여덟째아저씨네 집에 주숙하게 될거다. 시간이 나면 놀러 오너라.” “나 왕가덕에 시집을 갔다. 너 알고있지?” “네가 말하지 않는데 내가 알턱이 없지.” “알고 모르고 할것도  없어. 아무것도 볼것이 없으니까.” 그녀는 잠간 머뭇거리다가 아래말을 이었다. “내 모양을 업신보지 않는다면 시간을 내서 놀러오너라. 마을에 들어서서 ‘애꾸눈 난’이라고 하면 모르는이가 없어.”   “고모, 너 어쩌다 이 모양으로…” “누굴 탓할게 없어. 이게 바로 명이지. 명은 하늘이 정해주는거야. 그러니 잡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 그녀는 다리아래로부터 씨엉씨엉 걸어올라와 수수잎묶음옆에 서서 말했다. “좀 도와 줄래? 귀한 몸이지만. 이 물건을 내 등에 올려줘.” 나는 순간 가슴이 뭉클해나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메다줄게.” “그럴수야…” 그녀는 말을 마치자마자 수수잎묶음옆에 꿇어 앉아 끈을 어깨에 가져가며 다시한번 소리쳤다. “일궈주라구.” 나는 급히 그녀의 뒤로 다가가 끈을 잡아 힘껏 우로 들어올렸다. 그 힘을 빌어 그녀가 몸을 일으켰다. 그의 등은 짐에 눌리워 다시 구부정해졌다. 그는 짐이 편하게 등에 대이게 하려고 힘껏 들썽거렸다. 그 바람에 수수잎들이 부딪쳐서 쓰륵쓰륵 소리를 냈다. “놀러와.” 깊은 나락으로부터 울리는듯한 그녀의 석쉼한 목소리가 나의 귀속을 파고들었다.   백구가 나를 향해 낑낑 뭔가를 호소하더니 앞을 바라고 뛰여갔다. 나는 오래도록 다리목에 서서 산더미같은 수수잎묶음이 북쪽을 향해 천천히 옮겨가는것을 바라보았다. 백구는 차츰 나의 눈에서 하얀 점으로 바래졌다. 그녀도 백구도 나중에는 까만 점으로 되였다가 내 눈에서 사라졌다.   다리목에서 왕가덕까지는 7리 길이였고 우리 마을까지는 12리 길이였다. 그러니 우리 마을에서 왕가덕까지는 19리에 달하는 셈이였다.    여덟째아저씨가 나를 보고 자전거를 타고 가라는것을 나는 밀막아버렸다. 십여리밖에 안되는 길을 걸어서도 쉽게 갈수 있을것 같았다. 여덟째아저씨가 말했다. “지금은 생활이 많이 펴서 집집마다 자전거가 있단다. 몇년전만 해도 온 마을에 자전거가 한두대밖에 없었지. 그때는 자전거를 빌리기가 쉽지 않았단다. 귀한 물건이라 뉘네가 쉽게 빌려주고싶었겠니?” 나도 몇년전에 비해 마을사람들의 생활이 좋아졌다는것을 보아낼수 있었다. 골목마다에서 자전거를 볼수 있었던것이다. 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자전거를 타고싶지 않았었다. 몇년간 지식분자라는 모자를 쓰고 살면서 치질을 얻은때문이였던지 나는 웬간한 거리는 걸어서 다니기를 좋아했다.   여덟째 아저씨가 말했다. “책을 읽는 놀음도 그렇게 좋다고는 할수 없는것 같아. 이것저것 속타는 일도 많은것 같거든. 가끔은 생각이 이상하게 도는것 같기도 하구. 너두 그래. 난이네 집으로 가서는 뭘한다구 그러니? 애꾸눈에 벙어리에… 네가 난이를 찾아가는것을 알면 마을사람들이 모두 웃을거다. 물고기가 물고기를 찾구 새우가 새우를 찾아간다고 할수도 있거든. 자기 신분을 스스로 낮출수야 없지 않니?” 나는 더 이상 여덟째아저씨와 싱갱이질을 하고싶지 않았다. 사실 나도 이미 삼십을 바라보는 나이를 먹었는지라 어떻게 처신을 해야한다는것을 두고 속에 수자가 있었다. 여덟째아저씨도 더 말이 없이 일보러 휑하니 나가버렸다.   나는 은근히 다리목에서 그녀와 백구를 다시 만날수 있기를 바랐다. 만약 그녀가 또 그처럼 커다란 짐을 지고 나타난다면 나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 짐을 빼앗아 메리라고 마음 먹었다.  도시사람들은 대부분 몸단장에 신경을 쓴다. 하지만 고향사람들은 그때까지도 내가 입고 간 청바지를 눈꼴이 사나와 했다. 그 바람에 나는 마을사람들을 만나기가 여간만 난처하지가 않았다. 나는 “눅거리입니다. 처리하는것을 샀는데 한견지에 3원 60전밖에 안하거든요.” 하고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내가 입은 청바지는 사실 25원을 주고 산것이였다. 내가 일부러 눅거리라고 해서야 마을사람들은 그런대로 넘어가는 눈치였다. 다리목에서 그녀와 백구를 만나지 못하면 왕가덕에 들어가서 난이네 집을 물을수밖에 없었다. 그러자면 내가 입고있는 청바지가 또 사람들의 말밥에 오를것이였다. 나는 혹시라도 지나가는 그녀나 백구가 눈에 뜨이지 않을가 하는 생각으로 자주 주변을 살폈지만 그들은 시종 나타나지 않았다. 돌다리를 지나자 붉디붉은 태양이 수수밭에서 솟아 올랐다. 그 바람에 강에는 붉은 기둥이 비껴 강물을 물들였다. 태양은 붉다못해 야릇한 분위기까지 불러일으키는것 같았다. 붉은 태양주변에 검은 기운이 한벌 둘러쌓인것이 당금 비가 내릴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가 부슬부슬 비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접이식우산을 펼쳐들고 마을을 향해 잰걸음을 놓았다. 그때 어깨를 잔뜩 움츠린 늙은 녀자가 길을 지나고있었는데 바람에 옷깃이 펄펄 날렸고 그녀도 몸을 휘청거렸다. 나는 우산을 접어들고 늙은 녀자를 마주가서 물었다. “할머니, 난이네 집이 어딘지 아세요?” 늙은 녀인은 비스듬히 몸을 기울이고 서서 흐릿한 눈동자를 둘둘 굴리며 나를 뜯어보았다. 늙은 녀인의 반백이 된 머리칼이 바람에 어지럽게 날렸고 나무가지들이 몸부림을 쳐댔다. 동전만큼 굵은 비방울이 늙은 녀인의 얼굴을 때렸다. “난이네 집이 어딘지 아세요?” 나는 다시한번 물었다. “어느 난이네 집을 그러나?” 늙은 녀인은 흐릿한 눈길로 나를 살피더니 팔을 들어 길옆에 줄느런히 들어앉은 푸른 기와를 얹은 집들을 가리켰다. 나는 그 집어구에 서서 큰 소리로 불렀다. “난이고모 집에 있어요?” 나의 부름소리에 먼저 응답을 한것은 앞발에 검은 털이 살짝 간 백구였다. 그놈은 낯선 사람만 보면 뱅뱅 돌아치면서 기승스럽게 컹컹 짖어 그 기세로 사람을 물어 죽이지는 못해도 놀래워 죽이려는 성정이 포악한 여느 개들과 달랐다. 백구는 처마밑에 있는 마른 풀을 깔아놓은 개우리에 조용히 엎드려있었다. 백구는 두눈을 가슴츠레 뜨고는 몇번 짖는 흉내만 낼뿐이였다. 그러한 모습에는 백구의 온순하고 후더운 품질이 고스란히 담겨있는듯싶었다. 내가 다시 소리를 치자 난이 집안에서응기를 했다. 하지만 문을 열고 나와 나를 맞아주는이는 난이가 아닌 구레나룻이 더부룩하고 눈동자가 누르끼레한 억대하게 생긴 나그네였다. 그 나그네는 토황색의 눈동자를 딜딜 굴리면서 나를 쏘아보았다. 그의 눈길은 내가 입고있는 청바지에 멈추었다. 나그네는 차츰 입귀를 실룩거리더니 얼굴에 분노한 표정을 지었다. 나그네가 내앞으로 성큼 나가섰다. 나는 그 기세에 놀라 한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나그네는 오른손약지를 뽑아 내앞에 대고 마구 흔들어대면서 입으로 힘겹게 억억 소리를 뱉어냈다. 나는 여덟째아저씨로부터 난의 남편이 벙어리라는 말을 들은적이 있지만 분노로 이글거리는 거쿨진 모습을 직접 대하자 가슴에서 뭔가가 쿵하고 내려 앉는듯싶어 기분이 착잡해졌다. 애꾸눈이 벙어리에게 시집을 갔으니 누가 누구에게 빚졌다고는 할수 없겠지만 그 시각 난의 얼굴을 떠올리니 목구멍이 꽉 메여올랐다.      난, 그때 우리의 꿈은 참으로 아름다왔더랬지. 채대장이 마을을 떠나면서 우리들 가슴에 너무도 아름찬 꿈을 심어주었거든. 그들이 마을을 떠나던 날, 너는 줄곧 채대장의 얼굴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더랬어. 그때 너의 두볼을 타고 이슬같은 눈물이 굴러내렸는데 나는 그 눈물이 모두 채대장에게 드리는것이라는것을 알고있었단다. 그때 채대장도 얼굴이 해쓱해있었지. 그는 호주머니에서 빗 한자루를 꺼내서 너에게 넘겨주었지. 나도 그때 울고있었단다. “대장님, 대장님이 우리를 데리러 올 때까지 기다릴게요.” 내 말에 채대장이 이렇게 대답했더랬지. “그래, 기다려라.” 수수들이 빨갛게 익어가던 그해 가을, 우리는 현성에 징병을 온 해방군들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은거야. 그때 우리는 너무도 기뻐 밤잠마저 설쳤더랬지. 어느날 선생님 한분이 현성으로 들어갈 일이 있다기에 우리는 그 선생님을 찾아가 무장부에 들려 채대장이 왔는가를 살펴보고 그에게 우리를 군대에 데려간다던 일이 어떻게 되였는가를 알아봐달라고 부탁했더랬지. 선생님은 우리의 간절한 바람을 가지고 현성으로 갔더랬지. 하지만 선생님은 현성에서 아무 소식도 없이 빈손으로 돌아왔던거야. 선생님은 못내 상심해 있는 우리를 보고 말했더랬지. “올해 징병을 온 해방군들은 모두 누런 웃옷에 푸른 바지를 입고있었어. 공군의 지상근무병이래. 채대장이 있는 부대가 아닌거야.” 네가 상심해있는 나에게 신심 가득히 말했더랬지. “채대장은 절대 우리를 속이지 않을거야.” 나는 기분없이 말했지. “아니야, 채대장은 벌써 그 일을 잊어버렸을거야.” 너의 아버지도 한술 뜨셨지. “쇠몽둥이를 주니 그게 바늘인줄 알았나보구나. 그는 너희들을 어린애로 보구 일시 홀리느라구 그렇게 말한거란다. 우수한 사람은 군대에 가지 않는거야. 좋은 쇠로 못을 만들지 않는것처럼. 이제 학교를 졸업하면 집에 돌아와서 그 엉뚱한 생각들을 집어치우고 고분고분 돈이나 벌어라.” 너의 아버지의 말에 네가 정색해서 말했지. “채대장은 나를 어린애로 보지 않았어요. 절대 저를 어린애로 보지 않았다구요.” 그렇게 말하는 너의 얼굴에 차츰 홍조가 피여오르는것을 그때 나는 분명 보아냈단다. 너의 아버지가 또 말했지. “그래? 이 멍청한것을…” 나는 홍조가 비껴가는 너의 얼굴을 이상한 눈길로 살펴보았단다. 그때 너의 얼굴에서는 말 못할 흥분과 야릇한 표정이 흐르고있었지. 너는 긍정적으로 또박또박 말했단다.  “올해 오지 않으면 명년에 올거예요. 명년에 오지 않으면 후년에는 꼭 올거구요.” 채대장은 실로 미남자였지. 그는 사지가 늘씬하게 생겼을뿐만아니라 얼굴륜곽이 선명했으며 늘 수염자국이 파랗게 보일정도로 깨끗하게 면도를 하고 다녔었거든. 후에 너는 나에게 털어놓았더랬지. 채대장이 마을을 떠나기전날 밤에 너의 얼굴을 부여잡고 이마에 키스를 했다고말이야. 채대장은 너에게 키스를 한후 또 속삭이듯이 “너, 참 순결한거 알어?” 하고 말했다고 했었지.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마음속으로부터 치솟는 분노를 느꼈단다. 그줄도 모르고 네가 나에게 말했었지. “난 입대한후 그에게 시집을 갈거야.” 나는 흥 하고 코방귀를 뀌며 너에게 말했더랬지. “꿈 같은 소리는. 돼지고기 200근을 준다고 해봐라. 그가 너를 데려가나.” “그가 나를 데려가지 않으면 나는 너에게 시집갈거야.” “나에게? 나도 싫거든.” 그러자 너는 나를 쏘아보면서 뾰로통해서 말했지. “눈깔은 잔뜩 높아가지구.”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너는 그때 실로 풋풋한 모습이였어. 그래, 꽃봉오리같은 너의 가슴을 보기만 하면 나는 당금 심장이 터질것 같았다구.    벙어리는 나를 몹시 깔보는듯한 표정이였다. 그는 뽑아 든 약지로 나에 대한 멸시와 증오를 표달했던것이다. 그래도 나는 얼굴에 웃음을 게바르면서 벙어리로부터 신임을 얻어내려고 모든 애를 다 썼다. 하지만 그는 손가락들을 사이사이 꿰들고 괴상한 표정을 지으면서 내앞에 흔들었다. 어릴 때의 경험으로 미루어보아 벙어리의 그 손동작은 지극히 저급적인 뜻을 내포하고있었다. 그 모양을 보면서 나는 마치도 뚜꺼비를 마주한듯 속으로부터 께으름직한 느낌이 부글부글 괴여올랐다. 생각같아서는 그 울안에서 뛰쳐나오고싶었다. 그때 똑 같은 얼굴에 똑 같이 민머리를 한 세 아이가 집에서 나왔다. 그들은 감히 우리쪽으로 다가오지 못하고 똑 같은 토황색의 눈동자를 돌돌 굴리며 나를 바라보고있었다. 그들은 똑 같이 머리를 오른쪽으로 귀울이고있었는데 마치도 아직 털이 채 자라지 않은 성질이 급한 수평아리들 같았다. 애들은 어울리지 않게 나이들어보였는데 이마에 잔주름까지 몇오리 패여있었고 하악골은 크고 튼실했다. 세 아이 모두 바들바들 떨고있었다. 나는 급히 가방에서 사탕을 꺼내여 그들에게 보이며 말했다. “얘들아, 와서 사탕을 먹어라.” 그러자 벙어리가 애들에게 손을 휘저으며 입으로 뭐라고 억억 소리를 질렀다. 애들은 내 손에 들려있는 포장이 알락달락한 사탕을 부럽게 바라만 볼뿐 다가오지 못했다. 내가 애들쪽으로 가려고 하자 벙어리가 나의 앞을 막아서서 야만적으로 팔을 휘두르며 더욱 괴상한 소리를 질렀다. 그때 난이 두손을 모아 아래배에 대고 다리를 끌며 천천히 집에서 나왔다.  난을 보는 순간, 나는 그녀가 왜 그렇게 늦게야 나오는가를 알게 되였다. 깨끗하게 빨아 다듬은 인단트렌 람색 마고자며 칼주름을 쪽 세운 테릴렌 회색 바지며는 그가 금방 갈아 입었다는것을 알수있었다. 인단트렌 람색 천이며 인단트렌 람색 천으로 지은 리철매식의 마고자는 사라진지 오랜것들이였다. 그녀의 몸에 걸쳐진 그 마고자를 보노라니 별안간 잊혀졌던 세월이 눈앞에 삼삼히 떠오르는것 같아 괜히 가슴이 설레였다. 그런 마고자를 입은 가슴이 풍만한 녀자들은 실로 남자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하는 옛스러운 풍경이라고 할수 있었다. 난은 목이 시원하게 빠진 녀자였는데 얼굴모양도 청아하다고 할수 있었다. 난의 오른쪽눈확에는 의안이 맞춰져 얼굴평형을 이루고있었다. 나는 꺼져들어간 눈확에 의안을 넣는 난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일종의 서글픔 같은것을 느꼈다. 나는 난의 그 눈을 정시할수 없었다. 그 눈은 생명을 가지고있지 않았었다. 그 눈은 흐릿하게 자광(磁光)을 발산하고있을뿐이였다. 난은 내가 자기를 지켜보고있다는것을 의식하고는 머리를 숙이고 벙어리를 지나서 내옆으로 다가왔다. 그는 나의 어깨에 메워져있는 가방을 벗겨들더니 말했다. “집에 들어가자.” 벙어리가 그러는 난을 밀쳤다. 그때 벙어리의 얼굴에 분노가 이글거렸는데 눈에서는 금시 전기라도 뿜겨져나올것 같았다. 벙어리는 나의 바지를 가리키고는 다시 약지를 뽑아들고 흔들며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련발했다. 그 바람에 오관이 마구 흔들리다 한곳에 모이는가싶더니 삽시에 제 각기 흩어져 놀아대는 그 표정은 그야말로 풍부함의 극치를 이루고있었다. 하지만 그 표정은 또 말 못할 공포를 자아내기도 했다. 벙어리는 퉤 하고 가래를 뱉더니 큼직한 발로 빡빡 문질러댔다. 나에 대한 벙어리의 분노는 내가 입은 청바지로부터 오는것 같았다. 나는 청바지를 입고 고향에 온것을 후회했다. 나는 마을에 돌아가서 여덟째아저씨의 바지를 빌어 입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고모, 저 형이 아마 나를 알아 못 보는것 같아.” 내가 어색한 표정을 짓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가 벙어리를 툭 치더니 나를 가리키며 엄지손가락을 빼들고 내가 살던 마을쪽을 가리켰다. 이어 나의 손을 가리킨후 나의 호주머니에 꽂혀져있는 만년필이며 그 우에 달려있는 대학교휘장을 가리켰고 글을 쓰는 시늉을 하고는 다시 네모난 책모양을 그려보였다. 난은 나중에 다시 엄지손가락을 들고 하늘을 가리켰다. 거침없이 그 동작을 해나가는 난의 표정은 그처럼 풍부할수가 없었다. 벙어리는 잠간 멍해있더니 인차 얼굴에 가득 어려있던 적의를 해소했다. 그러자 벙어리의 눈길이 어린애들처럼 온순해졌다. 그는 백구처럼 입을 쩍 벌리고 나를 향해 웃어보였다. 그 바람에 벙어리의 누런 앞이가 그대로 들어났다. 그는 손바닥으로 나의 가슴을 툭툭 치더니 발을 구르고 꺽꺽 소리를 내며 얼굴을 붉혔다. 나는 그의 뜻을 알것 같았다. 못내 감격스러웠다. 나는 끝내 벙어리의 신임을 얻은것으로 하여 기분이 상쾌해졌다. 세 아이가 흘끔흘끔 눈치를 살피며 우리쪽으로 다가왔다. 그들의 눈길은 시종 나의 손에 들려있는 사탕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얘들아, 오너라.” 애들이 한결같이 벙어리를 바라보았다. 벙어리가 머리를 끄덕이며 헤헤헤 웃자 애들이 민첩하게 내쪽으로 뛰여와 내 손에 있는 사탕을 마구 빼앗았다. 땅에 떨어진 사탕 한알을 줏기 위해 세 아이가 모두 허리를 굽혔다가 서로 민머리를 부딪쳤다. 그들을 보면서 벙어리가 만족한듯 헤벌쭉 웃었다. 난이 호 하고 한숨을 쉬다가 말했다. “너, 다 봤지? 내가 참 한심하게 살지?” “고모, 그럴수가… 애들이 다 귀엽구만그래…” 벙어리가 긴장한 눈길로 나를 훔쳐보다가 다시 헤벌쭉 웃음을 물고는 몸을 돌려 사탕을 더 가지겠다고 붙어 돌아가는 애들에게 사정없이 발길을 날렸다. 애들은 씩씩 가쁜 숨을 몰아쉬며 서로를 쏘아보았다. 나는 가방에 있던 사탕을 몽땅 꺼내여 세몫으로 똑 같게 나누어주었다. 그러자 벙어리가 다시 뭐라고 급히 소리치며 애들에게 주먹을 흔들어보였다. 애들이 삽시에 손을 뒤로 가져다 숨기고는 한발한발 뒤로 물러섰다. 벙어리가 한참 더 소리 지르자 애들은 무서워 파들파들 볼을 떨었다. 이어 벙어리의 거쿨진 손바닥에 사탕 한알씩 올려놓고는 와 하고 소리지르며 종적을 감추었다. 벙어리는 손바닥에 있는 사탕 세알을 멍하니 내려다보더니 내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또 뭐라 웅얼거렸다. 나는 그의 뜻을 알수 없어 난에게 눈길을 돌렸다. 난이 말했다. “저 물건도 너의 이름을 들어본지 오래다고 그래. 네가 북경에서 가져온 사탕을 저 물건도 먹어보고싶대.” 나는 머리를 끄덕이며 사탕을 입에 넣는 시늉을 해보였다.  벙어리가 나를 보면서 느긋이 웃음을 빼여물며 종이를 벗긴 사탕을 입에 밀어넣었다. 벙어리는 사탕을 씹으면서 머리를 기웃하고 뭔가를 귀담아 듣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 벙어리는 만족스러운듯 엄지손가락을 빼들었다. 그의 표정에서 나는 벙어리가 사탕이 고급이라고 칭찬한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벙어리가 두번째로 사탕을 입에 넣는것을보면서 나는 난에게 말했다. “담에 올 때는 더 고급스러운 사탕을 사다가 저 형에게 맛보일거다.” 그러자 난이 나를 힐끗 건너다보면서 물었다. “네가 다시 온다구?” 벙어리는 두번째로 입에 넣은 사탕까지 다 먹고는 잠간 뭔가를 생각하는듯한 표정을 짓더니 손바닥에 하나 남은 사탕을 난에게 건네주었다. 그때 난이 눈을 감고있어 사탕을 보지 못하자 벙어리가 꽥 소리 질렀다. 나는 깜짝 놀랐다. 벙어리는 다시 난에게 사탕을 쥔 손을 내밀었다. 난은 다시 눈을 감으며 머리를 저었다.   벙어리가 갑자기 얼굴에 노기를 띠며 억억 소리지르더니 왼손으로 난의 머리칼을 와락 잡아 뒤로 제꼈다. 난이 고통스럽게 얼굴을 쳐들었다. 벙어리는 이발로 사탕종이를 찢어낸후 침이 가득 발린 사탕을 그녀의 입에 밀어넣었다. 난의 입이 결코 작은것은 아니였지만 길다란 오이를 방불케 하는 벙어리의 손가락 두개가 들어가자 그처럼 작고 야들야들해보였다. 그리고 얼굴은 더없이 갸냘파보였다.   난은 사탕을 입에 문채 뱉지도 씹지도 않았다. 얼굴은 평온하다 못해 죽은 수면 같았다. 벙어리는 자기의 승리를 자랑이라도 하는듯 나를 향해 빙그레 웃어보였다.   난이 말했다. “집에 들어가자. 멍하니 여기 서서 바람만 맞지 말구.” 그때 나는 울안을 둘러보고있었다. 난이 또 입을 열었다. “뭘 볼게 있다구. 저것은 암탕나귀야. 낯선 사람만 보면 차구 물구 뜯거든. 하지만 저놈의 손에서는 고분고분해져. 봄에 저이가 소 한마리를 사왔는데 새끼를 낳은지 한달째야.”   난네 마당에는 큰 막이 쳐져있었는데 그안에서 당나귀와 소를 키우고있었다. 소는 아주 여위여보였는데 포동포동한 송아지가 뒤다리사이에 서서 걸탐스럽게 젖을 빨고있었다. 송아지는 연신 꼬리를 흔들기도 하고 가끔 대가리로 어미의 젖무덤을 들이 박기도 했다. 어미소는 고통스럽게 등을 꼬부렸는데 눈으로 퍼런 빛을 뚝뚝 떨구고있었다. 벙어리의 주량은 실로 대단했다. 알콜농도가 높은 “제성배갈” 한병에서 그가 9할을 마시고 내 1할을 마셨는데도 그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머리가 핑핑 돌아가는것만 같았다. 그는 또 한병을 터치워 나의 잔에 가득 부어주고는 두손으로 잔을 들어 권했다. 나는 혹시라도 그의 마음을 상하게 할가봐 잔을 받아 단숨에 마셔버렸다. 나는 그가 또 술을 권할가봐 술잔을 내려놓자 마자 취해서 몸을 가누지 못하는것처럼 포개여 놓은 이불에 비스듬히 누웠다. 흥분으로 하여 얼굴이 불깃불깃 상기된 벙어리가 난을 향해 뭐라고 손짓을 했다. 그러자 난도 벙어리를 향해 뭐라고 한참이나 손짓을 하더니 내쪽에 머리를 돌리고 나직히 말했다. “너, 저이의 주량을 당하지 못할거다. 너 같은 주량으로는 열이 달려들어도 저이를 쓰러뜨리지 못할거다. 그러니 취하지 않게 조심해라.” 말을 마친 난은 나에게 눈을 끔쩍해보였다. 나는 인차 엄지손가락을 빼들어 벙어리를 가리키고는 다시 약지를 뽑아들고 내 가슴을 가리켰다. 난이 술병을 치우고 물밴새를 올렸다. 내가 난에게 말했다. “함께 먹자구나.” 난이 벙어리에게 눈길을 주어 동의를 구하는것 같았다. 벙어리가 머리를 끄덕이자 세 아이들이 상에 둘러 앉아 걸탐스럽게 물밴새를 먹어댔다. 난은 구들목에 서서 물을 떠오고 물밴새를 더 올리며 시중을 들었다. 내가 재차 난에게 함께 먹자고 권하자 난은 배가 불편하다면서 거절했다. 우리가 식사를 마치자 바람이 자고 먹구름도 거쳐졌다. 찌는듯한 해볕이 남쪽에서 쏟아져 내렸다. 난은 장롱에서 누르스름한 천을 꺼내더니 세 아이들을 가리키고는 벙어리를 향해 동북방향을 가리켜보였다. 벙어리가 알겠다는듯 머리를 끄덕였다. 난이 나에게 말했다. “나는 진에 가서 애들의 옷을 몇견지 지어야겠다. 그러니 나를 기다리지 말어라. 점심을 다 먹구 쉬다가 가거라.” 말을 마친 난은 다시한번 나에게 눈을 끔쩍해보였다. 난은 헝겊꾸레미를 옆구리에 끼고 휑하니 집을 나섰다. 백구가 혀를 길게 늘어뜨리고 헐떡거리며 난을 따라나섰다. 나와 벙어리는 얼굴을 마주하고 앉았다. 간혹 서로의 눈길이 부딪치기라도 하면 그는 헤벌쭉 웃어보였다. 세 아이는 한참이나 장난을 치다가 구들에 누워 잠이 들었다. 어쩌면 그들은 거의 동시에 잠이 든것 같았다. 태양이 머리를 내밀자 날씨는 인차 뜨거워졌다. 나무우에서 매미들이 신나게 울어제꼈다. 벙어리는 웃옷을 벗어내치고 발달한 웃통근육을 그대로 들어내보였다. 그의 몸에서 풍기는 야성에 가까운 냄새를 맡으면서 나는 저으기 두려움을 느끼고있었다. 벙어리는 두눈을 슴뻑거리면서 손으로 가슴을 뻑뻑 문질렀다. 그 바람에 몸으로부터 때가 쥐똥처럼 엉켜져 떨어졌다. 벙어리는 도마뱀처럼 령활한 혀로 두툼한 입술을 자꾸 핥았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토하고싶다는 생각을 했고 온몸이 화끈화끈 달아오르는 감을 느꼈다. 나의 머리속에는 돌다리아래의 반짝이는 푸른 강물이 떠올랐다. 해볕이 창문으로 흘러들어 청바지를 입은 나의 다리를 비추고있었다. 나는 손목을 들어 시계를 내려다 보았다. 그러자 벙어리가뭐라고 억억 소리를 하더니 구들에서 내려가 서랍에서 전자시계 하나를 꺼내여 나에게 건네주었다.   나는 벙어리의 얼굴에 어린 기대에 찬 표정을 읽어낼수 있었다. 나는 약지로 내 손목에 있는 시계를 가리켜보이고 엄지로 그의 전자시계를 가리켰다. 벙어리는 나의 뜻을 알았던지 몹시 흥분해하며 전자시계를 나의 손목에 채워주었다. 나는 사양하면서 그의 왼손목을 가리켰다. 그러자 벙어리는 힘주어 머리를 저었다. 나는 그를 향해 빙그레 웃음을 피워올리며 그가 알아듣기라도 하듯이 중얼거렸다. “날씨가 참 좋구려. 올해 곡식이 잘 염글겠네요. 가을에 가서 천천히 수확을 해도 되겠네요. 집에서 기르는 나귀가 참 기품이 좋아요. 3중전회이후 농민들의 생활이 참 많이 제고되였지요. 형님도 생활이 펴이였으니 인젠 텔레비죤이나 갖춰놓아요. ‘제성배갈’은 오랜 이름 그대로 참 독이 있네요.” “어어어.” 벙어리의 얼굴에는 행복의 물결이 출렁이고있었다. 그는 모아쥔 두손으로 머리를 긁적거리고 목도 툭툭 건드렸다. 나는 혹시 그가 누군가의 목을 쳐버릴 궁리를 하는것이나 아닐가 하는 놀라운 생각을 했다. 내가 자기의 뜻을 알지 못했다고 생각했던지 그는 못내 조급해하면서 또 억억 소리를 질렀다. 이어 그는 자기의 오른쪽눈을 가리켰다가 다시 두피를 긁적거리더니 목에 와서 손을 멈추었다. 나는 그가 난의 일을 알고있는가고 묻는다는것을 어렴풋이나마 알수 있었다. 나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는 거무스름한 자기의 젖꼭지를 만지작거리더니 이어 애들을 가리켰다가 다시 자기의 배를 가리켰다. 나는 그뜻을 알것 같으면서도 확실히 판단할수 없어서 머리를 저었다. 그는 급해서 쪼크리고 앉아 취할수 있는 모든 형체언어를 다 동원하여 나에게 자기의 뜻을 전달하려고 애썼다. 나는 그를 향해 힘껏 머리를 끄덕였다. 나는 수화를 배워두는것도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얼굴에서 줄줄 흐르는 땀방울을 훔치면서 그곳을 떠나려고 서둘렀다. 더 이상 그 무엇을 리해하려고 할 필요가 없었다. 벙어리의 얼굴에서 진정이 흐르고있었던것이다. 그는 나의 가슴을 툭툭 쳤다가 또 자기의 가슴을 툭툭 쳤다. 나는 그를 향해 힘껏 소리쳤다. “형님, 우리는 좋은 형제라우.” 그는 세 아이의 엉뎅이를 하나씩 차서 깨웠다. 나를 바래주라는뜻이였다. 나는 가지고 갔던 접이식우산을 가방에서 꺼내여 그에게 주면서 사용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는 보배라도 얻은듯 우산을 들어 폈다가 닫았다가를 반복했다. 세 아이는 얼굴을 한껏 쳐들고 벙어리의 손에서 펴졌다 닫겼다 하는 우산을 신기한듯 바라보고있었다. 나는 벙어리를 툭 치고는 남쪽으로 향한 길을 가리켰다. 그는 어어 소리를 내면서 손을 흔들고는 나는듯이 집으로 뛰여들어가 떡갈나무자루를 한 긴 칼을 들고나왔다. 그는 소뿔로 만든 칼집에서 칼을 빼내여 내앞에 흔들어보였다. 칼날에서 찬빛이 번뜩였는데 아주 날카로와보였다. 그는 발끝을 들고 문어구의 백양나무에서 손가락만큼 굵은 가지를 썩뚝 잘라들더니 칼날로 그것을 툭툭 쳐내려갔다. 끊어진 나무가지들이 후둑후둑 땅에 떨어졌다. 그는 칼을 나의 가방에 넣어주었다.    나는 걸음을 옮기면서 사색에 잠겼다. 그는 비록 벙어리이지만 호방한 성정을 잃지 않은 대장부이다. 난도 그에게 시집을 가서 그렇게 힘들게 사는것 같지는 않다. 말을 하지 못하는 결함도 시간이 흐르느라면 수화와 눈길에 의해 극복될수 있을것이다… 나는 그같은 생각을 굴리면서 나야말로 “기나라 사람이 하늘이 무너질가를 근심하는격”이 아닌가 하고 웃어버렸다. 다리목에 이르면서 나는 난을 생각하지 말자고 마음 먹었다. 그러자 강에 들어가 시원히 목욕을 하고싶었다. 마침 길에사람 그림자 하나 얼씬 하지 않았다. 오전에 약간 내린 비는 그 무렵에 벌써 말끔히 증발해버린것 같았다. 길에서는 풀썩풀썩 황토먼지가 날리고있었다. 길량옆에서는 검푸른 수수잎들이 바스락바스락 소리를 내면서 설레이고있었다. 메뚜기들은 민망초 사이를 분주히 오갔는데 해볕에 분홍색 날개가 반짝였고 그 날개가 공기를 가르면서 파득파득하는 소리를 냈다. 다리아래에서 출렁출렁 물흐르는 소리가 귀맛 좋게 들려왔다. 백구가 다리목에 쪼크리고있었다. 백구는 나를 알아보고 멍멍 짖어댔는데 그때 하얀 이발이 내 눈에 안겨들었다. 나는 웬지 일이 묘하게 엮어질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백구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수수밭으로 들어갔다. 백구는 걸음을 옮기면서 가끔 대가리를 돌려 나를 훔쳐보았는데 마치도 나를 부르는것만 같았다. 나의 머리속에는 추리소설에서 보았던 장면들이 떠올랐다. 나는 마음을 고쳐 먹고 백구를 따라 수수밭으로 들어가면서 손을 가방에 넣어 벙어리가 나에게 선물한 칼자루를 움켜쥐였다. 나는 빼곡히 들어선 수수잎을 헤치면서 간신히 걸음을 옮겼다. 난이 수수밭에 앉아있었는데 헝겊꾸레미가 옆에 놓여져있었다. 난이 수수대를 쓸어눕혀 이미 작은 공간이 형성되여있었다.   주변에 둘러선 키 높은 수수대는 병풍을 방불케 했다. 나를 발견한 난은 헝겊꾸레미에서 누런색 천을 꺼내여 수수대우에 펼쳐놓았다. 얼룩덜룩한 어두운 그림자들이 난의 얼굴에서 어른거렸다.   백구는 한옆에 엎드려 대가리를 앞다리에 올려놓고 헐떡헐떡 가쁜 숨을 몰아쉬였다.   나는 온몸이 긴장해나며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이가 덜덜 쪼였다. 게다가 턱마저 뻣뻣해나서 겨우 입을 놀렸다. “너…너, 거리로 가지 않았니? 헌데 어찌 여기에 이러구…”   “나는 여직 명을 믿고 살았어.” 구슬같은 눈물이 그녀의 볼에서 둘둘 굴러떨어졌다. 난이 나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나는 백구에게 말했거든, 백구야, 백구야. 네가 만약 내 마음을 안다면 다리목에 가서 그를 데려다주렴아. 네가 나를 찾아온다면 그건 아직 너와 나의 인연이 채 끊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겠니?”   “너 빨리 집으로 가봐라.” 나는 가방에서 벙어리가 선물한 칼을 끄집어내며 입을 열었다. “그가 나에게 이 칼을 선물했다.” “너는 이 마을을 떠난후 십년간 아무 소식도 없었더랬지. 나는 이생에 다시는 너를 보지 못할것이라고 생각했단다. 너 아직도 장가 들지 않았지? 그렇지? 너두 우리 집 그 사람을 봤으니 알겠지만 그래… 제 맘이 내킬 때면 나를 그렇게 아끼다가도 제 맘이 불편하기만 하면 나를 단매에 쳐죽일것처럼 날뛴단다. 내가 다른 남자들과 말이라도 하는것을 보기만 하면 그는 곧 나를 의심하는거야. 어쩌면 그는 나를 끈으로 꽁꽁 묶어두지 못하는것을 한스럽게 생각하는것 같다. 그래서 나는 진종일 백구와 동무할 때가 많다. 백구는 나보다 더 빨리 늙는것 같다. 나는 그 사람에게 시집을 간 두번째 해에 임신을 했었다. 배는 무서움을 모르고 커지는 고무풍선처럼 둥둥 불어올랐더랬지. 해산을 앞두고는 걸음마저 옮길수 없었단다. 일어서면 발끝도 보이지 않았거든. 한번에 세놈을 낳았어. 4근 푼한놈들이였어. 여위기를 사람새끼가 아니라 고양이새끼 같았다니까. 한놈이 울면 다른 놈들도 따라서 울구 한놈이 먹으면 다른 놈들도 따라서 먹겠다고 설치구, 젖꼭지가 두개밖에 없으니 돌려가며 먹일수밖에 없었어. 먹지 못하는 놈은 또 앙앙 울어댔더랬지. 나는 너무도 힘들어 죽을것만 같았다. 하지만 몸이 힘든것보다도 더 나를 가슴 졸이게 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애들만은 제발 제 애비를 닮지 말아달라는것이였어. 나는 그놈들이 종알종알 말하는 장면을 그 얼마나 그려보았는지 몰라. 하지만 그 애들이 7, 8개월을 넘기면서 나는 내 하늘이 무너지는것을 느끼지 않으면 안되였단다. 내 애들이 여느 집 애들과 달랐던거야. 애들이 하나같이 멍해있는게 도무지 바깥 동정에 반응이 없는것 같았어. 나는 너무도 억이 막혀 하늘에 대고 빌기만 했지. 하늘이시여, 하늘! 제발 세 놈 모두를 벙어리로 만들지는 말아주시옵소서. 한 놈이라도 말을 할수 있게 해주옵소서. 한 놈이라도 나와 말동무를 하게 해주옵소서. 하지만 결국은 세 놈 모두 벙어리가 되였어…” 나는 깊숙히 머리를 숙아고 꺽꺽 말을 더듬었다. “나나, 날을 원망해라. 그날 내가 만약 너를 끌고 그네 뛰러만 가지 않았어도…” “네탓이 아니야. 모두가 내 잘못이지. 내가 너에게 말했더랬지. 채대장이 나에게 키스를 했었다구. 내가 대담하게 채대장을 찾아 부대로 갔더라면 그가 혹시 나를 부대에 남겼을지도 모르는 일이거든. 채대장은 진심으로 나를 좋아했었어. 그후 내가 그네에서 떨어져 눈을 상했더랬지. 네가 학교에 가서 나에게 편지를 보낸것을 나는 받고서도 고의적으로 회답을 하지 않았었다. 그때 나는 이미 병신이 되여 너의 상대가 될수 없다는것을 알았더랬지. 모든것을 나혼자 안으려고 마음 먹었어. 너까지 재수없는 내 인생에 끌어드리지 못하겠더라구.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미련한것 같기두 하지만. 지금은 너 실말을 해두 돼. 그때 만약 내가 너에게 기어코 시집을 가겠다고 했다면 너 나를 받아들일수 있었겠니?” 나는 흥분에 떠는 그녀의 얼굴을 이윽토록 바라보다가 격동에 차서 대답했다. “받아들였을거야. 그래, 꼭 받아들였을거야.” “좋아. 그럼 너도 리해할거라고 생각해… 네가 나를 싫어할가봐 오늘 의안까지 박아넣었거든. 요즘이 바로 배란기야… 나는 말할줄 아는 자식을 낳고싶어. 네가 동의하면 바로 나의 목숨을 건져주는거야. 동의하지 않으면 나를 죽이는것과 같은거라구. 천가지 리유가 있어도, 만가지 구실이 있어도 오늘은 꺼내지 말아줘.” ……   막언(莫言), 1955년 산동성 고밀현에서 출생. 본명 관모업(管谟业). 당대 저명한 작가. 2006년 “전국작가부자순위” 제20위, 2007년 “중국작가실력순위” 제1위를 차지. 2011년 장편소설 《개구리(蛙)》로 제 8회 “모순문학상”을 받음. 201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        
5    고소공포증 * 왕옥각 댓글:  조회:2050  추천:0  2012-12-19
단편소설     고소공포증   왕옥각     토요일은 야근이라 진나는 오후에 문을 나섰다. 도서관에 가서 일찌기 자리를 잡으려는것이였다. 지난달에 공무원시험을 신청해놓은 진나는 일분이라도 쪼개여 시험공부를 해야 했다. 낮잠에서 깨여난후 요한은 베란다에 나가 벌써 담배를 세가치째 피우고있었다. 진나는 문어구에 가서 신을 찾아 신으면서 얼굴을 벽으로 향한채 높은 목소리로 당부했다. ―잊지 마세요. 저녁에 전보다 반시간 앞당겨 과과를 데려와야 해요. 요한은 심드렁한 목소리로 그러마 하고 대답했지만 머리속으로는 여전히 종량은 지금쯤 낮잠에서 깨여났을가 하고 생각했다. 사실 요한은 낮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진나가 문을 닫고 층계를 내려가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는 자기가 지금까지 줄곧 진나가 문을 나서기를 기다리고있었고 또 몇백리 밖의 도시에 살고있는 종량이 낮잠에서 깨여나기를 기다리고있었다는것을 의식하게 되였다. 종량에게 그 전화를 걸려고 결정하기전에 요한은 스스로 며칠이나 고민했다. 이번 일에서 좋은 결과를 보려면 꼭 종량의 손을 빌어야 한다는것을 느끼게 된 그날부터 요한은 그렇게 자신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사실 그들이 대학을 졸업한지도 어언 10년에 가까왔다. 요한은 당초 자기가 별생각없이 진나더러 종량에 대해 알게 한것을 몹시 후회했다. 대학교때 요한은 종량과 한전업에서 공부했었다. 그리고 두 사람 다 곽산이 고향이였다. 곽산현에서 그해 성사범대학에 붙은 사람은 그와 종량을 제외하고도 세 사람이 더 있었다. 그들 다섯 사람은 학교에 도착한 이튿날 한자리에 모였고 자기들을 “곽산 5걸”이라 부르기로 했다. “곽산 5걸”이란 이름을 들으면 참으로 그럴듯해보일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그저 식당에 가서 가끔 밥이나 한번씩 먹는 정도였다. 그때 요한과 종량 사이는 그렇게 가까왔다고 할수 없었다. 요한은 한숙소에 있는 류흥원과 더 가깝게 지냈다. 졸업을 앞두고 그들 다섯은 마지막으로 리별연을 베풀었다. 연회가 끝난후 종량은 특별히 요한 한 사람을 따로 청했다. 다른 사람이 없이 딱 요한만을 청한것이다. 그것은 자기에 대한 요한의 도움에 보답하기 위해서였다. 요한이 종량의 졸업론문을 대신 써주었다. 요한의 론문은 상당한 수준을 갇추었다고 할수 있었다. 요한은 그 론문을 학보에 발표하려고 준비중이였다. 그때 종량이 요한에게 도움을 청했고 요한은 아쉬움을 눅잦히면서 편집부에 전화를 걸어 발표를 취소했다. 종량은 요한의 도움에 감개무량해하면서 원고비는 받지 않겠다고 하면 별수 없지만 인정만은 꼭 받아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종량의 청은 그처럼 간절하고 견결했다. 지어 애원에 가깝기까지 한 종량의 눈길을 보면서 요한은 더 이상 그의 청을 거절할수 없었다.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일을 크게 말하는듯싶지만 그때 요한은 확실히 종량의 몸에서 보여지는 일종의 세심함을 느낄수 있었다. 종량은 그 일에서 평소 보여주던 데면데면함과는 달리 깐깐한 성미를 보였다. 하기야 겉으로 보여지는 데면데면한 성격 그대로라면 종량은 오늘날 청장의 비서라는 자리에 오를수 없었을것이다. 곽산은 성소재지에서 100여킬로메터 푼히 떨어져있었는데 그곳까지 가는 뻐스도 있고 기차도 있었다. 하지만 졸업후 10년 사이에 요한은 동창이고 고향친구인 종량을 겨우 한번밖에 보지 못했다. 그 만남도 6, 7년전에 “곽산 5걸”중의 넷째가 결혼식을 올릴 때였다. 아쉽게도 종량과 요한만이 결혼식에 참가했었다. 류흥원과 다른 한 동창은 불시에 일이 생겨 결혼식에 참가하지 못했다. “곽산 5걸”이 다 모이지 않아 요한과 종량은 도무지 기분을 돋굴수 없었다. 그들사이에 오간 몇마디 안되는 말은 그저 술잔에서만 촐랑거렸다. 요한은 사실 성소재지로 늘 출장을 다녔다. 그곳에서 일주일이상 머물 때도 있었지만 요한은 종래로 종량을 찾지 않았다. 웬지 종량을 찾아보고싶은 마음이 없었고 지어 전화도 하고싶지 않았다. 요한도 자기가 종량에 대하여 멀리했다는것을 승인했다. 하지만 그것을 전적으로 요한의 책임이라고 할수는 없었다. 사실 종량도 몇번 곽산에 다녀간적이 있었지만 한번도 요한을 찾지 않았다. 몇년전에 요한의 안해 진나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교통계통에 취직하게 되였다. 그러니 종량이 사업하는 교통청의 기층단위에 출근하게 된 셈이다. 이때로부터 요한은 웬지 모를 일종의 불편함을 의식하게 되였다. 요한의 핸드폰에는 종량의 전화번호 두개가 수록되여있는데 하나는 핸드폰이고 하나는 고정전화이다. 종량의 핸드폰은 언제나 통했다. 해마다 추석이나 음력설 때면 그들은 핸드폰으로 축하메시지를 주고받았다. 하지만 요한은 이번에 핸드폰이 아닌 고정전화를 걸려고 마음 먹었다. 그런 생각이 아니였다면 구태여 토요일을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전화를 받는 사람은 시아비였다. 요한은 첫마디에 시아비의 목소리를 알아들을수 있었다. 그렇게 여러해가 흘렀지만 시아비의 목소리는 여전히 그가 학교방송실에서 “쥴리에트에게”를 랑송할 때의 그 목소리와 다를바 없었다. 요한은 인차 자기의 이름을 댔다. 전화 저쪽에서 인차 “왕요한!” 하는 부름소리가 들렸다. 시아비가 부르는 요한(约翰)과 요한(耀汉)은 한어에서 발음이 같았기에 시아비는 옛날에도 단둘이 있을 때면 요한(耀汉)을 요한(约翰)으로 부르기 좋아했다. 시아비의 친절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요한은 웬지 목구멍이 꺽- 막히는듯싶었다. 요한은 여러해가 지났건만 시아비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은근히 목구멍이 메는 자신이 얄밉게 느껴졌다. ―7, 8년쯤 되던가? ―아니, 8년철이야. ―정말, 뜻밖이네. 또 이렇게 만날수 있다니. ―만난게 아니구 목소리만 듣는거지. 시아비의 말에 요한이 웃으면서 말했다. ―만나면 어떻구 들으면 어떻구… 같은거지 뭐. 시아비가 자기의 뜻을 주장하더니 차츰 목소리를 낮추면서 물었다. ―왕요한, 나를 찾는거야? 아님 종량을 찾는거야? ―그가 있어? ―그래, 있지. ―잘됐네. 요한은 기쁜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 일이야 어떻게 되든간에 종량이 집에 있다는것만으로도 요한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일은 시작이 중요하다고 첫번째 전화에서 종량을 찾았으니 참으로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반달이 다되여도 종량에게서는 아무 소식도 없었다. 요한은 종량에게 다시한번 전화를 걸어볼가고 생각하다가 어쩐지 타당한것 같지 않아 그만두었다. 하지만 그대로 무작정 기다릴수만은 없었다. 진나는 이 문제에 대하여 시종 적극적이였다. 그는 요한에게 한번 성소재지로 다녀오라고 제기했다. 아무래도 돈을 써야 할 일이라면 일찌기 쓰는게 나을것이라고 말했다. 진나는 종량에게 희망을 걸면서부터 전처럼 그렇게 도서관으로 부지런히 다니지 않았다. 종량이라는 금바줄이 눈앞에 있는데 전처럼 힘들게 공부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것 같았다. 요한은 진나의 말에 아무런 태도표시도 하지 않고 묵묵히 종량의 소식만 기다렸다. 일을 이미 시작했는지라 어떻게든 끝을 봐야 했다. 그러자면 일정하게 피를 흘려야 한다고 요한도 생각하고있었다. 하지만 종량에게 물건을 사줘야 할지 아니면 현금을 건네줘야 할지를 두고 진나와 의견이 달랐다. 진나는 요모조모 자기 좋게 생각하는 요한의 뜻을 알것 같아 아예 통쾌하게 금을 그었다. ―진상은 꼭 해야 할게 아닌가요? 벗을것들을 다 벗었을라니 그까짓 한견지 남은게 뭐가 대순가요? 벗어요. 요한은 순간 귀방울이 화끈화끈 달아오르는것을 느꼈다. 그는 괜히 오른쪽귀방울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이것은 요한의 습관적인 동작이였다. 자기의 생각이 남에게 들켰다싶으면 요한은 그렇게 무의식적으로 귀방울을 만지작거렸다. 요한은 갑자기 몇년전에 어느 한 머리방으로 들어갔던 일이 떠올랐다. 그날 몇몇 동창들이 술을 마신후 기어코 요한을 끌고 그곳으로 갔다. 요한을 접대하는 녀자애는 나이가 많지 않았지만 행동은 매우 대범해보였다. 녀자애는 요한을 보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나왔다. 그 바람에 요한은 놀라서 어쩔바를 몰라 했고 녀자애는 그것이 재미있다는듯 기어코 달려들어 요한에게 키스를 퍼부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더 볼게 있는가? 머리속에서 그런 생각이 떠오르자 요한도 더 이상 구속을 받지 않았다. 요한은 지금이 바로 그때와 같은 경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나는 소뿔을 단김에 빼려는듯 이튿날점심에 퇴근할 때 은행에 들렸다. 집으로 돌아온 진나는 요한의 손에 신용카드 한장을 쥐여주었다. 진나는 오른손 식지와 중지를 쫙 펴들고 비장한 표정을 지으면서 요한의 눈앞에서 힘껏 흔들었다. 그 수자는 진나가 내놓을수 있는 최고봉이였다. 드디여 일요일이 되였다. 요한은 종량에게 메시지를 보내여 집에 있는가를 물었다. 종량은 인차 집에 있다고 답장을 보내면서 무슨 일인가고 물었다. 요한은 핸드폰을 호주머니에 넣은후 큰마음을 먹고 집을 나섰다. 곧추 터미널로 발걸음을 옮겼다. 뻐스가 시내를 벗어날무렵, 요한은 종량에게 두번째 메시지를 보내려고 준비했다. ―나는 간부훈련반에 참가하려고 이곳에 왔다. 편리하다면 저녁에 너를 만나고싶다. 요한은 발송단추를 누르려다가 문뜩 손가락을 멈추고 잠간 생각을 굴렸다. 이어 그는 “너”라고 썼던 호칭을 “동창”이라고 고쳤다. 두번째 메시지를 날린지 한참이 지났지만 종량에게서는 답복이 없었다. 질주하는 뻐스안에서 요한은 쉴새없이 핸드폰을 꺼내여 메시지가 도착했는가를 확인했지만 번마다 실망감이 스멀스멀 머리를 쳐들었다. 그래도 요한은 종량이 불시에 급한 일이 생겨 메시지를 확인하지 못했거나 확인하고도 미처 답복할 새가 없어 메시지를 보내지 못하는것이라고 좋게 생각했다. 요한은 종량에게 다시한번 메시지를 보낼가고 궁리하다가 그만두었다. 이미 자기는 차에 오른 상태인데 구태여 종량의 메시지를 확인하느라고 애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요한이 차에서 내릴 때는 오후 2시가 조금 넘었다. 점심밥을 먹지 않았지만 조금도 배고프지 않았다. 요한은 터미널 맞은켠에 켄터키치킨점이 있던 기억이 났다. 배고프지는 않아도 들어가 잠간 다리쉼은 하고싶었다. 하지만 광장을 한고패 돌아도 보이지 않았다. 요한은 자기가 잘못 기억한것인지 아니면 다른 곳으로 옮겨간것인지 알수 없었다. 요한은 성소재지에 사는 고모에게 도착했다는 전화를 하려고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저녁식사는 몰라도 잠은 고모네 집에서 자야 했다. 고모부는 십분 례절을 따지는분이였다. 3, 4년만에 고모와 고모부를 찾아뵙는지라 되도록 례의는 지켜야 할것 같았다. 요한이 금방 통화버튼에 손가락을 올려놓았을 때 핸드폰이 먼저 울렸다. 종량이 걸어온 전화였다. 지도자들을 모시고 공지에서 돌아오는 길이라 메시지를 보지 못하고있다가 금방 확인하고 전화를 건다는것이였다. 종량은 요한에게 이미 도착했는가고 물었다. 도착했다고 대답하니 학습은 며칠동안 하는가고 물었다. 순간 요한은 저녁에 종량을 보기는 틀린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한은 어느 정도 여지를 두어야 할것 같아 학습은 이틀이지만 뒤에 여러가지 활동들이 있어서 확실하지 않다고 둘러댔다. 이어 그 활동들에 꼭 참가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종량은 그렇다면 시간적으로 넉넉할것 같으니 어느날 시간을 타서 만나자고 했다. 자기는 잠간후에 또 지도자를 모시고 다른 활동에 참가해야 하기에 좀처럼 몸을 뺄수 없다는것이였다. 종량은 한 이틀후에 다시 전화를 하겠으니 그때 시아비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자고 덧붙였다. 그 말을 들으며 요한은 솟아오르던 격정이 다 식어버렸지만 입으로는 여전히 괜찮다고 말했다. 종량과의 통화를 끝낸후 요한은 다시 고모네 집에 전화를 걸었다. 고모는 여전히 전화를 받지 않았다. 5분쯤 지나서 또 전화를 걸었지만 통하지 않았다. 요한은 그제야 고모의 핸드폰번호를 눌렀다. 고모의 목소리는 멀리에서 들려오는듯 높았다 낮았다 고르롭지 않았다. 고모는 남경의 부자묘에서 기름에 튀긴 썩두부를 먹고있다고 말했다. 고모부네 단위에서 로인들을 모시고 유람을 조직했는데 어제밤 기차로 남경에 도착했다는것이였다. 성소재지에 동창이나 낯 익은 사람이 몇이 있기는 했지만 요한은 그들에게 알리고싶지 않았다. 자기의 걸음이 그렇게 당당한게 아니여서 알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무렇게나 밥 몇끼 먹고 눈이나 붙이면 될 일이 아닌가. 자는것도 사실 별문제가 아니였다. 터미널에서 동쪽으로 몇십메터쯤 가면 려관거리가 있는데 그곳에는 려관이 과일매대보다도 더 많았다. 이튿날 잠에서 깨니 벌써 아홉시가 넘었다. 간밤에 요한은 참으로 잘 잤다고 생각했다. 요한에게는 려관에 들면 텔레비죤을 특히 오래 보는 습관이 있었다. 평소 아무 뜻도 없다고 느끼던 련속극도 타향에서 혼자 밤을 패며 보느라면 별다른 재미가 있었다. 지난밤에도 요한은 새벽 한시까지 텔레비죤을 보다가 너무 피곤하여 눈까풀을 이기지 못할 때에야 자리에 누웠다. 요한은 침대에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평소 집에서 잘 때보다 더 달게 잔것 같았다. 점심무렵에 진나가 전화로 단도직입적으로 종량을 만났는가고 물었다. 요한은 모든 일이 제대로 풀리기나 한듯이 유유하게 하품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어제밤에 주최측에서 환영연회를 열었거든. 술을 많이 마시고 열시가 넘어서야 호텔에 들어왔소. 며칠전에 요한은 진나에게 주말쯤 성소재지로 학습을 간다고 말했다. 진나의 일을 처리하기 위해 성소재지로 간다고 말했다가 종량을 보지 못할가봐 스스로 걱정되였다. 진나는 종량을 만나려면 직접 그의 집을 찾아가거나 사무실로 찾아가라고 권했다. 요한의 말을 중둥무이하면서 말꼬리를 잡아채는 진나의 목소리에 어딘가 가시가 돋쳐있었다. 진나의 뜻인즉 술자리에는 쓸데없는 말들이 많아 중요한 일을 의론할수 없다는것이였다. 요한은 사실도 모르고 이것저것 지시하는 진나한테 코웃음을 치면서 “나도 속에 수자가 있어.” 하고 얼버무렸다. 요한은 진나에게 과과에 대하여 물으려고 생각했다. 월요일 과과네 유치원에서 어린이들에게 무슨 백신인가를 접종한다고 했다. 하지만 진나의 어조가 곱지 않은것을 느끼고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삼켜버렸다. 요한은 려관앞에 있는 음식점에서 물만두 반근을 청해 먹고는 려관에서 텔레비죤과 씨름했다. 다섯시가 다되였지만 종량에게서는 시종 전화가 없었다. 그제야 요한은 어제 종량이 말한 “한 이틀후에”에 어제가 포함되지 않았을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종량은 직접 래일이라고 말했을것이다. 에어컨이 진종일 돌아갔지만 요한은 조금도 선선한감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웬 일인지 발은 얼음처럼 차거웠다. 요한은 창문에 카텐을 쳤지만 밖에서 짙은 어둠이 스멀스멀 기여드는것을 보는것만 같았다. 밖이 완전히 어두워져서야 요한은 문을 나섰다. 그는 힘껏 손을 흔들어 택시를 세웠다. 택시에 오른 요한은 운전수에게 봉황소구역으로 가자고 했다. 봉황소구역은 바로 교통청일군들의 아빠트구역이였다. 어제 종량이 전화에서 자기네 집이 봉황소구역에 있다고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 하는것을 새겨두었다. 봉황소구역에는 한번도 가본적이 없기에 요한은 운전수가 내리라는 곳에서 내렸다. 요한은 마루를 사이두고 막연하게 맞은켠을 바라보았지만 “봉황”이라는 글자가 보이는 건물은 없었다. 혹시 어디엔가 있을수도 있겠지만 밤이라 어둠때문에 보이지 않을것이라고 요한은 생각했다. 요한은 핸드폰을 꺼내들고 종량의 번호를 눌렀다. 종량은 지도자를 모시고 식사중이라고 말했다. 요한은 그게 사실이라고 믿었다. 종량의 목소리에서 술냄새가 나는듯싶었다. 요한은 “그래?” 하고 실망어린 목소리로 짤막하게 한마디 했다. 사실 요한은 그때 몹시 실망하고있었다. 하지만 그는 애써 정서를 눅잦히며 차분하게 말했다. ―그렇구나. 원래는 너네 집에 들려 잠간 앉았다 가려고 생각했는데… 금방 저녁을 먹고 호텔로 가다가 너네 아빠트앞을 지나게 된거다. 요한의 말에 종량이 혀가 꼬부라진 소리로 크게 떠들었다. ―그…그런 일이구나. 이보게 동창, 나 그러면 미안해 어쩌지? 내가 아직 너를 만나러 호텔에 가보지도 못했는데 네가 되려 나를 보러 우리 아빠트까지 갔다니. 그 말에 요한은 종량이 자기의 심사를 알아차린것 같아 급히 둘러댔다. ―아니, 그럴 필요 없다. 내가 우연히 너네 아빠트앞을 지나게 된거라니까. 인차 돌아올수 있니? 왔던김에 내가 잠간 여기서 너를 기다릴가? 호텔에 돌아가도 별로 할 일이 없는데. 요한은 자기가 이미 홀랑 벗고 종량의 앞에 나서는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말을 하지 않고는 목적했던바를 이루지 못할것 같아 시름이 놓이지 않았다. 종량은 여전히 요한의 뜻을 모르는듯 급히 소리쳤다. ―필요 없어, 필요 없다구. 기다리지 말어. 절대 기다리지 말어. 말소리와 함께 드르륵- 하고 걸상을 당기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누군가 걸상을 옮겨놓고 일어서는듯싶었다. 이어 종량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밤에도 언제 집에 들어갈지 모르겠다. 여기서 끝나면 지도자를 모시고 마작 몇판을 돌려야 할것 같다. 어쩌니, 어른이 좋다는데 내가 모셔야지. 우리 래일 보자, 래일 내가 너를 부를게. 나의 전화를 기다려라. 오늘 이렇게 약속하는거다. 래일 무슨 일이 있어도 뒤로 미뤄라. 래일 밤시간은 나에게 남겨라. 종량이 그렇게 나오는데야 또 무슨 말을 할수 있으랴. 래일도 허무하게 종량의 전화를 기다려야 한단다. 사실 요한은 시간이나 숙박비가 아까운것이 아니라 막연하게 종량의 전화를 기다리고있어야 한다는것이 억울하게 생각될뿐이였다. 요한은 속으로부터 올라오는 울화 같은것을 어딘가에 쏟아붓고싶었지만 그 어딘가가 어디인지를 알수 없었다. 요한은 사실 직접 종량네 집에 전화를 걸수 있었다. 만약 시아비가 전화를 받는다면 자연스럽게 올라가서 자리를 잡고 앉아 차물을 마시면서 한담을 할수도 있었다. 하지만 요한은 시아비만 있는 집에 올라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시아비를 통하여 신용카드를 종량에게 전할수 없다고 판단했다. 진나의 일을 처리하지 못하더라도 절대 그렇게는 할수 없다고 요한은 자신을 단속했다. 시아비앞에서 그만한 자존심은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성소재지에 도착한 세번째날, 요한은 “곽산 5걸”중의 한 사람인 류흥원을 인터넷에서 만나게 되였다. 그것은 요한에게 뜻밖의 수확이라고 할수 있었다.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난후 요한은 카운터에서 숙박료를 예납하고 돌아왔다. 그때 복무원이 한창 방을 청소하고있었다. 보아하니 그렇게 쉽게 끝날 일이 아닌것 같아 요한은 PC방에 가서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기로 마음 먹었다. 아무 일도 할것이 없는데 그것도 좋은 소일거리라고 생각되였다. 그때 흥원이 QQ에 올라있었다. 흥원의 서명에는 “성공은 백분의 99의 천부에다 백분의 1의 노력을 더한것이다.”라고 씌여져있었다. 요한은 “나에게 모자라는것이 바로 그 백분의 1의 노력이다.”라고 적어 흥원에게 날려보냈다. 흥원은 커다란 두개의 물음표를 적어 요한에게 보내왔다. 흥원은 늘 그렇게 QQ서명을 바꾸군 했다. 바꾸는 차수가 많아 가끔 스스로도 잘 기억하지 못했다. 요한은 흥원에게 구태여 자기의 정황을 말하고싶지 않아 게임을 놀기 시작했다. 한참후 흥원이 또 문자를 보내왔다. ―공적인 일로 왔니? 사적인 일로 왔니? 불시에 날아든 문자를 보면서 요한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흥원이 또 한마디를 덧붙였다. ―나도 성소재지에 있다. 이 도시로 온지 한주일이 지났다. 요한은 그제야 자기가 사용하고있는 인터넷의 IP주소가 성소재지로 뜨고있다는것을 생각했다. 류흥원은 분명 IP주소를 보고 그렇게 물었을것이다. 요한은 자기가 무엇때문에 성소재지로 왔다는것을 말하지 않고 되려 흥원에게 반문했다. ―넌 왜 이곳으로 왔니? 흥원은 “절방(截访)”이라는 두 글자를 날려보냈다. 흥원은 대학을 졸업한후 네번째되던 해에 공무원시험에 통과되여 고향 곽산현과 이웃해있는 한 현성의 교통지대에 배치를 받게 되였다. 그가 사업하는 현성에서는 건축업이 한창 흥기하고있었다. 도처에 쌓여있는 목재들처럼 아빠트가 군데군데 일어섰다. 그러다보니 가옥 이전을 두고 분쟁이 일어나 군중들이 상급으로 신소하러 떠난다고 소란을 피워댔다. 그 바람에 현성의 공안일군들이 현소재지며 북경으로 들어가 신소하러 온 사람들을 데려가느라 여간만 애를 먹지 않았다. 가끔 기차역전에서 보름씩이나 지키면서 그런 사람들을 타일러 돌려보낼 때도 있었다. 공안일군들만으로는 일손이 딸리기에 교통경찰들도 그 일에 개입하게 되였다. 흥원은 “성소재지에 왔으면서도 왜 말 한마디 없었는가?”고 요한을 나무랐다. 요한은 굳이 흥원에게는 감출것이 없겠다싶어 한마디 했다. ―그래, 개인적으로 일이 좀 있어서 왔다. 이미 이틀이 지났다. 요한은 흥원이가 계속 꼬치꼬치 캐여물으리라는것을 알고 주동적으로 사실의 경과를 털어놓았다. 흥원이도 진나가 종량과 한계통에서 사업한다는것을 알고있었다. 하기에 요한의 말이 어떤 뜻이라는것을 짐작하고는 화제를 돌렸다. ―너 지금 어디에 있니? ―여기, PC방이다. 흥원은 인차 술병이 그려져있는 그림을 요한에게 날려보내며 물었다. ―점심은? 우리 몇잔 할가? 요한은 더 생각하지도 않고 “좋지.” 하고 대답했다. 타향에서 고향친구를 만난다는것은 즐거운 일이였다. 요한은 차츰 기분이 들뜨기 시작했다. 흥원은 요한에게 한시간후 자기가 차를 가지고 가겠으니 먼저 호텔에 돌아가 전화를 기다리라고 했다. 침실은 이미 깨끗하게 정리되였기에 요한은 더 기분이 상쾌해지는것 같았다. 그는 들뜬 기분으로 침대에 털썩 드러누우려다가 생각을 고쳐 쏘파에 엉뎅이를 붙였다. 침대가 깔끔할수록 함부로 드러누울수 없었다. 요한이 금방 리모컨을 손에 들었을 때 메시지가 들어오는 소리가 울렸다. 진나가 보내온 메시지였다. 진나는 요한에게 학습반에 참가하려고 성소재지에 갔다는 사람이 왜 PC방에 가있었는가고 따졌다. 진나는 마치 모든 사실을 다 알고있는듯싶었다. 진나가 또 메시지를 보내왔다. 자기가 요한의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었는데 쑈왠(小袁)이 전화를 받으면서 학습반으로 간다는 말이 없었다고 했다는것이다. 요한은 핸드폰을 손에 들고 진나에게 사실대로 말할가 궁리했다. 그때 누군가 급하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요한은 분명 흥원일것이라고 생각했다. 흥원은 침실에 들어서자마자 급히 화장실로 들어가며 소리쳤다. ―겨우 참았다. 터질번했다. 흥원은 손에 쥐고 온 차고뿌를 내려놓지도 못하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얼마나 급했던지 화장실문을 닫지도 못했다. 흥원은 쏴― 소리나게 일을 보면서 말했다. ―어쩌니? 식사를 같이할수 없을것 같다. 금방 소식을 접했는데 한시 반에 또 나가야 한단다. 그래서 일부러 알리러 온거다. 요한은 식사시간이 당금인데 시름 놓고 쉴수 없는 흥원을 보면서 “너희들도 참 쉽지 않구나.”고 생각했다. 흥원은 일을 다 본후 손을 씻으면서 말했다. ―맨날 이렇게 허둥지둥해야 하니 통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종량은 언제 만나니? 요한은 얼굴에 약간 웃음을 띠우면서 발뺌을 하려는듯 중얼거렸다. ―그도 금방 비서로 되였으니 너처럼 바쁠거다. ―그래, 바쁠테지. 그는 아마 지금 누구보다도 더 바쁠거다. “나는 룡은 대가리만 보이고 꼬리는 보이지 않는 법”이라고 하잖니? 흥원의 얼굴에 야릇한 웃음이 피여올랐다. 요한은 문뜩 뭔가 짐작되는바가 있어서 물었다. ―너도 그를 찾는거니? ―그래, 찾은적이 있었지. ―누구의 일때문에? ―…… 흥원이 더 이상 말하려고 하지 않기에 요한도 캐여묻지 않았다. 사실 전에 흥원이는 요한이에게 종량과의 래왕에 대하여 말한적이 없었다. 만약 이번에도 요한이가 먼저 묻지 않았다면 흥원은 종량과의 래왕에 대하여 말하지 않았을것이다. 대학교때 흥원은 종량이보다도 요한이와 더 가깝게 지냈다. 하지만 지금의 사회생활을 살펴보면 친분보다 리해득실에 따라 끼리끼리 모이는것이다. 흥원이도 교통경찰이니 교통부문과 직업적인 련계가 있을것이였다. 요한은 자기가 너무 민감한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더 이상 상상하지 않았다. 요한은 화제를 돌려 교통경찰들에 대한 복리문제를 끄집어냈다. 얼마전에 신문에서는 성소재지 어느 구의 차량관리소 부소장이 규률위반으로 잡혔다는 소식을 보도한적이 있었다. 그 소식을 보면서 요한은 한개 구의 차량관리소라면 고(股)급이나 될가 하고 짐작해보았다. 그런 부문의 부소장이 2년 사이에 70, 80만원의 돈을 손에 넣었다니 정말 알고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했다. 흥원은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혀를 끌끌 찼다. ―세상이 어쩌자고 이러는지 참. 점점 못해간다니까. 거리에 차들이 날로 많아지지만 교통경찰들에 대한 대우는 점점 못해가니 별수없이 로임으로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는거지 뭐. 그 말에 요한은 터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흥원은 말하면서 자주 핸드폰을 꺼내보았다. 그 거동에 요한은 흥원이가 누구의 전화를 기다리지 않으면 시간을 알아보는것이라고 짐작하면서 입을 열었다. ―너 급하면 먼저 가서 일을 봐라. 다시 시간을 잡으면 되지 뭐. ―그럼 저녁에 만날가? 흥원이가 말했다. ―안돼, 저녁에 종량을 만나기로 했거든. 그가 겨우 시간을 낸다는데 어길수야 없지. 아니면 우리 함께 만날가? ―종량을 만나 중요한 일을 부탁한다면서? 내가 왜 끼여들어. 흥원은 눈치 빠른 사람이였다. 하기에 흥원이 절대 동의하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일부러 다시한번 청을 들었다. ―함께 하면 좋을텐데, 남도 아니구 동창들끼리. 말을 마치고난 요한은 스스로도 너무 허위적인듯해서 얼굴이 붉어졌다. 흥원이 얼굴에 웃음을 띠우면서 말했다. ―내가 끼이면 진짜 남이 되고말걸. 종량은 지금 나를 멀리하고있거든. ―그건 또 무슨 뜻이지? 흥원은 인차 대답하지 않고 차잔을 들어 차물 한모금을 마셨다. 흥원은 차물이 묻은 입술을 몇번 감빨더니 눈길을 차고뿌에서 돌리며 물끄러미 요한을 바라보았다. ―너 이번에 종량을 만나러 왔다 했지? 너의 생각엔 이번에 종량을 만날수 있을것 같니? 요한이 설레설레 머리를 저었다. ―나도 알수 없다. 사실 말이지 이번에 와서 그냥 부딪쳐보려는 생각이다. 졸업한지 이렇게 여러해가 되지만 나는 한번도 먼저 그에게 전화를 해본적이 없다. 평소에 크게 련락이 없었는데 어찌 그가 도와줄것을 바라겠니? ―평소 련락이 있어도 그가 도와줄것이라고 생각하니? ―그래도 평소 련락이 잦았다면 또 다른 문제지. 아무리 마음이 돌 같은 놈이라도 가슴이야 역시 고기로 된게 아니겠니? ―너에게 실말을 한가지 해줄가? 지금의 문제는 나나 너에게 있는것이 아니라 그에게 있다는거다. 알겠니? 종량의 얼굴에 어리는 그 엄숙함을 보아라. 지금은 그의 위치가 완전히 달라진거다. 따라서 그의 생각도 달라질수 밖에 없는거다. 동창이라는 이 관계는 어쩌면 아예 없는것보다 못할 때도 있다. 이것은 내가 직접 느껴본것이다. 참고로 해라. 우리가 서로 대방의 사정을 너무 잘 알고있으니 되려 부담스럽게 생각되는거다. 너, 졸업전야에 종량이 파출소에 잡혀갔던 일을 알고있니? ―파출소에? 무슨 일로? ―오입질로. ―뭐 오입? ―그래, 그 일을 아는 사람은 그때 학교에서 나밖에 없었다. 졸업을 앞둔 그해 겨울방학이 시작되자 너희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갔었지. 그때 나는 금방 맹결이랑 사귀기 시작했을 때여서 떨어지기 아쉬웠던거야. 나는 맹결이랑 며칠 더 함께 있으려고 숙소에 남았었댔지. 어느날 밤, 열두시가 넘어서 종량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온거다. 돈 5천원을 가지고 와서 자기를 꺼내달라고. 문화로에 있는 그 파출소로 오라 했어. 아마 그 파출소 소장의 성씨가 구양이였을거다. 만약 그날로 돈을 가지고 가서 그를 꺼내지 않으면 이튿날 날이 밝는대로 학교에 통지한다는거야. 학생증도 모두 파출소에 압류되여있는 상태였거든. 종량은 당시 나의 신용카드에 돈이 있다는것을 알고있었다. 노트북을 사려고 돈을 준비했다고 내가 종량에게 말한적이 있었거든. 나와 함께 파출소에서 나오는 길에 종량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아달라고 손이야 발이야 비는거였다. 내가 그러마 하고 답복하지 않으면 내앞에서 무릎이라도 꿇을 태세였거든. 졸업이 당금인데 그 일이 학교에 알려지면 졸업증도 타기 힘들었을걸. 흥원의 말을 들으며 요한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런 일이 종량에게서 발생했다는게 놀라왔고 그것도 십년전의 종량에게서 발생했다는것에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흥원은 호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그는 요한이가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는것을 알고 권하지 않았다. 그는 소리없이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번에 내가 그를 선뜻이 도왔으니까 순리대로 하면 그가 나에게 인정빚을 졌다고 해야 옳은게 아니니? 하지만 내가 선뜻이 나서서 도와준 그 일이 되려 역반응을 일으킬줄이야. 지난해 나의 장인이 사는 동네가 파가이주범위에 들게 되였다. 하여 장인은 진에다가 괜찮은 영업집을 하나 장만하려고 계획했었지. 7, 8만원 정도의 돈이 모자랐다. 그때 너도 사는게 힘들다는것을 알고 너에게는 그 일을 말하지 않았던거다. 나는 종량을 찾아가 5만원만 먼저 드텨달라고 청을 들었댔다. 나는 말만 하면 그가 도와줄줄로 알았거든. 그때 종량은 이미 청장의 비서로 제발된후였으니까. 게다가 그의 안해 시아비네가 어느 정도 산다는것은 너도 아는 일이 아니니? 내가 입을 열자 종량은 과연 안된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돌아가서 시아비와 토론해보겠다는거다.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거든. 그래서 아무 궁리도 없이 “당년에 내가 컴퓨터도 사지 않고 돈을 너에게 꾸어주지 않았니? 오늘 내가 급한 일이 생겼으니 너도 응당 나를 도와줘야지.” 하고 한마디 했던거다. 나는 순전히 롱담으로 그 말을 한것이지 정말 그 보답을 받으려는것은 아니였다. 하지만 종량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 나는 후에야 일이 잘못되였음을 알게 되였다. 이틀이 지나도 소식이 없어서 내가 종량의 핸드폰번호를 누르니 핸드폰이 꺼져있었다. 그후 날마다 걸어도 핸드폰은 그대로 먹통인거다. 그래서 어느날 내가 사무실의 전화를 가지고 그에게 련계를 했지. 뜻밖에도 인차 련결이 되였다. 종량은 낯선 전화번호라 나인줄은 생각도 못했던거지. 내가 돈에 대한 말을 꺼내자 그는 마치도 다른 사람으로 변한듯 어조마저 달라졌다. “이보게 동창, 나도 지금 집을 장식하고있다네. 그래서 5만원이나 되는 큰돈을 인차 꺼낼수 없구려.” 그는 자기의 손에 현금 2천원이 있으니 쓰겠으면 먼저 가져다 쓰라고 했다.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은후 다시 핸드폰으로 그에게 련락을 해보았다. 그의 핸드폰은 여전히 꺼져있더구나. 그제야 나는 모든것을 알수 있었다. 그는 나의 핸드폰번호를 블랙리스트에 집어넣었던거다. 의식적으로 나의 핸드폰을 받지 않으려 했던거지. ―그럴수가… 이미 십년이 지난 일인데. ―하지만 그 일은 여전히 자료에 남아있는거다. 흥원의 말을 들으며 요한은 종량에 대하여 말할수 없는 회의가 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리고 십여년전의 종량이 자기가 알고있는 형상과 그렇게 큰 차이가 있었다는것에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니 10년이 지난 오늘 종량이 어떻게 변해있으리라는것은 정말 추측하기 어렵다고 생각되였다. 사실 어떤 사람은 십년이 아니라 영원히 속내를 알수 없게 자신을 위장하고있다. 십년이란 시간은 짧은것이 아니다. 그것도 십년전에 그러한 과거가 있는 종량이라면 더더욱 추측할수 없을것이였다. 요한은 애써 종량을 리해하려고 생각했다. 사람이란 높은 곳에 오르면 오를수록 스스로 조심하기 마련이다. “조심한다는것”은 어떤 상태를 말하는것인가? “조심한다는것”은 바로 조심하는 마음이 있다는것을 뜻할것이다. 일이 잘될라 치면 많은 사람들이 그를 주시하게 된다. 요한은 며칠전에 인터넷을 달구던 그 기사를 떠올렸다. 30살도 안되는 어느 도시의 공청단서기가 학교때 졸업론문을 표절했다고 누군가 고발했다는것이다. 만약 그가 아무 관직도 없는 백성이라면 그가 졸업론문을 표절하든말든 누가 관심이나 가지겠는가? 종량이처럼 그럴듯한 관직에 있는 사람들은 남의 눈이 무서워서라도 전에 있었던 오점들을 단번에 긁어버리지 못해 안달이 나할것이다. 론문이라는 생각이 떠오르자 요한의 머리에는 학교때 발표하기로 했던 론문을 종량의 졸업론문으로 양보하던 일이 떠올랐다. 게다가 흥원이 방금 말한 일들을 련계하여 곰곰히 생각하노라니 차츰 머리가 무거워졌다. 갑자기 누군가에게 한매 강타라도 당한듯 눈앞이 아찔해났다. 흥원은 떠날 때가 되였다면서 문가로 다가가다가 몸을 돌려 지나가는 말처럼 한마디 했다. ―그래, 아까 QQ에서 너의 와이프를 만났댔다. 너의 와이프는 네가 여기로 온것을 모르는것 같더라. 요한은 그제야 진나가 왜 자기에게 메시지를 보냈는가를 알게 되였다. 흥원을 바래고 침실에 들어온 요한은 주저하지 않고 즉시로 진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늦어도 래일은 돌아갈거요. 당신, 아마 사상준비를 해야겠소. 일이 잘 풀리지 않는구려.   좋지 않은 느낌은 과연 현실로 되였다. 낮잠에서 깨여나니 3시가 지나있었다. 그때 종량이 전화를 걸어와서 성근하게 미안하다고 사죄를 했다. 방금 전화를 받았는데 청장이 백마시로 가서 한 공정의 정초의식에 참가한다는것이였다. 오후에 떠나 래일저녁에야 돌아온다고 했다. 자기는 당금 출발해야 하니 요한의 학습반이 언제 끝나는가고 물었다. 요한은 진작 그런 경우도 그려보고있었던지라 그다지 충격을 받지 않았다. 요한은 차분한 목소리로 학습반이 래일 끝나게 된다고 말했다. 요한은 이제 어느 정도 속이 개운해지는것 같았다. 요한은 종량이 먼저 진나의 일을 끄집어내기를 기다렸다. 지난번에 전화에서 요한은 분명 진나의 일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종량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더냐싶게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요한은 종량이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려 한다는것을 모를수가 없을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종량이 진나의 일을 입밖에도 꺼내지 않으니 무슨 생각을 하고있다는것을 묻지 않아도 알수 있었다. 요한은 속으로 쌓아가던 닭알무지가 와르르 무너지는듯싶었다. 핸드폰을 호주머니에 넣으면서 요한은 종량을 두고 여러가지로 추측해보았다. 종량이 나를 멀리하는데는 진나의 일외에도 또 다른 원인이 있을것이다. 대학교때 나는 “곽산 5걸”중에서 흥원이와 관계가 제일 밀접했다. 게다가 흥원이와 한숙소에 있었기에 종량은 “오입에 관한 일”을 흥원이가 나에게 말했다고 생각할수 있다. 당시 종량은 흥원에게 꼭 비밀을 고수해달라고 빌었다지 않는가? 그러고보니 종량이 당시 근심한것은 졸업증만이 아니였을수도 있다. 종량이 흥원에게 애원할 때는 이미 파출소에서 나온후이다. 그러니 학교나 파출소에서 그 일을 다시 추궁하지 않을것이라는것은 그도 짐작할수 있었을것이다. 그렇다면 그때 종량이가 소문이 나갈가봐 진정으로 근심하게 된 원인은 시아비가 그 일을 알가봐 두려웠을것이다. 시간적으로 따져보아도 그무렵은 종량이와 시아비의 관계가 관건적인 상황에 놓인 시각이였다. 사실을 대충 알고나니 요한은 기분이 가벼워지는듯했다. 자기는 응당 해야 할 노력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순간의 고민과 려비를 좀 팔았을뿐 다른 손실은 본것이 없다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희망으로 부풀어있는 진나에게는 그럴듯한 구실을 달아 속여넘기면 될것이였다. 요한은 진나에 대하여 잘 알고있었다. 그는 열정이 빨리 오는것만큼 식기도 빨리 식었다. 시계를 보니 4시도 채 되지 않았다. 즉시 터미널로 나가면 곽산으로 가는 뻐스를 탈수 있었다. 요한은 인차 물건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침실을 떠나기에 앞서 요한은 흥원에게 떠난다는 인사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요한은 흥원에게 이미 교통청앞의 커피숍에서 종량을 만났다고 거짓말을 했다. 전화속에서 복잡한 소리들이 마구 들리는것으로 보아 흥원은 한창 일에 바쁜 모양이였다. 흥원은 요한에게 침실을 물렸는가고 물었다. 요한은 바로 내려가 침실을 물리려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흥원은 자기가 저녁에 시간이 나니 하루밤만 더 묵어가라고 권했다. 저녁에 만나서 밥이라도 먹으며 그동안의 회포를 풀어보자는것이였다. 그러면서 흥원은 자기에게 화위달호텔의 우대권 두장이 있다고 덧붙였다. 요한은 사실 하루밤을 더 묵을 생각이 없었지만 일시 타당한 구실이 생각나지 않아 꾸물거리다가 얼떨결에 동의하고말았다. 요한은 흥원이 말하는 음식점이 화위달호텔꼭대기의 회전식당인줄을 몰랐다. 만약 그곳이 회전식당인줄을 알았다면 요한은 다른 곳을 택했을것이다. 화위달호텔광고판은 성소재지로 들어오는 길 량옆에 번듯이 세워져있었다. “화위달(华威达)”이라는 금빛나는 세 글자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화위달호텔은 성내에서도 소문 높은 건축물로서 58층이나 되였다. 높이가 높은것처럼 장식 또한 호화롭기를 이를데 없었다. 로임으로 사는 사람들은 자기의 돈을 팔고 그곳으로 들어갈 엄두조차 낼수 없었다. 뜻인즉 그안에 들어가 돈을 팔수 있는 사람은 결코 자기의 로임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는 셈이다. 화위달호텔에 별 관심이 없어서였던지 요한은 꼭대기에 회전식당이 있는것조차 모르고있었다. 알았다고 해도 요한은 그렇게 반갑지 않았을것이다. 그 원인은 그곳의 소비가 너무 비싸서도 아니였다. 요한이 근심하는것은 화위달호텔이 너무 높다는것때문이였다. 요한은 사실 고소공포증을 가지고있었는데 그러한 증상은 어릴 때부터 있었다. 조금만 높은데로 올라가면 허리를 제대로 펼수가 없었다. 평소 집에서 유리창을 닦거나 전등을 바꾸는 일도 진나가 담당했다. 요한의 부모와 진나를 내놓고는 누구도 요한의 고소공포증에 대하여 모르고있었다. 그것이 큰 병집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랑할만한 일도 아니기에 여직 숨겨왔다. 요한은 밥 한끼를 먹기 위하여 고소공포증까지 느끼며 높은 곳으로 오른다는것이 그렇게 달갑지 않았다. 화위달호텔은 확실히 높았다. 엘레베터를 타고 오르는데만 5, 6분은 실히 걸렸다. 두세층 오르고는 멈춰서서 몇 사람을 부리우고 또 몇 사람을 실었다. 몇층인가를 알리는 지시등은 혈압을 재는 혈압계처럼 느껴졌다. 자꾸 높아지는 수자를 보면서 요한은 누군가 실오리로 자기의 심장을 묶어 당기는것만 같았다. 요한은 아예 두눈을 지그시 감아버렸다. 료리점에 들어간 요한은 통로곁에 자리를 잡았다. 너무 일찍해서인지 상들이 반나마 비여있었다. 요한의 거동을 보면서 흥원은 절레절레 머리를 저었다. 보통사람들은 회전식당에 오면 창문과 가까운 자리를 찾아 앉아 도시풍경과 도시주변을 둘러싼 뭇산들을 보는것을 일종의 향수로 생각했다. 회전식당은 매 59분마다 한고패씩 돈다고 했다. 회전식당의 설계가 그처럼 교묘하고 아름다왔지만 요한은 조금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메뉴를 번지면서 요한은 연신 자기의 거동을 해석했는데 그 구구한 말들에는 어딘가 스스로에 대한 조소까지 섞여있는듯싶었다. ―난 참 담이 작단 말이야. 조금만 높은 곳에 오르면 두려움부터 앞서거든. 정말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너, 그저 그러려니 하구 나를 리해해라. 세상에… 이렇게 비싼거야? 가지튀김 같구만. ―고기속을 넣은 가지튀김 같은데 한 접시에 68원이나 하다니. 진짜 그저 놀음이 아니네. ―괜찮아, 골라라. 너를 보고 돈을 내라고는 안할테니. 너는 일전도 낼 필요가 없다. 말을 마친 흥원이는 요한에게 택시에서 하던 말을 계속하려고 말머리를 헤쳤다. 흥원은 아까 차에 앉아 오면서 요한에게 오후차를 마실 때 종량의 태도가 어떠했는가를 넌지시 물었다. 요한은 말을 잘못했다가 거짓말인게 탄로날가봐 허투루 말을 하지 못하고 종량이가 노력해보겠다고 대답했다고 얼버무렸다. 흥원은 옆에 택시운전수가 있다는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종량이가 받던가고 물었다. 요한은 인차 “아니.”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흥원은 흥- 하고 코방귀를 뀌고는 듣기 거북하게 한마디 욕지거리를 했다. 흥원은 료리가격을 보며 좀자르는 요한의 손에서 메뉴를 당겨가더니 단번에 료리 몇개를 짚어보였다. 복무원이 돌아서자 흥원은 인차 얼굴에 랭랭한 웃음을 띠우며 말했다. ―넌 네가 담이 작다고 하지만 종량이 그 자식은 너보다도 더 담이 작은거다. 요한은 흥원의 앞에서만은 자존심을 세우고싶어 두리뭉실하게 한마디 했다. ―너도 알지 않니. 종량은 무슨 일에서나 조심성이 많다는것을. 흥원은 잠자코 요한의 말을 듣고만 있을뿐 뭐라고 동을 달지 않았다. 흥원은 담담한 눈길로 요한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엉뚱한 물음을 물었다. ―너, 내가 여기 있다는것을 그에게 말했니? ―그라니? ―종량이하구. ―아, 아니. 그건 왜? ―그래, 말하지 않는게 좋아. 그 자식이 내가 여기 있다는것을 몰라야 해. 그 말에 요한이 흥미롭다는듯 물었다. ―그렇다면 지금 그가 너를 피하는거니? 아니면 네가 그를 피하는거니? 흥원이가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전에 나는 이곳으로 올 때마다 그에게 전화를 했다. 하지만 지난번 돈을 꾸던 그 일이 있은후부터 한번도 전화를 하지 않았다. 내가 자꾸 그의 앞에 나타날 필요가 없는것 같아. 그가 나의 이름을 블랙리스트에 처넣었는데 내가 그에게 칼자루를 넘겨줄수는 없는거지. 세상이 이렇게 작은데 어느때 어떻게 만날지 모르지 않니? 네가 그에게 무엇인가를 바라지 말아야 하지만 그가 너에게 무엇인가를 바라지 말게도 방비해야 하는거다. 이런 도리는 모두 알고있는것이 아니니? 요한은 얼굴에 시무룩이 웃음을 담으며 말했다. ―흥원아, 그러고보니 너도 무척 담이 작네. ―조심하는것은 나쁜 일이 아니지. 조심하면 풍랑속에서도 배를 번질리가 없거든. 료리 한 접시가 상에 올랐다. 흥원은 허리를 쭉 펴고 자세를 바르게 한후 잔을 들며 목소리를 다듬어 말했다. ―자자자, 동창, 오랜만이다. 너를 환영하는 의미에서 그리고 우리의 만남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이 잔을 비우자. 들어라. 그들은 흰술을 마셨다. 요한의 주량은 딱히 어떻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그가 술을 많이 마시는가 적게 마시는가는 전적으로 대방의 분위기에 달려있었다. 대방이 한잔을 권하면 요한은 석잔을 권할수도 있었다. 눈 깜박할 새에 술 서너잔이 배속으로 들어갔다. 기분이 둥둥 뜨는듯했다. 온몸의 무게가 머리로 쏠리는듯싶었다. 흥원은 눈길마저 풀리는듯했다. 복무원이 료리를 상에 올리고 돌아갈 때 그는 치마밑으로 보여지는 복무원의 미끈한 다리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그 눈빛은 곁에서 보기에도 민망했다. 요한은 흥원의 눈앞에 저가락을 흔들어 그가 눈길을 저가락에 돌리게 한후 그 저가락을 천천히 료리접시에 가져다가 톡톡 두드렸다. ―참, 금방 술 몇잔을 마셨다고 그렇게 정신이 아늑해지는거니? 그제야 흥원은 료리접시쪽으로 눈길을 돌렸지만 아쉬움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있었다. ―너 이번에 와서 옛 련인을 만났니? 요한은 흥원이 말하는 그 “옛 련인”이 누구를 두고 하는 말이라는것을 알고있었다. 하지만 요한은 일부러 모르쇠를 대면서 “옛 련인은 무슨? 누구를 두고 하는 말인데?” 하고 되물었다. ―너 모르쇠를 대기는… 요한은 이런 일은 숨기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대방의 흥미를 불러일으킨다는것을 잘 알고있다. 요한은 흥미가 없다는듯 갱충맞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리 옛 련인이라 해도 때와 장소를 가려야지. 이번에 와서 일이 잘 안 풀려 기분이 늘 꿀꿀해있었는데 어디 옛 련인을 생각할 흥이나 있었니? ―기분이 나빠서가 아니라 너는 아예 그를 생각하려고 하지 않은거겠지. 내 말이 틀려? 흥원은 술에 취해 혀가 잘 돌아가지 않았지만 정신만은 올똘한것 같았다. 요한은 흥원을 바라보며 허허허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도 그렇지, 나는 이번에 종량의 도움을 청하려고 왔단 말이다. 그런데 량심이 없게도 그의 와이프를 찾아 옛정을 나눌수 있겠니? 있을수 없는 일이지. ―여기서 받아주지 않는단 말이지? 흥원이 저가락을 들고 자기의 가슴을 쿡쿡 찔렀다. ―그렇다고 할수도 있지. ―하지만 그게 누군가를 봐야지. 우린 오랜 동창이라니까. 잊지 말어. 그 자식이 먼저 너에게 미안한짓을 한거라구. 당년에 종량이 그 자식이… 어느 한 면에서 너와 비길수 있었댔니? 그 말을 들으며 요한은 서글프게 웃었다. 그리고는 자기가 주인이라도 되는듯 술잔을 들어 흥원의 눈앞으로 가져갔다. 흥원은 술잔을 피해 눈길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사실 말이지… 흥원은 매번 속심의 말을 할 때면 구두선처럼 “사실 말이지” 하고 코를 뗐다. 그 말을 들으면 전에 한 말들이 모두 사실이 아닌것처럼 들렸다. ―네가 너무 로실했던거야. 그래서 종량이 그 자식이 구멍수를 본거지. 그렇지 않았다면 시아비는 너의 와이프가 됐을거다. 그리구 너는 지금의 종량의 자리에 앉았을거구. 말해봐, 당년에 시아비가 주동적으로 너를 집에 청한적이 있었지? 단둘인데두 넌 그저 쏘파에 앉아서 멋없이 커피만 한잔 마시고 나왔지. 참, 너처럼 순진한 사람이 어디 있니? 그날 넌 너무했단 말이다. 방관자가 더 똑똑히 본다고 당년에 흥원은 시아비와 요한과 종량의 삼각관계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었다. 그러한 흥원이였으니 말이지 요한은 만약 다른 사람이 자기앞에서 직접 그 일을 꺼낸다면 그저 덤덤히 들을수만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요한은 흥원의 말을 들으면서 당시 시아비와의 일이 성사되지 못한것을 두고 종량이만 탓할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시아비를 탓할수도 없었다. 따져보면 사람마다 사는 방법이 다른것이 문제였다. 사랑도 어쩌면 살아가는데서의 한가지 방법이라고 할수 있다. 요한은 오래동안 기분이 잡치던 그 일을 다시 꺼내고싶지 않았다. ―내가 말했잖니? 나는 원래 그렇게 똑똑치 못한 놈이라구. 안계가 좁은거지 뭐. 높은 곳에 있는 물건은 바라보지 못하고 또 바라볼 엄두도 못 내는거야. ―하지만 지금 생각해도 늦지 않지. 기회가 눈앞에 왔거든. ―기회라니? ―종량이 지금 시아비와 랭전중이거든. 그들사이에 큰 문제가 생긴거다. 너 정말 모르니? 아니면 모르는체하는거니? 요한이 번쩍 머리를 쳐들었다. ―그게 무슨 문젠데? 난 정말 모르고있다. ―이미 오래 되였어. 그들은 지금 리혼을 한다고 떠드는중이다. 나두 집사람이 말하는걸 들었다. 지난해 그들 력사계에서 동창회가 있었거든. 그때 모인 사람들은 아마 다 알고있을걸. 듣자니 그들은 지금 각방을 쓰고있대. 석자 얼음이 하루아침에 얼수 없는거지. 그들은 결혼한지 7, 8년이 돼두 아직 애가 없어. 요한은 흥원의 말을 들으면서도 입에 넣은 료리를 아귀아귀 씹어댔다. 속에서 누군가 마구 뛰여다니고있는듯싶었다. 그렇게 가슴속 구석구석이 그 발길에 숭숭 구멍이 뚫릴것만 같았다. 하지만 요한의 얼굴에는 여전히 아무런 표정도 피여오르지 않았다. 요한이 덤덤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들이 리혼을 하든말든 나하구 무슨 관계가 있는데? ―그래, 네가 관계 없다면 없는것이구 네가 관계 있다면 또 있게 되는거지. 흥원은 말을 마치고 묘한 눈길로 요한을 바라보았다. 입가에 알릴듯말듯 실웃음이 스쳐갔다. ―너, 시아비의 전화번호를 아니? ―모른다. 그것은 사실이였다. 요한은 종래로 시아비의 핸드폰번호를 알려고 생각한적이 없었다. ―그럴테지. 나에게 시아비의 핸드폰번호가 있다. 네가 요구하면 내가 지금 입력해줄게. 요한이 미처 좋다 궂다 자기의 뜻을 밝히지도 않았는데 흥원이 벌써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요한은 응당 흥원이를 제지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웬 일인지 혀가 굳어지면서 소리가 나가지 않았다. 잠간후 호주머니에 들어있는 요한의 핸드폰이 울렸다. 메시지가 들어오는 소리였다. 찰랑찰랑… 시내물이 졸졸 흘러드는듯한 소리였다. 기분 좋을 때 들으면 가슴마저 시원해질것 같았다. 요한은 인차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시아비”라는 세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시아비라는 이름뒤에 길다란 아라비아수자가 적혀있었다. 요한은 각양각색의 모양으로 쭉 늘어선 그 아라비아수자들을 보면서 그것들이 마치 자기의 생명을 구해주기 위해 대기하고있는 “결사대”들 같다고 생각했다. ―종량이 지금쯤 백마시에 있을것이 아니니? 잘된 일이지. 네가 왜 이렇게 멋없이 왔다가 멋없이 돌아가야 하니? 대학교때 종량이 그 자식이 너와 시아비 사이를 뚫고 들어온것이 아니니? 이번에는 네가 그들사이를 한번 뚫어봐라. 군자의 보복은 십년도 늦지 않다고 했거든. 복수를 하는거지 뭐. 요한의 귀방울이 달아올랐다. 흥원은 그저 요한이 술을 마셔 울기가 오른것이라고 생각했다. 요한은 손가락 두개를 펴들고 오른쪽귀방울을 만지기 시작했다. 한번 또 한번… 마치도 귀방울에 그 무슨 원한이라도 있는것만 같았다. 요한은 천천히 눈길을 들어 뭔가를 이윽토록 응시했다. 하지만 나중에 다시 천천히 눈길을 떨구며 어깨를 흠칫했다. 요한이라는 인간 자체가 운동을 멈추고 처량한 정적속으로 빠져들어가는듯싶었다. 그러던 요한이 드디여 입을 열었다. ―아니야. 그럴수 없어. 난 진나를 위해 종량에게 청을 들려고 온것이지 절대 종량에게 복수를 하러 온것이 아니다. 갑자기 흥원의 입에서 웃음소리가 터졌다. 그 웃음소리는 너무도 갑작스럽고 컸다. 한참이 지나서야 흥원은 겨우 웃음을 멈추었다. ―이런, 이런… 동창동지. 52도짜리 “양하대곡”병이 밑굽을 보였다. 그들은 맥주 두병을 더 올렸다. 한 사람이 한병씩 쥐고 마개를 땄다. 그들은 제각기 잔에다 맥주를 따랐다. 거품이 부질부질 잔에 넘쳐났다. 술기운은 그들의 혈액속에서 파도를 치고있었다. 그 순간 그들에게 있어서 술은 참으로 좋은 물건이였다. 술은 담을 키워줬다. 술을 마시고는 걸직한 롱담도 마음대로 할수 있었다. 속심의 말도 마음대로 할수 있었다. 흥원이 술잔을 높이 들고 소리쳤다. ―이봐, 동창, 내 오늘 진짜 너에게 속심의 말을 해야겠다. ―무슨 말인데? ―너 참 대단해. 진짜 사나이란 말이다. 흥원이 엄지손가락을 내들어 정중하게 요한의 눈앞에서 흔들며 말했다. ―사실 말이지 나는 진짜 너에게 탄복한다. 진짜다. 너에게 아부하는게 아니다. 진심으로 너에게 탄복하는거다. 만약 이 일이 나에게서 일어났다면 나는 결코 너처럼 처리하지 못했을거다. 와이프를 위해서 종량이를 찾아 청을 들러 오다니. 화끈거리는 얼굴을 그 자식의 얼어붙은 엉덩짝에 들이대다니… 그…그 자식은 옛날 너의 녀자친구의 남편되는 사람이 아니니? 그러니 련적이라고 할수 있지. 넌 진짜 남자다, 종량이 그 자식은 비기지도 못해. 흥원의 말은 실말이라 할수 있었지만 여전히 듣기가 거북했다. 바늘에 따끔 찔리는듯한 아픔까지 느껴졌다. 요한은 자기를 위해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몰랐다. 요한은 두눈을 퀭하니 뜨고 상우에 놓여져있는 술잔을 바라보다가 누구에게라 없이 중얼거렸다. ―사람은 말이다. 높은 곳에 있으면 높은 곳에서 사는 방법이 있고 낮은 곳에 있으면 또 낮은 곳에서 사는 방법이 나지는거다. 화위달에서 나와 흥원이와 갈라진후 요한은 려관으로 돌아가려고 택시에 올랐다. 요한은 그래도 평지에서 사는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평지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고 걸음걸이가 온당하여 어딘가 믿음이 선다고 느껴졌다. 요한은 택시의 차창을 열었다. 밤바람이 살랑살랑 들어왔다. 가슴마저 시원하게 하는 바람이였다. 술기운이 반나마 날아나는듯싶었다. 택시는 골목을 따라 십여분 달렸다. 한 골목에 멈춰서서 붉은등이 바뀌기를 기다릴 때 요한은 오른쪽 가로등옆에 세워져있는 광고판을 보았다. “굉달가구(宏达家居)”에 대한 광고였다. 하지만 “居”자 아래쪽의 “古”가 떨어져 “굉달가시(宏达家尸)”로 되여있었다. 요한은 운전수에게 그곳에서 봉황소구역까지 얼마나 되는가고 물었다. 운전수는 요한에게 왼쪽으로 돌아서 1, 2백메터쯤 가면 봉황소구역이라고 알려주었다. 요한은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핸드폰을 움켜쥐였다. 당금 심장이 튀여나올것만 같았다. 툭툭- 하는 심장소리를 스스로도 들을수 있었다. 종량이 만약 정말 백마시로 갔다면… 푸른등이 켜졌다. 택시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운전수가 얼굴을 돌리며 요한에게 물었다. ―어디로 갈가요? 곧추 갈겁니까? 아니면 돌아서 봉황소구역으로 갈겁니까? 요한은 호주머니에서 손을 꺼내고 자세를 고쳐 앉으며 술냄새가 간간이 풍겨나오는 목소리로 운전수에게 말했다. ―곧추 갑시다.   왕옥각(王玉珏): 한족, 1983년 출생. 2004년에 중국인민해방군 제남륙군학원을 졸업. 현재 제남군구 정치부문공단 창작실에서 사업. 선후로 《해방군문예》, 《서북군사문학》 등 잡지에 소설을 발표.  
4    폭풍우가 내리던 그날 * 구산산 댓글:  조회:1965  추천:0  2012-05-02
 폭풍우가 내리던 그날   구산산     너무 갑작스레 사정없이 퍼부었다. 정말이지 눈 깜박할 새에 세상이 물천지가 되여버렸다. 거리를 거닐던 사람들은 비를 피하려고 정신없이 헤덤벼쳤고 차들도 나는듯이 길을 조여갔다. 잠간이라도 속도를 늦추면 모두 물에 잠겨버릴가 두려워하는것 같았다. 가로등만이 대살같은 비줄기속에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있을뿐이였다. 뿌우연 빛을 뿌려주는 가로등은 마치 다른 세계에서 껌뻑거리는 불처럼 청승스럽게 느껴졌다. 시침은 밤 8시를 약간 넘기고있었다. 금방 저녁식사를 마치고 음식점을 나가려는 손님들은 대부분 비때문에 음식점문어구에 발이 묶여있었다. 이럴 때면 택시는 사람들에게 “노아의 방주”와도 같은 존재였다. 운수가 잘 풀리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애타게 손을 흔들어도 도무지 택시를 잡을수 없었다. 물론 자가용승용차를 몰고 왔다면 택시를 세우는것과 같은 촌스러운 역을 맡지 않고 내키는대로 몰아갈수도 있을것이였다. 자가용승용차가 아니라 우산마저 가져오지 않은 사람들은 별수 없이 음식점문어구에서 비가 끊기를 기다려야 했다. 일부 사람들은 식구나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구원을 청하기도 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음식점문어구에 서서 괜히 하늘에 대고 삿대질을 했다. 하늘을 향해 아무리 주먹질을 해도 해가 될것이 없으니 해볼만한 분풀이였던것이다. 허림봉은 쏟아지는 비줄기를 보면서도 웬 일인지 기분이 잡치지 않았다. 아니, 기분이 잡친다기보다 어딘가 모르게 상쾌한 기분이 스물스물 머리속을 치고들었다. 그런 기분은 식사를 하는 내내 그의 머리속에서 배회했다. 갑작스럽게 내리는 비줄기도 허림봉의 그 기분을 씻어내지 못하고있었다. 그의 옆에는 저녁에 금방 얼굴을 익힌 전청청이 서있었다. 그리고 청청이를 림봉에게 소개해준 방선생네 부부도 함께 있었다. 저녁에 식사를 했던 그 음식점은 림봉이네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었다. 하기에 비속을 그대로 뚫고 달려서 집으로 간다 해도 내의가 젖을 념려까지는 없었다. 그렇게 가까운 거리에 있는 식당이기에 림봉이는 자가용 승용차를 몰고 오지 않았던것이다. 하지만 방선생네 부부와 청청이네 집은 그 음식점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져있어서 차를 타지 않고는 비속을 헤쳐가기 어려울것이였다. 저녁식사를 초대한 림봉이는 방선생네 부부와 청청이를 그대로 두고 혼자 비속으로 사라질수도  없었다. 하기에 림봉이는 사정없이 내리는 비를 근심스럽게 바라보면서 청청의 옆을 지키고 섰던것이다. 도무지 택시를 잡을수 없자 방선생의 부인이 어딘가에 전화를 걸어 구원을 청했다. 얼핏 들으니 딸에게 전화를 거는것 같았다. ―그래, 차를 몰고 와 나와 아버지를 마중해라. 비가 너무 억수로 내려서 근본 택시를 잡을수 없다니까… 뭐라구? 참…무슨 일이 그렇게 급한데… 어쩌다가 한번 손을 빌자니… 우리는 나올 때 창문도 닫지 않았거든. 그래, 비줄기가 집안으로 뿌리워 들어가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빨리 오너라. 이곳에 도착하면 전화해라. 우리는 북문대교의 “즐거운 만남”이라는 음식점에 있다. 방선생의 부인은 통화를 끝낸후 방선생을 보고 두덜거렸다. ―참, 맹랑한 계집애 같으니라구. 아무리 빨라도 반시간전에는 도착할수 없다 하네요. 어디서 제 좋은 노릇을 하고있는지, 나 참 원… 안해의 원망 섞인 푸념을 들으며 방선생이 입을 열었다. ―그놈이 반시간이라고 했다니 우리는 한시간쯤 기다릴 각오를 해야겠소. 그 말에 방선생 부인은 더 실망하여 긴 한숨을 내쉬였다. 허림봉은 그러는 방선생네 부부를 어떻게 위로해드렸으면 좋을지 몰라 난처해졌다. 그는 방선생네 가정정황에 대하여 아는것이 하나도 없었던것이다. 림봉이는 어느 한차례의 연회에서 우연하게 방선생을 알게 되였다. 방선생은 림봉이가 컴퓨터회사의 경리라는 소개를 듣고 인츰 림봉이에게 잘 보이려는듯이 다가들었다. 그러면서 자기는 컴퓨터라면 맹인이나 다름이 없어 작은 문제라도 생기면 두려움부터 앞선다면서 후에 일이 있으면 림봉이를 찾겠다고 말했다. 림봉이는 얼마든지 찾으라고 사람 좋게 대답하면서도 모든 컴퓨터회사에서 컴퓨터수리를 하는줄 아는 모양이라고 어이없게 생각했다. 사실 림봉이네 컴퓨터회사는 컴퓨터수리를 하는것이 아니라 주로 집단용호들의 근거리통신망건설을 했던것이다. 하지만 림봉이는 방선생의 청을 구태여 거절하지 않았다. 림봉이는 출판사 편집이라는 방선생에 대해 어딘가 존경심까지 들었던것이다. 게다가 성근하게 도움을 청하는 그 모습에 동정심도 생겼다. 그후의 어느날, 방선생은 과연 전화로 도움을 청했다. 들어보니 매우 간단한 일 같았지만 방선생은 마치 큰 적수를 만난듯이 과장해서 말했다. 림봉은 한 직원을 방선생네 집으로 보내여 컴퓨터를 수리하게 했다. 물론 비용 같은것은 받지 않았다. 그후에도 그 같은 일이 두번 더 있었지만 림봉이는 번마다 상징적으로 약간한 부품값만 받았을뿐이였다. 그로 하여 방선생은 림봉이에게 아주 좋은 인상을 가지게 되였고 또 그를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였다. 그런 교제를 하면서 방선생은 림봉이가 독신이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마음이 후더운 방선생은 자청하여 옛 친구의 딸을 림봉이에게 소개하였다. 비에 갇혀 무작정 문어구에 서있자니 어딘가 분위기가 어색한것 같았다. 문어구에서 손님을 마중하는 아가씨도 그들에게 몇번이나 3층에 올라가 차물이나 마시면서 편히 기다리라고 했다.  3층에는 에어콘까지 있다는것이였다. 림봉이는 그것도 괜찮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전청청을 힐끔 넘겨다보았다. 청청이도 문어구에 그렇게 서있는것이 어색했던지 인차 입을 열었다. ―그래요, 여기에 무작정 서있지 말고 올라가 차나 마시자요. 차는 제가 살게요. ―아니, 내가… 내가 사야죠. 림봉이가 다투어 말했다. 방선생네 부부는 서로 얼굴을 마주하다가 창밖으로 눈길을 돌렸다. 밖에서는 여전히 대살같은 비줄기가 쭈룩쭈룩 쏟아지고있었다. 방선생네 부부는 구태여 사양하지 않고 림봉이네를 따라 3층으로 올라갔다. 3층에는 “청아차원(清雅茶苑)”이라는 간판을 건 아담한 방이 있었다. 안에는 이미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앉아서 차를 홀짝이고있었다. 어쩌면 모두들 비때문에 그곳에 발을 묶인 사람들인것 같았다. 청청이는 복무원에게 단칸방이 있는가고 물었다. 복무원은 그들을 자그마한 방으로 안내하였다. 방중앙에는 마작상이 놓여져있었는데 그곳으로부터 기분을 잡치게 하는 이상한 냄새가흘러나왔다. ―우리는 마작을 놀려는게 아니니까 상을 치워주오. 차만 마시면 된다니까. 림봉이 말했다. ―에어콘도 틀어줘요. 청청이도 동을 달았다. ―알겠어요. 제가 가서 리모컨을 가져올게요. 복무원이 살짝 웃었다. 사라지는 복무원의 뒤통수에서 눈길을 돌리는 순간 림봉의 눈길이 방선생의 얼굴에 가 멎었다. 그때 방선생은 웬 일인지 이마살을 잔뜩 찌프리고있었다. 림봉이는 방선생이 아마 이런 곳으로 자주 다니지 않아 습관이 안된 모양이라고 나름대로 생각하면서 입을 열었다. ―냄새가 안 좋네요. 그럼 우리 큰 칸에 나가 앉을가요? ―그렇지, 그래. 그래도 큰 칸이 공기도 좋다니까. 방선생이 맞장구를 쳤다. ―좋아요, 큰 칸이 시원하죠. 청청이도 따라 일어섰다. 네 사람은 이리저리 살피다가 창문과 가까운 자리를 찾았다. 청청이는 자연스럽게 창턱아래쪽으로 가서 앉았다. 방선생의 부인도 맞은켠 창문아래에 앉게 되였다. 상은 기차바곤에서 볼수 있는 차탁 같은 모양이였다. 림봉이는 인츰 청청이곁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러자 청청이와 가끔 어깨를 부딪칠수도 있었다. 그들의 맞은켠에 앉은 방선생네 부부도 몸과 몸이 닿을듯 붙어앉게 되였다. 비록 청청이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앉았지만 림봉이는 웬지 식사할 때처럼 청청이와 얼굴을 마주하고 앉는것이 더 좋다고 생각되였다. 마주해야 청청이의 눈길을 보면서 대화할수 있다고 생각했던것이다. ―어떤 차를 올릴가요? 철관음, 보이, 아미모봉, 그리고 죽엽청도 있어요. 복무원이 다가와서 물었다. ―국화가 있나요? 청청이가 물었다. ―있어요. 복무원이 당연하다는듯 가볍게 대답했다. ―좋아요, 전 국화를 마시겠어요. ―선생님, 무슨 차를 마실가요? 그리고 사모님은요? 청청이의 주문에 이어 림봉이 방선생네 부부를 건너다보면서 물었다. ―뭐, 얼마나 앉아있겠다구, 자네가 알아서 청하게. 방선생이 대답했다. ―그럼 국화차 한 주전자를 가져다주시오. 잔은 네개를 가져오구요. 그리고 락화생이나 해바라기 같은것을 좀 가져오구요. 복무원은 인츰 자리를 떠났다. 사실 국화차는 차집에서 제일 값이 싸다고 할수 있었다. 그것도 네 사람이 차 한주전자를 청했으니 그렇게 부담이 갈것도 없었다. 청청은 머리를 돌려 여전히 기승스레 쏟아지는 비줄기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비소리만 들릴뿐 창문에서 흘러내리는 비물로 하여 밖이 잘 보이지 않았다. 청청이가 근심스러운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 ―참, 어쩌면 좋아요. 오늘 우리 래래가 무서울거예요. ―래래? 래래라니? 그게 누군데. 방선생 부인이 모르겠다는듯 청청이를 바라보았다. ―우리 집 애완견 말이죠. 내 귀염둥이. 그 앤 비를 젤루 무서워해요. 특히 큰비가 내릴 때면 더하죠. 그 애는 아마도 지금 침대밑에 들어가있을거예요. 그밑에서도 부들부들 떨걸요. 내가 만약 집에 있다면 집안의 모든 전등을 다 켜서 그 애 담을 키워줄것인데… 청청의 목소리에는 근심이 가득 실려있었다. ―아니, 개가 그렇게 담이 작아요? 방선생 부인이 흥미있다는듯 한마디 했다. ―그래요. 아마도 그 애는 전생에 물에 빠져죽은 강아지였을거예요. 청청의 목소리는 약간 떨리기까지 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우리 함께 가요. 이제 예예를 보고 아가씨를 집까지 데려다주라고 할게요. 방선생 부인이 청청이를 보면서 시름을 놓으라는듯 말했다. ―아니요. 괜찮아요, 괜찮다니까요. 그 애를 보고 오늘밤에 좀 단련하라고 하죠 뭐. 하기야 그렇게 담이 작아서야 쓰겠어요? 그 애도 좀 좌절을 당해봐야죠. 청청의 말에 림봉이는 시무룩이 웃었다. 림봉이는 청청이가 그렇게 자질구레한 생활적인 이야기를 하는것이 참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집값이요, 물가요, 교통두절이요 등 해결하기 어려운 사회문제들은 들을수록 머리만 아프다고 여겼던것이다. 림봉이는 청청의 말끝을 물고 자기는 비오는 날을 좋아한다고 말하고싶었다. 특히 비 내리는 날에 집에서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며 깊은 잠을 자고싶다고말이다. 하지만 청청이 그 말을 듣고 자기를 아무 고상한 흥취도 없는 게으름뱅이라고 생각할것 같아서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 삼켜버렸다. 그러면서 비오는 날 자기는 청청이처럼 무드 있는 녀인들과 차를 마시며 한담하는것을 제일 행복하게 생각한다고 말해야 할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림봉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방선생네 부부가 맞은켠에 앉아있기에 자기들만의 이야기를 하기가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선생네 부부는 어딘가 조급했던지 수시로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더 세차게 내리는 비는 조금도 늦추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가끔 우르릉 쾅- 하는 우뢰소리까지 반주로 곁들이고있었다. ―어쩌면 좋아요. 참, 비물이 꼭 베란다에 들어왔을거예요. 돌아가자마자 반나절은 수습해야 할거예요. 방선생 부인이 불안해서 못살겠다는듯이 손바닥을 비비며 푸념을 하다가 인츰 목표를 방선생에게로 돌렸다. ―보세요. 나올 때 제가 말하지 않았나요? 창문을 닫자고말이죠. 그런데두 당신은 창문을 열어 통풍을 시켜야 한다고 했죠. ―아침 일기예보에서는 폭우가 내린다고 말하지 않았소.. 방선생이 입속으로 우물거렸다. ―그래요, 일기예보란 왕왕 행차뒤 나발이죠. 래일이나 돼야 폭우가 온다고 할거예요. 청청은 세상일이란 원래 그렇게 감을 잡을수 없다는듯 얼굴에 가는 웃음을 띠우며 동을 달았다. 림봉이는 방선생네 부부가 진짜 베란다에 물이 들어갔을가봐 근심할수도 있고 아니면 그 시간에 밖으로 나오는데 습관이 되지 않아 불안하게 느껴져 그럴수도 있다고  나름대로 생각했다. 하기에 될수록 방선생네 부부가 흥미를 느끼는 이야기를 끄집어내여 얼마간 불안을 해소해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림봉이는 방선생네 부부를 매우 고맙게 생각하고있었다. 그들은 림봉이가 여러 모로 만족해하는 청청이를 소개시켜준분들이였다. 하지만 림봉이는 청청이가 자기를 만족하는지 알수 없었다. 아마 후에 방선생에게 부탁해서 알아봐야 될것 같았다. 림봉이는 원래 집으로 돌아간후 자기가 직접 청청이에게 메시지를 보내여 주동적으로 다음 약속을 잡아볼가도 생각했다. 그런데 하늘이 그의 심사를 알았던지 이처럼 폭우를 선물하여 그들이 다시 마주앉게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3년전에 리혼한후 림봉이는 십여명의 녀인을 만나보았다. 그속에는 누군가 정식으로 소개하여 만난 녀인도 있었고 우연하게 만난 녀인도 있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첫눈에 마음 드는 녀인은 없었다. 열에 아홉은 첫눈에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머지 한 녀인은 근본 림봉이를 눈에 차하지 않았었다. 그중 어떤 녀인은 보자마자 반감이 생기면서 소개시켜준 사람마저 원망하고싶었다. 림봉이가 만난 한 녀인은 마치 어느 유흥업소에서 금방 달려온 아가씨처럼 단장하였다. 그리고 그녀에게서 풍기는 분위기도 그러했다. 사실 림봉이는 한 사람의 외모보다 그 자태나 분위기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어떤 녀인들은 만나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로임은 얼마이며 집은 몇평방인가고 꼬치꼬치 캐여물었다. 지어 한달에 딸애에게 생활비를 얼마씩 지불하며 결혼후 자기에게 경제권을 맡기겠는가고 은근히 묻기도 했다. 그런 녀인들을 대할 때마다 림봉은 요강뚜껑으로 물을 떠먹은듯한 기분이 들어서 괜히 분하고 약이 올랐었다. 한동안 림봉이는 녀인들을 만나보지 않으려고 다짐했다. 하기야 마음만 먹는다면 홀아비도 유부남대우를 얼마든지 받을수 있는 세월이였다. 돈 쓰는것만 아까와하지 않으면 무슨 일인들 할수 없단말인가?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림봉이는 안정된 생활을 하고싶은 욕망을 떨쳐버릴수 없었다. 림봉이는 늘 나이가 더 들어 기력이 모자랄 때 누군가가 옆을 지켜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떨쳐버릴수 없었다. 사실 저녁에 집에서 나올 때까지만 해도 림봉이는 큰 희망을 품지 않았다. 방선생은 청청이가 림봉이보다 한살 어릴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니 이미 35살이 되는것이다. 전에 림봉이는30살 아래의 “애숭이”들속에서 상대를 고르리라 마음 먹었었다. 때문에 35살인 청청이가 썩 마음에 내키지 않았지만 방선생이 하도 열정적으로 주선하니 면목을 세워주는 셈치고 자리에 나왔다. 하지만 청청이를 보는 순간 림봉이는 그녀에게 끌려들었다. 사실 림봉이도 적지 않은 미녀들을 만나보았지만 청청이한테는 미녀들의 그런 매력만이 아닌 그 어떤 끌림이 있었다. 그래서 림봉이는 녀인은 직접 만나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청청이는 보자마자 입이 떡 벌어지는 미녀는 아니지만 보면 볼수록 호감이 가는 그런 스타일이였다. 특히 말할 때  목소리가 인상적이였다. 몸매도 보기 좋았는데 딱히 점수를 매기면 80점은 얼마든지 줄수 있었다. 나이가 좀 많았지만 실제 보기에는 5살은 어려보였다. 청청이는 여직 결혼을 한적이 없다고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시위생감독국에 배치 받았는데 지금껏 그 자리를 지키고있었다. 림봉이는 그쯤이면 자기에게 과분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방선생의 말은 조건이 너무 좋기에 여직껏 이 사람 저 사람 저울질을 했다는것이였다. 청청이는 방선생의 그 평가가 싫지는 않았다.  ―너무 늦었어요. 이제 해결하지 않으면 정말 누구도 꺾지 않는 꽃으로 시들어버릴거예요. 그럴수야 없지요. 늙은 꽃이라도 꽃이니까요. 청청이의 말에 림봉이는 그녀가 유머감각까지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청청이가 다른 녀인들이 그처럼 중시하는 재산문제에 대하여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것에 더 큰 호감을 느꼈다. 되려 청청이쪽에서 자기는 집도 있고 높지는 않지만 그래도 로임이 있어서 능히 자립할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엄마가 날마다 시집을 가라고 닥달하지 않으면 독신주의를 주장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30살전까지 나는 누구의 소개로 남자를 만나는것을 용속하다고 생각했어요. 저의 할아버지께서는 언젠가 저에게 “자식이라면 부모에게 효도하고 순종할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신적이 있어요. 순종이요? 그래요. 순종하라면 해야죠. 그 말을 들으며 림봉이는 청청이가 가정교육도 반듯하게 받았다고 생각했다. ―청청의 할아버지는 우리 출판사의 로사장이라오. 문화인이지. 그리구 청청이 아버지는 문화국 국장이구 엄마는 의사이지. 청청이는 그들의 무남독녀라우. 어릴 때부터 장중보옥으로 자랐지. 그 말을 들으며 림봉이는 누군가의 “장중보옥으로 자란 애들에게는 나쁜 습관이 있지만 나쁜 심보는 없다.”던 말이 떠올랐다. ―음력설후에만 해도 전 남자 몇을 만났댔어요. 하지만 어느 한 사람도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마음에 안드는 정도가 아니라 참으로 가소롭다고 생각되였죠. 한 사람은 정말 웃겼어요. 글쎄 혼인광고에다가 이렇게 쓴거 있죠. “잘 생기고 체격이 좋으며 나쁜 기호가 없다. 차도 없고 집도 없지만 잠재력만은 무궁무진하다.” 나는 그 남자가 매우 유모아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만나보았죠. 세상에, 그는 말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빈털터리에다가 모양마저 그가 말하는것처럼 그렇게 좋은게 아니였어요. 그 남자는 자기의 창업계획에 대하여 잔뜩 불어댔어요. 그것으로 자기의 잠재력을 과시하려는것 같았어요. 하지만 그는 지금 세상은 잠재력만 가지고 살수 없다는것을 모르는것 같았어요. 집값이며 물가는 날마다 사람들의 한계에 도전을 걸고있지 않아요? 우리가 잠재력을 발휘했을 때 물가는 또 기록을 깨뜨릴것이니까요. 림봉은 청청의 그 관점에 박수를 보냈다. 똑 부러지는 그러한 관점을 누구든지 접수할수 있을것이라고 믿었다. 림봉이는 또 자기가 비록 리혼한적은 있지만 그래도 청청이와 대상이 될수 있다고 자부했다. 첫째로 자기의 외모가 괜찮다고 생각했다. 비록 그렇게 혀를 내두를만큼 잘 생긴것은 아니지만 오관이 단정하고 사람들에게 기분 좋은 인상을 주는 그런 스타일이였다. 그리고 크지는 않지만 자기에게 속하는 회사가 있고 차가 있고 집이 있고 적다고 할수 없는 저축도 있었다. 리혼후 딸애는 전처가 부양하기로 했기에 구태여 부담될것도 없었다. 그러한 정황들은 방선생이 이미 말해주었을것이니 청청이도 어쩌면 자기에게 어느 정도 만족하리라고 림봉이는 김치국부터 마셨다. 아니라면 청청이가 자기에게 말할 때의 눈빛이나 어조가 어찌 그렇게 빛나고 상냥스러울수 있을가? 지어는 어딘가 응석을 부리는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림봉이는 청청이의 모든 행동은 꼭 마음에 있는 사람앞에서만 보여줄수 있는것이라고 나름대로 생각했다. 복무원이 국화차를 올렸다. 림봉이는 천천히 차잔을 입가에 가져갔다. 슴슴한것이 아무 맛도 없었다. 림봉이는 자기 주장대로 철관음을 주문할걸 잘못했다고 후회했다. 담배를 피우고싶었지만 림봉이는 애써 참으면서 해바라기를 깠다. 청청이도 어색한 분위기를 메우려고 그러는지 말을 많이 했다. ―저요 비에 과민이 있는것 같아요. 선생님은요? 청청이가 림봉이쪽에 머리를 돌리며 물었다. ―비에 과민이라니요? 어떻게 하시는 말씀이죠? 림봉이 모르겠다는듯 청청이를 보면서 물었다. ―저는 비물을 보기만 하면 우울증이 생긴다니까요. 비만 내리면 저도 몰래 고독감이 스물스물 기여들어 비참하게 느껴지지요. 모든 녀인들이 다 저 같을가요? 청청이가 입가에 가는 웃음을 띠우면서 말했다. ―그럴수야… 절대 그럴수 없을겁니다. 림봉이가 인츰 그루를 박았다. 그러면서 림봉이는 문뜩 전처를 떠올렸다. 전처는 견강한것이 아니라 억세다고 표현해야 할것이였다. ―저 어릴 때는 이렇지 않았어요. 되려 비오는 날에 밖에 나가 놀기를 좋아했어요. 비물에 온몸이 흠뻑 젖어 들어와도 엄마는 책망 한마디 안했어요. 애들이 비를 맞으면 키가 빨리 큰다고 엄마는 말씀했거든요. 청청이가 동화이야기를 하듯이 차분하게 말했다. ―남자애들은 다르죠. 나는 비오는 날이면 늘 못된 장난을 하기 좋아했어요. 우산을 들고 교실에 들어가서는 녀자애들 곁으로 가서 “휘익―” 하고 우산을 돌리는거죠. 그러면 녀자애들에게 비물이 튕겼고 그 애들은 죽는다고 소리를 질렀죠. 그 소리를 들으면 왜 그렇게 기분이 좋던지… 림봉이도 동화를 쓰는듯 낮은 목소리로 엮어댔다. ―그래요, 그 시절에는 학급마다 그런 악동들이 몇명씩 꼭 있었죠. ―아마 이런것을 두고 세대공감이라고 하겠죠? 아니, 세대적인 회억이라고 하는것이 더 멋질것 같아요. ―그래요, 어릴 때 그처럼 즐겁게 비속에서 뛰놀았기에 커서는 비가 싫은것 같아요. 폭우가 쏟아지고 비바람이 불어치며 하늘이 검으락푸르락하면서 나무잎이 부르르 떨 때면 나는 웬지 까닭없이 울고싶어요. 비물이 줄줄 흐르는 저 창문유리처럼 한바탕 울고싶다니깐요. ―하하하… 림봉이는 청청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바탕 소리내여 웃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만약 청청이와 단둘이 있다면 꼭 “다음에 비가 올 때면 내가 당신에게 전화를 해줄게요. 나는 당신이 우는것을 볼수 없으니깐요.”라고 말하리라 다짐했다. 지금 그런 말을 할수 없는것이 너무 안타까왔다. 남녀사이의 서정적인 이야기를 어찌 다른 사람들앞에서 할수 있단말인가? ―나는 비 내리는 날을 대단히 좋아하거든요. 비 오는 날에 잠을 자면 깊이 잠들수 있으니까요. 그렇죠? 방선생님. 림봉이는 일부러 목소리를 한 옥타브 높이면서 방선생을 건너다보았다. ―방선생이요? 저이는 자고만 싶으면 해가 중천에 떠오르든지 폭우가 쏟아지든지 관계치 않아요. 눕기만 하면 곯아떨어지거든요. 한밤중에 큰 비가 내려 내가 일어나서 창문을 닫아도 저이는 알지 못한다니깐요. 그러다가도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비를 본것처럼 나에게 “여보 어제밤에 큰 비가 왔었다니까.” 하고 이야기한다니깐요. 방선생이 대답하기전에 방선생 부인이 먼저 말허리를 당겨다가 흥미진지하게 꼬아나갔다. ―허허허… 그렇다니까. 나는 잠만 들면 누가 들어가도 모른다니까. 방선생이 수집게 뒤더수기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그래요? 저는 문화인들은 모두 신경쇠약증이 있는가고 생각했어요. 저의 엄마는 깊은 잠을 자지 못해요. 청청이가 방선생의 말을 받았다. ―사람의 성격은 직업으로 판단할수 없어요. 나같은 장사군이 되려 신경이 예민할수 있다니깐요. ―아닐걸요. 선생님은 아마 눕기만 하면 드르릉- 하는 수준일걸요. ―어떻게 하시는 말씀이죠? ―느낌이죠. 난 첫눈에 선생님이 편한 사람이라는것을 알아봤어요. ―칭찬으로 들어야겠네요. 림봉이는 걸걸한 목소리로 청청이의 말을 받았다가 짐짓 엄숙한 기색을 띠우며 말했다. ―비도 그래요. 점점 파괴력이 강해지는것 같아요. 여름이면 온통 비때문에 재해를 입었다는 소식들이죠. 어제는 비행기가 제 시간에 날지 못하고 오늘은 다리가 끊어지고 또 홍수에 가옥이 무너지고 수도관이 터져 물공급이 끊겼다는 등등 얘기죠. 어쩌면 래일 신문에 또 나쁜 소식이 실릴지도 모른다니깐요. ―그래요.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우리 어릴 때의 비는 그렇게 큰 파괴력이 없은것 같은데요. 청청이가 림봉이의 말에 찬성표를 던졌다. ―이것은 아마 지금 시대가 정보에 눈을 뜬 까닭일거요. 전에는 정보가 발달하지 못해서 내 집앞에 물이 져야 홍수인줄 알았다니까. 방선생이 “어험―” 하고 건가래를 떼면서 점잖게 한마디 했다. ―그런것도 같네요. 전 가끔 이런 생각을 해요. 하늘에서 큰 비가 내리는것은 인간세상이 너무 어지러운 까닭이라구요. 그래서 큰 비를 내려 더러운 곳들을 씻어주려는것이라구요. 청청이 신비한 웃음을 입가에 띠우며 한마디 했다. ―참 좋은 말일세. 중문전업 졸업생이 다르다니까. 방선생이 싱글벙글 웃으며 청청이를 칭찬했다. ―그러니 방선생님께서 저한테서 먹물냄새를 맡으셨다는 얘기겠네요. ―허허허… 방선생은 대답하지 않고 웃기만 했다. 림봉이는 녀인은 30살에도 “먹물냄새”를 풍기기 쉽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의 녀인들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현실적이여서 “돈냄새”만 풍긴다는 말이 있었다. 그때 방선생의 부인은 허리를 수긋한채 가려운 곳을 긁고있었다. ―사모님, 모기에게 물리셨나요? 청청이가 물었다. ―그런것 같아요. 모기란 놈은 나를 그저 놔두지 않는구만. 정말 성가시죠. 청청이는 인츰 옆에 있는 작은 가방안에서 모기향을 꺼내 부인에게 넘겨주며 말했다. ―이것을 뿌리세요. 효과가 괜찮을거예요 방선생 부인은 모기향을 받아다 가려운 곳에 몇번 뿌리고는 청청이한테 넘겨주었다. ―사모님, 쓰세요. 저에겐 또 있어요. 청청이는 가방안에서 작은 병을 꺼내보였다. 그것은 비타민 B2이였다. ―사모님, 이걸 잡수세요. 저한테로 다니는 한 손님이 알려주던데요, 이 약을 먹으면 땀에 일종 냄새가 묻어나와 모기들이 달려들지 못한대요. ―청청이, 자네는 정말 세심하기두 하네. 이런 약까지 지니고 다니다니. 방선생 부인이 청청이를 치하했다. ―여름에 꼭 필요한 약은 지니고 다녀야죠. 하지만 저절로 돈 주고 산것은 하나도 없어요. 손님들이 알아서 가져다주거든요.  그 말을 들으면서 림봉이는 정부기관에 출근하는 그녀에게 무슨 “손님”이 그렇게 많을가고 생각을 굴려보았다. 옆에 “여름에 필요한 약”까지 가져다주는 “손님”을 두고있다면 장사를 하는 자기와 별반 다를게 없지 않은가? 림봉이는 만약 청청이와 한집에서 산다면 소소한 약 같은것은 돈을 주고 사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방선생네 부부는 초조한 기색으로 연신 밖을 내다보았다. 비는 많이 누그러들었지만 딸애는 시종 나타나지 않았다. 약속했던 반시간이 지난지 오랬다. 그새 방선생의 부인은 몇번이나 딸에에게 전화하려 했지만 번마다 방선생이 막아나섰다. 딸애가 차를 몰고 오겠는데 밤길에 비속에서 위험하다는것이였다. 림봉이도 방선생의 말에 머리를 끄덕이였다. 사실 림봉이도 조급했다. 방선생의 딸이 빨리 도착하여 그들을 모셔갔으면 했다. 방선생네 부부가 돌아가야 청청이와 단둘이서 오붓한 시간을 보낼수 있었다. 하지만 방선생네 부부의 말은 딸애에게 아무런 권위성도 없는것 같았다. 아쉬웠다. ―기다리기 힘드시면 제가 집에 가서 차를 가져올가요? 림봉이가 시탐조로 물었다. ―아니, 그럴것까지야. 자네가 집에 간 사이에 우리 예예가 도착할걸세. 방선생이 홰홰 손을 내저었다. ―이럴 때면 저도 차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전에 한 손님이 저에게 차를 빌려 주겠다고 했어요. 하지만 면허증이 없기에 거절했죠. 그 말에 림봉이는 “차도 빌려 줄수 있단말인가?”고 생각하면서 또 깜짝 놀랐다. 아마 청청이가 하는 일이 대단할거라고 추측했다. ―이러고있을거면 차라리 우리 마작을 놀아요. 노느라면 시간이 빨리 갈거예요. 청청이가 새로운 제의를 했다. ―그 생각을 못했네. 우리 넷이면 딱 좋겠구만. 방선생 부인이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림봉이는 방선생이 그 제의를 반대하기를 바랐다. ―생각이 있나?  림봉이. 방선생이 림봉이를 건너다보았다. 그 바람에 림봉이는 난처했다. 생각이 없다고 하면 청청이가 기분이 잡칠거고 놀자고 하면 방선생이 난처할것이였다. ―저요? 아직 제대로 배우지 못했는데요. 림봉이는 겨우 그렇게 발뺌을 했다. ―그럼 우리 카드놀이를 해요. “지주를 때려잡는 놀이”, 그게 재밌잖아요. 사모님도 좋아하시죠? 청청이가 말했다. ―그럼 세분이 노십시오. 전 잘 모르는데요. 청청이가 말하는 그 놀이는 셋이서 하는 놀이라 림봉이가 양보하려 했다. ―아니지. 그래도 림봉이 자네가 놀게. 방선생이 림봉에게 사양했다. 복무원이 카드를 가져다주었다. 청청이와 림봉이와 방선생 부인이 카드놀이를 시작했다. 방선생 부인의 얼굴에 어려있던 초조한 기색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방선생 부인처럼 점잖아보이는 부인들도 카드놀이를 하면 그렇게 흥분할수 있다는게  림봉이는 너무 놀라웠다. 카드놀이를 하면서도 림봉이의 눈길은 청청이의 손에 쏠렸다. 희고 가느다란 청청이의 손은 20살을 갓 넘은 소녀의 손 같았다. 애써 손을 보양한것 같았다. 손목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비취손목걸이가 걸려있었다. 똑똑히 알수 없지만 그 손목걸이가 꼭 비싼것이라고 림봉이는 추측했다. 할아버지는 오랜 문화인이고 아버지는 국장이라더니 과연 그녀의 생활수준이 보통이 아닌것 같았다. 카드놀이에 흥이 오르자 청청이는 근본 비에 과민이 있는 녀인 같지 않았다. 청청이의 입에서는 수시로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지어는 옆집아줌마에게서 들을수 있는 그런 걸찍한 말까지도 툭툭 튀여나왔다. 방선생 부인도 다름이 아니였다. 그 모양으로 보아 청청이와 방선생 부인은 늘 카드놀이를 하는것 같았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방선생 부인의 핸드폰이였다. 방선생 부인은 카드놀이에 정신이 팔려 보지도 않고 방선생을 받으라고 했다. ―그래, 도착했니? 참 빨리 왔네. 나는 래일쯤 돼야 올줄 알았지. 그래, 맞아. 우리 3층 차집에 있다. 인츰 내려갈게. 방선생은 이미 딸이 도착했는데 문앞에 차를 대기 어려워 빨리 내려오란다고 전했다. ―급하긴요. 이 판이야 끝내야죠. 방선생 부인이 말했다. ―애가 급해하더란말이요. 방선생이 말했다. ―우린 온밤 기다렸는데요. 그 애가 한 십분 기다리는게 뭘 급하다고 그래요. 그 말에 림봉이는 빙그레 웃으면서 아무 패나 마구 던졌다, 빨리 놀이를 끝내야 했다. 청청이도 손을 맞춰주었기에 방선생 부인이 이기는것으로 마지막판이 인츰 끝났다. ―자네들이 합작해서 나를 이기게 했지? 방선생 부인도 그 눈치를 챘는지 웃으면서 말했다. 방선생 부인이 일어나서 가방을 주어들었을 때 갑자기 두 젊은 녀인이 3층으로 올라왔다. ―뭣들 하는거예요? 차를 대기 어렵다고 말했잖아요? 그런데두 여기서 카드놀이를 해요? 너무하시네. 한 녀자애가 뾰로통해서 쏘아붙였다. 목소리는 탁한것 같았지만 어조에는 습관적인 응석이 묻어있었다. ―예예가 왔구나. 청청이가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언니. 녀자애가 인사했다. ―너 어찌된 일이냐? 방선생이 이마살을 찌프리며 말했다. ―왜 그러세요? 여기까지 온것만 해도 괜찮은줄 아세요. 에어콘까지 있는 방안에서 카드놀이를 하느라 바깥날씨가 어떤지 모르시죠? 거리가 물바다로 됐어요. 발동이 끊긴 차도 많아요. 녀자애가 눈을 흘겼다. ―내 말은 그게 아니구. 방선생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잠간후 방선생이 녀자애를 가리키며 인사를 시켰다. ―얘가 나의 딸 예예라네. 예예야, 이분이 전에 우리 컴퓨터를 수리해주시던 허경리시다. 말을 마친 방선생은 옆에 서있는 녀인을 가리키며 물었다. ―예예야, 이분은? ―네. 얘는 우리 회사의 소운이예요. 얘하구 함께 오길 백번 잘했죠. 얘 운전기술이 나보다 나아요. 내가 몰고 왔더라면 아직 도착도 못했을거예요. 예예는 자기 옆에 서있는 녀자애의 어깨에 오른손을 올려놓으며 종알거렸다. 머리칼이 길지 않은 그녀는 예예보다 키가 좀더 컸는데 어디에선가 본적이 있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림봉이는 손을 내밀어 예예에게 인사를 건넸다. 예예와 악수하는 순간 림봉이는 방선생이 무슨 일로 딸을 책망했는가를 알수 있었다. 요염하게 화장을 한 얼굴이며 무릎우를 껑충 올라간 미니스커트는 실로 방선생까지 얼굴이 뜨거워날 지경이였다. 하지만 림봉이를 놀라게 한것은 예예의 맵시만이 아니였다. 사실 림봉이도 그처럼 분장하고 차려입은 녀자애들을 수없이 보았다. 진정 림봉이를 놀라게 한것은 예예옆에 서있는 소운이였다. 림봉이는 분명 그녀를 만난적이 있었다. 아니, 그저 만난것만이 아니였다. 세상에. 어쩌면 그녀도 림봉이를 알아볼수 있을것 같았다. 림봉이의 얼굴이 삽시에 일그러졌다. 가슴마저 갑갑해났다. 방안의 조명이 어두웠을 망정이지 곁에 있는 사람들이 림봉의 얼굴표정이 급변하는것을 보아냈을것이였다. ―반갑습니다, 허선생. 그녀가 림봉이의 손을 가볍게 잡으면서 입가에 묘한 웃음을 띠웠다. ―이 비가 인츰 끊을것 같지 않구려. 급하면 우리 차에 앉아갈가? 자네들. 방선생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참, 주책머리하구는. 괜한 걱정을 하잖아요? 우리 빨리 떠나요. 10시가 넘었어요. 집에 가서 비물을 퍼내야 할지도 몰라요. 방선생 부인이 방선생을 끌면서 말했다. 방선생네 일행 네 사람이 부랴부랴 자리를 떴다. 드디여 청청이와 림봉이만 남게 되였다. 림봉이는 청청이를 향해 벙긋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에는 방금전까지 넘쳐흐르던 그런 기쁨이 묻어있지 않았다. 예예와 함께 왔던 소운이라는 그 녀자애가 갈팡질팡 림봉이의 머리속을 헤집고있었다. 림봉이는 생각할수록 이상스러웠다. 방선생은 전에 딸이 친구가 꾸리는 도서회사에서 기획을 담당하고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딸이 나이트클럽으로 가서 기획한단말인가? 림봉이는 그녀가 확실히 자기를 알아보았을것이라고 생각했다. 악수할 때 그녀는 분명 “반갑습니다, 허선생.” 하고 말했다. 그날 림봉이는 술에 취한김에 그녀에게 명함장을 주었다. 그녀가 혹시 예예에게 그날 밤 일을 말한것이 아닐가? 예예에게 말한다면 예예가 또 청청이에게 말할것이 아닐가? 참, 세상이 좁다. 어쩌면 이 넓은 세상에서 그녀와 이런 방식으로 만날수 있단말인가? 림봉이는 자기의 불안한 마음을 숨기고저 일부러 청청이의 잔에 차를 부었다. 그런데 차주전자가 비여있었다. 림봉이는 손을 흔들어 복무원을 불렀다. 쭈룩쭈룩 쏟아지던 대살같던 비줄기가 어느새 보슬보슬 가랑비로 변했다. 하지만 완전히 뚝 끊지 않았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림봉이는 방선생네 부부가 돌아간후 청청이와 단둘이서 재미나는 이야기를 나누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림봉이는 그럴만한 흥이 사라져버렸다. 마치 도적질을 하다가 당장에서 잡힌듯한 거북함이 머리속에서 맴돌이쳤다. (괜찮아, 아무 일도 아니라니까.) 림봉이는 애써 자신을 위안하고싶었다. (리혼한지 3년이나 지나지 않았는가? 어느 남자가 3년 동안 녀인을 범접하지 않을수 있는가? 게다가 나는 아직 기력이 왕성한 정상적인 남자가 아닌가? 그런 정상적인 남자가 녀인을 잊고 “정조”를 지킨다면 그게 되려 이상한것이 아닌가? 청청이도 남자들과 래왕이 없었다고 누가 장담할수 있는가?) 아무리 자신을 위안하려 해도 림봉이는 갑갑해나는 마음을 달랠수 없었다. ―저요, 방금 참 재미나는 생각을 했어요. 선생님의 조건이 이렇게 우월한데 방선생님은 왜 자기 딸을 선생에게 소개하지 않았을가요? 청청이가 까르르 웃으면서 말을 꺼냈다. ―말도 안되죠, 그건. 방선생의 딸은 아주 젊은데요… 전 당금 40고개를 치달아오르지 않아요? 림봉이가 급하게 손을 내저었다. ―그런데 저는 웬지 예예가 오자마자 선생님의 기색이 변하는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천만에, 그럴수가요. 전 그 애에 대해 아무 느낌도 없습니다. 그 앤 아직 어린애거든요. ―호호호… 그 애, 그 애 하고 부르는게 아주 친절해보이네요. 청청이는 근본 림봉이가 근심하는 일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것 같았다. 청청이는 림봉이가 예예에게 마음을 뺏길가봐 신경을 도사렸다. 신경을 쓰는걸 보아 청청이가 자기에게 진짜 마음이 있다고 림봉이는 생각했다. ―친절하다니요. 허허허… 나의 눈에 예예는 분명 애라니까요. 그리구… ―그리구 또 뭐예요? 청청이가 급히 물었다. 이때 “띵동―” 하는 소리가 들렸다. 림봉이의 핸드폰에 메시지가 들어왔다. 림봉이는 인츰 핸드폰에 눈길을 모았다. 모를 번호였다. 림봉이는 메시지를 확인했다. “시름 놓으세요. 전 선생을 몰라요. 당신도 저를 모르죠?” 가슴이 철렁했다. 설마했는데 그녀는 확실히 림봉이를 알아보았다. 그렇게 메시지까지 보냈다는것은 그녀가 아직 림봉이의 명함장을 가지고있다는것을 말해주었다. 사실 서로 잊어버렸다면 그게 더 이상하였다. 그날 밤, 림봉이는 명배우처럼 생겼다는 느낌을 주는 그녀와 함께 밤을 새웠다. ―예예, 그 애 말입니다. 어리기두 하구 나의 리상형도 아니거든요. 림봉이는 핸드폰을 닫으면서 청청에게 말했다. ―참, 있잖아요. 방금 예예가 왔을 때 전 깜짝 놀랐어요. 그 애, 왜 그런 옷차림으로 나타났을가요? 화장은 왜 그렇게 요염하게 했구요. 길에서 보았다면 알아보지 못했을거예요. 청청이가 입을 삐쭉거리며 말했다. ―예예와 아주 익숙한 사인가 봅니다. ―아니요. 나하구두 그 앤 나이 차이가 많잖아요. 전에 두어번 만났었는데… 그 애가 어쩌면… 이상하게 변한것 같아요. 림봉이는 화제를 바꾸고싶었지만 딱히 무슨 말을 했으면 좋을지 몰랐다. 림봉이는 누군가에게 마음을 들킨다는것이 참말 기분 나쁜 일이라고 생각했다. 따져보면 림봉이는 누군가에게 마음을 들킨것도 아니였다. 스스로 자기에게 들켰다고 해야할것이였다.  그 순간, 림봉이는 더 이상 열심히 좋은 녀인을 만나서 안정된 생활을 하고싶은 남자가 아니였다. 어느새 그는 되는대로 기분을 맞추어가며 눈앞의 생활을 즐기고싶은 또 다른 림봉으로 변했다. 청청이는 확실히 좋은 녀인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청청이와 함께 한다며 꼭 무슨 사고라도 칠것 같은 위험이 도사리고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나이에 우리보다 몇살 어린 애들 하고 달라요. 알게 모르게 세대차이라는게 존재하잖아요. 청청이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림봉이도 얼굴에 별 다른 기색을 띠지 않고 머리를 끄덕이고는 후루룩 차물을 마셨다. 한모금한모금… 어쩌면 접때 아무 맛도 없다고 느껴지던 국화차가 어느새 제맛이 도는것 같았다. 국화차가 열을 내리워준다던 말이 생각났다. 림봉이는 자기가 진짜 열이 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남자들은 모두 나이 어린 녀자애들을 좋아하는가요? 청청이가 차를 마시다 말고 엉뚱한 물음을 던졌다. ―천만에요. 사람 나름이겠죠. 림봉이가 급히 머리를 저었다. (그래, 남자들은 모두 나이 어린 녀자애들을 좋아할것이다. 어느 남자가 나이 많은 녀인을 좋아할수 있겠는가? 하지만 어린 애들이 살림을 제대로 하지 못할것은 당연한 일이지…) 림봉이가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청청이 문뜩 집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목소리가 한껏 가라앉아있었다. 무엇때문일가? 림봉이가 생각을 굴리고있는데 청청이가 또 높은 소리로 웨쳤다. ―결산하세요. 복무원이 계산서를 들고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내가 계산할게요. 내가 한다니까요. 림봉이가 급히 나섰다. ―내가 말했잖아요. 내가 결산한다고. 청청이가 결산서를 확 나꿔챘다. 림봉이는 청청이가 확실히 기분이 상해있다고 짐작하고 잠자코 그녀를 바라보았다. ―뭐요? 180원? 무슨 차가 이리도 비싸요? 청청이가 소리쳤다. ―차 한 주전자에 80원이거든요. 고뿌 하나를 더하면 10원을 더 받아요. 그리고 해바라기랑, 락화생이랑 모두 해서 70원이구요. 그러니 180원이 맞잖아요. 손님들이 령수증을 요구하지 않으면 음료를 한병씩 드릴수 있어요. ―왜 령수증을 안받아요? 인츰 령수증을 가져오세요. 그리고 경리를 보고 눅게 하라 하세요. ―그럴수가 없어요. 복무원이 딱 잘라 말했다. ―그럴수가 없다니요? 그럼 당장 경리를 불러와요. 청청이가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경리가 지금 자리에 안계셔요. 복무원도 주눅이 들지 않고 말했다. ―경리가 없다구? 좋아, 그럼 매니저라도 있겠지? 그를 보고 경리에게 전하라구 해. 나는 위생감독국에서 나왔거든. 래일 당장 이 음식점에 대한 위생검역이 있을거야. 어디 이렇게 어지러운 음식점이 있어? 모기며 파리가 윙윙거리구… 청청이의 푸르뎅뎅한 모습을 지켜보면서 림봉이는 깜짝 놀랐다. 청청이의 어조와 얼굴표정 지어 말하는 내용까지 순식간에 그렇게 변하는것이 너무 상상밖이였다. 청청이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되였다. 그 순간 청청이는 더 이상 비가 오면 우울증을 앓는 “먹물냄새”가 풍기는 녀인이 아니였다. 복무원은 슬금슬금 청청이의 눈치를 살피면서 자리를 피하더니  인츰 책임자인듯한 남자를 모셔왔다. ―미안합니다, 참으로 미안하게 됐네요. 이 애는 금방 와서 세상물정을 몰라요. 미안합니다. 그 남자는 림봉이를 향해 허리를 갑싹거리면서 소인을 개여올렸다. 림봉이는 말없이 청청이를 향해 머리를 끄덕이였다. 그러자 남자는 인츰 청청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정말 미안하게 됐습니다. 모시려 해도 모실수 없는분들인데 이런 결례를 범하다니요. 오늘은 제가 청한것으로 합시다. 그렇게 하는겁니다. 그리구 갈 때 마른 음식들을 가져가십시오. ―사람을 뭘로 보는거예요. 전 종래로 남의 물건을 공짜로 안가져요. 청청이가 더욱 얼굴을 붉히며 소리질렀다. ―너 아직도 뭘 하고있는거냐? 빨리 가서 결산하지 않고… VIP가격에서 5할을 하란말이다. 령수증은 문화용품으로 떼드리구. 복무원은 달리다싶이 안으로 들어갔다. 남자는 여전히 허리를 굽석거리며 담배를 꺼내 림봉이에게 권했다. 순간 림봉이는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몰라 얼마나 난처한지 몰랐다. ―참, 오늘 무슨 비가 이렇게 오는지. 차잎을 보관하는 창고에 비가 샜지 뭡니까? 그래서 그만 그 일에 신경을 쓰다보니 미안하게 됐습니다. 너그럽게 생각해주십시오, 네, 너그럽게요… ―괜찮습니다. 정말 괜찮습니다. 시름 놓으십시오. 림봉이는 그 남자가 애처로와서 제쪽에서 되려 미안해했다. 하지만 한번 굳어진 청청이의 얼굴은 여전히 펴질줄을 몰랐다. 청청이는 복무원이 가져다주는 령수증과 나머지 돈을 가방에 넣고는 몸을 홱 돌렸다. 림봉이도 청청이를 따라내려갈수 밖에 없었다. 림봉이는 허둥지둥 청청이의 뒤를 따르는 자기가 어쩌면 청청이의 앞잡이라도 된것 같았다. 하지만 웬 일인지  갑갑하던 가슴만은 뻥- 뚫리는듯싶었다. 거리는 온통 물천지였다. 비는 이제 내리지 않았다. 림봉이는 택시를 잡은후 청청이더러 먼저 오르라고 했다. ―제가 댁까지 모셔다드릴가요? ―괜찮아요. 청청이가 칼로 자르듯이 한마디 했다. 청청이를 태운 택시가 물이 가득한 거리를 달리고있었다. 림봉이는 멀어져가는 택시를 멀거니 바라보았다. 큰 짐을 부리워놓은듯이 홀가분했다. 가로등은 여전히 빛을 뿌리고있었다. 림봉이는 혼자서 집을 바라고 걸음을 옮겼다. 길옆에는 폭우에 꺾어진 나무가지들이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그리고 광고판이며 자전거며 하는것들도 어지럽게 넘어져있었다. 림봉이는 문뜩 청청이의 말을 떠올렸다. ―하늘에서 큰 비가 내리는것은 인간세상이 너무 어지러운 까닭일거예요. 그래서 큰 비를 내려 더러운것들을 씻어주려는것이겠지요. 하지만 하느님은 모를것이라고 림봉이는 생각했다. 그랬다. 세상은 그렇게도 물의 세례를 받아 당하지 못하고 적라라하게 자기의 본 모습을 드러냈다.   구산산: 녀. 1958년 항주에서 출생. 1983년 사천사범대학  중문계를 졸업. 주요작품집으로는 소설집 《구산산소설선집》, 장편소설《천당에서 당신을 기다릴게요》가 있음. 이외 산문집과 보고문학집 등이 있음.
3    들고양이호수 * 진응송 댓글:  조회:1931  추천:0  2012-04-24
 들고양이호수 진응송        바람이 점점 세차게 불어쳤다. 호수물과 갈대잎이 바람을 타고 호수가에 기여올랐고 창살은 기승스럽게 흔들렸다. 대지가 신음하고 하늘은 슬픔에 울부짖는듯싶었다. 대살같은 비줄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집뒤에 있는 수림은 윙윙 무서운 소리를 내고있었는데 마치도 망령들이 일제히 울부지는듯했다. 그 순간 산과 들은 모든것이 신들려 있었다. 그녀는 그녀가 오기를 고대하고있었다. 그녀—장언니를 기다리고있었던것이다. 그녀는 장언니에게 전화를 하고싶었지만 두손이 전화에 닿기만 하면 전기가 통하는듯하고 지어는 마비까지 되여 그렇게 할수도 없었다. 그녀가 안절부절 못하고있을 때 뜻밖에도 전화벨이 울렸다. 그녀—장언니였다. “향아니? 내가 갈가? 집에 돌아간거지? 그놈은 돌아왔니?” 장언니의 목소리는 매우 따뜻했다. 그 목소리가 귀전에 울려서 향아는 조금이나마 두려움을 몰아낼수 있었다. 아니, 어쩌면 향아는 종래로 두려움을 몰랐을수도 있다. 누구도 향아앞에서 “두려움”이란 말을 꺼낸적이 없었던것이다. 누가 곁에서 특별히 “두려움”이란 말을 꺼내지 않으면 그도 두려움이 무엇인지를 모를것이였다. 어쩌면 생활이란 워낙 그런것일수도 있다고 생각했을것이다. 향아의 아들 오자는 진의 기숙제학교에서 공부하고있었다. 향아네가 사는 마을앞의 호수는 아주 컸다. 반면에 향아네 마을에는 사람들이 매우 적었다. 하여 마을은 누군가 던져버린 우렁이껩데기 같아보였다. 마을 여기저기에 한 가구씩 널려있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라고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수 없었다. 여기에 웅뎅이, 저기에 물곬이요, 여기에 물줄기, 저기에 언덕이였다. 호수물이 불면 그것들이 깜작 자취를 감추기까지 하여 언제나 시름을 놓고 살수 없었다. 오직 천년의 황페한 호수만이 시름 없이 노래를 부르고 들고양이들이 청승스럽게 울어댈뿐이였다. 한무리 또 한무리의 들고양이들은 호수를 따라 들어앉은 들고양이도랑을 따라 움직이면서 기승스럽게 표호하고 미친듯이 날뛰였다. 그 모든것은 실로 마을의 밤을 공포에로 몰아가는 잔혹한 노래소리라고 할수 있었다.   장언니의 목소리는 언제나 쉰듯 했다. 하지만 그는 열정적이고 붙임성이 좋았으며 친절하고 성격이 곧았다. 향아와 장언니는 전에 락막교라고 부르는 곳에서 살다가 이곳—들고양이호수마을에 시집을 오게 된것이다. “언니, 오지 마세요.”   “너 정말 무섭지 않겠니? 뭐? 정말 무섭지 않다구? 야웅—” 장어니는 들고양이울음소리를 흉내내보였다. 비방울은 후둑후둑 떨어져내렸다. 그바람에 길은 진작 잠겨버렸다. 향아는 모종들도 이미 물에 잠겼을것이라고 생각했다. 길이 물에 싹 잠긴것을 보면 그것은 두말할것도 없는 일이였다. 향아네 밭은 지형이 낮은 곳에 자리 잡고있어서 “랭돌”이라고 불리웠다. 지난해 향아는 그 밭에 올방개를 심었었다. 한해 동안 “랭돌”과 씨름을 하고나니 향아와 남편 삼우의 손톱은 거의 번져질 지경이였지만 수확은 그닥지 않았다. 하여 올해는 조로 바꾸어 심었다. 올해 남편 삼우마저 집에 없어서 혼자 올방개를 심는다는것은 힘에 부쳤던것이다. 삼우는 돈푼이나 벌어보려고 도회지로 들어갔던것이다. 사실 조를 심으려는것은 향아의 뜻이 아니였다. 향아는 사실 조를 심는데도 자신이 없었던것이다. 하지만 장언니가 나서서 극구 조를 심으라고 권했던것이다. “남정네가 없다고 그래 손을 동여매고 있겠니? 보란듯이 뭔가를 심어야지. 남정네들이 생각하지 못하는것을 심어서 보란듯이 키워야지. 사람은 아무리 힘들어도 당당해야 하거든.” 향아는 소를 보러 우리로 나갔다. 요즘 마을에는 소도적이 성하여 집집마다 뒤숭숭해 있었던것이다.  소는 뒤뜰에 있는 나무로 지은 우리안에 있었다. 향아네 집은 바로 주방 하나에 소우리 하나 그리고 변소 하나인 전형적인 시골농가였다. 뜨락에는 밥상 하나에 걸상 두개가 놓여져있었는데 전에는 삼우와 함께 그 밥상을 마주 하고 식사를 했었다. 볕좋은 날에는 훈훈하게 불어보이는 남풍에 머리카락을 날리고 밤에는 총총한 별무리를 볼수 있었다. 가끔 밥상우에 일부 잡물들을 올려놓기도 했다. 소는 어둠속에서도 용하게 여물을 찾아 씹었고 가끔 새김질을 하기도 했다. 마치도 나이를 먹은 령감처럼 자기의 전생과 금생을 생각하고있는지 다른 소리는 내지 않고있었다. 그 모양은 매우 침착해보였는데 두눈만은 그래도 빛나고있었다. 소는 사람이 다가가도 아무 반응이 없이 자기가 할 일만 열중하고있었다. 향아는 소도 생명이며 그것도 매우 큰 생명이기에 소도적들이 눈독을 들인다고 나름대로 추측하고있었다. 일단 소가 도적들의 손아귀에 들어가기만 하면 인차 도살장에 팔려가게 될것이라고 믿었다. 소 한마리에 3천 5백원좌우를 받을수 있다고 했다. 도살장에 넘기지 않고 자비로 잡아서 팔면 5천원도 가능했다. 소는 이렇게 귀한 동물이였다. 소 한마리를 도적질하면 4, 5무의 밭을 다룬것과 수입이 같았다. 하지만 밭 4, 5무를 다루자면 얼마나 많은 피땀을 흘려야 하는가? 한해 농사를 마루리하고나면 사람들은 저마다 가죽이 한벌 벗겨졌다고들 했다. 비록 요즘은 기계화가 실현되기는 했지만 농사를 짓기란 여전히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였다. 농사를 짓는데는 웃음도 노래소리도 필요 없었다. 소는 향아를 바라보고 향아는 소를 지켜보았다. 서로 마음속으로 어떤 공감대를 형성하고있는듯 했고 또 서로를 위해 일종의 련민을 느끼고있는듯싶었다. 비가 내리고있었지만 우리안의 소는 비 한방울 맞지 않아 마른 털 그대로 있어서 향아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향아는 물을 길어들고 뜰을 지나 집으로 들어갔다. 그바람에 머리는 비에 젖어버렸다. 비는 점점 더 세차게 쏟아지고있었다. 향아는 침대에 올랐다. 발정기의 들고양이들은 비속에서도 청승스럽게 울어대고있었다. 비속을 뚫고 끊임없이 들려오는 들고양이의 울음소리는 그처럼 처량하게 들렸는데 마치도 깊은 밤의 검은 장막을 오리오리 찢어버리려는듯싶었다.   향아는 아침에 일어나자바람으로 바깥부터 살폈다. 밤새 하늘은 검은 장막을 벗어내친듯 했고 대지는 찬연한 빛을 만방에 뿌리는듯싶었다. 날이 개였다. 천만갈래의 붉은 노을빛이 인간세상에 쏟아지고있었다. 훈훈한 남풍이 불어와 사람들로 하여금 금방 머리를 쳐드는 새싹처럼 저도 몰래 기지개를 쭉쭉 켜게 하여 호흡마저 파아랗게 피여나는듯한 기분을 선물했다. 장언니는 푸릇푸릇한 곡식처럼 생기있는 모습으로 향아를 찾아왔다. 장언니의 손에는 참죽나무싹 두묶음이 들려있었다. 장언니는 마을어구의 오동나무아래에서 남새와 과일을 팔고있었다. 참죽나무싹은 붉으스름한 색을 띠고있어서 홍목에서 돋아난듯한 착각을 주었다. 장언니가 참죽나무싹을 들어보이며 말했다. “닭알에 볶아먹으면 맛이 좋거든. 너 유채는 먹니? ” “땅에서 나는 남새야 다 먹지요. 저절로 뜯어도 될걸요.” 향아의 말에 장언니가 사람좋게 웃으며 말했다. “번개가 쳐가면 어쩔라구?” “그럴수 있겠어요? 내가 무슨 남 보기 미안한 일도 한것이 없는데요.” “그걸 누가 알아? 보자, 네가 간밤에 잘 잤는가?” “언니가 어찌 내가 잘 잤는지 못 잤는지를 알아요?” “알지, 너의 눈덩이가 처졌는가 안 처졌는가를 보면 알게 아니냐?” 장언니는 향아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만지기 시작했다. 그의 손은 차츰 향아의 눈까풀에 옮겨갔다. “너 간밤에 한잠도 못 잤구나.” “아니요, 죽은 돼지처럼 업어가도 모르게 잘 잤는걸요. 못 자다니요.” 그 말에 장언니가 정색해서 말했다. “거짓말, 눈확이 거멓게 죽어있잖아. 눈확이 검은 년들은 남의 사람을 홀려내는 불여우라던데.” “아니, 그 입은 헐어떨어지지도 않나봐. 나를 이렇게 헐뜯으면서도 뭐, 언니라구?” 향아는 악의 없이 주먹을 쳐들어 장언니를 때리려고 달려들었다.   장언니가 입을 열었다. “너 얼마나 오래 하지 않았니? 너 하고싶지?” 장언니는 잠간 말끝을 흐렸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벌써 몇년이나 그 일을 잊고 살았단다. 나 인젠 남자로 된것 같아. 내가 너의 남정네를 대신해줄가? 나에게 너같이 예쁜 녀편네가 있다면 절대 도시에 들어가지 않을거다. 날마다 품에 안고 즐겨야지.” 장언니는 말을 마치자마자 향아를 끌어안고 애무를 하려고 했다. 향아는 본능적으로 장언니를 품에서 밀어냈다. 그러자 장언니가 입을 열었다. “너의 밭이 물에 잠겼더구나. 그래도 괜찮아. 다시 올방개를 심으면 되지 뭐.” 그 말에 향아가 중얼거렸다. “그래요, 언니. 차라리 나를 죽으라고 주문을 하세요.” 장언니는 향아와 함께 논으로 나갔다. 논은 과연 물바다였다. 향아는 너무도 억이 막혀 당금이라도 울고싶었다. 장언니가 입을 열었다. “내 밭도 3무가 넘게 잠겼는데 뭐, 그래도 나는 울지 않잖아. 그런데 너는 왜 당나귀상을 하고 그러니? 울지 마, 넌 울면 곱지 않으니까.” “그럼 어떻게 해요? 밭이 물에 잠겼지, 물은 뺄 방법이 없지… 그래 논에다가 고기라도 기를 셈인가요?”   향아는 그 길로 “마파람”을 찾아갔다. 마파람은 마을의 촌장이였다. 촌장이라면 자기에게 좋은 방도를 대줄것이라고 생각했던것이다. 하지만 마파람은 대답대신 요리조리 눈알을 굴리며 향아의 아래우를 쓸어보았다. 어쩌면 향아의 젖무덤을 탐닉하는듯 했고 또 어쩌면 향아의 젖꼭지를 빨려고 시도하는것 같기도 했다. 마파람은 땅에 떨어진 개똥을 내려다보것처럼 하다가 다시 향아의 가슴에 도적눈을 박았다. 그 눈길은 초점없이 허망에서 들들 구을고있었다. 소문에 의하면 마파람은 마을 대부분 녀인들의 젖꼭지를 빨아보았다고 했다. 늙은이도 젊은이도 빼놓지 않고말이다. 마파람은 늘 이렇게 씨벌이고 다녔다. “내 닭을 먹이면 어떻고 나를 먹이면 어떻고… 청고한체 하기는…” 마파람은 과연 마을에서 첫 손 꼽히는 “닭우두머리”라고 할수 있었다. 마을에는 8, 9호의 양계전업호가 있는데 모두 마파람이 관리하고있었다. 하여 마을사람들은 마파람을 “닭우두머리”라고 불렀던것이다. 마을에서 마파람네 양계장이 제일 컸는데 닭이 만여마리는 되였다. 그의 양계장으로 가면 늘 닭울음소리에 하늘땅이 맞붙는듯 했다. 마파람은 그 닭울음소리를 들으며 흥겨워 이렇게 중얼거리군했다. “들어보라구, 얼마나 좋은가? 나는 이 멋에 산다니까.” 마파람은 이렇게 많은 닭을 치면서 마을의 다른 양계호들에게 병아리를 넘겨주고 사료를 공급해주었으며 예방주사를 맞히는 일도 직접 나서 해결해주었다. 촌민들이 일을 하고싶어하면 양계장에 받아들여 최저로임을 주어 부려먹군 했다. 마파람의 병아리를 외상으로 가져간 집들에서 닭을 키워 출하시키면 수입은 대부분 마파람의것으로 되였고 닭을 길러준 사람들은 보잘것 없는 수입밖에 얻을수 없었다. 하지만 마파람은 조금도 미안한 기색이 없이 자기가 촌민들을 이끌고 치부의 길로 달린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마파람은 병아리 한마리를4원에 사양호들에 넘겨주었다. 그러니 천마리면 4천원이 되는것이다. 마파람은 이 일도 “부녀창업”을 돕는다면서 녀자들에게만 주었다. 마을사람들은 뒤에서 마파람을 두고 그야말로 “쪽제비가 닭에게 세배를 하는격”으로서 절대 좋은 심보를 품은것이 아니라고 입을 삐죽거렸다. 하지만 마을에서 일손을 놀릴수 있는 사람들이라고는 녀인들밖에 없는것도 사실이였다. 힘꼴이나 쓴다는 남정네들은 모두 도회지로 가서 돈을 버느라고 했지 누구도 마을에 남아 촌장 마파람네 닭을 키우려고 하지 않았던것이다. 힘이 약하고 별 다른 재간이 없는 불쌍한 녀인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마파람네 닭을 먹이면서 호구를 이어가고있었던것이다. 녀인들이 닭을 기르고 촌장이 닭 마리수에 따라 돈을 셈해주는 이 방법은 촌장 마파람으로 하여금 녀인들을 손에 넣기 쉽게 했다. 어쩌면 마파람이 슬쩍 당겨도 녀인들은 품에 안기게 되여 있었던것이다. 정말이지 마파람을 위해 “닭도 먹여주고 젖도 먹여주는격”이였다. “자네가 밭 4무를 다룰수 있나?” 마파람이 향아에게 물었다. 향아는 마파람의 뜻인즉 “닭 4천마리를 기를수 있느냐?”라는것이라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밭 한무를 다루어봤자 천원 남짓한 수입을 얻을수 있는데 그것도 일년 동안 뼈 빠지게 일해야 얻을수 있는 수입이였던것이다. 남편 삼우는 도회지로 떠날 때 향아에게 절대 마파람네 닭을 먹이지 말라고 경고를 한적이 있었다. 그래도 마파람네 닭을 먹인다면 자기가 돌아와서 몽땅 몰살을 시키겠노라고 으름장을 놓았던것이다. 향아는 그때 삼우가 닭을 몰살시키겠다는 뜻인지 사람을 몰살시키겠다는 뜻인지 모호하다고 생각했었다. “안돼요. 삼우가 못 먹이게 해요.” 향아의 말에 마파람이 한술 떴다. “삼우가 자네더러 똥을 먹으라면 그래 똥까지도 먹을셈인가? 예쁜 년들은 모두 머리통에 물이 들어갔다니까.” 향아는 다가오는 마파람을 뿌리치고 자리를 떴다. 만약 제때에 자리를 뜨지 않으면 마파람에게 젖무덤을 잡히게 될것이라는것을 잘 알고있었던것이다. 마파람의 손가락은 그만치 힘이 좋았다. 마파람을 낳을 때 마파람의 아버지는14살이였고 엄마는 13살이였다. 13살 나는 엄마에게 젖이 있으면 얼마나 있었으랴. 마파람은 어릴 때 젖이 나오지 않는 엄마의 젖무덤에 매달려 손으로 젖무덤을 마구 당기면서 앙탈을 부렸다. 참지 못한 엄마는 마파람을 집어다가 개다리밑에 처박아놓았다. 그때로부터 마파람은 개젖을 먹고 자랐다. 그렇게 자라서인지 마파람의 손아귀는 아주 억세였다. 그리고 녀자의 젖무덤만 보면 눈알을 붉히며 달려들었다.   지어는 아들이 먹는 젖을 빼앗아 먹기도 했다. 그바람에 아들은 제대로 젖을 먹지 못해서 어릴 때 얼굴이 누르끼레 하고 볼품없이 여위였다. 불쌍한 아들의 몰골을 보면서도 아비라는 사람은 여전히 녀편네의 젖꼭지를 물고 놓지 않았는데 나중에는 “혈지가 높고 혈당이 높고 혈압이 높은” 삼고(三高)에 이르게 되였다고 한다. 이런 사람이 마을에서 촌장이라는 대권을 쥐고있으니 과연 어디가서 도리를 따진단 말인가.   향아는 도랑옆에 있는 묘비석우에 앉아 볼품없이 수재를 입은 논밭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하늘은 당금 무너져내리려는듯 검은 구름이 낮게 드리워있었고 태양은 언제 빛을 뿌린적이 있었냐는듯 검은 구름에 가리워 얼굴을 감추고있었다. 흐리터분한 날씨는 숨이 턱턱 막히게 찌물쿠었다. 호수에서 불어오는 바람마저 시원한 멋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후덥지근해서 사람들을 침울하고 피곤하게 만들었다. 향아는 물에 잠긴 논을 바라보면서 “논이 물에 싹 잠겼는데 어찌 천근이 나기를 바라겠는가?” 하고 한숨을 내쉬였다. 순간 향아는 웬 일인지 사무치게 아들이 보고싶어졌다. 아들이 혼자서 집으로 돌아오다가 길에서 독침을 쏘아 개를 훔치는 놈들과 맞띄울가봐 더럭 겁이 났다. 만약 그놈들이 분 독침이 잘못 돼서 아들의 몸에 꽂히기나 하면 어쩐단 말인가? 그런 생각이 들자 향아는 가슴을 바늘로 찌르는것 같아 견딜수 없었다. 남편이라는 량반은 도회지로 간후 집에 련락 한번 없었다. 남편을 생각하면 향아도 집이고 밭이고 아들이고 다 뿌리치고 어디론가 정처없이 도망가고싶어졌다. 향아는 자기에게도 발이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지 도망갈수 있다고 생각했던것이다.   그때 웬 사람 둘이 어슬렁어슬렁 향아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첨에는 그림자가 멀리서 보이다가 차츰 모습이 크게 들어났다. 향아는 첨에 그들이 촌의 파견을 받고 자기의 밭에 들어온 물을 빼주려고 오는가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은것을 보아 그런것 같지 않았다. 그럼 고기잡이군인가고 생각했지만 그것도 같지 않았다. 그러자 독침을 불어 소를 훔치는 놈들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들어 더럭 겁이 났다. 하지만 그런것 같지도 않았다. 그중 한 사람은 뱀껍질로 만든 자루를 메고있었던것이다. 둘중 한 사람은 키가 크고 한 사람은 키가 작았다. 가까이 온것을 보니 키가 큰이는 우랄자라고 부르는 안면있는 사람이였지만 키가 작은이는 처음보는 사람이였다. 그의 키는 우랄자의 가슴에 닿을가 말가 했는데 얼굴이 무척이나 거칠어보였다. 그들은 들고양이를 잡으러 온것이였다. 우랄자는 당시 다리에 큰 상처를 입고있었는데 평소에도 늘 게으름을 피웠었다. 그의 눈은 언제나 팽글팽글 돌았는데 마치도 목표물을 찾는 도적놈의 눈을 방불케 했다.   우랄자는 불편한 다리를 끌며 걷다보니 걸음이 온당치 못했다. 전에 그는 엉뎅이가 꽤 컸지만 후에 불편한 다리를 끌고 사처로 싸다니다보니 차츰 엉뎅이가 싹 줄어서 걸을라치면 물에서 흐늘거리는 조롱박을 방불케 했다. 우랄자는 자기보다 키가 절반이나 작은 그 남자를 꾸짖었다. 그 남자는 웬 일인지 정신이 흐리마리해 있었다. 그리고 피부는 군데군데 허옇게 번져있었는데 보매 백전풍을 앓고있는것 같았다. 어깨에 멘 뱀가죽주머니가 짧다란 그의 다리에 맞혀 달랑이고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그 맵시로 부지런히 우랄자를 따르고있었다. 그들은 향아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까지 다가왔지만 향아를 발견하지 못한것 같았다. 향아는 풀밭에 그대로 앉아버렸다. 정확히 말하면 개사철쑥우에 앉아버렸던것이다, 개사철쑥은 비를 맞아 놀랍게 커버렸다. 수림처럼 빽빽하게 높이 자라있었던것이다. 이어서 향아는 공포를 자아내는 들고양이의 비명소리를 듣게 되였다. 향아는 소리나는 쪽으로 머리를 돌려보았다. 우랄자네는 과연 들고양이 한마리를 잡았는데 잠간 봅고 서있다가 자루에 집어넣고는 흥이 나서 유사(揉麝)를 하고있었다. 얼마전, 그러니까 반년전쯤에 우랄자는 역시 이 골에서 고양이를 잡아 유사를 하다가 개사철쑥을 베고있던 마파람 아버지의 눈에 띄웠던것이다. 마파람의 아버지는 미친듯이 낫을 휘둘러 우랄자의 다리를 찍어버렸다. 하지만 우랄자는 감히 파출소에 이를수도 없었다. 우랄자는 도시에서 살다가 남들의 돈을 많이 꾸고 이곳으로 도망왔던것이다. 그번에 마파람의 아버지가 휘두르는 낫에 찔린후 우랄자는 상처를 제대로 치료를 하지 못해서 다리가 위축되였던것이다. 우랄자는 실로 벙어리가 황련을 씹은격이 되고말았다. 우랄자는 결김에 마파람네 닭을 한 트럭 도적질하여 도시에 가져다 팔았다. 마파람은 분명 우랄자가 저지른 짓이라는것을 알면서도 어쩌지를 못하고 그저 허허 웃어버리고말았다. 아버지에게 효도를 한 셈 치자고 스스로를 달랬을뿐이였다. 들고양이를 붙들어 유사를 하는것은 그야말로 공포스러운 일이였다. 어쩌면 사람을 죽이는것과 같다고 해야할것이다. 사실 살인을 해도 그보다는 잔인하지 않을것이다. 정말이지 뢰공(雷公)이 그들에게 천벌을 내리지 않은것이 놀라울 지경이였다. 우랄자와 그의 뒤를 따르던 “백전풍”은 고양이배를 미친듯이 주물러댔다. 들고양이는 야성을 그대로 간직하고있었다. 들고양이는 뱀가죽주머니안에서 마구 몸부림을 치면서 뛰쳐나오려고 최후의 발악을 했고 하늘이 찢어질듯 처참하게 소리를 질렀다. 우랄자는 큰 소리로 “백전풍”을 훈계했다. 뜻인즉 고양이를 꽉 누르고있으라는것이였다. “백전풍”이 갑자기 새된 소리를 지르며 자루에서 손을 뗐다. 그때 “백전풍”의 의 손에서는 선지피가 줄줄 흐르고있었다. 들고양이는 자루안에서 “백전풍”의 손을 물어뜯었던것이다. “백전풍”은 너무도 아파서 엉엉 소리내여 울었다. 커다란 몸집의 갈색 들고양이는 기회를 타서 자루를 찢고 나와 어딘론가 쏜살같이 도망쳐버렸다.   우랄자는 그때 향아를 발견하게 되였다. “향아야, 너 담이 대단히 크구나.” 향아는 흠칫 놀라면서 일어나 못 박힌듯 선자리에 굳어졌다. 우랄자는 한손으로 다른 한손을 꼭 붙잡고있었는데 그도 어느때 상처를 입은것 같았다. 손에서 피가 흘러내리는데도 우랄자는 음침한 눈길로 향아를 바라보고있었다. 향아는 속으로 흠칫 놀라면서 생각했다. (저 놈이 나에게 나쁜 심보를 품은게 아닌가?) 향아는 가슴이 후둑후둑 뛰였다. 들고양이생식기는 뽑아서 약국에 넘길수 있는데 한번에 몇백원을 받을수 있다고 했다. 우랄자는 향아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불렀다. “향아야.” 우랄자의 부름에 흠칫 놀란 향아는 몸을 돌려 도망치려고 했지만 우랄자는 이미 그의 앞을 가로막고있었다. 순간 향아의 머리속에서는 마을의 소를 이놈이 다 도적질한것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번개처럼 스쳐지났다. 그리고 개에게 독침을 쏘아 죽인것도 우랄자일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을의 소들은 괴상하게도 눈 깜빡 할 새에 잃어지군 했다. 하여 파출소에서 길목마다 보초를 세웠지만 밤만 되면 소는 여전히 감쪽같이 살아지군했다. 실로 귀신에게 홀려간듯 하늘에 솟은듯 했다. 이 일은 파출소 소장으로 하여금 머리를 쳐들수 없게 했다. 어느한번, 소장은 모터찌클을 타고 개에게 독침을 쏘는자를 쫓아가게 되였는데 속도가 너무 빠른 탓에 그만 콩크리트바닥에 넘어져 얼굴에 큰 상처를 입게 되였다. 하여 파출소 소장은 엉뎅이의 가죽을 뜯어서 얼굴에 붙이게 되였는데 그바람에 40여살을 먹은 나그네의 피부가 애기피부처럼 반들반들 윤기가 흐르게 되였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엉뎅이의 피부인지라 백성들은 뒤에서 그를 “엉뎅이소장”이라고 불렀다. “엉뎅이소장”은 가끔 마을을 돌아보면서 “소들이 그래 하늘로 날아올랐단 말인가?” 하고 중얼거렸다.  우랄자는 온몸으로 들고양이와 죽은 물고기의 비릿한 냄새를 풍기면서 시물시물 웃는 얼굴로 향아를 향해 다가왔다. 그 모양을 보면 인차 우랄자가 향아에게 무슨 짓을 하리라는것을 알수 있었다. 도망치려고 마음 먹은 향아는 절름거리며 다가오는 우랄자를 쏘아보았다. 우랄자는 향아의 그런 심사를 모르는지 여전히 사뭇 자신감에 넘쳐있었다. 우랄자는 입가에 허연 거품을 달고서 한걸음 한걸음 향아를 조여왔다. 우랄자는 녀자가 강렬하게 반항하면 그 힘이 얼마나 크다는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것 같았다. 만약 녀인이 무엇인가에 반감을 가진다면 다른 사람의 그 어떤 노력도 쓸모 없는것으로 될수 있는것이였다. 하지만 마을의 남정네들은 웬 일인지 그런 도리를 모르고있는것 같았다. 그들은 스스로 자기가 어느 정도 괜찮다고 생각되면 녀자들과 집쩍거리면서 비린내를 맡아보려고 맴돌이를 쳤던것이다. 누구를 불러도 쓸모 없는 짓이였다. 향아는 이 황량한 들판에서 우랄자와 최후의 결판을 내보겠다고 마음 먹었다. 우랄자는 들고양이를 잡던 손을 쫙 펴들고 향아를 향해 다가왔다. “오지 말아요. 소리치겠어요.” 우랄자는 향아의 절망에 가까운 표정을 보지 못했던지 아니면 불타는 향아의 눈길을 의식하지 못했던지 여전히 걸음을 조여왔다. 정서가 극도로 악화된 정황에서 향아가 과연 그 짓을 할수 있을지에 대해 우랄자는 근본 생각조차 하지 않는듯싶었다. 아무리 성욕에 미친 남자라 해도 그 짓은 감정을 동반해야 한다는것을 모를수는 없으련만 우랄자는 완전히 짐승처럼 돌변해있었다. 시간도 장소도 가리지 않는 돼지요 개로 돌변해있었던것이다. 눈을 지긋이 감고 목표물을 찾기만 하면 올라탈 자세였다. 향아는 너무도 분해서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시각 분노는 당금 폭발할것만 같았다. 우랄자는 끝내 향아에게 덮쳤다. 비록 다리를 절름거렸지만 남자는 그래도 남자였다. 두 사람은 서로 붙어서 물어뜯고 할켜댔다. 바로 그때 장언니가 나타났다. 장언니는 밭에 배수구를 파려다가 그만 이웃과 말싸움을 하게 되였던것이다. 이웃은 촌장을 불러다가 시비를 가르겠다고 했다. 그바람에 장언니는 아예 향아까지 불러다가 함께 밭에 고인 물을 처리할 방도를 토론하려고 했던것이다. 장언니는 먼저 향아네 집으로 찾아갔지만 향아가 보이지 않자 밭으로 나왔던것이다. “우랄자, 너 이 좆 같은 놈아. 뭐 하는거야?” 석쉼한 목소리를 내는 장언니의 목은 매우 굵었고 몸매도 거쿨졌다. 장언니는 운동복웃도리 팔소매를 썩 걷어부치고 손발을 잽사게 날려 우랄자에게 강타를 퍼부었다. 우랄자는 당금 향아를 따 먹으려고 하다가 그만 풀치고 만것이다. 우랄자는 정신을 가다듬어서야 대방이 장지화(장언니의 이름)라는것을 알아보고는 내꼴 봐라 하고 줄행랑을 놓았다. 그때까지 곁에서 우랄자와 향아네를 훔쳐보던 “백전풍”도 악을 쓰고 우랄자를 따라 도망갔다. 향아와 장언니는 숨이 턱에 닿아 밭으로 뛰여갔다. 장언니네 이웃은 늙은이였는데 그는 여전히 자기네 밭에 물돌을 낼수 없다고 잡아뗐다. 로인은 장언니를 보고 물이 흐를수 있게 배수관을 묻으라고 했다. 로인은 자기의 땅에 도랑을 판다는것은 자기 선조의 맥을 파내는것과 같다고 엄포를 놓았다. 로인은 어떻게 말해도 듣지 않는 고집쟁이였다.   화해를 시키려고 찾아왔던 마파람도 분해서 가슴이 터질 지경이였다. 마파람은 누구에게라 없이 소리질렀다. “이것도 촌의 일이란 말이요?” 장언니도 그에 못지 않게 높이 소리쳤다. “개같이, 누가 나를 건드려?” “청상과부 같으니라구, 누가 너를 건드려? 너 하구는 말도 섞기 싫어. ” “청상과부면 어째? 내가 좀 실팍할뿐이지. 욕심나? 꿈이나 깨라구. 아무리 임자 없는 고기덩이라도 네 놈은 안줘!” 그 말에 마파람이 받아쳤다. “흥, 너 같은 비게덩이는 거저 줘도 안 먹는다. 나는 삼고(三高)가 있거든.” 그 로인은 빨리 문제를 해결하고싶어서 마파람에게 말했다. “촌장, 뭐라고 말 좀 해보소. 배수관을 묻더라도 촌장이 해결해줘야 하지 않겠소? 장지화는 아녀자라 그 일이 쉽지 않을거요.” 그 말에 마파람은 석자나 올리 뛰면서 소리질렀다. “뭐요? 나를 보고 배수관을 도적질해 오라는거요? 내 일년 로임이 5천원밖에 안되오. 상급에서 날마다 검사를 내려와 거저 먹고 마시고 사람마다 담배 한보루씩 가져가는것은 명문처럼 되였소. 그래도 나는 그 돈을 어디가서 해결 받을데가 없소. 그들이 나의 닭을 몇마리나 먹어치웠는지 알기나 하오? 그것도 수탉으로 말이요. 거기다가 산초에 형주두부볶음까지 그게 얼만지 아시오? 나라의 돈은 다 먹어버릴수 없어도 나 이 마영재(마파람의 본명)의 재산은 굽이 나게 생겼다오. 붉은것(红道), 흰것(白道), 검은것(黑道) 어느 하나를 건드릴수 있겠소? 그들과 사이 좋게 지내자면 얼마나 힘든지 아시오? 당신들, 누가 나를 리해해주려고 하오? 누가 나때문에 속을 태워주나 말이요. 올해 나는 이미 배수관 500메터를 사서 묻었소. 그런데도 당신들은 나더러 5천메터를 묻어달라는거요? 촌의 사무경비가 고작 5천원밖에 안되오. 부촌장이 마을의 상점들을 돌면서 담배나 남새를 외상으로 가져다 쓰는것을 보지 못하오? 비렁뱅이들처럼 말이요. 내가 촌장으로 된 3년래 길을 얼마나 닦았고 배수관은 얼마나 묻어주었소? 모두들 량심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란 말이요. 우리 마을에는 적어도 3개의 배수로와 수문을 앉혀야 배수문제를 해결할수 있소. 하지만 배수로와 수문을 하나 앉히자면 적어도 30만원은 있어야 하오. 나라에서 돈을 주지 않으니 난들 무슨 방법이 있겠소?” 그 말을 장언니가 받아쳤다. “그렇다고 촌장이 나 몰라라 한단 말이요? 만약 올해 농사를 망쳐 먹으면 우린 누구를 찾아 손을 내민단 말이요? 그리고 향아네도 그렇지, 너도 올해 아무것도 남을게 없지? 마을의 소며 개며 양이며… 도적 맞힐것은 도적 맞히고 독침을 맞을것은 독침을 맞고… 사람이고 짐승이고 어디 하나 시름 놓고 살수 있소? 그런데도 당신은 어디 하나 관심이라도 하오?” 마파람은 장언니의 격한 목소리를 맞받아 이렇게 소리쳤다. “아니, 내가 그래 관심하지 않았단 말이요? 왜 그렇게 말하는거요? 더 이상 관심을 하고싶어도 돈이 없어서 문제지. 당신들은 알기나 하오? 파출소에서 사건을 조사해도 촌에서 돈을 내라고 하는 판이요. 그들이 촌에다 보초소 두개를 앉혔는데 일군들은 촌의것을 거저 먹고 촌의것을 거저 마시고 지어는 촌에서 차를 세내여 자기들을 싣고 형주에 가서 노래를 부르고 발까지 씻게 하라고 하니 낸들 쉬운줄 아시오? 사실 말이지 마을의 남정네들이 다 떠나가 마을이 빈것과 다름이 없지 않소? 자네 같은 아녀자들이나 환자들 그리고 어린이며 늙은이들이 도적놈들에게 놀라서 병이 날 지경이라는것을 나도 알고는 있소. 장지화, 자네도 쩍하면 모할아버지께 선서를 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모할아버지 그 세월에야 어디 지금처럼 도적놈들이 날뛰였소? 간혹 도적놈이 있었다고 해도 잡아서 늘씬하게 때려주고 투쟁대회를 몇돌개 하면 인차 곰상곰상해졌더랬지. 하지만 휴— 점점 가면서 세상이 어떻게 변할려고 이러는지… 나쁜 놈들이 더 판을 친단 말이요.” 마파람은 장언니가 로인에게 “황학루”표 담배 한보루를 사드리기로 하고 일을 한단락 매듭 지었다. 그제야 로인은 자기의 밭으로 도랑이 지나갈수 있도록 허락하였다. 그날 장언니는 향아를 보고 진에 가서 애들을 데려오라고 했다. 약속대로 하면 이날은 장언니가 애들을 데리러 진에 가야했다. 금요일에 애들을 학교에서 데려오는 일을 한 사람이 한 주일씩 맡아서 하기로 했던것이다. 장언니와 향아의 애들은 진에 있는 학교에 주숙하며 공부했다. 장언니도 향아처럼 늘 개를 잡아가는 사람들의 독침에 애들이 잘못 맞을가봐 근심했던것이다. 만약 정말 그 독침을 맞기라도 한다면 영낙없이 목숨을 빼앗기게 될것이였다. 그놈들이 독침에 묻힌것은 “삼불도(三步倒)라고 하는 비상이였던것이다. 진으로 가는 길에 또 한차례의 폭우가 쏟아졌다. 폭우는 왜 끊이지 않고 진종일 내리는지. 향아는 거무튀튀한 공공뻐스에 오르자 공교롭게도 마파람을 마주하게 되였다. 정말 원쑤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격이였다. “허허허… 향아야, 너희들이 재수 없다고 하지만 나는 너희들보다 더 재수가 없거든.” 마파람은 향아네 일을 금방 조해한후 병아리를 사려는 사람에게 직접 병아리를 전해주러 갔다가 그만 그집 개에게 다리를 물렸던것이다. 다리에는 둥그렇게 깊은 개이발자리가 났다. 개이발자리는 붉으스름하게 변해있었는데 어딘가 목단꽃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리에다 큼직한 목단꽃을 피운 마파람은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있었다. 마파람은 진병원으로 광견왁진주사를 맞으러 가는 길이였다. 마파람이 얼굴을 찡그리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나를 웃지 말거라, 누구나 재수 없을 때가 있는거다. 너의 유채나 결협(结荚)도 그닥 자람새가 좋지 않더라. 붕소나 생명소 같은 비료를 뿌려야 할것 같더라. 배수문제는 비록 내가 어쩔수 없었지만 내가 너에게 닭을 줄테니 네가 한번 길러봐라. 나는 그렇게라도 너를 돕고싶으니까.” 마파람은 잠간 말끝을 끊었다가 계속 이어나갔다. “삼우가 그렇게 너를 돌보지 않는데 너는 또 내가 돕겠다는것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으니. 참 뭐, 내가 너를 잡아먹기라도 한다니? 그래 내가 사람을 잡아먹는 촌장이라도 된단 말이냐?” 마파람은 말을 하면서 기어코 향아의 곁에 비비고 들어앉았다. 뻐스는 이미 낡을 때로 낡아서 자리와 등받이의 해면은 진작 어느 손 빠른 놈이 다 뽑아가버려 자리에 앉았다고 해도 마치 쇠덩이우에 앉은듯한 느낌이였다. 게다가 길까지 좋지 않아 한번 차가 들출라치면 엉뎅이가 들썽거리고 척추가 아래로 눌려 여간만 불편한것이 아니였다. 언젠가 이 뻐스에 앉았다가 척추가 부러지면서 사지마비가 온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 보상도 받지 못하고 거저 자신이 재수없다고 탓했뿐이였다. 마파람은 개에게 물려 광견왁진주사를 맞으러 가면서도 신혼차에 앉은 사람처럼 벙글거렸다. 우뢰가 울자 운전수도 잔뜩 긴장해 했다. 그가 한시 바삐 목적지에 도착하려고 허둥대다보니 차는 정신나간 황소처럼 허둥지둥 질주를 해야 했다. 운전수는 말라꽹이였는데 어쩌면 “길이 험하고 차가 아무리 들추어도 기껏해야 누군가의 갈비뼈가 나갈것이고 더 험하면 차바퀴가 떨어지겠지.” 하는 배짱을 가지고있는것 같았다. 차가 앞으로 질주하자 흙탕물이 사처로 튕겼다. 차안에 숨어있던 먼지가 뽀얗게 일어나 손님들의 몸에 내려앉았고 하 벌린 입으로 날아들었다. 그바람에 누군가 크게 소리쳤다. “이보시오. 좀 천천히 몰면 안되오?” 손님들은 대부분 운전수와 익숙한 사이였는데 그는 진에서 고기를 파는 류할머니의 남편이였다. 그들의 가정생활은 그리 행복한 편이 아닌것 같았고 성생활도 그다지 조화롭지 않은것 같았다. 운전수의 눈확은 언제나 푹 꺼져들어가 있었고 두눈은 뭔가에 놀란듯 늘 불깃불깃해 있었던것이다. 향아는 입을 꼭 다물고있었다. 마파람이 자꾸 옆으로 밀어서 몹시 불편했다. “삼우는 언제 돌아온다니? 삼우가 마음이 변하면 어쩔라구? 그래도 너는 삼우를 위해서 이렇게 정조를 지키고있구나. 너는 어쩌면 스스로 즐거움을 찾을줄도 모르니? 밤이면 밤마다 독수공방을 하지? 몸은 너의것이니 너의 맘대로 할수 있는것이 아니냐?” 마파람은 끝도 없이 혼자서 중얼거리며 향아에게 치근거렸다. 차에 앉은 사람들은 모두 그의 부하라고 할수 있었다. 하지만 마파람은 그중에서 유독 향아를 편히 놔두려고 하지 않았다. 차안의 사람들은 모두들 웬 일이냐는듯이 마파람과 향아를 바라보았다. 마파람은 누군가 권하는 담배를 받아서 피우기 시작했다. 향아는 마파람이 내 뿜는 담배연기에 질려 연신 헛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향아는 자리를 바꿔 앉으려고 생각했다. 그때 차창으로 비가 스며들었다. 향아는 그것이 기회라싶어서 인차 몸을 일으켜 다른 자리에 가 앉았다. 마파람은 대번에 얼굴을 찡그렸다. 마파람은 향아의 그 거동이 자기의 자손심을 건드렸다고 생각했던것이다. 그때 향아보다 더 이쁘장한 녀인이 차에 올라왔다. 마파람은 그 녀인을 향해 소리쳤다. “막자야, 이리 와 내곁에 앉아라.” 그리고는 향아를 보면서 말했다. “저 애는 초대언덕의 막령감네 딸이란다. 진초대소의 복무원이지.” 향아는 못 들은척 잠간 서있다가 차가 멈춰서자 나는듯이 차에서 내려버렸다. 향아는 붕소와 생명소를 사주겠다는 마파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저절로 그것들을 샀다. 향아는 또 우유와 꿀과 검은 들깨가루도 샀다. 그것들은 락막교에 살고있는 새언니에게 선물할것이였다. 향아는 후에 시간을 타 락막교에 가서 새언니를 보고오리라 벼르고있었던것이다.   락막교의 새언니는 오래전부터 앓고있었다. 원인도 모르게 말이 똑똑치 않고 두다리에 맥이 빠져 제대로 길도 걸을수 없게 되였던것이다. 이미 2, 3년이 지났지만 조금도 호전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새언니를 두고 귀신에게 홀린것이 아니냐고 뒤공론을 했만 향아는 그렇게 생각하고싶지 않았다. 향아는 절대 그럴수 없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자기의 새언니만은 그런 병에 걸릴수 없다고 확신했던것이다. 그래서 향아는 어느때 시간을 타서 락막교에 가 새언니를 보려고 생각했다. 가는 걸음에 맛나는 음식을 사서 새언니에게 대접하려고 마음 먹었던것이다. 향아는 새언니가 매우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하여 가을까지 새언니가 살아있으면 꼭 해쌀 한마대를 메다가 새언니에게 드리려고 계획했다. 전에 새언니는 걸핏하면 향아에게 쉰 밥을 먹으라 했고 지어는 아예 밥을 주지 않을 때도 있었다. 향아가 심은 품종은 잡교종이였다. 잡교종은 비교적 품질이 좋았는데 흠이라면 다른 품종들보다 산량이 적은것이였다. 한무에서 1, 2백근이 적게 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집에는 자기 밖에 없는지라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하고있었다.   사촌오빠는 새언니를 맞은지 벌써 12년철에 접어들었는데 자식도 벌써 10살에 났다. 하지만 새언니는 겨우 28살 밖에 안되였다. “그 나이에 애는 어떻게 낳았대?” 사람들이 궁금해서 이렇게 물으면 새 언니는 “녀자가 애를 못 낳아?”라고 하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향아가 어릴 때 그의 아버지는 강물에 빠져 익사했고 그의 엄마는 어느날 친척집에 간다고 나간후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의 엄마가 재가를 했을것이라고 수근댔다. 하여 향아는 그후로 쭉 사촌오빠와 새언니에게 얹혀서 살게 되였다. 향아가 초중을 졸업하게 되자 새언니는 사처로 다니면서 혼사자리를 알아보았다. 하지만 사촌오빠는 그러는 새언니를 말렸다. 하여 새언니는 늘 이를 갈면서 사촌오빠를 미워했다. “저 년을 당금 시집보내요. 그래 그냥 끼고서 첩이라도 만들 셈인가요?” 향아는 어느날 사촌오빠가 주방에서 식칼을 들고 두눈이 벌겋게 충혈되여 부들부들 떨고있는것을 직접 본적이 있었다. 향아는 사실 사촌오빠나 새언니가 자기를 위해 무엇을 해줄것이라는 희망조차 가지지 않고있었다. 하여 어릴 때부터 자기의 일은 자기로 해결하려고 애써왔다. 첫 달거리가 왔을 때도 그랬다. 그후로 옷을 사도 저절로 어떤 옷이 어울릴가를 따져가면서 직접 샀다. 좀 힘들기는 했지만 시간이 흐르자 향아는 그런 일들을 모두 스스로 익히게 되였다. 학교 음악선생님이 향아를 두고 아쉽다는듯 이렇게 말한적이 있었다. “오향아, 너의 손가락은 바로 피아노를 칠 손가락이거든. 참 아쉽구나.” 선생님도 부러워할만치 향아의 손가락은 가늘고 길었던것이다. 향아는 그렇게 말씀하시는 선생님을 보고 얼굴에 약간 수집은 미소를 띄우면서 말했다. “천만에요. 저는 아직 놀음감피아노도 본적이 없어요.” 봄이 되면 향아는 사람들을 따라 호수가에 가서 쑥을 뜯었고 가을이면 갈대를 꺾었다. 그리고 또 남자애들을 따라가 고기를 낚거나 반두를 가지고 고기를 건져내기도 했다.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이 되면 진에 가서 잔일을 찾아 돈벌이를 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조카들에게 얼음과자를 사주었고 옷이나 책가방 같은것들도 마련해주었다. 향아는 그처럼 헴이 들고 눈치가 빨라서 사촌오빠를 힘들게 하지 않았으며 새언니가 함부로 트집을 잡지 못하게 했다. 후에 새언니는 자기의 사촌동생을 향아에게 소개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새언니는 향아가 자기의 사촌동생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을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웬 일인지 향아는 별 소리 없이 새언니의 뜻을 따르겠다고 했다. 향아의 눈에 새언니의 사촌동생 삼우는 그래도 괜찮은 인물이였던것이다. 향아는 삼우가 사촌누나인 자기의 새언니처럼 그렇게 마음씀씀이가 나쁘지는 않다고 느꼈던것이다. 향아는 나이를 세살이나 불궈가지고 삼우와 결혼을 했다. 그제야 새언니는 앓던 이를 빼버린것처럼 속이 후련해 했다. 아이를 낳은후 향아는 형주에 가서 시름 놓고 시내구경을 한적이 있었다. 그때 향아는 악기상점앞을 지나게 되였다. 상점안에는 빛이 번쩍번쩍 나는 피아노가 진렬되여 있었다. 향아는 그 피아노를 만져보고싶어서 한달음에 상점안으로 들어갔다. 피아노앞에서 향아는 저도 몰래 자기의 손을 내려다 보았다. 향아는 그 손으로 피아노건반을 한번 눌러보고싶었다. 하지만 그때 향아의 손은 거친 일때문에 벌써 흉측하게 변해있었다. 그때 누군가 피아노를 치고있었는데 그 피아노소리는 그렇게도 아름답게 들렸다. 향아는 피아노소리가 울리는 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피아노를 치는이는 동그스름한 얼굴을 가진 귀여운 녀자애였다. 녀자애의 손가락은 길지 않았다. 적어도 자기의 손가락보다는 길지 않다고 향아는 생각했다. 하지만 향아는 그 녀자애의 모습에서 어릴 때의 자기를 보는것 같았다. 향아는 녀자애의 곁으로 다가가 피아노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향아의 두볼에서는 저도몰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향아는 으스러지게 자기의 손가락을 꼭 잡았다.   장언니도 향아의 손가락을 꼭 잡고 이렇게 말한적이 있었다. “너의 손가락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것을 나는 진작 봐냈다. 넌 전생에 꼭 도시에 사는 규수였을거다.” 삼우도 첫날밤에 이렇게 말했었다. “당신, 손가락이 참 예쁘다니까. 손가락이 길어서 쓰리군이 되여 남들의 돈가방을 집어내면 제격이겠다니까.”   향아는 물건을 다 산후 또 류아주머니네 가게에 들러 소고기 서근을 떴다. 사촌오빠는 언젠가 향아에게 새언니가 지금은 푹 삶은 소고기밖에 먹지 않는다고 말해준적이 있었던것이다. 새언니가 소고기를 즐겨 먹는다니 의례 몇근 떠다드리는것이 당연하다고 향아는 생각했다. 어쩌다가 찾아가는데 새언니가 군소리를 못하게 해야 했던것이다. 전에 새언니가 자기를 어떻게 대했던지 자기는 그 일을 되새기지 않을것이라고 향아는 마음 먹었다. 향아는 진심으로 새언니를 잘 대해주려고 했다. 그러면 이웃들은 시누이가 셈이 들었다고 할것이고 그렇게만 된다면 향아는 만족할것이였다. 새언니에게 줄 선물을 산후 향아는 또 집에서 쓸 강두(豇豆)며 조롱박이며 당지의 빛이 나는 오이도 얼마간 샀다. 장언니는 빛이 나는 오이를 미꾸라지에 넣어 푹 고면 맛이 참 좋다고 말한적이 있었다. 향아는 장언니를 생각하면서 빛이 나는 오이를 샀던것이다. 그후 향아는 학교에 가서 아이 둘을 마중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폭우가 즘즉해지기 시작했다. 폭우도 잠간 쉬려는것 같았다. 폭우가 끊자 전야는 온통 물바다로 변해버렸다. “죽은 개가 있다.” 누군가 소리쳤다. 그바람에 차도 놀라서 올리 솟는듯싶었다. 모두들 눈길을 길섶에 돌렸다. 수삼(水杉)나무 아래의 진흙탕에 커다란 황둥개 한마리가 입을 쩍 벌리고 쓰러져있었다. “번개에 맞은게 아닌것 같군. 분명 독침에 맞은거야.” “저기도 한마리가 있네.” 누군가 또 소리쳤다. 그 바람에 사람들은 죽은 개를 두고 분분히 의론을 시작했다. 어딘가에서 몇만원을 들여 산 장오(藏獒)도 얼마전에 독침을 맞아 죽었다고 했다. 독침을 맞아 죽은 개는 인차 내장을 들어내고 식당에 넘겨주는데 한마리에 2백원은 실히 받을수 있다고 했다. 길에는 미처 끌어가지 못한 독침을 맞은 개들이 쓰러져있었던것이다. 향아는 손으로 애들의 눈을 가리워주었다. 그러면서도 향아는 자기가 더 무서워 부들부들 떨었다. 죽은 개의 몸뚱이에 꽂혀있던 록색의 독바늘이 자꾸 향아의 머리에서 맴돌이 쳤던것이다. 향아는 집에 돌아가서 저녁을 해먹으려고 했지만 장언니가 기어코 향아네를 눌러앉혔다. 하여 향아는 오자와 함께 장언니네 집에서 한끼를 해결하게 되였다. 향아는 새언니에게 주려던 우유를 한봉지 꺼내 장언니앞에 내놓으면서 언제 시간을 타서 친정에 한번 다녀오자고 청을 들었다. 그러자 장언니가 향아에게 “함께 가지 말고 따로 다녀오자.”고 말했다. 둘이 함께 가면 집에서 기르는 소들을 누가 돌보겠는가 하는것이였다. 하긴 소도적들이 웃실거리는 판에 누군가는 집에 남아서 소들을 지켜야 할것이였다. 장어니는 또 친정으로 자주 가면 자기의 시어머니가 의심을 할것이라고 근심했다. 아직도 10여만원이나 되는 부양비가 시어머니의 손에 있었던것이다. 장언니의 남편은 남방에 가서 일을 하다가 삼년전에 차사고로 돌아갔던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장언니는 향아와 별 다른 관계가 없었다. 그저 향아도 락막교에서 들고양이호수로 시집왔기에 비슷한 말투를 쓴다는것 정도로 알고있을뿐이였다. 어느한번, 향아는 진에 가서 신분증을 수속하게 되였다. 그가 순서를 기다리고있는데 누군가 파출소청사 꼭대기에 웬 남자가 죽어있다고 알렸다. 그바람에 사람이 우르르 파출소로 구경을 갔었다. 향아는 그때 장언니가 “엉뎅이소장”의 사무실에 있는것을 보았다. 장언니는 그때 “엉뎅이소장”과 한창 말다툼을 하고있었다. 오가는 말을 들어보니 장언니의 남편이 무슨 불행을 당했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열변을 토하는 장언니는 얼굴이 퉁퉁 부어있었고 피부색마저 뿌옇게 변해있었다. 장언니는 “엉뎅이소장”을 보고 증명자료를 떼달라는것이였다. 그래야만 남편이 일하던 곳으로 가서 배상을 받아올수 있다는것이였다. 하지만 웬 일인지 “엉뎅이소장”은 기어코 증명을 떼주지 못한다고 잡아떼는것이였다. “자네의 남편이 그곳에서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내가 어찌 안단 말이요? 혹시라도 무슨 범죄전과가 있다면?” 대방에서는 이곳 파출소에서 당사자가 아무 범죄전과도 없다는것을 증명해오라는것 같았다. 장언니 남편의 호구가 여전히 이곳에 있으니 형식적으로 이같은 증명서류를 요구하는것 같았다. 그러나 사람마저 죽은 마당에도 “엉뎅이소장”은 여전히 원칙을 내세웠다. “만약 자네의 나편이 무슨 범죄전과라도 있으면 어떻게 하냐 말이여. 살인이나 방화 같은 죄라도 저지른적이 있다면 누가 책임질겨?” “사람이 다 죽은 마당에 왜 죽은 시체가 벌떡 일어나서 당신을 찾을가 걱정인겨? 그들 보고 돈이나 배상하라고 할건데 사람도 없는 판국에 소장까지 되는 사람이 순례대로 증명서에 도장 하나 찍어주면 그만이지, 그러면 어디가 덧 나는겨?” 그날 장언니는 울화를 참지 못하고 파출소의 책상을 번져버렸다고 한다. “엉뎅이소장”은 장언니가 공무방해죄를 졌다고 해서 일주일이나 구류소에 가뒀다는것이였다. 남편까지 죽은 사람이 구류소에 갇힌다는것은 참으로 비참한 일이라고 향아는 생각했다. 그후 향아는 늘 장언니네 가게에 가서 남새를 샀다. 친정이 같은 고장이라 차츰 서로는 마음을 나눌수 있는 좋은 친구로 되였던것이다. 장언니는 료리를 참 잘 볶았다. 그덕에 향아는 맛나게 한때를 먹을수 있었다. 그날 먹은 료리는 황고어(黄古鱼)에 쑥갓나물을 넣어 곰한것이였다. 마을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산해진미 생각없네, 황고어에 쑥갓나물을 넣고 고면 제격이라네” 금방 머리를 쳐들 때의 쑥갓나물의 연한 약냄새가 황고어의 비린내를 없애주고 황고어의 비린내가 또 쑥갓나물의 약냄새를 눌러주어 묘한 조화를 이루어냈던것이다. 거기다가 고추와 마늘을 약간씩 다져넣으니 국 또한 맛이 진해서 그야말로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판이였다. 학교에서 일주일 동안 맛 좋은 음식을 구경하지 못했던 두 아이는 금방 감옥에서 나온 사람인양 황고어를 한마리씩 손에 들고 하모니카를 불듯이 한쪽으로 쓱 당겼다. 그러자 손에는 고기 한점 없는 뼈만 앙상하게 남았다. 쑥갓나물에도 황고어의 냄새가 푹 배여있었다. 향아는 락막촌으로 새언니를 보러가면서 열쇠를 장언니에게 맡겼다. 그리고 소를 잘 돌봐달라는 부탁도 잊지 않았다. 장언니는 밤에 향아네 집에서 자면서 소와 집을 지키겠다고 했다. 새언니는 간신히 의자에 앉아있었는데 몸은 너무도 여위여 겨릅대를 방불케 했다. 향아는 새언니를 바라보면서 뜨거운 눈물이 두볼을 타고 흘러내리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새언니는 병으로 말도 하지 못했다. 새언니는 눈물이 그렁거렁해서 시누이를 힘없이 바라보고있었다. 사람은 아마도 병이 들어야 얼굴에 선량함을 담을수 있는가보다. 향아는 새언니를 보고 이렇게 물었다. “나를 알아볼수 있나요?” 새언니는 간신히 머리를 끄덕였는데 그바람에 입귀를 타고 멀건 침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향아는 새언니의 입귀에서 흐르는 침을 닦아준후 영양품과 소고기 등 식품을 가방에서 꺼내놓았다. 사촌오빠는 또 “저 사람은 소고기를 즐겨한다니까. 보드랍게 찢어 줘야 해. 고추는 넣지 말구. 고추를 조금만 먹어도 한참이나 구역질을 한다니까.” 하고 말했다. 향아는 직접 새언니에게 음식을 끓여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촌오빠가 말했다. “여보, 향아가 당신을 주자고 소고기를 가져왔다오.” 향아는 눈물을 흘리면서 새언니의 무릎을 덮은 낡은 솜저고리를 잘 여며주었다. 향아는 주방으로 가서 고기를 삶기 시작했다. 향아는 사촌오빠의 명도 참 기구하다고 생각했다. 아니라면 어찌 젊어서 안해가 이렇게 힘든 병을 얻을수 있단 말인가? 주방에는 온통 때자국이 꾀죄죄한 식기들이였고 구석구석 거미줄이 드리워있었다. 가시지 않은 사발이며 쟁반이 가득 쌓여있었다. 녀자의 손길이 닿지 않은 집은 그렇게 첫눈에 티가 나는 모양이였다. 그 주방은 전에 향아가 관리했었다. 향아는 사발이나 쟁반을 알른알른하게 닦았고 남새를 깨끗하게 다듬었었다. 도마에 남새를 올려놓고 썰 때면 칼소리가 여간만 절주있고 흥겹지가 않았다. 그야말로 주방엔 생기가 차넘쳤다고 할수 있었다. 소고기를 씻어 넣은 가마가 불렁불렁 끓는것을 보고난 향아는 새언니를 해볕 좋은 창턱아래로 안아다가 볕쪼임을 시켰다. 마을사람들이 향아가 온것을 보고 지나가다가 걸음을 멈추고 인사를 건넸다. 그들은 또 새언니의 병에 대해 말을 주고받았다. 모두들 향아의 사촌오빠가 매우 힘들게 사는데 참으로 불행하다고 가슴 아파했다. 향아의 사촌오빠는 늘 날 밝기전에 밭으로 나가는데 남들이 밭으로 나가면 벌써 밭 두무가량을 갈아엎은뒤라고 했다. 마을사람들은 또 새언니가 너무 린색하다고들 나무랐다. 그래도 사촌오빠는 아무말도 못하고 산다는것이였다. “너의 오빠는 실로 너무 로실해서 탈이지. 이 지경이 됐는데도 집에 남아 녀편네를 보살피고있단다. 오줌똥을 받아내면서 말이다. 너의 새언니가 어디가서 네 오빠 같은 사람을 만날수 있겠느냐? 너희들 오씨네 식구들은 실로 법이 없어도 살 사람들이란다.” 향아는 푹 삶은 소고기를 잘게 찢어서 새언니에게 먹였다. 3일후, 향아는 집으로 돌아오려고 했다. 떠날 때 사촌오빠는 향아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의 밭은 나도 어쩔수가 없구나.” 사촌오빠네 집에 도착했던 날 향아는 사촌오빠를 보고 밭에 들어온 물을 빼는 일을 도와달라고 청을 들었던것이다. 사촌오빠는 향아의 손을 잡고 또 이렇게 말했다. “네가 가면 저 사람은 누가 돌보겠느냐?” 새언니네 친정에서는 아예 새언니를 죽은 사람으로 치부했는지 한달이 다 가도 얼굴 한번 들이밀지 않는다는것이였다. “너네 그 밭 말이다. 넘 작아서 양수기를 동원하면 애 보다 배꼽이 더 크게 될것이다. 올방개를 심을수 없다니까 미나리를 심어보렴. 저 사람이 삼우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지? 나는 그저 삼우가 도시로 돈 벌러 갔다고만 했단다.” 향아는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오동나무아래의 장언니네 매대가 비여있는것을 발견했다. 문에는 자물쇠가 잠궈져있었다. 향아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핸드폰으로 장언니를 찾았다. 그때 장어니는 밭에 있다고 했다. 향아는 그 길로 밭에 나갔다. 향아는 그만 깜짝 놀라고말았다. 뜻밖에도 그때 장언니는 어디에서 빌려왔는지 작은 양수기로 밭의 물을 뽑고있었다. 배수관은 밭으로부터 백여메터나 길게 늘여져있었다. 얼마나 물을 뽑아냈는지 묘들이 이미 머리를 내밀고있었다. 향아는 장언니가 너무도 고맙게 느껴져 목이 메여올랐다. 장언니는 머리를 들어 향아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내가 너를 보고 심으라고 하지 않았니? 네가 낟알을 걷우지 못하면 내 마음도 편치 못하지. 내 재간에 배상할수도 없구. 하하하…” 장언니는 양수기를 빌어왔다고 했다. 그러니 기름값이나 좀 쥐여주면 될것이라고 했다.   입에 발린 말을 할줄 모르는 향아는 정말 뭐라고 더 이상 고마움을 표시했으면 좋을지 몰랐다. 향아는 장언니에게 식사를 했는가고 물었다. 아직 식전이라고 장언니가 말하자 향아는 주저하지 않고 곧추 마을어구에 있는 식당으로 달려가 볶음밥을 시켜다 밭두렁에 앉아서 먹었다. 향아는 올 때 맥주도 한병 들고왔다. 장언니는 술을 참 잘 마셨는데 웬간한 남자들보다도 주량이 컸다. 성격도 남자들처럼 거칠었다. 그들의 뒤는 푸르른 물결이 출렁이는 들고양이호수였다. 차츰 밤장막이 드리우고 달빛이 어슴푸레 대지를 비추기 시작했다. 들고양이가 물에서 물고기를 잡을 때 내는 눈빛은 마치도 고기배에서 반짝이는 등불같아 보였다. 들고양이들이 아우성치는 소리는 그처럼 높고 앙칼스러웠다. 들고양이소리와 어울려 퍼지는것은 언제나 끊을줄 모르는 개구리울음소리였다. 두가지 소리는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면서 사뭇 조화를 이루고있었다. 그바람에 양수기가 돌아가면서 내는 소리는 그처럼 단조롭고 작게 들렸다. 하지만 그 소리도 어쩌면 밤장박이 드리운 전야에서 들려오는 여러가지 소리들에 진작 조화된듯싶었다. 향아는 개구리울음소리를 좋아했다. 들고양이호수에 시집을 와서부터 향아는 개구리울음소리를 들으며 이 마을에 마음을 붙이기 시작했던것이다. 그러고보니 개구리울음소리는 향아가 들고양이호수에서 살아가는 리유라고 할수 있었다. 개구리울음소리는 봄에 뾰족뾰족 머리를 쳐드는 새싹들과 함께 시작되였다. 개구리울음소리는 마치도 흠입력이 풍부한 자연의 호소와도 같았다. 그 울음소리는 사람들이 묵묵히 살아가는 동력과도 같은것이였다. 이밤, 산간의 고즈넉한 전야에서 들려오는 원시적인 음악은 바로 그 작은 생령들의 장엄한 합창이였다. 물의 따스함, 바람의 훈훈함, 심록색의 수초와 파아란 벼모들 그리고 아름다운 련잎과 수련초(水帘草)는 개구리들의 장엄한 합창과 어룰려 뭔가를 이야기 하는듯싶었다. 향아에게 있어서 개구리울음소리는 시골의 꿈의 한자락이였다. 훈훈한 바람으로 보아 계절은 5월에 들어선듯싶었다. 바람은 지심의 깊은 곳으로부터 올라오는것이라고 향아는 생각했다. 그리고 바람은 소년소녀들의 마음의 웨침 같은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물에 들어서서 물속의 수초를 건져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풀잎이 양수기에 말려들어가 사고가 날수 있기때문이였다. 그리고 또 도랑을 깊이 파서 물이 잘 흘러내리게 했다. 그후 그들은 밭두렁에 올라가 발과 다리를 씻었다. “너 곤하지? 잠간 나의 다리를 베고 누워 눈을 붙여라.” 장언니가 입을 열었다. 그들은 땅에 비닐쪼박을 펴서 습기를 막았다. 장언니는 아까 맥주 한병을 대부분 마시고 향아에게 몇 모금 맛을 보라고 했다. 향아는 근본 술을 마실줄을 모르기에 몇 모금만 마셔도 취기가 돌았다. “술도 그냥 물이라고 생각하면서 마시면 돼.” 장언니는 웃으면서 향아에게 말했다. 향아는 머리가 몹시 무겁고 아프다고 생각되였다. 향아는 두눈을 지긋이 감고 장언니가 가까이에서 오줌을 누는 소리를 듣고있었다. 향아는 눈까풀이 자꾸 내려오는감을 느꼈다. 진종일 너무 힘들었던것이다. 장언니가 다리를 쭉 폈다. 향아는 장언니의 다리를 베개 삼아 베고 누워 인차 눈을 감았다. 자는지 마는지 향아는 일종 혼미상태에서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향아는 자기가 장언니에게 새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있다고 생각했다. 들고양이를 잡으러 온 사람들이 손전지를 들고 향아네를 향해 오고있었다. 향아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놀라 눈을 떴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이미 향아네를 지나가버린 뒤였다. 그들의 거친 목소리만 여전히 바람에 날려올뿐이였다. 장언니가 뭐라고 말하느것 같았는데 향아에게는 똑똑하게 들리지 않았다. 그때 장언니의 손은 향아의 어깨에 올려져있었다. 이어 장언니는 손으로 향아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향아는 또 장언니의 손이 자기의 목쪽으로 천천히 미끌어져 내려온다는것을 느꼈다. 그 느낌은 비몽사몽간에 전해지는것이였다. 그때 향아는 아직 완전히 잠을 깨기전이였다. 누군가 자기를 애써 꿈속에서 끌어내는듯한 그런 환각이 들었다. 그때 장언니의 목소리가 향아의 귀전에 울렸다. “향아야, 너의 피부는 정말 귀신도 놀랄지경이구나. 아마 마을에서 제일 좋을거다. 새끼를 낳은 녀인네라면 누가 믿겠니?” 그때 향아는 머리를 장언니의 사타구니쪽에 묻고 그곳으로부터 전해지는 따뜻한 체온을 느끼고있었다. 향아는 어릴 때 엄마의 품에 머리를 박고있는 자신을 보는것 같았다. 장언니의 손은 얇은 적삼 하나를 사이두고 가슴으로부터 천천히 복부쪽으로 미끌어오고있었다 “향아야, 넌 배가 하나도 안 나왔구나. 처녀애들 같다니까. ” 간간히 들려오는 장언니의 석쉼한 목소리는 그때 웬 일인지 달콤한 자장가처럼 들렸다. 장언니의 얼굴이 차분하게 향아의 얼굴에 대였다. 이어 장언니의 입술이 향아의 입술우에 포개졌다. 그때 장언니의 동작은 거칠지 않았다. 마치도 그 모든 동작이 무의식중에 이루어지는것 같았다. 향아는 첨에 자기의 몸뚱이를 장언니에게 맡겨버린채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장언니의 입술이 자기의 입술에 포개지는 순간 향아는 일종의 짜릿한 느낌이 온몸에 쫙 펴지는것 같아 흠칫 몸을 떨었다. 장언니는 향아가 추워서 그러는것이라고 생각한것 같았다. 그는 자기의 웃옷을 벗어서 향아의 몸에 덮어주었다. 향아는 완전히 잠에서 깨여있었다 하지만 향아는 그대로 누워서 조금도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누가 나를 이처럼 따뜻하게 만져주었던가? 향아는 영원히 그대로 누워 잠들고싶었다. 개구리울음소리는 여전히 전야에 울려퍼지고있었다. 교교한 달빛아래에서 우렁찬 개구리울음소리는 짙은 안개와도 같이 밤장막을 칭칭 감싸고 향아의 꿈을 보듬어주고있었다. 장언니의 부드러운 손은 여전히 가담가담 향아의 몸을 더듬고있었다. 향아는 수정을 가득 담은 큰 솥이 자기의 몸에 그대로 엎어진듯한 묘한 느낌을 마음껏 향수하고있었다. 반디불이 주변에서 깜빡깜빡 빛을 뿌리고있었는데 마치도 별똥이 떨어져내리는것 같았다. 향아의 웃몸은 장언니의 운동복에 가리워져있어서 아주 따듯했다. 세상은 그 순간 장언니의 손을 감지하지 못하고있는것 같았다. 그 손이 바야흐로 한 사람의 일생을 다시 쓰고있다는것을 모르고있는것 같았다. 개구리의 울음소리는 여전히 계절을 알리느라 신나있었다…   땅에 습기가 돌자 향아는 씨를 뿌리려고 서둘렀다. 향아는 먼저 오이를 심으려고 작심했다. 모종은 형춘(荆春)40호였다. 그 모종은 당지에서 나온것으로서 오이의 모양새가 아주 름름했고 잔가시도 털도 없었다. 향아는 또 강두도 심으려고 준비했다. 향아는 그때까지도 그날밤의 야릇하던 느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시종 꿈속을 헤매는듯한 환영에 시달리고있었다. 그날아침, 향아는 눈을 뜨고서야 이슬에 옷이 흠뻑 젖은것을 발견했다. 향아는 그날 누군가의 목소리에 놀라 눈을 떴던것이다. 그때 장언니는 양수기임자와 결산을 하느라고 목소리를 높였던것이다. 양수기임자는 그때 벌써 양수기와 배수관을 정리하여 차에다 실은 뒤였다. 향아는 뛰여가서 돈을 물었다. 물이 밭에서 빠진것을 보니 기뻐서 날것만 같았다. 장언니가 먼저 뚱뚱한 몸뚱이를 움직이며 떠났다. 빨리 가서 남새매대를 열어야 한다는것이였다. 하기야 남새나 과일을 제때에 팔지 않으면 못 쓰게 될수 있었던것이다. 장언니는 가면서도 시름이 놓이지 않았던지 향아에게 소리쳤다. “너 빨리 집에 가서 휴식 좀 해라. 몸이 그렇게 허약해가지구서야.” 양수기임자는 돈을 세여본후 향아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올해는 충해를 입지 않을거요. 이렇게 물에 말끔히 씻겼는데 어찌 해충이 남아있겠소. 나쁜 일이 좋은 일로 된거지. 올해 대풍을 거두기를 바라오.” 양수기임자도 오토바이를 타고 떠났다. 어쩌면 그가 논에 있던 모든 번뇌를 다 달고 가버렸는지 논은 또다시 옛날의 고요를 되찾은듯 했다. 향아는 다시 두눈을 감았다. 오래동안 남에게 만지워 본적이 없던 몸, 물거미마냥 자유로이 움직이던 장언니의 손 그리고 그의 가벼운 발걸음… 장언니는 과연 무엇을 하려는것일가?   그런것들을 생각하자 향아는 온몸이 굳어지는듯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해볕이 따스한 어느날이였다. 향아는 혼자 남새밭에 나갔다. 주변에는 이름 모를 나무들이 가득 자라있었다. 형춘40호도 사실은 장언니가 향아를 보고 심으라고 한것이였다. 모든것이 어쩌면 장언니와의 계약이 아닌가 생각되였다. 그 계약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향아를 향해 다가온것이였다. 향아는 일이 어떻게 될지를 알수 없었다. 하지만 향아는 형춘40호를 심기 잘했다고 생각했다. 맞춤하게 습기를 먹음은 폭신폭신한 땅을 밟고선 향아는 곡식들이 땅에서 머리를 밀고 나올것 같은 뜨거운 느낌을 온몸으로 감수할수 있었다. 그 계절, 파종을 하고 김을 매느라면 사람들은 바로 그 땅의 한부분으로 된듯한 느낌을 가지게 되는것이였다. 그래서 사람은 더구나 땅을 떠날수 없어 하는 모양이였다. 이 낯선 호수가에서 향아는 스스로 십여년을 소리없이 살아왔다. 자매도 없고 부모도 형제도 없이 그리고 장엄한 의식도 없이 묵묵히 살아왔던것이다. 마치도 바람에 날려온 이름 없는 풀씨처럼 이 곳에 떨어져 싹이 트고 뿌리를 박았던것이다. 향아는 그게 어떻게 된 일인지 똑똑히 알지도 못하고 세상살이에 허둥거리다가 아들을 보게 되였다. 그렇게 가정이라는것을 일구어냈지만 향아는 여전히 자기는 가정이 없는 혼자의 몸으로 여기졌었다. 누구도 눈 여겨 보아주지 않는 삶, 누구의 관심도 자아내지 못하는 녀인, 급히 이 땅에 왔다가 급히 늙어가는 인생, 호미와 낫과 소고삐와 밥주걱을 동무하여 늙어가는 생명, 혼자서 흙과 씨름하는 사람―향아는 자신이 마치도 오라지 않아 두 동강이 나게 될 지렁이와 같다고 생각되였다.   향아는 침대에 늘 자기의 냄새가 배여있다고 생각했다. 아들이 크면서 품을 떠나자 향아는 당연히 혼자서 침대를 쓰고 살았던것이다. 향아는 언제나 남이있는 절반 침대를 슬프게 생각하고있었다. 향아는 언제나 자기의 자리에서만 잘뿐 삼우가 눕던 그쪽은 다치지 않았다. 어쩐지 그 자리는 자기에게 속하지 않는것처럼 생각되였던것이다. 어쩌면 그 자리는 다치기만 해도 아픔이 느껴질것 같았다. 향아는 침대보를 반듯하게 정리해놓았다. 그리고 소도 배가 불룩하게 먹였다. 집을 다 거둔후 지어는 변소까지도 깨끗하게 청소해놓았다. 두통의 봉선화화분에도 물을 주었다. 희딘흰 들냉이꽃은 훈훈한 바람에 시름없이 날리고있었다. 집 뒤뜰에 있는 못에서 련은  해볕을 받아 노르스름하게 번지고있었다. 작은 물고기들이 동에서 서쪽으로 분주히 헤여가고있었다. 전에 종래로 눈길 한번 준적이 없는 물고기들이였다. 삼우는 전에 물고기들이 노니는 그 못을 죽은 물이라고 했었다. 그러면서도 가끔 배수구나 논밭에서 남생이나 드렁허리를 주어다가 못에 던져주기도 했다. 련뿌리는 파내여 설에 먹기도 하고 가끔은 사촌오빠네 집에 보내주기도 했었다. 닭들이 구구구 기분좋게 울어댔다. 그것들은 마파람촌장네가 가두어서 기르는 닭이 아니라 이웃들이 밖에 내놓고 기르는 닭이였다. 닭들은 대가리를 건뜻 쳐들고 자유롭게 뛰여다녔다.   그날밤에 장언니가 향아를 찾아왔다. 한손에는 과일구럭이 들려있었고 다른 한손에는 비닐봉지가 들려있었는데 안에는 미꾸라지가 가득 들어있었다. 향아는 전에 장언니와 뒤뜰안의 못에다가 미꾸라지를 넣었으면 좋겠다고 말한적이 있었던것이다. “너 래일 오이를 심는다고 하지 않았니? 종자는 물에 불궜니? 미꾸라지와 오이를 한데 고면 황고어에 쑥갓나물을 한데 곤것보다 더 맛있단다.” 그들은 손전지를 찾아들고 뒤뜰에 들어갔다. 청개구리들이 놀라서 풀떡풀떡 뛰였다. 향아가 자루아구리를 풀었다. 자루에는 물도 얼마간 들어있었다. 미꾸라지들은 자루에서 꾸불떡거리다가 못으로 들어갔다. 미꾸라지들은 한껏 몸을 흔들어대며 못속으로 사라졌다. 향아가 장언니에게 물었다. “언니, 이것들이 내것인가요? 아니면 언니의것인가요?” 장언니가 잠간 생각을 굴리다가 말했다. “물론 내것이지. 네가 나를 대신해서 기를뿐이야. 그러니 내가 두마리를 먹을 때 넌 한마리만 먹어야 해. 게다가 내가 너보다 더 뚱뚱하니까.” “알았어요. 좋아요.” “만약 늙은 오이에 미꾸라지를 고으려면 내가 나서는게 나을거다.” 그 말에 향아가 대답했다. “언니가 만든 료리는 정말 맛있어요.” 이때 장언니가 말머리를 돌렸다. “향아야, 넌 청바지를 입으면 더 멋져보인다. 바지가 엉뎅이를 꽉 조이고 다리가 길어서 말이야.” 그들은 오래도록 컴컴한 못가에서 한담을 했다. 향아는 여러번이나 장언니가 만든 료리가 맛있다고 치하했다. 그러자 장언니는 자기 남편도 살았을 때 자기가 만든 료리가 맛이 좋다고 칭찬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밤에 남편이 자기를 찾아와서 장에 조린 생강을 달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장언니는 또 남편이 자기가 사는 곳의 화식이 너무도 차하다고 불평하더라고 했다. 그래서 장언니는 염라대왕도 탐오부패를 일삼고있는 모양이라고 했다면서 하하하 웃는것이였다. 향아가 그러는 장언니를 보고 물었다. “벌써 몇년이 지났잖아요? 왜 다른 사람을 찾지 않아요?” “찾기는, 시끄럽기만 하지. 혼자 사는게 얼마나 편해. 그리구 내가 무슨 남자 손을 빌 일이 있니.” “남자들의 손을 빌 일은 없지만 그래도 가정은 있어야 하잖아요?” “가정? 나와 내 새끼가 있으면 가정이 아니냐? 다른것은 필요 없어. 만약 내가 다른 남자를 찾아봐라. 나는 이 들고양이호수에 더는 남아있을수 없을거다. 시어머니는 당장 나를 쫓아내려고 할것이다. 나는 아직 애의 부양비로 만원밖에 받지 못했단다. 지금은 더 이상 생활비를 주지 않지만 우리 애가 대학에 들어가고 결혼을 하게 되면 주겠지. 사실 나는 그들과 생활비를 달라고 징징거리기 싫단다. 만약 내가 마음 먹고 소송이라도 걸면 그들은 무조건 지고 나앉을걸. 생각해보면 그들도 불쌍하지 뭐. 그들은 아들을 잃지 않았니? 그것만 해도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니? 내 마음이 여린거야. 될대로 되라지 뭐. 나는 그래서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다른 남자도 찾지 못하는거야. 그리고 사실 남자를 찾아서는 뭘 하겠니.” 향아도 장언니의 말에 도리가 있다고 생각되였다. 장언니가 또 입을 열었다. “애 아버지가 살았을 때 내가 얼마나 그에게 맞으면서 살았는지를 너 아니? 그가 죽으니 내가 해방을 받은거지 뭐. 봐라, 애 아버지가 없어도 나는 여전히 살고있잖니? 어쩌면 더 잘 산다고 할수도 있지.”   들어보면 장언니도 사실은 힘들게 사는 사람이였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자기가 힘들다는 말을 입밖에 내지 않았던것이다. 장언니는 무엇이나 남들에게 지려고 하지 않는 마음이 넓은 사람이였다. 향아는 장언니에게 어딘가 영웅적인 기백이 있다고 생각했다. 장언니처럼 파출소 소장의 책상을 뒤집어 엎은 남자가 마을에 또 있는가? 잠간후 그들은 집안으로 들어갔다. 장언니는 갈 때 세면도구와 전에 씻어서 널었던 옷을 가지러 왔다고 했다. 향아는 그것들을 찾아서 곱게 포개여 장언니의 손에 들려주었다…     진응송: 1956년 호북에서 출생. 장편소설, 소설집, 수필집, 시집 30여부를 출판. 중편소설 “어치는 왜 지저귈가?”는 “로신문학상”을 받음. 현임 호북성작가협회 부주석, 호북성문학원 원장.    
2    13층 1509 * 류대 댓글:  조회:1910  추천:0  2012-04-24
    13층 1509   류대   어느 여름의 저녁무렵이였다. 내가 퇴근하려고 바삐 서두르고있는데 갑자기 왕천의 전화가 걸려왔다. 왕천은 웬 일로 매우 흥분해있었는데 마디마다 끝소리가 바르르 떨리는것이 힘에 부쳐 아래말을 겨우 이어대는것 같았다. 왕천은 끝내 집이 생겼다는것 같았다. 집, 똑같은 낱말이지만 시종 우리 젊은이들의 가슴을 지지눌러 숨도 바로 쉬지 못하게 하는것이다. 요즘에는 저 멀리 하늘가에 떠다니는 구름송이처럼 너무 멀어보이고 또 허무하게 느껴졌다. “왕천, 네가 집이 생겼는데 나와 무슨 상관이냐?” 나의 심드렁한 태도에 왕천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새롭게 시작하기를 바라.” 어쩌면 천진하기까지 한 왕천의 말에 나는 픽- 하고 랭소를 지었다. 우리는 토요일 오전에 립수교곁에 있는 “인간세상”이라는 음식점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내가 왕천이를 만나기로 결심한것은 그가 2년전의 그 리별에 대하여 어떻게 해석하는가를 알고싶어서였다. 그때 아무 리유도 없이 그에게서 배신을 당했다는 그 억울하고 분하던 기분은 여전히 나의 가슴속에서 꿈틀대고있었다. 혹시 50살이나 되면 나와 왕천 사이에 있었던 잡다한 일들이 그저 한번 웃어넘길수 있는 에피소드로 변할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절대 그럴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요즘도 그를 생각하기만 하면 가슴을 저며내는듯한 아픔을 느끼고있었다. 그 왕천이란 사람이 끝내 망망한 사람바다에서 파도에 밀려 내앞에 나타났던것이다. 나는 한시바삐 지금의 그를 만나보고싶었다. 그래야 나는 진정으로 왕천으로부터 해탈할수 있을것 같았다. 금요일 밤, 잠자리에 들기전에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잡지를 보고있는 남자친구에게 래일 특근해야 할것 같다고 말했다. 나 같은 인테리어설계사가 특근하는것은 밥 먹듯 흔한 일이였다. 많은 업주들이 쉬는 날을 리용해서 인테리어에 대해 토론하기를 좋아했던것이다. 남자친구는 휴식날 혼자서 거리를 거니는데 습관이 되여있었다. 그런 남자친구가 웬 일인지 유심하게 나의 얼굴을 뜯어보며 “진짜야?” 하고 의미있게 한마디 묻는것이였다. 놀랐다. 나의 어조는 전과 아무 차이점도 없었는데 그가 왜 그렇게 물을가? 나는 남자친구의 그 야릇한 물음에 어딘가 불안스러웠다. 나는 급히 몸에 걸쳤던 목욕수건을 벗어들고 물에 촉촉히 젖은 머리카락을 닦으며 아무렇지도 않다는듯 말했다. “특근하는데 무슨 진짜, 가짜가 있어요?” 남자친구는 신경질적으로 버럭버럭 책장을 번져대다가 입을 열었다. “래일 만난다는 그 업주가 긍정적으로 보통이 아니겠지?” 그 말에 발끈해진 나는 목욕수건을 남자친구의 머리에 확 뿌려던지며 소리쳤다. “그게 무슨 뜻이죠?” 남자친구는 덮어쓴 목욕수건을 빠끔히 열고 머리를 내밀었다. 그는 실오리 하나 걸치지 않은 풍만한 나의 몸뚱이를 삼킬듯이 바라보면서 실실 웃다가 말했다. “괜히 해본 소린데 왜 흥분하구 그래?” 기분을 간지르는 끝소리에 이어 남자친구의 코방울이 벌름거려졌다. 그 사람은 분명 내 몸에서 풍겨나오는 향기를 맡고있는것 같았다.   나의 몸은 왕천의 따뜻하고 자상한 애무속에서 차츰 성숙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도 나의 몸을 더듬던 왕천의 손을 그려보노라면 여전히 짜릿짜릿한 전률을 느끼군 한다. 나는 희고 가느다란 그 손이 키가 1.82메터나 되는 왕천의 몸에 달릴것이 아니라 예쁘고 우아한 기질을 가진 어느 녀사의 몸에 달려야 한다고 늘 생각했었다. 왕천이 그 손으로 롱구뽈을 던지면 영낙없이 그물에 걸려 관람자들의 박수갈채를 자아냈다. 왕천이 그 손으로 멋지게 기타를 치면 한패의 남자애들이 몰려들어 노래를 불렀다. 왕천은 그 손으로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주는 멋진 시를 지어 학교신문이나 석간신문의 문예부간에 발표했었는데 갈수록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게 되였다. 내가 왕천이를 처음 만나게 된것은 대학교 2학년 때였다. 가냘픈 몸매의 나는 그때 금방 분명치 못한 미래를 두고 고민할 때였다. 앞날을 생각하면 마치도 자신이 뽀얀 운무속에 놓여진 기분이였고 그 운무속에 있는 수많은 소택지와 함정때문에 어디로 갔으면 좋을지 몰라 방황하고있는것 같았다. 나는 늘 내가 짙은 안개에 삼키우는 악몽을 꾸었다. 꿈속에서도 나는 왕천의 하얀 두손을 잡아야만 겨우 안개속을 헤집고 나올수 있었다. 그렇게 왕천은 나를 대학교의 마지막 2년을 용케 헤쳐갈수 있게 이끌어주었던것이다. 폭풍우가 유난히도 무섭게 쏟아지던 그후의 어느 오후, 왕천은 또 나를 이끌고 북경으로 가는 렬차에 올랐었다. 우리가 북경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릴 때, 비는 금방 그친 뒤였다. 비물에 말끔히 씻겨진 북경의 공기에는 사람들의 마음을 달콤하게 하는 향긋함마저 스며있는듯싶었다. 길가에 줄느런히 늘어선 프랑스오동나무잎에는 수정 같은 물방울들이 가랑가랑 맺혀있었다. 하늘을 치솟을듯한 고층건물들이 우리를 향해 마주왔는데 우리가 어디론가에 깊숙이 빠져드는듯한 착각마저 들게 하였다. 승용차들이 실북나들듯 오가면서 뽀얀 물안개를 날리고있었다. 장안거리를 걷고있노라니 마치도 꿈속을 거니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왕천은 오른손으로 나의 어깨를 감아안고 왼손으로는 즐비하게 일어선 고층건물을 가리키며 감탄을 뽑았다. 아츠랗게 보이는 층집꼭대기는 원래 모양이 잘 보이지도 않았는데 마치 신기루를 보는듯하였다. “우리 집도 저속에 있게 될거야.” 왕천이 엉뚱하게 말했다.   “인간세상”이라고 불리우는 그 음식점은 워낙 작은 가게에 지나지 않았는데 스낵바였다. 하기에 대부분 전철을 타기에 급급한 손님들이였다. 가게옆은 하수도가 잘 통하지 않아 구정물이 고여 퀴퀴한 냄새를 풍겼고 쓰다 버린 위생지나 일차성저가락 같은것들이 사처에 나뒹굴었다. 정말이지 배가 고파 참지 못할 형편이 아니라면 누구라도 선뜻이 그 가게에 발을 들여놓으려고 하지 않을것이였다. 하지만 립수교지역이 날로 번화하게 발전됨에 따라 그 가게도 규모를 넓히게 되였고 그럴듯하게 장식하여 제법 큰 술집모양을 갖추게 되였다. 나는 한산한 홀에 잠간 앉아있었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는것 같아 여간 불편한게 아니였다. 사실 할 일이 없는 복무원들이 혼자 앉아있는 나를 향해 자주 흘끔거렸다. 시계를 보니 정각 10시였다. 내가 앉은 그 자리에서 머리를 들면 워낙 우리가 살던 아빠트를 볼수 있었다. 그 아빠트는 전에 이 지역에서 군계일학(鹤立鸡群) 같은 존재였었다. 그 아빠트의 1509호가 바로 우리의 아지트였다. 하지만 요즘에는 이미 그보다 더 높은 아빠트들에 포위되여 위용을 잃었고 늘 제대로 해볕도 보지 못하게 되였다. 아빠트들에서 반짝이는 창문은 어두운 거울을 방불케 했다. 어지러운 그 창문들마다에는 혼란스럽고 번다한 인간세상의 모습이 투영되여있었다.   우리가 집주인과 함께 집을 돌아볼 때 왕천은 어느새 엘레베터에 13층과 14층이 없이 12층 다음에 직접 15층이 표시된것을 발견했다. 왕천이 웃으면서 말했다. “개발상이 미신을 믿었던 모양이예요.” 집주인이 말했다. “개발상이 총명하다고 해야지요. 13층을 그대로 13층이라고 부르면 나라도 사지 않았을거예요.” 집주인은 등이 약간 휜 중년남자였다. 우리는 그를 리아저씨라고 불렀다. 리아저씨는 얼굴이 누르께하고 몸이 여위다 못해 금시 바람에 날려버릴것 같았다. 하여 나는 그가 엄중한 영양불량이나 심한 난치병이 있지 않을가고 생각하였다. 리아저씨는 딸애가 너무 말썽을 일으켜 얼마전에 큰 화병을 앓고 며칠전에 출원했다고 말하였다. 우리가 세를 맡으려고 하는 그 집은 리아저씨가 딸이 시집을 가면 주려고 준비해놓은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리리라고 부르는 그 딸은 근본 아버지의 감수에 대하여 달가와하지 않고 얼마전에 사천에서 온 한 남자와 함께 심수로 도망을 쳤다는것이였다. 리아저씨는 딸이 자기를 버리고 심수로 간것에 대해 별로 의견이 없었다. 하지만 딸을 꼬드긴 그 사천사람에 대해서는 격분하였다. 리아저씨는 짙은 하북방언으로 이렇게 말했다. “참, 그 애가 어쩌면 외지사람하구 도망갈 생각을 다했을가?” 아버지를 배신하고 심수로 간 리리때문에 우리는 순조롭게 북경에서 집을 구할수 있었다. 집은 매우 정교하게 꾸며져있었다. 인테리어를 전공한 내가 보아도 흠집을 잡기 힘들었다. 아니, 내가 되려 그 집 장식에서 전업적인 계발을 받았다고 해야 할것이였다. 가구는 모두 새것이였다. 침대나 쏘파에 씌운 비닐마저 아직 걷어내지 않았었다. 옷장에서는 여전히 장식기름냄새가 간간이 풍겨나왔다. 바닥과 통한 베란다는 매우 널직했다. 왕천은 창턱을 짚고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시공현장의 기중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리아저씨, 왜 흔들의자는 갖추지 않았나요?” 내가 웃으면서 왕천에게 한마디 했다. “넌 리아저씨를 아버지로 착각하는게 아니냐?” 나는 그때 머리수건을 쓴채로 방안의 먼지를 털어내고있었다. 집안은 겉보기에 아주 깨끗한듯했지만 정작 손을 대니 곳곳이 먼지투성이였다. 왕천은 내가 열심히 걸레질하는것을 보고 말했다. “대충 하고 그만둬라. 너 진짜 이 집을 제 집으로 착각하는게 아니냐? 힘을 남겼다가 후에 진짜 제 집을 만났을 때 써라.” 후에 나는 한 장식회사에서 설계원으로 일하게 되였다. 업주들과 인테리어에 대해 상의할 때마다 내 집을 장식하고있다고 착각할 때가 많았다. 하기에 나는 매번 설계를 할 때마다 갑절 신경을 써서 구석구석 따듯하고 안온한 느낌이 풍기게 했다. 이런 사업태도는 업주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었고 많은 업주들이 직접 나를 찾아와 일을 맡겼다. 일들이 너무 밀려 인츰 시간을 내지 못할 때면 며칠씩이라도 기다렸다가 다시 찾아왔다. 기다리기에 급급한 일부 업주들은 나에게 돈봉투까지 건네면서 자기 일을 먼저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나의 수입은 점차 높아졌지만 퇴근은 날로 더 늦어졌다. 따라서 왕천은 나의 전문 보디가드나 다름없게 되였는데 매일 내가 퇴근할무렵이면 회사아래에 와서 기다렸다. 늦은 밤이면 거리는 그야말로 한산했는데 행인을 기다리는 불법택시들에서 가끔 담배불이 반짝일뿐이였다. 왕천은 길가의 감탕나무사이에 쪼크리고 앉아 나의 사무실창문을 외롭게 지켜보았다. 왕천은 취직이 잘되지 않았다. 그는 대학교에서 중국문학을 전공했기에 겉으로는 아주 박식하고 배포유한것 같았지만 직접 취직 일선에 나서서는 자기가 배운 전업이 그닥 소용이 없는 무용지물이라는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도 둬번 취직하였었지만 모두 시용기를 넘기지 못한채 용돈 몇백원을 받아들고 나와버렸다. 그는 다시 세번째 회사를 찾아볼 흥취를 잃고말았다. 아니, 실지는 용기를 잃었다고 해야 할것이였다. 어느날 밤, 왕천은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너 생각컨대 내가 무용지물 같지?” 그때 왕천은 창문유리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짙어가는 밤장막을 감상하고있었다. 머리와 가까운 창문유리에는 왕천의 절망 어린 얼굴이 비껴있었다. 짙어가는 어둠은 왕천의 절망과 함께 당금 유리를 깨고 온 집안에 덮쳐들것만 같았다. 그날 나는 로임을 받았었다. 기본로임에 장려금을 합하니 꽤나 되였다. 거기에 보스가 또 일을 잘했다고 따로 500원을 얹어주었었다. 나는 그 돈을 고스란히 왕천의 손에 쥐여주면서 그가 입에 침이 마르게 나를 칭찬할것이라고 수판알을 튕겼다. 하지만 왕천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돈을 침대우에 훌 던져버렸다. 그 바람에 돈이 침대우에 되는대로 널렸는데 마치 누군가 마구 던진 꽃종이를 방불케 했다. 나는 얼굴에 가득 담았던 웃음을 거두고 왕천의 눈치를 살피면서 그를 위안했다. “나는 네가 북경으로 온 목적이 단지 취직을 위한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왕천은 머리를 돌려 멍하니 나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와락 당기며 품에 꼭 그러안아주는것이였다. 그렇게 한참동안 머리를 나의 어깨에 기대고있던 왕천이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감사하다.” 이튿날아침, 내가 눈을 떠보니 그는 벌써 창가에 붙어서서 어슴푸레 밝아오는 동녘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고있었다. 그는 내가 침대에서 일어나는 소리를 듣고 인츰 머리를 돌리는것이였다. 벌겋게 충혈된 두눈으로 뚫어져라 나를 바라보았는데 그 순간 그의 얼굴에는 뭐라고 형용할수 없는 묘한 웃음이 가볍게 깔려있었다. 나는 오래동안 그의 그런 종잡을수 없는 웃음을 본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왕천이 뭔가를 충분히 생각해둔후 나를 놀리느라고 짓는 습관적인 웃음이였다. 그럴 때면 내가 어떻게 물어도 그는 그냥 모르쇠를 놓았다. 내가 그 표정때문에 불안해서 어쩔바를 모르다가 드디여 분통을 터쳐야 그는 짐짓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적당하게 둘러댈뿐이였다. 이것은 나와 왕천이 오랜 생활속에서 형성한 일종의 소통습관 같은것이였다. 어쩌면 그 습관이 다소 과도하다 할수 있었지만 그래도 왕천은 나중에 나에게 새로운 기쁨을 만끽하게 해주었다. 이번에도 그는 내가 입을 열기전에 앞질러 말했다. “여보, 나 책 한권을 쓸거야.” 우리는 그렇게 조용하면서도 편안하게 나날을 보냈다. 1509호에서 그는 나중에 요절하고야말 자기만의 꿈을 싹 틔우고있었던것이다. 집값은 사람들을 놀래우면서 올리뛰였다. 나는 그무렵에 업주들의 얼굴에서 매일 큰 리익이나 챙긴듯한 그런 행복감을 읽고있었다. 하지만 나는 되려 말할수 없는 처량함과 아픔을 느끼고있었다. 나는 “내 집 마련의 꿈”과 점점 더 멀어지고있었다. 나는 그 처량함과 아픔을 왕천에게 내비치지 않았다. 그때 그는 자기를 잊은듯한 경지에 처해있었다. 그의 눈확은 하루가 다르게 깊이 꺼져들어갔지만 두눈에서는 광기에 가까운 오기가 빛발치고있었다. 그가 두눈을 껌뻑거릴 때마다 나는 그의 눈까풀이 부딪치는 소리를 듣는것만 같았다. 이른아침이면 그는 밤을 밝히며 컴퓨터 건반을 두드리던 그 손으로 나를 흔들어 깨웠다. 워낙 자애롭고 따스하던 그 손길은 급하고 지어 조폭하게 변했다. 그 미묘한 변화는 나에게 일종 새로운 느낌을 선물해주었다. 나는 몽롱하고 취한듯한 느낌속에서 한번 또 한번 고조에 들어갔다. 내가 출근할 때면 그는 달콤하게 꿈나락으로 빠져들었다. 어린애처럼 부담없이 편하게 누워있는 그를 살펴보면서 나는 꿀이라도 마신듯한 행복감에 빠져들었다. 나는 허리를 굽혀 그에게 달콤한 키스를 해주었다. 그런 날이면 출근하는 내내 기분이 상쾌하였다. 나는 더 이상 “내 집 마련”에 큰 희망을 품지 않았다. 오직 왕천만 내곁에 있으면 모든것에 만족할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린애 같은 왕천을 바라보면서 내가 책임지고 왕천이를 “키울것”이라고 마음 먹었다. 하지만 나는 늘 집세때문에 근심하였다. 이미 집세가 한배나 올랐던것이다. 다행히 우리가 살고있는 1509호는 여전히 우리가 들어올 때의 그 집세값을 유지하고있었지만 언젠가는 꼭 오르게 될것이였다. 만약 집세가 절반 오른다면 나와 왕천이가 쓸 생활비는 천원도 되지 않을것이였다. 매번 집세값을 주는 날이면 나는 숨이 한줌만해서 왕천이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왕천은 그무렵에 리아저씨와 깊은 인연을 맺고있었다. 집세를 물 때가 딱히 아니더라도 왕천은 2, 3일에 한번씩 리아저씨를 찾아가 한담하였는데 마치 북경에서 친척을 만난듯한 기분까지 들게 했다. 왕천은 리아저씨를 찾아갈 때 늘 과일이나 보건식품을 사들고 갔다. 한번은 자아심리조절에 관한 도구서적까지 사가지고 간적이 있었다. 왕천은 리아저씨가 그 책을 읽으면 능히 딸이 사천남자와 함께 도망을 쳤다는 그 음영에서 벗어날수 있을것이라고 했다. 리아저씨도 왕천이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았다. 리아저씨는 왕천의 손에 파 한단을 들려주거나 마늘 몇쪼각을 들려보낼 때도 있었다. 또 어떤 때는 만두 한봉지 들고 오기도 했다. 왕천은 리아저씨네 집 일은 우리 집 일처럼 잘 알고있었다. 그러는 왕천이를 보면서 나는 리아저씨가 혹시 요즘 시내의 세집값이 놀랍게 오르고있다는 사실을 모르는것은 아닐가고 추측도 해보았다.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리아저씨가 보내준 만두가 돌멩이처럼 생각되여 도무지 삼킬수 없었다. 그날 밤, 하늘에서는 비바람이 몰아치고 우뢰가 진동하면서 가끔 번개까지 쳤다. 그러다가 또 우박이 쏟아져 유리창을 때리기도 했다. 그때 왕천은 컴퓨터앞에 앉아 나를 미치게 하는 그 부드러운 손으로 자판을 두드려대고있었다. 나는 이불속에 누워서 그의 뒤모습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꿈나라로 들어갔다. 하지만 나는 얼마 안되여 다급한 발걸음소리에 놀라 잠을 깨고말았다. 눈을 뜨고 사위를 살펴보니 왕천이 집안에서 불안한 기색을 띠고 왔다갔다하고있었는데 우리에 갇힌 성난 승냥이를 방불케 했다. 나는 불안한 눈길로 왕천을 바라보면서 글을 쓰다가 난국에 빠진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갑자기 침대머리에서 걸음을 멈추더니 베개밑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나는 두눈을 살풋이 감고 그가 어디에 전화를 거는가에 신경을 도사렸다. 전화가 통하자 리아저씨네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먼저 들렸다. 아주머니의 목소리는 급해서인지 아주 높았는데 리아저씨가 병이 도져서 급히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것이였다. 나는 너무 놀라서 입을 딱 벌렸다. 왕천은 나를 흔들어 깨우면서 빨리 병원으로 가보자고 했다. 어딘가 을씨년스러운 느낌마저 드는 엘레베터안에서 나는 의아한 눈길로 왕천을 바라보며 물었다. “너 어쩌면 리아저씨와 텔레파시가 통하는게 아니니? 혹시 네가 리아저씨가 밖에서 본 아들이라도 되는게 아니냐?” 내 말에 왕천은 신경질적으로 나를 쏘아보더니 성난듯이 한마디 했다. “너 우리 엄마를 뭘로 보는거냐?” 나는 늘 왕천이와 리아저씨가 한집식구 같다고 생각하였는데 필경 내가 근심하던 일이 발생했다. 그 토요일의 이른아침, 나는 전과 다름없이 제시간에 눈을 떴다. 창밖은 금방 희붐히 밝아오고있었다. 나의 손은 습관적으로 오른쪽을 더듬었다. 응당 왕천의 가슴이 나의 손에 만져져야 했는데 손끝에는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았다. 나는 깜짝 놀라 자리를 차고 일어나 앉았다. 왕천의 이불은 포개여진채로 있었다. 컴퓨터앞에도 왕천은 없었다. 순간 나는 자신이 어딘가에 버려진 어린애와 같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머리속에 찾아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나는 엄습해오는 공포를 의식하며 다급히 왕천의 이름을 불렀다. 그때 자물쇠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마치 누군가를 깨울가 저어되는듯 아주 낮게 들렸다. 나는 머리칼이 곤두서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두눈은 움직이는 자물쇠쪽으로 쏠렸다. 출입문이 조용히 열리고 왕천이 발볌발볌 들어섰다. 나는 성난 사자마냥 소리쳤다. “너 어디 갔던거야?” 왕천은 너무 놀라서 말까지 더듬었다. “너… 너 잠이 깼니?” 왕천은 침대를 향해 다가왔다. 그의 두손에는 비닐봉지가 몇개 들려있었다. 나는 침대에서 뛰여내려가 왕천의 품에 안겨버렸다. 그 바람에 왕천은 비닐봉지를 든 두손을 높이 들고 어쩔바를 몰라했다. “기다려, 내가 이 남새들을 랭장고에 넣고 올게.” 나는 여전히 왕천의 품에 안겨 떨어질념을 하지 않았다. 나의 가슴은 그때까지도 쿵쿵 높뛰고있었다. 나는 흥분을 누르지 못하고 그만 왕천의 옷을 와락 당겼다. 그 바람에 왕천은 손에 들고있던 비닐봉지를 떨어뜨렸다. 안에 있던 남새가 바닥에 떨어져 뒹굴었다. 따스한 해살이 카텐을 뚫고 들어와 그우에 찍혀져있는 참죽이 살아있는듯 생기를 띨무렵에야 나는 다시 잠에서 깨여났다. 나는 침대머리에 두었던 머리핀을 찾아 긴 머리에 얹은후 깊은 잠에 곯아떨어진 왕천의 볼에 가벼운 키스를 했다. 이어 나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날은 오랜만에 특근이 없는 날인지라 나는 왕천이를 위해 솜씨를 펴보려고 작심했다. 내가 출근한후 왕천은 혼자 집에 있으면서 늘 있는대로 대충 끼니를 에우다보니 얼굴이 홀쪽하게 되였다. 나는 그새 창작도 일종의 체력로동이라는것을 잊고 살았던것이다. 나는 어쩐지 자기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것 같아 왕천에게 너무 미안했다. 왕천이 잠에서 깼을 때 나는 이미 84개의 물만두를 빚어놓고있었다. 왕천은 침대머리에 턱을 고이고 누워 매우 행복한 표정을 짓고 앞치마를 두르고 서서 물만두를 빚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여보, 날마다 이런 나날을 보낼수 있으면 좋겠지?” “그래, 이제 네가 이름을 날려 큰 돈을 벌게 되면 난 출근하지 않을거야. 그때면 우린 날마다 이런 나날을 보낼수 있겠지.” 순간 왕천의 눈빛이 전에없이 밝아졌다. “책이 출판되여 큰돈을 벌면 나는 먼저 너에게 큰집을 사줄거다. 넌 그 집에서 살면서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거야. 그럼 나는 날마다 너를 볼수 있게 되는거지.” 그 말에 나는 약간 웃음기를 띠면서 익살스럽게 물었다. “그렇게 날마다 바라보다가 어느날 내가 싫증이 나면 어떻게 하려구?” 왕천은 별말이 없이 담배 한가치를 꺼내여 불을 달았다. 삽시에 왕천은 뽀얀 담배연기속에 잠겨버렸다. 나는 태평스럽게 담배를 피우고있는 왕천이를 향해 소리쳤다. “묻잖아? 못 들었어?” 왕천은 뜻밖에도 성이 나있었다. “나 워낙은 너와 함께 아름다운 미래를 그려보자고 했거든. 헌데 그렇게 외길로 나가니?”     나는 그러는 왕천이 너무 천진하게 느껴져 까르르 웃으면서 마지막 물만두를 마저 빚었다. 나는 일어나 사처에 뿌리워진 밀가루를 닦으면서 물었다. “창작은 어떻게 돼가?” “곧 끝나게 돼.” 왕천이는 그때까지도 성이 가시지 않은것 같았다. 익은 물만두를 금방 다 건졌는데 갑자기 초인종소리가 울렸다. 나와 왕천은 서로 눈길을 주고받았다. 우리는 북경에 아는 사람이 없는데 누가 주말 점심에 우리 집 문을 두드리는것일가? 속구구를 하면서 급히 문을 열어보니 뜻밖에도 리아저씨였다. 그의 손에는 락화생기름 한통이 들려있었다. 순간 나의 가슴속에서는 뭔가가 툭- 하고 떨어져내리는듯싶었다. 하지만 왕천은 기뻐하며 입을 열었다. “아저씨, 참 잘 오셨네요.” 말을 마친 왕천은 주방으로 들어가서 수저 한쌍을 더 내왔다. 리아저씨의 홀쪽한 얼굴에는 야릇한 웃음 한줄기가 어려있었다. 그 웃음이 억지스러워서인지 리아저씨의 얼굴은 한쪽으로 기울어져 형용하기 어려운 험상궂은 모습을 연출하고있었다. 리아저씨는 열정적으로 맞아주는 왕천에게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고있었다. 그는 마치 심문을 기다리는 범인마냥 쏘파끝에 쪼크리고 앉아 연신 손바닥을 비비고있었다. 리아저씨는 왕천이 앞에 가져다놓은 물만두를 보면서 오히려 고통스럽게 이마살을 찌프렸다. 리아저씨는 그새 또 많이 여윈것 같았다. 리아저씨는 내가 그를 위해 마련한 차물을 보더니 급히 몸을 일으켰다. “자네들, 먼저 식사를 하게나. 난 잠간후에 다시 오겠네.” 나는 급히 리아저씨를 잡으면서 말했다. “다 한집식구처럼 생각하면서 왜 이러세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리아저씨의 표정에서 이번 걸음은 집세때문이라는것을 읽어낼수 있었다. 하기에 나는 더구나 리아저씨를 남겨 물만두를 권하면서 그의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려고 마음 먹었다. 내가 하도 죽기내기로 잡아끄는통에 리아저씨는 도로 쏘파에 눌러앉았다. 리아저씨의 흐릿한 눈동자는 막연하게 천정에 설치된 무리등을 바라보고있었다. 나는 마치도 “자네들도 신혼살림에 쉽지 않을테지. 휴—” 하고 내쉬는 리아저씨의 한숨소리를 듣는것만 같았다. 나는 순간 코끝이 시큼해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나는 울먹이면서 이렇게 말했다. “며칠 지나 왕천이 일자리를 찾으면 곧 생활이 나아질거예요.” 리아저씨는 떨리는 손을 호주머니에 집어넣더니 쪼그라든 담배 한가치를 꺼냈다. 나는 왕천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눈짓을 했다. 왕천은 인차 컴퓨터앞으로 다가가 자기의 담배를 가져다가 리아저씨에게 권하고는 불을 붙여드렸다. 리아저씨는 담배를 크게 한모금 빨았다. “아저씨, 의사가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하지 않던가요? 그런데 왜 또 피우기 시작했어요?” 리아저씨가 갑자기 담배연기에 사래가 들려 련속 기침을 해댔다. 그 바람에 밀랍 같던 얼굴이 불그레 달아올랐다. 리아저씨는 담배 한가치를 다 태운후 또 한가치를 꼬나물었다. 왕천이 리아저씨의 손에서 담배를 빼앗았다. “안돼요, 더 피우면 안돼요.” 왕천의 목소리에는 친인에게만 할수 있는 강압적인 기분이 섞여있었다. 나는 그러는 왕천을 향해 두눈을 부릅떴다. 그러자 왕천이 나를 건너다보며 말했다. “너 뭘 안다구 그래? 지난번에 의사가 말하기를 리아저씨가 계속 담배를 피우면 생명위험마저 감수해야 한댔어.” 리아저씨는 자신의 왜소한 몸뚱이를 들어 쏘파안쪽에 옮겨놓으며 입을 열었다. “별것 있나. 난 이미 살만치 살았다니까.” 말을 마친 리아저씨의 눈에 이슬 몇방울이 맺혀 반짝이였다. 하지만 눈물은 금방 눈확을 벗어나자마자 얼기설기 맺혀진 주름에 스며들어버렸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화제가 이상하게 흐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리아저씨는 집세를 올릴 문제를 토론하러 온것 같지가 않았다. 나는 찾아온 원인을 알고싶어서 리아저씨에게 넌지시 물었다. “아저씨, 혹시 무슨 일이 있는게 아닌가요?” 리아저씨는 말없이 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때 리아저씨의 눈에는 로인들에게서만 볼수 있는 그런 쓸쓸함이 가득 담겨져있었다. 리아저씨는 이어 왕천이에게 머리를 돌리고 말했다. “리리가 돌아왔네.” 리리는 아버지를 보러 온것이 아니라 더 이상 떠돌아다닐 형편이 안되여 돌아왔던것이다. 리리를 데리고 도망을 쳤던 그 남자는 심수에서 갑자기 무슨 기발한 구상을 했던지 운남 서려에 가서 보석을 수구하겠다고 떠났다 한다. 처음에 리리는 그 말을 듣고 그 남자보다도 더 기뻐했다는것이다. 애초에 리리는 그 남자의 머리속에서 흘러나오는 괴상한 부자꿈에 현혹되여 그 남자를 따라나섰던것이다. 리리도 서려의 “돌도박(赌石)”에 대하여 진작 소문을 들은적이 있었던것이다. 운수가 좋으면 돈 만원이 하루밤에 몇백만원으로 새끼를 칠수 있다고 했다. 하여 리리는 심수의 작은 방에 들어박혀 기나긴 기다림을 시작했다고 한다. 한달 또 한달, 하루 또 하루…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그 남자가 돌아오기를 기다렸지만 소식조차 없었다 한다. 그러던 어느날, 리리는 집주인으로부터 거리로 내쫓기게 되였던것이다. 여기까지 말한 리아저씨는 고통스럽게 울음을 터뜨렸다. 그 남자가 분명 보석을 구매하러 운남으로 간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리리를 떼버리려고 거짓말을 한것이라는것이였다. 왕천은 리아저씨에게 종이를 건네주면서 말했다. “아저씨, 리리가 돌아온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 남자의 진면목을 하루빨리 아는게 하루라도 늦게 아는것보다 더 좋은거지요. 아니면 꼭 크게 상처를 받게 될것이니까요.” 리아저씨는 종이로 천천히 눈까풀이며 눈귀며 눈두덩이며 눈섭이며를 닦고 또 닦았다. 종이는 눈물에 젖어 한덩이로 되여버렸다. 리아저씨는 그 종이를 손바닥에 꽁꽁 움켜쥐고는 아무 말도 없이 멍하니 왕천이와 나를 바라보았다. 리아저씨의 흐릿하면서도 눈물에 젖은 두눈을 보면서 나는 말할수 없는 불안에 떨었다. 리아저씨는 힘들게 일어나 차탁을 지나서 둬걸음 걸어가 손에 움켜쥐였던 종이를 쓰레기통에 넣고는 후들후들 문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리아저씨의 손이 금빛의 문손잡이에 닿았다. 리아저씨는 길게 한숨을 몰아쉬더니 큰 결심이나 한듯 머리를 푹 떨구면서 말했다. “미안하구려. 이달안에 집을 리리에게 내주어야겠네.” 그날 나는 점심을 먹은후 왕천과 함께 환락곡에 가서 즐겁게 보낸후 왕부정에 가서 가로등이 반짝이는 밤거리를 거닐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오랜만에 북경에서 사는 느낌을 향수하려고 마음 먹었던것이다. 나와 왕천은 사는게 힘들어 오래동안 북경의 밤거리를 거닐어보지 못했었다. 리아저씨의 불안한 목소리를 타고 내려진 축객령은 다시 우리와 북경이란 지구의 관계에 대하여 생각하게 했다. 우리는 북경이라는 큰 바다에 떠있는 한방울의 기름에 지나지 않았던것이다. 물만두는 식어버리고 마늘은 맑은 식초에 푹 퍼져있었다. 집안에서는 사람을 토하게 하는 혼탁한 기운이 흐르고있었다. 나는 침대머리에 앉아 머리를 쳐들어 태양이 하얗게 변했다가 다시 담홍색으로 물들고있는 장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방안은 차츰 피빛으로 물들고있었다. 멀리서 보이는 기중기는 웬 일인지 작업을 멈추고 각양각색의 자세를 취한채로 석양의 어둠속에 자취를 감춰가고있었다. 왕천은 술에 취한 사람처럼 침대에 쪼크리고 앉아 연신 중얼거리고있었다. “씨팔, 내 집!” 멀리 보이는 거리에 가로등이 밝아서야 나는 마치 꿈속에서 깨여나기라도 한듯이 몸을 일으켜 전등을 켰다. 나는 차탁우에 놓여져있는 물만두를 주방으로 가져간후 간단히 설겆이를 했다. 그후 행주를 들고 나와 허리를 굽혀 차탁을 닦았다. 작은 물방울들이 차탁우에 올려놓은 유리를 적시고있었다. 물방울은 닦고닦아도 여전히 유리우에 맺혀있었다. 유리우의 물방울은 워낙 깨끗이 닦을수 없는 모양이였다. 나는 문뜩 행주질을 멈추고 막연하게 천정을 쳐다보았다. 눈앞이 흐려졌다. 눈물이 앞을 가리우는듯싶었다. 그때 왕천이 중얼거렸다. “흥, 리리. 그 실팍한 몸뚱이를 거리에 내던져도 누가 한눈 팔지도 않을걸. 사진으로만 보아도 그는 십중팔구 시집을 가지 못할 물건이였지. 그 사천남자는 도대체 무슨 놈의 눈이란 말인가? 리리 같은 녀자를 데리고 도망을 다 치다니. 아마 약을 잘못 먹어도 단단히 잘못 먹었을거야.” 왕천이 리리를 욕질하고 저주하는 사이에 나는 방안을 깨끗이 청소하였다. 잠시 할 일이 없게 된 나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러자 가슴속 밑자락으로부터 갑자기 말 못할 서러움이 꾸역꾸역 솟아올랐다. 왕천의 입은 여전히 쉬지 않고 리리를 욕해대고있었다. 마치도 리리가 우리의 집을 빼앗기라도 한것처럼 말이다. 나는 왕천의 욕설이 어느때 가서야 끝날가고 생각해보았다. 그러다가 왕천이 나의 위안을 기다리고있는것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아통이 터졌다. 나는 침대머리에 놓여져있는 베개를 주어 왕천에게 던지며 소리쳤다. “궁시렁거리지 말구 우리 이제 어디로 이사갈지나 생각해봐.” 갑자기 베개에 얻어맞은 왕천은 잠간 멍해있다가 해면베개를 주어 가슴에 대고는 낯선 사람을 바라보듯이 나를 뜯어보는것이였다. 한참후 왕천은 자신없이 이렇게 말했다. “그러게. 인젠 우리 어디로 가야 하나?”   비가 내렸다. 서늘한 비줄기가 얼기설기 기승스럽게 퍼붓고있었는데 마치도 뽀얀 안개를 방불케 했다. 비줄기가 나의 시선을 가로막아 나는 더 이상 1509호실의 깜찍한 창문을 제대로 볼수 없었다. 비속에서 거리며 차들이며 층집들이 모두 몽롱하게 나의 시야로 찾아들었다. 거리에서는 각양각색의 우산들이 춤추듯 오고갔다. 우산아래의 사람들은 비때문에 조금도 걸음에 영향을 받는것 같지 않았다. 어쩌면 더 여유롭게 비를 즐기는것 같았다. 비속에서 움직이는 행인들의 모습은 마치도 선경속에서 노니는것 같았다. “인간세상”홀이 차츰 사람들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나의 좌우와 앞뒤에 모두 손님들이 모여들었다. 나는 허리를 꼿꼿이 살려 출입문쪽을 바라보았다. 왕천이 들어와서 첫눈에 나를 알아보지 못할가봐 근심이 되는듯싶었다. 나는 이미 “인간세상”에 홀로 한시간이나 앉아있었던것이다. 나의 마음속에는 워낙 왕천이에 대한 분노가 가득 쌓여있었다. 하지만 1509호실에 대한 회억으로 그에 대한 한가닥 련민이 생겨났다. 내가 다시 시계를 내려다볼 때 왕천은 이미 내앞에 와 앉아 두손을 들어 흐트러진 긴 머리칼을 쓸어넘기고있었다. 차디찬 물 두방울이 나의 얼굴에 내려앉았다. 어쩌면 두방울의 눈물 같이 느껴졌다. 나는 그 물방울을 닦지 않았다. 왕천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오래 기다렸니?” 나는 잠간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아니, 나도 금방 왔어.” 나는 우리의 상봉을 얼마나 많이 그려보았는지 모른다. 그때마다 나는 상상속에서 그한테 덮쳐들어 귀뺨을 몇대 갈겨주고는 그의 해석도 듣지 않고 몸을 돌리군 했었다. 그때 왕천이가 뒤에서 나의 이름을 부르면서 달려오면 더 멋질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정작 왕천이 진짜로 내앞에 앉아있는 순간 나는 저도 모르게 코끝이 시큼해오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왕천의 얼굴은 많이 수척해있었고 표정도 너무 따분해보였다. 그리고 더욱 나를 아연하게 하는것은 그의 몸에서 지독한 술냄새가 풍긴다는것이였다. 왕천은 담배를 꺼내여 불을 붙였다. 매캐한 담배연기는 지독한 술냄새와 섞여 나를 습격해왔다. 갑자기 토하고싶어졌다. 나는 급히 코와 입을 감싸쥐였다. 그러자 왕천이 담배불을 비벼끄려고 서둘렀다. “먼저 밥을 먹자.” 왕천이 손을 흔들어 복무원을 불렀다. “어향육사(鱼香肉丝)”와 도마도닭알볶음을 청했다. 이것은 전에 내가 즐겨 먹던 료리였다. 왕천은 또 이과두(二锅头)술도 한병 청했다. 내가 놀라운 눈길로 왕천을 뚫어지게 건너다보자 그는 수집은듯 나를 보면서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나 인차 술을 끊을거다. 이건 마지막 한번이야.”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왕천에게 “너 원래 술을 마시지 않잖니?” 하고 물으려다가 입술까지 나온 말을 도로 삼켜버렸다. 그가 지금 어떻게 살고있든지 나하고 무슨 상관이람. 그는 담배 한가치를 꺼내들었다가 문뜩 나를 의식했던지 흘끔 내쪽을 훔쳐보고는 도로 넣어버렸다. 그의 손가락은 여전히 하얗고 가늘었는데 피뜩 보면 어떤 동물의 발을 련상시킬수 있을것 같았다. 상우에 올려놓은 두손이 갑자기 푸들푸들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왕천은 두손을 한데 모아쥐고 극력 떨림을 통제하려고 했다. 그러자 두손만 아니라 어깨까지 부들부들 떠는것이였다. 나는 그러는 왕천의 몰골을 건너다보면서 말했다. “담배 피우고싶으면 피워라, 이곳은 그러잖아도 담배연기천진데 뭐. 네가 피우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은 피우고있잖니?” 왕천은 감격스러운듯 나를 향해 머리를 끄덕이더니 급히 담배를 꺼내여 불을 붙이고 걸탐스럽게 빨아댔다. 순간 담배불이 빠알갛게 달아오르더니 한참이나 반짝반짝 빛을 뿌렸다. 왕천은 그렇게 빨아들인 담배연기를 오래도록 입안에 물고있다가 후- 내뿜었다. 하지만 그때 담배연기는 보이지 않고 연한 입김 같은것이 몇오리 흘러나올뿐이였다. 그러자 왕천의 눈은 처음보다 훨씬 정기가 돌았다. 왕천이 물었다. “너 잘 지내고있지?” 남들이 보건대 나는 확실히 잘 지내고있다 할수 있었다. 지금의 남자친구가 나를 보배마냥 아껴주고있었던것이다. 남자친구는 한 녀자가 필요로 하는 모든것을 소유하고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집, 승용차,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능히 생활의 공포를 느끼지 않아도 될만한 저축도 가지고있었다. 반면에 그는 “전 안해”와 15살 나는 아들도 가지고있었다. 나는 그에 대하여 만족한다고 할수도 없었고 또 만족을 하지 않는다고 할수도 없었다. 불만족 되는게 없으면 만족된다고 할수도 있는것이였다. 궁금해서 죽겠다는듯한 왕천의 눈길을 바라보면서 나는 얼굴에 가벼운 웃음을 띠우고 한마디 했다. “그럼, 잘 지내고있지.” 나의 대답에 실망했는지 왕천은 얼굴에 약간 그늘을 지으며 머리를 돌려 창밖을 내다보는것이였다. 비가 세차게 내리고있었다. 큰 비방울들이 총알처럼 땅에 내리꼰지고있었다. 행인들은 비를 피해서 황망히 어디론가 뛰여가고있었다. 급히 거리를 가로질러 뛰여가던 한 남자가 갑자기 달려오던 승용차와 부딪쳐 허망 공중으로 솟아올랐다가 옆에서 달리던 다른 승용차우에 풍덩 떨어져내렸다. 그 사람은 큰 새마냥 두팔을 쩍 벌리고 자석에라도 끌리듯 그 승용차우에 떨어져 철썩 붙어버리는것이였다. 하지만 달리던 승용차는 멈출줄을 모르고 여전히 그 속도로 비속을 달려 잠간새에 시선에서 사라져버렸다. 왕천은 막연한 눈길을 돌리더니 다시 머리를 푹 숙이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정말 오랜 시간이 흘렀구나. 생각 못했어.” 나는 왕천의 말뜻을 제대로 리해하지 못하고 의아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왕천이 아래말을 이었다. “그때 네가 떠나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니?” 순간 나는 폭발하고말았다. 이것이 그래 당년에 그가 아무 예고도 없이 나를 떠나버린데 대한 해석이란 말인가?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떠난게 아니였지. 응당 네가 인간세상에서 증발해버렸다고 해야지.” 왕천의 얼굴에 고통스러운 웃음이 비꼈다. “그때 나는 집을 얻어보려고 떠난것이였어. 너 내가 쓴 쪽지를 보지 못했니?” 나는 너무도 분해서 부르르 떨면서 소리쳤다. “그래 넌 나를 그곳에서 기다리라고 했니?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는 그 작은 방안에서?”   만약 왕천이 그렇게 화제를 그 시절로 돌려가지 않았다면 나는 어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던 두칸짜리 그 집을 기억해내지 못할수도 있을것이였다. 하지만 그 시각, 그 남자의 거슴츠레하고 느끼하던 눈길을 떠올리노라니 나는 가슴속으로부터 말 못할 괴로움이 꾸역꾸역 괴여오르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 사람은 그야말로 돼지대가리 같은 얼굴에 느끼한 두눈을 가진 호색한이였다. 나와 왕천이 간단하게 짐을 꾸려가지고 그 집 문안에 들어서는 순간, 그 사람은 나의 머리로부터 발끝까지 뚫어져라 부담스럽게 살펴보는것이였다. 나중에는 그의 눈길은 다시 나의 풍만한 엉뎅이에 와서 멈추었다. 무엇이나 꿰뚫어볼듯한 그의 눈길앞에서 나는 실 한오리 걸치지 않은듯 불안하게 몸을 떨었다. 나는 황망히 적삼목깃을 우로 당겨올렸다. 그러자 그 사람은 더욱 흥분되여 거슴츠레한 두눈을 련속 슴벅거리는것이였다. 하지만 순진한 왕천은 그때 그 사람의 엉큼한 심보를 보아내지 못하고 되려 나에게 그를 “장오빠”라고 부르라고 귀띔했다. 그 사람은 40여살쯤 되여보였는데 우리와 함께 집을 쓸 사람이였다. 그는 자기의 딸 정도밖에 안되는 가냘프게 생긴 녀자애와 함께 남쪽 방을 쓰고있었다. 우리는 북쪽에 있는 해볕이 잘 들지 않는 방에 들게 되였다. 그때 우리의 수입으로는 그런 방에 들수 밖에 없었던것이다. 그게 싫다면 농촌으로 돌아가는수 밖에 없을것이였다. 나와 왕천은 둘 다 본능적으로 농촌에 대하여 거부반응을 가지고있었다. 하기야 나도 왕천이도 모두 농촌에서 왔기때문이였다. 고중시절에 그처럼 목숨을 걸고 대학입시를 본것도 사실은 그 농촌을 벗어나기 위한것이였다. 이미 대학까지 졸업한 마당에 나도 왕천이도 절대 농촌으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았던것이다. 북경근교의 농촌에 집을 잡는것마저 우리는 인생의 비애로 간주하고있었던것이다. 우리가 짐을 방에 옮길 때 그 남자는 과분한 열정을 보였다. 하지만 나는 그 남자가 실팍한 몸집을 의식적으로 내 몸에 비비는것이 죽도록 싫어났다. 왕천이 몸을 돌리기만 하면 그 남자는 눈을 끔뻑하면서 나에게 윙크를 보냈다. 어쩌면 오래전부터 나와 아는 사이이기라도 한듯싶었다. 그 남자와 함께 사는 가냘프게 생긴 녀자는 비스듬히 문턱에 기대여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면서 적의에 찬 눈길로 나를 쏘아보고있었다. 그날 밤은 달빛이 아주 좋았다. 나는 오래도록 혼탁한 공기에 절어버린 어슴푸레한 달빛만 보았었지 그처럼 밝은 달은 본적이 없는것 같았다. 왕천은 그날 밤, 글을 쓰지 않고 진작 나의 옆에 누워있었다. 우리는 누구도 입을 열지 않고 처량한 마음으로 1509호실에서의 랑만적인 하루하루를 그리고있었다. 1509호실을 떠나면서 나는 마지막으로 방안을 깨끗이 청소했다. 그번 청소는 어쩌면 우리가 1509호실에 들어가서 제일 참다운 한차례라고 할수 있을것 같았다. 나는 집안의 구석구석을 샅샅이 걸레질을 해서 먼지 하나 숨어있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그것은 이제 들어올 리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제 곧 그곳을 떠나야 하는 나를 위해서였다. 문밖에서 끌신을 끄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렸다. 소리로 보아 한두 사람이 아니라 십여명이 동시에 오가는듯싶었다. 나는 두눈을 지그시 감고 끌신소리가 끝나기를 내심하게 기다렸다. 얼마나 오래 지났던지 끌신소리가 요행 끝나버렸다. 내가 금방 잠이 들려는데 왕천이 조용히 일어나 책을 번져들었다. 그와 동시에 밖에서 한 녀인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마치도 우리가 그 어떤 살인현장에 와있는것처럼 오싹한 분위기를 조성해주었다. 나와 왕천은 약속이나 한듯 벌떡 자리를 차고 일어나 앉았다. 녀자의 고함소리는 그 남자네 방에서 울려나오고있었다. 비록 그 방과 우리 방은 문을 두개나 사이두고있었지만 녀자의 목소리는 마치도 우리 방에서 들리는듯 그처럼 똑똑했다. 나와 왕천은 소리없이 눈길을 주고받았다. 그 남자와 녀자가 싸우는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니 싸우는것 같지도 않았다. 녀자는 그렇게 소리를 질러댄후 차츰 신음소리를 내는것이였다. 따라서 침대머리가 힘있게 벽을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왕천은 어처구니가 없다는듯 시무룩이 웃음을 빼여물었다. 그는 손에 들었던 책을 한쪽에 훌렁 던지고는 급히 나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하지만 나는 왕천이와 달리 기분이 엉망으로 치달아오르고있었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나의 가슴을 더듬는 왕천의 손을 쳐버렸다. 이튿날아침, 우리는 출근을 서두르다가 그 남자가 객실에 퍼더버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는것을 보게 되였다. 그 남자는 나를 보더니 얼굴에 웃음을 가득 담고 두눈을 슴뻑거려보이는것이였다. 나는 온역을 피하기라도 하듯이 바삐 문을 밀고 나왔다. 공공뻐스에 앉았지만 나는 여전히 거슴츠레하고 느끼한 눈길이 나의 뒤를 뚫어져라 지켜보는듯하여 온몸이 부자연스러웠다. 나는 왕천에게 메쎄지를 보냈다. “나 그 집에서 살기 싫어.” 왕천이 인차 답장을 보내왔다. “나도 그 집이 싫어.”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에서 대흥의 새로운 아빠트에다 분회사를 설립한다고 했다. 나는 기회를 놓칠세라 그쪽으로 가겠다고 신청했다. 내가 이 소식을 알렸을 때 왕천은 순간 멍해지는것이였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해?” “함께 옮겨가는거지. 그 부근에서 세집을 찾으면 되는거지 뭐. 그래도 너의 창작은 지장이 없잖아?” 왕천은 내 말에 매우 흥분해하면서 그 남자를 찾아가 남은 방세를 돌려달라고 청을 들었다. 하지만 그 남자는 견결히 반대해나섰다. 금방 이사를 들어온지 며칠이 지나지 않았는데 어찌 이런 일이 있을수 있느냐 하는것이였다. 나중에 그 남자는 나가든지 말든지 관계는 않겠으나 계약금과 남은 집세는 돌려줄수 없다는것이였다. 왕천은 돌아와서 절대 그 자식을 용서할수 없다면서 분개해 말했다. “너 먼저 회사의 숙소에 들어가 살아라. 나는 보증코 이 집에서 계약이 끝날 때까지 살거다. 하루라도 그 자식을 득을 보게 할수야 없지.”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왕천은 이 말을 할 때 벌써 나를 떠나려고 마음 먹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때 나는 순진하게도 그의 말에도 일정한 도리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동시에 세집 두개를 쓴다는것은 어느 모로 보아도 정상적인 일이 아니였던것이다. 분회사의 실무는 본 회사에 있을 때보다 엄청 더 분망했다. 분회사나 나나 다 이 지역에서는 아직 그 어떤 믿음도 얻지 못하고있었던것이다. 하기에 모든것을 령으로부터 시작해야 했다. 나는 매일 16시간 이상 일을 했다. 하루종일 집면적을 재고 설계도를 그리고 업주들에게 설계도를 해석하고 설계도를 수정하느라면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모를 때가 많았다. 매일 밤, 침대에 누울 때면 언제나 다리며 발등이 퉁퉁 부어있었다. 어느날, 나는 우연히 왕천이 보내온 메시지를 받았다. “여보, 당신이 그립소.” 나는 간단하게 회답을 했다. “나 지금 바빠.” 그때로부터 왕천의 메시지가 차츰 적어졌다. 그새 왕천은 회사에 와서 나를 한번 보고 갔다. 그날 나는 한 업주와 설계도를 토론하고있었다. 그 설계도는 이미 그 업주와 세번이나 토론하고 수정을 한것이였다. 하지만 그 업주는 여전히 꼬치꼬치 따져가면서 흠집을 찾고있었다. 나는 점점 정서가 저락되여갔고 당금이라도 그 업주라는 사람의 따귀를 올리붙이고싶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내 얼굴에 웃음을 쥐여바를수 밖에 없었다. 하기에 나의 미소는 언제나 습관적으로 굳어져있었는데 어찌 보면 웃는 가면을 뒤집어쓴듯해보였다. 얼굴근육이 뻐근해날 때면 나는 나의 직업을 두고 얼마나 원망했는지 모른다. 나는 늘 자신이 컴컴한 동굴속을 걷는듯한 착각을 하군 했다. 나는 한시바삐 그 동굴을 헤여나오기 위해 진종일 악을 쓰고있다고 생각하고있었다. 나는 가면을 벗어버리고 찬란한 해볕을 향수하고싶었다. 마음껏 시원한 공기를 마시고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였다. 나는 매일 그 지지리도 힘든 동굴을 헤집고있었던것이다. 그날, 왕천은 복잡한 사무실에 앉아서 수시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비켜주다가 나중에는 아예 벽에 붙어서있었다. 그 가련한 모습은 누군가에 의해 던져진 마네킹 같아보였다. 왕천은 내가 조용히 앉아서 자기와 말할 계제가 못되는것을 보고는 어느 순간인가 조용히 자리를 떠나버렸던것이다. 그무렵, 나는 여전히 사무실에서 업주들에게 억지로 웃음을 지어보이고있었다. 그러다가 문뜩 머리를 쳐드는 순간, 창문을 통하여 멀어지는 왕천의 뒤모습을 보게 되였다. 왕천의 길다란 머리칼은 바람에 날려 마구 헝클어져있었다. 살 때 몸에 잘 어울리던 적삼이 훌렁해져서 마치 되는대로 마대쪼각을 몸에 걸친듯해보였다. 워낙은 꼿꼿해보이던 등이 굽어서 목이 더 길어보였는데 걸음을 걸을라 치면 온몸이 휘청거리기까지 했다. 아빠트경비실문앞까지 간 왕천은 머리를 돌려 나의 사무실이 있는쪽을 바라보고있었다. 나는 또 한번 코끝이 찡해났다. 생각 같아서는 뛰여내려가 그를 끌어안고 한바탕 통곡이라도 하고싶었다. 그날 밤, 나는 악몽을 꾸었다. 꿈속에서 본 환경은 그렇게도 눈에 익어보였다. 나는 어느 소택지에 서있었다. 주변은 짙은 안개에 싸여있었다. 나는 미동도 없이 그렇게 서있었다. 움직이기만 하면 소택지에 빨려들어갈가봐 두려움에 떠는듯싶었다. 공포가 극에 달하자 나는 그만 히스테리적으로 소리를 지르고말았다. 하지만 누구도 화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너무도 조용해서 내가 마치 창세기전에 돌아가있는듯싶었다. 내가 절망에 달해 그 자리에 넘어지려는 찰나 눈앞에 가늘고 흰 손이 보였다. 그 손은 자욱한 안개속에서 나의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너무도 기뻐서 와락 그 손을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 손은 나를 피해 천천히 들려지더니 이어 가볍게 흔들리는것이였다. 너무나도 처량한 리별의 순간을 연출하고있었던것이다. 꿈에서 깨여난 나는 급히 왕천에게 전화를 했다. 왕천의 핸드폰은 이미 꺼진 상태였다. 하지만 나는 그때 그의 핸드폰이 그렇게 영원히 꺼져버릴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나는 두눈을 퀭하니 뜨고 날이 샐 때까지 침대에 앉아있었다. 내가 남 5환에서 차를 갈아타고 북 5환에 도착하여 왕천이가 혼자 남아있는 그 세집으로 갔을 때 나를 맞아주는것은 그 남자의 거슴츠레하고 느끼한 눈길과 갸날픈 몸매의 그 녀자가 내쏘는 적의에 찬 눈길이였다. 왕천은 이미 그 집에 살고있지 않았던것이다. 내가 우리가 살았던 북쪽의 그 방에 들어가보니 찢어진 원고지가 방안을 가득 메우고있었다. 왕천의 심혈이 슴배여있는 원고지는 갈기갈기 찢어진채 그렇게 죽어있었던것이다. 찢어진 원고지를 밟고 선 나의 두발은 마치도 차디찬 얼음우에 맨발로 서있는듯한 느낌이였다. 내가 가져가지 않은 옷가지들은 정연하게 포개져 행리가방에 들어있었다. 대학으로부터 줄곧 나를 따라다녔던 그 행리가방은 먼지 한점 없이 깨끗하게 닦아져 연한 빛까지 뿌리고있었다. 가방손잡이에 쪽지 한장이 끼워져있었다. “여보, 너무 힘들지? 내가 노력해서 꼭 집을 마련할게. 그래서 당신을 편하게 할게. 기다려줘.”   비가 멎었다. 방금 비물에 말끔히 씻겨진 층집이며 거리는 이슬을 머금은듯 반짝반짝 빛이라도 뿌리는듯싶었다. 공기속에서 향긋하면서도 달콤한 냄새가 솔솔 풍기는것 같아 막혔던 가슴이 확 뚫리는듯했다. 나와 왕천은 “인간세상”문앞에 서서 리별을 준비하고있었다. 식사를 하는 내내 왕천은 묵묵히 혼자서 술잔만 기울였다. 술잔을 들 때마다 왕천은 습관적으로 “이건 마지막 잔이야. 내 말을 믿어.”라고 말했다. 술을 입에 털어넣은후 왕천은 술잔을 내려놓고 다시 고통스럽게 두손을 비벼댔다. 손등에 퍼런 힘줄이 불뚝불뚝 불거져올랐는데 그것은 빚어놓은 동상을 방불케 했다. 왕천은 그렇듯 힘들게 속으로 몸부림치고있는듯싶었다. “정말 오랜 시간이 흘렀구나. 생각 못했어.” 왕천은 마사진 축음기를 풀어놓은듯 여전히 이 말만 반복했다. 그때 왕천은 근본 자기앞에 앉아있는 내가 누구인지를 생각하는것 같지 않았다. 어쩌면 그때 자기앞에 누가 앉아있더라도 그는 역시 그 말만 되풀이할것 같았다. 그때 왕천의 몸에서는 알콜냄새가 지독하게도 풍겼는데 마치도 알콜에 불궈놓은 시체표본에서 풍기는 냄새 같았다. 그 냄새는 나에게 구토가 나게 했다. 나는 도무지 음식을 넘길수가 없었다. 나는 창밖을 내다보면서 비가 빨리 끊기를 바랐다. 비가 곧 끊을무렵에 왕천은 술병굽에 조금 남은 마지막 몇방울의 술을 쏟아내고있었다. 57도의 알콜농도를 가지고있는 술, 우수한 연료라고도 할수 있는 그 술이 왕천의 배에 모두 들어가버린것이다. 나는 언젠가 중의안마사가 안마를 하는 장면을 본적이 있는데 그때 그의 옆에 놓여져있는 “이과두(二锅头)”술을 담은 사발에서는 파란 불이 펄펄 날리고있었다. 안마사는 그 사발에서 불 한웅큼을 쥐여서 환자의 등에 발랐다. 파란 불은 환자의 등에서도 혀를 날름거리고있었다. 왕천은 술이 모자라는듯 술병을 꺼꾸로 들어 눈앞에 가져다댔다. 마치도 망원경을 집어다 눈앞에 대고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밝혀내겠다고 모지름을 쓰는것 같았다. 나는 그때 왕천의 눈에 보이는것이 꼭 혼탁하고 몽롱한 세계일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어떤 세계이든간에 왕천이가 관심하는것은 병굽에 아직 남아있는 몇방울의 술일것이였다. 그것이 바로 내앞에 앉아있는 진실한 왕천이였다. 그 모습은 나에게 더 이상 그를 증오한다는것조차 부질없는짓이라는것을 알려주었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왕천은 여전히 두손으로 술병을 움켜쥐고있었다. 그는 두눈을 퀭하니 뜨고 나를 바라보더니 한마디 했다. “우리 집에 가볼가?” 나는 길옆에서 택시를 세우려고 손을 저었다. 그때 왕천은 나한테로 다가와 와락 나의 팔을 부여잡았다. 내가 신경질적으로 홱 팔을 내젓자 왕천은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한쪽에 나가 쓰러지면서 이마를 갓돌에 부딪쳤다. 순간 쿵- 하는 소리는 내가 조심하지 않아 수박을 땅에 떨어뜨렸을 때의 소리를 련상케 했다. 나는 급히 뛰여가 왕천이를 부축했다. 그러자 왕천은 있는 힘을 다해 나의 팔을 부여잡았다. 그때 왕천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굽혀진 나의 팔뚝사이에 깊숙이 들어갔다. 어쩌면 물에 빠져 곧 죽음을 맞게 될 사람이 요행 떠내려오는 막대기라도 잡은듯한 형국이였다. 왕천은 후들후들 겨우 일어나서 다시 쓰러지려는 몸을 나의 몸에 기대고는 왼손을 들어 저쪽을 가리키며 중얼거렸다. “우리 집이 저- 기 있다니까.” 나는 왕천이를 집까지 바래다주려고 마음 먹었다. 한때의 련인사이가 아니라 어쩌다가 본 보통친구라고 해도 왕천의 랑패상을 보고 그대로 지나칠수 없을것이였다. 나는 택시 한대를 잡아서 왕천이를 뒤좌석에 겨우 끌어올렸다. 나는 앞좌석에 올랐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막연하기만 했다. 내가 머리를 돌려 왕천에게 방향을 물으려고 할 때 왕천이 나를 향해 히쭉 웃으면서 말했다. “앞에 있는 길어구에서 왼쪽으로 굽어들면 돼.” 그 말을 할 때 왕천은 근본 술에 취한 사람 같지 않았다. 택시에서 내리는 그 순간부터 나는 마치도 몽환세계에 들어선듯한 그런 느낌을 받았다. 언제나 눈에 웃음기를 살살 바르고 손님을 맞아주던 잡지가게의 주인이며 지하주차장문어구에 앉아있던 절름발이보안원이며 구운 오리목을 팔던 뚱뚱한 아줌마며 과일가게를 지키던 새각시며 그 많은 사람들과 환경은 어느 하나 눈에 익숙하지 않은것이 없었다. 나는 왕천이를 부축하여 아빠트출입문쪽으로 걸어갔다. 왕천은 내가 술에 곤죽이 되였다고 믿는 그 몸뚱이를 한껏 나에게 기대고있었다. 내가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그대로 쓰러져버릴것 같았다. 하지만 실지 그 모양을 보면 왕천이 나를 겨드랑이에 끼고 간다고 할수도 있었다. 나는 그렇게 왕천이와 함께 엘레베터에 올랐다. 엘레베터에는 13층과 12층이 없었다. 12층 다음에는 직접 15층이였다. 엘레베터안에서 얼굴이 편하게 생기고 머리가 하얗게 바래진 할머니가 우리를 향해 머리를 끄덕여보였다. 순간 나는 그 할머니가 전에 주먹만한 깜찍한 강아지를 끌고 다니던 생각이 났다. 그 강아지의 이름은 “란귀비”였다. 어느날 할머니는 그 강아지를 잃어버리고 옹근 아빠트를 다 돌아다니면서 찾았었다. 그 할머니가 우리 집 문을 두드렸을 때 할머니의 얼굴은 온통 눈물투성이였다. 할머니가 입을 열었다. “그놈이 없다면 나도 살수 없을거요.”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내심으로부터 짜릿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자 마치 내가 그 강아지를 훔치기라도 한듯한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때를 생각하면서 할머니에게 물었다. “란귀비는 찾았나요?” 할머니가 의아한 눈길로 나를 건너다보면서 물었다. “누구던가? 그래, 우리 귀염둥이는 지금 집에서 자고있다오. 그놈은 참으로 엉뚱한짓만 골라하거든.” 왕천이 1509호실 문을 열었을 때 나는 철저히 놀라버리고말았다. “여보, 당신이 이 집을 그렇게도 좋아했었지? 지금 이 집은 당신것이요.” 하얀색옷궤는 여전히 벽에 붙어있었다. 옷궤문의 한쪽 손잡이가 떨어져있었는데 그것은 전에 내가 너무 힘들여 당겨 떨어진것이였다. 그때 잠시 맞는 나사못이 없어서 그 손잡이를 다시 달지 못했던것이다. 천을 씌운 쏘파는 여전히 문가의 그 구석쪽에 놓여져있었다. 오른쪽 팔걸이에는 테프가 붙여져있었는데 그것은 전에 왕천이 담배를 피우다가 조심하지 않아 구멍을 내서 붙인것이였다. 침대머리에 설치된 전등갓은 왼쪽이 흰색이고 오른쪽이 빨간색이였다. 왕천이 침대에 누워서도 책을 보기에 특히 그렇게 생긴 등갓을 고른것이였다. 컴퓨터상에는 여전히 나의 사진이 놓여져있었다. 사진속의 나는 마치도 그 집의 주인이라도 되는듯 집안의 모든것을 둘러보고있었다. 그 사진은 내가 대학교 교정 뒤산의 언덕에서 찍은것이였다. 나는 두손을 등뒤로 한채 짐짓 신중한 기색을 띤 얼굴로 왕천의 손에 쥐여져있는 사진기를 응시하고있었다. 모든것이 그대로였다. 1509호실은 내가 문을 나서는 그 순간부터 그렇게 굳어져버린듯싶었다. 그렇게 굳어져서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린듯싶었다. 저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나의 두볼을 타고 줄줄 흘러내렸다. 왕천이 으스러지게 나의 어깨를 부여잡았다. 나는 왕천의 그 손길을 거절하지 않았다. 나의 눈물은 그대로 왕천의 가슴을 적시고있었다. 왕천은 가볍게 나의 등을 도닥이며 울먹거렸다. “정말 오랜 시간이 흘렀구나. 생각 못했어.” 나는 별안간 주먹을 들어 왕천의 가슴을 탕탕 두드렸다. “너 그새 도대체 어디로 갔던거야?” 그렇게 왕천의 가슴을 두드리고있노라니 그동안의 억울함이 눈물과 함께 뚤렁뚤렁 떨어져내리는듯싶었다. 왕천은 나를 끌어안았던 손을 스르르 풀더니 비틀거리면서 침대가로 다가가 앉았다. “모든게 좋아졌다. 우리에게 집이 있게 되였다. 이제부터 너는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날마다 너를 볼수 있게 되였다.” 왕천은 갑자기 말을 끊더니 구역질을 했다. 나는 급히 화장실에 달려들어가 쓰레기통을 가지고 다시 침대가로 다가갔다. 그때 왕천은 침대궤에서 술 한병을 들춰내여 병채로 꿀꺽꿀꺽 마셔대고있었다. 나는 급히 술병을 빼앗으며 소리쳤다. “너 죽으려고 그러니?” 왕천은 손을 뻗어 술병을 잡으려다가 내 몸에 부딪쳐 한쪽으로 훌렁 넘어져서는 힘들게 말했다. “여보, 래일부터 나 정말 술을 끊을거야. 나를 믿어줘.” 어쩌면 집안의 모든것이 하나도 변한것이 없는듯싶었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그래도 변한것이 있었다. 베란다에 참대로 만든 흔들의자가 놓여져있었던것이다. 방금 누가 앉았다가 일어난듯 의자는 가볍게 흔들리고있었다. 집안이 매우 깨끗한듯했지만 사실 집안은 구석구석 먼지투성이였다. 하여 어디를 다쳐도 선명하게 자국이 남았다. 방안의 공기도 매우 혼탁했다. 술냄새만이 아니였다. 그외에도 무엇인가 한창 썩어가고있는것 같았다. 구석구석에 술병이 숨어있었다. 소주병, 맥주병, 와인병… 없는것이 없었다. 차탁이며 침대궤며 주방궤며 랭장고며 지어는 화장실에도 술병이 있었다. 왕천은 침대에 쓰러져 가볍게 코를 골고있었다. 나는 창문이며 출입문을 열었다. 습윤한 공기가 집안으로 흘러들어왔다. 나는 화장실에서 비자루와 쓰레받기를 찾아들었다. 그것들에는 얼기설기 거미줄이 늘여져있었다. 나는 먼저 그것들을 깨끗이 씻은후 집안 청소를 시작했다. 나는 밀걸레를 어느 정도의 각도로 해야 바닥을 제일 깨끗이 닦을수 있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그리고 또 비자루를 어느 정도 눕혀 쓸어야 먼지가 일지 않는다는것도 알고있었다. 이곳은 전에 나의 무대였었다. 하기에 나는 이 무대의 구석구석에 대하여 손금보듯 알고있었다. 종려색의 나무장판이 나의 손끝에서 반짝반짝 빛을 내기 시작했다. 나와 이 집의 관계를 잠시 잊은듯싶었다. 어쩌면 내가 줄곧 이 집에서 살고있었던듯싶기도 했다. 하지만 너무도 일상이 바빠서 이 집을 제때에 청소하지 못한줄로 생각하는것 같았다. 나는 흥얼흥얼 코노래까지 불렀다. 그 노래는 전에 왕천이 동학들과 함께 나의 숙소아래에서 부르던 그 노래였다. 문뜩 핸드폰에 메시지가 들어오고있었다. 남자친구가 보내온것이였다. “여보, 일이 끝났어?” 가슴에서 뭔가가 떨어져내리는듯했다. 손에서 맥이 풀려나갔다. 밀걸레가 스스로 손에서 떨어져나갔다. 침대에 누워있는 왕천이를 바라보았다. 그때 왕천이는 여전히 잠들어있었다. 나는 핸드폰을 컴퓨터상에 올려놓고는 다시 밀걸레를 찾아들었다. 그때 밀걸레는 전보다 훨씬 더 무겁게 느껴졌다. 객실청소를 끝낸후 나는 주방청소를 했고 이어서 화장실청소도 했다. 청소를 하면서 나는 줄곧 나와 나의 남자친구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과연 그 사람을 사랑하는것일가? 쓰레기는 구석쪽에 모아놓았는데 큰 비닐봉지로 세개나 되였다. 나는 주방궤 왼쪽의 제일 아래 서랍에서 비닐봉지를 더 꺼내려고 했다. 전에 나는 슈퍼마케트에서 물건을 담아온후 비닐봉지를 깨끗이 씻어서 차곡차곡 그곳에 모아두었던것이다. 나는 서랍을 당겨 열었다. 잘 정리되지 않은 비닐봉지들속에 빨간 증서 하나가 숨어있었다. 그것은 결혼증서였다. 나는 허리를 굽혀 결혼증을 주어 펼쳐보았다. 나의 눈에 안겨든것은 왕천과 한 녀자였다. 결혼증사진속의 왕천은 잔뜩 얼굴을 찌프리고있었다. 리가리라고 부르는 그 녀자는 더구나 얼굴에 수심이 가득 끼여있었다. 어쩌면 결혼증에 붙일 사진을 찍을 때 둘이 다투기라도 한듯싶었다. 사진사가 꼭 그들을 웃게 하려고 노력했을거지만 필경 그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을것이였다. 순간 나는 머리속이 하얗게 바래지는것 같았다. 아빠트의 제일 꼭대기에서 그대로 날아떨어지는듯한 환각이 들었다. 잠간 정신을 추스리고난 나는 다시 서랍을 뒤져보았다. 북경제3병원에서 떼준 병력카드가 있었다. 카드에 적힌 글은 도무지 내가 알아볼수 없을만치 갈겨쓰이여있었지만 나는 용케도 그중에서 “암”, “화학치료”라는 몇 글자를 읽어낼수 있었다. 나는 차디찬 벽에 간신히 기대여섰다. 하지만 몸은 점점 땅으로 미끄러져내렸다. 나는 바닥에 퍼더버리고 앉았다. 흰 타일은 인차 나의 엉뎅이를 차겁게 했다. 속은 아리다 못해 백쌍의 마귀손이 마구 헤집고 다니는것 같았다. 나는 뭐라고 소리치고싶었지만 끝내는 소리가 입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소리를 칠 힘마저 없었다. 핸드폰이 울렸다. 나는 애써 몸을 일으킨후 후들후들 떨리는 손으로 벽을 짚으며 겨우 컴퓨터상앞으로 다가가 핸드폰을 찾아들었다. 남자친구에게서 온것이였다. 나는 흠칫 몸을 떨면서 급히 거절버튼을 눌렀다. 왕천이 침대에서 가볍게 몸을 비틀며 웅얼거렸다. “여보, 여기 와. 내 한번 보자구.” 나는 남자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립수교에 있어요. 절 데리러 와주세요.” 깨끗하게 정리된 방은 내 마음에 꼭 들었다. 방안의 공기도 달콤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내가 비닐봉지에 넣은 쓰레기는 여전히 방 한구석을 지키고있었다. 나는 이제 내가 이 집에서 나갈 때 꼭 그 쓰레기를 던질것이며 문이나 창문도 잘 닫아놓을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깊이 잠든 왕천이에게 포근히 담요를 덮어주었다.     류대(留待), 본명 곽귀종. 1970년 출생. 산동성 고당현 사람. 1989년부터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 장편소설 《소리, 색》과 중, 단편 소설 여러편이 있음. 현재 북경의 모 잡지사에서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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