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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15 ]

15    작가의 눈으로 본 삶의 현장*최문섭 댓글:  조회:1413  추천:0  2012-05-11
작가의 눈으로 본 삶의 현장 최문섭 최동일선생은 우리 아동문학분야에서 중견작가의 한 사람으로 주목받으며 최근에 왕성한 창작활동으로 독자들의 이목을 한몸에 모으고있다. 지난해 그는 짧디짧은 몇달동안에 중편소설 “선녀를 찾아주세요”와 장편소설 를 련이어 내놓아 문단을 놀래우더니 금년에는 또 아동소설집 을 들고 나왔다. 막혔던 물목이 터지듯이 실로 그는 중견작가의 패기로 넘치는 창작력을 과시하고있다. 그는 평소에 조용히 웃으면서 말없이 일 잘하는 스타일로 우리 앞에 다가선다. 그는 오랜 기간 방송인으로, 텔레비죤방송국 청소년부 주임으로 맹활약을 하면서 편집진을 이끌고 청소년들이 즐겨보는 프로제작에 동분서주하다나니 창작의 여가를 타기 힘들었었다. 지난해부터 그는 연변작가협회 아동문학창작위원회의 주임, 연변인민출판사분예부 주임의 중임을 짊어지고 무거운 사명감으로 맡은바 직무에 충실하면서 때를 만나 분출하는 화산마냥 자기의 창작저력을 한껏 뽐내고있다. 그의 소설작품에는 어린이들의 현실생활이 진한 바탕으로 깔려있다. 아동소설 “정말 싫다”에서는 소학교에서의 마지막 6.1절을 파출소에서 보낸 빈이의 가슴아픈 형상을 보여주고있다. 어머니가 한국으로 일하러 간 후 빈이의 아홉살 하늘은 외로움의 하늘이였다. 6.1절날, “우에서”오는 “손님” 때문에 아버지는 해마다 빈이와 약속한 공원놀이도 가지 않는다. 하여 빈이는 번마다 PC방에서 6.1절을 보낸다. 5년후 어머니가 한국에서 돌아왔지만 아버지와의 끊임없는 다툼으로 가정불화는 점점 커만 간다. 그 싸움은 나중에 “민이가 아니면은...”하는 데로 돌아간다.(내가 아니면 저들이 어떻게 살건데, 내가 없어지면 저들은 시름이 놓이겠지...) 이렇게 생각한 빈이는 6.1절날 아버지 어머니가 싸움하고 집을 나간후 마침내 가출을 한다. 하지만 민이는 역전 매표구앞에서 웬 아이와 싸움질을 한것으로 파출소에 련행 된다. 이 소설에서 작자는 출국붐으로 하여 야기되는 가정불화, 그 불화속에서 고독과 외로움에 모대기는 불쌍한 아이들, 그 희생양들의 심리갈등과 생활현황을 파헤치고있다. 중편소설 “보금자리‘에서는 주인을 잃고 시장에 떠돌아다니는 불쌍한 강아지를 보살펴주는 두 아이-혁이와 예림이가 우리앞에 나타난다. 4살 때 외국에 돈벌러 간 아버지가 일찍 죽고 엄마까지 한국에 나가다보니 이집저집 옮겨 앉으며 살아야 하는 혁이는 “세상에 제일 좋은 아빠가 되는것이 소원”이고 이부어머니- “불여우”의 슬하에서 자라는 예림이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엄마”로 되는것이 소원이라 한다. 이들은 합심하여 강아지에게 새주인을 찾아주어 행복하게 살수있기를 바라면서 자기들만의 행복의 보금자리를 찾은듯한 기분에 잠긴다. 이 작품에서 작자는 생생한 예술화폭으로 주인 없이 떠돌아다니는 강아지마냥 친혈육의 따스한 사랑을 받지못하는 결손가정 어린이들의 가련하고 불쌍한 처지, 그들의 고민과 방황, 이로 인해 속출되는 사회문제 등을 고발하면서 온 사회가 그들에게 따사로운 정을 보내주기를 기대한다. 이상으로 책에 수록된 작품 일부를 소개하면서 나는 오늘을 살아가는 사랑스러운 어린이들과 존경하는 학부모들께서 이책을 참답게 읽어볼것을 권장하는바이다. 삶의 현실은 누구도 회피할수 없다.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면서 오늘의 삶을 정시하고 작중인물과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 자기를 찾게 될것이고 마음가짐이 정리 될것이다. 나는 이같이 훌륭한 작품집을 펴내 어린이들과 학부모들에게 선물한 최동일선생에게 열렬한 축하를 드리며 앞으로 더욱 질 좋은 작품을 써낼것을 기대한다. 2008년 4월 2일  
14    민이의 산 댓글:  조회:1409  추천:0  2012-05-11
민이의 산 세상에선 엄마가 좋아, 엄마 있는 아이는 보배같아요.” 밤에 들으면 더욱 심란해지는 노래이다. 하지만 초인종은 민이의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음산하게 울어댔다. (아니, 오늘은 일찍 돌아오셨네. 취재가 일찍 끝나셨나?) 민이는 반신반의하며 출입문가로 달려가 투시경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밖에는 아버지가 아니라 2층에 사는 친구 삼수가 헤벌쭉 웃으며 서있었다. (그럼 그렇게지…) 아버지는 아침에 훈춘으로 취재를 간다고하셨던것이다. 이런 날엔 의례 귀가가 열시를 넘기는 법이여서 인젠 응당 그러려니 하는 민이였다. (자식, 이 밤중에 웬 일이야?) 민이는 출입문 맞은켠 벽에 걸어놓은 시계를 흘끔 쳐다보며 건성으로 문을 열고 말했다. “임마, 이 밤중에 웬 동네돌이야? 넌 시간개념도 없니?” “히히히… 우리는 다 한 전호속의 전우가 아니냐? 그냥 한번 봐 줘라.” 삼수는 사람좋게 웃으며 끌신을 바꿔신고 민이보다 먼저 객실로 들어가며 너스레를 떨었다. “내 이럴줄 알았지. 너네 집 큰 동지가 벌써 왔을리 있나?” 삼수는 평소 아버지가 마땅치 않게 느껴질 때면 아버지를 “큰 동지”라고 부르는 습관이있었다. 민이는 그러는 삼수가 얄미워서 한소리 높였다. “임마, 큰 동지가 안 왔으면 작은 동지가 집을 지켜야지. 너까지 동네돌이를 하면 집은 어떻게 하니? 사람질 좀 해주라, 이 자식아.” “피이, 너 오늘은 잘못 맞춘거야, 오늘은 우리 집 큰 동지가 오지 않은게 아니라, 하나를 더 달구 왔다는거다.” 삼수는 쏘파에 덜렁 들어앉으며 괴상한 목소리로 신비하게 말끝을 맺었다. 그것이 이상스럽게 생각되여 민이는 삼수쪽으로 한발 다가서며 물었다. “하나를 더 달구 왔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챠~ 이번엔 진짜 죽이더라. 우리 아빠보다 아마 10살은 어릴걸…” “얌마, 점점 한다는 소리가…도대체 뭐야?” “나의 의붓엄마라 해야하는가? 아니지, 멋있는 말로 나의 준계모라구 해야지. 그것도 아니다, 우리 아빠애인이라고 해야 정확할걸…하하하하…” 주어섬기는 삼수의 목소리는 때에 맞지 않게 크게 들리고있었다. “미친놈이, 그것도 자랑이라고 떠벌이고 다니니?” 하지만 삼수는 민이가 못마땅해 하든말든 계속 말끈을 풀어헤쳤다. “다 쓸데 없는짓이야, 인젠 괜찮아, 우리 아빠, 벌써 몇번째야? 에잇, 오늘은 자리를 비켜준 값으로 50원을 벌었다. 너네 아버지가 오기전에 우리 양뤄챌(양고기뀀)이나 답새길가?” “자식, 뭐 우리 아버지도 너네 아버지하구 같은가 하니? 우리 아버진 아니야. 아니란 말이다.” 민이는 삼수에게 어깨를 으쓱해보이며 당당하게 말했다. 그러자 삼수는 모든것이 귀찮다는듯 리모컨으로 이 채널 저 채널 돌려보며 부산스럽게 지껄여댔다. “세상이 어쩌자구 이러는지… 엄마라는건 돈 벌겠다구 외국가서 헤매구… 아빠라는건 제 좋겠다구 녀자들이나 친하구… 난 뭐 하면 좋을가?” 민이는 망가져가는 삼수의 꼴을 쏘아보며 이마살을 찌프렸다. 사실 삼수에게서 이런 소리를 들은것도 한두번이 아닌지라 별로 신비할것까지는 없지만 어쩐지 삼수를 돌보지않고 늘 밖에서 돈다는 삼수의 아버지가 얄미워지고 그러는 아버지에게 반항심을 가지고 하루 새롭게 비뚤어져가는 삼수의 모습이 축은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삼수가 밉다가도 어딘가 또 통하는듯 느껴지는 모양이였다. 이만큼 민이에게도 나름대로의 아픔이 있었던것이다. 5년전 민이의 아버지는 어머니와 리혼을 결정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어린 나이라 아버지와 어머니가 어째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알수가 없었지만 눈물을 뿌리며 떠나가는 어머니를 바래면서 엉엉 소리내여 울던 정경만은 지금도 눈앞에 새롭다. 그날 그 후로 민이는 아버지와 둘이서 생활을 하고있었다. 민이의 아버지도 열여섯살 때 부모님을 다 여읜 분이라 민이는 평소에 어디로 갈 곳도 없었다. 전에 종종 다니던 외가집도 어머니가 없으니 발길이 돌려지지 않았던것이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것은 아버지가 사업의 여가에 특별히도 민이를 잘 챙겨주는것이였다. 하지만 기자사업을 하시는 민이의 아버지는 평소에 출장이 잦은편이라 저녁시간에 늦게 돌아오는것은 보통일이고 하루, 이틀 밤을 새우는것도 이젠 이상한 일이 아니였다. 이만큼 민이도 차츰 자기 집의 생활 리듬에 길들여지고있었고 그나마 평소에 자기를 위해 로심초사하시는 아버지가 계시는것이 대행으로 생각될 때가 많았다. (그래, 나도 14살인데 뭐, 다 컸지. 무서울것도 없구… 일에 바쁜 아빠만 바라볼수 없는것이 아닌가?) 민이는 가끔 이렇게 자신을 단속하며 나름대로 아버지를 돕느라 애를 쓰기도 했다. 이만큼 헴이 든 민인지라 2층에 사는 친구 삼수의 행동이 어처구니가 없을 때가 많았다. 사실 삼수의 처지는 민이보다 낫다면 낫다고도 할수있었다. 삼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리혼한것도 아니고 그저 삼수의 어머니가 한국으로 나간지 6년철을 잡고있을뿐이였다. 그리고 삼수의 할머니가 늘 삼수네 집에 와서 집안일을 거들어주시군 했다. 그렇게라도 믿을데가 있어서인지 삼수의 아버지는 늘 밖으로 돌고 삼수는 그것이 미워서 늘 아버지와 맞서는것이였다. “임마, 여기서 이러구 있지말구 이젠 집에 가봐라!” 민이는 왼쪽 발로 삼수의 엉뎅이를 툭 차며 재촉했다. “싫어, 그 녀자, 아직 안갔을거야.” “그럼? 안 가면 너 오늘 여기서 잘거야? 그러지말고 돌아가서 아빠께 말씀드려. 이젠 잘 때가 됐다구. 벌써 아홉시가 지났잖아.” “말해서 들으면 좋지. 쳇 너도 너무 너의 아빠를 믿지 마라. 아빠들이란 다 그런거야, 늑대들이라구.” “자식, 우리 아빠가 어떻다는거야? 말끝마다 령감처럼… 우리 아빠는 세상에서 제일 점잖구, 또 제일 맘씨 곱구, 젤 열심히 살아가는 분이야.” “놀구있네... 여기서도 맘 편히 살수가 없구려. 후~ 이 피곤한 나의 령혼이여!” 삼수는 손에 쥐고있던 리모컨을 덜렁 쏘파우에 뿌려던지고 두팔을 벌려 으윽 기지개를 켰다. “그래, 갈란다. 가야지. 넌 너네 점잖구, 맘씨 곱구, 열심히 살아가는 아빠를 기다리며 바람벽이나 쳐다봐라. 오~ 불쌍한 나의 령혼이여, 구경 어디로 가야하나이까…” 민이는 노래조로 흥얼거리며 출입문가로 걸어가는 삼수의 뒤모습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임마, 곱게곱게 집에 들어가라. 밖에서 돌지말구.” “그래 알았나이다.” 소리와 함께 “탕!”하고 문닫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조용해진 객실에서 민이는 새삼스레 스물스물 기여오는 외로움을 만나고있었다. 어쩜 전에도 간혹 이런 기분을 느낀적이 있었던지는 모를 일이지만 오늘은 삼수의 열띤 목소리가 귀전에 맴돌아서인지 다시 뭔가를 조용히 생각해보고싶어졌다. (그래, 아버지는 참 열심히 사시는 분인거야, 그러게 해마다 선진사업자로 되여 증서를 타오는것이지. 그리구 다른 일이 없을 때는 언제나 제 시간에 집에 들어오시구. 그래, 아빠가 끓인 김치찌개는 또 얼마나 맛있다구… 김치찌개에 넣은 떡국대는 번마다 참 맞춤히 익었었지. 그래, 아빠는 나의 보호산이야. 그리구 나의 친구야, 그래… 아빠도 전에 그렇게 말씀했잖아.) 민이의 입가에는 저도몰래 환한 미소가 피여나기 시작했다. 아마도 재작년의 6월이였을것이다. 아빠는 어느날 문뜩 컴퓨터를 사들고 집에 들어오셨다. 너무도 뜻밖의 선물이라 민이가 입을 다물지못하자 아버지는 그렇게도 들뜬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셨다. “이젠 우리 민이도 컴퓨터를 만질 때가 된거야. 컴퓨터를 모르면 앞으로 사회생활을 할수가 없지. 자, 민이야, 앞으로 아빠와 컴에서 메일로 속심말을 주고받자. 알겠니?” 그날 밤 민이는 아버지와 함께 한메일에 아디를 신청하고 주소를 앉혔다. 비밀번호를 설정할 때 아버지는 서로 아는것으로 설정하자고 제기했다. 하지만 민이는 그것을 딱 잘라서 거절했다. 그러자 아버지께서 한술 먼저 뜨는것이였다. “자식, 아빠와 친구하겠다면서… 아빠것을 먼저 알려줄게. 아빠의 비밀번호는 ********번이야. 인젠 너의 걸 알려줘야지.” “안돼요. 메일이란 편지인데 그걸 어떻게 아빠께 알려드려요? 이건 분명히 은사권 침범이에요.” “뭐야, 은사권? 자식 다 컸네.” 그날 서운해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생각하면 민이는 지금도 웃음이 나왔다. 그날 그후로 아버지는 정말 민이의 메일에 어떤 내용이 오가는지를 통 묻지않고있었다. 간혹가다 요즘 어떤 불량메일이 뜬다는데 그런것은 체크하지 말고 그냥 삭제해버리라는 짤막한 조언을 줄뿐이였다. 민이는 이렇게 자기를 믿어주는 아빠가 그렇게 고마울수가 없었다. 헌데 삼수가 다녀간 오늘밤 민이는 짙어가는 외로움을 헤치고 문뜩 한가지 생각이 머리를 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래, 아빠는 평소 무슨 생각을 하실가? 그리구 어떤 사람들과 메일을 주고 받을가? 아빠에게는 정말 녀자친구가 없을가?) 생각할수록 커지는 궁금증을 걷잡을수 없었다. 민이는 조용히 컴퓨터앞으로 다가가 컴퓨터전원을 눌렀다. 이어 귀신에게라도 홀린듯 아빠의 메일을 헤쳐버리고 말았다. 아빠가 전에 알려주던 그 비밀번호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있었던것이다. 민이는 후둑후둑 뛰는 가슴을 진정하며 메일을 하나하나 체크해나갔다. 3일전에 들어온 메일이였다. “사랑하는 나의 하늘이여, 오늘도 맑은 날이였나요? 어쩐지 당신의 얼굴이 보고싶어지네요…” 글을 읽는 민이의 심장은 팔딱팔딱 밖으로 튀여나올것만 같았다. (세상에 이럴수가, 이럴수가 있단 말인가!) 마우스를 쥔 손이 후둘후둘 떨려 제대로 굴릴수가 없었다. 민이는 아에 마우스를 옆에 밀어놓고 손으로 건반을 누르며 아래를 훑어내려갔다. “무지개”라는 아이디를 가진 한 녀자가 보낸 메일이였다. 분명 어른들이 말하는 련애편지였다. 민이는 두 눈을 꼭 감았다. 평소 아버지의 자애롭던 얼굴이 클로즈업 되면서 눈앞을 스쳐갔다. (아니야, 아니야!) 아무리 머리를 흔들어도 이건 사실이였다. 아빠에게도 녀자가 있는것이였다. 민이는 결김에 컴퓨터를 닫는 순서고 뭐고 다 걷어치우고 손으로 전원을 꾹 눌렀다. 그리고 씽하니 자기의 침실로 들어가 이불을 푹 눌러썼다. 목이 꺽 메여오면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배반이란 어떤것인지를 처음으로 느껴보는 순간이였다. (나쁜 사람, 얼굴에 웃음을 띤 위선자, 거짓말쟁이…) 민이는 정말 여태껏 하늘이 무너지면 받쳐줄수 있는 기둥으로, 홍수가 터져오면 막아줄수있는 큰 산으로 느껴오던 아버지에게 이 세상에서 제일 나쁜 이름을 다 달아주고싶었다. (그래, 이젠 나 어쩌지? 아빠가 정말 계모를 데려오는걸가? 가 정말 나의 계모가 되는걸가?) 민이는 덮쳐드는 고통으로 머리를 잡아뜯었다. “세상에선 엄마가 좋아. 엄마있는 아이는 보배같아요…” 시간이 얼마나 흐렀는지 반갑지 않은 초인종이 또 청승맞은 노래소리를 내며 울려왔다. 민이는 이불을 꾹 눌러쓰고 죽은듯이 까딱 움직이지 않고있었다. 초인종소리는 한참을 더 울리다가 즘즉해지더니 이어 아버지의 자취소리가 들려왔다. “어, 우리 아들, 자는거야? 엉? 그런거야?” 술기운이 섞인 목소리와 함께 발자국소리가 침실밖에까지 왔다. 민이는 안으로 침실문을 잠그려는 생각으로 벌떡 일어섰다. 하지만 문은 벌써 아버지에 의해 열리고있었다. 민이는 아버지를 떠밀어 객실로 나가며 볼부운 소리를 했다. “또 취했어요? 정말, 아버지를 믿구 어떻게 살아요? 나, 랠 집에서 나갈래요.” “뭐? 미… 민이냐, 너…” “실망이예요. 실망! 나 아버지 아들 맞아요?” “너 오늘, 뭐 잘못 먹은거 아니야?” 너무도 뜻밖의 사태에 아버지도 잠간 갈피를 잡지못하는듯 싶었다. “그래요. 잘 못 먹었어요. 아님 왜 아버지의 그 가짜 얼굴에 속히웠겠어요? 미워요, 랠 이 집에서 나가겠어요. 아버지 맘대로 살아요.” “이 자식이 미쳤나?” 순간 아버지는 그 커쿨진 손으로 민이의 뺨을 쫙 울리부쳤다. “미워요!” 민이는 소리치며 몸을 홱 돌려 침실로 들어가 문을 잠가버렸다. 객실에서 아버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민이야, 문열어! 문을 열란 말이다.” 민이는 손으로 두 귀를 감싸쥐고 어깨를 들먹이기 시작했다. 난생 처음 아버지에게서 맞은 뺨이 그냥 화끈거리고있었다. 그후에도 얼마간 아버지의 다급한 부름소리가 들리더니 드디여 조용해졌다. 한바탕 광기를 부리고나니 민이도 지쳤던지 소르르 굳잠에 빠졌다. 그날 밤 꿈에 민이는 꼬리가 아홉개 달린 구미호를 보았다. 이름은 “무지개”라고 하는데 하늘에서도 살고 숲속에서도 산다고 했다. 구미호는 아버지를 업고 어디론가 훨훨 날아가고있었다. “아버지, 아버지~” 민이는 손을 저으며 아버지를 쫓아가다가 “툭”하는 소리와 함께 깨여났다. 두 눈을 번쩍 떠보니 바닥에 떨어져있었다. 온몸은 땀에 흥건히 젖어있었다. 민이는 두 눈을 꼭 감고 그대로 잠간 누워있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순간 굽혔던 다리가 펴지며 발치에 뭔가가 맞혀오는 감을 느꼈다. 민이는 놀라며 머리를 홱 돌렸다. 아빠였다. 민이가 잠든후 열쇠를 찾아서 잠겨진 침실문을 열고 들어오신 모양이였다. 아빠는 옷도 벗지 않고 이불도 덮지 않은채 잠들어있었다. 추우셨던지 힘껏 옴츠린 아빠의 몸은 생각밖으로 너무나 작아보였다. 민이의 눈앞에 비쳐진 아빠는 전에 홍수라도 막아줄수있을듯 커보이던 산이 아니였다. 녀자친구가 많은 삼수네 바람둥이아빠처럼, 홍실이의 학잡비를 마련하려고 힘들게 삼륜차를 모는 까아만 얼굴의 지쳐버린 홍실이 아빠처럼, 그리고 당뇨병으로 늘쌍 앓음자랑을 하는 병색 띤 가냘픈 철이네 아빠처럼 너무도 평범하고 또 평범한 나그네였다. 아버지는 술김에도 민이의 교복에 때가 있나를 살피셨던지 오른손에 교복바지를 꼭 쥐고있었다. 아버지의 그 초라한 모습을 보는 순간, 민이는 어쩐지 울고싶었다. 어제밤의 고깝던 생각도 얼마간 사라진듯했다. 그리고 엄마도 없이 저 가냘픈 몸으로 이 집을 꾸려가느라 힘드신 아빠를 위해 뭔가를 해드리고싶어졌다. 민이는 두 주먹을 꾹 쥐여보고는 허리를 굽혀 아버지를 안아올렸다. 아버지를 침실에 모셔다가 이불이라도 정히 덮어드리고싶어서였다. 민이는 두 팔에 힘을 넣어 천천히 아버지를 들어올리다가 왼쪽 팔에서 쏙하고 힘이 빠져서 그만 아버지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쿵”하는 소리와 함께 아버지께서 벌떡 일어나 앉으셨다. “민이야, 웬 일이냐?” “아버지…” 민이는 게면쩍게 아버지를 바라보며 말끝을 흐렸다. “참, 내가 왜 여기서 잤지?” 아버지도 뒤더수기를 긁적거리며 민이의 얼굴을 넌지시 바라보고 계셨다. “아버지, 아직도 무겁습니다.” “허허허, 그래? 자식…” 아버지께서 어설프게 웃으시며 민이의 머리를 툭 쳐주었다. 입에서는 아직도 술냄새가 간간히 풍겨오고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목소리에는 어느새 힘이 들어가있었다. “암, 무겁지, 무겁구말구. 아버지는 산이니까. 우리 민이의 보호산이니까!” 아버지는 우줄우줄 침실을 향해 걸어가고있었다. 민이는 못박힌듯 선자리에 서서 아버지의 뒤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민이는 알겄같았다. 그랬다. 아버지는 산이 아니였다. 자기를 믿고 이 세상에 온 자기의 자식을 위해 산처럼 살려고 애쓰시는 너무도 평범한 아버지일뿐이였다   
13    진달래꽃 필 때까지 댓글:  조회:1556  추천:0  2012-05-11
미영이는  너무도  안타까와  두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하지만  여덟살내기 동생 춘봉이는 미영이의 마음을 아는지마는지 주먹으로 눈물을 씻으며 씨엉씨엉 령길을 내립니다.《춘봉아,너정말이러기야?그럼누나도아예가버리겠다.》 미영이는 내려가는 춘봉이의 뒤모습을 멀거니 바라보며 입술을 잘근잘근 씹다가 평소 춘봉이가 제일 무서워하던이 말까지 내뱉었습니다. 하지만 춘봉이는 여전히 머리도 돌리지 않고 내처 걷기만 합니다. 미영이는 그러는 춘봉이를 실망어린 눈길로 바라보다가 길섶에 있는 개암나무 그늘을 찾아앉았습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성나기만했습니다. (참, 철부지같은게, 돈이 어데 있어 놀이감나팔을 다 산담! 원,기가차서…) 미영이는 생각하며 손수건을 꽁꽁 감은 왼쪽손목을 만져보았습니다. 손목을 감은 손수건안에는 보풀이인 2원짜리 돈 한장이 들어있습니다.  오늘아침, 뒤집에 사시는 쌍가매네할머니가 돈 2원에 삶은 닭알 열알을 들고나오셔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얘들아,오늘  저수지에 가보아라.  오늘 그곳은  애들천지일게다.》 《그래,  오늘 6.1절이잖아.  누나, 우리 오늘 저수지에 놀러가자. 철호랑 영수랑도 오늘 저수지로 놀러간댔어.》 좋아  퐁퐁뛰는 춘봉이를 측은한 눈길로 지켜보며 미영이는 말없이 머리만 끄덕이였습니다.  미영이는 사실 오늘저수지유람구에  갈  생각이 없었습니다. 돈이 없는것도 원인이겠지만  그보다도  아버지어머니와 함께 즐겁게 뛰노는  제또래들을  보면 기분을 걷잡을수가 없을가봐서였습니다. 《고마아요.  할머니,  춘봉이를  데리고  저수지에  가보겠어요.》 《야―좋다.  우리도  저수지로  간다.》 춘봉이는너무도좋아손벽까지쳤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애들이면  애들  다와야지.  어시들  없다구  기를  못펴서야  쓰겠니?  얼른  시걱먹고  떠나거라.》 쌍가매네할머니는  이렇게  걱정을  하시고는  돌아가셨습니다. 《누나,  우리  지금  저수지에가자.  응?  애들이  다  먼저가겠다.》 《춘봉아,  우리  약속할가?  오늘  저수지에  가서  아무것도  안사먹는다구.》 《왜?  방금  할머니  돈가져왔잖아?》 《건   남겼다가  며칠후에  간장을  사야해.  인젠  정말  돈이  나올데  없을거야.》 《참,  그럼할수  없지 뭐,  그래도  좋아.  우리  빨리가자.》 사실은 춘봉이와 이렇게 약속을 하고 저수지유람구에 왔던것입니다.  헌데  사달은 현성에서  왔다는 그 장사군의  진달래꽃나팔에서부터  생겼습니다. 연분홍진달래꽃모양으로 된 예쁜나팔이였는데《따따따…》 구성진 나팔소리까지울리는것이였습니다.  하나에  2원이였습니다.  저수지유람구에  들놀이를 온 춘봉이또래들은  아빠엄마를  졸라  하나씩  사서불었습니다. 《누나,  나팔을  한번  불어봤으면…》 춘봉이가  칭얼거리기시작했습니다. 《안돼,아침에  아무것도  안사먹는다고  했잖아?》 미영이는  가슴아픈대로  딱  잘라버렸습니다. 《나…사먹자는것도아닌데.  저  진달래꽃나팔이  얼마나  곱니?  우리  집마당에  폈던  진달래꽃처럼. 누나, 하나사줘, 응?》 《참,  너  정말  이럴줄알았더면  안오는건데…》 미영이는  얼굴을  붉히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깍쟁이.  흥,  누나,  나빠,  나빠!》 춘봉이도  덩달아  성깔을  부리며  령길을  내리기시작했던것입니다.   미영이는  춘봉이가  사라진  령길을  이윽토록지켜보았습니다.  행여나춘봉이가  《누나―》  하고 부르며 뛰여올듯싶었습니다.  하지만  한식경이나  지나도  춘봉이의  모습은  령길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미영이는  진정할수가  없었습니다. (이애가  정말  어데가버렸나?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혹시…) 불길한  생각이  뇌리를  쳤습니다.  미영이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춘봉이가  사라진  방향을  향해 잰걸음을  놓기시작했습니다. 마을어구에서입니다.  미영이는  끝내  춘봉이를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기쁨  먼저  무엇인가  가슴에  욱 치밀어오르는듯싶었습니다.  춘봉이보다  두살이나  이상인  수동이가  춘봉이의  등을  타고앉아서《쨔쨔…》 하고 소리칩니다.  그러면  춘봉이는  황소처럼《음매―음매―》하면서  엉금엉금  기여갑니다. 《춘봉아!》  미영이는  뛰여가서  두손으로  수동이를  콱  밀쳐  버리고는  춘봉이의  엉덩짝을  걷어찼습니다.  춘봉이는 앞으로  푹  엎어지며《앙―》 하고  울음보를  터쳤습니다.  그러건말건  미영이는  춘봉이의  멱살을  쥐여일구고는춘봉이의  뺨을  사정없이  한매  갈겼습니다. 《누나―》 춘봉이는  미영이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서럽게  울면서  말했습니다. 《수동이가  말했어.  날  한번  타보구야  진달래꽃나팔을  갖구놀게  하겠다구.》 《춘봉아―》 미영이는  흐느끼는  춘봉이의  어깨를  으스러지게  끌어안고  매섭게  수동이를  쏘아보았습니다.  눈에서는  불꽃이  툭툭  튀여나오는듯싶었습니다. 《가자,우리두  나팔사러  가자.》 미영이는  춘봉이의  팔을  잡아끌었습니다. 《가라,  거지같은게.》 수동이가놀려댑니다. "뭐,  우릴  거지라구?" 미영이는  춘봉이의  팔을  놓고  수동이의  머리칼을  움켜쥐고  흔들며  소리쳤습니다.  "우리가  누구때문에  이렇게  됐게?  이새끼야,  죽어봐,  죽어!" 수동이는  정말  죽는다고  고래고래  소리질렀습니다.  하지만  미영이는  직성이  풀릴 때까지  수동이를  때려준후에야  손을  뗐습니다.  저도몰래  눈물이  뚝뚝  떨어져내렸습니다.  미영이는  잘근잘근  입술을  씹으며  춘봉이의  팔을  끌고  집으로뛰여갔습니다. 철대문이  서러움에  떠는  오누이를  맞아줍니다.  미영이네  마당가의  진달래꽃나무가  두번째로  꽃이  피던  그해에  만든  철문입니다.  미영이는  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서는  순간  "아버지!"  t하고  소리치며  풍덩  땅에  주저앉아  흑흑  느껴울었습니다.  "누나,  울지마.  누나가  울면  나  무서워." "춘봉아,  인제  우린  어떻게  살지?"  "누나,  울지마.  아버지가  말했잖아.  명년에  진달래꽃필 때면  엄마가  혹시  돌아올지도  모른다구."t "춘봉아!"t 미영이는  무서움에  오돌오돌  떠는  춘봉이를  품에  끌어안았습니다. 그러다가  와락  밀치며  히스테리적으로소리쳤습니다.  "거짓말,  모든게  거짓말이야.  진달래꽃필때면  돌아온다구?  아니야,  아니야!  다  우릴속이는거야!"t 미영이는  벌떡  일어서더니  진달래꽃나무를  뽑으려고  와락와락   힘을 씁니다. "누나야,  뽑지마.  진달래꽃나무를  뽑으면  엄마가  어떻게  오니?  응?  누나야"  춘봉이는  미영이의  두다리를  부여잡고  애처롭게  소리칩니다. "춘봉아" 미영이는  다시  풍덩  땅에  주저앉아  춘봉이를  끌어안았습니다.  눈물이  줄끊어진  구슬처럼  주르륵  굴러떨어집니다. "누나야,  우리  진달래꽃나무를  다시  심자,응?" 춘봉이는  무서움이  꼴똑  찬 두눈으로  미영이를  올려다보며  애원합니다.  미영이는  천천히  눈길을  돌려  뽑혀진  진달래꽃나무를  바라봅니다. 미영이의  눈앞에는  지난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납니다. 미영이네가  뒤동산에서  진달래꽃나무를   파다  마당에  옮긴것은  4년전이였습니다. 그해  2년간  한국에  로무를  나가셨던  수동의  아버지가  돌아오셨습니다.  마을사람들은  수동의  아버지가  무슨  돈벌이구멍수라도  가지고왔나해서  줄을쳐  수동이네  집을  찾았습니다. 처녀때  문학을  한답시고  미친듯이  글씨름을  해오던  미영의  어머니도  파멸된  문학가의  꿈을  부유한  생활로나마  미봉하려는  심사에서였던지  과분할  정도로  수동의  아버지를  찾아다녔습니다.  아니나다를가  수동의아버지는  미영의  어머니에게  묘한  돈벌이구멍수를  대주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미영의  아버지와  가짜리혼을  하고  한국사람과  위장결혼을  하는것이였습니다. 미영의  아버지는  미영의  어머니의  성화에  못이겨  끝내가짜리혼에  동의하고말았습니다.  미영의  어머니는  수동의  아버지에게  수속비로 돈 만원을 주고는 그의 연줄로  나이  많은  한국남자를  만났습니다. 그런대로  수속은  끝났습니다.  미영의  어머니는  한국으로  떠나기  며칠전  미영이와  춘봉이를  앞세우고  미영의  아버지와  함께  뒤동산에  올랐습니다.  진달래꽃나무를  파서  마당에  옮긴다는것이였습니다.  이듬해  진달래꽃이 필 때면  한국에서  딸라를  부쳐보낸다는것이였습니다.  이렇게  진달래꽃 피기를  5년을  거듭하면  미영의  아버지도   미영이네 오누이도 한국에 데려간다는것이였습니다.  그해  미영이는  열한살,  춘봉이는  네살이였습니다.  과연이듬해봄,  진달래꽃이  피는  계절에  미영의  어머니는  한국에서  딸라를  부쳐보냈습니다.  평생  시골에서조용히  살아오던  미영의  아버지는  처음으로  외국돈을  손에  들고  기뻐서  어쩔바를  몰라했습니다. 이듬해,진달래꽃이  피는  계절에  미영의  어머니는  또 딸라뭉치를  보내왔습니다.  그해  미영이네는  원래의  초가집을허물고  그  자리에  덩실한  기와집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벽돌로  담을  쌓고  철문까지  해달았습니다. 하지만  얼마후에  날아온  소식은  미영의  아버지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미영의  어머니가  한국에서  아기를  낳고  정식으로  살림을  꾸렸다는것입니다.  순박하던  미영의  아버지는  그런  타격을  받아당할수  없었습니다.  미영의  아버지는  완전히  타락해버렸습니다.  술만마시면  "진달래꽃필  때까지,  허허허...진달래꽃필 때까지"  하고  너털웃음을  하고  다녔습니다. 네번째로  진달래꽃이  피던  올해  봄,  미영의  아버지는  미영의  어머니가  한국에서  보내온  돈을  도박과  술놀이에  다  처넣고도  모자라  많은  빚을  남긴채  뇌출혈로  돌아가셨습니다.  운명을  하던  그날까지도  미영의아버지는  "진달래꽃 필 때가지,  춘봉아,  명년에  진달래꽃 필 때까지기다려봐라.  혹시  너 에미  돌아올런지"  하고 중얼거리다가  눈을  감았습니다.   "누나야,  우리  진달래꽃나무를 다시 심자.  명년에  진달래꽃 필 때면  어머니가  혹시  오실런지아니?" 춘봉이는  다시  한번  미영의  옷자락을  흔들어봅니다.  미영이는  와뜰  놀라서  춘봉이에게  눈길을  돌렸습니다.  기대어린  동생의  눈길이 맞혀옵니다.  미영이는  말없이  일어섰습니다.  춘봉이도  따라서  일어납니다. "춘봉아,  우리  함께  진달래꽃나무를  다시  심자." "좋아,  엄마가  오는  진달래꽃나무,  어서  다시  심어야지." 춘봉이는  입가에  상긋  웃음꽃을  피웁니다. "아니야,  춘봉아,  엄마가  오는  진달래꽃나무가  아니구,  춘봉이와  누나의  나무,  우리의  나무를  심는거야!"t미영이는  그  어떤  결심을  내리는듯  또박또박  힘주어  말합니다.  "우리의  나무라구?" 춘봉이는  모르겠다는듯  까아만  눈만  깜빡입니다. "그래,  춘봉이랑  누나랑  이  나무를  곱게   심고서  진달래꽃 필 때까지  억세게  사는거야!  그렇게  십년이고 이십년이고  춘봉이랑  누나랑  함께  사는거야!" 춘봉이는  누나의  말뜻을  알아듣기나했는지  그저  힘있게  머리만  끄덕입니다.   오누이는  정성들여  진달래꽃나무를  심어갑니다     
12    정말 싫다 댓글:  조회:1469  추천:0  2012-05-11
정말 싫다 2004년 6월 1일, 밤 9시 15분. 정말 싫다. 영수랑 철호랑 수영이랑에게는 오늘이 좋은 날일수있겠지만 나는 오늘이 정말 싫다. 믿던 사람에게 속히워 본 사람만이 이 시각 이 심정을 리해할수 있을것이다. 아빠께서는 한주일전부터 나에게 “6.1”절날 나와 함께 공원에 가서 그럴사한 명절을 쇠주겠다고 장담하셨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이튿날 나는 학교에 가서 영수랑 철호랑 수영이랑을 보고 큰 소리를 뻥뻥 쳤다. “6.1절날, 우리 아빠 날 데리고 공원놀이 간댔어, 타고싶은건 다 태워준댔어.” 영수랑 철호랑 수영이랑은 나의 말을 듣고 참 부러워도 했다. 사실 그애들은 비록 아빠, 엄마와 함께 산다지만 가정생활이 풍족하지 못해서 늘 하고싶은 일을 맘대로 하지 못한다. 근데 우리 아빠는 해마다 날 데리고 공원에 가서 타고싶은 놀이감을 맘대로 타게 하니 나를 부러워하는 그 애들의 맘을 알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고무풍선도 너무 커지면 터지는 법, 나의 꽃같던 꿈도 오늘 아침 보기 좋게 탁 터져버리고 말았다. 아빠께서 오늘 “우에서” 온 손님을 접대하고 새벽 3시에야 집에 돌아왔던것이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공원에 가자고 졸랐더니 아빠는 눈도 뜨지 않고 말씀하셨다. “바지호주머니에 돈이있다. 너절로 가지구 가서 놀아라!” 나는 아빠의 호주머니에서 돈 30원을 꺼내가지고 밖으로 나왔다. 아빠엄마와 히히닥닥거리는 놈들이 보기 싫어서 공원에는 가지 않고 난생 처음으로 PC방에 갔다. PC방에는 내 또래의 애들이 참 많았다. 아마 나처럼 아빠나 엄마께 속히운 애들이 엄청 많은가 보다… 2005년 6월 1일, 밤 10시 20분. 정말 싫다. 요즘은 아빠가 정말 싫다. 밤 열시를 넘겨 집에 올 때가 점점 더 많아지니 말이다. 맨날 우에서 손님이 와 접대를 하느라 늦는다고 말씀하신다. “우에서”란 어떤 곳인지? “우에서”온 손님들은 어떻게 생겼는지? 아마도 “우에서” 온 손님들은 가정도 없는 모양이다. “우에서” 온 손님들 때문에 올해 “6.1절”도 나 혼자 아빠의 바지호주머니에서 돈 50원을 꺼내가지고 PC방으로 갔다. 작년 “6.1절”에 첨으로 PC방에 들어설 때는 가슴이 떨렸는데 그새 나도 pc방에 습관이 됐는지 인젠 그 곳이 아니면 마음을 둘 곳이 없을것 같다… “그래도 속이겠다구요? 이 연길판에 소문이 자자해요.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구요. 그래도 발뺌이에요?” 어머니의 앙칼진 목소리가 객실을 지나 빈이의 침실을 뚫고 들어왔다. 빈이는 읽어내려가던 일기책을 활 던져버리고 이불을 뒤집어 썼다. “발뺌이라니? 당신 없는 5년사이, 내가 어떻게 살았는데? 빈이를 위해서 내가 어떤 고생을 하며 살았는데?” “빈이를 위해서라구요? 그 말 한번 아름답네. 흥, 빈이를 위하는 사람이 이런 짓을 할수가 있어요?” 엄마의 목소리가 뒤집어 쓴 이불귀를 지나 빈이의 귀를 어지럽게도 괴롭혔다. 빈이는 입술을 꽉 깨물고 두눈을 지긋이 감았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벌써 두달째 지구전을 하고있다. 인젠 듣기만 해도 신물이 나는 일이다. 빈이는 이불을 밀어내치며 벌떡 일어섰다. (뭐, 나를 위해서라구? 내가 없으면 저들이 어떻게 살건데?) 빈이는 오른발로 문을 걷어차며 객실로 나갔다. 문을 걷어차는 소리가 아버지와 어머니의 침실을 습격했던지 침실문이 열리며 어머니의 놀란듯한 얼굴이 나타났다. “빈이야, 너 웬 일이냐? 어디 아프니?” 어머니는 큰 일이나 생긴것처럼 쫑드르르 객실로 나와 빈이의 손을 부여잡았다. 빈이는 그러는 어머니가 싫어서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며 소리질렀다. “그래요, 아파요. 아파서 죽겠어요. 죽겠다구요.” “빈이야, 에이구 내 아들아, 어디가 아픈데?” 파르르 떨리기까지 하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빈이에게 말못할 거부감까지 안겨주었다. “어디가 아픈가구요? 알려줄가요? 마음이 아파요, 가슴이 아프다구요. 엄마에겐 마음이 있나요? 가슴이 있는가구요?” 빈이의 말에 어머니는 잠간 멍해있다가 손으로 빈이의 어깨를 툭 치며 곱게 눈을 흘겼다. “얘는 무슨 엉뚱한 소리를 하니? 몇년 보지 못했더니 영~ 엉뚱해졌네! 자자, 아침 먹구 우리 공원 가야지. 소학교에서의 마지막 인데 엄마랑 같이 가서 재미나게 놀아야지. 오늘 한 500원 메쳐볼가? 호호호호…” 맘껏 돈 쓸 일을 생각하니 웃음부터 나오는지 어머니는 아버지와 다툴 때와는 달리 제법 호들갑스레 웃어제꼈다. 빈이에게는 그러는 어머니가 점점 더 생소하게 느껴졌다. “됐어요. 엄마랑, 아빠랑 함께 가서 한 5만원 메쳐보세요. 저 오늘 할 일이 많거든요.” 빈이는 어머니와 더 싱갱이질 하기 싫어서 다시 자기의 침실로 들어갔다. 침실바닥에 펼쳐져있는 아까 보다 만 일기책이 눈에 안겨들었다. 빈이는 허리를 굽혀 다시 일기책을 주어들었다. 일기책에 담겨진 지난 일들이 눈앞을 스치면서 빈이는 또다시 가슴이 뭉클해졌다. 일기책에는 어머니가 떠난후의 5년간에 있었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겨져있었던것이다… 어머니가 떠나던 해, 빈이는 아홉살이였다. 아홉살의 하늘은 그야말로 외로움의 그 자체였다. 아빠엄마사이에 눕겠다고 설치다가 아빠께 꿀밤을 먹던 일까지도 그리워 몸살이 날 지경이였다. 그래서 아버지를 졸라 큼직한 인형을 사서 안고 자보았고 외로움이 지나칠 때엔 슬그머니 아버지의 밋밋한 젖가슴에 손을 얹어보기도 했다. 그때면 아버지도 외로움에 떠는 빈이가 안스러워서인지 커쿨진 팔뚝으로 빈이를 꼬옥 안아주었다. 하지만 모든것은 어머니의 품을 대신할수가 없었다. 빈이는 그같은 외로움속에서 차츰 웃음을 잃어갔고 그의 여린 가슴에는 야금야금 얼음이 얼기시작했다. 얼음이란 참 이상한 물건임에 틀림이 없다. 첨엔 그냥 누군가가 살짝 다쳐도 부서지고 금이 가더니 차츰 두터워질수록 누가 다치는것도 발로 짓밟는것도 두렵지가 않았다. 오히려 누가 건드리지 않으면 따돌림을 당하는것 같아서 불안하기까지 했다. 빈이는 차츰 누군가가 자기를 다쳐주고 밟아주기를 기다리는듯한 자신을 발견했다. 하여 학교에 가서도 방법을 다 해서 누군가가 자신을 발견해주기를 바랐고 얼음속에 감춰두었던 무언가를 자기만의 일기책에 끄적거려보기도 했다. 세월이 류수라더니 과연 시간은 쉬지 않고 멀리도 흘러갔다. 돌아올것 같지 않던 빈이의 어머니도 5년이라는 세월을 용케 견뎌내고 지난 4월에 돌아왔다. 그날 빈이는 아버지와 함께 공항으로 어머니의 마중을 나갔었다. 이제나저제나 어머니를 기다리며 빈이는 나름대로 많은 생각을 굴려보았다. (어머니를 만나면 과연 내가 눈물을 흘릴가?) 빈이도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흘러간 5년간의 그리움을 생각하면 눈물이 날것 같다가도 또 흘러간 5년간의 외로움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오지 않을것 같기도 했다. 빈이는 또 어머니의 얼굴을 그려보았다. 연길역에서 기차를 타고 심양공항으로 비행기를 타러 떠나던 어머니의 얼굴에는 가무스름한 주근깨들이 옹기종기 박혀있었던듯싶었다. 그리고 항상 근심에 싸여있던 얼굴에 눈까풀은 외까풀이였던것 같았다. 외할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어머니는 한국에서 참 고생을 많이도 하셨다고 한다. 첨에는 식당에서 사발을 부셨고 후에는 치매가 온 어느 집 할머니의 병간호를 하며 구박도 엄청 받으셨다고 한다. 빈이는 5년간 어머니께서 흘린 눈물을 합치면 도람통으로 다섯개는 될거라며 락루하시던 외할머니를 본적도 있다. (아마 어머니를 보고 내가 꼭 울거야. 그렇게 고생을 하셨으니 엄마의 신체가 얼마나 못쓰게 되셨을가? 주근깨는 아마 갈 때보다 더 많이 났을테지…) 빈이는 가슴이 쓰려나기 시작했다. 사실 지난 5년간 그 시각처럼 어머니를 진심으로 그려보기는 처음이였다. 어머니에 대한 죄스러운 마음도 갈마들었다. 그리고 어머니께 고마운 마음도 새록새록 생겨났다. 사실 그랬다. 겨울이면 입김이 모락모락 피여나는 25평짜리 단층집에 세를 들어 살다가 빈이에게는 이 고생을 물려줄수 없다면서 단연히 다니던 공장에서 이름을 긁어버리고 한국행을 결심했던 어머니였다. 그새 돈도 많이 부쳐와 100평방도 넘는 객실이 두개 달린 아빠트에 장식까지 그럴듯하게 해놓고 이사를 하게 되였다. 어머니의 희생이 아버지의 출세길을 열어놓았던지 어머니께서 보내온 돈으로 아빠트를 사던 그 해에 보통직원으로 일하시던 아버지가 과장으로 승진을 하셨다. 그해부터 아버지는 “우에서” 오는 손님들을 접대하는 일이 많아졌고 밖에서 밤을 새우는 일도 잦아졌다. 그리고 어머니의 전화를 받으면서 자주 다투기도 했다. 참츰 어머니께서 보내오는 돈 찾으러 가는 일도 뜸해지더니 지난해 부터는 아예 없는 일로 되여버렸다. 5년이란 참 긴 시간인가 보다. 빈이도 변했고 아버지도 변했다. 하지만 빈이는 연길역을 떠나갈 때 얼굴에 주근깨가 가무스름하게 났던 외까풀눈의 어머니만은 그대로 있을것 같은 생각이 갈마들었다. 순간 빈이는 눈물이 왈칵 쏟아져내리는것을 걷잡을수 없었다. 빈이는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주먹으로 눈물을 닦으며 자기에게 어머니가 이처럼 큰 존재였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럴거야. 어머니를 만나면 눈물이 엄청 날거야. 쳇, 그래도 참아야지. 사내가 돼 가지구 눈물을 어떻게, 내가 울면 어머니는 더 가슴 아파할거야. 그래, 참아야지. 꼭 참는거야!) “나온다, 나와! 저기~, 빈이 에미 옳구나!” 외할머니의 목소리가 빈이의 사색을 깨뜨렸다. 빈이는 발돋음을 해가며 외할머니께서 가리키는 곳에 눈길을 날렸다. 선글라스를 끼고 빨간 웃옷을 화려하게 차려입은 귀부인이 커다란 려행용가방을 끌며 한들한들 걸어나오고있었다. 외할머니께서는 분명 “빈이 에미”라며 흥분을 하고 계셨지만 빈이는 좀처럼 그 녀인에게서 어머니의 옛 모습을 찾을수 없었다. 빈이는 빈이대로 빨간옷의 귀부인으로부터 눈길을 돌려 다른 곳을 둘러보았다. 그새 빨간옷은 검문소를 지나 어느새 외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엄마, 아이고 우리 엄마, 이렇게 늙으셨네요. 이미지가 이게 뭐예요. 래일 나가서 스타일을 확 봐꿔드려야겠네요.” 빨간옷은 외할머니의 손을 잡고 호들갑을 떨다가 아예 외할머니의 목을 끌어안고 콜짝이기 시작했다. 빈이는 그러는 빨간옷을 바라보며 누구에겐가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는듯한 감이 들었다. 그러건 말건 빨간옷은 외할머니의 목에서 손을 풀더니 목청을 한옥타브 높이며 빈이에게로 다가왔다. “아니아니, 이 애가 우리 빈이라구요? 아이고, 엄마키를 넘어섰네. 빈이야~” 빈이는 빨간옷이 쓸어질듯 자기에게로 덮쳐오는것을 한쪽으로 피해버렸다. 그날 저녁, 빈이네는 백산호텔 서울관에서 환영만회를 열었다. 친가집 와가집 해서 30여명이 3상을 차려서 풍성하게 한 때를 즐겼다. 그날 밤, 빈이는 누군가 소리지르는 바람에 놀라 깨여났다. “말해봐요. 그 년이 누군가, 어데서 굴러먹는 녀인가구요?” 정신을 추스리고 귀를 귀울여보니 분명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났어요? 서울에서 보지 못한다고 귀까지 멀었는가 했나보죠? 지난 가을엔 그 년하구 해남도에 려행까지 갔었다면서요? 흥 어디라구! 어림도 없어요!>. 히스테리에 가까운 어머니의 목소리는 한밤의 고요를 깨며 청승스럽게도 빈이의 귀속을 파고들었다. 그날 싸움의 도화선은 아버지가 과장으로 승진을 한후부터 밖에 다른 녀자를 두었다는것이였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 칠 소리지, 누가 어데서 어떤 소리를 했게 이 야단이요? 하늘이 굽어 본단 말이요! 당신은 그래서 2년간 생활비도 보내주지 않았소? 로임을 받아 빈이를 키우며 내가 무슨 돈으로 칭푸(애인)를 둔단 말이요?” 빈이는 어지럽게 들려오는 그 소리가 불안스러워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 썼다. 하지만 불안은 얄밉게도 이불귀퉁이로 기여 들어와 빈이를 괴롭혔다. (과연 아버지가 애인을 두고 살았을가? 온 손님이 과연 아버지의 애인이였을가? 이것이 정말이라면 아빠와 엄마는 과연 어떻게 되는것일가? 아무리 아빠와 엄마라 해도 떨어져 살면 이렇게 애인이 생기는것일가? 어른들은 참…) 그날 빈이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꿈결에 자기가 아지랑이 하늘거리는 해변가에서 정처없이 달리고있었다. 그리고 뒤에서 빠알간 수영복을 곱게 차려입은 예쁜 녀자애가 소리치며 자기를 쫓아오고있었다. 빈이는 녀자애를 뒤에 두고 달리면서 말못할 쾌감을 느끼고있었다. 이때 누군가 빈이에게 이곳이 해남도의 은사탄이라고 알려주면서 애들이 이런 곳에 왜 왔느냐고 꾸짖는것이였다. 그 바람에 빈이는 와뜰 놀라 잠에서 깨여났다. 눈을 뜨고보니 해살은 이미 창문을 두드리고있었다. 빈이는 흐리멍텅한 기분속에서도 이상한 느낌이 들면서 가슴이 불안해났다. 그리고 아래쪽이 축축해나는 감이 들었다. 빈이는 본능적으로 오른손을 팬티속에 쑥 집어넣었다. 팬티가 흥건히 젖어있었다. 손가락에 찐득찐득한것이 만져졌다. 빈이는 깜짝 놀라며 손을 뽑아 눈앞에 가져다 댔다. 처음 보는것이였다. 어쩜 물같기도 하고 아닌것 같기도 했다. (어디서 생겨났을가? 죽을 병에라도 걸린게 아닐가?...) 빈이는 순간 말못할 불안에 온몸을 떨었다. 빈이는 벌떡 일어나 바지를 주어입고 아버지네 침실쪽으로 달려갔다. “아버지~아버지!” 아버지네 침실문은 열려져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빈이는 그 걸음에 주방으로 달려갔다. 식탁우에는 돈 50원과 메모지가 놓여져있었다. “아버지는 어제 밤에 어디로 나간것이 들어오지 않았구나. 엄마도 일이있어 먼저 나간다. 너 절로 맛있는걸 사먹구 학교에 가거라. 엄마가.” 메모를 보는 순간 빈이는 아래다리에서 힘이 쑥 빠지는 감을 느끼며 걸상에 털썩 주저앉았다… 빈이는 어쩜 어머니가 돌아온 후의 두달도 채 못되는 시간들이 엄마가 떠났던 5년간 보다 더 길어보였고 힘들어보였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는 정말 다둘 일도 많았다. 꼭 첨에는 다른 일로 다투다가도 나중에는 “빈이가 아니면은”으로 돌아갔다. (내가 아니면 저들이 어떻게 살건데? 내가 없어지면 저들이 시름이 놓이겠지?) 빈이는 일기책을 서랍에 넣고 자물쇠를 잠근후 웃옷을 들고 침실에서 나왔다. “빈이야, 어데로 가니? 엄마하구 공원으로 가야지.” 어머니는 빈이한테로 쫑드르르 달려와 옷섶을 잡았다. “됐어요. 저 갈데가 있어요.” “소학교에서의 마지막 인데 오늘 잘 쇠야지.” “언제 어머니가 을 쇠줬어요? 저 인젠 을 쇠는 어린애가 아니거든요.” “애두, 난 그래두 오늘 한 500원을 메칠 생각을 했는데…” “메쳐보세요. 돈이 많으면 맘대루 메쳐보세요.” 빈이는 신을 신으며 날카롭게 내쏘았다. 그러자 어머니의 목소리도 곱지 않게 터져나왔다. “너 정말 말이 아니구나. 엄마가 없는 새에 너 잘못 번진게 아니냐?” “네, 잘못 번졌어요. 제가 죽일 놈이예요. 됐어요?” 빈이는 몸을 삑 돌려 문을 차고 나가서는 다시 쾅하고 닫아버렸다. 이어 어머니가 문을 열고 빈이의 뒤에 대고 소리쳤다. “빈이야~ 돈을 가지고 가거라. 돈을 가지구 가~” 빈이는 어머니의 간드러진 목소리를 뒤에 남기며 잰걸음으로 층계를 내렸다. 빈이는 저도몰래 공원쪽을 바라고 발걸음을 옮겼다. 거리는 오가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엄마아빠의 손에 이끌려 희희락락 깔깔대며 걸음을 옮기는 애들이 빈이의 눈에 거슬려왔다. “싸가지들, 뭐가 좋다구 깔깔이야. 깔깔대긴…” 빈이는 속으로 누구라 없이 욕지거리를 해대다가 공원다리란간에 몸을 기대고 섰다. 어쩐지 더 이상 공원을 바라고 가고싶지 않았다. 사실 말이지 빈이로서는 정말 소학교시절의 마지막 “6.1절”을 공원에서 여느 애들처럼 맘껏 즐기고싶었다. 올해 나이14살, 이 나이로 소학교를 마감해야 하고 “6.1절”을 마감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쉬운 점도 많았다. 그래서 지난 4월 어머니께서 돌아온다는 소식이 왔을 때 저절로 기분이 좋아진것도 사실이였다. 어쩜 올해의 “6.1절”은 아빠엄마와 함께 공원놀이를 할수있을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었던것이다. 하지만 어머니가 돌아온 후의 집은 빈이가 공원놀이를 상상할수 있을만큼 평온한 풍경이 아니였다. 빈이는 공원으로 물밀듯 흘러가는 인파를 바라보며 저절로 울적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고있었다. (도대체 뭐가 잘못되여가고있는것일가? 옛날보다 돈도 많아 살기도 좋은데 아버지하구 어머니는 왜 자꾸 싸우시는걸가? 정말 아버지와 어머니의 말대로 내가 있어서 이렇게 되는것일가?) 생각이란 참 이상한가보다. 물고가 트이니 오만가지 생각이 한곬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그래, 내가 없어져버리는거야. 내가 없어져야 아버지와 어머니가 맘대루 살수가 있는거야.) 빈이는 다리란간에 비스듬히 기대고 섰던 몸을 추스리며 주먹을 꼭 부르쥐였다. (그래, 내가 없어져 주는거야!) 빈이는 결심을 내린듯 기차역전을 바라고 씨엉씨엉 발걸음을 옮겼다. 사람들 모두가 공원으로 가서인지 대합실은 여느 때 없이 한산해 보였다. 빈이는 호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혹시나 오늘 아빠엄마와 함께 공원놀이를 갈수 있겠는지 하고 생각해서 준비해두었던 돈이 손끝에 만져져왔다. 평소에 받아두었던 소비돈을 절약한것이 젖지 않았다. (어디로 갈가?)돈은 손끝에 만져져 오지만 마땅하게 가야할 방향이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북경으로 갈가? 그 큰 도시에 내가 살 곳이 없을라구!) 북경이라면 자신이있을것 같았다. 지난해 여름방학, 학교에서 조직한 캠프 때 북경으로 가서 열흘간 명승고적을 돌아보았던것이다. (그래, 북경으로 가는거야.) 빈이는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들고 매표구쪽으로 다가갔다. 매표구앞에는 서너사람이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리고있었다. 빈이도 사람들 뒤에 자리를 하고 섰다. 빈이의 차례가 왔을 때였다. 갑자기 머리에 노랑물감을 들인 남자애가 뛰여오더니 앞에 끼여들며 매표구에 대고 소리쳤다. “북경, 북경까지 가는 침대표가 있나요?” 순간 빈이는 그 남자애가 자기를 얕보는것 같아 진한 모멸감을 느겼다. “줄을 서, 순서를 기다려야지.” “급한 일이 있어서 먼저 물어보려구 그러는데 안되니?” “안된다. 자식, 어데다 대구 반말이야?” 빈이는 저도몰래 주먹을 날려 남자애의 얼굴을 들이쳤다. 순간 남자애의 코에서 뻘건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남자애도 질세라 빈이에게 덮쳐들었다. 삽시에 둘은 서로 엉켜붙어 치고 박고 무섭게 돌아갔다. 그 시각 빈이는 자기가 누구와 왜 싸우는지도 알고싶지 않았다. 그냥 누군가를 때리고 싶었고 끊임없이 쳐야만 직성이 풀릴것 같았다. 빈이는 악악 소리치며 주먹을 날렸다. 역전경찰들에게 끌려 파출소 심문실에 들어간 빈이는 어쩐지 큰 일을 치르고난 기분이였다. “자식들, 어쩌라구 그렇게 쌈질이냐? 있다가 보자.” 말을 마친 담당경찰이 어디론가 나가면서 한마디 했다. 빈이는 입술이 터져 약간 부은듯했지만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빈이는 머리를 돌려 노랑머리 남자애를 바라보았다. 남자애는 머리를 푹 숙이고 앉아있었다. 얼굴에 퍼런 멍이 들고 노랑머리가 푸시시해진것이 꼭 패전병같아 보였다. 빈이는 시뚝해서 입을 열었다. “야, 노랑머리, 아프냐?” “자식, 저렇게 됐는데 안 아파?” 어느새 왔는지 담당경찰이 빈이의 옆에 서있었다. 빈이는 담담경찰의 닥달에 끝내 아버지와 어머니의 휴대폰번호를 불고말았다. 반시간쯤 지나자 어머니가 먼저 파출소에 도착했다. 해당서류에 손도장을 찍운후 어머니가 빈이를 데리고 파출소문을 나섰다. 금방 대문을 벗어나자 빈이네는 씨엉씨엉 걸어오는 아버지를 만났다. 아버지의 기분은 말이아니였다. 아버지는 빈이를 보자 바람으로 주먹을 날렸다. “웬 일이예요? 애는 왜 패요?” 어머니가 악을 쓰며 아버지에게 달려들었다. “사람질도 못할 자식! 어디 와서 쌈질이냐?” 빈이는 뜻밖에도 너무나 기분이 차분해지는 자신이 이상하리만치 놀랍게 느껴졌다. “아버지, 언제 절 관계했어요? 왜 때려요? 내가 파출소에 잡혔다니 무서워요? 낯이 깎여요?” “너 정말 말이아니구나. 어쩜 이렇게 덜 익어버렸니?” “그래요. 내가 덜 익어벼렸어요! 어쩔래요? 내가 없어져 줄게요. 그래야 아버지와 어머니가 맘대로 살수있잖아요.” “빈이야, 걸 말이라구 하니? 엄마가 누굴 위해 사는데!” 어머니는 빈이의 어깨에 몸을 맏기며 울음을 터뜨렸다. 빈이는 그러는 어머니를 밀치며 쓴 웃음을 지어버렸다. “그래요. 어머닌 누꾸 땜에 사는데요? 그리구 아버지는 또 누구 땜에 사는데요? 저 때문에 살아요? 아니죠? 그 라는 사람, 오늘 이 장면을 봤으면 재미겠네요.” “너 뭐라구? 못하는 말이 없구나.” 아버지의 주먹이 또 어쩔사이 없이 날아와 빈이의 어깨에 박혔다. 그러자 어머니가 기를 쓰고 소리쳤다. “애는 왜 잡아요? 그 애 말이 틀렸어요? 아이구~ 빈이야, 너 다 컸구나. 다 컸어! 너 앞에서 이게 무슨 망신이냐? 어시들이 돼 가지구…” 어머니는 빈이의 목을 끌어안으며 넉두리를 시작했다. 빈이는 그러는 어머니를 밀치고 몸을 돌렸다. “빈이야~ 빈이야! 너 어데로 가니? 같이 가자~>. 빈이는 어머니가 소리치건말건 앞을 향해 뛰여가다가 마주오는 택시를 잡아탔다… 2006년 6월 1일, 밤 11시 45분 정말 싫다. 소학교에서의 마지막 “6.1절”을 파출소에서 보냈다. 생각해보면 정말 명절도 싫고 어머니도 싫고 아버지도 싫고 나 자신도 싫다. 어쩜 모든게 엉망진창이 된것 같다. 낮에 파출소에 있을 때는 두려운 감이 없었는데 다시 낮에 있은 일을 생각해보니 정말 무섭다. 내가 이대로 나가다가는 정말 감옥에 가는것이 아닐가? 어머니는 낮에 나를 보고 다 컸다고 했다. 열네살! 어쩜 정말 다 큰것 같기도 하고 또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할것 같기도 하다. 영수란 놈은 참 못났다. 아직도 잘 때 엄마옆에서 잔다고 한다. 그래서 아직도 아빠께 꿀밤을 얻어먹는다고 한다. 히히히히… 낮에 서점에 가서 “사춘기의 비밀이야기”라는 책을 샀다. 시간을 내서 잘 읽어봐야겠다.  
11    나의 동생 댓글:  조회:1191  추천:0  2012-05-11
금년에 열두살나는 나의 동생 철이는 웃기를 좋아한다. 그의 입은 항상 방그레 열려져있는데 박씨같은 이발사이로는 연신 “까르르,까르르”하는 웃음소리가 흘러나온다. 보아하니 그에게는 온통 유쾌한 일밖에 없는 모양이다. 어느 여름날이였다. 철이는 어머니의 사설도 못들은척하고 집안에서 빨간 고무공을 갖고 땅볼을 쳐댔다. 탄성으로 통통 떠오르는 뽈에 철이는 정신이 싹 팔린 모양이였다. 갑자기 “찰랑”하는 소리와 함께 고무공이 물독에 날아들어갔다. 김치를 담그려고 붉은 무우를 손질하시던 어머니께서 꾸지람을 하셨다. “이놈애, 잘했다. 잘했어! 어느 때부터 그만하라고 해도 말을 안듣더니, 인젠 그 물을 몽땅 퍼던지고 새물을 한독 잣아놔라!>. 철이는 어머니께 흘끔 눈길을 주며 혀를 홀랑 내밀어 보이는것이였다. 나는 철이가 영낙없이 닭똥같은 눈물을 똑똑 떨구리라 믿었다. 그러나 잔뜩 노여워하시는 어머니앞에서도 철이는 깔깔 웃어대는것이였다. “야~ 멋지구나, 뽈이 헤염을 치는구나. 해해해… 엄마, 재밌지? 글치?” “왜, 그 입을 다물지 못할가?” 결이난 어머니는 비자루를 꺼꾸로 잡아쥐셨다. 그러자 철이는 입을 꼭 다물고 우스운 손시늉을 해보였다. 그러더니 입을 삐쭉하며 문을 열고 어데론가 달려갔다. 그가 사라진쪽에서는 연신 “깔깔깔”하는 웃음소리가 바람에 날려왔다. 어머니는 어덴가 모르게 서글픈 생각이 드셨던지 “후~”하고 긴 한숨을 내쉬였다. “애비 없는 저 애를 잘 키워 큰사람을 만들자 했더니 안되겠구나. 애가 하루새롭게 글러가니.” 어머니는 몇년전에 병으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는 모양이였다. 나의 눈은 저도모르게 젖어들었다. 그러면서 점심에 철이가 돌아오면 단단히 혼내놓으리라 윽별렀다. 점심 때가 되자 나는 자꾸 문쪽을 내다보았다. 철이가 문을 똑 떼고 깡충 뛰여들어올것만 같아서였다. 그러나 예상외로 열두시가 되여도 철이는 집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얘가, 정말 멀리 달아나지 않았을가?) 내가 이런생각을 굴리고있는데 어머니께서 나더러 나가 철이를 찾아보라고 하셨다. 나는 옷을 주어입고 밖으로 나갔다. 철이 또래들의 집을 다 돌아보았지만 철이는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나는 철이가 어데 가서 꼭 잘못되는것 같이 생각되여 안절부절할수 없었다. 어느덧 나는 우리 마을 물땅크 있는 곳까지 갔다. 이제 길 하나만 더 넘으면 뱀들이 욱실거리는 형제봉이였다. 이때 멀지 않은 곳에서 웬 달구지 구으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행여나 하여 그 곳으로 뛰여갔다. 한 30여세 되여보이는 아저씨가 밀차를 밀려 오고있었다. 밀차우엔 소꼴이 실려져 있었다. 나는 그 아저씨에게 물었다. “아저씨 키가 작고 눈이 까아만 아이를 보지 못했어요?” “눈이 까아만 아이? 응, 보았다. 보았지! 방금 흙구덩이에 빠진 이 밀차를 밀어주고는 저 앞산으로 가더라.>. “네? 앞산에요? 뭘 하러 간다던가요?” “뭐, 그래. 뱀잡으러 간다고했지, 뱀잡으러.” 아저씨는 멀리 사라졌다. 나는 철이가 아무곳이나 마구 헤덤벼치다가 정말 길이가 두발이나 되는 독사에게 물리울가봐 더럭 겁이났다. 나는 정신없이 형제봉으로 뛰여갔다. 나는 손나팔을 해들고 소리쳤다. “철이야~ 철이야~” 저쪽 산에서도 나와 숨박곡질하듯 같은 소리가 울려왔다. 나는 설사 철이가 산에 있다고 해도 메아리에 홀려 길을 잃을것만 같았다. 하여 다른 방법을 대보려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느새 철이가 집에 왔는지 어머니의 훈계가 한창이였다. “온 오전 어데 가서 놀다왔냐?>. “산에 가서 놀았지롱~” “옷은 어데가서 이렇게 흠빡 적셨느냐?>. “시원해지라구 흙구덩이에서 씨잉~ 구을렀지롱~” “뭐야?” 어머니의 격한 목소리가 울리더니 이어 비자루를 거머쥐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집안으로 뛰여들어갔다. “엄마, 그 애를 너무 욕하지 마쇼. 그 앤 방금 흙구덩이에 빠진 어떤 아저씨의 밀차를 밀어줬씀다. 그리구 또…” “알았다. 알았으니까 그만해!>. 어머니께서 성가신듯 손사래를 했다. 나는 어머니의 성격을 잘 아는지라 그저 입을 다물고 말았다. 이윽고 어머니도 분이 사그라졌는지 대야에 물을 퍼담아가지고 웃방으로 올라갔다. 한순간이 지났다. 갑자기 어머니가 소리질렀다. “뱀, 뱀이다!>. 뱀이라는 말에 나는 웃방으로 뛰여올라갔다. 유리병속에서 살모사 한마리가 입을 짝 벌린채 혀를 날름거리고있었다. 어머니는 기겁한 나머지 와들와들 떨고있었다. 나는 그제야 철이가 아까 형제봉에 가서 잡아왔음을 알았다. 철이는 웃방에 올라오지도 않은채 정지간에서 놀란 어머니를 올려다보며 깔깔 웃어대고있었다. “너, 너 미쳤니?” “히히히… 누나, 어른들도 뱀을 무서워 하는구나.” “너 정말 점점 장난이 말이 아니구나. 어머닐 봐라. 낯색이 다 질리셨다.” “꽃분아, 그… 그 뱀을 밖에 던져라.” 어머니는 후둑후둑 뛰는 가슴을 붙안고 겁에 질려 더듬거렸다. 나는 더 생각지도 않은채 유리병을 밖에 던져버리려고 했다. 이때 동생이 소리쳤다. “누나, 뱀을 밖에 던지면 더 무섭지? 내가 처치할게.” 철이는 나의 손에서 유리병을 빼앗아들고 밖으로 나갔다. 철이는 한참만에야 손에 꽁꽁 줴긴 만두 한개를 들고 집으로 들어왔다. 얼굴에 웃음을 찰랑이며 어머니쪽으로 다가갔다. “해해해… 어머니, 성내지말구 이걸 자셔요. 아까는 미안~ 한입에 꼴깍 삼켜야 해요? 자~” 철이는 억지로 만두를 어머니의 입에 밀어넣었다. 어머니는 마지못해 대강 씹어서 꿀꺽 삼켜버렸다. 철이가 어머니를 바라보며 짝짝 손벽을 쳐댔다. “엄마, 어떴소?” “뭐가? 꼬리대가리 없이 어떠냐구?” “아직도 무섭소?” “무섭다니? 웬 소리냐?” “크크크크… 엄만 방금 뱀심장을 먹었지롱~” “뭐… 뭐라니?” 어머니는 억이막혀 웃지도 울지도 못하시고 입만 떡 벌린채 한참이나 서계셨다. 하지만 철이는 여전히 철이대로 캐드득 거리며 종알거렸다. “엄마, 돌이네 할아버지가 그러시던데 뱀의 심장은 엄마처럼 심장병이 있는 사람들께 그렇게 좋다오. 옛날에 뱀의 심장 3개를 먹구 병을 뿌리채 뽑은 사람도 있다오. 크크크, 그런데 뱀의 심장을 자실 땐 환자가 몰라야 한다오.” 맑은 웃음을 캐드득 날리며 좋아라 손벽을 쳐대는 철이를 뚫어지게 지켜보시던 어머니는 순간 철이를 와락 끌어안았다. “요, 애물단지야!” 어머니는 철이의 얼굴에 주름잡힌 얼굴을 꼭 대고 마주 비비며 손으로 연신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셨다. 잠간 지나자 어머니는 속이 개운해지는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만 픽 웃었다. (설마 뱀의 심장을 자셔서는 아니겠지?) 철이는 어머니의 말에 좋아서 퐁퐁 뛰며 소리쳤다. “봐라, 엄마 병이 났는다. 싹 났는다.” 나는 그때 분명 어머니의 눈에서 맑은 이슬이 맺혀 반짝이는것을 보아냈다. 저녁준비를 다 하고 웃방에 올라가 보니 철이는 책상앞에 엎드려 잠이 들어있었다. 아까 형제봉에 다녀오느라 퍼그나 힘들었던 모양이였다. 나는 깨워서 저녁을 먹이려고 조용히 철이곁으로 다가갔다. 책상우에는 철이의 책들이 널려있었다. 그속에서 일기책도 눈에 뜨였다. 나는 홀린듯 일기책에 눈길을 주었다. 삐뚤삐뚤한 글씨로 적은 일기가 나의 눈에 안겨들었다. “엄마는 정말 고생한다. 오늘 낮에 홍수엄마가 그러던데 엄마는 우리가 없으면 재가라도 할수있을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엄마는 우리에게 이붓아빠의 눈치밥을 먹이지 않기 위해 청상과부로 살아간다고 했다. 엄마가 불쌍하다. 엄마를 잘 해드려야겠다. 돌이네 집에 놀러갔다가 돌이네 할아버지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었다. 심장병에 뱀심장이 으뜸이란다. 그래서 오늘 형제봉에 가서 뱀을 잡아왔다…” 글은 여기서 끊났다. 하지만 나는 일기책에서 눈길을 뗄수 없었다. 저도몰래 코끝이 시큼해나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렇듯 사랑스럽고 속이깊은 동생의 누나라는것이 무척이나 자랑스러웠다. 나는 으스러지게 철이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철이는 꿈속에서나마 어머니의 병이 완쾌된것을 보았는지 입가에 예쁜 웃음을 함뿍 먹음고있었다.   
10    울고있는 별 댓글:  조회:1791  추천:0  2010-03-11
울고있는 별 “미나야.” 미나는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잠간 걸음을 멈추고 머리를 돌렸다. 자기 또래의 가랑머리 녀자애가 손에 종이쪽지를 들고 서있었다. 녀자애는 무척이나 기대에 찬 눈길로 미나를 바라보고있었다. 하지만 미나는 녀자애의 크고 초롱초롱한 쌍가풀눈에서 어딘가 말못할 서글픔을 읽고있었다. 미나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어디서 봤던지 생각나지 않았다. (설마 저 애가 나를 불렀을가?) 미나는 나름대로 생각을 굴리며 주변을 두루 살펴보았다. 그 녀자애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참, 이상한데…) 하는 생각을 굴리며 미나는 다시 그 녀자애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얘, 방금 네가 나를 불렀니?” 미나의 물음에 녀자애는 까아만 쌍까풀눈을 살풋이 내리깔고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미나는 점점 그 녀자애에게 호기심이 가는것을 어쩔수없었다. “얘, 넌 누구니? 네가 어떻게 내 이름을 알고있니?” “난 신자라고 부른다. 어제 저녁에 내가 여기를 지나다가 네가 뿌려준 이 쪽지를 주었거든. 그래서 오늘 아침, 여기서 널 기다린거야, 너하구 함께 학교에 갈려구.” 녀자애는 까아만 눈을 슴뻑거리며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미나는 갈수록 오리무중에 빠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얘, 쪽지라니? 참 웃기네. 내가 너에게 쪽지를 뿌려주었다구?” “그래, 어제 저녁편에 내가 여기를 지나는데 네가 창문으로 이 쪽지를 나에게 뿌려주지 않았니?” 녀자애는 여전히 두눈을 살풋이 내리깔고 이야기를 하며 미나에게 쪽지를 내밀어보였다. “낯모를 친구야, 안녕? 난 고독하구 고독하구 또또또 고독하단다. 우리 친구로 사귈가? 싫으면 말구, 흥! 미나가…” 쪽지를 읽어내려가던 미나는 별안간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손에 뜬 쪽지가 파르르 떨렸다. “얘, 너 어떻게 이 쪽지를 주었니?” 깔깔대는 미나를 이상한듯 마라보던 녀자애가 수집은듯 두볼에 약간 홍조를 띄우며 입을 열었다. “어제 저녁편에 내가 여기를 지나고있는데 갑자기 층집에서 곱게 접은 쪽찌한장이 떨어져 내리는거야, 그래서 깜짝 놀라 머리를 들어 층집을 바라보니 네가 창문가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고있었어. 단발머리녀자애, 나는 단번에 너의 머리모양을 머리에 기억해 넣었지. 난 호기심이 동해서 네가 뿌려준 이 쪽지를 주어서 펼쳐보았던거야. 너, 쪽지에다 나하구 친구로 사귀자고 했잖아, 난 그 쪽지를 보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단다. 어제밤, 난 정말 한잠도 못잤어. 얼마나 가슴이 뛰고 흥분되던지…” “뭐가 그렇게 흥분되고 가슴이 뛰였는데?” “나에게도 친구가 있게 되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정말 미칠듯이 기뻤던거야,” “세상에, 어쩜…” 미나는 그 녀자애에게 뭐라고 말했으면 좋을지 몰라 뒤말을 얼버무려버렸다. 어쩜 얼굴에 홍조를 그리며 흥분에 떨고있는 목이 긴 이 녀자애가 측은하게 생각되기도 했다. 어제 오후에도 미나는 학교에서 돌아온후 어머니의 분부대로 피아노선생님과 함께 한시간 피아노련습을 하고 그 길로 영어학원에 가서 두시간이나 영어단어를 외우다가 날이 어둡기 시작해서야 지친다리를 끌며 집으로 돌아왔었다. 하지만 집에 와서는 또 학교에서 내준 엄청난 숙제를 완성해야 했다. 무거워나는 머리를 숙이고 정신없이 필을 놀려가면서 미나는 정말 사는게 너무 힘든것 같았고 자기만이 엄청난 숙제덤이에 깔려있는듯 무지도 외로워났다. 미나는 날리던 필을 던져버리고 무작정 누구에겐가 전화를 넣어 한바탕 수다라도 떨었으면 좋을것 같았다. 미나는 몸을 날려 전화기 옆으로 다가갔다. 어느새 어머니가 그 기미를 알아채고 눈을 흘겼다. “공부를 하다가 무슨 전화를 한다고 그러니? 공부하고 상관 없는 전화면 숙제를 다하고 해라.” “은희에게 할려구요, 숙제를 물어볼려구요.” “왜 걔하구 숙제를 물어보는데? 선생님이 숙제를 낼 때 넌 뭐하고있었니? 너 오늘 일기도 아직 안썼지?” “됐어요.” 미나는 신경질적으로 한마디 쏘아부치고는 자기의 침실로 들어가 문을 닫아버렸다. 정말 해도해도 끝이 없는 어머니의 잔소리 앞에서 미나는 어떻게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 어머니는 미나를 따라 침실로 들어오며 계속 바가지를 긁어댔다. “미나야, 빨리 일어나 숙제도 하구, 일기도 써야지. 오늘 하루 무엇을 했나? 어떻게 했나? 잘 생각해보구, 한조목한조목 참답게 써야한다. 그래야, 이제 아버지가 한국에서 돌아오면 참답게 회보해드리지?” 어머니의 잔소리는 종시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미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앉으며 소리쳤다. “됐어요, 어머니 저녁밥은 안지어요?” “얘두, 소리는 왜 치는데?” 어머니는 미나를 향해 곱게 눈을 흘겨보이며 아쉬운듯 천천히 주방으로 나갔다. “후!” 미나는 사라지는 어머니의 뒤모습을 지켜보면서 가볍게 한숨을 내쉬였다. “영어공부를 해라, 피아노련습을 해라, 일기를 써라.” 미나는 정말 어머니의 잔소리가 자다가도 벌떡 놀라 깰 정도로 싫고 무서웠지만 한국에서 돈을 벌려고 4 년철이나 열심히 일하시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또 어머니의 잔소리를 거역할수도 없었다. 미나는 가끔 무거운 짐을 지고 어딘가로 허이허이 끌려가는 어린당나귀를 그려보군했다. 그때마다 새삼스레 코끝이 시큼해나는 자신을 발견하는 미나였다. 미나는 다시 책상에 마주앉아 일기책을 펼쳐놓았다. 하지만 그날이 그날 같아서 딱히 무엇을 써야할지 감이 잡히지가 않았다. 미나는 필이 가는대로 아무렇게나 괴발개발 오려나갔다. “이름 모를 친구야, 안녕? 난 고독하구 고독하구…” 잠간 필을 멈추고 읽어보니 저절로도 허구프고 어처구니가 없어 보였다. 미나는 책에서 일기장을 쭉 찢어냈다. 마구 꾸겨서 쓰레게통에 던져넣으려다가 갑자기 뭔가 머리를 톡 치는 생각이 있어서 곱게 쪽지처럼 접었다. 미나는 쪽지를 들고 발"摹�� 창가로 다가갔다. 미나는 쪽지를 층집아래에 뿌리면서 혼자서 깔깔깔 웃어댔다. 하지만 기쁨도 한 때, 미나는 저녁을 먹고 다시 어머니의 감독밑에서 일기를 쓰느라고 진작 그 쪽지에 대하여 까맣게 잊고있었던것이다. 참, 세상 일이란 재밌기도 한가보다. 바로 그 쪽지가 제발로 임자를 찾아온것이다. 미나는 다시 한번 녀자애를 예리한 눈길로 가늠해보았다. “얘, 내가 어떤 사람인줄을 알고 그 쪽지 한장에 나하구 친구하자고 왔니?” “그래, 비록 너에 대하여 잘 모르긴 하지만 난 고독한 사람은 언제나 고독한 리유가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고독한 사람들끼리는 서로 잘 통할수가 있을게 아니니? 난 정말 나하구 잘 맞는 그런 친구가 생기기를 많이도 바랐었는데…” “그래? 그럼 너의 어머니도 너보구 영어공부 해라, 피아노련습을 해라, 일기를 써라 하구 달달 볶아대니?” “아니, 너의 어머니가 그러는 모양이구나. 미나야, 난 네가 참, 부러워…” “아니라구? 피~ 내가 부럽다구? 애두, 웃긴다. 너 고독하다는게 뭔지 아니? 히히히…” 녀자애는 까르르 웃어제끼는 미나를 흘끔 훔쳐보며 머리를 살풋이 숙이고 발뿌리로 애궂게 땅바닥만 살랑살랑 걷어찼다. 미나는 그러는 녀자애를 바라보며 어딘가 모르게 측은한 마음이 생겼다. 꼭 마치 누군가 옆에서 친구해주지 않으면 그 녀자애가 당금이라도 땅속에 잦아들어 버릴것만 같이 갸냘프게 생각되였다. 미나는 맑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며 녀자애 앞에 손바닥을 쫙 펴들었다. “얘. 네가 소원이라면 우리 친구하자. 친구가 많으면 좋은거지뭐. 약속!” 녀자애도 활짝 웃으며 손바닥을 들어 미나의 손바닥에 쨩~ 부딛쳤다. 미나가 까르르 웃으며 물었다. “그래, 친구야, 너 어느 학교에 다니니?” “난 실험소학교에 다녀!” “실험소학교라구? 나도 그 학교에 다니는데.” “알어. 난 널 본적이 있거든.” “근데 난 왜 한번도 널 본 기억이 없을가?” “누가 나같은 애를 다 기억하겠니? 얘, 빨리 학교에 가자. 집으로 갈 때, 널 기다릴게.” 녀자애가 미나의 손을 잡으며 재촉했다. 그제야 미나는 그 녀자애를 만나서 한참이나 수다를 떨었음을 느꼈다. 둘은 부지런히 학교를 바라고 걸음을 옮겼다. 미나는 생각할수록 아침에 보았던 신자라고 하는 그 녀자애가 궁금증해났다. (부모들이 공부도 그렇게 강요하지 않는다면서 무엇이 그렇게 고독할가? 그 애는 과연 어떤 가정환경에서 살고있을가? 미나는 하학하자바람으로 신자를 찾아 6학년 5반 교실로 갔다. 교실에서는 몇몇 녀자애들이 한창 청소를 하느라고 분주히 오가고있었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신자는 그 속에 보이지 않았다. (혼자서 가버린건가? 갈 때 기다린다 해놓구는, 신용도 없는 애가 아니야? 아니 혹시 무슨 일이 있는지도 모르지…) 미나는 이렇게 생각을 굴리며 교실창문에 대고 똑똑똑 노크를 했다. 비자루로 바닥을 쓸던 녀자애가 미나쪽에 눈길을 주었다. 미나는 방긋 웃으며 할 말이 있다는 식으로 창문을 똑똑똑 두드렸다. 녀자애가 창문을 열고 머리를 내밀었다. 신자를 찾는 다는 미나의 말에 녀자애가 키득키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오, 너 <변소모범>을 찾는구나. <변소모범>이야 변소에 있겠지뭐.” “그 애가 왜 변소에 있는데? <변소모범>이라니? 또 뭔 소리구?” 미나는 모르겠다는듯 다그쳐 물었다. “뭘 모르겠다는거니? 변소에서 청소를 하고있겠지. 그 앤 우리 소조에서 변소청소를 책임졌다. 선생님도 그 애가 변소청소를 잘 한다고, 품성이 좋다고 칭찬을 많이 하셔. 우리도 그 애를 <변소모범>이라고 부르구…” “어쩜, 너희들, 사람을 없신 여겨도 분수가 있지.” “없신 여기다니? 너, 뭘 몰라도 한참이나 모르는구나, 이건 그 애가 자원으로 하는 일이야. 못 믿겠으면 네가 한번 변소에 가 봐.” 녀자애는 별맛이라는듯 미나를 핼끔 치떠보더니 몸을 픽 돌려 바닥을 쓸기시작했다. “흥!” 미나는 그 녀자애를 향해 아니꼽게 코방귀를 뀌여보이고는 학교 동쪽에 있는 화장실쪽을 바라고 씨엉씨엉 걸음을 옮겼다. 화장실에 들어서자 코를 찌르는 지린내가 물씬 풍겨왔다. 미나는 무심결에 코를 움켜쥐였다. 하지만 신자는 그 냄새에 아무런 감각도 없는지 사뭇 편한 표정으로 부지런히 변소바닥을 쓸고있었다. “얘!” 미나가 짤막하게 불렀다. 신자가 비자루질을 하다말고 머리를 돌렸다. “오, 미나구나. 나가서 잠간 기다려라, 인차 끝난다.” 아니나다를가 5분쯤 지나서 신자가 머리를 쓸어올리며 화장실에서 나왔다. 미나는 신자의 몸에서 나는 지린내를 맡을수있었다. 미나는 어쩐지 가슴이 침침하고 기분마저 찜찜해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신자는 미나의 그런 기분을 읽지못했는지 얼굴에 맑은 웃음을 날리며 물었다. “미나, 넌 언제 당번이니?” “난 수요일이야. 헌데 신자, 너, 너네 소조의 변소청소를 도맡았다며?” “그래, 누구도 변소청소를 하기 싫어하니까, 내가 나선거지 뭐.” “그럼 넌 지린내가 싫지도 않니?” 미나의 물음에 신자는 뭐라고 대답을 하지 않고 어딘가 기대어린 눈길로 미나를 지켜보았다. “미나야, 너 정말 나를 친구로 생각하는거지?” “그럼, 난 말하면 말한대로 하는 성격이야.” “정말이지?” “참, 거기에 뭐 거짓이있니?” “그럼 나의 비밀을 너에게 말해도 되지?” “너의 비밀?” “그래, 나만의 비밀이거든.” “무슨 비밀인데?” “미나야, 난 어쩐지 변소냄새가 싫지 않단다.” “애두,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디있니?” 미나는 의아한 눈길로 신자를 바라보았다. 마치도 외성인이나 만난듯한 기분이였다. 하지만 신자의 얼굴은 어느 모로 보아도 롱담을 하는 기색이 아니였다. 미나는 다시 한번 신자의 얼굴을 참빗질하며 조용히 물었다. “너의 아버지, 어머니도 네가 이러는걸 아니?” “아니, 그들은 몰라. 그리구 알려도고 안할거야.” “왜서?” “그저 그런거지 뭐! 가만, 내 가서 가방을 꺼내올게. 우리 집으로 가면서 말하자.” 신자는 말을 마치고 교실을 향해 뛰여갔다. 미나와 신자는 나란히 걸음을 옮겼다. 미나는 무시로 신자를 살폈다. 한참이나 말없이 걸음을 옮기던 신자가 드디여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우리 아버진 한국에 가서 숱한 돈을 벌어왔거든.” 신자의 뜻밖의 말에 미나는 깜짝 놀라며 신자의 말을 중둥무이 했다. “뭐? 너의 아버지가 한국에 갔었다구? 그럼 숱한 고생을 했겠네?” “고생이야 많이 했겠지. 하지만 난 우리 아버지를 하나도 존경하지 않아.” “왜? 왜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니?” “아버진 한국에 가서 많은 돈을 벌었지만 또 한국에서 숱한 나쁜 버릇을 배워가지고 왔거든. 그래도 아버지가 한국에 있을 때가 좋았지. 나와 어머니는 맨날 아버지를 그리며 아버지와 함께 했던 아름다운 추억들을 들먹거렸구. 어머니는 방직공장에 출근했었는데 많지 않은 로임으로 생활을 하면서 아버지가 벌어 보내는 돈은 꼭꼭 저축했었어. 휴식일이면 나는 어머니와 같이 공원이랑 다니며 즐겁게 놀기도 하구.” 신자의 얼굴에는 빠알간 홍조가 어리기 시작했다. 가슴속 밑자락에 숨겨두었던 아름다운 추억을 들먹이는 모양이였다. “2년이 지나 우리는 아버지가 벌어 보낸 돈으로 큼직한 아빠트를 샀댔어. 집장식을 끝내고 아빠트에 들어가던 날 엄마는 너무도 기뻐서 나를 끌어안고 마구 눈물을 흘렸댔어.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오면서부터 일이 탈리기 시작한거야.” “아버지가 돌아왔는데 왜?” “아버지는 한국에서 돌아와 한달도 넘기전에 벌써 어머니를 싫어했어. 첨엔 그냥 술을 먹으면 어머니를 보고 촌티가 난다는지 공동언어가 없다는지 하고 타발을 하던것이 후에는 술을 먹지 않고도 어머니하고 괜한 트집을 했거든. 쩍하면 어머니에게 손찌검두 하구. 그러면서 어머니하구 리혼을 하자는거야. 첨에 어머니는 아버지를 달래면서 시간이 지나면 모든것이 좋아지겠지 하고 바라는 눈치였어. 하지만 아버지는 점점 더 란폭해졌어. 나중엔 쩍하면 집안 기물을 마스구 어머니를 때렸거든. 나중에 어머니도 아버지와 맞써서 싸우구. 난 정말 아버지와 어머니가 싸우는게 무서웠어. 한번은 아버지가 뿌린 재털이가 빗나가며 나의 허리에 와서 떨어졌어. 나는 너무도 무서워 아버지, 어머니를 피해 화장실에 들어가 숨었어. 화장실에서 비록 퀴퀴한 냄새가 좀 났지만 그래도 그 곳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거든. ” “그래서?” “그후로 나는 아버지 어머니가 싸우기 시작하면 화장실에 들어가 숨어있었어. 그렇게 쭉 몇달을 사니 차츰 화장실냄새에 습관되였나봐. 인젠 완전히 화장실냄새에 무뎌졌거든.” “세상에.” 미나는 잠간 걸음을 멈추고 신자를 뚫어지라 쳐다봤다. 미나를 향해 살풋이 웃음을 띄우느라 애쓰는 신자의 모습은 그렇게도 파리해보였다. “사람이란 그런가 봐. 언제든 환경에 길들여지게 돼 있는거겠지 뭐.” 애써 담담한체 이야기를 하는 신자의 목소리에 사람을 슬프게 하는 바이러스라도 묻어있는듯 미나는 신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더욱 울적해지는 자신의 마음을 달랠수 없었다. 그날밤, 미나는 숙제를 하려고 책상 앞에 앉았지만 낮에 있은 신자와의 대화가 자꾸 떠오르면서 도무지 정신을 집중할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한국에 가서 잘 못 번진거야.” 신자의 그 말이 폭탄으로 되여 조용하던 미나의 머리에 굉음을 울려주고있었다. “우리 아버지도 신자네 아버지처럼 한국에서 잘 못 번지는건 아닐가? 그렇게 된다면 우리집도…” 미나는 생각할수록 삼뭉치처럼 헝클어지는 사색을 정리할 길이 없어 고통스럽게 두 손으로 머리를 꽉 움켜잡았다.. “얘, 뭐하고 있니? 빨리 숙제를 해야지.” 어머니가 과일을 들고 들어오다가 넋을 놓고 앉아있는 미나를 보고 훈계를 시작했다. 미나는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교과서를 펼쳐들었다. 도무지 글줄이 눈안에 들어오지 않았다. 미나는 신경질적으로 교과서페지를 마구 번져나갔다. “얘는 어머니가 옆에 있는데도 태도가 이 모양이니 어머니가 없으면 아에 공부를 안할 예산이지? 너 점점 말이 아니구나. 요즘엔…” 어머니는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 들고 들어온 사과를 깎으며 품을 놓고 참견을 시작했다. 미나는 이글이글 타는 눈길로 어머니를 넘겨다 보았다.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사과를 깎아 나가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미나는 홀연 으슥 몸을 떨었다. 어머니가 사과를 깎는것이 아니라 자기의 자존심을 한벌한벌 깎아내는듯싶었다. 미나는 교과서를 확 덮어버린후 어머니의 눈길을 등지고 베란다로 나와버렸다. 미나는 촉촉해 나는 눈길로 저멀리 하늘가에 걸려있는 무수한 별들을 바라보았다. 순간 미나는 별이되고싶었다. 별이되여 아버지의 곁으로 날아가 뭔가를 속삭이고싶었다. 아버지에 대하여, 어머니에 대하여, 그리고 또 터질껏 같은 자기의 괴로움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고싶었다. “미나야, 너 참 안되겠구나. 공부는 안하고 정녕 이러기야? 정신을 어디에 두고있는거야? 귀신에게 홀리운 사람처럼.” 어머니가 베란다까지 따라나와서 미나를 훈계하기 시작했다. 미나는 천천히 머리를 돌려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이상하다는듯 두눈을 올롱하게 뜨고 미나를 흘겨보는 어머니도 그새 많이 수척해진듯싶었다. 미나는 어머니를 보며 괜히 서러워나서 머리를 숙이고 입술을 옥물며 다시 책상 앞으로 걸어갔다. 그날 밤 꿈에 미나는 별로 변한 자신을 발견했다. 미나는 별이되여 아버지가 계시는 서울의 하늘우에서 반짝이고있었다. 아버지는 그때 어느 시공현장에서벽돌을 등에 지고 힘들게 층계를 톺고있었다. 아버지는 온몸이 물자루가 되였건만 쉴념을 안했다. 아버지는 간신히 걸음을 옮기면서 연신 손등으로 두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닦고있었다. 그때 별안간 하늘에서 파아란 망사를 쓴 선녀가 날아내리더니 아버지를 업고 어디론가 훌쩍 살아지는것이였다. “아버지, 아버지…” 미나는 아버지를 부르다가 놀라서 깨여났다. 몇시나 됐는지 무수한 별들이 창문넘어로 미나의 시야에 안겨들었다.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보면서 미나는 까닥없이 마음이 서글퍼졌다. 그리고 새삼스레 어머니가 보고싶었다. 미나는 조용히 일어나 어머니가 주무시는 침실로 갔다. 지난밤에도 집착에 가까우리 만침 미나의 공부에 신경을 쓰느라 어머니도 지치신 모양이였다. 하~ 벌린 입가에 멀건 침이 흘러내려 자리를 잡고있었다. 미나는 천천히 어머니의 입가에 묻은 멀건 침을 닦아드렸다. 그리고 살며시 어머니의 옆에 누워 오른팔을 어머니의 젖가슴에 올려놓았다. 순간 미나는 저도몰래 코끝이 찡 저려오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이튿날 저녁무렵, 신자는 피발이 서고 퉁퉁 부은 눈으로 미나를 찾아왔다. 미나와 신자는 천천히 연집강변을 바라고 발걸음을 옮겨놓았다.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연집강변에 거의 이를 때 신자가 끝내 울음섞인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미나야,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 끝내 리혼을 한단다.” “뭐? 리혼!” 미나는 홀연 온몸에 전률을 느꼈다. “그래, 오늘 아버지와 어머니가 담판을 했단다. 모든것이 끝났대.” 신자의 목소리는 분명 애절한 울음으로 번져가고있었다. “신자야, 그럼 넌 어떻게 되는거니? 어떻게 되는거야?” “몰라, 미나야 난 정말 무서워. 무섭단 말이다.” 신자의 까아만 쌍까풀눈에 맑은 이슬이 그득 담겨 반짝이고 있었다. “신자야, 너의 아버지와 어머니, 정말 리혼하지 않으면 안된다니?” “몰라, 난 지금 그저 무서울뿐이야. 미나야 난 어떻게 하니? 아버지, 어머니가 리혼을 하면…” “그래, 신자야 어쩌면 좋니? 우리에겐 아버지가 없어도 안되고 어머니가 없어도 안돼! 아직 누가 없어도 우린 살지못할거야.” 미나는 걸음을 멈추고 파르르 떠는 신자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신자의 눈가에서 반짝이던 맑은 이슬이 끝내 신자의 퉁퉁 부은 두볼을 타고 주르륵 굴러떨어졌다. 신자는 흐르는 눈물을 닦을념도 못하고 세차게 어깨를 들먹이며 미나를 바라보았다. “미나야 고맙다. 네가 내 옆에 있어줘서 고맙다.” “신자야…” 별안간 미나도 신자를 따라 흐느끼기 시작했다. “미나야, 이러자 마! 응? 네가 우니 난 더 무서워.” 신자는 말하면서 미나의 손을 으스러지게 잡았다. 미나는 신자에게 손을 맡긴채 여전히 울음섞인 목소리로 한마디한마디 말했다. “신자야, 우리 아버지도 한국에 가있단다.” “한국에? 너의 아버지가 한국에 가있다구?” 신자는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다급하게 물었다. 신자는 너무도 놀라는 표정이였다. 신자는 자기의 아버지가 나쁘게 변한것이 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잘 못 가르쳐준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듯 했다. 어머니가 억울하게 아버지에게 폭행을 당하고 자기가 화장실냄새에 길들여 지기까지 한국이라는 나라가 자기에게 못할 짓을 한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였다. “어쩌니? 미나야 어쩌니?” 신자는 너무도 아타깝다는듯 다시 미나의 손을 잡고 두발을 동동 굴렀다. 미나는 불안과 공포에 파르르 떠는 신자의 얼굴을 이윽히 지켜보다가 천천히 머리를 들었다. 어느새 망망한 하늘가에 무수한 애기별들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웃는듯, 우는듯, 반짝이는 별들을 쳐다보며 미나는 으스스 밀려오는 한기를 느꼈다. 저 멀리 남쪽 하늘에서 별찌 하나가 떨어져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미나는 차디찬 밤하늘에서 긴꼬리를 그으며 떨어지는 그 별찌가 어쩜 자기들의 차디찬 눈물과도 같다고 생각되였다. 그날 밤, 미나는 별을 쳐다보며 슬프게 슬프게 울었다. 신자도 울고있었다. 별들도 울고있었다.
9    울 바 자 댓글:  조회:1316  추천:0  2010-03-11
울 바 자 홍철이는 두손으로 턱을 고이고 울바자가름대에 기대여 서서 울바자너머에 있는 초가집을 바라보았다. 네벽이 동쪽으로 기울어져 헐망한감을 주기는 하나 곱게 칠한 흰벽과 산뜻하게 이은 이영은 어딘가 정갈한 인상을 주는 농가였다. 농가의 마당 한복판에는 늙은 살구나무 한그루가 서있었다. 그 나무우에서 한 소년이 살구를 따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윽토록 그 소년을 바라보던 홍철이는 갑자기 무슨 생각에서였던지 높지 않은 소리로 불렀다. “영수야~” “오, 홍철이구나!>. 영수는 살구나무에서 내려와 바자쯤으로 살구를 내밀며 말했다. “홍철아, 살구를 먹어라. 영~ 잘 익었다.” 홍철이도 살구를 받으며 말했다. “그래, 정말 잘 익었구나, 노오란게.” “며칠전까지만 해도 요쪽이 파란색을 좀 띠였던게 어느새 이렇게 익었다... 얘, 홍철아, 너네 집에 또 친척이 왔지?” 갑자기 들이대는 영수의 당돌한 물음에 홍철이는 마뜩치 않은 기색을 하며 머리를 끄덕였다. “응, 외국에서 큰아버지가 오셨다. 비행기를 타고 왔다더라.” “정말? 야~, 비행기를 타면 굉장히 좋겠지?” 영수는 호기심이 동해서 물었다. 이때 울바자너머에서 “홍철아!”하는 날카로운 부름소리가 들려왔다. 홍철이는 그 목소리에 깜짝 놀라 머리를 돌렸다. 홍철의 아버지가 홍철이를 향해 걸어오고있었다. “아버지!” 홍철의 대답에 앞서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빨리 집에 들어가거라. 큰아버지께서 네가 그림 그리는걸 보겠다는구나.” “네? 또 그림을 그리라구요? 방금 피아노를 치고 나왔는데.” “참, 내가 뭐라고 하던? 놀음에만 탐하지 말구 빨리 재간을 익히라구.” “저 영수하구 좀 더 놀면 안 돼요? 아버지.” “뭐? 놀겠다구? 이 자식이…” 아버지는 홍철이를 향해 버럭 성을 냈다. 그러자 홍철이는 뾰로통해서 아버지를 흘겨보며 손에 쥔 살구를 만지작거렸다. 살구를 발견한 아버지가 홍철이의 손에서 살구를 마구 빼앗아 울바자너머로 던져버리며 소리쳤다. “그까짓 살구가 다 뭐야. 집에 쵸콜레트가 가득한데.” 아버지의 성난 목소리와 함께 노오랗게 잘 익은 살구는 영수의 발밑에 떨어졌다. “아버지, 아버지는 참!” 홍철이는 아버지에 대한 고까운 생각이 욱 치밀었다. 또 영수에게는 얼마나 미안한지 몰랐다. 그날, 해가 서산에 기울어진 황혼무렵. 홍철이는 다시 울바자를 사이두고 영수와 만났다. 둘은 울바자사이로 재미나게 손놀음도 하면서 소곤소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수야, 아까는 참 안됐어.” “안되긴, 너네 아버지의 성미가 원래 그런데 뭐!” “영수야, 너한테만 하는 애긴데, 난 정말 울 아버지가 무섭단다.” “아버진데두 무섭다구?” “쳇, 아버지라는 사람이 나를 이렇게 못살게 구니…” “얘, 못살게 굴다니? 너의 아버진 널 너무 커하는것 같던데…” “건 네가 몰라서 하는 말이야, 맨날 나보구 피아노를 치라지, 그림을 그리라지, 또 말끝마다 큰아버지, 큰아버지 하는게 딱 질색이다 난.” “그래도 너네 팔각기와집은 큰아버지가 딸라를 보내서 지은것이라며?” “ 흥, 그래서 울아버지는 큰아버지에게 잘못 보일가봐 쩔쩔 맨단다.” “정말?” “그래, 영수야! 너도 아버지가 그렇게 싫고 무섭니?” “아니, 울아버진 날 크게 관계치 않아. 그저 착한 사람이 되라고만 한단다.” “넌 참 좋겠구나. 난 정말 이 울바자를 없애버리구 마음대로 너네 집에 놀러 다니고싶다.” 홍철의 눈에서는 정말 그 어떤 기대가 간절하게 내비쳐지고있었다. 그러는 홍철이를 바라보며 영수가 입을 열었다. “그게 될가? 올봄에 울바자를 다시 세울 때 너네 아버지가 그러던데 가을에 벽돌담장을 쌓겠다더라.” “참, 아래웃집끼리 마음대로 다니지도 못하구…” “히히히히, 울아버지가 그러시던데 이 울바자는 너네 아버지가 세운 <3.8선>이란다.” “뭐? <3.8선>?!” 홍철이는 “3.8선”이라는 이 한마디를 속으로 몇번이고 되뇌여보았다. “3.8선”이란 무엇일가? 홍철이는 생각하면 할수록 아버지가 야속스러웠다. 그럴수록 잊어버리고만싶은 3년전의 그 밤이 새삼스럽게 머리속에 떠올랐다. 그것은 홍철이가 열살나던 해의 봄이였다. 술래잡기를 놀고 돌아오던 홍철이는 집뒤에서 영수네 아버지가 무엇인가를 가리키며 아버지에게 말하는것을 보았다. “홍동무, 이게 무슨짓이요?” “정동무, 사정 좀 봐주오. 정말 방법이 없어서 하는짓이요. 후~ 녀편네가 앓아누운지 일주일이나 되오.” 홍철의 아버지가 애원에 차서 말하고있었다. “그렇다고 촌에 하나밖에 없는 국수칸의 발동기를 훔치면 어쩌오?” “내 이걸 팔아서 절반을 정동무에게 주겠소. 사정 좀 봐주오.” 홍철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하며 영수 아버지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영수 아버지는 조금도 양보 할 태세가 아니였다. “홍동무, 못살아도 량심만은 깨끗해야 할게 아니오? 애들이 이 일을 알면 어쩌자구 그러오?” “정동무, 제발 비오.” “안되오. 당장 돌려가지 않으면 난 치보위원을 찾아가겠소.” 홍철이는 더 보고만 있을수 없었다. (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고 있담? 참!>. 홍철이는 한달음에 아버지앞으로 뛰여갔다. “아버지! 아버지…” “아! 홍철아…” 홍철이를 발견한 아버지는 몸둘바를 몰라하다가 영수 아버지를 쏘아보며 이사이로 내쏘았다. “흥, 두고보기오. 누가 더 잘 되는가?” 영수 아버지가 말을 내지 않아서였는지 그 일은 소문없이 지나갔다. 그러나 그 밤이 홍철이에게 준 타격은 너무도 컸다. 헌데 마음의 상처가 낫기도 전에 홍철의 아버지는 싸리나무를 엮어 울바자를 세우려 했다. “아버지, 바자는 왜 세워요? 세우지 말자요. 전 울바자가 싫어요.” 울바자를 세우던 날 홍철이는 아버지의 옷섶을 붓잡고 말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너무도 매정하게 내 쏘았다. “참견말고 저리 비켜!” 아버지는 홍철이를 윽박지르며 마구 집으로 떠밀었다. 하지만 홍철이는 악을 쓰며 소리쳤다. “아버지, 울바자를 세우면 어떻게 영수네 집에 놀러가요?” “그놈의 집엔 왜 간다는거냐? 다시는 그 집에 발길도 돌리지말어.” “아버지!” “썩 들어가 못해?” 아버지는 천둥같이 소리지르며 엮어놓은 바자를 세웠다. 그해 가을, 40년전에 헤여졌던 큰아버지를 찾은 홍철이 아버지는 큰 아버지의 도움을 받게 되였다. 해외에서 큰 회사를 경영한다는 큰아버지께서 홍철이네 집에 많은 딸라를 보내왔던것이다. 홍철이네는 그 돈으로 팔각기와집을 덩실하게 지었고 홍철이를 위해 피아노까지 샀다. 그러나 울바자는 싸리나무로부터 널판자로 바뀌여졌었다. 아, 과연 “3.8선”이란 무엇일가? 홍철이는 속으로 윽별렀다. (이제 크면 꼭 울바자를 뽑아버리고 말거야.) 홍철이가 이런 생각을 굴리고 있을 때 영수가 홍철이에게 말했다. “홍철아, 시시한 말은 하지말구 우리 살구나 맛나게 먹자.” 말을 마친 영수는 원숭이마냥 잽싸게 살구나무에 오르기 시작했다. 홍철이는 바자 이쪽에서 노오랗게 익은 살구를 바라보며 입가에 맑은 웃음을 피워 올렸다. “얘, 홍철아, 보이니? 어느 쪽게 잘 익었니?” “저쪽에, 그래, 저쪽에 잘 익은것들이 많구나.” “어느쪽?” “저쪽, 야, 한가지에 많이도 열렸네.” “그래? 그럼 가지채로 뚝 꺾어서 줄게. 그래, 와 잘 익었다.” 영수가 살구를 따려고 앞으로 몸을 쏟으며 힘껐 손을 뻗었다. “앗!” 영수가 새된소리를 지르며 살구나무에서 떨어져내렸다. 홍철이도 놀라 소리 질렀다. “영수야, 영수야! 아프니? 괜찮아? 영수야~” 울바자 이쪽에 선 홍철이는 어쩔바를 몰라 맴돌이를 쳤다. 영수는 발목을 부여잡고 마구 땅에서 뒹굴었다. “영수가 떨어졌어요. 영수가 나무에서 떨어졌어요.” 홍철이는 안깐힘을 다해 집쪽을 향하여 소리쳤다. 그 소리에 영수의 아버지가 집에서 뛰여나왔다. 그러자 홍철이도 결심을 내린듯 울바자가름대를 딛고 올라섰다. 울바자를 넘어가려는 생각에서였다. “홍철아.” 집에서 나오던 홍철의 아버지가 깜짝 놀라며 홍철이를 향해 소리쳤다. “아버지, 영수가 발목을 상했어요.” “그런데는? 저절로 떨어진걸 가지구 넌 왜 그 야단이냐?” 홍철의 아버지는 영수네를 들으라는듯 높은 소리로 말했다. “아버진 너무해요!>. 홍철이는 아버지가 너무도 야속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홍철의 말을 듣지 못한듯 또 다시 불호령을 내렸다. “어서 바자에서 내리지 못해?” 아버지의 호령은 예리한 비수로되여 홍철이의 가슴을 찌르는것 같았다. (이 울바자가 무엇이길래 이웃집에도 맘대로 못가게 할가? 이 울바자를 없애지 않고서는 영원히 이웃집을 다닐수 없을것이다. 그래, 뽑아버리는거야. 울바자를 없애버리는거야!) 여기까지 생각한 홍철이는 바자에서 뛰여내려 울바자가름대를 잡아챘다. “아니, 너?!” “비켜요. 저…저 오늘 이 울바자를 없애버리겠어요!” 홍철이는 아버지를 향해 목청껐 소리쳤다. “너… 너, 미쳤구나. 이 자식아!” 아버지는 홍철이의 멱살을 틀어잡았다. 하지만 홍철이는 기를 쓰고 아버지의 손에서 벗어나 다시 울바자곁으로 뛰여가서 가름대를 당기며 소리쳤다. “전 울바자가 싫어요. 싫다구요.” “뭐뭐뭐…” 아버지는 선자리에서 발을 쾅쾅 구르며 홍철이에게 손가락질을 해댔다. 하지만 홍철이는 홍철이대로 죽어라고 가름대를 당기며 애원에 차서 소리쳤다. “아버지, 없애요. 울바자를 없애요. 바자없이 살던 때가 얼마나 좋았어요. 그때처럼 살아요. 네? 우리 그때 처럼 살아요.” 소년의 해맑은 목소리는 온 시골마을에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8    산 신 령 댓글:  조회:1526  추천:0  2010-03-11
산 신 령 1 산신령이 불깃불깃 물들기 시작하는 이른새벽, 덕보의 아버지는 행장을 둘러메고 집문을 나섰다. 음력설이 금방 지난 뒤의 동틀무렵이여서 그런지 날씨는 몹시도 맵짰다. 덕보는 아버지의 배웅을 나온 어머니의 옷자락을 거머쥐고 어머니의 뒤를 졸졸 따라가며 추워서 오돌오돌 몸을 떨었다. “이 자식, 영 춥지?” 덕보의 아버지는 수걱수걱 걸음을 옮기며 소나무껍질처럼 터실터실한 커쿨진 손으로 덕보의 뒤통수를 툭 쳤다. 덕보는 노상 하던 식으로 머리를 쏙 옴츠리며 “아니요.” 하고 기여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산신령기슭에는 이번에 덕보의 아버지와 함께 길을 떠나기로 약속이 되여있는 칠성이네 아버지가 식구들과 함께 덕보네를 기다리고있었다. 칠성이를 발견한 덕보는 그제야 기를 펴고 칠성이를 향해 주먹질을 해보이며 소리쳤다. “야, 이새끼. 일찍하구나.” 칠성이는 주먹으로 코밑을 쓱 닦으며 덕보를 향해 시뚝해서 대답했다. “흥, 우리 아까아까 왔댔다. 새까말적에 말이다.” 이때 떠들어대는 덕보와 칠성이를 번갈아보던 덕보의 아버지가 덕보의 어깨를 툭 치며 입을 열었다. “야, 이자식아. 너두 인젠 열살이다. 내 돌아올 때까지 에미 말 잘 듣구, 애 좀 작작 먹여라. 알겠지?” 덕보는 또 한번 어깨를 움찔하며 뒤로 한발 물러서더니 초롱초롱한 두눈을 슴벅거리며 물었다. “아버지, 아버진 언제 돌아옴두?” “음~, 아마 풀잎이 돋아오를 때면 돌아오겠지.” “그럼 고것밖에 안 있씀두?” “왜? 영 안돌아왔으면 좋겠니? 응?” 덕보의 아버지는 허허 웃으며 또 한번 덕보의 뒤통수를 툭 쳐주었다. “아니꾸마.” 덕보는 혀를 홀랑 내밀며 칠성이쪽을 힐끔 바라보았다. 그때 칠성이는 덕보쪽에 대고 입을 삐쭉거려 도깨비얼굴을 해보이며 킬킬거리고있었다. “아무쪼록 몸 돌보며 일하구 무사히 돌아들 옵소.” 아버지들은 어머니들의 배웅을 받으며 행장을 메고 씨엉씨엉 산신령을 톺아오르기 시작했다. 2 덕보네가 살고있는 산신당은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자그마한 부락이다. 게다가 어른, 아이 모두해서 마흔남짓, 기차가 어떻게 생겼는지 제 눈으로 직접 본 사람은 덕보네 아버지뿐이였다. 그만치 덕보네 아버지는 마을에서 유일하게 수시로 산신령을 넘나드는 사람이였다. 하여 마을에서는 기름이나 소금 같은것이 떨어져도 덕보네 아버지를 찾군했다. 덕보네 아버지는 산신령을 넘었다 와서는 바깥세상 얘기를 구수하게 엮어가군 했다. 그런 이야기를 통하여 덕보와 덕보의 친구들은 산신령밖에는 기차라는것이 있고 또 많고많은 사람들이 모여사는 도회지라는것도 있다는것을 알게되였다. 언제부터인가 덕보네 아버지의 이야기속에는 밖의 사람들이 어떻게 돈을 번다는 내용이 보태졌다. 덕보의 아버지는 늘 이야기끝에 “우리 시골놈들도 돈만 있으면 도회지에 가서 얼마든지 살수있겠더구만!”하고 덧붙였다. 산신령밖의 세상을 밟아보지못한 이곳 사람들은 덕보네 아버지의 이야기가 얼마나 유혹적인지 몰랐다. 하여 저마다 한번 바깥세상을 밟아보고싶어했지만 또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칠성이네 아버지가 바로 바깥세상을 밟아보기로 용단을 내린 첫사람이였다. 아버지들의 거동은 어머니들에게 큰 근심거리를 보태주었지만 덕보와 칠성이에게는 얼마나 신나는 일인지 몰랐다. 하기야 아버지들이 계실 때는 늘 거치른 아버지들의 손에 엉덩짝도 맞아대고 욕도 많이 먹던것이 지금은 자유로운 새가 되였으니 말이다. 끝없는 즐거움속에서 시간은 빨리도 흘러갔다. 덕보와 칠성이는 무심중 산신령이 푸른 옷을 바꿔입기 시작함을 느끼게 되였다. 어느날 덕보와 칠성이는 산신령기슭에 있는 개암나무밑에 자리를 하고 나란히 앉았다. 그들은 푸른 빛을 띠여가는 개암나무를 말없이 유심히 살펴보았다. “덕보야,” 칠성이쪽에서 먼저 입을 열었다. “왜?” “오라잖아 풀잎이 돋아나겠지?” “그럼.” “풀잎이 돋아나면 아버지들이 온다면서?” “글쎄, 너 아버지가 보고싶은게로구나.” 덕보가 칠성를 향해 코를 찡긋하며 시까스르듯 말했다. “아니야, 난 하나도 안 보고싶다. 덕보야, 넌?” “내가? 흥! 개똥도 안 보고싶다. 히히히, 칠성아. 나 지난 밤에 꿈을 꿨댔다.” “뭐? 네가 다 꿈을 꿨다구? 웃기지 마!” 칠성이는 못믿겠다는듯 덕보의 어깨를 툭 쳤다. 하지만 덕보는 칠성이쪽에 바싹 다가앉으며 정색해서 말했다. “정말이다. 어제 밤에 난 정말 꿈을 꿨댔다.” “정말이라구?” 긴긴 해를 두고 술래잡기다, 산등성이 톺아 오르기다, 딱지치기다 하며 힘든 놀음만 노는 시골애들에게 꿈이 온다는것은 정말 신기한 일이 아닐수가 없었다. “덕보야, 너 그래 꿈에 뭘 봤니?” “꿈에 말이다, 산신령 저쪽켠에 산할배가 사는 집이 있었어. 히히히, 너네 아버지랑 우리 아버지랑 글쎄 그곳에서 산할배랑 같이 화투를 치지 않겠니? 그런데 너네 아버진 가득 져서 코등이랑 이마에랑 숱한 종이수염을 달았더라.” “뭐뭐? 임마 시시하다. 꿈이란게 개똥같다.” 칠성이는 큰 억울함을 당한듯 벌떡 일어나서 손사래질을 하며 말했다. “그게 무슨 꿈이야, 우리 아버지가 화투를 쳐서 졌더라구? 개소리다. 설날에 우리 집에서 너네 아버지랑 화투를 칠 때 너네 아버지가 너무 져서 밥상밑으로 벌벌 기여다녔다. 이렇게…” 칠성이는 까르르 웃으며 덕보에게 기는 흉내를 내보였다. “너, 너… 이새끼 또 그 소리니?” “어째, 정말인데 애나지?” “흥, 애나긴, 그래두 우리 아버진 산밖에 제일 많이 나가봤거든.” “……” “그리구 말이다. 울아버지에겐 옛말두 수태구. 이 산신령에 정말 산할배가 있댔어. 사람이 죽으면 산신령에 가서 산할배랑 같이 산댔어. 재밌지?” “임마, 개소리 친다. 그럼 너네 아버지가 죽었니? 어떻게 꿈에 산할배랑 같이 있니?” 칠성이는 덕보의 앞에 한발 다가서며 바투 들이댔다. “뭐…뭐?!” 칠성이의 말에 덕보는 뒤말을 잇지 못하고 멍해졌다. 어느 땐가 아버지께서는 정말 덕보에게 사람이 죽으면 산할배와 같이 산다는 옛말을 해주었던것이다. (정말, 아버지가 어째서 꿈에 산할배와 같이 있었을가? 그럼 아버지가 정말로…) 덕보는 벌떡 일어섰다. “너 왜 그러니?” 칠성이는 덕보의 거동에 깜짝 놀라 다급히 물었다. “임마, 묻지 마! 집에 가자.” 덕보는 말을 마치기 바쁘게 몸을 홱 돌려 마을을 향해 뛰여갔다. 3 “엄마, 꿈이란게 맞소?” “맞을 때도 있고 틀릴 때도 있겠지.” “맞을 때가 더 많소? 틀릴 때가 더 많소?” “꿈을 믿는 사람은 맞을 때가 더 많고 안 믿는 사람은 틀릴 때가 더 많겠지.” “그럼 엄만 꿈을 믿소?” “믿을 때도 있구 안 믿을 때도 있지.” “엄마, 내 꿈에 아버지가 죽은 같습데…” “뭐야? 이 쌍놈아! 아무 소리나 쳐?” “정말이라는데. 아버지가 산신령에서 산할배랑 화투를 쳤소. 아버지가 그러던데 사람이 죽어야 산할배를 본다 했소!” “이 자식이, 입을 다물지 못해?” 덕보의 어머니는 밥을 푸다말고 손에 쥔 밥주걱으로 덕보의 뺨을 찰싹 갈겨주었다. “아갸갸 씨, 정말이라는데.” “이 놈아, 다시 그런 소릴치면 주둥이를 찢어버리겠다. 알겠니?” 덕보의 어머니는 아예 벌떡 일어나서 밥주걱을 쥔 손으로 덕보를 향해 상앗대질을 하며 바락바락 소리쳤다. 덕보는 어머니를 피해 바닥에 내려가 신을 찾아 신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어데로 갈가?) 덕보는 집앞에 있는 백양나무밑에서 잠간 서성거리다가 칠성이네 집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칠성이네 집에서도 금방 저녁밥을 지어냈는지 굴뚝에서는 파란 연기가 모락모락 피여오르고있었다. 덕보는 살금살금 칠성이네 집 창문쪽으로 다가가 창문에 귀를 대고 집안의 동정을 살폈다. 안에서 칠성이의 목소리가 도란도란 울려나왔다. “엄마, 꿈이라는게 맞소?” “글쎄 맞기야 뭐 맞겠니?” “그럼 안 맞소?” “글쎄, 혹시 맞을 때도 있겠지.” “맞을 때도 있다구?” “글쎄…” “엄마, 덕보의 꿈에 아버지가 죽었더라오.” “뭐야?” “아버지랑 죽어서 산할배랑 같이 화투를 놀더라오.” “개소리!” “정말이란데, 덕보 아버지가 그러더라오. 사람이 죽어야 산할배랑 같이 있는다구.” “애들이 그런 소리를 하면 못쓴다.” “정말이란데. 아버지랑 정말 산할배 하구…” “너 계속 악다구질이냐?” “아갸갸…” 칠성의 어머니가 무엇인가로 칠성이를 치는 소리에 이어 칠성이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잠간후 출입문이 벌컥 열리며 칠성이가 뛰쳐나왔다. 덕보는 피할새도 없이 칠성이와 맞띠웠다. “칠성아, 엄청 맞았지?” “아니, 너?” “가자, 우리.” “어데로?” “아무데나. 어른들은 다 나빠. 가자 글쎄.” 덕보는 칠성이를 끌고 골목길을 에돌아 산신령기슭으로 갔다. 그들은 늙은 개암나무아래에 앉아 뉘엿뉘엿 넘어가는 저녁해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덕보야, 꿈이란게 정말 맞을가?” “맞는것 같아. 그렇잖으면 엄마들이랑 그렇게 야단하겠니?” “아버지랑 정말 죽으면 어쩌니?” “글쎄 울 아버진 내가 잘못했을 때만 때리구 욕하구 했어. 평소엔 영~ 괜찮았거든. 지난 겨울방학엔 나에게 목데기로 스케트를 만들어주었댔다.” “우리 아버지두 기실은 나를 고와했던것 같아. 한번은 아버지가 나에게 쪽발구를 만들어주다가 톱에 손가락까지 상했댔어.” “그런데 아버지들이 정말 죽으면 우리 어쩌지?” “글쎄… 우리 한번 산신령에 가볼가? 아버지들을 찾아서…” “옳아, 가보자. 우리!” “가보자!” 그들은 약속이나 한듯 벌떡 일어섰다. 진붉은 저녁노을이 그들의 얼굴을 불깃불깃 물들이고있었다. 이 시각 그들의 눈에는 일종 형언못할 야릇한 빛이 넘쳐흘렀다. “우린 꼭 산신령에 가서 아버지들을 찾아야 해!” “옳아, 그들은 우리의 아버지니까.” 덕보와 칠성이는 불타는 저녁노을을 밟으며 종주먹을 부르쥐고 산신령을 톺아오르기 시작했다. “쏴~쏴~” 나무들의 설레임소리와 함께 산신령은 부르르 몸을 떨고있었다. 그러나 덕보와 칠성이는 무서움도 피로함도 느낄수 없었다. 다만 산신령이 바로 아버지들의 얼굴처럼 무서우면서도 모름지기 마음의 기탁을 할수있는 곳으로 느껴질뿐이였다.
7    “백조”와 부체육위원 댓글:  조회:1802  추천:0  2010-03-11
“백조”와 부체육위원 1 저요? 최철웅이라 불러요,6학년 5반에서 첫 손 꼽히는 말썽꾸러기였구요. 지난학기만해도 담임선생님은 제가 사람구실을 하면 “소철나무에 꽃이 핀다”고 했어요. 저요, 아무리 공부를 못해도 소철나무에는 쉽게 꽃이 필수 없다는것을 책에서 보아 알고있거든요. 그래 서 한번 사람구실을 해서 보여주마 하는 배심으로 상학전에 담임선생님의 교탁을 깨끗이 닦아놓구 선생님의 고뿌에 물을 떠다가 정성들여 교탁우에 올려놓았죠. 그날 담임선생님 이 교실에 들어와서 어쨌는지 알아요? 원래 큰 입을 헤벌사하게 벌리고 “누가 한 일입니까?” 하고 물었어요? 저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척 일어나며 “선생님, 제가 사람구실을 한번 해봤습니다.” 하고 대답했죠. 그러자 선생님이 글쎄 뭐라는지 알아요? “철웅이가요? 호호호... 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떴네요.” 이러는거예요. 그러자 교실에서는 “하하하” 하고 웃음보가 터졌죠. (어쨌든 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뜬 날이니까 선생님도 특별한 재미를 느껴봐야지...) 하는 오기로 그날 오 후 하학하기전에 살금살금 자전거 보관처에 가서 선생님의 자전거바퀴 바람을 몽땅 빼버렸죠. 그날 선생님이 자전커바퀴 두 개에 바람을 넣느라고 땀깨나 쏟았을거예요. 저요, 바로 이런놈이예요. 근데요. 이 담임선생님이 이번 학기에는 써클조로 가시구 처녀선생님이 새로운 우리반 담임으로 온거에요. 작년에 사범학교를 졸업했다나요? 올해 21살이래요. 눈이요? 되게 커요. 쌍까풀이구요. 웃을 땐 량볼에 보조개가 옴폭옴폭 들어가요. 살결이 희다못해 영-죽이죠. 그래서 제가 “백조”라는 예쁜 별명을 붙혀줬죠. 글구 우리학급 나의 짱들인 성수랑 수웅이랑과 내기를 했어요. 1주일안으로 “백조”선생님을 미운새끼오리로 만들어 버린다 구요. 어떻게 만드는가구요? 피- 아무리 고운 얼굴이라도 눈물에 코물에 범벅이 돼봐요. 미운새끼오리가 안되는가구요. 그날 선생님은 제1과 서정시 “어머니”를 감정높여 랑송했어요. “몇번을 고쳐그려도 /어쩐지 마음에 안들어/ 나는 지우고 다시 그린다...” 그쯤해서 제가 한마디 했죠. “백조야, 집에서 엄마 찾는다.” 선생님이 깜짝 놀라는거에요. “누구 엄마 찾아요?” 교실에서는 폭소가 터졌어요. “자. 동무들, 엄마가 찾더라도 이 시간 공부는 하고 가세요. 희슥희슥한 머리/ 이마의 주름살도 빠뜨리지 않고/ 가슴에는 공로메달 모두 그려놓고 보아도...” “야- 제네 엄마 되게 센매-” 나의 괴상한 소리에 교실에서는 또 한번 웃음소리가 터졌어요.그 다음은 서로 눈치를 살폈어요. 예상대로라면 영낙없이 우뢰가 울고 소낙비가 쏟아지게 돼있으니까요. 선생님 은 천천히 교단에 올랐어요. “준비, 시작!” 저는 수웅이에게 찔끔 윙크를 보내며 나직히 속삭였어요. 선생님께서 드디여 입을 열었 어요. <그래요. 누구의 마음속에서나 엄마는 제일 센 사람이예요. 이 과문에서 노래하는 엄마도 례외가 아니죠.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는 금전만능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난 자식도 버리고 돈벌이에 만 정신을 파는 엄마들도 간혹 있어요. 친구의 엄마는 어떤 엄마죠? 1분만 생각해보세요.” 선생님은 말을 마치고 교단에서 내리더니 반짝이는 눈길로 우리들을 쓸어보는거예요. 웬일이죠? 교실은 쥐죽은듯 고요해졌어요. 저도 가슴이 후둑 후둑 뛰였어요. 참, 우리 짱 들은 이런걸 두고 “맨즈(얼굴)가 없다.”해요. 지난학기 그 암펌같은 담임선생님의 앞에서도 이런 적은 없었는데... 정말 알다가도 모를일이죠. (에라, 맨즈는 찾구봐야지...) 이렇게 생각한 저는 어망결에 “우리 엄마는 ...” 하고 큰 목소리로 정적을 깨뜨렸어요. “좋아요. 철웅동무, 철웅동무의 엄마는 어떤 분이예요?” 선생님께서 또 그 죽여주는 볼우물을 지으며 물었어요. “우리엄마는...” 저는 머뭇거리다가 머리를 푹 숙였어요. (엄마?) 정말 기억도 묘연해요. 제가 여섯 살 나던 해의 유치원 들놀이 때, 함께 가서 저를 없고 60메더 달리기를 하던 모습이 어렴풋 이 떠오를뿐이애요. 벌써 한국에 나간지가 7년이 되였죠. 전 할머니의 손에서 지금까지 커 왔어요. 아버지는 사실 엄마말고 딴 녀자가 있어요. 저요, 모르는척해요. 할머니도 처음에 는 아버지를 나무리더니 지금은 꿀먹은 벙어리마냥 눈을 감고있구요. 그대신 아버지도 할 머니도 저를 되게 고와하죠. 돈이요? 달라는대로 줘요. 그래서 나는 무서운 것이 없어요. 친구들속에서도 왕이거든요. 차츰 엄마가 미워졌어요. 그리구 여자가 미워지구요. 정말이 예요. 왜서인가구요? 몰라요. 어째든 나를 버리고 간 엄마 생각이 나면서 녀자는 다 미워 져요. “철웅동무, 엄마 자랑을 하고싶지 않아요?” 잠간후 선생님은 말을 이었어요. “그래요. 말하고싶지않으면 안해도 돼요. 친구들은 이제 1년만 지나면 중학교에 가게 돼요. 왜서 중학교라 부르는지 알아요? 중등인물이 된다는거예요. 그러니 동무들에게도 동무들만의 비밀이 있어야하죠.” 정말 괴상한 일이죠. 그럴 땐 원래 누구라도 옛날처럼 방구뀌는 시늉이라도 해야 난처 한 국면이 해결되겠는데 모두가 숨소리마저 죽이고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거예요. “하지만 너무 큰 비밀을 마음속에 넣고 있으면 피곤할 때도 있어요. 그럴 때 누군가와 그 비밀을 나누고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거예요. 그 누군가가 엄마래도 좋고, 아빠래도 좋고, 친구래도 좋죠. 정말, 동무들이 나를 믿는다면 저도 동구들의 비밀을 함께 나눌 자신이있어요.” 어느 놈이 처음에 쳤는지 교실에서 박수소리가 울렸어요. 그러자 온 학급이 떠나가라 박수소리가 울렸어요. 나도 덩달아 손바닥이 터져라고 박수를 쳤구요. 소학교 6학년에 올라오면서 천하의 최철웅이 귀신에게 홀리운듯 40분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다 본 것이 아 마 그 시간이 처음일거예요. 휴식종소리가 울렸어요. 모두들 마당으로 나갈 생각을 않고 머리를 맞대고 앉아 “백조 ”선생님에 대한 평가로 분주했어요. 수웅이는 글쎄 이제 커서 “백조”선생님과 같은 녀자친구를 사귄다나요. 피- 글구 어문시간이라면아예 죽는 시늉을 하던성수놈은 어문시간이 되게 재밌다는거예요. 저요? 저도 (어문시간이 원래는 싫은것이 아니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제가 어떤 사람인 데요. 그까짓 “백조”선생님께 호락호락 손을 들 철웅이가 아니거든요. “야! 이 쪽 빠진 새끼들아, 몇마디 달콤한 말에 홀라당 넘어갔니? 다음 시간에 봐라, 이 어른이 진짜 <백조>를 미운새끼오리로 만들어 주겠으니까...” 저는 애들 앞에서 가슴을 탕탕 쳤어요. 다른 때 같으면 나의 말에 “옳다, 옳다!” 하 고 토를 달아 줄 놈들이 그냥 “진짜? 진짜?!”하면서 반신반의 하는거예요. “그래. 이 최철웅이만 지켜 봐!” 드디여 상학종소리가 울렸어요. 저는 선생님이 들어오면 뿌릴 종이비행기를 열심히 접 어쥐고 기다렸어요. “삐꺾-”하는 문소리와 함께 하얀 얼굴이 먼저 들어오며 옴폭 보조개 를 팠어요. 저는 큰 결심을 내리고 종이비행기를 날렸죠. 종이비행기는 선생님의 발밑에 가서 떨어졌어요. 선생님은 허리를 굽혀 종이비행기를 줏더니 사뿐사뿐 교단에 올라섰어요 . “누가 만든거예요? 참 잘 만들었네요. 예쁜 비행기를 이번 시간 선물로 받아서 정말 감사해요. 저두요, 이 비행기를 만든 동무처럼 열심히 이번 시간 강의를 할게요. 무슨 일 이나 이렇게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거예요. 참, 흑판을 안지웠네. 최철웅동무, 동무의 키가 우리 학급에서 제일 큰 것 같은데요, 저를 도와줄래요? 흑판을 지워주세요. 될수있어요?” “네! ” 저는 크게 대답하며 벌떡 얼어섰어요. 교실에서는 또 한번 폭소가 터졌어요. 수웅이라 는 놈의 시까스르는 소리가 등뒤에서 들렸어요. “예쁜 <백조>가 미운새끼오리로 될-까요? 천하의 영웅호걸 최철웅이 <미운새끼오리> 로 될-까요?” 누군가 박수를 치기 시작했어요. 저는 진짜 귀밑까지 빨개지고 목에서는 확확 겨불내가 나는것같았어요. 저는 힐끔 뒤를 돌아보며 수웅에게 주먹질을 해보였어요. 지금이요? 피- 물어보지 마세요. 부체육위원이 됐어요. 우리학교 력사에서 부체육위원은 제가 처음이래요 2 모두들 저를 로케트를 탔다고 하지만 사실 제가 뭘 그리 잘해서 부체육위원이 된것은 아니랍니다. 사실 그날 우리학급의 체육위원 림강이가 수둔지 뭔지 하는 뽀두라지가 졌다가 물집이 터지는 병을 해서 학교에 오지 못했더랬어요, 두번째 시간이 끝나자 “백조”선생님이 교과서를 덮고 교단에 올라섰죠, 히히히히... 습관이 되여 담임선생님을 그냥 “백조”선생님이라 부르게되네요. 정말이지 우리 담임선생님은 새하얀 얼굴에 말씀하실 때면 옴폭옴푹 볼우물을 파는것이 마치도 한마리 백조를 방불케 한답니다. 선생님께서 박씨같은 이를 살짝 들어내며 말씀하셨습니다. “동무들도 알겠죠? 체육위원 림강동무가 수두에 걸려 일주일간 학교에 못오게 됩니다. 학급에 체육위원이 없어서는 안되는거죠. 누가 대신 체육위원이 되겠습니까?” 선생님의 말씀이 떨어지기 바쁘게 교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서로서로 옆에 앉은 애의 옆구리를 툭툭 치면서 “네가 해라, 급을 칠 좋은 기회다. 크크크...” 하며 낄낄 댔죠. “어때요? 자신 있는 친구가 없어요?” 선생님께서 또 한번 볼우물을 파며 도전적으로 물었습니다. 이때 수웅이가 괴상한 목소리로 소리쳤습니다. “최철웅이를 시키십시오. 모두들, 환영! 박수~ 착착착...” “좋습니다. 캬캬캬...” 성수도 착착 박수를 쳐대며 낄낄 거렸습니다. 그러자 선생님께서 저를 내려다보며 물었습니다. “최철웅동무, 자신있습니까?” “쳇, 시키면 왜 못해요?” 저도 모르게 욱 배심이 생기며 자신있게 대답해버렸습니다. “좋습니다. 오늘부터 최철웅동무를 우리학급의 부체육위원으로 임명합니다. 축하합시다.” 선생님께서 먼저 박수를 쳤습니다. 삽시에 교실이 떠나가라고 박수소리가 터졌습니다. 그날 중간체조시간에 저는 난생 처음으로 간부라는 이름을 띠고 남들앞에 나서게 되였습니다. 좀은 숙스럽고 또 좀은 자호감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정말이지 중간체조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습니다. 교실로 들어올 때 수웅이가 또 혀를 나부랑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위대하신 간부동지, 제가 부축해드릴가요?” 그러자 성수도 질세라 한술을 떴습니다. “아니지, 고귀하신 부체육위원각하를 업어드려야지, 캬캬캬...” 자식들은 그러고는 나죽는다고 배를 끌어쥐고 돌아갔습니다. “야! 너 자식들, 죽고프니?...” “천만의 말씀이 옵니다...” 세번째 시간이 시작되기 전까지 그 자식들은 내내 저를 가지고 안주를 했습니다. 참으로 공교로운것이 생활인가 봅니다. 그날 네번째 시간은 바로 체육시간이였습니다. 선생님은 종이 울리기전에 교실에 들어오시더니 한창 저를 안주로 해서 놀아대는 성수랑을 제지시켜놓고 말씀했습니다. “이번 체육시간은 최철웅동무가 부체육위원이 되여서 보는 첫 체육시간입니다. 동무들은 최철웅동무를 협조하여 체육시간을 잘 봐야 하겠습니다. 알겠습니까?” “알았나이다.” 누군가 대답했습니다. 그때 상학종소리가 났습니다. 우리는 운동장으로 나갔습니다. 저는 숙스러운대로 동학들앞에 나서서 구령을 불렀습니다. “우로 봤! 앞으로 봤.” 목이 막 말라들고 소리가 떨리는감을 느꼈습니다. 사실 전에 림강이가 우리 앞에 나서서 구령을 부를 때는 그까짓게 뭐가 대단하다고 시뚝하느냐고 아니꼽게 생각도 했었지만 진짜 애들앞에 나서고 보니 영 딴판이였습니다. “줄을 잘 맞추십시오. 주의, 우로 봤.” 제가 다시 한번 구령을 부르자 수웅이라는 놈이 일부러 뒤로 슬쩍 돌아버리는것이였습니다. “수웅아, 너 제대로 못 세겐?” 급해난 나는 동학들 앞이라는것도 잊고 꽥 소리쳤습니다. 애들의 눈길이 순식간에 수웅이쪽으로 쏠렸습니다. 그 시각 나는 수웅이의 얼굴이 붉어지는것을 보았습니다. 이어 애들의 웃음소리가 터졌습니다. “야~, 이 새끼야, 너 뭐 진짜로 체육위원이 된줄을 아니?” 수웅이가 격한 목소리로 소리쳤습니다. 전처럼 그냥 놀음으로 한 행동을 내가 정식으로 지적하니 감정이 상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나도 어쩐지 그때만은 지고싶지 않았습니다. 하여 역시 목소리를 높여 “뭐야?” 하고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수웅이는 주먹을 부르쥐고 분해서 씩씩 황소숨을 톺으며 말했습니다. “부실한 새끼, 춰주니 궁둥이가 나가는줄도 모르네. 네가 다 무슨 간부야, 놀리는 줄도 모르고...” “이 새끼 누굴 놀리니?” “널 놀린다, 제 주제도 모르는 부실한 원숭이새끼를 놀린다, 어째?” 수웅이는 내쪽에 손가락질을 하며 쏘아댔습니다. “개새끼 네가 다 내 친구야?” 나는 부체육위원이구 구령이구 다 까맣게 잊은채 씽하니 대렬속으로 뛰여들어가 수웅이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습니다. 삽시에 수웅이의 코에서 뻘건 피가 주루룩 흘러내렸습니다. 수웅이도 피를 씻을 념은 않고 나에게 덤벼들었습니다. 삽시에 대렬은 싸움을 말리는 애들로, 선생님을 찾아가는 애들로, 응원을 하는 애들로 란장판을 이루었습니다. 축구공을 들고나오던 체육선생님께서 소식을 알리러 간 애들과 마주쳤던지 얼마 안되여 운동장에 나타났습니다. 나와 수웅이는 체육선생님의 그 큼직한 발에 궁둥이를 두개씩 채우고는 운동장을 다섯바퀴를 도는 벌을 받았습니다. 방금 대전을 치루고 난 뒤라 숨이차고 눈앞이 아물아물 해났습니다, 하지만 그보다도 동학들보기 창피했고 담임선생님을 보기가 미안하게 느껴졌습니다. 부체육위원으로되여 첫시간을 나는 내내 괴로움속에서 보냈습니다. 지지리도 길게 느껴지던 체육시간도 드디여 끝났습니다. 나는 기분이 엉망이 되여 터벅터벅 교실쪽으로 걸었습니다. “철웅동무,” 어데선가 담임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나는 흠칫 놀라며 걸음을 멈추고 머리를 들어보았습니다. 선생님께서 정문에서 걸어나오고 있었습니다. (끝장이다.) 하는 생각이 뇌리를 쳤습니다. 순간 머리속에서는 “윙~” 소리가 나며 하얀 백지처럼 아무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철웅동무, 어때요? 체육시간 잘 봤어요?” 백조같은 얼굴에 또 볼우물이 패워들어갔습니다. 여느 때는 그렇게 보기좋던 선생님의 볼우물이, 자꾸만 보고싶던 그 볼우물이 그 순간엔 그처럼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아니 그 볼우물을 볼 자신이 없었던것입니다. 나는 몸을 픽 돌려 걸음아 날살려라하고 냅다 뛰였습니다. 등뒤에서 “철웅동무-”하는 불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하지만 나는 더욱 죽기내기로 뛰여갔습니다. “철웅아- 철웅아-” 뒤에서 선생님의 다급한 부름소리가 련이어 들려왔습니다. 그럴수록 나는 더욱 기를쓰고 뛰였습니다. 또 얼마간 뛰였을 때 갑자기 자전거 한대가 쓱 옆을 스치더니 멈춰 섰습니다. 그바람에 나도 뚝 걸음을 멈췄습니다. 눈앞이 까매났습니다. 선생님께서 누군가의 자전거를 빌어타고 쫓아왔던것입니다. “야~ 이 못난놈아! ” 선생님께서 오른손을 번쩍들어 나의 어깨에 주먹을 날렸습니다. 어망결에 나는 뒤로 한발 물러섰습니다. 선생님께서 뚫어져라 나를 바라보며 소리쳤습니다. “이 못난놈아! 너두 남자야!” 그처럼 상냥하게만 느껴지던 선생님의 눈길이 막 불을 토하고 있었습니다. “말해, 네가 왜 도망쳐야하는지? 얼마나 큰 죄를 져서 도망쳐야하는지 들어보자!.” “전...전...아악-” 저는 저도모르게 미친듯이 소리쳤습니다. 너무너무 서럽고 분했습니다. “철웅아!” 선생님께서 부르르 떠는 저의 오른손을 잡아주셨습니다. 그리고 황소숨을 들먹이는 저의 어깨를 다독여 주셨습니다. 그 시각 막혔던 홍수가 터지듯 두눈에서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 “철웅아, 아무말도 하지마! 선생님은 아무것도 묻지 않겠다.” 선생님은 손으로 저의 눈물을 닦아주고는 번저졌던 자전거를 세우며 말씀했습니다. “하지만 이 시각 들을수만 있다면 한가지만 들어둬라. 사람이 살면서 부딛쳐야 할 일이 얼마고 뚫고 나가야 할 길이 얼만지 너 아니? 일에 부딛칠 때마다 도망친다면 앞으로 어떻게 큰 일을 해나갈수 있겠니? 더구나 남자가 말이다.” 선생님께서는 말을 마치고 뚫어지게 저를 지켜보며 어깨 다독여주셨습니다. 역시 타는듯한 눈길이였지만 조금전의 그 불길이 아니였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그 눈길에서 다시 한번 백조의 부드러움을 찾았습니다. “선생님!” 저는 솟구치는 감동을 누르며 떨리는 목소리로 선생님을 불렀습니다. “그래, 철웅아! 넌 여전히 우리학급 부체육위원이다. 동학들이 보고 있단다. 잘해보자! ” 선생님께서는 자전거에 훌쩍 뛰여오르더니 힘차게 페달을 돌렸습니다. 바람에 긴 머리칼을 날리는 선생님의 뒤모습은 멀어져갈수록 더욱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3 “사람이 살면서 부딛쳐야 할 일이 얼마고 뚫고 나가야 할 길이 얼만지 너 아니? 일에 부딛칠 때마다 도망친다면 앞으로 어 떻게 큰 일을 해나갈수 있겠니?” 선생님의 그 말씀이 방불히 귀전에서 다시 울리는것만같습니다. “철웅아! 넌 여전히 우리학급 부체육위원이다다. 동학들이 보고 있단다. 잘해봐! ” 하고 말씀하시던 담임선생님의 기대에 찬 그 눈길을 보는듯 싶었습니다. (그래, 누가 뭐래도 나는 우리학급의 부체육위원이다. 선생님께서 나를 보고계셔!) 나는 두주먹을 불끈 쥐고 학교쪽을 향해 씨엉씨엉 걸어갔습니다. 점심시간이라 교정은 조용했습니다. 그제야 나도 배가 살살 고파났습니다.. 나는 교실쪽으로 발걸음을 재우쳤습니다. 창문으로 교실안을 들여다보니 동학들은 한창 점심식사를 하느라고 분주했습니다. 출입문가에 도착한 나는 잠간 숨을 몰아쉬고는 문고리를 잡았습니다. 저도모르게 얼굴이 약간 붉어지고 숨이 가빠왔습니다. 나는 천천히 “후~”하고 긴숨을 내쉰후 천천히 문고리를 당겼습니다. 내몸이 교실로 절반쯤 들어가자 동학들의 눈길이 내쪽으로 확 쏠려오는 것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나는 머리를 숙이고 내 걸상쪽으로 바삐 들어가 앉았습니다. 책상우에는 다치지 않은 곽밥이 그대로 놓여 져있었습니다. “어데 갔댔니?” 옆자리에 앉은 딱친구 성수가 넌짓이 물어왔습니다. “저~기,” 나는 뭐라고 대답하기 싫어서 머리를 숙인채로 말끝을 얼버무려 버렸습니다. “너 선생님께 되기 당했지? 그래 선생님이 어쩌던?” 성수가 턱밑에 다가앉으며 또 물었습니다. “아니, 당하긴...” “그래 어쩌던? 선생님이?” “별말이 없었어...” “정말?” “정말이래두...” 말끝을 흐리우면서도 선생님의 얼굴이 눈에 삼삼히 떠오르는것은 어쩔수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지금 뭘 생각하고계실가? 그래 내가 이번 일을 어떻게 처리하나 여겨 보실거야, 그럼 먼저 수웅이하구 화해를 해야하는데...) 이렇게 생각을 한 나는 수웅이쪽을 슬쩍 건너다 보았습니다. 수웅이도 머리를 푹 숙인채 수걱수걱 밥만 입에 떠넣고 있었습니다. 생각같아서는 당금이라도 다가가 “수웅아, 잘못했다, 용서해라!”하고 사과하고싶었지만 어쩜 수웅이가 나의 사과를 받아주지 않을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감히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또다시 가슴이 후둑후둑 뛰기 시작했습니다. 혹시 수웅이도 나처럼 나와 화해할 생각으로 내쪽을 주시하고있지 않을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여 저가락질을 하면서도 흘끔흘끔 수웅이쪽을 건너다 보는 것을 잊지않았습니다. 하지만 수웅이는 여전히 나하고 눈을 맞춰주지않았습니다. (그래 수웅이도 몹시 성났겠지, 사실 내가 틀린거야, 동학들이 보는데서 그를 지적했으니... 그래 이제 밥을 다 먹은후 밖에 나가 놀 때 조용히 수웅이를 찾자.) 나는 이렇게 자신을 달래면서 넘어가지 않는 밥을 억지로 넘겼습니다. 동학들이 하나둘 저가락질을 멈추기 시작했습니다. 수웅이도 저가락을 빈밥곽에 얹어서 쓰레기주머니에 넣었습니다. 그러자 나의 가슴은 더욱 두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수웅이가 나가면 나두 인차 따라 나가는거야, 내가 먼저 잘못했다구 하는거야, 난 부체육위원이니까. 선생님이 나를 믿고있으니까...) 나는 내가 먼저 수웅이에게 사과해야 할 근거를 만들어가며 자신에게 용기를 넣어주었습니다. “성수야 밥 다먹었니? 나가 뽈이나 차자.” 수웅이가 문쪽으로 걸어가며 성수쪽에 대고 소리쳤습니다. 그때 나의 눈길이 수웅이의 눈길과 마주쳤습니다. 순간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 앉는것만 같았습니다. 분명 픽 스쳐지나는 수웅이의 눈에서는 나에 대한 분노가 흐르고있었습니다. 도무지 나의 사과가 먹혀들어갈것 같지 않은 느낌이였습니다. “철웅아, 가자. 가서 뽈을 찾아.” 성수가 나의 손을 잡아 끌었습니다. “싫어, 맥이 없어!” “쳇, 뽈 찰 맥두 없니? 가자, 그래지 말구.” “싫다는데.” 나는 괜히 성수에게 역정을 부렸습니다. “쳇, 계집애 같이...싫음 마! 나 간다.” 성수는 나에게 입을 삐쭉해보이고 몸을 돌렸습니다. 성수까지 가버리자 가슴이 갑갑해나면서 머리가 삼검불처럼 헝클어지는것 같았습니다. (어쩜 좋아, 이대루 수웅이와 관계를 끝내는거야? 나는 화해할려구 하는데... 참, 내 마음을 몰라주면서... 이대로 수웅이를 찾았다가 퇴박이나 맞으면 내 얼굴은 어데다 둘가?) 나는 손가는대로 가방에서 필기장을 끄집어냈습니다. 무엇이든지 끄적거려보고싶었습니다. “수웅아, 사실 난 널 좋아해!, 우리는 친구야. 아까는 정말 밸을 참지못해서 그런거야, 용서해줘, 그리구 우리 옛날처럼 사이좋게 보내자...” 여기까지 쓰고나니 수웅이에게 뭔가 많은 말을 하고싶어졌습니다. 나는 누가 볼가 팔로 필기장을 막으며 하고싶은 말을 부지런히 적어내려갔습니다. 단숨에 적고나서 읽어보니 수웅이가 봐도 감동을 받을것만 같았습니다. 이 정도에도 마음을 풀지 않으면 수웅이가 정말 마음이 졻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종이를 찢어내여 곱게 접었습니다. 그러면서 이 쪽지를 어떻게 전할가고 생각해봤습니다. (가방안에 넣을가? 아니야, 그러다 혹시 수웅이가 보지 못하면 어쩌지? 다른 책을 꺼내다 떨굴수도 있구. 그럼, 성수에게 심부름을 시킬가? 그것두 좋지 않아, 그러다 그 자식이 또 입빠르게 내가 먼저 수웅이에게 빌고 들었다고 소문을 펴고 다니면 어쩌지? 그럼 나의 맨즈(얼굴)는 다 깎이구 없을거야. 그럼...?) 순간 선생님의 얼굴이 또렷이 떠올랐습니다. (그래, 이거야, 선생님께 이 쪽지를 드리면서 수웅이에게 전해달라는거야, 그럼 선생님은 수웅이와 화해하려는 나의 마음을 알아줄것이고 만약 수웅이가 나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아도 나에겐 책임이 없는거야. 그래 바로 이거지!) 나는 자신의 기발한 착상에 대뜸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나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선생님을 찾아떠났습니다. 금방 운동장에 나서자 축구구경을 하는 선생님이 한눈에 안겨왔습니다. 나는 조용히 선생님의 곁으로 다가가 선생님을 불렀습니다. “철웅이구나, 웬 일이지? 체육위원이 뽈은 차지 않구?” “저... 좀...” “뭐, 할말이라도 있니? 그럼 저쪽에 가자.” 선생님께서는 신통히도 나의 마음을 알아맞추고 동학들이 없는 백양나무아래로 걸어갔습니다. “인젠 됐지? 말해 봐! 무슨 일이야?” “선생님, 미안하지만 이걸요...” “뭔데?” “수웅이하구 화해를 하자구 이걸...” “그래? 보자.” 선생님께서는 나의 손에서 쪽지를 받아 읽어내려갔습니다. 선생님은 가끔 머리를 끄덕이기도 하고 입가에 가는 미소를 띄우기도 하더니 입을 열었습니다. “성근하게 잘 썼구나. 수웅이에게 가져다 줘!. 그럼 수웅이도 널 리해할거다.” “제가 가져가면 그 애가...” “왜? 받지 않을것 같니? 자신 없다는거야?” “네.” “그래서 나더러 너의 심부름을 해달라구?” “......” 선생님께서는 타는듯한 눈으로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쪽지를 나의 손에 쥐여주며 딱 잘라 말했습니다. “이 심부름을 난 못한다. 용기가 없으면 사과구 뭐구 그만둬!” 말을 마친 선생님께서는 걸음을 떼다말고 머리를 픽 돌리며 또 한마디 했습니다. “철웅이, 너 알지? 넌 남자야!” 바람에 날리는 선생님의 까아만 머리칼이 선생님의 발걸음과 함께 하늘하늘 춤을 추는 것이 나를 보고 못난놈이라 웃어주는듯싶었습니다. 순간 작아지고 초라해지는 자신이 실망스럽게 생각되였습니다. 나는 맥 없이 백양나무에 몸을 기대고 지긋이 두눈을 감았습니다. “너 알지? 넌 남자야!” 선생님의 비수같은 말씀이 가슴에 와 꽂히것만 같았습니다. (최철웅, 너 알지. 넌 남자야. 남자란 말이야!) 나는 움츠려지는 자신이 미워지기 시작했고 선생님의 앞에서 못난 자신의 모습을 또 보인것이 괴로와 났습니다. (최철웅, 너 알지? 넌 남자야, 남자는 자기가 마음 먹은것을 그대로 하는거야. 그러면 되는거야! 수웅이가 너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아도 넌 마음 먹은대로 하는거야.) 나는 몇번이고 못난 자신을 욕했고 또 자신을 남자로 다시 태여나라고 고무했습니다. 그럴수록 시루속같이 침침하던 가슴이 열리는것처럼 시원해 났습니다. 나는 그때까지 손에 쥐고있던 쪽지를 빡빡 찢어 파아란 하늘에 훌 날려버렸습니다. 옹기종기 속에 넣었던 자존심 쪼박들이 날리는 종이쪼박과 함께 훨훨 살아져버리는것같았습니다. 나는 자신있게 운동장을 향했습니다. 수웅이가 뽈을 차고 나오면 주먹으로 그의 어깨를 툭 쥐여박으며 이렇게 말하리라 윽별렀습니다. “임마, 우린 남자야, 남자란 말이다!” 그러면 선생님께서도 나를 지켜보시며 머리를 끄덕여주실것 같았습니다. 하아얀 백조의 얼굴에 다시 옴폭 보조개가 패일거라 믿고싶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언제나 내게 힘이되는 “백조”가 있는한 히히히... 담임선생님이 계시는한 이 부체육위원은 세상에 두려울 일이 없을것입니다.
6    아버지는 장사를 합니다 댓글:  조회:1489  추천:0  2010-03-11
아버지는 장사를 합니다 (아참, 늦었구나! 늦었어. 어걸 어쩌면 좋을가?) 남수는 가슴이 두근거리는것을 어쩔수가 없었다 (그럼 이 시간이 끝난 다음 들어갈가?) 하지만 역시 신통한 궁리가 아니라고 생각되였다. 연고 없이 한시간을 빼먹은걸 담임선생님이 아시면 그 후과가 더 엄중해질것 같았던것이다. (에익, 욕을 먹어도 한번이겠지! 들어가자.) 남수는 내려오지도 않은 가방끈을 들어 다시 어깨에 멘후 조용히 문을 밀고 교실에 들어섰다. 삽시에 60여쌍의 눈동자가 일제히 남수쪽으로 쏠려왔다. 순간 남수는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오르고 호흡이 빨라짐을 느꼈다. 남수는 머리를 푹 숙이고 입술을 감빨며오른쪽 발가락들을 애꿎게 꼼지락거리기만 했다. “남수학생, 왜 늦었습니까?” 높지는 않으나 날이 선 선생님의 목소리였다. “저… 아… 아침이 늦어져서…” “남수학생, 후에는 일찍일찍 다니십시오. 들어가십시오.” 선생님의 목소리가 떨어지기 바쁘게 남수는 머리를 수긋한채 잰걸음을 옮겼다. 대여섯 발자국을 걸었을 때 갑자기 무엇인가 남수의 오른쪽 어깨에 맞혀 툭 하고 땅에 덜어졌다. (아뿔싸!) 교탁우에 놓였던 선생님의 교안책이 어깨에 다치우면서 그 옆에 있는 분필통을 쳐 땅에 떨구어놓았던것이다. 삽시에 교실에서는 폭소가 터졌다. 남수는 머리에서 “윙~”하는 소리가 울리는것같았다. “조용하시오. 웬 일입니까? 남수학생, 냉큼 분필통에 분필을 주어넣으십시오.” 남수는 선생님의 말씀이 떨어지기 바쁘게 허리를 굽혀 사처에 널린 분필을 한대한대 분필통에 주어넣었다.그후 제자리에 들어가 앉은 남수는도무지 선생님의 강의를 제대로 들을수가 없었다. 얼굴이 점점 더 화끈거리고 머리에서 “웅웅~”소리가 더 세차게 났던것이다. 남수는 책상에 머리를 틀어박고 두 눈을 꼭 감았다. 저도모르게 눈굽이 촉촉하게 젖어올랐다. 남수는 입술을 옥물며 왼손으로 자기의 허벅다리를 꽉 꼬집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방금 자기의 행동이 동학들 앞에서 큰 웃음가마리로 된것 같았던것이다. (참, 이걸 어쩌면 좋을가? 후유~ 다 아버지와 어머니 때문이야.) 하는 생각이 미치자 남수의 눈앞에는 또 다시 아침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것은 아침 여섯시반 쯤이였다. 남수가 아직 잠도 채 깨지 못했는데 아버지와 어머니의 침실에서 어머니의 격한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밑졌다구요? 또 밑졌어요? 그럼 우린 어떻게 사는거예요? 아이구~ 내 팔자야, 왜 올해엔 이런 일밖에 안 생기는지…” 한달전에 무슨 장사인가를 한다며 남방으로 갔던 아버지가 어제밤에 돌아오신 모양이였다. 남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아버지와 어머니의 침실앞으로 다가갔다. “말해보세요. 어찌된 일인가? 며칠전에 또 그 년이 그 곳에 갔댔지요. 제가 그럴줄을 알았어요. 지난번 장사 때도 제가 미심쩍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그래, 어쩔 타산이예요?” “입을 다물지 못하겠소? 내 장사가 안된게 그 녀하고 무슨 상관이요? 그 녀가 아니면 더 처참하게 왔을것이요.” 아버지도 어머니 못지 않게 격한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는것이였다. 남수에게 있어서 이런 장면은 더는 생소한것이 아니였다. 올해 들어와서 아버지는 벌써 세번째나 장사에서 목돈을 떼운 모양이였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엎어진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면서 다시 돈을 꾸어 장사를 벌렸고 그때마다 어머니는 이렇게 아버지와 시비를 걸었던것이다. 남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입싸움을 더는 듣고싶지 않아서 자기의 침실로 돌아와 이불을 쓰고 들어누웠다. 남수는 이불속에서 오만가지 생각을 굴려보았다. 그럴수록 무엇이 무엇인지를 분간할수 없었다. (어른들은 참!) 남수의 입에서 긴 한숨이 새여나왔다. 아버지가 장사를 벌리기전 남수네 집은 가정생활이 좀 궁색한 편이였지만 그래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화목하고 밥상에서 웃음이 피여나는 화가애애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아버지가 장사를 시작하면서부터 남수는 매일 피곤에 빠진 아버지의 얼굴을 보아야 했고 신경질적인 어머니의 얼굴을 대해야 했다. 언젠가는 하학하는 길에서 아버지 어머니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제 또래의 남자애를 보고 제 설음에 돌아서서 눈굽을 적신 일도 있었다. 이만침 요즘에 와서 남수는 인정에 지쳐있었던것이다. 오늘 아침도 남수는 어머니가 던져주는 돈을 들고 나와 길옆 난전에서 기름튀기 두개를 사먹은후 잡생각을 하며 학교에 오다보니 등교시간이 늦어졌던것이다. “따르릉~” 흐리터분한 기분속에서 한 시간이 흘러버렸다. 동학들은 초롱에서 벗어난 새들처럼 여기저기로 뛰여다니며 즐겁게 뛰놀았다. 하지만 남수는 그러는 동학들이 보기싫어서 소리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와버렸다.남수는 학교 뒤쪽에 있는 백양나무 아래로 천천히 걸어갔다. 백양나무에 몸을 기댄 남수는 교실쪽으로 눈길을 주었다. 대개 이런 경우이면 평소에 남수에게서 한국원주필깨나 얻어가진적이 있는 남자애들이 한둘이라도 남수의 뒤를 따라오군 했던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웬 일인지 누구도 따라오는 양이 없었다. 남수는 주먹으로 백양나무를 툭 치며 “퉤!”하고 침을 뱉어버렸다. 오늘따라 동학들에게 버림을 받은듯한 외로움이 갈마들었던것이다. (나쁜 자식들, 나에게서 가질것이 있을 때엔 졸졸 따라 다니더니 오늘 내가 일을 치니까 업수이 보는게지. 량심이 없는 놈들!) 남수는 생각할수록 분하기만 했다. 때마침 반에서 마음이 어질기로 소문난 성남이가 화장실쪽으로부터 교실쪽으로 가고있었다. 남수는 성남이도 자기를 업수이 보는것 같아서 못내 괘씸스럽게 생각되였다. 남수는 부리나케 성남이를 맞받아가서 길을 막고 섰다. “임마, 어데 갔다 오니?” “변소에…” “왜 혼자 갔댔니?” “히히… 변소도 함께 가야 하니? 오줌은 내가 누는데…” “나도 오줌이 마렵다. 같이 가면 안되니? 임마!” 남수는 성남의 엉뎅이에 발길을 날렸다. “너… 너 왜 나를 차니?” “임마, 가! 꺼져버려.” 남수의 성난 목소리에 겁을 집어먹은 성남이는 더는 변명도 못하고 엉뎅이를 문지르며 교실쪽으로 걸어갔다. 남수는 교실쪽으로 사라져가는 성남이의 뒤모습을 지켜보며 어쩐지 이름못할 쾌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도 한 순간, 오전 학습이 끝나자 반장이 담임선생님께서 부른다고 일러주었다. 남수는 또 다시 가슴이 철렁했다. (성남이, 그 새끼가 고발한게로구나.) 남수는 가방을 손에 든채로 두 눈을 디룩거리며 어쩔가 속궁리를 해보았다. 담임선생님을 찾아가면 꼭 된욕을 먹게될것 같았다. (세상은 참 재수 없게 생겼구나! 왜 나에겐 귀찮은 일만 생기는걸가?) 이제야 남수는 접때 영문없이 성남이의 엉뎅이를 차준것이 좀 후회되기도 했다. (에라, 이 길로 도망갈가? 아니, 그러다가 선생님이 가정방문이라도 하면 어쩔가? 그럼 또 어머니에게 된 욕을 보게되겠지!) 남수는 아침에 어머니가 자기에게 아침을 사먹으라고 돈 5원을 던져줄 때의 그 눈길을 보는것만 같았다. 정말이지 오늘 일이 어머니에게 알려진다면 어머니는 꼭 아버지에게 쏟지못한 울분을 남수에게 퍼부어버릴것이다. (에라, 이럴 바엔 선생님을 찾아가자.) 남수는 발끝으로 가방을 툭툭 걷어차며 터벅터벅 교무실을 향해 걸어갔다. 교무실은 조용했다. 남수는 발뒤축을 쳐들고 유리창문으로 교무실안을 들여다보았다. 교무실에는 담임선생님밖에 없었다. 담임선생님은 손칼을 들고 교펀을 다듬고있었다. 우멍하게 들어간 두 눈으로 교편을 바라보며 부지런히 칼질을 하는 선생님의 모습이 그렇게도 무서워 보였다. (안돼, 절때 안돼. 선생님이 성나시면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저 교편으로 날 막 때려줄거야. 그럼… 아이, 무서워!) 남수는 슬금슬금 뒤걸음을 하다가 몸을 픽 돌려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냅다 뛰기 시작했다. 얼마쯤 뛰고나니 숨이 턱에 닿아오르고 두다리가 매시근 해났다. 남수가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살펴보니 학교에서 많이 떨어진 어느 논머리였다. (어데로 갈가?) 남수는 죽어도 집으로는 가고싶지 않았다. 담임선생님이 이제 곧 집으로 찾아갈것만 같았던것이다. 남수는 가방을 가슴에 안고 목표없이 터벅터벅 앞으로 걸어갔다. 어데선가 졸졸졸 개울물소리가 귀맛좋게 들려왔다. 남수는 저도모르게 개울을 찾아 발길을 옮겼다. 개울가에는 파아란 잔디풀이 탐스럽게 자라고있었다. 남수는 개울가에 가방을 던져버리고 잔디우에 털썩 들어앉았다. 파아란 풀잎들이 한들한들 춤을 추며 개울물을 따라 떠내려오는것이 보였다. 남수는 무심중 개울물에 손을 넣어 풀잎을 건져냈다. 남수는 건져낸 풀잎을 눈앞에 대고 한참이나 들여다보다가 다시 개울물에 놓아주었다. 파아란 풀잎들은 시름없이 개울물에 실려 어디론가 동동 떠내려갔다. 남수는 자유로운 풀잎들이 사무치게 부러워났다. 새삼스럽게 풀잎이 되고싶었다. 풀잎이 되여 어디론가 정처없이 가보고싶었다.그러면 아버지와 어머니가 성가시게 입씨름을 하는것을 보지 않아도 되고 담임선생님의 무서운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될것 같았다. 남수는 두팔을 베고 하늘을 향해 반듯이 누웠다. 이때 어데선가 개굴개굴 하는 개구리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전에는 그저 무심하게만 들어오던 개구리의 울음소리였다. 하지만 오늘은 개구리의 울음소리에 그렇게 마음이 쓰이는것이 이상스러웠다. 남수는 벌떡 뛰여일어나 개구리를 찾았다. 개굴개굴, 울음소리를 찾아 살금살금 다가가면 개구리는 또 다른곳에서 개굴개굴 노래를 부르고있었다. (요놈이 날 놀리려구? 안되지. 난 널 꼭 찾아내고야 말테다.) 남수는 또 소리나는 쪽으로 발면발면 다가갔다. 폴싹! 청개구리 한마리가 남수의 발밑에서 개울 저쪽으로 뛰여갔다. (그렇지, 너 들켰지.) 남수는 개구리를 쫓아 개울을 훌쩍 건너 뛰였다. 하지만 왼 발이 풀잎에 밀키는 바람에 남수는 개울 건너쪽에 닿지를 못하고 개울물에 풍덩 빠져버렸다.차디찬 개울물이 남수의 입으로 꼴깍 들어갔다. 남수는 입에 들어간 개울물을 뱉어내며 일어섰다. 온몸이 홀딱 젖어서 후줄근한것이 마치도 물에서 갓 건져낸 병아리 같아 보였다. 남수는 얼굴에서 줄줄 흘러내리는 물을 쓱 쓸어닦았다. 그러면서 머리를 털었다.머리칼에 묻은 물이 사처로 뿌리워나갔다. 남수는 머리에서 튕겨나가는 작디작은 물방울을 보면서 형용못할 쾌감을 느껴졌다. (아~ 시원하구나!) 남수는 다시 한번 개울물에 털버덕 들어앉았다. 남수는 손으로 개울물을 퍼서 뿌려던지기도 하고 개울물을 차며 즐겁게 뛰여보기도 했다. 한참이나 이렇게 혼자 즐겁게 뛰여놀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드는듯싶었다. 남수는 개울가로 올라와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웃옷을 벗어 비틀었다. 하늘은 더 푸르러 보이고 대기는 더 맑아보였다. 남수는 방금 비틀어 짠 웃옷을 빙빙 휘두르며 망아지마냥 앞으로 깡충깡충 뛰여갔다. 남수는 어느덧 집문 앞에 이르렀다. “어쩔 예산이예요? 말 좀 해보세요. 그래 계속 이렇게 살겠어요?” “당신 입을 닥치지 못하겠소? 아무리 돌아서면 남이라지만 우린 그래도 아들까지 있는 부부가 아니요? 돈이 뭐길래 이러는가 말이요?” “그래 돈이 뭐가 아니면 당신하고 나는 서북풍을 마시고 남수에겐 맹물만 주겠어요? 무슨 남자가 이래요? 이렇게 능력이 없나 말이에요. 남들을 보세요. 어떻게들 사나?” 이어서 뭔가를 쥐여뿌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밖에서 이 소리를 듣고있는 남수는 너무도 고통스러워 두 눈을 꼭 감고 손바닥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개울에서 찾았던 즐거움이 가신듯 사라져버렸다. 어서 빨리 이 지긋지긋한 집을 떠나버리고만 싶었다. 남수는 몸을 픽 돌렸다. 정처없이 잰걸음을 옮겨놓았다. “두부사세요. 뜨끈뜨끈한 두부사세요.” 자전거 뒤에 손때묻은 두부판을 실은 나그네가 무시로 긴 소리를 뽑고있었다. 남수는 발걸음을 뚝 멈추고 두부 파는 나그네를 쏘아보았다. 두부를 파는 나그네의 피곤섞인 목소리가 “그래 그냥 이렇게 살겠어요?”하던 어머니의 히스테리적인 목소리로 변하여 남수의 귀전에서 울리는듯 싶었던것이다. “얼음과자 사시오. 얼음과자요.” 앞에서 꼬부장한 할머니의 목쉰 사구려 소리가 바람에 날려왔다. 남수는 묵묵히 소리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흰색을 가려보기 바쁘게 때자국이 흐르는 앞치마를 두른 할머니 한분이 얼음과자상자를 실은 삼륜차를 밀어오며 힘겹게 소리치고있었다. 언제나 이맘 때면 이 곳에서 보게되는 그 할머니였다. 남수는 여느 때 같으면 1원짜리 돈 을 한장 뿌려주고 쵸콜레트를 바른 얼음과자를 한대 받아먹었으련만 오늘은 그 할머니의 사구려소리가 무심히 들리지 않았다. 마치도 “돈이 뭐가 아니면 남수에게 맹물만 주겠어요?”하던 어머니의 울음섞인 목소리로 변하여 들려오는듯 싶었다. 남수는 두 눈을 꼭 감았다. 저도몰래 오른 손이 바지호주머니로 들어갔다. 아침에 귀름튀기를 사먹고 남은 거스름돈 4원 20전이 손끝에 마쳤다. 그 시각 남수는 그것이 돈이 아니라 어머니의 성난 얼굴같이 느껴졌다. 남수는 호주머니속에서 그 돈을 움켜쥐였다. “얼음과자 사시오. 얼음과자요.” 길에는 누구도 없었지민 할머니는 남수의 옆으로 지나가며 길게 소리를 뽑았다. 할머니는 분명 남수의 호주머니를 넘겨다보는 모양이였다. (돈, 다 이 돈 때문이다. 돈 때문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무섭게 다투시기만 하고 저 나그네는 힘겹게 두부를 팔아야 한다. 돈, 이 돈 때문에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을 잃어야 하고 이 할머니는 이 더운 날씨에도 사구려를 불러야 한다.) 남수는 꼬깃꼬깃 꾸겨진 돈 4원 20전을 꺼내들고 할머니를 불렀다. “얼음과자를 사려구?” 밭고랑처럼 주름이 패인 할머니의 얼굴에 알릴듯말듯 웃음이 피여났다. “아니, 이 돈을 할머니가 가지세요.” 남수는 할머니의 얼음과자상자우에 돈을 올려놓았다. 할머니는 돈을 내려다보며 어이가 없다는듯 말했다. “애두 웃긴다야, 내가 왜 영문 없이 네 돈을 가지겠니?” “그저 가지라는 겁니다.” “별난 애도 다 있네. 이렇게 돈을 망탕 구을려서는 안되는거다. 잘 건사했다가 학용품이나 사서 써라.” 할머니는 얼음과자상자우의 돈을 집어서 남수에게 건네주었다. “아닙니다, 할머니 그냥 가지십시오.” “이런… 오, 알겠다. 학교에서 좋은 일을 하라고 한 모양이로구나. 그래두 그렇지, 난 이렇게 얼음과자를 팔아서 살수있는데 왜 너의 구제를 받겠니?” “아닙니다. 할머니, 돈이 더러운 물건이 돼서 그러는겁니다.” “엉?” 할머니는 뿌연 눈길로 이윽토록 남수를 지켜보더니 석쉼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 방금 돈이 더럽다고 말했니? 얘야, 돈이 왜 더럽겠느냐? 제 손으로 깨끗이 번돈은 더러운것이 아니란다. 돈이 없이야 어떻게 살수있겠니?” “할머니…” 남수는 그만 입을 필룩이며 어깨를 들먹였다. “애야, 너 어떤지 억울함을 당하는것 같구나. 자 이리 와 앉아라. 억울한게 있으면 얼음과자나 먹으면서 이 할미에게 말해봐라.” 할머니는 얼음과자통을 열고 쵸콜레트를 바른 얼음과자를 한대 꺼내여 남수에게 건네주었다. 남수는 입술을 감빨며 살래살래 머리를 저었다. “어서 먹으렴, 이 할미가 주는것은 먹어도 괜찮다. 애야, 이 어린것이 웬 일로 이렇게 속을 태우느냐?이할미가 매일 여기로 얼음과자 팔러 오니까 어서 속말을 해다오. 이 할미가 들어줄란다.” 할머니는 소나무껍질 같이 꺼슬꺼슬한 손으로 남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남수는 어쩐지 할머니의 썩썩한 그 손바닥이 그처럼 자애롭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또 다시 가슴이 뭉클해나고 코끝이 시큼 저려왔다. 정말이지 아버지가 장사길에 나선 그때부터 부모님들은 언제 한번 이렇게 남수의 머리를 쓰다듬어준적이 없었다. “할머니, 사람이란 꼭 장사를 해야하는겁니까?” “아니지, 꼭 장사를 해야하는것은 아니지만 나처럼 고정직업이 없어 퇴직금을 못 타먹는 할망구야 이렇게 해서라도 소비돈을 벌어야 하는게지.” “그럼 사람이란 돈이 없으면 못 사는겁니까?” “그렇잖구. 돈이 없으면 어떻게 살가?” “그럼 사람들은 다 돈을 벌려구 일하는겁니까?” “글쎄…” “할머니, 장사 안하구 사는 세상은 없습니까?” “얘가 원, 그런걸 내가 어찌 알겠니? 살아가느라면 그런 세상도 오겠지. 헌데 죄꼬만 놈이 왜 이런 소리만 하는겨?” 할머니는 터실터실한 손으로 남수의 얘리얘리한 얼굴을 받쳐들었다. 남수는 그 손으로부터 전해져 오는 따스한 전률을 느꼈다. 남수는 어쩐지 그 할머니가 미더워 보이고 다문 한순간만이라도 그 품에 얼굴을 파묻고 안기고싶었다. 그리고 그속에서 서리고 서렸던 설음을 확 토해놓고싶었다. “할머니!” 남수는 할머니의 품에 와락 안기며 울먹울먹한 목소리로 말했다. “할머니, 저…저의 아버지도 장사를 합니다.”
5    금쪽 같은 내 새끼 댓글:  조회:1570  추천:0  2010-03-11
금쪽 같은 내 새끼1, 광명거리에는 “로송식품상점”이란 간판을 건 자그마한 식품가게가 있다. 주인할아버지는 몇해전에 소학교에서 교편을 잡고있다가 정년퇴직을 하신후 소일거리나 찾으려고 이 소매점을 꾸렸다고한다. 그때문인지 할아버지는 경영에 크게 신경을 쓰지않으셨다. 할아버지는 언제나 매대뒤에 앉아서 신문을 보다가 손님이 들어와서 “아바이, 물건을 삽시다.”고 소리를 하면 보던 신문을 내려놓고 안경을 벗으며 “무엇을 사시겠소?”하고 일어선다. 물건을 들고 얼굴에 웃음꽃을 피우며 가게문을 나서는 손님들을 보는것이 어쩜 할아버지의 유일한 락인듯싶다. 이렇게 어언 3년이라는 세월이 물에 물탄듯 조용히 흘러버렸다. 헌데 올해 봄부터 할아버지의 마음을 슬그머니 끌어당기는 작은 일이 한가지 생겼다. 그것은 식품상점 앞을 지나다니는 한 녀자애를 보는것이였다. 드문드문 상점으로 간장이나 소금을 사러도 들락거리군하는 녀자애였다. 얼굴이 노루무레한 그 녀자애는 몸이 몹시 야위고 가냘퍼보였다. 하냥 연두색저고리에 파랑치마를 입고있었다. 수심에 폭 잠긴 얼굴우에 자리잡은 쌍까풀눈은 언제나 아래로 살풋이 내리깔리고 아래입술은 노상 웃 이발에 꼭 깨물려있었다. 30여년의 교원생활속에서 어떤 애들을 보지못했으랴만 그 녀자애만은 새삼스럽게도 할아버지의 마음을 무척이나 쓰이게 했다. (웃음만을 알고 살아야 할 저 애에게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것일가?) 할아버지는 그 녀자애를 보며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의문들을 꼭 풀고싶었다. 그날도 녀자애는 손에 무엇인가를 들고 소매점앞을 지나갔다. 역시 머리를 살풋이 숙이고있었다. “오늘도 얼굴이 수심에 폭 잠겼네.” 할아버지는 녀자애의 뒤모습을 속깊게 바라보았다. 녀자애는 할아버지의 왼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박자박 락조를 밟으며 어디론가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고있었다. (이 시간에 어디로 저렇게 바삐 걸어가는것일가?) 할아버지는 생각을 굴리며 소매점 남쪽벽에 걸어놓은 벽시계를 흘끔 쳐다보았다. 시침이 여섯시를 가리키고있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할아버지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매대뒤의 걸상에 앉아 낮 수입을 헤아리기 시작했다. 할아버지가 손때 묻은 돈을 무릎에 대고 소가락끝에 건침을 묻혀가며 쪽쪽 주름살 펴기에 여념이 없을 때 “삐꺽”하는 문소리와 함께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녀인이 상점안에 들어섰다. 할아버지는 그 녀인에게 피끗 눈길을 주며 “어서오시우~”하고 변죽좋게 맞아주었다. 녀인은 무엇을 애타게 찾는듯한 눈길로 매대를 둘러보고있었다. 몹시 초조해하는 눈치였다. 할아버지는 유심히 녀인의 얼굴을 살폈다. 비록 눈가에 몇오리 잔주름이 보였지만 그래도 예쁨이 물씬 흐르는 얼굴이였다. 한참이나 매대를 살피던 녀인이 드디여 속삭이듯 입을 열었다. “아바이, 애들이 무엇을 즐겨 먹을가요?” 할아버지는 그러는 녀인의 얼굴에서 눈길을 떼지 않고 되물었다. “몇살이나되는 앤지요?” “한 열살, 될가요?” 녀인은 잠간 머뭇거리다가 아래 말을 이었다. “난 그 애를 참 귀여워해요. 그 앤 아마 우유과자를 즐겨먹을 거예요. 애들은 모두 우유과자를 즐겨먹거든요. 한번 먹기 시작하면 반근짜리 한봉지를 다 먹어버리지요. 바삭바삭 소리를 내면서요…” 녀인은 무시로 손등을 마주 부비며 얼굴에 가벼운 미소를 짓고있었다. 할아버지는 어쩐지 이 녀인이 이상스럽게 생각되였다. 하여 이모저모 추측을 하고있을 때 녀인이 지갑에서 100원짜리 돈을 꺼내놓았다. “그래요, 전 우유과자를 사야겠어요. 옳아요. 꼭 우유과자를 사야겠어요.” 녀인은 기뻐서 손벽까지 짝짝 쳐대며 애들처럼 “우유과자를 사야겠어요.”하고 몇번이나 곱씹었다. 할아버지도 얼굴에 약간 웃음을 띄우며 녀인의 말을 받아주었다. “우유과자, 좋지요. 애들이 좋아할거요.” “아바이, 그렇죠? 애들이 좋아할거죠? 애들은 우유과자를 즐겨먹는거죠? 한달분을 주세요, 한달분이요. 한달 내내 좋아하게요.” 녀인의 말에 할아버지가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방금 한달분이라 했소?” “그래요, 하루에 한봉지씩 딱 한달분이요. 한달분을 사야겠어요.” 녀인의 대답은 무척이나 단호해보였다. 할아버지는 녀인의 말이 롱담이 아님을 느꼈다. 그럴수록 눈앞의 녀인이 큼직한 물음표로 되여 할아버지의 머리를 치고 들어왔다. 할아버지는 설레설레 머리를 저으며 조심스레 녀인을 향해 입을 열었다. “한번에 한달분이라, 너무 많은것이 아니우? 과자는 날마다 새것이 나올텐데…” “아니요. 하나도 많은게 아니거든요. 전 아바이가 린근에서 맘이 곱기로 정평이 나있는 줄을 알거든요. 그래서 특별히 아바이를 찾아온거예요. 아바이, 배달이 되는거죠?” 녀인의 눈길에서 일종의 간절한 기대를 읽을수있었다. “어, 배달?” 할아버지께서 말끝을 흐렸다. “그래요, 배달이요. 아바이, 이 상점 뒤의 련꽃화원을 아시죠? 4동 3층일거예요..” “4동 3층?” “그래요. 4동 3층이요. 그 곳에 무지 예쁜 녀자애가 살고있거든요. 과자를 먹기 좋아하죠. 하루아침에 한봉지씩 보내주세요.” 말하는 녀인의 얼굴에 행복의 미소가 아렷이 피여오르고있었다. 할아버지는 점점 오리무중에 빠지는 자신을 느끼고있었다. 사실 전에도 할아저지는 주문호들에 물건을 배달해준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느닷없이 한달치의 우유과자를 주문하는 이 녀인에게 그무슨 비밀이 숨어있을듯 싶어 선뜻 답복을 주기가 저어되였다. 갑자기 할아버지의 머리를 치는것이 있었다. (아, 방금 련꽃화원이라 했지?) 할아버지는 머리를 끄덕였다. (옳아, 그 녀자애가 바로 련꽃화원 4동 3층에 살지. 그래, 그랬어. 접때 물건사러 와서 분명 그 곳에 산다고 말했어! 그러면 이 녀자와 그 애 사이에 무슨 끈이 이어져있는게 아닐가?) 예까지 생각이 미치자 할아버지는 궁금증을 풀어보고싶은 마음이 생겨났다. “그래, 좋소. 하루에 한봉지씩 그 애에게 배달하면 되는거요? 그리구 과자를 주면서 무슨 전할 말이라도 없수?” “저… 이렇게 말씀해주세요. 너를 귀여워하는 한 엄마가 보내더라구요. 그래요. 전 그애가 너무도 귀엽거든요. 감사합니다. 아바이, 그 애는 분명 좋아할거예요. 애들은 모두 우유과자를 좋아하거든요. 감사합니다.” “근데 왜 댁이 직접 전해주지 않는거요?” 할아버지께서 궁금증을 풀어보고싶은 마음에 넌짓이 녀인을 바라보며 미끼를 던졌다. 녀인의 얼굴이 대뜸 복잡하게 번져갔다. “전, 전… 할 일이 많은 사람이거든요. 전 꼭 찾아낼거예요. 이렇게 떠나면 한달이 걸려야 돌아올거예요. 감사합니다. 전 날마다 그 애를 보고싶었어요. 하지만 오늘까지 더는 한번도 그 애를 보지못했거든요. 그 애는 우유과자를 먹어야 해요. 감사합니다.” 말을 마친 녀인은 손으로 얼굴을 싸쥐고 상점문을 나서며 야릇하게 소리쳤다. “전 꼭 찾아낼거예요. 찾아낸다구요!” 2, 혜경이는 또 할머니에게 된욕을 먹었다. 금방 숙제를 하자고 밥상을 펴놓았는데 할머니의 불호령이 떨어졌던것이다. 할아버지에게 바꿔입을 옷견지들을 가져다주라는것이였다. 할아버지는 시내에서 20리밖에 떨어져있는 한 양돈장에서 남의 일을 거들어주고있었다. 벌써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데 그 곳까지 갔다오자면밖에 어둠이 깔릴것은 물론이고 수학숙제며 어문숙제며 한어숙제며 하는것들은 언제할지 묘연하기만 한것이였다. 어제밤에도 혜경이는 할머니의 분부를 받고 하남에 있는 작은 집에 심부름을 갔다오느라고 지쳐서 숙제를 하지못했었다. 선생님께서는 오늘 동학들 앞에 혜경이를 세워놓고 “이렇게 공부를 할거면 아예 집어치우라.”고 엄하게 비판을 했던것이다. (오늘까지 숙제를 못하면 안되는데, 어쩔가?) 혜경이는 할머니에게 사정을 해보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할머니의 얼굴이 험상궂게 눈앞에 찾아들어 감히 말을 못하고 할머니의 눈치만 살피며 옴찔거리고있었다. 아니나다를가 할머니의 꼬장꼬장한 욕설이 터졌다. “너, 이년아 들었니? 뭐하고 있는거야?” “할머니, 오늘은 숙제가 너무 많이 밀려서…” “숙제는 무슨 썩어 빠진 숙제냐? 그 꼴에 공부나새나.” 할머니의 욕설에 혜경이는 대꾸 한번 못하고 속으로 울먹이며 애꿎게 손톱여물만 썰었다. “이 년, 왜 그렇게 서고만 있어?” 할머니가 꽥 소리지르더니 혜경의 머리카락을 와락 잡아다벽에 마구 짓쪼아댔다. 혜경이는 울면서 길에 올랐다. 남들이 볼가봐 울지말자고 해도 눈물은 샘솟듯 자꾸자꾸 흘러내렸다. 혜경이는 걸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했다. 20여리 길을 한달음에 다녀와서인지 이튿날 혜경이는 늦잠을 자고야 말았다. 새벽녘에 혜경이는 꿈속에서 어머니를 보았었다. 분명 어머니라고 하는데 아무리 봐도 면목이 없었다. 혜경이는 그래도 좋았다. “어머니, 전 어머니와 함께 살래요. 인젠 어머니와 떨어지지 않을래요.” 혜경이가 소리치며 어머니의 옷섶을 잡아쥐려고 하자 어머니는 마법에라도 걸린듯 휙하고 하늘로 솟아오르더니 두터운 구름층을 뚫고 훨훨 날아가는것이였다. “어머니, 어머니~” 혜경이는 애타게 어머니를 부르다가 깨여났다. 벽시계가 일곱시를 가리키고있었다. 혜경이는 가슴이 덜컥해났다. 학교까지 가려면 20분은 걸어야했던것이다. (할머니가 또 일을 시키면 어쩐담? 빨리 가자, 숙제를 못했는데 지각까지 하면 선생님도 오늘은 나를 가만놔두지 않을거야.) 혜경이는 아침밥도 먹을념을 못하고 살그머니 집을 빠져나왔다. 학교옆 개울에서 대충 세수나 할 예산이였다. 이렇게 부랴부랴 달음박질을 쳐 로송식품상점문앞을 지날 때 “얘야~ ”하고 부르는 자애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혜경이는 걸음을 오똑 멈추고 소리나는 쪽에 머리를 돌렸다. 눈에 익은 상점할아버지께서 인자하게 웃으시며 혜경이를 향해 손짓을 하고있었다. “할아버지, 저를 부르셨어요?” 혜경이가 반신반의하며 물었다. “그래, 너를 불렀지. 얘야, 너 지금 학교에 가는 길이냐?” “네, 할아버지.” 혜경이는 할아버지를 향해 달려가며 대답했다. 할아버지께서 혜경이의 홍조어린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며상냥하게 물었다. “얘야, 너 련꽃화원 4동 3층에 살지?” “네, 할아버지.” 혜경이는 할아버지를 향해 머리를 끄덕이며 역시 짤막하게 대답을 했다. 할아버지의 입가에 후더분한 웃음발이 비껴올랐다. “옳구나, 얘야, 널 귀여워하는 한 어머니께서 너에게 주는선물이다. 자, 받아라.” 할아버지는 손에 들었던 비닐봉지를 혜경에게 내밀며 말했다. “네? 저에게 준다구요? 저를 귀여워하는 어머니가요?” 혜경이는 두눈을 올롱하게 치떴다. “그래, 꼭 너에게 전해주라고 했단다.” “그럴수 없어요. 할아버지, 전 어머니가 없어요.” “그래? 하지만 그 어머니는 분명 너를 귀여워한다구 했거든…” “……” 혜경이는 까아만 쌍까풀눈을 무시로 깜박이며 의문스럽게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얘야, 어서 받아라. 웬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만, 그 어머니는 너를 무척이나 귀여워하는것 같더구나.” “그 어머닌 어떤 분이신데요?...” “글쎄다. 그 어머닌 그저, 너를 귀여워한다고만 했거든. 우유과자 한달치를 주문해놓고 매일 너에게 한봉지씩 전해주라 했단다. 래일부터 난 바로 여기서 너를 기다리겠다. 알겠니?” 혜경이는 머리를 끄덕이며 할아버지의 손에서 과자봉지를 받아들었다. 어쩜 자기가 지금도 꿈을 꾸고있는것이 아닌지 하는 의심에 가슴이 떨려왔다. 이어 코등이 시큼해나며 눈앞이 뿌였해졌다. 문뜩 오늘 새벽 꿈에서 보았던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머니가 아닐가? 정말 어머니가 나를 찾아온것이 아닐가?) 혜경이는 삼검불같이 흩어진 사색의 선을 따라 떠올리고싶지 않은 지난 날들을 더듬었다. 혜경이가 부모들에 대한 첫 기억이라면 끝도 시작도 없는 가정불화였다. 부모들은 거의 날마다 언성을 높이고 얼굴을 붉히며 다퉜다. 서로 물건을 던지고 부수기도 했다. 사발이며, 접시며 지어는 식칼겉은것이 무시로 날아다닐 때면 혜경이는 무서워서 벽구석에 쪼크리고 앉아 오돌오돌 떨기만했다. 여섯살에 접어드는 해에 혜경이는 우연히 자기가 부모들의 친딸이 아니라는것을 알게되였다. 결혼한지 6년이 지나도록 아이가 없은 양부모들은 어느날 파출소 문앞에 누군가 버리고 간 갓난아이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었다. 무척이나 귀엽게 생긴 녀자아이였다. 보자기속에는 갓난애의 생년월일과 함께 말못할 사정으로 이렇게 밖에 할수 없으니 미안하며,누군가 이 애를 훌륭하게 키워주면 지옥에 가서라도 그 은공을 꼭 갚겠다는 인사말을 적은 종이쪽지가 들어있었다. 양부모들은 자기몸에서 떨어진 피덩이를 버릴수밖에 없는 그 누구를 동정도 하고 욕도 해보면서 갓난아이를 안아다가 입양수속까지 마쳤다. 후에 들어서 알게된 일이지만 양부모들은 혜경이가 집에 온후 첫 3년은 무척이나 귀엽게 길렀다고 한다. 하지만 혜경이가 4살을 잡는 해로부터 혜경의 양아버지가 다른 녀자를 봐두고 밖으로 돌기시작했다. 따라서 가정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혜경이의 머리속에 남겨진 첫 기억이 바로 이때로부터 온것이였다. 끝없는 싸움끝에 양부모들은 끝내 리혼을 하고 말았다. 혜경이는 양아버지쪽에 남게되였다. 양아버지는 어린 혜경이를 집에 두고 여전히 밖으로 돌았다. 밥이며 반찬같은것을 한번에 많이 해서 랭장고에 넣어두고저절로 덮여먹으라면 그만이였다. 한번 나가면 이틀이고 사흘이고 집에 들지 않을 때도있었다. 올해 봄, 그러던 양아버지가 새장가를 들게되였다. 혜경이는 방법없이 양할머니네 집으로 옮겨 오게되였다. 양할머니네집에서 혜경이는 천덕꾸러기였다. 좀만 잘못을 저질러도 할머니의 매운 손에 엄청 혼나군 했다. 성격이 괴벽하기로 린근에 소문이 나있는 할머니는 혜경이를 과녁으로 작은 분풀이도 빼놓지 않고 해댔다. 혜경이는 설음을 속으로 삼키며 얼마나 많은 밤을 울음으로 보냈는지 모른다. 울면서 속으로 얼굴도 모르는 친어머니를 부르고 또 불러보았다. 그러면서 친어머니를 그리워도 하고 증오도 해보았다. 그런 혜경이 앞에 뜻밖에도 “어머니”가 나타났으니, 혜경이는 생각할수록 흥분되여 가슴이 떨렸다. 이튿날에도 그 이튿날에도 상점할아버지는 꼭 같은 곳에서 혜경이를 맞아주었고 갈라질 땐 “얘야, 랠 또 만나자.”하면서 오래도록 손을 흔들어 바래주었다. 그러면 혜경이는 “할아버지, 안녕~”하고 판에 박은듯 인사를 하군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혜경이의 의문은 커지기만했다. 그새 여러번 자기의 궁금증을 할아버지에게 물었지만 할아버지는 여전히 “너를 귀여워하는 한 어머니가 보냈다.”는 대답뿐이였다. 어느날 오후 혜경이는 하학하는 길에 또 할아버지를 찾아 “불로송식품상점”에 들렸다. 그날도 할아버지는 매대뒤에 앉아서 신문을 보고계셨다. 혜경이는 잠간 머뭇거리다가 “할아버지!”하고 조용히 불렀다. 할아버지는 보던 신문을 내리우고 안경을 벗으며 혜경이를 건너다보았다. “인제 학교에서 오는길이냐?” “네, 할아버지. 도무지 궁금해서 못 참겠어요. 할아버지께서 실말을 해주지 않으면 다시는 과자를 받지않겠어요.” “답답하기는 나도 마찬가지라니까. 그냥 그 어머니의 따뜻한 마음이라 생각하고 받아 먹으면 안되냐?” 할아버지께서 막무가내라는듯 혜경이를 바라보았다. “할아버지. 그래도 어쩐지 전 불안하기만 해요. 그냥 낯모를 사람이 보내주는 과자를 이렇게 받아먹어도 되는지 모르겠구요. 그새, 그 어머닌 한번도 다녀가지 않았나요?” “다녀가지 않았지. 다녀갔다면 내가 어련히 너의 마음을 전하지 않았으랴구. 어데 가서 한 달 있는다고 했는데, 그래, 벌써 20여일이 훌쩍 지났네.” 할아버지께서 손가락을 꼽아보다가 놀란듯 말씀하셨다. “한달이 지나면 그 어머니께서 할아버지 보러 오실가요?” “오겠지, 꼭 올거다.” 할아버지께서 오른주먹을 꾹 쥐여 흔들며 긍적으로 말씀해주셨다. “할아버지,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가요? 그 어머니께서 할아버지 보러 오시면 꼭 저를 불러주세요, 네. 할아버지.” “암, 그래야지. 그러구 말구.”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혜경이는 할아버지에게 곱게 인사를 올리고 상점문을 나섰다. 할아버지는 사라져가는 혜경의 뒤모습을 바라보며 머리를 끄덕였다. “참, 얼마나 참하고 똑똑한 앤데…” 3, “안녕하세요.” 녀인이 인사를 하며 상점안에 들어선것은 오후 2시가 좀 넘은 후였다. 할아버지는 보던 신문을 내리우고 안경을 벗으며 목소리임자를 찾았다. 그 녀인이였다. 할아버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반겨맞았다. “어서 오시오. 어서요. 이게 얼마만인가…” “아바이, 그 새 수고많았어요.” 녀인이 곱게 머리를 숙이며 할아버지께 알은체를 했다. 할아버지께서 녀인을 향해 손사래를 하며 답례를 했다. “괜찮어, 괜찮아. 그 만한 일에 수고랄게 있소? 그래, 그 새 어데 다녀왔소?…” “하남성 농촌을 돌았어요.” 녀인의 말에 할아버지께서 놀라셨다. “하남성 농촌이라니? 웬 일루?>. “그 곳에 유괴당한 애들이 많다는 소식을 들었거든요.” “유괴당한 애들이?” 할아버지는 들을수록 오리무중에 빠지는듯싶었다. 녀인이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는 녀인의 눈길은 황황 타는듯싶었다. “그래요. 유괴된 애들이 그쪽으로 많이 간다고들 들었거든요. 언젠가 텔레비죤프로에서 봤어요.>. “그럼?” 할아버지께서 조심스럽게 녀인의 표정을 지켜보며 뒤말을 얼버무렸다. “우이 백결이도 그곳에 있을지 몰라요. 아니 그곳에 있을거예요. 이번에는 못찾았지만 담엔 꼭 찾을거예요. 아, 우리 백결이! 우유과자를 잘 먹던가요?” 녀인의 눈길이 반짝 빛났다. “어, 우유과자!” 할아버지께서 깜짝 놀라는듯 하더니 뒤말을 이었다. “그 애가 정말 자네를 고마와 하고있다오. 자네가 돌아오면 꼭 알려달라고 말했다우.” “그 애가요? 정말이세요? 그 애 엄마가 또 줄욕을 퍼부었죠? 그 애엄만 원래 그래요. 그 애가 나를 엄마로 따르려는가봐요. 애들은 다 그렇게 정이 많거든요.” 녀인은 사뭇 흥분을 하며 두서없이 련주포를 쏘아댔다. 할아버지는 그러는 녀인을 뚫어지게 바라보다 녀인이 말을 마치자 그중에서 문제가 된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골라 녀인에게 물었다. “엄마라니? 그 애에겐 엄마가 없는 줄로 알고있는데.” “네? 그 애 엄마가 없다구요? 아닌데요. 그 앤 분명히 엄마가 있는데요. 드살이 엄청 쎈 엄마가 있는데요.” 녀인의 눈길이 허공에서 허둥거리고있었다. 순간 할아버지는 또 다시 미궁으로 빠져드는듯싶었다. 녀인이 불안한 목소리로 황망하게 물었다. “아바이, 어느 아빠트에, 몇동에, 그 앤 엄마가 있는데요 ,암펌같이 드센 엄마가 있는데요. 귀요운 녀자애가 맞아요?” “련꽃화원 4동 3층이라 하지 않았소?” 할아버지께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자냥스럽게 물었다. 녀인이 물기어린 두눈을 슴뻑거리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 옳은데, 련꽃화원 4동 3층이...” “3층 어느 쪽 집이던가요? ” “아하, 그건 내 차실이군, 그저 밖에서 그 애를 보고 만나서 건네줬는데.” “네? 틀렸어요. 그럼 우리 백결이가 아닐거예요.” 녀인의 동공이 한껐 커졌다. 이어 녀인은 얼굴을 감싸쥐고 선자리에 폭 주저앉더니 흑흑 느끼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도 꺼이꺼이 울음을 삼키는 녀인을 보는것이 몹시나 불안하신지 녀인의 주위를 서성이며 중얼거렸다. “이런 일이있나? 세상에 이런 일이…그래 자네가 찾는 애는 어떤 애란 말이오?” 녀인이 손등으로 찔끔찔끔 눈굽을 찍으며 말을 더듬었다. “제…제가 귀여워하는 그 애는 어… 암펌같은 엄마가 있어요. 전 그 애가 엄마와 함께 나온걸 보았댔어요.” 녀인은 잠간 머리를 뒤로 제치고 힘껐 코를 들이마시더니 어흠하고 목소리를 다듬으며 말꼬리를 이었다. “그것은 해빛 좋은 지난 봄날이였어요. 그날도 저는 백결이를 찾으러 거리에 나섰지요. 백결이가 누군인가구요? 저의 딸이예요. 하나밖에 없는 저의 딸이예요. 지난 늦가을의 어느 날, 친구들과 함께 공원놀이를 간다고 나간것이, 그 애만 영~ 돌아오지 않고있어요. 라지오며, 텔레비죤이며 신문이며에 광고를 내구 전단지를 찍어 거리마다 부쳤어요. 하지만 여전히 종무소식이예요. 난 꼭 우리 백결이를 찾아낼거예요. 지옥에 가서라도 우리 백결이를 찾아낼거에요. 그날 공원회전돌림판 옆에서 난 그 애를 보았지요. 색동저고리에 갑사댕길 매구, 엄마 손을 잡구있었는데 신통히도 우리 백결이를 닮았더랬어요. 아니 꼭 같았어요. 전 그 애한테 뛰여가서 그 애를 끌어안으며 <백결아!> 하고 소리쳤어요. 그 애는 기겁을 해서 소리지르겠죠. 그러자 그 애 엄마가 나의 품에서 그 애를 와락 빼앗아내며 저에게 줄욕을 퍼부었어요. 나더러 미쳤다는거예요. 전 울었어요. 멀리서 살금살금 그들의 뒤를 밟으며 그날 내내 울었어요. 그날 전 그들이 련꽃화원 4동 3층으로 올라가는것까지 보고 그들에게 들켜버렸어요. 그 뒤로 전 련꽃화원 문어구에서 늘 그 애를 기다렸죠. 하지만 그 애는 다시 저의 눈에 띄이지 않았어요. 전 미칠것만 같았어요. 그 애라도 보고싶었거든요. 지난달 전 텔레비죤에서 유괴된 애들이 하남성에 많이 간다는 소식을 보았거든요. 그래서 무작정 하남성으로 떠났던거예요. 우리 백결인 없었어요. 없었다구요.” 녀인은 또다시 얼굴을 가리우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잃어진 딸을 그리며 오열을 토하는 이 엄마를 어떻게 다독여야할지 몰라서 한숨만 풀풀 내쉬였다. 한참 지나서야 흐느끼던 녀인이 안정을 찾은듯 잠잠해졌다. 할아버지께서 “음~” 하고 건가래를 떼며 입을 열었다. “참, 세상이란 한심한 일들도 많구려.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겠소.” 할아버지는 말을 멈추고 녀인을 일별했다. 녀인은 말이 없었다. 뚫어지게 할아버지의 얼굴을 주시하고있었다. 마치도 할아버지의 얼굴에서 그 어떤 위안을 찾으려는듯 했다. “하느님이 무심하지 않다면 댁의 심정을 알아주고, 백결이를 찾을수있게 도와줄거유, 암 도와줄테지. 비록 내 불찰이였지만, 자네는 이 한달간, 너무도 불쌍한 한 소녀에게 사랑을 전해주었다오.” 할아버지께서 좀은 가라앉은듯한 목소리로 허두를 뗐다. “네? 제가요?” 녀인의 눈길이 순간적으로 반짝 빛을 뿌렸다. 할아버지는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련꽃화원 4동 3층에는 혜경이라 부르는 불쌍한 애가 살고있다오.” 할아버지는 녀인에게 혜경이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야기를 듣는 녀인의 얼굴이 차츰 눈물로 얼룩졌다. “세상에 어쩜 그렇게 불쌍한 애도 다 있어요? 세상에...” “그러게 말이오. 강보에 쌓여서 파출소 문앞에 던져진 때로부터 그 애의 불행이 시작되였다할가? 참, 자식을 낳기만해서 부모인가? 기르지도 못할 자식을 낳아서 던지는 부모들도 있다니.” 어쩜 가슴 아픈 현실을 말하는것 좇아 힘겨운지 할아버지께서는 여기서 잠간 말씀을 멈추셨다. 녀인은 으스러지게 입술을 깨물고있었다. 그러던 녀인이 벌떡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그럴수가 없어요. 어쩜 그렇게 천덕꾸러기로 자라는 애들이 있을수있어요? 애들은 모두가 천사거든요. 천사들은 사랑속에서 커야거든요. 혜경에게 사랑을 주고싶어요. 그 애가 사랑을 알게 하고싶어요.” 녀인은 할아버지를 졸라 함께 혜경이를 찾아보기로 했다. 련꽃화원 4동 3층을 손쉽게 찾을수있었다. 동서로 두 가구가 살고있는 평범한 주택이였다. 동쪽집안으로부터 한 로인네의 앙칼진 욕지거리가 흘러나왔다. 혜경이의 양할머니인듯 했다. “너, 이년아. 공부는 무슨 썩어빠진 공부냐, 래일부터 걷어치우구 일이나 도와라.” 너무도 험한 소리에 할아버지와 녀인은 그만 문밖에 우뚝 굳어지고 말았다. “공부는 뭐 몸만 다니면 저절로 해지는줄 아냐? 학비를 내야지, 공책을 사야지, 게다가 점심밥값은 또 얼마구…” 잠간 뒤 울음섞인 녀자애의애절한 목소리가흘러나왔다. “할머니, 제발 절 계속 학교에 가게해주세요. 학교에 다니면서도 전 무슨 일이나 다 할수있어요.” “걷어치워라, 이 년아! 네 년이 공부는 무슨 공부냐? 네 년이 공부를 할 팔자를 타고나왔더냐.” 로인네의 욕설에 녀인이 참지못하고 주먹으로 출입문을 두드려댔다. 잠간후 신경질적으로 출입문이 벌컥 열렸다. 걍핏한몸집의 로파가 머리를 빠끔히 내밀고 웬 일이냐는듯 까칠하고 작은 눈을 뒤룩거렸다. 로파의 뒤에 서있던 녀자애가 할아버지를 발견하고 구성이나 만난듯 “할아버지.”하고 긴박하게 불러댔다. 그 소리에 로파가 깜짝놀라며 할아버지와 혜경이를 번갈아 보았다. “미안하게 됐습네다. 암튼 집에 들어가서 얘기 할가요?” 할아버지께서 먼저 집안으로 한발 들어섰다. 로파는 옆으로 한발 비켜서며 “들어오시우~”하고 혼자말 비슷이 중얼거렸다. “할아버지, 전 공부를 하고싶어요. 전 공부할래요.” 혜경이가 할아버지의 옷섶을 부여잡고 흐느끼며 소리쳤다. 할아버지는 말 없이 혜경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천천히 로파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로파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혜경의 얼굴을 핥고있었다. 갑자기 로파가 바닥에 무너져내리며 꺼이꺼이 울음을 토해냈다. “아이고, 내 전생에 무슨 죄를 진게 있다구, 요런 애물단지를 맡아가지고 이 고생인고~ 아이고 내 팔자야~>. 로파는 울면서 주먹으로 연신 바닥을 두드려댔다. 혜경이는 할아버지의 뒤에 몸을 숨기고 오돌오돌 떨고있었다. 로파가 벌떡 일어섰다. 로파는 황황한 눈길로 할아버지와 혜경이를 일별하더니 삽시에 와락 혜경에게 덮쳐들었다. 혜경이가 로파의 손을 피해 벽구석으로 숨어들었다. “이 년아, 너 죽고 나 죽고, 오늘 결판을 보자, 내가 왜 이런 고생을 해야 하는가, 하늘에 물어 좀 보자.” 로파는 입가에 게질게질 허연 거품을 흘리며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고있었다. 앞에서 생생하게 연출되고있는 인생활극을 멍하니 지켜보고있던 녀인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백결아~” 너무도 으악스럽고 생경한 목소리에 할아버지도 로파도 혜경이도 그린듯 굳어져서 녀인을 바라보았다. 녀인이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혜경이를 향해 한발한발 다가가고있었다. “저…저이는… 뭐하는 사람이오?>. 로파가 애써 진정을 하며 녀인을 향해 더듬거렸다. 녀인이 가슴이 미여질듯 소리치고있었다. “백결아, 내 새끼야, 네가 여기 있었구나!” 녀인이 쿵하고 주저앉아버렸다. 이윽고 크득크득 웃는듯 싶더니 넋을 놓고 소리소리 질러댔다. “백결아, 찾았구나, 끝내 너를 찾았구나. 금쪽같은 내 새끼야. 너를 끝내 찾았구나. 그래그래, 세상 모든 애들은 다내 새끼들이지, 금쪽같은 내 새끼들이지…” 절규에 가까운 녀인의 목소리가 어지럽게 울려퍼지는 집안은 무시로 터져버리려는 화약고를 방불케하고있었다...
4    보금자리 댓글:  조회:1451  추천:0  2010-03-11
보금자리강아지는 살랑살랑 꼬리를 치며 녀자애의 앞에서 재롱잔치를 벌리고있었다. 혁이는 그게 너무 서운했다. 마치도 정성을 다해 아껴주고 위해주던 그 누구에게서 졸지에 배반을 당한듯한 그런 기막힌 생각이 가음속 밑자락으로부터 스물스물 괴여올랐다. (아무리 말못하는 미물이라지만 어쩜 저렇게도 매정하게 나를 배반할수 있단 말인가? ) 녀자애앞에서 갖은 애교를 다 부려가며 아양을 떠는 강아지가 정말 방금 자기가 사준 고기를 걸탐스럽게 먹던 그 강아지가 옳은가고 의심이 들 지경이였다. “세상에, 세상에 어쩜, 개같은게…” 저도모르게 이런 욕설이 터져나왔다. 지나가던 아줌마가 웬 일이냐는듯 머리를 돌려 혁이를 찔끔 째려보았다. 죄꼬만애가 욕은 웬 욕이냐고 나무람하는듯싶었다. 혁이는 홀랑 혀를 내밀었다가 당겨오며 서글프게 픽 웃어버렸다. 스스로도 자신이 한심스럽게 생각되였다. 혁이는 주먹으로 자기의 입술을 툭 치고는 다시 한번 나지막하게 “개같은게?”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설레설레 머리를 저었다. 그랬다. 저쯤에서 녀자애를 마주하고 서서 꼬리를 저어대는 강아지는 분명 “개같은게!”가 아니라 확실한 개였던것이다. 혁이는 애모뿌게 잘근잘근 손톱여물을 썰며 강아지와 녀자애를 번갈아보았다. 강아지는 좋아서 못살겠다는듯 여전히 꼬리질을 살살 쳐대면서 녀자애의 손을 핥느라 여념이 없었다. 녀자애도 강아지옆에 쪼크리고 앉아서 잃어버렸다 다시 찾은 자식을 반기는 엄마모양으로 강아지의 머리를 차분히 만져주고있었다. 강아지를 내려다보는 녀자애의 그윽한 눈길을 먼발치에서도 느낄수 있을것 같았다. 혁이는 오른주먹을 들어 왼손바닥을 냅다 갈겼다. 왼쪽 손바닥이 사뭇 얼얼해났다. 삽시에 목이 꺽 메여오더니 눈굽이 확 달아올랐다. 눈까풀을 두어번 슴뻑거리자 눈굽에서 촉촉한것이 느껴졌다. “흥!” 혁이는 천천히 머리를 돌려 그때까지도 쓸어주고 핥아주느라 여념이 없는 녀자애와 강아지를 멀거니 바라보다가 몸을 픽 돌려 어정어정 발걸음을 옮겨놓았다. 발걸음은 천근돌멩이를 달아맨듯이 무겁기만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하게 생각되였다. (이게 아닌데, 정말 이게 아닌데…) 처음 강아지를 만날 때의 영화같은 에피소드가 눈앞에서 주마등처럼 스쳐지났다. * 그것은 혁이가 시장에서 치약이며 비누같은것을 사들고 시장문을 나서서 서너걸음을 옮겼을 때였다. 별안간 소머리고기를 파는 로천매대뒤로부터 강아지한마리가 나타났다. 꼬리를 뒤다리사이에 딱 끼고 서서 초조한 눈길로 이사람 저사람을 살피는것이 분명 주인을 잃은 모양이였다. 다른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르지만 혁이는 그렇게 무심히 강아지를 지나칠수가 없어서 흠칫 걸음을 멈추었다. 혁이는 강아지가 이슬이 앉은 눈으로 자기를 쳐다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아지의 눈길이 아프게 가슴에 맞혀왔다. (왜, 왜 저 강아지가 나를 쳐다볼가?) 혁이는 못내 강아지가 측은하게 생각되였다. (혹시 길잃은 강아지가 아닐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강아지가 아닐가? 주인을 찾지 못하면 저 강아지는 어데가서 살가?) 혁이는 가던길을 되돌아 소머리고기를 파는 매대옆으로 다가갔다. 아니나다를가 강아지는 그때까지도 소머리고기를 파는 아줌마의 주위를 뱅뱅 돌아치고있었다. 혁이는 강아지곁을 발"摹�� 조여가며 휙휙 휘파람을 불었다. 그 소리에 강아지는 혁이쪽으로 머리를 돌리더니 뒤다리사이에 딱 끼였던 꼬리를 풀며 혁이를 향해 뛰여왔다. (그래 분명 주인없는 강아지야. 사람손에 익숙해진게 틀림이 없어. 그래서 이렇게 스스럼 없이 아무사람이나 따르는거야.) 혁이는 강아지옆에 쪼크리고 앉아 오른손바닥을 펴서 내밀었다. 강아지는 조금도 거부감이 없이 혁이의 손바닥을 핥으려고 혀를 내밀었다. 혁이는 다시 강아지옆으로 조금 다가 앉으며 맘대로 핥아보라는듯 손바닥을 한뼘 더 내밀며 왼손으로 강아지의 머리를 쓸어주었다. 과연 강아지는 따뜻한 혀끝으로 혁이의 손바닥을 싹싹 핥아대기 시작했다. 촉촉한 혀끝이 손바닥을 누비며 돌아가자 뼈속으로부터 간질간질하고 오스스한 느낌이 스믈스믈 괴여올라서 혁이는 저도몰래 으스스 몸을 떨었다. (어쩜, 어쩜 이렇게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걸가? 낯모를 사람을 보면 왕왕 짖어대는게 강아지의 본성일텐데.) 혁이는 생각을 굴리며 두 손으로 강아지를 안아서 천천히 가슴쪽으로 당겨왔다. 강아지는 낑 소리 한번 내지 않고 촉촉하니 젖어오르는 눈길로 혁이를 쳐다보고있었다. 검은 동자가 유난히도 큰 강아지의 눈은 그처럼 깊어보였다. 그 깊은 눈속에 퍼내도 퍼내도 마를것 같지않은 이야기가 담겨져있을듯싶었다. 혁이는 강아지를 가슴으로 꼭 끌어안았다. 강아지는 혁이의 체온을 느꼈던지 머리를 혁이의 가슴으로 밀착해왔다. 혁이도 가슴으로 강아지의 체온을 느낄수 있을것 같았다. (어쩜, 너도 어쩜 가족이 없이 혼자서 돌아다니는게 아니냐? 그래 돌봐 줄 사람이 없는게지, 그런게지?) 혁이는 머리를 숙이고 강자지를 이윽토록 내려다보았다. 본래 하얀 털을 가진 강아지인데 얼마동안 물맛을 보지못했는지 털은 원색갈을 분별할수 없을만치 때가 올라있었다. (그래, 분명 임자없는 강아지가 맞. 너, 어떻게 살려구… 누가 버렸을가? 아님 누가 잃어버린것일가? 암튼… 누군가 보살펴주는 사람도 없이 너 어떻게 살려구?) 혁이는 강아지를 품에 안고 연신 머리를 쓸어주다가 익은 고기를 파는 매대앞으로 다가갔다. 혁이는 일원짜리 석장을 꺼내서 삶은 고기를 파는 아줌마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강아지가 먹을수있게 잘게 썰어주세요?) 삶은 고기를 파는 아줌마는 이상하다는듯 혁이와 강아지를 번갈아보더니 입을 열었다. “그 강아지가 너네 것이냐?” 혁이는 그말에 흠칫하며 삶은고기를 파는 아줌마를 일별하고는 살래살래 머리를 저으며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요. 방금 밖에서… 임자가 없는것 같아요.” 아줌마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그렇지 하는 모양이였다. “이 시장바닥에서 돌아다닌지 며칠된단다. 어디서 굴러왔는지 몰라. 주인을 잃어버렸는지 아니면 버릇이 나빠서 쫓겨났는지.” “강아지가 나쁜버릇이라니요?” 죄없는 강아지를 의심하는것 같아서 혁이는 아줌마의 말에 토를 달았다. 아줌마가 웬일이냐는듯 두눈을 올롱하게 치뜨다가 말했다. “너 몰라서 하는소리구나. 강아지들 나쁜 버릇이 많거든. 집에서 기르는 놈들을 말할라치면 습관이 나쁜것들은 아무데나 똥오줌을 싸요. 심술궂게 전문 침대우에 올라가서 이불에다가 싸대는 놈들도 있거든. 밖에서 사는 놈들은 또 어떻다구. 전문 신발을 물어다가 던지는 괴퍅한 놈들이 없나. 암튼 강아지 한마리 잘못 집에 들이면 웬간히 성가신게 아니란다.” 아줌마는 못된강아지가 자기앞에 차려지기나 한것처럼 시퍼렇게 날이선 식칼로 삶은고기를 탕치며 쉴새없이 궁시렁거렸다. 누르스름한 송곳이에 뻐얼건 고추가루가 달라붙은 아줌마의 얼굴을 멀거니 바라보며 혁이는 아줌마의 말이 사뭇 불쾌하게 생각되였다. 혁이는 못들은듯 머리를 숙여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아줌마가 건네주는 삶은고기를 담은 비닐봉지를 들고 시장안을 나왔다. 혁이는 강아지를 안고 간이서점앞의 조용한곳을 찾아가 앉았다. 땅에 내려서자 바람으로 강아지는 고기냄새를 맡았는지 혁이의 손을 말뚱말뚱 쳐다보았다. “쯧쯧쯧… 불쌍한것이, 엄청 배가곺았지?” 혁이는먹기좋게 고기를 담은 비닐봉지를 강아지앞에 헤쳐놓았다. 강아지는 비닐봉지에 코를 대고 두어번 킁킁거리더니 걸탐스럽게 먹어대기 시작했다. (너, 며칠 굶은것 같구나, 누구도 너를 돌보는 사람이 없었는모양이구나. 얼마나 돌아다녔니? 주인집은 또 얼마나 바꾸고…) 혁이는 물끄러미 강이지를 내려다보며 나름대로 생각을 굴려보았다. 강아지가 사래가 들렸는지 머리를 쳐들고 캑캑 거리기 시작했다. “왜? 왜 그러니? 천천히 먹지그러니? 보자보자, 형님이 보자.” 혁이는 중얼거리며 강아지를 건뜩 들어올렸다. 뒤다리가 혁이의 눈앞에서 흔들거렸다. 강아지는 암컷이였다. 혁이는 저도모르게 쿡 하고 웃어버렸다. (뭐? 형님이 보자구. ㅋㅋㅋㅋ… 오빠가 보자구 해야지.) 혁이는 강아지를 땅에 내리워 놓고 손바닥으로 강아지의 등을 톡톡 두드려주었다. 일은 바로 그때 일어났다. 어디선가 “미아야, 여기 와라.”하는 부름소리가 들려왔던것이다. 혁이도 강아지도 소리나는 쪽에 머리를 돌렸다. 파르스름한 운동복을 입은 녀자애가 얼굴에 말간 웃음을 날리며 강아지를 향해 손짓을 하고있었다. 강아지는 녀자애를 바라보며 두어번 꼬리를 젓더니 깡충깡충 녀자애를 향해 뛰여갔다. 혁이는 순간 말못할 배신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게 아닌데, 아무리 말못하는 미물이지만, 방금내가 사준 고기를 그렇게 맛나게 먹구서는 어찌 이렇게도 매정하게 나를 배반하고 저 애 앞으로 뛰여간단 말인가? ) 생각할수록 부아통이 터져버릴것 같았다…. * 혁이는 발걸음을 멈추고 머리를 돌렸다. 비록 무거운 발걸음이지만 그새 퍼그나 많이 걸은것 같았다. 시장을 지나서 건재상점쪽으로 굽어든지도 이슥했던것이다. 혁이는 웬지 가슴이 갑갑하고 초조해났다. 혁이는 선자리에서 연신 두발을 어겨디디며 왼손바닥에 오른주먹을 애타게 부벼댔다. 녀자애앞에서 갖은 재롱을 떨어가던 강아지가 클로즈업되여 눈앞에 다가왔던다. 해시시 웃음을 던져주며 강아지를 반겨주던 녀자애의 해맑은 얼굴도 눈앞에서 사라지지가 않았다. (그애가 과연 강아지를 어쩌려는것일가? 혹시 그애네 강아잘가? 아니야, 그럴수가 없어. 주인있는 강아지였다면 그렇게 초라한 몰골일수가 없는게지. 분명 그 강아지는 한달이고 두달이고 물맛을 본것같지가 않았어. 하다면? 하다면 그애도 분명 길에서 그냥 만난 사일텐데 한순간 재미나보고 또 강아지를 훌렁 던져버리는것이 아닐가? 그렇게 된다면 강아지는 다시 홀로가 될것이지.) 혁이는 생각할수록 불안스러워나서 견딜수가 없었다. 접때 시장문앞에서 자기를 쳐다보던 까아만 눈동자가 무던히도 깊어보이던 강아지의 눈길을 다시보는것 같았다. 갈수록 그 눈동자에 분명 깊고깊은 아픔과 절절한 갈망이 묻혀있다고 생각되였다. (안돼, 이대로는 안돼. 그 강아지가 어쩌고 있는가를 내 눈으로 꼭 확인해야돼. 그 강아지를 그냥 집없이 떠돌이로 시장바닥에 남겨둘수 없어. 집이 없다는게 얼마나 괴로운 일인데. 보금자리가 없다는건 행복도 즐거움도 없다는 의미야. 그 강아지가 무엇때문에 그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데. 그 강아지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그런 괴로움을 당해야 하는데…) 혁이는 자기가 누구를 위해 무엇을 생각하는지 자기로서도 걷잡을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시각 가슴속에서 저도몰래 그런 생각이 동지날 팥죽가마에서 뽀얀 김이 서려오르듯 하는것만은 막을 길이 없었다. 혁이는 오던길을 바라고 몸을 픽 돌렸다. 가랑이에서 피파소리가 나게 걸음을 재우치다가 아예 주먹을 불끈 쥐고 앞을 향해 뛰여가기 시작했다. 북안시장어구에서 혁이는 “어!” 하고 외마디소리를 내며 우뚝 멈춰서고 말았다. 강아지를 안고 뛰여오는 파란운동복의 녀자애가 시야에 안겨들었던것이다. 녀자애의 얼굴에는 불안과 초조감이 깊게 드리워있었다. 녀자애에게 안기워있는 강아지의 눈에도 말못할 공포가 숨겨져있었다. 녀자애는 흘끔흘끔 뒤를 돌아다보며 죽기내기로 뛰여오고있었다. (웬 일일가?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건가?) 혁이는 잠간 생각을 굴리며 녀자애의 뒤를 살펴보았다. 아니나다를가 녀자애의 뒤로 머리를 빡빡 깎은 한 사나이가 쫓아오고있었다. 사나이가 소리쳤다. “서라, 게 서라는데.” 모르기는 하겠지만 녀자애와 강아지에게 확실히 무슨 위험이 도래하고있는것이였다. (안돼, 절대 저들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선 안돼.) 혁이는 으스러지게 주먹을 틀어잡고 녀자애를 향해 뛰여가며 소리쳤다. “여기, 여기로 오너라.” 그소리에 녀자애가 머리를 들며 혁이를 향해 눈길을 날렸다. 혁이는 그러는 녀자애를 향해 손을 저으며 속도를 다그쳤다. 녀자애는 혁이를 알아본 모양인지 혁이쪽을 향해 뛰여오며 소리쳤다. “저 사람이, 저 사람이…” 뒤에서 사나이가 연신 소리쳐댔다. “게 서라는데, 서라구.” “저 사람이 강….강아지를 어… 어쩌면 좋아!” 그새 녀자애는 혁이앞에까지 뛰여와서 강아지를 혁이에게 넘겨주고는 그자리에 폭 주저앉아버렸다. 혁이는 거의 본능적으로 강아지를 받아 가슴에 꼭 안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사나이도 어느새 혁이네앞에 도착했다. 사나이는 독안에 든 쥐들이 뭔 짓이냐 하는 투로 날카롭게 소리쳤다. “지독한 계집애 같으니라구. 서라면 설것이지… 뛰기는 어디를 뛰여. 네가 날 뛰여 이길것 같았어?” “량심있어요? 아저씨!” 녀자애가 발딱 일어서며 오돌차게 소리쳤다. 녀자애의 흥분된 모습에 사나이는 흠칫 놀라는듯 하더니 흐흐흐 찬웃음을 날리며 입을 열었다. “량심이라니? 계집애가. 떠돌이강아지를 내가 거두어 주련다는데 웬 소리냐?” “정말 거두어주려고 그러는가요? 저 다 알거든요. 잡아먹을려고 그러는걸” “자…잡아먹을려구 그런다구? 맹랑한 계집이,” “저 아저씨가 아까 지나가며 친구들과 하는 말을 다 들었어요. 잡아 곰을 해먹으면 맛있겠다면서 내 앞을 지나갔다가 다시 돌아온거 아닌가요? 친구들하구 강아지를 잡아가겠다고 큰소리를 친거죠. 안돼요.” 녀자애는 사나이의 앞으로 한발 다가서며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사나이도 괜히 녀자애에게 결이났던지 녀자애 앞으로 한발 나서며 손사래를 해댔다. “그러면 또 어쩔텐데. 임자없이 시장판을 도는 강아지를 내가 고아먹든 구어먹든 너하구 먼 상관이냐? 너하구 사촌이라도 되니? 아님 너의 신랑감이라도 되니?” 사나이는 스스로 자기가 한말에 유머가 흠씬 담겼다고 생각되는지 “하하하하…”하고 머리를 뒤로 젖히며 웃어댔다. “아저씨!” 혁이는 뭔가를 알것같아서 한발 앞으로 나서며 격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바람에 사나이는 흠칫하며 혁이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어허, 강아지! 네가 안고있구나. 얘, 그 강아지를 이리 가져와라.” 사나이는 혁이쪽으로 다가오며 한마디 했다. 혁이는 강아지를 으스러지게 가슴으로 껴안으며 목소리를 높여 더벅거렸다. “아…안되죠. 어쩜 가…가… 강아지를 잡아 먹을수 있어요?” “엄청 말이 많네. 자식이! 못 가져와! ” 사나이는 혁이를 후려칠 양으로 주먹을 건듯 쳐들었다. 혁이는 주먹을 피해 뒤로 한발 물러섰다. 사나이는 혁이를 향해 다시 한발을 조여가며 꽥 소리 질렀다. “빨랑!” “안돼요.” “죽어?!” 사나이는 혁이에게 욱 덮치며 오른손을 쫙 펴서 혁이의 뺨을 찰싹 후려쳤다. “악!” 혁이는 소리지르며 흠칫 몸을 떨었다. 순간 녀자애가 사나이를 향해 쏜살같이 뛰여와 꽂히더니 방금 혁이의 뺨을 갈긴 손을 잡아 입으로 가져갔다 “으아~ 악!” 사나이가 연신 돼지멱따는소리를 질러대며 녀자애의 머리칼을 움켜잡아 내동이를 쳤다. 녀자애는 힌들 나가 쓰러졌다. “도와주세요. 강도가 강아지를 잡아먹을려해요. 도와주세요.” 녀자애가 단말마적으로 소리지르며 기여 일어났다. 그바람에 길가던 사람들이 혁이네 쪽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못된 년이, 에잇 재수 없어서!” 사나이가 방금 녀자애에게 물리운 손을 만지며 투덜거리더니 머리를 수긋하고 뺑소니를 쳤다. 멀어져가는 사나이의 뒤모습을 잠간 훔쳐보던 녀자애가 혁이쪽으로 다가왔다. “고맙다.” 녀자애가 혁이를 쳐다보며 방긋 웃었다. 아까 넘어지며 어데 긁혔던지 왼쪽 볼에 실뱀같은 상채기가 나있었다. 그우로 빠알간 피가 번져오르고있었다. 혁이는 뚫어지라 녀자애를 바라보았다. 상처에서 흐르는 빠알간 피가 예리한 칼끝이 되여 혁이의 가슴을 찢는듯싶었다. (어쩜, 어른이란 사람이 어린애를 이렇게 망가뜨려 놓을수 있단 말인가? 개고기썰썰이에 량심도 인정도 다 먹어버렸단 말인가?) 혁이는 강아지를 가슴에 꼭 끌어안은채 애써 목소리를 부드럽게 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너, 아프니?” 녀자애는 대답없이 이윽토록 혁이를 지켜보더니 하아얀 얼굴에 살풋이 웃음을 피워물었다. 아까 강아지를 잡아먹으려던 사나이의 손을 물어놓을 때의 그 기염은 어디로 갔는지 입가에 고운 웃음꽃을 피워가고있는 녀자애는 무던히도 갸냘프고 티없이 맑아보였다. “피가 배여나왔다. 너 얼굴에…” 혁이가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또 한번 조용히 입을 열었다. “강아지가 떨고있지?” 녀자애가 혁이 앞으로 한발 다가서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어, 아니, 괜찮아. 얜 원래 새하얀 강아지지?” 혁이는 녀자애에게 뭐라고 대답을 해야할지 몰라서 잠간 머뭇거리다가 새삼스레 강아지의 털을 쓸어주며 떠듬거렸다. 녀자애가 혁이의 앞으로 한발 다가서서 오른손을 내밀어 강아지의 엉뎅이를 다독이며 머리를 뜨덕였다. “그래, 하얀강아지지, 원래는!” “원래는 그렇지. 하얀강아지! 이 강아지, 아마 주인이 없나봐.” “아마 그렇겠지? 벌써 한 열흘됐을거야. 이 시장판에서 돌아다닌지. 첨엔 그저 주인하구 함께 나온 강아진줄 알았거든. 그땐 털도 새하얀게 여간만 귀여운것이 아니였어. 눈에서 정기도 반짝이구. 근데 하루가 지나구 이틀이지나도 강아지는 여전히 시장마당을 도는거야. 차츰 새하얗던 털이 이렇게 씨뿌옇게 변해가구.” 녀자애는 너무도 안슬퍼서 못참겠다는듯 두손을 내밀어 강아지를 당겨왔다. “강아지는 누군가의 버림을 받은거야.” 혁이가 별안간 오른발을 탕하고 들었다가 놓으며 소리쳤다. 그바람에 녀자애는 깜짝 놀라는듯 하더니 까아만 두눈을 올롱하게 뜨고 입을 열었다. “너 어떻게 그걸 아니?” “분명해! 잃어버린 강아지라면 진작 주인이 이 곳에 와서 강아지를 찾아갔을게 아니니? 너 아까 말했지. 이 강아지가 이 시장판을 돌아다닌지가 열흘도 넘었다구. 너의 엄마면 너를 열흘씩이나 시장판에서 돌게 하겠니?” “뭐? 뭐야? 너 말하는것 하구는... 그런건 너의 엄마하구 물어봐라.” 녀자애는 삽시에 차디찬 눈길로 혁이를 치떠보며 성난 왕벌만치나 맵게 혁이를 톡 쏘아주었다. “어... 너...괜히 그렇다는거지... 성내긴... ” 혁이는 그제야 자기의 말이 빗나갔음을 알았는지 더는 아래말을 잊지못하고 더벅거리며 얼굴을 붉히다가 몸을 외로꼬았다. 녀자애는 여간해서는 놓아주지 않겠다는듯 말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성내는게 아니다. 너 말하는게 너무 어이가 없어서 그런다. 그래 뭐? 우리 엄마면 어쩐다구? 흥!” “아니 난 그저 그렇다는거지. 엄마들은 다 그렇게 자식을 가슴아파 한다 그거지.” “그럼? 너 그래 난 이렇게 좋은 엄마가 있다 그거니? 그걸 자랑하는거니?” “아니... ” “아니면?” 녀자애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있었다. 혁이는 너무도 반상적인 녀자애의 행동에 깜짝 놀라면서도 어딘가 가슴속밑자락으로부터 괜히 심술같은 것이 스물스물 머리를 쳐드는 것을 어쩔수 없었다. 혁이는 녀자애앞에 한발 다가서서 강아지를 확 나꿔채려 했다. 녀자애는 더 힘주어 강아지를 가슴쪽으로 당겨다 안으며 황황 타는듯한 눈길로 혁이를 쏘아보았다. 혁이는 얼굴에 픽하고 쓴 웃음을 날리며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너 진짜 웃기는 애구나. 이 강아지 너의 것도 아니라면서, 아까 난 이 강아지에게 삶은고기랑 사먹였다.” “근데는?” “근데 넌 마치도 저네 강아지처럼 이렇게 떡하니 그러안고 잊잖니?” 혁이는 “봐라, 난 이렇게 강아지에 관심이 많다”는 듯이 목소리를 한옥타부 높였다. 녀자애도 만만치 않게 다가섰다. “쪼잔하게, 남자애가! 까짓걸 가지구. 넌 이 강아지 이름이 뭔지나 알고있니?” “어? 이름?” “흥!” 녀자애의 입가에는 “그럼 그렇겠지”> 하는 표정이 찰찰 흐르고있었다. 혁이는 흑 숨을 들이그어 두볼을 홀쪽하게 만들어가며 두 눈을 껌벅이다가 픽 하고 랭소를 했다. “그럼 넌 이 강아지 이름을 아니?” “알아!” 녀자애의 대답에 확신이 차있었다. “너, 방금 안다구?” “그래.” “뭔데?” “미아야, 미아라구해! 곱지 우리 미~아~” 녀자애가 강아지의 머리를 톡치며 해쭉 웃었다. “어, 미화? ” “미화가 아니구 미아.” “그런 이름도 있니? 미야? 도레미야? 크크크” 혁이가 오른손으로 아래배를 북치듯 하면서 무너져내렸다. 웃으워서 못참겠다는 혁이의 거동에 녀자애는 다시 눈을 흘기며 소리쳤다. “참 너 청력에 문제가 있는거 아니야? 얜 꽃이 아니구 아라니까? 미아!” “미아라구? 이상하네” “뭐가?” “미아라면 길잃은애?” “맞지! 길잃은애!” “아! 맞지, 그래” 혁이가 무릎을 탁 쳤다. 그제야 녀자애의 얼굴에는 다시 엷은 미소가 스쳐지났다. “미아, 미아! 그래 네가 지어준 이름이니?” 혁이도 녀자애를 향해 히쭉 웃으며 한마디 했다. 녀자애가 말없이 머리를 끄덕였다. “너 그럼 얘와 한집식구가 다 됐구나 뭐! 근데 왜? 아예 얘를 집에 데려다가 네 동생을 만들지 그러니? 만날 쏘세지도 사주구 양고기뀀도 사주면서 말이야, 너랑 한 침대를 쓰면서 말이야!” 혁이는 또다시 장난기가 발동해서 시물시물 웃으며 녀자애를 쓸어오렸다. 순간 혁이는 녀자애가 두눈을 올롱하게 치뜨며 “너나 그렇게 하세요!”하고 바락바락 소리치는 장면을 그려보고있었다. 하지만 녀자애는 어찌된 일인지 얼굴에 그늘을 지으며 오밀오밀 입술을 빨아댔다. “아차!” 혁이는 자기가 또 무슨 말실수를 했나싶어 가슴이 아릿해오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가 녀자애의 눈굽이 촉촉히 젖어올랐다. “얘, 롱담으로 한 소린데 너 진짜 울보구나. 다신 널 놀리지 않을게, 그럼 됐지?” 혁이가 성근하게 녀자애에게 잘못을 빌었다. 진지해지는 혁이의 얼굴을 보면서 녀자애는 살래살래 머리를 저었다. “난 진짜 미아에게 미안하게 생각하고있거든.” “왜? 너 미아에게 진짜로 잘해주었잖니? 이름도 지어주구?” “전번에 난 진짜로 미아를 우리집에 데려갔었거든.” “그래? 얘를 너네 집에 데려갔댔다구?” 혁이는 긍금해서 못참겠다는듯이 녀자애 앞으로 한발 다가서며 다잡아 물었다. 녀자애는 차분하게 머리를 끄덕이며 아래말을 이었다. “그래, 얘가 임자 없는 강아지라고 판단한 나는 지난번에 얘를 우리집에 안아갔댔더랬어. 난 뜨거운 물로 얘를 목욕시켜주었어. 샴푸를 듬뿍 발라서 말이야. 두벌이나 씻어주니 얘의 털이 하아얗게 들어났거든. 얼마나 멋졌다구. 난 얘를 우리 집에서 기르자고 생각했댔어.” “근데? 근데 왜 또 얘를 떠돌이로 되게 했니?” 혁이는 그 불찰이 마치도 녀자애에게 있는듯이 답잡아물었다. 녀자애가 “호~”하고 한숨을 내쉬더니 아래말을 이었다. “우리집 불여우가 동의 하지 않는거야.” “불여우라니? 너네집에서 여우도 기르니?” “길러 꼬리가 아홉개 달린 불여우야.” 녀자애의 얼굴에 가는 실웃음이 스쳐지났다. 혁이는 그러는 녀자애를 보면서 뭔가 심상치 않은 기분을 느꼈다. “세상에 어디 꼬리가 아홉개달린 여우가 있니?” “흥! 우리 새엄마, 꼬리가 아홉개 달린 불여우보다도 더 요사하거든.” 녀자애가 얼굴에 쓴 웃음을 띠우며 이사이로 내뱉었다. 혁이는 저도몰래 “아!” 하고 짧은 비명을 질렀다. “그런 일이였구나. 너 친엄마는? 돌아갔니? ” “아냐? 그 불여우가 울아빠를 꼬셔낸거야.” “그래서?” “그래서 우리 친엄마라는 사람은 울 아빨 개고생해보라구 내가 세살 때 리혼해버린거야. 서로 날 가지지 않겠다고 차던지기를 하다가 나중엔 법원에서 나를 아빠쪽에 판결했다나봐.” 녀자애는 남의 말을 하듯이 담담하게 이야기를 했다. 혁이는 그러는 녀자애를 바라보며 이 세상에는 자기처럼 불쌍한 애들이 참 많구나 하는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그러면서 세상은 참 재수없게 생겨먹었구나 하고 나름대로 생각을 굴리며 입을 열었다. “그럼 너의 새엄마가 강아지를 내다버린거야?” “아냐, 그 불여우의 말이, 내가 내다 버리지 않으면 마작을 노는 나그네들을 주어 잡아먹게 하겠다는거야.” “마작을 노는 나그네들이라니?” “있다. 그 불여우는 맨날 활동실에 가서 마작치기를 하거든. 그곳엔 곰처럼 생겨먹은 나그네들이 참 많아, 쩍 하면 모여서 술놀이를 하는데 개, 돼지 못 잡아먹는게 없대.” “설마, 애완견까지야 잡아먹을라구?” 혁이가 절레절레 머리를 저었다. 녀자애는 작은 눈을 올롱하게 치뜨더니 한심하다는듯 혁이를 일별하며 머리를 저었다. “참, 너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자구 그렇게 순진해 빠졌니? 활동실에 다니는 사람들이, 흥 애완견이 아니라 사람까지도 서로 잡아먹지못해 안달이래. 그 불여우가 말했어. 진짜 잡아먹으라구 불여우가 얘를 그곳 사람들에게 가져다가 줄가봐 내가 가슴 아픈대로 얘를 다시 이곳에 놓아둔거야. 글구 설사 잡아먹히지는 않더라도 미아가 우리집에 맘편히 있을수 없을거야.” “건 왜?” “너 몰라, 불편한 사람들과 함께 산다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 불여우, 나를 혼내지 못해 안달이거든. 밥먹는걸 봐도 밉대. 물귀신 같대.” 녀자애는 말을 마치고 송곳이로 입술을 깨물어 씹기 시작했다. 녀자애가 상심해하는 모양을 보니 괜히 해보는 말같지가 않았다. 혁이는 녀자애가 참 안됐다는 생각이 갈마들었다. “너의 아버진 새엄마가 널 그렇게 대하는걸 모르니?” “아마 모를거야, 엄마가 새엄마면 아버지도 새아버지가 된다고 했던가. 암튼 그 불여우는 딱 팥쥐엄마 같애. 아빠앞에선 세상에 둘도 없이 날 생각하는것처럼 하다가도 아빠만 없으면 이것저것 트집을 잡는거야.” “저런, 그럼 아빠게 콱 고발해버리지 그러니.” 혁이는 격분해서 녀자애의 옆으로 한발 다가섰다. 녀자애는 얼굴에 서글픈 웃음을 띠우며 머리를 저었다. “아빠께? 흥, 아빠가 힘들잖아 그러면. 울 아빠두 참 녀자복이 없는가봐. 할머니 생전에 늘 그렇게 말했거든.” “참!> 혁이는 긴 한숨을 내쉬며 발부리로 땅을 걷어차고는 혼자말 비슷이 한마디했다. “할수 없지무. 너네 새 엄마가 싫다면.” “그렇지무, 난 아직 힘이 없으니까. 이 강아지는 정말 누군가 보살펴줘야 하는건데… 그래서 난 학교에 갔다가 와서는 이 곳에 와서 강아지를 찾아 쏘세지도 사먹이구, 양고기뀀도 사먹이구 그래는거야, 날 엄청 따라, 우리 미아가…” 녀자애는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뒤말을 얼버무려버렸다. 혁이는 머리를 끄덕이며 녀자애를 위안해줄 말을 찾다가 입을 열었다. “그렇구나, 강아지가 널 무척 따르는것 같구나.” “그렇지? 우리 미아가 날 무척이나 따르는것 같지?” 말을 하며 혁이를 바라보는 녀자애의 얼굴은 그러듯 행복해보였다. 혁이는 녀자애의 그 얼굴에서 새로운 뭔가를 읽어내는듯싶었다. “그럼 너 미아를 어떻게 할 생각이니?” “몰라, 그냥 이렇게 돌봐줄수 있을때까지 돌봐야지뭐… 내 힘이 자라는대루.” 녀자애의 목소리는 방금전과 다르게 푹 처져있었다. 순간적인 일이지만 그 시각 상심한듯 해쓱해진 녀자애의 얼굴은 뿌연 먼지를 들쓴 미아의 허연 털에 받침되면서 사뭇 쓸쓸해 보였다. 정말이지 누군가의 손길이 닿지 않으면 삽시에 와그르르 문어져내리려는 눈사람을 보는듯싶었다. “얘, 우리 미아에게 목욕이나 시켜주자.” 혁이가 녀자애의 다운된 기분을 바꿔주고싶다는 생각을 하며 입가에 웃음을 피워물었다. 그말에 녀자애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그래, 우리 미아를 목욕시켜주는거야 시원하게…” “그래, 가자, 연장강변으로, 샴푸도 사가지구 가자. 거품목욕을 시켜주자. 때자국이 쑥 빠지게. ” 녀자애는 손벽을 착착치며 퐁퐁 뛰여올랐다. 참으로 화사한 날씨였다. 게다가 한낮이여서 그런지 개울물이 조금도 차다는 느낌이 없었다. 혁이는 조심스럽게 강아지의 발을 개울물에 밀어 넣었다. 물에 습관이 되지 않아서인지 강아지는 죽어라고 물에서 나오려고 버둥거렸다. “얘, 그만해라. 너 미아를 다 죽이겠다.” 녀자애가 사처로 튕기는 물을 피하며 혁이의 어깨를 살짝 쳤다. 혁이는 머리를 돌리지도 않고 말했다. “안돼, 그래도 싣겨야지. 때버섯이를 시켜야줘지. 미아를.” “그래두 미아가 싫다 잖아.” “참, 너 그러지 말구, 샴푸봉지를 찢어서 가져오너라. 빨랑!” “응, 알았다.” 녀자애는 바삐 손에 들고있던 샴푸봉지의 왼쪽 모서리를 찢어서 혁이의 손에 넘겨주었다. 혁이가 샴푸를 짜서 강아지에게 바르려는 순간 강아지는 더 용을 쓰며 물에서 나오려고 힘을 썼다. “안되겠다. 네가 샴푸를 짜서 강아지등에 발라라.” 녀자애는 혁이의 손에서 샴푸봉지를 받아들고 강아지의 등에 짜놓으려고 샴푸를 든 두손을 강아지를 향해 쭉 뻗쳤다. 상체에 너무 힘을 주었던지 녀자애는 그만 아래다리를 흠칫 떨며 그 맵시로 물에 풍덩 엎어지고 말았다. “앗!” 혁이는 강아지를 들었던대로 물에 떨어뜨리고는 강에 텀벙 뛰여들어 녀자애를 안아 일으켰다. 녀자애는 엎어지며 개울물을 마셨던지 연신 꺽꺽 들숨을 몰아쉬고있었다. “얘, 괜찮니?” “꺾, 죽는줄을 알았잖아? 꺾… 두모금이나 먹었네, 강물을 저~ 미아가 떠내려간다.” 녀자애가 소리쳤다. 혁이도 개울물을 따라 눈길을 주었다. 아니나다를가 미아가 개울물에 둥둥 떠내려가고있었다. 강아지는 머리를 잔뜩 쳐들고 연신 앞발을 허둥거렸다. 그대로는 위급할것 같았다. “미아야~ 미아야.” 혁이는 미아를 향해 달려가며 소리쳤다. “미아야, 힘내 아자아자, 파이팅!” 녀자애도 혁이의 뒤를 바짝 따르며 소리쳤다. 혁이네의 부름소리를 들었는지 강아지는 그와중에도 무시로 머리를 돌려 혁이네를 돌아보고있었다. 혁이는 더 힘을 내서 뛰였다. 물속이라 그럴수록 걸음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아니야, 이대론 안돼” 녀자애가 별안간 뭔가를 터득했던지 강뚝으로 뛰여오르더니 쏜살같이 앞으로 내 달았다. 얼마를 달리지 않아서 강아지를 따라잡은 녀자애는 다시 강물에 풍덩 뛰여들어 엎어질듯 하며 강아지를 끌어안았다. “잡았다. 잡았다. 강아지를 잡았다.” 녀자애가 기쁨에 겨워 소리쳤다. “미아야, 너 살았니? 얘, 너 괜찮아?!” 혁이가 두서없이 소리치며 뛰여왔다. 녀자애는 어느새 강아지를 안고 강뚝에 올라서고있었다. 온몸으로 강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녀자애와 강아지를 번갈아보던 혁이는 갑자기 뛰여가서 녀자애를 꼭 끌어안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니, 너 진짜 괜찮니? 멋졌어. 짱이야.” “얘!” 녀자애가 몸을 외로 탈아 혁이의 품에서 뛰쳐나오며 외마디 소리를 쳤다. 순간 혁이는 녀자애를 꽉 잡았던 손을 풀며 흠칫 몸을 떨었다. 녀자애는 바들바들 떠는 강아지를 안은채 천천히 걸음을 옮기더니 강뚝에 있는 큼직한 돌우에 앉았다. 혁이도 말없이 녀자애의 곁으로 다가가 앉았다. 누구도 먼저 말머리를 열지 않았다. 강아지가 몸에 묻은 물을 털어내는 소리가 분주하게 들렸다. “와~ 원래는 미아의 털이 이렇게 하얗구나.!” 무거운 침묵을 깨고 혁이쪽에서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래, 그렇다니까. 미아의 털은 이렇게 하얗다니까. 눈처럼 새하얗다구. 글치 얘!” 한결 맑아진 목소리로 말을 하는 녀자애의 얼굴이 금시 피여나고있었다. 까아만 머리카락에서 반짝이는 물방울이 녀자애의 하아얀 두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얘, 나 널 어디서 많이 보았던것 같아!.” 혁이는 저도모르게 엉뚱한 말을 뱉어버렸다. “뭐? 진짜? 어디서?” “아니!” 혁이는 순간 말끝을 이을수 없었다. 혁이로서도 자기가 왜 이렇게 엉뚱한 말을 했는지가 야릇하게 생각되였다. 그시각 혁이는 가슴속밑자락으로부터 올리미는 은은한 아픔을 느끼고있었다. 방금 그려낸 그림같은 녀자애의 모습을 보면서 혁이는 머리속에서 오래동안 잠자고 있던 엄마의 그림자를 찾아내고있었던것이다. 언제부터였던지 혁이는 머리를 감고 돌아서는 엄마의 두볼에서 흘러내리는 물방울을 헤아리기를 좋아했다. 까아만 머리카락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방울이 유난히도 반짝인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던것이다. 저 물방울속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가? 어째서 엄마의 볼에서 흐르는 물방울이 저렇게도 반짝이는 걸가? 나의 얼굴에서 흐르는 물방울도 저렇게 아름다울수 있을가? 그래서 일부러 머리를 감고 그대로 거울을 마주서서 자기의 얼굴을 비춰보았지만 퍼렇게 바탕이 들어날 정도로 뻑뻑 밀어버린 자기의 머리통에서 흘러내리는 물방울들은 밥상우에 쏟혀진 장국만치나 꼴불견스럽게 생각되였었다. “얘, 너 머리칼이 참 좋다!” 혁이는 녀자애를 향해 또 엉뚱한 말을 뱉어버리고 말았다. 그 바람에 녀자애가 두눈을 올롱하게 치뜨더니 입가에 야릇한 웃음을 띄우며 말했다. “너, 진짜 이상한 애가 아니니?” “아냐, ” “근데 너 하는 말이 참, 그렇게 듣기는데.” “그래? 너 엄마의 머리칼도 그렇게 고왔니?” “정~말!” 녀자애가 발딱 일어섰다. “아니, 미~안!” 혁이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떠듬거렸다. “너 웬 일이니? 남의 상처에 염장을 지르기로 작심한거니, 엄마소릴 하지 말랬지?” “미안, 그래 알았어. 엄마말 안하면 될거 아니냐?” “대는 없어가지구.” “근데 얘, 울엄마 머리칼이 참 고왔다.” “너 엄마 머리칼이?” 녀자애가 뭔 말이냐는듯 혁이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혁이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녀자애의 얼굴이 반짝 빛났다. “그래, 이러고 보니 우리 아직 통성명도 안했네. 이렇게 많은 일을 함께 겪으면서두! 난 안예림이야. 열네살이구. 북림소학교에 다녀.” “난…난 장혁이라구 불러, 나두 열네살인데 도심학교에 다녀.” “도심학교? 어, 너 부자구나. 그곳은 귀족학교가 아니니?” 녀자애가 일부터 목소리를 한옥타부 높이며 들뜬 목소리로 소리쳤다. “참, 그래 귀족학교지. 엄마, 아빠 없는 애들이 득실득실 모여사는 귀족학교지.” 혁이가 그러는 녀자애를 바라보며 서글프게 웃어주었다. “너, 엄마아빠 없는거야?” 녀자애의 얼굴이 흐려지졌다. 혁이는 천천히 돌우에 다시 주저앉아 머리를 쳐들고 이윽토록 흘러가는 구름떼를 바라보며 혼자말비슷이 중얼거렸다. “엄마, 아빠!” 너무도 그리운 이름이면서도 너무도 불러본지 오란 이름이기도 했다. 혁이의 머리속에는 떠올리고싶지 않은 그저녁이 클로즈업되여 살아났다. * 삼촌이 혁이를 객실 쏘파에 불러 앉힌것은 삼촌댁이 차사고를 당해서 보름후였다. 그새 혁이는 삼촌댁의 병수발 때문에 눈코뜰새 없이 뛰여다니는 삼촌을 보면서 늘 뜨거운 가마에 오른 개미를 떠올리군 했었다. (과연 어떻게 되는걸가? 숙모가 저 맵시로 일어나지 못하면 나는 어떻게 되는것일가?) 밥상앞에 앉아서도 잠자리에 들어서도 혁이는 이 문제로 고민했다. 작은 장식회사에 출근하는 삼촌은 밤낮이 따로 없이 회사일에 목매워 사시는 분이였다. 그런 삼촌이 요즘은 삼촌댁의 병수발 때문에 엄청 힘들어하고 계셨다. 그뿐이면 몰라도 하루에 빨래감을 한소래씩 만들어내는 열살짜리와 여덟살짜리 두 사촌동생을 돌보는 일도 쉬운것이아니였다. 혁이는 그런 삼촌의 손등을 씼어먹으며 삼촌집에 달려있는게 무던히도 눈치가 보였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삼촌에게 시끄러움을 끼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어쩐지 옆으로 뒤로 삼촌의 신세를 져야할 일들이 늘 생겨나군 했었다. 삼촌은 몇번 엄마와 전화가 오가는것 같았다. 그런날이면 삼촌의 얼굴에는 더 수심이 끼곤 했다. 드디여 어떤 결론이 난 모양이였다. 그날 삼촌은 피발이 선 눈길로 한참이나 혁이를 바라보다가 “푸~”하고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무겁게 말문을 열었다. “너의 엄마하구 전화가 통했다. 어쩔수가 없구나. 너의 아버지를 생각해서라도 너를 맡아주자고 했는데, 아줌마가 언제 가야 일어날수 있을지 미결이라고 하는구나. 너도 알다싶이 지금 삼촌의 형편에… 너, 래일부터 도심학교로 가야겠다. ” 삼촌은 여기까지 말하고 머리를 돌리셨다. 혁이는 삼촌이 그때 약간 어깨를 들먹이고 계신다고 생각했다. (설마, 삼촌이 우시는걸가?) 이런 생각이 머리를 치자 혁이는 순간 코끝이 시큼해나며 자기도 울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심학교라면 시내에서 소문난봉페식기숙제학교였다. 1년 학비가 6천원이라는 도심학교는 생활절주가 반 군사화라는것도 들어서 알고있었다. 전에 혁이도 동학들과 모여앉아 도심학교에서는 애들이 아침5시에 일어나야 하고 밤 아홉시에 취침을 해야하며 텔레비죤도 일주일에 두번밖에 못보고 옷도 팬티에서 걷옷까지 모두 스스로 씻어입어야한다는 등 이야기를 하면서 그곳 애들을 위해 눅거리 한숨이라도 몇번 쉬여준적이 있었던것이다. “혁이야, 첨엔 좀 힘들겠지만 어쩌겠니? 마음을 크게 먹고 한번 그곳 생활을 해보거라.” 삼촌은 애써 목소리를 담담하게 하려고 나오지도 않는 마른기침을 컹컹 짖었다. 혁이는 그러는 삼촌의 창백해진 얼굴을 멀거니 바라보며 도심학교에서 있을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벌써 아홉시에 불을 끈 컴컴한 숙소, 이른잠에 습관된 애들이 어지럽게 코고는 소리, 그 소리에 잠을 청할수가 없어 하염없이 창밖의 별들을 세는 자기의 모습, 혁이는 자기의 그 모습이 참으로 처량할것이라 생각되였다. 혁이는 문뜩 삼촌집이 참으로 따스하고 안온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삼촌집에서의 나날들이 참으로 행복했었다고 생각되였다. 삼촌은 대패밥이 묻어있는 옷을 입고 지친 얼굴로 퇴근을 하면서도 늘 손에 구운고구마같은것들을 들고 오셨다. “동생들과 나누어 먹어라.”고 이야기 하시는 삼촌을 보면서 혁이는 몇번이나 아버지를 떠올리군 했다. 그러면서 자기도 삼촌에게서 엄청 욕을 먹고싶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평소 삼촌은 사촌동생들에게 매우 엄하게 대했던것이다. 타일러도 말을 잘 듣지 않으면 그 커쿨진 주먹으로 이마에 뚝하니 꿀밤을 먹여주면서 “이래도 그냥 고집을 피울래?” 하고 으름장을 놓기도 하셨다. 그러다가도 동생들의 발을 씻어주고 나란히 앉아서 그림영화를 볼 때면 저도몰래 사촌동생들이 시샘이 나도록 부럽기까지 했었다. 속으로 (삼촌이 만약 나의 아빠라면 얼마나 좋을가?)하는 생각을 굴리다가도 사촌동생들에게 속보이는것같아서 스스로 얼굴을 붉힌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그만치 혁이는 아버지사랑에 목말라있었고 아버지라는 존재를 뼈속으로 그리워하고있었다. 혁이의 아버지는 혁이가 네살 나던 해 외국으로 돈벌러가셨다. 그사에 몇번 집으로 돌아와 얼마간씩 있다가군 했다. 아버지는 올쩍마다 혁이를 위해 놀이감을 가양각색으로 많이도 사다주었지만 혁이는 늘 아버지의 눈길이 마치도 자기를 이쁘다고 볼을 간질러 주시던 이웃집아저씨의 눈길같다고 생각했었다. 나도 한번 아버지의 품에 안겨보았으면… 아버지의 저 떡 벌어진 어깨우에 올라가 목마라도 한번 타보았으면…하는것이 혁이의 욕심이고 바람이였다. 언젠가 혁이는 용기를 내여 아버지의 등뒤에 가 작은 손을 아버지의 어깨에 올려놓은적이 있었다. 아버지가 그 손을 거부하지 않으면 한술 더 떠서 가슴을 아버지의 등에 기대보고 그래도 아버지가 그대로 받아주면 오른다리를 슬쩍 들어서 아버지의 어깨에 걸쳐볼 심산이였다. 하지만 그것은 한낱 환상에 지나지 않았다. 혁이의 손길이 아버지의 어깨에 닿는 순간 아버지는 흠칫 몸을 떨며 어깨를 픽 돌리더니 두팔을 내밀어 혁이를 끌어안으며 오른손으로 혁이의 엉덩이를 두어번 다독여줄뿐이였다. 혁이는 나름대로 아버지께서 자기의 생각을 알아버린것같아 얼굴을 붉히며 아버지의 품에서 바삐 빠져나갔다. 혁이가 일곱살나던 해, 아버지는 외국에서 사고로 돌아가셨다. 사망원인좇아 제대로 알지못하는 죽음이라 보상비같은것은 언급할수도 없었다. 실로 청천병력이였다. 어머니는 며칠이고 음식을 전페하고 자리에 누워 일어나지를 못했다. 죽음이란 무엇인지 혁이는 그때 잘 알지를 못했다. 그저 엄마마저 없다면 나는 어떻게 살가 하는것이 제일 큰 큰심이고 두려움일뿐이였다. 혁이는 하루종일 엄마팔을 부여잡고 “엄마, 죽지마라, 엄마 죽으면 난 누구하구 사니?”를 반복하며 울음바다를 헤여다녔다. 애처로운 혁이의 부름이 힘이 됐던지 엄마는 용케도 자리를 차고 일어나셨다. 이듬해 엄마는 혁이를 외삼촌네 집에 맡겨 놓고 외국으로 돈벌려 떠나셨다. 살아야 한다며 남못지 않게 혁이를 키워야 한다며 여느 사람들의 만류도 마다하고 버럭버럭 외국으로 떠나셨다. 그날 혁이는 외삼촌과 외숙모와 함께 어머니를 바래주러 공항으로 나갔다. 혁이는 외삼촌의 품에서 몸부림을 치며 어머니를 불렀다. 어머니는 입술을 깨물고 푸들푸들 두볼을 떨면서 간신히 걸음을 옮겨 대기실로 들어가고있었다. 어머니가 떠나서 두달 후, 혁이는 외숙모의 손을 잡고 학교붙으러 갔다. “공부를 잘해라, 누굴 속태우지말구.” 등록을 마치고 나오며 외숙모가 혁이의 뒤통수를 톡 쳤다. 혁이는 어깨를 움씰하며 자신없이 머리를 끄덕였다. 어머니는 달마다 혁이의 생활비를 보내는것 같았다. 하지만 외숙모는 노상 혁이의 앞에서 얼굴을 찡그리고 계셨다. “개먹이 소먹이 다 오르는데 혁이의 생활비만은 안 오르는구나.” 하시는 외숙모의 말이 무슨 뜻인지 혁이는 첨엔 모르고있었다. 그냥 자기를 대하는 외숙모의 얼굴이 외사촌동생들을 대할 때와 조금은 다르구나 하고 생각될뿐이였다. 혁이가 열한살나던해 외삼촌도 외국으로 나가게 되였다. 그러자 혁이의 거처가 큰 문제로 되였다. 외숙모가 몸이 아프다며 더는 혁이를 못맡겠다고 나누으셨던것이다. 혁이는 이렇게 되여 삼촌네 집에 옮겨앉았다. 외숙모가 넘겨주는 려행용가방을 끌고 외삼촌네 집을 나오며 혁이는 울고싶다고 생각을 했다. 가방 하나 달랑 끌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삼촌의 손에 끌려 가는 자기가 어쩐지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삼촌은 싫은소리 한마디 없이 혁이를 깍듯이 대해주셨다. 혁이는 혁이대로 그러는 삼촌이 고마우면서도 어렵게 느껴졌다. 혁이는 삼촌의 눈에 나지말자고 언제나 자기를 단속하군 했다. 엄마는 외국에서 간혹 전화를 걸어왔다. 하지만 혁이는 그 전화가 조금도 반갑지 않았다. 생각같아서는 전화에서라도 나름대로 엄마에게 투정을 부려보고 재롱도 떨어보고싶었지만 엄마는 늘 첫마디로 “삼촌하구 삼촌댁을 애먹이지나 않느냐”고 물으셨다. 그 말을 들으면 달아올랐던 흥분도 싸늘하게 식어지군했다. 엄마의 말을 실어다주는 전화줄만치나 엄마의 말도 차갑게 느껴졌다. “저 어린애가 아니거든요.” 혁이가 퉁명스럽게 전화를 받을라치면 엄마는 엄마대로 제 좋은 말만 늘여놓았다. “너 삼촌댁의 눈에 나면 안된다. 삼촌집에서까지 쫓겨나면 너 어데가 있을려구 그러니? 엄마는 아직도 몇년 더 벌구 가야겠는데. 그래야 너 대학공부까지 시키지그러니.” 엄마의 말을 들으며 혁이는 삼촌집에서 쫓겨나 달랑 가방 하나를 끌고 또 어데론가 보금자리를 찾아 떠나는 자신을 그려보군했었다. 그 생각만 하면 혁이는 가슴이 갑갑해오고 머리가 하얗게 비여지는것 같았다. 혁이는 이렇게 살얼음을 걷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텨왔다. 하지만 혁이의 노력과는 반대로 숙모의 차사고 때문에 끝내는 삼촌집에서마저 다른곳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던것이다. 도심학교에 발을 들여놓아서야 혁이는 자기처럼 숙소에서 공부를 하는 애들이 참 많다는것을 알게되였다. 여덟살내기 1학년생들이 젖내나는 손으로 식당아줌마에게서 반찬을 받아들고 돌아서는 모양을 보면서 혁이는 저도몰래 목이 메여왔다. 하지만 이한 생활에 습관된때문인지 여덟살내기들도 아홉살내기들도 한점 흐림이 없이 얼굴에 맑은 웃음을 남실거리며 맛나게 밥을 먹어대고있었다. 시간이 약이라고했던가 혁이도 차츰 밥사발을 작은 구멍에 밀어넣어 아줌마들이 떠주는 반찬을 받아서는 맛있게 먹을수 있게되였다. 이러구러 몇달이 지났다. 혁이는 차츰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친구들과 서로 도우며 사는 숙소생활이 친척집에 얹혀 어른들의 눈치를 보며 사는것보다 휠씬 더 자유롭고 좋다는 생각을 하게되였다. 따라서 마음의 안정을 찾아갔고 자기만의 생활의 리듬을 잡아가게되였다. (치약을 사야겠구나, 세수비누도 미루 사야하고, 그리고 팬티도 한장 더 사서 갈아입어야지.) 혁이는 아침에 치약을 힘껏 비틀어 짜며 이런생각을 굴렸다. 이어서 떠오르는 곳이 북안시장이였다. 원래 이런것은 학교의 상점에서 살수도 있었지만 혁이는 늘 뭔가 살것이 있으면 북안시장을 리용하군 했다. 북안시장에 가면 엄마의 체취를 다시금 느껴볼수있을것 같아서였다. 북안시장 2층 옷가게27호는 엄마가 외국으로 가기전에 운영하던 매대였던것이다. 그 시절 혁이는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늘 엄마의 매대에 들리군 했었다. 손님이 없을 때면 혁이는 쪽걸상에 앉아서 엄마와 같이 실을 가지고 그물뜨기놀이도 하군 했다. 이웃매대의 할머니는 그러는 혁이의 코끝을 눌러주며 “어쩌나? 손님이 이렇게 없어서… 혁이가 뭘루 사탕이랑 사먹누?” 하고 익살스럽게 이야기를 하셨다. 그러면 혁이는 할머니를 바라보며 “그래도 울 엄만 사탕만 잘 사주는데요.”하고 되받아넘기군했다. 오늘까지도 영화같은 그 장면들은 행복한 추억으로 혁이의 마음속에 자리를 잡고있었다. 요즘에 와서 간혹 엄마의 매정한 전화를 받을 때면 엄마에 대한 미움이 새록새록 서려오르다가도 돌이켜보면 또 가슴이 뭉클하게 엄마가 보고싶고 그리워지는 것도 사실이였다. 혁이는 갈수록 가물가물해지는 엄마에 대한 추억을 잡아보려고 무등 애를 써보기도 했다. (엄마의 눈이 쌍까풀이던가? 아님 외까풀이던가? 그래 오른쪽 입귀 우에 까만 기미가 있었더랬지…글구 웃을 때 볼에는 보조개가 들어갔었어…) 무시로 달아나버리려는 엄마의 모습을 이렇게 자꾸자꾸 머리속에 잡아넣는 혁이였다. 그 기억을 가슴속에 간직하고 산다는것만으로도 기탁이 되는듯싶었다. 하지만 그 기억이 가슴속 밑자락에 앙금처럼 남아있다는것이 힘겹게 느껴지기도 했다. 도심학교에 옮겨와서 어느 어문시간이였다. 선생님께서 “나의 가족”이라는 제목으로 짧은 글을 지어보라고 하셨다. (가족? 나의 가족?) 혁이는 그 제목을 놓고 무던히도 고민을 했다. (나의 가족? 과연 나에게 가족이 있었던가?) 가족으로서의 행복한 추억이 혁이에게는 별로 없었다. 혁이네 가족에는 늘 아빠의 자리가 비여있었던것이다. 혁이는 한참을 궁리하다가 이렇게 썼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글을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다. 아빠도 있고 엄마도 있어야 가족이라고 할수있는데… 나에게는 가족이 없다. 커서 꼭 행복한 가족을 만들겠다. 엄마도 있고 아빠도 있고 애들도 행복한 가족을 만들겠다. 이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사는 합격된 아버지가 되겠다….” 선생님께서 그 작문을 참 잘썼다고 하시면서 동학들앞에서 읽어주셨다. 몇몇 동학들은 킥킥거리며 혁이가 장가들고싶어한다고 웃어주었다. 하지만 또 몇몇 동학들은 머리를 돌리고 눈물을 짓기도했다. 사실이였다. 훌륭한 아버지로 되는게 혁이의 꿈이라면 꿈이라고 늘 생각해오는터였다. * “강아지가 불쌍해, 미아가 불쌍하다구. 말도 못하는것이 어디가서 어떻게 살겠니.” 혁이의 목소리에는 울음이 섞여있었다. 녀자애도 어금이를 꼭 깨물고있었다. “그래, 이 쬐꼬만 것이 어떻게 혼자 살수있겠어. 누군가 보살펴야 하는건데. 하지만 어쩌니? 우리에게 무슨 힘이있니? 내가 다시 집에 가지고 들어가면 그 불여우가 잡아먹을거야.” “참, 예림아, 우리 빨리 컸으면 좋겠지? ” 혁이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하여 약간 떨려왔다. “그래. 빨리컸으면 좋겠어.” 녀자애도 속삭이듯 말했다. “난 장가가서 애들을 낳으면 꼭 옆에서 지켜주겠어. 하루 두끼 죽을 먹더라도 옆에서 애들과 함께 있겠어. 난 꼭 세상에서 제일 좋은 아빠가 될거야.” “나두 세상에서 젤루 좋은 엄마가 될거야.” 녀자애는 말을 마치고 천천히 머리를 들어 혁이를 바라보았다. 그 시각 혁이의 눈길도 녀자애를 찾고있었다. 둘의 눈길은 허공에서 만나며 반짝하고 빛을 뿌렸다. 혁이가 벌떡 일어섰다. “예림아. 내 생각이 있다.” 녀자애도 혁이를 따라 발딱 일어섰다. “어떤생각이? 빨리 말해라.” 혁이는 다시 한번 녀자애를 바라보며 힘있게 머리를 끄덕이더니 또박또박 아래말을 이었다. “우리 미아에게 새주인을 찾아주자.” “뭐? 새주인을 ? 미아에게 새주인을 ?” 녀자애의 눈길이 갈피를 잡지못하고 허공에서 허둥거리고 있었다. 혁이는 녀자애쪽으로 한발다가서며 힘있게 말했다. “그래, 우리 미아에게 새주인을 찾아주는거야. 어느책에선가 보았거든. 이 세상에는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훨씬 더 많대. 그래 그런거야, 이 세상에는 꼭 우리 미아를 자기 자식처럼 귀엽게 키워줄 사람들이 있을거야. 우리 그런 사람을 찾아 미아를 맡기는거야.” “아, 새주인 . 그럼 얼마나 좋겠니? 근데 그런 사람을 어떻게 찾니?” 녀자애 목소리에는 힘이 빠져있었다. 혁이는 녀자애의 물음에 잠시 말거리를 찾지못하다가 힘을 주어 말했다. “우리 북안시장앞에 미아를 안고 기다리는거야, 맘씨곱고 무던해 보이는 아줌마나 아저씨들을 보고 물어보는거야. 우리 미아의 새아빠, 새엄마가 죄실 생각이 없냐구 말이야. 그럼 우리 미아를 곱게 키워주겠다는 사람들이 꼭 나타날거야” “와, 너 어쩜 그런 생각을 다 할수있니? 그래 맞아. 그럴거야. 너 아까 말했지. 이 세상에는 좋은 사람이 나쁜 사람들보다 훤씬 더 많다구. 그래 우리 미아, 희망이 있는거야. 우리 미아 새 보금자리를 찾을 수있는거야. 행복한 보금자리를 찾을수 있는거야!” 녀자애의 얼굴에 무한한 행복이 넘쳐흐르고있었다. 혁이는 녀자애의 얼굴을 흐믓하게 바라보며 얼굴에 흠뻑 웃음을 피워물었다. “그래, 가는거야. 우리 이길로 가는거야! 미아에게 새주인을 찾아주는거야.”… 혁이는 강아지를 품에 꼭 껴안고 앞을 향해 힘있게 발걸음을 내디뎠다. 녀자애도 혁이의 뒤를 따라 힘있게 발걸음을 옮겨놓았다. 혁이의 얼굴에도 녀자애의 얼굴에도 밝은 웃음이 넘쳐흘렀다. “예림아, 우리 미아는 참 행복하게 살수있을거야.” “그래, 우리 미아를 위해 축복해주자. ” 그들은 마주보며 벌씬 웃었다. 이 세상 모든 근심을 다 털어버리고 자기들만의 행복의 보금자리를 찾은듯한 기분이였다...
3    카네이션기행 댓글:  조회:1554  추천:0  2010-03-11
카네이션기행 승민아, 멀었니? 정말 너무 힘들어서 그런다…”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거의 절망에 가깝게 떨리고있었다. 승민이는 그 목소리를 즐기듯이 받아들이면서도 일부러 목소리를 힘껏 찢으며 고통스러운듯 더듬거렸다. 󰡒아이구, 으으으… 죽기 5분전입니다. 아니 1분전에 왔습니다. 아이구 배야…” 승민이는 고통스러워 얼굴이 일그러져갈 그 모습을 그려보며 묘한 웃음을 피워 물었다. (애 좀 떼보라니까. 흥, 날 그렇게 만만하게 보지말아야 했지. 크크크…) 승민이는 나름대로 달콤하게 꿀맛을 떠올리며 두 손으로 아래배를 슬슬 만지기 시작했다. 전에 없이 아래배가 거뜬해진듯싶었다. 승민이는 왼손바닥으로 다시 두어번 아래배를 톡톡 쳐보고는 두눈을 껌뻑거렸다. (인젠 일어나볼가?) 생각을 굴리며 슬그머니 문밖의 동정에 귀를 기울였다. 문밖은 쥐죽은듯 잠잠했다. (웬 일이야, 다른데로 떠나가는 동정도 없었는데. 그냥 버티고있는건가? 크크크… 인내심 하나는 죽인다니까, 재간있으면 좀 더 해보시지…) 승민이는 두 주먹을 으스러지게 틀어잡고 끄드득 소리나게 힘을 주었다. 두 어깨가 시원해나서 흐으윽 들숨을 크게 들이쉬였다. 그때였다. 문밖에서 괴성이 터졌다. 󰡒으악 승민아!” 얼굴에 철판을 깔고 앉아서 은근히 문밖의 동정을 즐기고있던 승민이는 밖에서 나는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벌떡 일어섰다. 󰡒으~악~” 밖에서 다시 한번 괴성이 터졌다. 소리 그 자체가 공포였다. 승민이는 뒤를 닦을 생각도 잊어버린체 바지를 춰올리며 화장실문을 열고 뛰여나갔다. 새엄마는 뜨거운 물에 퐁땅 빠진 새우처럼 온몸을 옹송그린채 왼쪽으로 쓸어져있었다. 얼굴은 찢어진 백지장을 떠올렸다. 무시로 파르르 떨리고있는 엉뎅이를 감싼 잠옷우에 찍혀진 이름모를 꽃송이우로 누릇한것이 배여나와 잠옷을 적시고있었다. (웬 일일가? 큰 일 난것이 아닌가?) 승민이는 완전히 무너져내린 새엄마의 처참한 몰골을 바라보며 후둑후둑 뛰는 가슴을 부여안고 더듬거렸다. 󰡒왜...왜 이럽니까? 일어나시오.” 새엄마는 땀으로 얼룩진 얼굴을 고통스럽게 쳐들고 이를 옥물며 벌벌 기여서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문이 닫기자바람으로 󰡒와앙~”하고 울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새엄마의 울음소리는 예리한 갈퀴가 되여 승민이의 가슴을 마구 헤집고있었다. 승민이는 저도몰래 한껏 가슴을 옴츠렸다. 태여나서 지금껏 어른들이 이처럼 처량하게 울부짖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던것이다. 머리에서 󰡒왕~” 소리가 나는듯하더니 목을 타고 가슴을 지나 두 다리를 통해서 온몸의 힘이 싹 빠져나가는듯싶었다. 승민이는 물먹은 토담처럼 스르르 무너져내리고 말았다. 잔뜩 어깨를 옹크린채 흘끔흘끔 화장실안의 동정을 살피며 두 눈을 슴뻑거렸다. (저러다 저 녀자가 죽기라도 하면 난 어쩌는가? 살인범이라도 되는게 아닌가?) 무서웠다. 그냥 오기로 생각없이 했던 행동이 후회되기 시작했다. * 어제 오후 마지막 시간까지 다 보고난후였다. 담임선생님께서 들어와 총화를 지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동무들, 래일이 무슨 날인지를 모두 알고있죠? 그렇습니다. <3.8국제부녀절>입니다. 소학교에서 맞는 마지막 <3.8절>이죠. 어쩜 동무들은 자기하고 별 관계가 없는 명절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저의 생각은 그렇지 않습니다. 각도를 바꿔보세요. 동무의 어머니는 소학교에서의 마지막 <6.1절>을 놓고 어떻게 생각하실것 같습니까? 이런 어머니의 립장에서 한번 생각할수는 없습니까? 동무는 언제 한번 어머니께서 동무에게<6.1절>을 쇠주듯이 어머니에게 <3.8절>을 쇠드린적이 있습니까? 소학교에서의 마지막 <3.8절>만은 실제 행동으로 어머님들을 기쁘게 해드립시다. 사랑이란 주고받으면서 더 커지는것입니다. 지금껏 우리를 키우느라 로심초사하신 어머님들께 영원히 행복한 추억으로 되게 사랑의 마음을 전합시다.” 담임선생님께서는 이외에도 많은 말씀을 하셨다. 승민이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여느때없이 심중하게 새엄마를 생각했다. 언제나 문구방집의 곱살한 아지미처럼 새물새물 웃으며 손님을 때하듯 깍듯이 자기를 대해주는 새엄마로부터 승민이는 스스럼 없는 친근함은 느낄수 없었지만 그래도 딱 요때다싶게 던져주는 그 웃음때문에 언제나 외롭지 않고 힘들지는 않았었다. 승민이도 착한 손님만치나 새엄마를 깍듯이 대했고 그 이상을 벗어나는 애정표현을 하지 않고있었다. 새엄마가 싫다기보다는 어쩐지 딱 그만한 거리가 느껴지군 했던것이다.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며 승민이는 래일아침 일어나 새엄마께 꽃송이를 드리며 󰡒수고하셨습니다.”하고 인사라고 해야겠다고 속구구를 굴렸었다. 돌아오는 길에 승민이는 꽃방에 들렸다. 한책상에 앉는 짝궁이 진이도 승민이를 따라 꽃방으로 들어왔다. 󰡒어머, 승민아, 너 꽃을 사려구?” 진이가 웬 일냐는듯 까아만 눈을 올롱하게 치뜨며 물었다. 󰡒왜? 안되니? 내가 꽃을 사면.” 승민이가 도전적으로 물었다. 진이가 홀랑 혀를 내밀어보이며 목소리를 과장스럽게 뽑아올렸다. 󰡒얘, 얘를 봐라. 누가 안된다니? 평소에는 하도 꽃하구 안 어울리던 네가 꽃방에 오니 신기해서 그러지? 어머니께 드릴려구 그러니? 그럼 카네이션을 사야해. 카네이션.” 󰡒뭐? 카네이션? 장미를 사는거 아니야? ” 󰡒이 촌뜨기야, 장미야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는거지. 어머니에게는 모정을 대표하는 카네이션을 사야하는거야.” 진이가 시뚝해서 손을 내저으며 이야기를 해나갔다. 󰡒오, 그럼 카네이션으로 하지 뭐. 저 흰색이 순결해보인다야. 저걸루 할가? 아님 노란것도 괜찮아보이는데.” 승민이는 꽃에도 이렇게 많은 학문이 있냐고 생각하면서 혼자말 비슷이 중얼거렸다, 꽃을 파는 아지미가 시무룩히 웃으며 승민이의 곁으로 다가왔다. 󰡒너 3.8절에 엄마께 선물하자구 그러지?” 󰡒......” 승민이는 대답을 않고 시무룩히 웃기만했다. 꽃방아지미가 말했다. 󰡒3.8절선물로는 빨간색 카네이션을 사야한단다.” 󰡒빨간색? 왜요?” 진이가 앞질러 물었다. 󰡒꽃에만 꽃말이 있는게 아니라 꽃의 색갈에도 말이 있거든. 그래서 부모님 가슴에 꽃을 잘못 달아드리면 부모님을 욕보이는 행동이 된단다.” 󰡒네? 꽃색갈에도 말이 있다구요?” 진이의 까아만 눈동자가 튀여나올듯 커졌다. 꽃방의 아지미가 살풋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지 이를테면 빨간색은 부모님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는 색이기도 하고 이성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색이기도 하단다. 하지만 노란색은 정반대의 뜻을 가지고있거든. 이를테면 '난 당신을 경멸합니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 그러니 부모님 가슴에 달아드리면 큰일나는게 아니겠니? 무척 주의해야 하는색이지.” 󰡒그럼 흰색은 무슨 뜻을 가지고있나요?” 승민이도 궁금해서 한술 떴다. 󰡒흰색은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색이란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사람들이 부모님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자신의 가슴에 다는 색갈이란다. ” 󰡒세상에 큰 일 칠번했잖아, 어쩜 승민아, 넌 딱 흰색과 노란색이 좋아보이던.” 󰡒크크크 그러게... ” 승민이는 숙스럽게 머리를 숙이고 손가락으로 빨간색 카네이션을 쓸어보았다. 승민이는 꽃 한송이가 새엄마와 함께 했던 일년세월을 대표한다고 나름대로 생각을 굴리면서 빨간색 카네이션 세송이를 골라들었다. 진이도 빨간색 카네이션을 네송이 골랐다. 진이는 카네이션 한송이가 50원짜리 소비돈으로 변하여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돌아오는 길 내내 종알거렸다. 󰡒참, 유치하기는, 녀자애들은 이래서 알린다니까.” 승민이는 악의 없이 진이를 흘겨보며 핀잔을 주었다. 하지만 진이는 승민이의 말을 듣는지 마는지 여전히 좋아죽겠다는 표정이였다. 승민이도 그러는 진이를 보면서 나름대로 흥분에 들떠있었다. 카네이션을 받아들고 새엄마가 어떤 표정을 지을가를 그려보기도했다. 새엄마가 그냥 살풋이 웃으면서 󰡒고맙다.”하고 인사하며 조용히 받을것 같았다. 승민이는 얼굴에 피식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살래살래 저었다. 어쩐지 슴슴할것 같아서였다. (머리라도 쓸어주든지 아니면 엉뎅이라도 두어번 쳐주든지 하면 좀 좋아? 그럼 모르는척 하면서 손이라도 슬쩍 쥐여줄텐데…크크크 하기야 손님의 엉뎅이를 치면 법에 걸리지. 암, 걸리구 말구. 드라마에서는 그런걸 뭐라더라?) 승민이는 부러 카네이션을 옷섶에 치우고 열쇠를 꺼내여 출입문을 열었다. 객실은 불만 켜져있을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어쩐지 썰렁해보였다. 전에 같으면 새엄마가 벌써 와서 저녁준비를 하고있었을 시간이였다. 승민이는 신을 벗어 신발장에 넣으며 은근히 신경을 아빠와 새엄마의 침실쪽에 돌렸다. 󰡒몇년이요. 아직도 그렇게 신경이 예민하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간단말이요.” 아버지의 목소리가 침실에서 새여나왔다. 승민이는 자기의 침실로 들어가려다말고 못박힌듯 굳어졌다. 평소에 들어보지 못하던 아버지의 격한 목소리였다. (웬 일로 저러실가?) 승민이는 아버지네 침실쪽을 향해 두어걸음 다가가서 귀를 기울였다. 󰡒그래요. 몇년이예요? 몇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이 짓거린가 말이예요.” 󰡒짓거리라니? 어떤 형편이든 필경은 애엄마가 아니오. 이틀후이면 승민이의 생일인데 엄마로 생겨서 생일선물로 옷 몇벌 보내는것도 안되오? 황차 올해는 우리 승민이 소학교에서의 마지막 생일인데.” 아버지의 목소리는 낮고 무시로 떨리는것이 애써 흥분을 누르는듯 해보였다. 하지만 새엄마의 목소리는 이미 톤을 넘어서고있었다. 󰡒네, 이것 참 완전히 감동돼서 못봐주겠네요. 그럼 왜 아예 데려다 기르라고 못해요? 그렇게 가슴아프면 제 새끼를 던지고 외국가서 그렇게 느러지게 산대요? 제 새끼가 아파서 열이 팔팔 끓을 때는 뭘 하다가 생일이나 되면 눅거리옷 몇견지 달랑 보내면서 사람가슴을 바락바락 긁어댄대요?” 󰡒이거이거 완전히 막 나가자는거구만 완전히…” 아버지의 목소리는 다시 격하게 울리고있었지만 이미 뭔가 빠져나간듯 힘이 없이 들렸다. 승민이는 얼굴을 잔쯕 찌프리고 퉁퉁한 두볼을 푸들푸들 떨어댈 아버지의 모습을 보는듯싶었다. 새엄마와의 전쟁도화선이 뭐라는것을 짐작할수있었다. 승민이는 픽 몸을 돌려 자기의 침실로 들어가 안으로 자물쇠를 절컥 잠궈버렸다. 컴푸터옆에 나란히 세워놓은 탁상달력이 눈에 맞혀왔다. 3월 9일에 파란색으로 동그라미가 커다랗게 그려져있었다. 일요일이여서 빨간색으로 찍혀진 9자가 파란색 동그라미와 조화를 이루면서 제법 묘한 느낌을 연출하고있었다. 언젠가 책에서 보았던 󰡒로신전집”이 떠올랐다. 그 책에 󰡒아Q정전”이라는 소설이 있었는데 주인공 아Q가 자기를 사형에 처한다는 문서에 그린 동그라미가 자꾸 덜 동드란듯 해서 아쉬워하던 모습이 눈앞에서 흔들거리고있었다. 빠알간 9자도 어쩌면 자기의 목을 조르는 포승끈처럼 느껴졌다. 승민이는 침대로 털썩 내려 앉으며 두눈을 꼭 감았다. (하필이면 아Q야,) 승민이는 설레설레 머리를 저어댔다. 그러다가 허구픈 생각이 들어서 픽하고 찬웃음을 짧게 터쳤다. (그래, 내가 바로 아Q지. 저 녀자의 저런 마음도 모르고 하냥 고맙다고, 그래도 나는 새엄마치고는 맘씨 좋은 녀자와 살아서 늘 행복하다고 자신을 다독여왔지. 나에 비하면 영림이도 불쌍하고 수정이도 불쌍하고 광태도 불쌍하고 하면서 그 애들에게 눅거리 동정심도 보내면서, 쳇, 내가 과연 그애들보다 나은게 뭐야! 에잇! 음특한 녀자, 여우같은 녀자…) 승민이는 억울한듯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리다가 󰡒윽” 하고 외마디소리를 질렀다. 옷섶에 넣었던 카네이션대가 주먹에 맞아서 살을 파고들었던것이다. 승민이는 점퍼의 쪼르래기를 쫙 내리열고 안에서 카네이션을 꺼내여 바닥에 메쳤다. 빠알간 카네이션 세송이가 바닥에 누워 웃는듯 승민이를 쳐다보고있었다. 타는듯이 빠알간 카네이션이 얄밉다고 생각되였다. 승민이는 벌떡 일어나 카네이션을 주어들었다. 우에 씌웠던 비닐을 와락 벗겨버렸다. 카네이션꽃잎이 살랑 날아떨어졌다. 떨어지는 그 모양마저 역겹게 생각되였다. 승민이는 카네이션꽃잎을 주어 입으로 가져갔다. 이발사이에서 딱딱 소리가 나게 꽃잎을 씹어댔다. 그러다가 아예 카네이션을 송이채로 한송이한송이 씹어나갔다. 󰡒어디로 가는거예요. 훌렁 나가버리면 다예요? ” 새엄마의 앙칼진 목소리가 침실문을 뚫고 들어왔다. 󰡒나도 힘드오, 힘들어. 혼자서 생각 좀 해보구려.” 󰡒무슨 생각을 하라는거예요? 아직도 나를 나쁘다는거예요? 길가는 사람을 아무나 잡고서 물어봐요. 내가 틀렸는가?” 새엄마의 목소리에 이어 󰡒탕!”하는 소리가 문쯤으로 들려왔다. 승민이는 두손을 쫙 펴서 귀를 막으며 본능적으로 카네이션을 씹어댔다. 입귀를 타고 피같이 빠알간 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승민이는 주먹으로 입술을 쓱 닦으며 생각했다. 이렇게 내 입속에서 꽃이 죽어가고있구나. * 괴로왔다. 죽음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스믈스믈 기여들 때 승민이는 온몸으로 오싹 전률을 느꼈다. (으으윽~) 승민이는 두 손을 쫙펴서 머리칼을 움켜쥐고 탁탁 두어번 당겨보다가 벌떡 일어섰다. 짜릿하게 아래배가 당겨오는듯한 감을 느꼈다. 승민이는 본능적으로 화장실을 떠올리며 사이문가로 다가갔다. 막 손을 내밀어 사이문을 당기려는 순간 밖으로부터 문이 쫙 열려지고있었다. 승민이는 흠칫 놀라며 선자리에 굳어졌다. 새엄마의 얼굴이 먼저 침실로 삐쑥이 들어왔다. 새엄마도 흠칫 놀라는듯 했다. 󰡒너, 언제 들어왔댔니?” 새엄마의 목소리는 떨리고있었다. 승민이는 곱지 않은 눈길로 새엄마를 흘깃 훔쳐보았다. 새엄마는 황황한 눈빛을 옆으로 돌리고있었다. 승민이는 말없이 새엄마의 곁을 쓱 스쳐지났다. 󰡒입어라!” 뒤에서 새엄마의 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새엄마로서는 무엇을 입어라고 찍어말하지 않았지만 승민이는 분명 󰡒입어라”는 단어가 무엇을 의미한다는것을 알것같았다. (흥! 위선자. 속 다르고 겉 다르고...여우야, 여우지, 꼬리가 몇개나 달렸나 벗겨볼가?) 승민이는 이렇게 아니꼬운 생각을 하면서 화장실에 들어갔다. 󰡒쏴~”하고 줄기가 굵게 오줌발을 쏟고나니 짜릿짜릿 아래로 당겨오던 찜찜한 감각이 가신듯이 사라져버렸다. 카네이션을 씹을 때의 그 침침하던 기분이 사라지면서 (어쩔텐데, 과연 당신이 어쩔텐데.)하는 오기가 서서히 머리를 쳐들기 시작했다. 승민이는 바지호주머니에 두 손을 찌른채로 늘쩡늘쩡 걸어서 객실을 지나갔다. 객실은 조용하다 못해 괴괴한 분위기까지 던져주고있었다. 주방쪽에서 새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승민아, 와라, 밥먹어라.” 승민이는 침실문을 밀어열려다말고 주방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빨리 와라, 국이 식겠다.” 새엄마의 목소리는 아빠에게 󰡒길가는 사람을 아무나 잡고서 물어봐요. 내가 틀렸는가?”하고 바락바락 소리치던 그 목소리가 아니였다. 들으면 사람의 가슴을 편하게 하는 그런 부드러움이 깔려있었다. 여느때 같으면 그 목소리를 들으며 은근히 식욕을 느꼈을 승민이지만 그 순간만은 꼬리가 아홉개 달린 여우의 유혹에 넘어가는듯한 느낌이 묘하게도 머리를 쳐들었다. 승민이는 대꾸도 없이 바지호주머니에 두 손을 찌른채로 주방으로 들어갔다. 새엄마는 식탁에 수저를 놓고있었다. 승민이가 들어오는것을 눈치챈 새엄마는 승민이 쪽에 머리를 돌리며 말했다. 󰡒식기전에 먹어라. 난 입맛이 없구나. 난 우유나 한 고뿌 마시겠다.” 새엄마는 말을 마친후 랭장고문을 열고 우유한봉지를 꺼내들었다. 승민이는 여느때와 다름없는 새엄마의 그 행동이 그렇게도 아니꼽게 생각되였다. (누가 여우가 아니랄가봐. 저녁밥을 해놓고 무슨 우유는 우유야, 나하구는 함께 밥을 안먹는다 이거지. 흥! 먹다가 배탈이나 콱 나버려라.) 승민이가 뭔 생각을 굴리고있는지도 모르고 새엄마는 가위로 우유봉지를 자른후 고뿌에 우유를 따르기 시작했다. 승민이는 부지런히 밥술을 입에 날라가면서 흘끔흘끔 새엄마의 거동을 훔쳐보았다. 새엄마는 우유를 담은 고뿌를 전자레인지에 넣고 버튼을 누른후 객실로 나갔다. (갔다. 나갔다.) 번개같이 승민이의 머리속으로 들어오는 생각이였다. 배탈이나 콱 났으면 하던 아까의 그 생각이 다시 머리를 쳐들었다. 승민이는 잠간 술질을 멈추고 지긋이 두 눈을 감았다. 반짝하고 뭔가 머릿속을 치고 떠올랐다. 승민이는 발딱 일어섰다. (그래, 이거야, 이렇게 하는거야.) 승민이는 랭장고씌우개 주머니에서 약봉지를 주어냈다. 한번에 세봉지나 쥐여졌다. 변비가 있는 아버지께서 잡수시는 밀방약이였다. 󰡒뭐로 만들었는지 몰라, 아무맛도 없는 가룬데 먹으면 즉효라니까.”하시며 일보기 힘들 때마다 한봉지씩 자시던 하얀 가루약이였다. 승민이는 약봉지를 들고 전자레인지앞으로 다가가 객실쪽에 머리를 내밀어 그쪽동정을 살폈다. 새엄마는 그새 화장실에 들어가 뭘 하는지 화장실에 불이 켜져있었다. 승민이는 전자레인지문을 당겨 열고 우유를 담은 고뿌를 꺼냈다. 황급히 약봉지를 풀어서 세봉지를 다 고뿌에 쏟아넣었다. 하아얀 분말이 우유속으로 천천히 슴여들고있었다. 승민이는 급해서 젓가락을 고뿌에 넣어 저어댔다. 하얀 분말은 삽시에 우유속에 사라져버렸다. 승민이가 다시 고뿌를 전자레인지에 넣으려고 할 때 발자국소리가 가까와 왔다. 승민이는 짐짓 시간이 다 돼서 우유고뿌를 꺼내는것처럼 하면서 시간이 채 차지 않은 전자레인지버튼을 슬쩍 눌러껐다. 그후 일부러 우유고뿌를 전자레인지 우에 올려놓으며 온도를 가늠하는듯 손가락으로 고뿌벽을 슬쩍 건드려보았다. 󰡒승민이가 꺼냈니? 자꾸 얼굴에 열이 올라서 세수를 좀 하느라구...” 새엄마는 손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천천히 전자레인지앞으로 걸어가서 우에 놓여있는 우유고뿌를 집어들었다. 󰡒맞춤이 데워진것 같네.” 새엄마는 한결 밝은 목소리로 기분좋게 말하면서 우유고뿌를 입가에 가져갔다. 잠간새에 꿀꺾꿀꺽 우유 한고뿌를 비워버린 새엄마는 고뿌를 대야에 놓고 수도꼭지를 틀어 물을 부은후 몸을 돌려 객실로 나가며 말했다. 󰡒승민아, 밥 다먹구 사발을 대야에 불궈놓아라, 내 잠간 누웠다가 일어나 설겆이를 할거니까.” 승민이는 멀어져가는 새엄마의 발자국소리를 들으며 픽하고 코웃음을 쳤다. (설겆이를 하느라말구 뒤건사나 열심히 하세요) 저녁밥을 다 먹은 승민이는 객실로 나왔다. 텔레비죤을 마주하고 앉아 리모컨을 들고 이쪽저쪽 쟌넬을 바꾸며 무시로 새엄마가 들어간 침실을 훔쳐보았다. 30분쯤 지나서일가 새엄마가 아래배를 움켜쥐고 화장실로 들어가는것이 보였다. 승민이는 입가에 묘한 웃음을 빼여물었다. (이재 시작인가봐. ㅋㅋㅋ 고생 좀 해보시지...) 승민이는 리모컨을 돌리면서 슬슬 휘파람까지 불어댔다. 한참만에야 새엄마가 화장실에서 나왔다. 승민이는 피끗 새엄마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입술을 꼭 깨문 새엄마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었다. 그리고 두 눈을 아래로 힘들게 깔고있었는데 무시로󰡒음~음~”하고 앓음소리를 냈다. 승민이는 고소하게 그 장면을 훔쳐보다가 새엄마가 침실로 들어가자 천천히 쏘파에서 일어섰다. 잠간 쏘파앞에서 서성이던 승민이는 자기의 침실로 들어가 잡지를 한책 주어들고는 천천히 화장실로 향했다. 승민이는 바지띠를 풀고 변기에 눌러앉아 유유하게 잡지를 번지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는 그냥 재미를 느끼고있었다. 새엄마가 그렇게 화장실밖에서 고통을 호소하는것을 즐기고있었다. 하지만 아니였다. 화장실에서 나와 본 새엄마의 참상은 승민이를 무형의 공포로 몰아넣었던것이다. (웬 일일가? 정말 큰일이 나는것이 아닐가?) 승민이는 초조하게 화장실문을 바라보았다. 새엄마가 화장실안에서 쇼크라도 해서 쓸어져있지나 않는지가 무척이나 근심되였다. (쓸어졌다가 일어나지못하고 그 맵시로?... 으윽! 내가 뭔 일을 저지른거야? 이걸 어쩌면 좋아?... ) 승민이는 연신 두 손을 마주 부비며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저도몰래 목이 확확 달아오르며 이마에서 식은땀이 뽀질뽀질 돋아났다. 드디여 조용히 화장실문이 열렸다. 이윽해서야 새엄마가 모습을 들어냈다. 새엄마의 하신에는 타올이 감겨져있었다. 󰡒괜...괜찮습니까?” 승민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더벅거렸다. 새엄마가 오른손으로 벽을 짚으며 간신히 걸음을 옮기다가 잠간 승민이쪽으로 머리를 돌리고 가쁜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승민아, 아...아버지께 전활 좀 해주겠니?” 󰡒네, 할게요.” 승민이는 테불앞으로 다가가 수화기를 들고 아버지의 핸드폰번호를 눌렀다. 󰡒뚜~뚜~”련결음이 건너왔다. (받으세요. 빨리 받으세요. 아버지...) 하지만 련결음이 끝날 때까지 아버지는 핸드폰을 받지 않고있었다. 승민이는 다시 한번 아버지의 핸드폰번호를 눌렀다. 여전히 련결음이 넘어갈뿐 아버지는 핸드폰을 받지않고있었다. 승민이는 울고싶었다. 이렇게 전화고 핸드폰이고 야속스러울수가 없었다. 그새 새엄마가 옷을 갈아입고 간신히 걸어서 객실로 나오고있었다. 󰡒안 받습니다. 통하기는 하는데 안 받습니다.” 승민이가 앞질러 말했다. 새엄마는 대답대신 입술을 앙다물고 간신히 걸음을 옮겨 출입문쪽으로 다가가고있었다. 󰡒병원으로 가는겁니까? 저하구 갑시다, 제가 업을만 합니다.” 승민이는 출입문께로 뛰여갔다. 새엄마 먼저 신발장에서 새엄마의 신을 내리워놓은후 자기도 인차 침실에 들어가 웃옷을 벗겨들고 다시 출입문께로 다가섰다. 그새 새엄마는 간신히 발에 신을 꿰고 문을 열려고 손을 뻗치고있었다. 󰡒잠간만요.” 승민이는 신발장에서 자기의 신을 내리워 신고는 새엄마 먼저 손을 내밀어 출입문을 열었다. 승민이는 밖으로 나가 새엄마앞에 쭈크리고 앉으며 말했다. 󰡒업히세요. 제가 업을만 합니다.” 󰡒괜... 괜찮아. 집에 있어라 넌.” 󰡒갑시다. 제가 업을만 합니다.” 승민이가 다시 재촉을 했지만 새엄마는 힘겹게 손을 저으며 한손으로 벽을 짚고 천천히 층계를 내렸다. 승민이는 그러는 새엄마의 팔을 부여잡고 부축하며 함께 층계를 내리기시작했다. 승민이는 새엄마의 침대곁에 서서 링겔관을 타고 흘러내리는 약물을 한참이나 멀거니 바라보다가 천천히 일어섰다. 그제서야 아까 왜 자기의 핸드폰으로 아버지에게 한번 더 전화를 해보지못했을가 하는 후회가 머리를 쳤다. 승민이는 꼭 감겨져있는 새엄마의 두 눈을 잠간 지켜보다가 조용히 문을 열고 나와서 자기의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아니나다를가 아버지는 인차 핸드폰을 받았다. 󰡒승민이니? 웬 일루?” 󰡒아버지 빨리 와야겠어요. 큰 일 났어요.” 승민이의 목소리는 무시로 떨리고있었다. 아버지의 황급한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날아왔다. 󰡒큰 일이라니? 웬 일이냐?” 󰡒알아누웠어요. 지금 마을 병원에서 링겔을 맞고있어요?” 󰡒웬 일루? 누가? 네가 말이냐?” 󰡒아니요.” 󰡒그럼? 엄마가 말이냐? 언제, 어떻게 아프대?” 아버지의 목소리는 너무도 급해 전화통을 뚫고나올듯했다. 승민이도 급해서 꺽꺽거리며 말했다. 󰡒아까, 저...저녁을 먹을 때 우유를 마신것이 설사... 배가 아파하는것 같아요. 빨리 오세요. 무서워요. 마을 병원에 있어요.” 승민이가 두서없이 주어섬기자 아버지께서 소리쳤다. 󰡒그래, 알았어. 기다려라. 간다. 당금!” 승민이는 핸드폰을 접어서 호주머니에 넣었다. 순간 두다리가 후둘후둘 떨려나며 온몸의 힘이 싹 빠져 나가는듯 했다. 승민이는 복도벽에 간신히 등을 기대고 섰다. * 승민이는 덤덤하게 침실문을 밀었다. 그 시각 승민이의 머리속은 하얗게 첫눈이 내린 황야를 방불케하고있었다. 그 누구도 밟지 않은듯 하지만 하야얀 눈을 젖히고 보면 들쑹날쑹하게 말라버린 풀들이며 우둘투둘하게 널려있는 돌멩이들이며 그리고 어지러이 찍혀있을 깊고 옅은 발자국들이며 하는 생활의 자취들이 숨어있을 눈덮인 황야, 지금 승민이의 머리속은 바로 그 눈덮인 황야를 방불케하고있었다. 승민이는 아무것도 생각하고싶지 않았다. 하아얀 눈우에 아무 흔적도 남기고싶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눈을 감고 십년이고 이십년이고 자고싶다는 생각뿐이였다. 승민이는 본능적으로 침대를 향해 걸어갔다. 잠간새에 침대까지 다달은 승민이는 주저없이 침대에 내려앉았다. 순간 부시럭하고 미약하게 뭔가 맞히는 소리가 났다. 승민이는 눈길을 침대우에 던졌다. 침대우에 있는 회색 옷봉지가 눈에 안겨들었다. 승민이는 흠칫 놀라며 튕겨 일어났다. 헉하고 숨이 막혀오는는듯싶더니 후두둑 가슴이 떨리기 시작했다. 저녁을 먹기전의 그 장면들이 뇌리를 스쳤다. 새엄마는 접때 이 회색옷봉지를 오른손에 겹쳐쥐고 들어오며 분명히 낮으나 날이선 목소리로 󰡒입어라!”하고 짤막하게 말했던것이다. 새엄마의 원망이 가득 담겨져있을 옷봉지, 승민이는 봉지안에 옷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힘들게 하는 괴물이라도 들어있는듯싶어졌다. 승민이는 왼손바닥을 쫙 펴서 후둑후둑 뛰는 가슴을 이윽하니 누르고 있다가 󰡒후~” 하고 긴숨을 내쉬며 천천히 침대우에 눈길을 돌렸다. 승민이는 침대우에 누워있는 옷봉지를 보면서 새엄마가 옷에 대하여 일종의 콤플렉스를 가지고있다고 생각했다. 새엄마가 승민이네 집에 들어와서 3년사이 한국에 있는 엄마가 보내온 옷을 두고 아버지와 서너번 다툰적이 있었다. 새엄마는 번마다 격분한 목소리로 바락바락 소리를 뽑군했었다. 󰡒그렇게 끔찍히도 새끼생각을 하면 아예 데려다가 기르라 그래요. 같지도 않은 옷 몇벌을 달랑 사보내면서 에미라고 생색은 웬 생색인가구여.” 󰡒어쩌겠소. 에민걸...” 아버지는 언제나 죄진사람처럼 목소리를 떨면서 더듬거리군했었다. 그러면 새엄마는 아버지의 태도가 확실하지못하다고 더욱 괴성을 뽑아올렸다. 󰡒다 당신때문이에요. 당신의 태도가 확실치가 않으니 아예 날 업신보고 이런다니까요.” 새엄마는 끝도없이 소리를 지르다가도 제풀에 맥이 지나야 그만두었다. 이튿날 아침이나 다음날 저녁이되면 승민이의 침대우에 낯선 옷봉지가 놓여져있었다. 그때마다 승민이는 옷봉지를 옷궤안에 박아넣고있다가 어느날엔가 궁리없이 헤쳐서 입기시작하면 그 옷이 볕을 보는 날로 되는것이였다. 어쩜 인젠 습관될만도 할 시간이 흘렀지만 승민이는 점점 이 일이 더 부담스럽게 느껴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승민이는 옷봉지를 치워버리려고 약간 허리를 굽혀 옷봉지를 주어들었다. 옷봉지아구리가 열리며 봉지안에 있는 옷이 보였다. 흰바탕에 푸른줄이 간 셔츠같았다. 당금 자신을 눌러버릴것만 같던 옷이였지만 보고싶다는 생각이 머리를 쳐드는것이 이상스러웠다. 승민이는 본능적으로 옷봉지를 꺼꾸로 들어 안에 담겨져 있는 옷들을 쏟아냈다. 재질이 두터운 천으로 만들어진 셔츠와 신다리에 작은 호주머니를 달고 그 우에 누른색으로 된 금속줄을 부친 캐쥬얼바지였다. 디자인이 너무 과감해서 학교에는 입고 다닐수 없지만 휴식일에 입고 나서면 친구들의 눈길을 끌만한 마음드는 바지였다. 승민이는 자기의 몸에 바지를 대고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엄마의 기대가 가득 담겨져있을 옷, 승민이는 옷이 아니라 엄마의 애환과 눈물을 손에 들고있는듯한 느낌이였다. 󰡒엄마!” 그리워 죽을 같으면서도 어딘가 서먹서먹하게 느껴지는 이 한마디가 조용히 입에서 뿜겨져나갔다. 순간 승민이는 누군가에게 자기의 치부를 들킨것 같아서 얼굴이 붉어졌다. 승민이는 손에 들었던 바지를 되는대로 바닥에 팽개치고는 침대모서리에 주저앉았다. 승민이는 불안한 눈길로 바지와 셔츠를 번갈아 보았다. 되는대로 팽개쳐진 그 셔츠와 바지 때문에 자기의 침실이 여간만 청승스럽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전에는 그래도 깔끔하고 오붓하게 느껴지던 자기의 침실이 지지리도 란잡하게만 생각되였다. 승민이는 벌떡 일어나 신경질적으로 셔츠와 바지를 주어들었다. 속으로부터 말못할 분노가 치솟아올랐다. 승민이는 셔츠와 바지를 한데 움켜쥐고 단말마적으로 아무렇게나 이리저리 당겨댔다. 손만 얼얼해날뿐 옷은 옷대로 이리저리 승민이의 손에 자기의 몸을 맞기고있었다. 그러기를 한참이나 반복하다가 승민이는 손을 멈추고 침실문을 열었다. 승민이는 그 맵시로 주방에 달려가 옷을 쓰레기통에 처넣어버렸다. 볼품없이 구겨진 옷이 털썩하고 쓰레기통에 떨어져 들어가는 찰나 승민이는 말못할 쾌감을 느끼고있다. 하지만 그것도 한순간이였다. 승민이는 머리를 숙이고 쓰레기통에 던져진 옷들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뜨거운것이 눈굽에 고였다가 뚤렁 쓰레기통안의 옷에 떨어져내렸다. 승민이는 머리를 들어 천정을 올려다보며 주먹으로 눈굽을 꾹꾹 찍고는 몸을 돌려 자기의 침실로 들어갔다. 승민이는 웃옷과 바지만 벗어서 바닥에 팽개쳐버린후 이불을 뒤집어썼다. 두눈을 꽉 감았다. 입술을 앙다물고 숨도 꼭 참았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그대로 팡 터져버리고만싶었다. 가슴이 갑갑해왔다. 머리가 커져오는듯 했다. 정말 온몸이 팡하고 터지기 일보적전에 다달은듯했다. 그 순간에 터지려는 머리속으로 흐릿한 형상 하나가 헤집고 나오고있었다. 승민이는 환각속을 걷는듯이 그 형상을 찾아 허둥거렸다. 󰡒푸~” 승민이는 더는 숨을 참지못하고 침대가 꺼져라 숨을 토하며 이불을 활 젖혀버렸다. 터져버린 진공속에서 그 형상도 더 선명하게 머리속에 자리를 잡고있었다. 손으로 찔끔찔끔 눈굽을 찍고있는 그 녀인은 바로 엄마였다. 8년전, 그러니까 승민이가 6살나던 해, 공항에서 보았던 엄마였다. 엄마가 한국으로 떠나기 전날 밤이였다. 집에서는 엄마의 환송모임을 열었다. 많은 친척들이 모여왔었다. 어른들은 술도 마시고 이야기도했다. 하지만 승민이는 평소 만나지못하던 친척집 또래들과 우야우야 소리치며 뛰여나디는 멋이 참 좋다고 생각되였다. 밤이 깊어서야 모여왔던 친척들이 돌아갔다. 엄마는 그날 밤, 승민이를 불러서 옆에 누우라고 했다. 승민이는 생일을 쇠는것만치나 신이났다. 전에 은근히 엄마곁이 생각나서 베개를 가지고 기신기신 다가가면 남자애가 웬 일이냐며 기어코 자기의 침실로 몰아넣던 엄마였던것이다. 헌데 이날은 엄마가 󰡒오늘은 승민이하고 자야지.”하며 승민이의 침실로 건너왔던것이다. 엄마는 승민이에게 팔베개를 해주고 한손으로는 승민이의 얼굴을 만져주었다. 󰡒승민아, 엄마 없이도 잘 할수 있지?” 엄마의 목소리가 매우 낮았지만 승민이는 한마디도 빠뜨리지 않고 다 알아들을수 있었다. 󰡒어째 엄마가 없어? 엄마 어디로 가? ” 󰡒그래, 잠간, 아주 잠간 엄마가 어디 갔다와야 하거든.” 󰡒어디로 가는데?” 󰡒한국이라는 델 갇다와야 하거든.” 승민이에게는 엄마의󰡒한국이라는 델”하는 말이󰡒북대에 있는 할머니네 집엘” 하는 말처럼 쉽게 들렸다. 󰡒한국이라는 델 가? 몇밤 자고 와?” 󰡒글쎄...” 󰡒올 때 맛있는걸 많이 사다줄거지? 난 쵸코파이가 젤로 맛있는데, 쵸콜레트 많이 바른거 사와라. 크크크... 쵸콜레트 먼저 핥아먹는게 참 맛있거든.” 󰡒그래, 쵸콜레트 많이 바른 쵸코파이 사다줄게, 글구...고운 옷도 많이 사다주구. 승민이 울지 않구 엄마를 기다릴수 있지?” 󰡒기다리지 않구, 내가 뭐 애긴가. 얏! 나 이렇게 큰데. 경찰도 될수 있는데.” 승민이는 누운대로 허공에 대고 주먹을 뻗치며 기압소리를 내보였다. 󰡒그래그래, 우리 승민이 정말 다 컸구나. 군대에 가도 되겠네.” 엄마는 승민이를 으스러지게 안아주었다. 이튿날, 승민이네는 아침을 먹기 바쁘게 공항으로 떠났다. 아버지가 큼직한 려행용가방을 들고 승민이는 엄마의 손을 쥐고 따라나섰다. 공항에 도착해보니 할머니며 이모며 삼촌이며 많은 친척들이 이미 공항에 나와 있었다. 엄마가 한참이나 뛰여다니며 뭔가를 하시더니 다시 친척들이 모여선 곳으로 왔다. 그때부터는 웬일인지 모두들 엄마의 손을 잡고 눈굽을 찍었다. 홀이 좁다고 뛰여다니는 승민이를 불러다 옆에 서운 엄마는 손으로 승민이의 어깨를 잡고 쪼크리고 앉아 한참이나 승민이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엄마의 두 볼을 타고 구슬같은 눈물이 하염없이 굴러내리고있었다. 󰡒엄마, 아픈거야? 왜 울어?” 󰡒승민아, 아프지말구 잘 커야 한다. 엄마 올 때까지 아프지 말아야 한다.” 󰡒엄마 울지말아. 나 하나도 안 아프다. 경찰도 될수 있다.” 승민이는 고사리같은 손을 내밀어 엄마의 얼굴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엄마는 승민이를 와락 끌어다가 품에 안더니 흑흑 느끼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다가와 그러는 엄마의 품에서 승민이를 당겨가며 말했다. 󰡒그러지마오, 먼길 떠날 사람이 그러면 쓰오? 승민이는 우리들이 있으니 시름을 놓으랑게.” 󰡒어마이, 수고합소 예? 집값만 벌면 돌아오겠스꾸마. 그새 고생합소 예?” 엄마는 홈으로 나가는 내내 손으로 눈굽을 찔끔찔끔 찍고있었다. 엄마는 한국에 도착해서 두어달 지나자 집으로 돈을 부쳐왔다. 엄마가 떠나서 2년에 나던 해의 가을에 아버지는 엄마가 보내온 돈으로 침실이 두개 달린 아빠트를 샀다. 엄마의 말대로라면 승민이가 학교에 들어가는 기념이라고 했다. 공장에서 자동차운전수로 일하는 아버지로서는 일생을 벌어도 이루지못할 꿈이였다. 새집들이 하던 날, 아버지는 집구경을 온 친척들에게 엄마에 대한 고마움을 이야기하면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승민이를 공부 잘 시켜 큰 사람으로 만들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로부터 또 1년이 지났다. 아버지의 얼굴에 차츰 근심이 비끼기 시작했다. 가끔 엄마의 전화를 받고서는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승민이는 나이가 들면서 차츰 전화내용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고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의 비밀도 얼마간 알수 있었다. 엄마는 사실 아버지와 가짜리혼을 하고 한국으로 시집을 갔던것이다. 처음 2년간 엄마는 한국에서 약속대로 한국측의 가짜남편과 한달에 두어번 꼴로 만나면서 련계를 끓지 않고 살았다고 한다. 3년철에 접어들어 엄마가 한국국적을 신청하려고 하자 가짜남편은 정식으로 엄마에게 가정을 꾸릴것을 제기해왔고 그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가짜결혼 사실을 밝히고 엄마를 중국으로 강제송환되게 조취를 취하겠다고 나섰다는것이였다. 이미 3년간 한국생활에 젖을 때로 젖은 엄마로 말하면 중국으로의 강제송환은 너무도 아름찬 대가였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할수없이 가짜남편과 정식으로 가정을 꾸리는것을 조건으로 끝내는 한국국적을 취득했고 이듬해에는 아들까지 하나 낳았다. 인젠 중국에 가고싶어도 무슨 낯으로 친척들을 보며 무슨 면목으로 승민이를 대하느냐면서 아예 8년철을 한국에서 살아오신 엄마였다. 자동차를 모는것 외에는 가족밖에 모르시던 아버지는 가끔 술이 만취되여 집으로 들어와 긴긴밤을 술주정으로 날을 패기도 했다. 차츰 엄마의 일이 친척들에게 알려졌고 친척들로 아버지에게 다시 가정을 꾸려 새 삶을 시작하라고 권고를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은근히 엄마를 기다리며 2년이나 더 힘든 나날을 보냈었다. 이러구러 5년이 지나던 그해 겨울, 아버지는 어느날 한 녀인을 데리고 승민이앞에 나타났다. 󰡒승민아, 인사해라. 새엄마가 될 분이시다.” 󰡒......” 그해 11살에 나던 승민이는 아버지의 말씀이 떨어지기 바쁘게 그 녀인을 흘끔 쳐다보았다. 살풋이 깔려있는 녀인의 눈은 가는 외까풀이였는데 왼쪽 눈두덩이에 있는 까아만 점이 무척이나 눈길을 끌었었다. 녀인은 승민이를 향해 애써 미소를 지으려고 했는데 웃입술이 약간 푸들거리고있었다. 승민이는 가끔 아침에 학교로 가는 길에 학용품을 사려고 문구방에 들리군하는데 아침마다 피곤한 얼굴로 매대앞에 나와서 학용품을 골라주던 상점집의 아줌마를 보는듯한 생각이 피뜩 머리를 스쳐지났다. 󰡒귀엽게 생겼네.” 역시 녀인은󰡒이 연필이 예쁘지?”하던 문구방집아줌마의 목소리만치나 담담하게 한마디를 했다. 󰡒에미 없이 자라서 애가 많이 수집다니까.” 아버지가 뒤질세라 녀인의 말에 동을 달아주셨다. 그날 이후로 십여일이 지난 어느날, 녀인은 작은 가방을 하나 달랑 들고 들어와서 여직껏 엄마자리를 찾이하고 살고있었다. 오늘같은 일로 몇번 아버지와 언성을 높인것을 빼고라면 새엄마와의 생활은 물에 물탄듯이 평범게만 흘러갔다. 승민이도 가끔 가족이란 그저 이렇게 담담하게 사는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굴릴뿐이였다. 그만치 승민이의 머리속에서 엄마의 얼굴은 차츰 잊혀져가고있었다. 아무리 힘을 들여 생각을 굴려보아도 엄마의 얼굴이란 공항에서 눈물을 짓던 그 모습밖에 기억에 없었다. 승민이는 문뜩 엄마가 한국에서 낳았다는 동생이 궁금해졌다. (누구를 닮았을가? 엄마가 같은 나의 동생인데 혹시 나를 닮지는 않았을가?) 승민이는 이제 겨우 말을 번질 3살배기 어린애가 아장아장 자기앞으로 걸어오는 모습을 그려보았다. 엄마가 달려가서 그 애를 와락 끌어안고 얼굴이며 이마를 쪽쪽 소리나게 빨아주고있었다. 󰡒쳈!” 승민이는 저도몰래 볼부은 소리를 뽑아올렸다. 괜히 엄마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순간 엄마가 자기도 아빠도 다 배반했다는 생각으로 분노가 치밀어오르려고 했다. (다시는 생각도 안할거야. 낳기만 해서 엄만가? 길러야 엄마지. 그래, 그래서 기른 정이란 말도 생긴걸거야.) 순간 새엄마의 얼굴이 다시 눈앞에 떠올랐다. 󰡒으악!”하고 소리치던 새엄마의 단말마적인 괴성이 아프게 귀속을 파고드는듯싶었다. 승민이는 온밤을 내내 악몽에 시달려야했다. 꿈에 머리에 뿔이난 괴물들이 승민이를 쫓아오기에 그 괴물들을 피해서 여기저기 뛰여다니느라 무던히도 힘들게 꿈길을 헤매다가 󰡒딱딱딱” 하는 칼질소리에 놀라 잠을 깼다. 창문가를 바라보니 벌써 날이 훤하게 밝아있었다. 󰡒래일은 어머니들의 명절 3.8절입니다.” 담임선생님의 말씀이 귀전을 스쳐지났다. (설마 벌써 일어났을가? 어제 밤에 그렇게 앓아가지구 벌써 일어난걸가?) 승민이는 벌떡 자리를 차고 일어나 앉아 주방쪽에 귀를 강구었다. 여전히󰡒딱딱딱”하는 칼질소리만 고르롭게 들릴뿐이였다. 승민이는 일어나서 발볌발볌 침실문가로 다가가 다시 주방쪽에 귀를 기울였다. 칼질소리 외에는 아무런 동정을 느낄수 없었다. 승민이는 조용히 침실문을 당겨 열었다. 발끝을 세워가지고 주방쪽으로 다가갔다. 아버지가 뭔가를 열심히 썰고있었다. 승민이는 󰡒호~”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아버지라면 괜찮을것 같았다. 누군가 자기를 위해 󰡒3.8절”아침을 준비해준다고 생각하면 새엄마로서도 기분이 괜찮을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였다. 승민이는 열심히 칼질을 하는 아버지와 뭔가 말이라고도 걸어보고싶은 충동을 느끼면서 주방안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 동정에 아버지께서 승민이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어, 승민이 일어났네.” 󰡒네, 아버지, 아침을 합니까?” 󰡒그래, 오늘이 3.8절이 아니냐? 어제 밤에 엄마가 몹시 아팠는데.” 󰡒네, 괜챃습니까?” 󰡒누구? 엄마가?” 아버지께서 󰡒엄마”에 악센트를 주면서 물었다. 󰡒네.” 승민이가 입속으로 나지막하게 대답을 하며 다시 한번 아버지를 힐끔 쳐다볼 때 식탁이 놓인 칸으로부터 새엄마가 걸어나오고있었다. 새엄마의 손에는 어제 밤 승민이가 꿍져서 던져버렸던 옷이 들려있었다. 네귀가 반듯하게 포개여져 있는 모양이 깔끔하게 다리미질을 한것같았다. 승민이는 감히 새엄마와 눈길을 마주치지 못하고 급히 아버지쪽으로 눈길을 돌리며 옆으로 비켜섰다. 새엄마가 승민이 쪽으로 다가오며 약한 목소리를 가다듬어 이야기를 했다. 󰡒승민이 어제 밤 놀랐지? 내가 그렇게 급병을 해서... 승민이까지 집에 없었더라면 어쩔번했니? 그래서 가족이 있어야 하는거지. 우린 가족이니까, 가족이 있어서 얼마나 힘이되니?” 󰡒네,” 승민이는 기여들어가는듯 짤막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우리는 가족이니까, 가족이 있어서 얼마나 힘이되니?”하던 새엄마의 마지막 두 마디는 자꾸 가슴속 밑자락으로 깊숙히 잦아들려고 하는듯싶었다. 󰡒승민아, 네 칸에 가져다 놓을게, 입고싶을 때 입으렴. 의사는 급성위장염이 아닌가고 하더라. 암튼 승민이가 옆에 있어서 든든하단다. 난.” 󰡒네,” 승민이는 문뜩 새엄마의 이야기를 듣고있는 이 순간이 바로 고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쩜 새엄마가 어제밤에 있은 일을 빤히 알고있으면서도 일부러 그렇게 말씀을 하는것이 아닌가싶기도 했다. (그렇다면 과연, 그렇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을 해야하는가? 어떻게 대답을 해도 겉다르고 속다른 치한으로밖에 안 보일텐데...) 승민이는 네거리에 발가벗겨진채 던져진듯한 자신을 느끼면서 한시바삐 그곳을 떠나고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여보 이 소고기를 실로 썰가? 아님 네모로 썰가?” 아버지께서 새엄마를 향해 목소리를 약간 높여 물었다. 󰡒없어요. 내칸으로 갔어요.” 승민이는 괜히 아버지에게 목소리를 높이면서 몸을 픽 돌렸다. 아버지는 승민이의 반상적인 행동에 웬 일이냐는듯 밉지 않게 눈을 흘기더니 허허허 웃으며 입을 얼었다. 󰡒자식, 엄마는 저쪽칸에서도 다 듣는다. 여보, 그치?” 󰡒맘대루 하세요. 아무렴 맛이 없을라구요. 당신이 만들어주는건데.” 새엄마가 승민이의 침실에서 나오며 말했다. 승민이는 그러는 새엄마를 피해 인차 자기의 침실로 들어가버렸다. 옷은 다시 승민이의 침대우에 놓여져있었다. 승민이는 침대와 한발 떨어진곳에 서서 한참이나 옷을 바라보았다. 아픈 몸으로 저 옷을 다리며 새엄마는 과연 무슨 생각을 굴렸을가가 못내 궁금해났다. 그런 생각이 들자 승민이는 도무지 새엄마와 한 밥상에 앉아서 아침밥을 먹을 자신이 없었다. (그래, 나가는거야. 이대로 학교에 가는거야, 이 시간이 지나면 뭔가 방법이 나지겠지. 그래, 먼저 아침밥상을 피하고 보는거야.) 승민이는 부랴부랴 옷을 찾아 입은후 가방을 손에 들고 침실에서 나오면서 부러 비명비슷하게 소리를 질러댔다. 󰡒나 먼저 갑니다. 야~ 깜빡했어요. 오늘 내가 청소당번인데. 늦으면 큰 일나요.” 승민이의 급해맞은 거동에 아버지도 새엄마도 출입문가로 나오시며 소리쳤다. 󰡒그래서 이대로?” 󰡒아침도 안 먹구 이대로 간다구?” 󰡒먹을 새가 없어요. 천천히 잡수세요.” 승민이는 누가 잡기라도하듯 급히 문을 나와버렸다. * 공공뻐스정류소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와있었다. 승민이는 그속에서 뻐스를 기다리는 진이를 발견했다. 진이의 얼굴에는 생글생글 웃음이 흐르고있었다. 󰡒야, 김승민, 굿모닝~” 󰡒왜? 아침부터 꿀먹은 상판이냐? 어제 밤에 돼지꿈이라도 꿨니?” 승민이는 진이를 향해 부러 퉁명스럽게 말했다. 진이는 승민이의 정서는 읽을 념도 않고 여전히 들떠있었다. 󰡒승민아, 넌 수입이 어때?” 󰡒수입? 웬 수입?” 󰡒카네이션!” 󰡒어, 카네이션?!” 승민이는 말끝을 흐렸다. 그제야 어제 저녁에 진이와 함께 꽃방에 들려 카네이션을 샀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서 죽을상을 하는 진이의 표정을 봐서 과연 예상대로 소비돈을 듬뿍 받은것이 틀림 없었다. (흥, 유치하기는 제 엄마에게서 소비돈을 홀려내면서도 저렇게 기분좋을가?) 승민이는 자르르 웃음이 흐르는 진이의 얼굴을 꾹 물어뜯고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이는 역시 기분파였다. 󰡒내 전술이 맞았다니까. 난 참 머리가 좋은 사람이야, 말했지? 엄마가 소비돈을 한 2백원쯤 줄지도 모른다구.” 󰡒그래서 정말 2백원을 받았니?” 승민이가 아니꼬운 눈길로 진이를 찔 째려보며 물었다. 󰡒먼저는 백원을 주는거야, 쳇 그정도에 물러설 내가 아니지.” 󰡒그럼 엄마의 가방이라도 훔쳐냈니?” 󰡒말하는것하구는, 훔쳐내다니? 엄마들께 그런 방법이 통할것 같니? 안되지, 안되구말구. 내가 손을 내밀자 엄마는 먼저 나에게 백원짜리 한장을 올려놓으며 이거면 되나요? 하고 묻는거야. 그래서 먼저는 어머니, 고맙습니다. 잘 쓰겠습니다 하고 인사를 했지. 엄마가 카네이션을 들고 감동을 먹으며 바라볼 때 엄마의 목을 끌어안으며 볼에다가 뽀뽀를 해준거야, 명절 축하합니다! 하면서 말이야. 엄마는 나의 엉뎅이를 툭 쳐주면서 돈가방을 주어들었어. 옛다. 큰 마음을 쓴다 하면서 말이야, 크크크... 이런게 바로 전술이거든.” 손짓발짓 해가면서 이야기를 하는 진이의 목소리는 무서운줄 모르고 커지는 고무풍선을 방불케하고있었다. 승민이는 행복이 찰랑대는 진이의 목소리에 괜히 부아통이 터져올라 먼산을 바라보며 휙휙 휘파람을 불어댔다. 오전 내내 휴식시간만 되면 동학들은 끼리끼리 모여서 엄마에게 선물을 드린 이야기며 엄마에게서 답례로 뭔가를 받던 이야기를 했다. 평소같으면 승민이도 끼여서 한술 떴으련만 이날만은 점점 더 가슴이 찜찜해나는것을 달랠수 없었다. 드디여 오전 공부가 끝났다. 선생님들이 모여서 󰡒3.8절”을 쇠기에 오후에는 휴식을 한다고 했다. 교실안은 또 한번 벌둥지를 터치운듯 시끌벅적거렸다. 󰡒자식들, 노는것이 그렇게 좋은가? 유치하게는...” 오후에 휴식한다고 해야 별다른 계획이 없는 승민이는 그저 심드렁한 표정으로 교정을 벗어나가는 동학들을 바라보면서 늘쩡늘쩡 걸음을 옮겨놓았다. 생각같아서는 오후 공부까지 하고 저녁 늦게 집에 도착하여 머리를 푹 숙이고 저녁밥을 먹은 뒤 침실에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잠들어버리고싶었다. 그러면 새엄마와 마주할 시간이 그만치 줄어들어 덜 괴로울것 같았다. (어쩐담, 어디 가서 온 오후 놀다가 집에 들어갈가?) 󰡒승민아, 잠간만 기다려라.” 승민이가 신끝으로 땅바닥을 쓸어차며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뒤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승민이는 본능적으로 소리나는 쪽에 머리를 돌렸다. 진작 집에 간줄로 알았던 진이가 손에 뭔가를 들고 씽하니 달려오고있었다. 승민이는 저도몰래 기분이 좋아져서 진이를 향해 소리쳤다. 󰡒진이, 너 원래 집에 간게 아니였니?” 󰡒아니야, 가기는. 방금 상점에 들려서 이것들을 샀지.” 진이는 말하면서 승민의 옆에까지 뛰여왔다. 진이의 손에는 쵸코파이며 음료같은 먹거리들이 담긴 비닐봉지가 들려있었다. 󰡒야~, 말리지 못한다니까. 너 아직도 애기냐? 쵸코파이에, 음료에, 왜 아예 우유까지 사서 통에 넣어 먹지 그러니?” 󰡒야, 이 인정머리라곤 눈꼽만치도 없는 놈아. 남은 그래도 널 주자고 많이 삿것만은...” 󰡒거짓말도 알량하게 하시네, 내가 어딧는줄을 어떻게 알고 날 주자구?” 󰡒방금 상점안에서 널 봤거든. 김이 나간 축구뽈마냥 후줄근해서 지나가는걸, 너 분명 속에다가 뭔가를 두고 있는거지. 점심을 굶을것 같아서 마음 한번 써봤더니, 감사는 못할망정” 진이는 짐짓 서운한체 하면서 눈을 곱게 흘겼다. 승민이는 시무룩히 웃으며 진이의 어깨를 툭 쳐주었다. 󰡒알았다. 감사. 그래도 짝꿍이 다르긴다르구나. 됐니?” 󰡒무슨, 그럴것까지야. 근데 너 오후엔 뭘 할래?” 󰡒글쎄다. 뭘 할지?” 󰡒아동락원에 가자, 새로운 놀이기구들이 많이 들어왔대. 실컷 놀아보자. 내가 한턱 쏠게. 엄마가 준 돈 다 가지구 나왔거든.” 󰡒걸 다 써버릴려구?” 󰡒다야 뭐, 쓸만치 쓰면 되는거지. 근데 너 기분이 이상해 보인다. 속에 뭐가 들어있는데?” 󰡒아니야, 아무것두. 그냥 좋아. 아동락원에 가자. 대신 점심은 내가 쏠게, 나도 소비돈이 약간 있거든.” 승민이는 말을 하면서 바지 뒤호주머니를 툭 쳐보였다. 뒤호주머니에는 평소 모아두었던 소비돈이 몇십원 실히되게 있었던것이다. 󰡒가자, 승민아. 넌 통쾌해서 좋다니까. 그래 우리 뭘 먹을가?” 진이는 당금 식당에 들어서는듯이 기뻐서 들먹였다. 승민이는 그러는 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얼굴에 느슨하게 웃음을 피워물었다. 󰡒맘대루 해라, 난 별루 가리는 음식이 없으니까.” 󰡒좋지. 좋았어. 뭘 먹을가? 떢볶이? 햄버거? 피자? 건 너무 비싸구, 랭면? 돈까스?...” 진이가 제 흥에 겨워 들떠있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승민이와 진이는 약속이나 한듯 핸드폰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내거다.” 승민이가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네, 그래요. 네?” 승민이의 얼굴색이 변하기 시작했다. 무시로 아래입술을 잘근잘근 씹어댔다. 변해가는 승민이의 표정을 읽으며 진이의 얼굴에도 약간 긴장감이 돌았다. 승민이가 소리쳤다. 󰡒왜 이래요. 제가 뭐 아직도 어린앤줄 아세요? 언제 절 생각이나 한적이 있어요? 그래요. 생일이면 딱 이 아들이 생각나는거겠죠? 그런 눅거리 생각 하지두 말아요. 불쾌해요.” 열변을 토하고난 승민이는 여전히 입술을 씹으면서 두 눈을 꼭 감고있었다. 전파를 타고 뭔가 아픈 사연이 넘어오는듯싶었다. 한참이나 그 맵시로 듣고만 있던 승민이가 또다시 소리치기 시작했다. 󰡒됐어요. 전 이미 엄마라는 말을 잊어버린지 오래요. 생일에 옷 몇벌 보내주면 엄만가요? 절 버리고 아버지를 버리고 다른 사람한테로 가서 아기를 낳을 때는 왜 절 생각안했어요? 전 지금이 행복하다구요. 잘 살고있다구요. 잘 사는 우리집에 불덩이를 던지지 말라구요. 다신 전화하지 말아요.” 말을 마친 승민이는 일방적으로 핸드폰을 꺼버렸다. 한참이나 거칠게 숨을 톱더니 더는 서서 지탱하기 힘든지 그 자리에 쪼크리고 앉아 두손으로 무릎을 감싸 쥐고 머리를 그 우에 얹어버렸다. 󰡒승민아, 너 괜... 괜찮니?” 진이는 발볌발볌 승민이의 옆으로 다가가서 승민이의 어깨에 살그머니 손을 얹으며 나지막하게 물었다. 승민이는 그린듯이 그대로 쪼크리고있었다. 󰡒승민아, 참아라 참으면 괜찮아질거다.” 진이가 다시 한번 승민이의 어깨를 다독이며 자신없이 말했다. 승민이는 별안간 머리를 쳐들더니 움찔 일어섰다. 승민이의 두볼을 타고 이슬같은 눈물방울이 주르륵 굴러떨어지고있었다. 󰡒울엄마야, 날 보고싶어 죽겠대. 랠 내 생일을 쇠주고싶은데, 날 보고싶어 죽겠는데... 안된대. 한국에서 올수가 없대. 흥, 위선자. 올려구 생각은 했는데? 안된다구? 싫어, 싫다구! 어른들이 다 싫다구.” 󰡒왜? 너의 엄만 집에 있잖니? 한국이라니? 뭔 소리야?” 진이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승민이가 눈물 고인 눈으로 진이를 바라보다가 울음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집에 분은 새엄마야, 나를 키워주는 분이라구. 난 사람도 아니야, 고마움도 모르고 살았거든. 흥, 날 보고싶어죽겠다구? 그래 낳기만 하면 엄마야? 난 어제 밤에 새엄마를... 새엄마에게 못된짓을 해버리고 말았어. 죽어도 날 용서못할거야! 영원히, 영원히 용서가 안될거야!” 승민이는 주먹으로 자기의 신다리를 힘껏 후려쳤다. 발그레 달아오른 두볼이 고통으로 파들파들 떨리고있었다. 󰡒승민아, 너 진짜 가슴에 아픔이 있었구나. 그렇다고 생각은 했지만... 승민아, 널 어쩌면 좋니? 어쩌면 좋겠니?” 진이도 승민이만치나 혼란스러운지 말소리를 더듬거리며 근심스러운듯이 승민이를 지켜보았다. 󰡒새엄마에게 미안해. 오늘 아침 새엄마는 그 옷을 다리미질까지 해서 나에게 돌려줬어. 그래, 난 다시 새엄마께 카네이션을 사드릴거야. 빠알간 카네이션을 드리며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하고 용서를 빌거야.” 󰡒승민아, 진정해라. 응? 진정해라! 우리 차근차근 생각해보자. 그래야 좋은 방법을 생각할수 있지 않겠니?” 진이는 떨리는 목소리로 진정을 토로하며 흥분에 떠는 승민이의 손을 살그머니 잡아주었다. 승민이는 고통스러운듯 두 눈을 꼭 감고있다가 천천히 뜨면서 조용히 입을 열었다. 󰡒어제 밤에 내가 새엄마께 너무도 큰 죄를 진거야. 난 인제야 새엄마의 마음을 알게되였어. 우리는 가족이야. 가족이라구! 난 다시는 가족을 잃고싶지 않아. 우리가정은 내가 지킬거야.” 승민이는 잠간 말을 마치고 머리를 들어 저 멀리 푸른하늘을 쳐다보았다. 󰡒승민아, 너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는 다 알지 못하겠지만 암튼 멋있다. 너의 말이! 사랑이란 주고받으면서 커지는것이라고 선생님께서도 말씀하지 않았니? 난 널 지지한다! ” 진이는 승민이를 향해 진심으로 주먹을 흔들어 보였다. 승민이도 진이를 향해 무겁게 머리를 끄덕여주었다. 󰡒그래, 진이야, 난 꽃방에 갈거야. 이 길루 꽃방에 가서 제일 예쁜 카네이션을 살거야. 엄마께 드릴거야. 카네이션에 나의 마음을 담아 드리는거야. 엄마! 하고 부를거야! 이 세상에서 엄마를 제일제일 존경하고 사랑할거야.” 말을 마친 승민이는 다시 한번 머리를 쳐들어 저 멀리 푸른하늘을 응시하다가 씩씩하게 걸음을 옮겼다. 󰡒승민아, 나도, 나도 함께 가겠다. 나도 카네이션을 사서 엄마께 드리겠다.” 진이가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도? ” 󰡒그래, 오늘은 엄마에게서 꽃값을 받지 않겠다. 그냥 엄마에 대한 사랑을 담아 진심으로 선물드리겠다.” 󰡒그래, 가자.” 맑게 개인 파아란 하늘로 하아얀 비둘기들이 꾹꾹꾹 노래하며 나라예고있었다. 가슴을 쑥 내밀고 힘차게 발걸음을 옮겨놓는 승민이의 얼굴에는 빠알간 홍조가 피여올랐다. 그랬다. 승민이와 새엄마의 카네이션기행이 바야흐로 시작되고있었다. .
2    후 기 댓글:  조회:1445  추천:0  2010-03-11
후 기 처녀작 아동소설 <<나의 동생>>을 발표하던 해가 1981년, 열여섯살 나던 해였다. 어느날 선생님께서 나에게 출판사에서 편집선생님들이 찾아오셨다고 알렸다. 순간 가슴이 떨렸다. 얼마전에 연변인민출판사 아동문학총서 <<시내물>>편집부에 아동소설 <<나의 동생>>을 투고하고 이제나저제나 소식을 기다리고 있던 참이였었다. 당시 <<시내물>>총서의 주필이여셨던 최문섭선생님과 편집허범선생님께서 나를 맞아주셨다. 시골학교 학생이 직접 쓴 원고가 옳은가 확인도 하고 작자에 대해 료해도 할겸 해서 오신것이였다. 최문섭선생님께서는 나에게 정력을 몰부어 공부해서 대학에 가 더 큰 학업을 이룩한 다음 문학에 정진해도 늦지 않다는 등 많은 조언을 주셨다. 얼마후 소설 <<나의 동생>>이 <<시내물>>총서 3기에 발표되였다 손꼽아 헤여보니 벌써28년이란 긴 시간이 흘러갔다. 그새 나도 열여덟살에 나는 아들을 둔 40대의 중년으로 되였다. 요즘 고중진학시험 복습에 밤낮이 따로 없는 아들 민이를 보면서 저도몰래 눈시울을 붉힐 때가 있다. 민이는 1991년 12월27일에 태여났다. 빈주먹 두개로 시작한 신혼살림에 가정풍파까지 겪으며 힘들게 가정을 영위해 나가느라 분주한 부모의 손아래에서 남들처럼 부럼없이 크지를 못하다가 10살나던 해에는 끝내어머니와 헤여져야 했다. 나도 열여섯살나던 해에 부모님을 병으로 잃은지라 곁에 애틋이 돌봐주는 친척한사람 없이 민이는 나, 아버지 한사람만을 바라보는 신세가 되였다. 내 직업이 기자라 혹시 취재를 가서 하루나 이틀정도 돌아오지못하면 민이는 저절로 라면을 끓여먹으며 용케도 끼니를 넘겼고 취재현장을 뛰다가 일이끝나 워낙 못하는 술까지 마시고 늦게 집에들어간 날 밤이면 민이는 저절로 외롭게 뒹굴다가 베개하나를 달랑 가슴에 안고 입가에 건침을 흘리며 잠들어 있군했다. 몇년전에 나는 새로운 인연을 만나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가정을 꾸렸다. 민이에게는 귀여운 남동생까지 생겼다. 그새 나는 사업에서도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고 가정의 풍파로 인해 아프던 상처도 차츰 아물어가기 시작했다. 10살에 엄마와 떨어져 나와 함께 너무도 힘겹게 자라던 민이도 올해 6월이면 고중진학시험을 치르게 된다. 그 어려운 환경에서도 한점 흐트러짐이 없이 밝게튼실하게 잘 커준 민이에게 고마운 마음뿐이다. 고중진학시험을 앞둔 민이를 위해 내가 할수있는 일이과연 무엇일가? 나는 가끔 민이에게 <<최고보다는 최선을 다하라>>고 말한다. 그렇다. 나는아들 민이가 힘들게 최고를 바라고 뛰는것보다 공부 그 자체를 즐겁기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는것으로 만족한다. 민이야, 최선을! 아자!!! 이것이 민이에 대한 나의 유일한 바람이다. 고중진학시험을 앞둔 민이에게 나의고마움과 진정을 담아이 책을 선물한다. 사랑하는 안해와 작은아들 성이에게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이 책을 드린다.
1    아동소설*강아지가 되고싶어 댓글:  조회:1585  추천:0  2010-03-10
“호호호… 피줄은 정말 못속이는가봐요. 저 애가 당신한테 무슨 정이 있다구 맨날 아빠 보고싶다 조르는거얘요.” 엄마의 말에 아빠는 엄마의 손을 잡아주며 입을 열었습니다. “허허허… 내가 누구때문에 외국에서 그 고생을 했는데. 다 당신하구 우리 민호를 위해서가 아니요? 암튼 당신도 애 많이 썻소. 혼자서 집 돌보구 저애를 돌보느라구.” “저야 뭐, 집 떠난 당신이 고생이였죠.” 민호는 또또에게 잘게 자른 쏘세지쪼각을 뿌려주다가 머리를 돌렸습니다. 그 시각 엄마는 사랑이 퐁퐁 솟아오르는 눈길로 아빠를 바라보며 코막힌 목소리로 애교넘치게 말하고있었습니다. 민호는 그러는 엄마를 바라보면서 생각을 굴렸습니다. (그래, 그렇게 하는거야. 삼촌을 보게 되면 엄마 말대로 두눈을 꼭 감아버리는거야. 그래야 삼촌하고 놀고싶어도 놀지 않게 되는거야. 두눈을 꼭 감으면 삼촌을 볼수가 없으니까 놀지 못하는거지. 헌데 엄마는 어째서 삼촌을 보고도 모르는체 하라는것일가?) 민호는 생각할수록 엄마의 말과 행동이 못마땅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럴수록 아빠트 3동에 살고있는 잘 생긴 삼촌이 더 보고싶어지는것을 참을수가 없었습니다. (아빠가 삼촌이라면 좋겠네.) 민호는 이렇게 엉뚱한 생각을 굴리며 살뜰하게 엄마의 손을 만지고있는 아빠를 바라보았습니다. 민호에게 있어서 아빠에 대한 인상은 오뉴월 개울가의 하늘대는 아지랑이처럼 가물가물할뿐이였습니다. 아빠는 민호가 3살 때 외국으로 갔다가 4살 때 한번 와서 석달 간 휴식한후 다시 외국으로 가셨던것입니다. 민호 나이 올해 여섯살이니 그 석달간의 기억도 진작 머리속에서 살아진지 오래답니다. 엄마네 회사에 손님이 와서 엄마가 밤 늦게 돌아오는 날이면 민호는 하얀 강아지 또또와 함께 놀아야 했습니다. 또또는 어린 민호를 얕보아서인지 민호가 쏘세지며 과자며를 챙겨주어도 도무지 잘 놀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민호는 또또와 늘 싱갱이질을 했지만 그래도 또또마저 없으면 심심해서 어쩔가 하고 생각하며 늘 고맙게 생각하고있었습니다. 민호가 이렇게 외로움에 지쳐있을 때 어느날 문뜩 민호앞에 나타나서 지금까지 쭉 재미나게 놀아주던 삼촌이 아빠가 외국에서 돌아오자 발길을 딱 끊은것입니다. 민호는 두눈을 살며시 감고 처음 삼촌을 만나던 그 날을 떠올려보았습니다. 그것은 아빠트앞의 백양나무에 노오란 잎 하나가 남아서 외로이 찬바람에 떨던 늦가을의 어느날이였습니다. 엄마는 유치원에 가서 민호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와 부랴부랴 민호에게 저녁밥을 차려준후 회사에 손님이 왔다며 다시 나간다고 했습니다. “엄마, 나 무서운데, 혼자서는…” “무섭긴 다 큰 애가. 저녁밥을 먹구 텔레비죤을 보다가 먼저 자거라.” 엄마가 거울앞에서 화장을 고치며 말했습니다. 민호는 그러는 엄마를 곱지않게 바라보며 종알거렸습니다. “봐라. 아빠를 빨리 돌아오라 하라는데. 아빠 있으면 이럴 때 안 무섭잖아.” “얘를 봐라. 엄마가 돌아오지 못하게 해서 안오는거니? 돈 벌려구 안오는거지.” “아빠가 없으니 무섭잖아? 내 말이 틀려?” 민호가 제법 어른스럽게 두눈을 올롱하게 뜨고 엄마를 째려보았습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그럼 아빠를 하나 사오면 되겠네.” “뭐? 아빠를 사와? 그래도 돼?” 엄마의 말에 민호가 깜짝 놀라며 되물었습니다 “호호호… 사올수도 있지. 아차, 늦었다니까. ” 그날 밤, 엄마는 과연 한 남자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남자의 손에는 커다란 과일바구니가 들려져있었습니다. 엄마는 그남자를 가리키며 삼촌이라 부르라고 했습니다. (삼촌이라구? 저런 삼촌은 없었는데…) 민호는 이런 생각을 굴리며 “삼촌”이라는 그 남자를 유심히 뜯어보았습니다. 키가 크고 어깨가 떡 벌어지고 볼에 꺼슬꺼슬한 수염이 터를 잡은 남자는 민호가 보기에도 잘생긴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어디서 본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자는 허리를 굽히더니 민호를 훌쩍 들어 넓은 품에 안아주며 친절하게 말했습니다. “민호라고 했지? 참 잘생겼구나.” 아침에 깨여나보니 엄마는 그 남자의 어깨에 머리를 살며시 기대고 앉아서 아침뉴스를 보고있었습니다. 그날이후로 그 남자는 늘 민호네 집에 왔습니다. 남자는 민호와 참 잘 놀아주었습니다. 민호는 그 남자가 태워주는 비행기놀이를 제일 즐겨했습니다. 민호가 또또를 들고 그 남자의 발바닥에 배를 붙이면 그 남자는 “한국으로 간다-”, “북경으로 간다-” 하고 소리치며 두다리를 쑥 들어올렸습니다. 그러면 민호는 배가죽이 간질간질해나서 까르르 웃어대군했습니다. 민호의 손에 들려 함께 비행기를 타는 또또도 신나는지 “콩-콩-” 하고 성수나게 짖어댔습니다. 민호는 차츰 그 남자가 좋아져서 진짜 삼촌이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삼촌은 민호에게 자기도 이 아빠트의 3동에 산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삼촌과의 즐거운 놀이속에서 늦가을이 가고 겨울이 흐르고 봄이 지났습니다. 고약하게 무덥던 며칠전의 그날 저녁 엄마와 민호는 쪼갠 수박 몇쪼각을 비닐봉지에 담아들고 정원으로 나와 정자를 찾아앉았습니다. 엄마는 입으로 수박씨를 툭 뱉어버리며 지나가는 말처럼 민호에게 아빠가 돌아온다고 말했습니다. 잘 생긴 삼촌때문에 아빠에 대한 그리움이 차츰 잊쳐져가는지라 민호는 아빠가 돌아온다는 사실이 기쁜지 어떤지 잘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민호야, 아빠가 돌아온후 혹시 아빠가 있을 때 그 삼촌을 보게 되면 절대 그 삼촌에게 인사를 해선 안된다. 그리구 그 삼촌이 우리 집에 놀러왔었다는 말을 아빠에게 해서도 안되구.” “왜 안돼? 엄마. 나는 삼촌이 아빠보다 더 좋은데.” “그래도 안돼.” “그러다 삼촌이 보고싶으면 어떻게 해?” “호호호… 우리 민호 정말 삼촌을 좋아하나봐? 그래 삼촌이 보고싶으면 두눈을 꼭 감아. 그러면 삼촌을 못볼게 아냐? 그리구 아빠는 석달만 집에 있다가 또 돈벌러 가거든. 그러니 아빠가 간 다음 다시 삼촌을 보면 되는거지 뭐.” “석달이라는게 얼마나 길어? 암튼 그새 난 삼촌이 보고싶을텐데. 우리 삼촌을 그냥 놀러오라 해서 아빠랑 함께 놀면 안돼? “글쎄 안된다니까.” “왜 안돼? 난 좋을것 같은데.” “한집에서 아빠랑 삼촌이랑 함께 살수 없거든.” “그래? 한집에서 아빠랑 삼촌이랑 함께 살수 없는거야?” “그렇지? 아빠 있는데서 삼촌을 보고 아는체를 하면 너 다시 삼촌을 볼수 없어” “어른들은 참. 그럼 난 아빠가 오지 말았으면 좋겠네.” “저런, 아빠가 들으면 큰 일 날 말을… 암튼 민호야, 우리 약속한거다. 우리 민호 용하지? 잘 할수 있지?” 엄마는 전에없이 살뜰하게 민호의 어깨를 다독여주었습니다. 민호는 공항홀에서 처음 자기를 보고 “잘 있어냐?” 하면서 어깨를 툭 치는 아빠가 어쩜 길 가던 아저씨와 같게 느껴졌습니다. 아빠는 삼촌처럼 그렇게 키도 크지 않았고 어깨도 넓지 못했습니다. (참 이상하지. 엄마는 왜 삼촌을 보고도 못본체, 알면서도 모르는체 하라는것일가? 또또랑 같이 삼촌의 발비행기를 타는게 얼마나 재미있는데. 어른들은 참 이상하거든. 왜 안된다는걸가? ) 민호는 또또에게 쏘세자를 잘라먹이며 또 그 생각을 이어나갔습니다. “당신 없이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생각만 해도 무서워요. 당신 이번에 아예 눌러 앉으면 안돼요? 여기서 뭐 돈나오는벌이를 벌려봅시다.” “어린애처럼. 이제 한 5년 더 고생하기요. 한 백만원을 저축해놓으면 무서운게 없을게 아니요?” “참, 당신이 고생하는게 마음 쓰여 그러죠.” 엄마는 주먹으로 눈굽을 찔끔찔끔 찍으며 아빠의 어깨에 살며시 머리를 기대는것이였습니다. 순간 민호는 삼촌을 처음 만난 이튿날아침에 엄마가 삼촌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아침뉴스를 보던 장면이 떠올라 또 삼촌이 보고싶어졌습니다. (삼촌은 뭘하고있을가? 삼촌은 내가 보고싶을가? 또또야, 너두 삼촌이 보고싶지?) 민호가 이런 생각을 굴리며 또또에게 눈길을 돌릴 때 갑자기 또또가 콩콩 짖어대며 어디론가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또또야.” 또또는 민호의 부름소리도 듣는둥마는둥 앞으로 깡충깡충 뛰여갔습니다. “어딜가? 또또, 돌아와” 민호는 또또를 부르며 달려가다가 선자리에 굳어졌습니다. 삼촌이 정자쪽으로 걸어오고있었던것입니다. 민호는 정자에 있는 아빠와 엄마를 힐끔 건너다보고는 두눈을 꼭 감았습니다. 두눈을 뜨고 삼촌을 오래본다면 “삼촌- ” 하고 부르면서 달려갈것 같아서였습니다. “또또야. 이리 와라.” 삼촌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민호는 두눈을 번쩍 뜨고 소리나는 쪽을 바라보았습니다. 또또는 벌써 삼촌에게 안겨 꼬리를 저으며 좋아서 죽겠다는듯 삼촌의 손바닥을 핥고있었습니다. (네가 아빠 있는데서 삼촌을 보고 아는체를 하면 다시 삼촌을 볼수 없어.)라고 하던 엄마의 말이 뇌리를 스쳐지났습니다. 민호는 급한 마음에 두눈을 크게 뜨고 아빠랑 엄마랑 앉아있는 정자를 건너다보았습니다. 마침 아빠의 눈길이 또또를 안은 삼촌의 몸에가 박히고있었습니다. (참, 어쩌지, 또또는 삼촌을 보고 좋아해도 괜찮은걸가?) 민호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아빠의 동정을 살폈습니다. 하지만 아빠는 도무지 성낼 모습이 아니였습니다. (뭐야! 또또가 삼촌을 좋아해도 아빠는 성내지 않는거야? 정말 그런거야?) 민호는 못내 또또가 시샘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강아지처럼 자기도 삼촌의 품에 안겨 삼촌의 꺼슬꺼슬한 수염을 만져보고싶었습니다. (강아지가 되고싶어…) 순간 민호는 자기의 머리속에 “강아지가 되고싶다”는 괴상한 생각이 똬리를 트는것을 어쩔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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