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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옛날 고향의 김장철
2015년 11월 11일 19시 11분  조회:1289  추천:0  작성자: 주정배
11월이면 우리고향에는 각 단위마다 재무과나 공무과가 바빴다.

사처로 배추밭을 찾아 다니면서 어디에 더 좋은 배추가 있나? 어디에 더 싼 배추가 있나?하고 연길근교에 있는 채소대를 찾아 동에서 서로 남에서 북으로 달아 다니며 배추밭을 찜한다. 그 찜한 배추 밭은 바로 우리 회사거나 우리단위, 혹은 우리 공장의 몫으로 … 우리들의 한해의 김장, 즉 다시 말하면 겨울나기 채소를 마련하는것을 도맡는다.

우리 어릴적부터 우리가 장가를 가서 애 낳고 썩 얼마후,중국이 개방해서까지 우리 연길시에서는 이렇게 가을 김장 배추를 각 단위에서 채구해서 나누어 주고 … 그리고는 다음달 월급에서 결산하고 … 하였다. 11월이면 우리 방직공장에서는 각 공단별로 겨울김장배추나 감자, 그리고 무우등을 본인들이 요구하는대로 기록하여서는 요구한 수량대호 집집이 단위의 차로 집문앞까지 운송해 준다. 누구하나 자가용은 물론 이어커 하나 없던 세월이라 차는 단위의 차로 무료로 운반해 주었다.

배추 캐는 날이면 차간车间이거나 공단마다 사람을 될수록이면 딱 필요한 사람, 다시 말하면 일선에 필요한 사람만 남아 생산을 유지하고는 모두들 옷들을 두툼이 챙겨 입고 배추캐러 떠난다. 차라야 트럭이 고작이다. 그때 당시 우리는 모두가 평등하다 보니 운전간에 서로 앉겠다고 서두는 사람도 있었다. 그때는 어찌나 춥던지 … 날씨가 요즘보다 더 추운것은 아니겠는데 … 아마도 옷들을 너무 보잘것 없이 엷게 입어서 그랬던가부다. 하여간 너무나 추워서 방직공장 준비차간에서 솜을싼 투레기 보자기를 그대로 목에다 두루거나 머리에 쓰거나 … 하는 늠들도 있었다.

달리는 트럭에 요즘 가축을 운반하는것처럼 그대로 노천에 노출되여서 바람을 맞으며 배추밭이나 감자밭 그리고 무우밭을 향해 달린다. 그렇게 추워도 당시에는 그런 차도 별로 타 보지 못한 이들도 있어서 그 트럭위에 앉아 스피드 호사를 즐기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때는 따뜻한 운전석을  간부들에게 양보하는 인간들도 있었으나 ... 없지 않아 있어으나 아주 드믈었다.  그래도 별로 개의치 않았다. 요즘 그누가 한대 밖에 없는 트럭의 운전좌석에 먼저 올라 령도에 자리를 내지 않으면 ㅎㅎ 이튿날로 모가지가 날아 나지 않을가부다.

아! 나도 처음 외국에 나갔을때 망신한적이 있다. 아침 일찍 직원들을 출퇴근시키는 봉고차가 있는데 나는 일찍 나가서 멋도 모르고 우리 고향식대로 먼저 타는게 임자라고 운전수 좌석에 덥석 앉았다. 스스럼없이 부끄럼하나 없이 말이다. 본래 나이로 보아도 내 나이는 기숙사 그누구 보다 많았다. 그런데 차장이란 자식이 뒤늦게 나오더니 앞좌석문을 열고 그대로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내려” 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 내가 더 먼저 나왔는데 “이~자식!“하고 속이 울컥거렸으나 그놈이 차장이고 바로 내 상급이라 잠간 머뭇거리고 있는데 뒤에 대리, 내가 사랑하는 박대리가 “정형 이 뒤에 자리 있어요 여기앉아요.“ 하기에 박대리 옆에 자리를 잡고 출근하는데 온하루 냉가슴 앓았다. “쬐꼬만 녀석 차장이라고 .,..” 썩~ 후에야 알았다. 자본주의는 본래 평등이란 없다는것을 … 우리가 배운 평등은 또 너무나 몰상식한 평등이였단것을 어쨌든 우리 그때는 대체로 누가 먼저 운전석에 앉으면 그게 그의 자리였다.

11월이면 우리는 각 부처거나 각 반별로 아니면 공단별로 배추를 얼마나 요구하는가고 ... 요구대로 신청한다. 우리 엄마, 엄마때는 보통 한집에 천근좌우였다.  그때는  집집이 식구가 많아서 항상 먹을 것이 모자라고 반찬이 모자라는 때여서 … 처음 새살림을 하는 젊은이들은 누가 몇식구에 얼마나 요구하는가에 따라 본인도 거기에 비슷하게 맞춰서 배추를 등기?한다.  나는 82년도 결혼하였는데 그해엔  남의집 세방살이에 김치를 담굴처지가 되지 않아 배추를 요구하지 않았다.

다음해에 난 작은 집을 분배 받았고 그래도 김치굴이라는 것이 있었기에 대충 어름잡아 겨울나기 3개월 푼푼히 처서 100일로 계산하고 거기에 배추 한포기 사나흘 먹는다고 계산하여 배추를 35 포기 를 예산하여 한포기당 4,5근 좌우로 쳐서 150근을 보명하였다. 단위에서 몇몇 젊은이들이 나의 계산에 머리를 끄덕이며 대체로 젊은이들은 나와 같이 백여근 씩 보명하였다.

물론 욕심이 많은이도 있어서 될수록 김치독이나 김치굴에 보관할수 있을 정도로 보명하는 이들도 있었으나 당시에 김치움은 보온이 괜촪으면 통풍이 잘 안되고, 통풍이 잘되면 보온이 잘 안되또 매일 김치움 뚜껑으로 덥고 열고 하며 온도를 조절하기에는 너무나 벅차고 힘들었다. 그래도 돈을 아끼려는 욕심, 그리고 남보다 더 장만하려는 부질없는 승벽심에 많은 생배추거나 김치를 될수록 많이 장만한다. 11월이면 우리는 각 단위별로 채대를 찾아서 찜해놓은 배추는 배추 채대에 장사들이 배추 캐러 오라고 통지하면 그날로 차를 갖고 밭에 간다.

트럭에는 배추 캐러가는 사람들로 가득채우고 어떤데는 저울이 없기에 우리는 큰 저울을 차에 싣고 간다. 거기에다 문짝같은 널판자를 깔고는 그위에 배추를 올려놓고 한사람몫씩 저울에 달고는 그대로 차에 싣는다. 그리고는 거기에 다음사람배추를 싣고는 그 중간에 원단이나 신문지로 표시하고 또 다음사람몫을 싣는다.

그런데 어느밭이나 다 그러하듯이 배추밭에도 밭머리 배추는 그닥 좋지 않아서 모두들 처음에 다시 말하면 밭머리 배추를 가지기를 싫어한다. 그러면 먼저 일하기 싫어 오지 않는 사람들의 배추를 먼저 달아 싣는다. 보통 그런 배추는 포기가 작고 질이 차하다. 그렇게 반나절 고생하고는 모두들 점심때면 허기가 지면 차간에서는 간단한 건량을 사고 빼갈두어병 … 거기에 된장을 사서는 밭에 생배추속을 빼서는 된장에 뚝~찍어 술안주 삼는다. 뭐 “시장이 반찬이라”고 당시에는 그렇게 배추속+된장 안주에다도 넘 많이 마셔서 일도 바로 못하는 늠들도 종종 있었다.

요즘 어른들은 당시 배추가 맛있었다고 하는데 내생각에는 그래도 굶고 배고파서 맛있었지 않았나 싶다. 머 생가지도 뚝 따서 생오이 처럼 맛나게 먹을 정도였으니 …

이렇게 집까지 날라온 배추는 이튿날부터는 양지쪽에 배추를 널기 바쁘다. 요즘은 몰라도 당시 배추는 집집이 꼭 양지쪽에다 배추를 널어 시들구군하였다. 그렇게 낮에는 널어 놓고 밤이면 다시 모아서 무져 놓고는 얼지 않게 벼짚가마니 같은거나 헌 투레기 원단이나 보자기 같은 것으로 덮어 놓고 아침이면 또 널어 놓고 하여간 집집이 김치를 만들어 굴에 넣기전까지는 이런 고생을 많이들 한다.

이런 고생은 내가 방직창 사층집에 살때까지하였는데 그후엔 내가 외국에 나가다 보니 얼마후 까지 계속되였는지 … 이렇게 며칠 지나면 온동네 아줌마들이 바빠진다. 대체로 김장을 먼저 시작하는이들은 대부분 집에서 주부로 있는 아낙네들이다. 그들이 먼저 김치를 소금물에 담근다. 그리고 하루나 이틀을 재워서 배추 숨을 죽이고는 그 소금물든 배추를 꺼내서 다시 깨끗한 물에 깨끗이 씻는데 …. 이것을 초절임이라고 한다.

당시에는 집집이 줄지어 살던때였는데 ...정말 속담 그대로 “이웃이 바로 사촌”이였던 시대여서 그 배추를 담금었던 그 소금물을 그저 버리기 아까워서 이웃집에 물어 본다. 소금물을 쓰겠는가고 … 그러면 그집에서는 그대로 그 집에서 담았던 배추물 (소금물)에 다시 또 배추를 담군다. 울 엄마는 옆집에서 소금물을 가져 가라니 그대로 일요일 늦잠자는 나를 깨워서 옆집 김치독에서 소금물을 퍼 오게 하였던 기억도 있다.  엄마는 그 소금물을 손으로 찍어 입어 넣어 소금간을 보더니 소금을 약간 더 넣고는 바로 배추를 다듬어 거기에 넣는다.

하여간 당시에는 이렇게 이웃사촌이라 김장 때면 소금물이라도 서로 나누어 쓰곤 하였다. 며칠후 초절임이 된 후에는 배추를 싹 씻어서는 고추 양념을 바른다. 그때는 대채로 고추가루에 마늘을 같이 넣고 절구나 방아간에 찧은 양념이 고작이였다. 개방후에는 그래도 김치에 사과배도 넣고 파도 넣고 하였으나 그것은 썩 후였다. 배추를 양념까지 바른후에는 그것을 바로 굴에 넣어야 된다.  그리고 배추는 될수록 추울때에 넣어야 오래 보관 된다고 될수록이면 손을 호 호 불며 동지가 썩 지난후에야 시작한다. 그때면 남자들이 도와서 굴에 넣어 준다. 나도 바께쯔에 담아서는 굴에 넣어 주면 엄마가 담아서는 한포기씩 독에 넣는다. 독에 다 넣으면 그날 저녘에는 생김치! 금방 담근 생김치를 그대로 찢어서 만포식할 수가 있다.  생배추김치는 그대로 대가리 쪽을 따고는 찢어 먹어야 제 맛이다.

우리는 배추 김치를 담그고 난후, 그 남은 양념 량에 따라 깍뚜기를 담그거나 채지도 담근다. 물론 그것들의 독은 작은 독이다. 이러면 우리 김장은 끝~ 엄마들은 그다음부터는 큰시름을 던 셈이였다. 어떤이들은 그래도 작은 김치굴을 넓게 쓰는라 김치굴 안에 감자굴을 덧 파고는 거기에 널판자로 뚜껑을 해서 덮는다.

그러면 작은 김치굴 안에 작은 움이 하나 더 하는 셈이여서 무우거나 감자를 더 넣을수도 있었으나 그것도 넘 일찍 봄이 찾아 오거나 김치움뚜껑관리가 부지런하지 못하거나 서툴다보면 많은 생배추 무우 감자 그리고 김치등은 봄이면 그대로 변소에 공동변소에 가만히 가져다 버린다. 

하여간 우리가 어릴적에는 봄이면 우리마을에 있는 공동변소에는 썩은 감자, 속이간 무우, 그리고 시여서 뭉클어 버린 김치를 심심잖게 볼수가 있었다. 감자는 그래도 싹이 나면 싹이난 부분을 싹뚝 잘라 버리고는 감자칼에 갈아서 감자떡을 해 먹을수가 있다. 감자는 얼어버리면 언 감자떡이 된다. 요즘 레스토랑에 가면 감자떡을 시꺼먼 감자떡을 만들어 한개에 1, 2원씩 팔던데 당시에는 정말 먹기싫은 음식중에 하나였다.

큼직한 열콩을 삶아서 박은 꼬장감자떡은 처음 한두때는 그런대로 먹을만 하였지만 … 정말 봄이면 언 감자떡을 매일 먹어야 할 정도였다. 하지 않으면 냉장고도 없는데 움에 그대로 두면 그 감자가 다 썩어 버리니깐 빨리 빨리 갈아서 떡이라도 만들어 먹어야 했다. 미처 갈지 못해 떡을 만들지 못하면 그대로 썩어 버린다. 정말 그때는 썩은 감자떡이란 말이 있었다.

요즘처럼 냉장고나 있었으면 그래도 두고 두고 먹고 싶을때 먹을수도 있었으련만… 당시에는 정말 먹을 반찬도 별반 없어서 그저 배추 김치나 깍두기 아니며 영채 김치 거나 갓김치들 밖에 없었던 같다. 기껏 저장할 것이라고는 무우나 감자 혹은 당근이 고작이였던것 같다. 집집이 별로 생활력 차이가 없기에 대부분 대체로 이러했다.

그때는 아마도 배추 한근에 3전씩 하였던것 같다. 요즘 애들은 믿을지도 모르겠다. 좌우간 그때 그시절 우리는 11월이면 김치굴 손질한다. 김장배추 장만한다. 무우를 굴에 넣는다. 감자를 움에 넣는다… 정말 바쁘다. 그리고 게방후부터는 사과배거나 귤도 한박스씩 굴에 넣고 양력설이거나 음력설 좌우에 종종 꺼내 먹군하였다.

요즘은  고층 아파트들이라 김치굴이 없다. 우리도 굴이 없어서 그때 그때 담그어 먹거나 하다가 올해는 마누라가 김치 냉장고를 기어코 사자고 하여 하나 샀더니 거기에 30포기나 들어가기에 어째다 오래만에 김장을 담그는 폼이 났다. 자연히 그 옛날 우리 가난하던 시절 김장철이 주마등처럼 스치기에 생각나는대로 긁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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