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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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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춘자의 남경> 민족의 상흔 보듬다 댓글:  조회:730  추천:10  2019-04-30
  .대담. 연변인민방송국 작가 김혁과의 대담. 민족의 상흔 보듬다 - 화제의 그 소설 창작경위 알아보다.   4월 28일  아침 7:20분, 오후 4:00 AM 1206과 FM 94.9 저녁 9:05 FM 102.3   문: 안녕하십니까? 진행을 맡은 프로듀서 최명광입니다.    요즘 우리 문단에 화제가 된 장편소설이 있습니다. 바로 중국조선족문단의 저명한 소설가인 김혁소설가님의 장편소설 인데요, 소설은 지난세기 20년대 북간도지역에서 일제에 의해 자행된 과 조선인, 중국인 위안부들의 참상 그리고 남경대학살 현장을 핍진하게 재현했습니다.  소설은 조선족문단뿐만아니라 중국문단에서도 최초로 호흡이 긴 서사로 일본군 위안부 소재를 소설화하여 중국당대문학사의 한페지를 장식했습니다. 오늘 에서는 장편소설 저자 김혁선생님을 모시고 소설창작 의도와 창작과정을 여쭈어 보겠는데요, 작가님을 모시기전에 먼저 그의 주요작품과 수상경력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소설가 김혁은 1985년 단편소설 《피그미의 후손》, 《노아의 방주》 등을 발표 하면서 문단에 데뷔! 그뒤 꾸준히 필밭을 가꾸어 지금까지 장편소설 《마마꽃, 응달에 피다》, 《국자가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네》, 《완용 황후》, 《시인 윤동주》, 《춘자의 남경》,《무성시대》등 6부와 중편소설집 “천재 죽이기”, 장편르포 “천국의 꿈에는 색조가 없었다”, “페스카마호 사건”, 인물칼럼집 "윤동주 코드", 인물전 "윤동주 평전", “한락연 평전”, “송몽규 평전”,"주덕해의 이야기", "한락연의 이야기"등을 출간, 발표. 김작가는 지금까지 윤동주문학상, 김학철문학상, 연변문학상, 해란강 문학상, 연변주 진달래문학상, 장백산 문학상 등 굵직한 상들을 수상. 현재 연변작가협회 부주석, 소설분과 주임을 맡고 있으며 사단법인 회장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묵직한 작품들을 펴냈고 수상경력도 화려합니다. 네, 김작가님을 모시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김: 네, 반갑습니다.    문:《춘자의 남경》은 작가님의 여섯번째 장편소설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요사이 금방 또 일곱번째 장편소설을 탈고 한것으로 알고 있는데 일곱부나 되는 장편소설을 창작하신것도 대단하지만 이번 작품은 위안부와 남경대학살을 소재로 다루고 있어 큰 이슈를 낳고 있습니다. 그러면 요즈음 문단과 방송계에서 화제로 되고 있는《춘자의 남경》은 어떻게 창작되고 어느때 어느 간행물에 발표 된거죠”   김: 네,《춘자의 남경》은 조선족의 권위문학지인《연변문학》지에 2015년 1기부 터 1년간 련재됐고 지난해 10월에 연변인민출판사에 의해 출간됐습니다. 작품은 3 0만 자의 분량속에 “뜨거운 감자”격인 소재의 일본군위안부와 전대미문의 남경대 학살을 소재로 다루고 있습니다.   문: 소설 스토리에 대해 요약해 얘기해주시죠.   김:  《춘자의 남경》은 종군위안부의 문제를 중심으로 다루되 지난 세기 2,30년대에 연변에서 일제에 의해 자행된 노루골 참안과 남경에서 자행된 남경대학살 사건을 곁들어 다루고 있습니다. 연변, 남경, 도꾜를 배경으로 3대에 걸치는 조선족, 중국인과 일본인의 갈등과 충돌, 력사의식의 변화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도꾜대학 대학원에서 문학을 전공하는 조선족 청년 종혁이와 그의 후배인 일본 아가씨 하루꼬는 서로 사랑하게 됩니다. 그런데 방학기간 하루꼬를 데리고 처음 하게 되는 연변행차에서 종혁은 평생 연변의 시골에 살고 있는 자신의 할머니 춘자가 바로 종군위안부였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또 다름아닌 하루꼬의 할아버지가 바로 남경에 출전했던 일본군인입니다. 두 사람의 사랑의 시련 속에 종군위안부의 이야기가 펼쳐지게 됩니다.    문: 소설을 보니 위안부제재로서 아주 방대한 스케줄이던데 어떻게 창작하셨는지 그 창작경위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 주시죠.   김: 네. 사실 이 작품에 대한 창작충동과 구상은 어느 한번 뉴스를 시청하는데로 부터 시작되였습니다. 몇해전 버릇처럼 중앙방송의 일곱시 뉴스를 시청하다가 커다란 충격을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길림성 당안국에서 소장한 일본 관동군이 작성한 10만건의 문서중에서 뒤늦게 발견된 기록에 대해 공개하는 뉴스였습니다.  뉴스에 의하면 남경대학살 기간 당시 "남경에 조선인 위안부가 36명이 있었다”, “1명이 열흘동안 일본 병사 267명을 상대했다"고 보도하고 있었습니다.  작가에게 오는 령감이란 그야말로 번뜩이는 혜성과 같은 것인데 전대미문의 남경 대학살에 게다가 그 잔학상으로 이미 세상에 알려진 일본군 위안부라는 그 두가지 사 건의 조합이 강렬하게 저의 뇌리를 때렸고 순간 어떤 창작령감이 저의 충동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날 나는 이미 구상을 마무리한 다른 소재의 장편을 미루고 이 소재를 장편화하 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한 작가를 떠올렸습니다. 장순여(张纯如)라는 미국계 중국인 르포작 가입니다. 작가이자 사학가인데 남경대학살에 대해 저술한 르포로 유명합니다. 그녀 가 저술한 장편르포 “력사는 힘있는 자가 쓰는가?”는 해외에서 커다란 센세이숀을 일으켰습니다. 1937년의 그 겨울, 남경에서 일본군이 자행한 전대미문의 대학살 그 만행의 참상을 생생하게 되살린 보고서였습니다. 저자는 섬세한 필치로 남경의 대학살을 이야기했고 또 일본이 어떻게 력사속에서 대학살의 기억을 지우려 망녕되게 시도했는지 낱낱이 밝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장순여의 량심적인 집필은 일본 극우세력들의 심기를 건드렸습니다. 그들로 부터 끈임없는 협박을 당해 왔던 장순여는 정신적 고통을 못이겨 2004년에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문: 참 안타깝군요.   김: 이 작가에 대해 중앙텔레비죤방송국 다큐프로에서 보고 그녀에 대한 호기심으로 그녀의 문명(文名)을 알린 이 장편르포를 해외에서 인터넷으로 주문해 읽었습니다. 저자 장순여는 각종 기록과 생존자들의 인터뷰 자료등을 통해 일본군이 저지른 비인간적인 폭력을 마치 공포소설을 보는것 같은 끔찍한 문체로 세세하게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희생자인 중국인의 관점에서, 미국과 유럽의 시각에서, 다각적으로 남경의 대학살을 이야기했고 또 일본이 어떻게 력사속에서 대학살의 기억을 지우려 기도(企圖)했는지 낱낱이 밝혔습니다. 부피가 두터운 르포를 읽으며 혹한에 들린듯 부르르 진저리를 쳤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는 나의 엄청 많은 열독리력 중에서도 자주 경험하지 못했던 혹독한 떨림이였습니다.   문: 전대미문의 사건에 대해 세세히 파헤친 르포를 읽고서 소설창작 충동을 느낀것이지요?    김: 이뿐만이 아닙니다. 어느 한번의 력사 답사에서 얻은 소재가 나에게 창작의 령감을 더해 주었습니다. 저는 조선족력사에 관심을 갖고있는 몇몇 지인들과 함께 10여년간 민족의 력사와 애환이 배여있는 유적지를 답사해왔습니다. 그중 한번은 우직한 답사를 강행한적 있습니다. 경신년 대참안이 일어난 장암동으로 향한 답사였습니다. 장암동은 우리 말로 노루골이라는 곳으로 룡정시 외곽에 있는 작은 부락입니다.  룡정시 동성용진에서 동남쪽으로 다섯시간 가까이 수십리 산길을 톺아 겨우 목적지에 이르렀습니다. 장암동에서 수난자들의 묘소를 참배하고 다시 먼먼 산길을 되돌아섰습니다. 발에 물집까지 생겼고 힘에 부쳐 그자리에 주저앉는 동행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지나 가는 농부를 붙잡고 사정사정한 끝에 경운기를 삯내여 타고 힘들었던 답사를 겨우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날 유적지에서 우리는 일제의 만행에 대해 피부로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일제는 민가와 학교와 교회를 깡그리 불사르고 남정들을 모조리 죽이고도 성차지않아 녀인네들이 눈물로 묻은 시체를 다시 파내여 소각하는 귀축같은 “이중학살”을 저질렀습니다. 답사를 마친 뒤에도 따끔거리는 발의 통증은 길에 나서기도 힘들 정도로 며칠 련속 나를 괴롭혔습니다. 그보다도 일제가 장암동에서 자행한 만행에 대한 기억이 더욱더 나의 신심을 오래도록 괴롭혔습니다.    문: 집필하기 위해 작가님은 사비를 털어가면서 직접 남경대학살 현장까지 찾아간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김: 네 지난 2014년 가을, 저는 남경으로 향했습니다. 사비를 팔아 굳이 남경으로 향했던것은 남경대학살기념관을 찾아보기 위해서였습니다. 남경역에서 지하철을 타니 터미널 표시판과 지하철 도어의 전광판에 그리고 네거리 곳곳에 “남경대학살기념관”으로 가는 선로가 뚜렷이 표기돼 있었습니다. 기념관 입구부터 내부 곳곳에서 커다랗게 새겨져있는 “300000”이라는 수자가 사람들의 시선을 모나게, 강렬하게 찔렀습니다. 그것은 당시 일본군에 의해 죽임을 당한 중국인의 수자였습니다.  “100인 참수경쟁”을 벌린 일본인 장교, 잘려져 뒹구는 중국인의 머리와 팔 다리, 산 사람을 과녁삼아 총검으로 찌르고 생매장하는 광경… 일본군인의 극한적 잔혹성을 보여주는 만여점의 자료들이 무거운 침묵과 간간의 흐느낌소리가 깔린 기념관내에 전시돼 있었습니다.  1937년 12월 13일 고도(古都) 남경은 일본군의 마수에 떨어졌고 일본군은 남경을 함락한 이후 한달여 동안 적수공권의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살륙했습니다. 남녀로소 대상을 가리지 않았고 고문, 강간, 생매장 등으로 끔찍한 처형 방법도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그 잔인함이란 차마 입에 담을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일본군의 남경대학살은 나치의 유태인 학살에 버금가는 세계사적인 참극입니다. 인류사에 이처럼 짧은 기간에 무차별적인 살륙전을 벌린 사례가 없습니다. 한개 도시의 일원(一圓)에서만 자행된 만행은 단기간에 저질렀다는 점에서 나치의 학살을 릉가한다고 볼수 있습니다. 전람이 거의 끝나가는 기념관의 출구쪽에는 12초마다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나는 작은 공간이 있었습니다. 대학살 당시 12초에 한 명씩 살해당했음을 상기시키는 소리였습니다. 그 숨통 죄는 듯한 시간의 소리를 한초 한초 헤며 나는 또 한번의 혹독한 떨림을 경험했습니다.  남경대학살은 종전후인 1946년 이 사건을 다룬 남경군사법정에서도 명백하게 확인된 참안입니다. 그리고 남경대학살의 전범들은 남경군사법정과 도꾜에서 열린 극동군사법정을 통해 처형됐습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일부 량심있는 사람들만이 이를 인정할뿐 남경대학살은 “중국인의 환상이다”, “학살은 없었다”는 뻔뻔한 부인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일본은 위안부 강제동원 역시 부인하고 있습니다.  불과 수십년전에 우리의 할머니 세대들은 일본군의 추악한 만행의 희생자로 전락되였습니다. 위안부 배상촉구문제는 1992년 부터 한국을 비롯한 동남아 여러 나라들에서 시작되였으나 일본 정부는 이후 22년이 넘도록 이를 랭랭하게 외면하고 있습니다. “위안부는 자발적인 성매매이다”며 그 오욕의 력사에 대해 궤변하고 세탁하려하고 있습니다.  남경대학살의 부인에 이은 후안무치한 궤변의 연장입니다. 그 억지주장을 펴는 사람들중에도 역시 중국과 한국에서 베스트셀러를 펴낸 유명한 일본녀류작가도 있습니다. 일본 극우세력의 대오속에는 일본의 유명한 소설가들도 적지 않습니다. 거개가 일본에서 유명 짜한 작가들이고 제가 한때 좋아했던 작가들도 있었습니다. 동업자로서 그 퇴행적인 사유에 큰 유감과 분개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문: 그건 력사왜곡이지 않습니까? 작가는 자신의 량지를 지키고 그걸 써내는 사람인데 어떻게 그런 뻔뻔스런 행태가 있단말입니까?    김: 네, 그렇죠, 력사를 왜곡하는 그들의 역주행에 소설가로서 커다란 유감을 느껴 나는 우리의 간행물들에 련이어 관련 비판 칼럼을 여러 편 발표하기도 했었습니다.   그와중에 “력사를 왜곡하며 세계의 도덕적 심판을 벗어나려는 일본인들의 단체기억상실증”이 외려 그 력사를 다시 기억해 내고 기록하게끔 한 소설가의 창작충동을 건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영욕이 교차하는 무대인 남경, 통한이 서린 땅에서 나는 여러가지 아픔이 동시다발적으로 덮쳐드는 트라우마를 대신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연변의 노루골 참안, 남경대학살 그리고 위안부 생존자들의 증언…  이 부동한 곳, 부동한 사람들이 꼭 같은 사람들에 의해 겪은 수난의 아픔들이 련결고리가 되여 나의 심장을 파고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동질성의 아픔들이 올올이 얽혀져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날 홀로 남경에서 돌아오는 고속렬차에서 나는 그 아픔들을 꼭 그려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다졌습니다.  어떻게 쓸가하고 막연하게 그리고 환몽처럼 머금었던 생각들이 어설기 얽혀져 그 한꺼번에 형체를 이루며 뇌리에 하나 둘 떠올랐습니다.    문: 구체적인 창작과정은 어떠했는지요? 력사 대사건을 필끝에 담아내는 작업이였기에 고된 작업이였으리라 짐작이 갑니다.    김: 돌아와 서재를 뒤적여 보니 내가 소장한 작품들중에 위안부소재의 작품은 몇부 안되였습니다. 인터넷을 들여 검색해봐도 뜻밖에 위안부 소재에 관한 작품이 너무나 적었습니다. 관련 보고서나 르포, 론문들은 적지 않았으나 예술적으로 재현한 픽션물이 적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는 더러 있었으나 그중 소설작품이 유독 적었지요.  그중에는 억장이 무너지는 슬픔을 간직한 이들의 아픔을 위배한채 위안부 테마를 상술에 리용한 작품이 적지 않았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은 어두운 우리 민족 현대사의 희생자들로서 전쟁을 통해 인간의 인권이 어떻게 유린됐는지 확인시켜주는 산 증인들입니다. 하지만 위안부의 몸을 노리개로 바라 본 이런 작품들은 력사의 진실에 대한 재조명은 커녕 멍든 위안부 할머니들의 가슴에 다시 못질하는 행위로 볼수 밖에 없었습니다. 충분히 력사의 아픔을 온몸으로 겪은 이들을 잊고 더욱이 그들에게 또다시 상처를 주는, 망각과 상혼을 쫓는 세태가 부끄러웠습니다.  거기에서 우리 민족 작가들이 쓴 소설작품은 더구나 적었고 외려 일본이나 미국쪽에서 쓴 작품들이 몇부 있었습니다. 하지만 작품성이 들쭉날쭉해 수작(秀作)은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중국과 조선족 작가들의 이 소재에 대한 소설작품은 아예 전무하다싶이 되여 있었습니다. 위안부 소재의 소설작품이 일본 본토작가의 작품이 있는데 반해 우리 작가들의 작품이 없는데 대해 놀라움을 느꼈고 창작의 립지를 더 굳히게  되였습니다. 유감스럽지만 지성화된 기계적 감정에 길들어 있는 우리 작가들과 가련할 정도로 적은 독자군은 이런 제재에 흥미를 가지지 않습니다.    문: 력사를 모르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명구도 있는데 우리의 력사를 외면하는 안타까운 풍조네요.   문: 네. 그럼에도 소설, 인물전, 칼럼, 기행수필등을 동원해 우리의 영욕이 엇갈린 력사를 조명하는 나의 작업은 이 십수년간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섯부의 장편을 펴내고 다음 소재에 대한 선택에 심려와 숙고를 거듭하던중 여섯번째 장편소설의 소재로 단연 위안부와 남경대학살 소재를 골라잡았습니다. 그 력사적 대사건의 들머리에 바로 우리 신변에서 일어난 장암동 참안도 곁들어 재현하기로 했습니다.  단지 상상해서 만드는 픽션이 아니라 생존자들의 진술, 해당 사건에 대한 기록문서, 르포 등 갖은 자료들을 바탕으로 삼아 력사의 진실과 아픔을 강렬한 붓터치로 재구성하고자 했습니다. 력사의 질곡에 붙매였던 그녀들을 대상화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전대미문의 피해를 세상에 알리고 반성과 공감과 치유를 부르는 그런 작품을 써내고자 했습니다. 그리하여 나온 작품에서는 20년대 연변지역에서 자행된 ‘노루골 참안’과 한인, 중국인 위안부들의 참상 그리고 말미에서 전대미문의 남경대학살의 현장을 재현해 보이고 있습니다.   문: 네, 실로 비허구적인 픽션과 허구적인 논픽션 작품을 익달하게 다루어 나온 큰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작가님도 한때 매체에서 활약했던 기자출신이라고 들었는데요.   김: 네. 비교적 일찍 매체에 입문했지요. 스무살에 “길림신문”사에 입사했고 그후로는 연변일보”등 매체에서 20여년간 기자사업에 종사했었습니다.   - 문: 그와중에 또 우수한 보고문학작품들을 펼쳐낸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김혁 작가님은 1999년경에 일부 몰지각한 한국들인의 사기사건을 다룬 장편르포 “천국의 꿈에는 색조가 없었습니다”를 집필, 출간했습니다. 그 르포집이 수천부가 팔려 당시 작지 않은 센세이숀을 일으킨적도 있었습니다. 지난 해에는 또 한국어선에서의 조선족선원들과 한국선원들지간의 살인사건을 다룬  장편르포 “페스카마호 사건”을 다루어 다시 한번 이슈를 일으키기도 했지요.    김: 네. 소설쓰기와 병행해 매체에서 20여년을 기자직으로 일해왔기에 저는 르포가 갖는 매력에 대해 십분 잘 알고 있습니다.  소설같은 예술화로 허구된 작품도 좋지만 실화와 같은 비허구 작품은 제가 아직도 애대하는 쟝르입니다.   문: 력사소설을 쓰려면 현장답사와 더불어 자료수집 같은것이 선행 되여야 하는데 작가님은 어떻게 착수하셨는지요? 김: 네. 《춘자의 남경》의 집필을 앞두고 2014년 하반년을 옹근 위안부와 남경대학살의 자료를 수집하는데 바쳤습니다.  남경에서 돌아와서 수십부의 문사자료집과 피해 당사자들의 진술서는 물론 당시 시대상을 반영한 영화와 다큐, 드라마도 수십편 찾아보았습니다. 일본군국주의 실상을 깊이 료해하기 위해 수백 만자에 달하는 대하실록소설 “태평양 전쟁”도 읽었습니다.   문: 그중에 작가님이 감명을 받고 보기에 수작이라 생각되는 작품 몇편 소개해 주시죠. 김: 네. 소설을 만드는 과정에 키를 넘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자료더미와 관련연구저서들을 통독했고 그 진실하고 소중한 자료들이 내 소설의 얼개를 이루어 주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와다 후미코라는 일본작가의 ‘빨간 기와집’ 그리고 한국작가 윤정모의 ‘에미이름은 조선삐였다’, 미국작가 모헤이더의 ‘난징의 악마 ’등 이 소재 관련 몇부가 유난히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중국작가 엄가령의 남경대학살 소재 ‘금릉 13채’는 이미 몇해전에 읽었지요. 장예모 감독의 제작으로 영화도 나와 큰 센세이숀을 일으킨 작품이지요. 이 작품을 보고 읽고 소설독후감과 영화평을 써서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소설로서는 이 몇부가 작품성이 들쭉날쭉한 이 소재의 작품들중에서의 수작(秀作)이 아니였나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조선족 학자들인 김성호의 실화 “종군위안부”(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 1999년), 강용권의 기행문 “끌려간 사람들”, “빼앗긴 사람들”과 오스트랄리아 얀.르부 오헤인의《침묵의 50년 한 위안부의 자술 (沉默50年:一位原“慰安妇”的自述》, 일본작가 이시가와 이쓰코의 “일본군 위안부가 된 소녀들”, 다니엘 최의 “나는 조선의 처녀다- 눈물로 쓴 정신대 위안부 이야기” 등 연구저서들이 내가 하나의 새로운 소설작품으로 픽션화하는데 특히 도움이 되였습니다. 너무나 많은 자료들이여서 일일이 출처를 렬거하지 못하지만 관련연구를 선행한 모든 이들에게 경의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드디여 필을 들었습니다. 력사의 질곡에 갇혔던 불운한 그녀들을 대상화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전대미문의 피해를 세상에 알리고 반성과 공감과 치유를 부르는 그런 재현물을 쓰고 싶었습니다. 단지 상상해서 만드는 픽션이 아니라 자료를 바탕으로 삼아 력사의 진실과 아픔을 재구성하고저 했습니다.    문: 네 실로 많은 작품을 읽었고 꼼꼼히 준비하셨네요.  김혁작가님은 으로 2017년 제25회 한국문인협회 해외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동포작가들 중 문학적 공적이 큰 작가들에게 시상하는 비중이 큰 이 상의 수상은 조선족문인으로서는 김철시인 등에 이어 8년 만에 처음입니다.  그리고 은 중문으로도 출판되였지요? 김: 네,《춘자의 남경》은 중국작가협회에서 제정한 소수민족중점번역지원작품으로 선정되여 연변의 번역가 근욱녀사에 의해 중국어번역을 마치고 북경 작가출판사에 의해 올해 1월초에 출간되였습니다. 또 지난해 12월 “춘자의 남경”은 아리랑 방송에 의해 라지오 소설로 개편되여 전파를 타게 되였습니다.    문: 력사의 진실에 내장된 인간군상을 생생하고 력동적으로 그려낸 장편소설 은 학계전문가들의 높이 평가하는 수작입니다.  다음은 연변대학 조한문학학원 우상렬교수의 평을 들어보겠습니다.    연변대학 조한문학학원 우상렬교수입니다.    우상렬: 총적으로 김혁작가의 장편소설 은 다양한 인물성격과 극적 갈등, 그리고 섬세한 소설적 언어, 기묘한 소설적 기법과 장치 로 종군위안부라는 피눈물나는 역사를 증언하고 동아시아의 새로운 평화와 발전의 미래를 예술적으로 제시한 우수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은 조선족문단뿐만 아니라 중국의 당대문학에 내놓아도 손색 없는 주제령역을 승화시킨 중후한 작품이라고 봅니다.  특히 일본의 우익세력들이 여전히 력사를 왜곡하고 있는 오늘, 이 작품은 자라나는 세대들이 올바른 력사인식을 가질 수 있는 필독서로도 되리라 생각합니다.   문:  교수님들의 평을 잘 들었습니다.  네, 불과 십여년사이에 김혁소설가는 여섯부의 장편소설과 두부의 장편르포, 세부의 인물전기를 발표, 출간했습니다. 거의 한해에 한부 꼴로 펴낸 셈입니다. 거기에다 칼럼, 명상록, 소설, 편찬저서들도 곁들면 이 동안 그의 창작량은 그야말로 문단의 평론가들이나 원로들이 격찬할만큼 “전무”할 정도로 어마어마합니다.  이 작품들은 모두가 평론가들이 평하다싶이 “민족사의 행간에 굵은 획을 그은 묵 직한 사건과 걸출한 인물들을 소재로 전개의 구조가 선명하고 극적인 스토리의 표현 이 돋보이는 서사적 작품”들입니다. 작가님이 다른 쟝르보다 력사작품에 더 심혈을 쏟는 리유는 무언가요?   김: 네. “력사라는 거대한 거푸집 안에 민족의 스토리와 애환을 무늬결 섬세하게 새겨넣은 력사물에 대한 작업이 요즘 내가 하는 전부의 일입니다.” 그동안 저는 력사의 대사건 속에서 부침하는 소인물들의 나름의 서사를 보여준 장편물들을 꾸준히 창작해 왔습니다. 저의 7부의 장편소설중에서 5부가 바로 력사소재에 편중한 창작물입니다.  첫장편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전대미문의 문화대혁명이라는 홍역을 치루는 과정에서의 농도와 줄기가 다른 민족집단의 아픔을 아이들의 시각에서 다루고자 했고, 이어 “시인 윤동주”에서는 고향이 낳은 시인 윤동주의 간도, 경성, 후쿠오카에 족적을 남긴 젊은 문사의 고뇌의 족적을 더듬어 보고자 했고, “달의 몰락- 완용황후”에서는 연길감옥에서 숨진 중국의 마지막 황제 완용의 비사로부터 그의 마지막 역이였던 위만주지역의 이야기를 더듬어보고자 했고, “무성시대”에서는 지난세기 30년대 상해의 조선족 영화황제 김염의 이야기를 다루었는데 역시 력사물과 시대극이라 할수 있습니다. 그 연장선에 바로 “춘자의 남경”이 있습니다.  내가 여느 조선족 작가들과는 달리 유난히 력사물에 천착하는 까닭은 서구나 중국의 판타지에 환혹돼 있는 우리의 독자들에게 한민족과 조선족의 생성과 발전의 력사를 알리기 위함이였다.  평소 두 종류의 맥락으로 소설을 쓰는데, 하나는 객관적인 현대 조선족의 도시진출과 출국으로 이어진 리산의 삶이고 또 하나는 우리의 뿌리인 조선족 관련 이야기입니다.  애초에는 나역시 초현실주의, 판타지 등으로 조선족 문단에서 쟝르와 문체적 실험을 독보적으로 해왔지만 조선족 이야기를 쓸 때면 리얼리즘수법에로 다시 귀환해 있습니다. 우리의 전통의 결과 무늬를 우리의 정서로서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민족의 생성과 현재와 미래를 우리의 학자들 그리고 작가들은 경험적, 문헌적, 지식적, 예술적으로 적극 구현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할 때에만 우리의 현재의 처경과 위치를 정확하게 알고 래일의 좌표를 구사하며 목전의 진통을 누르고 나아 갈수 있을 것입니다.  작가는 결국 력사와 인물을 기록하고, 력사에, 후세에 그 생명력을 불어넣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처해있는 민족만의 정한과 상흔을 가진 력사적 시간과 인물들을 오늘에 다시 불러내, 생생한 숨결의 감동적 인간상으로 재탄생시키는 일은 아무래도 문학과 예술의 몫일 것이다. 조선족이라는 락인이 찍혀 있는 민족작가로서 작가의 몫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소명의식으로 작품을 구상하고 쓰고자 합니다.    나의 이러한 작업들은 력사의 물줄기를 바꾼 그 인걸들의 삶을 통해 우리의 어제날과 만나고 그 시대의 공과를 헤아려 보면서 그 와중에 오늘의 변화하는 시대를 보아내고 넉넉한 삶을 예시하는 새로운 눈을 갖추기 위한 작가로서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감의 발로에서였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민족의 정체성을 알고 민족의 대사기를 알며 민족의 발전을 위해 기여한 인물들을 픽션 혹은 논픽션으로 만방에 알리는 이러한 작업이 분명 민족의 발전과 우리의 삶에 기(氣)를 불어넣는 좋은 작업으로 될 것이라 저는 믿어의심치 않습니다.   문: 방금 김작가께서 하신 우리의 독자들에게 한민족과 조선족의 생성과 발전의 력사를 알리기 위해 소설을 쓴다는 그 말씀이 가슴에 와닿네요, 그렇다면 향후의 창작성향과 계획은 어떻하신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 구태여 말씀드리면 저의 다음 장편소설은 “백년극장”이라는 소설입니다. 또 한부의 력사소재로서 100년전에 이주민들이 운집한 현성에 지어 세운 극장을 배경으로 한 백년의 이야기입니다. 그 극장주변에서 3대가 뒤얽혀 살아가면서 긴긴 세월 속에 지울 수 없는 애증 관계를 그려낸 편폭이 긴 작품으로서 그가운데 우리 조선족이 겪어 온 굴곡과 애환을 한부의 흥행영화처럼 그려내려 합니다.  매체의 언론인과 소설가의 삶을 병행해 왔기에 “문학적 다큐멘터리’로 특징지을수 있는 저널리즘적 글쓰기가 저의 작품의 특색이라 말할수 있고 이것이 남보다 차별화되는 나의 창작성향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신뢰할 만한 소설창작 기량을 발휘해 주제와 소재의 명징성, 소설적 사건의 이미지화와 깔끔한 흐름등이 잘 조합되여 있는 대서사적인 작품을 다루는 것이 나의 금후의 창작의 한방향이 될 것입니다.    문: 김작가님, 수고하셨습니다.    김: 감사합니다.                                    ----M----    문: 장편소설 은 정교한 필치와 탄탄한 캐릭터, 생생한 리얼리티, 그리고 강렬한 스토리로 일본정부와 일본군의 만행을 낱낱히 폭로했습니다. 작가는 또 넘치는 에너지로 잔혹한 리얼리티속에 숨겨진 숨막히는 서사를 긴 호흡으로 끌고 나가면서 아름다운 꽃들이 피기도 전에 어떤 무자비한 인성에 의해 유린당하고 처참히 사라졌는지를 밝혀놓고 세상을 향해 커다란 호소의 함성을 질렀습니다. 작품이 갖는 문학사적의의도 여기 있지 않나 하고 생각됩니다.  민족의 력사와 문화에 대한 화두와 메세지를 끈임없이 던지면서 방대한 작품량으로 묵직한 소재들을 성실하고 우직한 작가정신으로 밀고 나가고 있는 김혁 작가님, 작가님의 다음의 또 한부의 력작이 기대됩니다.   네, 오늘 프로 여기서 줄입니다.  이 시간 프로기획에 최명광, 제작에 량영택, 원미란, 비디오 촬영에 김호룡이였습니다.    -end-  
1    한춘과 김혁의 문학대담 댓글:  조회:899  추천:12  2018-11-11
  . 대담 .   명작, 그 영원한 인류의 메시지    대담자   김혁&한춘     김혁 (소설가, 연변작가협회 소설창작위원회 주임) 한춘 (시인, 전 흑룡강신문사 문예부 주임)     김혁:      한춘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요즘은 통신수단의 눈부신 발달로 이렇게 메일로 “변강의 오지” 연변에서 “동방의 빠리” 할빈에 있는 선생님과 시공간의 제한을 받지않고 대화를 나눌수 있어 참 기쁘군요. 한춘:   반갑습니다. 김혁작가님.   김혁:   그런데 생님이 보내신 대담고가 저의 컴퓨터의 시스템이 구식이여서 파일이 열리지않아 애를 먹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외려 신식 시스템을 쓰시는군요. 오늘 저희들이 이야기하려는 화제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각 TV채널들에서 드라마 “신판 수호전”을 방영하고 있는데 그 붐을 타서 90년대판 “옛 수호전”도 어떤 채널들에서 더불어 방영되고 있습니다. 신구 드라마를 비교하하면서 시청하노라니 느끼는바가 새롭습니다. 오늘은 불변하는 명작의 매력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어 볼가 합니다.   한춘:   네.마침 중국 항간에 도는 이런 말이 떠 오릅니다."나이들어서는'삼국(연의)'를 읽지 않고 어려서는'수호(전)'을 읽지 않는다(老不看三国,少不看水浒)" 말하자면 다 명작은 명작인데 부동한 년령에 따라 부동한 자세로 작품을 접수한다는것입니다.그러니 그것이 명작일진데는 명작으로서의 '매력'이 객관적으로 내재하고 있습니다.  명작이라 할때 응당 독자들이 보편적으로 긍정하고 보편적으로 존중하고 보편적으로 선호한다는 공성을 띄고 있어 사람을 사로잡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습니다. 언젠가 학생들과 이런 대담을 나눈 일이 있습니다.  "조설근의 ”홍루몽” 원문을 읽은 사람은 손을 드시오."  손을 드는 학생은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홍루몽”의 이야기를 아는 사람은 손을 드시오." 30명 되는 학생들이 거의 다 손을 들었습니다.    어떻게 되여 그 내용을 알게 되었는가 물었습니다. 대답은 각기 달랐습니다. 드라마를 보고 알게 되였다는 것, 만화책을 읽고 알게 되였다는 것, 영화를 보고 알게 되였다는 것, 에니메이션을 보고 알게 되였다는 것, 테레비 특강을 듣고 알게 되엇다는 것,남들의 이야기를 듣고 알게 되엇다는 등 그 도경은 각기 달랐습니다.그러나 한가지 공동한 점이 있으니 ”홍루몽”이 중국의 명작이고 보옥, 대옥, 보차의 삼각관계를 대충 알고 있습니다는 점입니다.말하자면 그들은 비록 작품 원문을 읽지 않았지만 ”홍루몽”이란 작품을 대체로 긍정하고 대체로 선호하며 대체로 숭상한다는 이 점입니다.    김혁:   네,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은 가치를 지닌 명작은 우리에게 영원한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발표이후 오랜 시간 국계와 민족을 넘어 여러계층의 인류에 회자되는 명작들은 지난 세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자라나는 신세대들에게는 삶의 지혜를 물려주는 역할을 하고있지요. 홍수처럼 쏟아지는 책의 물결속에 “옥석”을 가려내기는 쉽지않습니다. 여기서 널리 회자된 명작들을 찾아드는것이 바로 그 옥석을 가려내는 가장 보편적이고 쉬운 방법일겁니다. 그러고보면 명작들은 달리 “불로장생”을 구가하는게 아닙니다. 명작만이 가지고있는 매력은 우리 독자들 더욱이 우리 문학창작자들이고 보면 영원히 읽어가야 할, 연구해 나가야할 화두이겠지요.   한춘:   네 그런데 문제는 요즘의 아이들이 그 명작들을 소외하고 있다는 그점이지요. 학생들에게 다른 한 문제를 물어 보았습니다."곽경명(郭敬明)의 소설 ”꿈속에 지는 꽃잎 얼마이던가(夢里花落知多少)를 읽어본 사람이 있습니까?"하고 물었더니 아이들이 수풀처럼 손을 들더군요. 나는 이 책을 한 30페지쯤 읽고 더는 읽어내려가지 못했습니다. 작품의 재미는 20대 좌우 청춘남녀들의 구미에 맞는 그런 내용이었기에 일흔을 바라는 나의 독서취미에는 맞지 않았습니다.   김혁:     곽경명은 어느 설문조사에서 로신, 파금(巴金), 로사(老舍), 가평오(贾平凹), 여추우(余秋雨)와 더불어 중국10대작가명단에 올라 커다란 파장을 일으킨 20대작가이지요. 제 딸애도 곽경명의 팬 입니다. 곽경명이 주필을 맡고있는 잡지 “최소설(最小说)”을 창간호부터 소장해 두고 있습니다. 몇백만부가 나가는 신세대들이 가장 선호하는 잡지로 알고있습니다. “소설월보”나 “수확”, “망종”같은 80년대 베스트 잡지를 읽어온 저의 세대에게서는 신선한 충격으로 보이는 잡지였습니다. 다른건 제쳐놓고도 오늘의 세대와 오늘 독자층의 미감을 겨냥한 모던한 잡지로서 그 정교함의 극치를 달리는 디자인이 아주 인상적이였습니다. 그 잡지를 딸애네 또래들은 걸탐스레 읽고있었습니다. 하지만 명작을 읽으라고 몇권 굳이 추천하니 “그런 ‘구닥다리’를 꼭 읽어야 하나요? 하고 반문하더군요. 딸애또래들의 이런 반응을 보노라니 곽경명이 10대작가에 선정된것을 두고 갑론을박을 벌리던 비평가들의 론설이 떠올랐습니다. 그중 한 비평가의 남다른 분석이 지금도 기억에 남습니다. “청소년들은 류행문화의 분위기속에서 성장하고있고 독자의 독서취미와 문화형성은 종합적인 형성과정이다. 례를 들면 류행가요, 네트워크 등은 청소년들의 문화형성에 거름을 주고있으며 문학은 단지 류행문화의 일부분일뿐이다.하기에 억지로 독자들에게 로사,파금의 작품을 읽게 하는것은 이제 더는 현실적인 독서방법이 아니다.”   이러한 론점으로 볼때 신세대들을 위한 그들만의 적성에 맞는 열독방식에 대한 연구가 있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춘:   그래서 저도 학생들에게 베스트셀러와 명작의 구별점을 화닥닥 팔리는 것과 오래 오래 줄곧 팔리는 것으로 설명해 주었습니다.사실 지금 신세대들이 책을 읽지 않는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들의 취미에 따라 나름대로의 선택이 있을 따름입니다.그러나 명작은 어느 한 사람의 취미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지요. 모든 사람은 다 문학감상과 예술감상에서 자기의 취미를 가질 권리가 있습니다. 누구나 다 자기의 내심 수요에 따라 좋아하는 어느한 풍격이라던가 어느 한 내용이라던가 혹은 어느 한 형식에 취미를 가질수있습니다.이런 취미는 타고 난 천성이며 천성이기 때문에 당당한 당위성과 합리성이 있습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취미의 각도와 시점과 층차와 차원이 각기 부동할 뿐입니다.  여기에 개인적인 표준과 대중적인 표준이란 두가지 표준이 있습니다.때로는 대중적 표준과 개인적 표준이 통일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때문에 한 작품을 두고 그 작품의 매력이 어디에 있는가 물어 본다면 백사람이면 백 하나의 답이 있을수 있습니다.   김혁:   이른바 명작이라 함은 “제목은 알지만 읽지는 않은 책”이라고들 요즘 독자들은 우수개로 말하더군요. 높은 명성에 비하여 실제로는 별로 읽혀지지 않는게 “명작”이라는것입니다. 시대의 변화와 함께 요즘들어 달라진 독자들의 “열독취미”대로 명작은 대저 두가지로 나누어 볼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중 하나는 “걸리버 려행기”,  “돈키호테” 같은 작품들입니다. 이른바 “잘 읽혀지는 명작”이라 할수 있지요. 이 경우는 말하자면 대중성, 통속성이 두드러지면서 여러차례 영화, 드라마, 연극 등으로 만들어져 원래 텍스트를 읽지 않았지만 어쩐지 읽은듯한 느낌이 강하게 드는 작품들이라 하겠지요. “제인에어”, “몽떼그리스도 백작”, “삼총사”같은 작품도 여기에 해당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민족의 고전명작 “춘향전”도 이러한 범주에 해당되겠죠.   다음 한가지는 숄로호브의 “고요한 돈강”, 또스또엡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까뮈의 “페스트”, 유고의 “93년”같은 작품들입니다. 누구나 작가와 작품의 줄거리와 주인공의 캐릭터에 대해 어느정도 알고는 있는듯하지만 막상 작품을 완정한 문학 텍스트로 읽지 못한 이들이 많지요. 책의 분량이나 문체의 표현, 구성방식이 독자들뿐아니라 전문 창작자들도 감내하기 어려운 작품의 경우가 아닐가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프랑스의 문호 빅또르 유고의 “레미제 라블”같은 명작은 이런 두 가지 경우에 모두 해당되는듯 합니다.   한춘:   여기서 독자들의 시각을 헤아려 볼수 있겠지요. 로신이 ”홍루몽”을 두고 이렇게 평가했습니다.".....독자의 감수에 따라 각기 다를 수 있다. 경학자들이 읽으면 '점치기'로 볼것이요 도가들이 보면 남녀 상열지사로 볼것이며 문인들이 보면 사랑이야기로 볼것이며 혁명가들이 보면 청나라를 반대하는것으로 볼것이고 난봉꾼이 보면 대궐안의 스캔들이라 볼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명작이라 할 때 명작으로서의 기본 요소가 구비되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명작은 명작으로서의 예술표준이 있다는 말입니다. 명작 예술 표준에도 여러가지 설법이 있겟지만 적어도 아래 세가지 요소가 내포되어 있을 때라야 비로서 명작이라고 할수 있습니다고 봅니다.   첫째 독자의 기본 심성을 불러 일으키는 매력 요소입니다. 이 매력요소란 과거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문학리론과는 좀 다른 견해일것입니다.모택동은 ”홍루몽”을 세번이나 읽었다면서 처음에는 그저 이야기로만 읽었는데 후에 두번 다시 읽으면서 홍루몽을 통해 봉건제도가 붕괴되는 력사를 읽었습니다고 말했습니다. 즉 작품의 심각한 철리, 사상, 시대성 등으로 그 작품의 매력을 평하였습니다. 그런데 가령 철리나 사상이라 할때 이와같은 사상이나 철리는 다 우리 내심의 기본심성 본체에 존재해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세계에 존재한것입니다.공자나 로자, 장자, 그리고 맑스나 헤겔이나 칸드의 사상이 다 위대한것은 의심할바 없습니다. 고금중외 대현인, 대사상가,대철학가의 사상과 철학이 세상만물을 보는 우리의 눈을 튀워줄 수는 있어도 인생의 기본 심성의 각성을 대치할수는 없는것입니다. 명작이라 할때 작품에서 제시하려는 사상을 자기가 체득한 인간 심성의 보편적인 감수로 전환시켜 표현함으로써 읽는이로 하여금 감동을 받고 그 감동이 일생동안 가슴의 내부에서 번득이는 영원한 메아리로 남아 있게 합니다.즉 명작은 작자의 감수를 표현하였을 뿐만 아니라 독자의 감수를 새롭게 살려내는 매력이 있습니다.         둘째 명작은 사람들에게 잠자고 있는 심층의식를 개우쳐 준다.인간심층의식이란 사람들에게 존재하는 타고난 가장 기본적인 인간성을 지칭한다. 이것은 지역성을 초월하여, 시간의 전후를 초월하여, 피부색이나 민족을 초월하여 장기적으로 인류에게 전달하는 하늘의 메시지나 다름이 없다.예하면 궤테의 ”파우스트”는 사람의 욕망이란 끝이 없으며 일단 그 희구가 실현되었던가 자기가 바라는 목적에 도달하면 그 즉시 파멸, 추락, 죽음을 가져오게 된다는 영원한 추구의 힘을 실어다 줍니다.이점은 인간 실존의 기본이라고도 말할수 있거니와 이와같은 시공간을 초월한 심층의식의 각성은 작품의 예술감화력, 즉 작품의 매력과 정비례가 됩니다.     셋째 명작은 남다른 독특한 작품 형식과 수사법으로 읽는 이의 신경을 끌어 당기는 힘이 있습니다. 중국 근대소설의 초석을 쌓은 ”금병매(金甁梅)”는 역사이야기를 쓴 ”삼국연의”나, 영웅전기를 담은 ”수호전”이나. 판타지같은 ”서유기”와 달리 인정세태, 세상물정을 쓴 명작입니다.서문경이 갑부로 된 이야기로부터 그가 쇠락하는 과정을 통해 당시의 인정세태를 묘파하기 위하여 작자 란릉소소생(蘭陵笑笑生)은 그에 합당한 형식인 간결한 묘사(白描)법을 아주 능란하게 운용하였습니다. 로신은 ”중국소설사략”에서 ”금병매”를 두고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작자는 당시 인정세태와 세상물정을 통달하였으며 손금보듯 환하게 잘 알고 있다. 작자가 형용한 것을 보면 혹은 류창하게, 혹은 우회적으로 혹은 노골적인 폭로로, 혹은 함축적인 풍자, 때로는 여러가지 수법을 겸용하여 서로 어울리어 변화무쌍하게 하는 등 정말 무릎을 칠 정도다.’금병매’작자의 간결한 묘사법에 관한 한 평론가의 말을 들어보자,"한 인믈을 쓸때 그 말투로부터 시종 일관하게 그 인물의 기본 성격을 그려냈는바 간결한 묘사 몇 마디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전달하여 주었다" 그 어떤 형식을 취했든, 그 어떤 수법을 취했던 작품의 표달방식과 전달형태에서 독특한 개성을 구비했을 때 독자들의 취미를 불러 일으킬수 있는 틀, 즉 형식이 있으며 이 형식이야 말로 읽은 사람의 가슴에 깊은 인상을 심어줄수 있습니다.   김혁:   네 때문에 비록 손쉽게 접하는 명작이라 해도 읽는자의 시각에 따라 틀릴수도 있겠지요. 앞서 말씀드렸지만 사실 “걸리버 려행기”는 그 극적인 스토리와 뛰여난 판타지성격으로 하여 어린 독자들에게도 매우 많이 읽혀지고 있지만 사실 “걸리버 려행기”는 뛰여난 정치소설, 걸출한 풍자소설로서 젊은 층들이 접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외설적인 대목도 들어 있어 베스트라는 쉬운 범주로는 묶을수 없습니다. “돈키호테” 역시 어눌한자의 코믹한 무용담으로 보이겠지만 상징성이 매우 높은 작품이지요. 또 서구 최초의 근대소설이라는데서 그 작품이 가지는 가치가 있습니다.   그래서 명작에 대한 번안, 개작작업은 그 추종자들에 의해 지칠줄 모르고 끊임없이 진행되고있는것이지요. 그중 중국, 한국 일본에서의 끊임없이 번안되고 드팀없는 사랑을 받는 “삼국지”를 일례로 들수 있겠지요.   한춘:   아시다싶이 중국, 한국, 일본은 이른바 한자문화권, 유교문화권으로서 고대로부터 상호간 문화교류가 활발하였습니다. 일찍 당나라시기 일본과 신라는 많은 유학생을 중국 장안으로 파견하였으며 당나라는 빈공과를 설치하여 이와같은 외국 유학생의 과거길을 열어주기까지 하였다. 뿐만 아니라 불법을 구하기 위하여 일본과 신라에서 많은 승려를 중국으로 파견하였으니 그중 일본 승려 원인(圓仁)의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에 취록한 장보고의 적산법화원과 신라방 사적이 유명합니다.즉 활발한 문화교류를 통해 중국의 많은 문화가 일본과 한국으로 전해졌다. 한국의 상황을 살펴볼때 조선조 초기 선조(1568――1608제위)가 ”삼국지연의”를 읽었습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당시 명나라를 다니는 사절단들이 중국의 소설을 행장에 몰래 넣어 들여 왔고 가장 처음 정음으로 소설을 지은 허균(1569――1618)의 중국문학소개를 보면 ”삼국지연의”,”수호전”, ”금병매”, ”서유기”등 중국의 명작이 이미 한국에 전파되였습니다.원래 유일하게 문화교류를 진행한 국가가 중국이며 이로서 중국문화에 경사되어 있는 상황에서 명나라 시기 아주 발달한 중국의 소설문학의 전래와 더불어 한국의 문인들이 중국 소설에 경도되는것은 가히 리해할만한 일입니다.이때로부터 ”삼국지연의”에 관한 내용이 한국 문인들에 의해 여러가지 형태로 재탕되었는데 시조에도 자주 나오고 서울 잡가에도 나오며 유명하기는 판소리 열두마당의 한 마당으로 자리를 굳혀 한국인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역사이야기로 남게 되였다.이 사실은 역사적으로 중화사상에 물젖은 한국인들의 사유방식과도 갈라 놓을수 없습니다.     현대에 이르러 인쇄문화의 발달과 다매체의 활약에 힘입어 삼국지를 한국어로 옮기는 작업에 열중하고 기타 여러 가지 형태의 삼국지 파생물이 소비자들의 구미를 한껏 돋우어 주고 있는 상황입니다.  번역의 경우, 한국에서는 일찍 월탄 박종화의 번역이 있었으며 이어 리문열, 황석영의 번역서와 중국 조선족 리동혁의 번역서가 줄줄 이어 나오면서 한국독서계의 장안화제로 되기까지 했습니다. 이것은 삼국연의란 명작 자체의 브랜드 자원을 빌린것도 있겠지만 전투장면의 세밀한 묘사, 대규모 전쟁의 용병술, 일대 일 교전의 충격,명책사, 명재상, 명장군 등 각 부동한 력사인물의 개성적인 성격과 그들의 운명 등이 가슴에 구멍이 나도록 사람을 사로잡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국으로 놓고 볼때 문화적으로 수용성이 높고 적극적으로 외국 문화를 접수하는 전통이 있으며 한국의 고전 군담소설에서 삼국지와 같이 인기를 끌수 있는 작품이 없는 상태에서 이미 익숙하고 또 접수 수용에 거부감이 적은 중국의 삼국연의를 재탕에 재탕을 거듭하는 것은 선진문화에 대한 력동적인 문화력의 체현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김혁:   력동적인 문화력의 체현이라는 그 정평이 맞다고 생각됩니다. 지금 방영되고있는 “신판 수호전”에 앞서 “신삼국연의”가 새로운 버전의 드라마가 만들어져 지금까지도 화제가 끊기지않고 있지요. 총 95회라는 방대한 용량에 중국 최고의 연기자 군단과 거대한 투자가 결합되어 화려하고도 거대한 영상미와 숨 가쁜 영웅들의 활약상을 그려냈습니다. 여기서 진정 명작이라는 그 웅숭깊은 문화력의 력동을 보아낼수 있었습니다.   한춘:   이 현상은 마치 오월단오가 중국에서 유래되였다고 하더라도 오월단오에 담은 문화내역이 완전히 한국화되었고 또한 극대화 되어 강릉단오제가 세계 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여 유네스코에 기록된것과 같은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은 중국에서 전파된 유교도 한국의 종묘제레 및 종묘제례악이 세계 무형문화로 지정되고  불교가 중국에서 전파되었지만 한국 경주의 불국사와 석굴암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는 등 여러 문화, 종교 령역에서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문화라는것은 류동하고 접목되고 파생하는 특징을 갖고 잇다. 어느 민족이나 어느 나라나 다 자체의 국한성과 제한성과 빈 공간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 때문에 타국이나 타민족의 우수한 문화를 접수, 수용, 개조, 활용하여 자체의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것이 인류뮨화발전의 법칙입니다.   김혁:   장예모의 영화작품들을 보면서 그런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영화 “영웅”에서 그 복색차림이나 미술배경이 일본의 유명감독 구로사와 아키라(黑 擇 明) 의  영화 “란(亂)”을 많이 닮았다고 비평가들이 꼬집었는데 면바로 보았지요. 그 복장설계는 다름아닌 구로사와의 손녀가 맡았던거지요. 그만큼 구로사와의 영화를 보며 자라난 세대로서 장예모는 그 우수한 영상미를 수용하고 활용해 냈던거지요. 사실 구로사와 자신도 영화 “란”의 모티브는 쉑스피어의 “리어 왕”에서 따오지 않았습니까. 장예모의 경우 그의 영화 “붉은 등롱 높이 걸렸네”는 류항(刘恒)의 명작 “복희(伏羲伏羲)”를 개편한것이고 그 영화가 다시 무극으로 개편된적 있습니다. 또 이딸리아의 작곡가 푸치니의 세계적인 오페라 “투란도트(图兰朵)”도 장예모에 의해 새롭게 태여난적 있습니다.   조선족의 저명한 테너 김영철도 극중에서 한 인물을 맡은걸로 알고있는데요.   이렇게 명작은 다양한 표현방식으로 독자들과 끊임없이 만나면서 그 과정에서 서로 수용하고 서로 보완하면서 새로운 명작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현대미감에 걸맞는 새로운 쟝르와 문체로 변화하여 새로운 독자와 새로운 방식으로 만나고 있는거지요. 새로운 방식으로의 변화를 말하자면 그중 명작의 게임, 애니메이션의 개편현상도 일례로 들수가 있겠습니다.     한춘: 명작의 게임, 애니메이션으로 변화된것은 커뮤니케이선이 고도로 발달하고 시장경제가 고도로 발달한 나라가 그 진원지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가령 “삼국지”를 놓고 볼때 일본에서 가장 먼저 이런 문화제품을 개발했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김혁: 네. 일본은 애니메이션의 왕국이란 호칭이 붙어 있는 나라이지요. 일본에서는 오래전 90년대초에 이미 “삼국지”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고 중국에서는 2009년전에야 삼국지를 애니메이션화 했는데 그것도 제작진을 살펴보니 일본의 애니메이션계의 베테랑들이 대거 포진해 있었습니다.   한춘:   네 그것이 이제는 또 게임으로 변화되였고 한국으로 건너와 한국에서 또 한차례의 고조를 이루었으며 지금 중국도 청소년들이 여기에 매몰되어 제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내가 말하는 게임은 도박성 게임을 두고 하는 말인데 중국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도박에 빠지면 집을 저당잡히는것도 마다하지 않고 아편에 빠지면 안해까지 팔아 먹는다." 도박이 사람을 끄는 그 보이지 않는 마력이 얼마나 큰것인가를 알수 있습니다. 명작 게임같은것은 주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자제력이 약한 그들에 끼치는 피해는 너무너무 엄청나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것이 단순한 오락형 게임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이란 태여나면서 즐거움에 대한 본능적인 욕구가 있기 때문에 역시 한번 빨려 들어가면 다시 헤어나오기 어려운것은 번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를 선호하고 이를 좋아하고 이를 반기는 청소년들이 많아 시장전경은 언제나 밝다. 이것이 명작 게임이 시들지 않는 원인입니다.   에니메이션은 게임과는 좀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내 손녀가 지금 1학년에 다니는데 학교 가기전까지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데로부터 지금은 테레비나 컴퓨터앞에 나서겠다고 합니다. 글자도 한 2천자쯤은 읽을수 있는 형편이며 슈제트 발전변화도 가히 알수 있는 처지라 집에서 저녁 6시부터 8시까지 두시간을 할애하여 손녀에게 주었습니다. 물론 아동프로만 보는데 주로는 에미메이션을 봅니다. 일단 거기에 끌려 들어갔다하면 할매 할배의 말도 귀에 들리지 않고 밥도 테레비 앞에서 독상을 차리고 먹습니다.아주 생동하고 기이한 인물 이미지 디자인, 그리고 층격을 주는 등장인물(등장물)의 엑션동작, 맑고 밝은 화면설계 등은 어린이들의 호기심을 끄는데는 너무도 충족합니다.  나는 그것을 허락했습니다. 손녀의 생활이 너무도 단조롭기에 테레비나 컴퓨터를 통해서라도 견문을 넓히고 상상력을 키운다는 뜻에서 출발한것입니다. 그리고 드문 드문 그 내용을 물어보면 제접 청산류수로 이야기의 맥을 제대로 이어 엮는다.말하자면 에니메이션은 아동들의 지력개발에 일정한 도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혁:   하기에 애니메이션제작이 요즘 영상 제작자들이 호시탐탐 노리는 “미식”으로 되여 있지요. 요즘 어린이들이 즐겨보는 “꼬마양과 승냥이(喜羊羊 与灰太狼)”라는 애니메이션은 그 간단한 캐릭터에 권선징악의 낡은 제재를 되풀이함에도 불구하고 이미 7억여원의 수입흥행을 보았다고 합니다.   한춘:   그러나 여기에 역작용도 있을것입니다. 그 역작용은 적어도 두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에니메이션을 보면서 테레비같은 시청에 취미를 붙이면 앞으로 독서취미를 잃게 될 가능성이 너무 큽니다.    김혁:   저희 세대까지도 흑백텔레비 그리고 컴퓨터는 아예 상상하지도 못했던 문화환경을 지내왔습니다. 변변한 대중매체가 없어 어차피 도서에 친숙하게 되였지요. 그런 우리의 과거와 달리 다양한 매체에 로출된 요즘 세대가 독서에만 매여 있는다는게 사실 쉽지않은 일로 되여버렸습니다. 그만큼 인터넷, 모바일등 을 통한 다양하고 현대화한 기기들을 통해 새로운 독서방식이 새 세대들에게 널리 풍미되고있습니다.   한춘:   도서는 인류문명에서 지금까지 창조한 가장 최고, 최상의 문화자원입니다. 이 자원을 어떻게 잘 활용하는가 하는것은 한 사람의 성장에 너무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독서취미는 어렸을 때부터 양성하여야 하는것이지 다 큰 다음에 새로 독서습관을 키운다는것은 가능성이 별로 많지 못합니다. 다른 하나는 만약 문학을 지망한다던가 인문과학에 취미를 붙였다면 몰라도 대체로 일반 사람들에게 있어서 에니메이션 등을 통해 이미 명작의 내용을 거의 다 알게 되면 앞으로 명작 본문을 읽을 욕망이 사라지게 될것입니다.결과 그는 명작의 매력이 어떤것인지 모르게 됩니다. 명쟉을 읽고 읽지 않는것은 한 사람의 문화품위와 관계되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하긴 컴퓨나 테레비가 없을 때도 명작을 제대로 읽은 사람은 많지 못합니다. 취미생활이 아주 다양해진 지금 작가지망생이 아니면 꼭 명작 원작을 읽어야 한다고 고집한다것 또한 고루한 생각일것입니다.    김혁:   네, 절주빠른 요즘의 현대생활에서 몇권 지어 수십권짜리 세계명작을 쌓아놓고 읽어 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봐야겠지요. 오래된 작품의 문장호흡이나 원작의 리듬이 요즘 사람들의 감각에 적절히 부응하기 어려운 등 여러가지 탓도 있을 것이구요. 때문에 명작을 번안함에서의 현대독자들의 새로워진 감수에 맞추기 위해 제작자들은 고심하고 있지요. 그 좋은 일레가 삼국지라고 생각합니다.   기존에도 중국 방송국들은 삼국지를 드라마로 만들어왔지만, 이번 작품은 완연 다른 뚜렷한 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력사를 보는 시각이 달라졌습니다. “삼국지”의 재래의 판본들은 전체적으로 류비를 높이 평가하는 반면 조조를 폄하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이러한 틀을 버리고, 삼국의 인물들을 상대적으로 공평하게 그려냈으며 “간웅” 조조를 시대의 영웅으로 발굴해 새롭게 력사의 무대에 올려세우고 있습니다. 우리가 “삼국지”하면 무조건 그 장면으로부터 시작되였던 “도원결의”는 이번 작품에서 아예 생략해 버렸습니다.   언어면에서도 기존의 작품들이 정통사극 형식을 따르면서 매우 “난해한” 용어들이 많았다면, 신작의 경우에는 신세대의 구미에 맞는 말들로 가득합니다. 또한 컴퓨터그래픽의 도움으로 웅장하고 스케일이 넘치는 화면이 가득합니다. 이러한 시도로 바쁜 절주에 지친 사람들 그리고 다양한 참조계의 “성찬”에 미뢰을 잃고 갈피를 잡지못하고 있는 독자군에게 명작의 진미를 다시금 환기시키고 있지요.   서점가에서 보니 “자동차족(汽车族)”들에게 명작의 일독을 권하는 코너가 있었습니다. “자동차족들의 CD명작”이라는 이름으로 세계명작 고전들을CD로 제작하여 시리즈로 나오고있었습니다.  정말로 좋은 시도라 볼수 있습니다. 명품차를 몰고 달리면서 “동으로 흐르는 강물/ 물거품이 영웅들의 시비성패 다 씻어가 버렸네”하고 “삼국지”를 경청하는 장면, 그야말로 현대인의 맛과 멋이 우러나는 쿨한 풍경이 아닌겠습니까!   아닌게 아니라 요즘의 젊은 세대들에 의해 온라인에서 절찬을 받으며 련재되고있는 “타임머신 삼국지”에서는 “보마”승용차를 몰고 동한말기로 돌입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여기서 명작의 패러디 현상에 대해서도 얘기해 볼가 합니다. 명작에 대한 패러디는 상업에 치우친 결과물일가요? 아니면 명작에 대한 비하일가요?   한춘:    명작의 페러디 현상을 단순한 모방작으로 국한시키는것이 아니라 넓게 파생작품으로 확대하여 볼때 할말이 많아집니다.    십수년 전 섬서성의 유명한 작가 가평오(贾平凹)가 장편소설 “페허의 도읍(廢都)”을 발표한 즉시 평단의 빛발같은 지탄을 받았다. “금병매”를  흉내냈다는 것입니다. 내가 읽어보아도 그 지탄이 과분한것은 아니라고 생각되였다. 왕씨 노친이 서문경에거 금병매를 접근할때 술상에서 맘을 떠는 열가지 수작을 서술한 “금병매”와 “수호전”의 그 단락을 그대로 옮겨 놓았습니다. 그러나 그 작품은 서안일대의 인정세태를 반영한 작품으로는 수작이 틀림이 없다. 곽경명의 성공작(成名作) “꿈속에 지는 꽃 그 얼마이던가”는 완전히 도작이라는 볍원결론까지 나온 작품입니다. 비록 그가 도작한것은 명작은 아니지만 그가 도작하여 새로 쓴 작품은 베스트가 되였다. 곽경명은 도작이라는것을 승인하면서도 공개사과서는 절대 쓰지 않겠다고 우겨 지금까지 나왔다. 이처럼 패러디 현상이 문단을 흐리는 일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내가 말하려 하는것은 이런 패러디가 아니라 파생작, 이를테면 명작을 견본으로 한 다른 예술쟝르의 개작, 예하면, 후속작(續作), 개작(아동판, 축소판), 드라마, 영화, 회곡, 만화, 에니메이션, 음악, 미술작품 등을 두고 몇마디 할 말이 있습니다. 우선 말하고 싶은 것은 그 어떤 형식으로 파생되었던간 명작 원작은 이로서 괴멸됩니다는 점입니다. 즉 원작은 사라지고 개변된 작품만 살아있게 됩니다. 개변된 작품은 원작을 두번이나 껍질을 벗기는 작업을 한다. 첫째는 예술형식의 개변이요, 두번째는 시대적 개변입니다. 부동한 예술 형식은 부동한 예술 언어가 있기 때문에 아무리 원작에 충실한다하여도 원작 원유의 예술의 매력을 살려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동한 시대에 부동한 해석이 있기 때문에 원작의 원유 예술의 지향과 멋과 맛과 향기를 변형없이 살려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지금 중국에서 열기를 올리고 있는 드라마 “신편삼국연의”와 “신편수호전”, 그리고 얼마전에 구설이 많았던 “신편홍루몽”은 거대한 투자와 최고의 출연진, 최고의 연출 들이 동원되었지만 다른 사람은 모르겠는데 나는 보다가 그만 두었습니다.  원작에 물든 사람을 끌기에는 택부족한 것입니다.   “삼국연의”나 “수호전”은 그나마 전쟁장면이나 격투 장면이 있어 스토리가 재미있기 때문에 일정하게 안구를 흡인할수 있지만 “홍루몽”은  안구를 끌수 있는 장면을 만들 그런 ‘감’이 별로 없어 드라마의 매력은 전혀 볼품없이 됩니다. 예하면 림대옥의  ‘명작’, “홍루몽”의 주제시라고 할수 있는 “꽃을 묻으며 읊은 시(葬花詩)” 는 림대옥의 애절한 심경을 가장 핍진하게 전달하는 대목입니다. 소설을 읽는다면 이 대목에서 천천히 음미하면서 림대옥의 심정을 가늠할 수 있지만 영화나 드라마는 일차적인 시청각 예술로서 시청자의 시간적 음미여지를 주지 못한다. 때문에 림대옥의 인물성격을 요해하는데 일정한 장애를 설치하게 됩니다. 이와같은 예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명작은 명작대로 하나의 문화자원으로 존재하고 자원은 그것을 활용할때라야 충분히 자원의 가치를 발휘하게 됩니다. 문화자원의 가치는 시장가치와 예술가치가 있습니다. 한때 중국에서 “문화가 무대를 만들고 경제가 주역이 되어 출연한다”라는 말이 성행했고 각지의 관원들의 입말이 될 정도였다. 그때 나는 이 말에 어페가 있습니다고 생각했습니다. 문화도 하나의 산업이 되어 얼마든지 재부를 창출할수 있습니다는 일념이 선것입니다. 장이모오의 영화 한편의 입장권 요금이 2억원을 넘는것이 있습니다고 하니 그가 창조한 문화제품의 재부는 대단한것입니다.   명작의 여러가지 파생물은 문화자체가  문화자원을 개발하여 일정한 예술가치와 시장가치를 잘 결합시키려는 한 도경이라 말할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월극(越剧)  “홍루몽”은 원작의 묘미를 다 살려내지는 못했지만 월극으로서의 예술미는 충분히 표현하였으며 또한 월극이 중국의 국수(國粹)나 다름없기 때문에 문화자원을 잘 활용한 예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시장을 겨누고 명작을 리용하는것은  예술의 ‘매력’이 아니라 호기심을 자극하는것일뿐입니다. 지금 많은 명작 파생물에 돈냄새가 너무 나는것이 현실이며 이 또한 어쩔수 없는 시장경제의 한 단면이라고 생각합니다.   김혁:   네 같은 생각입니다. 명작은 영화나 예술 작품에 무궁무진한 모티브를 제공해왔습니다.   원형 그대로가 아닌 쟝르와 국적, 세대간의 벽을 넘어 새롭게 재탄생된 명작들이 수두룩합니다.   “서유기”의 경우를 보아도 그 패러디 작품들이 수두룩한데 그중 홍콩의 코믹영화의 선두주자 주성치가 패러디한 몇부는 이제 오승은판 서유기가 아닌 주성치판 서유기로 새로운 경전으로 자리매김되여있습니다. 영화에서 손오공은 시시때때 깝쳐대는 원숭이가 아니라 사랑의 순애보에 빠진 인물로, 당승은 진지한 승려가 아닌 수다스러운 아낙네로 나오고 대사도 지어 영어나 신조어로 란무하지만 그 기저에 깔려있는 사랑이라는 영원한 주제 그리고 제법 깔끔한 촬영화면, 공력들인 몬따쥬 구성으로 영화팬들의 환영을 받고있는것입니다.   그러데 문제는 시장경제에 매여 란발하는 차용이나 그 시장의 생리에 무릎꿇은 조야한 개편입니다. 어느 세계적인 피겨경기에서 명성에 대해 급급한 욕망으로 젊은 피겨선수가 히틀러의 복장을 하고 나치스의 행위를 패러디하다가 그자리에서 분노한 관중들과 심판들에 의해 쫓겨난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또 고전의 굴지로 꼽히는 “홍루몽”도 “외설 홍루몽”이라는 아예 에로영화로 개편된 일례도 있습니다.   이렇게 그 패턴의 정신적 진수가 아닌 겉면에 대한 모방에만 그치고 지어 왜곡한다면 그건 오래가지 못할뿐더러 독자들의 타매를 받게 되는거지요.   이처럼 다양한 가치의 혼돈세계에서 자맥질하고있는 현대인들은 자신의 모랄(moral)을 찾고 패턴(样式)을 찾는 과정에 명작을 패러디 하고 적극 번안하면서 그 무진한 매력속에서 자신의 생활에서의 답안을 찾으려 합니다.      그래서 또 명작을 차용한 직장생활 지침서들도 수두룩히 쏟아져 나오고있지요.   한춘:   2003년 성군억(成君憶)이 “삼국연의로 본 경영관리(水煮三国)”란 책을 출판하여 한때 베스트가 되였습니다. 그는 중국 본토에서 가장 환영받는 경영류 도서작자라는것을 대충 알고 있었고 또 “삼국연의”와 경영을 어떻게 비빔했는가가 궁금하여 해적판 한 권을 구입해 보았다. 제법 재미있게 썼다. 다른 경영류 도서를 읽지 않아 비교할수 없은 탓인지 인상이 괜찮았다.매마르고 까다롭고 추상적인 경영학, 시장학, 관리학의 이론을 삼국지의 인물에 담긴 이야기와 묘하게 빈죽하여 유모어적이고 해학적으로 '정숙'하게 썼다. 새롭고 기이하고 생동하고 재미있는것을 추구하는 독자들의 독서구미에는 맞을것 같았다.     2005년 여름 마침 성군억이가 할빈에 와서 서명판매활동을 가지게 되였다.그날 서명판매가 거의 끝날 때쯤 내가 그 앞에 나타났습니다. 책 한권을 사든 나는 그에게 기자인데 몇마디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 있습니다니깐 시간이 없다면서 사절했습니다. 하긴 그는 중국 경영류 도서 1인자라는 평가를 받는 사람이니깐 지방신문의 기자쯤은 별로 눈에 차지 않았을것입니다. 이때 내가 한국의 출판계와 잘 아는 사이인데 이 책은 전에 이미 읽어보았고 시장전경이 괜찮아 보여 한국과 판권무역을 추진할 생각이 있습니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내가 그를 찾아 본 주요 목적이기도 합니다. 그의 눈에 반짝 정기가 돌았더군요.메일주소와 전화번호를 받았습니다.후에 메일이 두세번 오고 갔는데 판권가격이 맞지 않아 판권 무역은 파탄 되였습니다. 그후에 도서시장을 보니 성군억의 '水煮'란 아이디를 빌려 후삼국이니 초한풍류니 춘추전국이니 잇달이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복제품이 이처럼 줄지어 내려오는 현상은 력사를 설쩍 데쳐 낸것이 아니라 아예 폭삭 무르게 끓여 버리고 말게 된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이런 도서는 독서구미나 당기게 할수 있지 직장생활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할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하긴 부동한 직장인에게 부동한 역할이 있겠지만 이런 직장 지침서에 취급한 그 비결, 책략, 수양,인격, 품위 등은 어느 한두권의 책을 보아 형성되는것이 아니라 현실상생활중에서 터득하고 갈고 닦아야 하는것입니다. 경영관리는 과학입니다. 현실의 시장경제는 성실, 신뢰를 앞세웠을 때라야 그것이 장기적인 운영이 가능합니다. 일차적이고 일시적인 수작을 쓰는 한탕치기로는 그 성공을 보장받지 못할것입니다. 독서 취미가 았는 사람이라면 좀 문학적으로 다룬 책자를 선택해 재미로 읽고 유모감이나 해학담을 키우는것쯤은 바랄만 합니다. 전업 리론이 아닌 이야기식 이른바 '경영학'책은 실제 경영에 도움을 주지 못할것이라는게 나의 견해다.그래서 나는 경영, 관리 지침서는 이 한권으로 완전 졸업했습니다.      김혁:   요즘은 “시크릿(秘密)”이라는 지침서가 대세이군요. 인생을 뒤바꿀 마법 같은 비밀에 대해 탐구한다는 책인데 돈, 건강, 인간관계, 행복 등 인생의 모든 면에서 그 비밀을 활용하는 법을 가르치는 책, 한국에서도 중국에서도 여러가지 판본으로 나와 있더군요. 요즘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지침서와 같은 논픽션(非虚构)서적들이 소설과 같은 픽션(非虚构)서적보다 더 잘읽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점마다 지침서 전문코너가 따로 비치되여있는거지요. 한춘:   인생지침서는 이와같은 실리적인 지침서와 좀 다르다고 생각됩니다. 예를 들어 한때 베스터 1위에 올랐던 “누가 나의 치즈를 옮겼는가(谁动了我的奶酪)”는  인생의 생존 본질은 부단한 추구와 노력과 애로를 극복하는 과정이라는 도리를 설파하고 있는데 이는 가히 실천에 옮길수 있는 인생지침서다. 인생 지침서는 심심하면 이책 저책 둘쳐 읽는다. 그중에서 나를 가장 끄는 인생지침서는 공자의 “론어”와 로자의 “도덕경”입니다.  남들은 이 책을 치국(治國)지침서로 읽는다는데 나는 수신(修身)지침서로 읽고 있습니다.     김혁:   네. 번안작품, 애니메이션, 지침서 여러가지 참조물을 통해 여러가지 문체로 명작을 다시 접해보는 그 감수의 농도와 줄기가 다릅니다. 요즘 저도 명작들을 다시한번 체계적으로 읽어보려고 독서계획을 다시 세우고있습니다. 바쁜 일정이지만 하루에 단 몇페지씩 읽더라도 오랜 시간을 잡고 죽- 다시 읽어내려가려 합니다. 사실 살면서 맞닥뜨린 불운한 운명때문에 희망이 저버려지는 순간순간에도 버릇처럼 되여버린 독서로 명작들을 다시금 읽으며 감동을 받고 아픔을 잊는 시간은 내 창작과 독서생애에 가장 값진 시간이라 할수 있습니다. 그만큼 문학도 시절 읽은 눈과 지금의 읽고있는 눈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어제는 남이 읽으니 나도 읽는다는 식으로 멋모르고 닥치는 대로 읽었고 지어 학교와 선생들의 강요에 가까운 권장에 숙제하듯이 읽기까지 했던 명작들 을 다시 읽으면서 그 작품들의 갈피갈피에 면면에 녹아들어간 놀랄만한 현재성과 보편성을 나이들면서 하나씩 깨치는건 남다른 맛입니다. 10여년후, 지어 20여년후 다시 읽는 순간 나는 그전에 느꼈던 전혀다른 백설공주와 어린왕자와 달따냥과 에드몽 당떼스와 에스메랄다와 보바리와 그랑데와 쏘렐과 닥터 지바고를 만날수 있었습니다. 이전에는 흥미진진 스토리를 쫓아가며 읽었다면 지금은 그 스토리를 있게한 력사와 사회배경을 읽게 되고 이전에는 주인공의 용모를 살폈다면 지금은 주인공의 내심 심경을 살피며 읽게됩니다. 그리하여 진지한 얼굴,  성숙된 얼굴로 명작과 다시금 무릎을 맞대고 앉아 이전의 주인공사이의 해피엔딩에 대한 바람과 같은 설익은 질문이 아닌 전혀 다른 인생과 사랑과 종교와 민족에 관련된 대담을 건넬수 있었습니다. 이전에 “명작”을 읽었다면 지금은 “명저”를 읽게되지요. 여기서 작(作)은 지을 작이지만 저(著)는 두드러질 저로도 읽히기도 합니다. 말장난같지만 그저 이름난 작품에서 빼여나고 두드러진 작품으로 그 진미를 알고 읽게 된거지요. 명작에 대한 진수를 인제야 깨쳐 알고 읽기시작했다는 얘기가 됩니다.   그만큼 책을 많이 읽을수록 외려 생겨나는 지적 공허감, 그 공복의 꾸르럭대는 욕망의 소리 같은 허전한 부분을 달래주는 것이 바로 명작이 아닐가 생각해봅니다.   명작은 세계 문화권의 공동 문화자산이며 강물처럼 흘러온 인류문화의 원천 같은 것입니다. 인류의 유산가운데 그렇게 훌륭한 명작들이 우리 주위에 널려있다는 것은 사실 얼마나 복된 일인가요. 이러한 명작들이야말로 우리의 인성을 고매하게 만들고 정신적 생활을 풍요롭게 하여 삶의 조건을 바람직하게 꾸미는 자양분이 되겠지요.   읽지 않고서도 아는듯한 명작, 때로 아는체 했던 명작, 방대한 분량앞에서 읽을 기회를 놓친 명작, 과거 발달되지못한 참조계나 왜곡된 미디어로 잘못 접했던 명작. 그러나 삶을 충만하게 채우고 진정한 “나”를 찾고 싶은 모든 이에게 동서양의 명작들은 여전히 커다란 감동으로 서가의 한구석에서 크게 팔을 벌린채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는지 모릅니다.    오늘 온라인으로라도 이렇게 좋은 말씀 듣게 되여, 아니 보게 되여 감사합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그리고 저도 빨리 컴퓨터와 머리속에 시스템을 새로 깔도록 하지요.   한춘:   감사합니다. 새로운 시스템을 깔고 새로운 이야기를 나누도록 합시다. 안녕히.   "도라지" 2011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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