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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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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억겁(億劫)의 꽃, 그 꽃잎을 세며 댓글:  조회:516  추천:11  2020-08-01
제1회 "두만강 문학상" 소설상 수상소감   억겁(億劫)의 꽃, 그 꽃잎을 세며   김혁     할리우드의 영화거장 스필버그 감독의 작품중에 《쥬라기공원》이라는 영화가 있다. 영화에서 컴퓨터 그래픽기술로 1억년전 쥬라기시대에 지구를 제패하다가 사라진 공룡에 대한 완벽한 복원을 보며 감탄을 련발했었다.   공룡이 살던 그 시대 함께 공생했던 식물중에 우리 두만강 붉은 련꽃이 있다는것을 알게 된것은 그후의 일이였고 우리 신변에 공룡이 살던 1억년전의 꽃이 아직도 만개해있다는 사실에 또 한번 놀랐다.   우리는 왜 사라진것에 대해 연연하면서 수억대의 돈을 퍼부어 컴퓨터기술을 극구 활용해 괴물을 복원해내면서도 여태껏 우리와 함께 해온 꽃에 대해서는 린색을 보이고 무관심을 보이고있는걸가? 그 꽃이 소담하게 어우러진 삶의 터전들을 버리고 홀홀히 떠나버리는걸가? 이러한 련상이 내가 이번 소설 《련꽃밥》을 쓰게 된 계기이다.   부침을 겪고있는 우리의 민족공동체, 텅 비여가는 삶의 터전과 그 터전에 홀로 남아서도, 억겁의 시련을 거치면서도 의연하게 피여있는 련꽃, 그 꽃에 대해 단지 완상(玩賞)의 여유로운 눈길로만 바라볼수 없었던것이였다.   련꽃은 깊고 더러운 곳일수록 더욱 크고 아름답게 피며 다른 종을 섞지 않는 영원한 순종의 꽃이라고 한다. 속세의 번거로움에 물들지 않는 꽃이라 하여 《군자화》로도 불린다. 련잎에 이슬이나 비방울이 앉으면 자신이 감당할만한 무게만큼 싣고있다가 그 이상이 되면 고개 숙여서 자신을 비울줄도 안다. 그래서 《비움의 꽃》이라고도 한다. 련꽃을 종자로 한 소설을 쓰면서 배우게 된 련꽃의 의미다.    그렇게 《군자화》의 자세로 글쓰기의 밭을 경운해나가려 한다.  세월이라는 꽃잎을 세고 또 세며 좀더 성숙된 완상의 눈길을 가지기 위해 고독과 갈증을 견디며 스스로의 계절을 만들어 글줄에 꽃씨를 심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혀가는 일을 쉼 모르고 반복하고있다.   명리에 둔감하고 고독을 외려 달가워하는 많은 문학인들의 노력에 받들려 피페해진 문화풍토에서도 문학은 그 실추되고저 하는 가치를 멀미나게나마 이어나가고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또한 이러한 군자화의 자세들이 꽃줄기처럼 기조를 잇는다면 흔들리는 파고(波高)를 이겨내며 우리의 꽃을 만방에 향기 그윽하게 피워낼것임을 난 믿고싶다.   람루한 내 삶이 비쳐든 이야기들을 연거번거 수상작으로 뽑아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2014-05-29    
8    정론직필(正论直笔)의 칼럼니스트를 꿈꾸다 댓글:  조회:706  추천:21  2019-06-26
  수상소감   정론직필(正论直笔)의 칼럼니스트를 꿈꾸다   김혁   10대에 필을 들어 붙박이로 글쟁이의 길을 걸어온지 30여년 이러구러 문학상들을 두루 섭렵해 왔다. 하지만 칼럼상은 처음이다. 그만큼 우리 매체와 문단에서의 공식적인 칼럼상도 이번이 처음인줄로 알고 있다.   사실 칼럼은 나에게 익숙하다. 작가와 매체기자의 이중의 신분으로 살아왔기에 칼럼은 내가 애용하는 또 다른 쟝르의 하나였다.  80년대 “길림신문”의 초창기, 1면의 현요한 자리에 “반디불”이라는 칼럼란이 있었는데 그 란에 북향, 설봉, 각설이 등 무려 13개의 필명을 번갈아대며 이 쟝르에 심취했던 적이 있었다. 그외에도 지금까지 거의 모든 우리말 언론지와 문학 간행물들에 독서칼럼, 력사칼럼, 인물칼럼, 영화칼럼, 문화시론들을 련작해 왔었다.   어느덧 나는 이 문단에서 칼럼을 가장 많이 써 온 한 사람이 돼버렸고 그런 나에게서 칼럼은 삼시세끼 밥처럼 익숙하다. 물리지 않고 소박하고 친절하다, 그리고 보배스럽다.    지금은 전직 소설가의 길을 걷고 있지만 나의 의욕으로 넘치는 칼럼창작은 아직도 저돌적인 진행형이다. 그리고 수상하는 이 시각까지도 이 쟝르의 개념과 의미에 대한 사유의 절차탁마(切磋琢磨) 는 계속되고 있다.    뉴미디어의 발달로 인하여 정보의 소비자가 생산자가 되면서 다양한 의견 표출과 실시간 소통, 공유가 가능해지고 그를 보여주는 글들이 다양한 플랫폼들을 타고 실시간 넘쳐 나오고 있다. 대중적 형식으로서의 수감, 단평, 댓글 등 “칼럼 사촌”격의 글들이 인터넷, 위챗계정, 인스타그램에 넘쳐나고 있으며 칼럼의 분야도 려행, 영화, 음악, 정치, 경제, 시사, 심리, 과학, 의학, 음식, 등 으로 점점 세분화되며 다양해지고 있다. 이를 가리켜 전문가들은 “대중평자의 시대”라고들 말한다.    1880년 전후 미국에서 발생하여 “뉴욕저널”에 주간 뉴스해설의 형식으로 련재된 것이 그 효시, 칼럼은 원체 가십과 유머를 중심으로 하는 글이였다고 한다.  하지만 변혁기를 살고 있는 우리 조선족공동체사회에서 칼럼은 경편(轻便)보다는 중후한 글발이여야 할 것이다. 위기설을 껴안고 부침을 겪고있는 조선족공동체는 더구나 정통적인 진지한 언론 글에 목 말라한다.   지금은 진실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사회의 양태들을 보여주고 진맥하는 정론직필(正论直笔)의 칼럼의 역할이 매우 막중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저널리즘 고유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다양한 목소리의 등장에 기대를 가져 본다. 지능로봇이 글을 쓰는 시대로 세상이 아무리 바뀌여도 독자들은 여전히 제대로 된 미디어의 전달을 원한다. 현실에 대한 직접적이고 다층적인 경험, 해석과 판단, 주장과 요구로 련결되는 보다 완성된 칼럼과 같은 쟝르의 출현을 언제고 바라고 있다. 또한 사회의 면면과 수요를 드러내는, 독자의 요구를 잘 담아낸 시효성있는 칼럼에 반응하고 갈채를 올릴 것이다.   여느 프로필에서 나는 소설가 외에도 력사칼럼니스트라는 자칭 직명을 굳이 붙여왔고 련작칼럼집도 책자로 펴냈었다. 나의 필은 향후에도 소설과  같은 픽션뿐아니라 애대하는 논픽션 칼럼으로도 마냥 달릴 것이다.  칼럼으로 인한 수상의 소감이 또한 편의 칼럼이 돼버렸다. 의미만만인 첫 칼럼상에 과람하게 뽑아준 관계자 여려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 2019년 6월 20일       
7    2017 "민족문학"상 수상소감 댓글:  조회:1762  추천:35  2018-03-27
. 2017“民族文学”年度小说奖获奖感言 .   "灿烂如锦的民族文学"   金革(小说家,延边作家协会副主席)       尊敬的领导, 尊敬的评委,尊敬的同行作家们元宵节好!   此时此刻,请允许我弯下腰来,首先向勾起我无限怀想的延边山水,向我笔下的圣山- 长白山、金达莱花、和图们江鞠躬,然后再向我故乡的穿白衣素装的亲人们鞠躬。   一个民族的文学是由这个民族的人民经过很长时间的摸索,奋斗所创造出的,它在这个民族历史的进程中成为这个民族辉煌的成就的重要一部分。   在接受民族文学年度奖这个奖项之际,还允许我简要地追溯一下中国朝鲜族文学的源流吧。   众所周知中国朝鲜族是过境民族。 19世纪末,由于自然气候的恶化,以及日帝国主义的统治和镇压加剧,朝鲜人纷纷渡江移民到东北地区和中国大地开始定居下来。 这期间文人辈出,他们开始用文学语言形象化地描述东北朝鲜人的生活,这一时期可以说拉开了朝鲜族文学的序幕。 在日帝铁蹄下整个朝鲜半岛形成“文学空白期”的黑暗年代里,被称作“北间岛”的中国东北部的延边地区成为了能够让我们朝鲜民族的文学得以存续的唯一空间。就成为了延续这一民族文学的血脉,填补了民族文学空白的一方天地。   文学是维系一个民族的生存、延续的灵魂。经过这种烈火淬炼的朝鲜族文学拥有了独特的地缘和文化特性。 这样一来,中国朝鲜族文学就开始呈现出与韩国、朝鲜,以及与其他少数民族迥然不同的独特面貌。在中华文化这片土壤上开始绽放出朝鲜族文学这朵崭新的花蕾。 我们中国朝鲜族文学拥有历经65年风风雨雨的纯文学期刊《延边文学》,拥有享誉全亚洲的“诗圣”尹东柱,拥有有“朝鲜族的鲁迅”之称的文学大家金学铁先生。   在全球一体化的现代语境下,我们要形成适应全球化潮流的新思维,在此基础上,发扬勤劳民族坚韧不拔的忘我精神投入其中,才能作为中华民族大家庭优秀的一分子,在世界文学的殿堂占据哪怕微小却足以傲人的一席之地。 我们一直在努力。 谢谢大家!   2018年3月2日    
6    민족문학사의 텃밭에 더불어 피고지고 댓글:  조회:1155  추천:20  2017-09-06
. 한국문인협회 해외문학상 수상소감 .   민족문학사의 텃밭에 더불어 피고지고   김 혁   8월 15일의 그날, 문인들과 함께 윤동주 생가에서 시인 탄생 100주년 기념활동을 마치고 돌아 오던 귀로에서 수상소식을 접했습니다. 10대에 등단하여 문단이 제정 한 문학상을 두루 수상했지만, 이번에는 특별히 해외에서 날아 온 희보(喜報)에 또 한 번 문학도 시절 첫 문학상을 수상했을 때처럼 저으기 격정에 꺼둘리는 나를 느꼈습니다. 금번의 수상작인 “춘자의 남경”은 조선족 문단에서 처음으로 되는 위안부 소재의 장편소설입니다. 불과 수십년 전에 한국과 중국의 우리의 할머니 세대들은 일본군의 추악한 만행의 희생자로 전락되었습니다. 수십 만의 여린 하얀 꽃들은 누런 제복의 일본군에 끌려가 청춘을 검게 유린당했습니다.   소설의 들머리에 나는 지난 세기 일제가 자행한 북간도 지역에서 일어난 장암동 대참안을, 말미에는 고도(古都) 남경에서의 대학살사건을 필묵으로 세세히 재현했습니다. 그 나락에서 몸부림쳤던 우리 겨레의 수난을 눈물로 적었습니다.  “춘자의 남경”은 중국작가협회에서 번역지지작품으로 선정되여 이미 번역을 마쳤으며 곧 우리말과 중국말로 출간되게 됩니다. 한국에서도 일전 출간이 확정되었습니다.     그동안 오로지 문학에 매진하면서 느낀 바이지만 우리 조선족은 비록 광대한 중국땅에서 변강의 오지에 위치해 있지만 그렇다고 우리 문학의 지정학적 위치는 “변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주민족으로서의 중국조선족은 지난19세기 후반부터 고향을 잃은 설음을 안고 통한의 강을 건너 중국으로 이주하여 하나의 민족공동체를 형성했습니다. 청국인들의 땅에서 개간을 시작하고 일본인들과 항쟁하며 새로운 기원을 열었습니다. 거치른 땅의 개척과 피어린 항쟁의 와중에도 “이역하늘 강가에서 말 달리던 선구자”들의 “거친 꿈”은 문학의 한 형태로도 만개되었습니다.   이 무렵 안수길, 강경애, 최서해 등이 이 곳을 주무대로 문학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온 겨레가 애대하는 윤동주도 바로 이 곳에 태줄을 묻었습니다. 그리고 조선족 작가 김창걸과 시인 리욱 등을 배출했으며 이들이 바로 조선족 문학의 비조(鼻祖)로 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 문단에는 또 “조선족의 루쉰”으로, “구소련의 량심” 솔제니친과도 비견되는  “조선족문학의 거목” 김학철 옹이 있습니다.   이들이 이룩한 눈부신 문학적 유산은 한민족 디아스포라 문학의 한 전형이 되였고 이들은 한민족 문학사의 텃밭에 더불어 장려(壯麗)한 꽃으로 피어 올랐습니다.   조선족 문학은 한민족 문학과 정신적, 문화적 연계를 확보해 오면서 중국의 역사 변천과 그 속에서 영위하고 있는 조선족의 삶을 나름의 서정과 서사의 힘으로 보여주어 왔습니다. 그러할진대 이질적 문화를 수용하면서도 우리 문화를 승계하고 다시 모어로 담아내는 우리 조선족문인들의 고심이야말로 더욱 값진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때문에 오늘의 수상에 저는 더 다른 가치와 소중함을 부여해 봅니다.   그날 우리 문인들은 복원 된 명동학교 옛터에서 윤동주네가 불렀던 교가를 목청껏 열창했습니다. 이 시각 그 교가의 한 구절이 떠 오르는군요.   흰 뫼(백두산)가 우뚝 솟아 은택이 호대한/ 한배검(단군)이 깃 치신 이 터에 / 그 씨앗 크신 뜻/ 넓히고 기르는...   필대를 올곧게 고누고, 민족을 위한 일에 일필(逸筆)하고저 하는 저의 소명의 의지에 격려의 감로수를 부어준 한국문인협회에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7년 9월 1일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5    뼈아픈 몸으로 쓴 뼈아픈 사람들의 이야기 댓글:  조회:2610  추천:20  2014-10-23
​ . 수상소감 . ​ 뼈아픈 몸으로 쓴 뼈아픈 사람들의 이야기 ​ 김혁   어제밤 상해에서 날아왔습니다. 중국작가협회에서 조직한 로신문학원 강습반에서 늦깍이로 공부하고있던차 수상소식을 접하고 밤도와 날아온것이였습니다. 공항터미널에는 늦은밤에도 돌아오는 사람들 그리고 떠나려는 사람들로 붐비였습니다. 꼭 마치 금번에 수상한 저의 소설속 고향을 찾아온 주인공의 경우와 같은 경상들이였습니다.   모든 작가들의 모든 작품에는 잊을수 없는 그 창작동기와 과정이 있겠지만 금번의 수상 소설은 유달리도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태여났습니다. 지난해 봄, 수상한 문학후배를 축하해 술을 사주었다가 넘어져 갈비뼈 다섯대를 분질러 먹는 엄중한 락상(落傷)을 당했습니다. 뼈를 고정하기 위한 가죽조끼로 몸을 동이고 꼬박 두달 가까이 미동도 하지 못하고 침상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와중에도 무엇보다 글을 쓸수 없다는 고통이 컸습니다. 처녀작을 발표해 30년 가까이 글밭을 경운해 오면서 어느 하루도 글을 그적거리지 않은 날이 없었던것 같네요. 이제는 내 생활의 골골샅샅에 체질화 된 그 창작행위를 할수 없다는 괴로움이 육신을 으깨는 아픔보다 더욱 컸습니다. 두달후 간신히 상반신을 일으키게 되자 절박하게 노트북을 무릎우에 펼쳐들었고  그동안 누워서 뼈물러 왔던 이야기를 써내려갔습니다. 그 글이 바로 금번의 수상작인 “뼈”입니다. 지난 90년대 말부터 나는 “개인의 아픔이라는 유리파편우를 걷기보다는 대중의 아픔을 대변해 주는 그런 작가가 되여 달라” 한 원로작가의 당부에 깨도를 머금고 그동안 불운한 내 운명에 대해 기술해 왔던 작품들에서 탈피하여 우리 공동체의 아픔을 다루는 작품의 창작에 주력하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조선족테마소설”이라는 부제를 달고 그런 주제의 작품들을 수십편 창작해 왔습니다. 한결같이 민족의 생명과 령혼안에서 하나 된 마음으로 함께 아파하면서 그런 글월들을 써내려  둔필을 부지런히 놀리며 땀과 눈물을 바쳐왔습니다. 금번의 수상작도 그 일환으로 써낸 작품중의 한 부입니다. 떠나는 사람들, 남겨진 사람들, 비여가는 둥지… 뼈를 다친 한 주인공의 육신의 아픔을 공동체 전반사회의 아픔으로 승화시키려 꾀했습니다. 글을 쓰면서 옆구리를 송곳끝처럼 쑤시는 간헐적인 아픔의 여운때문에 주인공의 아픔을 그나마 핍진하게 재현할수 있었던것같습니다. 오늘 이 영예의 자리에서 또 한분을 떠올리고자 합니다. 연변텔레비죤방송국에 몸담그고있던 장하도씨입니다. 30년전 룡정에서 저와 함께 “보름회”라는 문학동아리에 가입하여 문학의 꿈을 키워왔던 친구입니다. 그동안 잠시 문학을 멀리했던 그는 지난해 부터 접었던 꿈을 펴겠다고 다시 필을 들었고 평론가를 꿈꾸며 처음으로 써낸  작품이 바로 저의 금번 수상작 “뼈”였습니다. 너무나 오랜만의 출현이라 그 평론을 보면서 저는 고향에서 함께 문학가를 꿈꾸었던 그이가 옳은가 반문할 지경이였습니다. 그이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해 술한잔이라도 마시려 찾았는데 그는 이미 이 세상에 없었습니다. 새로운 문학에로의 출발을 결심했던 그는 암진단을 받았고 그렇게도 빨리 이승과의 인연을 놓아버렸습니다. 저의 수상작에 대한 평론작품은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되여 버렸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오늘의 영예를 갈라 드리며 고인의 명복을 삼가 빌어 봅니다.   문학이란 인간의 감성과 령혼이 얽혀 있는 정신세계입니다. 때문에 그 감성과 령혼을 노래하는 한편의 글에는 당대의 사회적 현실과 력사적 진실이 함께 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글 속에 있는 사회성과 력사성은 바로 그 시대의 고뇌와 애증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문인은 사회와 함께 할 때에야 비로서 그 존재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좋은 문학은 시대를 증언하고 시대와 함께 영원히 살아 있게 됩니다. 그렇게 나온 글월이야 말로 작가 자신에게 자아 창조를 위한 영원한 기쁨을 주게 되며 그로서 독자들로 하여금 문학의 장엄하고 아름다움 앞에서 갈채를 올리게 할수 있는것입니다. 모든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이 력사와 함께 문학으로서 기록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뜨겁고 치렬한 작가 정신을 가져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이 시간과 공간을 뛰여 넘어 영원히 살아남을수 있는 작품을 써낼수 있습니다. 어느 한 석학은 작가의 정의에 대해 “고달픈 아름다움을 먹으면서 찬란한 은실을 뽑아내기 위해 뼈를 깎는 아픔을 참아내는 려정에 서있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뼈 아픈 육신의 고통을 감내하며 집필해 왔던 그 봄날의 엑스터시의 과정을 잊을수 없습니다. 그러한 고통의 파종과 관개가 있었기에 오늘 이 수확의 계절을 맞이 할수 있은것 같네요. 2005년에 이어 두번째로 “연변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였습니다. 누구보다 힘들었던 이 십년간에도 한사코 필만은 놓지않았던 저의 문학의 궤적에 대한 진단이요, 치하라고 생각하니 감개무량하군요. 값진 문학상을 내려주신 편집, 평심원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래일이면 전 다시 떠나야 합니다. 세시간 가까이 비행기를 타고 서른세개의 지하철역을 지나야 다달을수 있는 로신문학원의 거처에는 49명의 소수민족작가들이 자신이 처한 민족의 운명에 대해 갈파하는 좋은 작품을 쓰려고 배우며 고심하고있습니다. 그들과 더불어 민족작가라는 명운을 지닌 글쟁이로서 응당 민족을 위한 일에 필을 그루박아야하는줄로 압니다. 역마살처럼 오가는 인생이라지만 그 와중에 왜서 떠나고 왜서 돌아와야하는줄을 아는 “행자”의 길을 걷는다면 그 로정이 아무리 힘들고 거칠어도 값지고 행복한거겠지요. 그냥 필대를 휘젓는 짓시늉이 아닌 뼈를 깎는 장인의 노력을 글의 매 매 단락, 행간, 매 글자에 바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 2014년 10월 22일 ​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4    문학이라는 궁극의 다리 댓글:  조회:4378  추천:25  2012-01-17
수상소감   문학이라는 궁극의 다리   김 혁   지난 겨울, 사무실 베란다에서 끊어진 연길교를 내려다 보다 문뜩 강한 언질을 받았습니다. 끊겨진 다리를 지켜보면서 그 다리를 건너야할 사람들에 대한 소설을 만들 령감의 빛을 받았습니다.   몇해전부터 저는 “중국조선족문제테마소설”이라는 부제를 달고 중국조선족 공동체의 아픔과 그 피안을 더듬어 보고저하는 계렬소설들을 장편을 비롯하여 수십편을 창작, 발표하고 있습니다. 금번의 수상소설 “피안교”  역시 나의 그러한 사고와 창작 성향을 보여주는 계렬소설중의 한편이라 할수 있겠지요.   어쩌면 내 문학인생에서 처음이라는 낱말은 바로 “연변일보”와의 인연으로부터 시작되였습니다. 1993년 짧은 수필 한편으로 연변일보 “해란강”문학상을 수상했고 그것이 내 인생의 첫 문학상이였습니다. 그날도 오늘처럼 추운 겨울이였군요. 그로부터 근20년이 흐른 오늘에 다시 어제날8년여 근무했던 “연변일보”로부터 받아안게 된 상, 문학에 대한 나름의 책무와 인과의 끈이 있었나 봅니다.   살면서 우리는 무양히 뻗어있던 다리우에 뚫려진 삶의 어이없는 허방을 발견할때가 있지요. 운명의 줄칼질에 제 앞에 놓인 다리도 문뜩 끊겨져 있습니다. 한두번도 아닌 잔인한 단절들이 너무나 동시다발적으로 밀려 들어왔습니다. 멀미나게 흔들리는 공중다리를 지나는 느낌, 그러나 그 흔들림이야말로 그간의 내 문학적 소신을 지탱하게 해온 힘이였다는 사실을 나는 뒤늦게 알고있습니다. 생경한 고통들은 끊임없이 나를 흔들고 괴롭혔지만 그 멀미나는 경험때문에, 나는 외려 문학이란 이 동아줄을 놓치지 않고 부드부득 잡아쥐였던것 같습니다. 글을 쓴다는것을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허기진 짐승처럼 문학을 삼키며 힘을 얻고 삶을 지탱해 왔구나하는 생각이 드네요.   도무지 삶의 방편이 되여주지 않는 문학의 길, 하지만 어떻게 이 작심의 질주를 멈출수가 있을가요! 문학이란 삶이 지나는 끝이 보이지않는 다리이자, 그 와중에 자기안에 침전된 주체할수 없는 욕망과 오류를 추슬리는 행보이자, 그러다 나중엔 그 모든걸 뛰여넘는 도저한 깨달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깨달음의 대안에로 이르는 길에 어차피 기나긴 다리, 위험한 다리, 끊어진 다리를 지나야하는건 문학인으로서는 의례 통과해야할 숙명의 과업같은것이 아닐가요!   그렇게 끊어진 다리를 수건하며 또 새로운 다리를 놓으며 문학이라는 궁극의 다리를 건너는 나의 “오체투지(五体投地)”의 행보는 계속 될것입니다. 젊음과 어제를 팔아 걸어 온 이 길을 진통속에서 마저 걸어갈것입니다. 멈추지 않을것이며 에돌아가지 않을것이며 더욱이 샛길로 빠지지 않을것입니다.   극히 짧은 편폭을 요구하는 신문소설의 특성상, 짧은 분량에 많은 말을 담으려 욕심을 보인 작품이지만 가려 뽑아준 평심위원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떠벌이지 않고 조용히 작품을 써 온것에 대한 인정이라 생각해두니 고마움이 크네요.   겨울, 더 깊어지고 더 낮아지는 계절입니다. 오늘 저녁엔 조금 춥더라도 내 소설의 모티브가 되여준 연길대교를 한번 노량으로 건너볼 생각입니다. 일심의 등롱 하나 켜들고 “피안교”를 건너는 문학신도의 심정으로…   감사합니다.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3    “불의 제전” 수상소감 댓글:  조회:3095  추천:37  2011-01-06
     
2    그렇습니다, 문학입니다! 댓글:  조회:3374  추천:46  2010-11-09
"제3회" 김학철문학상" 수상소감 . 그렇습니다, 문학입니다!   김 혁         그렇습니다, 문학입니다. 또 한번 해야하는 수상소감을 두고 무슨 말로 운을 떼야할가 생각하다 떠오른 첫마디입니다. 지난 80년대 중기 약관(弱冠) 20의 나이에 필재 하나를 인정받고 파격적으로 “길림신문사”의 기자로 발탁되여 연길로 상경한뒤 나는 선참 “백조”라는 문학협회를 발족시켰습니다.    그때 동명(同名)의 잡지를 만들며 저희 동인들은 창간호에 제자를 써달라고 김학철 현자(賢者)님에게 청탁을 들고저 “한인막고문(閑人莫叩門)”이라는 문패를 달고 있는 현자님 자택의 문을 겁없이 노크한적있습니다. 금방 견고한 체재의 철쇄에서 풀려나와 빼앗긴 시간을 미봉하고자 창작에만 몰두하시고 계시던 현자님은 초라니 같아뵈는 문학도들을 기꺼이 맞아주셨고 왕붓을 허비하여 “백조의 동인 여러분들은 문학협회를 만드는 일보다 견지해 나가는 일이 더 중요한 일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라고 질박하면서도 의미깊은 제자를 써주셨습니다. 그로부터 25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현자님은 학을 타고 먼 서편나라로 가셨고(架鶴西去) 당년의 앳된 문학동인들중에서는 오사모를 쓰고 꽤 큰 관리가 된 사람도 있고 금혁띠를 허리에 두른 수천만 부자가  된 사람도 있고 고향을 버리고 해외로 가버린 사람도 있습니다만 오로지 저 혼자만이 남아서 아직도 어딘가 볼썽스러운 모습으로 문학에 매달려 있군요. 이 6년간 저는6차의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그 고료와 상금으로도 배는 웬간히 굶지않을수가 있네요. 이렇게 문학은 제게서 밥그릇이요.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부적이요, 또한 복잡한 세간을 뚫어보게하는 프리즘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문학입니다. 그동안 커다란 실의에 빠져 4차례의 나를 위한 문학상시상식에도 불참했던 내가 오늘 다소 길고 다소 격앙된 멘트를 이렇게 쏟아내는것은 이번 상이 다름아닌 김학철이라는 이름으로 명명된 상이기때문입니다. 근 40십차되게 이러저러한 상을 수상했고 해외에서도 수차 수상을 했습니다만 우리 중국조선족이라는 족속이 가장 앙모(仰慕)하는 한 현자님의 이름으로 내려지는 상, 이 상이 그렇듯 우리말 권내의 작가에 대한 값진 인정이요 격려라는 그 중후함때문인가 봅니다. 그동안 오로지 서재에 자신을 가두고 고뇌와 침묵의 행간에서 세상과 순치되지 않는 나의 고달픈 운명과 조우하는 동안 나는 몇번이고 김학철 현자님과 다시금 만날수있었습니다. 김학철 문학의 요체는 진실, 혹은 진실한것에 대한 무구한 열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있습니다. 그 열정이 그의 문학에 거리낌없고 주저없는 상상력의 움직임을 용이하게 해주었고 그의 세대, 그의 민족에 다른 작가들에게 찾아볼수 없는 높은 형상의 틀을 부여해준것이라 생각됩다.   진실에 대한 추구라는 점에서 그동안 나는 김학철 현자에게서 은근히 많은 것을 배워왔고 배우고 공유하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물론 그 진실이 성숙되지못한 한 사회적 공동체의 루습에 왜곡되고 간헐적으로 이 문단에 수용될때 나와같은 불운하고 청빈한 작가들은 굴레에 매이는듯한 거북함과 아픔을 느낄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학이 어차피 한 시대를 꼭 겪어나가야만하는 한 개인 혹은 그 군체의 삶에 대한 간파요. 어쩔수없는 오열이라는 점에 나는 작가로서의 의무감을 느끼곤합니다.  그래서 신음하고 오열하고 파렬음을 지르고있는것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 어느 민족의 삶이든 모든 삶은 거대한 상처이며 문학은 그렇게 좌절하고 극복하였던 상처의 기록이며 어제날 선배들에 의해 이루어져왔고 후배들에 의해 오늘도 계속되는 현재 진행형같은것이라 생각합니다. 일상속 저의 허약한 개인은 이미 비대한 세상에 압도당해 무기력해 졌지만 눈물을 닦고 보다 명징해진 시선으로 우리들 삶의 속절없음을 펜으로 고루고 그 펜을 더욱더 날카롭게 벼리면서 한획 두획 세상이란 커다란 실루엣을 숙고된 필로 그려나갈것입니다. 내 소설속 희망 가득한 인물들과 동반해 세상의 거대한 토네이도(龍 券 風)속으로 걸어갈것입니다. 그 로정에서 다만 나의 작품이 빛에 가려진 지난한 어둠속 인간들과 력사의 의미를 제대로 잘 적어내릴수 있기를 여린 필로서는 원할따름입니다.   그렇습니다. 문학입니다! 문학의 길로 인도해주시고 아픔과 상처와 노는 법을 일러주신 김학철 현자님, 그 앞서가는 눈으로 이끌어주신 현자님의 도저히 흉내낼수 없는 길이와 깊이의 사범(師範)에 고마움을 전합니다. 이번 상이 어쩌면 이 비정한 세상에서 힘들게 버텨나가는 후배에게 얹어주는 현자님의 위로의 손길이라 생각하니 그 망자(亡者)의 손길이 현실의 손들보다 그렇게 따뜻하군요.   기왕 문학이라는 이 멀고도 험난한 길을 숙명으로 걷고 있지만 서럽거나 외롭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김학철 현자님은 지금 구천에서 한 문학도의 힘든 땀방울과 서러운 눈물방울을 하나하나 세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결코 자고하지않겠습니다. 하지만 또 결코 나약해지지 않겠습니다. 환멸도 조소도 해탈도 아닌, 다만 이제 시작이라는 긴장된 현실로 나 자신을 설득하고자 합니다.    문학인의 삶을 치렬하게 고고하게 지켜 오신 김학철 현자님의 그 문학 정신에 루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문학입니다!     2010년 11월 5일                                       
1    초심을 잃지않고... 댓글:  조회:3126  추천:77  2008-08-18
제2회 "윤정석아동문학상" 수상소감 김 혁   수상소식을 접하던 그날도 오늘처럼 무더운 날씨였습니다. 많은 작품을 량산하다보니 받은 상 또한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번의 수상소식은 저에게서는 한여름의 더위를 사르는 시원한 청량제같은 소식이였습니다.   모두들 아시고있겠지만 이 몇년간 저는 세상과 담을 쌓고 자숙과 인고의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면벽하는 중처럼 서재에만 묻혀 문학가의 작업륜리에 대해 고민을 거듭해 왔습니다. 치렬한 고민끝에 저는 두가지 화두를 건져올렸습니다. 하나는 우리의 족속을 위한 글을 써야겠다는 깨우침이였고 다른 하나는 아이들을 위한 글을 써야겠다는 각오였습니다. 물론 아주 간단한 명제같지만 오랜시간의 문학수업에서 더듬어낸 궁극적인  결론이였습니다. 우리 조선족공동체는 지금 절체절명의 위기에 흔들리고있습니다. 이러한 시점에 어떤 유흥이나 자아아픔의 발로에 그치는 문자유희에나 매달릴것이 아니라 우리의 민족을 위해 미래의 지금 우리자리에 서있을 아이들을 위해 글다운 글을 써야겠다는 자각을 드디여 가지게 된것입니다. 그런 상념에 아동문학지들과 손잡고 새해부터는 저의 이름으로 된 코너도 만들고 본격적인 아동문학창작을 서두르고있을때 바로 이번상을 수상하게 되였습니다. 이는 저의 립지를 한층 더 굳게 하고 저의 창작의취에 대한 고무와 추동력으로 되고있습니다. 시상식을 앞둔 어제 로씨야의 노벨상 수상작가 솔제니친이 타계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솔제니친은 한평생 자기가 처해있던 사회와 문단으로부터 불공평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온 사람입니다. 하지만 솔제니친은 자기를 버린 사회와 문단에 대한 애정을 결코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그 문단과 그 사회와 그 민족에 대한 애정과 우려어린 시선을 작품에 몰부었습니다. 그런 몸가짐으로 시간의 고증을 거쳐 솔제니친은 드디여 로씨야를 대표하는 작가의 반렬에 우뚝 서게된것입니다. 그이의 깊은 시선과 드팀없는 행보는 지금 힘들게 자신의 행동반경을 구하고있는 저에게 어떤 제시와 현답을 주고있습니다. 1993년 한부의 아동력사소설이 화림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면서 관례대로 저는 작가협회에 입문했습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났습니다. 모든것이 원점으로부터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문뜩 드는군요.  아무리 어렵더라고 초심을 잃지 않겠습니다. 낮게 조용히 흘러서 큰 바다와 만나는 물처럼 겸허하게 자신을 낮출대로 낮추면서 정직한 문체로 창작에만 전념하겠습니다. 장시간 매스컴에 몸담그고있은 저로서는 우수한 언론인인 윤정석선생님의 이름으로 몀명된 상을 수상하게 된데대해 자호감을 느끼면서 훌륭한 상을 설립한 청소년문화진흥회 한석윤회장님과 윤진리사장님등 여러 지성인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올리고싶습니다. 창졸하게 씌여진 작품이라 부족함이 많이 보임에도 뽑아주신 평심위원 여러분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이자리를 빌어 우리말이 위축되고 잃어져가고있는 시점에서 우리의 아이들을 위하여 아동문학이라는 외로운 외줄타기를 하고있는 모든 아동문학창작자들에게 경의를 드리면서 이제 저도 소신껏 그 줄타기에 동참할것을 서약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정진하겠습니다! 2008/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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