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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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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자의 남경> 민족의 상흔 보듬다
2019년 04월 30일 14시 49분  조회:730  추천:10  작성자: 김혁
 
.대담.
연변인민방송국 <공감 40분>
작가 김혁과의 대담.

<춘자의 남경> 민족의 상흔 보듬다
- 화제의 그 소설 <춘자의 남경> 창작경위 알아보다.
 
4월 28일 
아침 7:20분, 오후 4:00
AM 1206과 FM 94.9
저녁 9:05 FM 102.3

 
문: 안녕하십니까? <공감40분>진행을 맡은 프로듀서 최명광입니다.
 
 요즘 우리 문단에 화제가 된 장편소설이 있습니다. 바로 중국조선족문단의 저명한 소설가인 김혁소설가님의 장편소설 <춘자의 남경>인데요, 소설은 지난세기 20년대 북간도지역에서 일제에 의해 자행된 <간도참변>과 조선인, 중국인 위안부들의 참상 그리고 남경대학살 현장을 핍진하게 재현했습니다. 
소설은 조선족문단뿐만아니라 중국문단에서도 최초로 호흡이 긴 서사로 일본군 위안부 소재를 소설화하여 중국당대문학사의 한페지를 장식했습니다.
오늘 <공감40분>에서는 장편소설 <춘자의 남경> 저자 김혁선생님을 모시고 소설창작 의도와 창작과정을 여쭈어 보겠는데요, 작가님을 모시기전에 먼저 그의 주요작품과 수상경력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소설가 김혁은 1985년 단편소설 《피그미의 후손》, 《노아의 방주》 등을 발표 하면서 문단에 데뷔! 그뒤 꾸준히 필밭을 가꾸어 지금까지 장편소설 《마마꽃, 응달에 피다》, 《국자가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네》, 《완용 황후》, 《시인 윤동주》, 《춘자의 남경》,《무성시대》등 6부와 중편소설집 “천재 죽이기”, 장편르포 “천국의 꿈에는 색조가 없었다”, “페스카마호 사건”, 인물칼럼집 "윤동주 코드", 인물전 "윤동주 평전", “한락연 평전”, “송몽규 평전”,"주덕해의 이야기", "한락연의 이야기"등을 출간, 발표. 김작가는 지금까지 윤동주문학상, 김학철문학상, 연변문학상, 해란강 문학상, 연변주 진달래문학상, 장백산 문학상 등 굵직한 상들을 수상. 현재 연변작가협회 부주석, 소설분과 주임을 맡고 있으며 사단법인 <룡정.윤동주 연구회> 회장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묵직한 작품들을 펴냈고 수상경력도 화려합니다. 네, 김작가님을 모시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김: 네, 반갑습니다. 
 
문:《춘자의 남경》은 작가님의 여섯번째 장편소설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요사이 금방 또 일곱번째 장편소설을 탈고 한것으로 알고 있는데 일곱부나 되는 장편소설을 창작하신것도 대단하지만 이번 작품은 위안부와 남경대학살을 소재로 다루고 있어 큰 이슈를 낳고 있습니다. 그러면 요즈음 문단과 방송계에서 화제로 되고 있는《춘자의 남경》은 어떻게 창작되고 어느때 어느 간행물에 발표 된거죠”
 
김: 네,《춘자의 남경》은 조선족의 권위문학지인《연변문학》지에 2015년 1기부 터 1년간 련재됐고 지난해 10월에 연변인민출판사에 의해 출간됐습니다. 작품은 3 0만 자의 분량속에 “뜨거운 감자”격인 소재의 일본군위안부와 전대미문의 남경대 학살을 소재로 다루고 있습니다.
 
문: 소설 스토리에 대해 요약해 얘기해주시죠.
 
김:  《춘자의 남경》은 종군위안부의 문제를 중심으로 다루되 지난 세기 2,30년대에 연변에서 일제에 의해 자행된 노루골 참안과 남경에서 자행된 남경대학살 사건을 곁들어 다루고 있습니다.
연변, 남경, 도꾜를 배경으로 3대에 걸치는 조선족, 중국인과 일본인의 갈등과 충돌, 력사의식의 변화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도꾜대학 대학원에서 문학을 전공하는 조선족 청년 종혁이와 그의 후배인 일본 아가씨 하루꼬는 서로 사랑하게 됩니다. 그런데 방학기간 하루꼬를 데리고 처음 하게 되는 연변행차에서 종혁은 평생 연변의 시골에 살고 있는 자신의 할머니 춘자가 바로 종군위안부였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또 다름아닌 하루꼬의 할아버지가 바로 남경에 출전했던 일본군인입니다. 두 사람의 사랑의 시련 속에 종군위안부의 이야기가 펼쳐지게 됩니다. 
 
문: 소설을 보니 위안부제재로서 아주 방대한 스케줄이던데 어떻게 창작하셨는지 그 창작경위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 주시죠.
 
김: 네. 사실 이 작품에 대한 창작충동과 구상은 어느 한번 뉴스를 시청하는데로 부터 시작되였습니다.
몇해전 버릇처럼 중앙방송의 일곱시 뉴스를 시청하다가 커다란 충격을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길림성 당안국에서 소장한 일본 관동군이 작성한 10만건의 문서중에서 뒤늦게 발견된 기록에 대해 공개하는 뉴스였습니다. 
뉴스에 의하면 남경대학살 기간 당시 "남경에 조선인 위안부가 36명이 있었다”, “1명이 열흘동안 일본 병사 267명을 상대했다"고 보도하고 있었습니다. 
작가에게 오는 령감이란 그야말로 번뜩이는 혜성과 같은 것인데 전대미문의 남경 대학살에 게다가 그 잔학상으로 이미 세상에 알려진 일본군 위안부라는 그 두가지 사 건의 조합이 강렬하게 저의 뇌리를 때렸고 순간 어떤 창작령감이 저의 충동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날 나는 이미 구상을 마무리한 다른 소재의 장편을 미루고 이 소재를 장편화하 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한 작가를 떠올렸습니다. 장순여(张纯如)라는 미국계 중국인 르포작 가입니다. 작가이자 사학가인데 남경대학살에 대해 저술한 르포로 유명합니다. 그녀 가 저술한 장편르포 “력사는 힘있는 자가 쓰는가?”는 해외에서 커다란 센세이숀을 일으켰습니다. 1937년의 그 겨울, 남경에서 일본군이 자행한 전대미문의 대학살 그 만행의 참상을 생생하게 되살린 보고서였습니다. 저자는 섬세한 필치로 남경의 대학살을 이야기했고 또 일본이 어떻게 력사속에서 대학살의 기억을 지우려 망녕되게 시도했는지 낱낱이 밝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장순여의 량심적인 집필은 일본 극우세력들의 심기를 건드렸습니다. 그들로 부터 끈임없는 협박을 당해 왔던 장순여는 정신적 고통을 못이겨 2004년에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문: 참 안타깝군요.
 
김: 이 작가에 대해 중앙텔레비죤방송국 다큐프로에서 보고 그녀에 대한 호기심으로 그녀의 문명(文名)을 알린 이 장편르포를 해외에서 인터넷으로 주문해 읽었습니다.
저자 장순여는 각종 기록과 생존자들의 인터뷰 자료등을 통해 일본군이 저지른 비인간적인 폭력을 마치 공포소설을 보는것 같은 끔찍한 문체로 세세하게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희생자인 중국인의 관점에서, 미국과 유럽의 시각에서, 다각적으로 남경의 대학살을 이야기했고 또 일본이 어떻게 력사속에서 대학살의 기억을 지우려 기도(企圖)했는지 낱낱이 밝혔습니다. 부피가 두터운 르포를 읽으며 혹한에 들린듯 부르르 진저리를 쳤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는 나의 엄청 많은 열독리력 중에서도 자주 경험하지 못했던 혹독한 떨림이였습니다.

 
문: 전대미문의 사건에 대해 세세히 파헤친 르포를 읽고서 소설창작 충동을 느낀것이지요? 
 
김: 이뿐만이 아닙니다. 어느 한번의 력사 답사에서 얻은 소재가 나에게 창작의 령감을 더해 주었습니다. 저는 조선족력사에 관심을 갖고있는 몇몇 지인들과 함께 10여년간 민족의 력사와 애환이 배여있는 유적지를 답사해왔습니다. 그중 한번은 우직한 답사를 강행한적 있습니다. 경신년 대참안이 일어난 장암동으로 향한 답사였습니다. 장암동은 우리 말로 노루골이라는 곳으로 룡정시 외곽에 있는 작은 부락입니다. 
룡정시 동성용진에서 동남쪽으로 다섯시간 가까이 수십리 산길을 톺아 겨우 목적지에 이르렀습니다. 장암동에서 수난자들의 묘소를 참배하고 다시 먼먼 산길을 되돌아섰습니다. 발에 물집까지 생겼고 힘에 부쳐 그자리에 주저앉는 동행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지나 가는 농부를 붙잡고 사정사정한 끝에 경운기를 삯내여 타고 힘들었던 답사를 겨우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날 유적지에서 우리는 일제의 만행에 대해 피부로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일제는 민가와 학교와 교회를 깡그리 불사르고 남정들을 모조리 죽이고도 성차지않아 녀인네들이 눈물로 묻은 시체를 다시 파내여 소각하는 귀축같은 “이중학살”을 저질렀습니다. 답사를 마친 뒤에도 따끔거리는 발의 통증은 길에 나서기도 힘들 정도로 며칠 련속 나를 괴롭혔습니다. 그보다도 일제가 장암동에서 자행한 만행에 대한 기억이 더욱더 나의 신심을 오래도록 괴롭혔습니다. 
 
문: <춘자의 남경> 집필하기 위해 작가님은 사비를 털어가면서 직접 남경대학살 현장까지 찾아간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김: 네 지난 2014년 가을, 저는 남경으로 향했습니다. 사비를 팔아 굳이 남경으로 향했던것은 남경대학살기념관을 찾아보기 위해서였습니다. 남경역에서 지하철을 타니 터미널 표시판과 지하철 도어의 전광판에 그리고 네거리 곳곳에 “남경대학살기념관”으로 가는 선로가 뚜렷이 표기돼 있었습니다. 기념관 입구부터 내부 곳곳에서 커다랗게 새겨져있는 “300000”이라는 수자가 사람들의 시선을 모나게, 강렬하게 찔렀습니다. 그것은 당시 일본군에 의해 죽임을 당한 중국인의 수자였습니다. 
“100인 참수경쟁”을 벌린 일본인 장교, 잘려져 뒹구는 중국인의 머리와 팔 다리, 산 사람을 과녁삼아 총검으로 찌르고 생매장하는 광경… 일본군인의 극한적 잔혹성을 보여주는 만여점의 자료들이 무거운 침묵과 간간의 흐느낌소리가 깔린 기념관내에 전시돼 있었습니다. 
1937년 12월 13일 고도(古都) 남경은 일본군의 마수에 떨어졌고 일본군은 남경을 함락한 이후 한달여 동안 적수공권의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살륙했습니다. 남녀로소 대상을 가리지 않았고 고문, 강간, 생매장 등으로 끔찍한 처형 방법도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그 잔인함이란 차마 입에 담을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일본군의 남경대학살은 나치의 유태인 학살에 버금가는 세계사적인 참극입니다. 인류사에 이처럼 짧은 기간에 무차별적인 살륙전을 벌린 사례가 없습니다. 한개 도시의 일원(一圓)에서만 자행된 만행은 단기간에 저질렀다는 점에서 나치의 학살을 릉가한다고 볼수 있습니다.
전람이 거의 끝나가는 기념관의 출구쪽에는 12초마다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나는 작은 공간이 있었습니다. 대학살 당시 12초에 한 명씩 살해당했음을 상기시키는 소리였습니다. 그 숨통 죄는 듯한 시간의 소리를 한초 한초 헤며 나는 또 한번의 혹독한 떨림을 경험했습니다. 
남경대학살은 종전후인 1946년 이 사건을 다룬 남경군사법정에서도 명백하게 확인된 참안입니다. 그리고 남경대학살의 전범들은 남경군사법정과 도꾜에서 열린 극동군사법정을 통해 처형됐습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일부 량심있는 사람들만이 이를 인정할뿐 남경대학살은 “중국인의 환상이다”, “학살은 없었다”는 뻔뻔한 부인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일본은 위안부 강제동원 역시 부인하고 있습니다. 
불과 수십년전에 우리의 할머니 세대들은 일본군의 추악한 만행의 희생자로 전락되였습니다.
위안부 배상촉구문제는 1992년 부터 한국을 비롯한 동남아 여러 나라들에서 시작되였으나 일본 정부는 이후 22년이 넘도록 이를 랭랭하게 외면하고 있습니다. “위안부는 자발적인 성매매이다”며 그 오욕의 력사에 대해 궤변하고 세탁하려하고 있습니다. 
남경대학살의 부인에 이은 후안무치한 궤변의 연장입니다. 그 억지주장을 펴는 사람들중에도 역시 중국과 한국에서 베스트셀러를 펴낸 유명한 일본녀류작가도 있습니다. 일본 극우세력의 대오속에는 일본의 유명한 소설가들도 적지 않습니다. 거개가 일본에서 유명 짜한 작가들이고 제가 한때 좋아했던 작가들도 있었습니다. 동업자로서 그 퇴행적인 사유에 큰 유감과 분개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문: 그건 력사왜곡이지 않습니까? 작가는 자신의 량지를 지키고 그걸 써내는 사람인데 어떻게 그런 뻔뻔스런 행태가 있단말입니까? 
 
김: 네, 그렇죠, 력사를 왜곡하는 그들의 역주행에 소설가로서 커다란 유감을 느껴 나는 우리의 간행물들에 련이어 관련 비판 칼럼을 여러 편 발표하기도 했었습니다. 
 그와중에 “력사를 왜곡하며 세계의 도덕적 심판을 벗어나려는 일본인들의 단체기억상실증”이 외려 그 력사를 다시 기억해 내고 기록하게끔 한 소설가의 창작충동을 건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영욕이 교차하는 무대인 남경, 통한이 서린 땅에서 나는 여러가지 아픔이 동시다발적으로 덮쳐드는 트라우마를 대신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연변의 노루골 참안, 남경대학살 그리고 위안부 생존자들의 증언… 
이 부동한 곳, 부동한 사람들이 꼭 같은 사람들에 의해 겪은 수난의 아픔들이 련결고리가 되여 나의 심장을 파고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동질성의 아픔들이 올올이 얽혀져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날 홀로 남경에서 돌아오는 고속렬차에서 나는 그 아픔들을 꼭 그려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다졌습니다. 
어떻게 쓸가하고 막연하게 그리고 환몽처럼 머금었던 생각들이 어설기 얽혀져 그 한꺼번에 형체를 이루며 뇌리에 하나 둘 떠올랐습니다. 
 
문: 구체적인 창작과정은 어떠했는지요? 력사 대사건을 필끝에 담아내는 작업이였기에 고된 작업이였으리라 짐작이 갑니다. 
 
김: 돌아와 서재를 뒤적여 보니 내가 소장한 작품들중에 위안부소재의 작품은 몇부 안되였습니다. 인터넷을 들여 검색해봐도 뜻밖에 위안부 소재에 관한 작품이 너무나 적었습니다. 관련 보고서나 르포, 론문들은 적지 않았으나 예술적으로 재현한 픽션물이 적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는 더러 있었으나 그중 소설작품이 유독 적었지요. 
그중에는 억장이 무너지는 슬픔을 간직한 이들의 아픔을 위배한채 위안부 테마를 상술에 리용한 작품이 적지 않았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은 어두운 우리 민족 현대사의 희생자들로서 전쟁을 통해 인간의 인권이 어떻게 유린됐는지 확인시켜주는 산 증인들입니다. 하지만 위안부의 몸을 노리개로 바라 본 이런 작품들은 력사의 진실에 대한 재조명은 커녕 멍든 위안부 할머니들의 가슴에 다시 못질하는 행위로 볼수 밖에 없었습니다. 충분히 력사의 아픔을 온몸으로 겪은 이들을 잊고 더욱이 그들에게 또다시 상처를 주는, 망각과 상혼을 쫓는 세태가 부끄러웠습니다. 
거기에서 우리 민족 작가들이 쓴 소설작품은 더구나 적었고 외려 일본이나 미국쪽에서 쓴 작품들이 몇부 있었습니다.
하지만 작품성이 들쭉날쭉해 수작(秀作)은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중국과 조선족 작가들의 이 소재에 대한 소설작품은 아예 전무하다싶이 되여 있었습니다. 위안부 소재의 소설작품이 일본 본토작가의 작품이 있는데 반해 우리 작가들의 작품이 없는데 대해 놀라움을 느꼈고 창작의 립지를 더 굳히게  되였습니다.
유감스럽지만 지성화된 기계적 감정에 길들어 있는 우리 작가들과 가련할 정도로 적은 독자군은 이런 제재에 흥미를 가지지 않습니다. 
 
문: 력사를 모르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명구도 있는데 우리의 력사를 외면하는 안타까운 풍조네요.
 
문: 네. 그럼에도 소설, 인물전, 칼럼, 기행수필등을 동원해 우리의 영욕이 엇갈린 력사를 조명하는 나의 작업은 이 십수년간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섯부의 장편을 펴내고 다음 소재에 대한 선택에 심려와 숙고를 거듭하던중 여섯번째 장편소설의 소재로 단연 위안부와 남경대학살 소재를 골라잡았습니다. 그 력사적 대사건의 들머리에 바로 우리 신변에서 일어난 장암동 참안도 곁들어 재현하기로 했습니다. 
단지 상상해서 만드는 픽션이 아니라 생존자들의 진술, 해당 사건에 대한 기록문서, 르포 등 갖은 자료들을 바탕으로 삼아 력사의 진실과 아픔을 강렬한 붓터치로 재구성하고자 했습니다.
력사의 질곡에 붙매였던 그녀들을 대상화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전대미문의 피해를 세상에 알리고 반성과 공감과 치유를 부르는 그런 작품을 써내고자 했습니다.
그리하여 나온 작품에서는 20년대 연변지역에서 자행된 ‘노루골 참안’과 한인, 중국인 위안부들의 참상 그리고 말미에서 전대미문의 남경대학살의 현장을 재현해 보이고 있습니다.
 


문: 네, 실로 비허구적인 픽션과 허구적인 논픽션 작품을 익달하게 다루어 나온 큰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작가님도 한때 매체에서 활약했던 기자출신이라고 들었는데요.
 
김: 네. 비교적 일찍 매체에 입문했지요. 스무살에 “길림신문”사에 입사했고 그후로는 연변일보”등 매체에서 20여년간 기자사업에 종사했었습니다.
 
- 문: 그와중에 또 우수한 보고문학작품들을 펼쳐낸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김혁 작가님은 1999년경에 일부 몰지각한 한국들인의 사기사건을 다룬 장편르포 “천국의 꿈에는 색조가 없었습니다”를 집필, 출간했습니다. 그 르포집이 수천부가 팔려 당시 작지 않은 센세이숀을 일으킨적도 있었습니다.
지난 해에는 또 한국어선에서의 조선족선원들과 한국선원들지간의 살인사건을 다룬  장편르포 “페스카마호 사건”을 다루어 다시 한번 이슈를 일으키기도 했지요. 
 
김: 네. 소설쓰기와 병행해 매체에서 20여년을 기자직으로 일해왔기에 저는 르포가 갖는 매력에 대해 십분 잘 알고 있습니다.  소설같은 예술화로 허구된 작품도 좋지만 실화와 같은 비허구 작품은 제가 아직도 애대하는 쟝르입니다.
 
문: 력사소설을 쓰려면 현장답사와 더불어 자료수집 같은것이 선행 되여야 하는데 작가님은 어떻게 착수하셨는지요?
김: 네. 《춘자의 남경》의 집필을 앞두고 2014년 하반년을 옹근 위안부와 남경대학살의 자료를 수집하는데 바쳤습니다. 
남경에서 돌아와서 수십부의 문사자료집과 피해 당사자들의 진술서는 물론 당시 시대상을 반영한 영화와 다큐, 드라마도 수십편 찾아보았습니다. 일본군국주의 실상을 깊이 료해하기 위해 수백 만자에 달하는 대하실록소설 “태평양 전쟁”도 읽었습니다.
 
문: 그중에 작가님이 감명을 받고 보기에 수작이라 생각되는 작품 몇편 소개해 주시죠.
김: 네. 소설을 만드는 과정에 키를 넘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자료더미와 관련연구저서들을 통독했고 그 진실하고 소중한 자료들이 내 소설의 얼개를 이루어 주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와다 후미코라는 일본작가의 ‘빨간 기와집’ 그리고 한국작가 윤정모의 ‘에미이름은 조선삐였다’, 미국작가 모헤이더의 ‘난징의 악마 ’등 이 소재 관련 몇부가 유난히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중국작가 엄가령의 남경대학살 소재 ‘금릉 13채’는 이미 몇해전에 읽었지요. 장예모 감독의 제작으로 영화도 나와 큰 센세이숀을 일으킨 작품이지요. 이 작품을 보고 읽고 소설독후감과 영화평을 써서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소설로서는 이 몇부가 작품성이 들쭉날쭉한 이 소재의 작품들중에서의 수작(秀作)이 아니였나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조선족 학자들인 김성호의 실화 “종군위안부”(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 1999년), 강용권의 기행문 “끌려간 사람들”, “빼앗긴 사람들”과 오스트랄리아 얀.르부 오헤인의《침묵의 50년 한 위안부의 자술 (沉默50年:一位原“慰安妇”的自述》, 일본작가 이시가와 이쓰코의 “일본군 위안부가 된 소녀들”, 다니엘 최의 “나는 조선의 처녀다- 눈물로 쓴 정신대 위안부 이야기” 등 연구저서들이 내가 하나의 새로운 소설작품으로 픽션화하는데 특히 도움이 되였습니다.
너무나 많은 자료들이여서 일일이 출처를 렬거하지 못하지만 관련연구를 선행한 모든 이들에게 경의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드디여 필을 들었습니다.
력사의 질곡에 갇혔던 불운한 그녀들을 대상화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전대미문의 피해를 세상에 알리고 반성과 공감과 치유를 부르는 그런 재현물을 쓰고 싶었습니다. 단지 상상해서 만드는 픽션이 아니라 자료를 바탕으로 삼아 력사의 진실과 아픔을 재구성하고저 했습니다. 
 
문: 네 실로 많은 작품을 읽었고 꼼꼼히 준비하셨네요. 
김혁작가님은 <춘자의 남경>으로 2017년 제25회 한국문인협회 해외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동포작가들 중 문학적 공적이 큰 작가들에게 시상하는 비중이 큰 이 상의 수상은 조선족문인으로서는 김철시인 등에 이어 8년 만에 처음입니다. 
그리고 <춘자의 남경>은 중문으로도 출판되였지요?
김: 네,《춘자의 남경》은 중국작가협회에서 제정한 소수민족중점번역지원작품으로 선정되여 연변의 번역가 근욱녀사에 의해 중국어번역을 마치고 북경 작가출판사에 의해 올해 1월초에 출간되였습니다.
또 지난해 12월 “춘자의 남경”은 아리랑 방송에 의해 라지오 소설로 개편되여 전파를 타게 되였습니다. 
 
문: 력사의 진실에 내장된 인간군상을 생생하고 력동적으로 그려낸 장편소설 <춘자의 남경>은 학계전문가들의 높이 평가하는 수작입니다. 
다음은 연변대학 조한문학학원 우상렬교수의 평을 들어보겠습니다. 
 
연변대학 조한문학학원 우상렬교수입니다. 
 
우상렬:
총적으로 김혁작가의 장편소설 <춘자의 남경>은 다양한 인물성격과 극적 갈등, 그리고 섬세한 소설적 언어, 기묘한 소설적 기법과 장치 로 종군위안부라는 피눈물나는 역사를 증언하고 동아시아의 새로운 평화와 발전의 미래를 예술적으로 제시한 우수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춘자의 남경>은 조선족문단뿐만 아니라 중국의 당대문학에 내놓아도 손색 없는 주제령역을 승화시킨 중후한 작품이라고 봅니다. 
특히 일본의 우익세력들이 여전히 력사를 왜곡하고 있는 오늘, 이 작품은 자라나는 세대들이 올바른 력사인식을 가질 수 있는 필독서로도 되리라 생각합니다.
 
문:  교수님들의 평을 잘 들었습니다. 
네, 불과 십여년사이에 김혁소설가는 여섯부의 장편소설과 두부의 장편르포, 세부의 인물전기를 발표, 출간했습니다. 거의 한해에 한부 꼴로 펴낸 셈입니다. 거기에다 칼럼, 명상록, 소설, 편찬저서들도 곁들면 이 동안 그의 창작량은 그야말로 문단의 평론가들이나 원로들이 격찬할만큼 “전무”할 정도로 어마어마합니다. 
이 작품들은 모두가 평론가들이 평하다싶이 “민족사의 행간에 굵은 획을 그은 묵 직한 사건과 걸출한 인물들을 소재로 전개의 구조가 선명하고 극적인 스토리의 표현 이 돋보이는 서사적 작품”들입니다. 작가님이 다른 쟝르보다 력사작품에 더 심혈을 쏟는 리유는 무언가요?
 
김: 네. “력사라는 거대한 거푸집 안에 민족의 스토리와 애환을 무늬결 섬세하게 새겨넣은 력사물에 대한 작업이 요즘 내가 하는 전부의 일입니다.”
그동안 저는 력사의 대사건 속에서 부침하는 소인물들의 나름의 서사를 보여준 장편물들을 꾸준히 창작해 왔습니다. 저의 7부의 장편소설중에서 5부가 바로 력사소재에 편중한 창작물입니다. 
첫장편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전대미문의 문화대혁명이라는 홍역을 치루는 과정에서의 농도와 줄기가 다른 민족집단의 아픔을 아이들의 시각에서 다루고자 했고, 이어 “시인 윤동주”에서는 고향이 낳은 시인 윤동주의 간도, 경성, 후쿠오카에 족적을 남긴 젊은 문사의 고뇌의 족적을 더듬어 보고자 했고, “달의 몰락- 완용황후”에서는 연길감옥에서 숨진 중국의 마지막 황제 완용의 비사로부터 그의 마지막 역이였던 위만주지역의 이야기를 더듬어보고자 했고, “무성시대”에서는 지난세기 30년대 상해의 조선족 영화황제 김염의 이야기를 다루었는데 역시 력사물과 시대극이라 할수 있습니다. 그 연장선에 바로 “춘자의 남경”이 있습니다. 
내가 여느 조선족 작가들과는 달리 유난히 력사물에 천착하는 까닭은 서구나 중국의 판타지에 환혹돼 있는 우리의 독자들에게 한민족과 조선족의 생성과 발전의 력사를 알리기 위함이였다. 
평소 두 종류의 맥락으로 소설을 쓰는데, 하나는 객관적인 현대 조선족의 도시진출과 출국으로 이어진 리산의 삶이고 또 하나는 우리의 뿌리인 조선족 관련 이야기입니다. 
애초에는 나역시 초현실주의, 판타지 등으로 조선족 문단에서 쟝르와 문체적 실험을 독보적으로 해왔지만 조선족 이야기를 쓸 때면 리얼리즘수법에로 다시 귀환해 있습니다. 우리의 전통의 결과 무늬를 우리의 정서로서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민족의 생성과 현재와 미래를 우리의 학자들 그리고 작가들은 경험적, 문헌적, 지식적, 예술적으로 적극 구현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할 때에만 우리의 현재의 처경과 위치를 정확하게 알고 래일의 좌표를 구사하며 목전의 진통을 누르고 나아 갈수 있을 것입니다. 
작가는 결국 력사와 인물을 기록하고, 력사에, 후세에 그 생명력을 불어넣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처해있는 민족만의 정한과 상흔을 가진 력사적 시간과 인물들을 오늘에 다시 불러내, 생생한 숨결의 감동적 인간상으로 재탄생시키는 일은 아무래도 문학과 예술의 몫일 것이다. 조선족이라는 락인이 찍혀 있는 민족작가로서 작가의 몫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소명의식으로 작품을 구상하고 쓰고자 합니다. 
 
나의 이러한 작업들은 력사의 물줄기를 바꾼 그 인걸들의 삶을 통해 우리의 어제날과 만나고 그 시대의 공과를 헤아려 보면서 그 와중에 오늘의 변화하는 시대를 보아내고 넉넉한 삶을 예시하는 새로운 눈을 갖추기 위한 작가로서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감의 발로에서였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민족의 정체성을 알고 민족의 대사기를 알며 민족의 발전을 위해 기여한 인물들을 픽션 혹은 논픽션으로 만방에 알리는 이러한 작업이 분명 민족의 발전과 우리의 삶에 기(氣)를 불어넣는 좋은 작업으로 될 것이라 저는 믿어의심치 않습니다.
 

문: 방금 김작가께서 하신 우리의 독자들에게 한민족과 조선족의 생성과 발전의 력사를 알리기 위해 소설을 쓴다는 그 말씀이 가슴에 와닿네요, 그렇다면 향후의 창작성향과 계획은 어떻하신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 구태여 말씀드리면 저의 다음 장편소설은 “백년극장”이라는 소설입니다. 또 한부의 력사소재로서 100년전에 이주민들이 운집한 현성에 지어 세운 극장을 배경으로 한 백년의 이야기입니다. 그 극장주변에서 3대가 뒤얽혀 살아가면서 긴긴 세월 속에 지울 수 없는 애증 관계를 그려낸 편폭이 긴 작품으로서 그가운데 우리 조선족이 겪어 온 굴곡과 애환을 한부의 흥행영화처럼 그려내려 합니다. 
매체의 언론인과 소설가의 삶을 병행해 왔기에 “문학적 다큐멘터리’로 특징지을수 있는 저널리즘적 글쓰기가 저의 작품의 특색이라 말할수 있고 이것이 남보다 차별화되는 나의 창작성향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신뢰할 만한 소설창작 기량을 발휘해 주제와 소재의 명징성, 소설적 사건의 이미지화와 깔끔한 흐름등이 잘 조합되여 있는 대서사적인 작품을 다루는 것이 나의 금후의 창작의 한방향이 될 것입니다. 
 
문: 김작가님, 수고하셨습니다. 
 
김: 감사합니다. 
 
                                ----M---- 
 
문: 장편소설 <춘자의 남경>은 정교한 필치와 탄탄한 캐릭터, 생생한 리얼리티, 그리고 강렬한 스토리로 일본정부와 일본군의 만행을 낱낱히 폭로했습니다. 작가는 또 넘치는 에너지로 잔혹한 리얼리티속에 숨겨진 숨막히는 서사를 긴 호흡으로 끌고 나가면서 아름다운 꽃들이 피기도 전에 어떤 무자비한 인성에 의해 유린당하고 처참히 사라졌는지를 밝혀놓고 세상을 향해 커다란 호소의 함성을 질렀습니다. 작품이 갖는 문학사적의의도 여기 있지 않나 하고 생각됩니다. 
민족의 력사와 문화에 대한 화두와 메세지를 끈임없이 던지면서 방대한 작품량으로 묵직한 소재들을 성실하고 우직한 작가정신으로 밀고 나가고 있는 김혁 작가님, 작가님의 다음의 또 한부의 력작이 기대됩니다.
 
네, 오늘 <공감40분>프로 여기서 줄입니다. 
이 시간 프로기획에 최명광, 제작에 량영택, 원미란, 비디오 촬영에 김호룡이였습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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