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연변조선족례의연구회 현용수 조글로블로그
http://www.zoglo.net/blog/sy10088 블로그홈 | 로그인

※ 댓글

<< 4월 2024 >>
 123456
78910111213
14151617181920
21222324252627
282930    

방문자

홈 > 풍속신앙

전체 [ 21 ]

21    우리민족 족보, 친척, 호칭, 성씨 댓글:  조회:4145  추천:0  2016-10-04
  우리민족 족보, 친척, 호칭, 성씨   1, 족보란 무엇인가? 우리 민족은 전통적으로 가문에서 문재가 비교적 좋은 사람들이 나서서,혈연관계로 맺어져 내려가는 자기 가문의 계보를 도표식으로 작성하여기를 나누어 기록하여 두었다. 이것이 바로 족보이다. 지금말로 하면 한 가문의 기본적인 력사당안자료인 셈이다.  우리는 족보에서 자기 가문의 시조를 알수있고, 자기 가문의 전통을 알수 있으며, 그 시조로부터 어떻게 발전하여 오늘까지 오게 되였는가? 하는 전반과정을 알수 있으며, 자기 친척의 범위와 갈래, 그리고 그 관계를 쉽게 알아볼수 있다. 중국조선족은 력사적 원인으로 하여 족보에 대한 개념이나 관심이 조선반도에 있는 우리 민족보다는 강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족보를 중시하는사람들이 아직도 적지 않다.  가문 구성원들의 변화를 총체적으로 적어둔 대종보가 아니더라도, 자기친척 구성원들의 정황과 변화발전 과정을 기록해 두고, 그 관계를 명시하여 후대들에게 물려주는것, 또한 선대로서 마땅한 의무와 책임이 아닐가 생각한다.  특히 오래전부터 시작된 핵가족 시대에서, 자기 친척 구성원들의 정황마저 후대들에게 남겨주지 못한다면, 더불어 살아야 하는 사회에서 우리 후대들은 자기 혈친도 못 알아보고, 고립무원의 환경에서 살게 되며, 그때 가선 우리민족의 응집력도 크게 영향받을수 있다.  이것은 선대로서 후대들에게 너무나 미안한 일이 아닌가?   2, 족보의 기원 일찍 삼국시기 신라에 벌써 족보 비슷한것이 생겨나 왕공귀족들이 리용하였다고 하였다. 족보란 계급사회의 등급제도의 산물로서 그 의의는 주요하게 자기가문의 정통성과 고귀함을 증명하기 위한것이였다. 그후 고려에서는 양반제도를 실시하였는데, 양반이란 주로 조정에서 벼슬을 하고 있는 문무관원들을 일컬으는 말이다. 지금말로 하면 국가공무원인 셈이다.  고려에서는 文宗(기원1047년)때부터 과거제도를 개혁하면서 상놈도 제한적으로 자기성을 가질수 있었다고 하는데, 상놈가문에서 그누가 과거에 합격되여 조정에서 벼슬을 하게되면 그 가문은 곧 출세하여 량반가문이 되므로, 왕으로부터 성을 하사받거나 또는 선조명이나 출신지역의 지명으로부터 성을 결정한후, 그사람을 시조로 하고, 그사람에게 봉해진 식지 혹은 출신지역을 본관으로 하여 계보를 작성하여 기록하여 내려 오는데, 그것이 후에 와서 족보가 되는 것이다. 식지란 봉지라고도 하는데, 봉건사회에서 벼슬을 하게되면 벼슬의 급별에 따라 봉해주는 토지와 그 관리구역으로서, 양반가문 경제수입의 주요 래원이였으며 세습할수 있었다.    3, 족보의 가치 과거에는 족보가 지배층, 즉 귀족이나 왕실에서 신분을 가려보고, 피줄의 갈래를 잊지 않으려고 기록한 비망록의 기능을 하였다. 하지만 인권평등을 강조하는 오늘날에 와서 족보의 가치는 신분증명보다는 가족의 뿌리를 알고, 가족의 우량한 전통을 계승하고, 가족과 친척의 관계를 명확히 함으로써, 가족관념을 가강하고, 가문의 뉴대를 형성시키며, 가문의 매개 성원들의 사명을 강조하기 위한것이라고 본다.  연변 조선족 가정의 대부분의 족보는 문화혁명때에 훼멸성적인 재난을 당하여 이미 기본상 근절되였다. 개혁개방을 하고, 한국과의 국교가 맺어지고, 한국의 종친회와의 련계를 다시 회복하게 되면서 적지않은 가문에서는 다시 자기의 족보를 가지게 되였으며, 선조와의 련계점을성공적으로 찾고, 자기가정 성원들을 족보에 보충 기입해 넣은 가정도 적지 않다.     4, 족보의 형식 족보의 형식은 가문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으나 기본적인 형식은 비슷하다. 맨 앞에 가문을 자랑하는 서문이 있고, 시조를 포함해 주요한 조상의 무덤이 있는 곳을 밝혔으며, 시조와 조상들 가운데서 력사에 이름난 인물들의 사적을 적어 놓았다.  그다음부터는 시조 아무개로 시작하여 가문성원들의 이름을 세대를 나누어 항렬의 순서에 따라 적고, 매 사람의 이름에 곁붙여 자, 호, 생졸년월일, 그리고 생전에 지낸 대표적인 벼슬, 간단한 략력, 안해의 본과 성씨, 무덤의 위치등을 적어 넣었다.  딸은 출가외인이라 하여 보통 이름을 밝히지 않았지만 어떤 가문에서는 사위의 성과 이름을 밝히기도 한다. 남자들은 성이 모두 같으므로 이름만 적었으며, 그것도 적서의 구별을 두어 본처의 자식은 《적》으로, 첩의 자식은 《서》로 갈라 적었으며, 외손자인 경우 보통 밝히지 않지만, 또 일부 밝힌 가문도 있다.  보통 족보는 해당 문중에서 스스로 자기 문중의것을 작성하였고, 이밖에족보와 성질은 같지만 형식과 내용이 약간씩 다른 가첩과 가승이란것도 있었다. 가첩이란 직계친족만 적어둔 것이며, 가승은 가문의 직계친족과 그 가문의 사적을 적어놓은 것이다. 족보를 중요시함에 따라 해당 가문의 종친을 체계적으로 종합한 종보와 그중 어느 한갈래의 종친만을 밝힌 지보란것도 생겨났다.    5, 친척이란 무엇인가? 친척이란 피줄과 결혼관계로 련결된 사람들을 말한다. 친척은 크게 친족, 인척 두가지 부류로 나눈다. 친족은 피줄관계로 련결된 것인데, 흔히 집안이라고 한다. 인척은 결혼관계로 련결된 것을 말한다.  친족안에는 직계와 방계로 구분되는데, 직계는 할아버지(할머니)-아버지(어머니)-아들(딸)-손자(손녀)-증손자(증손녀) 등과 같이 피줄이 직접 잇달아 물린 사람들이다. 이것을 가족이라고 부르며, 이것을 방계와 구별하기 위하여 《친할아버지》, 《친손자》 등 《친》자를 붙여 부르기도 한다.  방계는 큰(작은)할아버지-큰(작은)아버지-조카 등과 같이 몇 대우에서갈라져 나간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인척가운데서 어머니켠을 외켠(외척), 안해켠을 처켠(처척)이라고 하며, 시집간 딸은 친족성원에서 빼버렸으나, 사실상 고모, 고모부, 고모사촌 등은 실제생활에서 아주 가까운 친척으로 되여 있다.    6, 친척의 촌수를 어떻게 밝히는가? 우리 민족은 친척관계의 멀고 가까움을 촌수로 밝힌다. 우리 민족이 촌수를 밝히기 시작한것은 대체로 고려시기부터였다고 한다. 14세기 문인 리색이 《4촌회》라는 말을 쓴것도 있고, 또 《고려사》에 외사촌이란 말이 나온 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쯤으로 추증하는것이 옳을것 같다.  촌수는 부부관계에서부터 시작하여 한세대를 한촌으로 센다. 때문에 부부사이는 촌수가 없이 동체로 치고, 대수가 점차 벌어짐에 따라 촌수는 많아진다. 따라서 촌수가 적을수록 가까운 친척이고, 촌수가 많을수록 먼 친척으로 된다. 직계에 속하는 친척은 대수가 곧 촌수인데, 부모와 자녀사이는 1촌이고,할아버지와 손자사이는 2촌이다. 그러나 부를 때에는 절대로 촌수로 부르지 않으며, 증조할아버지와 증손, 고조할아버지와 현손사이도 촌수는 각각 3촌, 4촌이지만 부를때에는 절대로 촌수로 부르지 않는다.  방계(곁갈림)에 속하는 친척의 촌수는 먼저 어느 조상에서 갈라졌는가를 따져보고, 그 조상과 자신과의 촌수에다 알려고 하는 대상과 그 조상과의 촌수를 합하면 된다. 례를 들면 조카와 자기와의 촌수는 자기와 아버지의 촌수에다 조카와 아버지와의 촌수를 합하면 된다. 즉 자기와 아버지와는 1촌이고, 조카와 자기 아버지(조카에게는 할아버지)는 2촌이므로 자신과 조카는 3촌이 된다.    7, 인척의 촌수는 어떻게 밝히는가? 외켠의 친척은 어머니와 그 친척과의 촌수에다 자기와 어머니와의 촌수(1촌)를 합한 수와 같은 촌수이다. 례를 들면 어머니의 남동생은 어머니와 2촌이므로 자기와는 3촌, 즉 외삼촌이 된다.  처켠에 대해서는 알아보려는 사람과 자기 안해와의 촌수를 그대로 따르면 된다. 례를 들어 안해의 작은 아버지는 안해의 3촌이므로 처삼촌이라고 부른다.  촌수로 친척의 멀고 가까운것을 나타내는데, 형제벌의 친척은 4촌, 6촌, 8촌과 같이 짝수(우수)로 나가고, 큰(작은)아버지, 조카 등 아잡조카벌의 모든 친척은 3촌, 5촌, 7촌과 같이 홑수(기수)로 나간다. 이것은 촌수의 련결마디를 나타내는 것으로서 세대와 세대사이에는 그를 낳은 부모가 끼여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5촌형, 칠촌아우, 6촌조카, 8촌조카라는 것은 있을수 없다.    8, 몇촌까지 친척으로 보는가? 고려와 리조에서는 서로 범위에서 얼마간 차이가 있었으나, 대체로 친족은 7~10촌까지, 인척은 5~6촌까지를 친척으로 보았으며, 리조시기 법에는 친족이 10촌까지로 되어 있으나, 실제생활에서는 대체로 8촌까지 친척으로 보았다.    9, 사돈도 친척의 범주에 속하는가? 우리말에 사돈이 한호적이란 말도 있다. 《아언각비》란 책에 《친척》이란 《척》에는 외척, 처척, 인척을 들고 있는데, 여기의 이 인척이 곧 당시 사돈집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였다. 그런데 사돈은 친척가운데서 제일 먼 관계에 있다. 그러므로 《사돈의 팔촌》이라 하게되면 친척이라고 할수 없을 정도로 관계가 먼것을 말한다. 하지만 실제생활에서 사돈과 가깝게 지내는 경우가 많다. 특히 매부와 처남 사이는 일반적으로 매우 가깝다.    10, 직계친족을 부르는 호칭에는 어떤것이 있는가? 3대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증조》를 붙여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라고 부르며, 3대의 손자와 손녀는 《증손》을 붙여 증손자, 증손녀라고 부른다. 4대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고조》를 붙여 고조할아버지, 고조할머니로 부르고, 4대의 손자와 손녀는 《현손》을 붙여 현손자, 현손녀로 부른다. 5대이상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손자, 손녀는 대수를 그대로 붙여 5대할아버지, 6대손자 등으로 부른다. 직계친족가운데서 형의 안해를 흔히 형수, 아우의 안해를 제수라고 부르며, 누이의 남편을 매형, 혹은 매부라고 부른다.    11, 방계친족은 어떻게 불러야 하는가? 방계친족을 부를때에는 같은 항렬에 속하는 4촌, 6촌, 8촌형제를 친형제와 구별하기 위하여 각각 《종》, 《재종》, 《삼종》을 붙여, 종형제, 재종형제, 삼종형제 등으로 부른다.  아버지항렬에 속하는 큰아버지를 백부, 작은아버지를 숙부라고 부르며, 흔히 숙부를 삼촌이라고도 하는데, 직접 촌수로 관계를 나타내는 말이다. 이런 친삼촌과 구별하기 위하여 오촌, 칠촌, 구촌백부와 숙부는 각각 《종》, 《재종》, 《삼종》을 붙여 부른다.  할아버지 항렬을 부를때에도 친할아버지와 구분하여 할아버지의 형제를 종조부로 부르며, 따라서 증조할아버지 형제를 재종증조부, 고조할아버지의 형제를 삼종고조부로 부른다.  아들, 손자항렬에서도 친조카와 오촌, 칠촌, 구촌조카, 그리고 친손자와형제의 손자를 구별하기 위하여, 《당》, 또는 《종》, 《재종》, 《삼종》등을 붙였다. 이를테면 사촌의 아들은 5촌으로서 당질(오촌조카)이며, 륙촌동생의 아들은 7촌으로서 재종질(칠촌조카)이며, 팔촌의 아들은 9촌으로서 삼종질(구촌조카)이라고 부른다.   이런 추리로써 형제의 손자는 6촌으로서 재종손, 륙촌의 손자는 8촌으로서 삼종손이라고 부른다. 누이의 딸은 생질, 고모사촌은 고종형제라고한다.  이밖에도 친족을 부르는 말에는 넛할아버지(아버지의 외삼촌), 넛손자(누이의 손자), 올케(오빠와 남동생의 안해) 등이 있다.    12, 인척을 부를때에는 어떻게 부르는가? 인척을 부를때에도 촌수를 캐는 법은 같으나, 부를때 외켠에는 《외》, 어머니의 자매는 《이모》, 처켠에는 《처》를 붙여 부르며, 안해의 부모를 장인, 장모로 혹은 가시아버지, 가시어머니로 부른다. 이모의 아들딸은 이모사촌이 되고, 처남과 처형제의 아들딸들은 처조카로 되며, 안해의 삼촌은 처삼촌으로 부른다.  우리 민족은 친척교제에 있어서 비록 구분은 우에서 말한것처럼 촌수가밝혀져 있으나, 직접 상대하여 말할때에는 될수록 가깝게 부르는 풍속이있다. 즉 례를 들면 구촌조카를 당면해서 부를때《구촌조카 왔는가?》하지 않고 《조카 왔나?》라고 하는 식이다. 웃사람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연변 등지에서는 《아바이》, 《클아배》, 《아매》, 《맏아매》등 함경도 방언이 많이 쓰이고 있는데, 친척, 가족내에서 친근감을 줄수 있으나, 많은 장소에서는 소개가 잘못될 수도 있다. 그러니 좋기는 소개는 구체적으로 촌수에 따라 하고, 부를때는 장소를 고려하여 해당된 표준어를 쓰는것이 좋겠다.    13, 아주머니, 아재, 아저씨는 누구? 우리 연변에서는 형의 안해 즉 《형수》를 직접 대면하여 부를때  보통《아주머니》라고 불렀고, 고모, 이모 등과 같이 자기 어머니와 나이 비슷한 녀인들을 부를때에는 보통 《아재》라고 불렀다. 그런데 지금 《아주머니》란 말은 주로 형수, 자기와 나이가 비슷한 여자, 또는 젊은 남의안해를 부를때 자주 쓰이고, 《아재》라는 말은 보통 자기보다 젊은 녀인을 대칭하여 많이 쓰인다. 그러니 자기 형의 안해를 공식적인 장소에서는 타인의 안해와 구분하기 위해서라도 《형수》라고 부르는것이 바람직 하고, 고모, 이모도 그대로 《고모》, 《이모》로 부르는 것이 바람직 하다.  그리고 《아저씨》라는 말도 그전에는 외삼촌과 고모부, 이모부 등과 같이 자기 아버지와 나이가 비슷한 남자들을 부를때 쓰였으나, 지금은 주로 여자들이 언니의 남편, 혹은 친척관계가 없는 젊은 남자들을 부를때 쓴다. 때문에 자기 언니의 남편을 공식적인 장소에서는 타인의 남편들과 구분하기 위해서라도 《형부》라고 부르는것이 바람직 하다.  동서끼리 혹은 시누이와 올케가 서로 부를때 《형님》, 《언니》, 《동생》등으로 부르며, 특히는 여자들이 시형과 시아우를 자기 자식들이 부르는 대로 《큰아버지》, 《삼촌》 등으로 부르는데, 친근감을 돋구는 친척호칭이기는 하지만 일련의 오해의 여지가 있으니, 제대로 촌수에 따라서 정확히 부르는것이 바람직 하다.    14, 항렬이란 무엇인가? 항렬이란 친족가운데서 세대수 관계를 나타내는 말인데, 어떤 사람의 자손가운데서 세대수가 같아서 형제벌 되는 사람들을 같은 항렬이라고 하며, 그들의 아버지벌 되는 사람들을 아버지항렬, 아들벌 되는 사람들을 아들항렬이라고 한다. 우리 민족은 재래로 이름을 지을때 《항렬자》, 즉 《돌림자》를 썼다. 이 《항렬자》에 근거하여 성과 본이 같은 사람끼리 이름만 보고도 대체로 항렬을 가릴수가 있었다. 지금은 이름 짛을때 《항렬자》, 즉 《돌림자》를 쓰지 않고 각각 제맘대로 짓는다. 하지만 년세 많은 분이 집안에 계시는 경우, 아직도 항렬자를 따져서 이름을 짓기도 한다.    15, 성씨란 무엇인가? 옛날에는 평민들을 가리켜 한자말로 《백성》이라고 하였는데, 그뜻인즉《백가지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란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이 나오기썩 오래전인 원시사회나 노예사회, 봉건사회 초기때만 해도 성씨가 많지 않았고, 그 성씨는 왕족이나 귀족과 같은 지배계급에서만 사용되였었다. 그리하여 성이 없는 평민들은 《천민》 혹은 《상놈》이라고 불리였으며, 이름은 《돌쇠》나 《똥애》처럼 아무렇게나 지어 부르는 것이 고작이였다. 하지만 사회가 발전하면서 인권평등의식이 강조되고, 인격존중이 하나의 사회적 원칙으로 됨에 따라 호적등록을 하면서 점차 누구나 성씨를 갖게 되었다. 우리 민족의 경우, 이름앞에 붙이는 성씨는 일반적으로 같은 족속을 나타내는 칭호인데, 한문투를 따서 보통 무슨 《씨》, 무슨 《가》라고 한다. 이를테면 《허》란 성을 부를때면 《허씨》, 혹은 《허가》라고 한다.    16, 우리민족 성씨는 몇가지 되는가? 《백성》이라고 하지만 실지 우리민족의 성씨는 100가지를 훨씬 초과해 수백가지에 달한다. 옛날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265성이 기록되여 있고, 그후에 나온 《증보문헌비고》에는 496성으로 근 5백가지를 헤아리고 있다.  1975년 한국 국세조사에서는 249가지 성으로 되어 있으며, 김씨가 전체 인구의 21.9%, 리씨가 14.9%, 박씨가 8.5%, 최씨가 4.8%로 한국 총인구의 근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한자가 들어오기 이전에 고대사회에서 조선 고유말로 된 성이 있었을수도 있지만 아직 고증할 문헌기록이 없다.  우리민족 력사문헌으로서 가치가 가장 큰 문헌중의 하나인 《삼국사기》에서는 사람 이름 앞에 출신지방의 이름을 붙여서 혈연관계 혹은 지방소속관계를 밝혔다. 이를테면 옛날 백제왕실의 성인 《부여》같은것이다. 백제왕실은 고구려왕실에서 갈라져 나왔는데, 자연 이 두 왕실의 출신지방이 같은 《부여》였기 때문이다. 백제왕실에는 《부여》란 성외에도 사, 연개, 협, 해, 진, 국, 목, 백 등 큰 성이 있었다고 한다.  고구려를 세운 주몽의 성은 《고》씨인데, 고구려에는 이밖에도 장, 양,리, 오, 두, 왕, 등 큰 성이 있었으며, 이런 큰 성을 가리켜 우성이라고 불렀다.  신라왕실의 성은 박, 석, 김이 위주였고, 그외에 최, 안, 설, 남, 손, 정, 배,리, 등성이 있었다.    17, 우리민족 성씨는 어째서 한자성씨인가? 력사문헌에 나오는 성씨들은 대부분이 왕실귀족의 성씨였지 백성들의 성씨는 아니였다. 《삼국사기》에 고위계층 즉 왕실이나 귀족들 가운데서는 성씨가 점차로 보급되여 가고 있었으나, 평민들은 성이 없었다. 때문에 《삼국사기》에 나오는 숱한 평민들은 이름만 나오고, 성이 적혀 있지 않다. 고구려의 온달, 신라의 계백과 관창, 고구려의 창조리, 백제의 도미, 신라의 솔거, 지은 등 평민들에게는 그것이 성씨인지 이름만인지 알기 어렵다. 특히 고구려의 성씨에 대해서 살펴보면 우에서 례를 든 왕실의 성씨들을 내놓고도, 을지문덕, 연개소문, 명림담부 등의 을지, 연개, 명림 등 성씨가 나오는데, 그 뜻이 아마 당시 고구려의 고유어로 되어 있는것 같고, 한자를 그대로 쓴 성이 아닌듯 싶다.  조선에서 한자성을 널리 쓰기 시작한것은 아마도 후신라때부터라고 보는것이 타당할것 같다. 왜냐하면 그때가 바로 중국과의 군사, 정치, 외교래왕이 전의 다른 어느 시기보다 잦았을 뿐만 아니라, 후기신라 귀족들의 한자말이 열도가 올랐었기 때문이다.  《삼국사기》 기록에 의하면, 신라 경덕왕은 당시 신라의 지명을 모두한자식 이름으로 고치였으며, 이와 때를 같이하여 신라의 귀족들은 모두한자성을 붙였다. 이로부터 고려, 리조에 이르기까지 한자성이 위주로널리 퍼졌고, 왕실이나 귀족들내에서 한자성씨를 숭상하고, 그 유래를신비화 했거나, 또는 한자성씨를 국가의 공로자에게 상으로 주는 이른바《사성》이라는 제도가 행해졌다는 기록이 있다.    18, 평민들은 언제부터 성을 가지게 되였나? 일반 평민들이 성씨가 없이 이름만 붙여 불리운것이 조선력사 반만년에 깔리운 하나의 상황이였다. 고려文宗(기원1047년)때부터 비양반가정에서도 자기성을 가질수 있었다고 하지만 극히 제한적이였으며, 지어 리조말기에 이르러서도 성이 없는 평민들이 상당수준으로 존재하였다. 근대에 들어와서 전국적 범위내에서 통일적으로 호적등기를 하게 되자, 성이 없던 평민들은 여러가지 경로를 통하여 성씨를 가지게 되였으며, 조선반도 전 국민이 비로서 성씨를 다 쓰게 되었다.    19, 본이란 무엇인가? 우리 민족이 예로부터 성씨를 귀중하게 여긴것은 성씨가 봉건사회에서혈연관계 즉 피줄을 상징하는 외에도 계급적 차원에서 신분의 귀천을 상징하는 표징이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리조시기에 들어와서 유교가 국교로 됨에 따라, 남존녀비와 《3강5륜》사상이 풍조로 되었다. 따라서 혈통관념이 보다 강하게 성씨에 깃들게 되었으며, 정통이냐? 아니면 갈래이냐? 하는것을 무섭게 따지게 되였다. 그에 앞서 한 성씨안에서도 시조가 누구냐? 그리고 그 시조가 발상한 고을이름이 어떠냐에 따라 《본》이란 개념이 생기게 되였고, 엄격이 그것을 준수하여 벌써 리조초기에 귀족들은 한자성 앞에다가 발상지명을 덧붙여 《전주리씨》,《밀양박씨》하고 불렀다.  시조의 발상지는  출신지역이 될수도 있고, 또 벼슬하여 받은 봉지일수도있다. 사실 고대에 있어서는 성씨 자체가 발상지 이름으로 된것이 적지 않다. 그리하여 이름앞에 선조의 발상지(원래의 성)을 붙이는것이 거의 통례로 되었는데, 한자성씨가 보급됨에 따라 발상지 이름이 따로 《본》이란 명칭으로 성씨앞에 붙게 되였다.  그후 한 종족에서도 그누가 벼슬하게 되면 따로 가보를 창설하고, 성은 원래의 성을 그대로 쓰고, 본은 자기의 봉지명으로 고쳐서 따로 기록하기 시작하였는데, 주요하게 자기의 공덕, 혹은 근친의 공덕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되여 같은 성씨에 여러가지 본이 생겨나게 된것이다.  그때로 부터 본이란 기실 한 가족의 발상지만 대표하게 되였으며, 지금은 같은 성씨의 다른 종친을 구분하는 의거로 많이 리용된다. 이것을 《본관》, 혹은 《관향》, 《향관》이라고도 한다.  사회, 력사적 변천으로 하여 본관의 이름이 지금은 없어졌거나, 또는 다른 이름으로 바뀌여 진것도 허다하다. 이를테면 연주 현씨, 문화 류씨, 가주 한씨, 반남 박씨, 무송 윤씨 등이다. 《연주》는 평안북도 녕변의 옛지명이였고, 《문화》는 신천군안의 옛고을이였으며, 《가주》는 정주군 가산고을의 별칭이고, 《무송》은 고창군 무장고을의 별칭이며, 《반남》은 라주군 소속에 있던 별칭이다. 하지만 이런 변천은 성씨의 본관에 큰 역할을 하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상기 본관의 개념이 바로 혈연갈래를 가르는데 두고 있기 때문에, 그냥 옛날지명을 그대로 부르면서 련속되여 왔던것이다.     20, 본 안에 또 파가 있다던데. 기록에 의하면 리조시기에 본이 가장 많은것은 김씨였는데, 499본에 달하였고, 리씨는 451본에 달하였으며, 최씨는 326본에 달하였고, 박씨는 309본에 달하였다. 장씨는 245본, 림씨 216본, 조씨 200본 등의 차례로 선보인다. 본이 많다는것은 그만큼 력사적으로 벼슬을 한사람이 많다는 방증이 된다. 리조후기부터 시작하여 같은 본끼리도 서로 멀고 가까운 현상이 많아졌는데, 족보를 캐여 같은 본안에서 그 문벌이 누구의 자손인가? 그리고 자기 혹은 타인과 어떤 관계인가를 밝혔다. 하여 본안에 또 파가 생겼다.    21, 성씨유래를 캐여보는 의의 우리 민족이 성씨를 쓴지도 이미 천년도 넘는 유구한 력사를 자랑하고있다. 민속학적인 의미에서 볼때, 대대로 성을 물려 주면서 피줄의 흐름을 이어온 그 자체가 하나의 력사이며, 조상들의 지혜로운 유산이다. 때문에 일제가 《동조동근》을 강요하면서 창씨개명까지 협박했던 그 살벌한 민족수난의 시기에도 우리 민족은 자기의 성씨를 잊지 않고, 따라서 자기가 조선민족임을 잊지 않고 줄기차게 살아왔던 것이다. 글로벌화된 오늘날에 와서 종친이요, 한 성씨요 하는 혈연개념이 희박해질수도 있고, 또 그 어떤 다른 목적에 리용될 수도 있다. 하지만 민속학적인 각도에서, 성씨의 유래를 캐여보는것은 력사지식방면에서 도움이 될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민족의 우량한 전통을 계승하고, 민족의 응집력을 가강하는 방면에서도 도움이 될수있다. 세계가 날로 좁아져서 마침내 지구촌이라는 개념으로 이 세계를 평가하는 오늘날, 우리가 자기의 민족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자기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새겨보며, 자기의 사명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방면에서도, 모두 중요한 의의를 갖고 있다.    연변인민방송국  김동선  연변조선족례의연구회  현용수 공동작성 2016-10-04
20    중양절과 우리민족 상례문화 댓글:  조회:2889  추천:0  2016-09-27
중양절과 우리민족 상례문화   중양의 어원 중국의 전통 음양학설에서는 우수[隅數]를 음(陰)의 수라고 하고, 기수[奇數]를 양(陽)의 수라고 하며, 보통 양의 수를 길수(吉數)로 여겼습니다. 그리하여 양의 수가 두개 겹치는 날은 대길한 날로 여기고 명절로 삼았습니다. 례컨대 음력으로 1월1일은 설날(태아의 날), 3월3일은 삼진날(어린이 날), 5월5일은 단오날(처녀총각의 날), 7월7일은 칠석날(련인의 날), 9월9일은 중구날 혹은 중양절(노인의 날)이라고 하였습니다. 그중에서 중구날은 가장 큰 양의 수가 두개 겹쳤으니 대길중의 대길한 날이인 셈이죠. 2.   중양절의 유래 구구중양에 대하여 일찍 중국 춘추전국시기에 기록이 있는데, 그 당시에는 아직 명절은 아니였습니다. 삼국시기 위문제 조비가 쓴 《九日与钟繇书》라는 문헌에서 처음으로 중구가 명절로 표시되여 있습니다.  당조에 와서 중구는 중양절이라고 칭하고 정식 민간명절로 정해졌고, 명조에 와서는 황궁에서까지도 중양절을 굉장히 쇠였으며, 그 풍속이 청조에까지 전해져 내려 왔습니다. 전통적으로 중양절에는 상국(賞菊), 등고(登高), 시주(詩酒) 등의 풍속이있었고, 당송(唐宋)때에는 관리들의 휴가일로서 추석보다도 더 큰 명절이였습니다. 반도에서 이 풍속은 신라시대에 당조로부터 들어 온것으로 추정됩니다.신라시대에 안압지의 임해전(臨海殿)이나 월상루(月上樓)에서 군신이중구에 연례적으로 모여서 술을 마이며 시가를 즐긴 기록이 있으며, 고려시대에는 중구의 향연이 나라적으로 정례화 되였습니다. 조선 세종 때에는 삼짇날과 중구를 명절로 공인하였으며, 성종 때에는추석에 행하던 기로연을 중구로 옮기고 유생들에게 과거를 실시했습니다. 조선 후기에 간행된《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9월 조에 의하면"서울의 풍속을 보면 중구날 남산과 북악산에 올라가 먹고 마시며 단풍놀이를 한다." 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3.   구구 중양절의 전설 중국 남북조때 량(梁)나라의 吴均이란 사람이 쓴 《续齐谐记》란 책의 기재에 근거하면; 중국 동한시기에 汝河지역에서 해마다 9월9일이면 온역이라는 마귀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가 나타나기만 하면 사처에 전염병을 퍼뜨려, 집집마다 사람이 병들어 눕고, 마을마다 사람이 매일 죽어 나갔다고 합니다.  恒景이란 청년이 있었는데, 그는 마귀를 소멸하여 마을사람들을 구할 뜻을 품고, 신선을 찾아 마귀 잡을 도술을 꾸준히 익혔습니다. 9월9일, 그는 마을에 내려와 먼저 마을사람들에게 수유(茱萸)잎 하나와 국화꽃술(菊花酒) 한종씩 나누어 주면서 높은산에 올라가 피신하게 하였습니다.  오시에 마귀가 나타나 산밑을 지나가면서 수유와 국화꽃술의 특이한 냄새를 맡더니 몹시 당황해 하였습니다. 이때 그 청년이 나타나 보검을 휘둘러 그 마귀를 죽여 버렸습니다. 지금도 중국 중원 지역에서 중양절에 옷이나 머리에 수유열매를 꽂고 높은산에 오르며, 국화꽃을 감상하고, 국화꽃술을 마이는 등 풍속이 있는데, 모두 온역을 피한다는 위의 전설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우리 민족 가운데서 전해져 내려 온 유설에 의하면; 중구날에는 양기가 너무 강하여, 음계(저승)에서는 사무를 볼수 없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이날에 전반 음계에서는 염라왕을 포함하여 모든 신령과 귀신들이 휴가를 보낸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이날이 탈이 없는 날이라는 속설이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이날에 면례 하거나 묘소를 수리하기도 하였고, 비석을 세우기도 하였으며, 객사하여 시신을 찾지 못하였거나, 구체적인 기일(忌日)을 알수 없는 조상이나 부모의 제사를 지내기도 하였습니다.  지금 연변에서는 이날에 이장하고, 합장하는 행사가 많습니다. 4, 우리민족 상례문화에 대하여 중양절은 일년중에 양기가 가장 강하고, 또 탈이 없는 날이라고 하니깐,구태여 기피할 필요가 없는 이 기회에 무형문화재로 된 우리민족의 상례문화에 대하여 몇가지 말씀 드리겠습니다;   첫째: 우리민족 상례문화가 왜 필요한가? 현재 우리 연변의 조선족 장례방식은 극히 간단하고 초라합니다. 아마 세상에서도 제일 초라한 장례방식인것 같습니다. 지금 대부분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 이미 습관되여 있으며, 시대의 현상이라고만 생각하고 이것이 우리민족의 수치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자고로 우리민족은 찬란한 장례문화가 있었습니다. 부모의 장례를 단지 부모의 유체를 처리하는 실무수단뿐만이 아니라, 부모의 죽음을 추모하고, 부모의 은덕에 감사를 표시하며, 가문의 전통을 이어받는 문화수단으로 삼고 정중하게 실행하여 왔습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의 부모장례를 살펴보면, 환경위생부문에서 쓰레기 처리하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절차가 너무 간단하다는 것이 아니라, 자손들의 성의가 부족하고, 사람으로서의 인정을 느껴볼수 없습니다.  한 민족이 흥성발전하려면 선진적인 문화를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자기민족의 전통문화의 기초상에서 받아들여야만 적극적인 효과를 낼수있습니다. 자기조상을 숭배하고 근본을 이어가는 민족은 선진적인 문화를 받아들여 흥성발전할수 있지만, 조상을 배반하고 근본을 잊어버린 민족은 선진적인 문화에 의하여 결국 쇄망하게 됩니다. 사람이 세상에 살면서 은덕에 보답할줄 알아야 하고, 감사할줄 알아야합니다. 이것은 사람으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인성입니다. 그래야만 사람들과 어울려 살수있고, 사회에서 발전할수 있으며, 위기에서도 운명의구원을 받을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많은 사람들은 작은 은덕에는 감사할줄 알지만, 큰 은덕에감사할줄 모릅니다. 그 큰 은덕이란 바로 조상들이 근본을 내려 주신 은덕이요, 부모가 생명을 주시고 키워 주신 은덕입니다.  우리의 부모들은 우리들에게 하늘과 같이 큰 은덕를 주시고도, 얼마 보답도 받지 못한채 저 세상으로 갔습니다. 인젠 그분들에게 보답의 기회조차 없어진 형편에서 감사이 마음이라도 있어야 할것 아닙니까? 장사제사를 크게 버젓하게 지내라는 것이 아니라, 간소하면서도 성의를 다하여 지내라는 것입니다. 그 성의 가운데 바로 자기민족의 기본례의를 지키라는 뜻도 포함되여 있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결혼이나 아이 돐잔치 같은 행사에서는 천문수자의 돈도 아끼지 않고 푹푹 쓰다가도, 부모의 장례나 제사라고 하면 린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결혼이나 아이 돐잔치에 쓰는 돈은 살아있는 사람들에 대한 투자이기 때문에 아깝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장례에 쓰는 돈도 기실 죽은 사람들을 위하여 쓰는 돈은 절때 아닙니다. 그 돈도 여전히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쓰는 돈이며, 량심에 대한 투자, 도덕에 대한 투자,운명에 대한 투자로 됩니다.  우리의 상례문화는 바로 사망한 부모에게 감사의 뜻을 표시하는 과정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기본적인 인간도리인 효도를 깨우쳐 주는 문명하고 엄숙한 문화수단입니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상례문화가 필요한 것입니다. 둘째: 우리 상례문화를 왜 산업화 해야 하는가? 상례문화라고 하면, 가정에서 누군가 사망하였거나, 혹은 청명이나 추석이 띄였을 때는 조금 관심을 가지게 되지만, 평소에는 누구나 될수록 기피하는 것이 이 문화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문화의 보호에 집착하는 것은, 이 문화가 특별히 우월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 문화에 우리의 뿌리가 묻혀있고, 우리의 넋이 슴배여 있으며,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지도록 깨우쳐 줄수있는 특수문화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이 문화를 효과적으로 보호할수 있겠습니까? 대답은 간단합니다; 산업화 하여야 합니다. 시장경제시대에 와서 산업화 하지 못한 문화는 생명력이 없습니다. 만일 이 문화를 계속 민간의 자연존재 차원에 맡겨 놓는다면 다음 세대에 가서 이 문화는 철저히 소실 될 것임은 의심할바 없습니다. 일단 이 문화가 없어지면 우리민족의 일생생활에는 엄중한 결점이 생기게 될것이고, 우리민족 소질도 엄중히 떨어지게 될것이며, 우리민족의 존재의식도 엄중히 약화될 것입니다. 상례문화를 산업화 한다는 것은 상례복무업체를 건립하고 국가의 유관정책과 시장규률은 준수하면서 합리한 유상복무를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이 업체의 체제를 건전히 하고, 경영관리를 가강하며, 장기적으로 견지해 나간다면, 우리의 상례문화는 살아남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견지에서 우리는, 상관정책에 의하여 이미 전문 조선족 상례복무업체를 건립하였습니다. 상례는 조선족 천가만호와 상관되는 대사이며, 조선족 매 사람들과 상관되는 대사입니다. 조선족 상례문화 보호는 전체 조선족들의 공동의 책임입니다.  어떻게 책임 질것인가? 바로 가문에 상사가 나면 우리를 찾으면 됩니다.이것은 우리의 상례문화 보호사업에 직접적인 참여로 됩니다. 우리 모두 공동 단결하여 우리민족의 보귀한 무형문화재를 보호합시다.   연변조선족례의연구회 현용수 작성  2016-09-27      
19    정월 대보름에 새해 행운을 댓글:  조회:2347  추천:0  2016-02-21
                           1.정월 대보름의 어원   대보름은 음력 정월보름날을 칭하는 말로써, 이날은 일년 중의 첫보름이라 특히 중요시하였고, 그해 년사(年事)의 풍흉(豊凶), 신수의 길흉화복을 점치고 또 다라밟기.쥐불놀이.연날리기 등 여러가지 민족 행사가 있었다.   정월의 절일(節日)로는 설과 대보름이 있다. 태고적 풍속은 대보름을 설처럼 여기기도 하였다. 조선 후기에 간행된《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의하면 대보름에도 섣달 그믐날의 수세하는 풍속과 같이 온 집안에 등불을 켜 놓고 밤을 세운다는 기록이 보인다. 달맞이 불놀이     율력서(律曆書)에 의하면 "정월은 천지인(天地人) 삼자가 합일하고 사람을 받들어 일을 이루며, 모든 부족이 하늘의 뜻에 따라 화합하는 달"이라고 한다.   따라서 정월은 사람과 신,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하나로 화합하고 한해 동안 이루어야 할 일을 계획하고 기원하며 점쳐보는 달인 것이다. 정월 대보름날을 한자어로는 '상원(上元)'이라고 한다. 상원은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삼원(三元) 의 하나로, 삼원이란 상원(1월 15일), 중원(7월 15일), 하원(10월 15일)을 말한다.   도가에서 이 날은 천상(天上)의 선관(仙官)이 인간의 선악을 살핀다고 하는데, 그때를 '원(元)'이라고 한다. 한편으로 전통사회의 절일(節日)로서 정월 대보름(1월 15일)· 7월 백중(7월 15일)· 8월 한가위(8월 15 일) 등이 있는데, 이러한 명일(名日)은 보름을 모태로 한 세시풍속들이다.   대보름은 음력을 사용하는 전통사회에 있어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농경을 기본으로 하였던 우리 문화의 상징적인 측면에서 보면, 달은 생생력(生生力)을 바탕으로 한 풍요로움의 상징이었다. 음양사상(陰陽思想)에 의하면 태양을 '양(陽)' 이라 하여 남성으로 인격화되고, 이에 반하여 달은 '음(陰)' 이라 하여 여성으로 인격화된다.   따라서 달의 상징적 구조를 풀어 보면 달(月)-여신(女神)-대지(大地)로 표상되며, 여신은 만물을 낳는 지모신(地母神)으로서의 출산력을 가진다. 이와 같이 대보름은 풍요의 상징적 의미로 자리매김한다. 보름세배   3. 정월 대보름의 풍속   전통사회의 농가에서는 정월을 '노달기'라 하여, 농군들은 휴식을 취하며 농사준비를 한다. 예컨대 가마니짜기· 새끼꼬기· 퇴비만들기· 농기구의 제작 및 수리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 시기는 휴식으로만 일관되지는 않는다.   새해를 맞이하여 새로운 시간의 창조를 위한 신성의례와 건강하고 풍요로운 생활을 얻기 위한 다양한 제의(祭儀)와 점세(占歲) 및 놀이가 행해진다.    지방마다 차이가 있지만 농촌에서는 마을공동제의로 대개 대보름날 자정을 전후로 하여 동제(洞祭)를 지낸다.  가가호호 성의껏 각출하여 제비(祭費)를 마련하고, 정결한 사람으로 제관을 선출하여 풍요로운 생산과 마을의 평안을 축원하는 것이 바로 동제인 것이다.    또한 풍요다산을 기원하는 놀이로 줄다리기를 들 수 있다. 는 라고도 하며 주로 농촌에 전승 되어온 점세적 농경의례(農耕儀禮)이다. 볏짚을 이용하여 암줄과 숫줄을 만든 후에 마을단위 혹은 군단위로 양편으로 나뉘어 줄을 당기게 되는데, 암줄이 승리를 해야 풍년이 든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줄달이기   이밖에도 풍농(豊農)을 기원하는 풍속으로 "지신밟기"가 있는데, 지신밟기는 정월 대보름 무렵에 마을의 풍물패가 집집마다 돌며 흥겹게 놀면서 지신(地神)을 진정(鎭靜)시키는 놀이인데, 이때 집주인은 금전이나 곡식을 주는 것이 상례이며, 모여진 금품은 그 부락의 공동사업에 사용하였다. 이것으 지신을 진압하여 연준(年中) 무사하기를 빈다는 뜻에서 행사화하였다.   지역에 따라서 마당밟기· 매귀(埋鬼)· 걸립(乞粒) 등으로 불리었다.   요즘유행하는 지신밟기 방법 - 삼채를 치면서 다니다가// 들어갈 가게 앞에서 휘모리를 짧게친후, 상쇠 : 문여소 문여소 주인장 문여소// 만~인간 들어갈제 만~복이 들어갑니다.// - 바로 이어서 휘모리로 신명나게 조진다. 만일 그 점포의 주인이 호응이 좋다면 상쇠는 가게로 들어가서 무병장수, 소원성취, 사업의 발전등을 기원해준다. 물론 사이사이 짧게 가락도 치면서, 만일 호응이 없다면 복을 빌어주러 왔는데 홀대하면 안좋다는둥 협박을 웃으면서 기분나쁘지 않게 하고 그래도 호응이 없으면 다음 점포로 이동한다.   이와는 달리 개인적인 의례로서, 대보름날 아침 일찍 일어나면 '부스럼 깬다'하여 밤·호두·땅 콩 등을 깨물며 일년 열 두달 종기나 부스럼이 나지 않도록 축원한다. 또 아침 일찍 일어나 사람을 보면 상대방 이름을 부르며 '내 더위 사가라'고 한다. 이렇게 더위를 팔면 그 해 더위를 먹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한편 아침 식사 후에는 소에게 사람이 먹는 것과 같이 오곡밥과 나물을 키에 차려주는데, 소가 오곡밥을 먼저 먹으면 풍년이 들고, 나물을 먼저 먹으면 흉년이 든다고 한다. 아이들은 대보름날이 되면 '액연(厄鳶) 띄운다'고 하여 연에다 '액(厄)' 혹은 '송액(送 厄)' 등을 써서 연을 날리다가 해질 무렵에 연줄을 끊어 하늘로 날려 보냄으로써 액막이를 한다.   주부들은 단골무당을 청하여 가신(家神)과 여러 잡신들을 풀어 먹임으로써 가내의 평안을 기원하는데, 이를안택(安宅)이라고 한다.    대보름날 밤에는 달맞이 풍속이 있다. 달맞이는 초저녁에 높은 곳으로 올라서 달을 맞는 것을 말하며, 먼저 달을 보는 사람이 길(吉)하다고 한다. 아울러 달의 형체, 대소, 출렁거림, 높낮이 등으로 1년 농사를 점치기도 한다.   이와 더불어 달집태우기 풍속도 대보름날 밤에 행해지는데, 횃불싸움과 쥐불놀이 등과도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짚이나 솔가지 등을 모아 언덕이나 산위에서 쌓아 놓고 보름달이 떠오르기를 기다려 불을 지른다. 피어 오르는 연기와 더불어 달을 맞이하고, 쥐불놀이와 더불어 이웃마을과 횃불싸움을 하기도 한다.   이 외에도 볏가릿대세우기, 복토(福土)훔치기, 용알뜨기, 다리밟기, 곡식 안내기, 사발점, 나무그림자점, 달붙이, 닭울음점 등이 있다. 볏가릿대세우기는 보름 전날 짚을 묶어서 깃대 모양으로 만들고 그 안에 벼·기장·피·조의 이삭을 넣어 싸고, 목화도 장대 끝에 매달아 이를 집 곁에 세워 풍년을 기원하는 풍속이며, 복토훔치기는 부잣집의 흙을 몰래 훔쳐다 자기집의 부뚜막에 발라 복을 기원하는 풍속이다. 용알뜨기는 대보름날 새벽에 제일 먼저 우물물을 길어와 풍년을 기원하며, 운수대통하기를 기원하는 풍속이다.   곡식 안내기는 경남지방의 풍속으로 농가에서는 정초에 자기집 곡식을 팔거나 빌려주지 않는다. 이는 이 시기에 곡식을 내게되면 자기 재산이 남에게 가게된다는 속신 때문에 행해진 풍속이다.   사발점은 대보름날 밤에 사발에 재를 담아 그 위에 여러 가지 곡식의 종자를 담아 지붕위에 올려 놓은 다음, 이튿날 아침 종자들의 행방을 보아 남아 있으면 풍년이고, 날아갔거나 떨어졌으면 흉년이 든다고 한다. 나무그림자점은 한자 길이의 나무를 마당 가운데 세워 놓고 자정무렵 그 나무 비치는 그림자의 길이로써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풍속이다.   달붙이는 대보름 전날 저녁에 콩 12개에 12달의 표시를 하여 수수깡 속에 넣고 묶어서 우물속에 집어 넣어 콩알이 붙는가 안붙는가에 따라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풍속이다. 닭울음점은 대보름날 꼭두새벽에 첫닭이 우는 소리를 기다려서 그 닭울음의 횟수로써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풍속이다. 대보름날에 행해지는 놀이로는 사자놀이, 관원놀음, 들놀음과 오광대 탈놀음, 석전, 고싸움, 쇠머리대기, 동채싸움 등이 있다.            다리밟기(踏橋)는 음력 대보름날 다리를 밟는 일로써, 이날 다리를 밟으면 1년간 다리병이 없고, 12다리를 밟으면 12월의 액을 면한다고 한다. 이수광(李수光)의 "지봉유설"에 의하면 고려 때 시작하여 성행하였는데, 혼잡했기 때문에 여자들은16일 밤에 행하였다고 한다.   조선에서는 양반들이 서민들이 들끓는 것을 싫어하여 14일 밤에 행하여 속칭 이날을 라 하였고, 다리밟기 중엽 후에는 여자들의 다리밟기는 차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날은 1년중  4월 초파일과 더불어 서울 시내에 가장 사람이 가장 많이 나와 돌아다니는 날로서 이날 밤에는 통행금지가 해제되었다.      지신밟기(마당밟이, 뜰밟이) 지신밟기는 주로 정월 초부터 대보름까지 많이 하는데, 그때만이 아니라 크고 작은 명절과 마을 에서 쓸 돈을 모아야 할 때마다 행해져 왔다. 마을공동체, 나아가서 모든 겨레의 바람(기원이나 소 망)을 이루고 모든 나쁜 것을 물리치고자 하는 뜻에서 진행되는 것이다. 지신밟기를 통해 마을의 공동 관심사가 이야기되고, 이를 통해 거두어 들인 자금은 마을사람 모두의 이익을 위해서 쓰여진 다. 밟아 버려야 할 나쁜 신을 힘껏 내리 밟는 다리와 다리에서 뿌듯한 마음을 느끼게 될 때 지신 밟기는 절정을 이루며, 주인이 내놓는 술과 음식으로 구경꾼이나 풍물잽이나 할 것 없이 함께 어울 려 놀 때 어느새 한마음 한뜻이 될 수 있다. 지신밟기는 농촌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바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그 기능이 드러날 수 있으 며, 각각의 경우에 맞는 노래나 고사반을 만들어 진행할 수 있다. 농촌에서의 지신밟기는 대개 다 음과 같은 짜임에 의해 치루어졌으며 굿을 치는 곳을 따라다니며 입장단이나 덕담(잘 되길 비는 말)으로 바라는 바를 빌었다. 1) 당산굿 마을의 수호신인 당산님(마을을 지켜 주는 신으로 나무나 돌을 가리킴)께 인사하는 것으로 당산 에 대한 인사굿으로서의 뜻만이 아니라 마을사람 모두의 바람(기원)을 나타내고 모든 이의 의사를 모아 가는 자치의 기능을 맡아 왔다. 당산굿은 공동체 의식을 나타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의식적 행사라 할 수 있다. 곳에 따라 순서나 덕담이 다 다르게 나타난다. 여기서는 전라도에서 일반적으 로 전해지는 것을 보기로 들겠다. 순서)    (1) 질굿(풍류)을 치며 치배의 끝(보통 소고를 말함)에서부터 당산에 들어간다.    (2) 당산에 이르러 삼채 등으로 장단을 바꾼 뒤 오방진을 감는데, 여기서 오방진        을 감는 것은 판을 깨끗이 씻는다는 뜻이다.    (3) 오방진을 다 감고 푼 뒤, 한 줄 또는 두 줄로 늘어서서 인사굿을 세 번 친다.    (4) 제사 -- 제문(발원문) 읽기 : 유세차 모년 모월 모일에…… 상향                소지(신령 앞에 비는 뜻으로 얇은 종이를 오려서 불을 붙여 공중으로                날리는 일, 또는 그 종이) : 어허러루 당산님 우리네 발원 들어보소                …… 어허러루 당산님 만세유전을 비옵니다.        음복(제사를 지내고 나서 제사에 썼던 음식물을 나누어 먹는 것)    (5) 인사굿 -- 세 번 치고 나온다. 2) 샘굿 (마을의 공동 우물) 길을 가다가 샘이 있는 곳이면 꼭 치고 지나간다. 용왕님께 빌어 물이 일 년 내내 맑고 넘치게 하여 풍년이 들고 어떤 병도 얻지 않고 오래도록 튼튼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빈다. (덕담 : 솟아라 솟아라 맑은 물만 솟아라, 물 줍쇼 물 줍쇼 사해용왕 물 줍쇼, 만인간이 먹더라도 무병장수 비나이다.) 3) 문굿 집집마다 풍물굿을 치며 돌아다니다가 한 집에 다다르면 문 앞에서 주인이 나와서 맞아들이기를 기다리며 친다. (덕담 : 주인 주인 문여소 문 안 열면 갈라요, 주인 주인 문여소 마당 가운데 불 놓소, 주인 주인 문여소 복 들어강께 문여소.) 4) 성주굿 (대청굿) 그 집이 지어진 내력을 노래하고 성주님께 복을 비는 굿이며 성주풀이와 액맥이를 한다. 문굿을 치고 마당으로 들어가서 한바탕 논 뒤 상쇠나 대포수가 재담을 늘어 놓는다. 고사 소리꾼이 있으면 고사소리도 한다. 5) 조왕굿 (정지굿) 부엌에서 치는 굿으로 대포수가 솥뚜껑을 엎어 놓으면, 주인이 그릇에다 쌀을 담아서 촛불을 꽂 아 놓고 그 옆에 정화수(깨끗한 물)를 떠놓는다. (덕담 : 누르세 누르세 조왕님전 누르세, 울리세 울리세 조당지신 울리세, 이 솥에 밥을 하여 만백 성을 먹여내세, 구석구석 네구석 정지구석도 네구석.) 6) 청룡굿 (뒤안굿, 장독굿) 장독에서 치는 굿으로 된장, 고추장, 간장 등 음식맛을 좋게 해주십사 하고 비는 굿이다. (덕담 : 지신지신 지신아 청룡지신을 울리세, 장달다 장달다 꼬장띠장 장달다.) 7) 샘굿 (집 안의 우물) 내용은 2의 샘굿과 같다. 8) 고방굿 (곡간굿) 광에서 치는 굿으로 많은 쌀이 모이길 비는 굿이다. (덕담 : 올해도 풍년이라 넘실넘실 나락 풍년, 고방마다 쌓인 나락 우리 농부 피땀일세, 앞으로 봐 도 천석군 뒤로 봐도 천석군 천년만년 울리소.) 9) 외양간굿 마구간이나 가축우리에서 치는 굿이다. (덕담 : 매있네 매있네 금송아지 매있네, 송아지를 낳으려면 암송아지를 낳고, 이왕이면 쌍둥이라 한꺼번에 낳아주소.) 10) 측간굿 뒷간에서 치는 굿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치지 않는 곳도 있다. (덕담 : 측간 속에 빠지면 백약이 소용없네, 애비부터 손자까지 빠지는 일 없도록, 비나이다 비나 이다 측간지신께 비나이다.) 11) 술굿 주인이 마당에 술상을 차려 놓으면 술을 마시기 전에 치는 굿이다. (덕담 : 두부국에 김나네 어서 치고 술먹세, 시어머니 주기는 아깝고 며느리 주기는 쑥쑤고, 저 밑 에 지렁이 온다 우리가 먹자 홍자쿵.) 12) 경운기굿, 자동차굿 요즘 들어 생산수단의 중요한 도구로 쓰이는 경운기나 자동차가 고장이 안 나고, 일을 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빌며, 경운기나 자동차를 새로 산 것을 이웃들과 함께 기뻐하며 치는 굿이다. 새로 운 풍속의 하나이다. (덕담 : 굴러간다 굴러간다 힘차게 굴러간다.)  
18    동지(冬至)를 아십니까? 댓글:  조회:5481  추천:0  2015-12-22
  1. 동지의 어원 동지는 24절기의 하나로서 일년 중에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24절기는 태양력에 의해 자연의 변화를 24등분하여 표현한 것이며, 태양의 황경이 270도에 달하는 때를 '동지'라 고 한다. 동지는 음력 11월 초순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그믐께 들면 '노동지'라고 하는데, 이는 동지가 드는 시기에 따라 달리 부르는 말이다. 2. 동지의 유래 동지는 일년 중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길어 음(陰)이 극에 이르지만, 이 날을 계기로 낮이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여 양(陽)의 기운이 싹트는 사실상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이다. 중국의《역경(易經)》에는 태양의 시작을 동지로 보고 복괘(復卦)로 11월에 배치하였다. 따라서 중국의 주(周)나라에서는 11월을 정월로 삼고 동지를 설로 삼았다. 이러한 중국의 책력과 풍속이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으로 보인다. 옛 사람들은 이날을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로 생각하고 경사스럽게 여겨 속절로 삼았다. 이것은 동지를 신년으로 생각하는 고대의 유풍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전통사회에서는 흔히 동지를 '작은 설'이라 하여 설 다음 가는 경사스러운 날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옛말에 '동지를 지나야 한살 더 먹는다' 또는 '동지팥죽을 먹어야 한살 더 먹는다' 라는 말이 전하기도 한다. 3. 동지의 풍속 중국의《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의하면 "공공씨(共工氏)의 재주 없는 아들이 동짓날에 죽어서 역질(疫疾)귀신이 되었는데, 그 아들이 생전에 팥을 두려워하여 팥죽을 쑤어 물리친 것이다" 라는 기록이 있다. 이것은 다분히 후대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이야기로 팥죽의 축귀(逐鬼) 기능에대한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동지팥죽이절식이고, 팥은 붉은 색 깔을 띠고 있어서 축사(逐邪)의 힘이 있는 것으로 믿어 역귀(疫鬼) 뿐만 아니라 집안의 모든 잡귀를 물리치는데 이용되어 왔다. 이러한 점은 음양사상(陰陽思想)의 영향으로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즉 팥은 붉은 색으로 '양(陽)'을 상징함으로서 '음(陰)'의 속성을 가지는 역귀나 잡귀를 물리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경상도 지방에서는 팥죽을 쑤어 삼신·성주께 빌고, 모든 병을 막는다고 하여 솔잎으로 팥죽을 사방에 뿌린다. 또 경기도 지방에서는 팥죽으로 사당에 차례를 지낸 후, 방을 비롯한 집안 여러곳에 팥죽 한 그릇씩 떠놓기도 한다. 한편 지방에 따라서는 전염병이 유행할 때, 우물에 팥을 넣으면 물이 맑아지고 질병이 없어진다고 한다. 한편으로 동지에는 동지팥죽과 더불어 책력을 선물하던 풍속이 전한다. 이에 대해《농가월령가 (農家月令歌)》11월 조에서는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동지(冬至)는 명일(名日)이라 일양(一陽)이 생(生)하도다 시식(時食)으로 팥죽을 쑤어 이웃(隣里)과 즐기리라 새 책력(冊曆) 반포(頒布)하니 내년(來年) 절후(節侯) 어떠한고 해 짤라 덧이 없고 밤 길기 지리하다 옛부터 "단오(端午) 선물은 부채요, 동지(冬至) 선물은 책력(冊曆)이라"는 말이 전하여 온다. 전통사회에서는 단오가 가까워오면 여름철이라 친지와 웃어른께 부채를 여름 선물로 선사하고, 또 동지가 되면 책력을 선사하는 풍속이 성하였다. 책력은 농경사회에서 생업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요긴하게 사용되었던 생활의 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부록: ▶ 이십사 절기(二十四節氣)란?   한 해의 변화를 24절로 나눈 것. 즉, 태양을 중심으로 하는 지구 공전의 궤도(황도)를 스물 넷으로 등분한 각 구점(區點)을 태양이 통과하는 일시. 지구상의 기후는 이 절기순서에 따라 변화 반복함. 평기(平氣)로는 오일(五日)을 일후(一候), 삼후(三侯)를 일기(一氣), 일년을  이십사기(二十四氣)로 나눔.   계절은 태양의 적위(赤緯)에 의하여 지배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원래 태음력(太陰曆)이며 태양의 위치와 관계없이 역일(歷日)을 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역일로서만은 계절이 어떻게 정밀하게 변화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역일 외의 태양력적 요소를 가미하기 위하여 사용하게 된 것이다. 역법(曆法)과 절기(節氣)  ♣ 음력(陰曆)과 양력(陽曆) 인류가 역법(曆法)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는 달력은 태양과 지구, 달의 변동에 따라 만들어진 것으로 관측의 대상에 따라 태음력(太陰曆)과 태양력(太陽曆), 태음태양력(太音太陽曆)의 세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 太陰曆(태음력) 달의 삭망(朔望)을 기준으로 하여 만든 역법(曆法)으로 태음태양력을 줄여서 태음력이라고도 하나 주로 순태음력을 가리킨다. 태음력은 달이 29.53059일(1삭망월)을 주기로 규칙적으로 차고 기우는 데서 자연적으로 생겼다. 대부분의 고대력은 태음력으로 출발하여 태음태양력(太陰太陽曆) 또는 태양력으로 변해갔다. 현재는 터키 ·이란 ·아라비아 ·이집트 등 이슬람지역에서 사용하는 이슬람력이 순태음력으로 남아 있다. 순태음력에서는 29일의 작은달과 30일의 큰달을 번갈아 배치하여 1년을 12달의 354일로 하고, 30년에 11일의 윤일을 두어 달의 삭망과 날짜가 일치하도록 하고 있다.  ♣ 太陽曆(태양력) 태양의 운행을 기준으로 만든 역법(曆法)으로 태음력(太陰曆)과 상대되는 역법이다. 태양력의 기원은 이집트로 알려져 있다. 이집트에서는 일찍부터 나일강(江)이 범람할 때면 동쪽 하늘의 일정한 위치에 시리우스(큰개자리 α별)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아냄으로써 태양력을 만들 수 있었다. BC 18세기경 이집트인들은 1년을 365일로 하고, 이것을 30일로 이루어진 12달과 연말에 5일을 더하는 식으로 달력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후 시리우스와 태양의 관계를 좀더 자세히 관측하여 1년이 365.25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율리우스력에 채용되어 4년마다 1일을 더하는 윤년이 생겼고, 1582년 다시 1년의 평균길이를 365.2425일로 하는 그레고리력에 인계되어 현재에 이르렀다. 그레고리력에서는 4년마다 윤년을 택하되, 100으로 나뉘는 해는 윤년으로 하지 않고, 다시 400으로 나누었을 때 나뉘는 해는 윤년으로 하는 등 복잡한 역법이 이용된다.  ♣ 太陰太陽曆(태음태양력) 달의 운행(朔望月)에 기준을 두면서 계절(太陽年)에도 맞춘 역법(曆法)으로 큰달(30일)과 작은달(29일)을 조합하여 12개월(平年) 또는 13개월(閏年)을 1년으로 하는데, 평년에는 354일과 355일, 윤년에는 383일과 384일의 네 가지 1년이 있다. 치윤법(置閏法)으로는 처음에는 2년에 1회 윤달을 두었는데, 나중에 19년에 7회 윤달을 두는 메톤법(法)이 채용되었다. 큰달과 작은달을 배치하는 방법에는 평삭(平朔:평균삭망월 29.53059일에 맞추는 것)과 정삭(定朔:실제의 삭망에 맞추는 것)이 있다. 평삭에서는 큰달과 작은달이 교대로 나타나며 단지 16개월 또는 17개월마다 큰달이 3회 계속된다. 정삭에서는 달의 운동이 같지 않은 데서 큰달 또는 작은달이 4회 계속되는 일이 있다. 서양의 역은 모두 평삭이었으며, 한국과 중국의 역도 처음에는 평삭이었으나, 나중에 정삭으로 변하였다.     이상 연변조선족례의연구회 제공
17    추석(한가위) 댓글:  조회:2081  추천:0  2015-09-26
추석(秋夕)        목록가기       1. 추석의 어원   추석은 우리나라 4대 명절의 하나로 한가위. 중추절(仲秋節). 중추가절(仲秋佳節)이라고 한다. 한가위의 한은  "하다(大. 正)"의 관형사이고, 가위란 "가배(嘉俳)를 의미한다.   이때 가배란 "가부. 가뷔"의 음역(音譯)으로서, "가운데"란 뜻인데, 지금도 옛 신라의 땅인 영남지방에서는  "가운데"를 "가분데"라 하며, "가위"를  "가부", "가윗날"을 "가붓날"이라고 한다.     또 8월 초하루에서 보름까지 부는 바람을"8월 가부새 바람 분다"라고 한다. 이로써 미루어 볼때 가뷔. 가부는 뒷날 가위로 속전(俗轉)된 것으로 알 수 있으니, "추워서"를 현재에도 "추버서"로 하는 것에서도 이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한가위란 8월 중에서도 정(正) 가운데란 뜻이니, 정중심(正中心)을 우리가 "한가분데" 또는 "한가운데"라고 하는 것과 뜻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한가위를 추석, 중추절(仲秋節). 중추가절(仲秋佳節)이라고 한 것은 훨씬 후대에 와서 생긴 것이다. 즉 중국으로부터 한자가 전래되어 중추(仲秋)의 추(秋)자와 월석(月夕)의 석(夕)자를 따서 추석(秋夕)이라 한것으로 생각된다. 2. 추석의 유래   추석의 기원에 대해서 정확히는 밝힐 수 없지만, 고대로부너 있어 왔던 달에 대한 신앙에서 그 뿌리를 짐작할 수 있다. 고대사회에 있어 날마다 세상을 밝혀주는 태양은 당연한 존재로 여겼지만 한 달에 한번 보름달이 이 되는 달은 고마운 존재였다.   밤이 어두우면 맹수의 접근이나 적의 습격도 눈으로 확인할 수 없으므로 인간에게 있어 캄캄한 밤은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이러한 가운데 보름달은 인간에게 있어 고마운 존재였고, 그 결과 보름달 아래에서 축제를 벌이게 되었다.   그런데 보름달 중에서도 가장 큰 보름달을 이루는 8월 15일인 추석이 큰 명절로 여겨진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 큰 보름달 아래에서 축제를 벌이고 먹고 마시고 춤추었으며, 줄다리기. 씨름. 강강수월래 등의 놀이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일년 중에서 가장 달이 밝은 :한가위"는 이미 고대에 우리 민족 최대의 축제로 여겨지게 되었고, 후에 와서 의식화(儀式化)되므로 명절로 제정되어 오늘날 까지 전승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가위의 기원에 대해서는 에 잘 나타나 있다.   지금부터 약 2천년 전인 신라 제3대 유리왕  때부터라고 한다. 유리왕은 백성들이 기쁜 마음으로 즐겁게 살기를 바라는 "도솔가"를 지어 부르게 하였고, 여러 가지 산업을 장려하기도 하였는데, 그가 일으킨 산업 중에 유명한 것이 바로 길쌈이었다.   왕은 길쌈 장려를 위해 6부의 부녀자들에게 내기를 시켰다. 우선 6부를 두 패로 나누어 편을 짜고, 왕녀 두 사람을 뽑아 각각 부내(部內)의 여자들을 거느리게 한 다음, 7월 16일 16일부터 날마다 6부의 부녀자들이 뜰에 모여 길쌈을 하는데, 밤늦게야 일을 파하고8월 15일에 이르러 그 공이 많고 적음을 살펴 왕이 판결을 내리면, 진 편에서는 술과 밤을 장만하여 이긴 편을 대접하였다고 한다.  온 갖 푸짐한 음식을 마련해 놓고, 양편은 모두 둥그런 원을 그리며 둘러앉아 함께 먹으며 노래와 춤으로 유희를 즐겼는데, 이를 가배(가배)라 한다.   서라벌에서 유래한 ""한가위" 라는 신라의 명절이 지금껏 전승되어 계속이어져 내려온 것이, 오늘날 우리나라 한가위의 기원이요 유래라 할 수 있다.    3. 추석의 풍속   추석에 행해지는 세시풍숙으로는 벌초. 성묘. 차례. 닭싸움. 소놀이. 거북놀이. 강강수월래. 원놀이. 가마싸움. 씨름. 반보기. 올게심니. 밭고랑 기기 등을 들 수 있다.  (1) 벌초와 성묘   추석에 조상의 무덤에 가서 여름동안 무성하게 자란 잡초를 베어주는데, 이를 벌초라 한다.  (2) 차례    추석 이른 아침에 사당을 모시고 있는 종가(宗家)에 모여 고조(高祖)까지의 차례를 지낸다.다.  차례 지내는 절차가 설날과 다른 것은 흰떡국 대신 메[밥]를 쓰는 점이다. 제물은 신곡으로 만들어 진열하며, 고조 이상의 윗대는 10월에 시제라 해서 묘에서 제사를 지낸다.  (3) 소놀이   추석날 차례를 마치고 난뒤 알맞은 시간에 소놀이는 진행된다. 먼저 마을 사람들로 구성된 농악대가 풍물을 울리면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든다. 상쇠의 선도에 따라 한바탕 신나게 풍물을 울리며 어우러져 놀다가 소놀이가 시작된다.   두 사람이 허리를 굽히고 그 위에 멍석을 뒤집어 씌우며, 뒷사람은 큰 새끼줄로 꼬리를 달고, 앞사람은 막대기 두 개로 뿔을 만들어 소이 시늉을 한다. 소를 끌고 농악대와 마을 사람들은 그 마을에서 가장 부농집이나 그 해에 농사를 가장 잘 지은 사람의 집으로 찾아간다. 대문 앞에서 "소가 배가 고프고 구정물을 먹고 싶어 왔으니 달라"고 외치면 주인이 나와서 일행을 맞이한다. 소를 앞세우고 일행은 앞마당으로 들어가 농악을 치고 노래하고 춤추고 놀면 주인집에서는 술과 떡과 찬을 차려 대접한다. 마을 사람들은 한참 놀다가 다시 소를 끌고 다른집으로 향한다. 이렇게 여러 집을 찾아가  해가 질 때까지 어울려 논다.   소 놀이를 할 때는  당년에 농사를 가장 잘 지은 집 머슴을 상머슴으로 뽑아 소등에 태우고 마을을 돌며 시위하는 경우도 있다. 농사를 천하의 대본으로 알고 살아온 농경민족에게 있어 농사를 잘 지어 풍작을 거두었다는 것은 큰 공이니, 위로하고 포상하는 뜻에서 소에 태우는 영광을 주는 것이다.   한 번 상머슴으로 뽑히면 다음해 머슴 새경을 정할 때 우대를 받게된다.    (4) 원놀이. 가마싸움   옛날 서당 교육은 훈장을 초빙해서 가르치는 것이었다. 명절이 되면 훈장도 고향에 가서 차례. 성묘를 하게되므로 서당은 며칠 ㅜ시게되고 학동들은 자유롭게 놀 수가 있다. 이럴 때에 학동들에 의해서 원놀이와 가마싸움이 있게된다.  원놀이란 학동들 중에서 공부를 많이 했고 재치있는 사람을 원님으로 선발하고 나머지 학동들은 뱃성이 되어 원님께 소장을 내어 그 판결을 받는 놀이인데, 오늘날의 대학에서 모의 재판과 유사하다.   이때에 현명하고 지혜로운 원님은 사건을 잘 해결하지만,  서투른 원님은  백성들의 놀림감이 된다고 한다. 장차 과거에 등과해서 벼슬을 하고 백성을 다스려야 할 학동들의 놀이로서는 매우 적격이다. 가마싸움도 학동들이 주가되어 행하는 놀이이다. 훈장이 없는 틈을 타서 가마를 만들어 이웃마을 학동들과 또는 이웃서당의 학동들끼리 대결을 하는 놀이이다. 가마를 끌고 넓은 마당에 나아가 달음질해서 가마끼리 부딪쳐 부서지는 편이 지게 되는데, 이긴 편에서 당년에 등과가 나온다고 한다.  (5) 반보기 추석이 지난 다음, 서로 만나고 싶은 사람끼리 장소와 날짜를 미리 정하고 만나는 것을 반보기라 한다. 옛날에 시집간 여자들은 마음대로 친정 나들이를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모녀 사이에 중간지점을 정해서 서로 즐기는 음식을 마련하여 한나절 동안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회포를 푸는 것이 반보기인 것이다. 이와같이 반보기란 서로 중간 지점에서  한나절 동안만 상봉하여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회포를 다 풀지 못하고 반만 풀었다는데서 나온 말이다. 또한 마을의 여인들이 이웃 마을의 여인들과 경치 좋고 풍광이 수려한 곳에 집단으로 모여 우정을 두터이 하며 하루를 즐겼는데, 이 때에는 각 마을의 소녀들도 단장하고 참여하므로 자연스럽게 며느리감을 고르는 기회가 되기도 하였다.  (6) 올게심니 추석을 전후해서 잘 익은 벼, 수수, 조 등 곡식의 이삭을 한 줌 베어다 묶어 기둥이나 대문위에 걸어두는데 이것을 올게심니라 한다. 올게심니를 할 때에는 주찬(酒饌)을 마련하여 이웃을 청해서 주연을 베풀기도 한다.  올게심니한 곡식은 다음해에 종자씨로 쓰거나 떡을 해서 사당에 천신하거나 터주에서 올렸다가 먹었다. 올게심니를 하는 것은 다음해에 풍년이 들게 해달라는 염원의 뜻이 담겨져 있다.  (7) 밭고랑 기기 전라남도 진도에서는 8월 14일 저녁에, 아이들이 밭에 가서 발가 벗고 자기 연령수대로 밭고랑을 기는 풍숙이 있다. 이 때에 음식을 마련해서 밭둑에 놓고 하는 수도 있는데, 이렇게 밭고랑 기기를 한 그 아이는 몸에 부스럼이 나지 않고, 또한 밭농사도 잘된다는 것이다.                  시골 마당에서의 윷놀이                차례 상                       방에서의 윷놀이   (8) 기타 풍속  추석은 시기적으로 곡식과 과일 등이 풍성한 때이므로 이즈음에는 여러 가지 시절 음식이 있다. 추석에는 차례를 지내기 위해서 제찬을 준비하는데, 제찬은 설날과 별 차이가 없다. 다만 추수의 계절이라 햇곡식으로 밥과 떡, 술을 만든다. 철이 늦은 해에는 미리 밭벼[山稻]를 심었다가 제미(祭米)로 쓰기도 한다. 이렇게 햅쌀로 밥을 지으면 맛도 좋고 기름기가 있으며, 떡도 맛이 좋다.  추석의 대 표적인 절식으로는 송편을 빼놓을 수가 없다. 송편 속에는 콩· 팥· 밤· 대추 등을 넣는데, 모두 햇것 으로 한다. 열 나흗날 저녁 밝은 달을 보면서 가족들이 모여 송편을 만드는데, 송편을 예쁘게 만들면 좋은 배우자를 만나며, 잘못 만들면 못생긴 배우자를 만나게 된다고 해서 처녀, 총각들은 송 편을 예쁘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또한, 임신부의 태중 아이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궁금할 때에는 송편 속에 바늘이나 솔잎을 가로 넣고 찐 다음, 한쪽을 깨물어서 바늘의 귀쪽이나 솔잎의 붙은 곳(나무에 붙었을 때의 접착부분)을 깨물면 딸을 낳고, 바늘의 뾰족한 곳이나 솔잎의 끝쪽을 깨물면 아들을 낳는다고 하여, 이를 점치기도 한다.   특히 올벼로 만든 송편은 올벼 송편이라 부른다. 추석의 차례상에서 빠질 수 없는 또 하나의 것이 바로 술이다. 추석 술은 백주(白酒)라고 하는데, 햅쌀로 빚었기 때문에 신도주(新稻酒)라고도 한다. 추석 때는 추수를 앞 둔 시기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이 풍족해진다. 사람들의 인심 또한 후해서 추석 때에는 서로 술대접을 하는 수가 흔하다. 또 이 때의 가장 넉넉한 안주로 황계(黃鷄)를 들 수 있는데, 봄에 알을 깬 병아리를 길러서 추석 때가 되면 잡아먹기에 알맞게 자란다.  또 옛날에는 명절에 어른에게 선사하는 데에 닭을 많이 썼다. 친정에 근친을 하러 가는 딸은 닭이나 달걀꾸러미를 가지고 갔으며, 경사가 있을 때에도 닭을 선물했으며, 반가운 손님이 찾아오면 손쉬운 닭을 잡아 대접하였다. 특히 사위가 찾아오면 장모는 닭을 잡아 대접하는 일이 흔했다. 녹두나물과 토란국도 추석의 절식이다.녹두나물은 소양(消陽)한다고 하지만 잔치상에 잘 오르고, 토란은 몸을 보한다고 해서 즐긴다.                      ▲위로가기             목록가기                          
16    운수보기, 꿈해몽, 이름짓기 댓글:  조회:4241  추천:0  2012-08-30
命者,人之大事也,死生之地,存亡之道,不可不察! 免费算命  周公解梦  黄历 在线取名  公司测名  星座 号码吉凶  天气预报  字典 手机地址  电子地图  词语   汉文化工具   ·在线字典 ·康熙字典 ·语词字典 ·成语字典 ·诗词大全 ·科普知识 ·营养成份 ·菜谱查询   星相命理   ·免费算命 ·周公解梦 ·号码吉凶 ·在线起名 ·姓名测试 ·黄历查询
15    오늘은 칠석날 댓글:  조회:4922  추천:0  2012-08-23
세시이야기.....칠석      1. 칠석의 유래 해마다 음력7월 7일을 칠석(七夕)이라한다. 이 날은 1년 동안 서로 떨어져 있던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날 이라고 하는데, 그들의 애틋한 사랑에 대한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하여 내려온다. 하늘나라 목동인 견우와 옥황상제의 손녀인 직녀가 결혼하였다. 그들은 결혼하고도 놀고 먹으며 게으름을 피우자 옥황상제는 크게 노하여 견우는 은하수 동쪽에, 직녀는 은하수 서쪽에 떨어져 살게 하였다. 그래서 이 두 부부는 서로 그리워하면서도 건널 수 없는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애태우면서 지내야 했다. 이러한 견우와 직녀의 안타까운 사연을 전해들은 까마귀와 까치들은 해마다 칠석날 에 이들을 만나게 해 주기 위하여 하늘로 올라가 다리를 놓아 주었으니 그것이 곧 오작교(烏鵲橋)이다. 그래서 견우와 직녀는 칠석날이 되면 이 오작교를 건너 서로 그리던 임을 만나 1년 동안 쌓였던 회포를 풀고 다시 헤어진다. 그래서 칠석날 세상에는 까치와 까마귀는 한 마리도 없으며, 어쩌다 있는 것은 병이 들어 하늘로 올라갈 수 없는 것들이라고 한다. 또 까마귀와 까치는 이날 다리를 놓느라고 머리가 모두 벗겨지게 된다고 한다. 칠석날 전후에는 부슬비가 내리는 일도 많은데, 이는 견우와 직녀가 서로 타고갈 수레 준비를 하느라고 먼지 앉은 수레를 씻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 물이 인간 세상에서는 비가 되어 내리므로, 이 비를 '수레 씻는 비' 즉 '세차우(洗車雨)'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칠석날 저녁에 비가 내리면 견우와 직녀가 상봉하여 흘리는 기쁨의 눈물이라고 하며, 이튿날 새벽에 비가 내리면 이별의 슬픈 눈물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때의 비를 '눈물 흘리는 비', 곧 '쇄루우(灑淚雨)'라고도 한다. 이 이야기는 중국으로부터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보이는데, 중국 한대(漢代)의 괴담(怪談) 을 기록한 책인《재해기(齋諧記)》에 이러한 이야기가 전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야기는 7월 7일 저녁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동서로 갈라졌던 견우성과 직녀성이 만나는 자연적인 현상에서 성립되었다. 즉 천문학상의 명칭으로 견우성(牽牛星)은 독수리별자리[鷲星座]의 알타이어(Altair)별이고, 직녀성(織女星)은 거문고별자리[琴星座]의 베가(Wega)별을 가리키는 것으로 원래 은하수의 동쪽과 서쪽의 둑에 위치하고 있다. 그런데 이 두 별은 태양 황도상(黃道上)의 운행 때문에 가을 초저녁에는 서쪽 하늘에 보이고, 겨울에는 태양과 함께 낮에 떠있고, 봄 초저녁에는 동쪽 하늘에 나타나며 칠석 때면 천장 부근에서 보게 되므로 마치 1년에 한 번씩 만나는 것처럼 보인다. 최남선은《조선상식(朝鮮常識)》에서, 견우성과 직녀성이 1년에 한번씩 마주치게 보이는 것은 일찍이 중국 주대(周代) 사람들이 해마다 경험하는 천상(天象)의 사실이었는데, 여기에 차츰 탐기적(耽奇的)인 요소가 붙어 한대(漢代)에 와서 칠석의 전설이 성립된 것이라고 하였다. 2. 칠석의 풍속 칠석날의 가장 대표적인 풍속으로는 여자들이 길쌈을 더 잘할 수 있도록 직녀성에게 비는 것이다. 이 날 새벽에 부녀자들은 참외, 오이 등의 초과류(草菓類)를 상위에 놓고 절을 하며 여공(女功:길쌈질)이 늘기를 빈다. 잠시 후에 상을 보아 음식상 위에 거미줄이 쳐져 있으면 하늘에 있는 선녀가 소원을 들어주었으므로 여공(女功)이 늘 것이라고 기뻐한다. 혹은 처녀들은 장독대 위에 정화수를 떠놓은 다음, 그 위에 고운 재를 평평하게 담은 쟁반을 올려놓고 바느질 재주가 있게 해달라고 비는데, 다음날 재위에 무엇이 지나간 흔적이 있으면 영험이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풍속은 직녀를 하늘에서 바느질을 관장하는 신격으로 여기는 믿음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으 며, 원래는 칠석날 밤에 궁중이나 민가의 부녀자들이 바느질감과 과일을 마당에 차려 놓고 바느질 솜씨가 있게 해달라고 널리 행하던 중국 한대(漢代)의 걸교(乞巧)의 풍속을 따른 것이다. 이 풍속은 당대(唐代)에 와서 주변 민족들에 전파되었는데, 우리 나라의 칠석 풍속은 중국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이 날 각 가정에서는 밀전병과 햇과일을 차려놓고, 부인들은 장독대 위에 정화수를 떠놓고 가 족의 수명장수와 집안의 평안을 기원하기도 한다. 또 이북지방에서는 이 날 크게 고사를 지내거나 밭에 나가 풍작을 기원하는 밭제[田祭]를 지내기도 한다. 중부지방에서는 '칠석맞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단골무당에게 자녀의 무사 성장의 기원을 부탁하는 것이다. 무당은 물동이를 타고 기원의 상징인 명다리를 내어 바람에 불리고, 다시금 무사 성장의 기원을 한다. 한편 7월이면 무더위가 한풀 꺾이는 시기이다. 농가에서는 김매기를 다 매고 나면 추수때까지는 다소 한가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래서 장마를 겪은 후이기도 한 이때, 농가에서는 여름 장마철 동안 눅눅했던 옷과 책을 내어 말리는 풍습이 있다. 이 날은 집집마다 내어 말리는 옷과 책으로 마당이 그득하다.《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7월 7일 인가에서는 옷을 햇볕에 말린다 하여 이는 옛날 풍속이라 하였는데, 이 날에 내어 말리는 옷과 책의 수량에 따라 잘살고 못사는 것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최남선의《조선상식(朝鮮常識)》에는 칠석은 원래 중국의 속절(俗節)로 우리나라에 전래되어 공민왕(恭愍王)은 몽고 왕후와 더불어 내정에서 견우·직녀성에 제사하였고, 또 이날 백관들에게 녹을 주었으며, 조선조에 와서는 궁중에서 잔치를 베풀고 성균관 유생들에게 절일제(節日製)의 과거를 실시하였다고 하였다. 다양한 생활주기와 가치관의 변화 속에서 오늘날 칠석의 풍속은 다만 견우와 직녀의 전설이 동심의 세계에 꿈을 부풀리는 기능을 하고 있을 뿐이다.
14    五福을 부르는 삶 댓글:  조회:3976  추천:0  2012-08-11
五福을 부르는 삶      궁극적으로 행복이란 무엇인가? 복 받는 삶을 사는 것이 행복이고, 그 중의 으뜸은 오복을 다 갖춘 삶을 사는 것이다. 오복이란 그 다루는 범위에 따라서 많이 다른데 한생을 살아감에 있어서의 오복이란 壽(수), 富(부), 康(강), 德(덕), 善終(선종)이라고 하겠다. 오복 가운데서도 으뜸의 복은 장수하는 것이다. 권력을 지닌 임금이나 최고의 재부를 지닌 석숭 같은 사람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하여도 일찍 죽는다면 복 있는 삶이 아니다. 옛말에 개똥밭에 굴러 다녀도 이승이 좋다고 하지 않았던가? 오복 중 둘째복은 부자로 사는 삶이다. 개똥밭에 굴러 다녀도 이승이 좋다고 하였지만 한평생을 가난 속에서 허덕이며 살아간다는 것은 역시 복 있는 삶이라고 할수 없다. 정당하게 재부를 일구어 놓고 좀 풍족하게 살라는 의미인데 가장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목표이다. 세 번째 복은 강녕으로서 건강을 뜻한다. 오래도록 살았고 또 부자로 살았어도 몸에 병이 많고 건강하지 못하게 살았다면 본인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아주 힘든 삶이 될것이니 역시 행복한 삶이라고 할수 없다. 네 번째 복은 덕으로서 많은 사람들의 찬미를 받으며 삶을 의미한다. 덕은 행복을 끌어 당기는 힘이 있다. 논어(論語)에 이라는 명구가 있는데, 덕이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외롭지 않고 반드시 친한 이웃이 있다는 의미이다. 논어에서는 또 라는 말도 나온다. 먼 곳(遠方)으로부터 벗들이 기쁨을 가지고 찾아올 정도로 덕이 많은 사람이라면 가까운 곳(近方)으로부터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쁨을 가지고 찾아 올지는 不聞可知가 아닌가? 오복의 마지막 복은 善終, 즉 잘 죽는 것이다. 어린 자식을 두고 불의의 사고로 죽었거나, 젊은 나이에 병사한 사람의 장례식장에 가보라; 가속의 비통함과 애절함에 하늘도 눈물을 흘릴 지경이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은 사람이 천수(天壽)를 누리고 죽었다면 죽는 것 자체가 무겁고 서글픈 것임에도 불구하고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호상(好喪)이라는 말이 실제로 존재하며 호상엔 장례를 마치 축제처럼 치렀다. 선종이란 바로 아무런 원망과 유감이 없이 아주 만족스럽게 만년을 살다가 고통없이 죽는것을 말한다. 위의 오복을 정리하면 장수(長壽)와 강녕(康寧), 선종(善終)은 건강에 관한 복으로 분류할 수 있고, 덕(德)은 주변인과의 좋은 관계의 중요성을 이야기한 부분이며, 부(富)는 사회적 성공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이다. 오복을 모두 누리고 사는 사람은 드물겠지만 대체적으로 행복하게 산다고 공인받는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즉 그들의 평상시의 생각과 삶의 방식이 바로 복을 불러 온다는 사실이다. 복이 있는 사람들은 우선 자기 자신을 잘 관리하고, 아울러 주변 사람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배려하며,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서도 시종 락관하며 살아간다. 연변조선족례의연구회 정리
13    한국 신화 모음 댓글:  조회:3251  추천:0  2012-08-07
한국 신화 모음   왜 한국 신화는 푸대접을 받는 걸까? 다른 나라들의 신화는 신비롭게까지 읽히고 제법 많이알려졌는데 우리의 신화는 슬프게도 외면을 받고 있다. 우리도 위대한 천손강림형(天孫降臨型)의 신화를 가지고 있는데 말이다. 그 신화 속으로 여행을 떠나 보자. 한국 신화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은 태양 숭배이다. 하늘에 있는 신들이 땅에 내려와 나라를 세워 백성을 다스리는 건국 신화가 한국 신화의 주가 되어 있다. 고조선을 연 단군은 천제(天帝) 환인(桓因)의 손자로서 천제의 서자 환웅과 웅녀 사이에서 태어났다. 단군의 건국 신화는 단순 명쾌하지만, 거기에 철학이 존재한다. 거기에는 천제의 명령을 받아 지상에 내려와 나라를 열고 백성을 다스리는 구조가 잘 나타나 있다. 고구려나 신라, 가락국의 시조는 알에서 태어난 천손(天孫)으로서 난생(卵生) 신화가 건국 신화의 중심을 이루고 있지만, 그것은 모두 천손강림형(天孫降臨型)의 수직적 세계관에 뒷받침되고 있다. 한국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에는 국가의 쟁취나 양여(讓與), 신술(神術)에 의해 승패를 다투는 일도 있으나, 잔혹성이나 잔인성이 그다지 수반되지 않는다. 이들 신들이 민간에 전승되어 오는 사이에 수평형의 신이나 인격신(人格神)도 생겨나게 된 것이다.   전지전능(全知全能)한 하느님   우리나라에서는 신을 하느님, 하나님이라고 한다. 그것은 특정한 성격을 가진 신이 아니다. 전지전능한 절대신이다. 하느님은 하늘(우주)에 있는 신 즉 천제(天帝)이다. 을 하늘, 을 하나라고 하는데 하느님은 하늘의 신을, 하나님은 하나의 신을 의미한다. 은 하나이며 동시에 전체이고 무한대의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천(天)이다. 韓, 漢, 汗, 干, 一, 天 등의 문자가 최대 최고의 의미를 가지는 것은 천(帝)을 본뜬 것이다. 한국의 최고신은 천제이며, 고조선의 시조인 단군의 아버지(환웅)은 천제(환인)의 서자이다. 환인은 하느님, 하나님의 취음자(取音字)임에 틀림없다. 고조선, 고구려, 신라, 가락 등의 시조는 천손으로서 하늘에서 내려와 건국의 시조가 되는 것처럼 천손강림형의 신화가 중심이 되어 있다.   환인과 환웅   천제인 환인에게 환웅이라는 서자가 있었다. 환웅은 언제나 하계(下界)를 내려다보며 하계에 생각을 쏟고 있었다. 그것을 안 아버지 환인은 환웅이 하계에 내려가는 것을 허락했다. 하계의 삼위태백(三危太白)을 내려다보면서 환인은 환웅에게 명령했다. 고. 환인에게서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하사 받은 환웅은 3천의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정의 신단수(神檀樹) 밑에 내려와 거기를 신시(神市)라고 이름 지었다. 하계에 내린 환웅은 바람, 비, 구름의 신들과 곡식, 목숨, 병, 선, 악 등 인간계의 3백60가지 일을 다스리고 인간계를 다스렸다. 환웅을 환웅 천왕이라고도 부르는데, 천신이 된 일도, 나라를 연 일도 없다. 나라를 연 단군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천왕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리라.   신이 내려온 신단수(神檀樹)   환웅이 내려온 것은 태백산정의 신단수 밑으로서, 즉 신단수를 거쳐서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다. 단수란 무엇인가? 이에 대한 학설은 많이 있지만 현조하는 서낭당(城隍堂)의 옛말 형태인 듯하다. 돌멩이를 만두 모양으로 쌓아올려 그 한가운데에 나무를 세우는 신목(神木)사상이라고 생각된다. 신목에 신이 접하거나 강림하는 형태는 성황 신앙의 강신(降神) 의식에서 볼 수 있다. 한국의 신들은 대개 신목을 통하여 강림하는 경우가 많다. 강신을 알리는 것은 신목에 매단 방울의 소리나 신목의 흔들림이다. 방울이 가장 많다.   세개의 신기(神器)   환웅이 하계에 내려올 때 천제인 환인으로부터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받는다. 이 천부인 세 개는 무엇일까? 그 종류에 대해서 확실한 바는 없으나, 신령이 접한, 영검이 현저한 신기이다. 검과 거울과 방울이라고 생각된다. 방울 대신에 곡옥(曲玉)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무당에서는 지금도 검과 거울과 방울이 쓰이고 있다. 환웅이 신들과 하계의 제사(諸事)를 다스린 것도 이 천부인 세 개로써 했다고 생각해도 좋다.   곰이 인간(女子)이 되다   같은 동굴에 사는 한 마리의 곰과 호랑이가 환웅에게 인간이 되고 싶다고 빌었다. 보다 못한 환웅은 신령이 접한 쑥 한 다발과 마늘 스무 개를 곰과 호랑이에게 주고 이것을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인간이 된다고 일렀다. 그리하여 곰과 호랑이는 동굴에서의 은거가 시작되었다. 곰은 20일 만에 여자가 되었는데 그 여자는 웅녀(熊女)라고 한다. 호랑이는 은거를 참지 못해 인간이 되지 못했다. 곰과 호랑이의 신화는 토템 신앙에 의한 것으로서, 곰을 조상신으로 하는 부족이 이겨서 남고 호랑이를 조상신으로 하는 부족의 패퇴를 의미하고 있는 것 같다.   고조선의 시조 단군(檀君)   웅녀는 인간이 되었으나 혼인 상대자가 없었다. 그래서 매일 신단수 앞에 나아가 아이를 내려 달라고 빌었다. 그것을 보고 있던 환웅은 웅녀에게 신령(神令)에 의해서 수태를 시킨다. 이윽고 웅녀는 아들을 낳는다. 웅녀는 바로 성녀(聖女)로서 처녀 수태로써 아이를 낳는다. 웅녀를 어머니로, 천제 환인을 할아버지로, 강림한 신(환웅)을 아버지로 하여 난 아이이므로 단군 왕검이라고 이름 지었다. 단군 왕검(檀君王儉)은 당고(唐高)가 즉위하여 50년인 경인년(BC2333년), 서울을 평양에 정하고 조선국을 열었다. 후에 서울을 백악산의 아사달로 옮기고 1천5백 년간 나라를 다스렸다. 주나라의 호왕(虎王)이 기자(箕子)를 조선에 바쳤으므로 단군은 기자에게 왕위를 물려 주고, 장당경(臟唐京)에 옮겼으나, 후에 아사달로 돌아와 산에 숨어서 산신이 되었다. 이 때 나이 1천9백8 세였다. 구월산에 환인, 환웅, 단조의 삼성(三聖)을 모신 삼성사가 있고, 각지에 삼신(성)을 모시는 사당이 있으나, 역사적 사실을 수반한 것은 아니다. 기자가 단군 왕검의 왕위를 이어 조선 왕국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중국의 사대사상(事大思想)이 가져 온 것으로서, 본래 단군 신화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것이 아닌가 한다.   해모수(解慕漱)   만주 북동쪽에 있던 북부여의 시조이다. 천제(天帝)가 대료(大僚)의 의주(醫州) 지방에 있는 흘승골성(訖升骨城)에 오룡차(五龍車)를 타고 내려왔다. 거기에 서울을 정하고 북부여국을 열어 그 왕이 되어 스스로 해모수라고 이름했다. 천제가 스스로 나라를 열어 시조가 된다는 신화가 특징적이며, 천제의 이름이 해모수라는 것도 진기하다. 해모수가 천제가 아니라 천제의 서자이거나 그 직계손이었다고 생각된다. 성인 는 해(太陽)와 같은 음으로서 천손(天孫)을 의미하고 있다. 고구려의 시조 주몽(朱蒙)은 해모수와 관계가 있고 동부여 출신이라고 한다.   해부루(解夫婁)와 금와(金蛙)   해모수의 아들 해부루는 천제의 명을 받아 북부여를 물려 주고 동쪽으로 피해 가서 동부여를 일으킨다. 부루는 왕위 계승자를 얻지 못해 산천에 아들을 점지해 달라고 빌었다. 부루가 탄 말이 곤연(鯤淵)이 이르러 큰 돌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그 돌 속에서 금빛 개구리의 모습을 한 사내아이가 나타났으므로 금와라고 이름 붙이고 왕자로 맞았고, 부루가 죽은 후 왕위를 이어 고구려 시조 주몽의 양아버지가 된다.   수신(水神) 하백(河伯)과 그 딸들   성북(城北)의 청하(靑河=지금의 압록강)에 하백이라는 수신이 있었다. 하백에게는 유화(柳花), 훤화(萱花), 위화(葦花)라는 세 딸이 있었다. 어느 날 자매들이 웅심연(熊心淵)에서 목욕을 하고 있었다. 거기에 왕이라고 자칭하는 자가 나타나 자매 중에서 왕비를 선택하려 했다. 동생들은 빠져 달아났으나 유화는 정을 통하여 수태를 했다. 유화는 집을 쫓겨났다. 유화와 정을 통한 것은 천제의 아들 해모수라고도 하고 단군이라고도 한다. 하백이 그 남자(신)의 신통보(神統譜)를 확인하기 위해 신기(神技)를 겨룬다. 사슴과 수달, 표범, 꿩, 매 등으로 변신하여 재주를 겨루지만 하백보다 뛰어난 신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천제의 아들임을 안다. 남자(신)는 자취를 감추고, 하백에게 쫓겨난 유화는 태백산 남쪽에 있는 우발수(優渤水)에서 헤매고 있었다. 그러나 우연히 거기를 지나가던 동부여의 금와왕에게 구조된다.   알에서 태어난 주몽(朱蒙)   금와왕은 유화를 방에 유폐했다. 하늘에서 유화를 향해 빛이 비치었으므로 유화는 빛살을 피했으나 빛살은 유화를 쫓았다. 빛살을 감수(感受)한 유화는 갑자기 산기(産氣)를 일으켜 다섯 되들이 되만한 큰 알을 하나 낳았다. 금와왕은 불길하게 생각하여 그 알을 멧돼지의 먹이로 주었으나 멧돼지는 먹지 않았으며, 길에 버리면 마소도 피해서 지나갔고, 들에 버리면 새와 짐승이 알을 감쌌으며, 쪼개려 해도 쪼개지지 않으므로 마침내 어머니인 유화는 알을 천으로 싸서 따뜻한 데에 두었더니 알의 껍질을 깨고 사내아이가 나타났다. 이것이 조선의 난생 신화이다. 앞에서 태어난 사내아이는 단정하고, 활을 쏘면 백발백중하고 마술에도 신동(神童)이었다. 활의 명수를 주몽이라 부르는 풍속에 따라서 주몽이라고 이름지어졌다. 활을 잘 쏘고 마술에 뛰어난 데에 수렵민이나 기마족들의 성격이 잘 나타나 있다. 난생 신화인 점에서 주몽의 출생 신화를 남방계 신화라고도 하지만, 태양 신앙에 바탕을 둔 천손강림형(天孫降臨型)의 변형이라도 볼 수 있겠다. 그 알은 태양을 본 뜬 것이리라. 주몽은 천제의 아들 해모수(일설에는 단군이라고 한다)를 아버지로 하는 천손이며, 수신 하백을 어머니편의 조부로 하고 태양신과 수신의 복합 신화를 이루어 수직적 세계관이 그 기둥이 되어 있다. 후한서(後漢書)에 따르면 주몽의 어머니는 부여왕의 시녀로서 천제가 보낸 계자(鷄子=병아리)가 배태시켰다고 한다. 주몽의 어머니가 시녀라고 하는 것은 사대적 중화사상(中華思想)이 가져온 것이다.   고구려를 창건한 주몽   금와왕에게 양육된 주몽은 왕이 공포를 느낄 만한 신동이었다. 왕자들은 뒷일을 두려워하여 주몽을 죽이려 했으나 모두 실패로 끝난다. 주몽은 어머니의 뜻에 따라 세 추종자를 데리고 동부여를 벗어나 남하하여 엄수(淹水)에 이르렀다. 갈 길을 막은 엄수를 향하여 하고 주몽이 외쳤더니, 물고기와 거북이 줄을 지어 다리를 놓아 건네 주었다. 추격자가 다가왔을 때 물고기와 거북은 자취를 감추어 진로를 막아 버렸다. 무사히 졸본주(卒本州)에 이른 주몽은 거기에 고구려국을 열고 왕이 되었다. 천제의 가호에 타고 난 신술(神術)로써 비류왕(沸流王) 송양(松讓)과의 싸움에 이겨 고구려의 기틀을 굳혔다. 주몽의 성은 해씨(解氏)였으나, 고구려를 세우고 고씨(高氏)로 이름하였다. 해(解)는 태양 해와 같은 음이며 높으므로 성을 고(高)로 정했다. 주몽은 활동 범위는 넓었고 힘차고 능동적이며 더구나 신술에 뛰어난 천손으로서 후에 기린을 타고 아침을 왕래하여 천정(天政=하늘을 다스리는 일)을 볼 만큼 신인(神人)이었다. 제위 19년 9월, 하늘에 올라간 채 돌아오지 아니했다.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   박혁거세도 난생 신화와 관련된 왕으로서 경주 양산(楊山)의 나정(羅井)에 하늘에서 내려온 알에서 태어났다. 신라가 진한(辰韓)이라고 불리던 무렵 진한은 여서 고을로 이루어졌고 각 고을의 우두머리는 각기 하늘에서 내려온 신들로서 이(李), 애(崖), 배(裴), 정(鄭), 설(薛)씨의 시조였다. 이 시조들은 명활산, 대수산, 금강산 등 각기 다른 산에 하늘에서 내려와 번영하여 한 나라를 열 만한 세력을 이루었다. 그래서 여섯 고을을 다스릴 왕을 보내 달라고 염천(閻川)의 둑에서 하늘을 빌었다. 기원이 천제에게 사무치어 나정 쪽에 이상한 정기가 번개빛처럼 땅을 비추었다. 그 곳을 보니 한 마리의 백마가 큰 보랏빛 알 앞에서 예배하고 있었다. 여섯 고을의 우두머리들을 본 백마는 하늘로 날아 올라갔다. 알을 쪼개었더니 속에서 생김새가 단정하고 아름다운 동자가 나타났다. 이 이상한 모습에 놀란 사람들은 동천사(東泉寺)에서 목욕을 시켰더니 몸에서 광채가 나고 새와 짐승이 춤추었으며, 천지가 진동하고 태양과 달은 황황히 빛나고 있었다. 눈부시게 번쩍이는 연유로 해서 혁거세라고 이름지었고, 일명 불구내왕(弗矩內王)이라고도 하고, 성인 박은 박과 같은 큰 알에서 태어난 데에 연유하나, 성과 이름이 모두 는 어의를 지니고 있다. 혁거세는 신동이라는 명서이 높았고, 13세(BC57년)에 왕이 되고 나라 이름을 서라벌(徐羅伐), 서벌(徐伐)이라고 바꾸었다. 사라(斯羅)니 사로(斯盧)라고도 불렀고, 후에 신라가 되었는데, 경이니 을 뜻하는 신라어라고 생각되고 있다. 혁거세는 나라를 연 후에 61년째에 하늘에 숨었다(죽었다). 신체는 하늘에 날아올라가 오체(五體)가 나누어져 다시 내려왔다. 흩어진 신체를 모아서 장사 지내려 했으나 뱀이 나타나 이를 방해했다. 그래서 오체를 따로따로 묻었기 때문에 오릉(五陵)이라고도 한다. 일설에는 하늘이 명하여 오체를 따로따로 묻었다고도 한다. 또 혁거세, 왕비, 남해왕(南海王), 유리왕(儒理王), 파사왕(破娑王)의 오성(五聖)을 매장한 것이 오릉이라고도 한다. 오릉은 현재 경주에 있다.   하늘에서 내려온 금궤의 동자   신라의 탈해왕(脫解王) 경신년 3월 8일의 일이었다. 호공(瓠公)이 월성(月城)의 서리(西里)를 걷고 있자니 시림(始林)에서 무엇이 빛나며 하늘에서 보랏빛 구름이 거기를 비추고 있었다. 그가 시림에 쫓아가 보았더니, 하늘에서 비추는 자운(紫雲) 한가운데에 금궤 하나가 있었다. 금궤는 나뭇가지에 걸리었고, 궤 속에서 빛이 나고 있었다. 호공의 보고를 받은 탈해왕이 시림에 가서 궤를 열었다. 속에는 한 동자가 자고 있었다. 혁거세의 고사(故事)를 본떠 알지(閼智)라고 이름지었다. 알지는 신라어로 어린이란 뜻이다. 알지를 안고 왕궁에 돌아오는데 새와 짐승이 다투어 줄을 지어 기뻐하며 춤추었다. 탈해왕은 길일(吉日)을 택하여 알지를 태자로 삼았으나, 알지는 왕위를 파사에게 양보하고 평생토록 왕위에 앉지 않았다. 금궤에서 태어났으므로 성을 김(金)이라고 정했고 6대손인 미추(未鄒)가 왕위에 올랐다. 미추 이후 신라의 왕위는 자손 김씨가 계승했다. 알지는 금궤에서 태어났지만, 이것도 난생신화로 간주된다.   구지봉(龜旨峰)에 내려온 김수로(金首露)   천지 개벽 이래 이 지방은 아직 나라도 없고 나라 이름은 물론 임금과 신하의 칭호도 없는 시대였다. 아홉 개의 부족이 들이나 산에서 살며, 아도간(我刀干)을 비롯한 아홉 장(長=干)들이 각기의 부족을 다스리고 있을 뿐이었다. 한(漢)의 건무(建武) 18년(BC42년) 3월, 김해 북쪽에 있는 구지봉(거북이 엎드려 있는 형상의 바위가 봉우리 꼭대기에 있기 때문에 구지라고 한다)에서 사람을 불러 모으는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구간(九干)을 선두로 하여 2,3백 명의 백성이 거기에 모였다. 그러나 사람의 목소리는 나면서도 형체가 없었다. 그러자, "천제가 나에게 명하여 이 땅에 내려 나라를 열고 왕이 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내가 하늘에서 여기에 내려왔노라. 너희는 산정을 파서 흙을 움켜쥐고 노래 부르며 춤을 추어라. 그러면 곧 대왕을 맞아 환희 용약하리라." 하고  가사를 거르쳐 주었다. 구간들은 그 가르침대로 백성과 함께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 보니 보랏빛 새끼줄이 하늘에서 스스로 내려와 지상에 닿았는데 새끼줄 끝에는 붉은 천에 싸인 금궤가 있었다. 궤를 열자 황금빛 알이 여섯 개 있었는데 그 모양이 태양처럼 둥글었다. 사람들은 놀라며 기뻐했다. 공손하게 알을 예배하고 천으로 싸서 아도간의 집으로 옮기어 평상 위에 안치해 두고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열이틀째가 지난 이튿날 아침 사람들이 모여서 궤를 열었더니 여섯 개의 알이 모두 까져서 여섯 동자가 나타났다. 동자의 용모가 크고 단정하였으므로 방으로 맞아들여 배하(拜賀)하고 온 정성을 다하였다. 동자는 나날이 자라 십수일 후에는 키가 9척이나 되었고 용모는 용의 얼굴에 눈썹은 팔채(八彩)요 눈매는 순왕(舜王)과 비슷했다. 동자 중 한 사람이 그 달 15일에 왕위에 올랐다. 그는 세상에 먼저 나타났으므로 수로(首露)라고 이름하고, 금궤에서 나왔으므로 성을 김(金)이라고 했다. 수로는 성인이나 최고의 사람이라는 어의를 가진다고 한다. 또 알에서 태어난 다른 다섯 동자는 각기 가야국(伽倻國)의 왕이 되었다. 후에 가야국이 합체하여 여섯 가락국(駕洛國)이 되고 수로는 그 시조가 된다.   신라의 왕이 된 용왕의 동자(童子)   가락국의 해변에 한 척의 배가 표착했다. 수로왕은 신하와 함께 북을 치며 맞으려 했으나, 배는 계림(신라)을 향해 떠나 버렸다. 다른 전설에 따르면 탈해가 수로왕과 왕위를 겨루다가 졌으므로 배를 타고 신라로 피했다고 한다. 계림의 아진포에 닿은 배는 혁거세의 고기잡이 소임을 맡은 노파 아진의선(阿珍義先)에게 발견되었다. 배를 기슭에 끌어와 보니 배안에는 길이 20척, 폭 13척이나 되는 큰 궤가 하나 실려 있었다. 아진의선은 궤의 길흉을 하늘에 점을 치고 나서 뚜껑을 열었다. 궤 속에서는 단정한 동자와 일곱 개의 보물과 노비가 가득 차 있었다. 7일간 대접을 받은 동자가 입을 떼었다. "나는 용왕국 사람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스물여덟 명의 용왕이 있었는데 모두 인간의 태에서 나서 대여섯 살에 왕위에 올랐습니다. 나의 아버지 함달파왕(含達婆王)은 적녀국(積女國)의 왕녀를 왕비로 받았으나 아들을 얻지 못했습니다. 대왕은 인간이 알을 낳은 일은 고금에 없는 일이라 불길한 징조라고 하시며 궤를 만들어 그 속에 넣고 일곱 개의 보물과 노비를 배에 실어 띄웠습니다. 그 알에서 난 것이 나입니다. 그 때 아버지는 인연이 있는 곳 도착하거든 나를 열고 집안을 일으키라고 빌어 주셨습니다. 항해를 하는 중에 돌연 용이 나타나서 배를 지키면서 여기로 끌어다 준 것입니다. 동자가 궤의 뚜껑을 열어 알의 껍질을 깨고 빠져 나왔다는 데서 탈해(脫解)라고 하고, 까치(鵲)에 의해 아진의선이 배를 발견하고 궤를 열었기 때문에 작(鵲)에서 조(鳥)를 빼고 석(昔)을 성으로 하였다. 후에 신라의 제 4대 왕이 되고, 탈해니사금(脫解尼師今) 또는 탈해치질금(脫解齒叱今)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표착형 난생 신화이지만, 용왕의 불교 전설과 난생 신화의 복합이라고 볼 수 있다.   지하에서 나타난 탐라의 삼성(三姓) 시조   지금의 제주도를 탐라현이라고 부른 시대에 양(良), 고(高), 부(夫)의 세 사람이 지하에서 나타났다고 에 적혀 있다. 그것에 따르면, 사람이 없던  태고적 세 신인(神人)이 주산(主山)의 북쪽 기슭에 있는 모흥(毛興)구멍에서 뛰어나왔다. 첫 번째를 양을나(良乙那), 두 번째를 고을나, 세 번째를 부을나라고 했다. 세 사람은 사냥을 하여 가죽으로는 옷을 만들고 고기는 먹었다. 어느 날 동쪽 바다에 나무상자가 떠 있는 것을 발견하여 열어 보았다. 나무상자 속에는 다시 돌상자가 있었다. 홍대자의(紅帶紫衣)를 입은 사자(使者)가 딸려 있었으므로 함께 돌상자를 열었다. 거기에 푸른 옷을 입은 세 아가씨와 망아지와 오곡의 씨가 있었다. 사자가 말하기를, "저는 일본국의 사자인데 저희 국왕은 세 아가씨를 낳아 말씀하셨습니다. '서쪽 바다 한가운데에 있는 섬의 산에 신의 세 사람이 하늘에서 내려와 장차 나라를 연다는데 짝이 없다고 한다. 그러니 세 딸을 데려 가거라.' 하고 저에게 명하셨으므로 모셔 왔습니다. 거느리시어 큰 소원이 성취되시기 바랍니다." 하고는 사자는 재빨리 구름을 타고 사라졌다. 세 사람은 나이 순서대로 각각 아가씨를 취하고, 활을 쏘아 대지를 나누어서 샘물 맛이 좋고 기름진 땅에서 살았다. 그 후로는 오곡의 씨를 뿌리고, 송아지와 망아지를 기르며 줄거운 나날을 보냈고 자자손손 번영해 나갔다. 이것이 제주도의 시조이다. 성주고씨가전(星主高氏家傳)에 따르면 한라산에 이상한 기운이 감돌고 산의 북쪽 모흥혈(毛興穴)에서 세 신이 사람이 되었다고 하여 한라산이 세 신인(神人)을 낳았다고 되어 있다. 대지에서 사람이 나왔다는 것과, 일본국의 왕녀를 시집 보냈다는 것이 특징적이다.   용왕과 왕자 처용랑(處容郞)   신라의 헌강왕(憲康王)이 동해의 개운포(開雲浦)에 유람했을 때의 일이다. 어느 해변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온통 뒤덮어 길을 잃고 말았다. 왕이 점쟁이에게 물으니, "이것은 동해의 소행이오니 무슨 좋은 일을 하사이다" 하고 대답했다. 대왕은 곧 용왕을 위해 그 근처에 절을 세울 것을 약속했다. 그러자 홀연히 구름과 안개가 걷히었다. 그래서 개운포라는 이름이 생겼다. 대왕의 뜻에 감사하여 용왕은 일곱 동자를 거느리고 나타나서 대왕의 덕을 기리고 춤추며 음악을 연주했다. 용왕은 동자 한 사람을 대왕에게 바쳤고, 대왕은 서울로 데려가서 정사를 보게 하고, 이름을 처용이라고 지었다. 처용은 급간(級干)의 지위에 올라 미녀를 아내로 맞이했다. 그런데 처용의 아내가 매우 아름다웠기 때문에 사심을 품은 역신(疫神)이 인간의 모습을 취하여 처용의 아내 침실에 침입했다. 처용이 밤중에 집에 돌아와 보니 침상에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그것을 본 처용은 화를 내기는커녕 태연하게 노래를 부르고(향가인 로 전해진다) 춤을 추면서 그 자리를 떴다. 역신은 처용의 이런 태도에 감복하여 그의 앞에 나아가, "제가 공의 부인을 사모하여 지금 과실을 저질렀는데 공은 분노하지 않았습니다. 그 아름다운 마음씨에 감격하였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공의 상(像)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 문 안에 발을 들여놓지 않기로 맹세하며 약속합니다." 하였다. 이후 풍속으로 처용의 문자나 그 상을 그려서 문이나 기둥, 벽 따위에 붙여서 악귀를 쫓는 것은 이 처용랑 전설에 연유한다.   삼신(三神)과 산신(産神)   환인, 환웅, 단군을 삼신이라 하며, 영검이 현저한 전지전능한 절대신으로 숭앙한다. 환인은 천제이다. 환웅은 천제의 아들로서 천제의 명령을 받들어 인간계를 다스리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온 신이다. 단군은 환웅과 웅녀의 사이에 태어난 아들로서 고조선을 연 시조이다. 삼신은 단군 신화에 유래하며, 환인은 전지전능한 천제로서 숭앙 받고, 환웅은 인간(=단군)을 창조한 산신(産神)으로서, 단군은 개국의 국신(國神)으로서 숭앙을 받고 있다. 산신(産神)에게 빌면 자식을 얻는다는 신앙이 있다. 이것은 웅녀가 환웅에게 자식 배게 해 달라고 기원하여 그 소원이 이루어져 단군을 낳았던 것에 연휴한다. 환인이나 환웅, 단군은 천손강림형 신화로서 수직적 세계관에 바탕을 두었기 때문에 동일한 신앙 대상으로 친다. 삼신(三神)에게 비는 것은 동시에 산신(産神)에게 비는 것이기도 하다. 단지 산신보다 삼신이 훨씬 넓은 전지전능의 신들로 숭앙을 받고 있다.   산신(山神)   고조선의 단군, 고구려의 주몽, 신라의 박혁거세, 가락국의 김수로 등 건국 시조는 천제의 명령을 받들어 하늘에서 내려온 천손이다. 그 시조들은 나라를 다스려 그 임무를 다하면 하늘로 돌아간다. 즉 죽는 것이 아니고 하늘로 되돌아가 숨어서 신이 된다. 시조의 대부분이 나무숲이나 산에 내려오기 때문에 하늘로 돌아갈 때는 그 순서를 다시 밟는다. 산에 숨어서 신이 되는 것은 산이 하늘로 통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산에 숨어서 산신이 되는 이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은 시조 즉 귀인에 한하며, 그들은 반드시 천손이었다. 그것이 시대와 함께 일반의 왕이나 승려, 무인(武人)들까지 산신으로 모셔지게 되었다. 그것은 하늘을 숭배하는 신앙과 불교가 무속 신앙 등이 혼합되어 이루어진 것이다. 산사(山寺)에는 산신당의 사당(성황당)에 고승(高僧)이나 무인의 상이 모셔져 있는 것도 그런 원인으로 인한 것이다. 본래 산신과 같은 숭고한 신앙 대상이었으나, 시대와 함께 그 숭고성이 희박해졌다. 민간 신앙에서는 곳에 따라서 삼신과 산신을 혼동하는 데도 있다.   고려의 왕건과 산신의 손자   백두산에서 내려와 부소산에서 살며 아내를 맞이한 호경(虎京)은 어느 날 사냥을 나가 마귀 할멈을 만나 그 남편이 된다. 고려의 태조 왕건은 그 6대손에 해당한다. 산의 대왕(산신)이 된 호경은 부소산의 아내와의 사이에 강충(康忠)이 태어나고, 강충과 구치의(具置義)와의 사이에 태어나 손호술(損乎述=寶育)은 삼한(三韓)의 통솔자가 될 것을 예언 받는다. 보육(寶育)은 지리산에 들어가 중이 되어 도를 튼다. 어느 날 꿈 속에 혹령산에서 남쪽을 향하여 소변을 했더니 삼한이 물에 잠기어 은(銀)바다가 되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형 이제건(伊帝建)은 "너는 필경 하늘을 떠받칠 기둥이 될 것을 낳을 것이다." 하고 딸인 덕주(德周)를 아내로 주었다. 덕주는 두 딸을 낳았고, 밑의 아이를 진의(辰義)라고 했다. 재주가 뛰어나고 미목이 수려한 진의는 언니가 본 꿈(오악산에서 소변을 보니 천하가 물바다가 되는)을 샀다. 그러자 예언대로 당나라의 천자가 될 자(후의 당의 숙종이라고도 한다)가 진의의 집에 나타났다. 아들을 낳으면 이 활과 화살을 주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갔다. 아들을 낳아 작제건(作帝建)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작제건은 어느 날 서해의 용왕의 청으로 늙은 여우를 퇴치하여 구해 준다. 그 답례로서 용녀(龍女)인 창민의를 아내로, 버들 지팡이와 돼지를 받는다. 용녀는 남편에게는 비밀히 용궁에 왕래하고 있었으나, 남편에게 그것을 보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남편이 그 약속을 어겼기 때문에 용녀는 용궁에 간 채 돌아오지 않았다. 용녀는 네 아들을 낳았고, 그 맏이를 용건(龍建)이라고 이름지었다. 용건은 꿈에 미녀를 만나 아내로 맞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것을 꿈부인(夢夫人)이라 하고 삼한의 어머니가 될 점괘가 나왔다. 왕건은 꿈부인한테서 태어나 고려를 일으켜 그 왕이 된다. 이 영웅 전설에서는 살아서 산신이나 용왕의 사위가 되고 꿈점이 적중하는 것이다. 선화 전설에서 영웅 전설로 변해 가는 재미가 있다.   신목(神木)과 성황신(城隍神)   부락의 수호신은 대개 서낭신이다. 부락의 고개나 뒷산에 모셔져 있다. 그 사당을 서낭당이라고 한다. 서낭신은 신목이나 고승(高僧), 무인(武人) 등이 있고, 때로는 이라고 쓴 신위(위패)이다 특정 신앙 이념을 가진 신이 아니라, 원시 종교신으로서 절대신으로 신앙하고 있다. 본래는 사당이 없이 돌멩이를 쌓아 올린 만두형의 석탑으로서, 중심에 나무를 세웠다. 신이 하늘에서 수목에 내려온다고 믿고 있었다. 후에 하늘에서 내려오는 수목 자체를 신으로 무시게 되었다. 그것이 신목이다. 이것을 서낭대, 별신대, 소도(蘇塗) 등으로 부르고, 부락의 수호신이나 경계신(境界神)으로서 마을 경계에 모셨다. 이것은 삼한 시대의 하늘을 모시는 제사의 유풍이며, 단군 신화에서 단군의 아버지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신단수와 동일한 것으로 보인다. 태양 신앙이 가져온 신목 신앙이다. 신목에 방울이나 어폐(御幣) 등을 매달아 강신(降神)을 비는 제사는 무속 신앙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서낭신은 무속 신앙의 절대신으로서 널리 분포되어 있다.  
12    우리민요 《성주풀이》유래 댓글:  조회:4264  추천:0  2012-08-07
우리민요 《성주풀이》유래   【해설】   경상남도 지역에서 전승되는 성주신의 내력을 노래한 서사무가. 1925년 당시 경상남도 동래군 구포면 구포리에 살던 맹인조합장 최순도(崔順道)가 제공한 무가책의 자료를 손진태(孫晋泰)가 그의 저서 (1930)에 수록한 것이 유일본이다.   ‘성조(城造)풀이’로 되어 있으며, ‘성조신가’ 또는 ‘가신유래가’라고도 하는데 한자와 한글의 혼용으로 쓰여졌고 4ㆍ4조 가사체의 정확한 율조로 다듬어져 있으며 수사가 세련되어 있다. 【개관】 ▶종류 : 무가(巫歌), 서사무가(敍事巫歌) ▶성격 : 서사적, 운율적, 신화적 ▶주제 : 성조신 탄생의 비범성 ▶의의 : 신화와 영웅소설의 매개하는 위치 【내용】   1,『서천국(西天國) 천궁대왕(天宮大王)과 옥진 부인(玉眞夫人)은 나이 40이 가깝도록 혈육이 없어 불전(佛前)에 아이를 낳는 정성을  드리고 태몽을 얻은 후에 잉태한다. 옥진부인은 10개월이 찬 후에 옥동자를 낳아 이름을 성조(成造)라고 짓는다. 성조는 15세가 되어 옥황께 상소하여 솔씨 서말 닷 되 7홉 5작을 받아 지하궁 공산(地下宮空山)에 심는다. 성조가 18세 되었을 때 결혼하나 아내인 계화씨(桂花氏)를 박대하고 주색에 방탕하여 나라 일을 돌보지 않는다. 대왕이 성조를 황토섬에 귀양 보내니 고생이 막심하여 성조가 무인도에서의 곤경을 혈서(血書)로 써 보내니 대왕이 귀양을 푼다. 성조는 귀양에서 돌아와 부인과 정회(情懷)를 풀고 5남 5녀를 낳아 키운다. 성조가 나이 70에 열 자식을 데리고 자신이 심은 나무들을 돌아본 뒤 온갖 연장을 마련해 재목을 베어 국궁(國宮), 관사(官舍) 및 백성의 집을 짓는다. 집짓기를 마친 성조는 입주 성조신이 되고, 부인은 몸주 성조신이 되며 , 아들 다섯은 오토지신(五土之神)이, 딸 다섯은 오방부인(五方夫人)이 되었다.』   2,『서천국 국반왕과 옥진부인은 혼인하여 살다가 사십이 가깝도록 혈육이 없어 부처님께 치성을 드린 뒤 잉태하여 옥동자를 낳아 이름을 성조라고 짓는다. 성조는 15세가 되었을 때 옥황께 상소하여 솔 씨 서 말 닷 되 칠 홉 오 작을 받아 지하궁 무주공산에 심는다.   성조가 18세 때 황휘궁의 공주 계화씨와 혼인하나 주색에 빠져 아내를 박대하고 국사를 돌보지 않으므로 신하들이 대왕께 주달하여 성조를 황토섬이라는 무인도에 귀양을 보낸다. 성조는 무인도에서 기한(飢寒)이 자심하고 고생이 극심하던 중 혈서로 편지를 써서 청조(靑鳥)에게 매어 계화부인에게 보낸다.   계화부인은 성조의 편지를 받고 시모인 옥진부인에게 말하여 천궁대왕으로 하여금 성조의 귀양을 풀도록 한다. 성조는 무인도에서 돌아와 계화부인과 화목하게 살며 5남 5녀를 낳아 키운다.   성조의 나이 70에 이르렀을 때 10명의 아들과 딸을 데리고 시냇가에서 쇠 열닷 말을 일어 내어 온갖 연장을 만들고 무주공산에 심어 두었던 재목을 베어 내어 궁궐 및 백성들의 집을 짓는다. 집짓기를 마친 성조는 입주 성조신이 되고 계화부인은 몸주 성조신이 되고 아들 다섯은 오토지신(五土之神)을 마련하고 딸 다섯은 오방부인(五方夫人)을 마련한다.』 【소재의 상징성】   성조신이 가정의 신(神)이므로 여기서는 집에 대한 의미를 알아보아야 하겠다. 신화에서 집은 소우주, 우주의 모상, 신전 등의 상징성을 가진다. 이는 동 서양이 모두 같으며 서양의 경우는 문이 많다는 점을 들어 여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무속에서는 성지(聖地), 만신전(萬神殿)의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어느 곳보다도 많은 신이 집에 존재하게 된다. 가옥신인 성조, 대지와 집안 땅의 신인 터주, 부엌과 불의 신인 조왕, 재산 및 가운(家運)의 신인 업주, 그리고 일부 지방에서는 뒷간의 신인 측신도 신봉하고 있다. 【다른 작품과의 관련성】   이 무가는 동래지방에서 수집된 것인데, 경기지방에서 수집된 무가 ‘성주풀이’와는 약간 다르다. 천사광씨와 지탈부인 사이에 태어난 황우양은 목수인데, 옥황상제의 명으로 천하궁(天下宮)의 무너진 집을 고치기 위하여 집을 비운다. 그 사이 소진랑이라는 자가 황우양의 아내를 납치하여 동침을 요구한다. 아내는 이를 거부하고 구메밥을 먹고 있었다. 꿈자리가 이상하여 점을 쳐 본 황우양은 이런 사실을 알고 돌아와 소진랑에게 잡혀갔던 부인을 되찾는다. 그 후, 황우양은 성조신이 되고 부인은 집안의 지신(地神)이 된다. 이상은 경기무가의 대강의 내용으로 훌륭한 집을 짓고, 가정의 난관을 극복하여 성주신이 되는 것은 ‘성조푸리’와 같으나, ‘성조푸리’와 같은 일대기 구성은 보이지 않는다. 【감상】   이 무가는 왕자라는 고귀한 혈통을 타고난 성조가 혼인 후 부인을 박대한 죄로 시련을 겪고 부부가 재결합하여 아들과 딸을 낳고 집을 지은 뒤 가정을 수호하는 신으로 좌정한다는 무속신화이다.   부부의 분리와 재결합을 통하여 가정의 핵심 요소로서 부부의 애정을 강조하였다는 점에서는 경기 지역의 〈성주풀이〉(성주본가)와 일치하나,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부부와 함께 아들과 딸이 등장한다는 점이 다르다. 또한, 솔 씨를 미리 심어 재목을 키우고 쇠를 일어 내어 연장을 만든 뒤 재목을 베어 내어 주거를 이룩한다는 점에서 목재 가옥의 축조 과정이 질서 있게 전개되고 있음을 본다.   그뿐만 아니라 가옥의 주신으로서 남신인 성조신과 가옥의 터주신으로서 여신인 성조신, 그리고 오방오토 의 남녀신을 의도적으로 균형있게 설정하고 있음을 보아 남신과 여신의 조화를 강조하였음이 드러난다. 이 무가는 우리나라 무속신화이면서 무속 서사시이다.   성조의 일대기는 전형적인 ‘영웅의 일생’ 유형을 따르고 있으며, 등의 가요가 삽입 되어 서사적 국면을 장식하고 있으므로 서사시의 공식적 서술방식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이 작품은 가정을 지키는 신인 성조신(成造神)의 내력을 풀어 이야기한 무가로서, 우리나라 서사 무가 가운데 대표적인 유형의 하나이다. 본문에 수록된 부분은 작품 중 신의 출생을 노래한 부분으로서, 풍부한 소재와 다채로운 표현 등 무가의 문학성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작품의 구조를 보면  '출생→시련→공업 성취→신으로 좌정' 등의 순서로 이어지는 신의 일생담 중 출생 부분에 해당한다. 아이를 낳는 치성을 통해 주인공이 비범하게 탄생한다는 내용은 신이나 영웅의 일생을 표현할 때 흔히 나타나는 요소이다. 즉 영웅설화의 구조와 일치한다.   신의 출생 과정을 그리고 있는 이 무가의 규모는 매우 웅대하며, 무속 신앙의 폭 넓고 다채로운 우주관(宇宙觀)이 반영되어 있다. 또한 그 소재와 표현이 다양하기 그지없다. 인물의 탄생을 표현한 것 중 백미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본문 이후의 계속되는 전개에 있어서도 그 내용이 매우 다채로우며 표현이 세련되고 다듬어져 있어 무가의 높은 문학성을 잘 보여 준다.   이 작품의 문학사적인 의의는 무가의 문학성을 잘 보여 주는 작품으로서 큰 의의를 지닌다. 특히 이 작품의 구조는 신화와 영웅 소설의 구조를 매개하는 위치에 놓이는 것으로서 큰 중요성을 지닌다. 이 작품에서 나타나는 기자 치성의 요소는 우리나라 고전 소설에 매우 폭 넓게 나타나는 요소로서 주목된다. 무가에서 파생된 민요 또는 잡가, 축원무가, 서사무가. 성주풀이는 네가지의 뜻이 있다. 첫째는 민요의 성주풀이로서 굿거리 장단에 경기소리의 선율로 불려지는 분장체 노래로서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야 대화연으로 서서히 내리소사’ 라는 후렴이 붙는 민요를 말한다. 이 민요는 무가에서 파생된 노래로 볼 수 있으며 중부지역 민간에서 널리 불려진다. 두번째는 잡가로서 성주풀이다. 형식은 가사체로서 4 · 4조 연속체이며, 내용은 ‘성주본이 어디메냐 경상도 안동땅에 제비원이 본이로다’로 시작하여 제비원에서 자란 소나무 재목을 베어다가 집을 짓는 과정을 묘사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노래 역시 성주굿 무가에서 파생된 잡가라고 생각한다. 셋째는 축원 무가로서 성주풀이를 말하는데 성주굿에 구송하는 성주축원을 말한다.   제비원에서 자란 소나무 재목을 베어다가 집을 짓고 온갖 집치장을 하고 세간을 들여놓은 후 농사짓는 과정과 아들을 낳아 길러 과거에 급제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 농민들의 소박한 행복관이 담겨진 축원무가이다. 넷째는 서사무가 성주풀이인데 가정수호신이면서 가옥의 신인 성주신의 유래를 서술한 무속신화를 말한다. 성주굿이나 안택에서 구연되는데 경기 남부지역에서 전승되는 와 경남 동래지역에서 전승되는 가 있다.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야 대활연으로 설설이 나리소서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로구나 놀고 놀고 놀아봅시다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이댁성주는 와가성주 저집성주는 초가성주 한택안에 공댁성주 초년성주 이년 성주 스물일곱에 삼년성주 설흔일곱 사년성주 마지막 성주는 설흔일곱 사년성주 마지막 성주는 쉬흔 일곱이로다.   대활연으로 설설이 나리소서   반갑네 반가워 설리 추풍이 반가워 더디도다 한양 행차가 더디여 남원 옥중 주럼이 들어 이화 춘풍이 날 살렸구나   왕왕왕 왕왕헌 북소리난 태평년월을 자랑허고 둘이부는 피리소리 쌍봉학이 춤을 추고 소상반죽 젖대소리 어깨춤이 절로 나누나.   성주야 성주로구나 성주 근본이 어드메뇨 경상도 안동땅에 제비원에 솔씨받어 공동산에 던졌더니마는 그솔이 점점 자라나서 황장목이 되었구나 돌이 기둥이 되었네 낙낙장송이 찍벌어졌구나   청천에 뜬 기럭아 니가 어디로 행하느냐 소상으로 향하느냐 동정으로 향하느냐 소상동정 어디다 두고 내창천에 살리우느냐 녹음방초 성화시여 때는 어이 더디든고 나물먹고 물마시고 팔베고 누었으니 대장부 살림살이 요만하면 넉넉한가 일천간장 맺힌설움 부모님 생각 뿐이로다.   낙양성 십리호에 높고 낮은 저무덤은 영웅호걸 몇몇이며 절세가인이 그 누구며 월야춘풍 미백년 소년 행락이 편시춘 아니놀고 무엇허리 한송정 솔을 비어 조그맣게 배를 모아 한강에 띄어놓고 술이며 안주 많이실어 강릉 경포대로 가자     한국신화모음주소: http://burigb.blog.me/100041877709
11    중국한족전통장례 댓글:  조회:3747  추천:0  2012-08-04
中国汉族传统丧礼 死,人生之终也。为人子者哀,乃人之常情,而遵丧礼,尽孝道,为我传统美德。故儒家特重视丧葬,而制有丧礼。自佛教传入之后,俗信地狱之说,遂有僧道点缀其中,成为一般之丧葬习俗。近来虽随时代演变而渐趋简化,但却另又产生不正常新恶俗,互相效尤,令人叹息。子曰:「丧,与其易也宁戚」,礼记中亦云:「敛首足形,还葬而无楟,称其财,斯之谓礼」。合礼与否,全在于心意表达是否诚敬,而不在乎竞相铺张,以奢华为荣。兹将古昔一般丧葬习俗概述于后,供识者改进参考:   一、徙铺: 当人弥留时,即移出厅堂,俗曰「搬铺」。凡男女中年以上,有配偶子嗣者,死则谓之寿终。依古例,男徒正寝(左侧),女徙内寝(右侧)。因此讣文中男称「寿终正寝」,女称「寿终内寝」,使死者能在家中最善美之处而安。俗以死在床上,魂将被吊床中、不能超度,故夭折者虽移厅堂,亦须移于床下。 二、拜脚尾饭: 待气绝即举哀。以一碗饭上插一双箸,置鸭蛋一个,称「脚尾饭」及油灯一盏,俗称「脚尾灯,或称「长明灯」,焚香哀哭,烧冥币祭拜,称「拜脚尾饭」。为死者食用、照冥路及路费。此仪,据传古昔荒芜多虫兽,为防虫蚁慕尸味而聚,乃撒饭于尸周,粒食与虫蚁,并焚火驱兽毋害尸,而相沿演变为今之拜脚尾饭、焚烧纸之仪。 三、守铺: 铺草席于尸侧,或坐或卧,日夜守尸曰「守铺」,俗传:「尸最忌猫,猫跳过尸,即尸起行走,遇人紧抱不脱,若冲阈则倒」,故日夜守铺,一尽孝心,二防不测。 四、报丧: 丧即报知亲戚,报丧不得入人家屋内。母丧,即带白布报母外家,称「报白」。女儿闻丧自外归来,半途即悲声哀哭,俗曰「哭路头」。将至家前即匍匐而进,至门前跪地哀哭,俟孝眷自内哭应点香出厅,接香跪拜后,方得进内瞻仰遗容。亲戚往吊,称「探铺」,子孙哀哭迎接。母丧,接舅、妗,曰「接外家」,即门前摆香案,孝眷匍匐哀哭跪接,外家即掀起桌帷,以示责备之意。旧时俟外家来吊,方可入殓,以示善终。 五、居丧: 死者断气起遗族即服丧,曰「居丧」。去装饰、皮鞋等,子女、儿媳、长孙改穿蓝色素衣,其他卑族穿白色素衣。居丧中遗族不入厨房理中馈,曰「断灶」。 六、竖魂帛: 尸盖上白布,自首至足,尸迹不露。又以布帷遮住神明及祖先牌位,以免触犯,俟入殓后始卸。另立以白厚纸,书上死者名讳及死亡年月日,作魂帛暂代位牌,曰「竖魂帛」,为道僧招魂之用。并请道僧(乌头司公)于死者灵前诵经,为亡灵开冥路,谓「开魂路」。 七、丧服: 央人缝制丧服,并备草鞋、草箍(麻布圈以稿绳,孝男戴)、孝杖(竹端包麻布,孝男、长孙用)等。丧服,依与死者关系亲疏,制有区别: 麻布:子女、儿媳、长孙用之,为最重孝。 苎布:孙、甥、姪用心,为次重孝。 白布:与死者同辈或外亲用之。 红布:死者第四代孙用心,含有四代同堂为荣之意。 八、入殓: 依日师择之吉日良辰,将尸安放于棺内,俗称「入木」。须经下列仪式: (1)买水:入木前,尸须先洗净。洗尸之水,须用活水。故孝男穿孝服,捧新钵至河边,焚冥纸,盛河水回家,称「买水」。以白布沾钵水,拭挣死者。 (2)穿寿衣:拭净后,为死者理发、梳妆,换寿衣,俗称「张穿」。依年龄之高低,寿衣穿有三重、五重、七重等之分。必须奇数,盖丧事只可单,不可双也。 (3)接棺:棺木将至,孝眷即匍匐出门,哀哭跪接,曰「接棺」,先烧纸,嗣奉入厅中。 (4)辞生:入殓之前,以饭、鸭蛋、豆腐、青菜等六碗或十二碗,供拜死者,称「辞生」,以为告别死者。而道僧即以供食状,吉语相告。 (5)入殓:棺木内先铺茶叶、草纸、木炭及殉葬物等,待吉辰至,孝男抬死者首足,土公仔(棺木杠夫)即助其安放棺内,头以草纸固定,俗称「入木」。此时切忌抬尸人影投于尸上,或眼泪滴下棺内。孝眷即环跪棺旁哀哭。 (6)回西方:搭棚设坛,悬挂佛像、地狱图等,于入殓之后,即请道僧诵经做法事,借佛力超度亡魂,免堕地狱而往西方佛国,曰「回西方」。 九、搁棺: 安葬须择黄道吉日,且须请地理师寻觅坟墓福地费时,致停柩日久,称「搁棺」,俗称「打桶」。如打桶过久,需雇工油漆棺木,以防尸味外泄。古时榈棺之风甚炽,今则少见。 十、出殡: 以日师择定良辰吉日出殡,俗曰「出山」。其仪式概述如下: (1)摆祭:将棺木移于屋外,俗称「移柩」后,举行「摆祭」。除丧家备牲醴等外,出嫁女儿须备猪头供祭。孝眷、女婿等依序奠酒跪拜,嗣由亲朋等吊祭。 (2)封棺:祭罢即行封棺之仪,俗曰「封钉」。孝眷环跪棺旁,随司公高唱吉语,以「有喔」呼应。男丧由死者亲族,女丧请外家行封钉。先由棺盖四端已打牢固之钉上,用斧头作打钉状,最后打棺中央一钉,称「子孙钉」。钉毕送红包与封钉人,孝男即用牙齿拔起子孙钉,供于魂帛。司公所唱吉语如左: 「一点东方甲乙木,子孙代代居福禄。   二点南方丙丁火,子孙代代发家伙。   三点西方庚辛金,子孙代代发万金。   四点北方壬癸水,子孙代代大富贵。   五点中央戊己土,子孙代代如彭祖。 」 (3)旋棺:封钉毕,个僧即引导孝券绕棺三次,曰「旋棺」。俟棺木盖上棺章,女眷即倚棺哀哭,俗称「哭棺柴头」。哭罢即发引安葬。 (4)出殡行列: A.地理师乘轿引导。 B.路鼓。 C.献纸钱(掷纸钱与路上野魂以免捣乱)。 D.孝女执草龙(俗称火把,以稻草捆束,长数尺,先端焚烧生烟)为照明引路(古昔用火把以防野兽,相沿而来)。 E.女婿、孙婿执铭旌(书死者衔名白长旗)。 F.洗路(弄铙钹)。 G.吉大门灯(书家姓之大灯笼)。 H.挽联挽幛、花环、艺阁、化装队、乐队等。 I.大鼓亭。 J.香亭。 K.子孙亭。 L.纸轿(涂纸轿,子孙扛)。 M.司公(道僧)。 N.灵柩,孝男扶棺而行。 O.大孙轿(又称魂轿)。 P.执幢幡。 Q.孝眷,女眷则由一男人用白长布条曳引,执布条一路哀哭而行,以免分静。 R.最后为执拂(送葬)来宾。 S.送葬者,亲戚幼辈头绑白布,平辈左手绑白布,长辈白布绑腰,外家白布绑半肩之分。至小段行程,丧子等即跪地向送葬来宾,拜谢并请止步。外家则送至门口止步。 十一、点主: 旧俗点主在墓地举行。俟灵柩安放墓前,即请官人或学者为点主官(通常道僧代行)行点主。将灵牌上神主之主字上面一点从缺,仿如王字。孝男背神主面向东,跪于地上。点主管执新笔,沾雄鸡冠鲜血(今则改为沾朱墨),随道僧高唱吉语,点「王」为「主」后,向东或墓后掷弃笔。再执新笔蘸墨点黑.即点主告成。孝眷即匍匐叩谢点主官,黑墨笔携回。点主吉语如下:「我今握笔对天庭,二十四山作圣灵,孔子赐我文章笔,万事由我能作成。点天天清,点地地灵,点人人长生,点主主有灵,点斤斤会拿,点脚脚会行。点上添来一点红,代子孙成富翁。王字头上加一点,子孙兴旺万年享。一笔举起指东方,孝眷人等大吉昌。王字头上加一点,世代荣华万万年。一笔举起指上天,孝门富贵子孙贤,点得房房生贵子,富贵荣华享无疆」。 十二、安葬: 良辰至,即收祀后土,将灵柩奉安入穴,俗称「落葬」。 (1)放栓:入穴前将棺木穿气孔,曰「放栓」,使尸体与地气相通。 (2)落葬:落葬之先,地理师(堪舆家)捧罗庚(罗盘)祷告,高唱:「手捧罗庚八卦神,盘古初开天地人,九天玄女阴阳法,曾传凡间杨救贫,南山石上凤凰飞,正是杨公安葬时,年通月利无忌,此日当开生龙口,紧来引进大封君太孺人。前面有山山拱秀,后面有屏镇龙基,前有朱人丁量,后是玄武镇明堂,左有青龙送财宝,右是白虎进田园,禄到山前人富贵,马到山后财丁旺,吾奉太上老君,进!」,即灵柩入穴,放正方位安棺。有时地理师嫌丧家红包薄,祷告吉语即从简,仅唱:「良辰吉日天地开,面前吉日凤凰来,前进葬,后得财,富贵即时来,进!」,寥寥几句,敷衍了事。 (3)撒五谷:埋罢,地理师高唱:「进好好,乎(给)汝子孙长古老」。嗣即孝券随道僧引导,绕墓三次。绕罢,再由地理师一面高唱吉语,一面将备于斗内心五谷、硬币、铁钉撒于墓上人吉语如下:「一撒东方甲乙木,代代子孙受天福。二撒西方庚计金,代代子孙出公卿。三撒南方丙丁火,代代子孙发家伙。四撒北方壬癸水,代代子孙富贵随。五撒中央戊已土,代代子孙寿彭祖。现在五谷撒落土,代代子孙出大官虎。五奉九天玄女勒!」。撒五谷后取墓土一块放入斗灸嗣即道僧斗内五谷丰登,财丁兴旺,家业腾达。分五谷吉语如下:「一要人丁千万口。二要财宝尽丰盈。三要子孙当量盛。四要头好聪颖。五要登科会趁早。六要牛马结成群。七要南北山府库。八要寿命真永长。九要家财石崇富。十要富贵永无疆。五谷平分,百子千孙。 (4)返主:分罢五谷,神主放入斗内,与斗久留存少许五谷等,由长孙「魂轿」携回,称「返主」。安葬仪式毕返家后,丧家备餐请道却、抬棺工人或其他工作人员。旧时餐用猪肉都切成三角形,别于平时心切法,故俗称「吃三角肉」则有参与丧式之意。而券则菜肴放置于监湖(簸箕),蹲于地上用餐,以表孝道。 丧仪完结,出嫁女儿及亲戚归家时,丧家须送发粿(含意居达)。桶箍(含意阖家园圆)、菜(台语与久音同,含意长寿)等物贴上红纸,带回家以讨吉利。而丧家不得打招呼,如请其再来等(因丧事不可再)。 十三、做功德: 它葬后搭棚设坛,长孙女执伞遮盖桌上魂帛,面向坛坐于坛前,请司公(道僧)诵经做法事,俗称「做司」。本以死者之名施功德,以赎生前罪孽,而借佛力早往生西方极乐世界。惟所做法事,不只「开魂路」、「做功德」等,且杂有走赦马(司公数人,手执纸马、纸人作追逐游戏)、弄铙(以铙钹作各种演技)、挑经(一司公挑经卷,作难分难舍状过奈河桥,使孝眷悲悯而掷钱施舍)、放焰口(口火吐火)等杂技表演。故古时有一谐联曰:「孝子报亲恩,无工无不可。儒生从道教,其然其岂然」,识者所不以为然也。 十四、围库钱: 做司后,孝眷围绕烧冥纸及纸制库官库吏,曰「围库钱」。因恐被别家亡魂劫掠,故围守库钱也。俗信库钱可付托死者,转交与早先亡故之亲属,称「寄库」,故多烧而不与子媳参加围烧,恐被亡故家属冒收也。 十五、安灵: 返主拜忏后设灵桌,上置魂身(仿死者纸像)、魂帛,两帝置桌头娴(纸制仆婢各一),魂帛前置香炉、灵烛、油灯等物件,桌旁放幢幡,称「灵」或「安灵」。富者雇「糊纸匠」设富丽孝堂,俗称「结灵坛」。灵位于除灵时撤除,灵桌往昔多弃于效外。 (1)孝饭:自灵时起,每日早晚于前供饭(饭上插箸一双,菜汤一碗)及洗脸盆、毛巾,称「拜孝饭」,祭拜烧冥纸。拜孝饭时女眷须于灵前哀哭,曰「叫起叫困」一直至除灵止。 (2)做七:死后每隔七日,做七一次,称「做七」。做七应备牲醴菜肴奠祭。倘遇农历初七、十七、二十七,称「撞七」,提前一日半夜做七。死后第七日称第七日称「头七」,俗以死者此日始知己死,亡灵将归宅哀哭,故于午夜后即哀哭致祭至中午,前延请道僧诵经,开魂路,举行法忏。二、四、六七为小七,奠祭从简。三七为「查某子(女儿)七」应早出嫁女儿奠祭,仍请道僧诵经做功德,仪式隆重。五七为「查某孙仔(姪女)七」或称「亲房七」由族亲致祭。七七为尾七,仍请道僧法忏奠祭。 做七除上寿者照七七四十九日为尾七外,未上寿者即俗所谓「死人快过日」,一般多自二七起短为六日,因此实则做尾七为第四十三日。 十六、除灵: 俗于死后一百日前后,择吉日举行奠祭,称「做百日」。饭肴须稍为丰盛,并请道房屋与「魂身」一并焚人供死者居住。古俗力有除灵次日,孝妇除孝服,理发沐浴换素衣,至寺庙行香后,始可回娘家省亲,曰「行圆」,孝男亦于除灵后始可理发。俗信百日久为不净之身,大吉祥颇受禁忌。除灵后即早「精孝」换为「幼孝」,称「换孝」。 十七、作对年: 死后一周年祭,俗称「做对年」。死者始合祀于祖先牌位,称「合炉」,并即「脱孝」。在带孝期内,丧家年节不作粿粽之类,由亲戚馈赠。                                        (摘录自「民雄乡志」) 延边朝鲜族礼仪研究会提供  
10    중국의 금기와 숭배 댓글:  조회:3559  추천:0  2012-07-30
중국의 금기와 숭배   금기에 대해서 예부터 금기(禁忌)는 어느 나라나 있었다. 금기는 중국어로 '기휘(忌諱)'라고 한다. '기(忌)'와 '휘(諱)'라는 두 글자는 금문에까지 나오는 말로서 모두 '금기하다'거나 '두려워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금기는 천벌을 무서워하는 인간의 공포심리에서부터 기인된 것으로 스스로를 단속하여 재앙을 피하려고 했던 것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죽음”은 인간의 영원한 공포 생존수단에서 비롯된 금기 고전 저서나 현존하는 야만부락의 일부 풍속 또는 일부 소수민족의 습속으로 볼 때 적지 않은 금기가 죽음을 두려워하여 생긴 것임을 알 수 있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우선적인 것은 생존의 수요이다. 이러한 생존수요의 박탈은 인생의 가장 큰 재앙이 되었다. 사람은 배고프면 먹어야 하고 음식이 없으면 굶어 죽게 된다. 그들은 오직 신령을 침범하지 않는 다면 신령은 그들을 굶어 죽지 않도록 벌을 내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사냥꾼들은 산신령을 숭배하고 물고기를 낚는 사람들은 수령신을 숭배하며 농사꾼들은 오곡신령을 숭배하면서 신들을 침범하는 일은 금물이라고 여기게 된다.   나시족 늪에서 여자들이나 아이들의 기저귀를 씻는 것을 금기하고 있다. 용왕신을 범할까 두려워서이다. 산에서 방목을 할 때 절대 산기슭에 있는 돌이나 불을 지폈던 자리에 소변을 보지 않는다. 돌신령을 건드릴까 두려워서이다.   독룡족 집사람이 사냥하러 가거나 종자를 심으러 나가는 날에는 손님이 오는 것을 꺼려했다. 짐승을 잡지 못하거나 심은 종자가 싹이 트지 않을 걱정에서다.   노족 사냥을 가서 한족말이나 다른 민족 말을 하는 것을 금기하였다. 벼랑신이 노족말이나 장족 말밖에 알아들을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다른 족말을 하면 그들에게 사냥한 짐승을 주지 않는다고 여겼다.   조상숭배 장례식의 수의에는 옷깃이 없고 단추가 없어야 하는데, 중국말로 옷깃을 뜻하는 링즈(領子)는 '자식을 데리고 간다.'라는 뜻으로, 단추를 뜻하는 글자는 '자식을 잡고 놓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데, 이는 결국 죽은 사람이 산사람을 데려가는 것, 즉 죽음을 두려워한 것에서 온 것이다. 노인이 죽으면 이름이나 호와 같은 글자를 말하는 것을 금기한다. 고대에서 임금이 죽어도 이를 행했었다. 심한 경우에는 아버지의 이름에 '악(岳)'자가 있으면 평생 음악을 듣지 않거나 '고(高)'자가 있으면 떡이나 과자(''는 발음이 같은 gao)조차도 먹지 아니하였다. 주문왕이 이른바 '이름을 말하면 직접 사람을 만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주문왕은 고인을 생각하면 살고 싶지 않을 정도라고 했는데 그것은 고인을 생각하면 마음이 슬퍼지고 이름만 들으면 생전의 일이 생각나서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름을 부르고 기억해야 마땅하지만 죽은 후에는 친하던 사람들도 악귀로 변한다고 여겼다. 이는 역시 죽음을 멀리해야 할 존재로 인식한 것에서 온 것이라 할 수있다.   혼인과 임신의 금기 약탈혼인의 발생 혼인이라는 婚자는 '계집 녀(女)'자 변에 '어두울 혼(昏)'자로 이루어졌는데,이는 어두운 밤에 장가를 든다는 의미이다. 『주역(周易)』에 이에 관한 작품이 있음 屯如 如 머뭇거리네. 乘馬班如 네 필의 말이 배회하네. 匪寇 비적이 아니라. 婚 혼인하는 사람들이로다. 乘馬班如 네 필의 말이 배회하고. 泣血漣如 여자는 흐느껴 우는 구나. 고대의 혼인수단이 강도와 별차이가 없는데 이는 약탈혼의 증거를 보여주는 예이다. 見豕負途 흙투성이 돼지를 보고 載鬼一車 귀신을 가득 태운 차가 보이니 先張之弧 화실을 당기려다 後說(脫)之弧 그냥 두었노라 匪寇 실은 비적이 아니라 婚 혼인하는 사람들이었노라 '초를 켜고 말에게 길을 비추다'라는 말이 『의례』에서 나오는데 이는 밤에 신부를 맞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미 약탈혼은 없어졌지만 약탈혼의 흔적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된다. 인류학자들에 의하면 부락사이의 접촉이 빈번하지 않았던 인류사회에서 근친상간은 거의 보편적이었다고 한다. 생물학적 관점에서의 공포는 열성인자의 양성이였고, 문화적의미에서는 가정관념이 생기고 나서 '난륜'을 금지시켰다는 것이다. 약탈혼으로 말미암아 우수한 유전자를 취하는 것이다.   동성불혼설 앞에서 알아 보았듯이, 고대에서 이어져온 우성에 대한 관점때문에 이러한 동성불혼설이 이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남녀가 동성이면 후손이 번성하지 못하노라.' (『좌전(左傳)』,「희공(僖公)23년」) 동성이면 제사를 같이 지내게 되는데 여기에는 연합의 뜻이 있다. 때문에 성씨로 묶고 가르지 않으며 먹을 거리를 나누어 먹으며 똑같이 지낸다. 따라서 백 세대가 지나도 혼인은 하지 못한다. 이것이 원만한 이치라 하겠다.(『공자기어(孔子家語)』) 신비한 것이 금기가 된다   괴이한 현상과 공포 옛 사람들은 알 수 는 자연 현상에 대해 막연한 공포를 느꼈다. 세월이 나감에 따라 어느 도 현상들을 이해 할 수 있게 되었고, 공포는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하지만, 근원을 알 수 는 금기들이 있는데, 어떠한 방법을 다하여서라도 그것과 거리를 두게 된다. 원래부터 신비한 것은 금기였고, 줄곧 금기하다 보니 더욱 신비해진 것이다. 수해 은 경우 알 수 없는 자연의 재해였던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알 수 없는 초월한 존재에 의해 일어난다고 생각하고 여러 신들을 만들게 된 이다.   동물의 신비화 인간이 가질 수 없는 능력을 가진 존재로써, 두려움과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맹금류의 날카로운 발톱과 날 수 있는 능력, 육식동물들의 강인한 이빨, 뱀의 재생성 등은 고대인들의 두려움과 경배의 대상이 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모습에는 수성과 인성의 합일화된 모습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이후에 많은 자연현상들의 이해와 동물들을 제압할 능력을 갖게 됨으로써, 이러한 동물들의 신비화는 점차 희석되어 버리고 만다.   금기는 예와 교육을 형성하게 된다. 금기와 예, 그리고 교육 고대로 부터 이어져 내려온 수많은 금기들이 사람들의 행동에 제약을 가하게 된다. 이를 더 체계적으로 제어 할 수 있게 된 방편이 예의다. 질서의 확립과 규제로 인하여 안전한 생활을 영위해 나갈수 있게 되는 것이다. 생존수단의 전수와 문화의 전수적 측면에서 교육은 이러한 예를 이어나갈 수 있게 만들어 준 것이다. 더 나아가 확실한 금기의 경계를 위해 서로에게 제제를 가할 수 있는 법을 만들게 된 것이다.   금기로 인해 생겨난 문학 문학작품에서 비판의 힘은 기성 질서에 대한 파괴로부터 나온다. 사회 규제를 위해서는 수많은 금기들이 필요했는데, 작가들은 필연적으로 이런 금기들을 범하는 능력을 지니게 된다. 『금병매』에서 나오는 결말은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점을 문학작품에서 이룸이었는데, 이는 인간의 욕망을 문학에서 이루어 만족시키려는 것이 된다.   금기와 숭배의 관계 두려움이 금기를 생성하였고, 두려움에 대한 경외심과 여러가지 측면들이 숭배를 낳게 되었다. 금기는 언제나 넘어서지 못할 미지의 세계인 동시에, 넘어가보고 싶은 욕망의 한계선이 된 것이다. 숭배는 알 수 없는 현상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려는 의지의 반영이 된 셈이다. 현대에서는 수많은 알 수 없는 현상들을 과학적인 근거하에 규명하고 있는데, 이러한 현상 역시 두려움을 없애려는 행위로 이해 할 수 있다.   해음(諧音) 중국인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준수하는 금기나 길상(吉祥)을 추구하는 선호(選好)의 풍속은 종류가 너무 많아 일일이 다 거론할 수는 없다. 같은 내용의 풍속들이라 해도, 지역과 민족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들을 띠고 있다. 일단 불행과 관련된 의미를 갖고 있는 단어는 최대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중국인들의 기본 금기 사항이며,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이들 단어들과 발음이 같아서 불행한 의미가 연상되는 각종 사물이나 행위도 금기시되는 경우가 종종있다. 해음이란 간단히 말하자면, A와 B 두글자가 서로 다르지만 같거나 유사한 발음을 갖고 있기 때문에, A를 이야기 하지만 동시에 B의 이미지를 연상하게 하는 것이다.   음식문화에서의 해음 중국은 고대로부터 농경생활을 해왔으며, 오곡의 풍성함은 모든 이들의 바람이었다. 숭상하는 길상물 중에는 풍성함을 기원하는 바람과 깊은 연관성이 있는데, 용이 이러한 존재들 중의 하나이다. 물고기 또한 물과 비를 관장하는 영적인 존재로 여겨왔다. 『산해경』에서는 물고기를 홍수를 일으키고 가뭄을 가져오는 신비로운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 물고기는 곧 오곡의 풍성함으로 직결되는 존재인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말미암아 생선은'어(魚,yu)'라고 하는데, 이 발음은 '여유 있다' 혹은 '풍족히 남다'는 뜻의 '여(餘,yu)'의 발음과 같다.   중국인들이 생선을 특별히 선호하는 것은 항상 풍족함을 기원한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식사뿐만 아니라 제사를 지낼 때 혹은 명절날이나 축하연에서 생선은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가 되었다. 춘절에 생선요리를 먹는 것은 필수코스인데, 이날은 특별이 잉어를 먹는다고 한다. '이(鯉)'의 발음이 '이익 된다'는 이(利,li)'와 같아서 새해에도 좋은 일이 있으라는 의미 때문이다.   고대인들은 복숭아를 먹음으로써 장수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이는 오늘날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어서, 노인들의 생일잔치에는 장수면(長壽麵)이외에 복숭아가 필수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이날 등장하는 복숭아는 장수한다는 수(壽)를 붙여서 특히 '수도(壽桃)'라고 부른다. 계절적 영향으로 복숭아가 나지 않을 때에는 밀가루나 쌀가루로 만든 복숭아 모양을 한 '수도'를 준비한다.   중국의 남방에서는 귤(橘,ju)과 여지(枝,li zhi)라는 과일을 함께 베갯맡에 두었다가 춘절날 일어나서 먹는 풍속도 있는데, 두 과일의 발음이 '吉利(ji li)'와 유사하기 때문에, 새해에 좋은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각종기피 음식들 후베이(湖北)지역에서는 제사를 지낼 때 일반적으로 닭고기를 사용하지 않는 금기가 있다. 기아(飢餓)가 연상되는 기(飢,ji)와 닭 계(鷄,ji)의 발음이 같아서 신령에게 불경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장쑤성일대에는 제사 때에는 콩을 쓰지 않는데, '콩 두(豆,dou)'는 '싸우다' '투쟁하다'라는 뜻의 투(鬪,dou)'와 같은 발음이기 때문이다. 이는 집안 자손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기 때문에 쓰지않는다고 한다. 다만 콩으로 만든 음식 중에는 두부는 종종 쓰이는데, 두부(豆腐)' 부(腐,fu)'의 발음이 '부(富,fu)'혹은 '복(福,fu)'과 발음이 같아서 재운을 상징하는 음식이기 때문에 사용되기도 한다.   재미있는 여러 가지 풍습들 한식날 불을 사용하지 않는 금기에 대해서는 춘추 시대 진(晉)나라 충신이었던 개지추(介之推)를 추념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그 내용은 진나라 문공(文公)이 온갖 시련 끝에 왕위에 올랐다. 하지만 왕위에 오르기 전 고초를 겪을 때 그에게 충성을 다한 개지추에 대해 날이 갈수록 소원해져 갔다. 개지는 괴로운 나머지 노모를 모시고 은둔해버렸다. 진문공은 살신성인의 충신인 개지추를 소홀히 대한 것에 대해 부끄러운 나머지 그를 다시 찾았으나 개지추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면산에 불을 지르면 효성이 지극한 그가 노모를 모시고 산에서 나오리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3일간의 산불이 꺼진후 개지추는 노모를 부둥켜안고 불에 탄 채로 발견 되었다. 진문공은 개지추와 그의 노모를 후히 장사지내고 그가 사망한 이날에는 불을 금하고 차가운 음식을 먹도록 명하였다. 바로 이날이 청명절하루 전날이라 한다. 이후에도 개지추의 죽음을 기려 날음식을 먹을 지언정 불의 사용을 금하는 풍습이 자리 잡았다고 한다.   신도(神茶)와 울루(鬱壘)는 본래 전설 속에 나오는 인물로서,『산해경山海經』의 기재에 의하면 도삭산(度朔山)이라는 곳에 살던 형제였다. 이 산에는 매우 거대한 복숭아나무가 있었는데, 그 잎이 삼천 리에 걸쳐 뻗어 있었다고 한다. 그 복숭아 나무의 동북방에는 귀문이 있어서 귀신들은 이 문으로 드나들었다. 신도 형제는 이 문에서 지켜 서서는 악귀들을 만나기만 하면 이들을 갈대로 묶어서 호랑이에게 먹였다. 그래서 귀신들이 함부로 인간 세상에 내려와서 사람들을 해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도삭산의 복숭아나무가 능히 귀신을 몰아내는 효엄이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리하여 복숭아나무 조각을 대문에 걸어 놓고는 그 위에 '신도' '울루' 두 영제의 이름을 써 넣어서 귀신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이후에는 귀신을 쫓는 내용의 주문을 써 넣었고, 그리하여 도부(桃符)라는 명칭이 생겼다고 한다.   壓歲錢(혹은壓巾錢)'에도 고사가 있는데, 옛날 수(巾)라는 요괴가 있었다. 이 요괴는 설날 전날 밤만 되면 나타나서 아이들을 해치곤 하였다. 손으로 깊이 잠든 아이의 이마를 만지면 아이는 놀라 울면서 열이 오르곤 하였는데, 열이 가시면 원래 총명하던 아이도 바보 같은 아이로 변하였다. 어느 부부가 설날 전 날밤 붉은 실에 동전 8개를 꿰어서 아이의 베갯 맡에 두었다. 한밤중이 되자 과연 수란 요괴가 아이에게 접근하였다. 하지만 동전으로부터 갑자기 밝은 빛이 나오면서 수는 놀라 도망을 쳤다. 이 사실이 전해지자 사람들은 설날 전날 밤이 되면 같은 방법으로 동전을 잠자는 아이들의 베갯 맡에 두어서, 귀신의 장난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하였다고 한다. 붉은 실에 꿰어 아이를 보호하는 이 동전들을 '壓歲錢(혹은壓巾錢)'이라고 불렀다. 오늘날에도 춘절 전날 밤에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붉은 실에 꿰인 동전이나 지폐를 넣은 붉은 봉투를 주면서 축복의 덕담을 건네준다.'누른다'는 뜻의 '압(壓)'이라는 글자 그대로 이들 돈은 아이들의 베갯 맡에 눌려서 하룻밤을 지내며 새해의 도래를 기다리게 된다.
9    문헌신, 불교신, 무속신 관력 항목-106개 댓글:  조회:4602  추천:0  2012-07-17
  문헌신, 불교신, 무속신 관력 항목 찾아보기-106개  ㄱ-ㄴ-ㄷ... 순서 관련신(바로가기)  요약  강림도령  85. 강림도령 강림도령은 죽을 때가 된 사람을 데리러 오는 세 명의 저승차사(差使) 중 하나이다. 강림도령은 미혼 젊은이의 영혼이라고도 ...  건달바  23. 건달바 1. 개요 건달바(乾達婆)는 범어로 Gandharva로 식향(食香), 심향(尋香), 심향행(尋香行), 향신(香神), ...  검무신장  54. 검무신장 무속은 무당을 중심으로 하여 전승되는 종교적 현상이라 간략하게 정의내릴 수 있다. 무속은 민간사고가 집약되어 무당을 중심...  굼반다  21. 굼반다 1. 개요 굼반다는 프레타와 함께 수미산 중턱 남쪽의 ‘유리’라는 지방을 관장하는 남방 증장천왕(增長天王)의 권속이다....  궁희  2. 궁희(穹姬) 마고의 딸로서 궁희의 존재를 문헌이나 민간전승에서 찾기는 쉽지 않으며, 다만 『환단고기』나 『부도지(符都誌)』 등 이른바...  금와  103. 금와 금와왕의 생몰년은 알려져 있지 않다. 동부여의 왕이며, 금와(金蝸)라고도 표기한다. 서기전 1세기에 활동한 것으로 보이며, ...  김수로  100. 김수로왕 김수로왕은 가락국(또는 금관가야) 그리고 김해 김씨의 시조이다. 그의 탄생과 치적에 관해서는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나찰  26. 나찰 1. 개요 나찰은 원래 고대 인도의 신으로, 불교에 들어온 이후로는 악귀(惡鬼)의 총칭이 되었다. 범어로 락샤사(Raks...  단군  92. 단군 단군(壇君)은 우리 민족의 시조이다. 고조선(古朝鮮 : 檀君朝鮮)의 첫 임금이며, 단군(壇君), 단군왕검(壇君王儉), 단웅천왕...  당산  64. 당산 마을의 성역인 당산에 깃들어 있는 당산신은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을 대신하여 마을의 태평과 풍요, 번영은 물론이요, 병마나 재액(...  대천왕  39. 대천왕 소천세계가 천이 모여 중천세계가 되고 이 중천세계가 천이 모인 것을 대천세계라 이른다. 이 대천세계는 소천세계, 중천세계, ...  도시대왕  76. 도시대왕 도시대왕은 명부의 시왕 중 아홉 번째 왕이다. 사람이 죽어서 가는 곳을 명부라 하는데, 명부에서 핵심을 이루는 것이 지장...  둔갑신장  47. 둔갑신장 둔갑은 우리나라 민담이나 전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술법으로 마음대로 자기 몸을 감추거나 다른 것으로 변하게 하는 것을 말...  마고  1. 마고 보통 마고(마귀)할미 전승은 해남, 옹진, 강화 등 주로 해안 도서지방에서 현재까지도 전해 내려오는 지역전설로서 거인신화의 대표...  맹인귀  60. 맹인귀 귀신은 초인간적이며 초자연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주체라고 믿는 대상으로 간략히 설명될 수 있다. 귀신은 우리나라 사람의 신앙행...  묘신  118. 묘신 묘신은 12지에서 네 번째 동물로 호랑이로 표현된다. 한국에서 묘신은 처음 수호신과 방위신의 성격에서 다양한 사상적 배경과 ...  미신  122. 미신 미신(未神)은 12지에서 여덟 번째 동물로 양으로 표현된다. 한국에서 미신은 처음 수호신과 방위신의 성격에서 다양한 사상적 ...  백마신장  36. 백마신장 백마신장은 옥황상제님을 호위하는 근위대 신장이다. 또 백마를 타고 다니면서 인간을 보호해주는 신장이기도 하다. 또 백마를...  백제치우  14. 백제치우 1. 개요 백제치우는 『한단고기(桓檀古記)』에 나오는 백제(白帝)로 이해할 수 있으며 서방을 관장한다. 『한단고기』는...  백호  18. 백호 사신은 청룡(靑龍, 東), 백호(白虎, 西), 주작(朱雀, 南), 현무(玄武, 北)의 오방신(五方神)을 말한다. 사신사상은 전...  범왕  44. 범왕 1. 개요 범천은 산스크리트어로 브라흐마데바(Brahmadeva)라고 하며, 범천왕(梵天王), 범왕, 바라문천이라고도 한...  벼락신장  35. 벼락신장 무속에서의 신장의 개념은 불교에서의 신장 개념과 약간 다르다. 물론 무속에서 섬기는 신장들 중 상당수는 불교에서 연원...  변성대왕  73. 변성대왕 변성대왕은 명부의 시왕 중 여섯 번째 왕이다. 사람이 죽어서 가는 곳을 명부라 하는데, 명부에서 핵심을 이루는 것이 지장...  부단나  24. 부단나 1. 개요 부단나(富單那)는 범어 Putana의 음사로 냄새나는 귀신, 아귀를 말하며, 때로는 열병을 앓게 하는 귀신이...  비류  110. 비류(沸流) 비류(沸流)의 생몰년은 알려져 있지 않다. 비류는 백제의 건국시조이다. 즉, 백제 미추홀(彌鄒忽 : 여러 설이 있으나...  비사문  30. 비사문 1. 개요 비사문천은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네 명의 외호신(外護神)인 사천왕 중 북쪽을 지키는 천왕으로 다문천왕(多聞...  비사사  22. 비사사 1. 개요 비사사는 사천왕의 휘하인 사천왕 8부중의 하나로 지국천(持國天) 휘하의 귀신이다. 비사사는 시체의 고기를 먹...  사신  120. 사신 사신(巳神)은 12지에서 여섯 번째 동물로 뱀으로 표현된다. 한국에서 사신은 처음 수호신과 방위신의 성격에서 다양한 사상적 ...  사해조정용궁신장  48. 사해조정용궁신장 용궁신장은 옛 삼개포구에서 행해졌던 마포나루굿에 등장한다. 굿은 육지에서 하는 나루굿(대동제)과 배를 한강에 띄어놓...  산신  42. 산신 1. 개요 산신은 산에서 산을 지키며 산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관장한다는 신으로 산신령(山神靈)이라고도 한다. 모든 자연물...  살귀  62. 살귀 귀신은 초인간적이며 초자연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주체라고 믿는 대상으로 간략히 설명될 수 있다. 귀신은 우리나라 사람의 신앙행위...  삼신  38. 삼신 삼신은 옥황상제의 명을 받아 아기를 점지하고, 인간세상에서 출산을 돕고, 산모와 갓난아기를 보호하는 신이다. 삼신의 어원은 ‘...  삼족오  9. 삼족오 삼족오를 달리 금오(金烏) 혹은 준오(烏)라고도 부른다. 태양에 까마귀가 산다는 신앙은 『초사(楚辭)』, 『산해경(山海經)』 ...  삼태육성제대신장  56. 삼태육성제대신장 무속은 무당을 중심으로 하여 전승되는 종교적 현상이라 간략하게 정의내릴 수 있다. 무속은 민간사고가 집약되어 무당을...  서낭신  63. 서낭신 1. 서낭신 서낭신은 민간에서 일반적으로 마을의 수호신으로 받들어지는 신이다. 신수(神樹)에 잡석을 쌓아 놓은 돌무더기...  선관도사  67. 선관도사 보통 사람은 우연히 피동적이며 일시적으로 귀신과 직접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나 무당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서 능동...  성주신  79. 성주신 성주신은 집의 건물을 수호하는 신이다. 주로 집의 건물만을 수호하는 기능이 있다. 따라서 집의 건물은 원칙...  소희  3. 소희 마고의 딸로서 소희의 존재를 문헌이나 민간전승에서 찾기는 쉽지 않으며, 다만 『환단고기』나 『부도지(符都誌)』 등 이른바 재야사...  송제대왕  70. 송제대왕 송제대왕은 명부의 시왕 중 세 번째 왕이다. 사람이 죽어서 가는 곳을 명부라 하는데, 명부에서 핵심을 이루는 것이 지장보...  수신(하백)  34. 수신 수신은 바다, 강, 하천, 연못, 우물 등 물을 관장한다는 신이다. 해신(海神), 용왕신(龍王神), 하천신(河川神), 독신(瀆...  술신  125. 술신 술신(戌神)은 12지에서 열한 번째 동물로 개로 표현된다. 한국에서 술신은 처음 수호신과 방위신의 성격에서 다양한 사상적 배...  신신  123. 신신 원숭이는 인간과 가장 많이 닮은 영장동물로 갖가지의 만능 재주꾼이고, 자식과 부부지간의 극진한 사랑은 사람을 뺨칠 정도로 섬...  아수라  28. 아수라(阿修羅) 1. 개요 아수라는 아소라(阿素羅), 아소락(阿素洛), 아수륜(阿須倫) 등으로 음사(音寫)하며 수라(修羅)라고...  안당불사  82. 안당불사 주로 집안에 거주하면 자손들의 수명과 복을 관장하는 신이다. 가택의 여러 신령인 가신들에 대해서는 매년 10월에 각 가정에...  야차  27. 야차 1. 개요 야차는 인도의 『베다』에 나오는 신적 존재이다. 야차란 명칭은 산스크리트어 야크샤(Yaksa)의 음역으로 약차...  염라대왕  72. 염라대왕 염라대왕은 명부의 시왕 중 다섯 번째 왕이다. 사람이 죽어서 가는 곳을 명부라 하는데, 명부에서 핵심을 이루는 것이 지장...  영등할멈  46. 영등할멈 영등신, 즉 영등할멈은 제주도와 남해안 일대, 특히 제주도에서 널리 섬겨진 외래 여신으로서 본래 해녀채취물의 증식 보호신이...  오관대왕  71. 오관대왕 오관대왕은 명부의 시왕 중 네 번째 왕이다. 사람이 죽어서 가는 곳을 명부라 하는데, 명부에서 핵심을 이루는 것이 지장보...  오신  121. 오신 오신(午神)은 12지에서 일곱 번째 동물로 뱀으로 표현된다. 한국에서 오신은 처음 수호신과 방위신의 성격에서 다양한 사상적 ...  옥황상제  33. 옥황상제 옥황상제는 천신, 즉 하늘의 신령이라는 의미로, 하늘의 중심, 하늘 자체를 신격화하거나 하늘에 있는 초인적인 신격을 믿음으...  온조  111. 온조 온조의 생년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그가 사망한 해는 기원후 28년으로 전해지고 있다. 백제의 건국시조이며, 엄밀한 의미에서는...  외양간신  81. 외양간신 외양간신은 소중한 소를 키우는 외양간을 수호하는 신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소를 가족으로 여겨서 한 집에서 사는 하인이나 동물...  용  25. 용 1. 개요 용(龍)은 용신(龍神)이나 용왕을 가리킨다. 용신앙의 시원은 인도의 나가(naga)신앙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  용왕  45. 용왕 1. 개요 용신은 재래의 수신과 불교와 도교의 용신이 습합되어 형성된 국가수호신으로서, 그리고 왕실의 조상신으로서 국가적...  우사  97. 우사 우사(雨師)는 말 그대로 비를 주관하는 신이다. 우사의 일반적인 모습은 새털 같은 수염이 난 장대한 사나이로 왼손에 용이 ...  운사  96. 운사 운사(雲師)는 구름을 관장하는 신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운사는 단군신화에 풍백, 우사와 함께 소개된다. 풍백(風伯), 우사(雨...  웅녀  90. 웅녀 웅녀(熊女)는 우리나라의 건국신화인 단군신화에 나오는 우리 민족의 시조모(始祖母), 즉 우리 민족의 시조인 단군왕검(檀君王儉)...  월직사자  84. 월직사자 월직사자(月直使者)는 죽을 때가 된 사람을 데리러 오는 세 명의 저승차사(差使) 중 하나이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강림...  위화  50. 위화 위화(葦花)의 생몰년은 알려져 있지 않다. 위화는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왕 주몽(朱蒙)의 어머니인 유화(?∼서기전 24)의 동생...  유신  124. 유신 유신(酉神)은 12지에서 열 번째 동물로 닭으로 표현된다. 한국에서 유신은 처음 수호신과 방위신의 성격에서 다양한 사상적 배...  유인  98. 유인 1. 개요 유인은 신라시대 인물인 박제상에 의해 지어졌다고 하지만 위서(僞書)임에 확실한 부도지에 나오는 존재로 다른 문...  유화  52. 유화 유화(柳花)의 생년은 알려져 있지 않고, 다만 서기전 24(동명왕 14)년에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왕 ...  인신  117. 인신 인신은 12지에서 세 번째 동물로 호랑이로 표현된다. 한국에서 인신은 처음 수호신과 방위신의 성격에서 다양한 사상적 배경과 ...  일월성신  11. 일월성신 넓게 정의를 내리자면 일월성신은 낮과 밤을 상징하며 인간에게는 행운과 수명을 내려주는 신령이다. 관복을 가지런하게 입은 일...  일직사자  83. 일직사자 일직사자(日直使者)는 죽을 때가 된 사람을 데리러 오는 세 명의 저승차사(差使) 중 하나이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강림...  자신  115. 자신 자신(子神)은 12지에서 첫 번째 동물로 쥐로 표현된다. 한국에서 자신은 처음 수호신과 방위신의 성격에서 다양한 사상적 배경...  작두신장  55. 작두신장 무속은 무당을 중심으로 하여 전승되는 종교적 현상이라 간략하게 정의내릴 수 있다. 무속은 민간사고가 집약되어 무당을 중심...  적제복희  12. 적제복희 1. 개요 적제복희는 『한단고기(桓檀古記)』에 나오는 적제(赤帝)로 이해할 수 있으며 남방을 관장한다. 『한단고기』는...  전륜대왕  77. 전륜대왕 오도전륜대왕은 명부의 시왕 중 마지막 왕이다. 사람이 죽어서 가는 곳을 명부라 하는데, 명부에서 핵심을 이루는 것이 지장...  정신귀  61. 정신귀 귀신은 초인간적이며 초자연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주체라고 믿는 대상으로 간략히 설명될 수 있다. 귀신은 우리나라 사람의 신앙행...  제석신  29. 제석신 1. 개요 제석은 불교에서 세계의 중심을 상징하는 수미산 위의 제석천을 주관하는 천신으로 인드라로 불리는 인도의 신령이...  조왕신  80. 조왕신 조왕신은 부엌을 수호하는 신이며, 그 기원은 불을 다루는 데서 유래한 것 같다. 이는 인류가 보편적으로 원시시대이...  주몽  112. 주몽(朱蒙) 주몽(朱蒙)은 기원전 58년에 태어나서 기원전 19(동명성왕 19)년에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는 고구려의 ...  주작  16. 주작 사신은 청룡(靑龍, 東), 백호(白虎, 西), 주작(朱雀, 南), 현무(玄武, 北)의 오방신(五方神)을 말한다. 사신사상은 전...  지하대신  66. 지하대신 지하대신은 할머니신으로 지하에서 점에 관한 것을 주관하는 신이다. ‘대신’ 이라는 것이 원래 점을 주관하는 신령인데 천왕...  진광대왕  68. 진광대왕 진광대왕은 명부의 시왕 중 첫 번째 왕이다. 사람이 죽어서 가는 곳을 명부라 하는데, 명부에서 핵심을 이루는 것이 지장보...  진신  119. 진신 진신(辰神)은 12지에서 다섯 번째 동물로 쥐로 표현된다. 한국에서 진신은 처음 수호신과 방위신의 성격에서 다양한 사상적 배...  창부대신  43. 창부대신 ‘창부(倡夫)’는 무당의 남편이면서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이며, ‘창부대신(倡夫大神)’은 광대신(廣大神)을 가리키는 말로 한...  천복대감  53. 천복대감 무속은 무당을 중심으로 하여 전승되는 종교적 현상이라 간략하게 정의내릴 수 있다. 무속은 민간사고가 집약되어 무당을 중심...  천왕대신  49. 천왕대신 천왕대신은 여신으로 하늘에서 점에 관한 것을 주관하는 신이다. ‘대신’ 이라는 것이 원래 점을 주관하는 신령인데 천왕...  천하대신  65. 천하대신 천하대신은 땅에서 점에 관한 것을 주관하는 신이다. ‘대신’이라는 것이 원래 점을 주관하는 신령인데 천하대신 이외에도 천...  청룡  17. 청룡 사신은 청룡(靑龍, 東), 백호(白虎, 西), 주작(朱雀, 南), 현무(玄武, 北)의 오방신(五方神)을 말한다. 사신사상은 전...  청제대웅  13. 청제대웅 1. 개요 청제 대웅은 『한단고기(桓檀古記)』의 삼신오제본기에 등장하며 동방을 관장한다. 『한단고기』는 한국 상고의...  초강대왕  69. 초강대왕 초강대왕은 명부의 시왕 중 두 번째 왕이다. 사람이 죽어서 가는 곳을 명부라 하는데, 명부에서 핵심을 이루는 것이 지장보...  최초의남자  86. 최초의 남자 최초의 남자는 한국의 창세신화에서 천지가 생겨나고 맨 처음 그곳에 살게 된 인류의 시조로서의 남자이다. 창세신화는 인간...  최초의여자  87. 최초의 여자 최초의 여자는 한국의 창세신화에서 천지가 생겨나고 맨 처음 그곳에 살게 된 인류의 시조로서의 여자이다. 창세신화는 인간...  축신  116. 축신 축신은 12지에서 두 번째 동물로 소로 표현된다. 한국에서 축신은 처음 수호신과 방위신의 성격에서 다양한 사상적 배경과 결합...  치우천왕  93. 치우천왕 1. 개요 치우천왕(蚩尤天王)은 환인이 다스리던 환국의 뒤를 이어 환웅천왕이 건국했다고 하는 배달국(倍達國)의 제14...  칠성신  31. 칠성신 칠성(七星)은 북두칠성(北斗七星)을 의미한다. 북두칠성은 그 국자부분이 향한 방향을 통해서 방위뿐 아니라 각 계절을 알 수...  태산대왕  74. 태산대왕 태산대왕은 명부의 시왕 중 일곱 번째 왕이다. 사람이 죽어서 가는 곳을 명부라 하는데, 명부에서 핵심을 이루는 것이 지장...  팔만사천제대신장  32. 팔만사천제대신장 신장은 장군의 신격으로 원래 이 신은 도교의 신으로서 오방오제설(五方五帝說)을 기초로 한 전설적 성격이 있으며,...  평등대왕  75. 평등대왕 평등대왕은 명부의 시왕 중 여덟 번째 왕이다. 사람이 죽어서 가는 곳을 명부라 하는데, 명부에서 핵심을 이루는 것이 지장...  풍백  95. 풍백 풍백(風伯)은 바람의 신을 부르는 말로 풍사(風師), 기백(箕伯), 비렴(飛廉), 방천군(方天君) 등으로 불리었다. 바람은 주...  풍우신장  94. 풍우신장 신장이란 신들의 군인들을 말한다. 요사한 귀신이나 악귀들을 물리쳐주며 각신들에게 예속되어 그 신들을 보호한다. 그 중 풍...  프레타  20. 프레타(아귀) 1. 개요 아귀(餓鬼)는 범어 프레타(Preta)를 번역한 말로, ‘사자의 영혼’ 등을 지칭하는 귀(鬼)에 굶주...  한웅  105. 환웅 환웅(桓雄)은 신시(神市)라 불리기도 한다. 그는 환인(桓因)의 명을 받아, 혼돈의 세상을 갈라서 세상을 만들었다. 천부의 ...  한인  104. 한인 환인(桓因)은 하늘의 주신(主神)이며, 만물의 아버지이다. 또 세상이 있기 이전부터 모든 신들의 우두머리이기도 하다. 일설에...  해모수  99. 해모수 해모수(解慕漱)는 만주의 북동부에 있는 북부여의 시조다. 천제가 대요(大遼)의 의주(醫州) 지방에 있는 흘승골성 (訖升骨城)...  해부루  107. 해부루(解扶婁) 해부루(解扶婁)는 부여의 왕이자, 금와의 아버지이다. 나이가 많아도 왕자가 없어 산천에 기도하였다. 어느 날 왕이...  해신  126. 해신 해신(亥神)은 12지에서 열두 번째 동물로 개로 표현된다. 한국에서 해신은 처음 수호신과 방위신의 성격에서 다양한 사상적 배...  현무  19. 현무 사신은 청룡(靑龍, 東), 백호(白虎, 西), 주작(朱雀, 南), 현무(玄武, 北)의 오방신(五方神)을 말한다. 사신사상은 전...  호구별상  57. 호구별상 ‘호구별상’은 천연두 즉 마마를 주관하는 신령이다. 매우 심술맞고 변덕도 심하여 무속에서 가장 골치 아프게 생각하는 신이다...  홍역귀  59. 홍역귀 귀신은 초인간적이며 초자연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주체라고 믿는 대상으로 간략히 설명될 수 있다. 귀신은 우리나라 사람의 신앙행...  황제  8. 황제 황제는 중국신화에 등장하는 신이다. 고래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중국신화의 내용에 따르면 황제는 중앙부의 상제였으며, 나머지 동서남...  훤화  51. 훤화 훤화(萱花)의 생몰년은 알려져 있지 않다. 훤화는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왕 주몽(朱蒙)의 어머니인 유화(柳花:?∼서기전 24)의...  흑제왕검  15. 흑제왕검 1. 개요 흑제왕검은 『한단고기(桓檀古記)』에 나오는 백제(白帝)로 이해할 수 있는데, 북방을 관장한다. 『한단고...   오방대제 관련 神 찾아보기-31개 ㄱ-ㄴ-ㄷ...순서 관련신(바로가기)  요약  검무신장  54. 검무신장 무속은 무당을 중심으로 하여 전승되는 종교적 현상이라 간략하게 정의내릴 수 있다. 무속은 민간사고가 집약되어 무당을 중심...  당산  64. 당산 마을의 성역인 당산에 깃들어 있는 당산신은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을 대신하여 마을의 태평과 풍요, 번영은 물론이요, 병마나 재액(...  둔갑신장  47. 둔갑신장 둔갑은 우리나라 민담이나 전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술법으로 마음대로 자기 몸을 감추거나 다른 것으로 변하게 하는 것을 말...  마고  1. 마고 보통 마고(마귀)할미 전승은 해남, 옹진, 강화 등 주로 해안 도서지방에서 현재까지도 전해 내려오는 지역전설로서 거인신화의 대표...  백마신장  36. 백마신장 백마신장은 옥황상제님을 호위하는 근위대 신장이다. 또 백마를 타고 다니면서 인간을 보호해주는 신장이기도 하다. 또 백마를...  백제치우  14. 백제치우 1. 개요 백제치우는 『한단고기(桓檀古記)』에 나오는 백제(白帝)로 이해할 수 있으며 서방을 관장한다. 『한단고기』는...  백호  18. 백호 사신은 청룡(靑龍, 東), 백호(白虎, 西), 주작(朱雀, 南), 현무(玄武, 北)의 오방신(五方神)을 말한다. 사신사상은 전...  벼락신장  35. 벼락신장 무속에서의 신장의 개념은 불교에서의 신장 개념과 약간 다르다. 물론 무속에서 섬기는 신장들 중 상당수는 불교에서 연원...  비사문  30. 비사문 1. 개요 비사문천은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네 명의 외호신(外護神)인 사천왕 중 북쪽을 지키는 천왕으로 다문천왕(多聞...  사해조정용궁신장  48. 사해조정용궁신장 용궁신장은 옛 삼개포구에서 행해졌던 마포나루굿에 등장한다. 굿은 육지에서 하는 나루굿(대동제)과 배를 한강에 띄어놓...  산신  42. 산신 1. 개요 산신은 산에서 산을 지키며 산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관장한다는 신으로 산신령(山神靈)이라고도 한다. 모든 자연물...  산신군웅신장  58. 산신군웅신장 산신군웅신장은 산신을 호위하는 호법신이다. 주로 호랑이로 대표되는 산신의 권속과 마찬가지로 여러 모습으로 변신하여 산신...  삼태육성제대신장  56. 삼태육성제대신장 무속은 무당을 중심으로 하여 전승되는 종교적 현상이라 간략하게 정의내릴 수 있다. 무속은 민간사고가 집약되어 무당을...  성주신  79. 성주신 성주신은 집의 건물을 수호하는 신이다. 주로 집의 건물만을 수호하는 기능이 있다. 따라서 집의 건물은 원칙...  용  25. 용 1. 개요 용(龍)은 용신(龍神)이나 용왕을 가리킨다. 용신앙의 시원은 인도의 나가(naga)신앙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  작두신장  55. 작두신장 무속은 무당을 중심으로 하여 전승되는 종교적 현상이라 간략하게 정의내릴 수 있다. 무속은 민간사고가 집약되어 무당을 중심...  적제복희  12. 적제복희 1. 개요 적제복희는 『한단고기(桓檀古記)』에 나오는 적제(赤帝)로 이해할 수 있으며 남방을 관장한다. 『한단고기』는...  주작  16. 주작 사신은 청룡(靑龍, 東), 백호(白虎, 西), 주작(朱雀, 南), 현무(玄武, 北)의 오방신(五方神)을 말한다. 사신사상은 전...  지신  78. 지신 지신(地神)이란 집터를 관장하는 터주신이다. 집터라는 말은 집이 들어앉은 밑자리의 땅으로 울안을 총칭하는 말이다. 울안에...  지하대신  66. 지하대신 지하대신은 할머니신으로 지하에서 점에 관한 것을 주관하는 신이다. ‘대신’ 이라는 것이 원래 점을 주관하는 신령인데 천왕...  천복대감  53. 천복대감 무속은 무당을 중심으로 하여 전승되는 종교적 현상이라 간략하게 정의내릴 수 있다. 무속은 민간사고가 집약되어 무당을 중심...  천왕대신  49. 천왕대신 천왕대신은 여신으로 하늘에서 점에 관한 것을 주관하는 신이다. ‘대신’ 이라는 것이 원래 점을 주관하는 신령인데 천왕...  천하대신  65. 천하대신 천하대신은 땅에서 점에 관한 것을 주관하는 신이다. ‘대신’이라는 것이 원래 점을 주관하는 신령인데 천하대신 이외에도 천...  청룡  17. 청룡 사신은 청룡(靑龍, 東), 백호(白虎, 西), 주작(朱雀, 南), 현무(玄武, 北)의 오방신(五方神)을 말한다. 사신사상은 전...  청제대웅  13. 청제대웅 1. 개요 청제 대웅은 『한단고기(桓檀古記)』의 삼신오제본기에 등장하며 동방을 관장한다. 『한단고기』는 한국 상고의...  치우천왕  93. 치우천왕 1. 개요 치우천왕(蚩尤天王)은 환인이 다스리던 환국의 뒤를 이어 환웅천왕이 건국했다고 하는 배달국(倍達國)의 제14...  팔만사천제대신장  32. 팔만사천제대신장 신장은 장군의 신격으로 원래 이 신은 도교의 신으로서 오방오제설(五方五帝說)을 기초로 한 전설적 성격이 있으며,...  풍우신장  94. 풍우신장 신장이란 신들의 군인들을 말한다. 요사한 귀신이나 악귀들을 물리쳐주며 각신들에게 예속되어 그 신들을 보호한다. 그 중 풍...  현무  19. 현무 사신은 청룡(靑龍, 東), 백호(白虎, 西), 주작(朱雀, 南), 현무(玄武, 北)의 오방신(五方神)을 말한다. 사신사상은 전...  황제  8. 황제 황제는 중국신화에 등장하는 신이다. 고래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중국신화의 내용에 따르면 황제는 중앙부의 상제였으며, 나머지 동서남...  흑제왕검  15. 흑제왕검 1. 개요 흑제왕검은 『한단고기(桓檀古記)』에 나오는 백제(白帝)로 이해할 수 있는데, 북방을 관장한다. 『한단고...      
8    중국 민속중의 귀신달의 래력과 금기 댓글:  조회:3244  추천:0  2012-07-17
中国民俗中的“鬼月”的来历以及禁忌       农历七月,是我国民俗传说中的“鬼月”,道教中称之为“中元节”,关于鬼月来历的说法不一,本人列出如下各种,大家自己慢慢体会吧。   来历一:   据说每年农历六月三十日,掌管地狱的地藏王菩萨(就是阎罗王),便会打开鬼门,放出饿鬼,一直到七月三十日才关上鬼门。   我国古时候多数人们相信有鬼神存在。传说凡是正常死的人,都可以投胎转世。那些罪孽深重,意外横死的人,死后变成“大庙不收,小庙不留”的孤魂野鬼。这些嗷嗷待哺的无主孤魂,游荡人间。有的恶鬼还会趁机骚扰世间活人,使人们遭到凶险意外而丧命。因此,每年这段时间意外死亡的人,往往被附会为“被鬼抓走了”。   为了让阴阳二界的人鬼都平安,我国自古以来,便有在七月设醮普渡的习俗。人们认为,为这些鬼魂举行“普渡”礼,一方面可以使他们早日脱离地狱之苦,另一方面希望他们不再骚扰世间活人。所以每年七月除了行“普渡”礼外,还在路旁多烧些冥纸,以广结冥福。后来演变成“放火灯”、“敬好兄弟”的习俗。   由于这样的普渡含有祈祷平安的意味,所以民间除了在七月十五中元节用丰盛的祭品祭拜各方“好兄弟”外,也请戏班演戏酬神,并大开流水席宴宾客,花费十分宠大。如今提倡节约,改良民俗,虽然仍有普渡活动,却精简多了。   会形成农历七月诸事不宜的文化习俗,是因往年七月是一串天灾人祸频传的日子,容易使人对这段时间心存恐惧,现今社会,许多的禁忌已渐渐禁不起时代的考验,但仍有些却是科学仍无法解释的事。   来历二:   每年农历7月14日是中元节又叫鬼节或着叫盂兰节是祭祀孤魂野鬼的大节日。   中元节源自道教,后来佛教改为现现在俗称的鬼节。盂兰节在印度语中意指“倒悬”,“倒悬”指的的是释迦十大第子目莲的母亲死后后受饿鬼之苦,不能吃东西。后后来得到释迦帮助。用百味五果供养十方神佛并藉功德救母亲。所以现在为了祭祀孤魂都在鬼月农历7月举行普渡会,现在叫鬼节。   一般来说古时候都不愿在这个月作嫁娶等重要事。   中元节的习俗   (一)普渡普渡时家家门前都会摆设祭品于供桌,屋檐下挂纸灯,用来照路,使孤魂野鬼能找到供养他们的地方。普渡通常以寺庙为中心,附近居民将祭品拿到寺庙来祭拜。   (二)放水灯是港口边特有的活动,目的是普渡水中的孤魂野鬼,因为靠海边,常会有人戏水溺毙或船员出船遭遇不幸的情形,所以除了陆地上的孤魂野鬼,也照顾水中的。台湾以基隆中元祭的放水灯活动最有名,每年中元节都吸引大批民众前往参观。   (三)抢孤台湾某些地方盛行在中元时举行「抢孤」的活动,孤棚是由在四根柱子所构成,上面涂满牛油,参赛者分成四队,从四个方向爬上孤棚,在孤棚的顶端,四边都有祭品在上面,先抢到的队伍获胜。这项活动在头城中元已成为最重要的活动,并吸引许多观光客前往参观。   来历三:   关于鬼节的来历,传说地藏菩萨,也就是人们常说的[阎王爷],他的母亲去世后来到阴朝地府,被关在牢房里少不得受十八层地狱的种种折磨,地藏菩萨是个孝顺的儿子,看到母亲受罪心中不忍,在七月十五这天竟恂私情,让看守牢房的小鬼偷偷把牢门打开放他母亲出来,谁知这一开牢门不要紧,牢房中的小鬼们蜂拥而出跑到人间为害百姓,所以就有了“七月半,鬼乱窜”之说。那些跑回家乡的鬼纷纷向家人索要钱财以便回去用来生活和打通关节希望早日托生。后来人们把这一天就定为[鬼节].鬼节这天,人们要烧纸钱,摆供品祭奠故去亲人的亡灵。   一般认为七月十五是鬼节的正日,亦是鬼门大开的日子,这时侯阴气最重,所以当晚最好不要出街,以免撞鬼,另外,最好亦不要到河边或海边等地,以免不小心失足,就成了水鬼的替身。除此之外,最好不要乱说一些不吉利或得罪灵界的说话,以免招惹阴灵。     2、别拍肩膀从灵学的角度来说,人的身上有三把火,分别在头及两个肩膀上,所以鬼月的时候最好不要随便拍别人的头及肩,以免熄掉他身上的火,让好兄弟有机可乘。   吃饭时不可以将筷子插在饭碗之上,其形状如同香插在香炉上,会招来好兄弟来与你分享食物;   3、不可吹口哨,当心好兄弟喜欢你;经过坟地时,口中要不断默念“对不起,打扰了!”并保持肃穆不可吹口哨,以表示对好兄弟的尊重。   4、不可去危险水域戏水,传说中“水鬼”会找人当替死鬼,以便投胎;   5、不可偷吃祭拜的祭品,与鬼争食,恐遭来厄运;   6、床头不挂风铃,因风铃会招阴;也不玩碟仙。   住家门口前别种容易卡阴的榕树,另外屋子内也别乱挂风铃,不玩碟仙、不上阴庙,这样可以减少阴灵上身的可能。   7、夜晚,少去荒郊野外或偏僻的地方,八字轻的人怕会撞见好兄弟;   8、地上的零钱及红包袋,不要乱随便捡起来;不要随便捡起路边的钱,因为这些钱可能是好兄弟们的,要不然这些就是冥婚招亲用的。   9、路经丧事场所,嘴里及心里不可有不敬的念头或言语;   10、忌乱踩冥纸或乱烧冥纸;   11、别乱靠墙休息没事不要乱靠墙,因为好兄弟平时最喜欢依附在墙上休息,此举很容易引鬼上身。   12、收好衣服防鬼“借”   晚上睡觉或天黑以前,要把晒在外头的衣服收回来,以免被鬼借去穿。半夜勿晒衣服;(半夜衣服的影子,很吓人的)   13、别乱照相夜游时最好不要乱照相,否则好兄弟会入镜与你合影,手电筒也不要往树上乱照,以免惊动喜欢附着于树梢上的好兄弟。   14、吃饭时不可以将筷子插在饭碗之上,其形状如同香插在香炉上,会招来好兄弟来与你分享食物;   诸多禁忌,族繁不及备载。其实,只要不影响正常生活作息,倒是宁可信其有不可信其无。对于许多人来说,不论灵验与否,至少也能求个心安。   有人习惯随身带着开运避邪物品,像带着庙里求来的护身符、佛珠,或粗盐、糯米等避煞物;十字架或者具特殊能量的矿石等。       鬼月禁忌:1、姓名勿直呼晚上不要穿戴绣有自己姓名的衣物,以免元神被附身,另外最好避免连名带姓的直呼别人名字,否则一旦给好兄弟听到后,会趁机取走他的三魂六魄,同时若听到有人喊自己的名字时,也千万不要立刻回头或回应。
7    전설중의 중국 주요 신선 라렬표 댓글:  조회:3698  추천:0  2012-07-17
传说中的中国主要神仙列表     由于此列表及小说《狮驼国》的人物设定,与原中国神话说法略有不同,并有自创的神祗,供爱好者参考。   盘古氏-又称元始天王,一名,浮黎元始天尊。 三清: 元始天尊 灵宝天尊 又名太上道君 道德天尊 又名太上老君(西游记里也称为太上道祖) 六御 中央玉皇大帝 妻:王母娘娘,又称为 西王母 北方北极中天紫微大帝 南方南极长生大帝,又名玉清真王,为元始天王九子。 东方东极青华大帝太乙救苦天尊 西方太极天皇大帝 (手下:八大元帅,五极战神(天空战神,大地战神,人中战神, 北极战神和南极战神)) 大地之母:承天效法后土皇地祗 五方五老: 南方南极观音 东方崇恩圣帝 三岛十洲仙翁东华大帝君(即东王公,名金蝉氏,号木公) 北方北极玄灵斗姆元君(佛教中二十诸天的摩利支天) 中央黄极黄角大仙 中央天宫仙位表 千里眼 顺风耳 金童 玉女 雷公 电母(金光圣母) 风伯 雨师 游奕灵官 翊圣真君 大力鬼王 七仙女 太白金星  赤脚大仙 广寒仙子(姮娥仙子)嫦娥 玉兔 玉蟾 吴刚 天蓬元帅 天佑元帅 九天玄女 十二金钗 九曜星 日游神 夜游神 太阴星君 太阳星君 武德星君 佑圣真君 托塔天王李靖 金吒 木吒(行者惠岸) 三坛海会大神哪吒 巨灵神 月老 左辅右弼 二郎神杨戬 太乙雷声应化天尊王善王灵官 萨真人 紫阳真人(张伯端) 文昌帝君 天聋 地哑 三官大帝:天官 地官 水官 四大天王: 增长天王、持国天王、多闻天王与广目天王 四值功曹: 值年神李丙 值月神黄承乙 值日神周登 值时神刘洪 四大天师: 张道陵、许逊(字敬之,号许旌阳)、邱弘济、葛洪 四方神 青龙孟章神君、白虎监兵神君、朱雀陵光神君、玄武执明神君。 四渎龙神 黄河 长江 淮河 济水河神 马赵温关四大元帅: 马元帅 又名马天君,又称华光天王、华光大帝 赵元帅 即武财神赵公明,又名赵玄坛 温元帅 温琼,东岳大帝部将 关元帅 关羽。 五方谒谛:金光揭谛、银头揭谛、波罗揭谛、波罗僧揭谛、摩诃揭谛 五炁真君:   东方岁星木德真君 南方荧惑火德真君 西方太白金德真君 北方辰星水德真君 中央镇星土德真君 五岳 东岳泰山天齐仁圣大帝 南岳衡山司天昭圣大帝 中岳嵩山中天崇圣大帝 北岳恒山安天玄圣大帝 西岳华山金天愿圣大帝 (五岳帝君:东岳帝君,名金虹氏,东华帝君弟。其它四岳帝君为东华帝君的四个 儿子。) 及 碧霞元君 五斗星君:   东斗星君 西斗星君 中斗星君 南斗星君 北斗星君 六丁六甲: 六丁为阴神玉女 丁卯神司马卿 丁已神崔巨卿 丁未神石叔通 丁酉神臧文公 丁亥神张文通 丁丑神赵子玉  六甲为阳神玉男 甲子神王文卿 甲戌神展子江 甲申神扈文长 甲午神卫玉卿 甲辰神孟非卿 甲寅神明文章 南斗六星君 第一天府宫:司命星君 第二天相宫:司禄星君 第三天梁宫:延寿星君 第四天同宫:益算星君 第五天枢宫:度厄星君 第六天机宫:上生星君 北斗七星君:(《狮驼国》中的北天七皇) 北斗第一阳明贪狼星君 北斗第二阴精巨门星君 北斗第三真人禄存星君 北斗第四玄冥文曲星君 北斗第五丹元廉贞星君 北斗第六北极武曲星君 北斗第七天关破军星君 (《狮驼国》中的北斗七星君为北斗星君的另一个称号:天枢、天璇、天玑 、天权、玉衡、开阳、摇光。 天枢、天璇、天玑、天权合起来又称为斗魁或璇,后三星组成斗柄,称杓) 八仙: 铁拐李、汉钟离、吕洞宾、何仙姑、蓝采和、韩湘子、曹国舅、张果老 增长天王手下八将:庞刘荀毕、邓辛张陶,其全名为 刘俊、荀雷吉、庞煜、毕宗远;邓伯温、辛汉臣、张元伯、陶元信(四目) 九曜星 金星 木星 水星 火星 土星 罗睺(蚀星) 计都星 紫炁星 月孛星 十二元辰 子丑寅卯等 二十八星宿 亢金龙、女土蝠、房日兔、心月狐、尾火虎、箕水豹、斗木獬、牛金牛、氐土貉、虚日鼠、危月燕、室火猪、壁水獝、奎木狼、娄金狗、胃土彘、昴日鸡、毕月乌、觜火猴、参水猿、井木犴、鬼金羊、柳土獐、星日马、张月鹿、翼火蛇、轸水蚓。 三十六天将 蒋光 钟英 金游 殷郊 庞煜 刘吉 关羽 马胜 温琼 王善 康应 朱彦 吕魁 方角 耿通 邓伯温 辛汉臣 张元伯 陶元信  荀雷吉 毕宗远 赵公明 吴明远 李青天 梅天顺 熊光显 石远信 孔雷结 陈元远 林大华 周青远 纪雷刚 崔志旭 江飞捷 贺天祥 高克 (三十六天将的版本是最多,以上仅供参考) 地上天仙表 姜子牙(亦为东华帝君,估计是木公的接班人) 蓬莱三仙: 福禄寿三星,   福神天官大帝,另一说是西汉杨成,又一说中是唐阳城   财神赵公明、(一说比干范蠡为文财神);   寿星南极仙翁,女寿星:麻姑 真武大帝,又名九天降魔祖师、玄武元帅。 龟蛇二将(又名太玄水精黑灵尊神、太玄火精赤灵尊神) 小张太子与五大神龙 黎山老母、镇元子 龙王东海龙王敖广 南海龙王敖钦 西海龙王敖闰 北海龙王敖顺 井海王 神霄派诸神 紫微北极大帝 玉清真王(南极长生大帝)--元始天王第九子 神霄八帝(多为道教虚构),玉清真王与神霄八帝合起来又称为神霄九宸大帝 东极青华大帝、九天应元雷声普化天尊(黄帝)、九天雷祖大帝等。 (太乙天帝、六天洞渊大帝、六波天主帝君、可韩真君、采访真君) 九司三省与北极四圣 九司:玉府判府真君、玉府左右待中、玉府左右仆谢、天雷上相、玉枢使相、斗枢上相、上清司命玉府右卿、五雷院使君、雷霆都司元命真君 三省:雷霆泰省、雷霆玄省、雷霆都省 北极四圣: 天蓬元帅(猪八戒) 手下天罡大圣、九天杀童大将(北斗第八星,又称天杀大神)、雷使者等。 天佑(猷)元帅 翊圣元帅 玄武元帅 真武大帝 另有:五方雷王、五方雷霆大帝 阴曹地府 北阴酆都大帝 五方鬼帝: 东方鬼帝蔡郁垒、神荼,治桃止山 鬼门关 西方鬼帝赵文和,王真人,治嶓冢山 北方鬼帝张衡、杨云,治罗酆山; 南方鬼帝杜子仁,治罗浮山; 中央鬼帝周乞、稽康,治抱犊山 罗酆六天(以下为宫名,六天为守宫神) 纣绝阴天宫、泰煞谅事宗天宫、明晨耐犯武城天宫、恬昭罪气天宫、宗灵七非天宫、敢司连宛屡天宫 地藏菩萨 十殿阎王秦广王、楚江王、宋帝王、仵官王、阎罗王、平等王、泰山王、都市王、卞城王、转轮王 其这将、臣:   首席判官崔府君、钟魁、黑白无常、牛头马面、孟婆神 上古神话诸神 混沌天神--较正式的说法,盘古为开天辟地之始神,但仍有部分传说中,混沌早于盘古 而生。 创世神 天吴、毕方、据比、竖亥、烛阴、女娲 上古四方天帝与辅神: 太阳神炎帝与火神祝融共同治理天南一万二千里的地方 少昊与水神共工建立天西一万二千里的地方 颛顼与海神禺强(又名冬神玄冥)治理天北一万二千里的地方 青帝伏羲与九河神女华胥氏及属神句芒治理天东一万二千里的地方 黄帝时代的诸神 陆吾、英招、离珠、金甲神(此神应是其它神的一种化身说,根据他我虚拟了狮驼国中的金甲雷神) 蚩尤、风伯雨师、赤松子、力牧、神皇、风后、应龙、魃、夸父、大力神夸娥氏、 大庭氏、五龙氏 炎帝,又称为神农氏 炎帝的女儿 女娃(后化身精卫鸟) 瑶姬,在《狮驼国》中又名婉华仙子。 还有一个小女儿,其名不可考,(拙著《狮驼国》中为炎天圣母) 少昊母为皇娥、长子春神句芒、次子秋神蓐收 颛顼的后代 四子:虐鬼、魍魉、送穷鬼、梼杌 后代:老童、太子长琴、黎、重、彭祖(孙) 帝俊 天上妻子:羲和、常羲 人间妻子(省略) 女丑、羿 鲧 妻女喜。 尧 又名:放勋, 妻女皇; 舜 姓姚,名重华,妻娥皇,女英; 禹,父鲧,妻女娇,又名涂山氏,系九尾白狐精 三皇: 指天地人三皇,分别是伏羲、神农与女娲。 五帝: 通常指 黄帝 颛顼 帝俊 尧 舜 其它--后天著名仙真表 房中之祖--彭祖 纵横始祖--鬼谷子 文始真人--尹喜 南华真人--庄子 求仙使者--徐福 茅山仙祖--三茅真君 万古丹王--魏伯阳 太极真人--刘安 诙谐岁星--东方朔 太平教主--于吉 役使鬼神--费长房 竹林狂士--嵇康 水府仙伯--郭璞 净明教主--许逊 蓬莱(都)水监--陶弘景 天师--寇谦之 情仙--裴航 扶摇子--陈抟 显化真人--张三丰 王重阳与全真七子(长春子丘处机、玉阳子王处一、广宁子郝大通、 清净散人孙不二、长生子刘处玄、长真子谭处端、丹阳子马钰) 其它--民间神灵不完全列表 天妃娘娘 城隍 土地神 门神 秦叔宝、尉迟敬德 床神(又分床公床母,前者又称九天监生明素真君,后者又称九天卫房圣母天君) 喜神 厕神紫姑 石敢当 小儿神项橐 朱天大帝崇帧 茶神陆羽 花神 染织二圣梅、葛 酒神杜康 土工祖师神鲁班 纺织神黄道婆 蚕神马头娘(山海经载为西陵氏,嫘祖) 狱神皋陶 梨园神唐明皇 马神 青蛙神白玉蟾 | 驱蝗神刘猛(取猛将军之意) 蛇王施相公(施全) 痘神张帅 农神后稷 瘟神:又称五鬼或五方力士,人间又有称五瘟,其中春瘟张元伯、夏瘟刘元达、秋瘟赵公明、冬瘟钟士贵、总管中瘟史文业。 窑神太上老君 贼神时迁 穷神 神管仲 武穆王岳飞 周公、桃花女 欢喜神和合二仙寒山、拾得 纯本书虚构主要仙魔表 太古猿君 魔佛老人 千面天妖 地心古龙 圣手仙王 圣手文王  天罗王(道教中为三清的一种化身) 乾坤大仙 颠倒老祖 穹天老祖 先天老祖 无极老祖 无为老祖  霹雳老祖 藤祖 幻仙子 清弥天诸神 阴阳法王 毒龙山千毒沼沼底---蟒神(有双翼) 南海深处一千里以下的---海皇(章鱼怪); 兽帝(九蛇头加龟背)(九婴与相柳借天地交合之气所造怪物) 霸王(长白山天池的箭恐龙) 天子梼杌(颛顼之子,住在北方玄冰宫)| 不坏林王狻猊(住在南方热带密林中,身坚胜铁,刀枪不入) 平天大圣牛魔王 覆海大圣蛟魔王 移山大圣狮驼王 驱神大圣野象王  浑天大圣鹏魔王 通风大圣弥猴王 齐天大圣美猴王 西天灵山仙佛表 三世佛:南无过去、现在、未来 注:通常三世佛分横三世佛与竖三世佛。 竖三世佛: 过去佛的燃灯上古佛,加上现在世的释迦佛(原名:悉达多),以及未来 世的弥勒佛 横三世佛: 中间是释迦牟尼佛,右有文殊菩萨,左立普贤菩萨; 右边是西方极乐世界的阿弥陀佛,两旁是观世音菩萨和大势至菩萨; 左边为东方净琉璃世界的药师佛,两旁日光菩萨和月光菩萨。 (因都有如来在,所以本文中就不增加三世佛这个名词.西游原著里,提 及了南无过去现在未来佛,本书中称之为三世佛。) 四大金刚: 五台山秘魔岩神通广大泼法金刚 峨眉山淸凉洞法力无量胜至金刚 须弥山摩耳崖毗卢沙门大力金刚 昆仑山金雫岭不坏尊王永住金刚 五方佛 东方不动(身)佛;南方宝生佛;中央毗卢遮那佛; 西方阿弥陀佛;北方不空成就佛。 八菩萨: 观音菩萨、普贤菩萨、文殊菩萨、地藏王菩萨、灵吉菩萨、大势至菩萨、日光菩萨、月光菩萨 十大弟子:   舍利弗智慧第一 目犍连神通第一 阿难陀多闻第一 优波离持戒第一   阿那律天眼第一 大迦叶头陀第一 富楼那说法第一 迦旃延论议第一   罗睺罗密行第一 须菩提解空第一 十八罗汉:   托塔罗汉 探手罗汉 过江罗汉 芭蕉罗汉 静座罗汉    骑象罗汉 看门罗汉 降龙罗汉 举钵罗汉 布袋罗汉    长眉罗汉 开心罗汉 喜庆罗汉 挖耳罗汉 笑狮罗汉    伏虎罗汉 沉思罗汉 骑鹿罗汉  十八伽蓝 美音 梵音 天鼓 叹妙 叹美 摩妙 雷音 师子 妙叹 梵响 人音 佛奴 颂德 广目 妙眼 彻听 彻视 遍视 二十诸天: 日天(又名日宫天子) 大梵天 多闻天 金刚密迹 鬼子母神;月天 (又名月宫天子) 帝释天 持国天 大自在天 摩利支天; (大)辩才天 (大)功德天 增长天 散脂大将 婆竭龙王;韦驮天(战神塞犍陀) 坚牢地神 广目天 菩提树神 阎摩罗王。 其它: 金顶大仙、阿傩、伽叶。 婆罗门教诸神 佛祖摩诃婆罗佛与婆罗三世佛(此四佛全部为虚构、以下人名为与如来有关的仙、人) 频婆娑、阿罗蓝、郁陀、提婆达多 主要大神:大梵天、湿婆楼陀罗、雪山女神杜尔迦、群主 婆罗八部(婆罗门天龙八部)-(婆罗八部为虚构,以下诸神为印度创世诸神)   水神伐楼那 土神陀湿多 风神伐由 日神苏里耶 天帝因陀罗 道神普善 保护神毗湿奴 阿修罗:底提耶与檀那婆 火神婆由。
6    전설중의 저승세계 십전 영라왕 댓글:  조회:4022  추천:0  2012-07-17
在中国民间广为流传的传说中的阴间十殿阎王   阎王,即阎罗王,或称阎罗大王,也称阎魔王。阎魔,即琰摩、琰摩罗,原系梵语之译音。阎王原是古印度神话中阴间的主宰,有兄妹双王之说,称兄治男魂,妹治女魂。以阎王作为阴间的主宰,掌管地狱轮回,大约在南北朝时传入中国。    原来阎王只有一人,由治事分现为五人,其僚佐有十八人。唐代时,就有天帝册封阎罗王,并由其统率五岳卫兵之说,同时也有地狱分为十殿,十殿均有主,称地府十王。十王各有名号,合称十殿阎王。    明清以来,十殿阎王之说盛行,以致有替代道教原有的东岳大帝主宰生死之势。但是民间少有专门奉祀十殿阎王的庙观(除了四川酆都)。一般均在当地城隍庙内设阎王殿,奉祀十殿阎王。各王诞辰之日,虽然也有香火,但主要奉祀十殿阎王,当是在为亡魂举行超度科仪之时,以祈求各殿阎王开释亡魂,使其早日受度升天。   这十殿阎罗王分别是:   第一殿,秦广王蒋,二月初一日诞辰,专司人间夭寿生死,统管幽冥吉凶、善人寿终,接引超升。功过两半者,送交第十殿发放,仍投入世间,男转为女,女转为男。恶多善少者,押赴殿右高台,名曰孽镜台,令之一望,照见在世之心好坏,随即批解第二殿,发狱受苦。   1.如是善人寿终之时,有的接引往生天堂,或西方极乐。    2.如是功过两半的男女,死后送交第十殿放投生人间。有的男转生女;有的女人转生男。    各按照在世时所造的业力、因缘,分别去接受果报。凡是在世恶行较多,善行较少的人,则引入殿石的高台,名为‘孽镜台’。台高一丈,镜子大约十圈围。向东悬捣,镜上并有书写七字:‘孽镜台前无好人’。被押解来此的多是在世行恶的鬼魂,自然见到自己在世时心地奸险的情形;以及死后赴地狱受苦的惨状。此时才知道:‘万两黄金带不进去,只有一辈子的罪孽,随着灵性到地狱来。’照过孽镜台后,再押解第二殿、开始被分发到不同的‘受刑所’,由地府的将军使用刑具,令罪魂们受尽诸种苦痛。其罪刑与罪因详情如下:    (1)自杀者的罪刑:假如有世人,不去思考天地生人,父母养育身体,珍贵异常,恩重如山的道理。尚有父母恩,众生恩、君亲恩、三宝恩等四恩未报。未奉到勾帖,阳世寿数未尽,就擅自轻生、生杀、上吊、服毒、投水等等的人,都是有罪的。除了因有坚守‘忠孝节义’的行为者,而因此牺牲生命者,死后可为神职之外,假若是因细小的忿恨,或因犯罪的羞事被发觉而即轻生者,追究其所犯的罪刑,并未至死刑的地步。也有的想嫁祸、加害他人,而弄假成真,轻生气绝以上诸种行为,门神、灶神,立即押解本殿,收入饥饿所与干渴所受刑。这些自杀的鬼魂,每逢戌、亥日,完全如临死时一般痛苦。一切痛苦的情境,照原来的样子,再出现一次。有的七十天,有的一、二年之后,押解其魂魄,再回到寻死的地方,受悔恨折磨之苦。并且不许接受羹饭、纸帛银钱等祭品的祭拜。假如自杀的鬼魂忏悔,恶心守藏,不现出鬼影魅形来惊吓人;也不乱找替死的人。那么等遭他牵累的人,已经脱离牵累,是日门神、灶神,仍然将此鬼犯押解到本殿,转发第二殿。重新考查校对他的功与过,或从重加刑,或再另递交各殿,配发地狱去受苦。假如曾经生现形影吓人或找寻替死的人,或用这些言语吓人、诈人;虽然未至于令人死亡;那么即使以前曾经行诸善事所有地狱也一概不准免其罪刑。若是轻生已死之后,毫不收敛鬼魅的形影,以致惊吓到人,令人丧命的话;立即命命 青面獠犽的鬼役,勾到各地狱去受苦。满一百日后,再发配入阿鼻大地狱,永远用锁链吊扣住,不许超生。    (2)诵经溘脱字句之罪刑:凡是修行人、出家人、道士、拿人家的钱,为人拜诵经忏,念诵遗漏字句、或页卷的;就会来本殿,发进补经所。罪魂各个送入内藏经忏,黑暗的小房间内。所有他所遗漏的字句之处,一概都签写明白,补诵清楚。此处设有油灯,贮存数十斤的油。只用一根细线点,有时明亮、有时黑暗,不能一口气就很快的补写完成,且通常一字要罚写百遍以上。    (3)修行起贪图供养者的罪刑:如果原本清净修行的出家人或道士,却发出贪心,枉求供养以享受世人的施福者,也得在此补经忏悔。此乃诫告出家的修行人,在世受众生供养,应肯受苦磨练,一切应利益众生,千万不要享受过多。不然死后补经所里便有一份。看来以白阳修士之性命双修,火宅炼性较为可靠,在家修亦可修成,上帝有命也属应运之法。    (4)诚心修行,弘扬佛法者之利益:一般在家修持的善男信女或尼姑,十分虔诚,心口如一地拜念一切经、咒、佛唬。即使有错误、遗漏,然而重在诚心,而不重在字句。此等诚心修持之人,古佛降旨可不补经,每月初一,并将其功德记录于善籍之中。世间之人,若于每年的二月初一日,向西方至诚地神拜,学习阿弥陀佛甘灵王清净,利益一切众生的庄严万德。将平常忆念行持佛号,及诵经、持咒、严守戒律,行内功外德,发大愿力,祈当生得证极乐世界的性德。并且发誓精进修持,尽力地宏扬佛法,利益一切众生。那么寿终之后,立即蒙佛接引,往生极乐。   第二殿,楚江王历,三月初一日诞辰,司掌活大地狱,凡在阳间伤人肢体、奸盗杀生者,推入此狱,另发入到十六小狱受苦,满期转解第三殿,加刑发狱。楚江王主掌大海之底,正南方沃燋石下的活大地狱。此地狱纵横八千里(五百由旬),另设十六小地狱:    一名黑云沙小地狱    二名粪连泥小地狱    三名五叉小地狱    四名饥饿小地狱    五名燋渴小地狱    六名脓血小地狱    七名多铜斧小地狱    九名驻铁铠小地狱    十名豳量小地狱    十一名鸡小地狱    十二名灰河小地狱    十三名研截小地狱    十四名剑叶小地狱    十五名狐狼小地狱    十六名寒冰小地狱    如在阳世曾犯以下罪恶:   拐骗少年男女。欺占他人财物。损坏他人的耳、目、手脚。介绍疗效不明的医生、药物来谋不道德的利益。役使的婢女,已经壮年,却不让家人赎回,恢复自由之身。在议结婚姻之时,为了贪图对方的财富、地位,故意隐瞒自己的年龄,以诈骗婚姻。在二家尚未合婚确定之前,已确知男方或女方,实在是染有恶疾,重病,或是有奸淫、窃盗,品德低裂之人。为了赚取介绍费,不惜昧着良心,而含含糊糊地掩饰过去,不将实情相告,以致误人一辈子的幸福者。    以上的罪恶的事迹,一一地考查所犯事件的多少,时间的长久,有没有造成祸害,或变生严重的事端。如有,即命令狰狞、赤发等鬼,将之推入大地狱受苦。另外,也有应其罪恶之大小,再发放到其它小地狱受苦。以上受刑期满,再转交押解到第三殿,加重刑罚,并发入此殿之地狱去受苦。    劝世上的善男、信女等,应有以下善行:常将玉历中的内容,解说给世人知道,使他知所警惕。或将玉历印赠流传。看到人生病,即为请医生治疗,或好药相赠,盼其早日康复。遇到贫穷、苦难的人,就炊煮粥饭供食,或布施金钱救济他等。    以上善行之人,若能同时悔改前非,则特赐恩准将功抵过其余未能相抵的罪,则宽予勿论。在寿尽命终之时,就交由给第十殿,发放投生珍贵的人道福地。如有能爱惜众生,不妄杀害生灵者。以训示劝导儿童,不要伤害昆虫者。于三月初一日时,发愿戒杀放生者。    以上善行之人,命终之时,不用入所有地狱,立即交第十殿,发放往福报深厚的地方。     第三殿,宋帝王余,二月初八诞辰,司掌黑绳大地狱,凡阳世忤逆尊长,教唆兴讼者,推入此狱,受倒吊、挖眼、刮骨之刑,刑满转解第四殿。 宋帝王主掌大海之底,东南方沃燋石下的黑绳火地狱。此地狱宽广八千里(五百由旬),也另设十六小地狱:    一名咸卤小地狱    二名麻缳百纽小地狱    三名穻肋小地狱    四名铜铁刮脸小地狱    五名刮鲁小地狱    六名钳挤心肝小地狱    七名挖眼小地狱    八名铲皮小地狱    九名需刖足小地狱    十名拔手甲小地狱    十一名吸血小地狱    十二名倒吊小地狱    十三名刀截小地狱    十四名蛆蛀小地狱    十五名击膝小地狱    十六名割心小地狱    如在阳世时,曾犯以下罪恶:    不认为领袖、主官的恩德最大,以人的生命最重要,或当官,有地位之时,对主官不忠诚,存心背叛,不顾恤他人的生命。赽行公盼的人,见了利益,就忘了道义,缺乏爱国、爱民之心。身为丈夫的人,不行道义;身为妻子的,言行不柔顺。身为养子,受长期养育的恩惠;等到得了财产,立即忘恩负义,不顾父母之养,而回去生父生母身边的人。佣人,或受人之托办事,却辜负、背叛。职员或基层士官兵,背叛主管或长官。为业主办事,同事间却伙同设计诈财。犯罪入狱,却越狱潜逃。或者因罪押解他方,中途逃走;因为押运的官兵曾经具名连保,以致连累了这些官差的亲属。经过漫长的时间,又未向事主忏悔,弥补其损失。虽然事后多做善事,仍需发入地狱,承受诸种苦刑。为了讲究风水的年运,以致阻止丧家出殥,埋葬;令亡者不得入土为安。造坟挖士时,看见地下埋有别人的棺椁或尸骨,却不马上停止,换另外的龙穴;以致伤损他人的尸骨。为人管事,私自偷窃,漏列金钱、粮食,占人便宜。祖先的墓地不去祭扫,久而遗失踪迹。引诱他人犯法;挑拨是非,制造纠纷,欺骗人打官司,伤人和气。写匿名信诬蔑别人。乱写公告,文章,毁损别人的名誉。捏造退婚的字据,以帮人解除婚约。造假契约,来往书信,以诈取别人的钱、债券。本未加注明,也未签名,随便套描别人的签名样式,假刻别人的印章。目的用以添加、删改帐目,让后人受害。以上事件有违犯的查对事的轻重,命派大力鬼先推入大地狱受苦。另外再依所犯事情之类别,配入小地狱。   世人假若能于二段初八日,发誓立愿,持戒永远不再违犯。死后就准许转发别的福地,不用进地狱受苦。     第四殿,五官王吕,二月十八日诞辰,司掌合大地狱,又名剥剹血池地狱,凡世人抗粮赖租,交易欺诈者,推入此狱,另再判以小狱受苦,满日送解第五殿察核。五官王掌管的地狱在大海之底,正东方沃燋石下的合大地狱。此地狱宽广各八千里(五百由旬)。也另外设有十六小地狱。    一名池小地狱。    二名炼竹韱小地狱。    三名沸汤浇手小地狱。    四名掌流液小地狱。    五名断筋剔骨小地狱。    六名肩刷皮小地狱。    七名肤小地狱。    八名鐏峰小地狱。    九名铁衣小地狱。    十名木石土瓦小地狱。    十一名戮眼小地狱。    十二名飞灰塞口小地狱。    十三名灌药小地狱。    十四名油豆滑跌小地狱。    十五名刺嘴小地狱。    十六名碎石埋身小地狱。   世人若犯以下事件者,配入此处:    (1)漏税不缴。    (2)耍赖不给租金。    (3)买东西用重秤,以占人家便宜。    (4)配合假药,当真药卖人,延误人治病,或加重病情者。    (5)泡过水的米,仍当好米卖人。    (6)买东西时用假银子(钱)给商家。或者将零头的钱扣下不给。    (7)卖一些惑人心思,引人虚荣的香油、香水、鲁粉、丝绸、绫罗、色情影带书刊等物品。    (8)路(车)上遇见跛足、残废的老人、幼童,不立刻让路、让坐。    (9)暗中霸占,诈欺一些较无知识的乡民,以及年老、幼小的人,或者肩挑贩卖,辛苦赚取微薄利润的人。    (10)受人话付,寄线失家书,不很快地交付给对方,误人掀讯息。    (11)窃取街道上铺的砖,或石块,以及夜晚照明的灯、萤,造成交通危险。    (12)穷人不安分守己,贪图意外之财。    (13)富人不怜老恤贫,多行救济。    (14)假如有人来借钱,起先答应借贷,到时候却故意落空不借,以致误了人家的大事。    (15)见人生病,家中收藏有药物,却吝啬不提供出来。    (16)有很有效的方剂,却秘藏于己,不传授出去。    (17)煎过的药渣、或碎碗、杂物、废弃的器械,乱放在街道上,影响车、人的行走(垃报宜分类)。    (18)无缘无故养驴、马等兽类,以致连、粪妨础碍行人或环境卫生。(动物宜圈养好)。    (19)田地无法率作,不租给他人懂植,故意荒蕉废弃。    (20)损坏他人的墙壁。    (21)用咒语、法术、驱使鬼神,来捉弄人。    (22)乱造惊人之言,以惊吓人。    以上事端,经查核所犯事件的大小,命令鬼卒,先推入各大地狱去受苦。再另外判发所属罪业的小地狱,去受苦刑。期满之后,再押解送到第五殿,考察审核其功过。世人假若在每年的二月十八日这一天,发誓、悔改、不再违犯的话,可以免入本殿各地狱受苦。假如钞写玉历全书;或者续加古今因果报应的事迹,在各殿的章句之后,来劝化人为善,流传后代,使阅读的人从此悔改,免于犯错,则中自有功德。     第五殿,阎罗天子包,正月初八日诞辰,前本居第一殿,因怜屈死,屡放还阳伸雪,降调此殿。司掌叫唤大地狱,并十六诛心小狱。凡解到此殿者,押赴望乡台,令之闻见世上本家,因罪遭殃各事,随即推入此狱,细查曾犯何恶,再发入诛心十六小狱,钩出其心,掷与蛇食,铡其身首(包公即善于用铡刀),受苦满日,另发别殿。   阎罗天子说:‘我本来是居于第一殿;因为可怜冤死的人,屡次放还阳间伸冤,洗雪清白,所以降调司掌大海之底,东北方沃燋石下的叫唤大地狱。并管理十六个诛心小地狱’。    所有分发到本殿的鬼犯,均已经受尽前述的地狱之苦,且已受罪很多年。亦即在前四殿查核没甚么大过错的,每人各按七日之期,解到本殿。这些人,在本殿也查不出丝毫作恶的事迹。其尸到五七日,没有不腐败的。    这些鬼犯都说:“在世还有善愿尚未完了,有的说修理、建盖寺院、桥梁、街路;开河沟,挖水井;或者辑集劝善的书与文章等等善事尚未完成。或是放生的数目未圆满;父母尊亲奉养或死葬之事尚未全备周到;另有受恩而未报答”。    为了以上等原事,研求准许放还阳世。因此没有一个不是立下誓愿,一定要做好人的。    本王我听了,说:“你们以往在世之时,恶名召彰,神鬼了解得非常清楚。在如同已到江水中间的船,发现漏水,要补已迟了。可见阴间要是没有怨恨的鬼;阳间就少有仇怨的人。真正修养德行的人,世间真是难得少有。现在来到本殿的鬼犯,照过孽镜台后,自然知道自己是恶类。不用多说!牛头马面押上高台去望乡吧!”在此所设之高台,名叫‘望乡台’。‘望乡台’的面半圆形,朝向东、西、南三向。此台的弯面有八十一里;台后平直,如同弓弦。北方,以剑树立为城墙。台高四十九丈。以刀山为山坡,砌成六十三级的阶。   善良的人,不用登上此台;功过相半的人,已发放往生轮回去了。只有作恶多端的人,才登台一望:下面的情景,实令人有感而悲:站在此地时,故家乡如在眼前;所有的男女家人,亲友的言语、行为,都看得见、听得见。在此看见老老少少,再也不遵从自己死亡前的吩咐与教训。所有自己以前决定的事,也全变换了,如今已一件件地改掉。辛苦赚来的财物,竟被搬运一空。先生再娶小老婆;太太也再度改嫁,相守的甜蜜岁月早已忘了。田地、财产、也被瓜分了。原来清楚的帐目,被贪污得混溷不清。死人欠活人的帐,分文都难少;活人所欠他的,由于失去证是据,一概耍赖,恶形恶状地搪塞掉。所有的错误、罪恶,全推给死人,认为死后他并不知道,也可避开责任。所有父亲、母亲、妻子的族人,全怀怨地评论死后的自己。儿女个个心怀私心;朋友则早已失去信用。或是略有几个亲友,想念自己在世的情分,抚棺哭几声;一回头,马上又冷笑两声,所谓出于颜面之情。以前在世时所造的罪恶,逐渐出现恶报。儿子因犯罪,被系入狱;或被坏朋友带坏了。女儿则生了怪病;或被人奸淫。事业瓦解了;房屋被火烧了。大大小小的家产,很快地消耗光了。其实,作恶得到报应的,又何只是阴魂呢?有些阳间的人,也会亲眼目睹自己的恶报。    所有邪恶的鬼犯看了以上情景后,押入叫唤大地狱内。仔细地考查曾犯何种罪恶后,再分发进入诛心小地狱去受受苦。小地狱内,各地埋设险恶的木桩;用铜蛇做成的链子;用铁铸的狗做土堆,将人缙绑、压制住手脚。再用一小刀,将人开破肚,钩出心脏。一块块地割下来,心给狗吃;肠子给蛇吃。   如此受苦期满之日,痛止皮肤完好,再分发以下各地狱去受苦:    一名将不敬鬼神、猜疑是否有因果报应等心肠割掉的小地狱。    二名将杀害生命等心肠割掉的小地狱。    三名将善愿未完,就先行罪恶等心肠割掉的小地狱。    四名将亲近邪恶,行为错误、违背正理;学习方术,妄想长生等心肠害掉的小地狱。    六名将计较名利、是非,移祸他人等心肠割掉的小地狱。    七名将强奸妇女;设计令妇女失贞;引诱妇女委屈地顺从自己的淫意;或者不论有无谋 害之意,与妇女贪恋淫乐等心肠割掉的小地狱。    八名将损人以利己等心肠割掉的小地狱。    十名将偷窃、盗取别人财物;昧着良心,耍赖而不还显债等心肠割掉的小地狱。    十一名将忘恩负义,以仇报怨等心肠割掉的小地狱。    十二名将好斗、好赌、好胜,以致牵连、干累他人塑心肠割掉的小地狱。    十三名将为了名利、欺骗、诱惑大众等心肠割掉的小地狱。    十四名将自虽未亲自加害,但却狠毒地教唆他人去害人,等心肠割掉的小地狱。    十五名将妒嫉善善良、贤能等心肠割掉的小地狱。    十六名将执迷不悟,死不改过;诽谤他人等心肠割掉的小地狱。    世间的人,凡是犯了以下罪行,即入此等地狱:    不信因果,阻止别人行善事。    借名去庙寺拈香礼佛,却谈论别人的是非。    烧毁劝善的书藉籍、文章。    礼拜神、佛,却吃食荤肉。    厌恶别人念佛、诵咒。    作佛事:如普渡、超渡亡魂,观音法会、浴佛节等时,不吃素,不持戒,清净身、口、意三业。    诽谤学佛、修道的人。    识字的人,不肯将古今报应的故事,劝世的文等,念给未识字的妇幼等人知道。    挖掘别人的坟墓,再予以填平灭迹。    放火蔓延,焚毁山林;或疏于防犯家人,以致失火延烧邻居。    射箭或用枪枝,射杀丽离兽。    引诱、逼迫几疾病,廋弱的人来比赛体。令其自卑或伤身。    隔墙抛掷瓦石,误伤行人。    用毒药在河流中毒杀鱼类。    放置射杀鸟类的火枪暗器;造捕杀鸟类的陷阱;或以盐卤、毒药等洒于草地。    死猫、毒蛇等物不埋入深土中,以致有人挖出;留下的洞穴,害人丧命。    冬天春天寒陈时开垦,挖掘土原,令虫类陈死;拆墙、改,致令人受寒受饿。    私人的身份,却僭用官家的头衔,以势力霸占民。    无缘无故僰塞水井、水沟,致令人饮水不便。    如果违犯了以上各项罪事的,即押赴望乡台,发入叫唤大地狱。受苦之后,如果应该割碎心脏的,就押交给各层小地狱,判罪受刑。刑期满后,转解第六殿,查对有无其它的罪。   假如世人在世时,不论有否犯前项等罪事,凡能在正月初八日吃素,持戒身、心、意清净者,誓愿不再犯罪的话,不仅本殿各狱的刑罪可以避免,并且准许请求第六殿减轻刑罚。    除了杀生害命;亲近邪恶;行为违反正理;男奸淫毒害妇;妇人贪净、泼悍、妒恨;损害妇女名誉节操;偷盗财物,昧心耍赖;忘恩报怨;以及在生时执迷不悟,即使见闻劝善的文章句子,也不立即悔改的人以外,其余则一概可轻易地减刑。   第六殿,六城王毕,三月初八日诞辰,司掌大叫唤大地狱,及枉死城,忤逆不孝者,被两小鬼用锯分尸。凡世人怨天尤地,对北溺便涕泣者,发入此狱。查所犯事件,亦要受到铁锥打、火烧舌之刑罚。再发小狱受苦,满日转解第七殿,再查有无别恶。六城王掌理大海之底,正北方沃燋石下的大叫唤大地狱。宽广八千里(五百旬)。四周另有十六小地狱。    一名常跪铁砂小地狱。    二名屎泥浸身小地狱。    三名摧流血小地狱。    四名钳嘴含针小地狱。    五名割肾鼠咬小地狱。    六名棘网蝗钻小地狱。    七名碓捣肉浆小地狱。    八名裂皮 擂小地狱。    九名衔火闭喉小地狱。    十名桑火小地狱。    十一名粪缺小地狱。    十二名牛雕马躁小地狱。    十三名窍小地狱。    十四名头脱壳小地狱。    十五名腰斩小地狱。    十六名剥皮揎草小地狱。    世人若犯以下罪事,即入此地狱:    怨天尤地;讨厌风,咒骂雷;喜欢晴,厌恶雨。    对着北方(天空)大小便,或哭泣等。    偷窃神佛装坠法身时内藏的宝物。    刮取神圣佛像法相上的金银宝物。    随便乱呼叫神佛的名讳。    不尊敬、爱惜有字之纸、与经书。    寺庙、道观、宝塔的前后,泼洒、堆积污秽的东西。    家中供养神佛的法像,于厨灶中煮食荤、肉等不洁的东西;尤其吃牛肉、狗肉,对佛、神、更是大不敬。    家中保存、收藏违背正理的书籍,黄色书刊,色情影带等。    烧毁涂损劝善的书籍、文章、器物。    随意雕刻、绘制神圣的图像在日常使用器具上,例如:太极图、日月、七星,和合二圣、王母、寿星,所有的仙佛,三世诸佛的形相或*字花样等,在一切衣服、器具上。    在衣裙上绣上龙风的图像。    浪费、糟蹋五谷。    囤积米粮,期待卖高价钱。    犯以上的罪事,都发入大叫唤大地狱。再查出所犯的事件性质,分发至小地狱受苦刑。期满再转解第七殿,考查有无第七殿管辖的罪恶。世间的人,能在三月初八日,聒素、持戒,清净身口意,发誓立愿:今后不敢再犯以上的诸罪;并且能够每逢五月十四、十五、十六日;十月初十日,持戒不行房事。同时,立愿此后要辗转劝诫别人。如此,则准许免受以上诸小地狱的苦刑。   第七殿,泰山王董,三月二十七日诞辰,司掌热恼地狱,又名碓磨肉酱地狱。凡阳世取骸合药、离人至戚者,发入此狱。再发小狱。受苦满日,转解第八殿,收狱查治。又,凡盗窃、诬告、敲诈、谋财害命者,均将遭受下油锅之刑罚;泰山王掌管大海底,西北方沃燋石下的‘热恼大地狱’。此地狱周围八千里(五百由旬),并另设十六小地狱:    一名捶自吞小地狱。    二名胸小地狱。    三名笘腿火逼坑小地狱。    四名丫杈抗发小地狱。    五名犬咬胫骨小地狱。    六名燠痛哭狗墩小地狱。    七名剆顶开额小地狱。    八名顶石蹲身小地狱。    九名貒鸨上下啄咬小地狱。    十名皮猪拖小地狱。    十一名吊笚足小地狱。    十二名拔如穿腮小地狱。    十三名抽肠小地狱。    十四名骡踏獾嚼小地狱。    十五名启手指小地狱。    十六名油釜滚烹小地狱。    凡是在阳世,曾犯以下罪事,发入本地狱受刑:    炼食红铅、阴枣、人胞,等壮阳动淫的药物害人。    酗酒,以致做出违悖常理,动乱横暴,令亲人伤心的事。    浪费不节省,挥难无度,令前人辛苦之成果,毁于一旦。    用抢夺、设计引诱,诈骗贩卖的方式,诈取钱财。    盗取棺材内的衣物宝饰。    盗取死尸,或死骨来当药。    将他人最爱的亲人、戚友,予以离散。令两地思念,相见不得,痛苦万分。    将不喜欢的童养媳,卖给人当婢女、小老婆,毁其一生的幸福。    听任妻子,或溺爱的女儿,堕胎者不予劝诫,致犯杀生之重罪。    纠结朋友赌博,致令输钱,败家;影响一个庭,陷入贫苦之中。    为人师表的人,教导学生不严格,以致误他人子弟的前程。    不顾所犯事情的轻重、前后,猛力拷打学生、婢女、佣人以泄愤。令受打者冤苦莫名。含恨不宣;而且暗伤得病,终生痛苦者。    仗着财势雄厚,欺凌侮辱乡里的人。   第八殿,都市王黄,四月初一日诞辰,司掌大热大恼大地狱,又名恼闷锅地狱。凡在世不孝,使父母翁姑愁闷烦恼者,掷入此狱。再交各小狱加刑,受尽痛苦,解交第十殿,改头换面,永为畜类。都市王掌管大海之底,正西方沃燋石下的‘大热恼大地狱’。此地狱宽长八千里(五百由旬)。另设十六小地狱。   一名车崩小地狱。    二名悉锅小地狱。    三名碎剐小地狱。    四名 孔小地狱。    五名翦小地狱。    六名常圊小地狱。    七名断肢小地狱。    八名煎肢小地狱。    九名炙髓小地狱。    十名爬肠小地狱。    十一名焚膲小地狱。    十二名开膛小地狱。    十三名 利胸小地狱。    十四名破顶撬齿小地狱。    十五名 割小地狱。    十六名钢叉小地狱。   世人若犯以下罪事,发入此殿地狱:不知孝道,双亲在世时不能奉养;双亲去世后,不能予以安葬。致令父母,翁姑惊恐、害怕、愁悉、烦恼。假若不快忏悔前非,胡涂过日一久,灶神先将这些男女,记下名字,上奏 玉帝,减少或除去衣食的福报与禄位。并听任邪鬼随身作崇。死后要受前面各殿地狱的诸种刑后,再押解送到本殿。牛头、马面各鬼卒倒拖此等鬼犯,掷入大地狱去受苦,再交个小狱分别加刑。受尽痛苦后,解交第十殿的‘转劫所’内,改头换面,永远投胎为畜生。假如有世间的善男信女,遵信‘玉历宝钞’中之所述。立即忏悔前非,于四月初一日,发誓改过,不再犯错。并且无论何月何日;无论早上、晚上,如对 灶神立誓:‘从今以后,知道改过。’无论何时均能不再犯错。若能如此,则在临死之时,自宅的灶神,将其分作三等处理:有的在额上写一“遵”字;有的写“顺”字;有的写一“改”字。    交勾使与鬼卒,带到第一殿;并依次带到第七殿。即使有犯各殿诸罪,也都减去一半的刑罚。并且不用解送本殿来受苦,立即交第九殿。如果经查未犯放火等阴毒的罪事的话,随即交给第十殿,分别发放投生人道。至此 玉帝特别加恩批示说:‘假若再能传抄,印行玉历宝钞,使世间的男男女女等,知所警惕的话,从第一殿到第八殿,各种苦刑,都可以避免。第九殿再查,假如也没有犯本殿之过错,立即交给第十殿,发往投胎到有福气的地方,出生为人。’   第九殿,平等王陆,四月初八日诞辰,司掌丰都城铁网阿鼻地狱。凡阳世杀人放火、斩绞正法者,解到本殿,用空心铜桩,链其手足相抱,煽火焚烧,烫烬心肝,随发阿鼻地狱受刑。直到被害者个个投生,方准提出,解交第十殿发生六道(天道、人道、地道、阿修罗道、地狱道、畜生道)。平等王掌理大海之底,西南方沃燋石下的‘阿鼻大地狱’。此地狱围绕、重迭。其周围广八千里(五百由旬)。在密密铺设的铁网之内,另设十六小地狱。   一名敲骨灼身小地狱。    二名抽筋擂骨小地狱。    三名鸦食心肝小地狱。    四名狗食肠肺小地狱。    五名身溅热油小地狱。    六名脑箍拔舌拔齿小地狱。    七名取脑猬填小地狱。    八名蒸头刮脑小地狱。    九西羊搐成醢小地狱。    十名木夹顶 小地狱。    十一名磨心小地狱。    十二名沸汤淋身小地狱。    十三名黄蜂小地狱。    十四名蝎钩小地狱。    十五名蚁蛀熬 小地狱。    十六名孙赤毒蛇钻孔小地狱。   世人犯以下罪事,应入本地狱:    犯了元首、帝王所制定的法律条例中,像十恶中的极恶;应受凌迟,斩头,绞刑,枪决等罪事。这些鬼犯在先前各殿地狱受诸种种苦刑后,解送到本殿受刑。 放火焚烧房屋,毁人家财、生命。制造迷惑人心性的思想、方法、或团体(蛊毒)等。    或者制造令人心识迷幻的药物,如安非他命、吗啡、大麻等。 专门为人堕胎的人。    专门诱惑少男、少女‘性犯罪’,伤害发育未成熟的身心。或者,强暴未成年少女。    绘画黄色的图画、书籍,拍摄黄色的影片,以扰乱人清净的心。致读书人无心于课业;修行人退失道心;造成疾病更为严重,人人不安于室者。    炼制有害社会的违禁药物,例如:迷幻药、各种使人失去听觉,语言能力的毒药或堕胎药。    假如犯了以上罪事的人,若自从听闻‘玉历宝钞’的内容,能立即毁去淫书淫画的画稿与印刷的锌版,不再印行。将制造违禁药物的方法,配方销毁;息止一切邪恶的念头,从此不再传授以上的邪术者。若能如此,则准许免去各种苦刑。并立即交给第十殿,发放投胎人道。反之,如果闻知此‘玉历’的报应内容,仍然去做以上的罪事的话,则罪刑不能得到宽贷。且要从第二殿开始受苦刑;直到本殿,加重刑罚,添设极刑的刑戮;诸如:将空心的铜柱,其中以火煽热,到能焚烧、荡毁心肝的程度;而后用链子炼住手脚,抱住炽热的铜柱,此苦可想而知,世人应知勿犯。   在遍受各小地狱的诸种刑罚之后,再发入‘阿鼻大地狱’,受各种苦刑:    有尖刀穿过肺脏、胸部。口中含着挖出的心脏,渐渐陷入地狱幽暗的深处,诸如此种痛苦将永无休止。一直要到那被害者的家,家业复原;死者个个另投人身。当年所画的黄色图片及画籍、影片;所印行的毒药配方;所有鬼犯亲手印行,及辗转钞刻的书、图、影片等物完全消失、毁灭尽净后,才可准许提出此‘阿鼻大地狱’。再解交第十殿,发放投生人道,故犯此等罪业的人,通常是生生世世都困在‘阿鼻大地狱’内,因为所造业力循环难消。世人假若未犯以上的恶事;而且肯在四月初八日;或在初一、十五日吃素、清净身、口、意三业,而后立下心愿:收买色情的书、画、影片;色情的邪术、器物、药物,聚集来焚毁,并劝此商人,从此勿再卖这种伤风败俗的东西。或者印行,传抄此‘玉历宝钞’。使能辗转,一个传一个地劝化世人向善者。则在命终之时,灶神在他的额端上写下‘奉行’两字。从第二殿起,到本殿,凡是曾做各种罪事的,都可以此功德,减轻其罪刑。若是富者、有权势的人,能严格缉拿放火的凶徒;搜集色情的画、书,刻版,予以公开销毁;并公告禁止所有遗害人间的物品,则准予庇荫现世的子孙,科甲绵绵,富贵不绝。贫穷、苦难、孤独、病老的人,假若肯尽力请人印行,传钞‘玉历宝钞’,以劝化世人的话,准予立即送交第十殿,发往福地去投生。   第十殿,转轮王薛,四月十七日诞辰,专司各殿解到鬼魂,分别善恶,核定等级,发四大部州投生。男女寿夭,富贵贫贱,逐名详细开载,每月汇知第一殿注册。凡有作孽极恶之鬼,着令更变卵胎湿化,朝生暮死,罪满之后,再复人生,投胎蛮夷之地。凡发往投生者,先令押交孟婆神,酴忘台下,灌饮迷汤,使忘前生之事。转轮王,殿居阴间沃燋石外,正东方,直对五浊世界的地方。设有金、银、玉、石、木板、奈何等六座桥。专门管理各殿押解到此的鬼魂,分别核定其罪福的大小,发往四大部洲的适当地方投生。该投生为男身,或女身 长寿、或短命 生富贵之家,或投生贫贱之家。将这些投生的人,一一地详细记载。每月汇集起来,通知第一殿,在注册后,送呈‘酆都城’,由酆都大帝交办。 再根据阴律,分为:   胎生、卵生、湿生、化生;无足、两足、四足、多足、等类。    各类的生灵,死后为鬼。再依罪业、功德之大小,依次投胎: 有些一年或一季即死;有些朝生暮死,反复地依罪变换。 不管是必定被杀而死,一律送到‘转劫所’内,考查、计算其在世时所犯的过错,分发各方去受报应。到了岁终之时,汇集受报情形,送交‘酆都城’由酆都大帝备案。有些人在阳世熟读佛典、经咒的读书人;或勤诵经咒的僧人道士。因犯罪被勾到阴间时,由于念诵佛经、咒语,以致诸地府将军不能用刑,使他暂时来逃避刑罚受苦报的人,就押解到本殿处理。    按照姓名,注明所犯罪刑,并且绘出本来的面目,名叫‘堕落生册’。依据此册,押交孟婆尊神(孟婆神)的‘醧忘台’下,灌饮迷汤,再派鬼卒押投人胎,令其转世时,死于母胎腹中。或者出生才一、二天即死;或百天、十天;或一年、二年,即很快死亡。如此便可使他忘记在世所学的三教真言、咒语。    之后,再命命厉害的鬼卒,勾到各地狱,考查、察究前生所做恶事,补受苦报。 凡是解到功过各半;以及已受苦报期满;功少过多的鬼魂,立即勘酌其罪功,订定来生的福报后,投胎:有些来生美丽;有些来生丑陋;有些生活安乐;有些生活劳苦。确定发往何方富贵、贫贱之家的人,即交到 孟婆神的‘醧忘台’下,饮食‘孟婆汤’后投胎。    在本殿点名发放,投胎人道之时,常常有妇女苦苦哀求,供称:还有切齿含恨的冤仇未报,甘心当饿鬼报仇,不愿做人。’经询问其情由后,其状况大多是:“未出嫁的少女,或原本是心地贞洁的妇女,因为被读书中的不良少年、中学生、大学生等看上,由于贪爱她的美貌,或者图谋夺取其财物,乃献尽殷勤;百般投其所好,用尽计策,不择手段地诱惑成奸。”有的骗说:‘我还没结婚,一定会请媒婆去说亲迎娶。’有的甜言蜜语,欺骗婢女,企图纳为小老婆。有的骗说答应奉养她年老的双亲;或允许抚养她前夫的子女。此等好话说尽,以致误认真情,而被骗取感情,痴心地以为遇到可以依托终身的人,因此柔顺地听从他的要求。自从失身相与,玩弄一久厌心渐生,将答应的婚事与约定,一再拖延,不愿履行,企图始乱终弃。或甚至反而口出恶言,激扬丑闻,以致令父母、兄弟知道;被亲友、邻居轻视、鄙弃。遭来无情的责备与羞辱。此等冤曲无处申诉,而羞忿过度自杀;或者得到气郁的肝病而死亡。   死后在阴间知道,这个负心的贼,这次的科举考试将考中。顿时忿恨难消,悲号哭泣地要求准予索命。阎王细查,发觉果然是事实;但该生阳寿实未终了,同时,他的祖德未享受完尽。本殿姑且准许该女鬼带着‘令牌’,进入考试的地方。阻止、惑乱他的考试;或者更换榜上的名字。再等到命终该绝之日,准予地府将军带至冤仇人的住处进门索命,勾到第一殿查核罪事,判断罪刑之轻重。世人假若在四月十七日,发誓要立下信心,尊奉 ‘玉历宝钞’所述,知所警惕地做事。并且常常将以上的内容,向亲友们介绍、谈说的话,下辈子发往阳世做人时,不受轻视,不会遭遇官吏刑罚,身体不会受到水、火之灾等的伤害与灾祸。‘转劫所’地方宽一万一千二百里(七百由旬)周围上下都是铁的栅栏。其中分八十一个处所。每一个处所都有亭台,并有判官、官史设案记事。栅栏外,另有羊肠样的细小道路,共有十万八千条,盘旋弯曲地通往‘四大部洲’。路上暗得伸手不见五指,众鬼死生投胎,进出都走于此路。可是由外望入,却又亮如水晶,所有情事,丝毫隐藏不得。判官派遣官吏、鬼卒,轮班把守。各鬼进进出出,都按初生本来的面目,很容易可以分办。所有掌理这些事情的判官、官吏,都是在世孝顺父母、友爱兄长,和睦亲友,岣时行戒杀,放生的大善人。死后送入此所,查办所有轮回、转劫等事情。办过五年后,假如没错误,就加级、调升,予以奖励;假如怠惰,或者专权跋扈、刚愎自用;不配合所有判官、官吏妥善会议后决定办理的发放事宜;或者有失察、致鬼犯漏列、逃走、隐匿的话,则奏请降职、贬官。凡是在世不孝、及杀生繁多的凶魂,受过各殿的地狱所施加的苦刑后,经转发交由‘转劫所’内时先用‘桃花枝’抽打致死。死后化为畜魂,将他改头换面,发进羊肠小路,投胎为畜生。      ************************************   所有的禽兽、鱼虫,要经过上万、上千、上百次沦堕的劫难,才能受苦期满,故知是为苦海。像胎生的牛马等禽兽;卵生的龙类蛇鸟;湿化生的蝴蝶、蜜蜂、蛆虫之类,都是要不断地轮回受报,在此四生中,不得出离。等到劫数已满,若能连续三世不伤世物之命,方可使再投生为人。这些由动物投生为人的,均叙述明白,记在册籍上,奏呈给第一殿,批注判定其来生的因缘、福报。再发放往生到 ‘四大洲部中’,出生为男、女人。发放之前,要先交‘醧忘台’下由孟婆神处理。   醧忘台与孟波神   醧忘台为孟婆神所管理。    孟婆神生于西汉。幼年时即熟读儒家的四书、五经;并庄敬地诵读佛经。其修道功夫炉火纯青至:“凡是过去的事不思;未来的事不想,现在的事不执”。在世时,专心意志地劝人戒杀、吃素。享年八十一岁时,童颜鹤发,始终守精,未损童贞。只知道自己姓孟,当时的人都称她孟婆奶奶。后入山修真,一直到东汉时仍在。世上有人由于灵机深厚,能够知晓前世的因果,因为喜欢耍弄智巧、术数,露泄了阴间的天机。致令世间人妄认前生的眷属,棱乱了世情,致使善恶报应未能公平。因此玉皇大天尊敕命孟婆阿奶为幽冥之神,建造‘醧忘台’。准予选拔鬼吏供使乎唤。将第十殿所拟定,发往何地为人的鬼魂,用采自俗世的药物,合成似酒非酒的汤,分为‘甘、苦、辛、酸、咸’等五味。所有的鬼魂在转世前,派饮此汤,使忘记前生的事。药力同时带往阳间,令其或因多思伤脾而流涎;或因多喜多笑而多汗;或因多虑多忧而流涕;或因多怒而流泪;或因惊恐而流唾。各令带一分、二分、三分的病。在世为善的人,令其眼耳鼻如四肢较以往更精、更明;更强、更健。作恶的人,使其声音、神智、魂魄、意志消耗,逐渐疲惫衰弱;令使自我警惕、忏悔,重新为善。   ‘醧忘台’位于第十殿,冥王殿前六桥之外。高大如方丈,四周的廊房有一百零八间。有一条通道,通向东方,仅一尺四寸宽。所有奉令押解到的男女鬼魂,在各廊房中,都设有杯子,招各鬼饮下此汤,多饮少饮不论。假如有刁蛮、狡猾的鬼魂,不肯吞饮此汤的话,脚下就会出钩刀,将他绊住;并以铜管刺喉,令其受尽痛苦后,强迫灌吞。所有鬼魂饮下‘醧忘汤’后,各派鬼役、鬼卒,搀扶着从通道送出,推上麻绳的‘苦竹浮桥’。     桥下是红水横流的山涧。由桥中向前一望,对岸的‘赤名岷岩’上,有斗大的粉字四行,写着:    为人容易做人难; 再要为人恐更难。 欲生福地无难处; 口与心同却不难。    鬼魂们正在看读之时,对岸跳出又高又大的二个鬼。分别扑到水面,令两旁的鬼魂个个吓得站立不稳:一个是头戴乌纱帽,身穿体面的礼服、锦袄。手拿着纸笔,肩上插着利刀,腰上挂着刑具,睁着圆滚滚的大眼精,哈哈大笑。他的名字叫‘活无常’。一个是面上污垢、流血,身穿白衫,手捧算盘。肩上背着米袋,胸前悬挂银纸钱,愁眉紧锁,声声长叹。他的名字叫‘死有分’。    此二大鬼,催促推落鬼魂魂们,落于红水横流之内。根器道行浅薄的,在此欢呼可以幸运地得生人身;根器道行深厚的,则大声悲伤哭泣,自恨在世时未能修出世的好功德,以致如今痛苦悔恨又是苦海的根源,又是回到轮回起点,此身体不知何时才能超出生死苦海啊!男女鬼魂等,如醉如痴地,纷纷各依因缘,投生于各房舍中将生的胞胎之内。由于阴间、阳世的改变,气悉昏昏。再加上胎身颠倒,不能自由,于是双脚用力一踢,蹬破胞胎,奔出娘胎。哇!地一声落地,开始了一生的形形色色。一般众生,由于长久累月地贪好世间各种五欲、滋味;尤其杀生数多,迷失了众生本有的如来佛性。辜负了皇母恩典,以及 玉皇大帝,诸佛神明的训诫之恩。从未想到如何做是善终,如何修得成‘佛菩萨’;如何做会恶死,堕落‘三恶道’;自己成为拖尸的鬼,枉为一世之人,又将堕为无间地狱的鬼魂。  
5    저승에 대한 전설 댓글:  조회:3522  추천:0  2012-07-17
阴曹地府的传说      话说清末民初之时,有一位名叫黎澍的法律界名人,他在年约十九岁时,于某夜睡梦中,见一人前来找他,说有事相请,他看来人非常礼貌恭敬,于是就随口答应了,之后来人也就告辞。过了四、五天,原先梦到的人又在黎先生睡梦中出现,且用马车接他前去一公堂(后来知道是地府)开始升堂审问罪犯,从此这位黎先生就在每天午后或晚间睡梦中进入地府干了四、五年的冥判(就是阴间的法官,现在电视连续剧正在上演的包青天也是冥判转世,所以包公日能理阳,夜能断阴)。后来他的朋友为了利益世道人心,向他详细询问了阴间的种种,并汇集成了“幽冥问答录”一书。以下是该书内容的节录: 问(黎先生的朋友):您在阴间是归谁指挥?担任什么职务?管辖范围为何?有无职员?且阴界为何会找您当冥判? 答(黎先生):我是东岳大帝的部下,担任分庭庭长的职务,管辖范围为华北五省,专门负责死亡十个月内之死者的善恶事件,超过这个期限的另有负责的官吏,除了有陪审员四人外,供使唤的鬼卒有无数多,而阴界找我当判官的原因,我曾托同事调查过,据他说是因我在好几世前曾当过冥判,又刚好碰上八国联军攻破北京,中外军民死者甚多,阴间太过忙碌,所以才会找我帮忙。 问:您为何只当了四、五年的冥判?又您有那么好的机会当上阴间的官,来世是否可免去轮回呢? 答:我因不想当太久的阴官,好几次请辞都没获准,后来我念诵金刚经二千遍后才得以免去,至于想超出轮回谈何容易,就是我本身也不可免,据我托同事调查,我来生将投生在河南省南阳县一带,但现已事隔数十年,说不定原先在阴间所注定的会因我在这数十年间的所作所为又有变动了呢! 问:阴间的食、衣、住、行如何? 答:阴间也有饮食,但比不上阳间的饮食美好,而且阳间人不能食用,在那儿的鬼道众生每吃一次就可饱多日,并不需一日三餐,对于阳世所供的食物,鬼神只能闻其气味;穿的衣服则与阳世服装相同;又虽有床铺、棉被等,好像都不见使用,只见鬼魂随处依靠,闭目休息,不像阳间人要睡上七、八小时;另外阴间还有小规模的街道商店,大部分是卖一些饮食、杂货(可用阳间所烧下去的纸钱购物);至于鬼众走路都甚为快速,不像人类那么的缓慢。 问:鬼有年节喜庆及家庭眷属吗?那儿的气候如何呢? 答:鬼道有节庆,无星期,也有应酬、婚娶与生育,他们婚嫁的对象不必是阳世原来的眷属,他们结婚所生的小孩是人死后的馀气所投胎,这些小孩长大后是无法再投胎的,在阴间虽然有日夜,可是却不见有日月星辰,整天都有如四川大雾或华北黄沙吹起般的昏暗。另外那儿虽有四季之分,可是夏天不如阳间热,冬天却比阳间还冷,而且虽然不见风雨霜雪,但阳世刮风雪时,阴间都会感受到寒冷。 问:阴间有法律吗?您如何判罪鬼的罪,又冥判判罪有错误的情形发生吗? 答:好像不见有阴间的法律,但判罪时却不用思考就可很自然做下决定,至于判罪的轻重是以罪鬼犯罪的动机与犯罪所造成的后果来衡量。譬如偷钱的动机是被生活所逼,且被偷的人是一富翁,被偷的钱对这富翁而言并不影响他的生计,那么这偷钱罪鬼的罪就较轻;万一偷病人或穷人买药、买米的钱,而使他人病死或饿死,甚至为了偷钱还杀了人,那么这罪鬼的罪就非常重了。至于冥判判罪绝不会发生错误,因为阴界对于罪鬼犯罪的罪状都有经过精密的调查及握有确实的证据,所以判起来非常公允,从无错误的情况。 问:阴间的刑罚有多少种? 答:阴间刑罚的种类很多,而且比阳间残忍百倍!我奉劝世人,宁可在人世间接受惩罚,却不可在阴间受刑,因为阳间的刑罚,罚完就没事,可是阴间的刑罚是刑了又刑,罚了又罚的。譬如在阳间杀了十条人命,了不起就枪毙一次,但在阴间却要枪毙十次,同时还会被判转生十世都被人杀,就是地藏经所说的锯解、刀山、油锅、碓磨等刑罚也都是确有其事,令人惨不忍睹。另外还有带著牛头马面等面具的鬼神,专门来吓一些凶狠的鬼魂呢! 问:人的善恶,鬼神如何能知道呢?犯了罪的鬼魂难道就不会狡辩吗? 答:鬼神能听到也能看到人所不能听到、看到的东西,而且人的头上会随著他行为思想的善恶而发出红、黄、白、黑等光(红、黄、白色为善念所发出的光,黑色则为恶念),鬼神们都看得一清二楚。若人的思想随起随灭与他的作为关系甚微小的,阴界固然不会去记载,但若念念不忘某种事情,则虽未见于行动,却早已被鬼神所记录,若付之于行动,则功罪自然更清楚了。我曾见过很多犯罪的鬼魂极力为自己辩解,但通常将犯罪记录给他们看时,就多半会俯首认罪。若碰到一些极端狡猾的鬼魂,譬如要判他刑时,他忽然念起经来,则我们会先判他投胎数次,但却非常短命,等他投几次胎而忘记经怎么念时,再来治他的罪。 问:阴间最尊重的是什么德行?最痛恨的罪业是什么? 答:阴间所最尊重的德行,在男为忠孝,女为节孝,这两种人就算有罪行也会从轻发落,我就曾见过一位在八国联军攻打我国时为国牺牲的清朝提督名叫○○○的直接升往天界;所最痛恨的罪业就是杀及淫两件事,其中杀业比淫业的罪更重,若为了淫而杀人,罪更加一等,古人说:“百善孝为先,万恶淫为首”,说得一点也没错。 问:大修行人死后也要到阴间听候审判吗?当今世上甚多修行教派,到底阴间较重视什么教派? 答:阴间所管的都是带著罪业或平平凡凡没大善恶的鬼魂,若大修行人死后立刻登上天界,根本不从阴界经过,就算功行较浅,升天稍慢,须从阴界经过,阴间的官吏也都会起立让开,直到他魂魄如上楼梯般渐飞渐高的升天而去。至于阴间所尊重的包含儒、道、佛等教派,但其中最尊重的要算是佛教。 问:阳间请和尚或道士为亡者超度,到底能不能利益到亡人? 答:和尚或道士诵经为死者超度的目的在为他增长福德,减轻罪业,但这只是助缘,并非绝对的主因,而且超度到底有没有好处还必须因人而异,譬如生前大善的人死后立刻往生天界,或生前大恶的人死后马上堕入地狱,他们都不用或根本无法享受到超度的功德,只有一般生前没有大善恶的人于死后可获得诵经超度的功德。另外诵经人道行的高低与诵经功德之大小也有重大关联,如果是高僧或孝子贤孙诵经壹卷,可抵得上凡僧十倍之功德,但凡僧至诚念诵也会有相当利益,只有无道行又不诚心的人所念的利益很少甚至毫无利益,不过却也不会因此而有罪过。又诵经最好在亡者死后四十九日内为之,过了这段期间,亡者可能已经投胎转生,超度功德必需要经过好几转才会利益到他们,无法收到即时的效果。 问:念佛诵经的功德既然如此大,为什么阴间诸鬼不自己念佛诵经,以求解脱超升呢? 答:一到阴间,就自然有鬼魂本身的业力会障碍他修行,因此修行应趁一口气还在时赶快去做,如果指望等到断气后再修行,到时恐怕已是无能为力了。 问:阴间为何常找阳间的人当阴间的官差呢? 答:因为富贵的人家有众神守护,且供使唤的仆役又多年青力壮,阳气旺盛,所以当他们家中有人过世时,阴间鬼魂无法接近去摄受死者的魂魄,又例如武将死在军营时,他四周警卫森严,枪炮林立,营中士兵也都年青力壮,阳气逼人,一般鬼魂也都没办法接近死者魂魄,诸如此类的情形,就有赖阳间人的生魂当阴差去执行了,因此阴界常有用阳人当差的情况。 问:凶死的人身首不全,他的鬼魂跟平常寿终正寝的鬼是否不同?又鬼的容貌会不会逐年衰老? 答:凶死之鬼魂除面容稍显模糊,表情好像蛮痛苦的,且伤处带有血痕外,其馀与一般鬼魂并无差别,至于鬼的容貌都与他死时相同,并不会因年久而变衰老。 问:人死灵魂离体时会不会感到痛苦? 答:一般而言,人的死亡都是因疾病而来(老死者也是内在生理机能败坏所导致),这时候灵魂离体就好像开门外出般的毫无痛苦,且脱离肉身后反而会有疾病霍然痊愈的舒服感觉。但死者若迷恋家眷、财产或世间的种种,这时灵魂就不容易脱离肉身而会产生如乌龟脱壳般的巨大痛苦,因此一个人在生前应培养淡泊之心,对于妻子、财产等不要过分贪恋,如能做到这样,那么他死时之灵魂离体会如脱掉衣服般的毫不费力。 问:鬼跟人谁多?是人怕鬼还是鬼怕人?鬼和人的疆界如何划分? 答:阴间的鬼比阳间的人多得多,来来往往擦身而过的比比皆是,他们与人的疆界似有似无,实在很难讲得清楚,但鬼在阳间行走时多走在道路两旁或阴暗的地方,且人怕鬼,鬼也怕人,尤其是正人君子,鬼必敬而远之,但对于心术不正或运气差的人,则鬼多喜欢捉弄他们。因此人类从午后到晚间,走路时尽量不要走道路两旁或阴暗的地方,而且走路应缓慢或稍微发出声响,让鬼有时间避开,以免出其不意与鬼相撞,人固然会起鸡皮疙瘩,鬼也会觉得不舒服的。 问:人死后真有转生的情形吗?如何去证明呢? 答:人有生必有死,有死也必有生,它的道理就如同每一件事物只要有作用就必定有反作用一样。例如我们吃了东西,一定会有排泄,这是非常简单明了的,但因人死后所存在的是个精神体,而非物质的原素,所以无法用求证物质原素的方法来探索精神体的来去,而只能用精神来领会精神,宗教修行的作用就刚好能提炼人的精神成分,提高精神的效能,所以只有在宗教的经验中可求证到人类生死轮回的现象。 问:人死后就是鬼吗?为什么人死后有的会显灵,有的却毫无音讯呢? 答:除非是超出轮回的圣者,否则人死后会有六道轮回的,而由于鬼道只是属于六道轮回中的一道,因此人死后并不一定就是鬼,如果轮回在鬼道者,在有必要或由于阳世眷属请人作法召请时,他是有可能显灵,但死后生天、下地狱、或转生为畜牲道者,就不会愿意或无法再来显灵了。又阳寿已尽,已经到了该死年龄而死去的人,不论他是凶死或善终,都会纳入一个规则的系统,就好像部队改编一样,直接从一个部队向另一个部队报到,这时他们就没有机会在外闲逛,显灵的情形就比较少。但如命不该绝而死的人,他们的鬼魂在未被鬼界收容发落之前,并没有立即可归宿的地方,只得在外东闯西荡(中阴身),而在这闯荡期间,与人相遇的机会就很大了。 问:历史上有很多伟大的人物,如孔子、孟子等人,为什么后人再怎么祭拜他们,也不见他们显灵呢? 答:要知道虚空、宇宙及世界都是无限的,众生也是无限的,那些伟大的圣贤豪杰为了他们自己的愿力来到我们的地球世界,从事教化这世界众生的工作,当他们的任务完成到某一预期程度时,他们就会离开这地球世界而进入另一个世界,继续依据他们的愿力去教化另一世界的众生,他们以无限的愿力往返于无限的宇宙、世界间,教化无量无边的众生,如果以我们这个极其有限的时空观念来探索他们的来龙去脉,自然是莫测高深的事了,因此若以他们显灵与否来批评他们的存在,就大错特错了。 问:阴间有洋人吗?如果有,彼此言语如何相通?若无洋人,则洋人死后归何处审判?又鸟兽死后的魂魄仍然是鸟兽的样子吗? 答:我当冥判时,因为刚好碰到八国联军攻破北京之后,中外军民因战争而死的很多,所以我在阴府曾看过有洋人到案,且能很自然的通晓他的语言,但据我所知,中国的冥府就已经不只一处,那么欧美各国应该也有他们的冥府方合情理。至于鸟兽的魂魄是属于阴界中另一处所管辖,而我从未在地府各处游历过,所以我不了解这方面的事。(了悟子评:知之为知之,不知为不知,是智也。其人坦诚磊落,正气凛然,令人敬佩,不可怀疑。) 问:鬼有消灭的期限吗?阳间的坟墓是不是他们休息的地方呢? 答:我所看到的鬼,有古老到宋朝、元朝的,但唐朝以前的鬼则从未看见过,大概是因年代久远,早已轮回转生去了。至于阳间的坟墓确为鬼魂栖息的地方,但鬼因怕阳气,所以每天上午八点到十一点都躲著不出来,一直要到午后才会渐渐出来活动。 问:鬼为什么怕鸡叫呢? 答:鸡叫代表天快亮了,鬼因为怕天亮后阳光出来时的阳气,所以一听到鸡叫就会感到不安,而不得不躲藏起来,但有德行的福德鬼(如土地公、城隍爷等),则并不怕鸡叫。   孟婆的传说是一个陷阱     这个世界上存在着太多的假象,一不留神,我们就会落入一个精心构造的陷阱。     孟婆的传说就是一个陷阱。据说,阴间的鬼魂在投生之前都要在孟婆那里喝一碗汤,这碗汤能令他忘却前生,转世投胎。这个神话千百年来被无数人深信不疑,多少个在阳间饱受苦难的灵魂,毫不犹豫地将那碗汤一饮而尽,为的是迎来一个崭新的人生。可是谁又能知道,下一步迎接他们的却是一个惊天大阴谋呢?        要了解这一阴谋,首先要从食物问题着手。在阴间要不要吃东西呢?答案是肯定的,逢年过节人们为亲人鬼魂准备的祭礼食品就是证明。不过人们在献上祭品时大概都没有想过:地狱里的工作人员他们吃什么呢?        当然,十殿阎罗可以在庙里受到祭祀,不用担心饿肚子,可那些受不到祭祀的鬼卒们有什么可吃呢?文献中没有上级机关也就是天庭给地狱的财政拨款记录,地狱也非工非农,大概可归入第三产业或公益事业范畴,缺少经济来源,地狱鬼卒成千上万,吃饭的问题如何解决?        一位阴间神灵的行为给了我们一条线索,他就是在无数画家笔下兼职模特的猛男钟馗。一提起他,有的人也许会恍然大悟:他是吃鬼的呀!对,钟馗是吃鬼的。阴间的工作人员经常到阳间出差的,也就是他和黑白无常等少数几个。黑白无常工作内容简单,铁链一抖锁住鬼魂回去就可复命,还赶得上吃工作餐。钟馗就不一样了,他的职责是追捕逃出地狱的鬼魂。常年在外,吃饭就要自己解决,这也就让我们发现了地狱里的秘密:原来,他们是把鬼魂作为食物的。        这时我们再来审视有关孟婆的传说,一个大阴谋的轮廓就逐渐浮现了出来。据传成书于宋代的《玉历宝钞》里记载,孟婆的上班地点是地狱里的最后一站,喝完汤鬼魂们就直接投胎,而到了明清,孟婆的工作单位却换成了鬼魂们刚进地狱时的接待站,为什么呢?这是问题之一。孟婆汤有甘、苦、辛、酸、咸各种不同的味道,为什么要搞出这么多的口味呢?这是问题之二。地狱里有很多刑罚,如油炸、汤煮、热煎、清蒸、咸卤、捣浆等,为什么这些刑罚那么像食品加工程序呢?这是问题之三。将这三个问题一串,再加上地狱里的机构设置,我们不难发现,整个地狱同时就是一个食品加工的流水线:        第一站孟婆,给鬼魂们灌下各种风味的汤,如果有胆敢不喝的,就用钩刀绊住双脚,铜管刺喉强灌,鬼魂们人事不省之时,就是灌汤包初步作成之日,经奈何桥送入下一站。        第二站,十殿阎罗之一秦广王,秦广王处的主要建筑是孽镜台,号称照人善恶,其实乃检查食品的透视机。检验完毕后,包子胚们送入。        第三站,十殿阎罗之二楚江王。楚江王处有若干小地狱,如五叉、铜斧、多铜斧、斫截、剑叶等,这些明显是用在食品切割方面的,切割完成后,包子胚们送入冷库——寒冰地狱保鲜,寒冰地狱前面又有狐狼地狱,作用相当于看守冷库大门的看门狗。等到再从寒冰地狱运出来,包子胚们就要上笼了。牛头马面最常用的是什么兵器?两股叉。它们就用这种餐叉,叉着自己喜欢口味的包子,去其余各殿煎炒烹炸,准备盘中美餐。所以,从古到今流传的地狱惩罚恶行的传说,事实上却是鬼卒们饕餮的盛宴!        很多悲惨的故事都被加上了一个阳光的结尾,为的是让人们保留一点希望,却不管有多少人被这个结尾欺骗。然而现在是二十一世纪,我们企盼着人文奥运,我们学过了三个代表。为了保护大多数人们的利益,不让他们成为地狱里的小吃,我们要掀起这层虚伪的面纱,如果你要下地狱,希望你能听见我们的呼喊:        飞奔吧!灌汤包,跑出地狱,不要让钟馗抓到你。        原来在人间遇到的鬼都是从地狱跑出来的自由战士.钟馗人们还以为他是正义的,结果他不过是地狱来的灵魂终结者,你遇到的鬼可能会吓到你,其实它只是想向你求助或者警告,但可惜阴阳两隔它喝拉孟婆汤已经丧失说话能力,在你面前张牙舞爪只不过是想向你诉说它的悲惨遭遇,而人们不明就里只余恐惧.也不想想他以前也是人为什么要吓你,只是想警告人们不要重倒他的覆辙!所以看到鬼能收留的收留,相貌欠佳的烧点香送送,不用大惊小怪.看到钟馗泼点童子尿或黑狗血什么的.        另外从一个人看贴后的反映就知道这个人死后会受到什么待遇,比如很多人看贴不回,因为看贴不回有各种原因,所以死后味道不同,死后一般会清蒸,这样才能保持不回贴的人的原汁原味.然后就是很多人一个顶字了事,这种人就很懒,一身膘肉也不好吃,所以只开膛破肚取内脏,搞个水煮汤什么的,肉不好吃内脏还是一样的.另外还有就是满嘴脏话的,这种人嘴臭肉也臭,不吃么?不会,这种人一般是油炸,中国几千年的油炸臭豆腐就是这么来得,阳间自然不能油炸人,阴间可以啊,比油炸臭豆腐好吃多拉.还有就是有种人不相信权威,总是唱反调,不同意我以上的资料的,死后一般就是拿铁棍穿起来烧烤,因为烤全人的时候人不会失去意识,只会感觉到疼痛,疼痛使人思想运算飞快(人急生智嘛),便于好好反省自己的错误思想.好好回贴的人一般就聪敏,有思想有道德有品质,到拉阴间小鬼拿不住你把柄,想吃你又想不出什么办法来,剩的费事,把你随便找个角落一丢完事,说不定你还是可以来阳间再混混的。
4    전설중의 소위 황천길 설화 댓글:  조회:3720  추천:0  2012-07-17
传说中的所谓黄泉路   传说中一种喝了可以忘记所有烦恼、所有爱恨情仇的东西,当你离开这个世界去到另一个地方的时候,它被端在孟婆手里,奈何桥前。人生在世,多苦多难,这一碗下去,是种释然,彻彻底底地与前世做了一个了断。那些爱过的人啊,那些放不下的事啊,那些滚滚红尘中的纠葛都会随着“孟婆汤”的入喉,永远凝固于走上奈何 桥上那欲言又止、充盈泪水的黯然一回眸,化做缥缈,淡淡散去。是不舍?还是挥刀割袖的决断?都已经不在重要了;因为——忘了,忘了所有种种。   在《阎王经》中说,鬼魂在各殿受过刑罚后,依序解送至下一殿,最后转押至第十殿,交付给转轮王。第十殿掌管鬼魂投生,凡被送到这里来准备投生的鬼魂,都会先被押到由孟婆神所掌管的醧忘台下灌饮迷汤,让鬼魂们忘却前生。   相传孟婆汤的做法,先取在十殿判定要发往各地做人的鬼魂,再加入采自俗世的药材,调合成如酒一般的汤,分成甘、苦、辛、酸、咸五种口味。凡是预备投生的鬼魂都得饮下孟婆的迷魂汤,如有刁钻狡猾、不肯喝的鬼魂,它的脚底下立刻就会出现钩刀绊住双脚,并有尖锐铜管刺穿喉咙,强迫性的灌下,没有任何鬼魂可以幸免。 相传有一条路叫黄泉路,有一条河叫忘川,河上有一座桥叫奈何桥,走过奈何桥有一个土台叫望乡台,望乡台边有个老妇人在卖孟婆汤,忘川边有一块石头叫三生石,孟婆汤让你忘了一切,三生石记载着你的前世今生,我们走过奈何桥,在望乡台上看最后一眼人间,喝杯忘川水煮。今生有缘无份,又何必强求?   “孟婆汤”是一个中国的古老传说,这在澜子家一本古书上记载着。在那个传说中人是生生世世轮回反复的。这一世的终结不过是下一世的起点。生生世世循环的人无法拥有往世的记忆,只因为每个人在转世投胎之前都会在奈何桥上喝下忘记前程往事的孟婆汤。所以,走在奈何桥上时,是一个人最后拥有今世记忆的时候。这一刻,很多人还执着于前世未了的意愿,却又深深明白这些意愿终将无法实现,就会发出一声长长的叹息。这也是这座连接各世轮回的桥命名为奈何桥的原因。   {鬼门关} 鬼门关:这里是进入鬼国的必经关卡。无论是谁来到这里都必须接受检查,看看是否持有鬼国通行证一一路引。这是人死后到鬼国报到的依据。路引长3尺,宽2尺,是用黄色的软纸印做的,上书“为丰都天予阎罗大帝发给路引和普天下人必备此引,方能到地府转世升天”。同时,路引上面盖有“阴司城隍、丰都县府”三个印章。凡是人死后入殓(1ian)或火化时烧掉它,就会随灵魂来到地府,所到之处才能畅通无阻。   路引一说起源于唐太宗贞观年问。丞相魏征梦斩泾河老龙,唐太宗李世民受到牵连而被阎罗王传讯到了地府,当阎罗王问明情况后,知道李世民是一个贤明的君主,他不但文韬武略,而且安邦定国,创造了唐朝初年的盛世局面即“贞观之治”。于是决定放李世民还阳。临行前,阴天子委托阳天子把鬼国护照“路引”带回阳间,发给善臣善民,使他们死后凭此路引进入鬼国首都——丰都,可以免受地狱众鬼欺凌和刑罚折磨。所以自唐以后,路引就象圣物一样被流传了下来,从无变动。所以这种路引只有好人才能买到,作恶的人是买不到的。以前来丰都旅游的人都要为家里的老人买一份路引回去,以表示自己的孝心。因此,以前丰都城里的路引非常流行,很多人就靠卖路引为生,使得丰都鬼城名声远扬。   鬼门关前为新刻的十六大鬼,传说是阎罗王专门挑选的一批恶鬼来此镇山把关的。他们对劣迹斑斑、恶性未改的亡魂野鬼盘查得格外苛刻、严格,不使一个蒙混过关。这组石刻体现的是鬼城民俗文化的“惩恶扬善”和“善有善报、恶有恶报”的主旨,揭示的是鬼城民俗文化蕴含的丰富的人文精神。它以写实和夸张相结合的手法并按大众审美心理要求塑造鲜明生动的艺术形象,渲染烘托鬼城特有的文化氛围,形象个性突出,神态生动,造型新颖,具有一定的视觉冲击力。   {两岸花} 传说,很久很久以前,城市的边缘开满了大片大片的彼岸花,也就是曼珠沙华。守护彼岸花的是两个妖精,一个花妖叫曼珠,一个是叶妖叫沙华。他们守候了几千年的彼岸花,可是从来没有见过面,因为花开的时候,花开时看不到叶子,有叶子时看不到花,花叶两不相见,生生相错。他们疯狂地想念着彼此,并被这种痛苦折磨着。终于有一天,他们决定违背神的规定偷偷地见一次面。那一年的曼珠沙华红艳艳的花被惹眼的绿色衬托着,开得格外妖冶美丽。神怪罪下来,这也是意料之中的.曼珠和沙华被打入轮回,并被诅咒永远也不能在一起,生生世世在人间受到磨难。从那以后,曼珠沙华又叫做彼岸花,意思是开放在天国的花,花的形状像一只只在向天堂祈祷的手掌,可是再也没有在城市出现过。这种花是开在黄泉路上的,曼珠和沙华每一次转世在黄泉路上闻到彼岸花的香味就能想起前世的自己,然后发誓不分开,在下一世再跌入诅咒的轮回。   {黄泉路}  【黄泉路简介】 黄泉路在中国的神话和宗教典籍中是指人死后到阴曹地府报到时走的路。 【人死后的说法】   在中国,传说人死后,会有阴间的捕快黑白无常来捉拿人的魂魄,把他们带到阴曹地府去接受阴间大法官阎罗王的审判,以决定他们是升天做神仙;或再次投胎做人;还是打入十八层地狱去受苦。人的魂魄到阴间报到要走很长一段路,过很多的关;黄泉路一是对这些关和路程的总称;另一种是专指这一路程中的一段叫黄泉路的路。   有人认为,人的阳寿到了就会死,这是正常的死亡,正常死亡的人首先要过鬼门关,过了这一关人的魂魄就变成了鬼,接下来就是黄泉路,是接引之路。在黄泉路上还有很多孤魂野鬼,他们是那些阳寿未尽而非正常死亡的,他们即不能上天,也不能投胎,更不能到阴间,只能再黄泉路上游荡,等待寿阳到了后才能到阴间报到,听候阎罗王的发落。在黄泉路上有火红的彼岸花。彼岸花是一般认为是生长在三途河边的接引之花。在那儿大批大批的开着这花,远远看上去就像是血所铺成的地毯, 又因其红的似火而被喻为”火照之路” 也是这长长黄泉路上唯一的风景与色彩. 人就踏着这花的指引通向幽冥之狱。花香传说有魔力,能唤起死者生前的记忆。 接下来还要过忘川河,奈何桥,跨过三生石,喝孟婆汤等等。   因此中国人有时称人死了叫赴黄泉。   {奈何桥} 关于此桥,存在两种流行的说法,一种叫做奈河桥,另一种叫做奈何桥。二者有一定的联系,但是有区别。   奈何桥/奈河桥abyss bridge (a Buddhist place); the Bridge of No Return   【奈河桥】   “奈河”,是佛教所说的地狱中的河名。《宣室志》第四卷对此有所记载:“行十余里,至一水,广不数尺,流而西南。观问习,习曰:‘此俗所谓奈河,其源出地府’。观即视,其水皆血,而腥秽不可近。”因河上有桥,故名“奈河桥”。桥险窄光滑,有日游神、夜游神日夜把守。桥下血河里虫蛇满布,波涛翻滚,腥风扑面。恶人鬼魂堕入河中,就好似《西游记》第十回中的描写:“铜蛇铁狗任争餐,永堕奈河无出路”。不由让人想到阴间奈河的恐怖。《西游记》第十一回:判官道:陛下,那叫做奈何桥。若到阳间,切须传。   民间传说:人死亡后魂都要过奈河桥,善者有神佛护佑顺利过桥,恶者被打入血河池受罪。《丰都宗教习俗调查》一书对此有过详细的描写:“……桥分三层(或三座),善人的鬼魂可以安全通过上层的桥,善恶兼半者过中间的桥,恶人的鬼魂过下层的桥,多被鬼拦往桥下的污浊的波涛中,被铜蛇铁狗狂咬。每年香会时,香客争以纸钱或铜板掷入池内,并以炒米撒入池中,以为可以施给饿鬼。许多老年香客,喜欢从上走过,以为走过此桥,死后可以免去过奈河桥之苦。”由此可见,建国前一些善男信女到桥前烧香化纸,施舍钱物的虔诚,只求死后佛能护佑过奈河桥。   [编辑本段]【奈何桥】   相传有一条路叫黄泉路,有一条河叫忘川河,上有一座桥叫奈何桥。走过奈何桥有一个土台叫望乡台,望乡台边有个老妇人在卖孟婆汤,忘川河边有一块石头叫三生石,孟婆汤让你忘了一切,三生石记载着你的前世今生。我们走过奈何桥,在望乡台上看最后一眼人间,喝杯忘川河水煮,“今生有缘无份”又何必强求?   “孟婆汤”是一个中国的古老传说,这在澜子家一本古书上记载着。在那个传说中人是生生世世轮回反复的。这一世的终结不过是下一世的起点。生生世世循环的人无法拥有往世的记忆,只因为每个人在转世投胎之前都会在奈何桥上喝下忘记前程往事的孟婆汤。所以,走在奈何桥上时,是一个人最后拥有今世记忆的时候。这一刻,很多人还执着于前世未了的意愿,却又深深明白这些意愿终将无法实现,就会发出一声长长的叹息。这也是这座连接各世轮回的桥命名为奈何桥的原因。http://baike.baidu.com/view/58459.htm   【三生石的传说】   人死后,走过黄泉路,到了奈何桥,就会看到三生石。它一直立在奈何桥边,张望着红尘中那些准备喝孟婆汤、轮回投胎的人们。   传说三生石能照出人前世的模样。前世的因,今生的果,宿命轮回,缘起缘灭,都重重地刻在了三生石上。   千百年来,它见证了芸芸众生的苦与乐、悲与欢、笑与泪。该了的债,该还的情,三生石前,一笔勾销。   2、【现实中的三生石】   三生石是一块状貌奇钦磊落的巨石,在与飞来峰相连接的莲花峰东麓,是“西湖十六遗迹”之一。该石高约10米,宽2米多,峭拔玲珑。石上刻有“三生石”三个碗口大小的篆书及《唐·圆泽和尚·三生石迹》的碑文,记述“三生石”之由来。石上多唐、宋时的题词石刻,大多已不可辨认,只有元至正元年(1341年)秋九月太史杨瑀、翰林张翥等人的题词仍清晰可见。   缘定三生的故事   师名圆泽,居慧林,与洛京守李源为友,约往蜀山峨嵋礼普贤大士。师欲行斜谷道,源欲沂峡。师不可,源强之,乃行。舟次南浦,见妇人锦裆负婴汲水,师见而泣曰:“吾始不欲行此道者,为是也,彼孕我已三年,今见之不可逃矣,三日浴儿时,顾公临门,我以一笑为信。十二年后,钱唐天竺寺外,当与公相见。”言讫而化。妇既乳儿,源往视之,果笑,寻即回舟。如期至天竺,当中秋月下,闻葛洪井畔有牧儿扣角而歌曰:“三生石上旧精魂,赏月吟风不用论,惭愧情人远相访,些身虽异性常存。”源知是师,乃趋前曰:“泽公健否?”儿曰:“李公真信士也,我与君殊途,切勿相近,唯以勤修勉之。”又歌曰:“身前身后事茫茫,欲话因缘恐断肠,吴越江山寻已遍,欲回烟棹上瞿塘。”遂去,莫如所之。   这真是一个动人的故事。它写朋友的真情、写人的本性、写生命的精魂,历经两世而不改变,读事令人动容。   富家子弟李源,因为父亲在变乱中死去而体悟人生无常,发誓不做官、不娶妻、不吃肉食,把自己的家捐献出来改建惠林寺,并住在寺里修行。寺里的住持圆泽禅师,很会经营寺产,而且很懂音乐,李源和他成了要好的朋友,常常坐着谈心,一谈就是一整天,没有人知道他们在谈什么。   有一天,他们相约共游四川的青城山和峨眉山,李源想走水路从湖北沿江而上,圆泽却主张由陆路取道长安斜谷入川。李源不同意。圆泽只好依他,感叹说:“一个人的命运真是由不得自己呀!”于是一起走水路,到了南浦,船靠在岸边,看到一位穿花缎衣裤的妇人正到河边取水,圆泽看着就流下泪来,对李源说:“我不愿意走水路就是怕见到她呀!”李源吃惊地问他原因,他说:“她姓王,我注定要做她的儿子,因为我不肯来,所以她怀孕三年了还生不下来,现在既然遇到了,就不能再逃避。现在请你用符咒帮我速去投生,三天以后洗澡的时候,请你来王家看我,我以一笑作为证明。十三年后的中秋夜,你来杭州的天竺寺外,我一定来和你见面。”   李源一方面悲痛后悔,一方面为他洗澡更衣,到黄昏的时候,圆泽就死了,河边看见的妇人也随之生产了。三天以后李源去看婴儿,婴儿见到李源果真微笑,李源便把一切告诉王氏,王家便拿钱把圆泽埋葬在山下。李源再也无心去游山,就回到惠林寺,寺里的徒弟才说出圆泽早就写好了遗书。   十三年后,李源从洛阳到杭州西湖天竺寺,去赴圆泽的约会,到寺外忽然听到葛洪川畔传来牧童拍着牛角的歌声:   我是过了三世的昔人的魂魄,赏月吟风的往事早已成为过去;惭愧让你跑这么远来探望我,我的身体虽变了心性却长在。   李源听了,知道是旧人,忍不往问道: “泽公,你还好吗?”牧童说:“李公真守信约,可惜我的俗缘未了,不能和你再亲   近,我们只有努力修行不堕落,将来还有会见面的日子。”随即又唱了一首歌:   身前身后的事情非常渺茫,想说出因缘又怕心情忧伤;   吴越的山川我已经走遍了,再把船头掉转到瞿塘去吧!   牧童掉头而去,从此不知他往那里去了。   再过三年,大臣李德裕启奏皇上,推荐李源是忠臣的儿子又很孝顺,请给予官职。于是皇帝封李源为谏议大夫,但这时的李源早已彻悟,看破了世情,不肯就职,后来在寺里死去,活到八十岁。   --   这个故事歌颂了人生最宝贵的东西——情义。圆泽禅师和李源的故事流传得很广,到了今天,在杭州西湖天竺寺外,还留下一块大石头,据说就是当年他们隔世相会的地方,称为 “三生石”。 【三生石】   人死后,走过黄泉路,到了奈何桥,就会看到三生石。它一直立在奈何桥边,张望着红尘中那些准备喝孟婆汤、轮回投胎的人们。   传说三生石能照出人前世的模样。前世的因,今生的果,宿命轮回,缘起缘灭,都重重地刻在了三生石上。   千百年来,它见证了芸芸众生的苦与乐、悲与欢、笑与泪。该了的债,该还的情,三生石前,一笔勾销。   忘川河  【解释】   ①在中国的神话传说中,人死之后要过鬼门关,经黄泉路,在黄泉路和冥府之间,由忘川河划之为分界。忘川河水呈血黄色,里面尽是不得投胎的孤魂野鬼,虫蛇满布,腥风扑面。   忘川河上有奈何桥,奈何桥边坐着一个老婆婆,她叫孟婆,要过忘川河,必过奈何桥,要过奈何桥,就要喝孟婆汤,不喝孟婆汤,就过不得奈何桥,过不得奈何桥,就不得投生转世。   ②忘川(Lethe) ,希腊神话中不和女神厄里斯(Eris)的女儿和遗忘的化身,又是冥府的河流或平原的名字。   【三途河”与“忘川河”的关系】   传说1.   “三途河”与“忘川河”是同一条河,国外称“三途河”中国谓之“忘川(河)”。   传说2.   “忘川(河)”是汇入“三途河”最长的支流之一。   三途河也叫做“三途川”。传说中,“三途河”是生界与死界的分界线。因为水流会根据死者生前的行为,而分成缓慢、普通和急速三种,故被称为"三途"。   就像生与死只有轮回可以跨越一样,渡过“三途河”的方法也只有一个,那就是“三途河”上的渡船,除此之外别无他法。然而渡船是要付船费的,没有路费的灵魂将不能登上渡船,就算登上了,也会被船夫丢进“三途河”。那些无法渡河的灵魂在轮回欲望的驱使之下,会涉水渡河,但是“三途河”的河水不但没有浮力,而且还具有能够腐蚀灵魂的剧毒。那些下水的灵魂将永远没有上岸的机会了,只能变成“三途河”里的水鬼。永远无法转生的痛苦和彻骨冰冷的河水使那些水鬼对其它还有轮回希望的灵魂产生了妒忌。只要有灵魂落水,他们就会一拥而上,将其拉入河底也变成和他们一样的水鬼。   【孟婆汤】   "相传"有一条路叫黄泉路.有一条河叫忘川.河上有一座桥叫奈何桥.走过奈何桥有一个土台叫望乡台.望乡台边有个老妇人在卖孟婆汤.忘川边有一块石头叫三生石.孟婆汤让你忘了一切.三生石记载着你的前世今生.我们走过奈何桥.在望乡台上看最后一眼人间.喝杯忘川水煮."今生有缘无份"又何必强求?   "孟婆汤"是一个中国的古老传说,这在澜子家一本古书上记载着。在那个传说中人是生生世世轮回反复的。这一世的终结不过是下一世的起点。生生世世循环的人无法拥有往世的记忆,只因为每个人在转世投胎之前都会在奈何桥上喝下忘记前程往事的孟婆汤。所以,走在奈何桥上时,是一个人最后拥有今世记忆的时候。这一刻,很多人还执着于前世未了的意愿,却又深深明白这些意愿终将无法实现,就会发出一声长长的叹息。这也是这座连接各世轮回的桥命名为奈何桥的原因。  
3    조선 민족의 神 댓글:  조회:3460  추천:0  2012-07-15
조선 민족의 神 우리민족의 신에는 일반적으로 가정에서 숭상하는 가택신(家宅神)이 있고, 부락에서 숭상하는 부락신(部落神)이 있으며, 무속에서 숭상하는 무신(巫神)과 그 밖의 잡신 등이 있다. 김태곤에 의하면 가정에서 숭상하는 신으로는 성주신, 조왕신, 문신, 측신, 지신, 업신, 삼신, 제석신, 조상신, 왕신(王神), 정신(井神) 등 11종이 있으며, 마을신에는 136종이 있고, 무신으로는 114종이 있다고 한다. 이밖에 잡신들 까지 모두 합치면 민간신앙에서 숭상되는 신은 모두 273종이나 된다고 한다. 우리민족의 민간신앙에서 숭상하는 주요한 신을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1. 天上界 (1) 천상신(天上神) : 옥황상제(玉皇上帝), 옥황천존(玉皇天尊), 삼신(三神), 삼황신(三皇神), 삼성신(三聖神), 제석신(帝釋神), 삼불제석(三佛帝釋), 한울님, 성주신, 천신(天神), 천왕신(天王神), 천신대신(天神大神), 천신대감신 (天神大監神), 도당천신(都堂天神), 천지대왕신(天地大王神), 천궁호귀(天宮胡鬼) (2) 일신(日神) : 일신(日神), 일광제석(日光帝釋), 일월신(日月神), 일광보살신(日光菩薩神), 자지당신(紫芝堂神), 해애기씨, 일월성신(日月聖神), 일월호귀(日月胡鬼) (3) 월신(月神) : 월신(月神), 월광제석(月光帝釋), 월광보살신(月光菩薩神), 달애기씨 (4) 성신(星神) : 성신(星神), 칠성신(七星神), 남극성, 노성신(老星神), 별애기씨, 노신(老神), 일월성신(日月星神), 일월성군신(日月星君神), 북두칠성신, 문창성(文昌星) 2. 지상계(地上界 ) (1) 시조신(始祖神) : 단군, 기자, 박혁거세, 탈해, 알지, 고주몽, 수로왕 (2) 영웅신(英雄神) : 최영장군, 임경업 장군, 벽돌대감, 군웅대신, 장군신, 충열신(忠列神), 군웅신(軍雄神), 조장군신, 홍 장군신, 양 장군신, 장 장군신, 남이 장군신, 김유신 장군신, 장수신, 군장신(軍將神), 마장신(馬將神), 용장군신(龍將軍神), 백마장군신(白馬將軍神), 득제제장군신(得濟濟將軍神), 용마장군신(龍馬將軍神), 산상조장군신(山上趙將軍神), 천하제일장군신, 지하제일장군신, 관공신(關公神) (3) 왕신(王神) : 대왕신, 태조대왕신(太祖大王神), 단종대왕신, 뒤주대왕신, 강화도령신 (4) 여신(女神):공주신, 칠공주신, 바리공주, 중전마마신, 강씨마마신, 송씨부인신(단종의 폐비), 본궁신(本宮神):최일장군 마누라신, 임경업 장군 각씨신, 임장군 마누라신, 바리데기, 각씨신, 부인신, 애기씨신, 당아씨신 내전신(內殿神) :계면각씨신 (5) 대감신(大監神) :사신신(使臣神), 권대감신(權大監神), 손대감신(孫大監神) (6) 평민신(平民神) : 궁상이신, 도랑선비신, 말명신, 치원대신, 조상신, 맹인신, 양산보신, 의원선생신, 약국선생신, 지관선생신, 상군신(上軍神), 성인선생신, 감찰신, 목수신, 상사신(相思神), 홍아신(紅兒神) (7) 무속신(巫俗神) : 당금애기, 바리데기, 백조 할망, 삼신 할망신, 조왕 할머니, 작도 대신, 대신, 만신 할머니, 대신 마누라, 대신 할머니, 창부신(倡夫神) (8) 토지신(土地神) : 지신(地神), 터주신, 터주대감신, 터대감신, 토신, 토지신, 동신(洞神), 동경도사신(洞境都事神), 후토지신(後土之神), 후토부인신, 주산토지지신(主山土地之神), 당산토지지신(堂山土地之神), 국사당(國師堂), 본향신(本鄕神), 토주신(土主神), 오토지신(五土之神), 토성귀신(土城鬼神), 도신(都神), 제방신(堤防神), 토주관신(土主官神), 곡매기신 (9) 가택신(家宅神) : 성조대감(成造大監), 성조부인, 재복신(財福神), 조왕신(부엌신), 문전신, 업신, 지신, 삼신, 측신(厠神, 뒷간귀신), 마출각씨, 제석씨, 조상신, 왕신(王神, 처녀귀신), 정신, 걸립(乞粒), 문신 (10) 노신(路神) : 노신, 노중지신(路中之神), 거리신(巨里神), 도신(道神), 사신군행신(使神軍行神), 지대군행신(地垈軍行神) (11) 산신(山神) : 산신, 서낭신, 국수신, 신모신(神母神), 성모신(聖母神), 상산신(上山神), 당산신(堂山神), 백산신(白山神), 여산신(女山神), 할미서낭신, 서낭부인신, 도당산신(都堂山神), 도당할머니신, 산천신(山川神), 주산신, 花山神, 산신령, 산천장군신, 산천존신(山天尊神), 당산하르범신, 도성황신(都城隍神), 성황후토지신(城隍後土之神) (12) 석신(石神) : 석신, 암석신, 선돌바우신, 공알바우신 (13) 방위신(方位神) : 오방신장신(五方神將神), 오방장군신(五方將軍神) (14) 화신(火神) : 화신, 화주신, 조왕신, 화덕벼락장군신, 벼락대신, 화정여신(火正黎神) (15) 기타 : 농신(農神), 전횡신(田橫神), 오곡대신(五穀大神), 업주신, 마당신(馬堂神), 마주대신(馬主大神), 수문신(守門神), 木神, 수풀신, 風神, 풍뇌지신(風雷之神), 걸립신, 가뭉신, 탑신, 태세신(太歲神), 불정신(不淨神), 손님, 호구신, 왕신(처녀신), 삼태귀신, 몽달귀신, 영산, 객귀(客鬼), 상문(喪門) 도깨비, 손각씨 3. 지하계(地下界) (1) 명부신(冥府神) : 시왕님, 십왕신, 오구대신, 염라대왕, 사제삼성, 곽곽선생신, 최판관, 지부사천대왕(地府四天大王) (2) 차사신(差使神) : 차사, 강임차사, 일직사자(日直使者), 월직사자, 천황차사, 地皇차사, 人皇차사 4. 해양계(海洋界) (1) 용신(龍神) : 용신, 용왕님, 동해용왕, 서해용왕, 광연왕, 광리왕, 광택왕, 광덕왕, 물국용왕신, 사해용왕신, 사해용신대감신, 사해용신부인신, 龍子神, 용녀부인신, 천용신, 용궁제석신, 용궁불사신(龍宮佛師神), 용궁칠성신, 용궁대신 (2) 수신(水神) : 수신, 용신, 용신할머니, 해신, 정신(井神), 천신(川神), 대천신(大川神), 수구신(水口神), 물 할망, 수령신(水靈神), 수부신(水夫神), 영산대천신(靈山大川神), 영천택지신(靈川澤之神), 미륵신 (3) 풍신(風神) : 풍신, 영등 할망 (4) 기타 : 배서낭 그리스 로마 신화에 빠진 한국인, 과연 우리 토속신은 얼마나 알까. 아마 산신, 도깨비 정도를 넘어가면 궁색해질 것이다. 우리의 신화가 빈약해서가 아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이야기들을 한 줄로 꿰어 엮는 작업이 없었기 때문이다. 고구려 건국설화만 봐도 서양의 신화 못지 않게 극적이다. 해모수가 하백의 딸 유화와 정을 통해 낳은 알에서 나온 인물이 바로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왕이라고 한다. 정상적인 관계에서 잉태된 것도 아니고 또 알이었다니 탄생부터 파란만장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서관이 최근 개발에 들어간 '오방대제와 한국신들의 원형'은 늦게나마 우리 민족의 의식세계에 내재해 있을 상상력을 자극하고 민족 자긍심을 찾아보자는 노력으로 평가할 만하다. 문헌으로, 이야기로 전해오는 토속 신들을 모두 모아 그 신들의 영역과 그들이 지녔던 물건들을 되돌려주고 서열과 계보를 파악하는 작업이다. 우리 민족은 유교.불교 등 외래 종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다 보니 우리의 것에 천착할 기회가 없었다. 기초 작업을 거친 결과 서양 신들의 서열이 역할에 의해 매겨지는 것과 달리 우리 신들은 장소에 의해 정해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예컨대 그리스 신화에서 최고신으로 꼽히는 제우스 신은 은혜로운 비를 내리게 하는 천공(天空)을 신격화한 것이다. 제우스는 하늘을 지배하는 동시에 세계를 통치하는 자였다. 신들과 인간의 아버지인 셈이다. 반면 우리의 최고신인 칠성신은 인간의 목숨을 관장하는 것으로 통하는데 바로 북두칠성을 가리킨다. 조선 숙종 때 완성된 '천상열차 분야지도'가 북두칠성을 중심으로 전개되는데서 힌트를 얻어 칠성신을 최고신으로 잡았다. 칠성신은 그 하위신인 동서남북 네 방위를 지배하는 동방청제. 서방백제. 남방적제. 북방흑제와 함께 오방대제로 불린다. 그리고 상위신이라 하더라도 하위신에게 지시를 내리지는 못한다. 이를테면 칠성신이 동방청제 등에게, 가신(家神)이 변소신에게 이래라 저래라 명령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신들끼리의 관계는 풍속이나 음양오행, 풍수, 민속학 등을 응용하여 개발팀들이 엮어내게 된다. 가설이 개입되는 만큼 신중을 기해야 하고 많은 전문가들의 견해가 반영돼야 한다. 당연히 오방대제들은 집을 관장하는 신과 관계를 맺는다. 서방백제의 경우 부엌을 관장하는 조왕신과는 상충한다. 북방흑제는 이 조왕신과는 대단히 친하나 변소신과는 반목한다. 전통적으로 부엌은 서쪽에 있으면 해가 질 때 햇빛을 지나치게 많이 받아 음식이 쉬 상하기 때문에 대부분 북쪽에 위치하고, 변소는 많은 미생물이 번식하는 곳이므로 부엌과는 멀찍이 떼 놓는 관습에 따른 것이다. 풍수지리학에서 나오는 청룡. 백호. 주작. 현무와 동방청제. 서방백제 등이 일치하는데 주목하고 있다. 그래서 거북과 뱀으로 그려지는 현무를 북방흑제의 탈것으로 해석한다.
2    명당자리 보는 법 댓글:  조회:3847  추천:1  2012-07-15
명당자리 보는 법    풍수학(風水學)의 유래  풍수학은 원래 고대 중국에서 발생했다. 그 오묘한 이치는 동양 철학에 기인한 것이며, 어디까지나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인 진리이기 때문에 역리학의 오묘한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는 풍수학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진나라 시대 대역학자인 주선도(朱仙桃)라는 분이 수산기(水山記)라는 책을 펴냈는데, 이 책에서 명당자리 보는 비법을 밝혔다. 당시 역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은 신빙성이 없다고 믿으려 하지 않았으며 이구동성으로 그를 미친 사람으로 따돌렸다고 한다. 그러나 수산기가 신통하게도 잘 맞아들어가자 시황제는 수산기를 일반에게 공개하지 못하게 했다. 왜나하면 수산기를 인용하여 왕이 나올 만한 명당자리에 일반이 묘를 써 버리면 왕통이 무너질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아예 수산기의 저자 주선도에게 죄를 씌워 죽여 없애 버렸다고 한다. 그후 진나라가 망하고 한나라 시대에 와서 장자방이란 학자가 총오경과청낭정경을 저술했는데 역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세상을 떠났으며, 또한 당나라에 와서도 최성왕이 금낭경을 저술하였는데 이것을 황실에서만 대대로 응용했었다고 한다. 비단 주머니에 금낭경을 넣어두고 역대 황제가 대대로 물려받았기 때문에 일반에게는 그다지 널리 알려지짖 않았다. 그런데 당나라 황제가 만약 민간 중에서 왕이 태어난다면 구족을 멸하리라는 명령을 내렸던 것이 오히려 일반의 호기심을 자아내지 않았을까. 결국 당나라 말기부터는 도학자들이 목숨을 내놓고 금낭경을 연구하고 또 자기 나름대로의 풍수학을 정리하여 전파하게 되니, 그때부터 일반 대중도 널리 알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는 삼국 시대에 럭리학이 널리 전파되었다 하며, 이때부터 풍수학자들이 많이 생겨나 궁궐터 성곽,혹은 가옥 묘지에 대한 비결을 저술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와 같이 풍수학설에 관한 연구가 활발해지자 일본에서도 그 지상(地相)의 비결을 신통히 여기게 되었으며, 이 땅을 강점했을 때는 13명의 역리학자를 차출하여 소위 13인 위원회를 조직하고 이땅의 명당자리의 혈맥을 끊어버렸는데, 예를 들어 명산이라면 그 명산 허리를 끊어 신작로를 낸다든가, 너무 험준하여 지맥이나 산맥을 끊을수 없으면 철봉을 수없이 박아 산의 혈맥을 끊는 등 잔인 포학한 행동을 서슴치 않았던 것이다.   용어해설   현무(玄武) : 산의 정상을 뜻한다. 방향은 북쪽   백호(白虎) : 방향이 오른쪽.   청룡(靑龍) : 왼쪽. 좌청룡 우백호라고 하는 지형의 한 형태를 말한다.   재혈난(裁穴難) : 산기운이 뭉처있는 지점. 매우 찾기 어려운 지점으로, 이곳만 제대로 찾아 묘지를 마련하면 자손에게 음덕이 있다고 한다.   주작(朱雀) : 이 지점은 산들이 병풍처럼 빙 둘러쳐져 있어 바람을 막는 그 밑부분의 중심부로 이 주작을 가로 질러 물이 을러가야 산기운이 재혈에 뭉쳐 있게 마련이라 한다.   물(水) : 병풍처럼 들러쳐져 있는 산의 밑부분, 즉 산기운이 뭉쳐 멎을 수 있게 물이 흐르거나 고여 있는 곳을 말한다.   석산(石山) : 흙이라고는 별로 없고 거의 암석으로 된 산을 말하는데, 이런 곳에 묘를 쓰면 집안이 망한다. 지기(地氣)란 흙을 통해서 흐르게 마련인데, 흙이 없으므로 흐르지 못하고 흐르지 않으니 융합하지 못한다. 돌과 뼈가 불편하게 융합되면 가운은 쇠한다.   과산(過山) : 산맥이 멈추지 않고 뻗어 있는 산을 과산이라 한다. 지기는 본래 산세가 멈추는 곳에 뭉쳐 있게 마련인데, 산세가 뻗어 있으니 지기가 멈출리가 없다. 이런 산에 묘를 쓰면 패가 망신한다고 한다.   독산(獨山) : 산맥이 이어져 다른 산이 여럿 어울려 있지 않고 홀로 서 있는 산을 말한다. 이런 산은 지기가 면면히 흘러 뭉치지 않고 지기 자체도 생겨나지 않아 산으로 적합하지 않다. 이런데 산소를 쓰면 자손이 끊겨 망한다. 지기는 후강전응(뒤는 언덕,앞은 물)하고 중산환합(무리를 이은 산이 둘러쌈) 하는곳에 뭉쳐 있는데 홀로 있는 산은 지기가 있을리 없다는 것이다.   동산(童山) 초목이 없는 황폐한 산을 말한다. 이런 산에서는 음양이 화합하지 않으니 지기가 생겨나지 않는 법이다. 이런 황폐한 산에 묘지를 쓰년 집안이 빈곤하고 생계가 대대로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이 세상 모든 일이 음양 조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산이 있는곳에 물이 있어야 하고 흙이 있는 곳에는 초목이 있게 마련인데, 그렇지 못하니 산기운이 지기(地氣)가 없고 그러므로 묘자리로 마땅치 않은곳이다. 다시 말하면 산맥의 발원지를 찾아야 한고, 태(胎).정(定).순(順).강(强).포(包).장(藏)등 6가지의 체가 순서대로 있는가를 살펴야 한다. 그리고 수구(水口)는, 들어오는 것은 보여도 출구(出口)는 보이지 않아야 한다. 아울러 산세는 다시 말하자면 병풍을 두른 것처럼 조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음택(陰宅) : 묘지를 뜻함. 산 사람은 양(陽)으로, 죽은 사람은 음(陰)으로 통한다. 그러므로 죽은 사람의 집, 묘지.   양기(陽基) : 산 사람의 집 또는 도성(都城).읍촌(邑村)을 말함.   용(龍) : 땅의 기복(起伏)을 뜻한다. 말하자면 산맥의 기복이 용과 같다고 하는 데서 비롯된 말.   맥(脈) 혹은 절(節) 지맥이나 산맥의 기복을 용이라 한다면 용신(龍身)에는 음양의 생기가 흘러야 하는 것이다. 이 음양의 생기는 사람의 몸에서 피가 도는 것과 같은데, 이 생기가 흐르는 곳을 맥이라 한다. 이 맥이 일기일복(一起一伏)하고 좌절우곡(左折右曲)하는 것을 목간(木幹)이라고도 한다. 또 가지가 뻗어 나간 것을 절(節)이라 한다.   혈(穴) 용맥(龍脈)중에서 생기가 뭉쳐 있는 곳이다. 즉 정기(精氣)가 있는 곳. 이곳을 혈이라 한다. 침구학에서 사람의 어느 부분을 찾아 침을 놓는 곳을 혈이라 하는 것과 같이 산세에서도 그런 혈이 있다.   사(砂) : 혈(穴) 주위의 형세를 뜻한다. 이것은 지상술(地相術)이 전해 내려오면서 사(砂)라고 부른다.   국(局) : 혈과 사를 합쳐 양기냐 아니면 음택이냐 하는 것을 국이라 하는데, 음택국이니 양기국(陽基局)이니 하는 것이다.   내룡(來龍) : 일국(一局).일혈(一穴)에 이르는 용맥에 붙인 이름으로 맥이 혈에 들어가려는 곳을 말한다.   조산.종산(祖山.宗山) 넓은 의미로 내룡(來龍)중 그 혈에서 가장 멀고 높은 산을 조산(祖山)이라 하고, 가깝고 높은 산을 종산(宗山)이라 한다.   주산.후산(主山.後山) 내룡맥절(來龍脈節)중 혈 뒤에 높이 솟아난 산으로 대개 마을이나 묘지뒤에 있는 산을 뜻하며, 이런 산 밑에 마을이 있으면 마을을 진호(鎭護)한다는 의미에서 진산(鎭山)이라고 부른다.   입수(入首) 좁은 의미에서 내룡의 혈중(穴中)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것을 입수(入首)라 한다. 혈.국을 용두(龍頭)가 들어간 곳으로 보는 것이니까, 이 용두가 마침내 들어가려고 하는 곳을 입수라 한다.   두뇌(頭腦) 입수와 혈과의 접합점(接合點)에서 좀 높게 솟아난 곳을 말하는데, 마치 용의 이마에 해당한다고 하여 두뇌라 한다.   성.사성(城.砂城) 두뇌(頭腦)에서 소맥(小脈)이 일어나 혈 주위로 둘러 쳐진 것을 말한다.   청룡.백호(靑龍.白虎) 혈이 남면(南面)한 곳이라면 혈 뒤의 내맥(來脈)에서 나와 혈 동쪽으로 두르고 혈 앞을 지나 혈 서쪽에서 그치는 산맥을 청룡(靑龍)이라 한다. 또, 혈 뒤 내맥에서 나와 혈 서쪽을 돌아 혈앞을 동쪽으로 뻗어 끝어 끝난 산맥을 백호(白虎)라 한다. 청룡.백호는 수호신(守護神)인 사신(四神 : 청룡,백호,주작,현무)중 그 동쪽과 서쪽을 호위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좌청룡.우백호라 하는 것도 그 방위(方位)를 정하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명당(明堂) 이것은 혈의 앞(묘지)인 경우에는 무덤 앞, 집터인 경우에는 주건물(主建物) 앞에 해당되는 땅으로 청룡.백호에 둘러싸인 곳을 말한다. 명당에는 내명당(內明堂)과 외명당(外明堂)이 있는데, 내명당은 혈 바로 앞 평평한 곳을 말하며 "묘지에서는 묘판(墓板)이라는 곳이며, 집터인 양기(陽基)에 있어서는 주건물(主建物)의 앞뜰", 이 내명당에서 앞으로 좀 넓고 광대한 평지는 외명당이라 나누어 부른다. 이 명당이라고 하는 명칭은, 천자(天子)가 군신(群臣)의 배하(拜賀)를 받던 곳을 명당이라고 한 데서 비롯된 말이다.   득.수구(得.水口) 혈 또는 내명당의 양쪽에서, 또는 청룡.백호 사이에서 시작되어 흐르는 물의 발원처 (發源處)를 득(得)이라 하고, 그 물줄기가 그 용호(龍虎)와 서로 껴안는 사이를 흐르는 곳을 파(破) 또는 수구(水口)라 한다.   지현(之玄) 내룡이 바로 입수로 옮겨지려 하는데 그 맥형(脈形)이 가지(之)자와 같거나 검을 현(玄)자와 같이 굴곡되어 뻗어 온 곳을 말한다.   미사(眉砂) 입수에서 두뇌를 거쳐 혈로 옮겨지는 조금 긴 둔덕 또는 판막상(辦膜狀)을 이룬 곳을 말한다. 그 모양에 따라 아미사(蛾眉砂).월미사(月眉砂).팔자미사(八字眉砂)등이 있다.   안산(案山) 혈 앞에 사의 일종으로 좀 낮은 산을 말한다. 혈의 의안(倚案)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조산.대산(朝山.對山) 혈 앞 사의 일종으로, 안산에 비해서 높고 큰 산. 마치 빈객(賓客)이 주인에게 절하는 것과 같고 신하가 임금에게 읍하는 것과 같으며, 자식이 부모를 받드는 것과 같고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과 같이 혈에 대하여 조공(朝供)하는 것과 같은 산을 말한다.   오성(五星) 산의 모양을 성(星).요(曜)로 부르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산형(山形)을 오행(五行)에 배(配)할 때, 또는 구성(九星).구요(九曜)에 배할 때 붙이는 이름으로 목성(木星) 의산이란 산형이 목형(木形).목체(木體)를 이룬 것을 말하며, 금성(金星)의 산이란 산의 형태가 금체(金體)에 흡사한 산을 말한다. 이것을 성(星)이라 부르는 까닭에 오행(五行)이 하늘에 있어서는 상(象)을 이루고, 땅에 있어서는 형(形) 을 이룬다는 천지상형(天地象形)의 상응(相應)하는 원리를 따른 것이다.   목성(木星)의 산 : 나무가 바로 선 것과 같이 솟은 산.   화성(火星)의 산 : 불길처럼 뾰쪽하게 속은 산.   토성(土星)의 산 : 평편하고 벽돌 같은 산.   수성(水星)의 산 : 꾸불꾸불하여 움직이는 물결과 같이 뻗은 산.   금성(金星)의 산 : 산마루는 둥글고 아래는 넓어 마치 종을 엎어 놓은 것과 같은 산. 조종산(祖宗山)   구성(九星) 오성(五星)의 정형(正形)에서 변형된것을 구성 또는 구요(九曜)의 산이라 한다. 구성은 빈랑(貧狼:木星의 變體), 거문(巨門:土星의 變體), 녹존(祿存:土星의 變體), 문곡(文曲:水星의 變體), 염정(廉貞:火星의 變體), 무곡(武曲:金星의 變體), 파군(破軍:金星의 變體), 좌보(左輔:金星의 變體), 우필(右弼:金星의 變體),등 오성의 정체(正體)에서 변형된것으로 아홉가지가 있다.(太陽.太陰.金水.紫氣.天財.天是.孤曜.燥士)   낙산(樂山) 산룡(山龍)이 혈을 맞을때는 반드시 이에 의지할 침락(枕樂)이 필요하다. 이 침락을 낙산이라 하는데 혈의 위에 있다는 것이다.   간룡.심룡(看龍.尋龍) 산맥의 내왕(來往)을 답사하고 그 진위(眞僞)와 생사(生死)를 보는 것을 간룡 또는 심룡이라 한다.   형세(形勢) 용의 혈을 맞을 때 내면적으로 생기가 내려와 머물고 융결한 곳을 찾으려면 산국의 형세를 살피고 호위.제사(諸砂)가 구비되었는가를 알려면 외면적 산형(山形)을 보고 혈을 정한다.   좌향(坐向) 혈의 중심,집처인 경우는 주옥(主屋)을 세우는 곳,음택(陰宅)인 경우는 널(棺)을 묻는 곳을 좌(坐)라 하며, 이좌가 정면하는 방위를 향(向)이라 한다. 이 좌향은 일직선상에 있고, 이것을 정하는 데는 내명당의 중앙에 자석을 놓고 자침의 회전축과 좌를 연결한 직선이 갑방위(甲方位:보통 24방위를 쓴다.)의 우로 뻗을 때는 좌(坐)를 갑좌라 부르고 ,이 선의 연장선이 반대축의 을방위(乙方位)로 뻗을때는 을향이라 부른다. 다시 말하면 자좌오향(子坐午向)이란 좌가 정북방에 있고 그 향(向)이 정남방을 향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정북(正北)은 24방위의 자(子)에 해당하고 정면은 오(午)에 해당한다. 풍수에 있어서는 동서남북의 명칭을 四卦,八干,十二支를 결합해서 사용한다.   용론(龍論) 용이란 산맥 즉 지맥을 말하는 것으로 왼쪽으로 뻗어 내린 산밑을 좌선룡(左旋龍)이라 하고 오른쪽으로 뻗어 내린 산맥을 우선룡(右旋龍)이라 한다. 곧게 내린 산맥을 직룡이라 하며, 살같이 달리는 듯한 산맥을 직룡이라 한다. 뻗어 나가는 산맥이 방향을 바꾸어 돌아가는 맥로(脈路)를 회룡(回龍)이라 하며, 야산 지대에 순순히 뻗어나간 산맥을 순룡(順龍)이라 한다. 달리는 방향에서 다시 솟구처 되돌아 반대방향으로 뻗어나간 산맥을 역룡(逆龍)이라 한다. 이 모든 행룡에 있어서는 어느 용이든 시발점이 있으니 이것을 가리켜 조산(祖山)이라 한다. 시조가 있기에 분맥이 있는 것이니 길게 뻗어 간 장룡(長龍), 짧게 끌고온 단룡(短龍), 서리서리 뭉쳐온 반룡(盤龍) 혹은 숨고 혹은 크고 작은, 혹은 솟아오르고 엎드리며, 혹은 넓고 얕으며,혹은 구부리고 끊어저 있다. 용이란 어느 낙맥(落脈)을 막론하고 조산, 즉 주산 낙맥을 중심으로 출맥하여 어떤 것은 일어서고,열리고 닫히며, 넓고 좁아 천 가지 만 가지의 기복이 수려하며, 그 생김이 살찌고 원만하며 끝이 단정하여 음양이 분명해야만 진룡진혈(眞龍眞穴)이라 이른다.   사세통설(四勢統說) 사세(四勢)란 주작,현무,청룡,백호를 말한다. 주작이라함은 앞에있는 안산(案山)을 말하며, 안산은 공작이 날개를 펴고 춤을 추는 듯 감돌아 있어 주객(主客)이 상대함에 다정한 모양으로 되어 있음을 필요로 한다. 이에 반하여 안산이 등을 지고 승거(勝去)의 형상이면 불미하다. 현무라 함은 뒤에 따라온 산맥을 말함이니,현무는 머리가 곧고 얕게 굽어져 관기 정통한 형상을 필요로 한다. 이에 반하여 용공이 기복 없는 형상이면 불가한 것이다. 만약 무현무(無玄武)라면 후백이 풍부함을 필요로 하며 높이 쌓인 것이 혈에서 한층 더 넓으면 실로 좋다고 하겠다. 백호란 오른쪽으로 솟구쳐 감돈 산을 말함이니, 산세가 치닫지 않는 형상으로 순순히 엎드려 혈을 호위하는 듯한 형국을 필요로 한다. 이에 반하여 난폭한 형상과 도주하는 모양은 좋지 않다. 청룡,백호는 이중 삼중 겹겹이 둘러 있음을 더욱더 필요로 한다. 청룡이란 좌편에 둘러싸인 산세를 말함이니 청룡은 겹겹이 꿈틀꿈틀 굽어 감도는 듯 혈을 감싸 호위하는 듯한 형국을 필요로 한다. 이에 반하여 곧장 내려가거나 반궁(反弓) 형상을 이루게 되면 가히 쓰지 못하는 것이다.    나성정설(羅星定說) 나성(羅星)이란 동서남북 주위에 솟아 있는 산을 말한다. 옛날 도시에 비하면 성곽과 같은 것이다. 부족함 없이 사방의 산이 높고 혹은 얕게 둘러 있음을 말함이니, 성곽이 곳에 따라 문이 있듯 나성에는 물이 들어오고 어느 쪽으로는 물이 나가는 수구(水口)도 있다.   조안정설(朝案定說) 부조안(夫朝案)은 혈 앞에 있는 산을 말한다. 앞에 있는 산을 일러 안산이라 하며,안산 뒤에 있는 산을 일러 조산이라 한다. 안산이 있으면 앞이 허하지 않고 수습이 되며, 주밀하여 사방이 단아하게 보이면 가히 좋다고 할수있다. 조산이 있은즉 더욱 당국(當局)이 빛을 발하니 조산과 안산을 겸비한, 가히 격을 갖춘 산이라 하겠다. 간혹 조산은 있으나 안산이 없고, 안산은 있으나 조산이 없는 땅도 있으나, 크게 구애될 필요는 없다.   영통설(靈統說) 사령(四靈)이란 관.귀.이.요(官.鬼.산신이.曜)을 말한다. 이요는 보이니 숨어 있지 못하고 관귀는 마땅히 숨어 있어서 나타나지 아니한다. 안산 배후에 있는 봉우리를 관(官)이라 이름하여 관의 형국이 돌려 보이는 회두(回頭)가 혈을 바로 비춰주는 듯한 상을 조혈(照穴)상이라 한다. 만약 득혈(得穴)에 관봉(官峰)이 없다면 좋은 자리가 못되는 것이다. 주산(主山)의 배후에 있는 봉우리를 일러 귀(鬼)라 한다. 귀상(鬼相)이 배후에 있되 봉우리 하나로 단정히 있음을 요하며 크게 솟아 있으면 역시 불미한 것이다. 암석(岩石)의 작은 산이 수구 중간 주변에 있는 것을 이(산신이)라 한다. 이봉(이峰)이란 항상 유정하여 서로 바라보는 듯한 형상을 필요로 하며 이 가 없으면 불영(不榮)한 땅이라 하겠다. 소산암석(小山岩石)이 청룡백호 밖에 없는 것을 요(曜)라 한다. 요란 서로 뜻이 있어 바라보는 듯한 형국을 필요로 하며, 혹 요봉암석이 없으면 그 혈지(穴地)는 오래 가지 못한다.   논오성정형(論五星正形) 金,木,水,火,土의 다섯 가지 산이 있는데 그 형국에 있어서는 청아하고 둥글게 생긴 형체를 이루되 금산체(金山體)라 하며 머리가 약간 둥글게, 그 체형이 헌출하게 솟은 형국을 목산(木山),줄기차게 봉우리마다 파도처럼 나가다 머무르는 듯한 곡형(曲形)을 수산(水山), 산머리가 뾰쪽 솟아 충천(沖天)하는 듯한 형국을 화산(火山),사면이 후중(厚重) 하는 평평한 형체를 토산(土山)이라 하는것이다. 행룡 낙맥(行龍落脈)에 있어 오성(五星)에 천변만화 하는 양상이 혹은 상극으로 결혈 (結穴)되어 있음을 ㅇ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잘못 판단할 우려가 있다.   금산(金山) 金은 맑고 부드러워 산형 역시 밝고 바르다. 그러므로 金星의 형체를 태양(太陽)이라 하며 나지막이 솟은 형체를 일러 태음(太陰) 이라 한다. 금성이 가지는 행룡낙맥(行龍落脈)에 있어서 많이 모이는 혈처(穴處)가 대개 봉(鳳)이 춤을 추듯,새가 나는 듯한 봉무 비도(鳳舞飛島)의 형국이다. 옛글에 "金星形體에 結穴處가 多生高形 혹은 娥眉之形 혹은 愧凸之形에 結穴 됨도 金星만이 갖는 자연의 이치다."하였다.   목산(木山) 木星은 청수하면 높이 솟아 있어 겉으로는 강하고 안으로는 유하며, 마디마디가 결혈됨이 삼정혈(三停穴),통소형,일자목형,인형등에 낙맥되는 수가 많다. 발복(發福)에 있어서는 반드시 대귀(大貴)한 준걸(俊傑)이 나타나는 것이며 가히 장목성의진득(眞得)이라 한다.   수산(水山) 水星은 형체가 유하게 굴곡하며 그 성(性)이 다변하여 바른 모양이 적고 그 형국이 굽음이 많아 행룡 낙맥에 있어서 용사(龍蛇)와 같은 결혈이 많으며 혹은 曲流之處 나 洋洋曲水에 낙혈됨이 있다. 혈처는 平地連脈에 가장 많으며, 그 氣가 은은하여 형체를 식별하기 어려우므로 세심히 요찰해야 한다.   화산(火山) 火形은 항상 위 끝이 好動하므로 祖宗의 산체가 높이 솟아 하늘을 찌르는 듯한 형세로 밑으로 곱게 깔렸고, 형국이 비겸지류(남비비鎌之類)와 같아야 결혈처가 있느것이다. 체형이 수려하며 龍穴得局은 極品之地라 하겠다.   대산(大山) 토형은 평평하여그 형체가 순우(純厚)하며 행룡 낙맥이 있어서는 [冕流,玉屛,金書,誥軸]이다. 이와 같은 형국에 결혈이 되며 혹은 각첨(角尖)의 유형에도 결혈이 되는 수가 있다. 혈처가 높이 있어서 진혈(眞穴)로 득지(得地)한다면 발음(發音)이 대개 청규하게 되고, 얕고도 작은 자리는 목민(牧民)의 관이 연출하고 토성이 이어 나갔으면 반드시 부국(富局)이라 하겠다.   용신결혈상생(龍身結穴相生) 오성의 변화가 주산(主山)으로부터 결혈처까지 기복의 마디마디에 상생(相生)하여 결지(結地)되어 있다. 반드시 부귀의 땅이요, 충효 예의의 자손이 속출하는 대지이다.   용신결혈상극(龍身結穴相剋) 오성.용신이 주산으로부터 마디마디 상극되어 결혈되었으므로 반드시 재흉 환래하여 패가 망신하게된다. 자손 중 불충;.불효.불의의 사람이 생기니 이른바 패망의 땅이라 하겠다.   번화룡(번花龍) 행룡맥낙(行龍脈落)의 세가 거의 양편으로 가지를 놓고 달리는 것이 보통 산맥의 형태이다. 이것을 일컬어 용이 갖춘 귀족(貴足)이라 하며, 지네 발이라고도 한다. 번화룡(번花龍)이란 내룡(來龍)의 지각(枝脚)이 순하게 뻗지 않고 역으로 뻗어 있음을 말한다. 용신을 호위하지 않고 역폭한 형체를 말하는 것이다. 이런 형국에 재혈을 하면 패망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겁살룡(劫殺龍) 행룡의 변화가 심하여 오행을 분별치 못하게 상생상극하며,가다가 정맥을 이탈하여 산만 불수하며 겁맥탈기(劫脈奪氣)한 용신을 겁살룡이하 한다. 가히 대흉 대패의 땅이라 하겠다.   원진수도(元辰水圖) 원진자(元辰者)는 혈암의 득수(得水)가 곧게 흘러나가는 것을 말한다. 수직직거(水直直去),수직무란(水直無亂) 등의 수로를 말하게 된다. 흔히 말하는 당문파(黨門破)라는 것이 이것이다. 속패(速敗),속망(速亡)하는 충격의 혈지(穴地)이다. 단 원진자라도 앞에 산이나 물을 얻어 산수가 만전횡란(灣轉橫蘭)하게 돌아 있다면 초년의 발음(發陰)이 없다. 또한 복기낙룡 입좌(伏起落龍入坐)의 격은 갖추어져 있으되 오직 물한줄기에 실격으로 결점이 있다면 인위작(人爲作)이라 축항제돈(築항諸墩)하여 재혈한다면 격을 갖추게 되므로 대지가 되는 수가 많다. 여기에 산천 변화의 이(理)가 생하며 오행 변화의 화(化)가 있는 것이다.   반도수도(反跳水圖) 형체가 미묘하고 삼방(三方)이 주밀하여 형국은 되었다 하더라도 흐르는 물줄기가 혈처를 배반도사(背反跳斜)하여 흘러 간다면 천어(千語) 호평이 일언의 가치가 되지 않는다. 장후(葬後)반드시 속성 패산(敗産)의 땅이요 분산패주(敗走)하게 되니 음양의 산수 배합의 법이 아주 중요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반포수도(反抱水圖) 수법(水法)에 있어 반포수는 간혹 있는 땅이다. 흔치 않으므로 혹은 만궁지형(灣弓之形)의 반대쪽에 있으나 때로는 홍국(洪局)으로 보는 데에도 있을수 있다. 반포수에 결혈이 되어 있다면 초년에는 약간 반복되지만 반드시 바뀌어 쇠망하게 되므로 역시 패망의 땅이다.   백룡도(白龍圖) 내롱이 겹겹 개장(開帳)하며 개자중압(個子中押)하여 수려하고 단아하게 결렬됨을 말한다.   생룡지도(生龍之圖) 용형의 변화가 망측하여 생룡됨이 사생으로 호술되어 횡룡(橫龍)이건 순룡(順龍)이건 회룡(廻龍)이건간에 용필(龍必) 요속기(要束氣) 진국(眞局)으로 되어 이기(理氣).생왕(生旺)하여 결렬되어 있음을 말한다. 어김없이 대발.대부.대귀(大發.大富.大貴)의 땅이라 하겠다.   명당(明堂)은 과연 있을까? 풍수설의 근본은 음양오행 사상에 어버이의 유해를 평안히 모시려는 효도의 사상이 합쳐서 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모하게도 우리 나라에선 부귀와 영화를 누리기 위한 방편으로 탈바꿈되어 버렸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참으로 조상을 위한 마음에서 죽은 이의 영생댁(永生宅)이 되는 묘소를 풍광좋고 풍치 좋으며 조용하고 양지바른 곳을 선택해야 한다는 효심으로, 또한 그만한 자리, 즉 풍광 좋고 풍치 좋으며 조용하고 양지바른 곳을 찾으면 그것이 바로 명당이 아닌가 싶다. 물론 역리학(易理學)이나 지상을 떠난 막연한 이치요 순수한 효심의 발로지만, 그러나 어떤 학술적인 이론도 그 근본은 똑같은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명당자리는 타산적이 아닌, 참으로 조상을 위한 효양의 마음자세에서 찾고 또한 모셔야 한다는 것이다. 추호라도 타산과 이기심을 앞세워 조상을 명당자리에 모심으로써 부귀와 영화를 누리겠다는, 다시 말해서 조상의 "뼈를 팔아 먹겠다"는 모순된 자세는 고쳐야 한다. 그리고 순후한 효심에서 명당자리를 찾으면 하늘도 그 효심에 감동하여 계시할 것이다. 그러므로 명당자리를 밖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먼저 그 마음 속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명당자리는 왜 음덕(陰德)이 있을까? 여기서 음덕이라 함은 땅의 덕을 말한다. 사함이 땅의 덕을 본다? 사실 그렇다. 사람은 조상한테 피와 살을 받아 태어날때 자연 지기(地氣)도 유전받게 마련이라 한다.. 이 지기의 유전이 바로 사람 몸을 형성한 뼈인데 뼈는 바로 지기와 통하여 이 뼈가 명당자리, 즉 산기가 뭉쳐있는 곳에 묻히면 저절로 후손들이 부귀와 영화의 음덕을 보게 되는 것으로, 이 지기의 이기(理氣)가 결국은 뼈와 혼합되어 유전의 법칙을 이루므로 산기가 뭉쳐 있는 자리는 반드시 사람이 드러누울 수 있을 정도로 산기의 뭉침이 있게 된다는 것이다. 명당자리란 그 재혈만 찾으면 자손이 부귀영화를 누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명당자리라고 하더라도 청룡이 없거나 두드러지지 않으면 자손이 없어 가운이 끊기는 법이다. 백호가 없거나 두드러지지 않으면 재물이 없어 가운이 가난을 면치 못한다. 또 앞에 주작의 부분을 둘러 막는 물줄기가 없으면 재물과 자손이 없는 법이라 좋지않다. 주작의 앞에 있는 불이 세차게 흐르지 않고 잔잔하며, 유유히 흐르고 물소리가 종용하면 자손이 관운을 받아 영화를 얻으며, 가운이 대대로 평온하고 화목하는 법이다. 이와 반대로 물소리가 슬프고 세차게 들리거나 물살이 빠르면 집안에 우환이 그치지 않아 멸망할 기운이 있어 결국 그 가문은 망하고 만다는 것이다.  명당자리의 토질(土質) 산세가 한데 모이고 앞에 물을 만나 지기(地氣)를 멈추게 하는 것이 명당자리라 했다. 꼭사람이 누울수 있을 만한 너비에 봉분이 있는 곳이라고 했다. 이런 곳이 명당자리 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도 명당자리가 되려면 토질을 갖추어야 한다. 바윗덩어리에도 사람이 누울수 있을 만큼 흙이 있어 그 흙만 긁어내면 바로 관이 누울수 있다면 명당자리로 손색이 없다.   좋은 토질이란? 토질에서 오색이 영롱해야 한다 관 넣을 자리를 팔때 흑 빛이 黃,黑,白,赤,靑이 고루 섞인 흙에서 서기가 비쳐 나올 듯이 윤택해야 한다. 습기가 많지 않아야 한다. 습기가 많으면 관운이 없다 물론 가믐에 타격을 주는 흉액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흙이 굳어야 한다. 푸석푸석하면 자손이 번성하지 못하고 또 크레 출세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큰 문제가 생길 그런 액운이 있는것은 아니라고 한다. 관을 넣을 자리에 물줄기가 있으면 집안에 액운이 그치지 않는다. 그물줄기를 둘려야 한다. 관을 넣을 곳에 돌반석이 있으면 자손이 끊긴다. 그 돌반석에 관을 얹어 놓을 때는 흙이 중간에 끼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묘지의 풍치림(風致林) 명당자리를 골라 묘를 썼으면 풍치를 돋울 나무를 묘지 주변에 심어야 한다. 묘지는 집과 연결된 곳이다. 산 사람의 집과 같아서 집을 풍치있게 꾸미려면 정원을 마련하여 가꾸듯 죽은 사람의 집(묘짐)도 풍치있게 가꾸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정원에 꽃과 나무를 심듯 묘지 주위에도 꽃과 나무를 심어야 한다. 그러나 반드시 묘지로부터 10미터 밖에 심는다. 집에서도 나무 뿌리가 구들장 밑에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와 같이 묘지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무 뿌리가 묘지로 파고들면 좋지 않다고 한다. 또한 10미터 밖에 심더리도 뿌리가 길게 뻗지 않는 종류로 사철 나무나 상록수가 좋을 듯하다 물론 아카시아 따위의 나무는 뿌리가 길게 뻗기 때문에 묘지 주위에서 뽑아 버려야한다. 뿌리가 길게 뻗  지 않는 꽃나무는 어떤 종류든 심어 놓으면 죽은 이를 오래도록 즐겁게 할수 있을 것이다.       명당자리의 풀이비결 인걸은 지령(人傑地靈)이란 말이 있다. 잘난 사람도 나오고 못난 사람도 나오는 것은 모두가 산천의 수려한 기상과 둔탁한 기상에 의한 것이라는 애기이다. 산이 높고 물이 깊고 들이 넓으면 너그럽고 도량이 넓고 큰사람이 나오며, 산과 물이 좁아 협작하면 소견이 좁으며, 산이 험악하고 물이 탁하면 험하고 표독한 사람이 나오며, 산이 높고 물이 맑으면 그 동네가 윤택하여 부자가 많으며, 산천이 맑고 수려하면 얼굴조차 아름다운 법이다. 천을태을(天乙太乙)의 뾰족한 산이 구름 밖에 솟구쳐 있으면 벼슬이 법관에 오르고, 물러가는 문구멍을 짐승과 새 무습을 한 형국에 산과 바위가 감아 주면 한림학사가 나오는 법이요, 산 형국이 왼편에는 깃발이 날리는 듯하고 오른편에는 북이 울리듯 솟아 있으면 대장, 장신이 나올 자리요, 산세가 뒤에는 병풍을 친 듯하고 앞에는 장을 두어 막아주면 재상과 문신이 나올 땅이다. 작은 산이 위에는 뾰족하며 아래가 둥그스름한 형상을 은병(銀甁)이라 한다. 이쯤 되면 석숭(石崇)같은  부자가 생겨나고, 산이 구부러져서 높고 낮음 없이 껴안은 것을 옥막형(玉幕形)이라 하는바 배도(裵度)같이 귀하게 되는 명재상이 나올 땅이다.     상형세가 초승달처럼 가느다랗게 미인의 눈썹인 듯한 모양은 아미산(蛾眉山)이라 이르는데, 산형세가 이  쯤 되면 딸이 귀하게 되어 왕후 아니면 귀비가 나올 땅이요, 천마의 형국이 남방에 위치하여 머리가 번쩍 들리고 몸통은 약간 낮아 평평히 나아가다가 꼬리가 되어 톡 떨어지면 반드시 왕후가 나올 자리이다. 또   앞뒤 좌우로 기운차게 내려오면서 크고 작은 아름다운 봉우리가 천 봉우리 만 봉우리 호위한 것은 천궁녀의 기상이요, 앞뒤로 벌어진 낮은 산봉우리가 팔백형화(八百炯火)가 떠오르는 듯한 자리는 모두 극위 극존한 제왕이 나타날 자리이다.     여러 산이 그치는 데 진혈(眞穴)이 있고 여러 산이 모이는데 명당이 있는 것이다. 산체가 모두 등을 져 달아나면 인가파산이 되는 법이요, 한물이 기울어 흘러빠지면 관에서 물러서고 실직하게 되며, 산 형상이 어지러운 치맛자락 같으면 여자가 음분(淫奔)하고 물이 당국 안으로 꿰뚫어 나가면 자손이 절손되는 법이다.
1    명절(歲時風俗)과 24절기(節氣) 댓글:  조회:3606  추천:1  2012-07-15
◈ 명절(歲時風俗)과 24절기(節氣)   목록가기 2002.6/6. 이후 방문       ◈ 잊혀져 가는 세시풍속(명절) 선조(先祖)들이 전승해온 수많은 문화유산과 우리의 각종 풍습이 이미 일부분은 자취를 감췄으며 일부는 사라져가는 위기까지 맞고 있다. 이에 선조들의 지혜와 숨결을 간직한 우리들의 고유 풍습과 함께 안타깝게 잊혀져 가고 사라져 가는 세시풍숙(歲時風俗)들을 월별로 엮어놓은 것이다.   ▶사라져 가는 세시풍속에 대한 소고 ▶삼복(三伏) ▶토속신앙 ▶칠월 칠석 ▶정월 설날 ▶칠월 백중 ▶정월 대보름 ▶추석 한가위 ▶2월 영등 할미 ▶구월 중구(중양절) ▶2월 머슴날 ▶시월 상달고사 ▶삼월 삼짇날 ▶손돌풍 ▶한식(寒食) ▶동지(冬至) ▶오월 단오 ▶제석(除夕) ▶유월 유두     ◈ 이십사 절기(二十四節氣) : 춘 春 ▶입춘(立春) : 2월 4일이나 5일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