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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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죽교
2015년 03월 20일 13시 35분  조회:2603  추천:2  작성자: 최상운
 
 
 
              선죽교(善竹橋)
 
 
        개성시 선죽동에 있는 선죽교는 고려시기의 돌다리이다. 몇백년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까지도 이 다리의 이름이 전해지게 된것은 1392년4월에 고려의 대학자이며 최고위관리였던 정몽주가 리성계일파에 의하여 살해된 다음 그가 죽은 자리에서 참대가 돋아 났다는 이야기와 련관되여있기 때문이다. 
    
         선죽교는  조선의 개성시있고 한국 서울 장충단공원안에도 있다. 개성에 있는 돌 다리는 진짜 선죽교이고 서울 장충단공원안에있는 돌 다리는 개성의 선죽교를 본따서 만든 다리이다.

         개성에 있는 선죽교는 화강암으로 만들었는데 다리에 두른 난간의 너비는 2.54m이며 길이는 6.67m인 작은 돌 다리이다. .이작은 다리위에서1392년4월4일날 고려의 9공신의 한사람으로서 친명파의 거두이며 대학자로서, 덕망이 일세를 뒤덮은 정몽주가 비참하게 살해 되였다.

        1388년 여름이였다. 리성계는 위화도회군으로 고려왕조를 반대하는 정변을 일으킨후 왕권탈취에 방해되는 모든 장애물들을 제거해 버리고 나서 마지막 적수는 이름난 유학자이며 최고위관리인 문하시중 정몽주였다.
   
        리성계는 비록 군권을 장악 하였지만 거의 대부분 세신대관들이 왕조 교체를 지지하지 않는 조건하에서 조야에 명망이 높은 정몽주를 휘여 잡아 그의 지지를 얻는다면 어느정도 민심을 얻을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정몽주는 좀처럼 흔들리지 않았다.

         어느 날 리성계는 해주에서 사냥을 하다가 말이 수렁창에 빠져서 넘어지는 바람에 땅에 나떨어 졌다. 몸을 상한 그는 람여를 타고 개성으로 돌아 왔다.

         1392년 4월4일 정몽주는 비록 정치적적수이기는 하였지만 같은 관료로서 병문안을 가는것이 도리라고 여겨 록사(서기) 김영조를 데리고 선죽교를 건너 리성계집으로 문병갔다.

          그때 리성게의 집에는 후처 강씨와 둘째 아들 방과 다섯째 아들 방원, 사위 리제, 리성게의 동생 리화가 있었다.

           정몽주가 병문안을 마치자 리방원은 술상을 차리였다.
           두사람은 대좌하게 되였다.
           “포은 선생 술이나 한잔 드시며 여러가지 좋은 말씀이나 해 주십시오.”
           “내가 무슨 대학자라고 좋은 말이 있겠소.”
           “대감깨서는 당대의 대학자이신데 성리학에 대해 좋은 말씀을 좀 해주시오.”
           “성리학이라면 심신의 수양이 으뜸이지요.”
학문에 대한 이야기는 잠시일뿐, 화제는 바꿔어 고려조의 정치에 대하여 이야기가 진전되고 있었다. 리방원은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정몽주를 떠보기 위해 시조 한 수를 유려하게 뽑아 내려갔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링칡이 얽혀진들 그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 백년까지 누리리라.
 
                  정몽주가 이에 대답한 시조 또한 이러하였다.
     
                  이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여 넔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시조도 시조였지만 리방원에게는 호령처럼 들렸다. 이로써 두 사람은 서로의 뜻을 알게 되였다. 정몽주는 시조를 마치자 도포를 떨치고 일어 나 유유히 문을 나섰다.

          리방원은 이런 경우를 타산하여 미리부터 정몽주의 집 주변에 부하들을 보내여 감시하면서 령을 기다리게 하던터였다. 리방원은 즉시 조영구를 비롯하여 조영무, 고려, 리무 등을 시켜 정몽주를 그의 동리어구에서 죽이라고 일렀다. 정몽주는 이런줄 모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개성부 판사 류원이 죽었기때문에 그집에 들려 조상까지 하고 나오느라 지체하였다. 무심한 말은 정몽주싣고 선죽교 돌다리를 향하여 걸어갔다. 말이 선죽교에 다달았다.

          “멈추어라!”
         
         저넠노을이 지기 시작한 선죽교의 돌다리 위에는 판위위시사 조영규가 가로막아 서며 외쳤다.
         “누구요? 누가 우리 대감마님 행차를 가로막는 게오. 정몽주 대감의 행차임을 모르시오.”
         겁에 질린 녹사가 조영규의 앞을 막으며 외쳤다.
          “조영규가 여기서 기다린지 오래였느니라. 비키지 못하겠느냐. 철퇴의 맛을 보아야 하겠느냐.”    
         녹사가 울면서 조영규의 몸을 안으려고 뛰어 덤벼들었으나 몸이닿기도 전에 철퇴가 녹사를 힘껏 갈겼다. 녹사는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 버렸다.
          “자. 대감! 이미 천명이 다하였으니, 말에서 내려 철퇴맞을 받으시오.”
          정몽주가 태연한 자세로 말에서 내리는 것을 본 녹사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시중대감 어서 도망가십시오. 역적 조영규는 소인이 막겠습니다.”
         피를 쏟으며 땅에 쓰러졌던 녹사가 조영규의 두 다리를 잡고 덤볐으나 조영규의 철퇴는 여지없이 녹사를 정통으로 맞추었고 녹사는 그만 시체처럼 나뒹굴고 말았다.
         이때 말에서 내린 정몽주가 태연히 조영규에게 다가서며 말을 던졌다.
         “리 시중 대감이 나를 죽이라고 자네를 보내던가?”
        정몽주의 태산과 같은 무거운 압력이였다. 그러나 이자리에서 조영규도 물러설 수 없었다.
        “리 시중 대감이 시킨게 아니라, 이나라 삼천리의 명령이오. 어찌할수가 없소이다.”
         이를 악문 조영규가 철퇴를 들고 공격의 자세를 취했다.
         “이놈, 천하에 죽일놈!”
         리성계의 분부가 아니라는 말을 들은 정몽주가 천등같은 호령을 한다.
         “쥐새끼만도 못한 네놈이 천명을 사칭하다니…고려 조정의 녹을 먹는 신하가 할 짓이 고작 이거더냐?”
그러나 조영규의 손에 들린 철퇴가 가만있지 않았다.
         “컥…”
        우뚝 선 자세로 조영규를 노려보던 정몽주의 입, 코, 눈에서는 피가 쏟아져 나왔다.
        “에익!”
        다시한번 무서운 뼈 부서지는 소리가 어둠의 장막이 드리워진 주위에 울려 펴졌다.
        “이놈 역적놈들…”
        겨우 한마디 꾸짖는 소리가 쓰러지는 정몽주의 입 밖에 새여 나올때, 조영규의 철퇴는 또 정몽주의 머리를 향하였다.
        이렇게 만고의 충신 정몽주가 선죽교 돌다리 우에서 털썩 쓰러졌다. 이때 정몽주 나이는 66세였다.   
        후세 사람들은 정몽주의 죽음을 놓고 많은 글을 지었다. 그중에서 리개와 사명당의 쓴 시를 올린다.
                 
 
                      선죽교
                                      리개 
 
 
                   번화롭던 옛일은
                    꿈결로 사라 지고
                    춤 추고 노래하던 집들
                    허물어 져 잡초만 우거졌네 
 
                    오직 이 선죽교 만이          
                     말하여 주고 있는가
                     5백 년 고려왕업과
                    문충공 (정몽주)굳은 절개를
                      
 
 
 
 
 
                         선죽교를 지나며
                                                     사명당
 
 
                       산천은 예 같으나
                       조정은 갈렸구나
                       나라 잃은 슬픈 노래
                       그 얼마나 울었던고
                                    
                       지는 해 옛 성터
                       봄풀 우거진 속에
                       아직도 정공의
                        비석만은 우뚝 서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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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2 ]

2   작성자 : 선죽교 이야기
날자:2015-03-23 15:36:58
선죽교 이야기 여기 연변에 사는 조선족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소이다. 연변조선족 학교들에서 조선력사를 체계적으로 배워주지 않았고 요즘엔 어떤지 몰라도 전에는 조선력사교과서가 따로 없었소이다. 고구려와 고려가 무엇이며 시대적 차이도 모르는 사람들 많소이다. 여기가 력사공부의 장소는 아니라지만 조선력사 모르는 많은 조선족분들한테 유익한 글이라고 보나이다. ...
1   작성자 : 권념.
날자:2015-03-22 18:10:15
선국교의 이야기 누가 몰라서.력사를 좀이라도 아는 조선사람이면 다가 아는 일인데 이런 글을 새로운 바견인듯이 올리는건 독자들을 저만못한 아두로 보는것 같은 공연한 짓. 시간랑비를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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