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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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암산 스케치
2020년 09월 23일 08시 50분  조회:1480  추천:2  작성자: 최상운
                               비암산 스케치

    나는 오늘 룡정시에 있는 비암산을 구경하기로 일정을 잡았다.
   룡정에서 서남쪽으로 4킬로메터 떨어진 곳에 높은 산이 있는데 이산을 비암산이라 부른다. 룡정에서 비암산을 바라보면 산 모양이 비파와 같아 보인다하여 비암산(琵岩山)이라 부른다.
   비암산은  룡정시와 화룡시 경계에 있다. 비암산에 올라 서쪽을 바라보면 연변의 곡창지대인 평강벌이 보이고 동쪽을 바라보면 반듯한 룡정시가 한눈에 안겨온다. 비암산 산정에서 내려다보면 그림같이 아름다운 평강벌 한가운데로 은띠 같은 해란강이 유유히 흐르는 것이 보인다. 해란강은 평강벌을 지나 비암산에 와서 고추 흐르지 못하고 굽굽이 에돌다가 산맥이 열린 골짜기를 빠져나온다. 룡정시 구간에 들어서서 강폭이 넓어지면서 완연한 해란강의 모습을 보여준다.
   나는 몇년전에  비암산 유람을 간적이 있었다. 그때는 비암산이 지금처럼 명분이 서지 않는 때라 볼거리가 많지 않았다.  차를 타고  산중턱에 있는 일송정 정차장까지 올라갈수 있었다. 일송정 정차장에는 항일투사들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워진 일송정기념비가 있었고 기념비 옆에 비암산의 대표적 명물인 소나무 한 구루가 있었을 뿐이였다. 일송정과 소나무 외 기타 명물이 거이 없어 볼거리가 적다는 감이 들면서 다시 비암산을 찾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내가 비암산이 유명한 문화풍경구로 탈바꿈 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들떠 오늘 비암산을 찾았다. 비암산 문화풍경구 입구에 들어서자 과거에 볼수없었던 새로운 모습이 눈앞에 확 안겨와 나는 그만 와! 소리를 련발했다. 지금의 비암산은 과거의 비암산이 아니였다. 비암산 전체가 볼거리, 놀거리, 먹거리가 좋은 문화풍경구로 되였다. 내가 보건대 지금의 비암산문화풍경구는 길림성내에서 장백산을 제외하고 손 꼽을만한 규모를 갗은 풍경구가 아닐가 생각된다.
   이전에 사람들이 비암산으로 가는 목적은 혁명선렬들의 넔이 깃들어 있는 유적지를 찾는 것이였다고 했다면 오늘에 비암산풍경구를 찾는 목적은 풍경구안에 있는 혁명유적지 답사도 할겸 비암산문화풍경구의 멋진 모습을 구경하면서 휴식의 한때를 즐겁게 보내기위해 비암산을 찾는것이라고 생각된다.
   비암산으로 오르는 길을 넓은 포장도로로 되였다. 수십대의 전용뻐스들이 분주히 려행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차를 타고 산길따라 오르다 보니 비암산 산 전체가 나무숲과 꽃으로 조화를 이루어진 에덴꽃동산을 방불케 했다. 풍경구 입구에 들어서자 꽃향기가 페부에 스며들었다. 꽃향기를 맡아서인지 저도 몰래 흘얼흥얼 코노래를 불렀다.
   천천히 산위로 올라가면서 바라보니 입구로 부터 시작하여 산중턱까지 일망무제한 꽃밭으로 형성되여 있었다. 길가에 피여 있는 아름다운 꽃들은 방실방실 웃으며 유람객들을 반기고 있었다. 꽃구경을 하는 사람들마다 산듯한 옷을 떨쳐입고 색갈고운 꽃양산을 바쳐들고 천천히 걸으면서 꽃을 구경하고 있었다. 젊은 유람객들은 쌍쌍이 짝을 무어 다니면서 꽃을 감상하는 한편 사진도 찍고 서로 바라보면서 담소하는  장면을 보니 석양으로 다가가는 내 마음도 설레이였다.
    꽃밭을 사이두고 펑퍼짐한 곳에 여러가지 유희기구들이 설취되여있었다. 유희기구를 타는 사람들 다수가 어린이 들이였고 그들의 부모들이였다. 유희기구를 타려고 온 사람들이 어찌도 많은지 유희기구장 입구에는 유람객들이 줄을서 순번을 대기하고 있었다.
   차가 8분을 달리여 일송정정차장에 도착하였다.
   나는 차에서 내리자 선참으로 일송정기념비 앞으로 갔다. 자료에 의하면 60여년전까지만 해도 비암산 코숭이 바위우에  소나무 한대가 억세게 자라고 있었다 한다. 멀리서보면 그 소나무 모양이 흡사 돌기둥에 푸른 청기와를 얹은 정자와 비슷하다하여 사람들은 일송정(一松亭)이라 불렀다 한다.
   민간전설에 의하면 일송정은 녀인들의 생남하기위하여, 농민들은 왕가물을 이겨내려고 제를 지내던 곳이라 한다. 그뿐만 아니라 항일선구자들이 일송정주위를 비밀회의 장소로 리용했던 곳이기도 하다. 중국공산당 룡정지부가 건립된후 공산당원들이 룡수사와 일송정에서 비밀회의를 가졌다 한다.
   나는 일송정을 돌아보고나서 선구자노래비, 강경애문학비를 돌아보았다. 강경애문학비앞에 잠간 뭠춰서서 회고해 보았다. 강경애는 룡정에서 플로레타리아 문화 활동을 한 우리민족의 우수한 사실주의의 녀류작가이시다. 나는 젊은시절에 강경애 작가가 쓰신 “인간문제”를 밤을 새워가며 읽었다.
   일송정에서 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은 넓고도 편리하게 잘 닦았다. 일송정 정차장에서 산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은 두갈래 길이 있었는데 한 갈래길은 포장도로로 된 넓은 길이였고 다른 하나는 나무숲속에 설치된 길로서 널판자로 된 계단식 길이였다. 젊은이들은 숲속 널판자길을 걷기를 좋아했고 년세가 많은 사람들은 포장도로로 걸었다.
   산정상으로 오르는 길옆에 대략 50메터 간격으로 쉼터를 만들어 놓았다. 쉼터마다 특색있게 아기자기하게 꾸미였는데 거저 스쳐 지나 갈수 없었다. 우리 일행도  다리도 쉬울겸 쉼터안을 보려고 쉼터안으로 들어갔다. 쉼터안에는 편안하게 앉을수 있는 의자와 접의식 장막을 (캠핑)설치할수도 있었다. 접의식 장막을 설치한 쉼터에서는 가족들이 오붓히 모여서 음식을 자시고 있었다. 우리는 쉼터안에서 잠간 휴식하고는 다시 길을 걸었다.
   쉼터중에서 가장 인상이 깊었던 쉼터는 대나무 가지로 엮은 대나무막이였다. 대나무막은 겉으로 보기에 헐렁해 보였지만 막안으로 들어가 앉자보니 딴 감각이 들었다. 다른 쉼터보다 서늘해 보이는것 같고 대나무 냄새가 풍기여서 기분이 좋았다.  
   기분좋게 대나무막을 떠나 50메터좌우 올라가자 길옆에 백가성(百家性)이라는 돌조각군체가 보이였다. 돌마다 동물 그림이 그려져 있고 상형문으로 된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처음 그림과 글자를 보면서 무슨 동물일가? 무슨 글자일가? 하면서 머리를 갸웃거렸다. 찬찬히 보니 상형문 아래에 작게쓴 현대 한어가 새겨져 있었다. 그  한자를 보고서야 그림과 상형문의 가지고 있는 함의를 알수있었다.
   백가성 비석을 보면서 핏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몇년전에 나는 대만유람을 갔됐다. 대북에 있는 고궁박물관에서는 전문적으로 한자(漢字)의 산생과 변화된 모습을 동영상으로 방영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그 상형문동형상을 흥미진지하게 보았다. 오늘 비암산에서 그때 보았던 상형문을 다시 보는 것 같아 다시한번 그 백가성 비석을 자세히 보게되였다.
   비암산 산 정상에는 세개  큰 운동기구가 설치되여 있었다. 두개의 산 메부리를 리용하여 유리다리와 삭도를 설치해 놓았고 산정상에 단독으로 철탑으로 된 그네를 설치해 놓았다. 나는 먼발치에서 유리다리를 건너는 장면과 외줄 삭도를 타고 허망공중을 날아예는 장면을 보았다. 그리고 가까이에서 높은 철탑에서 그네를 뛰는 장면을 보았다. 유리다리를 건네는 장면과 외줄 삭도를 타는 장면 그리고 철탑그네를 뛰는 장면을 보면서 저도 몰래 손에 땀을 쥐였다. 유리다리를 건너거나 외줄 삭도를 탄다거나 철탑 그네를 뛰는 사람들 다수가 날파람이 있는 담대한 젊은이들이였다.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유리다리를 건너거나 외줄 삭도를 타고 철탑 그네를 뛰다 보면 세상에 태여났다가 두번다시 느껴 보지 못하는 도전자의 승리의 통쾌감과 모험가들만이 느낄수있는 아짜아짜한 기분을 느껴본다고 했다.
   산정상으로 오를때에는 걷기가 힘들었는데 내려올때에는 발길이 가벼웠다.
   내려오면서 올라갈때에 인상깊었던 쉼터들을 다시 보았다. 우리가 대나무 막으로 다시 왔을때였다. 대나무막  안에는 아버지로 되여보이는 늙은이와 딸로 되여보이는 젊은 녀인이 있었다. 대나무막 문앞 길가에는 여러사람이 서서 그 로인장이 일어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러사람이 빨리 가자고 재촉했건만 그 로인장은 다리맥이 없어서 더 걷지못하겠으니 내가 여기에 있을 터이니 모두들 갔다 오라고 했다. 다른사람들은 다 떠나는데 마누라로 되여 보이는 안늙은이가 문앞에 서있고 딸로 되여보이는 그녀가 아버지를 보고 절대 다른데로 가지말고 이 곳에 꼭 있으라고 했다.
   내가 보건대 그들은 연길이나 룡정시 사람같지 않았다. 나는 그 늙은이 곁에 앉으며 말을 걸었다.
  “로인장은 본지 사람이십니까?”
  “아니오.”
  “그럼 어디에서 오셨습니까? ”
  “흑룡강성 오상시에서 왔소.”
  “그먼 오상시 사람들도 비암산을 알고 있습니까?”
  “알다뿐이겠소. 오늘도 일가족 다섯집이 함께왔소”
  “로인장, 비암산에 왔다가 유리다리와 삭도를 보지못하면 못본거나 다름없습니다. 여기서 100메터만 올리 걸으면 다 볼수있으니 올라가 보십시오.”
  내말을 듣고 그 로인장은 두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산 정상을 행하여 천천히 걸어가는 오상시의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숙고해 보았다.
  등잔밑이 어둡다고 가까운 연길에 살면서도 타성의 사람들도 알고 있는 비암산문화풍경구를 이제야 알게 되였으니 얼마나 매정한 사람인가...
   비암산풍경구를 돌아보고 나서 나는 보잘것 없던 비암산을 국내외에서 소문이 자자한 문화풍경구로 건설한 룡정시 결책자들과 로고를 아끼지 않은 룡정시 시민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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