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전1)
시대가 배출한 녀걸 리영숙회장
시대가 영웅을 배출한다는 말이 있다. 고금중외를 훝어 보면 격변기 시대마다 영웅이 나타났다.
시대가 영웅을 배출한다는 말을 언급하고 보니 마치 연변아리랑서로돕기창업협회의 회장이신 리영숙 회장을 두고 한말인것 같기도 하다. 리영숙회장은 영웅칭호는 받지 않았지만 그를 알고 있는 사람마다 엄지척을 보이며 시대가 배출한 녀걸이라고 말한다.
연변아리랑서로돕기창업협회는 어떤 단체이며 리영숙회장은 어떤 좋은 일을 하였기에 녀걸이라 불리울가? 연변아리랑 서로돕기창업협회의 장정에는 이렇게 씌여있다. “본 협회는 어려운 약체군체를 위해 봉사하는 독립적이고 법인 자격을 갖춘 비영리성 사회단체이다. 연변아리랑서로돕기창업협회에서는 사회자선사업의 발전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국내외 지명인사들의 후원으로 이루어졌으며 각 사회단체의 기부와 의연금, 회원들의 낸 회비등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빈곤부축자금과 빈곤가정의 학생들을 돕는데 유용하게 쓰인다. 본 협회에서는 회장단을 선출하며 민주선거로 회장, 부회장, 상무리사를 선출한다.”
리영숙 회장은 한 철도 로동자의 가정에서 장녀로 태여났다. 어린시절 그의 가정은10여명 식구가 사는 대가정이였다. 아버지의 월급에 의지하여 살다보니 가정 살림살이는 매우 어려웠다. 곤난한 집 아이들이 일찍 철이든다고 영숙이는 장녀로서의 책임감을 가지고 어릴때부터 부모님들을 도와 집안 일을 하였으며 동생들을 보살펴 주었다. 그는 공부를 열심히 하여야 좋은 학교로 갈수 있으며 좋은 직장을 얻을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학교에서 학습을 잘하고 품행이 단정하여 늘 우수학생이란 칭찬을 받았다. 돈화에서 소학교 교사로 있다가 후에 길림성교사양성전업학교를 졸업한후 연변제2고급중학교에 배치를 받았다. 그는 수십년동안 연변제2고급중학교에서 교육사업을 하였다. 교육사업을 잘 하여 여러번 주, 성의 우수교원으로 표창을 받았으며 영예롭게 전국우수교원이란 칭호도 수여 받았다. 리영숙선생님은 연변제2고급중학교에서 정령 퇴직을 하였다.
퇴직을 한 사람마다 퇴직을 하게 되면 퇴직 후에 무엇을 할가? 생각하게 된다. 리영숙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
어느날 리영숙 선생은 훈춘시의 한 시골 마을로 갔다가 우연히 그곳에서 장애자 부부가 어렵게 아이를 키우는 장면을 보았다. 그리고 홀아버지인 한남자가 헐망한 초가집에서 아이를 힘들게 키우는 것을 보게 되였다. 두 가정에서는 정부에서 발급하는 최저 생활 보장금으로 근근득식으로 생활해 가고 있었다. 리선생은 어렵게 사는 그들의 모습을 보자 마음이 쓸쓸해 났다. 정부에서는 빈곤부축 정책을 실시하여 많은 빈곤호들이 빈곤에서 벗어 났지만 아직도 일부분 사람들은 빈곤에서 해탈되지 못한 생태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였으며. 그들의 자녀들 또한 어려운 환경속에서 힘들게 살고 있음을 알게되였다. 어떻게 하면 빈곤호와 그들의 자녀들을 돕는 사업을 할가 고민하게 되였다.
리선생은 집으로 돌아 오면서 이런 생각을 하였다. 오늘 목격한 아이들처럼 사회의 곳곳에 우리가 알지못하는, 아직 빈곤에서 해탈되지 못한 결손가정과 그들의 자녀들이 더 있지 않을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사회 조사를 하기로 했다. 그는 뜻이 맞는 동료들과 같이 연변각지를 돌면서 사회 조사를 하였다. 조사를 해보니 생각보다 빈곤에서 해탈되지 못한 빈곤 가정과 그들의 자녀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였다.
그때로 부터 리영숙 선생은 퇴직후의 일정을 자선 사업에 받히기로 마음을 굳히였다. 자선 사업이란 말로는 하기 쉽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리영숙 선생은 빈곤에서 해탈되지 않은 빈곤호와 그들의 자녀를 도울 자선사업을 하려면 자기 혼자 힘으로는 할수 없다고 생각했다. 한 사람이 열사람을 먹여 살리기는 힘들지만 열사람이 한 사람을 먹여 살리기는 쉽다는 말처럼 여러 사람들의 힘을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리선생님은 자선사업을 하려면 자선 단체를 꾸려야 하며 자선사업 기금을 모금하여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뭐든지 하려고 하면 꼭 해내고야 만은 성격을 가진 리선생은 이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인맥을 통하여 국내외 사회 각계 인사들과 동료들을 만나 자선 사업단체를 꾸리겠다는 자신의 소견을 내놓았다. 생각외로 많은 분들이 좋은 생각이라며 지지해 주겠다고 표시하였다.
동료들의 힘을 얻은 리영숙 선생은 자선협회를 꾸릴 준비위원회를 구성하였다. 협회준비위원회에서 충분한 협상과 토론을 거쳐 단체의 명칭을 “연변아리랑서로돕기창업협회”라 하였다. 협회준비위원회에서는 연변아리랑서로돕기창업협회의의 장정을 명확히 규정하였으며 민주선거를 거쳐 리영숙선생님을 협회의 회장으로 추천하였다. 조직기구가 완정해 지자 드디어 2005년5월31일에 사단법인 “연변아리랑서로돕기창업협회”가 고고성을 울리였다.
연변아리랑서로돕기창업협회가 설립되자 협회를 지원하기로 약속한 국내외의 지명인사들과 단체들에서 자선사업을 돕기위한 기부금을 보내왔다.
협회에서는 사업의 수요로 연변에 8 개 분협회를 두었고 단동시에도 분협회를 두었다 분협회마다 분회장이 있게 되였다.
연변아리랑서로돕기창업협회 주석단에서는 협회의 장정에 따라 사업을 진행하였다.
연변아리랑서로돕기창업협회에서는 우선적으로 빈곤호들을 돕는 부축 사업과 동시에 빈곤가정 학생들을 돕는 일을 시작하였다.
처음으로 훈춘시 이도포촌 동물사양 전문호에 토끼와 오리 사양기지를 꾸리는데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였으며 삼가자향 딸기, 참외 생산기지와 밀강향과 마적달향에 있는 황소 사양기지에도 필요한 자금을 대주었다. 화룡시 숭선향에 있는 옥수수 생산기지, 로과향에 있는 고추생산기지, 길지향과 남평향에 있는 무우씨 생산기지와 오미자 생산기지에도 부축 자금을 지원하였다. 룡정시 동성향에 있는 벼종자 생산기지, 개산툰진 광소촌에 있는 벼종자기지, 삼합향에 있는 고추 생산기지에도 부축 자금을 지원하였다. 도문시 량수촌에 있는 옥수수종자기지, 감자종자기지, 월청진 마패촌의 벼농사기지, 백룡촌의 벼농사기지를 돕는 자금을 지원하였다. 연길시에서 창업을 하고 싶지만 창업 자금이 부족하여 창업을 못하는 사람들에게 창업대금을 대주었다. 창업 부축 대금을 받은 그분들은 각자의 능력에 따라 자전거수리, 신수리, 옷수선, 반찬 가게를 꾸리여 장사가 잘되였다, 또 이란진 남계촌에 있는 기러기, 치면조, 닭 사양기지에도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였다.
연변아리랑서로돕기창업협회에서는 훈춘시에 있는 빈곤 가정 두집에 새 벽돌집을 지어주어 학생들이 시름을 놓고 학교로 다니도록 하였다. 연변의 몇개 현 시의8개 촌의 촌정부와 합작하여 농촌도서실을 꾸리는데 필요한 자금과 책을 지원하였다. 그뿐이 아니다 의지가지 갈곳없는 노약자, 장애인10명에게 부양 자금을 지원하였다.
연변아리랑서로돕기창업협회에서는 18년동안 빈곤가정 부축사업을 진행 하였으며 동시에 빈곤가정 자녀들에 대한 자금 지원을 하였다. 매년 빈곤가정의 학생 200명에게 매달 250원을 조학금과 장학금으로 발급 하였다. 그리고 2018년부터 장학금을 받은 학생이 대학에 입학 하면 협회에서는 대학입학등록금을 매년 한 학생에게 3,000원씩 지불하였다.
용장수하에는 약졸이 없다는 말이 있다. 리영숙 회장은 투지력이 있고 결단성이 있는 장수처럼 일심정력으로 자선사업을 밀고 나갔다. 리영숙 회장과 같은 용장수하에 있는 분협회의 회장들도 리영숙회장과 손잡고 똘똘 뭉치여 자선사업을 참답게 하여 왔다. 특히 표창 하여야 할 분회장 중에는 훈춘시 분협회의 오금숙 회장과 도문시 분협회의 회장인 김덕자 회장을 빼놓을수 없다. 오금숙 회장은 모 기업에서 퇴직한후 장장 18년동안 훈춘 분협회의 회장직을 맡아 하시였다. 오금숙 회장은 대수술을 한 몸이지만 빈곤 가정과 그들의 자녀들을 돕는 일이라면 발벗고 나섰다. 훈춘분협회에서는 18년동안 수백명의 빈곤가정의 자녀들을 후원하였다. 정성을 들이면 돌우에도 꽃이 핀다고 훈춘분회에서 정성을 들여 빈곤가정 학생들을 돌봐 주었더니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으로 간 학생이 50여명이 된다. 김혜언 학생은 2018년에 전주에서 제일 우수한 대학 입시 시험 성적을 따내여 명성이 높은 상해복단 대학으로 갔다. 오금숙 회장은 자선사업을 하면서 많은 돈을 기부하였다. 작년에 오금숙 회장은 빈곤호 학생이 대학으로 갈때 대학입학 등록금으로 2만원을 기부하였다.
도문시의 김덕자 회장도 18년간 도문 분협회 회장직을 맡아서 빈곤호와 빈곤호 자녀들을 돕는 사업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그는 량수촌 감자종자기지, 마패촌의 벼농사기지, 장안진 소동구 경로원 건설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는데 기여 하였다.
그가 외출하였을 때 남편이 나서서 분협회 일을 책임져 주었다. 김덕자 부부는 연변아리랑서로돕기창업협회를 위하여 빈곤호 부축사업과 빈곤호 자녀들을 돕는 일에 많은 노력을 하였다.
꽃나무도 키우기에 달려 있다. 정성들여 키운 꽃나무는 아름답게 피며 탐스런 열매를 맺게 된다. 빈곤가정의 학생들도 아름다운 꿈을 가지고 있었다. 누군가 꿈을 키우려고 하는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그들을 도와 준다면 그들의 꿈은 현실로 될것이다. 연변아리랑서로돕기창업협회는 가물이 단비인양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빈곤가정의 학생들에게 제때에 도움의 손길을 보내였다. 협회의 도움을 받은 학생들중 많은 학생들은 공부를 잘하여 100여명의 학생들이 대학으로 갔으며 대학을 졸업한 후 사회에 진출하여 사회의 유용한 인재로 되였다.
채설경, 라혜연, 엄문길 등 학생들은 사회에 진출한후 첫 월급을 받자 월급에서 일부를 빈곤학생들을 돕는 자선 사업에 기부했다. 라혜연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한후 빈곤가정의 학생 셋을 책임지고 돌봐주었다.
필자는 연변아리랑서로돕기창업협회와 리영숙회장이 쌓아온 업적을 보면서 심히 감동을 받았다. 자선 사업이란 부자들만 하는 전리품이 아니고 마음의 부자인 많은 사람들의 할수 있는 사랑의 담겨있는 사업이다. 리영숙회장은 자선 사업을 하면서 많은 돈을 협회의 운영비와 자선사업에 기부하였다. 리영숙 회장은 포만된 의력으로 빈곤부축 사업과 빈곤호 아이들을 돌봐주는 사업을 참답게 하여 왔다. 그는 자선 사업을 하면서 스스로 행복감에 도취되여 있다고 했다.리영숙 회장은 녀걸다운 흉금으로 우리가 상상못할 정도로 많은 자금을 빈곤부축 사업과 빈곤호 자녀들을 도와주는 사업에 기여하여 왔기에 필자는 리영숙 회장을 녀걸이라고 높이 평가 한다.
연변아리랑서로돕기창업협회에서 18년간 빈곤 부축사업과 빈곤가정 자녀들을 도왔다. 협회의 도움을 받은 사람들과 협회의 좋은 사적을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아리랑서로돕기창업협회에서 자선사업을 잘한다는 찬사를 보내왔다.
아름다운 보석도 흙속에 파뭍쳐 있을 때에는 진가를 알수 없지만 발견되여 닦고 닦으면 아름다운 보석으로 빛을 내게 된다. 연변아리랑서로돕기창업협회를 이끌어온 리영숙 회장이야 말로 보석 같은, 사회가 배출한 녀걸이라고 말 하지 않을수 없다。
연변아리랑서로돕기창업협회에서는 18년 동안 줄곳 많은 빈곤호 부축사업과 빈곤가정 아이들을 돌봐주는 사업을 잘하여 주부련회, 주민정국으로 부터 선진 민간단체라는 칭호를 수차 받았으며 리영숙회장도 주민간단체 선진일군으로 표창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