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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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백산 일견
2016년 09월 25일 15시 59분  조회:1767  추천:0  작성자: 최상운
                                            장백산 일견
 
      그해 9월28일  날씨가 유달리 좋았다. 일기예보에 의하면 29일부터 날씨가 변한다고 하였다. 려행단은 28일에 훈춘으로 가자던 일정을 바꾸어 29일에 훈춘으로 가기로 하고 28일에 장백산을 구경하기로 일정을 잡았다.
      아침5섯시가 되자 우리는 장백산로 향하였다. 우리를 태운 뻐스는 두시간 달리여 화룡시 와룡구 휴계소에 도착하였다. 와룡구 휴계소에는 숙박시설과 상점이 있었다. 이 휴계소에서 장백산에서 사용할 용품들을 장만할수 있었다.
      와룡구는 두메산골이다 반 세기전 이곳은 항일투쟁 근거지였으며 청산리 항일대첩을 진행한 곳이기도 하였다. 와룡구는 항일 전적지이기도 하며 13항일렬사들의 묻혀있는 곳이다.
      와룡구에는 석회석, 규석, 철광석 등 여러가지 천연광물이 많이 매장되여있다. 한시기 이곳에는 와룡강철공장을 세워 철을 생산 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철광석에 철광 함량의 적어 공장은 페쇠 되였다. 지금은 한기업가가 선진기계를 같고와 철광분을 채집하고 있었다.
      와룡휴계소에서 휴식한후 우리는 와룡구를 떠나 안도현 삼도구 방향으로 달리였다. 삼도구를 가자면 험준한 로관령을 넘어야 하였다. 로관령 산길을 구비구비 잘 닦았다. 워나 이 산길은 목재를 운송하던 길이였는데 지금은 목재운송과 함께 화룡시와 안도현을 련게하는 통로로 되였으며 연길에서 장백산으로 가는 지름길이 되기도 하였다.
     로관령을 넘자 안도현의 삼도구에 도착하였다. 삼도구 지역은 구룽지대였다. 주변에 높은산은 없고 야산들이 있었다. 삼도구도 항일투쟁근거지였다.
     삼도구를 지나 한시간 달려 장백산 아래 첫 진 이도백화진에 이르게 되였다. 원시림속에 자리잡은 이도백하진은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였다. 이도백하진을 수림의 도시라 할만큼 도시속에 나무가 많아 수림속에 묻쳐있다는 감이들었다.
      뻐스는 “목란음식점”이란 간판을 단 음식점앞에 멈춰섰다. 이 음식점에서는  중식과 한식을 겸하여 만들고 있었다. 이음식점에서 료리를 잘 만든다는 소문이 펴지자 장백산을 유람오는 외래 손님들과 국내손님들이 즐겨찾는 음식점으로 되였다. 입소문이 한국에까지 펴지면서 한국손님들은 이도백하에 오면 꼭 이음식점에 들린다고 했다. 오늘도 한국손님들이 이 음식점으로 가자고 하여 이 음식점으로 왔다. 한국손님들은 이 음식점의 두부와 만두가 별맛이라며 달게 자시였다.
      아침을 자신후 음식점 주위를 돌면서 산책하였다. 음식점 주위에는 나무와 꽃들이 많이 있었다. 음식점 주위에 있는 여러나무 중에서 나의 의목을 끄는 나무는 멋진 미인송 나무였다. 수십메터 높이로 밋밋하게 자란 미인송나무는 진붉은 색갈을 띠였는데 마치 쭉 빠진 체질를 가진 모델 녀인들처럼 맵시가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미인송 나무를 않아 보았으며 나무를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찍었다. 미인송 나무는 특이한 바 이 나무가 하도 보기좋아 국가식물원에서 미인송 나무를 북경에 옮겨다 심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나무는 북경의 토질과 기온이 맞지않아  살리지 못하였다고 한다 
     차는 이도백하를 떠나 고추 장백산으로 향하여 달리였다. 이도백하에서 장백산까지 거리는 40km라한다. 이 40km 구간은 장백산자연보호국 범위에 속했다. 장백산자연보호국은 중국에서 자연 원시림상태가 가장 잘 보존된 곳이며 범위가 큰 자연보호국이라 한다. 장백산으로 가는 길옆에는 태고연한 원시림이 있었다.
      나는 20년전에는 장백산을 구경한적이 있다. 그때는 장백산을 구경하자면 교통이 불편하여 외지사람들은 당일로 장백산을 구경을 할수없었다. 반드시 이도백하에서 하루밤 자고 이튼날에 장백산 구경을 떠났다. 그러던것이 지금은 교통이 좋아 당일에도 구경할수 있게 되였다.
     40분 되자 차는 장백산자연보호국 정차장에 멈춰섰다. 보호국의 규정에 의하면 외래차들은 이 정차장까지만 올수있고 더는 올라갈수없다. 정차장에서 입산표를 사고 전용뻐스를 타고 장백산 산밑까지간다. 거기에서 다시 찝차를 가라타고 장백산으로 오를수 있었다.
      우리는 표를산후(표값 160원) 전용뻐스에 올랐다. 전용뻐스가 20분 달리자 장백산 산밑에 도착하였다, 거기에서 순호에 따라 다시 찝차를 갈아타고 백두산 정상까지 오르게되였다. 몆 백대에 달하는 찝차는 손님을 싣고 련속부절히 산꼭대기를 향하여 달리고 있었다.       찝차는 전속력으로 산봉우리로 향해 달리였다. 천천히 몰았으면 좋으련만 운전기사들은 그렇지 않았다. 운전기사들의 말에 의하면 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가파롭고 굽이가 많고 길이 넓지않아 차들의 멈춰세우거나 지체할 시간과 장소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과거 장백산구경은 천지를 보는것이 위주였다. 천지를 보기위해 폭포 옆에 있는 벼랑길을따라 위험을 무릅쓰고 천지로 올랐다. 그러던것이 지금은 천지로 오르던 벼랑길의 막히여 천지로 갈수 없어 기상잠이 있는 천문봉(天文峰)으로 올라 가게 되였다. 30분 지나 차는 천지를 똑독히 내려다 볼수있는 천문봉 기상잠 주차장에 멈춰섰다. 아짜아짜한 긴장속에서 차에서 시달리다가 주차장에 도착하니 시름이 놓이면서 긴장이 풀리고 날것 같았다. 주차장에서 도보로 조금 걸으면 천문봉정상에 이르게된다. 그곳에서 맘껏 천지를 내려다 볼수 있었다.
      장백산에는 아름다운 자연 경관은 많지만 그중에서 천지가 가장 인기를 끈다. 천지를 내놓고 장백산을 명산이라고 하기는 불편하다. 장백산 분화구를 가득채운 천지수면은 해발 2194메터인데 우리나라는 물론 동북아에서 제일높운 곳에 있는 호수여서 그야말로 하늘의 호수라고 할수있다. 산 정상에서 천지를 내려다 보니 천지물은 하늘이 내려않은 듯 눈이 시도록 파랗다. 열여섯개 봉우리에 안긴 천지는 남북길이가 4.850킬로메터, 동서길이가 3.350킬로메터, 평균수심이 204메터, 제일깊은 수심이 373메터이다.
     우리는 산정상에서 천지를 감상하며 사진을 찍었다. 오늘의 날씨는 특별히 맑지고 온한하여 천지를 자세히 볼수있어 기분이 좋았다. 가이드 장옥란의 말에 의하면 장백산구경은 백번왔다 두번만 구경한다고 하였다. 그말인즉 장백산의 기후는 변동이 심하여 백날치고 개인날이 2일밖에 없으며 개였다가도 무시로 소낙비와 눈개비가 쏫아진다고 했다. 오늘은 맑은 날이였다.
      천지를 두고 중국과 조선 두나라 국경을 이루고있었다. 천지의 절반 이상이 조선의 국토라 한다. 천지에서 동쪽으로는 두만강이 형성되여 천리를 흐르고, 서쪽으로는 압록강 줄기가 형성되여 2천리를 흐르며, 북쪽으로는 천지의 물의 발원지로 되여 폭포로 쏫아져 흘러 내려 송화강이되여 북으로 4천리 흐르면서 관동대지를 젹셔준다. 백두산천지 주위에는 열여섯개 높은 산 봉우리가 둘러있다. 그 산봉우리중 제일높은 산봉이 장군봉인데 그높이는 2750m이다. (장군봉은 조선측에 있다.)
      우리는 천지 주변을 돌면서 중 조 두 나라의 국경선을 보았다. 천문봉 아래에 중국과 조선 두 나라 국경선에는 국경선을 표시한 국경표비가 있었다. 천문봉에는 1983년에 당시 중앙군사위원회주석이였던 등소평 주석이 천지를 돌아보고 (天池)라고 쓴 제사를 담은비석이 있었다. 모두다 그 비문곁에서 사진을 찍었다.
      지금으로 부터 2백만년 전 장백산 지역은 지각 변동이 심하였다고 한다. 지각변동으로 16개의 산봉우리가 형성되고 땅속 깊은곳으로 부터 뜨거운 용암이 흘러나와 장백산 일대를 용암과 용암재로 덮었다고 한다. 용암이 분출하던 구덩이에는 물이 고여 천지로 되였다 한다.
      옛날에는 장백산을 개마산, 불함산, 한박산, 도백산이라 불렀다. 산은 (7_8월을 제외하고)언제나 멀리서 보면 힌눈과 얼음이 덮혀있어 힌머리산으로 보인다. 하여 조선반도에서는 백두산이라 한다. 중국 당나라때에는 태백산이라하였고 금나라를 세운 녀진인들은 “궈레민산옌아린”이라하였다. “궈레민”이란 “장”이란 뜻이으로 “산옌”은 백이란 뜻이고 “아린”은 산이란 뜻이다. 그러니 장백산이란 뜻과 백두산이란 뜻이 같은것으로 풀이된다. “장백산”은  속칭이다. 장백산을 일면 “로백산”이라 불리우기도 하며 략칭하여 “백산”이라고 한다.
      력사적으로 볼때 조선인과 만족의 보는 장백산은 일치한 점이 있으면서도 다르기도 하였다. 청나라를 세워 300여년의 대업을 이룬 만족들은 장백산을 자기의 선조가 발원한 성산이라하고 조선인들은 백두산을 배달 계례가 발원한 성산이라하며 만족과 조선인은 모두 천지물을 성수聖水 라고 한다. 장백산은 위용이 웅위롭고 장엄하고 신비로워 여러 민족들은 자기 민족의 성산이라고 한다. 
     장백산의 기후는 1년사시절 변화무쌍하다. 하늘이 파랗게 개였다가도 급시 광풍이 몰아치고 검은구름이 몰아온다. 겨울철은 더 가관다. 백두산의 기온차이는 현저하다. 겨울철 제일  추울대에는 섭씨47.6c.이며 가장더울때는 18c.라한다. 장백산은 제일 낮은 기앞은 690미리바로 내여 간다 고한다. 그러므로 백두산에서 물은 100C. 로 끓는것이 아니라 90C. 에 끓는다한다.
      우리는 천문봉에서 맘껏 천지를 구경하고 나서 차를 타고 산아래로 나려왔다. 정차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폭포를 볼수 있었다. 우리는 도보로 폭포 밑까지 걸어와 폭포를 보았다 천지의 물이 북쪽에 열린 계곡으로 흐르다가 68메터 락차를 타고 낭떨어지를 날아내린다. 하얀 물보라를 일구며 68메터 허망공중을날아 12메터가 되는 깊은 소를 파고 들어갔다가 다시 솟구치면서 곤두박질한다. 폭포의 장엄한 기세와 벼락치듯한 물소리는 천지를 진감한다. 폭포를 멀리서보면 힌 비단을 드리웠나싶다. 때론 은백색 룡이 구중천으로 날아오르는 기상이다. 때때로 폭포주위는 칠색무지개가 비껴 황홀한 전경을 보인다.
      우리는 폭포를 구경한 다음 폭포 아래에 있는 지열장에서 삶은 옥수와 닭알을 사 먹었다. 산아래에서 삶은 옥수수 한 이삭을 1원하는데 여기에서는 5원을 하였다. 지열장옆에 온천목욕실이 있었다. 잘 정비된 온천목욕장에서 온수욕을 하고나니 몸이 거뿐해 났다. 온천욕을 한다음 우리는 귀로에 오랐다.
      나는 귀로에 오르면서 깊은 사색에 잠겼다. 장백산에서 받은 인상이 너무나도 깊어서였다. 나는 무득 애귀생 선생이 저술한 “장백산으로 가다”란 책을 보았던 일이 떠올랐다. 애귀생선생은 장백산을 이렇게 묘사하였다.
      “눈보라를 조소하며 영원한 청춘을 자랑하는 홍송정신, 굴할줄 모르고 완강히 항쟁하는 자작나무정신, 굳센의지로 갖은시련을 이겨내는 금석정신, 계곡을 뚫고나와 대해로 흘러드는 급류정신, 깨끝한 마음으로 세속에 물들지 않는 빙설정신, 만강의열정으로 세상을 덮혀주는 온천정신, 벼랑끝에서도 조금도 주저하지않는 폭포정신, 투명하고 고요한 천지정신, 외로움을 이겨내고 다투어 아름다움을 품은 화혜정신, 재부를 기여하고도 원망도 후회도 하지않는 삼림정신이다”라고 개괄했다. 정말로 넓고도 함축성있게 장백산을 그려냈다.
     애선생님의 말씀대로 장백산을 구경하고 장백산경치를 감상 한다면 정말로 의이있고 보기 좋을것이였다. 불화산으로 되여 나무 한 구루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하는 백두산에 오르면 볼것이 없다고 보여 지지만 알고보면 볼것이 많은것이 장백산이다.
     가이드 장옥란양도 의미있는 말을 하였다. 그는 중국 유람에 는 세가지 유람이 있다고 말하였다.
     “그 세가지 유람은  걷기유람, 뻐스유람, ”와! 와!”유람 입니다.  오늘 장백산을 유람하면서 온 하루 뻐스를 탓으니 뻐스유람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알겠지만 오늘 우리는 아침 5섯시에 출발하여 여짓껏 뻐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였으니 당연히 뻐스유람이라 하고, 북경이나 서안을 유람 하면 온종일 걸어 다녀야 하므로 걷기 우람이라하며, 장가계나 계림을 유람하면 설명을 하지 않아도 저절로 와!와! 소리가 나온다 하여  그곳 유람은 “와!와!” 유람이라고 가히 말할수 있습니다.”
     오늘 장백산을 보니 이전과 달은감이 들었다. 몆 년전에는 장백산을 연변에서 관리하였는데 지금은 성정부에서 관리하고 있어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도로와 기초시설들이 잘 되였으며 장백산 정상까지 차를 타고 올라 갈수있어 매우편리하였다. 장백산을 구경하니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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