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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추장국련방 기행
2016년 12월 11일 07시 25분  조회:3646  추천:0  작성자: 최상운
                                                아랍추장국련방(아랍에미리트) 기행
 
                                               1.    아부다비로 가다
 
      우리는 이집트 려행을 마친후 아랍추장국련방 관광을 떠났다. 아침 8섯시에 호텔을 떠나 9시에 카이로공항에 도착하였다. 11시에 카이로 – 아부다비행 비행기에 탑승하였다. 네시간 비행을 거처 아부다비공항에 도탁하였다.
      공항출구를 나오니 40대의 한 녀성이 우리를 반가히 맞아주었다.  성의 장씨라는 그 녀인은 아랍추장국련방 국제 려행사에서 근무한다고 했다. 북경 태생인 그는 14년전에 아랍추장국련방으로 왔다고 했다. 아랍추장국련방으로 온지 14년이 되였건만 아직도 아랍추장국련방의 국적을 가지지 못했다고 했다. 우리가 의아해 하자 그는 아랍추장국련방에서는 이민정책을 실시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특수한 정황 하에서 이민을 받기는 하지만 조건이 까다롭다고 했다. 아랍추장국련방 국적을 가지려면 녀성은 아랍추장국련방의 남자와 결혼하여야 하며 결혼하여 자식이 8살이 지나야 국적을 올릴수 있다고 했다. 남자일 경우는 나라에 큰 공로를 세운 사람이여야 한다고 했다. 아랍추장국련방이 건립되여서 지금까지 아랍추장국련방의 국적을 가진 외국인 남자는 두명 뿐이라 했다. 한 남자는 아랍추장국련방을 위하여 영예를 안겨준 축구운동원이고 다른 한 사람은 추장의 병을 치료하여준 유명한 의사라고 했다.
       지금 아랍추장국련방의 인구는 900만인데 그중에서 원주민은 20프로밖에 안된다고 한다. 그러니 실제는 이민국이라 하는것이 적절할것 같았다. 아랍추장국련방은 7개 추장국으로 형성되였다. 일곱개 추장국중에서 아부다비추장국의 인구가 가장 많고 경제 실력이 좋아 아부다비추장의 국왕으로 추대되였으며 아부다비를 수도로 정하였다 한다.
       아랍추장국련방이 건립될 당시 아랍추장국련방은 매우 가난한 나라였다고 한다. 나라가 건립되여 얼마 안되여 아비다비 지역에 석유와 천연가스가 대량으로 매장되여 있는것이 발견하였다. 그후 련이어 두바이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도 석유가 매장되여 있는것이 발견되였다.
      아랍추장국련방에서는 대량의 석유와 천연가스를 생산하고 수출하여 대번에 가난의 모자를 벗었다 한다. 아랍추장국련방의 석유 수출량은 세계의 6번째 순위라고 한다. 지금 아랍추장국련방은 부자의 나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아랍추장국련방 정부에서는 단순히 석유와 천연가스를 수출하는것으로 국가 경제가 의존한다면 앞으로 지하자원의 고갈로 인하여 나라가 또 다시 가난을 데풀이 할수 있다고 인정하고 전략적으로 새로운 길을 모색하였다 한다. 정부에서는 석유와 천연가스 생산과 수출을 제한 하기로 하였다 한다. 대신 아랍추장국련방에서는 공업생산과 금융산업, 관광업을 발전시키는데 중시를 돌렸다고 한다.
      아랍권 나라들은 좀 보수적인 경행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아랍추장국련방은 개방적인 편이라 한다. 아랍추장국련방의 지도자들은 보수적 정책을 유보하면서도 점차적으로 개방을 실시하였다고 한다. 개방을 하고 외국자본이 아랍추장국련방에 와 개발하며 투자하는것을 지지하며 투자자들에게 유리한 우혜정책을 실시하자 해외의 많은 투자자들이 아랍추장국련방에 투자를 하였다. 많은 외국 자금을 인입하여 자국의 경제건설을 가속화하고 있었다
       아비다비 공항에서 아부다비시로 들어오면서 보면 도로옆은 어디라없이 무연한  나무숲으로 덮혀있었다. 사막을 나무숲으로 만든다는것이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아랍추장국련방에서는 생태환경을 개변하는데 많은 투자를 하였다. 풀 한포기 없던 사막에 나무와 풀을 심어 식물들이 자랄수있게 조건을 마련해주었다. 식물이 자랄수 있는 곳에는 어디나 수도관을 늘여 놓았다.
       아부다비시에 들어설때 가이드가 려행객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아랍추장국련방의 80프로의 사람들이 이슬람교를 신앙하고 있다고 했다. 아랍추장국련방에 와서는 종교에 대하여 존중하며 법 질서를 잘 지키라고 말하였다. 특히 거리에서 함부로 녀인들과 말하여서는 안되며 더욱히는 녀인들을 사진을 찍어서는 절대 안된다고 했다.
      아부다비시에 들어서면 넓다란 거리와 거리량켠에 즐비하게 서있는 고층건물들이 눈에 확 안겨온다. 아부다비시는 신흥의 도시여서 고적은 보이지않고 다양한 양식을 가춘 고층건물들이 여기 저기에서 보이였다. 아부다비시는 페르샤만을 앞에 두고 있는 해변의 도시로서 수십개의 섬들로 구성되였다. 섬과 섬사이를 통하는 다리와 지하턴넬이 있어 섬과 섬사이를 자유로이 다닐수 있게 되였다. 어떤 구역에는 인공호수를 만들었다. 섬마다 특색이 있는 건축물을 지었으며 나무와 잔디를 심어 섬들은 공원처럼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아부다비 도시 중심에는 100여층에 달라는 고틍건물들이 우뚝 솟아 있었다. 황금 40톤으로 장식힌 왕궁은  금빛찬란하였다. 섬과 섬사이에 있는 인공호수에서는 여러가지 류형의 배들이 오가고 있었다. 그 배중에서 흰 돗을 단 돗배가 풍향에 따라 물위로 달리는것이 인상적이였다. 부두에는 배를 타려는 손님들로 북적이였다.
      아부다비시를 한바퀴 돌고나니 어느사이 저녁때가 되였다. 우리는 아부다비시 중심가에 있는 중국인이 경영하는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였다. 며칠만에 처음으로 맞나는 중국음식을 먹었다. 이 음식점에서도 돼지고기를 제외한 여러가지 고기와 채소로 중국식 료리를 만들고 있었다. 우리팀에 술을 좋아하는 강서성에서 온 류씨가 있었다. 그는 식당주인에게 술이 없는가 물었다. 식당주인은 낮은 소리로 술은 있는데 값이 비싸다고 하였다. 류씨가 값은 상관 말고 술을 달라고 했다. 식당주인은 술을 갖다주면서 조심하여 술을 마시라고 주의를 주었다. 이스람교 교인들은 절대 술을 마이지 않는다고 하면서 음식점에서 술을 파는것을 엄금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술을 마실때 당지사람들이 보지않게 조심스럽게 마시라고 했다. 그말을 듣고 류씨는 도둑술을 마시였다.
 
                                                       2.      두바이로 가다
 
       우리팀은 하루를 아부다비에서 보내였다. 이튼날 우리는 아랍추장국련방에서 두번째 큰 도시인 두바이로 떠났다. 아부다비시에서 두바이로 가는데 3시간이 걸리였다. 아비다비에서 두바이로 가는사이 공로옆에 보이는것은 푸른 나무숲이였다. 아부다비시에서 두바이 경계까지는 나무숲이 우거졌지만 두바이 경계에 들어서면 나무숲이 드물었다. 나는 나무숲을 보면서 아랍추장국련방에서는 정말로 많은 자금을투자하여 사막을 다스렸구나 하는 생각이들었다.
      두바이추장국은 아랍추장국련방에서 두번째로 부유한 추장국이였다. 두바이시는 두바이추장국의 수부이다. 두바이추장국은 아랍추장국련방에서 두번째로 부유한 추장국이라 한다. 하지만 두바이시를 세계에서도 손꼽는 도시로 건설하였다.
       두바이시도 아부다비와 같이 페르샤만 해변가에 자리잡고 있는데 여러개 섬으로 구성되였다. 나는 두바이로 오기전에는 두바이시는 바다를 메운 인공섬에 도시를 건설하였다는 말을 들었다. 실제로 와보니 한개 인공섬을 제외한 기타 섬들은 모두 자연섬들이였다.
     50년전만 하여도 두바이추장국은 가난한 어촌 마을이였다 한다. 이곳 주민 대부분은 고기를 잡고 농사를 지으면서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어촌마을에는 작은 부두가 있었다 한다. 일부 사람들은 이 부두를 통하여  페르샤만 주변국들과 상업무역을 하였다 한다.  60년대 중반에 들어서서 두바이지역에서 석유와 천연가스가 많이 매장된것이 발견 되면서 두바이추장국은 아부다비추장국 버금으로 석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량이 많이있는 추장국으로 되였다 한다. 석유와 천연가스의 생산과 수출로 두바이추장국은 부자나라 행렬에 들어서게 되였다고 한다
      이름없던 어촌마을, 두바이가 세상에 두각을 나타내게 된데는 두바이추장국에서 많은 석유를 생산하고 수출한데 있지만 그보다도 두바이추장국에서 석유수출과 함께 두바이의 독특한 지리적위치와 자연 환경을 종합적으로 잘 리용한데 있다고 한다. 두바이는 페르샤만 지역의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바레인. 까타르, 오만등 나라들과 린접해있는 삼각지대에 있다. 페르샤만을 통하여 아세아 나라들과 유럽, 아프리카 나라들과 련결할수있는 좋은 지리적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두바의 정부에서는 이 유리한 조건을 리용하여 국제금융기구를 세우고 세계 여러 나라의 화페들이 자유로이 류통되도록 하였다고 한다. 금융산업과 동시에 관광산업을 발전시키였다 한다. 정부에서는 많은 자금을 투자하여 호텔과 같은 숙박 시설과 부두를 건설하였다. 또 외국기업들이 금융산업과 관광산업에 투자하도록 좋은 우혜정책을 실시하였다 한다. 국내외의 투자가 활성화되자 두바이는 대번에 변신하였다 한다. 도시의 면모가 일신되고 환경조건이 좋아지자 세계각지의 유람객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축적된 많은 자금은 이름없던 두바이를  세계일류의 도시로 부상하게 하였다 한다.
      두바이시에는 고급 호텔이 많이 있었다. 해변가와 도시중심에는 환경이 아름답고 멋진 양식을 가춘 호텔들이 광채를 뿜고 있었다. 이름이 뜨르르한 5성급 호텔도 여러채 있었다. 일반적으로 5성급 호텔이라 하면 최고급 호텔이라 인정하는데 두바이시에는 6성급 호텔도  있었다. 어떻게 되여 이 호텔이 6성급 호텔로 되였을가? 이 호텔에 6성급으로 되게 한  에피쇼트가 있었다. 한번은 프랑스의 한 신문기자가 그 호텔에 주숙하였는데 호텔의 시설과 주위환경이 너무나좋고 서비스가 하도 좋아 이 호텔은 마땅히 6성급에 해당 된다고 신문에 등보하는 바람에 6성급호텔이란 영예를 가졌다 한다. 이호텔의 하루 주숙비는 인민페로 1만2천원이라 한다. 얼마나 시설과 봉사가 좋으면 하루의 주숙비가 1만2천원이라 할가?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런데 강서성에서 온 류씨네 부부가 그 호텔에서 하루를 보냈다. 류씨는 그 호텔에서 하루를 보내고 나서 어떠 어떻게 좋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썩 만족해 하는 기분이였다.
     두바이시에 가면 꼭 가보아야 할곳이 두곳이 있다. 한곳은 세계에서 제일높은 호텔인 부르지 알 아랍 호텔이다.  146층되는 이 건물은 인공 섬 위에 세워졌다. 이 호텔은 배의 돛처럼 보이도록 설계되여 있었다. 다른 한곳은  사막려행이다. 두바이에서 한시간 가량 서쪽으로 가면 산같은 모래언덕이 보인다. 두바이정부에서는 이곳에 사막 유람지를 만들어 놓았다. 유람객들의 사막에서의 생활체험을 하도록 장막을 만들어 놓았고 여러가지 운동시설을 갖추어 놓았다. 찝차를 타고 사막위를 올라갔다 내려 오는 아찔아찔한 기분을 맞볼수 있고 락타를 타고 천천히 사막 려행을 할수 있었다. 사막려행은 대낮에 하지않고 해질너녘에 한다. 대낮의 기온은 30도가 넘지만 해가 지면20도로 내려간다. 유람객들은 사막려행에서 색다른 감각을 느낄수 있다.
       나는 사막 유람을 한후 부르지 알 아랍 호텔로 갔다. 이 호텔로 올라가려면 85딸라를 내고 문표를 사야했다. 146층으로 된 이호텔은 유람객들이 125층까지 올라 갈수 있었다. 이호텔 아래층에는 세계 일류라 자랑하는 무역시장이 있었다. 또 수족관이 있었다, 이호텔에는 단번에 몇만명 사람을 용납할수 있었다. 124층에 전망대가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서 단 58초이면 124층 까지 올라 간다. 전망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분비고 있었다. 나는 전망대에서 두바이시를 굽어보면서 사진을 찍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두바이시는 아름운 도시였다.
      우리는 두바이시 한 5성급호텔에서 하루밤을 잤다. 이튼날 우리는 두바이시 한 금품상점으로 갔다. 상점에는 각종 금 장식품들이 진렬되여 있었다. 판매원들의 말에 의하면 이곳이 금 장식품은 진짜이며 값은 다른곳에 비하여 싸다고 했다. 후에 알고보니 두바이에서 팔고있는 금 장식품들은 값이 저렴하지 않았다. 값이 저렴하지않은 원인은 두바이에서 팔고있는 금 장식품들을 수입제품 이기때문이였다.
       아랍권 나라의 사람들은 금 장식품을 좋아한다고 한다. 상점의 금 장식품들을 보면 화려하게 만들었다만 우리 중국 사람들의 생활습성과 어울리지 않아 인기를 끌지못하였다.
     우리는 2일간 두바이에서 즐겁게 보내고 3일만에 다시 아부다비로 돌아갔다.  
 
                                                   3.     아랍추장국련방의 종교문화
 
      아랍추장국련방에는 이슬람 사원이 곳곳에 있었다. 도시 건물중에서 제일 화려한 건물을 짚으라면 아마 이슬람 사원이라고 할것 같다.
      어찌하여 아랍추장국련방 사람들은 이스람교를 숭배할가? 아마 이문제를 해석하려면 잠간 이슬람교의 력사를 언급해야 하겠다.
      570년경 지금의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에서 이슬람교의 창시인 마호메트가 태여났다. 그는 신이 자신을 사람들에게 보냈으며 신을 숭배하도록 했다고 믿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유일신 “알라”가 존재하며 그 자신이 바로 알라신이 보낸 전달자라고 가르쳤다. 많은 사람들이 마호메트의 말을 믿었다. 마호메트의 말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무슬림이라고 하며 무슬림은 아랍어로 “신”에 복종하는 자라는 뜻이고 이슬람은 아랍어로 “복종”이란 뜻이라 한다. 이슬람교는 세계적으로 규모가 빠르게 성장했다. 세계에는 10억의 이슬람 교도가있다고 한다.
       무슬림들이 기도하는 장소인 이슬람 사원을 “모스크” 라 한다. 모스크는 예쁜 무늬의 이슬람교의 경전인 코란에 실린 글로 장식되여 있다.
       우리는 아부다비에 도착한후 선참으로 세계 이슬람 사원중에서 세번째로 범위가 크고 화려 하다는 쟝리다 사원으로 갔다. 이 사원을 짓는데 사용한 황금은 무려 20톤이된다고 했다. 사원으로 가기전에 가이드가 주의를 주었다. 사원으로 들어갈때 짧은 바지를 입어서는 안되며 녀자들은 흰옷을 입지말며 머리를 수건으로 감싸야 한다고 했다. 사원으로 들어가기 전에 가이드가 일이리 검사하였다.
      사원으로 들어갈때 경비원들이 엄하게 검사를 하였다. 화려하고 숭엄하게 건설한 이 이슬람 사원은 단번에 4만명을 용납할수 있다고 했다. 사원 룡마루의 뾰족한 부분은 전부 황금으로 도금하였다.
      사원대청으로 들어갈때 반드시 신을 벗어야 한다. 사원대청앞은 넓은 광장으로 되였다. 그 광장을 중심으로 네면에 집을 지어 사람들이 다니는 현관처럼 만들었다. 사원의 중심부인 예배청은 우리가 상상도 못할정도로 화려하게 꾸미였다. 전등 하나의 값이 8만딸라라 했으니 예배청의 얼마나 호화로운지 짐작할수있다.  예배당 대청안은 사람의 손수 짠 탄자가 깔려 있었다. 우리가 그곳으로 갔을때 예배시간이 지난때라 별다른 행사가 없이 거저 구경만 하였다.
      우리는 한시간 동안 이슬람 사원을 돌아보고 나왔다. 사원을 나오면서 나는 아랍추장국련방 사람들은 굳게  이슬람교를 신앙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간 이집트와 아랍추장국련방을 유람하면서 보니 아랍추장국련방 남자들은 흰 자루같은 옷을 입고다니며 녀자들은 복면한 검은 옷을 입고 다니는것을 보게 되였다. 나는 이 무더운 날에 저렇게 자루같은 긴 옷을 입고 다니며 녀인들은 복면하고 다니니 얼마나 불편할가? 궁금하였다. 내가 궁금해 하자 가이드가 해석해 주었다. 아랍권 남자들이 입고 다니는 옷은 보기에는 탐탐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그렇지 않다고 했다. 남자들이 자루같은 넓고 긴 옷을 입는것은 사막의 뜨거운 햇빛을 가리기 위함이라 했다. 그들의 입은 옷은 뜨거운 열기를 배출하는 통과 같은 작용을 한다고 했다. 집안이 더울때 열기를 내 보내기 위하여 통풍구를 여는것이나 다를봐 없다고 했다.
       녀인들이 검은 옷을 입고 복면하는것은 이슬람교 교인들이 “코란경”에 따른것이라 한다. 코란경에 의하면 녀자들은 반드시 한 남자와 결혼하여야 하며 평생을 한남자에 종속되여야 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녀자들은 어릴때부터 집에서는 아버지, 시집가서는 남편만 얼굴을 볼수있고 다른 남자들은 볼수없다고 한다. 다른 남자의 눈길을 피하기 하기위하여 복면한다고 한다. 밖에 나와서는 시집간 녀인들은 철처히 복면하고 다니였다. 복면한 녀인들의 나이를 알려면 그들의 손을 보면 안다고 했다. 그들의 손모양과 동작에 의하여 젊고 늙음을 알수있다고 한다.
       이집트에서는 일부 복면하고 다니지 않은 녀인들이 있지만 사우디아라비아나 아랍추장국련방에서는 절대 안된다고 한다. 이슬람교의 혼인은 불공편 했다. 녀자들에게는 한 남자에게 종속되여야 한다면서도 남자들은 네명의 안해를 맞을수 있다니 말이다. 아랍련합추장국의 국왕은 부인 다섯을 두엇는데 자녀가 30명 된다고 한다.
       우리는 며칠간 아랍추장국련방 유람을 마치고 귀국길에 올랐다. 나는 신흥의 국가 아랍추장국련방에서 좋은 인상을 받았다. 나는 불모지 땅에 세계가 주목하는 부유한 나라를 건설한  아랍추장국련방의 부흥을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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