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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지》문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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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도야지야 도야지야-신분희
2019년 07월 18일 09시 52분  조회:544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신분희

도야지야 도야지야

바야흐로 뻐스를 추월하는 트럭 짐받이에서는 돼지 서너마리가 말려올라간 꼬리를 엉뎅이에 갖다 붙인 채 털썩거리는 조잡한 울림을 휘뚱거리며 온몸으로 받는다. 짐받이 란간이 간신히 만들어놓은 저가락세트 같은 그늘로 숨어들어 오물 속에 맥없이 철버덕 엎어져있는 ‘동무’를 내려다보는 모습이 안스럽다.
조수석에 앉은 ‘빨간 런닝’은 담배 한모금을 맛나게 빨아들이고 고개를 돌려 운전수를 보다가는 또 백미러를 넌떡 들여다본다. 돼지가 란간을 물어제치고 뛰여내리긴 만무하겠지만 백미러를 들여다보는 품이 꼭 그렇다. 슈퍼돼지도 아닌 일반돼지가 발쪽을 곧추 세우고 3단 점프라도 할가 봐. 다저녁의 뜨거운 해살에 한껏 달궈진, 군데군데에 누런 녹이 쓴 차량번호판 우로 더께가 몹시 앉은 돼지의 두 귀가 너풀댄다. 시야에서 시나브로 사라져가는 저 트럭은 돼지들을 싣고 어디로 가는 걸음인 걸가. 이십년전에 우리 집 어미돼지도 이런 트럭에 실려갔던 걸가…
돼지 세마리가 우리 안에서 노상 꿀꿀거리던 내 어린 시절, 돼지는 왜 밥이 아닌 죽을 먹나 하고 자주 심통을 부렸다. 죽이라 하면 점성이 좋고 차분한 죽을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시골서 커오며 돼지죽냄새를 꽤 맡아본 내 또래들은 안다. 죽 세 바께쯔를 퍼나르고 나면 바지가랭이가 죽갈기에 맞아 흠씬 젖을 정도로 죽의 묽기가 물 같다.
돼지가 죽을 먹는 모습을 보면 왜 죽이 그 정도로 묽어야 하는지 답이 나온다. 아작거리며 물어서 입에 밀어넣는 게 아니라 코를 죽물 속에 박고 뿌글뿌글 날숨기포를 내보내며 핥아삼킬듯 ‘텁텁텁’ 먹어야 하는 돼지의 생체특성상 별수없이 멀겋게 쑤어야 먹기 편하다.
죽을 가득 담은 바께쯔는 어린 언니와 나로서는 드다루기가 힘들었다. 조심하지 않아 쏟뜨리고 나면 세마리가 먹을 정량은 턱없이 부족해진다. 그러면 엄마는 귀가 닳은 밥주걱을 가져다 흙 속으로 스며들고 있는 죽물을 날래게 긁어서 바께쯔에 담았다.
“야네 그걸 먹고 맹장(염)에 걸리무 어찜까?”
어렸을 적 맹장염에 걸려 수술을 받은 적 있는 언니가 울상을 짓고 거뭇거뭇한 흙이 발린 바께쯔를 들여다보았다.
“유리를 먹구두 소화시키는 눔들이다. 별 걸 다 걱정하네.”
벌름거리는 코끝에다 흙모래를 도돌도돌 붙이고 다니는 건 흔하게 봤지만 유리를 아작아작 씹어먹는 건 못 봤던 고로 언니와 나는 엄마의 말을 믿지 않았다. “유리도 삼킬 정도로 월등한 소화력을 자랑한다던” 돼지는 구유 밑바닥에 흙덩이를 수태 남겨놓고 죽찌꺼기만 골라먹었다. 툭 내던지는 듯한 엄마의 그럴듯한 론리가 순식간에 그릇된 것으로 시원하게 판명난 바람에 언니와 나는 배꼽을 잡았다. 분명한 건 돼지는 유리나 흙을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굳이 더러운 점을 들어보라면 닭똥을 땅콩처럼 잘 주어먹는다는 사실 외에.
세마리 중 검정바탕에 배가 얼룩덜룩한 어미돼지가 출산하는 날이 다가오면 엄마는 벼짚을 보드랍게 잘 추려서 잠자리에 두툼히 깔아준다. 산통이 야금야금 파고들 때면 어미돼지는 땅에 끌릴 듯한 배를 가누며 쉴새없이 우리 안을 돌았다. 한바퀴, 두바퀴… 몇십바퀴를 돌고 나서 ‘베테랑엄마’답게 산좌에 턱 드러누우면 ‘새끼낳이’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징조라고 여겨도 좋다. 나랑 동생은 어미돼지가 놀랄가 마음을 졸이며 우리에 댄 널판자에 뚫린 구멍으로 갓 태여나 눈도 못 뜬 꼬물꼬물한 아기돼지들이 스스로 ‘엄마’ 젖을 찾아먹는 광경부터 묽은 죽만 먹고사는 줄 알았던 어미돼지가 홀쭉해진 몸을 일으켜세우고 움푹한 검은 눈을 번득이며 태반을 우걱우걱 씹어먹는 모습까지 지켜보고서야 “다 낳았슴다!”를 겨끔내기로 웨치며 밀치락닥치락 집으로 뛰여들어간다. 작고 힘없이 태여나 젖을 제대로 찾아먹지 못하는 새끼돼지한테 우유병을 물려주는 일도 다반사였으니 곧 앙증맞고 말랑말랑한 새끼돼지를 안아볼 수 있다는 들뜬 기대도 없지 않았다.
새끼돼지들이 포동포동 여물어갈 때가 되면 굳이 사구려를 부르지 않아도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몰려든다. 토실토실 살이 오른 귀여운 엉뎅이를 쌜룩거리며 마당을 헤집고 다니던 아기돼지들이 사람들이 다녀갈 적마다 서너마리씩 없어질 때 어미돼지 마음은 어땠을가? 새끼가 팔려가도 애처롭게 울 줄 모르는 짐승이려니 여겼기 때문에 ‘미련퉁이’라는 말도 안되는 특징이 더 명확해졌는지도 모른다. 콩가루를 넣어 죽을 맛있게 끓여줘도 통 먹질 않는다고 혼자말을 하던 엄마도 마음이 언짢고 어수선한지 우리 안에 드러누워 꼼짝도 안하는 어미돼지를 들여다보며 가느다란 한숨을 내쉬였다.
“꽤액 꽥―” 요란스레 울며 새끼돼지들이 한마리 또 한마리 삼륜차에 실릴 때면 “꿀꿀―” 하는 어미돼지의 낮고 굵직한 소리가 방불히도 “괜찮아, 괜찮아”로 들렸을 정도로, ‘돼지가족’의 원치 않았던 강제적이고 희생적인 ‘리산’으로 맞바꿔온 빨락지페는 근심걱정으로 찌프려졌던 엄마의 량미간을 펴이기에 늘 충분했고 어미돼지가 장장 8년 동안 ‘새끼낳이’를 해온 로고는 매번 언니와 나, 동생의 학비, 교과서비용에 모조리 충당되였다.
결코 저속하지 않는 속된 느낌을 주는 ‘로무주’(老母猪)는 암퇘지를 두루 일컫는 말이지만 8년을 새끼낳이로 보낸 ‘퇴역산모’ 어미돼지는 늙을 ‘로’자를 하나 더 선사받아 ‘로로무주’(老老母猪)로 불렸다. 어미돼지가 나이를 먹어 더이상 ‘새끼낳이’를 못할 즈음, 어미돼지의 육덕진 덩치를 탐내는 장사군들의 발길이 잦아졌고 엄마는 번번이 덩치가 크다는 핑게를 대며 값을 높이 쳤다. 머리를 홰홰 저으며 ‘형편없이 늙은 로무주라 고기가 질겨서 잘 팔리지도 않을거다’라는 잔인하지만 현실적인 장사군의 ‘설득’에 마음이 불편해지면 엄마는 두마디 안짝에 팔지 않겠으니 가라고 가차없이 문 밖으로 떠밀었다. 죽을 줄 때마다 ‘우리 집 복돼지’라고 등을 긁어주던 엄마 마음을 어린 나는 알 것 같기도 했지만 얼마전 더 불어난 ‘새 돼지식구들’의 먹이까지 매일 적잖은 량을 장만해야 하는 수고로움을 조금이라도 덜면 좋을 텐데 하는, 몰리해식의 눈길로 엄마를 바라봤다.
그랬던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보니 어미돼지가 보이지 않았다. 구유에는 평소 그토록 맛나게 ‘텁텁텁’ 물어먹던 삶은 늙은 호박이 몇점 뒹굴고 있었다. 덩치가 하도 크고 몸부림도 심해서 트럭에 싣기 무척 힘들었다고 했다. 나중에는 눈에 불을 일구며 드잡이하듯 장사군한테 달려들길래 도끼등으로 머리를 갈겨 잠시 혼절시켜서야 트럭에 실을 수 있었다는, 두고두고 지독히도 아릿하고 끔찍했던 세부는 누가 나한테 얘기해줬던가…
그 뒤로는 차차 살림도 펴이고 부모님도 로문해지면서 돼지치기를 그만두게 됐지만 8년을 키워왔던 어미돼지를 생각할 적이면 언제나 축 늘어진 만삭배가 눈앞에 얼른거려서 마음이 착잡하다.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대학교 선배가 언젠가, 구정물 바께쯔에 쏟는 음식물 속에 이쑤시개라도 섞여들어갈가 봐 습관처럼 항상 조심하게 된다고, 돼지가 먹다가 혹여 목구멍에라도 걸리면 어쩌나 마음이 쓰이더라고 말하던 게 기억난다. 내남없이 궁핍했던 그제 날에 엄마의 한숨을 지워주고 그늘을 거둬준 돼지의 희생에 대한 묵직한 고마움은 세월이 흘러도 쉬이 잊혀지는 게 아닌가 보다…
검정바탕에 배가 얼룩덜룩했던 어미돼지, 맥없이 트럭에 실려간 뒤로 어디서 어떻게 마지막숨을 몰아쉬였는지 모르겠지만 궁금하지도 않고 더욱이는 구태여 떠올리고 싶은 장면이 아니다. ‘8년 동안 낳아놓은 귀여운 아가들과 함께 부디 희생과 아픔이 없는 좋은 곳으로 갔기를.’ 아득하게 멀어지는 트럭 꽁무니를 점도록 바라보며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축복이 고작 이런 말이라는 사실 때문에 좀 많이 괴롭다…

출처:<<도라지>>2017년 제5기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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