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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향’, 정착의 심리지향이 찾은 이주민의 고향
2009년 05월 16일 15시 00분  조회:2370  추천:0  작성자: 방룡남

-안수길의 ‘체질론’과 ‘북향정신’을 중심으로

                                                           

                                                     

                                                          

1. 서론

2. 작가의 리얼리즘적 창작이념-‘체질론’

3. 정착지향의 현실극복의지-‘북향정신’

4. ‘체질론’과 ‘북향정신’의 역사철학적인 변증관계

5. 결론

    



1. 서론


한국문학에 있어서 1930년대 말부터 1945년 광복 전까지를 일제 말 암흑기라고 한다면, 이 시기의 한국 문학은 흔히 그 친일성이 절대화되어 공백기라는 이름으로 선별 없이 폐기처분해버리는 성향이 압도적이었다. 그러다가 오양호가 재만 조선인문학에 관심을 갖고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한 이래, 그 연구 작업이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재만 조선인문학에 국한되지 않고 전체적인 한국문학의 재정립에로 의미가 확장됨으로써, 일제 말 암흑기 한국문학의 본래의 모습을 다시 찾는 민족문학사적인 성업의 일환으로 되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재만 조선인문학 연구는 첫째, 이 시기 한국문학에 대해 피해과잉반응적인 식민담론의 이분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둘째, 이러한 전체적인 비평시각에서 재만 조선인문학의 성격과 주제의식에 대해 올바로 진맥하지 못한 탓으로 많은 쟁점들을 성과와 함께 안고 넘어왔다.

재만 조선인문학은 우선 대륙이라는 새로운 삶의 공간에서 민족의식을 토대로 하여 뿌리내린 한민족문학의 내용적 확장이다. 그 다음은 대륙에 정착한 조선인이주민들이 정주국의 국민이라는 변질된 신분에서 자기 문화적 정체성을 지키면서 키워낸 문학-중국조선족문학의 원형질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적인 공통분모로 하여 중국조선족문학은 중국문학의 한 갈래로 되면서도 역시 한민족문학의 한 갈래로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확인은 세계가 다문화시대에 들어서고 있는 현 시점에서 특정한 하나의 문학이 다민족국가에서는 소수민족문학으로, 단일민족국가에서는 확장된 문화공간에서의 민족문학으로 될 수 있다는 열린 인식을 요청하는 것이다.

이 글과 관련해서는 재만 조선인이주민문학이 우선 한민족문학의 내용적 확장이라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다. 이는 재만 조선인이주민문학을 우리 전통문화의 승계와 민족의 주체성에서 확인하려는 시도에서 출발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시도는 선행연구에서 김동민1)과 같이 재만 조선인문학을 한권의 책으로 다룬 경우에조차 그 문학적 성격규명을 민족문학의 분류코드에서 확인하지 못하고 소재적인 분류코드에 잘못 편입시키고 있는 상황에 대비해서이다. 그는 재만 조선인소설을 일제 주도하의 개척과 개척민이라는 이야기구조를 갖는 개척소설로 규정함으로써 결국 재만 조선인문학을 특정한 소재를 다룬 문학으로 확인하였다. 그 소재부터 벌써 일제 주도하의 개척사업과 불가분리적으로 연관된 만큼 연구자는 결국 식민담론의 틀 속에 갇혀 친일성향에 대한 부정에 급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일제의 눈을 피해간다는 개척소설의 특질”에 의해, 서사구조상 표면적으로는 동조적인 자세이고 저항의지는 내면적이고 암시적이라는 변호는 너무나 설득력이 떨어지는 변명일 수밖에 없다.

이제 󰡔중국조선족 문학의 어제와 오늘󰡕2)에 이르러 재만 조선인문학의 총체적 특성을 민족적 정체성에서 확인하고 발생학적 차원에서 이주 및 정착의 문학으로 범주화하고 있다. 이는 재만 조선인문학이 특정한 소재를 다룬 문학이기 전에 벌써 역사의 필연적인 산물로서 내용이 확장된 민족문학임을 밝힌 것이다. 그러나 이 연구에서도 구체적인 작품평가에서는 소재주의적인 접근으로 하여 자가당착의 식민담론에 페이지를 소비하는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의미담론과 서사담론의 유기적인 통일이라는 문학 본체론적인 비평방법에 대한 역량부족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재만 조선인문학의 연구에서 안수길과 그의 작품은 언제나 집중조명의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다.3) 그 이유는 「새벽」에서 󰡔북향보󰡕에 이르는 안수길의 만주이주민소설은 그대로 조선인이주민의 이주, 개척, 정착의 역사를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안수길은 「새벽」, 「새마을」, 「원각촌」, 「목축기」 등 일련의 초기 작품을 통하여 조선인이주민의 이주, 개척, 정착의 노정을 보여주면서 작가의 ‘체질론’으로서의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철학적 물음을 나라를 잃고 고향을 떠난 식민지 이주민이라는 역사범주로 묶어 해답을 얻으려 하였다. 즉, 나라를 잃고 고향을 떠난 식민지 이주민이라는 역사범주는 이미 ‘그것이 무엇이냐’하는 대상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인 확인을 넘어선 것이다. 작가의 ‘체질론’이 ‘어떻게 살 것인가’일 때 안수길의 소설이 추구하는 것은 항상 ‘그것이 무엇이냐’하는 대상의 본질적인 확인위에서 이루어지는 당위적인 행동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창작계보의 결정판이 󰡔북향보󰡕이다. 단편소설들에서 이주, 개척, 정착의 어려움을 보여주었다면 장편소설 󰡔북향보󰡕는 정착의 당위성을 넘어서서 어떻게 정착할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단편소설들에서는 ‘북향정신’이 주로 원색적인 생존의식에 의한 정착의념으로 나타난다면 󰡔북향보󰡕에서는 ‘북향정신’이 마침내 민족공동체의식에 의한 민족의 주체의식으로 개념화된다.

‘체질론’과 ‘북향정신’의 변증관계에 대한 올바른 해석은 안수길의 조선인이주민소설의 의미담론에 밀착 접근하는 한 분석담론이 되고, 나아가서는 재만 조선인문학의 발생적 근거와 문학사적 성격을 규명하는 열쇠가 될 것이다.

 

 

2. 작가의 리얼리즘적 창작이념-‘체질론’


안수길은 스스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자기의 창작 ‘체질’로 확인하였다. 그러나 안수길은 결코 ‘그것이 무엇이냐’하는 철학의 본질적인 물음을 외면하거나 지나치지는 않았다. 그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창작의 ‘체질론’으로 내세웠을 때는 이미 ‘그것이 무엇이냐’하는 철학의 본질적인 물음을 밑감으로 하고 있는 것이었다. 안수길의 ‘체질론’의 철학적 바탕이 되는 그의 일생의 좌우명을 떠올리면 그러한 밑감은 한결 선명해진다.

작가지망생이던 안수길은 파스칼의 󰡔팡세󰡕에 나오는 “신음하면서 더듬어 찾는 사람만을 시인(是認)할 수 있다”는 구절에서 ‘신음하면서 더듬어 찾는다!’는 탁상좌우명을 만들어냈다. 그 후 육체적인 아픔과 식민지 현실에서의 정신적인 고민 속에서 작가적 생활을 통하여 마침내 그것의 철학적 의미를 재확인하였다.


내가 「팡세」를 읽었을 때는 앞에 쓴 대로 20대의 전반이었고 그 무렵은 일정시대(日政時代)다. 그리고 그 무렵에 나는 굉장한 정열을 가지고 세계명작을 읽고 있던 소설가 지망자였다. 거기에 가정 형편과 좋지 못한 건강 때문에 학업도 중단하지 않아서는 안 되었던, 이를테면 불우한 시기였었다.

「신음하면서 더듬어 찾는다」는 말이 그대로 내 마음에 먹혀 들어왔다. 불우한 문학청년인 나에게 이처럼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되는 말이 있은 것 같지 않다.

「신음하면서 더듬어 찾는다!」

나는 이 말을 입 속에서 푸념처럼 뇌이면서 그 후에 또 겪지 않아서는 안 되었던 중병시기(重病時期)와  해방 전후와 오늘날까지의 격랑(激浪)의 현실을 용하게 헤엄쳐서 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4)


육체적 아픔과 정신적 고민의 극복의지가 ‘신음하면서 더듬어 찾는다!’는 철학을 밑감으로 하였을 때 작가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체질론’으로 할 수밖에 없다. ‘신음하면서’는 바로 육체적 아픔을 식민지인의 아픔에 비하면서 사회 현실의 본질적인 것에 대해 역사 철학적으로 ‘그것이 무엇이냐’를 사유하고 확인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더듬어 찾는다!’는 그와 같은 본질적인 확인을 밑감으로 하고 ‘어떻게 살 것인가’를 ‘더듬어 찾는다!’는 작가의 창작이념과 현실극복의지임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체질론’은 바로 ‘그것이 무엇인가’를 밑감으로 하여 발산되는 색깔이나 돋아나는 무늬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의 초기 이주민소설 「새벽」은 한 이주민 가족이 간도에서 지팡살이하면서 겪게 되는 피눈물의 수난사를 쓰고 있다. 당시 만주 이주민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인 지팡살이로부터 이주민생활을 시작한 주인공은 이미 특정한 만주 조선인 이주민 사회의 인간관계와 기본모순 속에서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다.

지팡(地方=農場), 지팡주(地方主), 지팡살이라는 단어는 조선인이주민들이 만주에 와서 만주 지주들의 땅을 소작 맡으면서 생겨난 신조어이다. 그만큼 이 단어들의 사회역사적 성격 내지 의미는 만주 조선인 이주민과 만주의 지주와의 관계 속에서만 본질적으로 밝혀질 수 있다. 즉 일제의 침략으로 나라를 잃고 고향을 떠나온 조선인이주민들이 만주에서 또 토착지주의 억압과 착취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현실을 기록하는데 사용된 단어인 것이다.

그런데 선행연구들에서는, 소설의 기본갈등을 민족구성원인 지팡살이 주인공과 ‘얼되놈’ 박치만과의 사이에 설정한 것은 이러한 역사적 현실을 외면하였거나 시대의 본질적 모순을 인식하지 못한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당시의 정치적 정세에 대한 묘사와 이주민들의 간도 이주의 근원적 문제에 대한 파악이 결여되어 있다.(중략)

이런 문제점은 이주민들의 비극의 원인을 동족인 지주 농간에 주된 원인을 설정하고 있는 데서도 드러난다. 비록 박치만 같은 반민족적 인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민족의 역사적 비극을 이러한 한 개인, 그것도 마름의 신분밖에 안 되는 ‘얼되놈'에게 한정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희석시켜 놓을 수 있다.5)


신분적으로 말하면 마름인 ‘얼되놈’은 통치세력이나 억압세력의 분류코드에 속하지만, 토착지주의 기생물에 지나지 않으므로 사회의 본질적인 모순이 될 수는 없다. 달리 말하면 ‘얼되놈’은 이주민의 절대적인 대립항이 아니므로 그와의 모순은 개인적인 것일 수도 있고 사회적인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박치만을 동족의 구성원이고 특수한 한 개인일 뿐이라고 하는 것은 텍스트 서사담론을 외면한 피상적인 판단이다. 이런 판단은 다만 소재주의적으로 박치만이 토착지주의 마름인 ‘얼되놈'일 뿐이라는 표상적인 신분확인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텍스트 서사구조에 의한 의미담론을 보면 박치만은 토착지주의 단순한 대리인이 아닌, 이주민 지팡살이의 절대적인 대립항으로 설정되어 있다.

“문학텍스트가 언어활동 층위에서 어떻게 사회적, 역사적 문제들에 반응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답”6)하는 것은 바로 텍스트 사회학의 출발점이다.

박치만과 주인공의 갈등이 조선인이주민사회의 본질적인 모순이 될 수 있는 것은 그가 부재지주의 대리인으로서, 실질적으로는 지팡주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신분확장으로 하여, 주인공이 지팡살이에서 불가피하게 겪게 되는 모든 대립과 갈등은 직접적으로 박치만과 부딪쳐 일어나고 있다. 지팡살이의 특징적인 억압형태인 볼모잡기, 고리대 등도 모두 박치만의 직접적인 의도로 행해진 것이다. 그는 또 집사대나 경찰서와 같은 지배세력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 사회 권력이나 억압세력의 힘에 의존하여 지팡살이하는 이주민들한테 볼모잡기나 고리대를 놓는 등 지팡주의 권세를 고스란히 행사하고 있는 박치만은 이제 더는 단순한 ‘얼되놈'이 아니다. 따라서 그와의 모순 갈등도 더는 이주민 구성원지간의 갈등이 아니며, 특정시대와 관계없는 단순한 개인적인 갈등은 더구나 아니다.

이러한 담론분석을 따르면 「원각촌」의 ‘얼되놈'인 한익상도 신분확장에 의하여 같은 갈등구조를 형성한다.

‘원각촌’이라고 하는 ‘이상촌’을 건설하는 원각촌민들은 지팡살이에서 해탈되어 ‘자기 땅’을 다루고 있는 듯 했으나 실은 조선인이주민들에게 강요되었던 ‘입적’이라는 생존방식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런 강요된 생존방식에 의해 만들어진 신조어가 바로 ‘홋주인’이다. 당시 민국(民國)에 입적하지 않은 사람은 토지를 살 수 없었는데, 이주민들은 이미 입적을 한 사람을 내세워 그의 명의로 땅을 샀다. 이렇게 토지문서에 적힌 입적한 사람을 ‘홋주인’이라고 하였다. ‘홋주인'이 그냥 명의만 빌려주었을 때는 이주민의 구성원의 성격이 변질되었다고 할 수 없겠지만, 일단 그가 사실상의 지주가 되어 경찰, 관리 심지어는 마적과 직접적으로 끈끈이 줄을 잇고 조선인 이주민을 못살게 굴 때 그는 이미 이주민의 구성원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원각촌」의 한익상이 바로 그러한 인물이다.

이처럼 박치만이나 한익상의 변질된 신분을 확인할 때, 소설의 갈등구조는 결국 이주민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놓여 있는 것이다. 즉, 소설은 식민지 이주민이라는 주인공과 통치세력으로 신분이 변질된 박치만이나 한익상의 갈등을 기본 플롯으로 설정함으로써, 식민지이주민의 역사적인 비극적 운명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새벽」과 「원각촌」은 이주민과 변질된 구성원의 갈등을 통하여 식민지 이주민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변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상기 분석에서 보면 작가 안수길은 자기의 ‘체질론’을 인식론과 방법론의 통일위에 구축하고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미래지향적인 방법론은 항상 ‘그것이 무엇이냐’하는 대상에 대한 본질적인 인식론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다.

안수길의 고백에서도 이점을 확인할 수 있다.


문학의 대상이 인간이고, 소설은 그 인간을 생활면에서 구체적으로 허구(虛構), 표현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작가의 관심은 전연 인간에 있고, 그 생활에 있고, 그것의 표현에 대한 부심(腐心)에 있을 밖에 없는 일이다. 표현의 부면(部面)이 작품에 있어서의 예술이고 인간과 그 생활의 부면이 내용이 되는 것도 자명한 일이다.

그런데 작품의 내용이 되는 인간 자체도 「그것이 무엇이냐」와 「어떻게 살 것인가」로 가려 생각해 볼 수 있다. 물론 이것은 방패의 양면같은 것이어서 그 한쪽만으로 작품이 성립될 수 없는 것인데, 가령 전자에 치중한다 하더라도 인간의 본질의 구명은 그것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의 시사(示唆)를 그 작품에서 받을 수 있고 후자의 경우도 작가가 인간의 본질을 구명하는 날카로운 눈을 가지고 임하지 않을 때 그 인간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올바르고 정확한 길을 제시할 수 없을 것이다.7)


「새벽」이나 「원각촌」에서는 민족구성원간의 갈등이라는 표층구조와는 달리 신분확장이라는 치밀한 서사전략에 의하여 이주민사회의 구조적 모순이라는 심층구조가 완성된 것이다. 본질적인 사회현실에 접근하는 이와 같은 리얼리즘정신은 바로 작가 안수길이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체질론’에 앞서 대상에 대한 본질적인 확인을 밑감으로 하였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즉 안수길은 재만 조선인이주민소설에 있어서 자기의 ‘체질론’을 언제나 나라를 잃고 고향을 떠난 식민지 조선인이주민을 특정 시대의 역사범주로 대상화하는 역사철학적 인식위에 세웠던 것이다.

인물, 배경 등 사물적인 서사요소에 대하여 ‘그것이 무엇이냐’하는 역사철학적 인식이 없었다면, 안수길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역사철학적 방법론의 해답을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한 인식위에서 그는 식민지 이주민의 역사의식에 토대한 현실극복의지인 정착지향의 “북향정신”을 정제해낼 수 있었다.



3. 정착지향의 현실극복의지-‘북향정신’


‘체질론’과 함께 안수길의 재만 조선인이주민소설의 창작과정에서 발아되고 정제된 ‘북향정신’에 대한 의미 확인은 재만 조선인문학의 성격 규명과 직결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만주국을 삶의 공간으로 하여 ‘고향’과 ‘국가’라는 개념사이에서 시시비비를 몰아오고 있는 ‘북향정신’은 그 의미해석에 따라 친일사상으로 낙인찍힐 수도 있고8)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한 조선인이주민의 현실극복의지로 긍정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9) 따라서 ‘북향정신’에 대한 정의는 안수길의 재만 조선인이주민소설, 나아가서는 전반 재만 조선인문학의 성격을 규명하는 열쇠로도 될 수 있다.

개괄하면, ‘북향정신’의 정신적 실질은 역사의식에 토대한 정착지향의 현실극복의지이고, 그 실천적 내용은 민족의식을 토대로 주체적인 민족경제공동체에 의한 조선인 이주민지역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확인하다 시피 안수길의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체질론’은 ‘그것이 무엇이냐’하는 본질적인 인식론을 외면한 반쪽의 철학관이 아니었다. 그의 전체적인 역사철학적인 사유는 ‘그것이 무엇이기에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철학적 인식론에 토대한 역사적 방법연구였다. 이것이 창작의 목적론에서는 대상물에 대한 본질적인 판단을 밑감으로 한 미래지향적인 추구였던 것이다.

‘북향정신’의 정착지향성이 조선인의 만주에 대한 역사의식에서 발원한다면, 그것의 현실극복의지는 이주민이면서 식민지인이라는 신분확인에 의한 현실인식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즉 공간 확인의 역사의식과 대상 확인의 현실인식의 변증관계로 이루어진 것이 ‘북향정신’인 셈이다. 결국 ‘북향정신’도 삶의 공간과 행위주체의 신분에 대해 ‘그것이 무엇이냐’하는 본질적인 확인을 전제로 하고 있다. 대상에 대한 본질적인 확인이 없으면, 정착지향과 현실극복이라는 변증법적인 방법론을 도출해낼 수 없었을 것이다.

식민지 현실을 정시하면서 역사의식에 토대하여 정착지향의 현실극복의지인 ‘북향정신’을 정제해낸 안수길의 소설을 비롯한 재만 조선인이주민문학은, 식민담론을 주요한 내용으로 하면서도 그러한 식민담론을 전체적인 역사의 흐름 속에서 조망할 수 있는, 훨씬 많은 민족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다.

안수길의 󰡔북원󰡕에 실린 단편소설을 중심으로 하는 초기 조선인이주민소설에서는 ‘북향정신’이 아직 사전적인 정의가 확립되지 못하고 다만 원색적인 생존욕구에 의한 정착의념으로 나타난다.

「새벽」 「새마을」에서는 이주민의 비극적 삶과 정착의 어려움을 다루고 있다면, 「벼」 「원각촌」 「목축기」에서는 정착의 당위성을 확인하면서 보다 적극적인 정착지향을 보이고 있다.

그러다가 󰡔북향보󰡕에 이르러서 마침내 이념적으로 정제된 ‘북향정신’이 작가의 창작이념으로 자리매김함으로써, 민족공동체의식에 의한 주체적인 정착지향의 현실극복의지를 의미담론으로 서사화하고 있다.

안수길의 창작은 이처럼 초기부터 목적론적으로 정착이념을 내세워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체질론’의 해답을 ‘신음하면서 더듬어 찾는다!’ 정착이념이 작가의 조선인이주민소설의 기본 모티프가 된 것은 이주민사회의 신변체험을 통한 작가의 현실인식과 만주라는 삶의 공간에 대한 역사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체질이란 자연인으로서의 생리적인 것이 아니고 그 작가의 정신적인 것을 뜻하는 것일진대,(중략) 나의 경우는 청소년시절을 만주 지방에서 보냈다는 사실이 결정적인 요인인 것으로 생각한다. 내가 간도 용정(龍井)의 부모 옆으로 두만강을 건너가게 된 것은 1924년 봄, 그러니깐 내 나이 열네 살 때였다. 거기서 초등학교 5,6학년 2년 동안 공부하고 고향의 H고보에 입학, 서울․경도(京都)․동경(東京) 등지에서 학업을 닦기는 했으나 방학 때면 제2의 고향인 간도에서 지냈고, 더구나 첫 취직까지가 현지의 우리 말 신문사였고, 해방 직전 35세 때에 귀국하기까지 죽 그 신문사의 기자생활을 했다는 점을 들지 않을 수 없다10)


만주는 안수길 작품의 주인공들이 활동하는 무대나 시대적 배경이기에 앞서 인물의 행위의 동기와 사건의 계기 자체에 편입된다. 이러한 동기와 계기는 공간에 대한 애착에 토대하는바, 이러한 애착은 바로 민족의 다양한 경험을 통한 특성화라는 공간의 역사의식에서 비롯된다.11)

조선인의 만주로의 이주는 결코 식민지 시대에 와서야 발생된 현상이 아니므로 조선인이주민사회의 형성도 식민담론에만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그러므로 식민지 시대의 이주민 문제를 역사적 단절이 아닌 전체적인 이주역사의 한 단계로서 확인하여야 한다. 그럴 때 만주 조선인이주민의 역사적 성격이 올바르게 규명될 수 있고 조선인이주민 사회의 형성, 정립, 발전의 역사적 당위성을 찾을 수 있다. 식민담론은 만주 조선인이주민 역사의 전반 단계에서 식민지라는 특정 시대가 제공한 하나의 극복과제일 뿐이다.

만주는 역사적 연원으로 하여 일찍 조상 세대들이 삶의 한 공간 또는 현실극복의 대안으로 확인했던 곳이다. 이러한 역사의식의 확인이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는 조선인이주민들의 의식 속에도 원색적인 생존욕구와 함께 현실극복의 정착의지를 심어주었다. 역사의식에 의한 이러한 정착지향은 조상의 피땀과 ‘무덤’이 늘어남에 따라 그 산천에 대한 조선인 이주민들의 애정과 향토적 정서를 더욱 깊어지게 하였다.12)

역사의식에 토대한 이러한 정착의 당위성을 확인한 안수길은 간도시절의 소설 창작에서 남달리 이주, 개척, 정착이라는 이주민 사회의 삶의 양상을 역사적 흐름 속에서 총체적으로, 발전적으로 포착하려는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초기의 작품집 「북원(北原)에 수록되어 있는 「새벽」 「벼」 「목축기(牧畜記)」등등, 해방 전 재만시절의 소작 거의 전부가 동만주 지방에 살고 있는 우리 농민들의 생활을 발굴해, 「어떻게 살아 왔느냐」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해 본 것이고, 그 무렵의 장편 「북향보(北鄕譜)」도 거기에 기초를 두고 쓴 최초의 긴 이야기였다.13)


그리고 이러한 역사의식에 의한 정착지향을 현실인식에 토대한 극복의지로 정제해낸 것이 바로 ‘북향정신’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북향정신’이 역사의식에 의한 정착의 당위성을 내세우면서도 현실인식에 토대한 ‘극복의지’를 확인하고 있다는데 주목해야 할 것이다. ‘역사의식에 의한 정착지향의 현실극복의지’라는 ‘북향정신’의 실질은 앞에 길게 늘어놓은 꾸밈말을 삭제하면 그대로 ‘현실극복의지’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깐 안수길의 ‘체질론’이 ‘그것이 무엇이냐’하는 철학적 인식론에 토대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실천적 방법론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면, ‘북향정신’의 실질도 ‘정착지향’이라는 역사적 인식론에 토대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현실극복의지’라는 현실적 방법론에 착안점이 놓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꼭 ‘현실극복의지’일가. 이것은 그가 처한 시대가 식민지 시대라는 특수성에 의해 과거 역사와 다른 시대담론을 요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극복의지’라는 실질은 사회현실에 대한 반성, 비판, 부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현실극복의지’를 실천하는 행위주체가 현실사회의 소외자이거나 사회주체의 대립항임을 말해준다.

실제로 안수길의 소설의 주인공들은 식민지인이면서 이주민이라는 이중신분을 갖고 있다. 그러기에 그들의 만주 정착에는 조상 세대와는 달리 훨씬 복잡한 상황이 얽혀져 있다. 이미 일제의 식민지인으로 윤락한 조선인이주민에 대한 중국 관헌의 대응 내지 억압은 본질적으로 말해 일제의 대륙침략에 대한 저항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일제의 대륙침략 야망이 노골화됨에 따라 조선인이주민에 대한 중국 관헌의 배척과 탄압도 가혹해졌던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조선인의 만주 이주 내지 정착의 문제는, 역사의식에 의한 정착의 당위성을 내세우면서도 일제의 대륙침략에 저항하는 중국인들과의 갈등 속에서 식민담론을 하나의 극복과제로 삼지 않을 수 없었다.

‘북향정신’의 실질을 ‘현실극복의지’로 정의하는 것도 작가가 이와 같은 조선인이주민의 이중적인 특수신분을 확인한 결과이다. 바로 그러하기에 그의 소설 주인공들은 이중신분의 갈등 속에서 순응과 극복의 진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벼」에서 찬수가 일본 영사관에 사람을 보내어 소현장의 탄압을 제지하려는 대목은 찬수의 이중성격을 보여주는 것이지 결코 작가의 친일성향을 드러낸 것이 아니다.

이 작품의 주제는, 이주민과 소현장의 대결에서 이주민의 강력한 대항에 부딪친 소현장이 일제의 개입을 막기 위해 공중에 헛총을 놓아 사건을 정략적으로 마무리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작품에서 찬수는 결코 이주민을 이끌어가는 지도자 내지 선각자의 형상이 아니다. 작가가 부각시키고 있는 찬수의 성격은 사건 진행과 현실 변화 속에서 변모해가는 진행형의 입체인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대목은, 특정 시대에 대한 작가의 이념 성찰의 한계성이나 친일성향과 직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식민지 지식인의 시대적 극복과 함께 자기극복이라는 문제의식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일제의 힘을 빌어서라도 생존권을 지키려는 찬수의 알량한 계산은, 일제에 의해 나라를 잃고 고향마저 떠난 이주민들이 원초적인 생존욕구로부터 출발한 결사적인 저항과는 배치되는 것이었다. 그의 친일적인 성향을 잠재울 수 있은 것 역시 조선인 이주민들의 이러한 결사적인 저항이었다.

결국 소설은 조선인이주민들의 정착의 어려움을 보여주면서도, 바로 조선인이주민의 특수한 신분으로 하여 원초적인 생존의식과 역사적인 민족의식 사이에서 겪는 식민지인의 민족주의 이중성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목축기」 역시 찬호의 선각자적인 형상이나 이데올로기적인 성숙 내지 이상적인 미래를 밝혀주는 작품이 아니다. 왜냐하면 찬호 역시 정착지향의 현실극복의지를 실천해가는 인물이면서도 사회현실을 본질적으로 인식하고 시대에 각성한 지도자가 아니라, 현실극복과 자기극복을 동시에 해야 하는 진행형의 입체인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물설정은, 식민지 시대라는 절대적 억압의 특정 시대를 살아가는 식민지 이주민의 현실인식과 극복의지의 실천적 자세를 반성해보는 작가의 리얼리즘정신과 무관하지 않다. 안수길의 역사철학적 인식은 조선인이주민의 특수신분을 두고, ‘그것이 무엇이냐’하는 본질적인 역사인식을 밑감으로 하여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찬호가 농업과 전문출신이란 것도 그렇고, 학교당국이 성(省)의 근로교육방침에 순응하여 할 수 없이 그를 초빙하였지만 결국 대용교원으로 돌려 앉힌다는 것도 그렇고, 학생들이 그의 흉내를 내면서 ‘귀농선생’이라고 놀려대는 것도 그렇고, 그가 교원생활에서 실패하게 된 주요 원인이 사상이 발랄하고 사회 반역의식이 강한 학생들이 “속시원한 웅변이라곤 없이 묵묵히 광이와 호미로서 흙을 파는 면에서만 접촉하는 찬호에게 존경이나 흠앙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도 그렇다. 이러한 서사전략의 의미담론은 주인공이 정착지향의 현실극복의지로 목장건설이라는 실천적 작업에 몸을 던지면서도 현실인식이 투명하지 못하고 민족의 역사적 질곡의 본질을 이념적으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자기극복의 문제의식을 제기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담론에 의해, “만주에도 새아침이 왔다”는 주인공의 말을 학생들의 흉내를 통해 간접대화로 표현하는 서사형식의 풍자적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찬호는 민족협화, 왕도낙토, 유축농업이라는 만주국 국책이 바로 포장된 일제의 식민정책임을 정치적으로 판단할 수 없었다. 그것이 만주국을 대륙침략의 전초기지로 만들려는 일제의 계산된 책략일 때, 식민지인의 민족이익과 민족이념은 궁극적으로는 억압의 힘에 눌릴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찬호는 결국 이른바 그런 ‘평화로운 현실’에서 민족의 정착의지를 목장건설을 통하여 실현할 수 있다는 아름다운 착각을 한 것이다.

로우숭이 범한테 물린 사건은 이러한 찬호의 아름다운 착각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동물화 하였던 로웅숭을 다시 사회로 환원시켰을 때 호랑이와 자연도 동시에 사회에 대한 상징의미를 획득한다. 즉 자연은 목장과 함께 인간사회의 축소판이 되고 호랑이의 피해는 사회 학정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찬호를 통하여 직접적으로 드러낼 수 없었던 사회적인 근본모순을 은유적으로 보여준 것이며, 역시 만주국 국책의 허위성을 본질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그것을 이용하여 정착의지를 실천하려던 주인공이 불가피적으로 봉착하게 되는 비극적 운명을 예시한 것이다.

보다시피, 작가 안수길은 역사의식에 토대한 정착지향의 현실극복의지로 식민지배의 절대적 억압사회를 극복해가려는 민족 단위의 실천적 탐색을 작품의 의미담론으로 하였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찬호와 같이 현실극복과 자기극복의 갈등을 동시에 겪으면서 사건 발전과 현실 변화 속에서 변모해가는 입체인물을 통하여 특정 시대 사회 상황을 리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지점에 와서 역사의식에 의한 정착지향과 현실인식에 의한 극복의지는 변증법적 통일체로 범주화되면서 󰡔북향보󰡕에서는 마침내 ‘북향정신’이라는 역사적 개념으로 규범화되는 것이다.



4. ‘체질론’과 ‘북향정신’의 역사철학적인 변증관계


안수길이 ‘그것이 무엇이냐’하는 인식론과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방법론의 변증관계를 총체적으로 파악하면서도 창작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체질론’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은 특정시대를 살아온 그의 인생경력과 관계된다.

앞에서 지적하였듯이, 작가지망생이던 안수길은 ‘신음하면서 더듬어 찾는다!’는 탁상좌우명을 육체적인 아픔과 시대적인 고통 속에서 삶의 현실과 연결시킴으로써 그 철학적인 의미를 깊이 깨닫게 된다. 이런 깨달음은, 식민지라는 절대적 억압의 특정한 시대를 살고 있는 자기 민족의 특수한 신분에 대한 확인과 이어지는 것이다. 결국 국권을 상실하고 민족이 멸망하는 위기 앞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는, 과연 민족 단위의 생사존망을 묻는 본질적인 물음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안수길은 감수성이 뛰어난 성장기와 열혈적인 성숙기를 만주에서 조선인이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오래 동안 기자생활을 해왔다. 이러한 삶의 현장에서 그의 ‘체질론’이란, 사실 식민지인이면서 이주민인 조선인들이 만주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보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물음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나라를 잃은 식민지인이면서 땅에서마저 뿌리 뽑힌 부평초 같은 이주민이라는 특수한 신분으로 하여, 조선인이주민의 생존의 위기의식은 기어이 다시 땅에 뿌리를 내리려는 정착의념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어떻게 살 것인가’를 ‘신음하면서 더듬어 찾는다!’는 ‘체질론’이, 식민지 이주민의 삶의 현실에 매개되면서 실천적 내용을 담은 역사개념으로 정제된 것이 바로 ‘북향정신’인 것이다. 말하자면 ‘체질론’은 ‘북향정신’의 철학적 바탕이 되는 것이고 ‘북향정신’은 ‘체질론’의 역사적 근거가 되는 것이다. ‘체질론’이 반쪽 철학관이 아니라 ‘그것이 무엇이냐’하는 철학적인 인식론을 바탕으로 하듯이 ‘북향정신’도 ‘그것이 무엇이냐’하는 역사적인 인식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북향정신’이 개념적으로 등장하면서 그 정신적 실질과 실천적 내용이 선명하게 윤곽을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 󰡔북향보󰡕이다.14)

󰡔북향보󰡕에서는 초기 단편소설들에서 정착지향을 보이면서도 단지 정착의 어려움이나 막연한 극복의지를 보여주고 있던 작가의 인식적 한계를 극복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확실하게 삶의 공간에 대한 역사적 확인과 함께 조선인이주민의 삶의 특수성으로부터  현실극복의지를 도출해내고 있다.

이 작품의 내면적인 서사구조를 보면, ‘북향정신’을 사상적 핵으로 한 ‘북향도장’과 ‘북향목장’을 건설하면서 겪게 되는 갈등을 기본 플롯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북향정신’을 사상적 핵으로 할 때, ‘북향도장’은 정착지향의 이주민지역사회를, ‘북향목장’은 주체적인 민족경제공동체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징적인 의미담론은, 심층적인 서사구조가 시종 민족 구성원의 이야기 내지 갈등을 기본 플롯으로 내면화하고 있다는 데서 확인할 수 있다. ‘주주’, ‘증자’, ‘독지가’, ‘기금의 기업적 조달’을 이주민지역사회를 건설하는 기본적인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은, 민족적 단위로 위계질서가 되어 있는 식민지 사회에서 식민지 이주민들이 민족의 자생력으로 이주민지역사회를 건설하려는 현실극복의지를 언표적으로 기호화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로써 알 수 있는바, ‘북향목장’ 건설은 결코 ‘왕도낙토’, ‘민족협화’나 ‘유축농업’이라는 식민지국 괴뢰정치 내지 국책에 동조하고 순응한 목장건설이라고 할 수 없다. 식민지 이주민의 지역사회는 민족경제공동체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메시지는, 민족단위로 된 식민지사회 위계질서에서는 식민지 지배민족의 이익과 식민지 지배민족의 이익 간에는 도저히 합의될 수 없는 계산이 나와 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만약 목장건설이 ‘유축농업’의 만주국 국책에 동조하고 순응한 것이라면, 국가의 정책적인 지원과 경제적인 뒷받침에 의해 얼마든지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주주, 증자, 독지가에 의해 위기를 모면하려는 주인공의 노력은 오히려 신빙성이 없는 것이 되고 만다.

이처럼 󰡔북향보󰡕는, ‘유축농업’의 만주국 건설이라는 사회 현실을 배경으로 하여 표층구조를 이루면서도 그 내면적인 서사구조는 민족의 내부이야기로 엮어지고 있다. 이와 같은 내적구조와 외적구조의 변증관계는, 식민지통치 하에서 민족의 미래를 국가적인 정책과 혜택에 기탁할 수 없었던 식민지이주민의 비극적 삶을 진솔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목장건설’과 ‘유축농업’, ‘환경미화’와 ‘민족협화’를 직결시킬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학텍스트의 담론분석에서 언어의 사회기호학적인 상징의미나 화용적인 기능을 외면한 채, 소재주의나 언어 기표적인 확인에만 멈춘다면, 서사전략에 의한 의미담론의 내화라는 문예미학의 특성을 간과하게 된다.

안수길은 그의 작품에서 역사적인 인간조건에 대한 비판에 머물지 않고 그 본질에 대한 확인과 함께 ‘어떻게 살 것인가’를 ‘신음하면서 더듬어 찾는다!’ 참담한 현실을 살아가면서도 그것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몸부림 내지 자각증상을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작가의 리얼리즘정신의 소산이라고 할 것이다.

안수길의 작가사상의 철학적 토대인 ‘체질론’은 ‘북향보’에서 마침내 역사적 인식론인 ‘북향정신’을 정제해 냄으로써, 식민지인이면서 이주민인 재만 조선인들의 고향-‘북향’을 ‘신음하면서 더듬어 찾는다!’


5. 결론


재만 조선인이주민문학은 우선 한민족문학의 내용적 확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재만 조선인이주민문학을 우리 전통문화의 승계와 민족의 주체성에서 확인하려는 바람직한 자세일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안수길의 ‘체질론’은 결코 반쪽의 철학관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것이 무엇이냐’하는 철학적인 인식론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다. 이는 ‘신음하면서 더듬어 찾는다!’는 그의 인생좌우명에 원천을 둔 삶에 대한 진지한 철학적 사고임에 다름 아니다. ‘신음’함은 현실과 주체의 괴리에서 오는 앓음이며 ‘더듬어 찾음’은 현실극복 내지 초월의지이다. 이러한 철학적 사유가 창작과정에서 역사의식 및 현실인식과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정제된 역사철학적인 개념이 바로 ‘북향정신’이다.

‘북향정신’은 ‘그것이 무엇이냐’에 답하여 정착지향의 이념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답하여 현실극복의지가 된다. 즉 그 정신적 실질은 역사의식에 의한 정착지향의 현실극복의지인 것이다.

‘체질론’이 궁극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초점이 놓이듯 ‘북향정신’도 궁극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초점이 놓인다. ‘체질론’과의 이와 같은 역사철학적인 변증관계에 의해 ‘북향정신’은 결국 주체적인 민족경제공동체를 토대로 한 조선인 이주민지역사회를 건설하는 실천적 원칙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결론을 우리는 그의 문학텍스트에 대한 담론분석, 특히 󰡔북향보󰡕에 대한 담론분석을 통하여 귀납적으로 정리해낼 수 있는 것이다.


주제어: 체질론, 북향정신, 정착지향, 현실극복의지, 민족공동체의식, 민족경제공동체, 이주민지역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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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초록>

이른바 일제 암흑기문학은 공백기라는 저주의 이름을 달고 일괄적으로 폐기처분되었다가, 지금은 많은 연구가들에 의하여 진흙탕 속에 묻힌 옥을 닦아내는 작업이 한창이다.

그러한 작업 중에서 재만 조선인문학이 차지하는 비중은 가볍지 않다. 안수길을 비롯한 재만 작가들이 창작한 작품은, 반도에서는 일본어창작만 허용되던 시기에 우리말로 창작되었다는 점에서만도 의미가 깊지만, 식민지 이주민의 삶의 애환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도 연구가치가 크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재만 조선인문학은 암흑기 반도의 민족문학과 마찬가지로 친일담론의 흑백이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 시기 반도의 문학이 내선일체, 동조동근, 황국신민화, 일본어창작이라는 시대적인 강요에 부응한 혐의를 받고 있다면, 재만 조선인문학은 왕도낙토, 민족협화, 유축농업이라는 만주국 국책에 동조한 혐의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특정 문학의 존재의미와 성격을 규명하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다.

재만 조선인문학의 연구에서는 안수길과 그의 작품이 언제나 집중조명의 대상이 된다. 그 이유는 그의 만주이주민소설은 그대로 조선인이주민의 이주, 개척, 정착의 역사를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안수길의 ‘북향정신’에 대한 연구와 그 의미에 대한 확인은 재만 조선인문학의 성격 규명과 직결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고향’과 ‘국가’라는 개념사이에서 시시비비를 몰아오고 있는 ‘북향정신’은 만주조선인이주민의 이주, 개척, 정착의 역사를 소재로 다루는 재만 조선인문학의 주제의식을 파악하는 열쇠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향정신’이 구경 어떤 정신인가의 진단에 따라서 안수길의 조선인이주민소설은 재만 조선인문학과 함께 한국문학의 한 갈래로서의 이주민문학으로 번지를 획득하거나 아니면 일제의 대륙침략을 추종하는 친일성향의 문학으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

이 연구는 이 지점에 주목하여 ‘북향정신’의 실질을 밝혀보려고 한다.


주제어: 체질론, 북향정신, 정착지향, 현실극복의지, 민족공동체의식, 민족경제공동체, 이주민지역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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