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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향보󰡕의 의미담론 연구
2009년 05월 16일 15시 08분  조회:2504  추천:0  작성자: 방룡남

                                              

<목    차>

1. 서언

 2. 역사의식과 현실 극복의지-‘북향정신’

 3. ‘북향’의 지향 모델-자주적 민족경제공동체 이주민지역사회

 4. 현실극복의 대립 항-통치세력과 공모세력

 5. 결어




1. 서 언


일제강점기 말, 일제는 이른바 ‘황민화’라는 식민지 동화정책을 강압적으로 펼친다. 창씨개명과 국어(일어) 사용 강요는 그 구체적인 시책의 한 예라 하겠는데, 그 결과 󰡔문장󰡕 󰡔인문평론󰡕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이 강제 폐간되고, 친일 문예지 󰡔국민문학󰡕(1941)이 창간된다. 이에 따라 이 시기 한국문학은 암흑기에 접어들어 문학사적 공백을 드러내게 된다.1)

그러나 한편, 민족어 사용 금지 등의 강압적 동화정책으로 한국문학이 그 독자적 성격을 상실하고 일본문학의 한 ‘지역문학’으로 하위개념화 되는 과정에 놓여 있던 데 반해, 신경(지금의 장춘)․용정 등 중국 간도 지역에서는 󰡔만선일보󰡕를 중심으로 재만 조선인 문단이 형성되어 우리 글로 창작 발표하는 문학 활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었다. 재만 조선인문학이 그것이다.2) 이 시기 재만 조선인문학은 만주국의 ‘오족 협화’ 정책에 대한 동조와 저항, 순응과 역행의 착종 관계를 보이고 있고, 이 때문에 ‘국책문학’ ‘친일문학’이라는 비판과 외면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 재만 조선인 문학이 지니는 문학사적 의의는 결코 가볍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일제의 언어 동화와 민족말살 정책으로 문학사적 공백을 드러낸 시기에, 간도라는 이국의 공간에서 우리글로 창작 발표하는 문학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한민족의 간도 이주․정착 과정을 핍진하게 담아낸 문학작품 그 자체가 한국문학의 공간적 확장을 의미하며, 나아가 암흑기 한국문학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소중한 자산에 다름 아닌 것이다.

문학텍스트는, 다 아는 바와 같이, 수용자에게 항상 열려 있는 미적 대상이지 언표에 닫혀 있는 결과물이 아니다. 언어는 문학텍스트의 질료로서 서사담론의 구조화와 의미담론의 내재화를 위한 매체일 뿐이다. 단순한 문법적 의미에서의 어휘 해석이나 문장 분석은 미적 대상으로서의 문학텍스트의 본체론적 의미를 망각하게 할 수 있다. 따라서 문학텍스트의 단어나 문장은 문학담론 분석을 떠나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예컨대, 재만 조선인문학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왕도낙토’ ‘민족협화’라는 단어를 문학텍스트의 담론분석과 격리해서는 어떤 의미도 도출해낼 수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물․사건, 발화나 배경에 대해 텍스트의 유기적인 구조 속에서 서사요소로서의 의미를 확인하지 않을 때 문학비평은 자칫 용속한 소재주의에 빠져버릴 수 있다. 재만 조선인문학에 대한 연구 또한 예외가 아니라 하겠는데, 안수길과 그의 작품에 대한 논의는 특히 그러하다.3)

안수길은 만주를 답사나 취재 차원의 편력에 의해 창작의 소재나 배경으로 삼고 파편적으로 다룬 작가들과는 달리, 이곳이 조선인이 정착할 수 있는 역사적 공간이라는 역사의식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역사적인 정착의 당위성을 근거로, 나라를 잃고 고향을 떠나온 이주 조선인의 당면한 삶의 문제는 유랑을 청산하고 정착하는 것이라는 현실인식에서 출발한다. 그는 「새벽」과 「새마을」 「원각촌」 「목축기」 등 일련의 작품에서 조선인이주민의 이주․개척․정착의 노정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안수길은 이들 작품에서, 재만(在滿)의 현실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를 역사의식과 식민지 이주민이라는 범주로 묶어 해답을 얻으려 하는데, 󰡔북향보󰡕는 그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북향보󰡕4)는 재만 시기 안수길의 유일한 장편소설로서, 그의 역사철학적 사유의 결정체라 할 ‘북향정신’이 집중적으로 구현된 작품이다. 󰡔북향보󰡕는 선행되어온 창작과정을 통해 점차적으로 성숙된 ‘북향정신’을 역사철학적 개념으로 정제해냈을 뿐더러, 주체적인 민족경제공동체를 형성하려는 이주민의 삶의 현장을 통하여 보다 구체적이고 실감 ,있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러므로 󰡔북향보󰡕의 의미담론을 속뜻 그대로 읽어내는 것은 ‘북향정신’을 올바르게 해석하는 작업이 될 것이며, ‘북향정신’의 올바른 해석은 결국 안수길의 재만 시기 작품의 의미담론에 밀착 접근하고, 나아가 전체적인 재만 조선인문학의 존립 근거와 성격을 규명하는 열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재만 시기 안수길과 그의 문학에 대한 논의 대부분은 저항과 공모, 친일과 반일이라는 이분법적 식민담론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말할 필요도 없지만, 이러한 논리로 재단할 경우, 재만 시기 안수길과 그의 문학은 친일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이러한 이분법적 논리는 용속한 소재주의에 빠져 안수길은 물론 재만 조선인문학을 얼마든지 왜곡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양해야 마땅하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북향보󰡕의 주제적인 측면에 각별히 유념하여 이 작품의 주제를 구성하는 여러 의미요소들을 문학텍스트의 서사담론에 대한 심층 분석과 함께 집중적으로 다루려고 한다.



2. 역사의식과 현실 극복의지-‘북향정신’


일제강점기 말 암흑기의 한국문학이라는 역사범주에서 고찰할 때, 재만 조선인문학은 지리적으로는 반도문학과 같은 코드에서 대륙문학으로 분류될 수 있고, 사회적으로는 ‘내선일체 동화정책’ 하의 일본어 창작과 같은 코드에서 ‘민족협화 허위정책’ 하의 한국어창작으로 분류할 수 있다. 따라서 재만 조선인문학은 일제감정기 말 암흑기 한국문학의 범주에서 다루어야만 역사적․시대적 자리매김이 올바로 될 수 있을 것이다.

김동민은 이러한 시각으로 접근, 재만 조선인문학을 다루고 있어 주목된다.5) 하지만, 그는 재만 조선인문학을 주요한 연구 대상으로 확인하면서도 그것을 이른바 개척소설이라는 분류코드에 줄을 세움으로써 문학 주제에 대한 혼선을 빚고 있다. 그에 따르면, 개척소설이란 공간적으로 우선 만주 미개지나 산업촌과 같이 개척지라는 배경에 한정되어 있고, 일제에 의해 주도되는 개척과 생산을 소재로 다룬 소설이다. 따라서 개척소설은 일제 주도하의 개척과 개척민이라는 이야기구조를 갖게 되며, 이 점에서 농민소설과 엄밀히 구분된다. 개척소설이 일제 주도의 개척 현실을 다루면서도 친일문학일 수 없는 것은, 일제 주도하의 개척 현실의 고난과 궁핍상을 비판적으로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주제는 “안으로는 반일의식을 지키면서 겉으로는 식민체제에 영합하는 양면적(兩面的)인 구조는 바로 개척소설이 취하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양상”6)이기 때문에 서사구조상 표면적으로는 동조적인 자세이고 저항의지는 내면적이고 암시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소재 범위와 서사 특징으로 개척소설을 범주화할 경우,  개척소설은 오히려 식민담론의 틀 속에 갇힐 수밖에 없고, 친일의 혐의와 식민피해의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재만 조선인문학은 만주를 우리 민족의 삶의 공간으로 확인하는데서 존재 의미와 시대적 성격을 부여받은 문학이다. 만주를 단순한 문학 창작의 배경이 아닌 민족적 삶의 공간으로 확인하는 것은 재만 조선인문학의 문학적 범주 내지 성격적 규명과 직결되는 작업이다. 바꿔 말하여, 안수길은 식민지인이기에 앞서 역사적으로 형성된 이주민이라는 시각에서 재만 조선인의 이주․개척․정착을 다룸으로써 만주를 이주행위주체의 이민사로 역사화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 만큼 안수길의 만주이민소설의 성격을 조선인의 이주․정착사라고 규명하고, 역사의식에 토대한 현실인식으로 안수길 작품 속에 내재하는 길항 관계를 밝혀내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7)

만주를 우리 민족의 삶의 공간으로 확인하는 데는 침략자의 시각을 떠나 민족적 역사의식과 현실인식 두 시점에서 근거를 찾아볼 수 있다. 먼저, 역사의식에서 보면, 만주는 안수길 작품의 주인공들이 활동하는 무대 혹은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기 전에 인물의 행위의 동기와 사건의 계기 자체에 편입된다. 이러한 동기와 계기는 공간에 대한 애착에 토대하는 바, 이러한 애착은 바로 민족의 다양한 경험을 통한 특성화라는 공간의 역사의식에서 비롯된다.8) 이러한 역사적 확인은 이주 조선인들의 의식 속에 생존 욕구와 함께 정착의지를 심어주었으며, 조상의 ‘피땀’과 ‘무덤’이 늘어나면서 그 산천에 대한 애정과 향토적 정서를 불러일으킨다.9)

재만 조선인문학은 일제의 대륙 침략 및 식민지 괴뢰국가인 만주국 건국과 그 시기를 거의 같이하고 있다. 그러나 조선인의 만주에 대한 인식과 이주는 훨씬 전사에 속하며, 이와 같은 역사의식과 이주역사는 일제강점기 식민지이주민의 정착의지와도 무관하지 않다. 재만 조선인이주민은 일제에 적극 동조하고 주동적으로 친일 행위를 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이러한 역사의식과 ‘공간에 대한 애착’, 또는 정착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 상황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재만 조선인문학의 범주와 성격에 발생학적으로 역사적 근거를 제공해 준다. 재만 조선인문학의 이러한 존재 의미와 시대적 성격은 식민지 현실을 넘어서는 창작 행위를 가능케 하였고, 따라서 문학작품에 식민담론보다 더 넓은 역사․시대적인 민족의 의미를 담을 수 있게 한 것이다.

다음으로 현실인식에서 보면, 식민지로서의 조선과 만주국, 식민지인으로서의 반도 조선인과 만주 조선인이주민의 이질성에서 비롯된다. 조국이 아닌 낯선 공간을 익숙하고 친밀한 곳으로 쉽게 장소화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민족의 만주 이주역사에서 연유하는 것이지만,  나아가 만주국은 일제 괴뢰정권이었으면서 중국인․일본인․조선인․재만 조선인이라는 서로 다른 입장에 따라 여러 가지 설명이 가능한 공간이라는 조건 또한 무관하지 않다. 재만 조선인의 입장에서 ‘만주’는 만주국 구성원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현재와 미래가 담긴 생존의 공간에 다름 아니었다.10) 말하자면, 만주는 단순한 지정학적인 공간이 아니라, 이주민이면서 식민지인이라는 이중의 억압으로부터 살아남아야 하는 생존의 터전이고 정치적 공간이었던 것이다.11)

그러나 이러한 역사의식과 현실인식은 작가를 비롯한 문화인들에 의해 사상적으로 승화되었을 뿐, 당시 재만 조선인의 실제 ‘각성’과 ‘자각’으로까지 심화되지는 못한다. 당시 재만 조선인은 소문의 ‘2등 국민’이 아니라 부담스러운 하위범주에 속했고, “실제로 용이한 민족 박해의 대상이며, 떠돌이 비적들의 일차 먹이 감에다, 만주국 정부에 의해서는 ‘위험한 공산분자’로 감시 받은 사람들”이었다. “‘선인’은 당시 사악한 뉴스의 수식어였었다.”12) 조선인, 특히 조선인 도시민 다수는 귀속의식이 결여된 사실상의 ‘국외자’로서, 타민족의 눈에는 귀찮고 하찮은 존재로 비쳐졌고, 만주국의 ‘천덕꾸러기’로서 ‘한계적 위치’에 놓여있었다. “조선인 도시민을 일본인이나 중국인 어느 누구도, 심지어 조선인 자신도 진정한 ‘2등 국(공)민’으로 여기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조선인 도시민의 이러한 모습과 만주국 내에서 조선인의 범죄율이 다른 민족에 비해 가장 높았다는 사실은 당시 재만 조선인의 ‘2등 국(공)민’으로서의 허상을 여실히 드러내 보여준다.13)

이러한 당대의 사회현실에 비추어볼 때, 󰡔북향보󰡕는 만주국 건국으로 생활이 향상된 이주민들의 아름다운 ‘제2고향 건설’이라는 이상주의를 발상으로 한 작품이 아니며,14) 현실의 암흑면을 역발상으로 하여 구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돌아갈 조국이나 고향마저 없는 뿌리 뽑힌 망국의 이주민들은  절망하고 타락하여 유랑하거나, 대륙에서의 정착을 지향해야 하는 선택적 기로에 놓여 있었고, 떠돌아다니며 ‘천덕꾸러기’ 노릇을 하는 이주민들이 결코 적지 않은 것이 당시 현실이었다. 안수길은 󰡔북향보󰡕에서, 이처럼 만주 땅에 귀속의식을 가지지 못하는 조선인이주민들에게 역사의식에 토대한 정착의 당위성을 느끼게 하고, 어떻게든 공동체로 살아남는 것 자체가 민족 보존의 자생력임을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북향보󰡕는 역사의식에 토대한 정착 지향의 현실극복 의지를 담아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의 심층 서사구조를 보면 ‘북향정신’에 입각한 농민도(실제로는 농민도에 입각한 ‘북향정신’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농민도는 稻魂, 즉 벼를 상징으로 조선농민의 땅에 뿌리내리려는 정신이고, 따라서 그것에 입각한 ‘북향정신’이란 정착 지향의 현실극복 의지에 다름 아니다.)를 사상 핵심으로 한 ‘북향도장’과 ‘북향목장’을 건설하면서 겪게 되는 갈등과 충돌을 주축으로 하고 있다. ‘북향정신’을 핵심사상으로 하는 ‘북향도장’이 정착 지향의 이주민지역사회를 상징한다면, ‘북향목장’은 주체적인 민족경제공동체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민족의 이야기를 내면화한 심층구조는 주주들에 의한 목장, 도장 건설과 주주들의 증자에 의해 목장을 구하려는 노력, '정학도'의 딸 애라에 의해 목장을 살려내는 이야기들로 핵사건의 고리를 이어나가고 있다.

그런데 이제까지의 󰡔북향보󰡕에 대한 연구들은 작품의 표층구조와 심층구조의 변증관계를 투명하게 밝히지 못하고 있다. 표층구조에 초점을 집중한 연구는 이 작품의 친일 성향을 날카롭게 비판한다.15) 긍정적 시각으로 접근한 연구들도 이 작품에 드러나 있는 ‘국책적인 표현’들에 대해 어쩔 수 없었던 시대상황에 의한 ‘허점’이라고 해명, 그것을 이 작품의 약점으로 지적한다.16) 이러한 논의는 결과적으로 이 작품의 예술적 가치를 평가 절하시킨다.

이 작품은 이중 서사구조로 의미담론을 내면화하고, ‘국책적인 표현’들로 겉포장을 함으로써 당시 재만 조선인들이 처해 있던 시대상황을 배경적으로 제시해주고 있다. ‘국책적인 표현’들이 작품 내면적인 의미담론이나 심층 서사구조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은 친일 성향과는 별개로, 적어도 작품 검열에 대한 대응책이라고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응을 텍스트 자체의 전체적인 의미담론과 서사구조를 살펴볼 때, 그 진의는 만주국 국책의 허위성에 맞서는 조선인이주민의 민족 단위의 처절한 생존의식을 보여주는 데 있다고 할 것이다. 즉, ‘국책적인 표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민족 단위의 지역사회를 건설해야 하고, 국가나 국책에 의뢰해서가 아니라 주체적인 민족경제공동체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외고집’은 만주국에 대한 불신과 국책의 허위성에 대한 폭로임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이처럼 사건 요소나 인물 요소와 ‘배경적인 요소’ 사이의 모순․괴리는 그 자체로 시대에 대한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서사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서사담론은 역사의식에 의한 정착의 당위성을 확인하면서도 제도․정책적인 혜택을 민족의 밝은 미래와 직결시킬 수 없었던 암담한 현실을 암묵적으로 드러내고 있다고 하겠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북향보󰡕는 식민지인이면서 이주민이었던 재만 조선인들이 처한 현실, 일제의 탄압과 타민족의 적대적 천대 속에서 유랑해야 했던 참담한 현실을 역발상으로 한 작품이다. 따라서 이 작품의 진술은 그 언표적인 의미 전달을 넘어서 시대적 현실과 사회적 배경을 문학적으로 재구성하는 작가의 심리적인 자세와 ‘북향정신’이라는 이념적 주장을 정확히 포착할 때 비로소 그 내면화된 의미담론을 올바로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의 서사구조에 대한 심층 분석이 무엇보다 중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북향보󰡕에 대한 기왕의 논의에서 비판적 지적을 받아온 몇 개 장면을 분석해 보자.

그 하나는 일본인 사도미가 당시 “조선사람의결점이라고 일반적으로 정평이되여잇는” 것들을 ‘취중진담’으로 드러내고 있는 장면이다.17) 이 작품은 지배자로서의 우월감을 갖고 있는 일인의 입을 통해 이를 전달, 그러한 견해가 타자에 의해 절대화되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것은 그와 같은 비정한 행위를 목격한 현장에서의 발설이 아니라, 그러한 부박한 행위를 혐오하는 조선인 선각자(‘찬구')와의 대화를 통해 표출된다는 담론구조에서 더욱 명확해진다. 그러나 이 장면에서, ‘사도미’가 술 탓인지 '찬구'를 믿는 까닭에선지 평소 조선인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을 털어놓았다는 화자의 비아냥거림 등과 묵시적인 대결 구도를 이루고 있는 ‘찬구의 형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도미는 찬구가 잠잠히 앉아있는 것이 그의말이 아니꼬와서 그리는것인줄짐작햇슴인지 ‘내가 이러케 함부로 지껄이다가는 고상한테 뺨 맞겠네’ 하고 너스레를 떨엇다.”(p. 572)든지, “책선이라구 점잔은 명사를 부치니..., 뺨때리는 것보다 더하구려.” 하면서 “사도미는 번적 잔을 들고 '찬구'더러도 들라구 눈짓손짓을 하엿다.”(p. 572)는 화자의 진술은, '찬구'의 복잡한 심리와 비틀리는 장면 분위기를 은근슬쩍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서사구조는 '사도미'와 헤어진 '찬구'가 길을 가면서 “목장, 박병익, 사도미, 관리와이러한인물과 관념”(p. 575)을 떠올리고, ‘박병익’이 목장을 맡겠다고 하고, ‘사도미’가 관리 한 자리 주겠다고 하고, 난생 술도 대취했으니 오늘이 진짜 생일이라고 자조(自嘲)하다가 하마터면 마차에 치일번하는 장면묘사를 통하여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찬구'의 서럽고, 분하고, 억울하고, 허탈하기까지 한 착잡한 마음이 성격 발전의 복선으로 깔리는 장면인 것이다. 이러한 착종된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이 곧 '찬구'의 성격 발전의 흐름이고, 󰡔북향보󰡕 플롯 형성의 연결고리이다. '찬구'는 타자의 눈에 민족의 결점으로 과장된 이른바 조선인의 고질이 삶의 뿌리를 뽑힌 식민지 이주민의 심리적 방황의 결과임을 확인하고, 역사의식에 의한 정착 지향의 현실 극복의지로 치유하려 한다. 그것이 바로 ‘북향정신’에 의한 ‘북향도장’과 ‘북향목장’의 건설이다.

요컨대, 이 장면은 삶의 뿌리를 뽑힌 재만 조선인을 박해하고 천대하고 선입견으로 대하던 시대상황에 대한 고발로서, 재만 조선인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던 그러한 결점과 비정한 행위들은 우리 민족의 원죄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서사담론을 통하여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생활 습관의 개선과 학교를 공원처럼 가꾸어 이주민촌락의 표본으로 보여주자는 대목이다. 이것을 “이 시기 조선 농민들은 아무런 갈등도 없는 평화로운 ‘제 이의 고향’에서 느긋한 마음으로 농사지으면서 살고 있다.”18)는 모습으로 그린 것이라거나, 이러한 고향 건설은 만주국의 왕도낙토․민족협화의 이념을 내면화하고 “일본 국가를 긍정하는 행위”로서 “이 때의 ‘제 이의 고향’은 완전히 만주국과 동일시된다.”19)는 비판은 작품 오독에서 비롯하는 것으로, 소재주의적 오류의 한 예라 할 수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서사적 사건들은 관계의 논리뿐만 아니라 서열의 논리를 가지고 있다. 어떤 사건들은 다른 것들보다 중요하다. 고전적인 서사물에서 연쇄적 흐름을 이루거나 우발성의 틀을 결정짓는 것은 단지 주요한 사건들뿐이다.”20) 문학텍스트는 핵사건들이 관계의 논리에 따라 조직되면서 갈등과 충돌을 형성하고, 그러한 갈등과 충돌을 풀어나가는 과정을 통하여 플롯을 전개하고 발전시킨다. 이때 주변사건은 핵사건에 대한 해석․보충․충족․흥미․제시 등을 통하여 텍스트의 미학적 완성에 기여하지만, 결코 작품의 주제나 플롯의 전개를 결정짓지는 못한다. 바꾸어 말하면 작품의 주제를 형성하고 완성하는 것은 핵사건일 뿐, 주변사건이 아닌 것이다. 주변사건은 거시적인 서사구조 속에서 핵사건과의 직간접의 관계를 통해서만이 서사요소로서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만큼 주변사건은 대체 가능한 서사요소이지만, 핵사건은 텍스트의 서사구조 자체의 변형이 없이는 대체가 불가능하다. 바꿔 말하자면, 핵사건을 외면한 채 주변사건을 고립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분석하여 주제에 직결시킬 경우, 소재주의적 오류에 빠질 수가 있는 것이다. 21)

플롯 구성을 보면, 󰡔북향보󰡕의 핵사건은 주체적인 민족경제공동체(‘북향목장’)를 결성하여 조선인 이주민지역사회(‘북향도장’)를 건설한다는 민족의 내부이야기이다. 즉, 작품의 주제의식은 정착 지향의 현실 극복의지인 ‘북향정신’인 것이다. ‘주주’ ‘증자’ ‘독지가’ 또는 ‘기금의 기업적 조달’ 운운은 ‘왕도낙토․민족협화’라는 만주국 국책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 그러한 기만적인 사회적 조건과 강요된 삶의 현실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기어이 민족 단위의 자생력으로 지역사회를 건설하려는 민족공동체의식에 대한 언표적 기호화라고 할 수 있다. 스스로의 힘에 의해 새로운 삶의 터전을 이룩하겠다는 행위를 어떤 시각에서도 만주국 국책에 대한 옹호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핵사건을 전제로 할 때, 생활 습관의 개선, 환경 미화, 학교의 공원화, 즐거운 농사 모습 등은 ‘북향도장’이라 명명된 이주민지역사회가 현실로 다가올 때의 실현 가능한 모습임에 다름 아니다. 이 작품에서, 그러한 환경 변화와 생활의 풍속화는 국가와 국책에 직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북향목장’의 생사와 인과적으로 연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향보󰡕는 ‘북향도장’이 상징하는 이주민지역사회의 건설이 곧 재만 조선인사회가 지향해야 할 지평임을 내보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하늘이 무너진대도 갈 곳이 업는 농민”(조선인이주민)들에게 ‘북향목장’은 유일한 삶의 대안이요, 희망이다. 그러나 목장의 번영과 도장의 밝은 미래가 약속되지 않는 한, 일상적인 생활의 변화는 좀 더 나은 삶에 대한 일시적인 유혹의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북향목장’이 자연재해로 증산은커녕 빚만 지고 파산의 위기에 직면하자, ‘박병익’ 같은 주주들은 목장을 팔아버릴 생각만 하고, 삯을 받지 못한 목장 인부들은 목장을 떠나며, 월급을 받지 못한 교원들은 다른 자리를 강구하는 눈치를 보인다. 여기서 ‘북향목장’의 존폐 위기를 플롯 전개의 핵사건으로 설정한 작가의 의도는 분명해진다. 정착의 당위성과 궁극적인 실현 가능성의 암시라는 주제의식이 그것으로, 이러한 핵사건에서 발생되는 모순․충돌․갈등의 성격이 작품의 주제를 형성, 모든 주변사건들의 의미를 자리매김해주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이 작품이 조선인이주민의 삶의 현실에 대한 역발상으로 씌어졌다는 주장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때, 도장의 즐거운 생활모습과 아름다운 생활환경의 묘사는 ‘북향정신’에 의한 ‘북향목장’과 ‘북향도장’ 건설의 희망사항을 현재형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것은 재만 조선인의 현실극복 의지의 형상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 ‘북향’의 지향 모델-자주적 민족경제공동체 이주민지역사회


󰡔북향보󰡕의 주제의식이 ‘제2 고향’ 건설이라면, 그 ‘제2 고향’ 실체를 밝혀보는 일은 이 작품의 의미담론, 나아가 재만 조선인의 정착 지향과 현실 극복의지인 ‘북향정신’의 진의를 정확히 읽어내는 열쇠가 될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북향보󰡕는 재만 조선인의 정착 지향의지를 담은 ‘북향정신’을 바탕으로 주체적인 민족경제공동체 이주민지역사회를 건설하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목장’ 건설은 ‘유축농업’이라는 만주국 국책과는 무관하며, 시국을 감안한 편리한 표층 장치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주체적인 민족경제공동체라면 내포독자나 수용자에 의해 무엇으로도 대체 가능한 기호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목장이라는 건설 대상과는 달리, 이 작품은 즐거운 ‘모내기’ 장면을 제목까지 달아 풍속적으로 보여주고 있고, 도혼(稻魂) 즉 ‘벼를 사랑하는 마음’을 농민도 내지 ‘북향정신’의 핵심사상으로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북향목장’은 ‘북향’에 방점을 찍음으로써 정착 지향의 이주민지역사회 모델 ‘북향도장’의 토대가 되는 민족경제공동체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목장’이 작가에 의해 경제 실체의 현실적인 대안으로 선택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당시 ‘유축농업’이라는 만주국 국책을 이주민지역사회 건설을 위해 주체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에서 현실 대응의 한 방편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텍스트의 거시적인 서사구조, 즉 플롯의 전개양상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 작품의 플롯은 시종 주체적인 민족경제공동체 건설이라는 모티프를 그물코로 하여 짜여 있고, 이러한 모티프는 ‘주주’ ‘증자’ ‘독지가’ 등의 기표를 통하여 민족 내부의 이야기를 엮고 있다. ‘왕도낙토, 민족협화’를 노래하고 ‘유축농업’의 국책에 순응한 목장 건설이라면, 이러한 민족 내부의 이야기는 있을 수 없거나 있어도 무의미할 수밖에 없다. 이때의 ‘북향목장’은 이주민지역사회가 아니라 만주국 국가 건설의 한 단면을 보여줄 따름이기 때문이다. 또한 목장 건설이 ‘유축농업’의 국책의 구현이라면, 국가의 지원이 아니라 주주․증자․독지가에 의의해 위기를 극복하려는 주인공의 노력은 작위적인 것으로 전락, 우연적 사건에 지나지 않게 된다.

만주국 사회에서의 재만 조선인은 식민지인이면서 이주민의 신분이며, 국가 정책에 의해 ‘북향’을 건설할 수 있는 처지 또한 아니다. 따라서 󰡔북향보󰡕는 ‘유축농업’ 중심의 만주국 건설이라는 사회 현실을 표층구조의 배경으로 설정하고, 내면구조에서는 민족의 내부이야기를 엮어감으로써 제도․정책적인 혜택에 민족의 미래를 기탁할 수 없었던 식민지이주민의 비극적 삶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이 내보이는 재만 조선인의 간고한 삶은 그들이 당면한 사회 현실을 비판적 폭로의 지점을 넘어서, 정착의 어려움과 그 극복의지를 민족 단위의 생존의식으로 승화시키고 있는데, 이 작품의 미덕은 바로 여기에 있다. 나라를 잃은 식민지인이면서 이주민인 재만 조선인에게 있어서는 국가적 개념보다는 민족의 공동체의식이 조직화된 자아보존의 법칙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시대인식은 ‘정학도’를 통해 작품의 주제의식, 나아가서는 ‘북향정신’의 기조를 이룬다. 이 작품에서, '정학도'는 조선인이주민의 지역사회로서 ‘북향도장’을 구상한다. 국가와 고향을 상실한 식민지 이주민이 만주에서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새로운 고향 즉 ‘북향’ 건설이고, 이는 주체적인 민족경제공동체에 의거해야만 한다고 인식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른바 ‘주주’에 의한 ‘북향목장’을 설계한다.

재만 조선인의 사회적 신분을 감안할 때, ‘정학도’가 구상하고 있는 주체적인 민족경제공동체라는 것이 용이하게 결성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국가 또는 국책과 민족의 운명을 직결시킬 수 없는 상황에서의 민족의 주체성과 자주성이라는 것은 지극히 제한적이거나, 심지어는 고립무원일 수밖에 없다. 이 작품에서, 집까지 파는 ‘이기철’의 희생적인 봉헌, 목장 구성원들과 '정학도' 문하생들의 헌금, 그리고 ‘애라’의 도움으로 ‘북향목장’이 직면한 위기에서 벗어나는 서사구조 또한 것도 이러한 사회적 제약의 핍진한 반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애라’가 익명으로 보내온 뜻밖의 성금이 ‘북향목장’을 회생시킨다는 ‘우연적’ 사건 설정은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핵사건에 의한 선형적인 플롯 전개에서 외부인에 불과하던 ‘애라’에 의하여 ‘우연하게’ 핵사건의 매듭이 풀리는 전근대적인 서사담론 방식은 작가적 역량의 한계를 드러낸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애라’의 성금 행위는 아버지 '정학도'의 뜻을 이으려는 신념이나 ‘북향목장’ 건설에 자신을 헌신하려는 의도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다. 그는 아버지의 생명과도 같은 ‘북향목장’이 눈앞에서 끝장나는 것을 감정적으로 감당할 수 없었고, 그래서 ‘북향목장’이나 마가둔 촌, 만주에 아무 미련도 없으면서 다만 “아버지 남기신 사업을 살리는 데 딸로서의 도리를 다햇”(p. 742)을 뿐이다. 그러나 ‘애라’가 보여준 ‘도리’는, 비록 어떤 독지가의 무연고한 행위보다도 현실성이 있다고 하겠지만, 그것이 일시적이고 우연적인 행위라는 점에서 ‘북향목장’의 구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불투명한 앞날을 예시하는 징표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정학도'가 ‘북향도장’을 구상할 때 이미 “일시적 감격으로 내오노는 독지가의 정재(淨財)만으로 어찌 영구한 사업을 해나갈 수 잇슬까.”(p. 467)고 우려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서사담론은 국가적 개념과 민족적 개념을 동일시하고 지역사회 건설을 국가 건설의 일환으로 연결할 수 없었던 재만 조선인이주민이 처한 시대상황을 여실하게 보여주는데, 이러한 서사구조는 ‘북향도장’(즉 이주민지역사회)은 ‘북향목장’(즉 주체적인 민족경제공동체)을 토대로 하여야 한다는 주제의식을 밑받침하고 있다.

요컨대, 󰡔북향보󰡕의 밝은 표층구조, ‘북향목장’의 위기 극복의지는 정착 지향의 역사적 당위성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정착의 당위성을 내세운 위기, 그것은 미래가 기탁된 ‘북향’을 위해 감내하는 현실에 대한 각성이고, 이념에 대한 자각이며 희생에 대한 각오라 할 것이다.



  4. 현실극복의 대립 항-통치세력과 공모세력


국가의 발전과 민족의 성장을 동일층위에서 이룰 수 없고, 위계질서가 민족 단위로 서열화되는 식민지사회에서 식민지인의 현실 극복의 근본적인 대립 항은 두말할 것도 없이 식민통치세력이다. 물론 식민통치세력도 식민지 지배를 위하여 식민지인에 대한 여러 가지 유화정책을 펼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수탈과 억압을 위한 포장에 지나지 않는다. 식민지인들이 민족 단위의 이익이나 민족공동체의식에 성장과 각성을 보이게 되면, 수탈과 억압적인 힘의 논리가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식민지인은 국민이 아니라 식민지 확장의 ‘생산력’에 지나지 않으며, 그만큼 식민지인의 생존과 삶의 향상은 국가 발전과 직결될 수 없는 것이라고 하겠는데, 󰡔북향보󰡕는 식민지시대의 이러한 대립관계를 내보이고 있다. 이 작품은 식민지사회의 모순을 직접적인 갈등으로 설정할 수 없는 억압적 현실상황에서, 식민지 사회 배경과 식민지 민족의 내부이야기라는 서사담론을 통해 식민통치세력과 식민지인의 관계를 대립 항으로 내세워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도 지적한 것처럼, 󰡔북향보󰡕의 서사담론은 만주국 국책과 사회 배경이라는 언표적인 표층구조와 민족 내부이야기라는 핵사건의 심층구조로 이루어져 있는데, 심층구조는 ‘북향정신’이라는 주제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리고 여기에 이 작품의 작의, 즉 식민사회 현실에 대한 암묵적 비판과 함께 정착하여 민족 단위의 지역공동체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민족적 생존의식과 자생력에의 호소가 깔려 있다. 이 지점에서 안수길의 시대 비판적 현실인식을 엿볼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사도미’의 횡설수설 대목도 식민통치 민족의 오만과 사회적 편견 등을 암묵적으로 비판하려는 작의와 무관하지 않다. ‘사도미’에게 이러한 역할을 맡긴 것은 식민 통치세력을 식민지인의 대립 항으로 인식한 안수길의 현실인식에 그 뿌리가 닿아 있는 것이다. ‘북향정신’을 불온사상으로 의심하고 감시하는 경찰을 등장시킨 장면 또한 같은 문맥으로 읽을 수 있다.

󰡔북향보󰡕에서, 식민 통치세력을 식민지인의 대립 항으로 인식한 ‘정학도’는 주체적인 민족경제공동체 건설을 구상하고, ‘북향정신’을 지향한다. 그러나 이것은 국가 발전과 동일 방향에서 하위개념화 될 수 없다는 데 그 비극성이 있다. 물론 국책에 순응하면 이 비극성은 사라지겠지만, 그것은 식민정책에의 공모임에 다름 아니고, 민족의 주체성 또한 상실하게 된다. ‘북향목장’이 존폐 위기에 놓여 있을 때에도 ‘정학도’ 등이 주주에 의한 극복을 도모하고, 그것이 무산되자 그들은 “눈물겨운 정성으로 모인 정재(淨財)”(p. 700)로 목장을 회생시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북향보󰡕에서 “건설되는 ‘고향’은 ‘오족협화’와 ‘왕도낙토’가 구현되는 명랑한 공간 즉 만주국 건설과 그것에의 이바지이다”22)는 지적에 쉽게 동의할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말하자면, 󰡔북향보󰡕는 식민통치세력을 식민지인의 대립 항으로 내세워 일제 식민지배하의 만주국과 식민지이주민인 재만 조선인 간의 합의될 수 없는 사회모순을 내보인다고 하겠는데, 이는 작중인물의 갈등, 특히 변질된 내부 구성원의 갈등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이른바 ‘양복 선인(鮮人)’으로 불리는 ‘박병익’은 그 전형적인 인물이다. ‘박병익’은 「새벽」의 ‘박치만’이나 「원각촌」의 ‘한익상’과는 그 형상이 다르다.

「새벽」의 ‘박치만’은 조선인이주민이지만, “사회 권력이나 억압세력의 힘에 의존하여 지팡살이 하는 이주민들한테 볼모잡기나 고리대를 놓는 등 지팡주의 권세를 고스란히 그대로 누리고 있”는 부재지주의 마름으로 더 이상 “마름으로서의 ‘얼되놈’이 아니”다.23) 그는 식민통치세력의 분류코드에서 이미 식민지이주민의 구성원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따라서 ‘박치만’과 조선인이주민 사회와의 갈등은 재만 조선인사회의 내부갈등을 넘어서고 있다. 「원각촌」의 ‘한익상’도 그러하다. 그는 이주민 사회에 강요된 생존방식이었던 입적정책의 산물인 ‘홋주인’으로서 직접적으로 당시 사회 갈등의 일익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24) 이와는 달리, ‘박병익’은 식민통치세력과 직접적인 공모관계에 있지 않으며, 식민통치세력의 분류코드에서 이름을 찾을 수 있는 상징인물이 아니다. 그는 형상 그대로 타락하고 변질한 인물이지만, 여전히 민족의 구성원인 것이다.

따라서 ‘북향목장’을 건설해나가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박병익’의 갈등은,  「새벽」의 ‘박치만’이나 「원각촌」의 ‘한익상’의 그것과는 달리, 식민통치세력과 식민지인의 대립과 여기서 야기되는 당대 사회의 모순을 비판적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식민지 이주민들에게 이주민지역사회 건설, 주체적인 민족경제공동체 건설은 생존방식에 대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상실이라는 식민지적인 현실상황을 극복하는 생존 논리이며, 그 실천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겪게 되는 내부 구성원간의 갈등은 식민지사회의 완고성에 기인하는 결과적 현상에 다름 아닌 것이다.

󰡔북향보󰡕의 이러한 내부인물의 갈등구조는 식민지사회의 민족적 억압을 드러내기 위한 서사적 장치라고 바꿔 말할 수 있는데, 이것은 변질된 민족 내부 구성원도 주요한 극복 대상이라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이들은 이미 식민지사회의 위계적 질서에 체질적으로 적응, 식민지인의 대립각에 서서 식민지인의 주체적인 민족공동체 건설을 저애하는 세력으로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박병익’ 같은 인물이 그러한데, 그는 개인의 영욕만을 추구하면서 식민지사회와 공생 관계를 맺고 있다. 그는 비록 식민 통치세력과 직접 결탁하거나 공모하지는 않지만, 개인의 이득을 챙기는 데 급급하여 ‘북향목장’을 팔아버리려 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을 추종하는 주주들과 함께 부정세력을 형성, ‘북향목강’의 걸림돌이 되는데, 그 구성원 대부분이 지성인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다시 말하여, 안수길은 이 작품에서, 식민 통치세력이나 조선인이주민 신분을 포기한 공모 세력은 물론, 민족공동체 건설에 방관적인 세력 또한 재만 조선인사회가 극복해야 할 대상임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북향보󰡕는 국가 성장과 민족 생존이 괴리되는 일제의 식민지 만주국에서 주체적인 민족경제공동체에 토대한 이주민지역사회 건설만이 조선인이주민의 유일한 생존 대안임을 보여주는 한편, 그것을 위한 실천운동에서 변질된 구성원도 극복 대상임을 제시한 작품이라고 하겠다.



5. 결 어


󰡔북향보󰡕는 새로운 땅 만주에 새로운 고향을 건설하여 후세에 대물림하자는 정착이념이 ‘북향정신’으로 체현된 소설이다. 이러한 이념은 자기가 발 딛고 선 땅에 대한 확실한 역사의식과 식민지 이주민의 삶에 대한 현실인식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즉, 조상의 피땀이 스며있고 뼈가 묻혀 있는 공간이 ‘제2의 고향’이라는 역사의식과, 나라를 잃고 고향을 등진 식민지 이주민에게는 정착생활이 민족공동체의 생존논리와 직결된다는 현실인식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것의 이념적인 결정체가 바로 ‘북향정신’이다.

그럼에도 󰡔북향보󰡕는 결코 ‘북향목장’이나 ‘북향도장’의 밝은 내일과 희망을 값싸게 이상주의적으로 보여준 작품이 아니다. 소설은 역사의식과 현실인식에 토대하여 정착의 당위성을 내세우면서도 그러한 주체적인 정착의지와 실천이 식민통치세력과 여러 부정세력에 억눌려 힘든 항행을 할 수밖에 없음을 여러 가지 역사적 사회적 상황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한마디로, 󰡔북향보󰡕는 ‘북향정신’을 고양하면서도 식민지시대 이주민사회의 구조적인 기본모순을 직시한 사실주의 작품이다.


주제어: 재만 조선인문학, 역사의식, 북향정신, 민족공동체의식, 식민담론, 텍스트 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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