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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쉰들러”와 윤동주
2015년 03월 12일 08시 24분  조회:2490  추천:17  작성자: 김혁

. 칼럼 .

“한국의 쉰들러”와 윤동주

김혁


 
▲ 한국영화 "국제시장"의 포스터
 
1

무조건적인 희생으로 가족을 위해 로심초사하며 한 시대를 묵묵히 살아냈던 아버지의 모습을 그린 영화 “국제시장”이 한국 력대영화 2위를 기록하며 흥행신화를 쓰고있는 가운데 영화의 들머리에 재현 된 “흥남대탈출사건”이 다시 회자되고있다.

“흥남 대탈출”은 한반도에서 벌어진 수많은 전사(戰史) 중에서도 특별한 력사적 사건이다. 전시의 긴박한 상황에서 민간인의 철수를 돕기 위해 군인들이 자기 목숨과도 같이 여기는 작전용 중장비를 수송선에서 내려놓고 그 공간에 더 많은 피란민을 태워 수송했는데 그 수효가 무려 10만명에 이른다.
“쉰들러 리스트”로 잘 알려진 독일인 오스카 쉰들러(Oskar Schindler, 1908-1974)가 나치 수용소에서 구해낸 유대인의 수는 약 1,200명이라고 한다. 그런데 흥남에는 10일간의 짧은 기간 동안 10만 명의 피난민을 구출하는데 성공했다. 이는 세계 전사를 통틀어 가장 많은 민간인을 탈출시킨 작전으로 기록돼 있다.
“흥남 대탈출”은 오로지 인종, 국경, 종교, 이념이라는 모든 벽을 훌쩍 뛰여넘은 인간사랑이라는 큰마음이 움직였기에 가능했던 대서사극이였다.

 “흥남대탈출”의 장거를 주도한 주인공은 바로 “의인”으로 불리는 현봉학이였다.
 
▲ 대탈출 당시 흥남부두의 모습
2

미군의 철수작전이 펼쳐지던 흥남부두에서 현봉학은 아비규환을 목격했다. 령하 30도의 혹한속에서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며 울부짖는 피난민들의 모습은 차마 눈 뜨고 볼수가 없었다. 그는 미10군단의 아먼드 장군을 붙들고 “저들을 살려달라”고 간청에 간청을 거듭했다.
현봉학의 눈물겨운 노력에 감동한 장군은 군수물자를 버리고 피난민들을 태웠다. 이렇게 해서 배 193척에 나눠 타고 목숨을 구한 피난민은 9만8000여명. 마지막 수송선에 탄 1만4000여명은 12월25일 거제에 도착해 후일 “크리스마스의 기적”으로 불리웠다. 이 배에서 5명의 어린 생명이 태여났다.

“한국의 쉰들러” 현봉학(玄鳳學) 선생은 1922년 함경북도에서 태여나 세브란스 의전을 졸업, 모교에서 림상병리학을 강의했다.
미국 리치먼드의대에서 공부한 뒤 1950년 3월 한국으로 귀국, 석달만에 6·25를 맞았다.
전쟁중 한국 해병대사령관 고문과 미10군단 사령관 민사부 고문으로 근무하던중 흥남부두에 이르렀고 10만여명의 피난민을 구하는 신화를 남겼던것이였다.
휴전후 다시 미국으로 간 현봉학은 펜실베이니아의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토머스제퍼슨의대 등에서 교수를 력임했고, 연세대와 아주대 등 한국의 대학가에서도 후학 양성에 힘썼다. 2007년 86세로 별세했다.
 
▲ 현봉학 박사
3

윤동주의 묘소가 조선문학에 깊이 심취되된 일본학자 오오무라 교수에 의해 발견되여 세간에 공개되였음은 일반이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사실 오오무라 이전에 윤동주의 묘소를 찾으려 시도한 사람이 또 한분 있었다.
바로 현봉학 박사였다.
70세 로인이 될 때까지 윤동주를 전혀 몰랐던 현봉학박사는1984년 봄에 우연히 낡고 바래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초간본을 읽고 크나큰 감동과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리하여 그해 8월 현봉학 박사는 재미동포 13명을 인솔하고 중국용정행차를 했다. 연변의 유지들과 지치주정부 외사처에 윤동주의 유적, 특히 묘소를 찾아주기를 부탁했다. 그러나 고향 사람들은 윤동주가 누구인지 알지도 못했다. 실망은 했으나 그들에게 윤동주가 뛰여 난 민족시인이였음을 역설하고 래년에 다시 방문할터이니 꼭 그 유적을 찾을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오오무라에 의해 윤동주의 묘소가 발굴된 소식을 접한 현봉학박사는 또 서둘러 룡정으로 날아왔다. 1988년 6월, 현봉학 선생이 주동이 된 미중한인우호협회의 연증(捐贈)으로 룡정중학교 동창회가 수선을 하여 윤동주 묘소의 첫 개수 작업이 이루어졌다.
지금 우리가 룡정 동산마루에 가면 볼수 있는 시인의 유택은 그렇게 많은 “의인”들의 도움으로 세인들과 만났다.
 
 
▲ 개수를 마친뒤의 80년대 윤동주 묘소의 모습
 

은퇴후 현봉학 박사는 윤동주 장학회를 설립하고, 룡정중학에 윤동주의 시비를 건립하는 등 오직 윤동주 추모사업에 헌신하다가2007년에 타계했다.
지금도 시인의 고향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룡정중학의 시비를 마주할 때마다 이 고마운 의인을 떠올리고 있다.

- “청우재(聽齋雨)”에서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흥남부두 철수를 노래말에 담은 옛 노래 "굳세어라 금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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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1 ]

1   작성자 : 흥남571125
날자:2015-03-12 16:58:08
아, 이렇게 연결이 되네요. 노래방에서 취흥으로 부르는 노래인줄로만 알았드니, 마지막에는 윤동주 까지.. 잘 봣습니다. 작가님의 글은 언제나 정보량이 풍부하네요.
남보다 빠르구요. 영화관련 지식도 대단한데요. 작가님 블로그 들어와 보고 다시 찾아보는 영화가 많답니다. 화이팅 하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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