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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도제도 영국령 세인트루시아 시인 - 데릭 월컷(월코트)
2016년 12월 10일 00시 55분  조회:6266  추천:2  작성자: 죽림

데릭 월컷월코트)


 
 
데릭 월컷Nobel Prize.png
Derek Alton Walcott

데릭 월컷(2008년)
출생 1930년 1월 23일 (86세)
세인트루시아 캐스트리스
국적 세인트루시아
직업 시인극작가
자녀 피터 월컷, 엘리자베스 월컷, 애나 월컷
상훈 노벨 문학상(1992년)
서명
Firma-Derek-Walcott.png

데릭 월컷(Derek Walcott, OBE1930년 1월 23일 ~ )은 세인트루시아의 시인이자 극작가로 1992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다.

그의 작업은 식민지 시절의 노예 제도부터 독립까지 카리브 해의 경험, 색다른 문화와 전통의 혼합이 담긴 카리브 해의 식민적 지위의 자연을 탐구하였다. 그의 작품들은 아프리카인과 유럽인 둘다 포함하는 자신의 풍부한 인종적 유산과 문화적 배경을 반영하는 편이다.

세인트루시아의 캐스트리즈에서 태어났다. 처음으로 그의 상업적으로 발간된 시집은 〈푸른 밤에: 1948-1960〉(1962년)이었다. 다른 편들로는 긴 이야기가 담긴  〈다른 인생〉(1973년), 〈별사과 왕국〉(1979년), 〈행운적 여행인〉 (1981년), 〈한 여름 중〉(1984년), 〈아칸소 유언〉(1987년)과 〈하사금〉(1997년)을 포함한다. 〈오메로스〉(1990년)는 개인적, 집단적 추억들 사이에 균형을 찾는데, 시인의 내적인 투쟁을 묘사하는 서사시였다. 다른 서사시 〈티에폴로의 사냥개〉(2000년)는 버진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인상주의 화가 카밀 피사로에 중심을 두고 있다. 연작 시집 〈방탕자〉(2004년)는 그의 여행책과 저서를 겸하였다. 그의 시 전집은 2007년에 발간되었다.

그의 극작으로는 〈원숭이 산에 대한 꿈〉(1967년), 〈기념〉(1977년), 〈무연극〉(1978년)과 〈오디세이: 무대극판〉(1993년)을 포함한다. 그 작품들은 위선, 탐험, 권의에 대해 인간의 투쟁에 집중시키고 있다. 그는 또한 미국의 가수 폴 사이먼과 함께 음악적 작품 〈동굴인〉(1997년)을 쓰기도 하였다.

서훈[편집]

외부 연결[편집]


  •  



 

 


 

*우표에 오른 시인 월코트

1992년 - 세인트루시아의 시인 월코트(Derek Walcott)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
  

 영국 연방 세인트 루시아 출신의 시인 데레크 월코트(62)가 1992년 10월 8일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월코트는 1930년 영국계 아버지와 아프리카 노예 혈통의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1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사회사업가인 엄격한 어머니 밑에서 교육받았으며, 1953년 트리니다드로 이사했다.

1948년 첫 시집 '25편의 시'를 출간했고, 1962년 런던에서 '초록빛 밤 속에서'를 펴내 일약 카리브해 문학의 획기적인 시인으로 부상했다. 이 시집은 과거의 시와는 달리 단순한 영문학의 모방이 아니라, 카리브해의 매혹적인 정서를 현지인의 어법으로 생생하게 표현해보려 했다.

1985년부터 미국 보스턴대학에서 문예창작을 가르치기 시작했으며, '오메로스' (1990)로 199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장엄한 서사시는 '복합적 혈통과 카리브 해에게서 얻은 감각과 리듬으로 카리브 해 현실과 풍광 속에 세계 문화의 모든 조류를 용해시킨'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데릭 월코트와 작품세계 (199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스웨덴 한림원은 1992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62세의 서인도 출신 시인인 데릭 월코트를 선정 발표하였다. 스웨덴 한림원은 우선 월코트의 시의 '음악적이며 민감한' 문체와 '역사적 비전과 다양한 문화의 산물'로서의그의 시의 우수성과 특성을 높이 평가한 것 같다. 
월코트는 1930년 1월 23일 전 영국 식민지였던 서인도 제도인 세인트루시아라는 인구 8만 정도의 작은 섬에서 교사인 동시에 화가인 영국인 아버지와, 역시 교사이며 노예의 후예인 흑인 어머니 사이에서 쌍동이로 탄생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월코트가 한 살 때 돌아가셨으며, 그후 그는 엄격하기는 하였지만 비교적 좋은 문학적 환경에서 자랐다. 
월코트는 1953년 자메이카에 있는 서인도 대학을 졸업했으며, 대학에서 그는 불어, 라틴어 그리고 서반아어를 전공하였다. 그 후 그는 잠시 그레나다와 자메이카에서 교편을 잡은 일이 있다. 1958년에는 록펠러 장학금을 받아 연극을 공부했으며, 1981년에는 '뛰어난 재능이 있는 개인'에게 수여하는 25만 불의 존 D. 맥아더 상금을 받았다. 현재 그는 미국 보스턴 대학에서 창작을 가르치고 있으며, 시인일 뿐만 아니라 극작가, 언론인 그리고 미술가로 잘 알려져 있다. 
월코트의 시는 우선 식민지하에 있었던 서인도 섬들의 바참했던 과거와 자신이 흑인 노예의 후손일 뿐만 아니라 흑백 혼혈의 후예라는 데 대한 심한 갈등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월코트의 주관심이 그가 태어나서 자란 서인도와 그의 아버지의 언어인 동시에 자신의문학의 매체인 영어, 그리고 자신이 아프리카 출신이라는 사실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그에게 있어 숙명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월코트의 시의 특징은 이렇듯 그의 혈통과 성장 과정 그리고 역사적 배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월코트의 시의 또 하나의 특징은 서구 사회, 동양 그리고 아프리카 등의 어려 문화와 다양한 인종 그리고 이들의 만남에서 야기되는 여러가지 갈등과 그 와중에서 연출되는 중재자로서의 시인의 위치이다. 또 이러한 점이 바로 월코트의 시가 서인도라는 작은 지방적 폐쇄성에서 탈피하여 보편성을 띄게 되는 동시에 또 만인의 공감을 얻게 된 이유가 아닌가 생각된다. 
월코트가 영향을 받은 시인과 극작가는 고대 그리스 극작가 소포클레스, 셰익스피어, 16세기 영국 극작가이며 시인인 크리스토퍼 마로우, <실락원>의 저자 밀턴, 17세기 영국 시인 앤드루 마블이 있으며, 현대 시인과 작가로는 T.S. 엘리엇, 에즈라 파운드, 불란서 시인 보들레르, 영국 소설가 제임스 죠이스 등이 있다. 
그런데 월코트의 최대의 난점은 동서와 아프리카의 이질적인 문화와, 영어와 서인도의 토착 언어를 어떻게 접목시켜 조화를 이루느냐가 문제였다. 그러기 위해 월코트는 우선 전통적인 시형식부터 희생시키지 않을 수 없었으며, 또 토착적인 면을 살리기 위해서는 문법적인 것도 무시할 때가 있게 되며, 낱말 선택과 심상, 인유및 속어의 사용도 파격적인 경우가 있다. 
월코트의 첫시집 <25 편의 시>는 시인이 18세 때인 1848년에 자비로 출판되었다. 그러나 이때 월코트는 이미 훌륭한 시인으로서의 자질을 인정받아 <빔> 지(誌)의 오랜 편집자인 프랭크 콜리모어의 찬사를 받은 바 있다. 최근에 출판된 월코트의 시집으로는 1990년에 출간된 <오메로스>가 있다. 
이번에 번역하게된 시집인 <행복한 나그네>에 실린 시들은 여행자의 마스크를 통해 작가의 예리한 비판적 안목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온유한 신을 말하면서, 그 온유한 신을 위해 무자비한 살육을 자행한 잔혹한 청교도 후예들이 이제 피묻은 돛을 달고 월남에서 돌아오는 군인이 되어 있는 모습을 그린 시, 기계문명에 의해 자연파괴와 미국혼이 사멸되고 있음을 노래한 시, 식민지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 과거의 전통 및 유산 등이 역사의 흐름과 더불어 과거의 영광을 잃게 되는 것이 자연의 섭리임을 그리는 시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이들은 진리도, 인습도, 전통도 절대적이거나 영원하지 못하다는 포스트모더니즘적 특질을 보여주는 것들로서 서구 지배자의 논리에 착취 당해온 동양의 서구인들에 의해 '오리엔탈리즘'이란 잘못된 고정관념을 심어주어, 그들이 동양지배를 당연시하거나 정당화시켜 온 과거의 역사를 신랄하게 비판한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의 주장과 흡사하다. 따라서 탈식민지시대의 대표적인 문학의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 시의 첫 작품인 <범선 훌라이트>는 10편의 짧은 연시이며, 이 시에서 샤배인이라는 별명의 시인인 동시에 선원인 주인공은 자신과 현재 처한처지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그에겐 모든 것이 불만스럽다.한가지 예를 들면 그는 그의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마리아 콘셉숀이라는 아름다운 여인에 대한 열애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 이 시의 또 하나의 주제는 주인공의 혈통에 관한 것으로, 백인과 흑인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백인과 흑인 양쪽으로부터 다같이 배척받고 있다. 그리고 이와 관려된 또 하나 주목할 만한 것은 식민지 하에 있어서의 사회의 부패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다. 이러한 식민지의 압제자와 그러한 사회에 대한 반항과 비판은 뒤에 이어지는 시(詩)들에서 보다 강하게 나타난다. 그리고 특히 <사배스 W.I.>와 <바다는 역사>에서는 시험적인 시형식이 눈에 띈다. 그러나 한가지도, 그것이 파괴적이거나 혁명적인 것으로 유도하려 하고 있다라고 보기보다는 인고(忍苦)를 최종적인 대안으로 제시하려는 데 있다고 보는 것이 옳지 않나 하는 점이다. 

박영희(문학박사,충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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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나지여 안녕 / 데릭 월코트 



한가로운 8월의 바다는 부드럽고 섬의 갈색 나뭇잎들이 이 카리브 해변에 달라붙을 때, 
곤히 잠든 마리아 콘셉숀의 얼굴을 비쳐주고 있는 촛불을 살며시 끈다, '훌라이트'라는 범선의 뱃사람이 되기 위해 
회색빛으로 물들어가고 있는 아른 새벽 정원 나뭇가지에 바람이 살랑거릴 때까지 나는 돌처럼 서 있었다. 
그때 주변은 죽은 듯이 조용하고 
찬 바다만이 충격받은 전율처럼 물결치고 있었으며, 
하늘에는 못구멍 같은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뜰을 쓸고 있는 무뚝뚝한 이웃 여인을 지나 고개 아래로 내려갈 때, 
나는 하마터면 다음과 같이 말할 뻔했다. 
"이 마녀야 조용히 쓸어라, 
대지는 깊이 잠드는 일이 없다" 
그러나 그녀는 나를 죽은 사람처럼 바라볼 뿐이었다. 
그때 택시가 섰다, 주차등을 아직도 켠 채, 
운전기사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면서 나의 행낭을 재 보았다. 
"이번에는 샤반으로 영원히 떠나는 것이냐!"라고 묻는 듯이 
그러나 나는 대답하지 않고 뒷자리에 올라탄 채 
떠나온 잠든 여인의 가운과 같은 라빈타일 분홍빛으로 불타고 있는 하늘을 응시했다. 
후면 반사경을 들여다보니 
나와 똑같은 놈이 
떠나는 집들과 길거리 그리고 빌어먹을 섬 전체가 몹시나 아쉬운 듯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모든 잠자는 영혼들에 예수님의 자비가 있기를! 
저 아래 우라이튼 거리에서 썩고 있는 개로부터 
나와 같은 개에 이르기까지. 

이들 섬들을 사랑하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짐이라면, 
썩어 문들어져가는 곳으로부터 나는 영혼의 날개를 펼치리라. 
그러나 그들은 나의 영혼에 독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큰 저택, 대형 승용차, 큰 보물, 중국인 쿨리, 검둥이, 시리아인, 
그리고 프랑스 계 크리올 등으로. 
그래서 나는 그들과 그들의 사육제에 그 짐을 맡기고 
바다 목욕을 한 다음 저 아랫길로 내려갔다. 
바닷빛 파란 눈과 녹빛머리. 
빨간 검둥이에 대한 방언이 샤배인이라는 선원인 나는 이섬들을 안다. 
모노스로부터 나소에 이르기까지. 
나 사배인은 또 바다를 사랑하는 빨간 검둥이. 
나는 훌륭한 식민지 교육을 받았으나 
나에게는 네덜란드인과 검둥이 그리고 영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 
따라서 나는 보잘것없는 인간이던가 아니면 하나의 국가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출렁거리고 있는 바다를 지켜보고 있는 나의 머리는 
마리아 콘셉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그때 황홀한 반사빛으로 자신의 이름을 새기고 있는 태양은 
어선과 범선 그리고 요트들의 항구 쪽 뱃전을 
새로운 색채로 단장하고 있었다. 
나는 검은 머리의 저녁이 해질 무렵에 
그녀의 명주옷을 걸치는 때와, 
그녀가 바다를 덮으면서 밝은 웃음과 더불어 
옆걸음질 치는 때를 알고 있었다. 
휴식이 없고 고통을 잊을 틈도 없다는 것은 
죽은 자가 살아나기를 바라는 장지의 상주들에게 
부활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것. 
따라서 나는 뱃머리의 밧줄이 풀리고 배가 바다로 미끄러져나갈 때 
혼자 웃으며 말했다. 
"바다에는 보다 많은 고기가 있다는 말을 
되풀이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나는 그녀가 천사의 성적 매력이 없는 빛의 옷을 입기를 원치 않는다. 
나는 비단털 원숭이와 같은 둥근 갈색 눈을 원하며, 
몸을 뒤로 비스듬이 젖히고 즐거운 웃음을 웃을 수 있을 때까지, 
마치 젖은 모래 위의 개처럼, 
땀흘려 일하는 일요일 오후에 
나의 등을 간지럽히는 손가락을 나는 원한다," 
나의 어머니의 젖과 오늘밤 화덕으로부터 사라질 별들에 맹세하건데, 
썩은 파도가 바다를 명주처럼 가르는 뱃머리를 지켜보면서 일할 때, 
나는 그들과 나의 아이들. 나의 아내, 그리고 나의 가정을 사랑했으며, 
시인들이 그들의 죽음을 채촉하는 시를 좋아하고 
선원들이 그들을 수장하는 바다를 사랑하는 것처럼 
나는 그들을 사랑했다. 

여러분은 혹시 어떤 한적한 해변을부터 
멀리 보이는 범선을 본 일이 있는지요? 
글쎄요, 나의 시는 구절마다 바닷물에 목욕한 것들이여, 
매행은 삭구의 밧줄처럼 꼭 맺혀 있으며, 
또 나의 평이한 언어와 말은 바람과 같으며, 
나의 한장 한장의 시는 범선의 돛과 같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 이 일이 시작되는지를 말하여 드리리다. 




@@@@ 데릭 월코트 Derek Walcott 

1930년 서인도제도 세인트 루시아에서 태어남. 
1947년 서인도 유니버시티 칼리지 졸업 
1949년 <젊은이들을 위한 비명> 발표 
1952년 희곡 <해리 더니어> 발표 
1954년 결혼 그라나다 세컨러리 스쿨 교사 
1962년 시집<신선한 밤에> 발간, 재혼 
1966년 아메리칸 아카데미 명예회원 
1969년 시집 <심연> 발간, 재혼 
1970년 희곡 <원숭이 산의 꿈> 발표 
1973년 시집 <또 다른 인생> 발간 
1981년 로스앤젤레스타임스상 수상, 하버드대학,캐임브리지대학교수 
1982년 세번째 결혼 
1983년 시집 <카리브해의 시><로매르바이든의 예술>발간,크로몬들상 수상 
1985년 보스턴대학 교환 교수 
1988년 웨스트인디즈대학 교수 
1990년 시집 <오메로스> 발간 
1992년 노벨문학상 수상
 
 


샤배인 공화국을 떠나다 / 데릭 월코트 




나에게는 이제 상상력 이외에는 나라가 없었다. 
백인들은 다음에 권력이 그들 쪽으로 기울자 
이번에는 흑인들이 나를 원치 않았다. 
처음엔 나의 손에 쇠사슬을 채우고서 '역사' 때문이라고 말하더니, 
그런 다음엔 내가 그들의 자존심에 부합할 만큼 
검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무슨 권력이든 이들 이름 모를 바위 위에서 말해 주십시오 
분무비행 공군, 소방대, 적십자사, 연대, 
"열병식!" 이라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당신 앞을 자나가는 두서너 경찰견? 
나는 한때 역사를 만난 일이 있다. 
그러나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오래된 바다 병처럼 사마귀 투성인 
격자 발코니의 그물에 의해 드리워진 그림자 구멍을 통해 
개처럼 기고 있는 크림색 옷을 입고 크림색 모자를 쓴 양피지 크리올을. 
나는 그와 대면하여,"나는 샤배인입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나는 당신의 손자라고 합니다. 
당신의 흑인 요리사인 할머니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십니까?" 
라고 외쳤다. 
그러나 그는 기침을 하면서 가래를 밷는 것이었다. 
그러한 가래는 몇백 마디의 말보다 의미가 있다. 
그런데 그자들이 우리에게 남겨놓은 것은 말뿐이다. 
나는 더이상 혁명을 믿지 않았다. 
나는 알렉산더 부록 <트웰브>에서 영웅 취급되는 것을 보았다. 
그는 어느 일요일 정오에 해양경찰 지서와 
베네수웰라 호텔 사이에 있었다. 
국기도 없어 셔츠를 흔들면서 
가슴에 총구멍이 나기를 기다리는 젊은이들. 
그들은 계속 산 속으로 행진해 갔다. 
그리고 거품이 모래 속으로 스며들면서 그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빗방울처럼 눈부신 언덕으로 사라져갔다. 
작자 자신의 후광을 드리우고 셔츠를 거리에 버려두고 
길끝에 권력의 메아리를 남긴 채. 
의사당 천장에는 선풍기가 돌고, 
사람들이 말하기를 양홍색 법복을 입은 판사들이 아직도 땀을 흘리고 있으며, 
프레드릭 거리에는 쓸모없는 사람들이 모두 꼿꼿이 서서 행진을 하고 있을 때, 
예산은 새장을 열고 있다. 
12시 30분 영화 때 영사기가 고장나는 일이 가장 없으며, 
그것이 싫으면 혁명이나 구경가라. 
알렉산더 부록이 들어와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리 벤 크리프가 주연으로 출연하는 스페인 서부활극을 구경하기 위해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세 번째 맨 앞줄에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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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릭 월코트의 '오메로스(Omeros)' 

개인 삶을 넘어서는 장대함 
카리브해에 바치는 시인 송가

 



1992년 '오메로스'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시인 데릭 월코트는 카리브해의 세인트루시아 출신이다. 인구 16만명의 이 작은 섬나라는 노예의 후손인 아프리카계 흑인과 혼혈이 주민의 90%다. 영국계 아버지와 아프리카 노예 혈통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가 카리브해 연안 민족의 소외감과 문화적 갈등을 시의 주제로 삼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다. 그의 시는 강렬한 이미지와 은유로 카리브해의 현실과 정서를 표현한다. 카리브해는 항상 바다 위를 날아다니며 잠들지 않는 칼새처럼 월코트의 서정 속에 살아있다.


'오메로스'는 일리아드 오딧세이의 저자인 호머를 뜻한다. 주요 등장인물의 이름인 아쉴,헥터,헬렌은 프랑스와 영국의 식민지 쟁탈전에 부역으로 동원된 노예들에게 그리스 서사시의 영웅들처럼 용감히 싸웠다고 해서 지배자들이 붙여준 것이었다. 이름의 의미는 카리브해의 비극적인 역사처럼 그렇게 아프다. 

오메로스는 일리아드보다는 오딧세이에 가깝다. 그의 영혼은 다양한 공간과 시간을 맴돌며 순환한다. 그는 자신이 식민지의 타락된 과거 속에서 태어났음을 깨닫는다. 시간과 공간을 오가는 방황의 순례를 거치며 북미 대륙 남부의 농장들에게서도 역사란 약육강식의 순환이었음을 발견한다. 거대한 공동묘지처럼 시간의 공포에 짓눌린 지중해의 도시들도 그가 살 곳이 아니었다. 그가 좋아하는 것은 조각상들이 아니라 조각상의 머리에 앉은 새이기 때문에. 마침내 섬으로 돌아온 그는 자신이 그 섬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를 말한다. '난 모든 감각으로 거기서 살았다. 두 눈으로 냄새 맡고 콧구멍으로 볼 수 있었다.' 

그의 마지막 도착점은 바로 출발점에 서있는 자신이다. 모두 7부 64장에 이르는 장대한 스케일의 서사적 장편시는 아침을 여는 이른 새벽 출항을 준비하는 바다를 배경으로 시작하여 고기잡이를 마치고 귀향하는 저녁바다로 마지막 장면을 만든다. 생양파 조각처럼 빛나는 보름달 아래 '그가 해변을 떠났을 때도 바다는 여전히 철썩거리고 있었다' 장대한 시가 하룻동안의 일처럼 느껴진다. 

아프리카와 카리브와 유럽과 아메리카의 문화와 혈통이 뒤섞이고 집합체를 이룬 다층적 문화 속에서 자아의 주체성을 추구하는 월코트의 문학을 중남미 탈식민주의 문학의 성취라고 한다면,단일문화의 식민지 출신인 우리의 아시아 문학에게 시사하는 점은 무엇일까. 자신이 태어난 카리브해의 작은 섬에 바치는 월코트의 애정은,우리가 목청 높여 떠드는 민족이니 애국이니 하는 말들보다 숭고해 보인다. 

무엇보다도 오메로스는 내게 시에 대한 신뢰와 용기를 주었다. 일상의 자잘한 에피소드로 엮어내는 아픔,상처의 토로 같은 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이다. 개인의 삶을 넘어 더 크고 장대한 이야기를 시라는 형식으로 이렇게 아름답고 넉넉하게 풀어낼 수도 있구나. 4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이 시집은 펼쳐서 읽다가 덮어두었다가 또 펼쳐보고 하면서 몇 년 째 내 책상에 놓여져 있다.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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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도 노벨 文學賞 受賞 詩人
데레크 월코트의 시 감상


李豊鎬(Paul Lee)
<재미 시인>

英연방 西인도 카리브 海 세인트 루시아 태생 詩人 데레크 월코트(Derek Walcott)가 금년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고 지난 10월 8일 스웨덴 翰林院이 발표했다.
현대의 호머(Homer)라고 비평가들의 평을 받은 바 있는 올해 62세의 월코트는 흑인 노예의 후손으로서 아프리카의 서인도 제도와 유럽의 문화 전통을 환기시켜주며 풍부한 조화를 제공해주고 있는 광범한 작품 내용으로 찬사를 받았다. 상금으로 미화 백 20만불($1.2 million)을 수여하는 스웨덴 한림원측은 西인도 문화가 위대한 시인 월코트의 작품 속에 들어있다고 말했다. 한림원은 획일적인 광채와 거대한 힘 을 보여주고 있는 그의 아름다운 음악적이고도 감성적인 문체에 대해 칭송했다.
시인으로서 일찍부터 재능이 싹트기 시작한 월코트는 그의 청년기에 이르자 유럽 식민지 전통을 접하게 됐으며 자기가 태어난 西인도 제도의 뿌리 속에 긍지를 심어왔다. 이러한 多문화적 긴장 상태는 노예 제도와 영국 통치로부터의 독립 그리고 가혹한 가난에 대한 주제들이 그의 초기 작품 속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18세에 발표한 월코트의 첫 시집 시 25편 (25 Poems)은 처음부터 국토와 역사 그리고 문화에 대한 혼란스런 要素들이 그로 하여금 주체성에 대한 수수께끼를 깊이 생각하도록 해주었다. 그가 초기에 쓴 시 아프리카에서 들려오는 먼 함성 (A Far Cry From Africa)에서 그는 그의 家系 대대로 전해 오는 아프리카의 遺産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다음과 같이 질문하고 있다.

Where shall I turn, divided to the vein?
I who have cursed
The drunken officer of British rule, how choose
Between this Africa and the English tongue I love?

혈관까지 갈라진 채 나는 어디서 돌아서야 할까
술 취한 영국의 통치자를
저주한 나, 내가 사랑하는
아프리카와 영어 말씨 사이에서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

그는 때때로 모든 자료는 그의 예술의 권한 아래 또는 그 바깥쪽에 있다고 주장한다 고 밝히면서 詩 그로스일렛 (Gros-Ilet)에서 그는 西인도 제도의 황폐한 작은 섬마을을 묘사하면서 다음과 같이 끝을 맺고 있다.

This is not the grape-purple Aegean.
There is no wine here, no cheese, the almonds are green,
the sea grapes bitter, the language is that of slaves.

이곳은 포도 같은 자주빛 에게 海가 아니다.
포도주도 치이즈도 없는 여기에 아먼드 복숭아는 싱싱하고
바다 포도는 쓰고, 언어라고는 노예들의 말 뿐이다.


월코트의 할머니들은 노예의 후손으로 밝혀졌고 노예의 고뇌에 찬 遺産物이 그의 시편들의 주제를 이루고 있다. 자마이카에 대한 1979년도 작품 별 사과 왕국 (The Star-apple Kingdom)에서 馬夫, 목동, 하녀 . . . 아랫 마을의 선한 흑인들, 소리 없는 悲鳴으로 잠겨진 턱에 그들의 입들 (groom, the cattle boy, the housemaid . . . the good Negroes down in the village, their mouths in the locked jaw of a silent scream.)이라고 그는 쓰고 있다.
또 다른 작품에서는 허약한 西인도 제도의 환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One morning the Caribbean was cut up
by seven prime ministers who bought the sea in bolts
til everyone owned a little piece of the sea, from which
some made saris, some made by bandannas
the rest was offered the trays to white cruise ships
taller than the post office.


어느 날 아침 카리브 海가 분활되었다
한 묶음씩 바다를 산 일곱 首相들에 의해
누구나 조금 씩 바다를 소유할 때까지, 사리 무명천 조각 만큼
물들인 커다란 손수건 만큼
나머지 사람들은 쟁반 크기에서부터 우체국 보다 더 크고
하얀 巡洋船 크기 만큼 얻게 되었다.


데레크 월코트(Derek Walcott)의 詩 감상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월코트의 시세계는 노예제도의 가혹한 遺産과 西인도 제도의 매력 을 묘사하는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그의 대표 작품으로는 64章으로 구성된 카리브人의 敍事詩 오메로스 (Omeros)와 함께 그가 처음 주목을 받기 시작했던 1962년도 발표 작품 푸른 밤에 (In A Green Night) 등을 들 수 있다.
월코트의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그의 詩 작품 몇편을 일부 영어 원문과 함께 필자의 한글 번역으로 소개한다. 아울러 월코트의 작품 연대기를 실어 그의 전체적인 작품세계를 조명해 본다.


The Arkansas Testament


I remember the cities I have never seen
exactly. Silver-veined Venice,
Leningrad
with its toffee-twisted minarets.
Paris. Soon
the Impressionists will be making
sunshine out of shade.
Oh! and the uncoiling cobra alleys
of Hyderabad.


아칸소 言約


나는 내가 한번도 보지 못했던 도시들을 정확히
기억한다. 은백색 결 있는 베니스,
레닌그라드의
콧대 비틀어진 회교 사원의 첨탑.
巴里. 머지않아
印象派 조각가들은 陰影으로
햇빛을 만들겠지.
오, 그리고 히드라바드의
사리를 푸는 코브라 오솔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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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am``s Song


. . . Men still sing the song that Adam sang
against the world he lost to vipers,
the song to Eve
against his own damnation;
he sang it in the evening of the world
with the lights coming on in the eyes
of panthers in the peaceable kingdom
and his death coming out of the trees,
he sings it, frightened
of the jealously of God and at the price
of his own death.



아담의 노래


. . . 인류는 아직도 아담이 부른 노래를 부른다
毒蛇에게 잃어버린 세상에 대항하여,
스스로 파멸에 대항하여
이브를 향한 노래
평화스런 왕국의 숫표범의
두 눈에서 빛이 발산하고
十字架에서 그의 죽음이 걸어나오는
세상의 저녁이 되면 그는 노래를 불렀다
하느님의 경계심과
스스로 죽음의 對價에
그는 노래를 부르면서 무서워했다.

-----------------------------

The Light of the World

And I had abandoned them, I knew that there
sitting in the transport, in the sea-quiet dusk,
with men hunched in canoes, and the orange lights
from the Vigie headland, black boats on the water;
I, who could never solidify my shadow
to be one of their shadows, had left them their earth,
their white rum quarrels, and their coal bays,
their hatred of corporals, of all authority.


세상의 빛

그리고 나는 마을 주민들을 내버렸다. 나는 내가 輸送船 안에
앉아 있음을 알았다. 조용한 바다 해지는 속에서
커누 안에 등을 구부리고 앉은 사내들과 함께, 오렌지색 불빛이
비기갑(岬)으로부터 비취고, 물 위에 떠있는 검은 보트들.
마을 주민들의 陰影 중 일부가 되기 위해
내 그림자 하나 결속할 수 없었던 나는 그들을 육지에 남겨놓았다
그들의 결백한 술취한 말다툼도, 炭色의 월계관도
그들의 증오어린 육체도, 모든 권력에 대한 증오까지도.

데렠 월코트의 作品 年代記

시집

1948년 첫시집 시 25편 (25 Poems) 18세 때 어머니가 준 200불로 西인도
제도 최남단의 섬 트리니다드에서 自費 출판.
1949년 젊은이의 墓碑銘 (Epitaph for the Young: a Poem in XII Cantos)
바베이도스에서 출판.
1951년 시 (Poems) 킹스턴에서 출판.
1962년 한 푸른 밤에 (In a Green Night) 런던에서 출판.
1964년 시선집 (Selected Poems) 뉴욕에서 출판.
1965년 버림받은 자 외 기타 시 작품 (The Castaway and Other Poems)
런던에서 출판.
1970년 灣 (The Gulf) 런던에서 출판.
1972년 또 다른 인생 (Another Life) 런던에서 출판.
1976년 바다 포도 (Sea Grapes) 런던에서 출판.
1979년 별사과 왕국 (The Star-apple Kingdom) 런던에서 출판.
1982년 運 좋은 여행객 (The Fortunate Traveller) 한여름 (Midsummer)
런던에서 출판.
1986년 1948-84년 시 모음집 (Collected Poems 1948-1984) 런던에서 출판.
1987년 아칸소 言約 (The Arkansas Testament) 런던에서 출판.
1990년 오메로스 (Omeros) 런던에서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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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

1970년 원숭이山上의 꿈 외 기타 희곡 작품 (Dream on Monkey Mountain
and Other Plays) 뉴욕에서 출판.
1979년 세빌의 포커 와 오 바빌론 (``The Foker`` and ``O Babylon``) 런던
에서 출판.
1980년 회상 과 무언극 (``Remembrance`` and ``Pantomime``) 뉴욕에서 출
판.
1986년 희곡 3 편 (Three Plays) 뉴욕에서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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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수필

1965년 학교를 떠나면서 (Leaving School) 크루소의 모습 (The Figure of
Crusoe) 발표.
1970년 의미 (Meanings) 黎明이 말해주는 것 - 序曲 (What the Twilight
Says; an Overture) 발표.
1974년 역사의 詩 (The Muse of History) 카리브 海, 문화인가 흉내인가 
(The Caribbean: Culture or Mimicry?) 발표.
1975년 스페인의 港灣 선택에 관하여 (On Choosing Port of Spain) 발표.
1986년 帝國에 대한 한 식민지의 견해 (A Colonial``s Eye-View of the
Empire) 발표.
1989년 캘리구라의 말 (Caligula``s Horse) 발표.
1990-91년 劇 속의 詩人 (The Poet in the Theatre) 발표.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시인 겸 극작가 데릭 월코트(62)는 혼혈이다. 그의 문화적 혈액에는 유럽과 아프리카, 카리브해의 역사와 문화가 뒤섞여 있다. 월코트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시집은 90년에 나온 장편서사시 《오메로스》이다. 이 시집은 그에게 ‘현대의 호머’라는 칭호를 달아주었다. 영어권 문단의 비평가들은 《오메로스》가 호머의 《일리어드》와 《오딧세이》를 그가 성장한 카리브해 문화와 접목시키고 있다고 분석한다.

 스웨덴 한림원은 수상 결정 이유에서 “월코트는 아프리카·유럽·카리브의 역사와 문화적 배경을 토착적인 예술형식으로 창조해냈다“면서 《오메로스》에는 호머·에드가 앨런 포우·러시아의 시인 마야코프스키·소설가 멜빌의 음성이 들어 있다고 밝혔다. 이 선배 작가들을 육화해낸 월코트의 시는 역사적 비전을 은유와 빛나는 이미지로 빚어낸다. 모두 64장으로 완결되는 《오메로스》는 위 세 문화가 서로 갈등하고 삼투하는 웅장한 서사시이다. 구비문학의 전통에 충실한 이 시는 역사로서의 바다와, 바다를 둘러싼 해양문화를 노래하는데, 서로 다른 문화와 문학이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탁월하게 소화하고 있다. 고대 설화의 신비함과 서인도제도의 미래가 녹아들어가 있는 것이다.

 비평가 제임스 알타스는 월코트 문학의 테마를 그가 태어난 서인도제도의 영연방 세인트 루이스섬에 대한 ‘이중구조의 사랑’이라고 규정한다. 영국 식민지의 시민이며 흑인이고 그래서 영원한 아웃사이더일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고향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시집 《오메로스》의 편집자인 갤러시는 영국 시의 전통을 탁월하게 구사하는 현대 시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 월코트이며, 그는 진보적인 작가가 아니라 매우 서정적인 시인이라고 평가한다. 이 시집은 91년 영국에서 ‘W.H.스미스 문학상’을 수상했다.

 “왜 내가 결정됐는지 모르겠다. 나보다는 트리니나드 출신 작가인 V.S.나이폴이나 아일랜드 시인 시무스 허니가 받을 줄 알았다”라고 당혹해한 월코트는 “서인도제도의 문학이 국제적으로 알려지게 돼 기쁘다”면서 상금(1백20만달러)으로 고향 세인트 루이스에 집과 연극 스튜디오를 짓고 싶다고 말했다.

“내 생애 자체도 이중적이다”

 월코트의 생애는 그의 문학세계와 함수관계를 갖는다. “아주 어려서부터 작가가 되고 싶어했다”는 월코트는 한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사회사업가이자 아마추어 연극인인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그의 부친은 연극과 오페라에 많은 관심을 가진 영국인이며 어머니는 아프리카 노예혈통이었다. 식민지 지배자와 노예의 피는 그의 시 <아프리카의 먼 외침>에서 “아프리카와 영국, 내 사랑은 어디인가”로 표출된다. 《오메로스》에서는 “그가 찾아다니는 것은 그의 이름이오. 그 자신의 이름과 영혼말이오”라고 정체성을 찾을 수 없는 유색인종의 아픔이 드러난다.

 월코트는 “나의 경험은 카리브해의 것이며 나의 정신은 아프리카와 아시아로부터 왔다”고 말했다. 18세 때인 48년 첫 시집 《25편의 시》를 펴내며 등단한 월코트는 53년 세인트 루이스에서 현재 거주지인 트리니나드로 이주했다. 시 쓰기와 함께 그는 연극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54년 첫 희곡 <도핀의 바다>를 발표했고 62년 시집 《초록빛 밤에》로 문학적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의 초기시의 관심은 영문학의 전통과 크레올어(서인도제도의 토착어)의 결합이었다. 크레올어에 스며들어 있는 카리브 문화와, 나아가 아프리카적 정서와 세계관을 전달하기 위해 그는 정확한 영어를 구사했다. 아버지인 영어와 어머니인 아프리카와 카리브의 만남을 문학 속에서 시도한 것이다.

 그무렵 그는 라틴어·프랑스어 교사 생활을 거쳐 <트리니나드 가디언>지의 예술평론기자로도 활약했다. 59년에는 ‘트리니나드 연극연구회’를 조직하고 60년부터 전업작가로 나섰다. <타잔의 형제들>(58년)에 이어 그는 <원숭이산에서의 꿈>(70) <마지막 카니발>(86) 등의 희곡을 썼는데, <마지막 카니발>은 트리니나드의 최근세사 20년을 다룬 것으로 스웨덴에서 공연된 바 있다. 스웨덴 한림원은, 그의 희곡의 중요한 특징은 그의 시가 그러한 것처럼 다양한 문화의 목소리들을 아우르는 솜씨에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미국 보스턴대 영문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문예창작을 가르치는 그는 미국과 트리니나드를 오가는 생활을 한다. 미국에 있으면 카리브에 가고 싶고 카리브에 머무를 때는 미국으로 떠나고 싶다는 것이다. 그의 생애와 문학은 이처럼 이중구조를 이루고 있다. 그는 요즘도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글을 쓰는 한편 틈틈이 그림도 그린다.

 그가 태어난 영연방 세인트 루이스는 베네수엘라와 쿠바 사이에 있는데, 면적 6백16㎢에 인구는 15만명에 불과한 작은 섬이다. 관광산업과 바나나로 유명한 이 섬은 월코트가 노벨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섬 전체가 잔치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세인트 루이스에서 노벨상은 낯설지 않다. 79년 이곳 출신 경제학자 아더 루이스(현재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가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것이다. 루이스와 월코트는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다. 세인트 루이스는 문맹률이 15%밖에 안될 만큼 교육수준이 높다. 유엔주재 세인트 루이스 외교관은 “세인트 루이스는 오래 전부터 강력한 지적 전통이 있어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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