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의사 이낙원이 보내온 ‘코로나19 일기’
서울 송파구 ‘드라이브 스루(자동차 이동형)’ 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이 코로나19 검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송파구 ‘드라이브 스루(자동차 이동형)’ 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이 코로나19 검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에 ‘방관자’는 없습니다. 모두가 ‘일선’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환자를 상대하는 의사들이 있는 곳은 ‘최일선’입니다. 이낙원씨는 인천 나은병원 호흡기내과 의사이면서 중환자실장입니다. 코로나19 사태로 나은병원에는 선별진료소가 마련됐고, 이낙원씨는 여기서 일주일 두세 번 순환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순환근무를 하지 않을 때는 안심병원으로 지정된 병원에서 호흡기 질환으로 내원한 환자들을 맞고 있습니다. 그가 코로나19 사태 초기부터 써온 소중한 일기를 공개합니다. 일기는 코로나19 사태를 따라가며 연재될 예정입니다. _편집자

 

 

 

 

 

 

 

 

 

 

 

 

 

 

 

2월1일 마스크

 

 

요즘, 마스크를 쓰라는 강한 권고가 있었음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피부가 예민한 나는 마스크를 쓰면 코와 뺨이 가렵다. 근질거리니 벗었다 썼다를 반복하고, 그렇게 얼굴에 손이 가면 차라리 안 쓰느니만 못하다. 그래서 난 진료할 때 거의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이번 겨울엔 유난히 독감 환자가 많았다. 내 손으로 진단한 사람만 100명 가까이 될 것 같다. 마스크를 안 쓰고 독감 환자들을 대면했지만, 다행히 난 독감은커녕 감기도 걸리지 않고 한겨울을 잘 버티고 있다. 지난 11년간 소소한 감기는 여러 번 앓았어도 독감은 딱 두 번 걸렸다. 그러니까 굳이 계산하자면 5.5년에 한 번꼴이다.

 

 

내 진료실에 들어왔다 나가는 환자가 하루에도 수십 명인데 난 어떻게 바이러스가 안 옮을 수 있었을까? 그 첫 번째는 모든 이에게 베풀어주시는 ‘중력’이라는 공평한 힘 때문이다. 중력은 크기에 상관없이 공평하게 작용한다. 몸살감기에 걸린 사람을 이부자리로 끌어당기는 그 중력이 바이러스에도 작용한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 인간도 바이러스도 마찬가지다.

 

 

그리하여 누군가의 코와 입에서 튀어나온 바이러스는 상승의 기회를 찾지 못한 채 추락하고 만다. 책상, 문손잡이, 핸드백, 쓰레기통 속 코를 푼 휴지에 바이러스는 갇혀버리고 만다. 새로운 숙주를 찾아 침투하고 번성하고 싶은 원초적 본성을 지닌 바이러스에 중력은 그야말로 쥐약이다. 숙주 없이 세상에 내팽개쳐진 바이러스는 오래 버티지 못하고 소멸하기 때문이다.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 즉 ‘시간이 지날수록 무질서해진다’는 우주적 규칙은 바이러스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사람이 죽어 흙으로 변하듯, 바이러스는 시간 속에 분해돼 흙으로 돌아간다. 그 시간이 30분에서 길어봐야 수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바이러스에도 구원의 여지가 있을까? 책상 위에 떨어져 임종의 시간을 기다리는 바이러스를 구원해줄 자가 있을까? 벼룩처럼 뛰어오를 줄도 모르고, 나비처럼 날아다닐 줄 모르고, 그저 비말 속에 묻혀 하염없이 추락만 거듭했던 바이러스에 상승의 기회를 줄 자 있을까? 있다. 바로 인간의 손이다. 인간의 손만이 바이러스를 상승시켜 새 생명의 길로 안내할 수 있다. 따듯하고 촉촉하며, 맛있는 유전물질이 있는 생존과 번영의 약속의 땅, 코와 입의 점막으로 안내하는 손.

 

 

천성적으로 마스크를 쓸 수 없었던 난, 강박적으로 손에 집착한다. 손을 자주 씻는 건 당연하고 웬만하면 무언가를 만지는 것을 삼간다. 회진할 때 걸음을 조금 늦추면 간호사가 앞서가면서 병실 문을 열어준다. 문손잡이를 잡은 손은 꼭 씻는다. 전철을 탈 때도 어지간하면 손을 사용하지 않는다. 어깨너비로 다리를 벌리고 종아리에 힘을 주면 손잡이를 잡지 않아도 그럭저럭 다닐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코를 파야 할 때는 세정제로 손을 박박, 특히 해당 부위를 집중적으로 씻어낸 뒤 일 처리를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때문에 불안도 함께 퍼지고 있다. 뉴스만 보다보면 좀비 영화 속 비극이 현실의 공포가 될 것 같다는 생각마저 하게 된다. 정말 불안해하는 분을 많이 봤다. 그러나 지나친 불안에 생활을 위축시킬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이 눈이 충혈되면서 누군가를 물었다는 소식은 들은 적이 없다. (그런 바이러스가 출현한다면 그게 진짜 공포지.)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날개 비슷한 것을 얻었다는 소식도 들은 적이 없다. 중력장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먼지 덩어리일 뿐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사람이 밀접한 공간에선 마스크를 쓰고, 바이러스의 가장 강력한 구원자는 바로 ‘나의 손’이라는 것만 잊지 말자.

 

 

2월3일 미생물계의 외모지상주의

 

 

이른 아침 시간이었다. 학교에 가서 보니 교실 구석에 아이들이 모여서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검고 질퍽해 보이는 물건이 한 귀퉁이에 놓여 있었다. 살아 있는 생물이 죽은 척하는 것 같기도 하고, 누군가 벗어놓은 커다란 손모아장갑 같기도 했는데, 냄새가 쾨쾨하고 고약했다. 낯선 물건인지 생물인지 알 수 없는 미지의 물건을 처리하기 위해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아이들은 옆 반에 다니는 지혜로운 복학생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복학생은 그것을 쳐다보며 골몰히 생각했다. 옆에 있던 어떤 학생이 물건이 점점 커지는 것 같다고 말한 후, 복학생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저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지다가 오늘 밤쯤에는 아홉 개의 꼬리 달린 여우로 자라나 우리 간을 훔쳐 먹을지도 몰라.” 아이들의 불안감은 극에 달했고, ‘힘을 합쳐’ 녀석을 무찌르기로 의견을 모았다. 인근 교실의 청소도구가 총동원됐고, 자는 그 녀석을 향해 공격했다. 빗자루와 마대 걸레로 녀석을 쑤셔댔고, 지혜로운 복학생은 양동이로 물을 길어다 녀석 위에 쏟아부었다. 곧 개똥 냄새는 교실 전체와 복도에 퍼져버렸고, 학교 전체가 똥 냄새로 진동하기에 이르렀다.

 

 

‘패혈증’은 이런 것이다. 몸 안에 침투해 들어온 미생물 자체보다, 미생물에 대한 대처가 과도해서 생기는 것이다. 아이들이 개똥임을 한눈에 알아봤다면 삽으로 살짝 들어올려 가져다버리면 해결될 것이듯이, 몸 안의 미생물을 면역계가 한눈에 알아봤다면 근처의 몇몇 백혈구가 작용해 먹어치우면 된다. 그러나 낯선 것이거나 그로 인해 발생한 불안이 확장된 상태라면 그것을 해치우기 위해 후방의 면역세포에 지원을 요청해야 한다. 백혈구가 모바일 기기를 가지고 있을 리 없다. 면역세포 안에 요청서가 담긴 단백질(사이토카인)을 혈액 내로 분비하면 소식은 금세 온몸으로 퍼진다. 전국에서 지원군이 해당 지역에 모여들고, 전쟁은 확대된다. 전방과 후방의 병사들이 서로에게 보내는 신호가 넘쳐나고, 전방에선 미생물과의 전투에서 나오는 사상자가 늘어난다. 이 모든 것은 혈관을 확장시키고 과하게 진행되면 혈압이 떨어질 수도 있다. 전쟁터는 우리 땅(인간의 몸)이므로 전쟁의 규모가 커질수록 몸의 상처도 커진다. ‘적군 규모’와 함께 아군이 쏟아부은 화력이 더해져 피해는 더욱 커진다.

 

 

독감에 걸리면 열이 나고 온몸이 죽도록 아프다. 바이러스는 코와 목구멍에 있는데, 왜 머리가 아프고 팔다리가 쑤시는 걸까. 이러한 전신반응은 두말할 것도 없이 앞에서 말한 몸의 면역계 활동 때문이다. 그럼 어떤 바이러스는 목만 아프고, 어떤 바이러스는 온몸이 아픈 걸까? 면역계 반응을 끌어내는 것은 바이러스의 ‘외모’다. 독감 바이러스는 우리 몸의 면역계가 보기에 얄밉게 생긴 게 분명하다. 한 대만 때려도 될 것을 두세 대 때리고, 그것도 모자라 동료들에게 일러바쳐 일을 크게 만들어버리니 말이다.

 

 

지금 문제가 되는 코로나바이러스는 본래 평범한 외모의 감기 바이러스였다. 콧물이 나거나 목이 칼칼한 상태로 2~3일 지나면 몸속에서 소멸하는 것들이었다. 이것이 유전적 변이를 일으켜 외모를 바꿨다. 외모만 바꾼 게 아니라 능력도 업그레이드했다. 목에서 기관지를 타고 내려가 폐부 깊숙이 내려갈 수 있는 침투 능력이 향상됐다. 대체로 면역세포가 알아보고 금세 처리하지만, 면역력이 떨어진 만성 환자나 노약자는 ‘낯선 얼굴’ 때문에 대처가 늦기 마련이다. 때때로 바이러스는 하기도(기관지와 허파를 포함하는 호흡기) 깊숙이 침투해 폐렴을 일으키고, 어떤 이에겐 패혈증을 일으켜 죽음에도 이르게 한다.

 

 

안타깝지만 몸의 면역계는 절대 미생물의 내면이나 성품을 보려 하지 않는다. 외모만 본다. 잘 알려졌다시피 독감을 분류하는 H5N1, H1N1 같은 명칭은 면역계가 바이러스를 인식하는 표면 항원의 종류(역시 외모)를 나타낸다. 면역계 외모지상주의는 수억 년간의 진화 과정을 통해 천문학적으로 다양한 외모를 지닌 미생물에 대처하는 방법을 터득해왔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출현이 가져온 공포와 불안을 경험했듯, 미생물의 외모 변화 전략도 만만치 않다.

 

 

2월10일 바이러스와 불안

 

 

퇴근길 선별진료소 앞 직원들을 지나쳐왔다. 한 분이 레벨D 방호복을 입고 있었다. 머리 꼭대기부터 발끝까지 흰색 원피스로 몸을 둘러쌌고, 얼굴은 고글과 마스크로 가렸는데, 생화학전에 참전해도 될 정도였다. 사람들 얼굴엔 하나같이 깊은 피곤이 드리워 있었다. 잔뜩 늘어난 일과에다 예전보다 더욱 민감한 환자들을 응대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전철을 탔다. 대부분의 사람이 마스크를 썼다. 젊은 사람들은 귀마저도 이어폰으로 막고 있으니 어지간한 구멍은 다 막은 셈이다. 한국 사람들의 위생 개념도 대단하거니와, 정부의 정책 홍보가 이렇게 개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마스크도 색상과 디자인이 다양해졌다. 무엇보다 얼굴을 찰떡같이 달라붙어 감싸는 밀착형 디자인이 일품이었다. 몇몇 마스크는 방독면 가스통처럼 일부가 돌출했는데, 기능 못지않게 패션을 중시하는 사람들 심리를 잘 이용한 것 같다. 마스크를 안 한 학생 두 명이 전철 안에서 웃고 떠드는데 몇몇 사람이 불쾌한 눈으로 쳐다보니, 이내 대화가 멈췄다.

 

 

이 모든 일이 바이러스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벌어졌다. 바이러스가 눈에 보인다면 얼마나 좋을까? 보이면 보이는 대상만 피해다니면 될 테고, 그럼 훨씬 더 적은 비용과 노력으로 대처가 가능할 텐데 말이다. 대상이 존재할 때의 감정을 두려움이라 하면 대상이 모호해 정의할 수 없을 때의 감정이 ‘불안’이다. 불안이 두려움보다 불편한 것은 대상이 모호하기 때문이고, 그것에 대처하기 위해 우리는 본능적으로 불필요한 감정을 동원해야 한다. 바로 ‘혐오’다. 왠지 싫고 불편한 이 느낌은 우리를 현재의 여기에서 벗어나게 한다.

 

 

과학자들은 ‘혐오’가 생명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가장 오래된 감정이라고 말한다. 노래기를 햇볕에 놓아두면 다리를 움직여 그늘을 찾아가고, 대장균조차 생존을 위협하는 구덩이에서 벗어나려고 섬모를 돌려 움직인다. 그냥 있으면 죽기 때문에 행동해야 하고 그러려면 행동의 동기를 제공해야 한다. 행동의 동기로서 ‘혐오’라는 감정은, 그래서 가장 원초적이고 강력하다.

 

 

불안이란 감정이 사회에 팽배할 때 사람들은 ‘대상’을 찾게 된다. 누군가를 또는 무엇을 찾아 혐오하면 벗어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이러한 성향은 어쩔 수 없는 우리의 본능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을 얻으려 할 때 혐오를 부추기는 전략은 늘 매력적인 수단이 된다. 그 나쁜 유혹은 언제나 사회적 스피커를 가진 사람들을 통해 유통되는데, 대개는 저항할 수 없는 사람들이 혐오의 대상이 된다. 역사적으로 유대인들, 유색인종, 성소수자 그리고 아픈 사람들이 그 비난의 자리를 차지했다.

 

 

불안에 대한 대처를 혐오가 아닌 다른 감정으로 접근할 수는 없을까? 심리학적으로 보면 긍정적 감정은 고등동물에게서만 볼 수 있다고 한다. 특히 행복과 감사는 인간 안에서도 고차원적 감정에 속한다니, 그래서 이럴 때일수록 더욱 고차원적으로 지내보자고 몇 마디 적어본다.

 

 

피부! 바이러스는 절대 피부를 뚫을 수 없다는 점이 얼마나 다행인가. 여러 층의 세포로 구성되고 맨 바깥층 피부 세포는 죽은 채로 몸을 뒤덮고 있다가 스스로 탈락해 자연으로 돌아간다. 이때 함께 떨어져나가는 바이러스와 세균이 하루에도 수십조 개에 이른다.

 

 

눈빛! 눈빛으로는 절대 미생물이 침입하지 못하니 얼마나 다행인가. 눈빛으로 누군가를 쏘아보면 싸늘한 감정만 되돌아올 뿐 절대 바이러스가 소멸하지 않는다. 그러니 눈빛으로는 사랑스러운 감정만 전하자.

 

 

그리고 중력! 바이러스와 인간은 모두 똑같이 중력장 안에 살아가는 미물이다. 바이러스에 중력을 거스를 날개가 없음을 조물주에게 감사하자. 병의 치료와 예방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많다는 점. 과학자 그룹은 바이러스를 발견한 지 수주 만에 염기서열을 밝히고 진단 방법을 개발했다. 얼마 안 있으면 치료제와 백신이 개발되고, 언론에 나오는 걸 보면 ‘낭만닥터 김사부’ 같은 따듯한 맘과 실력을 겸비한 의사도 많은 것 같다. 글을 쓰는데 <낭만닥터 김사부> 드라마가 시작했다고 아내가 부른다. 이만 글 쓰고 TV 보러 가야겠다.

 

 

2월13일 레벨D 방호복

 

 

물론 내 피부만으로도 바이러스 침투를 막을 수 있겠지만 나는 선별진료소 진료를 위해 레벨D 방호복을 입어야 했다. 바이러스 감염자 가까이에서 진료해야 하는 의료인을 위해 준비된 옷이다. 이 옷은 바이러스뿐 아니라 사람들 불안까지 차단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나 역시 옷을 입는 순간 평온을 느꼈고, 비장함마저 솟아올랐다.

 

 

옷을 입는 방법은 비교적 간단하다. 다리부터 집어넣은 뒤 팔을 끼우고 허리에서 목까지 올라오는 지퍼를 올린 다음, 머리덮개를 쓰고 고글을 착용한다. 마지막으로 발싸개를 신고 끈으로 동여맨다. 발싸개만 빼면 아이언맨이 슈트를 입는 순서와 비슷하다. 머지않은 미래에 인공지능(AI)을 갖춘 방호복이 나오리라고 예상된다. 과학기술은 언제나 공상을 현실로 실현해왔지 않나.

 

 

안타까운 점은, 이 하얀 옷을 한 번 입고 폐기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옷을 입고 진료실을 나오면서 마스크와 장갑까지 버려야 한다. 정말 아깝다. 이 모든 게 일회용이라니. 새 옷을 한 번 입고 버리는 것과 다를 게 없다. 버려진 옷들은 어딘가 폐기돼 땅속에서 썩지 않고 깊은 잠을 자게 될 것이다.

 

 

비닐과 플라스틱이 생태계를 위협하는 쓰레기로 전락한 시대다. 청정지역 바닷속에서도 비닐 로프에 걸려 생명이 위태로운 상어나 거북이의 사진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비닐과 플라스틱이 위협적인 이유는 썩지 않아서 지표면과 바다 위를 부유하기 때문이고, 썩지 않는다는 건 어떤 미생물도 이것을 먹어치울 수 없다는 말이다. 바이러스가 위협하는 곳에서 바이러스가 먹지 못하는 옷을 입으니 내 마음이 평온해지는 건 옳은 일이나, 그 누구도 먹지 못하는 이것들 때문에 지구가 생니를 뽑게 되는 건 옳지 않다. 하여간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지구를 위해서라도 빨리 바이러스의 계절이 지나가야 한다.

 

 

어떤 생태신학자가 한 말이 떠오른다. 그는 지구 생태계를 걱정하는 측면에서 본다면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게 오히려 잘됐다고 했다. ‘끓는 물 이론’이란 게 있다. 개구리들을 냄비 속에 넣어두고 서서히 물을 데우면 나중에 물이 끓으면서 다 죽고 만다. 그러나 개구리들을 펄펄 끓는 물이 담긴 냄비에 넣으면 개구리들은 뜨거움에 놀라 모두 냄비 밖으로 뛰쳐나온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이런저런 기후변화 정책을 했다지만 냄비는 서서히 데워지고 있다. 트럼프의 여러 가지 반생태적 정책이 ‘끓는 물 효과’를 내서 사람들을 각성시킬 것이다. ‘이대로’는 다 죽게 되니 행동하자는 각성 말이다.

 

 

바이러스 변종 하나에 한국은 물론 전세계가 떠들썩했다. 불안해하며 너도나도 대응책을 세워야 한다고 했고, 정부 대응을 비난하기도 했다. 아쉬운 건,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기후변화 이슈에선 너무나 조용했다는 사실이다. 변종 바이러스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고 깊게 인류를 위협하는 여섯 번째 대멸종이 진행되고 있는데 말이다. 변종 바이러스 사건이 일종의 ‘끓는 물’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개구리보다 총명한 인간이 아닌가.

 

 

추신. 지구가 더워지면 냉방 슈트를 만들어 입고 다니자는 인간이 있을까봐 한마디 덧붙인다. 오늘 방호복을 입어봤는데 입는 데 5분, 벗는 데 5분 걸린다. 할 만한 일이 아니다.

 

 

/이낙원 나은병원 호흡기내과 의사